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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는 클라이언트 내지 서버 개발자로 역할이 크게 나뉜다.

사용자가 자기 머신에(PC 내지 폰) 직접 설치해서 구동하는 그 exe / apk야 클라 개발자의 작품이다.
현란한 그래픽을 구현하고, 같은 하드웨어에서 화면 프레임 수를 늘리려고 고생하는 애들 역시 클라 개발자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용자들을 동시에 수용하고 계정 정보를 관리하고, 이것들이 해킹당하지 않게 보호하고, 클라가 뿌릴 게임 내부 상태를 전해 주는 건.. 서버 및 서버 개발자의 몫이다.

클라 프로그램이 뻗는 건 그 사용자만의 문제이지만, 서버가 뻗는다면....;;;; 뭐 그렇다.
조금 어설프게 비유하자면 클라는 또박또박 보도를 하는 뉴스 앵커이지만, 서버는 뉴스 대본을 생성하고 보도 순서와 분량을 정하는 보도국뻘 된다.

그런데 데스크톱이나 모바일 '앱' 말고 웹 개발로 가면.. 프런트 엔드와 백 엔드라는 계층 구분이 있다.
웹 프로그램은 머신에 설치되는 게 아니라 웹브라우저 화면에서 바로 구동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적으로는 클라라는 게 없고 서버 프로그램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도 계층 구분이 있다. 사용자한테 보이는 부분, 더 기술적으로는 js html css처럼 서버로부터 받기는 했지만 사용자의 웹브라우저에서 구동되고 사용자가 소스를 직접 볼 수 있는 부분은 프런트 엔드이다.
그 반면, 저런 html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이라든가 DB처럼.. 진짜로 서버에서만 돌아가고 사용자가 코드를 볼 수 없는 부분은 백 엔드라고 불린다.

프런트 엔드 웹 개발자는 웹 '디자이너'와 영역이 겹치며 같이 작업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백 엔드는 디자이너와의 접점이 없으며, 그 대신 Java, C#, 심지어 C++처럼 머신 종속적인 데스크톱용 프로그래밍 언어와 접점이 있을 수 있다. (사용하는 프레임워크가 무엇이냐에 따라)

글쎄, php는 딱히 기계 종속적이지 않으면서 백 엔드 개발에 최적화된 언어인 듯하다.
JavaScript야 웹 개발계의 유니코드요 세계공용어로 등극했으며, 프런트와 백에서 모두 쓰이고 있다.

원래 컴퓨터 업계에서 '프런트/백 엔드' 이런 말은 컴파일러에서 주로 쓰이던 용어였다. 구문 해석해서 parse tree 내지 IR(중간 표현)을 생성하는 게 프런트이고, 이걸로부터 실제 머신 코드를 생성하고 최적화도 하는 게 백이었는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웹 개발에서의 계층을 구분할 때도 저런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웹의 초창기에는 웹만을 위한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이 아주 희박했다. 프런트/백의 엄밀한 구분도 없었고 온갖 비표준 파편화 기술들이 난립했었다.
프런트 엔드에 속하는 건 사용자가 폼에 입력한 값이 올바른지 로컬에서 체크해서 에러 메시지 띄우는 수준의 아주 간단한 코드?? 이런 코드는 html 코드의 주석 안에 자그맣게 짱박혀 있곤 했다.;; html이라는 문서가 main이지, 이런 코드는 약간의 동적 요소만 가미해 줄 뿐,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하긴, html 자체를 동적으로 생성하는 기술을 공부해서 DB 만지고 게시판 같은 거 자작하는 게 지금으로 치면 백 엔드 개발이었겠다. CGI 역시 백 엔드의 범주에 드는 초창기 기술일 테고. =_=;; 옛날 제로보드 스킨은 일종의 프런트 엔드 개발이었겠다. ㄲㄲㄲ
플래시니 Java 애플릿 같은 건 물론 프런트이고, 지금의 관점에서는 특정 기업 솔루션에 종속적인 비표준 기술이 됐다.

프런트 엔드에서 돌아가는 웹 프로그램 코드는 특정 기계어로 컴파일되지는 않는다. 무슨 C/C++ 프로그램처럼 저수준 메모리 문제나 보안 문제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특정 JavaScript 코드를 실행함으로써 메모리· 보안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그 브라우저에 내장된 js 엔진의 버그이지, js 코드의 버그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문제 있는 js 코드는 다른 부작용 없이 깔끔하게 실행이 거부되고 에러 메시지와 함께 튕기기만 돼야 할 테니 말이다.

그 대신 그 코드는 보통 난독화 처리가 돼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드가 노출돼 있다고 해서 사용자가 그 코드를 읽어서 뭔가 로직을 파악하기는 매우 난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웹 프로그래밍에서 보안의 최대 관심사는 buffer overrun 같은 부류가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임의의 외부 문자열이 코드나 태그, SQL 따위로 인식되어 실행되지 않게 하기 위주인 것 같다. C로 치면 % format 문자열에다가 동적 생성된 외부 문자열을 공급하지 말라는 것과 비슷하다.

문득 드는 생각은.. 웹 개발을 위한 전용 IDE가 있을까?
옛날에 나모나 드림위버, FrontPage 같은 위지윅 html 에디터가 있었고.. Visual Studio 6 시절엔 Visual InterDev라고 비베 냄새가 나는 웹 개발 IDE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건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유행이 지나고 한물 갔다. 심지어 마소에서 Expression Studio라고 새로 만들던 웹 개발 저작도구도 2010년대 초반에 개발이 중단됐다.

웹은 과연 IDE의 무덤인지.. 개발에 이클립스 내지 Visual Studio Code 같은 범용적인 에디터/IDE만 쓰이는 것 같다.

※ 비유 개드립

  • "웹 디자인 - 웹 프런트 엔드 개발 - 웹 백 엔드 개발"은 뭔가 "장갑차 - 전차 - 자주포" 순으로 성향이 바뀐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
  • 프런트 엔드에서 css / js / html라는 역할 구분 세분화는 입법 사법 행정 삼권분립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 PC용 앱은 일반 봉지 라면, 모바일 앱은 컵라면 사발면.. 그리고 웹사이트를 구동하는 프로그램은 식당 납품용으로 대량 판매하는 라면 사리 내지 스프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 웹 개발이나 컴파일러뿐이겠는가. 인공위성은 프런트 엔드, 발사체는 백 엔드 기술인 것 같고.. 자동차에서도 주행과 관련은 없지만 탑승자가 대면하고 사용하는 부품들은 프런트요, 엔진룸 안에서 차량을 굴리는 데 기여하는 부품은 백에 대응하는 듯.. 이런 식의 구분은 다른 여러 분야에도 존재한다.

※ 모바일 관련

mobile이라는 말이 원래는 물리적인 이동, 교통과 관련된 단어였다. 미술 조형물 모빌이라든가, automobile 자동차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관련 '통신' 뉘앙스가 더 짙어졌다.
그리고 우리말은 참 희한하게도 '모빌'은 통상적인 의미, '모바일'은 통신 의미로 분화됐다. 마치 '도트/닷', '네트/넷'의 뉘앙스 변화와 비슷한 재미있는 현상이다.
'통신사'가 지금이야 SK 텔레콤 같은 게 먼저 떠오르지만 원래 연합뉴스 같은 언론사 용어였다는 것도 생각해 보자.

Posted by 사무엘

2024/06/11 19:35 2024/06/1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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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코(포항 제철) 1고로: 1973 ~ 2021 (48년)

1960년대 말, 울나라에서 그 깜냥에 제철소를 만들겠다니 말도 안 된다면서 선진국 금융기관들에서는 울나라에 돈을 빌려 주지 않았다. (보나마나 실패할 것이고, 빌려준 돈은 떼일 것이다) 그래서 울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갓 수교를 맺은 일본으로부터 일제 시대 착취 피해자 배상 명분으로 받았던 보상금과 차관을 슬쩍 전용해서 제철소의 건설에다 투입했다.

그러니 포항 제철 박 태준 초대 회장은 기공식 때 "우린 조상님들 피값으로 제철소를 만든다. 감히 실패한다면 다같이 우향우 해서 쪼기 영일만 바닷물에 뛰어내려서 죽어서 속죄하자" 이렇게 결의했었다.
1973년 6월 9일, 이렇게 만들어진 고로에서 시뻘건 쇳물이 쏟아져 나오자 박 회장과 측근들은 만세 부르고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한국 철강 협회에서는 6월 9일을 '철의 날'이라고 자체적으로 기리는 기념일로 정했다. 고속도로를 만든 다음에 제철소, 제철소도 만든 그 다음에야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엄청난 고온에서 불순물 없이 품질 좋고 단단한 철을 저렴하게 많이 뽑아내는 건 첨단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바로 그 제1고로가 수명이 한참 다해서 지난 2021년 12월 29일에 종풍식을 하고 폐쇄됐다.
참고로 용광로는 마치 냉동실이나 원자로처럼 일부러 끄고 대대적인 정비를 할 때를 제외하면 중간에 가동이 절대로 중단돼서는 안 되는 크리티컬한 물건이다. 뜨거운 쇳물이 24시간 내내 흐르고 있어야지, 그게 아무 준비 없이 식어서 굳어 버리면.. 고로에 엉겨붙어서 장비가 다 망가지기 때문이다.

포스코 측에서는 이 1고로를 보존하고 활용해서 철강 박물관 같은 걸 만들려는가 보다. 마땅히 그리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제1정수장이 지금 수도 박물관으로 바뀐 것과 비슷한 활용이다.

2. 고리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 1호기: 1978 ~ 2017 (39년)

포항제철은 만드는 데 3년이 걸렸지만, 울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는 더 어려워서 그런지 6년이나 걸렸다. 1972년부터 박통의 8대 유신 시절 내내 만들어서 1978년 4월 말에야 상업 운전이 시작됐다.

원자력 같은 어려운 전문 분야는 박통의 공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원자력이라든가 항공· 우주 쪽은 일찍이 1950년대 후반, 할배 때부터 외국 유학파 공돌이들을 국비장학생 명목으로 육성했기 때문이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 나랏돈을 근근이 쪼개서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 박통 시절에 "부디 귀국해서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해 주시오~" 이렇게 읍소할 한국인 엘리트 공돌이들이 있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 고리 원전의 건설에도 경부 고속도로나 포항제철, 현대차, 삼양 라면 같은 일화가 전해지는 게 더 있는지 궁금하다.

원자로는 가동을 중단한다고 다가 아니다. 완전히 폐쇄하고 해체하는 데만 10수 년씩 걸린다. 더구나 잔여 시설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것도 좀.. 곤란할 것이다. =_=;;
고리 다음으로 월성 원자력 발전소 1호기의 생애는 1983 ~ 2018이었다. 그 시절 뭉 머시기 정권의 탈원전 기조에 희생되어 실제 성능과 안정성 대비 무리해서 일찍 퇴역하게 됐다고 난 알고 있다.

3. 고가도로들

다음으로 교통 인프라 차례다.
대도시는 길거리에 차가 너무 많이 다니다 보니 차선과 중앙선을 긋고, 폭을 넓혀서 차로를 늘리고, 교차로에는 신호등을 설치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신호 대기가 없는 입체 교차 고가도로를 만드는 게 상징처럼 됐다.
옛날엔 그랬다. 우리나라는 박통 시절에 이걸 집중적으로 많이 만들었다.

시내 도로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도 옛날에 산을 꼬불꼬불 타넘던 걸 터널과 고가를 남발하면서 곧게 뻗은 길로 다시 만들곤 했다. 그러면 예전의 길은 국도나 지방도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노후하고 붕괴 위험이 커지고, 굳이 유지 보수할 명분이 사라진 고가 도로는 나중에 도로 철거되기도 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열거해도 이 정도이다.

  • 아현(1968-2014)
  • 청계(1976-2003)
  • 서울 역(1969-2015)
  • 서대문(1971-2015)

요즘은 옛날보다는 친환경, 보행자 위주 교통 인프라를 추구하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예전엔 저런 것들이 조국 근대화 흔적이고 상징이었다.

그나저나.. 이웃 일본에서는 1950~60년대에 수도 고속도로라는 걸 온통 고가도로로 도배하면서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설이 온통 낡고 노후화해서 대대적으로 보수를 해야 하는데 그게 돈이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어서 그럴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재정이 부족하니 장기적으로 고속도로 톨비 징수를 폐지하려는 계획도 완전히 물 건너갔다. 이런 것도 참 문제이다.;;

4. 서울 지하철 일명 초저항: 1974 ~ 2004 (30년)

끝으로, 이건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차량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역사상 최초로 운행되었던 지하철 전동차는 아주 의미심장한 역사 유물이다.

전방에 출입문이 있고 단면이 식빵처럼 생긴 바로 그 차량. 운영 회사에 따라 파랑(철도청) 또는 빨강(지하철 공사)으로 나뉘었던 차량이다. 동호인 용어로는 '초저항'(초기 저항)이라고 한다.
얘는 1986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도입되었다. 초기 도입분은 일본 히타치 사에서 생산했지만, 그 뒤로 한국과 일본의 여러 기업이 이 차량의 생산에 개입했다.

얘는 1호선뿐만 아니라 2호선(지하철 공사)과 안산선(철도청)에서도 활약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개조 저항'이라고 정말 극소수 낡은 차량의 일부 객차 짬뽕 편성에서나 이 차량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거 말고 오리지날 식빵 모양을 유지하던 그 차량은 2004년경에 다 퇴역해서 지금은 없다.

