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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교회에서 에스겔서 16장을 읽다가..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나서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6절, 명령어 Live를 “너는 살라”가 아니라 곧이곧대로 “살아라~~”라고 번역한 역본을 읽으니 ‘어 이거 무슨 애니 대사랑 비슷한데.. 뭐더라?’ 싶다가.. 출처를 곧 떠올린 것이다. 성경과 지브리 애니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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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표현만 약간 비슷할 뿐, 저 말이 나온 상황과 맥락은 서로 완전히 다르고 접점이 거의 없다.
성경에서 “살아라”라고 말하는 상황은 애니에서처럼 니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남주 ‘아시타카’가 간지나게 일깨워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부모로부터 버려진 여주 ‘산’을 갓난아기 때 거둬들이고 키워 준 들개의 신 ‘모로’가 했을 법한 말이다.

그 뒤로도.. 성경이 말하는 건 그렇게 불우한 처지였던 네년을 먹이고 어르고 달래면서 키워 줬더니 음행이나 저지르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상태가 딱 그 여자와 같다는 식의 얘기 일색이다.
모노노케 히메하고는 1도 관계 없는 흐름으로 간다. 지브리 애니는 자연 파괴가 어떻고 재앙신, 사슴신이 어떻고 하는 세계관일 뿐, 우상숭배니 음행이니 따위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니까.

버려진 여아를 제3자가 거둬들여 키웠다는 맨 앞의 초창기 설정, 그리고 그놈의 “살아라” 대사 때문에 의식이 잠시 이쪽으로 흘렀다~!

이렇게 하나님과 애증(?)의 관계로 묘사되는 이스라엘 백성, 일명 유대인 말이다.
저 사람들은 저래 뵈어도 성경이 역사적으로 문자적으로 사실이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걸 물증에 가까운 수준으로 입증하고 있는 민족이다. 예수를 배척하고 안 믿었으면서 정작 하나님과는 저런 관계인 게 참 특이하다.

쟤들은 하나님과 특별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타 민족들 대비 특혜와 보호 버프를 더 받았고, 그 대신에 죄 짓고 타락할 때 위약금 명목의 징벌도 더 빡세게 받았던 민족이다. 딱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하나 더.. 쟤들은 비록 혹독한 징벌을 받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민족 정체성을 잃고 완전히 멸망해 버리지는 않는다는 거.. 이거 하나는 보장됐다. 그건 하나님 차원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성경에 언뜻 보기에 신약 크리스천의 교리 행실과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뜬구름 잡는 구약 예언의 비중이 왜 이리 큰지?
그 예언들이 다들 심판 일색에 부정적이고 절망적이고 암울해 보이지만, 최종 결말은 왜 한결같이 "회복"인지를 생각해 보시라!
일반적인 크리스천은 저 나라, 민족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하고 처신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겠다.

1. 현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을 다 이룬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건국됐으니,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예수님 다시 오실 거임" 이러는 '반쯤' 시한부 종말론스러운 이야기를 들어 보신 분이 있을 것이다.
난 그 사건에다가 성경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적용을 해도 되는지.. 성경 본문에서 그 세대라는 단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세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지.. 그건 좀 조심스럽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 극단으로 가서 저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유대인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도 명백히 오류일 것이다.
그럼 거슬러 올라가서 나치와 히틀러는 유대인을 미워하고 죽인 게 아니었나? 진짜 유대인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혼자 뻘짓 한 거냐? 이스라엘의 사관학교 생도들은 유대인도 아니면서 맨날 맛사다 요새를 잊지 말자고 생쑈 하냐..?? 그건 그것대로 여러 모순과 문제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2. "저것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저주받을 종자들이다~"

....;; 이건 진짜 최악의 멍청한 발상이니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지어다! 심지어 옛날의 걸출한 개신교 종교개혁자 중에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미안하지만 명백한 오류이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았으면 비유대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리지 못했다. 어디 너님의 죄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기여한 게 없는 줄 아냐??? 이 주제에 관한 한은 '양비론'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

3. 막연한 반유대주의 선동에는 가담하지 않는 게 옳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간 과정은 마치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처럼 혼란한 와중에 현실적인 이유나 강대국들의 농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혈이 발생한 것도 적지 않다.
언론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학살하는 것만 보도하지만 실제로는 적들도 민간인 위장 총질 같은 비열한 짓을 많이 했다. 이런 건 한쪽 편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쟤들이 쏘는 로켓 대비 그걸 요격하는 이스라엘 측의 방어 시스템은 유지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서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중동의 왈가닥 미친개처럼 처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비록 쟤들은 신약 성경이나 예수 이런 것에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슬림 광신도처럼 히잡이나 "알라후 아크바르!" 같은 짓거리를 벌이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은 나름 친서방 자유 진영에 속하면서 6 25 때 저 멀리 대한민국을 도와줬었고, 연평도 포격 때 북괴 규탄도 제일 강력하게 했었다.

4. 그렇다고 쟤들이 정말 선 넘고 범죄 저지르고 깽판 치는 것까지.. 무작정 다 옹호할 필요는 없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가령, 예수상 훼손과 조롱 인증샷.. 이거는 진짜 정신나간 짓이던데?? (개인적으로 물론 예수상 별로 안 좋아하는 소신이지만 이와 별개로) 괜히 총리까지 나서서 사과하고 수습한 게 아니더라.

5.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의 도구를 그리스도인이 "자처"하지는 말아야 한다

너 말고도 이스라엘 싫어하고 가혹하게 대해 줄 사람은 주변에 넘쳐나니까 너는 그런 일에 가담하지 마라.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았냐, 걔네들을 심판자 명목으로 침략하고 학살했던 주변 민족이 살아남았냐?
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다른 정상적인 소명 부르심에나 응답하고 따르시길 바란다. 육신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어라.

6. 교회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매우 중요한 사항이니 밑줄 치시라. 교회는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서로 신분과 처지가 다른 집단이다.
로마서 9~11장을 읽어보아라.
막~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쟤들과는 완전히 손절이다" 뉘앙스가 절대 아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못 알아보고 그 일시적으로 눈먼 것까지도 하나님이 다른 기회로 활용해서 이방인 교회 시대 경륜을 열었다"로 딱 요약되지 않는가?

오히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생긴 기회가 이 정도인데, 하물며 걔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면 세상이 얼마나 더 살기 좋아졌겠냐" 이런다. 유대인을 세상을 향한 축복의 통로 정도로 본다.
이게 어딜 봐서 유대인이 교회로 대체됐다는 의미이겠는가? 유대인이 구원받고 개종하면 그냥 유대인 크리스천 교회 성도가 될 뿐이다. 우리는 돼지고기도 못 먹는 유대인이 아니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감사하면 된다.

아 물론 본인도.. 이 2000년대가 다 돼서 유대인들 혈통과 지파는 어떻게 다시 따질 것이며, 저 완강한 인간들이 도대체 언제 짠~ 예수님을 다시 알아보고 설마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회복되겠는지,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디테일"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 건 있다.
그러나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면 뭐 세대주의가 어떻고 시한부 종말론이 어떻고 프레임 씌우는 건 논점 일탈이어 보인다. 뭐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최대한 그대로 믿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이상이다.
우리나라 국군이 북괴의 무력 도발에 대해 처음부터 이스라엘처럼 대처했다면.. 아마 진작에 북한으로 전투기고 공작원이고 잔뜩 보내서 핵 시설 같은 건 바로 폭격했을 것이고, 연평해전?? 천안함?? 그냥 몇 배로 보복했지 싶다.
물론 그만큼 젊은이들 군생활은 더 빡세졌겠지만, 이렇게 처음에 짧고 굵게 기선제압을 확실하게 해 놓는 게 나라의 미래 관점에서는 차라리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 여담: 아시리아와 바빌론

그러고 보니 유대인들의 옛날 역사와 관련하여 인상적인 게 하나 있다.
옛날, 기원전 600~500년 무렵에 있었던 신바빌론, 일명 칼데아 왕국은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용도로 정말 잠깐 왕성했다가 신기루처럼 싹 사라져 버린 정말 특이한 나라이다.
100년도 채 유지되지 못하고 망했다는 점에서 원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그 전의 아시리아, 그 후의 페르시아에 비해 존재감이 없으며, 세계사에서는 별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사실, 바빌론 자체가 처음에는 아시리아의 관할에 있는 나와바리 중 하나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세력이 커져서 주종 관계가 바뀐 거라고 한다.
심지어 아시아라는 대륙 이름이 바로 아시리아 - 앗수르에서 유래된 거라고 하네.. 참고로 아시리아는 시리아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니 혼동하지 말자.;;; 굉장히 헷갈리기 쉬운 사항이다.

아시리아는 이스라엘 북왕국을 멸망시켰으며, 바빌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접수했었다. 그러나 딱 하나 남왕국 예루살렘만은 정복하지 못했었다. (히스기야 왕 시절을 생각해 볼 것) 그리고 아시리아 이후의 바빌론이 남왕국을 접수한 것이다.

그 뒤,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 있던 그 기원전 5xx년 기간 동안 인도에서 불교, 중국에서 유교가 태동하고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활동했었다. 동양에도 나름 그리스 철학자들 뺨치는 인문학 르네상스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신바빌론은 여러 모로 신기한 나라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22 08:35 2026/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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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 관순: 나는 공산당.. 아니, 왜놈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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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관순 열사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중에는..
"유 관순은 일제 강점기 당대에는 인지도가 전혀 없는 듣보잡이었다가 해방 이후에야 뒤늦게 발굴되고 부각됐다. 3· 1 시위에서 천안 나와바리의 행동대장이었을 뿐이지, 딴 지역에도 유 관순 정도의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친일 변절 지식인들에 의해 불순한 의도로 쟤만 혼자 '너무' 신격화된 경향이 있다" 이런 부류의 평가절하가 있다.

