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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이큰> 관련 소감

OCN인지 뭔지 영화만 하루 종일 상영해 주는 케이블 TV 채널을 보면.. 한때는 계속 유명 액션 영화만 틀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본인은 원빈이 너무 멋있게 나온 <아저씨>, 또 B급 영화 오마주로 가득하면서 웬 인간 흉기 금발 백인 누님이 일본도 들고 싸우는 <킬 빌>을 TV를 통해 우연히 봤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하나 더 본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테이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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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감은..
역시 흥행하는 영화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다. 리암 니슨 아저씨 너무 멋있다.
특히 딸 유괴범을 전기고문하면서 딸이 있는 곳을 알아내는 장면은 너무 통쾌한 권선징악 장면인지라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해서 봤다. 다같이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저 때 Wake up! I need you to be focused!로 시작하는 대사가 나온다.
다만,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자막 파일은 그 문맥에서 대충 의미만 통하지 영어 원문의 정확한 의도를 다 전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뜻은 대략 이렇다.

“(기절한 마르코를 의자에다 묶어 놓은 뒤) 어이, 일어나! 너를 심문을 좀 해야 하니 정신 바싹 차리고 있어라. 어금니 꽉 깨물어라, 자 간다~ (쇠꼬챙이를 양 허벅지에다 푹~ 박아 넣은 뒤) 자, 기절할 정도로 졸라 아프겠지만 고문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여전히 정신 괜찮지?”

이런 뉘앙스를 제한된 화면에다 문장으로 일일이 다 표현할 수가 없으니 Are you focused yet?을 “이제 정신이 좀 드나?”로 보통 번역하는 편이지만.. 원래 의미는 “아직 괜찮지?”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한다.

마르코는 처음에는 브라이언의 얼굴에다 침까지 뱉으면서 의기양양하게 반항하지만.. 전기로 10초간 지져지는 고문을 두 번 당하고 나니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우리의 멘탈갑 브라이언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태연~하게 이런 이 근안스러운 말을 해 댄다.

“이런 일은 말야, 원래는 외주를 주곤 했어. 그런데 문제는 외주 준 나라들이 대체로 못사는 개도국이어서 전력 공급이 불안했단 말이야..?? 스위치를 켰는데 전기가 안 들어와. 그러니 고문기술자들은 빡쳐서 사람 손톱을 뽑거나 생살에다 산성 용액을 부어 버리곤 했지. 일이 여러 모로 능률이 떨어지곤 했는데.. 여긴 전류가 아주 원활해서 좋아.”
“난 지금 바쁜 처지야. 마르코, 너 순순히 대답 안 하면 전기세 밀려서 단전될 때까지 스위치가 켜져 있을 거다.”

나중에 정보를 얻을 만치 다 얻은 브라이언이 다시 스위치를 켜러 가자 마르코는 완전 겁에 질려서 브라이언에게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애원한다. “I don't know!! PLEASE..!! not that.. please ㅠ.ㅠ” 이 부분 연기를 처절하게 잘했다.
그래 봤자 브라이언은 “I believe you. But it's not gonna save you.”와 함께 스위치를 켜 놓고 나가 버린다. 마르코의 자백은 자기 수명을 불과 몇 분 남짓밖에 더 연장시키지 못했다.
허나, 부모가 수십 년간 피땀 흘리고 갖은 애정을 쏟아 키운 딸애를 창녀촌에다 팔아 버리고 돈은 자기가 챙긴 사악한 악당이라면.. 정말 저 정도 고문은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다.

테이큰은 여타 액션 영화와는 달리 주인공이 친구의 마누라(악역이 아닌 여성!)까지 팔을 쏴 버리는 장면이 나오며,
또 최종 보스와 대면한 뒤에도 일말의 타협 없이 주인공이 그냥 곧바로 악당의 미간을 날려서 사건을 종결짓는다. 사건 전개가 참 자극적이고 짜릿하다.
사실, 브라이언이 친구를 다그칠 때도 “너 자꾸 고집 부리면서 협조 안 해 주면 니 애들은 고아가 될 거다. 아까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팔을 쐈지만 다음엔 급소를 쏠 거야?”라는 요지로 자막이 나왔는데, 이것도 정확하게는 단순히 급소가 아니라 '미간'이다. 영어 대사엔 eyes라는 단어가 들렸던 걸로 기억한다.

위의 장면들을 다 제치고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이 남긴 제일 간지 넘치는 대사는, 역시 딸이 납치당한 직후 전화로 납치범에게 남긴 경고일 것이다. 딸이 외국에서 납치 당했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이 타이밍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납치범들을 상대로 나지막한 말투로 협박한다. 아아..;;

I don't know who you are. I don't know what you want. If you're looking for a ransom, I can tell you I don't have money (....)
If you let my daughter go now, that'll be the end of it. (...)
But if you don't, I will look for you.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

..... good luck.

30초가 넘는 분량의 대사인데.. 난 다 외워 버렸다.

역시 사람은 자기 마음이 가는 곳에 역량이 발휘된다.
매주 교회에서 짤막한 성경 구절을 외운 건 길어야 그 날 저녁까지밖에 안 가고 세부적인 단어와 표현은 하루 이틀 정도 뒤면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저건 그냥 머리에 확...

take는 성경에도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동사인데, 저 영화를 보고 나니 take의 뜻조차도 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갑자기 똘끼를 발휘하여, 저 사건과 대사가 만약 흠정역 성경에 기록되었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 봤다. ㅋㅋㅋㅋ

... 그녀의 아버지가 이르되,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네 혼이 무엇을 원하는지(thy soul desireth) 알지 못하노라. 만약 네가 대속물(ransom)을 원한다면, 너는 확실히 알지니(of a surety) 내게는 돈이 없느니라. (...) 만약 네가 내 딸을 가게 하면 잘하는 것이려니와 만약 가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를 쫓고 너를 찾아내어 너를 반드시 죽이리라, 하니라.
잠시 후에 그녀를 취한(took/taken)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잘해 보라, 하니라.


그러고 나서 나중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지라 “너 나 기억 안 나? 우리 이틀 전에 서로 전화 통화 했었지? 내가 너 찾아낼 거라고 예고했잖아.” 이 말을 들었을 때 마르코는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을까?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_=;;;;

테이큰은 잔인한 폭력뿐만 아니라 창녀촌 배경도 있어서 그런지 국내에서는 생각보다 수위가 높은 19금 등급을 받고 개봉했다.
아무리 자기 딸을 구하려 한다지만 브라이언은 남의 나라에 들어가서 거의 30명 이상의 사람을 죽였다. 모 건설 현장을 완전히 작살을 냈으며 남의 자동차를 최소한 3대를 탈취하고, 고위 공직자의 부인을 총으로 쏴서 다치게 했다.

