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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말씀 보존 학회'(말보회), 그리고 '창조 과학회'(창조회)라는 기독교 단체가 있다.
둘 다 특정 분야에 대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무식하게 고지식(?)하게 밀어붙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갈리면서 열성 지지자와 골수 안티를 모두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말보회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주장하면서 기성 교계와 신학계를 몽땅 적으로 만들었다.
창조회는 젊은 지구/우주를 주장하면서 기성 고생물학, 지질학, 천문학계와 몽땅 대립하고 있다.

물론 이들 단체에는 명백하게 옳은 것· 건전한 것, 선한 것이 많이 있다. 먼저 말보회의 경우, 독특한 성경관만 주장하는 게 아니다.

  • 교회 교파로서의 노선은 평범한 침례교의 완벽한 상위 호환이다. 유아세례 부정, 주의 만찬과 침례, 스스로 자기 믿음 고백 후 물침례는 본인이 보기에 성경적으로 100% 아멘이고 옳다.
  • 창조회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6일 창조(창세기)와 1000년 통치(계시록)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다.
  • 피터 럭크만 스타일로 성경을 성경으로 나누어 풀이하는 세대주의. 일곱 부활, 일곱 침례 등등~
  • 성경의 문자적 해석도 잡고 세상 과학과도 충돌하지 않는 솔루션인 간극 재창조
  • "당신은 지금 죽는다면 바로 하늘나라로 갈 확신이 있습니까?" 칼같이 단호한 신약 은혜의 복음 교리. 거리 설교
  • 구원의 영원한 보장, 전천년주의 환란 전 휴거
  • 예수님의 문자적인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 교회와 유대인의 구분
  • 아기· 어린이의 특례 구원 (죽으면 무조건 다 하늘로 간다~! 그러니 유아세례 같은 거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옳소! 아멘~!)
  • 칼빈주의도, 알미니안주의도 아님. 섭리와 자유의지 사이의 균형.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의 구분. '미리 아심'이 곧 답정너 예정은 아님.
  • 비성경적인 이상한 은사주의 거부, 이상한 종교 통합 거부
  • 본질적이지 않은 불필요한 각종 절기나 예배 절차 폐지

우와, 써 놓고 보니 아이템이 적지 않다. 말보회의 이런 교리 노선은.. 성경에도 논리와 체계라는 게 있다는 걸 내게 알려 줬다. 이런 걸 한국에 처음으로 알리고 이슈화하고 퍼뜨린 공로는 응당 말보회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체계가 있으니 교회가 일부 인간들의 병신같은 짓 때문에 욕 먹더라도 내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온· 오프라인으로 기독교를 소개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창조회에 대해서는 내가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내가 이 진영에 대해서 유익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말보회하고는 분야와 방식이 다르지만 어쨌든 자기 분야에서 성경을 설화나 비유 짬뽕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있는 그대로 믿으려 한다는 것, 성경이 레알 사실임을 입증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정작 이 두 진영은 창조 연대기에 대해서는 관점이 별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 따위를 믿지 않고 24시간 6일 창조를 믿는 건 동일하지만, 말보회는 그보다 위에 더 오래된 이전 세상이 있었다는 걸 믿는다. 창조회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믿으면서 말보회나 럭크만은 싫어하는 사람, 간극 재창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창조회도 지지하는 편이다.

자, 좋은 점 얘기를 이 정도로 했으니 그 다음으로는 내가 말보회와 창조회에 대해서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하는 것, 동의하지 않는 성향에 대해서 털어놓도록 하겠다.

내가 쟤들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일단 내가 보기에 저 두 진영은 공통으로..
발전이 없이 너무 정체돼 있다...!!! 이게 제일 큰 문제이다.

뭔가 마이너한 걸 주장하고 자기 반대편을 비판하고 공격하긴 하는데.. 반대편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서 알지도 못하고 너무 무식한 방식으로, 케케묵은 쌍팔년도 방식과 저질 음모론을 고수하며 공격한다. 그러니 털리고 비웃음만 당한다.
까놓고 말해 럭크만과 같은 실력은(원어 원문 및 KJV 변증..) 없으면서 럭크만의 싸움닭 기질만 잔뜩 배워 왔다.

가령, 로마 가톨릭이 화체설, 교황, 마리아 평생 동정, 연옥 등 비성경적인 교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비판하는 거랑.. 아예 교황이 예수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세계의 기독교/개신교회를 말살시키고 세계를 정복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선동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 주장을 하려면 근거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와야 된다.

그리고 쟤들은 흠정역이 자기네 한킹을 도둑질 해서 만든 짝퉁 성경이라는 욕과 비방을 도대체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려나 모르겠다. 흠정역은 지난 20여 년의 노력 끝에 무려 6판이 나왔고, 맞춤법과 각종 표현이 정말 많이 정제되었다. 번역 스타일이나 신념 때문에 자기 마음에 드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예배용 성경으로서 영어 KJV를 있는 그대로 번역한 한국어 역본 중에서는 흠정역의 완성도를 따라갈 물건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까지 한킹을 도둑질한 거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쟤들은 1세대 설립자도 소천했는데.. 맨날 네거티브만 할 게 아니라 자기네 한킹이 더 나은 번역이라는 걸 팩트와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그럴려면 공부를 해야 된다.

이미 다 늙은 1세대 목회자들이야 어쩔 수 없다 치지만.. 말보회의 후계자뻘 되는 젊은 목회자들..? 거기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흠정역 진영과 교류(!!!)도 하면서 태도를 바꾸고 새로운 팩트와 데이터를 흡수하고, 국내의 킹진영이 다같이 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창조회는 말이다.. 설마 아직도 1990년대의 긴가민가한 노아의 방주 항해 실험이나 1970년대에 바다에서 공룡(사경룡) 사체 끌어올린 사진을 우려먹고 있는 걸까..?? 아직도 “진화론에서는 인류의 먼 조상이 원숭이라고 주장한대~ ㅋㅋㅋㅋㅋ” 이러는 걸까?
세상 학계는 1990년대 "생명 영원한 신비" 다큐의 내용조차도 일부는 부정되고 수정돼서 지금과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제발 "이게 다 창조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세상 학계의 텃새 음모" 핑계 따위 대지 말길..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는 건 하나님 운운하지 않아도 철저하게 과학만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쟤들은 과학 쪽으로 무리수를 둘 게 아니라 지질 시대가 이전 세상의 흔적이라는 것만 알면 연구 방향이 훨씬 더 깔끔해질 텐데 아쉽다.

요컨대 말보회나 창조회가 잘하는 것도 있고 병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병크가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옳은 방향까지 다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고로 내 노선은 말보회와 90~95% 정도는 싱크로가 되는 것 같다. 차이점은 얼추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 한킹보다는 흠정역을 더 선호
  • 세대주의와 재창조 간극까지는 믿지만 말보회만치 무조건 "마태복음 히브리서는 신약 교회용이 아님~!!"을 너무 강박관념적으로 따지지 않음
  • 구약 유대인들이 율법 지키는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단정은 짓지 않음
  • 기성 교단을 쟤들만치 무작정 다 적대시하지는 않음. 하나님이 기성 교회들도 사용하고 역사하고 계시는 것 인정.

말씀 보존 학회, 그리고 여기뿐만 아니라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에 세대주의니 럭크만이니 하는 물을 먹은 진영은 딤후 2:15가 말하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공부하라"의 덕후· 신봉자이다. 여기서 '나누다'라는 말은 공유 share이 아니라 분별· 구분· 분할한다는 뜻인 divide이다. 성경이 자기 자신을 공부하는 방법론을 스스로 이렇게 정의해 놓은 셈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성경 용어들을 기존 일반 교단들보다 더 세부적으로 나누는 걸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영과 혼을 구분하고(영혼몸 삼분법),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을 구분한다. 교회와 유대인을 구분한다. 말씀에 대해 시대와 적용 대상을 구분한다.
침례도 다 같은 침례가 아니어서 일곱 종류나 있고, 부활도 여러 종류가 있다. 복음조차 왕국 복음과 은혜의 복음으로 나뉜다.

본인도 기본적으로 이런 성경 공부 방식에 동의하면서 그 유익을 인정한다. 이 패러다임 덕분에 여러 성경 난제들이 풀렸고 불신자에게 복음 변증이 가능해졌고 황당한 이단 교리들을 명쾌하게 걸러내게 됐다.
개나 소나 다 비유로 영해하는 게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 대상에게는 문자적인 건데 지금 우리에게는 영적 교훈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게 훨씬 더 논리적이고 깔끔하고 합리적이지 않냐 말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성경이 무슨 과학 교재나 논문 같은 스타일로 100% 딱딱 분석 가능한 책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어떤 곳에서는 혼이나 영이나 그렇게까지 다른 개념이 아니고 심지어 ‘혼=그냥 사람’, ‘영=그냥 마음’처럼 쓰이기도 했다.

마 19:23-24 같은 구절에서는 예수님조차 대놓고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별 구분 없이 섞어 쓰셨다. 제아무리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왕 예수님이니 왕국 복음이니 하지만, 바로 그 책의 중반부에서 웬 뜬금없이 신약 교회에 대한 예언과 지침이 나오기도 한다.

또, 워딩으로 가면.. 그렇게도 단어 단위로 성경을 보면서 우리말 KJV 번역본들은 it came to pass는 왜 번역을 안/못 했을까? word와 oracle의 차이는 무엇일까? damnation과 condemnation의 차이는?

그러니 구분할 건 구분하더라도 거기에만 묻혀서 시야를 너무 좁히지 말고, 성경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서 열린 시각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자체가 잘못된 비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이 그렇게도 칼같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분석 가능했으면 이미 수백 년 전에 분석이 다 끝났고, 기독교계에 이렇게 다양하게 찢어진 교파가 존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 여담

1.
난 먼 옛날, 컴퓨터 프로그래밍 초보였던 시절에 베이직 다음으로 파스칼 언어를 잠시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파스칼은 베이직과 C 사이의 완충재 역할을 하면서 C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것처럼 본인은 KJV를 모르던 시절에 NIV를 읽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도움이 됐다. 그때는 제네시스, 엑소더스, 리비티쿠스 등, 성경의 각종 영어 명칭과 atonement, passover 같은 신학 용어들부터 전혀 까맣게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게다가 NIV의 변개(!!) 구절들이 내 신앙에 대놓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내가 성경을 깊고 긴밀하게 많이 알던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니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컸을 수밖에 없다.

