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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무더위로부터 자극과 동기를 받아 본인은 이번 여름에는 바다에도 다녀 왔다. 지난 봄엔 등산을 많이 갔는데 여름엔 드디어 바다도 간 것이다. 물론 등산은 한 10월쯤 돼서 덜 더위지면 운동 차원에서 다시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가고 싶은 산이 아직 몇 군데 더 남아 있다.

단순히 산이나 계곡이나 강이 아니라 꼭 바다 구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 바쁜 와중에도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다녀온 소감을 먼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제아무리 가정과 사무실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들어온다 해도, 피서를 직접 가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된다는 게 느껴졌다. 안 갔다왔으면 후회했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잘 알다시피 해수욕장의 퀄리티는 동해가 서해보다 더 낫다. 서해는 얕고 물이 더 탁하다. 서울 사람들이 가까운 인천 앞바다를 놔 두고 괜히 강원도나 부산까지 가는 게 아니다. 부산은 대도시답게 빽빽한 고층 건물이 해수욕장 모래사장의 바로 앞까지 닿아 있고 심지어 해운대 해수욕장은 지하철로도 접근 가능하다. 그리고 거긴 잘 알다시피 피서철엔 사람들로 완전 터져나간다..;; 이런 풍경을 정작 수도권인 인천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학 동안 본인은 학기 중일 때보다 회사에 더 자주 출근하고, 주일마다 교회, 그리고 방학 기간 동안 성경 특강을 부탁받은 것도 있어서 행동 반경에 제약이 심했다. 그래서 동해보다 더 가까운 서해부터 1박 2일 스케줄로 먼저 가게 됐다. 동해는 멀기도 하고, 비단 바다 구경뿐만 아니라 각종 안보 관광 코스를 엮어서 최하 2박 이상의 스케줄로 다시 갈 예정이다.

일단 서해의 어느 해수욕장을 갈지 많이 고민했다. 사실, 공항이 걸쳐 있는 용유도에도 끝자락에 해수욕장과 유원지가 있긴 한데 그건 제외하고, 또 전라도 이남으로까지 너무 멀리 가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크고 유명해서 혼잡할 걸로 예상되는 해수욕장도(대천 같은..) 제외하고, 해변에 상업 시설들이 너무 다닥다닥 늘어서 있지 않고, 적당히 외지고 잠시 속세를 떠났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곳을 골랐다.

그래서 태안군의 북쪽에 있는 구례포/학암포 해수욕장이 선택됐다. 참고로 최후까지 경합했던 후보는 거기 남쪽에 있는 (1) 안면도에 소재한 해수욕장들, 그리고 (2) 장항선+서천화력선을 구경할 수 있는 춘장대 쪽이었다. 비록 철도 구경은 못 했지만 그래도 구례포/학암포 주변에도 마치 춘장대 해수욕장처럼 근처에 화력 발전소가 있긴 했다. 일말의 공통점이다.

서해를 갈 예정이니 응당 서해안 고속도로를 탔다.
평소에 자주 구경하는 경부 고속도로는 차선수가 정말 많고 넓다. 그리고 온갖 광역· 고속버스들이 넘쳐나며 버스 전용 차선까지 있다. 그 반면, 서해안 고속도로는 경부보다는 아담하며 수도권 구간에서도 버스를 거의 볼 수 없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서울 서남부는 이미 경부선 전철이 발달해 있고, 또 경부와는 달리 서울 진입로(서부간선)가 너무 비좁아서 병목이 심해서 경부 같은 교통망을 구축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지 싶다.

태안은 서산을 경유해서 국도를 타고 산 같은 비탈길도 한참을 오른 뒤에야 나타났다. 일요일 예배를 마친 뒤 저녁이 돼서야 현장에 도착했는데, 오토캠핑장 주변은 차 끌고 텐트 친 피서객들로 가득했다. 나야 홀몸이고 자동차가 곧 이동식 텐트이니 따로 텐트를 치지 않았다. 에어컨 냉기가 남아 있는 동안은 차 안에서 좀 쉬다가, 냉기가 빠졌을 때쯤 이제 주변 지형과 시설 정찰을 시작했다. 그래도 바닷가답게 바깥도 제법 시원한지라, 냉기가 빠진 뒤에도 차에서 자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심야와 이른 아침, 해수욕장이 정식 개장하지 않은 시간대이긴 하지만 모래밭에 돗자리 깔고 바닷바람 맞으며 책 읽고 코딩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꿈 같은 피서가 시작됐다. 먼 길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바닷물에다가는 아직은 발만 담갔다. 진짜 본게임은 시작도 안 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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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주변은 몇십 m 떨어진 물체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무가 짙게 껴 있었다. 그리고 썰물 상태여서 동해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갯벌이 쫘악 펼쳐져 있었다. 바닷물은 한 200m쯤 뒤로 싹 밀려났으며 이 때문에 부표(사진엔 안 나옴)까지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지금은 저렇게 돗자리 깔고 노트북 PC까지 올려 놓은 채로 사진을 찍었지만, 밀물 때는 여기 일대는 다 물에 잠겼다. 아무튼, 이로써 등산 코딩에 이어 갯벌 코딩까지 달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가 뜨고 더워졌으며, 해무가 차츰 걷히고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개장 시각이 지나자 텅 비다시피하던 해변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렇다고 인산인해 수준인 건 물론 아니고, 혼자 쾌적하게 물 속을 돌아다니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본인 역시 이 무렵부터 하반신뿐만 아니라 상반신과 얼굴까지 몽땅 바닷물에 담갔다. 기온과 수온이 모두 해수욕에 안성맞춤이었다.

본인은 비록 수영을 할 줄은 모르지만,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근 채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바다는 계곡이나 강과는 달리 계속 파도가 치니 물이 뭔가 역동적이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이 많은 물을 밀어내는 엄청난 힘이 어디서 유래된 걸까? 지구의 자전? 달의 인력? 온도 차이? 이렇게 비열이 엄청난 물질이 액체라는 유체라는 게 지질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물의 저항과 공기 저항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별별 잡생각을 하며 물놀이를 했다.

서해는 정말 얕고 바닥의 경사가 완만해서 모래사장으로부터 한참을 멀리 떨어져도 여전히 발이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그럼 여기는 바닥의 경사가 몇 퍼밀인 걸까? 철도 차량의 경사 한계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까?" 뭐 이런 생각도 덩달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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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밀물과 썰물의 차이라는 것을 이렇게 직접 보니 몹시 신기했다. 정오 무렵이 되니까 물이 제일 많이 들어왔으며, 그 넓던 갯벌이 감쪽같이 몽땅 바닷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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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안개가 곁들어져서 여기도 꽤 괜찮은 풍경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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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오른쪽에는 요렇게 나무로 덮인 언덕도 있는데, 이 산길을 따라 몇백 m쯤 걸으면 이웃의 학암포 해수욕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물놀이에다 주변 지역 산책도 몇 시간 하니, 생각보다 팔다리가 쑤시고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 그래서 본인은 저 길을 끝까지 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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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점심 시간이 어중간하게 지난 오후 2~3시경, 드디어 해수욕장을 나와서 옷을 갈아입었으며, 학암포 근처의 민박· 펜션과 식당들이 즐비한 마을로 가서 식사를 했다.
바다에 갔으니 해물을 먹어야지. 해수욕장 잘 찾아간 것에 대한 자가보상 차원에서 두세 명 분량의 회 코스 요리를 마지막 매운탕까지 혼자 다 먹어치웠다.

의식주 중에서 의와 주는 전혀 신경쓸 필요 없으니 교통비(유류/톨비)를 제외한 나머지 예산은 전부 '식'에 집중 투입되었다. 사실 여행 기간 내내 이때 말고 나머지 끼니는 거르거나 부실하게 해결한 편이었다. 또한 밥뿐만 아니라 전기 공급도 열악한 상태였는데 식당에 있는 동안 컴퓨터와 전화기를 덩달아 충전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때 총체적인 에너지 보충을 했다.