이 정도면.. 선한 의도라고 해도 브라이언은 법적으로 프랑스를 절대로 곱게 빠져나갈 수 없는 신세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딴 시시콜콜한 디테일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하긴, <킬 빌>에서도 키도 누님이 시퍼런 핫토리 한조 일본도를 비행기 기내에 버젓이 반입한 채 일본 본토로 날아가는 걸 보고, 본인은 피식 웃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아저씨>에서는 그래도 최소한 차 태식이 체포되는 걸로 끝난다. 아무리 나쁜 조폭들을 죽인 거라지만, 일반인이 혼자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많이 학살했다면, 현직 변호사의 자문에 따르면 아무리 명분을 참작하고 봐 준다 해도 무기징역감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식의 경우 원래 특수부대 요원이었고, 아직 능력이 출중해 보이니 도로 국가를 위해 현업 복직하는 것을 조건으로 검찰에서 기소조차 하지 않고 학살극을 유야무야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조폭들이 죽은 건 자기들이 팀킬 벌인 거라고 적당히 위장하고 말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폭력 액션 영화에 너무 심취하는 건 사람의 정신 건강에 그다지 좋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흉악 범죄자에게 권선징악을 속 시원하게 집행을 안 하고 되도 않은 인권 핑계로 직무유기를 저지르니,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영화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된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괜히 종교색 표방하면서 교묘하게 성경이나 하나님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하는 매체보다는, 차라리 종교색 따윈 싹 잊고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게 '덜' 해로운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성경 용어로 설명하자면 전자는 마귀적(반성경적)이며 후자는 육신적(비성경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06/26 19:29 2014/06/2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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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해 버렸으니 허접한 게 아니라, 오히려 500년이나 버틴 대단한 왕조이다”라는 요지로 조선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서울대 중문과 허 성도 교수가 했다는 강연을 보신 분이 있는가 모르겠다. 본인 역시 오래 전에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조선이 그저 말기에 막장으로 치달아서 망할 만하니까 망했고 먹힐 만하니까 일제에게 먹혔다고만 생각하기에 앞서,
조선 역시 리즈 시절에는 기강과 체계가 굉장히 잘 갖춰진 좋은 나라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환단고기 식의 황당한 얘기가 아니라 그럴싸하게 들린다.

다른 제도는 몰라도 특히 조선왕조 실록은 훈민정음에 버금가는 위대한 문화 자산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뭔가... "성경에 과학적으로 아주 정확한 진술이 있다.." 그런 예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

본인에게는 그분의 성함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저 강연을 한 허 성도 교수는 '한국사 사료 연구소'에 재직하였으며,
유니코드가 정식 제정되기 전에 아래아한글이 제공하던 '제2수준 확장 한자'를 제정하고 글자를 직접 그리기까지 했던 분 중 하나이다. 아래아한글의 도움말 credits에도 이름이 당당히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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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로 우리나라 문화와 관련해서 공적이 뚜렷한 분임이 틀림없다.흔히 한글 전용론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한문 고전을 통해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소수의 전문가를 양성해서 고전을 번역을 해야지, 그걸 빌미로 전국민에게 어려운 한자· 한문을 원어 그대로 가르치기에는 국가적인 손실과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허 교수는 그 주장이 가리키는 '소수의 전문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대단한 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올해에 갓 정년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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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4/03/16 08:16 2014/03/1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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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국가(national anthem)들

한 나라의 상징으로는 깃발(국기), 꽃(국화) 등과 더불어 노래(국가)가 있다.
난 우리나라의 여러 상징들이 전반적으로 개성 있고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고유 문자인 한글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소나무, 태권도, 무궁화 다 좋다. 국기인 태극기도 적당한 상징성과 복잡도로 잘 만들었다.

다만, 그런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좋아하는 상징은 국가인 애국가이다. 다소 밋밋한 가사, 그리고 시작 부분의 너무 어색한 박자 때문이다(갖춘마디에다가 못갖춘마디 스타일의 박자를 얹음). 뭐, 덜 좋아한다는 거지, 아주 싫다는 뜻은 아니지만.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2.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난 개인적으로 1절과 4절은 모두 외우고 있고, 2절과 3절은 첫 단의 가사만 기억하고 있었다. 군대 훈련소에 있던 동안은 각 절을 매일 돌아가면서라도 훈련병들에게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다 외우게 했던 것 같다.

그럼, 대한민국 말고 다른 나라들의 국가는 어떨까?
내가 멜로디를 완전히 알고 있는 외국 국가로는 미국, 중국, 영국, 독일, 그리고 북한이 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영국과 독일의 국가 멜로디는 이미 자동으로 숙지하고 계실 것이다. 찬송가에 동일 멜로디의 찬양이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피난처 있으니>와 <시온 성과 같은 교회>.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혹은 작별의 노래) 멜로디에다가 애국가 가사를 끼워서 부른 적이 있었다.

중국의 국가는 영락없는 행진곡 군가 스타일이어서 호전적이고 씩씩한 느낌이다.
중국 국가는 '칠라이'(일어나라), '치안찐'(전진)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들린다. "앞으로 용진 또 용진" 이러는 우리나라 <육군가>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가사의 주제는 "자, 노예로 살기 원치 않는 인민들이여, 함께 일어나 적들을 무찌르고 새 세상을 건설하자. 빠샤!" 정도?

노래를 부를 때는 성조를 전혀 표현할 수가 없어진다. 그럼 중국어를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생기지는 않나 모르겠는데, 하지만 의외로 문맥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식별이 된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사실 한국어도 완전 말도 안 되는 모호성이 적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소년/소녀, 그년/그녀, 내/네 등).

미국의 국가는 가사가 전투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만 멜로디는 군가풍이 아니며 오히려 3박자 계통이다. 그리고 가사 중에 국기인 성조기에 대한 묘사가 있는 게 특징이다. "그 치열한 전장에서도 우리의 성조기는 당당히 펄럭이고 있었노라."
가사 끝부분에 나오는 "자유의 땅, 용사의 고향"이라는 표현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짐작케 한다.

독일의 국가는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버 알레스 위버 알레스 인 데르 벨트"(우리 독일이 세계 킹왕짱)라고 시작하는 첫부분이 인상적이다. 가사의 나머지 부분도 전투적인 요소는 별로 없이 그냥 자기 나라 찬가이다.

영국의 국가 <God Save the Queen>은 군주인 (여)왕에 대한 축복송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찬송가뿐만 아니라 Noteworthy Composer 악보 프로그램에도 예제 데이터로 곡이 통째로 실려 있다.

