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순교자 기념관 이야기 계속..)
유명한 순교자 중에 손 양원 목사는 신사 참배 거부로 인한 투옥(일제)에다 빨갱이들에 의한 순교라는 박해와 순교 2관왕을 달성했다. 게다가 그는 자기 아들을 죽인 폭도를 양자로 입양했으며, 미국으로 유학 보내려던 친아들에 대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보내 주신 것을 감사, 이 미천한 가문에서 감히 순교자가 배출하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 이렇게 간증했던 정말 넘사벽급의 크리스천이었다.

저분 말고도 몰년이 1950년 가을/겨울인 분들이 너무 많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 원 성덕 목사: 공산 치하의 의주 영산 교회를 시무하던 1950년 12월, 공산군에게 연행되어 살해당했다.
  • 이 창현 영수(領袖. 장로교의 직분 이름): 1950년 11월 18일 공산군에게 체포. 평원리 뒷산에서 "죽어도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다"라는 신앙 고백과 동시에 총살 당하고 구덩이에 매장됨.

북괴 공산 빨갱이 집단의 만행을 잊지 말아야겠다. 빨갱이의 만행을 용서하는 것과, 빨갱이를 빨갱이라고 인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여기는 반공 정신 함양을 위해서도 방문할 가치가 있는 좋은 곳이었다.
기념관의 밖에도 야외 예배 공간과 산책로가 있는지라, 반쯤은 기독교 수양관이나 기도원 같은 분위기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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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갖다 놓고는 "나도 순교자가 될 수 있다???" 엥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ㅜㅜㅜ 그런데 비록 대한민국이 지금 신앙의 자유가 마음껏 보장된 고마운 나라라고 해도, 이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때 마냥 웃을 일은 아니다.

첫째, 우리는 비록 옛날처럼 성경을 대놓고 불태우거나 성경 소지자를 국가에서 나서서 죽이는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경이 변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자꾸 그 믿음을 고집하면 죽는다"라는 위협은 없지만, "그 고집을 조금만 꺾으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고 인생이 참 편해질 텐데?" 같은 유혹은 곳곳에 상존해 있다. 옛날에는 가야 할 길이 참 물리적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이었겠지만, 지금은 가야 할 길이 뭔지조차 엄청 혼란스러워지고 전투 양상이 교묘해져 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좁은 길을 가고 진리를 수호하고 살면, 그게 곧 사육신에 준하는 생육신이 될 수 있다. "죽기까지 신실하라"(계 2:10)라는 말은 정말 피할 수 없는 경우 죽음까지 불사할 정도로 신실하라는 말이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100% 죽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실제로 죽이지는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둘째로..
아직까지는 매우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상상으로 비쳐질지 모르나, 대한민국 땅이라 해도 가까운 미래에 그야말로 물리적인 박해가 시작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전세계적인 반성경 반기독교 감정이 횡행한다면 다른 모든 정치 집회나 폭력 시위는 허용되면서 공개적인 거리 설교나 선교 행위만은 금지될 것이다. 동성애가 죄라고 공석에서 말하는 게 금지되고, 이걸 어기면 잡혀 가고 전과자가 되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공직에서 쫓겨날지 모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진보의 탈을 쓴 안티 대한민국 종북 성향의 흉악한 정치인· 국회의원· 법조인이 권력을 장악한다면, 저런 날이 훨씬 더 빨리 찾아오게 될 것이다.

비록 신약 크리스천들은 적그리스도 통치와 엄청난 자연 재해를 직접 경험하는 대환란까지는 겪지 않고 그 전에 휴거되겠지만, 대환란의 전이라 해도 어느 정도까지 세상이 맛이 가는 걸 보고 휴거될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세상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직전까지 절~대로 성경 친화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니 영적으로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이것만 생각해도 끔찍한데 아예 교회가 대환란을 직접 겪는다는 말은 꿈에서도 생각하기 싫다.

...
자, 이렇게 경건한 곳을 들른 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 교통 박물관이었다. 마침 이 타이밍에 맞춰서 흐리던 날씨도 아주 맑아진지라, 분위기 전환용으로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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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는 백 남준의 작품이라는데 흰색 칠을 씌운 옛날 자동차들이 쭉 세워져 있었다.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건 마치 패션 유행처럼 변해 온 것 같다. 마차와 별 차이 없던 빈약하던 시절, 저렇게 동글동글 두툼하던 시절 등등~ 나도 차 모양만 보고는 이건 대략 몇 년대 디자인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스페어 타이어도 한때는 차 뒤에 있다가 나중엔 측면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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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교통 박물관인데 이 물건이 없어서는 곤란하겠지. 1886년에 벤츠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4행정 휘발유 엔진 자동차이다. 오늘날의 어지간한 경차에 맞먹는 984cc 배기량으로 엔진 출력은 겨우 1마력이 채 되지 않았다.
컴퓨터 회로의 집적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자동차 엔진도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엄청나게 발전해 왔다. 그런데 전자식 컴퓨터의 역사는 아직 100년이 채 안 됐다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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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실물 전시는 자동차 위주이고, 거기에 철도와 선박 이야기가 약간 겉절이로 낀 정도였다. 비행기는 딱히 소개가 없고 야외에 옛날 소형 프로펠러기 두 대가 전시된 게 전부이다.
철도에 대해서는 증기, 디젤, 전기 기관차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옛날 열차 승차권 컬렉션도 있었는데.. 이런 물건만 전문적으로 구경하려면 의왕에 있는 철도 박물관을 가는 게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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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언어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자동차인 '시발'. 미군 지프 부품을 이용해서 최초로 한반도에서 밑바닥부터 '생산'된 자동차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옛날엔 삼륜차가 있어서 지금의 다마스· 라보 같은 생계형 용달차 역할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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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름 아주 어렸을 때(초딩~) 포니 2 말고 포니 1이 돌아다니는 걸 아주 가끔 본 적도 있는데.. 실물을 얼마 만에 다시 보는지 모르겠다. 반가워서 사진을 두 장 찍었다. 포니는 알다시피 우리나라에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올드카가 전시된 건 포니, 시발, 코로나, 기아 삼륜차 정도가 전부였다. 여기가 무슨 <금호상사>처럼 올드카 전문 전시관은 아니니까. 그래도 브리사나 봉고를 보지 못한 건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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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미했던 영국과 미국의 대형 고급 승용차가 전시되어 있다. 롤스로이스 팬텀(검정)이야 유명하고, 캐딜락 엘도라도는 미국식의 각진 디자인이 참 인상적이다. 자기네 본토가 독보적으로 땅 넓고 자원 풍부하고 내수 수요도 많다 보니, 차를 엄청 크게 만들곤 했다.

딴 얘기이다만, 역사상 최초로 전륜구동 승용차를 만든 곳은 프랑스의 시트로엥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복잡한 엔진 부품에 끼여 있고 조향 역할도 하는 앞바퀴에다가 구동축까지 집어넣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 포니는 현실적으로 만들기가 더 쉬운 후륜구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포니 택시를 탔을 때 뒷좌석의 중앙 하부를 관통하던 커다란 구동축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나 전륜구동이 개발되면서 중소형 승용차는 효율이 더 좋아지고 뒷좌석 공간도 더 확보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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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 전시된 '혀기형 증기 기관차'.
얘는 수인선과 수려선에 투입될 목적으로 생산된 협궤용 증기 기관차이다. 아까 보고 온 그 오천 역 일대를 실제로 지나며 달렸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두 개념이 이렇게 서로 연결이 된다. 이 증기 기관차는 디젤 동차의 등장과 함께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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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바깥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어서 돗자리 깔고 텐트 치고 놀거나 쉴 수 있었다. 가족 단위로 애들을 데리고 오기도 좋고, 학교에서 단체 관광을 오더라도 끄떡없을 듯했다.
그런데 토요일에 이렇게 날씨가 좋으면 이런 박물관보다는 근처의 에버랜드가 사람들로 터져 나갔을 것 같다. ^^

이상으로 이천· 용인 테마 여행을 아주 즐겁게 마쳤다.
여기 말고도 우리나라의 서쪽 끝, 남쪽 끝, 동쪽 끝, 중부 등 몇 군데 가 보려고 찜해 둔 곳이 있다.
거기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주요 기능 개발이 끝나고 박사 과정도 연구 학기로 들어갔을 때쯤 1년에 한 번씩 가 볼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06 19:23 2015/10/0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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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작년 5월에 철원에 성공적으로 다녀 온 것에 고무되어 이번에는 토요일 개천절에 경기도로 테마 여행을 떠났다.
날씨는 한창 맑고 좋고, 학교는 입시생들 논술고사 때문에 폐쇄이고, 공휴일이라 교회 신학원도 안 하니 이런 날은 잠시 짬을 내어 어디 갔다 올 가치가 충분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2가 아직 갈 길이 멀며 회사일과 학교 과제가 날 압박해 오고 있지만, 일단은 잠시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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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를 한 직후에 고속도로를 좀 뛰었더니, 역시나 시내 구간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엄청난 연비가 나왔다.
사람에게 힘든 건 기계에도 동일하게 힘든 법. 경제 속도 + 최대한 관성으로 쭉쭉 달려 주는 게 답이다.
(주유를 하고 나면 차내 컴퓨터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연비 정보가 싹 없어지고 초기화된다.)

그리고 아침 일찍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바로..
옛 수려선에 있던 오천 역 건물이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협궤 철도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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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선(수원-여주)은 일제 강점기이던 1930년에 부설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거의 반세기에 가깝게 전인 1972년에 이미 폐선되어 없어진 철도이다.
선로와 노반은 다 사라졌지만, 이천에 있던 오천 역 건물만은 민가로 바뀌어서 유일하게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 붉은 벽돌 외형이 그 대표적인 예. 요즘 지어지는 철도역들은 유리궁전 스타일이 대세이지만 그때는 저게 주된 건축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와서는 이 건물은 거주민이 없이 흉가처럼 방치됐고, 부지 일대는 재개발이 확정되었다. 그래서 저 건물도 언제 불도저로 싹 밀려 쥐도 새도 모르게 철거될지 알 수 없다.
철덕으로서 나도 어서 가 봐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갖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드디어 성지순례를 마쳤다. 역사 주변의 여러 지점에서 사진을 찍은 뒤, 마지막으로 옆 건물에 올라가서 역사를 내려다보며 한 컷을 더 찍었다.

