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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생각

1. 첫인상

우리나라의 바다 건너 이웃에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예로부터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고 불리고 있다. 무작정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고, 존재감을 무시할 수도 없는 그런 복잡한 나라이다. 정치적으로 하도 민감한 주제이다 보니 "일본은 없다" "일본은 있다" 이런 책이 나온 것도 벌써 20년 가까이 전의 일이다. 본인이 블로그에서 이 나라 자체에 대해서 심층 취재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럼 비정치적인 얘기부터 가볍고 부담 없게 먼저 시작하겠다. 본인은 일본이라 하면 떠오르는 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무순)

  • 벚꽃이 만발한 오사카 성
  • 후지 산 아래로 달리는 신칸센
  • 지멘스 옥타브를 울리면서 달리는 게이큐 쾌특 전철
  • 앞발 들고 있는 복고양이
  • 게다짝, 기모노, 일본도, 정수리를 민 그 특이한 헤어스타일의 사무라이 (조선 선비들은 머리를 기르는 편이었는데 여기는 정반대)
  • 어두운 복장에 표창 던지는 닌자 (뭐, 후대에 만들어진 컨셉에 가까우며, 정작 옛날에 일본엔 저런 차림의 자객이 없었다고 하던데)
  • 스시, 일본 돈까스와 라멘, 심야식당
  • 학교 수영복 (저기에는 공립 학교에 수영장도 있으니)
  • 도라에몽, 슈퍼마리오, 짱구는 못 말려, 드래곤볼 캐릭터와 그와 비슷한 화풍의 일본 애니들
  •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킬 빌, 자토이치 같은 평범하거나 병맛· 개그스러운 영상물. 토스트 소녀-_- 게임
  • 파이널 판타지 같은 너무 심오하고 도무지 배경이고 스토리고 설정을 이해할 수 없는 안드로메다 영상물
  • 감각의 제국, 쇼군의 사디즘 같은 개막장 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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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난 일본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일본어는 열차 안내방송 외운 것밖에 모른다. 글자만이라도 작정하고 읽는 법을 틈틈이 외워 놓고 싶지만, 잘 안 된다.

하긴, 작년에 브라질 올림픽 폐막식 때 그 유명한 2020 도쿄 올림픽 홍보 영상이 상영되었는데 그거 정말 강렬했다. 반도에서 병맛스러운 김치 전사 내지 허접한 평창 동계 올림픽 홍보 영상이나 만들던 동안, 재패니메이션의 원조인 저 동네에서는 제한된 시간 동안 자기 나라의 발전된 면모를 저렇게 쭉 소개하면서 아베 총리까지 슈퍼마리오로 변장시켜서 찬조 출연시켰다니.. 쟤네들의 저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교통

일본은 근대화 산업화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섰으며 경제, 산업, 과학· 기술, 예능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고, 현대 사회의 각종 시행착오들도 먼저 겪은 선진국이다. 그 중 교통 분야만 살펴보더라도, 일본은 세계구급 자동차 제조사를 보유한 자동차 왕국인 동시에 신칸센 고속철까지 개발한 철도 왕국이다.

그런데 얘들은 자동차와 철도뿐만 아니라 '자전거 왕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륜차는 보행자와 자동차 사이에 껴서 만년 콩나물 신세를 면치 못하는 중인 반면, 일본은 이륜차를 더 많이 볼 수 있으며 도로나 주차 시설이 자전거를 더욱 배려하는 형태로 갖춰져 있다.

이건 일면 수긍이 가는 얘기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소득 높고 잘 사는 국력· 경제력에 '비해서' 서민이 자동차 굴리기는 훨씬 더 힘들게 돼 있다. 고배기량에 덩치 큰 차는 더욱 제약이 심하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배려와 혜택을 받는 경차의 배기량이 1000cc 이하로 정해져 있지만 저기는 800도 아니고 겨우 660cc이다. 그것도 21세기에..;; 일본도 한국 만만찮게 산과 험지가 많은 동네인데 저건 세계 자동차들 평균 덩치를 생각해도 너무 가혹한 제약이 아닌가 싶다.

또한 저기는 불법주차 단속이 이곳 반도보다 넘사벽급으로 더 자비심이 없으며, 애초에 1960년대에 마이카 시대가 시작되던 시절부터 차고지 증명제가 딱 시행되어 잘 정착된 걸로 유명하다. 차고든 유료 공영 주차장이든 주차 공간이 법적으로 확보돼 있지 않으면 자가용 구입을 아예 못 한다.
마치 컴퓨터에서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돈 주고 사야 하며, 눈에 보이는 원자재뿐만 아니라 무형의 기술 지원과 서비스에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듯.. 차를 샀으면 굴리는 것뿐만 아니라 세워 놓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도 주거비만큼이나 돈이 든다는 관념이 박힌 것이다.

우리나라야 지금처럼 건물과 주차장들이 완공돼 버린 와중에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하기에는 대략 곤란한 지경이 됐다. 자동차의 판매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이니 자동차 회사 영업 사원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미국으로 치면 총기 규제 정책 vs 총기 제작사들의 로비와도 얼추 비슷한 구도처럼 됐다.
할 거면 1980년대에부터 했어야지. 옛날 석유 파동 때 외화 아끼려고 차량의 배기량과 엔진 기통수에다는 온갖 규제를 걸었으면서, 정작 차고지 확보 관련 규제는 시행을 왜 안 했나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전기는 1970년대부터 승압을 잘 끝낸 반면에 자동차 쪽으로는 정치인들이 상대적으로 선견지명 안목이 없었던 셈이다. 반대로 일본은 철도 궤간과 전기 규격은 낭패 봤지만 자동차 주차 문화는 잘 정착시킨 경우에 속한다.

아무튼 일본은 경제력 대비 한국이나 미국보다 차 굴리기가 더 비싸고 빡센 나라이다.
그럼 자가용 말고 대중교통은? 대도시엔 물론 잘 구축돼 있고 속도 빠르고 정시성도 높다.

일본은 철도 왕국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지하철 역마다 온통 스크린도어들이 갖춰져 있지는 않다. 허나, 누군가가 선로에 투신 자살이라도 하면 고인이 불특정 다수에게 심한 민폐를 끼쳤다고 국가에서 유족에게 도리어 벌금을 매긴다. "자살을 하게 만든 사회 탓 국가 탓? 힐링힐링?" 그런 거 없다.
과거에 중국에서는 총살형을 집행하고 나서 총알값을 사형수 유족에게서 받아 챙기기까지 했는데, 마치 그와 비슷한 급으로 잔인하다면 잔인한 조치 같기도 하다.

허나 일본은 국민성이 민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이며, 거기는 철도 업계가 분초 단위로 열차 정시성에 목숨을 걸고 기관사까지 죽도록 갈구고 압박하는 곳이다. 평범한 전철도 몇 분 지연되면 역 직원들이 지연 증명서를 알아서 뿌리면서 승객들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굽신거린다. 그런 와중에 누가 자살해서 열차가 줄줄이 지연을 먹었다면 이거 얼마나 큰 민폐이고 피해인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5년 4월에 JR서일본 관할의 후쿠치야마 선에서 전철이 과속 탈선 사고가 나서 기관사 포함 107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는데, JR서일본에서는 그로부터 무려 1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홈페이지 첫 화면에 그 날 사고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해 놓고 있다. 그걸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다시는 그런 사고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게 정상적인 추모이고 이성적인 재발 방지 다짐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세월호 노란 리본 타령은 가해자 당사자의 사죄도 아니고 시스템적인 안전 개선과도 상관 없이 그저 감성팔이 반정부 광기 폭동일 뿐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일본의 대중교통은 서비스 좋고 시간 관념도 투철하고 다 좋은데.. 비싸다.
우리나라 식 운임과 임률을 생각했다가는 놀라서 턱 빠질 거다. 정말 왕창 비싸며, 사철 간에 통합 환승 할인 같은 것도 없다. 하물며 장거리 간선인 신칸센 운임은 국내선 비행기보다도 더 비쌀 정도이다.

그러니 일본이 비록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나라는 아니겠지만 미국 같은 나라도 아니니, 가까운 거리는 그냥 걷거나 자전거 타는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북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일본도 자전거는 등록하고 번호를 받아야 될 정도라고 한다. 굉장히 뜻밖이다. 물론 북한처럼 주민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질서 유지가 필요할 정도로 자전거가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저기서는 학생들, 특히 여자애들도 등하교나 알바 하러 출퇴근 할 때 자전거 많이 타는 거 같다.
어쩐지 일본의 사건사고 같은 이야기들을 봐도 가해자나 피해자들이 그 당시나 직전에 자전거 탔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극단적인 예로는 콘크리트 살인 사건(1989)에서도 그렇다.
또한 철권 시리즈에 나오는 '카자마 아스카'자전거 끌고 다니는 여고생 컨셉이다.
이제야 그 바닥 문화가 좀 이해가 되고 퍼즐 조각이 짜맞춰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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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권위주의

그럼 이제 민감한 주제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조금씩 논해 보겠다.
일본에는 덴노라는 국가 상징 겸 정치· 종교 복합체 중심 구심점이 있으며, 여기 한국보다 뭔가 전체주의스러운 분위기가 더 강하다. 일제의 패망 후에야 덴노가 인간 선언을 하고 젊은 세대들이 많이 자유분방 개인주의스러워졌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일본의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정치계나 법조계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보다 권위주의가 훨씬 더 심하고 경직돼 있다. 실수나 잘못· 착오가 생겨도, 누굴 억울하게 누명 씌워서 몇십 년 옥살이 시키고 나서도 그걸 시인해서 직접적인 표현으로 사죄 따위는 거의 안 하다시피한다.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면 자기 권위와 위신이 깎인다고 생각한다. '엔자이'(원죄) 사건이라고 검색해 보면 이런 예가 여럿 나온다.

사고방식이 원래부터 저렇고 '자국민'한테조차 저러는데, 하물며 쟤들이 자기보다 (엄밀히 말해) 국력이 딸리는 외국을 상대로 위안부 피해 문제 같은 거는 절대로 대놓고 사죄할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만치 간접적으로나마 유감 표현했고 돈 이만치 줬고, 이 주제 얘기 더 안 꺼내기로 지도자들끼리 서로 퉁쳤으면 나름 "걔네 입장"에서는 많이 양보하고 챙겨 준 것에 가깝다. -_-;;

뭐, 일본이 저 따구로 나오는 건 이스라엘 앞에서 가히 '도게자' 급으로 굽신굽신 사죄하는 독일과는 참 비교되는 모습이며 본인이라고 해서 보기 좋을 리 없다. 그럼 쟤네들은 원래 저런 놈들인가 보다 하고 우리로서는 과학 기술과 경제와 힘으로 극일을 이루는 것밖에 현실적인 답이 없다. 그 신사적인 독일조차도 이스라엘 급의 국력과 국제 위상이 있는 나라 앞에서나 굽신굽신이지, 다른 듣보잡 소수 민족이 나치에게 피해를 입은 건 상대적으로 모르쇠인 걸로 비판받는 건 변함없다.

이런 넓은 맥락에서의 이해 없이 그저 소녀상에다 반일 반일거리고, 일본하고는 뭘 하고 오든지간에 무조건 굴욕 매국 협상이라고 헛소리 하는 애들.. 정말 지겹다. 백 날 그렇게 설쳐 봐라, 일본의 태도가 바뀌는 게 있겠나?
그리고 또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북괴와 중국한테 그만치 부당하게 당해 온 걸 반의 반만치라도 따지고서 일본에 집착하는 거라면 또 내가 말도 안 한다. 북괴 김 정은이 6· 25 전쟁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 남조선을 향해 사죄를 할 것 같아 보이냐? 그와 똑같은 맥락이다.

4. 그나마 중국· 북한보다는 더 가까이해야 할 대상

동북아시아 한중일 CJK 국가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로서는 일본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사의 앙금 트라우마 때문에, 중국은 지금 당장 국가 프레임과 이념 차이 때문에 현실에서는 서로 마냥 손잡고 친하게 뭉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북괴? 걔들은 국가 프레임· 이념 차이를 넘어서 그냥 묻지 마 남조선을 체제 전복+적화시키려고 눈에 시뻘겋게 불 켠 쌩 양아치에 광신도+노예 집단일 뿐이고. 통상적인 경제력 군사력으로는 그걸 이룰 수 없으니 역사왜곡, 간첩질, 사이버전 선동질 등 방법도 갈수록 교묘하고 추잡해지고 있다.

통일 후에도 김돼지 동상이랑 주체사상 같이 껴안고 살 게 아니라면, 화해네 경제 협력이네 하는 개수작에 절대 응하지 말고 그냥 왕따 고립만이 답이고 진리이다. 굳이 먼저 북폭 하고 쳐들어갈 필요도 없으니, 굶겨 죽이기만 하면 된다.
일부 미사일 발사체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기술이 우리보다 앞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예외를 빼면 배울 것 선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동북아 이웃 나라들 중에 남조선이 제일 가깝고 친하게 지내야 하는 상대는..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이다.
그리고 제일 본받고 배워야 할 상대를 꼽자면 그건 친하게 지낼 대상보다도 더욱 단호하게 일본이다.

물론 구 일본군의 흉악한 전쟁 범죄라든가 그 스타일의 병신 같은 조직 문화와 똥군기 따위를 본받자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걔네들은 그런 지랄맞은 시스템 하에서도, 우리의 입장에서는 척결해야 할 소위 '일제 잔재'라는 것들의 본거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 관심 분야도 보태자면 한자 같은 불편한 문자를 쓰고도 어쨌든 근대화를 이루고 과학 기술 강국 선진국이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그렇게도 컴플랙스를 갖고 있는 과학 분야 노벨 상도 도대체 몇 개를 탔냐 말이다.

