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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안보 관광 (2013/5/4) -- 中

다음은 임진각 전망대에서 북쪽 도라산 역 방면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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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북쪽으로도 철조망이 쳐져 있지만 철조망 건너편은 비무장지대(DMZ)가 아니며 북한 땅은 더욱 아니다. 건너편은 그저 민통선 안쪽일 뿐이다.
과거의 경의선 철교와 지금의 경의선 철교의 위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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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역에서 평화 공원으로 가는 길엔 이렇게 6·25 참전국 기념비가 있고, 아웅산 폭탄 테러 순직자의 위령비도 있다.
6·25는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현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전쟁이다. 6·25만치 선악 이념이 분명했던 전쟁은 흔치 않다.

오죽했으면 UN이 창설 이래로 거의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딱 한쪽 편을 들어서--당연히 대한민국 편-- 반대편을 적극적으로 퇴치하는 군사 활동을 했으며, 전세계 역사를 통틀어 이토록 많은 국가들이 오로지 한 자그마한 나라 편을 들었던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벌어진 불법 침략 전쟁에 대한 정당방위이기 때문에 그렇다.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등을 생각해 보아라. 미군이 개입했던 전쟁 중에 6·25만치 참전 명분이 깔끔하고 정당한 전쟁이 있었는지를. 굳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제3자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이유 때문에 6·25는 여타 전쟁들과는 달리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인지도가 매우 저조하다. 아예 the forgotten war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절대적인 선과 악 구도가 너무 명확하다 보니, 딱히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하거나 삐딱하게 풍자· 비판을 할 껀덕지가 없어서 잊혀졌다는 게 나의 짧은 생각이다.
이라크, 베트남 등에 비해, 6·25는 전쟁을 겪은 당사자가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거뜬히 이뤄 내고 G20 급의 선진국이 되어 있다는 점도 크게 다른 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충분히 가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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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S. 트루먼.
원래 부통령이다가 프랭클린 루스벨트(FDR)가 급사한 뒤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으며,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한 양반이다.
그가 6·25 때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북한· 중공군을 완전히 격퇴하지 못했다”와 “한반도에서 또 핵이 떨어지고 3차 세계 대전이 벌어질 뻔했던 상황을 예방했다”라는 두 평가가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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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평화 공원을 살펴본 뒤, 우리 일행은 다시 역으로 돌아와서 도라산 행 열차를 탔다. 문산-도라산도 아니고 임진강-도라산 겨우 한 정거장 거리만을 이용한 것이다.

개인이 도라산 역으로 가려면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며, 왕복 승차권 구입과 더불어 연계 안보 관광 패키지 신청도 같이 해야 한다. 예전에는 역 주변만 둘러보고 돌아오는 것도 가능했던 것 같은데 정책이 또 바뀐 것 같다.
이 지대의 관광 상품은 도라 전망대, 제3 땅굴, 통일촌 견학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간은 식사 시간을 포함하여 3~4시간 정도 걸린다.

역 주변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은 역시 보안 시설에서 온갖 사람들을 통제하는 헌병이어서 그런지, 다들 키 크고 체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20대 초반 나이일 텐데 말이다.

도라산 역의 옛날 사진을 보니 역명판의 서체가 목판체 계열이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저건 코레일체도, HY울릉도도 아니라 윤 디자인에서 만든 월드컵체이다. 철도역에서 월드컵체를 볼 일이란 원래 전혀에 가깝게 없을 텐데 뜻밖이다.
역이 개통한 시기와 저 서체가 만들어진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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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 역은 출· 입구 관리 사무소와 세관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물론 현재 일상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시설) 내부가 꽤 크고 넓다. 승강장 역시 KTX 한 편성 정도는 너끈히 세울 수 있어 보이는 규모이다.

이제부터는 사진 없이 한동안 설명만 좀 늘어놓겠다.
역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준비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른 뒤, 도라 전망대로 향했다. 여기는 민간 관광객에게 개방되긴 해도 엄연히 일종의 GOP이며 군사 시설이다.

날씨가 굉장히 좋았다. 이 전망대로 펼쳐진 곳이 바로 말로만 듣던 비무장지대이고, 북한 땅이 코앞이다.
저 멀리 말로만 듣던 대성동의 태극기 깃대가 보였다. 기정동 쪽은 깃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유료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펄럭이지 않을 뿐 인공기도 꽂힌 게 보였다. 게다가 북한 쪽 비무장지대 근처에서 서 있는 북한군 병사까지 보였다! 김일성 백성들도 머리 하나, 팔 둘, 다리 둘 달린 호모 사피엔스이긴 했다.

이게 내가 브라운관이나 LCD 같은 전자 기기가 아닌 매체로 북한 관련 시설물을 본 첫 경험이었다. 하지만 북한 쪽을 가까이 대고 사진을 찍는 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이 날은 외국인 관광객도 굉장히 많았다. 미국인이야 그렇다 치지만 왁자지껄 떠드는 중국인들도 많았다.

도라 전망대 다음으로 우리는 말로만 듣던 제3 땅굴을 견학했다.
옛날에는 관광객들이 건물 수십 층에 달하는 높이를 걸어서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했지만, 지금은 승강 열차가 생겨서 편하게 왕래를 할 수 있다.

주요 소지품들은 사물함에다 맡기고, 헬멧을 지급받은 뒤 몇백 m 정도 거리를 산보하듯 다녀 왔다. 땅굴 입구 자체가 거의 DMZ 경계선 근처에 있고, 땅굴 내부를 견학할 수 있는 한계는 지상에서 군사 분계선이 200m도 채 안 남은 지점이 끝이다. 그 이상은 철조망과 콘크리트 벽, 굳게 잠긴 철문으로 봉인되어 있다.

땅굴은 키가 170cm가 넘는 사람은 허리를 굽혀야 할 정도로 높이가 낮은 편이었다. 안 들키게 병력 수송을 위한 정말 최소한의 크기로만 굴착을 한 셈이다. 땅굴을 파는 게 좀 힘드나.. 지하철이라는 게 처음 등장하고 전기 철도가 도입되었을 때 제3궤조 집전식이 괜히 쓰였던 게 아니었겠다 싶었다. 터널의 단면적이 작아도 되기 때문이다.

육로를 통한 남침 방법이 완전 원천 봉쇄되고 차단되자, 비열한 김 일성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어두컴컴한 땅굴을 파라는 지시를 내렸다. 악한 통치자 밑에서 영혼이 완전히 황폐화된 채 사는 북한의 노동자와 군인들이 한편으로 가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땅굴은 여러 개 팠으면서, 북한은 정작 평양 지하철을 만들던 중에는 대동강 아래를 관통하는 하저 터널 건설에 실패했다니 참 아이러니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제3 땅굴은 1978년에 전땅크가 육군 제1사단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박 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탐사 작업을 통솔하다가 끝내 발견했다. (...) 이 양반, 그래도 리즈 시절에 나라를 구하는 과업을 한 건 이뤘다.

