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셋문자 명세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사용자가 어떤 글쇠를 눌러서 만들어 낸 입력 단위를 ‘날개셋문자’라는 계층으로 추상화해서 표현한다. 영문 같은 간단한 글쇠배열이라면 A~Z까지 입력하는 문자 자체가 그대로 입력 단위이겠지만, 한글 입력은 그 이상의 계층이 또 필요하기 때문이다.

먼 옛날 1.x 시절에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그냥 조합형이라는 1 또는 2 multibyte 기반이었으며, 기본 입력 단위의 크기는 16비트였다. 그 16비트 숫자가 한글 자모라면 그건 한글을 조합하는 입력이고, 그렇지 않으면 조합을 만들지 않는 비한글 입력이니 아주 단순한 구조였다.
그 시절에도 특정 성분을 바로 지우고 앞뒤로 빼내는 ‘특수글쇠’라는 개념이 있었지만 그건 일반 자리에는 배당이 가능하지 않았고 Ctrl 조합에다가만 따로 배당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원시적이고 미개하기 그지없었다.

그 뒤 2.x에 와서는 입력 단위의 크기가 32비트로 확장되었고 초중종성 성분의 크기도 5비트에서 8비트로 커졌다. 덕분에 옛한글과 간단한 가상 낱자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입력 단위는 문자 아니면 특수글쇠(비문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내부 체계는 1.x와 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빈약했다.

뭔가 지금과 같은 체계가 잡힌 것은 3.x에 온 뒤부터이다. 문자 코드는 완전히 유니코드 기반으로 바뀌었고, 날개셋문자라는 명칭이 정립됐으며 그 크기도 64비트로 넉넉하게 커졌다.
같은 문자도 한글과 비한글이라는 구분이 생겼다. 한글을 조합하는 데 쓰이는 ㅏ와, 단순히 있는 그대로 입력시키는 U+1161짜리 문자인 ‘ㅏ’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게다가 종전에는 글쇠배열의 벌식 정보가 글쇠배열 전체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속성이었던 반면, 3.x부터는 각각의 날개셋문자가 자체적으로 두벌/세벌 정보를 갖게 했다. 도깨비불 현상은 두벌 속성을 지닌 날개셋문자 종성에다가 역시 두벌식 속성을 가진 중성이 결합할 때에만 일어난다. 따라서 한 글쇠배열에 세벌식으로 동작하는 글자(가령, ㅃ, ㅉ, ㄸ)와 두벌식으로 동작하는 글자(가령, ㅂ, ㅈ, ㄷ)가 자연스럽게 공존 가능하다.

3.x에서는 한글의 경우 여러 성분을 한꺼번에 배당해서 입력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초성+중성 내지 중성+종성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굳이 한글 자모를 실제로 입력하지 않고도 오토마타의 내부 상태를 강제로 바꾸는 ‘상태 전이’라는 날개셋문자 타입도 추가했다.

그래서 ‘일반 문자, 한글 세벌식, 한글 두벌식, 특수글쇠, 상태 전이’ 이렇게 5종류의 날개셋문자 타입이 정립됐다. 카테고리를 더 나누자면 ‘한글, 비한글, 비문자’ 정도로 요약된다. 그리고 backspace와 한자(후보) 변환은 특수글쇠의 일종인 형태로 개념이 세워졌다.
이 정도면 버전 1~2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이었다.

그 뒤 날개셋문자에 타입이 또 추가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2010년, 5.65 버전에서 다중 입력과 관련된 새로운 타입이 세 종류가 더 추가됐는데, 이것은 모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

첫째, ‘다중 문자’이다. 기존의 ‘일반 문자’는 문자 하나의 유니코드 포인트 번호를 갖고 있으므로 일종의 UTF-32 스타일이다. 그러나 다중 문자는 UTF-16 방식으로 표현된 유니코드 문자를 최대 6바이트까지 저장하고 있는다.

일반 문자는 숫자 하나로 표현된다는 대표성이 있으며, 최종 변환이나 글쇠 치환등 각종 치환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다중 문자는 다수 개의 유니코드 포인트로 표현되는 합자, 옛한글, ‘000’ 같은 문자를 간편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입력기 내부에서 다른 치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나 1~3개의 문자를 있는 그대로 입력하는 역할만 한다. 그러므로 존재의 의미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복수 개의 한글 자모를 입력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 자모들이 한 글자가 아니라 두 글자에 걸쳐서 입력되게 하는 날개셋문자가 추가되었다. 즉, 초+중+종이 아니라 종부터 입력한 뒤 음절을 끊고 초+중을 입력하는 놈, 그리고 중+종을 입력한 뒤 음절을 끊고 초성을 나중에 입력하는 놈 두 종류가 있다. 얘는 도깨비불과는 무관하므로 세벌식의 파생형이다.

덕분에 2010년대부터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하는 날개셋문자 타입은 8종류로 늘었는데.. 2012년, 버전 6.7에서는 잘 알다시피 두벌식에도 파생형이 하나 추가되었다. 바로 ‘종성 두벌식’ 되시겠다.
C++에서 new operator와 operator new가 서로 다른 용어이듯이, ‘종성 두벌식’과 ‘두벌식 종성’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내부에서 의미가 다른 개념이다.

지금까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한 두벌식 방식의 날개셋문자는 ‘초성 두벌식’이었다. 종성이 도깨비불 현상을 통해 다음 글자로 넘어갔을 때 초성으로 승격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성 두벌식은 다음 글자로 넘어갔을 때도 종성이 계속 유지된다.

순서를 바꿔서 ‘두벌식 종성’이라고 하면, 타입이 ‘초성 두벌식’이든 ‘종성 두벌식’이든 무관하게 어쨌든 두벌식이고 종성에 nonzero 값이 있는 날개셋문자를 가리킨다. “두벌식 종성과 두벌식 중성이 만나야 도깨비불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 종성의 타입이 ‘초성 두벌식’이냐 ‘종성 두벌식’이냐에 따라 그 종성은 다음 글자에서 각각 초성이나 종성으로 등록된다.” 이렇게 관계가 정리된다.

세벌식과 두벌식에 대해 각각 이런 파생형 타입을 고안해 낸 것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뜻깊은 업적이라고 생각된다. 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한글 입력기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것이기 때문이다. 특수글쇠 내지 타자 입력 순서 계산 같은 부수적인 기능들까지 중성 두벌식의 컨셉과 맞춰서 정확하게 동작하도록 로직을 강화하는 작업은 7.x대 중반 버전까지 내부적으로 계속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마지막으로 추가된 날개셋문자 타입은 바로 2015년 초, 7.9 버전에서 추가된 “글쇠 입력”이다. 비한글과 한글에 이어 ‘비문자’ 분야에도 타입이 또 추가된 것이다.

A라는 글쇠에다가 B를 누르는 날개셋문자를 추가한다면, A를 누른 것 자체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가로채어지며 응용 프로그램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로 인해 B를 누른 동작이 인위로 생성되며, 이것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처리하지 않고 언제나 응용 프로그램으로 가는 것이 보장된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간단한 단축키 조작을 할 수도 있고 영문과 숫자의 경우 IME가 아니라 키보드 직통으로 응용 프로그램으로 전달할 수도 있다.
키보드 입력을 생성하는 것 자체를 별도의 날개셋문자 타입으로 독립시키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나 정말 신기하다. 이 타입은 한글 입력과 관계가 있는 게 아니므로 굳이 ‘기본 입력기’가 아니라 ‘빈 입력기’에서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긴 과정을 거쳐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는 현재 한글 세벌식 3종류, 두벌식 2종류, 비한글 문자 2종류, 비문자 3종류 이렇게 총 10종류의 날개셋문자 타입이 존재한다. 3.0 시절에 비해 정확하게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구현체에 대해 논하자면 1.0때 처음부터 개발되어 온 에디터(since 2000), 2.5 과도기를 거쳐서 3.02때부터 개발된 외부 모듈(since 2004), 그리고 5.3 때부터 등장하여 최근에 많이 발전한 입력 패드(since 2009) 세 종류가 있으며 이들은 특징이 제각각이다.
그런 구현체의 종류 이상으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입력 단위로 받아들이는 날개셋문자의 타입도 종류가 다양하며 제각각 내력이 있다. 과연 미래에 제11째 타입이 등장할 일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6/02/06 19:34 2016/02/0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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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에서 대괄호 [ ]는 일단 배열과 관련이 있는 문자이다.
타입을 선언하는 문맥에서 a[...]라고 하면 a가 배열임을 나타내고 선언한다. [] 안에는 배열의 크기를 나타내는 정수 상수(= 컴파일 타임 때 바로 값이 결정되는)만이 올 수 있다.
그 반면 값을 계산하는 문맥에서 a[...]는 일단은 배열이나 포인터를 역참조하는 *(a+...)와 동치가 되기 때문에, 상수가 아닌 임의의 변수값이 들어올 수 있다. 게다가 C++에서는 []를 연산자로서 오버로드도 할 수 있으므로 정수가 아닌 다른 타입의 값이 들어오는 게 가능하다.

그럼 속에 아무것도 없이 말 그대로 []만 달랑 오는 건 언제 가능할까?
일단 값을 계산하는 실행 문맥에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 함수 호출이 아닌 일반 수식에서 일반 괄호가 ()요렇게만 달랑 올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인자가 전혀 없는 형태로 [] 연산자 함수를 오버로딩 하는 것도 안 된다.
얘가 쓰이는 가장 유용하고 편리하고 직관적인 상황은, 이니셜라이저로부터 크기를 자동으로 유추할 수 있는 배열을 선언하여 곧장 초기화할 때이다.

char pt[] = "Hello"; //null 문자까지 합해서 6이라는 크기가 자동으로 유추됨.
static const int samp[] = {1, 5, 7, 8}; //4라는 크기가 자동으로 유추됨.

이 정도야 []는 명백하게 배열을 나타내며, 그 의미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헷갈릴 게 없다.
그리고 지역변수 말고 다른 번역 단위에 있는 배열을 요런 게 있다고 선언만 해 놓는 문맥일 때도 구체적인 크기가 생략된 arr[] 같은 구문이 올 수 있다. 이 경우 클래스로 치면 forward 선언과 얼추 비슷한 역할을 한다. 배열을 참조하는 코드를 생성할 수는 있지만 sizeof 연산자는 쓸 수 없게 된다. 온전한 배열은 아니지만 포인터도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다른 임의의 주소를 대입할 수는 없다.

그런데 []는 일부 제한된 문맥과 범위에서는 그냥 포인터를 나타낼 때도 있다. 이거 다시 보니 굉장히 요물스럽게 느껴진다.

void foo(char ptr[]);
void foo(char *p);

위와 아래의 함수 선언은 완전히 동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 두 쌍으로는 함수 오버로딩을 할 수 없다.
이게 요물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1) 첫째, 함수의 인자에서만 사용 가능한 문법이기 때문이다.
일반 변수를 선언할 때야 char ptr[]은 포인터가 아니라 배열로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니셜라이저 없이 저렇게만 달랑 써 놓으면 크기를 알 수 없다고 컴파일 에러가 난다.
그에 반해 함수 인자에서는 배열을 선언하거나 초기화 따위 할 일이 없으니 ptr[]은 *p와 동일하게 인식된다.

우리는 프로그램으로부터 명령 인자를 받기 위해 main 함수로부터 argc, argv 인자를 살펴본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argv는 거의 언제나 관행적으로 *argv[]라고 선언해 놓고 써 왔다는 것이다. 이건 알고 보면 **argv와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치일 뿐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argv[]와 **argv는 왠지 느낌상 서로 동일해 보이지가 않는다.

