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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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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실제 모델 인물인 오 길남은 월북한 뒤 재독 한인을 포섭하는 공작원 명목으로 독일로 파견됐는데.. 북한 정권의 실체를 깨달은 뒤엔 거기서 자수하고 남한으로 귀순했다.

어색한 억지 감동 유도라든가, 좀 식상하고 허무한 듯한 결말이 아쉬운 점으로 남지만, 중간 전개는 역시 찢어 죽일 종북좌빨들이 충분히 불편해하고 싫어할 만한 팩트 위주이다.
그러니 북괴의 정체와 흉악한 수작이 까발려지는 걸 원치 않는 놈들은 블랙리스트니 화이트리스트니 나발이니 딴 거 갖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영화계 전체 그림을 객관적으로 보자면 지금 솔직히 우보다는 좌편향이 훨씬 더 심하지 않은가?

북괴가 역사적으로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악 중 하나는.. 단순히 사람을 죽인 걸 넘어서 가족을 저렇게 하루아침에 산 채로 찢어 놓은 것이다.
6·25 이산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먼 옛날엔 여객기 납치로도 단란하던 가정을 많이 파탄냈다.

또한, 저런 젊은 학자들을 속여서 북한으로 보내서 그 가족들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 악마가 지금 청와대 수장에게는 민족을 사랑하는 평화통일 운동가로 보이는가 보다. 정말 같은 부류의 악마이며, 쳐죽일 반민족 반역자임이 틀림없다. 한 번 속는 건 실수이지만 두 번 속는 건 공범이다.
이런 영화가 많이 알려지고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2.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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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사각오, God’s not dead, 신이 보낸 사람 등 국내외의 다양한 장르의 기독교 영화를 봤지만.. 얘가 성경 고증과 작품성, 비주얼 등을 고려했을 때 제일 뛰어난 작품인 것 같다. 정말 잘 보고 왔다.
북미에서는 이스터(..)에 맞춰서 지난 봄에 개봉했지만, 국내에서는 종교 개혁 기념일에 맞춰서 10월 말에 개봉했다.

14년 전의 Passion of Christ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음침 암울하고 오로지 예수님이 잔혹하게 채찍질 당하는 장면 말고는 남는 게 별로 없어서 인상이 안 좋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 특유의 교묘한 심상 왜곡이랄까, 그런 게 별로 없었다. 내가 느끼기엔 말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 사울의 회심 등 주요 장면들 다 나온다. 대사 중에 성경 말씀 인용이 굉장히 자주 나와서 아주 마음에 든다.
사울이 회심 후에 무슨 물고문 당하듯이 물에 얼굴까지 첨벙 잠겼다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게 침례를 의도한 장면이었다면, 난 평가 점수를 더욱 올려 줄 생각이다. 물 뿌리는 세례는 고증 오류이다.

그리고 촛불과 온갖 신들 형상(마리아 형상도 포함) 앞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긍정적인 심상으로 그려지지만 여기서는 로마인들의 잡신이라는 부정적인 심상으로 그려진다. 이것도 구도를 아주 잘 잡았다.

그러면서 허구 각색도 어색하지 않게 가미된다. 사랑하는 교회 동지가 어이없게 억울하게 살해당하자, 남자 청년들 일부가 극도로 흥분하고 분노해서 우리도 칼 들고 쳐들어가서 로마를 상대로 보복하자고 날뛴다.
바울은 회심 전에 자기가 죽이면서 눈 마주쳤던 크리스천들이 때때로 꿈에 나와서 트라우마를 안긴다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호소하기도 한다.

누가는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교도소장인 로마 군인의 딸의 병을 극적으로 고쳐 준다. 무슨 오글거리는 기도 한 방으로 신앙 치료를 성공한 게 아니라, 자기 의술로 해낸다. 바울 역시 “자기는 소문과는 달리 아무 능력 없으며, 자기가 약함을 보일수록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셨다”라고 증언한다. 요런 식의 개연성 있고 자연스러운 허구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 횃불 될 사람은 되고, 사자밥이 될 사람은 그렇게 되면서 순교 행렬이 이어진다. 네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바울은 딤후 4:6-8의 유언을 남긴 뒤 예정대로 참수당한다. 그래도 교도소장은 바울과 누가의 인품에 충분히 감화됐기 때문에, 마치 옛날에 안 중근 의사를 존경하게 된 뤼순 감옥 간수처럼..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바울을 "잘 가시오" 이렇게 공손하게 댄디하게 대해 준다.

바울은 그나마 로마 시민인 덕분에 화형 같은 더 끔찍한 방법으로 죽지는 않고 저렇게 일반적인(?) 방법으로 처형된 거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바울과 네로는 모두 AD 60년대 중후반에 죽은 꽤 옛날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때는 로마 제국에 콜로세움 경기장이란 건 아직 없던 시절이었다. (약간 뒤인 AD 70년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부터 등장)

네로 시절에 크리스천들이 로마 대화재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박해받고 처형당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원형 경기장에 우루루 풀려나가서 사자밥이 되어 순교하는 것과 "네로 황제"하고는 엄밀히 말해서 시기적인 연결 고리가 없다.
그러니 영화의 묘사는 엄밀히 말하면 고증 오류이다. 하지만 뭐 심각한 오류는 아니다. 60년대건 70년대건 시기가 그렇게 심하게 차이가 나지는 않으며, 콜로세움 안이건 아니건 크리스천들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건 변함없으니 말이다.

신약 기독교라는 게 생겼던 당시에, 예수쟁이들은 불신자들이 보기에 도저히.. 뭐라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고,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도대체 무슨 이익을 노리고 왜 저런 식으로 사는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이상한 집단이었다.
남들이 다같이 믿는 신을 안 믿고, 황제를 반신반인으로 숭배하지 않으며, '예수'라는 웬 듣보잡 목수 출신 유대인이 죽었다가 뿅 부활했다는 황당한 악성 루머를 퍼뜨린다는 점에서는 분명 미친놈 왕따 아싸 반동분자 그 자체였다.

그런데 대놓고 국가 권력에 반역하고 싸우려 드는 여느 독립투사나 정치범 사상범 같지는 않고, 이웃으로서 개인 단위로 만나 보면 행실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무슨 마술사 초능력자도 아닌데.. 자기들의 세속적인 통념과 계산으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 11:38이 말하는 것처럼 서로가 상대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자들은 지금처럼 아무나 “우리 교회로 오세요,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는 개뿔.. 언제 잡혀가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 같은 처지였다.
모르는 사람이 교회 회원으로 가입하겠다고 하면 얘가 진짜 동지 형제인지, 아니면 우리를 밀고할 가짜 끄나풀 첩자인지 판별하는 게 급선무였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능력이 없으니.. 이럴 때 판별을 빨리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믿을 만한 이웃 교회 지도자의 ‘추천서, 보증서’였다. “우리가 보내는 이 형제는 스파이가 아니고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잘 대해 주세요~”
우리나라에서 옛날 건군 초기에 숙군 작업을 할 때도 “이 사람은 빨갱이가 아님을 내가 보증합니다”가 아주 유효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쪼록 이 영화를 보면 신약 교회가 이렇게 시작됐고 신약 성경의 대부분은 저런 여건 속에서 기록되고 필사됐다는 것을 얼추 실감할 수 있다. 복음은 뭔가 GPL 라이선스 오픈소스 같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종이와 펜이 귀하던 시절에 감옥에 갇힌 채로 찬송가를 부르려면 가사를 평소에 다 외운 상태여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클래식 교과서적인 명작 영화는 옛날에 벤허 같은 것 말고는 이제 자본주의 논리 앞에서 완전히 멸종하지 않았나 싶은데, 아직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긴 한다. 생각을 바꿔도 될 것 같다.
그리스도 안의 지체로서 바울은 꼭 볼 가치가 있음을 추천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12/04 08:36 2018/12/0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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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어지간한 인터넷 웹사이트들은 폭이 참 꾀죄죄하고 입구나 메뉴가 플래시로 만들어졌으며, "IE 6 브라우저와 1024*768 해상도에서 가장 잘 표시됩니다" 이런 거 적는 게 유행이었다. 커뮤니티 게시판은 제로보드 4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리적인 프레임 구분이 있는 웹사이트도 있었다. "이 페이지를 보려면 프레임을 지원하는 브라우저가 필요합니다" 에러 문구도 있고 말이다.

지금 저런 사이트를 보면 유지 보수되고 있지 않은 옛날 구닥다리 골동품 냄새가 풀풀 느껴질 것이다. 게시판은 온통 스팸 광고글로 넘쳐나고 있지 않은지가 걱정될 지경이고 말이다.

요즘 스타일의 웹사이트라면 큰 폭에 유연히 대처할 뿐만 아니라 플래시 없이 JavaScript만으로 모든 인터랙티브한 UI를 구현해야 한다. 특히 화면이 아래로 스크롤 됐을 때 메뉴 같은 게 쏙 줄어들어서 화면 한구석으로 밀려나는 거라든가.. 목록의 끝을 열람했을 때 다음 목록이 뒤에 실시간으로 추가되는 기능 같은 게 요즘 유행인 것 같다. css만 바꿔서 모바일 최적화 페이지도 제공하고 말이다.

사실, 본인조차도 HTML 지식은 거의 2000년대 초반 이래로 정지-_-해 있어서 최신 스타일의 홈페이지를 만드는 법을 잘 모른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지금이 웹 기술들의 파편화가 훨씬 줄어들고 웹 개발자들이 일하기 편리해지긴 했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이다만 싸이월드의 사이트 개편도 그런 변화를 따라가기 위한 명분과 당위성이 충분한 개편이었다. 구형 싸이월드는 시대에 너무 뒤쳐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편을 매끄럽게 제대로 못 하고 개악에 가까운 수준으로 해 버리는 바람에 사용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망하게 됐다.

웹사이트의 현대화를 나타내는 지표는 단순히 저렇게 외형적인 것에만 있는 게 아니다.
웹 문서들의 인코딩은 국제 표준으로 등극한 UTF-8로 통일하도록 하고, 서버의 각종 URL에도 오로지 영문· 숫자만 쓰거나 아니면 최소한 UTF-8방식으로 인식하게 설정해야 한다.
1990년대 말에 한글로 된 파일을 첨부한 것이 인식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IE에서 "URL을 언제나 UTF-8 방식으로 보냄" 옵션을 끄는 게 팁으로 통용되었던 건.. 마치 Windows Vista에서 UAC 옵션을 끄는 팁만큼이나 뭔가 미개한 관행이었다.

그리고 요즘 무시할 수 없는 대세가 바로.. HTTPS이다. 이건 웹사이트계의 디지털 서명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용자가 서버로 뭔가를 입력하고 보내는 게 전혀 없이 오로지 일방적으로 조회하고 표시하는 기능밖에 없는 사이트라면 모를까, 로그인을 하고 최소한의 interaction이 있는 사이트라면 내가 이 사이트를 믿고 내 개인 정보를 제공해 줘도 되겠는지에 대한 보증이 필요하다.