다음으로, 북한의 국가는 제목이 남한과 동일한 <애국가>이다. 김씨 부자에 대한 우상화가 지금처럼 극심해지기 전에 미리 만들어져서 그런지 노래 자체는 의외로 전투적이거나 위수김동을 전파하는 내용이 없다. 그냥 평범한 조국 찬가 스타일이고, 어찌 보면 남한의 애국가보다 퀄리티가 더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주요 행사 때는 애국가보다 별도의 장군님 찬가를 더 즐겨 부른다고 하니 '역시나'이다. 북한 애국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 있으니 더는 하지 않겠다.

이스라엘의 국가는 역시 이스라엘 아니랄까봐, 국가가 웬 단조라는 것 정도만 기억한다. (찬송가 중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요풍의 단조)

끝으로, 일본의 국가는 <기미가요>인데.. 지극히 일본스럽다. 일본 사람이 자기 내면을 잘 표현하지 않고 말을 모호하게 하는 걸 즐기고, 헌법조차 덴노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주 모호한 문장으로 시작하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임의 대(代)는 1000대까지.. 8000대째에 작은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너무나 짧고 의미도 밍숭생숭하기 그지없는 가사이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가라나? 멜로디의 음계 또한 전통적인 서양 음악 스타일을 떠올렸다가는 놀라게 된다.

모든 일본인들이 이런 기미가요를 국가로서 좋아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한다. 똑같은 군주 찬가여도 대놓고 신을 거론하며 마음껏 복을 비는 영국 국가하고는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가사 내용에 대해 또 딴지를 걸자면, 돌멩이는 무슨 눈덩이나 흙덩이도 아닌데, 긴 세월이 흐르면 커지기보다는 닳고 쪼개지지 않나 싶기도 하다.

기미가요는 가사 자체는 너무 추상적이다 보니 별로 문제될 게 없으나, 역시 일제 군국주의와 함께 강제로 보급되고 퍼진 이력이 있다 보니, 한국처럼 일제의 피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에서는 좋은 평판을 못 받고 있는 노래이다.

다른 나라들은 그렇다 치고 한중일 CJK만 살펴보더라도, 국가가 삼국이 서로 극과 극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세계의 국가들을 군가/전투형, 군주 찬가형, 국가 찬가형 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23 08:25 2013/09/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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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는 개발된 지 벌써 25년이 돼 가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불멸의 명작 고전 게임이다.
개발자의 이름을 가히 전세계적으로 알린 물건이다.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주인공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그 옛날에 만들어 냈다는 걸 생각하면 그 천재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게임 엔진도 충분히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만, 제작자인 Jordan Mechner는 방송· 연출 쪽으로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다 보니 게임을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굉장히 웅장하게 만들고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돌아오는 시청각 피드백의 디자인에 세심한 신경을 썼으며, 스토리를 탄탄하게 짜 넣은 것도 인상적이다.

가령, 적이나 주인공이 죽었을 때 매번 짤막한 멜로디가 나오는 게임, 적이 칼에 맞았을 때와 내가 칼에 맞았을 때의 소리가 서로 다른 게임은 지금 생각해 봐도 흔치 않다. (당연히, 내가 칼에 맞았을 때의 소리가 더 불쾌하고 위급하게 들린다. 이런 것까지 다 신경 썼다)
또한, 같은 엔진으로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의 맵만 집어넣은 게 아니라, 중간에 해골이라든가 영혼 탈출, 그리고 공주가 생쥐를 보내서 왕자를 구출하는 것 같은 이벤트도 집어넣어서 사용자가 지루하지 않게 배려했다. 괜히 명작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제작자는 네이티브 뉴요커이며 예일대 출신이라는 건 덤이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20대 중반의 나이로 그가 대학을 졸업한 거의 직후부터 개발을 시작한 것이지만 대학 재학 중에도 프로그래밍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컴공 전공자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오리지널 1편 기준으로 모션 촬영은 제작자의 동생을 뛰고 오르고 이리저리 구르게 하면서 촬영했으며, 음악은 제작자의 아버지가 만들었다 하니 이 정도면 가히 엄친아 집안이 따로 없다. 아버지 Francis Mechner는 심리학 박사 학위 소지자이다.;;

이 게임은 1989년에 최초로 애플 II 용으로 개발되었지만 이듬해에 PC용으로 이식되면서 대박을 터뜨렸으며, 여타 PC나 게임기용으로도 널리 이식되었다. 오늘날에는 3D 형태로 리메이크된 작품이 나오고 심지어 모바일용으로 이식되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게임 mechanic이 간단하다 보니 플래시로도 비스무리한 게임이 있다. 그리고 전세계의 양덕후들이 LEVELS.DAT 파일을 임의로 고친 custom level들까지 즐비하다. 이 정도면 페르시아의 왕자가 비디오 게임계에 끼친 영향은 가히 지존의 경지라 하겠다.

어휴, 말이 길어졌는데.. 이 글에서 소개하려 하는 것은 그 페르시아의 왕자 1 PC 버전에서 MEGAHIT 치트만 안 쓰고 프로그램 상의 모든 버그와 꼼수를 활용한 궁극의 타임어택이다.
어지간한 고퀄이 아니었으면 내가 굳이 내 블로그에다가 소개까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프레임 단위로 삽질 없이 시간을 아껴 쓰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ZvlNppHraWs
http://www.youtube.com/watch?v=U8Kw2pA6hb8

레벨 1: 게임 시작 직후에 왕자가 엎드렸을 때 음악과 함께 살짝 랙이 있으니 이것은 Ctrl+A로 곧바로 스킵. (경악)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그리고 이 레벨의 경우, 정석대로 칼을 먹고 돌아오면 깨는 데 2분이 걸리지만, 잘 알다시피 칼 든 악당을 꾀어낸 뒤 칼을 먹지 않고 깨면 1분대로 시간이 줄어든다.
그러나 저 고수의 플레이 영상은 그마저도 초월했다. 칼을 먹으러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체의 우회가 없이, 칼 든 악당을 그대로 정면돌파하여 통과한다. -_-;; 이로써 1분도 걸리지 않고 깬다. 프로그램의 미묘한 버그를 활용해서 말이다.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니 영상을 직접 보시라.

레벨 2와 3은 그냥 그럭저럭 보면 되고...

레벨 4: 포인트는 시작 후에 오른쪽 방에 있는 악당을 움직이게 하여 닫힌 문을 곧바로 열게 만드는 것이다. 버그 활용임.
출구가 있는 방에는 악당이 있다. 출구를 개방한 뒤에 다시 이쪽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악당은 시간 소요를 감수하고라도 보통은 어쩔 수 없이 싸워서 죽이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 악당마저도 죽이지 않고 매번 도망쳐서 통과한다.

