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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남한산

요즘 등산 답사기가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일 뿐만 아니라 등산의 계절이기도 한 것 같다.
날씨가 너무 덥지 않고 숲의 나뭇잎도 몽땅 칙칙한 갈색으로 바뀌거나 떨어지기 전에 적당히 단풍이 들어서 경치가 아주 좋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날씨는 더 서늘하고 추웠으면 좋겠지만, 나뭇잎은 초록색이 더 유지됐으면 좋겠다. 그러니 두 함수의 교점인 시기를 찾으면 10~11월경으로 귀착되며, 본인은 이 시기에는 개인 일과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가면서까지 일부러 등산을 집중적으로 많이 갔다. 내가 평소에는 아무 이유 없이 쓸데없이 몸 움직이고 운동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지만, 오지 탐험과 경치 감상 같은 동기가 생기면 그럭저럭 움직이기 때문이다.

성남의 오지들 다음으로 본인은 오랜만에 남한산성을 선택했다. 예전에 두 번이나 남한산성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둘 다 산성의 북쪽(하남 춘궁동)과 남쪽(검단산)으로 곧장 나가 버렸고 정작 성길 자체를 둘러보는 산행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동명의 영화까지 개봉했으니 시기적으로 더욱 적절했다.
아무튼, 이번에는 남한산성의 동쪽을 구경하고, 청량산 말고 성이 실질적으로 자리잡은 산인 남한산 일대를 답사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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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성까지는 저번처럼 일단 버스로 간 뒤, 산성의 북문인 전승문 근처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문 밖으로 나가지는 말고, 성 안에서 문 주변을 보면 등산로 진입로가 보인다. 그리고 진입로 옆에는 남한산성 전체의 지도가 걸려 있는데, 이건 별도로 갖고 있지 않다면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이 초행 등산객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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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이렇게 쭉 이어졌다. 사실, 성 내부에도 다른 등산로 탐방로 산책로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근 주민이 아닌 본인 같은 외지인은 아무래도 성곽길에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대도시를 처음 방문하면 굵직하게 노선 파악이 쉬운 지하철을 버스보다 즐겨 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남한산성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여기는 문화재 때문에 도립공원인 것이고, 군포의 수리산은 내가 알기로 북한산처럼 그냥 자연 환경 때문에 도립공원이다. 경기도 수도권에 도립공원은 이 둘이 전부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수리산도 가 보고 싶은데.. 저기는 안산 일대에 차 끌고 놀러갈 일 있을 때 한번 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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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하남시 춘궁동 및 상· 하사창동 마을을 오랜만에 다시 산에서 내려다보게 됐다. 본인은 초창기엔 남한산성에서 저 마을 방면으로 곧장 하산한 적도 있다. 그 뒤, 이번에는 산을 타고 성곽을 따라 저 마을의 오른쪽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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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암문이라고 해서 공원 같은 넓은 공간에 쉼터가 있었다. 여기에는 성 안팎을 드나드는 길과 내부 탐방로를 오가는 길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 이후에는 꽤 가파른 오르막이 나와서 내 종아리와 발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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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의 성곽길이란 게 원래 고도가 가변적이지만 여기는 지금까지 걸어온 구간 중에서는 제일 높은 곳 같았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고 해서 ‘동장대 터’라는 게 근처에 있고, 여기도 성 안팎을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 ‘남한산성 여장’이라고 안내문이 있긴 했지만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는 두 종류의 성벽이 만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따라왔던 성곽길은 방향을 바꿔서 봉우리 아래로 고도가 하강했다.
성의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했다. 남한산의 정상이 정확하게 어딘지는 아직 감이 안 잡히지만, 벌봉이니 한봉이니 ‘외동장대 터’ 이런 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리로 가려면 아무래도 이 성벽의 밖으로 나가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서 진로를 변경하여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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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성벽이 한데 만난다는 게 이런 뜻이다. 사진에는 흰 성벽의 문만 나왔지만, 이쪽으로 가기 위해서 기존 회색 성벽의 문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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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새로 난 길을 따라 벌봉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성벽의 보존 상태가 열악한지라, 성벽이 훼손되고 무너진 구간, 잡초가 무성히 뒤덮인 구간이 부지기수였다. 길도 그냥 흙길이지, 돌 같은 거 없다. 그래서 이곳 역시 장기적으로 복원 계획이 잡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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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흔적 + 높은 곳"을 쫓아 한 20분을 뺑뺑이 치니 외동장대 터가 나왔고 꽤 극적으로 정상 표지석을 발견했다. 남한산의 정상은 성 안이 아니라 성곽길 상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 안이 성벽 그 자체보다 고도가 높을 리가 없으니까.

남한산은 여느 산들 같은 정상 표지석이 없었다. 1970년대에 나라에서 높이 측정을 했다는 인증 돌판만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는데, 생각보다 최근에 모 산악회에서 "여기가 남한산에서 제일 높은 곳이오~"라고 표지석도 그 옆에다 설치해 놓았다. 다만, 너무 아담한 크기이다 보니 누가 이걸 가져가거나 훼손하거나 심지어 다른 곳에다 옮겨 버리면 어쩌나 우려되기도 한다.

여기 부근을 돌면서 벌봉, 봉암성, 봉암신성 병인비 같은 바위들도 발견했으니 이번 산행의 목표는 어지간히 달성한 것 같았다. 이제 북쪽으로 나가는 길을 찾아서  ‘객산’이라는 산을 거쳐서 하산할 수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본인은 남쪽의 한봉과 한봉성 정도는 더 구경하려고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갔다.
거기만 답사하고 나면 남한산성은 남옹성이 있는 남부와 좌익문 일대만 빼면 다 구경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본인은 남한산성의 사대문도 저 동문(좌익문)만 아직 못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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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따라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졌다.
한봉성(남한산성 성곽에서 특정 구간의 이름)이 먼저 나왔으며, 계속 더 걸어가자 다시 낮은 봉우리를 하나 오르는 게 나오고 성벽의 선형이 오른쪽으로(남쪽이던 것이 서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내 여기가 한봉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복원이 덜 됐는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지 성벽은 여기에서 끝났으며, 주변에 딱히 볼 건 없어서 사진은 생략하였다.

성벽은 끝났지만 등산로는 계속 이어져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남동쪽 광주시로 가는 차도와도 합류하게 되는 듯했다.
본인은 그 정도로 남쪽으로 가지는 않고, 여기보다 더 북쪽에서 성곽길을 적당히 이탈하여 산의 동쪽으로만 하산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봉성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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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본인이 남한산성을 완전히 빠져나온 출입구이다. 전방에는 저런 비탈길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 이정표도 울타리도 계단도 없었지만, 낙엽들로 뒤덮인 바닥을 살펴보면 적당히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되겠다 싶은 정도의 흔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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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끝났다. 내 기억으로 15분 남짓밖에 안 걸렸다. 이내 민가와 함께 잘 정돈된 길이 나타났다. 본인은 광주와 하남의 경계에 있는 ‘광주시 엄미리’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계곡을 따라 형성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나중에 알고 보니 ‘엄미 농원’이라는 사유지의 내부였다. 이제 등산은 끝나고 후속 미션인 오지 탐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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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건물과 차도가 등장했지만, 그래도 여기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거의 2.5km 가까이 걸어야 했다. 이곳은 소형 마을 버스 같은 게 다니는 게 없으며, 마을을 완전히 빠져나가서 큰길까지 가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차가 없는 안타까움을 절감하면서 터덜터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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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변 가을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여긴 나름 계곡을 따라 형성된 유원지인데, 언제부턴가 엄미천이라는 개울도 발원해서 졸졸 흐르고 있었다.
여기보다 살짝 북쪽의 하남시 상산곡동 일대도 비슷한 분위기의 마을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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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43호선상의 서울 방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아차산 동쪽의 구리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도 같은 번호였는데..? 그 국도의 디자인 컨셉이 그런가 보다.

국도와 엄미마을 진입로가 교차하는 곳 주변은 "안녕히 가십시오(광주)"와 "어서 오십시오(하남)" 표지판이 보이고, 한편으로 저렇게 중부 고속도로와 제2중부 고속도로 고가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탈 수 있는 유일한 시내버스는 13번이었는데, 하남 시내를 거쳐서 최종적으로는 천호, 강변 역까지 가지만 그 전에 서울 명일동 일대 주거 지역을 들쑤시고 다녔기 때문에 그 동네 구경도 덤으로 할 수 있었다.

이번 산행의 결론을 내리자면, 남한산은 군사 시설이라고는 그 흔한 헬리패드조차 하나 없이 모처럼 문화 유적 관람에만 충실한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성남에서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구간은 하남과 광주에 속했기 때문에 ‘성남 누비길’이 어떻고 하는 것도 전혀 없는 게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05 08:39 2018/02/0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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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발화산+응달산

청계산의 동쪽으로는 경부 고속도로를 건너서 인릉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청계산의 남쪽으로는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건너서 또 다른 산들이 존재한다. 이 산들 자체가 막 높고 유명한 건 아니지만, 이 영역에 속한 운중동, 석운동, 대장동은 성남시에서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손꼽히는 오지이다. (뭐, 현재까지는 그런 편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또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여기는 자연의 정취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밝히기엔 약간 므흣한 국가 기밀 시설도 있어서(단순 군부대가 아님) 신비로움을 더욱 부추긴다. 그래서 본인은 다음 산행지를 여기 일대로 선택했다. 여기는 등산보다도 땅밟기 탐험의 성격이 더 강했다. 이번 산행, 아니 탐험은 입산 경로부터가 꽤 독특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배경 설명이 먼저 길게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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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청계 톨게이트(요금소)에 도착했다. 이런 곳을 자가용으로 스쳐 지나는 게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게 될 줄이야..
1650번 좌석버스는 송파 IC에서 고속도로로 진행해서는 가천대 정류장에 한 번만 정차한 뒤 곧장 여기에 도착했다. 성남 요금소에서 청계 요금소까지는 막히지만 않자 꽤 금방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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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순환 고속도로가 이렇게 광역 좌석버스 정류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하긴, 경부 고속도로에도 곳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그건 요즘은 망하고 졸음 쉼터로 용도가 바뀌는 추세이다.

청계 요금소 주변에는 ‘청계 휴게소’라는 작은 휴게소도 있던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느 장거리 고속도로 휴게소라기보다는 그냥 경부 고속도로의 어귀에 있는 만남의 광장 내지 하이패스 센터 같아 보이는 아담한 외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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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빠져나가면 곧장 아무나 무료로 이용 가능한 주차 공터가 나타난다. My precious!! 안 그래도 오지 탐험인데 본인 역시 여기엔 차를 가져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산행 경로를 편도로 짰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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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서 반대 방향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서, 혹은 지금 본인의 경우 등산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를 횡단해서 반대편으로 가야 했다. 그렇다고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주로 하이패스 관련 처리 착오 때문에 운전자나 요금소 직원이 차에서 내려서 고속도로 횡단을 시도하다가 차에 치이는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전해지곤 한다. 하이패스를 겨우 시속 30km로 통과하는 고지식한 FM 운전자는 요즘 세상엔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특히 길가에 다 왔다고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4.5톤 초과의 대형 트럭 하이패스 차량들이 길가의 게이트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행자의 고속도로 횡단을 위해서 위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터널이 도로 아래에 마련돼 있다. 단, 이 터널은 길고 가파른 상구배(오르막)이며, 우회 경로가 너무 길고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애로사항이었다.

청계 톨게이트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아무튼 고속도로를 횡단한 거의 직후부터 흙길이 나오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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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맨 처음으로 발을 디딘 산의 이름은 ‘발화산’이다. 순우리말인지 한자어인지(특히 ‘發火’!!) 그 남쪽으로 이어지는 네임드급 산인 ‘바라산’과는 어원이 어떤 관계인지, 그런 건 알지 못한다.

이 산은 남쪽 바라산 방향으로 흙길을 올라가면 무슨 묘지가 나오는 모양이다. 거기서 계속 남쪽으로 가서 완전히 바라산으로 가거나, 아니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산의 능선을 타고 응달산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듯하다.
본인도 원래는 그걸 의도했는데.. 묘지까지 가지 않고도 고속도로가 보이는(그리고 그 대신 산의 고개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도 길이 나 있는 듯해서 호기심에 그 길을 가 봤다.

그리고 그건 고난의 시작이었다.
뭔가 중장비가 지나간 흔적이 있고, 흙길이 없는 건 분명 아니었다. 좀 무리하면 지나가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진짜 공인된 정규 등산로를 만날 때까지 약 1km쯤 되는 이 길은 울타리, 이정표 등 그 어떤 등산 시설도 없었으며, 수십~1백 m 남짓 주기로 또 사람 키만치 자라 있는 수풀이 앞길을 막았다. 한때 개방돼 있었지만 버려지고 폐쇄된 지 몇 년쯤 된 옛 등산· 산책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풀을 발로 밟아 쓰러뜨리고, 커다란 거미가 앉아 있기까지 한 거미줄을 몇십 개쯤 헤치고, 손등과 팔목에 생채기가 몇 군데 나고 옷과 백팩이 흙투성이가 되고 바지엔 이름 모를 시꺼먼 식물 씨앗 같은 게 달라붙어서 일일이 떼내고, 집채만 한 나무로 둘러싸인 좁은 샛길을 통과하기 위해 양팔을 들거나 머리를 숙이기도 하고..