일본이 겉으로는 화해 유감 사죄 운운하면서 한편으로는 윗선에서는 모르는 척 망언 씨부리고 독도는 일본땅이다 교육을 해?
괘씸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래 봤자 군사적으로 같은 친미 동맹이고 동일한 자유 진영 이념 프레임을 공유하는 국가끼리 대놓고 군사 충돌이 일어날 확률은 중국· 북한보다야 훨씬 낮다.

저 정도 앙금과 마찰이 있으면 우리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얻어낼 거 얻어내면서 한편으로는 "일부" 극렬 민간단체를 모르는 척 묵인하면서 소녀상 한두 개쯤 놓고 시위든 하면서 맞불 놓으면 된다.
딱 그 정도까지만. 그건 나도 전략상 인정한다. 뭐 아무 티 안 내고 묵묵히 실력만으로.. 현대차· 삼성 전자가 일본 기업들 쳐발랐던 것 같은 방식으로 일본 이기는 게 제일 좋고 이상적이겠지만, 그럴 수만은 없고 현실에서는 감정상의 카타르시스도 약간은 필요하지.

필요 이상으로 반일 반일 거리는 애들이 진짜로 애국심? 민족 정기? 그런 순진한 이유로 일본 비판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매우 드물다. 오로지 자국 비하와 북괴의 범죄 물타기라는 매우 불순한 목적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비굴한 사고방식으로 일제의 식민사관 내지 조센징 엽전 비하는 어째 비판하고, 무장 항일 독립투사는 어째 칭송할 수 있는지 내 판단력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전국 방방곡곡에 무슨 몇백 개씩 소녀상 세우자고 유세를 떨거나, 특히 아직까지도 우리나라가 친일 청산을 못 했네 웃기는 소리 하는 애들은 우리나라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된다. 누구 때문에 왜 친일 부역자 군경을 활용해야 했는지만이라도 정확하게 가르치면 아무 문제될 거 없고 거짓을 팩트로 격퇴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5~20년 전부터 본인을 봐 온 분들은 잘 알 거다. 난 예나 지금이나 주된 연구 개발 분야가 한글 입력이고, 전통적으로 얼마나 열혈 반일 민족주의자였는지를 말이다.
그랬는데 내가 이렇게 돌아섰을 정도면, 저쪽에 있는 애들이 정말 일관성 없고 주적 구분을 못 하고 필요악과 절대악을 분간 못 하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어 저건 아닌데..;; 왜 중국 북한에다가는 단 한 마디도 말이 없지?" 하는 거부감이 들면서 갈라서게 됐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구든 일본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5/13 08:34 2017/05/1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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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정희 대통령의 자녀들

1. 박 근혜(1952)

* 주의: 오늘은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오랜만에 정치 얘기 좀 꺼낼 것이고 글 중간에 필터링하지 않은 진지한 욕설도 늘어놓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미리 양해 구함.
나하고 정치 성향이 맞지 않고 북괴는 같은 '우리민족'이니 남조선의 존립에 전혀 위협이나 해가 되지 않는다고 태평스럽게 생각하는 분, 내 글을 팩트와 논리로 반박· 저격할 의향이 없는 분은 박 근혜 얘기는 그냥 건너뛰기 바란다. 난 분명히 미리 주의를 줬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나름 이공계 출신이고, 잘 알다시피 그냥 독신이다.
이 사람은 바로 얼마 전까지 제18대 대통령을 역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 과반 당선 등의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헌법을 고치면서 18년씩이나 대통령을 한 부친과는 달리, 딸은 예정되었던 임기도 못 마치고 탄핵 인용 파면으로 대통령 생활을 마감했다. 하긴, 만기 퇴임을 못 한 건 부녀가 동일하네..;;

글쎄, 내 소신을 말하자면 본인은 박통이 재임했던 4년 동안 약간이나마 행복했다. 지금은 그 행복이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어 마음이 착잡할 따름이다.
박통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의견에 대해서야 개인 자유이며 내가 더 시비를 걸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이 무능했다거나,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에는 본인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한 게 없긴 왜 없냐?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 통합진보당 해산
  • 전교조 법외노조화
  • 한미 연합사 전시작전권 전환 무기연기, 전쟁 위협 시 선제 타격 가능
  • UN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
  • 개성공단 폐쇄 및 대북지원 (명목상) 0원

야당 후보가 죽었다 깨어도 절대로 안 하거나 못 할 일을 얼마나 많이 해냈냐? 박 근혜는 애초부터 DO보다 BE의 업적이 더 뛰어난 대통령이었다. 우리나라 적화통일을 한 4년쯤 늦춰서 최소한 시간은 벌어 줬다.

이 정도로 퍼 주고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이제는 북괴에 대해서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주민들 해치지 마라"가 아니라
네일건 쏘면서 "두 번 협상은 없어. 한 시간 내로 핵무기 포기해" 이래도 모자랄 판 아닌가?
전쟁? 얼어죽을 북폭 선제공격 같은 건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모든 돈줄을 차단하고 가만히 내버려두기만 해도 된다. 급한 건 북괴이지 우리가 아니다. 모든 정황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대화나 협력으로 북핵을 해결하자 나불대는 인간말종 개새끼들은 정말 대놓고 종북 개빨갱이들 아닌가? (너무 화가 치밀어서 욕설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Let's make North Korea great again이다.
꼭 저러는 놈들이 일제에게 비굴하게 평화를 구걸했던 구한말 매국노 친일파는 같은 입으로 어째 저렇게 욕을 해 대나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박통 레카는 행적이 분명히 있다. 단지 종북좌빨들이 좋아하는 행적이 아니었을 뿐이다. 레카가 훌륭한 대통령이었던 이유는.. 적들의 평가가 말해 준다. 이 이상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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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2016년 3월 16일자라고 함. 그로부터 딱 1년 뒤에 북괴의 "꿈은 이루어졌다."

바보 멍청이들이 꼭 "위수김동 장군님 만세"만 외쳐야 종북인 줄 알어.. 사탄 마귀가 빛의 천사로 나타나지 그럼 반공 포스터에 그려진 것처럼 뿔 달리고 꼬리 달린 흉측한 괴물로 나타날 줄 아냐?

박 근혜가 아들이 비리 저지른 전직 대통령, 부인이 뇌물 받은 전직 대통령 등 온갖 친인척 비리가 얽히고 설켜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청렴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저런 거 다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지금의 뇌물 수사네 구속이네 하는 거.. 정말 정의를 위해서 하는 건 1도 아니라는 것쯤은 진영논리로 양심과 지능이 마비되지 않은 한 삼척동자라도 알지 싶다. 개돼지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기억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학습효과가 있는 사람을 속이고 선동할 순 없지!

레카가 탄핵돼야 하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 거의 전부가 탄핵까지 당할 잘못도 아니고 그냥 지가 닭그네가 싫은 이유들(= 좀 심하게 말하면 적화통일에 걸림돌이 되니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더라.

  • "북괴한테 물어 보는 건 괜찮고 최 순실한테 물어 보는 것만 그렇게까지 죽을 죄냐?" (다른 비정치적인 주제도 아니고 인권 결의안 같은 아주 크리티컬한 것을)
  • "지금이 어느 시댄데 빨갱이 타령이냐고? 그럼 더 오래된 친일파· 위안부 타령은 뭐냐?"
  • "그 무개념녀는 그래도 허접하게나마 승마 단체전 메달이라도 땄지, 수많은 고시낭인 취준생들을 농락하고 아무 스펙 없이 특혜만으로 공기업 합격부터 한 뒤에, 대충 쓴 이력서 달랑 제출한 누구 아들은 그럼 뭐냐? 게다가 뭐 저런 놈이 서민 타령이냐?"

등, 저격할 아이템들은 한도 끝도 없다.

판결문 어딘가에 있던 문장인데..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고? 나 참 기도 안 차서.. 외국까지 나가서 북핵 열심히 옹호하고 실드 치던 모 대통령의 짓거리는 씨발 그럼 자국 헌법 수호 의지가 있는 행동이더냐? 사람들이 진짜 큰 위험한 죄가 뭔지 우선순위 분간을 못 한다.
자 그럼.. 흥분은 가라앉히고, 다음 얘기로..

2. 박 근령(1954)

이분은 박 근영, 박 서영을 거쳐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을 어찌 된 일인지 두 번이나 했다. 서울대 음대 나왔으며, 그 이름도 유명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새마을 노래'의 실질적인 작곡자로 알려져 있다.

이 글을 쓰는 본인은 1980년대생으로 박통은커녕 전대갈 시절을 경험한 기억조차 없다. 서울 올림픽 이전 시기는 직접체험의 기억이 없는 선사시대의 영역이다. 민주화 운동 같은 것도 모름.
허나, 새마을 노래를 동요 테이프에서 들은 적이 있고 엄청 옛날 음악 교과서에서 악보를 보기도 했다.

새마을 노래는 가사 내용대로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기 좋게", 노동요처럼 참 흥겨운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기서 싸우는 건 같은 편끼리 치고 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 적군(=북괴)과 싸운다는 얘기다. 성경에서 느헤미야서에 완벽한 예시가 있다. (느 4:15-18)

이 새마을 노래는 공식적으로 박 정희 대통령의 작사 작곡으로 등재되어 있다.
일단 작사는 아랫사람을 시킨 뒤 대통령 이름만 올린 게 아니라 정말로 박통 당사자가 한 것으로 보인다. 저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교사와 장교를 모두 역임했고 그림과 글씨, 음악 등 예체능에도 두루 조예가 깊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작곡에 대해서는 사실은 세월 간격을 두고 조금 상이한 증언이 존재한다. 2004년경 굿데이 인터뷰에서는 작곡을 딸이 다 했다고 나오지만 더 최근 인터뷰에서는 작곡까지 아버지가 했는데 딸은 그걸 악보로 받아 적고 편곡만 한 것으로 나온다(2008년 11월자 인터뷰, 그 뒤 2015년에도). 어떤 형태로든 그 당시 대통령의 영애가 개입을 했다.

박 근령은 훗날 1982년에 대기업 회장 가문 아들과 결혼했으나 6개월 만에 이혼하고 오랫동안 언니처럼 솔로로 지냈다. 그러다 그로부터 30년이 넘은 2007년에 50이 넘은 나이로 무려 13살 연하의 전문대 교수와 재혼했다. 자녀는 없음.

3. 박 지만(1958)

육사까지 나오긴 했지만 잘 알다시피 젊은 시절에 방황 많이 했고, 40대 중반 나이가 된 2004년에야 16살 연하의 변호사와 결혼했다. 그 이듬해에 득남했다가 2014년에 9살 터울의 둘째 아들을 얻었고, 그 다음 2015년에는 쌍둥이 아들을 얻어서 자식은 아들만 넷이다. 부인이 젊다지만, 그래도 58세의 나이에 얻은 아들이니 정말 엄청난 늦둥이이다. 박 정희가 1917년생인데 증손자도 아닌 막내 손자가 2015년생이라니...

박 지만이 학교에 들어가던 1970년대 초중반엔 이제 막 고등학교 평준화가 시행되었으며, 학교 배당에 컴퓨터 추첨이 동원되었다.
KIST가 정부로부터 이거 뺑뺑이를 의뢰받아서 실시했는데, "추첨을 살짝 조작해서 대통령의 아들인 박 지만 군을 그래도 명문 K고에다가 배정하라"라는 외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KIST 전산실 실장이던 성 기수 박사가 이에 소신껏 응하지 않고 아무 조작 없이 추첨을 돌려서 그는 J고에 진학하게 됐다... 고 성 박사의 회고록이 전해진다. K와 J가 어디인지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이렇듯, 이쪽 가문은 결혼 여부와 시기, 자녀 유무나 시기 같은 가정사가 다들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사실은 박 정희는 어렸을 때 억지로 떠밀려서 결혼한 전 부인 김 호남에게서 얻은 딸도 하나 있다. 박 재옥(1937)이라고 박 근혜 전대통령의 입장에서는 15살이나 더 많은 이복 언니이다. 이분은 그나마 평범하게 산 듯하며, 친부에게서 그렇게 아주 버림받지는 않고 특혜도 종종 받으며 지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5/04 08:30 2017/05/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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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부 모듈 핵심부의 EXE 분리

오래 전부터 조금씩 풀었던 썰이긴 한데, 마침 최근에 회사에서 유사 개발 업무를 한 적도 있고 해서 다시 얘기를 꺼내 보겠다.
Windows는 타 OS들과는 달리 IME가 EXE가 아닌 DLL 형태이다. 한 프로세스의 주소 공간에 완전히 속해 있는 덕분에 성능이 좋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한영 상태가 스레드들마다 제각각 따로 놀고 거기에다 memory-mapped 방식으로 로딩된다는 특성까지 겹쳐서 IME의 on-the-fly 업데이트가 몹시 난감하다.

EXE라면 업데이터 하나 띄워서 자신을 종료한 뒤 업데이트 된 놈으로 재시작만 하면 간단하게 끝났을 일인데 Windows용 IME는 업데이트 하려면 자신을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을 몽땅 종료해야 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그냥 운영체제를 재시작/로그오프 해야 한다. 거기에다 32/64비트까지 모두 신경 써야 한다.

