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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숫자 자리수 잉여 구분자

21세기 들어서 프로그래밍 언어들에 알음알음 몰래 도입돼 들어간 요소 중 하나로는.. 숫자 자리수를 구분하는 잉여 구분자가 있다.

가령, Java는 _ 밑줄을 이 용도로 지원한다.
그래서 a = 1234567890이라고 쓸 것을 a = 12_3456_7890이라고 써도 되고, a = 1_234_567_890이라고 써도 된다. 소수점도 3.141_592_653 이렇게 쓸 수 있고, 0xFFFF_0000처럼 타 진법도 마찬가지이다.

C++에서는 참 흥미롭게도 '(어퍼스트로피)를 동일 용도로 지원한다. C++11에서인가 추가됐다고 한다. a=1'234'567;
_은 공백을 염두에 둔 기호인 반면, '는 콤마를 염두에 둔 기호라는 차이가 있다.

이런 구분자는 컴파일러의 입장에서는 있건 없건 토큰을 인식하는 데 아무 차이가 없다. 주석과 동급으로 전혀 필요하지 않은 잉여일 뿐이다.
단지, 사람 입장에서의 가독성을 위해서 이 구분자만은 예외로 컴파일러가 이물질이라고 토해내지 않고 무시 처리해 주는 것이다.

64비트 double 부동소수점이야 16비트 시절부터 존재했겠지만, 64비트 정수 리터럴은 쌍팔년도에는 거의 볼 수 없는 물건이었지 싶다. 이 정도로 큰 수는 10진법으로 나타내도 글자 수가 거의 20자에 달하게 된다. 그러니 필요할 때 인위로 자리수를 끊어서 표기할 수 있다면 코드의 가독성 차원에서 깨알같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학술적인 의미가 있지 않고 사람이 값을 참조할 일이 없는 단순 난수표 같은 숫자 테이블이라면 굳이 자리수 구분해서 적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러고 보니 C++에는 0b로 시작하는 2진법 리터럴 표기도 추가됐다. 얘는 아무래도 길이가 굉장히 길기 때문에 8자 단위로 '로 끊어서 표기하는 게 확실히 유용하겠다.
그에 비해 C 시절부터 존재했던 8진법 표기는 진짜 아무데서도 안 쓰이는 잉여가 된 것 같다. FTP 파일 권한 777 이런 것 말고 딴 데서는 도통 본 적이 없다.

참고로 C/C++에는 줄 바꿈 문자를 없애고 토큰을 한데 이어 주는 \ 역슬래시라는 강력한 기호가 있다.
C/C++은 태생적으로 줄 바꿈에 연연하지 않고 중괄호와 세미콜론으로 문장을 구분하기 때문에 \ 가 필요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사실상 #define 매크로 함수를 여러 줄에 걸쳐 길게 선언하는 용도로만 쓰인다.
하지만 그 특성상,

int a=123\
456;
const char b[]="abc\
def";

이렇게 써 줘도 얘는 a=123456이라고 인식되며, b에는 "abcdef"가 들어간다. \는 컴파일러라기보다는 거의 전처리기 수준으로 소스 코드의 두 줄을 기계적으로 연결해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걸로 심지어 // 주석조차 다음 줄까지 계속되게 만들 수 있으니 말 다 했다.;;
참고로, 주석은 컴파일러의 입장에서 whitespace 하나로 간주된다. 그렇기 때문에 100/*ㅋㅋㅋㅋ*/00은 100과 00을 분리시키며, 100'00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다.

객체 지향, 제네릭/메타프로그래밍, 함수형 등 갖가지 패러다임들이 C++, C#, Java 등 메이저 언어들에 다 도입되면서 프로그래밍 언어들은 서로 비슷해지는 '수렴 진화' 중인 것 같다. 물론 자기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할 정도로 완전히 똑같아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5. 오타

현직 프로그래머 내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코딩을 한다고 해서 맨날천날 시간 복잡도, 공간 복잡도 따지고 다이나믹이니 그리디니 하는 신선놀음 같은 알고리즘 고민을 하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는 알고리즘이야 이미 만들어져 있고 잘 돌아가는 검증된 라이브러리나 오픈소스를 가져와서 쓰는 게 훨씬 더 많다.
자기가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남이 만든 기존 코드를 읽고 유지보수 하고 버그를 잡는 비중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나마 새로운 코드를 작성하는 게 있다면.. "뭔가 이름을 붙이는 것"의 비중이 매우 크다. 동사구이든 명사구이든..

그러니 프로그래머가 자기 조직이 마음에 안 들 때 아주 교묘하게 사보타주를 하고, 자기 후임을 엿먹이고 생산성을 저해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자기가 작성하는 각종 클래스, 함수 등의 이름에다가 고의로 오타를 교묘하게 집어넣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getUserAdress 라든가.. receiveIncommingMessage 따위.

...;; 프로그램이야 멀쩡하게 돌아가니까 그 당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나중에 그 프로그램의 버그를 잡고 기능을 추가하는 등 유지보수를 할 때다.
대놓고 약어를 쓴 것도 아니고 원래 그대로 풀어 쓴 듯한 영단어가 미묘하게 스펠링이 여기저기 틀려 있으면..
나중에 "검색"이 안 되어서 미치고 펄쩍 뛰는 일이 야기된다.

이런 코드는 여러 사람을 거쳐 가며 작업을 하기 어려우며, 처음 짰던 사람이 아니면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꺼냈다가 일련번호 순서가 아닌 아무데나 꽂아 넣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잘못 꽂힌 책은 없는 책과 같습니다)

진짜.. 개발 환경에서는 프로그래밍 언어 차원에서 코드의 문법 오류만 빨간줄을 치는 게 아니라, 명칭의 영어 스펠링 오류를 체크하는 것도 꽤 도움이 되지 싶다.

먼 옛날에 컴퓨터가 너무 비싼 물건이고 텍스트 에디터의 인터페이스가 불친절· 불편하고 디스크 공간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뭐든지 getpid() 이런 식으로 짧게 줄여 쓰는 게 관행이었다. PC통신 채팅이나 전보에서 '안냐쎄여' 등으로 필사적으로 줄이는 것의 코딩 버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디스크 용량 걱정이 없어지고, 한번만 명칭을 정한 뒤부터는 에디터에서 긴 명칭을 자동 완성해 주는 기능이 매우 편리하게 발달하고(거의 90년대 말.. =_=), 또 소프트웨어의 규모가 왕창 방대해지고 공동 작업의 중요성이 커진 뒤부터는 GetProcessID() 이렇게 길게 풀어 쓰는 게 더 바람직한 관행으로 정착했다.
소스 코드가 자연어와 더 비슷해지고 길어지고 나니 스펠링 오류에 대한 취약성도 더 커진 셈이다.

6. 함수 안에 함수, 클래스 안에 클래스

파스칼 내지 Ada 같은 옛날 구시대 언어 중에서는 함수 안에 함수를 만드는 걸 지원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에 비해 C는 함수 호출 구조를 단순화시키느라 그런 걸 제공하지 않았다. 한 함수 안에서만 잠깐 쓰이는 코드 반복 패턴을 표현하려면 그냥 매크로 함수를 쓰라는 취지였던 듯하지만.. 이건 막 깔끔한 해결책은 못 됐다.

오늘날은 함수형 프로그래밍이 도입되면서 람다 덕분에 함수 안에 함수를 넣는 게 '사실상' 가능해졌다. 다만, 예전에 생각했던 그런 문법이 아니라, 함수 몸체를 지역변수에다 대입하는 굉장히 이색적인 형태로 가능해졌다는 게 신기한 점이다.

함수와 달리, 클래스는 원래부터 자기 내부에 클래스를 또 가질 수 있다. 그래서 C++은 C와 달리 계층적인 다단계 scope을 구현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이거 표현을 간소화하기 위해 using이라는 키워드도 도입됐다.

함수건 클래스건.. (1) 내부에 안겨 있는 녀석의 명칭은.. 걔를 품고 있는 outer의 문맥에서만 유효하고 거기서만 접근 가능하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안겨 있는 녀석은.. (2) 반대로 자기를 안고 있는 outer의 멤버(클래스의 경우)나 변수(함수의 경우)에 접근 가능해야 한다.

C/C++은 (2)를 지원하는 것이 미흡하고 인색했다. 그래서 C 시절부터 함수 안에 함수 같은 건 골치 아프니 지원하지 않았으며, 클래스 안의 클래스도 바깥 클래스의 인스턴스 멤버로 접근을 지원하지 않았다. Java로 치면 static class밖에 지원하지 않은 것과 같다.
C/C++은 포인터를 그렇게도 좋아하는 언어인데, 저것들은 정수 하나짜리 날포인터만으로 구현할 수 없는 개념이어서 지원을 안 한 것이지 싶다.

static 함수야 클래스에만 소속됐지, 클래스의 각 인스턴스에 매여 있지는 않아서 this 포인터가 존재하지 않는 함수이다(0). 사실상 전역 함수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this는 메모리 주소 딱 1개만 가리키는 포인터이지만.. 하지만 객체지향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this의 크기가 한 칸만으로 충분하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할 것 같다. inner class라든가 다중 상속은 이런 문제를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긴, 그래서 Java에서는 C++에 없는 Outer o = (new Inner()).new Outer(); 이런 코드가 가능하다. C++에서는 new 연산자를 오버로딩 하더라도 무조건 static 형태만 되는데, Outer는 this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Inner까지 사실상 두 파트로 구성되는 셈이다.
이게 가능하니 C++ 같았으면 다중 상속을 해야 했을 것도 저렇게 퉁치고, 프로그래밍을 더 작은 객체 단위로 깔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클래스는 그렇다 치고.. 함수가 outer의 변수에 접근하는 건 요즘 C++도 '캡처'라는 기능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클로저'라고 부르는 개념이었지 싶은데 말이다. 이건 프로그래머/사용자의 관점에서는 아주 편리한 기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역시 함수 실행 문맥을 가리키는 포인터를 집어넣고 어쩌구 하면서 꽤 힘든 과정을 거쳐서 구현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30 08:35 2023/06/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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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이 C보다 편리한 결정적인 요인

C++은 템플릿, 람다 등 온갖 다양한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이 추가되어 C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복잡한 언어가 되어 있다.
그러나 C++은 맨 처음에 객체지향 언어로 시작했기 때문에 C와의 근본적인 차이는 아무래도 이와 관련된 것들이다.
본인은 C++이 C에 비해서 더 편리하고 간결하게 코딩할 수 있고 사람의 실수를 줄여 주는 제일 강력하고 중요한 요소는 다음 세 가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1) 클래스 멤버 함수 안에서 this 포인터를 생략하고 바로 자기 멤버를 참조해도 된다.
즉, C의 함수와 비교했을 때, 복잡한 구조체의 포인터인 첫째 인자는 생략 가능하다는 뜻이다. 매번 obj->member 할 필요 없이 바로 member를 쓰면 된다.

(2) 어떤 객체 변수를 선언해 주면(지역/전역) 생성자와 소멸자를 호출하는 코드가 앞뒤에 자동으로 삽입된다.
함수나 블록의 실행이 중간에 끝나더라도(return, break) 메모리를 해제하거나 파일을 닫는 코드를 거치게 하려고 지저분한 goto문을 쓰지 않아도 된다. 예외를 던질 때에도 소멸자 처리가 자동으로 된다는 건 longjmp 따위로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이다.

