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급 사회

군대라는 곳은 사회의 그 어느 조직보다도 상명하복 원칙을 따라 돌아가는 보수적인 계급 사회이다.
그런데 옛날 쌍팔년도 군대에서는 병 사이에서 단순히 고참의 갈굼과 구타· 가혹행위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군기· 기강과 반대되는 이상한 적폐도 있었다.

  • 병장들이 개기면서 초임 소위 장교를 길들인다거나.. (1994년엔 이것 때문에 무려 육사를 나온 장교가 항의의 뜻으로 무장 탈영을 벌이는 사고가 터지기도 함)
  • "나 간부다 임마" 한 마디에 초병이 어쩔 수 없이 간부들을 암구호 없이 들여보내 줬음. 그러다가 무장공비· 간첩까지 통과시켜 주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저런 것에 비하면 말년병장이 이병 동기 코스프레를 하면서 고참들 뒷담화를 유도해서 어리버리한 신병을 골탕먹인다거나.. 20대 중반의 새파란 소대장이 "자네가 행보관/주임원사인가?"라고 지껄이다가 중대장/대대장에게 까인다거나.. 하는 것은 차라리 귀여운 사례라 하겠다.
오랫동안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돌던 아이템들이지만, 이젠 인터넷 매체를 통해 다 알려져 버린 지 오래다. 그러니 군대에 갓 입문한 병이나 소위라도 속거나 실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국군은 경영 효율과 위계질서상의 이유로 인해, 복무 조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제약 내지 특성이 있다.

  • 여군은 어떤 형태로든 병 복무가 허용되지 않는다. 비전투 병과도 예외가 아니다. 차라리 사관학교에 들어가면 여자 생도도 남자 생도와 동급의 혹독한 전투 훈련을 받은 뒤 장교로 임관하지만, 여군 병 같은 건 없다.
  • 또한, 남자도 한번 병으로 복무해서 만기 제대했다면 절대로 병으로 현역 복무를 다시 할 수 없다. 아무리 저출산 때문에 병역 자원이 부족하다 해도, 그리고 심지어 당사자가 원한다 해도 말이다.
    병이 군대에서 지위가 제일 낮은 계급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 낮은 병이 짬만 지나치게 많이(?) 먹은 상태로 예비군도 아니고 현역병과 한데 섞여 있는 건 위계 질서상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말뚝 박으려면 최하 부사관으로 가야 한다.
  • 장교로 전역한 사람이 나중에 부사관으로 다시 군생활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장교 시절의 군번· 군적은 완전히 말소된다. 일개 중사가 "내가 소싯적에 대위였을 땐 말야" 이렇게 나대는 건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관학교(특히 육사) 퇴교자의 경우.. 비록 장교가 되려다가 짤렸거나 스스로 뛰쳐나오긴 했지만, 한때 최정예 엘리트 장교 양성 코스를 경험했던 애들이다. 그러니 이런 출신인 병이나 부사관이 자대에 오면 기존 간부들이 이미 사전에 다 파악하고 예의주시한다고 하더라. 나이답지 않게 전투복이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이고 남다른 연륜과 짬이 느껴질 테니 말이다.

원래 군대에서 병은 중졸 이상, 부사관은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정하고 운용하는 계급이다. 장교만이 대졸 이상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그토록 군국주의 전쟁광이던 나치 독일과 일제도 대학생은 재학 기간 중에 군 징집을 보류하고, 가능한 한 졸업 후 장교로 우선 선발했었다.
대학생이라는 건 학부만으로도 그 정도로 희소한 인재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징병제와 높은 교육열이 맞물리다 보니 대학생이 너무 흔해지고 병의 평균 학력이 너무 올라간 감이 있다.

2. 하이브리드형 인물들

세상에는 남들이 하나조차도 취득하거나 합격하기 어려운 면허· 자격· 학위를 둘 이상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괴수가 종종 있다.

  • 한 사람이 고시를 여러 개 붙었다거나.. (사법 시험 + 행정 + 외무)
  • 변호사 면허와 의사 면허를 동시에 소지했다거나..
  • 같은 변호사 안에서도 한국 변호사와 미국 변호사 면허를 동시에 소지..
  • 외국어를 네댓 개쯤을 모국어처럼 구사하거나..

이쯤 되면 분야를 불문하고 머리 싸움의 달인이요 공부 기계, 공부의 신이 아닌가 싶다. 평생 먹고 살 걱정 없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_=
대학교에서 학사는 부전공· 복수 전공이나 심지어 전과· 편입(일반/학사)이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사관학교는 학사일정이 굉장히 빡세며 애초에 군사학을 포함해 학위가 두 개로 나오는 구조이다.

박사는 취득이 워낙 오래 걸리고 어렵기 때문에 명예박사가 아닌 이상 복수 소지가 사실상 없다. 한 분야에서 박사 졸업을 했다면 이젠 또 다른 학위를 수집(?)할 게 아니라 그 좁고 깊은 기존 바닥에서 계속해서 연구 경력을 더 쌓으면서 학력 인플레를 극복하고, 가방끈 길이에 걸맞은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각종 연구소에는 교수를 꿈꾸는 포닥들이 드글거린다.

학사는 그냥 시험 점수와 평점이 중요한 과정이니, 졸업식 때도 성적 우수자에게 상을 주고 졸업장에 magna cum laude라고 이 사실을 기재한다.
박사는.. 이제 자기가 걸어다니는 프로 연구자이다. 시험 점수가 아니라 자기 학위논문의 제목과 주제가 스펙이요 간판 역할을 해야 한다.
저런 것에 비해 석사 학위 둘은 일부 교수나 능덕 중에 가끔 눈에 띄지만, 그렇게까지 레어한 아이템이 아닌 것 같다. 위치 자체가 좀 애매하니 말이다.

갑자기 군대와 관계 없어 보이는 얘기를 왜 길게 늘어놓았느냐 하면, 군 내부에서도 저런 짬뽕형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수륙 양용, 도로-레일 겸용 차량처럼 말이다. 병, 장교, 부사관(+군무원)을 다 경험한 것 정도만으로는 희소성이 부족하고,

  • 육군 병장, 공군 중사를 거쳐서 해군 장교(헐.. 나이에 안 걸렸나?)로.. 3군 3계급을 다 경험한 분도 있다..;;
  •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김 영옥 대령(1919-2005) 같은 분은 분명 한국인이고 6· 25 참전도 했지만.. 미군 장교 신분으로서 참전했다.
  • 하긴, 옛날에는 일본, 중공, 북한에 이어 남한으로 깃발을 바꾸면서 매번 군번을 새로 받았던 한국인 병사도 있었다. 워낙 혼란하던 시절을 살았으니..

3. 스포츠와의 비교, 그리고 실적

군인과 경찰은 하는 일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제복 입고 무력을 행사하고 때로는 순직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런데 신체 능력이 좋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군인을 운동 선수에다가도 얼추 비유할 수 있다.

물론 군대 사격과 스포츠 사격은 서로 다르며, 군대의 총검술과 스포츠에서 다루는 격투기 무술도 관점이 동일하지 않다. 그래도 공통점이 있긴 하기 때문에 체대 출신이 군생활도 더 잘하는 편이다.

이 두 업종의 종사자들은 생업을 위해 무슨 연구 개발을 하거나 세일즈 마케팅을 하지는 않는다. 그럼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세계 규모의 체육대회인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받으면..
일단 포상금 명목으로 6천만 원이 일시불로 들어온다. 그리고 평생 연금이 매월 100만원씩 들어온다.

우리나라가 스포츠 인프라가 열악하고 인재 양성을 위한 국가 투자가 인색하네 마네 말이 많지만.. 그래도 일단 실적을 낸 사람에 대한 특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후하다. 우리나라는 그깟 메달에 연연하지 않는 생활 체육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금메달에 목숨 거는 개발도상국 소수정예 엘리트 체육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포상만 있는 게 아니다. 미필 남자의 경우 군 완전 면제는 아니지만 꿈에도 그리던 병역특례 보충역 대체복무라는 엄청난 특권이 주어진다. 아시안게임에서는 반드시 금메달만 받아야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아무 메달이나 받으면 된다. 병역을 해결하려는 절박함 때문에 올림픽 경기서 마치 약 빤 것 같은 초인적인 퍼포먼스가 나온다니, 이를 합법적인 도핑에다 비유한 '면제로이드'라는 말까지 있다.

이렇듯, 운동 선수는 대회 성적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냉정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스포츠는 그 자체가 물리적으로 뭔가를 생산하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먹고 사는 프로 선수는 국민 세금 지원이 아니면 대기업 후원이 있어야만 생계가 유지될 수 있다. 이런 프로의 세계에서 남의 돈이 헛되이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결국 성적이 유일하다.

스포츠계와 마찬가지로 군대도 그 자체는 오로지 소비만 하는 집단이다. 생산을 하는 게 없다. 그렇다면 군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군을 잡거나 저지해서 나라를 지켰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옛날 전근대 시절로 치면 적군의 수급을 제출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민간인은 수상한 걸 목격했을 때 신고만 정확하게 잘하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거물 월척을 낚는 데 성공할 경우 인생역전 급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군인은 그런 신고를 받는 입장이며, 병사가 상부에게 그걸 보고하는 것까지는 군인이 원래 당연히 맡아야 하는 업무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사가 포상금을 받는 조건은 지금까지 배운 대로 적군을 제압하고 실제로 사살 또는 생포까지 했을 때 성립한다. 적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박혀 있었고 정황상 그 총알을 누가 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이건 뭐.. 살인 사건의 범죄자가 밝혀지고 잡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이 방면으로 제일 유명한 사례는 1980년 3월 23일, 한강 서부 전선에서 경계 근무 중에 강 건너 침투하던 무장공비를 3명이나 사살한 황 중해 일병(그 당시.. 22세)과 그 부사수이다. 그는 1980년 물가로 1천만 원, 정말 집을 살 만한 액수의 포상금을 받았다.

어디 그 뿐이랴? 보통 전사· 순직했을 때에나 받는 1계급 특진을 살아서 받았으며, 6개월 사단장 휴가와 6개월 연대장 휴가를 연달아 받아서 남은 복무 기간 중에 무려 1년을 그냥 합법적으로 탱자탱자 놀았다. 그리고 휴가 떠날 때는 별들과 함께 헬기 타고 금의환향 했다!

그러고도 남는 것이, 이 병사의 상관들은 생판 누군지도 몰랐던 부하 한 명 덕분에 자기 근무 실적과 진급길까지 확 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굽신굽신 할 수밖에.. 자기 부대에서 탈영 사고· 자살 사고가 터져서 간부들의 인생이 덩달아 꼬이는 것과는 정반대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그 시절엔 탈북자들을 귀순 용사로 영웅시했던 것만큼이나, 반대로 적군을 사살한 아군이라면 이렇게까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상으로 띄워 줬다. "참 잘했어요"가 아니라, "참 잘 죽였어요~"다.
이런 일을 하라고 세금을 쳐묵쳐묵하고 있는 게 군대이며, 군대의 존재 의의를 제일 드라마틱하게 입증한 병사가 나왔으니 이렇게까지 넘치도록 포상을 해서 빨갱이 소탕에 대한 동기를 확실하게 부여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가 군대에서 전방 근무를 하다가 적을 실제로 마주치고 사살까지 하게 될 확률은 로또 급으로 한없이 낮다.
복권은 억대의 금액에 당첨되더라도 불로소득인 관계로 세금이 왕창 떼이기 때문에 당첨의 기쁨이 적지 않게 반감된다. 그 반면, 이런 포상금이나 현상금은 일체의 세금 공제 없이 액면가가 그대로 일시불로 입금된다! 마치 책에는 관세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다못해 대회 상금 같은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세금을 약간이나마 떼고 입금되곤 하는데 국가에서 국방· 안보· 치안과 관련하여 직통으로 주는 상금은 세금 오버헤드가 없다. 학교 시험을 빠지더라도 공결은 유일하게 아무 페널티가 없듯이 말이다. 이것도 놀라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사건 때 무장공비를 사살한 병사에 대해서도 무슨 헬기 타고 금의환향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억소리 나는 액수의 포상금과 함께, 단순히 안보관 잘 외우고 사격 잘한 형식적인 포상휴가와는 차원이 다른 긴 포상휴가가 주어졌다고는 한다.

옛날에는 잘 알다시피 온통 반공 웅변 대회에다 "때려잡자 공산당" 그랬다. "무장공비의 말로(末路) -- 이 음흉한 악당은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대가리에 납덩이가 박혔습니다~ 고소하다 쌤통이다 꼴 좋다!)"라고 사살된 공비의 시체 사진을 모자이크도 없이 그대로 교보재로 삼아서 공개 전시까지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김 영삼 문민정부는 시기도 1990년대이고 그 정도로 살벌하던 분위기는 많이 사그러들었으니, 강릉 무장공비에 대해서도 민간인 신고자의 포상 말고 군인에 대한 포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남파 공작원' 같은 중립적인 명칭 말고 '무장공비'라는 단어부터가 '공산 비적'-- '떼를 지어서 살인· 약탈을 일삼는, 무장한 공산당 도둑놈 패거리'의 준말이다. (공작원의 '공'과 공비의 '공'은 한자가 완전히 다르다!) '북괴'에 필적하는 굉장한 멸칭인 셈인데, 저건 단순 멸칭이 아니라 놈들이 하는 짓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뭐 어쨌든, 무장공비를 사살했던 저 황 일병은 그 뒤로 말뚝 박아서 부사관으로 30년 가까이 더 복무하다가, 지난 2012년에 50대 중년의 나이로 상사 계급으로 전역했다고 한다. (☞ 관련 링크) 아무렴, 계급 특진도 전사해서 받는 것보다는 살아서 받는 게 더 나으며, 똑같이 국가로부터 예우받더라도 보상금보다는 포상금을 받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뭐랄까, 똥군기와 명예로운 죽음을 너무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특진이라는 걸 전사자 말고는 아무에게도 부여하지 않고.. 항복이나 포로 체험을 금기· 죄악시해 왔다.
미국은 관행이 좀 다르다. 큰 공훈을 세운 군인(전사자 포함)에게 그야말로 천조국 스타일의 어마어마한 혜택이 뒤따르는 명예 훈장을 수여한다. 2차 세계 대전 도중에도 군인들 인권과 복지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뛰어났고 말이다.