요즘 최신 브라우저들은 HTTPS가 아닌 구닥다리 HTTP를 쓰면서 폼 입력 기능이 있는 웹사이트에 대해, 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이 사이트는 위험함, 정보 전송을 권장하지 않음"이라고 경고하는 추세이다.
그러니 사이트 운영자들은 깔끔한 UX를 방문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HTTPS를 도입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암호 해독 때문에 서버의 트래픽과 오버헤드가 더 증가하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귀찮다.

내 홈페이지는 언제쯤 HTTPS를 도입하게 될지 모르겠다. 웹사이트가 아니라 당장 날개셋 한글 입력기 바이너리조차도 디지털 서명을 안(못) 하고 배째라 쌩으로 배포하고 있거늘..;;

이렇듯, Windows 기준으로 응용 프로그램의 현대화 지표가 유니코드 API, 고해상도 DPI 지원, 공용 컨트롤 6 매니페스트 같은 거라면, 웹사이트의 현대화 지표는 UTF-8, 無플래시, 최신 HTML/CSS 요소, 모바일 페이지, HTTPS 같은 것들이라 하겠다.

그나저나, HTML5 웹표준의 지원 수준 척도로 여겨지고 있는 ACID3 테스트 말이다.
마소에서 만든 IE11과 Edge도 ACID3을 100점 만점으로 통과하고 있고 Google 크롬 역시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 버전은 97점에서 멈추고 있다. 내 자리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또 뭐가 바뀌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크롬은 과거에는 APNG(png 기반 애니메이션)를 웹 비표준이라는 이유로 지원하지 않다가 요즘은 지원하기 시작했다.
크롬도 나온 지 벌써 10년이나 됐다(since 2008). 정말 엄청난 속도로 버전업을 하고 있고 지금도 프로그램 내부가 쉴 새 없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서 옛날처럼 마소와 오픈소스 진영이 브라우저 전쟁을 하는 게 아니며, Visual Studio로 어설픈 Windows Phone 앱 대신 무려 안드로이드 앱을 만드는 지경이 됐다. 옛날에다 비유하자면 컴퓨터 세계에서 미국· 소련간의 냉전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삼성 갤럭시와 애플 아이폰도 갈수록 서로 비슷해져 가고 있다. (배터리 일체형은 삼성이 따라하고, 큼직한 화면은 애플이 따라하는 식)

IT 업계가 전반적으로 분리와 파편화가 아니라 통합과 상생이 대세인 듯하다.
마소의 경우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같은 초창기 원로들이 경영진에서 물러나고 사티아 나델라가 집권한 뒤부터 경영 방침과 회사 분위기가 굉장히 크게 바뀐 게 느껴진다. 제아무리 천하의 마소라 해도 영원무궁토록 Windows와 Office만 갖고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언제까지나 오픈소스 진영과 척지고 살 수는 없으며 인제 와서 Windows Phone이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을 이긴다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뭐, 경쟁자들을 적대시하여 어떻게든 독과점으로 말려 죽이려 했던 옛날 마소 경영자들의 전략도 그 시절에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긴 했을지 모른다. 천하의 삼성 전자도 과거에는 일본의 아류 짝퉁이나 만드는 영세 전자 기기 제조사였던 적이 있으며, 마소도 처음에는 그냥 공룡 하드웨어 제조사에다가 소프트웨어를 납품해서 먹고 사는 을의 처지로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여유로운 잣대로 옛날을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15 08:32 2018/10/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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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절차: 우리나라 같은 단순무식한 직접 선거가 아니고 뭐가 그리 복잡하냐.. 잘 알다시피 땅이 너무 넓어서 그냥 선거인만으로 간접 선거를 하는데, 선거인단을 뽑는 절차와 조건, 그리고 표를 취합해서 당선자를 가리는 방식도 그냥 직관적인 다수결이 아니다. 미국 내부에서도 현행 선거 방식이 너무 복잡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2) 야구 룰: 득점 조건이 정확하게 무엇이고, 경기를 이기려면 각 선수들이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 투수가 던진 공을 타수가 빠따로 친 뒤, 그 다음부터 벌어지는 일의 내막을 전~혀 모른다.
전산학 용어로 표현하면, 야구 경기라는 프로그램의 내부 상태 전이 그래프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이 없다.

(3) FIFA 월드컵에서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절차: 이 경기에서 몇 점 이상으로 이기면 상대방 국가에도 어떤 영향을 주고, 저쪽 나라가 이기면 우리도 16강 가고, 반대로 우리가 이 경기를 이기면 다른 무슨 나라가 탈락하고 이렇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그 조건과 원리.. 모름.

물론 요즘 세상에 10~20분만 투자해서 검색해서 공부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본인이 원리를 잘 모르는 분야가 또 있는데, 바로 달력이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는 세계 공통인 서기 연호에다가 그레고리 태양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음력 날짜가 쓰이며, 설이나 추석 같은 주요 명절은 음력으로 계산된다. 그렇기 때문에 달력에는 음력 날짜도 병기돼 있다.

철도에서 디젤 기관차가 더 정확하게는 디젤-전기 기관차인 경우가 대부분이듯, 한국에서 음력이라고 불리고 쓰이는 달력은 더 정확하게는 태음 태양력이다. 윤달을 넣어서 음력을 양력 달력에다가 절충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음력 달력은 딱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는데 중국· 일본에서는 음력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떤 방식을 쓰는지 모르겠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이런 음력 달력을 써 왔는지도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단기 대신 서기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박 정희 3공 때라고 하는데, 음력 대신 양력 달력을 쓰기 시작한 것은 훨씬 더 옛날인 구한말 을미개혁 때부터라고 한다(1896년).

그리고 더 궁금한 것은 양력과 이 음력 달력은 공식 계산만으로 날짜의 상호 변환이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그때 그때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천문 데이터가 필요하기라도 한지, 음력 변환은 임의의 연도로 아무렇게나 가능하지 않고 수십 년 정도의 가까운 미래나 과거까지만 제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 궁금하면 한국 천문 연구원에 문의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개인 취향상 생일을 음력으로 지키는 걸 고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과거의 음력 관행을 우리나라보다 더 철저하게 없앤 것으로 본인은 기억한다. 성명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도 우리나라처럼 성-이름 따위 고집하지 않고 깔끔하게 이름-성 서양 스타일을 받아들였는데..

그런데 일본은 책이나 신문에서 세로쓰기 정서법은 의외로 보수적으로 꿋꿋이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주변의 한국과 중국에서는 세로쓰기가 거의 다 사라졌는데 말이다.
중국은 일본처럼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것보다는, 공산당 시절의 적폐 청산 개혁을 거치면서 글자가 간체자로 바뀌고 가로쓰기가 시행되어 있다.

여름에 마케팅 차원에서 어김없이 따지는 복날도 음력 달력과 관계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아마 아닌 듯). 지금은 상식으로 다 알려져 있는 천제의 움직임과 절기, 달력 같은 것도 먼 옛날에 관찰만으로 최초로 알아낸 사람들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13 08:37 2018/10/1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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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취향 중에는 뭐랄까, '폐허 덕후'라는 성향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폐건물에 유난히 집착하는 거 말이다. 왜 이런 성향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나 해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철덕이 이런 성향으로 가면, 지금은 없어진 폐선로 흔적이라든가 영업이 중단된 폐역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하긴, 본인이 어렸을 때에도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완전히 철거되지 않은 흉가 폐가(?) 같은 게 있었다. 거기서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고, 나뒹구는 쓰레기 중에 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걸 줍기도 했다.
또한 그때는 건물뿐만 아니라 다 부서진 폐승용차의 잔해가 널부러진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마 사고 차량인 듯... 심지어 불에 홀랑 타고 녹슨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것도 있었다. 유독 자주색 기아 브리사 1 차량이 많았다.

그런데 저렇게 단순히 짱박혀 놀기 좋아하는 어린애들이라든가, 그저 으슥한 탈선 장소를 찾는 비행청소년들 말고..
성인이 뭔가 역덕후 지리 덕후, 또는 앞서 언급했던 철덕과 결부지어 폐허 탐방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 덕분에 특정 분야의 정보라는 게 워낙 많이 굴러다니고 널리 공유되곤 한다. 폐허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다. 어떤 장소가 처음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마이너한 곳이다가 이런 식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다. 광주 곤지암이 이런 대표적인 예에 속하지 싶다.

본인은 2000년대 중반쯤에 중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고속버스 창밖으로 나들목(IC) 이름을 통해 곤지암이라는 지명을 접한 게 최초였다. 거기는 성남에서 3번 국도를 따라 도달하기도 좋은 곳인데, 지명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그 당시에 했었다.

알고 보니 이 지명에는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신 립 장군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연이 있었다.
옛날에 고구려의 온달 장군은 전사하고 나서 관이 땅에 달라붙어서 떼어지질 않았다고 하는데(평강 공주가 해금시킴), 신 립 장군이 묻혔던 '곤지바위' 근처에서는 말이 발굽이 무슨 자석 붙듯이 붙어 버려서 움직이질 못했다고 한다..;; 설화들이 다 이런 식이다. 더 자세한 사연에 대해서 궁금한 독자께서는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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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 바로 지명의 유래가 된 '곤지바위, 곤지암'이다.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곤지암로 72 소재.)

여기는 성남이나 서울과는 산으로 가로막힌 오지였지만 훗날 경강선 철도가 생기고(곤지암역!!) 52번 고속도로까지 생기면서 이름이 전국적으로 더욱 알려지게 됐다.
원래 행정구역 명칭이 실촌읍이었는데 2011년부터는 읍 이름이 통째로 곤지암읍으로 바뀌었다. 남한산성 일대가 중부면이다가 면 이름 자체가 '남한산성면'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곤지암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단순히 지역 명물인 소머리 국밥 때문이 아니라.. '남양 정신병원'이라는 폐건물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문자 그대로 언덕 위의 하얀 집이었다.
1992년에 개업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4년 동안밖에 영업을 못 하고 1996년에 문을 닫았는데.. 기존 의사와 직원들은 딴 병원으로 이직했으며, 건물주 가족은 죽거나 미국으로 이민 가 버렸다. 하지만 건물은 제대로 철거를 못 한 채로 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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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폐건물은 단순한 폐허 덕후의 성지 수준을 넘어, 귀신의 집(haunted house) 끝판왕이요, 희대의 납량특집 공포체험 명소로 둔갑해 버렸다. (남양이 아니라 납량..ㄲㄲㄲ) 교통 불편한 굉장한 오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나간 모양이다.
이 병원의 과거 내력에 대해서도 옛날에 어느 환자가 미쳐서 자살했고 밤마다 귀신이 튀어나오고, 건물주는 저주를 받아서 어찌 됐고 하는 등, 있지도 않은 괴담들이 더해지고 뻥튀기 되었다.