그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 외부 모듈도 인제 와서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건 무리이겠지만, 앞으로 덩치 큰 IME를 만들 일이 있으면 DLL은 거의 업데이트 할 일 없는 껍데기만 남겨 놓고 실질적인 문자 조합은 EXE 기반의 '서버'에 담당시키면 어떨까 생각을 해 왔다. 업데이트도 IME가 통신하는 EXE만 하고 말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IME들의 설정과 상태 동기화는 자동으로 이뤄진다. 서버와는 함수 호출이 아니라 메시지와 memory-mapped file 같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통신을 하니 서버는 굳이 바이너리 구분을 할 필요 없다. 64비트 OS에서는 64비트 서버 하나만 띄워 놓으면 32비트와 64비트 IME가 모두 통신이 가능하니 더욱 좋다.

실제로 실험용 IME를 만들어 본 결과는 흥미로웠다. 서로 다른 프로세스끼리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는 단일 스레드끼리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에 비해 고려해야 할 점이 더 많았다. 받는 쪽에서 자체적으로 대화상자 같은 걸 출력하고 그 상태로도 자체 메시지를 처리하지 못하는 block 상태가 되지 않으려면 대화상자는 modal이 아니라 반드시 modeless 형태로 만들어야 했다.

SendMessage와 PostMessage를 조심해서 가려 써야 하며, 리턴값을 꼭 받기 위해 Send를 하면서도 신속한 반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머리로만 알고 있던 ReplyMessage 같은 함수를 난생 처음으로 써 보기도 했다. 특히 호스트가 클라이언트로부터 Send된 메시지를 받은 뒤에 대화상자 같은 modal UI를 띄운다면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긴 했으나.. IPC 기법들은 근본적으로 IME들이 쓰라고 만들어진 메커니즘이 아니다 보니 한계도 많다.
가장 먼저 권한 문제가 걸리니, IME 서버는 번거롭게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하거나 아니면 애초에 운영체제의 서비스 같은 급으로 만들어야 한다. 메트로와 데스크톱 앱 사이의 소통도 문제이고..
IME가 글쇠 입력을 받은 것을 서버로 요청을 보내는 건 그럭저럭 할 만하나, 반대로 서버가 IME로 문자 입력 요청을 하는 것은.. IME가 제각각 스레드 동기화 오브젝트나 윈도우를 만들어야 가능할 것이다.

서버는 자신과 접속하거나 종료하는 클라이언트들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자고로 프로세스라는 건 강제 내지 비정상 종료될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프로그램들의 근황을 언제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도 훅킹이라도 동원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지 않더라.

이것저것 가성비를 생각해 보니 서로 장단점이 있고 근본적으로 한 방식이 다른 방식을 완전히 대체 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날개셋의 경우 EXE 기반의 입력기 개발 실험은 입력 패드를 만들면서 이미 그럭저럭 하기도 했다. Windows에서 어떤 DLL이 타 프로세스에 합법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양대 통로는 미우나 고우나 훅킹 아니면 IME이다.

다만, 지금 MS 일본어 IME가 이미 그런 것처럼 제어판 대화상자만은 EXE로 분리하는 게 나은 점도 있다.
실행되는 응용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공용 컨트롤.. 특히 6.0 이상에서만 지원되는 syslink나 split button, 에디트 컨트롤의 풍선 도움말(cue banner) 같은 게 초기화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어서 내 날개셋 제어판도 그거 영향을 받아 제약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뭐 그건 그렇고..
기존 데스크톱 앱인 '제어판' 말고 메트로 앱인 '설정'에서 돌아가는 환경설정은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MS 한글 IME에는 그런 게 있던데..;;

2. 설치 시스템 개편

예전에도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Visual Studio가 기본 제공하는 Windows Installer 기반 msi 패키지 형태로 배포되고 있다. 이 솔루션은 MS 본가에서 만든 만큼,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제거하는 본연의 성능은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가 보장된다. 프로그램 디렉터리 어딘가에 uninstall stub 프로그램 같은 게 덕지덕지 붙어 있을 필요도 없고 아주 seamless + 깔끔하다. 하지만 개발툴이 제공하는 GUI 템플릿은 customize가 매우 제한적이고 불만족스러운 점이 많기 때문에 다른 솔루션을 써 볼까 생각도 자주 해 왔다.

이상적인 설치/배포 솔루션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다른 프로그램이라면 몰라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대해서는 내가 보다시피 욕심이 좀 많다.

  1. CPU 통합: 한 exe 파일 단독으로 32비트와 64비트 OS에서 잘 동작하고, 32비트에서는 당연히 64비트 바이너리를 설치하지 않아야 한다. EXE처럼 32/64비트 중 사용 가능한 상위 바이너리 하나만 설치하면 되는 파일은 선별이 옳게 돼야 한다. 필요한 디스크 공간 계산도 이 모든 변수를 감안해서 돼야 한다.
  2. 언어 통합: 한 exe 단독으로 운영체제의 기본 언어가 한국어이면 한국어, 그렇지 않으면 자동으로 영어로 설치 프로그램의 UI가 출력되어야 한다.
  3. 유니코드 통합: 평상시에 유니코드 API를 사용하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닥다리 Windows 9x에서도 유니코드만 포기하고 기본적인 실행이 돼야 한다. 이것도 물론 단일 파일로 말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본제품이 Windows 95/NT4부터 꼬박꼬박 다 지원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4. known 폴더: 또한 아무 액세서리 없는 깡통 Windows 95 RTM에서 실행되더라도 IE 4~5 이상에서 첫 도입된 ProgramData (Application Data)같은 known 디렉터리를 인식해서 파일을 제 위치에 설치해야 한다.
  5. 원활한 제거: Windows용 IME는 그 특성상 on-the-fly로 업데이트나 제거가 꽤 난감한 물건인데, 당일 제거를 못 했으면 재부팅 요청 같은 후처리를 적절히 수행해야 한다.
  6. 그 밖에: 관리자 권한 드립 치는 UAC 화면은 setup을 실행하자마자 뜨는 게 아니라, 실제로 설치가 시작되어 관리자 권한이 정말로 필요해졌을 때 직전에 뜨는 게 바람직함.

진짜 유명한 세계구급 소프트웨어인 경우, 설치 프로그램이 언어를 선택받는 대화상자부터 띄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날개셋의 경우 그렇게 유명한 물건은 아니니 그냥 운영체제의 기본 GUI 언어가 한국어가 아닐 때에만 영어로 동작하는 걸로도 충분할 듯하다. 날개셋은 GetSystemDefaultLangID() 함수를 써서 판별하는데, 이게 GetUserDefaultLangID와 차이가 무엇이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msi는 (1)과 (2)는 전혀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서 문제다.
그러나 (3)과 (4)는 Windows installer runtime (non-Unicode 9x용 에디션)자체만 미리 설치하면 그럭저럭 어렵지 않게 충족된다. 2.0 런타임은 의외로 깡통 Windows 95에서도 깔끔하게 설치 가능하다. 이것 때문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MSI 외에 다른 배포 솔루션으로 갈아타기가 어렵다.

"HKCU 또는 HKLM"\Software\Microsoft\Windows\CurrentVersion\Explorer\Shell Folders라는 레지스트리를 참조하면 known 폴더 위치를 얻을 수 있다. MSI가 이런 것까지도 생성해 준다. 이렇게 레지스트리를 수동으로 뒤지는 방법은 오늘날에는 마소에서 권장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The old new thing 블로그의 설명에 따르면 아직도 여기를 참조하는 고집쟁이 옛날 어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환성 차원에서 레지스트리를 계속 지원해 주는 거라고 한다. 사실, IE 4~5가 없고 SHGetSpecialFolderPath 함수가 존재하지 않는 골동품 Windows 95 환경에서는 여기를 뒤지는 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다음으로 (5)의 경우 msi는 딱 기본만 수행한다. "다음 프로그램들이 요 DLL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화상자도 찍어 주고, 뭔가 못 건드린 파일이 있으면 "재부팅 하시겠습니까?"라는 여운을 남기기도 하는데, 가끔은 안 그럴 때도 있는 듯하다.

msi 말고 3rd party installer 중에서는 오픈소스이기도 한 NSIS가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하다. WinAmp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개발사인 Nullsoft도 없어졌지만, 그래도 NSIS만은 유용성 덕분에 오픈소스 진영에서 살아남아 있다. Nullsoft의 개발자들이 왕년에 불멸의 작품 하나로 이름을 남겼다.

얘는 어떤가 하면..
(1)과 (2)는 기술적으로 일단 가능하다. msi보다 분명 우월한 점이다. 그러나 그냥 '가능하다'에서 끝일 뿐, 막~ 적극적으로 지원되고 깔끔하고 편한 형태로 가능하지는 않아 보인다.

단적인 예로, 생성되는 installer에 붙는 런타임 바이너리가 기본적으로 32비트 기반이다 보니, 거기 스크립트 언어에서 기본 제공하는 등록 명령만 이용해서는 64비트 DLL에 대해서 DllRegisterServer(시스템 등록) 호출을 할 수 없다. 뭐,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regsvr32 /s를 이용하면 되긴 하지만, 사용자가 직접 저렇게 외부 유틸리티나 플러그 인을 끌어들일 필요 없이 NSIS가 내장 명령어 차원에서 저걸 지원하면 더 좋을 것이다.
홈그라운드 운영체제의 지원빨이 있는 msi에서는 반대로 DLL의 등록쯤은 전혀 걱정할 것 없는 사항이다. 64비트용 msi라면 64비트 DLL이건 32비트 DLL이건 불문하고 등록이 깔끔하게 잘 처리되기 때문이다.

(3)은 NSIS가 한동안 정식으로 지원하지 않아서 Unicode NSIS라는 별도의 프로젝트 브랜치가 나돌 정도이다가 비교적 최근에 NSIS가 3.x 버전에 진입하고 나서야 유니코드를 정식으로 수용하게 됐다.
그러나 NSIS는 기술 수준이 그냥 이미 있는 Windows API를 감싸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유니코드와 Windows 9x를 동시에 지원한다거나, 구버전 OS에서 신버전의 known 디렉터리를 만들어 주는 정도의 과잉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다.
(5)의 경우는 NSIS가 어디까지 자비롭게 대처하는지 아직 제대로 확인을 못 해 봤다.

요약하면, 완전한 스크립트 기반인 NSIS가 당장 자유도가 뛰어나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레거시 운영체제 지원이나 시스템 차원에서의 융통성은 그래도 msi가 나은 게 있어서 한 솔루션이 다른 솔루션을 완벽하게 대체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NSIS의 스크립트는 무슨 파이썬이나 Lua 급으로 복잡한 연산식이나 복합 자료구조를 지원하는 본격적인 고급 언어가 아니다. 스크립트의 문법은 반쯤 어셈블리어에다가 C언어의 전처리기를 얹은 것 같은 구조이며 생각보다 제약이 많다.

어셈블리어 같은 문법인데 CPU 인스트럭션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Windows API의 함수와 각종 속성 명칭이나 상수들이 들어간다는 점만 다르다. if-then-else, switch 같은 조건 판단과 분기조차도 언어의 키워드가 아니라 그냥 분기문을 표현하는 매크로 형태로 구현되었을 정도이다.
그나저나, 파일 경로를 많이 다루고 역슬래시를 필연적으로 많이 쓴다는 특성상 \ 자체는 탈출문자로 쓰지 않고 $를 붙여서 $\n으로 개행문자를 표현하는 건 인상적이었다.

설치 스크립트도 당장 필요한 기능만 주먹구구식으로 구현하는 게 아니라 치밀하게 잘 만들려면 끝이 없겠다.

  • 한 스크립트로 몇몇 스위치만 달리하여 동일 제품의 여러 파생형이나 변형 에디션(가령, 셰어웨어 데모/정식 같은)을 조건부 컴파일로 간단히 감당 가능
  • 한 제품에서는 아까 말한 언어와 아키텍처를 단일 출력 바이너리만으로 모두 커버 가능
  • 모든 문자열 값들은 언어 중립적인 값과 언어 종속적인 값으로 나눠서 관리 가능하고, 제품 이름 같은 건 한 곳에서 값을 바꾸면 등장하는 모든 곳에서 값이 알아서 바뀌어야 함
  • 컴퓨터의 상태 파악을 알아서 해야 함. 처음 실행됐을 때 지금이 첫 실행인지, 동일 버전, 구 버전, 또는 동일 버전의 바리에이션이 이미 설치돼 있는지, 이전에 설치를 하다가 만 상태인지, 심지어 자신이 중복 실행됐는지 같은 걸 사용자가 수동으로 파일이나 레지스트리 삽질 안 해도 알아서 감지해야 함
  • 설치할 파일과 삭제할 파일을 NSIS는 수동으로 일일이 써야 하는 것 같던데, 마치 C++ 개체 선언하듯이(생성자, 소멸자) 설치하는 파일, 추가하는 레지스트리 같은 걸 한 곳에다만 명시하면 역순의 제거 작업 역시 자동으로 파악돼야 하며, 작업을 실제로 수행하기 전에 예상 디스크 공간 계산 같은 것도 알아서 돼야 함.
  •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 제품이 동일한 파일을 설치하고 사용하는 경우, 그런 공용 파일은 reference counting을 해서 그 제품들이 모두 제거되었을 때에만 최종적으로 삭제되게 해야 함.
  • 그리고 uninstall 시엔 사용자가 생성한 데이터처럼 이 프로그램이 초기에 설치하지 않은 파일이나 레지스트리도 필요하다면 싹 제거하는 메커니즘이 제공돼야 함. (조건 범위 지정)
  • 최종 생성된 msi 내지 exe 파일에 대한 디지털 서명 후처리도 언어 내지 툴 차원에서 명시해서 자동 처리하기.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기여한 것도 없는 주제에 불평만 길게 늘어놓은 것 같다만.. 이게 NSIS를 좀 써 보고 개인적으로 느꼈던 아쉬운 점이다. 오죽했으면 반디소프트에서 개발하고 있는 유명 파일 압축 유틸리티인 반디집도 6.0부터는 NSIS 대신 자체 개발한 인스톨러로 갈아탔다. 다만, NSIS는 저 정도 꽤 적지 않은 기능을 제공하고도 exe에 붙는 자기 런타임 stub 크기가 겨우 몇만 바이트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냥 간단한 파일 몇 개만 복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컴퓨터를 좀 깊게 제어하는 설치/제거 패키지를 만든다면 이걸 만드는 툴도 GUI 위주의 가벼운 툴이 아니라 그냥 핵심 기능만 SDK 형태로 만들고, 자주 쓰는 프로그램 패턴은 Visual C++의 프로젝트 마법사 형태로 구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배포 패키지 자체를 그냥 C/C++로 만들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파일 압축 풀어서 복사하거나 지우는 등의 정말 핵심적인 공통 기능만 라이브러리를 쓰라고..

