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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대내의 박물관 관람 → (2) 천안함 잔해 구경 → (3) 초청자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군함 구경 → (4) 초청자의 관사에서 식사 대접 받으며 교제 순의 코스였다. 옆에 같이 간 사람들은 모두 교회 사람들. 단순 안보 관광인 (1), (2)를 넘어 (3), (4)는 군 관계자 인맥이 없으면 경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 나의 “천하의 개쌍놈 북한” 관념이 이 견학을 계기로 더욱 투철해졌다. 정정당당한 교전으로는 남한을 이길 수 없어지니 치밀하게 비열한 복수극을 계획한 나쁜 놈들. 늘 민족 동족 운운하면서 뒤로는 일본 이상으로 나쁜짓을 해 온 녀석들이다.

- 제2 연평해전 당시에 교전 수칙 때문에 대통령이 많이 까였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내가 더 이해를 할 수 없는 건 당시 제1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지휘관인 박 정선 제독을 나라에서는 (사실상) 좌천 발령시키고 이내 전역시켜버렸다는 사실. 100번 까여야 마땅하다. 어디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건 북한의 요구대로 한 게 정말 사실인가?

- 제2 연평해전 전사자 영결식이던가 그때 대통령이 안 온 것에 대해서, 기지 견학을 시켜 준 해군 관계자는 아직까지도 꽤 유감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 제주 해군 기지 건설에도 배후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 육군은 닥치고 쪽수이고, 공군은 1인 1비행기인 전투기 파일럿만 빼면 대부분이 비전투 병과인 반면, 해군은 배가 생활 공간 겸 그대로 전장이다 보니 그 중간에 속하는 군대 문화를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은 수출에 목숨 걸어야 하고 바다 없이는 못 사는 나라인 주제에, 해군에 대한 지원이 너무 열악하다고 한다.

- 군함에는 내연기관과 제트엔진이 모두 달려 있다고 한다. 이것도 자동차와 비행기의 중간인 셈인데, 제트엔진을 가동하면 무척 빨리 움직일 수 있지만 극심한 소음과 연료 소모를 감수해야 한다고. 그런데 둘은 사용하는 연료부터가 서로 다르지 않나? (중유 vs 등유)

- 평택 시내의 경부 고속선 고가를 달리는 KTX를 보니 정말 감격스러웠다.

- 우리나라 철도를 공부하면서 단련된 나의 우리나라 역사, 지리, 안보 지식은 군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철도님, 사랑합니다.

- 이런 곳에 신실한 KJV 빌리버 크리스천이 계셔서 성경 교제와 안보 관광을 동시에 하고 올 줄이야. 친절하게 군 시설을 안내하고 융숭한 대접을 해 주신 해군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2/09/01 19:34 2012/09/0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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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 이야기

우리나라에는 잘 알다시피 국군이라고 불리는 정규 군대가 존재하고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은 너무 국력이 강해서 과거에 세계를 상대로 깽판을 친 벌로, 국제법상으로는 오히려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여건이 좋지 않고 국력도 충분치 못해서 반대로 징병을 안 하면 안 되는 신세가 된 게 한탄스럽긴 하다.

우리나라 국군의 기본적인 이념은 defensive이다. 아니, 사실 오늘날 적극적인 offensive를 표방하는 군대는 세계 경찰· 지구 방위대를 자처하는 미군-_-밖에 없을 것이다.
군대는 육· 해· 공으로 분야가 크게 나뉜다. 한국군은 국토가 삼면이 바다인 반도 지형인데도 불구하고 육군만 기형적으로 너무 크다는 지적이 있다. 뭐, 비록 오늘날의 전쟁은 최첨단 무기의 각축장이긴 하나, 그래도 정말 최후에 점령지에서 깃발 꽂고 승리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은 언제나 재래식 육군 보병이니, 전쟁의 기본 구도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군대에는 군대를 잘 이끌어나갈 유능한 차세대 지도자가 필요하며, 이를 양성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육· 해· 공별로 총 3개의 사관학교가 있다. 육사는 서울 노원구에 있고, 공사는 충북 청원에, 해사는 창원에 있어서 남한의 북부· 중부· 남부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공사는 서울에 있었으나 1985년에 충청도로 이사 갔다. 그리고 옛 공사 부지가 지금의 보라매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것이 서울 지하철 7호선 보라매 역의 어원이다.
한편, 다른 덴 몰라도 해사는 당연히 바닷가 항구 도시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해군은 병사 훈련소도 사관학교와 동일한 창원시 진해군에 있다.

