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의 속도를 올리는 방법 외

- 차량: 더 성능이 좋은 동력차를 도입한다. 특대형 디젤 기관차와 새마을호 디젤 동차는 1980년대에 열차 고속화의 선두 주자였다. 특히 역에 자주 정차하고도 표정 속도가 높으려면 가감속이 높은 차량이 필요한데, 이런 형태에는 동력 집중식보다는 동력 분산식이, 기름보다는 전기 차량이 훨씬 더 유리하다.
- 동력차의 기어비를 바꾼다. 8200호대 전기 기관차의 경우, 스펙상의 최고 속도는 시속 150이지만, 기어비를 바꾸면 시속 200을 넘길 수도 있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전기 기관차는 산업선 화물 위주로나 많이 쓰여서 속도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 있다.

- 선로: 당연히 선형을 직선화하고 개량함으로써(필요하다면 고가, 터널 건설) 열차의 속도를 올릴 수 있다. 물론 이는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 레일을 더 무겁고 튼튼한 재질로 교체하고, 덜컹거리지 않는 장대 레일을 쓰면 된다. 그래야 레일이 빠르게 달리는 육중한 열차를 견딜 수가 있다. 물론 요즘 건설되는 철도는, 굳이 고속철이 아니더라도 m당 60kg 이상의 최고급 장대 레일은 기본이다.

- 선진적인 신호 시스템도 알게 모르게 열차의 고속(빠르게 운행), 고밀도(자주 운행) 운행에 매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똑같은 복선이지만 지금의 경부선은 별다른 하드웨어 투자 없이도, 일제 강점기 때보다 허용 선로 용량이 5배에 가깝게 증가해 있다. 신호 시스템이 낙후해 있으면 안전상의 이유로 인해, 단위 구간에 대해서 열차를 매우 띄엄띄엄 보수적이고 소극적으로 운행할 수밖에 없어지며, 구간별로 진입 허가를 받기 위해 수시로 열차 속도를 줄여야 하게 된다.
교통수단들 중에 오로지 철도만이 ATS, ATC 같은 잘 통제된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지하철의 경우는 신호 시스템만 치면 기술의 첨단성이 고속철 뺨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경부선 열차가 1970~80년대에 들어서 서울-부산이 6시간이 넘다가 4시간 50분대로 진입하고, 나중에 4시간 10분으로까지 단축된 것은 그 당시에 위의 모든 분야에서 시설 투자와 개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바퀴를 굴리는 육상 교통수단은 축중 하중이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본인은 운전 경험이 아직 거의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같은 차라도 FF(전륜구동), FR(후륜구동)은 핸들에 전달되는 느낌부터 시작해서 차가 움직이는 감각이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흠 난 FF 승용차를 몰 때나, 자동차 학원에서 FR 트럭을 몰 때나 별 차이를 못 느낀 걸로 기억하는데.

일단 기술적으로 FF가 FR보다 부품 수는 줄일 수 있지만, 만들기는 좀더 어렵다고 들었다. FR은 앞바퀴의 조향 반경이 FF보다 더 클 수 있고 핸들링 성능이 좋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뒷부분이 지나치게 가벼울 경우 바퀴가 헛도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FR은 뒤에 화물로 인한 충분한 하중이 실릴 수 있는 트럭 같은 차에 적합하다.
FF는 역시 작은 승용차에 적합하지만 차체가 커질수록(=엔진 무게보다 훨씬 더 큰 하중이 실린다는 보장이 있는) 점점 FF보다는 FR이 더 유리해지는 것 같다. 반면 버스는 엔진까지 뒤에 있는 RR 방식이 동력 전달에도 유리하고 앞부분이 가벼워져 핸들 조작에도 좋다.

철도 차량은 조향이라는 개념도 없고 그런 구동축 위치도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마찰이 작다는 특성상, 축중 하중이 더욱 중요하다. 쇠로 된 길 위에 쇠로 된 바퀴가 구르다 보니, 차가 지나치게 가벼우면 바퀴가 헛돌기 쉽다. 8200호대 전기 기관차라든가 새마을호 디젤 동차도 엔진 자체의 성능은 훌륭하지만, 이런 현상 때문에 선형이 안 좋은 곳에서 도입되지 못해 왔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54 2010/01/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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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공간

우주복을 입지 않은 채 사람이 맨몸 내지 평상복 차림으로 우주 공간에 내던져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온몸의 생리 작용이 뒤틀리기 시작하고, 불과 수 분 후에 의식을 잃고 질식사한다.
하지만 압력 차이 때문에 무슨 FPS 게임처럼 사람 몸이 풍선 터지듯 터진다거나, 즉사(질식사, 동사 등-_-)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과거 우주 개발 과정에서 우주복이 찢어지고 사람이 우주 공간에 잠시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다.
그럼.. 머리만 산소 탱크와 밀폐 헬멧으로 연결하고 두툼한 외투만 걸치면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우주 공간이 지구 지표면과 다른 점은 크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영하 270도에 달하는 극저온: 지표면 위로 뜨거운 열권을 지나고 외기권으로 나가면 사실상 우주가 시작된다. 여기는 온도가 매우 낮지만, 물질이 없기 때문에(당연히 수분도, 공기도..) 저온의 타격을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로 입지는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햇볕에 직접 쪼이면 자외선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우주 공간에서 온도라는 개념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사람 피부가 닿는 순간 코와 입은 얼어붙지만, 전신의 열이 싹 빠져나가고 동상에 걸리고 조직이 얼어죽는 건 아님. 공기의 온도가 섭씨 100도에 달하는 사우나 안에는 있어도 괜찮지만, 물은 50도만 넘어가도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다. 저온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2. 진공 극저기압: 사실 우주 공간에서 사람에게 가장 해를 끼치는 요인, 즉 직접적인 사인은 무중력도 아니고 바로 이거라고 한다. 몸이 폭탄에 맞은 것처럼 산산조각 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압력 차이 때문에 모세혈관이 터지고 뇌에 공급되는 산소가 부족해지고 신체가 부풀어오른다.
그러니 몸에는 당연히 갖가지 탈이 난다. 잠수병과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과 소련이 최초로 우주 개발을 할 때도 진공에서 생명체의 생존 가능성 실험을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3. 무중력: 무중력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중력이 없다는 건 중력에 의한 마찰력도 없다는 뜻! 제대로 걸을 수가 없고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고 컵에 물을 따를 수도 없는 신세계가 펼쳐진다. 우주에서는 정지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신체를 바둥거려도 이동이 되지 않고 뭔가를 반대 방향으로 던지고 쏴야만 이동 가능하다고 한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탔는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지기 직전에 체험하는 그 아찔하고 불안한 상태가 바로 무중력 상태이다!