(3) 상속이라는 걸 자동으로 제공하고, 포인터 형변환 때의 상위· 하위 상속 관계를 자동으로 맞게 판단해 준다.
파생에서 기반으로 가는 건 괜찮지만, 기반에서 파생으로 가는 건 바로 안 되고 최소한 static_cast라도 해 줘야 된다.
그에 비해 C언어는 void*냐 그렇지 않느냐 하나만 판단하고, void*가 아닌 다른 모든 타입의 포인터들은 서로 남남인 타입일 뿐이다.

2. C++과 Java의 enum class

컴퓨터 프로그램에서는 숫자가 산술 연산의 대상인 수가 아니라 그냥 이산적인 식별 번호로 취급되고, 각각의 값이 서로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범용적인 정수형뿐만 아니라 sub-range 내지 열거형이란 걸 제공하곤 한다.

sub-range는 파스칼이나 Ada 같은 옛날 언어 유행으로 끝나는 분위기이고, 요즘 대세는 열거형이다.
C언어는 열거형이란 게 있긴 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매크로 상수가 훨씬 더 많이 쓰였다. 하긴, 그쪽은 참/거짓 bool 형조차 없었고 그냥 다 int로 퉁쳐서 썼을 정도로 int 만능 덕후 성향이 좀 있었다. =_=

C++에서는 C++11 버전부터 enum class라는 것이 도입됐다. (1) scope을 반드시 지정해 줘야 하고, (2) 정수형으로 암시적으로 형변환이 되지 않아서 type-safety가 강화되니 굉장히 적절한 변화인 것 같다.
즉, 평범한 enum이라면 int를 받는 아무 곳에서나 ENUM_VALUE라고만 써도 됐을 텐데, enum class라면 반드시 static_cast<int>( EnumClass::ENUM_VALUE ) 라고 길게 지정해 줘야 하게 된 것이다. type safety가 강화되었다.

Java에도 enum이 있긴 하지만, 후대인 Java 5에서 추가로 도입된 물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도 상수 명칭을 선언하는 용도로는 재래식 static final int 뭉치가 더 많이 통용돼 왔다.
같이 도입된 건지 또 나중에 추가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Java에도 enum class라는 게 존재한다. 그런데 이건 C++과는 관점이 전혀 다른 재미있는 물건이다.

public enum Planet {
    MERCURY (3.303e+23, 2.4397e6),
    VENUS   (4.869e+24, 6.0518e6),
    EARTH   (5.976e+24, 6.37814e6),
    MARS    (6.421e+23, 3.3972e6),
    JUPITER (1.9e+27,   7.1492e7),
    SATURN  (5.688e+26, 6.0268e7),
    URANUS  (8.686e+25, 2.5559e7),
    NEPTUNE (1.024e+26, 2.4746e7);

    private final double mass;   // in kilograms
    private final double radius; // in meters
    Planet(double mass, double radius) {
        this.mass = mass;
        this.radius = radius;
    }
   (... 이후 생략)
}

이렇게, enum {} 내부에는 명칭들을 쭈욱 쓴 뒤, 세미콜론을 찍으면 명칭 나열을 종결할 수 있다.
그 뒤, 다음부터는 클래스를 선언하는 것처럼 public이니 private니 어쩌구 하면서 멤버 함수와 멤버 변수를 쓰면 얘는 enum의 탈을 쓴 평범한 클래스가 된다.

허나, 이 enum 클래스는 new 연산자를 사용해서 임의의 인스턴스를 만들 수 없다. 이 enum의 인스턴스는 저 명칭으로 선언된 녀석들만이 허용된다. 그래서 enum 명칭을 선언과 동시에 저렇게 생성자 함수에다 전할 인자를 ()로 지정할 수 있다. 우와~~~

즉, 일반적으로 enum 명칭들은 0 1 2 3  같은 숫자의 alias에 불과한 반면, enum class는 각각의 명칭들이 이 클래스의 붙박이 인스턴스가 된다는 것이다.
enum은 상수를 나타내는 만큼, enum 클래스는 멤버들도 다들 final로 선언해서 실행 중에 값이 변경되지 않는 속성을 지정하게 하는 편이다.

enum 명칭이 하나밖에 없으면..?? 얘는 자연스럽게 이 클래스의 싱글턴/단일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Java의 enum class는 싱글턴을 만드는 정석 디자인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생성자를 private로 감추는 등 별별 쑈를 해도 serialize나 reflect 같은 꼼수를 통해 싱글턴 객체를 여러 개 만드는 게 가능한 반면, enum class는 언어 차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보증된다.

정말 신기한 용법이다. C++의 enum class는 클래스처럼 취급되는 enum이지만, Java의 enum class는 enum처럼 생긴 클래스라고 볼 수 있겠다.

3. 이름이 붙지 않은 일회용 함수/클래스

2000년대 이후부터는 C++, C#, Java 같은 주류 프로그래밍 언어에 객체지향뿐만 아니라 함수형이라는 패러다임이 도입되었다. 덕분에 중괄호 {}로 둘러싸인 코드를 통째로 변수에 대입한다거나, 심지어 함수의 인자로 일회용으로 익명으로 전하는 게 가능해졌다. 인자를 받아서 리턴값을 주는 코드의 묶음이지만 굳이 함수의 형태로 선언· 정의하고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클래스까지 이렇게 간편하게 선언해서 그 인스턴스를 넘겨줄 수 있다.
Java에서 무슨 이벤트에 대한 handler나 listener를 인자로 넘겨줄 때, new XXXX { } 이러면서 객체 선언과 새 파생 클래스 선언과 주요 함수 오버라이딩을 한번에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름 없는 함수나 이름 없는 클래스는 태생적으로 이름이 필요한 요소를 언어의 문법 차원에서 구현할 수 없다.
람다 함수는 자기 자신을 호출하는 재귀호출을 구현할 수 없다.
그리고 이름 없는 클래스는.. 정말 웃기게도 컴파일러가 기본 생성해 주는 것 말고 자신의 독자적인 생성자와 소멸자를 가질 수 없다. =_=;; 흠..

C++은 Java처럼 저렇게 함수 인자에서 새 파생 클래스를 즉석에서 만드는 것까지 지원하지는 않지만.. 새 클래스를 선언할 때 이름을 생략할 수 있다. 이건 반대로 Java에서 지원하지 않는 문법이다.
이름 없는 클래스나 함수를 만드는 게 가능하니 이름에 의존하지 않고 생성자· 소멸자나 함수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방법이 있긴 해야 할 텐데.. 이건 그냥 언어 차원에서의 한계로 남겨 두려는가 보다.

참고로 C++은 이름 없는 namespace라는 것도 지원해서 얘는 C의 static의 상위 호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이 영역에 선언되는 함수나 변수는 다른 번역 단위에서는 인식되지 않는 private한 물건이 된다.
그 밖에 이름 없는 구조체· 공용체도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오프셋 보정을 위해 크기(자리)만 차지하는 용도이고 실제로 쓰이지는 않는 멤버에 대해서도 이름을 생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27 08:35 2023/06/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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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천의 계곡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6~7시쯤부터 이미 햇볕 열기가 느껴지고 추위가 풀리는 듯했다.
여기는 밤과 새벽에는 어제의 한탄강 주변보다 더 추웠고, 아침에는 거기보다 더 빨리 따뜻해진 것 같았다.
이 좋은 곳에서 더 오래 머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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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주변은 경치가 정말 멋지긴 한데, 7년 전에 가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특별히 사진을 더 찍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한적한 화천-양구 일대에서 월요일 평일 아침을 맞이하다니.. 이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평화의 댐은 국가 기간 시설인 댐, 그것도 위험한 최전방에 있는 댐인 관계로, 주변 아무 데서나 호락호락 캠핑을 할 수는 없댄다. 아래의 강 주변에 오토캠핑장 정도나 있고, 여기에는 사람들이 여럿 이미 캠핑 중이었다.
본인은 거기를 지나서 더 북쪽으로 더 가 봤는데.. 여기서 그만 지상락원을 발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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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천미 계곡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양구라고 한다. 예전에는 민통선 안에 있었는데 피서 관광 수요 때문에 민통선이 더 북으로 물러나는 걸로 개정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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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처럼 맑고 시원한 물, 아니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제일 깊은 웅덩이에는 물이 가슴 정도까지 찼다. 바닥은 진흙이 아니라 깔끔한 자갈이었다.
나름 자동차로 접근하기 좋고, 주변에 깔끔한 화장실도 있어서 1박 정도 하기에도 좋았다.

난 여기서 물놀이를 하고 그늘에서 좀 쉬면서 2시간 정도 머물렀다. 여기에 있으니 정말 행복했다.
그러고 보니 '두타연'이라는 곳이 그렇게도 유명하다는데, 그건 여기보다도 동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 나오는 듯하다. 난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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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음으로는 서남쪽으로 화천과 춘천 사이에 있는 사창리 마을로 향했다. 거기로 가는 길도 북한강을 따라 호수도 나오면서 경치가 아주 아름다웠다.
7년 전에 지나쳤던 화천댐을 다시 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쪽 파로호 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갔다.
강변 도로를 벗어난 뒤엔 철원-화천-양구 못지않게 굽고 가파른 산길이 이어져서 운전이 아주 재미있었다(국도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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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리에 도착해서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인터넷을 확인하고 노트북을 충전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음식과 취사 도구를 잔뜩 챙겨서 캠핑지에서 밥을 해 먹는데, 나는 그러지 않고 오지 캠핑지에서는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잠만 잤다. 먹고 마시는 보급은 마을에서 한다. ^^

벌써 셋째 날 오후가 됐으니 이제는 포천· 서울 방면으로 발길을 돌렸다(지방도 372).
내비 지도에 나와 있지도 않은 작은 개울이 길 옆으로 계속 지났는데, 아니나다를까 광덕 계곡이라는 게 있었다. 여기도 맑고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고 천미 계곡 만만찮게 환상적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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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난 이런 걸 보면 정말 환장한다. ^^ 지상락원 2인 듯..
내려가서 접근하기가 좀 빡셌지만, 난 그런 건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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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당장 내려가서 물놀이를 하고, 바위에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며 좀 쉬었다.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자연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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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 계곡을 지난 뒤에도 계곡 내지 개울물이 길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는 백운 계곡이라는 곳도 지났는데, 여기서는 물놀이를 하지는 않고 구경만 하고 넘어갔다. 여기는 주변에 식당도 이미 많이 들어서 있어서 자연을 즐긴다는 느낌이 훨씬 덜 났다.

이렇게 계곡 구경을 실컷 한 뒤, 포천으로 가는 국도 47에서 오랜만에 속도를 냈다. 시속 80 이상을 밟아 보고 신호 대기와 도로 정체를 보는 게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철원이나 화천에 비하면 서울과 많이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집에서 여전히 60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5시 반쯤엔 길가의 중국집에서 밥을 사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오늘의 최초이자 유일한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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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보니 포천천이라는 강이 있었다. 차를 세울 수 있고 한적하고 강가에 접근도 어렵지 않아 보이니, 오늘 밤엔 여기서 텐트를 쳤다. 아침에 봤던 맑은 계곡에 비하면 수질이 아쉽지만, 이렇게 외박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해가 지자마자 좀 일찍 잠들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새벽 1시쯤에 눈을 떴다. 텐트를 철거하고 차로 돌아와서 곧장 서울로 귀환했다. 구리-포천 고속도로(29)에서 시속 150 가까이 밟으며 잘 달렸다.