레벨 5: 역시 악당을 이용한 버그를 활용하여, 왼쪽 방의 닫힌 문을 그대로 워프로 통과한다. (빙빙 돌 필요가 없다!)

레벨 6: 이 레벨에는 일반적인 도움닫기 점프로는 통과할 수 없는 간격으로 가시가 놓여 있다. 그러나 딜레이 없이 빠르게 타넘는 점프 패턴이 있는데, 이것은 본인도 경험상 알고 있었던 것들이다.

레벨 7: 중간에 공간 워프 버그를 하나 활용한다.

레벨 8: 역시 우주괴수는 출구를 개방한 뒤에 철문에 갇혀서 생쥐가 발판을 밟아 주러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최고다.
톱날이빨과 악당을 동시에 마주치는 곳에서는 악당을 죽이는 게 불가피한 듯. 문닫힘 발판을 통과하려면 뛰어야 하는데 도움닫기도 못 하고(바로 다음 방에서 절벽이 있기 때문에), 그러면서 악당의 공격을 당하지도 않아야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레벨 9: 중후반에 톱날이빨을 동작하지 않게 하는 버그는 나도 알고 있었다.

레벨 10과 11은 특이사항 없음.

레벨 12: 그 공간 워프 버그도 유명하며, 나 역시 스스로 발견했었다.

일반적으로 레벨을 깨는 출구는 문이 완전히 열리기 전까지는 왕자가 들어갈 수 없다. ↑ 키를 눌러도 왕자는 말 그대로 펄쩍 뛰기만 한다.
단, 최종 보스인 Jaffar를 죽이고 나서 자동으로 열리는 출구는 예외. 완전히 열리기 전에도 왕자가 쏙 들어가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동영상을 보면 왕자는 여기서도 출구가 완전히 열릴 때까지 약 1초 남짓 기다렸다가 들어간다.
물론 어차피 Jaffar가 죽은 뒤부터는 게임 내부의 타이머가 정지하긴 하지만, 게임 시작 직후의 앉음 딜레이조차 건너뛰려고 Ctrl+A를 누른 타임어택의 취지에 비춰 보면 살짝 옥의티라면 옥의티 같다.

이 게임은 Shift+L을 누르면 레벨 4까지 레벨을 건너뛸 수가 있다. 물론 이 경우 60분이던 시간이 15분으로 1/4토막나기 때문에 게임을 제대로 더 진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프로 타임어태커는.. 그 상태로 시작해서도 게임 엔딩을 볼 수 있다. 경악. =_=;;:

단, 후편인 왕자 2는 저런 게임 메카닉 상의 버그가 거의 다 사라졌으며, 악당도 움직임이 굉장히 빨라져서 자리 바꾸고 튀는 게 불가능해진 관계로 1과 같은 궁극의 타임어택이 나오지는 못한다. 결정적인 시간 절약 요인 버그 exploit들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8/02 19:20 2013/08/0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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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단상

* 마인크래프트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

  • 이건 “집마다 지은 사람이 있으되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히 3:4)를 매우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게임이다.
  • 비록 그래픽 디테일은 진짜 딱 1990년대 중반의 퀘이크+툼 레이더 1~2 수준이지만, BSP처럼 고정불변 맵에 딱 최적화된 자료구조가 아니라 임의의 광활한 지형을 실시간으로 생성하고 중간 로딩도 거의 없이 실시간으로 3D로 표현하는 게 굉장히 신기하다.
  • 블록의 단위 크기가 1m라는 특성상, 마인크래프트가 제공하는 철도는 762mm짜리 협궤와 비슷하다.
  • 철덕의 기상. 코레일과 KTX CI를 새겨 놓은 용자가 있다!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첨부 그림 참고. 단, 마인크래프트 실제 게임은 1인칭 3D 시점이 지원된다. 저런 3인칭 2D 시점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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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3/04/18 08:20 2013/04/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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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 르메이(1906-1990).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미국의 군 장성이다. 군사, 세계사, 현대 전쟁사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름을 들어서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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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 정말 골때리면서도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는 정말 뼛속까지 군인 타입으로, 닥치고 폭격기 화력 덕후였으며 그의 주특기는 쑥밭 만들기였다.
하긴, 그 당시 미국은 워낙 물자가 풍족하게 넘쳐나는 부자 나라였으니 그의 전투 이념은 나름 적절했다.

게다가 그는 '석기 시대'를 굉장히 좋아한 매니아였다. ㅋㅋㅋㅋㅋ
미국 앞에서 깝치는 적국들은 본진을 폭격으로 다 쑥밭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모조리 '죽탕치는(?)' 것도 아니고,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는 으름장을 공석에서 입버릇처럼 뇌까렸다. 영어로는 Stone Age.
호전적이고 입이 험악한 걸로 악명 높은 북한도 공식 석상에서 석기 시대 공갈을 친 적은 없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르메이 장군에 대해서 이런 패러디짤이 나돌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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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지휘 하에 일본 도쿄는 2차 세계 대전 말기에 그 이름도 유명한 '도쿄 대공습'을 당했다. 미군 폭격기가 우박처럼 떨어뜨리는 소이탄에 시내 전체가 말 그대로 시뻘건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사진에서 보듯, 목조 건물은 형체도 없이 그냥 주저앉아 없어졌고, 일부 석조/콘크리트 건물도 새까맣게 탄 흉측한 몰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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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폭격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10만여 명에 달해서 사실은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로 죽은 사람보다도 수가 더 많았다고 한다. 도쿄를 그런 석기 시대로 되돌리는 데는 겨우 3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게 무슨 원폭을 성층권 고도에서 투하하는 식이 아니라 상당한 저공에서 위험한 자세로 소이탄을 떨어뜨리다 보니, 미군도 폭격기가 총 12기나 일본의 대공포로부터 반격을 받아 격추되고, 42기는 피탄 당하는 손해를 입었다. 이에 몇몇 미군 파일럿들은 권총을 들고 르메이를 직접 찾아가서 이렇게 따졌다.

“왜 이런 무모한 저공 비행 폭격 명령을 내렸는가? 귀관 때문에 우리가 전우를 얼마나 많이 잃었는지 아는가?”

하지만 르메이는 그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제군들은 단 하루 만에 일본 제국의 수도를 잿더미로 만들고 놈들을 최소 10만 명이나 없앴다! (사실, 미군 전사자는 많아 봤자 수십~수백 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작전은 대성공이다. 이런 식으로 내일은 나고야, 모레는 오사카, 그 다음은 고베.. 1주일 동안 일본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모두들 오늘의 성공을 자축하도록!