바람은커녕 심지어 우주선 안의 공기의 대류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촛불을 켜면 그 주변의 산소만 동그랗게 소모한 뒤 탁 꺼진다. 환기가 안 되면 사람이 자다가도 자기가 내뱉은 얼굴 주변의 이산화탄소에 감당을 못 하고 질식할 수 있다. 지구상의 실험실에서 극저온과 진공은 만들 수 있지만, 무중력은 우주 정거장까지 가지 않고는 경험할 수 없다. (지구상에서는 추락 실험으로 길어야 몇 초 정도씩밖에 경험 못 함)
우주 정거장에서 오랫동안 무중력 상태를 경험한 사람을 조사한 결과, 무중력 역시 인간의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뼈가 약해지고 체력도 떨어지며, 혈액 순환이 잘 안 돼 얼굴이 붓는다.

4. 해로운 광선: 우주에는 지구와 같은 자기장도 오존층도 없다.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온갖 해로운 우주선(cosmic ray)에 그대로 노출된다. 인간이 지구에서 1년 동안 받는 방사선의 양을 우주 공간에서는 하룻밤만에 받는다. 개중에는 사람의 세포를 죽이고 암을 발생시키고 유전자를 손상시키는 것도 다분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시커먼 암흑 천지인 우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살벌한.. 무슨 금성 같은 킬링필드는 아니며, 인체도 그렇게 호락호락 평형을 잃는 존재는 아니다.
그래도 우주는 역시 인간이 복잡한 장비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머무르기 힘들고 생명의 도전을 거부하는 오지임에는 틀림없다. 우주 비행사가 착용하는 우주복은 무게만 100kg에 달한다고 한다. 그걸 입고 전투까지 하는 스타크래프트 마린 메딕이 존경스럽다. ^^;;;

그렇기 때문에 우주선에 장착되는 임베디드 컴퓨터는 우리가 개인용으로 사용하는 컴퓨터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성능이 떨어지지만, 역시 튼튼하고 '우주선'에도 강하며 전력 소비가 적은 놈이 1순위로 채택되는 것이다.

earthling이라는 말이 있다. 이때 -ling은 저글링, 초글링 할 때의 그 '링'이다. 마치 테란(지구인)처럼 우주의 관점에서 지구에 사는 인류를 참 초라하게 일컫는 말인데, 한국어로 맛깔나게 표현하자면 '땅깨 나부랭이'뻘 되겠다. -_-;;

인간이 마지막으로 달에 갔다 온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나서야 이 경제 불황 속에서도 세계는 강대국을 중심으로 인간을 다시 달에 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을 주축으로 우주 개발 경쟁에 다시 불이 붙는 중이다. 40년 전에도 정말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쳐발라서 그 거대한 로켓을 쏘아올리고 달에 사람을 보냈지만, 이것저것 다 떼어낸 후 다 끝나고 돌아온 건, 낙하산을 뒤집어쓴 달랑 소형 캡슐 하나였다.

지구를 벗어났다가 안전하게 귀환하기란 그만치 힘들다. 우주 왕복선, 우주 정거장이 괜히 필요해진 게 아니다. 우주 왕래를 좀더 편하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이다.
흔히, 달에 간 건 그렇다 쳐도 지구 같은 발사대도 없는 달에서 어떻게 사람이 내렸다가 되돌아올 수 있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런데 달에 갔다 온 건 마치 비행기가 달 공항에 '어숍쇼~' 착륙했다가 다시 이륙하듯이 그렇게 뜬 게 절대 아니다. ^^;; 달 표면에 무슨 깔끔한 활주로라도 있는 줄 아나? =_= 지구 인력을 탈출한 모선은 달 궤도를 계속 뱅뱅 돌고 있고, 별도의 소형 착륙선을 아래로 떨어뜨려 보낸 것이다. 그리고 임무를 마친 착륙선은 최소한의 연료로 떠서 모선에 합류 후, 그렇게 귀환했다.
그리고 달에는 40년 전, 탐사선을 띄우기 위해 세팅한 발사대의 흔적이 당연히 남아 있다.
달은 지구보다 인력이 훨씬 더 약한 덕분에 이런 식으로 귀환이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이상이 생겼다면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 공간이나 달이 그들의 무덤이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아폴로 11호 당시 미국 정부는.. 달 탐사가 실패했을 때 대통령이 발표할 담화문.. --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명복을 빌고, 우리는 유족들을 진심으로 애도할 것이고 어쩌구저쩌구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된 -- 도 미리 다 써 놓고 있었다는 것.. 유명하다.

도중에 사고가 나고 실패라도 한다면 중계방송을 당장 중단하고 방송을 바꿀 태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케네디 대통령이 야심차게 예고한 것처럼 1960년대가 완전히 가기 전에 달 탐사는 극적으로 성공했다.
비록 중간의 아폴로 13호는 13 공포증을 극복하려고 하다 오히려 이를 증폭-_-시키는 계기가 되고 말았지만, 다행히도 승무원이 전원 무사 생존 귀환함으로써 성공적인 실패로 또다른 모범이 되었다. 영화로 제작될 가치도 충분한 스토리였다.

이렇게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 승무원들은 몸에 탈이 없는지, 혹시 우주 공간에서 새로운 병원균을 옮겨 오지는 않았는지 한두 주간 병원에 감금돼 정밀 검사를 받은 뒤, 이상이 없으면 풀려나고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마치 실탄에 수류탄까지 지급 받고서 무장공비 소탕 작전에 투입됐던 군인들이, 작전 후에는 옷 다 벗겨지고 실탄 회수 확실히 한 뒤, 위로/포상 휴가 주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

아무쪼록 우주 얘기는 참 재미있다.
비록 지구에서 발사체 띄우다가 사고로 사람이 죽은 경우는 있어도, 우주 공간에서 실종되거나 죽은 사람이 아직까지 없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단, 명왕성의 발견자인 클라이드 톰보의 경우처럼.. 지구에서 죽은 사람의 유해를 우주 탐사선에다 실어 보낸 경우는 있다 ^^)

사실, 달 다음으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은 금성이고 화성보다도 훨씬 더 가까우나, 금성만 유독 이산화탄소 불지옥이어서 화성과 같은 탐사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건 심하게 낭패이고 아쉬운 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53 2010/01/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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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에서 만난 동지

몇 달 전의 일이다.
지인을 만나러 오랜만에 카이스트를 방문했는데..
만난 지인이라는 녀석이 말하길.. 나한테 소개해 줄 친구가 있다고 했다.

부산 영재고 출신에 전자과 07이던가 08학번.
과는 전산이 아니라 전자이지만 물론 프로그래밍도 한다.
그런데 데스크톱 컴퓨터의 메인 OS가 리눅스이고, KDE이던가 개발이 가능한 고수급의 리눅스 프로그래머이다. 세벌식도 쓴다고 하던가? 그렇게 들었는데.. 이 친구도 완전 비주류의 길을 가고 있구나.