그런데 매년 여름에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애들은 사유지를 무단 침입해서 혼자 곱게 구경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내부를 부수고 낙서를 하고 고성방가와 술판 등 온갖 깽판을 벌였다. 주민들에게 끼치는 민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견디다 못해 건물주까지 뒤늦게 나서서 병원 정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철조망 두르고 출입금지 경고문을 달고 CCTV를 설치했는데도.. 애들이 막무가내로 안에 들어갔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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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이걸 소재로 지난 봄에는 '곤지암'이라는 이름의 영화까지 나왔다. 세상에 저 이름이 공포 영화 제목으로 등장할 줄이야..
감독이 굉장한 좌파여서 그런지 영화 속 병원의 영업 기간을 박통의 재임 기간과 동일하게 각색을 하고, 병원 이름도 '남양'에서 '남영'으로 바꿨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의도한 작명인가 싶은데, 저건 그래도 1976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박보다는 전대갈 시절의 존재감이 더 짙다. (박통 시절 있었던 대표적인 분실은 내가 알기로 서빙고 분실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실제 정신병원 건물은 영화까지 나온 뒤에야 처분이 완료되었으며, 바로 지난 5월 말에야 뒤늦게, 허겁지겁 완전히 철거되었다고 한다. 철거되기까지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귀신의 저주 때문은 전혀 아니고, 단순히 오지에 있는 낡은 건물이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시원찮았기 때문일 뿐이었다.

병원이 있던 자리엔 평범한 주택이 지어질 거라고 한다. 공포 테마 공원 같은 거라도 만들어지길 바라는 사람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인근 주민들이 외지인들에게 이를 갈 정도로 완전 트라우마가 생겨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저기는 공포 체험을 할 만한 것들이 흔적도 없이 몽땅 사라졌으니, 외지인 없는 평온한 마을로 되돌아갈 듯하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사실은 저 영화 촬영조차도 실제 곤지암 남양 정신병원의 내부에서 하지는 못했다. 부산에 있는 다른 폐건물을 이용했음..)

폐허 얘기를 하다가 곤지암 정신병원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본인은 이 시점에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이 공포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폐건물을 찾아가는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폐허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서 왜 저렇게 깽판을 치는 걸까? 단순히 자기 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건 아닌 것 같다.

주변이 전혀 관리되지 않고 무질서한 곳이니까 여기서는 자기도 얼마든지 안심하고 무질서하게 굴어도 된다는 그런 심리가 작용한 게 아닐까?
빈민굴 슬럼가의 담벼락에 낙서나 쓰레기가 조금 생긴 걸 방치하면 얼마 안 가 다른 사람들까지 쓰레기를 왕창 버리고 낙서 천지가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하겠다.

자동차만 해도 관리 안 해서 먼지 쌓이고 녹슬고 타이어 터진 채로 오랫동안 방치되면 주변 사람들이 정신줄을 놔 버린다. 어느 시점부터는 차가 자연스럽게 망가지는 것 이상으로, "주인 없는 차네?"라는 걸 인지한 주변 사람에 의해 유리창이 깨지고 표면에 동전으로 기스가 나고 내부에 쓰레기가 쌓이고 스프레이 낙서가 찍찍 칠해지는 등... 차가 도저히 사람이 탈 수 없는 폐차가 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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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에쿠스. 아무리 고가의 고급차라도.. 주인이 차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사고 차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흉물로 전락하는 건 생각보다 금방이다.)

하긴, 어차피 쓰레기가 100개가 있는 곳에 자기가 하나쯤 더 추가해서 101개를 만들어 봤자 티가 안 날 거라고는 누구나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다. 눈덩이가 일정 규모 이상 커진 뒤부터는 그야말로 급격히 커지듯이, 무질서도가 그런 모양새로 커진다.
또한, 사회에서 제아무리 똑똑하고 멀쩡한 사람이라 해도, 한데 모아서 군복만 입혀 놓으면 완전 야비군 좀비로 퇴화(?)하는 것 역시 동일하지는 않아도 비슷한 이치일 수 있겠다.

그러니 군대에서 단순히 위생 청결 이상으로 외형적인 정리정돈과 각 잡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정신적으로 저런 빈틈과 안일함을 보이지 않고 최소한의 군기와 기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도둑만 해도 자기가 침입한 게 바로 티가 날 정도로 정리정돈이 잘 된 집은 털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이 역시 집 말고 자동차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흠집 많고 청소· 관리 상태가 시원찮은 차는 차도둑뿐만 아니라 인근의 운전자들도 만만하게 보기 쉽다.

그럼 끝으로, 곤지암 말고 다른 유명한 폐건물을 몇 군데 짚어 보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1) 서울 망우산 기슭에 있는 용마랜드는 영업을 중단한 놀이공원이다만.. 2010년대에 크레용팝 뮤직비디오 이후로 유명세를 타고 성지가 됐다. 놀이기구를 가동하지는 않지만, 안에서 산책하고 CF건 뮤비건 찍으라고 지금도 관리인이 방문객을 돈 받고 일정 시간을 입장시켜 주는 모양이다. 극장 스크린에서 내려간 영화가 다음으로 DVD로 2차 수입을 얻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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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70년대에 서울에서 지어졌던 각종 시범 아파트들은 이제 완전 흉물스러운 D급 폐가로 전락한 관계로, 차근차근 철거되었다. 노후한 외형은 둘째치고 안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후의 물건인 회현 시민 아파트만은 리모델링을 거친 뒤 역사 공간으로서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듯하다.

여기는 '서울 도심 속의 폐가' 컨셉 유명세를 타고 나니 외부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사진 찍으러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는 비록 폐가처럼 생겼을지언정 엄연히 사람이 사는 곳인데, 입주민의 입장에서는 외부인들이 자꾸 찾아오는 게 그리 기분 좋은 현상이 아닐 것이다. 사진은 귀찮아서 생략함..;;

(3) 이천시 마장면에 있던 오천 역 건물은 수려선의 폐선 이후 최후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던 역사 건물이었다. 비록 소유주와 건물 용도는 진작에 바뀌었고 그마저도 폐가 상태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지난 2015년 10월에 본인이 한번 방문하고 나서 딱 한 달 뒤에, 이 건물은 인근 지구의 재개발과 맞물려서 싹 철거돼 버렸다. 여긴 곤지암 정신병원과는 달리, 뭐 철덕 말고는 찾아올 일이 없는 마이너한 곳이기도 했다.

(4) 일본에 있는 하시마 섬, 일명 군함도도 그 동네에 사는 폐허 덕후에게는 성지나 다름없는 명소일 것이다. 저 작은 섬에 석탄이 많이 나기라도 했는지 한때는 광부들이 몇천 명이나 바글바글 몰려 살던 곳인데.. 지금은 싹 다 빠져나가고 없다. 일본에서는 배틀로얄 2 같은 영화 촬영지로나 쓰였으며, 국내에서는 일제 시대 강제 징용 노동자를 주제로 "군함도"라는 영화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저기는 안전 문제 때문에 아무나 아무 때나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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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나열한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곤지암 남양 정신병원은 재활용이고 뭐고 없이 방문자와 주민· 건물주들 사이에 마찰만 잔뜩 빚다가 철거되어 사라지게 됐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이라는 곳은 과거와 현재에 저런 특이한 내력이 담겨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27 08:35 2018/08/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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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이야기

1. 석유를 나타내는 말

세상에 기름은 돼지 기름이나 버터 같은 동물성이 있고, 씨앗을 짜서 만든 식물성이 있으며, 한편으로 신기하게도 석유 같은 광물성이 있다. 석유는 사람이 먹을 수는 없지만 연소 내지 폭발할 때의 화력이 매우 좋아서 동력과 난방용 연료로 쓰이며, 플라스틱 같은 화합물을 만들 때도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한국어에서는 석유라는 단어의 어원이 말 그대로 '돌+기름'인데, 이는 영어 petroleum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앞부분 petro- 는... 진짜 말 그대로 성경의 '베드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베드로'가 무슨 뜻인지는 교회깨나 다닌 사람에게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정말 한국식으로 치면 돌이, 돌쇠에 딱 대응하는 이름이다. 乭이라고 한국식 한자까지 있다.

성경에는 '게바'(cephas)라고 해서 베드로의 히브리/시리아 식 번역 명칭도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에서 몇 차례 나오는데, 둘 다 딱 stone이라는 뜻이다. 교회의 밑바탕을 가리키는 반석(페트라~~)보다는 개념적으로 작은 단어이며, 교회가 베드로의 위에 세워진 거라고 둘러대는 건 좀 말장난 오바이다. 아무튼..

petro 다음으로 oleum은 평범한 기름 oil이라는 뜻이고.. 그러니 petroleum은 그냥 '돌+기름'의 한자어 대신 라틴어 버전인 것이다. "일석" 이 희승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미국식 영어에서는 이 단어를 잘 안 쓰고 어지간하면 다 '가솔린'에서 유래된 gas라고 싸잡아서 말한다. 좀 더 격식을 차린 영국식 영어에서나 석유 내지 주유소를 가리킬 때 "petro-"가 붙은 말을 쓰는 편이라고 본인은 들었다.

석유 원유를 분별 증류하여 나온 다양한 기름들 중, 오리지널 원유와 제일 밑의 중유만이 시커멓다.
휘발유와 LPG, 등유는 별도의 색소가 들어가지 않은 한 완전 무색 투명하며, 경유는 약간 노리끼리하다. 엔진 오일 정도 되면 좀 갈색에 가까워진다.

2. 국내 자원 사정

우리나라는 무슨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땅에서 석유가 펑펑 나고 전국민이 세금을 안 내도 될 정도인 그런 곳은 아니다. 다만, 원유를 수입해서 종류별로 잘 정제한 석유를 다시 수출해서 외화를 벌기는 한다. 이것도 나름 첨단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해에서 천연가스와 석유를 소량 채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영토· 영해를 통틀어서 기름이 단 한 방울도 전혀 안 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산유국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민망한 양이며, 몇 군데 개척한 유전 역시 곧 고갈이 예상된다. 화력과 원자력 대비 풍력· 태양력의 전력 생산량과 비슷한 비율이다.
그러니 큰 그림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석유가 나지 않으며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지구가 적도 부분이 수십 km 남짓 더 길다고 해서 지구가 대체로 '구'인 사실은 변하지 않듯 말이다.

우리나라에 아주 많이 매장돼 있는 건 석유 대신 석탄이다. 그것도 남한 땅에 많이 있는 건 증기 기관이나 화력 발전, 제철 같은 동력· 산업용으로 적당한 역청탄· 갈탄류가 아니라 연탄으로 만들어 가늘고 길게 오래 태우기에 적합한 무연탄 위주이다. 하지만 무연탄은 난방 인프라가 가스로 바뀐 뒤에는 크게 쓸모가 없으니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석탄 채굴은 진작에 한물 간 사양 사업으로 간주되어 국가 차원에서 구조조정 됐다. 강원도 경제를 살리려고 강원랜드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끝으로.. 무연 휘발유 할 때의 '무연'은 연기(煙)가 아니라 납(鉛) 성분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석탄에서 무연탄은 진짜로 연기가 없다는 뜻이다. 석탄과 석유의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우리나라에 무연 휘발유가 처음 도입된 건 1987년 7월 1일부터이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도입된 시기(7월 6일)와 아주 비슷하다.
이때부터 새로 생산되는 차들은 무연 휘발유만 사용하게 조치가 취해졌으며, 5년 반 동안의 과도기를 거친 뒤 1993년 1월부터는 기존 유연 휘발유의 판매와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다시 말해 국내의 주유소에 "보통 휘발유/무연 휘발유"가 공존하던 시절은 딱 저 때.. 노 태우 시절과 거의 정확하게 오버랩 된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응답하라 1988에는 그 고증이 반영돼 있었나 모르겠다. 이때 휘발유 값은 리터당 5~600원 이랬지 싶다.