저게 유 관순 말고도 타 지역의 여러 열사들을 같이 골고루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면 얼마든지 고려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유 관순이 진짜로 타 지역 시위 주동자 대비 단 1도, 추호도 다를 바 없다는 말은.. 이 역시 필터링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때 시위 가담자로서 체포되고 투옥돼서 몇 달, 또는 길어야 1~2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이야 많다. 물론 그 행적만으로도 훗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겨우 여고생 신분으로 그렇게 고분고분 옥살이를 하지 않고, 서슬 퍼런 법정에서 "너희 왜놈들은 우리를 재판할 자격이 없다!"고 당당히 외쳤고, 심지어 재판정에서 의자를 던져서 가중 처벌을 받고, 형무소 안에서도 만세 시위를 추진하고.. 자기 신념에 따라 일본의 입장에서는 진짜 악바리 같이 개기다가 기어이 구타로 장살당한 사람은 정말 드문 케이스이지 않은가? 저 증언 자체가 몽땅 조작 구라가 아니라면 말이다.

당연히 그때 투옥됐던 사람들이 전부 다 유 관순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그때 잠깐 수모를 꾹 참고 옥살이 하고 나와서는.. 공부 더 하고 교육자, 사업가 등으로 크게 성장해서 일본을 실력으로 이기는 게 민족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더 이익"일 수도 있다. 하다못해 유 관순도 옥사하지 않고 살아 나왔으면 커서 무엇이 됐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저렇게.. 뭔가 이 승복 어린이나 신라의 관창 같은 기개를 보이면서 짧고 굵게 간 예외적인 사람도 의미가 있으며, 후세가 특별히 기억하고 기릴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만 생각해도 유 관순은 여러 3·1 운동 참가자 추진자 중의 하나 수준은 넘어서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2. 박 열 + 가네코 후미코: 독특한 아나키스트 계열 국제결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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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2 마지막 금사회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 영화 '박 열'을 봤더니..
무지개 운수가 의뢰를 받아서 타임머신 타고 100년 전의 일본으로 잠입하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주연 배우가 동일인물.. ㄲㄲㄲㄲㄲ)

아~ 저 시절이니까 도기가 택시가 아니라 인력거를 몰고 있는 거고,
이름이 doggy이니까 "나는 개XX로소이다"라는 시도 썼고..
가네코 후미코는 좀 똘끼어린 여성인 게 고은이하고 인상이 아주 비슷한 거 같고..;;

그렇잖아도 모범택시 2의 금사회 에피소드는 도기가 일부러 교도소로 들어가는 내용인데,
박 열도 대부분의 장면은 주인공이 감방에 갇힌 상태로 진행된다. 감방에서도 미친척 하고 똘끼 부리는 거 캐릭터가 비슷하다.
재판 1심 때 조선 예복 코스프레 한 거는.. 진짜 영락없이 부캐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더라. ㅋㅋㅋ

일제 시대를 다룬 한국 영화가 과연 관동대지진을 다룰 일이 얼마나 되겠나? 이건 애초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닌데. 더구나 일본 판 십볼렛 색출전(삿 12:6)을 영화로 보다니.. 나름 흥미진진한 소재를 고른 것 같다.
박 열은 1920년대부터 해방될 때까지.. 20대부터 40대까지 인생 황금기를 일본 감옥에서 무기수로 보냈지만 그래도 어째 살아서 나오기는 한 게 참 특이한 것 같다. (참고로, 조선총독부 본진에다 폭탄을 던졌던 김 익상 의사는 박 열과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시기대에 투옥됐지만, 일제 말기 때 결국 의문사했었다)

박 열 저 사람한테 가네코 후미코는.. 진짜 김 학준 선생에게 최 용신 같은 존재로 기억에 각인됐지 싶다(소설 상록수의 모티브를 제공한 실제 인물).
지진만 없었으면 저 두 사람 인생이 실제 역사와는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어찌 됐을지 참 궁금하다. 공교롭게도 박 열과 김 학준 모두 몰년은 1974년이었다.

* 가네코 후미코는 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건국 훈장이 추서돼 있는 단 둘뿐인 일본인이다.;;;
사실, '소다 가이치'라고 조선에 정말 엄청난 온정을 베푼 일본인이 더 있긴 한데.. 이 사람은 법이나 정치, 군사 쪽으로 항일을 한 게 없어서 그런지 훈장까지는 못 받았다. 그 대신 이분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혀 있는 유일한 일본인이다.

3. 김 마리아 외: 엘리트 신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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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시리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다들 기억 하시려나 모르겠다. 시즌 1의 첫 에피소드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피해자는 바로 '강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마리아'는 마치 '에스더'처럼 성경의 인물을 그대로 딴 옛날 스타일 여자 이름이다. 가톨릭에서는 이런 이름을 세례명으로만 쓰겠지만, 개신교 쪽은 그런 개념이 없으니 본명을 그대로 저렇게 짓는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파됐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엔 지식인 신여성 중에 '마리아' 동명이인이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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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마리아(1891-1944)는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인지도가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기까지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시절에 일본과 미국에서 대학원 급 공부를 한 고학력자였던 데다, 항일 운동 쪽으로도 도쿄 2· 8 독립 선언에다 3· 1 운동까지 할 거 다 했기 때문이다.
그때 붙잡혀 끌려가서 옥고를 치르고, 심문 과정에서 왜경으로부터 잔인한 고문을 당해서 몸이 비가역적으로 상했으며, 이 때문에 지병· 후유증을 평생 달고 살았다. 독신으로 살다가 1944년에 병으로 순국한 것도.. 그 지병이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저분은 행적과 공로가 워낙 탁월하니 1962년에 진작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유 관순 열사도 요절하지 않았으면 아마 김 마리아와 가장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단.. 저분은 전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학은 주전공과 별개로 따로 공부한 것 같은데 말이다. 설마 이공계는 아니고 문과 무언가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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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다음으로, 참 공교롭게도.. 저분과 띠동갑 후배인 동명이인 김 마리아(1903-1970)도 있다.
사진을 검색해 보면 1891년생 원조 김 마리아는 직모 단발머리의 젊은 얼굴인 반면, 1903년생 김 마리아는 더 나이든 파마머리 중년 모습이 주로 나온다.

이분은 이 범석 장군의 부인이었고 광복군 여군+공작원 커리어를 거쳤다. 사격의 귀재였다고 하니 한국의 애니 오클리 같은 느낌도 드는데..ㄷㄷㄷ 여러 모로 원조 김 마리아와는 활동 분야가 많이 달랐다. 업적의 발굴과 조명이 원조 김 마리아보다 훨씬 늦었기 때문에 1990년에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3) 참고로, 더 늦게 태어난 박 마리아(1906-1960)도 미국 대학원 출신의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이 사람은 세월이 흐른 덕분인지, 유 관순 같은 이화학당도 아니고 이화 전문학교를 나온지라, '이대 나온 여자'의 원조급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제 말기 때 황국신민 내선일체 이딴 짓을 해서 친일 부역자라는 오점이 찍혔고, 해방 후에는 부통령 후보 이 기붕의 아내로서 권력욕을 뿜뿜하며 제대로 흑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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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가 어땠는지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일가족 동반 ㅈㅅ).. 그러니 박 마리아는 김 마리아와 달리 전혀 영예롭지 못한 악녀로 역사에 남았다. 이름값을 제대로 못 했다.

이 '마리아'들과 비슷한 연배와 비슷한 커리어인 임 영신(1899-1977), 김 활란(1899-1970)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재미있지만..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니 생략하겠다.

4. 윤 형숙: 일제와 공산당 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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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니라 호남 지방에서는 ‘윤 형숙’(1900-1950)이라는 여성 열사가 있었다. 이분은 3· 1 운동 당시에 광주에서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헌병의 칼을 맞아 왼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분은 체포된 뒤에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열악한 곳에서 구금· 투옥돼 있다가 병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도 잃고 말았다.

아니, 군인이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해서 팔과 눈을 하나씩 잃은 건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독일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처럼 사례가 있는데.. 윤 열사의 사례는 정말 믿기 힘들다. 사진에 찍힌 모습 중에는 대놓고 저런 신체 장애가 묘사된 게 딱히 없는 것 같다만..
허나,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 행적이 가히 전설적이었는지, 저분은 '윤 혈녀'라는 별명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저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항일뿐만 아니라 반공에도 진심이었다. 해방 후, 6· 25 사변 중엔 손 양원 목사와 동일한 날짜에 동일한 장소에서 북괴 공산군에 의해 나란히 순교하여 주님 곁으로 가게 됐다.
1950년 9월 28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대한민국이 서울을 수복했던 날, 적들은 반동 민간인들을 모두 처형하고서 퇴각했기 때문이다. 호남 지방은 영남보다 위도가 더 낮았는데도, 영남과 달리 지역이 몽땅 다 북괴에게 점령 당했었다.;;;

윤 열사는 아까 3번의 마리아 정도의 고학력 유학파는 아니었지만, 살아 생전에 지방에서 지역 교회를 묵묵히 섬기면서 전도사와 교사로 헌신했었다. 세상에 이런 '여수의 유 관순' 같은 분도 있었다. ㅠㅠㅠ

Posted by 사무엘

2026/06/18 08:35 2026/06/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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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5월쯤에 일제 시대 독립운동에 대해서 글을 하나 썼었는데 공교롭게도 올해도 비슷한 시기에 글감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도 있지만 다른 형태로 다시 정리해 보고자 한다. ㄲㄲㄲ

1919년에 벌어졌던 3· 1 운동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를 기리는 삼일절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중요한 기념일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3· 1 운동은 결과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당일이 그렇게까지 “기쁜 날”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나라 밖 소식을 접하기가 어렵던 시절에, 선조들은 민족 자결주의라고 어디서 막연히 주워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당당히 독립을 선언하면 세계에서 다 알아주고 독립을 지지하고 승인하고, 일본이 아닌 한국 편을 들어 줄 거라고 희망회로를 돌리게 됐다.
물론 민족 자결주의 하나뿐만은 아니고.. 거기에다가 고종(암군이긴 해도 미우나 고우나 일단 자국의 군주 얼굴마담이니)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한 독살 의혹, 1910년대 폭압적인 무단통치에 대한 반감, 스페인 독감과 기타 등등 생활고도 시위에 대한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시궁창이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서 말석 끄트머리로나마 승전국이었다.
승전국의 식민지는 저 희망회로의 적용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가령, 민족 자결주의는 그 시절에 무슨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주라고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었다. 일본으로부터 조선도 마찬가지.