사관학교는 예나 지금이나 명문 학교로 간주되고 있으며, 또 그래야만 정상이다.
군사 정권 시절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떨어진 게 사실이나, 지금도 경쟁률이 꽤 높으며 서성한이나 중경외시 사이는 충분히 되는 입결인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이 어려운 연간 등록금 1000만 원 시대에, 사관학교는 학비는 물론 주거비· 생활비가 전혀 들지 않으며, 오히려 학교에서 품위유지비 월급까지 나온다. 입학하면 개인별로 노트북 PC가 지급되고 기숙사 방에는 프린터도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관학교는 학생을 상대로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을 걸고 까칠하게 굴 수 있다.
입학 전형은 여름 무렵부터 일찌감치 시작되며, 필기고사부터 시작해 내신은 물론 마지막의 수능 결과까지 입시에 반영된다. 필기고사는 3사관학교가 공동 출제하여 동시에 시험을 보기 때문에, 학생은 서로 다른 군의 사관학교에 동시 지원을 할 수 없다. 체력 검정과 신원 조회까지 다 한다.

최종 합격자는 고3 겨울방학 자유시간이 없다. 가입교 기간이라 하여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다 보내야 한다. 뭐, 해군과 공군처럼 100% 지원자로만 구성되는 군대는 병사도 가입교 기간이 있긴 하다만, 사관학교의 가입교는 성격이 좀 다르다.

정식 입학한 사관학교 학생은 생도라고 불린다. 영어로도 그냥 student가 아닌 cadet이라고 다른 호칭이 붙는다. 이들은 국비로 엘리트 장교로 양성되는 대신, 일반 대학생보다 개인 자유를 훨씬 더 제한당한 채 4년을 보내야 한다.
학교 생활 전반이 군생활이다. 수업을 들으러 기숙사에서 강의동으로 이동하는 것도 단순 등교가 아니라 학사 출장이기 때문에, 단체로 오와열 맞춰서 해야 한다.
방학다운 방학도 없으며, 이때의 스케줄은 군사 훈련이나 국토 대장정 같은 다른 활동으로 꽉 차 있다..

군대는 전쟁터에서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집단이 아니던가. 그래서 조직이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야만성을 최대한 감추고, 그 대신 명예와 규율, 정의를 이념적으로 어지간한 종교 집단 이상으로 대단히 강조한다. 육· 해· 공 사관학교는 공통으로, 중간과 기말 때 감독이 없는 명예 시험을 실시하며, “사관 생도는 진실만을 말한다. 사관 생도의 언행은 언제나 일치한다...” 같은 honor code도 부과되고 있다.

생도는 학사 경고를 한 번만 먹어도 바로 퇴교(퇴학도, 제적도 아닌 퇴교)이며, 심한 질병이 아닌 다른 사유로는 휴학도 못 한다.
육사의 경우 낙하산 타고 뛰어내리는 공수 훈련을 무서워서 못 받으면 퇴교이고, 승마와 태권도도 졸업 때까지 무슨 급 이상까지 못 해내면 퇴교이다. 뭐, 이런 저런 식으로 언뜻 보기에 까다로운 제약 조건이 많긴 하지만, 군인 정신 투철하고 육사까지 갈 정도로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 못 할 수준은 물론 아니다.

이런 학교 시스템에 적응을 못 하고 퇴교하는 사람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것은 국가로서는 예산 낭비이고 손실이다. 성적 미달(능력 부족-_-)이나 질병(불가피) 이외의 사유로 퇴교하는 사람은--특히 자퇴하거나 사고 치고 짤리면-- 이제 국군에서 어떤 형태로든 장교가 영원히 될 수 없다. 그리고 1학년은 병-_-으로, 2~3학년은 하사로, 4학년은 중사로 곧바로 군 복무를 하게 된다. 뭐, 연장자도 자기가 원한다면 부사관 대신 병으로 복무할 수도 있긴 하지만.. 왕년의 짬밥이 있으니 군사 훈련은 물론 면제이고 바로 자대 배치이며, 육사에 다녔던 기간이 감안되어 복무 기간은 다소 짧아진다고 한다.

