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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들 중에는 주인공이 극단적인 사고 또는 범죄를 당해서 특이한 위험한 장소에 갇히고 거기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태인 것이 몇 가지 있다.
이런 장르는 촬영 영역이 아주 좁고 등장 인물도 적은 특성상, 대작을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굉장한 저예산으로도 작품을 너끈히 만들 수 있으며, 잘 만들면 스케일 대비 소재와 설정이 참신하다고, 작품성이 훌륭하다는 칭찬도 들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는 (1) <베리드(Buried)>(2010)이다. 주인공은 생매장-_-을 당해서 지하의 관짝 안에 있으며, 영화는 온종일 이 좁은 관 안에서만 진행되니 촬영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단순하고 쉬웠을 것 같다. 관을 구성하는 직육면체 옆면 네 개 중에서 하나는 촬영을 위해서 뜯어냈을 것이고..

주인공은 유일한 희망인 휴대전화로 전화 통화를 하면서 외부 사람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주고 구조 받으려 애쓰지만.. 거기 지역이 지역인지라 일이 영 쉽지 않다. 영화 자체는 공식적으로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주인공은 사실상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은 명을 단축하는 그 어떤 치명상도 입은 게 없다. 하지만 저렇게 좁은 관 안에서 누운 채 꼼짝달싹 못 하는 채로 목마르고 굶주리며 아주 서서히 죽는 건 단칼에 푹찍악 해서 죽는 것 만만찮은 비참한 죽음인 게 틀림없다. 당장 화장실도 못 가고 변을 그 자리에서 배출해야 한다는 걸 생각해 보자..;;

사람은 가만히만 있어도 언젠가는 죽는다. 허나, 아무리 사람이 물리적으로 연약하다 해도 그 명줄이란 게 호락호락 쉽게 금방 끊어지지는 않는다. 좀 민망한 얘기이다만,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더 빨리 죽으려고 굳이 목을 매달거나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번개탄을 피우는 등의 수고를 괜히 하는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조선에서는 사도세자가 관은 아니고 뒤주에 갇혀서 저렇게 죽었다.
<킬 빌 2>(2004)에서는 잘 알다시피 버드가 주인공 키도를 제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 주겠다면서 생매장을 해 버리는데, 이건 나름 머리를 쓴 조치였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생매장 씬이 10여 개에 달하는 전체 스토리 중 극히 일부 에피소드만을 구성할 뿐이며,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비현실적인 인간 흉기인 관계로... 정권으로 관을 때려부수고 무덤을 탈출한다는 차이가 있다.

<베리드>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이것 말고 (2) <화씨 247도>(2011)는 주인공 남녀 일행이 뜨거운 사우나 안에 갇혀 버리는 내용이다. 문의 자그마한 유리창을 주먹으로 쳐서 깬 덕분에 최소한의 환기와 냉각은 가능해졌지만, 사우나는 어차피 온도에 따라 화력이 자동으로 조절되고 있으며 세 명이나 되는 사람이 얼굴을 거기로 들이민 채로 잠을 잔다거나 할 수는 없다. 나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데, 결말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결국 죽는다..;;

(3) <12피트>(2017)는 자매지간인 아가씨 두 명이 커다란 수영장 내부에 갇히는 내용이다. 수영장의 수면 위로 덮개가 쳐지는 바람에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기가 극도로 어려워졌다. 이 상태로 수영장 관리자는 퇴근을 해 버리고, 그대로 불금 주말이 시작된다..;; 주인공들은 점점 지쳐 가고 체온이 떨어지는데..
다행히 수영장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긴 하지만, 관객들 열불나게 하는 짓을 벌이면서 주인공들을 호락호락 구해 주지 않는다.

<화씨 247>은 짐작하다시피 사우나의 내부 온도를 나타내며(섭씨 거의 120도), <12피트>는 수영장의 깊이를 나타낸다(3.7미터). 둘 다 주인공들이 처한 극한 상황의 특성을 제목으로 뽑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장르의 영화 소재를 앞으로 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가령,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는 건... 설마 했는데 (4) <데블>(2010)이라는 작품이 있다. 5명이 타고 있던 고층 건물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고장 나는데, 무척 인위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이긴 하다만 불이 잠시 나갈 때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한 명씩 다치거나 죽는다.;;

밀실에서 범인이야 뻔한 노릇인데, 저 탑승자를 뒷조사 해 보니 저마다 사기꾼, 폭력 전과 등등 경력이 화려하다.
현실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충분히, 너무 안전하게 만들어져 나오기 때문에 고증을 많이 무시하지 않고서는 저런 식의 영화화가 곤란할 듯하다.

끝으로, 좀 옛날 영화인 (5) <폰 부스>(2002)는 사건 전개 장소가 시내 한복판이니, 사우나나 수영장 같은 통상적인 감금의 범주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빌딩숲 어딘가에 숨어 있는 저격수를 설정해서 "그 전화를 끊는 순간 네놈 목숨도 끊어질 줄 알아라"로 주인공의 발을 꼼짝달싹 못 하게 묶어 놓는 게 흥미로운 설정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19 08:34 2019/03/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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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항거 외

1. 영화

올해는 3· 1 운동 발발 100주년인 해답게 이 타이밍에 맞춰 유 관순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적절하게 개봉했다. 말모이에 이어 또 일제 시대 배경 영화이긴 하다만, 이것도 명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본인은 관람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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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안 그래도 3· 1 운동 자체가 아니라 유 관순의 투옥 이후 시점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실제로 구경하고 나면 영화의 공간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점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그러니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분은 사전에 저기부터 가 보시기 바란다.

본인은 9년 전, 이 블로그가 처음 생겼던 2010년 초에 가 봤다. 일반 감방뿐만 아니라 유 관순이 말년에 실제로 격리 수용됐던 지하 독방까지 직접 볼 수 있다.

  • 유 관순은 서대문(경성) 형무소에서 옥사
  • 강 우규 의사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 (유 관순이 투옥된 시기에 서울 역 광장에서 사이토 총독의 암살을 시도했던 노인)
  • 훗날 조선어 학회 사건 연루자 두 분은 함흥 형무소에서 옥사
  • 주 기철 목사는 평양 형무소에서 옥사

지역이 이렇게 대응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흔치 않은 흑백 영화라는 것도 미리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킬 빌처럼 일부 주요 장면만 흑백인 것도 아니다(녹엽정 전투..).
현실의 형무소 장면은 죄다 흑백이고, 일부 과거 회상 장면이 컬러이다. 보통은 그 반대인 것 같은데 이례적이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항일 운동을 소재로 한 "자전차왕 엄 복동"도 개봉했다.
하지만 스포츠로 한국이 일본을 이긴 얘기를 극화하고 싶으면 차라리 손 기정 내지 홍 덕영 골키퍼 (해방 이후 월드컵 예선 한일전!)같은 사람이나 재조명할 것이지, 참신한 소재를 찾는답시고 자전거 도둑질도 전문이었던 사람을 소재로 삼은 게 논란이 됐다. 그 사람이 하다못해 친일파· 일본놈들만 상대로 의적(?)질을 한 것도 아니다.

소재부터가 삐걱거리는데 영화 자체도 그리 잘 만든 게 아니었고, 더 고퀄인 "항거"에게 팀킬 당하니 엄 복동 얘기는 예전의 "대장 김 창수"의 말로를 가면서 대차게 망했다. 뭐, 자전거 도벽은 아예 친일 변절이나 강도살인보다는 죄질이 상대적으로 가볍긴 하다만, 저 양반이 훔친 액수도 단순 생계형으로 실드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2. 3· 1 운동

그럼, 영화를 벗어나 3· 1운동 자체에 대해서도 얘기를 좀 해 보자.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솔직히 그까짓 만세 부른다고 해서 일제가 "아 그러셨어요~? ^^"물러가고 독립이 찾아올 리는 만무하다. 더구나 3· 1 운동은 주요 배경, 명분, 동기에 핀트가 근본적으로 안 맞는 게 있었다.

(1) 1910년대 일제 무단 통치에 대한 반감과 민생고(흉년, 물가 상승)는 그렇다 치지만 (2) 고종 독살 의혹은.. 글쎄, 고종이 무슨 세종대왕 급으로 추모 받을 성군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3) 민족 자결주의는 1차 대전 승전국인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었다.

유 관순도 그 기백이 정말 대단하긴 하지만, 너무 무모하게 매를 벌지 말고, 1년 반 정도만 빵에서 살다가 나와서 공부 더 하고 더 오래 살았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만세 시위 때 자기 부모를 왜놈들한테 잃고 완전히 꼭지가 돌아 버렸을 테니, 그 뒤로 왜놈을 가족과 민족의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저놈들한테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고집 부린 그 악바리와 깡과 근성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영화에서 유 관순의 감방 동료로 나오는 권 애라와 김 향화(배우 이름이 아닌 배역 이름)는 실존 인물이다. 특히 김 향화는 수원에서 활동한 기생이다. 이 시절에 기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야시꾸리한 직업 종사자가 아니라, 요즘으로 치면 스튜어디스 급은 되는.. 단순 서비스 접대 이상으로 지와 미와 예능을 갖춘 사람이었다.

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국이 일본놈들한테 학을 떼면서 뭐 저런 상또라이들이 있나(반자이 어택, 카미카제..) 경악했었다. 하지만 더 옛날에는 일본도 조센징들을 보곤 뭐 저렇게 지독하게 말을 안 듣는 독종 또라이들이 있나 멘탈 대미지(반자이 트라우마..)를 입고 충격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1920년대에는 문화 통치 유화책이 나오게 되었다.

흔히 호남 지역을 비하하면서 저기가 3· 1 운동 참가자 내지 투옥자가 제일 적었다는 통계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거기는 3· 1 운동 이전에 1890년대의 동학 운동과 1900년대의 의병 때문에 항일 인사들이 몽땅 토벌되고 씨가 마른 상태이기도 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통계 자체에 대한 조작과 왜곡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을 때 말이다.

3.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이 영화와 배경 내용에 대해서 말할 거리는 이 외에도 더 있지만, 일단 기독교 신앙이 의외로 꽤 자주 언급되는 게 인상적이고 좋았다. 유 관순은 실제로 교인이기도 했으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시험을 면하게는 하지 않아도 이길 힘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음", "예수님은 바보여서 저렇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줄 아냐" 무려 이 정도 분량이 대사에 포함돼 있다.

신앙 쪽으로 왜곡 없는 중립· 긍정적인 묘사 덕분에 본인은 처음엔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슬슬 올라갔다. 그러나 결말부를 보고는 기분이 완전히 잡쳐 버렸다.
정작 유 관순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은 너무 얼렁뚱땅 대충 자막으로 때워 버리고는, 그 뒤에 어설프게 또 이상한 친일파 드립과 반일 프레임 엮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군.. ㅉㅉ" 싶었다.

정 춘영인지 누군지 출신과 생몰 시기도 모르는 웬 듣보잡 조선인 헌병이 있어서 유 관순을 내내 괴롭혔다고 한다.
이놈은 친일 부역 행적이 탄로나서 해방 후 반민특위에 의해 기소되었으나, 그 이름도 찬란한 모 할배의 특별 배려(!)로 사면되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걸 말이라고 자막을 떡 걸어 놨으니 나도 꼭지가 돌아 버리겠다. 하지만 실상은 유 관순이 교인이었던 것만큼이나 할배도 교파까지 같은(감리교) 교인이었으며, 유 관순이 독립 운동가인 것만큼이나 반민특위를 불가피하게 해체한 배후 인물(애산 이 인)도 똑같이 항일 독립 운동가였다.

어디 '정춘영 유관순 고문'이라고 검색을 해 보아라. 정확한 기록 같은 건 없고, 같이 걸려 나오는 건 유 관순이 무슨 미꾸라지 고문을 당하고 코가 잘리고 머리 가죽이 벗겨졌다는 얘기, 아니 도시전설 괴담밖에 없다.
그렇게도 친일 부역자 조선인 헌병을 개새끼로 만들고 싶으면 영화에다가도 미꾸라지 고문 씬을 넣지 그랬냐? 일본 제국주의 악마들이 겨우 손톱 뽑기 내지 캐비닛 안에 선 채로 며칠 감금 정도만 했을 것 같은가?

그리고 크레딧 롤이 올라가는 동안이나 작품 결말부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에.. 그 이름도 유명한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출처불명의 비장한 유언도 좀 나왔어야지? 안 그런가?

삼일 운동 그 자체가 조국의 독립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이 항거는 외국에까지 소개되어서 조선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는둥, 그 정신이 지금 우리나라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는둥, 유 관순 말고 다른 여학생· 기생의 의거도 많이 벌어졌다는둥.. 클로징 멘트로 다른 좋은 말을 얼마든지 골라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마무리를 의도적으로 저 따구로 지은 저의가 뭐냐!? 매우 유감스럽고 씁쓸했다.

