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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남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서울의 너무 중심에 있는 바람에 지금까지 등산 대상에서 아오안이었던 산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산. 물론, 옛날 그 사대문의 안 좁디좁은 한양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남쪽이라는 얘기다.
서울 남산이라 하면 케이블카와 거대한 타워가 상징이지만, 그것 말고도 남산 일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참 많이도 변해 왔다. 과거에 여기 일대는 한양 도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예 수련을 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신궁'이라는 커다란 신사가 여기 기슭에 만들어졌다.

해방 후에 신사는 당연히 곧장 철거됐다. 그 뒤,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박통이 들어선 1961년부터는 남산에 잘 알다시피 코렁탕 시설인 중앙정보부 청사가 들어섰다. "남산에서 왔습니다."란 말만 들어도 사람들이 벌벌 떨 지경이었대나. 이북에서 온 간첩만 벌벌 떨어야 하는데 무고한 시민들까지 떨었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잠시 설명충 기질을 발휘하자면,
남산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인 1995년까지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와 중앙정보부가 있던 곳이었다.
그 반면 남영동 대공분실은 치안 본부, 즉 오늘날의 경찰청 관할이다.
그리고 서빙고 대공분실은 군 소속이었다. 국군 보안 사령부, 지금의 기무 사령부 관할이다.
그러니 똑같이 코렁탕을 제조하는 곳이어도 소속이 제각기 모두 달랐다.

공 병우 박사는 세벌식 글자판을 주장하다가 정부 정책을 건방지게 비판하는 죄로 1970년대에 중정 요원에게 연행되어 남산 구경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것 말고도 중정과 안기부의 흑역사는 많다.
5공 시절에 김 근태, 박 종철 같은 사람이 고문을 당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며, 이 근안 역시 경찰 출신이니 여기서 활동했었다.
그럼 박통을 암살한 김 재규는? 10. 26 사태의 수사권이 아무래도 전땅크 아래의 보안 사령부에 있었던 관계로, 그는 서빙고로 끌려가서 자기 옛 부하들에게 고문을 당했다.

그래도 신사는 전부 공원(특히 안 중근 의사 기념관. 중앙 기준 10시 방향)으로 바뀌었으며, 과거의 중정/안기부 건물은 다 유스호스텔, 방재 센터 등 다른 평범한 건물로 개조됐다(11~12시 북쪽 방향). 남산 기슭은 그린벨트 지대인지라 이미 만들어진 건물을 철거를 하면 했지 더 증· 개축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김 영삼 정권 때는 조선 총독부 청사만 헐린 게 아니라 남산의 외관을 가리던 외인 아파트도 폭파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는 지금 식물원이 조성돼 있다. (5시 남쪽 방향)

그러니 지금은 과거에 비해 남산이 그나마 자연 본연의 모습을 정말 많이 되찾은 셈이다.
사실, 남산은 본격적인 산행의 대상이 되기에는 시내와 너무 가깝고, 산 높이도 너무 낮은 관계로 진작부터 관광지 내지 공원 컨셉으로 꾸며져 왔다. 그래서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도 전국에서 최초로 생겼다. 정상에 도달해도 "남산 무슨봉 해발 262m" 이런 표지석 같은 건 없다.
뭐, 단순 관광객들은 케이블카나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가겠지만, 여기도 도보로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 코스가 없는 건 아니다.

본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산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었다. 교회 친구들과 함께 주일 저녁에 남산 근처까지 차를 몰고 간 적은 있었지만 거기를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했으며 케이블카도 못 타 봤다. 그래서 이 기회에 운동삼아 남산을 걸어서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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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선 회현 역에서 내려서 남산 쪽을 향해 골목길을 오르니 남산 공원 입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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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공원은 경치가 좋고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과 산이 있다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공원에는 독립 운동가 김 구와 안 중근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넓은 공터는 이름부터가 '백범 광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쪽에는 안 중근 의사의 어록이 새겨진 바위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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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시민의 숲 근처에는 윤 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더니 여기에는 안 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었다. 기념관 자체는 1970년대부터 있었지만, 지금의 세련된 건물로 새로 만들어진 건 2010년대의 일이라고 한다.

안 중근 의사는 뜻을 결의하면서 왼손 약지의 앞단을 절단한 행적이 워낙 임팩트가 강한지라, 안 중근 하면 그 "대한국인 손바닥" 그림이 상징처럼 따라다닌다. 그나마 열 손가락 중에서 제일 덜 중요한 부위이니까.
이분은 무예에만 강한 게 아니라 글씨도 잘 쓰고 사상적인 배경도 무척 심오했다. 처음부터 요인 암살 같은 과격한 방법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이거 정말 좋게 가지고는 씨알도 안 먹히고 동양의 평화가 이뤄질 수가 없어 보이니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생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던 당시의 상황, 고인이 사용한 권총 등 어지간한 자료는 다 전시돼 있다.
사소한 사실이다만, 안 의사는 교수형을 당해서 순국했다. 총살을 당한 건 윤 봉길이니 혼동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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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울 타워(N타워?)가 보이는 쪽으로 계속 전진했다. 옆에는 가림막을 치고 성벽을 다시 만드는지 뭔 공사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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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이런 식으로 쭉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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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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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계단을 오른 끝에 드디어 정상 도착. 적당한 아침에 도착하니 타워 주변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엄청 많았다.
맨 먼저 봉수대가 보이기에 등산 인증샷은 봉수대에서 저렇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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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를 가까이에서 올려다보면서 기념 촬영. 그리고 건너편 봉우리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탑이 있어서 또 사진을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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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동쪽으로 버스들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했다. 남산은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포장된 차도가 있긴 하지만 일단 관광버스나 노선버스 전용이다. 아무나 자가용을 끌고 올라갈 수는 없다. 차라리 엔진 없는 자전거는 허용된다.
어쨌든, 이 차도에서 또 도보 등산로가 갈라져 나가는 곳이 있어서 본인은 응당 그쪽으로 경로를 바꿨다. 역시 남산에도 돌계단뿐만 아니라 더 자연 친화적인(?) 등산로가 있었다.

하산을 계속하니 등산로는 아스팔트 도로와 합류했으며, 본인은 결국 국립 극장이 있는 쪽으로 나와서 장충단로라는 큰길에 이르렀다. 그리고 길 바로 건너편에는 '한국 자유 총연맹' 본부가 있었다. 남산 공원에는 김 구 동상이 있더니, 자유 총연맹 내부에는 이 승만 동상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동대입구 지하철역까지는 좀 멀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싶었으나.. 버스 승강장을 찾지 못해서 결국 그 거리를 다 걸어서 갔다. 3· 1 운동 기념탑, 유 관순 열사 동상, 제2 남산 터널을 몽땅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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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국민대, 성균관대), 안산(연세대)처럼 어째 대학교 구경과 함께 등산이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번에는 동국대 차례가 됐다.

단, 이번 산행에서는 남산을 동서 위주로 횡단하다 보니 남북으로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구경하지 못했다.
남쪽의 식물원이라든가 북쪽의 남산골 공원, 타임캡슐 광장 같은 건 못 봤다.
금수저를 위한 초등학교라고 옛날부터 유명하던 '리라 초등학교'도 남산 북쪽 기슭에 있다. 대성동 초등학교만큼이나 특이한 학교인 걸로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8 19:32 2016/07/1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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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우면산

본인이 지금까지 올랐던 산들 중에 대모산· 구룡산은 거의 유일하게 서울 강남구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로부터 1년 반쯤 뒤, 최근에 본인은 그보다 서쪽으로 서초구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우면산을 올랐다.
우면산은 왼쪽으로는 남태령 고개를 경계로 관악산을 마주 보는 형태이며, 한편으로 동쪽으로는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로 인해 말단의 언덕이 살짝 둘로 쪼개져 있기도 하다. 그 쪼개진 지역에는 서울 인재 개발원과 양재 자동차 학원이 자리잡고 있다.