여자 생도야 퇴교와 동시에 군대와의 인연은 그대로 끝이다. 단, 남자든 여자든 가입교 기간에 뛰쳐나간 것은 애시당초 정식 입학이 아니기 때문에 추후의 장교 복무 지원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된 4년간의 생도 생활을 마치면 이들은 군사학 학사와 더불어 자기 전공에 따라 문학사나 공학사, 이렇게 두 개의 학사 학위를 받고 소위로 임관한다. 이들이 방학도 없이 얼마나 빡세게 지냈는지를 감안하면, 학위를 둘 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듯. 임관식 때는 잘 알다시피 대통령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도 많이 온다. 이들의 의무 군복무 기간은 10년이나, 아마 5년차에 단기 전역 신청도 가능은 하지 싶다.

일단 중위에서 대위로 넘어가면 정말 군대가 단순 통과 경로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며 생계 수단인 사람들인데, 10년보다도 더 오래 남아 있으려는 사람은, 대령에 장군까지도 넘보는 군대 고위 간부요 만렙 지망생인 셈이다. 중령 이상 되면 전역 후에도 연금까지 나올 걸?

사관학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작은 학교여서 전교생이 몇백 명, 천 명이 될까말까이다. 그러니 실제 복무 중인 장교들은 사관학교뿐만이 아니라 학사 장교, ROTC 등 다른 출신이 더 많다.

하지만 이들 중에 사관학교 출신이야말로 성골이며, 진급이 가장 유리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딱히 전쟁이 안 나고 누가 북한군을 몇 명 더 잡았다는 식으로 눈에 띄는 공적 기록이 없는 군인들의 세계에서는, 저런 출신으로 랭크가 생기는 게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다만, 이들이 더 힘들고 위험한 전방 부대의 전투 병과로 더 우선적으로 배치되며, 그런 곳에서의 근무 경력이 진급에 당연히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큰 사고 안 치면 중령까지는 거의 확실하고 대령부터가 갈라진다고 보면 된다.

생도와 일반 병사와의 관계는 어떨까? 사관학교는 학교인 동시에 일종의 군부대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잡일 근무하는 병사도 소수 존재한다. 사관학교 내부에 근로 장학생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나 병사와 생도는 서로 다른 구역에서 생활하며, 마주치더라도 상종을 안 하는 게 불문율이다. 덧붙이자면, 육사 출신이 그런 병사들을 통솔하는 간부로 발령 나지도 않는다.

다만, 육사에는 생도들에게 승마를 가르치는 군마조교병이라는 특기병이 있는 건 특이점이라 하겠다. 병사가 생도를 가르친다니! 이곳에서 근무하는 병사의 인터뷰를 본인은 본 적이 있다.
또한 여기가 비록 군사 시설이라 해도, 민간인의 사관학교 방문은 국정원을 방문하는 것만치 까다롭지는 않다.

사관학교는 잘 알다시피 해병대처럼 학번 대신 기수로 서열을 매긴다. 군대가 무슨 민영화-_-를 해서 다른 경쟁 사관학교가 있기라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사관학교 출신들은 순혈주의-_- 동문 문화가 굉장히 발달해 있고, 교수들도 당연히 육사면 육사, 공사면 공사 등 동일 학교 출신이다. 군 복무 기간 동안 군에서 보내 주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한 케이스라 하겠다.

사관학교 출신은 비록 군대에 오래 몸담지 않고 일찍 예편한다 하더라도, 앞서 말했듯이 나름 명문대 출신으로 사회에서도 응당 인정을 받고 있다. 회사에서도 사람 뽑을 때 같은 값이면 병보다는 장교 복무 경력이 있는 사람을 더 쳐주지 않던가? 게다가 공사 졸업한 전투기 조종사 출신은 민간 항공기 조종사라는 마법의 진로까지 있다. 군대보다 보수가 훨씬 더 좋고, 민항사에서 공사 출신 인재를 적극 원하기도 하니 윈윈 게임인데 정작 공군 측에서는 인재 유출 때문에 고민이라고 한다. (과학고/카이스트에서 국비로 공부한 이공계 인재가 그래 봤자 다 의대로 빠져나가는 것과 비슷한 차원의 고민쯤으로 생각하면 됨 ㄲㄲㄲㄲ)

