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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검단산 (하남)

이번에는 서울 동부의 하남에 있는 검단산을 올랐다. 성남에 남한산성과 인접한 동명이산 '검단산'도 있지만, 하남 검단산이 등산 대상으로서 훨씬 더 유명하다.
덕분에 청량산 이후로 거의 한 달 만에 하남시를 다시 방문했다. 이 산 입구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와 가깝고 하남 내부에서도 여러 시내버스들의 종점이기도 하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여기 부근까지 연장 공사 중이었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라 하면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건 거의 10년 가까이 전에 학생들이 <블랙박스>라는 현대 문명 풍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무슨 애니메이션 공모전에서 입상했다는 것이다. 안산에 있는 디지털미디어 고등학교와는 커리큘럼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등산을 가느라 말로만 듣던 유명한 학교의 근처를 덤으로 지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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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고등학교 근처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는 유 길준 묘지를 경유하는 경로와, 현충탑을 거치는 경로로 두 갈래가 있었다. 본인은 전자를 선택했다. 전자가 약간 더 길고 완만하고, 진입로도 더 큼직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위의 사진과 같은 큼직한 길이 유 길준 묘지가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단, 산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바닥은 점점 돌밭으로 변해서 오르기가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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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길준 묘를 지난 뒤부터 등산로는 더 험하고 좁아졌다.
방금 전에 본 이정표에 따르면 여기가 해발 285m 정도의 고도였다. 이정표는 400미터대에서 한 번 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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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은 지금까지 오르던 산보다는 다소 높은 산이었다(해발 657m). 걷고 또 걸으면서 산을 올랐다. 드디어 뭔가 전망대처럼 생긴 장소가 나왔다.
이 산은 날씨가 좋을 때 오르면 서울의 아차산처럼 꼭대기에서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특히 팔당댐을 볼 수 있다. 경치 하나만 기대하고 검단산을 선택했는데 이 날은 하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아래는 그저 뿌옇기만 할 뿐, 중앙 고속도로도, 한강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ㅠㅠ 순수하게 등산 그 자체와, 하산 장소에만 의의를 둬야 했다.

참고로 정상은 사진의 전방에 뿌옇게 보이는 저 봉우리의 꼭대기였다. 아직 저만치 더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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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만난 이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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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상 직전에 헬리패드가 나타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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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거의 2시간 만에 도달했다. 여기가 딱히 구름 속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산 아래가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보일 수가 있나 모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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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팔당댐 인근의 작은 마을인 '아랫배알미' 방면으로 했다. 주변 풍경은 전반적으로 이런 식이었다. 해가 안 나고 하늘은 우유처럼 완벽한 흰색이었다.
아랫배알미 마을에서 하남 시내로 가는 마을 버스가 하나 있는데(2-1), 수요가 수요이다 보니 차는 한두 시간에 한 대꼴이었다. 산중턱엔 이 버스의 시각표가 어느 나무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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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른 산도 그렇고 산기슭에 이렇게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등산로가 종종 보였다.

보통 서울 외곽의 산속이나 산기슭에는 군부대가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팔당댐 근처의 검단산 기슭에 있는 것은 군사 시설은 아니었다. 그 대신 군사 시설에 준하는 다른 보안 시설이 있었으니 바로 상수도 취수장이었다. 평범한 집이나 공장처럼 생긴 건물이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고 '사진 촬영 금지' 경고문까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강 일대는 단순히 위험해서 "수영 금지"가 아니라 그냥 접근 금지, 경작 금지 등 여러 제약이 가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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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한강 이북을 따라 달리는 도로가 강변북로이고, 이남은 올림픽대로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여기는 한강 이북으로 국도 6호선이 지나고, 이남인 저기는 국도 45호선이다.
강 건너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산은 예빈산 내지 예봉산이다. 나중에 날씨가 맑을 때 저기를 올라서 팔당댐과 한강을 다시 구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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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팔당댐 사진은 아쉽지만 이거 하나로 때웠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저기를 건너가서 도보나 자전거 여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난 그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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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배알미동.
여기서 마을 버스를 탄 뒤 시내에서 서울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 서울 지하철을 순서대로 갈아타며 귀가했다.
단순히 도시의 팽창을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혹은 '공항이나 청와대, 군부대 근처여서' 같은 이유도 아니라 상수원 보호를 위한 그린벨트라니, 여기는 강이 송두리째 말라 버리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그린벨트가 풀릴 일은 절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다른 장소를 구경했다.

그리고 한강도 상류로 올라가서 이렇게 폭이 좁아지는 걸 보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서울에서는 한강이 지하철 1정거장 거리 이상의 어마어마한 폭을 자랑하는 하류이니 말이다. 물론 그 물은 왕창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그대로 마실 수 없으며 사실 수영조차도 권장되지 않는다. 서울의 덩치가 커지면서 취수 시설은 역사적으로 점점 더 상류 쪽으로 옮겨져 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18 08:33 2016/06/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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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응봉산

산이라 하면 아무리 못해도 해발 200~300미터 이상은 돼야 등산의 대상이 되고 동네 뒷산 대접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울 시내엔 100미터 남짓에 불과해 그냥 어지간한 고층 건물 높이밖에 안 되는 언덕도 있다. 낮을 뿐만 아니라 딱히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지 않아서 능선 산책로도 별로 없다. 강서구에 있는 우장산, 동부에 있는 천장산, 봉화산 같은 산이 그 예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상일동과 마천 방면으로 찢어지는 지점에는 일자산이라는 낮은 산이 있어서 전방을 가로막고 있다. 일산선의 정발산 역에는 근처에 호수 공원과 더불어 말 그대로 정발산이 있는데, 얘 역시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감이 있는 그냥 언덕(hill)이다.

이번에 본인이 답사하여 소개하고자 하는 산은 응봉산이다. 얘 역시 '등산'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좀 낮은 산이다. 그래도 산까지 가는 데 자동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청계천과 중랑천 공원을 거쳐서 자전거만으로 이동해서 추가적인 운동을 했다.
응봉 역의 출구로 나가니 '응봉산 팔각정'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파른 주택가 골목길을 한참을 올라가자 드디어 흙으로 된 산길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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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길로 진입하기 전에도 잠시 이런 공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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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길은 대략 이러했다. 나름 꽃도 예쁘게 피어서 풍경이 아니라 식물들 사진을 찍는 사람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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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펼쳐진 하천은 중랑천이다. 강 건너편을 좌에서 우로 훑으면 웬 공장이 있고, 그 다음에 서울숲과 성수대교(저 멀리 한강을 건너는 빨간 다리)가 순서대로 보인다. 그렇잖아도 여기는 중랑천이 한강과 합류하고, 동시에 동부 간선 도로가 강변북로와 합류하기 직전 지점이다.

