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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우 교수 (언어학자)

김 진우 교수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한 언어학자로, 특히 음운론 분야에서 세계구급 권위자이다. 한국에서는 <언어>의 저자라고 말하면 그쪽 분야 전공자들은 알아듣지 싶다.
이분은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60년대 초에 미국에 건너가서 한국인 최초로 UCLA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 1964년 석사, 1966년 박사......;;; 뭐야 이거 무서워..;1)

그리고 1967년엔 곧장 일리노이 주립 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여 미국에서 언어학을 가르쳤으며, 아예 언어학과 학과장까지 역임했다고 한다. 1982년엔 발행처는 모르겠지만 무슨 미국 인명 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고.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뭘 잘해야지 저렇게 될 수 있는지는 내게 묻지 말라..ㄷㄷㄷ;;

교수가 된 지 40년도 더 지난 지금 이분은 학계에서 가히 만렙 중의 만렙을 찍었다. 일리노이 대학 명예 교수에, 학부 모교인 연세대로부터도 “국내에서도 후학 좀 양성해 주삼” 거듭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어 2007년부터 석좌 교수로 부임. 몸이 둘일 수가 없는 게 아쉬울 뿐이지 한국과 미국 어디에서도 와 달라는 곳이 쇄도하는 저명한 석학이 되었다.

서 남표 카이스트 총장과는 한 살 차이. 나이도 비슷하고 미국 유학 가서 대학 학과장을 역임한 교수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_=;;

본인은 이번 학기에 국어 음운론 연구를 들었는데 교수님이 왕년에 저 정도로 괴물이셨지는 미처 몰랐다..;;
내가 언어학 쪽으로 뭘 좀 알면 저런 유명한 교수님에게서 많은 걸 얻고 배워 갈 수 있을 텐데, 나의 그릇 크기가 못 따라간다. -_-;;
지금까지 내가 낸 과제물들을 보고 얼마나 민망해하셨을까? ㅠㅠㅠㅠㅠㅠㅠ

회식 자리에서 잠시 얘기를 나눠 본 바로는 김 진우 교수님은,
제임스 맥콜리 교수(시카고 대학 언어학)와 비슷한 연배이기도 하고, 그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맥콜리 교수는 머리가 워낙 비상해서 언어학을 재미로 즐길 줄 아는 양반이었음”이라고 회고하심. 흠좀..;;;
그리고 본인에게 덧붙이기를 “오, 그나저나 자네가 맥콜리 교수를 어떻게 아나?” 이러더이다.

워싱턴 대학의 故 서 두수 교수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잘은 모르지만 미국에서 국어학· 한국학 가르치는 사람이다 보니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 봤다고 말씀하셨다. 교수 세계는 엄청나게 좁고 좁은 바닥이다 보니 원래 서로 다 안다. ㅡ,.ㅡ;; 그분의 아드님이 그 이름도 유명한 카이스트 서 총장이라고 내가 얘기하자 그건 처음 들었다며 놀라셨다.

첫 수업 시간에 언어 현상에 대한 관찰, 가설 같은 걸 강조하실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분은 사실 이공계 마인드도 투철해 보였다. 수학· 과학 같은 과목도, 좋고 싫고를 떠나서 학교 공부는 시험만 쳤다 하면 다 100점씩 맞았다네.. ㅠㅠ

의대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외과 치료가 적성에 안 맞아서 진로를 바꾸셨다고 한다. 이공계 대학원을 갔으면 자기도 서 남표 같은 거창한 사람이 됐을 거라고 웃으셨지만... 선생님, 선생님은 이미 언어학에서도 충분히 넘사벽급 만렙을 찍어 계십니다.
하긴, 언어학 자체가 추상적인 계층으로 들어가면 다 수학, 논리학인 것도 사실이고.

역시 교수 될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보는 건가 보다. ㅠㅠㅠ
허나, 이분의 고학 시절 회고록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나는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억압적인 환경속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일제 강점기, 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등 교육 환경도 열악했다.
그러나 나는 가난이 무지의 핑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오늘의 풍요로운 환경을 활용하지 않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는 서글프고 안타깝다.
왜냐하면 나는 최상의 조건 속에서 단지 평범함만을 좇는다면 그건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분, 학비 벌려고 백인들에게서 멸시 받으면서 접시 닦던 시절에는 '내가 미국까지 가서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그냥 돌아가서 한국에서 고등학교 영어 교사만 해도 충분한데' 이런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고.2)
그때 학업을 때려치웠으면 오늘의 김 진우 교수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 남표 총장도 미국의 고등학교와 MIT 학부 시절에 자기 말마따나 호스로 물 쏟아붓듯이 밀려드는 학교 수업 물량 공세에 미칠 지경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사람도 고학을 했으며, 그 당시엔 요즘 같은 자살 따윈 생각할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댄다.

이런 걸 생각하면 옛날과 지금의 환경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교통과 통신 기술의 발달, 정보 접근성의 평등, 물질적인 풍요 면에서는 과거보다 확실히, 월등히 더 좋아졌다. 이는 본인의 세대가 우리 부모 세대에 고마워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 시스템이 갖춰진 대신에 신세대들이 치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대가도 있다.
과연 요즘 대학은 옛날 정도의 고학으로 학비 조달이 가능할까?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가능성이 옛날과 지금을 비교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미국은 자녀 나이가 18세만 되면 부모가 경제 지원을 딱 끊어 버리는데, 한국은 무슨 부모가 결혼한 자녀의 집까지 마련해 줘야 하나? 나약한 것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과연 요즘 월급 모아서 집 사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어느 쪽 말도 일리가 있는 면도 있고, 어느 쪽 말도 좀 어폐가 섞인 비약도 있어 보인다. 그 중 어느 게 더 설득력이 있는지는 내 능력으로는 더 결론을 못 내리겠다.
본인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야 고생을 모르고 편하게 자라고 나약한 면모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기성세대가 까는 것만치 그렇게까지 개념 없고 구제불능도 분명 아니다. 그들도 다 자기 살 길 찾아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며, 정말 어지간히 어려울 때 자살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사회 구조적으로 답이 안 보이니까.. -_-;;

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 구조에 대한 괜한 피해· 비관 의식을 불식시키려면 이런 사회 구조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도 한번쯤 필요한 것 같다.

김 진우 교수 얘기하다가 갑자기 얘기가 옆길로 많이 샜네..;;
아무튼 저분은 천재에다 노력형... 뭐 더 말이 필요없는 타입 되시겠다. 그저 존경스러울 뿐.
나도 좀 불안한 진로를 가고 있고 학교와 회사 같이 하느라 힘들긴 하지만, 내가 정말로 도저히 못 견딜 정도로 힘든 상태인지는 다시 생각을 해 봐야겠다.


Notes:
1) 재미있게도, 분야만 다를 뿐 출신 학교가 거의 같은 동명이인이 존재한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UCLA에서 경영학 석사, 그리고 나중에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가 된 김 진우 교수도 있다. 정말 헷갈리기 쉽겠다. -_-; 물론 경영학과 교수는 언어학 김 진우 교수보다는 훨씬 젊은 분이다.

2) 여담으로, 유학을 갔다 온 건 아니지만 카이스트에도 좀 비슷한 위상으로 신분을 바꾼 분이 계신다. 기초 필수 영어 과목과 교양 영문학을 가르치는 인문 사회 과학부의 이 수현 교수인데, 무려 15년 가까이나 중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홀연히 부산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영문과 박사 학위를 받고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 지금은 역시 만렙 찍은 후 이미 명예교수가 되셨다. 그 나이에 교사에서 교수로 업글한다고 해서 돈· 시간 면에서는 그리 메리트가 없을 텐데 정말 공부 그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17 19:18 2011/06/1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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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삼성맨들은 다루고 지내는지 모르겠다만.. 우리나라에는 아래아한글과 MS 워드 다음으로 훈민정음이라는 워드 프로세서가 있다.