코레일과 서울 메트로 모두 이 차량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자기 방식대로 한 량씩 보존해 놓고는 있다. (철도박물관 vs 신정 차량기지)

Posted by 사무엘

2024/06/09 08:35 2024/06/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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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법자와 범죄자

“우리는 무법자(outlaw)이지 범죄자(criminal)가 아니다.”라고 자기는 아예 법 따위에 매이지 않는다는 걸 ㅂㅅ 같지만 멋있게(?) 표현한 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일반적으로 법이란 게 없이는 통제가 안 되고 사회를 유지할 수 없는 존재이다.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위의 권위에 복종하라”는 단순히 악법도 법이니 닥치고 '까라면 까'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성경적으로 대놓고 잘못된 법은 어기더라도 그 법을 집행하는 권위를 일단 인정하고 처벌이라도 감내하라는 얘기이다.

그 어떤 악한, 심지어 북괴 같은 막장 국가라고 해도 법이 대놓고 "이 세상은 어차피 약육강식이다. 마음껏 도둑질하고 약탈해도 좋다, 길거리에서 아무 여자나 마음껏 강간해라" 이렇게 돼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윗대가리 통치자 내지 그 주변 가족, 친지가 빽 믿고 내로남불로 저런 짓을 교묘하게 저지를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건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는 사항이다.

법이라는 게 상당수가 (1) 정당한 위법(사형 집행, 전쟁터에서 적군 죽이기, 정당방위), (2) 정당하지 않지만 고의성도 없는 위법(과실치사), (3) 고의적인 악행(살인), 거기에다 추가로 (4) 스스로 옳다고 믿고 고의로 악행(신념형..).. 이런 걸 변별하는 시스템인 것 같다.

2. 연계 범죄

한번 죄를 짓고 나면 그걸 은폐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그걸로 궁극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다른 죄도 덩달아 왕창 짓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위조지폐를 만드는 애들은 그걸로 물건을 직접 사서 이득을 보는 게 아니다. 즉, 5만 원짜리 위폐로 5만 원짜리 물건을 사지 않는다!!
보통은 500원짜리 껌을 5만 원짜리 위폐로 결제하고, 거스름돈 49500원을 챙겨서 이득을 본다. 아니면 택시를 불러서 기본요금 거리만 가고는 비슷한 수법을 구사하거나.

이 짓은 통화위조죄에다가 사기죄까지 추가시킨다. 위폐를 받은 사람이 당하는 손해는 비슷하거나 동일하지만, 피의자의 죄질은 후자가 더 나쁘게 평가된다.
그것처럼..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인데, 살인은 보통 그걸로 그대로 끝나지 않는다.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체를 어디 숨긴다거나 심지어 토막낸다거나 훼손하면.. 이것도 전부 다 별개의 죄로 추가된다.
사람 죽이고 나서 그 상태 그대로 자수하거나 체포돼야만 살인죄 하나에만 걸린다. 법이 그렇게 돼 있다.;;

3. 화폐 위조와 화폐 훼손

위조지폐의 경우, 저렇게 통화위조나 사기죄뿐만 아니라 저작권법 위반으로도 형량을 늘릴 수 있다. 한국 은행이 지폐 도안 디자인에다가 칼같은 저작권을 걸어 놨기 때문이다. 으음~~ 영화· 음반이나 폰트뿐만 아니라 현금 비주얼도 문화 컨텐츠인 건가 싶다.

그런데 고액권 지폐 말고 동전은 원가 비용 대비 액면가가 워낙 낮아졌기 때문에 처지가 반대가 됐다. 10원짜리는 아예 녹여 버려서 금속값을 챙기는 게 남는 장사가 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저런 짓을 하다가 최초로 적발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동전을 녹여서 파는 행위를 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이란 게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그걸 그냥 '폐기물관리법 위반' 명목으로 아주 가벼운 꿀밤 수준의 처벌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폐 훼손을 금지하는 법은 내 기억으로 2011년쯤에야 새로 제정됐다.

4. 지능 범죄

법이라는 걸 잘 살펴보면 어떤 죄는 가족끼리 저질렀다거나, 합의가 잘 됐다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벌을 감경한다(반의사불벌죄).
그러나 어떤 죄는 가족끼리 저질러졌으면 오히려 가중 처벌한다. 그리고 단순히 형벌만 센 게 아니라 색출 자체를 다른 죄보다 더 악랄하게 하는 게 있다.

가령, 예비 음모 미수까지 몽땅 처벌한다거나, 정황· 의도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그냥 걸리면 그 결과만으로 무조건 처벌한다거나, 수사기관 측에서 함정 미끼까지 던지는 것 말이다. 마약이나 대규모 위조지폐, 산업스파이 같은 지능범죄에 대한 수사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편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무죄 추정의 원칙"이 좀 무시된다.
옛날에는 이와 관련하여 중한 죄에 대해서는 불고지죄(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죄)나 연좌제(죄인의 가족· 친지까지) 같은 것까지 있었다. 고문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건 너무 미개하고 잔혹하다고 여겨져서 없어지는 추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기회 제공'까지는 지능범죄를 적발하기 위한 정당한 수사 기법으로 쓰인다. 그러나 대놓고 범죄 저지르라고 꼬드기는 '범의 유발'은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적으로는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하는 범위도 딱 거기까지이다. 이미 마음을 악하게 먹은 사람에게 더 기회를 주고 결과적으로 더 강퍅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아예 대놓고 무조건 죄 지으라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씹으면서 로봇 조종하듯이 조작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시피 우리나라 사법은 경찰이 형사 피의자를 잡은 뒤에 검찰이 넘겨받아서 기소하는 형태이다. 그런데 경찰만으로 물리력이 부족한 지경이 되면 군대가 투입되게 되고, 경찰만으로 수사력 정보력이 부족해지면 그 건은 국정원 같은 첩보기관..;;까지 나서서 공조하게 된다. 그런 관계이다.

5. 생명 윤리

우리나라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인 안락사까지만 인정하며, 그 이상으로 더 선 넘는 적극적인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건 어지간한 노인들로 하여금 "나 같은 건 어서 나가 죽어 줘야 자식들이 편안해하겠지" 이런 무언의 압박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극심한 저출산 시국에 앞으로 젊은 세대들이 그 많은 노인들을 도저히 부양할 수 없고, 자식 없는 홀애비 홀애미가 넘쳐나고, 복지 비용을 감당 못 해서 나라 살림이 파탄나는 지경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들이 옛날처럼 고려장을 대놓고 벌일 수는 없으니 방법은 하나.. "존엄하고 품위 있게 죽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 운운하면서 소극적인 안락사는 적극 장려하고 권장하게 되지 싶다. 지금 노인들에게 운전 면허 반납을 장려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 밖에 우리나라는 산모의 생명이 위험해진다거나, 강간으로 인한 임신, 태아에게 극악한 유전병· 장애가 있는 경우 등 아주 소수의 극단적인 상황에 한해서만 낙태를 허용한다. (모자보건법) 그런데 내가 알기로 지금은 낙태죄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저 조항 자체가 별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혼이나 파양도 각종 사기 결혼· 입양으로부터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수준으로만 규정돼 있다. 세상법이 성경 율법보다는 세부 디테일이 더 규정돼 있어야 하니까.. 가령, 중범죄 전과를 사전에 알리지 않은 것도 이혼 사유이다.

6. 나머지

(1) 공문서 위조, 통화 위조 같은 죄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나라 자국 것만으로 한정이다. 딴 외국의 공문서는 한국 법의 관점에서는 다 사문서일 뿐이다. 이건 마치 다변수 함수에서 x로 편미분을 하면 y z 다른 변수들은 다 그냥 상수 취급일 뿐인 것과 비슷한 패턴인 것 같다. ㄲㄲㄲㄲㄲ

(2) 예전에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은 집합에서 조건제시법과 원소나열법의 차이와 같다고 얘기했던 바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도 개념적으로는 일반사면과 비슷하다. 조건제시이지, 원소나열이 아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로 예정됐다는 차원일 뿐, "특정 누구누구는 구원받기로 예정됐다, 지옥 자식 마귀 자식으로 처음부터 예정됐다"라고 생각해서는 심히 곤란하다. 하나님의 예정은 read-only operation이다.

(3)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가 사문화돼 버렸고, 휴전도 사문화됐다. 통일 지향...?? 이건 헌법 차원에서 규정하는 이념이다만 이것도 이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사문이 된 것 같다.
하다못해 이북 북괴조차 "남조선 괴뢰"라는 멸칭을 안 쓰고 우리나라를 무려 "대한민국"이라고 불러 주는 게.. 단순히 울나라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그냥 남남으로 생까려는 의도가 더 크니까 말이다. 욕쟁이 할머니가 정감(?) 있게 "이거나 쳐먹어 이 썩을놈아!" 이러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고객님, 왜 이러십니까" 하는 걸 생각해 보시라. ㄲㄲㄲㄲㄲ

※ 행정부와 사법부의 관계

  • 법무부(法務部)는 사법부(司法府)가 아닌 행정부(行政府) 관할이다. 부의 한자도 다른 것에서 알 수 있듯, 府는 部보다 더 큰 집합이다.
  • 어느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판결을 내리는 건 사법부의 판사이지만, 그걸 실제로 집행하라고 법무부장관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다.
  • 비슷한 맥락에서, 범죄자들에게 징역을 때리는 건 사법부의 판사이다. 그러나 도중에 가석방이나 사면을 내리는 곳은 행정부 계층이다.

성경을 보면, 율법 같은 성문법이나 말씀 계시가 완성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하나님의 직접 개입이 잦았다. 이방인의 꿈에 나타나서 불륜· 간음을 저지하기도 하셨고(창세기의 아비멜렉), 민수기 같은 책을 보면 "이럴 땐 어떡할까요?" / "그럴 땐 이렇게 해라. 이걸 관례로 정착시켜라" 이런 패턴이 종종 나온다.

그것처럼.. 오늘날도 어떤 규칙이나 절차가 법으로 정식 제정되기 전엔 행정부 차원에서 긴급조치나 긴급명령이 먼저 발동된다. 그게 국회를 통해 정식 입법되고 나면 기존 명령은 폐지된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금융실명제만 해도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1993)"이던 것이 훗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1997)"이라고 바뀌었다.

말이 나왔으니 사회 제도 중에서 '긴급'이 들어가는 것들을 더 살펴보면 이렇다.

  • 긴급자동차: 출동 중인 구급차나 소방차, 용의자를 쫓고 있는 경찰차가 대표적이다. 각종 교통법규 위반이 어느 선까지는 허용되며, 딴 차들로부터 양보도 보장받는다.
  • 긴급통화: 112 119 신고는 공중전화에서 돈 안 넣고도 할 수 있고, 개통되지 않은 휴대폰으로도 할 수 있다.
    119 신고는 우리 쪽에서 전화를 끊어도 통화가 끊기지 않는다;; 112 신고는 문자로도 넣을 수 있고, 급박한 상황에서 "짜장면 좀 배달해 주세요"라고 암호· 은어를 써도 신고로 접수될 정도로 민감하다. 그 말인즉슨, 긴급통화로 인정되는 이런 번호로는 장난전화를 더욱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 긴급피난: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서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남을 해친 것.. 아 이건 정당방위에 더 가깝고, 긴급피난은 남이 자기를 해치지 않았는데도 내가 먼저 사고를 친 것에 해당된다. 차량 급발진 때문에 남의 집 답벼락을 부쉈거나, 슈퍼 급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거나.. 어쨌든 둘 다 위법행위의 조각사유로 인정된다.
  • 긴급체포: 이건 경찰이 아닌 일반인이 구사할 일은 없는 용어이다만.. 암튼 중대한 범죄 현행범이나 용의자를 발견해서 무조건 당장 잡아야 할 때 '선체포 후영장' 차원에서 허용되고 시전된다.

※ 군대 식으로 법 적용하기

휴버대 같은 야쿠자 미화물을 보니 야쿠자(+ 그에 준하는 조폭들도 마찬가지)들은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집단이라고 그런다.
현실의 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집단이다. 그래서..

(1) 병사들이 밥 먹는 것은 단순히 공짜인 정도를 넘어, 전투력 유지를 위한 급양 명령의 수행이다. 즉, 이건 의무이니 정당한 사유 없는 무단결식은 징계감이다.
군대는 병사에게 그 어떤 벌이나 불이익을 주더라도 밥을 굶기는 건 절대 없다. 휴가를 짜를지언정 영내에서 식사를 짜르지는 않는다! 밥 굶기는 건 아동학대 같은 데서나 존재한다.

(2) 사관학교에는 자퇴가 없다. 다니다가 못 견뎌서 때려치우고 나오는 것도 먼저 요청을 한 뒤에 '퇴교 명령'을 받아서 나갈 뿐이다. 퇴교가 군대에서 그 생도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인 셈이다.
이렇게 나간 사람은 앞으로 장교는 그 어떤 임관 코스로도 영원히 다시 될 수 없다. 미필 퇴교자는 병이나 부사관으로 군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3) 1년 6개월 이상의 금고· 징역 실형을 선고받은 심각한 범죄자는 군대에서도 안 받아 주고 전시근로역으로 처분시킨다.
그러나 그 죄목 자체가 병역기피(병역법 제86조) 쪽이라면 저런 열외에 해당되지 않는다! 빵 살고 나와서는 여전히 신검 다시 받아야 한다. 울나라 법이 그 정도로 허술한 바보는 아니다.

전과자가 돼서라도 군대를 안 가고 싶거들랑 병역기피가 아니라 다른 흉악범죄(?)를 확실하게 저지르거나 배째라 병역거부를(86조가 아닌 제88조) 시전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이야 3년짜리 대체복무 제도가 생겼으니 이것 때문에 전과자 될 일은 많이 없어졌다.