그러면 3· 1 운동은 아무 소득 없이 총칼 앞에서 무참히 진압당했고, 한국인들은 헛다리 짚고 뻘짓만 하다가 괜히 일제로부터 무수한 인명과 재산 피해만 당하고 아무 소득 없이 끝났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지금 같은 교통 통신 수단도 없던 시절에 식민지 피지배민들이 지배자를 상대로 전국적으로 이 정도로 대규모 비폭력 항쟁을 조직적으로 일으킨 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웠다.
일본 입장에서는 저걸 총칼로 마구 찍어눌러서 당장 진압은 했지만.. 국제적 위신의 손상에다 내부적인 멘탈 대미지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크게 입었다.

“니들은 식민지를 도대체 얼마나 거지같이 관리했길래 10년도 채 안 돼서 식민지에서 저 정도로 처절한 만세 시위가 벌어졌냐?”
일본은 이웃 열강들로부터 이런 갈굼을 당했고, 그 갈굼이 조선총독부로 전해졌다.
다시 말해, 서구 열강들은 일본을 향해 "당장 조선을 해방시켜 줘라" 이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네 식민 통치 방식에 문제가 좀 있나 보다? 이번엔 좀 선 넘었네?" 정도의 눈치는 줬다.

이때부터 쟤들은 과장 좀 보태면 만세의 만 짜만 나와도 발작을 일으킬 지경이 됐다.
조선 땅에서 조금 무리수인 정책을 추진할 때면 “야, 조센징 만세 폭동을 벌써 잊었냐? 시즌 2가 벌어지는 수가 있다?” 이러면서 몸 사리는 시늉 정도는 하게 됐다.

이 때문에 조선 식민지를 관리하는 치안 비용이 크게 증가했고, 이는 일제의 입장에서 식민지의 가성비 하락으로도 이어졌다.
고종 다음으로 나중에 순종이 죽었을 때만 해도 쟤들은 또 만세 시위가 벌어지지는 않으려나 진심으로 긴장했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이 넘어갔음)

솔직히 1919년 3월 1일이 지금 대한민국이 세워진 날이라고 하면 그건 좀 정신승리 보정이 개입된 생각일 것이다. 무슨 시오니즘 대회나 밸푸어 선언이 발표됐던 날이 이스라엘 건국일이기라도 하냐?
그리고 1940년대 태평양 전쟁 때 조선인들이 남의 전쟁에 강제로 징용되고 끌려간 건 그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라도 져야 할 사항이냐? 누구는 약간 나중에 6 25 전쟁 중에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못 지켜 줬던 건 그렇게도 욕하고 비판하던데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세 시위 하나 했다고 일제가 조선을 니에니에 독립시켜 줬을 리는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시도가 쌓이고 쌓인 게 시너지 효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일본을 물리적으로 힘으로 패퇴시킨 것이야 한국의 능력이 아니라 연합국, 특히 미국의 원자폭탄이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저런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시도가 없었다면 일제의 패망이 곧바로 한반도의 해방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로 선언에 코리아의 독립이 따로 명시된 게 괜히 이뤄진 줄 아냐?
이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건 전형적인 “A가 틀렸다고 해서 자동으로 B가 정답이 되는 건 아니다” 논리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건국 초기부터 관습적으로 삼일절을 아주 성대하게 기념해 왔다. 그리고 그 초창기, 리 승만 할배 시절엔 대한민국이 1919년부터 시작된 나라라고 대놓고 홍보하곤 했다.
특히 저 때는 북괴야말로 1947년인지 48년에 갑툭튀한 듣보잡 사생아 집단일 뿐이고, 남한은 훨씬 전부터 정통이라는 걸 강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념이 오늘날 우리나라 헌법의 전문에도 명시된 것이다.

이거 마치 Watcom C라는 신생 컴파일러가 볼랜드/마소 제품 대비 자기 내력을 뻥튀기하려고 첫 버전을 1.0이 아니라 무려 6.0부터 매겼던 것과 비슷한 행동 같은데.. 뭐 그랬다. 이런 내력이 있다.
본인은 삼일절과 주일이 겹쳤던 날에 교회에서 준비 찬송으로 특별히 만세, 함성, 승리 이런 단어가 들어있는 곡을 골라서 부르곤 했다.

* 흥미로운 사실

(1) 조선은 특이한 지리빨 덕분에 그 시절에 대영제국의 손아귀로 들어간 적이 없는 꽤 예외적인 나라였다. 어디 대영제국 뿐이랴? 병자호란,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에서 다 지고도 멸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조선이 자기 힘으로 자신을 스스로 지켜낸 게 아니었다. 인간들의 과학기술과 군사력이 발달해서 지리빨이 약발이 다했을 때 조선은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했다.

열강들은 조선을 먹지 않았지만, 그 대신 19세기 말에 조선이 중립을 선언한 것도 전혀 존중해 주지 않았다.
조선은 서양 식민지가 되지 않은 대신, 이웃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그러니 나중에 독립될 때도 여느 대영제국 식민지와는 좀 다른 격으로 취급받게 됐다.

(2) 1920년대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세계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 편을 드는 것에 절망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특히 전간기) 일본은 세계가 일본을 영국 미국과 대등한 열강으로 인정하지 않고 함대 제작 쿼터를 많이 주지 않는 것에 절망하고 분노했었다. ㄲㄲㄲㄲㄲ
이게 지금은 군대를 안 가면 안 되는 나라 vs 군대를 가지면 안 되는 나라의 차이로 이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인물 관련해서도 할 얘기가 있는데.. 분량이 길어지니 이건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15 08:35 2026/06/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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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체를 볼 수 있는 철도역

우리나라의 철도역들은 역명판의 서체가 다들 전속 서체인 코레일체로 통일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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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체가 쓰이던 옛날 교외선 송추 역의 역명판 vs 코레일체가 적용된 현재의 역명판)

한때, 1990년 말까지는 HY울릉도체가 즐겨 쓰였다. 그러나 철도청에서는 코레일(철도공사)의 출범과 고속철도의 개통 직전이던 말년(2003년!!)에 전속 서체를 선보였다.
그렇잖아도 서울 지하철은 진작에 전용 서체를 도입해 있었다. 거기에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인천 공항에서도 간판용 전속 서체를 도입했으니.. 철도 당국에서는 덩달아 경쟁 심리와 자극을 받았던가 싶다.
더구나 자기들도 저렇게 큰 변화를 앞두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폰트를 통한 이미지 쇄신은 명분이 더욱 충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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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항 간판 서체는 대한민국의 다른 어느 공항에서도 볼 수 없는 유니크 아이템이며, 인천 공항의 첫 개항과 함께 곧장 적용된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 스카우트 연맹’ CI의 폰트와 꽤 비슷해 보이는데.. 이게 우연이 아니다. 둘 다 동일 디자이너의 작품이라고 한다. (네오폰트 김 주영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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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말고 연세대 전속 서체 ‘연세체’와 비슷하게 생긴 인천 공항 공사의 전속 서체도 있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간판 폰트보다는 존재감이 훨씬 덜한 것 같다.

얘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다시 철도로 돌아오면..
코레일에서는 갓 개발된 코레일체를 새로 만들거나 리모델링하는 역의 내부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코레일체를 쓰지 않은 예외는 일부러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궁서체나 그에 준하는 붓글씨체를 쓴 게 전부이다. 지붕은 기와로 얹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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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역과 진주 역은 평범한 궁서체다. 구 경주 역은 궁서체가 아닌 다른 캘리 서체이고.. 영월 역은 한자가 쓰여 있다.
경춘선의 김유정 역은 저런 외부 역명판뿐만 아니라 내부 역명판과 행선지 안내판까지도 온통 궁서체를 썼다는 게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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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생각해 보니 또 독특한 예외가 있다.
바로.. 북한과 접하고 있고 출입경 관리 사무소가 있는 도라산(경의선)과 제진(동해선) 역인데, 얘들은 특이하게도 외부 역명판이 바로.. 윤디자인의 2002체, 일명 월드컵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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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1990년대의 휴먼 엑스포체처럼 국가 행사를 기념해서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참신한 컨셉으로 만들어진 폰트이다.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뿐만 아니라 남북 간에 경의선 철길 연결이 합의되고 도라산 역이 개통했다. 그래서 당대에 만들어졌던 모던하고 세련된 폰트가 의도적으로 쓰인 것 같다. 더 나중에 만들어진 제진 역에도 저 폰트가 쓰였을 정도이니 말이다.

남북 협력이고 나발이고 전부 나가리 된 지금 시국에서 저 광경을 다시 보니... (애초에 북괴놈들은 그 화해무드조차도 제2 연평해전 선빵 공격으로 통수를 쳤었음)
철도와는 별 접점이 없어 보이는 2002체로 만들어진 역명판이 굉장히 므흣 특이한 느낌을 생성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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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체는 한때, 1990년대 말까지 TV 자막으로도 엄청 많이 쓰였다. 시사 TV 프로가 끝나면서 '제보 문의는 하이텔 GO xxxx로' 이런 자막도 엑스포체로 나왔었다!
하지만 2002체는 생각보다 금방 묻히고 보기 어려워진 듯하다. 그래서 더욱 희소함이 느껴진다.

* 저 한일 월드컵 시절에 국대 축구 선수로 뛰었던 아저씨 중 한 분이 지금은 중년 갑부 꽃미남이 돼서 용형에도 올씨즌 개근 게스트로 출연 중인 게로구나.. 그렇구나~!!! ㄷㄷㄷ
이상~ 정말 오랜만에 폰트 카테고리에 새 글을 추가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11 08:35 2026/06/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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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에 대해서

이 지구에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하거나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자원들이 많다.
석탄· 석유라든가 희귀 금속 광물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깨끗한 물이나 나무 같은 건 환경과 관련하여 또 다른 의미로 중요한 자원이다.