아래아한글이 대한민국의 도스용 워드 프로세서 시장을 석권하기 전,
도스 시절엔 보석글, 하나-_-, 신사임당, 심지어 21세기 같은 전설의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이런 건 컴퓨터 old timer라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허나 Windows로 가면 어떨까? 윈도우용 아래아한글이 출시되기 전인 1990년대 초중반엔 아리랑, 글사랑, 파피루스 등 다양한 윈도우 3.x용 국산 워드 프로세서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삼성 전자에서 개발한 훈민정음도 그 중 하나였다.

아리랑: IT 벤처 핸디소프트에서 개발. 사장이 아마 카이스트 출신이었을 거다.
글사랑: (김사랑이 아님 ㄲㄲㄲ) 글꼴 개발로 유명한 휴먼컴퓨터에서 개발. 문방사우라는 DTP 프로그램을 개발한 기술도 있는 곳이니까..
파피루스: 한메 타자 교사와 한메 한글을 만든 한메소프트에서 개발. 나름 한글 처리 쪽 기술이 있는 업체이다.
훈민정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야, 우리나라에 그런 제품도 있었어요?” / “네, 있었습니다.”
물론 얘네들은 윈도우 95와 윈도우용 아래아한글 3.0의 등장을 전후하여 제대로 망하고 진정한 흑역사로 전락했다.. -_-;; 훈민정음을 제외하면 32비트 버전조차 개발되지 못했지 싶다.

심지어 금성(현 LG) 전자도 '윈워드'라는 워드 프로세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는 걸 아시는가? WinWord.. MS 워드의 실행 파일 이름과 동일하다. 하긴, 동일 회사에서 도스용으로 개발한 '하나 워드 프로세서'는, 학교와 관공서에서 정식 채택된 덕분에, 후진 기능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살아남았다만, 윈워드는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특히 경쟁사의 제품인 훈민정음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_-;;

자, 그럼 훈민정음 워드 프로세서 얘기를 더 하겠다.
얘는 나름 1992년부터 개발돼 왔고, 윈도우용 아래아한글 3.0이 나올 무렵엔 4.0대 버전으로 올라갔다.
본인이 가장 가깝게 접한 버전은 바로 4.5이다.
삼성에서 후원이라도 했는지, 1996년도 PC 경진대회 지역(경상북도) 예선 참가자들에게 훈민정음 패키지가 확장팩(각종 글꼴, 클립아트들)까지 통째로 경품 차원에서 배포되었기 때문이다. 득템~

이때는 잘 알다시피 시기적으로 윈도우 95 과도기였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16비트용과 32비트용으로 따로 배포되었다. 기능은 거의 동일하지만 16비트용은 4.5 버전이었고, 32비트용은 95라고 불렸다.
아래아한글은 국내 최초+유일의 Win32s 기반 32비트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고 MS Word는 연결 고리 없이 95부터 곧바로 32비트로 넘어가 버렸다면, 훈민정음은 나름 16비트와 32비트를 따로 만든 셈. 한 소스에서 별 잡음 없이 두 에디션을 만들 정도로 프로그램을 잘 짰던가 보다.

여담이지만, MS가 역사상 동일 버전의 제품을 16비트와 32비트로 따로 만든 것은 비주얼 베이직 4가 유일했지 싶다. 이는 이 자리에서 자세한 내역을 다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비주얼 베이직의 제품 성격의 특이성 때문으로 추정된다. 비주얼 C++은 그냥 32비트용 4.0과 16비트용 1.52를 묶어서 배포했으니 동일 버전 제품은 아니니까 말이다.
또 덧붙이자면, MS는 Win32s를 만들어 놓고는 정작 자신들은 Win32s 기반 프로그램을 (전혀) 만들지 않았었다.
MS에서 개발한 프로그램 중에 MFC 사용하는 건 극소수인 것과 비슷한 맥락. -_-;;

지속적인 버전업이 되지 못하고 곧 망해 버린 여타 마이너 국산 워드 프로세서들과는 달리, 훈민정음은 삼성 기반이라는 탄탄한 돈줄 덕분에, 상업성을 완전히 상실한 후에도 꽤 오래 살아남았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이 건희 회장이 훈민정음에 애착을 꽤 두고 있었다고 한다.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자기 회사가 한글 처리 기술 및 워드 프로세서 개발 기술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특별한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는데.

IMF 시절, 아래아한글이 MS에게 잡아먹혀서 ㅈ망할 뻔 했을 때(아래아한글 개발 중단 및 소스 인계-_-를 조건으로 MS로부터 자금 투자), 평소 한컴 및 아래아한글의 행보를 비판해 온 사람들은 차라리 이 기회에 아래아한글이 완전히 망해 버리고 훈민정음이 1인자로 등극했어야 했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동작 방식이 아래아한글과는 완전히 다른 워드 프로세서에 국민들이 과연 그렇게 쉽게 호응과 적응을 할 수 있었을까? -_-

훈민정음은 1990년대 말까지 정음 오피스, 어린이 훈민정음, 남북 통일 워드 프로세서 등 여러 형태가 존재하다가 지금은 스마트폰 앱으로도 나오고 또 정음 Global 같은 솔루션으로도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삼성 컴퓨터에 번들로 공급되지만 패키지 소프트웨어로도 아직까지 나오는 것 같다. 워드 프로세서의 핵심 개발 인력이 넥스소프트로 독립해 나가고, 그 중 넥셀은 지금 완전히 한컴으로 넘어갔을 텐데 아직까지 삼성 내부에 개발팀이 있기라도 한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15 19:10 2011/06/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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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철도역

요즘 지어지는 철도역은 온통 ‘유리궁전’이 대세이다. 유리궁전은 일단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인천 공항, 서울 역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전철역과 심지어 관공서 건물까지 두루 유행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지역에는 의도적으로 한옥으로, 혹은 완전 한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기와지붕을 얹은 형태로 역이 지어지기도 한다.

경주(동해남부선): 경주는 왕년에 신라의 수도이지 않던가. 경주 역은 기와지붕 모양인 대표적인 역이다. 하지만 동해남부선의 이설이 끝나면 지금의 신경주 역에게 모든 지위를 내어 주고 철거될 예정이니 대략 안습임.

영월(태백선): 지붕뿐만이 아니라 건물이 완전히 한옥 인테리어를 하고 있고 역명판도 아예 한자로 써진 무척 독특한 역이다.

전주(전라선): 경주 역과 비슷하지만 더 한옥 느낌이 든다. 여기는 아예 관광 명소인 한옥 마을이 있기도 하니까. 참고로 전주는 경주와 위도가 비슷하기도 하다.

김유정(경춘선): 경춘선의 복선 전철화와 함께 이설된 이 역은 작정하고 영월 같은 본격 한옥으로 지어졌다. 역명판의 글자는 코레일체 대신 궁서체로 인쇄되었다. 전철역 중에서는 최초의 사례이니 무척 흥미롭다.

이외에 남원, 곡성 역도 기와지붕을 한 역으로 알려져 있다. 더 있으려나? 특히 곡성 역은 탑리 역처럼 성곽 형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14 08:44 2011/06/1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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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행적

대부분의 네티즌들과는 달리, 미국의 보수 우익 크리스천들은 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굉장히 싫어한다.
그 이유인즉슨, '겉으로는 크리스천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신은 골수 이슬람이다', '복지와 분배라는 허울 좋은 명분 하에 국고를 펑펑 축내고 있다', '미국을 점점 친아랍 반기독교 반이스라엘 노선으로 교묘하게 몰아 가다 대차게 나라 말아먹을 것이다' 등등.