거기에다가 결정적으로 그 친구..
철-_-도-_-오-_-덕 이다..!! ㅎㄷㄷㄷ

국내 철도를 다 섭렵했음은 물론이고.. 일본 철도는 이미 계층이 많기 때문에 관심 밖이고 자기는 주로 유럽 철도를 연구한다고 하더라. 사진도 잔뜩 있고..
나하고 그냥 얘기가 술술 터져나왔다. 걔도 부산에 있다 왔으니 부산의 철도/지하철은 당연히 다 꿰뚫고 있고..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 경부선의 선형, VVVF, 부산 지하철의 노선별 차량 계보 차이, 지하철 구동음 선율의 아름다움....;;;

생판 처음 보고 나이 차이도 6년이 넘는 카이스트 선후배가 서로 갑자기 외계어로 10분이 넘게 free talking을 진행하니,
날 데리고 온 지인 녀석하고 저 친구의 룸메는 입이 딱 벌어졌고, 동영상 찍고 난리가 났다. (업로드는 절대 하지 말지어다 -_-)

그렇다. 덕후는 덕후를 알아본다. 저 녀석은 이 장면을 의도하고 나와 걔를 서로 소개시켜 준 것이다. ㅋㅋㅋㅋ 교회 바깥 사람하고 이렇게 말이 통하는 사람과 후련하게 의사소통을 주고받기는 그때가 거의 처음이었다.
같은 철도 덕후라고 해도 개인별 주특기는 또 따로 있는 법. 그 친구는 유럽 철도 전문이었고, 나는 Looking for you 연구 결과를 들려 줬다.

지금은 그 친구 어찌 지내려나 궁금하다. 사실 덕후는 제각기 심취해 있는 나만의 세계가 따로 있는지라(나부터가 그렇기 때문에-_-) 서로 단합하거나 뭉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고 기회만 잘 따른다면... 저런 친구한테 <날개셋> 소스 인계해서 리눅스 쪽 개발 맡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도 품을 정도였다. ^^;; 카이스트와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ㅋㅋㅋㅋㅋ

덧. 오덕과 덕후의 어감 차이는 무엇일까??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52 2010/01/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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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dilascia.com/ruint.htm

본인이 이 사람 이름을 본 것은 비주얼 C++ 6.0을 쓰던 시절부터이다.
MSDN을 보면 각종 함수 레퍼런스, 툴 설명서뿐만이 아니라 고맙게도 일부 책이나 간행물 내용까지 수록돼 있었는데, 어느 프로그래밍 잡지의 C++ Q&A란을 애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코너를 집필하는 사람이 바로 저 전설의 프로그래머 Paul DiLascia였다.

특히 비주얼 C++ 6.0 MSDN에는 bmp 파일 뷰어를 밑바닥부터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놓은 게 있었는데
친절한 설명도 설명이거니와 이 아저씨는 글빨 입담이 정말 구수하다는 것을, 생소한 영어를 읽으면서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윈도우+MFC 프로그래밍의 달인인 건 의심의 여지가 없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원래 수학 전공에다 컴퓨터 예술 쪽에도 심취해 있는 다재다능 엄친아였다. 이름이 좀 유럽풍인 것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뉴욕에서 태어나서 자란 골수 미국인이라고 한다. 조상이 이민자?

링크를 건 곳은 저 사람의 2003년 시절 인터뷰이다.
고수 프로그래머로서의 조언도 여럿 담겨 있는데, 그 내용이 무척 공감이 간다.

- 최신 기술 동향은 놓치지 않되, 남들이 좋다고 하는 데에 소신 없이 절대 우루루 휩쓸려 따라가지 말라. 가령 클라이언트처럼 C/C++가 독보적인 분야가 있고, .NET 같은 곳이 더 유리한 분야가 따로 있을 뿐이다. 자신의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툴이나 기술을 잘 고르는 요령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것들은 도구일 뿐이며 절대적인 우열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 Win32 API가 존재하는 한.. 윈도우즈 운영체제가 밑바닥부터 새로 뒤바뀌지 않는 한, 너무나 클래식(?)한 C/C++이나 MFC 같은 것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 없어지지 않는다. 더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다는 말은 그만큼 API가 성숙하고 안정화됐다는 뜻으로 오히려 다행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 늘 목표를 명확히 하고 내가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무슨 도구를 쓰는 게 가장 최적일까를 고민하라. 디자인 과정을 소홀히 하지 말라.

민장(minjang.egloos.com) 님 블로그에서도 비슷한 요지의 말을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워드, 엑셀 같은 유명 소프트웨어에 들어있는 GUI 베껴서 따라 만드느라 시간 낭비 절대 하지 말라!" (그 시간에 실제 기능 구현에 필요한 자료구조/알고리즘 연구나 더 해라)

란 주문도 들어있다. ^^;;
아마 C++ Q&A 운영하면서 "나도 저기에 들어있는 그 기능, 그 UI 만들고 싶다. 어떡하면 좋은가?" 류의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는 급의 문의를 엄청 많이 받았지 싶다.

* * * * *
  Too many programmers spend all their energy implementing some cutesy UI feature like docking windows or pink scrollbars because they saw it somewhere else. Microsoft has 5000 programmers to create animated paper-clips. You don't. Don't fall into the code envy trap!

  Don't get side-tracked implementing the latest GUI feature you saw in Word or Excel.
(그런 공룡 대기업들이나 부리는 '가진 자의 여유'를 당신이 따라할 여건은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 * * * *

저건 우리나라의 유명한 비주얼 C++ 서적의 저자인 이 상엽 씨도 똑같은 말을 했다.

* * * * *
  그래도 예술적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 제작에 열을 올린다면 좋은 이야기다. 그것도 아닌 것을 예술인냥 착각하고 움직이지는 절대 말라는 것이다. 예술적 가치가 없는 부분이 어떤것인가를 물어 볼것이다. 거 있지 않은가? MS 사에서 도움말 강아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고 자신의 프로그램에 강아지 만들어 넣는거...Visual C++의 워크 스페이스 창이 도킹 되었다가 떨어졌다 하는데 나두 이거 만들구 싶다 라는거...
예를 간단하게 들어서 MP3 에 있는 압축기술이나 음성인식 또는 지문인식 등의 기능이 예술이라고 볼수 있고 그냥 강아지 이리저리뛰어 다니는 것은 처음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것은 잡다구리 테크닉이다.
* * * * *

그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편집기 프로그램은... 9년이 넘게 개발되고 버전이 5.5가 넘어선 지금까지도 완전 윈도우 95의 기본 컨트롤과 UI 요소만 사용하여 만들어져 있다. ^^;;; 편집기의 경우 과거 3.41 버전에서 MFC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이제 도구모음줄이 도킹을 할 수 없게 바뀌었다. 그게 원래 MFC가 구현해 주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편집기를 실행해 보면 도구모음줄 아이콘들이 좀 중앙에 안 있고 메뉴, 즉 위쪽에 너무 바싹 붙었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것도 딱히 바꿀 방법이 없다.
아이콘 사이에 임의의 크기로 여백을 내는 것도 MFC가 윈도우 프로시저를 다 서브클래싱해서 굉장히 지저분한 작업을 한 끝에 구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MFC는 단순히 윈도우 API wrapper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 따라하는 일에 너무 심취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아쉽게도 이 사람은 작년(2008) 9월, 40대 후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비주얼 C++ 2008의 내장 MSDN에는 2006년자로 작성된 그의 글을 볼 수 있는데, 이제 더는 그런 글을 접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40 2010/01/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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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에서 컬러로

※ 정지 사진

사진술이란, 화학 물질을 잘 이용하여 빛의 강약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어떤 영상을 보존하려는 기법이다.
최초의 흑백 사진이라 흔히 알려져 있는 것은 1825년 프랑스의 조제프 니세포어 니엡스라는 사람이 남겼는데, 노출 시간이 무려 8시간에 달해서 태양이 한 나절 동안 만들어 낸 그림자가 모두 사진에 담길 정도였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는 이미 흑백 사진 기술은 사실상 안정화가 되었다.