그런데 금속 광물도 아니고 특정 귀한 돌(화강암, 대리석..)도 아니고, 아니면 농사에 도움이 되는 기름진 흙도 아니고..
일개 모래도 인간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통념 이상으로 귀한 자원이라 여겨진다.
토목· 건축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만들 때 시멘트와 함께 쓰이는 모래의 양이 정말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인간이 소모하는 천연 자원들 중에 부피/양만 따지면 모래가 단연 1위라고 한다.
물은 많이 소모해도 그래도 자연에 의해 정화되고 순환돼서 돌아오는 거라도 있는 반면, 모래는 의도적으로 재활용하지 않는 한 전적으로 일방통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1) "아니, 사막 가서 모래 푸실 일 있습니까?"
30여 년 전 옛날에 롯데제과 '디저트'라는 아이스크림의 CF에서 영어 강사 곽 영일 씨의 대사다. =_= 디저트를 데저트라고 잘못 발음한 상황.. ㄲㄲㄲㄲㄲ 지금이야 정말 유치하고 오글거리지만 쌍팔년도 저 때만 해도 혀 굴리는 영어 발음 좀 넣는 게 마케팅 포인트로 통용됐었다.

(2) 공산주의는 사막에서도 모래를 부족하게 만들 수 있다
우파 진영에서 종종 들은 드립이다. 개인의 근로 의욕 저하로 인한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말하는 거겠지..
개인적으로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파라오의 꿈이 생각났다. 못생긴 야윈 암소가 살진 암소들을 몽땅 잡아먹었지만 그래도 전자는 여전히 야위고 못생긴 상태였다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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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생각하는 사막이라는 장소는 평소에 모래라는 물질이 썩어 넘치는 곳이다.
한반도 거주민들이 수시로 겪는 황사나 미세먼지도 상당수가 대륙 사막에서 날아온 흙먼지 모래 먼지이지 않던가?

허나, 토목·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만들 때 사막의 모래는 무척 의외이지만 쓰이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UAE인지 두바이인지 모래 사막이 지척에 깔려 있는 지역에서도.. 고층 건물을 지을 때 모래를 심지어 호주에서까지 잔뜩 수입해서 썼다고 한다. ㄷㄷㄷㄷ 거기가 공산주의 국가여서 저렇게 된 게 아니다~!

건설업계에서는 강 바닥에서 긁어낸 뻘에 가까운 모래가 최상급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거기는 거기대로 불순물 제거 같은 전처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아니면 차라리 바닷가 해변의 모래 정도면 OK이다. 소금기를 제거한 뒤에 사용한댄다.
그러나 사막 모래는 입자가 생겨먹은 모양이 시멘트나 자갈 같은 재료를 융합시키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아니, 가공이나 후처리를 해서 사용할 수는 없나..?? 저 풍부한 사막 모래가 그 정도로 무용지물인가? 이해하기 어렵다.
모래가 다 같은 모래가 아닌 듯..
오늘날은 세계 각국에서 토목공사를 벌이는 와중에 품질 좋은 모래가 부족해서 난리일 지경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언뜻 보기에 바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자원의 예가 여럿 있다.
미국이 자체적으로 석유가 많이 나지만 그래도 수입도 엄청 많이 하는 거. (경질유, 중질유 같은 특성 차이 때문. 단순히 내수 소비량 때문만이 아님)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석유 완제품은 수입한다는 거.. (그냥 사 오는 게 자체 기술로 정제하는 것보다는 더 싸기 때문)

바닷물은 인간이 마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방용수로도 최후 중의 최후의 고려 대상이라는 거. (산불이든 선박 화재든)
컴퓨터 쪽에서는 마소에서 리본 UI를 MFC에다가 얹기는 했지만, 자체 개발이 아니라 기존 3rd party 제품의 코드를 구매해서 얹은 거..
이런 것처럼 다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에 한강 종합 개발을 할 때도 한강의 강폭과 수심을 늘리기 위해서 강바닥의 모래를 엄청 많이 파냈다. 그리고 그 모래를 토목공사에 쓰고, 딴 데 판매도 해서 비용을 보태기도 했다고 한다.
준설 사업이 진짜로 필요해서 모래를 파낼 수는 있다고 치지만, 단순히 모래 자체가 필요해서 강바닥을 너무 많이 심하게 파내는 건 환경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모래와 관련해서 드는 여러 생각들이다.

-- 흠, 콘크리트를 만드는 데는 모래가 쓰이지만, 벽돌을 굽는 데 쓰이는 건..?? 모래라기보다는 흙에 가까워 보인다. 이 바닥은 더 깊게 파면 세라믹의 영역으로도 갈 것 같은데..
좀 검색을 해 보니, 도기는 흙(진흙, 찰흙)으로, 자기는 규석, 장석 등 내화도가 높은 광물을 많이 함유한 '돌'가루(주로 고령토)으로 제작한다고 한다. 둘을 합해서 도자기라고 하는군.. 마치 전기+자기 = 전자기처럼 말이다.

-- 오늘날은 침식으로 인한 지형 변화 때문에 해변에서 고운 모래를 보기도 어려워져 간다고 한다.
가령, 부산의 해운대 해수욕장만 해도 모래가 많이 유실되는 중이라고 한다. 매년 모래를 일부러 사 오고 깔아서 퀄리티가 유지되는 거라고 한다.

-- 상황이 이러하니 산업적으로는 콘크리트 폐기물이나 천연 바위를 쪼개서 모래를 채굴· 재활용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라고 한다.

-- 하긴, 놀이터나 운동장.. 특히 씨름장에도 모래가 쓰인다. 하지만 요즘은 애들 놀이터에서는 바닥에 모래가 퇴출된 지 오래이니 격세지감이다. 당연히 안전이나 위생 문제 때문에 말이다.
하긴, 옛날에는 애들이 놀이터에서도 모래를 파고 물 부으면서 놀기는 했다. 하지만 그 모래로 바닷가의 모래밭 정도의 자유도를 실현하기는 어려웠다. ㅎㅎ

-- 모래는 건설 자재 말고 엄폐물(모래주머니)이나 소화 매체(방화사)로도 꽤 유용하게 쓰이며,
그리고..!! 고양이를 키울 때 화장실을 만드는 용도로도 쓰인다.
꼬냉이는 신기하게도 모래를 파서 용변을 보고 모래로 그걸 파묻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장실용 모래도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고 특성과 용도, 꼬냉이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화돼 있다.

-- 지구 외의 행성의 표면에는 먼지를 일으키는 모래는 있을지언정 흙은 없다. (예를 들어 달 표면)

끝으로.. 바위가 부서져서 모래가 된다는데, 그럼 반대로 암석이라는 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금속처럼 무슨 용접이라도 해서 녹았다가 굳어져서 붙는 건 아니고..
퇴적암의 경우, 모래나 흙이 오랜 시간 동안 천연 시멘트 역할을 하는 다른 광물에 의해 붙고 굳은 거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압력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암석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한자의 제자 원리와 비교해 보면
화성암은 상형, 지사
퇴적암은 회의, 형성
변성암은 전주, 가차와 정말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 제일 원초적인 암석은 아무래도 화성암인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07 08:35 2026/06/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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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빛

1. 해

박 두진이라는 사람은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어쩌구~~)"
중학교 국어(문학) 시간에 배우는 '해'라는 시를 지은 문인· 시인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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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글귀가 물 흐르듯 흐르고 흥겹고 운율이 느껴지는 게.. 곡을 붙여서 노래로 만들어도 될 것 같다. 건전가요도 될 수 있고 민중가요도 되고, 어쩌면 적절한 장르의 뮤지컬 넘버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검색을 해 보니 민족주의 기조가 넘치던 198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21세기에도 몇 차례 곡이 붙은 사례가 있었다.
아~ 저 사람이 연세대 교수를 해서 그런지, '해'의 싯구 일부가 아예 연세대의 응원가로 쓰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박 두진은 같은 학교에서 후학인 마 광수를 발굴해서 문단에 등단도 시켜 줬다고 하는구나.
나는 일단 그런 선례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로 얘기를 계속하겠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는 흥겹고 즐겁고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인데, 딱 한 구간 "달밤이 싫어" 여기만 잠시 암울하고 부정적이다.
이건 영락없이 동요 "아기염소"의 부정적인 구간 "빗방울이 뚝뚝뚝뚝 ... 엄마 찾아 음메" 같은 느낌이 든다. 선율을 붙인다면 "달밤이 싫어.." 구간만 그렇게 단조 코드로 표현하면 되겠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이 시는 1946년 5월에 '상아탑'이라는 시집에 수록돼서 처음으로 발표됐다고 한다.
저 때는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땐 경부선 열차의 이름도 "해방자"(liberator)였으며, 광복 후 만들어지고 상영된 최초의 한국 영화도 "의사 안중근"이었다. 공교롭게도 전부 다 1946년 5월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문학, 영화계에서는 그야말로 한이라도 풀듯이 온통 해방의 감격을 표현하고, 반일 항일 독립운동을 예술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러니 박 두진의 저 시에서도 해가 무엇을 의미하고 달밤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대 문맥을 투영시켜 보면.. 뭐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였다.
이 시가 당대에도 반응이 좋았는지, '해'는 1949년에 출간된 박 두진의 개인 시집에도 실리고, 더 나아가 시의 제목이 시집 전체의 제목으로도 채택됐다.

이런 '해'라는 시를 썼던 사람이 그로부터 몇 년 뒤 1951년에는 6· 25 노래의 가사도 썼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이때는 해가 떠오르는 기쁨이고 감격이고 없이 "저 불의의 역적 멧도적 오랑캐들을 하늘의 도움이라도 빌려서 무찌르고 섬멸해 버리리라~~ 우리는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리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우리의 원쑤들을 단 하나도 살려두지 않으리라!!"
정말 비장하고 섬뜩하게 가사를 썼다. 그도 그럴 것이 북괴 공산당은 그 떠오르던 해를 도로 가려 버리는 먹구름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6· 25 노래는 같은으뜸음인 단조와 장조가 중간 전환되는 곡이다.
그래서 같은 시인이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차를 두고 지은 '해'와 '6 25 노래'가 내 머릿속에 나란히 오버랩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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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나 더..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 대한 남아 가는 데 초개로구나"도 1951년 초, 1· 4 후퇴로 서울을 빼앗긴 지 얼마 안 됐을 때 만들어지고 발표된 시? 노래? 군가이다. 6· 25 노래와 시기적으로 비슷하다.
본인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무찌르자 오랑캐.."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어린애들이 공기놀이를 하면서 동요처럼 즐겨 불렀다고 한다. 원제는 '승리의 노래'라는데, 뭔가 찬송가나 CCM의 제목처럼 느껴진다.