함수 인자와는 달리 리턴값은 char *bar()만 가능하지 char []bar 이렇게 쓸 수 없다. 함수 인자 말고는 리턴값이나 지역 변수 선언, 형변환 연산자, typedef 등 타입을 명시하는 그 어떤 문맥에서도 []를 저런 식으로 쓰는 건 문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2) 둘째, []는 그렇다고 해서 함수 인자이기만 하면 *와 완전히 등가 교환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의 지원 범위는 오로지 1중 포인터 한정이다. 2중 포인터인 char **a를 a[][] 따위로 대체할 수는 없으며 오로지 한 단계만 *a[]로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한 단계 포인터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C++의 참조자 &를 살짝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럼 함수 인자에서는 왜 저걸 예외적으로 가능하게 해 놓은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C/C++은 배열은 함수 인자로 전달할 때 값이 새로 복제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주소(= 포인터) 형태로만 전달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저렇게 한 게 아닌가 싶다. N차원 배열은 언제나 N-1차원 배열의 1중 포인터가 된단 얘기다. 다차원 배열을 선언해서 함수로 전달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int table[][2][4]={
    {{1,2,3,4}, {3,4,5,6}}, {{2,6,2,3}, {5,6,3,4}}, {{1,}, {2,}}
};

foo(table);

사실 C/C++은 엄밀히 말하면 다차원 배열이라는 것도 없고 그저 '배열의 배열'이 있을 뿐이다.
2*4 배열의 배열을 선언한다는 건 생략할 수 없고, 유일하게 생략할 수 있는 건 제일 겉에 있는 최종 원소의 개수(저기서는 3)이다.
이런 3차원 배열을 인자로 받는 함수는 프로토타입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void foo(int a[][2][4]);

table은 함수의 인자로 전달할 때는 그대로 2*4 배열의 포인터가 되고, 그걸 함수 인자로 표현하는 걸 배열 변수를 선언할 때와 동일하게 [][2][4]로 할 수가 있다. 함수 인자에서 []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함수 인자에서도 [] 안에 숫자를 생략할 수 있는 건 제일 겉의 차원수 하나뿐이다.

위의 함수의 인자는 개념적으로 아래와 완전히 동일하다. *(a+2)와 a[2]가 동일한 것만큼이나 서로 동일하다.

void Fune(int (*a)[2][4]);

a[][2][4]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그냥 포인터나 다중 포인터가 아니라 '배열의 포인터'를 표현하기 위해 저렇게 괄호를 쳐야 했을 텐데 [] 표기는 괄호가 또 들어갈 필요를 없애 주고 표현을 간결하게 만들어 준다.
배열 선언 table[][2][4]에서는 []는 원소 개수가 이니셜라이저에 명시돼 있다는 뜻이고, 함수 인자 a[][2][4]에서는 이게 포인터라는 뜻이라니..;;

이건 무슨 최신 C++ 기능도 아니고 C의 완전 기초 필수 아이템인데도... 본인조차 []의 의미와 용도에 대해서 제대로 진지하게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신기하기 그지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6/02/04 08:27 2016/02/0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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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언어 관련 생각들

1.
“A is better than B.” (A는 B보다 더 낫다)라는 영어 평서문에 담긴 정보를 생각해 보자.
여기서 A를 묻는 wh 질문을 만든다면 “Who is better than B?” (누가 B보다 낫다고?)가 될 것이다. 이건 쉬운 문제다.
그럼 B를 묻는 질문은 뭐가 될까?

Who is A better than? (A가 누구보다 낫다고?)
Than who is A better?

내 문법 시스템으로는 위와 같은 두 문장이 만들어지긴 한데... 평생 저런 형태의 문장을 만들 일이 없다가 만들고 보니 정말 괜찮은가 모르겠다.
인간의 언어가 경이로운 점이 뭐냐 하면 화자는 평생 접한 적이 없는 새로운 문장을 그것도 안긴 문장· 이어진 문장 같은 복잡한 형태로 자유자재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2.
그리고 than 다음에는 문법 원칙상으로는 목적격이 아니라 주격이 온다. better than me가 아니라 일단은 better than I가 맞다는 것. 하지만 It's me/I만큼이나 이건 원어민들 사이에서도 구분이 굉장히 문란해져 있다.
게다가 who와 whom의 구분도 이와 같은 처지이다. 3인칭 단수는 him/her을 쓸 곳에다가 he/she를 갖다붙이지는 않을 텐데 왜 그러는 걸까?

테이큰에서도 리암 니슨이 유괴범을 고문하면서 "You sold my daughter? You sold her? Huh? To who(m)?"라고 물을 때 나는 당연히 whom이라고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다시 들어 보니 너무나 분명하게 그냥 who였다.
의문대명사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번에도 내 머리는 0.1초 만에 테이큰 대사를 검색 결과로 내놓았다. 영화 한 편 제대로 봐 놓으니 실생활에서 대사를 정말 많이 우려먹으며 지낸다. 테이큰은 좋은 영화이다~ㅎㅎ

3.
다음으로, “Replace A with B.” (A를 B로 바꿔라)라는 문장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A를 묻는 wh 질문은 What do we replace? (우리는 뭘 바꾸는가?) 이다.
그럼 또 B를 묻는 질문은 어떻게 만들면 될까? 영어는 with만 붙이면 간단히 해결된다.

With what do we replace? (우리는 무엇으로 바꾸는가?)
What do we replace with?

그래서 찾기/바꾸기 대화상자를 우리말로 옮길 때면 난 늘 껄끄러웠다. Find what / Replace with가 각각 "찾을 문자열 / 바꿀 문자열"이긴 한데, '바꿀 문자열'은 문맥에 따라 개념상 B뿐만 아니라 A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어에서 체언 없이 조사를 앞세워서 '으로 바꿈'이라고는 안 쓰니까 의미가 엄밀하지 못하게 되는 건 뭐 어쩔 수 없다. (뭐, See also를 가뿐하게 '도보시오'라고 옮긴 백괴사전은 참 기발하다.)

4.
우리말에서 (내가 보기에) 관계가 굉장히 이상해져 있는 단어의 쌍이 최소한 둘 있는데, 바로 '장/쪽'과 '성/이름'이다. 양면이냐 단면이냐가 분명치 않다 보니 '다섯 장'은 대부분의 경우 다섯 페이지이지만 가끔은 앞뒤로 열 페이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page/sheet에는 양면 개념이 없는 것 같은데 우리말만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이름의 경우, 가끔은 first와 family를 모두 포함한 full name을 뜻하지만 가끔은 그 자체가 '성'과 대립하여 first name만을 뜻하기도 한다. 한 단어가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을 모두 포함하다니 거 참..;;
성/이름도 그렇고 다시 '장'으로 돌아오면, '장'은 '쪽'뿐만 아니라 알다시피 chapter를 의미하기도 해서 더욱 지저분하다. 이런 건 순우리말만으로 도저히 변별이 불가능하다면 외래어를 로컬라이즈 해서라도 논리적으로 분간이 되게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5.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한국어에는 sibling을 뜻하는 한 단어가 없나 참 궁금하다. '내일', '초록' 같은 건 순우리말이 없어서 한자어라도 있지만, sibling은 부모/자식 같은 한 단어도 없어서 그냥 "형제 자매는 있습니까?" 이렇게 매번 풀어서 설명하게 되는 게 불편하다. 이렇게 꼭 필요한 우리말이 없으니 전산학에서 트리 구조를 설명할 때는 오늘도 '시블링, 시블링' 이런 외국어가 나올 수밖에 없다.

6.
한국어는 '저희'라는 1인칭 복수형이 존재하는 것도 다른 언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아이템이라고 한다. '우리'와는 달리 청자를 확실히 배제한 1인칭 복수이고 1인칭 쪽을 좀 낮춤으로써 청자를 높이는 효과까지 있으니, 특히 회사가 고객에게 말할 때 사용하기에 무척 적절한 대명사이다. 언어학자에 따라서는 이것을 제4인칭으로 분류하기까지 한다고 들었다.

7.
종교관 중에는 이신론(deist)이라는 게 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긴 하지만 그 신은 아주 기계적이고 정교한 자연 법칙에 가까운 추상적인 존재일 뿐, 무슨 인격을 갖고 있고 인간의 삶에 관여하거나 인간에게 무슨 계시를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종교관이다. 뉴턴의 법칙은 절대적인 법칙이긴 해도 무슨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은 아닐 테니까. 유신론을 뭔가 무신론 내지 불가지론 스타일로 풀이한 것 같다.

미국이 지폐에까지 In God we trust가 적혀 있는 나라이고, 메이플라워 서약 역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으로 시작할 정도로 기독교 이념이 철철 넘쳤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대 대통령을 포함한 건국 공신들이 다 프리메이슨이네,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아니네 하는 이의 제기도 많다.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은 신자가 아니라 실제로는 저런 이신론자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신론의 '이'는 한자로 무엇일까?
二(2)는 당연히 아니요,異(다름)도 아니며, 바로 理(이치)이다. 이성이라고 할 때의 그 한자이다.
한때 일부 '유(柳)씨' 가문에서 자기 성을 한글로 '유'가 아닌 '류'로 쓰게 해 달라고 소송도 냈던 것 같던데, 理는 '리'로 좀 구분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리신론'. 二나 異와는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는 이미 "그럴 리가 없다" 같은 문맥에서 의존명사 理는 두음법칙 없이 오랫동안 잘 사용해 오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기도 하는 것 같다.

8.
뭐, 영어도 만능은 아니긴 마찬가지다. time이 시각도 되고 시간도 되고.. number가 번호도 되고 수도 되어서 꽤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건 본인이 예전 글에서 몇 번 지적한 바 있거니와, free가 무료 & 자유를 다 의미하는 것도 상당히 불편한 점이다. "free software"는 영어권 사람이 문서에다가 친히 'free as in free beer(맥주가 공짜!)'이라고 모호성 해소를 해 줄 정도로 free는 유명한 다의어이다.

한국어가 ㅐ와 ㅔ의 중화로 인해 '내, 네'가 동음반의어가 돼 버린 것은 굉장한 막장 상황이긴 하다만, 영어도 2인칭 대명사의 단· 복수 구분이 없는 것과, 남녀 구분 없이 3인칭 단수 사람을 간단히 일컫는 대명사가 없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점이다. 이것 때문에 (s)he, he or she, 심지어 they 등 갖가지 꼼수가 나돈다. 그렇다고 사람까지 it으로 싸잡아 일컬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9.
영어에서 안테나(antenna)의 복수형은 antennas또는 antennae이다.
곤충의 더듬이를 가리키는 안테나의 복수형은 불규칙인 antennae인 반면,
더 나중에 생긴 기계 안테나의 복수형은 규칙인 antennas이다.

이와 비슷한 진통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단어는 mouse이다. 요놈의 복수형에 대해서는 영어권에서도 혼란이 많다.
전통적인 생물 생쥐의 복수는 mice이지만, 컴퓨터 포인팅 장비인 마우스는 mouses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동사 hang은 처음에는 '걸다, 매달다'이다가 '사람 목을 매달다 → 교수형에 처하다'라는 뜻이 확장되어 나갔다.
본래 뜻인 '걸다, 매달다'의 과거형은 불규칙인 hung이지만, '교수형에 처하다'의 과거형은 역시나 hanged이다.
이렇듯, 다의어의 경우, 단어의 활용· 파생 형태에까지 그대로 의미 확장이 반영되지는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10.
그나저나 일본어에는 우리말 주격조사 이/가(일본어 발음으로는 '가')와 보조사 은/는(일본어 발음으로는 '와')에 개념적으로 거의 그대로 대응하는 조사가 존재한다는구나..!! 신기하다. 그래서 '고레와', '고레가' 요런 말이 있었구나.
지구상에 이런 개념 pair가 존재하는 언어는 한국어/일본어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굉장한 레어템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두 언어가 문법 구조는 무척 비슷하며, 상호간 학습 장벽을 크게 낮춰 준다.
일본어는 음운 구조가 워낙 간단하다 보니 한국어처럼 받침 유무에 따른 이/가 바리에이션 같은 건 없다. 다만, 쓰기는 '하'라고 적고 읽기는 '와'라고 이상하게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들었다.

