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 태형 씨라고 스타크래프트 경기 해설자로 유명한 분이 있다. 이분은 “(프로토스) 이거 답이 없어요. 캐리어 가야 합니다!” 멘트를 남발하는 걸로 유명해지면서 ‘김캐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심지어 외국에서까지 Kim Carrier라고 불릴 정도로!
그런데 그 정도를 넘어, 캐리어에 대한 이 양반의 애정은 가히 보통 이상인 듯하다.

(그 유명한 동영상 클릭)
스타게이트와 플릿 비콘이 지어지는 걸 보자마자,
여..영광의 캐리어!! 테란을 상대로 프로토스의 상징 아닙니까!!!! ㅠㅠㅠ”
심지어 템플러 아카이브가 올라가 있는 등 선수가 아비터를 준비하는 게 명백한데도 이 양반은 끝까지 “아니에요, 분명 캐리어를 뽑을 겁니다”를 고집하기도..;;

이걸 보고 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말투가 “또다시 대담한 커밍아웃이다!! / 이것도 강하다! / 오바야시 씨 엉망진창 되어 버렸다!”를 떠올리게 한다. -_-;;;
둘째, “여... 영광의 Looking for you! 새마을호, 아니 한국 철도의 상징 아닙니까!!”

이 정도면 이분은 내가 새마을호 좋아하는 것처럼 캐리어 좋아하시는 것 같다. ㅋㅋㅋㅋㅋ 하긴, 나도 스타 처음 배우던 시절엔, 유닛 조합이고 나발이고는 집어치우고 닥치고 캐리어 좋아했다. ^^;;
인생에서 뭔가를 저 정도로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파고들어서 나쁠 게 없지. ㄳ

2.
오랜만에 교회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다.
철덕이 되고 나니, 역시 놀이기구 중에 궤도 위를 달리는 탈것을 보는 안목이 확 달라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이 롤러코스트는 제3궤조 집전식이구나.
- 동력비 조절은 쵸퍼 방식일까, 저항 방식일까?
- 이 곡선의 반경은 R=10을 간신히 넘겠다.
- 한 바퀴 도는 데 2분도 채 안 걸리는 반면, 승객이 타고 내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종점에서 지연이 심하군.
- 이 공중(空中)자전거는 뒷차 이용객으로부터의 추돌을 방지하려면 ATS라도 갖춰져 있어야겠는데?

3.
지난 학기엔 학교에서 학생들이 제각기 노트북을 지참하여 실습을 해야 하는 수업이 있었다. 본인은 당시 그 수업의 조ㅋ교ㅋ였기 때문에, 수강생들을 위해 콘센트가 6개씩 달린 멀티탭을 3개 가져와서 한 멀티탭은 벽에 있는 콘센트와 연결하고, 나머지 두 멀티탭도 전기가 들어오는 멀티탭의 한쪽 끝과 일렬로 연결하여 강의실 안에 분산 배치했다. 다른 학생들이 노트북 전원을 연결할 수 있게 말이다.

그런데 이거, 강의실에 멀티탭을 연결해서 기다란 선을 만드는 게 마치 지하철 노선을 만드는 것 같았다. 벽에 붙은 콘센트는 외곽의 차량 기지이다. 길쭉한 멀티탭은 지하철 역이고 멀티탭 선은 노선이다. 가까운 멀티탭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일종의 역세권 주민이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이 오기 전에, “보통 학생들이 어디에 몰려 앉더라? 어떻게 멀티탭을 배치하는 게 좋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이런 사소한 것으로부터도 철도를 생각할 수 있어서 순간 무척 기뻤다. 철도님 사랑합니다.

4.
문득 든 생각인데, 도로와 철도의 관계는 카세트 테이프와 오디오 CD의 관계에다가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디지털 매체인 CD가 아날로그 방식인 테이프보다 더 견고하듯(robust), 철도도 더욱 robust한 육상 교통이기 때문이다.

테이프는 무음부를 재생하고 있어도 hissing noise가 들리지만 CD에는 그런 게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철도는 조용하고 차냄새나 멀미가 없고 승차감이 훨씬 더 좋다. 주행 중에 글씨를 쓰거나 물을 마시는 게 열차와 자동차 중 어느 게 더 쉬울지 생각해 보면 명백하다? 사실 열차는 내부에 안전벨트조차 없을 정도이다.

테이프는 감는 데 시간이 걸리고, 오래 쓰면 늘어나고 엉키고 재생기별로 주행 속도가 미묘하게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철도는 정체가 없고 승차권에 도착 시각이 찍혀 있으며, 교통수단들 중 날씨를 가장 가리지 않는다.

일반적인 CD 재생기는 테이프 재생기보다는 진동에 취약하다. 이는 철도가 선로의 상태에 굉장히 민감해서 선로 보수를 꾸준히 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몇 가지만 생각해 봤는데 그럴싸하지 않은지? ㄲㄲ
그래서 열차는 똑같은 시간을 차내에 있어도 버스를 탔을 때보다 훨씬 덜 피곤하다. 길 자체의 상하좌우 굴곡이 자동차 도로보다 훨씬 완만하기도 하고.