군사 시설 보안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대모산· 구룡산은 남쪽 건너편 기슭에 유명한 코렁 시설이 있기 때문에 남북 종단 횡단을 할 수 없다. 건너편은 철조망이 둘러져서 완전히 막혀 있다.
우면산은 그렇지는 않고 제한적으로나마 종단 등산로가 있다. 그 대신 얘는 꼭대기에 공군 부대가 있고, 남쪽에서는 공군 부대까지 올라가는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다. 그 외에 이 산은 웬 과거 지뢰 매설 지역 출입 금지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대모산· 구룡산의 아래로는 구룡 터널이 있어서 분당-내곡 고속화도로의 일부 구간이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예술의 전당과 우면산의 아래로는 '우면산 터널'이 뚫려 있으며 이 도로는 과천으로 향한다. 우면산 터널은 유료 도로이다.

이들 산의 남쪽 기슭도 행정구역상으로는 아직 서울이다. 하지만 거기는 아무래도 서울 시내와는 떨어진 외곽이고 전원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다만, 경부 고속도로에 인접해 있는 우면산의 남쪽 기슭에는 KT나 LG 같은 기업의 연구소가 있고 한국 교육 개발원(옛날에 탐구생활을 출간한 기관..;;)도 있어서 '우면동'이라 하면 왠지 지적인 냄새가 풍긴다. 게다가 지금은 거기 일대에 삼성 전자 연구소도 지어지고 있다.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우면산은 이런 특징을 가진 산이다. 등산로는 남부터미널 역에서 내린 뒤 예술의 전당 근처에서 아주 쉽게 접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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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을 오르는 첫 구간은 느낌이 이러했다. 벌써부터 철조망이 등장하는데, 이건 서울특별시 인재 개발원과의 영역 구분을 위해 쳐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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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길엔 서초구민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돈을 후원해서 만든 계단도 있었고, 위의 사진처럼 널찍한 공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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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역시 울창한 숲이 잘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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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이 접근 가능한 우면산의 실질적인 정상인 소망봉 '소망탑'에 도달했다. 여기는 예술의 전당이 발밑에 딱 내려다보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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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었다. 강남에서 바라본 경치 하나는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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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을 당기니, 저 멀리 남산과 북한산까지 보인다.

소망봉에 도달한 뒤부터가 문제였다.
꼭대기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서남쪽으로, 이왕이면 선바위 역 근처의 전원마을로 하산하고 싶었으나 그 길은 이제 "과거 지뢰 매설 지대 위험"이라는 명목으로 막혀 있었다.
이제부터 서쪽으로 가려면 도로 하강하여 꼭대기와는 거리를 두고 산중턱의 능선을 따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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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의 왼쪽을 돌아보면 가끔씩 이런 골짜기 같은 게 보였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반쯤은 지뢰 때문에, 반쯤은 군부대 때문에 저렇게 몇 겹씩 철조망이 쳐진 채 막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참을 간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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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찍은 본인의 등 뒤에는 공군 군부대가 있다. 말로만 듣던 자동차 도로도 발견했다. 등산로가 이렇게 연결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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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에서 바라본 건너편 관악산. 관악산은 남산에 있던 각종 전국구 전파 송신 시설들이 모두 이전한 관계로 꼭대기에 저런 케이블들이 있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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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길을 따라 끝없이 하산을 계속했다. 차도 주변에도 도보 등산로로 빠지는 샛길이 한두 군데 정도 있는 듯했으나 본인이 현장에 있을 때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 표지판도 없는데 그런 걸 어떻게 찾아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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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내려가니 송동 마을에 도달했다. 차도의 선형의 특성상 과천 쪽으로 서쪽으로 뻗어 가지 못하고 어중간한 지점에 도달하게 됐지만, 그래도 꿩 대신 닭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산에 없는 우면산의 고유한 캐릭터는.. 5년 전에 발생한 대형 산사태의 흔적이다. 산사태 피해 복구 공사 알림 표지판과 '급경사지 붕괴 위험 지역' 표지판이 보였다.

이렇게 등산을 마친 뒤, 양재대로(국도 47호선) 큰길까지 나왔다. 거기서 선바위 역까지는 버스로 이동한 뒤 귀가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6 08:29 2016/07/1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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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부의 광진· 중랑구와 구리시 사이에는 '아차산'이라는 산이 있다. 여기는 북한산이나 청계산 계열이 아니면서 제법 규모가 있는 산이며, 적당한 암반과 숲에다 한강을 포함해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경치도 훌륭해서 등산 경험이 아주 좋았다. 산 중에는 한번 등산을 시작하면 온통 나무들에 파묻혀서 정상이나 몇몇 전망대를 빼면 아래 경치를 거의 볼 수 없는 것들도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서울의 산 하면 흔히 조선 시대스러운 한양 도성만 떠올리기 쉬우나, 이 산 일대엔 고구려 시대의 유적들이 이례적으로 발견되는 것도 이 산만의 고유한 개성이다.

아차산은 5호선 아차산-광나루 역 일대에서 접근하여 남쪽으로부터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서쪽에는 살짝 더 높은 봉우리가 있어서 이건 용마산이라고 따로 불린다. 이 산은 7호선 중곡-용마산 역에서 접근 가능하다. 두 산 모두 지하철역의 이름으로 당당히 쓰이고 있다.
두 산의 정상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꼭대기 능선은 북쪽으로 무려 국도 6호선 도로 근처까지 꽤 길게 이어지는데, 여기에 있는 해발 280m 남짓한 봉우리를 '망우산'이라고도 부른다. 망우산 일대는 온통 망우리 공동묘지로 조성되어 있다.

본인은 옛날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아차산과 용마산을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대원 외국어 고등학교 일대에서 하산해 버렸지 북쪽을 더 탐험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차산은 제끼고 처음부터 용마산을 오른 뒤, 더 북쪽 망우산 구간을 탐험하겠다는 생각으로 중곡 역 일대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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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는 이미 가파른 비탈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용마산로30길 주변엔 빌라들이 가득했다.
등산로 옆에는 웬일로 주차장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나 차를 가져올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거주자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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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숲길은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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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은 이러했다. 등산 당시는 이른 아침이고 아주 흐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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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또 올라서 정상에 도착했다. 중간에 밧줄을 붙잡고 암반을 올라야 하는 곳이 있었으며, 정상에 도달하기 전에 정자와 전망대가 나오기도 했다.
지금 여기서는 사진 첨부를 생략하지만 정상 주변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단, 끝부분이 많이 해져서 교체할 때가 된 상태였다.
안 그래도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는데 저 정상 인증샷을 찍자마자 정확히 그 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본인은 비를 피하러 허겁지겁 내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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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 있을 때는 빗방울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지만, 정작 밖에 나가 보니 이 정도 비는 그럭저럭 맞을 만했다. 그래서 원래 가려고 하던 곳을 다 가기로 결심하고 북쪽의 망우리 공동묘지 방면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중간에 하산해서 용마 폭포 공원, 사가정 공원 같은 곳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중간에 헬리포트를 두 곳 지났다. 그나저나 이 산엔 헬리포트 말고도 고구려 시절의 흔적이라고 무슨 '보루'라는 군사 시설이 놓여 있었다. 현대에 북한군의 침략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군사 시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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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로 아차산 정상이 보인다. 아차산의 정상에는 저렇게 풀밭 평지가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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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을 처음 오를 때와는 달리 여기서부터는 서쪽 서울 방면이 아니라 동쪽 한강과 구리 방면의 경치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비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 혼자 산에 있으면 시원하고 운치 있고 좋긴 하지만, 그래도 산 아래의 경치 사진을 포기해야 하는 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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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서울 둘레길이 나와서 약간 넓은 시멘트길이 시작됐다. 이 길만 따라 쭈욱 가면 망우리 공원으로 가게 되는데, 본인은 망우산의 봉우리를 오르고 싶고 최대한 동쪽으로 가서 하산하고 싶었던지라, 중간에 갈림길이 나왔을 때 길을 오른쪽으로 갈아탔다. 그래서 다시 비포장 흙길이 시작됐다.
분기점은 용마 터널을 지나서 아마 서일 대학교과 비슷한 위도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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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다가는 묘지 사진은 대표로 이거 하나만 올리도록 하겠다.
망우산 제1보루를 통과하고 나니 서울 둘레길이 아닌 망우리 공동묘지 내부의 순환 도로가 나타났다. 엔진이 달린 교통수단은 못 다니고 자전거 통행까지만 가능한 1차로 정도 폭의 포장 도로이다. 그리고 그 사이엔 역시나 망우산의 깊숙한 봉우리로 더 들어서는 샛길이 있었다.