그러나 흑백으로 만족하지 않고 천재 물리학자인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빛이 RGB 세 축으로 분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낸 후 1861년, 최초의 컬러 사진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물론 지금처럼 쉽게 한 방으로 찰칵 찍은 게 아니라, 색깔 축별로 사진을 세 장 찍어서 정교하게 합성하여 만든 것이므로 방법이 쉽지는 않다. 그 전에는 흑백 사진에다가 수작업으로 색을 입히는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은 물론이고 1차 세계 대전과 1900년대 초를 찍은 컬러 사진도 "존재"는 한다. 단지 실용화가 안 됐을 뿐이지. 컬러 사진 기술 자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찍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6· 25 사진조차도 컬러를 보기가 쉽지 않으나, 서양인이 구한말 1900년대 초에 서울 모습을 찍은 컬러 사진도 극소수 전해 내려오는 게 있다. 컬러 사진은 1920년대에 코닥 사에서 컬러 필름을 대량 생산하면서부터 보편화되었다.

※ 영화

기술적 토대는 19세기 말에 마련되어서 정말 초라한 흑백 무성 영화로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 같은...=_=
그때 영화는 진짜 말 그대로 환등기 같은 걸로 틀어 주는 움직이는 그림일 뿐이었으며, 음악을 따로 곁들이거나 내레이터가 중간 중간 라이브로 설명을 해 줬다.

여기에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 기술이 결합하여 동영상에 소리까지 첨가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이다.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던 그림이 말하는 그림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후 한동안 흑백 영화 전성기가 이어지다가 컬러 영화는 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1940~50년대부터 차츰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십계(1956), 벤허(1959)가 그 초창기의 컬러 영화이며, 심지어 우리나라 6· 25 직후의 참상도 누가 컬러로 찍어 놓은 희귀 영상 기록이 남아 있다.

※ 텔레비전

비록 화질이 영화보다는 못하지만, 동영상과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꿔서 장거리로 송수신하는 방식이니, 기술적 난이도는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그 원리는 1920~30년대에 완성되고 실용화됐다. 발명자의 이름을 따서 음극선관(CRT)의 이름을 브라운관이라고도 일컫는다.

미국에서 1931년에 시험 방송이 시작되고 영국에서 1937년, 세계 최초의 TV 방송국인 BBC가 개국했다. 한국에서는 1956년이 돼서야 TV 방송이 첫 시작했다(물론 다 흑백). 즉, 일제 강점기 때엔 우리나라에 TV가 없었고,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지고 있다는 방송은 다 라디오를 통해서나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컬러 TV는 은근히 등장이 늦었다. 기술 개발이 성공한 건 1950년대이지만, 미국에서도 가격 장벽이 낮아지고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60년대가 돼서였다. 그래도 달 착륙 동영상을 흑백이 아닌 천연색으로 볼 수 있게 된 건 정말 천만 다행이다. 70년대 중후반부터 흑백은 이미 골동품 내지 휴대용 초소형 TV용으로나 전락했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5공 시절인 1980년대 초반이 돼서야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3S 정책이라는 비아냥거림은 있다. 그런데 그럼 박 정희 때는 컬러 TV가 전혀 없었고 땡전 뉴스부터 천연색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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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수천 년을 살아 오면서 뭔가 기록을 남기는 방법이란 글 아니면 기껏해야 그림밖에 없었다. 사진처럼 기가 막히게 초상화나 풍경화를 잘 그리는 화가가 장땡이었다. 아니면, 사람 얼굴 윤곽은 데스마스크 같은 걸로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사진술이 개발되어 사진을 남기고 심지어 동영상을 만들고 이를 전파로 만들어 송출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전과 그 후의 인류의 삶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발명이 아닐 수가 없었다.
1900년대 초에는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덕분에, 사람의 실물 사진도 모자라서 살아 있는 사람의 뼛속 사진까지 이미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발달한 사진술은 얼마 안 있어 금성과 달 같은 우주의 모습까지 담아 오는 데 성공한다.

사진을 한번 팟 찍으면 내 영혼이 빠져나가는 줄 알고 혼비백산했을 당대 사람들이 이해가 될 만도 하다.
사람을 해부하지 않고 자기 손의 뼈 사진을 봤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
당대의 화가들은 사진술의 발명으로 인해 자기 정체성을 심각하게 재고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도, 도시 건물 같은 거.. 완전 실사 뺨치게 그리는 걸 업으로 즐기는 화가도 있다)

우리는 지금 불과 200여 년 전 사람들조차 상상도 할 수 없던 대단한 문명의 이기를 당연하게 사용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스팸 메일 없는 이메일을 상상할 수 없듯,
사진술의 대중화와 동시에 인류는 이제 음란물과의 전쟁을 치르기 시작하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39 2010/01/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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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에서 남영까지

수도권 전철 1호선은 서울 지하철 1호선에다가 수도권 전철 경부· 경인· 경원선을 모두 합친 방대한 노선으로, 운영하는 회사도 하나가 아닌 둘이다 보니 운행 계통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구로-용산은 경부와 경인선 열차가 공용하는 전국 유일의 3복선 구간이고 급행도 다니는 데다, KTX를 포함한 일반열차까지 볼 수 있어서 전국에서 열차가 가장 많이 다니는 뻑뻑한 구간이다.

이 구간은 사실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된 철도 구간이기 하기 때문에 역별로 개업 시기도 천차만별로 다양하다. 게다가 각 역들의 개성도 은근히 넘치는 덕분에 일일이 분석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구로: 경부선과 경인선의 분기역으로서 1973년에 이미 신호장 역할을 하는 역사가 미리 세워졌다가 1974년,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면서 여객 영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전국에서 전동차 선로가 가장 많은 복잡한 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상하*완급*경부/경인 이렇게 2*2*2 에다가 입출고선을 하나 포함하여 선로가 무려 9개. 인근에 전동차 차량 기지도 있다.