우리가 주로 관광한 것은 이 둘이었고, 그 뒤엔 통일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좀 놀다가 다시 도라산 역으로 돌아왔다.
말로만 듣던 민통선 내부는 온통 농경지나 황무지, 군부대이고, 민통선 내부이다 보니 사람이 없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황무지는 그냥 황무지가 아닌 게, 철조망이 둘러져 있고 지뢰 매설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도라산 연계 관광을 마친 뒤에는 초청자를 따라 개인 명의로 두 곳을 더 돌아다녔다. 일단, 허 준 선생 묘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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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안에 들어와 있음을 나타내는 자동차 내비 화면 인증이다(텅 빈 지도!). 파주시는 임진강 건너편은 다 민통선 내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허 준 묘지는 아무나 곧장 갈 수 없다. 도라산 안보 관광과 마찬가지로 공인된 여행사를 통한 단체 관광으로만 갈 수 있으며, 개인 자격 방문은 민통선 내부 출입증을 갖고 있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한 사람이 일행을 얼마나 인솔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몰고 오는 차량의 대수가 늘어나면 절차가 그에 비례해서 더 까다로워진다.

민통선이 생기기 전, 그러니까 조상 대대로 그 지대에 땅을 갖고 있었거나 그 지대의 땅을 산 지주는 국가로부터 출입증을 교부받는다고 한다. 물론, 출입 가능 지역이 정해져 있으니, 그 출입증만 있다고 해서 전국의 모든 민통선 지대를 드나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여담이지만, 민통선 출입이 일반 커피라면 대성동 출입은 가히 TOP이다. 거긴 민통선뿐만 아니라 남방 한계선까지 넘은 최고로 위험한 DMZ(비무장지대) 안이고, 레알 군사 분계선이 코앞이기 때문이다.
거길 드나들려면 당일 신분증 제시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최하 두 주 이상 전에 방문 신청을 해서 신원 조회를 받아야 하며, 마을에 들어간 뒤엔 신분증을 아예 맡겨야 된다. 승용차에는 하늘색 천을 달아서 펄럭이게 하고, 유엔 사령부 소속의 군인으로부터 완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으며 이동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3/06/08 19:34 2013/06/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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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안보 관광 (2013/5/4) -- 上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 나오시는 모 자매님은 고향이 파주 적성면이다. (그런데 제주도 출신인 형제님과 결혼을 하셨으니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북단 거주자와 최남단 거주자가 만난 셈.)
이분은 성장 배경의 특성상, 어릴 적부터 파주 북부의 지리에 아주 밝고, 또 부모님이 민통선 출입증까지 갖고 계셨다.

본인은 이분과 같이 교제를 하던 중에 어째 이 주제로 얘기가 나왔고, 덕분에 하루는 이분의 가족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파주 경의선 라인 쪽으로 거창한 안보 관광을 같이 가게 됐다.
작년 여름에 갔던 평택 해군 기지 이후로 바이블 빌리버와 함께 하는 안보 관광 제 2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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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승용차를 몰고 임진강 역으로 향했다.
강변북로와 서쪽에서 직결되는 자유로는 무려 10차선에 달하는 정말 넓은 도로였다.
과연 인천 공항 고속도로와 더불어 폭주족들이 스포츠카를 몰고 새벽에 난리를 부릴 만도 한 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했으면 중간에 딱 한 번, 지점이 아니라 구간식 속도 단속기가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즉, 특정 지점 한 군데에서만 제한 속도를 넘는지 단속하는 게 아니라, 시작점부터 끝점에서 차량 번호와 진입 시각을 두 번 파악하는 단속 방식 말이다. 그 구간 사이를 너무 빨리 통과해 버리면 단속에 걸리니, 차들은 강제로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어진다.

서울과 멀어질수록 도로는 더욱 한산해졌다. 차선 수도 덩달아 줄었다.
옆에 강이 있어서 그런지 주변은 어느 샌가 짙은 안개로 확 뒤덮였으며, 차의 유리에도 성에가 꼈다. 좌우 주변의 경치가 거의 안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뭐 날이 밝자 안개는 곧 걷히고, 다행히도 하루 종일 아주 맑고 좋은 날씨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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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역은 바로 옆에 관리인이 없는 무료 주차장이 있었고 주변에도 공간도 넉넉했다. 그러나 나중에 낮이 됐을 때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세워 둔 차들로 인해 그 공간이 꽉 차고 빈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현재 경의선에는 문산 역까지 전동차가 다니고 있다. 문산은 1906년에 경의선이 처음 개통할 때부터 있었던 역이며 남북이 분단된 뒤부터는 수십 년간 경의선의 북쪽 종착역이었다. 문산 다음에는 곧바로 장단 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김 대중 정권 시절에 경의선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북한과 선로가 연결까지 되면서 21세기에 문산 이북으로 3개의 역이 새로 생겼다.

2001년에 가장 먼저 임진강 역이 생겼고, 2002년에는 드디어 민통선 안에 도라산 역까지 생겼다. 운천 역은 더 나중인 2004년에 문산과 임진강 사이에 생긴 임시승강장이다. 지역 주민의 교통 편의를 위해 만든 역이지만 어차피 전철이 문산까지밖에 운행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 유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임진강 역 근처에는 임진각, 평화 공원 등 여러 볼거리가 많다.
위의 사진에서 교각만 놓인 옛 다리는 6·25 때 파괴된 원래 경의선 철교의 흔적이고, 그 옆에 놓인 새 다리가 바로 다시 놓인 경의선 선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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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평화 공원에는 '평화 열차'라 하여, 관광용 협궤 증기 기관차가 다닌다. 물론 생김새만 증기처럼 생겼고, 실제로는 기름으로 달린다.
나의 관심사는 (1) 이 선로의 궤간은 얼마 정도 될 것이며, (2) 남이섬에 있는 '유니세프 나눔 열차'와는 동일한 규격이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 평화 열차의 선로는 수인선 협궤(762)보다는 약간 더 작은 듯했고, 한 우진 님께서 남이섬 열차의 궤간도 640쯤 되는 듯하다고 추측하신 걸로 보아, 둘이 거의 동일한 규격이 아닌가 싶다.
눈짐작으로 이런 궤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철덕에게 필요한 능력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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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중단점은 경원선 신탄리 쪽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사실, 상술했듯이 경의선도 시설이나마 연결된 지는 10여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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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도 유명한 '미카' 형 여객용 증기 기관차이다. 의왕의 철도 박물관과 더불어 임진각에도 한 량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6·25 때 순직한 김 재현 기관사가 운전했던 기관차도 이것과 같은 차종으로, 그 실물은 기관차뿐만 아니라 객차까지 그대로 대전 현충원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미카'는 emperor를 뜻하는 일본어 '미카도'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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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유명한 증기 기관차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이분 되시겠다.
'마터' 형 화물용 증기 기관차. 이름부터가 mountain에서 유래되었을 정도로 산악+화물 컨셉으로 제작된 고출력 기관차이며, 1940년대에 일본에서 비교적 최근에 제조된 물건이었다. 그래서 생김새가 전통적인 미카, 파시 같은 열차보다 좀 이질적이다.