오바마를 싫어하는 사상적 배경이 뭔지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걔네들은 부자 내지 사유 재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실, 미국처럼 청부 사상을 표방하는 게 원래는 이상적이지..;;) 정말로 사회 구조가 삐딱하게 돼 있어서 국가가 부자에게서 세금 팍 걷어서 뭘 좀 하겠다고 하면, 그런 발상조차도 곧바로 공산주의, 빨갱이로 와전될 지경.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통념과는 달리, 걔네들은 총기 금지 정책도 극렬 반대한다. 총 들고 자기 집 지키는 건 헌법에도 명시된 아주 신성한 권리인데, 그렇게 총을 빼앗기고 나서 다음엔 성경을 빼앗길 거라고까지 우려한다. 아무리 군 복무 중에 사고로 죽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없앨 수는 없듯(그리고 한국은 아마도 징병제도), 그들은 총에 대해서도 그런 정도로 생각한다. 뭐, 미국은 성경적인 기반 위에서 정치가 안정되다 보니, 개인 총기가 허용되고도 소말리아 같은 꼴이 안 난 건 대단하긴 하다.

어쨌거나, 그들이 오바마에 대해서 보이는 혐오감의 수위라든가 사상적 배경 등은 우리나라로 치면 일부 계층이 주장하는(던) '노 무현은 빨갱이다'와 굉장히 비슷한 구석이 있다. -_-;;

솔직히 본인은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치 오바마를 좋아하지도 않고, 보통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만치 부시를 싫어하지도 않았다.
뭐, 몇 년간 오바마를 지켜보니까 그도 일부 계층에서 그렇게 오버하는 것만치 나라를 막장으로 다스리는 건 아닌 거 같다만, 그래도 잘은 모르겠다.

다만, “오바마가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겠다”라고 협박을 하는 친구들도 있는 걸 보면 오바마가 골수 이슬람이 아닌 건 확실한 것 같다. -_-;; 그렇다고 그가 구원받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겠지만. 이 정도가 그나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가 싶다.
미국에서는 일단 정치 생명이 유지되려면 크리스천들로부터 표를 받아야 하고, 자기 소신과는 상관없이 킹 제임스 성경에다가 손을 얹고 선서를 해야 하니까...;;

이런 사실들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 통솔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지도자는 늘 자기 소신대로만 행동할 수는 없다.

독재자의 딸-_-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박 근혜 씨. 서울 현충원에서 아버지의 묘지를 참배해서 특정 계층으로부터 욕 얻어먹었지만, 나름 호남 지방에 가서는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사죄-_-도 해서 이번엔 반대 진영으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전에 내가 예를 들기도 했지만, 노 무현 전대통령이라고 해서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 같은 이슈에 대해 진보 진영 입맛에 맺는 결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이 명박 대통령은 재임 중에 종교 편향 행위(?) 때문에 욕 많이 얻어먹었지만, 선거 유세하던 시절에만 해도 법당에 가서 불상 앞에서 절까지 한 적이 있으며, 그때는 당연히 크리스천들로부터 까였다. -_-;;

미국의 9· 11 테러와 심지어 카트리나 같은 대재앙이 미국이 아랍 국가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이스라엘 땅을 떼어 주고 유대인들을 몰아낼 때마다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이 두 사건이 언제 일어났나? 그 이름도 유명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치는 좀 못했어도 오로지 기독교 신앙에 충실하다는 메리트 하나 덕분에 재선까지 성공한 양반의 재임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동성애와 낙태의 합법화에 반대하고 사형 제도에 찬성했다 하더라도, 저런 국제적인 이슈까지 독단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일련의 현상과 비슷한 맥락으로, 본인은 오래 전부터 성경의 이 구절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해 왔다.

요담이 자기 아버지 웃시야가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였으나 주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악하게 행하였더라. (대하 27:2)

왕은 선한 통치를 하려 하는데 정작 백성들이 악했다니. 이 얼마나 생뚱맞은 진술인가!
세상의 거의 모든 역사 기록이나 문학 작품에는 악한 통치자 밑에서 신음하는 백성들만 나오지 그 반대의 경우는 찾을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런 정서가 더 심하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맨날 민초들이 힘을 합쳐서 외적을 물리쳤다고만 하고...

그러나... 정말 객관적으로 보면 역사상 악한 통치자만큼이나 악한 백성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악한 통치자도 그런 악한 백성 가운데서 나오게 마련이다.
악덕 기업주만 있는 게 아니라 무능하고 게으르고 악한 직원들 때문에 망한 사장도 엄청 많을 것이다. 진실은 신만이, 하나님만이 알고 있겠지만.
내가 성경이 좌우 이념에 치우치지 않으며, 인간의 입맛과 사고방식에 맞춰 기록된 책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사상, 종교, 색깔, 이념 때문에 사회가 분열되고 온갖 다툼과 비극이 발생해 왔다고들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걸 싹 없애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생각, 그리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옳다는 생각이 '실용'의 탈을 쓰고 팽배하는 건.. 더욱 위험한 현상이 아닐지.

그래서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수준에 맞춰 더욱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박쥐, 기회주의자처럼 돼 가는 것 같다. 그러면서 정부와 시민 사이의 불신풍조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_-
차라리 분명한 소신과 색깔이 대접받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뭐 옛날에 그런 이념도 어차피 다 폐단과 부작용을 경험하고 나서 트렌드가 오늘날처럼 바뀐 거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12 08:53 2011/06/1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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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C++ 개발자에게 F12는 무척 특수한 의미를 갖는 단축키이다. 커서가 가리키고 있는 명칭(함수, 변수, 클래스 등~)이 선언되어 있는 위치로 바로 이동해 주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Find in Files와 더불어 복잡한 소스 코드를 분석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기능이다.

또한 Alt+F12는 Symbol 탐색기이다. 무수히 많은 파일들을 무식하게 문자 단위로 검색하는 게 아니라 최적화된 symbol 데이터베이스만을 뒤지기 때문에, 명칭만의 출처를 아주 빠르고 똑똑하게 찾을 수 있다.

사실 이 기능은 비주얼 C++ 6.0에도 있었고, 심지어 더 이전 버전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 기능이 활발하게 활용되지는 못했다.
이런 고급 기능을 사용하려면 프로그램의 전체 빌드를 Browse 정보를 남겨 놓는 방법으로 특수하게 다시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번 빌드할 때마다 그 Browse 정보도 업데이트해야 했다. 그러므로 빌드 시간도 증가.

원래 C/C++이라는 언어 자체가 빌드 속도가 느린 데다, obj, pch, ncb 등 온갖 잡다한 output을 많이 남기는 걸로 악명 높은 언어이다. 언어의 범용성 보장이라든가 강력한 네이티브 코드 생성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면모도 물론 있긴 하나, 현대의 언어들과 비교했을 때 생산성이 무척 떨어지는 건 사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빌드 오버헤드까지 감수하면서 별도의 Browse 정보를 생성해야 한다니. Browse 기능을 쓰는 사람이 많을 수가 없었다.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비주얼 C++ 6 갖고 계신 분은 프로젝트 하나 만들어서 아무 명칭에다 대고 F12를 눌러 보라. Browse 정보를 생성할 건지 묻는 질문부터 먼저 뜨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비주얼 C++ .NET이 출시되면서 장족의 발전이 이뤄졌다. 별도의 Browse 정보를 만들 필요가 없이, 빌드 한 번만 하고 나면 명칭 조회와 탐색이 아무 프로젝트에서나 가능해진 것이다. 굉장히 편리해졌다.