(4) 일단 입영은 했지만 그 뒤에 실종된 탈영병들한테는 말이다. 다들 잘 알다시피 나라에서 3년인가 간격으로 3군 참모총장 명의로 어서 자수하고 복귀하라는 명령을 꾸준히 내린다. 그래서 탈영죄의 공소시효(10년)가 끝나더라도 다음엔 명령 불복종죄를 물을 수 있다. 그걸 빌미로 장기 탈영병을 40대 후반의 아재가 될 때까지 군법 위반 범죄자로 만들고, 합법적으로 계~~~속 뒤끝 부리며 압박할 수 있다.;;;

법조인들 중에는 공소시효를 꼼수로 회피하면서 사람을 저렇게 들볶는 게 법리상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허나,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병사들의 낮은 임금도 현행 근로기준법과 맞지 않고(지금은 굉장히 많이 오르긴 했지만), 군인은 민간인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징병제 국가에서 특례가 적용돼야 한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아~ 그래서 결혼 선호 우선순위 2등이 군인이라는 개드립도 있는 거구나. 1등은 당연히 민간인 ㄲㄲㄲㄲㄲ
이륜차에 대한 취급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애매한 면모가 많은 것처럼, 군인이 받는 법적 취급도 그런 구석이 있는 것 같다.

(5) 전에 한번 했던 말일 텐데.. 나는 마 11:11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그 위대하다는 침례자 요한보다도 더 큰 자다"라는 구절을.. 이렇게 풀이한다.
율법 대신에 군법을 대입해서 말이다. 전자의 요한은 그야말로 광나는 전투화에 A급 전투복 입은 S급 울트라 모범병사요, 모든 간부들이 탐내면서 제발 군대에서 말뚝 박기만을 바라는 인재이다. 허나, 후자의 쬐끄레기는 그냥 전역한 민간인.. 즉, 이건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다.

민간인이라도 군인처럼 일찍 일어나고 규칙적으로 각 잡고 살고 치약으로 깔끔하게 살면 좋다.
그러나 민간인한테 저렇게 살지 않으면 잡혀가서 '군사재판'에 회부된다고 야바위를 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4/06/06 08:35 2024/06/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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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대한 실행 파일

전통적으로 Windows 운영체제가 깔린 PC에서 볼 수 있는 엄청 큰 DLL 중 하나는.. 마소 Office 제품들이 사용하는 공용 라이브러리인 mso.dll 이다.
Program Files\Common Files\microsoft shared\OFFICExx 디렉터리에 있는 파일인데, 20여 년 전에 이미 크기가 10수 MB가 됐고, Office 2013의 64비트 버전 기준으로 36MB를 넘었다.

저 파일은 리소스나 데이터가 별로 없고, 대부분이 순수하게 코드만으로 저 크기이다.
오피스의 경우, 리소스들은 언어별로 별도의 리소스로 분리가 잘 돼 있기 때문이다.

그 뒤, 요즘은 웹 브라우저의 렌더링 엔진이 왕창 거대한 단일 DLL 자리를 차지하는 편이다.
Windows의 system 디렉터리에 있는 mshtml.dll 도 64비트 기준 20MB를 넘는다. 얘는 Internet Explorer 브라우저의 Trident 엔진 파일인데.. IE는 요즘 죽었으니까 제끼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을 크롬 브라우저의 코어 엔진인 chrome.dll은 거의 220MB에 달한다.
이게 내가 현재까지 알고 있는 제일 큰 DLL이다. 파일에서 적어도 3/4 가까이는 코드가 차지하고 있는 DLL 중에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웹 브라우저 엔진은 단순히 HTML을 파싱하는 문서 렌더러가 절대 아니고... 거의 독자적인 운영체제, 가상 머신, 프로그래밍 언어 런타임 급이 됐기 때문이다. 미치도록 거대할 수밖에 없다.

Visual Studio Code도 주 실행 파일인 code.exe가 160MB가 넘으니 엄청 큰 편이다. 얘도 파일 안을 들여다보면 무식한 리소스빨이 아니며, 전체의 3/4 가까이는 순수 기계어 실행 코드이다. 심지어 1년쯤 전엔 150MB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업데이트를 거듭하면서 더 커졌다~!
그에 비해 내 한글 입력기는 코어 dll이 딱 1MB가 될까말까이다.;; 거기에다 기본 플러그 인 로딩까지 하면 1.5MB 정도 된다.;;

2. 버전 넘버링

마소의 Visual Studio와 Office는 Windows와 더불어 마소를 먹여 살리는 핵심 제품이다.
그런데 얘들은 2010년대 중반, Windows 10 무렵부터 버전을 크게 올리지 않고 깨작깨작 소수점 둘째 자리만 건드리는 게 관행이 됐다. 겉으로 크게 표시되는 연도 버전 말고, 내부의 번호 버전 말이다.

VS는 2015부터, Office는 2016부터 16.x 버전이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 VS는 2022가 출시되면서 번호가 17.x로 올라가긴 했지만, _MSC_VER의 값은 여전히 19xx대 고정이다.
뭐, Windows 역시 10부터 내부 파일들의 버전 역시 10.x 고정이긴 하다. 얘는 10을 끝으로 새 버전 브랜드를 더 만들지 않을 것처럼 얘기했다가 결국 11, 12를 내면서 입장을 번복하게 됐는데.. 그래도 11도 겉으로만 그럴 뿐, 내부 번호는 여전히 10이다.

10년 넘게, 거의 20년 가까이 1.0도 아니고 0.x대 버전을 유지하고 있는 건 DOSBox 내지 putty 정도인 것 같다.
그 반면, 웹브라우저 쪽은 크롬이 주 버전 번호를 팍팍 올리는 관행을 만들었다. 얘는 버전이 12도 아니고 이미 12x을 넘어섰다. 무려 백 자리..

Java의 경우, 한때 1.3, 1.4 이렇게 번호를 올리다가 2010년대부턴가 그냥 7, 8, 9로 넘버링 방식을 바꿨다. 주 번호를 계속 1로 유지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애플 진영도 macOS X이라고 해서 한때 10.1, 10.2, 10.3 ... 이러다가 나중에는 11, 12, ..., 14.x로 주 번호를 올리기 시작했다. Windows와 macOS 모두 버전의 주 번호에서 10을 떼어냈는데.. 내 한글 입력기는 언제쯤 10을 졸업할지? =_=;;

3. UI 트렌드

(1) 소프트웨어에서 자신의 종합적인 옵션/preference를 설정하는 명령이 있는 메뉴는? 보통은 '도구' 메뉴의 맨 끄트머리에 있는 게 관행인데, (마소 UI 디자인 가이드라인) 이게 약간 케바케 성향이 있는 것 같다. 크로스 플랫폼 제품 중에는 편집이나 심지어 파일 메뉴에 배치된 경우도 있다.

Windows 3.1 시절 옛날에는 아예 '옵션'이라는 메뉴가 따로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관행은 95의 도입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 수십-수백 개에 달하는 옵션들을 지정하는 단일 대화상자가 탭이나 웹페이지 형태로 거대하게 바뀌었을 뿐.
옛날에 아래아한글 2.0은 1.5x 이후로 기능 추가와 구조 변화가 워낙 많았던 제품인지라, 새로 추가된 옵션들이 '선택사항 - 기타'의 부메뉴로 중구난방으로 쭈루룩 달렸던 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2) 데스크톱 프로그램이건, 웹사이트건.. '다크 모드'를 제공하는 게 요즘 완전 유행이 됐다.
글쎄, Windows에서 이거 전신은 '고대비 검정'이 아닐까 싶은데.. 이건 사용자 취향보다는 장애인 접근성이나 특수한 디스플레이 환경을 고려한 기능이었다.
아울러, 아이콘들의 디자인이 알록달록 대신 단촐해지면서 그림보다는 픽토그램에 더 가까워진다. 표현 형태도 벡터 폰트에 더 가까워졌다.

(3) SNS가 발달하면서 어디서나 사람 언급은 @, 키워드 태그는 #.. 이게 관행이 됐다.
이모지에다 별도의 문자 코드를 배당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만.. 이제는 게시글에 대한 피드백(좋아요, 놀라워요, 화나요 등등)조차도 거의 국제 표준을 제정해도 될 것 같다. 정말 2, 30년 전에 ICQ니 msn 메신저니, 네이트온 쓰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관행이 생겼다.

(4) 리눅스 셸이 GNOME이냐 KDE냐 하는 건, 통신사를 SKT 쓰냐 KT 쓰냐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ㄲㄲㄲㄲ
개인적으로는 우분투+GNOME 말고 딴 건 접해 보지 못했다. 우분투가 대세인 듯..

(5) 어떤 컴퓨터를 원격으로 접속해서 사용하는 방법이란 게 전통적으로 (1) 명령 프롬프트(터미널), (2) 파일 시스템(FTP)으로 나뉘는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컴터 성능과 네트워크 속도의 향상 덕분에 GUI 셸, 데스크톱을 통째로 가져와서 원격으로 쓰기도 한다. 이를 구현하는 프로토콜은 표준으로 채택된 게 있는지, 아니면 제품별로 다 찢어져 있는지 궁금하다.
이건 '텍' 같은 전산 조판 언어로 코딩하듯이 문서를 만들던 게, 그냥 GUI 위지윅 워드 프로세서로 바뀐 거나 마찬가지다.

(6) 크롬 브라우저에 있는 adblock 애드인은 단순히 웹사이트 한구석에 붙은 구글 광고만 차단하는 줄 알았더니만.. 유튜브의 짜증나는 6초~15초짜리 광고들까지 몽땅 차단 박고 스킵시켜 주는구나.. 오오~ 매우 놀랍다.
그런데 유튜브의 엔지니어들도 바보가 아닐 것이고 광고주의 자기들 밥줄을 끊는 짓은 단속하지 않을까..?? 창과 방패의 싸움이 계속될 듯하다.
유튜브를 exploit하는 두 가지 방법이 광고 차단이랑 동영상 다운로드인 셈이다.

4.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요즘은 소프트웨어의 보안 취약점 내지, 이를 이용해 증식하는 악성 코드가 야기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랜섬웨어한테 자기 컴터나 심지어 직장 업무용 컴터가 털렸다는 소식은 본인조차 주변 지인으로부터 심심찮게 들었을 정도이다. 교통사고로 지인 누구가 다쳤다는 소식에 근접할 정도로 꽤 가까워지고 흔해졌다.

마소에서 보안, 보안 노래를 부르면서 모든 사용자에게 보안 업데이트를 끄지도 못하는 반강제로 주입시키고, 심지어 정품 인증에 실패한 불법 복제 Windows에다가도 보안 업데이트만은 무료로 꼬박꼬박 시켜 주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악성 코드한테 털려서 좀비가 된 컴터는 다른 멀쩡한 컴터한테도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가 단순히 기능 추가나 자기 동작 차원의 버그 수정만 필요하다면 업데이트를 이렇게 귀찮을 정도로 강요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보안 업데이트가 인간한테 주요 전염병 백신과 비슷한 존재가 돼 버렸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Windows 업데이트는 너무 과한 구석이 있다. 악성 코드가 아니라 업데이트 서비스 네놈이 평소에 컴터 CPU를 과도하게 잡아먹고, 긴급히 컴터를 쓰고 싶은 상황에서도 세월아 네월아 재부팅을 강요한다.
그래서 요즘은 Windows를 부팅시켜 놓고 몇 주~몇 달째 계속 부팅 상태를 유지하며 켜 놓는 게(완전히 끄지 않고 절전 모드 전환도 포함) 사실상 불가능하다. 업데이트 설치 핑계로 지들이 제멋대로 재부팅을 해 버리기 때문이다.

옛날에 Windows 9x 시절이야 운영체제가 불안정하고, 16비트 영역의 메모리 리소스가 고갈됐기 때문에 컴을 오래 켜 놓을 수 없었다. 그때는 재부팅 정도가 아니라 운영체제 재설치까지 주기적으로 해야 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그런 미개한 요인들이 당연히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컴을 오래 켜 놓지 못한다는 거다. 이게 말이나 되냐?

5. 터미널 환경에서의 동작

개발자? 프로그래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암튼 이 바닥 종사하는 사람은 일반인들보다는 컴퓨터에서 GUI가 아니라 '명령 프롬프트'를 다룰 일이 더 많다.
Windows의 명령 프롬프트는 말할 것도 없고 PowerShell, Visual Studio Code, putty, Windows Terminal, 리눅스의 명령 프롬프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터미널을 쓰다 보면..

화면에 뜬 텍스트를 블록 잡고 복사하는 간단한 조작을 좀 하고 싶은데 키보드나 마우스 동작이 미묘하게 서로 달라서 불편을 겪곤 한다.
putty는 우클릭만으로 명령어 붙여넣기가 되는 반면, 어떤 데서는 그게 휠 클릭이고 우클릭은 일반적인 컨텍스트 메뉴 표시이다.

어떤 곳에서는 블록을 잡고 나서 Ctrl+C로 복사를 시키는 반면, 어떤 데서는 그랬다가는 실행 중지 Ctrl+C가 곧이곧대로 전달된다. 한 프로그램의 단축키와 동작에 익숙해졌는데 딴 프로그램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웠다. =_=;;
개인적으로는 터미널의 GUI 차원에서 특정 문자열이 등장했을 때 highlight 시키는 기능, 그리고 구획을 나눠서 clear을 시키면 최신 구획의 텍스트만 다 날리는 기능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터미널은 컴퓨터에 접근해서 뭔가 조작을 하는 제일 저렴하고 효율적인 방법임이 틀림없다. 이거 아니면 파일 시스템만 다루는 FTP.. 하지만 요즘은 컴터 성능과 네트워크 속도가 받쳐주다 보니 아예 원격 데스크톱 GUI 화면을 통째로 쏴 주는 가상화도 가능해졌고, 이게 터미널과 FTP 기능까지 상당 부분 흡수한 상태이다. 인터넷이 괜히 WWW가 닥치고 짱이 된 게 아니듯이 말이다.