2.
나는 한글 입력기의 개발자이다 보니 세벌식 자판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로부터 390과 최종 중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문의를 종종 받는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킹 제임스 진영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로부터 한킹과 흠정역 중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문의도 받는다. 아유~ 이런 것도 통합이 좀 됐으면 좋겠는데..

세벌식 글쇠배열이야 이미 둘을 절충한 3-2012 같은 솔루션이 있으니.. 세벌식 사용자들의 공감을 얻어서 적당한 것을 채택만 하면 된다. 하지만 한킹과 흠정역은.. 이건 종교 쪽이어서 통합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한킹은 다른 어휘나 표현을 떠나서.. TR을 번역했지 영어 KJV를 번역하지 않은 표현을 도대체 언제까지 그냥 놔 두려나 궁금하다.

3.
말보회 한킹은 '환난'과 '환란'을 자의로 구분해서 번역했구나. 굉장히 신기하다.
이 바닥에서는 저런 식으로 비공식적인 용어 구분이 나도는 게 있다. 가령, '성경'과 '성서'.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나머지 성서들에서는 이 구절이 '(구원부터 받은 뒤에) 말씀의 젖 먹으면서 자라라'가 아니라 '신령한 젖 먹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라고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개되었습니다." 같은 식이다.

사실 벧전 2:2 같은 경우는 애초에 번역의 차이가 아니지..
번역의 차이를 논하기에 앞서 아예 원문 오리진, 쏘스가 다르고, 둘 다 옳을 수 없다는 걸 먼저 논해야 된다.
행 12:4 '이스터/유월절' 이런 게 동일한 그리스어 '파스카'에 대한 번역의 차이이고 '원어'를 논할 일이다. 그 반면, 벧전 2:2는 '원문'의 차이이다.

4.
일본은 뭔가 학술적인 건 어지간한 건 다 한국보다 앞선 나라이다. 그런데 쟤네들 내부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이슈가 거론된 적이 없는지? 일본의 말보회 같은 단체는 없는지?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일본어 역본이 민간 차원에서 혹시 존재하는지 굉장히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18 08:36 2022/08/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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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수의 필요성

올해 8월의 상반기엔 비가 정말 유난히 자주 많이 내렸다. 개인적으로 호박을 비롯해 텃밭을 가꾸는 게 있는데 물을 따로 한 번도 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8월 8일엔 역사적인 이벤트가 발생했다. 서울에 '시간당 100mm가 넘는 80년 만의 대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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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6월 30일에도 굉장한 물폭탄이 쏟아져서 한강과 중랑천 등의 공원들이 몽땅 침수되고 동부 간선 도로가 통제되곤 했다. 하지만 8월 홍수는 그보다 수위가 더 높았다.

작년에는 적어도 서울 기준으로는 이렇다 할 폭우 없이 여름이 지난 것 같다. 침수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는 본인이 아무 기대 안 하고 우연히 시작했던 '강둑 호박 농사'가 대박이 났었다. 내가 그걸 보고는 눈이 뒤집혀서 호박에 재미를 봤는데.. 올해는 호박이 침수 피해를 두 번이나 입기도 해서 작년과 같은 정도의 대박을 내는 건 불가능해졌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재작년 2020년에도 8월 중순쯤에 서울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정말 지독한 물폭탄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2011년쯤에는 그냥 폭우 정도가 아니라 우면산에 산사태가 나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것도 본인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이런 폭우를 목격하면서 본인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 일산이나 안산 같은 간척지 부근뿐만 아니라 강남 역 일대도 고도가 꽤 낮다.
  • 차라리 펄펄 끓는 수증기도 아니고.. 상온의 물 압력만으로도 몇백 kg짜리 맨홀 뚜껑이 열리고 터질 수 있다. ㄷㄷㄷㄷ
  • 고속터미널-강남 사이에 반포천이라는 개천이 있다. 다들 복개돼서 지상에서 티가 안 날 뿐.
  • 대도시의 지하에는 생각보다 정교한 배수 전용 터널이라는 것도 있다. 몽땅 그냥 다 하수도로 가는가 싶었는데 아니구나.. 자연이 퍼붓는 물의 양을 한낱 인간이 쓰고 버리는 물의 양과 동급으로 취급할 수는 없나 보다.
  • 건물에 불이 났을 때 내리는 방화벽/방화 셔터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방수 차벽이라는 게 있는가 보다. 지하 기계실의 침수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집값 싼 곳을 찾아서 처음부터 열악한 곳에서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런 자연재해에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반지하 빌라에서 일가족이 3명이 빠져나오지 못해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근데 그렇다고 무식하게 주거용 반지하 방을 몽땅 없애겠다.. 이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 같다. 군대에서 고참의 똥군기와 갈굼을 없애기 위해서 "동기만으로 구성된 소대"를 만들겠다.. 이런 부류와 비슷한 병맛스러움이 느껴진다.

비를 뚫고 밖에서 작업을 하다가 감전사한 인부, 또는 갑자기 쏟아진 토사에 맞거나 깔려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야 안타까움과 애석함에 할 말이 없을 지경인데..
그런 것 말고.. 건물을 빠져나온 뒤에 얼마 되지도 않아 맨홀에 푹 빠지고 급류에 휩쓸려서 숨진 중년 남매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사람은 계곡이나 강가에서 캠핑을 하다가 변을 당한 게 아니다. 세상에 빌딩이 즐비한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사람이 급류에 휩쓸려서 익사하리라고는 누가 꿈엔들 생각하겠는가..???
덕분에 못사는 사람들만 가재도구와 장사 밑천을 잃은 게 아니라 고급 외제차들도 줄줄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일본에서는 먼 미래에 언젠가 닥칠 쓰나미를 예상하고 해안에 제방을 굉장히 높고 튼튼하게 쌓아 놨던 어느 마을 이장 이야기가 전해진다. 1980년대 그 당시에는 이게 뭔 짓이냐고, 뭔 돈지랄이라고 왕창 욕을 먹었지만.. 2011년 대지진과 쓰나미 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자 이 마을만 그 제방 덕분에 아무 피해 없이 멀쩡했다.
그 이장은 2011년엔 이미 죽고 없었지만, 그제서야 재평가를 받고 칭송을 받게 됐다. 기념비도 세워지고 말이다. (☞ 관련 링크)

다들 아시다시피 이 한반도는 사계절 기복이 굉장히 심하고 치수의 필요성이 큰 동네이다. 자연으로부터 공급받는 물이 너무 많거나 너무 없을 때를 적절히 중재해 줄 '버퍼'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필요하다.
"강남이 물에 잠긴 게 다 오 세훈 시장 때문이네" / "ㄴㄴ 오히려 정반대. 오 세훈은 강남구에도 거대한 배수 터널을 만들려고 했는데 반대가 너무 심해서 못 했고, 오히려 박 원순이 그걸 취소해 버렸네" 이런 식으로 또 정치인 탓 선동질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정말 필요했다는 거, 우리가 현재까지 이거 덕을 많이 보고 있으며, 당시엔 이에 대해서 허위 비방과 험담이 너무 많이 나돌았다는 건 정말 인정해야 할 것이다.
갈수록 날씨가 험악해지고 있는지, 이게 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기상이변과 자연재해 징후가 과거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하면 더하지 최소한 못해지고 유순해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쌍팔년도 시절과 달리 맨날 수재의연금 모금을 하거나 제한급수 따위를 하지 않는다. 이런 게 그냥 이뤄진 일이 아니다. 나라가 더 살기 좋아지고 치수 시설이 더 좋아진 덕분이다. 자본과 과학기술의 힘이다.

오늘날도 그러한데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옛날에 무려 3년 동안 비가 안 왔다거나(북왕국 이스라엘), 아니면 노아의 홍수 때처럼 비와 침수 상태가 무려 150일이나 지속됐으면.. 그러면 그건 정말 지구 종말 급의 이벤트였고 사람이 아무도 살 수 없게 됐을 것이다.;;;

끝으로 여담 하나 더..
농업용수나 수돗물 공급을 위해서는 저수지를 만들며, 배를 육지까지 지나가게 만들려면 운하를 뚫는다. 그리고 대도시에 홍수 침수를 막으려면 저렇게 지하 배수로를 판다.
그런데 서울 서부 일대엔 자연적인 강이 아니고 그렇다고 경인 아라뱃길 같은 운하도 아니면서 무슨 개천 같은 자그마한 수로를 길게 파 놓은 게 있더라.

바로 동부 간선 수로와 서부 간선 수로. 동/서부 간선 '도로'만 있는 게 아니라 '수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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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개천이라면 내륙의 어디 엄한 고지대에서 물이 발원해서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를 할 텐데, 이 수로는 그렇지 않고 정반대이다.
얘들은 백마도 인근의 '신곡 양수장'에서 저 한강물을 펌프로 퍼다가 내륙으로 보내 준다. 그래서 이 수로는 내륙 방면으로 아주 아주 약하게나마 하구배라고 한다. (0.1퍼밀.. 수평 이동 10km당 1m꼴로 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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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수로는 무려 1923년에서 1925년 사이, 현대사 시간에 배웠을 일제 시대 '산미 증식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그것도 한 양수장으로부터 노선을 2개를 만들었다. 위의 지도에서 분홍색이 동부, 파란색이 서부이다.
김포 공항의 서북쪽 외곽을 마치 성의 해자(moat)처럼 흐르고 있는 수로는 동부 간선이다.