사실 이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인 게, 비주얼 C++ 6.0부터는 어차피 인텔리센스 기능이 초보적인 수준이나마 추가됐기 때문이다. 함수의 원형이 마우스의 풍선 도움말로 뜨고 명칭을 자동 완성해 주는 기능은 Browse 기능과 성격이 상당수 비슷하지 않은가?

기술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본인 생각에는, 둘이 서로 따로 DB를 구축하면서 따로 놀던 게 닷넷부터는 동일한 인텔리센스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명칭 조회 기능과 인텔리센스가 모두 동작하도록 바뀌었지 싶다. 그래서 그런지, 편리해진 대신에 닷넷 초창기 버전은 과거의 6.0에는 있던 기능이 잠시 사라진 것도 있었다.

바로 함수에 대해서 Caller/Called by 그래프를 그려 주는 기능이다. 이 함수가 또 어떤 함수를 호출하는지 쭉쭉~ 아니면 이 함수를 사용하는 함수는 무엇이 있는지 쭉쭉~

그런데 인텔리센스 정도 구현하는 데는 명칭 자체에 대한 DB만 구축하면 되지, 명칭과 명칭 사이의 각종 인과관계를 따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비주얼 C++ 2003(닷넷)에는 잘 살펴보면 저 기능을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본인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이다.

잠시 없어졌던 그 기능은 비주얼 C++ 2005부터 완전히 부활했다. 인텔리센스 자체가 버전업을 거듭하면서 굉장히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2003부터는 #define 심볼과 템플릿도 지원되기 시작했고, 2005/2008부터는 함수 포인터도 지원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프로젝트를 별도로 빌드해서 파일로 조회를 해야 했던 정보가, 지금은 컴퓨터가 좋아진 덕분에 실시간 업데이트와 조회가 가능한 존재로 바뀌었다.

비주얼 C++ 2010은 듣자하니 인텔리센스 엔진이 또 완전히 바뀌었고, C#이나 베이직 같은 ‘쉬운 언어’에서나 지원되던... 빨간 선 기능(워드 프로세서의 맞춤법 검사기처럼.. 문법에 틀린 부분)이 흠좀무스럽게도 C++에도 도입되었다고 하더라.

인간의 프로그램 개발 환경의 생산성 개선을 위한 노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1/06/07 19:10 2011/06/0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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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에는 ? : 라는 독특한 연산자가 있다. A ? B: C꼴로 표현되어 피연산자가 3개나 붙는 유일한 연산자이다.
이 연산자의 역할은 매우 단순하다. A가 참이면 연산자의 값은 B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C가 된다. 그래서 아예 if문의 역할을 간단히 대신할 수도 있으며, 콤마 연산자와 결합하면 어지간한 함수 호출마저도 한 연산식에다 박아 넣을 수 있다. 다만, 그게 너무 사악하다고 여겨졌는지-_-, C# 언어에는 콤마 연산자가 사라지고 콤마는 for 키워드 안에서만 제한적으로나 허용되지 싶다.

? : 는 &&, || 와 마찬가지로 C/C++에서 단축연산이 적용된다. A && B에서 A가 거짓이면 B는 실행이 전혀 되지 않고 전체 결과가 거짓이 되며, A || B에서 A가 참이면 B는 실행되지 않고 바로 전체 결과가 참이 된다. 그런 것처럼 ? :는 선택되지 않은 항에 대해서는 당연히 연산이 일어나지 않는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짝퉁 C언어 문법 수식 해석기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글쇠, 오토마타, 글자판 전환 글쇠 등에서 문자 입력 시스템의 자유도를 굉장히 높일 수 있다. 비록 튜링 완전한 수준은 못 돼도 말이다. 이때에도 ? : 연산자는 물론 매우 요긴하게 쓰인다.

? : 는 좌결합이 아니라 우결합이다. A ? B : C ? D : E는 (A?B:C) ? D : E가 아니라 A ? B : (C?D:E)로 결합한다. 그러므로 전자처럼 쓰려면 괄호를 넣어 줘야 한다.

? : 는 다른 연산 구문들을 포함하는 if문 대용처럼 쓰이는 만큼, 연산자의 우선순위가 상당히 낮다. 다른 평범한 연산자들이 다 결합한 뒤 나중에야 적용된다. 그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얘도 콤마와 대입 연산자보다는 순위가 높다. 그렇기 때문에 A = B ? C : D 라고 써 주면 알아서 A = (B?C:D)로 해석되어, A에는 B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C 아니면 D가 대입된다.

반대로, ? : 의 내부에 콤마 연산이나 대입 연산이 포함되어야 한다면 이들 연산은 무조건 괄호로 싸야 한다.

A ? (B=2): (C=5)
B에다가 괄호를 안 하면 = 가 ?와 :를 둘로 쪼개 버리는 효과가 나기 때문에 에러가 발생한다.
그리고 C에다가도 괄호를 생략할 수 없는데, 괄호를 안 하면 연산의 의미가 (A?(B=2):C)=5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선순위의 특성상, =가 C항이 아니라 ? = 전체와 대응한다는 뜻 되겠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볼 것은, ? : 연산자의 값은 L-value가 될 수 있겠냐는 점이다. (대입 가능하겠냐)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수식이 처음 도입된 3.0 이래로 지금까지 (조건 ? A:B)=100 과 같은 구문이 지원된 적은 없다. 그러나 이제 <날개셋> 6.0 이후의 다음 버전부터는 그게 가능해진다. 단, 2항과 3항 중 하나라도 변수에 연산자가 조금이라도 붙어서 A+2, -B 같은 형태가 되면 L-value 원칙이 깨지게 되는데, 그런 오류는 수식 입력 시점에서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감지해 준다.

이게 지원되면 조건 ? (A=100): (B=100)보다야 구문을 더욱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사용자의 입장에서 좋을 것이다. 더구나 콤마 연산자도 최후의 항의 변수 정보를 남겨 주기 때문에 (조건 ? (A=100,C): (B=50,D)) +=20 같은 복잡한 대입도 가능해진다. 저 식의 의미는 무엇일지 독자 여러분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정작 이 연산자에서는 괄호가 필요하지 않다. 조건 ? A:B=100 이라고 하면 (조건 ? A:B)=100이 되며, 100 대입 연산은 3항의 B에만 연결되는 게 아니라 ? : 연산의 결과 전체에 걸린다. ? : 의 우선순위가 =보다 높기 때문에 =보다 먼저 계산되기 때문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로 복잡한 수식을 다뤄 본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입력한 수식을 어느 정도 자동으로 간소화를 한다. 상수 연산은 미리 계산을 해 버리며, 100/0나 2=A 같은 뻔한 에러는 미리 지적해 준다. 그리고 우선순위 규정상 굳이 칠 필요가 없는 괄호도 알아서 제거를 해 버린다.

(A+B)-C는 A+B-C로 바뀌며,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조건 ? A:B)=100도 그냥 조건 ? A:B=100으로 바꾼다. 이건 프로그램의 오동작이 아니므로 놀라지 말고 수식을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비주얼 C++ 같은 요즘의 C/C++ 컴파일러들은 ? :를 본인이 생각한 것처럼 취급하지 않는 것 같다.
A==100 ?B:C=400 라고 하면 =400은 3항의 C에만 붙지 B에는 붙지 않는다. (A==100 ? B:C)=400이라고 해 줘야 한다.
또한 ?와 : 사이에 있는 2항은 사이에 대입이나 콤마 같은 연산자(우선순위가 ? :보다 한참 더 낮은!)가 괄호 없이 연결되어 있어도 알아서 2항의 일부라고 인식해 주는 듯.
물론, 그렇다고 해서 A=조건 ? 2항: 3항 같은 문장이 있으면 A=까지 조건으로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이런 세세한 동작 방식에 대해서 정보를 얻고 싶어서 비주얼 C++ 도움말을 찾아봐도, ? :는 대입 연산자보다 우선순위가 높다던가, 2항과 3항의 타입이 서로 다를 때 연산자 값이 정해지는 원칙 같은 원론적인 말밖에 없다. 그 말대로라면 무조건 내 프로그램처럼 괄호를 써야만 할 텐데 말이다.

