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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5년쯤 전이던 2007년엔 무슬림과 관련해서 꽤 엽기· 충격적인 소식이 몇 가지 좀 있었다.

1.
한동대에서 어느 무슬림 유학생 한 명 때문에 애들이 몽땅 설득 당해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잃고 교회를 떠나고 학교가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이 사건이 기독교계 언론에 소개되기까지 했다. (☞ 당시 보도 자료)

내가 알기로 무슬림들은 요한복음 구절을 많이 끄집어 와서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의 "대언자"이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은 아니라는 식으로 논리를 즐겨 편다.
요 14:28 "내 아버지께서 나보다 더 크시니라" 같은 구절을 아주 좋아한다. 어휴~~ (흠 그럼 요일 5:20 뒷부분은 어찌 생각하는지..??)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피조된 콩라인 2인자 정도로 생각하고, 이슬람에서는 마호메트 같은 대언자로 보는 건가 싶다.

근데 그로부터 12년 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9년엔 한동대에 무슬림 유학생이 1명이 아니라 40여 명이 지원했다고 하니 참 가관이다. 교수와 교직원들이 한동대의 기독교 정체성이 훼손되는 일은 절대로 없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는데, 글쎄? (☞ 당시 보도 자료)
저기는 학교가 학교이다 보니 중국인 유학생이 아니라 무슬림들이 일부러 많이 몰려오는가 보다. =_=

2.
그리고 2007년 4월 18일에는 터키의 말라티야에서 독일인 선교사 및 현지인 신자로 구성된 크리스천 세 명이 어느 무슬림 침입자 미친놈들한테 산 채로 칼로 수백 군데를 찔리고 사지가 잘리는 고문을 당하며 순교했다. 당연히 자기 신앙을 부인하지 않은 대가로 말이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Zirve(지르베)라는 이름의 기독교 출판사 사무실이었기 때문에 저 명칭으로도 관련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 링크)

공교롭게도 역시 12년 뒤에는 터키에서 김 진욱 선교사가 일단 표면적으로는 '강도살인'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크리스천들은 이 또한 이 사람이 기독교 신앙/포교 때문에 교묘하게 해코지를 당한 것이라고 추측· 주장하고 있다. (☞ 당시 보도 자료)

터키가 대외적으로는 6· 25 사변 때 우리나라를 도와 준 형제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터키는 여전히 우리나라에 우호적이며, 2017년엔 6 25 참전 터키군을 소재로 한 '아일라'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터키의 내부는 무슬림 강경파가 우글거리는 위험한 지경인 것 같다. 하긴, 저 사람들은 6 25 때 중공군에게 돌격할 때도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쳤다고 하니 원.. =_=;; 우라 돌격, 반자이 어택의 이슬람 버전 되시겠다.

2007년에 우리나라 밖에서는 저런 일이 있었던 반면,
정작 자국에서는 선교라는 단어를 치명적으로 더럽히고 모독했던 "분당 샘물 교회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이 하필 아주 비슷한 시기인 7월쯤에 발생했다.
이 무슨 개쪽 개망신인가? "진짜" 선교와 순교였던 저 터키 사건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저런 병크에다가 감히 선교라는 신성한 단어를 갖다붙이지 말지어다.

그리고 더 전 2004년엔 김 선일 씨가 이라크에서 참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건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고 유족이 위로받아야 할 사건임은 이견이 없다.
허나, 이건 직무 중 순직이니 그 직장에서 예우하고 보상해 주면 될 일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 사람 개인의 종교색이 개입할 여지라고는 전무하다.