이상이다. 이렇게 중북부 전방 지상락원 여행을 잘 마쳤다.
지난 2021년과 2022년은 우한 괴질 창궐과 몇몇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여름에 장거리 여행을 못 했다. 그냥 양평이나 영종도 정도나 다녀오고 말았는데..
이제 올해는 장거리 여행을 가고 그것도 몇 차례에 나눠서 갈 생각이다. 올 7~8월 사이엔 몇 년 동안 못 갔던 강원도 동해 바다에 다시 가 보련다.

계곡이 너무 아름다워서 은퇴하고 나서는 화천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진지하게 들었다.;; 여기서 호박 농사 짓고 애완용 멧돼지도 키우는 걸로.. ^^

Posted by 사무엘

2023/06/24 08:35 2023/06/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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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았다 뜨니 이튿날 새벽 5시 반이었다. 텐트에서 잘 자긴 했는데, 이 시간엔 날씨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쌀쌀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난 침낭을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텐트 밖으로 나가니 지금이 무슨 10~11월은 된 것 같았다. 그나마 텐트 안은 바깥보다 훨씬 더 따뜻해서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지낼 만했다. 극과 극인 일교차를 다시 실감했고, 시원한 여기까지 찾아간 보람을 느꼈다.

철원에는 한킹을 사용하는 말보회 계열 지역교회가 있더라. 일요일이니 본인은 거기 가서 예배에 참석했다.
언뜻 본 기억으로 온 사람이 20여 명 정도 온 것 같았다. 이 시골에 이런 마이너한 교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목사님 부부를 포함해 교회 사람들이 본인을 아주 반갑게 환영하고 맞이해 주셨다. 목사님 부부는 평일에는 다른 생업이 있으신 듯했으며.. 사모님이 아주 당차고 믿음이 굳건하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들이 아니라 딸이 있어서 예배 때 플루트를 부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교회에서 오전· 오후 예배에 참석하고 점심을 먹고 노트북 배터리도 든든히 충전했다.
여기 근처에 박 정희 대통령의 군 전역 기념 공원(현재 명칭은 군탄 공원)이 있다고 해서 잠시 들른 뒤, 다음으로 동북쪽 화천 방면으로 길을 떠났다(국도 5).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이 유명한 말을 한 곳이 여기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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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이렇게 생겼고 넓은 풀밭이 잘 꾸며져 있었다. 국도 43호선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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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쪽 구석에 이렇게 박 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조형물--동상, 기념비, 친필 석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박 정희 기념관 방문 같은 체험을 하고 가는구나. ^^.

(그나저나 박 정희도 그렇고 나중에 전 두환도 그렇고.. 이 사람들은 현역 시절에 유의미하게 복무한 계급은 투스타 소장이다. 중장은 몇 달 정도만 달고 있다가 대장으로 진급하고, 그러고 나서 거의 직후에 전역했다. 그래서 최종 계급은 다들 포스타인데..
장군 계급장이 무슨 병 작대기 계급장도 아니고 뭐냐..;; 전역하는 달 내지 당일에 병장 달아 주고 전역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다. -_-;; )

3. 철원-화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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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탄 공원을 둘러본 뒤, 본인은 국도 43호선을 타고 북쪽 끝까지 이동했다. 길은 저렇게 전형적인 좁은 시골길 모양이었다.
9년 전에는 제일 동쪽 끝까지 갔던 게 전선 휴게소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동쪽이다.

그런데 국도 43에서 국도 5로 갈아타는 길목이 민통선으로 막혔고 더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쪽으로 도로 후퇴해서 국도 56을 타고 막힌 구간을 우회한 다음에야 국도 5의 화천 방면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예기치 못한 삽질을 좀 했다.
서쪽의 지방도 464도 일부 구간이 민통선으로 막혀 있는데.. 여기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걸로도 모자라서 철원과 화천을 왕래하는 국도 5호선 산길도 통째로 다 민통선 안이다.
하지만 여기는 외지인은 자기 연락처를 알려준 뒤, 임시 통행증을 받아서 단순 통과 정도는 할 수 있었다. 30분 안으로 건너편 초소에 도달해서 통행증을 반납하란다.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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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근남면 마현리 마을이 바로 이 민통선 안에 있더라. 아아..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조국 강산의 가장 중심된 이 농토가 누구의 피땀으로 가꾸어졌는가를.
울진에서 발생한 태풍 사라의 수재민 66세대가 1960년 4월 7일 (4 19 의거 직전이었군!! 인생 한번 참 타이밍..)
이 땅에 입주하여 고달픈 천막 생활과 허기진 배를 주리며
피땀으로 얼룩진 괭이와 호미로 6· 25 동란 이후 버려졌던 황무지를 옥토로 가꿨던 것이다"

저 때는 울진이 강원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강원도지사의 재량으로 철원 이주가 가능했다.

그랬는데, 일단 저기 가면 지원 많이 해 주겠다는 약속이 정권이 바뀌면서 전부 나가리 났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입주했던 첫 세대들이 새 되고 피똥 싸는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건 기념비 옆에 선 내 모습 사진도 남기고 싶었으나, 동승자도 없고 주변에 다른 사람도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기념비의 뒤에는 실제 입주했던 66세대의 세대주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위령탑도 뒤를 보면 순직자 77인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데, 이와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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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은 이렇게 생겼더라. 마현 초등학교라는 학교가 있기도 했으나, 이건 이미 15년도 더 전에 폐교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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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했는데.. 오오, 금성 지구 전투 전적비가 있었다. 저거 6 25 사변 중 최후의 고지전 전투가 아니었던가? (중공은 오늘날까지도 이 전투에서 국군과 UN군을 꺾은 걸 대대적으로 자랑하고 선전한다)

잠깐 차에서 내려서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었다.
옆에 웬 탱크도 하나 전시돼 있어서 둘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차량 번호 oooo 운전자 김 용묵 선생님이시죠?" / "네 그렇습니다" (왜??? 차 빼달라는 연락도 아니고 뭐지??)
"xx시 xx분경에 yyy초소를 통과하시고 지금 전차 옆에 서 계시죠?" (헉 뭐야)
"CCTV로 보고 말씀드리는 건데요. 정차하고 차에서 내리시면 안 돼서 연락드립니다"
(으악) "아.. 전적비가 하나 있어서 구경 좀 하고 있었는데.. ㅠㅠㅠ 네 알겠습니다."

웬 또랑또랑한 여자 목소리로 이런 얘기가.. 게다가 유선 전화도 아니고 010 개인 핸드폰 번호이던데 말이다.
너무 놀라서 탱크 사진은 찍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차로 돌아갔다. ㄷㄷㄷㄷㄷ
작년쯤에 버스 정류장 안에서 마스크 써 달라는 방송을 듣고 화들짝 놀랐던 거 이래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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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 전적비의 근처에는 이렇게 순직 군장병 위령비? 추모비가 있었다.
지난 1996년 7월 26~27일 사이에 여기 일대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고, 특히 산사태가 병영을 덮쳤던가 보다. 이 때문에 군인이 23명이나 순직했다고 한다. 병뿐만 아니라 간부도 여럿 희생됐다.
직장 사람 중에 공교롭게도 그때 저 지역에서 군복무를 해서 저 사고를 어깨 너머로 직접 들은 사람도 있었다.;;

이 추모비는 저 전화가 오기 전에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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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겪은 뒤, 5시 반쯤에 화천의 산양리 마을에 도착했다.
그 전에 마현리가 너무 길게 계속되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철원 근남면 마현리와 화천 상서면 마현리가 서로 인접해 있다고 한다. ㄲㄲㄲㄲㄲ

동서울 터미널에서 행선지 이름으로만 봤던 '산양리'를 실제로 구경하다니!!
주변엔 식당, 편의점, PC방과 버스 터미널이 있어서 나도 캠핑을 앞두고 음료수와 간식을 샀다. 일요일 저녁이다 보니 휴가 마치고 복귀하는 듯한 군인들이 아주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여기는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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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동쪽으로 가려면 지방도 460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그러려면 남쪽의 읍내까지 가야 했다. 읍내에는 북한강이 거의 중랑천과 비슷한 강폭으로 흐르고 있어서 경치가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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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화천과 양구 사이의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산길.. 그 이름도 유명한 지방도 460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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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과 긴 터널을 지나서 한참을 달린 뒤에야 7년 전에 들른 적이 있는 '해산 전망대' 공터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한구석에 텐트를 치니 시간은 7시 반이 넘어 있었다.
산 속에서 해가 지니 조용하고 적막하고 으스스한 데다 쌀쌀하고 춥기까지 했다. 하지만 텐트 안은 바깥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늑했다.

이 뜻깊은 장소에서 캠핑을 하게 되니 너무 행복했다. 텐트로도 모자라서 침낭까지 뒤집어쓰고 눕는 이 편안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물가와는 달리 여기는 차와 텐트가 가깝고, 이동할 때 수직 이동이 없어서 더 좋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21 08:35 2023/06/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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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말

본인은 지난 4월 말에 경기도 광주 일대를 다녀온 뒤, 이 달(6월) 초엔 우리나라 중북부 전방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6일 현충일이 화요일이어서 징검다리 연휴가 있었는데, 마침 직장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사람은 전날 월요일에도 자기 연차를 써서 다들 쉬라고 사실상 전사 휴무 조치를 내렸다.

이에 본인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 새 버전이 나온 것도 기념할 겸, 6월 3일 토요일 아침에 집을 출발했다. 가평-춘천-철원-화천-포천의 순으로 동선을 짜서 6월 6일 현충일 아침에 집에 돌아왔다.

원래는 이번 여행에서 연천을 답사하고 싶었다. 태풍 전망대와 함께 횡산리 민통선 마을을 구경하고, 상승 전망대와 함께 제1 땅굴 관련 전시물을 관람하려 했으나.. 저기는 방문하는 게 좀 므흣해 보였다.
단체 안보 관광 패키지가 있지도 않으면서 동승자가 전혀 없는 1인 단독 방문은 번거로워서 그런지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는댔다. 그래서 지금 내 처지로는 방문하기가 좀 난감해서 이번에는 보류하게 됐다.

이번 여행에서는 서쪽 연천 방향 대신, 동쪽 양구 방향으로 더 다녀왔다. 그런데 이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2016년 강원도 여행과 약간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벌써 7년이나 전 일이고 저기는 얼마든지 다시 가 볼 가치가 있었다.
사실, 철원에도 지난 2014년에 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무려 9년 전 일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때와 전혀 겹치지 않는 곳만 들렀다. 이런 식으로 이번 여행은 예전의 여행을 많이 보완하면서 더 즐거운 추억을 내게 남겼다.