5.
엔젤하이로 위키에서 철도 관련 글을 읽다가 본인은 깜짝 놀랐다.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대에서 세 명의 노인이, 운행 중이던 동일한 전라선 상행 새마을호에 치여 숨진 굉장히 괴이한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 홈페이지에 HTML 문서로도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한 때는 2002년 5월 1일이다. 카드빚 갚으려고 자가용을 택시로 위장해 여자 승객 6명을 살해한 강도 소식과 더불어 그 당시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었다.

그런데 엔젤하이로 위키에는 2003년이라고 잘못된 정보가 버젓이 적혀 있다.
그래서 건널목 사고가 숫제 수원-병점 전철 개통(2003년 4월 30일) 바로 다음날에 발생한 사고로 완전히 왜곡되어 버렸다.

2003년이 절대로 아니며, 2002년이 맞다. 이건 신문 기사를 검색해 봐도 알 수 있고 본인의 그 당시 일기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엔젤하이로 위키의 본문이 어서 수정되길 바랄 뿐이다.
참고로, 2003년 4월 30일은 영화 <나비>가 개봉한 날이기도 함.

Posted by 사무엘

2011/08/06 19:29 2011/08/0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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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상상: 철도 가이드

나의 골수 철도 덕후 기질을 잘 아는 어느 목사님이 이런 제안을 하셨다.
철도 가이드를 해 보라고 말이다. 코레일 사장한테 이런 사업 아이템 어떻냐고 각서도 보내 보란다. ㅋㅋㅋ

흔히 무슨 관광을 가면 여행 가이드가 있다.
가이드는 관광객에게 유명한 관광지를 안내하면서 여기 유래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이게 왜 역사적인 장소인지를 잘 설명해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행지가 아니라 기차 안에서 철도 그 자체에 대해서 나불나불 설명을 해 주는 가이드가 어떻냐는 것이다.

경부선 새마을호 기준.
- 여러분이 타고 계신 이 열차는 새마을호로, 새마을호라는 명칭은 1974년에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그 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호화로운 열차는 관광호라고 불렸어요.
- 지금과 같은 열차는 1987년에 대우 중공업에서 최초로 6량짜리로 생성했는데, 엔진은 독일제이고 n마력이다가 훗날 8편성으로 증편되면서 엔진 출력도 1920마력으로 향상되었습니다.
- 현재 우리는 한강 철교를 건너고 있습니다. 한강 철교는 1910년, 경부선이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주권을 빼앗길 무렵에 처음으로 지어졌는데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한강 교량입니다. 경부선이 구로-서울 구간이 3복선인 관계로 한강 교량에도 6가닥의 선로가 있는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교량은 현재 급행 전동차가 사용하고 있으며, KTX나 새마을호 같은 일반열차가 사용하는 교량은 1944년에 건설되었습니다.

- 경부선이 처음 건설되던 당시에 서울 역과 부산 역은 각각 서대문 역과 초량 역으로 불렸지요. 노량진 역과 영등포 역은 경인선 철도가 건설된 1899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유서 깊은 역입니다.
- 구로 역은 경인선과 경부선이 분기하는 관계로 신호장으로 존재하던 역이었으나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면서 전철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승강장이 9개나 존재하며 우리나라 전철역 중에서 구조가 가장 복잡한 역입니다.
- 지금 달리고 있는 구로-수원 구간은 1981년에 2복선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쌍섬식 승강장이 그 흔적이죠. 그 전에 서울 지하철과 직결 운행을 하던 서울-수원 전철은 일반열차와 동일한 선로에서 일반열차를 피해서 운행하는 관계로 선로 용량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처음엔 40분에 한 대 정도로, 지금의 천안 급행 정도밖에 편성을 못 했지요.
- 드디어 석수 역부터가 서울을 벗어나 안양입니다. 여기서 경부선의 선형은 국도 1호선과 비슷합니다.

- 시흥 역 이남에서는 경부선 기존선과 KTX 고속신선이 분기합니다. 아, 정확히 말하면 고속선 연결선이죠. 서울로 올라오는 상행 일반열차는 여기서 KTX가 먼저 지나가 주길 기다렸다가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하행 일반열차가 영등포 역에서 KTX를 먼저 보내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KTX도 영등포 역을 정차한다면 이런 일은 없어도 됩니다.
- 수원 역이 지금은 이렇게 생겼지만 옛날에는 평면교차 지장이 있어서 상황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 여기가 경부선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터널입니다.
- 성환-평택 사이가 경부선에서 10km에 가깝게 역이 없는 구간이며, 사실 일반열차도 시속 140에 가깝게 가장 빨리 주행하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 잠시 후 대전 일대가 선로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대전 조차장도 있고 KTX 고속신선과 기존 경부선이 합류하는 한편으로 호남선과 경부선이 입체 교차로 갈라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 당장 떠오르는 레퍼토리만 적어도 저 정도인데, 정말 재미있겠다. ㅋㅋㅋㅋ
저 목사님 왈,
“형제는 저 방면으로 워낙 지식이 뛰어나니, 피곤하게 직접 그렇게 가이드 일을 할 필요도 없이, 다른 가이드들을 ‘양성’하고 ‘지도’하는 일만 하면 됨.
철도는 분명 건전한 취미이니, 그걸로 혼자 음지에서 오덕질만 하지 말고 뭔가 남에게 유익을 끼치고 후학을 양성하는 생산적인 일을 해 보셈.”