전쟁을 치르면서 전사자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작전 자체는 르메이의 말대로 미군의 승리이긴 하지만... 저건 좀.. ^^;; 정말 그의 머리에 든 건 오로지 폭격밖에 없었다.
일본이 원폭을 맞고 나서 일찌감치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르메이가 생각한 작전들이 모두 시행되었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진짜로 지도에서 없어지고 일본 열도는 석기 시대로 퇴화했을지도 모른다.

이 양반의 무자비한 작전은 훗날 6·25 때도 계속되었다. 북한 중에서도 평양 시내는 그야말로 형체가 남은 건물이 손에 꼽을 정도였을 정도로 그냥 말 그대로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다. 오로지 미국이니까 가능한 돈지랄로 폭탄을 그냥 때려 박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때문에 그 당시 북한의 내부에서는, 평양을 재건할 게 아니라 아예 이 기회에 수도를 다른 데로 옮기는 게 낫지 않겠냐는 논의도 오갔다고 한다. 비록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때의 공습과 폭격의 악몽 때문에 지금 평양 시내는 이에 대비하느라 지하 방공망이 굉장히 깊고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다. 평양 지하철이 무지막지하게 깊게 건설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 뒤에도 르메이의 버릇은 어디 가지 않았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월남전 땐 베트남도, 그리고 쿠바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베트남이건 쿠바건 다 폭격해서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 대통령 각하는 명령만 내려 달라”는 식으로 일관되게 나섰다.
마치 게임 해설자 김 태형 씨가 캐리어를 좋아하듯 그는 석기 시대가 자기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중에는 미국의 정치인들도 그의 말투를 따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걸프전 때 이라크를 석기 시대로 되돌리겠다고 공갈을 쳤고, 나중에 9· 11이 터졌을 때는 파키스탄을 상대로도 대테러전에 협조하지 않으면 너네 나라를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그랬다. 뭐, 반미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협박 멘트에 심기가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르메이 같은 사람도 미군에 있는데 맥아더 장군은 차라리 양반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맥아더가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군인이라지만 그도 인간이고 신은 아니기에, 맨날 인천 상륙 작전 같은 성공만 한 게 아니며 실수도 저질렀다. 처음엔 북한과 중공군을 얕잡아보다가 1· 4 후퇴를 당하고 호되게 데인 뒤에야, “이 자식들 안 되겠어.”라고 하면서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강경책을 쓰려 했다.

어떻게든 빨갱이들을 없애 버리겠다는 의도 자체는 좋지만, 그렇다고 한반도에다 핵을 또 터뜨린다거나, 전쟁을 아예 3차 세계 대전 급의 대규모 장기전으로 키우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식이었으니... 이런 강경한 생각이 화근이 되어 맥아더가 트루먼 대통령과의 사이가 틀어진 건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르메이도 그 당시 “이 좋은 핵무기를 왜 안 써?” 급의 생각을 하고 있던 건 마찬가지였다. 맥아더보다 더하면 더한 꼴통이지 못하지는 않았다.
미국 대통령이 이런 호전적인 군 장성 양반들의 근성을 이성적으로 잘 통제하지 않았다면, 과거에 소련과의 냉전이 냉전으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굳이 한반도가 아니어도 어디에서 핵이 한두 발 터지는 바람에 특정 국가가 지도에서 사라지거나 진짜 석기 시대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오죽했으면 아인슈타인도 “3차 세계 대전 때 인간이 무슨 신무기를 쓰고 있을지는 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면, 그때 인간은 새총(slingshot) 같은 냉병기를 쓰고 있겠죠?”라고 얘기했겠는가. 성문 종합 영어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지문이다. 아인슈타인 역시 영락없이 석기 시대 회귀-_-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석기 시대 드립 말고 르메이 장군이 자신의 호전성을 또 드러낸 유명한 어록으로는 “세상에 무고한 민간인이란 없다”(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이다.
사실, 도쿄 대공습 같은 경우 미국이 연합국이고 전쟁에서 이겼으니 망정이지, 저렇게 대놓고 시내를 폭격하여 비전투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건 전쟁 범죄로 간주될 수 있는 짓이었다.
대놓고 말해, 나치 독일이 영국이나 미국의 본토 도심지를 소이탄 폭격으로 다 불태워서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다면 그 후폭풍이 어찌 됐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메이는 작전을 강행했다.

일례로,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는 작전에 참여했던 폴 티베트 대령은 훗날 다음과 같은 요지로 회고한 바 있다.
“난 그 당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그리고 원폭은 전쟁을 더 일찍 종결시키고 더 많은 인명의 희생을 막은 차선이며 필요악이었다고 생각한다. 군인으로서 나의 행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는 없다.”

허나, 르메이는 한 술 더 떠서 민간인의 죽음에 대해 아예 그 정도의 책임이나 죄책감마저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
“사실 저 밑에 곤도네는 군용 볼트를, 옆집 스즈키네는 군용 너트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무고해 보인다고 저 민간인들을 안 죽이면, 그게 다 우리를 죽이는 병력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니 마음껏 폭격하고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태워 버려라.)”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르메이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일본은 도시 구조가 민간인 거주지와 군수 업체 영역의 구분이 그다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생전 어록으로는 이 외에도
“전쟁이란 총알 많은 쪽이 많이 죽이면 이기는 것이다.”
“충분히 많이 죽이면 다시는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처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우악스럽고 꼴통 같은 방면으로 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도 아무려면 어때, 천조국 미국 소속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최소한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고, 그러다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같은 이런 진짜 미친 개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저건 잘 알다시피 '무다구치 렌야'라고 일본 역사상 최악의 무능한 장군이 남긴 훈시.. -_-
그도 그럴 것이 물량이 풍족한 곳에서 그냥 물량으로 밀면 된다는 교리가, 없는 여건 속에서 닥치고 근성과 정신력만으로 돌격하라는 교리보다는 훨씬 나은 게 자명하지 않은가?
그는 스타크래프트를 했으면 무한 맵에서 저그 가디언 굴리는 걸 좋아했을 것 같다. (대공 유닛으로 대지상 폭격 -_-)

뭐, 르메이 장군은 맥아더 장군과 마찬가지로 우리 같은 사람으로서는 미워할 구석이 없는 인물이다.
우방국의 장군답게 일본, 북한 등 대한민국의 적들하고만 싸웠으니 말이다.
(아 하긴, 무다구치 렌야도 자기 군대를 말아먹은 행적이 가히 대한 독립 유공자 급이니, 우리가 딱히 미워할 구석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고.. -_-;;;)

그는 그런 호전적인 기질답지 않게 미군의 전술 체계 수립에 큰 공을 세운 바 있으며, 심지어 적국인 일본으로부터도 훗날 자위대의 재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기도 했다. 괜히 장성까지 진급한 게 아니다.