이 열차는 1950년 12월에 영문도 모른 채 북한 쪽으로 달리다가 경의선 장단 역에 정차 중이었는데, 열차와 수송 물자를 적군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청야 전술에 의해 아군의 사격을 받은 거라고 한다. 그래서 그 쇳덩어리가 수백 발의 총알을 맞아 벌집이 되고 탈선하여 밖에 내팽개쳐졌다.

겨우 그게 목적이라면 열차를 다시 남쪽으로 돌려보내면 되지 않느냐 싶을 것이다. 허나 증기 기관차는 무슨 전후대칭 전동차 같은 열차가 아니기 때문에 전차대가 없는 역에서는 진행 방향을 그렇게 전환할 수 없다. 불가피하게 열차를 운행 불능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전쟁 때문에 장단 역은 완전 쑥대밭이 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지역은 비무장지대가 되었다. 그와 함께 이 기관차도 핏빛에 가깝게 새빨갛게 녹이 슨 상태로 무려 수십 년 동안 수풀 속에 버려져 있었다. 1990년대에 분단, 안보 관련 서적에는 이 기관차의 사진이 꼭 등재되곤 했다.

그러다 2004년이 돼서야 이 기관차는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남쪽으로 가져와서 녹 벗기고 광 내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2009년부터 임진강 역 주변 평화 공원에 정식으로 전시되기 시작했다. 붉은색이 이제 갈색으로 바뀌었다. 단, 모든 증기 기관차는 원래 검은색 도색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이 열차를 당시에 운행했던 기관사는 한 준기(1927-2011) 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음, 이거 안보 관광으로 시작했는데 철도 얘기만 자꾸 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 (거 봐, 철도와 안보 의식은 서로 별개가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3/06/06 08:40 2013/06/0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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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 저수지 답사를 마친 뒤 다음으로 본인이 간 곳은 또 다른 철도 성지였다.

2. 철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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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이제 내가 여기를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으로 방문하는 날도 찾아오는구나! 그렇잖아도 의왕 역에서 철도 박물관까지 가려면 수백 m 이상 걸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주차는 공간이 아주 넉넉하고 요금 걱정도 없고 아무 문제 없었다.

예전에 철도 박물관은 겨우 몇백원 대의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저렴한 입장료를 징수했으며 그나마도 철도 회원은 동반 1인까지 아예 무료 입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가 보니 그런 대인배스러운 제도는 언제부턴가 없어져 있었다. 일반인은 입장료 2천원을 내야 하며, 철도 회원 혜택 같은 거 없다.

물론 난 철덕으로서 예전에도 여길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를 또 찾아간 이유는, 여기가 반월 저수지로부터 10km가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겸사겸사 또 찾아갈 만한 명분이 성립하고, 개인적인 볼일이 좀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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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경부선 선로에 대한 좋은 전망을 제공하는 것도 철도 박물관으로서 장점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아까의 KTX 촬영지와 마찬가지로, 이 박물관의 근처에도 저수지가 있다는 점이다.

철도 박물관에서 본인은 부족했던 박물관 관련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했으며, 방문 기념으로 구내 서점에서 다음 아이템들을 질렀다. (정 용태 님, 보고 계신지? 레일러 14호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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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판매하던 철도 박물관 도록은 이제 절판되고 없었다. 있을 때 사 놓길 잘했다. 그 대신 동인지 <레일러>를 박물관에서 정기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박물관 직원을 불러서 새마을호의 역사와 관련된 날짜가 두 군데 잘못 소개되어 있는 걸 고쳐 달라고 건의를 했다.
차량실에 새마을호 PP 디젤 동차가 1987년 7월 1일부터 운행을 시작했다고 소개되어 있는 걸 7월 6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고,
반대로 새마을호 PP가 최초로 서울-부산 4시간 10분 운행을 시작한 것도 아니라고 얘기해 줬다. 그건 PP가 등장하기 전에 1985년 11월 16일부터 달성된 것이니까 말이다.

3. 오봉 역

철도 박물관 다음으로 승용차로 가 보지 않을 수 없는 철도 명소로는 오봉 역을 빼놓을 수 없다.
얘는 경부선에서 분기하는 지선인 남부 화물기지선의 끝에 있는 역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객 영업 없이 화물만 취급하는 역이다.
먼 옛날에는 경부선 전철 의왕 역의 이름은 '부곡'이고 오봉 역이 '의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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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박물관과 오봉 역의 거리는 4km도 채 되지 않는다.
입구에 경비실이나 차량 진입 차단기 같은 건 없는지라, 별 부담 없이 차를 끌고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단, “직원 차량 외 주차 금지”라는 압박을 주는 표지판이 있긴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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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건물은 이렇게 생겼다.
철덕들 중에는 아예 승강장 내부로 들어가서 사진 촬영을 한 사람도 있는 듯하던데 난 차마 그렇게는 안 하고 잠시 있다가 다시 나갔다. 그 대신 이런 근처의 선로 사진을 좀 남겼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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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 부산 일대도 면적이 무척 넓고 철도 배선이 의외로 복잡하며, 항구나 공업 단지로 빠지는 지선 철도가 많기 때문에 승용차를 끌고 답사할 만한 곳이 무척 많을 것이다.

4. 김포 공항 근처

수도권 남부의 “반월 저수지-철도 박물관-오봉 역” 3대 명소를 아우르는 테마 여행을 이렇게 잘 마쳤다.
임무를 다 마쳤으니 이제 집에 갈까 생각했는데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아 있었고, 철도를 출사한 날 비행기도 같이 출사하여 둘을 비교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점심을 먹을 생각도 포기하고, 국도 1호선을 타고 서울 서부로 간 뒤 곧장 다시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해가 지기 전에 가야 하니 말이다.

반월 저수지가 KTX 촬영의 명당이라면, 오쇠 삼거리는 비행기 출사의 명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말 공교롭게도 여기도 전철 김포공항 역으로부터는 3.2km 정도 떨어져 있다. 다만, 여기는 버스가 수시로 많이 지나다니는 편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는 비교적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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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주변의 흔한 보안 경고문.
여기는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이지만, 엄연히 국유지이기 때문에 민간인이 무단으로 이곳 땅을 이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도 처음 와 봤을 때에 비해서는 주변에 이것저것 공사도 많이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덕분에 주차는 샛길 인근에 아무데나 얼마든지 해도 되니 걱정할 것 없다.
여담이지만 이 공항 주변의 황무지 일대에는 군부대인지 예비군 훈련장인지 어쨌든 군사 시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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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여기 온 보람이 있었다.
지금 비행기가 놓인 저 활주로 말고, 왼쪽에도 활주로가 하나 더 있었으며 공항 내부의 비행기는 그 왼쪽 활주로에서 이륙을 하는 편이었다.
김포 공항에서는 아까 KTX보다도 더욱 자주, 수 분 간격으로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가 이착륙했다.