근데 그 사람이 다니던 교회에서 웬 순교라고 치켜세우는 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한국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해 주세요. 저는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울부짖은 게 무슨 신앙 고백이나 순교와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제너럴 셔먼 호 사건 때 토머스인가? 그 목사가 순교의 피를 흘렸네 하는 것보다 '더'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울나라 기독교계에서 이런 식의 왜곡 미화는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고인의 명예는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챙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24 08:35 2022/08/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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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말씀 보존 학회'(말보회), 그리고 '창조 과학회'(창조회)라는 기독교 단체가 있다.
둘 다 특정 분야에 대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무식하게 고지식(?)하게 밀어붙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갈리면서 열성 지지자와 골수 안티를 모두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말보회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주장하면서 기성 교계와 신학계를 몽땅 적으로 만들었다.
창조회는 젊은 지구/우주를 주장하면서 기성 고생물학, 지질학, 천문학계와 몽땅 대립하고 있다.

물론 이들 단체에는 명백하게 옳은 것· 건전한 것, 선한 것이 많이 있다. 먼저 말보회의 경우, 독특한 성경관만 주장하는 게 아니다.

  • 교회 교파로서의 노선은 평범한 침례교의 완벽한 상위 호환이다. 유아세례 부정, 주의 만찬과 침례, 스스로 자기 믿음 고백 후 물침례는 본인이 보기에 성경적으로 100% 아멘이고 옳다.
  • 창조회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6일 창조(창세기)와 1000년 통치(계시록)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다.
  • 피터 럭크만 스타일로 성경을 성경으로 나누어 풀이하는 세대주의. 일곱 부활, 일곱 침례 등등~
  • 성경의 문자적 해석도 잡고 세상 과학과도 충돌하지 않는 솔루션인 간극 재창조
  • "당신은 지금 죽는다면 바로 하늘나라로 갈 확신이 있습니까?" 칼같이 단호한 신약 은혜의 복음 교리. 거리 설교
  • 구원의 영원한 보장, 전천년주의 환란 전 휴거
  • 예수님의 문자적인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 교회와 유대인의 구분
  • 아기· 어린이의 특례 구원 (죽으면 무조건 다 하늘로 간다~! 그러니 유아세례 같은 거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옳소! 아멘~!)
  • 칼빈주의도, 알미니안주의도 아님. 섭리와 자유의지 사이의 균형.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의 구분. '미리 아심'이 곧 답정너 예정은 아님.
  • 비성경적인 이상한 은사주의 거부, 이상한 종교 통합 거부
  • 본질적이지 않은 불필요한 각종 절기나 예배 절차 폐지

우와, 써 놓고 보니 아이템이 적지 않다. 말보회의 이런 교리 노선은.. 성경에도 논리와 체계라는 게 있다는 걸 내게 알려 줬다. 이런 걸 한국에 처음으로 알리고 이슈화하고 퍼뜨린 공로는 응당 말보회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체계가 있으니 교회가 일부 인간들의 병신같은 짓 때문에 욕 먹더라도 내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온· 오프라인으로 기독교를 소개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창조회에 대해서는 내가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내가 이 진영에 대해서 유익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말보회하고는 분야와 방식이 다르지만 어쨌든 자기 분야에서 성경을 설화나 비유 짬뽕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있는 그대로 믿으려 한다는 것, 성경이 레알 사실임을 입증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정작 이 두 진영은 창조 연대기에 대해서는 관점이 별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 따위를 믿지 않고 24시간 6일 창조를 믿는 건 동일하지만, 말보회는 그보다 위에 더 오래된 이전 세상이 있었다는 걸 믿는다. 창조회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믿으면서 말보회나 럭크만은 싫어하는 사람, 간극 재창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창조회도 지지하는 편이다.

자, 좋은 점 얘기를 이 정도로 했으니 그 다음으로는 내가 말보회와 창조회에 대해서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하는 것, 동의하지 않는 성향에 대해서 털어놓도록 하겠다.

내가 쟤들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일단 내가 보기에 저 두 진영은 공통으로..
발전이 없이 너무 정체돼 있다...!!! 이게 제일 큰 문제이다.