학암포 해수욕장은 마을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또 물에 들어가지는 않고 다시 돗자리 깔고 누워서 해변과 언덕을 구경하며 쉬었다.
그렇게 저녁 무렵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엔 정체 시간대를 피할 겸, 서해안 고속도로의 유명한 행담도 휴게소에서 몇 시간 동안 머물면서(휴식+코딩) 추억을 더 만들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원하는 대로 머물 수 있는 것은 역시 자차가 있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피서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생업 전선에서 여전히 피서 전과 다를 바 없는 폭염을 경험하면서 좌절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동해도 조만간 어서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해에서는 뿌연 해무, 갯벌과 초록색 바닷물을 보고 왔다면, 동해에서는 더 맑고 깊고 시퍼런 바다를 보게 될 듯하다.

그나저나 햇살이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물에서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얼굴, 팔뚝, 심지어 발등까지 제법 탔다. 물은 자외선의 차단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12 19:28 2016/09/1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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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천장산, 낙산

컴퓨터도 더 작은 모바일로 바뀌고, 철도도 더 작은 경전철로 바뀌는 게 트렌드인지..
지금까지 산책삼아 다녀 온 작은 언덕들의 주요 탐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도록 하겠다.

1. 천장산

서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구소들이 가득하고 남쪽에도 산림 과학원, 카이스트 경영 대학원 등이 있어서 왠지 지적인 느낌이 드는 산이다. 그런 쪽 말고도 동남쪽에는 경희 대학교가 있고 동쪽에는 의릉과 한국 예술 종합 학교(일명 한예종)이 있다.
게다가 산의 이름부터가 '하늘 아래 명당'이라는 뜻인데 이런 산을 오르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해서 지하철 6호선 상월곡 역에서 내려서 산책로를 올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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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아파트도, 교수 아파트도 아닌 과학자 아파트다. ㄷㄷㄷ 하긴, 과학자들은 국가를 먹여 살리는 기간 인력이지.
그런데 지금 '과학자 아파트'라는 단어로 구글링을 하면 온통 북한 소식만 검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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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이렇게 빽빽한 나무들로 가득해서 산림욕을 즐기기 좋았다.
단, 천장산은 앞서 말했듯이 산기슭에 여러 연구소와 심지어 문화재까지 있는 관계로 접근이 통제된 곳이 아주 많았다. 사방팔방 등산로가 뚫려 있는 봉화산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일단 국립 산림 과학원이 관리하는 '홍릉숲' 영역은 전부 펜스가 쳐져서 막혀 있었다. 서쪽의 연구소 방면도 접근 불가이며 거기 있는 건물들을 구경도 할 수 없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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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41m짜리 낮은 산이니 정상에는 아주 금방 도달한다. 그런데 홍릉숲 말고 맞은편 쪽도 전부 펜스가 둘러져서 막혀 있다. 펜스 건너편은 '의릉' 쪽에서 올라와야만 갈 수 있다.
즉, 그냥 동네 뒷산 오르듯이 오르면 천장산은 거의 셰어웨어 데모 수준만 구경할 수 있었다. 갈 수 있는 경로가 단 한 곳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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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는 북서쪽을 바라보는 딱 한 곳에만 있었다. 북부 간선 도로를 넘어 가까이 있는 언덕은 북서울 꿈의 숲 내지 오패산이고,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은 그냥 북한산이다.
여기를 지난 뒤부터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계단을 따라 꼭대기에서 하산하며, 산기슭 둘레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한예종의 입구에 도달하게 되었다. 의릉을 가려면 한예종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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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릉은 서울 동대문구· 성북구 주민, 제복 입은 현역 군인, 한복 착용자 등등이 무료 입장 가능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입장료 1000원을 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풀밭이 참 깔끔하게 닦여 있던데.. 본인은 여기서 천장산을 다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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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산의 진짜 꼭대기에 도달했다. 위의 사진에서 연두색 펜스 왼쪽이 처음 들렀던 곳이고, 지금은 의릉 쪽에서 산을 다시 올라 있다. 의릉 쪽 등산로는 정상까지 나무 판자 내지 시멘트로 마치 협궤 철길 같은 등산로가 닦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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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의릉 방면에서 산을 한 바퀴 도는 쪽으로 하산했다. 저 멀리 경희 대학교 평화의 전당이 보였지만 길이 봉인돼 있어서 그쪽으로 직접 갈 수는 없었다. 여기는 통제 구역이 많아서 산을 종단할 수 없으며, 들어왔던 의릉 입구로 되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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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무들에 둘러싸인 초록색 지붕의 건물이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지도와 대조해 보니 저건 한예종 미술원 건물이었다. 본캠 건물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한예종이 있던 이곳에는 잘 알다시피 안기부 청사가 있기도 했다. 남산 청사와 더불어 이렇게 천장산 청사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다 합쳐져서 내곡동으로 간 것이다. (의릉 근처에 있던 것이 지금은 헌릉 근처로 바뀌었다는 게 흥미롭다.) 사실 아까 그 미술원 건물도 과거에는 안기부 건물의 일부였다고 함. 그러니 그 시절엔 민간인이 이렇게 천장산에 자유롭게 접근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안기부 강당 건물은 리모델링되거나 철거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 남아 있었다. 별로 볼 건 없이 썰렁해서 사진 첨부는 생략하지만, 그 강당에서 지난 1972년에 남북 7· 4 공동 선언이 발표됐다고 한다.

이렇게 의릉과 천장산 구경을 한 뒤, 본인은 무작정 한예종 캠퍼스를 지나서 큰길을 찾아 쪽문 밖으로 나갔다. 초행길이었지만 이렇게 나가는 게 맞았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이내 버스가 다니는 길이 나오고, 상월곡 역의 다음 역인 돌곶이 역이 나왔다. 이렇게 여행을 마쳤다.

2. 낙산

낙산은 안습한 높이 때문에 온통 아파트와 건물로 뒤덮인지라, 항공 사진을 봐도 산 같아 보이지가 않을 정도이다. 그래도 지형상 엄연히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는 산이며, 꼭대기에 도달하고 나면 서울의 중심부에서 번화한 대학로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 산이라고 하면 보통 2차원 공간이 연상되지만 낙산에서 공원에 속하는 영역은 한양 도성을 따라 길쭉한 '길'이라는 1차원적인 성격이 강하다.

동대문(흥인지문)이 있는 교차로에서 북쪽을 보면 한양 도성이 시작되고 땅의 고도가 높아진다. 평소에 여기를 종종 자동차를 몰며 지나가기도 하는데, 저 성곽 공원에는 무엇이 있을지 언젠가 한번 땅밟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지난번에 남산에서 한양 도성 구간을 지나면서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지하철 동대문 역에서 내린 뒤, 실제로 성곽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낙산을 올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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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문은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존재감이 없었고, 동대문과 남대문은 왕년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통과하기도 한 뜻깊은(?) 곳이어서 존치. 그 반면 서대문은 다른 명분이 없어서 일제 강점기 당시에 노면 전차 복선화를 구실로 헐림...;; 뭐 이런 말이 있던데.
어쨌든 동대문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동대문의 양 옆으로는 동소문(혜화문), 그리고 남소문(광희문)이 있다. 비록 성곽은 동소문 방면 것만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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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주택은 뜸해지고 고급 카페와 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거지 대신 공원 티가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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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너머 건너편도 굉장한 고지대인 것 같은데 저기에도 집들이 빽빽하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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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정상까지 시내버스도 다니고 있었다.
예전에 교회 친구들과도 낙산 공원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남쪽의 동대문 쪽에서 안 오고 서쪽의 대학로 쪽에서 오르느라 성곽이 있는 이곳까지 올라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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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으로 나가니 한성 대학교가 바로 내려다 보였고, 그 밖에 경치는 대략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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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인가 제3 전망광장까지 가니 성곽이 잠시 끊어졌고, 본인은 여기서 산을 내려갔다. 요런 계단을 내려가니 또 빽빽한 빌라촌이 나왔고, 거기를 지나자 각종 극장들이 보였다. 방통대 건물이 멀리 보이길래 거기와는 90도 수직인 방향으로 이동하여 큰길을 찾았고, 이내 지하철 혜화 역에 도달하여 산책을 마쳤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07 08:33 2016/09/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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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봉화산

서울 중랑구에 있는 봉화산은 둘레길만 따라 산기슭을 한 바퀴 도는 거리는 4km가 좀 넘고, 정상까지 높이는 해발 160m 정도 되는 작고 낮은 산이다. 인접한 산맥 능선이 없이 혼자 불쑥 솟아 있는 일종의 '독립구릉'인지라 예로부터 지리· 지형적인 이용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종착역이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작명되어 있다.