6. 나머지 불편하거나 궁금한 거

(1) 10여 년 전, Windows 7쯤이었나? SSD 하드라는 게 처음 도입됐을 때 말이다. 하드디스크가 통째로 램 드라이브로 바뀌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부팅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져서 신기하다고 난리였다.
그러나 Windows 10이니 11이니 하는 지금은..?? C 드라이브에 다들 SSD를 쓰고 있는 세상인데도 부팅 시간이 옛날에 재래식 하드로 Windows XP나 7을 부팅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디스크 속도가 올라간 것 이상으로 Windows도 더 무거워지고 이것저것 불러들이는 게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에휴~
옛날에 디지털 카메라가 싸구려 기종이라도 폰카보다 좋은 게 물리적인 zoom 기능 말고도.. 부담 없이 끄고 켜는 게 가능하고 부팅이 아주 신속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디카에는 컴퓨터가 들어있긴 하지만 '범용 컴퓨터'가 들어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2) Windows 10/11의 시작 메뉴에서 검색란에다가 타이핑을 했는데 원하는 프로그램 검색이 안 되고 멀뚱멀뚱 있는 버그 말이다. 정말 악명 높지 않았는가?
글쎄, 내가 완전 최신 버전을 쓰고 있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설마 아직까지 그 버그를 달고 다니지는 않으리라 추측한다.
이건 개인적으로 Win10의 사용 경험을 크게 악화시킨 버그였다. 사용자가 현실에서 엄청 자주 사용하게 될 기능이 이 따위로 동작하다니, 품질 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3) Windows 8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메트로 앱 '메일'이 요 근래에는 New Outlook으로 몰래, 쓰윽 대체된 듯하다. 수십 년 전에 있었던 Outlook Express의 후신이 등장한 것 같다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관심 없고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제멋대로 설치되는 건 비호감이다. 이건 그놈의 보안하고도 아무 관련 없는 사항이지 않은가.

그리고 마소에서도 화상 회의 앱에 관심이 생겼는지 Microsoft Teams라는 걸 만들었는가 보다. 내가 실행하지도 않은 녀석이 제멋대로 깔려서 CPU를 잡아먹고 있길래 바로 강제 종료하고 제거해 버렸다.
악성코드를 빌미로 지들이 악성코드처럼 구는 거는 난 절대 용납 못 한다.

(4) 이건 PC가 아니라 잠시 스마트폰 얘기이다만.. 사용자가 입력하는 텍스트를 자동 완성 내지 오타 교정한답시고 사용자가 진짜로 의도한 문자열까지 제멋대로 바꿔 버리는 거 말이다. 아이폰이 여전히 악명 높은가 보다.
주변에서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오타를 내는 사람을 많이 봤고, 나도 아이폰 쓰던 시절엔 이것 때문에 난감한 일을 몇 번 겪어 봤다.

난 내가 입력한 텍스트에는 내가 직접 책임을 지고 싶어서.. 마소 워드가 기본 제공하는 자동 고침 기능조차도 오지랖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대소문자, 줄표 등등~~) 자동 고침을 할 거면 그걸 철회하고 사용자의 원래 텍스트로 되돌리는 UI라도 주변에 눈에 띄게 넣든가.. 아이폰은 내 기억으로 그런 게 없었다.

(5) 어느 컴퓨터에나 프로그램 설치/제거 리스트를 보면.. 서버 개발자도 아닌 엔드 유저한테 MS SQL server는 누가 언제 왜 잔뜩 설치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 걸까..??? 최신 버전도 아니고 그냥 2008인데 말이다.
옛날 win7 시절에는 '실버라이트'라는 제품도 슬그머니 깔리곤 했는데 그건 망했기 때문에 요즘은 눈에 띄지 않는다.

(6) Visual Studio라든가 아래아한글 같은 프로그램은 자체적인 설치 관리자 내지 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제품이다. 그런데 뭔가 새 마이너 버전이 나와서 업데이트를 찍으면.. 업데이터 자기 자신부터 업데이트 되는 경우가 엄청 잦다. 그냥 심심하면 업데이트 된다.
업데이터는.. 일관된 체계로 버전 체크를 하고 새 패키지를 다운로드하고 파일 복사, 덮어쓰기, 삭제하는 기능이 전부일 텐데.. 한번 잘 만들어 놓고 나면 고칠 일이 거의 없을 텐데?? 내부적으로 뭐가 그렇게 자주 바뀔 게 있는지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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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4/06/03 08:35 2024/06/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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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신앙관, 세계관

1. 희망과 절망

마귀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 너는 충분히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굳이 예수 믿을 필요 없고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근자감을 불어넣거나 (희망)
  • 반대로 너는 너무 악한 인간쓰레기이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까스라이팅을 한다. (절망)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와 다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비참한 죄인이란 것까지만 절망이고, 그 뒤에 예수님 보혈 의지해서 그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복음이 희망이다!

예수님이 선한 도덕 선생이라느니 훌륭한 사상가, 언행의 모범 본보기 등등등.. 이런 건 구원받은 사람에게나 필요한 면모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예수님이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자부터 돼야 한다. 무조건 반드시~

2. 정당한 불가지론과 나쁜 불가지론

(1) 예수 믿는 신앙생활의 관점에서 이런 건 정말 알 수 없는 불가지론이고 불확실한 게 맞다.

  • 예수님은 언제 다시 재림할까? 휴거는 언제쯤 일어날까?
  • 난 과연 살아서 주님 다시 볼까? 난 언제 죽게 될까?
  •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까?
  • 지금 갑자기 무슨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앞날 창창한 사랑하는 가족 친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거.. 여기에 도대체 무슨 주님 뜻이 있을까?

애초에 증명돼 있지 않는 걸 지지하는 것이니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거다.
기독교가 뻘짓 동원해서 미래 앞날 일을 예측하려 하는 수작을 왜 그렇게도 금지하고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시라. (점, 운세.. 단순히 수학 과학 방법론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거 말고)

(2) 그러나 이런 건 불가지론의 영역이 전혀 절대 결단코 아니다.

  • 신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 나 구원받은 거 맞나? 지금 죽어도 당장 하늘나라 가는 거 확실하나?
  • 이 정도면 대환란 겪지 않고 바로 휴거될 수 있을까?
  • 지금 우리에게 자필원본과 동급으로 온전히 보존된 성경 말씀이 존재하는가? 신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가?
이걸 확신하고 굳게 믿는 건 무슨 교만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안 믿는 게 잘못된 불신이다!

(2)에서 말하는 성경, 구원이 확실하게 보장돼 있기 때문에 (1)에 대해서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거다. (2)의 확실함이 (1)의 불확실함에 대한 원동력이다!! 그래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고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
구원 하나 제대로 못 받아서 "글쎄, 죽어 봐야 알겠지"인 주제에 (1)을 버티라고? 내가 보기엔 그건 그냥 종교적인 기만이고 야바위질이다. 열정페이처럼 신앙페이 착취이다.

내가 비록 지식 면에서 신학교 졸업생 급으로 히브리어 헬라어를 통달했거나 성경 지리, 고고학 등을 다 줄줄 꿰는 게 아니고, 영성 면에서 맨날 길거리에서 복음 전하고 말 끝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찬송시를 쓰는 것도 아닌 일개 쪼랩 예수쟁이긴 하다.
그러나.. 그래도 성경 전반에 담긴 법리, 집필 관점이라든가 신앙생활 원리 쪽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 변증은 나름 강하다고 자신한다.

3. YOLO

YOLO라고..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인데 후회 없이 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며 짧고 굵게 자유롭게 살아~!! 이런 말이 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메시지가 될 수도 있고, 무슨 히피 같은 허랑방탕을 조장하는 불건전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글쎄, 성경은 히 9:27을 보아하니 live once보다는 die once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YODO인 건가. ㄲㄲㄲㄲㄲ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환생이나 윤회(∞), 소멸(0)하지는 않는다는 맥락에서 die once인 거다(1). 자유롭게 사는 건 좋지만 죄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한다.

수 년 전엔 구내염약 알보칠에서 You only Pain once라는 약 빤 CF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YOPO ㄷㄷㄷㄷ
요들쏭 부르듯이 요뽀요뽀 이러면서 진짜 강렬하고 병맛 넘쳤다.
알보칠 바를 때 겁나게 아프다는 거는 부인하지 않는다. ㅋㅋㅋㅋ "그래도 아픈 건 잠깐일 뿐이야~~~ 고통을 짧고 굵게 끝내고 구내염이 빨랑 낫는 게 중요하지?"

그런 논리로 롬 8:18이나 베드로전서 내용을 담으면 You only Suffer once 요쏘~~~도 가능할 것 같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머신러닝 업계에서는 이미지에서 각종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해서 추출하는 인공신경망 중에 YOLO...;;;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이 출시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You only Look once이다.

4. 세계관

예수 믿고 교회 댕기기는 하는데 신앙 수준이 너무 단편적인 사람이나 교회 말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 기독교 국가들이 잘 살고 부강하고 세계를 석권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이런 사람들이 꼭~~ 어디 자연재해 참사가 터진 곳은 우상숭배 해서 심판 받고 벌받은 거라고 경솔하게 발언해서 어그로를 끌곤 한다.
그리고 일본은 어떻고? 기독교 배경 전혀 없지만 그냥 자기들이 노력하고 근대화 잘해서 잘 살고 노벨 상 수상자도 저렇게 많이 배출했을 뿐이다.

이렇게 수준 낮고 허점투성이에 털릴 게 많은 발언은 좀 그만 해라.
예수쟁이라면 기독교 배경· 성경적 세계관이 있는 나라들이 뭐가 진짜로 더 선진적이고 더 좋은지를 제대로 고찰해야 한다.

  • 사농공상 ㅆ선비 꼰대질 짓거리가 없이(최소한 동양 유교 문화권보다는 덜한..) 노동 근로가 존중받는 거,
  • 위선 체면 떨고는 뒤에서 추잡한 짓 하는 게 아니라, 돈이나 성에 대해서 차라리 면전에서 처음부터 더 솔직한 거,
  • 거짓말, 위증, 기본적인 비윤리 부정행위를 훨씬 더 금기시하고 엄하게 처벌하는 거
  • 사심 없이 인심이 후하고 기부, 기증, 입양이 많은 거
  • 잘못을 인정하면 개 호구 바보 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걸 믿고 인정하는 거 (이거..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의 기본 근간 전제조건이다)
  • 반대로 쓸데없이 가오 내세우면서 "죽어서 속죄"를 남발하지 않고, 차라리 살아 돌아와서 사죄하고 평생 책임지는 걸 더 높게 치는 거,
개인 구원과 관계없이, 나라의 단순 군사력 경제력과 무관하게 이런 의식 수준의 차이를 더 진지하게 고찰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러면 교통사고가 하나 나더라도 그때 가해자 피해자의 처신이 달라지고 사회의 치안 비용, 복지 비용에서 차이가 날 거다. 이건 단순히 문화적 상대성 차원이 아니다.

난 일본이 물질과 과학기술 면에서는 서양을 따라했지만 바로 저런 면모에서 진짜 서양보다 크게 뒤쳐졌기 때문에 국민들이 죽어나가고 개고생했으며, 태평양 전쟁 때 저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서양 유럽이 언제부터 학문과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동양을 앞질렀는지를 묻는다면 예수쟁이들은 종교개혁을 떠올리지만, 일반 세상에서는 그냥 계몽주의나 르네상스 같은 걸 떠올린다.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5. 참가만으로도 대단하긴 하지만, 일부러 참가에만 안주하지는 말아야 함

“올림픽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의미가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아 물론 무슨 취지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가 된다.
뭔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하고, 무언가에 일관되고 꾸준한 것을 좋게 보고, 학교에서 개근상을 다른 어지간한 성적 우수 만만찮게 좋게 보던 사고방식 말이다. 이건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 말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저 말이 불성실과 나태를 합리화하는 말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
기왕 싸움을 시작했으면 이길 생각을 해야 하고, 기왕 경쟁 내지 경기를 시작했으면 우승할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지금 울나라가 쌍팔년도 시절처럼 엘리트 체육에 목숨 걸면서 선수 한두 명이 메달 딴 거 갖고 국위를 선양하네 열등감을 극복하네 마네 연연하는 지경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비도 아니고 세금으로 육성된 국대 선수라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도 나오기는 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올림픽이 아니라 월드컵이긴 하다만, “월드컵은 뭘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배운 걸 입증해 보이는 자리입니다.” 이런 말도 있었다. (이 영표 해설자가 2014년 월드컵의 졸전 때 빡쳐서.. -_-)

신앙 생활에서도 같은 적용을 할 수 있다. 당연히.. 예수 믿은 사람은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고 천당이 보장됐으니 신분이 넘사벽으로 달라졌다. 영적 전투 아레나에 참가 선수로 등록된 것만으로도 올림픽 국대 선발 이상으로 얼마나 감지덕지인가?

하지만 0에서 무려 1을 만들었으면 1을 10, 100으로 불릴 생각도 해야 된다. 구원을 받았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의 구원자 예수님으로부터 이쁨 받고 상 받을 생각을 해야지.
“저는 그런 상 같은 것엔 연연하지 않아요. 그냥 예수님만 있으면 돼요”는... 미안하지만 무소유 겸손이 절대로 아니다! 그건 매우 높은 확률로 또 다른 무지와 불신이다. 어쩌면 교만까지 추가돼 있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해라. 세상 셀럽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라든가(서울 강남 아파트나 고급 외제차나 명품빽, 최신 스마트폰=_=), 노벨 상, 필즈 상, 무궁화 대훈장, 금은동탑 산업훈장, 태극 무공훈장, 연예계의 무슨 아카데미 상에 비해..
성경에 약속된 여러 왕관(면류관)들은 실감이 안 가거나 믿기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거다. 최악의 경우는 아예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거나.