신도림: 1984년,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면서 환승역으로 같이 개통했다. 하지만 중간에 이렇게 역이 생기고도 신도림과 다음 역인 영등포 사이의 거리는 1.6km에 달해 여전히 긴 편이다.
엄청난 환승객 수에 ‘비해서’ 승하차 승객은 적은 편이며, 출입구도 2개뿐이다. 코레일이 영업을 하지 않고 오로지 서울 메트로만이 운영하는 역으로, 지하로 들어가는 출입구만 있지 지상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등포: 1899년, 경인선과 함께 개업한 역사 깊은 역이다. 긴 역사에 걸맞게 역 부지가 넓고 KTX를 제외한 모든 일반열차들이 정차한다. 전동차 승강장에서는 지하도로 내려가는 계단도 있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는 게 인상적이다.

신길: 서울 지하철 5호선이 1996년에 개통한 후, 5호선과의 환승을 위해 1997년에 지금의 신도림처럼 1호선 플랫폼만 세워졌다가 1998년 1월에 1호선 역사까지 완공됐다. 두 노선 모두 곡선역이며 특히 5호선은 원래 1호선 쪽으로 가지도 않는 노선이었는데 애써 환승역을 만들려고 노력한 티가 농후하다.
신길 역은 여러 가지로 나름의 특색이 있다. 환승 거리가 굉장히 길다는 것, 2003년경에 이 역만 유독 스크린도어가 만들어졌다는 것, 1호선 역사는 마치 동대구 역처럼 언덕 위에 세워진 구조라는 점이다. 출구는 3개뿐이고 5호선 방면인 3번 출구는 큰길이 아닌 주택가 쪽이어서 찾기 어렵다. 그나마 1호선 역사마저도 없던 1997년엔 출구가 거기 하나뿐이었을 테니 신길 역을 이용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 같다.

대방: 1974년, 서울 지하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다. 신도림처럼 지하철과의 환승역도 아닌데 지상 역사가 없이 지하도를 통해 들어간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개통 당시부터 이런 형태였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경부선 3복선 공사 때 역 구조가 큰 변화를 겪었을 거라 추측한다. 마치 경인선 구일 역이 2복선 공사 때문에 출입구부터 시작해 구조가 크게 바뀐 것처럼 말이다.
인근의 다른 역들에 비해 이용객이 적은 편이다. 대방-노량진 사이 구간에서 일반열차 선로가 아래로 꽈배기굴을 틀고 전동차 선로의 반대편으로 들어간다.

노량진: 영등포와 더불어 1899년에 개통한 한국 철도의 시발점이다. 한강 철교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이곳이 경인선의 종점이었다. 역사가 깊은 덕분에 일반열차용 승강장도 있어서 한때는 장항선 완행 무궁화호가 정차하기도 했지만, 철도청이 공사화할 무렵이던 2005년에 일반열차 취급은 인근의 영등포 역에게 완전히 넘겨줬다.
전동차 플랫폼이 4(상하*완급)개 말고도 하나 더 있어서 5개인데, 이는 과거에 경인선 2복선 공사 과정에서 노량진 종착 열차가 존재하던 시절에 쓰였다. 지금은 영등포 역이 광명 셔틀 전동차 때문에 비슷한 이유로 플랫폼이 5개가 되어 있다.

용산: 1900년, 한강 철교가 건설된 후 곧장 개업한 역이다. 한때는 인근의 전자 상가하고만 연결돼 있던 정말 허름한 간이역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호남/장항/전라선 일반열차에다가 중앙선· 경의선(앞으로) 전동차가 만나는 최고의 교통 요지가 되어 있다. 중앙선 단선 플랫폼까지 합쳐서 원래는 플랫폼이 5개였지만 지금은 중앙선 플랫폼이 복선화하여 6개로 늘었다. 즉, 중앙선 열차를 타는 곳과 내리는 곳이 서로 분리됐다는 뜻.

남영: 1974년, 서울 지하철과 함께 개통한 역으로, 급행 전동차가 전혀 없이 복선 섬식 승강장으로 아담하고 조촐하게 만든 티가 딱 느껴진다. 사실 수도권 전철 중에 고가 섬식 승강장 형태는 매우 드물며, 3호선 지축 역 정도가 고작이다. 승강장에 바로 화장실이 연결돼 있는 게 특징이다.

8개역의 내력을 정리하자면
경인선과 함께 있었던 제일 나이 많은 역은 영등포, 노량진, (용산).
서울 지하철 1호선과 함께 개통한 역은 구로, 대방, 남영.
그보다도 나중에 환승역으로 개통한 역은 신도림(2), 신길(5)이 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38 2010/01/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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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종 교통수단 분석 2

이번에는 각 교통수단을 둘둘씩 묶어서 비교한 것이다. ^^;;

※ 도로-철도 VS 비행기-배

- 전자는 육상 교통수단인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가장 간단한 차이가 존재한다. 후자는 전자보다 날씨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으며, 날씨가 심하게 안 좋을 경우 심지어 결항까지 한다.
- 전자는 탑승자의 신변 확인이 없이 걍 돈 내서 승차권만 갖고 있으면 누구나 탈 수 있다. 하지만 후자는 탑승권에 임자가 따로 있으며, 하다못해 피서차 고기잡이 뱃놀이를 가더라도 승선자 명단과 연락처는 미리 확보해 놔야 한다. 후자는 사고가 날 경우 동체 내지 탑승자가 아예 실종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 도로-비행기 VS 철도-배

- 후자가 전자보다 대체로 에너지 효율이 높으며, 대량 수송에 더욱 친화적이다.
- 후자는 전자에 비해 가감속 성능이 떨어지며, 높낮이 변화에 무척 취약하다는 특징이 존재한다. 철도는 작은 마찰계수의 특성상 등판능력이 매우 떨어지며, 배는 고도 자체가 해수면에 완전 붙박이 고정. ㅋㅋㅋㅋ
- 전자는 언제나 우리 승강장과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동체의 앞부분 단일 입구를 통해 탑승한다. 하지만 후자의 철도는 언제나 승강장과 평행인 옆면으로 탑승하며 터미널형 탑승 형태는 매우 드물다. 배는 수직형과 평행형이 모두 쓰이는 듯하나, 매우 큰 배는 철도처럼 평행형이다. (타이타닉 같은 옛날 영화들에서 배 타는 장면 참고)

※ 도로-배 VS 철도-비행기

- 전자는 평면 위에서 조향이 가능한 깔끔한 2차원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후자의 철도는 앞뒤로만 달릴 수 있는 1차원 교통수단이고, 비행기는 완전한 3차원 교통수단이다.
- 후자는 기술 개발을 통해 전자보다 속도를 월등히 더 끌어올릴 여지가 충분히 있다. (고속철, 초음속기 등^^)
- 후자는 전자보다 다니는 길에 훨씬 더 민감하다. 자동차는 그래도 비포장 도로에서도 달릴 수 있고 배 역시 쇄빙선 같은 것도 있긴 한 반면, 철도는 매일 정교하게 선로 보수를 해야 하는 교통수단이며, 비행기 역시 활주로에 조금이라도 이물질이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배의 경우, 잠수함은 여객용으로 통용되는 교통수단이 아니므로 고려에 넣지 않았고 언제나 해수면을 떠 다니는 교통수단만 생각한 것임.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37 2010/01/1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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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전동차의 반입 경로