본인은 혹서기에는 높은 산 대신 서울 곳곳에 공원 형태로 조성돼 있는 작고 낮은 산들을 틈틈이 답사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는 봉화산 역 → 정상 → 중랑구청의 순으로 봉화산 북남 종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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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역 4번 출구로 나가서 산을 향해 계속 전진하니 일단 나무들이 무성한 공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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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지나서 계속 산의 중심부 쪽으로 비탈길을 오르자, 길은 점점 좁아지고 흙길 등산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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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은 산의 규모에 비해 출입구와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굉장히 많이 나 있었다. 그래도 어느 걸 타도 적당히 중심부 쪽으로만 가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길 잃을 염려는 안 해도 된다.
여느 산들과 마찬가지로 산중턱에는 운동 기구들이 설치된 공터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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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송전탑과 매점(!)이 나오고, 거기를 지나자 정상이 나왔다. 정상에는 듣던 대로 봉수대가 있었다. 하긴, 산이 이름부터가 봉화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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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전체를 통틀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는 여기 하나뿐이었다. 곳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던 용마산과는 반대다. 봉화산은 육군 사관학교와 가까이 있기도 하지만 이 산에서 그쪽을 내려다볼 수는 있지는 않다. 보안상의 이유도 있을 것이고. 위의 풍경은 중랑천과 천장산 방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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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나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봉화산 도당굿 보존 위원회' (서울시 무형 문화재 제34호) 이런 건물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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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청 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뭐 이런 식이었다. 7호선 먹골 역 방면인 서쪽으로도 갈 수 있고 길이 그야말로 사방으로 뻗은 듯했다.
중랑구청은 봉화산의 남쪽 중에서도 약간 동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다. 본인이 이 지점을 선택한 이유는 여기도 아까 봉화산 역 방면의 북쪽과 마찬가지로 공원이 꾸며져 있으며, 여기 근처에서는 집으로 환승 없이 한 번 만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이로써 서울 지하철 4~6호선의 종점 근처에 있는 산들을 모두 가 봤다. 4호선 당고개(수락산, 불암산), 5호선 마천(청량산), 6호선 봉화산까지. 이제 7호선 도봉산만 남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8 08:35 2016/08/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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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름 밤엔 저녁에도 집에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더웠다. 저 멀리 강원도에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데 시간 관계상 아직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그 대신 동부 간선 도로를 타고 내 마음의 고향인 교외선 일대로 홀연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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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역은 송추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 얼마 안 지나서 장흥 유원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그런데 폐역 상태이다 보니 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아무 표지판도 없었다. 그래서 다 와 놓고도 역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선뜻 찾을 수 없었다.

열차가 다니지 않고 인적도 끊긴 간이역 근처의 으슥한 골목에다 차를 세워 놓은 뒤, 저녁을 먹고 컴퓨터 작업을 하고 책을 읽다가(가로등 불빛) 이동식 텐트 안에서 잠들었다. 새벽이 되니까 살짝 한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원하던 경험이 바로 이것이었다. 차를 아무 데나 세워도 될 정도의 한적하고 으슥한 시골에서 혼자 이렇게 자 보는 거. 정말 꿀잼이었다. 그것도 철도역 근처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인가? 물론 위의 사진들은 이튿날 새벽에 동이 튼 뒤에 찍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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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체가 아니라 HY울릉도라는 간판 서체 자체가 여기는 1990년~2000년대 이후로 시간이 정지했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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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장흥의 서쪽 다음 역이며 교외선에서 그나마 가장 크고 최후까지 역무원이 상주했던 곳인 일영 역의 승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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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 역은 밖의 마당(?)에 지붕만 있는 실외 광장 대합실이 있었다. 다른 철도역에서는 보지 못한 독특한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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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찾은 송추 역은 건물 모양과 마당, 그리고 광장 대합실이 있는 것이 모두 일영 역과 비슷한 형태였다. 하지만 일찌감치 영업이 중단되고 거의 폐역처럼 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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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추 역의 앞마당에 있는 광장 대합실.
요약하자면 일영과 송추는 형태가 비슷하고 장흥만 임시 승강장만 달랑 놓인 좀 간이역스러운 스타일이었다.
장흥이 아니라 송추나 일영의 저 앞마당에다가 차를 세워 놓고 거기서 밤을 보냈으면 또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날은 일단 교외선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왔지만, 가까운 미래엔 중앙선(양평)과 경춘선(가평)의 한적한 전철역 근처에도 가서 캠핑을 하고 싶다.
그리고 바다로도 가고 싶다. 강원도 동해, 그리고 김포-강화 쪽의 서해 모두. 언젠가 꼭 갔다 와서 여기에 사진과 여행기를 올릴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6 08:30 2016/08/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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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배봉산, 백련산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본인 역시 코딩 집중도가 올라가고 대외적으로 이것저것 바쁜 일이 생기니.. 지난 봄만치 멀리 가서 높은 산을 오르지는 못하고 있다. 날씨가 풍경 사진을 찍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이긴 하나, 본인처럼 열 많고 땀 많이 흘리고 더위에 약한 사람에게는 장거리 산행을 몹시 괴롭게 하는 날씨이다.

이럴 때는 도심에서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그냥 100~200m대 높이의 공원에 가까운 언덕을 산책하고 오는 걸로 만족하곤 했다. 중전철 대신 경전철, 행성 대신 왜행성 같은 느낌이랄까? 하긴, 예전에 올랐던 산 중에도 개화산이나 응봉산처럼 완전 작은 놈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원래 가려던 산 대신 예정에 없던 엑스트라로 다녀온 곳이 두 군데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얘들은 다 외곽이 아닌 시내 중심지에 있고, 산 반대편으로 건너갔다고 해서 교외 지역이나 경기도에 도달하는 게 아닌 것치고는 지하철 접근성이 별로 좋지 않다. 이에, 본인 역시 둘 다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으로 방문해서 다녀 왔다. 단, 한 곳은 자전거를, 다른 한 곳은 자동차를 이용했다는 차이가 있다.

1. 배봉산

정상의 높이는 108미터, 종축 횡단 거리도 1km 남짓밖에 안 되는 정말 아담한 산이다. 한때 사도세자가 죽은 후에 여기에 묻혔었다는 걸 안내 표지판을 보고 처음 알았다(나중엔 더 멀고 터 좋은 곳으로 이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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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산으로 접근하는 곳이 이곳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배봉산 근린공원'은 이렇게 근사한 입구를 갖추고 있다. 바로 옆에는 야외무대라는 공터도 있다. 위치는 산의 최남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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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둘레길만 돌아다닐 수 있고 정상으로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본인은 응당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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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건물 계단 오르는 정도의 기분으로 잠깐만 수고를 하고 나니 금세 정상이 나왔다. 단, 산의 진짜 정상은 유적 발굴 공사 때문에 접근이 막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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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산은 전반적으로 나무들이 굉장히 조밀하게 우거져 있어서 위로나 좌우로나 경치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정상 근처에 딱 한 군데 있는 전망대도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이 정도에 불과했다. 전방에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용마산으로, 여기서 3~4k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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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난 뒤부터는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가는 길이 이런 식으로 나 있다. 산이 면적이 굉장히 작은 관계로 여기 말고 다른 길은 없는 듯하다. 아까 언급한 그 둘레길도 사실은 서울 시립대 부근에서 끊어졌다.