중랑천을 횡단하여 내가 있는 쪽으로 가까이 오는 저 다리는 응봉교가 아니라 용비교이다.
생각 같아서는 여기서 별로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서울숲까지도 자전거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저 다리는 자동차로만 건널 수 있으니 무효다. 저기는 나중에 따로 가 보게 될 듯.
응봉과 서울숲 모두 전철로는 왕십리 역에서 한 정거장 거리이다. (각각 중앙선과 분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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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을 오르면 이렇게 중앙선(수도권 전철 노선명)/경원선(원래의 노선명) 선로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응봉산의 가장 매력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응봉산 전체와 그 아래를 지나는 중앙선 전동차를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마치 일본에서 후지산을 배경으로 달리는 신칸센 사진을 찍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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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달하면 넓은 공터에 이런 전망대와 팔각정이 있다. 낮고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으니, 여름엔 여기에 돗자리 깔고 누워서 잠도 자고 싶을 것 같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과 하천, 언덕에다 철길까지 있는 곳은 그야말로 천혜의 요지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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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도 응봉산 만만찮은 고지대 같은데, 실제로 그러하다. 상왕십리-신금호-행당 사이는 '대현산'이라고 응봉산과 비슷한 높이의 산이 있다. 하지만 저기는 꼭대기까지 온통 건물들이 지어져 있다.
이런 식으로 궁극적으로는 서울 시내 지도를 뒤져서 해발 100미터대의 고지대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 찾아보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특히 대학교 위주로 말이다. 서울 시립대 근처에는 배봉산이 있고, 고려대 근처에는 개운산, 경희대 근처에는 천장산이 있다.

서울 현충원의 터가 있는 산은 '서달산'이라고 불리는 야산이다. 한강 근처에 나름 굉장히 입지가 좋은 곳인데 이 승만 시절부터 여기는 국군 묘지로 조성되었다.
끝으로, 일반인은 접근할 수가 없겠지만 용산의 주한 미군 부지도 일명 '둔지산'이라고 불리는 나지막한 언덕 고지대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12 19:33 2016/06/1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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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고속도로의 서울 톨게이트 근처 구간은 지리적으로 흥미로운 게 많다. 일단 고속도로의 선형부터가 꽤 길게 곧은 직선인 데다, 그냥 직선이 아니라 거의 동일 경도를 지나는 수직이다. 그리고 지방도 23호선과 분당-수서 고속화도로가 양 옆으로 나란히 지난다.

여기는 행정구역상 성남시 궁내동이다. 고속도로의 동쪽은 잘 알다시피 분당 신도시이다. 그런데 서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분당이야 전철도 지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부촌 겸 상업 업무 지역이지만 지방도 23호선의 곁에 있는 저 마을은 그린벨트이기라도 한지 뭔가 딴 세상 같았다. 아기자기한 빌라들이 놓여 있고, 건물들 뒤엔 바로 언덕 내지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데.. 본인에게는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여기를 탐험할 의향으로 드디어 태봉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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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내동 경로당에 도착했다. 거기 근처는 저렇게 아주 한적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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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있는 오르막길이 등산로의 시작이었다. 이것만 쭉 오르는 것도 생각보다 힘들었다. 무슨 급수탑 같은 상수도 시설을 지난 뒤부터 길이 비포장으로 바뀌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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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경부 고속도로와 네이버 본사가 보인다. 이 산에서 그나마 전망이 가장 좋은 지점이 여기였다. 등산로는 마을에서 바로 보이는 낮은 언덕이 아니라,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더 높은 산을 타는 형태였다. 그러니 아래의 마을이나 도로는 다른 언덕과 나무들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궁내동 뒷산은 무슨 북한산이나 청계산만치 막 높고 전망 좋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산은 아니다. 그냥 여기 주민들이 운동삼아 찾는 수준이었다. 가끔씩 등장하는 이정표 말고는 등산로나 쉼터 같은 게 잘 마련돼 있지도 않았다. 여러 산들을 다녀 보니 산에도 '급'이라는 게 있고 등급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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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곳도 산은 산인지라, 종아리가 배김이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가파른 비탈길을 꾸준히 오르자 가장 높은 지점인 정상이 금세 나왔다.
여느 산의 정상처럼 바위나 전망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부터는 능선을 타면서 꾸준히 산책을 계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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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등산로가 아니라 그냥 산책로이다. 길은 계속 이런 형태로 이어졌다. 상록수와 낙엽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와서 한 컷 사진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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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을 오른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니 흰 바탕에 울릉도체의 저 평면 표지판만 있었는데, 저렇게 검은 배경의 고딕체 + 입체 표지판은 나중에 또 세워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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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더 걷자 산불 감시 초소가 나왔다.
여기서 산책을 계속해서 쇳골마을 쪽으로 갈 수도 있으나, 별안간 방향을 틀어서 궁내동 쪽으로 돌아가는 샛길도 있어서 본인은 그 길로 하산했다.
남쪽 끝자락까지 가면 보바스 기념 병원이라든가 대장동· 미금동 쪽으로 도달 가능한 듯했는데 그건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내 구닥다리 카메라는 명도차 조절이 안 돼서.. 숲이 좀 나오게 찍으려면 푸른 하늘을 포기하고 하늘을 허옇게 만들어야 된다..;;
그리고 산불 감시 초소는 충분히 크고 공중에 노출되지 않았나 싶은데.. 나중에 인터넷 지도에서 항공 사진을 토대로 위치를 찾으려 해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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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침엽수 위주의 울창한 숲길이 등장한지라 이런 비탈길을 쭈욱 내려갔다. 이 사진은 뒤을 돌아보면서 오르막을 찍은 것이다. 그러자 역시 중앙 하이츠빌 빌라 "2차"의 뒤에 있는 계단형 등산로를 통해 하산을 완료했다.
여기가 어딘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고개를 하나 넘어서 출발지와는 한 단계 떨어진 다른 마을에 도착했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여기는 궁내동 경로당 내지 하이츠빌 "1차"로부터 몇백 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아 있었다.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본인의 등산 원칙은 "하산할 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등산을 갈 때는 차를 가져가지 않는다. 하산 후에 차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난감한 짓이니까..;;
하지만 이번에 궁내동을 방문할 때는 예외적으로 차를 가져갔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여러 이유로 인해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 됐다.