아무쪼록 저 건물은 사라지지 않고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이 됐으면 좋겠다. 경의선 신촌 역 옛 역사가 보존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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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역 건물을 답사한 뒤에는 '진짜' 성지순례를 하러 갔다. 인근에 있는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을 방문한 것이다. 오천 역에서 거의 7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본인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두 곳을 동시에 답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순교자 기념관은 어느 성도가 산 속 사유지를 기증해서 건립되었으며, 지금 서울 합정동에 있는 선교 100주년 기념 교회던가? 거기서 걷히는 헌금으로 운영된대서 입장료조차도 안 받는 대인배 기념관이었다.

가는 길부터가 포스가 넘쳤다. 몇몇 주택과 회사· 공장을 지나서 산을 계속 오르자, 산상설교부터 시작해서 성경 구절 팻말들이 방문자를 반겨 주었다. 나중에는 한국에서 순교한 목사· 전도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들이 옆에 쭈욱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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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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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안에는 이런 그림체로 순교를 묘사한 그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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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셔먼 호 사건 때 목숨을 잃은 토머스 목사/선교사는 '순직'인 건 명백하겠지만 '순교'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치 지난 2004년에 김 선일 씨도 이라크에서 업무상 '순직'을 한 것이지 '순교'는.. 글쎄? 인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요나에 대해서도 순교자로 묘사해 놓은 그림이 있었다. 요나가 요나서를 기록하고 나서 나중에 다른 일을 하다가 순교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나서의 그 사건에서만은 그는 성경적으로 볼 때 절대로 순교자 모드가 아니었다. 이런 건 좀 분별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거시적으로는 정말 선교의 빚을 지고 있는 게 맞다. 그 옛날에 미국에서 (헬)조선으로 선교사를 보낸 건 지금으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무슨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따위로 선교사를 보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본인 당사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처자식까지 얼마나 고생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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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2층에는 예배실이 있어서 교회에서 단체 관람을 온 사람들이 모여서 간단히 예배 집회를 열 수 있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벽에는 우리나라 교회사와 관련된 여러 글과 사진 자료들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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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성경 번역의 변천사. 스캔 하나는 참 깨끗하게 잘 했다.
다만, 우리나라에 처음부터 킹 제임스 성경 계열의 역본이 전해지지 못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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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3층에는 '순교자' 믿음의 선배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기독교(개신교 포함)는 천주교와 달리 조선 정부에 의한 박해는 그리 많지 않다. 기독교는 프랑스인이 아닌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고, 공권력에 의한 박해보다는 제사 거부 같은 걸로 인한 민간 차원에서의 박해가 더 많았다.
그나마 구한말 때의 거의 유일한 순교자로는 백 홍준 장로만이 소개되어 있다. 이것도 직접적으로 사형을 당한 건 아니고 옥사다.

일제 강점기 때도, 독립 운동과 무관하게 기독교 신앙 자체만으로 인한 박해는 말기의 신사 참배 강요 이전까지는 딱히 심한 지경이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정말로 엄청난 수의 순교자가 발생한 건 오히려 해방 이후부터였다. 공산주의자, 일명 빨갱이들은 양심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일당독재 우상화를 거부하는 기독교를 지독하게 박해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기념관에 적혀 있는 소개 문구이다.

* 북한의 교회 재건
"38선이 놓이면서 북한에서는 교회의 탄압이 계속되었고, 이를 피하여 많은 신도들이 남한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북한의 공산당들은 교회가 새롭게 재건되는 강한 힘을 느끼게 되자 1946년 11월 3일이 일요일인데도 이 날을 북괴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의 날로 정했다(참고로 1948년 5월 10일 남한의 총선거일은 월요일!). 이에 교회들은 즉시 반발하고 결의문을 채택하여 북한 당국에 보냈다. 이러한 항거에 부딪치자 공산당들은 이들을 투옥하고 강제 노동을 시키면서 박해를 가했다.
드디어 1946년 11월 28일에는 그들의 어용 단체로 기독교 연맹을 조직하여 교회를 공산주의 선전에 이용하고, 김 일성을 절대 지지하며 선거에 솔선수범한다는 결의문까지 발표하게 했다. 이에 따라 이 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목사들은 투옥되거나 추방 당했다."


옛날 로마 제국 시절에 대음모자 콘스탄틴이 부패한 국가 어용 교회(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신)를 만들고는, 거기에 가담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은 더 악랄하게 괴롭히고 박해한 것과 완전히 똑같다. 평양이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우리 남한, 대한민국은..

* 남한의 교회 재건
"해방 후 남한은 미군이 진주함으로써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만세!) 일제 말엽에 강제로 모든 교파의 통합이 이뤄졌고 해방 후에도 그 합동 교단을 그대로 존속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45년 9월 8일에 새문안 교회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목사들이 모여 교회의 통합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나 각 교파 교회로의 환원에 대한 집념이 더 강한지라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구세군 등 각 교파는 각자 활발히 선교하여 교세를 확장하여 갔다."


이래서 남한과 북한의 운명이 극과 극으로 갈린 것이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한없이 타락하던 북이스라엘과, 그나마 좋은 왕과 나쁜 왕이 번갈아가며 나오던 남유다 왕국처럼!
난 개인적으로 교파가 저렇게 찢어진 것을 그렇게 나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제 강점기 때처럼 사람의 신앙의 자유를 거슬러서 강제로 통합을 하고 그 통합을 주도한 주체가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게 훨~씬 더 나쁘고 악한 현상이다.

대한민국은 크리스천 초대 대통령 덕분에.. 한중일 나라들 중 유일하게 건국/정부 수립 거의 직후부터 성탄절이 빨간날로 지정되었으며, 군대 내부에 군목을 비롯한 군종 병과가 가장 앞장서서 제정되었다. 정교일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헌 국회 기도문 같은 건 본인은 아주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5/10/04 08:38 2015/10/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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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이야기

성경은 민족주의, 애국심 같은 걸 지지하고 나라 지키는 전쟁에 대해서도 아주 긍정적인 반면, 한편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구원에 관한 문맥에서는 그런 이념을 초월하기도 한다. 요나서가 그에 대한 좋은 예이다. 지금까지 내 홈페이지에서 요나를 직접 심층취재를 한 적이 없었으니 오늘은 이 사람에 대해 썰을 좀 풀어 보겠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는 19세기쯤에 한 조선의 대언자가 이웃 열도의 악명 높은 성진국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고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요나는 미래에 우리나라를 멸망시킬 적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심정이었다. 박해받고 순교하는 게 두렵다는 차원이 전혀 아니고, 그 원수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게 싫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래서 도망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못했다. 본의가 아니게 남의 배의 화물을 몽땅 말아먹는 민폐를 끼치고, 큰 고래에게 잡아 먹혀서 죽다 살아나는 체험을 한 뒤에야 더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어서 어쨌든 니느웨로 갔다. 그리고 영혼이 없는 “까라면 까” 식의 억지 선포를 시작했다.

완전 흉측한 몰골에 영락없는 거지꼴의 꼰대 한 명이 물고기 입에서 내던져져 나왔다. 이걸 실제로 목격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봤다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이 아저씨는 뭐가 불만인지 입은 도널드덕처럼 쑥 튀어나와서 외친다는 말이.. 하나님이고 죄고 회개고 그딴 거 없었다. 오늘날의 거리설교 퀄리티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그냥 “이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질 것이다!”였다(욘 3:4).
무슨 꼴이냐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어느 이상한 교회에서 아저씨 두 명이 발가벗고서 트럭 위에 올라타서 “xx년 xx월에 북괴 김 정일은 남침한다”라고 써 붙이고 다닌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김 정일이 살아 있던 시절의 일임)

그런데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런 엽기 퍼포먼스에 니느웨 전체가 멘붕해 버렸다. 그들은 물고기 배 속에서 살아서 나온 어느 초사이언의 외침을 신이 주는 심각한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완전히 겁을 먹고 찔림을 받았다. 그의 외침을 어느 정신병자 미친놈의 저주· 헛소리· 악담쯤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들이, 심지어 왕까지 다 금식을 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초유의 부흥이 일어났다(욘 3:5-9). 요나의 입장에서는 머피의 법칙이 최악의 방향으로만 골라서 적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요나는 적국의 영적 부흥을 목격하고는 빡돌았다. 그는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지닌 분인지 잘 알았다. 그래서 “내가 완전 개쪽을 감수하면서 니느웨 멸망 예언을 했는데, 이게 이뤄지지 않게 됐으니 난 도대체 뭐가 됩니까..? 배 째세요~ 난 살기 싫소” 하면서 하나님께 앙탈을 부렸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런 골수 민족주의자 요나를 차근차근 일깨워 주는 내용으로 요나서가 끝난다.

저런 요나의 빡침과 앙탈은 어찌 보면 제 발로 삽질을 자초한 면도 있었다.
툴툴 뺀질거리지 않고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이행해서 니느웨를 향해서 불편한 진리/진실을 사랑으로 정중하게 전했으면, 니느웨 사람들이 회심할 때 자기도 체통이 당연히 섰을 것이니 말이다.
마치 누가복음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않고 그물을 하나만 대충 던졌다가,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히는 바람에 배가 되집히고 그물이 찢어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고래 배 속에서 요나서 2장의 기도가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드려졌는지는 난 아직 100% 단정을 못 짓겠다. 1~9절과 10절이 And로 시간 순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듯이 보여서. 특히 and 시간 순 병렬은 재창조 주장하는 진영에서 아주 좋아하지 않는가?

단, 요나는 거기서 문자적으로 완전히 끔살당했다가 부활한 것만은 절대 확실하다. 숨도 못 쉬고 독한 소화액이 분비돼 나오는 내장 안에서 도대체 어떻게 며칠을 생존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기괴한 체험 덕분에 요나는 예수님에 의해 인용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고(눅 11:29), 니느웨는 세상에 너보다도 못한 놈들도 있다는 까임방지권(눅 11:32)을 획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이 친히 인증을 했다는 것은 요나는 100% 확실한 실존 인물이고 그의 행적 역시 100% 역사적 팩트임을 의미한다.