근데 생각해 보니 애시당초 그러라고 만들어진 라이브러리가 Windows Installer이긴 하다. 쟤도 사실은 단순 GUI 껍데기가 아니라 라이브러리가 본질이니까. 하지만 저 라이브러리도 구조가 워낙 복잡하고 설치, 제거, 롤백이 어떻고 알아야 할 사전 배경지식이 많다 보니 그 저수준 함수를 직통으로 쓰면서 배포 패키지를 만들 일이라곤 없을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7/05/01 08:30 2017/05/0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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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내지 현재의 컴퓨터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들 컬렉션이다.

1.
요즘 길거리나 건물 근처에서 쏘는 와이파이를 보면 처음에 접속하는 건 암호가 없는 public 형태이지만, 접속한 뒤에는 무슨 주소를 입력하더라도 로그인/요금 결제 페이지로만 포워딩되는 형태인 것들이 많다. 사실은 학교 와이파이도 보안 ActiveX 등등을 안 깔면 설치 요구 페이지로만 연결된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도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접속하는 건 바로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얘들만 교신을 하는 방법이나 프로토콜이 달라서 그런지(https라든가.. 서버가 외국에 있어서?)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웹서버가 뭔데 내 컴퓨터의 운영체제와 브라우저라면 몰라도(http 헤더에 에이전트 정보가 들어가므로), 보안 솔루션의 설치 여부는 뭘 보고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프록시인지 뭔지를 써서 warning.or.kr를 우회해서 각종 금지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도 어떻게 하는지? 난 웹 쪽은 아는 게 거의 없음. 그 바닥은 너무 골치 아프다.

2.
디카나 폰을 PC에다 연결했을 때 보통은 여느 USB 메모리를 꽂은 것처럼 드라이브 문자가 하나 더 추가되고 해당 기기의 메모리 내부 파일 시스템에 접근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어떤 건 꽂으면 뭔가 파일 시스템이 생기기는 하는데 드라이브 문자가 추가되는 형태가 아니다. 여기는 탐색기로만 접근 가능하지, 어지간한 다른 프로그램에서 파일을 바로 열고 내용을 볼 수 없다. 하드디스크에 복사한 뒤에야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한데, 오히려 더 나중에 등장한 디카나 폰이 PC와 연결됐을 때 더 이러는 경향이 있다.
이건 기술적으로 무슨 규격이나 프로토콜을 써서 동작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드라이브 문자가 추가되는 것보다 무슨 장점이 있어서 저렇게 동작하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보안?

3.
컴퓨터의 USB 포트에 어떤 기기를 연결하면 인식이 곧장 될 때가 있지만 "인식 실패" 에러가 뜨면서 잘 안 될 때도 있다. 폰이나 USB 메모리 부류 말고 외장 하드 같은 묵직한 물건은 전력이 부족해서 안 될 때도 있다. 이런 건 (1) 컴퓨터, (2) 케이블, (3) 해당 기기 중 어느 게 문제인 걸까..?
컴퓨터라는 건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예측 가능한 결과만 나오는 물건일 텐데, USB 포트만은 뭔가 상황에 따라 복불복인 결과가 나오는 면모가 있다.

4.
이제 슬슬 레거시 얘기를 꺼내겠다.
요즘 아직도 빅 엔디언을 쓰는 컴퓨터가 현역으로 돌아가는 게 있는지(코볼 프로그램도 돌아가는 마당에 빅 엔디언이 하루아침에 전멸할 리는 없겠지만.. 엔드 유저가 실감 가능한 영역에 있는가?),
그리고 IA64 아이테니엄 컴퓨터가 아직 살아서 운용 중인 게 있는지 궁금하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인텔이 IA64, 그리고 펜티엄 4의 넷버스트 아키텍처 때문에. 그야말로 세기말과 새천년기에 컴퓨터계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큰 삽질을 하긴 했다. 물론 덕분에 경쟁사인 AMD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가 무어의 법칙이 슬슬 약발이 다해 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싱글 코어 기반 클럭 속도 향상) 그러니 CPU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내다보고 모험을 감수하고라도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큰 결정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엔디언 얘기를 하자면, 스마트폰용 최신 CPU는 아예 어느 엔디언으로도 네이티브 구동이 가능한 bi-endian 구조라고 하지만, 굳이 big 모드에서 실행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오늘날 빅 엔디언의 잔재는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트루타입 글꼴 파일, 그리고 네트워크 표준 스펙 정도에나 남아 있는 듯하다. 유니코드 텍스트도 UTF-16LE 아니면 차라리 UTF-8이지 UTF-16BE가 쓰일 일이 있나 싶다.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음.

5.
옛날 도스 시절에 상당수 프로그램들의 종료 단축키는 Alt+X였다. 아래아한글, 이야기, 그리고 Q-edit 계열이 이런 관행을 유지해 왔다.
지금 Windows에서는 Alt+F4가 단순히 대화상자 창을 닫는 ESC의 상위 호환이다. 대화상자만 닫는 게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의 main window도 닫고 궁극적으로 시스템 종료까지도 가능하다. 하지만 도스 시절에 Alt+F4로 종료하는 프로그램은 본인은 정말로 MS DOS Shell밖에 못 봤다.

게임들은 대부분 ESC만 눌러도 원큐에 종료 가능했지만 페르시아의 왕자는 혼자 Ctrl+Q라는 독특한 단축글쇠로 종료했다(2편에서는 Alt+Q도 추가). 페르시아의 왕자 원판이 처음에 애플 기종용으로 개발되었고, 그쪽은 Cmd+Q가 종료이니 그거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맥의 Cmd+Q는 창을 닫는 기능이 없이 그냥 원큐에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용도로만 쓰인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포토샵처럼 맥에서 이식된 프로그램은 Windows에서도 Ctrl+Q 종료 단축글쇠를 갖고 있었다.

그 외에 마소에서 만든 옛날 도스용 프로그램 중에는 웬 F3이 종료인 물건도 드물게 있었다. 주로 Windows 3.1 내지 9x 계열의 설치/setup 프로그램이 그랬던 것 같다. 이 관행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6.
옛날 자동차만큼이나 개인용 컴퓨터계에서도.. IBM 호환 PC라는 게 세상을 평정하기 전에 있었던 특히 1980년대의 8비트 구닥다리 컴퓨터들에 대해서 요즘 갑자기 좀 관심이 생겼다. 기계들 계보를 분류해 보고 싶다. 어떤 건 기계 자체의 명칭이지만 어떤 건 규격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 당시 CPU의 제조사도 여럿 있었을 텐데.. 시간 나는 대로 인터넷 찾아 가며 차근차근 공부할 생각이다.

먼저 애플 II~III부터가 8비트였고 국산 컴퓨터로는 삼성 SPC-1000, 금성 패미콤이 있다. MSX는 특정 기종 이름이 아니라 규격명일 테고. Commodore 64에서 64는 메모리가 64KB라는 뜻이다 CPU는 64비트가 전혀 아니며 8비트임.
요런 컴퓨터들은 그냥 켜면 롬에 내장돼 있던 베이직 인터프리터가 떴고, 카트리지를 꽂으면 게임을 할 수 있었다. 테이프는 개인적으로 구경 못 해 봤다.

삼성의 경우 살인적인 공밀레에 공밀레를 거듭한 끝에 1983년 말에 최초의 국산 메모리 반도체인 64K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팀원: "저 다음 주에 결혼할 예정이어서 휴가 좀.." / 팀장: "야 왜 하필 이렇게 바쁜 와중에 결혼을 (쳐)하는 거야! 버럭"
거의 이런 분위기에서 개발한 것이었다. -_-;; 과장이나 주작이 아님. 저렇게 팀원을 실제로 갈궜던 당시 팀장이 신화창조던가 다큐에서 출연해서 증언을 했으며, 지금 생각하니 그 팀원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회고했다.

더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를 선점하지 못한 건 아쉬운 점이지만 일단은 그 열악한 환경에서 메모리 반도체 하나라도 저렇게 잡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듯하다. 그런데 삼성 전자에서 같은 1983년에 컴퓨터까지 만들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 옛날부터 이미 미래에 나라를 먹여 살릴 산업을 예견하고 리스크를 감수한 투자를 아낌없이 한 것이다.

나도 "IBM 호환 PC"에 속하는 컴퓨터를 접하기 전에 아주 잠깐 소위 8비트 컴퓨터라는 걸 집에서 접한 적이 있었다. 그건 정확하게 무슨 기종에 속한 물건이었을지 궁금하다.
프롬프트가 Ok 대신 READY라고 나오고, 입력한 문장에 문법 에러가 있으면 비프음과 함께 SYNTAX ERROR이라고 나왔는데.. 롬 베이직 인터프리터가 뜬 모습은 지금 생각해 보면 커모도어 64의 그것과 제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게 맞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넥슨 컴퓨터 박물관에서 이런 물건을 발견했다. 모니터는 내가 옛날에 집에서 써 봤던 그 기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확실하다. 검은 테두리에다 오른쪽에 저렇게 작은 다이얼이 3개 있었고..  하긴, 옛날 아날로그 모니터들은 밝기 같은 걸 조절하는 게 저렇게 물리적인 다이얼 형태로 존재했었다. 검색을 해 보니 "금성 패미콤".. 아하, 메이커가 금성사였구나.

아무튼, 이런 원시적인 물건을 통해서 나는 프로그래밍이라는 행위의 짜릿함을 경험했고 무한한 신기함과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게 됐다. 어렸을 때 접한 컴퓨터가 처음부터 지금의 컴퓨터처럼 성능이 너무 좋고 시스템이 복잡하고 사용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시피한 형태였다면, 난 컴퓨터 말고 다른 진로를 갔을 가능성이 높다.

Posted by 사무엘

2017/03/22 08:34 2017/03/2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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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OS 프로그래밍

1.
근래에는 회사 업무 때문에 드디어 맥OS에다가 xcode까지 좀 건드릴 일이 있었다. 작년에 애플에서는 자기네 PC용 운영체제의 공식 명칭을 macOS라고 붙이면서 mac이라는 단어를 다시 복귀시켰던데, 이건 잘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mac을 빼고 OS X라고 하는 건 영 아니었다. 무슨 OS/2도 아니고. 물론 걔네들 입장에서는 iOS 같은 타 기기용 운영체제와 명칭 표기를 통일하느라 mac을 소문자 형태로 살린 것이었다.

맥OS에서 메뉴를 꺼내는 단축키는 웬 뜬금없는 Ctrl+F2이구나(Win은 F10 또는 Alt). 그리고 한 프로그램 안에서 문서 창을 전환하는 단축키는 Cmd+` 이다(Win은 Ctrl+Tab 또는 Ctrl+F6). 이런 왕초보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Visual Studio와 C++과는 너무 다른 프로그래밍 방법론이 여전히 적응이 안 됐지만.. 나름 맥OS에 대한 이해가 예전보다는 더 깊어질 수 있었다. NextStep에서 딴 NS... 이런 명칭은 게임브리오 소스에 있는 NI... (넷이멀전) 접두사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N으로 시작하고, 지금은 대외적으로 쓰이지 않는 이름. 마치 MFC의 Afx처럼 말이다.

한번은 각종 설정들을 이것저것 건드린 뒤부터 멀쩡한 프로젝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링크 에러가 나서 한참 고생한 적이 있었다.
링크 에러라면 당연히 extern "C"처럼 함수 호출 규약이나 심벌 decoration 방식의 충돌이 1순위로 의심되겠지만, 알고 보니 프로젝트 파일 리스트와는 별개로 관리되는 빌드 대상 목록에서 몇몇 소스 파일이 실수로 누락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둘이 동일한 개념이 아니었 것이다.

하긴 Visual Studio도 각각의 파일들에 대해서 속성을 줘서 exclude from build를 지정하는 게 있긴 했다. 그걸 몰라서 딴 데서 한참을 헤맸다.
IDE에서 각종 경고를 출력하는 인텔리센스와 문맥 감지 색깔 처리가 정상적으로 되고 있어서 이 파일이 애초에 컴파일이 되지 않고 있다는 건 상상을 못 했었다.