2. 빛

자, 이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꺼내겠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2005년 7월경 새벽엔 이런 일이 있었다.
경기도 광주의 어느 산기슭 농촌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느 가정집에서 불이 났다.

그런데 화재 원인이 참 민망 기구한 게, 무슨 누전이나 배터리 때문이 아니고 완전 정반대.. 밤에 켜 놓고 방치했던 촛불 때문이었다.
그 집은 전기료가 몇 달간 많이 밀리는 바람에 전기가 완전히 끊겼던 것이다.
직장인 점심 밥값이 4~5천 원이던 20년 전 물가로 가정용 전기료가 88만 원이나 밀린 건 적은 양이 아닐 테니까..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그 더운 7월에 전깃불뿐만 아니라 선풍기, 에어컨, 냉장고를 가동을 못 하고서 일가족이 도대체 어떻게 살았나 싶다.

부모가 범죄, 이혼 등으로 인해 막장 파경이거나 심각한 질병· 장애가 있는지 구체적인 정황은 모르겠지만, 거기는 전기료가 밀릴 정도로 많이 가난했다.
슬하에 10대 나이의 딸이 둘 있었는데, 저 때 중학생이던 막내딸이 집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마에 참혹하게 희생되고 말았다.

이 소식이 매스컴을 타자 뒤늦게 이웃 주민들과 관공서에서 힘을 합쳐 새 집을 마련해 주고, 맏딸이라도 학비 지원해 주고, 누군가가 밀린 전기료도 대납해 줬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전기료가 아무리 밀려도 어느 가구든 "형광등 3개와 TV 하나" 정도 켤 수는 있는 최소한의 전기는 끊김 없이 공급하도록(그게 가능하냐? 그럼 총 몇 와트시 정도??) 인도적 차원의 조치를 추가했다. =_=;;

물론 뒤늦게 그런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건 아니니.. 동생을 잃은 언니는 진짜 한동안 넋이 나갔다고 하며, 애비 되는 사람은 자기가 무능해서 이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에 딸을 죽게 만들었다고 자책하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고 전해진다.

이 일이 있은 뒤, 한전에서 정말 뜬금없게 이례적으로 "빛으로 만드는 세상"이라는 동요까지 만들어서 공개하면서 이미지 광고를 내보낸 게 내 기억으로 아마 2005년 말~2006년 그 무렵이었다.
무슨 창작동요제 입상작이 아니고, 현직 교사도 아니고 기업에서 웬 동요를 만들면서 따스한 이미지 선전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검색을 아무리 해 봐도 저 곡이 만들어진 사연, 배경이나 작사· 작곡자(유 재광)의 신상이 소개되는 건 이상할 정도로 없다. 정말로! 제목이 비슷한 "빛으로 만든 세상"과 혼동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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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정황이면, 아마 한전에서..
"매정하게 가정집을 단전시켜 버려서 촛불 때문에 집이 불 나서 애까지 죽게 만든 것에 도의적으로(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책임져라"라고 불거진 여론을 의식해서 이미지 쇄신을 시도한 게 아니었을지..?? 이런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저 좋은 빛이라는 게 전기 에너지가 있으니까 1년 내내 존재 가능한 것이고, 그러니 전기를 공급하는 우리 한전이 최고... 그런 식으로 말이다. 남한 대한민국은 밤에 불이 꺼진 암흑천지인(인공위성 사진) 북한처럼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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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백열등과 형광등을 거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이 높은 전기 광원인 LED등까지 발명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LED 덕분에 그 자그마한 스마트폰에 달린 꼬마전구가 어지간한 휴대용 손전등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 팜 어쩌구 하면서 제한적으로나마 천장 없는 실내에서 식물 농사가 가능해졌다.;; 기존 재래식(?) 하늘에서는 햇볕과 햇빛이라는 넘사벽 급의 자원이 공짜로 쏟아지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자연재해도 쏟아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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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물리적인 빛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성경도 빛에다가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심상을 부여하고, 반대로 어둠은 일관되게 나쁘다고 디스한다.
창 1:2에 나오는 어둠, 고후 4:6와 6:14에 나오는 빛과 어둠, 엡 5:8과 살전 5:5에 나오는 '빛의 자녀', 요한일서에서 시종일관 나오는 '빛'...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니 "빛으로 만드는 세상" 가사가 신앙적으로도 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1950년대에 만들어진 옛날 동요인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은 어떨까?
얘도 가사와 곡이 매우 아름다우며 2000년대 초에 일본의 소학교 음악 교과서에 잠시 소개되기도 했을 정도로 명곡이긴 하다만.. 이 곡의 가사는 딱히 광명과 암흑을 비교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냥 "여름엔 파랄 거예요, 겨울엔 하얄 거예요"이다.

저기서 '빛'은 그냥 '색'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어는 green과 blue를 별로 구분하지 않고 '푸르다'라는 말을 썼듯이, 심지어 color와 light도 별로 구분하지 않고 '빛'이라는 말을 썼다. 그래서 한자도 光(빛 광)뿐만 아니라 色도 "빛 색"이라고 불렀고, 색깔뿐만 아니라 '빛깔'이라는 말도 있었던 것이다.

즉, 결론적으로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의 가사는 "빛으로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포카혼타스 "Colors of the wind"(바람의 빛깔)와 더 비슷한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보면 정확하겠다. 저 동요가 일본어로 번역될 때도 응당 光이 아니라 色이 쓰였다.

영어에 man 남자/사람, good 좋다/선하다, day 낮/날 같은 중의성이 있는 것처럼.. 한국어에도 저 정도 중의성은 감수해야 하는가 보다. 사전만 보고 무식하게 곧이곧대로 번역하다간 실수하기 쉽다.

내 모국어인 한국어는 한편으로 괴상망측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ㅁ과 ㅂ 대응(어머니 아버지, 물 불, 맑다 밝다, 묽다 붉다)이라든가, 빛과 색의 중의적 관계,
내가 아는 다른 어떤 외국어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딱 한 단어짜리 '모르다' 동사,
하필 흑백과 삼원색만 활용 가능한 용언 형태로 말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꽤 심오하다는 생각도 든다. 잘 알다시피 영어는 '빛'이 '색'이 아니라 '가벼운'과 동음이의어 관계다.

이상이다.
아, 앞서 얘기했던 비극적인 화재 사고에 대한 내 견해는 전적으로 중립이다.
한전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반대로 저 집 부모의 무능? 가난? 이 죄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누구 탓도 할 수 없이 운이 나빴던 안타까운 사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애한테 비싼 장난감을 안 사 줘도 유괴 범죄가 일어날 수 있고, (이 삼촌이 장난감 사 줄게!)
사 줘도 유괴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소신이다. (오~ 이 집은 잘 사는가 보군!)
화재 역시 전기가 들어와도 날 수 있고, 전기가 없어도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꼭 가난이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어 보인다.

뭐랄까, 6 25 전쟁 났을 때 모병관이 어린 꼬마한테 먹을거 주고 구슬리면서 "너희 아빠 어디 있는지 알아?" → "아 우리 아빠요?" (너무 순진해서 솔직하게 다 말함) → (아빠는 징집돼 끌려가고 전사) → 그 꼬마는 고아가 됐고, 나중에 다 커서야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됨
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거 갖고 그 꼬마나, 모병관 그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것과 비슷한 모양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03 08:35 2026/06/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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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상반기 근황: 바다와 호박

올해는 근황 넋두리 카테고리에 아직까지 글이 하나도 없었구나.
2026년 상반기 동안에도 참 많은 뉴스들이 정신없이 스쳐 지나갔다.

서울에는 멧돼지가 전멸한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웬 이화여대 부근에 한 아이가 출몰했었다.
멧돼지가 얼마나 먹이가 없었으면 북한산에서 인왕산과 안산(무악산)까지 건너 왔나 싶다.
일본의 곰에 비하면 멧돼지 정도면 정말 온순한 놈 축에 들 것이다.

그 밖에 5월 중순엔 갑자기 낮 기온이 30도를 넘는 한여름 무더위가 찾아와서 고생이 심했다. 그나마 찜통더위가 아니고 열대야는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다.

광주에서는 정말 천인공노할 묻지 마 범죄가 벌어져서 아무 죄도 없는 여고생이 희생됐다.
난 정말 흉악범들 다 사형 집행만 해 주면 그 대통령인지 정당인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지지하고 "내 세금 다 가져라~!" 그럴 텐데.. 그럴 날은 딱히 올 것 같지 않다. ㄲㄲㄲㄲ

아이고~ 얘기가 또 옆길로 새고 있다만, 어쨌든 이 글에서는 오랜만에 쉬어 가는 차원에서 풍경 사진이나 몇 장 투척하도록 하겠다.

1. 강릉 바다

본인은 여친-와이프와 함께 살게 되면서.. 차 끌고 국내 오지를 돌아다니며 텐트 숙박을 하는 통상적인 휴가 여행을 안 하게 됐다. 그런 휴가 여행은 2023년에 간 게 마지막이고 그 뒤로 맥이 끊겼다.
그 대신 매년 6월쯤에 당일치기로 강릉-양양 사이의 동해 바다를 잠깐 보고 오는 게 루틴이 됐다. 2024년에 경포, 2025년에 하조대.. 이 블로그를 뒤져보면 나와 있다.