망우산이 왜 이렇게 인지도가 없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묘지의 규모가 생각보다 꽤 크다..;; 그렇다고 해서 등산로가 없다거나 일반 등산객은 출입할 수 없다거나 한 건 아니다.
또한 여기는 한 용운, 방 정환 등 20세기의 주요 인물들도 많이 묻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표지판의 설명만으로는 여기가 정확하게 어디이고 그런 분들의 묘지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본인은 순환 도로를 벗어나서 망우산 탐험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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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산에는 보루가 세 곳이 있다고 한다. 이제 북쪽으로는 충분히 이동했고, 본인은 어떻게든 망우산을 가로질러 구리 쪽으로 가 보려고 순환 도로를 이탈하여 보루 세 곳을 모두 통과했다. 중간에 이렇게 망우산 정상임을 나타내는 표식과 돌무더기가 달랑 놓여 있었다. 그 뒤로는 내리막이 이어졌다.

한참을 이동한 뒤에는 다시 묘지 내부 순환 도로가 나타났으며, 최종적으로 본인은 망우리 공동묘지 입구 + 국도 6호선 구간으로 하산했다. 동쪽 건너편 구리시의 전원마을 쪽으로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일단 묘지 구간에 들어서 버리자 묘지의 정식 출입구가 아닌 다른 등산로를 찾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이렇게 그래도 순수 아차산 구간만 빼고 용마산과 망우산 일대를 몽땅 종단하는 데 성공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울 시내와 상당히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딱히 조선 시대나 현대의 군사 안보와 관련된 느낌이 별로 안 느껴지는 산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06 19:22 2016/07/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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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북쪽에 북한산 일대가 거대한 산들의 군집을 형성하고 있다면, 서울의 남쪽에는 관악산 내지 청계산 일대가 군집일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산들을 올랐는데 서울 서남부 지역에 있는 산들에 대한 탐사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예전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과천 쪽에서 관악산을 올라 봤고 경부 고속도로/신분당선 일대에서 청계산을 올라 봤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에 갔던 경로와는 달리, 과천에서 청계산 방면 등산로를 혼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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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4호선의 과천선 구간에 있는 대공원 역에서 내렸다. 평일 이른 아침이어서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여기 주변도 전반적으로 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특히 저 건너편에 관악산이 선명히 보였다. 하지만 이 사진의 전방이 내가 산을 오르려는 방향이다.

참고로 서울랜드는 서울 대공원의 하부에 속한 시설이다. 둘이 완전 별개이거나 동치인 관계가 아니다. 서울 대공원은 동물원도 있고 시에서 관리하는 좀 public한 시설이지만, 서울랜드는 사기업 관할이라는 차이가 있다. 다만, 테마 놀이공원으로서 서울랜드는 접근성은 롯데월드에 밀리고, 시설의 퀄리티는 용인의 에버랜드에 밀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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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전반적으로 이런 분위기였다. 산을 한두 번 올라 보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가 익숙하다. 단, 계절이 바뀌니 주변이 온통 초록색이 돼 있었다. 날씨도 맑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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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근처에 상수도나 군사 시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산림 보존과 동물원 경계 구분을 위해 전반적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하지만 모든 철조망이 관리가 잘 돼 있지는 않아서 무단 월담이 가능한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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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이제 한 300~500m대 산들은 많이 올라 보니 어느 정도 오르면 되겠다는 감이 오며, 마을 뒷산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단, 이 글의 복잡한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산은 봉우리 이름이 좀 혼동의 여지가 있다. 여기는 엄밀히 말하면 청계산의 권역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청계산보다 더 남서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지도에 따라서는 '매봉산'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여기서 능선을 타고 청계산의 진짜 정상 근처인 국사봉, 이수봉, 매봉 등으로 갈 수도 있긴 하지만 거기까지는 몇 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거기 정상도 이름이 '매봉'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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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의 진짜 정상을 매봉이라고 부르는 문맥에서는 내가 오른 이 봉우리는 '응봉'이라고 불러서 구분하는 것 같다.
'매봉산'을 '청계산 매봉'이라고 적어 놓은 건 초행자에게는 여러 모로 굉장한 혼동을 줄 텐데 이름이 왜 이런 식으로 붙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에 봉우리 이름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에 가까워서 어차피 동명이봉이 엄청 많다. '깔딱고개도' 그렇고 말이다. 아무튼 이런 점을 감안해서 저기가 어딘지에 대해 혼동이 없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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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는 관악산 쪽으로는 거대한 철탑과 송전선들이 늘어서 있었다. 다른 산들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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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도로만 봐 온 '문원동 마을'이다. 서울의 평창동만큼이나 산 중턱에 홀로 자리잡은 특이한 형태의 마을인데, 이런 마을이 언제 왜 어쩌다가 조성됐는지 무척 궁금하다. 이런 거 지리 공부를 하는 게 등산의 묘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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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른쪽을 보면서 줌을 당기면 과천 저수지와 서울 경마 공원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은 바로 우면산이다.

저기도 기회가 되면 오르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안 그래도 낮은 산인데 정상까지 갈 수가 없으며(군사 시설 때문), 예전에 근처의 구룡산과 대모산을 오른 적이 있다는 점으로 인해 우선순위가 좀 밀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곧 가 볼 생각이다. 도심 근처의 산인 것치고는 숲이 아주 울창하게 잘 보존돼 있고, 또 그 자그마한 산 속에 지뢰 매설 구역까지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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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오른 뒤에는 동쪽으로 더 가서 청계산의 더 높은 봉우리로 갈 수도 있었다. 동쪽으로 계속 가면 경부 고속도로 근처의 청계산 등산로로 하산하게 된다.
그렇게 과천과 서울/성남 사이를 산길로 횡단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 관계상 본인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더 남서쪽의 인덕원 방면으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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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과 청계산 일대의 묘미는.. 여기가 김포 공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민항기 항로 근처라는 점이다. 그래서 머리 위로 김포 공항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를 몇 분 간격으로 볼 수 있다.
여기보다 더 동쪽으로 서울을 벗어난 하남· 분당 같은 데서는 비행기를 볼 수 없다.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도 서울 공항과 가깝다는 점 때문에 종종 군용 수송기가 날아다니는 건 보이지만, 민항기는 보이지 않는다. 서울 공항이 민간 공항으로 개항하지 않는 한 말이다.

본인은 이 점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예상한 상태에서 산을 올랐으며, 이번 등산에서 설정한 미션 중 하나가 '비행기 사진 촬영'이었다.
하지만 산 속에서는 나무들 때문에 하늘이 가려져서 비행기 사진을 찍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평소에 궁금했던 점인데, 이런 이유로 인해 역으로 항공 사진 지도로 등산로 따위를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겠다는 사실에 수긍이 갔다.