4. 3· 1 운동 때 투옥된 뒤에도 천수를 누린 다른 여성

옛날에 우리나라엔 '추계 최 은희(1904-1984)'라고 무려 1920년대에 조선일보에 입사해서 여성으로서는 거의 국내 최초로 기자라는 직업에 종사한 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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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유 관순보다 약간 어릴 뿐 거의 같은 연배이다. 3· 1 운동에 가담하다가 붙잡혀서 세 주 남짓 옥고를 치르면서 험한 꼴을 봤지만, 그 뒤엔 풀려나서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기자도 됐다. 덕분에 방송을 타고 비행기도 타 보는 등, 일제 시대 조선 여자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진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참고로 3· 1 운동 당시의 소속이 유 관순은 이화학당, 저분은 경성여고보)

이분의 호인 '추계'는 추계 예술 대학교의 설립자하고는 관계 없다. 그 추계는 황 신덕(1898-1983)이라는 다른 사람의 아호인데, 저분 역시 최 은희와 동시대를 살았던 신여성이며, 3· 1 운동에 가담했고 기자 커리어까지 있는 것이 서로 굉장히 비슷하긴 하다. 아마 서로 아는 사이였지 않을까?

호 다음으로 '최 은희'라는 이름은 국내에서는 영화 배우의 이름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두 단어를 합친 '추계 최 은희'라는 사람은 인지도가 낮으며, 언론 쪽 종사자가 아니면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언론인 출신 최 은희가 영화 배우 최 은희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인물이다. 추계 최 은희는 대학을 설립한 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딴 '최은희 여기자상'이라는 것을 제정했다.

저분은 결혼 후에는 기자 커리어가 중단되었다. 허나, 1남 2녀를 낳아서 세 명 모두 박사까지 공부 시키고 유학도 보내고 전부 대학 교수로 키웠다.;; 그 중 막내딸은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한 이 혜순으로, 2000년대 중반에 정년 퇴임했다.

본인은 먼 옛날에 "유쾌한 구두쇠들"(1994)이라는 책을 통해 저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공 병우 박사, 남 기심 교수, 이 혜순 교수(두 교수 다 국문과이구나.. 세부 전공은 다르지만) 등 17명의 유명인사가 공동 집필한 책인데, 다들 비범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도 엄청 많이 번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일상생활은 서민들 이상으로 정말 둘도 없이 검소하게 효율적으로 하면서, 옳은 일 큰 일에 아낌없이 돈을 쾌척한 얘기들이 실려 있다. 지금은 시대에 맞게 저 책 내용이 웹툰으로 각색되어서 연재되면 어떨까 싶다.
다만, 저자 중에 지금은 완전히 몰락한 방송인 서 세원 씨까지 포함돼 있는 게 참 묘하다.

이 혜순 교수는 저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게 지나고 나이 70을 바라보는 명예교수가 된 뒤에도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변함없이 자기 어머니라고 회고했다. (☞ 관련 링크)
뭐, 인생 한번 짧고 굵게 살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유 관순 같은 인물이 형무소를 살아서 출소해서 공부 더 하고 후세도 남겼으면 인생이 최 은희와 비슷해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11 08:36 2019/03/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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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기 공부하는 걸 외국어에다 비유한다면, 피아노는 기본 중의 기본이요 만국 공용어인 영어에 대응할 듯하고, 그 다음에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의 2군에 대응하는 건 학교 음악 시간에도 접하는 작고 간편한 악기(리코더, 멜로디온, 실로폰, 하모니카...) 내지 바이올린· 기타· 플루트처럼 교육과정엔 없지만 일반인에게 비교적 친숙한 악기가 될 듯하다.

3군으로 가면 2군과 비슷하지만 살짝 더 마이너한 악기들까지 포함된다. 가령, 현악기라면 바이올린 대신 첼로,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말이다. 본인은 색소폰도 2군보다는 3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Looking for you 때문에 색소폰을 잠시 배워 봤지, 그게 아니었으면 교회 음악으로 더 적절한 2군 악기를 골랐지 싶다.

2.
건반악기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피아노는 망치로 내부의 줄을 때려서 소리를 낸다. 오르간과 멜로디온은 페달질이나 입을 통해 공기를 따로 공급해 줘야 소리가 나며, 소리도 피아노 소리와는 다르다. 보급형 오르간은 옛날에 시골 학교나 교회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싹 사라졌다.
피아노의 페달은 음향 바리에이션 필터 역할만 한다. 3개 중 가운데의 것은 소리를 줄이는 소음기(silence), 오른쪽 것은 크게 울림(vibration??)인데 왼쪽 페달의 역할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피아노라는 건 외형이 전통적으로 두 계열로 나뉜다. (1) 윗뚜껑이 마치 자동차의 엔진 후드처럼 열려 있으며 표면이 직사각형도 아닌 곡선 모양인.. 일명 '그랜드 피아노', 아니면 (2) 그냥 높고 밋밋한 직사각형 상자처럼 생긴 'upright 피아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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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나 학교에서는 (2)를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공연장에서는 무조건 닥치고 (1)이 필수이다. 이건 마치 학교의 보급형 풍금과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차이와도 비슷하다.

(2)가 가격이 더 저렴하고 공간도 덜 차지하기 때문에 훨씬 더 서민 지향적이다. 하지만 (2)는 (1)에 비해서 소리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일단 자동차의 V형 엔진과 L형 엔진이 실린더의 배치가 차이가 있듯이, 내부의 망치와 발성 장치를 배치한 방식이 어떤 형태로든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실, (1)이 우리가 생각하는 피아노의 원형에 더 충실한 모습이며, 처음에 발명된 피아노도 원래는 (1)과 같은 모양이었다고 한다.

3.
대부분의 악기들은 사람이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악기는 사람이 혼자서 들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무겁다. 피아노가 대표적으로 이런 급이기 때문에 악기를 들고 오는 게 아니라(세례??) 연주자가 악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침례??).

하프는 그 경계에 속하는 것 같다. 악기의 인지도 자체는 굉장히 높은 반면, 현실에서의 존재감은 본인이 느끼기에 최소한 4군 이하.. 언어로 치면 한국인에게 무슨 알바니아· 불가리아어, 헝가리어 같은 매우 마이너한 악기이다. 일단 크기부터가 대형 하프는 높이는 거의 사람 키 만하고 무게는 40kg이 넘는다고 한다. 프로 전공자가 사용하는 최고급 물건은 단가가 거의 제네시스 이상 고급 승용차의 가격에 맞먹는다(수천만~억).

그런데 이건 개인용 악기를 매번 들고 다녀야 한다. (피아니스트가 자기 전용 피아노를 들고 다니지는 않을 텐데!) 여느 가구 옮기듯이 옮기다가 어디 잘못 건드리고 흠집이라도 났다간??
그렇기 때문에 하프는 운반만 전문으로 담당하는 업자가 있다고 한다. 페이지 터너(넘돌이 넘순이)만큼이나 음악에서 보이지 않는 조연 역할이다. 악기도 무슨 보험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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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음으로.. 악기 중에서 입으로 불어서 본체에다 바람을 주입하여 소리를 내는 물건을 관악기라고 한다.
관악기는 더 세부적으로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로 나뉘는데, 말은 그렇게 써 놨어도 오늘날 '목'이냐 '금'이냐 하는 실질적인 분류 기준은 악기의 재질이 아니라 악기의 메커니즘 내지 발성 방식이다.

목관악기는 숭숭 뚫린 구멍을 막는 방식을 달리해서 음높이를 표현하는 일명 '피리'형 악기의 총칭이다. 그 반면, 금관악기는 구멍이 아니라 입술 상태 내지 밸브로 음높이를 표현하는 '나팔'형 악기의 총칭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루트나 색소폰은 각각 니켈이나 황동 같은 금속 재질이며, 특히 색소폰은 한쪽 끝이 크게 튀어나와서 나팔을 좀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으로 목관악기로 분류된다. 둘 다 리코더처럼 구멍을 막아서 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뭐, 플루트는 과거에는 실제로 재질도 목재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색소폰도 입이 닿는 reed는 엄연히 목재이긴 하다. 도대체 이 자그마한 나무 조각이 무슨 역할을 하길래 이게 없으면 소리가 나질 않는다니, 악기의 물리학은 신기하기 그지없다.

5.
그런데 피리형 악기는 입술과 수평으로 평행하게 배치해서 부느냐, 아니면 수직으로 배치해서 부느냐로 나뉘는 것 같다. 플루트는 수평형이지만 나머지 리코더, 단소, 색소폰, 오보에, 클라리넷 등 대부분의 목관악기들은 수직형이다.
플루트 말고 다른 수평형 악기가 존재하는지?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릴리"라고 개구리 왕눈이에서 주인공이 부는 피리는 그래도 플루트에서 모티브를 땄는지 수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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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는 일단은 수평형이긴 하지만 이걸 목관이라고 봐야 할지 금관이라고 봐야 할지는 모르겠다. 구멍 같은 건 없고, 악기에서 마우스피스에 해당하는 부위가 점이 아니라 선분인 셈인데.. 그리고 하모니카는 부는(미는) 것뿐만 아니라 빨아들이는(당기는) 동작도 있는 거의 유일한 악기이다. 반음을 표현할 수 없어서 불편하지만 크기가 아주 작아서 휴대하기엔 좋다.

6.
오보에와 클라리넷은 길이, 두께 같은 외형(...)이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다. 단지 꼭대기 부분이 외관상 명백하게 차이가 난다(아래 사진에서 꼭대기가 은색으로 뾰족한 게 오보에). 그리고 클라리넷이 좀 더 색소폰에 가까운 웅웅~은은한 소리가 나고, 오보에는 코맹맹이 같으면서도(나쁘다는 뜻은 아님) 더 고유한 음색을 갖춘 소리가 난다.

본인은 오보에의 소리가 더 마음에 들고 음반 같은 데서 확실하게 들은 기억도 난다. 그래서 둘 중 하나만 배울 기회가 있다면 오보에를 불어 보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7.
소를 진짜로 잡지 않아도 저렴하게 쇠고기 국물 맛을 내 주는 화학 조미료가 식품계에 존재하듯.. 음악계에도 소리 파형을 조작하여 실존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내 주는 신시사이저가 존재한다.
옛날에 주파수 변조만으로 수십 수백 가지의 악기를 구현했던 그 특유의 애드립 FM 음악(standard.bnk), 그리고 어지간한 PC용 운영체제에 내장돼 있는 미디 신시사이저들을 살펴보면 나름 바이올린, 피아노, 색소폰 등 기성 악기들을 구현했다고 그런다. 하지만 실물 악기의 소리와 비교해 보면 그냥 육개장 사발면과 실제 육개장의 차이와 비슷한 차이가 느껴진다.

최소한 큐베이스, 로직 같은 전문적인 오디오/음악 편집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비싸고 계산량도 많은 가상 악기를 동원해야 실물 악기와 비슷해진다. 마치 페인터의 브러시 엔진이 실물 종이와 물감을 일일이 시뮬레이션 하듯.. 악기의 물리적인 구조와 공기 진동을 일일이 다 시뮬레이션 해야 실물 악기의 모든 특성을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다양한 악기는 외국어뿐만 아니라 글꼴에다가도 비교할 수 있는데, 실제로 '사운드 폰트'라는 명칭이 존재한다고 한다.

8.
그러고 보니 악보와 음표· 음자리표 따위에 대해서도 취향별로 다양한 font family라는 걸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다못해 옛날 찬송가와 21세기 새찬송가만 해도 악보· 음표의 스타일이 미묘하게 달라져서 같은 공간 안에서도 새찬송가의 음표가 약간 더 큼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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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악보들 중 우측 하단은 가사를 적은 한글만 밋밋한 굴림체인 게 아니라, 그야말로 음표와 조표들도 너무 밋밋하고 베이직한 스타일이다.
음악과 타이포그래피의 만남인가? ㅎㅎ

9.
독일어는 가히 음악인의 언어인 것 같다. 전공자들이 독일 유학을 워낙 많이 가니까 말이다. 정작 나타냄말 내지 셈여림 언어는 다 이탈리아어인데, 얘는 어쩌다가 주류에서 밀려났는지 모르겠다.

10.
끝으로.. 서양은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도 어쩜 저렇게 눈부시게 발달했나 모를 노릇이다. "우리의 것" 발굴하는 분들에게 섭섭하게 들릴 수도 있고 어차피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본인은 국악은 막 듣기 좋거나 예술성이 크게 뛰어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맨날 천날 암울하게 한이 서리네 어쩌네 하고, 주류 민요라는 게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10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이딴 식으로 찌질하게 한풀이나 하고 있다. 서양 음계처럼 음이 다양한 것도 아니고 앵앵앵 소리도(해금??)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에 비하면 그다지 듣기 좋은 소리라고 볼 수 없다.

