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셋> 한글 입력기 7.5

추석 연휴의 끝과 함께 <날개셋> 한글 입력기 새 버전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7.5. 7.x 중반을 나타내는 좋은 번호이고, 7.4 이후로 기간도 100여 일 남짓 지났으니 시기도 적절하고, 프로그램 역시 그에 걸맞은 충분한 성장을 이뤘다.

단, 이번 버전은 지난 7.4에서 첫 도입된 '고급 입력 스키마' 쪽은 부득이 완전히 아웃 오브 안중이 되었으며 바뀐 것이 거의 없다. 그건 더 후대 버전의 작업으로 우선순위가 밀려났다.
그 대신 7.5에서 집중적으로 한 것은 바로 한글 타자 순서 재연과 연속입력 가능 판단 알고리즘을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만든 것이다. 그리고 두벌식 도깨비불 처리 관련 알고리즘들을 아작을 냈다. 더 구체적으로는,

'일반 두벌식'과 '두벌식 종성' 타입,
그리고 '특수 도깨비불 규칙'과 '초-종 공유 결합 도깨비불 규칙'이
입력, 도깨비불 처리, 역도깨비불 재현, 입력 순서 재계산 기능 등과 연계되었을 때 최대한 일관성 있게 동작하게 했다.
7.4에서 닦은 기초를 바탕으로 앞으로 한 10년은, 어쩌면 영원히 더 고칠 필요가 없을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코드가 완성되었다. 이번 여름방학의 최대 성과이고 소득이다. 유용하게 사용하시기 바란다.

1.
예전에는 '두벌식 종성' 날개셋문자를 사용한 "Microsoft 두벌식"을 불러온 뒤,
'틀간 근하 때는' 같은 단어를 "문자열을 글자판 입력으로" 필터로 변환해 보면..
연속 입력이 불가능하다고 글자 사이에 가운뎃점이 잘못 찍히는 문제가 있었다. 이는 오류이다.

그리고 7.4 버전에서는 <날개셋> 고급 입력기가 제공하던 글쇠 치환 규칙의 '음절 강제 분리' 옵션이 없어지고 '한글 로마자 입력기'는 오토마타의 O변수를 통해(두벌/세벌 날개셋문자) 음절 강제 분리 여부를 결정하게 바뀌었다.
그런데 예전의 입력 순서 재계산 알고리즘은 이 O변수를 제대로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입력 순서를 제대로 못 찾는 문제를 일으켰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7.5 이전과 같은 골격으로 한글 입력 순서를 찾는 기능이 처음으로 도입된 건 무려 2.3 버전부터이다. 그리고 연속 입력 가능 여부를 찾는 기능은 3.9에서 추가되었다. 그 뼈대에다가 특수 도깨비불, 초-종 공유 결합 규칙, '두벌식 종성' 날개셋문자 등 새로운 옵션들을 추가로 감안하는 기능이 추가되어 왔으나 로직이 완전하지 못하고 이런 저런 한계가 있었다. 결국, 이런 식의 개선에는 한계를 느끼고 해당 알고리즘을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작성했다.

기회가 되면 옛날 코드에는 무슨 문제가 있어서 저런 오동작을 했는지도 좀 추적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여기는 정말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소스 코드 전체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부분이다. 이 의문의 해답은 미제로 남게 되었다.

2.
입력 순서 탐색 알고리즘을 다시 만들면서 꽤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이 프로그램은 A라는 낱자를 입력하는 규칙을 찾을 때 반드시 A 자체를 조합하는 것부터 생각한 뒤, 거기서 답이 없으면 A에 대응하는 가상 낱자들을 찾게 했다. 그리고 가장 짧은 것부터 찾고, 길이가 같으면 가능한 한 일반 문자열 key를 숫자· 기호나 Shift 윗글쇠보다 더 선호하게 했다.

이것은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수반하는데..
지금까지는 이중모음 정석을 강요하는 세벌식의 경우 이중모음용 ㅗ,ㅜ가 실제 ㅗ,ㅜ에 대응하고 홑모음 전용 ㅗ,ㅜ는 해당 낱자에 대응하는 가상 낱자로 표현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홑모음 전용 ㅗ,ㅜ가 실제 ㅗ,ㅜ에 대응하고, 이중모음용 ㅗ,ㅜ가 가상 낱자로 역할이 바뀌었다.

이 경우 겹모음을 만드는 낱자 결합 규칙도 ㅗ+ㅏ=ㅘ가 아니라 500+ㅏ=ㅘ와 같은 식으로 다 바뀌어야 하는데 이런 불편을 감수한 이유는... 한글 입력 순서를 찾는 알고리즘이 정확하게 동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겹모음용 ㅗ,ㅜ뿐만 아니라 홑모음용 ㅗ,ㅜ까지 전부 /, 9키로 연결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V,B부터 먼저 살펴본 뒤 이 글쇠로는 겹모음을 만들 수 없을 때 가상 낱자에 대응하는 /,9를 살펴보게 된다.

기본 글자판 설정, 한글 로마자, 복벌식, 신세벌식 등 기존 빠른설정이나 입력 예제들도 다 이런 방식을 반영하도록 바뀌었다. 이건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3.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하는 두벌식 도깨비불 현상은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 그냥 맨 마지막 한 타가 다음 글자로 이동하고 그 직전까지 입력되어 있던 종성(만약 있다면)만 남는 일반 도깨비불
  • 입력 과정과 상관 없이 지정된 규칙대로 종성과 다음 글자 초성을 일괄 결정하고 필요하다면 초성의 일부 입력 순서를 재연하는 특수 도깨비불 (3.9에서 추가)
  • 애초에 종성을 두 뭉치로 나눠서 한쪽 뭉치를 그대로 다음 글자로 넘기는 '초-종 공유 낱자 규칙'에 따른 도깨비불 (6.0에서 추가)

이번 7.5부터는 마지막의 초-종 공유 낱자 결합 규칙에 의해 발생한 도깨비불도 예전의 초성 입력 순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나랏글 입력 방식을 가져와서 '슬퍼'를 입력한다. 그 '퍼' 상태에서 bksp를 누르면, 지금까지는 초성 ㅍ은 입력 순서가 보존되지 않고 한 타 만에 바로 지워졌지만, 이제는 이것도 ㅍ-ㅂ-ㅁ의 순으로 지워진다.

그리고 이것과 관련하여 더욱 획기적인 변화가 생긴 부분은 bksp 역도깨비불 재현 기능이다.
1.0 이래로 지금까지는, bksp 조작으로 인해 현재 두벌식 타입의 자음이 "한 타밖에 안 남았고" 그게 앞 글자의 종성으로 결합이 가능하면 그걸 자동으로 앞 글자에다 붙이는 방식으로 동작했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한 타 이상이더라도 이 자음 전체가 앞 글자와 결합 가능하면 그걸 한꺼번에 앞 글자에다 붙이게 했다. 그래서 나랏글 기준으로 '을' 뒤에서 '파'를 입력하고 있다가 ㅏ를 지우면 굳이 ㅁ까지 안 가더라도 ㅍ이 곧바로 붙어서 '을'이 '읊'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또 bksp를 누르면 바로 '을'이 아니라 ㅂ과 ㅁ을 거치게 된다. ㅍ을 조합하는 전과정이 '을' 이후로 붙었기 때문이다.

단, 아무 상황에서나 이렇게 한꺼번에 붙는 게 아니며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그리고 이게 진짜로 중요한 점이다.

첫째, 추가로 붙음으로써 예전 낱자로의 순환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천지인 입력 방식은 같은 글쇠로 ㄴ과 ㄹ이 순환하는데, 예전에는 '길나' 같은 단어를 입력하고 있다가 '나'의 ㅏ를 지우면 ㄴ이 앞의 받침 ㄹ과 바로 붙어서 '길'이 '긴'으로 바뀌곤 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바람직한 동작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긴'은 ㄴ→ㄹ에서 다시 ㄴ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bksp를 누르면 ㄹ이 복원되는 게 아니라 ㄴ이 완전히 없어지기 때문이다. 7.5부터는 그렇게 예전 낱자로 순환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역도깨비불이 발생하지 않는다.