1. 가평 남이섬 + 춘천 시내

2010년 직장 워크숍 이후 13년 만에 남이섬에 다시 가 봤다. (그때는 경춘선 전철조차 아직 없던 옛날이었..)
개인적으로는 남양주를 넘어 가평과 춘천까지 열차가 아니라 자가용 운전으로 가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속도로(60) 대신 수석-호평 고속화도로, 국도 46 등 다양한 도로를 타면서 갔다. 이른 아침부터 차가 생각보다 아주 많고 길도 좀 막힌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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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주변의 북한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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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중앙의 메타세콰이어길과 꼬마열차 철길밖에 본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섬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고 중앙의 숲과 풀밭까지 다시 돌아다니면서 모든 구역을 꼼꼼히 살펴봤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2시간 반이 걸렸으니 오전 시간 전체를 여기서 보냈다.
남이섬은 둘레가 4~5km, 면적은 0.46제곱km에 달한댄다. 0.3제곱km 남짓인 마라도보다도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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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하늘이 맑고 파랗고, 더워도 딱 적당하게 기분 좋게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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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다. 숲길, 풀밭, 흙길 등 여러 주제별로 생태 공원을 아주 잘 꾸며 놓아 있었다. 중앙에는 물론 카페와 공연장도 있어서 도떼기시장 같은 곳도 있다.
직접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동 수단도 꼬마열차뿐만 아니라 짚라인, 공중 레일바이크, 자전거, 전기차로 정말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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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 이런 것도 예전부터 하고 있었나? 한쪽 구석에다가는 숙박업까지 시작했는지 아예 투숙객이 하룻밤 자고 가는 용도인 팬션과 호텔 객실도 지어져 있었다. 언젠가 나중에 나도 이용해 보고 싶다. =_=;;
아니면 돗자리 정도라도 가져갔으면 유용하게 썼을 텐데.. 옛날 기억이 너무 오래돼서 섬을 실제 크기보다 너무 작게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아침 9시 무렵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섬이 아주 한산한 편이었다.
그러나 11시쯤 되자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본인이 퇴장할 때쯤엔 관광객이 수백 명씩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었으며, 주차장은 관광버스들로 꽉 차 있었다. 역시 아침에 좀 일찍 출발했더니 이후의 모든 일정이 더 순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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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닭갈비가 그렇게 유명해졌나 모르겠다. 마치 마라도가 짜장면이 유명해진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말이다. =_=;;
남이섬에서 춘천 시내로 들어가는 길도 일일이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바깥 경치가 대단히 좋았다. 산과 강, 호수, 댐이 가득했고 길도 고가 교량 아니면 오르막 내리막 언덕 형태였다.

닭갈비는 다 똑같은 닭갈비인 것 같은데 유명 맛집은 그래도 뭐가 다른 것 같았다. 정규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2~3시에도 주차장에 차들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예약 대기가 넘쳐났다. 이 식당은 낮 시간대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게 없겠구나 싶었다.

뜬금없는 얘기이다만, "토평 IC"라는 표지판을 보니까 자꾸 토익 TOEIC이 떠오른다. 이것도 강박관념인가? -_-;;;
그리고 춘천이 호반의 도시가 아니라 호박의 도시라고 기억됐으면 좋겠다. ㅋㅋㅋㅋㅋㅋㅋ

2. 철원에서

이렇게 가평· 춘천을 찍은 뒤,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철원으로 향했다. 포천을 거쳐서 철원으로 가는 길(국도 37, 43)은 큰 특징 없이 평범한 4차선 국도 위주였다.
저녁 5시쯤엔 포천 영중면의 38선 휴게소라는 곳에 도착해서 여기 풀밭에서 돗자리를 깔고 쉬고, 가져온 간식을 좀 먹었다.

그 뒤 날이 슬슬 저물어 가는 시간대에 철원의 남부 지역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고 근처에 한탄강이 지나는 곳을 무작정 찾아서 서쪽으로 갔는데, 교량 아래로 아주 멋진 낚시터 겸 캠핑용 공터가 있었다. 이미 낚시 중이거나 텐트를 친 사람도 몇몇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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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정말 시원스럽게 많이 흐르고 있고 유속이 빨랐다. 모든 것이 좋았지만 물이 흐리고 탁하고 별로 맑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물놀이는 못 하고 그냥 텐트 치고 물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탄강을 제대로 즐기려면 동송읍 방면으로 최소한 고석정 정도 되는 상류를 찾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동선은 그쪽이 아니다 보니 그리로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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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하루 종일 돌아다닌 것 때문에 피곤했는지 금세 잠들었다. 사실, 철원으로 가던 중에도 운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졸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텐트 안도 많이 더웠지만 밤 11시가 넘어가니 이제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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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이런 폭포 비스무리한 것도 있던데..^^
이렇게 첫째 날엔 그 유명한 철원 한탄강 부근에서 숙박을 했다. 좀 더 북쪽 상류로 가서 고석정 근처에서 캠핑을 했으면 경치가 더 좋았을 것 같긴 한데.. 그건 좀 아쉽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18 08:35 2023/06/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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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합성

대변은 소변과 달리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배설물이 아니라는 건.. 뭐 초· 중학교 수준의 상식이다.
그 뒤 생물에 대해서 공부를 쪼금 더 하면.. 동물이 아닌 식물에 대해서도 직관적이지 않은 의외의 사실을 하나 배우게 된다.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이산화탄소(+ 빛, 물)를 흡입하고 산소와 양분을 만들기는 하는데,
그 산소 O2는 이산화탄소 CO2를 구성하던 산소가 아니라는 거. 물을 구성하던 산소이다.

길바닥에 채일 정도로 널리고 흔해 빠진 잉여 잡초라 할지라도, 초록색 잎이 달린 놈들은 기본적으로 저런 작용을 하는 최첨단 생체 기계이다. 물과 공기(이산화탄소)와 햇볕만으로 산소와 포도당을 만들어 주는 생체 기계가 없다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당연히 생존할 수가 없다.
물론 잡초는 그 생산량 규모가 거의 자가생존이나 가능한 정도이고, 농작물 대비 극히 보잘것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식물의 잎이 누렇게 시드는 건 그 첨단 생체 기계가 녹슬고 고장 나서 광합성을 못 하게 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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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은 명반응과 암반응이라고 나름 프론트 엔드와 백 엔드의 구분까지 있다. 프론트 엔드에서 물과 빛이 쓰이고(산소 생성), 백 엔드에서 이산화탄소가 동원된다(포도당.. 탄소 고정!). 백 엔드가 수행되기 위해서는 프론트 엔드의 결과물(ATP, NADPH)이 필요하다.

암반응의 구체적인 원리는 무려 20세기가 돼서야 규명됐고, 특별히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신학의 칼빈주의...가 아니고 '칼빈 회로'라고 불린다.
글쎄, 휘발유 엔진과 디젤 엔진 중에서 디젤만이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것처럼.. 광합성은 프론트와 백 중에서 백 엔드에 대해서만 사람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열기관 쪽에서는 '카르노 순환'이라는 개념이 있기도 한데.. 순환이건 회로건 영어로는 똑같이 cycle이다.

암반응 원리를 규명한 멜빈 캘빈은 그 공로로 1961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참고로 바로 이듬해 1962년에 왓슨과 크릭이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다는 걸 생각해 보자. DNA 구조 발견하고서 10여 년 만의 일이다.

통상적으로는 물을 전기 분해하기 위해 드는 에너지가, 그 부산물로 나온 수소가 내는 에너지보다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소는 그냥 천연가스처럼 석유를 캐면서 덤으로 얻는 지경이며, 수소 연료전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를 탈피했다고 보기도 민망하다. (종이 빨대가 친환경적인 것만큼이나??ㄲㄲ)

그런데 식물은 물을 증발만 시키는 게 아니라 '광분해'를 통해 어째 아예 분자 차원에서 산소-수소로 분해까지 시키는지? 참 신기한 일이다. 물론 스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 메커니즘을 기계의 동력원으로 바로 적용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탄소 고정은 광합성 암반응을 통해 녹색 식물이 보편적으로 행한다. 그러나 질소 고정은 아무 식물이나 못 하기 때문에 식물도 생장을 위해 일부 특수한 박테리아나 비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가 학창 시절에 지리 역사를 얼마나 싫어했는데 뒤늦게 관심이 생긴 건 철도 때문이다.
내가 학창 시절에 생물을 얼마나 싫어했는데.. >_< 뒤늦게 관심이 생긴 건 호박 때문이다. ^^

2. 식물에게 물 잘 주는 요령

-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물이라는 건 식물의 광합성에서 암반응이 아니라 명반응 때 쓰인다. 이를 감안하면 물은 햇빛이 비치는 아침이나 낮에 주는 게 좋다.

- 흙의 물기가 마를 겨를이 없을 정도로 찔끔찔끔 자주보다는.. 적당히 간격을 뒀다가 한번 줄 때 많이 주는 게 좋다. 이러는 게 식물이 물기를 찾아 뿌리를 내리는 동기도 부여하고 좋다.
식물마다 케바케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원칙은 식물 주변의 흙이 바짝 말랐다 싶으면 주면 된다.

- 다만, 일단 줄 때는 무식하게 끼얹지 말고 넓은 면적에 살포시 주는 게 좋다. 물뿌리개라는 물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게 사람이 음식 먹는 것에다 비유하면 꼭꼭 씹어서 천천히 삼키는 것과 같다.

- 자연에서 내리는 비는 자연재해급의 폭우가 아닌 한, 위의 두 원칙에 충실한 기상 현상이다. (한번 내릴 때 많이, 내릴 때는 살포시) 식물에 물 주는 것도 비가 더 자주 내려 주는 것과 비슷하게 수행하면 된다.

- 특별히 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녀석들 말고 일반적인 육상 식물은 육상 동물과 마찬가지로 익사할 수 있다. 감당을 못 할 정도로 물을 너무 많이 줘 버리면 뿌리가 숨을 못 쉬어서 죽는댄다. -_-;; 아니면 축축한 거 좋아하는 곰팡이가 도져서 병충해를 입기도 한다.
직업 농사가 아니라 취미로 식물 가꾸는 사람들은 물을 안 줘서가 아니라 물을 너무 많이/잘못 줘서 식물을 죽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 식물이 잎이 축 늘어지고 기공을 닫고 있는 건 체내의 물이 부족해서 물을 증발시키는 걸 중단했다는 뜻이며, 이는 광합성을 못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때는 당연히 물을 줘야 한다.
근데 내 경험상 그냥 낮 기온 30도 이상으로 너무 더울 때도 이러고 있기도 한다. 이때는 물을 더 줘도 별 소용 없다. 축 늘어져 있는 게 언제나 죽기 직전 위급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저녁이 되면 다시 잎이 살아난다.

- 그리고 물을 줄 거면 뿌리 부위에다 직격을 하는 게 좋다. 뙤약볕이 내리쬘 때 잎이 물을 맞아서 잔뜩 젖으면.. 물방울이 돋보기처럼 햇볕을 한데 모아서 잎을 미세하게나마 태우고 상처를 낸다. 그리고 그런 물기가 잎에 흰가루 같은 곰팡이성 질병을 야기하기도 한댄다.
비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잎을 젖게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비가 내릴 때는 뙤약볕이 내리쬐지는 않으니 저런 문제가 없다. ㄲㄲㄲㄲㄲ

식물은 햇볕이 너무 강할 때 동물처럼 자외선 맞아서 표면이 타고 조직이 상하는 건 없나 궁금했는데.. 저런 사정이 있구나.;;;
사람도 너무 덥고 맹렬한 뙤약볕 아래에서 물놀이를 하면, 물이 더위는 식혀 주지만 자외선은 더 잘 투과시켜서 피부를 태운다고 어디서 봤던 거 같다.

-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예전에 가뭄이 너무 심했을 때 아침 11시부터 저녁 5시인가 대낮에 집 잔디밭에 물 주는 걸 금지했다.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단속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매겼다고..
그 시간대엔 물을 줘 봤자 곧 증발해 버리고 물 낭비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식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물 절약을 위해서 저런 고육지책을 시행했던 것이다.