그리고 예수님께 이쁨 받고 나중에 상 받는 방법은 세상의 각종 분야별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하고는 접근 방식이 좀 다르다. 애초에 자기 육신의 능력을 보이는 게 아니니까.. 저 바닥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과정 지향 사고방식과 결과 지향 사고방식이 모순되지 않는다. 이런 보상은 아무리 욕심 내도 당신의 영적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다!

세상에서 기계를 만들 때 전력 소모 줄이고 공기 저항 줄이려고 최적화에 목숨 건다. 운동 선수들도 체중이나 복장을 얼마나 미치도록 튜닝을 하는데?
본질적인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dead weight 낭비 요소들을 털어내는 것이 신앙생활에도 필요하다. 이것이 히 12:1이 말하는 바이다.

다시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연히 주님 주시는 보상을 "바라고," 어쩌면 적극적으로 추구도 해야 한다. 그래야 부당한 손해나 핍박도 감수하고 세상 추세를 역행하는 삶을 살 원동력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된다.
신앙생활에서 신자와 하나님이 서로 주고 받는 딜이 뭔지, 신자의 십자가가 뭔지를 잘 모르니까 보상도 바랄 필요 없다느니, 대환란을 자기가 겪으면서 연단되겠다느니 하는 당치도 않은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을 무슨 신앙페이 열정페이 착취하는 엄한 금욕주의 갑질 업주로만 알거나 말이다(게으르고 악한 종).

Posted by 사무엘

2024/05/31 08:35 2024/05/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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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호박 농사 근황

올해도 벌써 5월이 끝나 간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7이 나온 지도 거의 한 달이 돼 간다.
해마다 봄이면 언론에서 맨날 봄 가뭄이 심하다고 떠들곤 했다. 그러나 올해 봄은 초여름 더위가 일찍 찾아오긴 했지만 비도 꼬박꼬박 많이 내린 것 같다. 봄 가뭄이니 산불이니 하는 말이 없었다.

지난 3월 이래로 이 블로그에 호박 얘기가 전혀 없었다니.. 오랜만에 그거 근황을 전하도록 하겠다.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실내에서 호박씨를 뿌려 봤는데.. 안타깝게도 결과가 별로 좋지 못했다. 작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실내에서 암꽃을 수분시켜서 사과· 배보다 큰 호박을 따기도 했는데.. 그런 일이 그 뒤로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설마 동일한 화분에다 계속 연작을 해서 그런지?

호박이 조금 자라려 하면 어김없이 잎에 흰가루병이 생기고.. 나중에는 온통 진딧물이 꼬이곤 했다.
한때는 호박이 하루 이틀 간격으로 꽃을 피우곤 했는데 나중엔 기력이 다했는지 꽃이 더 피지 않고, 잎이 시들고 빠졌다.
특히 전에도 얘기했었지만.. 작년 겨울 동안 실내에서는 암꽃이 단 한 송이도 피지 못했다. 씨방이 맺히던 것이 기력이 부족한지 암꽃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 떨어졌다.

흐~~ 이 정도면 저 화분의 흙이 지력이 다한 건지? 비료만 보충해 주는 걸로는 안 되는지? 다 엎어버리고 화분을 다시 세팅해야 할지..???
그래도 이제 3월 말부터는 날이 따뜻하니 화분을 실외로 옮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호박씨를 흙에 파묻었다. 이때가 4월 1일인가 2일이었다.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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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경에 이랬던 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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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사흘 뒤에는 이렇게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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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에는 진도가 빠른 아이들은 벌써 본잎도 이만치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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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26일, 화분이 터져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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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난 5월 2일과 5월 5일.. 잎이 엄청나게 커졌다.
이때 파릇파릇한 호박잎을 수십 장이나 따서 먹었다.
이 많은 호박들을 저 비좁은 화분에서 모두 끝까지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을 솎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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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 큼고 넓적하고 허연 힘줄(줄무늬)이 가득한 잎 좀 보소. 장기복무에 탈락한 호박들이 남긴 유산이다.
찌거나 데쳐서 쌈장 찍어서 고기와 함께 먹기도 했고, 라면에다 넣어서 먹기도 했다. 별미였다.
지금은 잎만 수십 장 얻었지만, 몇 달 뒤엔 작은 거라도 열매를 10여 개라도 좀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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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너무 조밀하던 아이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니 화분들이 다시 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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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주일쯤 뒤인 5월 19일, 그래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몸집이 예전에 비해 길어졌다. 화분이 휑하다는 느낌이 거의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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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몸집이 눈에 띄게 길어진 게 느껴졌다. 바닥에 치렁치렁 늘어진 덩굴 줄기를 추스르고, 막대기를 타고 오르도록 가이드를 하기 시작했다. 우주 발사체에다 비유하자면, 이제야 얘들이 수직 상승이 아니라 수평 이동을 시작하고 지구 공전 궤도에 진입한 것 같았다. 생후 40~50일쯤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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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이런 덩굴손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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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로부터 사흘이 또 지난 5월 25일의 모습이다.
아아~호박이여~!! 어서 꽃 피고 열매도 맺히기를. 다음 호박 근황글에서는 꽃과 열매 이야기가 올라왔으면 좋겠다.

※ 여담

1.
화분에서 다 키울 수 없어서 퇴출된 호박 중 일부는 집 근처의 공원 모처에 몰래 옮겨 심어 보기도 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살면 다행이고, 죽어도 그냥 본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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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뿌리째 뽑힌 채 방치되면 마치 물 밖으로 꺼내어진 물고기처럼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시들고 죽는다.
그런데.. 최대한 조심해서 주변의 흙까지 다 같이 파더라도, '옮겨 심기'는 식물에게 큰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다. 흠 그러고 보니 금붕어 어항 물갈이와도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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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져서 심긴 식물은 분명히 죽은 건 아니지만, 성장도 못?안? 하는 채로 한참을 저렇게 있으면서 발육이 뒤쳐졌다. 이거 효율을 좀 개선할 수 있겠는지 궁금하다.
화분에서 붙박이로 있었던 아이들은 저렇게 굵어지고 길어지고 난리를 치는 중인 반면, 쟤는 그냥 난쟁이가 돼 버렸다. 그 상태로 이제 잎 몇 장 더 나고 흰 줄무늬가 생긴 게 생존 인증의 전부이다.

이것 말고도 옮겨 심은 애들이 여럿 있지만, 그나마 제일 잘 자라고 있는 아이가 저런 상태이다.
그래도 이제 뿌리를 다시 잘 내렸는지, 살짝 잡아당기는 정도로는 꼼짝도 안 한다.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잘 보살펴 줘야겠다.
뉴스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면서 울나라도 올여름에 재앙 급의 물폭탄이나 폭염이 예상된다고 벌써부터 난리를 치고 있다. 그러면 얘는 또 물에 잠기려나? 자연재해나 도난 걱정, 공간 걱정 없이 호박을 마음껏 키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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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내에서 키우고 있는 이 생후 한 달짜리 호박도 제법 많이 컸다. ㅎㅎ 얘는 힘줄이 전혀 없네.. 단호박인가 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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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살아 있는 호박은 아니지만.. 보기가 참 좋아서 힐링용으로 잠시 소개한다. 침실에 온통 이런 방석, 베개로 가득하면 참 훈훈할 것 같다.

나는 이걸 호박 쿠션이라고 부르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베개라고도 하고 심지어 인형이라고도 부르더라. 사람의 평소 개념 인지 알고리즘이 어떻느냐에 따라서 어휘 선택이 달라지는 듯하다.
아무렴, 동물이나 만화 캐릭터 얼굴이 아니라 식물.. 그것도 채소 열매가 쿠션이나 베개 모양으로 쓰이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호박이 이래서 매력만점 채소인 것이다. 열매뿐만 아니라 덩굴과 잎까지도 말이다.

우리 예쁜 여친님이 호박 쿠션을 선물해 줬을 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쿠션을 세탁까지ㅠㅠㅠ 해 주고 있다.
그런데 쿠션의 안에 들어가는 솜이 반영구적인 재질이 아닌지, 세탁을 여러 번 하면 비가역적으로 뭉개지고 망가지는 것 같다. 그러면 예전처럼 푹신하고 탱탱하지를 않아서 쿠션· 베개 용도로는 못 쓰고 그냥 관상· 전시용이 된다.

3.
이렇게 호박들이 잘 자라고 있는 와중에 본인의 가장 큰 고민은 앞서 얘기했듯이 백해무익 불청객인 진딧물이다.
저 화분과 저 흙의 문제인지..??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호박이 어느 정도 자란 뒤부터는 실내와 실외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멀쩡히 시퍼렇게 잘 자라던 잎이 갑자기 쭈글쭈글해지고 시들고 말라 죽는다. 그런 잎은 뒷면을 들여다보면 진딧물 떼거지가 새까맣게 뒤덮힌 끔찍한 몰골이다.
이건 뭐 그냥 시꺼먼 점들이니까 난 벌레일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 그냥 얼룩이나 세균 차원의 병이라고 생각했었다.

진딧물은 단순히 식물의 진액만 빨아먹는 게 아니라 자기가 소화시키지 못한 똥까지 주변에 싸지르면서 식물을 완전히 작살을 내 죽인다고 한다. 정말 보이는 족족 무조건 박멸해야 된다. 오히려 완전 야생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다.

인터넷을 보니 물에다가 퐁퐁 같은 주방 세제를 타서는 분무기로 잎과 줄기, 주변의 흙까지 뿌려 주라고 했는데.. 당장 눈에 띄는 진딧물을 퇴치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진딧물을 손으로 일일이 터뜨리고 뭉개고 거기다가 세제 탄 물을 뿌렸더니 그 부위가 깨끗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겨우 그렇게만 해 준다고 딴 데 있는 진딧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거. 그런데 이것 말고 딱히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본인의 호박 농사가 꽤 큰 고비에 부딪힌 것 같다. =_=;;

Posted by 사무엘

2024/05/28 08:35 2024/05/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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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고 교회 다니고 성경 읽는다는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성경 구절 검색엔진뿐만 아니라 찬송가 가사 검색엔진이 될 필요도 있다.
상황별로, 혹은 비슷한 가사, 비슷한 조나 박자.. 이어서 같이 부르기 좋은 곡. 이런 게 줄줄이 생각나도록 말이다. 그게 인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난 개인적으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가는 예수쟁이 크리스천의 아리랑 같은.. 거의 민요 급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진취적인 행진곡 군가풍이 아니고, 3박자이지만 그렇다고 막 왈츠 춤곡 아니고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급의 얼쑤 지화자 좋다~~=_=도 아니고 적당히 샤방샤방한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한편, 수십 년 전엔 미국의 어느 군소 장로교 교파에서 저 경기도 아리랑 멜로디에다 영어 가사를 얹어서 Christ, You are the fullness of God이라는 창작 찬송가를 수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게 무슨 TV 방송에서 "미국인들이 아리랑 멜로디 듣고 엄청 감동하더라" 이렇게 국뽕(!!!) 주입하는 쪽으로 소개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출처 검색이 안 되는 걸 보니, 다 지나간 일인 듯하다.

근데 아리랑이 멜로디가 좋으면 뭐 하냐? 가사는 그놈의 한이 맺혀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걸어가다 1시간도 채 못 되어 발병 나서 자빠질 거다"로 끝이다.
그 반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완전 차원이 다르지 않느냐 말이다.

이 비참한 죄인이던 내가 구원받았고 그 은혜가 너무 고맙고~~ 난 죽더라도 하늘나라 본향으로 돌아갈 거고.
이제는 사람 골병 들게 만드는 원한이란 걸 품을 이유가 없고, 한 맺혀서 남을 저주해야 할 필요가 추호도 없다. 내가 한을 품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가 한없는 거지.

사람이 이렇게 삶의 이유와 목적, 명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면 그게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건강· 건전한 정도로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저런 찬송가가 만들어졌던 18~19세기 서양의 문화가 다 건전하고 좋기만 했다는 것도 당연히 절대 아니다. 허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정도면 그야말로 불멸의 명작 찬송가이고 세계 각국의 크리스천들이 이 정도면 가사 다 외우고 조선 시대 사람들이 아리랑 불렀듯이 필요할 때 어디서나 암송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2. 미국의 맹인 여성 두 분

(1) 헬렌 켈러 (1880-1968)
나는 죽기 직전에 딱 사흘만이라도 눈을 뜨고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을 좀 해 보고 싶다. 그게 내 소원이다.
눈을 뜨게 된다면 제일 먼저 내 인생의 은사인 설리반 선생을 보러 갈 것이다. 지금까지 감촉으로만 느꼈던 선생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것이다. 그리고 바람에 나풀거리는 잎사귀들, 아름다운 석양과 노을을 보고, (… 무슨 휴가 나온 군인처럼 구경할 거, 돌아다닐 곳 계획 다 짜 놓고…) 마지막 날엔 도시에서 출근하는 사람들 얼굴을 보고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 구경도 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보고 나서 눈을 감기 직전에 사흘 동안이나마 시력을 허락해 주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면에 들어갈 것이다.

(2) 패니 크로스비 (1820-1915)
나는 영아 시절에 내 눈을 망가뜨렸다는 돌팔이 의사양반에게 아무런 악감정이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평생 맹인인 채로 사용하시려고 그 일을 허락하신 것이다. 나는 이대로도 너무너무 행복하다.
굳이 지금 눈 뜨지 않아도 좋다.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눈을 떴을 때 사랑하는 예수님 얼굴부터 맨 먼저 보게 될 테니까!
세상에서 OME로 더럽혀지지 않은 눈, 포장 안 뜯고 “아무것도 안 본 눈 삽니다”를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해도 이렇게 맹인으로 살 의향 있다.