그랬는데 올해는 사정이 생겨서 강원도를 평소보다 이른 4월 말쯤에 미리 다녀왔다. 경포보다 살짝 북쪽인 사천진을 개척했는데.. 항구(어항)도 있고 해수욕장도 있고 아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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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저녁에 사천진항에 도착했다. 전망 좋은 횟집에서 물회와 회덮밥을 시켜서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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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식당 입구는 온통 길고양이들 천지였다. 요 두 아이들 말고도 까망이와 삼색이도 있고, 개체수가 최하 5마리 이상은 됐다.
우리 와이뿌는 허겁지겁 차로 돌아가서 츄르를 갖다줬다. 뭐, 보아하니 횟집의 직원들도 종종 회 잔반을 갖다주고 있고, 얘들은 그 덕분에 굶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이튿날 낮에 이 식당에 다시 보니, 고양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딴 데 순찰 나갔나? 여기에는 밤에만 찾아오는지? 우리도 의문을 품으며 이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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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와 노란 모래밭을 보면 기분이 참 좋다.
이 날은 아직 5월도 되지 않았고 심지어 평일이었다. 하지만 해변에는 놀러 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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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맑디맑은 고퀄 바닷물은 인천 앞바다 같은 황해에서는 구경하거나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황해는 모래나 자갈이 아니라 그냥 온통 진흙 뻘밭이어서..;;
물놀이를 못 한 게 아쉬웠다.

2. 경주 바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주말을 끼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다녀왔다.
나이가 70 중후반으로 들어서니 본인 쪽이든 처가 쪽이든 부모님들이 모두 아프신 데가 늘고 병원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 간다. 살아 계실 때, 의식이 있고 자력 이동 가능하고 자식들을 알아볼 수 있을 때.. 더 늦어지기 전에 최대한 잘해 드리고 효도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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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왔으니 부모님을 모시고 경주에 있는 바다도 찾아갔다. 나정 고운모래(감포) 해변은 늘 변함없이 잘 있었다.
날씨가 맑아서 지난번 강릉 사진보다 풍경이 더 시원스럽고 예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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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물이 정말 맑고 시원해 보였는데.. 들어가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참고로 이때 현장은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면서 날씨도 더운 편이었다. 하지만 바닷가는 바닷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거의 에어컨 바람 급으로 시원했었다.

바다 얘기는 아니고 따로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경주 지역이 소나무 재선충이 여전히 심각한 상태인 듯했다. 이 푸른 5월에 그것도 활엽수도 아닌 상록 침엽수인 나무가 시뻘겋게 단풍이 들어 있다니..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외관상 시뻘겋게 됐을 정도면 그 나무는 이미 다 말라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조치도 소용없다고 한다. 이건 뭐 돼지 구제역이나 ASF와 비슷한 급의 재앙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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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번에는 나정에서 더 남쪽으로 봉길 해수욕장을 지나서, 심지어 월성 원자력 발전소까지 비껴서는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라는 곳을 찾아갔다. 경주에 나름 이런 관광 시설도 만들어져 있구나~!
저 멀리 콘크리트로 돔과 솥뚜껑 같은 구조물이 바로 월성 원전의 원자로이다. 원전 실물을 현장에서 이 정도로 가까이에서 보는 건 개인적으로 거의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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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라는 게 제주도에만 있는 지형인 줄 알았더니 여기서도 볼 수 있구나~~!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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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는 유리창을 통해서만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사진도 막 깨끗하게 찍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어디냐;;
앞으로 몇 달 동안 무더위 때문에 고생할 일만 남았는데 그때는 이런 동해 바다 생각이 더 절실하게 날 것 같다.

3. 호박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얘기를 안 했을 뿐, 올해도 호박 농사는 어김없이 시작됐다.
딱 지난 4월 5일 식목일 일요일에 호박씨를 심고 물을 줬었다. 작년이나 심지어 재작년 말에 도축했던 늙은 호박의 안에 들어있던 씨앗을 그대로 썼다.

아직 날이 쌀쌀해서 그런지 얘들은 꽤 오랫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랬는데 그로부터 2주가 넘게 지난 4월 22일에 처음으로 싹이 하나 올라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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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4월 26일엔 1호 말고도 곳곳에서 이렇게 싹이 거짓말처럼 올라오기 시작했다.
위의 사진에서 우측 하단에 떡잎 크기가 제일 큼직한 아이가 새싹 1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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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새싹 1호는 이제 떡잎 다음으로 첫 본잎이 돋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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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본잎이 눈에 띄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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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주일이 경과한 5월 17일, 아이는 무섭게 자라서 잎이 이 정도로 커졌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덩굴손이 나오면서 길이가 왕창 길어지지 싶다.
날씨가 더운 게 우리 같은 사람은 싫지만 식물은 싫지 않은가 보다. 비가 한번 쭉 내리면 식물들이 잘 자라고, 그 뒤로 날씨가 더우면 식물들이 또 잘 자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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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또 1주일 이상 뒤, 5월 24일 이후에는..
진짜로 여기저기서 덩굴손이 뻗기 시작했으며, 기존 잎들도 미치도록 더 커졌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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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지난 5월 초에는 작년에 본인이 따로 구입해서 지금까지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마지막 늙은 호박'을 도축해서 하늘의 별로 보냈다.
이 호박은 정말 훌륭한 호박, 좋은 호박, 모범 호박이었다.
본인이 장만했던 호박 중에 어떤 것은 금방 물러지고 상해서 오래 보관하지 못했다. 어떤 것은 내부가 너무 축축하거나 너무 건조했고, 과육이 맛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생긴 것부터가 적당한 크기(지름 28cm)에 적당한 무게(4.3kg), 적당히 쭈글쭈글, 적당히 허옇게 된 게 굉장히 호감형인데..
상태가 정말 안정적이었다.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거의 반 년 동안 일체의 변화 없이 꿋꿋이 자리를 잘 지켰다. 더 오래 놔 둬도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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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갈라 보니 역시 너무 습하지도 너무 마르지도 않고, 싹이 터 버린 씨도 별로 없고.. 죽을 쑤어 보니 맛도 괜찮고, 모든 것이 양호했다.
그래서 이 호박이 2025 시즌의 마지막 호박으로 내 기억에 남게 되었다. 올해 가을에는 또 좋은 호박을 구입하고, 또 직접 수분해서 수확도 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05/29 08:35 2026/05/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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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라는 게 발명되고 대중화되기 전에는 다음과 같은 무선 통신 수단이 만들어져 쓰였다.

1. 무전기 (야외 근거리)

두 사람이 서로 수백 m나 수 km씩 떨어져 있어서 서로 보이지 않고 생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즉시 연락 가능하다.
기지국 없이 단말끼리 직통이다. 단순하지만 그만큼 보안이 취약하다. 그리고 일단은 수신과 발신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지형 영향을 많이 받으며, 초장거리 통화도 당연히 안 된다. 대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방식으로 동시에 제각각 통신할 수도 없다. 이런 저런 제약이 많지만 야외에서 험한 일 하는 군대· 경찰· 소방 같은 계층에서는 무전기가 오늘날까지도 매우 유용한 통신 수단이다.

2. 재래식 무선 전화기 (집)

이건 개념적으로는 송수화기만 무선화해서 유선 전화기 본체와 무전을 주고받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유선 전화 인프라에 의존적이며, 무선 통신이 가능한 사정거리가 매우 제한된다. 사실상 실내용이다.
요즘으로 치면 와이파이 AP의 사정거리가 옛날 무선 전화기의 사정거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싶다. 집 근처에서 무선 전화기의 통화 트래픽을 도청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3. 카폰 (차)

유선 전화에 의존하지 않고 그렇다고 개인용 무전기 같은 한계도 없이 전화가 되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걸 가능케 하는 설비가 사람이 일상적으로 들고 다닐 정도의 크기가 못 됐고 전원 공급 문제도 있으니.. 자동차가 매우 적합한 대안으로 선정됐다.
카폰은 처음에는 그야말로 차량용 대형 무전기일 뿐이었다. 살인적인 기계 가격도 가격이지만, 회선이 너무 부족해서 근본적으로 많이 보급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게 나중에는 기지국과 통신하는 초보적인 주파수 공유 이동통신으로 발전했다.

4. 삐삐 (어디서나)

얘는 통화가 안 되는 일방적인 호출기에 불과하다. 삐삐 자체는 거의 모스 부호 급의 작은 정보밖에 전하지 못하고, 실제 통화는 연락을 받은 사람이 공중전화라도 찾아가서 따로 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삐삐는 (1) 모든 개인이 언제 어디서나 갖고 다니는 소형 단말기, (2) 전국구 중앙 기지국 기반 통신, (3) 건물 안이나 지하에서나 산속에서나 잘 터지는 접근성처럼...
그 이전의 무선 통신기기들이 갖추지 못했던 개인 이동전화의 또다른 중요한 덕목을 작은 스케일로나마 실현했다.
경찰 소방 말고, 대형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업무용 삐삐를 여전히 갖고 다닌다고 한다.;; 거기서는 회중시계도 여전히 쓰이는 구석이 있는지 문득 궁금하네..

이런 단계를 거쳐서 오늘날의 휴대전화는..
무선 전화기 같은 온전한 전화 기능을
무전기와 카폰을 합친 이동성을 살리면서
삐삐의 휴대성 보편성까지 한꺼번에 실현한 괴물 같은 물건이 됐다.
물론 이게 그냥 이뤄진 건 아니고, 기지국이 카폰이나 삐삐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이 촘촘하게 필요해졌다.

자동차 운전에다 비유하자면, 이것들은

  • 유인 운전을 전제로 한 부분적인 운전 보조 (크루즈, 차로 이탈 방지)
  • 주차나 도로 정체 같은 특수한 상황 한정으로만 무인 자동운전
  • 별도의 설비가 설치된 전용 도로/노선 사이만 무인 자동운전
  • 그냥 무선 통신으로 타인에 의한 원격 운전..!!

이런 것처럼 다양한 분야별로 단서나 제약이 붙은 조건부 불완전 자율주행 기능과 비슷하다.
허나, 휴대전화는 제약 없이 완전 자율주행이 실현된 것과 비슷한 격이 됐다.

뭐, 옛날 무선 전화기가 본체와 통신을 하던 것이.. 오늘날의 핸드폰· 이동전화는 기지국과 통신을 하는 것으로 스케일만 살짝 바뀐 거라고 볼 수 있다. 허나, 이동전화는 중요한 차이점이 더 있다.
바로.. 사용자가 많이 이동해서 한 기지국의 사정거리를 벗어나더라도, 가까운 다른 기지국이 실시간으로 그 단말기를 바톤 터치해서 연속적으로 끊김 없이 챙겨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통화를 하는 중에 관할 기지국이 바뀌어도 그 통화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 이런 건 무선 전화기 시절엔 생각할 수 없었던 기능일 것이다.