사관학교는 명목상 국립 특수 대학교이긴 하지만, 대표자의 직함이 총장이 아니라 교장이다. 얘네들은 이상하게 '교'짜를 좋아한다. 역시 국립 특수 대학교인 카이스트는 한때 대표자의 직함이 원장이었는데, 한 2004년 무렵부터 총장으로 바뀐 케이스에 속한다.
요즘은 사관학교 교장은 중장, 다시 말해 쓰리스타의 보직으로 여겨지고 있다. 군 지도자를 양성하는 최정예 교육기관을 대표하는 보직이니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육· 해· 공을 막론하고 역대 사관학교 교장들의 재임 기간을 보면, 임기가 굉장히 짧다. 교장이 거의 2년 주기로 바뀌며, 생긴 지 길어야 70년도 안 된 학교가 교장의 대수가 3, 40대에 육박해 있다. 왜 그럴까?
이는 하루가 멀다하고 수시로 바뀌는 장군들의 보직 이동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사관학교 교장은 일반 대학교의 총장과는 신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군은 인사적체가 아주 심해서 장군 수에 비해 보직 수는 부족하니, 번갈아가면서 교장 자리 앉혀 준 뒤, 빨리 군단장 거쳐서 더 진급할 사람은 포스타 사령관, 합참의장 자리까지 가는가 보다. 잘 알다시피 군대 장교 시스템이라는 것은, 부사관과는 달리 일정 나이 때까지 진급 못 하면 짤리는 피라미드 구조이기 때문.

이상으로 본인이 우리나라의 사관학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쭉 memory dump해 보았다. 참고로 이 글을 쓴 필자는 밀덕이 전혀 아니며, 군대 체질하고는 영 안 맞는 1人이다. -_-;;;

영천에는 3사관학교라고 하여 또 다른 육군 장교 양성 학교가 있다. 생도는 다른 2년제 대학을 마치고 입학해서는 2년 교육 후 여기서 4년제 대학 졸업으로 나오고 임관하는 만큼, 이게 학사 장교나 ROTC보다는 높게 평가되는 듯하다. 하지만 성골인 육사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교장도 쓰리가 아닌 투스타더라.

Posted by 사무엘

2012/02/21 08:45 2012/02/2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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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라 하면, 흔히 주류 대중 교통수단과는 완전히 소외되어 있는 오지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역세권을 넘어서 아예 전철역의 코앞에 닿아 있는 군부대도 있다. 보안상, 그게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가 않을 뿐. 다음 예를 살펴보자.

1. 세류(1호선)

공군 부대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수원 비행장이 바로 이것임. 민간용 위성 지도로 보면 역 서쪽이 온통 논밭뿐이지만 이는 훼이크이다. 지상에서 위장(?)도 잘 해 놨는지 열차 차창 밖만 봐서는 주변에 군부대나 비행장이 있다는 걸 거의 눈치챌 수 없다. 나도 몰랐으니까.

세류는 전철의 시종착역 중 하나인 병점과, 일반열차를 취급하는 수원 사이에 낀 마이너 콩라인 역이긴 하나 군부대로 인한 고정 수요가 있는 중요한 역이다. 면회 가는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곳에 항공유를 수송하여 공급하는 수단 역시 응당 철도이다. 부대 내부로 이어지는 선로가 있음.
이곳엔 미군 부대도 있기 때문에 국군 공군 장병뿐만 아니라 카투사 역시 이쪽으로 발령 가는 경우가 있다.

2. 녹사평(6호선)

민간 지도에서 녹사평 역 주변으로 아무것도 없는 방대한 공간(위성 지도에서는 다 숲으로 땜질-_-)을 차지하고 있는 건 잘 알다시피 미군 부대이다. 서울 용산구의 금싸라기 땅이라니, 아마 대한민국에서 땅값 가장 비싼 곳에 있는 자신만의 신세계일 것이다.