3. 호박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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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자라게 하는 건 역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강한 햇볕과 충분한 비.. 요 둘인 것 같다.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로 상당히 더워진 5월 말쯤부터 내가 키우던 호박들이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길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거의 괴물 수준으로 잎이 커지고 줄기가 굵어졌다. 길이가 30~40cm에 달하는 잎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고 황홀했다. 그리고 이제 좀 덩굴이 옆으로 길게 뻗으려는 기미가 보였다.
종자나 모종을 따로 구매해서 심은 게 아니라, 늙은호박을 사 먹고 안에 있던 씨를 파묻었을 뿐인데.. 심은 지 50일 남짓한 기간 만에 참 많이도 컸다. ^^

호박은 (1) 힘줄 같은 굵직한 흰 줄무늬가 그려진 잎, (2) 가시인지 털인지 까칠까칠하게 난 줄기, (3)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열매가 매력이다. ^^
다만, 한 줄기에서도 줄무늬가 있는 잎과 없는 잎이 동시에 돋는 것 갈다. 그리고 줄기도 처음에는 아무 특징이 없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저렇게 털이 돋고 까칠해지고 확 굵어진다. 그러다가 나중에 뿌리 부근의 줄기는 뭔가 나무처럼 딱딱하게 굳기도 하는 것 같다. 성장 양상이 생각보다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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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호박잎을 먹기 위해서 뜨거운 물에 데치고 나면.. 이런 흰 힘줄이 없어지는 것 같다~! 표면이 다 시퍼래진다.)

호박을 그저 자라는 비주얼만 볼 게 아니라 열매를 제대로 얻을 목적으로 키우려면.. 뭔가 잘라내고 없애는 것도 적절히 해야 한댄다. 다음과 같이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 처음에 싹이 너무 조밀하게 많이 났을 때, 가망 없는 것들은 솎아내야 한다.
  • 그리고 줄기랄지 순이랄지.. 이것도 마냥 방치하지 말고 어떤 거는 잘라내야 한댄다.
  • 잎만 무성하게 너무 많이 자라면 그것도 잘라내야 한다. 내 경우, 위의 다른 잎들에 가려져서 어차피 햇볕을 많이 못 받는 것 위주로 잘라서 데쳐서 먹곤 했다.

잎이 광합성을 위해서 필요하기는 한데, 너무 많으면 이것도 잎이 소모하는 영양분이 잎이 만들어 내는 영양분보다 더 많아져서 효율이 떨어진댄다. 도대체 어떻게 수위를 조절해야 '적당히'인지.. 이게 참 알기 어렵다.
호박을 마냥 영양성장만 하게 놔두지는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생식성장을 해야 작은 덩치에서도 꽃과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끝으로.. 영양분이라도 너무 진한 액기스를 희석 없이 직통으로 내리꽂는 건 동물· 식물을 막론하고 좋지 않다. 그건 오히려 식물을 말라죽게 만든다. 소변을 식물에게 바로 뿌리는 게 이래서 좋지 않으며(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동급), 비료는 식물 뿌리에 직접 닿지 않게 줘야 한다.
그에 비해 호박은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고, 처음에 심을 때 아예 퇴비에 파묻은 채로 심기도 한다는데.. 다른 식물들보다는 이런 데에도 더 강한 것 같다.

4. 나머지 얘기들

(1) 육지의 아마존 밀림보다도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과 바닷말들이 산소 생산에 기여하는 게 더 많다고 한다. 어떻게 측정한 것이고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바닷말은 엽록소가 있고 광합성을 함에도 불구하고 식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는데 말이다.
그렇게 산소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바닷물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녹여서 보관해 줌으로써 온실효과를 억제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라는데.. 이거 고삐가 풀려서 지구가 불지옥 행성으로 바뀌는 상황을 가정한 SF물이 벌써 15년 가까이 전에 발표됐던 만화 "호텔"이다.

(2) 비가 엄청 많이 내려서 주변이 물바다가 된 것 같은데,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쬐면 기껏 떨어졌던 빗물이 삽시간에 증발해서 도로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지구에서 물의 순환이란 걸 생각하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물이 '열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버퍼, 매체로서 지구에 기여하는 바는 실로 막대하다.

그나저나 그늘은 양지 100% 대비 태양열 몇 %만 받고 햇빛은 몇 %만 받으며, 식물의 생장 효율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지 궁금하다. 수성은 태양에서 그렇게도 가까이 있는데도 뒷면 등짝은 -100도대까지 내려간다고 하지 않은가? 물론 거기는 수증기나 공기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온도가 널뛰기하는 거다. =_=;;

(3) 사람이 없어도 2~3일 간격으로 알아서 옆의 식물에다 물을 뿌려 주는 타이머 물컵 같은 거.. 역시 검색해 보니 없을 리가 없다. ^^ 애완용 식물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 이런 게 장사가 될 것 같다.
실내 말고 실외 텃밭에서도 쓸 수 있게.. 기능은 좀 적어도 좋으니 더 싸고 많이 도입할 수 있고 악천후 속에서 신뢰성이 더 강한 녀석이 있으면 좋겠다.

(4) 동물 쪽은 곤충, 식물 쪽은 잡초..가 정말 인류로 하여금 오랫동안 자연 발생설을 믿게 만든 원동력임이 틀림없다.. ^^

Posted by 사무엘

2023/06/15 08:36 2023/06/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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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혼자 올라가서 텐트 치고 자는 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요런 이야기들은 밤에 혼자 캠핑 중에 진지하게 읽어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ㅎㅎ

1. 1959년 2월, 소련 디아틀로프 사건

같은 대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20대 초반의 청년 10명(남8 여2)이 한겨울에 얼추 2주 일정으로(1/28~2/12) 우랄 산맥 종단 산행을 떠났다. 이 사건의 이름 '디아틀로프'는 이 산악팀의 리더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들은 스키도 챙기고 아주 화기애애하게 출발하려 했는데.. 일행 중 딱 한 명이 출발 직전에 감기에 걸렸는지 두통과 고열 증세를 보여서 팀에서 빠졌다. 그 상태로 혹한기 산행을 강행했다간 몸을 더 망칠 우려가 있으니 아쉽지만 출발지에 남았다.

산행 5일차이던 2월 1일, 예정 경로인 산 쪽에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낙오된 그 사람(유리 유딘)은 등산 중인 친구들에게 안부 무전을 날려 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텐트 치고 휴식 중이다. 아무 이상 없음"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러나 2월 1일자 무전이 마지막 연락이 되고 말았다. 바로 다음날부터 이들과는 연락이 영원히 끊어졌으며, 그들은 2월 12일 이후에도 귀환하지 않았다.

결국 실종 신고가 들어갔고 20일부터는 거기 일대로 수색이 시작되었다. 사태가 심각하니 군· 경 합동에 항공기까지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수색했다.
기록에 따르면 2월 26일이 돼서야 찢겨지고 손상된 채 버려진 텐트가 발견됐고, 그로부터 반경 1.5km나 떨어진 다양한 지점에서 멤버들의 시신 5구가 발견됐다. 나머지 4명은 그로부터 2개월이 넘게 지난 5월이 돼서야 더 멀리 떨어진 계곡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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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텐트가 외부로부터 공격받거나 파괴된 정황이 딱히 없이, 안에 있던 사람들이 텐트를 먼저 찢고 허겁지겁 밖으로 탈출해 나갔다. (왜??) 옷도 장비도 제대로 못 챙긴 채로 정말 황급히.. 그러다가 밖에서 다들 동사했다.
  • -20~-30도의 혹한 속에서 시신들이 다들 속옷 바람 탈의 상태였다. 나중에 발견된 4명이 먼저 죽은 5명의 옷을 더 걸치고 있기도 했다.
  • 리더인 디아틀로프는 밖에 나갔다가 이렇게 버티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텐트로 되돌아가서 옷과 장비를 더 가져오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텐트로 가던 길목에서 저체온증 때문인지 쓰러져서 숨을 거뒀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텐트를 버리고 긴급히 탈출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뒤에 왜 저렇게 괴이한 최후를 맞이했는지가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글을 쓰다 보니 이거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 사건도 선원들이 멀쩡한 배를 도대체 왜 버리고 탈출했는지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이니까 말이다.

소련 정부의 핵 실험이니 인근 원주민의 공격 같은 너무 극단적인 추측을 제끼면, 현재로서는 사건의 주범은 레알이건 낚시건 '눈사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들은 당시에 정체불명의 웅웅웅웅~ 기괴한 소음과 진동을 감지하고는 눈사태가 나는 줄 알고 한밤중에 겁먹고 뛰쳐나갔다가 변을 당한 게 아닌가 추측된다. 물론 이것도 100% 납득되는 설명은 아니고 아쉬운 점이 있지만 말이다.

건강 악화 때문에 산행을 아예 못 하고 낙오됐던 멤버 1명만이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가 됐다. "그 날 밤에 내 동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신에게 질문할 기회가 있다면 이건 정말 꼭 묻고 싶습니다.." 그는 평생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2013년에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1989년 7월, 일본 SOS 조난 사건

일본 홋카이도에 소재한 다이쎄스 산의 능선 평원에서 누군가가 자작나무 여러 그루를 베고 쌓아서 굉장히 큼직하게(글자 하나당 폭과 높이가 3~5 미터!!) SOS 문자 표시를 만들어 놓은 게 순찰 헬기에 의해 발견됐다.
그 헬기는 공교롭게도 근처에서 조난 당한 사람을 발견해서 무사히 구조는 했는데, 그 사람은 SOS 문자 표시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며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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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화면 캡처여서 화질이 별로..)
게다가 알고 보니 그 SOS 표식은 더 이전인 1987년에 촬영한 항공 사진에서도 아주 희미하게나마 찍혀 있었다. 이걸 만든 사람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표식 근처를 수색하자 1984년쯤에 조난 당했던 한 20대 남성 회사원의 유골과 유류품이 발견됐다. 유류품 중에는 “도와달라. 나는 지금 벼랑 위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라는 다급한 음성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도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유류품은 남자의 것인데 유골은 여자의 것이었고.. 비슷한 장소에서 84년에 죽은 사람의 흔적과 83년에 죽은 사람의 흔적이 서로 엇갈렸다느니 제3의 인물까지 거론되면서 온갖 괴담 미스터리가 나돌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 없고 유골 검사에 착오가 있었으며 조난 당한 사람은 남성 1명이 전부라는 반론도 있다.

정황상 어떤 불운한 남성이 산을 잘못 내려가다가 그만.. 한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수 없는 급경사 아래에 고립돼 버린 것 같다. 그는 쓰러진 자작나무들을 이용해서 며칠에 걸쳐 SOS 표식을 혼자서 굉장히 힘겹게 만들고, 도와달라는 음성 메시지를 녹음도 했다. 그러나 그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탈진해서 산에서 뼈를 묻게 됐다. 여기까지는 확실하다.

그런데 저기 주변에는 자작나무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것도 확실한 반박이 있는지? SOS 표식이 있는 곳은 진짜로 자력으로 빠져나가기 극도로 어려운 고립된 지형인 건지?
유품과 유골에 두세 명의 흔적이 뒤섞였다는 건 루머였다고 하더라도,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다. 산에서 고립된 게 무슨 바닷가 테트라포드 아래에 떨어졌거나 무슨 무인도에서 조난 당한 것 같은 느낌이다.

참고로, 1970년에 발생했던 후쿠오카 대학 반더포겔부 불곰 습격 사건이 이 다이쎄스 산의 바로 아래쪽 지역에서 발생한 거라고 한다. 이런 산은 급경사 절벽, 눈과 혹한, 거기에다 곰까지 위험 요소가 확실히 많기는 한가 보다.