이렇게 물길을 개척해서 농업 용수를 공급한 덕분에 지금의 김포 공항과 부천시 북부 일대의 평야에서 농사를 짓는 게 가능해졌다고 한다.
저 동네엔 아라뱃길도 있고 굴포천도 있고 수로도 있고.. 물길이 굉장히 다양한 것 같다.

도시에서는 개발을 위해서 이미 있는 개천도 다 복개해서 덮어 버리는데, 농경지를 늘리기 위해 수로를 새로 파기도 했다는 게 흥미롭다. 여기 말고 서울 근교에 다른 수로가 만들어진 게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이야 온통 개발되고 땅의 용도가 바뀌어 버렸으니, 이런 수로가 차차 필요 없어지고 내륙의 말단 구간은 도로 엎어 버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일제 시대의 역대급 물 재앙이었던 을축년 대홍수도 비슷한 시기인 1925년에 있었다. 이때도 서울 시내와 근교가 왕창 물에 잠겼었다.
치수는 대한민국이건 일제건 어렵고 골치 아픈 문제임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15 19:35 2022/08/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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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는 태생적으로 ‘유니코드 = 2바이트 단위 인코딩’이라는 걸 전제에 깔고 만들어졌다.
거기에다 유니코드라는 게 없던 쌍팔년도 도스 시절과의 호환성을 너무 중요시해서 그런지, 2바이트가 아닌 1바이트 단위 인코딩 쪽은 일명 ANSI라 불리는 국가별 지역구 문자 코드에 오랫동안 얽매여 있었다. (cp949 따위)

그래서 이쪽 진영은 ‘유니코드의 1바이트 단위 인코딩’에 속하는 UTF-8의 지원이 맥이나 리눅스 같은 타 운영체제에 비해 굉장히 미흡한 편이었다.
가령, 파일의 경우 앞에 BOM을 꼭 넣어야만 ANSI가 아닌 UTF-8이라고 인식했는데.. 그러면 이건 말짱 도루묵이어서 지원하지 않는 것과 별 차이 없었다.

이러니 한 git 저장소에다가 넣고 여러 플랫폼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소스 파일의 경우, 영문이 아닌 한글로 주석은 무서워서 넣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Windows만 ANSI cp949를 선호하니 이건 타 운영체제의 IDE에서는 인코딩을 번거롭게 수동 지정하지 않는 한, 제대로 인식을 못 했다. 거기서 다시 저장을 하면 한글 내용은 당연히 다 날아갔다.

Windows에서도 UTF-8로 인식시키려면 파일 앞에다 BOM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이러면 Windows 말고 타 컴파일러에서는 이게 배탈을 일으켰다.
정말 거지 같은 상황이었다. Windows는 1993년 NT 첫 버전부터 나름 유니코드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야에서는 전혀 유니코드에 친화적이라는 티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려 2010년대 중후반이 돼서야 Visual C++ 2017인가 2019쯤에서야 드디어 BOM이 있건 없건 소스 파일의 인코딩을 다 UTF-8로 인식시키는 옵션이 추가됐다. 아마 202x 버전쯤에서는 이게 디폴트 옵션이 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메모장이 편집하는 파일의 기본 저장 인코딩이 ANSI 대신 UTF-8로 바뀌었다.

응용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Windows 자체도 10의 후대 패치를 통해 일단 명령 프롬프트의 인코딩에 UTF-8 지정이 가능해졌다. CHCP 65001 말이다.
단, 이런 명령 말고 프로그램 상으로 UTF-8 기반의 명령 프롬프트 환경을 어떻게 생성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검색해 보면 있겠지.. 배치 파일과 명령 argument를 몽땅 다 유니코드로 줄 수 있어야 진정한 유니코드화일 텐데 말이다.

다음으로 2019년쯤엔가 굉장히 큰 변화가 생겼는데..
유니코드를 지원하지 않는 구닥다리요 과거 Windows 9x의 잔재로나 여겨지던 각종 ...A 함수 말이다.
A 함수도 ANSI가 아닌 UTF-8 인코딩으로 문자열을 취급함으로써 유니코드를 지원하게 하는 통로가 뚫렸다.
그래.. 내가 원하던 게 이거였다. 진작에 좀 지원해 줄 것이지..!!

물론 Windows가 내부적으로는 문자열을 몽땅 UTF-16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고, 2000년대부터는 ..A 함수 같은 건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니 ..A 함수의 유니코드화가 막 획기적으로 대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 주면 1바이트 단위로 문자열을 취급하는 각종 오픈소스 라이브러리에 대해서 골치 아프게 문자열을 변환하고 W 함수를 호출하는 thunk를 만들지 않아도 유니코드 파일명에 접근할 수 있어서 기존 코드의 포팅이 굉장히 수월해진다.

이 ANSI 코드 페이지라는 개념은 원래 시스템 global한 설정이며, 변경한 뒤에는 재부팅이 필요할 정도로 보수적인 속성이었다.
그런데 이걸 응용 프로그램마다 샌드박스를 씌워서 다른 값으로 가상화할 수 있고 심지어 UTF-8로 지정 가능해진 것은 고해상도 DPI 설정과 양상이 굉장히 비슷하다. 이것도 시스템 global이다가 응용 프로그램 단위로, 심지어 모니터 단위로 세부 지정과 변경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응용 프로그램의 매니페스트 정보를 통해 지정한다는 점마저도 동일하다. application → windowsSettings에 있다~!

<activeCodePage xmlns="http://schemas.microsoft.com/SMI/2019/WindowsSettings">UTF-8</activeCodePage>
<dpiAware xmlns="http://schemas.microsoft.com/SMI/2005/WindowsSettings">true</dpiAware>

20여 년 전에는 마소에서 unicows라고, 응용 프로그램이 Windows 9x에서 ...W 함수를 호출하면 문자열들을 변환해서 A 함수로 재호출해 주는 호환 layer를 개발· 배포한 적이 있었다. 한 프로그램이 2000/XP에서는 유니코드를 지원하고, 9x에서는 유니코드를 지원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실행만은 되라고 말이다.
이제는 A 함수로도 UTF8 인코딩을 통해 유니코드에 접근하는 통로가 생겼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또한,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 Windows에서도 2바이트 완성형 CP949는 2바이트 조합형만큼이나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싶다. 마치 플래시나 IE6, 보안이 안 좋은 http가 퇴출되듯이 말이다.
Windows가 일찍부터 유니코드를 지원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재래식 1바이트 인코딩의 퇴출을 가능하게 한 것은 UTF-8의 도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웹이야 살아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문서이니.. EUC-KR이니 CP949이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홈페이지부터가 블로그 말고 HTML 페이지는 다 구닥다리 ANSI 인코딩을 쓰고 있구나. =_=

※ 여담: 2바이트 인코딩의 문자 집합 크기

우리나라의 KS X 1001 완성형 2바이트 한글 코드는 ISO/IEC 2022라는 옛날 규격에 맞춰서 94*94 = 8836 크기의 격자 안에 완성형 한글 2350자와 상용 한자 4888자, 그리고 나머지 1000여 자에 달하는 특수문자를 배당해 놓았다.

그 뒤 CP949, 일명 마소 확장완성형은 현대 한글 11172자에서 2350자를 제외한 나머지 한글 8822자를 KS X 1001이 사용하지 않는 2바이트 문자 조합에다가 억지로 집어넣었다.
KS X 1001이 lead byte와 tail byte 공히 0xA1부터 0xFE까지만을 사용하는 반면, CP949는 영역이 더 넓다. 특히 tail byte로는 알파벳 A~Z, a~z까지 사용한다.

그런데 이 ISO/IEC 2022 격자 크기 8836과, 비완성형 한글 수 8822는 값이 놀라울정도로 비슷하다. 우연인지, 의도된 결과인지 모르겠다.;;
한글 글자 수 11172와, 16*16픽셀 8*4*4벌 도깨비 한글 폰트의 크기 11520도 꽤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건 진짜로 의미가 서로 전혀 무관하기는 하다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13 08:35 2022/08/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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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종 비례 관계

  • 참모 장교와 지휘 장교의 관계는 마치 연구 교수와 강의 교수의 관계하고 꽤 비슷해 보인다.
  • 전투기 조종사에게 비행 시간(경력)은 학계에서 무슨 게재된 논문의 수와 피인용 횟수와 비슷하고.. 전방석이냐 아니냐는 1저자냐 아니냐와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 "핵물리학 - 원자력공학"의 관계는 "천체물리학 - 로켓공학"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 해군은 배가 곧 생활관 겸 전장이다 보니.. 견시는 위병소의 초병과 각종 GOP 경계를 합친 근무를 하는 것 같다.

  • 세상에 직업적으로 총을 쏘는 사람은 군· 경뿐만 아니라 엽사, 사격 선수, 스나이퍼, 공작원 등 여럿 있다.
    그러나 자동화기를 이용해서 여러 발을 드르르륵~ 갈기거나 기관총· 대포 같은 것까지 쏘는 곳은 역시 군대밖에 없다. 한 발씩 조준 사격이 아니라 엄호 사격이라는 걸 하는 사람도 군인밖에 없다.
  • 쿠베르탱 메달은 미국 명예 훈장의 스포츠 버전인 것 같다.

2. 진로

장교가 되는 방법은?
(1) 육해공 사관학교 / (2) 육군 한정으로 3사 / (3) ROTC / (4) 학사장교 / (5) 간부사관 또는 군의관 군법무관 군종장교 따위의 특수 병과

나라의 최정예 엘리트 장교를 육성하는 사관학교는 오랫동안 남자 전용이다가 국내 기준으로 1990년대 말부터 여생도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간호 사관학교는 반대로 여자 전용이다가 2010년대가 돼서야 남생도를 소수나바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이공계 대학생의 병역 해결 진로는?
(1) 국내 이공계 박사 특례 / (2) 국내 이공계 석사 후 전문연구 / (3) 산업기능요원 / (4) 공군 / (5) 학부 때 휴학하고 육군으로 제일 빨리 다녀오기.. 그 뒤 바로 취업 또는 유학
이쪽은 학사장교나 군 장학생 같은 코스가 생소한 편이다.