옛날에는 수은이 건전지와 온도계에 쓰였지만(수은주) 지금은 안전 문제 때문에 안 쓰이고.. 석면이라든가 프레온 가스도 이제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연 휘발유도 노킹 방지를 위한 '납' 성분 첨가제가 문제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3. 석유 비축 기지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근처에 있는 지금의 하늘 공원이 옛날에는 '난지도'라는 하중도였으며, 오랫동안 쓰레기 매립장 역할을 해 왔다. 그 언덕 자체가 사실은 쓰레기 산이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거기 근처에는 '매봉산'이라고 인공이 아닌 자연 언덕도 하나 있는데, 거기 기슭에는 난지도 쓰레기장이 조성된 시기와 비슷한 1970년대 중후반에 석유 비축 시설이 만들어졌다. 저 때는 오일 쇼크 때문에 국가적으로 상당한 경제 타격을 입은 상태였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석유 비축량을 더 늘려야겠다고 충분히 생각할 만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쓰레기장에다 석유 기지까지.. 저기엔 서울 최외곽으로서 민간인 출입금지 님비 시설만 골라서 들어서게 됐다. 그러다가 지금은 더 버틸 수가 없어져서 난지도는 저 멀리 김포의 수도권 매립지로 대체되고, 석유 저장고 역시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 서울 근교에 있던 군부대와 공장이 더 외곽으로 이사 가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그리고 매봉산에 있던 석유 비축 기지는 작년부터 잘 알다시피 문화 시설로 탈바꿈 중이다. 그렇게 하는 게 주변의 월드컵 경기장 내지 각종 공원들과도 잘 어울린다.

그럼 지금은 서울· 수도권 근교에 석유 기지가 전혀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서울의 동쪽 끝에 있는 아차산에서도 또 동쪽 기슭.. 행정구역상으로는 구리시에 한국 석유 공사에서 관리하는 기지가 있다. 보안 시설 기간 시설이니 지도에는 당연히 표시돼 있지 않으며, 산 속에서도 잘 숨겨져 있기 때문에 정규 등산로만 다녀서는 이런 게 있는 줄 눈치 채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조직 구조가 어찌 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 석유 공사는 옛날 유공(대한 석유 공사, 현재는 SK 에너지)과는 뿌리가 다른 공기업이다.
하긴, 학회 이름만 해도 분야가 비슷한데 "대한 ..학회"랑 "한국 ..학회"가 서로 따로 노는 경우가 있다만..

옛날엔 냉동 기술이 없었던 관계로, 여름에 얼음은 굉장히 비싼 사치품이었다. 석빙고니 동빙고· 서빙고 같은 창고를 만들어서 겨울철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얼음을 국가 차원에서 비축해서 관리해야 했다. 그리고 왕이나 외국 사신 같은 국빈 VIP가 납셨을 때에나 얼음보숭이를 만들어서 대접했을 정도였다.

그랬는데 이제 얼음은 가정집 냉동실에서도 만들고 구경할 수 있는 존재가 됐고, 얼음이 아니라 그 냉장고를 돌리는 전력 생산의 원동력(중 하나)인 석유를 국가에서 관리하게 된 셈이다.

4. 송유관

우리나라는 경제가 발전하고 자동차가 엄청 많이 보급되면서 석유의 소비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래서 그 많은 석유를 유조차만으로 수송하는 것에 한계에 부딪히자.. 사람으로 치면 지하철을 건설하는 것과 비슷한 조치가 석유를 대상으로도 취해졌다. 바로 지하 송유관 건설이다.

장거리 송유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1980년대부터 하다가 1990년에 대한 송유관 공사가 설립됐다. 지하철로 치면 마치 서울 메트로나 서울 도시철도 공사가 창립된 것처럼 말이다. 이때까지 국내에는 서산-천안처럼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단거리 송유관 몇 군데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92년 말에야 인천과 김포 공항, 인천과 고양을 잇는 '경인 송유관'이 개통했으며 1997년 8월에 서울에서 울산-여수를 잇는 '전국구 송유관' 인프라가 완공됐다고 한다.
이걸 다 만들었다고 해서 송유관 공사가 할 일이 다 끝난 건 물론 아니다. 만들어진 송유관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기름 도둑을 잡아 내는 똑똑한 기술을 개발하고, 또 외국의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15 08:37 2018/08/1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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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격투기, 스포츠, 무술, 군사의 관계

격투기라고 하면 뭔가 무술과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사이에 미묘하게 걸친 영역 같다.
프로레슬링이야 대놓고 각본대로 짜고 치는 고스톱임이 명시되어 있으니 엔터테인먼트의 비중이 강하다. 프로레슬링 선수가 무대에서는 온갖 쎈 척 허세를 부리지만 정작 길거리 싸움박질에는 약하고 털렸다는 얘기도 어디선가 본 적 있다.

복싱은 격투기 종목임이 명백하지만 무술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축구는 발만 써야 하고 손으로 공을 건드리면 반칙인 반면, 복싱은 반대로 손만으로 공격해야 하고 발을 써서는 안 되는 게 참 대조적이다.
그리고 태권도· 유도 같은 전통적인 무술들은 헐렁한 도복을 입고 맨손 맨발로 싸우는 반면, 복싱은 사각팬티 차림으로 상의는 완전히 탈의하는 대신 두툼한 글러브(장갑)를 낀다.

글러브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공격 대미지의 증가가 아니라 펀치를 맞는 상대방의 안전을 위해서 끼는 목적이 제일 크다. 물론 때리는 사람의 손의 안전도 따라오는 건 덤이고.. 맨주먹으로 시멘트 벽을 때릴 때와 글러브를 끼고 때릴 때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된다.

먼 옛날에, 지금처럼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이 발달하기 전, 볼거리 놀거리가 훨씬 적던 시절에는 바둑 같은 보드 게임이 지금보다 훨씬 더 대중적이었으며, 스포츠 중에서 복싱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옛날에 우리나라 군사 정권의 수장이던 박통, 전통 같은 사람도 경기 관람을 아주 좋아했으며, 무하마드 알리 선수가 방한했을 때는 대통령이 친히 만나러 나가기도 했다.

실화인지 허구인지는 모르겠다만, 어느 세계 챔피언급 복싱 선수가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나서 지갑에 갖고 있던 현금 몇십만 원 남짓을 순순히 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그를 인터뷰 한 사람이 "그런 양아치 정도는 그냥 한주먹에 때려눕히고 제압하면 되지, 왜 돈을 빼앗겼습니까?"라고 묻자 그 선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제가 대전료 겨우 몇십만 원 받고 싸울 수는 없잖아요?"

이거 무슨 "빌 게이츠는 길바닥에 몇만 원이 떨어져 있으면 줍지 않고 그냥 가 버릴 것이다. 돈 줍느라 손실되는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자기 일을 더 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그 액수보다 더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처럼 들린다만..
진짜 파이터는 실력이 출중할 뿐만 아니라, 자존심과 프로 의식이 있어서 사소한 일에 자기 무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여러 긍정적인 의미가 담긴 것 같다.

복싱을 넘어 무에타이나 이종/종합격투기 쪽으로 가면 주먹에 발차기를 모두 쓰고,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만을 제외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쓰러뜨리면 되는 종목으로 변모한다.

우리나라에서 수 년 전(2013~2014?), 어떤 운전자가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듯하던 경차를 만만하게 보고 뒤에서 상향등, 옆에서 끼어들기, 앞에서 급정거 등 온갖 방법으로 괴롭히고 보복 운전을 일삼았다. 결국 두 차량이 모두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운전자들끼리 현피를 뜨기 직전까지 갔는데..

귀여운 경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이종격투기 육 진수 선수였다.
경차로 다가가던 가해 운전자는 그 사람을 보고는 뒤돌아서 줄행랑을 쳤지만 육 씨가 그 사람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에게 이렇게 참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아저씨. 계속 위협운전을 하시던데 저랑 싸우고 싶으세요?
정 불만이시면 원하시는 시간 장소 잡아 주세요. 싸워 드리죠. 저는 싸우는 게 직업인 파이터이거든요?"
"...."
"제가 약한 일반 사람이었으면 지금 저 때렸을 거예요?"
"..."
"성질 부리기 전에 가족을 한번 좀 생각해 보세요. 세상엔 당신보다 더 강한 사람도 많아요. 남자가 살면서 그렇게 쉽게 완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돼요. 아시겠어요?"
"ㅠㅠㅠ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것들이 뭔가 파이터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일화의 예이다.

군사 쪽은 아무래도 기계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무인과 군인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것 같다. 풍경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는데 카메라와 그냥 인간 화가만큼이나 서로 영역이 달라져 있다.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 자체만이 목표이면 굳이 무술 수련할 필요 없이 그냥 총을 쏘면 되니까 말이다. 산을 굳이 빨리 오르고 싶으면 케이블카나 헬기 타면 되듯이..

군대에서 일말의 무술 같은 면모가 느껴지는 건 제식이나 총검술 정도밖에 안 남았다. 전혀 무관하고 쓸모 없는 건 아니지만 훌륭한 무술이나 스포츠 기술이 훌륭한 전술로 곧장 이어지지는 못한다. 전에도 여러 번 언급한 적 있지만 사격만 해도 스포츠와 군사는 관점과 목표가 완전히 다르니 말이다. 육군 중에서도 특전사 같은 쪽이라면 모를까, 해군· 공군으로 가면 무술 같은 면모를 더욱 찾을 수 없다.

요즘 훌륭한 장수, 장군은 몸보다 머리를 더 쓰는 경영의 영역으로 간다. 개별적인 신체 능력이 특출나서 위에서 시킨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를 척척 잘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부사관'이라는 전문 영역이 따로 있다. 장교는 부하들을 잘 관리하고 군사 지식을 동원하여 전략을 잘 짜고 그런 임무 자체를 똑똑하게 잘 만들어 내는 역할일 테고 말이다.

2. 경기 중의 사고로 죽은 복싱 선수

복싱 선수가 너무 격렬하게 경기를 치르다가 사고 내지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례로는 국내에서는 비교적 최근(2008)인 최 요삼 선수가 알려져 있다. 하지만 더 옛날에는 김 득구 선수(1955-1982)가 사후에 세계 공식 경기의 룰을 개정시켰을 정도로 큰 여파를 끼쳤다.

이 사람의 사망으로 인해 경기 수가 15라운드에서 12라운드로 줄었으며, 그 대신 매 라운드 사이의 휴식 시간이 60초에서 90초로 늘었다. 심판과 무관하게 각 선수 주치의의 진단만으로 경기를 전면 중단시킬 수 있는 '닥터 스톱', 그리고 굳이 바닥에 대짜로 뻗지 않고 울타리에 매달려 있어도 다운 및 KO 판정이 가능한 '스탠딩' 룰이 이때 도입된 걸로 본인은 들었다.