11.
'르' 불규칙이 적용되는 형용사 용언인 '빠르다'와'다르다'를 생각해 보자. 얘들은 '-ㄹ리'가 붙어서 '빨리, 달리'라고 부사형 활용이 가능하다. '-이/-히'라는 부사형 접미사가 붙어서 얼추'빠르게, 다르게'를 짧게 줄인 뜻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멀다/가깝다'에 서 '멀게/가깝게' 대신 '멀리/가까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런 활용은 보편 생산적이지 않다. 즉, '바르다'(right, correct 형용사), '가파르다', '푸르게' 같은 용언은 저렇게 활용이 가능하지 않다. '게으르다'는 '게을리 하다' 정도로만 활용 가능한데 양상이 좀 다른 듯.
그래서 '달리', '빨리' 같은 단어는 좀 예외적인 케이스로 간주되어서 사전에 별도로 등재돼 있기도 하다.
올림픽 표어를 '보다 빠르게'라고 번역할 때와, '더 빨리'라고 번역할 때는 어감이 서로 확 달라지는 것 같다. "더 빨리, 더 높게, 더 힘차게" 중에서 faster만 '-게'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주목하라.

'다르다'가 활용된 '다른'은 말 그대로 활용된 형용사(different)도 되지만, another를 의미하는 관형사 '다른'도 된다. 같은 형태의 단어가 두 의미를 모두 지닌다는 게 꽤 흥미롭다. '와/과'가 and뿐만 아니라 with의 뜻도 갖는 것처럼.
사전에서 '다른'을 찾아 보면 관형사의 뜻만 실려 있다. 형용사 하나만 있는 영어와는 달리, 국어의 체언 수식언에서 형용사와 관형사가 구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다. 국어에서 형용사는 수식언 중에서 용언에서 유래된 것만을 일컬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새 이름으로'에서 '새'는 관형사이지만, '새로운'은 형용사이다.

12.
옛날에는 인간 학문의 모든 분야가 그런 것처럼 언어 쪽도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학풍이 꼴보수였다.
대표적인 예가 <걸리버 여행기>를 지은 조너선 스위프트인데.. 사회 풍자적인 선구자라는 점에서는 중국의 루 쉰과도 이미지가 비슷해 보인다.

루 쉰은 한자를 없애지 않으면 중국 인민은 망한다고까지 한자를 디스한 걸로 유명한데, 스위프트는 사전을 만들어서 사랑스러운 자기 모국어 영어의 스냅샷을 기록으로 남기고, 앞으로 세속화되거나(?) 더럽혀지지 않게 영원토록 불변의 언어로 남길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couldn't 같은 구어체의 어휘가 버젓이 인쇄되어 나오는 것에도 왕창 분노했다고... 이런 사람이 오늘날의 일명 인터넷 축약어, 한글 파괴 이런 걸 보면 노발대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에휴.." 이랬을 것 같다.

오늘날은 분위기가 이와는 완전 반대로 갔으니 참 아이러니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건 존재하지 않는다, 사전은 말뭉치 데이터를 바탕으로 당대의 언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반영만 하면 된다."이다. '너무'도 사람들이 다 긍정적으로 쓰면 뜻풀이를 바꿀 수 있다. 동성애자들도 결혼을 하니까 결혼의 정의도 굳이 남자와 여자가 하는 건 아니라고 업데이트 할 필요가 있다는 식이니까.

지금 학풍이 0이고 스위프트가 1이라면 난 그래도 여전히 0.7~0.8 정도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모든 걸 감히 판단할 만한 실력은 없지만, 난 그래도 언어에도 타락이라는 게 있긴 하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물론, 그 타락이라는 게 겨우 맞춤법 안 지키고 상스러운 비속어 남발 같은 단편적인 현상만을 의미하는 건 아님.
그냥 쓰기 나름, 정하기 나름인 용례가 바뀌는 것은 상관없지만, '다르다/틀리다'처럼 분명하게 구분이 되고 있던 개념의 구분이 문란해지는 것만은 막았으면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6/02/01 08:35 2016/02/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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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은 안 중근 의사가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쏘아 쓰러뜨린 날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70년 뒤, 1979년 10월 26일은 박 정희 대통령이 부하인 중앙정보부장 김 재규의 권총에 맞고 절명한 날이다. 10.26 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이후 역사를 크게 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박통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1961년부터 시작된 18년간의 군사 독재가 이제 좀 끝이 나는가 싶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일제로부터 해방된 게 아니었던 것만큼이나 이것도 시민의 힘으로 직접 독재 정권을 끌어내린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박 정희가 남긴 뒷자리는 그의 심복이던 전 두환이 냉큼, 날름, 덥석 차지하게 됐다. 어차피 사람만 바뀌었지 또 다른 군사 독재인 건 마찬가지다. 오늘은 그 얘기를 좀 더 늘어놓아 보겠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박통은 삽교천 준공식을 마치고서 서울로 돌아와서 피로도 풀 겸 궁정동 안가에서 회식을 했다. 최측근 참모들과 더불어 20대 중반의 어여쁜 여대생, 그리고 비슷한 연배의 잘나가던 여자 가수까지 데려 와서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회식은 누가 박통에 대해 험담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 사치스럽고 음란방탕한 자리는 아니었다. (저걸 갖고 험담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여자와 관해서 일체의 난잡한 면모가 없었고, 극도로 근검절약 검소했으며 회식 자리에 기생이 아니라 각자 자기 부인을 데려 오게 한 전직 대통령을 좋아하느냐 하면, 그것도 어차피 아니다.)

박통은 알다시피 수 년 전에 영부인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뒤부터 멘탈이 많이 피폐해졌다. 곁에서 쓴소리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자제력을 잃고 예전보다 점점 더 과격 고집불통 폭주끼도 보이기 시작한 건 사실이어 보인다. 박통은 육 영수 여사를 두고 "지금 내 옆에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골수 야당 총수가 있소" 이런 농을 치기도 한 바 있다.

이 와중에 암살 가해자인 김 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경호실장이던 차 지철과 박통에 대해서 쌓인 앙금이 많은 상태였다. 그러다 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이 패거리들을 오늘 회식 자리에서 해치워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 그래도 권총까지 챙겨 가서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회식 자리에서 차 지철과 박통은 합심해서 김 재규를 코너로 몰아 넣었다. "야당이며 반대파들이 이렇게 정권에 대항하면서 날뛰고 있는데 중정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좀 더 강하게 짓밟아 버리지 못해?" 이렇게 갈구고 있으니 김 재규가 속이 얼마나 뒤집어졌을까?

결국 김 재규는 차 지철과 박통을 권총으로 쏘고 말았다. 그에게서 지시를 미리 받은 그의 부하들은(박 선호, 박 흥주 등) 총소리를 듣고서 주변의 경호원들을 사살해서 궁정동 안가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김 재규는 사살 계획 자체는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해서 결국은 성공했다. 그러나 일을 저지른 뒤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멘붕· 당황· 우왕좌왕 하고 패닉에 빠져 버렸다.

그는 차 지철이 하극상을 벌여서 원조각하를 살해했으며, 자기는 이를 저지하다가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를 사살했을 뿐이라고 얼~~마든지 의심 안 사고 조작과 은폐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위장과 조작의 달인인 중앙정보부의 최고 수장이었으니 말이다. 왜 저렇게 하지 않았는지는 정말 제1의 미스터리이다.

그리고 더 따지고 보면, 박통은 암살 안 당했으면 대통령을 도대체 언제까지 해 먹었을지도 궁금해진다. 이건 제2의 미스터리이다. 할 거 다 하고, 1990년대에 수도 이전과 올림픽 유치까지 다 해 놓은 뒤, 7· 80대 나이쯤 됐을 때 물러나겠다고 증언한 기록도 있다고 하는데 출처는 지금 기억이 안 난다. 뭐 어쨌든..

김 재규는 일을 저지른 뒤 상황을 자기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조작하기 위해서는 자기 휘하의 남산 중정으로 갔어야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보안을 위해서는 군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중정 대신 육본으로 가는 일생일대의 패착을 뒀다. (정확히는 현장에 같이 초청했던 정 승화 육군 참모총장의 제안을 별 생각 없이 따른 것)
그는 누가 각하를 죽였는지 대놓고 거짓말은 차마 못 한 채, 어영부영 나라가 위기에 빠졌다고 계엄드립만 늘어놓다가 군 수뇌부 앞에서 탈탈 털렸다.

원조각하의 죽음이 확인되고 더구나 이게 북한이 아닌 내부 소행임이 확실시되자, 군 내부에서는 평소에도 월권과 하극상을 일삼던 차 지철의 도발을 먼저 의심했다. 그리고 혹시 군 내부에 다른 차 지철 파 쿠데타 세력이 있는지 의심했다. 그러나 입막음을 당부받았던 김 계원 비서실장이 양심의 가책을 견디다 못해 김 재규의 단독 범행(= 중정 말고 군 내부에 다른 배후 세력은 없는)을 정 승화 장군에게 몰래 실토하는 바람에, 김 재규는 그대로 인생 운지하고 말았다.

김 재규의 패착은 북한에서 6·25 전쟁을 조장했던 박 헌영의 패착과 거의 동급 수준이었다.
사건을 제대로 은폐하지 못한 채 저런 허술한 행동에 뜬금없는 기승전 계엄 얘기만 한 걸로 미뤄 보면, 그는 대통령을 살해한 와중에도 일말의 국가 안보 걱정은 최우선으로 한 듯하다. 다만, 무슨 민주화를 위해서 각하를 쐈다는 말은.. 글쎄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사건 당일엔 차 지철에 대한 증오심이 더 컸지, 그런 거창한 이념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을 것 같다.

갑자기 철권 독재 대통령이 없어지고 경호실장과 정보부장까지 없어지니 나라에는 엄청난 통치 공백이 생겼다.
이 와중에 최 규하는 우리나라 역사상 제일 존재감 없는-_- 대통령으로 기록됐지만, 한편으로 정당 활동이 없이 학자와 관료 테크만 거쳐서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대통령에 오른 유일한 사람이다. 덩치 크고 엄청난 학식과 인품의 소유자이고.. 그는 스펙은 참 훌륭했지만 국가 지도자로서는 지지 기반이 너무 없고 우왕좌왕했다.

뭐, 결과적으로는 김 재규의 요청대로 전국에 계엄이 선포됐다. 그리고 10.26 사태의 수사권을 쥔 군부가 사실상 권력의 실세가 됐다. 미우나 고우나 군부 말고 다른 대안이 없으니...
정 승화가 계엄 사령관이 됐고, 그 밑에 육사 동기들 중에 제일 잘나가던 전땅크가 10.26 수사본부장이 됐는데... 그는 이 엄청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히 활용하여 뒤통수를 쳤다.

"어? 정 승화 저 사람도 그때 현장 근처에 있었다면서 왜 김 재규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거나 신고하지 않았을까? 혹시 이 사람도 쿠데타 가담 세력 아냐? 김 재규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린 당사자라지만 좀 냄새가 나는데?"
이렇게 어거지를 씌운 게 12.12 군사반란의 본질이다. 군대 인사 발령이 끝나고 10·26 사건에 대한 수사도 끝나 가던 12월 12일이 사고 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 이후 스토리는 다들 아시는 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주범이 다른 멀쩡한 사람을 도리어 쿠데타범으로 몰아 가다니.. 역사적으로 정치판 싸움은 이런 식의 암투로 진행된 듯하다. 선배고 후배고, 내 부대 네 부대 구분 따위도 없었다.
제5 공화국 드라마의 명대사인 "야 이 반란군놈의 새X야! ... 내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 버리겠어!"(장 태완 장군)도 정 승화 참모총장이 반란군에게 억류 당해 있을 때 나온 대사이다.

전대갈· 전땅크, 29만원 아저씨는 독재(?)를 했다지만 전임인 이통, 박통에 비해서야 존재감이 덜하며 우파로부터도 그 전임들만치 긍정적인 평판은 못 받는 전직 대통령이다. 군대를 장악한 뒤에 정권도 장악하고(5· 17 쿠데타) 최 규하 대통령까지 완전히 사임시키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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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6년 1월 현재 일단 생존 중인 최고 오래 된 전직 대통령이다. 몸 관리 잘한 군인들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1920년대생인 백 선엽 장군도 아직 살아 있다!) 그는 역시 얄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전한 저택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천수를 누리다 갈 것으로 예상된다.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않고 말이야" 드립을 칠 정도의 여유와 멘탈갑 센스-_-도 갖추신 지 오래다.. 저 기백과 배짱을 보라. 그러니 하야· 암살과는 차원이 다른 가성비를 얻었다.