  • 주차: 반쯤 시골인 동네인지라 주차 여건이 나쁘지 않았다. 골목길은 다들 주차 가능한 흰색 실선 위주여서 적당히 아무 집 담벼락에 차를 댈 수 있었다. 길가에 무슨 경고문이 붙어 있는 건 '주차금지'가 아니라 죄다 '상수도 매설 지역. 무단 경작 금지'였다.
  • 방문 동선: 이곳은 본인의 집에서는 멀지만, 판교에 소재한 본인의 직장에서는 5km 남짓으로 무척 가깝다. 그래서 회사에서 야근· 철야 근무가 있던 날에 차를 가져가서는, 퇴근과 동시에 여기로 바로 이동했다. 밤엔 차에서 한숨 잔 뒤 이른 아침에 산을 올랐다. 이렇게 하니 동선이 괜찮았다.
  • 등산 동선: 태봉산은 비슷한 높이의 다른 산봉우리들과 연결되어서 산맥이 일종의 C자 모양으로 형성돼 있다. 한참을 뺑 돈 뒤에 궁내동 방면으로 하산하자, 결국은 산에서는 계속 새로운 길만 따라 갔지만 결과적으로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에 또 여기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다음엔 내가 내려왔던 그 입구에서 산을 다시 올라가서 남쪽 끝까지 더 진행하는 걸 생각할 수 있겠다. 이쪽 동네와 산의 분위기는 이렇다는 걸 알 수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10 08:36 2016/06/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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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는 관악산 기슭에 있고 국민대는 북악산 기슭에 있는데, 난 정작 내가 적을 둔 학교 근처에 있는 산을 올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서 곧장 달려갔다.
3호선 독립문 역은 서대문 형무소를 관람하기 위해 예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등산을 위해 한 번 더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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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역 주변의 공원 풍경은 대략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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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서대문 형무소의 뒤에서 인왕산 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안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쪽으로 가야 한다. 형무소 뒤에는 "이 진아 기념 도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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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는데 거기서 교통사고로 죽은 딸을 기리기 위해, 유족이 재정을 후원하여 설립한 구립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을 지나면 등산로 계단이 나오는데 그 옆에는... 군부대가 있다.
이른 아침 7시 무렵에 여기를 지나니 군인들이 연병장에서 아침 점호를 하는 게 내려다 보였다.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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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은 능선만 도는 둘레길, 그리고 정상으로 향하는 암벽 등산로 등이 잘 닦여 있었다. 예전에 올랐던 인왕산이 저 멀리 저렇게 보인다. 아래에는 아파트와 한성 과학 고등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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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올라갈수록 아래에 내려다 보이는 것은 더욱 많아진다. 위의 사진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여기서도 저 멀리 내부순환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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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물론 조선 시대의 오리지널은 아니고, 나중에 레플리카를 만든 것이다.
봉수대란 통신 수단으로서 불 내지 연기를 피우던 곳이다. 물과는 아무 관계 없으니 '수'라는 음에 낚이지 말 것. 水 가 아니라 燧라는 아주 생소한 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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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하산은 서쪽의 연세 대학교 방면으로 했다.
하산하는 길엔 '무악정'이라는 정자와 마주쳤다. 북악산에 팔각정이 있는 것처럼 이 산도 중턱에 이런 정자가 있더라.
이 외에도 안산에는 약수터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수질은 대부분 음용 부적합 판정이 떨어져 있었다. 대장균이 검출됐다고 말이다.

안산은 정상까지 오르는 일부 암반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길이 잘 닦여 있었다. 단, 일부 등산로는 군사 작전 지대라고 민간 등산객의 출입이 금지되기도 했다.
연세 대학교 쪽으로 계속 내려가다 보니 연대 신촌 캠퍼스의 최북단에 있는 강의동인 대우관(상경대학 건물) 주차장에 잘 착륙했다. 하산이 결과적으로 등교가 됐다. 본인은 학교에 들른 김에 오랜만에 연구실에서 볼일을 좀 보고 귀가했다.

북악산과 안산은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인터넷 지도에 등산로가 바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지금까지 선뜻 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근처의 지하철역에만 가면 등산로 안내는 곳곳에 아주 잘 돼 있다. 더구나 안산보다 더 낮은 산에도 등산/산책로가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북악산이야 청와대와 너무 가까워 표시를 숨긴 것이겠지만 안산은.. 그 군부대 때문에 생략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안산 탐방도 재미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08 08:37 2016/06/0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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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북악산 -- 下

북악산은 북한산보다 남쪽에 있는 산이긴 한데, 북악산 자체도 사실 내부에 분지가 있어서 북부와 남부라는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성곽이 둘러져 있고 가장 높은 정상이 있고 청와대를 배경으로 보이는 그 산은 남부이다. 그리고 남부의 서쪽에는 창의문 안내소가 있고, 동쪽에는 말바위 안내소가 있어서 등산객들을 통제한다. 남부에 입산하려면 신분증을 제시하고 번호표 목걸이를 받아야 한다.

그 반면, 숙정문으로 나가서 움푹 파인 분지를 향해 내려가면 삼청각이 보이고, 숙정문 안내소에서 또 목걸이를 받거나 반납할 수 있다. 팔각정을 비롯해 북악산의 주요 관광지는 사실 북악산의 북부에 있다. 북부는 어차피 청와대가 보이지도 않으며, 목걸이 통제 구역이 아니다. 난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항공/위성 지도로도 지면의 고도는 거의 짐작할 수 없으므로.
지난번에 북악산을 수평 횡단했을 때는 북악산의 이런 지형적 특성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남부를 반쪽짜리만 구경했던 관계로, 이번에는 북악산을 수직 종단하면서 나머지 구간을 마저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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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북악산 남부에 진입도 예전에 다녀갔던 창의문 내지 와룡 공원이 아니라, 삼청 공원에서 했다. 위의 사진은 삼청동 골목길의 모습이다. 이로써 청와대의 왼쪽과 오른쪽 주변을 골고루 답사해 보게 됐다. 여기는 서울 도심과 가깝고 데이트 코스로 좋지만, 딱 봐도 차 세울 만한 곳은 없게 생겼다. 자차를 갖고 방문하기는 곤란하다.

내가 내린 버스 정류장은 '삼청공원 입구'와 '교육과정 평가원'이라는 명칭이 뒤섞여 쓰이고 있었다. 한국 교육과정 평가원이 한때 여기 근처에 있었지만, 지난 2010년에 이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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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을 오르는 자동차 도로는 늘 그렇듯이 청와대 쪽은 철망이 몇 겹으로 둘러져 있다.
창의문에서 정상으로 오를 때는 주변에 차도가 없이 가파른 경사를 계단으로 오르느라 정신 없었다. 그러니 이런 광경을 딱히 볼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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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시멘트 오르막길이 끝나고 등산로가 나왔다. 성곽 둘레길보다는 인위적인 느낌이 덜한 비탈길을 오른 뒤, 지난번에 들렀던 성곽 둘레길과 합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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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숙정문을 나서서 북악산의 남부에서 북부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길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냥 앞만 보고 쭈욱 올라서 팔각정으로 갈 수도 있고, 중간에 성북천 발원지라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더 길고 험한 등산로를 타고 동쪽으로 갈 수도 있다.
후자는 제2 산책로인데, 요게 일명 '김 신조 루트'이다. 그 시절에 남파된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로 침투할 때 이용한 경로라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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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신조 루트는.. 뭐 그렇게까지 특별한 게 있지는 않았다. 이런 식으로 길이 쭉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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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의 북부를 오르면서 이전에 지나 온 남부를 바라본 모습이다. 서울 성곽이 쭉 둘러져 있는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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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호경암'이라는 바위이다. 성곽 둘레길에는 1· 21 사태 교전 때 총알이 박힌 소나무가 있더니만, 여기는 총알이 박힌 바위가 있었다.
그 시절에 단순히 시가전뿐만 아니라, 도주한 무장공비를 소탕하기 위해 산 속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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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마루 전망대에 도착했다. 내부순환로, 국민 대학교, 평창동 등이 모두 보이고 경치가 아주 좋았다. 산꼭대기에까지 무슨 건물을 어떻게 지었는지, 근처에는 사람이 거주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군사 시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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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예정 지점인 국민 대학교 인근과, 다른 방향인 평창동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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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더 진행한 끝에, 드디어 '하늘교'라고 불리는 하얀 다리에 도달했다. 북악산과 북한산을 연결하는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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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는 자동차 도로가 있다. 이 등산로 위에서 도로 쪽으로 오르내리는 통로는 일단은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도 차도를 따라 팔각정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그쪽으로 가지 않고 북한산, 국민대 방면으로 진행하여 북악산을 하산했다.
개인적으로 북한산 팔각정은 교회 친구들과 함께 차를 끌고 가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밤이어서 전망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며,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고 정신없기까지 한 때 간 것이어서 딱히 등산 기분은 못 냈다.