이 규정이 없던 과거에는.. 수세에 몰린 선수가 "맞아 죽으면 죽었지 이대로 패배를 인정할 수는 없다" 내지, 무슨 스파르타 병사처럼 "걸어서 링을 내려오거나 들것에 뉘인 채로 나오겠다" 심정으로 울타리 로프만 붙잡고 대차게 얻어터지다가 진짜 치명상 입고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저건 법적으로는 선수의 자발적인 선택이며 정신줄을 완전히 놓은 다운 상태가 아니니, 경기를 강제로 중단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득구 선수가 뇌사 판정을 거쳐서 결국 사망하자, 먼저 모친이 그 뒤를 이었다. 집이 가난해서 아들에게 복싱을 시킨 내 잘못이라면서 심하게 자책하다가 2개월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다음으로 당시의 대회 심판이 이건 선수의 컨디션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경기를 강행시킨 자기 잘못이라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나머지, 7개월쯤 뒤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상대편이었던 챔피언 레이 맨시니 선수도 역시 죄책감 때문에 선수 생활을 오래 유지를 못 하고 배우로 직업을 바꾸게 됐다.
그런데 이런 트라우마에 빠진 맨시니 선수에게 무개념 팬이나 기레기들이 "아~ 당신이 김 득구 선수를 죽인 그 유명한 복싱 챔피언이군요~" 이딴 식으로 말을 걸어서 그를 더욱 멘붕시켰다고 한다.

저 사고 때문에 여러 사람이 인생이 꼬인 셈인데.. 그래도 그 당시 아직 김득구의 부인의 배 속에 있던 아들은 다행히 잘 태어나고 잘 커서 훗날(2010년대..) 치과 의사가 됐다. 그리고 레이 맨시니를 만나기까지 해서 확실하게 화해도 했다고 한다. 애초에 고의성이 없는 불의의 사고였을 뿐이지..

우리나라가 지금이야 양궁이 올림픽 메달을 쓸어담는 종목이라 하지만, 그래도 1948년 첫 올림픽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메달을 한둘씩 꼭 챙겨 오던 효자 종목은 복싱, 유도, (+역도) 같은 격투기 분야였다. 태권도는 그 시절엔 올림픽 종목도 아닐 뿐더러, 아직 자국에서조차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논외다.

저런 종목이 가난한 여건 하에서 축구처럼 조직적인 훈련과 팀웍 없이도, 혹은 육상처럼 천부적으로 타고난 신체 조건이 없이도, 정말 최소 비용 대비 최대 효과가 날 수 있고 오로지 개인의 근성과 정신력, 깡다구가 잘 통하는 종목이어서 그런 것 같다.

3. 나머지 말들

1) 최 요삼과 김 득구 모두 외국인 선수와 경기를 치른 뒤에 숨졌다. 최 요삼의 경우 상대방 선수가 도전자였고, 김 득구는 자신이 도전자였다.

2) 복싱에서 선수가 다운돼서 심판이 카운트다운.. 아니, 카운트 업을 하는 건.. 마치 컴퓨터에서 응용 프로그램이 n초 이상 동안 GetMessage / PeekMessage를 호출하지 않아서 작업 관리자가 '응답 없음' 판정을 내리고, 고스트 윈도우를 대신 표시하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프로세스의 강제 종료는 경기의 종료를 의미할 테고..
하긴, 옛날엔 "뭘 하다가 컴퓨터가 다운돼 버렸고 꼼짝도 안 합니다. 어떡하면 좋죠?"라는 질문에 "10초 동안 세어 보세요. 그래도 컴퓨터가 안 깨어나면 당신이 KO승입니다." 이런 컴퓨터 썰렁 개그도 있긴 했다.

3) 관악기에만 마우스피스가 있는 게 아니라 복싱 선수도 얼굴에 펀치를 맞았을 때 구강의 부상을 막기 위해 입에 뭔가 깨무는 것도 있다는 걸 근래에야 알게 됐다. 실제 경기 중계가 아니라 영화에서 복싱 경기 장면을 보면서 저게 뭔가 궁금해하곤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7/21 08:36 2018/07/2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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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부록이나 표지에 넣을 만한 도표

물리학 전공 서적의 앞뒤 표지에는 각종 물리 상수들과 단위 변환표가 있다.
화학 교과서의 표지에는 당연히 원소 주기율표가 0순위로 들어가 있다.
수학 교재나 교과서의 앞뒤 표지에는 근의 공식부터 시작해서 초월이지만 초등에 속하는 주요 함수들의 미적분 패턴, 로그표와 삼각함수표, 주요 수학 상수들의 근사값 같은 게 있다.
성경은? 지도 내지 도량형 테이블, 주요 사건 연대기표가 들어갈 만하다.

다음으로 언어 쪽으로 가면.. 옥편(한자 자전)의 표지에는 당연히 부수 테이블이 있다.
일본어 관련 사전은 글자 테이블부터 들어가야 할 것이다.
(사실, 원자의 합성 원리하고 한자의 합자 원리에 묘하게 유사점이 보이는 듯하다.)

영한사전은 당장 종이 사전을 갖고 있지 않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의 주요 차이점 나열이 들어갈 만하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영문법 용어 해설서의 키워드 목차가 있더라. 그리고 학생용의 좀 얇고 쉬운 사전이라면 불규칙 동사의 과거/과거분사 테이블이 있었다.

그럼 국어사전이라면..? 외국인이 한글로 쓰여진 한국어 텍스트를 읽다가 모르는 단어는 곧장 사전을 찾을 수 있도록.. (1) 격조사· 보조사의 전체 리스트, 그리고 (2) 각종 용언의 불규칙 활용형으로부터 사전에 등재되는 어간 형태를 유추하는 것을 돕는 규칙 테이블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이런 힌트 없이 '들으면'이라는 어절로부터 '들다'(lift?)뿐만 아니라 '듣다'(hear/listen)라는 뜬금없는 동사를 외국인이 어떻게 유추하겠으며, '더워'로부터 '덥다'를 어떻게 유추하겠는가?

2. 둘 중 한 기준

좌우, 전후, 상하, 흑백 같은 이분법적인 체계에서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딱 지칭하기가 어려워서 사람마다 의미가 통일되지 않고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을 이렇게 써 놓으면 어려운데.. 쉽게 말해서 "얼룩말은 흰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나, 아니면 검은 바탕에 흰 무늬가 있는 건가?" 같은 거 말이다. 회전하는 방향의 경우 아예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으로 기준이 통일돼 있으며, 3차원 좌표계에서는 손가락 방향을 기준으로 삼아서 하나를 왼손 좌표계, 다른 하나는 오른손 좌표계라고 부른다.

본인은 전화기의 숫자 버튼은 1 2 3이 위에 있지만 계산기의 숫자 버튼은 1 2 3이 아래에 있는 걸 지금까지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개발 작업을 하면서 이를 깨닫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놀랐다. 하긴, 컴퓨터 키패드도 계산기 형태로 돼 있다.

마우스 휠을 위로 굴렸을 때 텍스트도 위쪽 앞부분으로 스크롤할 것인가, 아니면 손으로 종이를 위로 밀친 것처럼 아래로 스크롤할 것인가?
up-down 컨트롤은 위쪽 삼각형을 눌렀을 때 숫자를 감소시킬 것인가, 증가시킬 것인가?
텍스트 앞과 뒤는 cursor의 왼쪽-오른쪽에 대응하나, 아니면 오른쪽-왼쪽에 대응하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전글/다음글' 앞 뒤는 더 먼저 올라온 글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비트 배열 순서 endian 같은 문제가 컴퓨터 아키텍처뿐만 아니라 UI와 사람의 인지 구조에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결국은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옵션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3. 대충 따지는 것과 정확하게 따지는 것

평소에는 근사값을 적당히 뭉뚱그려서 표현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1자리까지 정확하게 숫자를 따져서 계산해야 하기도 하는 분야가 몇 군데 있다.
먼저 연대기를 생각해 보자. 지금으로부터 수백, 수천만 년 전의 지질 시대를 나타낼 때야 기준이 1950년이건 2010년이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다루는 시기가 불과 수천 년 전의 인류의 역사 시대에 근접한다면 정확한 기준이 필요해진다.

그런데 사실은 인간의 달력도 지금과 같은 그레고리력이 정착한 건 불과 몇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율리우스력은 4년 주기로 윤년이 들어갔지만, 그레고리력은 4의 배수 연도이더라도 400의 배수가 아니면서 100의 배수인 해는 평년이 되도록 보정을 한 것이다. 도중에 달력을 정리하느라 특정 기간의 날짜가 삭제되어 말 그대로 흑역사 처리되기도 했다.

서기 연대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삼았다고는 하지만 예수의 실제 탄생 연도는 BC 4 정도로 더 오래됐다는 연구도 있다.
또한, AD 1년의 이전은 BC 1년이다. 0년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건물의 지상· 지하 층수와 비슷한 개념이다. 수천~수만 년의 기간을 다룰 때에야 0년이 있냐 없냐는 무시해도 아무 상관 없는 차이에 불과하겠지만, 1년 단위로 정밀하게 고대사 연대기를 논할 때는 이런 함정을 놓쳐서는 안 된다.

비슷한 혼란이 컴퓨터에도 존재한다.
잘 알다시피 사람은 10진법을 쓰지만 컴퓨터는 2진법이 친숙하다. 그래서 메모리나 디스크의 용량을 나타낼 때 사람은 1000 단위로 킬로· 메가 같은 단위 접두사를 얹어서 썼지만, 컴퓨터에서는 1000과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값인 2의 10승, 즉, 1024 단위로 단위 접두사를 만들어 썼다.

그런데 이게 겨우 수십 KB, 수십 MB 이러던 시절에는 별 문제 없었는데, 수백 MB~수십 기가바이트급부터는 오차가 무시 못 할 수준이 된다. n이 무한대로 갈 때 1000^n / 1024^n의 극한이 0으로 수렴한다는 건 고등학교 수학 수준으로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가령 램 용량이 16GB라고 하면 사용자는 1024 기준으로 생각하는데 컴퓨터 제조업자에서는 1000 기준으로 판매해서 이로 인한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 대세는 1000 기준인 KB/MB/GB와, 1024 기준인 KiB/MiB/GiB를 구분해서 표기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별 구분 없이 생각 없이 쓰다가 지금은 구분이 필요해진 것이다.
Windows의 경우 전반적으로 굳이 i를 써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도스 시절의 레거시를 간직한 유구한 운영체제답게 내부적으로 1024 단위를 쓰는 것 같다. 그런데 1000이 아닌 1024 단위로 소수점은 어찌 표현하나 모르겠다("5.8GB 남음"처럼..). 일반적인 부동소수점을 쓰지는 않을 테고 소수점에 해당하는 작은 자리수의 정수 연산을 따로 하는 듯하다.