철도 쪽으로 안정된 부업이 생기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
이미 회사 사람들도 내 철덕 기질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철도 쪽으로 취업해 버렸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이 수긍할 것이다. -_-;;; 더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았다는데 어떡하겠는가?
기껏 잘 키워 놨더니 조금 연봉 더 준다고 동일 업종의 경쟁사에 넙죽 들어가는 것도 전혀 아니고... 업종을 완전히 바꾸는 건데 이건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도 없다.

하지만 과연 저 철도 가이드 일이 수익이 있을까?
저런 가이드 설명을 재미있게 들어 줄 관광객은 과연? ㅋㅋㅋ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09/12 11:04 2010/09/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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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음악 교실

1.

지난 남아공 월드컵 때 우리나라는 역사상 최초로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그런데 경기 중계 방송을 보고 있으면, 경기장 내부에서 웬 웅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서 귀에 거슬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런 소리를 영어로는 drone/droning이라고 한다. 딱 정확한 표현이다.
스타크에서 저그의 일꾼 유닛인 드론이 이 단어이다. 설정상 드론은 말벌인데, 웅웅 윙윙거리면서 일을 한다나?)

본인은 그게 무슨 잡음인지 알지 못했다. 더운 여름에 아프리카에서 축구 경기를 개최하다 보니 더워서 냉방기라도 가동하는 소리인가 했다. -_-;;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오히려 거기는 남반구이기 때문에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이며, 저녁에는 사람들이 숫제 긴팔까지 입었다.

잘 알다시피 그 소리는 부부젤라라고 하는 나팔 비슷하게 생긴 아프리카 민속 악기 소리이다. 관중석에서 이런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걸 이해해 달라고 해설가들이 몇 차례나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 소리는 지하철에서 나는 이 소리와 아주 비슷하지 않은가?
조용한 지하철 승강장에서나, 아니면 지상에 돌출돼 있는 지하철 터널 통풍구 근처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친숙한 이 소리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런 기계음 같은 소리도 엄연히 악기로 내는 소리인데,
하물며 전동차 VVVF 구동음은 영락없이 음악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아예 그걸로 노래까지 만든 적이 있다. ㅋㅋㅋ
http://www.youtube.com/watch?v=EExvEF2zudA 지멘스 옥타브는 음악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2.

본인은 국내 유일 & 최초의 Looking for you 채보자이다.
악보를 본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 표정을 지으면서 어떻게 그걸 채보했냐고 내게 묻곤 했다.
하지만 이건 천재가 아니라 전적으로 노력의 산물이다. Looking for you를 끈질기게 한 3천 번만 들으면 누구라도 16분 음표 하나 안 놓치고 그대로 채보할 수 있다. Looking for you를 뼛속까지 내 음악으로 소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새마을호를 제대로 탔다고 간주할 수 없다.

곡 중에는 아래와 같이 색소폰으로 좀 어려운 기교를 부린 부분이 있는데, 그런 곳은 소리 재생을 절반 이하로 늦춰서 끈질기게 들으면서 음표를 정확하게 그려 넣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악보를 교회에서 작곡을 전공한 어느 형제님께 보여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더라. “이런 부분은 들리는 대로 받아적다 보니 16분 음표 여러 개로 복잡하게 표기했겠지만, 실제로는 꾸밈음이겠군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식음을 표현하는 꾸밈표는 악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매크로와 같은 존재일 거라고 말이다. 간단한 꾸밈표 중 하나인 스타카토를 예로 들어 보자.

#define 스타카토(음높이, 길이) \
  { 음표(음높이, (길이)/2);   쉼표((길이)/2);   }
#define 메조_스타카토(음높이, 길이) \
  { 음표(음높이, (길이)*3/4); 쉼표((길이)/4);   }
#define 스타카티시모(음높이, 길이) \
  { 음표(음높이, (길이)/4);   쉼표((길이)*3/4); }

http://user.chollian.net/~kktae386/menu02/me0206.htm 참고. 꾸밈표도 여럿 존재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일정한 패턴을 띠는 바리에이션을 한 기호로 간단하게 축약해서 표현하려는 욕망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31 08:45 2010/08/3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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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이용 경험 이모저모

※ 입석

본인은 철도를 매우 좋아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대중교통 공급이 풍부한 곳에서 굳이 입석이나 예약 대기까지 감수하면서 철도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명절 때는 오히려 수시로 증차가 되고 좌석을 얻기 쉬운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다. 명절 때 기차를 편하게 타고 가려면, 철도 오덕 기질 수련보다는 철도 인맥과 빽을 만들어 두는 게 더 필요하다. 코레일 직원이 대량으로 추석 귀향 열차 암표를 팔다가 적발됐다는 소식이 꼭 한두 번씩 들리지 않는가.