3. 2014년 4월, 네덜란드 여대생 리잔-크리스 사망 사건
(정보의 출처에 따라서 리잔-크리스라고 이름을 쓰는 곳도 있고 프론-크레머르스라고 성을 쓰는 곳도 있음)

네덜란드 국적의 20대 여대생 두 명(리잔 프론, 크리스 크레머르스)이 머나먼 파나마로 졸업 여행을 떠나서는 4월 1일, 단둘이서 바루 화산 주변의 숲을 걸으며 당일치기 산행을 시작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능선이나 탐방로를 걷는 하이킹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은 당일 오후와 저녁부터 연락이 뚝 끊기고 실종되어 버렸다. 검증되지 않은 루머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민박집 강아지도 같이 데리고 갔는데.. 저녁에 강아지만 혼자 돌아왔다고 한다. ㄷㄷㄷㄷ
4월 3일에 곧장 실종 신고가 접수됐고 현지 주민들을 동원한 수색이 시작됐다. 울창한 숲 속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은 얼마 이동하지도 못했을 텐데 이 아가씨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실종된 지 10주..(2달 반!)가 지나서야 일행 중 한 명인 리잔의 배낭이 발견됐다. 산책로가 아니라 아예 인근 원주민의 텃밭 부근에서 발견됐다. 이걸 발견한 주민은 그 전날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는 배낭 같은 게 없었다고 경찰에게 증언했다.;;
배낭 안에는 리잔의 핸드폰과 현금, 심지어 여권까지 포함해 유품이 단정하게 정리된 상태로 들어있었다..!! 참, 핸드폰은 신기하게도 리잔뿐만 아니라 크리스의 것까지 같이 들어있었다.

전화기에는 하이킹을 시작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곧장 112(네덜란드의 119에 해당하는 번호)와 911에 연락하려는 시도가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전파가 잘 안 터져서 실제 교신은 실패... 이들은 생각보다 일찍 길을 잃거나 사고를 당한 것 같다. 전화기는 그 뒤로도 며칠 더 쓰이다가 각각 5일과 11일에 배터리가 나가서 꺼졌다.

카메라에는 출발 당일인 4월 1일에 평범한 셀카와 경치 사진이 들어있다가.. 4월 8일 새벽에...!! 별로 좋은 구도나 풍경이 아닌데, 의미나 의도를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숲길 사진이 갑자기 90여 장이나 아무렇게나 무더기로 찍혀 있었다. 플래시까지 터뜨리면서 이런 사진이 찍힌 이유가 뭘까..?? 이것도 사건의 괴이함을 크게 증폭시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찰은 배낭이 발견된 곳에서 수km 떨어진 곳에서 크리스의 청반바지가 곱게 잘 개어진 채로 있는 걸 발견했을 뿐, 이때는 수색 성과가 더 없었다. 이건 본인이 놔 둔 건지, 아니면 타인의 소행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또 2개월 가까이 지난 6월 19일, 또 배낭 근처 지점에서 이번엔 신원 미상의 골반뼈와 부츠가 신겨진 발이 발견됐다.;; 그리고 강둑을 따라 뼛조각 30여 점이 발견됐다. DNA 감식을 해 보니 이건 역시나 리잔과 크리스의 일행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이렇게 유해로 발견되었다.;; (아까 디아틀로프 사건도 추가 유해는 2개월쯤 뒤에 발견됐네..)

이들은 어쩌다 조난을 당했는지, 살아 있는 동안 산 속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짐승에게 당했거나 사람에게 범죄를 당했는지..?? 4월 8일의 괴이한 사진이 찍힌 배경은 뭔지, 그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의 유품을 건드린 사람이 더 있었는지 같은 건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이런 걸 생각하면 첩첩산중에서도 망망대해 만만찮게 사람이 감쪽같이 실종되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야산들은 아주 아주 안전한 축에 속한다.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3/06/12 08:35 2023/06/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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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차이, 오류들

1. 종교 개혁

통상적으로 가톨릭이 아닌 기독교회는 종교 개혁을 계기로 생겨난 개신교라고 불리는 편이다. 그러나 기독교계엔 침례교처럼 개신교의 노선과 100% 일치하지는 않는 교파도 있다. 이런 진영에서는 1500년대의 종교 개혁에 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 긍정적인 유물: 이신칭의와 만인 제사장 교리 재정립. 구교 가톨릭의 부정부패를 용감하게 폭로하고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킴. 바른 계보에서 나온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 개혁자들이 직접 만든 찬송가 등
  • 한계: 유대인, 유아 세례, 정교분리 같은 주제에서는 종교개혁자들도 구교의 배경과 방법론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

물론 침례교라고만 써 놓으면 세부적인 교리 스펙트럼이 왕창 넓다. 그러나 얘들은 대체로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을 믿고, 유아 세례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개신교와 노선이 차이가 있다.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할 정도로 자란 사람에게만 침례를 준다는 점은 자유 의지를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침례교가 구원의 상실까지 말하는 알미니안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건 아니다.

2. 행위에 대한 오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이라는 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의 복음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걸 갖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저질 궤변을 펴는 사람이 좀 있던지라, 구차하지만 이 기회에 좀 개념 정리를 해 보겠다.

(1) "저요~! 예수님 믿고 싶습니다, 구원이라는 공짜 선물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스스로 손 내미는 것도 행위이고 선물에 대한 값을 지불하려는 짓이다
(2) 믿기만 하면 된다면서? 그러면 회개하는 것도 행위니까 할 필요 없네?

이 정도면 "이 가게는 없는 게 없다고요? 그럼 '없는 것'이라는 게 없다는 얘기네요~" 거의 이런 부류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논리학이나 철학에서 이런 궤변을 가리키는 용어가 분명 있지 싶다.;;

인간이 짓는 많고 많은 죄들 중에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 가는 유일한 죄가 바로 "예수 안 믿는 죄"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 안 믿는 게 어째서 죄인가? 그게 죄로 성립하기 위한 전제 선행 조건이 바로 도둑질, 거짓말 등의 다른 수많은 악행들이 추악한 죄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값을 치러야 한 그 죄 말이다.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인간의 알량한 선행만으로 신의 기준을 채우지는 못한다, 즉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는 뜻이다. 그 자체가 일체의 의미가 없다거나 인간에게 무의미· 무익하고 심지어 해롭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술· 담배 끊고, 사기꾼 범죄자 인생을 스스로 그만뒀으니까 나를 구원해 달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구원받고 나서도 그렇게 계속 죄 가운데 살아도 된다는 것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회개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며,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행위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조건이다. 예수 믿는 그 믿음을 행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죄가 나쁘다는 걸 인지하지 않고서 어째 내가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내 구원자로 믿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누가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를 대신 내 주기만 해도 그 사람이 고맙고, 그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는 운전을 더 조심해서 몸 사리면서 하게 된다.
내가 큰 사고를 쳐서 교도소에 가게 생겼는데 누군가가 신분 위장해서 나 대신 교도소를 가 주거나 벌금을 대신 내 주면..?? 심지어 사형장에 대신 가 준다면..?? 대신 벌받아 준 사람을 생각하면 밖에서 또 죄 짓고 싶어지겠는가?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2)와 같은 궤변을 논파하시길 바란다.

(1)이야.. 사람을 최소한의 자유 의지조차 없는 로봇으로 만들고, 태초부터 천당 가기로 예정된 사람, 지옥 가기로 예정된 사람을 설정하려는 의도 같은데.. 길게 반박하지 않겠다. 본인은 '전적 타락'과 '무조건적인 속죄'는 스스로 선악을 분간하지 못하는 영· 유아, 정신지체아가 죽었을 때에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3. 진단은 맞지만 처방이 틀림, 혹은 답은 맞지만 계산 과정이 틀림

  • 공의롭고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서 세상에 왜 이렇게 악이 만연하고 선한 사람이 고통당하는가~ 하나님이 죄악도 창조하셨는가?
  • 자연 세상이 마냥 아름답다고만 보기에는 그 속에 잔인한 약육강식, 죽고 죽이기, 병들고 썩고 중독되기.. 이런 것도 많다.
  • 사람이 구원받고도 왜 이렇게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는가? 이 사람은 정말 구원받은 거 맞나?

이런 게 "언뜻 보기에" 굉장히 모순돼 보이고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인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걸 어거지와 억측을 동원해서 억지로 설명하려다 보니..

  • 구원 상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면 구원을 잃을 만한 죄다.. 뜨악~~)
  • 애초에 구원받은 것도 아니다 (진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이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그냥 논점 회피임)
  •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예정 섭리 주권이다 (하 정말 답답한 능구렁이 어물쩡)

결국 원천봉쇄의 오류나 자기 교리의 본질을 부정하는 쪽으로 빠지는 것 같다. 본인이 보기엔 그렇다.
특히 "이 정도면 구원을 잃을 만한 죄" 중 대표적인 예는 자기 자신을 죽인 자살일 것이다.
세상 비관해서 자기 혼자 곱게 자살한 것만으로 구원을 잃고 지옥 간다면.. 그럼 세상 비관해서 화풀이 하느라 지하철을 불지르고 무고한 시민들 여러 명을 골로 보낸 건 뭐가 되는가? 당장 지옥불 할아버지한테 떨어져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저렇게 예외를 만들고 논리 헛점을 허용하다 보면.. 애초에 그 어떤 죄라도 예수의 보혈로 용서받는다는 기독교 교리 자체가 어거지 모순덩어리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게 더 낫다.
내가 여러 번 글로 변증했었지만, 이미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이판사판으로 죽으면 다 끝나고 없어질 거라고 잘못 생각하고 자살해서 불행하게 지옥에 갈 뿐이다. 죽는 방식 자체는 그 사람의 구원 여부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자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그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건 답은 맞지만 계산 과정이 틀린 것이다. 당장 답만 맞다고 계산 과정이 틀린 걸 계속 방치하는 건 그 사람의 성장에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구원관을 왜곡하는 것 말고, 다른 분야에서 진단만 맞고 처방이 비성경적인 방향으로 간 사례를 더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불교는 세상의 문제점 자체는 올바르게 진단했다. 하지만 통찰이 전도서 수준에만 머무른 채, 진짜 진리와 빛으로 나아가지 못한 게(=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기에) 한계이다. 그냥 혼자 열심히 수련하고 노력해서 번뇌를 떨치고 득도 해탈 성불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2) 진화론도 마냥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적인 이론이 아니다. 단지, 타락한 자연 세계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적자생존 약육강식 아귀다툼을 신이 직접 만든 게 아니라면 스스로 진화해서 된 거라는 쪽으로 결론을 냈을 뿐이다.
'종'이 분화하는 건 과학적으로 진짜 사실인데..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니 남는 가능성은 그냥 저절로 진화하는 것밖에 없다. 진화론 자체보다는 진화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풀이가 우생학 같은 더 악한 결과를 낳았다.

4. 외부 이슈와 관련된 오류

한편, 요즘 교회 내부에서 이런 얘기가 오가는 경우가 많다.

  • 지구 평평;;;
  • 나라 걱정과 정치 얘기, 부정 선거 음모론
  • 우한 폐렴 백신 음모론

이런 건 성경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슈이다 보니.. 교회에서도 "저런 주제는 교회 차원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으며, 각자 어떻게 믿든지 자유이다. 한쪽만 옳다고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서 서로 싸우고 기력을 낭비하지 말라~ 교회까지 와서 자극적인 주제에만 너무 심취하지 말라" 정도의 원론적인 입장만 내면서 유야무야 넘기는 편이다.