가는 길목에는 뭔가 호국 불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여래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더 내려간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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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엔 와룡공원 쪽으로 하산하면서 성균관 대학교를 봤는데, 이번에는 더 외곽에 있는 국민 대학교를 처음으로 구경했다. 오오!
국민 대학교 건물은 가끔 내부순환로를 차로 달릴 일이 있을 때 가끔 보긴 했다. 내부순환로는 '정릉 터널'을 통해 북악산을 횡단하는데, 그 옆엔 '북악 터널'이라는 도로와 터널이 더 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북악산과 북한산이 만나는 곳이다 보니 북한산 등산로도 근처에 있었다. 노래에 메들리가 있는 것처럼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산을 몇 콤보로 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본인은 거기까지는 차마 하지 않고 돌아왔다.

앞으로 등산 이야기가 좀 더 올라올 듯하다. 이러다 내 블로그가 프로그래밍 블로그에서 여행· 등산 블로그로 성향이 바뀌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에 저런 길이 있는데, 사실은 서울 완전 북쪽 끝에 북한산과 도봉산의 경계엔 '우이령'이라는 고갯길이 있다. 거기도 안보상의 이유 때문에 거의 40년 동안 민간인 출입이 금지돼 있다가 2010년 무렵에 금지가 풀렸고, 지금도 신분증 지참에 "예약 + 하루 통행 인원수 제한"까지.. 북악산보다도 더 까다로운 제약이 남아 있다. 조만간 거기도 가 볼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05 08:31 2016/06/0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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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북악산 -- 上

한동안 너무 바빴던 나머지, 남한산성 이후 다음 등산 때까지 블로그에 다른 글을 올릴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도 아주 흥미진진한 산행을 다녀왔다. 이번에 간 곳은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었다.

북악산은 자명한 이유로 인해, 서울에 있는 산들 중 아마 유일하게 신분증 까고 번호표 목걸이를 해야 입산 가능한 산이지 싶다. 인왕산은 사진 찍는 걸 감시하는 초소만 있던데 북악산은 그에 덧붙여서 저런 절차도 필요하다.

인왕산과 북악산은 빨간 날의(일요일 + 공휴일) 다음 날은 입산 금지이다. 감시 초소 직원들도 한 주에 하루 정도는 출근 안 하고 쉬어야 할 테니까. 북악산은 거기에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입산 가능 시각도 정해져 있다. 현재 북악산에 있는 사람들의 신원이 모두 파악돼 있어야 하며, 해가 떨어진 뒤에는 산 속에 아무도 없게 마치 민통선에 준하는 수준의 관리를 하는 듯하다.

인왕산은 감시 초소는 있지만 저 정도까지 등산객들을 일일이 파악하고 통제하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해가 지고 나면 어차피 청와대 쪽으로 사진 찍는 것 감시는 할 필요가 없어지니 말이다.

사실, 청와대 근처에 있는 산들에 우리가 이 정도라도 접근하여 등산을 할 수 있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다.
21세기 이전엔 그런 거 없었다. 1968년 1월에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 바로 근처까지 쳐들어왔던 전대미문의 사건의 여파로 인해, 북악산과 그 일대의 산들은 민간인 접근 절대엄금으로 봉인돼 버렸기 때문이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던 시절에는 난 북한산과 북악산의 차이도 잘 몰랐다. 북악산은 북한산보다 훨씬 서울 중심부 안에 있다. 본인은 북악산을 오르기 위해 무작정 '창의문'으로 향했다. 예전에 인왕산을 올랐다가 돌아오면서 버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쳤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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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의 바로 옆에 있는 최 규식 경무관의 동상을 가까이에서 다시 접했다.

그는 용감한 정의인으로 종로 경찰서장에 재직 중,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여 오는 공산 유격대와 싸우다가 장렬하게도 전사하므로 정부는 경무관의 계급과 태극 무공 훈장을 내렸다.
비록 한때의 비극 속에서 육신의 생명은 짧았으나 의를 위하는 그의 정신은 영원히 살아 남으리라.
1969년 1월 21일
조각 및 제작: 이 일영
글: 이 은상
글씨: 김 충현


알고 보니 저 동상은 고인의 순직 1주기를 기념해서 만들어졌다.
태극 무공 훈장은 우리나라의 무공 훈장 중 최상위 등급으로, 이 정도 훈장은 6· 25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급의 영웅이 아니면 살아서는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군인이 아닌 경찰에게 이런 훈장이 추서된 사례도 현재까지 저분만이 유일하다.
바로 몇 년 전(1965), 강 재구 소령이 수류탄 투척 훈련 중에 부하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몸으로 감싸고 산화하여 동일한 태극 무공 훈장이 추서됐다는 것도 기억해 두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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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을 오르면서 작년에 갔던 인왕산과 부암동 쪽을 본 모습이다. 인왕산과 북악산은 모두 산 속에 성곽과 감시 초소가 있고, 아예 군부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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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길은 성곽을 따라 대략 이런 형태였다. 이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벽 너머로는 철조망이 둘러져 있다.
계단을 따라 산을 오를 수 있었는데, 경사가 꽤 가파른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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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주변은 경치가 이러했다.
우리가 평소에 서울 시내 쪽에서 바라보는 북악산의 전면은 바위가 참 인상적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는 이미 북악산의 뒤쪽으로 가는 것이고, 산을 타면서 딱히 그런 바위를 볼 일은 별로 없었다. 앞쪽은 영구 봉인돼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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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바로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에 조성된 마을인 평창동이다. 각종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부자· 유명인사들이 사는 단독 주택들이 가득하여 마치 서울 안의 딴 세상 같다. 교통이 왕창 불편하겠지만, 다들 차를 끌고 다닐 테니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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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의 정상은 생각보다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북악산'이 한때는 '백악산'이라고도 불렸다. 창의문에서 북악산 정상까지는 지도상의 직선 거리가 짧은 만큼 경사가 굉장히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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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 사태 때 북한군과의 교전 중에 총알이 박힌 소나무라고 한다. 그런데 일부러 저렇게 표시를 해 놓은 게 좀 징그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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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을 따라 가다가 '청운대'라고 불리는 다른 봉우리에도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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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걷는 길은 성곽 안에 있기도 하다가 성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철조망이 저렇게 있으니 무슨 GOP 철책처럼 보였다.
이거 사진이 도대체 어떻게 찍혔는지 광량 조절이 이상하게 됐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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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도착한 뒤에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이 저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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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숙정문'이라고 불리는 대문에 도착했다. 나름 사대문 중 하나이며 '북대문'에 해당하는 대문이다. 얼마 전에 남한산성을 본 적이 있다 보니 모습이 친근했다.
본인은 조선 시대에 있었던 서울 성곽과 '대문'에 대해서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좀 개념이 생겼다.
남대문은 서울 역 근처에 있는 그 숭례문이고, 동대문은 국도 6호선상에 있는 그 흥인지문이다.