입석으로 열차를 탈 때는, 지정석 승차권이 있을 때에 비해서 어떤 점이 달라질까?
일단 신문지나 달력 같은 '깔고 앉을' 거리를 준비해 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에 일찍 도착해서 열차에 무조건 먼저 올라타야 한다. 그래야 통로 같은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여 쪼그리고 앉을 수라도 있다. 안 그러면 정말 얄짤없이 객실 복도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가야 한다.

세상엔 기차를 타고 싶어도 못 타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출발지와 도착지가 비교적 철도로 잘 연결되어 있는 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철도로 최대한 빠져 주는 게 좋을 것이다. KTX 같은 경우 워낙 빠르고 대구-서울도 1시간 40분이면 가기 때문에, 입석으로 장거리를 좀 가 봤자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다. 더구나 본인의 고향은 경부선이 혼잡하면 중앙선이라는 훌륭한 우회 경로까지 존재하니 선택의 폭은 더욱 넓다고 할 수 있다.

※ 가장 아슬아슬했던 승차 경험

옛날에도 글을 통해 회상한 적이 있지만, 본인이 지금까지 기차를 가장 아슬아슬하게 탄 건 2004년 2월 17일의 서울-대전 하행 새마을호 탑승이었다. KTX 개통 직전에 마지막으로 탄 새마을호인 동시에, 출발 전 Looking for You를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열차였다.

밤 8시 30분 열차를 예매해 놨는데, 출발 딱 5분 전인 8시 25분에 지하철 1호선도 아닌 4호선 서울 역에서 내렸다. 게다가 가방을 두 개나 들고 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당시의 일기의 묘사에 따르면,
다리에 힘이 안 날 때까지, 젖먹던 힘까지 죽어라고 뛴 끝에 27분에 지상 서울 역 입구에 도달했다. 그리고 딱 29분에야 기차에 올라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표를 흔들면서 문 닫지 말라고 막 소리를 질렀다.

기침을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자리에 짐을 놓자마자 차는 출발하기 시작했다. 까무러치기 일보직전. 옆 자리의 승객이 본인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Looking for You가 들려오긴 했으나, 들은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다리가 후들거렸고 후유증은 다음날까지도 계속됐다. =_=;;;;

Posted by 사무엘

2010/05/24 08:11 2010/05/2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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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철도 덕력은?

Q: 연어 하면 생각나는 것은?
A: 교· 직류 겸용 전동차.
민물을 직류 전기, 바닷물을 교류 전기라고 생각하면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남영-서울역 사이가 바다에서 강으로 바뀌는 일종의 절연 구간인 셈.

Q: 매일 면도할 때, 그리고 고기를 구워 먹다 철판을 갈 때 공통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A: 열차 운행 종료 후 매일 선로를 연마하고 보수하는 작업.

Q: 식당에서 여러 컵에 물을 따를 때 생각나는 상황은?
A: 각 역마다 정확하게 정지선에 맞춰 정차하는(딱 맞게 물을 따르는) 지하철 운전.

Q: 훈련소에 가 있을 때 가장 생각난 것은?
A: 서울 지하철 7호선. 7호선 노선색이 완전 국방색일 뿐만 아니라, 군대에서는 진작부터 우측통행을 하고 있어서 더욱 기억이 절실했다.

Q: 내 손전화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A: 하루에 두세 번, 열차가 아주 뜸하게 드나드는 시골의 한적한 단선 철길 건널목.
전화벨이 울리는 것은 차단기가 내려가고 경보음이 울리는 것이다. 통화는 열차가 통과하는 것이다.
어쩌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거는 것은 우리 역에서 열차가 갓 출발한 것이다.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통화중’은, 마주 오는 열차가 교행 대기하는 상황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4/10 07:59 2010/04/1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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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마을호 객실에서 Looking for you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객실 내부에서 몇 차례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유튜브에 공개. 촬영한 지 1년이 채 안 되어 Looking for you 음악은 없어지고 영상 서비스 자체가 폐지됨. 역사 기록!
( http://www.youtube.com/watch?v=8elu7pv1W6M )

2. Looking for you를 아예 채보하여 미디 파일로 만듦. 처음에 멜로디부터 채보한 뒤, 대충 비슷한 느낌이 나게 화음과 비트까지 집어넣음. mp3를 수십, 수백 번 듣고 어려운 반음계 멜로디가 많은 곳은 속도를 절반에서 1/3으로 줄여서 반복해서 들으면서 음표를 입력했다.
mp3와 미디를 동시에 재생해서 들으면서 템포도 일치하는 것을 확인함(분당 ♩=132). 다른 철도 매니아들마저 경악함
( http://moogi.new21.org/railroad/looking4u.mid )

3. 바람직한 새마을호 탑승 자세 독사진 촬영. 그 후 1년이 채 가기 전에 기내지 레일로드는 폐간됐으며, 1년 반쯤 뒤에는 영상 서비스가 없어져서 이어폰 꽂을 일도 없어짐.
( http://moogi.new21.org/railroad/chair.jpg )

위의 1~3은 국내의 어느 철도 매니아도 시도한 적이 없고 이제는 시도할 수도 없는 본인만의 독자적인 영역임.