다만, 그 막강한 화력으로 미국이 전투는 이겼을지 몰라도 한국전과 베트남전은 적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깔끔한 '전쟁 승리'를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도쿄 대공습 때는 재일 동포도 많이 희생된 게 사실이다. 비록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글을 맺으면서 마지막 한 마디.
이 사람의 상징은 잘 알다시피 '석기 시대'이다. 허나 아담 이래로 6천 년 인류 역사를 믿는 크리스천은 인류에게 딱히 석기 시대라 불릴 만한 긴 원시 시대가 존재했다고 믿지 않는다.
문명의 이기가 존재하지 않는 시절로의 퇴보를 언급하려 한다면, 차라리 노아의 홍수 직후 상태로 되돌리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될 텐데.. 아무래도 '석기 시대'보다는 우악스러움이 덜하다. ^^

Posted by 사무엘

2013/03/07 19:26 2013/03/0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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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2-1949).
뼛속까지 한국덕으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진심으로 사랑한 미국인으로 아주 유명한 분이다. 2013년 새해의 첫 글은 훈훈한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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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국어인 영어는 물론 한국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서양에다 소개하고 한반도에 신식 학교를 세우는 등 수많은 좋은 일을 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구한말 시절부터 고종 황제를 보호하고 헤이그 밀사를 직접 선발하여 조선/대한 제국의 독립 승인을 위해 적극 애썼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뼈아픈 결정을 내린 사람이었다. 그가 그냥 국제 정세에 따라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을 침탈하는 걸 승인했을 때, 헐버트는 자국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일제가 조선의 주권을 침탈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07년,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쫓겨난 뒤에 본토에서도 이 승만, 서 재필 등의 독립 운동을 도와 줬다.

또한 그가 무엇보다도 감화되었던 것은 한글이다. 한글을 나흘 만에 깨우친 뒤 이게 보통 문자가 아니라는 걸 직감하였으며, 어렵고 비효율적인 문자인 한자를 버리고 온 국민이 한글로 지식을 깨우쳐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한글 정서법에도 띄어쓰기가 있는 게 좋겠다고 제안하여 서 재필이나 주 시경 같은 선각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조선에서는 사람들이 우수한 자기네 고유 문자를 스스로 천대하다니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이런 말을 미국인이 했다는 게 믿어지는가? 여러 애국 단체들 중에서도 특별히 한글 학회에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중근 의사조차도 일본 경찰로부터 심문을 받던 중에 어쩌다 헐버트 얘기가 나오자, 그는 “헐버트는 한국인이라면 단 하루라도 잊어서는 안 될 민족의 은인이다”라고 증언했다고 한다. 다른 위인의 눈에 보기에도 헐버트는 큰 위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1945년 해방이 ‘정의와 인도주의의 승리’라고 한국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나는 죽어서도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마포 한강변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우리나라의 유명 독립 유공자들은 대체로 1960년대 초에 대대적으로 조사되어 각종 훈장이 추서된 반면, 이분은 아예 서거 이듬해인 1950년 3월 1일에 진작부터 이 승만 정부로부터 건국 공로 훈장 태극장이 추서되었다. 그가 어떤 계기로 그렇게 여러 나라들 중에 하필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다트머스 대학 출신이라고 하는데, old timer 프로그래머라면 기억하려나? BASIC 언어를 개발한 존 케메니와 토머스 커즈가 바로 이 대학의 교수이다. 그래서 베이직 언어의 여러 방언들 중에서 특별히 오리지널을 ‘다트머스 베이직’이라고 일컫는다. 한국인이라면 다트머스 대학이 헐버트의 모교이기도 하다는 걸 덩달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한편, 헐버트에 필적하는 대한민국 독립 유공자 외국인으로는 캐나다인인 프랭크 스코필드(귀화명 석 호필)도 있다. 그는 의사이자 제암리 학살 사건 사진을 전세계에 보도한 기자이고, 서울 현충원에 묻혔다. 옛날에 스펀지에서 이 스코필드에 대해서 소개했었는데, 내용이 워낙 훈훈하다 보니 별 다섯 개를 당당히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헐버트는 스코필드에 비해서 인지도가 많이 뒤쳐지는 것 같다. 구한말 때는 열정적으로 한반도에서 활동했지만 정작 일제 강점기를 앞두고는 추방당해서 미국에서 지낼 수밖에 없어서 그런 듯.
그래서 작년 여름, 한글 새소식(한글 학회 월간지) 2012년 8월호(통권 480호)에서는 헐버트 박사 특집이 편성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분도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3/01/01 08:21 2013/01/0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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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ie Long Scream을 아십니까?

벌써 10년도 더 묵은 고전 게임이 되어 버린 스타크래프트.
거기에는 테란이라는 종족이 있고, 테란 건물 중에는 아카데미라는 건물이 있다.
이건 설정상 사관학교이며, 잘 알다시피 마린 이상으로 파이어뱃, 메딕, 고스트 같은 고급 보병 유닛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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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카데미를 클릭하면 굉장히 괴상한 소리가 나오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행진곡? 군가 소리와 함께 “이에에에에에~!” 하는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데...

이건 졸업하는 사관 생도들이 지르는 감격의 소리라고 받아들이기에는 기괴한 감이 적지 않다. 그래서 스팀팩 개발 과정에서의 공밀레 내지 피실험자가 고문 당하는 비명 소리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억측이 나돌곤 했다. 내가 스타를 즐기던 시절엔 말이다.

하지만 “이에에에에~” 소리 자체는 Howie Long scream이라고 하여 영미권에서 잘 알려져 있는 stock sound effect이다. 이름은 아마 저 소리를 최초로 연기한 배우의 이름에서 유래된 걸로 추정. 이미 1980년대부터 쓰였고 여러 영화에서 주로 남자 주인공이 유리창 깨고 높은 데서 떨어질 때의 비명 소리로 자주 나온다. (☞ 관련 링크)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3기 8화 <사랑의 계절! 큐피드 군>을 보면,
“당신은 앞으로 연애 실패를 비관하여 국회의원들을 모두 암살하게 됩니다. 그 뒤 결국 잡힌 당신은, 교도소에서 '여자친구 주셈!'이라고 소리칠 겁니다”-_-라는 큐피드의 대사가 나오는데, 그때도 교도소에 갇힌 주인공의 모습과 함께 남자의 비명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비명 소리도 Howie Long scream이다. 동일 소스이므로, 아카데미 소리와 비슷한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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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우리나라에는 한 달쯤 전엔, 국회의원을 모두 죽이려고 했는데 그건 삼엄한 경비 때문에 차마 못 하고 대신 초등학교로 쳐들어가서 흉기 난동을 벌이다 잡힌 사람이 있었다!
세상이 뒤숭숭하면 정치인들을 상대로 분노가 표출되는 게 사실이긴 한가 보다. (☞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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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2/12/21 08:25 2012/12/2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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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K의 정체성