녹사평은 군부대 근처에 있는 역치고는 너무 으리으리하고 화려하게 지어진 감이 없지 않다. 내가 예전 글에서도 썼듯, 서울 지하철 11호선과의 환승에다 서울 시청 신청사 이전을 염두에 두고 화려하게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둘 다 계획이 흐지부지되었으니 역만 저런 신세가 됐다. 마치, 통합 글꼴 HFT가 제정되었지만 오늘날까지 그걸 쓰는 건 결국 아래아한글밖에 안 남았고 아래아한글 전용 글꼴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것처럼 말이다. ㄲㄲㄲ

3. 남태령(4호선)

서초구와 관악구의 경계인 동작 대로에 자리잡은 이 역은 역세권 수요 때문도, 환승 때문도 아니요 그냥 서울 지하철 4호선과 과천선의 직결 사업의 산물이다. 동쪽의 서초구 방면으로는 방배2동 전원 마을이 있는데 산으로 뒤덮인 서쪽에 있는 것은... 무려 그 이름도 유명한 수도 방위 사령부이다. 참고로 국가 정보원과 거의 같은 위도상에 있다.

전원 마을은 진짜 말 그대로 단독 주택 일색이며, 3층 이상의 건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서울 안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코앞의 군부대로 인한 고도 제한+개발 제한 크리 때문. 다만 여느 그린벨트 지대와 크게 다른 건, 코앞에 전철역도 있다는 점 되겠다. 마을 어귀에 나 있는 남태령 역 1번 출구의 모습은 짤방으로도 알려져 있다. 상업 시설이 아닌 한가한 주택가에 덩그러니 놓인 지하철 출입구는 역시나 이색적이다.

참고로 남태령 역은 서울의 최남단 역은 아니다. 1호선의 금천구청 역이 최남단이었는데, 이 기록을 신분당선의 청계산입구 역이 또 갱신했다.
남태령 역은 깊은 섬식 승강장이며 에스컬레이터 형태를 포함해 전반적인 구조가 이대 역을 쏙 빼닮았다. 이쪽 구간은 1기 지하철로서는 드물게 개착식이 아닌 터널식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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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질문: 수방사와 미군 본거지는 저쪽에 있는데, 그렇다면 육본은 어디 있을까?
대전의 위성 도시이면서 국방 도시로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독립한 충남 계룡시에 있다(원래는 논산시 영역이었음).
그리고 여기에 육본뿐만 아니라 육해공 3군의 본부가 모두 자리잡아 있다.
이래저래 논산을 비롯해 이쪽 일대는 육군 훈련소도 있고, 군사 이미지가 굉장히 강한 듯.

계룡 역의 예전 명칭은 두계 역이었다. 무궁화호 중에도 무정차 통과 열차가 있을 정도로 태생이 마이너한 작은 역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 덕분에 현재는 일부 호남선 KTX가 정차하는 이색적인 위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육본이 그 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는 건 아니다. 거기서 북서쪽으로 직선 거리로 4km남짓 더 가야 된다.

육본, 아니 3군 본부가 있는 곳은 그 호남선 개태사-신도 R400짜리 드리프트가 있는 곳과 상당히 가깝다. 즉, 계룡보다도 과거의 신도 역에서 더 가까웠지만 현재 그 역은 폐역되었음.
군 본부는 민간 지도에는 당연히 표기되어 있지 않으므로 지도에서 찾을 생각은 하지 말라.

Posted by 사무엘

2011/11/25 08:28 2011/11/2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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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흑역사 -- 무장 탈영

1993년 4월 19일. 구포 역 무궁화호 전복 사고가 터진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 서울 한복판에서는 한 무장 탈영병 때문에 무려 총격전이 벌어지고 시민들은 잠시나마 극도의 공포에 떨어야 한 일이 있었다. 그 탈영병의 똘끼는 그야말로 북한 무장 공비를 능가하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탈영 역사에 관한 한, 아마 창군 이래로 전무후무한 흑역사로 남지 않을까 싶다.