4. 2005년, 상록수-한대앞 인근의 수인선 협궤 선로 촬영. 역시 그 후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그 선로는 다 철거되고 없어졌다.
( http://moogi.new21.org/tc/125 )

5. 2006~07년 사이에 장항, 강원도 정선, 경부선 부산-대구 구간 등지에서 철도 여행을 하면서 천혜의 경치를 카메라에 담음.
( http://moogi.new21.org/tc/126 )

6. 서울 지하철 5호선 마곡 역을 개통 전과 개통 후에 역명판과 역 출입구 모습을 대조해서 촬영한 것도 역사 기록임. 전자는 2007년 10월에, 후자는 2008년 6월에 촬영했다.
특히 개통 전의 역명판은, 전동차가 캄캄한 마곡 역 승강장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을 때 카메라를 전동차 창문 밖으로 아슬아슬하게 내려뜨려 놓고 매우 힘들게 찍은 것이다. 그런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작품이 나왔다.
( http://moogi.new21.org/railroad/s5_magog.jpg <-- 달리는 전동차 안에서, 그것도 불도 안 켜진 승강장을 촬영한 것임
http://moogi.new21.org/railroad/seoulsubway_5.htm )

.....
그러고 보니 문득 든 생각.
옛날에는 서울을 출발한 하행 열차는 영등포 역에 정차할 때 ‘하차 승객’에 대한 방송은 나오지 않았었다. 즉, “두고 내리는 물건이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같은 멘트 말이다. 새마을/무궁화급 열차를 서울에서 타서 영등포에서 내리는 바보가 어디 있었겠는가? ㅋ
이 글에서 말하는 ‘옛날’이란 새마을호 최저 운임(=기본 운임)이 6700원이던 시절이다. 지금은 내 기억이 맞다면 거의 3, 4000원대로 내렸다.

가까운 미래에 현재 다니는 새마을호가 완전히 퇴역하고 사라진 뒤에는, 지금 새마을호-고속버스 위주인 본인의 교통수단 이용 양상이
누리로(단거리 여행에 아주 실속 있음), 자가용(오지로 갈 때, 짐이 많거나 인원이 많을 때. 나도 운전 좀 해야-_-), KTX(흠.. 돈지랄), 비행기(아주 가끔. 완벽한 돈지랄)
등으로 다변화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0/04/06 09:03 2010/04/0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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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의 철도 무용담

친구들 만나러 가는 약속이 있어서 온수 행 전동차를 탔습니다.
자리가 생겨서 거기 앉아 노트북을 켜고,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제 홈페이지의 철도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기사 번역인 <한국의 특급열차 새마을호>, 그리고 서울 지하철 상식 페이지는 언제 봐도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낍니다.

그런데 잠시 후 본인의 옆자리에 새치가 좀 많은 한 외국인 중년 남성이 앉았습니다. 그는 내 컴퓨터 화면을 좀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 내게 Excuse me와 함께 말을 걸었습니다.

지금 정확한 영어 문장은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이런 대화였습니다.

“님 혹시 철도 업계 종사자나 관련 학과 전공자에요?”
“아니요, 저는 그냥 우리나라 철도/지하철 매니아랍니다. 여기 사진들도 다 제가 직접 찍은 거고요.”
“오, 참 뜻밖이네요. 나는 토목공학 전공해서 님이 보시는 화면에 좀 관심이 가더군요. 물론 여기서는 그냥 학원 영어 강사만 하고 있지만.”

그러고 나서 일사천리였습니다.
1기 지하철과 2기 지하철의 차이, 가장 깊은 역, 서로 좋아하는 서울 지하철 노선에 대해서 그냥 술술 프리토킹이 오갔습니다. 서울 지하철 시스템에 대해서 저한테 강의를 하라고 하면 한국어, 영어 불문하고 1시간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ㄱㅅ!

“서울 지하철은 시설이 참 깔끔하고 좋더군요. 그나저나 님은 진짜 지하철 회사 취직해서 기관사 해도 되겠어요.”
“하하. 기회만 된다면요. ^^”

그 사람도 KTX는 타 봤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전엔 새마을호가 정말 본좌였다고 소개하면서 저 외국인 신문 기사를 보여 줬습니다.