가끔 고속도로 아래로 바깥 경치, 그리고 무슨 수십 년간 보존된 DMZ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웅장한 가을 자연 경관이 펼쳐진 것에는 감탄했지만, 이거 "빠져나가는 건 가능한가? 무장공비도 아니고 아침부터 나 혼자 이거 웬 생쑈를 하는 건가? 지금은 간신히 나아가고 있지만 길이 도중에 진짜로 끊겨 버리면 어떡하지? 이러다 고개 건너편은 구경도 못 하고 능선만 따라 산이 끝나 버리면 어떡하지? 지금까지 온 게 얼마인데? (...)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별 잡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여기를 빠져나가는 동안 다른 등산객을 마주친 건 당연히 전무했다. 낫이나 정글도라도 하나 좀 챙겨 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험한 산행을 했지만, 그래도 이 넓은 산지가 전부 내 것 같았고, 여기서 잠을 자든 혼자 무슨 짓을 하든 티가 안 날 것 같긴 했다. 위의 사진은 그나마 덜 험준한 곳의 모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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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심겨져 있는 식물과 나무의 종류가 바뀌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울타리와 나무 계단이 쳐진 정규 등산로가 결국 나타났다. 드디어 고생이 끝났다. 이 부근에 고속도로 위로 청계산과 발화산을 횡단하는 육교(청계육교 + 하오고개)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등산로를 따라 드디어 고개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었다. 꼭대기에서는 무슨 KBS 송신탑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철탑이 등산객을 반겨 주었다. 바라산 방면에서도 이쪽으로 오는 길이 있었는데, 내가 능선을 따라 이런 삽질을 안 했으면 그 길을 따라 여기에 도달하게 됐을 것이다.

이 지점이 아마 발화산에서 가장 높은 정상으로 추정되었다. 작고 낮은 듣보잡 산이어서 그런지 인근의 다른 산과는 달리 정상 표지 같은 것도 없다. 이제야 등산이 원래의 계획 궤도에 진입했으며, 본인은 동쪽의 운중· 석운동 방면으로 하산을 선택했다. 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하산하는 길은 그 이름도 유명한 성남 누비길 구간에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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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산의 정상에서 본인이 입산을 시작한 청계 톨게이트를 내려다봤다.

산 내려가는 장면은 별로 볼 것 없는 흙길과 숲길뿐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사진은 생략한다. 여기는 주변 지역 탐험이 아니면, 산 자체는 멀리서 원정까지 와서 갈 만한 곳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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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어느 정도 내려가자 철조망이 나타났다. 정말 그 어떤 경고문이나 팻말도 없이 그냥 철조망뿐이었다.
사실, 발화산의 고개 너머 남쪽에는 거대한 코렁시설이 있다. 그쪽으로는 나무도 정말 빽빽하게 심겨져 있어서 위에서는 아래에 뭐가 있는지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다.

이유는 안알랴줌이고 어귀 딱 한 군데에만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달랑 안내된 게 마치 청계산 상적동 구간 근처에 있는 군부대 입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뭐 그래 봤자 여기는 그 코렁시설의 정말 북동쪽 변두리 외곽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기 주변만 아무리 어슬렁거리며 들여다본다 해도 뭔가 대단한 걸 염탐할 수는 없다.

옛날에 경찰대가 용인에 있던 시절엔 학생들이 운동 차원에서 법화산 산길을 구보했을 텐데, 여기서 근무하거나 연수를 받는 ‘그분’들은 이 산 산길을 달리면서 체력 단련을 하지 싶다. 아무튼, 여기에 착륙하는 걸로 발화산은 답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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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 코스인 응달산을 찾아갔다.
발화산과 응달산 사이는 나름 높은 산중턱 고지대이지만, 비교적 넓은 평지와 함께 차도와 건물도 있어서 시골 마을 느낌이 났다.
응달산 등산로는 북쪽으로 차도를 따라 한 300m쯤 걸으니 나타났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꺾어서 자동차까지 진입 가능한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거기로 가지 말고 더 직진해야 한다. 거기는 한전 관할의 비밀 기지(송전? 변압?)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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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산도 높이 250m가 될까 말까인 낮고 작은 동네 뒷산 급이어서인지, 산속엔 딱히 볼거리는 없었다. 다만, 등산로는 전반적으로 아주 크고 넓게 잘 닦인 편이었다. 산악 자전거가 다녀도 될 정도였다.
그나저나 ‘다음’ 지도는 2018년 2월 기준으로 응달산을 혼자 ‘옹달산’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 오타를 고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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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응달산 중턱에 있는 한전 비밀 기지이다. 언뜻 보면 무슨 철도 차량 기지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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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정표는 부실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언제부턴가 살짝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본인은 계속 동남쪽으로 가서 대장동 시골 마을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예전에 태봉산에서 내려다보았던 그곳 말이다. 하지만 어떤 방향은 동북쪽으로 가서 산운마을 아파트 단지로 가는 것 같았다.

거기를 피해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언제부턴가 묘지와 차도가 나오고 산이 끝나긴 했다. 하지만 마을로 가려면 한참을 더 걸어 내려가야 했다. 내 발 밑으로 용인-서울 고속도로가 터널로 지나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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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대는 역시 분위기가 판교· 분당 신도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한적한 논밭, 한편으로는 형형색색의 빌라와 단독주택이 인상적이었다. 차가 없어서 두루 둘러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하지만 대장동도 이제 막 재개발 붐이 일고 있어서 곳곳에 굴착기와 덤프 트럭이 돌아다니면서 공사 중이었다. 사진에 나온 저 건물들도 대다수는 이미 주민들이 빠져나가고 철거 예정이었다. 내가 지금 본 광경을 불과 몇 년 뒤, 3~5년 안으로는 못 보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의 오지 탐험이 더욱 뜻깊은 답사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 오지에서 거의 유일한 대중교통은 대략 15~20분 간격으로 다니는 마을버스 32번이다. 주변에 버스 정류장 표식은 전혀 없지만, ‘두밀로’와 ‘모두마니로’라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여기서 버스를 타고 무사히 귀가했다. 중간에 거친 동원동 일대와 낙생 저수지의 풍경도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02 08:30 2018/02/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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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인릉산(인능산)

본인은 지난 2016년 1월 말, 한겨울에 인릉산을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본인이 지금 같은 등산 관행이 정착하기 전의 완전 초창기였기 때문에 사진을 남긴 것이 별로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산에서 바깥 경치를 제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전망대를 들르지 못하고 바로 심곡동 서울 공항 방면으로 하산을 해 버렸다.

본인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후 오랫동안 아쉽게 여겼으며, 결국 이를 보완하기 위해 훗날 경로를 달리하여 재등산을 하게 됐다.
인릉산은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도 잠시 볼 수 있는 낮고 작은 흙산이다. 청계산에 비해 그리 유명하지 않으며, 등산로 입구가 ‘어서 오십쇼’ 수준으로 잘 갖춰진 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사연이 담긴 유물이나 절 같은 것 역시 없다. 그 대신 내부엔 예비군 훈련장 같은 군사 시설들만 잔뜩 들어서 있다.

그리고 얘 등산로의 상당 구간이 서울과 성남의 경계이며 ‘성남 누비길’이다. 서울과 구리의 경계인 아차산, 서울과 하남의 경계인 일자산처럼 말이다.
처음 등산하던 시절에도 각종 이정표와 소개 문구에서 성남 누비길이라는 단어가 있었지만 본인은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하긴, 그때는 서울 둘레길이라는 것도 까맣게 몰랐다. 등산이라는 분야조차도 그야말로 배경 지식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인릉산의 이름은 그냥 왕릉 이름에서 유래된 걸로 보인다. 자신의 북쪽에 있는 구룡· 대모산의 남부에 잘 알다시피 선릉과 ‘인릉’이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인능산’이라는 표기가 훨씬 더 많이 쓰이고 검색 결과도 더 많이 뜨는데,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왜 두음법칙이 표기 차원에서까지 적용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좀 혼란스러운 점이다.

처음 갔을 때는 본인은 옛골 마을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서-동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본인은 방향을 달리하여 성남 신촌동에서 시작해서 동-서로 이동했다. 그리고 남쪽의 옛골 방면으로 하산한 게 아니라 최대한 서북쪽으로 진행하여 서울 내곡동 방면으로 하산했다. 그래서 인릉산의 옛골 근처 구간에 존재하는 산불 감시 초소는 보지 못했다. 기왕 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경로는 이런 식으로 최대한 차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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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위해 지방도 23호선상에 있는 서울 공항 내지 공군 제15비행단 기지 근처를 그것도 대중교통으로 오랜만에 방문했다.
요 알록달록한 도색의 물건은 뭔가 공군 기지의 상징인 것 같은데, 무슨 관제탑도 아니고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야전에서 식물과 흙을 벗하며 싸우는 육군이 아니니, 굳이 칙칙한 국방색이어야 할 필요는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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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동 마을의 풍경이다. 본인은 이런 건 보통 하산한 뒤에 감상하도록 등산 계획을 짜는 편인데, 이번에는 뭔가 순서가 바뀌었다.
군부대 활주로가 훤히 보이는 곳이니 여기는 15비가 이전하지 않는 한 재개발되어 고층 건물이 들어설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보면 되겠다. 마을 내부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인릉산과 가까워지고 오르막 비탈이 가팔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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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울창한 숲길이야 어느 산을 올라도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니 너무 많이 올리지는 않겠다. 다만,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10월 하순), 단풍이 서서히 물들면서 산의 전반적인 색깔이 바뀌어 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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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어느 정도 오르니 15비 활주로도 이 정도는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프로펠러기가 이륙하는 것을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눈으로 보고 엔진 소리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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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도 온통 진지라고 해야 하나 참호라고 해야 하나.. 이런 웅덩이가 가득했다. 군사 냄새가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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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전망대’에 도달했다. 산의 중앙이 아니라 동쪽에 치우친 곳에 있기 때문에.. 산을 동쪽에서 오르자 더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인릉산 2차 등산의 주 목표가 이렇게 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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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의 아래로는 이런 게 보인다. 저 밑에 있는 공터는 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군부대 연병장이다. 보이는 게 저게 전부는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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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모산 동쪽 기슭, 강남구 내곡동에 아주 기괴하게 생긴 아파트(LH 강남 힐스테이트) 단지가 이렇게 들어선 게 보인다. 저 건물을 이런 구도로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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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한참을 더 걷고 올라가자 이 산의 정상이 나왔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 헬리패드가 있고, 헬리패드보다 약간 낮은 공터에 또 벤치와 참호, 풀밭이 놓여 있다. 막 높고 유명한 산이 아니어서인지, 특별히 정상 인증 비석이나 정자, 국기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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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등산로의 한쪽엔 인릉산 특유의 군부대 철조망으로 길게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내곡 터널 위를 지나고, 신구 대학 식물원 방면 안내판도 지나고..
중간에 몇 번 길을 잘못 들 뻔하기도 했지만 요즘 시대가 어느 세상인가, 폰으로 위치를 확인하면서 그럭저럭 위기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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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서남쪽의 옛골 마을 방면으로 하산을 유도하는 이정표가 보였다. 하지만 본인은 그쪽으로 가지 않고 서북쪽 ‘홍씨 마을’ 방면을 선택했다.
거기는 길은 있지만 등산로 안내는 썩 친절하게 돼 있지 않았다. 그리고 군부대 철조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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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가 본 길 대신 새로운 모험을 택한 것에 대한 보상은 이렇게 주어졌다. 공터가 나타나서 서울 남쪽 끝의 경부 고속도로 주변(신원동?)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산행은 이른 아침 대신 한낮부터 시작했다. 이 당시 시각은 오후 4시가 좀 넘어 있었는데, 보다시피 벌써부터 날이 조금씩 저무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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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최종적으로는 입산할 때처럼 한가한 전원마을이 아니라, ‘서초 포레스타 5단지’라는 아파트촌에 착륙하는 걸로 이번 산행을 마쳤다. 신분당선 청계산입구 역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서울 남부 그린벨트 지대가 이렇게 개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옛골이 아닌 이쪽은 인릉산 등산로가 막 적극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다 내려왔다고 생각되었는데 고속도로가 보이는 쪽으로는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한참을 헤맸다. 결국 ‘내곡 마을 둘레길’이라는 산길을 더 가서야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저런 등산로를 통해 산을 벗어나게 됐다.

행정구역이 성남에서 서울로 바뀌니 각종 안내 표지판들의 글꼴과 스타일도 싹 바뀌었다. 하긴, 옛날에는 성남에 소재한 산들의 이정표가 추레한 명조체 계열이었는데 이게 조금씩 새걸로 교체되는 중인 것 같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30 08:36 2018/01/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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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2 경인 고속도로의 동쪽 연장

우리나라의 서울과 인천 사이에 처음에는 경인선 철도가 건설되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엔 철길의 북쪽에 경인 고속도로가 생겼고, 또 한참 뒤에 1990년대에는 철길의 남쪽으로 제2 경인 고속도로가 개통했다. 제2 경인은 동쪽이 삼성산을 앞두고 끝나면서 행정구역상 서울을 경유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선의 상징성 때문에 '경인'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제2경인은 오리지널 경인이나 외곽순환처럼...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가 아니라 그냥 수도권의 단거리 도시 고속화도로와 비슷한 위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도로의 서쪽 끝과 동쪽 끝이 연장되면서 그 위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먼저, 서쪽은 인천대교와 연결되면서 사실상 공항 고속도로의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 오리지널 경인 고속도로의 북쪽으로 공항 고속도로가 따로 지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리고 동쪽은 삼성산과 청계산 아래를 몽땅 터널을 뚫어서 근성으로 돌파한 뒤, 안양과 의왕을 지나 성남의 여수대로까지 연장되었다! 이 민자 구간은 따로 '안양-성남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2017년 9월에 개통했다.

의왕과 성남 사이에는 이 고속도로가 기존의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매우 가까이 나란히 달리지만 새 길은 대부분 터널이기 때문에 서로 지상에서 마주볼 수는 없다. 지도를 보면 판교 운종동에서 아주 잠깐 지상으로 나올 뿐이다.
나중에 판교 분기점을 지나지만 지하로 통과하며, 기존 경부 내지 외곽순환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는 없다.
용인-서울 고속도로(171)와도 갈아타는 거 없다. 단지, 종점을 앞두고 분당-내곡 고속화도로와는 갈아타는 연결로가 생기는 듯하다.