2.
맥OS는 자기네 그래픽 비주얼은 그렇게도 뛰어나면서 정작 그래픽 툴을 제공하는 건 왜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맥OS에는 Windows의 '그림판'에 해당하는 기본 프로그램이 내가 알기로 여전히 없다.
개발툴 중에서도 Visual Studio는 간단한 아이콘이나 비트맵 정도 편집할 수 있는 그래픽 에디터를 내장하고 있는 반면, xcode는 그런 거 없고 viewer만 있다. 비트맵 그래픽 편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인상적인 점으로는 맥 진영은 Windows에서는 거의 듣보잡이나 마찬가지이던 tif/tiff를 좋아하는 듯하다. 화면 캡처 기본 앱이 그림 파일을 tif로 저장할 때부터 뭔가 심상찮았는데.. 타 xcode 프로젝트들을 보니까 비트맵/아이콘에 역시 tif가 들어가 있구나.

그런데 tif도 다 같은 tif가 아닌지, Windows에서 돌아가는 타 그래픽 에디터에서 저장한 tif는 맥에서 못 읽는 것 같다.

3.
명령 프롬프트로 가 보면, 공백이 포함돼 있는 파일명을 명령 프롬프트에서 표현할 때 Windows는 파일명을 따옴표로 싸서 공백을 표현하는 반면, 맥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역슬래시+공백이라는 탈출문자 기법을 사용한다. 그러니 "a b"냐 a\ b냐의 차이가 발생한다. 디렉터리 구분자부터가 슬래시이니 역슬래시를 저렇게 C스럽게 탈출문자 용도로 활용한다는 게 아주 흥미롭다.

명령 프롬프트가 현재 가 있는 디렉터리(폴더)를 기준으로 탐색기 또는 그에 준하는 파일 관리 셸을 여는 것도 자주 행해지는 작업이다. 숨김 속성 때문에 셸을 통해 접근할 수 없거나 접근 방법이 까다로운 폴더를 다루고 싶을 때 말이다. Windows에서는 start .이던데 맥은 open .이다. 리눅스는 어찌 되려나 궁금하다.

4.
그리고... 결정적으로 맥용 IME 예제도 다뤄 봤다. 골치 아픈 DLL이 아니라 쿨하게 EXE 형태이고, regsvr32 따위 할 필요 없이 그냥 프로그램을 특정 디렉터리에다 얹어 놓기만 하면 바로 IME가 동작하는 게 참 깔끔해 보였다. 여기에다가 날개셋 엔진만 얹으면 내 프로그램이 맥용으로 나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글자만 달랑 찍히는 수준을 넘어서 완성도 있는 제품을 만드는 건 지금 시간과 내 실력만으로는 아직 어림도 없는 요원한 일이다.

오래 전부터 인지했던 것이긴 하지만, Windows와 맥은 문자 입력 시스템을 설계한 형태가 서로 크게 다르다.
Windows는 IME가 또 내부적으로 한영 상태를 갖고 있고 자기 상태를 아이콘을 통해 출력하는 형태이다. 즉, Windows 8식 용어로 표현하자면 brand icon과 state icon이 따로 있다.
그러나 맥은 그렇지 않고 한글 입력 상태가 영문 상태만큼이나.. Windows식으로 표현하자면 별도의 input locale이다. 일단 한글 IME 상태에서 한영 키로 한영 전환을 하는 게 아니라, 입력 로케일 전환인 Ctrl+Shift가 한영 전환인 셈이다. state icon이 없고 brand 자체가 state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자기 brand 하에서 2개 이상 열몇 개까지 입력 항목을 추가할 수 있는 형태이다. 이것부터 맥OS에서는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맥에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편집기 계층은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그냥 입력기 계층 하나 수준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

맥에서는 IME가 독립된 프로그램이고 시스템 전체에서 동일한 한영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Windows도 IME가 애초에 이런 형태였으면 지금처럼 32비트와 64비트가 공존까지 하는 시대에 IME를 개발하기가 훨씬 더 깔끔해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언제든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재시작만 하면 업데이트도 아주 간편하게 할 수 있다. Windows는 DLL에다 memory-mapped file크리까지 겹쳐서 프로그램 강제 종료나 재시작 같은 지저분한 짓 없이는 IME의 업데이트라든가 전체 상태 동기화가 몹시 어렵다.

다만, 그 구조의 특성상 IME를 디버깅 하는 도중에 잠시 딴 프로그램에서 타 IME를 구동해서 문자를 입력하기가 좀 난감한 점은 있다. IME는 그 특성상 타 입력기로 대체만 될 뿐 '스스로 종료'라는 개념이 없는 프로그램인데, Windows에서는 자기 DLL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하나만 존재하면 그것만 끝내면 디버깅도 원활하게 종료되는 반면, 맥에서는 그런 것도 없어서 그냥 IME 프로그램을 강제 종료해야 한다.

그리고 IME 프로그램은 내 자신이 실행하는 게 아니라 운영체제가 on-demand로 구동해 주는 형태이다. 그러니 개발툴이 처음부터 IME를 디버깅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구동돼 있는 IME 프로세스에다 디버거가 붙는(attach) 식으로 디버깅을 해야 한다.
이렇게 붙으면 NSLog를 찍는 게 xcode의 output 창에 나타나질 않는 문제가 있더라. 그 이유는 모르겠다. 운영체제의 문자 입력 프로그램이라는 건 어떤 형태로 만들더라도 디버깅이 어려운 구석이 있는 듯하다. 동력분산식과 동력집중식만큼이나 서로 일장일단이 있는 셈이다.

5.
코딩을 하면 할수록 Objective C의 고유 문법과 일명 NSFramework 라이브러리는 독립된 언어라기보다는..
Windows로 치면 COM처럼, 그냥 API/라이브러리의 컴포넌트화, 그리고 운영체제-내 프로그램 간의 통신을 위한 바이너리 수준의 프로토콜에 가까운 물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말해 NSObject는 IUnknown에, YES/NO는 S_OK, S_FALSE에, @문자열은 BSTR, SysAlloc/FreeString 등에, xib/nib는 리소스 겸 type library에 대응하는 식이다. 뭐 가상 머신이 따로 돌아가는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벼운 garbage collector도 있다.

물론 기능 호출 방식은 서로 큰 차이가 있다. COM은 함수 포인터 기반인 C++과 더 비슷하지만 옵씨는 진짜 SendMessage 같은 방식이다.
그러니, NSObject에 뭐가 이렇게 오버라이드 가능한 메소드들이 많이 정의돼 있는지, 리스트를 보고 깜짝 놀라곤 했다. v-table 기반의 가상함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MFC도 v-table 크기 부담 없이 운영체제 메시지 처리를 C++로 하기 위해 message map이라는 별도의 메커니즘을 도입한 것이다.

옵씨라고 해서 말 그대로 C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며 C++ 코드도 작성 가능하다. 그러니 [ ] 어쩌구로 시작하는 그쪽 ‘오브젝트’와 해당 문법은 운영체제로부터 호출을 받는 것에 대처할 일이 있을 때만 사용하게 되더라.
아무튼 지구를 떠나서 달이나 화성에서 사는 건 어렵고, Windows 홈그라운드를 떠나 타 OS에서 사는 건 여전히 몹시 어렵다!

Posted by 사무엘

2017/03/11 08:31 2017/03/1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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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에 썼던 글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1. legal mind에 대해

정치라는 게 흔히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세 분야로 나뉜다고 그런다.
입법, 즉 앞으로 시행될 법(미래)을 만드는 건 국회의원들이 한다. 이들이 모이는 국회의사당은 우리나라의 경우 여의도에 있다.
다음으로 이미 있는 법을 이미 벌어진 사건에다 해석하고 적용· 집행하는 건 사법부에서 담당한다(과거). 대법원· 검찰청은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 강남에 있다.

끝으로, 행정부는 법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다른 모든 새로운 일을 벌리고 각종 권한을 행사하며 나라를 다스린다. (현재) 행정부의 수장이 바로 대통령이며, 우리나라 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는 경복궁 근처 산기슭에 있다. 다른 기관과는 달리 민간인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짐이 곧 법이니라” 같은 사고방식을 탈피하여, 한 사람이나 조직에게 삼권을 모두 부여하지 않고 각각 자기가 맡은 축의 일만 담당하게 하는 것은 뭔가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성경은 아무래도 왕국이 주제인 책이긴 하지만, 삼권이라는 개념 자체도 분명히 언급을 하고 있다.

{주}께서는 우리의 심판자시요(사법부), {주}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주시는 이시요(입법부), {주}께서는 우리의 왕(행정부)이시니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사 33:22)

본인은 법 같은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애초에 공무원· 관료 적성도 아니다. 하지만 나 같은 문외한이 생각해 봐도 법조· 법무 쪽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은 왕창 똑똑하긴 해야 할 것 같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선거로 선출되지만 법조인은 머리 피터지게 공부해서 시험을 통과해야 될 수 있다. 그에 반해 과거지향이다 보니, 무슨 경영 수완이나 리더십 같은 게 필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개업한 변호사야 자영업자이니 논외로 하지만, 월급 받는 변호사 내지 판사· 검사 기준으로..)

이들은 문학· 어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분량의 글을 읽고 써야 하며, 무슨 미적분 문제를 풀거나 수학 공식·알고리즘과 씨름하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수리과학 이상으로 논리· 법칙을 따지고 지능 싸움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온갖 복잡한 개념과 제도들을 계층별로 구분해야 하고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 내규나 보험 약관 같은 걸 처음 만드는 건 어찌 보면 프로그래밍과 굉장히 비슷한 절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문과 분야의 최고 전문직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물론 법은 적용 대상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보니, 만들거나 적용하는 데 시간/공간 복잡도나 재귀호출 같은 개념이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자면 절차형 언어는 아니고 선언형 언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감안하고 따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과 굉장히 비슷하다!

보안 결함이 없고 패닉 상태로 뻗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결국 수많은 상황에 대한 if문과 예외 처리들이 덕지덕지 추가된다.
법도 모호성이 없어야 하며, 엄밀하고 탄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등등.. 일반인이라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 줄 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보험 약관 하나만 해도 얼마나 복잡하나..? 그래서 약관을 따로 간단히 요약해 놓은 팜플렛이 있을 정도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머리 터질 것 같은 약관을 “만든” 사람도 있다. 그런 숨은 똘똘이들이 결국은 세상을 움직이는 셈이다.

국어학자 언어학자는 이미 있는 맞춤법 표준어만 달달 외우는 문법 나치 같은 사람이 아니라, 언어들에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원리를 알고 그런 문법 체계 자체를 새로 만들거나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전산학자는 단순히 이미 있는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나 API, 라이브러리만 달달 외우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역시나 컴퓨터의 근본 구조와 이론을 알고 언어나 프레임워크를 새로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것처럼 법조인 내지 법학자는 이미 있는 법 규범만 달달 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법을 만드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고 '법리'를 총체적으로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마치 컴터 코딩쟁이들이 2진법 사고방식에 익숙하듯이, 법리를 염두에 둔 직업병 마인드를 영어로 legal mind라고 한다.

사과가 나무에서 툭 떨어졌는데 뉴턴은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반면, 어느 뼛속까지 골수 민법학자는.. "아, 부동산이 동산으로 바뀌었구나"를 떠올렸댄다.
성경에서 자연인(natural man)이라고 하면 아직 거듭나지 못하고 죄성을 지닌 평범한 아담의 후손을 일컫겠지만, 법률에서 자연인이란 그냥 법인의 반의어일 뿐이다.
혹은, "김 재규의 죄는 내란목적 살인죄인가 아니면 그냥 자연인 박정희를 살해한 살인죄인가" 이럴 때에나 '자연인'이라는 말을 쓴다. 이런 예들은 단순히 염소(동물? 원소?)나 정의(definition? justice?) 같은 개그 소재보다 더 고차원적인 개념이다.

법학도 제대로 공부하면 재미있는 게 많긴 해 보이나.. 난 그거보다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 코딩이 더 재미있다..;;
내가 애초에 텔레비전보다 컴퓨터를 더 좋아했던 것도 컴퓨터는 TV와는 달리 화면에다 내가 원하는 대로 글자와 그림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고 모든 정보를 아날로그가 아니라 정확하게 딱 떨어지는 디지털 형태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2. 법리· 법 감정의 문화별 차이

우리나라는 형사 소송에서 피의자와 피해자가 합의를 하는 관행이 있다. (공식적인 제도는 아니고) 흉악범죄 내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한 가정의 평화를 완전히 박살낸 피의자가 초범이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고, 무엇보다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인해 기껏 구속시켰다가도 집행유예 같은 말도 안 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곤 한다.

이건 진짜로 피해자가 대인배여서 가해자를 용서했을 리는... 없고.;; 합의 거부하고 쟤들한테 기껏 콩밥 1년 몇 달 먹여 봤자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니, 합의금 단돈 몇천만 원이라도 확실하게 떡고물로 챙기는 게 낫다고 변호사가 종용을 해서 합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헬조선 딱지를 떼려면 뭐 빈부격차 양극화, 대기업 갑질 이런 것뿐만 아니라 저런 사법 정의부터 좀 되살아나야 하리라 여겨진다. 이건 유전무죄 무전유죄 때문에 벌어지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영미권 법조계의 생각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거기서는 저런 짓을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의하게 매수하려는 짓으로 간주하여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어설픈 합의를 시도한 게 걸렸다간 괘씸죄가 추가되어 형량이 더 늘어난다. 그 대신 피의자와 "검사"가 합의를 하는 '사법거래'(plea bargaining)라는 게 있을 뿐이다.