그 간단한 ? : 연산자에도 의외로 복잡한 사연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쨌든 내 프로그램은 ? : 안에 대입이나 콤마 연산을 포함시키려면 무조건 괄호를 써야만 하는 구조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05 19:20 2011/06/0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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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철 경원선(중앙선)의 모든 것

서울 강북에는 예전부터 '국철'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전철 노선이 있었다.
경인선이나 경부선과는 달리, 이 전철은 나름 서울 중심부 구간에서 한강을 따라 미려한 경치를 선사하면서 지상으로 달렸다. 딱히 이름도 없이 그냥 국철이었고, 배차 간격이 12~15분대로 다른 지하철보다 꽤 길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 국철의 명목상 노선색은 군청색으로, 마치 1호선의 지선처럼 취급되었다. 그런데 지선은 본선에서 뻗어나가서 제 갈 길을 가는 형태가 보통인 반면, 얘는 용산에서 분기하여 한남, 옥수 따위를 지난 뒤에 다시 청량리에서 합류하여 일종의 고리를 형성했다. 여러 모로 특이한 노선이 아닐 수 없었다. 정식 명칭도 없는 이 국철의 정체에 대해 본인은 어릴 때부터 굉장한 호기심을 품어 왔다.

이것은 오늘날 '수도권 전철 중앙선'이라고 불리는 코레일 광역전철 노선의 옛날 모습이었다.
물론 용산-한남-옥수-청량리 구간 자체는 원래 경원선이라고 하여 일제 강점기 초창기인 무려 1911년부터 있던 철도이다. 그 경원선이 청량리와 성북과 그 이북으로 올라가서 신탄리까지 가고 북한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면서 경원선은 경의선과 더불어 반쪽짜리 노선이 되었다.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기 전에 경인선과 경부선(수원 이북)이 그랬던 것처럼, 경원선에는 용산에서 신탄리까지 디젤 동차가 다녔다(아마 비둘기호급?). 1974년의 광복절에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고 경부선· 경인선과 심지어 경원선의 일부 구간이(성북까지) 1호선에 편입되어 전동차가 직결 운행하기 시작했지만, 그때 경원선에는 아직 변화가 없었다. 다시 말해 회기-성북은 1호선 전동차와 기존 경원선 디젤 동차가 선로를 공용했다.

오히려 경원선은 철거당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69년, 박통 시절에 서울의 유명한 자동차 도로인 강변북로가 건설되었는데, 경원선을 그냥 철거해 버리고 그 부지를 이용해 도로를 손쉽게 건설하자는 제안이 채택될 뻔했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경원선 서울 시내 구간은 도시 개발에 방해가 되고 잉여력만 펄펄 넘쳐 보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엔 용산과 청량리 사이에 어차피 역도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러나 이때 사명감 있는 철도 관계자들은 경원선을 절대로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그 의견에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우리나라 철도 건설사의 산 증인인 정 진우 박사의 저서 <평생 인연 철도 건설>을 보면 그 일화에 대해 잘 소개돼 있다. 저분은 경원선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경부 고속철 건설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고 우리나라에 고속철의 필요성을 적극 역설한 고속철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 책은 철덕들에게 강추인 아주 유익하고 귀한 문헌이니, 일독을 권한다.

저런 분들 덕분에 경원선은 철거와는 반대의 운명을 갔으며, 1978년 12월, 서울 지하철 1호선에 이어 별도의 복선 전철 노선으로 거듭났다.
비록 1974년 8월만치 유명한 날짜는 아니지만 철덕이라면 저 날짜도 잊지 말자. 이를 계기로 성북 역은 지하철 1호선과 국철의 동시 종점이 되었으며, 그 이남은 두 노선이 공히 디젤 동차가 완전히 퇴출되었다. 그리고 강변북로는 철길을 건드리지 않고 강변과 더 가까이로 건설되었다.

경원선 용산-이촌 사이에는 절연 구간(사구간; dead section)이 있다. 직류· 교류가 바뀐다거나 변전소가 바뀌어서 그런 건 아니다. 철길 위로 지나는 어느 노후한 교량의 높이가 너무 낮아서 전차선을 설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잠시 전력 공급이 중단된다. 그런데 거기는 그렇잖아도 급커브 때문에 열차가 굉장히 천천히 달려야 하는데, 관성으로 무동력 운행까지 해야 하니 좀 불안하다.

서빙고 역 근처에는 아예 평면교차 건널목이 있고 열차가 지나가기 전에 차단기가 내려온다. 덜덜~ 전동차가 지나는 길목에 건널목이라니. 1호선도 북쪽 어느 구간에 딱 하나 아직 입체화가 되지 않은 건널목이 있다. 건널목 있지, 일반열차도 가끔씩 취급하지, 1호선과 공용하는 선로가 있지...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국철 경원선은 지하철 수준의 증차가 곤란하다.

게다가 경원선 국철은 옛날엔 사람과의 평면교차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용산 이남으로는 어차피 운행을 안 하니까 별 문제될 게 없는 반면, 청량리-회기에서는 1호선과 합류해서 같이 성북으로까지 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평면교차가 존재했다. 용산에서 출발한 경원선 전동차가 1호선의 상행(=원래 경원선인) 선로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1호선 하행의 선로를 필연적으로 침범해야 했다.

예전에 성북,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1호선 상행 전동차들이 청량리-회기 구간에서 심심하면 정체· 서행을 반복했던 주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말이다.
과거엔 1호선의 남쪽 끝인 수원 역에도 전동차가 아예 일반열차 선로를 침범하여 회차하느라 평면교차 장애가 있기도 했으니... 1호선은 이렇듯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병목 지점들이 존재했다. 덧붙이자면, 인천 역은 평면교차 지장은 없지만 인상선도 없는 열악한 두단식 승강장이어서 회차 성능이 영 안습이었고.

그러다 국철 경원선에 봄이 찾아온 것은 2005년, 덕소 역까지 수도권 전철 중앙선이 개통하고부터이다. 이 국철은 운행 계통상 경원선이 아닌 중앙선으로 편입되었고, 청량리-성북 구간에 더부살이를 하지 않는 별개의 노선으로 독립해 나갔다. 평면교차 장애가 없어진 것은 보너스. 과거에 안산선이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경부선 지선처럼 운행되기도 하다가 결국은 4호선으로 운행 계통이 완전히 분리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앙선은 고유 노선색(옥색)까지 부여받았다! 더는 이름 없는 국철이 아니다.
옛날에는 이 노선에 이름도 없어서 안내방송조차 “옥수· 청량리 행 열차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였는데 이제는 다 지나간 얘기. 이미 수 년 전부터 '중앙선'이라는 당당한 이름이 생겼다.

2000년도에 서울시에서 기존 지하철과 직통 운행을 하는 국철들은 다 지하철 호선 번호로 노선명을 통합했다. 그런데 용산-성북 국철은 지하철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면서 1호선에 또 붙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분당선만치 독립적인 노선도 아니다 보니, 꽤 오랫동안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중앙선부터 시작해 경의선, 경춘선 등 워낙 국철들이 많이 개통하다 보니 국철이라는 말은 조용히 사라지고 각 노선명을 따로따로 부르는 게 대세가 되어 있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2009년에 드디어 수도권 전철로 탈바꿈한 경의선도 옥색 노선색을 쓰고 있고,
경의선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수도권 전철로 탈바꿈한 경춘선은 마치 중앙선에서 분기하는 지선 같은 위상으로 동일한 옥색을 쓰고 있다.
옛날에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선은 빨강, 국철들은 다 회색을 쓰던 노선 배색이, 회색이 옥색으로만 탈바꿈하여 되돌아온 게 아닌가 모르겠다.