이 고속도로는 성남 시청 바로 근처에서 국도 3호선으로 바뀌면서 끝난다. 여기서 한참을 동남쪽으로 진행하면 광주시 초월읍에 도달하는데, 여기서는 중부 고속도로(35)와 만남과 동시에 광주-원주 고속도로(52)를 타고 계속 동쪽으로 갈 수 있다.

여기 사이 거리가 20km에 달하니 짧지는 않지만.. 수틀리면 고속도로 110과 52가 한데 만나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어 보인다. 흥미로운 일이다.
철도 분당선이 겨우 분당-서울 전철이 아니라 이제 경기도를 두루 아우르는 거대한 순환형 광역전철이 됐듯, 110번 고속도로는 겨우 서울-인천이 아니라 경기도를 두루 아우르는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6. 하이패스 차단기, 코레일 개집표기

오늘날 전국의 고속도로 IC들의 하이패스 진입로에 딱히 차단봉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악용하여 통행료를 상습적으로 안 내고 튀는 악질 운전자 때문에 도로 공사가 골머리를 썩는 중이라고 한다.
과거에 하이패스라는 게 처음 도입됐던 시절에는 진입로에 여느 건물 주차장 입구처럼 차단봉이 있었다. 평소에는 내려가 있다가 차량의 하이패스 단말기가 본부와 통신이 정상 처리됐을 때에만 올라가곤 했다.

그런데 건물 주차장 출입구야 차들이 워낙 느리게 움직이니 그런 식으로 차량 진입을 통제하면 되지만, 고속도로는 그렇게 하기에는 차량이 너무 빠르게 달리는 중이라는 게 문제였다. 정말 악의 없이 기계 오류 때문에 인식이 안 된 건데도 차단봉이 안 올라가면 차가 차단봉과 부딪치는 사고가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차단봉만 부수고 차량 앞부분만 좀 긁히면 차라리 다행인데, 운전자가 당황해서 차단봉을 피하느라 핸들을 옆으로 꺾으면 주변 시설물까지 다 부수는 더 큰 사고로 도지기 쉬웠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 공사에서 1차로 취한 조치는 부딪치더라도 차량에 상처를 주지 않고, 휠지언정 부서지지 않는 부드러운 훼이크 재질로 차단봉을 교체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마치 도로에 색만 칠해진 훼이크 과속방지턱만큼이나 초행 운전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은 여전히 준다. 오동작+회피 사고의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관계 당국의 오랜 고민 끝에 하이패스 진출입로에서 차단봉은 모두 철거되고 사라지게 됐다. 설치하는 데도 돈 들고, 철거하는 데도 돈 들고.. 결국 예산 낭비라고 언론에서 까였다. 전국에 고속도로 나들목이 한두 개 있는 것도 아닌데..
얌체 운전자를 어떻게 잡아낼지는 따로 생각할 일이고, 일단은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현장 보존, 증거 확보, 과실 비율보다도 당장 차를 갓길로 옮기고 2차 사고를 예방하는 게 절대적으로 더 중요하듯이 말이다.

하이패스 차단봉 같은 지위와 운명을 지녔던 물건이 과거에 철도계에도 있었다. 바로 고속철 개통과 함께 주요역에 도입했던 지하철 스타일의 자동 개집표기이다.
이것도 나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도입한 것이었지만, 알고 보니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다. 집어넣은 승차권이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는 걸림 현상이 잦았고, 또 승차권 자체도 항공권 같은 영수증 모양 내지 SMS· 홈티켓 등으로 형태가 다양화되면서 저런 자동 개집표기가 무의미한 형태로 바뀌었다.

결국 자동 개집표기는 개집표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봉인되거나 아예 철거되기에 이르렀다. 이것도 언론에 보도되어 많아 까였었다.
고속도로의 하이패스 차단봉과 정말 비슷한 처지로 보이지 않는가?

7. 버스 전용 차선 등~

경부 고속도로는 극심한 정체로 인해 1990년대 중반에 국내 최초로 버스 전용 차선이 시행된 것으로 유명하다. 난 신탄진 IC 이북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팩트의 전부는 아니다. 평일에는 오산 IC부터이고, 주말과 공휴일에만 신탄진 IC부터이다. 그래서 신탄진과 오산 사이에는 파란색 버스 전용 차선이 실선이 아닌 점선으로 그어져 있다. 2017년 7월 말부터는 영동 고속도로도 신갈-여주 사이에 버스 전용 차선이 주말 한정으로 시행되었다. 시행 시간대는 여러 차례 변경을 거친 끝에 현재는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로, 남산 터널들의 혼잡 통행료 징수 시간대와 동일하다.

비슷한 시기인 1996년 초에는 서울 시내의 천호대로에도 중앙 버스 전용 차선이 첫 시행되었다. 하지만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 차선과 시내의 버스 전용 차선은 중앙 1차로를 버스 전용으로 떼어 줬다는 점 외에 취지와 이념은 서로 차이가 있다.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 차선은 보다시피 심야에는 시행되지 않으며, 9인승 이상 소형 승합차라도 6명 이상이 타면 통행이 허용될 정도로 유도리가 있고 관대하다. 그러나 시내의 버스 전용 차선은 노선 버스들만 통행 가능하며, 심지어 그런 버스들이 끊긴 심야까지 포함해서 365일 24시간 시행이다. 긴급자동차 정도가 아닌 한, 일반 차량 운전자들은 저 차선을 꿈에도 넘볼 생각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이크로버스라도 정규 노선 버스라면 버스 전용 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작은 마을버스들이 버스 전용 차선이 있을 정도의 큰 도로를 다니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이 차선은 사실상 대형 버스들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도로교통법을 보면 이 전용 차선을 다닐 수 있는 버스는 그냥 버스가 아니라 '노선버스'이다. 그러니 단순 학원· 교회 버스나 관광· 전세 버스, 사기업의 통근 버스는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는 소· 중형이 아닌 대형 버스라면 다 들어가는 것 같다.

경부 고속도로의 경우, 경기도 구간부터는 차들이 워낙 많고 혼잡하니 평소에는 갓길까지도 차량 통행용으로 개방해 주고 그 대신 대피소를 일정 간격으로 추가로 설치하곤 한다. 지금이 갓길 주행이 가능한지 여부는 마치 상하행 가변 차선 도로의 O X 표시 램프처럼 전광판이 별도로 해 준다.

옛날에는 고속도로의 일부 지점에도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고속· 시외버스가 정차하곤 했다. 지금은 휴게소 환승이 있지 그런 관행은 없어진 지 오래다.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비상용 활주로로 사용하던 관행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옛날에 쓰이던 버스 정류장이 개조되어 졸음 쉼터 내지 비상 대피소로 탈바꿈하곤 한다. 고속도로의 내부 구조가 이런 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8. 그 밖에 고속도로 주행하면서 들었던 생각들

(1) 하이패스는 버스· 전철에서 환승 할인 교통 카드만큼이나 정말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필수가 됐다. 고속도로는 폐쇄식과 개방식, 도로공사 구간과 민자 구간이 뒤섞이면서 요금 체계가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고 있으니 하이패스 같은 거 없이는 이제 버틸 수가 없다. 이제는 하이패스 전용 IC도 등장하고 있으며, 현금 통행료 무인 징수기는 통과 시간이 정말 길고 불편하다.

돈 거래에 관한 한 현금은 동전이든 지폐든 절대로 기계 친화적인 매체가 아니다. 이건 동물의 다리는 바퀴와 달리 기계로 구현하기 아주 어려운 파트인 것과 같으며, 페이지를 넘기도록 제본된 책이 사람에게는 읽기 편한 형태이지만 스캔 뜨는 데는 아주 안 좋은 형태인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금 수납이 기계로 대체되고 나면 사람은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고 불편해진다. 패스트푸드점에서든, 고속도로 톨게이트든, 지하철역 1회용 승차권 구입이든.. 예외가 없다.

(2) 난 옛날에는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칼치기 추월을 하는 스피드광 폭주족들만 미친놈 나쁜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1차로를 떡 버티고 정속· 저속 주행하면서 우측 추월을 강요하는 애들이 그보다 더 무개념 나쁜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체 상황이 아닌 이상, 추월 차로는 필요할 때 잠시만 이용하도록 하자~!
추월 차선을 딱 비워 놓고 언제나 좌측으로 예측 가능하게만 추월하면 독일 아우토반처럼 시속 200을 넘게 달려도 사고 잘 안 난다. 요즘 차들은 성능도 좋은데, 괜히 비현실적인 과속 단속 감시나 하지 말고 차로 분리를 더 적극적으로 계도· 계몽했으면 좋겠다.

(3) 휴게소의 주유소가 기름값이 생각보다 저렴한 게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미리 환전을 안 하고 공항에 가서야 환전하면 바가지를 잔뜩 쓰며, 열차 안이나 산 같은 현장에서 구매한 도시락은 비싸고 가성비가 안 맞게 마련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도 준비물을 미리 챙겨야지 거기 가서 잡상인을 이용하면 역시 바가지 쓴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기름도 시내에서 미리 넣어 가야 저렴할 텐데, 고속도로 휴게소의 기름은 그렇지 않았다. 도로공사가 ex-oil이라고 자체적으로 거품 없는 석유 유통망을 갖추고 있는 덕분에 그렇다고 한다.

(4) 고속도로는 그러고 보니 유조차· 특대형 트레일러 같은 크고 아름다운 차, 위험물을 실은 차가 주행 가능하구나!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같은 시내의 여느 자동차 전용 도로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인데 이를 지금까지 별로 의식 안 하고 있었다. 하긴, 고속도로는 그렇게 나라 먹여 살리는 자동차들을 당연히 통행시켜 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4.5톤을 초과하는 대형 트럭들은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하이패스 단말기 장착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걸 본인은 지금까지 몰랐다. 고속버스가 하이패스 달고 잘만 달리고 있는데 의외다. 그러니 이런 트럭 운전자는 하이패스 카드를 제시해서 현금 취급 없는 통행료 결제까지만 가능하지, 톨게이트 무정차 통과는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하이패스를 달더라도 톨게이트는 거의 기다시피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다른 기술적인 제약 때문은 아니고, 과적 단속을 위해서라고 함..

(5) 그나저나 영천-경주 구간 확장은 언제쯤 끝나려나.. 공사 때문에 갓길도 없고 하도 위험하고 사고가 나서 그런지 최고 속도 한계가 100에서 80으로 낮춰졌으며, 아예 예전에 없던 구간 속도 단속이 시행되고 "시속 80으로 달리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이런 오글거리는 표어까지 붙었다. "이렇게 빌 테니 제발 과속하지 말고 천천히 가세요" 거의 이런 급이다..;;
고속도로의 상태가 주변의 국도(20, 4)보다도 못해진 상태이니 공사가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려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27 19:37 2018/01/2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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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속도로 개통 관련 에피소드

중부내륙 고속도로(45)가 주요 구간이 개통해서 서울-경주 갈 때 대전을 경유할 필요가 없어진 게 10몇 년 전 일인데..
2017년 6월 말엔 상주-영천 고속도로(301)가 추가로 개통한 덕분에 이제는 서울-경주 갈 때 대구· 구미를 들를 필요마저도 없어졌다.
사실, 거의 같은 시기에 저 301뿐만 아니라 제2경부 고속도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세종-포천 고속도로(29)도 포천-구리 구간이 개통했다! 이 좁은 땅에 알게 모르게 고속도로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하지만 저때 언론의 관심은 오로지 서울-양양 고속도로(60)의 전구간 개통에만 몰려 있었다. 그래서 29와 301은 존재감 없이 진짜 깔끔하게 묻힌 것 같다. 뭐, 저건 우리나라 최북단 고속도로인 데다 서울· 수도권 주민들의 휴가철 교통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니 임팩트가 더 클 수밖에 없긴 하다.

나 같은 자동차· 지리· 교통덕에게는 새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이 무슨 새로 생긴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어느 지방에 무슨 맛집이나 카페가 생겼다고 하면 여자분들은 초점은 그 목적지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본인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중간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으음.. 뜬금없는 사실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 고속도로(120)가 서울-인천간의 주요 구간이 개통한 건 1968년 12월 21일이다. 하지만 서쪽 끝의 가좌동에서 인천항까지 6km 남짓한 구간이 마저 100% 완공된 건 이듬해(69년) 7월 21일이었는데..
이건 일개 고속도로 개통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구급 경축 이벤트와 날짜가 정확하게 겹쳤다는 걸 지금까지 전혀 생각 못 했다.
바로 아폴로 11호, 인간 최초의 달 착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아예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서 학교와 관공서가 놀았다.

한국은 인제 군사정권 하에서 산업화 찔끔 하고 짤막한 고속도로 '하나' 만들어서 좋아라 하고 있었지만 천조국은 이미 그로부터 거의 3, 40년 전부터 전국에 하이웨이가 거미줄처럼 깔렸으며 진작부터 마이카 시대가 시작돼 있었다. 그리고 1960년대엔 비행기를 넘어 아예 우주선을 만들고 인간을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공산주의 진영과 싸우는 스케일이 가히 넘사벽이었던 셈이다.
이때 국내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했으며, 이튿날 1면은 큼지막한 제목이 전부 '인간 달 착륙, 우주 시대 개막' 이랬었다. 그러니 경인 고속도로 전구간 완공 소식 따위는 그냥 싹 묻혔고 찾을 수 없었다.

2. 용인-서울 고속도로

2009년에 개통한 용인-서울 고속도로(171)는 위상이 꽤 독특한 물건이다.
얘는 2017년 현재, 전국의 고속도로들 중 유일하게 전구간이 다른 어떤 고속도로와도 직통하지 않고 고립돼 있다. 양 말단이 연결된 것이 없고, 중간에 타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 있지도 않다. 얘는 무슨 바다를 건넌다거나 경북의 BYC처럼 지금까지 고속도로가 전무하던 오지를 개척한 게 아니며, 나름 수도권에 다른 고속도로들과 교차하거나 근처를 지나는 게 있는데도 말이다. (뭐 수도권에서도 상대적으로 오지에 속하는 그린벨트 지대 위주로 지나기는 하지만..)