영성의 레벨이 다르구만. ㅠㅠㅠ
헬렌 켈러는 좌파적인 사회 활동 때문에 쌍팔년도 우리나라 위인전에서는 오로지 어린 시절만 다뤄지곤 했다. 저 사람이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까지 나와서 뭐가 됐고 무슨 활동을 했는지 얘기는 함구하곤 했다. ㅡ,.ㅡ;;; 뭔가 마크 트웨인과 비슷한 인상이다.

패니 크로스비야 뭐.. 인류 역사상 찬송시를 제일 많이 남긴 단일 인물이다.
현대인들이 페북이나 트위터 인스타에다가 자기 먹방이나 여행 자랑글 올리는 것과 대등한 빈도로.. 그딴 글 대신 예수님 생각하고 자랑하고 찬송하는 시만 썼던 사람이다. ㄷㄷㄷ
그리고 패니 크로스비는 간호사 겸 의료 행정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동갑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죽은 사람이기도 했다. ㄲㄲㄲㄲ

3.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의 작사자

찬송가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은 울나라 기독교계에서 두루 사랑받는 명작 찬송가이다. 가사 내용의 특성상 연말이나 교회 창립 기념일 때 부르기 좋다.
얘는 특이하게도 멜로디가 두 버전이 존재한다. 한국인 박 재훈 작곡의 흥겨운 민요풍 버전이 있고, 그것보다는 차분하게 "복의 근원 강림하사" 멜로디 기반인 외국곡 버전이 있다.

우리나라 찬송가들엔 둘이 쌍둥이처럼 같이 수록돼 있는 편이다. (이렇게 같은 가사에 두 멜로디가 모두 유명한 다른 예로는 성탄 찬송인지 캐롤인지 애매한 Away in a manger도 있음)
그런데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의 작사자는.. 한국인이나 서양인이 아니라 '사사오 데스사부로'라는 일본인 목사이다. 일본 교회들이야 박 재훈 멜로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멜로디로만 부른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아마 반일 감정 때문에 작사자가 오랫동안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것 같다. 미들 네임이 아닌데도 이름을 T. Sasao 이렇게 때우거나 아니면 아예 미상이라고 처리하기도 했다. 일본 법학 서적에서는 어떤 법리를 지지하는 학자들 실명이 일일이 언급돼 있는데, 그게 울나라로 번역되면서 싹 다 짤리고 쪽수만 남아서 다수설 소수설 이렇게 바뀌었듯이 말이다.;;;

그나저나 사사오 데스사부로는 "우리들이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도 작사했다.
일본어 가사답게 처음에는 후렴이 "일심(一心)으로써 힘써 싸우세"였다. 그러다가 21세기 새찬송가에서는 "한마음으로"라고 더 순화됐다.
마치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시 103:1)"가 "온 마음 정성 다하여 다 찬양하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4. "주 다시 세상에 오시리 -- 오늘 오신다면?"

끝으로.. Jesus is coming to Earth again -- what if it were today? 라는.. 꽤 드라마틱한 종말· 재림 카테고리의 찬송가가 있다.
참고로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캐롤 "울면 안 돼"가 제목이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이다. ㄲㄲㄲㄲㄲㄲ
그것처럼 "예수님이 다시 오신대.. 혹시 그게 오늘 지금 당장이면 어떡하지? 얼마나 신날까?" 라는 뉘앙스가 저 찬송가에 담겨 있다.

통상적인 클래식 찬송가들은 앞절은 구원이나 순례자의 길, 평안 등을 노래하다가 '마지막' 절이 재림이나 천국 등을 거론하는 편이다. 자기가 죽든지 아니면 세상이 끝나든지. 허나, 이 곡은 마지막 절뿐만 아니라 가사 전체가 몽땅 재림 얘기이다.

나머지 가사들은 다 성경을 근거로 유추 가능하고 그대로 부르면 되는데.. 3절 "주 오실 징조가 넘치고 새 날의 먼 동이 터 온다"가 오래 전부터 내 눈길을 끌었다.
"주 오실 징조", 재림의 징조가 넘친댄다. Signs of His coming multiply..

그런데 이 곡은 1912년에 발표됐다.
아직 1차 세계대전도 시작되지 않았고 UN이고 WCC고 이스라엘 국가고 뭐고 없던 시절이었는데? 핵무기, 미사일, 컴퓨터, 인터넷도 없었는데? 이 곡의 작사자는 그 시절에 뭘 근거로 재림 징조가 넘치고 "말세다 말세"라고 추측을 했던 걸까?

먼저, 과학기술을 생각해 보자. 20세기의 포스에 밀려서 그렇지 19세기도 중후반은 과학기술이 과거 대비 정말 폭발적으로, 상상을 초월하게 발전했던 시기이다.
증기기관, 내연기관, 자동차, 철도, 흑백이나마 사진과 영화, 타자기, 교류 전기, 전화, 전신기, 축음기, 증기선 철갑선, 기관총, 길거리 공중 화장실.. 이런 게 다 이때 등장했다.

끈질긴 비과학 낭설이던 생물 자연발생설이 요 시기에야 완전히 논파되고 부정되고 폐기됐다. 세균이라는 게 이제야 알려져서 "길거리에서 침 뱉지 마시오" 캠페인이 미국에서 1900년대 초에 막 벌어졌을 지경이었다.
작고 허접하긴 해도 무려 비행기(!!)가 발명됐으며, 이제 막 타이타닉 호도 건조됐다. 선박으로 위험한 모험이 아니라 안락한 장거리 대륙 횡단 여행이 가능해졌다.

초보적인 수준의 국제기구들도 등장했다. 이때는 그런 기관의 명칭이 '국제 ***, 세계 ***'가 아니라 '만국 ***'이라고 번역되는 편이었다.
세계 언어들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려고 IPA 음성부호가 제정됐고, 심지어 에스페란토라고 국제 공용어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서유럽에서 예전에 비해 꽤 오랫동안 전쟁이 없으면서 과학기술 물질문명이 저렇게 발전했고, 쟤들이 가히 세계를 정복했다. 그래서 세계사에서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재임기를 포함하는 이 19세기~20세기 초를 '벨 에포크'라고 부른다.
이렇게 서양 백인들이 찬란한 물질 문명을 이룩하고 세계를 석권하고 선교사까지 곳곳에 보냈으니, 인간 세계는 볼짱 다 봤고 예수님만 다시 오시면 되는 걸까 설마???

하지만 이 시기에 밝은 면모만 있는 건 당연히 절대 아니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뼈빠지게 일하고도 복지 사각지대에서 빈곤에 시달렸다. 아예 자국민도 아닌 피식민지 원주민들은 논밭이나 광산에서 지옥 같은 착취를 당했다. 흑인은 인간과 짐승 사이에 진화가 덜 된 생물이라고 여겨졌고, 장애인도 인간 취급을 못 받았다.

저 브루주아들을 쓸어버리고 혁명을 이뤄야겠다고 공산주의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때 상류층이 다니던 기독교회들은 무력과 권력으로 빨갱이들 때려잡고 노동자 운동을 진압하자는 선동만 했지, 이웃 사랑 실천은 너무 안 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한 자정 노력의 일환인지, 영국에서 자선냄비 구세군이라는 교파가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거기에다.. 내 뇌피셜로는 1908년 퉁구스카 대폭발,
1910년 핼리 혜성의 꼬리 괴담...에 대한 경험도
저 작사자의 뇌리에 "주 오실 징조가 넘치고"라고 녹아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저것들도 당대 사람들을 크게 동요시키고 큰 충격을 줬던 사건이다. 종말 신드롬이 굳이 1990년대 세기말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거다.

암튼.. 인류가 앞으로 또 무슨 세상 징후를 겪은 뒤에야 예수님이 오실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1910년대에나 2020년대에나 맹 똑같이 주님 다시 오실 징조는 늘어나고 있고, 예수님은 동일한 확률로 언제든지 오실 수 있는 거다.

언제나 종말 정신에 입각해서 살면 되지, 굳이 이 찬송가가 만들어지던 당대의 배경 맥락을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따질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 다만 이렇게 너무 막연하고 보편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얘기에만 빠져들다가 "예수님이 문자적으로 재림 자체를 안 하신다, 그냥 마음 속에 오신다, 이미 와 계신다".. 그 따위로 교리가 변질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저런 정황을 생각하면.. 19세기 말에 근대화된 서구 열강과 일본은 천국이었고 오로지 구한말 조선 땅만 시궁창 헬이었다고 너무 "지나치게" 열등감 갖고 자조 자괴할 필요까지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세계 평균 이하의 미개한 시궁창이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지나치게'까진.. 정도의 문제다. =_=).

5. 여담: 자매 감성

찬송가와 관련하여 100% 다 그렇다는 건 아니겠지만, 교회 다니는 젊은 자매님들은 대체로 이런 경향이 있더라.

(1) 나는 favorite 찬송가가 "주 하나님 큰일을 행하셨네", "놀라운 주의 은혜", "주 보혈로 날 구해 준", "그 참혹한 십자가에" 등 구원· 복음과 관련된 쪽에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회에서 만났던 여러 자매들은 전반적으로 공통적으로.. 뭐 인도하시느니, 힐링하시느니, 어루만져 주신다느니.. 그런 인도와 보호 장르의 곡을 확실히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킹 진영, 비킹 진영을 불문하고. ^^

(2) "주 품에 품으소서"(Still; Reuben Morgan)와 "참 좋으신 주님"(김 기영).. 두 곡을 약속이나 한 듯이 완전 너무 좋아하곤 했다. 물론 다들 훌륭한 곡이긴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감흥을 느낀 건 아니다.

(3) 앞서 소개했던 찬송가 "주 다시 세상에 오시리"라든가 "샤론의 꽃 예수",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는 뭔가 자매 감성이 느껴지곤 했는데 역시나 작사 작곡자가 여성이다. 후자는 1절 가사가 너무 몽환적인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부 교파에서는 가사를 살짝 수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형제보다는 자매가 확실히 더.. 단순히 성경적인 설교, 은혜로운 설교 정도가 아니라 "오늘 설교 완전 나 저격이었어~!! 어제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마침 주일 예배 설교가 딱 이런 내용이었어" 식으로 주관적인 감탄사를 훨씬 더 자주 말하더라. 이런 사례가 여러 사람들에게서 계속 나오는 게 흥미로웠다. 겨우 한두 케이스였으면 내가 이렇게 글을 안 남긴다.

(4) 이건 신앙의 영역은 아니겠지만.. 한창 우한 폐렴 때문에 백신 좀 맞으라고 국가적으로 난리였던 시절에 말이다. 현직 의사들 중에서 백신의 효능에 대해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표시한 사람도 남자보다는 여자 의사 중에서 훨씬 더 많았다.
뭐 유사과학 음모론 괴담에 홀렸건, 진짜로 통계적으로 의심스러웠건 의학적인 근거는 내가 판단하지 못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성향이 그랬다. 이런 거 감수성도 남자와 여자의 종특 차이인지 모르겠다.

(5) 여친을 비롯해 나보다는 최신 CCM 동향에 더 밝은 사람들과 교제를 해 보면.. 아예 19세기 클래식 찬송가 아니면 2010년대 이후의 복잡현란한 CCM을 잘 알지(마커스워십??), 198~90년대 초창기 국내 CCM은(최 덕신, 옹기장이) 대체로 잘 모르더라. 음~ 나이대나 신앙 생활 짬이 나하고 별로 차이가 안 나는데 이런 차이가 있구나~~ ^^

난 반대로 2000년대 이후 CCM은 유입이 끊겨서 최신 동향을 잘 모르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최신 게임도 몽땅 고전 게임으로 바뀌는 와중에, CCM도 초창기 버전은 이제 C~ 컨템퍼러리(동시대, 현시대)하지 않게 된 듯하다. ㄲㄲㄲ
이제 엑셀이라고 하면 자동차가 아니라 컴터 소프트웨어가 떠오르고, 봉고라고 하면 승합차가 아니라 트럭을 떠올리는 시대이다. 이러니 신 상우 '하나님의 은혜'는 2020년 손 경민 '은혜'에 밀려 잊혀지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25 08:35 2024/05/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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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뭔가 죄를 짓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사고를 친 정도와 그 의도가 다음과 같은 잣대로 평가된다.
처벌 수위 견적=_=을 낼 때 이런 게 반영된다.

1. 경범죄

이건 위반한다고 해서 '체포'된다거나 전과가 남지는 않는 경미한 위· 범법 행위이다. 그냥 범칙금이나 유치장 구류 한 방으로 경찰 선에서 끝나고 다른 뒤끝이 없다. 판· 검사한테 가지도 않는다. 의료에다 비유하자면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이나 가정 상비약 선에서 끝나는 것과 비슷하다.

횡단보도 무단횡단이나 노상방뇨를 비롯해 일상생활에서 어지간한 새치기 민폐, 무임승차, 무전취식은 다 경범죄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짓거리가 상습적이고 악질적이고 규모가 커지면 중범죄인 사기, 업무방해, 주거침입 등으로 업글된다. 처벌도 벌금이나 징역으로 바뀐다.
음주운전, 뺑소니나 강도, 성추행범 몰카범은 잡히면 그대로 체포된다. 이런 거 현행범은 일반 시민이라도 제압해도 될 정도이다. 이게 바로 경범죄와 중범죄의 차이이다.

참고로, 과태료는 범칙금과 다르다. 법원도, 경찰도 거치지 않는 행정 계층에서의 금융치료-_- 되시겠다. 사고를 냈을 때의 벌칙이라기보다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각종 행정 조치를 어겼을 때의 제재에 가깝다. (산불을 냈을 때가 아니라 산에 화기를 반입하다가 적발됐을 때, 교통사고를 냈을 때가 아니라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게 적발됐을 때처럼..)
쓰레기 무단투기나 불법주차는 과태료 깜이지 경범죄조차도 아니다. 그 반면, 과속이나 신호위반 적발은 범칙금과 과태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특이한 사례이다.