사건의 주인공은 철원의 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임 채성 일병. 그는 이 대형 사고를 치기 전에도 이미 탈영으로 구속된 적이 있는 군 생활 부적격자 관심 사병 단계였다고 한다.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기라도 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그냥 괜히 부적격자였던 것 같다. 불만이 쌓인 끝에 그는 결국 K1 기관단총에다가 무려 130여 발에 달하는 실탄과 수류탄 22발을 갖고 탈영했는데... 이 정도면 가히 터미네이터 내지 듀크 뉴켐 수준이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3/1754426_6127.html

탈영은 굉장한 중범죄이다. 특히 무장 탈영병은 현장에서 사살 당하는 수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 헌병대는 탈영병 잡는 건 전문가이며, 탈영병의 인맥과 연줄까지 다 동원해서 정말 잘 잡는다. 군인은 아무리 옷 갈아입고 가발까지 써도 딱 보면 군인이라나? 얼마 전에 이 재진이 잡힌 걸 생각해 보라. 거기에다 탈영은 매해 내려지고 ‘갱신’되는 3군 참모 총장들의 “탈영병 복귀 명령” 덕분에, 사실상 공소 시효가 없다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만화나 게임 같은 매체에서는 탈영을 무슨 철없고 혈기 만연한 20대 청년이 한 번쯤 해볼 만한 탈선 정도로 아주 가볍게 다루는 듯. 군대가 없어서 총 쏴 보려고 우리나라 부산까지 원정 오는 애들이, 병역 의무 여부가 대통령까지 바꿔 놓은 이웃 나라의 정서를 이해할 리가 없다. (이상, 탈영에 대한 엔젤하이로 위키 설명을 재구성)

군부대를 빠져나간 임 일병은 민폐를 정말 많이 끼쳤다. 근처의 민간인을 위협하여 옷을 뺏고 차를 얻어 탔으며, 덕분에... 무려 7군데에 달하는 검문소를 유유히 통과하여 서울로 진입했다!

탈영 후, 밀항해서 곧장 해외로 뜨거나 첩첩산중에서 은둔해도 시원찮을 판에 서울 시내를 누비고 있었으니, 그의 행적은 곧 헌병대에 발각됐다. 그런데 그를 처음으로 발견한 헌병이 상부에다 보고를 하면서 개삽질을 하는 바람에 그를 놓치고 만다. 그때 임 일병을 신속하게 체포 내지 사살하는 데 성공했으면 차후의 유혈 사태를 예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여기 헌병들은 나중에 가루가 되도록 깨지고 까였다고 한다. “선조치 후보고라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을 위해 존재하지 않느냐 이 ㅂㅅ아!” 같은 식이었을 것이다. -_-;;

왜 그거 있지 않은가? “시꺼 임마, 난 간부다” 한 마디에 기가 눌려서, 나중엔 그거 훼이크를 구사하는 북한군까지 밤에 통과시켜 줘 버린 초병처럼 말이다.

본격적으로 뮌헨 올림픽 참극이 벌어진 건, 임 일병이 자기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됐음을 스스로 직감하고부터였다. 어느 30대 여성을 포함해 주위 사람을 닥치는 대로 인질로 잡고, 주변에 움직이는 차나 사람을 향해 총질을 했다. 소이탄과 살상용 수류탄까지 막 던졌다. 겨우 리볼버 권총으로나 무장한 경찰은 무려 기관총을 소지한 임 일병의 전투력을 제압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 1명이 총상을 당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결국 임 일병은 화이바가 아니라 베레모를 쓴 저격수의 총을 복부에 두 방이나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외국에서는 총기 난사 사고를 내는 또라이들은 보통 자기도 자살하는 걸로 끝을 내는데 그는 그러지는 않았던 듯. 이로써 희대의 무장 탈영병 총격전은 끝이 났다. 그는 중상을 입었지만 즉사하지는 않았으며, 아직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송된 병원에서는 가히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으로 통했다고 한다. 뭐, 치료가 끝나 봤자 남은 건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 선고 인증 받고 다시 총살형-_-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일개 병사가 무장 탈영하여 서울 한복판에서 멀쩡한 시민들을 인질로 붙잡거나 살상하고, 총과 수류탄까지 난사했으니... 이 친구가 군대에 끼친 후폭풍은 가히 엄청났다. 소속 군부대에서는 줄초상이 났다. 사단장이 경질되었고, 대대장부터 일직하사까지 간부들은 죄다 군복 벗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구속크리를 먹었다고 한다. 그가 통과한 검문소를 관할하던 헌병대장도 응당 짤렸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민간인의 사형 집행은 교수형--뭐, 이제 집행 안 한 지 10년도 더 됐으나--이지만, 군인의 사형 집행은 여전히 총살형을 쓰고 있다. 군인이 총으로 적군을 안 죽이고 도리어 아군을 죽이거나 심지어 이적 행위를 한다면, 그 총으로 자기가 죽는다는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 총살형 집행도 헌병이 한다고 하니 흠좀무스럽다.