전땅크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아저씨는 권좌에 앉기 위해서 쿠데타를 일으켰지, 일단 대통령이 된 뒤에는 7년 단임만 하고 진짜로 물러났다는 점이다. 집권 도중에 장기 통치하려고 헌법을 뜯어고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1987년의 6월 항쟁도 개헌을 통해 '5년 단임 직선제'라는.. “후임 대통령의 선출 방식”을 민주화하기 위한 시위였지, 전땅크의 장기 집권 자체를 규탄하는 시위가 아니었다.

독재자 타이틀이 있는 전임들의 행적과 비교하면 이렇다.

  • 이 승만: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 자체는 적법하게 됐지만, 2대· 3대에 4대까지 연임하는 과정에서 사사오입 개헌에다 야당 정치인 탄압 등 지저분한 짓거리가 끼어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12년 동안 1~3대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이 시기를 헌정 시스템 기수로는 제1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이 사람은 하야 후 명목상 노환으로 자연사하긴 했지만 타지에서 최후를 맞이했으며, 귀국이 좌절되면서 더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다. (쿠데타 ×, 장기 집권 목적 개헌 )
  • 박 정희: 정말 통 크게 해 먹었다. 집권 때도 그 당시에는 혁명이라고 불린 5· 16 쿠데타를 일으켰고, 집권 중엔 유신 헌법 버프를 자가발동하여 총 무려 18년 가까이 집권했다. 5~9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제3과 제4 공화국을 새로 썼다. 대한민국의 헌정 역사상 전무후무할 것이다. 말년엔 잘 알다시피 부하에게 피격 당했다. (쿠데타 , 장기 집권 목적 개헌 )
  • 그리고 전땅크: 이 승만과는 반대로 집권 과정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집권 중에는 다른 뻘짓 없이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아주 해피하게 살다가 갈 것으로 예상. (쿠데타 , 장기 집권 목적 개헌 ×)

(어느 나라건 독립 운동가 출신 초대 대통령은 독재자로 흑화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어떻게 해서 이룬 독립이고 어떻게 해서 세운 나라인데, 불안해서 선뜻 후임에게 놔 주고 싶지 않은 심정을 본인도 나이가 드니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처음부터 2선만 딱 하고 물러난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참 이례적인 대인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렇게 XO, OO, OX를 거친 뒤에야 현재의 대통령들은 일관되게 XX가 유지되고 있다.
뭐, 전땅크는 명목상 11, 12대 대통령이지만, 중간에 연임을 해서 두 대가 커버된 건 아니다. 집권 초기에 헌정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에 대수가 올라간 것이다. 5공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의 실질적인 통치 기간은 12대가 전부인 게 맞다.

박통에서 전땅크로 넘어간 과정을 살펴본 본인의 생각은 이러하다.
10.26 사태는 남한 내부에 정말 심각한 수준의 권력 공백과 혼란을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야기했다. 이 승만이 하야하던 시절보다도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 Windows API에다 비유하자면 ExitProcess와 TerminateProcess의 차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틈을 노려 북한이 도발을 하지 않은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정치 불안으로 인해 상황이 얼마든지 더 나빠지고 혼세마왕 강림 급의 헬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나마 피해가 저 정도밖에 발생하지 않은 쿠데타(?)로 그럭저럭 내부 수습과 권력 이양이 된 것도 무척 다행이다.

이 시절에 벌어졌던, 일부 반공을 빙자한 인권 유린은 당연히 욕 쳐먹어야 하고 두고두고 까여야 함이 마땅하다. 그 중 최악의 흑역사는 영화를 능가하는 병맛을 자랑하는 수지 킴 간첩 조작 사건이 아닐까 한다. 어휴..;; 성경에서 다윗이 아무리 성군이었다 해도 우리야의 유족에게는 석고대죄해야 할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전땅크 정권도 특정 개인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땅크를 비롯해 5공 주역들이 일차적으로 근본적으로, 민생을 생각하고 여전히 경제를 일으키는 독재를 했다는 건 감사할 점이다. 5공 시절의 물가 안정과 경제 호황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우리나라가 뭐 언제부터 그렇게 성숙한 민주주의를 시행해 왔다고.. 군부 말고 무슨 탄탄한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들 군인 출신 정치인들이 뭐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반대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민주주의를 치명적으로 유린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난 개인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치 체계는 높으신 분들이 뭐 어떤 방식으로 다스리든 별 상관 안 한다. 일단 독재자의 개막장 자기우상화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뜻이므로.).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옛날에는 지금처럼 대통령을 5년마다 한 번씩 뽑는 게 아니었다. 군사 독재가 횡행했다. 반공을 빌미로 억울한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서 고초를 겪었다." 이런 말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위생이 안 좋아서 집집마다 머릿니를 잡고 쥐를 잡아서 꼬리를 할당량 채워서 학교에다 제출해야 했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텔레비전도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다. 결핵이나 천연두, 콜레라 같은 후진국형 질병이 횡행했다. 서민이 해외 여행을 하기도 훨씬 더 어려웠다. 사회· 조직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더 험악하고 폭력적이었다." 이런 말하고 하등 전혀 다를 바 없다.

과학 기술 없고 돈 없고 못 살던 시절에 무슨 일인들 없었겠는가? CCTV도 유전자 감식도 없고, 공산주의자의 흉악한 이간질에 서로 믿을 수가 없고, 한두 사람의 잘못이나 악행 때문에 집단 전체가 망하게 생겼는데 언제까지나 신사적이고 인간적으로만 사람을 대할 수가 있었겠나? 그땐 어쩔 수 없이 그랬고 일부 부작용도 있었지, 그 시절의 정치 행태가 그~렇게까지 이를 물고 비관할 정도가 아니었다는 게 본인의 지론이다. 원래부터 현실이 시궁창이었지, 뭔가 잘되려는 걸 누가 망쳐 놓은 게 아니라는 거다. "김 구만 대통령 됐으면, 장 준하만 대통령 됐으면 민주주의가 뭐 어떻고, 친일 척결만 잘했으면.." 이런 식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건 정치 제도이고, 정치 제도는 생각보다 아주 상대적인 개념이다. 까놓고 말해 세종대왕 급의 아주 유능한 1인 독재자가 있으면 굳이 n년 주기로 대통령을 힘들게 새로 뽑아야 할 필요가 있겠나.. =_=;; 하다못해 지금도 이 사회 시스템으로는 답이 없으니, 확 다 갈아엎고 강력한 독재자가 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물며 그 못살던 시절에는 어떠했겠는가.
대통령 직선제라는 건, 뭐 이뤄낸 건 잘한 일이다만, 이게 무슨 북괴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거나 5천 년 가난을 물리친 것만치 그렇게까지 위대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면 독재 미화 발언처럼 들릴지 모르는 말이나, 세계 역사에서 '진짜 악의 악질적인 독재자'가 하는 짓거리를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면 저건 절대로 근거 없는 실드가 아니다. 정말 작정하고 몇천~몇만 명 이상 짓밟아 버리면 민중 항쟁, 시위? 그런 건 애초에 일어나지도 못한다. 북한과 캄보디아를 생각해 보아라. 우리나라가 저 상황에서도 예외적으로 복 받은 거 맞다. 함부로 여기나 북한이나 똑같다는 소리 하지 마라.

10여 년 전에 MBC에서 방영했던 제5 공화국 드라마는 지금 다시 봐도 굉장히 고퀄로 잘 만들어지긴 했다. 실제로는 5공보다 여전히 4공 시절 이야기가 더 많긴 하다만..
또한, 논조가 그냥 일방적으로 전땅크와 신군부를 병크 저지른 것, 잘못한 것만 부각시키는 게 목적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정말 객관적으로 그 시절의 역사를 다룰 의도라면 최소한 1983년의 아웅산 테러라든가 이 윤상 군 유괴 사건도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유괴범은 듣거라. 아이가 살면 너도 살고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라는 대사를 이 덕화 씨가 읊었으면 재미있지 않았겠는가?
그럼 다음 잡설들을 추가로 늘어놓으면서 글을 맺도록 하겠다.

(1) 난 박통의 최종 계급이 투스타인 걸로 지금까지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전역 직전에 명목상 포스타로 쾌속 진급을 한 뒤에 전역했다. 이건 전땅크, 심지어 후임 노 태우도 마찬가지. 다 예비역 대장이다.
이러니 김 영삼이 자기 정권 코드 네임을 '문민정부'라고 지었겠다 싶다. 군인 출신이 아니라 순수 민간 정치인이 정권다운 정권을 역사상 처음으로 잡았다고 말이다.

몇 달 전에 고인이 된 김 영삼 전대통령은 교회 장로여서 그런지 이 승만에 대해서는 좋게 말한 반면, 직접적으로 자기를 탄압했던 박 정희에 대해서는 늘그막까지도 혹평과 악담 스탠스를 바꾸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박통 말기에 이 정권은 얼마 못 가 무너질 것이고,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무너질 거라고 저주를 내리기도 했다.
보통은 둘 다 좋아하거나 둘 다 싫어하고, 하나만 고르라면 차라리 박 정희를 이 승만보다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 영삼과 같은 성향은 좀 흔치 않아 보인다.

(2) 이 승만, 장 면, 윤 보선, 최 규하, 노 태우는 다 영어를 작살나게 잘한 정치인이었다. 학구파 기질이 있었다. 거기에다 지금 레이디 가카도 영어를 포함해 외국어에 일가견이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에 반해 전땅크는 공부 타입은 아니고 체력, 리더십, 인맥 연줄, 사회성처럼 사업가나 정치인에게 어쩌면 더 필요한 아날로그스러운 자질이 충만했던 타입이다.

(3) 전땅크는.. 좀 얄미운 구석은 있다만, 그래도 대통령으로서 인사 배치와 리더십은 나쁘지 않았다. 군인이던 시절엔 1.21 사태 때 큰 전공 세우고 나중에 그의 주도하에 제3 땅굴까지 발견했다. 그리고 아까도 잠시 언급했지만, 집권 중에 이 윤상 군 유괴 사건을 잘 해결하고 사형 집행 잘해서 사회 정의를 실현한 것도 잘한 점이다.
잘한 건 잘한 거다만.. 돈 많은 거 알고 있다, 선고받은 뇌물 추징금은 빨랑 뱉어라. -_-;;

Posted by 사무엘

2016/01/29 08:44 2016/01/2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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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Frozen)

우리나라는 동북 아시아 CJK 중 유일하게 12월 25일 성탄절이 빨간날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딱 1주일 뒤에 있는 1월 1일 신정도 빨간날이다.
지난 2015년은 성탄절과 신정이 금요일이고 그 뒤에 토요일과 일요일이 이어져서 황금 연휴가 두 주 연속으로 있었다. 그 사이 기간을 연차 휴가로 연결하면 직장인도 사실상 겨울방학 기분을 낼 수 있었을 듯하다. 장기간 외국 여행도 가능하다.
그래서 그런지 금요일 오후 당일은 도로도 왕창 막히고 지하철도 혼잡했다. 그러나 연휴 동안은 도로와 지하철이 텅 비어서 한산했다.

그때는 밤 10시에 텔레비전에서 이색적인 프로가 방영되었다.
12월 25일엔 종교 케이블 방송도 아니고 공영 방송인 KBS1에서 주 기철 목사 다큐를 방영했으며, 그 다음날 26일 같은 시각엔 OCN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월트 디즈니 <겨울왕국>을 방영했다.