얘는 안 그래도 민자이기까지 하니 뭔가 고속도로계의 유아독존 같은 느낌이 들며, 바다처럼 매우 넓긴 하지만 세계 다른 대양들과 통하지 않는 '카스피 해' 같은 호수를 보는 느낌이다. 하긴, '민자 고속도로'라는 개념도 영종도 다리를 경유하는 공항 고속도로 이후로 2000년대 중반에 대구-부산, 그리고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슬금슬금 도입된 개념이다.

용인-서울 고속도로가 혼자만 뻗어 있는 게 좋지 않았는지(창 2:18), 현재는 경부 고속도로와 교차하지만 분기점 없이 그냥 지나치던 곳에 '성남 JC'라고 일종의 '환승 통로'(?)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판교 JC와 대왕판교 IC보다 약간 더 북쪽 지점이다. 이곳을 이용하면 번거롭게 헌릉까지 안 가고 경부 고속도로 라인에서 용인-서울 고속도로에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단, 얘는 사통팔달이 아니라 반쪽짜리로만 만들어진다. 용인(171)에서 서울(1) 방면으로(북쪽), 아니면 서울(1)에서 용인(171) 방면으로(남쪽) 동일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만 가능하지, 용인에서 다시 대전으로 가거나 대전에서 방향을 꺾어서 다시 용인으로 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울러, 얘는 북쪽 서울 방면은 그렇다 쳐도 남쪽은 왜 기존 고속도로와의 연결을 못 시킨 걸까? 동탄이나 오산 정도에서 경부 고속도로와의 분기점을 만들면 연계 효과가 더 커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거기까지는 아마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신경을 못 쓴 것이지 싶다. 저기는 안 그래도 휴게소도 전무한데 거대한 입체 교차로를 만드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그 대신, 하이패스도 있겠다, 앞으로는 이거 뭐 고속도로도 간접· 소프트 환승이란 게 도입될 것 같다.

3. 남해 고속도로, 고속도로의 지선

지난 추석 때 본인은 가족 여행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해 고속도로 일대를 운전할 일이 있었다. 서울· 수도권이 전혀 아닌 곳에 종축도 아닌 횡축으로 8~10차선급의 넓은 고속도로가 있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뭐 부산을 포함해 그 일대의 창원· 마산도 수도권에 준하는 대도시이니 수긍이 갔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함안-마산 구간은 길이 정말 많이 막히고 정체가 심했다. 알고 보니 여기는 원래 아주 악명 높은 구간이라고 한다. 교통 수요에 비해 길이 마땅찮아서 차들이 전부 여기로만 몰리기 때문이다.
그 안습한 철도라는 경전선도 동부 한정으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며, KTX가 지나고 그것도 승객 수요가 아주 많아서 장사가 잘 된다니 말이다. 슬금슬금 복선 전철화 공사도 진행 중이다.

요즘 고속도로도 전국 곳곳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번호들이 많이 등장하고, 특히 지선을 나타내는 세 자리 번호가 많이 눈에 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지선인 151처럼 말이다.
철도가 경전철이 트렌드가 되었듯, 이 좁은 땅에 고속도로도 굵직한 간선은 다 건설되고 이제는 촘촘한 지선을 만드는 게 트렌드가 된 듯하다. 그리고 남해 고속도로는 그 짧은 구간에 그런 지선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철도에 동일 구간을 서로 다른 길로 진행하는 태백선과 함백선이 있듯, 고속도로 중에는 중부 고속도로의 경기도 구간(35)과 제2중부 고속도로(37) 쌍이 있다.
그런데 남해 고속도로에도 마산 시내를 경유하는 제1지선(102)과, 마산 외곽을 더 짧은 거리로 지나는 본선(10)이 이렇게 잠시 분기했다가 다시 만난다. 원래는 지금의 지선이(시내 경유) 먼저 남해 고속도로 구간으로 건설돼 있었지만, 그게 지선으로 바뀌고 나중에 건설된 외곽 지름길이 본선으로 편입된 것이다.

남해 고속도로의 제2지선(104)은 부산 서쪽 외곽의 김해 공항으로 빠진다. 그리고 제3지선(105)은 항구로 빠지기 때문에 일반 민간인이 여행 목적으로 이용할 일은 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2중부 고속도로도 지금 같은 37이 아닌 351이라는 지선 번호가 붙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맥락으로, 서해안 고속도로(15) 주변도 어느 건 둘째 자리수만 변화시킨 17이고 어느 건 아예 지선 번호를 붙인 153인지 좀 헷갈릴 지경이다.

4. 고속도로의 통행료 부과 방식

경부 고속도로의 경우, 가장 북쪽의 서울 시내 구간에 속하는 한남-반포-서초-양재 IC 사이는 엄밀히 말하면 경부 고속도로가 아니다. 입체 교차로와 방음벽이 쳐져 있고 도로 표지판에도 고속도로를 뜻하는 붉은 왕관 모양과 함께 고속국도 1호선이라고 안내는 돼 있지만, 거기는 그냥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같은 서울의 여러 시내 자동차 전용 도로 중 하나일 뿐이다. 정식 명칭은 '경부 간선 도로'이다. 고속도로가 아니므로 여기만 통행하는 것은 아무 제약 없이 무료이다.

진짜로 경부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곳은 양재 IC 이남부터이다. 달래내고개 일대의 그린벨트를 지나고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교차하게 되는데, 여기는 일명 '개방식' 구간이다. 특정 구간이나 IC를 통과할 때만 고정된 액수의 통행료가 부과된다. 주변의 경인 고속도로, 외곽순환 고속도로는 IC가 조밀한 간격으로 굉장히 많이 있기 때문에 일정 간격의 구간별로 톨게이트가 있다(전자).

그러나 경부 고속도로는 폐쇄식 거리 비례제로 요금제가 바뀌는 서울 톨게이트가 따로 있기 때문에 위와 갈은 형태의 톨게이트는 없다. 다만, 서울 톨게이트의 이북이고 그렇다고 무료 서울 시내 구간에도 속하지 않은 대왕판교 IC와 판교 IC는 서울 방면으로부터 진출할 때에 한해서 소액의 고정 통행료를 징수한다.

부산 방면으로부터 와서 판교로 나가는 거라면, 이미 서울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낸 상태이기 때문에 판교 IC에서 또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또한 판교 IC를 통해 부산 방면으로 진입하는 거라면 역시 서울 톨게이트를 곧 통과하게 될 것이므로 통행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판교 IC의 통행료 징수는 전적으로 서울-판교 단거리 왕래를 대상으로만 적용되는 셈이다.

판교 IC 말고 판교 JC는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경부 고속도로가 만나는 분기점이다. 얘를 통해서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도 판교 IC로 나갈 수가 있는데, 이때는 비록 부산이 아닌 서울 방면으로부터의 진출이지만 청계나 성남 톨게이트처럼 인근의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냈다는 영수증을 제시하면 판교 IC에서 돈을 또 내지 않고 나갈 수 있다.
이건 대중교통으로 치면 일종의 환승 할인이나 마찬가지인 개념이다. 복잡한 규칙이지만 이것도 하이패스만 달고 있으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나가든 다 알아서 자동 처리된다.

판교 JC 역시 사통팔달 뚫린 길이 아니다.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는 경부 고속도로의 부산 방면으로만 나갈 수 있지, 서울 방면(양재, 한남)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리고 경부 고속도로도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 서울 방면 차량만 외곽순환으로 나갈 수 있지, 서울에서 부산 방면으로 향하던 차량이 외곽순환으로 갈아탈 수는 없다. 이런 구조 때문에 판교 IC도 외곽순환으로부터 유입되는 것만 가능할 뿐, 판교 IC에서 외곽순환 고속도로로 갈 수는 없다. 서울(여기서 통행료 내고) 또는 부산으로 경부 고속도로만 탈 수 있을 뿐.
저기 일대는 굳이 사통팔달 안 뚫어도 차들로 넘쳐나는 곳이니, 서울 일대에서 외곽순환이나 잠깐 타는 차들은 경부 말고 다른 대체 도로를 이용하라고 저렇게 막아 놓은 것 같다.

요렇게 개방식 요금제 구간에서 반쪽짜리 톨게이트를 굴리는 고속도로 나들목이 경부 고속도로의 판교 IC(서울 톨게이트 이전) 말고도 중부 고속도로의 하남 IC(동서울 톨게이트), 그리고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덕소삼패 IC(남양주 톨게이트)가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는 그런 특이한 IC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나면 하이패스가 없는 차량은 통행권을 받으며, 진출하는 IC에서 통행권을 반납함과 동시에 이용 거리에 비례한 통행료를 낸다. 모든 차량이 하이패스가 장착되고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 진출입로가 실시간으로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거리 비례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면 골치 아픈 개방식· 폐쇄식 같은 구분이 사라지고 통행권 발급과 현금 취급 같은 번거로운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넓은 톨게이트 부지도 필요 없어지니 거기는 공원이나 휴게소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8/01/25 08:29 2018/01/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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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언어유희 관찰

1. '아' 다르고 '어' 다름

  • 이건 번역이 아니라 반역이다.
  • 이건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다.
  • 저놈들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소탕의 대상일 뿐.

음운 하나만 바꾸니 긍정· 중립적인 심상이 확 부정적인 심상으로 바뀜.
이런 맛깔나는 개드립을 만들 수 있는 예가 또 뭐가 있나 궁금하다.

ㅐ와 ㅔ도 '한대', '한데', '한 데' 모두 다름.
'매다'와 '메다', '결제'와 '결재' 의외로 구분하기 아주 어렵다.
"사랑해 보고 싶다", "사랑해. 보고 싶다"가 다른 것만큼이나...!!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2. I sawed the demons

Doom 1 게임의 배경 음악 중에 제목이 "I sawed the demons"인 곡이 있는 걸 보고는 표현의 기발함에 빵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국산 영화 중에 "악마를 보았다"가 있는데.. saw가 아니라 sawed이다. 핑키데몬 패거리를 훌륭한 대화수단인 전기톱으로 쓱싹쓱싹 썰어 죽였는가 보다.

이런 식의 말장난들을 수집하면 자료가 잔뜩 모이지 싶다. 하긴, 레밍즈의 레벨 이름 중에도 "No problemmings!" 같은 게 있었고 말이다.

3. 중의성

난 벡터의 외적이라고 하면 당연히 3차원에서만 정의되고 결과값으로 역시 벡터가 나오는 그 연산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키백과를 보니.. 내적이 행벡터(한 줄짜리..)와 열벡터(한 칸짜리)의 곱으로서 스칼라이듯이, 외적은 반대로 열벡터와 행벡터의 곱으로서 행렬이 나오는 연산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내가 원래 아는 그 외적은 '벡터곱'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하더라.

자동차 기계에서 '로터리 엔진'도 이와 비슷한 중의성과 혼동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다. 모든 행정이 피스톤의 상하 왕복 없이 태생적으로 곧장 회전으로 바뀌는 엔진을 뜻하지만, 한편으로 실린더가 불가사리 팔처럼 달려 있는 '성형'(별 모양 같은.. 星形) 엔진도 로터리라고 불리는가 보다. 내가 아는 로터리 엔진은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반켈' 엔진이라고 부른다.

'반켈'을 자음 역행 동화까지 반영해서 '방켈'이라고 적는 건 내가 알기로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허용돼 있지 않다. 그래도 이런 음운 변화가 한국어에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영어로도 같은 접두사가 correct의 반의어는 in-correct이지만, possible의 반의어는 im-possible이다~!

4. 마술사와 마법사

magician sorcerer wizard. 마술사 요술쟁이 마법사.
다~ 그 말이 그 말 같다.
심지어 성경에서도 셋 다 등장하며, 별다른 구분이 없이 공평하게 다소 부정적인 심상으로 쓰였다. 출 7:11, 단 2:2처럼.

오늘날의 용례를 따라 좀 구분하자면, M은 영국 신사 검은 모자 검은 정장 차림으로 흰 장갑을 끼고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그 사람을 가리킨다. 즉, 전적으로 기술과 트릭만으로 마술 쇼를 선보이는 직업 엔터테이너이다.
유럽에서는 단두대를 작동시키는 사형 집행관이 경찰· 군인 제복 차림이 아니라 저런 마술사 같은 정장 차림이기도 했다. 나름 전문직임을 표방하고 사형수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S는 마법사 중에서도 좀 사악한 마법사.. 과학자로 치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느낌이 난다. 똑같은 뱀도 snake 대신 serpent, 돼지를 pig 대신 swine이라고 부르는 듯한 그 느낌이다.
각종 동화와 게임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마법사는 전부 이 칭호가 붙는다. 알라딘과 페르시아 왕자에 나오는 Jafar처럼 말이다.

W는 소매가 치렁치렁 내려오는 군청색 계열 robe 차림에다 비슷한 색깔의 고깔도 쓴 백발 할아버지 마법사를 가리킨다. 우리에게 딱 이렇게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참고로 위저드의 여성 버전이 바로 witch(마녀..!)이다. 얘는 옷차림은 남자와 비슷한데 코가 툭 튀어나왔으며,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세계를 통틀어 wizard라는 단어의 용례를 크게 바꿔 버린 이력이 있다. 자기 컴퓨터 프로그램 UI 요소 이름을 '마법사'라고 붙였기 때문이다. '다음', '다음' 누르면서 몇 가지 선택만 하면 나머지 작업은 마치 컴퓨터가 마술을 부리듯이 짠 알아서 해 준다고..;;
그거 원조가 1994년 Word 6.0에서 도입된 문서 작성 마법사(정확히는 문서· 양식마당 같은 기능)이다. Visual C++에서도 초기 프로젝트를 세팅해 주는 기능의 이름이 AppWizard이다.