서대문(돈의문)은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 역 근처에 있긴 했지만 일제 강점기 때 헐려서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옛날엔 노면 전차가 이 문을 통과했는데, 전차 노선을 복선화하려다 보니 이 성곽이 걸림돌이 됐다고.. 얘는 사대문 중 유일하게 복원이 못 되고 2016년 현재 존재하지 않는 문이다.

마지막으로 북대문이 바로 저 숙정문이지만, 높은 산 속에 있는 관계로 다른 문들만치 유명하거나 사람들이 막 드나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쉽게 말해 존재감이 별로 없다. 남대문하고는 접근성이 가히 넘사벽급으로 차이가 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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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에는 창의문에서 숙정문, 와룡 공원까지 북악산을 성벽을 따라 수평으로 횡단하는 코스를 생각하고 왔다.
차를 이용해서 북악산을 오르면 아까 같은 정상으로는 못 가지만, 그래도 성벽 둘레길보다 높은 곳으로 가서 '팔각정'이라고 불리는 정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면 도보 등산로와 자동차 길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창의문과 와룡 공원 사이에, 청와대와 더 가까운 지점에 '삼청 공원'이 있고 거기에도 북악산 숙정문을 경유하여 팔각정까지 가는 등산로가 있다. 이건 북악산을 횡단이 아니라 종단하는 코스인 셈이다.

북악산에는 일명 '김 신조 루트'도 있고 북한산 형제봉과 연결되는 '하늘다리'도 있는데 거기로 가려면 숙정문의 밖으로 나가서 서울 성곽보다 훨씬 더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
위의 사진은 그 종단 등산로를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찍은 것이다. 이 등산로는 나중에 북악산에 다시 와서 개척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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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이 정도로 보이기 시작하니 이번 등산도 거의 끝이 난 것 같다. 옛날에는 저기도 다 산이었을 텐데 산중턱까지 다 개발되고 도로가 생기고 길이 닦인 것이다.

정작 와룡 공원에는 가 보니 별 거 없었다. 공 병우 박사가 운영하던 한글 문화원의 소재지가 와룡동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서는 마을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면서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성균관 대학교 서울 캠퍼스, 감사원, 통일부 같은 건물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등산을 하면서 서울에 이런 곳도 있다는 걸 알아 가는 건 즐거운 일이다.

안국 역과 혜화 역이 지리상으로는 생각보다 굉장히 가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5/30 08:26 2016/05/3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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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 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을 때 또 무작정 산을 올랐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말로만 수도 없이 들었지 직접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남한산성을 구경하러 청량산으로 갔다.
전에 불암산을 오를 때는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종점인 당고개 역으로 갔고, 하산은 남양주 쪽으로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5호선의 종점인 마천 역으로 갔고, 하산은 하남 쪽으로 했다.

또한 불암산은 하산한 뒤 남양주의 산기슭에 군부대가 있던데, 여기 청량산은 반대로 등산 전 서울의 끝자락 지점에 군인 간부 아파트와 군부대가 있었다. 듣자하니 특전사 부대라고 함.
지하철 운임에 조조할인이 적용될 정도로 굉장히 이른 시간에 산행을 했다. 덕분에 아침 7시 정각이 되자 군부대에서 기상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군가 BGM들..;; 단 4주간의 짧은 경험이지만 훈련소 시절 생각이 났다.

인근 주민들은 이거 듣는 게 일상이 돼 있겠구나. 단, 지도를 보니 이 군부대는 위례 신도시의 개발로 인해 딴 데로 이전하고 부지가 재개발될 계획인가 보다. 서울 2기 지하철이 없던 시절에는 여기만 해도 굉장한 외곽이고 오지였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전, 아직 맛집들이 즐비한 골목을 지나고 있는데 "서울 빠이빠이. 여기부터는 하남시입니다" 이런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산이 행정구역상 하남에 있는가 보다. 단, 나의 목적지인 남한산성은 하남이 아니라 광주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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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도립공원이며 여기 일대는 유명한 등산 코스이다. 그래서 등산로는 내가 가 본 산들 중 가히 톱급으로 잘 닦여 있었다. 난간에다가 바닥은 미끄럼 방지용 매트까지.. 비가 내린 직후의 날씨이지만 진흙 진창을 밟을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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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딱히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며 산을 남들 이상으로 빠르게 잘 타지는 못한다. 하지만 1시간 남짓 느릿느릿 쉬기를 반복하면서 산을 오르니 남한산성엔 생각보다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저기는 서문(west gate)이었다.
아침 7시 남짓한 이른 시간이어서 산은 한산했지만, 그래도 하산하는 몇몇 일행과 마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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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봉 옹성에 들렀다가 왔다. 아무 산에나 이런 구조물이 있는 게 아니니 남한산성은 확실히 레어템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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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라온 길 방향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 날씨가 흐리고 어두워서 전망이 그리 좋지는 않다. 또한 그렇게 막 높게 올라온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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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내가 하산할 지점(하남시 춘궁동)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이다. 좌우로 산(언덕?)에 둘러싸인 일종의 계곡 같은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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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안팎은 대충 이런 형태였다. 대포와 폭격기가 발달하면서 지금이야 이런 성 같은 건 군사적 가치가 전혀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가파른 산들 사이에 분지가 조성된 여기가 천혜의 요새 그 자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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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북문이다. 본인은 하산은 이쪽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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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로터리. 남한산성 내부에는 아예 각종 맛집 마을이 조성돼 있으며, 자동차가 들어오는 정도를 넘어서 정규 노선 버스가 다닌다. 물론 산중턱이니 올라가는 데 기름이 많이 들 것 같다. 북한산성 주변은 이런 거 없음.
주변엔 한옥 형태의 한식당이 가득하다. 내가 갔을 때는 시간 관계상 아직 문을 연 곳은 없었음. 그래도 다들 가격이 왕창 셀 것 같았다.

저기서 방향을 꺾어서 조금만 더 가면 남한산성 행궁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건 미처 생각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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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북문으로 나가서 하산을 시작했다. 지도에서 봤을 때 고도 대비 등산로가 좀 짧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지그재그 스위치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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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벗어나서 버스 정류장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걸었다. 서울 외곽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이렇게 전원적인 마을이 펼쳐진다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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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봐 뒀던 버스 종점 겸 공영주차장에 도달했다. 공간이 얼마나 여유로운지, 저 주차장은 관리인도 없고 전면 무료이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차를 여기에다 두고 안심하고 등산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본인은 등산 원칙이 "갔던 길로 돌아오지 않는다"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장거리 등산 원정을 떠나는 게 아닌 이상, 차는 가져가지 않는다. 여기서는 옆에 세워져 있던 마을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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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하남 시내에서 내려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는데...;; 시가지 도로의 모습은 약간 문화 충격을 느낄 정도였다. 나름 광역버스 9301이 지나는 길인데도 시내 도로가 이렇게 작다니.
하남대로라고 불리는 국도 43호선 구간을 제외하면 다 저런 것 같았다.