국악 스타일의 찬양도 말이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부류는 뭐, 흥겨운 건 인정하지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처럼 막 심금을 울리고 감동적이고 깊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반도에서 그나마 정말로 자랑스럽고 선한 게 나온 건 한글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05 08:33 2019/03/0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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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라진 상식들

  • 포경 수술: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남자에게 무조건 닥치고 필수라고 여기는 풍조가 아주 강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하던 것을 아예 영· 유아 때 일찌감치 시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의학적으로 볼 때 이걸 모든 사람이 굳이 할 필요는 없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우리가 무슨 구약 유대인도 아니니 말이다.
  • 때밀이: 비누칠을 해서 기름때와 땀을 씻고 냄새는 제거해야겠지만, 굳이 피부가 벌개질 정도로 박박 문질러서 때를 미는 것은 피부 건강에 아주 안 좋다는 것이 입증돼 있다. 피부과 의사들은 심지어 가려운 데를 긁는 것조차 하지 말라고 권할 정도이다.
  • 피부 태움: 과거에는 이 과정에서 비타민 D가 합성되기도 하니.. 썬탠이 몸에 좋은 것처럼 포장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외선이 야기하는 피부 노화와 피부암 등 더 큰 해악들이 알려진 뒤부터는 그런 거 없다. 자외선은 살균 용도로나 써야 하는 것이고 물건이 아닌 피부에 쬐어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 물론 실외에서 운동과 신체 활동은 해야겠지만, 비타민은 그냥 식품이나 영양제를 통해 보충하는 게 더 낫다.
  • 혀 지도: 혀의 끝부분은 단맛을 느끼고 양 옆은 짠 맛과 신 맛, 그리고 제일 안쪽은 쓴맛을 느낀다네 어쩌네 하는 것.. 거의 혈액형 성격설에 필적하는 낭설인데 이게 무슨 근거로 오랫동안 옛날 과학 서적에 소개되었는지 모르겠다. 혀의 모든 부위가 한 치의 예외 없이 동일 균일한 방향과 크기로 미각 센서가 장착된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까지 부위별로 용도가 딱딱 나뉠 정도인 건 전혀 아니다.
  • L 글루타민산나트륨, 일명 MSG: 20세기에는 가공 식품 공포증의 주범으로 인식되었으나, 현재는 오랜 실험을 통해 그 의혹이 부정되고 매우 안전하다는 것이 밝혀진 지 오래다. 보통은 가성비 뛰어나던 화학 물질이 나중에 인체나 환경이 아주 안 좋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지는 경우가 많은 반면, 저 조미료들은 일단 그렇지 않다.

하긴, 본인은 샴푸 무용론도 오래 전에 접한 바 있다. 샴푸를 안 쓰고 맹물만으로 머리를 감으면, 처음 당장은 두피의 개기름이 제대로 씻겨 나가지 않아서 찝찝하지만 나중엔 상태가 더 좋아다고 말이다. 본인은 그건 반신반의하면서 지금까지도 차마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때조차 밀 필요가 없다니 샴푸 무용론과 비슷한 맥락의 얘기로 들린다. 피부의 개기름과 각질은 적정 수준은 그냥 있는 게 건강하고 평형을 유지하는 정상인가 보다.

2. 빨간약

요즘도 쓰이는지 모르겠는데.. 상처 났을 때 바르는 소독용 '빨간약'이라는 게 있다. 본인의 기억에도 10살 이하 어린 시절엔 키가 작기도 하고, 가다가 넘어져서 다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어머니나 양호 선생님(지금은 보건 교사라고 명칭이..)의 처방은 단순히 반창고만 바르는 게 아니라 그 전에 저런 '빨간약'을 바르는 것이었다.

본인은 그게 과산화수소수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병이 대체로 빨갛지, 원액이 붉은 것 같지는 않다. 얘는 살균· 표백 효과가 있다.
그것 말고 진짜로 시뻘건 액체는 머큐로크롬이라는 약품이다. 효과가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름에 대놓고 쓰여 있듯이 수은 함유가 논란이 되어 훗날 퇴출되었다. 과거에 유연휘발유가 '납'이라는 명칭을 교묘하게 숨긴 상품명으로 판매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얘 때문에 진짜 사람이 수은 중독으로 해를 입었다는 사례가 정확히 보고되고 입증된 건 없다. 하지만 건전지고 온도계고 생필품에서 수은은 온통 퇴출되는 게 추세이니 상비약 분야도 이 관행을 따르고 있다.

이것 말고 다른 빨간약은 요오드 팅크인데, 얘는 진짜 red보다는 브라운 갈색에 더 가깝다. 정확한 효능이나 부작용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도 다 포비돈 요오드니, 클로르헥시딘이니 하는 다른 약으로 대체되고 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약사가 문득 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 구내염에 즉효약이라는 알보칠은 일반적인 피부 상처 소독· 살균제와는 성분이 어떤 차이가 있나 궁금하다. 안 아프다고 거짓말은 안 하네.. you only pain once라고 얼마나 병맛스러운 CF를 만들었는지.. 그래도 고퀄이다..ㅋㅋㅋㅋ
  • 그나저나, 저 빨간약을 자주 접하던 본인의 어린 시절에는.. 체했을 때 엄지손가락을 실로 감고 압박해서는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서 피를 내는... 일명 '따기' 시술도 받은 적이 있다. 이건 의학적으로는 별로 검증받거나 권장되지 않는 걍 "엄마손은 약손" 민간요법이지 싶다.

3. 요즘 와이퍼 워셔액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

본인은 얼마 전, 업무상 회사의 다른 동료의 차를 같이 탈 일이 있었다.
운전자분이 앞유리를 닦느라고 워셔액을 분사하자 차내에까지 자욱한 술 냄새가 몇 초간 풍겨 왔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에탄올 워셔액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동차 와이퍼용 워셔액은 단순히 세제나 부동액만 탄 물이 아니며, 증발 잘 하라고 알코올 같은 가연성 물질도 첨가된다. 그런데 딱 올해, 2018년 1월부로 메탄올 워셔액은 제조·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마치 과거에 유연 휘발유가 완전히 퇴출되고 무연 휘발유로 대체된 것과 비슷하다. 메탄올은 인체에 매우 해로운 독극물이며, 그걸 워셔액으로 쓰면 메탄올 증기가 저렇게 차내에 유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메탄올 워셔액이 전세계에서 지금까지 수십 년간 쓰인 동안, 무슨 유연 휘발유(납 중독)처럼 워셔액 때문에 사람이 직접적으로 해를 입었다는 임상 증거는 내가 알기로 없다. 그리고 에탄올 워셔액은 메탄올 워셔액보다 훨씬 더 비싸기도 하다.

본인 차는 이미 구입 내지 주입해 놓은 옛날 워셔액이 아직 남아 있어서 당분간은 이걸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주성분을 살펴보니 역시 메탄올이 적혀 있다. 그 대신 워셔액 살포 시에 송풍 모드를 반드시 유턴 모드(....;; )로 해 놓는 건 잊지 않을 것이다.

4. 감기

감기는 다 비슷비슷하게 코와 목에 탈을 일으키는 한편으로 딱히 생명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 흔한 병이다. 그런데 증상은 다 이렇게 비슷할지언정, 감기를 실제로 일으키는 바이러스(균도 아니네..!)는 100여 종이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니 인체에 아무리 면역계가 있다 해도 해마다 서로 다른 감기에 걸리는 것에는 장사가 없다. 이거 뭐 기능은 동일하지만 내부 구현 방식이 제각기 다른 컴퓨터 프로그램 내지 악성코드를 보는 듯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감기약도 특정 바이러스만 딱 공략하는 백신이나 치료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약은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을 줄여 줄 뿐이고 실질적인 치유는 결국 신종 바이러스에 적응해서 놈을 잡아먹고 퇴치하는 신체가 직접 하게 된다. 그러니 따뜻한 물 마시고 푹 자는 게 좋다. 감기와의 전투는 인체의 idle time processing 때 집중적으로 치러질 테니까..

백신 무용론, 약 무용론 음모론 주장하는 진영이 그나마 최소한의 명분이 서는 분야가 감기이다. 하지만 고혈압, 당뇨, 암 같은 다른 진지한 병을 그런 민간요법, 자연 치유 같은 식으로 접근했다간 진짜 큰일 나니까 문제이며, 그나마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감기약도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을 줄이고 신체가 감기 바이러스와 싸우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응당 있다.

감기에 걸리면 코가 막히고 쌕쌕거리고 콧물 나오고 일상생활이 미치도록 불편할 것이다. 그래도 코를 그때 그때 풀어 주고 호흡은 입이 아니라 호흡 전문인 코로만 하도록 해야 한다.
입에는 콧물과 코털 같은 방어 장치가 없다. 입으로 장시간 호흡하면 입안이 마르고 세균에 노출되는 등 구강 건강에 절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참고로...

  • 인간과는 달리, 다른 동물들은 오로지 코로만 숨을 쉴 수 있다. 음식을 먹으면서 동시에 숨을 쉬는 게 가능하며, '사레 들림'이라는 현상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듣기로는 구토라는 게 없는 동물도 있다고 들었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 감기와는 달리 인플루엔자, 일명 독감은 단순히 "증상이 더 심하게 발생하는 감기, 여러 감기들 중에서 위력이 센 대빵" 정도의 레벨이 아니다. 근본이 완전히 다르다. 의약계 종사자들은 '독감'이라는 이름이 굉장한 오해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이거야말로 물이 아니라 위험한 화합물인 일산화이수소라고 불러 줄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5. 화상과 동상

인체는 화학적 성분의 2/3 가까이가 수분인 관계로, 발화점 이상의 고온에 노출됐다고 해서 무슨 땔감 장작마냥 불이 붙어 활활 타지는 않는다. 종이 냄비· 종이컵으로 제한적이나마 물 끓이는 게 가능한 것을 생각해 보시라.

이 때문에 죽은 시신을 화장하는 것 역시 생각보다 연료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다. 사람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만 숯덩이를 넘어 하얀 뼛가루만 남을 정도로 홀랑 불태우려면 굉장히 오랫동안 태워야 한다. 인체는 수분이 없는 표면의 털 정도라면 모를까.. 내부는 기름 끼얹고 불을 한번 붙여 놓는다고 알아서 잘 타 없어지는 재질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도시전설로 전해져 오는 인체 자연 발화 괴담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체는 수백 도 이상의 고온에서 그렇게 쉽게 불타지 않는 대신, 겨우 수십 도의 '낮은 고온'에서도 잘 익을 뿐이다. 그 익은 상처를 우리는 화상이라고 부른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그 부위가 넓어져서 신체의 손상이 심해지면 죽을 수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고분자 단백질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

한편, 화상의 반대편 극단은 동상이라 할 수 있는데.. 인체는 불이 잘 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얼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동상과 그에 따른 괴저· 괴사는 단순히 저온에서 피가 잘 안 통하는 바람에 발생한다(영양분 부족, 산소 부족..). 처음엔 가렵고 따갑다가 나중에는 해당 조직이 감각이 없어지고 죽고 썩어 버린다.

물론 바닷물이 얼 정도의 극도의 저온에 맨몸으로 오래 노출되면 체액이 진짜로 얼 수도 있다. 그랬다가는.. 물의 부피가 커지면서 세포막이고 혈관이고 다 터지고, 이론적으로는 방사능 피폭 급의 끔살을 당할 수 있다.
인체 냉동 보존에서 기술적으로 걸리는 가장 큰 문제도 이것이다. 자동차의 냉각수에다가는 부동액이라도 첨가할 수 있지, 체액은 그런 조치를 취할 수 없으니 말이다.

화재 현장에서 죽는 사람은 대부분 연기 질식과 내장의 화상 같은 간접적인 대미지 때문에 먼저 죽는다. 문자 그대로 산 채로 불길에 휩싸이거나 원자폭탄 급의 고온에 노출되어 형체가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몸에다 휘발유를 일부러 끼얹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그것처럼 얼어 죽는 사람도 대부분 피 안 통하고 체온 떨어져서 기력이 다해서 스르륵 죽을 뿐, 액체 질소 같은 데에 퐁당 빠지기라도 하지 않는 한 문자 그대로 체액이 꽁꽁 얼어서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문자 그대로, 화학적으로 연소하거나 얼지만 않는다는 거지, 저런 죽음도 매우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변함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27 08:33 2019/02/2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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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기기의 종류

옛날, 스마트폰이 없고 지금 같은 초고속 무선 인터넷이란 게 없고 컴퓨터가 고화질 고음질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거뜬히 처리할 정도로 성능이 좋지 못하던 시절에는(대략 20세기 말, 1990년대까지)..
우리에게 음성과 동영상 정보를 제공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아날로그 기술 기반이었다.

매체 재생(!!)이라는 건 (1) 방송국의 전파를 받아서 재생하는 기능, 그리고 (2) 테이프에 저장된 것을 재생하는 기능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라디오의 경우, 한 기기가 둘을 모두 수행해서 '오디오'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 같다.