북쪽 끝까지 가면 '휘경 광장'이라는 공터가 나오며, 더 진행하면 휘경2동 주민센터를 보면서 하산할 수 있었다. 혹은 그냥 서울 시립대 부지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본인도 평소 같으면 당연히 그쪽으로 하산을 했겠으나, 이번엔 자전거를 세워 둔 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관계로 부득이 방향을 돌려서 배봉산 능선을 1왕복했다. 이렇게 하는 데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실, 배봉산은 남쪽의 횡축 도로인 사가정로(전농동사거리 동쪽)의 남쪽으로도 계속 이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는 그렇잖아도 경사가 굉장히 급한 언덕길이다. 사가정로의 남쪽에 계속 이어지는 언덕엔 아파트도 있지만 또 '답십리 공원'이 조성돼 있다. 낮은 배봉산보다도 더욱 낮은 언덕이지만 인근 주민이 부담 없이 운동과 산책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장소이다.

본인은 여기 일대에 있는 운동 장소로는 그냥 청계천, 중랑천, 한강 주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물뿐만 아니라 고지대에도 애착이 간다. 이런 데에 돗자리 깔고 누워서 잠도 자고 싶은데 여름 밤에는 모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2. 백련산

이 산은 인왕산과 안산만치 유명하지는 않으며 정상의 높이도 이들보다 낮지만, 어쨌든 이들보다 더 서쪽에 은평구와 서대문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종단하는 거리는 대략 2km 정도 된다.

지도를 보니 산기슭에는 '백련사길'이라는 도로가 있고, 그 길가엔 백련사 방문객과 백련산 등산객이 무료로 이용 가능한 주차장이 있었다. 안 그래도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힘들게 생겼던데 주차장이라니? 마이 프레셔스!
학교 갈 일이 있을 때 곧장 차를 끌고 갔다 왔다. 새벽에 여기 등산을 한 뒤 학교로 가면 동선이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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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세워 놓은 뒤 '팔각정'이라는 정자 겸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계단을 쭉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에만 팔각정이 있는 게 아니라 등산로 입구에도 있다. 계단을 다 오르자 위와 같은 능선 산책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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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운동 시설과 웬 송전탑 같은 시설도 있었다. 그것들을 지나친 뒤, 총 약 1km 정도 걷자 '은평정'이라는 정자가 나타났다.
여기가 백련산의 실질적인 정상이지만 정상 표지석 같은 건 없다. 그런 걸 세우기에는 너무 낮은 산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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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걸 내려다볼 수 있다.
인왕산이 보이는 동쪽으로는 막 해가 뜨는 시간대여서 사진을 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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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정을 지난 뒤에도 북동쪽으로 산행을 계속했다.
중간에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여기서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을 선택했다. 오른쪽은 북한산 자락으로 길이 계속 이어지는 반면, 왼쪽은 그대로 하산하면서 산행이 끝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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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도가 충분히 낮아졌는지 아파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길, 그리고 근린공원이 눈에 띄었다. 거길 지나자 지금까지 못 보던 암반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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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산은 전망대라고는 정상의 은평정밖에 없는가 싶었는데 요런 곳이 하나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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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무로 된 계단을 따라 계속 하강하자.. 결국은 서울 지하철 3호선이 지나는 '통일로' 도로에 도달했다.
녹번 역과 홍제 역의 사이(그래도 녹번에 훨씬 더 가까움), 서대문구와 은평구의 경계쯤 되는 지점에 이렇게 큰 다리가 있어서 백련산과 북한산 자락을 연결하고 있었다.

체력과 날씨, 시간이 허락한다면 저 다리를 건너서 등산을 계속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산행은 여느 때와는 달리 몸만 달랑 온 게 아니니 발 닿는 대로 계속 편도 경로로 이동할 수 없었다.
이제는 지금까지 온 길의 정확한 역순으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은평정에서 여기까지도 또 1km가 넘었던 듯하니 편도 거리가 약 2.몇 km. 그래서 왕복으로 대략 5km 가까이를 걸었다. 시간은 2시간이 좀 덜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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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미션을 완수하고 출발지로 돌아왔다. 새벽에 갓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주변은 온통 주차된 차들로 가득했다.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큰일 났겠다. "일찍 움직이는 운전자가 주차 자리를 차지한다"라는 말이 진리임을 알 수 있었다.
차가 없었으면 또 세월아 네월아 마을 버스를 기다리고 근처의 지하철역에서 또 환승을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다음 목적지인 학교로 아주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26 08:35 2016/07/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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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남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서울의 너무 중심에 있는 바람에 지금까지 등산 대상에서 아오안이었던 산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산. 물론, 옛날 그 사대문의 안 좁디좁은 한양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남쪽이라는 얘기다.
서울 남산이라 하면 케이블카와 거대한 타워가 상징이지만, 그것 말고도 남산 일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참 많이도 변해 왔다. 과거에 여기 일대는 한양 도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예 수련을 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신궁'이라는 커다란 신사가 여기 기슭에 만들어졌다.

해방 후에 신사는 당연히 곧장 철거됐다. 그 뒤,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박통이 들어선 1961년부터는 남산에 잘 알다시피 코렁탕 시설인 중앙정보부 청사가 들어섰다. "남산에서 왔습니다."란 말만 들어도 사람들이 벌벌 떨 지경이었대나. 이북에서 온 간첩만 벌벌 떨어야 하는데 무고한 시민들까지 떨었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잠시 설명충 기질을 발휘하자면,
남산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인 1995년까지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와 중앙정보부가 있던 곳이었다.
그 반면 남영동 대공분실은 치안 본부, 즉 오늘날의 경찰청 관할이다.
그리고 서빙고 대공분실은 군 소속이었다. 국군 보안 사령부, 지금의 기무 사령부 관할이다.
그러니 똑같이 코렁탕을 제조하는 곳이어도 소속이 제각기 모두 달랐다.

공 병우 박사는 세벌식 글자판을 주장하다가 정부 정책을 건방지게 비판하는 죄로 1970년대에 중정 요원에게 연행되어 남산 구경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것 말고도 중정과 안기부의 흑역사는 많다.
5공 시절에 김 근태, 박 종철 같은 사람이 고문을 당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며, 이 근안 역시 경찰 출신이니 여기서 활동했었다.
그럼 박통을 암살한 김 재규는? 10. 26 사태의 수사권이 아무래도 전땅크 아래의 보안 사령부에 있었던 관계로, 그는 서빙고로 끌려가서 자기 옛 부하들에게 고문을 당했다.

그래도 신사는 전부 공원(특히 안 중근 의사 기념관. 중앙 기준 10시 방향)으로 바뀌었으며, 과거의 중정/안기부 건물은 다 유스호스텔, 방재 센터 등 다른 평범한 건물로 개조됐다(11~12시 북쪽 방향). 남산 기슭은 그린벨트 지대인지라 이미 만들어진 건물을 철거를 하면 했지 더 증· 개축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김 영삼 정권 때는 조선 총독부 청사만 헐린 게 아니라 남산의 외관을 가리던 외인 아파트도 폭파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는 지금 식물원이 조성돼 있다. (5시 남쪽 방향)

그러니 지금은 과거에 비해 남산이 그나마 자연 본연의 모습을 정말 많이 되찾은 셈이다.
사실, 남산은 본격적인 산행의 대상이 되기에는 시내와 너무 가깝고, 산 높이도 너무 낮은 관계로 진작부터 관광지 내지 공원 컨셉으로 꾸며져 왔다. 그래서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도 전국에서 최초로 생겼다. 정상에 도달해도 "남산 무슨봉 해발 262m" 이런 표지석 같은 건 없다.
뭐, 단순 관광객들은 케이블카나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가겠지만, 여기도 도보로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 코스가 없는 건 아니다.