우리가 평소에는 질량과 중력도 별로 구분을 안 해서 킬로그램(kg)과 킬로그램중-힘(kgf)을 별 구분 없이 섞어 쓰는데, 1000과 1024 구분도 이런 것과 비슷한 관행인지 모르겠다. 이 정도야 인간이 중력 가속도가 다른 여러 행성을 수시로 드나드는 우주 시대라도 도래하지 않는 한, 호락호락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4. 규모와 비선형적으로 비례하는 가격

자동차 보험의 대물 보상 스펙을 보면 보상 한도가 겨우 몇천만 원에서 1억~2억을 거쳐서 10억까지 올라가는 것도 있다. 외제차와 사고 나도 집안 뿌리 뽑히지 않게 대비하려면 기본은 억대 이상으로 들어야 한다고 그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험료와 보상 한도가 정비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3천만 원짜리 보장과 10억짜리 보장은 단돈 몇만 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거의 로그나 그에 준하는 급으로 천천히 증가하는 것에 가깝다.

보험사가 실제로 10억씩이나 몽땅 물어줘야 할 일은 매우, 극히 드물게 발생하기 때문에 확률 통계상 원가를 산출해 보니 그런 견적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금융 수학의 신비로운 면모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무보험 뺑소니 자가 보상은 1년 보험료가 몇천 원밖에 안 되는데 1억까지 보상되기도 한다. 대다수 일반인에게 평생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희소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에 반해 평범한 대물 보상은 늘 발생하는 사건인 관계로, 그런 사기적인 비율이 보장되지 않는다.

보험료뿐만 아니라 휴대전화의 데이터 정액 요금제도 이와 비슷한 모델을 반대 방향으로 따르는 것 같다.
월 2GB부터 시작해서 5, 10, 25GB 같은 단위가 있고 나중에는 무제한까지 간다. 요금은 용량이 올라갈수록 비싸지지만 이 역시 당연히 정비례가 아니다. 최저 데이터 용량보다 두세 배가량 비싸지지만 그래도 보장되는 데이터가 훨씬 더 많아진다. 이런 공식도 폰 이용자들의 행동 패턴과 전체 통신 시스템 유지비를 총체적으로 따져서 회사의 입장에서 최대 이윤이 나오게 정말 치밀하게 산출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 자신에게 적절한 요금제를 선택할 필요가 있는데, 자동차 보험료고 폰 요금이고 할 것 없이 너무 복잡하고 골치 아프긴 하다. 자본주의 시대에 이 정도 복잡함은 피할 수 없이 감내해야 할 듯하다.

5. 기타 일상에서 보고 들으며 느낀 것들 메모

(1) 아파트 모델하우스 같은 곳을 가서 무슨 아파트의 24평형, 30평형 같은 면적 차이를 보면.. 자동차로 치면 2000cc, 2400cc 이런 배기량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2) 고깃집 중에서 어떤 곳은 의자가 평범한 의자가 아닌 원통 드럼(?) 모양이고, 드럼 뚜껑을 열어서 그 안에다가 손님의 옷이나 가방을 집어넣는 형태인 게 있다. 등받이가 없어서 약간 불편하지만 이건 꽤 괜찮은 디자인인 것 같다.
사람들의 소지품이 노출된 게 없고 깔끔한 게 마치 도시로 치면 지중화가 돼서 길거리에 전봇대와 전선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지중화를 하고 안 하고는 역사가 오래된 서울 시내 돌아다니다가 일산 내지 분당 가 보면 차이를 바로 느낄 수 있다.

(3) '콩고기'라는 게 있다. 비록 진짜 쇠고기· 돼지고기 같은 식감(특히 비계 부분!)을 재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저렴한 원가로 적당히 쫄깃한 단백질 맛을 내기 때문에 라면의 건더기 스프에도 들어가고 여기저기 쓸모가 있다.
이게 자동차로 치면 석탄으로 만든 석유라든가 세녹스 같은 휘발유 대체 연료가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4) 직불· 체크카드는 피처폰, 신용카드는 스마트폰에 대응하는 것 같다. 후자가 기능이 더 많고, 자꾸 장만하거나 교체하라는 귀찮은 전화가 오는 게 신세가 서로 비슷하다.
자동차, 폰, 통장은 '대포'라는 접두사가 붙어서 명의와 실사용자가 다른 물건이 엄격한 단속 대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5) 그리고 자동차와 전화기는 '긴급'이라는 접두사가 붙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긴급자동차는 교통 법규를 어느 정도 무시하면서 빨리 가도 되는 특혜가 있고, 112 119 같은 긴급 통화는 누구나 어느 전화기로든 무료로 즉시 할 수 있다.
한편, 자동차와 총은 동작을 위해 폭발이 수반되며, 사용을 위해 사람에게는 면허, 물건에는 등록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6) 옛날에 브라운관 모니터는 화면 크기에 비해 부피가 매우 크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옛날의 도트 프린터는 인쇄 속도가 느리고 무엇보다도 엄청나게 시끄럽다는 단점이 있었다. 옛날에 쓰였던 컴퓨터의 출력 장치로서 분야는 다르지만 단점이 뭔가 그 시절을 풍미하는 독특함이 느껴진다.

(7) 대부분의 동물들은 노랑 계열, 회색 계열, 갈색 계열 같은 고유한 색깔이 있는 편인데, 색깔이 꽤 다양하고 컬러풀하다는 평판이 있는 품종은.. 앵무새와 카멜레온 같다.
그러니 컬러 프린터, 모니터, 카메라, 스캐너 같은 물건의 광고에는 화면이나 인쇄 결과물에 꼭 이런 동물이 들어가는 것 같다.

(8) 세상에는 1 - NEW - 2의 관계인 것들이 몇 가지 보인다.

  • 펜티엄 - 펜티엄 프로 - 펜티엄 2
  • 쏘나타 - 뉴 쏘나타 - 쏘나타 2
  • 인천 공항 여객 터미널 - 확장 탑승동 - 제2 여객 터미널..;;

Posted by 사무엘

2018/07/18 08:29 2018/07/1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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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라는 그룹이 부른 <칵테일 사랑>은 1994년 즈음에 국내 가요계에서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쳤던 명곡이다.
그때 본인은 초딩이었다. 신세대 X세대 이러고 있었고 PC 통신이 아직 활발하게 돌아갔으며, 개인용 PC는 486이다 펜티엄이다 멀티미디어다 이러던 시절이었다.

칵테일 사랑은 몽환적인 반주와 적당히 아름다운 멜로디, 서정적인 가사, 그리고 뭔가 하늘의 목소리 같은 노랫소리가 어우러져서 가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 당시 음반에는 동일곡의 아카펠라 버전도 수록돼 있었다. 마치 붉은국과 맑은국, 후라이드와 양념 차이 같은데, 반주를 뺀 노래 음원에서는 '~팝 ~팝 ~드드드 두두' 이러는 비트박스(?)도 더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명곡을 만들어 냈으니 음반이 몇 장 팔리고 요즘 같으면 유튜브 조횟수가 얼마가 나오고, 작사· 작곡자와 가수는 떼돈을 벌기라도 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그런 소식은 별로 들리는 게 없다. 그룹 마로니에와 가요 칵테일 사랑은 관계자들이 얽힌 내력이 참 복잡하기 그지없다.

마로니에는 멤버들의 세대 교체가 잦았다. 칵테일 사랑은 초창기 창립 멤버들의 작품으로, 김 선민 작사· 작곡이고 최 선원· 신 윤미 노래이다. 우리가 아는 원곡의 녹음은 1993년 초에 행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곡이 훗날 이 정도로 대히트를 칠 줄은 노래를 만든 사람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녹음을 마친 뒤 가수 구성원이 공중분해돼 버렸다. 최 선원은 소속사를 변경하고 떠났으며, 신 윤미는 더 큰 물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며 미국으로 유학도 아니고 아예 이민을 떠났다.

그러니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인 김 선민은 다른 멤버를 뽑아서 칵테일 사랑의 얼굴마담 역할을 시켰다. 백 종우(남성)와 김 민경· 김 정은(여성). 이 트리오가 TV 출연도 하고 뮤직비디오 녹화도 했다.
곡의 퀄리티에 비해 굉장히 뜬금없고 촌스러운 티가 나는 그 동해 바닷가 뮤비 말이다. 그냥 가사 내용대로 그대로 길거리와 카페를 배경으로 넣기만 해도 저것보다는 나은 작품이 나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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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영상에서 유난히 예쁜 미인이다 싶은 사람이 김 민경이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CF 모델 출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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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람이 바뀌었는데, 여기서 마로니에는 도덕적으로 좀 지탄 받을 짓을 했다.
립싱크야 아직 그때까지는 관행이었고 신규 대체 멤버들 역시 실력이 전혀 없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음반의 노래와 얼굴마담들 라이브가 퀄리티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리고 출처 명시 없이 기존 신 윤미의 결말부 코러스 부분까지도 막 도용해서 내보냈다. 조가 G에서 Ab로 올라가고 "마음~ 울적할 때에~~ 거리를 걸어 보고 취해도 보고~~ 우우우~ 으아아아~~" 그 클라이막스 말이다.
그러니 진짜 가수인 최 선원· 신 윤미가 자기 정체를 다시 밝히고 저작권 소송을 걸어서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룹 마로니에는 '칵테일 사랑'만을 남긴 채, 큰 주목을 못 받으면서 대중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6~07년쯤엔.. 마로니에의 초창기 멤버들은 어찌 됐는지 모르겠고, 백 종우(마로)가 한 타이밍 더 나중에 들어왔던 여성 멤버인 김 지영(파라)를 주축으로 해서 '마로니에 걸즈'라는 여성 듀엣 그룹을 결성했다. 백 종우는 기획· 프로듀싱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다른 여성 가수를 하나 더 충원해서 말이다.

그리고 2011년, 마로와 파라는 오랜 교제 끝에 결혼했다. 칵테일 사랑을 리메이크 해서는 부부가 같이 종종 매스컴에 출연해서 불렀는가 보다. 보기 좋은 커플이긴 하지만 이와 별개로, 리메이크한 곡이 원곡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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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 윤미 씨도 미국 간 지 10수 년 만이던 2005년,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자기가 직접 칵테일 사랑을 다시 부른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도 원판 목소리가 어딜 가지는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결말부의 힘찬 코러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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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여곡절로 인해, 칵테일 사랑은 처음 노래를 부른 여자, 원곡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여자, 그리고 지금 마로니에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룹의 여자 멤버가 모두 다른 인물인 노래가 됐다. 근본적으로는 오리지날 가수가 노래에 대한 권리를 확실하게 챙기지 않고 일찍 잠적해 버려서 벌어진 해프닝이라 하겠다. 그랬는데 곡이 너무 대박을 쳐 버리고, 이게 아직 국내 가요계의 후진적인 관행이던 저작권 의식이나 립싱크하고도 얽혀서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칵테일 사랑과 비슷한 시기에(1993~94) 히트 쳤던 국산 명작 게임인 미리내 소프트 "그 날이 오면 3"이 20년 뒤에 "드래곤 포스"라는 모바일 게임으로 리메이크된 걸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아울러, 드라마 모래시계라든가 더 클래식 '마법의 성'도 비슷한 시기에 히트 쳤던 작품들이며 추억거리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9 19:35 2018/06/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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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

1970년대 중반, MS-DOS의 전신격인 CP/M 때부터 있었던 완전 초창기 실행 파일 포맷이다. 고안자는 개리 킬달.
엄밀히 말해, 얘는 파일 포맷이라 할 것도 없는 쌩 메모리 이미지 덤프였다. 그 어떤 고유한 헤더나 메타데이터도 없이 그냥 곧장 기계어 코드와 데이터가 쭉 이어질 뿐이었다. 코드와 데이터는 모두 64KB 단일 세그먼트에 묶여 있었고, 메모리 주소의 첫 256바이트는 시스템 용도로 예약되어 있어서 프로그램이 사용할 수 없었다.