서울 역까지 가장 깊숙이 들어가는 버스는 9301뿐이고, 나머지 도시형 버스들은 다들 동서울 터미널 정도까지만 갔다. 물론 어느 것이든 국도 43호선의 천호대로 구간으로 들어가서 5호선 강동 역을 경유하는 건 변함없으므로 본인은 아무 거나 타고 귀가했다. 하남시와 인접한 서울 동쪽 끝자락에도 그린벨트가 풀리고 아파트가 곳곳에서 지어지는 게 보였다.
어쩌다 보니 남한산성 답사기는 다른 등산기보다 글이 좀 길어졌다.

Posted by 사무엘

2016/05/24 08:34 2016/05/2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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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순교자 기념관 이야기 계속..)
유명한 순교자 중에 손 양원 목사는 신사 참배 거부로 인한 투옥(일제)에다 빨갱이들에 의한 순교라는 박해와 순교 2관왕을 달성했다. 게다가 그는 자기 아들을 죽인 폭도를 양자로 입양했으며, 미국으로 유학 보내려던 친아들에 대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보내 주신 것을 감사, 이 미천한 가문에서 감히 순교자가 배출하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 이렇게 간증했던 정말 넘사벽급의 크리스천이었다.

저분 말고도 몰년이 1950년 가을/겨울인 분들이 너무 많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 원 성덕 목사: 공산 치하의 의주 영산 교회를 시무하던 1950년 12월, 공산군에게 연행되어 살해당했다.
  • 이 창현 영수(領袖. 장로교의 직분 이름): 1950년 11월 18일 공산군에게 체포. 평원리 뒷산에서 "죽어도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다"라는 신앙 고백과 동시에 총살 당하고 구덩이에 매장됨.

북괴 공산 빨갱이 집단의 만행을 잊지 말아야겠다. 빨갱이의 만행을 용서하는 것과, 빨갱이를 빨갱이라고 인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여기는 반공 정신 함양을 위해서도 방문할 가치가 있는 좋은 곳이었다.
기념관의 밖에도 야외 예배 공간과 산책로가 있는지라, 반쯤은 기독교 수양관이나 기도원 같은 분위기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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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갖다 놓고는 "나도 순교자가 될 수 있다???" 엥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ㅜㅜㅜ 그런데 비록 대한민국이 지금 신앙의 자유가 마음껏 보장된 고마운 나라라고 해도, 이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때 마냥 웃을 일은 아니다.

첫째, 우리는 비록 옛날처럼 성경을 대놓고 불태우거나 성경 소지자를 국가에서 나서서 죽이는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경이 변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자꾸 그 믿음을 고집하면 죽는다"라는 위협은 없지만, "그 고집을 조금만 꺾으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고 인생이 참 편해질 텐데?" 같은 유혹은 곳곳에 상존해 있다. 옛날에는 가야 할 길이 참 물리적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이었겠지만, 지금은 가야 할 길이 뭔지조차 엄청 혼란스러워지고 전투 양상이 교묘해져 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좁은 길을 가고 진리를 수호하고 살면, 그게 곧 사육신에 준하는 생육신이 될 수 있다. "죽기까지 신실하라"(계 2:10)라는 말은 정말 피할 수 없는 경우 죽음까지 불사할 정도로 신실하라는 말이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100% 죽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실제로 죽이지는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둘째로..
아직까지는 매우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상상으로 비쳐질지 모르나, 대한민국 땅이라 해도 가까운 미래에 그야말로 물리적인 박해가 시작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전세계적인 반성경 반기독교 감정이 횡행한다면 다른 모든 정치 집회나 폭력 시위는 허용되면서 공개적인 거리 설교나 선교 행위만은 금지될 것이다. 동성애가 죄라고 공석에서 말하는 게 금지되고, 이걸 어기면 잡혀 가고 전과자가 되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공직에서 쫓겨날지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진보의 탈을 쓴 안티 대한민국 종북 성향의 흉악한 정치인· 국회의원· 법조인이 권력을 장악한다면, 저런 날이 훨씬 더 빨리 찾아오게 될 것이다.

비록 신약 크리스천들은 적그리스도 통치와 엄청난 자연 재해를 직접 경험하는 대환란까지는 겪지 않고 그 전에 휴거되겠지만, 대환란의 전이라 해도 어느 정도까지 세상이 맛이 가는 걸 보고 휴거될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세상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직전까지 절~대로 성경 친화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니 영적으로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이것만 생각해도 끔찍한데 아예 교회가 대환란을 직접 겪는다는 말은 꿈에서도 생각하기 싫다.

...
자, 이렇게 경건한 곳을 들른 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 교통 박물관이었다. 마침 이 타이밍에 맞춰서 흐리던 날씨도 아주 맑아진지라, 분위기 전환용으로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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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는 백 남준의 작품이라는데 흰색 칠을 씌운 옛날 자동차들이 쭉 세워져 있었다.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건 마치 패션 유행처럼 변해 온 것 같다. 마차와 별 차이 없던 빈약하던 시절, 저렇게 동글동글 두툼하던 시절 등등~ 나도 차 모양만 보고는 이건 대략 몇 년대 디자인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스페어 타이어도 한때는 차 뒤에 있다가 나중엔 측면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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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교통 박물관인데 이 물건이 없어서는 곤란하겠지. 1886년에 벤츠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4행정 휘발유 엔진 자동차이다. 오늘날의 어지간한 경차에 맞먹는 984cc 배기량으로 엔진 출력은 겨우 1마력이 채 되지 않았다.
컴퓨터 회로의 집적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자동차 엔진도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엄청나게 발전해 왔다. 그런데 전자식 컴퓨터의 역사는 아직 100년이 채 안 됐다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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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실물 전시는 자동차 위주이고, 거기에 철도와 선박 이야기가 약간 겉절이로 낀 정도였다. 비행기는 딱히 소개가 없고 야외에 옛날 소형 프로펠러기 두 대가 전시된 게 전부이다.
철도에 대해서는 증기, 디젤, 전기 기관차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옛날 열차 승차권 컬렉션도 있었는데.. 이런 물건만 전문적으로 구경하려면 의왕에 있는 철도 박물관을 가는 게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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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언어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자동차인 '시발'. 미군 지프 부품을 이용해서 최초로 한반도에서 밑바닥부터 '생산'된 자동차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옛날엔 삼륜차가 있어서 지금의 다마스· 라보 같은 생계형 용달차 역할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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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름 아주 어렸을 때(초딩~) 포니 2 말고 포니 1이 돌아다니는 걸 아주 가끔 본 적도 있는데.. 실물을 얼마 만에 다시 보는지 모르겠다. 반가워서 사진을 두 장 찍었다. 포니는 알다시피 우리나라에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올드카가 전시된 건 포니, 시발, 코로나, 기아 삼륜차 정도가 전부였다. 여기가 무슨 <금호상사>처럼 올드카 전문 전시관은 아니니까. 그래도 브리사나 봉고를 보지 못한 건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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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미했던 영국과 미국의 대형 고급 승용차가 전시되어 있다. 롤스로이스 팬텀(검정)이야 유명하고, 캐딜락 엘도라도는 미국식의 각진 디자인이 참 인상적이다. 자기네 본토가 독보적으로 땅 넓고 자원 풍부하고 내수 수요도 많다 보니, 차를 엄청 크게 만들곤 했다.