또한 영미권은 정당방위의 범위가 한국보다 더 넓다. 밤에 정체불명의 도둑이 밤에 자기 집 담장을 넘어오고 있고 당장 나가라는 집 주인의 경고까지 무시한다? 그러면 집 주인은 그 사람을 엽총으로 사살해도 100% 무죄다. 성경의 출 22:2에 근접해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그건 정말 답답할 정도로 보수적이고 제한적으로 적용한다.

이런 관념이 하도 무뎌져 있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엔 집이 아니라 강 건너서 아예 북한으로 잠입을 시도하는 사람을.. 민간인도, 경찰도 아닌 군인이 소총으로 쏴 죽였는데도 그 군인이 잘못했네 과잉대응이네 하는 한심한 논의가 오갈 정도였다.
누구든지 수하에 불응하면 이등병 초병이 육군 참모총장이라도 체포할 수 있거늘 저건 군인이 지극히 정당한 임무를 잘 수행한 것이지 않은가?

이런 간단한 예만 봐도 알 수 있듯.. 인간은 컴퓨터 같은 튜링 기계가 아니며, 법 감정 내지 법리라는 건 수학 공식처럼 절대적인 게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변호사 면허는 국가와 문화권간에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한국 의사 면허가 있다고 해서 미국에서 곧장 개원하거나 페닥 취업을 할 수 있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 미국에 가면 의대 졸업장 하나만 인정되며, 나머지 면허 취득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공식적으로 '국제 변호사'라는 직업은 없다.
변호사가 간판이나 명함 같은 데에 자기 대외 타이틀로 저런 명칭을 쓰는 건 불법이며 처벌 대상이기까지 하다. 의뢰인에게 심각한 혼동과 오해의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단지, 외국 변호사 면허만 갖고 있어서 자국에서 소송대리권은 없는 '외국법 자문사'가 있거나, 아니면 한국 변호사 면허와 미국 같은 외국 변호사 면허를 동시에 소지한 괴수 변호사만이 소수 존재할 뿐이다.

근데 난 개인적으로 영미권의 법리가 '기독교적 세계관'에 더 부합하고 더 합리적인 것 같다. 뭐, 시대 배경상 당연한 귀결인 건가?

Posted by 사무엘

2017/03/08 19:36 2017/03/0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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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교/출학 (징계제적)

* 이 글은 예전에 컨닝에 대해 썼던 글과도 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출교 내지 출학.
종교계에서의 파문, 공직에서의 파면(민중은 개돼지 그 아저씨가 당한..), 회사에서 징계 해고, 형법에서의 사형 선고, 스포츠 업계에서 영구제명과 비슷한 급이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내리는 가장 강한 징계이다.

대학교 기준으로 (1) 단순히 재학생 신분 박탈 + 고졸로 강등 수준을 넘어서 (2) 그 학생이 우리 학교를 다녀서 학점을 쌓았다는 기록 자체가 완전히 말소된다.
어디 그 뿐이랴? 학적이 사라지는 대신, 블랙리스트에 등재된다. 이 때문에 이 학교로는 하다못해 (3) 수능 다시 쳐서 깡통 상태 신입생 재입학조차도 영원히 할 수 없게 된다.

단순히 성적이 안 좋거나 등록금을 제때 못 내는 정도로는 이런 강한 징계를 받을 일은 절대 없으며, 우리나라 정서로는 심지어 리포트 표절이나 평범한 시험 컨닝 같은 부정행위로도 저 정도까지는 안 간다.
그걸 넘어서 학교 행정 시스템을 농락하고 교권에 정면도전해서 사회에서까지 전과자가 될 정도의 왕창 큰 사고를 쳐야 된다. 예를 들어 캠퍼스 방화라든가 학점에 불만을 품고 집단으로 교수 감금· 폭행이라든가, 교내 전산망 해킹으로 학적 데이터 조작이라든가.. -_-;;

2005~06년이던가 고려대에서는 교수· 교직원을 감금까지 하면서 시위를 벌인 극렬 운동권 애 몇 명이 고대 설립 이래 ‘최초’로 출교 처분을 받았다. 저기 주동자는 ‘고대 해적녀’로 악명을 떨친 그 여자애다. 해군이 해적이라니 무슨 강 의석의 여자 버전인가(군대 비하 발언)..?
아무튼 본인이 태어나서 출교라는 단어를 이때 처음으로 들었다. 하지만 그 출교 조치는 수 년 뒤 소송을 거쳐서 취소됐다고 한다.

그 뒤 그 이름도 악명 높은 고려대 의대 성추행 사건이 벌어졌으며, 여기 가해자들은 네티즌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제2타로 출교 처분을 받았다. 고려대는 이런 불상사까지 겪은 뒤로 마치 사형 제도 폐지하듯이 출교라는 제도 자체를 폐지했다. 출교는 당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내리는 학교 입장에서도 대외 이미지에 안 좋고 굉장히 부담스러운 처분이니까. 문제 학생을 내쫓을 거면 곱게 짜르기만 하지 미래의 재입학까지 원천봉쇄하는 초강수는 앞으로 두지 않기로 한 듯하다.

자, 다음으로 출교 3타는 잘 알다시피 연세대 로스쿨 캐비닛이 차지했다. 교수 연구실에 침입해서 시험 문제를 지속적으로 유출하다 적발된 건 평범한 죄질이 아니니까. 출교뿐만 아니라 업무방해죄로 집행유예 실형이 선고됐으며, 비록 명문화된 건 아니지만 법조계에는 영원히 발을 들일 수 없는 블랙리스트 인물이 됐다.

사실, 출학은 자기 학교에 재입학하는 것만을 금할 뿐이지 "닌 평생 고졸로 살아라" 내지 (4) 동일 업계/전공 전체에 입문 불가까지 명시하지는 않는다. 그렇게까지 학생의 인생에 태클을 거는 건 교육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애초에 일개 대학의 권한을 벗어나는 조치이다. 프랑스인가 독일인가 거기는 대학에서 졸업 시험에 수차례 낙방한 학생은 전국의 모든 대학교에서 그 전공/과를 평생 영원히 선택할 수 없어지긴 한다. 하지만 그건 국가에서 정한 규정에 따라 능력이 부족한 인원을 커트하는 것일 뿐, 징계는 아니다.

그러니 고려대 의대 성추행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은 고대에서 짤린 뒤에 성균관대 의대에 멀쩡히 재입학했다고 한다. 나쁜 짓 저질러도 그래도 공부 잘하는 탁월한 머리는 어디 안 가는 듯..;; 쟤들에 비해 캐비닛은 쟤들보다도 뒤끝이 제일 센 징계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제일 최근에는 잘 알다시피 모친 빽만 믿고 자기 실력 대비 기본적인 출석과 학업이 심히 불량했던 어느 이화여대 승마 선수가 출교 4타의 주인공이 됐다.
스포츠 쪽 진로를 가는 애들이 연습과 대회 참가 때문에 학업에 소홀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또한 말을 굴리려면 유지비가 정말 장난 아니게 깨지기 때문에 승마 + 특별전형은 반쯤 부자들 기여입학이나 다름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애 집안은 도가 너무 지나쳤다. 애엄마가 교수의 교권까지도 좌지우지하면서 갑질을 해 댔으니..

이 사건은 오죽했으면 정치 후폭풍으로 이어졌다. 애는 이화여대에서 즉시 출교됐으며(미래에 재입학도 불가), 총장 등 학교의 높으신 분들이 “우린 쟤 특혜 줘서 뽑은 적 없음” 이러면서 발뺌할 지경이 됐다. 그리고 대학교 만만찮게 불성실하게 다닌 고등학교까지도 졸업 무효가 돼서 최종 학력이 졸지에 중졸로 굴러떨어졌다. 수능 부정행위 무효, 대졸 무효, 학사장교 무효의 순으로 인생이 쫘르륵 운지한 어떤 사람처럼 말이다. 저 상태로 승마는 계속할 수 있으려나?

출교 정도면 전국에서 10수~몇십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고 아니, 사실상 사문이나 다름없어야 할 극약 중의 극약 처분이다. 그런데 출교 처분이 21세기 이래로 생각보다 자주 등장해 왔다. 그것도 상당한 명문대에서 사유도 의외로 굉장히 다양하다. 이념· 정치 쪽은 차치하고라도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할 예비 법조인이 부정행위를 밥 먹듯이 저질렀고, 사람 몸 들여다보면서 의술을 펼쳐야 할 예비 의사가 여학생을 성추행했으니.. 출교 당해도 싼 가관이긴 하다. -_-;;

아, 그러고 보니 로스쿨 재학생 내지 사법연수원 입소생 중에서도 성범죄 저질러서 실형 받고 다니던 데서 짤린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고려대에서는 해적녀 이후에도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이런 대자보를 붙이고 학교를 때려친 학생이 나오기도 했다. 그 애도 여자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으려나 궁금해진다. 고려대에 리버럴한 유명인사들이 좀 있었군.

저렇게 학교를 뛰쳐나와서 생업전선이나 마이 웨이를 가는 게 아니라 나름 가방끈을 늘리는 게 목적인 학생이라면 학생의 본분과 관련된 윤리는 엄격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다. 미국 같은 데서는 단순 부정행위만으로도 걸리면 해당 학기 전과목 F는 제일 자비롭고 관대한 처분이요, 총장과 면담에 정학이나 퇴학 등.. 빨간줄만 안 그이지 학생 및 연구자로서의 인생은 작살이 난다고 한다. 뭐,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 선진국이라는 생각도 든다.

똑같이 남의 돈을 쓰윽 했어도 건물 청소부가 저지른 것과 은행원이 저지른 것은 비록 액수가 동일하다 할지라도 죄질이 동일하게 취급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전시에 군법은 일반 형법보다 처벌이 더 엄할 것이며, 학문을 배우는 학생에게 더 크게 요구되는 윤리도 존재하는 셈이다. 나이가 어리고 경제 능력이 아직 없거나 부족하다고 해서 그저 다 봐 주고 실드만 치는 게 아닌 법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3/06 19:38 2017/03/06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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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정보들이 전산화, 디지털화되고 통신 기술도 눈부시게 발달한 2010년대 오늘날까지.. 여전히 손글씨 내지 하드카피 같은 원시적인(?) 방법론이 유효한 분야를 찾아보면 먼저 이게 떠오른다.
(1) 유서/유언장 내지 (2) 투표/개표.

유언장이야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의 필적이 맞다는 genuineness를 보장하기 위해 자필 실물만을 법적으로 인정한다.  또한 유언장 말고 육성 유언도 조작이 너무 쉬운 디지털 음원보다는 구닥다리 아날로그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것이 비슷한 맥락에서 법적으로 더 신뢰받는다고 한다.

저 분야는 그렇다 치지만,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 정치인 투표쯤은.. 전국 어디서나 간단히 인터넷 내지 터치스크린 클릭으로 짠 해치우고 개표 결과는 투표 마감 땡과 함께 곧장 나와야 할 것 같지 않나?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전산화에도 뭔가 금단의 영역이 있다.
이들은 위조· 조작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여전히 보수적인 방법론이 사용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이 관행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마치 과거에 킹 제임스 성경을 만들 때 서로 으르렁대던 청교도 학자와 성공회 학자들이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교차검증을 해서 둘 다 동의하는 좋은 번역본이 나왔듯이, 선거 개표도 각 정당에서 뽑힌 대표 참관인들이 각각의 표에 대해서 개표 결과에 눈으로 수긍을 하고 동의하고 교차 검증이 돼야 다음 표의 개표가 진행된다.

성경이 필사되는 과정, 수능 문제가 출제되는 과정처럼 투명성과 공정성, 정확성을 입증하는 절차가 결코 호락호락 허술하지 않다. 그나저나 비록 아날로그 매체이긴 하다만 잉크 묻힐 필요 없이 종이에 닿기만 하면 깔끔하게 마킹이 되는 그.. 투표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 도장은 어떻게 만드는지 참 신기하긴 하더라.

그 다음으로..
(3) 도박이나 추첨: 요즘은 로또 당첨 번호 추첨 같은 걸 어떻게 진행하나 모르겠는데, 본인이 어렸을 때는 주택 은행 복권의 당첨 번호 추첨을 TV에서 생중계했던 것 같다. 예쁘게 차려입은 진행요원 아가씨들이 100, 10, 1 등 자릿수별로 서 있고.. "쏘세요!" 신호와 함께 주사위를 던지던가 다트를 쏘던가 해서 그렇게 번호를 무작위하게 추출했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게 제일 뒤끝 없고 공정하긴 했는가 보다.

(4) 요즘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무인화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분야는 단순 접객 서빙과 요금 수납, 그리고 교통수단의 조종이지 싶다. 교통수단 중에서는 제일 안정적인 육상 궤도 교통수단이 무인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 중이다.

(5) 열차 승차권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예매가 완전히 일상화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석과 설에 확실하게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역에 발품 팔아 찾아가서 줄 서서 '오프라인 방식'으로 표를 사야 한다.

