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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짐승의 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그 이름도 유명한 짐승의 표, 그리고 짐승의 수 666은..

(1) 당연히 명백히 매우 부정적인 심상이다.
계 14:9-10의 구절로 미뤄 보건대 이건 구원을 상실한 영원한 고통과 형벌을 수반한다. 또한 20:4에 따르면, 반대로 이걸 받지 않아야만 예수님의 지상 재림 때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의 표가 무엇이고 수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실체는 “아직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모른다”가 가장 가장 합리적인 해답이어 보인다.
바코드, 베리칩, 이상한 백신.. 지금까지 예상이 이만치 빗나갔으면 이젠 좀 회개하고 자기가 성경을 적용하는 방식을 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 때문에 지금까지 시험 들고 성경에 대한 믿음, 종말에 대한 믿음이 파괴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3) 짐승의 표는..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짐승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 나서 그 증표로써 받는 것이다.
영적인 가치 판단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단순 과학 기술 문명의 이기는 짐승의 표가 절대로 아니다. 이건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사실인데.. 1990년대부터 교회에서 종말 설레발 함부로 치지 말고 분간을 제대로 했어야 했다.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지불식 중에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느부갓네살 왕 시절에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지불식 중에 왕의 황금 형상에 절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침례교회에서 누군가 당사자가 모르는 사이에 침례를 주는 게 불가능한 것과도 같다. (유아세례야 뭐 애 당사자가 너무 어리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받을 수 있겠지만.. 침례는 그렇지 않다!)

(4)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구원받은 신약 교회 성도들은 이미 휴거되어 올라가고 없고 대환란을 겪지 않는다. 저런 짐승의 표 따위를 마주칠 일이 없다. 올레~!!!
신약 성도들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볼 준비만 하면 된다.

그 대환란을 겪지 않는다고 해서 생활 속에서 예수쟁이로서 일상적인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거나 환란과 고난을 겪지 않는다는 말은 절대 아닌데(행 14:22, 딤후 3:12, 벧전 4:12 따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안타깝지만 엄청나게 많다.;;

지금 우리가 "그때 짐승의 표를 절대 받지 않게 용기 주시옵소서. 고문 당하지 않고 단칼에 순교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열심히 하는 건.. 창세기 50장에서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부디 우리를 해코지를 하지 말고 변함없이 너그럽게 봐 주시옵소서" 이런 간구를 하는 것과 비슷한 짓일 것이다.
예수님과 100가지가 넘게 닮았다는 요셉이 그때 펑펑 울었듯이, 저런 웃픈 기도는 분명 예수님을 울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갸륵하고 기특해서 감동받아서 우시는 건 절대 아니다~!

2. 성경의 예언

본인은 성경의 예언들 중에 2000여 년 전의 예수님의 초림과 명백하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 것, 긴가민가 뜬구름 잡는 것 같고 너무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처럼 보이는 것들은 그냥 “아직 이뤄지지 않은 예언, 재림 때 문자적으로 이뤄질 예언”이라고 본다. 특히 계시록 4~19장 사이 말이다.
전부 다 비유 은유 묵시이고, 지난 2000여 년 교회 시대 동안 서서히 이뤄져 왔다는 식으로 보지는 않는다. 문자적으로 사실이긴 한데, 시기와 장소와 적용 대상이 다르다.. 이게 더 건전한 관점이다.

사실, 성경에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예언이 더 많이 적혀 있다. 은사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욜 2:28조차도 오순절 때 이뤄진 게 아니라 아직 이뤄지지 않은 예언이다.
그런데 당장 이해가 되지 않고 실감이 안 간다고 해서.. 성경이 문자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걸(예: 1천 년, 영과 혼의 구분 따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3. 구원의 확신

(1) 진심어린 동의 없이 영접 기도 달랑 읊고는 거짓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매우 잘못됐지만..
반대로 성경에 뻔히 기록된 약속을 근거로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 자체가 교만(!!!!)이라고 이상하게 몰아세우는 것도 매우 잘못됐다.

(2) 예수님이 언제 오시나, 내일 내게 무슨 일이 닥치나, 짐승의 표의 정체가 무엇이냐 이런 게 불가지론이지..
신이 존재 여부 자체 내지 하나님의 아들 신분으로서 신자의 구원 여부와 사후 세계가 불가지론인 건 절대 아니다.

(3) 신앙 생활이 우리 인간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는 건 믿음만으로 아무 값없이 우리의 노력이 전혀 없이도 구원을 공짜로 얻는 것, 먼저 쉬고 은혜를 누리고 나서 일을 하는 것, 구원이 영원히 탄탄히 보장되어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 반면, 인간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는 건 개인의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고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알 수 없는 것, 성경대로 경건하게 살면 당장 세상적으로 불이익을 겪고 손해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건 몰라도 "평생 죄 짓고 살다가 나 죽기 바로 직전에만 믿으면 되겠네?"가 호락호락 가능하게 해 놓지는 않으셨다.

(4) 비슷한 예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랑과 공의를 겸비하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신 것,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모든 인생 내역과 마음 속 생각이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날 거라는 사실이다.
그 반면, 잘못된 두려움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두려워해서 죄에 동참하는 것,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해서 "이러다 지옥 가면 어떡하나, 대환란 때 단칼에 죽지 못하면 어떡하나" 같은 자포자기 두려움이다.

  • 입문(쉬움): 중생,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 첫 성령 침례, 구원받은 죄인
  • 마스터(어려움): 성화, 죄의 권능/임재로부터 구원, 지속적인 성령 충만, 예수님의 제자

복음서에서 말하는 누구나 쉽게 값없이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 구원에서 시작했다가.. “나보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부자가 하나님 왕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런 오락가락 말씀을 보고는 헷갈려서 오류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구약과 신약의 관계와 공통점과 차이, 세대적 진리 같은 얘기가 통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오락가락 구절에 대한 긴 설명을 이 자리에서 하지는 않겠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는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2)를 다 완수하지 못했다고 해서 (1)마저 박탈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전부이다. (1)을 이뤘으니 (2)는 필요 없다는 둥 다른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본인의 비장의 무기인 “탈북자가 남한에 오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남한 교도소에서 벌을 받지, 북한으로 도로 송환은 절대 되지 않는다.” 비유를 들어도 납득하는 분이 지금까지 본인의 경험상 거의 없었다.ㅠㅠㅠㅠㅠㅠ (우파인데도)

4. 이스라엘

교파에 따라서 견해가 일치하지 않기도 하는 주제를 다루게 되어 좀 조심스럽지만.. 뭐 본인의 소신을 말하라면,
본인은 교회(신자)와 이스라엘(유대인)은 서로 다른 존재이며,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 회복될 거라고 믿는다. 왜냐고..?? 그냥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고 그게 다 이상한 비유 영해 묵시라고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예수 믿어 구원받으면 신약 교회 신자 신분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대체로 눈이 멀었고 심판 받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신자가 유대인들 징벌/심판의 도구를 자처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반유대주의는 잘못됐다. 본인은 영적 유대인 내지 대체 신학을 지지하지 않는다.
맨날 심판 심판 하지만 궁극적으로 회복된다, 완전히 끝나고 파멸되지는 않는다는 게 구약 성경이 맨날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는 내용이다.

다만, 1948년에 건국된 지금 세속 국가 이스라엘이 성경의 타임라인과 얼마나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민족 혈통 개념이 극히 희박해진 지금 유대인이 나중에 다시 열두 지파로 나뉘어서 계시록에 기록된 미래의 환란 성도 역할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겠는지..
이런 현실적인 디테일을 생각하자면 나도 이해되지 않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면모가 있긴 한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더 엄청난 초자연적인 기적도 믿는데 겨우 저 정도는 못 믿을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옛날에 우리나라 할배 대통령은 늘그막에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교류하며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하지만 일본하고는 특이한 과거사 때문에 우리만의 고유한 정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양자인 이 인수 박사의 회고. 난 할배가 하야하지 않았으면 한일 수교는 언제쯤 어떻게 이끌었을지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하다. 박통이 암살 당하지 않았으면 핵무기까지 기어이 정말 만들어 냈을지 궁금한 것처럼..)

그런데 그런 것처럼 하나님 역시 유대인하고는 좀 색다른 고유한 경륜이 있을 거라는 건 매우 합리적인 추론이며 실제로 그러하다. 쟤들은 선민인 한편으로, 예수님을 대놓고 거부하고 십자가에 매단 민족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서 걔들은 초대 교회 시절에 행 2:38 같은 회개의 침례가 따로 필요했으며, 그게 심지어 구원의 조건이기까지 했다. 저 침례는 우리처럼 먼저 구원받고 나서 신앙 고백 후에 받는 침례가 아니다.

요즘 유대인 중에는 뭔가 예수님을 믿긴 해 보이는데 예슈아 이러면서 이상하게 행하는 메시아닉 쥬라는 집단이 있다. 얘들이 부정적인 존재인지, 아니면 그 정도 믿는 거라도 감지덕지 여겨야 하는지 갖고 크리스천들이 다투는 건.. 마치 정치판에서 윤 석열이나 이 준석 같은 인물에 대한 견해 때문에 우파 진영 내부에서 호불호 갈리고 싸움 벌어지는 것과 쏙 빼닮은 현상으로 보인다.
정말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 어쩌면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바울과 바나바의 마가 논쟁하고 비슷한 건지도 모른다.

5. 심경의 변화

  • 마 11에서 침례인 요한이 별안간 예수님에게 자기 제자들을 보내서 당신이 정말 '그 VIP'가 맞는지 확인 질문을 함.
  • 삼상 27에서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생활에 지쳐서 사울의 적에게 잠시 투항하기도 함. (그래도 그 계획은 나가리 나고 고국으로 잘 돌아옴)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그리고..

  •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를 앞두고 사람을 지으신 것을 repent 하셨다.
  • 하나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더 강퍅하게 하셨다.

이런 것은 하나님도 무슨 실수· 후회를 한다거나 자괴감을 느끼고 잘못을 뉘우친다거나, 혹은 사람의 마음을 무슨 로봇처럼 마인드 컨트롤이라도 하시는 듯이 읽힐 소지가 있다. 그런 게 아니다.
하나님이 repent 하신 것은 근심하고 슬퍼하고 애통해하신다 정도의 뜻이다. 그리고 후자는 이미 마음을 한쪽으로 삐딱하게 굳힌 사람이 더 치우치게 내버려 두고 부추긴다는 뜻이지, 방향 자체를 사람의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조종한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보다 자비로운 것은 자비가 아니고,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건 의로움이 아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보상을 바라는 것은 질 낮은 욕심이 전혀 아니며, 그 자체가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보상조차 필요 없다는 건 마치 구원의 확신을 교만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지나친 의로움이며 오류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0/12 08:35 2021/10/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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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구한말에 개신교가 전파되던 초창기에는 감리교가 우세했다. 서 재필, 이 승만, 김 구, 유 관순, 최 용신, 남궁 억, 이 준 이런 네임드급 독립운동가들은 다 감리교인이었다. 제암리 교회도 감리교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국내에서 장로교가 감리교를 누르고 지금처럼 세력이 커지게 됐을까?? 아, 장로교 안에도 고신, 예장, 기장 온갖 브랜드들이 있어서 성향의 차이가 크다는 건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쨌든 하나로 뭉뚱그려 봤을 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진귀한 데이터는 어떤 근거로 산출되었고 믿을 만한지 모르겠다. (☞ 출처)
허나, 이 표에 따르면 장로교는 생각보다 이른 일제 시대 초기부터 감리교를 누르고 우위를 차지했던 것 같다. 1900년대 후반은 정말로 '평양 대부흥'의 버프를 받기라도 한 걸까..?