* 성경에서 요나를 잡아먹은 큰 물고기(욘 1:17)의 정체는?

킹 제임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 물고기가 고래였다고 풀이를 하셨다(마 12:40). 마치 1945년 8월에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폭탄이 처음엔 그냥 무시무시한 폭탄인줄로만 알았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아예 원자폭탄이었다고 계시가 발전한 것처럼 말이다.

고래는 포유류라는 점에서 다른 물고기들과는 차원이 다르며, 창세기에서도 다른 동물들과는 별도로 유니크하게 창조되었다고 나온다(창 1:21). 그 창조의 주역이신 예수님이 고래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거 뭐 더 논쟁의 여지가 없다.
허나 non-KJV 역본들은 그리스어 '케토스'의 의미 운운하면서 다들 '큰 물고기' 내지 '바다 괴물'(공동번역, NASV, NRSV)로 표현을 바꿨다.

KJV도 구약의 애 4:3에서는 sea monster가 나온다. 그런데 거기서는 또 non-KJV들은 들개, 여우, jackal 같은 다른 육상 동물로 말을 바꿨다. KJV와는 더 큰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애 4:3에서는 이 생물체가 자기 새끼들로 하여금 젖을 빨게 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즉, 포유류라는 얘기이며, 포유류라 하면 아무래도 육상 동물이 더 금방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래도 포유류인데? 바다 속에서 알이 아니라 새끼를 출산하고 새끼한테 젖을 주는데?
KJV는 신약에서는 대놓고 '고래'라고 했고, 구약에서는 최소한 바다에 사는 포유류라는 고래의 단서를 던지는 반면, non-KJV들은 두 곳 모두 '고래'의 특성이 훨씬 덜 드러난다는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론 재칼(jackal)이라는 단어도 참 오랜만에 듣는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접한 곳은 알라딘 2의 I'm looking out for me 노래 직후에 나오는 대사에서. 어렸을 때는 "... dinner for the jackals!"밖에 못 들었지만 지금은 앞부분의 "Steal from us again and your scrawny body will be..."까지도 들린다. 시장터에서 깽판 치던 앵무새 이아고에게 어떤 상인이 협박하는 말이다. "한 번만 더 여기 물건 손댔다가는 네놈 몸뚱아리를 고기로 만들어서 들개들에게 줘 버리겠다!" -_-;;

Posted by 사무엘

2015/09/28 08:34 2015/09/2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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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뭐 모세 다얀 장군의 영도력, 하나님의 기적, 국민들의 근성과 애국심, 미국의 지원 버프 등등 여러 얘기가 나도는데, 그 승리의 비결 중에는 첩보 활동도 있었다.
‘엘리 코헨’(1924-1965)은 이스라엘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급의 스파이였다. 아마 국정원 공채 같은 걸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일 게다. 우리나라 군대에서 정훈 시간에 강 재구 소령이나 연평해전 영웅을 가르치듯이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엘리 코헨은 유창한 외국어와 수려한 외모, 그리고 모사드가 지원해 준 자금빨을 총동원해 인심 후한 사업가로 위장해서 적국 시리아의 고위 공직자들과 인맥을 맺었다. 그러면서 전장인 골란 고원을 관광 가는 척 방문해서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몽땅 비상한 기억력으로 암기하거나 도촬해서 이스라엘군에게 보내 줬다. 우리로 치면 북한으로 침투해서 북한의 고위 간부들을 교묘히 속인 후, DMZ 안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거기 있는 북한군 GP 등의 군사 시설 위치와 상황을 고스란히 알려 준 것과 같다. 1960년대 초엔 구글어스 같은 게 없었으니까. 그야말로 스타크래프트 맵핵의 실사판이다?

“여기서 근무하는 장병들은 땡볕에 고생이 참 심할 텐데, 빨리 자라는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어서 그늘을 만들어 놓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까지 슬쩍 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졌다. 덕분에 이스라엘군은 나중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있는 쪽에다가만 포를 쏘면 되게 됐다. Oh shit;;

그는 무전기로 정보를 너무 오랫동안 많이 보내다가 “꼬리가 길면 밟힌다”와 같은 과정으로 결국 정체가 탄로나고 체포됐다. 기가 막힌 연전연패에 이거 아무래도 우리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시리아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체 불명의 전파가 송신되는 것으로 의심되는 지역의 건물들을 일부러 강제 정전시켜 봤는데, 하필 혼자 배터리를 이용한 기기로 전파가 발사되고 있는 지점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소련으로부터 기술과 장비 원조를 받고서야 잡아 낼 수 있었다.

범인이 잡히자 시리아 당국은 충격에 빠졌다. 그 인심 좋게 생긴 사업가가 자국의 고위직 인사들을 몽땅 농락한 골수 간첩이었다니! 그는 숱한 고문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협력자를 더 불지 않았으며, 자국에다 교란용 역정보를 송신하라는 강요에 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교묘한 테크닉으로 모스 부호를 만들어서, 어째 자기가 체포 당했다는 사실을 자국으로 알렸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애국자 엘리 코헨을 “우린 저런 요원 보낸 적 없는데?”라고 외면하지 않았다. “우리가 체포해 있는 시리아 간첩/포로 10명과 교환하자, 그걸로 모자라면 현금박치기에 트럭 등 원하는 거 다 주겠다!”고 제안했으며, 국제 여론까지 동원해서 그의 석방 내지 감형을 촉구했다.

그러나 시리아는 자기네 약점과 기밀을 너무 많이 알아 버린 엘리 코헨을 도저히 살려 둘 수 없었다. 시민들이 지켜보는 데서 그를 교수대에 매달고, 처형 과정을 동네방네 생중계했다. 사실, 생각 같아서는 그들은 그를 아예 각을 뜨고 능지처참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처형 당시 그의 몸에는 아랍어로 온갖 문구가 써진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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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스라엘은 시신이라도 돌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역시 단칼에 씹혔다. 그것조차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리아의 분노와 증오심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는 돼지의 오물이 뒤섞인 채(유대교 율법에서 돼지란..) 대충 아무렇게나 매장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제 와서는 유해를 찾을 수도 없다.

국익을 위해서라지만 거짓말과 위장을 능수능란하게 해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한다”에 따라야 하는 국정원 요원 같은 업종에 크리스천이 종사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건 크리스천이 정치인이 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의 문제 같다.

세상 사람들이야 믿음이 아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 대 국가끼리는 개인 대 개인과는 달리, 힘에는 더 큰 힘으로 대응하고 악에는 악으로 맞서야 할 때가 있다. 성경에서 간첩은 창세기의 요셉도 알고 경계할 정도의 직업이었다(창 42:9). 곧이어 출애굽기의 히브리 산파는 비록 첩보는 아니지만 일단 거짓말을 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경우가 있고, 이스라엘 역시 전쟁 과정에서 당연히 정탐꾼을 운용했다. 거짓말을 동원해서 정탐꾼을 숨겨 준 창녀 라합은 완전 의인으로 칭찬받기까지 했다. 물론 그건 하나님이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 급의 철학에 입각해서 인정하신 건 아니며, 믿음의 행위에다 정당방위· 긴급피난 같은 정황이 인정된 것에 가깝다.

시간과 분량 관계상 이 글에서 모든 디테일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예수 믿는다고 해서 국정원 요원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여겨진다. 애초에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군인부터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든지 인정받는 직업이고 병역 거부는 잘못된 행동인데, 그걸 대놓고 하나 좀 자기 정체를 숨기고 하나 무슨 차이이겠는가? 상관의 명령대로 나라 지키는 궂은일만 하는 거라면 말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런 일이 자기 양심에 걸리고 적성상 도저히 못 하겠으면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너무 비위가 약해서 해부 실습을 못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 해도 의대에 가지 말아야 하듯이. 양심에 거리낀다면 그건 죄가 된다.
적성국가에서의 첩보 임무는 실패하면 자기만 죽는 게 아니라 동료 요원까지 다 죽게 만드는 경우가 태반이니 말이다. 국정원 요원은 존재감이 있어서는 안 되는 관계로, 순직해도 전사 군인과는 달리 현충원에도 못 간다. 저렇게 대대적으로 알려진 엘리 코헨이 오히려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따지고 보면 엘리 코헨이 한 일은 엘리사가 한 일의 정확한 판박이였다. (비록 엘리사는 본업이 대언자이지 전문적인 간첩· 공작원은 아니었지만..;;) 열왕기하 6장을 쭉 읽어 보시라. 게다가 이 시절에도 이스라엘의 적국은 시리아였다!

이러므로 이 일로 인해 시리아 왕의 마음이 매우 괴롭게 되어 그가 자기 신하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을 돕는지 너희가 내게 알려 주려 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오 내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에 있는 대언자 엘리사가 왕께서 왕의 침실에서 하시는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니라. (왕하 6:11-12)

Posted by 사무엘

2015/09/25 19:35 2015/09/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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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사건 회상

본인이 초등학교 말년이던 시절, 1994년 가을엔 오로지 살인을 위해 결성된 폭력 조직이자, 그들의 야망대로였다면 거의 반국가단체 급으로 사회에 해를 끼칠 수도 있었던 '지존파' 사건 때문에 나라가 떠들썩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원래 지었던 조직명부터가 '야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마스칸'이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고전인지 현대인지, 성경 코이네인지 어느 그리스어에 저런 음가의 단어가 있는지는 내가 확인을 못 했다. 아무튼,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을 검거한 경찰 간부가 새로 붙여 하사한(?) 이름이다.