3. 가늘고 길게 바뀌는 전투 양상

(1) 전쟁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단시간에 결판을 못 내면 결국 전선이 고착되고 지긋지긋한 엎치락뒷치락 소모전으로 양상이 바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6 25 사변의 1951년 이후 전황, 1차 세계 대전 참호전 따위.

(2) 바이러스성 질병은 단시간에 숙주를 바로 죽여 버리는 게 아니라면, 결국 가늘고 길게 널리 퍼뜨리는 쪽으로 변이한다.
코로나19 우한 폐렴, 신종 플루 (옛날에 방역 때문에 말년휴가를 짤렸던 김 정훈 병장 인터뷰.. ㄲㄲㄲㄲㄲ), 메르스...

(3) 북괴도 과거 짧고 굵게 깽판치고 개기다가 몰락한 수많은 다른 악의 무리들과 달리.. 최대한 가늘고 길게, 자기 체제를 위협할 정도의 깽판은 안 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교사: 과거 일제, 나치 독일, ISIL,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이라크 후세인 등~~

족발은 피자· 치킨 같은 다른 야식과는 달리.. 젓가락만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살코기 부위와, 손을 동원해서 뼈를 발라내며 먹어야 하는 부위가 같이 들어있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먹는 양상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데..
이거 무슨 전열보병 전투 같다. 처음엔 총질 하면서 적에게 접근하다가 뼈를 잡고 먹는 건 백병전 모드가 되는 것과 같다.;;;

4. 구금 시설

사회에서는 다 똑같이 돈으로 때우는 벌 같아도 법리적으로는 벌금, 과태료, 범칙금, 추징금은 성격이 모두 다르다.
그런 것처럼 똑같이 사람을 가둬 놓는 시설 같아도 법리적으로는 진짜로 벌을 주는 것이 목적인 감금과, 형 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감금은 성격이 다르다.

사회에서는 전자는 교도소, 후자는 구치소로 역할이 나뉜다. 무기징역이 확정된 죄수는 교도소로 가겠지만, 사형수는 구치소로 간다.
그런데 교도소 독방도 뭔가 교도소 안의 교도소라는 징벌적인 녀석이 있는가 하면, 그냥 약한 죄수의 격리 또는 VIP 대접이라는 비징벌적 녀석으로 성격이 나뉜다.

군대 영창도 마찬가지다.
영창은 가벼운 죄를 지어서 며칠 다녀오는 것 자체가 목적인 징벌적인 용도가 있는가 하면, 군사재판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수용되는 구치소 같은 용도도 있다. 후자는 무죄나 집행유예를 받는다면 다행이지만 일단은 영창 며칠로 끝나지 못하는 훨씬 더 큰 죄를 지은 군인에게 해당된다. 차라리 전자 영창 수감자가 처지가 더 나을 것이다.

지금이야 영창이란 게 폐지됐는데.. 전자의 징벌성 영창 수감이 없어지고 군기교육대로 대체된 것이다. 국방부 시계가 멈췄는데, 그 동안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빡세게 굴러야 하니.. 영창이 없어졌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미결수를 수용하는 후자 용도의 영창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5. 징집 관련 법 적용

우리나라 군대는 아무리 징집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라 해도, 질이 지나치게 나쁜 범죄자 전과자까지 끌고 가서 총을 쥐어 주지는 않는다. 징역 6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현역이 아닌 보충역으로 처분하고, 1년 6개월 이상이면 전시근로역 처분.. 그리고 무려 6년 이상이면 이건 뭐 일체의 병역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노답 면제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 예외가 있다. 바로 병역 신체검사 판정을 속인 병역법 위반죄..
86조에 따르면 병역기피 목적으로 자해 꼼수는 1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지는데, 이건 징역 6개월 이상의 실형일 뿐만 아니라, 벌은 벌대로 받은 뒤에 신검을 다시 받고 군대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끌려간다~!

이거 마치 탈영죄의 공소시효가 끝난 뒤에는 명령 불복종죄로 처벌하는 것과 비슷한 법리인 것 같다.
차라리 잔머리 안 굴리고 당당히 88조를 씹고(소집 명령)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교도소에 제 발로 가도 요즘은 최소 형량인 징역 1년 6개월만 때리고 전시근로역 처분으로 끝난다. 이게 덤터기 없이 더 깔끔할 수도 있다.

좀 다른 분야이지만 기독교 얘기를 꺼내자면.. "하나님이 불신자의 기도에 응답을 해 주시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하나님이야 신자라 해도 죄에 오랫동안 빠졌거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헬렐레하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하물며 불신자의 기도라면 거들떠볼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딱 하나 예외가 있으니 바로 "예수 믿고 싶습니다, 구원받고 싶습니다, 이제 신자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영접 기도이다. 하나님이 이런 불신자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지 않는다면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병역비리 없이 모든 사람을 군대에 끌어들이기 위해, 탈영을 막기 위해, 또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법에 추가적으로 또는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 논리가 이런 식으로 있긴 한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10 19:36 2022/08/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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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와 도로

과거에 우리나라의 몇몇 자동차와 고속도로에는 유사시에 군사용으로 전환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흔적이 좀 있었다.
먼저 고속도로의 경우, 일부 긴 직선 구간에 ‘비상 활주로 공용 구간’이란 게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 기준으로 대표적인 예는 수원-신갈, 천안 북부, 그리고 김천 부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는 중앙분리대부터가 튼튼한 고정식 붙박이가 아니라 좀 부실하고 portable한 형태였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도로를 틀어막고 중앙분리대를 치운 뒤, 여기로 전투기의 이착륙 훈련을 실제로 했었다~! 비상 활주로 구간의 한쪽 끝엔 주기장 역할을 하는 넓은 공터도 붙어 있었다.

세상에, 경부 고속도로의 수도권 구간에 전투기가 뜨고 내렸었다니..!!
고속도로에 차들이 365일 24시간 넘쳐나고 도로 주변이 몽땅 개발되어 가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관행일 것이다.

그러나 197, 80년대.. 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가 무단횡단자가 있을 정도로 한산하던 시절엔.. 기왕 이런 도로를 만드는데 유사시에 활주로로 활용 가능하게 만드는 게 아주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애초에 박통이 잔뜩 참고했던 아우토반부터가 나치 독일 시절에 활주로 겸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었다.

그러다가 이런 활주로는 고속도로를 틀어막는 게 도저히 불가능해지고, 고속도로를 차지하지 않는 대체 활주로들이 따로 만들어지면서 차차 없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으로 자동차는.. 쌍용 코란도 같은 찦차/SUV에 ‘등화 관제등’ 장치가 있었다.
찦차는 일반 승용차보다 차체가 높고 사륜구동도 지원하니 험지를 잘 달리고 군용으로 적합하다. 우리나라는 이런 차량을 전시에 필요하면 군용차로 우선 징발해 가는 대신, 세금 같은 다른 금전적인 부분에서 혜택을 주는 식으로 차량 구매자와 딜을 했다. (예: 영업용이 아닌 자가용이지만 동일 배기량의 타 승용차보다 자동차세 저렴)

아.. 아니, 사실은 이건 딜이 아니고 일방적인 강제 의무 통보였다. “세금 혜택 안 줘도 되니 내 차는 전시에 징발하지 마세요” 라는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화 관제란 전시에 우리 위치가 적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건물이나 차량의 불빛을 몽땅 끄고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걸 말한다. 하지만 자동차는 야간에 안전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아주 자그맣고 특히 위로 새어나가지는 않는 불빛은 필요한데, 그게 등화 관제등이다.

우리나라는 전시 징발을 염두에 두고 SUV 차량에 등화 관제등의 장착이 오랫동안 의무였다.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던 희한한 조건이었는데, 이건 1999년쯤에 폐지됐다.

2. 잠수함

우리나라 해군은 1990년대가 돼서야 잠수함이란 걸 처음으로 도입하고 운용하게 됐다(장보고 급 잠수함).. 자국 인공위성 발사와 시기가 비슷하다~!
즉, 우리나라는 민주화 이전 군사정권 시절에는 잠수함을 보유한 적이 없었다. 뜬금없는 예이지만, 1980년대 이전에는 국내에 국산 참치 통조림이라는 게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반세기 전,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이나 독일, 미국 등이 잠수함을 잘도 굴려서 유명한 해전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6 25 전쟁 때 우리나라에서 잠수함이 어뢰를 쏴서 적선을 격침시켰다거나 한 건 없다. 이것도 뭔가 역사· 전쟁사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오오~ 현타를 느끼게 한다.

(오히려 북괴는 육군만 신경 쓰느라 바다에서는 탈탈 털렸었다. 섬들은 북한 지역의 것들까지 국군과 UN군이 몽땅 점령하고 있다가 나중에 철수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서해5도가 북한 본토에서 굉장히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휴전 당시에 남한이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럼 북괴는 언제부터 잠수함을 도입한 걸까..?? 쟤들은 잠수함으로 어뢰를 몰래 쏴서 천안함을 격침시킨 적이 있었고.. 더 옛날엔 무장공비를 침투시킬 때 잠수함을 동원했었다. 1996년 강릉처럼. 쟤들의 도입 이력도 문득 궁금해진다.
이제는 잠수함이 고작 공작원 침투용이 아니라 아예 미사일 쏘고 튀는 용도로 쓰이지만 말이다. 자기도 원자력으로 움직이고, 미사일에도 핵탄두가 달려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잠수함은 의외로 우리나라 철도와도 접점이 있다.
그 장보고 급 잠수함에 들어간 엔진은 독일 MTU제 16기통짜리 디젤 엔진인데.. 이게 거의 그대로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액압 동차(DHC)에 쓰였기 때문이다. (MTU 16V 396TC)
DHC도 1987년 7월에 대우 중공업 생산분이 첫 도입되어서 1990년대 초에 리즈 시절을 찍었음을 생각하면.. 시기가 얼추 비슷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즉, 새마을호 디젤 동차에는 잠수함용 엔진이 쓰인 셈이다.
출력 대비 아주 조용하고 가벼워서 좋긴 했는데.. 묵직한 디젤 기관차에 비해서 너무 가벼워서 바퀴가 레일에서 헛도는 현상에 취약했다고 한다.
평지에서 빠르게 달릴 때는 좋은데 오르막은 잘 못 오르니.. 새마을호 디젤 동차는 경부· 호남 외에 중앙선에는 투입되지 못했다. 나중에 선형 개량이 된 장항선과 전라선 정도에나 추가로 들어갔다.