다만, 경의선과 경원선은 궁극적으로 상호 직통 운행을 하여 파주에서 양평까지 한큐에 가게 하겠다는 계획이 잡혀 있으니, 지금부터 동일한 노선색을 쓰는 게 합리적인 정책이긴 하다. 오오~ 40년 전에 철거 위기까지 맞았던 경원선이 이 정도면 가히 장족의 발전을 한 게 아닌지?

이들에 이어 다른 국철인 분당선은 왕십리까지 올라가고 수원까지 내려가서 수인선하고까지 직결이 계획되어 있다! 노랑 국철과 옥색 국철의 거대한 발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경의선과 경원선이 만날 때쯤엔 건널목도 입체화하고, 특히 용산-이촌 사이의 절연 구간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경원선상에 있는 용산과 회기 역이 6, 7년 전에 비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변했는지가 아직까지 기억에 선하다. 특히 용산은 KTX 정차역으로까지 지정되었으니, 비록 광장은 서울 역보다 좁지만 건물 덩치는 서울 역보다 더 커졌다.
왕십리와 청량리 역은 크고 아름다운 민자역사로 바뀌었고 청량리의 경우 역시나 거의 30년 만에 지하철과 국철역 사이의 환승 통로도 드디어 생겼다.

왕십리 역은 민자역사가 생기기 전에는 마치 신도림 역처럼 코레일 관할의 역사 자체가 없어서 이것도 2호선과 동시 개통한 최신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그렇지는 않다. 경원선의 이 지점에 역 자체는 이미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역사가 아주 길다.
저런 메이저 역들과는 달리 응봉, 한남 같은 역은 서울 도심의 시골 간이역 같은 정취가 여전히 물씬 풍긴다. 직접 가 보면 안다. 응봉과 옥수 역은 굉장한 곡선 승강장역으로도 유명하다.

성북 역은, 경원선 국철이 없어지고 최근엔 경춘선 무궁화호도 없어지면서, 역의 규모에 비해 이제 1호선 전철만 탈 수 있는 평범한 역이 되어 버렸다. 경원선이 북한으로까지 뻗어나갔으면 가히 강북의 영등포 같은 역이 됐을 텐데 아쉬울 뿐. 그래도 국철과 경춘선으로 인해 야기되던 고질적인 평면교차는 완전히 사라졌으니 앞으로는 1호선 하나만이라도 쌩쌩 운행 잘 해 주길 기대하겠다.

중앙선이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 동안 1호선이 접수하고 있는 경원선 북쪽 구간도 전철의 세력이 커져서 지금은 무려 소요산까지 가 있다. 디젤 동차인 CDC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짤막한 단선 비전철 구간을 생각하면 그저 안습뿐. 거기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1시간에 한 대꼴 열차보다는 차라리 20분에 한 대꼴 셔틀버스를 굴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경원선을 접수하고 있는 용산 역하고, 우리나라 킹왕짱 역인 서울 역과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서울 역은 지금의 민자역사 말고 옛날 건물 시절부터 거의 공항 수준으로 크고 아름다웠고, 이름에 걸맞게 경부· 호남· 전라· 장항선에 심지어 경의선과 교외선까지 혼자 다 취급하던 역이었다.
그랬는데 고속철이 개통하면서 뭔가 서남쪽으로 가는 호남· 전라· 장항선 노선은 용산 역으로 이사를 갔다. 이것 때문에 지역 차별이라고 굉장히 불만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행선지별로 역이 이원화하는 것은 결코 나쁜 현상이 아니다. 청량리 역이 중앙· 경춘· 영동· 태백선 열차를 취급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강원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아무 불만 없었는데. -_-
역을 이원화하는 주 이유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회차 용량과 취급 가능한 열차수를 늘리기 위해서이다. 거의 10분 간격으로 운행 가능한 그 많은 KTX 열차들을 서울 역 부지에다가만 세워 두기엔 공간이 부족하잖아? -_-;;

더구나 용산 역은 앞으로 경의선까지 뺏어 와서 경의· 경원· 중앙선 횡축에다 1호선 종축의 연계 전철망까지 구축하게 된다. 서울 역에서 출발하는 경의선은 회송 열차 트래픽도 있고, 또 신촌 같은 역도 있다 보니 아주 없애지는 못하지만 여객 전철은 여전히 1시간에 1대꼴로 아주 뜸하게 운행된다. 경의선이 비주류인 대신 서울 역은 잘 알다시피 공항 철도를 확보해 있다.
이렇듯, 서로 일장일단이 있으니
서울· 용산 구분이 무슨 지역 차별이라는 식의 말은 없었으면 한다. 용산구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서울의 중심부이다.

생각해 볼 문제:
국철을 탈 때와 지하철 1호선을 탈 때 용산-회기까지 소요 시간의 차이는 어느 정도 날까?
비슷한 문제로 공덕-청구(5, 6), 영등포구청-왕십리(2, 5), 도봉산-온수(1, 7)의 경우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03 08:43 2011/06/0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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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윈도우 3.1 시절이던 1990년대 초중반에, PC에 최초로 CD-ROM과 사운드카드 같은 멀티미디어 열풍이 불었다.
그 후 얼마 안 가 온통 인터넷 열풍이 불었다. 요즘 스마트폰 열풍인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초기에는 인터넷도 모뎀으로 접속을 하느라 인터넷을 쓰는 동안에 별도의 접속 유틸리티를 띄워야만 했지만, 이내 전용선이 깔리고 전용선으로도 모자라 오늘날엔 무선 인터넷이 등장했다. 2010년대의 무선 인터넷이 10년 전의 유선 인터넷보다 더 빠른 시대가 됐다. 흠좀;;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메일이라는 게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그 이름도 유명한 ‘한메일넷’은 이미 1990년대 중후반부터 전국민에게 무료 이메일 계정을 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포털 사이트로 발전했다. 포털 사이트의 이름은 ‘다음’이 된 지 오래이지만 과거 호환성을 위해 이메일 계정의 도메인은 여전히 hanmail.net을 쓰고 있다.

그런데 본인은 드물게도 드림위즈 이메일을 쓰고 있다. 1999년, 한창 신문 광고를 연달아 내면서 자기 사이트를 홍보하던 이 찬진 사장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서 가입한 것 같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직접 돈은 한 푼도 낸 것 없이 이메일과 파일 보관함을 잘 쓰고 있고, 심지어 내 홈페이지조차도 처음엔 이곳 계정에서 시작했으니 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싼 게 비지떡인 건 사실이다. 드림위즈는 처음에는 이메일 계정의 용량이 15MB, 홈페이지 계정의 용량은 5MB밖에 안 되었다. ㄲㄲㄲ
한때는 SMTP/POP3을 지원해서 아웃룩으로도 수월하게 메일 확인이 가능하였으나 2002년 무렵에 금세 그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그런데 1999~2000년대엔 내가 메일 확인을 며칠에 한 번도 아니고 몇 주에 한 번 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숙사에서 사는 한낱 고삐리가 뭐 중요한 연락을 주고받을 일도 없고 지금처럼 자주 인터넷에 들어갈 일도 없었고 여건도 안 됐으니까. 이메일이 없던 시절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나마 고3 때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후에 방송국 관계자와 연락 주고받느라 이메일 확인 빈도가 잠깐 늘었던 것 같다.