그러나 영상 쪽은 텔레비전은 전파 수신 기능만 있고, VCR 또는 VTR이 기존의 텔레비전과 단자를 연결해서 재생 영상을 보여주는 형태로 성격이 나뉘어 있었다.
텔레비전과 VCR의 기능이 일체형으로 통합된 물건도 나오긴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가성비가 안 맞고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비디오의 신호를 받기 위해서는 텔레비전의 채널을 꼭 4번으로 맞추곤 했다.
그리고 VCR도 텔레비전 방송 녹화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는 TV로 신호를 보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 역시 TV의 신호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VCR을 켜고 TV 채널을 4로 맞추면, 재생 중일 때는 비디오 테이프의 영상이 나오고, 그렇지 않을 때는 VCR이 받고 있는 TV 채널의 영상이 나오곤 했다.

과거에 있었던 오디오/비디오 기기의 차이를 이렇게 생각해 보니 흥미롭다.
텔레비전은 제작의 난이도와 브라운관의 부피 문제 때문에 휴대용 형태로 만드는 건 영 무리였으며, 일부 나온 제품도 그냥 흑백이었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그 반면, 라디오는 기계 구조가 더 단순하고 사람도 눈을 안 쓰고 귀로 듣기만 하면 되니, portability(휴대성)이 근본적으로 더 뛰어났다. 그래서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초소형 라디오는 옛날부터 있었다. 트랜지스터가 괜히 발명된 게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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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도 호락호락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우리나라 금성사가 1960년대에 최초로 만들어 낸 국산 라디오만 봐도, 기능은 참 단순 단출한 게 부피는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라디오 말고 음반을 재생하는 휴대용 전자기기는 SONY의 그 이름도 유명한 '워크맨'이 발명되기 전에는 없었던 것 같다. 워크맨 또는 '마이마이'라는 상표명이 거의 보통명사처럼 돼 버렸다.
LP 레코드는 그 육중한 지름부터가 호주머니 휴대와는 담을 싼 형태이고.. 카세트 테이프가 최초로 '밖에서 걸어가면서 음반을 듣는' 시대를 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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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1) 휴대용 초소형 오디오는 스피커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이어폰을 꽂아야만 청취 가능하다. 똑같이 휴대용이어도 아까 그 소형 라디오는 허접하게나마 자체 스피커로 소리가 나오기는 하는 반면, 워크맨 부류는 무조건 이어폰으로만 소리가 나온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전원도 건전지만 사용 가능하다. 나중에는 전용 충전지를 쓰는 것도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AC 전원 대신 전지만 지원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1980년대에 오디오 CD가 나오면서 그쪽은 동그란 휴대용/미니 CD 플레이어가 별도로 담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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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는 디지털 매체인 덕분에 음질이 매우 좋다. 곡의 탐색 방식도 무식한 되감기/감기가 아니라 아주 간지 나 보이고..
게다가 번쩍거리는 디스크의 외형은 뭔가 21세기 하이 테크놀러지의 포스가 느껴지니.. 모든 것이 신기한 물건이었다. 사실, 테이프는 디지털 음원 매체에 비해 다음과 같은 점이 몹시 불편했다.

  • 무음 구간에서도 테이프의 재생 주행만으로 듣기 싫은 '쓰으으읍' 소리, 일명 hissing noise가 남. 테이프를 듣다가 CD를 들으니 이 노이즈가 없는 것만으로도 완전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 기계마다 재생 속도가 불균일한 편이어서 pitch가 왜곡됨.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게 많아서 원래 속도보다 거의 2~3% 가까이 빠르게 재생하는 물건도 있어서 아주 불쾌했다. 참고로 재생 속도가 6% 정도 더 빠르거나 느려지면 조가 한 반음만치 완전히 내려가거나 올라가 버린다.
  • 앞뒤로 감고 테이프 방향 바꿔 끼우는 게 몹시 불편함. 컴퓨터 주기억장치의 명칭이 왜 random access를 그리도 강조하는 형태로 지어졌는지(RAM)가 이해된다.
  • 늘어나고 씹히는 현상은 정확하게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발생하는지 잘 모르겠다. 본체 안에서 곱게 돌아가기만 해야 할 테이프가 밖으로 줄줄 새어나와 있는 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다만, 같은 음반이라도 CD는 단가가 테이프보다 1.5~2배가량 더 비쌌으며, 재생기도 더 비쌌다. 녹음도 가능하지 않고.. 그러니 테이프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고 별도의 고유 영역을 갖게 되었다.

워크맨 내지 마이마이보다 더 큰 체급의 오디오는 영어로 일명 (2) boombox(붐박스)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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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피커는 일체형으로 1개 또는 2개인데, 1보다는 스테레오 채널을 지원하는 2가 더 일반적이다. 그리고 원한다면 이어폰 연결도 물론 가능하다.
  • 테이프 데크도 역시 1개 또는 2개인데, 이건 2보다는 1이 더 일반적이다. 2는 테이프끼리 녹음, 즉 복제를 지원하는 버전이다. 물론 1개짜리도 라디오 방송 녹음 정도는 할 수 있게 빨간 녹음 버튼이 있다.
  • 좀 고급형은 꼭대기의 뚜껑을 열어서 CD를 집어넣을 수도 있다.
  • 전원은 건전지와 AC 전원을 모두 지원하는 게 보통이다.
  • 어떤 물건은 통상적인 AM/FM 라디오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채널의 음성 신호를 수신하는 기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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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붐박스는 걸어 다니면서 청취하는 것보다는.. 들고 다니다가 실내에서든 야외에서든 사용할 때는 내려놓고 사용하는 형태에 가깝다. 들고 다니기 편하라고 위에는 손잡이가 필수적으로 달려 있다.
옛날엔 각진 직사각형 모양이 주류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동글동글해졌다. 아래의 금성 TSR-581은 옛날에 우리집에도  있었다. 완전 추억 돋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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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TSR-581처럼.. 좀 고급인 제품은 현재 출력되는 소리의 음량을 게이지 형태로 표시하는 기능이 있었다. 그것도 양 채널별로 말이다.
주파수 대역별로 음량을 다 표시하려면 저런 1차원 선이 아니라 2차원 평면에서 스펙트로그램을 그려야 할 것이고, 그걸 디지털 신호를 대상으로 구현하려면 푸리에 변환이 필요할 것이다..;;

음파를 단순 파형 이상의 온갖 현란한 애니메이션으로 표시하는 기능이 바로 컴퓨터용 mp3 재생기들이 지원하는 시각화 기능이다. 그럼 아날로그에서는 그런 기능을 어떻게 구현했을까?

오디오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체급은 휴대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 대신 다양한 기능과 극한의 음질만을 추구한 (3) hi-fi / 미니 컴포넌트, 혹은 일명 전축(전기 축음기??) 등으로 불리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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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조건 AC 전원 기반이며 손잡이 따위는 없다.
  • 좌우로 거대한 고출력 스피커가 별도의 파트로 구비되어 있다.
  • 음파의 주파수대별로 음량을 조절하는 이퀼라이저가 있다.
  • 공간 제약이 없으니 옛날 물건 중에는 꼭대기에 LP용 턴테이블을 갖춘 경우도 있다..;;

먼 옛날에 본인의 집에는 산요-한일 전자에서 제조한 전축이 있었다. 테이프끼리 녹음은 2배속으로 할 수 있으며, 무선 마이크가 있어서 FM 98MHz로 맞춘 뒤에 주변 소리를 테이프에다 녹음도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본인이 접했던 붐박스급 오디오 중에서는 저런 걸 지원하는 물건을 못 봤으니, 전축이 오디오로서의 기능이 가장 뛰어났던 셈이다.

옛날에는 '인켈'이 전축 제조사로서 CF도 많이 내보내고 무척 잘 나갔었는데 요즘은 어찌 됐나 모르겠다.
사실, 일본이 아날로그 기반의 전자 기기의 압도적인 명품 명가였고, 이 점에서는 굳이 라디오나 TV뿐만 아니라 코닥 같은 필름 카메라 제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그 지위가 많이 흔들리게 되었다. 심지어 디지털 기술을 취급하는 MP3 플레이어 제조사들조차도(아이리버, 코원..)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됐으니, 기술 발전이라는 건 정말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노릇이며 이 바닥에 종사하는 기업 경영자들은 어깨가 더욱 무거울 듯하다.

요즘 오디오는 구닥다리 테이프 데크는 빠지고(어쩌면 CD 데크도!) USB 꽂아서 MP3/WMA를 틀어 주고, 그냥 스마트폰보다 더 음질 좋은 스피커를 제공하는 것에만 의미를 둬야 할 듯하다. 하긴, 요즘은 블루투스 덕분에 스피커 단독으로도 장사가 얼마든지 된다. 스피커가 출력할 음원은 주변의 스마트폰에서 무선으로 공급해 주고 말이다.

지금도 중· 고등학교 영어 듣기 평가는 EBS 라디오로 진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대 전자 기술의 총아인 스마트폰이 아날로그 라디오의 기능마저 흡수하는 건 기술적으로야 일도 아닐 텐데.. 인터넷 데이터 장사 밑천을 날리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제공되지 않는 것이지 싶다. 카카오톡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기존 SNS 장사를 망친다고 통신사와 앱 개발사 간에 마찰이 있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오디오 얘기만 늘어놓았는데 이렇게 장문이 한 편 써 졌다.
하나만 얘기를 더 늘어놓자면, 자동차에 장착되는 카오디오는 붐박스라기보다는 전축의 영역에 가까운 물건으로 보인다. 쉽게 붙였다 뗐다 하지 않으며, 자동차 내부는 4채널 서라운드 입체 음향을 제공하기에 최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동차에 장착되는 음향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고급이며, 카오디오는 더위와 추위와 온갖 혹독한 진동에도 견딜 수 있게 꽤 튼튼하게 만들어진다. 과거엔 고급 승용차에 장착되는 카오디오는 위 아래 두 단으로 구성돼 있어서 상단은 카세트 데크와 오디오 조작 버튼이 있고, 하단에는 이퀼라이저 게이지들만 놓여 있기도 했다. 아래의 대우 임페리얼처럼 말이다. (우측 하단을 주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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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디오는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 테이프의 한쪽 면이 다 되었을 때 갈아 끼우지 앉아도 역방향으로 곧장 재생하는 기능이 있으며, 라디오도 일일이 주파수 다이얼을 돌릴 필요 없이 방송이 존재하는 주파수를 자동으로 탐색하는 기능이 있다. 이것은 본인이 자동차 밖의 다른 오디오 기기에서 본 적이 없는 기능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16 08:33 2019/02/1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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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음악 관련 에피소드

1. 로베르트 슈만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라고 19세기를 살았던 독일의 음악가가 있다.
이공계 석박사급 전문가 중에도 취미로 하는 음악이 연주건 작곡이건 (준)프로급인 괴수가 일부 있긴 하다만.. 슈만은 그렇지 않고 순수 문과.. 즉, 문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감성파 쪽 천재였다.

그는 20대 초반 나이 때 피아노에 완전 미쳐 있었는데.. 욕심을 내서 연습을 너무 무리해서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원래 지망했던 피아니스트의 길을 갈 수 없게 됐다. 결국 작곡, 지휘, 교육에다 문학 기질을 살린 음악 평론 분야로 전업했다.

나 초등학교 시절에 봤던 피아노 교본 앞부분에 슈만의 초상화와 함께 일대기 소개가 있었다. 다른 부분은 다 잊어버렸지만 “지나친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쳐..”라는 문구는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지나치다’라는 국어 용언의 형용사 용법을 이때 거의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excessive.. 동사는 그냥 pass by일 테고)

이게 단순히 손과 손가락이 쥐가 나거나 삐거나 피 좀 흘린 정도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부러지거나 영구적으로 마비되기라도 한 듯한 모양이다. 맨손으로 피아노를 죽어라고 치기만 했다고 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피아노가 자체가 손을 으스러뜨릴 수 있는 무슨 공작 기계이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아, 생각해 보니 피아노 뚜껑을 덮다가 손가락이 끼이고 깔려서 다칠 수는 있겠다. ㅡ,.ㅡ;; 하지만 슈만이 그런 사고를 당한 건 물론 아니었다. 원하는 손가락 움직임을 강제로 구현하려고 손가락에 특이한 기구를 끼우고 평범하지 않은 상태로 연습하다가 탈이 난 것이었다. 1832년의 일이다.

장애가 생긴 부위는 오른손 약지였다. 참고로 안 중근 의사는 맹세를 할 때 왼손 약지의 첫 마디를 끊었다.
넷째 손가락이 손가락들 중에 그나마 가장 덜 중요한 부위라고는 하지만, 악기를 연주할 때는 안 쓰이는 손가락 부위가 없을 것이고, 아무 손가락이라도 그렇게 결손이 있으면 군대도 현역으로 안/못 간다.