이런 조직이 결성되고 1년 남짓만이라도 안 잡히면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두목이 참 똑똑하긴 했던 덕분이다. 조직원이 단 하나라도 일말의 동정심과 인간성이 남아 있다간, 언젠가 이런 흉악 범죄 행각에 회의를 느끼고 조직을 배신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여지부터 완전히 제거했다. 몸으로는 특수부대를 방불케 하는 치밀한 자체 훈련을 거치고, 공동으로 살인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공범 의식과 팀웍을 다지고 동정심을 제거했다. 누굴 납치해서 금품을 뜯은 뒤엔 일체의 협상도 없이 피해자를 무조건 잔혹하게 죽이고, 증거를 은폐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으로는 부자들, 부패한 윗대가리들에 대한 증오심을 강화했다. 게다가 "여자는 친어머니래도 믿지 마라"라는 강령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선견지명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저게 지켜지지 않아서 잡힌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지존파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여성은 두 명이 있었다. 둘 다 20대 나이에 성이 이씨이고 술집 종업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뒤져 보면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 것처럼 잘못 써 놓은 글이 나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먼저 등장하는 한 명은 남자친구의 차를 타고 양평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에 지존파에게 커플째로 납치당한 피해자였다. 그녀는 자기도 직업 때문에 형편보다 더 고급스럽게 입고 다닐 뿐이지 절대로 당신들이 미워하는 부자가 아니고, 살려만 준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필사적으로 읍소를 하여 동정심을 샀다.
여자의 눈물을 보니 마음이 움직였는지, 지존파 팀원 중에서는 그녀에게 반하는 사람이 생겨 버렸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래도 여자는 안 돼 / 돼!"로 팀원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결국은 살려 주고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여인도 살인에 공범으로 가담시켰다. 당장 자기의 원래 애인인 남자--물론 맨정신은 아니고, 강제로 먹인 술에 만취해서 퍼진 상태이긴 함--를 얼굴에 봉지를 씌운 채 목졸라 죽이는 걸 거들어야 했으며, 다른 납치해 온 중소기업 사장에게는 공기총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가련한 그 여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멘탈이 붕괴하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장 자기 목에 칼침이 들이대어져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옛날에 731 부대에서도 신참이 들어오면 신고식이 뭐냐 하면, 만만한 마루타를 하나 손수 때려 죽이는 것이었다. 그걸 못 하면 그 군인이 기수열외를 능가하는 끔찍한 응징을 당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부대원들이 마루타에 대한 동정심과 죄의식을 제거하고 공범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악의 집단들이 하는 관행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지존파는 나중에 두목이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교도소에 갇히고, 또 다른 조직원은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가 손에 큰 화상을 입었다. 그 여인은 부상당한 팀원을 병원으로 에스코트 하던 도중에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필사적으로, 정말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판사판인데 기왕이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다가 죽고 피해자들에게 사죄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내린 결심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용기 있는 행동 덕분에 지존파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들은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검거될 수 있었다. 예전의 각종 실종 신고와 음주운전 사망 교통사고에 대해서 그녀의 증언이 일치했으며, 덕분에 사건들 간의 끊어진 연결 고리가 발견될 수 있었다.

첫 여인이 연락이 두절된 뒤에 지존파 내부의 분위기는 어떠했으려나 모르겠다. 그 와중에 그들은 웬일로 기존 강령을 정면으로 무시하면서 다른 여인을 신규 멤버로 영입했다. 한 팀원의 애인이던 '이 경숙'. 술집에서 노예계약 상태였던 듯한데 지존파에서 1000만 원이 넘는 거액을 주고 업주와 채무 내지 계약을 청산하여 그녀를 데려 온 것이었다. 식사 준비와 잡일 등, 일종의 파출부처럼 부릴 '비전투 요원'의 필요를 느꼈던 듯하다.

이 경숙은 지존파 일당이 검거되기 겨우 나흘 전에 조직에 가입한 것이어서 따라 다니기만 할 뿐 실제로 범죄 행동에 가담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적극적인 신고와 탈출 정황이 없었으니, 범죄 단체 가입과 사체 은닉 혐의로 일단 다같이 체포되고 구속됐다. 처음에 5년형이 구형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귀착되었다.

두 이씨 여인이 지존파 아지트 내에서 같이 마주친 적은 없다. 이 경숙은 전원 사형을 당한 남자 팀원들에 비해서 존재감이 훨씬 덜하기 때문에 결말이 잘 언급되지 않는 반면, 그래도 실명은 아주 쉽게 금방 검색된다. 순수한 피해자인 첫 여인은 그 반대로 결말은 잘 검색되지만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옛날 신문· 방송을 검색해 보면 ㅅㅎ라는 이름이 나오긴 하지만, 이것도 사실은 그냥 대외적으로만 쓰인 가명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성경에서 동명이인을 헷갈리고 마태복음의 피 밭과 사도행전의 피 밭을 헷갈리듯이 저 두 여인이 동일 인물이라는 잘못된 정보도 나도는 듯하다. 파편화된 두 정보를 취합하여 피해자 여인이 이름이 이 경숙이고, 이 사람은 탈출을 했지 검거된 지존파 멤버 중에 여성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피해자인 첫 여인이 살인에 가담한 것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불가항적인 정황이 인정됐다. 검찰은 애초에 기소도 하지 않았으며, 신변 노출 없이 탈북자마냥 모처에서 집과 직장을 마련하여 새 삶을 살 수 있게 오히려 그녀를 도와 줬다. 전쟁터에서도 정말 도저히 불가피한 상황에서 항복하고 포로로 잡혔다가 송환된 군인을 무슨 여적, 항명죄로 처벌하지 않듯이 말이다.

오늘날 지존파는 당연한 말이지만 잔당이나 공범, 추종자, 후계자 따위는 전혀 남지 않고 모조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없다. 워낙 흉악하고 죄질이 나쁘며 무고할 가능성이나 교화 가능성 따윈 0인 부류에게 대한민국의 법이 관대해야 할 이유는 추호도 없었다. 온갖 범죄자들을 상대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형사, 검사 등등도 이들의 살인 공장과 유치장, 사체 화장 아궁이, 각종 흉기와 심지어 이들의 식인 행각까지 듣고 보고는.. 충격과 공포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지방/대법원에서는 신속하게, 남자 조직원 6명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94년 9월 말 체포, 10월 말 사형 선고,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사형 확정, 그리고 1995년 11월 2일에 곧바로 집행! 1년 남짓한 시간밖에 안 걸렸다.

군사 정권 시절도 아니고 민주화 이후에 비정치 단순 흉악 범죄자에 대해 이렇게 신속하게 사형이 떨어지고 무려 6명에게 대규모로 집행된 사례는 거의 전무후무할 것이다. 집에 불을 질러 자기 친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박 한상도 비슷한 시기에 사형이 확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집행은 차마 안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잔당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니 피해 여인은 이제 와서 신변이 공개된다고 한들 '탈출과 신고 사실' 자체로 인해 보복 범죄나 다른 불이익 따위를 당할 가능성은 전혀, 저언~혀 없다. 오늘날 적극적인 신변 보호가 필요한 여느 증인이나 내부 고발자와는 처지가 다르다.

그래도 그녀는 악마의 집단에 끌려가서 생명의 위협과 윤간을 당하고 강제로 살인에 시늉으로라도 가담해야 했던 끔찍한 트라우마를 평생 지고 가는 가련한 사람이다. 술집 업주에게서 풀려나는가 싶었는데 졸지에 흉악 범죄에 연루되어서 쇠고랑 차고 집행유예로나마 전과자가 된 이 경숙의 처지도 딱하다면 딱하지만, 그 처지가 첫 여인에 비할 바는 못 될 것이다. 애초에 두 여인은 애인의 처지가 서로 완전히 반대였으니 말이다(지존파 가해자 vs 피해자).

앞으로 이런 지존파 사건 같은 비극이 없어야 하겠지만, 사회의 모든 부조리, 불공평을 사회 탓, 정치인 탓으로만 돌리는 사고방식으로는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없으며, 그 누구라도 멘탈이 병들고 피폐해지고 분노를 엉뚱한 곳에 표출하는 병크가 곳곳에서 터질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23 08:36 2015/09/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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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리 단편화

컴퓨터에서 무작위 읽기/쓰기가 가능한 모든 기억장치.. 즉 RAM, 파일 시스템, 데이터베이스 따위에는 모두 구조적으로 단편화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메모리를 10바이트씩 찔끔찔끔 요청했는데 최소 할당 단위 제약 때문에 실제로는 수백 바이트 단위로 성큼성큼 용량이 짤려 나간다거나(내부 단편화),
전체 남은 용량은 1000바이트인데 한 600바이트 정도 연속된 구간이 없어서 메모리 할당이 실패하는 외부 단편화가 모두 존재한다.

메모리라는 게 1차원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컨텐츠가 실제로 차지하는 용량보다 전체 소모 용량이 더 커지게 되고, 이런 걸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나 유틸리티에는 조각 모음(defrag), shrink, compact 같은 동작을 강제로 수행하는 기능이 있다. (뭐, 디스크 중에서 SSD는 예외적으로 조각 모음이 필요하지 않은 구조라고는 하지만.)

디스크는 애초부터 파일 시스템의 지배 하에 있으며 그 시스템이 제공하는 방식대로 디렉터리와 파일 이름을 통해서만 내용에 접근 가능하다. 일반적인 응용 프로그램이 디스크를 무슨 실린더 번호 x, 트랙 y, 섹터 z 같은 형태로 무식하게 접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방식은 오늘날의 운영체제에서는 더욱 금기시되고 있다.

그렇게 파일명이라는 고수준 추상 계층이 있는 덕분에 디스크는 내부적으로 막 조각 모음을 해도 딱히 파일을 못 찾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저수준 처리는 운영체제의 파일 시스템이 알아서 다 처리해 준다. 또한 디스크 정도면 물리적으로 액세스를 하는 데서 발생하는 병목이 소프트웨어적인 추상화 계층을 거치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기도 하고 말이다. 사용자에게는 외부 단편화보다는 클러스터 최소 단위로 인한 내부 단편화가 현실적으로 더 와 닿는다.