5. 토마토와 감자

개인적으로 유튜브에서 즐겨 보는 Doom 2 플레이 동영상 시리즈 채널이 있다. 중계를 하는 아저씨가 말을 참 찰지게 잘했다. replenish the ammo (탄약을 보충) 이런 말도 하길래 지금까지 성경에서 문어체로만 보던 replenish가 현대에도 구어에서 저렇게 쓰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양반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시뻘건 둥근 몬스터 Cacodemon을 토마토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big red tomato랜다.. ㅋㅋ 카코데몬이 토마토라니.. 완전 창의적인 발상이다.
그리고는 비슷한 계열의 갈색 몬스터인 Pain Elemental을 감자라고.. potato라고 불렀다. 한국어 내지 한글 표기로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영어로는 감자와 토마토가 묘하게 롸임이 잘 맞는 단어들이다. =_=;; 유전공학에서도 괜히 pomato라는 말을 만든 게 아니다.

하긴, 스타크래프트에도 비슷한 예가 있으니, 바로 템플러 두 기가 합체한 아콘이다. 빨간 공(다크 아콘), 파란 공(그냥 아콘) 둘을 싸잡아서 전구 러쉬라고도 하는데 꼭 리버처럼 특정 동물이나 벌레를 닮지 않은 아닌 유닛도 이렇게 애칭이 존재하는가 보다.

6. 어휘 병렬

난 초월번역 때문에 퍼진 이런 유행어들을 좋아한다. '찢고 죽인다'(rip and tear), '크고 아름다운', '힘세고 강한'(mighty fine...??)..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는 딱히 초월번역은 아닌 것 같다.
awe는 성경에서도 fear와 비슷하지만 좀 더 놀라움과 존경(대단하게 여김)의 뉘앙스가 가미된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또한, 유의어를 대구· 병렬해서 의미를 강조하는 것 자체도 성경에서 문학서 위주로 즐겨 쓰이는 수사 기법이다.
우리말에서는 기도할 때 많이 쓰이는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 이것도 비슷한 용례일 수 있겠다. 엄밀히 말해 주술 호응이 어법상 좀 안 맞긴 하지만 말이다.

병렬과 대구는 유의어로 할 수도 있고 반의어로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수학을 좋아하는데, 그 다음으로 수학을 도구로 사용하는 과학 계열 과목을 덩달아 좋아하고 잘한다면 그건 뭐 뼛속까지 이공계 적성일 것이다. 이런 건 일종의 유의어 병렬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인이 영국, 캐나다 같은 나라의 복수 국적도 덩달아 갖고 있는 격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수학을 좋아하는데 극도의 추상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니 그 다음으로 철학이나 신학(...)으로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파스칼은 대표적인 예이며, 아이작 뉴턴도 물리뿐만 아니라 저 바닥으로도 사상이 장난 아니게 심오하고 책도 많이 쓴 사람이었다.
이런 건 반의어 병렬인 걸까? 미국인이 호주나 일본 같은 나라의 복수 국적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7. 영화 대사

(1) 범죄도시 영화에 나오는 '진실의 방'과 '전 변호사'
이말년 씨리즈에 나오는 '존대말 학습기'
가혹행위 고문 도구일 뿐인데 쓸데없이 병맛 고퀄의 이름을 붙여 놓은 예가 또 뭐가 있을까?
이런 거 나오면 재미있다. 범죄도시에 나오는 '휘발유와 경유'는 둘리에서 '핵폭탄과 유도탄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배우는 언어 예절은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 When someone says 'hi,' it's usually polite to say 'hi' back. (테이큰.. 끝날 때 다 돼서)
  • You forgot to say 'please'. (터미네이터 2 첫부분..)

정말 기가 막히게 대사를 쓴 것 같다.. ^_^
특히 후자의 경우, 그 마초 아저씨는 자기에게 대뜸 "오토바이, 재킷, 구두 좀 내놔"라고 요구하는 벌거벗은 청년에게 담배빵까지 선사하면서 참교육을 시도하지만, 상대는 터미네이터인지라 교육이 통하지 않고 자기가 쳐발렸다..;; (아 그나저나 벌거벗은 남자에게 담배빵이면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종말편과 비슷한 장면이네..!! ㅋㅋㅋ)

(3) 내가 타이타닉 호 내지 영화 타이타닉 얘기를 하면서도 지금까지 이걸 언급한 적이 없었구나. 칼의 집사이며 흥신소 탐정 출신의 '러브조이'는 악역인데 왜 이름을 하필 성경적인 심상이 굉장히 강한 '러브조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는지 궁금하다.
갈 5:22가 말하는 '성령의 열매' 중 첫째와 둘째가 바로 사랑, 기쁨(love, joy)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peace, longsuffering 등이 이어진다.

영화를 본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본인은 오로지 칼만이 속물 나쁜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 원리 원칙대로라면 타이타닉은 음행을 자유로운 사랑이라고 정당화· 미화하는 색채가 짙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칼은 싫지만 칼의 다이아몬드 선물은 싫지 않았던 로즈의 행동도 역시 비판받을 점이다. -_-;; "과속 칼치기 vs 차로 안 지키기"만큼이나 내가 나이가 들면서 생각과 관점이 약간 바뀌었다.

8. 나머지..

  • '자급자족'과 '자업자득'은 용도와 뉘앙스가 굉장히 다른 사자성어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의외로 구분이 쉽지 않은 게 느껴진다...;;
  • 망치와 마치, 갯벌과 개펄.. 이렇게 원래는 발음이 미묘하게 다르고 뜻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구분이 없어져 버린 말의 예가 더 있을까? 돌과 돐도 비슷한 경우이겠다.
  • 동물 중에도 이리와 늑대(wolf), 부엉이와 올빼미(owl) 같은 건 구분이 꽤 애매하다.
  • 서울랜드는 '서울 대공원'의 안에 있는 놀이공원이고, 반대로 롯데월드는 놀이공원인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포함한 복합 시설의 총칭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둘을 섞어서 아무 명칭이나 놀이공원을 가리키는 용도로 쓰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22 08:31 2018/01/2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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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서울 밖으로 등산 갈 때는 성남, 하남, 구리 등 동쪽을 다니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서쪽의 광명으로 원정을 갔다.
광명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이 자그마한 산맥을 이룬다. 산들의 높이 자체는 200m대에 지나지 않지만 수평 거리가 긴 편이어서 산책하기 좋다. KTX 광명 역은 최남단에 있는 서독산의 동쪽에 있으며, 광명 시내보다는 안양과 더 가까이 있다.

본인은 광명시 보건소 근처에서 구름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구름산과 가학산의 정상을 보고, 거기서 곧장 하산했다. 그리고 광명시에서 대대적으로 밀고 있는 관광 명소인 '광명 동굴'을 구경하고 왔다. 즉, 맨 위와 맨 아래의 두 산은 건너뛰고 중앙의 두 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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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째 공원처럼 등산로가 넓고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벤치와 정자도 많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는 그렇잖아도 '구름산 도시 자연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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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구름산과 가학산을 통틀어서 산 속의 정자들은 이렇게.. 나무 기둥이 수직이 아니라 아래로 쩍 벌어진 스타일이었다. 이런 정자는 처음 봤다.

공원 구간을 벗어난 뒤부터 등산로는 여느 산길처럼 울타리 없는 좁은 흙길로 바뀌었다. 중간에 산을 관통하는 구름산 터널을 타넘었다. 여기는 전반적으로 흙산이지만 바위도 종종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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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관악산 방면을 바라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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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앞두고 여느 정자보다 좀 높은 2층 정자가 나타났다. 산불 감시 초소라고 하는데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등산객용 전망대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산 속에서 이런 정자를 찾아가서 비를 피하고 야영을 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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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동쪽 아래는 빽빽한 시가지인 반면, 서쪽 아래는 비교적 한적한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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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는 커다란 표지석이 있고, 붉은 기둥의 정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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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산 정상에서 가학산으로 가려면 능선만 타는 게 아니라 고개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했다. 능선에는 군부대가 있고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있지만 공군은 아니고 육군 부대였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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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이다. 등산로가 군부대 철책보다 아래에 있다.
그리고 어디서부턴가 이 길은 '광명 누리길'이라는 팻말이 나타났다. 각 도시들이 자기 관할인 산들에 등산로· 산책로를 개척해 놓고 이름을 붙이는 건 유행이라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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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드디어 가학산의 정상에도 도달했다. 표지석은 앞면과 뒷면에 한글과 한자 표기가 모두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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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얘기했듯이, 가학산 정상에서 계속 남쪽으로 진행해서 서독산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은 그러지 않고 서쪽의 광명 동굴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기는 보다시피 그냥 절벽이기 때문에 굉장히 급격한 계단을 따라 잠깐 내려가야 했다.

산 아래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저 건물은 '광명 자원 회수 시설'이라고 한다. 굴뚝이 정말 크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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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동굴이란 자연 동굴이 아니라 가학산의 기슭과 아래에 꽤 방대하게 뚫려 있던 광산이 원조이다. 강원도가 아니라 서울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그리고 그냥 평범한 동네 뒷산 같은 이런 산의 아래에 광산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꼭대기는 군부대이고 땅 속은 광산이라니 으음..
석탄은 아니고 여러 종류의 중금속들이 그럭저럭 채굴돼 나왔다고 한다. 구리, 아연뿐만 아니라 금과 은도 약간이나마 나왔다.

이 광산은 일제 강점기이던 1912년에 처음 개척되었고 해방 후에도 수십 년간 광부들의 일터 역할을 했으나, 그로부터 딱 60년 뒤인 1972년에 환경 오염 문제(그리고 아마 채산성도 감소)로 인해 폐광하게 됐다.
그 뒤 이 부지는 몇십 년 동안 버려져 있었는데, 2010년대에 들어서 광명시에서 약 빤 모험을 시작했다. 폐광을 테마파크 관광지로 마개조한 것이다.

이건 온통 산이고 광산도 제일 많은(그래서 철도도 산업선이 제일 먼저 깔린..) 강원도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 강원도는 광업이 망하면서 지역 경제가 싹 죽자 호텔· 콘도 짓고 올림픽 유치하고 강원랜드 같은 카지노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과정을 거쳐서 구 가학 광산은 2011년에 처음으로 일부 구간만 민간에 개방되었다가 몇 년 뒤엔 별별 물고기· 식물 전시관, 좀비 체험(!)관, 그리고 와인 갤러리 등이 추가되고 이름도 '광명 동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료 입장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높은 천장에 거대한 계단을 타고 밖으로 나가던 홀(?) 비슷한 장소는 공연장으로 바뀌었으며, 그쪽으로 나가지는 않게 동선도 바뀌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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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갱도라는 게 대체로 그렇듯이, 출입구는 평지보다 높은 곳에 있지만 채굴을 계속할수록 엄청나게 낮고 깊어진다. 가학 광산도 원래 지하 9층까지 있었지만 광명 동굴은 두 층만 사용하며, 지금도 민간에 개방된 공간은 극히 일부뿐이다. 물론 그 두 층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건물 두 층 높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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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답게 나름 이렇게 보물 코스프레를 해 놓은 곳도 있다. "알리바바와 40명의 도둑"에서 '열려라 참깨' 동굴 안 모습이 이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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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전시관 구경을 다 하고 올라온 뒤에는 광산 역사관과 와인 갤러리를 둘러본 뒤 퇴장하게 돼 있었다. 저런 모형도 있고, 방 중앙에는 아래의 광부들이 탄 리프트를 끌어올리는 엘리베이터 기계실처럼 생긴 물건도 전시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Doom 2의 레벨 26 The abandoned mines가 딱 이런 구조물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맵이다.

세상엔 여러 극한 직업들이 있지만 광부는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3D 극한 직업이지 싶다. 뭐, 농부· 어부에 비해서 날씨는 별로 타지 않는 직업일 것 같지만, 날씨보다 더 위험한 요소가 널려 있다. 오죽했으면 미성년자는 물론이고 여성은 소수의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하면, 갱내 근로가 아예 대놓고 "금지"돼 있으며(근로기준법 제72조), 우리나라에서 옛날에 어떻게든 외화 벌려고 그 먼 독일까지 괜히 광부(+간호사)를 보낸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절엔 가정과 나라가 얼마나 가난했으면, 거기에라도 가려고 대졸자들이 바글바글 몰렸으며, 너도 나도 손에 일부러 연탄 가루까지 묻히면서 면접관에게 "꼭 가고 싶습니다!"라고 외쳤었다. 돈을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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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전등갓조차도 와인 잔을 엎어 놓은 형태이더라.
하긴, 포도주는 생각보다 종류가 굉장히 많고 와인 잔도 종류가 다양했다.
포도를 재배하지도, 포도주를 생산하지도 않는 웬 수도권의 어느 도시가 전국 최대의 포도주 판매· 유통처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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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등산과 동굴 구경을 마치고 나왔다.
차 없이는 다니기 힘들어 보이는 오지이지만 유일하게 17번 버스가 광명 동굴을 찾은 뚜벅이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나가니 KTX 광명 역이 나왔다. 난 광명 역의 주변 지상에서는 철길을 전혀 볼 수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또한, 역 주변으로는 어마어마한 높이과 크기의 아파트인지 주상복합인지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호반베르디움??)
본인은 여기서 오랜만에 광명 셔틀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광명에는 저렇게 폐광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동굴이 있고 고속철 역이 있고 경륜 경기장도 있고(광명 스피돔. 하남에는 미사리 카누 경기장), 이케아도 있다(하남에는 스타필드?).
나름 광명 시장이 시의 인지도를 올리려고 유치해 낸 거라고 하니, 그 사람이 참 유능한 인물인 것 같다.

저기는 그냥 경부선 철길에서 미묘하게 비껴 간 오지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옛날에는 "지하철 타면서 농사 짓는 이색적인 사람"라고 해서 광명의 어느 서울 근처 그린벨트에서 사는 할아버지 소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거기도 온통 개발되고 있으니 그런 사람을 볼 일이 없어질 것이다.