그래도 얼마나 피아노에 미쳤으면 연습을 저런 식으로까지.. 하는 생각이 들고 그 열정 하나는 존경스럽다.
하농 교본만 봐도.. 끝에 보면 “피아니스트로서 손의 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이 60곡 전곡을 치라는 주문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닐 것입니다” 이런 문구와 함께 끝났었다. 물론 프로 전공자 한정이겠지만 말이다.;;

이 슈만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연애에도 불같이 미쳤었다. 인생 한번 참 정열적이다.
자기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스승의 어린 딸.. 정확히는 자기보다 9살 어린 10대 아가씨(클라라)에게 완전 꽂혀 버렸으며, 그쪽의 마음도 얻었다! 그래서 없으면 서로 못 사는 사이가 됐다.

그 스승이라는 양반은 당연히 노발대발했다. 아무리 자기 제자라지만, 가난하고 미래 불투명하고 손도 다친 9살 연상의 작곡가 아저씨한테 내 딸 절대 못 준다고 맞섰고 치열하게 민사 소송까지 갔다. 허나, 결국 스승이 졌다.

둘은 1840년에 결혼해서 그래도 금슬 좋게 자녀도 여섯 명이나 낳고 잘 살았다. 부인은 남편이 못 이룬 피아니스트의 길을 계속 갔고 말이다. 이 정도면 뭐 승리한 인생 아니겠나.; (스승과도 나중에 화해했다고 함)
뭐, 빌 게이츠도 9살 연하의 자사 여직원과 결혼했다지만, 슈만은 빌 같은 처지가 아니었지...ㄲㄲ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철덕 작곡가로 유명했던 안톤 드보르작(1841-1904)도 슬하에 딸을 뒀으며, 자신의 어느 제자(요제프 수크)로부터 “스승님의 딸을 제게 주십시오!”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유럽 그 시절의 음악계엔 저런 관행이 드물지 않았던가 보다.

그 제자는 자신의 스승 겸 미래의 장인의 취향을 잘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여기 올 때 무슨무슨 번호의 열차를 탔고 열차의 움직임이 이랬다고 의기양양하게 보고를 했는데.. 드보르작은 표정이 썩으면서 그 시간대에 그 열차가 다닐 수 없다고 거짓말을 알아챘던가, 아니면 네가 차량 번호와 운행 스케줄 번호를 헷갈렸다고 쿠사리-_-를 먹였다고 한다. 그래도 결혼을 허락은 해 줬다.;;

2. 괴음악 "검은/우울한 일요일"

본인은 먼 옛날 중딩 시절에, 표지부터가 악마의 얼굴 모양으로 뭉게뭉게 치솟고 있는 화재 현장 연기 사진인..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도시전설 괴담 모음집 책을 본 적이 있었다.
"링컨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의 공통점"부터 시작해, 요런 얘기가 그 책에 있었다.

"검은 일요일"이라고.. 프랑스의 루란스 차르스라는 사람이 1932년에 작곡한 음악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암울하고 구슬픈 곡이었는지, 이걸 듣고서 유럽과 미국에서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극도의 멘탈붕괴를 체험하고 연달아 자살했다고 한다. 유서에다간 문제의 곡을 당당히 언급하면서 말이다.

"이 곡을 들으니 삶의 의욕이 송두리째 사라지네요. 찢어지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서 저는 이 생을 마감하렵니다. ㅠㅠㅠ 이게 다 검은 일요일 때문입니다. 제 장례식 때 이 곡을 연주해 주세요~" (헐, 조문객들까지 자살하게 만들려고?? =_=;;)
세계의 날고 기는 음악가와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이 이 곡에 무슨 마가 끼였는지를 학문적으로 분석하려 시도했지만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곡과 작곡자의 정체에 대해서 오늘날 검증 가능한 건 물론 하나도 없다. 결정적으로 그 곡은 세계 각국의 방송국에서 연주 금지 처분을 받고, 1945년경에 전세계에서 악보가 회수되고 폐기· 소실됨으로써 이제 더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ㅡ,.ㅡ;;

그나마 저 이야기에 근접한 진실, 팩트는 이렇다.
1933년에 헝가리의 '셰레시 레죄'라는 사람이 우울한 단조풍으로 가사 없는 피아노 연주곡을 하나 작곡했다. 그 뒤 1935년에 다른 사람이 멜로디에 걸맞은 우울한 다른 가사와 제목을 붙여서 Gloomy Sunday라는 노래가 완성됐다.

지금은 저 곡을 유튜브에서 곧장 검색해서 들을 수 있다. (☞ 링크 46초 이후부터 곡이 시작됨) 주선율이 도도도~ b미미미 솔솔솔 도도도~ 로 시작하며, 다시 말하지만 장송곡 같은 우울하고 구슬픈 느낌이긴 하다. "봄봄봄봄(도 미 솔 도) 봄이 왔어요"(이 정선, 봄)와는 정반대 심상이다.
하지만 이 정도 곡을 멀쩡한 일반인이 듣는 것만으로 멘탈이 붕괴해서 머리를 쥐어뜯고 무슨 마 8:32의 돼지처럼 뛰쳐나가 자살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프랑스 사람이 작곡한 검은 일요일(??)은 헝가리 사람이 작곡한 우울한 일요일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저 실존하는 곡조차도 대외적으로는 "Hungarian Suicide Song"이라는 섬뜩한 별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저 곡이 발표되었던 당시에 헝가리 내부에서, 저 곡 듣고서 자살한 게 아닌가 의심되는 사람이 10여 명 정도 있기는 했다고 한다. 그래서 헝가리에서 이 곡이 금지곡으로 찍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곡이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증명되고 검증된 바가 물론 없다. 안 그래도 극심한 가난과 질병, 인생 실패 등을 비관해서 자살할까 말까 고민 중이던 몇몇 소수의 사람이 왕창 우울한 곡을 듣고는 이판사판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권총 헤드샷을 날렸을 수는 있겠다. 루머도 아무 근거 없이 생기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별 상관 없는 얘기이다만.. 1932(33)~45년 사이이면 공교롭게도 전쟁광으로 흑화하던 일본, 나치 독일,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권과 거의 일치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사람을 100수십 명씩이나 연쇄자살로 내몬 악마의 음악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지만, 단 한 명이라도 사람을 골수 중증 철덕으로 개조시킨 마법 마성의 음악은 지구상에 분명 존재하며, 그 증인 당사자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음악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는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음악이 연주되던 당시의 분위기와 맥락, 청취자의 심리도 기여하는 게 매우 크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07 19:29 2019/02/0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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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적 제재와 무장

공동주택에서의 3대 민폐는 담배, 애완동물, 층· 벽간 소음이지 싶다. 그야말로 후각· 촉각· 청각이 골고루 다 분포해 있구나! 또한, 상황이 좀 더 열악한 곳에서는 주차 시비까지 추가해서 4대가 될 수도 있겠다. 이것 때문에 살인 사건도 이미 몇 건 난 적이 있다.

주거용 건물은 계단 통로가 담배 냄새가 안 나는 곳을 별로 못 봤고, 요즘은 예전보다 개도 주변에서 부쩍 눈에 띈다. 먹고 살기 빠듯하고 힘들다면서 애완동물 키울 여력은 있는가 보다. 도시는 시골과 달리 동물에 친화적인 곳이 아니긴 하다.

다음으로 소음 문제의 경우, 찾아가서 항의하는 건 씨알도 안 통하니 당하는 쪽에서도 벽이나 천장을 같이 쿵쿵 치는 걸로 응사하는 편인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단돈 몇 천원 짜리 고무 망치가 그렇게도 즉효약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 대표적인 사례: 슈랄라 월드)

잘 쳐 주면 건물 자체는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쿵쿵~ 웅웅~ 깊은 진동을 전해서 가해자를 놀라게 하고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본인은 딱히 소음 피해를 겪은 적이 없고 저런 물건을 써 보지도 않아서 잘 모르겠다.

뭐랄까, 지금 같은 법치 의식이나 국가 정체성, 인권 의식이 형성되기 전에,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엄격하게 생기기 전엔... 서양에서는 민간인의 무장과 사적 제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관념이 지금보다 훨씬 더 관대했다.

그러니 '사략선'이라는.. 한중일 문화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국가 공인 해적이 있었다. 전시에 민간인이 적국 선박을 터는 것을 합법으로 허용하는 면허 말이다.
그리고 '결투'도 있었다. 결투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누구든 월급 주는 주인님을 위해 깃발 바꿔 달고 싸우는 '용병'은 요즘으로 치면 PMC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국군 상비군이 있는 일반적인 나라에서는 흔하지 않다. 아 하긴, 프랑스에는 아직 외인부대가 있던가?

또한 민간인이 스스로 무장하고 자기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은.. 용어를 저렇게 쓰면 어감이 굉장히 부정적이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조선과 구한말의 '의병'하고 별 차이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건 아주 성경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에스더기도 유대인 학살 명령이 공식적으로 철회되는 게 아니라, "너희들도 자경단 꾸려서 침략자에 맞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켜라. 아무도 안 말린다"가 추가되는 걸로 끝나니 말이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1992년의 미국 LA 폭동 때도 평소에 총을 구입해 놓고 대비를 했던 한인들은 자경단을 꾸린 덕분에 자기 가게를 안 털리고 지켜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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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들의 이런 저력(...)은 5· 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부정하는 근거로도 활용된다.
서슬 퍼런 반공 군사 정권 하에서 교련에다 군생활도 무려 3년씩이나 의무적으로 했던 사람들이 진지 구축이나 총질쯤은 껌이며, 탱크 조종 보직이었던 사람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없을 리가 없다. 그 정도 군사 행동은 굳이 북괴 공작원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많은 청년들의 자유를 제약하고 희생하며 돌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징병제의 위력을 만만하게 여기지 마시라.

무기고 위치 정도는 그렇게 비밀도 아니며, 평소에 잡범 범죄자에 의해 종종 털리기도 했었다. 그럭저럭 민주화가 된 1990년대의 LA에서도 저랬는데 하물며 전투력이 그때보다 더했을 1980년대의 광주를 동일한 잣대로 생각해 보면 본인으로서는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소말리아 같은 막장인 나라 말고, 엄연한 잘사는 선진국 중에서 민간인이 버젓이 총을 소지하는 나라는 미국 말고 더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화력이 너무 강한 군인 소총이나, 은닉하기 쉬운 권총은 여전히 규제가 걸려 있지만, 샷건 정도는 시골로 갈수록 뭔가 생활 필수품인 것 같다.

2. 경찰 비슷한 것들

경찰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며, 정부에서 세금을 써서 유지시킨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공권력의 존재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기관이 바로 경찰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군· 경의 역할을 민간이 대체하는 것을 매우 경계하며 금기시한다. 그래서 사적 제재를 전면 금지하고 정당방위도 매우 보수적이고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 나쁜놈이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정말 제일 소극적인 제압만 한 뒤 바로 경찰에 넘기기만 해야 한다. 놈이 흉기를 들고 설치고 있으면 흉기를 재주껏 빼앗아서 버리기만 해야지, 그걸로 내가 반격 역관광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니 자경단이나 민병대· 의병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사설 탐정도 국내에서는 전면금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민간인의 경찰 위장· 사칭은 죄질이 매우 나쁜 범죄이다. 일반인은 평시에 전투복뿐만 아니라 경찰복을 입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수갑 같은 경찰 전용 장비 역시 소지하거나 휴대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찰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보조 내지 대행하는 민간인 조직이 아주 없는 게 아니다.
자율방범대(치안)라든가 모범운전자(교통 정리)가 그 예이다. 이런 사람들은 경찰과 어떤 관계를 맺고 보수를 어느 정도 받는지, 직무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까지 권한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이 사람들이 진짜 경찰처럼 누구를 체포한다거나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딱지를 발급하지는 못한다.

은행이나 병원 같은 곳에 있는 청원경찰은 정식 경찰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 사설 경비원도 아닌 중간 위치 같다. 철도 경찰이나 해경은 일반적으로 아는 그런 경찰과는 다른 경찰일 테고..
그나저나 옛날에 미국에서 큰 모자 쓰고 말 타고 돌아다니던 '보안관'은 경찰하고는 어떤 관계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3. 사립 사관학교

본인은 먼 옛날에 사탄의 인형 시리즈를 1편부터 3편까지 영화관..은 아니고 TV와 비디오로 봤다. 1편은 진짜 공포 장르였지만 2편과 3편은 호러 코미디에 가깝다. 주인공 앤디가 처키의 정체를 완전히 알게 되면서 동심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가 됐고, 또 나이를 먹고 성장도 했기 때문에 1편과 같은 의미의 약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3편의 경우, 애가 군사 학교에 입교하게 된다. 이름하여 Kent Military School.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군사 학교라는 건 도대체 정체가 뭔가? 국· 공립인가, 아니면 설마 사립인가? 한국에는 이런 교육기관은 없는 것 같은데..