본인은 전국· 전세계가 Let it go로 열광하던 그 시절에도 <겨울왕국>을 보지 않았다. 너무 바빠서..;; 그 대신 얼마 후 개봉했던 <신이 보낸 사람>은 봤다.
그로부터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 TV 방영이 될 정도가 돼서야 <겨울왕국>을 보게 됐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저 노래들이 어느 문맥에서 등장하는지가 궁금하기도 해서 주의 깊게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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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뒷북인 주제에, 저걸 보며 아이디어 메모를 남겨 놓은 게 한 페이지가 넘었다. =_=;; 주 기철 목사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내 블로그에서 다룬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긴 한데, 일단은 겨울왕국 얘기부터 먼저 하겠다.

- 연관 검색: 제목이 '테이큰'처럼 '-en'형 불규칙 동사의 과거분사형 한 단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인상이 왠지 좋게 느껴졌다. Frozen. 참고로 난 '테이큰' 광팬이다.;;

- 연관 검색: 극지방 근처 북유럽 하늘 → 오로라 → 안나와 엘사 → 아 맞다 옛날에 "오로라 공주" 이런 거 나오는 만화영화가 있었는데.
검색을 해 보니 80년대 말에 <SF 서유기 스타징가>, 국내에서는 <오로라 공주와 손오공>이라고 소개된 일본 애니가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일본은 그렇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산 애니로는 <우주 보안관 장고>가 있었다. 보안관이라니 역시 발상이 미국스럽다..;; 내가 '텍사스'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최초로 접한 매체가 저거였다. '캘리포니아'는 건포도 제조지로 처음 접했고.

- 연관 검색: '안나'라는 이름은 포카혼타스에서는 인디언들 언어로 작별 인사 '굿바이'라는 뜻인 게 와 닿는다. 기억하시는지? 만났을 때 인사인 '윙가포'의 반의어이다.

- 잠깐 깨알같이 등장하는 룬 문자로 쓰인 책이 인상적이었다.

- 월트 디즈니는 내가 알기로, 없는 눈을 CG로 만들어 내는 기술이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들었다.
하긴, 대전 액션 게임들이 눈 덮인 바닥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는 것도 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사람이 그 위로 밟거나 자빠지면 자국이 물론 패인다.

- 엘사는 뭔가 초월적인 자기 능력을 컨트롤을 못 한다는 점에서 가위손 같기도 하며, 섬뜩한 쪽을 더 부각시키면 M에 나오는 주인공 박마리 같기도 하다.
애들의 기억을 지우네 뭐네 하는 게 M스럽게 느껴지며, 가위손의 경우 거기에도 나름 얼음으로 조각품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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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액체 상태의 물 위를 걷긴 했는데, 엘사는 아예 물을 실시간으로 꽁꽁 얼려 버려서 얼음 위를 달려간다. 물이 비열이 얼마나 높은 물질인지를 생각한다면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는데, 어느 게 더 기술 레벨이 높은 건지는 내가 판단을 못 하겠다.

- 안나는 정말 '금사빠'다. "나 미친 소리 좀 해도 돼? 나랑 결혼해 줄래?" /
"나 더 미친 소리 좀 해도 돼? 응! 그럴게! ^^" 우와 정말..;; ㄷㄷㄷㄷ
그 반면 한스는... 라이온 킹 Be prepared 같은 악역 노래 하나 없이 관객까지 뒤통수 칠 정도로 180도 돌변하는 게 디즈니의 관행상 이례적이다.

- 눈사람 올라프는 정말 플라나리아 급의 초재생능력의 소유자이다. 사지가 잘리고 데굴데굴 굴러도 살아 있는데, 그래도 녹으면 죽는 듯하다. 플라나리아도 사지가 1/n로 짤려도 다 살아나지만, 살고 있는 물이 조금만 더러워지면 녹아 버린다. 세포 구조가 아주 단순한 덕분에 외부적인 생존성은 강하지만, 복잡한 물질대사를 할 수 없어서 내부적인 생존성은 쥐약이기 때문임.

- 주인공이 타고 있던 말이 도망가고 겨울에 눈 쌓인 숲 속에서 늑대 떼에게 쫓기는 것, 그리고 악당들이 주인공이 사는 산 속의 성에 쳐들어가는 건.. <미녀와 야수>를 쏙 빼닮았다.

- 영하 수십 도 이하의 혹한에서 쇠붙이 수갑이 깨져 버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석(Sn)은 실제로 그렇게 부스러진다. 이것 때문에 남극 탐험을 갔던 영국의 스콧 일행, 그리고 러시아로 원정 갔던 나폴레옹까지 낭패 보고 고생했었다.

- 기온이 올라서 현실에서 주변의 눈이 녹는 장면은 저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지저분하다. 곳곳이 축축하고 도로는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고...;;
그리고 군대에서 제설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분이라면 애초에 겨울왕국 같은 영화가 결코 낭만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 영어에서 heart는 사람의 장기인 '심장'도 되고 추상적인 '마음'도 되는 중의적인 단어인지라 성경 번역에서도 다루기가 까다롭다. 그래서 결말부에서 이런 대사도 나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스: 어, 언니가 니 heart를 얼려 버렸잖아? (그런데 너 어떻게 생물학적인 목숨이 붙어 있지?)
안나: 지금 여기서 heart가 얼어붙어 있는 놈은 너뿐이지! (너 완전 인간 말종이야)

- 겨울왕국과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매체로는 영화 <투모로우>, 이말년 씨리즈 제100화 <얼음탑의 마법사들>, 계몽사 어린이 세계 명작 미국편 <샴라크의 크리스마스>를 참고하면 될 듯하다. 게다가 이말년 씨리즈는 겨울왕국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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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얼음 마법을 잘 쓰기 위해선 마음을 차갑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지금부터 한 명씩 나와서 쌀쌀맞게 대하는 연습을 한다. 실시!"

- "몇몇 좋은 부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애들 영화입니다.", "전형적인 디즈니 영화입니다."라고 SNS에서 영화에 대해 본인에게 힌트를 준 분이 있었는데, 본인 역시 이에 적극 공감한다. 결말이 좀 허탈하고 오글거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고전 게임 <보글보글> 오락실판의 해피 엔딩에 이런 말이 나오지 않던가. 딱 그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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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gratulations!
Now you found the most important magic in the world.
It's "LOVE" & "FRIENDSHIP"!

Posted by 사무엘

2016/01/26 19:32 2016/01/2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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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연혁은 since 1919일까, 1948일까?
이건 안 중근은 의사인가 장군(중장!)인가, 한글은 총 몇 자인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은 백두산인가 한라산인가.. 뭐 그런 급으로 관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질문이다.

건국절 드립을 치면서 1948을 미는 분들은 잘 알다시피 이 승만 대통령의 건국 공로를 띄워 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승만 정권은 그 당시의 각종 관보에서 since 1919를 적극 밀면서 건국 29주년, 30몇 주년 그런 표기를 썼었다. 이건 뭐 문헌상으로 확인 가능한 팩트이며, 건국절 드립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증거로 제시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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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919를 강조한 걸까?
그렇게 함으로써 남한, 대한민국만이 임시정부의 이념을 온전히 계승했고 한반도의 유일하게(one and only) 합법적인 UN 승인 정권임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승만 자신도 한때 임시정부의 대통령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와중에 북한 따위는? 라이벌은 고사하고 아예 존재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냥 없는 놈 취급하고 무시했다. 마치, 일본에서 아무리 X랄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독도에다 군대가 아닌 경찰을 배치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 북한은 1919를 뺏긴 대신,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고 수령님이 탄생하신 해에다가 억지로 정통성을 연결하여 주체 원년이라고 갖다붙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의 역사에서 유 관순이니 삼일 운동, 임시정부 따위는 아오안이 됐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1948년의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은 막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유세를 떨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승만 정부는 오히려 날짜조차도 티를 안 내려고, 의도적으로 8월 15일 광복절과 동일하게 날짜를 맞췄다! 더 일찍 선포를 하고 하루라도 더 빨리 미군정을 졸업할 수도 있었지만 광복절로 미룬 것이다. 1948년 스타트를 너무 강조하는 건, 남한의 격을 비슷한 시기에 새로 정부를 수립한 북괴의 격과 동등하게 격하할 수도 있다고 봤던 듯하다.

그럼 1919에 비해 1948이 아무 의미가 없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1919년 건국은 지금 실질적인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냉정하게 비춰 보자면, 명목상 상징에 가까운 선언일 뿐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전인 1945년 이전에, 상하이 망명 신세이던 임시정부가 한반도에 실질적인 통치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영토나 국민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권이 여전히 없음은 명백하지 않은가.

마치 안 중근이 위대한 일을 했으며 만약 어느 주권 국가의 정규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면 장군감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현실에서 그가 실제로 정식 군 장성은 아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남극이나 달· 화성에다 영토 선언을 해 놨지만 당장 그 땅에서 할 수 있는 건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에다가도 비유할 수 있다.

비록 해방 자체는 우리 힘이 아니라 국제 정세에 의해 얻은 것이라 치지만, 북괴의 적화통일 야욕을 막고 공산주의와는 단호한 분리를 감행하고, 자유 민주주의 이념으로 당당히 UN 승인 독립 국가 간판을 내건 1948년 레알 스타트도 이제 와서는 존재감이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심판의 선고와 실제 집행의 차이랄까? 특히 요즘은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고 비하하는 온갖 악독하고 해로운 역사관들이 사람 심성을 망쳐 놓는 시기이니 말이다.

비록 그 스타트의 주역들은 겸손해서, 혹은 전략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걸 막 내세우지 않고 숨기고 광복절과 오버랩까지 시켰지만, 지금은 그 '건국'의 순간도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네 수꼴이네 일베충이네 하는 별 희한한 비방이 두려워서 진실을 말하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싶으면 1919를 부각시키면 되고, '정체성'을 강조하고 싶으면 1948을 밀면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애초에 서로 싸울 필요 없이 선호하는 연대를 '취존'(?)해 주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덧붙이자면, 그 옛날 3·1 운동 당시에도, 구호의 명칭이 '조선 독립 만세'가 아니라 대한 제국에서 모티브를 딴 '대한 독립 만세'였다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검색을 해 보니 본인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이미 꽤 오래 전에 신문에 칼럼을 기고해 둔 게 있다. 그거 링크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맺겠다. 저기서는 정체성 대신 정당성이라는 용어를 썼다.

Posted by 사무엘

2016/01/24 08:31 2016/01/2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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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초등학교 때 GWBASIC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8비트나 자기 테이프 같은 건 경험하지 못했고 16비트 교육용 PC가 최초로 프로그램을 짜 본 컴퓨터 환경이었다. 중학교 때는 전국 PC 경진대회가 정보 올림피아드로 바뀌는 것을 겪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이 상협 씨던가 1990년대 후반에 <칵테일>이라는 멀티미디어 저작도구를 개발해서 벤처를 차리는 것을 봤다. 지금 그분은 언론에 일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가 너무 일률적이고 꽉 막혀 있다고는 하지만 그때는 그나마 그 분위기에 많이 편승하는 편이었다. "나이 타파, 학벌 타파,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 하나에 미쳐야 산다" 이러던 시절이었으며, 본인 역시 그런 풍조의 덕을 봤다.
내가 그때 컴퓨터보다 새마을호를 먼저 많이 타고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Looking for you를 들었으면, 난 컴퓨터 대신 철도를 직업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됐을 것이다. 그래도 철도는 컴퓨터 프로그래밍만치 학교 교육과정하고는 완전 딴판인 오덕질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난 지금과는 꽤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싶다.