딴 얘기이다만, 역사상 최초로 전륜구동 승용차를 만든 곳은 프랑스의 시트로엥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복잡한 엔진 부품에 끼여 있고 조향 역할도 하는 앞바퀴에다가 구동축까지 집어넣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 포니는 현실적으로 만들기가 더 쉬운 후륜구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포니 택시를 탔을 때 뒷좌석의 중앙 하부를 관통하던 커다란 구동축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나 전륜구동이 개발되면서 중소형 승용차는 효율이 더 좋아지고 뒷좌석 공간도 더 확보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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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 전시된 '혀기형 증기 기관차'.
얘는 수인선과 수려선에 투입될 목적으로 생산된 협궤용 증기 기관차이다. 아까 보고 온 그 오천 역 일대를 실제로 지나며 달렸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두 개념이 이렇게 서로 연결이 된다. 이 증기 기관차는 디젤 동차의 등장과 함께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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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바깥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어서 돗자리 깔고 텐트 치고 놀거나 쉴 수 있었다. 가족 단위로 애들을 데리고 오기도 좋고, 학교에서 단체 관광을 오더라도 끄떡없을 듯했다.
그런데 토요일에 이렇게 날씨가 좋으면 이런 박물관보다는 근처의 에버랜드가 사람들로 터져 나갔을 것 같다. ^^

이상으로 이천· 용인 테마 여행을 아주 즐겁게 마쳤다.
여기 말고도 우리나라의 서쪽 끝, 남쪽 끝, 동쪽 끝, 중부 등 몇 군데 가 보려고 찜해 둔 곳이 있다.
거기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주요 기능 개발이 끝나고 박사 과정도 연구 학기로 들어갔을 때쯤 1년에 한 번씩 가 볼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06 19:23 2015/10/0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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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작년 5월에 철원에 성공적으로 다녀 온 것에 고무되어 이번에는 토요일 개천절에 경기도로 테마 여행을 떠났다.
날씨는 한창 맑고 좋고, 학교는 입시생들 논술고사 때문에 폐쇄이고, 공휴일이라 교회 신학원도 안 하니 이런 날은 잠시 짬을 내어 어디 갔다 올 가치가 충분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2가 아직 갈 길이 멀며 회사일과 학교 과제가 날 압박해 오고 있지만, 일단은 잠시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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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를 한 직후에 고속도로를 좀 뛰었더니, 역시나 시내 구간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엄청난 연비가 나왔다.
사람에게 힘든 건 기계에도 동일하게 힘든 법. 경제 속도 + 최대한 관성으로 쭉쭉 달려 주는 게 답이다.
(주유를 하고 나면 차내 컴퓨터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연비 정보가 싹 없어지고 초기화된다.)

그리고 아침 일찍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바로..
옛 수려선에 있던 오천 역 건물이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협궤 철도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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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선(수원-여주)은 일제 강점기이던 1930년에 부설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거의 반세기에 가깝게 전인 1972년에 이미 폐선되어 없어진 철도이다.
선로와 노반은 다 사라졌지만, 이천에 있던 오천 역 건물만은 민가로 바뀌어서 유일하게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 붉은 벽돌 외형이 그 대표적인 예. 요즘 지어지는 철도역들은 유리궁전 스타일이 대세이지만 그때는 저게 주된 건축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와서는 이 건물은 거주민이 없이 흉가처럼 방치됐고, 부지 일대는 재개발이 확정되었다. 그래서 저 건물도 언제 불도저로 싹 밀려 쥐도 새도 모르게 철거될지 알 수 없다.
철덕으로서 나도 어서 가 봐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갖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드디어 성지순례를 마쳤다. 역사 주변의 여러 지점에서 사진을 찍은 뒤, 마지막으로 옆 건물에 올라가서 역사를 내려다보며 한 컷을 더 찍었다.

아무쪼록 저 건물은 사라지지 않고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이 됐으면 좋겠다. 경의선 신촌 역 옛 역사가 보존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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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역 건물을 답사한 뒤에는 '진짜' 성지순례를 하러 갔다. 인근에 있는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을 방문한 것이다. 오천 역에서 거의 7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본인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두 곳을 동시에 답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순교자 기념관은 어느 성도가 산 속 사유지를 기증해서 건립되었으며, 지금 서울 합정동에 있는 선교 100주년 기념 교회던가? 거기서 걷히는 헌금으로 운영된대서 입장료조차도 안 받는 대인배 기념관이었다.

가는 길부터가 포스가 넘쳤다. 몇몇 주택과 회사· 공장을 지나서 산을 계속 오르자, 산상설교부터 시작해서 성경 구절 팻말들이 방문자를 반겨 주었다. 나중에는 한국에서 순교한 목사· 전도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들이 옆에 쭈욱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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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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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안에는 이런 그림체로 순교를 묘사한 그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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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셔먼 호 사건 때 목숨을 잃은 토머스 목사/선교사는 '순직'인 건 명백하겠지만 '순교'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치 지난 2004년에 김 선일 씨도 이라크에서 업무상 '순직'을 한 것이지 '순교'는.. 글쎄? 인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요나에 대해서도 순교자로 묘사해 놓은 그림이 있었다. 요나가 요나서를 기록하고 나서 나중에 다른 일을 하다가 순교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나서의 그 사건에서만은 그는 성경적으로 볼 때 절대로 순교자 모드가 아니었다. 이런 건 좀 분별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거시적으로는 정말 선교의 빚을 지고 있는 게 맞다. 그 옛날에 미국에서 (헬)조선으로 선교사를 보낸 건 지금으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무슨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따위로 선교사를 보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본인 당사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처자식까지 얼마나 고생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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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2층에는 예배실이 있어서 교회에서 단체 관람을 온 사람들이 모여서 간단히 예배 집회를 열 수 있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벽에는 우리나라 교회사와 관련된 여러 글과 사진 자료들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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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성경 번역의 변천사. 스캔 하나는 참 깨끗하게 잘 했다.
다만, 우리나라에 처음부터 킹 제임스 성경 계열의 역본이 전해지지 못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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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3층에는 '순교자' 믿음의 선배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기독교(개신교 포함)는 천주교와 달리 조선 정부에 의한 박해는 그리 많지 않다. 기독교는 프랑스인이 아닌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고, 공권력에 의한 박해보다는 제사 거부 같은 걸로 인한 민간 차원에서의 박해가 더 많았다.
그나마 구한말 때의 거의 유일한 순교자로는 백 홍준 장로만이 소개되어 있다. 이것도 직접적으로 사형을 당한 건 아니고 옥사다.

일제 강점기 때도, 독립 운동과 무관하게 기독교 신앙 자체만으로 인한 박해는 말기의 신사 참배 강요 이전까지는 딱히 심한 지경이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정말로 엄청난 수의 순교자가 발생한 건 오히려 해방 이후부터였다. 공산주의자, 일명 빨갱이들은 양심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일당독재 우상화를 거부하는 기독교를 지독하게 박해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기념관에 적혀 있는 소개 문구이다.