둘째, 역도깨비불이 발생한 상태에서 다시 모음을 입력했을 때, 역도깨비불 이전 상태로 복원이 가능해야 한다. 두벌식 옛한글 입력 방식에서 받침 ㄹ 다음에 초성 ㄲ으로 시작하는 글자를 입력했다가 bksp를 누르면.. 이들은 받침 ㄹㄲ으로 한꺼번에 넘어간다. 하지만 초성 ㄲ을 ㄱ+ㄱ으로 입력했을 때는 그렇게 넘어가지 않으며, ㄱ이 하나만 남았을 때만 받침 ㄺ으로 넘어간다.
왜냐하면 ㄹㄲ 다음에 모음을 입력하면 다음 글자의 초성은 마지막 한 타만 돌아와서 ㄱ이 되지, 원래대로 ㄲ이 되지느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까지 일일이 다 고려해서 프로그램의 두벌식 처리 방식이 크게 강력해졌다. 두벌식 옛한글이든, 천지인이든 결국은 다들 연속 입력이 안 되는 경우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중타를 주고받는 게 가능해졌는데 원래 형태대로 복원이 가능할 때에만 한해서 그렇게 해 준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4.
그 외에,
(1) 한글 입력 중에 오토마타는 nonzero 값을 되돌렸지만 낱자 결합이 불가능하거나 허용 한글 범위에 걸려서 더 조합이 안 되는 경우,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A,B,C에 모두 0을 주고 지금 상태에 대한 오토마타 수식을 재계산한다.
하지만 이때에도 원래 A~C에 무슨 값이 들어있었는지를 I~K 변수를 통해 알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적용된 경우로는 나랏글 오토마타의 2번 상태 "B ? 2 : C ? 3 : J ? -1 : 0"이다.
모음(J)의 경우 더 결합이 되지 않으면 다음 글자로 넘어가지 않고 입력을 무시(-1)한다. ㅣ+ㅣ=ㅣ 같은 결합 규칙을 추가하는 대신 오토마타 차원에서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물론 나랏글이라는 두벌식 입력 방식에서 2번 상태에 A=B=C=0이 날아오는 경우는 사실상 모음 입력 상황밖에 없기 때문에, 굳이 J 값을 체크 안 하고 바로 -1을 줘도 문제될 건 없지만, 저게 논리적으로 더 엄밀하다.

(2) 또한 단축글쇠 규칙에서 입력기 전환 수식뿐만 아니라 날개셋문자 전달 수식에도 현재의 입력 항목 번호를 나타내는 A 변수가 추가되었다. 그래서 같은 글쇠라도 지금 사용하는 입력 항목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글쇠를 되돌리는 게 가능해졌다.

(3) 제어판의 '낱자 처리' 페이지에서 '글쇠배열에 있는 낱자만' 옵션의 알고리즘이.. 초-종 공유 낱자 규칙을 반영하여 종성 부분을 더욱 정확하게 표시하게 개선되었다.
또한 지금까지는 유니코드 표준 영역에 없는 낱자도 회색이고 글쇠배열에 없는 낱자도 회색으로 표시되어 색깔이 겹쳤기 때문에, 후자는 주황색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색으로 표시되게 동작을 수정했다.

(4) 꽤 오랜 기간부터 존재했던 문제로 추정되지만 정말 늦게 발견되고 수정되었다.
제어판의 '시스템 계층-외부 모듈 관리'에서, 각종 입력기들의 아이콘이 64비트 에디션에서는 제대로 표시되지 않았다. 운영체제가 기본 제공하는 여러 IME들이 동일한 아이콘으로 출력되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번에 수정되었다..

(5) 그리고 간단하지만 의외로 유용한 숙원을 하나 이뤘다.
외부 모듈에서 제어판에서 '활성화' 버튼으로 active 글자판(입력 항목)을 바꾼 것이
시스템의 한/영 상태 제약이 없이 언제나 그대로 반영되게 했다.

지금까지는 <날개셋> 제어판에서 입력 항목을 바꾼 것은 운영체제 차원에서 내부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해당 프로그램의 한/영 상태를 결코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한글 글자판을 쓰다가 빈 입력 스키마로 변경을 할 수 없었으며, 이미 한글 모드여야만 같은 한글 세벌식, 한글 두벌식 등등끼리 전환이 가능했다.

시스템 일관성 차원에서 유지하고 있던 제약인데, 그 경우 시스템의 상태도 바꾸면서 글자판도 사용자가 설정한 것으로 바꾸게 하니까 훨씬 더 편하다.

(6) 저렇게 입력기 API가 다 뒤집어엎어졌으니 타자연습도 불가피하게 업데이트되었다.
그냥 재빌드만 된 게 아니라 예전에도 말했듯이 새 연습글에서 발견된 수십여 군데의 오타를 바로잡기도 했으니 업데이트가 마냥 아까운 삽질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9/12 08:33 2014/09/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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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고등학생이 스마트폰 앱을 뚝딱 만들고 안드로이드나 애플 사의 앱스토어에다 등록하는 소프트웨어 유통망까지 확립된 시대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는 개인이 만든 소위 '공개 소프트웨어'라는 것들이 PC 통신을 통해 배포되곤 했다. 게임, 업무 등 분야도 엄청 많았으며, 이거 하나로 스타 개발자로 유명세 타는 사람 역시 응당 있었다.

개발자들 중엔 대학생이 많았다. 도움말이나 리드미 파일을 보면, PC 통신 ID뿐만 아니라 개발자 자신의 소속 학교, 학과, 학번(연도만)까지 밝히곤 했다. 그들은 지금은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더 어린 중· 고등학생이 그 정도 퀄리티의 도스용 프로그램을 만들기엔 리소스도 부족하고 컴퓨터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으며 기계값이 아직 너무 비쌌다. 하물며 Windows용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더 좋은 컴퓨터에 더 비싼 개발 환경이 필요했을 테고.

국내 개발자들은 당연히 자기 프로그램의 UI를 한국어로 만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프로그램들은 아무리 간단하고 작은 규모라 해도, 한글 바이오스에 의존하는 텍스트 모드보다는 그래픽 모드에서 '자체 한글' 기반으로 동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때 자연스럽게 필요해지는 것은 그래픽 모드에서 한글을 찍어 주고 때로는 입력까지 처리해 주는 일명 '한글 라이브러리'이다.

옛날에 도스 시절에 자체 한글을 구현한 라이브러리를 만들어서 PC통신으로 뿌리고 잡지에 강좌를 올리고 책도 쓰며 유명세 타던 프로그래머들은 굉장히 날고 기는 수재들이었다.
아예 게임을 만드는 급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VGA 그래픽 하드웨어를 제어하고 여러 래스터 그래픽 알고리즘을 최적화된 어셈블리어 코드로 직접 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한글 입력 오토마타를 깔끔하게 짜는 것도 아무나 선뜻 할 수 있는 난이도는 아니었다(특히 두벌식은 더 어려움).

그래서 공개 소프트웨어 리드미의 '감사의 글'(acknowledgements)을 보면, “본 프로그램은 이런 한글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였으며, 우수한 미들웨어를 무료로 공개해 주신 누구누구에게 감사합니다” 같은 문구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열악한 환경의 특성상, 그 시절에 한글 라이브러리는 사실상 그래픽 라이브러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마우스에 간단한 대화상자까지 제공하는 통합 GUI 라이브러리로 발전하곤 했다.

아래아한글의 개발사로 유명한 한글과컴퓨터 사에서는 아무래도 저런 기술의 본좌이었을 테니, 1991년엔가 <컴퓨터 속의 한글>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싸제 한글 라이브러리를 개발한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이 책을 참고하여 터를 닦은 뒤, 자기만의 살을 붙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API를 설계해서 물건을 만들었다.

회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는 PC 통신 시절에 '터보이빨'이라는 닉으로 유명하던 임 인건 씨가 있다. 이분은 그 이름도 유명한 '한라프로'라는 걸출한 물건을 개발하여 상업용으로 판매도 했으며, 아마 서울대 기계공학과 재학 시절에 터보 C 정복이라고 책도 하나 썼다. 본인 역시 아래아한글 1.x로 편집· 조판되어 있던 이 고전을 읽으면서 C언어 기초를 닦았었다.