이 때문인지 일제 말기 때 한국 교회들이 신사 참배에 굴복했을 때, 개인 단위로라도 항거했던 목사들은 다 장로교 출신이었다. 선교 초기에 장로교와 감리교는 한국 땅에서 서로 나와바리(?)를 어떻게 분할했을까?
안 창호도 비슷한 성향과 연배의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장로교 출신이다. 내 직관과 달리, 의외로 감리교가 아니더라.

그 대신 감리교는 초창기에 항일 민족주의 성향을 많이 드러냈고, 이 때문에 일찍부터 탄압을 많이 받아서 교세가 주춤해진 거라는 해석도 있다.
전라도가 3· 1 운동 참가자 비율이 낮았던 이유는 그 동네가 사상이 불온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구한말 때 의병이 제일 많이 활동했었는데 일찌감치 토벌 당하고 와해되고 탄압을 제일 심하게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감리교에 대해서 아는 건 남자한테도 권사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 거 같더라, 목사가 로만 칼라 복장이더라, 알미니안주의를 좋아한다더라, 영성 훈련 이런 거 좋아하더라.. 이렇게 소문으로만 들은 게 전부이다. 직접 경험한 건 전혀 없다.
동성애 지지, 여자 목사, WCC, 정치 운동 이런 거는 특정 교파만의 문제는 아니고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일탈이니, 교파 전체의 문제로 싸잡아 침소봉대하지는 않겠다.

본인의 학창 시절에 학교 근처에 있는 교회들은 다 장로교였지, 감리교는 도통 눈에 띄지 않았다. 좀 엄한 비유이다만, 접근성과 존재감을 햄버거 가게에다 비유하자면 장로교는 롯데리아-_-이고, 감리교는 버거킹 내지 맥도날드 같다.;; ㄲㄲㄲㄲ

2. 일본

일본은 조선(한반도)보다 더 옛날, 중세 때 포루투갈과 교류하면서 가톨릭이 먼저 들어왔다. 심지어 임진왜란 때 왜군 적장 중에도 이미 독실한 신자가 있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하여 에도 막부가 시작됐을 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지독한 가톨릭 박해가 시작되고 그게 공식적으로는 먼 훗날 메이지 유신 때가 돼서야 풀렸다.

쟤들은 왜 가톨릭을 박해했는지, 거기도 황 사영 백서 같은 사건이 있었는지, 일본과 나중에 교류를 시작한 네덜란드나 영국 같은 나라들은 개신교 선교를 하지 않았는지? 일본의 개신교 선교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뭐 그런 것들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내가 자료와 정보를 입수한 게 맞다면.. 일본에서 가톨릭은 제사 거부 같은 종교 교리 때문에 찍힌 것보다는 정치적으로 줄을 잘못 서고 밉보인 게 더 컸다. 하필 가톨릭 신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진영에 많이 있었고 그 중 일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반기를 들기도 했다. 그래서 가톨릭 전체가 역적의 종교로 싸잡아 낙인 찍혀 버렸던 것 같다.

나중엔 이웃 조선에서도 내가 추정하기로 종교 7 정치 3 정도 비율의 반감으로 인해 가톨릭 박해가 시작되긴 했다. 하지만 조선은 법대로 곱게 목을 치기만 했지, 중세 일본처럼 사람을 매달아 놓고 창으로 찌른다거나, 갯벌에다 꽁꽁 묶어서 민물 바닷물에 서서히 익사시킨다거나, 펄펄 끓는 유황 온천에다가 사람을 쳐박아 넣는 식으로 가학적인 방식을 일부러 고안해서 고문· 처형을 하지는 않았다.

에도 막부 때 일본은 왜구가 없어지고 중앙 집권 통치가 정착되고 유럽 나라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예전과는 다른 나라로 탈바꿈했다. (왜구는 이웃나라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장에서도 통제가 안 되는 골칫거리였음)
하지만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국가이던 영국이나 네덜란드와는 처음부터 종교 포교를 금지하고 물자와 기술 교류만 했다. 일본이 오늘날까지도 기독교 계열 종교가 맥을 못추고 소수에 머물러 있게 된 것에는 이런 역사 배경도 기여했다.

그때 일본에서는 '후미에'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신자를 색출했던 걸로 유명하다.
나는 지금 살아 계신 부모님 사진을 밟고 지나가라고 하면 도의적으로 못 하지만, 실제 모습을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예수· 마리아 얼굴 그림이라는 건 차라리 별다른 죄책감 없이 밟고 지나갈 것 같다..;;

물론 성화· 성물로 신자 색출이 안 된다면 쟤들도 어차피 "김 일성 개XX 해 봐" 같은 더 고차원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신앙 고백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색출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성물· 성화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개신교 사고방식에 근거한 후미에 회피는 별 영양가 없는 가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개신교 쪽이라고 해도 좀 보수적인 사람은 외형적인 경건(?)과 절도 있음을 강조하곤 한다. 꼭 예수· 마리아 얼굴 그림이 아니더라도 성경책을 다른 책보다 신줏단지 모시듯이 신성하게 취급한다거나 할 수는 있다. 이런 것까지 그 당시 주변 맥락을 무시하고서 우상 숭배라고 싸잡아 정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출애굽기에서 산파들은 자기 양심과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애들을 살려 주고는 파라오에게 거짓말을 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까지 "산파들이 이유야 어쨌든 거짓말을 했으니 쟤들은 나쁜놈" 이러는 무책임하고 융통성 없는 잔인한 분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같은 사고방식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사고방식, 공의의 판단이 어떠한지를 넓은 안목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 때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은 성화를 감히 밟고 지나가지 않는 게 최선의 신앙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알기로 가톨릭에서는 그런 사고방식의 일환으로 성찬식 때의 빵과 잔도 굉장히 신성하게 취급한다. 정작 개신교에서는 주의 만찬 때 썼다는 포도 주스나 빵이 남았으면 그냥 별 생각 없이 애들 줘 버리거나 임의 처분을 해도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게 옛날에는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교리 차이였다는 게 참 므흣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은 가톨릭이 먼저 들어오고 박해를 한바탕 겪었다가.. 19세기 중후반, 서구 열강이 제국주의 물을 먹어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군대와 선교사를 보낼 때쯤에 개신교가 들어왔다. 이때는 조선은 다 망해 가고 있었고, 일본은 반대로 서양물 먹으면서 근대화 중이었기 때문에 정부에 의한 종교 박해는 없었던 것 같다.

옛날에는 유럽의 기독교계에서도 교리에 목숨 걸면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갖고 열나게 싸웠었는데.. 19세기 말에 가서는 초교파 선교 복음주의 쪽으로 트렌드가 바뀐 듯하다. 나중에는 그게 은사주의로까지 바뀌었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9/22 19:37 2021/09/2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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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의 역사와 성경 번역의 역사

우리나라 자동차

  • 한국 땅에서 자체 조립-_-되어서 굴러간 최초의 자동차: 시발(1955)..;;
  • 시발 같은 영운기 야메 조립이 아니라, 국내에서 정식 면허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 코티나(1968)
  • 국내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1975)
  • 최초로 전륜구동: 프레스토(1985)
  • 최초로 전자제어 다중 연료분사(MPI): 엑셀(1989)
  • 최초로 DOHC 흡기 방식: 엘란트라(1990)
  • 최초로 자체 개발 엔진 탑재: 스쿠프 터보(1991. 알파 엔진)
  • 최초로 로열티 전혀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100% 독자 개발: 액센트(1994)

영어 성경

  • 최초의 중세 자국어 신약 성경(그 자체가 문화충격): 위클리프(139x.. 조선 건국과 비슷)
  • 종교 개혁 이후, 바른 원문 계보에서 최초로 번역: 틴데일(153x.. 신약+모세오경+알파.. 아직 전서는 아님)
  • 최초로 왕이 허락한 신구약 전서: 커버데일(1535.. 이제 번역자가 순교자가 되지 않아도 됨..;;ㅜㅜ )
  • 외국 인쇄 후 밀반입이 아니라 최초로 잉글랜드 내부에서 자체 인쇄: 매튜(1537)
  • 최초로 국비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공역: 그레이트(1540)
  • 최초로 라틴어가 아닌 원어 기반 번역, 오늘날과 같은 장절 구분 도입: 제네바(1560)
  • 모든 논란 종결: 킹 제임스(1611)

이 성경들 중에 바로 제네바 성경이..
잉글랜드 메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서 칼빈이 접수하고 있던 제네바로 망명한.. 청교도 개혁주의 학자들이 만든 성경이다.
칼빈도 선 넘는 신성모독자나 이교도를 사형에 처하긴 했지만.. 그래도 “죽여도 내가 죽이지, 교황이나 가톨릭 군주한테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정도의 지론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 성공회 계열의 비숍(157x) 성경도 있긴 했는데 얘들의 특징은 당장 기억이 안 난다.
유럽의 많고 많은 언어들 중에 영어만이 저렇게 16세기 성경 번역 계보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자세한 설명은 이 링크를 참고하시라. "칼빈과 영어 제네바 성경"

그렇다. 자동차 얘기는 밑밥으로 던졌던 것일 뿐이었다. 둘이 같이 외우면 꽤 재미있다~! ^^

2. 다수와 소수

법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상황에서는 그래도 A가 가해자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이런 식의 문장을 종종 접한다. 그런데 다수설 소수설이라는 건 도대체 누구의 설을 가리키는 걸까?

"...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겠지만 10여년 전 학술 기자로 법학계의 표절 문제를 취재하면서 접했던 실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각종 법학 개론서를 보면 다수설, 유력설, 소수설이란 항목이 나온다. 그런데 그 다수라는 게 우리 학계의 다수가 아니었다. 일본 법학 개론서에서 하나의 조항에 대해 이런 해석을 한 사람은 누구누구 실명으로 거론돼 있는데 그것을 통째 베끼는 과정에서 일본 교수 이름을 쓸 수가 없으니 15명 정도 되면 다수설, 7~8명이면 유력설, 2~3명이면 소수설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긴 당시 국내 최고의 법학과 교수라는 사람은 일본 교과서를 통째 베끼는 과정에서 과감하게도(?) 자신이 쓰지도 않은 일본 저자의 책을 '졸저'라는 이름으로 주(注)에 달아놓기도 했다." (원문이 있는 곳)


끄응....;;;
성경 원문비평학에서 맨날 나오는 다수 사본, 소수 사본 이런 개념과 논쟁거리가 법학 쪽에도 거의 똑같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_<
원문비평학에서도 "더 오래된 / 신뢰할 만한 필사본에는 이 구절이 없음" 이러는데.. 저기서 말하는 오래된 필사본이 정체가 뭔지 실제로 뭔지 알게 되면 역시 경악하게 될 것이다.

3. 다양한 번역과 의미

신학이나 종교학 쪽에 학술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도 둘 이상 여러 역본을 참고하며 읽곤 한다. 동일 구절이 역본마다 미묘하게 다르게 번역되었으면 그 차이점을 곱씹으면서 "음 역시 성경의 원어를 현대인의 언어로 옮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이러며 넘긴다. 다양한 번역본들의 대동소이한 다양한 의미를 섭렵하면 그에 비례해서 옛날 성경의 원래 의미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KJV 유일주의자의 생각은 이와 좀 다르다.
인간이 저술한 다른 평범한 문학 작품이나 고전이라면 모를까,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 기록된 유일한 텍스트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을 사용해서 온전히 보존해 주셨다.