그런데 RAM은 디스크와는 사정이 다르다. 단편화를 예방한답시고 함부로 컨텐츠들을 재배치하면 memcpy 오버헤드는 둘째치고라도 그 메모리 주소를 직접 가리키고 있던 수많은 포인터들이 작살이 나 버린다.
메모리 자원이 극도로 가난하고 열악하던 16비트 Windows 시절에는 운영체제의 global/local heap으로부터 메모리를 할당받고 나면 곧바로 포인터가 돌아오는 게 아니라 핸들 하나만이 돌아왔다. 이 핸들이 가리키는 메모리는 운영체제의 사정에 따라 수시로 재배치될 수 있는데, 메모리를 실제로 사용할 때만 lock을 걸어서 위치를 고정시킨 뒤, 포인터를 얻어와서 메모리를 참조하곤 했다. 사용이 끝나면 다시 unlock을 해 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GlobalAlloc - GlobalLock - GlobalUnlock - GlobalFree 사이클이다. 재배치를 하는 이유는 당연히 메모리 단편화를 극복하고, 연속된 긴 메모리 공간을 언제나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16비트 시절에 메모리 블록이나 리소스 같은 데에 discardable, resident, non-resident 같은 속성이 달려 있던 이유는, 수시로 재배치 내지 재로딩 같은 빡센 메모리 관리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운영체제가 자동으로 무슨 garbage collect를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저런 일을 해야만 했다는 게 참 안습하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32비트 정도 되는 주소 공간에서 가상 메모리가 제공되는 게 프로그래머의 관점에서 얼마나 축복이냐 하는 것이다. 4기가바이트 정도 넉넉한 공간이 있으면, 단편화 문제는 주소빨로 어느 정도, 상당 부분 극복이 가능해진다. 어지간히 단편화가 심한 상태라 해도, 또 대용량 메모리 요청이 들어오면 걍 다음 주소를 끌어다가 물리 메모리에다 대응시켜 쓰면 되기 때문이다.

그 연속된 가상 메모리 주소를 실제로는 여기저기 흩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지저분한 물리 메모리로 대응시키는 건 운영체제와 CPU의 몫이다. 물리 메모리가 부족하면 하드디스크 스와핑까지 알아서 해 준다. 가상 메모리 덕분에 프로세스간에 보안이 더 향상된 것도 덤이고 말이다.

이것이 RAM과 디스크의 차이이다. 디스크에 파일명이 있다면 RAM에는 가상 메모리 메커니즘이 있다. 한 주소 공간 안에서 스레드가 여러 개 있는 경우 가상 메모리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가상 메모리는 메모리를 관리하기 위한 추가적인 메모리도 적지 않게 소요하는 테크닉인 걸 알아야 한다. 물리적인 메모리뿐만이 아니라 가상 메모리 주소 영역 자체도 떼먹는다.
오늘날 64비트 운영체제라 해도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공간인 64비트 전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40비트대 정도만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옛날 이야기

옛날의 프로그래밍 언어나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살펴보면, 메모리와 관련하여 오늘날 당연한 기본 필수라고 여겨지는 요소가 대놓고 빠진 것들이 적지 않아 놀라게 된다.

(1) 예를 들어 옛날에 포트란 언어는 함수 호출은 가능하지만 초기에는 동일 함수에 대한 중첩/재귀 호출이 가능하지 않았다. 세상에 뭐 이런 언어가 다 있나 싶다..;; 함수 안에서 지역 변수의 사용이 스택 기반으로 되어 있지 않고 늘 고정된 주소로만 접근하게 돼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오늘날의 프로그래밍 언어에서야 지역 변수는 스택의 기준 주소로부터 상대적인 위치를 건드리게.. 일종의 position independent code 형태로 접근된다. 재귀 호출 지원뿐만 아니라 코드 실행 주체가 증가하는 멀티스레드 환경에서는 각 스레드가 또 독립된 스택을 갖고 있으니 절대 고정 주소가 더욱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멀티스레드는 thread-local이라는 일종의 새로운 scope까지 만들었다.

(2) 한편, 프로그래밍 언어 쪽은 아니지만, Win32의 구현체 중에 제일 허접하고 불안정하고 열악하던 Win32s는..
멀티스레드도 없고 각 프로세스마다 독립된 주소 공간이 없는 건 그렇다 치는데... DLL은 자신이 붙는 각 프로세스별로 자기만의 독립된 데이터 공간마저도 보장받지 못했다. 16비트 DLL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

옛날에 아래아한글 3.0b는 윈도 95나 NT 말고 3.1 + Win32s에서 돌아갈 때는 무슨 자기네 고유한 메모리 서버 프로그램을 먼저 실행한 뒤에야 실행 가능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메모리 서버가 하는 일이 바로 DLL별로 고유한 기억장소를 할당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았나 싶다. 아래아한글의 소스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개인적으로 하는 추측이다.

아시다시피 16비트 Windows는 가상 메모리 같은 게 없다 보니, 콜백 함수의 실행 context를 레지스터에다 써 주는 것조차 소프트웨어가 수동으로 해야 할 정도로 진짜 가관이 따로 없었다.

※ 쓰레기(다 쓴 메모리) 수집

끝으로 garbage collector 얘기다.
heap으로부터 할당하는 메모리는 너무 dynamic한지라 언제 얼마만치 할당해서 언제 해제되는지에 대한 기약이 없다. 그걸 소스 코드만 들여다보고서 정적 분석으로 완벽하게 예측하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해진 scope이 없는 동적 메모리를 잘못 건드려서 발생하는 소프트웨어 버그는 마치 자동차의 교통사고처럼 업계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다.
memory leak은 당장 뻑이 나지는 않지만 프레임 단위 리얼타임으로, 혹은 수 개월~수 년간 지속적으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에서는 치명적이다. 또한 다른 메모리/포인터 버그도 단순히 혼자만 뻑나는 걸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지, 아예 악성 코드를 실행시키는 보안 문제로까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 동적 메모리 관리를 사람에게 수동으로 맡겨서는 안전하지 못하니, 메모리 자원 회수를 프로그래밍 언어 런타임 차원에서 자동으로 보장되게 하는 기법이 연구되어 왔다.
고전적인 reference counting 테크닉은 C++의 생성자/소멸자 패러다임과 맞물려서 일찍부터 연구되어 왔으며 smart pointer 같은 구현체도 있다.

이건 원리가 아주 간단하며, 언어 차원에서 포인터의 scope가 벗어나는 족족 메모리가 칼같이 회수되는 게 컴파일 시점에서 보장된다. 그래서 깔끔한 것 하나는 좋다.
허나 이 기법은 생각보다 비효율과 단점도 많다. 대표적인 논리적 결함인 순환 참조는.. 서로 다른 두 객체가 상대방을 서로 참조하여 똑같이 참조 횟수가 1보다 커지고, 따라서 둘이 메모리가 결코 해제되지 않아서 leak으로 남는 문제이다.

즉, 레퍼런스 카운팅이 잘 동작하려면, 참조를 받은 피참조자는 자신을 참조하는 놈을 역참조하지 말아야 한다. 이걸 어기면 객체간의 레퍼런스 카운트가 꼬여 버린다.
문제는 이걸 일일이 조심하면서 코드를 작성하는 게 상황에 따라서는 차라리 걍 메모리 자체를 수동으로 관리하는 게 나을 정도로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리가 어디 A-B, B-A 사이에만 생기겠는가? A-B, B-C, C-A 같은 식으로 더 골치 아프게 생길 수도 있다. 참조 관계는 정말로 cycle이 없이 tree 형태로만 가야 한다.

그러니 이 문제는 예상 외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멀티스레드에서의 '데드락'하고 다를 바가 없다! 서로 뭔가 꼬여서 끝이 안 난다는 점, 잡아 내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성능을 더 희생하고라도 메모리 leak 문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전용 garbage collector가 괜히 등장한 게 아니었겠다 싶다.

가비지 컬렉터라고 해서 무슨 용 빼는 재주가 있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당장 접근 가능한 메모리로부터 출발해서 그 메모리로부터 추가로 접근 가능한 메모리 블록을 줄줄이 순회하여 표시를 한 뒤, 표시가 없는 메모리를 죄다 해제한다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동작한다. 동적으로 할당받은 메모리 내부에 또 동적 할당 메모리의 포인터가 있고, 그게 또 이상하게 얽히고 배배 꼬인 걸 어떻게 일일이 다 추적하는지 더 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단순무식하다. 주인 없이 주차장에 장기간 방치되어 있는 폐자전거들을 일괄 처분하기 위해 모든 자전거에 리본을 달아 놓은 뒤, 일정 날짜가 지나도록 리본이 제거되지 않은 자전거를 갖다 버리는 것과 개념적으로 비슷하다! 혹은 기숙사의 공용 냉장고에서 주인에게로 접근(?)이 안 되는 장기 방치 식품을 주기적으로 제거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단지 좀 더 성능을 올리기 위해, 메모리 블록들을 생존 주기별로 분류를 해서 짬이 덜 찬 메모리가 금방 또 해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거기부터 살펴보는 식의 관리만 하는 정도이다. 자바, .NET의 가상 머신들도 이런 정책을 사용한다.

이건 즉각 즉각 자원이 회수되는 게 아니며, 리얼타임 시스템에서는 적용을 재고해야 할 정도로 시공간 오버헤드도 크다. 그러나 한번 수집이 벌어질 때 랙이 있다는 말이지, 매 대입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카운터 값을 변화시키고 그때 스레드 동기화까지 해야 하는 레퍼런스 카운팅도 성능면의 약점은 상황에 따라 피장파장일 수 있다.

언어 차원에서 이런 가비지 컬렉터가 제공되어서 delete 연산자와 소멸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언어가 요즘 추세이다. 자바나 C#처럼. 하지만 메모리는 그렇게 자동으로 수집되지만, 파일이나 다른 리소스 핸들은 여전히 수동으로 해제를 해야 할 텐데 무작정 소멸자가 없어도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다. 본인은 그런 언어로 대규모 프로그램을 작성한 경험이 없다. C++ 이외의 언어에서는 RAII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지?

Posted by 사무엘

2015/09/20 08:28 2015/09/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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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이야기 외

"어린 시절, 어머니가 무대 가수로 일하다 목이 쉬어서 삑사리가 나서 청중들로부터 막 야유를 받고 있었는데.. 그때 자기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천부적인 개인기를 즉석에서 선보여서 '브라보!' 동전세례와 환호를 받았더라.." 본인은 찰리 채플린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아주 어렸을 때 읽은 적이 있다.