독일 MAN사가 자동차/엔진 제조사로 유명한데, MTU라는 기업도 있구나.
유보트를 만들었던 본가에서 장인 정신으로 만든 잠수함 엔진인지..??
근데 디젤 엔진은 수면에 떠 있을 때에나 쓰이지, 잠수 중일 때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어차피 전기 모터로 움직여야 된다.
잠수함이야말로 배터리가 차지하는 공간과 무게 오버헤드가 굉장히 크지 싶다.
달에서 월면차가 내연기관-_-이 아니라 당연히 빼박 전기차여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 여담

잠수함이나 잠수정, 호버크래프트, 공중급유기 같은 건 아무래도 군대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이다. 민간 여객기야.. 엄청 장거리 노선이라면 차라리 휴게소에 들르듯이 중간 기착을 하고 말지, 비행 중의 실시간 급유 같은 초 오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헬리콥터도 군용 아니면 기껏해야 소방· 인명 구조 용도이다. 이런 게 민간에서 뭔가 정규 노선을 뛰는 대중교통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저런 특수한 교통수단들은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용도로만 적합하지, 많은 승객과 화물을 저렴하고 빠르고 편하게 수송하는 쪽은 안타깝지만 완전 쥐약;;;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용기나 군함을 만들던 기술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일본의 경우, 1960년대에 이미 100% 자체 기술로 신칸센 고속철을 개발했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YS-11이라는 국산 여객기도 자체 개발했다. 열차와 비행기를 모두.. ㅎㄷㄷㄷ;;
쟤들은 그 전부터 제로센 같은 군용기까지 만들던 나라이니 저런 것도 가능했지 싶다. 초창기 신칸센 0계는 아예 왕년에 자기들이 만들었던 제로센의 앞모습을 쏙 빼닮은 형태로 만들기도 했었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08 08:36 2022/08/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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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잘 알다시피 현재까지 지구의 전 인류 역사를 통틀어 자국민 거주지에 핵폭탄을 쳐맞아 본 유일한 나라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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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기란 엄청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일인데 1945년 8월경의 일본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단순히 침략 전쟁을 벌이고 점령지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평범한(?) 악행만으로는 절대 그렇게 되지 못한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제때 항복 안 하고, 총체적으로 멍청하고 병신같은 뻘짓만 골라서 하면서 천조국한테 개겼기 때문에 저 지경으로 참교육을 당한 것이었다. 지 무덤을 파면서 매를 벌었다.

1. 원폭이 떨어진 곳

잘 알다시피 히로시마(6일)와 나가사키(9일)였다. 모두 후쿠오카 일대에 있으며 일본 본토의 완전 남서쪽 끝 지방이다. 수없이 많은 소이탄 폭격을 당해서 먼저 잿더미가 됐던 도쿄하고는 위치와 방법이 딴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 근처에 있는 고쿠라, 그리고 좀 더 동부의 교토도 목표물 후보로 거론됐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비껴 가게 됐다.

2. 원폭의 위력

원폭 이전에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 폭발 사고였다고 여겨지는 건 1917년의 캐나다 핼리팩스 대폭발이었다.
거대한 화물선 한 척에 실려 있던 화약이 화재로 인해 몽땅 폭발하면서 TNT 2.9kt 정도의 위력이 발생했다고 추정된다. 도시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으며, 바닷가에서 불구경 하러 모였던 사람들이 파편과 잔해에 맞아서 사망자만 2천여 명이 발생했다.

그랬는데 우라늄235 기반의 히로시마 원폭의 폭발력이 TNT 16kt, 플루토늄238 기반의 나가사키 원폭의 폭발력은 TNT 21kt 정도로 여겨진다. 두 원폭 모두 무게는 그냥 4톤에서 4.5톤 사이였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그 뒤에 0이 3개가 추가되고도 남는 사기적인 에너지가 나온 셈이다.

배수량 3000여 톤급 화물선에 가득 실린 일반 폭약 vs 대형 폭격기에 실린 4.5톤짜리 핵탄두 달랑 하나의 위력 차이가 이 정도이니.. 원폭이 떨어졌던 당시에는 "이 폭탄은 30여 년 전, 핼리팩스 대폭발 위력의 수 배.."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갔었다. 지금이야 어디서 핵실험을 하면 "히로시마 원폭의 n배" 이렇게 비교 기사가 나가겠지만, 저 때는 헬리팩스가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핼리팩스는 타이타닉 호의 침몰 지점과 꽤 가까이 있어서 5년 전엔 구조 본부가 설치되었으며, 사망자의 일부가 여기에 매장되기도 했다. 어째 1910년대에 굵직한 사건 두 건과 연루되면서 유명해졌다.

3. 원폭이 떨어진 방식

1940년대에는 아직 지금 같은 미사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음속 왕복 엔진 폭격기가 적진의 상공까지 직접 날아가서 폭탄을 떨궜다. 시간이 흐를수록 천조국은 일본과 더 가까운 태평양의 섬들을 점령했으며, 1944년엔 B29라는 걸출한 고성능 장거리 폭격기까지 개발되어 드디어 일본 본토를 직접 폭격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열악하던 둘리틀 특공대 시절처럼 깜짝쇼만 한 뒤에 비행기를 버리고 불시착하는 게 아니고, 살을 많이 뺀 함재기들이 평타 정도 폭격을 하다가 근처의 항공모함으로 허겁지겁 복귀하는 것도 아니고, 더 크고 묵직한 폭격기가 장거리 원정을 가서 왕창 폭격을 퍼부은 뒤에 공간 넉넉한 섬 비행장으로 귀환한다는 것이다.

뭐, 이러고도 일본이 항복을 안 했으면 나중엔 연합군 육군까지 본토에 상륙해서 폭격이 아니라 포격을 퍼부었을 것이다. 나치 독일의 베를린이 함락됐을 때처럼 말이다.

4. 비행기들이 출격 방식

원폭을 떨군 폭격기는 북마리아나 제도의 '티니안 섬'에 있는 미군 기지에서 발진했다. 얼추 괌 근처라고 생각하면 된다.

폭탄 투하 한 시간쯤 전에 먼저 정찰기가 홀로 날아서 투하 지점의 날씨 같은 걸 최종 체크했다. 그 다음으로 폭격기 본체, 카메라맨이 탄 촬영 비행기, 계측기를 실은 비행기가 같이 날아갔고.. 폭탄을 투하한 뒤에는 비행기 세 대가 모두 폭발 예정지로부터 급선회· 급강하하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파일럿들은 이런 기동 훈련을 반복해서 받으면서 연습했다.

폭탄은 여객기 순항 고도에 맞먹는 거의 9km대 고도에서 떨어져서 히로시마 little boy 기준, 570m대 상공에서 터졌다. fat man도 뭐 대등소이하다.

히로시마에 간 폭격기와 나가사키에 간 폭격기는 같은 B29 기종이고 같은 지역에서 발진하긴 했지만 서로 다른 기체였다. 전자의 애칭은 Enola Gay이고 후자는 Bockscar인데.. 아무래도 '최초'의 타이틀을 획득한 전자가 압도적으로 더 유명하다.
두 폭격기의 승무원도 다 달랐다. 동일한 기체나 동일한 승무원이 두 도시에 원폭을 동시에 떨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5. 원폭 재료의 수송

폭격기로 원폭을 떨어뜨리려면 그 전에 원폭을 폭격기의 발진 기지로 실어나르기도 해야 했다. 단, 보안을 위해 완제품(?)이 아니라 재료와 부품만 날랐고, 조립은 출격 직전에 기지에서 행해졌다.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티니안 섬까지 수송한 건 순양함 USS 인디애나폴리스 호였다. 얘는 기밀 유지 명목으로 호위함 하나 없이 살금살금 몰래 항해하며 이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니 우리는 에놀라 게이 폭격기를 기억하기에 앞서 인디애나폴리스 함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배는 그 다음 임무 수행을 위해 필리핀 레이테 섬으로 항해할 때도 호위함 없이 위험하게 다니다가.. 1945년 7월 30일, 인근의 일본 잠수함으로부터 어뢰를 맞고 격침 당해 버렸다.

이제 일본은 전쟁에서 다 졌고 바로 며칠 전에 포츠담 선언 최후통첩까지 나갔겠다, 우리 천조국한테 위험 요소 따위 없을 거라고 상부에서 함장의 요청까지 묵살하면서 너무 방심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종전 직전에 이렇게 순양함 한 척을 허무하게 잃고 말았다.

그런데도 미 군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인디애나폴리스 측의 구조 요청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서 수많은 병력을 망망대해 위에서 죽게 만들었다. 그래 놓고는 오히려 함장을 자기 책임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고 배와 부하들을 날려먹은 패장으로 몰아붙이면서 진급을 누락시켰다. 그 함장은 말년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까지 하고 말았다.