굳이 다양한 번역을 통해서 다양한 의미를 곱씹을 필요가 없다.
텍스트를 KJV 단 하나로 고정시킨다 하더라도, 성경엔 거기서 또 다양한 번역이 나올 수 있는 중의적인 표현이 이미 넘쳐나기 때문이다.

제일 대표적인 예로 창 22:8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이 있다. 이건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신다"일까, "자신을 위해 어린양을 따로 예비하신다"일까..??
이건 KJV가 모호하거나 부정확하게 번역된 게 아니다. 원어에 원래 들어있던 중의적인 표현까지 통째로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된 것이다.

그거 말고.. '사탄의 왕좌'이냐 '사탄의 자리'이냐?? '맏아들'이냐 그냥 '아들'이냐? '이스터'냐 '유월절'이냐?
'순교자'냐 '증인'이냐? '주여'냐 '예수여'냐 같은 것은 맞고 틀림의 문제이다. 둘 다 옳을 수가 없다.
성경이 변개됐느냐, 성경에 오류와 모순, 혼란과 혼돈이 생기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풍성한 의미 차원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그런데 현대 역본들은 정작 KJV의 함축· 다의· 중의적인 번역은 읽기 힘들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다른 표현으로 바꿔 버리곤 했다. 창 22:8은 God will provide FOR himself a lamb이라고 해서 하나님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한다는 의미는 제거했으며, KJV에서 대명사로 번역한 단어는 문맥상 실제로 가리키는 인물 이름으로 치환해 버린다거나 했다. 이것 역시 생각할 점이다.

4. 전하는 방법

주변에 KJV라는 성경을 소개할 때.. "이건 지난 수백 년 동안 영어권 국가에서 읽혀 왔으며 유명하고 위대한 옛 설교자와 복음 전도자들이 사용했던 고전이에요. 종교개혁 성경이에요. 한번 읽어 보세요" 이렇게 여러 좋은 옵션 중 하나로서 권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날을 세워서 "KJV만 옳고 다른 성경들은 변개된 곳이 적어도 한 군데 이상 있습니다"라고 강하게 팩트폭격을 하는 방법이 있다.
이것도 더 세분화하면 KJV를 단순히 가장 뛰어나고 정확한 번역본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아예 절대무오 최종 권위이고 원어 원문과 동급, 아니 그걸 능가한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이렇게 KJV를 좋은 성경 역본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KJV만이 옳은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 두 모드는 내 경험상, 상황에 따라 적절히 잘 선택해서 구사해야 할 것 같다. 복음 전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성경은 최소한 사람의 구원을 가르는 문제는 아니니 유도리의 폭이 넓다.

다만, 예수 믿어 구원 받았다면서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자신의 말씀을 오류 없이 정확하게 보존해 주셨다고 믿지 않는 것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 "예수님이 가까운 미래에 문자적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당신의 삶에 관심을 갖고 개입하고 계신다"를 차마 못 믿는 '구원받은 불신자'에 가까운 안타까운 모습이긴 할 것이다.

5. 음모론이 개입한 성경 역본

본인은 KJV 유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진영으로부터 KJV에 대한 온갖 반대 주장과 트집들을 접해 왔다.
이 구절은 오역이고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비판은 차라리 나은데.. 그 중에는 제임스 왕에 대한 온갖 중상모략도 적지 않았다. 왕권신수설 꼴통 꼰대, 호모 변태, 심지어 프리메이슨...

그럼.. 같은 방식으로 동성애 옹호, 예수님 신성 부인 등 그들이 지지하는 현대 역본 번역자들의 놀라운 사상과 신앙관에 대해서는 공평하게 살펴봤나 모르겠다. 차라리 엄청 보수적이던 옛날 사람인 제임스 왕이 훨~~씬 더 건전할 정도인데..
이렇게 맞불을 놓을 수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호불호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뒷배경엔 돈줄을 쥔 악한 빅브라더 조직이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지금까지 늘 존재해 왔다.
성경 역본 분야에서는 원래 KJV 유일주의의 강경 지지자들이 New Age Bible Versions 운운하면서 음모론을 제기하곤 했는데..
본인은 완전히 반대로 제임스 왕이 무슨 프리메이슨이고 둥근 눈깔과 컴퍼스가 그려진 KJV 책이 있네 하는 낭설도 접하고는 크게 놀랐다. 허허.. 이런 식의 음모론 놀이는 나도 자신 있는데..;;

석공이라고 하니까 성경적인 심상이 곧바로 떠오르는 건 성경에서 자체적으로 매우 자주 인용한 예언 중의 하나인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이다. (막 12:10 등)
오늘날 가장 인지도 높은 영어 성경인 NIV는 cornerstone을 capstone이라고 번역한 유일한 역본인 거 다들 아실랑가 모르겠다?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 제일 꼭대기에 얹히는 그 삼각형 뿔 모양의 돌멩이 말이다. 모퉁잇돌은 건축물의 아래에 놓이지만, 캡스톤은 건축물의 위에 놓인다.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다~!

NIV는 히브리서에 나오는 '개혁의 때'도 'new order'이라고 대놓고 '새 질서'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여기서 길게 글을 쓰지는 않겠지만.. 나도 프리메이슨, 뉴에이지 음모론 한때 왕창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깔 게 없어서 제임스 왕을 프리메이슨이라고 깐다면, 나는 같은 방식으로 얼마든지 더 받아쳐 줄 수 있음을 밝힌다. NIV 정도는 돼야 프리메이슨이 개입한 역본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시대에 프리메이슨은 그냥 상류층 인사들의 사교 클럽에 가까웠다.
일제 시대에 창씨개명을 한 사람이 다 반민족 악질 친일파는 아니듯이, 프리메이슨이라는 것 자체에 그렇게 또 너무 과민반응을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도 가 봐도.. 저런 컴퍼스가 그려진 묘비를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이상이다. 이 글에서 나열한 여러 아이템들이 성경 역본 문제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시길 바란다.
본인은 프리메이슨 음모론보다 대한민국 철도청의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음모론을 훨씬 더 진지하게 믿는다.

Posted by 사무엘

2021/09/06 08:35 2021/09/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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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 찬송가에 수록된 제일 최신곡

한때 우리나라 교회에서 널리 쓰인 찬송가는 잘 알다시피 558곡짜리 통일 찬송가였다.
(난 21세기 새찬송가라는 건 진지하게 사용하고 분석해 본 적이 없어서 얘에 대해서는 뭐라 단정적으로 말을 못 하겠음. 그래서 라떼 옛날 것 기준으로..)

통일 찬송가는 편찬 위원들의 창작곡을 일부러 집어넣은 것을 제외하면, 수록곡들 중에 제일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1938년작인 “온 세상 위하여” 정도였다. (명목상 이것보다 미묘하게 더 최근인 곡도 있긴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루도록 하겠음)

요컨대 이 클래식 찬송가들은 대체로, 사실상 전부 다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핵무기, UN 따위의 등장 이전 말이다.
난 개인적으로 저것들이 등장하기 전과 등장한 후의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생활 방식은 서로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음악 자체만 해도.. 내가 잘은 모르지만 국민악파니 신고전주의니를 거친 뒤, 20세기 중반쯤부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실용/세속 영역에 속한 '현대 음악'이 주류로 등장했다. 통상적인 클래식 장르는 뭔가 매니악한 별개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성탄절을 소재로 하는 노래들도 1940년대쯤부터 예수 성탄 찬송보다는 세속적인 캐롤로 확 바뀌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the Christmas song 등..
한때는 롤스로이스가 엘비스 프리슬리한테도 “당신 같은 딴따라한테는 우리 차의 품격이 어울리지 않습니다”라고 퇴짜 놓고 차를 안 팔았을 정도였던 것 아시는가? (그래도 나중엔 결국 팔았다고 함)

그리고 분야를 완전히 바꿔서 과학 쪽으로 가면.. 지금 지구의 대기는 이산화탄소 농도만 증가한 게 아니라 방사능도 전지구적으로 극미량이나마 증가해 있다고 한다. 원자폭탄 투하와 각종 핵실험 때문에..
물론 그게 인체에 당장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 정도 변화에도 민감한 초정밀 기계를 만들 때는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오죽했으면 1945년 이전에 만들어진 강철이 필요하다고 태평양 전쟁 때 가라앉은 일본 전함의 잔해 고철을 끄집어내서 재활용할 정도라고 한다. 바닷물 속에 쳐박혀 있으면 다른 방식으로 부식될지언정, 방사선으로부터는 완벽하게 차폐를 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학 기술은 공기 중에 정말 새 발의 피만치도 들어있지 않은 방사능을 감지하고, 방사성 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도 하고, 납 성분도 덤으로 감지해서 무연 휘발유까지 만드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

지질학에서 6500만 년 전, 46억 년 전 할 때의 before present 기준 연도는 바로 이런 관측이 시작된 시기 근처인 1950년 1월 1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것처럼.. 195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찬송가들은 1945년 이전에 만들어진 철과 비슷한 대표· 상징적인 의미가 영적 분야에 있는 것 같다.
다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산마다 불에 탄다 고운 단풍에” 같은 창작곡은 1967년작이다~~ ㅎㅎ

2. 앨버트 심슨, Once it was the blessing

앨버트 심슨은 찬송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를 작사한 캐나다의 목사, 신학자이다.
이 사람이 작사한 찬송가 중에는 저것 말고도 "Once it was the blessing"이라는 게 있다.

"한때는 난 오로지 복만 잔뜩 받고 싶어했는데 지금은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한때는 난 '필'에 꽂히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말씀을 더 좋아합니다.
한때는 열심히 간구 기도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이용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하나님이 날 사용해 주시길 원합니다.
...
한때는 내 혼자 뭘 열심히 해 보려 애쓰고 낑낑댔지만 지금은 난 그분 안에서 평안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해 있고 그분이 모든 것이십니다."


송 명희 시 같은 대구로 가득하면서 신앙 생활과 영적 성숙의 본질이 잘 담긴 굉장히 훌륭한 시임이 틀림없다.
본인은 몇 년 전에 울 교회의 주보를 통해서 이 시를 처음으로 접했다. 담임목사님께서 엄청난 학구파 독서광에 거의 걸어다니는 신앙 서적 검색엔진 급이신 분이어서..; 온갖 출처로부터 신앙 생활과 관련된 유익한 글이 있으면 일부 excerpt를 소개하곤 하셨기 때문이다.

난 신앙 서적 검색엔진은 아니지만 회중 찬양 선곡과 인도 짬이 10수 년.. 내 찬송가 책이 다 낡고 성경책 이상으로 너덜너덜할 정도로 책을 많이 뒤진 상태였다. 걸어다니는 찬송가 검색엔진은 얼추 된다.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복음 찬송가' 책에 저 시와 비슷한 내용의 가사가 담긴 신곡을 본 적이 어렴풋이 있었다. 직접 불러 보거나 들은 적 없이, 악보를 눈으로 대충 읽고 지나갔던 기억만으로 말이다.