본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산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었다. 교회 친구들과 함께 주일 저녁에 남산 근처까지 차를 몰고 간 적은 있었지만 거기를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했으며 케이블카도 못 타 봤다. 그래서 이 기회에 운동삼아 남산을 걸어서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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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선 회현 역에서 내려서 남산 쪽을 향해 골목길을 오르니 남산 공원 입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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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공원은 경치가 좋고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과 산이 있다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공원에는 독립 운동가 김 구와 안 중근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넓은 공터는 이름부터가 '백범 광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쪽에는 안 중근 의사의 어록이 새겨진 바위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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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시민의 숲 근처에는 윤 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더니 여기에는 안 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었다. 기념관 자체는 1970년대부터 있었지만, 지금의 세련된 건물로 새로 만들어진 건 2010년대의 일이라고 한다.

안 중근 의사는 뜻을 결의하면서 왼손 약지의 앞단을 절단한 행적이 워낙 임팩트가 강한지라, 안 중근 하면 그 "대한국인 손바닥" 그림이 상징처럼 따라다닌다. 그나마 열 손가락 중에서 제일 덜 중요한 부위이니까.
이분은 무예에만 강한 게 아니라 글씨도 잘 쓰고 사상적인 배경도 무척 심오했다. 처음부터 요인 암살 같은 과격한 방법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이거 정말 좋게 가지고는 씨알도 안 먹히고 동양의 평화가 이뤄질 수가 없어 보이니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생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던 당시의 상황, 고인이 사용한 권총 등 어지간한 자료는 다 전시돼 있다.
사소한 사실이다만, 안 의사는 교수형을 당해서 순국했다. 총살을 당한 건 윤 봉길이니 혼동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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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울 타워(N타워?)가 보이는 쪽으로 계속 전진했다. 옆에는 가림막을 치고 성벽을 다시 만드는지 뭔 공사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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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이런 식으로 쭉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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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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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계단을 오른 끝에 드디어 정상 도착. 적당한 아침에 도착하니 타워 주변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엄청 많았다.
맨 먼저 봉수대가 보이기에 등산 인증샷은 봉수대에서 저렇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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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를 가까이에서 올려다보면서 기념 촬영. 그리고 건너편 봉우리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탑이 있어서 또 사진을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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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동쪽으로 버스들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했다. 남산은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포장된 차도가 있긴 하지만 일단 관광버스나 노선버스 전용이다. 아무나 자가용을 끌고 올라갈 수는 없다. 차라리 엔진 없는 자전거는 허용된다.
어쨌든, 이 차도에서 또 도보 등산로가 갈라져 나가는 곳이 있어서 본인은 응당 그쪽으로 경로를 바꿨다. 역시 남산에도 돌계단뿐만 아니라 더 자연 친화적인(?) 등산로가 있었다.

하산을 계속하니 등산로는 아스팔트 도로와 합류했으며, 본인은 결국 국립 극장이 있는 쪽으로 나와서 장충단로라는 큰길에 이르렀다. 그리고 길 바로 건너편에는 '한국 자유 총연맹' 본부가 있었다. 남산 공원에는 김 구 동상이 있더니, 자유 총연맹 내부에는 이 승만 동상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동대입구 지하철역까지는 좀 멀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싶었으나.. 버스 승강장을 찾지 못해서 결국 그 거리를 다 걸어서 갔다. 3· 1 운동 기념탑, 유 관순 열사 동상, 제2 남산 터널을 몽땅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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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국민대, 성균관대), 안산(연세대)처럼 어째 대학교 구경과 함께 등산이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번에는 동국대 차례가 됐다.

단, 이번 산행에서는 남산을 동서 위주로 횡단하다 보니 남북으로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구경하지 못했다.
남쪽의 식물원이라든가 북쪽의 남산골 공원, 타임캡슐 광장 같은 건 못 봤다.
금수저를 위한 초등학교라고 옛날부터 유명하던 '리라 초등학교'도 남산 북쪽 기슭에 있다. 대성동 초등학교만큼이나 특이한 학교인 걸로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8 19:32 2016/07/1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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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우면산

본인이 지금까지 올랐던 산들 중에 대모산· 구룡산은 거의 유일하게 서울 강남구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로부터 1년 반쯤 뒤, 최근에 본인은 그보다 서쪽으로 서초구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우면산을 올랐다.
우면산은 왼쪽으로는 남태령 고개를 경계로 관악산을 마주 보는 형태이며, 한편으로 동쪽으로는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로 인해 말단의 언덕이 살짝 둘로 쪼개져 있기도 하다. 그 쪼개진 지역에는 서울 인재 개발원과 양재 자동차 학원이 자리잡고 있다.

군사 시설 보안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대모산· 구룡산은 남쪽 건너편 기슭에 유명한 코렁 시설이 있기 때문에 남북 종단 횡단을 할 수 없다. 건너편은 철조망이 둘러져서 완전히 막혀 있다.
우면산은 그렇지는 않고 제한적으로나마 종단 등산로가 있다. 그 대신 얘는 꼭대기에 공군 부대가 있고, 남쪽에서는 공군 부대까지 올라가는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다. 그 외에 이 산은 웬 과거 지뢰 매설 지역 출입 금지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대모산· 구룡산의 아래로는 구룡 터널이 있어서 분당-내곡 고속화도로의 일부 구간이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예술의 전당과 우면산의 아래로는 '우면산 터널'이 뚫려 있으며 이 도로는 과천으로 향한다. 우면산 터널은 유료 도로이다.

이들 산의 남쪽 기슭도 행정구역상으로는 아직 서울이다. 하지만 거기는 아무래도 서울 시내와는 떨어진 외곽이고 전원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다만, 경부 고속도로에 인접해 있는 우면산의 남쪽 기슭에는 KT나 LG 같은 기업의 연구소가 있고 한국 교육 개발원(옛날에 탐구생활을 출간한 기관..;;)도 있어서 '우면동'이라 하면 왠지 지적인 냄새가 풍긴다. 게다가 지금은 거기 일대에 삼성 전자 연구소도 지어지고 있다.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우면산은 이런 특징을 가진 산이다. 등산로는 남부터미널 역에서 내린 뒤 예술의 전당 근처에서 아주 쉽게 접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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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을 오르는 첫 구간은 느낌이 이러했다. 벌써부터 철조망이 등장하는데, 이건 서울특별시 인재 개발원과의 영역 구분을 위해 쳐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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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길엔 서초구민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돈을 후원해서 만든 계단도 있었고, 위의 사진처럼 널찍한 공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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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역시 울창한 숲이 잘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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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이 접근 가능한 우면산의 실질적인 정상인 소망봉 '소망탑'에 도달했다. 여기는 예술의 전당이 발밑에 딱 내려다보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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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었다. 강남에서 바라본 경치 하나는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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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을 당기니, 저 멀리 남산과 북한산까지 보인다.

소망봉에 도달한 뒤부터가 문제였다.
꼭대기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서남쪽으로, 이왕이면 선바위 역 근처의 전원마을로 하산하고 싶었으나 그 길은 이제 "과거 지뢰 매설 지대 위험"이라는 명목으로 막혀 있었다.
이제부터 서쪽으로 가려면 도로 하강하여 꼭대기와는 거리를 두고 산중턱의 능선을 따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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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의 왼쪽을 돌아보면 가끔씩 이런 골짜기 같은 게 보였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반쯤은 지뢰 때문에, 반쯤은 군부대 때문에 저렇게 몇 겹씩 철조망이 쳐진 채 막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참을 간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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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찍은 본인의 등 뒤에는 공군 군부대가 있다. 말로만 듣던 자동차 도로도 발견했다. 등산로가 이렇게 연결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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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에서 바라본 건너편 관악산. 관악산은 남산에 있던 각종 전국구 전파 송신 시설들이 모두 이전한 관계로 꼭대기에 저런 케이블들이 있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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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길을 따라 끝없이 하산을 계속했다. 차도 주변에도 도보 등산로로 빠지는 샛길이 한두 군데 정도 있는 듯했으나 본인이 현장에 있을 때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 표지판도 없는데 그런 걸 어떻게 찾아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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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내려가니 송동 마을에 도달했다. 차도의 선형의 특성상 과천 쪽으로 서쪽으로 뻗어 가지 못하고 어중간한 지점에 도달하게 됐지만, 그래도 꿩 대신 닭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산에 없는 우면산의 고유한 캐릭터는.. 5년 전에 발생한 대형 산사태의 흔적이다. 산사태 피해 복구 공사 알림 표지판과 '급경사지 붕괴 위험 지역' 표지판이 보였다.