먼 훗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인디애나폴리스를 격침시켰던 일본 잠수함 함장이 직접 "인디애나폴리스 측은 특별히 부주의하거나 잘못한 게 없습니다. 우린 그 배가 어떤 기동을 하더라도 공격해서 격침시킬 수 있던 상태였습니다"라고 인증했다. 그리고 여러 증거들이 더 밝혀지면서 함장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이 돼서야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인디애나폴리스가 아직 우라늄을 싣고 있던 상태에서 격침됐다면...? 햐~ 이건 "아폴로 13호가 달 착륙선을 분리시키고 난 뒤에 폭발했다면?" 같은 급의 비극이 됐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루스벨트 대통령은 진주만 공습을 당한 뒤에 격노해서 어떻게든 일본을 상대로 보복하라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원폭의 사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에 비해, 저 그림에서 껄껄 웃고 있는 후임 트루먼 대통령은 취임한 뒤에야 원폭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보다 더 적극적으로 원폭 사용을 지지하고 승인했었다.
허나, 그는 훗날 6· 25 때 한반도에서 원폭을 또 동원해서 북괴 중공을 몰아내자는 군부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상이다. 이 글의 요지는 인류 최초의 핵무기 투입은 절대로 그냥 이뤄진 일이 아니며 그 전에 치밀한 사전 준비가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천조국은 이런 원폭을 떨구기 전에 핵 실험까지 미리 해 봤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주 모처의 사막에서 나가사키 원폭과 비슷한 규모의 플루토늄 폭탄을 터뜨려 본 것이다. 그러니 쟤들은 자기들이 터뜨리는 폭탄이 위력이 얼마나 사기적인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도 아니었다.

물론 이 핵 실험은 진행 당시에는 극비로 부쳐졌고 종전 이후에야 비밀이 풀렸다. 어디서 뭐가 터졌다는 낌새가 신고된 건 모 공군 기지의 탄약고가 벼락 맞고 통째로 유폭해 버렸는데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는 식의 거짓말로 무마시켰다.
'트리니티(삼위일체) 실험'이 바로 냉전 이전에 행해진 전무후무 유일한 핵 실험 기록이 됐다.

* 원폭을 맞은 것 갖고 굳이 죽은 일본 사람들을 희화화하면서 '잘 죽었다, 쌤통이다' 이러는 거야 인간말종 짓이다.
그러나 지들이 한 짓에 대해서는 입 싹 씻고 원폭 맞은 불쌍한 피해자 행세만 늘어놓는 건 더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짓일 것이다.;;

예전에 본인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의 사진 기록에 대해 소개했던 적이 있다.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수용소가 해방된 뒤에 연합군이 들어와서 찍은 사진 말고.. 쟤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 내부를 목숨 걸고 찍은 진귀한 사진은 딱 네 장이 전해진다고 말했었다. (☞ 이전 글 보기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그것처럼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고 나서 찍힌 제일 따끈한(폭발 이후 겨우 3시간 남짓 경과) 현장 사진은 딱 5장이 전해진다고 한다. 마츠시게 요시토(1913-2005)라는 일본인 기자가 찍은 건데.. (☞ 보기)
이건 뭐 혐짤은 전혀 없고, 평범한 전쟁 폐허 속에서 흙먼지 뒤집어쓴 사람들이 거지꼴로 앉았거나 줄지어 선 모습이 전부이다. 훨씬 더 끔찍한 혐짤 급의 시체 사진은 일부러 의도적으로 찍지 않았다고 한다.

패전한 일본을 접수한 미국에서는 원폭 피해자의 참상을 묘사한 글이나 현장 사진은 절대로 언론을 타지 못하게 아주 강압적으로 검열하고 찍어눌렀다고 한다. 반전 반핵 여론이 조성되지 않게 할 의도였지 싶다. 그래서 저 사진들도 GHQ가 일본에서 철수한 1952년쯤 돼서야 공개될 수 있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간지나는 버섯구름 사진만 매스컴을 잔뜩 탔을 뿐, 버섯구름 아래에서 벌어진 일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 버섯구름조차도 위에서 보다시피 히로시마 껀 영 별로이고 나가사키 것이 훨씬 더 멋있으니 그것만 사골이 되도록 인용되고 쓰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05 08:35 2022/08/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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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수라는 건 제곱하면 값이 폭발적으로 커지거나(>1 발산), 반대로 0으로 급격히 오그라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1은 그 양극단의 딱 중앙에서 자기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1이나 i 같은 건 제곱하면 다른 수가 되었다가 도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며 순환한다.

망델브로(만델브로트) 집합이라는 게, 0부터 시작해서 더하고 제곱, 더하고 제곱을 반복했을 때 발산하지 않는 복소수의 집합인 걸 생각해 보자. 꽤 오묘한 개념이다.
리만-제타 함수도 그렇고, 평범해 보이는 함수가 복소수 범위로 가면 난이도와 복잡도가 눈 튀어나올 정도로 치솟는 것들이 좀 있다. 제곱해서 -1이 되는 수를 하나 정의함으로써 사고 체계가 이 정도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수학이란 게 발명인지 아니면 발견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대부분의 업적들은 엄밀한 논리 체계를 찾아낸 발견에 가깝겠지만, 허수와 복소수는 아무래도 발명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 같다. "제곱해서 -1이 되는 수도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건 아무래도 자연 세계에서 존재하는 개념을 추상화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복소수가 그런 것처럼 행렬도 발명에 가까운 도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가로와 세로 크기가 같은 정방행렬에 대해서는 거듭제곱을 생각할 수 있다.
행렬은 거듭제곱을 하면 행렬식 값도 거듭제곱 된다.
그런데 모든 원소가 몽땅 0이 아니어도 행렬식 값은 0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단독 숫자의 연산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특성이 존재할 수 있다.

제일 작고 단순한 2*2 크기의 행렬의 제곱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a b]^2 = [a^2+bc  b(a+d)]
[c d]     [c(a+d)  bc+d^2]

이를 토대로 이런 행렬을 생각해 보자.
2*2 행렬이란 게 원래 2변수 연립방정식을 푸는 도구인데, 얘 분석을 위해서 4변수 연립방정식을 풀게 생겼다.;;

1. 영행렬이 아니면서 제곱하면 영행렬이 되는 행렬

원소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은 0이 아닌 행렬 중에 제곱 했을 때 완전 영행렬이 되는 행렬은 원소가 이런 꼴인 녀석이다. 요러면 제곱해 보면 모든 원소들이 x^2와 -x^2가 상쇄되는 식으로 소거되어 0이 된다.
[   x     y]
[-x^2/y  -x]

y가 원소 단독과 타 원소의 분모에 동시에 존재하니, 원소 중 하나는 반드시 nonzero여야 함이 보장된다.
이걸 전치시킨 것도 동일한 속성을 지니므로, nonzero 원소가 꼭 저 자리에만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y에다 1을 대입해서 식을 좀 간소화시키면 이런 형태가 되며..
[  t    1]
[-t^2  -t]

t에 1을 대입하면 일례로 요런 행렬이 나온다. 이런 게 제곱하면 영행렬이 된다는 것이다.
[ 1  1]
[-1 -1]

2. 영행렬이나 단위행렬이 아니면서 제곱하면 늘 자기 자신이 되는 행렬 (멱등행렬)

이건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면 자기 소스 코드를 그대로 출력하는 콰인 같은 느낌이다.;;;
사실은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단위행렬뿐만 아니라 거기서 숫자 일부를 0으로 바꾼 얘라든가, 0과 1이 일렬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행렬도 다 멱등행렬이다.
[1 0]    [1 1]
[0 0] or [0 0]

이렇게 trivial한 경우 말고, 네 원소들이 모두 nonzero라고 가정하고 식을 세워 보면.. 반드시 a+d = 1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먼저 나오고, 최종적으로 답이 이렇게 나온다.
[    x+1      y]
[-x*(x+1)/y  -x]

이런 행렬의 구성 원소는 아까 제곱-영행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2개의 변수만으로 원소 4개의 값이 모두 결정됨을 알 수 있다. 또한, 오른쪽의 b와 d 원소를 동기화시켰을 때 a와 c는 저런 차이가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왼쪽에서 x가 x+1로 바뀐 정도의 차이가 전부이다. ㄲㄲㄲㄲ

저 식은 뭔가 미묘하게 규칙성이 있어 보인다. y=1인 경우만 생각해 보면 아래 row는 위의 row에다가 단순히 -x배를 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2 1]    [ 2  1]
[-6 3] or [-2 -1]

그러니 행렬식 값은 당연히 0이다. 사실, 행렬식이 0이 아닌 멱등행렬은 단위행렬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행렬식이 0인 2*2 행렬에다가 평면의 궤적을 선형변환 시키면, 평면도형을 일직선 위로 다 찌그러지게 된다. 제곱 결과물의 차이(영 또는 자기 자신)는 서로 다른 점조차 동일한 점에다가 겹쳐지는지 정도의 차이만을 만들 뿐이다.

제곱했을 때 특정 원소의 값이 확 커진다 하더라도, 행렬식이 0이면 그 일직선에서 엄청 먼 점까지 선형변환을 시킬 뿐, 일직선을 벗어나서 면적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이것이 이런 행렬이 갖는 대수적 의미이다.
3 이상의 더 큰 정사각행렬에서는 멱등행렬의 원소 관련 공식이 당연히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그래도 규칙성은 갖추고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03 08:35 2022/08/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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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인천

우리나라에서 뭔가 사람, 물자, 정보 따위가 흐르는 통로는 아무래도 서울-인천 사이가 가장 먼저 개통되곤 했다.

  • 모스 부호 전신: 1885
  • 철도: 1899
  • 상수도: 1910 (1908 뚝도 정수장 다음임. 완전 최초는 아님. 서서울 호수 공원, 선유도 등, 과거에 서울의 서부에 있었던 상수도 시설들이 흥미롭다)
  • 고속도로: 1968~1969
  • 광역전철: 1974
  • 송유관: 1992년 말 (1990년에 대한 송유관 공사 설립 후 최초)

철도를 조금만 더 살펴보면..

  • 1899년에는 경성 전차(5월)와 경인선 철도(9월)가 나란히 개통했다.
  • 1910년대 중후반에는 어째 서대문과 관련된 건축물들이 철거됐다. 1915년쯤에 노면 전차의 복선화를 위해 서대문(돈의문)이 헐렸으며, 3· 1 운동 직후에는 서대문 역과 이쪽 선로가 없어지고 신촌 방면 급커브 선로가 새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남대문 역이 경성 역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 1967~68년에는 증기 기관차와 서울 전차가 나란히 퇴역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시기가 절묘하게 비슷하다.
  • 1974년 8월 15일에는 서울 지하철과 수도권 광역전철이 동시에 개통했다.
  • 2015~16년은 호남 고속철, 경부 고속철의 대구· 대전 도심 구간, 포항 방면 KTX, SRT 수서 고속철이 연이어 개통해서 나름 고속철도의 중흥기였다..