그걸 찾아냄으로써 "768장 복을 바라던 나 주를 바라고"가 울 교회에서 회중 찬송 때 최초로 소개되었다. 요런 것도 찬양 인도자가 경험하는 작은 보람이다.

기존 통일 찬송가에도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이라고 곡이 실려는 있지만..
얘는 가사가 굉장히 딴판으로 번역되는 바람에 사람이 성숙하여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원문의 저런 반전 역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은혜를 구했더니 은혜, 신유를 구했더니 신유..;;;; 바뀐 게 없잖아~~ ㅋㅋㅋㅋㅋ

3. 웬일인가, 웬 말인가

우리말 찬송가 중엔 ‘웬일~’ 이렇게 놀라움, 경악을 뜻하는 ‘웬’이라는 글자로 가사가 시작하는 곡이 두 개 있는데.. 작사자는 서로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멜로디가 동일하다. 가사가 5절까지 있는 것까지도 같다~!
하나는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라고 예수님이 감히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셨다니~! 그렇게 감격하고 놀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웬일인가, 내 형제여”라고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너 그렇게 안 믿다가 죽어서 지옥 가겠구나, 마귀를 좇고 재물만 좇다가 나중에 쫄딱 망하겠구나, 불에 활활 타겠구나, 인실X을 체험하겠구나..;;” 이렇게 경고하는 굉장히 부정적인 내용이다. 찬송가에 속해 있지만 내용은 찬양이라기보다는 복음성가에 더 가깝다.

게다가.. 찬송가 가사라는 게 보통은 한국어 번역이 영어 원문보다 더 부드럽게 희석되고 미화되는 편이다. 영어에서 hell이 있다 해도 그대로 번역 안 하는 편인데..
“웬일인가 내 형제여”는 한국어 가사가 영어보다도 ‘지옥’이 더 많이 나온다~! 이건 굉장히 이례적인 번역 스타일인 것 같다.

이 정도로 청자에게 부정적인 경고, 책망조의 가사는 개인적으로 딴 데서는 주찬양 1집 “참 소경” 정도밖에 못 봤다.
“(말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를 못 하는 사람이 벙어리, 앞 못 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소경 등등등~) 당신은 소경이 아닌가 / 당신은 병신이 아닌가” 이런 가사이다.;; 이건 가사가 노래 없이 시의 형태로 먼저 존재했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영어 찬송가는 tell과 롸임을 맞춰서 hell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 “웬일인가..”뿐만 아니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도 딱 저 롸임이 존재한다~!

4.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이 유명한 찬송가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지금의 형태로 완성됐기 때문에 내력이 좀 복잡한 곡이다. 깔끔하게 단일 작사자나 작곡자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원곡은 스웨덴 민요 멜로디에다가 언어조차도 영어가 아니었다고 한다. 독일어와 러시어 가사부터 먼저 있다가 나중에 영어 번역이 몇 가지 나왔으며, 가사는 3절까지 있던 것이 추후에 4절이 추가됐다.
이 때문에 이 곡은 처음 1, 2절은 자연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 8편 같은 분위기이지만 3절은 "살아 계신 주" 같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 얘기, 그리고 4절은 무려 재림 얘기까지 기독교 교리가 두루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엔 1949년작 영어 가사가 채택되어 있다. 이거 가사를 번역한 사람이 4절을 추가하고 멜로디를 개작도 한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은 연식에 비해 최종 작사· 작곡 연도가 2차 세계 대전까지 지난 굉장한 현대라고 기재되어 있다.
게다가 영어 가사만 바리에이션이 있는 게 아니다. 한국어 번역도. 가톨릭 쪽 번역과 개신교 쪽 번역이 서로 나뉜 상태이다.

이 곡의 영어 가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2절에서 "그랜저"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grandeur는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의 이름으로나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웅장함, 장관' 이런 뜻을 지닌 보통명사이기 때문이다. When I look down from lofty mountain grandeur.. 그랜저가 저렇게 쓰인 걸 본인도 난생 처음 봤다.

그랜저는.. 한때 지존파의 살생부에 이 차의 차주가 올라가 있을 정도였고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저로 답했습니다" 이런 정신나간 CF도 만들어졌을 정도로 고급차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그랜저가 30년 전만치 고급차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도 여전히 아무나 탈 수 있는 서민형 차는 아니다.

5. 샤론의 꽃 예수

멜로디가 굉장히 예쁜 곡답게, 현대에 속하는 1920년대에 발표된 곡이다.
얘는 4개의 절로 된 가사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결교의 4대 강령과 순서대로 대응하는 것 같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 그래서 신유에 해당하는 3절을 보면 얘는 찬송가 중에서는 흔치 않게 “질병을 고쳐 주소서”라는 간구가 들어있다~!

아울러, 영어 가사는 똑같이 my life이지만 1절은 중생(거듭남)이라는 갓 구원 문맥이기 때문에 “내 생명”이고, 2절은 그 뒤의 성화되어 가는 모습(성결) 문맥이기 때문에 “나의 삶”인 것도 주목해 보자.
아 2:1 rose of Sharon은 ‘무궁화’라고 통용되는 단어인데.. 정작 무궁화를 국화로 쓰고 있는 나라에서는 장미나 무궁화도 아니고 수선화라고 더 널리 알려져 있다. ㅎㅎ

이렇듯, 어떤 찬송가는 아주 원론적이고 무난한 메시지만 있는 게 아니라 특정 노선이나 교파의 교리를 좀 더 부각시킨 경우도 있다. 이러니 종말이나 천국을 소재로 한 찬송가는 가사를 쓰기가 난감해진다.

그런데.. “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이 거역하는 인생을 은혜로 택했네 … 자랑하지 않게 함이요, 하나님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 요 곡은..
개신교/기독교라면 차이가 존재할 리가 없는 구원과 은혜라는 공통 교리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예정론 냄새가 같이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꼭 장로교가 아니어도 크게 신경 안 쓰고 부르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1/07/30 08:33 2021/07/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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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 용어들

1. 인내(perseverance)

100여 년 전에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Endurance라는 이름이 붙은 배를 타고 남극까지 갔다가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왔다. 배의 이름이 '인내'라는 뜻인데 선장이 배의 이름값을 톡톡히 치렀다.

그런데 2021년 초에는 비슷하게 '인내'라는 뜻이지만 스펠링은 다른 Perseverance이라는 이름의 미국 우주 탐사선이 화성에 착륙했다.
굳이 순우리말로 바꾸자면 하나는 참음이, 다른 하나는 견딤이 정도 되겠다. RSA 암호화도 로컬라이즈 하자면 무슨 박이정, 김이박 암호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듯이 말이다.;; (그냥 자기 성 이니셜..)

요런 태양계 시뮬레이터(☞ 링크)를 돌려 보면, 2020년 9~10월.. 요 때가 지구와 화성이 제일 가까워지는 때임을 알 수 있다. 화성 탐사선은 2020년 하반기 동안 그 타이밍에 맞춰 최단 시간 최단 거리로 화성에 도착하는 경로를 타고 날아갔다.

더 찾아보자면.. 1988~1990년 사이에는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진짜로 얼추 가깝게 일렬로 늘어서 있어서 보이저 2호 탐사선이 이들을 나란히 촬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해서는 그런 거 전혀 없었으며, 뉴 호라이즌스는 오로지 명왕성만을 향해 9년 동안 외로운 항해를 했던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난 칼빈의 5대 강령 중 마지막인 '성도의 견인'이 perseverance가 아니라 preservation인 줄로 막연히 알고 있었다.;;
저 견인이 불법주차 차량 견인 할 때의 견인일 리는 없겠지만.. -_-;; (그런데 끌어당겨서 이끌어 주신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저게 구원의 영원한 보장하고도 관계 있는 강령이니 보호 preservation이 심상 면에서 어울리지 않는가?
견인 할 때 '인'은 참을 인 짜였나 보다. 뜻이 직관적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는 아니다.

영어로도 인내 하면 patience나 아까 저 인듀어런스가 더 친숙하지, perseverance는 좀 생소하다. 에디슨의 명언에 등장하는 perspiration처럼 pers*로  시작하는 어려운 단어의 양대 산맥인 것 같다. 그래도 perseverance도 성경에서 엡 6:18에 딱 한 번 나오긴 한다.

2. 상징

우리나라 헌법은 그 유명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시작한다.
이 나라의 총체적인 정체성을 규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 제일 먼저 제1조에 나온다. 이 조항 때문에 대한민국은 민족 정서나 정통성만 옛 조선을 계승할 뿐, 정치 모델은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법학자가.. 자기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헌법 제1조가 제일 사이다 같고 후련하고 자랑스럽다고 회고했던 바 있다. 심지어 이 조항에 곡을 붙인 민중가요도 있다..;;

그런데 일본 헌법은..;; 덴노, 천황부터 나온다.
“제1조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국민의 총의로부터 나온다.”
이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상징’이라는 단어가 거듭해서 쓰인 유명하고 인상적인 문장 예시인 것 같다.

그런 것처럼.. 신약 교회에서 행해지는 침례, 그리고 주의 만찬에서 쓰이는 빵과 포도즙은.. 그 자체가 다른 종교적인 효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그냥 ‘상징’일 뿐이다~!
오늘날 일본 천황이 정치적인 권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외치면서 옛날 같은 또라이 짓을 또 반복하지 못하도록 힘을 빼 놓음)

3. 살, 뼈, 피

성경에서 육체의 구성요소로서 살(flesh)과 나란히 언급하는 유의어로는 뼈와 피가 있다.

: 아담이 이브에 대해서 한 말이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였다(창 2:23). 예수님의 말씀 중에도 있다. "영에는 살과 뼈가 존재하지 않는 반면..." (눅 24:39).
또한, 마귀가 가장 악랄한 육체 고문 얘기를 꺼내면서 뼈와 살을 거론하기도 했다(욥 2:5). 그러니 김 성모 만화에조차 뼈와 살을 분리해 주겠다는 대사가 들어간 것이지 싶다.

: 이건 기독교 신자에게는 주의 만찬 때문에 아주 유명할 것이다. 그리고 엡 6:12에서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는 게 아니며"라고 언급되었다.
그 밖에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고전 15:50),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간파할 능력도 없는 존재라고 나온다(마 16:17).

하긴, 성경적으로는(그리고 아마 의학적으로도 실제로)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피가 만들어지는 곳이 뼈(골수)이다. 그러니 살과 뼈와 피는 마치 몸, 혼, 영만큼이나 거의 삼위일체 급으로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인 듯하다. 정확히는 몸(살-뼈-피), 혼, 영 이런 관계가 되겠다.

자매품으로는 skin and flesh가 있고, 물과 피도 있다. 물과 피는 요일 5:6,8의 그 삼위일체 구절, 그리고 요 19:34에서 예수님이 옆구리가 창에 찔리면서 흘러나온 체액이라고 언급되었다.
세상 관용어 중에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 "내 눈에서 눈물이면 니 눈에서는 피눈물"(!!) 같은 말이 있으니.. 물의 대구· 반의어로는 불뿐만 아니라 피도 임팩트가 꽤 크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살 - 피 - 물 - 불" 이렇게 뭔가 의미가 연결된다.