다만, 계급 자체는 그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전시에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서 누구에게 높은 직책을 주느라 계급을 일시적으로 올렸다면, 전후에는 계급을 원래대로 되돌리기까지 했다.
본인이 보기에도 미국 스타일이 훨씬 더 합리적이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14 08:28 2018/05/1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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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군

지금으로부터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과거인 1940년대 말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건국되었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군대, 즉 국군이 창설되었다. 마치 성경의 천지창조에서 궁창 상하의 물이 나뉘듯이 국방 경비대인 육군에서 해군과 공군이 차례로 분리되어 나갔다(1946~49).

조선(또는 대한 제국)이 망해 가던 1907년엔 있던 정규군도 해산되고 군인들이 외세에 의해 강제로 무장 해제를 당했는데.. 그로부터 거의 정확히 40년 뒤엔 단군의 후손들도 정규군을 가진 독립 국가로서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이웃의 일본은 전범+패전의 대가로 명목상으로는 아예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됐으니, 그것과 비교해도 행로가 완전 극과 극이 됐다.

정상적이라면 대한민국 국군은 남동쪽의 바다 건너 일본을 견제하고 강 건너 중국과 소련을 마주 보면서 나라 지키는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괴뢰로 시작한 북괴의 존재는 안 그래도 좁은 국토를 반으로 분단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숨 돌리고 천천히 자연스럽게 발전할 틈도 주지 않았다. 상황을 너무 긴박하고 급격하게 바꿔 놓았다.

2. 즉결처분

6· 25 전쟁 시작 당시에 국군이 얼마나 허둥대고 당황했으며 싸움다운 싸움도 못 하고 전선이 붕괴했으면, 즉결처분이라는 극약 중의 극약 개막장 처방이 1년 남짓 시행되었을 정도였다. 적진에서 상관의 명령 없이 무단으로 후퇴하고 뒤로 내빼는 부하는 일벌백계 사기 진작 차원에서 상관 재량으로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현장에서 바로 쏴 죽여 버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옛날 전열보병 전투 시절처럼 "적의 총탄에 장렬히 산화할 확률 90% vs 아군 지휘관에게 맞아 뒈질 확률 100%"를 만든 거다.

하지만 실제로는 읍참마속은 개뿔.. 장군님 훈시 하는 중에 졸거나 몸 움직였다고, 혹은 상관이 탄 차량 주변에서 얼쩡댄다고 부하를 쏴 죽이는 미친놈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병뿐만 아니라 초급 장교까지 상관의 기분대로 괘씸죄로 즉결처분 당했다.
이거 뭐 계급 없는 군대 내지, 린치가 허용되는 사회만큼이나 군대 꼬라지가 개판오분전이 따로 없었다.
즉결처분은 1950년 7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년 남짓 시행되다가 결국 폐지되었다. 이런 야만적인 제도가 부활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다.

3. 여군 병사

"여러분들은 해병 몇 기라고요?" / "1077기입니다." / "난 해병대 4기예요." / (ㅎㄷㄷㄷㄷㄷㄷ)
예전에 2010년 무렵이던가, 요런 TV 화면 캡처 짤방이 나도는 걸 보신 분이 있을 것이다.
해병대는 안 그래도 자기들끼리 선후배 기수놀이에 완전 목숨을 거는 집단인데, 그 당시에 저 말을 들은 현역병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지 싶다. (내 밑으로 전부 대가리 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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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기적인(!) 기수를 인증하신 저 어르신은 제주도에서 살다가 6· 25 전쟁 때 파릇파릇한 17세의 나이로 학도병 명목으로 참전했던 분이다. 그 당시 제주도는 4· 3 사태 같은 비극도 있고 해서 "난 빨갱이가 아니요" 누명 벗기 차원에서 해병대 같은 데에 자진입대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계 미국인들이 애국심을 입증하기 위해 미군에 특별히 자진입대 많이 했듯이 말이다. (진주만 폭격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쪽발이'에 대한 인식이 최악 막장으로 치달았었기 때문)

그런데 문제는 저분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라는 점이다. 난 지금까지 이 점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자라고 해서 부사관급 이상의 간부로 입대한 게 아니고, 군 병원이나 군수공장에서 일한 것도 아니다. 미인계 차원에서 특별히 양성되어 몰래 침투된 스파이냐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다. 여느 남자 학도병들과 마찬가지로 기초 군사훈련만 받고 나서는.. 정확한 병과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단의 병 신분으로 투입되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는 총질까지 하는 여자 전투병이 모병 형태로나마 1970년대까지 있었다고 한다. 여군 훈련병만 입소하는 전용 훈련소도 있었다니, 여성 삼청교육대만큼이나 놀랍기 그지없다. 이스라엘군만 그랬던 게 아니구나!
단지, 전쟁이 끝나면서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몰렸던 시기도 끝나자 거기엔 아무도 안 가서 관련 규정은 유명무실한 사문으로 전락했다.

솔직히 여자가 병으로 입대하는 건 국가가 아닌 개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봐도 아무 메리트가 없었다. 우리나라가 왕창 못살던 시절엔 당장 남자 장교들도 봉급이 쥐꼬리 수준이었다고 한다. 고학력자 고급 인력이 워낙 부족했던 관계로 진급 적체야 지금보다 덜했을지 모르지만, 그게 딱히 고소득과 우월한 복리후생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으니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하물며..;; 강제 징집 대상도 아닌 여자사람이 최말단의 병으로 가서 고생해 봐야 돈을 많이 모으겠나, 경력 커리어를 쌓겠나 도대체 뭐..?? 시골 깡촌에서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식구가 10명이 넘게 있어서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되는데, 배운 것 할 줄 아는 건 없지만 군대에 가면 최소한 공짜로 먹고 자면서 시간을 벌 수 있다.. 이 정도 막장 상황이 아니고서야 여자사람이 병으로 입대해야 할 이유와 동기는 하등 없었다.
결국 1974년 1월 1일부터 군인사법의 개정으로 인해 여군은 간부만 모집하게 바뀌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4. 6· 25의 여파로 남조선이 바뀐 것들

  • 개전 초기에 삽질했던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정말 강하게 남았다. 우리나라 수뇌부는 북괴의 추가적인 전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덩치를 쪽수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상시(평시에도) 징병제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국과 창군 직후 처음부터 이랬던 게 아니다.
  • 신 성모 같은 민간 출신 X맨이 너무 병신짓을 하면서 안 좋은 선례를 남기는 바람에 우리나라에 국방부 장관에 문민통제 같은 건 정서상 물 건너 갔다. 참모총장이 전역식 하고 나서 1시간 뒤에 곧장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하는 일이 벌어질 정도이니 이건 사실상 무늬만 민간인일 뿐이다.
  • 장교(육군 기준)는 누구든지 반드시 야전 통솔 능력이 있어야겠다는 교훈을 받아, 출신과 병과를 불문하고 임관 직후에 소대장은 거의 무조건 일정 기간 하게 됐다.

5. 1. 21의 여파로 바뀐 것들

6· 25 이후로 이것에 준하거나 심지어 이를 능가할 정도로 남조선에 강렬한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은 바로 1968년의 1· 21 사태임. 순진한 건지 거 참 "내레 박 정희 목(혹은 멱?) 따러 왔수다"라는 인터뷰 내용은 그야말로 광역 어그로를 끌었다.

  • 5분 대기조, 향토예비군
  • 군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주민등록번호 도입
  • 우리도 무작정 주석궁 침투와 김 일성 암살을 목표로 북파공작원을 양성함. (훗날 실미도 사건)
  • 군 복무 기간이 2년 반에서 단축될 예정이었는데 그 계획 완전 나가리 남. 병은 육해공 공통 3년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역대 최장 기간으로 늘었으며, 그게 무려 1984년까지 이어졌다. 울 아버지 세대가 이때 왕창 피 봤다.
  • 교련 왕창 강화. 학교까지 반쯤 "때려잡자 공산당" 병영화
  • 북악· 북한산 일대의 주요 등산로와 도로는 완전 통제 봉인 (21세기가 돼서야 해금)

물론 이런 살벌한 반공 분위기는 아무 근거 없이 조성된 건 아니었다. 1969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울진· 삼척 무장공비에, YS-11기 납북 등 북괴의 대남 도발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엔 땅굴도 발견됐고. 그러니 경각심이 최고조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6. 박 정희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 우리나라가 옛날에는 직업 군인이라고 해서 딱히 풍족하게 산 게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박 정희도 생계를 위해 무려 중령 계급으로도 몰래 투잡을 뛰어야 했을 정도이며, 장인인 육 영수의 부친은 영예로운 군인은 개뿔, 돈 못 버는 무능한 사위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신부 쪽 집안이 당대로서는 꽤 잘사는 집안이었음)

박 정희의 장인은 1960년대 중반, 임종을 얼마 안 남기고서야 자기가 큰 인물을 지금까지 못 알아봤다고 사위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때는 이미 사위가 혁명인지 쿠데타인지 어쨌든 나라를 통째로 뒤집어엎고 대통령이 된 뒤였으니...;;;; 박 정희는 일제 강점기 때 교사 하던 시절에 자기를 무시하던 일본인들에게도 나중에 '긴 칼 차고' 돌아와서 설욕하기도 했다. 정말 출세욕 야망이 있고, 뭔가 남에게서 무시당한 걸 되갚는 걸 잘한 듯하다.

육 영수 여사는 이름부터가 좀 남자 같고(=_=;) 키도 굉장히 커서 남편보다 더 컸다. 결혼식 때 주례가 "신랑 육 영수 군과 신부 박 정희 양"이라고 충~분히 실수할 만했으며, 게다가 저건 실화다.
기가 왕창 셌을 것 같고 부부싸움을 하면 진짜 '육박전'이 벌어졌을 법도 해 보이지만, 이분은 남편 내조를 잘 했고 인품이 매우 훌륭했다. 역대 대통령의 영부인들 중에서는 제일 많은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다. 다른 영부인도 아니고 하필 이런 분이 테러리스트의 흉탄에 맞아 비명에 간 것은 대통령 개인에게나 국가적으로나 큰 불행이었다.

7. 야전군 편제 개편

군대 조직의 단위라는 건 분대부터 시작해서 소대, 중대, 대대, 연대로 쭉 올라가서 나중에는 사단, 군단, 야전군, 집단군으로까지 마치 셸 정렬의 묶음 단위처럼 규모가 커진다.
우리나라는 한동안 육군의 야전군 편제가 전방(제1)과 후방(제2)이라는 둘로만 나눠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73년에는 전방이 서부 경기도 전선과 동부 강원도 전선으로 나뉘어서 그 중 서부 전선을 담당하는 제3야전군 사령부가 창설되었다. 포스타 대장이 맡는 보직이 하나 더 생겼다.

그로부터 거의 30년 뒤인 2007년엔 후방을 담당하는 제2야전군 사령부가 경영 효율 명목으로 '제2작전 사령부'로 격이 미묘하게 낮아졌다. 마치 화투에서 삼광이 비삼광으로 바뀐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앞으로 10여 년 뒤 근미래 계획으로는 제1야전군과 제3야전군이 '지상작전사령부'라는 이름으로 다시 통합될 예정이라 한다. 역사는 돌고 도는지 1973년 이전 체제로 다시 회귀하는 듯.

뭐, 저출산과 전문화 기계화 때문에 군의 규모 자체는 앞으로 계속 작아질 수밖에 없긴 하다. 무인운전과 기계화 전자화 때문에 철도나 항공 쪽도 기관사 조종사 채용이 계속 줄듯이 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6· 25 트라우마 때문에 애시당초 몸집만 의도적으로 너무 부풀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징병제를 시행하니 옛날에는 징집 대상 인원이 군 TO를 능가하기도 했을 정도였기 때문에 병역 면제 조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널널했으며, 잉여 인원을 처리하기 위해 방위병 같은 것(오늘날 공익, 사회 복부 요원의 전신)도 있었다.

그나저나 사관학교도 3군 통합하고 임관식도 3군 연합으로 하겠다는 말은 한 10여 년 전부터 나돌았는데 그건 각 군 분위기 텃새 때문에 실현될 기미가 안 보인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3군의 상호 관계가 과거 일본군 육군 해군 급의 개막장인 것 역시 물론 아니니..

8. 계급 체계

국군 창군 당시에는 계급 체계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앞에서 6· 25 전쟁 얘기를 했는데, 그 시절에는 짬밥이 주먹밥으로 나왔었고 계급 체계도 지금과 같지 않았다. 병과 부사관의 계급 구분이 지금만치 분명하지 않았으며 병 신분의 계급은 사실상 두 종류밖에 없었다(하사, 이등중사?).

그러다가 상병· 병장 계급은 1962년에야 추가로 생겼다. 그러니 나중에 노 무현 대통령이 당시 월남전 때문에 진급 TO가 부족해서 병장이 아닌 상병 제대를 했네 하는 이야기의 배경이 성립하는 것이다.