광명에서는 광명 동굴을 명물로 밀고 있는데, 구리시에서는 왕릉을 밀고 있다. 오죽했으면 근처의 버스 정류장을 아예 긴 명사절로 지었다.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인 동구릉.. -_-)
다음 산행 내지 산책 때는 저기도 언젠가 가 볼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9 08:32 2018/01/1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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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아차산

본인은 지난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블로그의 여행 카테고리가 대부분이 등산 후기로 도배될 정도로.. 서울 근교의 어지간한 산들은 다 돌아다녀 봤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처럼 점점 더 먼 곳에 있고 더 크고 높고 유명한 산들로 원정이라도 가야겠지만 본인 여건상 그렇게는 못 하고, 일단은 예전에 이미 올랐던 산들을 다른 등산로로 다시 오르는 쪽으로 등산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특히 지금 정도로 지리 특성과 역사 배경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사진과 여행기를 남기는 관행이 정착하기 "전", 완전 초창기나 더 옛날에 올랐던 산들이 이런 복습 대상이다.
아차산은 서울 시내에 가까이 있고 높이도 아주 낮아서 만만하고, 먼 옛날에 회사 사람들과 같이 오른 적이 있으며 2016년경에 용마산 쪽에서 혼자 답사한 적도 있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또 찾아갈 일은 없으리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깨고 다시 가 보니 예상 밖으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아차산은 도보 내지 대중교통으로는 말 그대로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 역에서 접근 가능하다. 단, 역은 천호대로라는 큰길에 있으며 여기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또 수백 m~ 1km가량 떨어져 있는데, 등산로 코앞까지 도달하는 대중교통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산을 향해 미묘하게 오르막 형태인 긴 먹자골목과 주택, 빌라를 지나야 한다.

자동차로는 여기뿐만 아니라 ‘아차산로’라는 찻길을 통해 산기슭의 공영 주차장까지 접근할 수 있다. 아차산-광나루 사이의 고갯길을 지나다 보면 위로 차도가 고가 형태로 지나는 걸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길이다. 아차산은 마치 북악산의 북악 스카이웨이처럼 막 높게는 아니어도 내부에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으며, 이게 동쪽의 장신대와 워커힐 호텔 및 아파트 쪽으로도 간다.

아차산의 여러 등산로 중 이렇게 남쪽 공영 주차장 일대는 여느 산답지 않게 상당한 고퀄로 꾸며져 있다. 바로 근처에 외국인들이 찾는 고급 호텔이 있기 때문인지, 아차산성 같은 고대 유적이 있기 때문인지, 등산로가 서울 둘레길로 지정됐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가 법적으로 무슨 국립공원 같은 급은 절대 아니며 발굴된 삼국시대 유적이 무슨 경주 남산 같은 급으로 양과 질이 엄청난 것도 아닌데, 더구나 이웃의 용마산 등산로를 비교해 봐도 아차산 서울 구간은 뭔가 특별한 관리를 받아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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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기 전, 주차장 근처에 이런 생태 공원이 있는 걸 발견하고 들러 봤다. 공원 자체도 평지가 아니라 비탈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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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아차산성 + 아차산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날은 맑고 덥지 않으며, 나뭇잎들은 아직 단풍으로 물들지 않고 초록색이 남아 있으니 이런 날이 등산 가기 아주 좋았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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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은 주변 조사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니 여기 일대에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울타리· 표지판과 함께 근처만을 스치듯이 구경할 수 있었다.
사실, 산에 군사 보안 시설이 전혀 아니면서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을 보는 일은 몹시 드물다. 우면산 같은 산은 아예 과거 지뢰 매설 지역이라는 경고문까지 있지 않던가?

아차산엔 군사 시설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등산로를 벗어난 다른 어딘가에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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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가 곁들어진 흙길을 벗어난 뒤부터는 등산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흙길 대신 암반이 등장하고, 나무 없이 하늘이 뻥 뚫린 곳이 나타났다. 그리고 산 아래의 전망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본인은 옛날에 아차산을 오를 때에는 이런 흙길 대신 암반이 굉장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산을 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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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망대에는 무료 망원경도 비치되어 있었다. 평범한 서울 야산에서는 보기 드문 시설이다.
아차산과 그 북쪽 산맥(?)은 나름 서울과 구리시의 경계이다. 예전에 일자산이 동서로 서울과 하남시를 갈랐던 것처럼 말이다. 둘 다 서울 동부에서 서울 둘레길 경로라는 공통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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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한 언덕을 올라서 아까 전에 지나쳤던 다른 언덕을 찍은 것이다. 요게 아차산 상부의 특징이다.
여기 일대의 넓은 공터가 아마 정상은 아니고 "해맞이 광장"이었지 싶다. 여기서 풍경 사진을 여러 구도로 남기긴 했지만, 전부 게재는 시간과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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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산 위의 풀밭 같은 평지를 지났다.
산 꼭대기 근처에 넓은 평지가 있으면 거기는 십중팔구 H자 모양의 헬리패드가 있을 텐데, 여기는 그렇지도 않았다.
풀밭에 돗자리 깔고 앉고 싶기도 하지만.. 길을 벗어나지 말라고 울타리가 낮게나마 계속 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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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돌무더기 위의 마지막 평지가 바로 아차산의 정상이었다. 정상 표지석 같은 건 없고 그냥 문화재 유적 설명만 있었다.
아차산 자체는 높이가 300m도 채 되지 않고 서울 남산과 비슷한 급일 뿐이다. 다만, 높이 대비 비탈이 완만하고 이동 거리는 긴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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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깔린 돌무더기는 역사 고증을 거친 건지 아니면 별 생각 없이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만, 흰색과 누런색이 어우러진 게 마치 은덩이 금덩이 같고 색깔 배색이 나름 화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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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정상의 바로 옆에는 저렇게 이웃의 용마산이 있다. 아차산 정상 이후에 그냥 이 봉우리로만 하산하는 길은 딱히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반면, 서울 둘레길은 용마산 방면으로 형성돼 있다. 거기서 용마산 정상으로 가려면 서쪽으로 더 가야 하고, 둘레길은 북쪽 망우산 방면으로 향한다.

본인은 아차산 정상을 찍은 이후에는 일단 서울 둘레길을 선택했다. 여기부터는 작년에 답사했던 구간과 중복이니 헬리패드나 보루 같은 장소를 옛날에 봤던 기억이 슬금슬금 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용마산 정상 도착 직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 반면, 이번엔 날씨가 아주 맑으니 분위기가 좋은 대조를 이뤘다.

단, 그때는 망우산 묘지 구경을 하느라 서울 북부로 빠져나가 버렸으니 이번에는 산 동쪽의 구리시 방면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깔딱고개를 오르내린 뒤 사거리가 등장했을 때, 본인은 "아치울 마을" 방면을 선택했다. 좀 충분히 많이 걷고 나서 구리시 북부에서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심지어 발 아래로 아차산 터널조차 넘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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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고 좁은 구리시에서도 아차산의 자기 관할 영역 내부에 나름 ‘구리 둘레길’이라는 걸 제정해서 홍보하고 있었다. 여기는 별다른 문화재 유적은 없고 그냥 울창한 숲길이 이어졌다.
처음 입산했던 서울 광진구 관할 구간에 비해 훨씬 조촐 단촐했으며 다른 등산객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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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에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다만, 수질 검사를 언제 해서 결과가 어떻게 나왔다는 쪽지가 붙어 있지는 않았다.
아치울 마을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나름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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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마을이 나타났다. 등산 마치고 내려가면서 과천, 광주, 남양주, 하남, 성남 등 여러 곳의 산기슭 마을을 구경했는데, 구리시의 마을을 이렇게 구경하는 건 처음이었다.
본인은 뒷산이 병풍처럼 깔렸고 단독주택과 빌라들이 들어선 한적한 마을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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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차산 등산을 마치고 마을 어귀에까지 도달한 뒤, 대로(아차산로, 국도 43호선)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바로 옆에 강변북로(거의 시점!)와 한강이 지난다.
이곳을 지나는 버스들은 대부분 광나루 역을 경유하고, 모든 버스들이 닥치고 강변 역으로 갔다. 거기가 시· 종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일대에 석유 공사의 본사일 리는 없고 철조망이 둘러진 무슨 시설이 있는 것을 차창 밖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민간 지도에는 당연히 숨겨져 있고.. 나름 아차산에도 보안 시설이 하나 있긴 하구나.
성남 석운동에는 송유관 공사가 있더니 성격이 비슷한 시설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6 08:37 2018/01/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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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버전 개발 근황 2

오늘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 9.3에서 팝업창 형태로 새로 추가되는 보조 입력 도구 두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1.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이 입력 도구는 구동 직후에 화면에 뜨는 것이 없다. 그 대신, 사용자가 뭔가 한글 입력 같은 조합을 만들기 시작하면 짠 나타나서 지금 단계 이후에 진행 가능한 조합(왼쪽)과, 이 상태에서 변환 가능한 후보 문자열(오른쪽)들을 목록으로 쫙 표시해 준다.
사용자 정의 조합의 경우, 가령 A를 누른 뒤에 ' ` ^ -이런 것을 뭘 더 누를 수 있고, 그걸 누르면 문자가 무엇으로 바뀌며, 지금 상황에서 무슨 문자로 변환 가능한지 목록으로 미리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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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영문 쿼티에다가 글자별로 온갖 확장 부호들을 후보로 배당해 놓은 QwertyExt 예제를 불러온 뒤 =를 눌렀을 때 나타나는 목록이다. 비록 단어 단위가 아니고 글자 단위이긴 하지만, 일일이 한자 글쇠를 누를 필요 없이 곧장 후보 변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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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각각 한글과 라틴 알파벳으로 일본어 히라가나 문자를 입력할 때 나타나는 목록의 모습이다. 지금 상황에서 저런 알파벳이나 한글 자모를 누르면 저런 문자가 계속 입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정보다 약간 옅은 회색 글자는 이 문자가 조합이 아닌 완성된 형태로 삽입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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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한글 조합은 사용자 정의 조합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테이블 기반이 아닌 '공식 기반'이니 직관적인 편이며, 조합 가능한 글자 수도 아주 많다. 그렇기 때문에 'PC+현대 한글' 같은 아주 널널한 경우라면 굳이 이런 식의 preview 기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글 입력도 옛한글을 다룬다거나 글쇠 수가 아주 적은 모바일 내지, 허용 한글 제약 기능이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면 이 도구의 유용성이 크게 올라간다. ㄹ로 시작하는 옛한글 겹자음은 ㄷ으로 시작하는 옛한글 겹자음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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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뿐만 아니라 '두'다음에 결합 가능한 옛한글 중성들도 저렇게 쫙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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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 낱자 입력 로직 생성기'를 돌려서 KS X 1001 완성형 한글만 입력 가능하게 하고, 더 결합의 여지가 없는 단계에 도달하면 조합을 곧장 끊게 오토마타를 설정했다. 그랬더니 '바'와 '파'에 대해서 이렇게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 '파' 다음에는 '바'와는 달리 ㄷ, ㄺ 같은 받침이 붙지 못한다. '바'는 반대로 '파'에 있는 받침 ㅆ이 존재하지 않는다.

'박'은 '밖'이 결합 가능하며 '발'은 그 뒤로 '밝, 밟'이 존재하기 때문에 쟤들 둘만 회색이 아닌 검정으로 표시되어 있다. '밟'이 저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ㄼ이 단독 글쇠로 존재하지 않는 세벌식 390 글쇠배열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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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입력 도구는 현재 사용 중인 키보드 입력 스키마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입력 기능을 갖춘 타 입력 도구를 기준으로도 잘 동작한다. 한손 입력기는 저렇게 천지인 (또는 옵션을 바꿔서 나랏글) 모음에다가 5개 자음(초성 종성 따로)을 갖췄다는 것이 목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글 조합에 대해서 진행 가능한 조합 단계는 (1) 가장 최근에 입력된 낱자에 대해서 더 적용 가능한 낱자 결합 규칙을 모두 먼저 표시한 뒤, (2) 바로 다음 입력 단계(가령, 중성 다음엔 종성)에 해당하는 글쇠들 중 글쇠배열에 있는 것을 표시하는 식으로 동작한다.
즉, 낱자 결합 규칙과 글쇠배열을 기본적으로 활용하되, 이 중에서 오토마타 수식과 한글 입력 범위 제약 검사를 통과한 것만 한정해서 가나다 순으로 출력한다.

이 도구는 오로지 현재 조합 중인 문자(열)에만 관심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성을 입력하고 있을 때 다음 글자의 초성이나 중성(두벌식 기준)까지 미리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사용자의 요청이 많고 그것까지 고려하는 게 충분히 유용하다면 다음 버전에서는 반영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제외했다.

그리고 이미 제공되는 후보 변환 UI와는 달리, 숫자를 눌러서 항목을 바로 선택하는 기능도 제공되지 않는다. 얘는 후보 변환 UI보다는 개발툴의 에디터 같은 데서 제공하는 "자동 완성 목록 UI"를 표방하여 설계됐기 때문이다. 키보드를 사용하려면 설정 대화상자에서 옵션을 지정해야 하며, 이 경우 상하좌우 화살표와 Page up/down으로 선택막대를 이동시킬 수 있다. 엔터와 ESC는 덤이고.

이 도구는 '글쇠배열 이름 표시'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cursor의 바로 아래에 표시돼야 한다. 하지만 구현체의 상황에 따라서는 기술적으로 위치를 알 수 없어서 불가피하게 화면 한구석 같은 엉뚱한 곳에 표시될 수도 있다.
심지어 EditPlus 3.x는 이 도구를 띄워 놓으면 조합 문자열이 계속 같은 곳에서 덮어 써지면서 입력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후대 버전에서는 고쳐졌나 모르겠다.

이 프로그램이 근본적으로 없는 길을 트는 방식으로 동작하며, 한 프로그램에서 되게 하는 방법이 다른 프로그램에는 부작용을 일으키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EditPlus 한 프로그램에서만 부작용이 발생하는 걸 더 어찌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일단 개발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음을 밝힌다.