위의 사진은 물론 서로 다른 시각에 지나간 두 비행기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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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원 쪽으로 가면 지금 한창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숲속마을 포일2지구'에 도달하게 되는데, 난 중간에 나타난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하여 '옥박골'이라는 의왕시 청계동 소재의 전원마을에 도착했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집들은 다들 참 개성 넘치고 예뻤다. 나도 이런 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 나가니 큰길과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버스는 응당 인덕원 역으로 가는 놈이 있었다. 이걸 타고 오늘의 여행을 잘 마쳤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04 08:33 2016/07/0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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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길 탐방기

북악산 이후로 본인은 한동안 성남과 하남처럼 서울 동남부에 있는 산을 올랐는데, 그 다음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서울 북부로 갔다.
북한산이야 워낙 크고 넓으니 예전에 간 적이 없는 새로운 등산로를 얼마든지 개척해서 오를 수 있지만, 그건 뒤로 미뤘다. 여느 등산로 대신, 북한산과 도봉산의 경계에서 서울과 양주를 연결하는 '우이령길'에서 뭔가 특이함을 느껴서 거기부터 먼저 찾아갔다. 서울 강남에 우면동(우면산. 소가 쉬는 모습)이 있다면, 강북에는 우이동(소의 귀 모양)이 있는 게 흥미롭다.

우이령이라는 고개에 이런 길 자체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북악산의 제2 산책로(일명 김 신조 루트)와 마찬가지로, 1· 21 사태의 여파로 인해 보안을 위해 거의 40년간 민간인의 출입과 통행이 금지된 내력이 있다. 그 대신 군부대 유격장 같은 군사 시설이 여기 일대에 들어서게 됐다.
그러고 보니 6· 25 전쟁 중에 월턴 워커 장군이 교통사고로 순직한 곳도 지금의 서울 도봉구 일대이니, 우이령길 자체는 아니지만 거기 근처이다. 그리고 거기는 그 당시엔 아직 행정구역상 인서울이 아니었다.

군인을 제외하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덕분에 우이령길 주변의 자연 환경은 비무장지대에 준하는 급으로 잘 보존되어 왔다. 여기는 역시 김 신조 루트와 동일하게 2009년경에 봉인이 풀리고 민간인에게 제한적으로 개방됐다. 아무나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건 아니고 예약을 해야 한다.

무슨 국정원이나 대성동, 판문점 같은 곳을 방문하는 것처럼 보안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자연 보호를 위해서 단순히 단위 시간당 동시 접속자-_- 수를 제한하기 위해 그런다. 서울 우이동 쪽에서 500명, 그리고 반대편인 양주 교현리 쪽에서 500명 이렇게 매일 최대 1천 명만 입장과 통행을 허용한다고 한다.
입산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가능하고, 그 뒤 오후 4시 전까지 모든 입산자들은 산을 빠져나가야 한다. 낮이 긴 여름에도 예외가 아니다. 단, 하산(퇴장)할 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든 반대편으로 나가든 그건 상관없다.

이런 점에서 우이령길은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보다도 경비가 더 삼엄한 셈이다. 북악산도 나름 인적 사항을 적고 목걸이를 받아야만 입산 가능하지만, 그래도 거기는 무슨 사전 예약까지 해야 한다거나 인원수 제한이 걸려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약은 인터넷으로 하는 게 원칙이나, 장애인· 외국인 같은 취약 계층에 한해서 전화 예약도 받는다. 환경 보존 명목으로 이렇게 예약을 해서 제한된 인원만 탐방 가능한 산길이 우이령길 말고도 전국적으로 국립 공원에 몇 군데 더 있는 모양인데, 거기들의 탐방 예약을 한 사이트에서 통합해서 받는다.

보안 때문에 예약을 받는 게 아니므로, 무슨 1~2주씩이나 전에 예약한다든가 할 필요는 없다. 예약은 방문 당일의 바로 전날 일과 시간(오후 5시) 중으로만 하면 된다. 한 사람이 최대 10명까지 동시에 예약할 수도 있다. 국가에서 공익을 위해 운영하는 시설인 관계로, 예약과 입장에 비용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 모든 입산자들은 길 어귀의 초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요컨대 우이령길의 탐방에 제약이 걸려 있는 이유는 여행 금지 국가에다 비유하자면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급이 아니라 남극과 같은 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든 산에는 등산객더러 지정된 등산로를 이탈하지 말고 자연을 보호하라는 캠페인이 권고 차원에서 붙어 있긴 하지만, 여기는 특별히 국립 공원이며 그 권고가 더욱 강하게 적용된다. 지정된 시간대와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서 산 속에 짱박혀 있다가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서울에 이런 신기한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인 역시 예약을 했고, 우이령길을 잘 다녀왔다. 요 얼마 전에 등산을 했을 때와는 달리 이 날은 날씨가 아주 맑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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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은 아무래도 도시의 변두리 외곽이며 시내버스나 지하철의 종점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검단산 인근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연장 공사가 한창이더니, 여기는 우이 경전철의 건설 공사가 아직 한창이었다.
우이 경전철은 차량기지조차 몽땅 지하에 만들어져서 땅 위로 보이는 게 하나도 없을 거라고 한다. 무슨 평양 지하철처럼 말이다.;;

'우이령길' 쪽으로 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우이 유원지' 구간이 1km가 넘게 계속됐다. 온통 식당, 카페, 산장, 팬션 등등.. '송성훈 큰머리'체를 써서 만들어진 간판이 인상적이다.
용인의 '고기리 유원지' 같은 곳이 서울에도 있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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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시설들이 없어진 뒤에도 몇백 m를 더 오르자 드디어 우이동 탐방 지원소가 나타났다. 자동차 도로로 치면 이제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나타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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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지원소를 지나자 군부대..가 아니라 전투경찰 숙소 건물이 나타났고, 그 뒤부터는 자연을 즐기면서 산책 탐방을 할 일만 남았다. 이런 식의 길이 계속 쭉 이어졌다.
사진은 내가 눈으로 직접 본 풍경을 완벽하게 재현을 못 한 것 같다. 색감이나 화각 같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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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명 '대전차 방호벽'이다.
전쟁이 나서 적군이 특별히 탱크를 몰고 쳐들어와서 이 길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면, 저 위의 크고 무거운 시커먼 콘크리트 덩어리를 아래로 떨어뜨려서 진로를 차단한다. 물론 적군도 공병을 투입해서 장애물을 제거하겠지만, 그래도 그 작업 시간 동안만치 진격을 지연시키고 아군에게 시간을 벌게 해 준다.

교량이나 터널이라면 아예 끊어 버리거나 메우는 식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만 그냥 땅 위에 놓인 멀쩡한 길이라면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사실, 파주나 철원 같은 전방 도시의 주요 도로 길목엔 지금도 저런 대전차 방호벽이 놓인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의정부나 고양처럼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위성도시에도 방호벽이 일부 있으나, 거기가 본격 수도권에 들어가고 아파트가 잔뜩 지어지고 인구가 늘면서..;; 도시 미관에 안 좋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철거되기도 했다.