지금이 군 복무 3년씩 하던 시절도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병의 계급 수가 복무 기간 대비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 병장 빼고 3계급 정도로만 바꿔도 되지 않을까?
그 반면, 부사관은 복무 기간 대비 계급 수가 부족한 감이 있다. 대부분이 중사이고 상사 약간이다. 하사는 너무 금방 끝나고 원사와 준위는 여전히 너무 적다. 현사인지 영사인지 추진하려다 파토 난 거 알고는 있지만, 거기야말로 계급이 하나 좀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9. 군인의 간지, 군인에 대한 예우

군인이라면 굳이 사관 생도가 아니라 최말단의 이등병 쫄병이라 해도 최소한의 '가오'와 체통· 위신이 요구되는 게 있다.
일례로, 군인은 상급자에게라도 넙죽 고개를 숙이지 않아야 한댄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군인은 민간인 스타일의 평범한 인사 대신에 그냥 손 끝을 이마로 가져가는 거수경례를 한다. 군인이 전투모 벗고 고개를 숙이는 건 아예 전사해 버린 전우 앞에서 슬픔을 표할 때에나 하며, 이것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그냥 경례로 대체된다.

또한 극형을 당할 만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도 여느 민간인은 교수형을 당하지만, 군인에게는 동급의 전쟁 무기를 동원한 총살형이 쓰인다. 심지어 과거에 일본과 나치 독일의 2차 세계 대전 전범들 중에도 어차피 자기를 사형에 처할 거면 군인답게(?) 총살형을 내려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괜히 별 쓰잘데기없는 사소한 디테일에서 명예니 체통이니 따진다는 생각도 든다만, 이런 차이도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하지는 않는 듯하다.

잠시 소재를 바꿔서, 태평양 건너 저 멀리 있는 미국, '아메리카', 일명 천조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해 보자.
참 대단한 게 많은 부러운 나라이다. 세계 최강의 과학 기술 강국· 군사 강국· 선진국에 땅 넓고 자원도 풍부하고, 무려 3억이 넘는 인구를 가졌으면서 국민 대부분이 집 있고 차 있고 총 가진 중산층이다. 이런 특이한 나라는 세계에서 미국이 유일하다.
세계 최초의 마천루 대도시를 이미 1900년대 초에 이뤘고 마이카 시대 같은 건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 강점기 때 이미 시작됐다.

어떻게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존재 가능했을까? 기본이 잘 돼 있다.
얘들은 거짓말· 위증, 학문 부정행위에 자비심이 없다.
그리고 강력한 문민통제가 정착한 한편으로 군인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예우를 하고 있다. 그 사례는 인터넷 검색 조금만 하면 줄줄이 쏟아져 나오니 굳이 여기서 또 소개하지 않겠다. 이런 게 미국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돈이 많아서 저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인드가 저러니까 그 시너지가 축적되어 저런 부자 나라가 된 거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우리나라는 겨우 이 좁아 터진 한국 땅에서 같은 민족끼리도 갈라져서 싸우느라 정신 없었는데 쟤들은 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미군은 그야말로 세계 각국에서 싸우기 때문에 국가 유공자라는 마인드에 담긴 심상부터가 domestic이 아닌 international이다. 뺑이 치는 쫄병 '군바리' 아니면 군사정권 이런 거나 떠오르는 우리나라와는 심상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뭐, 미국 칭찬하면서 글을 시작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제복 입고 근무하는 사람들, 근무 중에 긴급피난이 허용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경찰, 군인, 소방관, 선장· 승무원)
예비군 훈련 따로 없이 전쟁 중에도 자기 직업이 그대로 유지되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런 것과는 완전 상극인 직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21 08:31 2017/02/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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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이야기

요즘은 사회 전반에 비밀이라는 게 갈수록 없어지고 내부가 개방되고 있다. 어떤 폐쇄적인 집단에 대해서 직접 소속된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던 내부 사정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진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내부의 오랜 비리나 부조리가 폭로되고 시정되기도 한다. 그러니 비밀이 없어지고 투명해지는 것 자체는 대체로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굳이 북한 주민 인권 같은 거창하고 정치적인 얘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폐쇄적인 조직 중 대표적인 예인 군대를 예로 들면.. 2000년대 중후반에 연재되었던 주 호민 씨의 웹툰 <짬>이 미필자나 여성을 상대로 군대의 내부 사정을 대중적으로 잘 알렸다. 그저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관제언론인 국방일보 같은 것 말고 말이다.
그 뒤로 2010년대에는 군대 안에서도 더욱 희소한 병과를 소재로 한 <DP 개의 날> 같은 웹툰까지 발표되었다. <짬>의 주인공이 평범한 육군 운전병인 반면, 저건 주인공이 탈영병 체포조 소속인 헌병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 복지 음지, 소록도, 무슨 특수부대, 극한 직업, 원양어선, 국정원 내부, 대성동 주민 등등..
이 좁은 대한민국 땅에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나 싶은 이야기들에 본인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군대 체험으로도 모자라서 교도소 내지 그에 준하는 피의자· 피고인 신분 체험기까지 인터넷에 종종 올라와서 유명세를 탄 게 있다. 직접 범죄를 저질러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고, 유경험자는 부끄러워서라도 공유를 꺼리니 대중적으로 알려질 일이 극히 드문 아이템인데도 말이다.

예전에 '마사토끼'라는 웹툰 작가가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라고.. 기소되어 재판을 거쳐 벌금형을 받기까지의 실화 각색 만화를 공개한 적이 있었다. 이분에 대해서 다른 만화 작품은 모르겠고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풍자하여 탐정 만화를 그린 걸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봤었다. (그러고 보니 <빵점동맹>에서는 그림 말고 스토리 작가이기도 했구나.)
그랬는데 자신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원에 출두하고 벌금형을 받은 체험기까지도 선뜻 웹툰 소재로 선택해서 공개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스펙 없던 어떤 지방대 문과 계열 졸업생이 노량진에서 죽어라고 공부한 끝에 영어, 국어, 국사 등의 맥을 차례로 잡고 국가직· 지방직 공무원 시험 합격 3관왕을 달성했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사람은 전문 웹툰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꽤 준수한 그림 실력으로 자신의 시험 준비와 시간 관리 요령을 만화로 그려서 연재했으며, 본인은 이걸 본 적이 있다. 이런 성공 자랑 스토리에 비해 법원 다녀 온 이야기는 다시 떠올리고 싶은 유쾌한 경험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마사토끼보다 더 수위가 센 만화도 나왔다. 바로 "교도소 일기"로, '엄격 진지 근엄' 짤방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그림은 교도소 내부에서 군기를 잡는 헌병뻘 되는 교정직 공무원을 묘사한 것이다. 무슨 나치 시절 SS 요원처럼 검은색 제복 차림이다.

주인공은 제목과는 달리 교도소에서 실형을 산 건 아니고, 구치소에만 있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걸 크게 구분하지 않으며, 구치소와 교도소 무슨 용어를 선택하건 만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달라질 건 없으니(이런 데에 절대 와서는 안 된다. 범죄 저지르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제목을 편의상 교도소 일기라고 뽑았다고 한다. 미결수들은 관대한 처분을 받기 위해 일과 시간에 판사에게 '앙망문'ㅠㅠ을 많이 써서 보낸댄다.

저기를 전근대 용어로는 '감옥'이라고 하고 '형무소'는 일본 본토에서는 지금도 쓰이는 일본식 한자어다. 오늘날 우리말의 공식 명칭은 '교도소'. 죄인을 가둬서 벌을 준다는 의미 대신 얘들을 바르게 교화한다는.. 뭔가 긍정적인 뉘앙스를 넣어서 말을 다시 만든 것이다. 가격을 인상하는 게 아니라 합리화, 재조정하듯이 말이다. -_-;;
영어로는 prison 또는 jail이라고 하는데, 한국어 같은 유치장-구치소-교도소를 영어로 정확하게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jail은 prison보다 동사로 활용도 더 잘 되는 것 같다. "I could have jailed you for doing/saying that!"처럼.

요즘 워낙 교도소의 사정이 좋아지고 공권력의 위상도 땅에 떨어진 덕분에 그냥 차라리 "깜빵이나 갈래요" 심정으로 범죄 저지르는 간 큰 사람까지 등장할 정도라지만..
근본적으로 개인 사생활과 자유가 없는 곳은 아무리 생물학적인 생존이 보장되는 곳이라 해도 사람이 갈 곳이 못 된다.
화장실 이용이 저 따위로 극도로 불편한 거 하나만 봐도 오금이 저릴 것 같다. 저기가 진짜로 국립 호텔이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군대에서 짬밥을 먹는다면 교도소에서는 콩밥을 먹는다. (여담이다만, 왜 '짬밥'만 사이시옷/사잇소리가 적용되어 '짬빱'이 되고 '콩밥'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볶음밥'과 '비빔밥', '물고기'와 '불고기'의 차이처럼 말이다. 이건 국어학계에서도 "그냥 케바케. 정말 원칙이 없다"로 귀착되고 있는 문제이다.)

경찰서 유치장은 무슨 입소대대요, 구치소는 훈련소나 보충대, 진짜 형이 확정되어 가는 교도소는 자대뻘 되려나 모르겠다.
군대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군대가 교도소와 다를 바 없네 하는 말이 있다. 군대와 교도소는 개인의 자유가 없거나 지극히 제한된다는 공통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존재 목적이 서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큰 차이도 있다.

  • 군대에서는 휴대와 관리 효율을 위해서 식당에서 포크 겸용 숟가락 하나만 쓰는 반면, 교도소에서는 끝이 아주 뭉툭한 플라스틱제 숟가락과 젓가락이 쓰인다. (자해 내지 탈옥 도구로 활용 못 하게. 죄수들에게 금속류를 줘서는 위험하다)
  •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체력 단련을 강조하고 권장하지만, 교도소에서는 실내에서 신체 운동이 절대 금지다. 하다가 걸리면 징계 받는다. (가혹행위 못 하게)
  • 전투복은 야외 활동 능률을 위해 상의와 하의 곳곳에 주머니가 많다. 그러나 죄수복은 정반대로 주머니 같은 거 없다. 신발에도 명백한 이유로 인해 전투화와는 달리 끈이 일체 없다.
  •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선거권이 보장되지만 교도소 수감자들은 그렇지 않다.
  • 군대는 비록 몰래 목 매달아 자살하는 사람도 나올지언정, 영창 화장실이 아닌 이상 화장실 안만큼은 사용 중 완전한 폐쇄를 보장해 준다.
  • 그나마 교도소는 불침번 같은 건 없구나. 일과 시간이 끝나면 다같이 푹 자는 게 보장된다. 다만, 밤중에 화장실 이용은 여전히 편하게 못 한다.

수저조차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은 교도소뿐만 아니라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줄 때도 비슷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음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 9· 11 테러 때 테러범들은 스테이크 써는 용도의 플라스틱 나이프만 갖고도 승객과 조종사들을 제압했다고 하니까. 그 뒤 미국에서 운용되는 여객기들은 액체 반입 제한에다 스테이크는 미리 다 썰어 놓은 채로 주는 등, 별별 보안 제약이 더 생겼다.

다음으로, 집단 내 서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군대에서 훈련소는 같은 날 들어와서 같은 날 나가는 동기들만으로 구성돼 있어서 형태가 제일 단순하다. 자대부터는 병들이 들어온 날이 제각각이어서 짬과 서열과 계급 차이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복무 기간은 다들 동일하다. 또한 장교인 소대장 아래로 병 중에서도 완장 찬 분대장이 있어서 후임들을 통제한다.

그에 반해 교도소는 한 방의 수감자들이 들어온 날과 나가는 날에 아무 개연성이 없다. 연령대도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러니 동기는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참과 말년 서열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해서도 절대 안 된다. 감방 내부에서 죄수들끼리 군대놀이가 행해지고 일진 같은 조직과 '짱'이 존재하고 간수 끄나풀이 존재하는데 그걸 간수들마저 죄수 관리의 편의라는 미명 하에 묵인· 동조· 방치한다면 교도소가 얼마나 개판이 되겠는가?

물론, 아예 사형수나 극도의 흉악범 또는 죄질과 별개로 멘탈에 문제가 있는 위험 죄수는 독방에 따로 수용되거나 더 엄한(= 햇빛 구경하기가 더욱 어려운) 교도소로 옮겨지긴 한다.
군대에 소규모 징계 시설인 영창이 있듯이, 교도소도 그런 목적으로 독방이 있다. 보는 눈이 없이 혼자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아무 행동도 못 하고 벽만 쳐다보고 지내야 하니 그건 그것대로 고문이라고 한다. 독방이 무슨 왕중왕도 아니고 교도소 안의 교도소 역할을 한다.

병역 의무가 있는 나라에서 누구든지 가능한 한 군대에 안 가려고 애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허나, 질이 지나치게 안 좋아서 통제가 안 되는 단점이 신체 능력이 뛰어난 장점보다 더 큰 사람은 군대에서도 아무리 사람이 부족해서 난리라 한들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만한 게 죄수들이니까 얘들을 삼청교육대 식으로 인간흉기로 개조시켜서 공작원으로 투입하거나 선원으로 부려먹는 건 인권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부려먹는 갑의 입장에서도 영화· 소설에서 보는 것만치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언제 딴마음 품고 사고 칠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덥석 위험한 무기나 도구를 쥐어 주고 일을 시킬 수 있겠는가? 일례로, 박통 시절에 실미도에서 몰래 양성되었던 북파 공작원들도 사형수· 죄수 출신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일제 강점기 때도 조선인을 상대로 징병제는 갈 데까지 다 간 말기인 1938년이나 돼서야 시작됐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군대 안 가려고 장애인으로도 모자라서 전과자가 되는 것까지 불사할 정도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요즘 같은 평시에야 많지 않다. 하지만 옛날에 정말 나라가 전쟁에 휘말려서 위태롭고 병사들의 사망률이 높던 시절에는 "군대 가느니 차라리 감옥 가고 만다, 배째!"도 당연히 있었다.