어디 그 뿐이랴? 지금까지도 인터넷 검색을 하면 굴러다니는 '프로그래머 십계명'이라는 글도 저분 작품이다.
이 정도면 저분은 거의 프로급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같은데... 프로필을 보면 알 수 있듯 저분은 프로그래밍이 본업이 아니다. 훗날 저분은 같은 학교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업계에서 고급 엔지니어 경력을 쌓다가 지금은 '성진 C&C'라고 금속, 재료 쪽 중소기업의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또 '한라프로'와 더불어 한글 라이브러리의 양대 산맥이던 물건으로는 '허르미'가 있는데, 이걸 개발한 분은 한 우진 씨이다. 국내의 유명 철덕인 한 우진 씨(미래철도 DB)와는 동명이인임.

저분 역시 물건만 만들어 공개하고 끝이 아니라, 한글을 구현하는 기술 디테일을 친절하게 저술까지 해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카이스트 전산학과에서 학, 석, 박을 마치면서 멀티미디어 데이터 압축 알고리즘 쪽 전문가가 되었다. 졸업 후엔 삼성 전자에서 몇 년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가천 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다들 왜 저렇게 똑똑한 거야..;;; ㅜㅜ
후대에 등장한 많은 한글 출력 라이브러리들은 한컴 사의 책이든, 위의 두 제품의 영향을 어떤 형태로든 받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은 시대의 흐름답게 슈퍼 VGA를 지원하고 32비트 환경(Watcom C/C++ 내지 DJGPP)을 지원하는 식의 발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저런 선구자들에 비해, 본인은 도스 시절이 다 끝난 뒤에야 한글 관련 솔루션의 개발에 입문했다. 하드웨어 제어나 그래픽 알고리즘, GUI 따위를 자체 구현할 필요는 전혀 없고 내 입력기는 그렇다고 자동 완성, 상용구, 속기 같은 NLP/lexicon 기반요소가 등장하는 것도 전혀 아닌데 도대체 이 바닥에서 무슨 일을 한 걸까?

그런 것들이 없는 대신에 내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한글을 자모 단위로 조작하는 기본 동작에만 초인적인 집중과 최적화를 했으며, 온갖 똘끼 넘치는 아이디어들을 구현하게 됐다.

아울러, 내 프로그램은 다른 건 몰라도 자체 편집기에서 도스 시절의 비트맵 글꼴을 출력하는 루틴만은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 옛날 추억과 한글 프로그래밍 정신 계승(?),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한글 조합 자모나 옛한글 표현 같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건 한글을 가장 가볍고 단순하게, 마치 컴퓨터 속의 기계식 타자기처럼 원시적으로 출력해 주는 시스템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본인은 지금은 타자기 시절이나 도스 시절과는 다른 차원의 한글 프로그래밍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한국어를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한글 자체에 대한 엔지니어링이 연구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을 다 마치고, 가까운 미래에 박사까지 다 마치고 20년쯤 뒤 먼 미래엔 뭘 하고 있을까? 한글 가지고 더 창의적으로 먹고 살 거리가 없으면 진짜로 철도로 업종 전환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4/09/09 08:30 2014/09/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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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제사나 고사 같은 것이야 사람의 생사 교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죽은 조상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부모님에게 세배하느라 절하는 건 딱히 문제될 게 없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요삼 2 같은 구절의 의미를 부여하여 좋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심지어 “메리 크리스마스”도 문화 통념적인 차원에서 크게 잘못된 관행은 아닐 수 있다. 이교도의 비성경적인 절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대놓고 드루이드교의 인신공양 관습을 희화한 할로윈 같은 급은 아니니까.

하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쉽지 않은 문제다.

하다못해 불교에는 단순 명복 내지 애도를 넘어, “고인의 극락왕생과 성불을 빕니다”라고 자기네 내세관이 가미된 덕담 문구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내세관이 여타 종교와는 상당히 다르다 보니, 그런 말을 선뜻 사용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우리 쪽 사람들은 교리가 교리이다 보니 누가 돌아가시면 “그래도 아버님은 복음을 전해 들었을 때 분명 의식이 살아 있었으며, 예수님 영접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고개도 끄덕이셨다. 그러니 구원받고 돌아가신 거다” / “아리까리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가 종종 나온다.

“고인이 꼭 구원받았고 죽어서 하늘로 가셨기를 우리도 진심으로 바랍니다”...가 바로 예수쟁이들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유족을 위로할 때 머릿속으로 실제로 하는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명복'이라는 단어 자체는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이라는 뜻이다. 이런 비성경적인 기원의 단어를 이용해서 성경적인 뜻이 오해 없이 전달될 수 있을까 싶다. 다른 표현으로 바꾸고 싶어도 딱히 대안이 안 떠오르니 말이다.

기독교는 하늘-지옥 말고 다른 사후 세계를 가르치지 않는다. 윤회, 환생, 귀신, 완전 소멸 같은 게 없으며 산 자와 죽은 자가 교류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면 과격하고 매정하게 보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뒤끝 없이 깔끔하며 온갖 고인드립 미신들을 원천봉쇄하는 건전한 교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사후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기독교는 오로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만을 시행할 뿐,
무슨 순교한 믿음의 선배들에 대한 묵념이나 추모 같은 건 안 하는 것이다.
솔직히 교회 역사상 순교자가 얼마나 많이 생겼던가? 군대에서 온갖 장병들의 무용담을 기리고 추모하는 논리를 적용하자면, 예배 때도 매번 그런 묵념이라도 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는 부활을 믿고, 그 믿음의 선배들이 지금도 다 살아 있으며 죽어서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게 교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조치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9/07 08:33 2014/09/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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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선된 철도, 안성선을 아십니까?

우리나라의 간선 철도인 경부선을 보면 대전에서 호남선이 서쪽으로 분기하고 천안에서 장항선이 서쪽으로 분기한다. 동쪽 내륙 쪽으로 분기하는 건 조치원(충북선)과 김천(경북선) 정도다.
아울러, 과거에는 수원에서 서쪽으로 수인선이 분기하기도 했다.

한 쪽으로만 분기하는 게 아니라 양방향으로 모두 분기하는 역은 흔치 않다. 안산선과 과천선이 만나는 금정 정도가 고작인데, 얘들은 일반열차가 아니라 전철만 다니는 노선이어서 존재감이 좀 덜하다.

먼 옛날에는 수원에 서쪽으로 수인선뿐만 아니라 동쪽 여주 방면으로 수려선도 있어서 동서남북이 모두 철길로 통했었다. 그러나 수려선은 영동 고속도로 개통의 타격으로 인해 이미 1973년에 폐선됐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수원은 분당선과 수인선이 만남으로써 일반열차+전철이 수직+수평 양방향으로 분기하는 역이 될 예정이긴 하다.

그때는 수원이 그랬던 것처럼 천안도 양방향 분기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서쪽으로 장항선이 있었다면, 동쪽으로는 안성 방면으로 가는 안성선이라는 철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철도와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는 안성에도 철도라니? 게다가 둘은 사실 1920년대에 매우 비슷한 시기에 착공되어 개통했다. 그 당시 장항선과 안성선의 이름은 각각 충남선, 경기선이었다.

천안에서 안성까지는 30km가 좀 안 되는 거리이고, 평택과 안성은 지리적으로 수원과 용인 정도의 관계와 비슷하다.
일제는 안성선을 연장해서 이천을 지나 여주까지 가게 할 생각이었다. 여주에는 수려선이 있긴 했으나, 안성선은 표준궤이고 수려선은 협궤인 관계로 선로의 직결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즈 시절에 안성선은 안성을 지나 경기도 이천의 장호원읍까지 약 70km 남짓한 거리가 뻗어 있어서 수려선의 길이와도 비슷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공사를 하면 실제로 여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때문에 안성선은 연장은커녕 이미 있던 선로도 뜯겨져 나가서 천안-안성 사이의 짤막한 로컬선으로 전락해 버렸다. 해방 후에도 이 구간은 복원되지 못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0년대에 안성선을 연장해서 여주가 아니라 원주까지 가게 할 계획을 한때 했었다. 경북선(김천-영주), 충북선(김천-제천)에 이어 경부선과 중앙선을 잇는 제3의 철도를 만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정부는 철도보다 자동차 도로를 더 육성하면서 이 계획을 백지화해 버렸다. 경부 고속도로가 안성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건설되자 안 그래도 짤막하던 안성선은 더욱 잉여로 전락하고 말았다. 1970년대 말에 안성선은 하루에 겨우 n회밖에 열차가 운행하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나마 표준궤인 덕분에 수려선보다는 더 오래 명맥을 유지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 뒤 1985년 4월 1일, 수인선이 영업을 중단하기 10년 남짓 전에 안성선은 여객 열차의 운행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리고 1989년 1월 1일부로 완전히 폐선 처리되어 모든 선로가 사라졌다. 수려선과 수인선의 종말 사이에 이런 사건도 있었다는 걸 알아 두도록 하자.