지하철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상식으로 알겠지만,
갓 개통한 지하철 노선에다가 수십 편성이나 되는 열차를, 그것도 버스보다도 더 거대한 놈들을 안전하게 운반하여 집어넣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등장한 도시 철도들은 다 같은 표준궤를 쓰기 때문에 기존 철도 위에서 그대로 굴릴 수라도 있지, 경전철은 얄짤없이 별도로 실어서 운반해야 할 것이다. 차량 반입은 마치 "컴퓨터가 발명되던 당시에 최초로 고급 언어 컴파일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같은 아주 원천적인 질문에 속하는 셈이다.

철도 차량은 응당 공장에서 생산되며, 생산된 차량은 경부선 같은 기존 철도에서 분기하여 공장으로 통하는 레일 위에 놓인다. 배로 치면 이게 진수식뻘 되겠다. ^^;; 공장에서 수도권까지는 디젤 기관차가 이런 지하철 차량을 끌고 가 준다.

우리나라는 로지스라 하여, 현재 지나고 있고 앞으로 운행할 예정인 모든 열차의 열차 편성과 운행 기록을 실시간으로 조회하는 서비스가 있다. 철도매니아에게 주옥 같은 정보가 아닐 수 없다. 전동차를 반입하는 화물 열차도 물론 여기에 잡히기 때문에, 이걸 보고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사진을 찍는 열성분자도 많다. 대전 지하철 반입, 서울 9호선 전동차 반입, 공항 철도 전동차 반입 등.

1호선이야 태생부터가 기존 철도와 지하철과의 직결 운행 연결이므로 차량 반입에 아무 어려움이 없다. 그럼 그 이후 지하철들은 어떻게 될까?

2호선은 1호선 신설동 역이 그 비결이다.
지하철 역에 승객이 다니는 환승 통로가 있듯이, 일부 역에는 레일상으로 인근의 노선을 연결하는 길이 있다. 이 역에서 1호선은 2호선 신설동 역 방면으로 몰래 진입하여 인근의 군자 차량 기지로 들어갈 수 있고, 성수 지선을 거쳐 2호선 본선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2호선은 원래 신설동에서 강남 종합운동장 역 사이가 가장 먼저 개통했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1호선에는 가끔 신설동 직전의 동묘앞 역에서 운행을 마치는 서울 메트로 차량이 있는데, 이놈이 바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신설동 역 지하 3층 유령 승강장을 거쳐 차량 기지로 들어간다.
(사실 1~4호선에 속하는 1기 지하철도 둘로 나누면 1~2호선과 3~4호선으로 나뉜다. 1~2호선만이 ATS 신호를 사용하고 있고 일부 구간에서는 자갈 노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지하철은 모두 ATC로 바뀌고 콘크리트 바닥으로 모두 바뀌었다.)

3호선은 딱히 기존 철도와의 인연이 없으며 연결점이라고는 충무로 역이 유일하다. 이 역은 승객만 3, 4호선을 상호 환승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열차도 상호 노선을 바꿀 수 있다. 4호선은 금정과 창동 역에서 기존 국철 경부선 및 경원선과 만나기 때문에, 3호선 차량도 4호선을 통해 들어와서 충무로까지 가는 엄청난 우회를 한 끝에 3호선 기지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5~8호선의 2기 지하철로 가면 사정이 좀 복잡해진다.
그 근본 이유는 지하철이 불연속적인 구간 순으로 개통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령 A, B, C로 이루어진 한 노선이 A, C 구간부터 개통하고 나중에 중앙의 B 구간이 최종 개통함으로써 단일 노선이 완공되는 식이다.

그리고 어떤 불연속 구간은 기존 철도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2기 지하철의 목표는 아예 기존 광역전철과의 직결 운행을 염두에 두지도 않을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노선을 창조해 내는 것이었다. 더구나 비밀 선로라는 건 같은 기간에 건설된 노선끼리나 존재하지, 1기 지하철과 2기 지하철 사이를 연결하는 비밀 선로 같은 건 없다. 그러니 그런 단절 구간에 차량을 넣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왜 순서대로 개통을 안 하고 그런 식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중앙은 대체로 서울 중심부이며, 2기 지하철이 1기 지하철보다 아래로 지나느라 통상 굉장히 깊고 공사하기가 힘들어지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하철은 어느 쪽이든 필연적으로 차량 기지가 있는 구간부터 개통을 할 수밖에 없으니 양쪽 외곽부터 개통하고 나서 중앙은 나중에 개통하는 것이다.

2기 지하철 시대를 개막한 5호선은 역 수가 50개에 달하는 상당한 장거리 간선인데, 개통도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했다. 가장 먼저 개통한 구간은 고덕 차량 기지를 경유하는 왕십리-상일동이다. 기존 철도가 전혀 닿지 않는 단절 구간에다가 그 당시 차량을 어떻게 집어넣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로 삽질을 했다. 경부선을 거쳐서 서울의 중심부인 충무로 역까지 간다. 그 후 3호선으로 갈아타서 서울 동남부의 수서까지 간다. 거기서 크레인으로 열차를 들어올린 뒤, 인근의 8호선 가락시장 역 지점까지 1.6km 거리는 트레일러로 운반했다. 그 시기엔 8호선도 건설되고 있었으므로 거기에다가 차량을 집어넣고, 1.3km 정도 떨어진 가락시장과 오금(마천 지선은 당시 아직 공사 중) 역 사이의 비밀 선로를 통해 5호선으로 집어넣었다고 한다. 1995년의 일이다.

쉽게 말해 지금 한창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인 3호선 수서-오금 경로를 그대로 따랐다는 뜻이다.
지금도 8호선 가락시장과 5호선 오금 사이에는 비밀 선로 자체는 있지만, 복선일 리는 없을 테고 어차피 역을 만들려면 선로를 또 만들어야 하니 공사가 진행 중이다. 얼마 안 있으면 개통하지 싶다.
(참고로 수서 역은 3호선과 분당선의 연결 선로는 존재한다. 분당선 전동차는 이 경로로 반입되었다.)