전차의 주행을 차단한다는 건 우이령길이 여느 등산로와는 달리 차량이 통과 가능한 길이라는 뜻이다.
우이령길은 처음부터 그렇게 넓게 닦인 길은 아니었다. 미군 공병대가 투입되어 1965년에 길을 확장한 덕분에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춘 듯하다. 이 블로그에서는 사진 첨부를 생략하지만, 대전차 방호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를 기리는 개통 기념비가 있다. (미군 제36 공병단 소속의 109/102공병대대)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못 가 김 신조 사건이 터지면서 우이령길은 사실상 군 전용 도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대전차 방호벽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비록 김 신조 일행은 정규군이 아니라 비밀 공작원이니 100% 도보만으로 침투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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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우이령의 정상에 도달했다. 사실, 유원지 구간을 지나면서 우이령을 이미 많이 오른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이동 탐방 지원소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정상에서 양주 교현리 탐방 지원소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짧다. 정상에는 넓은 공터와 벤치,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우이령길 탐방은 비록 고개를 오르는 것이지만 역시 어지간한 등산에 비해서야 훨씬 널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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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상을 지나서 교현리 방면으로 완만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저 멀리 오봉산 봉우리가 보였다. 주변 경치가 대단히 아름다웠다. 지도를 보니 저 오봉산을 오르는 등산로도 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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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길에는 가끔씩 이런 계곡도 있어서 주변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편, 이쯤에서 웬 '석굴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절과 함께 군부대 유격장이 있었다. 석굴암은 경주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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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양주 쪽이 가까워지자 길가엔 도랑 대신 울타리가 보이고, 전신주까지 나타났다. 서울 쪽이 더 잘 꾸며져 있고 경치가 더 좋긴 했다.

그리고 드디어 교현리 탐방 지원소에 도달함으로써 우이령길 횡단이 끝났다. 한 탐방 지원소에서 다른쪽 탐방 지원소까지 4km 남짓한 거리를 가는 데 약 1시간 10분 남짓밖에 안 걸렸다.
서울 우이동 방면 입구는 유원지여서 식당과 산장이 즐비한 반면, 양주 교현리 방면 입구엔 군부대 사격장이 자리잡고 있어서 분위기는 이거 뭐 서로 극과 극이 따로 없었다.
여기를 평일에 갔는데, 사격 훈련 중이었는지 사실은 고개 정상에 있을 때부터 총 소리로 추정되는 탕탕~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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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담벼락에는 이런 뭔가 안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남한산성을 구경하러 청량산을 올랐을 때 지나쳤던 그쪽 군부대에도 담벼락에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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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를 지나서 한참을 걷자 드디어 큰길(북한산로)이 나오고, 시내버스 정류장에도 도달했다. 길 건너편에는 마을 회관과 함께 이런 표지석이 있었다.
이 사진에서 뒷배경으로 깔린 저 언덕은 노고산의 끝자락이다. 노고산도 김 신조 일행이 서울로 침투하기 위해 넘은 산 중 하나이다.

여기 근처에는 온통 군부대, 특히 종로· 서대문 지역의 예비군 훈련장들이 밀집해 있다. 본인은 대학원 재학 중엔 이쪽에서 예비군 훈련을 몇 차례 받은 적이 있어서 여기 지리가 친숙했다. 단, 그때는 다 차를 가져갔기 때문에 여기서 버스를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한산로에서 뚜벅이들의 이동을 책임지는 시내버스는 704와 34 딱 두 종류이다. 전자는 서울 소속이고 후자는 경기도 소속이다.
본인은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학교에 들렀다. 저 버스들이 학교로 바로 가는 건 아니니, 구파발에서 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면 됐다. 버스 차창 밖으로 북한산로 일대, 구파발· 진관동, 그리고 학교의 서쪽에 있는 서대문구청, 자연사 박물관, 안산 옆의 백련산 언덕 등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서울 북서부로는 갈 일이 별로 없었는데 거기 관광에는 이런 묘미가 있다.

그나저나 은평구는 한자가 恩平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여기서 자기 구를 홍보할 때 '은혜와 평화의 땅'이라고 수식어를 붙였고, 지금도 은평구청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는 구 노래에는 "은혜와 평화로세 은평이라네"라는 가사가 있다.
그런데, 저 이름이 처음에 그런 의도로 작명된 건 아니었겠지만, 이건 여느 종교에서는 찾기 힘든 굉장히 기독교적인 용어이다. 그 당시에 구청장이 아주 독실한 신자였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은혜와 평강(평화)'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얻을 수 있으며, 이건 바울 서신서들 첫머리에 마르고 닳도록 나오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난 은평구라 하면 지하철 3/6호선, 북한산 이런 것만 떠올랐는데 앞으로 은평구를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29 08:33 2016/06/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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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얘기, 프로그래밍 얘기, 철도 얘기로 가득하던 내 블로그가 어째 여행 블로그처럼 바뀌어 간다. 그렇다고 무슨 외국처럼 거창한 델 가는 것도 아닌데..;;

(1) 그린벨트 안도 아니고, (2) 청계천처럼 하천 근처가 아니고, 경주나 서울 올림픽 공원 일대처럼 (3) 유물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닌 대도시 도심 한복판에 갑자기 녹지 공원이 있으면, 본인은 어떻게 해서 여기는 개발되지 않고 공원이 들어설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느낀다.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건물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가 빠져나갔는데, 그 부지가 또 개발되지 않고 공원으로 보존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전에는 서대전네거리 역 교차로의 한 귀퉁이에 서대전 시민 공원이 있다. 거기는 놀랍게도 부지의 절반 이상이 사유지라고 한다. 물론 1970년대 더 옛날에는 아예 군부대가 있었는데 이전하면서 사유지가 된 것임. 지주 되시는 분이 그래도 건물 한두 채쯤은 너끈히 지어서 임대료만으로 먹고 살 재산권을 많이 희생한 덕분에 공원이 유지되어 온 것일 텐데.. (게다가 위치도 최강 역세권이다!) 2010년대 중반이 돼서야 국가에서 공원 부지를 정식으로 매입하려는 중이라고 들었다.

거기 말고 서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원은 여의도 공원이 아닐까 싶다. 얘는 처음엔 황무지였다가 일제 강점기 때 여의도 공항 활주로로 쓰였고, 나중에 김포와 서울 공항이 생긴 뒤엔 여의도 광장을 거쳐 공원으로 탈바꿈했음을 모르는 분이 별로 없을 것이다.
도심은 아니지만 월드컵 경기장 인근의 하늘 공원은 원래 난지도였다가 지금처럼 환골탈태한 것이다.

서울 보라매 공원은 옛날에 공군 사관학교가 있던 곳이었다. 1985년이니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이전한 셈이며 그나마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역명 덕분에 '보라매'라는 이름이 그럭저럭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같은 7호선이 지나는 광진구의 서울 어린이 대공원은 원래 처음엔 골프장이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매입하여 박통 시절에 유원지를 만든 것이다.
인서울 영역에 골프장이 있었다는 게 실감이 안 간다. 더구나 골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사치스러운 스포츠였을 시절에 말이다.

한강 인근의 선유도 공원은 원래 수돗물 정수장이 있던 곳이 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수풀과 시멘트 구조물이 적절히 섞여 있다 보니 본인은 이 공원이 현실에서 툼 레이더 맵 실사판과 가장 닮은 장소라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얘 역시 서울 지하철 9호선에 동일 이름의 지하철역이 생긴 것 덕을 봤다.