Posted by 사무엘

2014/09/04 19:21 2014/09/0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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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 거리 20000km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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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마의 총 주행 거리가 지난달(8월) 하순에 드디어 2만 km를 돌파했다.
계기판에 ODO라고만 적혀 있어서 무슨 이니셜인가 궁금했는데 이건 합성어 이니셜은 아니고, odometer라는 단어를 줄인 글자이다. 우리말로는 적산거리계.

사실, 차 자체는 부모님에게서 인계받은 이래로 종합 검사까지 한 번 받았을 정도로 차령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이제야 2만 km를 겨우 넘었을 정도이니 이 얘기를 들은 분들은 다 허탈해하면서 “이거 뭐 완전 새 차군. / 차를 지금까지 안 굴린 거나 마찬가지군” 등의 반응을 보이곤 했다.

운전을 대부분 주말에만 하니 주행 거리는 매달 400~500km, 1년에 5~6천 km대에 불과하다. 평일에 회사나 학교에 몰고 가는 빈도는 한 달에 한두 번이 될까 말까이지만, 그래도 무더위나 우천 등 날씨가 안 좋을 때, 부득이 지각을 면해야 할 때, 짐이 많을 때 등 결정적인 상황에서 차를 아주 유용하게 활용해 왔다.
그리고 그렇게만 몰아도 차량 유지비는 기름값만 8~10만원 정도 꼬박꼬박 나온다. 자동차라는 게 참 비싼 물건이긴 하다.

하지만 차는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금이나 보험료 등이 적지 않게 깨지며, 차령이 올라갈수록 세금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중고 감가상각도 커진다. 그러니 무작정 안 몰고 세워만 둔다고 해서 돈을 아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차를 장만한 이상, 어느 정도는 꾸준히 타야만 오히려 이득이다. 경제 속도만 있는 게 아니라 경제 주행 거리라는 개념도 있는 셈이다.

물론 본인 역시 세월이 흐를수록 주행 거리가 꾸준히 늘고 있으며,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는 동안은 연간 1만 km 정도까지는 주행 거리를 늘릴 생각이다. 특히 박사 과정부터는 학교에 월 단위 정기 주차 등록도 가능하니까 말이다.

지금도 학교 근처의 동문 회관에다가 잠시 주차할 수는 있지만, 한계가 많다. 그건 명목상 연 10회 제한이 있으며, 또 한 번에 최대 3시간까지밖에 안 되기 때문에 수업 하나만 듣고 허겁지겁 돌아오기에도 빠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평일 일과 시간에는 서울 시내의 도로 정체가 매우 심하기 때문에 차의 가성비가 크게 떨어진다.
새벽에 일찍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연구실에 있다가 밤 늦게 돌아오는 용도로 활용해야 도로 정체도 피하면서 차를 능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그럴려면 역시나 정기 주차 등록이 필수인 것이다.

집은 먹을 게 많고 내 마음대로 쉬기도 편해서 좋지만, 너무 덥고 또 아무래도 공부나 코딩의 집중이 잘 안 되어 나태해지기 쉽다.
학교는 반대로 뭔가 집중하고 작업하기는 좋다. 집보다 훨씬 더 시원하며 무선 인터넷도 빵빵하다. 학부생이라면 그저 공공장소인 도서관 독서실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나 같은 대학원생은 아늑한 연구실이 있으니 더욱 좋다.
그러나 일단 움직여서 밖에 나가는 이상 당장 돈이 깨지며, 이동하는 게 매우 번거롭고 불편하다. 그 불편을 자동차가 크게 줄여 줄 것이다.

끝으로, 또 엔진 이야기.
본인은 내 차가 디젤이 아니다 보니, 힘 좋고 연비도 더 좋은 디젤 차량에 대한 환상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디젤은 소음· 진동은 차치하고라도 같은 배기량이어도 더 무겁고 가격도 생각보다 더 비싸다. 단순히 차값뿐만 아니라 오일 같은 엔진 관련 소모품/부품 가격도 말이다.

차를 장만했으니 이제 내 사전에 대중교통이란 없다는 심보로 연 2만 km 이상씩 마구 굴릴 게 아니라면, 디젤 차는 의외로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한다. 더구나 나처럼 이제 겨우 연 5~6000km 수준인 주말 운전족 정도로는 휘발유 차가 백 배 낫다고?
아예 충분히 출력이 큰 SUV 정도라면 모를까, 그냥 어정쩡한 1000cc대 후반 배기량의 디젤 승용차를 장만하신 분 중에는 다음에는 그냥 휘발유 차를 살 거라고 오히려 후회하는 경우도 있어서 의외였다.

Posted by 사무엘

2014/09/02 08:15 2014/09/0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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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수록된 사례에는 심각한 사건도 있고 그저 '웃프기만' 한 사건도 있다. 이 글은 어떤 경우든 고인드립의 의도는 없음을 밝힌다.

1. 에어장

2003년 12월, 개독안티들로 하여금 한국 교회를 모독할 빌미를 만천하에 제공한 흑역사다. “이 행동으로 인하여 '당신'(thou)이 {주}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삼하 12:14) 처럼 말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아래의 2도 벌어진지라 둘이 함께 엮이곤 한다. 사람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졌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2는 백주대낮에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떨어졌고 당사자가 생존한 반면, 1은 밤에 당사자가 에어컨 실외기를 붙잡고 있다가 떨어져서 사망했다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사건이다.

2.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한 40대 남성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자 멘붕에 빠지면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는 부인을 흉기로 찌르고는 자기 집 베란다에서 자살 소동을 벌였다. 경찰과 119 구조대가 출동해서 그를 말렸지만 그는 막무가내 횡설수설이었다. 윗층에서는 기자가 마이크를 아래로 들이대면서 그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원하시는 게 뭐예요?” “원하는 거 없습니다.” “그럼 왜 그러시는데요?” 그 뒤, “억울해서요..”와 함께.. 희대의 명대사가 등장한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화되는 현실 속에..! (살 수가 없습니다)”

정신이상자의 단순 헛소리치고는, 병신 같지만 왠지 임팩트 있고 엄청 멋있는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운율도 잘 맞고 패러디되기도 딱 좋다.
문을 부수고 집으로 쳐들어온 경찰이 그를 끌어내려 했지만 그는 옷이 찢어지면서 속옷 바람으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밑에 안전 매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그는 경상만 입고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 이후로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여담이지만 2003년 11~12월에는 투신 자살 사건이 유난히 많았다. 속도위반으로 20대 때 덥석 결혼했다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애들을 아파트 난간에서 먼저 떨어뜨려 죽이고 자기도 떨어져 죽은 애엄마, 심지어 한강 다리에서 애들을 떨어뜨려 죽인 다른 막장 엄마도 있었고 수능 성적을 비관한 자살도 많았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는 통탄이 나올 법도 했다.

3. 프란츠 라이헬트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재봉사 겸 발명가이다. 그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사람을 안전하게 착지시켜 주는 물건, 다시 말해 낙하산을 생각하고 있었다. 재봉사가 생각할 수 있는 적절한 분야의 발명 같다.

그는 낙하산을 사람이 입는 '낙하옷'이라는 형태로 만들었다. 마치 이불을 뒤집어쓴 것 같은 두툼한 옷을 걸치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공기 저항을 높여 주는 커다란 천이 탁 펼쳐지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자신이 직접 시연해 보이려고 1912년 2월 4일, 여러 구경꾼들과 카메라 기자들을 초청한 뒤 에펠 탑 2층 60여 m 높이에서 뛰어내렸는데...