뭔가 마이너한 걸 주장하고 자기 반대편을 비판하고 공격하긴 하는데.. 반대편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서 알지도 못하고 너무 무식한 방식으로, 케케묵은 쌍팔년도 방식과 저질 음모론을 고수하며 공격한다. 그러니 털리고 비웃음만 당한다.
까놓고 말해 럭크만과 같은 실력은(원어 원문 및 KJV 변증..) 없으면서 럭크만의 싸움닭 기질만 잔뜩 배워 왔다.

가령, 로마 가톨릭이 화체설, 교황, 마리아 평생 동정, 연옥 등 비성경적인 교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비판하는 거랑.. 아예 교황이 예수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세계의 기독교/개신교회를 말살시키고 세계를 정복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선동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 주장을 하려면 근거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와야 된다.

그리고 쟤들은 흠정역이 자기네 한킹을 도둑질 해서 만든 짝퉁 성경이라는 욕과 비방을 도대체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려나 모르겠다. 흠정역은 지난 20여 년의 노력 끝에 무려 6판이 나왔고, 맞춤법과 각종 표현이 정말 많이 정제되었다. 번역 스타일이나 신념 때문에 자기 마음에 드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예배용 성경으로서 영어 KJV를 있는 그대로 번역한 한국어 역본 중에서는 흠정역의 완성도를 따라갈 물건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까지 한킹을 도둑질한 거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쟤들은 1세대 설립자도 소천했는데.. 맨날 네거티브만 할 게 아니라 자기네 한킹이 더 나은 번역이라는 걸 팩트와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그럴려면 공부를 해야 된다.

이미 다 늙은 1세대 목회자들이야 어쩔 수 없다 치지만.. 말보회의 후계자뻘 되는 젊은 목회자들..? 거기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흠정역 진영과 교류(!!!)도 하면서 태도를 바꾸고 새로운 팩트와 데이터를 흡수하고, 국내의 킹진영이 다같이 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창조회는 말이다.. 설마 아직도 1990년대의 긴가민가한 노아의 방주 항해 실험이나 1970년대에 바다에서 공룡(사경룡) 사체 끌어올린 사진을 우려먹고 있는 걸까..?? 아직도 “진화론에서는 인류의 먼 조상이 원숭이라고 주장한대~ ㅋㅋㅋㅋㅋ” 이러는 걸까?
세상 학계는 1990년대 "생명 영원한 신비" 다큐의 내용조차도 일부는 부정되고 수정돼서 지금과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제발 "이게 다 창조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세상 학계의 텃새 음모" 핑계 따위 대지 말길..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는 건 하나님 운운하지 않아도 철저하게 과학만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쟤들은 과학 쪽으로 무리수를 둘 게 아니라 지질 시대가 이전 세상의 흔적이라는 것만 알면 연구 방향이 훨씬 더 깔끔해질 텐데 아쉽다.

요컨대 말보회나 창조회가 잘하는 것도 있고 병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병크가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옳은 방향까지 다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고로 내 노선은 말보회와 90~95% 정도는 싱크로가 되는 것 같다. 차이점은 얼추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 한킹보다는 흠정역을 더 선호
  • 세대주의와 재창조 간극까지는 믿지만 말보회만치 무조건 "마태복음 히브리서는 신약 교회용이 아님~!!"을 너무 강박관념적으로 따지지 않음
  • 구약 유대인들이 율법 지키는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단정은 짓지 않음
  • 기성 교단을 쟤들만치 무작정 다 적대시하지는 않음. 하나님이 기성 교회들도 사용하고 역사하고 계시는 것 인정.