이륙은 본인이 서 있는 공항 남쪽으로 하는 게 아니라 북쪽으로 한 관계로 근접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착륙은 다행히 근접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마치 UFO처럼 아주 멀리서 불빛만 어렴풋이 보이던 비행기들이, 형체와 비행 소음이 갈수록 커지더니 공항 담장 너머로 사뿐이 착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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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덕들은 비행기 한 대만 보면 보잉 7xx 같은 기종은 물론이고 소속 항공사 같은 것도 곧바로 입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의외로 여객기 말고도 소속이 어딘지 모를 터보프롭 경비행기 같은 것도 착륙하는 게 종종 목격되곤 했다.
그런 작은 비행기라면 모를까 중형 여객기 이상 되면, 랜딩기어가 활주로에 닿을 때 마찰로 인한 연기가 튀는 게 이 멀리서까지 보였다.

이곳에 공개하지 않은 다른 사진과 동영상도 많이 찍었다. 소기의 방문 목적을 달성했다.
내가 선 지점은 여전히 공항 담장으로부터 500m에 가깝게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그래도 비행기의 착륙 경로와 일직선상에 있고, 지대가 살짝 높은 덕분에 보다시피 공항 활주로까지 어렴풋이 보인다는 점이 좋았다. 다음에 또 촬영할 기회가 있을 때는 다른 장소도 탐색해 봐야겠다.

동영상들을 보니, 보잉 737급의 여객기가 내 머리를 지난 뒤, 활주로에 착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23~25초였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활주로의 착륙 지점까지의 거리는 정황상 거의 1km는 된다. 담장에서 활주로 사이에도 수백 m에 달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착륙 직전 상태인 비행기의 주행 속도는 대략 시속 140~150km대는 된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시간이 조금만 더 늦었으면 퇴근 시간대가 되어 귀가하는 길이 도로 정체로 애로사항이 꽃폈을 것이다.
만약 그랬으면 난 정체 시간대를 피해서 그냥 밖에서 저녁을 먹고, 차에서 한두 시간 좀 자면서 아예 밤 9시 이후까지 기다렸다가 귀가하려 했다. 난 어차피 차에서 야영을 하는 걸 아주 좋아하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서울 외곽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만 좀 막혔을 뿐, 서울 시내에서의 자동차 전용 도로 주행은 그다지 최악의 상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사히 잘 돌아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07 08:31 2013/05/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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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가 있으니까 좋긴 참 좋다. 차는 회사나 교회를 왕래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레저/취미 활동의 영역에서도 예전에 불가능하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줬다.

나한테 차가 생기면 철도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거라고 도대체 누가 말했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차가 생기기 전에는 신규 개통 철도 노선의 첫 차를 시승하기 위해서 전날 노숙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새벽에 차를 끌고 가서 차에서 자다가 첫 차를 타는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
예전에는 차를 이용해서 잠깐이나마 서울교외선 답사를 가 본 적도 있다. 자동차는 철도 덕질을 위한 훌륭한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말의 어느 날, 본인은 짬을 내서 과감하게 차를 몰고 서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당일치기 철도 테마 여행을 즐겼다.
나름 출근 시간을 넘긴 오전 10~11시 시간대를 선택했지만, 이때도 자동차 전용 도로들은 넘쳐나는 차들 때문에 대단히 혼잡했다. 그래도 서울을 벗어나고 한적한 교외로 들어서니 자동차의 탁월한 이동성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먼저 간 곳은 바로..

1. 주행 중인 KTX 촬영의 명당, 반월 저수지 인근 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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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곳이다.
호수 옆에 비교적 높지 않은 고가 위로 KTX가 달린다. 경부 고속선을 통틀어 보기 드문 낭만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여기는 광명 역을 지난 KTX가 무려 10km가 넘는 긴 거리를 지하로 달린 뒤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지상 구간이기도 하다.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와 서해안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조남 분기점의 바로 아래 지하로 KTX가 달린다는 걸 생각해 보라. 그 KTX가 여기로 나온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4호선(안산선) 대야미 역이다. 북쪽 방면인 2번 출구로 나간 뒤, 왼쪽으로 꺾어서 나오는 한적한 도로를 쭉 가면 된다. 역에서 3.2km 남짓 떨어져 있기 때문에 걸어서 가기는 좀 힘들다. 그리고 저기는 인적이 드물어서 버스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러니 자가용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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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로 진입하는 야산 코앞에서 차를 세웠다. 선로 근처는 역시나 외부인의 접근을 금지하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철도 선로에 무단으로 침입해 시설물과 전선류를 손괴하거나 절취하면 감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며, 철도 안전운행을 저해하게 되어 철도 안전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 CCTV 실시간 감시 중 -


우리는 당연히 철조망을 월담하지는 않는다. 그저 철조망을 따라 언덕을 쭉 오르면 된다.
이로써 본인 역시 수많은 철덕들이 나보다 앞서 개척한 천혜의 철도 출사 성지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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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일명 하늘다리라고 불리며, 경부 고속선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극히 드문 구간!
선로는 한 치의 커브도 없는 직선이고, 앞에 저쪽 끝에도 산 속으로 들어가는 터널이 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이 지상 선로는 인터넷 지도로 길이를 측정해 보면 길이가 거의 6k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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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서 있는 곳의 앞은 응당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으며, 삼엄한 접근 금지 경고문도 붙어 있다.
이곳에서 촬영된 KTX 사진들은 다 철망 안으로 카메라를 집어넣고 zoom도 굉장히 많이 당겨서 촬영된 것들이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 집어넣기 좋으라고, 선로 중앙의 철망의 일부가 동그랗게 훼손되어 있다.
하지만 철망 너머로 웬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시야를 가리는 관계로, 이것을 피하느라 좋은 구도의 사진을 만들기가 상당히 어려워져 있었다.
그리고 여름에 수풀이 온통 초록색일 때 왔으면 주변 경치가 더 좋았을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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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산천이 하나 카메라에 잡혔다. 저 열차의 진행 방향이 어디인지 모르는 분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멀리서 오는 놈은 쉽게 감지가 되지만, 우리 밑을 지나가는 놈은 출현하기 몇 초쯤 전에 갑자기 주행 소음을 일으키더니 쌩 지나간다. 그래도 디젤 기관차처럼 천지를 진동하는 소음과 진동 수준은 아니다.