한국

  • 반도에 자리잡은 유일한 분단 국가. 징병제. 분단되지 않고 남북을 합쳐도 인구나 면적이 CJK 중 가장 작은데 하물며 지금은.. 안습
  • 한글! (한자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이례적으로 한자는 거의 안 쓰는 아주 특별한 국가)
  • 미국과 비슷한 대통령 직선제
  • 성탄절이 유일하게 공휴일임. 넘사벽급의 교회 인프라
  • 과학 분야의 노벨 상 수상자가 유일하게 전무-_-함

중국

  • 압도적인 영토 면적과 인구. 대륙의 기상-_-
  • (명목상의) 공산당
  • 고립어. 한국어나 일본어와는 달리 S+V+O형 언어
  • 국기의 모양도 한국-일본보다는 이질감이 더 큼
  • 훨씬 더 강경한 마약 단속. 많은 사형 집행

일본

  • 섬 나라. 한국보다 남쪽에 있지만, 북쪽 끝도 북한을 넘어 러시아와 만날 정도로 영토가 은근히 넓다.
  • 유일하게 좌측통행, 협궤, 그리고 110V 전압 (근대화· 산업화를 일찍 한 흔적이다. 얘들도 아주 장기적으로 승압을 찔끔찔끔 하고 있다고는 함)
  • 전범 국가. 정규군 대신 자위대
  •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축에 드는 문자 체계. 세로쓰기 (하지만 일본에서도 젊은 세대들은 점점 가로쓰기에 더 익숙해지고 있다고 함)
  • 영국과 비슷한 입헌 군주제

결국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건 사회주의 체계가 아닌 것과 언어 구조요,
한국과 중국이 비슷한 건 차량 통행 방향이나 전압 같은 산업 인프라 및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이며,
일본과 중국이 비슷한 건 한자 의존도 정도로 요약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8/06 08:16 2012/08/0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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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탐험 -- 下

아문센이 선택한 경로는 스콧이 선택한 경로보다 남극점에 96km 정도, 즉 서울-천안 정도의 거리만치 더 가까운 경로였지만,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가는 것이었다. 스콧의 경로는 선배 탐험가인 어니스트 섀클턴이 갔던 경로와 동일했다. 거기에다 아문센은 스콧보다 출발도 열흘 정도 더 일찍 했다.
아문센은 1등에 대한 압박 때문에 더 일찍 출발하려 시도를 했지만 역시 맹추위와 준비 미숙 때문에 포기하고 되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렇잖아도 아문센은 북극점을 먼저 정복하려 했는데 선두를 미국인에게 빼앗겨서 조바심이 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섀클턴은 스콧보다 먼저 남극 탐험을 갔지만, 준비 미숙과 물자로 부족으로 인한 실패를 인정하고 북극점을 약 150km 정도 앞둔 지점에서 미련 없이 진행을 포기하고 되돌아온 사람이다. 그 대신 모든 대원들이 생환하는 데 성공했다.

아문센은 남극점을 빨리 찍고 돌아온다는 그 목표에만 집중하여 대원들도 전부 항해 측량술을 알고 스키를 능숙하게 탈 줄 알며 혹한 환경에서의 생존 능력이 뛰어난 베테랑들로 뽑았다. 그러나 스콧은 겸사겸사 학술 탐사에도 큰 비중을 둬서 대원 중엔 과학자들도 있었다. 군인보다는 민간인을 선호했던 셈. 스콧은 그 힘든 와중에도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극에서 채취한 광물을 16kg치나 갖고 보관하고 있었다.

아문센은 북극 원주민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은 대로 남극에 갈 때도 물이 스며들지 않는 두꺼운 가죽옷을 입었고, 짐을 싣는 썰매는 개들을 이용해 운반했다. 현지에서도 수시로 바다표범들을 사냥해서 식량을 비축했고, 탐험 중에도 효용이 떨어진다 싶으면 가차없이 개들을 잡아먹고 심지어 잡은 개고기를 다른 개에게 사료로 주기도 했다.

그러나 스콧은 원주민들이나 입는 가죽옷을 저속하다고 거부하고 개고기도 안 먹었으며, 현지에서의 사냥 역시 할 생각을 않았다. 개나 말이 죽으면 잡아먹기는커녕 묻어서 장례를 치러 줬을 정도이니! 모든 물자는 대영제국에서 조달하는 것만으로 충당하려 했던가 보다. 그러나 영국제 모직물 코트는 옷이 물에 젖고 얼면서 ‘망했어요’ 상태가 되었다.

이들은 개 대신 조랑말과 스노우모빌(설상차)을 활용했는데, 말은 평범한 환경에서야 개보다 먹는 양에 비해 큰 수송력을 제공하는 게 사실이지만 별도의 사료를 챙겨 가야 하며 개들보다 추위에 훨씬 취약했고 잘못해서 크레바스에 빠지기라도 하면 답이 없었다. 스노우모빌은 매서운 추위와 험악한 지형에서 무용지물로 전락했으며, 후원사로부터 지원받은 막대한 양의 통조림도 얼어서 안 따지거나 심지어 터지기 일쑤였다.

영국이 자랑하던 자본력과 당대의 과학 기술은 남극에서만은 그들이 한낱 피지배민 루저로 치부하던 원주민들의 생활 노하우를 앞설 수 없었다.

아문센은 1911년 10월 20일부터 그 해 12월 14일까지 55일 동안 거의 1300km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한 끝에 남극점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매일 23~24km씩 진행한 셈. 남극점 주변엔 그 어떤 인간의 흔적도 없었으니 그들이 1등을 한 게 확실했다.

아문센은 영국인들이 한 근성을 하기 때문에 스콧 팀도 아마 며칠 안으로 남극점에 곧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콧 팀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34일이나 지난 이듬해 1월 17일이었다. 출발 시기가 열흘이 차이가 나고 거리 차이가 100km 정도 났으니 두 주~보름 정도의 간극은 자연스럽지만 한 달이 넘게 차이가 났다는 건 스콧 팀이 시스템적인 비효율로 인해 진행도 더뎠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미 하루 전인 16일부터 무수한 개들과 썰매 자국을 발견했다. 그리고 남극점에 다다르니 거기엔 역시나 노르웨이 깃발과 함께 천막이 만들어져 있었고, 약간의 물자와 쪽지가 적혀 있었다. 쪽지에 적힌 글은 대략 다음과 같은 요지였다고 한다.