말씀 보존 학회, 그리고 여기뿐만 아니라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에 세대주의니 럭크만이니 하는 물을 먹은 진영은 딤후 2:15가 말하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공부하라"의 덕후· 신봉자이다. 여기서 '나누다'라는 말은 공유 share이 아니라 분별· 구분· 분할한다는 뜻인 divide이다. 성경이 자기 자신을 공부하는 방법론을 스스로 이렇게 정의해 놓은 셈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성경 용어들을 기존 일반 교단들보다 더 세부적으로 나누는 걸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영과 혼을 구분하고(영혼몸 삼분법),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을 구분한다. 교회와 유대인을 구분한다. 말씀에 대해 시대와 적용 대상을 구분한다.
침례도 다 같은 침례가 아니어서 일곱 종류나 있고, 부활도 여러 종류가 있다. 복음조차 왕국 복음과 은혜의 복음으로 나뉜다.

본인도 기본적으로 이런 성경 공부 방식에 동의하면서 그 유익을 인정한다. 이 패러다임 덕분에 여러 성경 난제들이 풀렸고 불신자에게 복음 변증이 가능해졌고 황당한 이단 교리들을 명쾌하게 걸러내게 됐다.
개나 소나 다 비유로 영해하는 게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 대상에게는 문자적인 건데 지금 우리에게는 영적 교훈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게 훨씬 더 논리적이고 깔끔하고 합리적이지 않냐 말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성경이 무슨 과학 교재나 논문 같은 스타일로 100% 딱딱 분석 가능한 책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어떤 곳에서는 혼이나 영이나 그렇게까지 다른 개념이 아니고 심지어 ‘혼=그냥 사람’, ‘영=그냥 마음’처럼 쓰이기도 했다.

마 19:23-24 같은 구절에서는 예수님조차 대놓고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별 구분 없이 섞어 쓰셨다. 제아무리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왕 예수님이니 왕국 복음이니 하지만, 바로 그 책의 중반부에서 웬 뜬금없이 신약 교회에 대한 예언과 지침이 나오기도 한다.

또, 워딩으로 가면.. 그렇게도 단어 단위로 성경을 보면서 우리말 KJV 번역본들은 it came to pass는 왜 번역을 안/못 했을까? word와 oracle의 차이는 무엇일까? damnation과 condemnation의 차이는?

그러니 구분할 건 구분하더라도 거기에만 묻혀서 시야를 너무 좁히지 말고, 성경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서 열린 시각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자체가 잘못된 비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이 그렇게도 칼같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분석 가능했으면 이미 수백 년 전에 분석이 다 끝났고, 기독교계에 이렇게 다양하게 찢어진 교파가 존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 여담

1.
난 먼 옛날, 컴퓨터 프로그래밍 초보였던 시절에 베이직 다음으로 파스칼 언어를 잠시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파스칼은 베이직과 C 사이의 완충재 역할을 하면서 C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것처럼 본인은 KJV를 모르던 시절에 NIV를 읽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도움이 됐다. 그때는 제네시스, 엑소더스, 리비티쿠스 등, 성경의 각종 영어 명칭과 atonement, passover 같은 신학 용어들부터 전혀 까맣게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게다가 NIV의 변개(!!) 구절들이 내 신앙에 대놓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내가 성경을 깊고 긴밀하게 많이 알던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니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컸을 수밖에 없다.

2.
나는 한글 입력기의 개발자이다 보니 세벌식 자판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로부터 390과 최종 중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문의를 종종 받는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킹 제임스 진영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로부터 한킹과 흠정역 중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문의도 받는다. 아유~ 이런 것도 통합이 좀 됐으면 좋겠는데..

세벌식 글쇠배열이야 이미 둘을 절충한 3-2012 같은 솔루션이 있으니.. 세벌식 사용자들의 공감을 얻어서 적당한 것을 채택만 하면 된다. 하지만 한킹과 흠정역은.. 이건 종교 쪽이어서 통합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한킹은 다른 어휘나 표현을 떠나서.. TR을 번역했지 영어 KJV를 번역하지 않은 표현을 도대체 언제까지 그냥 놔 두려나 궁금하다.