5호선은 동쪽 구간이 먼저 개통한 후, 다음으로는 방화 차량 기지가 있는 서쪽이 까치산 역까지 개통했다. 여기는 조금만 센스가 있는 분이라면 짐작할 것이다. 바로 2호선 신도림-까치산 지선이 5호선 차량의 반입 경로였다(신설동 역을 거쳐서 2호선으로 수월하게 들어옴). 원래 양천구청까지밖에 안 가고 서울 메트로 신정 차량 기지로 통하던 그 지선이 까치산 역까지 연장된 것은, 전적으로 5호선 때문이었다! ^^

그 후 5호선은 여의도 구간이 개통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을지로, 종로 구간이 개통함으로써 전구간 개통한다. 5호선과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8호선도 차량이 두 차례에 걸쳐 도입되었는데, 처음엔 수서-가락시장 삽질을 하다가 나중에는 까치산을 거치는 식으로 거의 같은 방법으로 들어왔다. 서울 동쪽을 달리는 노선이 서쪽 끝까지 가면서 엄청난 삽질을 한 것이다. (서울 동남부에는 국철이 없음 -_-)

7호선은 1호선 환승으로 시작해서 1호선 환승으로 끝나는 노선이다 보니 5, 8호선 정도의 삽질은 없었다. 북쪽 장암 구간은 경원선 도봉산 역에서 아주 쉽게 반입이 가능했고(장암-건대입구), 남쪽만 북쪽과 단절되어 있던 시절에(온수-신풍) 약간 고생을 했다. 경인선 오류동 역에서 인근의 천왕 차량 기지까지는 도로 위에다 임시 선로를 깔아서 전동차를 굴려 넣었던 것이다. 그때 7호선 전동차는 마치 노면 전차처럼 차량 기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 그 후 건대입구-신풍 구간이 2000년에 연결됨으로써 7호선은 전구간 개통했다.

2기 지하철 중 가장 늦게 개통한 6호선은 차량 기지가 봉화산 쪽에 하나밖에 없는 관계로 근본적으로 분산 개통을 할 수가 없었다. 반입 경로는 다 7호선의 경로를 빌렸는데, 처음엔 도봉산 역을 거쳐서 태릉입구의 연결 선로를 이용했고, 나중에 7호선이 남쪽까지 다 개통한 뒤에는 천왕 기지를 따라 쭉 올라가다 먹골 역에 있는 연결 선로를 타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럼 9호선은 어떨까?
9호선 역시 차량 기지는 서쪽 끝의 개화 하나만 존재한다. 그리고 기존 지하철이나 국철을 연결하는 비밀 선로는 없다. 9호선 전동차는 경의선 행신 역까지 갔다가 트레일러를 통해 개화 차량 기지까지 수송되었다고 한다. 공항 철도는 경인선으로 인천 끝까지 간 후, 영종도에 있는 기지에 가기 위해 아예 배의 도움까지 받았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국철 포함 1호선은 2호선(신설동), 4호선(금정, 창동), 7호선(도봉산)과 연결돼 있다.
2호선은 5호선(까치산)과 연결돼 있다.
3호선은 4호선(충무로)과 연결돼 있다.
5호선은 8호선(가락시장)과 연결돼 있다.
6호선은 7호선(태릉입구, 먹골?)과 연결돼 있다.
9호선과 공항 철도는 딱히 다른 철도와의 연결이 없이 단절돼 있다.

종이를 꺼내서 한번 그래프를 그려 보시라. ^^;;
국철에서 1, 4, 7호선이 뻗어나가고
1-2-5-8,
4-3
7-6 이렇게 연결된 구도임을 알 수 있다.

지하철 노선의 개통을 위해서는 먼저 초대형 대량 화물인 전동차의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수송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34 2010/01/1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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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공항

※ 김포

인천 공항이 개항하기 전엔 서울에 자리잡은 우리나라 최대/최고의 공항이었다. 지금은 이 위치가 서울 강서구이지만 이 공항이 처음 생기던 시절엔 여기가 서울 시내로 편입되기 전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여의도에 비행장이 있던 것이 제법 외곽이던 이곳으로 이전했다.

나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문인데 부지가 비좁고 더구나 인근의 주거지 때문에 밤엔 비행기를 띄울 수 없는 문제까지 생긴 관계로, 관문 역할은 훗날 인천 영종도에 훨씬 더 큰 규모로 따로 만든 인천 공항에다 넘겨주게 되었다. 그 후 이 공항은 국내선 위주로 역할이 축소되었는데, 이제는 국내선만 취급하기에는 공항 용량이 많이 남는 관계로 중국과 일본 일부 국제선이 다시 취항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김포와 인천 공항의 관계는 일본으로 치면 도쿄 하네다와 나리타 공항의 관계와 거의 일치한다. 개인적으로 중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서울에서 2~3시간 안에 닿을 수 있는 단거리 노선은 그냥 김포에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인천 공항 올인 육성을 위해서 이는 실현되기 곤란한 사항이다.

한때는 지하철 5호선만이 연결해 줬지만 지금은 9호선과 공항 철도까지 개통하여 나름 3개 철도 노선으로 접근 가능한 곳이 됐다. 본인은 1999년에 나름 대회 참가차 미국 갈 때 김포 공항 국제선을 이용해 봤다.

※ 인천

1990년대에 경부 고속철과 더불어 2대 맘모스급 국책 사업으로 추진된 끝에, 섬을 삽 떠서 메워 만든 초대형 허브 공항이다. 주거지하고는 멀찍이 떨어져 있고, 공간도 무진장 넓고, 비행기는 24시간 뜨고 내릴 수 있고... 건설 당시엔 세종 공항으로 하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인천 시 정치인 쪽의 입김 행사로 인해 반영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인천 이외의 우리나라의 국제 공항들은 거의가 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 중국 소수 노선에 국한된 반면, 이 공항은 명실상부히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공항으로서 전세계 수많은 항공사가 취항하여 쉴 새 없이 비행기가 왕래 중이다.
2001년에 개항하여 시설도 깔끔하고 으리으리하고 좋으며, 경영도 잘 해서 흑자 많이 내고, 외국에도 가격 대 성능이 뛰어난(공항 이용료도 저렴) 좋은 공항으로 정평이 나서 어떤 면에서는 일본 공항의 실적도 따라잡고 추월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좋은 공항을 왜 또 매각하고 민영화한다는 얘기가 나오나 모르겠다.

※ 성남

용도가 공군 비행장에 가깝고 민간인 여객 공항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공항들과는 성격이 다르다(민간인용 지도에는 표기도 안 돼 있음. 가끔 에어쇼 할 때나 개방한다). 성남에 있지만 이름은 서울 공항이다. 서울에 있는 김포 공항처럼.. 이름과 실제 위치가 별로 매치가 안 되는 또 다른 예이다. ^^

그래도 서울 중심부와 가까우면서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 공항이 차지하는 전략적 의의는 꽤 된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용하고, 부시 대통령이 방한할 때 에어 포스 원 비행기도 이 공항으로 왕래했다.