뭐, 지금은 그때에 비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특기자에 대한 거품이 많이 빠졌다. 일류 공대들의 컴공/전산학과의 입결은 2000년대 초반보다 훨씬 더 낮아졌다. 사실은 나조차도 전형적인 IT 엔지니어 형태의 길을 갈 사람이 아닌 건 오래 전부터 스스로 느끼고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상향평준화하고 있고 어지간한 건 다 오픈소스다 뭐다 하면서 무료로 풀리고 있는데, 앞으로 컴퓨터 코딩만으로 무슨 창의적인 물건을 더 만들 수 있으며, 먹고 살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난 그런 건 모르겠고 단지 아무도 관심 안 갖는 한글 입출력 기술 쪽 연구만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칵테일보다도 더 전, 까마득한 옛날에 1980년대에도 언론에 이름을 날렸던 10대 고딩 프로그래머가 국내에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눈길이 간다. 이 글에서는 두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박 현철 씨.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컴퓨터 하드웨어의 조립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프로그래밍 공부를 직접 시작했다. 그래서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여 (보아하니) 일종의 전자식 타자기처럼 한글 문장을 찍어 주는 초간단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무려 1982년의 일이다.
저 때가 얼마나 옛날이냐 하면, 한글 입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지금의 표준 KS X 5002 두벌식 글자판이 거의 저 무렵에 제정되었다. 그리고 국내 열차 승차권의 전산 발매가 시작된 게 1981년이며, 그것도 한번에 왕창 된 게 아니라 경부선 새마을호부터 시작해서 1984년까지 끌었을 정도이다.

당시 이분을 소개한 TV 동영상을 한번 보시라.

별도의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화면과 프린터로 한글을 찍는 프로그램이라니!
워드 프로세서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어서 프로그램의 이름이 그냥 '한글 워드 프로세서 버전 1.0'이었다.
이걸로 이분은 겨우 17세의 나이로 전국적으로 매스컴을 타고 일약 스타가 됐다. 굴지의 대기업들 전산실에서는 스카웃에 유학 등 각종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당시 비슷한 연배의 천재이던 김 웅용 씨를 신기하게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분은 그런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했으며, 당장의 부귀영화보다는 그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개발자' 노선만을 고지식하게 추구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 50대 중년이 된 이분은 작은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일단은 아직까지도 개발자로 종사하고 계신다. 잠시 미국에도 갔다 오고 창업을 하기도 했지만, 운이 없었는지 사업 수완이 부족했는지 실패하고 빚도 지고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관련 신문 기사: 스티브 잡스를 꿈꿨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사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와 함께 동업을 사람들도 그저 그의 유명세와 재능을 이용만 해 먹으려는 먹튀형이 많았다고 한다.

오, 나름 이념 쪽의 소신을 밝힌 것도 있다. "국내의 많은 진보 인사들이 잡스를 존경한다는 사실에 난 충격을 받았다. 잡스는 (빌 게이츠와 같은 급의 세계정복만을 이루지 못했을 뿐) 여러 행적으로 볼 때 악덕 독재 경영자의 전형이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한진 중공업 김 진숙(노동 운동가)을 옹호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스티브 잡스를 맹신하다니, 그건 논리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본다."
빌 게이츠만이 절대악이고 더구나 그의 대안이 스티브 잡스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저분의 말을 한번 곱씹어 봤으면 싶다.

그리고 최근에 또 이분의 인터뷰 기사가 인터넷에 소개됐는데..
이분은 그 어린 나이와 그 옛날에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개발한 분답게 굉장한 '한글빠'라는 것이 밝혀졌다.

관련 신문 기사: 한글은 세종대왕이라는 천재가 후손들에게 준 선물

한글빠 + 고딩 나이로 한글 입력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금은 철도 관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니..
난 고딩 때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을 만들었으며 지금은 완전 철덕이다. 처지만 빼면 여러 모로 완전 나의 롤모델이 아닐 수 없다.
꼭 뭐 돈방석 위에 앉아야 하나, 자아 성취를 이뤘다면 저 정도도 충분히 성공한 게 아닌가..;; 엄청 고지식한 것까지도 나랑 완전 똑같다.

그 다음으로 비슷하게 주목받은 분으로는, 고딩 때 최초의 "한글 롤플레잉 게임"인 <신검의 전설>(1987)을 개발한 남 인환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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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같은 나이의 어느 괴수 고등학생이 Another world를 만들었다지만, 그래도 그보다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애플 2 어셈블리를 독학한 고등학생이 국내 최초의 상용 게임을 만들어 냈다니 참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 출력, 그래픽, 기획 등등 다 혼자 했다는데, 학교 공부를 어지간히 땡땡이 치지 않고는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없었지 싶다.

그는 똑같이 애플 2 플랫폼에서 <페르시아의 왕자>를 만든 조던 메크너처럼 영상 종합 예술에 관심이 있었는가 보다. 뭐, 게임 개발자로서는 같이 연계해서 나쁠 게 없는 분야이다. 그는 1990년대 초엔 무명이나마 영화 배우로 잠시 활약하다가 다시 게임 업계로 돌아오고, 지금은 온라인 게임 개발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글 워드 프로세서 같은 '애국심 마케팅 + 생산용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게임을 만들어서 그런지, 이분이 1987년 당시에 막 매스컴을 타고 대기업 스카웃을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게임 개발을 한 이분이 돈도 더 많이 벌고 더 잘나가고 있는 듯하다. 역시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SI 같은 품팔이가 아닌 방식으로 돈을 벌려면 게임밖에 답이 없나 싶은 생각이 든다.

...;;
본인 역시 고등학교 나이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 덕분에 전국 대회에서 상도 받고 언론도 타 봤다. 그런 특권을 입은 사람으로서 나 역시 가능한 한 잘됐으면 좋겠고, 그때 입상했던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명맥이 유지되고, 내 연구의 뒤를 잇는 후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애가 컴퓨터를 뚝딱 해서 뭐 좀 비범한 걸 만들어 내면 언론에서 금방 '한국의 스티브 잡스, 한국의 빌게이츠' 드립을 치며 온갖 호들갑을 떨고 애를 막 비행기를 태운다. 그러나 그 열기가 좀 가라앉거나 그 애가 약간 실패라도 하면 분위기는 싹 바뀐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그런 냄비근성 관행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주목을 받는 아이도 겨우 그런 것에 일희일비 연연하지 않는 근성과 멘탈을 갖출 필요가 있다. 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게 프로그램 개발 공부와는 별개로 필요한 인생 공부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언론이 스티브 잡스보다 데니스 리치를 더 중요하게 언급해 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오늘도 8.x 다음 버전의 개발이 계속 진행 중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에게서 한글 입력기 새 버전을 창조해 낼 자유를 앗아 갈 수는 없다. 정말 극소수 예외가 아닌 한은 대한민국은 아직은 '노오력'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 부정적인 예외만 작정하고 찾자면 뭐 나보다 훨씬 천재인데도 시대를 못 타고 나서 인정 못 받고 무진장 불우하게 살다가 간 경우도 엄청 많을 테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1/21 08:33 2016/01/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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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을 검색해 보니 5년도 더 전, 굉장히 옛날에 한번 텔레비전 방송 사고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말 그대로 출연자가 저지른 실수 위주로 유명한 국내 사건들을 나열했었다.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류를 해 보고자 한다. 이유와 원인이야 어쨌든 최종 시청자들이 방송사에서 의도하지 않은 화면을 보게 된 일체의 사건들을 일컫는다.

다음 카테고리들은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현실성이 떨어지며, 사건의 심각성도 그에 비례해서 더 커진다. 실수가 아니라 범죄에 더 가까워진다.

1. 출연자의 실수

생방송 중에 갑자기 돌발상황이 발생하여 출연자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빵터져 버리는 귀여운 유형이 많다. "나라의 경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파리가 앉았습니다"(2001)가 이 카테고리의 대표적인 예다. 한번 웃음병이 도져 버리면 마치 비행기가 실속에 빠져 버린 것처럼 출연자들이 헤어나오기가 어려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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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수습하려고 MC가 나름 재치와 센스를 발휘해서 애드립을 구사한 것이었을 텐데, 오히려 그게 게스트 출연자의 웃음 고문을 더욱 가속해 버렸다. =_=;

다만, 외국에서는 생방송 중에 뉴스 기자가 현장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당하는 방송사고도 있었다. 이건 재미있는 사고라고 볼 수는 없다.
출연자의 실수로 인한 방송 사고는 관계자가 자기 방송사 내부에서 징계를 당하는 결과는 야기할 수 있는 반면, 그래도 대외적으로 누가 경찰서 정모를 한다거나 공권력의 철퇴를 받지는 않는다. 사안이 제일 가볍다.

2. 출연자의 고의 난동

국내에서는 카우치 성기 노출(2005)이 이 카테고리에서는 아마 제일 충격적인 사례에 속할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인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몇 년 동안 방송에 나오지도 못하고 고생 많이 해야 했다. 그리고 쇼 프로는 무조건 생방송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전 검열은 가능하게 5분 지연 전송을 하게 제도가 바뀌었다.
이건 스샷을 올리기가 좀 민망하니 그냥 링크로 대체하겠다. 오죽했으면 이 장면을 북한 방송 화면에다 합성하여 "천하의 개쌍놈들" 짤방이 만들어졌다.

그나저나 또 외국에서는 생방송 중에 리포터가 갑자기 권총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건 실수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3. 외부인의 난입

여기서부터는 일단 해당 TV 프로의 제작과 출연에 관여하는 사람에게는 잘못이 없다. 방송 중 외부인의 난입은 비행기 사고로 치면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와 비슷한 격이다.
이 분야에서 지존으로 꼽히는 국내 방송 사고는 두 건이 있다. 먼저 "귓속에 도청장치" 사건(1988). 이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엽기적인 사고인지라 외국에서도 소개되었다. 어떻게 겁대가리를 상실하고서 생방송 중인 뉴스 스튜디오로 침입을..? 하지만 그래도 심하게 악의적이지는 않은 정신병자의 난동일 뿐이었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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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보면 화들짝 놀란 스탭이 괴청년을 제압하여 바닥에 철퍼덕! 패대기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또한, 괴청년은 끌려 나가서 화면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다시 한 번 "도청장~~!@#!@"이라고 단말마의 비명을 처절하게 외친다.

이 사건과는 달리, 만민 중앙 교회 MBC 침입 난동(1999)은 사안이 더 심각하다. 일개 종교 집단의 시위로 인해 공중파 방송국이 털리고 정규 방송이 중단되는 초유의 해프닝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외부인의 물리적인 난입보다 더 ㅎㄷㄷ한 단계가 있으니 바로 그것은..

4. 전파 납치

컴퓨터에 해킹이나 패킷 스니핑이 있듯이, 이건.. 방송국이 멀쩡하게 송신해 준 신호를 가로채서 다른 것으로 대체해 버리는 무지막지한 테크닉이다. 이것은 방송계의 위조지폐 내지 비행기 하이잭이나 마찬가지이며, 통상적인 방송 사고를 아득히 초월하는 범죄 행위이다. 특히 북한과 대처 중인 우리나라에서는 전파를 갖고 장난 치는 짓을 더욱 무겁고 심각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기존 신호를 교란시키고 수신을 방해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신호로 대체하는 것은 값비싼 장비가 필요하고 기술적으로도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음성은 그렇다 쳐도 영상은 바꿔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전파 납치는 국내에서는 보고된 적이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미국에서 벌어진 '맥스 헤드룸' 전파 납치 사건(1987)이다. 영화가 방영되던 텔레비전에서 몇 분 동안 갑자기 기괴한 배경에 가면을 쓴 웬 정신병자의 기괴한 엽기 퍼포먼스가 흘러나왔으니 시청자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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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괴전파가 대략 어느 지역에서 발신되었는지 정도만이 어렴풋이 파악됐을 뿐, 누가 왜 저질렀는지 범인은 끝내 잡히지 못하고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저 정체 모를 아저씨는 방송국에 가지 않고, 방송국 기자를 만나지 않고도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를 그럭저럭 실현했다. 하지만 어렵게 기껏 집어넣은 화면엔 동요 가사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따위는 없었다. 가면을 쓴 얼굴에 알아듣기 힘든 기괴한 음성, 그리고 끝에는 웬 SM스러운 스팽킹+신음 장면만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방송· 통신 내지 전파 공학이라고 해야 하나.. 저런 것도 특히 처음 개발되고 등장하던 당시엔 슈퍼 울트라 하이테크이긴 했겠다. 난 저런 건 진짜 새까맣게 모른다. 하나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근원을 파헤치려면 물리학의 전자기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이건 뉴턴 고전 역학도 아니고 손에 잡히지 않는 물질 세계의 특성에 대해 난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어서 GG를 쳐 버렸다.