2. 중지미수

중범죄에 가담하고 현장까지 갔지만.. 나중에 회개해서(죄책감 때문에?)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그 범죄를 수행하지 않고 때려치운 것. 이건 상식적으로 당연히 가장 관대하게 처분된다.
뒤에 나올 자수나 장애· 불능미수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형법 제52조) 이렇게 감경 면제가 옵션이다. 그 반면, 중지미수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 (형법 제26조)로, 감경 면제가 반드시 수반된다.

3. 과실

고의가 "전혀" 없이 전적으로 실수나 사고로 인명· 재산 손실이 크게 난 경우이다. 이건 감방을 가더라도 징역이 아니라 금고형으로 처분되는 편이다.

지난 2019년 말, 진주시에서는 미친 칼치기 끼어들기 때문에 시내버스가 급정거하고, 서 있던 한 여고생이 버스 안에서 뒹굴면서 목을 다치는 사고가 났었다. 결국 평생 전신마비 장애인..
이건 음주 무면허 뺑소니가 아닌 일상적인 과실 교통사고 중에서는 죄질이 엄청나게 나쁜 축에 들었다. 그러나 가해자는 금고 1년으로 모든 처벌이 끝났다.

그렇다고 모든 과실죄가 금고형인 건 아니다. 실수로 산불을 낸 건 고의성이 없었더라도 산림보호법에 의거하여 3년 이하의 징역이다. 형법에 규정된 '실화와 방화의 죄'보다 처벌이 더 무겁다.

4. 장애-불능미수

나쁜 의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삽질이나 실수, 착오 때문에 대미지가 가지 않은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정황 하나만 참작될 뿐, 중지미수나 과실보다는 죄질이 나쁘게 평가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미수범까지 처벌한다는 조항이 있는 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모든 중범죄가 미수범을 처벌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음주운전은 심각한 중범죄이긴 하지만 미수범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음주운전을 할 의도가 명백했지만 차가 고장 났다거나 다른 이유로 인해 결과적으로 음주운전이 실행되지 않았다면 그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5. 자수

죄를 저질러서 이미 사고를 쳤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뒤늦게라도 죄를 뉘우치고 순순히 자수하고 자백하면서 수사에 협조한다면? 그럼 형이 많이 가벼워진다.

2000년대 이전에 중국에서는 "모든 피의자는 수사관에게 사실 그대로 이실직고하면서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이게 형법에 명시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국에서는 사법거래라고 해서 이런 자수 자백을 유도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그 대신,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합의를 시도하는 것을 매우 금기시한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경찰이 피의자한테 "나한테 다 털어놓으면 내가 형량 가볍게 해 줄게" 이렇게 사법거래 하듯 떠보는 거는 상당수가 그냥 낚시라고 한다. ㅡ,.ㅡ;;

.그리고.. 자수한다고 감형이 무조건 보장되는 것 역시 아니다.
온 보현이라든가 (지존파를 롤모델로 삼았던 1990년대 연쇄살인범), 장 대호 (한강 몸통 시신 사건)처럼 말이다.

전자는 지존파를 알현하면서 사이 좋게 감방 생활을 한 게 아니라, 지존파와 함께 나란히 사형이나 당했다. -_-;;
후자는 "너 다음 생에라도 또 그랬다간 나한테 죽어?"라고 남자답게 당당히 외치고는 장렬히 무기징역을 먹었다.
누울 자리 좀 보고 다리를 뻗었어야지. =_=;; 일말의 죄책감과 반성의 기미를 보이면서 자수를 해야 정상 참작이 된다. 공명심· 허세 차원에서.. 혹은 수사망이 좁혀져 오고 다 끝났으니까 다른 카드가 없어서 자수하는 건 약발이 별로 안 통한다.

6. 중범죄

자, 경범죄가 아니고 미수· 자수 같은 할인 요인이 없는 범죄라면.. 일단 원칙대로 간다.
집행유예 중에 또 사고를 쳤냐, 동종 전과가 이미 있느냐, 일반인이 아니라 그 바닥 업계 종사자냐(더욱 객관적이고 청렴해야 하는..), 돈 받고 일하던 중에 사고를 쳤냐(더욱 실수하지 말아야 하는..).. 이런 것들은 가중 처벌 요인이다.

강력 흉악범죄를 무리를 짓거나 도구를 써서 저질렀으면 특수라는 이름으로 가중처벌된다. 주위에 보이는 흉기를 우발적으로 집었느냐, 아니면 흉기를 미리 계획해서 챙겨 갔느냐를 갖고도 형량이 크게 달라진다.

그 반면, 초범이거나 그놈의 심신미약이 참작되면 형이 감경된다.
극악무도한 존속살인이지만 애가 극심한 학대를 견디다 못해 부모를 죽였거나, 극악의 조현병· 치매 간병을 견디다 못해 노부모를 죽인 거면.. 이 역시 참작된다.
옛날에 안 두희 구타 살인은 정말 빼박 흉악 범죄였음에도 불구하고 열화와 같은 국민적인 지지와 공감 때문에 가해자가 징역 3년으로 최대한 감경됐다. 그나마도 특사 받아서 형기를 1년 반 정도밖에 안 살고 풀려났었다.

형사범죄의 처분 절차는 다음과 같다. 위에서 아래의 순으로 더 깊숙히 들어간다.

  • 내사종결(경찰 컷): 이때는 증인도 아니고 참고인이며, 가해자는 용의자라고 불린다.
  • 혐의/공소권 없음(검사 컷): 용의자가 죽어 버렸다거나, 알고 보니 정당방위· 긴급피난으로 퉁쳐졌다거나, 공소시효가 끝났다거니, 증거가 충분치 않다거나 등등등이다.
  • 기소유예: 혐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검사 재량으로 기소하지 않고 봐 준 경우이다. 이 범죄 용의자가 시민의 제보로 검거됐다면 이 등급까지만 가도 공로가 인정되어 포상금· 현상금이 나온다.
  • 선고유예: 여기부터는 재판이 시작된다. 증인이 동원되며, 가해자는 피의자라고 불린다.
  • 무죄판결: 판사가 이렇게 판정해 주면 제일 좋겠지만, 여기까지 가는 길이 참 험난하며 여러 사람들이 피곤하다.
  • 집행유예: 감방에 직접 가지만 않을 뿐, 다른 모든 불이익은 똑같다. 여기서부터는 빼박 범죄자-전과자이다.
  • 실형(집행정지 / 면제 / 가석방 / 사면): 이것들은 복역 중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으로 겪을 수 있는 변수 이벤트이다.

내가 왜 어쩌다가 이런 걸 찾아보고 있지?? ㄲㄲㄲㄲㄲ

(1) 장교 임관이나 국정원 입사=_=처럼 신원조회가 빡세게 행해지는 직업에 입문하고 싶다면 정말 중범죄와 관련된 그 어떤 기록도 없는 게 좋을 것이다. 전과는 말할 것도 없고 기소유예조차도 말이다.
100만원 이상의 벌금부터는 국회의원에서 짤리고, 각종 고위 공직 선거에 당선됐던 것도 무효 처분을 당한다.

(2) 벌금을 넘어선 징역· 금고는 집행유예라도 넓은 의미에서의 실형에 속한다. 좁은 의미로는 정말로 감방 들어가는 것만 실형으로 치지만 말이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 사기업은 사람을 뽑을 때 저 정도로 빡센 신원 조회는 안, 아니면 못 한다. 하지만 "해외여행에 결격사유 없는 자"라고 명시해서 전과자를 우회적으로 거른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게 단순히 군 미필만 거르는 게 아니다.

(3) 30년이 넘는 징역 vs 무기징역 vs 사형..;; 물론 법적으로야 위력을 나타내는 부등호가 < 이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그게 그거인 것 같다. 마치 사망이냐 실종이냐 전신마비냐 식물인간이냐 처럼 말이다.;;
참고로 무기금고와 무기징역을 합쳐서 종신형이라고 부른다. 천주교에서 공식적으로 신부와 주교를 합쳐서 사제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사형수는 미결수도 아니고 기결수도 아닌 므흣한 존재이다.

(4) 사회에서 엄청 끔찍한 죄를 지어서 높은 형량을 받았느냐~~ 랑, 교도소에서 너무 사고를 많이 치고 수형 성적이 개판이냐~ 는 약간 별개의 개념이다. 둘이 딱히 상관관계가 있지는 않다.
교도소 중에서도 최악 흉악범만 취급하는 제일 빡센 곳이 있는가 하면, 교도소 안에서 징벌용 독방이라는 것도 있다.

(5) 가석방은 감방에서만 내보내 주고 죄는 그대로인 반면, 사면은 아예 죄 자체를 없애서 교도소에서도 내보내 주는 조치이다.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의 차이는.. 사면 대상자의 집합을 조건제시법으로 기술하냐, 원소나열법으로 기술하냐의 차이와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사면이 행해진 건 김 영삼 시절 1995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그 뒤 광복절 특사, 삼일절 특사 같은 관행은 다들 특별사면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 '예정'도 조건제시법이지, 원소나열법인 게 아니다.

(6) 우리나라 법에서 집행유예라는 건 3년 이하의 금고나 징역형에 대해서만 존재했다. 그런데 벌금형에 대해서도 집행유예를 만들자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안 그래도 벌금을 몸으로 때우는 대체제도 비현실적으로 너무 관대해서 문제인 와중에 말이다.
한편, 외국에서는 사형에 집행유예가 있는 경우가 있댄다. 우리나라는 이건 이미 수십 년째 집행유예 상태이다. 자유형처럼 오랫동안 길게 지속되는 벌이 아니라, 벌금이나 사형처럼 한 순간에 끝나는 벌에다 집행유예를 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7) 그리고 요즘은 수형 중인 죄수에게 투표권을 주는가 보다. 처음엔 집행유예 죄수한테만 주다가 나중에는 감방 실형 죄수한테도 말이다.
선거권 박탈은 금고· 징역 복역 기간과(집행유예 기간 포함) 함께 당연히 뒤따르는 명예 몰수가 아닌가 싶었는데.. 사실은 세계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굉장히 반민주적인 폭거라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22 08:35 2024/05/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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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늘어놓는 철도 덕질 썰이다.

1. 역명

(1) 서울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 역이 '자양'이라고 개명됐다. 이건 옛날 7호선 건설 당시에 임시로 쓰였던 가칭으로 되돌아간 것이어서 흥미롭다. 개명 얼마 전에 영문 표기가 뚝섬 resort에서 뚝섬 park라고 바뀌었던 바 있다.

여기는 지금 같은 형태의 한강 공원(고수부지?)이라는 게 생기기 전, 먼 옛날에는 진짜로 강수욕장(!!)도 있고 맛집들 즐비하고 얼추 서울 교외 유원지 같았던 곳이긴 했다. 지금으로 치면 서쪽 끄트머리의 행주산성 유원지와 비슷하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이야 저기 일대가 몽땅 다 개발됐고 뚝섬도 여러 한강 공원 중 하나일 뿐이다. 딱히 '유원지'라고 부르기에는 정체성이 많이 흐려졌다.

(2) KTX 신경주 역이 앞의 '신'자를 떼고 그냥 '경주'라고 개명됐다! 구 경주 역이 폐역돼 없어졌고, '서경주' 역도 새로 생긴 와중인데, 이건 언젠가는 행해질 조치인 것 같았다. 수긍이 간다.
울산은 고속철 울산 역과 일반열차 태화강 역이 따로 돌아가는 반면, 경주는 그렇지 않다.
대구는 지리· 역사와 관련된 여러 내력(경로의존성..)으로 인해, 메이저인 동대구 역에서 '동'자를 떼어내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3) 난 개인적으로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서쪽 종점인 '석남'은 그렇게 적절한 작명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GTX A선이 개통되면서 판교-이매 사이의 '성남' 역과 사실상 동명이역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비음화 자음동화가 존재하는 언어다. 이건 전산상으로는 문제 없을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5호선 양평과 중앙선 양평 같은 충돌이나 마찬가지이다.

2. 노선

서울시에서는 9호선을 끝으로 저런 형태인 시내 도시철도는 더 건설하지 않고 있다. (도시 한쪽 끝과 한쪽 끝을 완전히 관통, 대형 중전철, 100% 공기관 운영) 그 대신 패러다임이 광역 일반철도(대규모) 아니면 경전철(소규모)로 바뀌었다.

사실 전국적으로도 중전철 기반의 도시철도를 건설한 건 무려 20여 년 전의 대전 지하철 1호선이 마지막이다. (그 뒤로는 다 경전철) 하필 한국형 표준 전동차 프로토타입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서울에서는 9호선 전동차가 딱 그 표준 프로토타입이 적용된 차량이다.

규모가 큰 광역전철급은 교류에 좌측통행이고, 규모가 작은 도시철도-경전철은 직류에 우측통행인 것이 흥미롭다. 자동차만 해도 작은 승용차 급은 휘발유 엔진에 디스크/유압식 브레이크 위주인 반면, 대형 버스· 트럭은 디젤 엔진에 드럼/에어 브레이크 위주인데.. 서로 무관한 기술 간에 상관관계가 성립하는 것 같다.

서울보다 작은 도시들은 경전철만으로 기존 지하철과 대등한 도시철도 노선으로 치는 반면(부산 4, 대구 3, 인천 2 등), 서울은 그렇지 않다. 반대로 GTX는 광역전철의 특별 심화판 격이다.