뭐, 교회는 세상 학문을 논하는 곳이 아니니, 그런 태도도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과학 발견이나 논리 추론, 합리적인 의심까지 다 종교의 이름으로 찍어누르고 괴상한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는 건...;;; 성경이 말하는 고귀한 믿음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천동설이나 지구 평평은 어설픈 사진이나 과학 이론(?)이 아니라 아니라 성경 구절을 들이대며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류의 오류는 교회에서도 어느 정도 바로잡아 줘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성경의 다른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방법론까지 싸잡아 사이비로 매도되고 설득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적으로 굉장히 우려하는 점이다. 까놓고 말해 킹 제임스 성경 신자라면 지구 평평에 현혹될 게 아니라, 인류 역사상 달 상공에서 낭독된 성경 역본이 KJV였다는 것이나 알아야 할 것이다.

정치 이슈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기독당을 만들고 교회 명의로 단체로 태극기 들고 길거리에 뛰쳐나가거나 심지어 불신자까지 교회에다 초청해서 시국 강연을 하는 건 교회의 존재 목적과 임무 우선순위를 심각하게 망각한 짓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 댕긴다는 사람이 분별력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교회가 무슨 여호와의 증인 급으로 세상 현실과 지나치게 단절을 감행하는 것, 뭐든지 다 예수님 다시 오셔야 해결되는 사항이니 우리는 닥치고 신경 끄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도 그닥 바람직하지 못해 보인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난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파입니다" 같은 소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논점 회피라는 생각이 들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진짜 세상에 얽매이지 않은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진 경우를 거의 못 봤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기도만 열심히 하면 공부 안 해도 시험 100점 맞을 수 있다거나, 아예 세상 지식 공부는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무책임 무질서한 개소리로 귀결되기 쉽다.

기독교는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이 악하다고 해서 그렇다고 아예 집총도 하지 말고 국가의 병역 의무까지 거부하라고는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분야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추면 좋을지는.. 답을 내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09 08:35 2023/06/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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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는... 하버드 나와서 겨우 교수나 변호사나 대기업 사원이나 쳐 하며 썩기에는 너무 똑똑하고 똘끼 넘치던 젊은 컴덕 악동 몇 명이 1975년에 설립한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이다.
마소는 처음에는 대기업 하드웨어에 같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납품하며 근근이 먹고 살았다. 그러나 결국은 전세계 PC에서 운영체제와 오피스 소프트웨어를 평정해 버렸다. 자기 소프트웨어 단독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절에 컴터 프로그래밍은 16비트 x86 어셈블리 프로그래밍이 필수였다. 어셈블리어를 읽을 뿐만 아니라 직접 짤 수도 있어야 했다~!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고, 귀한 메모리를 1바이트라도 아끼고, CPU 클럭을 1사이클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설립자인 빌 게이츠 자신이 베이식 인터프리터.. 일종의 가상 머신을 어셈블리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몽땅 아니면 대부분을 직접 코딩했었다. 수식 파싱, 메모리 관리, 각종 기하와 수학 알고리즘까지 전공 서적 찾아가면서 직접..

그는 천재 괴짜에 엄청난 워커홀릭이었다. (뭐, 컴터 업계에 빌만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그래서 결혼도 나이 40이 다 돼서야 했다. 물론, 억만장자 갑부가 됐으니 나이 따위는 결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처지였다. 결혼식 때 호텔 하나를 통째로 전세 냈다.

그는 자기부터가 그런 기질이니, 초창기엔 부하 직원들도 왕창 쪼고 갈구고, 작업 결과물에 헛점이 보이면 고함 지르고 쌍욕 퍼부으면서 개X랄을 떨었던 걸로 악명 높았다. 경쟁사의 잡스만 성질이 더러운 게 아니었다.
그런 데다 빌은 회장 대표이사라면서 거의 말단 직원의 직속상사 급으로 부하들의 업무 디테일을 다 꿰뚫고 있는 괴수였다. 이 사람의 손바닥을 빠져나갈 방법은 전혀 없었다.

전직 마소 출신 직원이 지은 “조엘 온 소프트웨어”라는 책에 1990년대 초의 일화가 짤막하게 소개돼 있다.
직원들이 “이 양반.. 나이 30 중반이 되고 나니 그래도 갈굴 때 쌍욕(F***)이 좀 줄어들었네..”라고 회장 뒷담화를 한 것 말이다. ㄲㄲㄲㄲㄲ

Windows 3.0이 대성공을 거둬서 마소가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해지고 Windows NT에다 COM/OLE이라는 걸 처음 만들 때.. 더 나아가서 ActiveX라는 컴포넌트까지 만들던 90년대 초-중반이 마소의 입장에서는 기술적인 중흥기 리즈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빌 회장님의 애환이 깃든 Visual Basic 자체를 COM 기반으로 완전히 싹 다시 만들고(버전 4).. 얘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토종 마소스러운 기술인 것 같다. 후대의 .NET이야 볼랜드 출신의 그 엔지니어의 입김이 많이 들어갔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빌 게이츠는 엔지니어와 사업가 자질이 둘 다 두루 탁월했던 사람이다. 그는 컴퓨터를 그냥 오덕질이나 자아실현, 그냥 극한 시험용으로 쓰는 게 아니라, 이걸 전세계 남녀노소의 모든 민간인들에게 팔아먹고 그 짓을 하기 위한 보편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들 생각을 했다.
소수의 빠, 매니아 위주로 신비주의 마케팅을 했던 애플 진영과 대비되는 면모이다. 그렇기 때문에 빌은 잡스와 달리 그냥 장사꾼 같지, 무슨 ‘교주’ 같은 인상은 별로 없다. -_-

빌은 장사꾼으로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 오픈소스 진영과는 적대적이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스팸 메일을 특별히 싫어해서 이런 거 거르는 솔루션의 개발에 몸소 친히 관여하기도 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저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팸 메일을 왕창 많이 받습니다. 저보고 부자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느니, 대출 많이 쉽게 받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거예요. 웃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ㄲㄲㄲㄲㄲㄲㄲ

빌 휘하에서 마소는 생존과 성장을 위해 대기업 IBM을 통수 쳤고 애플과도 으르렁댔으며, 여러 경쟁업체들을 로비와 독점으로 비열하게 고사시킨 이력이 있다. -_-;; IE 브라우저 독점뿐만 아니라 도스 시절에 Stacker사 Double space 저작권 침해 사건을 기억하는 분이 있으면 완전 아재일 테고.. ^^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소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근무 성적 하위 5%인 직원은 꾸준히 짤랐다고 전해진다. 빌뿐만 아니라 사장인 스티브 발머도 엘리트 출신에 완전 “오로지 1등”주의였다고 한다. 꽤 살벌한 기업이었다.

그래서 “마소 직원들은 애플이나 구글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사내 팀과 경쟁한다” 이런 말이 있었을 정도래나.. 이거 무슨 일본군 육군과 해군의 대립도 아니고.
안에서는 직원을 왕창 갈아넣고, 대외적으로는 저런 짓을 한 것이다. 그게 과거 마소의 놀라운 성장 비결이었다.

아~~ 그래서 그 시절에 Windows 9x와 NT 간에 API가 따로 놀기도 했었고, 한동안 오피스 팀이 파일 열기 대화상자를 Windows 것을 안 쓰고 따로 만들었고.. C 런타임 라이브러리도 Windows 팀과 Visual C++ 팀이 연계가 안 돼서 따로 놀고 그랬구나..!! 싶다.

그랬는데.. 마소는 2000년대 중반부터 성장이 멈추고 몰락의 기미가 보였다.
Windows XP에서 Vista 사이에 이례적으로 시간을 오래 끌었고.. 심지어 IE (브라우저) 팀을 없애고 Windows 팀으로 합치려고도 했다. 그렇게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얘들은 모바일에는 완전히 적응을 못 하고 주류에서 밀려났다.

사실, 빌 아저씨도 선견지명이 없는 건 아니었다. 1990년대에 이미 "미래로 가는 길, information at your fingertip" 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었다.
단지, 그걸 인터넷이 아니라 MSN이라는 독자 독점 프로토콜의 네트워크로 실현하려 했을 뿐이다. 그 시도는 실패했다.

그리고 2010년대에 와서는 뒤늦게 Windows Phone/Mobile을 보급하려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노키아를 뒤늦게 인수해서 구글과 애플에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주변의 자기 직원조차 아이폰을 쓰고 있는 걸 보자 스티브 발머가 노발대발했었던 건 유명한 일화이다.
이런 뒤숭숭한 와중에 출시된 Windows 8은 괴작으로 시장에서 크게 실패했다. 2000년대에 Windows ME가 실패했던 것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실패했다.

이런 시기에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같은 “싸우자 독점하자 이기자” 1세대 경영진이 마소에서 완전히 물러났으며, ‘사티아 나델라’라는 인도 출신의 완전히 새로운 피가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오늘날의 마소는 과거의 마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기업으로 변화했다.
돈 안 되는 모바일 사업부는 포기하고, 영원한 원수 같던 오픈소스 진영을 포용하고, 마소가 Windows와 Office만 만드는 회사라는 편견을 깨뜨리려 하는가 보다.

다들 아시다시피 github를 인수하고 한때 빌도 하려 했지만 결렬됐던 id 소프트웨어를 인수하고(정확히는 그 모회사), 심지어 블리자드까지 인수하고.. 각종 옛날 자기네 제품들의 소스를 공개하고. 가히 놀랄 노 짜이다.
앞으로 마소에서 만든 소프트웨어에서도 About 대화상자나 도움말 acknowledge 같은 걸 살펴보면.. 사용된 오픈소스 목록이 쭈루룩~ 나오고 "LPGL 라이선스에 의거해서 우리 제품에서 변경한 소스 부분을 공개합니다"
이런 문구를 보는 날이 올지...?? 내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하다. ^^

대외적으로는 그렇고 사내에서도 “직장 동료는 그저 경쟁하고 싸우는 대상이 아니라, 다같이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다..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많이 배우는 게 좋은 거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남의 성공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뭔가 주토피아 Try everything스러운 사고방식을 회사 차원에서 전파하는 중이라고 한다. 과거의 악랄· 사악했던 이미지를 벗으려고 많이 노력하는가 보다. (그래서 MSDN도 LEARN.microsoft.com으로 바뀐 듯..^^)

일단은 이게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중이며, 마소의 주가도 10년 전에 비해 크게 올랐다.
솔직히 Explorer 브라우저가 독점하던 시절이랑, 이제는 마소에서 자체 Edge 브라우저조차 포기하고 그냥 크롬과 동일한 엔진으로 갈아탄 현 시국은..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너무 다르다. 당연히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배고프던 시절에 빌이나 발머 같은 1세대 경영자들이 마음 독하게 먹고 지저분한 짓, 욕 먹을 짓을 감행하면서 당장 마르지 않는 돈줄을 확보해 놨기 때문에 후대 경영자가 좋은 여건에서 저렇게 상생 운운하면서 다음 전략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는 것도 감안할 점이다. 단지, 언제까지나 1세대 사고방식만 고수하면서 살 수는 없을 뿐이다.

과거에 마소의 킬러 앱들도 1.0 시절부터 100% 순수 오리지널 창작이었던 것은 극히 드물었다. 엑셀 스프레드시트 정도나?
MS-DOS야 CP/M에서 시작됐고 Visual C++의 먼 전신인 MS C는 Lattice C의 소스에서 시작됐으며, IE야 모자이크 브라우저가 원조이다만.. 그것들을 원본보다 크게 발전시킨 것도 능력이다.