모든 열차 좌석을 인터넷 예매로 팔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예매 가능한 좌석 수의 전체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컴맹 세대 내지 사정상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계층을 배려한 것도 있고, 또 원격으로 표를 너무 쉽게 지름으로써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암표와 예약 부도(일명 '노쇼')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6) 국내의 고속도로 톨게이트들은 신용카드 내지 티머니 결제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패스가 없다면 반드시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언뜻 보기에 굉장히 원시적이고 미개해 보이는 관행인데.. 수많은 자동차들이 24시간 끊임없이 드나드는 곳에서 외부 카드 회사와 통신이 이뤄져야 하는 시스템은 신뢰성 문제 차원에서 채택하지 않은 거라고 한다. 하이패스야 자기들이 운용하는 시스템이니까 내부 통신만 이뤄질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고속도로도 주차권 없이 모든 차량의 출입이 100% 자동 인식되는 주차 시스템처럼 바뀌어야 하는데 문제는 고속도로는 단순 건물이나 캠퍼스 안의 주차 시설과는 넘사벽급으로 규모가 크다는 점이다. 365일 24시간 신뢰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7) 고속도로 말고 강원랜드 같은 도박장도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다. 거기는 건전한(?) 금융거래를 하는 곳이 아닌 관계로, 법적으로 카드 긁는 게 금지돼 있다. 돈을 쓸 거면 노름꾼들에게 늘 현금박치기를 강요시켜서 피 같은 내 돈이 실물로 없어지는 게 직접 눈으로 보이고 실감나게 하는 것이... 도박장들의 소득 규모를 손쉽게 파악하고 탈세를 방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도박 중독자들이 판돈을 카드로 확 지른다고 생각해 보라. 도박이 아닌 일반적인 지름신 영접만으로도 일부 경제 관념 없는 사람들이 카드빚 때문에 죽네 사네 할 정도인데 저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부르겠는가?

Posted by 사무엘

2017/03/01 19:31 2017/03/0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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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이야기

요즘은 사회 전반에 비밀이라는 게 갈수록 없어지고 내부가 개방되고 있다. 어떤 폐쇄적인 집단에 대해서 직접 소속된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던 내부 사정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진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내부의 오랜 비리나 부조리가 폭로되고 시정되기도 한다. 그러니 비밀이 없어지고 투명해지는 것 자체는 대체로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굳이 북한 주민 인권 같은 거창하고 정치적인 얘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폐쇄적인 조직 중 대표적인 예인 군대를 예로 들면.. 2000년대 중후반에 연재되었던 주 호민 씨의 웹툰 <짬>이 미필자나 여성을 상대로 군대의 내부 사정을 대중적으로 잘 알렸다. 그저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관제언론인 국방일보 같은 것 말고 말이다.
그 뒤로 2010년대에는 군대 안에서도 더욱 희소한 병과를 소재로 한 <DP 개의 날> 같은 웹툰까지 발표되었다. <짬>의 주인공이 평범한 육군 운전병인 반면, 저건 주인공이 탈영병 체포조 소속인 헌병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 복지 음지, 소록도, 무슨 특수부대, 극한 직업, 원양어선, 국정원 내부, 대성동 주민 등등..
이 좁은 대한민국 땅에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나 싶은 이야기들에 본인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군대 체험으로도 모자라서 교도소 내지 그에 준하는 피의자· 피고인 신분 체험기까지 인터넷에 종종 올라와서 유명세를 탄 게 있다. 직접 범죄를 저질러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고, 유경험자는 부끄러워서라도 공유를 꺼리니 대중적으로 알려질 일이 극히 드문 아이템인데도 말이다.

예전에 '마사토끼'라는 웹툰 작가가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라고.. 기소되어 재판을 거쳐 벌금형을 받기까지의 실화 각색 만화를 공개한 적이 있었다. 이분에 대해서 다른 만화 작품은 모르겠고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풍자하여 탐정 만화를 그린 걸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봤었다. (그러고 보니 <빵점동맹>에서는 그림 말고 스토리 작가이기도 했구나.)
그랬는데 자신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원에 출두하고 벌금형을 받은 체험기까지도 선뜻 웹툰 소재로 선택해서 공개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스펙 없던 어떤 지방대 문과 계열 졸업생이 노량진에서 죽어라고 공부한 끝에 영어, 국어, 국사 등의 맥을 차례로 잡고 국가직· 지방직 공무원 시험 합격 3관왕을 달성했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사람은 전문 웹툰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꽤 준수한 그림 실력으로 자신의 시험 준비와 시간 관리 요령을 만화로 그려서 연재했으며, 본인은 이걸 본 적이 있다. 이런 성공 자랑 스토리에 비해 법원 다녀 온 이야기는 다시 떠올리고 싶은 유쾌한 경험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마사토끼보다 더 수위가 센 만화도 나왔다. 바로 "교도소 일기"로, '엄격 진지 근엄' 짤방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그림은 교도소 내부에서 군기를 잡는 헌병뻘 되는 교정직 공무원을 묘사한 것이다. 무슨 나치 시절 SS 요원처럼 검은색 제복 차림이다.

주인공은 제목과는 달리 교도소에서 실형을 산 건 아니고, 구치소에만 있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걸 크게 구분하지 않으며, 구치소와 교도소 무슨 용어를 선택하건 만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달라질 건 없으니(이런 데에 절대 와서는 안 된다. 범죄 저지르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제목을 편의상 교도소 일기라고 뽑았다고 한다. 미결수들은 관대한 처분을 받기 위해 일과 시간에 판사에게 '앙망문'ㅠㅠ을 많이 써서 보낸댄다.

저기를 전근대 용어로는 '감옥'이라고 하고 '형무소'는 일본 본토에서는 지금도 쓰이는 일본식 한자어다. 오늘날 우리말의 공식 명칭은 '교도소'. 죄인을 가둬서 벌을 준다는 의미 대신 얘들을 바르게 교화한다는.. 뭔가 긍정적인 뉘앙스를 넣어서 말을 다시 만든 것이다. 가격을 인상하는 게 아니라 합리화, 재조정하듯이 말이다. -_-;;
영어로는 prison 또는 jail이라고 하는데, 한국어 같은 유치장-구치소-교도소를 영어로 정확하게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jail은 prison보다 동사로 활용도 더 잘 되는 것 같다. "I could have jailed you for doing/saying that!"처럼.

요즘 워낙 교도소의 사정이 좋아지고 공권력의 위상도 땅에 떨어진 덕분에 그냥 차라리 "깜빵이나 갈래요" 심정으로 범죄 저지르는 간 큰 사람까지 등장할 정도라지만..
근본적으로 개인 사생활과 자유가 없는 곳은 아무리 생물학적인 생존이 보장되는 곳이라 해도 사람이 갈 곳이 못 된다.
화장실 이용이 저 따위로 극도로 불편한 거 하나만 봐도 오금이 저릴 것 같다. 저기가 진짜로 국립 호텔이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군대에서 짬밥을 먹는다면 교도소에서는 콩밥을 먹는다. (여담이다만, 왜 '짬밥'만 사이시옷/사잇소리가 적용되어 '짬빱'이 되고 '콩밥'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볶음밥'과 '비빔밥', '물고기'와 '불고기'의 차이처럼 말이다. 이건 국어학계에서도 "그냥 케바케. 정말 원칙이 없다"로 귀착되고 있는 문제이다.)

경찰서 유치장은 무슨 입소대대요, 구치소는 훈련소나 보충대, 진짜 형이 확정되어 가는 교도소는 자대뻘 되려나 모르겠다.
군대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군대가 교도소와 다를 바 없네 하는 말이 있다. 군대와 교도소는 개인의 자유가 없거나 지극히 제한된다는 공통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존재 목적이 서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큰 차이도 있다.

  • 군대에서는 휴대와 관리 효율을 위해서 식당에서 포크 겸용 숟가락 하나만 쓰는 반면, 교도소에서는 끝이 아주 뭉툭한 플라스틱제 숟가락과 젓가락이 쓰인다. (자해 내지 탈옥 도구로 활용 못 하게. 죄수들에게 금속류를 줘서는 위험하다)
  •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체력 단련을 강조하고 권장하지만, 교도소에서는 실내에서 신체 운동이 절대 금지다. 하다가 걸리면 징계 받는다. (가혹행위 못 하게)
  • 전투복은 야외 활동 능률을 위해 상의와 하의 곳곳에 주머니가 많다. 그러나 죄수복은 정반대로 주머니 같은 거 없다. 신발에도 명백한 이유로 인해 전투화와는 달리 끈이 일체 없다.
  •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선거권이 보장되지만 교도소 수감자들은 그렇지 않다.
  • 군대는 비록 몰래 목 매달아 자살하는 사람도 나올지언정, 영창 화장실이 아닌 이상 화장실 안만큼은 사용 중 완전한 폐쇄를 보장해 준다.
  • 그나마 교도소는 불침번 같은 건 없구나. 일과 시간이 끝나면 다같이 푹 자는 게 보장된다. 다만, 밤중에 화장실 이용은 여전히 편하게 못 한다.

수저조차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은 교도소뿐만 아니라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줄 때도 비슷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음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 9· 11 테러 때 테러범들은 스테이크 써는 용도의 플라스틱 나이프만 갖고도 승객과 조종사들을 제압했다고 하니까. 그 뒤 미국에서 운용되는 여객기들은 액체 반입 제한에다 스테이크는 미리 다 썰어 놓은 채로 주는 등, 별별 보안 제약이 더 생겼다.

다음으로, 집단 내 서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군대에서 훈련소는 같은 날 들어와서 같은 날 나가는 동기들만으로 구성돼 있어서 형태가 제일 단순하다. 자대부터는 병들이 들어온 날이 제각각이어서 짬과 서열과 계급 차이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복무 기간은 다들 동일하다. 또한 장교인 소대장 아래로 병 중에서도 완장 찬 분대장이 있어서 후임들을 통제한다.

그에 반해 교도소는 한 방의 수감자들이 들어온 날과 나가는 날에 아무 개연성이 없다. 연령대도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러니 동기는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참과 말년 서열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해서도 절대 안 된다. 감방 내부에서 죄수들끼리 군대놀이가 행해지고 일진 같은 조직과 '짱'이 존재하고 간수 끄나풀이 존재하는데 그걸 간수들마저 죄수 관리의 편의라는 미명 하에 묵인· 동조· 방치한다면 교도소가 얼마나 개판이 되겠는가?

물론, 아예 사형수나 극도의 흉악범 또는 죄질과 별개로 멘탈에 문제가 있는 위험 죄수는 독방에 따로 수용되거나 더 엄한(= 햇빛 구경하기가 더욱 어려운) 교도소로 옮겨지긴 한다.
군대에 소규모 징계 시설인 영창이 있듯이, 교도소도 그런 목적으로 독방이 있다. 보는 눈이 없이 혼자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아무 행동도 못 하고 벽만 쳐다보고 지내야 하니 그건 그것대로 고문이라고 한다. 독방이 무슨 왕중왕도 아니고 교도소 안의 교도소 역할을 한다.

병역 의무가 있는 나라에서 누구든지 가능한 한 군대에 안 가려고 애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허나, 질이 지나치게 안 좋아서 통제가 안 되는 단점이 신체 능력이 뛰어난 장점보다 더 큰 사람은 군대에서도 아무리 사람이 부족해서 난리라 한들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만한 게 죄수들이니까 얘들을 삼청교육대 식으로 인간흉기로 개조시켜서 공작원으로 투입하거나 선원으로 부려먹는 건 인권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부려먹는 갑의 입장에서도 영화· 소설에서 보는 것만치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언제 딴마음 품고 사고 칠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덥석 위험한 무기나 도구를 쥐어 주고 일을 시킬 수 있겠는가? 일례로, 박통 시절에 실미도에서 몰래 양성되었던 북파 공작원들도 사형수· 죄수 출신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일제 강점기 때도 조선인을 상대로 징병제는 갈 데까지 다 간 말기인 1938년이나 돼서야 시작됐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군대 안 가려고 장애인으로도 모자라서 전과자가 되는 것까지 불사할 정도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요즘 같은 평시에야 많지 않다. 하지만 옛날에 정말 나라가 전쟁에 휘말려서 위태롭고 병사들의 사망률이 높던 시절에는 "군대 가느니 차라리 감옥 가고 만다, 배째!"도 당연히 있었다.

사람이란 살면서 병원에 갈 일이 없어야 하듯이 법원이나 경찰서 같은 곳에도 정말 갈 일 없고 마주칠 일이 없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피해 신고자나 증인 신분으로 가는 거면 최소한 자기 마음은 부끄러울 것 없고 떳떳하겠지만, 그래도 골치 아픈 일에 엮인 상태인 건 변함없지 않은가?

군인과 민간 공무원의 하이브리드인 군무원이라는 직종이 있듯이, 군대와 교도소의 하이브리드인 '국군 교도소'도 있다. 군인 신분으로서 영창보다는 크고(빨간 줄 그이고), 그렇다고 군번 즉각 말소에 민간인 싸제 교도소로 옮겨질 정도까지는 아닌 규모의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인데.. 이곳 역시 가서 좋을 건 전혀 없는 곳이다.

반대로 그런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에 비례해서 고소득 전문직이다.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스트레스와 책임감이 크고 재미없는 일을 하니까. 영적으로 보자면 저런 직업은 인간의 죄의 결과를 수습하는 직종에 속하기 때문에 저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수요가 절대 없어질 수가 없다. 옛날에 그 고상한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서 미국을 세운 뒤에도 교도소는 거의 곧장 필요해졌다지 않는가?