사람이란 살면서 병원에 갈 일이 없어야 하듯이 법원이나 경찰서 같은 곳에도 정말 갈 일 없고 마주칠 일이 없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피해 신고자나 증인 신분으로 가는 거면 최소한 자기 마음은 부끄러울 것 없고 떳떳하겠지만, 그래도 골치 아픈 일에 엮인 상태인 건 변함없지 않은가?

군인과 민간 공무원의 하이브리드인 군무원이라는 직종이 있듯이, 군대와 교도소의 하이브리드인 '국군 교도소'도 있다. 군인 신분으로서 영창보다는 크고(빨간 줄 그이고), 그렇다고 군번 즉각 말소에 민간인 싸제 교도소로 옮겨질 정도까지는 아닌 규모의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인데.. 이곳 역시 가서 좋을 건 전혀 없는 곳이다.

반대로 그런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에 비례해서 고소득 전문직이다.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스트레스와 책임감이 크고 재미없는 일을 하니까. 영적으로 보자면 저런 직업은 인간의 죄의 결과를 수습하는 직종에 속하기 때문에 저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수요가 절대 없어질 수가 없다. 옛날에 그 고상한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서 미국을 세운 뒤에도 교도소는 거의 곧장 필요해졌다지 않는가?

가령, 검사라 하면 얼마나 머리가 비상하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일 텐데, 그 좋은 머리로 맨날 하는 일이 뭔가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게 아니라 남을 일단 의심하고 나쁘게 보고 기소하고 형량을 판사에게 청구하는 일이다. 정신 건강에 좋은 일은 아니어 보인다. 저것만 하다가 맛이 가 버려서 인격 파탄 막장 싸이코 검사가 나오는 것도 본인은 이해는 할 것 같다. (피의자에게 막말, 가혹행위..;; )

우리나라에 10월 28일은 '교정의 날'이라고 법정 기념일이다. 저건 9월 18일 철도의 날만큼이나 교정 분야의 궂은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날이다. 우리나라가 민간 싸제 교도소가 막 발달한 나라는 아니니, 이 바닥 종사자들은 사실상 다 공무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교도소만 찾아 다니면서 포교· 선교 활동을 하는 종교인들도 있다. 군대보다도 저런 곳이 복음이 더 절실히 들어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개인 활동을 못 하는 곳에 있으면서 성경이라도 제대로 읽고, 인생과 죄 문제와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라는 것이다.

사람이란 게 꿈에도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덜컥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 비슷한 이치로 욱 하다가 정말 사소한 실수 때문에 은팔찌 득템에 경찰서 정모를 할 수도 있다. 굳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람이 죽는 급의 큰 교통사고를 내거나 경제 사범으로 몰리는 바람에 철창 신세를 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애초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 세상엔 이런 바닥도 있다는 걸 미리 염두에 둔다면 나중에 예상치 못한 비극이 찾아왔을 때 좀 덜 당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03 08:34 2017/02/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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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재 양성 기관

대기업· 공기업이나 정부 기관 같은 거대 조직은 망할 일이 없이 안정적이고 임직원에게 복리후생도 좋다 보니, 똑똑한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많이 몰린다. 그런 조직은 일단 뽑은 사람들을 자기 조직의 일원으로 동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또 이미 입사한 간부들이라 해도 부려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때때로 재교육을 하려는 목적으로 자체적인 연수 내지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법조계에는 사법 연수원이 있으며, 군대 내부에도 장교를 첫 양성하는 사관학교뿐만 아니라 기존 장교들을 재교육하는 학교들이 자운대에 있는 게 그 예이다.
이런 교육기관들은 입소자들의 합숙(?)을 목적으로 도시의 외곽 내지 산기슭에 있는 편이며, 존재가 대외적으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은 알려져야 할 필요도 없고.

(1) 한전 인재 개발원
태릉 사격장, 서울여대, 서울 과학 기술 대학교 사이의 산기슭에 있다. 한전에 합격한 신입사원들은 여기서 연수를 받는다. 연수 시설치고는 보안 수준이 이례적으로 청와대· 군부대와 동급인 최고이다. 지도에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항공 사진 지도에는 숲으로 완전히 가려져 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중, 공채를 뚫고 한전에 합격해서 연수까지 다 받은 어떤 사람의 수기를 본 적이 있다. 만인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공기업에 합격했다만, 급여가 당장 그렇게 많지 않고 결정적으로 첫 발령지가 강원도 깡촌인지라 무척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인서울 근무를 하는 다른 대기업으로부터 추가 합격 통지가 오는 바람에 한전을 퇴사하고 직장을 옮겼다고 한다. 당장 연봉은 더 높을지 모르지만 일은 더 빡셀 텐데.. 그래도 인서울인 것이 결정적인 메리트였다고 한다. 공기업과 대기업을 나란히 선택해서 들어간 그 글쓴이가 참 대단하다.

(2) 국가 정보 대학원
국정원에 합격한 신입 사원..은 아니고 요원들이 비밀리에 직무를 위한 연수를 받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부지도 어지간한 군부대 급으로 넓다. 소재지는 성남시 운종동으로, 반경 수 km 이내엔 이 경석 선생 묘, 대한 송유관 공사, 고기리 유원지, 한국학 중앙 연구원이 있는 깡촌이다.
얘 역시 (1)처럼 100% 은폐이므로 지도에서 찾을 생각은 하지 말 것. 단, 국정원 본원과는 달리, 근처 도로의 이정표에는 잠깐 언급이 돼 있는가 보다.

원래 이 기관은 서울 이문동의 천장산 동쪽 구석, 의릉 인근에 있었으나 2003년경에 이전을 했다. 지금은 거기 일대는 한국 예술 종합 학교 캠퍼스가 돼 있다.
천장산 서남쪽 구석의 홍릉 일대는 잘 알다시피 수백· 수천 명의 이공계 박사들이 근무하는 과학 연구소들이 즐비하다. 여기 부지가 너무 좁아졌고 또 서울이 북한과 너무 가깝다는 안보 문제도 있고 해서 1970년대엔 나라에서 대전 대덕에 연구 단지를 추가로 만들고, 카이스트도 거기로 이전을 시킨 것이다. 다만 지금은 인서울 연구소들을 모두 이전하려는 계획도 있는 듯하다.

(3) 서울특별시 인재 개발원
시에서 운영하는 연수원도 있다. 서울시 인재 개발원은 예술의 전당 옆 서초 IC 근처의 우면산 기슭에 있다. 지도에는 표시가 돼 있고 내부의 로드뷰까지도 별 제한 없이 제공되지만, 최소한의 보안이 필요한지 항공 사진만은 흐리게 처리되어 있다.

여기는 서울시 소속 공무원들이 입소하여 교육· 연수를 받는다. 하지만 지방에서 서울시 공무원 공채를 지원하러 상경한 수험생들의 숙소로도 쓰이는가 보다. 전국에서 서울만이 유일하게 타 지방 사람들도 공무원 취업에 지원을 할 수 있다.

(4) 코레일 철도 인력 개발원
철도 회사에도 인력 양성 기관이 응당 존재한다. 코레일의 경우, 철도 박물관과 한국 교통 대학교 의왕캠(구 철도 대학)사이라는 아주 적절한 곳에 있다. 여기는 자사 직원의 재교육뿐만 아니라 철도 차량 기관사 지망생들의 학원 역할도 한다.
여기는 항공 사진으로 딱히 가려져 있지는 않다. 여기 대신 구로 역 인근에 있는 철도 교통 관제 센터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보니 완전히 은폐되어 있다.

코레일 말고 서울시의 지하철을 운영하는 공기업인 서울 메트로와 서울 도시철도 공사도 자체적인 인재 개발원을 두고 있다. 원래는 두 회사가 따로 썼는데 서울시의 조율로 한데 통합했다고.
서울 남산 어디 모처에도 무슨 기관의 연수원이 있는 걸 옛날에 지도에서 봤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설마 이전했나?

2. 대한 송유관 공사

우리나라에 에너지 기업으로는 SK 에너지 같은 사기업 내지 '한국 석유 공사' 같은 공기업이 있는데, 그와 더불어 송유관 시설 자체만을 관할하는 기업도 있다. 본사는 아까 잠시 언급했던 국가 정보 대학원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외국에서 수입된 석유를 비축해서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시설들은 다 발전소와 동급의 보안이 필요한 기간 시설이기 때문에 민간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이런 기름은 유조차로만 수송하는 게 아니며, 경부 고속도로의 노선과 얼추 비슷한 선형인 온산-울산-경주-대구-대전-천안-성남에 이르기까지 송유관이 매설돼 있다고 한다. 그 송유관의 중간엔 역시 항구로 통하는 몇몇 지선도 있다.

하긴, 그 많은 석유를 전부 엘리베이터로만 나르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에스컬레이터도 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다니지도 않고 그렇다고 통상적인 화물을 수송하는 것도 아닌 선이 매설되어 있다는 게, 마치 해저 인터넷 광케이블과 비슷해 보인다. 우리 땅 밑엔 신기한 시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석유 공급과 관련된 범죄는 크게 (1) 유사 석유 제조..;; (2) 면세유를 무단 유출 판매하여 차액 챙기기, 그리고 아예 (3) 지하 수십 m에 매설된 저 송유관을 근성으로 뚫어서 기름을 직통으로 탈취..로 나뉜다.
(3)은 개념적으로 은행 현금 수송 차량을 털거나 TV 방송에서 전파 납치를 하는 것과 별 차이 없다. 혹은 폐전자기기 재활용 업체에서 회수되는 금 같은 귀금속을 직원이 몰래 조금씩 빼돌리는 짓하고도 비슷하다.
물론 송유관 공사 같은 데서는 송유관의 유압을 측정해서 누유가 발생하고 있는지 체크를 하기도 하니, 오차 범위에 들 정도로 조금씩 찔끔만 빼돌린다고 한다.

3. 자동차 주행 시험장

다음으로, 옛날 엑셀 추억의 CF 영상을 하나 시청하도록 하자.

여기서 드는 의문: 이거 어느 도로에서 찍은 걸까?
이건 여느 고속도로나 시내 도로는 아니고, 자동차 연구소 안의 주행 시험용 전용 도로이다.
지금이면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교통 안전 공단 내부의 주행 시험장에서 찍을 수 있었겠지만 저 모델의 엑셀이 출시된 건 무려 1980년대 말이다. 그때는 저 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그렇다고 레이싱 서킷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길이 너무 곧고 넓고 평평하다.

외국에서 찍은 게 아니라면 저건 현대 자동차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행 시험장에서 촬영했을 것이다.
1980년대에는 울산 공장 근처에 시험장이 있었고, 그로부터 몇 년 뒤엔 남양읍(동) 연구소에 또 시험장이 신설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엑셀의 CF는 엑셀 개발의 산실이던 남양 연구소의 주행 시험장에서 곧바로 찍지 않았나 싶다.

이건 사람이 뛰는 운동장· 경기장이 아니고 경마장도 아니다 보니 한 바퀴 도는 전체 거리가 거의 4~5km에 달할 정도이고 반경이 그런 경기장보다 훨씬 더 크다. 동일 축척의 항공 사진들을 한데 대조해 보면 자동차 주행 시험장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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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설은 자동차가 나름 시속 200~250km급으로도 밟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초고속 주행 테스트도 해야 되니까... 이런 이유로 인해, 뱅글 도는 곡선 부분은 원심력의 상쇄를 위해 노면 cant(좌우 기울기)가 굉장히 크게 잡혀 있다.

자동차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행 시험장은 나름 기업의 자산이고 보안 시설이기 때문에 항공 지도 사진에도 완전 은폐까지는 아니지만 흐리게 표시돼 있다.
여담이지만 현대 자동차 미국 연구소는 모하비 사막에도 주행 시험장을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노후 비행기들이 가는 모하비 공항이 있는 그곳 말이다.

4. 남북 분단 관련

우리나라에서 봉인된 장소의 갑중갑은 단연 정치· 안보 분야 쪽일 것이다.

(1) 오리지널 판문점
본인도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건데.. 6· 25 중 당시에는 판문점이 지금의 판문점 위치에 있지 않았다. 지금 판문점은 휴전선의 선형에 맞춰서 오리지널 판문점보다 동쪽으로 약 1km쯤 이전하여 새로 만든 것이다.
물론 그게 시점이 1953년 10월이므로, 휴전 거의 직후부터 판문점이 지금의 위치에 있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휴전 협정이 이뤄졌던 그 장소는 지금은 완전히 북한 영토로 넘어갔으며, 옛 판문점은 지금 판문점에서 먼발치 너머로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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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옛 장단면사무소 건물
군사 분계선 안의 경의선 철길 주변 사진을 보면, 장단 역 옛 부지라든가 "죽음의 다리"(판문점 인근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말) 따위는 있는 그대로 보존돼 있는 듯하다.
단, 장단 역은 전쟁 폭격으로 인해 돌 위에 돌 하나 안 남고 사라진 반면, 옛 "장단면사무소" 건물은 폐건물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나를 자극한다.