그 후 지금은? 하루에도 몇 시간 간격으로 메일을 확인한다. -_-;;; 가히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생각하면 마치 한때 뻘밭, 논밭이던 땅이 지하철까지 다니는 최대의 번화가로 개발된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온라인 공간도 오프라인 부동산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비유할 수 있겠다.

본인은 카페에 가입하기 위해 다음 ID도 갖고는 있지만, 거기 이메일 주소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고 로그인도 며칠에 한 번꼴로 한다. 직장 생활만 하던 시절에는 진짜로 로그인을 몇 달에 한 번 한 적도 있다. 거기도 가입한 지 최하 5년은 넘었지만 그 ‘땅’은 아직까지 전혀 개발되지 않고 있다.

초창기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다모임이나 아이러브스쿨 같은 커뮤니티가 유행처럼 번졌었고 세이클럽도 있었다. 싸이월드는.. 2000년대 초에 떠오르는 스타였으나, 지금은 블로그라든가 다른 social network들에 밀려서 완전히 망한 상태.

메신저로는 대학 입학과 함께 가입한 MSN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다. hotmail은 메신저에 가입하기 전부터 이용은 해 왔지만 드림위즈 같은 주류가 되지는 못해 있다. 그리고 메신저 자체도 오늘날은 MSN이 급속도로 몰락하고 네이트온로 물갈이된 듯하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는데, 카이스트 메일 주소가 아직까지 살아 있고 로그인 가능하다! ㅜㅜ 졸업 후로 몇 년째 돌보지 않고 지냈는데, 편지함의 용량도 생각보다 많아서 스팸 메일이 수천 통 쌓여 있었다. ㄷㄷㄷㄷ;;

요즘 이메일의 종결자는 단연 gmail이라 하겠다. 본인은 이건 5년쯤 전에 지인으로부터 추천장을 받은 덕분에 가입했다. 드림위즈보다 용량도 많고 훨씬 더 편리한데도 불구하고 그냥 10년도 더 전부터 써 온 드림위즈를 아직까지도 주요(가장 자주 확인하는) 메일 계정으로 사용 중이다. 그냥 관성 때문이다. 이미 인지도가 압도적이니까..;;

드림위즈 외의 본인의 이메일 계정을 아는 분이 독자 여러분 중에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계정은 확인 주기가 최하 며칠에서 몇 주에 달하기도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드림위즈를 사용하기 바란다. 아울러 본인은 포털 사이트의 쪽지 역시 거의 확인하지 않음을 알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01 08:25 2011/06/0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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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면 철도 매니아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철 차량을 납품한 국가(알스톰)를 바로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철도뿐만이 아니라 항공 분야에서도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다. 그 내막을 들어 보면 놀랄 것이다(이미 상식 차원에서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과거에 지구를 누비는 민간 여객기(특히 대형)를 만드는 회사는 오로지 미국 보잉 사밖에 없었다. 독점이었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건을 만들어 낼 기술과 자본력을 갖춘 곳이 지구상에 흔할 수가 없으니까.
실제로,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단일 건축물(위에 천장과 지붕이 있는-_-)은 바로 보잉 사의 비행기 생산 공장이라고 한다. 뭐, 미국 국방성도 무지하게 크고 아름답다고 하고, 또 미국 모처에 있는 퇴역 전투기 야적장도 가히 억소리 나는 규모라고는 하던데. 아무튼..;;

1970년대가 되자 이 민간 여객기 시장에 프랑스, 영국, 독일이 연합하여 끼어들었다. 그들이 세운 회사는 그 이름도 유명한 에어버스. 독일과 영국에서 부품을 만들어서 이들을 프랑스가 최종 조립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연구해서 콩코드만 만든 게 아니라, 독일까지 끌어들인 후 더 실용성이 높은 아음속 여객기도 개발해 낸 셈이다. 비행기 하나 개발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이 들었을까?

허나, 비행기는 잘 알다시피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비싼 물건이며, 다른 어느 교통수단보다도 주행 중의 risk가 크고 안정성과 신뢰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에어버스 여객기가 개발된 뒤에도, 보수적인 기존 항공사들은 지금까지 무난하게 안정성이 검증되어 온 보잉 비행기를 그냥 이용하지, 역사 짧은 파릇파릇한 회사에서 갓 만든 비행기의 도입을 꺼려 왔다.

우리나라만 해도, 최근에 도철(SMRT)에서 음 사장의 주도하에 야심차게 지하철 전동차를 자체 개발했지만, 수출은 고사하고 정작 근처의 서울과 인천시에서조차도 품질을 못 믿겠다고 회의적인 반응이었던 걸 기억하라.
지하철이 가다가 선로 위에서 좀 멈춘다고 해서 승객이 다칠 리도 없겠건만, 그 안전한 철도 차량 도입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 하물며 여객기는?
그래서 에어버스 여객기는 '홈그라운드'인 영국, 프랑스, 독일 국적의 항공사에서밖에 이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이윤은커녕 언제쯤 개발비나 제대로 뽑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상황이었는데 1979년, 우리나라의 대한 항공이 꽤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변화를 꾀한다는 명목으로 에어버스 항공기를 대량 도입하여 이를 국내선과 아시아권에서 무사고로 성공적으로 잘 운영한 것이다. 그래서 에어버스가 세계에 널리 보급되고 민항기 시장에서 보잉 사와 대등한 양분 구도를 차지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프랑스로서는 한국이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없었다. 당시의 대한 항공의 회장(겸 한진 그룹 회장)이던 故 조 중훈 씨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프랑스에서 굉장히 높은 등급의 훈장을 받았으며, 그 뒤에도 프랑스를 방문이라도 한다치면 거기서 완전 국빈급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보통은 자국의 고위 정치인 또는 군 장성이나 받을 법한 등급의 훈장을 외국의 민간 기업인이 받은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의 아들도 나중에 프랑스에서, 아버지의 것보다는 등급이 낮지만, 훈장을 받았다.

뭐, 그가 매국 행위라도 해서 외국에서 훈장을 받은 것도 아니고, 국내 기업을 외면하고 외국 기업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으니, 어쨌든 한국과 프랑스에서 모두 해피엔딩 스토리를 만든 것이고 잘 하긴 한 셈이다. 한때는 대한 항공이 사고를 많이 내서 특히 1997~99년 사이엔 1년 간격으로 비행기를 한 대씩 깨먹은 흑역사가 있는데, 그건 다 보잉 기종이었고 에어버스 기종은 아니었다. =_=;;;

이런 와중에 미국과 유럽에 이어, 잘 알다시피 중국까지도 항공· 우주 산업에 본격 뛰어들었으니 무서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이공계 육성 다시 좀 하려나. ㄲㄲㄲㄲㄲㄲㄲㄲ
심지어 나로 호도 차라리 러시아가 아닌 중국과 공동 연구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돌 정도이다.