가령, 검사라 하면 얼마나 머리가 비상하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일 텐데, 그 좋은 머리로 맨날 하는 일이 뭔가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게 아니라 남을 일단 의심하고 나쁘게 보고 기소하고 형량을 판사에게 청구하는 일이다. 정신 건강에 좋은 일은 아니어 보인다. 저것만 하다가 맛이 가 버려서 인격 파탄 막장 싸이코 검사가 나오는 것도 본인은 이해는 할 것 같다. (피의자에게 막말, 가혹행위..;; )

우리나라에 10월 28일은 '교정의 날'이라고 법정 기념일이다. 저건 9월 18일 철도의 날만큼이나 교정 분야의 궂은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날이다. 우리나라가 민간 싸제 교도소가 막 발달한 나라는 아니니, 이 바닥 종사자들은 사실상 다 공무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교도소만 찾아 다니면서 포교· 선교 활동을 하는 종교인들도 있다. 군대보다도 저런 곳이 복음이 더 절실히 들어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개인 활동을 못 하는 곳에 있으면서 성경이라도 제대로 읽고, 인생과 죄 문제와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라는 것이다.

사람이란 게 꿈에도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덜컥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 비슷한 이치로 욱 하다가 정말 사소한 실수 때문에 은팔찌 득템에 경찰서 정모를 할 수도 있다. 굳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람이 죽는 급의 큰 교통사고를 내거나 경제 사범으로 몰리는 바람에 철창 신세를 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애초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 세상엔 이런 바닥도 있다는 걸 미리 염두에 둔다면 나중에 예상치 못한 비극이 찾아왔을 때 좀 덜 당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03 08:34 2017/02/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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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진왜란과 관련된 조선 기생들

임진왜란 때 활동한 기생이라 하면, 경남의 진주성 촉석루에서 적장을 껴안고 장렬히 산화한 논개가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승부 게임을 할 때 나의 가장 약한 말을 상대방의 가장 강한 말과 자폭시켜서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전술을 '논개 전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3· 1 운동 때 수원의 유 관순이라고 불리는 다른 여성 열사(이 선경)도 있었듯이, 임진왜란 때도 평양의 논개라고 불리는 '계월향'이라는 다른 기생이 있었다. 일본군 장수에게 겁탈당하자 이왕 버린 몸인데 그를 꾀어서 신임을 얻고, 아군 군사를 몰래 잠입시켜서 그 적장을 참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사를 치른 뒤 두 사람이 다같이 탈출은 할 수 없어지자..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그 아군에게 "나는 어차피 더럽혀진 처지이니 날 죽이고 가 주세요. 님 혼자라도 살아서 나라를 구해야죠" 이렇게 부탁하고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진주, 평양 다음으로는 강원도 고성에 월이(WALL-E? 개드립 -_-;;;)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얘는 전쟁 중은 아니고 전쟁 전에 염탐을 위해 미리 침투했던 일본의 어느 첩자와 정분이 났다. 그리고 첩자가 그려 놓은 지도를 몰래 엉뚱하게 바꿔 놔서 훗날 왜군을 대거 엿먹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건 딱 봐도 현실성이 낮으며 공로를 검증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니 실존 인물이 아니라 마치 윌리엄 텔 같은 주작 구전 설화일 뿐이라고 반박해도 할 말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설화도 아무 근거 없이 무작정 생긴 건 아닐 텐데 그 시절에 고성에서 진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제가 임진왜란에 앞서서, 그리고 한일 병합 전에 경부선 철도 부설을 위해서 자국 첩자를 보내서 한반도를 무단으로 막 측량해 갔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조선 자국의 지리 연구가인 김 정호에 대해서는 옥사설을 꾸민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2. 벨기에의 폭군

세계사에 악명을 떨친 인간 백정 학살자로는 김 일성, 이디 아민, 폴 포트, 마오 쩌둥, 히틀러, 스탈린 같은 유명한 인물이 있다. 그런데 딱 한 명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저기서 4위)는 악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생소하다. 본인은 최근에야 알게 됐다.

골수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에서.. 도둑질 하다 걸린 사람의 손목을 자른다는 얘기는 들어 봤다만,
이 미친놈은 피식민지 아프리카(콩고) 흑인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시켜서.. 고무 생산 할당량을 못 채우면 멀쩡한 사람 손목을 잘랐다.
다음에도 못 채우면 팔을 통째로 자르고, 3차 미달 때는 사형.

무슨 내전 지대에서 지뢰 밟아서 다리를 잃은 사람들도 아니고, 저렇게 손목· 팔이 잘린 흑인들 사진이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ㅠㅠㅠ

사진 보기 (약혐 주의)

아니, 그냥 평범한 채찍질이나 태형으로 벌 주는 것도 아니고, 손· 팔을 잘라 버리면 로동을 할 수가 없어지는데 그럼 1차 미달 이후부터는 바로 죽으라는 소리였나 싶은 의문이 들기도..

지금 북한에서 사람들이 지위를 막론하고 탈북하는 이유도 뭔가?
저렇게 미치도록 일해서 채워야 하는 할당량을 생각하니 답이 안 나와서 목숨 걸고 탈출하는 거다. 저렇게 목숨을 저당잡힌 채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그저 한숨만..;
그 당시 영국도 식민지 착취와 아프리카 로동자 인권 유린으로 치면 딱히 할 말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국주의 가해국들이 보기에도 벨기에는 너무 막장이어서 진상 조사를 벌이고 인권 개선을 촉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식민지 지배를 처음 해 보는 후발주자 나라들이.. 경험과 노하우도 없고 그저 피지배자들 기선제압을 하는 걸 목표로 극악무도한 공포 폭력 통치를 시행하곤 했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도 괜히 무단 통치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일제의 입장에서.. 조선은.. 그렇게도 악랄하게 수탈 착취한 것에 비해서 솔까말 그리 막 가성비 맞는 식민지도 아니었다. 한반도가 무슨 산유국도 아니고 저렇게 땅 넓고 식량이나 지하자원 넘쳐나는 곳도 아니잖아.. 뭔 뽕을 뽑겠냐? 걍 만만하게 합병해서 덩치 키우고, 특히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좋으니까 정한론이 나왔던 거다.

그나저나.. 매국노 이 완용이 1909년에 뜬금없이 바로 저 레오폴드 2세의 서거(?) 추도식에 참석하러 명동 성당에 가 있다가 이 재명 의사에게서 칼빵을 맞았다. 우리나라와는 이렇게도 인연이 연결된다.

3. 이 승만 대통령이 내린 칭호들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 이 승만이 후세에게 남긴 행적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뿐만 아니라 각종 이름에서도 은근히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이 박사 대통령 각하께서 XXX라는 이름을 하사해 주시였습니다~~"

  • 무궁화호: 지금 같은 완행 간선 열차 말고 1960년 2월에 등장한 디젤 기관차 기반의 경부선 특급 열차였는데, 그 시절에 서울-부산을 6시간 40분 만에 달리는 호화 열차는 지금으로 치면 KTX나 다름없는 포스를 자랑했다. 이 열차의 이름을 대통령이 직접 지어서 붙인 거라고 대한뉴스가 인증했다. 열차 이름 다음으로는 아무래도 군사 분야의 명칭이 많다.
  • 연무대: 논산 육군 훈련소의 별칭. 1952년에 역시 대통령 각하가 붙인 이름이다. 광주의 '상무대'는 어떤가 모르겠다.
  • 을지: 양구에 있는 을지 전망대 내지 을지 대대. '을지문덕' 장군에서 착안해서 대통령이 붙였다. 하긴, 서울에는 '을지로'라는 길이 있는데 그건 이 대통령의 전부터 존재했던 명칭이다. 강원도 여행을 갔다 오면서 알게 됐다.
  • 파로호: 출처는 역시 동일한 강원도 여행이다. 북괴 멧도적 '오랑캐를 격파하다'라는 뜻으로 대통령이 붙인 이름이다.

한때는 이 승만 아래의 어느 아부꾼 부하가 서울특별시의 이름까지 각하의 호를 딴 '우남시'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저 할배는 대통령 이상으로 왕처럼 행세하는 걸 좋아했으며, 커다란 자기 동상과 자기 얼굴 들어간 지폐까지도 만들긴 했다. 하지만 "우남시"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오글거렸는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야 그럼 내가 북괴 김 일성이랑 뭐가 다르게 되냐"라는 식으로 반문했다고 한다. =_=;;;

그 대신 "우남로"라는 도로명은 전쟁 후 1950년대 중반에 닦인 성남시 한 구석의 어느 도로에 붙어 있다.
저 할배는 과시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큼직한 자기 동상을 세우고, 자기 생일을 국경일 급으로 기념하고, 지폐에다가 자기 얼굴 사진을 그려 넣었다. 그런 부심은 있었지만 그래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도를 넘어서는 수준의 개인 우상화와 숭배 강요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국 거의 직후부터 성탄절을 빨간날로 지정했으며, 군대에 군종 병과를 별도로 꼭꼭 챙겨서 장병들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 (황군을 표방하는 일본군엔 그런 거 당연히 전무했음)

저런 이름들과는 달리, 대통령의 관저의 명칭이 경무대이다가 이 승만 이후에 지금의 '청와대'로 바뀌었는데, 이건 박 정희가 아니라 그 전인 윤 보선 때 그렇게 된 거다. 그리고 박 정희는 이름을 지은 것보다는 현판이나 돌에다 글씨를 쓴 게 더 많이 전해지는 것 같다. 숙정문 현판, 옛 광화문 현판, 국기태권도,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등.

4. 영예로운 유물과 그렇지 않은 유물

우리나라에는 현충원만 있는 게 아니라 파주 적성면에 적군 묘지가 있다. 남한 영토에서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북한군 및 중공군의 유해들을 최소한의 예우만 해서 매장해 놓은 것이다.
조선의 임금 중에 세종대왕 영릉은 멀리 여주의 최고의 명당에 거대한 규모로 조성돼 있다. 성군이 죽으면 무덤을 가장 으리으리하게 꾸며 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한 전통이며, 성경에도 나온다(대하 32:33).

그에 반해 연산군은 조/종 칭호를 못 받았으며 무덤도 '능(릉)'이 아닌 그냥 '묘'가 서울 북부 한구석에 초라하게 놓인 게 전부이다. 사람이 유한한 일생 동안 남긴 행적을 바탕으로 후세들로부터의 평판이 영원히 달라지는 건 내세· 종교관과 관련해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예전에도 한번 얘기했듯이 6· 25 전쟁 중에 우리 국군이 이룬 최초의 승전은 대한해협 해전이다. 육군이 아닌 해군의 몫이다. 그 전투의 주역이었던 백두산함 자체는 진작에 퇴역했지만 그 군함의 돛대는 해군 사관학교던가 어디에 고이 보존돼 있다. 역사적인 유물이니까 말이다.

그에 반해 천안의 독립 기념관에는 honor가 아닌 dishonor와 관련된 유물이 기념관 한구석에 실외 전시돼 있다. 바로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면서 남은 일부 건물 잔해들로, 특별히 첨탑도 여기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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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하되, 별다른 설명도 없고 울타리 같은 보호 장비도 전혀 안 두른 채로 내팽개쳐 놨다. 땡볕과 눈비를 고스란히 맞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이 침 뱉고 심지어 오줌을 싸건 상관 없게 방치했다. 첨탑은 공터의 중앙의 제일 "낮은" 구덩이 비슷한 곳에다가 놔 뒀다. 참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전시해 놨다. 일부러 깨 부수고 파괴할 필요는 없지만, 애지중지 고이 모셔 두지도 않은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독립 기념관에 언제 직접 찾아가서 저걸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함의 마스트와 조선총독부 청사 첨탑은 이렇게 후세로부터 극과극 정반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북괴 정권이 붕괴하고 통일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나면 북한 관련, 김돼지 우상화 유물들도 99% 이상은 흔적도 없이 폐기하고 극소수 상징적인 유물만 이렇게 놔둬서 기록 겸 반공 교육 자료로 활용해야 하지 않나 싶다.

5. 탈북자가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방식

탈북자들 중에는 강 철환, 주 성하 기자처럼 현직 언론에 종사하면서 북한 쪽 소식통을 모니터링하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사람이 있다. 최근에는 신문뿐만 아니라 박 진희 씨처럼 TV에 얼굴이 노출되는 방송사 기자도 등장했다.
언론 기자 입장에서 북한 내부 소식은 너무 극단적이고 엄청난 일이 많은데 검증은 어렵고 제보자의 신변도 보장할 수 없는지라, 취급하기 굉장히 꺼려지는 분야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처럼 제도권 언론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혼자 강연을 뛰고 책을 쓰고 기자회견을 열면서 상대적으로 음지에서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탈북자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몸을 덜 사리면서 개인적인 탈북 과정이나 수용소 경험담 같은 참혹한 얘기를 막 거론하는 편이다. 남자만 있는 게 아니라 영어 공부해서 TED에까지 강연을 한 걸로 유명해진 이 현서, 그리고 박 연미 같은 젊은 여성도 등장했다. 이렇게 public형과 private형 두 그룹을 나눠서 생각할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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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북한의 인권 사정은 매우 참혹하며 탈북자는 인도적으로 대해야 하긴 한다. 그러나 이들 중에도 위장 탈북자, 안보 장사 사기꾼이 있다. 심지어 탈북자 커뮤니티를 이간질하기 위해 북괴가 의도적으로 제3국을 거쳐 보낸 간첩도 있다. 그러니 탈북자의 증언을 교차검증하여 팩트를 걸러 내는 문제가 쉽지 않다. 당장 검증이 안 되는 주장도 마냥 무시하고 버릴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31 08:23 2017/01/3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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