이렇게 등산을 마친 뒤, 양재대로(국도 47호선) 큰길까지 나왔다. 거기서 선바위 역까지는 버스로 이동한 뒤 귀가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6 08:29 2016/07/1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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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부의 광진· 중랑구와 구리시 사이에는 '아차산'이라는 산이 있다. 여기는 북한산이나 청계산 계열이 아니면서 제법 규모가 있는 산이며, 적당한 암반과 숲에다 한강을 포함해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경치도 훌륭해서 등산 경험이 아주 좋았다. 산 중에는 한번 등산을 시작하면 온통 나무들에 파묻혀서 정상이나 몇몇 전망대를 빼면 아래 경치를 거의 볼 수 없는 것들도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서울의 산 하면 흔히 조선 시대스러운 한양 도성만 떠올리기 쉬우나, 이 산 일대엔 고구려 시대의 유적들이 이례적으로 발견되는 것도 이 산만의 고유한 개성이다.

아차산은 5호선 아차산-광나루 역 일대에서 접근하여 남쪽으로부터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서쪽에는 살짝 더 높은 봉우리가 있어서 이건 용마산이라고 따로 불린다. 이 산은 7호선 중곡-용마산 역에서 접근 가능하다. 두 산 모두 지하철역의 이름으로 당당히 쓰이고 있다.
두 산의 정상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꼭대기 능선은 북쪽으로 무려 국도 6호선 도로 근처까지 꽤 길게 이어지는데, 여기에 있는 해발 280m 남짓한 봉우리를 '망우산'이라고도 부른다. 망우산 일대는 온통 망우리 공동묘지로 조성되어 있다.

본인은 옛날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아차산과 용마산을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대원 외국어 고등학교 일대에서 하산해 버렸지 북쪽을 더 탐험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차산은 제끼고 처음부터 용마산을 오른 뒤, 더 북쪽 망우산 구간을 탐험하겠다는 생각으로 중곡 역 일대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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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는 이미 가파른 비탈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용마산로30길 주변엔 빌라들이 가득했다.
등산로 옆에는 웬일로 주차장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나 차를 가져올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거주자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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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숲길은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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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은 이러했다. 등산 당시는 이른 아침이고 아주 흐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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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또 올라서 정상에 도착했다. 중간에 밧줄을 붙잡고 암반을 올라야 하는 곳이 있었으며, 정상에 도달하기 전에 정자와 전망대가 나오기도 했다.
지금 여기서는 사진 첨부를 생략하지만 정상 주변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단, 끝부분이 많이 해져서 교체할 때가 된 상태였다.
안 그래도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는데 저 정상 인증샷을 찍자마자 정확히 그 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본인은 비를 피하러 허겁지겁 내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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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 있을 때는 빗방울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지만, 정작 밖에 나가 보니 이 정도 비는 그럭저럭 맞을 만했다. 그래서 원래 가려고 하던 곳을 다 가기로 결심하고 북쪽의 망우리 공동묘지 방면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중간에 하산해서 용마 폭포 공원, 사가정 공원 같은 곳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중간에 헬리포트를 두 곳 지났다. 그나저나 이 산엔 헬리포트 말고도 고구려 시절의 흔적이라고 무슨 '보루'라는 군사 시설이 놓여 있었다. 현대에 북한군의 침략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군사 시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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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로 아차산 정상이 보인다. 아차산의 정상에는 저렇게 풀밭 평지가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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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을 처음 오를 때와는 달리 여기서부터는 서쪽 서울 방면이 아니라 동쪽 한강과 구리 방면의 경치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비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 혼자 산에 있으면 시원하고 운치 있고 좋긴 하지만, 그래도 산 아래의 경치 사진을 포기해야 하는 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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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서울 둘레길이 나와서 약간 넓은 시멘트길이 시작됐다. 이 길만 따라 쭈욱 가면 망우리 공원으로 가게 되는데, 본인은 망우산의 봉우리를 오르고 싶고 최대한 동쪽으로 가서 하산하고 싶었던지라, 중간에 갈림길이 나왔을 때 길을 오른쪽으로 갈아탔다. 그래서 다시 비포장 흙길이 시작됐다.
분기점은 용마 터널을 지나서 아마 서일 대학교과 비슷한 위도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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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다가는 묘지 사진은 대표로 이거 하나만 올리도록 하겠다.
망우산 제1보루를 통과하고 나니 서울 둘레길이 아닌 망우리 공동묘지 내부의 순환 도로가 나타났다. 엔진이 달린 교통수단은 못 다니고 자전거 통행까지만 가능한 1차로 정도 폭의 포장 도로이다. 그리고 그 사이엔 역시나 망우산의 깊숙한 봉우리로 더 들어서는 샛길이 있었다.

망우산이 왜 이렇게 인지도가 없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묘지의 규모가 생각보다 꽤 크다..;; 그렇다고 해서 등산로가 없다거나 일반 등산객은 출입할 수 없다거나 한 건 아니다.
또한 여기는 한 용운, 방 정환 등 20세기의 주요 인물들도 많이 묻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표지판의 설명만으로는 여기가 정확하게 어디이고 그런 분들의 묘지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본인은 순환 도로를 벗어나서 망우산 탐험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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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산에는 보루가 세 곳이 있다고 한다. 이제 북쪽으로는 충분히 이동했고, 본인은 어떻게든 망우산을 가로질러 구리 쪽으로 가 보려고 순환 도로를 이탈하여 보루 세 곳을 모두 통과했다. 중간에 이렇게 망우산 정상임을 나타내는 표식과 돌무더기가 달랑 놓여 있었다. 그 뒤로는 내리막이 이어졌다.

한참을 이동한 뒤에는 다시 묘지 내부 순환 도로가 나타났으며, 최종적으로 본인은 망우리 공동묘지 입구 + 국도 6호선 구간으로 하산했다. 동쪽 건너편 구리시의 전원마을 쪽으로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일단 묘지 구간에 들어서 버리자 묘지의 정식 출입구가 아닌 다른 등산로를 찾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이렇게 그래도 순수 아차산 구간만 빼고 용마산과 망우산 일대를 몽땅 종단하는 데 성공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울 시내와 상당히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딱히 조선 시대나 현대의 군사 안보와 관련된 느낌이 별로 안 느껴지는 산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06 19:22 2016/07/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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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북쪽에 북한산 일대가 거대한 산들의 군집을 형성하고 있다면, 서울의 남쪽에는 관악산 내지 청계산 일대가 군집일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산들을 올랐는데 서울 서남부 지역에 있는 산들에 대한 탐사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예전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과천 쪽에서 관악산을 올라 봤고 경부 고속도로/신분당선 일대에서 청계산을 올라 봤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에 갔던 경로와는 달리, 과천에서 청계산 방면 등산로를 혼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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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4호선의 과천선 구간에 있는 대공원 역에서 내렸다. 평일 이른 아침이어서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여기 주변도 전반적으로 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특히 저 건너편에 관악산이 선명히 보였다. 하지만 이 사진의 전방이 내가 산을 오르려는 방향이다.