* 북한의 교회 재건
"38선이 놓이면서 북한에서는 교회의 탄압이 계속되었고, 이를 피하여 많은 신도들이 남한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북한의 공산당들은 교회가 새롭게 재건되는 강한 힘을 느끼게 되자 1946년 11월 3일이 일요일인데도 이 날을 북괴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의 날로 정했다(참고로 1948년 5월 10일 남한의 총선거일은 월요일!). 이에 교회들은 즉시 반발하고 결의문을 채택하여 북한 당국에 보냈다. 이러한 항거에 부딪치자 공산당들은 이들을 투옥하고 강제 노동을 시키면서 박해를 가했다.
드디어 1946년 11월 28일에는 그들의 어용 단체로 기독교 연맹을 조직하여 교회를 공산주의 선전에 이용하고, 김 일성을 절대 지지하며 선거에 솔선수범한다는 결의문까지 발표하게 했다. 이에 따라 이 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목사들은 투옥되거나 추방 당했다."


옛날 로마 제국 시절에 대음모자 콘스탄틴이 부패한 국가 어용 교회(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신)를 만들고는, 거기에 가담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은 더 악랄하게 괴롭히고 박해한 것과 완전히 똑같다. 평양이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우리 남한, 대한민국은..

* 남한의 교회 재건
"해방 후 남한은 미군이 진주함으로써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만세!) 일제 말엽에 강제로 모든 교파의 통합이 이뤄졌고 해방 후에도 그 합동 교단을 그대로 존속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45년 9월 8일에 새문안 교회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목사들이 모여 교회의 통합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나 각 교파 교회로의 환원에 대한 집념이 더 강한지라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구세군 등 각 교파는 각자 활발히 선교하여 교세를 확장하여 갔다."


이래서 남한과 북한의 운명이 극과 극으로 갈린 것이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한없이 타락하던 북이스라엘과, 그나마 좋은 왕과 나쁜 왕이 번갈아가며 나오던 남유다 왕국처럼!
난 개인적으로 교파가 저렇게 찢어진 것을 그렇게 나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제 강점기 때처럼 사람의 신앙의 자유를 거슬러서 강제로 통합을 하고 그 통합을 주도한 주체가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게 훨~씬 더 나쁘고 악한 현상이다.

대한민국은 크리스천 초대 대통령 덕분에.. 한중일 나라들 중 유일하게 건국/정부 수립 거의 직후부터 성탄절이 빨간날로 지정되었으며, 군대 내부에 군목을 비롯한 군종 병과가 가장 앞장서서 제정되었다. 정교일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헌 국회 기도문 같은 건 본인은 아주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5/10/04 08:38 2015/10/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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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여름의 여행 일지

1.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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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4호선의 북쪽 종점인 당고개 역의 주변을 보면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게 참 인상적이다.
기왕 등산을 할 거면 그 산을 한번 올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했다.
결국은 같은 수락산이긴 한데 지난 3월엔 깔딱고개 근처까지 간 반면, 이번엔 귀임봉을 지났으며, '서울 둘레길'을 지나서 7호선 마들 역 근처로 귀환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맥북은 나의 소중한 등산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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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앙선 아신 역

이제 전동차의 운행 계통은 경의선과 중앙선이 통합되어 경의중앙선이라고 불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경의선과 중앙선은 같은 수도권 광역전철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분위기가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중앙선이 지나는 지역인 양평은 상수도 보호로 인해 태생적으로 개발 제한 봉인이 걸린 곳이 많으며, 개량된 중앙선 역시 강을 가까이 지나는 구간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풍경 사진 중에서 역시 산과 강을 담은 것만 투척한다. 색감이 예뻐서. 한적한 경춘선이나 중앙선 전철역으로 나가서 코딩이나 독서를 하고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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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린벨트 마을 답사

방학+주말을 기념해서 등산만 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고 차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했다.

난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바와 같이, 서울 외곽의 야산과 그린벨트 지대 탐험에 대한 로망이 좀 있는 사람이다. 한번은 동부간선 → 지방도 23호선을 타고, 서울 공항 근처의 신촌동과 심곡동 마을을 드디어 밤에 몰래 답사했다. 여기 사는 주민은 어떤 사람들일까? 대대로 여기 살던 선조의 후손? 아니면 겁나게 부자들? 민통선 안에서 농사 짓는 사람들만큼이나 신기하게 느껴진다.
미처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전방에서 갑자기 굉음과 함께 거대한 수송기가 활주로에 내려앉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서울 공항(=공군 기지)이 코앞이니까.

그 뒤 청계산로로 갈아탔다. 자연의 정취가 살아 있는 으슥하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면서 대왕 저수지와 신구대학 식물원 일대를 구경했다. 여기는 바깥쪽 차선이 다 자전거 도로로 만들어져 있었다. 요런 데서 차 세워 놓고 혼자 자면 가히 야영 캠핑이 따로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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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고가 도로는 서울-용인 고속도로(171)이다.

계속 진행하자 길은 경부 고속도로를 나란히 지나면서 북쪽으로 가기 시작했으며, 말 그대로 청계산 등산로와 신분당선 청계산입구 역이 나왔다. 중간엔 서울 신원동의 새정이마을을 들러서 답사했다.

4. 경기화학선 폐선 부지

양재-서초 IC 사이는 잠깐 경부 고속도로 구간으로 건넜고, 다음으로 본인은 남부순환로를 타고 서울의 서쪽 끝으로 갔다. 남부순환로는 중간에 압박스러운 경사는 그렇다 치고, 중앙에 화단이 쭉 조성돼 있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 이런 도로는 여기밖에 없는 듯. 도로 폭이 차선수를 홀수 개로 어정쩡하게밖에 만들 수 없는 규모이기라도 했나 보다.

그리고 본인이 새벽에 간 곳은.. 오류동 역과 푸른수목원의 사이에 있는 경기화학선 폐선 부지였다. 세상에, 주거지 근처에 이렇게 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폐선을 보는 건 옛날 수인선 협궤 폐선 이래로 처음이었다. 게다가 여긴 엄연히 인서울 지대인데! 과연 철덕의 성지 순례 코스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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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울 지하철 7호선 천왕 차량기지

서울 남서쪽 끝까지 먼 길을 찾아가서 철도 답사를 했는데, 여기를 들르지 않고 간다면 그건 철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천왕 차량기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한바퀴 빙 돌면서 성지순례를 했다. 자동차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여기를 직접 가 보는 날이 오는구나!

차량기지 중에는 도봉이나 개화처럼 아예 내부에 역이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7호선 장암, 9호선 개화 역) 지축, 창동, 구로, 군자, 신내처럼 다른 전철역 근처에서 기지를 그럭저럭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아니면 철도로는 접근을 못 해도 고덕이나 수서나 모란처럼 고속/고속화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차창 밖으로 어렴풋이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천왕 차량기지는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차량기지들 중에 가장 존재감이 없고 접근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곳이라고 여겨져 왔다.

여느 차량기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구간은 담장과 철조망이 쳐져서 은폐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용케 요런 곳을 찾았다. SR001 전동차가 지상에 나와 있는 실물 사진을 건지는 데 성공했다. 허나, 내가 하는 행동은 남이 보기엔 영락없이 국가 기간 시설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무단 촬영이나 하는 수상한 간첩-_-처럼 보였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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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을 통해 그린벨트 마을 3군데와 경기화학선 철길, 그리고 천왕 차량기지 답사라는 수확을 거두고 돌아왔다. 자동차는 이런 데 활용하라고 만들어진 편리한 문명의 이기임을 실감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7/10 08:36 2015/07/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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