4. man과 virgin

영어에서 man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주변 문맥에 따라서는 woman의 반의어인 남자라는 뜻도 있고, child/kid의 반의어인 성인이라는 뜻도 있다. (대표적으로 고전 13.. "내가 커서 어른이 된 뒤에는 초딩의 길을 버렸노라")
물론 요즘이야 의미를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면 male이나 adult 같은 단어가 대신 쓰이며, 성별 구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강조하려면 person이 투입되기도 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성인 남자만이 진정한 능력과 책임감을 갖춘 사람으로 취급돼서 그런지 구분의 필요성이 현대보다 덜했는가 보다.

man이 남자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는 뜻이라면, virgin은 여성에서 출발한 '미혼자, 동정'이라는 뜻이다. 미혼 여성이니까 처녀라는 뜻이 굉장히 강해지지만 virgin은 넓은 의미에서는 꼭 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14만 4천 명의 사람들은.. 여자와 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virgin이라고 지칭되었다.
성경이 레즈비언-_-;;;을 말할 리가 없는 이상, virgin은 그냥 동정이라는 뜻이다.

man과 virgin 모두 성경에서도 중요하게 쓰이는 단어인데.. 관계가 이렇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5. 이론 (theory) -- 창조

세상에는 자연의 기원과 관련하여 성경과 과학이라는 토끼 두 마리를 모두 잡으려 하는 진영이 있다. 본인은 이와 관련하여 "(1) 세상은 절대자가 치밀하게 설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연히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와, "(2) 우주 및 지구는 나이가 수천 년 남짓하며 젊다"를 구분해서 생각한다. 둘은 마치 인공위성과 우주 발사체만큼이나 주 관심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1)은 솔직히 자연과학의 연구 방법론으로 증명이나 반증할 수 없다. 그리고 신만 개입하면 되니 유신론적 진화론도 가능하고 연대기에 막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2)는 일단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대두된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얼마나 되냐, 방사성 연대 측정법에는 오류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신의 존재 여부를 배제하고 과학만으로 얼마든지 따져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창조론은 진화론과 달리, 과학적 연구방법론을 갖추지 못한 신앙 신념 주장일 뿐이고 과학 이론이라고 불릴 수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이야 말할 것도 없고 (2)조차도 과학적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고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각종 위키 사이트에서는 이 학설(?)이 창조론이 아니라 '창조설'이라고 등재돼 있다. theory가 아니라 doctrine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이 아니라 신학이나 철학의 영역으로 분류한다.

세계사에서 "먼로 독트린"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 신경 끄고 간섭하지 마라" 이건 그냥 선언이고 정의일 뿐, 논리를 따지고 논쟁할 대상은 아니다. 세상은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 의도적으로 설계됐다는 성경의 진술 역시, 저 먼로 대통령의 연설만큼이나 선언, 학설 떡밥, 주장, 종교 교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의 창조를 믿는 사람이 애시당초 창조론이니 창조설이니 하는 용어에 꼭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일례로, 내가 노아의 홍수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쓰여 있고, 예수님이 그걸 역사적 사실이라고 언급하고 인용했고, 성경 기록이 충분히 정확하게 잘 보존되고 전수됐기 때문이다. 무슨 인공위성 지도를 보니 아라랏 산 정상에 방주 잔해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성경에도 피에 대해서라든가 위생 관념 같은 일부 진술은 과학적으로 옳고 명백히 시대를 앞섰던 것이 있다. 이에 대한 지식은 성경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모함 험담 따위를 반박하고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경이 하나님의 존재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입증하는 책인 건 결코 아니다. 자기 신앙을 과학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는 내 경험상 별 영양가 없다. 내게는 노아의 방주 흔적이 현장에 남아 있는 것보다 킹 제임스 성경이 무오하게 전해져 온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이다~!

쟤들은 신이 존재하는 과학적 증거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는 배제하고..;; (1)이 아니라 (2)라도 제대로 공략해야 할 것이다. 통상적인 연대 측정법을 과학 실험을 통해 부정하고 모든 지질 변화를 노아의 홍수 하나만으로 설명하면서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고 주장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과학 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학 분야는 아니지만 옛날에 고고학자 헤이에르달이 몸소 뗏목만으로 바다를 건너서 자기 학설을 입증했듯이 말이다.

6. 이론 (theory) -- 간극

다음으로.. 창 1:1-2 사이에 긴 간극이 있다는 성경 해석 체계를 '간극 이론'이라고 한다.
간극이야 애초에 자연과학이 아니라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는 연구방법론으로서 자기 도메인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theory라고 불리는 것에는 논란이 없다.

그런데, 간극을 교리적으로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건 당연한 성경적 사실이지, 무슨 따지고 논쟁하고 따지고 반박할 여지가 있는 이론이란 말이냐?"이다. 즉, theory라고 불리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여기며 그냥 gap fact라고 부른다.

간극 이론은 천문학이나 지질학에서 말하는 긴 연대기와는 전혀 무관하다.
"물은 언제 창조됐고 천사들과 루시퍼는 언제 창조됐냐?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해 봐도 6일 창조 도중은 절대 아니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6일을 제멋대로 늘어뜨릴 수는 없으니 답은 결국 그 이전 세상밖에 없구나" 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과학의 긴 연대기와 일치하는 건 그 다음으로 그냥 덤일 뿐이다. 과학부터 먼저 생각한 뒤에 성경을 거기에 끼워 맞춘 게 절대로 아니다.
창조과학 진영에서 젊은 지구의 증거를 일부 들이대는 건.. 만약 정말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면 그건 6천여 년 전 6일 재창조의 얼마 안 되는 흔적일 것이다.

3과 4를 종합하자면.. 창조설 내부의 분파로 간극 이론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이게 이 문제의 가장 합리적인 해답이다. 물론 나 같은 신자의 신념에 따르면 창조와 간극 다 그냥 팩트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1/07/19 08:35 2021/07/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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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아카라이브 냥드립 채널에서 누군가가 성경 창세기의 소돔 이야기를 만화로 각색해 놓은 것을 봤다. 굉장히 재미있게 잘 그려 놔서 본인은 아놔..ㅠㅠㅠㅠㅠ 현웃 하면서 봤다. (☞ 링크)
신성모독적인 요소 없으면서 적당히 오덕과 비속어와 개그 패러디 코드가 들어있는 요런 스타일의 만화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소돔잘알인 롯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뉴비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여기 계시다간 직장 활동에 문제가 생깁니다. / 백수인데 / 그 직장 말고" ㄲㄲㄲㄲㄲㄲㄲ
  • "소돔인의 패악질을 본 천사들은.. 이 새끼들은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 "븅신같은 ㄴ이 하지 말라는 짓은 꼭 해 가지고.. 보고 싶다 썅년아!!" (롯.. 자기 부인을 잃은 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와.. 소돔과 고모라를 석기시대로 되돌려 준 천사가.. 알고 보니 커티스 르메이 아재였어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단, 우리엘..?? 그런 이름은 성경에 없음)

1.
저기서 의미심장한 관찰은..
"노아 때처럼 대홍수를 터뜨릴까요? / ㄴㄴ. 다시는 물로써 심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 않느냐"이다.
실제로 성경적으로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심판은 규모와 수위 면에서 서로 대등한 twin을 형성한다. 예수님도 노아의 날과 롯의 날을 대조해서 언급하셨고, 베드로후서 2장에서도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심판이 나란히 나온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이들은 사건 이후에 자녀가 애비를 상대로 민망한 짓을 했다는 공통점까지 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노아의 아들 '함'이..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멸망 이후에는 롯의 딸들이 말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굉장히 동심파괴적인 요소이다.
단, 전자는 애비가 스스로 술 마시고 취해 자빠졌고, 후자는 딸들이 애비한테 술을 강제로 먹였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창세기의 사건들과 달리, 베드로후서 3장에 나오는 불 심판은 규모와 차원이 완전히 다른 심판이며.. 그 이전의 물의 넘침도 노아의 홍수보다 훨씬 더 큰 심판과 간극을 암시한다.

2.
성경을 좀 읽은 사람이라면 창세기 19장뿐만 아니라 사사기 19장에서도 소돔 고모라와 거의 판박이 장면이 또 나온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상에 자기 딸을 내어 주겠다니 저런 막장 쓰레기 애비가 있나”라고 읽을 게 아니라 그 반대다. 집단 동성애 광기가 얼~~~마나 흉측하고 끔찍하고 차마 형용조차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짓이었으면 정상적인 애비가 자기 친딸을 희생양으로 치러서까지 수습하고 무마하려 애썼을까..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버스를 제어하지 못해서 운전사가 불가피하게 주변의 누구를/어디를 치느냐 고민하다가.. 눈물을 머금고 자기 친자식을 선택하는 상황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
“차라리 내 딸을 줄 테니, 같은 남자끼리는 제발 그러지 마세요~ 평범한 강간 범죄자가 될지언정 인간이기를 포기하지는 마세요” 말이다. 비역질은 무슨 인권 라이프스타일 따위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사기 19장에서는 결국 남성 손님 대신 그 손님의 첩이 폭도들에게 끌려 나갔다. 남색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첩은 밤새도록 온갖 학대를 당한 뒤 이튿날 아침에 결국 죽었다.;;

3.
마지막으로, 이 만화에서 기독교 교리 차원에서 약간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딸을 팔아먹긴 했지만 소돔 기준으로 '그나마' 의인이었던 롯을 살리기 위해" 부분이다.
이건 100% 정확한 진술이 아니다.

벧후 2:7에서 롯이 의인이었다고 말하는 건.. 롯이 소돔의 돈고춘 새키들에 '비해서' 의인이었다는 게 아니라, 완전히 구원받아서 예수님의 의가 대신 전가된 수준으로 의인이었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육신적이었고 소돔과 고모라에 제 발로 가서 고난과 삽질을 자처했고 민망한 흑역사를 남겼지만.. 죄인 신분은 아니라는 그런 차원이다.

  • 구약에서 완전 개망나니처럼 살았지만 신약에서 입 싹 씻고 의인 보정을 받아 있는 인물은 무조건 구원받은 사람이다. 삼손, 롯.. (단, 사울은 이런 레퍼런스가 신약에 존재하지 않아서 긴가민가)
  • 그 반면, 신약에서도 대놓고 부정적으로 언급된 구약 인물은 지옥 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카인, 이세벨, 발람.
  • 그리고 신약에서 최후가 안 좋은 사람(아나니야와 삽비라, 데마 등), 구약에서 벌을 받아 그냥 목숨을 잃은 사람(웃사 등)은 단순히 그 사실만으로 구원 여부를 단정지을 수는 없으며, 내 생각에는 구원은 받았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고 보니 롯은 부인과 사위와 전재산 다 날리고 나서 결국 텐트.. 아니, 동굴로 들어가서 야인 생활을 시작했구나! 포도원 농부라도 된 노아보다 더 막장으로 전락하긴 했다.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1/07/07 19:35 2021/07/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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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질적이지 않은 오해와 중상모략

세상에는 기독교의 탈을 쓴 이단 사이비가 여럿 있다. 이단들은 단번 속죄 구원의 영원한 보장 교리를 이상하게 배배 꼬는 경향이 있다.
아예 구원의 상실,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건 예사이고, 반대편 극단으로 가서 이제 죄 용서 받았고 구원받았고 무슨 짓을 해도 지옥은 안 가니 "니 꼴리는 대로 살아도 된다, 심지어 일체의 참회나 회개를 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롬 6:1-2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헛소리를 하는 곳도 있다.