낙하옷은 펼쳐지지 않았다. ㅠ.ㅠ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땅바닥에 부딪혔으며 현장에서 즉사했다..;; 한국식 나이로 향년 겨우 34세의 나이로.
마치 에어백 발명한 걸 테스트하겠다고 발명자가 직접 자동차 충돌 실험을 했는데 에어백이 안 터지고 사람은 중상 아니면 사망을 당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의 추락 장면을 담은 무성 흑백 동영상만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뿐이다.

사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낙하산이나 비행기 발명의 선구자 중에서 이런 식의 사고로 비명에 간 사람들이 좀 더 있다. 글라이더의 연구자인 오토 릴리엔탈도 그렇고. 인간이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이런 부류의 희생이 따르곤 했다.

4. 성 재기 남성연대 대표

운영하는 시민 단체에 재정 후원을 호소하고는 사진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비굴하게 돈만 그냥 낼름 받아 먹지 않겠다. 빌린 돈은 반드시 갚겠다. 이건 우리의 절박한 심정을 알리는 충격 퍼포먼스일 뿐이다. 죽겠다는 것 절대 아니다. 난 수영 잘한다. 당당히 살아서 나올 거고 저녁에 같이 삼겹살 파티나 하자” 이런 입장;;;

그는 어마어마한 높이에서 물 표면에 떨어질 때 신체에 전해지는 충격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그건 수영 실력으로 극복 가능한 게 아니란 말이다.
그는 물에 떨어지자마자 추락 충격과 수온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으며, 한참을 하류로 떠내려간 뒤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타박상 입고 의식을 잃은 것만으로는 죽지는 않을 텐데 그 뒤부터는 물 속에서 자기 몸을 조절을 못 하니 어차피 익사하는 것이다.
(옛날 툼 레이더 게임에서는 라라가 아무리 높은 데서 떨어져도 땅바닥이 아닌 물에만 떨어지면 멀쩡하게 괜찮은데, 이건 굉장한 물리 고증 오류라 생각된다. -_-)

남성연대가 하는 일을 보니 최소한 해롭지는 않고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대표가 저렇게 허망하게 가 버리다니 안타깝다. 표 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성 씨의 투신 예고 소식에 “예고를 한 이상 우리가 대비는 해야지요.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에게는 돈이 아니라 정신과 상담과 심리 치료가 필요합니다”라고 아주 신사적으로 교묘하게 엿먹이는 주장을 SNS에다 올렸고, 이에 성 씨 역시 “네놈은 입닥쳐라”라고 강하게 응수했다.

저 사람을 수색하느라 수 년 전에 실종됐던 다른 사람의 시신을 두 구 덤으로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신의 어느 유족이 성 재기 씨에게 개인적으로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인터넷 게시판에다 글을 공개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성 씨는 좀 무모하긴 했어도 죽는 순간까지도 남 좋은 일 했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5. 우리나라의 모 전직 대통령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매우 이례적인 전직 대통령. 누군지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정치 성향에 따라서는 이 사람의 죽음을 거의 에어장의 죽음과 거의 동급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중력절=_= 운운까지 하면서 희화화· 능멸하기도 하는데, 그건 차라리 날카로운 팩트를 들이대면서 어떤 사상이나 행적을 비판하고 까는 것도 아니고 난 그런 비매너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나 역시 내가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능멸을 매우 싫어하며, 내 사이버 공간에서 그런 게 내 눈에 띄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이 존중받고 싶으면 너 역시 남을 존중하라.)

다만, 부정선거 하야만큼이나, 그리고 부하 총에 맞아 죽은 것만큼이나... 저 사람의 투신 자살도 무슨 동정의 여지가 있다거나 명예로운 최후는 절대로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들 말고도 추락사와 관련해서 웃픈 사례들은 다윈 상 역대 수상자들을 찾아보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대전에서 배출된 한국인 최초의 다윈 상 수상자도 그렇고, 번지 점프를 했는데 끈 길이가 패드 높이보다 더 길어서 추락사한 사람도 있다. -_-;;
이런 일련의 사례들을 보면서 인생은 참 덧없으며 저렇게 죽거나 살 수도 있다는 걸, 생업에 정신없이 매달리는 중에도 잠시나마 생각해 봐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08/30 08:33 2014/08/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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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게임 황금도끼에 대해서 아주 오래 전에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또 내용을 첨언할 게 생겼다.
그 글은 이 블로그가 생기기도 전, 제로보드 시절에 썼던 글이니 시기로는 2009년이나 그 이전의 정말 옛날 글이다.

황금도끼는 오락실용 원판이 나온 이후로 다양한 플랫폼으로 이식되었다.
그 중 Mega Drive/Genesis 판(게임기용?)은 레벨을 좀 더 추가하고 Duel이라는 결투 모드를 넣는 등 게임 시스템에 변화를 좀 넣었는데, PC(도스)용 버전은 바로 이 버전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원판이 1989년에 나왔고 PC용이 그 이듬해에 나왔다는 것은 페르시아의 왕자와 일치하는 내력이다.

Mega Drive/Genesis에서 추가되고 PC용에서도 도입된 결투 모드는 스토리(아케이드)를 따라 진행되는 정식 게임이 아니라, 주인공이 고정된 arena에서 정해진 적들과 PvP를 벌이는 일종의 대전 게임이다. 첫 레벨에서는 그냥 잡몹 한두 마리만 나오지만, 레벨이 올라갈수록 보스급 몬스터가 등장하면서 진행이 어려워진다.

결투 모드에서는 아케이드 때와는 달리 몹도 체력이 화면에 나온다. 정확히는 화면에 존재하는 모든 몹들의 체력의 합임. 덕분에 적을 얼마나 더 두들겨 패야 이번 레벨을 끝낼 수 있는지를 얼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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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MMORPG나 전략 시뮬, 아니면 아예 1:1 대전 액션 게임 같은 장르 말고 통상적인 액션/아케이드형 게임에서 내가 싸우고 있는 몹의 체력을 알 수 있는 게임은 별로 없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적과 싸우는 것은 1:1 대전 컨셉을 표방했기 때문에 친절하게 적의 HP가 화면에 나오는 것일 테고, 황금도끼도 아케이드가 아닌 결투 모드에서는 그런 컨셉을 추구하여 적의 HP를 표시해 주는 것 같다.

단, PC용의 경우, 해골 두 마리가 등장하는 레벨 9 이상부터는 주인공과 몹들의 HP가 화면에 안 나오기 시작한다. 화면에 아무 정보도 표시되지 않으며, 이 덕분에 부하가 좀 줄어들어서 게임의 진행이 약간 빨라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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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a Drive/Genesis 판에서는 레벨이 올라갈수록 날이 점점 어두워져서 밤이 되는 효과가 있으나, PC용은 그런 것도 없다. 아무튼...
그렇게 레벨 13까지 가면 빨간 기사와 빨간 뚱보에 잡몹 둘까지.. 총 4마리나 되는 몬스터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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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이 레벨을 깬 다음이다. 무슨 파일이 없는지 다음 디스크를 넣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게임 진행이 중단된다.
이건 뭐 취소할 수도 없고 프로그램을 종료할 수도 없다. 황금도끼를 돌리고 있는 도스 에뮬레이터를 강제 종료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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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혹시 프로그램 배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국내외 여러 곳에서 서로 다른 황금도끼 파일을 구해 봤지만, 파일 구성은 변한 게 없으며 레벨 13 이후에 저렇게 진행이 중단되는 건 여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를 뒤져 보면, 황금도끼 PC판에서 레벨 13 이후에도 결투를 진행하는 플레이 동영상이 존재한다. 세상에! (☞ 링크 클릭. 2분 58초부터)
레벨 14는 아케이드 레벨 6의 보스인 Death Adder 주니어와 부하 해골 두 마리이며, 레벨 15는 아케이드 마지막 레벨의 최종 보스인 그 시커먼 Death Adder와 부하 해골 두 마리이다. 그리고 이게 결투의 마지막이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해서 레벨 14와 15까지 잠금해제를 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뜻밖에도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황금도끼 배포본에 일부 파일이 누락됐거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레벨 14~15의 리소스도 다 준비돼 있는데 프로그램 자체에 버그가 있어서 그걸 제대로 인식을 못 한 거라고 한다.
외국의 어느 리버스 엔지니어링/해커 팀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기계어 코드를 일일이 분석하면서 디버깅한 끝에 그 버그가 무엇인지를 알아냈다. 이 문서를 참고하시라.