경부 고속선에 KTX는 상· 하행을 모두 감안했을 때 평균 대략 10분당 한 번꼴로는 드나드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 빈도는 몹시 불규칙하여 편차가 큰 편이다.
그리고 아침 11시에서 12시 사이는 전차선 점검을 명목으로 서울과 부산 양 시발역에서 모두 KTX가 출발하지 않는다. 즉, 이 시간대에는 평소보다 열차의 운행이 몹시 뜸해지므로, KTX 출사를 하려면 시간대를 잘못 선택해서 낭패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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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산천 말고 떼제베 기반 재래식 KTX가 지나가는 모습이다. 재래식 KTX는 한 편성의 길이가 거의 380m에 달한다는 걸 생각하자.
광명 역을 출발한 KTX는 지하 터널을 한참 달린 뒤 이 구간으로 나올 무렵쯤이면, 이미 충분히 가속이 되어 주행 속도가 250km/h을 넘고, 속도가 객실내 모니터에 표시되곤 했다.

그런데 이런 언덕 위에서 KTX가 달려오는 걸 보면 생각만치 빨라 보이지가 않는다. 그냥 새마을호가 시속 140대로 슬금슬금(?) 지나가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동영상 분석을 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길이 380m짜리 열차의 맨 앞이 한 전신주 지점을 통과하고, 다음으로 열차의 맨 끝이 그 전신주를 통과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 5.5초가 좀 안 됐다.
이로부터 열차의 속도를 구해 보면 딱 정확하게 시속 250km에 근접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온 뒤, 장소를 떠나기 전에 호수 주변의 경치를 좀 더 카메라에 담았다. 가히 철도 성지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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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경부 고속선은 안산선 반월-상록수 구간의 중간을 위로 통과한다. 반월-상록수 사이는 역간거리가 3km가 넘고, 중간에 영동 고속도로도 지나는 일종의 교통 요지이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안산선과 경부 고속선의 궤적을 계속 추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으나, 본인은 이 먼 거리를 차를 몰고 온 김에 다른 의미 있는 일을 발견했기 때문에 동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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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 있는 열차 승강장은 반월 역이다. 이 역은 전철역이라기보다는 완전 시골 간이역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선로와 역무실은 평지이고 지하도를 이용하여 승강장으로 가는 형태도 그렇거니와, 출입구도 남쪽으로 1번만 있지, 논밭을 향하고 있는 북쪽(본인이 서 있는 방향)으로는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04 08:33 2013/05/0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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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답사를 마치자 슬슬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밖은 여전히 대단히 추웠고, 비는 그칠 기미가 안 보였다. 내가 춥다고 느낄 정도면 정말 추운 거다.
일단 7호선 시승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자축하면서 차 안에서 아침 식사용 스낵류를 꺼내 먹었다. 그 뒤, 서울과 부천의 경계이며 김포 공항 이착륙 비행기 출사의 명당인 오쇠삼거리로 향했다. 온수에서는 차로 15분 남짓이면 가는 거리이니, 기왕 멀리 여기까지 왔는데 비행기 구경도 좀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김포 공항의 담장은 철조망이 겹겹이 쳐져 있고, 주변의 황무지(wilderness)들은 '개발 제한 구역' 정도를 넘어서 아예 국유지이기 때문에 무단 접근 및 개발 엄금이라고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린벨트는 사유지에 대한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제도인 반면, 저기는 아예 개인의 부동산 권리고 나발이고가 애당초 없는 국유지라는 뜻.

어차피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비행기의 소음 때문에 여기는 거주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항공 보안상의 이유로도 공항 바로 옆의 땅은 불가피하게 그렇게 놀려야 할 듯하다. 그나마 김포 공항은 군사 보안이 필요하지는 않은 순수 민간 공항인데도 제약이 이 정도이다.

여기는 도로 폭이 좁기 때문에 도로변에 차를 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황무지 안쪽으로 차를 세워 둘 곳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주차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교차로에서 얼마나 가까이, 비행기를 얼마나 잘 볼 수 있는 곳에다 세우는지가 문제이다.

747급의 대형 기종은 아니지만, 비행기는 수 분 간격으로 정말 자주 다녔다. 경부선 3복선 구간 만만찮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부 이륙만 할 뿐, 착륙을 하는 놈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비바람을 감안하여,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의 이착륙 진행 방향을 내가 원하는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지시한 모양이다. 내가 최근에 제주도 행 비행기를 탔을 때는 북쪽이었는데 말이다. 착륙하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놈보다 더 고도가 낮으며, 육지에서 비행기를 더 가까이서 큼직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동일 공항 착발이라 해도,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착륙하는 방향은 공항의 사정에 따라 수시로 바뀌며, 해당 비행기의 항로에도 영향을 꽤 끼치는 요소이다. 그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비행기가 방향을 바꾸려면 회전 반경이 얼마나 커야 하겠는가? 이러니 배가 밤에 등대가 필요하고 대형 선박의 경우 도선사까지 필요하듯이, 비행기에는 관제탑의 안내란 게 반드시 필요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의 제주 공항은 필요에 따라 취사 선택하라고 활주로가 십자까지는 아니지만 X자 모양으로 둘 있기도 하다.

여기서 비행기를 구경하면서 차에서 또 잠시 자기도 했다. 오쇠삼거리 근처에서 두어 시간 정도 머물다가 상암동 박 정희 기념 도서관/박물관으로 갔다.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위치가 지하철역에서 영 멀었던 관계로 선뜻 못 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랬는데 차가 있는 김에 거기까지... 게다가 안 중근의 거사 날짜뿐만 아니라 박 정희 전대통령이 부하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난 날도 10월 26일이니 오늘은 그 다음날이라는 의미도 있다.

건물은 크고 넓었다. 주차 공간도 지상의 마당에 아주 넉넉히 있어서 걱정할 것 없었다. 건물은 3층은 도서관 열람실이고, 2층과 1층이 박물관 내지 기념관인데 2층에서 관람을 시작하여 1층으로 나오는 구조이다.

무슨 내용이 있는지는 내가 굳이 더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난 성경의 용어를 동원하자면 박 정희가 역대기하 26장과 가장 비슷한 업적을 남긴 통치자라고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
치수와 산림 녹화를 하고 농경 선진화를 이루고(대하 26:10), 이공계를 육성하고(대하 26:15) 국방을 강화했다(대하 26:14). 게다가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라는 모토는 느 4:13-18을 꼭 빼닮은 심상이지 않은가? 뭐, 박통이 교만 때문에 파멸에 이른 것까지 똑같은지에 대해서는(대하 26:16 이후) 독자들의 상상과 판단에 맡기겠다.

다른 건 몰라도 전기 얘기는 좀 해야겠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조금이라도 흔들었다가는 훅 가 버릴 정도로 정말 혼란스럽고 위태롭게 시작했다. 그랬는데 정부 수립을 앞두고 북한으로부터의 송전 중단은(1948) 당시 나라를 멘붕 상태로 몰아넣었음에 틀림없다. 일제 강점기 때 건설된 전력 공급 인프라의 8~90%가 지하자원이 더 풍부한 이북 땅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가 좀 나라답게 돌아가는 거 같았다가 1950년대 이후에 갑자기 호롱불을 켜는 조선시대 시절로 손발퇴갤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전쟁의 상흔도 있지만 또한 전력 부족 때문이다. (웬지 영화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의 전기 고문 장면이 갑자기 생각나는 건 기분 탓.)