이런 소리를 정상적인 크리스천이 들으면 "그건 성경의 가르침을 일부만 그것도 아주 잘못 적용한 이단 교리일 뿐이다. 성경은 그런 막장 결론을 의도하거나 조장하지 않으며, 우린 그런 가르침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라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영화 밀양에서 묘사된 것처럼 "나는 신에게 다 용서받았으니까 괜찮아~" 이러는 양심 마비자를 제정신 박힌 크리스천이라고 간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비슷한 논리로, 진화론에 대해서도 진화론적 세계관, 무신론, 유물론, 우생학, 사회 진화론 이런 것까지 연루시키면서 이놈의 사탄 마귀적인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서 나치즘과 공산주의가 생겨났고 젊은이들의 정신이 황폐해지고 어찌 됐네 이렇게 프레임을 씌운다면... 단순히 과학 이론으로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하고는 더 대화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진화론자라도 "흑인은 인간과 짐승 사이에 진화가 덜 된 생물이다" 이딴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개인적인 소신은 당연히 "이 우주와 생명이 우연히 저절로 생긴 게 아니고 절대자가 있다"라는 신의 창조이다. 그 정도 진화가 가능하다고 해서 인간 정도의 고등한 생명체가 그런 진화의 산물로 저절로 생기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믿음을 발휘할 영역과 과학 관찰로 승부할 영역,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파생 효과 내지 오해· 중상모략 같은 것은 분명하게 분간해서 주장해야 할 것이다.

2. 과학 관찰은 종교색과 무관

이 세상 학계에서는 누구 말마따나 그저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어서 과학 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걸까? 20세기에 천문학계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생각해 보면, 이 문제를 좀 다른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천동설과 지동설, 창조와 진화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천문학계에서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대폭발설(일명 빅뱅)과 정상 우주론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 당시엔 두 이론이 모두 상대편 이론을 완전히 제압할 정도로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심상을 고려하면 오히려 빅뱅이 뭔가 시작과 기원, "빛이 있으라" 같은 창세기 1장 느낌이 물씬 풍긴다. 게다가 빅뱅이라는 개념을 1930년대 초에 최초로 제안했던 사람은 천문학자 겸 현직 가톨릭 신부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무신론 과학자들은 이를 심리적으로 거부했다.

이와 달리 정상 우주론--딱히 기원이 없고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동일하게 있음--은 벧후 3:4의 심상과 비슷하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이건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깐다. -_-;;
그랬는데.. 훗날 우주 배경 복사라는 게 발견되면서 이 주제는 빅뱅이 맞는 것으로 사실상 결론 지어졌다. 정상 우주론은 천동설 급으로 완전히 폐기된 건 아니지만 거의 소수설 비주류로 전락했다.

요지는.. 세상 학계도 과학적인 증거만 있다면 창세기 냄새가 좀 풍기는 학설이라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공립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세상 인명 사전에서 예수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다음으로 "사흘 만에 부활했고 승천했다"라고 차마 쓰지 않는/못하는 것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비슷한 예로 초능력이니 UFO니 하는 것도 꼭 기독교계에서 사탄의 미혹 운운하며 난리를 치지 않더라도,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하지 않으면 이 바닥 종사자들이 알아서 배척한다.

물론 과학이 만능은 아니고 과학으로 알 수 없는 현상도 많다. 하지만 그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지성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정작 창조 과학 진영에서는 빅뱅을 여전히 배척한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빅뱅이 기원이라는 개념 자체는 성경과 일치하지만 연대기는 젊은 우주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창 1:1,3이나 벧후 3:4가 지구를 넘어 우주의 기원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구절인지 잘 모르겠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땅의 원 위에 앉으신 이"가 딱히 지구가 둥글다는 걸 말하지는 않으며, 계시록에 나오는 "땅의 네 모퉁이"가 지구가 평평하다는 걸 말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성경에 따르면 세상이 과거에 있었던 세상, 현 세상, 다가올 세상이라는 세 종류가 존재하고 하늘도 세 계층이 있다는 것 정도까지만 알 수 있다. 그 개념이 현대의 지질학이나 천문학이 밝혀낸 자연의 모습과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인간이 적절히 잘 풀어야 하는 숙제일 것이다. 다만, 성경이 문자적으로 사실이기 위해서 반드시 젊은 우주, 젊은 지구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본인의 소신이다.

3. 창조 과학의 정체성

창조 과학회라는 곳에서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성경 내용은 문자적으로 옳고 정확하며, 과학적으로 사실이다.
  • 이 세상(우주, 지구, 생물..)은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 지구와 우주의 나이는 젊다.

성경이 오류가 없고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은 본인도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창세기의 6일, 계시록의 1000년이 대표적인 예이다. 성경에 나오는 각종 인물, 명칭과 숫자들, 사건들은 대놓고 비유 허구라고 명시된 게 아닌 한 당연히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정확한 레알이다. 피나 일부 위생 관념에 대해서 말한 것은 분명히 시대를 앞섰던 것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성경이 원자와 분자를 논하고 definition, theory, lemma가 나오는 이공계 학술서적 스타일로 저술된 책은 또 아니다.
성경에는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만 나오지, 당장 금성 화성 목성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난 성경에 딱히 지구 자체가 둥글거나 평평하다고 말하는 암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욥기 38장에서 하나님의 질문은 이런 식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내가 우주를 한 점에서 시작해서 대폭발 시킬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니가 인간 DNA의 염기 서열을 아느냐? 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 붙어 있고 전자가 원자핵을 돌게 하는 힘이 어디서 나고 그게 무엇 덕분에 가능한지 니가 아느냐?
길바닥의 이끼도 해내는 광합성의 명반응 암반응 메커니즘을 니가 아느냐? 네가 전자기파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능히 측정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성경이 문자적으로 사실이긴 한데.. 도대체 어느 문맥과 scope까지 문자적인 사실인지, '모든'이라고 했을 때 얘는 도대체 어느 범위의 전체를 말하는 건지 정도는 그래도 최소한 성경이 자체적으로 정해 놓은 원칙에 따라 분간을 해야 한다. 그러니 창조 과학이라 해도 과학뿐만 아니라 바른 신학을 저변에 깔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 지적 설계는 심증으로서는 매우 유력하며 신앙을 갖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시 19나 롬 1:19가 말하는 일명 자연 계시 말이다. 하지만 신의 존재는 과학으로 증명도 반증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이것이 과학의 관점에서 '물증'이 될 수는 없다.
이건 당연한 귀결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조금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창조 과학 진영에서 위의 두 명제.. 즉, 성경의 사실성과 지적 설계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 다음으로 끄집어낸 카드가 바로 젊은 지구이다.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는 학설? 가설 자체는 신학하고 전혀 무관하게 오로지 과학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이다.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다', '성경은 사실이다' 이런 것과는 좀 성격이 다르다.

이게 제대로 진행됐다면.. 세상 학계에서도 "난 무신론자여서 성경이니 신이니 그딴 건 모르고 믿지도 않음.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층을 관찰하고 물리 법칙을 생각해 보니 우주와 지구의 나이는 1만 년 이내로 보인다" 이렇게 주장하는 과학자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그러한가? 창조 과학이 성경과 과학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잡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무척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서는 젊은 우주/지구에 대한 일말의 증거가 있다면 그건 아담 이래로 재창조된 현 세상의 연대기가 젊다는 과학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good luck~! 우주 배경 복사나 방사선 연대 측정법의 허를 찌르면서 부디 과학계에 좋은 기여를 하길 바란다. 무슨 지구 온난화 허구설, 지구 평평 같은 이상한 유사과학 음모론으로 치부되지 말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04 19:35 2021/06/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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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용어 분석

1. for one's sake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경의 맨 처음 책인 창세기에서는 주요 성경 용어들이 약간 뜬금없는 문맥에서 최초로 등장하곤 한다.
창세기에 존재하는 KJV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replenish,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같은 게 있는데,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아이템은 저런 것들보다는 훨씬 덜 유명해 보인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에게 내리시는 징벌이 창 3:17에 기록돼 있다.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그런데 다른 모든 성경들은 because of you인 반면, 킹 제임스 성경은 유일하게 for thy sake라고 쓰여 있다.

똑같이 인과관계를 나타내더라도 for one's sake는 굉장히 긍정적인 심상이다. because of가 중립적이거나 약간 미묘하게 부정적인 심상인 반면, 쟤는 ‘누구 덕분에,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배려해서· 감안해서’라는 심상이 담겨 있다.
까놓고 말해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50명, 40명~10명이라도 있으면 걔네들을 생각해서라도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for their sakes라는 표현이 쓰였다.

게다가 replenish가 창 1:28뿐만 아니라 노아의 홍수 이후인 9:1에서 또 나오는 것처럼, for one's sake는 역시 근처인 8:21에서 거의 동일한 문맥을 배경으로 한 번 더 등장하기도 한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또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물론 둘 다 우리말로는 because of와 마찬가지로 '-로 인하여'라고 번역해도 별 무리는 없다.
하지만 KJV도 because of가 엄청나게 많이 쓰이는데 굳이 이걸 놔두고 for one's sake가 따로 쓰였다는 것은.. 땅에 내려진 원초적인 심판과 저주조차도 그저 사람들을 엿먹이고 불편하게 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 인간의 처지에 대한 하나님의 다른 뜻과 배려가 담겨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당장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말이다.

사실은 굳이 sake까지 안 쓰더라도 영어는 전치사 for이 단독으로 ‘위하여’(좋은 목적 one's sake) 내지 ‘인하여’(이유, 인과관계 because of)라는 뜻을 모두 지니는 구석이 있다. 이 용법을 생각하게 하는 대표적인 찬송가는 바로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이다.

영어로는 Jesus died for me와 Jesus died for my sins가 모두 성립한다. 그런데 저 찬송가 후렴의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는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죄 자체는 뭔가 ‘위해서 죽어야’ 할 가치가 있는 좋은 대상은 전혀 아니지 않은가?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 죽는다면 모를까..?

이건 희소병을 희귀병이라고 잘못 표기한 것과 비슷한 오류로 보인다! 그래서 어떤 찬송가 책에서는 후렴 가사를 “나의 죄 인하여”라고 수정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차이점 같다.
예전에도 글로 쓴 적이 있지만, 영어의 sake는 behalf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제한적인 특정 문맥과 용법에서만 쓰인다. 한국어 문법 체계로 치면 '의존명사'와 매우 비슷한 물건이라 하겠다.

2.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

창세기 6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이다. 이건 대다수의 기성 교회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해석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사람처럼 생기긴 했지만 생물학적으로 사람과 동일하지는 않은 천사가 인간 여성과 결합함으로써 초인적인 괴수· 거인 잡종이 태어났다. 창 6:4에 나오는 네피림..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거인이라고 번역한 이놈은 말 그대로 로버트 워들로를 능가하는 거인이었다. (20세기 초, 키가 272cm까지 갔던 관측 이래 인류 최장신 미국인)

신 3:11에 따르면, 바산의 왕 '옥'도 침대의 길이가 9큐빗.. 약 4.5미터.. 거의 아반떼 승용차와 비슷한 길이였다고 나온다. 인간의 침대가 말이다. 그리고 골리앗의 키가 6큐빗 플러스 알파다(삼상 17:4). 거의 3미터 이상..
그러니 창세기 6장의 거인도 무슨 영적 거장이니, 카인의 후예 따위로 이상하게 갖다붙일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생물학적 거인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바람직한 해석이다.