“이게 외국인이 한국의 새마을호를 타 보고 쓴 기사에요. 아주 귀한 자료여서 제가 오른쪽에다 한국어로 번역도 했죠.” http://moogi.new21.org/railroad/news.htm
“오~ 님은 철도뿐만 아니라 영어 스킬도 상당히 뛰어난 거 같습니다.”

한참을 얘기를 나눈 뒤, 그 사람은 건대입구 역에서 Bye~란 인사와 함께 내렸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심지어 우리 교회에 온 외국인 선교사하고 교제할 때도 여기 지하철 얘기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더 났으면 객실 음악 얘기까지 할 수도 있었겠지요!

영어로 꼭 얘기하지 않으면 입이 근질거려 견딜 수 없는 소재가 하나 생기면, 영어 공부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어학은 동기 부여가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23 01:19 2010/01/23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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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성경 침례 교회

흠정역을 사용하는 철도 성경 침례 교회는?
  • 지하철 역하고 교회가 통로가 바로 연결되어 있다. 혹은 예배당이 철도 차량 기지 근처에 있거나, 아예 민자 철도 역사 한 층을 임대해서 입주해 있다. 철도 박물관, 철도 기술 연구원, 철도 대학 등이 밀집해 있는 철도 허브 의왕시는 이 교회의 좋은 입주 후보지이다. =_=;;
  • 성경 노선도, 열차 운행에 비유한 성경 통독 요령 같은 자료가 게시판에 걸려 있다.
  • 예배당에 걸린 달력에는 철도 사진 공모전 입상작들이 삽화 그림으로 인쇄돼 있다. (각종 열차 내지 풍경 사진)
  • 성도 중엔 코레일 직원 내지 철도 덕후들이 많다. ㅋㅋㅋㅋ
  • <철도의 노래>를 개사한 찬송가를 부른다. 어린이 찬송가는 <구원 열차>, <다함께 천국행 기차를 탑시다> 같은 걸 즐겨 부른다. 그리고 그런 찬송가 악보 밑에는 새마을호 디젤 동차 사진이 인쇄돼 있다.
  • 주일학교 어린이방에 있는 장난감은 다 기차 장난감이다.
  • 주일학교 내지 수련회에서는 성경 지도를 펼쳐 놓고 철도 노선을 구상하는 연습을 한다. 예루살렘 시내에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지하철, 그리고 이스라엘 전반에는 고속철. 한 마디로 성경 지리에는 도가 터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의 양상에 비춰 본 한국 철도사" 같은 것도 응용 주제이다.
  • 주보를 보면 매 예배 절차마다 열차 시각표처럼 시각이 붙어 있다. 찬송가 A 11:00, 대표기도 11:05, 찬송가 B 11:08, 광고 11:12, 성가대 찬양 11:17 등등...
  • 성경의 최종 권위는 영국의 킹 제임스 성경이고, 철도 궤간의 최종 권위는 영국 의회에서 정해진 1435mm 표준궤이다.
  • 예배당의 각종 집기의 배치 간격이나 복도의 폭은 무엇이든지간에 철도 궤간과 관련이 있는 규격으로 놓여 있다. ㅋㅋㅋㅋㅋㅋㅋ
  • 이 교회 목사님이 주례를 서는 결혼식에서는 주례 때 "신랑과 신부는 한 쌍의 복선 선로처럼 한 몸이 되어 영원히 동고동락하겠는가?" 이런 식으로 물으며, 그 전 신부 입장 때 사회자가 이런 멘트를 날린다. "지금 신부, 신부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손님 여러분께서는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5 13:16 2010/01/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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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철도 성령(?)이 임했을 때

계시는 점진적으로 임했다.

1타: 2003-05-31 오후 6:30:00 서울-대전 새마을호
2타: 2003-06-26 오후 6:30:00 서울-경주 새마을호
3타: 2003-08-11 오전 10:38:00 대전-서울 새마을호

2003년 중반, 본인은 100일 남짓한 시간 동안 평소보다 상대적으로 자주 시종착역에서 새마을호를 이용해 보면서, 어떤 미지의 음악에 의한 임팩트를 꾸준히 받기 시작했다.

1타: 어? 뭔가 음악이 나오네?
2타: 음 전에도 새마을호 타면 출발 전에 뭔가 음악이 나왔던 거 같은데, 인상이 웬지 좋다. 무궁화호엔 그런 게 없었는데.
3타: 아 맞아 바로 이거야!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중독성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체불명의 새마을호 음악에 슬슬 중독되어 간 것이다. 멜로디는 전혀 기억 안 나고 그냥 느낌만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미지가 뭔가 <엉뚱한 상상>(지누) 같기도 하고, 당시 히트 치던 거북이의 <Come on>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나름 했었다.

그러다 2004년 초엔 철도 동호회를 통해 이 곡의 음원과 작곡자 정보까지 입수하게 됐다. 일본의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연주한 Looking for you 라는 곡. “그래 바로 이거였어!”