물론 얘는 민통선 정도가 아니라 위험한 DMZ 안에 있기 때문에 개인의 접근이나 관광은 불가능함.
그리고 인터넷에 나도는 주소 중에 '동장리 어쩌구' 하는 주소는 잘못됐다. 언론에서 공개한 주변 사진을 보면 이 건물은 분명 길가에 있는 반면, 동장리 일대는 아무리 뒤져도 허허벌판일 뿐 길이 보이지 않는다.
'도라산리'로 시작하는 주소가 길가에 있는 맞는 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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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노동당사는 38선 시절에 북한 치하에 있다가 우리가 수복한 폐건물인 반면, 옛 장단면사무소 건물은 38선 시절에는 남한 관할이다가 나중에 봉인되어 버린 폐건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이런 곳에 실제로 드나들고 싶은 분이라면 열심히 공부해서 각종 공기업, 관공서, 군부대에 취업(!)을 하거나, 기자가 돼서 방문 취재를 하면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23 08:25 2015/12/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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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 처리 관련 이야기 외

1. 하수도 시설

사람이 사는 환경에서 배설물의 처리는 생각보다 굉장히 골치 아프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오늘날과 같은 위생적인 상하수도 인프라가 없던 시절엔 정말 말도 못 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다.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에서는 농촌과는 달리 퇴비로 활용할 수도 없으니, 오물을 그냥 바로 길거리에다 버렸다고 한다. 그럼 길거리는 대변 썩는 냄새로 진동하고 온갖 해충과 불결한 동물들이 들끓었으니 전염병이 돌기도 딱 좋았다. 길거리에서 똥을 안 밟으려고 하이힐이 만들어졌고, 구린내를 가리려고 향수가 발명되었다니 그 시절을 생각하면 무섭기까지 하다.

닥치고 기름 끼얹고 불태워 버리면 악취는 좀 줄어들지 않으려나 싶지만, 갓 배출된 대변은 수분이 상당히 많은 물질이어서 소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매번 그렇게 처분하기엔 비용도 많이 들고 이산화탄소-_- 배출 측면에서도 별로 좋을 것 같지 않다.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동물보다도 사람의 X이 유난히 더 독하고 구리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성경에서도 이 점이 감안되어, 에스겔이 징징대자 하나님이 인분 대신 소똥을 말려서 연료로 쓰라고 대체제를 제안하신 장면이 나오는 게 아닐까? (겔 4:12-15)
또한 같은 인분이어도 요즘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육식 섭취가 늘면서 단백질 때문에 더 구려지기도 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 이 문단에 나오는 말들은 다 개인적인 추측임을 밝힌다.

우리나라도 조선 구한말 때 한양에 인구가 크게 늘었을 때는 인구 대비 도시 기반 시설이 너무 열악했던 관계로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오물이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조선이 미개하고 일제에 의해 망해도 할 말 없는 개막장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진영에서는 이런 사진도 제시하는 모양이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붉은 원이 전부 X이라고 한다. 노면전차가 다닐 정도로 사대문 안의 최대 번화가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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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1세기까지 지구상에 존속하고 있는 최악의 생지옥인 북한에서는 다른 깡촌도 아니고 평양의 상류층 아파트에서까지 안습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에 한번 얘기한 바 있다.
수돗물과 전기, 가스 따위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 겨울에 이불 뒤집어쓰고 냉방으로 지내는 건 차라리 양반. 수십 층 위에서 노인들은 집 밖으로 나오질 못하고(계단!), 게다가 수세식 변기도 물을 내릴 수가 없어서 신문지 위에다 응가를 본 뒤 오물을 밤에 몰래 베란다에서 아래로 투척한다.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감시를 해도 주변에 남조선처럼 가로등 불빛이 있나, CCTV가 있나, 그 암흑천지 속에서 누가 몰래 갑자기 투척하는 걸 잡아 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크기가 아주 큰 것도 아니고..
그러니 매일 아파트 근처 바닥에 철퍼덕 떨어진 똥을 치우는 사람들이 고역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밤에 길을 지나가다가 똥벼락을 맞는 사람도 있다. 밤에는 아파트 근처에는 접근을 안 하는 게 상책이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까지 막장은 아니지만 철도 차량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소변이 그대로 선로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비산식 화장실' 객차가 다니곤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미개한 객차는 전국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말이다.

2. 극지와 험지, 특수한 직업

이런 상하수도 시설과는 별개로, 직업적으로 제때에 화장실에 갈 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가깝게는 화장실이 없는 교통수단을 운전하는 택시/버스 운전사나 지하철 기관사이다. 지하철 기관사의 경우, 정말 급할 때는 소변 정도는 섬식 승강장역에 정차했을 때 승강장 쪽이 아닌 벽 쪽 문을 열고 몰래 처리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객기가 아닌 전투기 조종사는 장시간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경우 별 수 없다. 기저귀를 챙긴다고 한다.

성경에도 지금으로 치면 야전에서 싸우는 육군 보병에게 적용되는 말이 있다. 필드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삽으로 흙을 파서 오물을 잘~ 덮어서 은폐를 하라고(신 23:12-14) 말이다. 마치 옷을 입어서 신체의 부끄러운 곳을 가리듯, 더러운 배설물도 안 보이게 잘 가려 놓으면 하나님이 전쟁 중에 복을 주실 거라고까지 약속했다. 의외로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가 모세 율법에 기록돼 있다.

옛날에 아문센과 스콧 시절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남극 조약까지 다 체결된 지금 남극을 탐험하는 팀은 사람이 안 사는 곳이라고 해서 주변에 무단 방뇨· 방변을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인원의 배설물은 고이 회수해서 정화 처리를 한 후, 남극의 밖에다 버려야 한다.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인체의 생리 현상으로도 주변을 오염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국제 협정이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달 포함 우주에 갔다 온 사람들도 자기 배설물을 감히 지구 밖으로 방출하지 않았다. 단, 이와 관련해서 황당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안습한 사건이 1969년 5월 말에 발사된 아폴로 10호 미션 때 있었다.

아폴로 10호는 달에 최초로 착륙을 한 11호의 직전 미션이었다. 달의 궤도에 진입하여 사령선과 착륙선이 분리를 하고, 착륙선이 달 표면 기준 15.6km 고도의 상공까지 내려갔다가 도로 사령선으로 합류한 뒤 지구로 돌아왔다.

달 탐사 우주선은 우주 정거장이 아니며, 화장실을 따로 만들 공간이 없다. 사람이 재량껏 엉덩이에다 봉지를 요강 삼아서 오물을 잘 담아야 한다.; 그런데... 사령선 안에서 누군가가 대변을 보는데 뒷처리를 제대로 못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주인을 알 수 없는 똥이 그 좁은 우주선 안의 무중력 공간에서 둥둥 떠 다니는 참극(...ㅠ.ㅠ)이 벌어졌다!

승무원들 3명이 모두 자기가 싼 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되고 문서로 기록됐고=_=;;, 그게 수십년 뒤에 비밀이 풀려서 일반인에게까지 공개됐다. 예기치 않게 실수로 초대형 민폐를 끼친 당사자만이 그 똥이 누구 똥인지에 대한 진실을 죽을 때까지 혼자 간직하다 갈 것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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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선의 분리는 없이 최초로 달을 돌고 오는 것까지 성공했던 아폴로 8호 미션(1968년 크리스마스) 때는.. 창세기 1장 낭독 애드립이 있었다. 그 뒤 10호 미션 때는 저런 똥 해프닝이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3. 저격수 비유

본인은 예전에 군대에서의 전문직인 전투기 조종사와 저격수를 비교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저격수의 경우 총만 기가 막히게 잘 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혼자 몰래 잠입해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특성상 간첩, 무장공비, 공작원과 같은 성격도 지닌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저격수는 수풀 속에서 위장을 한 후 목표물이 나타날 때까지 꼼짝도 안 하고 근성으로 기다리는 훈련을 한다. 공작원이 적진에서 비트를 파고 잠복하는 것과 비슷하다. 위장을 잘 하면 적군들이 자기 위를 밟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정말로 꼼짝도 안 하고 있을까? 밥과 물은 안 먹는다 쳐도 대소변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지난 2011년 9월에는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저격수 특수부대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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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 위장을 한 채로 표적이 나타날 때까지 3박 4일 동안 한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견뎌 본 적이 있습니다.
기자: 생리현상 같은 건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저격수: 그게 가장 힘든 부분인데, 최대한 자제를 하며... 정말 어려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 절대 움직이지 않고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인생이고 현실이며 실전이다. 현실의 전쟁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며 저런 임무에도 간지 나고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게 아니다.
머뭇머뭇 쭈뼛거리면서 "정말 어려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저격수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별 수 없다. 도저히 어쩔 수 없으면 결국은 바지에다 싼다는 얘기다.
그런 것까지 대비해서 저격수 훈련 중에 기저귀까지 미리 지급해 주는지는 난 모르겠지만, 결국 대놓고 직접 얘기를 안 할 뿐이지 뻔한 결말인 것이다.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직접 말 안 해도 결국 그 말이 그 말인 사례는.. 성경에도 많다.

  • 가인은 누구와 결혼했는가? (여동생 중 하나와 결혼했다. 그 시절엔 근친 결혼이 이상한 짓이 아니었으니까.)
  • 함은 술 취해 잠든 아버지 노아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검열삭제를 했다)
  • 입다는 자기 딸에게 결국 무슨 행동을 했는가? (결국 딸을 이삭 죽이듯이 죽였다)
  • 6일 창조가 있기 전에 이전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물의 넘침으로 멸망했다)
  • 노아의 홍수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유전자가 교란된 반신반인 괴생명체가 태어나게 되는 짓을 함)
  • 민수기 24장과 25장 사이에 발람이 무슨 짓을 했는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비열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역이용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실족시켰다)

"에이, 저 멋진 정예 군인인 저격수가 바지에 똥을 쌀 리가 없어. 저건 문자적인 배설물이 아닐 거야, / 문자적인 3박 4일이 아닐 거야" 이런 반응을 할 게 아니라면, 성경에 기록된 엄연한 사건을 문자적으로 믿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민망해서 굳이 일일이 디테일을 기록할 필요가 없고 정황상 안 봐도 뻔하니 간접적으로 기록을 해 놓은 것이다.

이상. 성경을 읽고 내용을 믿는 태도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해서 먼저 똥 얘기부터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었다. ^^

Posted by 사무엘

2015/07/04 08:28 2015/07/0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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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 해 동안은 국군 전방 부대에서 불미스럽고 안타까운 소식이 둘이나 있었다.
다른 계급도 아니고 전역을 겨우 3개월 남짓 앞두고 있던 어느 병장이.. 지금까지 쌓인 게 얼마나 많았으면 돌연 총기 난사 + 무장 탈영이라는 초대형 사고를 쳤다. 그리고 총격전까지 벌인 끝에 자기 인생은 물론 여러 동료 병사와 주변 간부들의 인생까지 덩달아 쫑치게 만들었다.

그 뒤 지난 여름엔 어느 폐쇄적인 부대에서 한 병사가..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하다못해 저렇게 총기 난사를 벌이거나 혼자 자살한 것도 아니고.. 진짜 순수하게 맞아 죽는 초유의 참극이 벌어졌다. 거의 군대판 '일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 인디애나 주 실비아 라이컨스 사건'이나 다름없다.

유 관순 열사가 사형이나 고문치사나 병사가 아니라 간수들에게 순수하게 맞아 죽었다고 최근에야 밝혀졌는데.. 나라 지키러 간 군인이 변태 가학적인 악마 아군에 의해 그렇게 죽은 것이다. 동물이나 심지어 적군 포로에게라도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을 당한 것이다. 이러니 오죽했으면 군대에서 “참으면 윤 일병처럼 되고, 못 참으면 임 병장처럼 된다”라는 웃을 수만은 없는 블랙코미디가 나돌 정도였다.

군대에서 차라리 제2 연평해전 전사자들처럼 적과 싸우다가 적군의 총탄에 산화한 거라면.. 그 무엇도 목숨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일 영예로운 죽음이긴 하다.
천안함의 경우는 적군들 얼굴도 못 보고 전투다운 전투를 못 벌이고 전사자가 발생했으니 위의 경우보다는 좀 더 원통하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영예로운 일이다.

다음으로 훈련이나 다른 근무· 작업 중에 사고로 죽은 거라면 위의 경우보다 더 허무한 축에 들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엄연히 나라 지키다가 순직한 것이다. 그런 죽음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전투력과 아무 관계가 없는 저런 병폐로 인한 원통하고 억울한 죽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근절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을 예방하겠답시고 동기들만으로 구성된 소대를 만들겠다는 안이 나왔는데, 이 역시 멍청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동기들만으로 구성된 학교 학급 안에도 양아치와 일진들이 포진해서 “나보고 형이라고 불러” 이러는 걸 정녕 모르나 보다. 문제의 근원이 계급에 있는 게 아니다. 저건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좀 더 훈련이 혹독하고 힘들어도 좋으니 군대가 일과 후 시간 동안에는 병사들의 사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보장해 줄 수 없을까? 거의 모든 병영 스트레스는 내무 생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니 말이다. 본인이야 뭐 자대 생활을 하지도 않았고, 군대 행정 같은 건 비전문가이니 그저 이런 생각만 부질없이 늘어놓을 뿐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모병제를 해서 진짜 군대에 갈 의향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전문화된 군대를 꾸며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 역시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극심한 저출산 때문에 지금처럼 강제 징병을 하고도 군대에 갈 사람이 부족한 듯하다. 거기에다 복무 기간은 1년 9개월까지 단축되어서 사정은 더욱 심각한 듯. 징병 검사는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고, 덕분에 소총을 쥐어 줘도 될 정도로 정상적인 신체와 멘탈을 갖추지 못한 사람까지 입영하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하는 빈도도 느는 듯하다. 즉,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병제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진단하는 견해도 있다는 뜻이다.