로버트 워들로는 성장판이 정신줄 놓는 병에 걸려서 키만 비정상적으로 커졌던 것이다. 발이 자기 체구와 체중을 감당하지 못해서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였으며, 나중에는 발목 부상으로 인한 패혈증 때문에 20대 초반의 나이로 죽었다.

그러나 골리앗은.. 지팡이는 개뿔.. 그 키에다가 무거운 갑옷 입고 창을 들고, 전투력도 인간 흉기 급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교단 교파에서도 골리앗이 무슨 영적 거장이었다니 장수였다느니 헛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다윗은 짱돌이 아니라 영적인 돌로 신학 논쟁과 키배로 골리앗을 '영적으로' 제압했게?

이런 괴수들은 다 인간의 정상적인 평범한 유전자로부터 나온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적으로도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 또는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는 보편적인 심상을 갖지만, 구약에서 창세기와 욥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라는 용례가 명백히 존재한다. (욥 1:6, 38:7 등)

본인은 '하나님의 아들들' 그리고 "being old and full of days"라는 표현의 유사성을 근거로 욥기의 저자 자체가 모세일 것이라고도 추측을 한다만, 이건 뭐 논쟁할 정도로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3. 창세기 나머지

(1) 포도주 wine
잘 알다시피 9장에서 노아가 만취해서 곤드레만드레가 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전에도 한번 얘기했었지만.. 본인은 교리적인 근거(가나의 혼인 잔치, 빵과 잔 만찬 따위)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wine은 “즙 < 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최초의 언급 법칙을 감안했을 때 말이다.

특히 마 11:19, 눅 7:34처럼 명백히 부정적인 음해 문맥에서까지 무알코올 포도즙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식탐 다음에 술주정이 따르는 것은 신 21:20 (부모가 막장 패륜 자식을 고발해서 죽여버리기~!! ㄷㄷ)과 대조해 봐도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성경이라 해도 문맥상 필요하다면 술도 나오고, 심지어 “There is no God”이라는 불신자 말 인용도 나오는 법이다.

(2) 누룩 없는 빵(unleavened bread 무교병)
19장에서 롯이 소돔에서 천사들을 잔치까지 베풀면서 대접하는데, 잘 부풀어오른 부드럽고 맛있는 빵이 아니라 저런 빵이 등장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율법 유월절하고 아무 관계 없는 상황인데 이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잠시 후에 소돔 불벼락을 앞두고 쟤들도 마치 이집트를 탈출하듯이 이 집을 허겁지겁 빨리 탈출해야 했던 건 사실이지만, 롯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혹시 손님으로 가장했던 천사들이 "누룩 없는 빵으로 플리즈~~" 라고 커스텀 주문을 했던 것은 아닐까?
본인은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관련 강해나 주석을 아직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했다.

(3) 사랑
성경에서 최초로 이 단어가 등장하는 곳이 바로 22장, 하나님이 아브라함더러 아들 이삭을 번제 헌물로 바치라고 명랑하는 문맥이다.
모세오경 중에서는 마지막 책 신명기가 사랑이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고, 특히 “{주} 네/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유일하게 나온다.

(4) 묵상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바라보니, 보라, 낙타들이 오더라." (창 24:63)
여호수아기나 시편을 보면 “주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한다/하라”처럼 묵상의 대상이 같이 언급되는 반면.. 창 24:63에서는 목적어가 생략된 채 꽤 뜬금없이 이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다.
그러니 세상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면, 이삭이 들판에서 눈을 감고 가부좌 틀고서 엄근진한 자세로 참선, 요가, 단월드 기수련, 파륜궁, 관심법(!!) 시전을 하는 장면이 떠오르기 쉽다.. ㅡ,.ㅡ;; 골수 예수쟁이인 나조차도 이 정도 선입견과 편견은 생겨 있다.

핵심은.. 묵상은 명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런 구절을 읽으면서 시 119:15 “내가 주의 훈계들을 묵상하고 주의 길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내지, 찬송가 가사로도 있는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시 19:14)가 연결돼야 하는데..
온갖 잡다한 다른 유사품이 떠오르는 게 바로 마구니들이다.. 진짜 마구니는 법봉으로 대가리 깨뜨린다고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옛날의 천조국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성경을 읽은 덕분에 ?Z라는 단어를 보고 욥의 고향 우스 UZ를 먼저 떠올렸었다.
하지만 현대의 어린이들은 오즈의 마법사 OZ를 먼저 떠올린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뭐, 요즘은 오즈조차도 해리 포터에게 밀려서 한물 간 지가 오래이지만 말이다.

이런 것 말고도, 세상 매체(영화, 게임, 드라마 따위)들을 접하던 사고방식으로 성경을 읽다 보면..

4. 유령

  • 그때에 내 얼굴 앞으로 한 영이 지나가므로 내 살의 털이 곤두섰느니라. (욥 4:15)
  • 제자들이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불안해하여 이르기를, 영이다, 하고 두려워서 소리 지르거늘 (마 14:26)

성경에도 딱~ Ghostbusters 풍의 공포 영화를 떠올릴 만한 정면이 이렇게 존재한다. 성경이 말하는 혼과 영이 각각 귀신과 유령으로 바뀌는 것이다. 심지어 번역 자체도 그런 스타일로 돼 있다(KJV 제외).

한 30년쯤 전엔 고스트버스터스가 “유령 대소동”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용 TV 만화영화로도 방영됐었다. “유령이 나타났다, 잔꾀와 속임수로 사람들 괴롭히는 유령이다~ㅎ”라는 주제가는
“뱀이다 뱀이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뱀이다~ㅎ” 트로트 “참아 주세요”와 굉장히 비슷한 풍이었다.. ㅠㅠㅠ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영에는 원래 호러 요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한 영이 나아와 {주}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그를 설득하겠나이다, 하거늘 (왕상 22:21)
  •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 24:39)

요 4:24를 “하나님은 유령이시니...”라고 번역하는 게 말이 되겠는가?
ghost도 마찬가지. 성령님 the Holy Ghost 아니면 숨지다 give up the ghost라는 두 용례로만 쓰였다.

여담이지만, 본인의 어린 시절에 학원인가 학교에서 이름이 '혜령'인 여자애가 있었는데.. 별 상관도 없는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짓궂은 남자애들로부터 놀림 받곤 했다.
본인의 이름 별명 중 하나이던 묵사발, 도루묵 따위보다는 훨씬 더 점잖아 보이는데 유령이 뭐가 그리 대수였나 모르겠다. 뭐 여자여서 유령이라는 말에 더 민감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보니 귀신은 긴 생머리에 소복 입은 하얀 처자가 떠오르는 동양 스타일에 가깝고, 유령은 얼굴 찌그러뜨리고 해파리처럼 흐물흐물 거리는 게 서양 스타일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저승사자(!!)만 해도 동양은 검은 옷 검은 갓 차림의 아재이고, 서양은 낫 들고 있는 해골 아저씨이듯이.. 아이고, 갑자기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얘기가 많이 튀어나왔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1/03/25 08:34 2021/03/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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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에 인간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직접 다녀오는 정말 초유의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정말 세계가 열광했다.
우리나라는 1969년 7월 21일 월요일, 아폴로 11호 달 착륙일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지구 반대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전쟁 중이었는데, 저거 중계방송을 다같이 시청하려고 잠시 휴전을 했을 정도였다.

그 시절 수많은 꼬꼬마들이 저 광경을 보면서 나도 공부 열심히 해서 공무원이나 연예인이 아니라 위대한 과학자/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굳혔다.
그리고 2000년쯤이면 인간이 화성에도 가고 달에 식민지 하나 정도 건설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우주를 배경으로 다리 달린 로봇이 나오는 수많은 SF물들이 만들어졌다.
그런 작품에서는 비행기처럼 날개 달리고 항공역학적으로 아주 새끈하게 만들어진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비행체들이 우주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외계인 군단을 때려잡았다. (그에 비해 실제 아폴로 우주선 LM 달 착륙선의 모양은... ㄲㄲㄲㄲㄲ)

허나, 실제로 2020년이 돼 보니 현재 인간의 우주 진출 현황은 어찌 됐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에서 묘사됐던 2001년과, 실제 2001년의 차이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난 수십 년 동안 천문학도 발전하고 항공우주 기계공학 기술도 눈부시게 더 발전했지만.. 그것과 유인 달 탐사 내지 우주 식민지 개발은 별개의 문제였다. 우주 개발은 전쟁이나 결혼 생활만큼이나 매체(게임, 영화..)와 현실과의 괴리가 매우 매우 큰 분야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식의 설레발이 세상뿐만 아니라 기독교계에도 미래 예언과 관련하여 많이 있었음을 나는 신자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을 넓게 영적으로 하는 방법론이 가장 건전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지지한다.
6일이나 7년이나 1000년 같은 기간을 특별한 다른 단서가 없는 한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 당장 이해가 안 되고 실감이 안 가는 부분이 있어도.. 판단을 보류하고 가만히 묻어 둘지언정, 말을 제멋대로 바꾸고 뜯어고치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고,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고,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구분하고, 영과 혼을 가능한 한 구분하고, '채우다'와 '다시 채우다'를 구분하고.. 그러니 세대주의에 대해서도 태생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대외적으로 평이 안 좋은가 했더니.. 시한부 종말론과 얽혀서 오해를 살 짓을 한 게 있긴 했다.

인류의 시작과 과거 역사가 4천 년쯤 전으로 굉장히 구체적인 값이 나오니, 인류의 종말 시기도 지금쯤이면 굉장히 가까워진다.
물론 세대주의 자체가 어디 악성 이단 사이비처럼 몇 월 며칠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니 “직장 그만두고 산속에 들어가고 재산 다 교회에 갖다바쳐라” 같은 미친 짓을 권장하고 조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런 움직임이 발생할 빌미는 제공했으며, 결정적으로 종말의 징조, 조짐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불발한 설레발을 너무 많이 쳤었다.

  • 이스라엘 건국
  • 유럽 연합 결성
  • 20세기의 아주 카리스마 넘치던 모 교황과 세계적인 에큐메니즘 운동, 세기말 Y2K 문제
  • 그러면서 세계 단일 정부 단일 종교 떡밥..

이런 거 말이다.

아, 20세기 중반부터 일어난 저런 사건들이 과거에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격변인 건 사실이다.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에 비견될 만도 하다.
그리고 세상은 갈수록 악해지고 빗장 풀리고 타락하고 심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큰 그림’ 역시 사실이다. 뭔가 성경적으로 의미 부여를 하고 싶은 그 심정은 이해가 된다. 전부 비유 묵시라고 헛소리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갖다붙이고 적용하려고 노력해 보는 게 차라리 더 나은 자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국제 정세나 과학 기술은 아주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요소이다. 언제라도 “아니었나 보네, 아님 말고”를 시전하면서 버릴 수 있게,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서 아주 가볍고 얕게 참고만 하고 있어야 하는 사항이다. 성경에는 인류의 역사와 관련하여 철기 시대, 불의 발견, 바퀴의 발명조차도 나와 있지 않다는 걸 생각하자.

아예 초대 교회 사람들부터가 “이때쯤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지..” 생각하다가 죽었고, 중세 때 스코틀랜드 교회 사람들은 저 교황이 '그' 적그리스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교황이 소속된 집단이 몇백 년 뒤에는 개신교를 상대로 에큐메니즘 운동을 주관하는 날이 올 거라고 그 옛날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있었을까?