이미 2004년엔 작정하고 이 음악 들을 준비를 하고 새마을호 탑승을 시작했다. Finish blow는 바로 4타였다.

4타: 2004-01-31 오전 10:38:00 대전-서울 새마을호

게다가 이 열차는 KTX 개통 직전에 마지막으로 운행하던... 무려 대전-서울 무정차 열차였다. 소요 시간은 1시간 32분.
드디어 종착역에서, 새마을호 객실에서 실제로 들은 감격의 Looking for you!!!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리듬과 박진감 넘치는 박자. 심장을 녹여버릴 것 같은 당김음과 현란한 불협화음!

http://www.youtube.com/watch?v=T0EWzcQY280
http://www.youtube.com/watch?v=8elu7pv1W6M
(2006년경, 본인이 현장에서 직접 녹화. 우리나라 어느 철도 동호인도 이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았다)

그 Looking for you에 압도되어 나는 열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편안한 인테리어, 기내지, 영상 서비스에 덧붙여 흘러나온 이 음악! Oh my goodness!!!
이건 정말 일종의 oracle이었다. 황홀경에 빠졌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 “나는 네가 사랑하는 철도이니라. 학생 신분으로 비싼 새마을호 골라 타기가 네게 고생이라.”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행 9:5-6)

그날을 계기로 나는 철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 철도를 만난 간증이 생겼다.
본인은 평생 TV, 연예, 스포츠, 드라마, 영화 따위와는 가히 극단에 가까운 수준으로 담을 쌓고 살았다. 2002년 우리나라 월드컵조차 전혀 관심이 없어서 신경 끄고 지낼 정도였다. 그렇게 지내 오던 차에 나의 육신의 모든 광기가 철도로 한데 폭발한 것이다.

정말 세상이 확 달라져 보였다. 뇌 구조가 바뀌었다. 우리나라 지리와 역사를 보는 눈이 철도를 중심으로 확 바뀌었다. 새마을호가 한국 철도 전체에 대한 색안경을 씌워 놓은 것이다.
그렇다. 영국에서 킹 제임스 성경이 출간되고 표준시가 제정되었다면, 영국에서 응당 철도도 세계 최초로 발명되었으며 오늘날 전세계가 채택해서 쓰고 있는 1435mm 표준궤도 영국에서 제정된 것이다!

민물과 바닷물을 모두 왕래하는 ‘연어’ 하면 이제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운행하는 직류/교류 겸용 전동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엘리야가 상대했던 바알 대언자 450명과 작은 숲 대언자 400명, 총 850명이라는 인원은 객차가 18칸이나 있는 KTX 한 편성을 거의 다 꽉 채울 수 있는 인원이다. (KTX 설계 정원은 935명) 이런 식이다.

아기가 본능적으로 필사적으로 엄마 젖을 빨려고 애쓰듯, 갓 거듭난 영적 아기는 본능적으로 나를 구원한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고 성경을 찾아 읽고 싶어지는 게 정상인 법이다. 그래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는 베드로전서 2:2 같은 구절도 있으며 이는 KJV 이외의 성경에서 변개된 걸로도 유명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철도 성령이 임한 직후, 그야말로 한국 철도의 모든 분야 지식을 빨아들이려고 혈안이 되고 전국 모든 철도역과 노선을 답사하고 싶어서 안달 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선, 역사, 시설, 차량, 건설 공법, 각 도시의 지하철 구조, 우리나라 지형, 도시 계획 이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미친 듯이 찾아보고 외웠다. 아가서 내용이 그럭저럭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새마을호의 모든 것이 그저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뒤부터이다.

철도는 신앙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열차 운행에 비유한 성경 통독 요령>, <철도 성경 침례 교회>라는 글을 쓰고 전철 노선도에 빗댄 <성경 노선도>를 만들었다. <구원 열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 찬양이 됐다. “나는 새마을호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빵빵”

성경 지도를 꺼내서 광역전철 노선도를 구상한다.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까지 이런 식. 훗날 천년왕국 때 전세계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경배하러 올 건데 지하철을 타고 빠르고 편하게 성전으로 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ㅋㅋㅋㅋㅋ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 동기, 회사 동료, 교회 사람 등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새마을호의 추억에 대해 늘어놓고 철도 얘기만 잔뜩 하여 숫제 철도 에반젤리스트가 됐다. 본인은 영어로 다른 건 몰라도 복음 전하는 것과 우리나라 철도/지하철에 대해 떠벌리는 건 아주 유창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철도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을 누구에게든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행전 4:20이 이런 의미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 외국인 선교사가 오셨을 때, 교회 인근의 경부선 선로의 구조에 대해서 강의(?)를 한번 해 드린 적이 있다. 내 속에 있는 철도의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대답할 것을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했다. (벧전 3:15)