뭐, 빌도 인간이다 보니 모든 미래 예상이 적중하지는 않았으며 실패도 했다. 그래도 회사를 말아먹을 정도로 큰 손해를 끼치지는 않을 만큼만 실패했다. 이 역시 옛 경영진의 탁월한 능력이었음이 사실이다. (빌 아저씨는 너무 사용자 친화적인 마케팅 요소에만 집착하다 보니 1990년대 중후반엔 Bob이라든가 Office 길잡이처럼 너무 깜찍한 흑역사;;를 만들었던 적도 있다. ㅎㅎ)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경영진이 바뀌긴 했는데.. 그 뒤부터는 이젠 PC와 Windows가 예전 정도로 중요한 밥줄이 아니어서 그런지..
마소 제품들에서 2, 3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나사 빠진 듯한 버그들이 종종 눈에 띄는 중이다. -_- 이게 좀 새로운 부작용인 것 같다. "일단 만들어서 배포부터 한 뒤에 문제가 발견되면 나중에 패치하면 되지..." 이런 군기 빠진 마인드가 마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 건지도 모르겠다.

※ 여담

(1) 이렇듯, 마소의 운영체제 독식과 브라우저 독식을 종식시킨 것은 스마트폰 모바일 환경, 그리고 오픈소스 진영의 약진이지 싶다. 2004년 파이어폭스, 2008년 크롬은 그야말로 컴퓨팅 환경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2) 은행 공공기관에서 IE가 완전히 필요 없는 세상은 도래하긴 한 건가? activeX의 대체제인 exe 프로그램은 기술적으로 나은 게 없다고 한때 논란이 많았는데 말이다. 난 여전히 edge+ie 모드에 의존 중이다.
이런 보안 분야는 여전히 웹 표준이 100% 감당이 안 되는가 보다. 오히려 스마트폰 은행 앱은 이 기기를 다른 사람이 쓸 일이 없다고 가정을 해서 그런지 돈 보내는 절차가 더 간단하다.

(3) 1990년대 후반부터 Windows 9x가 완전히 명줄을 다하고 16비트/도스 시절이 완전히 종식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은.. 바로 RAM이다. 메모리가 엄청 용량이 늘고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win95 나오던 시절에만 해도 램 8~16MB 갖고 빌빌대던 게.. 겨우 98 때 갑자기 64~128MB로 뻥튀기 된 건 정말 경이로운 현상이다. PC의 발전사에서 클럭 속도뿐만 아니라 메모리의 증가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인텔뿐만 아니라 삼성 전자도 이 시기에 큰 혁신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4) 과거에 공룡 기업 IBM은 메인프레임 장사가 너무 잘 돼서 그런지 현실에 안주하는 편이었고, PC라고 불리는 개인용 컴터 시장에 대처를 제대로 못 했다. 덕분에 이쪽 주도권을 마소에게 빼앗겨 버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쯤 뒤엔 공룡 기업 마소가 PC의 Windows와 Office에만 안주하다가 스마트폰 모바일 시장에 대처를 제대로 못 했다. 덕분에 그거 주도권은 안드로이드와 iOS 진영에게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굉장히 비슷한 패턴의 역사가 반복된 것 같다.

(5) 그러고 보니 2010년대에 애플도 잡스가 죽으면서 최고 경영자가 바뀌었고, 야후에서는 잠시 새로운 여성 CEO가 들어왔다가 나가기도 했다. 그 뒤로 아이폰과 갤럭시 폰은 갈수록 서로 비슷해지며 수렴 진화 중이고, 야후는 여전히 비주류로 밀려난 듯하다.
마리사 메이어는 먹튀 논란이 있긴 했지만.. 그 당시 야후는 어떤 CEO가 들어가더라도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상태가 너무 안 좋기도 했다. 야후 코리아가 없어진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구나~!

Posted by 사무엘

2023/06/06 08:35 2023/06/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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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 사이비

1. 이단과 사이비의 차이

세상에서는 종교계의 이단과 사이비를 별 구분 없이 싸잡아서 일컫는 경향이 있다.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정통(?) 주류 종교가 아닌 다른 종파들을 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둘에 대한 정의는 엄연히 다르다. 이단은 그 종교의 교리 차원에서 잘못된 곳인 반면, 사이비는 그냥 사회 통념상 물의를 빚고 잘못된 곳을 가리키는 편이다.

가령, 기독교회를 표방한다면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다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교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기독교의 입장에서 이단이 된다.
그러나 세상적으로야 예수님에 대해 어찌 생각하건, 성경에 대해 어찌 생각하건 그건 알 바 아니다. 그저 공권력에 대항하고 신자들을 가스라이팅 하고 착취하고, 생업 때려치우고 교주한데 다 바치라고 조장하고, 성추행 저지르고 탈퇴자한테 뒤끝 부린다면 그건 사이비 종교일 뿐인 것이다.

안식교나 몰몬 교는 명백한 기독 이단이지만, 사이비는 아닌 종파로 보인다.
그 반면, 전 X훈 교회는 교리 자체는 큰 문제 없는 교단 소속이지만, 처신하는 행태가 단순 정치색과는 별개로 사이비 냄새가 좀 풍기며 위험해 보인다. (그 목사님은 사임하고 그냥 시민 운동 정치 운동만 하시길..!)

통일교 정도면 이단과 아예 타 종교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데.. 다만, 사이비라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여호와의 증인도 당연히 이단이며, 공권력 일체 부정과 병역 집총 거부, 수혈 거부는 사이비의 범주에 드는 특성이다. 단지, 강력 흉악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단/사이비를 판단하는 기준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구석이 있다. 기독교도 처음 전파되던 당시에는 제사를 안 지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어그로를 일으켜서 근본도 없는 서양 오랑캐 쌍것 사이비 종교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이슬람은 주류 메이저 종교 중에서는 행태가 심각하게 배타적인 것이 사이비스러운 위험 요소이다. 기독교처럼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고 사후 세계 "교리"가 배타적인 것이야 어쩔 수 없고 그건 세상 법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그런 것 말고 자기는 다른 나라에서 포교 가능하지만 자기 나라 안에서는 타 종교 포교를 못 하게 한다거나.. 탈퇴한 신자를 호적에서 파 버리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해코지 한다거나.. 심지어 명예 보복 살인을 한다거나..
이건 세상 법리로 보기에 명백히 문제가 있는 관행이다. 울나라에서 주로 문제되는 개독들의 추태 따위하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2. 다른 정도

본인은 종교/종파 간의 이질감을 이렇게 5단계로 분류한 적이 있다. 개념적으로는 이단과 사이비를 한데 뭉뚱그려 놓았다.

(1) 미세한 성경 해석 차이와 교리 차이가 있지만, 교제에는 큰 지장 없음
(2) 교파가 다름. 신학의 여러 분야에서 특별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의 차이가 있음. 교제 가능 여부는 좀 케바케.
(3) 외형은 기독교 같지만 주요 교리에서 중대한 오류. 성경적인 기독교라고 보기 어려움 (이단)
(4) 종교 차원에서 처음부터 다름. 여기까지는 그냥 집안 싸움일 뿐이지만 바로 다음은..
(5) 세상 공권력까지 동원해서 조져야 하는 미친놈 사회악 범죄 집단 (사이비)

여호와의 증인은 앞서 얘기했던 바와 같이 사이비 끼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집총 거부하면서 곱게 교도소를 가지, 대놓고 물리적인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으로서는 사이비보다는 잘못된 이단 교리를 더 강조해서 3번 정도로 등급을 매긴다.
그러나 옴진리교 같은 곳이라면 바로 5번으로 빠질 것이다. ㄲㄲㄲㄲㄲㄲ

본인이 다니는 교회 진영의 경우, 재창조 간극에 대한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건 1번에 가깝게 판정하는 편이다. 그러나 교회의 대환란 통과에 대한 견해가 다른 건 좀 더 무겁게 2번에 가깝게 판정하는 것 같다.
아예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자체에 대한 전면 불신 부정은 확고하게 2번으로 떨어지겠다.

신천지는.. 수 년 전 코로나 집단 확산에 데인 사람들이 5번 급으로 많이 싫어하는 듯한데.. 나는 그냥 3이나 4 사이로 분류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난 걔네들의 교리 자체를 잘 모른다.
극단적인 예로 아예 라엘리안 무브먼트-_- 같은 곳은.. 4나 5 사이가 되려나?

3. 조직력과 결속력

어떤 종교 종파가 교주 한 명만 없어지면 몽땅 힘을 잃고 와해되느냐, 아니면 그래도 추종자들이 또 점조직을 만들면서 끈질기게 버티느냐? 이건 조직의 세력을 판단하는 굉장히 중요한 잣대이긴 해 보인다. 절대적이고 유일한 필요충분 급 잣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오죽했으면 사도행전에서도 비슷한 예시가 언급된다. (행 5:36-39) "이 예수쟁이들의 말이 사실이고 이들이 하나님에게서 난 거면 어쩔래? 그럼 니들이 사도들 몇 명만 조진다고 해서 저 세력이 박멸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쁜놈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성경에 이단 사이비를 판단하는 원론적인 방법이 몇 가지 나와 있다. "열매로 그들을 안다"(마 7:16,20), "누군가가 예언한 것이 적중한다면 걔는 참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다"(신 18:22)..
그리고 또 자기들끼리도 소송 걸면서 걸면서 싸우고(고전 6:5-7) 자기들끼리도 일치하지 못하고 뭉치지 못하는 조직도 정상이 아니다(마 12:25-27). "스스로 분열하는 왕국마다 무너진다."

국내의 이상한 이단 사이비들 중에도.. 카리스마 있던 초대 교주가 죽은 뒤부터는 아들들이 돈과 권력 분배 문제로 싸우면서 찢어졌다거나, 거의 나가리 나서 고인물 썩은물 늙은이들 모임으로 전락한 조직이 여럿 있다.
그런데 내 개인적으로는 내가 지지하는 킹 제임스 성경 독립 침례교회들도 이렇게 스스로 무너지고 나가리 난 군소 종파의 반면교사 사례가 되지 않을지 좀 우려된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 좁고 작은 동네에서 한킹과 흠정역이 찢어진 것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안 맞아서 또 찢어지고 갈라져 나가는 게 도가 지나쳐 보여서 말이다.
이단들이야 교주를 신격화하고 사람을 너무 추종하게 만들지만, 저 진영은 반대로 사람을 너무 따르지 않고 각자도생만 일삼다가 각개격파 당할 것 같다. 두 방식 다 스스로 무너지는 결말로 간다는 점은 비슷하다~!

제아무리 독립 침례교회를 추구한다지만 신자가 교회로부터 독립해 버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독립해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지 꼴리는 대로 하다가 어려움 겪는 걸 무슨 박해나 영적 전투 따위로 포장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니 이 동네에서는 독립과 분리 얘기는 충분히 했으니 됐고.. 이젠 최소한의 일치와 단합, 팀웍을 더 강조해야 할 것 같다. 본질적이지 않은 형식 문제에 대해서는 그래도 좀 양보도 하고 말이다.

율법주의를 타파하고 신앙의 자유를 강조하는 곳에서는 그 반대급부로 등장하기 쉬운 영적 무질서와 방종, 반지성주의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이단 사이비도 바로 저런 혼란 속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목사님의 성경적인 설교를 듣고 진짜 정당한 권면에 따르는 것까지 죄다 사람을 추종하는 거네 마네.. 이딴 식으로 살아서 제정신 박힌 신자가 양성될 수는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03 19:35 2023/06/0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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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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