그래서 박통 이전의 이 승만 때부터 필사적으로 전력 공급 안정화를 위해 강원도 산업선 철도를 우선적으로 건설했으며, 무엇보다도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하려 애썼다. 그리고 원전 건설은 박통이 실제로 이뤄 냈다. 그 결과 제한 송전 소치는 거의 20년 뒤인 1968년에야 해제됐다.

박물관의 방명록을 보아하니, 박 정희 싫어하는 사람의 눈에는 거의 박통교 신자처럼 보일 내용으로 글을 남긴 사람도 있었다. 포항에서 일부러 찾아와서 관람을 한 일행도 있고, “박 대통령님은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란 요지로 찬사를 남긴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정치색을 떠나서 우리나라의 이런 객관적인 역사는 후세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는 요지로 방명록에 글을 남겼고, 내 이름과 홈페이지 주소도 적어 놓고 왔다.

우리나라는 그 어렵고 열악한 여건 속에서 더구나 북한 같은 악마의 위협 속에서도, 일부 흑역사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해 왔으며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단기간에 정말 잘 이뤄 냈다. 정말 하나(느)님이 보우하셨다. 솔직히 말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게 아니라, 그걸로 그래도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제철소를 만든 대통령이 있다는 걸 크게 감사해야 하지 않는가?

박통에 대한 까임거리는 크게 친일, 인권, 도덕성(?) 같은 분야로 요약되는 듯한데, 결론만 말하면 내가 보기엔 거의 전부가 되도 않은 소리들이거나 당시 어쩔 수 없었던 것들, 지금도 어차피 피장파장인 것들, 아니면 그래도 업적에 비해 미미한 실책들이다.
나라가 없던 시절에 일본군 장교 경력이 좀 있는 것보다, 솔직히 더 기가 막히는 이력을 가진 인간이 대통령 되려고 난리인 게 훨씬 더 문제이고... 특히 인권은 요즘 사형 집행 안 하고, 흉악범에게 너무 가벼운 처벌을 내려서 유린하는 게 옛날보다 훨~씬 더 많다.

이런 식으로 논리를 적용하니, 나는 박통에 대해서 잘못한 건 면죄부가 적용되어 별로 안 보이며, 잘한 게 더 부각되어 보인다. 그래서 난 어쩌다 보니, 전쟁을 겪으신 어르신 및 부모 세대와 비슷한 정치관과 역사관을 갖게 됐다. (교회에서도 김 용묵 형제가 민감한 정치 얘기까지 자신과 잘 통한다는 걸 아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내게 수시로 그 주제로 얘기를 먼저 꺼내실 정도로..;;)

단, 박통 박물관에도 유품 명목으로 타자기가 하나 전시돼 있는데,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네벌식이다. 세벌식 사용자로서 그건 박통 정권의 어쩔 수 없는 흑역사이다. 박통 및 박물관 얘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다시 강변북로를 탔다. 차를 갖고 나갈 때부터 이미 각오했듯, 낮이 되니 역시 도로가 미치도록 막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경험상 강변북로는 경부 고속도로와 마주치는 한남 대교를 중심으로 동쪽은 서쪽 방면 도로가 엄청 막히고, 서쪽은 동쪽 방면 도로가 엄청 막힌다.

그래도 자동차 전용 도로니까 거북이 걸음으로라도 계속 가기라도 하지, 신호까지 받는 일반 시내 도로는 답이 없다. 이는 철도로 치면 복선과 단선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자동차 전용 도로가 막힐 정도이면 전방에 사고가 났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디서 진짜 사고가 나긴 했는지 구급차와 견인차가 사이렌을 울리고 지나갔다.

사실, 어제나 오늘 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도중에 내비게이션 업데이트도 덩달아 하려고 했다. 혼자 차를 몰면서 약 50분 동안 엔진 시동이 걸려 있어야 할 때 그 미션까지 덩달아 완수하면 정말 보람찬 여행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문제 때문에 그건 못 했다. 결정적으로, 작년에 내비를 업데이트 할 때는 실행 파일이 윈도우 CE용 바이너리였는데 이번에는 내가 어디서 파일을 잘못 받았는지 실행 파일이 ELF로 시작하는 리눅스용이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슬금슬금 강변북로를 주행하고 있었는데 앞엔 한강 철교가 보였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push-pull) 디젤 동차가 다음 달이면 퇴역인데, 어차피 도로 정체가 심하면 이거나 좀 구경하고 가려고 핸들을 돌려 한강 고수부지로 차를 뺐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미션이 설정되었다.

날씨가 춥고 비까지 내리니 고수부지엔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드디어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어 점심을 먹었으며, 그러면서 한강 철교 근처에서 약 1시간 동안 열차들을 구경했다. 심지어 컴퓨터를 꺼내 인터넷도 했다. 이 황량한 고수부지에도 사용자 신원과 컴퓨터 Mac 주소 확인 후 인터넷을 쏴 주는 무료 WIFI 신호가 미약하게나마 잡혔다.

새마을호 PP가 요즘 고장이 너무 잘 나서 아예 객실 전기만 공급해 주고 기관차가 견인한다는 루머가 나도는 듯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여전히 PP가 스스로 잘 다니고 있는 걸 확인했다. KTX나 일반 기관차 견인형 열차는 워낙 흔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나가서 몇 분만 기다리면 구경할 수 있는 반면, 새마을호 PP는 최하 40분~1시간 이상 간격으로 다니기 때문에 열차 시각표를 보고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오늘은 비행기와 철도를 모두 구경하고 왔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 구간 시승에다가, 여러 의미를 갖는 이벤트들을 한데 엮어서 수행하니 무척 즐거웠다. 여담인데, 동일 장소에서 비행기와 열차를 모두 볼 수 있는 곳은 IT 단지들이 입주해 있는 구로구-금천구의 경부선 철길 일대이다. 거기가 김포 공항 착륙 비행기의 항로와도 비슷한 선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 주민들은 열차와 비행기의 소음 때문에 그리 유쾌하게 지내지는 못할 것 같다.

말 못 하는 기계이지만, 빗줄기를 뚫고 먼 길을 안전하게 잘 달리고 아늑한 야영 텐트 역할까지 해 준 애마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

Posted by 사무엘

2012/11/03 08:33 2012/11/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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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해양 대학교는 상선(무역선 포함) 승무원 및 관련 간부를 양성하는 게 주 목적인 국립 준특수 대학교이다. 상선사관은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기간 인력이며, 군 복무도 상선 근무로 전부 대체된다. 사관학교나 경찰대 정도로 학비 완전 무료에 완전 폐쇄적인 학풍을 지닌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선원 생활이란 것도 편할 리가 없는 고된 업무인 만큼 그 바닥에도 나름 군기가 존재하며, 이 학교의 학비는 교육대 수준으로 아주 저렴한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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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바로 코앞에 있는 해양 대학교. 다시 말해, 부지의 해발 고도가 저만치 낮다는 뜻이다.