또한 정말로 순수하게 모병제인 일본 자위대는 한국보다 시설 복지가 더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도 구타· 가혹행위가 만연하며 단위 인원당 자살자 비율도 “더 높다”. 애초에 우리나라 국군도 해병대는 순수하게 지원자로만 구성되어 있지만--비록 일단 군대 자체는 무조건 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병과· 직종만이 지원제인 것이긴 해도-- 2011년 한 해 동안 온갖 불미스러운 사고는 다 터지지 않았던가. 이 문제에 관한 한 징병이냐 모병이냐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1년에 우리나라 군대에서 자살하는 장병의 수가 옛날에는 세자리 수였다가 그래도 21세기에 들어선 뒤부터는 수십 명 수준으로 줄었다. 비록 우리나라 국군이 병사 월급이 매우 적고 복지와 보상이 안습한 수준이며 가끔 저런 대형 사고가 터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군 내부의 인권 실상이 겨우 북한 따위에게 디스를 당할 정도는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인권 실상이 좋다고 해 봤자 북한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남자가 10년, 여자가 7년간 군대에서 '썩어야' 하는 나라이다. =_=;;; 그것 자체가 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에 대한 넘사벽급의 인권 유린이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애초부터 국비로 양성된 육사 출신 장교나 복무할 만한 기간을 저쪽 동네에서는 병들이 복무하는 것이다.

아무튼, 군대에서 다시는 저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앙망'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바란다고 해서 저런 일이 또 안 터지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을 빌미로 평소에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이 불건전하던 사람, 국가관이 이상하던 사람들이 옳다구나 물어뜯고 군대에 대해서 대안 없는 비난이나 늘어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광경도 보고 있자니 개인적으로 심기가 무척 불편했다.

예나 지금이나 군 복무는 국민의 의무이지만 한편으로 내 인생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국가의 이름으로 희생시키고 착취당하는 일이다. 군대에 갔다간 나도 위에서 열거한 저런 험한 꼴의 주인공이 될 것 같고..
그래서 기를 쓰고 군대에 안 가려는 병역기피 범죄가 많았다. 또한 마지못해 입대는 했지만 그 뒤 견디다 못해서 도망가 버리는 사람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이름하여 탈영이고 법적 용어로는 군무이탈이다.

군대는 안 그래도 사기와 기강이 중요한 엄격한 집단이며 군대에 가고 싶어서 선뜻 간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런 와중에 국가가 탈영병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잡아 주지 않으면, 까놓고 말해 탈영 안 한 사람이 바보가 될 지경이 되면 군대가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 그래서 탈영은 국민의 의무 수행에 대한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탈세'만큼이나 굉장히 큰 범죄로 간주된다. (물론 애초에 군대를 불법으로 뺀 병역기피하고 형평성이 안 맞다는 비판은 좀 있지만)

하지만 무작정 탈영병을 흉악범마냥 취급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다른 모든 범죄들은 신체의 자유가 있는 상태에서 자기가 고의로 나쁜짓을 저지른 경우이지만, 군무이탈은 국가가 개인으로 하여금 신체의 자유를 군대 안으로 속박하려고 하는데 그걸 견디다 못해 법을 어긴 경우이기 때문이다. 범죄하고는 아무 상관 없이 살았던 청년이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흉악범과 동급으로 취급되고 무작정 법의 철퇴를 맞고 전과자 되고 인생 종치는 건 국가적으로도 손해이다.

이렇게 탈영병 내지 군무이탈자는 법적으로 예외 없이 단호하고 무겁게 다뤄야 하는 한편으로 정상을 참작하여 아량도 베풀어야 하는 이중적인 면모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국군에서는 정기적으로(대략 3년 간격) 육해공 참모총장이 전국의 탈영병들을 상대로 복귀 명령을 내린다. 공고문이 철도역이나 버스 터미널 같은 데에 다 게시된다. 이 특별 기간(대략 2개월 남짓)에 탈영병이 자수를 하면 지금까지 탈영해 있었던 기간에 구애됨이 없이 정상을 참작하여 “최대한 관대하게” 처분해 주겠다는 당근(?)까지 제안한다.

이것은 여러가지 효과를 노린 것 같다.
탈영 기간에 비례해서 처벌의 수위가 마치 채무 이자마냥, 주차장이나 도서관의 연체료마냥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면 장기 탈영병은 탈영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수 의욕을 잃고 아예 자살 같은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은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좋은 결과가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무조건적으로 봐 줄 수만은 없으니 저렇게 군대판 “어서 돌아오오”를 정기적으로 시전하여 특정 기간에만 미끼를 내던지는 게 군무이탈자들의 심리를 동요시키는 효과도 있고 적절해 보인다.
거기에다 탈영에 대한 실질적인 공소시효를 최대한 늘리는 건 덤이다. 40대 초중반의 나이까지 끝까지 탈영 안 하다가 붙잡히면 나중에는 군무이탈에 대한 공소시효는 끝나더라도 '명령 불복종죄'로 처벌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지금까지 내려진 군무이탈자 복귀 명령을 보면.. 적용 대상이 “1963년 12월 1일 이후로 육해공군 복무 중에 군무이탈 중인 자”라고 돼 있다.

현재까지 잡히지 않은 가장 오래 된 탈영병이 탈영한 때가 1988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죽었거나 외국으로 밀항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기준 날짜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반세기 전, 비현실적으로 까마득하게 먼 과거인 1963년인 걸까? 작정하고 엄청난 옛날을 잡고 싶거들랑 아예 “1940년대 말의 건군 이래로”, 혹은 “1953년 휴전 이래로”라고 해도 될 텐데? 궁금하지 않으신지?

그 이유는 국가에서 1963년 11월 30일과 그 이전에 발생한 탈영은 모두 정식으로 사면을 해 줬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나라가 워낙 혼란스러웠고, 개인 사정상 도저히 불가피한 생계형 탈영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저 때는 박 정희가 군복을 벗고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민생 안정을 위해 이것저것 여러 조치가 취해지곤 했다. 역사 기록을 찾아 보면, 공교롭게도 출입국 관리법 위반자도 1963년 11월 30일 이전 것들은 다 사면해 줬다고 한다.

1963년은 한국 철도사에서는 서울교외선이 전구간 개통한(8월) 해이다. 그 이전의 1962년엔 군사 정권이 들어섰고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됐다. 그리고 이때 현재까지 우리나라 역사상 최후의 화폐 개혁이 행해져서 '원'이라는 단위가 쓰이기 시작했다. 1962년은 박통 정부가 독립 운동가들을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찾아내어 훈장을 추서하고 예우한 해이기도 하다. 유 관순, 윤 봉길 등 네임드급 인물들이 다 이때 훈장을 받았으니 말이다.

1963년 12월 1일이라고 하면 바로 그 정도로 옛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시스템과 기강이 잡힌 이상, 앞으로 정부가 군무이탈자들을 사면하는 일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여 수배 중인 누적 탈영병의 수는 역시나 전군을 통틀어 70여 명 수준이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연간 군대에서 발생하는 자살자 수와 얼추 비슷하다. 탈영하고도 안 잡히려면 이 사회에서는 주민등록도 말소되고 그야말로 완전 '없는 사람'으로 지내야 한다. 따로 국가나 군대에서 처벌을 안 해도 그렇게 매장당한 채 고생하는 것 자체가 탈영에 대한 처벌이나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에는 어떤 사람이 과거에 열차를 상습적으로 몰래 무임승차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무임승차 금액을 변제한다고 코레일에 100만원을 기탁하고 간 훈훈한(?) 사례가 있었다. 그 사건들은 이제 증거도 없고 공소시효도 옛날에 다 지났으니 100만원은 코레일의 입장에서는 그저 기부액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마치 그것처럼, 지난 2006년엔 한번은 무려 18년 가까이를 도피 생활을 하는 바람에 심지어 가족하고도 연락이 끊어져 버린 30대 후반의 안타까운 아저씨가 끝내는 자수한 경우가 있었다. 이런 사람은 군대의 입장에서도 병사로 막 부리기가 민망하니.. 그는 1개월 남짓만 형식적으로 병영 캠프를 하다가 복무 부적격 심사에 통과되어 어쨌든 드디어 정식으로 전역했다고 한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군대가 탈영병이 발생할 일이 없을 정도로 내부 부조리와 비극이 없는 군대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월급을 많이 못 주더라도 병사들의 마음을 사는 방법은 다른 쪽으로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22 08:36 2014/12/2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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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방 지역에 있는 PC방, 식당, 여관 같은 업소들이 군인들을만을 상대로 굉장한 바가지 요금을 받는 게 공공연한 관행이라니, 굉장히 충격이다.
이건 휴가철 때 해수욕장이나 유원지 민박들이 바가지 요금을 받는 것보다 죄질이 훨씬 더 나쁘다.

첫째는 민간인이 휴가를 떠나는 건 전적으로 당사자의 자발적인 선택과 의지인 반면 군복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간부들은 그나마 위수지역이 넓은 편이고 승용차라도 있지, 병들은 꼼짝없이 그 지역에서 호구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말 그 지역 상인들이 도저히 먹고 살기 힘들다면,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요금을 올리면 된다.
국가에 자기 인생을 희생하여 충성하는 군인에게 할인을 해 줘도 모자랄 판에(철도 같은 일부 공공요금은 실제로 그러함) 바가지라니, 이건 정말 군납비리만큼이나 국방부나 정부 차원에서 나서서 저런 부조리를 단호하게 근절해야 하지 않나 싶다.

수 년 전에 강원도 모 지역 모 부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바가지가 해도 해도 너무한 지경에 이르자, 사단장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휘하의 모든 병과 간부들에게 그 지역의 상점과 숙박시설을 절대로 이용하지 말고, 휴가와 복귀 시엔 간부들 차를 타고 군부대와 시외버스 터미널 사이를 직통으로 이동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지역 상점들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헌병들은 그 지역을 순찰하면서 다른 군기 위반자가 아니라 상점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군인들을 적발했다.

이 일이 있고 나자 지역 경제가 다 망하게 된 상인들이 항복(?)해서 요금을 여타 지역 수준으로 내렸다나 어쨌다나.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돈과 관련된 사항만이 전부가 아니다.
다른 사례로는, 외박 나갔던 군인들이 위수지역에 있는 불량배 고등학생 패거리한테 심하게 맞고 다쳐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군인들은 민간인과 얽히면 법적으로 굉장히 골치아파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냥 피하거나 순순히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 이 꼴을 목격한 대대장이던가 사단장이 격분했다. “어떤 놈이 감히 내 부하들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나? 당장 이실직고하지 못해?”라고 다그쳐서 진상을 파악하고, 5분 대기조까지 편성해서 결국 가해자들을 잡아내고 합의 내지 처벌시켰다.

시스템 클럽에 가 보면 지 만원 박사의 회고록에도 월남전 참전 중에 겪은 비슷한 일화가 수록돼 있으니 참고하시라.

“앞으로 C-레이션(미군 전투 식량)이 필요하면 내게 전화하라. 하지만 만일 내 병사에게 손을 또 한번 대면 그 때엔 주먹과 무력으로 다스릴 것이다.” 전쟁터에서 존중돼야 할 전투병들이 옷이나 깨끗히 다려 입고 지내는 헌병 따위에게 뺨을 맞고 다닌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까불던 헌병들이 그날 전투병들의 맛을 톡톡히 본 것이다. 그후 그 초소를 지나는 내 부대 차량들은 언제나 기분좋게 프리패스됐다.


자, 이런 것들이 바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챙겨 주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방법이다.
저런 지도자 밑에서라면 내 목숨 바쳐서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있겠다고 병사들의 마음을 사는 방법이다!

훈련할 때, 굴릴 때는 정말 가혹하게 빡세게 굴리더라도 상벌을 확실하고 공정하게 주고, 진짜 위급한 전쟁터에서야말로 진정한 전투력과 전우애가 나오게 하고..
초병은 직속상사의 명령 외에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는 걸 윗사람들이 솔선수범해서 실천하고..

나라가 예산이 모자라서 병사들에게 월급을 알바 최저임금 수준만치도 못 준다면, 돈 안 드는 저런 리더십이라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소한 “간부, 고참들부터 죽인 뒤에 북한군 쏘겠다” 이러는 병사는 국군내에 없어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09 08:23 2013/09/0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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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흔히 육해공 3군으로 나뉘는데, 이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육군: 땅개로 설명 끝이다. 장병들은 병영에서 생활하면서 각종 작업이나 일과 수행을 위해 온갖 장소를 돌아다녀야 한다. 보병+소총수라는 제일 기본 보직이 있으며 이들에겐 행군 능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단, 의사 중에 TOP은 외과 의사이듯이, 육군 중의 TOP 병과는 역시 포병이 아닌가 싶다.
  • 해군: 배가 곧 생활 공간 겸 전장이기도 하다는 게 중요한 특징이다. 해군만의 그 특유의 세일러 복장이 있다. 육군에 행군과 화생방이 있다면 해군엔 전투수영이 있다. 연평해전, 천안함 등의 사건으로 인해, 근래까지 병사들 중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한 전사자가 제일 많이 나온 곳이다.

그리고,

  • 공군: 여타 군과는 달리 공군은 소수의 전투기 조종사를 지원하고 비행장· 기지 내부를 방어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투 병과의 비중이 높으며, 병사가 무슨 비행기 타고 영공을 지키다가 전사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육군 같은 행군· 숙영은 없지만 화생방의 비중이 높다.