라디오에 FM과 AM이 왜 존재하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중파· 단파 방송은 무엇이고 케이블 TV, 위성 TV, DMB는 무엇인지, 옛날에 무전기는 어떤 원리로 동작했고 지금의 휴대전화와는 기술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지금의 와이파이 무선 인터넷과는 차이가 무엇인지, UHF/VHF는 무엇인지...
터널 안에서도 음성· 영상 신호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자동차 내비는 터널 주행 중일 때 보정을 어떻게 하나?) 그러고 보니 옛날에 무전기는 송· 수신을 동시에 할 수 없어서(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치면 실시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턴 방식!) 말을 하는 쪽이 내 말이 끝났음을 알리기 위해 '오버'라고 해 줘야 했다. 그거랑 지금 무선 전화의 기술적인 차이는 무엇인지 등등등..;;

그래도 이런 분야에도 괴수 천재는 분명 있을 것이다. 옛날엔 정말 전파를 갖고 노는 사람은 자동차 기술자만큼이나 가히 마술사라고 불리기도 했을 것 같다.
신호 상태가 안 좋거나 수신되는 신호가 아예 없을 때는 옛날에는 수상기를 통해 그저 랜덤한 아날로그 white noise와 치지지직 소리만을 접할 수 있었던 반면, 요즘은 JPG artifact를 본다. 과연 디지털 시대를  실감한다.

*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본인은 11년쯤 전에 공중파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 있음. ^^;;

Posted by 사무엘

2016/01/18 08:25 2016/01/1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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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한말의 매국노

옛날에 나라를 일본에다 팔아먹은 을사오적 매국노 중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완용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사실 송 병준도 만만찮은 악질이고 후손들이 하는 짓까지 쌍으로 우주 쓰레기급임에도 불구하고 이 완용만 너무 유명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건 정당한 자업자득 인과응보이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 완용의 행적은 흔히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저 사람이 아니었어도/없었어도 어차피 조선은 망할 처지였다, 매국은 한 개인만으로 가능한 악행이 아니다" 같은 실드를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우파 진영에서 괜히 그런 말을 해서 친일 수꼴이라고 안 먹어도 될 욕과 오해, 거짓 고소를 쳐먹을 필요가 없다.

저 사람은 김 옥균처럼 애국을 생각하고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결과가 안 좋게 된 그런 성향의 친일을 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일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일빠 오덕후 매니아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무능하고 부패하고 개 썩어 빠진 미개한 조선 정부보다는 선진국 일본에게 통치를 맡기는 게 근대화를 제대로 이룰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조선 백성에게 더 좋을 거라는.. 그런 순진한 의도로 매국을 한 것도 아니다.

단적인 예로 이 완용은 일본어라고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던 사람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나라를 팔아먹는 얘기를 나눌 때도 통역을 쓰거나, 아니면 간단한 담소쯤은 영어로 나눴다. 둘 다 똑똑하고 영어는 잘했으니까. =_=;; 이 완용은 죽기 전에 아들한테 유언으로 "앞으로는 또 미국이 뜰 거 같으니 그쪽으로 잘 보여라"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사실이라면 정말 꺼삐딴 리의 실사판이다.

그는 성경으로 치면 발람처럼 그냥 자기 가족의 영달을 위한 기회주의자일 뿐이었다. 자기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르면서 조선 땅의 학교에다가는 일본어 시간을 잔뜩 늘리고, 3·1 운동 가담자에게는 불순분자 선동에 넘어가서 뻘짓 하지 말고 곱게 찌그러져 있으라는 공갈 담화문이나 신문에 게재했었다.

만에 하나 시대의 대세가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관여했다 해도, 그 뒤의 태도가 어떻느냐에 따라서 실드와 평생까임권이 갈릴 수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 완용은 평생 일말의 반성이 없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그 어떤 실드와 동정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람도 한반도에 무슨 근대적인 제도를 도입하고 마냥 나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식의 말도 있나 본데, 그런 식이면 김 일성조차도 왕년에는 눈꼽만치 항일 운동을 한 경력이 있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의 북한 치하보다야 차라리 일제 강점기가 훨씬 더 낫다. 일제 말기로 갈수록 '훨씬'이라는 단서는 설득력을 잃겠지만.)

물론, 일제 강점기 때도 근대화가 이뤄지고 식량 생산이 늘고 인구가 느는 등, 말기의 전쟁만 아니었으면 일말의 긍정적인 면모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얘기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금기시하지는 않아도 된다. 굳이 일제만을 욕하기 위해 조선의 탐관오리들을 미화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허나, 그렇게 식민지 근대화론을 최대한 감안한다 해도, 이 완용은 그와 무관하게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완벽한 개새끼가 맞다(글자를 XX 따위로 가리는 처리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 단군의 후손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무궁토록 욕과 저주를 먹을 것이며, 족보에서 이름이 파이고 후손들이 부끄러워서 혹은 무서워서 전부 외국으로 이민 가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사실, 이 완용의 후손들은(송 병준의 후손도 마찬가지) 다 재산 잘 챙겨서 잠적하거나 외국으로 도피해 있지, 누구 말마따나 겨우 조무래기 경찰이나 군 간부로 가 있지는 않다. 그리고 숨어서 자기 재산 되찾는 소송이나 걸지 그런 사람들이 미쳤다고 시사· 정치 발언이나 하면서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광역 어그로를 끌겠는가? 얘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친일파 이 완용의 대조군이 될 만한 사람은 두 명 정도가 있다.
이 봉창 의사는 이 완용과는 달리, 일본어를 일본 토박이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일본인 지인과 인맥도 많았다. 독립 운동을 하겠다고 김 구를 찾아갔을 때에도 김 구는 쟤가 혹시 일제의 첩자가 아닌가 오랫동안 의심했을 정도였다. 대화를 많이 나눠 보면서 이 봉창의 레알 진심을 확인한 뒤에야 의심을 풀었다.

그는 그렇게 일본 내부에서의 인맥과 접근성 덕분에 덴노가 있는 곳까지 가까이 가서 폭탄을 던질 수 있었다. 의거를 치르러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일본인 친구들은 그가 어디 여행이나 다녀 오는 줄 알고 배웅을 했다. 그때 히로히토 덴노가 죽거나 중상을 입었으면 역사가 또 크게 바뀌었지 싶다. 사람의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음을 느낀다.

그 다음으로, 외국인 대한 독립 유공자인 호머 헐버트가 있다. 그는 한국과 한국인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독학으로 마스터 하여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리고 한글 같은 대단한 문자를 스스로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왜 안 썼냐고 본토 사람들에게 반문을 했을 정도였다. 구한말 때부터 이미 헤이그 특사들을 같이 도와 주고, 이 완용이 디스했던 3·1 운동을 지지한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2. 아베 노부유키의 괴예언

그럼 다음으로, 구한말이 아니라 일제 말기에 마지막(제9대) 조선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와 관련된 얘기를 좀 하겠다.
이 사람은 전범이며,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실드의 여지가 없는 악행을 많이 저지른 사람이다. 전쟁이 더 길어지고 일제가 일찍 항복해서 물러나지 않았으면 정말 가관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일제의 패망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도 이런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왔다.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세뇌라..;; 그래서 저 말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고 친일파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꽤 자주 언급되고 인용되는 편이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의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그 식민 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는 조센징 노예들을 우습게 여긴 아주 나쁜놈이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 사실과는 별개로, 저 말이 그에게서 직접 유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저 말이 내용면에서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로를 이간질하는 노예적 삶'이라고 했는데..
한반도에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감시하고 이간질하는 노예적 삶을 조장한 진짜 주범은 소련과 그쪽을 추종한 공산주의자이다! 공산주의는 사람의 악한 본성을 최대한으로 뽕을 뽑아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모든 인민을 평등한 거지로,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바보 노예로 만들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는 저주받을 체제이다.

UN의 제안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위원회를 발족시킨 것부터(1946년 2월) 시작하여 단독 국기와 애국가 제정(1947년), 분단과 단독 정부 수립도 북한이 먼저 시작한 거다! 아직도 이 승만이 분단의 원흉이네 정읍 발언(1946년 6월)이 민족 반역질이네 이 따위 헛소리가 내 눈에 띄는 거 난 용납 못 한다. 정읍 발언은 이미 다 발생해 있는 원인으로 인한 "대응의 결과"일 뿐, 그 자체가 원인이 아니다.

일제는 단군의 후손들에게 많은 불행을 끼쳤지만, 그래도 이념 갈등과 남북 분단에까지 관여하지는 않았다. 공산주의는 일제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그저 탄압과 박멸의 대상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지고 러시아가 이겼다면 조선은 일제 식민지가 되지 않는 대신에, 러시아의 식민지가 돼서 훗날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가 됐을 거라는 전망도 있지 않은가.

남한은 나라가 잘 세워진 덕분에 공산주의의 직접적인 마수는 천만다행으로 피해 갔다. 하지만 그래도 북한의 방해 공작 때문에 민주주의 내지 시민의 자유를 불가피하게 더욱 제약하게 됐고, 더 강력한 공권력이 필요해진 관계로 친일 군경 간부 청산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지는 등 여러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둘째, '옛 조선의 영광'이라고?
일제는 조선을 아주 비하하면서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는 세뇌를 일삼아 왔다. 그 예 중 하나가 바로, 멀쩡한 지리학자인 김 정호가 병신 같은 조선 정부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옥사한 거라고 조작한 것이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비하를 하거나, 아니면 일본과 조선은 정체성이 하나라고 내선일체를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일제 식민 지배의 수뇌부라는 양반이 갑자기 웬 뜬금없는 '옛 조선의 영광' 드립을 공개적으로 친단 말인가? 논리적으로 앞뒤가 전혀 안 맞는다. 이 어설픈 립서비스만 없었어도 예언(?)의 신뢰성과 사실성이 크게 올라갔을지도 모르는데... 저건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는 무슨 일본 해군 제독 얘기보다도 현실성이 더 떨어진다.
일본이 부러워할 정도로 조선이 리즈 시절이었던 때를 굳이 생각해 보자면, 아마 세종대왕 시절 정도밖에 없을 게다. 그리고 그건 아베 같은 사람이 그 상황에서 갑자기 거론할 이유가 없는 너무 먼 옛날이다.

마지막으로,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은 족히 걸릴 것이다'를 생각해 보자.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표현이다.
바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했다는 말 중에도 '100년 드립'이 존재한다. 6· 25 전쟁 중이던가 후던가.. 돌 위에 돌 하나 안 남은 처참한 폐허를 보고는 "한국은 이거 다 복구· 재건하려면 한 100년은 더 걸리겠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맥아더의 저 말도 아베 노부유키의 말과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출처 검증이(언제 어디서 한 말?) 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허나, 맥아더의 말은 설령 사실이 아니라 주작이라 하더라도, 저주· 악담이 아니라 그냥 주관적인 전망일 뿐이었으며 결정적으로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비록 영토가 반토막 나고 병크와 비리도 많고 문제도 없는 건 아니지만, 세계 10위권의 찬란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이 여전히 한낱 '옛 조선의 영광'만도 못한 상태인 걸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 '100년 드립'은 모두 적중하지 않았다.

아베의 괴예언은 "그때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는 병맛나는 허세로 끝나는데.. 이것조차도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에서 후퇴하면서 직전에 남긴 말 "I shall return.."을 묘하게 닮아 있다. 물론 맥아더는 나중에 진짜로 돌아와서 마치 프로토스 드라군의 생산 대사처럼 "I have returned"까지 당당하게 찍은 반면, 아베 노부유키는 그런 거 없었다.

우리나라는 이제 사실상 있지도 않은(유효 오차 범위 이내) 친일 망령보다는, 당장 현실적으로 훨씬 더 큰 위협인 이런 망령이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까 주의하고 경계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처사라 생각된다.