확장자가 com인 실행 파일은 그냥 명령 프롬프트에서 돌아가는 간단한 유틸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겨우 몇만 바이트 남짓한 com 형태로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되는 게임도 많이 나왔었다. 그래픽이라고 해 봤자 320*200 4색 CGA 수준이긴 했지만.. Alley Cat처럼 말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컴퓨터의 대세가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고 성능과 메모리 용량이 향상되자, 이 형식은 큰 프로그램을 만들기에는 너무 비좁아졌다. 그래서 확장할 필요가 생겼다.

2. MZ EXE

1983년, MS-DOS 2.0에서 최초로 도입됐다. 그 전의 1.0은 파일 시스템에 서브디렉터리라는 게 지원되지 않았으며 실행 파일도 아직 COM밖에 없었다.
EXE는 단일이 아닌 다중 세그먼트(특히 코드 영역과 데이터 영역의 분리)를 도입하여 64KB 공간 한계를 얼추 극복했다. 메모리 모델이니, far near 포인터니 뭐니 하면서 일이 굉장히 복잡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또한, 멀티태스킹 환경에 대비해서 재배치 정보도 도입했다. 이제 좀 운영체제에서 파일을 있는 그대로 메모리에 올리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가공과 상대 주소 보정을 하는 loader가 필요해졌다.

오늘날 모든 EXE들은 앞부분에 MZ라는 문자로 시작하는 간단한 헤더를 갖추고 있다. MZ는 EXE 파일 포맷의 설계자인 당시 마소의 프로그래머 Mark Zbikowski의 이니셜이다! zip 압축 파일의 식별자인 PK (개발자 필립 카츠)만큼이나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파일 포맷 식별자 이니셜일 것이다. MZ 저분은 미국 토박이라고 하지만, 이름으로 보아하니 러시아 계열 이민자의 후손인 듯하다.

비록 도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Windows용 실행 파일들은 지금까지도 과거 호환을 위해서 앞부분에 최소한의 MZ EXE 헤더 껍데기는 넣어 놓는 게 관행이 돼 있다.
한편, 32비트 이후부터는 프로그램들이 옛날처럼 다시 단일 세그먼트 기반 flat 모델로 돌아갔다. 단지, 그 세그먼트의 이론적 최대 크기가 꼴랑 64KB이던 것이 4GB로 왕창 커졌을 뿐이다.

3. NE (new)

1985년에 발표된 Windows 1.0과 함께 등장한 포맷이다. 도스와는 다른 방식의 API 호출, exe와 dll의 구분, 표준화된 리소스와 버전 정보 데이터, 함수의 import와 export 내역처럼 도스용 exe에는 없던 추가적인 정보가 많이 필요해진 관계로 새로운 실행 파일 포맷을 또 제정한 것으로 보인다. 단, 맨 앞부분은 그냥 도스 EXE처럼 시작하고, 새로운 방식은 다른 오프셋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NE 다음의 PE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NE는 Windows뿐만 아니라 마소에서 1986년경에 잠시 만들다 말았던 일명 '멀티태스킹 MS-DOS 4.0'(일반적인 그 MS-DOS 4.0 말고)용 실행 파일 포맷으로도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스는 텍스트 기반 환경이지만 Windows는 GUI 환경이고, 16비트 Windows에는 딱히 콘솔(명령 프롬프트)이라는 서브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바이너리 수준에서의 파일 포맷만 일치할 뿐, 양 플랫폼의 실행 파일을 딴 데서 원활하게 실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Windows 1.x부터 3.x까지 16비트 시절에 실행 파일 포맷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단, 2에서 3으로 넘어가던 시절에는 Windows에 386 확장 모드라는 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종전의 리얼(real) 모드뿐만 아니라 보호(protected) 모드에서도 잘 실행된다는 보증 플래그가 추가되었다. 평범한 Windows API만 쓴 프로그램이 여기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말이다.

1980년대 왕창 옛날에 만들어졌던 일부 Windows용 프로그램들은 95뿐만 아니라 3.x에서 실행해도 "구버전용임. 여기서도 일단 실행은 되지만 케바케이기 때문에 온전하고 정상적인 동작을 기대할 수 없음. 최신 버전을 구해서 쓰셈.." 이런 주의 메시지가 뜨는 게 있었는데, 바로 이 플래그가 없이 옛날 방식대로 빌드된 프로그램이어서 그렇다.
특히 대화상자가 캡션(제목 표시줄)이 없이 표시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옛날 냄새가 풀풀 난다. 캡션은 popup 윈도우가 아닌 overlapped 윈도우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NE 방식의 실행 파일에는 각종 코드와 데이터, 리소스들이 resident, non-resident, discardable 이런 식으로 속성 구분이 있었다. 컴퓨터에 메모리는 왕창 부족한데, CPU와 운영체제 차원에서의 가상 메모리 지원이 없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 멀티태스킹을 구현하려다 보니, 돌아가는 방식이 가난함과 처절함 그 자체였다.
읽어들인 데이터는 언제든지 주소가 재배치되거나(단편화를 막고 연속된 많은 영역의 메모리를 확보할 수 있게), 삭제되어서 디스크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반드시 메모리에 언제나 불러들여 놓는 데이터는 성능 차원에서 정말 중요한 것에만 한해서 지정해야 했다.

4. PE (portable)

1993년에 등장한 Windows NT 3.1에서 첫 도입된 또 다른 새로운 실행 파일이다. AT&T에서 오래 전에 개발한 COFF라는 오브젝트/라이브러리 파일 포맷의 연장선상에 있다. 아마 Windows NT 개발진의 출신 배경이 그쪽 계열 연구소여서 이런 포맷에 친숙하지 않았나 싶다. 덕분에 마소에서 개발하는 개발툴들은 16비트 시절에는 obj/lib의 포맷으로 인텔에서 개발한 OMF 방식을 썼지만 32비트부터 COFF로 갈아탔다. 그리고 exe/dll을 로딩하는 방식도 쿨하게 memory mapped file 방식으로 바꿨다.

PE는 현대적인 32비트 가상 메모리 환경에 맞춰졌기 때문에, 16비트 NE처럼 수동 메모리 관리를 염두에 둔 지저분한 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그먼트 대신에 코드, 데이터, 리소스 등의 용도별 섹션이 있고, 이들 섹션은 간단한 문자열 태그로 구분하기 때문에 섹션의 추후 확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헤더에 CPU 식별자도 넣어서 굳이 x86뿐만 아니라 다른 CPU 아키텍처의 실행 파일도 이 방식으로 기술 가능하게 했다.

훗날 64비트 CPU가 등장하면서, 아니 정확히는 1990년대 말에 IA64의 출시를 염두에 두고 PE의 기본 틀은 동일한데 메모리 주소나 몇몇 size 필드만 4바이트에서 8바이트로 확장된 일명 PE+ 규격이 나왔다. 그래도 기존 32비트에서도 얘를 알아보고 최소한 "에러 메시지+실행 거부" 정도의 대처는 할 수 있다.
리소스는 64비트도 32비트와 바이너리 차원에서 포맷이 완전히 동일하다. 이게 무슨 기계어 코드도 아닌데 필드 크기가 굳이 64비트 크기로 확장됐다거나 한 건 없다. 문자열이 유니코드 기반으로 바뀌었으니 16비트 방식과는 호환되지 않지만 32와 64비트끼리는 호환된다.

오늘날은 재래식 네이티브 코드뿐만 아니라 닷넷 기반(가상 머신), 그리고 UWP용(일명 metro) 앱 같은 것도 나왔지만, 이들도 실행 파일들의 기본 골격은 PE로 동일하다. 그 안에서 읽어들이는 시스템 DLL과 구동 방식이 서로 차이가 날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7 08:36 2018/06/1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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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 연주와 자동차 운전의 관계

페르마타(늘임표)는 자동차 주행 중에 만나는 과속방지턱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자동차 주행을 음악 연주에다 비유하는 건 심상 면에서 의외로 그럴싸하다. 그래서 음악 연주에다 빗댄 자동차 CF가 있고, 우리나라엔 아예 '쏘나타'라는 이름의 자동차도 있다.

2. 작곡과 편곡의 관계

작곡과 편곡의 관계는 군용기에서 공중전과 폭격의 차이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에서 새로운 주선율을 만들어 내는 건 가장 화려하고 창의적인 활동이며, 이는 비행기로 치면 기동력이 가장 뛰어나고 제일 뽀대 나며, 공중전을 벌여서 적군의 군용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전투기와도 같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전과를 가장 많이 세운 비행기는 우월한 기동성으로 육군과 해군을 지원하여 지상의 목표물을 없애 주는 폭격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선율을 실제로 풍성한 반주가 곁들어진 음악으로 만들어 주는 작업은 뼈대에다 살을 붙이는 편곡이다.
오늘날은 공중전과 폭격이 모두 가능한 전폭기가 대세이듯, 음악계에도 혼자 작곡· 편곡에 심지어 가사까지 직접 쓰는 만능 싱어송라이터도 있긴 하다.

3. 화음과 합창 파트

본인은 음악에서 박자보다 화음· 화성에 더 끌리는 편이다. 높이가 다른 음들에 대해서 마치 서로 다른 색깔을 보듯이 일종의 공감각적인 심상을 느낀다. 단선 악보 노래만 부르다가 화음을 넣어서 합창을 부르면.. 마치 흑백 영화를 보다가 컬러 영화로 바뀐 듯한 느낌이다. 사실, 각 파트별로 연습을 하는 게 사진 촬영으로 치면 R, G, B 각 색깔축을 제각기 현상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교회에서 성가대 찬양 같은 거 연습할 때 파트 연습은 힘들고 어렵고 시간도 더 많이 걸린다. 하지만 제대로 부르면 훨씬 더 아름다운 노래가 나오기 때문에 힘들게 연습한 보람이 있다. 또한, 합창뿐만 아니라 돌림노래 같은 부류도 좋다.

합창은 보통 여자+고/저, 남자+고/저 이렇게 네 파트로 나뉘는데, 그 중 '남자+고'에 해당하는 테너 파트가 내 경험상 제일 어렵다.
소프라노는 그 노래의 주선율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쉽고 친숙하다. 알토는 조금 연습이 필요하지만 음역이 낮아서 부담 없으며, 소프라노의 협화음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음을 내기 쉽다. 베이스는 음역이 제일 낮으며, 그 멜로디도 굉장히 단순한 경우가 많다.