병을 양성하는 곳인가, 간부를 양성하는 곳인가? 그냥 신병 훈련소라고 보기에는 내부 시설이 꽤 좋고.. 하지만 학생들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하고 무슨 웨스트포인트 급의 정식 사관학교도 아닌 것 같다. 앤디처럼 불우하게 자란 애가 그런 정예 장교 양성 시설에 호락호락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죽은 아버지가 무슨 명예 훈장의 수훈자이기라도 하지 않다면 말이다.
그리고 계급의 번역이 제대로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도들 군기를 잡는 훈육대장이야 해야 하나.. 그런 사람이 무려 대령인 건 하는 일에 비해 계급이 너무 높은 것 같다.

검색을 해 보니 미국에는 이런 군사 학교가 몇 군데 있다고 한다. 나라에서 인가한 정식 사관학교와의 차이는 (1) 일단, '사립'이다. 자연히 학비는 전면 무료가 아니며, 여기를 졸업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미군 간부로 임관한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여기는 (2) 애초에 대학교에 준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아니라 중· 고등학교에 대응하는 중등 교육기관이다. 여기를 졸업한 애들은 소수의 군대 체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냥 일반 대학교로 진학한다.

즉, 여기는 무슨 정식 사관학교도 아니고 해병대 캠프나 스파르타 식 명문대 학원도 아니지만.. 사관학교의 커리큘럼을 따 와서 일상생활에서 애들을 합숙시키고 군복(정복, 예복, 전투복 등..) 입히고 군대식으로 절도 있게 키우는 학교이다. 한국의 장성들이 자기 자녀는 저기로 유학 보내서 키우기도 한댄다. 중딩 고딩들한테 설마 진짜 사관학교처럼 공수 훈련까지 시키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총 잡고 페인트탄 워 게임 정도는 한다.

사탄의 인형 3의 배경인 '켄트(Kent) 군사 학교'는 '켐퍼(Kemper) 군사 학교'라고 미국에 실제로 있었던 사립 사관학교이다. 1800년대부터 있었던 학교이다 보니 캠퍼스가 굉장히 고풍스러우며, 사탄의 인형 말고 몇몇 다른 영화들의 촬영지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학교는 쟁쟁한 졸업생 동문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점점 경영난을 겪었으며(신입생의 감소로 인해), 2002년에는 폐교하고 말았다. 국영 사관학교라면 이렇게 망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옛 캠퍼스 부지와 건물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4. 군대의 진급

우리나라의 현행 군대 계급 체계에서 다음과 같이 임관 내지 진급하는 건 흔치 않은 경우이다.

  • 준위로: 부사관에서 상사를 능가하는 만렙 계급은 일단 원사이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간 준위는 단순히 원사의 상위 레벨이 아닌 좀 특이한 계급이다. 부사관의 만렙으로서 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 스페셜리스트이면서, 한편으로 그 바닥에서 장교 같은 명령권도 있는 '준사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떤 준사관 계열은 아예 군필만 한 민간인이 곧장 들어오기도 한다.
  • 임관이 아니라 특진해서 소위로: 병장이 진급해서 자연스럽게 부사관인 하사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병이나 부사관이 자기 계열에서 진급만 한다고 해서 장교 계급을 받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상 죽어서 소위 계급이 상징적으로 추서된 건 지뢰 밟고 죽은 군견이 유일하다.
  • 대장에서 원수로: 원수는 포스타 중에서도 그야말로 나라를 구한 불멸의 성웅이나 받을 법한.. 상징적인 종신 계급이다. 통상적인 진급이나 전사자 특진만으로는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 과학 분야 노벨 상 수상자가 없는 것만큼이나 원수 계급을 받은 군인도 현재까지 없다. 그나마 제일 근접해 있는 백 선엽 대장마저도 못 받은 계급을 감당할 만한 용자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전쟁터에서 혼자서 적군을 수십 명 때려잡고 아군을 수십 명 구했다면 그건 병이나 부사관이 무공 훈장과 포상금을 잔뜩 받을 일이다. 계급 자체는 그런 병/부사관 수준에서 1~2단계 정도 특진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에 반해 포스타가 원수가 되려면..?? 가히 전군과 국가에 영향을 끼칠 만한 넘사벽급의 '통솔' 업적이 있어야 한다.

  • 사령관의 천재적인 지휘 하에 전군이 힘을 합쳐서 돼지 목을 따는 데 성공하고 북진 멸공 통일을 이룬다거나,
  •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했는데 한국군이 무슨 지구를 구하는 데 국제적인 기여를 했거나,
  • 국군의 규모가 지금보다 몇 배 이상 더 커져서 포스타마저 수십 명으로 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오성장군이 배출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31 08:34 2019/01/3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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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굴러다니는 글들 중,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필력이 정말 존경스러운 작품을 두 편 소개하고자 한다. 뭐, 내가 알게 됐을 정도면 알려진 지 이미 수 년이 지났고 네티즌들 사이에 퍼질 대로 퍼졌겠지만 말이다.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지만 팩트가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글, 비유와 패러디와 개드립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창의적인 글이 좋다. 본인은 Doom 코믹스 대사라든가 작은 하마 이야기 스타일의 개그 코드를 아주 좋아한다.
도대체 무슨 약을 빨아야 저런 필력이 나올 수 있을까? 나도 이런 스타일과 내용의 글을 쓰고 싶다.

1. 부산 운전 후기 (☞ 링크)

일단 닥치고 읽어 보시길.. 생각 같아서는 이런 주옥 같은 명문은 날개셋 타자연습의 연습글에도 당장 집어넣고 싶을 정도이다. 주요 감상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 야수의 심장을 쏘는 유신의 심정 → 이거 나름 롸임 있는데?? ㅋㅋ
  • 전쟁 이후로 갈아엎은 적이 있나 싶은 X같이 열악한 도로망, 쓸데없이 높은 인구 밀도, 붇싼싸나이 특유의 허세
  • 부산시에서 차량을 등록할 땐 깜빡이를 뜯어내야만 등록 허가가 난다. 이 씨X새X들은 절대로 깜빡이를 키지 않는다.
  • "어 점마 점마 머고? 부싼싸람 아이네!"
  • 수시로 차창을 내리고 옆 차량과 가정사를 물어보는 시끌벅적한 동네
  • 선 끼어들기, 후 깜빡이는 필수. 이때 뒤에서는 힘찬 크락션 소리가 너의 차선 변경을 축하해 줄 것이다. ㅍㅎㅎㅎㅎㅎ
  • 아니면 니가 끼어들 차로의 반대 방향으로 깜박이를 키는 것도 좋다.
  • 아이가 타고 있어요 → 이런 차들은 자기 애새끼가 진짜 불에 활활 타고 있는지 운전을 상당히 X같이 한다.
  • 뭔 동네에 유전이라도 터졌는지, 급제동 급발진을 X나게 습관적으로 하면서 길바닥에 기름을 쳐 뿌리는 걸 보면..
  • 부산에 진입하기 전에 대물 한도를 10억으로 늘리고 과감하게 운전하자. 이 동네에선 잃을 게 많은 놈들이 브레이크를 밟는 법이다.
  • 승객을 인질로 삼고 폭주하는 저 운전사는 도대체 버스 기사인지, 아니면 저승의 뱃사공인지 헷갈린다.
  • 근처 차량의 지붕에 뭐가 달려 있다(택시등ㅋㅋㅋㅋㅋㅋ) 싶으면 무조건 피해라. 아니면 니가 그 안에 타든지.
  • 도로를 달리는 건가, 요단 강 래프팅을 하는 건가?
  • 연비 절감을 위한 자구책인지.. (배기가스 절감이나 연료 소모 절감이 아님. ㅍㅎㅎㅎㅎㅎㅎ)
  • "뭐고, 붇싼 택시 처음 타능교? 내가 이래봬도 중앙동 넘버 쓰리라 안 카나. 남바 완, 투는 다 사고로 디져뿟다 아이가"

아.. 정말 빵터지는 한편으로 나도 어서 부산 가서 운전 좀 하고 싶어진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니면 내가 직접 차를 몰지 않더라도, 그 악명 높은 총알택시를 타고 궁극의 과속과 가속도 변화와 스릴을 경험하고 싶다. 나도 과격 격렬한 건 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말을 이렇게 하지만 본인은 평소에 택시를 타면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를 꼬박꼬박 맨다.
그리고 차를 몰 때는 늘 (1) 1/2 mv^2이라는 물리 감각, (2) 풀 악셀을 밟을 때마다 기름값 몇십 원이 깨진다는 경제 관념, (3) 그리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는 언제 무엇이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겁대가리라는 삼요소를 늘 숙지하고 명심하고 있다.

부산은 6· 25 때도 북괴에 점령당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전쟁 때문에 길거리가 대판 파괴되어 리셋 재건된 역사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의 선형에도 옛날 스타일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더 좁고 꼬불꼬불하고 오거리 육거리가 많은 것 같다. 거기에다 저기는 서울이나 대구만 한 분지도 없고 산이 많으니.. 구조적으로 자동차 운전에 친화적이지 않은 지형이 형성된 게 아닐까?

부산 도로의 특징에 대해 그나마 점잖게 써 놓은 곳은 다음과 같다. (☞ 링크 1, 링크 2)
롤러코스터 같은 산복도로가 많다, 오거리· 육거리가 많다, 고가도로가 많다 등..
고가도로가 많으면 그 아래는 기둥 때문에 길 모양이 꽤 복잡해지긴 한다. =_=;;;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부산 사투리를 빼놓을 수 없다.
부산 사투리라는 걸 최초로 전국적으로 퍼뜨린 매체는 20여 년 전에 나온 영화 <친구>임이 틀림없다. "-예 (하고 있지예, 그런데예)", "아잉교, 아이다" 등..
경상도 사투리라는 게 곧 부산 사투리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영화 <아저씨>에서는 오 명규 사장과 일부 형사, 그리고 <범죄도시>에서도 마 동석 말고 다른 동료 형사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게 클리셰처럼 됐다. ("뭐 보노 X꺄, 상X 터쟈뿔라 마~" ㄲㄲㄲ)

사투리계의 또 다른 계보는 물론 전라도다. "아따 거시기하네, 시방 겁나게 웃겼당께로~" 이런 거.. =_=;; 경상도와는 어휘와 억양이 미묘하게 다르다.
그 밖에 평양 사투리도 있다. "고조, ~했지비, 내레" 이런 말투가 쓰이는데, 자연스럽게 구사하려면 이것뿐만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그 억양을 북한 방송 보면서 익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도 필요하다.

부산은 나름 우리나라 제2위의 대도시인데 서울과 다른 고유한 언어와 교통(!) 문화를 잘 간직하고 사람들이 다이내믹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ㅎㅎ

2. 장애인 (☞ 링크)

이 글은 휠체어를 타는 실제 장애인이 썼다. 부산 운전만치 '웃긴 요소'는 별로 없지만 그럭저럭 재미있고 진지하게 읽을 만하다.

휠체어의 회전 반경과 후방 시야

  • X발 니들 중에 휠체어로 회전반경 20cm 이하로 만들 수 있는 X끼 있으면 나와서 내 욕해도 됨. 세상 어느 휠체어가 제자리 회전이 되냐?
  • 휠체어 뒤로는 제발 바짝 서 있지 좀 마라. 휠체어엔 백미러가 안 달려 있다. 뒤로 목을 돌려 확인할 정도로 목이 잘 돌아가면 병신이라고 불리지도 않아~ 이 X신들아. 아니면 휠체어에 백미러 달아 주든가.

휠체어 탑승자의 높이 접근성

  •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라고 분명 마크 달려 있는데 130cm 위에 버튼 달아 놓은 건축 시공사 새X들 전부 대가리에 마대질 할 줄 알아라 씨X, 개놈들 다 총살시켜야 돼~
  • 팔이 어깨보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정도면 병신이라고 불리지도 않어. 그런 X나 당연한 게 안 되니까 병신인 거다.

휠체어 탑승자의 접근성과 이동권

  • 대학교 수업 들으면서 "휠체어가 고장 나서 지각/결석합니다"라는 멘트 한번 상상해 봤냐? "비 와서/눈 와서 수업 못 나갑니다"는 어때?
  • 차라리 아파서 결석이면 덜 억울해. 진단서 끊어 가면 인정받으니까.. 하지만 휠체어 수리는 영수증 제시한다고 인정될 사항이 아니지, X발
  • 전동 휠체어를 들고 계단을 오를 땐 무조건 6명 이상 모여라. 니들 허리 생각해서 하는 소리다.
  • 휠체어 전체를 덮는 비옷? 있기야 하지, 그런데 그걸 혼자 쓰고 벗을 수 있을 정도면 병신이라고 안 한다는 거 이제 식상하지?
  • 지하철 1, 4, 7, 10째 칸에 있는 빈 공간에 주저앉아 있지 좀 마라. 나 없을 땐 몰라도, 타면 알아서 좀 비켜라 병신들아, 진짜 병신 만들어 놓기 전에.