폴 포트는 죽었지만 그는 언제고 시공을 초월해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성공한 자들을 무조건 부정한 무리로 몰아붙이고
자신의 불행한 처지가 무조건 사회 부조리 때문이라 몰아붙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선동가들의 장난에 놀아날 때
폴 포트는 언제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1/15 08:32 2016/01/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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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컴퓨터 알고리즘을 동원하여 푸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은 세 범주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뒤로 갈수록 설명이 길어진다.

1. 최적해를 다항 시간 만에 구할 수 있으며, 직관적인 brute-force 알고리즘과 뭔가 머리를 쓴 알고리즘이 시간 복잡도 면에서 충분히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문제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인해서 속도가 드라마틱하게 빨라질 수 있고, 알고리즘에 대한 정량적인 분석도 어렵지 않게 다 되는 경우이다. 요런 게 알고리즘 중에서는 가장 무난하다. 정보 올림피아드에도 이런 부류가 가장 많이 나온다.
가장 전형적인 예는 시간 복잡도 O(n^2)가 O(n log n)으로 바뀐다거나, 지수함수 복잡도가 O(n^2)로, 혹은 O(n^3)이 O(n^2)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시간 복잡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간 복잡도가 시공간 trade-off 차원에서 추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간 계산 결과들을 모두 저장해 놓는 다이나믹 프로그래밍 문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정렬, common subsequence 구하기, 그래프에서 최단거리 찾기 같은 깔끔하고 고전적인 문제들이 많다. 기하 분야로 가면 convex hull 구하기, 거리가 가까운 두 점 구하기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산적한 문제들 중에는 이 1번 부류에 속하지 않는 것도 많다.

2. 최적해를 다항 시간 만에 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문제

P에는 속하지 않지만 NP에는 속하는 급의 문제이다. 이건 다항 시간 만에 원천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며 개념과 관점이 사뭇 다르다. 비결정성 튜링 기계라는, 실물이 없는 이론적인 계산 기계에서는 그래도 다항 시간 안에 풀 수 있다는 뜻이다.

입력 데이터의 개수 n에 비례해서 상수의 n승 내지 n 팩토리얼 개수의 가짓수를 일일이 다 따져야 하는 문제라면 다항 시간 만에 풀 수가 없다. 그런데 실생활에는 이런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문제가 은근히 많이 존재한다. 진짜 말 그대로 n!개짜리 뺑이를 쳐야 하는 외판원 문제가 대표적이고, 그래프에도 '해밀턴 경로 문제'처럼 이런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런 분야의 문제는 소위 말하는 NP-complete, NP-hard이기도 하다.

요런 문제는 brute force 알고리즘으로는 대용량 데이터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그렇다고 다항 시간 최적해 알고리즘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100% 최적해는 포기하고 그 대신 95+n%짜리로 절충하고 시간 복잡도는 O(n^2)로.. 뭔가 손실 압축스럽게 tradeoff를 하게 된다.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에는 이런 문제가 많이는 안 나오지만 전혀 안 나오는 건 아니다. 출제된다면 답은 최적해와의 비율로 점수가 매겨지며, 프로그램 실행이 아닌 그냥 제출형으로 출제되기도 한다.

P와 NP 사이의 관계는 전산학계에서 만년 떡밥이다. 현실에서는 마치 장기간 실종자를 법적으로 사망한 것과 마찬가지로 간주하듯이 P와 NP는 서로 같지 않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를 전제로 깔고 발표된 연구 논문들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딱 그러한지는 전세계의 날고 기는 수학자들이 여전히 완벽하게 규명을 못 하고 있다.

엔하위키에는 P!=NP임을 증명하는 사람은 전산학 전공 서적에 이름이 실릴 것이고, P=NP임을 증명하는 사람은 아예 초등학생 위인전에 등재될 것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지수함수 brute force 말고는 답이 없는 문제가 좀 있어야 암호와 보안 업계도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3. 최적해를 다항 시간 만에 구할 수 있음이 명백하고, naive 알고리즘도 실생활에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오지만, 그래도 미시적· 이론적으로는 최적화 여지가 더 있는 심오한 문제

말을 이렇게 어렵게만 써 놓으면 실감이 잘 안 가지만 이 그룹에 속하는 문제의 예를 보면 곧장 "아~!" 소리가 나올 것이다. 이 분야에도 어려운 문제들이 은근히 많다.

(1) 문자열 검색
실생활에서는 그냥 단순한 알고리즘이 장땡이다. 원본 문자열을 한 글자씩 훑으면서 그 글자부터 시작하면 대상 문자열과 일치하는지 처음부터 일일이 비교한다. 실생활에서 텍스트 에디터는 대소문자 무시, 온전한 단어 같은 복잡한 옵션들이 존재하며 각 글자들의 변별성도 높다(대상 문자열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첫 한두/두세 글자에서 곧바로 mismatch가 발생해서 걸러진다는 뜻). 그 때문에 그냥 이렇게만 해도 딱히 비효율이 발생할 일이 없다.

하지만 문자열 검색이라는 건 실무가 아닌 이론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굉장히 심오하고 난해한 분야이다. 원본과 대상 문자열이 자연어 텍스트가 아니라 오로지 0과 1로만 이뤄진 엄청 길고 빽빽하고 아무 치우침이 없는 엔트로피 최강의 난수 비트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예전에 패턴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채 오로지 1글자씩만 전진하는 방식은 효율이 상당히 떨어진다. 이제야 좀 더 똑똑한 문자열 검색 알고리즘이 필요해진다.

퀵 정렬의 중간값(pivot) 선택 알고리즘을 의도적으로 엿먹이는 '안티' 데이터 생성 알고리즘만큼이나..
특정 문자열 검색 알고리즘을 엿먹여서 언제나 최악의 경우로 한 글자씩만 전진하게 만드는 문자열 데이터를 생성하는 안티 알고리즘도 있을 것이다.

(2) 팬케이크 정렬
a1부터 a_n까지 임의의 수 배열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이 수열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동작은 여느 정렬 알고리즘처럼 임의의 두 원소끼리의 교환이 아니다. 1~2, 1~3 또는 1..m (m<=n)처럼 첫째부터 m째의 원소들을 모조리 역순으로 뒤집는 것만 가능하다. 1 7 4 2였으면 2 4 7 1로 바꾼다는 것. n개의 임의의 수열이 있을 때 수열을 정렬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적인 최대 뒤집기 횟수는 정확하게 얼마나 될까? 한꺼번에 몇 개를 뒤집건 한번 뒤집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조건 상수라고 가정하고, 뒤집기 자체 외에 다른 계산의 비용(가령, 현 구간에서 maximum 값을 찾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본인은 아주 어렸을 때 GWBASIC 교재에서 이 팬케이크 정렬 문제와 같은 방식으로 수열을 뒤집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문제를 풀게 하는"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있다. 프로그램의 이름이 REVERSE였다.
이 문제는 마치 선택 정렬과 비슷한 방식으로 명백한 해법이 존재한다. 가장 큰 수가 m째 원소에 존재한다면 m만치 뒤집어서 가장 큰 수가 맨 처음에 오게 한 뒤, 판 전체를 뒤집어서(n만치) 그 수가 맨 뒤로 가게 하면 된다. 이 과정을 그 다음 둘째, 셋째로 큰 수에 대해서 계속 적용하면 된다.

그렇게 명백한 해법의 계산 횟수는 최대 2*n-3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뒤집은 여파가 다음으로 큰 수들을 정렬하는 데 끼치는 영향이 감안되어 있지 않다. 물론 여기서 좀더 머리를 써 봤자 2n이던 계수가 1.xx 정도로나 바뀌지 그게 n 내지 심지어 log n급으로 확 바뀌지는 못한다. 비록 O(n) 표기상으로는 동일하지만 그렇게 상수 계수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최적화이다 보니, 알고리즘이 더 까다롭고 머리가 아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인 그 빌 게이츠가 1979년에 바로 이 문제의 계산 횟수를 최적화하는 알고리즘을 (공동) 연구하여 이산수학 학술지에다 투고했었다. 이 사람의 기록은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2008년에야 더 정교한 알고리즘이 나옴으로써 깨졌다. 이것은 빌이 단순히 비즈니스맨이기만 한 게 아니라 엔지니어 기질도 얼마나 뛰어났고 수학 쪽으로도 얼마나 천재였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학부 중퇴 학력만으로도 이미 전산학 석· 박사급의 걸출한 리서치를 했으니 말이다.

(3) 행렬의 곱셈
갑자기 팬케이크 정렬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자면.. 계산 관련 알고리즘도 이런 급에 속한다. 대표적으로 행렬.

일반적으로야 두 개의 n*n 정방행렬끼리 곱셈을 하는 데 필요한 계산량, 정확히 말해 두 수 사이의 곱셈 횟수는 정확하게 O(n^3)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그러나 거대한 행렬을 2*2 형태의 네 개로 쪼개고, 덧셈을 늘리는 대신 곱셈을 줄이는 방식으로 최적화를 하는 게 가능하다. 게다가 쪼개진 행렬이 여전히 크다면 그걸 또 재귀적으로 쪼갤 수 있다.
a+bi와 c+di라는 복소수의 곱셈을 위해서 통상적으로는 ab, ac, bc, bd라고 곱셈이 총 4회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만 실은 덧셈을 더 하는 대신에 곱셈은 ac, bd와 (a+b)*(c+d)로 3회로 줄일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줄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O(n^3)보다 이론상 작은 시간 복잡도가 최초로 제안된 게 1969년에 나온 슈트라센 알고리즘이다. 대략 O(n^2.8). 정확하게 2.8인 건 아니고 지수 자체가 로그 n 이런 형태로 떨어진다. 프랙탈의 차원 수가 로그로 표현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2.8x의 정확한 의미는 log[2] 7이다. 원래 2*2 행렬 두 개를 곱하기 위해서는 상수 곱셈이 8회 필요한데, 중간 과정의 공식들을 궁극의 캐사기 테크닉을 동원하여 변형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우회 연산을 통해 덧셈은 횟수가 왕창 늘었지만 곱셈이 8회에서 7회로 딱 1회 줄었다! (도대체 무슨 약 빨고 연구해서 이런 걸 생각해 냈을까? ㄷㄷ) 이 여파가 분할 정복법의 특성상 재귀· 연쇄적으로 적용된 덕분에 전체 시간 복잡도가 감소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바닥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덕분에 오늘날은 무려 O(n^2.4)대까지 곤두박질쳤다. 덧셈과는 달리 곱셈은 이런 최적화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주 신기하지 않은가? 크기가 서로 다른 행렬들의 최소 곱셈 횟수를 구하는 다이나믹 프로그래밍 문제하고는 완전 별개의 영역이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움짤임). RGB라는 세 대의 차량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G는 그대로 위로, R과 B는 서로 좌우가 엇갈리게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래의 중앙은 길이 막혔기 때문에 횡단을 할 수 없다.
결국 가운데 G는 곧이곧대로 위로 나가서는 안 되며, R과 B의 경로를 피해서 몇 배나 더 긴 우회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RGB 모두 신호 대기가 없이 서로 엇갈리는 방향으로 술술 소통이 가능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연에는 관성이라는 게 존재하니, 다리가 아니라 바퀴가 달린 자동차나 열차에게는 우회를 하더라도 이게 훨씬 더 나은 방법인 것이다.
행렬도 덧셈이라는 우회가 아무리 몇 배로 더 늘어 봤자, 아주 큰 행렬(차량 소통이 엄청 많을 때)에 대해서는 곱셈이 눈꼽만치라도 줄어드는 게 도로로 치면 신호 대기가 없어지는 것에 맞먹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행렬의 곱셈 시간 복잡도가 O(n^2)보다 더 낮아질 리는 없으며, 저런 알고리즘들은 지수를 줄이는 대신 공간 복잡도(스택 사용..) 같은 다른 오버헤드가 왕창 커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크기가 몇십~몇백 정도 되는 초대형 행렬에서 두각을 발휘하지, 그냥 3차원 그래픽용으로나 간단히 쓰이는 3*3이나 끽해야 4*4 행렬에서 적용할 만하지는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16/01/12 08:30 2016/01/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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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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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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