2. 조합 안에 조합 생성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말 그대로 한글을 입력하는 게 핵심인 입력기이다.
한글 IME는 조합하고 있는 한 글자만 신경 쓰면 되지 중국어나 일본어 IME처럼 단어· 문장을 통째로 조합을 잡을 필요가 없다. 길다란 조합 문자열 내부에서 또 가상의 caret을 이동한다거나 구간별로 영역을 달리하여 점선이나 실선으로 표시할 필요도 없다. 그건 내 프로그램의 관심 분야가 아니라고 도움말의 '일러두기'에다가 명시까지 해 뒀다.

개발자인 본인의 시간과 체력은 매우 한정돼 있는데, 이 와중에 관심 분야를 대책없이 이것저것 문어발처럼 뻗치다 보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죽도 밥도 안 되는 이상한 산으로 가 버릴 위험이 있다. 더구나 편집기 같은 전용 프로그램이라면 모를까 외부 모듈이라면, 한글 IME에서는 어차피 운영체제가 조합을 그렇게 일본어· 중국어 IME처럼 표시하는 기능을 애초에 지원해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프로그램도 기왕이면 타 언어 IME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수 있으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본인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해 왔다. 기약 없는 먼 미래의 일이지만 장기 과제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2017년 겨울~그리고 올해 초 사이에 바로 그 꿈이 실현되는 미래가 찾아왔다.
글자 단위로 동작하는 기존 문자 생성기를 내부 버퍼에다 감싸서 단어· 문장 단위로 통째로 변환 후보를 제시하고 변환하는 기능들에 대해 공통 인터페이스를 제시하고, 이걸 '입력 도구'의 형태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한글을 글자 단위로 곧장 내보내지 않고 묶어서 내보내는 것은..

  • 과거 도스용 아래아한글에서 잠시 제공하던 새김 단위로 한자 입력
  • TSF를 지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에서도 단어 단위로 한글-한자 변환. 특히 매번 한자 키 안 누르고 곧장 변환하기
  • 한글 발음으로 일본어나 중국어 입력 (당연히 단어· 문장 단위로 한꺼번에 변환)
  •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듯이, 자주 사용되는 단어의 자동 완성

이렇게 잠재적인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냥 공통 인터페이스를 상속받아서 각 기능별로 후보를 제시하는 알고리즘만 달리하면 된다. 구현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되어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다 뜯어고치고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만큼 보람을 느낀다.

'새나루' 입력기에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개발 방향의 컨셉· 차이로 인해 제공하지 않던 기능이 두 가지쯤 있었다. 하나는 드보락이나 콜맥 같은 임의의 영문 키보드 드라이버를 한글 IME(= 새나루 자신)와 연결하는 기능이다. 이건 내 프로그램도 지난 8.6 버전 때부터 드디어 도입됐다. 임의의 키보드 드라이버와 연계 가능하게 프로그램 구조가 싹 개선되면서 두 입력기 간의 차이가 없어졌다. 내 프로그램은 그에 덧붙여 키보드 드라이버의 동작을 보정하는 옵션까지 갖추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자 변환 관련이다. 새나루는 한글, 영문처럼 '한자'라는 입력 모드가 있어서 (1) 매번 한자 키를 누르지 않아도 한자 후보가 한글과 함께 곧장 떠서 변환할 수 있었으며, '단어 단위 조합 생성'이라는 옵션이 있어서 (2) TSF가 지원되지 않는 환경에서도 2글자 이상의 단어 단위로 한자를 변환할 수 있었다. (1)과 (2)를 동시에 사용하면 타 한글 입력기를 쓸 때보다 한자 변환을 훨씬 더 빠르고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한자 혼용론자 진영(!!)에서는 자기들끼리 새나루의 사용을 권장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내 프로그램의 개발 이념에 비춰 보면, 단어 단위 한자 변환은 그냥 이미 있으니까 덤으로 제공하는 보조 기능에 가깝다. 한글을 단어 단위로 조합을 잡는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딱히 개발자가 한글 전용 소신을 갖고 있어서 의도적으로 제공 안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개발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지원하지 않았다. 세벌식 모아치기가 아니라 그런 기능이 필요하면 날개셋 대신 그냥 새나루 쓰라고 말이다.

그랬는데 먼 훗날, 결국 내 프로그램도 새나루에서만 제공되던 기능을 더 범용적인 형태로 수용하고 구현하게 됐다. (1)은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입력 도구를 띄워서 후보 목록만 표시하게 설정하면 된다. 그리고 (2)는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를 띄워서 단어 단위 한자 변환 기능을 설정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그런 변환 기능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 내부에서 어떤 위상과 계층을 차지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구현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입력 도구'라는 이론적 근간이 마련됐기 때문에 구현됐다.

한글 말고 영문의 경우도 T9 같은 모바일용 입력 방식에서는 단어 단위 조합이 필요하다. 한 글쇠에 여러 글자가 배당되어 있고 사용자가 multi-tap 없이 각 대표 글쇠만을 눌렀을 때, 사용자가 의도한 실제 단어가 무엇인지 유추하고 자동 완성 후보를 제시하려면 변환 엔진이 단어 전체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이 '조합 안에 조합' 입력 도구는 '휴대전화 입력기' 내지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입력 도구와도 연계해서 사용하기 좋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보조 입력 도구의 내부에서 '조합 안에 조합'이 생성되고 있을 때는 문자 입력 기능에 기술적으로 다음과 같은 제약이 걸린다.

1. 빈 입력 스키마(호환 옵션 포함) 계열의 글자판을 사용할 수 없으며, '글쇠 누름' 계열의 날개셋문자로 문자를 입력할 수 없다. 그건 태생적으로 글쇠를 IME가 가로채지 않고 응용 프로그램 내부로 보내는 기능이기 때문에 '조합 안에 조합'을 생성하거나 건드릴 수 없다. 한글이야 애초부터 IME가 글쇠를 가로채지 않으면 입력할 수 없는 문자이기 때문에 별 문제될 게 없는 반면, 영문이나 숫자를 입력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2. 이 상태로 또 글자 단위 후보 변환을 할 수 없다. '조합 안에 조합' 입력 도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어 전체를 한꺼번에 다른 문자열로 변환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또 글자별 후보 변환을 하는 상황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외부 모듈이 원래 고유하게 갖고 있던 후보 변환 UI와, 조합 안의 조합이 요청할 수 있는 후보 변환 UI 사이의 충돌 등, 상황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때도 굳이 한자 변환을 하고 싶다면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입력 도구를 미리 꺼내 놓고 사용하면 된다.

이런 제약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구현체가 전용 텍스트 에디터인 '편집기'밖에 없다면 굳이 존재하지 않을 제약이다. 하지만 외부 모듈과 입력 패드에서는 내가 가로채는 글쇠뿐만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이 처리하는 글쇠도 고려해야 하고, 운영체제와 통신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만능 범용성을 보장할 수 없다.

'조합 안에 조합'은 저렇게 제약과 불편한 점만 있는 게 아니며, 그 특성상 고유한 장점도 있다.
외부 모듈(대부분의 환경)이나 입력 패드는 편집기처럼 주변의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조합이 끝난 글자를 낱자 단위로 지운다거나 다시 조합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합 안의 조합' 입력 도구는 자기가 자체적으로 텍스트를 갖고 있으니, 구현체를 불문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텍스트를 자유롭게 조작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 결론

이로써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하는 입력 도구들은 오랫동안 4개만 있던 것이 10개로 크게 늘었다. 이들의 특성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명칭 도입 시기 동작 외형
한손 입력기 5.3 (2009) 자체 조합 입력
화면 키보드 5.3 (2009) 기존 입력 스키마
부수로 한자 입력 5.51 (2009) 자체 입력 대화상자
문자표 5.52 (2010) 자체 입력 대화상자
휴대전화 입력기 9.1 (2017) 자체 조합+기존 스키마
글쇠배열 이름 표시 9.1 (2017) 읽기전용 팝업
수식 계산 기록 9.3 (2018) 읽기전용 대화상자
내부 입력 상태 표시 9.3 (2018) 읽기전용 대화상자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9.3 (2018) 기존 입력 스키마
팝업
조합 안에 조합 생성 9.3 (2018) 기존 입력 스키마 팝업

입력 도구의 동작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 자체 조합 입력: 입력 도구가 자신만의 고유한 문자 생성기를 갖추고 조합 문자열을 입력시킨다. 한손 내지 휴대전화 입력기가 이 범주에 속한다.
  • 자체 입력: 굳이 문자 생성기의 조합 없이, 완성된 비조합 문자를 간단히 입력시킨다. 한자 부수 및 문자표가 이 범주에 속한다.
  • 기존 입력 스키마: 현재 사용 중인 입력 스키마와 문자 생성기를 기준으로 날개셋문자를 보낸다. 화면 키보드가 이 범주에 속한다.
  • 읽기전용: 현재 사용 중인 입력 항목의 상태를 표시만 할 뿐, 자기 자신은 아무런 입력 기능이 없다. 글쇠배열 이름 표시라든가 수식 계산 기록 같은 도구가 이 범주에 속한다.

입력 도구의 외형도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분류된다.

  • 대화상자: 제목 표시줄을 갖추고 크기 조절도 되며, 리스트 박스, 콤보 박스 같은 사무적인(?) 컨트롤들이 나타나 있다. 클래식 데스크톱 UI에 가깝다.
  • : 대화상자와 같은 형식을 갖추지 않고 큼직한 버튼 위주로만 구성돼 있다. Metro UI에 가깝다.
  • 팝업: 평소에는 화면에 보이지 않다가 글쇠 같은 특정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에만 잠시 cursor 주변에 나타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흐르거나 조합이 종료되면 창이 도로 사라진다.

아울러 9.3 버전에서는..

  • 대화상자형 입력 도구들 중에 도움말이 제공되는 것은 제목 표시줄의 오른쪽 끝에 [X]뿐만 아니라 [?] 버튼도 추가했다.
  • 그리고 '입력 도구 선택' 대화상자의 목록에서 이미 켜 놓은 입력 도구는 앞에 *(별표)가 덧붙여져 있게 했다. 평소에 나타나 보이지 않는 '팝업형' 입력 도구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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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ㄹ+한자 특수문자 변환 테이블의 오류 수정

ㄹ을 입력하고서 한자를 누르면 아시다시피 여러가지 단위 기호가 나타나는데, 넷째 후보로 F가 있던 것을 °로 변경했다. 이건 다음과 같은 여러 정황상 후보 변환 테이블의 오류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 아마 화씨 온도 단위를 의도한 것 같으나, ℉는 뒤에 따로 또 있다.
  • 단순 전각 F는 ㅍ+한자에도 이미 있기 때문에 중복 등재이다. 그 반면 °은 지금까지 KS X 1001 특수문자 중 유일하게 초성+한자 어디에도 배당되어 있지 않았다.
  • 넷째 다음으로 다섯째와 여섯째에는 분, 초 ′ ″ (프라임, 더블 프라임)이 있기 때문에 도-분-초 순서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 °은 KS X 1001 2바이트 코드가 A1C6이다. F는 A3C6으로 서로 비슷하다면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하기 쉬운 관계이다.

확인해 보니 Windows 95, 아니 3.1 이래로 MS 한글 IME는 줄곧 ㄹ+한자에 F가 있긴 했다. 참 유구한 전통이긴 하지만 오류가 명백하기에 날개셋은 F를 °로 변경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저 오류는 본인이 최초로 찾아낸 게 아니라 역시 정 재민 님의 제보가 출처이다.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발견해 내는지..

하긴, Windows 98 시절엔 ㄹ 자리에 유로화 기호가 추가되었으며, Vista 타이밍엔 ㅁ 자리에 우편번호 기호가 추가되기도 했으니, 이 변환 테이블이 20년째 완벽한 고정불변도 아니긴 했다.
참고로 유로화 기호(U+20AC)는 2바이트 코드로 역변환이 가능한 반면, 우편번호 기호(U+327E)는 그렇지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3 08:35 2018/01/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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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의 기간에 마소에서 '도움말, 튜토리얼, tour, intro, guide' 장르에 속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들을 좀 회상하고자 한다.
요즘 튜토리얼이라 하면 컴퓨터 게임에서 본게임을 수행하기 전에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히는 싱글 플레이어 미션 정도를 가리킨다. 툼 레이더로 치면 Lara's home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게임 정도가 아니라 컴퓨터라는 괴상한 기계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아주 많았다. '컴맹'이라는 단어 기억하시는가? 1992년에만 해도 '키출판사'라는 곳에서는 <저는 컴퓨터를 하나도 모르는데요>라는 컴퓨터 입문서를 하나 잘 만들어서 전국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수 년간 석권하며 초대박을 쳤었다.
그런 시절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컴퓨터 입문을 도와 주는 프로그램도 나올 필요가 있었다. 특정 프로그램의 사용법뿐만 아니라 키보드 타자 내지 심지어 마우스 같은 사치품(?)을 다루는 방법도 사용자가 익혀야 했다.

마소에서는 오래 전부터 뭔가 인터랙티브한 학습/데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에 남다른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거 학습을 잘 시켜야 컴퓨터 사용자를 늘리고 잠재적인 자기 고객도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실은 방대한 운영체제나 Office 솔루션의 '설치 프로그램'도 단계별로 뭔가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UI 구조가 반쯤은 이런 데모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그러니 마소에서 1990년대에 '마법사'라는 UI 요소를 만들어 냈고 두 개념을 합쳐 '설치 마법사'라는 말까지 만든 것이지 싶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도입했던 '길잡이 clippy'는 너무 과잉 오버 사족으로 여겨져서 오래 못 가고 망했다만..)