참고로 서울랜드는 서울 대공원의 하부에 속한 시설이다. 둘이 완전 별개이거나 동치인 관계가 아니다. 서울 대공원은 동물원도 있고 시에서 관리하는 좀 public한 시설이지만, 서울랜드는 사기업 관할이라는 차이가 있다. 다만, 테마 놀이공원으로서 서울랜드는 접근성은 롯데월드에 밀리고, 시설의 퀄리티는 용인의 에버랜드에 밀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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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전반적으로 이런 분위기였다. 산을 한두 번 올라 보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가 익숙하다. 단, 계절이 바뀌니 주변이 온통 초록색이 돼 있었다. 날씨도 맑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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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근처에 상수도나 군사 시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산림 보존과 동물원 경계 구분을 위해 전반적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하지만 모든 철조망이 관리가 잘 돼 있지는 않아서 무단 월담이 가능한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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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이제 한 300~500m대 산들은 많이 올라 보니 어느 정도 오르면 되겠다는 감이 오며, 마을 뒷산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단, 이 글의 복잡한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산은 봉우리 이름이 좀 혼동의 여지가 있다. 여기는 엄밀히 말하면 청계산의 권역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청계산보다 더 남서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지도에 따라서는 '매봉산'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여기서 능선을 타고 청계산의 진짜 정상 근처인 국사봉, 이수봉, 매봉 등으로 갈 수도 있긴 하지만 거기까지는 몇 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거기 정상도 이름이 '매봉'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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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의 진짜 정상을 매봉이라고 부르는 문맥에서는 내가 오른 이 봉우리는 '응봉'이라고 불러서 구분하는 것 같다.
'매봉산'을 '청계산 매봉'이라고 적어 놓은 건 초행자에게는 여러 모로 굉장한 혼동을 줄 텐데 이름이 왜 이런 식으로 붙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에 봉우리 이름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에 가까워서 어차피 동명이봉이 엄청 많다. '깔딱고개도' 그렇고 말이다. 아무튼 이런 점을 감안해서 저기가 어딘지에 대해 혼동이 없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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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는 관악산 쪽으로는 거대한 철탑과 송전선들이 늘어서 있었다. 다른 산들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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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도로만 봐 온 '문원동 마을'이다. 서울의 평창동만큼이나 산 중턱에 홀로 자리잡은 특이한 형태의 마을인데, 이런 마을이 언제 왜 어쩌다가 조성됐는지 무척 궁금하다. 이런 거 지리 공부를 하는 게 등산의 묘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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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른쪽을 보면서 줌을 당기면 과천 저수지와 서울 경마 공원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은 바로 우면산이다.

저기도 기회가 되면 오르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안 그래도 낮은 산인데 정상까지 갈 수가 없으며(군사 시설 때문), 예전에 근처의 구룡산과 대모산을 오른 적이 있다는 점으로 인해 우선순위가 좀 밀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곧 가 볼 생각이다. 도심 근처의 산인 것치고는 숲이 아주 울창하게 잘 보존돼 있고, 또 그 자그마한 산 속에 지뢰 매설 구역까지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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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오른 뒤에는 동쪽으로 더 가서 청계산의 더 높은 봉우리로 갈 수도 있었다. 동쪽으로 계속 가면 경부 고속도로 근처의 청계산 등산로로 하산하게 된다.
그렇게 과천과 서울/성남 사이를 산길로 횡단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 관계상 본인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더 남서쪽의 인덕원 방면으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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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과 청계산 일대의 묘미는.. 여기가 김포 공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민항기 항로 근처라는 점이다. 그래서 머리 위로 김포 공항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를 몇 분 간격으로 볼 수 있다.
여기보다 더 동쪽으로 서울을 벗어난 하남· 분당 같은 데서는 비행기를 볼 수 없다.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도 서울 공항과 가깝다는 점 때문에 종종 군용 수송기가 날아다니는 건 보이지만, 민항기는 보이지 않는다. 서울 공항이 민간 공항으로 개항하지 않는 한 말이다.

본인은 이 점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예상한 상태에서 산을 올랐으며, 이번 등산에서 설정한 미션 중 하나가 '비행기 사진 촬영'이었다.
하지만 산 속에서는 나무들 때문에 하늘이 가려져서 비행기 사진을 찍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평소에 궁금했던 점인데, 이런 이유로 인해 역으로 항공 사진 지도로 등산로 따위를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겠다는 사실에 수긍이 갔다.

위의 사진은 물론 서로 다른 시각에 지나간 두 비행기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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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원 쪽으로 가면 지금 한창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숲속마을 포일2지구'에 도달하게 되는데, 난 중간에 나타난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하여 '옥박골'이라는 의왕시 청계동 소재의 전원마을에 도착했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집들은 다들 참 개성 넘치고 예뻤다. 나도 이런 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 나가니 큰길과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버스는 응당 인덕원 역으로 가는 놈이 있었다. 이걸 타고 오늘의 여행을 잘 마쳤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04 08:33 2016/07/0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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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길 탐방기

북악산 이후로 본인은 한동안 성남과 하남처럼 서울 동남부에 있는 산을 올랐는데, 그 다음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서울 북부로 갔다.
북한산이야 워낙 크고 넓으니 예전에 간 적이 없는 새로운 등산로를 얼마든지 개척해서 오를 수 있지만, 그건 뒤로 미뤘다. 여느 등산로 대신, 북한산과 도봉산의 경계에서 서울과 양주를 연결하는 '우이령길'에서 뭔가 특이함을 느껴서 거기부터 먼저 찾아갔다. 서울 강남에 우면동(우면산. 소가 쉬는 모습)이 있다면, 강북에는 우이동(소의 귀 모양)이 있는 게 흥미롭다.

우이령이라는 고개에 이런 길 자체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북악산의 제2 산책로(일명 김 신조 루트)와 마찬가지로, 1· 21 사태의 여파로 인해 보안을 위해 거의 40년간 민간인의 출입과 통행이 금지된 내력이 있다. 그 대신 군부대 유격장 같은 군사 시설이 여기 일대에 들어서게 됐다.
그러고 보니 6· 25 전쟁 중에 월턴 워커 장군이 교통사고로 순직한 곳도 지금의 서울 도봉구 일대이니, 우이령길 자체는 아니지만 거기 근처이다. 그리고 거기는 그 당시엔 아직 행정구역상 인서울이 아니었다.

군인을 제외하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덕분에 우이령길 주변의 자연 환경은 비무장지대에 준하는 급으로 잘 보존되어 왔다. 여기는 역시 김 신조 루트와 동일하게 2009년경에 봉인이 풀리고 민간인에게 제한적으로 개방됐다. 아무나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건 아니고 예약을 해야 한다.

무슨 국정원이나 대성동, 판문점 같은 곳을 방문하는 것처럼 보안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자연 보호를 위해서 단순히 단위 시간당 동시 접속자-_- 수를 제한하기 위해 그런다. 서울 우이동 쪽에서 500명, 그리고 반대편인 양주 교현리 쪽에서 500명 이렇게 매일 최대 1천 명만 입장과 통행을 허용한다고 한다.
입산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가능하고, 그 뒤 오후 4시 전까지 모든 입산자들은 산을 빠져나가야 한다. 낮이 긴 여름에도 예외가 아니다. 단, 하산(퇴장)할 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든 반대편으로 나가든 그건 상관없다.

이런 점에서 우이령길은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보다도 경비가 더 삼엄한 셈이다. 북악산도 나름 인적 사항을 적고 목걸이를 받아야만 입산 가능하지만, 그래도 거기는 무슨 사전 예약까지 해야 한다거나 인원수 제한이 걸려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약은 인터넷으로 하는 게 원칙이나, 장애인· 외국인 같은 취약 계층에 한해서 전화 예약도 받는다. 환경 보존 명목으로 이렇게 예약을 해서 제한된 인원만 탐방 가능한 산길이 우이령길 말고도 전국적으로 국립 공원에 몇 군데 더 있는 모양인데, 거기들의 탐방 예약을 한 사이트에서 통합해서 받는다.