그것 말고 본인이 더 알고 있는 건 그 특유의 히틀러 수염 + 중년 정장 복장의 광대 같아 보이기도 하는 개그 캐릭터, 일명 Little Tramp이다. 그리고 모던 타임즈라는 풍자 영화를 만들어서 연기한 것 정도만이 전부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 이전부터 그야말로 리즈 시절을 누린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영화라는 매체의 초창기 역사를 함께한 산 증인이다.

채플린이라 하면 일단 무성 영화 시절의 인상이 아주 짙지만, 그는 나중에 유성 영화와 컬러까지 다 경험하긴 했다. 애니메이션과 음악만 있는 건 요즘으로 치면 플래시 무비 같은 느낌도 든다. 그 시절엔 화면 전환이나 글자 자막을 전부 아날로그 방식으로 어렵게 넣어야 했겠지만.
유튜브에 굴러다니는 영화 몇 편을 보니 저때 그 사람이 추구한 개그 코드가 이런 식이구나 하는 건 대충 알겠다. 산업 혁명의 원조 국가 출신답게 문명 사회에 대한 풍자가 많다. 밥을 떠먹여 주는 기계는 그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정말 시대를 앞서갔다 싶다.

그리고 광대 연기만 한 게 아니라 각본 쓰고 연출을 하고 음악까지 혼자 다 작곡했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시종일관 BGM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높던 무성 시절부터 말이다. 연기뿐만 아니라 음악의 천재이기도 했다는 점도 다시 봐야겠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만능 예능인이 맞다.
"빠라라람? (똑딱똑딱) 빠라라람!" CF에서도 들은 적이 있는 음향이었는데 이것도 원조는 채플린 영화였구나.

저 사람 콧수염 모양이 아무래도 히틀러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실제로 닮은 게 맞았다. 채플린은 히틀러를 희화한 영화를 한두 차례 만들어서 히틀러 연기를 했다. 히틀러 당사자 역시 처음엔 자기를 풍자한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하지만, 1940년작 <위대한 독재자>는 풍자의 도가 지나쳤는지 나치 독일에서 국내 수입과 상영을 금지당했다고 한다. 참고로 채플린과 히틀러는 나이가 완전 동갑인 동시대 인물이었다. 둘 다 1889년 4월생이고 생일도 나흘밖에 차이가 안 남.

아인슈타인을 백발의 혀 쑥 내미는 얼굴만 보다가 젊었을 때 모습을 보면 적응을 못 하듯, 채플린도 일명 Little Tramp 코디인 중년 신사 연기 모습만이 너무 짙게 각인되어 있는지라, 젊었을 때나 말년 모습을 보면 적응이 안 된다.
채플린은 89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린 뒤, 자던 중에 타계했다. 죽는 과정이 아주 이상적이었다.

다음은 그 밖의 trivia들.

1. 찰리 채플린은 가난하고 못 사는 집안 출신이었고 작품 중에 사회 풍자적인 메시지를 종종 담다 보니, 정치적 소신은 아무래도 성장보다 분배를 좋아하고 노동자를 편드는 쪽에 가까웠다. 그 자체가 문제가 있거나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지만, 일련의 행적으로 인해 그는 그 살벌하던 냉전 시기에 일부 국가와 높으신 분들 계층으로부터는 좀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 한때 미국 입국을 금지당하기도 했을 정도이며, 한국에 채플린의 작품이 생각보다 늦게 소개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긴, 그 시절에 헬렌 켈러도 장애를 극복한 위인이기만 한 게 아니라 굉장한 좌파 성향의 사회 운동가였고, 심지어 피카소 화가도 비슷한 성향이었다.

2.
연예인들이 인기 관리에 대한 압박감과 공연 후의 허무함 때문에 멘탈에 대미지를 입으며 지내고 급기야 마약에 빠지고 자살까지 하는 것처럼.. 저 사람도 남을 웃기는 직업과는 정반대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견디다 못해 하루는 정신과 의사에게서 상담을 받았는데.. 환자가 누군지 모르던 의사는 그에게 이런 권고를 했다.
"찰리 채플린이 나오는 영화를 몇 편 좀 보시죠? 그러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증세가 나아질 겁니다~ ^^"

이런 비슷한 사례가 또 떠오르는 게 있다.
우리나라에 정 근모 박사는 핵 물리학자 출신으로 전 과학기술처 장관, 호서대 총장 등을 역임한 분이다. 학창 시절에는 경기고를 4개월만 다니다가 그냥 고졸 검정고시 + 월반을 해서 서울대 문리과대학에 차석으로 입학해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절대적인 학업 축적량이 부족하니, 수학· 과학만 잘하지 영어까지 바로 따라갈 수는 없었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교양 영어 시간 때 교수/강사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해서 쩔쩔맸다. 그러자 그 선생은 정 군에게 이렇게 핀잔을 줬다.
"아니 명색이 서울대를 들어왔다는 학생이 이것도 모르냐? 여기에는 고등학교를 4개월만 다니다가 월반해 들어온 천재도 있는데!"
이에 주변의 학생들은 다 빵터졌다고 한다..;; (정 근모 박사 자서전에 언급되어 있는 일화)

3.
옛날에 내 동심을 자극하던 '찰리' 캐릭터로는 찰리 채플린 말고 만화 주인공인 찰리 브라운도 있었다. 만화의 원제가 <피너츠>였고 이 만화는 4컷 형태로 생각보다 오래 최근까지 연재되었다는 것은 작가가 작고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연재 기간은 1950년부터 2000년 진짜 딱 반세기에 달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 비슷하게 그 정도로 오래 연재된 4컷 만화는 <고바우 영감>이다. 이것도 주간지 시절까지 포함하면 딱 1950-2000이다.
뭐, 채플린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얘도 20세기 추억의 만화물이고 연재 기간이 채플린이 살아 있던 기간까지 포함하고 있으니 같이 연상이 될 만도 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17 08:33 2015/09/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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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계시와 비유

1.
먼저 성경 말씀 패러디부터 좀 소개하겠다. 난 철도의 역사가 드디어 욥기 장면과도 오버랩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서울-부산간의 땅에 철길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누가 그것들의 궤간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선로 위에 열차를 맞춰 놓았느냐?
그 차량의 대차를 어디에 고정하였느냐? 혹은 그것의 동력 기관을 누가 놓았느냐?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욥 38:4-7 패러디)

"이제 내가 너를 만들 때 함께 만든 특대형 디젤 전기 기관차를 보라. 그가 소처럼 기름을 먹느니라.
이제 보라, 그의 기력은 엔진에 있고 그의 힘은 발전기와 연결된 전동기에 있느니라.
그가 자기 바퀴를 백향목같이 움직이며 동력 전환 계통의 부품들은 서로 얽혀 있고
그의 대차는 강한 놋 덩이 같으며 그의 차축은 쇠막대기 같으니라.
그는 하나님의 철길들 중에서 으뜸이거니와 그를 만든 이가 자신의 연장을 그에게 가까이 댈 수 있느니라." (욥 40:15-19 패러디)


베헤못 빙고.
사실, 힘 자체는 전기 기관차가 더 좋지만 소리와 포스가 더 웅장한 건 디젤 전기 기관차여서.. ^^
욥이 그 당시에 무슨 총연장 몇 km에 차량이 몇 량 있는 사철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사장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나란히 있는데.. 그때 본인은 윌리엄 워즈워쓰의 유명한 시 <무지개>가 문득 떠올랐다. 본인은 아주 오래 전에 접했지만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역설법 싯구가 워낙 강렬해서 내 기억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아이와 어른을 대조한 다른 유명한 구절은 성경에서 고전 13:11인데, 거기서는 어른이 된 뒤에 유치하고 초딩스러운 일을 버렸다는 심상이어서 낭만주의 시와는 분위기가 영 다르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첫 행이 무척 공감이 갔다. 나는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가 아니라 when I listen to Looking for You일 때 my heart leaps up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그러하리라! 그리고 자연의 경건함이 아니라 철도의 경건함 속에서 매일 매일 살고 싶다.

아니, 시의 제목 자체를 레인보우가 아니라 레일웨이라고 바꿔도 될 것 같다. 소리가 비슷하다!
예전에 3· 1 운동 관련 글을 읽으면서 천도교를 보면서도 철도교를 연상한 적이 있었다. rain과 rail도 역시 ㄴ과 ㄹ 차이이다!

3.

"참고로 카지노의 카페트와 조명들은 전부다 심리학적으로 매우 신경써서 만든 것들인데,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두군거리고 슬롯머신을 한번쯤을 돌려봐야할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 구성되어 있다. 특히 슬롯머신처럼 단순하게 생긴 카지노 장비들(...)의 효과음은 돈 짤랑거리는 소리 등 도박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정말 공들인 사운드 이펙트를 자랑한다."
* 나무(엔하)위키의 '카지노' 설명 본문 중.


그렇다. 새마을호 역시 카페트와 조명, 안내 방송과 음향들은 전부 심리학적으로 매우 신경써서 만들어져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두근거리고 단순 이동이 아니라 뭔가 철도라는 악기를 이용한 문화 예술 공연 같은 느낌이 들도록 구성되어 있다. 기내지 레일로드, 고급스러운 간접 조명과 독서등, 두툼한 좌석에다 Looking for you 음악은.. 그야말로 승객을 뼛속까지 철덕으로 세뇌시키고 철도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정말 공들인 사운드 이펙트였다.

도박은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만약 유흥 차원에서 한다면 내 돈을 잃거나 뺏긴 게 아니라, 그냥 게임 요금에 자리값/서비스료를 지불했다는 생각으로 하는 게 그나마 바람직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 새마을호를 타는 것은 단순히 몸을 이동하는 데 드는 교통비 운임을 지불한 게 아니라 샘솟는 평안과 기쁨, 행복을 구입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이폰만 감성 마케팅을 한 게 아니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Looking for you를 듣는 것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새마을호 객실에서 흘러나오는 Looking for you를 듣는 것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경부선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를 타고 열차가 시종점에서 도달할 때 연주되는 Looking for you를 객실에서 듣는 것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4.
전철을 타서 좌석에 앉으면 가방이나 도시락 같은 소지품을 어디에다 놔 둘지가 고민되는 때가 생긴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두는 위치는 전기 철도 차량의 전력 공급원 내지 집전 방식에 대한 좋은 예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각기 장단점이 있다.