공군 훈련소에서 수류탄 훈련은 완전 야메로 넘기면서 교관이 “너희들이 이걸 던지는 상황이라면 전쟁은 이미 진 거다.”라고 말하는 건 유명한 일화인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지 바깥을 몇 겹으로 지키고 있던 육군 병력이 전멸했다는 뜻이므로.

군용기에는 비행기 대 비행기가 싸우는 전투기만 있는 게 아니다. 지상에다 다량의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 전문인 폭격기도 있고, 정찰기· 조기경보기도 있다. (한편, 전투와 폭격을 겸할 수 있는 공격용 군용기를 전폭기라고 한다)
그리고 또 무시 못 할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다름아닌 수송기이다. 방대한 물량이 생명인 오늘날의 전장에서 군대 유지의 생명은 보급이다. 수송기는 이 보급을 책임지는 물건이기 때문에, 비록 전투기 같은 화려함은 없을지언정 전쟁에서의 숨은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배보다 수송량은 부족하지만 속도가 워낙 넘사벽이니..

역사적으로 볼 때 월남전의 상징이 헬리콥터라면, 걸프전 하면 수송기를 떠올려도 좋다. 다량의 수송기 덕분에 그 먼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에 미국(+다국적군)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조종사밖에 못 타는 전폭기만 먼저 도착해 있으면 뭘 하나. 정비 인력, 각종 부품, 무장, 보급이 없는데?

군용 수송기는 웬지 프로펠러기가 많이 눈에 띄는 것 같다. 본인의 직장이 있는 판교도 아무래도 서울 공항과 가까운 곳인지라 종종 수송기가 저공으로 날아다니는 게 눈에 띈다.
굳이 군용기뿐만이 아니라 화물기가 전반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얘네들은 민항기에 비해 랜딩기어가 굉장히 낮은 걸 볼 수 있다. 개로 치면 다리가 몹시 짧은 닥스훈트 같은 품종? 기체가 지면에 더욱 가까이 있다. (왼쪽은 보잉 737, 오른쪽은 수송기 C-141)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것은 사실 화물을 싣는 모든 교통수단들이 공통으로 갖는 특징이다. 기체의 높이가 낮아야 무거운 화물을 기내에 반입하기가 쉬우니까. 시내버스만 해도 사람이 타기 불편하다고 저상 버스가 있는 지경인데 하물며 화물은 어떠하겠는가? 짐받이에다가 탑승교를 마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영화에서도 종종 보지만, 수송기의 뒷문은 아예 아래로 열어젖혀서 화물을 싣는 입구 램프(ramp)로 종종 쓰인다. 중세 영화 장면에서 성(castle)문을 바닥 쪽으로 열어서 문짝을 그대로 도랑과 성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bridge)로 쓰듯이 말이다.
이렇게 비행기의 기체가 지면과 가깝게 낮아지다 보니, 날개는 기체에서 상당히 윗부분에 달릴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야 날개 밑에다 엔진이든 프로펠러든 달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수송기의 외형은 일반 민항기와는 살짝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날개의 구조는 비행기의 연비 절약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특성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군용차만 해도 사륜구동에 차체가 온통 무거운 쇳덩이여서 튼튼하고 힘은 좋다만, 완전 기름 먹는 하마이지 않던가. 군용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장에서 임시로 만들어진 거칠고 험악한 활주로에서도 안 부서지고 뜨고 내릴 수 있게 튼튼하고 다소 무겁게 만들어진다. 그러니 군용 수송기는 민항기보다 경제성이 여러 모로 떨어진다.

앞서 말했듯이 수송기는 전투기보다 '간지'가 덜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종 병과를 전공한 정예 공군 장교가 도저히 전투기를 조종할 수 없게 됐을 때 차순위로 빠지는 게 수송기나 헬리콥터 쪽 보직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보직으로 가는 인원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전투기의 조종간을 잡은 경험만이 공군 장성으로 진급할 때나 전역 후 민항사로 재취업할 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수송기 경력은 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송기도 전쟁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니, 그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 덧붙이는 말

1. 수송기 추락 사고

우리나라는 1982년에 도대체 무슨 마가 씌였는지 군 수송기가 두 대나 산에 추락하는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하나는 2월에 제주도 한라산이고, 다른 하나는 6월에 서울 청계산.
사고의 원인(악천후 때문에 방향· 위치 감각 상실), 사고 기체(C-123),
게다가 인명 피해(50여 명의 탑승 장병 전원 사망)까지 완전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그 이듬해에 민간에서 워낙 큰 사건· 사고가 또 나긴 했지만(KAL기 추락, 그리고 아웅산 폭탄 테러)
5공 시절에 군 내부에서 발생한 저 사고는 완전히 흑역사로 치부되고 비밀로 함구되었으며, 희생자 유족은 제대로 된 보상이나 예우도 못 받았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관련 자료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저런 거야말로 재조명과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슈가 아닌가 싶다.
과격한 훈련 중에 전투기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날씨 때문에 육지 지형을 파악 못 해서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게 애석하다. 뭐, 기체의 노후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는 듯하지만 말이다.

2. 조종사가 되기

항공업계는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위험한 전문직군이다 보니, 의료계와 더불어 조직 내부의 군기가 세고 그 대신 종사자의 대우도 매우 좋은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공군 사관학교 + 조종 병과로 가는 것이다. 군기 바짝 든 건장한 공군 출신 조종사는 민항사에서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이건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가 보장돼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어릴 적부터 몸 좋고 공부도 매우 잘해야 하거니와, 돈이 안 드는 대신 인생의 상당량을 국가를 위해 고된 군생활에 바쳐야 한다.

게다가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의무 복무 기간은 10년이지만, 공군 조종사만은 그 기간이 15년이다. 양성 비용이 워낙 많다 보니 국가에서 좀 더 오래 뽕(?)을 뽑아야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예전에는 군을 거치지 않고 민간 테크만으로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사실상 외국으로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미국은 자동차는 이미 신발이나 다름없는 필수품이고, 진짜 돈 많은 유명인사는 자동차를 넘어 자가용 비행기까지 날리는 천조국이니 말이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져서 국내에도 차츰 항공 관련 학과가 개설된 대학이나 조종사 양성소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국내든 국외든 그야말로 극심한 돈지랄은 불가피하다. 그 비싼 비행기를 조종하는 법을 배우는 게 돈으로나 노력으로나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을 거쳐서 배출된 조종사는 한동안 자기 연봉에서 교육비가 공제된다. 그런 식으로 채무를 청산한다. 청산이 완료되기 전에 조종사가 그 회사를 퇴사한다면 미납 교육비를 모두 뱉어 주고 나가야 한다.

그러고 보니, 대한 항공 조종사 출신인 말씀 보존 학회 대표가 문득 대단하게 보인다. =_=;;; 공사가 아닌 민간 출신이다. 킹 제임스 진영을 이끄는 사람들은 다들 참 똑똑한 사람들이긴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3/08/05 08:36 2013/08/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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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 르메이(1906-1990).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미국의 군 장성이다. 군사, 세계사, 현대 전쟁사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름을 들어서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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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 정말 골때리면서도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는 정말 뼛속까지 군인 타입으로, 닥치고 폭격기 화력 덕후였으며 그의 주특기는 쑥밭 만들기였다.
하긴, 그 당시 미국은 워낙 물자가 풍족하게 넘쳐나는 부자 나라였으니 그의 전투 이념은 나름 적절했다.

게다가 그는 '석기 시대'를 굉장히 좋아한 매니아였다. ㅋㅋㅋㅋㅋ
미국 앞에서 깝치는 적국들은 본진을 폭격으로 다 쑥밭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모조리 '죽탕치는(?)' 것도 아니고,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는 으름장을 공석에서 입버릇처럼 뇌까렸다. 영어로는 Stone Age.
호전적이고 입이 험악한 걸로 악명 높은 북한도 공식 석상에서 석기 시대 공갈을 친 적은 없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르메이 장군에 대해서 이런 패러디짤이 나돌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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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지휘 하에 일본 도쿄는 2차 세계 대전 말기에 그 이름도 유명한 '도쿄 대공습'을 당했다. 미군 폭격기가 우박처럼 떨어뜨리는 소이탄에 시내 전체가 말 그대로 시뻘건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사진에서 보듯, 목조 건물은 형체도 없이 그냥 주저앉아 없어졌고, 일부 석조/콘크리트 건물도 새까맣게 탄 흉측한 몰골만 남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폭격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10만여 명에 달해서 사실은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로 죽은 사람보다도 수가 더 많았다고 한다. 도쿄를 그런 석기 시대로 되돌리는 데는 겨우 3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게 무슨 원폭을 성층권 고도에서 투하하는 식이 아니라 상당한 저공에서 위험한 자세로 소이탄을 떨어뜨리다 보니, 미군도 폭격기가 총 12기나 일본의 대공포로부터 반격을 받아 격추되고, 42기는 피탄 당하는 손해를 입었다. 이에 몇몇 미군 파일럿들은 권총을 들고 르메이를 직접 찾아가서 이렇게 따졌다.

“왜 이런 무모한 저공 비행 폭격 명령을 내렸는가? 귀관 때문에 우리가 전우를 얼마나 많이 잃었는지 아는가?”

하지만 르메이는 그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제군들은 단 하루 만에 일본 제국의 수도를 잿더미로 만들고 놈들을 최소 10만 명이나 없앴다! (사실, 미군 전사자는 많아 봤자 수십~수백 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작전은 대성공이다. 이런 식으로 내일은 나고야, 모레는 오사카, 그 다음은 고베.. 1주일 동안 일본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모두들 오늘의 성공을 자축하도록!

전쟁을 치르면서 전사자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작전 자체는 르메이의 말대로 미군의 승리이긴 하지만... 저건 좀.. ^^;; 정말 그의 머리에 든 건 오로지 폭격밖에 없었다.
일본이 원폭을 맞고 나서 일찌감치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르메이가 생각한 작전들이 모두 시행되었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진짜로 지도에서 없어지고 일본 열도는 석기 시대로 퇴화했을지도 모른다.

이 양반의 무자비한 작전은 훗날 6·25 때도 계속되었다. 북한 중에서도 평양 시내는 그야말로 형체가 남은 건물이 손에 꼽을 정도였을 정도로 그냥 말 그대로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다. 오로지 미국이니까 가능한 돈지랄로 폭탄을 그냥 때려 박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때문에 그 당시 북한의 내부에서는, 평양을 재건할 게 아니라 아예 이 기회에 수도를 다른 데로 옮기는 게 낫지 않겠냐는 논의도 오갔다고 한다. 비록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때의 공습과 폭격의 악몽 때문에 지금 평양 시내는 이에 대비하느라 지하 방공망이 굉장히 깊고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다. 평양 지하철이 무지막지하게 깊게 건설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 뒤에도 르메이의 버릇은 어디 가지 않았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월남전 땐 베트남도, 그리고 쿠바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베트남이건 쿠바건 다 폭격해서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 대통령 각하는 명령만 내려 달라”는 식으로 일관되게 나섰다.
마치 게임 해설자 김 태형 씨가 캐리어를 좋아하듯 그는 석기 시대가 자기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중에는 미국의 정치인들도 그의 말투를 따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걸프전 때 이라크를 석기 시대로 되돌리겠다고 공갈을 쳤고, 나중에 9· 11이 터졌을 때는 파키스탄을 상대로도 대테러전에 협조하지 않으면 너네 나라를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그랬다. 뭐, 반미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협박 멘트에 심기가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르메이 같은 사람도 미군에 있는데 맥아더 장군은 차라리 양반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맥아더가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군인이라지만 그도 인간이고 신은 아니기에, 맨날 인천 상륙 작전 같은 성공만 한 게 아니며 실수도 저질렀다. 처음엔 북한과 중공군을 얕잡아보다가 1· 4 후퇴를 당하고 호되게 데인 뒤에야, “이 자식들 안 되겠어.”라고 하면서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강경책을 쓰려 했다.

어떻게든 빨갱이들을 없애 버리겠다는 의도 자체는 좋지만, 그렇다고 한반도에다 핵을 또 터뜨린다거나, 전쟁을 아예 3차 세계 대전 급의 대규모 장기전으로 키우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식이었으니... 이런 강경한 생각이 화근이 되어 맥아더가 트루먼 대통령과의 사이가 틀어진 건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르메이도 그 당시 “이 좋은 핵무기를 왜 안 써?” 급의 생각을 하고 있던 건 마찬가지였다. 맥아더보다 더하면 더한 꼴통이지 못하지는 않았다.
미국 대통령이 이런 호전적인 군 장성 양반들의 근성을 이성적으로 잘 통제하지 않았다면, 과거에 소련과의 냉전이 냉전으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굳이 한반도가 아니어도 어디에서 핵이 한두 발 터지는 바람에 특정 국가가 지도에서 사라지거나 진짜 석기 시대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오죽했으면 아인슈타인도 “3차 세계 대전 때 인간이 무슨 신무기를 쓰고 있을지는 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면, 그때 인간은 새총(slingshot) 같은 냉병기를 쓰고 있겠죠?”라고 얘기했겠는가. 성문 종합 영어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지문이다. 아인슈타인 역시 영락없이 석기 시대 회귀-_-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석기 시대 드립 말고 르메이 장군이 자신의 호전성을 또 드러낸 유명한 어록으로는 “세상에 무고한 민간인이란 없다”(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이다.
사실, 도쿄 대공습 같은 경우 미국이 연합국이고 전쟁에서 이겼으니 망정이지, 저렇게 대놓고 시내를 폭격하여 비전투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건 전쟁 범죄로 간주될 수 있는 짓이었다.
대놓고 말해, 나치 독일이 영국이나 미국의 본토 도심지를 소이탄 폭격으로 다 불태워서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다면 그 후폭풍이 어찌 됐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메이는 작전을 강행했다.