자,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2010년대에는 전철역 덕분에 이름이 알려진 공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서울숲(분당선)이다. 원래 서울숲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2호선 '뚝섬'이었으나(7호선 '뚝섬유원지'가 아님) 더 가까운 곳에 역이 추가로 생겼다.
먼 옛날엔 서울숲 부지에 골프장과 경마장이 있었다고 한다. '동대문 운동장'만큼이나 아련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골프장은 모르겠다만 경마장은 역시 30년 전쯤에 이미 과천으로 이전했다.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하고 강변북로와 동부 간선 도로가 만나며 성수대교 북단이 근처에 있는 이 금싸라기 땅에 처음에는 물론 아파트를 지으려는 계획도 나왔고 심지어 야구 돔구장을 지으려는 계획도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간에 IMF도 거치고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여기는 공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응봉산에 올라서 서울숲을 내려다보고 나니 여기 가고 싶은 생각이 더 들었다. 그래서 등산까지 갈 수는 없을 정도로 바쁠 때는 산책으로 운동을 대신하려고 서울숲을 한번 찾아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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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안은 나무들이 우거진 곳, 넓은 공터, 연못이 모두 갖춰져 있고 경치가 괜찮았다.
참고로 서울숲 일대의 부지는 중앙에 있는 성수대교 북단 교차로의 좌우 상하 2*2 격자로 나뉘는 형태이다.
(A B)
(C D)

서울숲의 입구가 있으며, 가장 넓고 지하철역과 가장 가깝기도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서울숲 공원 역할을 하는 구역은 B이다. 그리고 대각선 건너편에 있는 C는 생태 공원이다. 꽃사슴을 구경할 수 있다.
D에는 곤충 식물원과 수도 박물관이 있지만, 한편으로 대부분의 부지가 상하수도 관련 시설이어서 보안 봉인이 돼 있기도 하다. 차도를 건너면 성수대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탑으로도 갈 수 있다고 하는데 난 이쪽은 제대로 못 가 봤다.
끝으로 A는 서울숲이 아니며 삼표 산업이라는 기업의 공장이다. 당인리 발전소와 더불어 강변북로를 달리면서 볼 수 있는 공장 시설 두 곳 중 하나이다. 아마 이 공장은 언젠가 외곽으로 이전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B~D는 자동차 도로 밑으로 길이 이어져 서로 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너가기 위해서 차도를 횡단한다거나 하지는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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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공원(C 구역) 쪽으로 가 봤다. 사슴을 방목하는 영역은 다 울타리와 철망이 둘러져 있어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게 돼 있었다. 산책 가능한 영역은 얼마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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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원래 계획은 D 구역도 한 바퀴 돌고 다시 B 쪽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생태 공원에는 강변북로를 횡단하여 한강 공원으로 가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둘이 서로 이렇게 연결된 것이다. 그것도 자전거도 다닐 수 있게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 형태로 말이다.
이에 본인은 계획을 변경하여 그리로 나갔다. 매주 1회 이상 이 다리 아래를 자동차로 지나 왔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이 다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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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한강이다. 저 멀리 동호대교와 옥수 역이 보인다. 본인은 옥수가 아니라 중랑천 + 응봉산 방면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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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과 그 아래를 철길을 달리는 ITX-청춘 열차이다. 그 뒤 귀가하는 길은 응봉산을 오른 뒤에 돌아가는 길과 같다. 저기서 서울숲으로 바로 가는 길이 이렇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서울에서 의외로 가까운 곳에 이런 숲 컨셉의 공원과 강변이 있으니 이 정도면 답사할 가치가 있고 블로그에 이렇게 사진까지 올릴 가치가 있다.

여담을 보태자면, 강남에는 양재 시민의 숲이라고 숲을 표방하는 공원이 있다. 이 역시 2011년에 개통한 신분당선의 역명에도 들어갔으니 2012년에 개통한 분당선 선릉 이북 구간과 시기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다. 본인 역시 예전에 거길 방문해서 각종 위령비 사진을 찍었고 근처의 윤 봉길 의사 기념관도 들렀었다.
다만 이 공원의 경우 그냥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여 조성되었으며, 더 과거에 부지에 무슨 사연이 있었다거나 하지는 않아 보인다.

끝으로, 분당선 서울숲 역은 광역전철 분당선이 압구정로데오 이후로 한강 이북으로 진입한 뒤 만나는 첫 역이다. 강은 서울 지하철 5호선처럼 하저터널로 건너고 말이다. 서울숲 바로 다음은 종점인 왕십리이다. 뚝섬 역과는 500미터 남짓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분당선 서울숲-왕십리와 야탑-모란 사이에는 절연 구간이 있다. 직-교류 절연이 아니라 같은 교류-교류 절연이다. 그래서 남영-서울역만치 유명하고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일부 전동차의 일부 칸에서는 여기를 지날 때 객실 형광등이 아주 잠깐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걸 볼 수 있다. 서울숲 하니까 역시 철도와 관련하여 이런 게 떠올랐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23 19:29 2016/06/2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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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불곡산 (성남)

경기도 성남과 광주는 산들로 가로막혀 있어서 전통적으로 생활권이 서로 단절돼 있다. 성남 분당에서 어디서든 동쪽으로 끝까지 진행해 보면 결국 인적이 뜸해지고 산이 나오는데, 그 산을 넘으면 행정구역이 바뀐다. 본인은 바로 거기 일대를 탐험하고 싶어진 관계로, 하루 날 잡아서 분당의 동남쪽에 있는 불곡산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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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산 등산 진입로는 분당동 주민센터, 정자동 이마트, 분당 서울대 병원 근처 등 여러 곳이 있다. 본인은 그 중 이마트를 선택해서 정상을 향해 북쪽으로 산을 올랐다. 위의 사진은 등산 진입로 근처의 풍경이다. 지난번에 검단산을 오를 때처럼 날씨는 흐린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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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산은 전반적으로 등산로가 넓고 잘 닦여 있었다. 가끔 벤치와 운동 기구가 놓인 공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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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줄을 잡고 암반을 타고 오르는 험한(?) 구간이 딱~ 한 군데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우회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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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번 암반을 오르자 산등성이에 진입하고 이정표가 나타났다. 정상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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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역시 운동 기구와 함께 책꽂이가 비치된 정자가 있었다. 단, 이 산은 내가 지나간 곳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망대 같은 건 전혀 없어서 역시 산 아래 경치는 감상할 수 없었다.
전망대가 없고 정상 표지석도 꽤 찾기 힘든 곳에 짱박혀 있어서 난 처음엔 여기가 정상이 아닌 줄 알았다.
어쨌든 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땅밟기를 성공했으니 1차 목표는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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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는 곧장 광주 방면으로 하산할 수도 있고, 산등성이를 따라 분당동이나 태재고개 등 북쪽으로 산행을 계속할 수도 있었다.
북쪽에 정상보다는 낮지만 '형제봉'이라는 다른 봉우리가 있다고 해서 본인은 그쪽으로 향했다. 등산로는 역시나 전반적으로 폭도 크고 돌 밟을 일이 없을 정도로 아주 잘 닦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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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은 불곡산 정상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여기도 간단한 정자와 운동 시설이 있었지만 역시나 전망대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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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까지 들른 뒤, 본인은 분당동이 아니라 반대편 광주 방면으로 하산하기 위해서 태재고개 쪽으로 계속 산을 탔다. 성남을 넘어 광주로 진입할 때쯤 되자 언제부턴가 등산로가 좁아지고 산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태재고개를 몇백 m 앞두고 수풀 속에서 위와 같은 이정표가 나타났다. 여기서 지체없이 광주 뒷골 방면을 선택했다. 태재고개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광주의 산기슭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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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드디어 이런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빌라들이 늘어서 있는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마을 어딘가에 착륙했다. 가장 가까운 길 모퉁이에는 '상태길68번길'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큰길을 향해 몇백 m 정도 걸어가니 마을 입구가 있고, 근처에 버스 정류장도 보였다. 버스를 타니 말로만 듣던 지방도 57호선에 차들이 바글바글 몰려 있었다.