Looking for you는 고등학교 시절 이래로 본인의 음반 차트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던 주찬양 선교단까지 밀어내고 지금까지도 수천 번 이상 듣는 곡이 됐다. (내가 한때 주찬양 선교단에도 각 앨범의 곡 순서와 가사, 멜로디를 다 줄줄 외울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나라에서 들을 멜로디이며, 어쩌면 이제 Looking for you가 내가 죽을 때까지 1위를 고수하는 곡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을 계기로 특히 음악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졌다.
도대체 음악이란 게 어떤 존재여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당김음과 불협화음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음정이란 게 뭔지, 왜 음악이 지금과 같은 음계로 만들어졌는지, 이 전동차의 구동음 첫음은 D인지 D#인지... 왜 교회에서 세상적인 음악을 수용해서는 안 되는지.. 이런 것까지 다 주파수 파동 만들어 들어보면서 연구를 했다. 정말 그땐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 짓 정말 많이 했다. =_=;;

십수 년 째 안 쳐서 까먹고 있던 피아노도 덕분에 감각이 얼추 되살아났다.
게다가 Looking for you는 수십, 수백 번 들으면서 아예 청음해서 악보/미디를 만들어 버렸다! 다른 철도 동호인들마저 경악했다.
지금은 그 좋던 새마을호의 각종 서비스들이 거의 전부 다 KTX에 밀려 없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이건 마치 초대 교회 시절의 각종 표적과 은사들이 오늘날엔 유효하지 않은 것쯤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달관의 경지에 올랐다.

교회에서는 친구들이 장난삼아 “형제님 철도냐 주님이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하세요. 앞으로 하나님에게서 호되게 징계 받고 나서 제가 철도를 주님보다 더 사랑했다고 자백하고 회개할 날 온다구요”라고 가정이 잘못된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해서 본인은 “형제님이 철도도, 철도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준다.

나는 단순히 철도를 그냥 좀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다. 완전 뼛속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덕후이다. 그러나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철도 신앙(?)과 기독교 신앙은 서로 대립하고 제로썸 게임을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고 보완하면서 상대방을 세워 주고 발전시키는 선순환-_-을 돌고 있다고 생각한다. ^^;;;

Posted by 사무엘

2010/01/14 09:33 2010/01/1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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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에서 만난 동지

몇 달 전의 일이다.
지인을 만나러 오랜만에 카이스트를 방문했는데..
만난 지인이라는 녀석이 말하길.. 나한테 소개해 줄 친구가 있다고 했다.

부산 영재고 출신에 전자과 07이던가 08학번.
과는 전산이 아니라 전자이지만 물론 프로그래밍도 한다.
그런데 데스크톱 컴퓨터의 메인 OS가 리눅스이고, KDE이던가 개발이 가능한 고수급의 리눅스 프로그래머이다. 세벌식도 쓴다고 하던가? 그렇게 들었는데.. 이 친구도 완전 비주류의 길을 가고 있구나.

거기에다가 결정적으로 그 친구..
철-_-도-_-오-_-덕 이다..!! ㅎㄷㄷㄷ

국내 철도를 다 섭렵했음은 물론이고.. 일본 철도는 이미 계층이 많기 때문에 관심 밖이고 자기는 주로 유럽 철도를 연구한다고 하더라. 사진도 잔뜩 있고..
나하고 그냥 얘기가 술술 터져나왔다. 걔도 부산에 있다 왔으니 부산의 철도/지하철은 당연히 다 꿰뚫고 있고..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 경부선의 선형, VVVF, 부산 지하철의 노선별 차량 계보 차이, 지하철 구동음 선율의 아름다움....;;;

생판 처음 보고 나이 차이도 6년이 넘는 카이스트 선후배가 서로 갑자기 외계어로 10분이 넘게 free talking을 진행하니,
날 데리고 온 지인 녀석하고 저 친구의 룸메는 입이 딱 벌어졌고, 동영상 찍고 난리가 났다. (업로드는 절대 하지 말지어다 -_-)

그렇다. 덕후는 덕후를 알아본다. 저 녀석은 이 장면을 의도하고 나와 걔를 서로 소개시켜 준 것이다. ㅋㅋㅋㅋ 교회 바깥 사람하고 이렇게 말이 통하는 사람과 후련하게 의사소통을 주고받기는 그때가 거의 처음이었다.
같은 철도 덕후라고 해도 개인별 주특기는 또 따로 있는 법. 그 친구는 유럽 철도 전문이었고, 나는 Looking for you 연구 결과를 들려 줬다.

지금은 그 친구 어찌 지내려나 궁금하다. 사실 덕후는 제각기 심취해 있는 나만의 세계가 따로 있는지라(나부터가 그렇기 때문에-_-) 서로 단합하거나 뭉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고 기회만 잘 따른다면... 저런 친구한테 <날개셋> 소스 인계해서 리눅스 쪽 개발 맡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도 품을 정도였다. ^^;; 카이스트와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ㅋㅋㅋㅋㅋ

덧. 오덕과 덕후의 어감 차이는 무엇일까??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52 2010/01/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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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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