지난 2005년 6월엔 역시 전방에서 군 복무 부적격 티가 농후하던 김 모 일병이, 자살이나 탈영은 아니고 고참들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총기 난사+수류탄으로 대량 팀킬을 저질렀었다. 이 참극으로 무려 8명이나 목숨을 잃고 김 일병 역시 응당 군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그건 집행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 유족들은 그저 “저 나쁜 쌍노무 새키 어서 사형에 처해라”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군이 온갖 의혹들을 해소해 주지는 않고 김 일병만 희생양으로 뒤집어씌워 자기네 실수와 비리를 슬쩍 덮으려 한다면서 관계자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물론 군대에서 이따금씩 일어나는 이런 불상사들은 아주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경우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유능하던 인재가 군대에서 그 능력을 썩히고 도리어 캐 고문관 취급이나 당한다면... 그리고 실제로 북한과 싸우지도 않고서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나가고 군대에서 그 원인에 대한 해명과 재발 방지조차 약속하지 않는다면... 나라의 안보와 기강은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대에서 병사가 저렇게 나쁜 사고를 큼직하게 치면 위의 간부들은 이제 진급에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며, 심하면 줄줄이 짤린다. 하지만 병사가 전투 중에 북한군(무장 공비)을 사살한다면? 상황은 완전 그 반대가 된다. 1 kill만 달성해도 당사자는 최소한 천만원 대 단위의 포상금부터 시작해서 훈장에, 계급 특진에, 정말 헬기 타고 금의환향 포상 휴가까지 주어진다. kills수가 많으면 바로 전역도 가능할 것이다. 그 병사의 관할 간부들은 승진길이 확 트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그 병사한테 엄청 잘 해 주게 된다.

아무리 남북 화해 분위기가 만연하다 해도, 또 국방백서에 주적 표기가 있든 없든,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휴전선에서 북한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며, 우리나라 국군은 북한군의 목숨을 노리고 거기에 목말라하는 집단임을 부정할 수가 없는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6/26 08:39 2010/06/2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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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근황

본인은 군 장성하고는 아무 인연도 없다. 그냥 생각이 나서 자료를 모아 본 것이다. ^^
각 사람이 아니라 장군이라는 직급이 주제이기 때문에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글을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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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투스타 신분으로 안양의 모 예비군 훈련장을 발칵 뒤집어 놓으며 매스컴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방 원팔 장군(1956년생. 육사 35기)을 기억하는가?
뉴스 기사를 검색해 보니 작년 말까지도 여전히 사단장 직급이던데 지금은 진급은 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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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스타와 포스타의 만남.
정 승조 장군(1953년생. 육사 32기)은 2007년 말에 저 사진에 나온 대로 군단장에 취임하고, 2009년에는 47대 육군 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한 후, 현재는 포스타로 진급하여 제1야전군 사령관을 맡고 있다. 육사 교장 재임 기간이 5개월 남짓밖에 안 되는데, 이는 일찍 진급한 덕분에 보직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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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과 포스타!!!
와.. 옆의 저 병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후덜덜덜덜... 얼어붙어 있는 게 표정만 봐도 느껴진다.
임 충빈 장군(1950년생. 육사 29기)은 45대 육군 사관학교 교장(2006~2008)과 39대 육군 참모 총장(2008~2009)을 연달아 맡은 후, 현재는 더 진급할 곳이 없으니 예편한 상태.
저 사진은 2009년 언젠가 육군 참모 총장의 초소 시찰 중에 촬영된 것이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5/19 08:19 2010/05/1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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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갔다 온 지 3주년

그러고 보니 논산 갔다 온 지 벌써 곧 3년이 돼 가는구나. 뭐, 4주짜리 병영 캠프이긴 했지만.
군 복무 기간이 3년이었다면 그때 들어가서 이제야 제대... 정말 ㅎㄷㄷㄷㄷㄷ
그래도 한창 봄이고 날씨가 막 더워지기 직전에.. 나름 좋은 타이밍에 고생 덜 하고 잘 갔다 왔다.