2. 근래에 한강에 새로 만들어진 다리들

(1) 성산대교 바로 옆의 월드컵대교 (일반 도로): 예산 부족 때문에 꽤 오랫동안 진도를 못 빼고 질질 끌었던 물건인데.. 작년 9월 1일에 드디어 개통했다. 얘가 있으면 강북에서 서부 간선 도로로 가기가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2) 서울 지하철 8호선 암사 이북으로 구리로 가는 하저 터널 (철도): 역시 작년 6월 28일에 터널이 다 뚫려서 관통됐다. 이제 거기 안에다 선로와 전차선을 설치하면 되겠지..
8호선도 이제 한강을 건너며, 심지어 5호선과 분당선에 이어 하저 터널을 보유하게 됐다. 분당선과 마찬가지로 실드 공법을 써서 만들어졌다.
원래 8호선은 복정-산성 사이가 굉장한 장거리 구간이었는데 이젠 저 북쪽 구간이 장거리 구간이 될 듯. 복정-산성 사이엔 '남위례'라는 역이 추가될 예정이다.

(3) 8호선 하저터널과 강동대교 사이에 일명 고덕대교 (고속도로): 세종-포천 고속도로(29)의 구간으로서 건설 중이다. 올림픽대교와 같은 사장교 형태이다. 얘는 아직 건설 중이다.

부산만 해도 아직 낙동강을 건너는 하저 터널이 없구나..
부산 지하철 2호선 민락-센텀시티 사이는 '수영강'을 건너는 하저 터널이다.

3. 서울 경전철 신림선

지난 5월 28일부로 서울에서 경전철 2호격인 신림선이 개통했다. 신안산선과 비슷하게 서울 서남부의 종축을 잘 관통한 것 같다.
우이선은 철차륜 2량 편성이었지만 신림선은 고무차륜 3량 편성이다. 그리고 차량의 폭이 우이선의 것보다도 더 작다고 한다.

  • 경전철 1호인 우이선은 중전철 1호선의 신설동 역을 잇는다. 이와 비슷하게 경전철 2호인 신림선은 중전철 2호선인 신림 역을 잇는다.
  • 1호인 우이선이 북한산 기슭까지 간다면, 신림선은 관악산 기슭까지 간다.
  • 우이선이 왕십리까지는 차마 못 가고 그 앞 신설동에서 그쳤다면, 신림선도 여의도까지는 차마 못 가고 그 앞 샛강까지만 간다.

경전철은 2010년대에 서울 바깥 수도권에서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지하철의 본좌급인 서울도 경전철 노선을 2개나 보유하게 됐다.
대한민국에서 경전철이 아니라 '작은 중전철'(중형)이 만들어진 것은 대전 지하철이 마지막이 됐고 사실상 맥이 끊겼다.;; 도시철도 레벨에서는 경전철이 트렌드로 정착했기 때문인 듯하다.

도시철도가 아닌 광역철도에서는 서울· 수도권 밖에서도 여전히 대형이다. 부산과 울산을 연결하는 광역전철 동해선에도 '대형 중전철'이 들어갔지, 중형이 투입되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지역별로 경전철의 작명 방식이다.
의정부, 용인, 김해에서는 도시철도가 하나 개통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니 그냥 '지역명 경전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반면, 이미 중전철 지하철이 있는 부산· 대구· 인천 같은 도시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지하철 n호선이 통째로 경전철 기반이다. 중형 중전철이나 경전철이나.. 규모면에서 서로 호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은 사정이 다르다. '지하철 n호선'이라는 명칭은 중전철 전용으로 예약됐고, 경전철은 저렇게 'XX선'이라는 별도의 이름이 붙게 됐다.
경전철은 지하철 n호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커버하는 구간이 너무 짧고 수송력도 기존 지하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명명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 서울 지하철 8호선 (그냥 성남시 마을전철에 더 가깝.. ㄲㄲㄲㄲㄲ)
  • 제2중부 고속도로 (그냥 중부의 지선인걸 37보다는 351 같은 번호가 더 적절했을 듯.. 훨씬 더 긴 영천-상주 고속도로도 301인데..)

그러니 이런 특례를 앞으로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뭐, 서울 8호선의 경우, 서울시가 옛날에 시민들을 성남 저 동네로 대거 이주시키면서 좀 빚진 게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서울의 연장선 차원에서 특혜를 주는 것도 있긴 하다(광주대단지 사건 흑역사.. ㅡ,.ㅡ;; ). 그래서 8호선의 성남시 구간까지 모두 지하철 정기권 서울 전용 구간으로 이용 가능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서울 경전철 신림선의 운영에 왜 광주 도시철도공사가 개입하는 거지..??? 벌써부터 냄새가 좀 난다.. =_=;;

Posted by 사무엘

2022/07/31 19:36 2022/07/3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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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하철: 일반열차와 도시철도

수도권 전철 1, 3, 4호선에는 코레일 광역전철 구간과 서울 지하철 구간이 한 노선으로 직결 운행을 하는 게 있다. 1호선은 전기 공급 방식이 바뀌며(남영-서울), 4호선은 심지어 좌우 통행 방향까지 바뀐다. (남태령-과천선)

3호선 일산선은 저런 과거의 삽질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광역전철 구간도 지하철과 동일한 직류 우측통행 규격으로 맞춰서 건설됐다.
그런데 일산선을 건설하면서 기존 종점이던 지축 역 이북으로 선로만 더 만드는 게 아니라, 지축 역 자체도 확장을 하게 됐다. 얘는 6량 기준의 아주 작은 지상 임시 종점 형태로만 만들어졌는데 이걸 10량 기준의 정식 통과역으로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이거 공사는 철도청이 담당했다. 이 때문에 지축 역은 길이를 2:3으로 나눠서 새로 확장된 곳은 철도청 관할, 기존 영역은 서울 지하철 관할..;; 승객 집계도 따로 하고 출입구 번호의 폰트도 서로 다르고...;;;
무슨 도끼 만행 사건 이후에 남북 영역 경계선이 그어진 판문점 같은 꼴이 됐다. 4호선의 꽈배기굴 같은 삽질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그마한 삽질인 셈..

지금은 그런 관행이 없어져서 지축 역은 전부 서울 지하철 관할로 바뀌었으며, 어지간해서는 한 역은 그냥 한 회사가 몰아서 관리하는 관행이 정착했다. 지하철 회사조차도 서울 메트로와 도철로 나뉘어 있던 것이 통합된 게 벌써 4년도 더 전의 일이 됐다.

2. 도로: 서울과 지방

그런데 이런 식의 관할 변화는 철도뿐만 아니라 도로에도 있다.
같은 자동차 전용 도로이지만 청담대교에서 복정 교차로까지는 서울 관할이고 '동부 간선도로'이다. 하지만 거기 이남부터는 분당-수서 고속화도로이며 경기도 관할이다.

이 도로는 서울 시내 구간은 가로등 불빛이 백색이다가, 복정 이남 경기도 구간부터는 불빛이 모두 노랑으로 바뀌었다.
그랬는데 지금 다시 보니 가로등이 교체됐는지 백색 구간이 더 늘었다. 모란 정도는 간 뒤부터 불빛이 노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수 년 전에는 서울 시내 구간은 속도 제한이 80이고 경기도 구간부터는 90이었다.
그랬는데 요 근래에 다시 주행해 보니 전부 80으로 바뀌었고, 등신 같은 과속 단속 카메라가 더 늘어 있었다. 내 인생에 도움이라고는 안 되는 물건 같으니라고.
(특히 학교 주변이라고 멀쩡한 60짜리 도로까지 상시 30으로 까내린 공무원놈은.. 멱살 잡아 주고 싶을 뿐이다.)

경부 고속도로도.. 한데 연결된 도로인 것 같지만 법적으로는 양재 IC 이남만이 한국 도로 공사에서 관리하는 최대 시속 100~110짜리 진짜 고속도로이다. 그 이북은 그냥 강변북로 같은 시속 80짜리 서울 시내 관할의 자동차 전용 도로일 뿐이다. 정식 명칭은 '경부 간선 도로'.

단지, 폐쇄식 톨게이트가 있는 곳과 버스 전용 차로가 적용되는 곳이 법적인 고속도로의 시종점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운전자들에게 혼동의 여지가 있다.
양재 IC는 1987년 11월, 지금의 서울 톨게이트가 성남 궁내동에 세워지기 전에 최초의 서울 톨게이트가 있던 곳이기는 했다.

3. 지하철: 서울과 지방의 격차

그나마 부산은 동해선 광역전철이 생긴 덕분에 이 노선 한정으로는 서울· 수도권과 같은 대형 전동차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과 수도권의 전철의 차이는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은 바뀌었는지 모르겠다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인천까지 연장됐을 때의 일이다. 본인은 인천 지하철 1호선과 서울 지하철 7호선의 환승역이 된 부평구청 역을 찾아가 봤다. 그랬는데 두 노선의 승강장은 완전 극과 극 수준이었다.

서울 지하철은 전광판이 고해상도 컬러 LCD 화면이었고 스크린도어도 갖춘 최신식 시설을 자랑했다.
그러나 인천 지하철은 여전히 청색이 없는 90년대의 저해상도 LED 화면이었고 스크린도어도 없고.. 내 기억이 맞다면 심지어 노반도 콘크리트가 아니라 자갈이었다. 참고로 서울 지하철은 굳이 이렇게 새로 개통한 구간 말고 기존 구간도 다 저렇게 리모델링을 완료한 상태였다.