아무튼.. 마소에서 지극히 초창기에 만들었던 학습 프로그램의 원조로 본인은 QuickBasic 4.5에 들어있던 (1) QuickBasic express를 기억한다. 실행 파일은 learn.com이고, qbcbt.ctx/scn/sob, 그리고 bx.pgm이라고 내부 구조를 알기 어려운 코드/데이터 복합 보조 파일을 추가로 사용한다.
이들 파일들을 다 합해 봤자 크기는 100K가 채 되지 않으며, 압축된 것도 아니어서 얼추 내부 문자열 같은 건 그대로 확인 가능하다. 그래도 프로그램을 실행해 보면 저 작은 크기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학습 컨텐츠가 많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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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16색 텍스트 모드에서 아스키 아트를 최대한 창의적으로 활용해서 화려하게 꾸몄다. 무려 열차를 그렸으며, 프로그램을 실제로 돌려 보면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기관차의 구동축이 움직이며 선로가 가로 스크롤을 하기 때문에 열차가 진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그램 이름에도 BASIC만 빼면 Quick, express 온통 이런 단어들이니 얼마나 스피디한 느낌이 나겠는가? 말 그대로 '퀵베이직 특급· 고속· 급행열차'인 셈이다.

물론, 아스키 128번 이후 문자를 이용한 아스키 아트는 2바이트 단위의 동아시아 문자 코드와는 상극이니 이런 프로그램은 한글화 따위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니면 아스키 아트들을 2바이트 특수문자 기반으로 완전히 마개조 재창조 초월번역을 해야 할 텐데, 일본은 몰라도 그 당시 한국 마소에서 그런 용자짓을 할 여유와 능력, 재량이 있었으리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마소에서는 이런 부류의 프로그램에 대해 내부적으로 이미 CBT(computer-based training)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뭐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컴맹 왕초보를 위해서 QuickBasic을 구동하고 프로그램을 불러오고 실행하는 것까지만 설명하는 튜토리얼을 상당한 덕력을 담아서 굉장한 고퀄로 만든 것이다.
화차 그림에 쓰인 주의사항 보이시는가? 아주 대단한 선심이라도 쓰는 듯 "주목: 이런 지식은 아무 데서나 알려주는 거 아니야!" 이런 드립까지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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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 "자, 디스크에 저장된 프로그램을 불러오는 걸 실습해 보시겠습니다."
저장: "짜잔~! 프로그램이 final.bas라는 이름으로 저장됐습니다."

문장들의 문체가 전반적으로 은근히 재치 있고 익살스럽기 때문에, 한국어의 사무적인 해요체 합쇼체로 번역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길이도 너무 길다.
저건 그야말로 디스크와 파일에 대한 개념도 아직 부족해서 하드디스크에 몇백 GB짜리 사진을 저장하면 컴퓨터의 무게가 물리적으로 증가할 것처럼 생각하는 왕초짜를 위한 설명이다..;; C언어라면 몰라도(저 때는 마소에서 아직 C++ 컴파일러를 개발하지 않았던 시절) 베이직만은 그야말로 왕초보라도 접근 가능한 대중적인 프로그래밍 툴로 만들려는 빌 게이츠의 야심이 담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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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나고 나면 이 프로그램이 가르쳐 준 lesson의 핵심 요약을 요렇게 쭉~~ 늘어놓아 준다. 잊어버릴까 봐 종이에다 프린트 명령까지 제공하는 배려를 했다.
사실, 영어권에서 뭔가 개념원리 학습 자료를 만들어 놓은 걸 보면 참 대단하고 부러움이 느껴질 때가 많다.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령, 컴퓨터 쪽은 아니지만 무려 1930년대에 GM사에서 영업사원들(이미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들 말고) 교육용으로 변속기의 원리를 설명해 놓은 필름을 보면.. 매체의 기술 수준 말고, 강의 자체는 기본적인 물리 법칙부터 시작해서 공학적인 응용에 이르기까지.. 지금 봐도 나무랄 데 없는 고퀄이다. 저렇게 기본기와 실용주의에 충실한 교육이 쌓이고 쌓인 덕분에 미국이 과학 기술 선진국이 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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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나고 나면 다시 열차 그림과 함께 엔딩 화면이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시작 화면과는 달리 화차가 텅 비었고 아무 짐도 실려 있지 않다. 아하.. 이런 차이를 담았구나!!
난 그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이번에 스크린샷을 찍기 위해 프로그램을 오랜만에 다시 돌려 보면서 차이를 알게 됐다.

QuickBasic은 시대를 풍미했던 명작이고, 지금도 고전 레트로 레거시 프로그래밍 장난감으로서 외국에 매니아 커뮤니티가 있다.
그런데 QuickBasic의 인지도에 비해 이 자습서 프로그램은 존재감이 너무 묻히고 있는 것 같다. QuickBasic learn.com, Express 등 내가 생각하는 모든 관련 키워드들을 조합해서 검색해도 스크린샷 한 장 뜨는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learn.com은 어찌 된 이유인지 도스박스에서 안 돌아가고 시스템이 뻗는다(0.72 기준). 이것 때문에 더욱 접근이 어려웠다. VMware 같은 다른 가상화 유틸에서 돌려야 했다.

QuickBasic 말고 자습서로서 가장 유명한 건 아마 (2) Windows 3.1의 자습서이지 싶다. '프로그램 관리자'의 도움말 메뉴에 당당히 등재돼 있기 때문에 쉽게 접근 가능하다. PC 환경의 판도를 도스에서 Windows로 완전히 뒤바꾸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기본적인 마우스 사용법을 가르치고 Windows의 기본 UI 요소들을 다루는 일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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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습서야 검색을 해 보면 스크린샷과 동영상들이 이미 넘쳐나니 이곳에서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고해상도(?) 화면에서 16색+도트 노가다로 깔끔하게 파스텔톤 그림을 그려 놓은 화풍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문자 때문에 고해상도가 필요했던 일본 게임들의 그림체도 이런 형태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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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열기' 명령을 내려서 기존 문서를 불러오는 실습은 QuickBasic 자습서와 Windows 자습서에 공통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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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창 제목을 마우스로 드래그 해서 창의 위치를 옮기는 것, 그리고 라디오· 체크· 콤보 등 기본 GUI 요소들을 실습하는 것도 있다.

사실은 (3) Windows 95에도 자습서가 있다.
1990년대 중후반은 컴퓨터의 기본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 대한 고려가 여전히 필요한 시기였으며, Windows 95가 3.1에 비해 UI 요소가 바뀐 것도 워낙 많았기 때문에 시작 메뉴, 작업 표시줄, 폴더 같은 것에 대한 학습이 필요했다. 이때는 Windows 95 사용 관련 컴퓨터 서적도 정말 많이 출간됐었다.

단, 95의 자습서는 모든 컴퓨터에 기본으로 깔리지 않았으며, 운영체제를 설치할 때 사용자가 수동으로 자습서를 직접 골라야 했다. 그리고 구동하는 방법도 내 기억으로 도움말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고 메뉴에서 바로 선택 가능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3.1의 자습서보다는 훨씬 덜 알려져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95의 자습서는 Visual Basic으로 개발되었지 싶다. 외부 링크로 소개를 대신하고자 한다.
그 당시 Windows 95의 비주얼 컨셉은 푸른 창공, 하늘과 구름이었다. 제품 패키지 박스와 부팅 스플래시 화면부터가 그렇고, 이스터 에그에 내장되었던 음악도 clouds.mid였으니.. 그러니 자습서에도 경비행기 그림이 있는 게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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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으로.. 이거야말로 정말 오래된 기억에만 의지해서 회상하는 것이지만..
MS Word 중에서 16비트 Windows를 지원하는 마지막 버전이었던 (4) 6.0 역시 자습서를 내장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Windows 3.1 자습서와 같은 엔진 기반으로 추정되고 비슷한 톤의 흰색 계열 화면이었다. 하지만 Windows 자습서와는 분명 다른 내용이었고, 배경 그림에 그 당시 Word 특유의 만년필 그림이 있긴 했다.

이 역시 내가 구글링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진짜로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려서 그런지 인터넷 상으로는 자습서의 장면이나 동영상을 구할 수 없다.
16비트 시절 회상은 이 정도까지 하겠다.
사실, 도스박스로도 Windows 3.1 정도는 돌릴 수 있다. 이것도 0.6x대의 구버전에서는 안 되다가 후대 버전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도스박스는 여느 가상화 툴처럼 디스크 이미지를 별도로 만들 필요 없이, 기존 파일 시스템의 디렉터리를 곧장 mount 해서 쓰면 되는 게 참 편하다.
Windows 95까지도 돌린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부터는 아무래도 하드웨어 가상화의 도움을 받는 VMware 같은 더 정교한 가상화 프로그램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도스박스에서 Windows 3.1을 설치하면 다 좋은데, 프로그램 그룹의 수집과 생성이 왜 자동으로 되지 않는지가 의문이다. 프로그램 관리자가 기본 프로그램, 보조 프로그램 같은 그룹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시작된다.

한편, Windows 95부터는 부팅 직후에 간단한 welcome 프로그램을 실행하던 관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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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때는 '알고 계십니까' 팁을 출력했지만 98과 2000에서는 인터넷 연결, 제품 등록 같은 걸 안내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실행 형태가 바뀌었고, ME와 XP부터는 이런 게 없어졌다.
2000년대 ME/XP 시기에는 컴퓨터의 기본 사용법을 가르치는 클래식한 자습서는 사라졌지만, Windows의 새 기능을 소개하는 데모는 플래시 내지 HTA (HTML application) 형태로 잠시 존재했다.
특히 XP에 내장돼 있던 플래시 기반의 "새 기능 투어"는 굉장한 퀄리티였다. 비록 한글화되지 않았으며, 이런 관행 역시 Vista와 그 이후부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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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프로그래머의 직업병을 발휘하여, 이런 자습서 내지 튜토리얼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과정은 어떠할까 생각해 보고 글을 맺겠다.
웹이나 플래시는 처음부터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표시하는 데 최적화된 저작도구 내지 플랫폼이라 치지만, EXE 기반의 전통적인 데모 내지 자습서· CBT 프로그램은 어떤 방법론을 동원하여 만들었을까?

순차적인 절차대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이벤트 드리븐 방식으로 개조하는 건 만만찮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과거의 터보 C/파스칼에 존재하던 BGIDEMO 예제처럼 순차적으로 일괄적으로 그래픽 데모가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Windows용으로 짜는 걸 생각해 보자. 간편하게 자기가 원하는 타이밍 때 그림을 그리고 마는 게 아니라, 운영체제로부터 그림을 그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에만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니, 지금은 어느 데모의 그래픽을 출력할 차례인지 내부적인 진행 상태를 추상화해서 잘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나 끊임없는 그리기 작업은 스레드나 타이머 같은 완전히 다른 방법론을 동원해서 해야 한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자습서 프로그램은 그 특성상 학습 대상 프로그램이 실행된 가상의 화면을 표시할 일이 많고 심지어 그 가상의 화면에서 사용자가 창을 조작하는 것을 흉내까지 내야 할 때가 있다.
모든 그림들을 무식하게 비트맵 이미지로 때려박는 건 공간 효율과 유지 보수(일부 컨텐츠가 수정되었을 때, 화면 해상도가 변경됐을 때 등) 관점에서 별로 좋지 못하다.

저런 건 진짜 윈도우를 생성한 뒤에 서브클래싱 같은 customization으로 내가 원하는 형태로만 동작하게 제약을 추가하는 식으로 구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윈도우 그림만 가짜로 그린 뒤에, 창의 이동과 크기 조절, 메뉴 표시 같은 당장 학습에 필요한 이벤트에만 임기응변으로 반응하게 만들 수도 있다. Windows 자습서는 정황상 대부분의 UI는 후자 방식으로 구현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건 좀 어설프고 삽질스러워 보이는 면모가 있다.

당신이 Visual Basic의 짝퉁 개발툴을 직접 개발한다고 생각해 보자. VB의 디자인 모드에서 떡 나타나 있는 폼의 '윈도우 프로시저'는 어떻게 구현되어 있을지가 궁금하지 않은가? 평소에는 클라이언트 영역에 일정 간격으로 격자 도트가 찍혀 있을 것이고, 자신의 위치나 크기가 바뀌면 폼의 정보가 수정된다. 자기에게 놓인 차일드 컨트롤을 클릭하면 크기 조절을 위한 8개 모서리가 주변에 표시되며, 이걸 더블 클릭하면 해당 컨트롤에 대한 이벤트 핸들러 코드를 편집하는 창이 뜬다.

자습서 창 내부에서 특정 윈도우의 외형과 동작을 구현하는 일도 이런 것과 비슷한 차원일 것이다. 어떤 물건이긴 한데, 실물이 아니라 뭔가 영화 촬영용 소품과 비슷한 격의 물건을 갖다놓는 격이 된다.
'짝퉁'을 만드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이 한계에 달했는지, 나중에 마소에서는 실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상태에서 그때 그때 도움말이 응용 프로그램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인터랙티브한 형태로 출력되는 모델을 고안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윈도우 훅 중에서도 WH_CBT라는 게 있다. 어떤 프로그램이 내부에서 창을 생성하거나 없애고, 포커스가 바뀌고 창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 자습서는 학습 대상 프로그램에서 요런 특정 동작만 감지하면서 상황에 맞는 도움말을 출력하거나 지시를 사용자에게 내릴 수 있다. 이런 간단한 용도라면 굳이 모든 메시지를 통째로 훔쳐보는 무거운 다른 훅을 설치할 필요 없이 저것만 사용하면 된다.

이런 훅을 사용한 아주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HTML 도움말인 CHM 말고, Windows XP까지 지원되었던 재래식 HLP 파일을 생성하는 (5) 오리지널 Help Workshop 툴을 보면.. 도움말 프로젝트를 생성하는 요령을 설명하는 traning card라는 자습서 세션이 있었다. 전용 자습서가 거창하게 뜨는 게 아니라, 화면 옆에 아주 자그마한 도움말 창만 추가로 뜬 뒤, 도움말이 시키는 대로 실제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기능을 익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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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이야 HLP 도움말 자체가 폐기되었으며, 이런 식의 도움말 디자인 패러다임 역시 완전히 한물 가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Help Workshop에 이런 간소화판 자습서 튜토리얼이 존재했다는 것도 오늘날 인터넷에서는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0 08:33 2018/01/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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