황금도끼 PC판은 gold.exe라는 실행 파일이 lzexe라는 과거의 16비트 도스용 실행 파일 압축기로 압축되어 있다.
그런데 저 글을 쓴 해커는 unlzexe가 있는 줄 모르고, 실행 파일 내부에 들어있는 압축 해독 루틴과 압축된 데이터를 읽고 따라가면서 그냥 근성으로 실행 파일의 로직을 추적했다고 한다.;; 8086 어셈블리와 도스 인터럽트 API에 통달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80년대 이전생의 old timer일 텐데, unlzexe를 모르는 것도 신기하다만... 아무튼 괴수.

물론, 그 lzexe를 만든 사람도 괴물인 건 두 말할 나위가 없고 말이다. (ioccc 입상자이며, lzexe는 그가 겨우 고등학생일 때 만든 작품이다.. 쩝~)

자, 저 문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문제의 원인은 레벨 14로 갈 때 프로그램이 잘못된 파일 이름을 요청한다고 한다. 파일 이름에 아스키 코드 4번 제어 문자가 들어있다고 하니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역추적을 해 보면 드디어 레벨별로 소환할 몬스터 정보가 담긴 테이블에까지 도달하는데..
레벨 14와 15를 보면 비정상적인 값이 들어있다. 메모리의 내용을 강제로 일관성 있게 수정해 주니 놀랍게도 모든 결투 레벨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이런 걸 찾아내다니 저 해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정말 안 되던 걸 되게 만든 사람이다.
SI가 가리키는 값을 보면 남자 여자 소형 잡몹은 따로 처리해 주는 게 없고, 0xA는 그 chicken leg 탈것이고 0xB+0x10은 붉은 용, 0xB+0x11은 푸른 용이다. 0x6은 대머리 보스, 0x3은 해골, 0x8은 칼 든 기사 보스, 그리고 0x7은 Death Adder의 스프라이트에 대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저 메모리 테이블은 다행히 황금도끼의 실질적인 실행 파일에 해당하는 axe.dat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unlzexe로 얘의 압축을 푼 뒤, 메모리를 패치하듯이 잘못된 값이 들어있는 부분(오프셋이 대략 0xFFxx대에 있음)을 고치면.. 레벨 14~15가 모두 잠금해제된 황금도끼를 즐길 수 있다~!

옛날에 게임 위저드 32를 이용해서 주인공의 HP를 강제로 늘리거나 심지어 값이 바뀌지 않는 무적 상태를 만들어 놓고 게임을 즐긴 적도 있다. HP 한 칸이 내부 HP 4에 대응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메모리 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런 해킹 프로그램이 있다면 저 테이블을 메모리에서 찾아내서 결투 모드 버그 정도는 런타임 때 고칠 수 있을 듯하다.

디버깅을 할 줄 알면 이런 것도 다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4/08/27 08:38 2014/08/2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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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여러 번 글을 통해 내 의견을 피력했듯이.. 대한민국의 건국/초대 대통령인 이 승만 박사를 매우 존경하며 그는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지엽적인 병크나 비리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적적으로 건국되고 지켜지고 유지된 자랑스러운 나라이다.

김 구의 <백범일지>만 읽다가 이 승만의 <독립정신>도 접하고 나면, 정말 독자의 지성과 품격, 안목까지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 그 꼬질꼬질하던 옛날 구한말에 벌써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를 생각하고 한 나라의 이상향을 옳은 방향으로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니. 사악한 공산주의자들의 흉계를 외교력으로 저지하고 나라의 반쪽이라도 붉게 물들지 않게 지켜 낸 것을 감사하게 된다.

이 박사에 대해서 독립 운동가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악의적인 흠집과 필요 이상의 온갖 중상모략에 대해서 본인은 거의 대부분 실드가 있고 대응책이 있다. 임시정부 시절에 부린 똘끼라든가 친일파 등용(?) 정도는 얼마든지 해명 가능하다.

중국의 마오 쩌둥을 생각해 보자.
그는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수천만 명의 인민을 굶겨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대약진운동에 문화혁명 홍위병 등 온갖 삽질 개뻘짓을 자행하여.. 196, 70년대에 우리나라가 반사 이득으로 경제 도약을 할 기회까지 줬다. 6·25 때 일본이 덕을 본 것만큼이나 우리도 결과적으로는 중국의 삽질의 덕을 본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오 쩌둥은 중국 내부에서 여전히 공7 과3 정도의 국부로 예우받고 있고, 심지어 국내에서도 마오 쩌둥 존경한다는 사람까지 있다. -_-;; 정신 좀 차리시길. 마오 쩌둥은 6·25 때 중공군 파병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멸공 북진통일의 기회를 영원히 박탈해 버린 적장이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

“비록 적장이지만 훌륭하다” 급의 다른 실드는? 내가 보기엔 글쎄...??
그리고 인간적으로 훌륭한 면모가 있다고 해서 당신은.. 히틀러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이토 히로부미 같은 사람을 존경하고 흠모하고 위인전에까지 선뜻 올리시겠는가? -_-;;

아무리 사람마다 가치관과 견해가 차이가 날 수 있다 해도, 마오 쩌둥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 누가 보더라도 이 승만보다 더 존경할 만한 인물은 절대로 아니다. -_-;;;; 최소한 한강 다리 폭파 병크보다는 우리에게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친 인물이다.
저건 6·25 때 보도연맹인지 국민방위군 같은 거 일일이 다 끄집어내서 때리는 잣대와 동일한 잣대라고는 절대로 볼 수 없다. 내 말 틀렸나?

이런 잣대하고만 비교해 봐도 이 승만에 대한 잣대만 비정상적으로, 불순한 의도로 지나치게 가혹하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걍 건국하지 말고 간판 내리고 김 일성 치하에서 통일 조국 이루며 살았어야 했다”가 아닌 이상.. 그 시절에 불가능했던 일을 못 이뤘다고 헛소리 하는 건 건전한 생각이 아니며 이성적인 판단도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난 이 승만을 미화, 우상화, 숭배 따위를 하지 않는다. 단지, 멀쩡한 애국자 초대 대통령에게 별 희한한 생트집 구실로 부관참시를 하고, 그냥 긍정적인 면모를 얘기만 하면 미화네 숭배네, 일베충 뉴라이트 수꼴 이 따위 헛소리를 해 대며, 저 사람 독재가 김 일성 독재와 똑같았다는 둥의 역사 왜곡, 능멸, 난도질을 하는 꼴을 보니 피거솟을 느끼며 그걸 극도로 혐오하여 반박할 뿐이다.

뭐 아무튼.
그렇다고 해서 이 승만이 대통령으로서 실책이 없는 건 당연히 아니며 잘못한 것도 적지 않다. 설령 아랫사람 부하 잘못이라고 해도, 그런 병신 같은 부하들을 통제를 못 하거나 인재 등용을 제대로 못 한 건 대통령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노 무현 전대통령을.. 법조인으로서는 좋아하지만 그는 대통령 그릇이 아니었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듯, 이 승만도 외교 독립 운동가로서만 좋아하고 대통령으로서는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정도야 충분히 정당한 비판이고 이견이다. 그 사람이 외교를 잘한 것만치 내치를 잘하지는 못했다는 것은 나도 응당 동의하는 바다.

다만,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이 승만의 정치적 과오는.. 최소한 누가 자꾸 헐뜯는 것처럼 절대 악의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과정에서 발생한 돌발행위나 과잉진압, 너무 위급하고 나라가 가난하고 열악해서.. 피아 식별도 안 되고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 여건이 아니어서, 인재를 도무지 구할 수 없어서, 지금 뭐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당장 뭐든지 다 보장하고 허용하기에는 빨갱이들의 거짓 선동이 너무 위험해서 등등등...으로 대부분~~ 실드가 쳐진다.