인천뿐만 아니라 부산도.. 부산 지하철 1호선은 지금도 자갈 노반인지 모르겠다.
서울 2호선과 부산 1호선은 둘 다 1980년대로 비슷한 시기에 개통했고 처음 개통했을 때는 다들 비슷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은 그 뒤로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지만 부산 지하철은 그리 되지 못하고 옛날 모습에서 멈춰 버렸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디자인만 해도 그렇다. 가령, 서울· 수도권 전철의 노선도에서는 환승역 모양에 태극 무늬가 없어진 지 1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부산에서는 여전히 그걸 쓰고 있다. 그러니 옛날 생각이 날 수밖에.. 다만, 부산은 4호선에, 동해선, 김해 경전철까지 전철이 많이 생겨서 예전에 비해서는 노선도가 많이 풍성해진 게 느껴진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2015년 이후에 도입된 신형 차량은 좀 각진 모양에다 객차간 출입문의 위에 자막 전광판이 있는 게 지금까지 서울· 수도권에 없던 디자인이다. 부산 같은 지방 지하철 차량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4. 도로와 철도의 외곽순환선

벽제, 일영, 송추 쪽을 지나는 그 존재감 없는 철도는 1961년에 처음 개통했던 시절엔 '서울교외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강남이 아직 서울로 편입되지 않아서 광주군이었던 까마득한 옛날이니.. 그때는 이 철도에다가 경원 구간을 합하면 진짜로 서울의 변두리를 빙 도는 노선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랬는데 얘는 2008년에는 '서울'을 떼어낸 그냥 '교외선'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처음에 '판교-구리 고속도로'로 시작했던 그 고속도로는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나중에 '수도권 1순환 고속도로'라고 개명됐다.
둘 다 서울이라는 단어를 떼어내고 서울의 변두리, 덤터기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속도로 번호 체계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개정되고 정착한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다. (since 2001)

이제 고속도로는 번호가 없이는 제대로 지칭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아졌고, 요금제도 하이패스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복잡해져 있다. (늘어나는 민자 구간, 폐쇄식/개방식 등등..) 하지만 철도는 노선이 그 정도로 많고 복잡하지 않아서 여전히 이름 위주로 불리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7/29 08:34 2022/07/2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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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호박 재배 근황 -- 열매

1. 단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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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지난 6월 11일 아침에 핀 단호박 암꽃이다. 주변에 꿀벌이 돌아다니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주변의 수꽃으로 인공수분을 또 해 줬다. 아침 6시 반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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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노란 꽃잎은 완전히 시들어 떨어졌지만, 씨방은 부풀어 차차 커지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없던 단호박 특유의 주름도 생기기 시작했다. 6월 15일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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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 성공하고 착과된 씨방은 처음에는 그저 동글동글한 채로 풍선 부풀듯이 커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종횡비"가 달라져서 더 납작해진다. 수박이나 조롱박이 아닌 호박 모양을 갖춰 간다.
이게 수분 성공 자체와는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건 6월 2x일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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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월 1일.. 폭우 때문에 텃밭 주변이 난장판이 되고, 주변 환경 사정상 이 호박은 더 놔 두고 키우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호박을 더 키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땄다.
길이 대략 12.5cm, 무게 710g짜리 단호박이 착과된 지 거의 3주 만에 이렇게 만들어졌다. ^^
대견스럽다. 표면에 코를 대면 비누 냄새 비슷한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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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박은 이렇게 쪄서 껍질째로 잘 먹었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호박 내부에는 저렇게 씨앗들이 많이 형성되는 중이었다.
좀 오래 놔 두면서 주변에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딴 지 겨우 이틀 만에 처분했다. 좀 갖고 다녀 보니 표면 곳곳이 금세 물렁물렁해지고, 비누 냄새도 살짝 역겨운 느낌이 들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리해 보니 먹는 데는 다행히 문제가 없었고, 먹은 후의 뒤탈도 없었다.

이렇게 이 호박은 자기 임무를 다 수행하고 본인의 추억에만 남게 됐다.

2. 일반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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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하는 이 아이는 실내에서 재배한 놈이다. 지난 5월 2일경에 요렇게 암꽃이 활짝 펴서 인공수분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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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은 성공적으로 잘 됐음이 어린이날 즈음에 최종 확인됐다. 씨방은 요렇게 부풀어 오르면서 열매로 바뀌기 시작했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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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지에서 가까운 쪽이 색깔이 아주 짙어졌다. 전형적인 동그란 애호박처럼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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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같은 호박이 이렇게 됐다는 게 믿어지시는가?
색깔이 꼭지 주변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더 짙어졌을 뿐만 아니라, 열매의 외형과 종횡비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때는 이미 5월 말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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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월 중순쯤 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언제까지나 푸르딩딩할 것 같던 열매가 초록색이 걷히고 조금씩 누래지더니.. 풋호박이 폭삭 늙은 호박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사과나 고추는 익으면 겉이 시뻘개지는데 호박은 그냥 살색이나 주황색 살구색으로 바뀐다. 단풍이랑 비슷한 걸까..??
묽은 황산이 진한 황산으로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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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난 7월 9일.. 수분된 지 65일 이상 뒤에야 잘 익은 늙은 호박을 따게 되었다.
지름 13.5cm 남짓에 약 750그램으로, CD보다는 약간 더 커졌다. ^^
실내에서 키우느라 햇볕과 통풍에 큰 핸디캡이 있었던 녀석이다. 덩굴의 줄기부터가 막 크고 굵지는 않았으니 열매도 막 크게 맺히지는 않았다.

얘 역시 꼭지가 더 시들고 완전히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놔 두고 싶었지만, 부득이하게 따게 됐다.
그러고 보니 늙은 호박이 정말 오랫동안 많이 삭아서 고인물 썩은물 수준이 되면.. 표면에 허연 가루 같은 것도 앉는다는데, 얘는 그 경지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본인은 얘를 자그마한 종이 가방에 넣어서 내내 갖고 다녔다.
데이트 갈 때 가져가서 여친한테도 자랑하고, 교회 갈 때도 가져가서 주변 성도들에게 자랑하고..
누나와 여친은 보더니 기겁을 하면서 이딴 걸 도대체 왜 들고 다니냐고 난리를 쳤다. =_=;;
길거리에서 자기 아는체 하지 말라고.. 언제부터 그렇게 농부가 됐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호박을 첫 암꽃과 씨방 시절부터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 감흥을 모를 수도 있겠지.. 내돈내산...이 아니라 내꽃내받이인가?
3D 스캐너 같은 거 있으면 요 3D 모델을 스캔해서 저장하고 싶구만. 이런 열매를 많이 많이 모으고 싶다.

얘는 아직 먹지 않았다. 속이 어떻게 생겼을지, 전을 만들어 먹을지 죽을 쑤어 먹을지 고민된다.
이 늙은 호박은 내부 구조가 잘 안정화돼서 그런지 표면에 아무 냄새도 없고... 따고 나서 수 주 이상 한참 지나도 아까 그 단호박과는 달리, 상태에 아무 변화가 없다. 늙은 호박다운 연륜이 느껴진다. ^^

며칠 전 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식물은 잎, 줄기 등 어지간한 부위들은 뿌리가 달린 본체에서 잘려 나가면 신속하게 말라 죽는다. 특히 잎은 본체에 붙어 있더라도 수명이 다하거나 뭐가 부족한 등 갖가지 이유가 생기면 저절로 정말 잘 말라 죽고 떨어진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맺혀서 안정화된 호박 열매는...?? 본체에서 잘려 나가도 상온에서 몇 달을 버틴다. 오옷~
심지어 같은 박과여도 수박 열매는 상온에서 이렇게 호박처럼 절대로 못 버틸 것이다. 이것도 정말 신기한 노릇이다.

이상이다.
호박은 큼직한 잎도 매력적이고 무슨 뱀 같은 꼬불꼬불 덩굴도 매력적이고, 노란 꽃도 매력적이고 쭈글쭈글 열매도 매력적이고.. 온통 매력덩어리이다.
본인은 10대 때부터 자동차와 컴퓨터, 열차처럼 인간이 발명한 기계류에 꽂혀 지냈다. 그러다가 등산과 캠핑을 거쳐 다음은 농사.. 나이 40이 다 돼서야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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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사진. 본인의 개인 신상과는 무관함!)

전국 방방곡곡에 호박이 많이 심기고 가꿔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 8~9월이면 올해 수확한 늙은 호박이 시장에 올라오겠지? 큼직한 늙은 호박을 사 먹어 보고 싶기도 하다.

※ 여담: 호박 열매가 많이 잘 맺히려면..??

누구는 구덩이 파고 호박씨를 심을 때, 처음에 밑거름으로 퇴비를 한 번만 잔뜩 집어넣고 나서는 딱히 농약 비료 안 주고 별로 관리 안 하고 방치했는데도 늙은 호박이 큼직하게 잘 맺혔다고 자랑을 하더라.
이건 본인에게는 "누구는 딱히 학원 안 가고 사교육 과외 없이 학교 교과서 공부에만 충실했더니 서울대 합격했다" 부류의 말처럼 들린다. =_=;;;

종합 영양 알비료를 주니까 꽃이 더 피고 새순이 더 빠릿빠릿 나는 등 효과가 분명 있더라.
그런데 호박은 예전에도 글로 썼듯, 자기 몸집을 키우는 모드하고.. 몸집이 작아도 꽃과 열매부터 우선적으로 만드는 모드가 따로 존재한다. 어느 모드로 갈지는 진짜 호박 마음대로인 듯..

영양이 부족하면 호박이 힘들어서 씨방이나 열매를 떨궈 버리고 수분이나 착과가 잘 안 된다고 그러는데,
또 한편으로는 초창기부터 영양이 너무 풍부하면 호박이 자기 몸집만 키우고 잎만 무성해지지 암꽃 잘 안 피고 열매 안 맺힌다고 한다.
그리고 암꽃이 피려면 온도가 좀 낮은 게 좋은 반면, 착과된 열매가 잘 익으려면 더운 햇볕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참 복잡다난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2/07/26 08:35 2022/07/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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