교통수단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참고로 비행기 버전인 한국 항공 대학교는 원래는 국립이었다가 현재 사립이 돼 있다. 마치 대한 항공이 원래 국영이다가 민영이 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립 학교가 되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철도 대학은 원래는 전문대 수준이다가 지금은 충주 대학교와 통합되어 교통 대학교가 되었고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립인 건 물론 변함없다.

2.
다음은 국어 정보 처리 시스템 경진대회 당시의 작품 전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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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성능이 열악하고 한국어는커녕 한글을 기계에다 구현하는 것 자체가 아주 challenging하던 시절에는 한국어 공학보다 '한글 공학'이 더 시급한 연구 주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글/한국어 정보 처리 학술대회의 초창기 시절이던 1990년대 초에는 하드웨어를 제어하여 컴에다가 한글을 찍는 방법, 두벌식이나 세벌식 사이의 기발한 절충 입력 방식 같은 게 PC 잡지뿐만이 아니라 그런 학술지에도 실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글꼴, 코드 쪽 연구도 많았다.

그랬는데 글꼴이나 코드 같은 원론적인 문제는 컴퓨터와 운영체제 기술의 발달로 인해 장벽이 다 해소되고 한국어 말뭉치까지 구축된 뒤부터는 '한글 공학'은 이제 뭐 더 연구할 게 없는 듯한 영역이 되었고, 학회의 초점은 급속히 '한국어 공학'으로 기운 듯하다. 내가 석사 논문을 쓰느라 옛날 연구 트렌드들을 뒤져 보니 확실히 추세가 그렇다. 그러다가 지금 다시 한글 입력 쪽이 논의되고 있는 건 모바일 쪽 한정이다. 그 반면 내 논문은 한글 공학의 fundamental한 부분을 다시 다루고 있다.

3.
자, 부산까지 갔다 왔으니 또 부산 지하철 얘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부산도 이제 지하철 승강장에 슬슬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갈 노반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난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자갈 노반이 완전히 사라진 게 못해도 아마 4~5년은 됐을 것이다. 그리고 2012년 현재까지 전국의 지하철 노선에서 VVVF 전동차가 전혀 없는 곳은 부산 지하철 1호선이 유일하다.
옛날에 부산 지하철은 한 1970년대 티가 나는 아주 못생긴 서체를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일반적인 고딕체로 다 바뀌었다. 아마 역명에서 '동(洞)'을 모두 삭제하기로 결정하면서 같이 바꾼 모양이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은 대부분의 역들이 상대식 승강장이며, 심도도 낮다 보니 대부분의 역들이 반대편 승강장을 할 수 없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대합실을 통해 반대편 승강장 횡단이 가능한 역”과, “동일 승강장에서 반대편 열차를 바로 탈 수 있는 역(쉽게 말해 섬식 승강장인 역)”이 다른 색깔로 노선도에 특별하게 표기가 되어 있다. 아래의 노선도 사진에서 동그라미 테두리의 색깔을 주목할 것.
드물게 등장하는 섬식 승강장 역에서는 평소에 열리지 않던 왼쪽 문이 열리기 때문에 이 문에 기대고 있는 승객은 조심하라고 따로 방송 멘트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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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노선도를 보면, 서울 지하철에서는 역시 4년이 넘게 전에 버린 옛날 notation을 아직까지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일반역은 흰 동그라미, 환승역은 태극 무늬 동그라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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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지금 서울/수도권 노선도는 역이 너무 많고 노선도가 복잡해진 관계로, 일반역은 그냥 사선 모양의 홈만 파고, 환승역이 흰 동그라미이다.
이 디자인을 처음으로 시도한 곳은 바로 서울 도시철도 공사이며, 이걸 나중에 코레일과 서울 메트로까지 도입하였다.
비록 '얼씨구야' 환승음은 서울 메트로가 제일 먼저 도입해서 그걸 나중에 코레일과 도철까지 따라 했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10/29 08:36 2012/10/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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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2012/9/20-22)

회사 창립 n주년 기념으로 올해는 야유회를 2박 3일 제주도 여행으로 꽤 거창하게 갔다.
본인이 제주도를 방문하는 건 14년 만에 처음이었고, (1998년,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 타는 건 13년 만에 처음인지라 (1999년, 대회 참가차 미국 갈 때)
개인적으로 굉장히 뜻깊은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이번에 간 곳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간 곳과는 중복이 전혀 없어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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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는 파란 하늘과 넓은 들판, 야자수 등이 4년 전의 미국 여행과 꽤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 저가 항공사는 공항에서도 부스와 탑승구가 역시 완전 한쪽 끝에서 끝까지 구석 외곽으로 밀려나 있다.
  • 마라도는 남이섬과 상당히 비슷한 모양과 크기인데, 그래도 남이섬이 아주 약간 더 크다.
  • 해산물 판매와 숙박업으로만 먹고 살던 마라도에 웬 짜장면 중국집들이 잔뜩 들어선 이유는... 10여 년 전의 모 CF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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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전망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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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로 가는 길목에서 본 제주도 산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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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초원에서 한컷 더. 윈도우 XP Luna의 배경인 초원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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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보너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눈에 내려다 본 관악산 기슭의 서울대 캠퍼스이다.
제주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가 웬 경부 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외곽순환 고속도로 청계 톨게이트, 과천 경마장, 서울대를 거치다니, 착륙 방향을 맞추기 위해 동쪽 내륙 방향으로 상당히 우회하는 것 같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2/10/22 08:32 2012/10/2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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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 수여식 (201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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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를 졸업한 지 어언 7년이 지난 뒤에야 후드가 걸쳐진 졸업 가운이라는 걸 입게 됐다. 주황색은 공학을 뜻한다. (학사용 졸업 가운은 후드가 없음.)

학사는 성적이 중요하니 최우등/우등 졸업이라는 게 있다. 박사는 시험 점수 따위를 초월하여 개개인이 이제 자기 분야에서 프로 연구자이니, 졸업자들이 모두 호명되고 학위 논문의 제목까지 유인물에 다 기재된다.
그 반면, 석사는 둘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콩라인이다.

태풍 직후, 날씨가 최강 좋았다. 맑고 파란 하늘 덕분에 사진 찍기는 최고의 날씨였다.
괜히 Y대 아니랄까봐, 학위수여식은 찬송가 제창과 성경 봉독으로 시작해서 축도로 끝났다.
혼자 예상한 것보다 좀 더 오버하듯이 씨익~ 웃어야 사진이 더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나온다는 걸 느꼈다.