휠체어 도로 주행의 애로사항

  • 전동 휠체어는 굴러다니는 것 자체로 모든 면에서 위법임. 기름 넣고 굴러가는 자동차도 아니고(차도 X), 완전 보행자나 그에 준하는 물건도 아니고(차라리 수동 휠체어는 법적 보행자로 인정이지만 전동은..), 그렇다고 자전거도 아니고(자전거 전용 도로도 X).
  • 휠체어는 인도로 가라고 하는 놈들 다 휠체어에 태워서 인도 드라이브 한번 시켜 줘야 됨. 인도가 얼마나 익스트림 한지 니들 모르지?

본인도 휠체어는 지게차나 바퀴 달린 의자처럼 제자리 회전이 당연히 가능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아니었구나.

장애인은 안 그래도 몸이 불편한 데다가 수도 적다. 사회에서 완전 약자 중의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권이고 복지고 없고, 사실 사지 멀쩡한 사람들도 자기 입에 풀칠하느라 바쁘던 전근대 시절에는.. 장애인의 삶은 막장 시궁창 그 자체였다. 말 그대로 병신이라고 불리면서 완전 천대와 무시, 멸시, 차별, 박해를 받으며 거지로 살아야 했다.

사회가 이런 사람들을 같이 수용하고 먹여 살릴 수가 없었다. 꾀병 부리는 거랑, 진짜 장애가 있는 것을 일일이 분간할 여력도 없었고 말이다. 오죽했으면 나치 독일은 유대인이 아닌 자국민이라도 이런 장애인은 몰래 죽여 버렸을 정도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사고로 인한 후천적 장애가 훨씬 더 많다. 마치 낙태 사유가 강간으로 인한 것보다 피임 실패가 훨씬 더 많은 것처럼 말이다. 누구든지 재수가 더럽게 없으면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무슨 동성애자 인권 따위가 아니라 장애인 인권과 접근성 문제는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주제인 것 같다. 더구나 다른 장애인도 아니고 상이 군경까지 그 따구로 대했다가는 아무도 국가를 위해 기꺼이 죽거나 다치려 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28 08:35 2019/01/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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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수

작년에는 백 선엽 예비역 대장이 무려 99세 생일을 맞이했다. (☞ 관련 기사)
1920년생이라니, 20세기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모조리 겪은 거장이요, 국내 톱급의 장수 고령자이지 않을까.. 특히 시골 깡촌 장수촌에서 평생 농사만 지은 노인 할머니 말고,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한 남성 유명인사 중에서는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이가 60세가 아니요, 결혼한 지 60주년도 아니고, 대장 달고 예편한(1960) 지가 60년이 돼 가는.. 거의 미친 연배와 경력의 소유자이다. 게다가 부인도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송 해 씨가 1927년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26년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출신이어서 몸 관리 잘해서 그런지 늙어서까지 쌩쌩 팔팔하고 건강한 걸 보면 굉장히 부럽다.
전사자를 끝까지 찾아내고 노병을 깍듯이 예우하는 미군도 부럽고.
사실, 저 사람은 한국보다도 미국에서 훨씬 더 알아주고 존경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에 취임하면 백 장군을 찾아 깍듯하게 ‘전입신고’를 하는 게 관례일 정도이니..

2. 다산

이 끔찍한 "먹고 살기 힘들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 속에서 우리나라에 현재 자녀를 제일 많이 낳은 집안은.. 구미에 살면서 무려 13명의 자녀를 둔 김 석태· 엄 계숙 부부이다. 이미 여러 번 매스컴 탔다. 이분에 대해서 내가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서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2년 근황
2016년 근황

목사 집안인 것, 그리고 자녀들 이름을 모두 순우리말로 지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셋째인 '김 다드림' 군은 지난 2010년에 순우리말 운동 단체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 모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애국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셈인데.. 2016년 근황에 따르면 장녀는 이미 대기업에 취업했고 서열 끄트머리뻘인 애들은 이제 고등학생이라고 한다.
모든 아이들이 대학에 가지는 못할 것이다. 일부는 곧장 취업하거나 방통대 독학사나 사관학교 같은 저렴한 방법으로 대졸 학력을 따야 할 것이다.

예외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집안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는 경향이 있다. 가령, 안 철수 집안은 그야말로 부부가 다함께 돈을 빗자루로 긁어모은 수준의 억만장자이지만, 서로 자기 전문직 종사하느라 바빠서 자녀는 그냥 외동딸 하나가 전부이지 않던가..;;

자녀 계획이야 그건 하나님도 존중해 줄 정도로 전적으로 각 부부들의 재량 영역이다. 그런데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이 정도로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니 자녀 계획도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음이 느껴진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차와 돈과 집은 죽은 뒤에 절대로 못 들고 올라가지만, 자녀만은 그 뒤에도 영원히 같이 보며 지낼 수 있다. 물론 제대로 잘 키워서 구원받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아주 어렸을 때 병이나 사고로 잃은 자녀에 한해서 말이다.

3. 만학

지역 언론에는 잊을 법하면 한 번씩 시골 만학도 노인 얘기가 매스컴을 타는 것 같다.
그냥 4, 50대 나이에 방통대나 대학원에 다시 들어오는 정도로는 희소성(?)이 부족하다. 대학 교수나 의사· 변호사가 본업 은퇴 후에 또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서 늘그막에 방통대 같은 다른 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그래도 고등교육 등급의 만학이고 성격이 다르다.

아예 초등 교육 수준에서.. 한글도 제대로 못 깨우친 채 시골에서 평생을 보냈다가 이제야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새로 또는 다시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는 할머니들 소식이 종종 보도되곤 한다.

2007년 1월자, 전북 김제
2018년 11월자, 강원 평창

세계 톱클래스의 교육열을 자랑하고 무려 중학교까지 의무 교육이 된 지가 10년이 넘은 이 대한민국의 한구석에, 아직도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이 실감이 잘 안 간다. 세월이 흐르고 일제 시대나 6· 25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죽고 세대가 바뀌고 나면, 이 정도로 극단적인 만학도는 아마 찾을 수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하긴, 일제 시대에만 해도 의무 교육이란 게 없었다. 초등학교(그 시절 용어로는 소학교)도 시험 치고 돈 내고 들어가고, 심하게 사고 치면 얼마든지 짤릴 수 있었다. 특히 1940년대에 창씨개명 같은 거 거부하면 당연히 짤렸다. 그러니 북괴 김 일성의 최종 학력인 중졸도 그때는 아무나 보유 가능한 학력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자마자 그 가난한 여건에서 국가 단위로 교과서를 대량으로 찍어내고 초등학교 의무 교육을 시행하려 한 건 굉장한 재력이 필요한 과업이었으며, 보통일이 아니었다. 문맹이란 게 얼마나 서러운 건지는.. 당사자가 되어 겪어 보지 않고서는 아마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걸 시행했던 남쪽의 수장 할배는 뭐.. 차원이 다르다. 프린스턴 박사는 지금의 잣대로도 어마어마한 학벌 학력인데, 그걸 100년도 더 전에 배 타고 미국 가서 영어로 논문 쓰고 취득했으니 가히 넘사벽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할배나, 할배의 박사 지도교수(우드로 윌슨)나 모두 자기 나라의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자기 나라의 역대 대통령들 중 명예박사가 아닌 진짜 박사 학위를 소지한 유일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07 08:35 2019/01/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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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텔 CPU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1971년에 무려 4비트짜리로 나온 4004가 최초의 상업용 마이크로프로세서라고 여겨진다. 그 뒤 72년에 8비트 8008이 나오고, 1978년의 16비트 8086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x86 아키텍처의 서막을 열었다.

8086, 80186, 80286은 모두 16비트 CPU이다. 186은 PC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고, 286은 이론적으로는 보호 모드와 멀티태스킹까지 지원하는 물건이었지만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소프트웨어에서 실제로 제대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086에서 286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그냥 CPU의 클럭 속도만 올라가고, IBM PC 규격 차원에서 XT/AT의 차이가 더 컸던 것 같다. 가령, 하드디스크 탑재라든가 고밀도 디스켓 지원 말이다. 키보드의 반복 속도 조절 기능도 내 기억이 맞다면 AT부터 지원되기 시작했다.

무려 1985년, 아직 VGA도 없던 시절에 80386 CPU가 개발되어서 IA32라는 아키텍처가 완성되긴 했다. 하지만 이때는 컴퓨터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32비트가 가정용으로 보급되기는 곤란했다.
나중에 외부 데이터 버스를 32 대신 16비트로 줄여서 가격을 좀 낮춘 보급형 386SX라는 게 등장했다. 훗날 등장한 펜티엄은 반대로 그 버스의 크기가 64비트로 머신 워드 크기보다도 더 커졌으니, 386SX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또한 386 때부터 슬슬 캐시 메모리가 쓰이기 시작했으며, 486에서부터는 부동소수점 프로세서(FPU)가 기본 내장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클럭 속도의 증가는 덤이다.
486 이후로는 인텔이 숫자 명칭 대신 '펜티엄'이라는 자체 브랜드명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펜티엄 다음으로는 코어.. 코어 안에서는 네할렘, 샌디브릿지 같은 세부 공정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명칭을 붙여서 제품을 구분하고 있다.

2.
2000년대 중반, 딱 Windows XP와 IE6이 장수하던 05~06년 사이에 멀티코어와 64비트가 도입되면서 PC의 환경이 20세기 시절과는 크게 달라진 듯하다. 둘은 도입 시기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미묘하게 비슷하다. 펜티엄 4의 후기형을 거쳐서 펜티엄 D에서부터 싱글코어 기반의 x86-64가 정착했으며(정확히는 2003~04년 사이), 반대로 Core 1 Duo는 32비트 전용의 첫 멀티코어 프로세서였다.

그러다가 둘이 합쳐져서 Core 2 Duo가 64비트 + 2개짜리 멀티코어 시대를 열었다. 운영체제는 Windows Vista/7부터 말이다.
사실 Core 1 Duo는 PC용으로는 출시도 되지 않고 모바일용으로 나왔는데, 애초에 x86이 모바일에 적합한 구조의 아키텍처가 아니다 보니 존재가 모순적이었다. 그러니 별 재미를 못 보고 단종됐다.

CPU가 그렇게 바뀐 동안 모니터는 LCD와 와이드가 도입되었다. 옛날에는 4:3 비율의 액정 모니터도 있었지만 2000년대 중후반쯤에 자취를 감춘 듯하다.
요즘은 형광등이 처음 켜질 때 깜빡거리는 걸 볼 일이 없어진 것처럼.. CRT TV나 모니터를 처음 켤 때 화면이 예열과 함께 천천히 fade in 되는 모습도 볼 일이 없어졌다.

또한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모니터의 테두리 색깔이 흰색이 많았는데 와이드 화면 모니터는 검은색이 주류가 된 것 같다.

3.
인텔 CPU가 초창기에 저렇게 발전해 온 동안,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국가에서 나서서 전국민에게 PC를 보급한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전자는 그 말 많던 "교육용 PC" 사업이고(1980년대 말), 후자는 그로부터 10년쯤 뒤, IMF에다 세진 컴퓨터 랜드가 아직 있고 인텔 펜티엄 2, 셀러론 이러던 시절의 국민 PC 사업이다.

전자의 사업 때 이미 많이 보급돼 있던 MSX니 SPC니 하는 8비트들을 싹 배제하고 과감하게 16비트 IBM 호환 PC를 지정한 것은 마치 철도 표준궤와 220V 전압만큼이나 미래를 내다본 굉장한 선견지명이었다. 결국은 그 PC 계열이 천하를 평정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당시에 정보통신부나 과학기술처의 담당 관료가 중대한 결정을 잘 내렸다.

뭐, 8비트 컴터들은 대체로 화면 해상도가 낮고 성능도 떨어져서 당장 한글· 한자 처리에 애로사항이 너무 크긴 했다. 그 문제 때문에 한국· 일본은 16비트 컴에서 비디오 카드조차도 허큘리스에서 거의 곧장 VGA로 갈아탔지, 서양처럼 CGA/EGA를 진지하게 경험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이야 PC는 너무 흔해 빠지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윤도 별로 안 남아서 하나 둘 철수할 지경이 돼 있다. 남사스럽게 PC에 연연할 필요 없이 폰이 다 보급돼 있고.. 당장 돈이 없어도 온갖 할부 제도를 이용해서 뿌리다시피하고 있다. 저 시절의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성능 좋고 작은 컴퓨터를 전화기에다가 얹어서 들고 다니는 게 경악스럽게 느껴질 지경이다.

4.
지금까지 CPU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문자 인코딩을 CPU 명령의 인코딩에다 비유하자면, UTF-8은 CISC에, UTF-16이나 32는 RISC에 딱 대응하는 것 같다.
원래 UTF-8은 그 구조상 5~6바이트까지도 늘어나서 U+10FFFF보다 더 큰 코드값도 기록이 가능은 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코딩 규칙이 개정되어서 5~6바이트짜리는 현재로서는 고이 봉인하고, 1~4바이트까지만 사용하기로 했다.