내가 간 때는 마침 “상호 존중과 배려, 정감어린 인삿말”을 정책적으로 밀어붙이던 때였다.
연병장에서 “우리 처음 만남은 너무 어색했었죠 ... 바꿔 나가요 밝은 병영을 꿈꾸며” 이런 노래를 듣던 때였다. ^^;;;
물론 <멸공의 횃불>, <육군가>, <육군 훈련소가> 같은 군가도 엄청 많이 들었다.

그리고 저 때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개정되기 거의 직전이었다. 군대에서도 의심의 여지 없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이라고 밥 먹듯이 경례를 하고 왔는데, 그 해 가을이 돼서야 글귀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엥? 이게 무슨? 내가 퇴소한 지 얼마 안 되어 그 해 여름에 개정됐다고 한다.

육군 훈련소에서 사용하는 제식 소총은 M16A1. 군대에 가서 실제로 총을 쏴 보면, 영화나 게임에서 듣는 총소리는 정말 조용하고 미화가 많이 된 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 ‘탕’이 아니다. 유성음 받침으로 끝나는 소리가 아니다. 차라리 ‘딱!’, ‘빡!’에 가깝다. 콩 볶는 소리, 혹은 전기 충격으로 벌레 잡는 기구에 벌레가 들어갔다가 죽는 소리 정도 되겠다.

현실은 FPS 게임이 아니다. 과녁에 정말 안 맞는다. 조준도 힘들뿐더러, 총알이 정말 게임에서처럼 이상적인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다. 소리도 정말 고막이 떨어질 정도로 크고, 격발 직후 느껴지는 반동도 무시 못 한다.

다른 훈련소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병영과 각종 훈련 교장 사이가 멀기로 악명 높다. 이동하는 시간만 1시간이 넘는 곳도 있다. 수류탄, 각개전투가 특히 엄청 멀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는 동안 호남 고속도로? 논산-천안 고속도로를 고가 위로 횡단하기도 한다.

군대가 아무리 편해져도 역시 군대는 군대. 입대하는 애들도 예전보다 훨씬 더 편하게 살다가 갑작스레 별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체감하는 어려운 정도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지 않나 싶다.
일단 행동을 내 마음대로 못 하고, 먹는 것까지 단체로 분대장의 통제를 받아서 해야 하고 이놈의 불침번 때문에 며칠 주기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런 게 엄청 스트레스 받고 힘들었다.

화장실엔 비데가 있기도 했다. 물론 그냥 생긴 건 아니고, 과거에 발생한 흑역사 때문에 생긴 것이다.

종교 활동은 아주 잘 보장되어 있고, 조교들도 1인 1종교 반드시 가지라고 권한다. 교회에서 유독 ‘실로암’만 나오면 애들이 다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한 소절만 끝나면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 전투모 던지고 환호하고 난리도 아님. 실로암은 그렇게 방방 뜨는 곡도 아닌데 왜 그런 매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종교 활동은 그냥 이 때만은 긴장도 풀고 스트레스 푸는 시간이라는 데 의미가 더 있다.

본인은 야간 행군까지 다 잘 마쳤지만, 퇴소를 앞두고 긴장이 풀리면서 완전히 탈났다. 등산을 가서 산꼭대기까지 성공적으로 오른 후, 하산하다가 조난당한 것과 정확히 같은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야 할 마지막 퇴소식? 수료식 날에 목소리가 다 쉬고 몸살감기가 도져서 끙끙 앓아누웠고, 퇴소식에도 참석 못 했다.
수료식을 마친 훈련병들은 곧장 사복으로 갈아입었고, 혼자 나가는 인원과 부모님이 오신 인원이 분리되어 마지막 순간까지 분대장의 통제를 받다가 해산· 귀가했다. 야호!

잠시나마 병영 생활을 해 본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건국 과정, 6 25, 그리고 특히 이 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그때부터 늘었다. 그래서 그 해 현충일엔 일부러 서울 현충원에 가 보기도 했다. 그의 저서 <Japan Inside Out>이 <일본 그 가면의 실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어 나온 것도 아주 공교롭게도 2007년 그 때였으며 본인은 이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2005년이 본인이 박 정희에 대해 공부한 해였다면(2005년도 재미있는 사건이 엄청 많이 터진 해였다), 2007년은 이 승만을 공부한 해였던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4/09 12:54 2010/04/0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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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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