한때 팬텍, 모토로라, 노키아, 블랙베리 등 핸드폰을 잘 만드는 업체들이 세계적으로 많았지만 잘 알다시피 다들 몰락했다.
우리나라의 삼성 전자는 잘 알다시피 애니콜부터 시작해서 이동전화 단말기의 개발에 진심이었는데.. 얘들 역시 처음부터 잘 나갔던 건 아니었다. 특히 옴니아 시절까지만 해도 얼마나 삽질을 많이 했었냐;;

그랬는데 안드로이드 기반의 갤럭시 스마트폰을 잘 만들어서 그야말로 세계를 석권해 버렸다.
삼전은 비록 모바일용 CPU나 운영체제를 직접 만드는 정도의 기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메모리와 디스플레이 같은 주요 부품에 탄탄한 기술이 있고 스마트폰 하드웨어를 '전반적으로' 고퀄로 잘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 구글에서 직접 만든 넥서스 같은 스마트폰까지 제치지 않았는가.;; 어찌 보면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이다.
옛날에 공 병우 박사나 백 남준 같은 분은 독특한 정신 세계에다 엄청난 천재 겸 선각자였다. 겨우 196, 70년대에 남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시도를 했던 분인데..
공 박사는 PC나 PC 통신을 넘어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 시대를 살았다면 세벌식 자판을 거기에다 어떻게 접목했을까?

백 남준은 다들 아시다시피 비디오 아트라는 분야를 새로 개척했는데, 브라운관보다 훨씬 더 얇고 거대하고 화질 좋은 오늘날의 최첨단 디스플레이 장비를 보면 또 뭘 만들 생각을 했을까?
글을 맺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Posted by 사무엘

2026/05/25 08:35 2026/05/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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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 뒤의 차이

왼쪽과 오른쪽은 교통 시설 분야에서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이라는 개념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럼 앞과 뒤의 차이는 어떨까?
굳이 물리적인 앞과 뒤를 의미하는 게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예들이 떠오른다.

1. 글에서: 두괄식과 미괄식

이건 뭐 초등학교에서부터 국어 시간에 배우는 개념이다.
핵심 결론을 먼저 말하는 두괄식은 구조가 명확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업무적인 글에 적합하다. 직장에서 상사, 또는 군대에서 상관에게 뭘 보고를 하는 중인데 "응응 나머지는 됐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지금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이런 반응을 자꾸 받아서는 곤란할 테니 말이다.

미괄식은 저런 두괄식과 달리, 글의 배경이나 논거를 먼저 제시하고 나서.. 쉽게 말해 떡밥부터 던지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나중에 결론을 말하는 방식이다. 논설문이나 문학 작품에 더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그럼 논문은 어떤 범주에 속할까?
글 자체는 서론 본론 다음에 결론이니까 미괄식에 가깝겠지만, 그래도 '초록'이라는 게 있어서 필요에 따라 두괄식의 장점도 땄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에 예고편, 유튜브 영상에 썸네일이 있다면 논문에는 초록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다만, 초록은 영화로 치면 스포일러까지 그대로 들어있는 '더 정직한 요약문'이고, 예고편은 광고에 가까운 요약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논문 초록은 스포일러가 있어야만 하고 그게 정상인 반면.. 영화 예고편은 스포일러가 대놓고 너무 많이 있으면 역효과가 날 테니 말이다.

2. 신학에서: 전천년주의-후천년주의

성경을 믿는다면서 계시록 20장을 도대체 어떻게 생까야 '전천년주의'가 아닌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하다.
분명히 예수님이 '먼저' 와서 성도들과 함께 1000년을 통치한다고 쓰여 있는데, 그걸 어떻게 정반대로 뒤집지..??

계시록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난해한 내용이 많은 책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쓰여 있는 내용을 왜곡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중간에 흰 말 붉은 말이 어떻고 나팔이나 호리병이니 괴물 메뚜기, 짐승 위의 음녀 그딴 것들 디테일은 기억 안 나는데.. 끝에 결말부를 보니 예수님이 백마 타고 오셔서 악의 무리들을 다 끝장내고 성도들과 함께 천 년간 통치한다더라."
이런 결론이 나야 계시록을 그나마 제대로 읽은 거다! 마치 욥기를 중간의 길고 장황한 논쟁 디테일은 까먹더라도 시작과 결말부만이라도 정확히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가 맨 처음에 왜 무슨 의도와 목적으로 무/후천년주의라는 걸 만들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예전부터 거듭 말했지만, 창조과학회에서 창세기 1장 문자적인 24시간 6일을 주장하는 그 노력의 절반, 아니 10%만이라도 써서 계시록 20장의 1천 년도 문자적으로 주장해 줬으면 좋겠다.;;

3. 승용차에서: 구동축의 위치 전륜-후륜

일정 배기량 이하의 작은 승용차라면 전륜구동이 더 효율적이고 좋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전륜이 후륜보다 만들기 더 어려웠다.
그러니 1970년대 초창기 국산 승용차인 현대 포니, 기아 브리사는 1500cc도 안 되는 작은 크기 주제에 후륜구동이었다.

그런데 프랑스는 1770년대 퀴뇨의 증기차부터가 전륜구동 삼륜차였고, 1930년대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도 최초의 전륜구동 승용차였다. (벤츠 모터바겐과는 달리..!) 프랑스가 예로부터 전륜구동 자동차에 뭔가 진심이었던 것 같다.

전륜구동은 타이어의 조향 공간 확보나 접지력 확보 같은 이유로 인해, 앞바퀴가 전방의 엔진룸에서는 최대한 뒤쪽에 배치되는 편이다. 즉, 앞바퀴 펜더가 앞좌석 도어와 바짝 가까이 붙어 있다. 그 반면, 후륜구동은 그런 게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앞바퀴는 말 그대로 최대한 앞쪽에 붙는다.

전륜구동인데도 앞바퀴가 앞쪽에 붙어 있는 차량, 혹은 심지어 전륜구동이면서 V형도 아닌 직렬 6기통을 구현했다는 차량은 엔진이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전륜구동 중에서는 약간 변칙(?)에 속한다.

4. 버스에서 엔진의 위치: 프론트 엔진-리어 엔진

먼 옛날에는 버스와 트럭의 구조적인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트럭 짐받이나 트레일러를 개조해서 그대로 버스처럼 운용하는 경우도 흔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버스는 트럭과는 다른 고유한 방식으로 변모하고 발전했다.

대형 트럭은 운전석이 엄청 높다. 그래서 주변에 사각지대가 많으며, 운전사가 타고 내리는 것도 거의 등산 수준이다. 그 반면, 대형 버스는 그 자체에 비해 운전대가 아주 낮은 게 특징인데..

이건 크고 무거운 엔진을 뒤로 보낸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탑승 공간이 낮아진 덕분에 승객도 계단을 덜 오르면서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게 됐다. 또한, 짐칸 공간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리어 엔진 차량을 개발하는 건 동급의 트럭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을 개척하는 것과 같았다.

버스의 입장에서 리어 엔진이 얼마나 좋았으면 심지어 중간에 한번 꺾이는 굴절버스조차도 통짜 리어 엔진으로 만든다.
맨 뒤에서 잭나이프 현상이 발생하지 않게 자세를 잘 잡으면서 앞의 두 바퀴를 굴리는 건 보통일이 아닐 텐데.. 우주왕복선이 자세를 잡는 것만큼이나 신기한 첨단 기술의 산물이다.

5. 총기에서 탄환을 넣는 위치: 전장식-후장식

그리고, 총기에서도 말이다.
총알을 넣는 위치와, 총알이 발사돼 나오는 위치가 다른 후장식 총기는 총기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 놓은 혁신적인 발명이었다.
총기의 자료구조를 스택에서 큐로 바꾸는 건데.. 결국 구멍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는 것이고 만들기가 기술적으로 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걸 실현함으로써 총신을 더 길게 만들 수 있고, 사수는 조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안정적으로 사격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다 탄피까지 발명되면서 드르르륵~ 연사가 가능해지고 기관총 같은 넘사벽 화기가 등장하게 됐다. 탄환의 궤적을 안정화시킨 '강선' 다음으로 위대한 발명이 탄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거의 박격포 정도나 전장식을 고수하고 있다. 운용하는 방식이 여느 총포와는 다르기 때문에..
중기관총과 박격포는 보병의 개인화기 영역은 벗어나지만 그렇다고 포병은 아닌 그 사이의 무언가인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6/05/21 00:00 2026/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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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낮에 집안이 너무 어두우면 전깃불을 켜기 전에 커튼부터 걷어야 한다",
"너무 덥다고 선풍기나 에어컨을 찾기 전에 먼저 창문을 열고 다른 쓸데없는 열원부터 없애자",
"사형 제도를 없애기 전에 흉악 범죄를 없애야 한다",
"원자력 발전이 위험하다고 난리 치기 전에 원자력 발전에 대한 필요를 없애거나 줄이자",
"세금으로 거둔 돈을 또 복지네 뭐네 풀어제끼기 전에 세금 자체를 적게 걷을 방법을 찾자"

이런 식으로 문제의 근본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복잡한 것은 단순화시키는 쪽으로 해결해야지, 또 다른 복잡함을 만들어서 서로 상쇄시키는 것을 경계하고 꺼린다.
뭐랄까, 온갖 최첨단 기능을 갖춘 고성능 안경이나 휠체어보다는, 그냥 시력 좋은 맨눈과 온전한 발이 사람에게 훨씬 더 낫다~ 이런 마인드이다.

빚이 있으면 갚아야지, 빚을 또 다른 빚으로 돌려막는 건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미봉책은 근본적인 해결이 도저히 절대 불가능하거나 지금 상황이 너무 위급하고 급박해서 미봉책이라도 당장 투여해야 할 때가 아니라면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말이다. 난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보다 선호한다.
특히 안전· 보안 시책을 미봉책 주제에 부작용이 속출할 정도로 너무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거야말로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이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로 정당화 합리화해서는 절대 안 된다.