내가 전형적인 내 학부 학교 출신들이 가지 않는 학교와 과로 대학원 진학을 하고, 남들은 박사까지 다 마칠 나이에 이제 겨우 석사를 마친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남들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 없는 진로를 만들면서 가고 있어서..;;

Posted by 사무엘

2012/09/03 19:20 2012/09/0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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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대내의 박물관 관람 → (2) 천안함 잔해 구경 → (3) 초청자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군함 구경 → (4) 초청자의 관사에서 식사 대접 받으며 교제 순의 코스였다. 옆에 같이 간 사람들은 모두 교회 사람들. 단순 안보 관광인 (1), (2)를 넘어 (3), (4)는 군 관계자 인맥이 없으면 경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 나의 “천하의 개쌍놈 북한” 관념이 이 견학을 계기로 더욱 투철해졌다. 정정당당한 교전으로는 남한을 이길 수 없어지니 치밀하게 비열한 복수극을 계획한 나쁜 놈들. 늘 민족 동족 운운하면서 뒤로는 일본 이상으로 나쁜짓을 해 온 녀석들이다.

- 제2 연평해전 당시에 교전 수칙 때문에 대통령이 많이 까였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내가 더 이해를 할 수 없는 건 당시 제1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지휘관인 박 정선 제독을 나라에서는 (사실상) 좌천 발령시키고 이내 전역시켜버렸다는 사실. 100번 까여야 마땅하다. 어디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건 북한의 요구대로 한 게 정말 사실인가?

- 제2 연평해전 전사자 영결식이던가 그때 대통령이 안 온 것에 대해서, 기지 견학을 시켜 준 해군 관계자는 아직까지도 꽤 유감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 제주 해군 기지 건설에도 배후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 육군은 닥치고 쪽수이고, 공군은 1인 1비행기인 전투기 파일럿만 빼면 대부분이 비전투 병과인 반면, 해군은 배가 생활 공간 겸 그대로 전장이다 보니 그 중간에 속하는 군대 문화를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은 수출에 목숨 걸어야 하고 바다 없이는 못 사는 나라인 주제에, 해군에 대한 지원이 너무 열악하다고 한다.

- 군함에는 내연기관과 제트엔진이 모두 달려 있다고 한다. 이것도 자동차와 비행기의 중간인 셈인데, 제트엔진을 가동하면 무척 빨리 움직일 수 있지만 극심한 소음과 연료 소모를 감수해야 한다고. 그런데 둘은 사용하는 연료부터가 서로 다르지 않나? (중유 vs 등유)

- 평택 시내의 경부 고속선 고가를 달리는 KTX를 보니 정말 감격스러웠다.

- 우리나라 철도를 공부하면서 단련된 나의 우리나라 역사, 지리, 안보 지식은 군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철도님, 사랑합니다.

- 이런 곳에 신실한 KJV 빌리버 크리스천이 계셔서 성경 교제와 안보 관광을 동시에 하고 올 줄이야. 친절하게 군 시설을 안내하고 융숭한 대접을 해 주신 해군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2/09/01 19:34 2012/09/0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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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선 인증샷

본인은 개인 홈페이지를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기에 이곳으로 유입되는 걸 목격했다. 그들 중 일부는 다시 이곳을 떠나고 발길을 끊기도 했으나, 본인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

그런데, 이거 참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해야 하나?
이 홈페이지의 창립-_- 순간부터 함께하면서 본인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상당수 공유해 온 친구가 있다. 그야말로 이 홈페이지에서의 짬밥 서열로 치면, 가히 압도적인 랭킹 1위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A class에 속하는 사람이 그 친구뿐인 건 아니다. 지금도 A class에 속하는 분들이 매일 내 홈페이지에 온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현역-_-에서는 물러났고, 딱히 이곳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댓글은 거의 안 남기거나 아주 가끔 단다. ^^;;; 본인은 활동을 안 하더라도 그들의 시선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적절한 상황에서는 전관예우(?)도 할 것이다.

그 A class 중, 본인이 언급하고자 하는 그 친구가 내 홈페이지를 처음으로 알게 됐을 때 그는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허나, 그가 육신의 연령을 초월하여 내가 쓰는 각종 어려운 글과 민감하고 질긴 글들을 잘 이해하고 개념 있는 말과 행동을 보이는 것은 나에게 적지 않은 놀라움을 선사했다. 본인의 부모님조차 칭찬하셨을 정도이다.

그 친구가 최근, 군복무를 잘 마치고 제대했다.
걔가 군대에 간 동안 내게는 자가용이 생겼다. ㅋㅋ
걔를 1년이 넘게 못 보기도 했고, 내 홈페이지 VIP의 제대를 축하하기 위해 본인은 선뜻 차를 몰고 나가서 드라이브를 시켜 줬다.

믿거나 말거나 그 친구도 철덕이다.
경춘선 전철은 군 복무 기간 도중에 개통했는데, 휴가 나와 있을 때 이미 전구간 다 타 봤다고 한다. ㄷㄷㄷ;;

그래서 나는 이왕 차를 가져간 김에,
영업 중인 열차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철도를 답사하는 코스를 제안했다.
바로...

서울 교ㅋ외ㅋ선ㅋ

서울 외곽에 천혜의 경치를 자랑하던 이 철도 노선은 수지가 안 맞아서 지난 2004년 고속철 개통과 함께 여객 영업을 중단한 비운의 노선이다. 게다가 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그쪽까지 전구간 개통하면서 이 철도는 더욱 잉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아주 장기적으로는 여타 서울 우회 간선 철도들과 연계하여 복선 전철로 개량될 거라고는 하던데...)

말로만 듣던 교외선을 자가용으로 답사하다니!
기대에 찬 마음으로 서울 북부로 향했다. 국도 39호선이 교외선 구간을 나란히 따라간다.

아래 사진은 벽제 역 주변 사진이다.
답사를 간 당시, 날씨는 최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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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선은 다들 단선 승강장 형태인가 보다.
일본에 있는 1량짜리 디젤 동차라도 다니면 무척 운치 있을 것 같은데.
교외선은 폐선이 분명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로의 상태가 생각보다 열악해서 녹이 슬고 잡초가 나 있었다.

언젠가는 가 보고 싶었는데 혼자 가기에는 좀 뭣했던 곳엘 후배 철덕 동지와 함께 가서 인증샷을 남기게 되어 기쁘다. 그 친구에게도 좋은 선물이요 즐거운 추억이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는 곳이 서울 서남쪽이면 광명 역이나 김포 공항 근처, 7호선 천왕 차량 기지 일대를 생각하고 있었고
동남쪽이면 철도는 없으니 외곽의 각종 그린벨트 지대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강북에서는 교외선, 중앙선, 경춘선 코스가 적절하다. ^^

시내는 도로가 너무 막히고 반대로 대중교통도 잘 돼 있으니, 차를 몰고 가는 메리트가 거의 없다. 그러니 교외로 나가는 게 이익이다. 거기가 주차 걱정도 없고.
차가 있으니까 좋긴 정말 좋다. ㅋ 이동의 무한한 자유는 정말 느껴 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 것이다. 세상에, 내게도 차를 몰고 교외선을 답사하는 날이 오다니!

Posted by 사무엘

2011/11/06 19:16 2011/11/0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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