보안 때문에 예약을 받는 게 아니므로, 무슨 1~2주씩이나 전에 예약한다든가 할 필요는 없다. 예약은 방문 당일의 바로 전날 일과 시간(오후 5시) 중으로만 하면 된다. 한 사람이 최대 10명까지 동시에 예약할 수도 있다. 국가에서 공익을 위해 운영하는 시설인 관계로, 예약과 입장에 비용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 모든 입산자들은 길 어귀의 초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요컨대 우이령길의 탐방에 제약이 걸려 있는 이유는 여행 금지 국가에다 비유하자면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급이 아니라 남극과 같은 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든 산에는 등산객더러 지정된 등산로를 이탈하지 말고 자연을 보호하라는 캠페인이 권고 차원에서 붙어 있긴 하지만, 여기는 특별히 국립 공원이며 그 권고가 더욱 강하게 적용된다. 지정된 시간대와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서 산 속에 짱박혀 있다가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서울에 이런 신기한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인 역시 예약을 했고, 우이령길을 잘 다녀왔다. 요 얼마 전에 등산을 했을 때와는 달리 이 날은 날씨가 아주 맑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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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은 아무래도 도시의 변두리 외곽이며 시내버스나 지하철의 종점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검단산 인근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연장 공사가 한창이더니, 여기는 우이 경전철의 건설 공사가 아직 한창이었다.
우이 경전철은 차량기지조차 몽땅 지하에 만들어져서 땅 위로 보이는 게 하나도 없을 거라고 한다. 무슨 평양 지하철처럼 말이다.;;

'우이령길' 쪽으로 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우이 유원지' 구간이 1km가 넘게 계속됐다. 온통 식당, 카페, 산장, 팬션 등등.. '송성훈 큰머리'체를 써서 만들어진 간판이 인상적이다.
용인의 '고기리 유원지' 같은 곳이 서울에도 있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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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시설들이 없어진 뒤에도 몇백 m를 더 오르자 드디어 우이동 탐방 지원소가 나타났다. 자동차 도로로 치면 이제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나타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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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지원소를 지나자 군부대..가 아니라 전투경찰 숙소 건물이 나타났고, 그 뒤부터는 자연을 즐기면서 산책 탐방을 할 일만 남았다. 이런 식의 길이 계속 쭉 이어졌다.
사진은 내가 눈으로 직접 본 풍경을 완벽하게 재현을 못 한 것 같다. 색감이나 화각 같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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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명 '대전차 방호벽'이다.
전쟁이 나서 적군이 특별히 탱크를 몰고 쳐들어와서 이 길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면, 저 위의 크고 무거운 시커먼 콘크리트 덩어리를 아래로 떨어뜨려서 진로를 차단한다. 물론 적군도 공병을 투입해서 장애물을 제거하겠지만, 그래도 그 작업 시간 동안만치 진격을 지연시키고 아군에게 시간을 벌게 해 준다.

교량이나 터널이라면 아예 끊어 버리거나 메우는 식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만 그냥 땅 위에 놓인 멀쩡한 길이라면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사실, 파주나 철원 같은 전방 도시의 주요 도로 길목엔 지금도 저런 대전차 방호벽이 놓인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의정부나 고양처럼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위성도시에도 방호벽이 일부 있으나, 거기가 본격 수도권에 들어가고 아파트가 잔뜩 지어지고 인구가 늘면서..;; 도시 미관에 안 좋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철거되기도 했다.

전차의 주행을 차단한다는 건 우이령길이 여느 등산로와는 달리 차량이 통과 가능한 길이라는 뜻이다.
우이령길은 처음부터 그렇게 넓게 닦인 길은 아니었다. 미군 공병대가 투입되어 1965년에 길을 확장한 덕분에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춘 듯하다. 이 블로그에서는 사진 첨부를 생략하지만, 대전차 방호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를 기리는 개통 기념비가 있다. (미군 제36 공병단 소속의 109/102공병대대)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못 가 김 신조 사건이 터지면서 우이령길은 사실상 군 전용 도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대전차 방호벽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비록 김 신조 일행은 정규군이 아니라 비밀 공작원이니 100% 도보만으로 침투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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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우이령의 정상에 도달했다. 사실, 유원지 구간을 지나면서 우이령을 이미 많이 오른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이동 탐방 지원소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정상에서 양주 교현리 탐방 지원소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짧다. 정상에는 넓은 공터와 벤치,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우이령길 탐방은 비록 고개를 오르는 것이지만 역시 어지간한 등산에 비해서야 훨씬 널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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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상을 지나서 교현리 방면으로 완만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저 멀리 오봉산 봉우리가 보였다. 주변 경치가 대단히 아름다웠다. 지도를 보니 저 오봉산을 오르는 등산로도 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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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길에는 가끔씩 이런 계곡도 있어서 주변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편, 이쯤에서 웬 '석굴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절과 함께 군부대 유격장이 있었다. 석굴암은 경주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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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양주 쪽이 가까워지자 길가엔 도랑 대신 울타리가 보이고, 전신주까지 나타났다. 서울 쪽이 더 잘 꾸며져 있고 경치가 더 좋긴 했다.

그리고 드디어 교현리 탐방 지원소에 도달함으로써 우이령길 횡단이 끝났다. 한 탐방 지원소에서 다른쪽 탐방 지원소까지 4km 남짓한 거리를 가는 데 약 1시간 10분 남짓밖에 안 걸렸다.
서울 우이동 방면 입구는 유원지여서 식당과 산장이 즐비한 반면, 양주 교현리 방면 입구엔 군부대 사격장이 자리잡고 있어서 분위기는 이거 뭐 서로 극과 극이 따로 없었다.
여기를 평일에 갔는데, 사격 훈련 중이었는지 사실은 고개 정상에 있을 때부터 총 소리로 추정되는 탕탕~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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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담벼락에는 이런 뭔가 안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남한산성을 구경하러 청량산을 올랐을 때 지나쳤던 그쪽 군부대에도 담벼락에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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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를 지나서 한참을 걷자 드디어 큰길(북한산로)이 나오고, 시내버스 정류장에도 도달했다. 길 건너편에는 마을 회관과 함께 이런 표지석이 있었다.
이 사진에서 뒷배경으로 깔린 저 언덕은 노고산의 끝자락이다. 노고산도 김 신조 일행이 서울로 침투하기 위해 넘은 산 중 하나이다.

여기 근처에는 온통 군부대, 특히 종로· 서대문 지역의 예비군 훈련장들이 밀집해 있다. 본인은 대학원 재학 중엔 이쪽에서 예비군 훈련을 몇 차례 받은 적이 있어서 여기 지리가 친숙했다. 단, 그때는 다 차를 가져갔기 때문에 여기서 버스를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한산로에서 뚜벅이들의 이동을 책임지는 시내버스는 704와 34 딱 두 종류이다. 전자는 서울 소속이고 후자는 경기도 소속이다.
본인은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학교에 들렀다. 저 버스들이 학교로 바로 가는 건 아니니, 구파발에서 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면 됐다. 버스 차창 밖으로 북한산로 일대, 구파발· 진관동, 그리고 학교의 서쪽에 있는 서대문구청, 자연사 박물관, 안산 옆의 백련산 언덕 등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서울 북서부로는 갈 일이 별로 없었는데 거기 관광에는 이런 묘미가 있다.

그나저나 은평구는 한자가 恩平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여기서 자기 구를 홍보할 때 '은혜와 평화의 땅'이라고 수식어를 붙였고, 지금도 은평구청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는 구 노래에는 "은혜와 평화로세 은평이라네"라는 가사가 있다.
그런데, 저 이름이 처음에 그런 의도로 작명된 건 아니었겠지만, 이건 여느 종교에서는 찾기 힘든 굉장히 기독교적인 용어이다. 그 당시에 구청장이 아주 독실한 신자였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은혜와 평강(평화)'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얻을 수 있으며, 이건 바울 서신서들 첫머리에 마르고 닳도록 나오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난 은평구라 하면 지하철 3/6호선, 북한산 이런 것만 떠올랐는데 앞으로 은평구를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29 08:33 2016/06/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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