오늘날 국내외의 컴덕이나 프로그래머들 중에는 UTF-8을 완전 만능으로 칭송하는 한편으로 UTF-16은 거의 사회악 쓰레기 수준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띈다. 프로그래밍 배경이 Windows가 아닌 유닉스 계열인 사람, 그리고 특히 wchar_t의 플랫폼별 파편화 때문에 삽질과 고생을 단단히 한 사람일수록 그런 성향이 더욱 강하다.

본인은 주장의 논지는 이해하지만 그 정도까지 부정적인 견해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컴퓨터에서 어떤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결국은 값을 그대로 전하든지, 아니면 좀 덩치가 큰 데이터는 별도의 메모리에다가 저장해 놓고 그 메모리 주소만 전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32비트니 64비트니 하는 건 그 컴퓨터의 CPU가 한번에 취급하는 그 정보의 크기 단위이다.

문자 하나를 전하기 위해서 일일이 메모리 할당해서 문자열을 만들고 포인터를 전달하느냐, 아니면 그 문자의 코드 포인트 값만 간단하게 전하느냐.. 이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는 프로그램 좀 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 와중에 옛날 사람들이 UTF-16이라는 계층의 존재를 예상 가능했던 것도 아니고, 1990년대에 메모리가 지금만치 풍부하고 저렴했던 것도 절대 아니고, 그저 모든 글자의 크기를 2바이트로 균일하게 늘리는 것만으로도 메모리를 너무 많이 잡아먹네 하던 시절에.. UTF-8도 아니고 UTF-32도 아닌 적당한 절충안인 UTF-16 내지 그 전신 UCS-2가 과연 그 정도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 존재인 걸까?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건 유니코드에 현대 한글 글자마디 11172자가 일일이 다 등록된 게 잘못된 거라고 비판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렇게 등록을 안 했으면 글꼴을 만들기가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DB 문자열 필드나 파일명 같은 데에 집어넣을 수 있는 한글 글자 수가 크게 감소했을 텐데 말이다.

문득 Windows가 오로지 65001 UTF-8만으로 천하통일이 이뤄지고.. 심지어 9x 시절처럼 W가 아닌 A 함수가 주류로(그 대신 UTF-8 기반으로!) 회귀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사실상 0일 것이다. =_=;;
Windows의 WCHAR뿐만 아니라 macOS의 NSString, Java의 Char과 jstr, COM의 BSTR 등 많은 운영체제와 프레임워크들은 2바이트를 문자의 기본 단위로 사용하고 있으니 어차피 이걸 쉽게 벗어날 수 있지도 않다.

5.
컴퓨터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보조 기억 장치는 결국 (1) 자기 디스크, (2) 플래시 메모리, (3) 광학 디스크 이 세 범주 중 하나로 귀착된다. 또 완전히 새로운 범주가 개발될 여지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용량과 속도 가성비가 "전반적으로" 제일 뛰어난 건 역시나 자기 디스크이다 보니, 얘를 기반으로 한 '하드디스크'는 가히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기계식, 물리적인 요소가 존재하는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컴퓨터에 여전히 건재하다.

플래시 메모리는 PC에서는 USB 스틱 아니면 SSD의 형태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동작 중에 일체의 소음과 진동이 없는 순수 전자식이며, RAM과 보조 기억 장치의 경계를 허물 차세대 주자로도 각광받는 물건이다. 하지만 가격 때문에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대체하는 건 여전히 무리이다.

마지막으로 광학 디스크인 CD/DVD/블루레이는 매체의 외형부터가 빛을 반사하는 새끈한 재질인 게 굉장히 간지 나고 미래 지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20여 년 전에 40배속인가 뭔가에서부터 읽기 속도가 한계에 달했으며, 쓰기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 때문에 쓰임이 반쪽짜리가 됐다.

USB 메모리와 초고속 인터넷 파일 전송, 가상 디스크 마운트 기술에 밀려서 광학 디스크를 사용할 일이 예전에 비해 극히 드물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부팅조차도 USB 메모리만으로 가능해질 정도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옛날에는 레이저를 사용하는 컴퓨터 주변 기기들이 굉장히 비쌌다. CD 라이터라든가 레이저 프린터 말이다. 이런 것들이 개인이 쉽게 보유할 정도로 흔해진 건 이르게 잡아도 1990년대 말이고 21세기에 와서부터이다.
또한 얘들은 다 열을 많이 가하는가 보다. 레이저 프린터만 해도 종이를 고온 고압을 가해서 토너가루를 붙이는 식으로 인쇄하는데(그래서 타 인쇄 방식에 비해 전기도 많이 씀), 광학 디스크에다 기록하는 것도 한국어· 영어 공히 '굽다/BURN'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비슷한 메커니즘을 동원하는 듯하다.

여담이지만, 자기 디스크는 영어 철자가 disk이고, 광학 디스크들은 철자가 disc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6.
터치스크린은 기존 키보드와 마우스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모니터를 출력 장치뿐만 아니라 입력 장치도 겸하게 해 주는 깔끔하고 참신한 인터페이스임이 틀림없다. 단순히 버튼을 콕콕 찍어서 선택하거나 간단한 필적을 그리는 용도로 아주 좋다.

터치스크린을 구현하는 방식은 크게 감압식과 정전식으로 나뉜다. 감압식은 물리적인 압력을 감지하는 방식이고, 정전식은 그게 아니라 표면의 전기 신호의 변화를 감지하는 방식이다.
이게 마우스로 치면 제각기 볼 마우스와 광 마우스에 대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전자가 좀 기계식이고 후자는 말 그대로 전자식이다.

처음에는 전자와 후자가 장단점이 서로 호각인 지경인데, 기술적인 구현 난이도는 후자가 더 높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결국 기술적인 한계가 극복되고 후자의 장점이 더 부각된 덕분에, 후자 방식이 주류 대세가 되었다. 이런 변화 양상도 마우스와 터치스크린이 서로 동일하다.

엘리베이터 버튼 중에도 오로지 사람의 생 손가락만 인식하고 타 물체 내지 장갑 낀 손가락은 인식하지 않는 게 있는 게 개인적으로 신기한 한편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광 마우스는 유리판 위에서는 좀체 동작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 손가락만 인식하는 센서들은 다 정전식이다. 감압식이라면 무슨 물체를 쓰든지 버튼을 누른 건 다 인식돼야 할 것이다.

정전식은 감압식보다 터치를 더 부드럽게 인식할 수 있으며 특히 마우스가 결코 흉내 내지 못하는 멀티터치를 구현하는 게 더 유리하다.
Windows 98에서 마우스 휠이 정식 지원되기 시작했다면 지난 Windows 7에서 터치 장비가 정식으로 지원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7은 그림판이 크게 개선되어서 초보적이나마 브러시 엔진까지 도입됐는데, 여러 손가락으로 동시에 태블릿을 긁으면서 그림을 그리던 시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데스크톱/노트북급에서 화면이 터치스크린을 지원하는 장비는 10년째 한 번도 못 봤다. 장비를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도 멀티터치 같은 걸 연계한 입력 도구를 구현할 생각이라도 했을 텐데 그건 지금까지도 그냥 장기 계획으로만 머물러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런 터치 장비는 좌표뿐만 아니라 압력 정보까지 전할 수 있다.
다만, 얘들은 올록볼록 입체적인 점자를 표현하지 못하니 터치스크린 기반 UI는 장애인과는 그리 친화적이지 못한 인터페이스이다.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시각 장애인 내지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스마트폰도 여전히 버튼식 폴더 형태로 된 기기를 써야 한다.

7.
자동차에 경차라는 차급이 있고 총기 중에도 제일 작은 권총이라는 게 있듯, 컴퓨터계에서 제일 작은 놈은 넷북이지 싶다. 정말 작고 아담해서 들고 다니기 편하며 값도 저렴하다. 부담 없이 인터넷과 문서 작업만 하는 용도로는 참 좋다.

하지만 얘는 그만큼 CPU의 성능이 매우 뒤떨어지고 화면 해상도도 너무 낮으며, 키보드 역시 적응이 힘들 정도로 너무 작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얘로 단순히 글자판떼기 치기 이상으로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다. (프로그래밍, 그래픽 디자인 등등..) 아니, 사람에 따라서는 키보드의 구조 때문에 단순 글자판떼기 치기조차도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2010년대부터는 PC가 아닌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기반을 둔 각종 태블릿 판떼기들이 급속히 발전한 덕분에, 단순 휴대용 인터넷 단말기 및 게임기라는 수요는 사실상 거기로 다 흡수됐다. 그러니 단순히 노트북 PC를 경차급으로 줄인 넷북이라는 건 사실상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오히려 그 태블릿들이 필요에 따라서는 키보드를 연결해서 쓸 수도 있는 형태가 됐다.

물론 터치스크린은 기존 키보드와 마우스를 결코 완전히 대체할 수 없으며, 정보의 소비와 열람이 아니라 정보를 생산하는 도구로서 PC의 지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또한, 넷북이 없어진다고 해서 넷북의 용도 내지 걔들이 수행하던 작업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휴대용 컴퓨터는 좀 더 모바일 기기와 결합한 형태로 변모하고, 전통적인 PC는 자기 역할에 특화되는 쪽으로 가는 듯하다.

8.
1990년대 초반

  • 86키 키보드는 이제 거의 도태하고 101키 키보드가 대세가 됐다. 옛날 키보드는 F11, F12가 없으며, 기능 키 F1~F10이 맨 왼쪽에 2열 5행으로 세로로 배치돼 있었다. 지금의 capslock 자리에 ctrl이 있고 capslock은 지금의 우alt/ctrl 자리에 있었다. 키패드에서 우측 하단인 지금의 엔터 자리에 더하기가 있었다.
  • 옛날에 키보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전용 포트에다 꽂았으며 마우스는 모뎀과 같은 COM.. 직렬 포트에다 꽂았다. 프린터는 병렬 포트에 꽂았고.. 모뎀과 마우스의 충돌은 정말 대표적으로 골치아픈 문제였다.
  • Plug & play도 없고 USB도 없던 시절이니, 외장 하드디스크를 연결해서 인식시키는 것만 해도 바이오스 설정을 바꾸는 등 정말 고도의 컴터 지식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1990년대 중반

  • 좋은 그래픽 카드를 사용하면 화면이 바뀌는 곳에서도 마우스 포인터가 깜빡거리지 않기 시작했다. 단, 흑백 기본 포인터 한정으로. custom 포인터는 여전히 깜빡거렸다.
  • 486쯤부터는 컴퓨터 본체가 모니터 밑받침으로 까는 형태가 아니라 모니터 옆에 세워 놓는 형태로 거의 정착했다. 하지만 Windows의 '내 컴퓨터' 아이콘은 XP에 가서야 이 모양을 반영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 486/펜티엄급 컴에서 WinAMP로 128kbps급 mp3를 하나 재생하면 CPU 점유율이 10~20%가량 올라가곤 했다.

1990년대 후반

  • 시스템 종료 후에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이제 컴퓨터를 끄셔도 안전합니다"라는 주황색 글자를 사용자가 직접 볼 일이 없어졌다.
  • Windows 98쯤부터 멀티웨이브가 가능해졌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원래 옛날에는 한 프로그램에서 사운드를 출력하기 시작하면 다른 프로그램에서 사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1999~2000 사이

  • 컴퓨터 규격이 크게 바뀌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USB 포트라는 게 등장했고, 키보드와 마우스용 초록색-보라색 PS/2 포트도 등장했다.
  • 전원을 3초 이상 꾹 눌러야 꺼지는 관행도 이때부터 정착했다.
  • 사운드카드의 스피커가 이제 컴터 본체에 내장되지 않기 시작했다.
  • 가정에서도 모뎀 대신 인터넷 전용선이 슬슬 보급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 이제 custom 마우스 포인터도 깜빡이지 않기 시작했다. 사실 Windows 2000은 9x와 달리, 16색 VGA 구닥다리 안전 모드에서도 마우스 포인터가 깜빡이지 않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신기했다.
  • 컴퓨터에서 오디오 CD의 음원을 추출하는게 옛날에는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손쉽게 가능해졌다.
  • USB 메모리가 디스켓을 확실하게 골로 보냈으며, 무선 인터넷과 합세하여 CD의 지휘조차 위협한다. 호각인 라이벌은 엄청난 용량을 자랑하는 하드디스크뿐..
  • PS/2포트조차 한물 가고 키보드와 마우스도 그냥 USB 기반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 Windows Vista부터는 동영상 화면도 일반 화면과 아무 차이 없이 print screen으로 캡처 가능해졌다.

Posted by 사무엘

2018/12/06 08:34 2018/12/0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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