옛날에 했던 비유를 또 들겠다. Windows 95가 32비트 선점형 멀티태스킹 OS임에도 불구(자유 진영 민주주의)하고 도스와 16비트 코드가 섞인(구시대 악습, 친일 경찰 간부, 일부 자유 제약 등등) 불안정하고 BSOD가 만연한 이상한 제품으로 만들어졌던 건.. 그 당시 일반 “사용자들의 컴”이 Windows NT / OS/2를 도저히 돌릴 수 없는 환경이었고 도스 호환성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없다. 지금 컴퓨터 환경을 갖고 옛날에 Win95를 만든 엔지니어를 욕하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승만이 악의적이지 않았다는 건 차라리 햇볕 정책이 비록 실패이지만(북한 체제나 주민 인권 개선에 아무 도움도 안 됐고 우리 돈만 엄청나게 축났고, 도리어 그게 다 핵 개발로 돌아왔고.. -_-) 악의적이지는 않았다고 믿는 것보다는 100배 이상 훨~씬 더 쉽게 믿을 수 있다. 자, 더 흥분할 것 같으니, 개인의 정치색이 들어간 논쟁은 여기에서 커트하도록 하고.

본론으로 돌아오면, 잘 알다시피 북한의 갑작스러운 6·25 남침 때 우리나라 정부와 군대는 우왕좌왕 허둥대다가 영남 지방까지 밀려나면서 졸전을 거듭했다. UN군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그때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지워질 뻔했다. 그런데 이게 우리 입장에서는 꼭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기만 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승만 대통령은 저 북한 빨갱이들이 조만간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 미국에다가 추가 군사 지원을 끊임없이 요청했지만 미국이 그 요구를 묵살하고 쟤들이 설마 그러겠느냐고 안이하게 대처한 것도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군부 역시 대통령의 선견지명과는 반대로, 국지전에서 더 나아간 전면전 남침 조짐이 거듭 보고되는 걸 무시하고 태평하게 지내기도 했었다. (그렇게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천하의 군사 강국 미국조차도 옛날에 진주만 기습 폭격을 당하고 9·11 테러를 당했듯이..)

개전 당시에 대통령 수뇌부가 서울을 너무 금방 포기해 버린 것, 국민들에겐 페이크를 치면서 마치 세월호 선장이 도망치듯이 먼저 피난을 가 버린 것 때문에 여론이 안 좋아졌다. 이건 오늘날까지 이 승만을 씹는 사람들이 단골로 꺼내는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건 그렇게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A. 이 승만 대통령은 6월 27일 새벽에 측근들로부터 피난을 안 가면 안 되겠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난 국민을 버리고 서울을 떠날 수 없다”라고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다. 프란체스카와 측근들이 1시간 가까이 설득한 뒤에야 비로소 피난을 갔다.

B. 반대로 무초 대사가 26일 밤쯤에 대통령을 찾아가 벌써 서울을 버리고 떠나서는 안 된다고 1시간 가까이 설득했다. 그러나 “내가 잡혀서는 안 돼. 좀 안전하게 피난 가야겠어”라는 대통령의 말에 더 설득을 포기했다.


이 두 모순되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공존한다. 누가 무슨 얘기를 갖고 대통령을 1시간째 설득했다는 건지? 둘 다 책 인용이고 여러 군데에 동일한 형태로 복붙이 돼 있어서 신뢰도는 충분히 갖춘 source이다.

그런데, 내가 잠시 리서치를 한 바로는.. 교차검증이 잘 안 된다.
A 문헌에서는 무초 대사는.. 참모진이 이미 대전으로 내려간 뒤부터에나 등장하며, B 문헌은 반대로 A 정도의 디테일로 26~27일 사이의 대통령의 구체적인 전후 행적이 나와 있지 않다.
한밤에 국제 전화를 걸어서 “군사 지원이 필요하니, 자고 있는 맥아더를 깨워서라도 당장 불러 달라. 안 그러면 한국에 있는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한 명씩 죽을 줄 알아라” 이렇게 대통령이 협박조로 강하게 얘기한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맥아더는 그 당시 미국이 아닌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과 시차가 비슷함)

“A 사건에 의해서 피난이 결정된 뒤에 B에 기록된 대로 무초가 최후에 피난을 만류했다”.. 라고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게 자연스러울 듯하지만, 그렇게 종합하기에는 A가 말하는 시간대가 너무 늦다.

설마 진짜로 B와 A가 나란히 시간 순으로 벌어진 걸까? 이 승만이 그렇게까지 우왕좌왕 변덕쟁이였을 것 같지는 않은데. (처음엔 피난 가기로 결심 → 무초와 싸우고 난 뒤 피난 안 가기로 슬그머니 마음을 고쳐먹음 → 다시 측근의 제안을 받아들여 피난)

참고로 이 승만에 대해 '덜 긍정적'으로 진술하는 B도 조 갑제 닷컴 같은 우파 논객 홈페이지에 소개되고 인용돼 있다.
또한, 엔하위키조차도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와 함께 A안과 B안을 모두 소개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혼란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팩트가 아니라 이 승만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서 각자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A 또는 B를 미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나도 한때는 A 설만 있는 줄 알았으나, B도 신뢰도가 무시 못 할 수준이어 보인다.
이건 정치 성향이나 정치인 호불호 문제가 아니라 역사 팩트 문제이기 때문에 편견 없이 자료를 나중에 좀 더 조사해 봐야겠다. 어느 쪽이든 역사 왜곡과 조작이 부디 없기를.

Posted by 사무엘

2014/08/24 08:33 2014/08/2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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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M_QUERYDRAGICON 메시지

제목에 언급돼 있는 저 메시지는 도대체 뭘 하는 물건일까?
얘는 20여 년 전에 Winows 95가 등장한 이래로 쓸 일이 사실상 전혀 없어진 잉여이다.

그 주된 이유로는 첫째, 그때부터 minimized icon이라는 개념 자체가 운영체제에서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이다.
95 이래로 바탕 화면에는 '내 컴퓨터'나 '휴지통' 같은 걸 제외하면, 바탕 화면이라는 디렉터리에 있는 파일들만이 표시된다. 자주 쓰는 프로그램의 바로가기 정도나 바탕 화면에 표시되며 그것들도 엄밀히 말해서는 그 디렉터리에 있는 파일의 일종인 것이다.

최소화된 프로그램은 작업 표시줄의 제목 말고는 화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작 메뉴와 작업 표시줄을 구동하는 explorer 셸 자체가 죽었다면 최소화된 프로그램이 진짜로 제목 한 줄만 달랑 보이는 최소화 상태로 있을 수 있지만, 이건 운영체제가 완전 막장이 됐을 때에나 발생하는 상황이며, 그냥 그 제목 텍스트를 드래그하면 되지 별도의 드래그용 아이콘이 필요하지는 않다.

둘째로, WM_SETICON / WM_GETICON이 그나마 남아 있던 아이콘 관련 기능을 완벽하게 대체해 버렸기 때문이다.
클래스를 등록하던 시절에 대표 아이콘이 지정되지 않았던 윈도우라 하더라도 가끔은 외형에 별도의 custom 아이콘이 필요할 때가 있다. 대화상자 단독으로 달랑 실행되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대화상자는 윈도우 프로시저는 거의 언제나 우리가 지정한 custom 버전이 쓰이지만, 그 윈도우 자체의 클래스 등록은 우리가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Windows 3.x 시절에는 창의 아이콘이 표시될 때가 최소화됐을 때 정도밖에 없지만, 95부터는 창 제목 왼쪽의 시스템 메뉴가 있는 곳에 창의 아이콘이 언제나 표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클래스 아이콘과 다른 아이콘을 별도로 공급하는 것은 운영체제가 나중에 응용 프로그램에다가 메시지를 보내는 형태가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이 사전에 운영체제에다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디자인이 바뀌었다. 그 변경의 산물이 바로 WM_SETICON. 이 아이콘이 대외적으로 표시되며 심지어 Alt+Tab을 누른 동안 프로그램 리스트에도 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SDN과 구글 따위를 뒤져 보면, 이 메시지에 대해서는 20년도 더 전에나 유효하던 낡은 설명만이 기계적으로 그대로 소개되어 있으며, 이 정보는 오늘날 outdated됐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Visual C++ 2012의 MFC 마법사에서 대화상자 기반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면, CDialog(Ex)의 파생 클래스는 저 메시지에 대한 핸들러도 여전히 참 친절하게도 만들어 준다. 뭐지 이건..?