잘못된 이념에 근거하여 미친 뻘짓을 하다 보니 초등학교에서 애들을 아예 운동장에 나가 놀지를 못하게 하고(사고가 나면 무조건 교사가 몽땅 독박 쓰고 심지어 형사처벌까지) 학교에서 수학여행도 안 보내고 병원에서 바이탈 의사들이 "이러느니 때려치우고 만다~ 다음 생에서는 닥치고 미용으로" 이러는 지경이 된 것이다.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이 글에서는 요즘 말이 많은 교통 안전 관련 뻘짓 중 두 가지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좀 늘어놓도록 하겠다.

1. 교차로에서 적신호 우회전

우회전 신호가 따로 있지 않은 교차로에서의 적신호(비보호) 우회전 말이다.
이건 사실 그 앞의 횡단보도의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서 차들이 다르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

(1) 앞의 횡단보도가 파란불이라면 당연히 그 앞에서 서야 한다. 일시정지. 바퀴가 0.1초만이라도 잠깐 속도가 0이 됐다가 다시 가면 된다. 보행자가 없을 때..
그리고 (2) 우회전 교통섬이 있는 곳이라면 여기도 보행자가 신호 없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으니 일시정지나 그에 준하는 저속으로 가는 게 맞다. 그건 나도 동의하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교통섬 없이 평범하게 90도로 눈치껏 우회전하는 곳이라면..
일시정지를 하더라도 그건 횡단보도를 지나서 옆/뒤에서 달려오는 차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일시정지여야 한다.
전방의 횡단보도 신호가 빨강인데 굳이 그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를 할 필요는 없다.
차가 빨간불 무단횡단자까지 배려하면서 눈치 보고 몸 사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회전을 한 뒤에 마주치는 다음 횡단보도가 파란불이라면 거기서는 물론 일시정지가 맞다.
사람이 없으면 지나가 버리면 되고.. 파란불이 끝날 때까지 멍청하게 멀뚱멀뚱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리고 사람이 아직 한~참 앞에 느릿느릿 오고 있거나, 이미 건너갔기 때문에 우리와 마주칠 가능성이 없다면 그때는 차도 가게 해 줘야 한다!!!!

즉, 요약하면
횡단보도가 파란불이면 반드시 일시정지 했다가 가기.
신호가 없는데 보행자가 튀어나올 수 있으면.. 극저속으로 조심해서 통과. 이런 곳에서는 보행자도 손 들고 건너고, 특히 발이 차도를 디디는 순간부터는 시선도 핸드폰에서 좀 떼야 한다.

난 이 정도까지를 수긍한다. 횡단보도들도 몽땅 다 빨간불인데 우회전 하는 차를 무조건 섰다가 가게 하는 거?? 겨우 이걸 갖고 과태료 때리는 건 굉장한 오버라고 생각한다.
명시적인 파란불 신호로 보호받는 게 아닌 곳에서는 손 들고 건너지 않은 거 5%, 핸드폰만 본 거 보행자한테도 20~30% 과실 물어야 한다고 본다.

2. 에스컬레이터 2열 종대로 서기

또 또 또~~ 평소에 지하철 타지도 않는 윗대가리들이 어떡하면 되도 않은 안전 핑계로 수많은 애꿎은 직장인들을 괴롭히고 시간 낭비시킬까 잔머리 굴리는 거 같다.

에스컬레이터의 주행 속도를 지금보다 2배나 3배로 증속이라도 해 주면, 그래서 걷는 속도보다 확실히 빠르다는 생각이라도 들면 사람들이 또 걸어 올라갈 생각을 안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거대로 사고 위험성이 올라가고, 전기료도 더 들고 등등등 문제가 있으니..

증속을 안 할 거면, 걷겠다는 사람을 막지도 말아야 한다!!!
물론 걷는 사람들도 계단 오르내릴 때보다는 발을 살살 딛고 기계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잖아도 대한민국 건물들의 에스컬레이터는 외국 대비 매우 느린 걸로 이미 악명이 높다.

이상이다.
(1) 독일인지 일부 나라에서는 죄수가 탈옥을 해도 탈옥 자체에는 죄를 물어서 형량을 추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죄수가 탈옥을 하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인지상정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교도소에서 죄수들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탈옥이 발생한 것이니 탈옥이라는 행위에다가는 죄를 묻지 않는다.

오오~ 군인의 탈영은 처벌하면서 죄수의 탈옥은 처벌하지 않는 건가? 마치, 죄수의 직계가족이 그 죄수를 숨겨주려 한 건 도의적으로 형사처벌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단지, 탈옥 과정에서 공공시설을 부수거나 교도관을 폭행했다면 그에 대해서만 벌을 줄 뿐이다.

그것처럼 말이다. 핸들 잡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빨랑빨랑 가고 싶어한다. 쓸데없는 신호대기를 싫어한다.
건너는 사람이나 차가 전무하고 완전 텅 빈 교차로에서 그저 빨간불이라는 이유로 멀뚱멀뚱 병신같이 하염없이 기다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건 마치 인간은 누구나 남보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과 완전히 동급으로 보편적인 욕망이고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이런 인간의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를 말도 안 되는 악법으로 필요 이상으로 억압하고 규제하지 말아야 한다. 선량한 사람을 괜히 범법자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큰 자유와 큰 책임, 또는 소심한 권리에다 작은 책임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2) 몇 년 전에 이태원 압사 참사를 계기로 광역버스들 입석 금지가 시행됐다고 해서 난 벙 쪘었다.
압사 사고하고 자동차 교통 안전이 도대체 천지에 무슨 상관이냐? 입석을 금지시키니 저 멀리 용인이나 파주 베드타운에서는 안전이고 나발이고 차를 못 타서 아예 출근을 못 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는데?

물론, 광역버스가 입석 포함해 아침에 직딩들을 5, 60명씩 태우고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어떤 미친놈이 졸면서 자가용 몰다가 정체구간에서 앞차를 피하려고 버스 전용차로로 끼어들어왔다고 치자. 그러면 버스는 꼼짝없이 그 자가용과 부딪힐 것이고 벨트도 못 맨 입석 승객들은 아무래도 더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다.

그럼 승객들은 그냥 로또 급으로 똥 밟은 것이고 재수없는 일을 당한 것이다. 모든 과실과 손해보상은 버스 전용차로를 침범한 멍청한 가해자에게 돌리면 되는 것이고, 이걸 뭐 다른 사회 탓 제도 탓을 할 수는 없다.

그 사람들은 at your own risk를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입석 신세로 승차해서 고속도로로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벨트를 못 매는 걸 처음부터 감내하고 탑승한 이상, 거기서 자기 안전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뭐 예고된 참사였네 인재였네 안전불감증이 어떻고 호들갑 떨 사항이 아니다!

마치 개인의 적성과 취향 때문에 일부러 선택한 가난을 갖고(돈 안 되는 분야로 전공..) 사회 제도 불평등 탓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급이다.
사고 예방을 위한 다른 모든 근본 조치는 버스를 증차하거나 버스 회전률을 더 올리는 것보다 더 좋거나 더 우선시될 수는 없다!!

(3) 옛날에 일본에서 신칸센을 처음으로 개발할 때 말이다.
일본의 엔지니어들은 열차가 시속 200 주행 중일 때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도대체 어떡해야 차를 안전하게 급정지 시킬 수 있을지 눈물나게 고민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유의미한 방법이 없다는 걸 인지하자 결국 급정지 시킬 일을 없게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모든 선로는 건널목이 전혀 없이 고가와 터널 형태로 만들게 됐다. 1960년대 초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런 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옆의 어느 나라에서 하는 짓거리처럼 그냥 몽땅 다 제한 걸고 규제만 하면서 “교통사고를 없애려면 자동차를 없애면 된다, 자동차를 사람보다 더 빠르게 달리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이딴 건 정상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런 식의 융통성 없는 멍청한 비효율 조치들이 난 정말 너무 싫다.
제아무리 DDT가 다른 부작용과 해악 때문에 금지됐다지만, 지금 당장 돈도 없고 말라리아로 사람들이 픽픽 죽어나가고 DDT 말고 아무 대안이 없는 곳에서까지 무식한 규제를 적용해서는 되겠는가?

저딴 식의 어린이 보호구역 24시간 시속 30km, 수학여행 전면 금지/폐지, 아침 출근 시간대에도 에스컬레이터 몽땅 2열 종대, 적신호 우회전 몽땅 삥뜯기..
나라에서 하는 짓거리가 다 저런 식이라는 것이다. 이 나라에 대한 호감이 그냥 뚝뚝 수직낙하한다.

지가 정신 안 차리고 멍청하게 실수해서 사고가 난 걸 국가 탓 헛짓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가족이 사고를 당한 건 안타깝지만 그건 보험사로부터의 금전 보상, 그리고 악질적인 경우 가해자한테 가혹한 형사처벌.. 이걸로 충분하다!! 훌훌 털어내야 한다.

화풀이 하듯이 자기 집앞에만 온통 신호등 떡칠, 과속방지턱에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 이런 병신짓 한 사람들은.. 자기도 전국의 아파트 단지로 차 끌고 갈 때마다 200미터를 채 못 간 간격으로 신호등 정지, 2킬로미터 이동하는 데 30분으로 자기가 심은 흉악한 씨앗의 사악한 열매를 단단히 거둬 봤으면 좋겠다. 이런 거야말로 미개하고 야만적인 쌍팔년도 군대식 연대책임 연좌제 단체기합의 정확한 연장선이지 않은가?

제발 뒷사람, 뒷차를 배려하고 남의 시간을 배려하는 선진적인 교통 문화가 좀 정착했으면 좋겠고, 큰 자유와 큰 책임이 정착했으면 좋겠다. 정신병 급의 안전 까스라이팅도 좀 작작 대강 쳐했으면 좋겠다. 특히, 앞을 안 보고 스마트폰만 보다가 사고가 나면 보행자한테도 책임을 좀 매겼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05/15 08:35 2026/05/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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