유럽 국가 중에서 프랑스는 상술했듯이 우리나라의 철도와 항공하고 이런 깊은 인연이 있고,
관련 국가로 또 이탈리아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차라는 현대 포니를 디자인한 사람은 쥬지아로라는 이탈리아 디자이너이고,
아시아 음반으로서 세계를 석권한 88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작곡한 사람도 이탈리아 사람
이다.
뭔가 한국적인 정체성이 느껴지는 작품에 이런 외국인의 손길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30 08:21 2011/05/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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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여러 잡설

※ 서울 3대 전철 회사들의 전동차에서 방영되는 동영상의 주된 테마

서울 메트로: 2005년부터 도입된 2호선 신형 차량을 주축으로 하여, 차내 동영상 방송 트렌드를 가장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자기네가 전국에서 역사가 제일 긴 지하철 회사라는 걸 강조하면서 옛날 흑백 사진도 보여주고, 지금까지 수송 거리 n억 킬로미터, 수송 인원 n백억 명.. 같은 걸 자랑한다.
그리고 대국민 캠페인을 제일 열심히 한다. 무리해서 승차하지 말라, 내릴 사람은 전역에서 미리 내릴 준비를 하라, 두 줄로 서라 등.. 테러· 화재 시의 대처 요령 같은 걸 계속해서 방영한다. 이런 분위기는 오로지 서울 메트로 구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코레일: KTX를 운행하는 전국구 회사인 만큼, 철도 자체가 친환경 녹색 교통수단이라는 걸 귀가 따갑도록 강조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이용하면 나무 n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습니다' 드립. 그러면서 가끔 철도 안전 캠페인도 틀어 준다. 컬러 모니터는 1호선 같은 주류 노선에서는 보기 힘든 편이며, 중앙선· 경춘선· 경의선· 광명 셔틀 같은 곳에서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철(SMRT): 역사가 가장 짧고 구세대 LED 전광판을 가장 먼저 도입한(당대엔 이게 롤지나 플랩 표지판에 비해서 최신형이었음) 회사인 만큼, 컬러 모니터의 도입은 가장 늦다. 하지만 요즘 심심찮게 컬러 모니터로 시설이 교체되고 있는 중이다. 도철이 보여주는 건 맨날 자기네 기술력 자랑뿐이다. 자체 전동차 SR-001은 절대 빠지지 않으며, 음 사장님이 인건비 절감 고효율 경영을 위해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걸 홍보하느라 바쁘다.
도철은 과거에 지하철 벽 프로젝션 광고를 가장 먼저 시도했고, 심지어 주행 중 터널 홀로그램 광고라는 엽기적인 시스템도 도입했으며, 서울 3대 전철 회사 중 스크린도어를 가장 먼저 전구간 완성한 회사이기도 하다.

Excercise: 서울 1기 지하철(1~4호선)과 비교했을 때, 2기 지하철(5~8호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시스템을 모두 고르시오.
(1) ATC 신호 시스템
(2) LED 전광판
(3) VVVF 인버터
(4) 1인 승무
(5) 직· 교류 겸용 전동차
(6) 콘크리트 노반
(7) 장대 레일

※ ABB? ABBA?

잘 알다시피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의 VVVF 인버터는 ABB라는 유럽계 회사(스웨덴)의 제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1970년대의 유명 팝송인 Dancing Queen을 부른 가수 그룹의 이름은 ABBA이고 이들의 국적은 스웨덴!
Dancing Queen과 서울 지하철과의 묘한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ㄲㄲㄲㄲㄲㄲ

※ 아래아한글 2007

아래아한글 2007은 2006년 한글날에 출시된 후 2010년 3월에 차기작인 2010이 출시될 때까지 3년 반 가까이 지냈던 메이저 버전이다. 그렇다 보니, 두 버전 사이의 간극은 MS 오피스 2003과 2007의 간극에 맞먹는다(2003년 가을 ~ 2007년 초).
그 동안 2007은 업데이트가 굉장히 많이 뿌려졌으며, 2007 RTM과 지금의 2007은 가히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하게 되었다.

단순히 보안 패치 같은 보이지 않는 안정성 차이뿐만이 아니라..
F4 구역을 잡은 상태에서 Ctrl+Home/End가 동작하냐 안 하냐
키매크로와 스크립트 매크로가 동작하냐 안 하냐 같은 당장 눈에 띄는 기능 차이도 적지 않다
.
그렇기 때문에 아래아한글 2007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님, 버전 번호가 뭔가요? 최신 패치는 설치하셨나요?”부터 물어 봐야 할 지경이다.
About 화면에 아직도 (c) 2006이라고 적혀 있는 아래아한글 2007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 원격 터미널 클라이언트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1. CPU 사용량의 편차가 크지만, 어쨌든 오랫동안 끊임없이 켜져 있고 돌아가야 하는 프로그램: 서버
2. 끊임없이 CPU를 혹사하면서 실시간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 게임, 시뮬레이션
3. 사용자에게 클라이언트 상으로 뭔가를 오랫동안 표시하고 보여주는 게 목적인 프로그램: 프레젠테이션, 동영상
4. 로컬 환경에서 사용자의 응답에만 그때 그때 반응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의 GUI 기반 애플리케이션

일반적으로 개인이 PC에서 다루는 프로그램의 유형은 4가 대부분이다 보니, 컴퓨터는 사용자가 오랫동안 키보드나 마우스를 건드리지 않으면 화면 보호기를 돌리고, 더 시간이 흐르면 컴퓨터의 전원을 부분적으로 차단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쁘지 않은 전략이며, 절전과 환경 보호까지 달성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전세계에서 동작 중인 수많은 컴퓨터들이 잡아먹는 전기는 가히 엄청난 양이며, 이래서 IT 산업이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1~3이 돌아가고 있다면 사용자가 건드리지 않더라도 컴퓨터가 꺼져서는 안 된다. 특히 3은 CPU 부하는 그리 크지 않은 것에 비해 모니터가 절대로 꺼져서는 안 된다는 특이점이 존재한다.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3과 같은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WM_SYSCOMMAND의 SC_MONITORPOWER와 SC_SCREENSAVE 메시지에 별도로 응답하여, 내가 실행되고 있는 동안은 화면 보호기나 절전 모드가 동작하지 않도록 운영체제에다 요청을 해야 한다.

FTP나 웹브라우저 같은 프로그램은 다운로드가 진행 중일 때는 모니터는 끄더라도 컴퓨터는 안 꺼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PuTTY 같은 원격 터미널은 어떨까? 통신 기능은 있지만 딱히 대용량 파일 전송에 최적화돼 있지는 않다. 그냥 프롬프트에서 놀고 있을 때는 장시간 무응답 시 접속을 끄고 컴퓨터도 끄게 할 수 있지만, 서버 접속하여 명령줄로 한창 긴 빌드를 걸어 놓은 상태인데 컴퓨터가 그렇게 정신줄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두 상태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 미묘한 개념 차이

퍼센트는 비율을 나타내는 매우 유용한 단위이다.
그런데 60%라는 수치가 30% 증가하면 78%가 될까, 90%가 될까?
퍼센트에도 퍼센트가 적용된다고 보면 60%의 30%에 해당하는 18% 증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퍼센트 수치가 문자 그대로 덧셈으로 증가했다는 차이를 나타낼 때는 '퍼센트 포인트'라는 단위를 쓴다. 속도로 치면 가속도에 해당하는 개념 되겠다.

따라서 2%이던 실업률이 3%가 되었다면, 실업률은 겨우 1% 포인트 증가한 것이지만,
무려 50%나 증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통계는 수학적이고 객관적이지만, 이를 이용한 말장난 숫자놀음에 놀아나지는 말아야겠다.
'흉악 범죄자 싸이코패스들은 100% DHMO라는 위험한 약물에 중독되어 있으며 이걸 매일 마시지 않으면 못 산다' 같은 루머조차도 과학의 이름으로 퍼뜨릴 수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비슷한 예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경을 많이 찍어낸다고 들었는데, 성경뿐만 아니라 외국의 화폐도 굉장히 많이 찍어서 수출한다.
우리나라가 6· 25 당시에는 일본에서 임시로 돈을 찍어서 쓰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의 조폐 기술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듣자하니 EU 유로화 화폐를 거의 전량 한국에서 만든다고 함.

그런데, 돈을 얼마짜리만치 만들어서 수출했다고 하면, 이건 우리나라가 챙긴 액수(제조 원가+이윤)를 말하는 걸까, 찍어낸 돈 자체의 액면가를 말하는 걸까?
이것도 마치 퍼센트와 퍼센트 포인트의 차이 같은 미묘한 개념 차이가 발생하는 영역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27 19:48 2011/05/2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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