그 반면, 테너는 보통 여성 파트와 관계 없는 생소한 멜로디 위주인 데다 음역도 아주 높다. 조심해서 부르지 않으면 삑사리가 난다. 교회에서 합창 연습을 하면서 평소에 테너만 부르다가 다른 파트를 도와주기 위해서 파트를 옮겨 봤더니 거기는 부르기가 이렇게 쉬운 줄 몰랐다.

테너로도 모자라서 카운터테너는.. 뭐 높은솔 이상으로 올라가고 남자 성대로 거의 여자 음역을 내는 파트이니.. 타고난 성대나 특수한 테크닉을 구비하지 않으면 감당 불가능일 것이다. 접두사 'counter-'는 거의 'anti-, against'와 비슷한 뜻인데 테너의 반대가 아닌 테너의 강화를 나타내는 음역 이름에 붙었는지 모르겠다.

4. 음고 (또는 음정)

본인은 앞서 언급한 저런 취향과 배경으로 인해, 어떤 곡이나 노래를 배웠으면(특히 교회 찬송가) 들었던 그대로 기계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음높이로 부르는 걸 좋아한다. 악기 없이도 첫음이 정확하게 기억돼 있기 때문에 반주가 있건 없건 쌩목으로도 동일한 음고가 나온다. 이런 데에 좀 쓸데없는 집착 같은 게 있다.
화가로 치면 무슨 고전파처럼 걸어다니는 사진기를 추구하고, 음악으로 치면 걸어다니는 녹음기를 추구한다.

그런데 음반의 곡은 음역이 전문 가수에게 맞춰져서 그런지 일반인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나>(송 명희 작사, 최 덕신 작곡) 같은 경우 음반의 오리지널 C장조로 그대로 부르면 결말부에서 음이 무려 높은솔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찬양집 악보를 보면 조를 A장조 정도로 낮춰 놓곤 한다.

비록 회중의 편의를 위해서 조를 옮긴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마음에 안 든다. 비록 같은 곡이긴 하지만 조가 바뀌면 느낌이 싹 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흥, 감동, 여운이 C장조를 기준으로 다 형성되고 머리에 박혔는데, 곡을 다른 조로 부르면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

조가 달라지면 같은 곡도 느낌이 확 달라지기 때문에 내가 Looking for you를 들을 때도 mp3 음원을 구한 뒤부터는 사운드 에디터를 돌려서 얘를 단2도부터 장7도에 이르기까지 반음계의 모든 음역으로 조를 달리하면서 다 들어 봤다. Looking for you를 3천 번 들으면서 조를 바꾸고, 템포를 바꾸고 가장 비슷한 악기를 찾아보고 멜로디를 채보하고..

이 음악으로부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느낌을 그냥 뼛속까지 다, 금이빨만 빼고 모조리 씹어먹고 소화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모가 형 증기 기관차부터 KTX, 경인선에서부터 경부고속선에 이르기까지 철도 덕후로 머리 구조가 개조되어 갔다..
철도청이 사람을 완전히 버려 놨다. Looking for you라는 곡은 어설프게 내보내는 철도청 CF 10편, 이미지 광고 100편도 배출하지 못한 평생 매니아 고객, 철도교 신자를 만들었다.

5. 이조악기

본인은 오로지 Looking for you 때문에 팔자에도 없던 색소폰을 악기를 직접 구입해서 배워 보기까지 했다. 새마을호 음악이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내가 피아노 다음으로 접하는 제2군 악기는 플룻이나 기타 같은 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기타는 주선율 연주가 아니라 코드 반주용으로 워낙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기 때문이요, 플룻은 소리가 예쁘고 교회에서 찬송가 특송 보조용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2군을 넘어 3군으로 가면 클라리넷, 오보에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다. 철도가 아니었으면 색소폰도 3군에 속했을 것이다. 그것도 알토보다는 소프라노 색소폰 말이다.
이거 무슨 외국어 같다. 피아노는 영어 같은 악기이고, 2군 3군은 중국어나 스페인어, 일본어 같은 제2 제3 외국어에 해당되겠다. 바이올린은 좀 여성형 악기인 것 같아서 제낀다.

모든 악기들이 그렇겠지만 색소폰은 도대체 어떤 유체역학적인 원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걸까? 황동으로 된 커다란 몸체뿐만 아니라 마우스피스, 그리고 나무로 된 reed가 어떤 상호작용을 해서 소리가 나는지.. 어찌 보면 금속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만큼이나 신기하게 느껴진다. 옛날에는 이런 악기나 열쇠· 자물쇠를 만드는 장인의 기술이 요즘의 자동차 반도체 기술 같은 최첨단 하이 테크놀러지였을 것이다.

소리가 멋있긴 하지만 알토 색소폰 정도 되면 악기가 꽤 크고 무겁다. 그리고 불었을 때 소리가 피아노 이상으로 꽤 큰지라, 아파트에서 연습하기가 좀 부담되기도 한다.
저음을 제대로 내기가 어려운 건 초· 중딩 때 학교에서 배웠던 리코더와도 비슷하다. side effect 없이 옥타브를 위 아래로 오르내리는 것도 좀 어려운 축에 든다.

이 외에도, 본인은 색소폰을 처음 배우던 시절에, 얘는(알토 기준) 기준조가 C가 아니라는 걸 알고서 굉장히 놀랐었다. "아니 사람 헷갈리게 왜! 도대체 왜 악기를 그딴 식으로 만들지? 무슨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헐.. 색소폰이 이조악기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으면 내가 덥석 색소폰을 사고 배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내는 음과 실제로 악기에서 들리는 음이 서로 다르니, 굉장한 연상거부와 불편함이 야기된다. 그래서 색소폰으로는 아무 악보나 덥석 내가 원하는 조로 연주하지 못하며, 미리 전조를 머릿속이나 종이에다 해 놔야 된다. 가령, Looking for you를 들은 대로 그대로 불려면 오리지널 F조가 아니라 D조로 전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은 이조악기가 색소폰만 있는 건 아니다. 트럼펫은 기준조가 Bb(플랫)이라고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 장성 경례곡, 그리고 결정적으로 군대 기상 멜로디가 왜 전부 Bb조인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6. 아리랑 멜로디가 붙은 영어 찬송가

한국인 중에 '아리랑'이라는 민요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어느 장로교 교단에서 1990년대에 '아리랑' 멜로디에다가 가사를 써서 Christ, you are the fullness (of God)라는 찬송가를 만들어 수록했다.

이 사실이 내 기억이 맞다면 2000년대 이후에 어느 SBS 다큐멘터리의 소개를 통해서 국내에도 알려졌다. 백인 코쟁이들이 "오 아리랑이 멜로디가 너무 아름다워요(찬송가용으로)! 원더풀!" 이러는 인터뷰가 실렸다. 심지어 그 영어 가사가 한국어로 역번역되어 일명 아리랑 찬송가로 수입되기까지 했다.

뭐, 한국 민요가 외국의 찬송가에 실렸다니 좋은 일이다. 막 "한민족은 우수한 민족이라는!" 국뽕에 취할 필요도 없고, "그게 뭐 대수라고" 식으로 너무 시니컬하게만 볼 필요도 없다.
사실, 특정 민족의 민요 멜로디가 찬송가 가사에 붙는 건 흔한 일이다. 또한 극단적인 예로,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는 군가 정도가 아니라 "존 브라운의 시체"라고 찬송가와는 1도 관계 없는 노래의 멜로디에서 유래되었으며, 우리말 가사조차도 출처 불명의 창작이지 정확한 번역을 통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미국 본토에서 저 찬송 부르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으면 링크를 소개하려 했는데, 전부 국내에서 "미국에 아리랑 찬송가가 있대!"라고 소개하거나 가사를 역번역해서 부른 것밖에 안 뜬다. 그래서 링크 소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찬송가에다가 국악 스타일을 접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서양식 7음계가 좋다. =_=;;

7. 옛날 자동차 소개 테이프에 수록되었던 BGM들

1991년쯤이던가.. 본인 초딩 시절에 집의 첫 차가 현대 엑셀이었다.
차를 사니 취급설명서와 보증서 같은 책자가 따라오는데, 책자뿐만 아니라 제조사에서 차량의 전반적인 관리 요령을 BGM과 함께 남녀 나레이터가 낭송해 놓은 테이프도 같이 줬었다.
아마 이건 차종마다 다르지는 않고 모든 승용차 공통, 모든 트럭 공통..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무 오래 전 일이지만, 난 그 테이프를 즐겨 들었다.
"반드시 무연 휘발유를 사용하셔야 하며, 납 성분이 포함된 유연 휘발유를 사용하시면 뭐 어쩌구(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팬 벨트, 휠 베어링, 디스크 드럼의 마모 상태 점검.." 뭐 이런 단어가 나왔던 것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BGM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선곡을 한 담당자가 단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1) A면

El Bimbo (Paul Mauriat) -- 맨 처음 "안녕하십니까? 저희 현대 자동차의 고객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인트로와 함께 나오던 음악이다. 제목을 한참 뒤에야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C단조)
첫 곡이 끝난 다음에는.. 뭔가 월광 소나타 스러운.. Thexder 게임에서 주인공이 죽었을 때 나오는 게임오버 음악과 비슷한 곡이 나왔다. (F단조)
(정체불명. 기억 소실)

Love is Blue (Paul Mauriat) -- 난 이 곡을 현대자동차 테이프에서 난생 처음으로 들었다. (A단조)
그 뒤로도 두 곡 정도가 더 있었는데, 제목은 모르지만 주요 구간 멜로디는 지금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모두 C단조이다.

(2) B면

뒷면 첫곡도 꽤 유명한 음악인 걸로 기억하는데, 멜로디를 기억하지만 제목 모름. (C단조)
(중간은 정체불명. 기억 소실)

Plaisir D'amour -- 끝에서 셋째. 테입 전체를 통틀어서 거의 유일하게 장조곡으로 기억한다. 여느 연주와는 달리 주선율이 팬 플룻이고, 템포가 좀 빠른 편이었다. (F장조)

저 곡은 제목을 번역하자면 "사랑의 기쁨"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같은 제목의 바이올린곡을 작곡한 게 있는데, 그것과는 다른 곡이다. "도~미솔 파미 레(도#)레파라~".. 아마 들으면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그건 원제도 독일어인 Liebesfreud이다. 자매품으로 "사랑의 슬픔"도 있다는 게 흥미로운데..
그 반면, 저 Plaisir D'amour는 출신이 프랑스 계열이다.

The Lonely Shepherd (James Last) -- 끝에서 둘째. 영화 <킬 빌>에서도 오마주 되어 흘러나온 유명한 곡이다. (D단조)
운행 중 비상 상황 발생시 대처 요령 섹션과 함께 흘러나왔다. 팬 플룻 연주곡이 두 곡 연속으로 나오는 셈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 결말부에서 덕담과 함께 빠이빠이 하며 흘러나온 곡 역시 C단조의 유명한 곡이며 멜로디가 기억 나고 주선율을 악보로 정확하게 쓸 수 있지만.. 무슨 곡인지 제목은 모르겠다.
30대 이상 나이의 방문자 분들 중에 혹시 이런 추억 있으신 분 안 계신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23 08:31 2018/05/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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