이곳을 떠날 때는 시내버스 17번을 탔다. 덕분에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성 요한 성당, 율동 공원, 분당동 주민센터를 비롯해 성남대로와 분당선 일대만 돌아다닐 때는 접할 수 없던 분당 시가지 내륙 쪽의 모습을 차창 밖으로나마 잘 구경할 수 있었다. 버스가 워낙 꼬불꼬불 돌아서 다니니 투어용으로는 좋았다. =_=;;

사실, 북쪽의 분당동 주민센터 쪽에서 입산해서 형제봉부터 들른 뒤 불곡산 정상까지 남쪽으로 내려가는 경로도 생각할 수 있었다. 동선의 관점에서는 그게 더 낫다. 하지만, 불곡산 정상에서 광주 방면으로 곧바로 하산하는 경우 귀가하는 연계 교통편이 문제가 됐다.
상태마을보다 더 외진 농촌 마을에 도달하게 되며, 이마저도 탐험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다. 허나 여기는 대중교통이 아예 없는지라 버스를 타려면 어차피 상태마을까지 북쪽으로 몇백m~수 km를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하산하자마자 곧장 버스를 탈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게 북남이 아니라 남북으로 코스를 짰다. 기왕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려면 산길로 이동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이다.
단순히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를 뛰거나 동네 주변을 조깅하는 것에 비해 등산은 여행과 탐험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집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외진 곳으로 나간다는 특성상, 중간에 취소를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가기 전에 시간과 체력 분배, 교통편 같은 계획을 잘 짜야 된다. 이것도 많이 해 보면 계획 짜는 것 자체에 재미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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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1 08:31 2016/06/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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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검단산 (하남)

이번에는 서울 동부의 하남에 있는 검단산을 올랐다. 성남에 남한산성과 인접한 동명이산 '검단산'도 있지만, 하남 검단산이 등산 대상으로서 훨씬 더 유명하다.
덕분에 청량산 이후로 거의 한 달 만에 하남시를 다시 방문했다. 이 산 입구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와 가깝고 하남 내부에서도 여러 시내버스들의 종점이기도 하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여기 부근까지 연장 공사 중이었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라 하면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건 거의 10년 가까이 전에 학생들이 <블랙박스>라는 현대 문명 풍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무슨 애니메이션 공모전에서 입상했다는 것이다. 안산에 있는 디지털미디어 고등학교와는 커리큘럼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등산을 가느라 말로만 듣던 유명한 학교의 근처를 덤으로 지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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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고등학교 근처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는 유 길준 묘지를 경유하는 경로와, 현충탑을 거치는 경로로 두 갈래가 있었다. 본인은 전자를 선택했다. 전자가 약간 더 길고 완만하고, 진입로도 더 큼직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위의 사진과 같은 큼직한 길이 유 길준 묘지가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단, 산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바닥은 점점 돌밭으로 변해서 오르기가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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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길준 묘를 지난 뒤부터 등산로는 더 험하고 좁아졌다.
방금 전에 본 이정표에 따르면 여기가 해발 285m 정도의 고도였다. 이정표는 400미터대에서 한 번 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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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은 지금까지 오르던 산보다는 다소 높은 산이었다(해발 657m). 걷고 또 걸으면서 산을 올랐다. 드디어 뭔가 전망대처럼 생긴 장소가 나왔다.
이 산은 날씨가 좋을 때 오르면 서울의 아차산처럼 꼭대기에서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특히 팔당댐을 볼 수 있다. 경치 하나만 기대하고 검단산을 선택했는데 이 날은 하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아래는 그저 뿌옇기만 할 뿐, 중앙 고속도로도, 한강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ㅠㅠ 순수하게 등산 그 자체와, 하산 장소에만 의의를 둬야 했다.

참고로 정상은 사진의 전방에 뿌옇게 보이는 저 봉우리의 꼭대기였다. 아직 저만치 더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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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만난 이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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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상 직전에 헬리패드가 나타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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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거의 2시간 만에 도달했다. 여기가 딱히 구름 속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산 아래가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보일 수가 있나 모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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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팔당댐 인근의 작은 마을인 '아랫배알미' 방면으로 했다. 주변 풍경은 전반적으로 이런 식이었다. 해가 안 나고 하늘은 우유처럼 완벽한 흰색이었다.
아랫배알미 마을에서 하남 시내로 가는 마을 버스가 하나 있는데(2-1), 수요가 수요이다 보니 차는 한두 시간에 한 대꼴이었다. 산중턱엔 이 버스의 시각표가 어느 나무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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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른 산도 그렇고 산기슭에 이렇게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등산로가 종종 보였다.

보통 서울 외곽의 산속이나 산기슭에는 군부대가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팔당댐 근처의 검단산 기슭에 있는 것은 군사 시설은 아니었다. 그 대신 군사 시설에 준하는 다른 보안 시설이 있었으니 바로 상수도 취수장이었다. 평범한 집이나 공장처럼 생긴 건물이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고 '사진 촬영 금지' 경고문까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강 일대는 단순히 위험해서 "수영 금지"가 아니라 그냥 접근 금지, 경작 금지 등 여러 제약이 가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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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한강 이북을 따라 달리는 도로가 강변북로이고, 이남은 올림픽대로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여기는 한강 이북으로 국도 6호선이 지나고, 이남인 저기는 국도 45호선이다.
강 건너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산은 예빈산 내지 예봉산이다. 나중에 날씨가 맑을 때 저기를 올라서 팔당댐과 한강을 다시 구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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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팔당댐 사진은 아쉽지만 이거 하나로 때웠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저기를 건너가서 도보나 자전거 여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난 그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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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배알미동.
여기서 마을 버스를 탄 뒤 시내에서 서울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 서울 지하철을 순서대로 갈아타며 귀가했다.
단순히 도시의 팽창을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혹은 '공항이나 청와대, 군부대 근처여서' 같은 이유도 아니라 상수원 보호를 위한 그린벨트라니, 여기는 강이 송두리째 말라 버리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그린벨트가 풀릴 일은 절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다른 장소를 구경했다.

그리고 한강도 상류로 올라가서 이렇게 폭이 좁아지는 걸 보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서울에서는 한강이 지하철 1정거장 거리 이상의 어마어마한 폭을 자랑하는 하류이니 말이다. 물론 그 물은 왕창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그대로 마실 수 없으며 사실 수영조차도 권장되지 않는다. 서울의 덩치가 커지면서 취수 시설은 역사적으로 점점 더 상류 쪽으로 옮겨져 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18 08:33 2016/06/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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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응봉산

산이라 하면 아무리 못해도 해발 200~300미터 이상은 돼야 등산의 대상이 되고 동네 뒷산 대접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울 시내엔 100미터 남짓에 불과해 그냥 어지간한 고층 건물 높이밖에 안 되는 언덕도 있다. 낮을 뿐만 아니라 딱히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지 않아서 능선 산책로도 별로 없다. 강서구에 있는 우장산, 동부에 있는 천장산, 봉화산 같은 산이 그 예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상일동과 마천 방면으로 찢어지는 지점에는 일자산이라는 낮은 산이 있어서 전방을 가로막고 있다. 일산선의 정발산 역에는 근처에 호수 공원과 더불어 말 그대로 정발산이 있는데, 얘 역시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감이 있는 그냥 언덕(hill)이다.

이번에 본인이 답사하여 소개하고자 하는 산은 응봉산이다. 얘 역시 '등산'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좀 낮은 산이다. 그래도 산까지 가는 데 자동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청계천과 중랑천 공원을 거쳐서 자전거만으로 이동해서 추가적인 운동을 했다.
응봉 역의 출구로 나가니 '응봉산 팔각정'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파른 주택가 골목길을 한참을 올라가자 드디어 흙으로 된 산길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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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길로 진입하기 전에도 잠시 이런 공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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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길은 대략 이러했다. 나름 꽃도 예쁘게 피어서 풍경이 아니라 식물들 사진을 찍는 사람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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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펼쳐진 하천은 중랑천이다. 강 건너편을 좌에서 우로 훑으면 웬 공장이 있고, 그 다음에 서울숲과 성수대교(저 멀리 한강을 건너는 빨간 다리)가 순서대로 보인다. 그렇잖아도 여기는 중랑천이 한강과 합류하고, 동시에 동부 간선 도로가 강변북로와 합류하기 직전 지점이다.