※ 김해, 제주

서울에 있지 않은 국내 공항 중에 나름 저명도가 있고 자체 국제선도 취항하면서 흑자도 내고 있는 곳이다. 즉, 서울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 대도시인 부산, 그리고 어차피 고립된 섬이어서 이렇다할 교통수단이 비행기밖에 없는 제주도이다 보니 수지도 맞고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승산도 있는 것이다. (대구-부산은 아직 고속 신선도 없음) 특히 제주 공항은 그 특성상 국내선의 비중이 높고 비행기가 엄청 많이 드나드는 바쁜 공항으로, 세계적으로 순위도 꽤 높다고 한다.

참고로 서울 김포 공항도 강서구에 있고, 부산 김해 공항도 강서구에 있다.

여담이지만, 제주 국제 공항은 이례적으로 X자 모양으로 활주로가 두 방향으로 건설되어 있는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한쪽 방향으로 이륙이 곤란한 경우 다른 편 방향으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단, 양 활주로의 길이가 같지는 않아서 다른 편 방향으로 이륙은 작은 비행기만 할 수 있다.

※ 청주

김포가 북쪽 끝이고 김해/제주는 남쪽 끝인 반면, 청주 공항은 국토의 중앙에 있어서 위치가 어중간하다. 그래서 국내선은 제주도로 국한돼 있고, 일부 국제선을 취항해 있으나 수지가 맞지 않아서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한다. 철도 충북선에 청주공항 역이 있다.
한때는, 인천 공항을 새로 만드는 대신에 남한의 정중앙에 있는 이 청주 공항을 허브 공항으로 육성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 대구, 포항, 울산

영남 지방에 있는 공항들이다. 대구는 일부 단거리 국제선이 있지만 포항과 울산은 국제 공항은 아니며 국내선만 취급한다. 국제 공항치고는 그렇게 외곽에 있지 않아 접근하기 쉬운 편이다.
국내선은 제주 아니면 서울 행으로 국한되어 있는데 대구는 KTX에 밀려서 김포 공항 노선은 사라졌고(1시간 40분만에 서울 중심 접근 가능!), 그 대신 인천 공항으로 바로 가는 노선만 있다. 포항은 제주도도 없이 서울 김포 행만 제공한다.

대구와는 달리 포항과 울산은 나라에서 육성한 대규모 공업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위치상으로 경부 고속도로나 경부선 철도로의 접근성이 열악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고자 이런 식으로 공항이 존재해 왔다. 포항은 몰라도 울산은 KTX가 2차 개통하면 또 항공 교통이 어떤 양상으로 바뀔지 모르겠다.

서울에서 경주로 갈 때도 울산 공항을 이용하면 된다. 언제 한번 비행기 좀 타고 집에 가 보고 싶다.

※ 강원도, 호남

이런 지역에 있는 공항들에 대해서는 딱히 내가 아는 바가 없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가는 국내선은 과거에 육상 교통이 캐불편하던 시절에는 승산이 있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영동 고속도로가 굉장히 빠르게 잘 뚫려서(경부축의 KTX) 비행기의 장점이 크게 줄어들었을 뿐더러 강원도 쪽은 대도시도 없고 수요가 너무 부족하다. 양양 공항은 정말 악명 높던 사례이다.

광주 공항은 김포 공항으로 가는 노선이 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여기도 KTX가 고속으로 달리지 못하고 육상 교통에 비해 항공이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33 2010/01/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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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의 변천사

윈도우즈에서 메모장은 그야말로 운영체제의 역사와 함께 해 온 기본 프로그램이다.
1.0때부터 있어 왔고, 윈도우 7에서도 도구상자 하나, 리본 하나 장착되는 법이 없이 그 베이직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맥에서는 TextEdit, 우분투 리눅스에서는 gedit라고 하여 워드패드와 메모장의 구분이 딱히 없이 서식/비서식 텍스트를 모두 다룰 수 있고 텍스트의 경우 문법 강조까지 지원되는 우수한 에디터가 있는 반면 윈도우즈는 그렇지 못하다.

TextEdit은 수십 MB의 텍스트 파일을 열어서 수십 MB에 달하는 구간을 블록으로 잡아서 지워도 성능 하락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에디팅이 굉장히 탄탄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날개셋> 편집기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TSF를 A급으로 지원해 주는 데 드는 오버헤드가 굉장히 큰 편이기 때문에, 10MB급 이상 되는 파일을 편집할 때는 “TSF 지원” 옵션을 끄고 프로그램을 다시 실행하는 게 좋다.)

어쨌든..
메모장은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기본 에디트 컨트롤을 사용한다. 보통 텍스트 에디터는 매 줄별로 linked list를 사용하는 반면, 에디트 컨트롤은 텍스트 전체가 한 배열이다! 텍스트 맨 앞에다 문자를 삽입하는 경우 그 뒤 문자열은 일일이 한 자씩 뒤로 밀려나며, 메모리 공간이 부족한 경우 전체 메모리가 재할당된다. ㅎㄷㄷㄷ

이런 이유로 인해 메모장은 비록 가볍다고 해서 덩치 큰 파일을 편집하는 데 좋은 환경이 되지는 못한다. 윈도우 9x 때까지는 16비트의 잔재로 인해, 아예 64KB가 넘는 파일은 읽지도 못하던 암울한 시대가 존재했었다. NT급으로 와서는 그런 물리적인 크기 한계는 비록 해결되었지만, 에디팅 엔진은 여전히 64KB짜리 작은 파일에나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거의 변화가 없는 것 같은 메모장이지만 운영체제 버전이 올라가면서 개선된 것도 은근히 많았다.
Fixedsys 고정이던 글꼴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 윈도우 98부터이고, XP부터는 자동 줄바꿈 옵션을 끈 경우 줄/칸 위치를 보여주는 옵션도 추가되었다.

같은 메모장이라 해도 윈도우 9x 계열과 NT 계열은 저렇게 읽을 수 있는 파일 크기만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 편집 기능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는 찾기 기능만 제공되는 반면 후자는 바꾸기도 지원하며 한번에 전체 바꾸기(replace all) 기능도 제공된다.

그런데 전체 바꾸기 기능을 구현한 방식이 무척 재미있다.
윈도우 2000/XP는 말 그대로 매번 메시지를 보내서 순차적으로 찾기/바꾸기를 수행한다. 그래서 화면이 쭉 스크롤되어 내려가는 모습이 보이며, 바꾸기 작업을 수행한 후에 Ctrl+Z를 누르면 바로 직전에 바꾼 문자열 하나만 취소가 된다.

그 반면 비스타는 문자열 전체를 선택하여(select all) 얻어 온 후, 내부적으로 문자열을 기계적으로 빠르게 치환한다. 그러고 나서 문서를 그 텍스트로 일괄 교체한다. 덕분에 Ctrl+Z를 누르면 바꾸기 작업이 전부 취소된다.

근본적으로 에디트 컨트롤에는 일괄 바꾸기 기능을 수행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응용 프로그램이 그런 것을 직접 구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비스타의 메모장은, 메모리를 좀 희생하는 대신 더 빠르고 일괄 취소가 가능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32 2010/01/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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