컴퓨터만 해도.. 오늘날 같은 극도의 정보화 시대가 순기능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지금 전자, 컴공, 언어 처리, 바이오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이공계들이 추구하는 상당수의 목표는 인간을 닮고 인간처럼 생각하면서 인간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할 줄 아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걸 만들기 위한 밑천인 실제 인간 군상들의 동선과 행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기반도 다~~ 갖춰져 있다. 이게 마냥 좋은 의도로만 쓰일 거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최소한 1980년대에 우려했던 것처럼 금수저들만 비싼 컴퓨터를 마음껏 쓰면서 정보와 기술을 독점하고 대중을 통제하는 무식한 사회 같은 건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그 시절 음모론자들은 블랙박스와 CCTV 덕분에 질서와 치안이 상상을 초월하게 개선되는 것, 그리고 오픈소스 진영이 등장해서 정말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양의 정보와 기술들이 무료로 풀릴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성경에서 용이 불을 뿜는 게 미래에 등장하는 탱크나 미사일을 의미하는 거라고 이상하게 갖다붙이는 사람도 있고,
한술 더 떠서 미래엔 석유가 고갈되어서 사람들이 성경의 묘사대로 문자 그대로 다시 말 타고 냉병기를 들고 싸우게 될 거라고.. 아인슈타인이 3차 세계대전 이후 다음 전쟁의 양상을 예측했던 것과 같은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후자조차도 100% 장담은 하기 어렵다. 2010년대부터 셰일 가스가 재발굴되어 지금처럼 다시 기름값이 팍 내려가고 석유 고갈 예상 시기가 한참 늦춰질 거라는 점까지 예상한 사람은 내가 못 봤다.

그러니.. 성경으로 미래 전망은 함부로 설레발 치지 말고 영원까지 길게 보는 안목을 갖고, 한낱 국제 정세나 일개 과학 기술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불가지론에 가까운 냉정한 자세로 판단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성경은 거의 1900년 전의 요한계시록 기록 시점부터 "내(예수)가 속히 오리라(come quickly)"라고 약속해 놓았다. 도대체 어느 기준으로 '속히'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세상 정세와는 아무 상관 없이 “예수님이 지금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겠구나”, 핵무기고 스마트폰이고 구글이고 중공 폐렴이고 전부 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 그땐 그랬지” 이렇게 회상할 각오를 하고..
따분하고 재미없어 보이지만 그냥 원론적인 지침에 충실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최후 승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신의 존재 여부야 불가지론의 대상이 아니지만, 종말 내지 예수님 재림 시기는 인간들 입장에서는 불가지론인 게 맞다고 성경에서 대놓고 쓰여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으로 살지 않고 어설픈 사회 정세 음모론에다가 믿음의 근간을 두면.. 그 음모론이나 예상이 빗나갔을 때 다른 성경의 건전한 가르침까지 같은 급으로 매도되고 부정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초신자가 실족하고 믿음이 파괴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지금은 무려 2020년이다. 이제는 근미래에 대해서 과거에 전망했던 것, 그리고 빗나간 예언들에 대한 경험과 데이터도 그럭저럭 쌓이고 있는 중이다. 다미선교회 병크, Y2K 설레발, 2012년 종말 떡밥.. 전부 도대체 몇 년 전의 해프닝이 되고 있나? 이 와중에 아직 바코드, 베리칩 음모론 믿는 사람은 좀 없어야 하지 않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에서 묘사된 실제 대환란기는 언제쯤 어떤 형태로 실현될지 개인적으로는 노무노무 궁금해 죽겠다. 정말 흥미진진한 사건이 될 것이다.

1940년대 말, 우리나라의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조선이 해방될지 몰랐으니까~!!”라고 변명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예수님이 그렇게 꿈에도 상상 못 하던 시기에 덥석 오실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요)!! / 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죽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ㅠㅠㅠ” 이렇게 변명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분명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천국 가면.. 모인 사람들끼리 아마,

  • "라떼는 말이야 성경 몰래 베껴가면서 읽다가 걸리면 화형이었어"
  • "라떼는 말이야 영어 성경이 200종류가 넘게 나왔고 역본 내용의 차이 갖고 키배가 벌어졌어"
  • "흥, 나는 그 세상에서 살아 본 적도 없이 바로 왔거든?" (☜ 이 케이스가 아마 제일 많을 것임..)
  • "웃기시네. 니들이 공중으로 번개같이 들려 올라가는 그 느낌을 알아?"

서로 출신과 배경 갖고 약간의 알력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성품이 변화된 뒤이기 때문에 선 넘는 진흙탕 싸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1/03/10 19:35 2021/03/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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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례교

기독교의 여러 교파 중 침례교는..

  • 딱히 종교 개혁에서 유래되지 않았고, 더 옛날부터 있었다고 여겨진다. 천주교는 물론이고 일부 개신교 교파로부터도 박해를 받았다.
  • 이름이 말하는 바와 같이 세례가 아니라 침례가 성경적으로 옳다고 본다. 온몸이 물에 잠겼다가 나와야 된다.
  • 침례는 이미 구원받은 후의 신앙고백 인증일 뿐이지, 그 자체가 구원의 조건이거나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 특히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건 할례나 안수 따위와 아무 상관 없는 관행이고, 대상과 방법이 모두 잘못됐다. 적어도 10대 정도의 나이가 됐고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하고 내 믿음을 자기 말로 고백할 능력이 돼야만 침례를 준다.

* 개인의 혼의 자유의지를 매우 존중하며 단호한 정교분리를 주장한다. 미국이 민간에서의 강한 기독교 배경에도 불구하고 독일처럼 국교가 있고 목사가 공무원인 나라가 되지 않은 것에는 침례교인들이 매우 큰 기여를 했다!
미국의 건국 모델은 후대에 세워진 세계 다른 나라들과 정부에도 선한 모범 참고 사례가 되었다.

* 침례를 받을 자격이 안 되는 너무 어린 아이,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이 없는 아기 등은 죽으면 그냥 바로 천국으로 간다. 유아세례를 받았건 말건 그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내가 이 개념에다가 개인적으로 붙인 명칭은 ‘특례 구원’이다. 이런 애들은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은 자기 죄 가운데 죽었다면 지옥에 갈 수 있다. 하지만 낙태돼서 죽은 애들, 영 유아 때 병에 걸리거나 굶어 죽은 애들, 그리고 특별히 올해 초에 전국민에게 큰 슬픔과 분노를 안겼던 학대 피해자인 정인이 같은 애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

사실, 천국에 가 보면 예수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보다, 저런 특례구원으로 온 사람이 인류 역사상 더 많을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 헤롯 왕에게 학살당한 2살 이하 동갑내기 아기들이 지옥에 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여겨지지 않는다. 만약 그런 거라면 개독안티들이 이것 갖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온갖 신성모독적인 조롱을 늘어놔도 실드를 칠 수 없을 것이며, 사실 나조차 기독교 안 믿었을 것이다. 아니면 믿더라도 민망해서 혼자만 조용히 믿고 말지, 이렇게 당당하게 교리를 설파하고 불신자와 논쟁할 엄두는 못 냈을 것이다.)

그 대신 이렇게 어리고, 특례 구원 실드가 있는 애들에 대해서는 부모가 반드시 의로 양육해서 특례 실드가 끝난 이후의 일생에 대한 대비를 시켜 줘야 한다. 의로 양육한다는 건 필요한 경우 체벌도 불사한다는 뜻이다. 어머니의 회초리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 나중에 지옥 형벌도 무서워할 줄 알게 된다.

난 침례의 대상과 방법에 대한 의미, 개인의 자유의지와 정교 분리, 아기의 구원 여부에 대해 침례교에서 말하는 것만치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원칙과 체계가 있는 교리를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다.
난 그래서 이 교리를 믿고 지지한다. 이 정도 완성도는 되니까 주위에 복음도 전할 수 있고 기독교 관련 글을 쓰고 논쟁도 할 수 있게 됐다.

이 주제에 대해서 본인과 생각이 다른 분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성품과 예정 vs 자유의지에 대해 저것보다도 논리적으로 더 잘 분간하는 교리를 믿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삼분법(영 혼 몸 구분), 하나님 왕국과 하늘의 왕국 구분(하나님 ≠ 하느님이듯이!), 창 1:1-2 간극, 문자적인 천년왕국과 세대주의 같은 건 침례교 내부에서도 똑같이 가르치지는 않는 교리들이다.

2. 종교 개혁의 유산

옛 종교개혁자들이 후세의 크리스천들에게 남겨준 것,
혹은 원래 있었다가 모종의 이유로 봉인됐던 것을 성경을 통해 재발굴 재조명해 준 것은..

(1) 이신칭의

  • a. 마음의 회개 없는 거짓 구원, 그저 "울 교회 오세요, 그럼 님하에게 이득입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삽니다" 거의 종교 영업사원 수준의 easy believism
  • b. 혹은 반대로 아예 행실의 회개와 변화가 없는 건 구원받은 것도 아님. 예수님을 단순 구원자뿐만 아니라 니 행실의 '주권자'로도 반드시 받아들여야 된다 lordship salvation

둘 다 매우 잘못된 극단이다.
내가 여러 번 강조하지만, b가 자주 저지르는 오류가 뭐냐 하면 꼭 나쁜 행실만 죄인 줄 안다는 것이다. 예수 안 믿은 거 자체부터가 엄청난 죄였고 거기서 돌이키는 게 진짜 구원을 가져다주는 회개인 걸 좀 헷갈린다.

"저는 앞으로 술 담배 끊고 모든 악한 행실을 끊고 예수님처럼 경건하게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니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영접 기도를 이딴 식으로 해서는 절대로 구원 못 받는다! 절대로~!! 알겠는가?
a야 너무 수준 낮고 더 논할 가치도 없으니 제낀다.

(2) 만인 제사장

  • a. 목사님은 거~룩한 주의 종님임. 목사의 축도를 안 받으면 예배가 끝난 게 아님. 차 살 때, 가게 개업 했을 때는 영험한 목사님 초빙해서 안수 기도라도 좀 받아야 됨.
  • b. 아예 목사 직분 자체가 니골라 당의 잘못된 교리이다. 예배와 친교의 구분이 없다.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설교한다.;; (헐~)

이 역시 둘 다 잘못된 극단이다.
직분과 역할의 차이를 전부 우열 계급 투쟁으로 프레임 씌우고 체제를 전복시키는 거.. 보통 빨갱이들의 수법이다.

(3) 변개되지 않은 올바른 성경 본문 그 자체
내가 보는 성경은..

  • 헤롯 왕이 지목한 베드로 처형 시점이 유월절이 아니라 이스터라고 돼 있고(행 12:4),
  • 루시퍼와 갈보리라는 명칭이 있으며,
  • 계시록에 증인이 아니라 순교자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피', '지옥' 이런 단어가 여타 성경보다 더 자주 등장한다.
  • '이사야+말라기 = 대언자들'이지.. 이거 무슨 1+1=1도 아니고, 말라기의 예언까지 이사야라고 몽땅 퉁치는 오류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막 1:1-3)

뭐 등등..
에라스무스로부터 시작해서 루터는 바른 본문에서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고, 칼빈은 제네바에서 KJV의 전신인 제네바 성경이 나올 수 있게 해 줬다.

(4) 그 밖에 루터는 너무 엄근진스럽거나 몽환적이기만 하던 교회 음악도 진입장벽을 낮추려 애썼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직접 작사 작곡하기도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2/19 08:36 2021/02/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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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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