지금 GTX A선 수서-동탄은.. 서울 시내까지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의 구간이 새로 개통한 게 전혀 없고, 그냥 이미 있는 고속선에다 역만 개통한 거다.
공항철도가 김포까지만 개통했던 것, 분당선이 수서까지만 개통했던 것, 경의선이 DMC까지만 개통했던 것과 비슷한 처지이다. 정말 못해도 삼성까지는 개통해서 바로 갈 수 있어야 수요가 더 늘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공항철도 서울 역과 GTX A선이 쭉 연결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신분당선은 용산이 아니라 남산 아래로 지나가서 광화문 쪽으로 가고 말이다.

* 여담이지만.. 요즘 생기는 전철들 덕분에 한강 하저터널이 알게 모르게 부쩍 늘어났고 더 생기고 있다.
한때는 5호선에다 기껏해야 분당선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소사대곡선도 하저터널이요, 8호선 북쪽 연장과 GTX까지 다 강 아래로 한강을 건널 예정이다.
그에 비해 부산에는 낙동강 하저터널이 아직 단 하나도 없다.;;;

3. 차량 -- 퇴역

(1) 1996~97년부터 CDC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도입됐던 통근형 디젤 동차 차량이 지난 2023년말부로 완전히 퇴역하고 사라졌다.

통일호라는 차종이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없어진 뒤에 얘들은 ‘통근열차’라는 이름으로 서울 북부의 경의선과 경원선에서 명맥을 유지했었다. 그러다가 일부 차종은 2007~08년경엔 RDC로 개조되었고, 노후화된 NDC 동차의 뒤를 잇는 무궁화호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경의선과 경원선이 몽땅 전철화되면서 CDC가 퇴출되었고.. 이 CDC, 아니 RDC는 마지막에는 광주선에서 광주-광주송정 셔틀을 뛰다가 퇴역하게 됐다.
2010년에 무궁화호 NDC, 2013년에 새마을호 DHC에 이어 2023년엔 통일/무궁화호 CDC/RDC가 뒤를 이은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디젤 동차가 씨가 말라 간다.;;;

(2) NDC와 DHC의 경우, VIP용 바리에이션 차량이 있었다.
NDC는 퇴역이 임박했던 2009년에 한 편성이 비즈니스 동차로 개조되어서 코레일 사장급 VIP 전용으로 쓰였다. 얘는 2015년에 완전히 퇴역했으며, 현재는 철도 박물관에서 그래도 운행 가능한 형태로 동태보존 되어 있다.

DHC는 이미 1999년 김 대중 시절에 만들어진 경복호가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 전용 차량..
DHC 차량 자체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전량 퇴역했으니, 이제는 경복호만이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새마을호 디젤 동차의 외형을 지닌 철도 차량이다.
얘는 현역이긴 하지만, KTX 차량 중에도 ‘트레인 원’이라고 불리는 VIP 객차가 있기 때문에 요즘은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3) 지금이 전기 철도가 주류가 됐다고 해서 디젤 동차만이 찬밥 신세인 건 아니다.
지난 21세기 초에, 특히 경부선 전철화 완료와 함께 리즈 시절을 경험했던 8200호대 전기 기관차는 생각보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얘는 전기 차량이기는 하지만 ‘전동차’와는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기관차 피견인형 객차라는 게 마지막으로 도입된 게 무려 20년도 더 전 일이다. 8200은 전동차가 아니고, 화물에 특화된 전기 기관차가 아니고, 그렇다고 비전철화 구간을 위한 디젤 기관차도 아니다 보니 가까운 미래에 존재감이 애매한 계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되거나, 무게와 기어비를 바꿔서 화물용으로 개조되거나.. 뭔가 특단의 조치가 취해질 것 같다.

4. 차량 -- 도입

퇴역하고 없어지는 차량이 있다면, 새로 도입되는 차량도 있는 법..

(1) 고속철도 KTX라는 게 개통한 지 어언 20주년이 넘었다. 오리지널 18량짜리 KTX 차량의 기술을 기반으로 2010년대엔 ‘산천’이 등장했고, 그 다음으로 ‘이음’에 이어 ‘청룡’이 개발되었다니 참 고무적인 일이다. ‘이음’은 시속 200대의 준고속 에디션이기 때문에 이 청룡이 산천 다음의 제3세대 차량이다.

이 청룡은 신칸센처럼 동력분산식으로 개발되어서 기술적으로 이전 TGV와의 접점이 없어졌다. 동력차가 더 촘촘하게 분포해 있기 때문에 가감속이 더 뛰어나며, 최신 기술이 접목되어 최고 속도도 더 높은가 보다.

(2) 서울 지하철 9호선과 공항철도를 직결 운행하는 차량은 언제쯤 등장하려나 궁금해진다.
현재 수도권 전철에서 직교 겸용 차량이 다니는 곳은 오로지 1호선과 4호선 차량밖에 없는데.. 서울 1기 지하철이 아니라 3기 지하철 구간에서 이런 직교 겸용 차량이 다시 등장한다면 느낌이 무척 색다를 것 같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하던 시절엔 KTX가 서울 역을 떠나서 행신이 아니라 공항철도로 진입해서 인천 공항까지 가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 검암 역은 저상홈을 따로 만들어서 KTX의 정차 취급까지 했었다. 그랬던 게 이제는 일반열차가 아니라 9호선과의 직결을 준비 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9 19:35 2024/05/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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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 고안자의 부고

일본에서 지진이 났던 올해 1월 1일 말이다.
파스칼 언어를 고안한 스위스의 컴퓨터 과학자 '니클라우스 비르트' (취리히 연방 공대 교수, 튜링 상 수상자)가 세상을 떠났다. ㄷㄷㄷㄷ
이거 뭐 뒷북 부고 소식을 연달아 전하는구나..;; 이번에는 분야가 신앙 쪽이 아니라 컴공이라는 점만 다르고 말이다.

지난 2011년 가을엔 C 언어를 고안한 '데니스 리치'가 세상을 떠났었다.
C야 워낙 대중적인 언어이고, 또 저 시기는 무려 스티브 잡스의 부고와도 시기가 비슷했다. (딱 1주일 차이) 그래서 데니스 리치의 부고는 이때 작게 잠깐이나마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가 별 개연성 없고, 파스칼 언어도 C에 비해 아주 마이너하다 보니, 저 사람의 부고는 아무 존재감 없이 묻혀 지나간 것 같다. =_=;;;

파스칼과 C는 1970년을 전후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러다임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언어이다. 물론 C가 근소하게 더 나중이긴 하다만.
파스칼은 진짜 순수 학자가 만든 반면, C는 AT&T니 벨이니 유닉스니 하면서 학계보다는 더 실무 엔지니어 지향적인 사람이 만들었다. 물론 이것도 상대적인 차이일 뿐, 데니스 리치도 튜링 상 수상자이고 일반인 입장에서 넘사벽 천재인 건 마찬가지이다.

2. 파스칼 언어 구조에 대한 생각

(1) 파스칼은 블록을 begin end로 표현하는 반면, C는 간단히 중괄호 { }로 때운다. 그리고 C는 세미콜론이 문장을 종결하는 부호인 반면, 파스칼에서는 문장을 '구분'하는 부호이다.

그렇기 때문에 C에서 { 1,2,5 } 이렇게 5 다음엔 ,를 붙이지 않듯,
파스칼에서는 begin a(); b(); c() end. end 직전의 마지막 문장에는 세미콜론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아주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세미콜론 ; 은 .와 ,로 이루어진 부호인데 C는 거기서 .의 특성을 더 중시한 반면, 파스칼은 ,의 특성을 더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글쎄, 파스칼은 개념적으로 알골이라는 초창기 언어에서 영향을 받았고, Ada라는 엄청난 언어와도 유사점이 많다고 하는데.. 특히 이 begin end 말이다. 허나, 이 2000년대 관점에서는 저것들도 다 한물 간 언어가 돼 버리긴 했다.

(2) 파스칼은 program, unit, label, const, type, var 등 파트가 언어 문법 차원에서 나뉘어 있는 게 좀 구시대적이고 고지식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 아주 깔끔하고 명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const도 말이다. C/C++에서는 그냥 type modifier의 일종일 뿐인 반면, 파스칼에서는 읽기 전용 상수값들만 선언하는 구간을 나타낸다. 의미는 같지만 용법은 요즘 언어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게 흥미롭다.

C++은 블록 아무 데서나 중구난방으로 타입 선언, 변수 선언, 실행문이 막 섞일 수 있다. 같은 문장이 명칭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변수(객체) 선언일 수도 있고 함수 선언일 수도 있다. 당장 타이핑 하기에는 간결하지만, 지저분하고 정신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에 비해 파스칼은 실행문이 있는 곳과 비실행 선언문이 있는 곳이 더 엄격하게 구분돼 있다. 여느 타입이나 변수뿐만 아니라 goto문 라벨조차도 선언을 미리 쭉 한 뒤에야 실제 문장에서 써먹을 수 있다.
이런 구조 덕분에 파스칼은 컴파일러를 만들기가 더 편하다. 언어 문법 차원에서 소스 코드를 두 번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쭉 읽으면서도 최적화 계획을 미리 세우면서 컴파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특성이 있고, 또 파스칼은 C/C++ 같은 텍스트 인클루드가 난무하는 언어도 아니다 보니, 비슷한 분량의 코드를 컴파일하는 속도가 C/C++보다 훨씬 더 빠르다. 이런 점에서는 파스칼이 같은 네이티브 코드 생성 언어이면서 생산성이 더 뛰어나다.

(3) 파스칼은 C/C++ 계열 언어처럼 main 함수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며, 그냥 코드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begin end. 가 제일 먼저 실행된다. 요 begin end가 HTML로 치면 <body> </body> 태그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앞의 여러 uses, const, type 등의 선언들은 <head></head> 에 대응하고 말이다.

그리고 파스칼은 이 코드가 단독 실행형 프로그램인지, 아니면 라이브러리(= 파스칼 언어 용어로는 유닛)인지를 소스 코드 차원에서 명시하고 있다.
main 함수가 없는 대신, 맨 첫줄에 program 어쩌구; 아니면 unit 어쩌구; 이런다.
이건 Windows 프로그래밍의 관점에서 보면 모듈 def 파일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 뒤, 마지막 end 다음에 이어지는 마침표는 프로그램 코드의 완전한 끝을 의미한다. end.
이거 다음에 등장하는 텍스트들은 컴파일러가 몽땅 무시하고 짤라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주석이라고 감싸지 않아도, 파스칼 문법에 맞지 않은 텍스트가 등장해도 에러 처리되지 않는다!! 컴파일러에 따라서는 end. 이후에 또 whitespace가 아닌 문자가 있다고 경고 정도나 찍어 줄 뿐이다.

(4) 파스칼의 소스 코드는 C/C++처럼 헤더와 몸체의 구분이 없다. 그래도 단독 실행 프로그램이 아닌 유닛의 소스 코드는 내부적으로 선언부와 구현부의 구분이 존재한다. 그렇잖아도 파스칼은 모든 명칭에 대해서 사전 선언을 요구하는 언어이니.. 이런 구분이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구획을 나누는 키워드가 interface와 implementation이라는 길고 어려운 단어이다. 본인은 저 단어를 중학교 시절에 파스칼 언어의 예약어 명목으로 처음으로 접했었다.;;

(5) 표준 입출력 말고.. 텍스트의 입출력과 관련해서 플랫폼 종속적인 비표준 기능을 제공하는 라이브러리가 Turbo C에서는 conio.h였다. 그리고 Turbo Pascal에서는 uses crt.. 즉 CRT라는 이름의 모듈이었다.
그런데 C/C++에서는 CRT라는 게 C runtime library의 약자이며 conio는 console I/O를 뜻한다. 그럼 파스칼에서 저 CRT는 무엇의 이니셜일까?

그건 화면이라는 뜻에서 그냥 브라운관 CRT를 의미하는 듯하다.
그나저나 C건 파스칼이건 함수를 호출하는 건 동일할 텐데.. 역사적으로 함수 호출 컨벤션에 왜 PASCAL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잘 모르겠다.;;

아무쪼록.. 파스칼은 이대로 묻히기에는 좀 아까운 독특한 언어이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날 주류에서 밀려난 비운의 언어가 된 듯한 느낌이다.;;

3. 여담: 관련 타 언어들

(1)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새로 채택한 언어인 Kotlin, 그리고 애플 진영에서 새로 채택한 언어인 Swift에서 모두 함수의 인자 나열을 C/Java 스타일인 (Type1 val1, Type2 val2)가 아니라..
파스칼 같은 (val1: Type1, val2: Type2)
요 문법을 채택해 있다. 따끈따끈 신흥 언어에서 나름 복고풍 파스칼이 느껴지는 것 같다. ㄷㄷㄷ

그리고 Kotlin은 변수를 선언할 때는 파스칼처럼 var 키워드를 쓰는데, 상수 명칭을 선언할 때는 그냥 '값'이라는 뜻에서 val 키워드를 쓴다.
정작 변수(var)는 L-value라고 여겨지는 반면, 값(var)은 R-value인데도 말이다~! L과 R의 교묘한 언어유희가 아닐 수 없다.

(2)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에는 의외로 미국 말고 유럽.. 그것도 서유럽 영프독이 아닌 다른 마이너(?) 국가 출신들이 기여한 게 많다.

  • 파스칼은 저렇게 뜬금없이 스위스.
  • 파이썬은 네덜란드 (귀도 반 로섬!!)
  • C++은 덴마크 사람인 비야네 스트롭스트룹!!
  • 그리고 볼랜드와 마소에서 펄펄 날았던 PL 전문가 겸 엔지니어인 Anders Hejlsberg도 덴마크!!

애초에 터보 컴파일러 씨리즈로 왕년에 이름을 날렸던 '볼랜드' 사 자체가 덴마크계 사람이 창립한 기업이었다.
한편, Lua는 브라질인지 포루투갈인지 아무튼 그쪽 바닥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7 08:35 2024/05/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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