2. 잉여 WM_SIZE 파라메터

잉여 요소가 의외의 가까운 곳에 또 있다.
WM_SIZE야 Windows 프로그래머치고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는데.. wParam에는 최소화/최대화와 관련된 부가 정보가 따라온다. 최소화되었다면 SIZE_MINIMIZED가, 최소화되었다면 SIZE_MAXIMIZED가 오며, 그 밖의 일반 상황에서는 SIZE_RESTORED (0)가 된다. 딱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런데
SIZE_MAXHIDE: Message is sent to all pop-up windows when some other window is maximized.
SIZE_MAXSHOW: Message is sent to all pop-up windows when some other window has been restored to its former size.

라고 문서화돼 있는 이 값이 온 걸 본 적 있으신 프로그래머는 한번 손 들어 보시길..
저 조건을 최대한 만들어서 디버거 붙이거나 Spy++로 확인해 봐도 저런 건 좀체 안 온다.
어떤 프로그램 창이 최대화됐거나 해제됐다고 해서 다른 프로그램 창에 저 메시지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구글, MSDN 다 뒤져도.. 저 기계적인 설명 말고 다른 용례는 안 나온다. 외국의 포럼에서 딱 하나 질문이 올라온 게 있긴 한데, 딱히 답변 없다. (☞ 링크 클릭)

Windows 운영체제의 레거시들 분석에는 세계 톱급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레이몬드 챈 아저씨의 블로그, MFC와 Windows GUI 프로그래밍에서 한 가닥 했던 Paul DiLascia 등.. 거기에 설명이 없으면 아무데도 없는 거다.;;
나도 진지하게 굉장히 궁금하다. 저 설명과 매크로 상수값은 그저 잉여인지를? WINE 같은 데서는 저게 실제로 구현돼 있을까?

Posted by 사무엘

2014/08/22 08:21 2014/08/2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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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턴 워커 중장 (1889~1950)

웨스트 포인트를 졸업한 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에 모두 참전하고, 나중에 한국 전쟁에도 중장 계급으로 참전했다. 그가 세운 가장 큰 공은, 필사적으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이 더는 물러나지 않게 하고 시간을 버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내가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코리아를 지키겠다.” 이게 성공한 덕분에 나중에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도 가능했다.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은 임무에 사병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워커의 옆에 있던 맥아더도 워커를 거들면서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라고 “까라면 까”를 돌려서 표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러나 워커 장군은 1950년 12월 23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지프를 타고 이동 중인데 맞은편에서 다른 군용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돌진해 왔다. 그걸 피하려다 지프는 길 밖으로 굴러떨어져 뒤집혔고, 운전병과 장군은 모두 현장에서 즉사했다. (하긴, 한글학자 석인 정 태진도 6·25 중이던 1952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었고..)

가해 차량도 군용차였기 때문에 이 승만 대통령이 나서서 그 차의 괘씸한 운전병을 총살형에 처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정도였다.
하긴, 저 때는 아직 즉결처분 제도가 있던 막장 시절이었다.
북한군의 갑작스러운 침략에 국군은 졸전에 후퇴를 거듭하면서 사기가 떨어지고 군 기강이 개판이 돼 있었다. 명령과 통솔이 안 먹히고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부대가 와해되는 지경이다 보니.. 오죽했으면 정말 고육지책으로 윗사람이 자기 말 안 듣는 부하를 재판도 없이 초법적으로 응징할 권한을 줬었다. “내 명령이 있기 전에 멋대로 전선에서 후퇴하는 놈은 곧바로 총살이다!” 같은 식.

그랬는데 현실에서는.. 아 글쎄 사단장이 자기 기분 좀 나쁘다고, 훈시하는데 좀 몸을 움직였다고 사병을 제멋대로 총살하고,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명령을 수행 안 한다고 중대장이 소대장을 꼬투리 잡아 총살하는 지경이 벌어진 것이다. 무슨 보노의 삼류만화 패밀리 <아침조회> 편도 아니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하물며 미군 장군을 교통사고로 죽게 한 운전병이 과연 목이 온전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워커 장군의 유족들이 이 승만을 필사적으로 뜯어말렸고, 이건 고의가 아닌 실수로 인한 사고임이 밝혀지면서 해당 운전병은 징역 3년형으로 감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즉결처분 제도는 부작용과 병폐가 너무 많기도 하고, 또 극약 처방이 아니면 지휘가 안 될 정도의 위기가 그럭저럭 해소도 된지라 이듬해인 1951년 7월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걷다'라는 동사에 -er이 붙은 walker이라는 단어를 본인은 레밍즈 게임에서 처음으로 봤던 듯하다. 특별한 작업이나 임무 없이 그저 좌우로 돌아다니기만 하는 보통 생쥐를 가리키고 있으면 저 명칭이 뜬다. 오늘날 서울 광장동에 조성된 '워커힐'이라는 지명과 호텔 상호는 저 워커 장군을 기려셔 명명되었다.

수 년 전엔 지인 초대를 받아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하루 투숙한 적이 있었는데, 시설도 호화롭고 산과 강이 어우러진 주변 경치도 굉장히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한다.

2. 윌리엄 딘 소장 (1899~1981)

6· 25 개전 초기이던 7월 중순에 대전을 사수하는 전투를 지휘했던 분이다. 그러나 병력의 열세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대전을 내어주고 후퇴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 과정에서 길을 잘못 들어 대열에서 이탈하고 실종되었다.

그래서 미군은 특공대를 열차에 태우고 대전으로 다시 투입하여 그를 구출하려 했으나, 북한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인해 이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 작전에 자원하여 미카 129호 증기 기관차를 운전하다가 적진에서 총격을 받고 순직한 분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김 재현 기관사이다.

딘 소장은 참으로 놀랍고 한편으로 부끄럽게도, 한국인의 배신과 밀고를 몇 번 당하는 바람에 무려 투스타의 신분으로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혔었다. 평양에까지 끌려가기도 했지만 그나마 심각하게 험한 꼴을 당하지는 않았으며, 1953년 휴전 후에 포로 교환 차원에서 석방된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미국이 대인배인 건, 이런 천하의 배은망덕한 행위를 특별히 부각시키고 트집잡고 늘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딘 소장은 자신을 밀고한 사람이 나중에 체포되었을 때도 그를 용서하고 감형을 탄원했다고 한다.
온갖 편파적인 선동질과 역사 왜곡, 시체 장사로 가득한 오늘날 좌익 매체들의 사악한 짓거리와는 참으로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미군을 구하기 위해 희생된 한국 철도인의 은혜를 미국은 끝까지 잊지 않았다. 여러 차례 미국의 높으신 분들이 고인에게 감사를 표했을 뿐만 아니라 2012년 6월 26일에는 고인에게 미국 국방부 특별 민간 봉사상(특별 공로 훈장)이 추서되었다.

전후에 딘 소장은 영예롭게 예편하였으며, 천수를 누리다 별세했다.

3. 조지 리비 중사 (1919~1950)

공병대 소속의 미군 병사로, 위의 김 재현 기관사와 매우 비슷한 시기와 장소(1950년 7월 19일)에서 전사한 분이다(이 사람은 7월 20일!). 대전 전투에서 딘 소장이 후퇴할 때 같은 그룹에 속해 있었던 셈이다.

그는 후퇴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위험한 일(= 자기를 적군에게 노출하는)을 용감하게 도맡아 하고, 심지어 인간 총알받이 역할까지 하면서 적을 교란시키고 전우들의 탈출과 부상병 이송을 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결국 총알을 여러 발 맞고 과다출혈로 산화한다. 살아남은 전우들에 의해 그의 무용담이 알려지면서 그에게는 훈장도 일찌감치 추서되었다.

영문 위키백과에는 이 행적만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대해서 대전 전투 이전의 행적이 더 알려져 있는 듯하다. 북한군의 진격이 코앞에 임박한 위험한 상황에서, 파주의 임진강 위에 놓여 있던 어느 다리를 끊어서 진격을 저지했다고 한다.

파주시는 임진강 이북이 민통선으로 봉인된 형태인데, 장파리에 가 보면 국도 37호선과 민통선 지대를 연결하는 한 교차로가 '리비 사거리'라고 명명되어 있다. 본인은 작년에 이 길을 따라 들어가서 허 준 선생 묘소에 가 봤었다.
이것이 저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리고 민통선 지대로 들어가는 다리가 바로 '리비교'이며, 이게 그 사람이 끊었던 다리를 훗날 복원한 것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4/08/19 08:20 2014/08/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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