“존경하는 스콧 대장님, 우리가 먼저 남극점에 도착한 듯합니다. 만약 우리가 살아서 귀환하지 못한다면 대장님께서 이 쪽지를 본국으로 전달해서 우리에 대한 증거로 삼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식료품과 털옷을 좀 남겨 놓고 가니, 필요하면 부담 갖지 말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대장님의 무사 귀환을 빕니다. 아문센 올림”


아문센은 라이벌을 배려해서 정말 정중하고 대인배스러운 행동을 한 것이었지만, 이 문구는 스콧에게는 가히 자존심을 건드리고 비수를 꽂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스콧 팀은 물자가 부족해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아문센이 남긴 보급 물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것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아문센 팀은 1월 25일에 자기네 베이스 캠프로 무사히 귀환했다. 갔던 길의 역순으로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었고, 귀환이 42일이 걸렸으니 55일이 걸린 출발보다 기간이 두 주 정도 더 단축됐다.

그러나 개도, 말도, 설상차도 없이 터덜터덜 허탈하게 귀환하던 스콧 팀에게는 이제부터 재앙이 시작되었다. 귀환을 시작한 지 한 달이 경과한 2월 17일인데 이들은 거의 반밖에 진행을 못 했다. 그리고 이때 팀원 중 지질학자인 에드가 에반스가 가장 먼저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는 이미 몇 번 추락 사고를 당해서 뇌진탕과 폐렴 증세로 인해 건강이 몹시 안 좋던 상태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한 달이 경과하여 3월 17일이 되었다. 귀환 60일째이고 전체 경로의 70% 정도는 완주한 시점이었다. 대원 중 로렌스 오츠는 발에 심한 동상을 입어서 이미 괴저가 발생하고 거의 걸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그는 대원들이 자신을 부축하고 자신과 보조를 맞추느라 귀환이 지체되고 있는 걸 알았으며, 제발 자기를 버리고 먼저 가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스콧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오츠는 그 날 저녁, “대장님, 밖에 좀 나갔다가 오겠습니다”란 말을 남기고는 불편한 발을 이끌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캠프 밖으로 절뚝거리며 나갔고, 그 길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는 시신조차도 영영 발견되지 않았다. (눈보라가 얼마나 지독했으면, 눈에 찍힌 발자국조차 이내 사라졌던가 보다.) 스콧은 오츠가 일부러 죽음을 택했다는 걸 눈치 채고, 그가 영국 신사다운 최후를 맞이했다고 슬퍼하는 한편으로 그를 칭송했다.

그러나 이런 오츠의 살신성인도 나머지 세 명을 궁극적으로 살리지는 못했다. 살인적인 악천후 때문에 3월 19일자 캠프에서 스콧 일행은 더 나아가질 못하고 1주일이 넘게 고립되었다. 베이스 캠프까지는 약 200km쯤 남았기 때문에(이미 1000km를 넘게 이동했고, 다 와 감) 저 기간 동안 조금만 더 분발했으면 근처의 보급 기지에도 도착했을 것이고, 베이스 캠프에까지 살아서 돌아갈 가능성은 충분했을 터이나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남극에 무슨 생각으로 물을 끓여야 하는 번거로운 홍차를 가져갔는지 모르겠다. 식료품과 연료는 이미 다 떨어졌고 홍차는 생잎을 뜯어먹어야 했다. 그러다가 3월 29일, 나머지 대원인 에드워드 윌슨과 헨리 바우어즈가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 어둠, 절망으로 인한 기력 소진 때문에 목숨을 잃었고, 가장 마지막으로 탐험대장인 스콧도 같은 캠프 안에서 사망했다. 그의 일기장에 죽은 두 대원에 대한 언급도 있기 때문에 스콧이 가장 나중에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익사나 추락사처럼 단번에 훅 간 게 아니라 마치 성냥팔이 소녀처럼 굉장히 처절하고 비참하게 죽은 셈이다. 스콧 일행의 시신은 그로부터 무려 8개월 뒤에 남극에 여름이 다시 찾아왔을 때 미국의 탐사대에 의해 발견되었다.

자, 다음 그림은 아문센(빨간색)과 스콧(초록색)의 남극 탐험 경로를 정리한 것이다. (출처: 영문 위키백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국에서는 영국 신사의 기품을 지키면서 남극에서 장렬히 산화한 스콧을 애국자와 영웅으로 열렬히 치켜세우고 떠받드는 한편으로, 어쨌든 1등을 해 버린 아문센을 헐뜯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 한때는 아예 대놓고 역사를 왜곡하여 스콧이 먼저 남극점에 도착했다고 가르치기까지 하다가, 국제 사회로부터의 조롱과 비웃음을 한몸에 받고서야 슬쩍 시정했다.

영국이 이런 데서 은근히 찌질한 짓도 좀 했다. 영국인 중에서 양심껏 소신껏 아문센을 지지하고 그의 업적을 인정한 사람은 스콧의 롤모델 탐험가이던 섀클턴 정도가 고작이었다. 어니스트 섀클턴은 이 글에서는 많이 다루지 않지만, 아폴로 13호 같은 ‘성공적인 실패’를 기적적으로 이룩한 덕분에 이 양반 역시 아문센만큼이나 전설이 아니라 레전드급인 위대한 탐험가로 역사에 남아 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찾아 보기 바란다.

콩진호, 콩라인-_- 같은 예외를 빼면, 세상 역사에서 2등은 정말 너무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지 못하는 게 통념이다. 허나, 남극에서만큼은 영국의 저런 집요한 로비로 인해 각종 시설물에 꼭 ‘스콧-아문센’ 브랜드가 심심찮게 남아 있다.

남극의 정복자 아문센은 거의 60년 뒤에 달에 갔다 온 닐 암스트롱만큼이나 세계의 영웅으로 등극하였고 곳곳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노르웨이 국내에서야 물어 보면 잔소리. 지금 한국으로 치면 김 연아, 안 철수 급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듣보잡 빈곤국이던 노르웨이의 위상을 그만치 끌어올린 사람이 역사상 누가 있었겠는가?

아문센은 교통 덕후여서 이 탐사 후에도 활발히 탐험 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20세기 초는 항공기 기술이 개발되던 시기인지라 남극을 아예 비행선으로 횡단하기도 했다. 그러다 1928년에 비행선 사고로 인해 행방불명되는 걸로 최후를 맞이했다.

훗날 냉전 시절에 미국과 소련이 우주 개발 경쟁을 할 때도 인공위성을 먼저 띄우고 달에 사람을 먼저 보내려고 기싸움이 엄청 벌어지긴 했다. 그러나 우주 개발은 전적으로 자본력과 기술에 의해 승패가 기울었으며, 다행히 우주 공간에서 실종되거나 죽은 사람도 없다. 또한, 소련은 자기네 연구 과정을 워낙 폐쇄적으로 공개를 잘 안 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아문센과 스콧에 필적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없는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2/06/11 19:39 2012/06/1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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