  • 머리 위의 선반에다 두는 것은 가공전차선+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에 해당한다. 제일 편하긴 하지만 깜빡 잊고 짐을 놔 두고 내리기 쉽다.
  • 바닥의 양 발 사이에다 두는 것은 바로 제3궤조 집전 방식이다. 놔두고 내릴 염려는 적지만 발을 편하게 두기 어렵다.
  • 그냥 손에 쥐고 있거나 백팩에 넣은 채로 있는 것은 배터리 또는 기름+전기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놔 두고 내릴 가능성은 0이지만 승차감이 제일 안 좋다.

선반에 물건을 적재하는 건, C++ 프로그램으로 치면 '전동차 탑승'이라는 함수가 실행되고 스택에 C++ 개체를 하나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전동차에서 내리는 것은 함수 실행이 종료되고 그 변수가 scope을 벗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변수는 스택에서 소멸되고 해당 개체의 소멸자 함수가 실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heap도 아니고 스택에 선언된 개체에 대해 메모리 leak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난 옛날에 논산 훈련소에 있을 때 침상형 생활관에서 바닥 위의 빨랫줄을 보고도 전차선을 떠올렸다. 국방색은 갈록색을 빼닮은 듯이 비슷해서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예표이고, 긴 행렬이 우측통행을 하는 것 역시 지하철의 예표이다.

성경에는 질질 끌리는 긴 옷자락(사 6:1) 내지 수행원 행렬(왕상 10:2)조차도 train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으니 저렇게 생각을 하는 건 성경적인 근거가 충분하다.
자나깨나 철도를 생각하는 것은 가까운 것부터,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5.
난 솔직히 내가 아니어도 전세계의 날고 기는 천재들이 알아서 다 발전시켜 줄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신기술에는 별 관심이 없다.
기술은 어지간한 건 다 상향평준화해 버리고 심지어 오픈소스로 풀리기까지 한다.
내가 안목이 좁은 건지.. IT 업계는 어지간한 아이템, 아이디어는 나올 거 다 나오고 게임 말고는 더 할 게 없는 레드오션이 돼 버린 지 오래인데, 미국은 아직도 뭘 더 만들 게 있어서 컴퓨터 관련 학과가 인기가 많고 코딩을 배우네 창업을 하네 하는 분위기인지 궁금하다. 아이템이 계속 있다면 참 다행이긴 한데.

나는 컴퓨터보다는 우리나라 철도를 위해 일하고 싶다.
나를 죄에서 구원한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해서 내 삶을 주께 드리고 내 몸을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듯이,
객실에서 Looking for you를 틀어서 잠자던 내 야성과 똘끼를 깨우고, 감성을 흥분시키고 한편으로 촉촉히 적시고, 한편으로는 무한한 행복과 감동과 평안과 희락을 준 철도를 위해, 철도를 전하는 일에 내 일생을 바치고 싶다.

"철도 안에서의 한 날이 세상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으니이다. 내가 장막들에 거하는 것보다 차라리 철도의 집(= 철도역) 문지기가 되겠사오니" (시 84:10 패러디) 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 피스톤 왕복 엔진 (자동차. 휘발유와 디젤 모두)
  • 제트 엔진 (비행기. 터보 제트, 터보 팬)
  • 로켓 엔진 (우주 발사체)
  • 전기 모터 (전동차, 전기 철도)

의 내부 구조와 원리, 제원을 측정하는 규격과 물리적 특성, 구동음 등등을 전부 마스터 하고 싶다. 난 정작 대학 졸업할 때까지 기계· 전자 같은 건 완전 담을 쌓고 살았다만..;;

아 뭐 지금처럼 국어정보학 쪽으로 가서 언어를 공부하는 프로그래머가 됐고 한글 입력기와 글꼴 쪽으로 논문 쓰게 된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일이긴 하나,
내가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를 몇 년 좀 일찍 들었으면 진로가 딴판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철도 만세 만만세. 새마을호여 영원하라.
자동차나 비행기 쪽에 관심이 가는 것도 언제까지나 철도와의 비교 차원에서 하는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 학교 안 대졸자 취업 박람회(?)에서 본 코레일 부스..;;

Posted by 사무엘

2015/09/14 08:34 2015/09/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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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개통과 운행 내력 외

한반도에 KTX라는 이름의 고속철이 개통하여 상업 운행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넘었다.
개통한 지 무려 반세기가 넘은 일본의 신칸센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KTX도 개통 내력이 은근히 복잡해지고 있으니 한번쯤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2004. 4. 1. [경부 1차 개통]
- 경부선: 서울-부산 (고속선은 대전-광명, 대구-옥천만)
- 호남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용산-목포 (대전 이남엔 고유한 고속선 구간 없음)
- KTX 개통과 함께 (1) 서울교외선에 정규 열차 운행이 중단됨. (2) 통일호 폐지, (3) 경춘선 무궁화호 폐지.

* 이 일대 시기의 서울/철도 소사를 참고 차원에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청계고가의 철거와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행됨.
- KTX 개통 약간 전에 서울역 민자역사가 개관함.
- KTX 개통 후 얼마 안 있어 경부선은 서울 역, 호남/전라/장항선은 용산 역으로 역의 역할이 완전히 이원화됨.
- 2004년 7월, 서울 수도권의 버스· 지하철 통합 환승 제도가 시행됨.
- 2005년부터 철도청 폐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출범.

2007.
- 경부선: 대전-대구 사이만 기존선으로 달리면서 김천과 구미에 정차하는 KTX 일부 운행

2010. 11. 1. [경부 2차 개통]
- 경부선: 대구-신경주-울산-부산 사이의 고속신선 신규 개통. 기개통 구간엔 오송과 김천구미 역이 추가 영업 시작함
김천· 구미 KTX는 폐지. 그 대신 수원· 영등포 정차 KTX 생김

2010. 12. 15.
- 경전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대구 이남으로 창원, 마산으로 가는 노선. 수요 폭발이었다고 함.

2011. 10. 5.
- 전라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익산 이남으로 여수엑스포 행

2012.
- 드디어 KTX-산천 차량 투입

2014. 6. 30.
- 일부 열차가 인천 공항까지 직결 운행 시작

2015. 4. 2. [호남 1차 개통]
- 호남선: 고속신선 신규 개통. 익산· 정읍· 광주송정을 경유하며 공주 역 추가 영업 시작. 저 역들을 제외한 호남선 기존선 역들은 KTX 취급이 폐지됨(광주, 김제 등).
- 동해남부선(앞으로 동해중부선과 연결되어 동해선이 될 예정): 포항 직결 운행 시작

2015. 8. 1.
- 대전과 (동)대구는 기존선과 인접하는 도심 구간까지도 기존선 연결선이 아니라 고속선이 깔림으로써.. 운행 계통이 일반열차와는 완전히 분리되는 복을 누리게 됐다.

요약하면:
고속신선은 오송에서 분기하는 경부선과 호남선 축으로 깔려 있고, KTX 운행 노선은 거기에다 호남 분기(전라선), 경부 분기(경전선, 동해남부선), 그리고 서울 이북으로 공항선이 추가적인 겉저리로 붙은 형태이다.
차량은 아무래도 1세대 떼제베 차량과 2010년대 이후의 2세대 산천 차량 정도로 나뉜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KTX-산천은 HSR-350의 기술로부터 만들어진 열차이긴 하지만 산천 자체가 HSR-350을 그대로 양산한 건 아니다.

더 먼 미래엔:
(1) 호남 고속철이 광주 이남으로 2차 구간이 마저 개통할 것이며, (2) 수서 발 수도권 고속철과 (3) 강릉 방면 동서 고속철이 남아 있다.
“희망을 싣고 번영을 싣고 뻗어가는 철도 따라 커 가는 나라”대로 될지어다. 아멘. (철도의 노래 가사 중)

* 고속철의 이름: 차량이냐 선로냐

고속철 보유국으로서 프랑스와 일본을 비교해 보면 좋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떼제베(TGV)는 '매우 빠른 열차'라는 뜻이며 차량 중심으로 작명됐다. 한국의 KTX도 이니셜을 보면 알 수 있듯, 차량 중심이다. 프랑스는 차량 기술에 자부심이 많은지 그 뒤에도 증속 경쟁을 제일 열성적으로 진행해 왔다. 2007년엔 자기 부상 열차가 아닌 재래식 바퀴식 열차로 무려 시속 574km라는 사기적인 시운전을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신칸센은 '새로운 간선 철도'라는 뜻으로 의외로 차량이 아닌 선로 중심으로 작명됐다. 본인은 철덕으로서 이 차이가 매우 신기하게 와 닿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차량보다도, 기존 협궤가 아닌 표준궤로 고속철 신선을 깔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와 닿았던 것이다. 1964년에 첫 운행을 한 신칸센 0계 전동차는 떼제베 같은 독자적인 디자인도 아니고 걍 자기네 옛날 전투기와 비슷한 투박한 외형이었다.

새로운 교통수단을 만들 때는 성능뿐만이 아니라 안전도 굉장히 높은 가중치로 고려 대상이 되며, 고속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속 200km를 넘게 증속을 하는 기술보다도, 그렇게 고속 주행 중에 장애물이 나타나고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동 거리를 얼마를 넘지 않고 비상 정지를 도대체 어떻게 할지가 더 심각한 고민거리로 대두되었다. 엔지니어들이 별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싸움이 가장 좋은 싸움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됐다.
"가장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 (They're only good when dead 포카혼타스 Savages 대사;; )처럼.
애초에 비상 정지를 할 일이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건널목 따위는 전혀 안 만들고 모든 구간을 무조건 입체교차로 만들고, 선로에는 아무도 접근을 못 하게 겹겹이 벽을 두르면서 일본의 경부선뻘 되는 도카이도선을 표준궤 고속선으로 새로 만들었다. 1960년대에 벌써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선로를 내세운 '신칸센'이 됐고 이것이 일본 고속철의 선로, 열차, 시스템의 명칭이 됐다.