일례로,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는 작전에 참여했던 폴 티베트 대령은 훗날 다음과 같은 요지로 회고한 바 있다.
“난 그 당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그리고 원폭은 전쟁을 더 일찍 종결시키고 더 많은 인명의 희생을 막은 차선이며 필요악이었다고 생각한다. 군인으로서 나의 행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는 없다.”

허나, 르메이는 한 술 더 떠서 민간인의 죽음에 대해 아예 그 정도의 책임이나 죄책감마저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
“사실 저 밑에 곤도네는 군용 볼트를, 옆집 스즈키네는 군용 너트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무고해 보인다고 저 민간인들을 안 죽이면, 그게 다 우리를 죽이는 병력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니 마음껏 폭격하고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태워 버려라.)”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르메이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일본은 도시 구조가 민간인 거주지와 군수 업체 영역의 구분이 그다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생전 어록으로는 이 외에도
“전쟁이란 총알 많은 쪽이 많이 죽이면 이기는 것이다.”
“충분히 많이 죽이면 다시는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처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우악스럽고 꼴통 같은 방면으로 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도 아무려면 어때, 천조국 미국 소속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최소한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고, 그러다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같은 이런 진짜 미친 개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저건 잘 알다시피 '무다구치 렌야'라고 일본 역사상 최악의 무능한 장군이 남긴 훈시.. -_-
그도 그럴 것이 물량이 풍족한 곳에서 그냥 물량으로 밀면 된다는 교리가, 없는 여건 속에서 닥치고 근성과 정신력만으로 돌격하라는 교리보다는 훨씬 나은 게 자명하지 않은가?
그는 스타크래프트를 했으면 무한 맵에서 저그 가디언 굴리는 걸 좋아했을 것 같다. (대공 유닛으로 대지상 폭격 -_-)

뭐, 르메이 장군은 맥아더 장군과 마찬가지로 우리 같은 사람으로서는 미워할 구석이 없는 인물이다.
우방국의 장군답게 일본, 북한 등 대한민국의 적들하고만 싸웠으니 말이다.
(아 하긴, 무다구치 렌야도 자기 군대를 말아먹은 행적이 가히 대한 독립 유공자 급이니, 우리가 딱히 미워할 구석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고.. -_-;;;)

그는 그런 호전적인 기질답지 않게 미군의 전술 체계 수립에 큰 공을 세운 바 있으며, 심지어 적국인 일본으로부터도 훗날 자위대의 재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기도 했다. 괜히 장성까지 진급한 게 아니다.

다만, 그 막강한 화력으로 미국이 전투는 이겼을지 몰라도 한국전과 베트남전은 적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깔끔한 '전쟁 승리'를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도쿄 대공습 때는 재일 동포도 많이 희생된 게 사실이다. 비록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글을 맺으면서 마지막 한 마디.
이 사람의 상징은 잘 알다시피 '석기 시대'이다. 허나 아담 이래로 6천 년 인류 역사를 믿는 크리스천은 인류에게 딱히 석기 시대라 불릴 만한 긴 원시 시대가 존재했다고 믿지 않는다.
문명의 이기가 존재하지 않는 시절로의 퇴보를 언급하려 한다면, 차라리 노아의 홍수 직후 상태로 되돌리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될 텐데.. 아무래도 '석기 시대'보다는 우악스러움이 덜하다. ^^

Posted by 사무엘

2013/03/07 19:26 2013/03/0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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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주

인간이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요소를 가리키는 용어로 '의식주'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먼저 의(의복).
사람은 누구나 알몸으로 태어나지만,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최소한의 옷 한 벌은 무조건적으로 갖추고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주 공간이나 사막이나 극지방 같은 극도의 악천후에서 살지 않는 이상, 벌거벗고 지낸다고 해서 당장 생물학적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지는 않는다. 옷이 무슨 물이나 산소나 음식 같은 물질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옷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과 결코 제대로 생활할 수 없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오직 인간만 말이다. 성경은 그렇게 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옷은 착용자의 신분과 격식을 나타내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옷차림은 문화와 예절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정 상황에서 적절한 의상이 갖춰져 있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상당히 난감해진다. 오죽했으면 성경에서도 결혼식 예복을 갖춰 입지 못한 사람이 예식장에서 강퇴 당하는 비유가 등장한다(마 22:11-13). 교리적으로 담고 있는 메시지는 따로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다음으로 식(음식)이다.
사람은 일차적으로는 물론 체력을 얻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밥을 먹는다. 그러나 식생활은 단순한 연명 활동을 넘어 입을 심심하지 않게 하고 좋은 기분과 컨디션을 유지시키는 등,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의외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문명이 존재하는 사회에는 식사 예절이라는 것도 문화에 따라 아주 정교하게 발달해 있다.

인간이 하루에 두어 차례 일과 활동을 중단하고 식사를 해야 하는 건 사실 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비효율과 손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에게 필요한 열량과 영양분을 단번에 주입할 수 있는 알약 같은 게 개발된다 하더라도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인간의 전통적인 식사 관행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명되고 달과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내는 오늘날 21세기에조차도 인류의 식량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전세계에는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이 많으며, 인간의 식량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땅의 소출, 다시 말해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농업은 예나 지금이나 하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만 돌아갈 수 있는 산업이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끝으로 주(집)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집 문제 때문에 결혼조차 엄두를 못 내게 될 정도로 이와 관련된 사회적 병폐가 심각하다. 땅의 절대적인 면적이 좁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너무 좁게 사는 게 문제이다. 아무 곳에나 덥석 정착해서 사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입지 조건을 안 따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의와 식에 비해서 '주'는 상대적으로 덜 강조하는 것 같다. 산상수훈인 마 6:25라든가 만족을 명령하는 딤전 6:8을 봐도, 의와 식은 명시되어 있지만 주는 누락이다. 예수님 역시 변변한 거처가 없이 사셨다(마 8:20).

이는 다른 이유는 없고, 크리스천들이 세상에서는 영적으로 나그네· 순례자로 산다는 사상이 반영되어서 그런 것 같다. 진짜 본향은 하늘에 따로 있으니까. 집이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누구 말마따나 성경도 이렇게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집을 장만하고,'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창 2:24 패러디)

※ 휴대용 식량

그럼 이제부터는 의식주 중에서 '식'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식사는 현장에서 갓 조리된 따끈한 음식을 충분히 가까운 곳(동일 건물)에서 바로 느긋하게 먹는 형태였다. 사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학교나 일터에서, 혹은 야외에서는 일일이 음식을 조리해서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근처에 식당조차 없다면 남는 선택은 도시락밖에 없다. 남의 행동이나 생각을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저지시키고 싶을 때,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리겠다”라는 관용구가 쓰이는데, 이게 도시락의 어떤 특성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표현이겠는지를 잘 생각해 보자. ㅋㅋ

그나마 학교는 이제 전부 급식 체제로 바뀌었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무료 급식까지 시행되고 있다 하니,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도시락을 일일이 싸 줘야 하는 부담은 덜게 되었다. 저게 무슨 돈으로 가능하겠는지에 대한 정치적 견해의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아무래도 도시락은 정식으로 차려 먹는 밥보다야 덜 따뜻하고 덜 신선하며, 원하는 형태의 요리를 마음껏 먹을 수 없다는 제약이 존재한다. 더구나 단순히 점심 한 끼나 그렇게 때우는 정도가 아니라 뱃사람이나 군인의 식단은 어땠을까? 지금 같은 냉동이나 식품 보존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고기 같은 건 닥치고 소금에 절이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보존성을 위해 맛을 크게 희생한 식품만 맨날 섭취해야 하는 건 당사자들에게 큰 고역과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오늘날 단순 도시락 이상의 위상으로 통용되는 휴대용 식량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비행기 기내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행 속도가 느리고 공간이 넉넉한 배야 장거리 여객선에는 주방이 있다. 열차에도 식당칸이 있다. 고속버스는 그냥 휴게소에 들르면 끝..;; 그러나 비행기는 그런 것까지 갖출 여건은 안 되니, 8시간 이상 장거리 노선을 뛰는 여객기에서는 미리 납품받은 기내식을 승객들에게 공급하게 된다.

기내식을 받아 먹는 느낌은 참 독특하다. 비록 비행기에서 직접 조리를 한 음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회용 용기에 달랑 담긴 한솥 도시락이나 예비군 점심 도시락 수준의 '대충'도 아니다. 기내식은 항공사의 이미지와도 큰 관련이 있다 보니, 세계 각국의 항공사들은 기내식을 최대한 맛있고 싸구려 티 안 나고 실제 식사와 비슷하게 만들려 애쓴다.

하지만 공중에서는 단순히 데우는 수준 이상의 조리를 하기가 힘들고, 또 기내에 배기는 냄새와 뒷처리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기내식을 한없이 고급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내식은 일반 식사보다 의도적으로 고지방· 고칼로리를 추구하며 제조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극단적인 상황에서 승객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한 끼가 거의 1000kcal에 달한다니 말 다 했다. 그리고 지상보다 더 기압과 습도가 낮은 곳에서 먹는 걸 염두에 두기 때문에, 입맛을 돋우려고 조미료와 기름도 더 많이 넣고, 더 짜거나 더 달게 만든다. 보기와는 달리, 기내식만 많이 먹으면 건강에 별로 안 좋을 것 같다.

2. 전투 식량

식량의 조달은 식욕이 왕성한 수많은 장정들을 거느리는 군대를 운영하는 데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군대에서도 주둔 중이나 평시에는 실시간으로 조리된 밥과 국과 반찬을 식판으로 퍼서 먹는 '일반 식사'가 나온다. 그러나 야전에서 훈련이나 작전 수행 중일 때는 역시 portable한 전투 식량이 배급된다.

야전에서 음식을 취급하는 속도는 행군 속도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전투 식량은 휴대성과 보존성이 좋아야 하고 최소한의 물이나 불로 조리가 가능하며, 정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날로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체력 소모가 극심한 병사들이 먹는 음식이니, 굉장한 고열량이어야 하는 건 두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러고도 전투 식량은 병사들의 입맛에 착 맞고 절대적으로 맛있어야만 한다. 참혹한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일말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밥이라도 잘 먹여 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알고 보면 총포의 기술 발달에 만만찮게, 식품 가공 기술의 발달도 군의 선진화와 현대화에 굉장히 큰 기여를 한 셈이다.

그러니 전투 식량은 앞서 언급한 기내식만큼이나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고, 일반인들이 많이 먹으면 비만에 걸릴 요소가 듬뿍 가미된다. 한국군에서는 굳이 야전에 안 나가고 내무 생활을 하는 중에도 이따금씩 정규 식사 대신에 전투 식량이 병사들에게 식사로 지급되는 때가 있는데, 이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전투 식량 재고분을 소진하기 위해서이다.

밀덕 중에는 국군이나 미군의 전투 식량을 구해 먹으려고 벼르는 사람도 있다. 일반 음식보다 열악한 여건에서 먹으라고 만들어진 음식을 일부러 찾아서 먹는 이유는, 자신이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라는 특권 의식을 경험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전투 식량은 포장과 내용물 등 봐야 할 게 여럿 있기 때문에, 링크를 하나 소개하는 걸로 그림 소개를 대신하겠다.

참고로 전투 식량은 진짜 비상 식량과는 다른 개념이다. 비상 식량은 추락한 비행기의 조종사나, 조난 당한 선원이 구조될 때까지 무인도나 망망대해에서 생존을 위해서 섭취하는 고농축 영양제 같은 음식이다. 단순히 야전에서 작전 수행 중에 먹는 게 아니라, 작전 수행 중에 돌발상황이 불가피하게 생겼을 때 먹는 것이다. 비상 식량은 먹게 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오로지 보존성과 휴대성만이 강조될 뿐, 맛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3. 우주 식량

우주인은 군인만치 그렇게 격렬한 육체 활동을 하지는 않으므로, 우주 식량은 전투 식량만치 고열량을 추구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중력 내지 우주 공간에서는 지상에서처럼 음식 맛이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우주식은 역시 기내식 만만찮게 조미료 도배가 되어야 한다. 또한 무중력 공간에서 인체가 잃기 쉬운 칼슘 같은 영양소를 우주식이 특별히 보충해 줘야 할 필요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으로 물리적인 형태를 살펴보면, 우주식은 같은 영양 성분이면 무게와 부피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공 건조가 잘 되어야 하며, 그리고 가루· 부스러기가 날리는 형태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무중력 상태에서 음식 파편이 날리면 심각하게 골치 아파지기 때문. 그런 게 기계 내부로 빨려들어가 기계의 고장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니 초기의 우주식은 닥치고 튜브+빨대 형태였다. 먹을 때 입을 크게 안 벌려도 되고, 파편 유출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가장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와 영양학적 효율을 위해 맛을 크게 희생한 초기의 우주식은 우주 비행사들의 불만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으며, 기술의 발달 끝에 지금은 어지간한 형태의 음식들은 다 우주식으로 개량이 가능해졌다. 김치, 라면, 불고기, 비빔밥, 미역국 같은 것도 모두 우주에서 먹을 수 있다.

우주식은 무중력 상태에서도 음식과 식기가 흩어지지 않게 식판에 이례적으로 벨크로(찍찍이)와 자석이 붙어 있다.
이렇듯, 비행기 기내식과 군대 전투 식량, 그리고 우주 식량은 대체로 영양이 보강되어 있고 휴대성과 보존성이 강화되어 있다는 큰 공통점이 있으면서 세부적인 조건은 살짝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2/10/07 08:32 2012/10/0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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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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