중랑천을 횡단하여 내가 있는 쪽으로 가까이 오는 저 다리는 응봉교가 아니라 용비교이다.
생각 같아서는 여기서 별로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서울숲까지도 자전거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저 다리는 자동차로만 건널 수 있으니 무효다. 저기는 나중에 따로 가 보게 될 듯.
응봉과 서울숲 모두 전철로는 왕십리 역에서 한 정거장 거리이다. (각각 중앙선과 분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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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을 오르면 이렇게 중앙선(수도권 전철 노선명)/경원선(원래의 노선명) 선로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응봉산의 가장 매력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응봉산 전체와 그 아래를 지나는 중앙선 전동차를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마치 일본에서 후지산을 배경으로 달리는 신칸센 사진을 찍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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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달하면 넓은 공터에 이런 전망대와 팔각정이 있다. 낮고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으니, 여름엔 여기에 돗자리 깔고 누워서 잠도 자고 싶을 것 같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과 하천, 언덕에다 철길까지 있는 곳은 그야말로 천혜의 요지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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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도 응봉산 만만찮은 고지대 같은데, 실제로 그러하다. 상왕십리-신금호-행당 사이는 '대현산'이라고 응봉산과 비슷한 높이의 산이 있다. 하지만 저기는 꼭대기까지 온통 건물들이 지어져 있다.
이런 식으로 궁극적으로는 서울 시내 지도를 뒤져서 해발 100미터대의 고지대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 찾아보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특히 대학교 위주로 말이다. 서울 시립대 근처에는 배봉산이 있고, 고려대 근처에는 개운산, 경희대 근처에는 천장산이 있다.

서울 현충원의 터가 있는 산은 '서달산'이라고 불리는 야산이다. 한강 근처에 나름 굉장히 입지가 좋은 곳인데 이 승만 시절부터 여기는 국군 묘지로 조성되었다.
끝으로, 일반인은 접근할 수가 없겠지만 용산의 주한 미군 부지도 일명 '둔지산'이라고 불리는 나지막한 언덕 고지대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12 19:33 2016/06/1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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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고속도로의 서울 톨게이트 근처 구간은 지리적으로 흥미로운 게 많다. 일단 고속도로의 선형부터가 꽤 길게 곧은 직선인 데다, 그냥 직선이 아니라 거의 동일 경도를 지나는 수직이다. 그리고 지방도 23호선과 분당-수서 고속화도로가 양 옆으로 나란히 지난다.

여기는 행정구역상 성남시 궁내동이다. 고속도로의 동쪽은 잘 알다시피 분당 신도시이다. 그런데 서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분당이야 전철도 지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부촌 겸 상업 업무 지역이지만 지방도 23호선의 곁에 있는 저 마을은 그린벨트이기라도 한지 뭔가 딴 세상 같았다. 아기자기한 빌라들이 놓여 있고, 건물들 뒤엔 바로 언덕 내지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데.. 본인에게는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여기를 탐험할 의향으로 드디어 태봉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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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내동 경로당에 도착했다. 거기 근처는 저렇게 아주 한적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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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있는 오르막길이 등산로의 시작이었다. 이것만 쭉 오르는 것도 생각보다 힘들었다. 무슨 급수탑 같은 상수도 시설을 지난 뒤부터 길이 비포장으로 바뀌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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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경부 고속도로와 네이버 본사가 보인다. 이 산에서 그나마 전망이 가장 좋은 지점이 여기였다. 등산로는 마을에서 바로 보이는 낮은 언덕이 아니라,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더 높은 산을 타는 형태였다. 그러니 아래의 마을이나 도로는 다른 언덕과 나무들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궁내동 뒷산은 무슨 북한산이나 청계산만치 막 높고 전망 좋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산은 아니다. 그냥 여기 주민들이 운동삼아 찾는 수준이었다. 가끔씩 등장하는 이정표 말고는 등산로나 쉼터 같은 게 잘 마련돼 있지도 않았다. 여러 산들을 다녀 보니 산에도 '급'이라는 게 있고 등급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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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곳도 산은 산인지라, 종아리가 배김이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가파른 비탈길을 꾸준히 오르자 가장 높은 지점인 정상이 금세 나왔다.
여느 산의 정상처럼 바위나 전망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부터는 능선을 타면서 꾸준히 산책을 계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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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등산로가 아니라 그냥 산책로이다. 길은 계속 이런 형태로 이어졌다. 상록수와 낙엽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와서 한 컷 사진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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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을 오른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니 흰 바탕에 울릉도체의 저 평면 표지판만 있었는데, 저렇게 검은 배경의 고딕체 + 입체 표지판은 나중에 또 세워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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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더 걷자 산불 감시 초소가 나왔다.
여기서 산책을 계속해서 쇳골마을 쪽으로 갈 수도 있으나, 별안간 방향을 틀어서 궁내동 쪽으로 돌아가는 샛길도 있어서 본인은 그 길로 하산했다.
남쪽 끝자락까지 가면 보바스 기념 병원이라든가 대장동· 미금동 쪽으로 도달 가능한 듯했는데 그건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내 구닥다리 카메라는 명도차 조절이 안 돼서.. 숲이 좀 나오게 찍으려면 푸른 하늘을 포기하고 하늘을 허옇게 만들어야 된다..;;
그리고 산불 감시 초소는 충분히 크고 공중에 노출되지 않았나 싶은데.. 나중에 인터넷 지도에서 항공 사진을 토대로 위치를 찾으려 해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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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침엽수 위주의 울창한 숲길이 등장한지라 이런 비탈길을 쭈욱 내려갔다. 이 사진은 뒤을 돌아보면서 오르막을 찍은 것이다. 그러자 역시 중앙 하이츠빌 빌라 "2차"의 뒤에 있는 계단형 등산로를 통해 하산을 완료했다.
여기가 어딘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고개를 하나 넘어서 출발지와는 한 단계 떨어진 다른 마을에 도착했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여기는 궁내동 경로당 내지 하이츠빌 "1차"로부터 몇백 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아 있었다.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본인의 등산 원칙은 "하산할 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등산을 갈 때는 차를 가져가지 않는다. 하산 후에 차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난감한 짓이니까..;;
하지만 이번에 궁내동을 방문할 때는 예외적으로 차를 가져갔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여러 이유로 인해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 됐다.

  • 주차: 반쯤 시골인 동네인지라 주차 여건이 나쁘지 않았다. 골목길은 다들 주차 가능한 흰색 실선 위주여서 적당히 아무 집 담벼락에 차를 댈 수 있었다. 길가에 무슨 경고문이 붙어 있는 건 '주차금지'가 아니라 죄다 '상수도 매설 지역. 무단 경작 금지'였다.
  • 방문 동선: 이곳은 본인의 집에서는 멀지만, 판교에 소재한 본인의 직장에서는 5km 남짓으로 무척 가깝다. 그래서 회사에서 야근· 철야 근무가 있던 날에 차를 가져가서는, 퇴근과 동시에 여기로 바로 이동했다. 밤엔 차에서 한숨 잔 뒤 이른 아침에 산을 올랐다. 이렇게 하니 동선이 괜찮았다.
  • 등산 동선: 태봉산은 비슷한 높이의 다른 산봉우리들과 연결되어서 산맥이 일종의 C자 모양으로 형성돼 있다. 한참을 뺑 돈 뒤에 궁내동 방면으로 하산하자, 결국은 산에서는 계속 새로운 길만 따라 갔지만 결과적으로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에 또 여기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다음엔 내가 내려왔던 그 입구에서 산을 다시 올라가서 남쪽 끝까지 더 진행하는 걸 생각할 수 있겠다. 이쪽 동네와 산의 분위기는 이렇다는 걸 알 수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10 08:36 2016/06/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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