이런 일본과 프랑스의 고속철 역사를 살펴보면, 철도라는 걸 처음 만들 때는 당연한 말이지만 차량보다 선로가 먼저라는 원칙을 확인할 수있다.

우리나라도 1992년에 대전-천안간의 경부고속선 본선 겸 시험선 구간을 먼저 착공한 뒤, 차량의 선정 계약은 더 나중인 1994년에 맺었다.

시속 200km를 넘는 장거리 간선 철도의 건설 자체는 1964년의 일본 신칸센이 세계 최초이다. 하지만 그 뒤의 추가적인 속도 경쟁은 후발 주자인 프랑스 떼제베가 앞섰다. 가령, 시속 260km대의 상업 운전은 1981년에 떼제베가 세계 최초로 달성했고 신칸센은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뒤인 1992년에야 300계 전동차가 도입되면서 그 속도를 따라잡았다. (300계는 TGV-R, ICE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속철의 차량 입찰 후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1984년 8월에 경부선 천안-서정리 구간에서 겨우 시속 150km 시운전 성공.. 이러던 지경이었다. 그러니 국제적인 안목이 있는 철도 공학자와 경영자들이 통탄할 법도 했다. 1980년대, 전국 곳곳에 포장 도로가 깔리고 마이카 시대가 코앞인데 이래 가지고는 "한국 철도엔 답이 없다"라는 게 뻔히 보였다. 철도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증속을 통해 많이 빠르게 실어 나르는 "회전율 향상"뿐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1985년 11월에 서울-부산 4시간 10분이 달성된 후, 지속적인 레일 장대화와 선형 개량, 기관차 출력 증대로 서울-부산을 1980년대 말까지 3시간 반까지 단축시키려는 계획은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미봉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1992년에 드디어 인천 공항의 건설과 더불어 경부 고속철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뒤의 역사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그대로이다.

우리나라에서 떼제베 대신 신칸센이 낙찰됐다면, 철덕의 입장에서 전망해 보자면 다른 건 몰라도 떼제베보다 폭이 더 넉넉하고 애초부터 역방향 좌석이 없는 열차가 도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신칸센은 2-3배열 가축수송 열차가(한 줄에 좌석이 5개!) 있을 정도로 같은 표준궤에서도 뚱뚱한 덩치이기 때문이다. 자기네 자위대 전차의 부품도 제대로 수송을 못 할 정도로 빼짝 마른 협궤에 이골이 난지라, 신칸센은 이왕 표준궤로 까는 김에 열차의 폭까지 최대한 더 키운 듯. 하지만 지나친 고자세 때문에 입찰 후보들 중에서는 신칸센이 가장 먼저 탈락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11 08:32 2015/09/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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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라 vs 하지 말라

세상의 법이나 규칙 같은 것은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하라'(do)보다는 '-하지 말라'(don't) 위주로 만들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시험 문제야 학습자의 심리적인 영향을 감안하여, "-틀린 예는?, -아닌 것은? -없는 것은?" 같은 부정적인 문제는 일정 비율 이상 만들지 말라고 하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그러나 법률은 아무래도 죄를 다루고 사람의 재산과 생명을 다루다 보니 심각하고 부정적인 말이 많다.

자동차나 총기, 전기톱, 독극물 같은 위험한 물건의 취급 설명서는 온갖 오· 남· 악용 상황을 금지하는 주의· 경고문으로 가득하다.
복싱은 룰의 태반이 금지 반칙 조건의 리스트라고 한다. 그 덕분에 위험한 격투기이면서도 신사의 스포츠로 품위가 유지되는 듯하다.

프로레슬링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Please, don't try this"(제발 따라하지 마세요!)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don't 규칙이다. -_-;; 옛날에는 at home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저건 다~ 전문가들이 지극히 통제된 환경에서 각본 다 짜서 하는 액션이고, 그러고도 후유증이 쌓이고 가끔은 안전사고도 나니... 일반인이 현실에서 따라할 생각이라고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뜻으로 home을 붙인 것이었다. 그런데 "응? 집이 아니면 학교나 도장에서는 해도 된다는 얘기네?" 이렇게 이상하게 받아들여서 사고 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던지라 at home은 나중에 빠지게 됐다.

don't에 비해 do 법은 "납세나 병역 따위의 의무를 수행하라" 말고는 흔치 않다.
세상법에서는 어린 자녀를 제대로 먹이고 재우고 치료하지 않은 것 정도가 꽤 적극적인 do 법의 위배이다. 이것 말고도 선한 사마리아인 법도 만드네 마네 하는 말이 있지만, do 법은 아무래도 마음의 동기를 측정 가능치 않다 보니 적용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아까 말이 나온 자녀 부양도 do 법의 위배가 걸리는 것보다는 자녀를 학대하지 말라는 don't 법의 위배까지 간 뒤에야 적발되고 처벌되는 경우가 더 많다.

성경에도 물론 don't 법이 적지 않다. 특히 최초의 법인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도 don't 법이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 do 법도 의외로 좀 있다.
십계명에서 하나님 계명과 인간 계명의 중간쯤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제4와 제5는 don't가 아니라 do 계명이다. (안식일을 지켜라,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에게는 단순히 패륜을 저지르지 '않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 이상의 적극적인 예우를 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don't는 그건 너무 당연한 거고, do까지 해야만 죄가 성립되지 않게 된다.
또한 안식일은 유대인과 하나님 사이의 표적으로서, 일정 주기로 강제로 쉬는 것도 당장 손해를 감수하는 믿음이 필요한 일이었다. (안식일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기를.. 6·25나 진주만 폭격이나 다 일요일에 벌어졌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라고 돼 있으니 don't가 아닌 do 형태라고 본다.

구약 모세오경을 보면, 신성모독을 저지른 어느 혼혈아만 공개처형(레 24:10-23)을 한 게 아니라, 안식일에 일을 하다 걸린 사람을 처형하는 장면도 나온다(민 15:32-36).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 흉악범도 아니고 겨우(?) 그런 죄를 저지른 사람까지 중범죄로 간주하여 죽였던 것이다.

안식일이야 신약 시대에 직접적으로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성경엔 믿지 않은 것, 기도를 게을리 한 것, 복음 안 전하는 것 등 더 적극적으로 do 법을 명시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 죄인 것도 많이 있는 셈이다.

특히 오늘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죄, 지옥 가는 유일한 죄"는 살인· 간음· 사기처럼 하지 말라는 짓을 저지른 죄가 아니라, 하라는 것을 안 한 죄이다!
마치 출애굽 직전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반드시 발라 놓아야 한다거나, 놋뱀을 반드시 바라봐야만 살 수 있다거나 한 거처럼.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2. 법을 만드신 분, 법 위에 계신 분

성경에는 신약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한 예가 아주 많다. 이것은 성경과 성경간의 연계 효과를 강화하고 내용을 교차검증하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가령, 여느 무신론자 개독안티가 아니라 예수 믿고 교회도 댕긴다는 사람이 창세기 1~3장은 설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이렇게 치고 들어가면 된다. "야, 니가 믿는 그 예수님도 아벨이 실존 인물이고 의인이라고(마 23:35, 눅 11:51) 아주 진지하게 인증을 했구만 그럼 예수님도 팩트가 아닌 거짓을 믿은 거냐?" 이런 식이다.

어디 그 뿐이랴? 여타 성경 인용의 정확도는 변개된 성경과 그렇지 않은 성경을 판단하는 잣대 역할도 한다. 막 1:2의 대언자들 vs 이사야가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이다.
그런데, 성경의 용례를 찾아보면, 예전 성경을 언제나 문자 그대로 곧이곧대로 정확하게 인용하지는 않은 예도 많다.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살리라”(합 2:4)는 신약에서는 ‘자기’가 빠지고 의인은 그냥 “믿음으로 살리라”(롬 1:17, 갈 3:11, 히 10:38)로 바뀐 걸로 유명하다. 그것도 무려 세 번이나 말이다. 이것 말고 또 다른 예로는 이 글을 참고하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예수님 역시 초림하셨을 때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안식일 때 제자들이 곡식을 비벼 먹었는데, 이때 주변 율법주의자들과 키배를 하면서 하신 말씀이 “사람의 [아들]은 곧 안식일의 [주]니라” (마 12:8)였다. 이건 결국 안식일을 뭐 어찌 하셨다는 뜻이겠는가? 이 모든 사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떤 법을 제정한 주체에게는 자신도 그 법을 지킴으로써 자신의 권위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그 기존 규칙을 초월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할 수도 있고, 또 규칙 위에 예외를 둘 권리도 있다.
성경에는 다른 여러 사건들도 많지만 특히 에스더기가 그 두 사례를 잘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결국은 하나님께는 두 적용을 자유롭게 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는 신자로서 그 모든 판단(judgment)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시 119:75).
이 관계를 잘 생각해 봐야 예수님/사도들의 성경 인용은 필요에 따른 적절한 수정인 반면에, 이브와 사탄의 성경 인용은 변개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킹 제임스 성경도 God forbid 같은 표현은 축자 번역이 아니라 동적 일치 의역이라는 식으로 딴지를 거는 시비에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봤던 월트 디즈니 <알라딘>도 이 법의 권위와 관련된 비슷한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술탄이 자스민 공주에게
“법에 따르면 너는 네 다음 생일 때까지 반드시 왕자와 결혼해야만 한다구.” (The law says you must be married to a prince by your next birthday.)
라고 융통성 없게 말하지만, 나중에 결말부에서는 결국 이렇게 말하니까 말이다.

법을 고치겠다. 난 술탄(왕)이니까. 지금부터 공주는 자기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다. (꼭 왕자가 아니어도)”
(물론, 사람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락가락 이랬다 저랬다를 막으려고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 체계에서는 입법과 행정을 분리하고 있다. “짐이 곧 법이다”를 제도적으로 가능하지 않게 막은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08 08:36 2015/09/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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