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엔 <응답하라 199x>라는 레트로 장르의 TV 드라마가 인기가 많았다.
요즘은 사극 드라마라도 하나 방영되면 전국의 역덕후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별 희한한 곳에서 고증 오류들을 찾아 올리는 게 관행이다. 이 드라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2013년 10월 18일 방영분에는 아래와 같은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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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의 노선색이 빨간색이고 역명판이 둥글게 만들어져 있던 옛날 시절을 재현한 것까지는 좋다. 솔직히 말하면 본인조차도 그 실물을 본 적은 없다. 본인은 서울 태생이 아니며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기 시작한 건 21세기부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장면에는 여러 크고 작은 고증 오류가 존재한다.
벽면의 인테리어가 실제 지하철 서울 역과 다르며 섬식 승강장 역을 상대식 승강장으로 만들어 놓은 건 애교라 친다만...
역명판의 글꼴을 2003년에 만들어진 걸로 쓰면 어떡하냐. 무려 코레일체!

20세기 설정에 너무 깔끔한 21세기 서체가 혼자 확 튀어 보인다.
게다가 저건 철도청/코레일의 전속 서체이지 서울 지하철에서 쓰던 서체도 아니다.
완전 어처구니없는 고증 오류가 아닐 수 없다.ㅋㅋㅋㅋㅋ

또한, 글꼴만치 부각되는 건 아니지만 '서울驛'이라는 한자 병기가 들어간 것도 오류다.
서울 지하철이 처음 개통했을 때는 역명판에 한자 병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1999~2000년대가 돼서야 추가되었다. 딱 그 시기에 로마자 표기법 개정분 반영, 한자 병기와 더불어 국철(= 광역전철) + 지하철 노선색 통합까지 몽땅 진행되었으니 수도권 전철의 외형이 크게 바뀌는 시기였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그럼 1994년 기준으로 코레일체 대신 저기에 무슨 글꼴이 들어가야 맞는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진짜' 옛날 사진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엔하위키엔 관련 자료가 이미 다 올라와 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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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미해 온 지금의 지하철 전속 서체와 같거나 최소한 비슷한 투의 납작한 헤드라인이 그때에도 쓰였다.
초롱테크에서 1990년대 중반에 정식으로 내놓은 그 디지털 서체는 그걸 좀 더 세련되게 다듬은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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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개인적으로 이 서체를 굉장히 좋아한다. 마치 런던 지하철의 전속 서체가 그야말로 런던 지하철 전체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명물이 되어 있듯, 저 서체는 수도권 전철까지는 아니어도 서울 지하철을 대표하는 서체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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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그걸 함부로 바꾸고, 이미 만들어 놓은 멀쩡한 시설까지 돈 들여서 뜯어고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서울 도시철도 공사 관할역들의 경우, 지상에 있는 검은 배경의 세로형 역 폴사인의 서체가 어느 샌가 야금야금 서울 남산체로 바뀌고 있다.

오히려 지하철이 아니라 광역전철 소속이어서 우측도 아닌 좌측통행으로 건설된 신분당선이 클래식 지하철체를 살려 쓰고 있으니.. 혼란스럽다.

음, 그나저나 응답하라 1994의 오류가 또 생각 났다.
내가 언뜻 본 기억으로는 그 드라마 내부에서 등장하는 TV 뉴스 화면의 자막이...
굴림은 양반이고 아예 나눔고딕인 장면이 있었다!

서 태지가 은퇴하는 소식이 나오는 20세기 복고 드라마에, 2008년 한글날에 무료 배포된 서체가 등장한다는 게 말이 되냐.. ㅋㅋㅋㅋ

요즘은 유튜브만 검색하면 1990년대 옛날 영상 매체의 주요 장면을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
자막에다가는 엑스포체나 그래픽체만 넣었어도 지금으로부터 2, 30년 전의 영상 매체의 구리구리한(?) 분위기를 아주 손쉽게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무슨 서체를 쓰든 CG 처리는 똑같이 필요했을 텐데, 이게 무슨 돈이 더 드는 일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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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1. 이렇듯 글꼴 유행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2. 철도와 성경의 융합에 이어 철도와 글꼴의 융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4/01/06 08:13 2014/01/0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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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 용태 2014/01/08 00:13 # M/D Reply Permalink

    글꼴은 누구나 쉽게 만들고 쓸수 없는 물건이기에 시대를 관통하는거 같습니다..
    특정 시기에 한글 소프트웨어에 번들된 글꼴이 많이 쓰이는 시절도 있었고요.. 예를 들면 한글에 있는 특유의 필기체 같은.. 요즘은 그 특유의 필기체를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드네요 ^^

  2. 정 용태 2014/01/08 00:25 # M/D Reply Permalink

    그리고 살짝 궁금해져서 필기체에 대해 서핑해봤는데 이런 재미있는 링크도 있어서 붙여봅니다.
    http://puwazaza.com/319
    http://www.youtube.com/watch?v=qefD5YHPeEM

    1. 사무엘 2014/01/08 10:43 # M/D Permalink

      새해 첫 댓글 당첨이십니다. ^^
      한글의 경우 잘 알다시피 복잡한 조합 룰 때문에 완성도 높은 글꼴을 만들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나마 이미 정해진 조합 룰 템플릿을 기반으로 싸제 글꼴을 찍어내는 건 옛날에 비트맵 시절에는 그나마 유행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지요.
      그리고 그 조합 룰 자체를 새로 짜는 기술은 글꼴 제조 회사들이 제각각 보유하고 있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그 이유는 물론 저는 매우 수긍합니다)

      아래아한글 필기체의 경우, 만들어진 사연이 있는 것도 아시죠? 지금은 아래아한글이 아니면 <날개셋> 편집기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의 글꼴이 됐습니다. ㅎㅎ

      Comic Sans가 원래는 BOB에 들어갈 글꼴이었는데 그렇게 퍼져 나가고 또 그런 금지 처분을 먹었다니.. 정말 흥미로운 걸요? 처음 알았습니다.
      정 용태 님, 복 많이 받으세요.

  3. 파츠쿠 2014/01/08 17:40 # M/D Reply Permalink

    그게 바로 김치들의 철도에 대한 의식수준이죠. 세금으로 철도 깔아줬더니 시끄럽다고 이설하고 옮기는 새끼들이 김치들이죠.

    1. 사무엘 2014/01/09 06:37 # M/D Permalink

      저도 철도에 대한 지역 이기주의 및 왜곡된 인식이 참 안타깝답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을 깨어 있는 철덕들이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야겠죠. 굳이 다른 사람들을 비하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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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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