3.
말보회 한킹은 '환난'과 '환란'을 자의로 구분해서 번역했구나. 굉장히 신기하다.
이 바닥에서는 저런 식으로 비공식적인 용어 구분이 나도는 게 있다. 가령, '성경'과 '성서'.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나머지 성서들에서는 이 구절이 '(구원부터 받은 뒤에) 말씀의 젖 먹으면서 자라라'가 아니라 '신령한 젖 먹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라고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개되었습니다." 같은 식이다.

사실 벧전 2:2 같은 경우는 애초에 번역의 차이가 아니지..
번역의 차이를 논하기에 앞서 아예 원문 오리진, 쏘스가 다르고, 둘 다 옳을 수 없다는 걸 먼저 논해야 된다.
행 12:4 '이스터/유월절' 이런 게 동일한 그리스어 '파스카'에 대한 번역의 차이이고 '원어'를 논할 일이다. 그 반면, 벧전 2:2는 '원문'의 차이이다.

4.
일본은 뭔가 학술적인 건 어지간한 건 다 한국보다 앞선 나라이다. 그런데 쟤네들 내부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이슈가 거론된 적이 없는지? 일본의 말보회 같은 단체는 없는지?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일본어 역본이 민간 차원에서 혹시 존재하는지 굉장히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18 08:36 2022/08/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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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본질과 근원

  •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다.
  • 돈이 나쁜 게 아님. 돈을 사랑하는 게 나쁜 거다.
  • 사람 몸에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게 아님. 사람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훨씬 더 더럽다.

아멘. 이렇게 본질을 보는 것이 성경적인 사고방식이다.
(단, 술은 총과 같은 급으로 중립적이거나 필요악 같은 물질은 아니라고 생각됨..)

그리고 성경에 대해 더 잘 알고 성경을 성경으로 바르게 풀이하는 안목을 기르고, 성경의 난해 구절들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라고 신학을 하는 거다. 성경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신학이다.
그런데 "성경 따로 신학 따로"는 마치 "믿음 따로 행위 따로"만큼이나 서로 굉장히 안 어울리는 모습이다.

7. 지나친 의로움

지나치게 의로운 건 신자의 바람직한 자세가 절대 절대 아니다.
"오직 예수 이름에만 구원" 이런 걸 부정하라거나 수위를 낮추라는 게 아니고, 예를 들어 요런 것 말이다.

(1) 난 오로지 주님하고만 같이 있으면 되니 보상· 상급 같은 건 없어도 돼요~~
(뭔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해 부당한 고난· 손해· 희생 같은 걸 한 번도 감내한 적이 없나 보구나~)

(2) 주여, 성장하고 싶으니 제게 어서 고난과 환란을 마음껏 주시옵소서
(주님이 너한테 쪼끄만 고난 하나 허락하시면 넌 곧바로 "왜 나한테만 그래요!!!!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하면서 삐칠 거 같은데??)

(3) 이 세상 따위 더 빨리 타락하고 망조 들고 심판이 임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 환경에서 너는 열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셈.. 비슷한 논리로 나는 조선인들은 좌빨 정권에서 싹 다 망하고 거지 돼 봐야 정신 차린다는 극언 악담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내가 내리는 결론은, 크리스천이 원래 지는 십자가와 고난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배부른 한가한 소리가 나온다는 것..
더 나아가 구원 취소와 상실(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부정), 교회 대환란 통과 등등의 오류가 나오는 이유도 이와 거의 같다고 본다.

8. 균형 잡힌 적용

(1) 엡 2:8-9 "너희가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걸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바로 다음에 나오는 "우리는 그분의 작품,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 이런 말씀을 간과하고 소홀히 여기기 쉽다.

(2) 요 8:7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부터 먼저 돌로 쳐라"
이거에만 꽂혀서 온갖 죄를 양비론으로 퉁치고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데 써먹는 이상한 사람들은.. 그 다음 11절에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라는 명령도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알 리가 없다.

(3) 마 7:1-2 "판단하지 말라, 니가 그 잣대로 판단받을 것임"
여기에만 꽂혀서 정당한 판단과 권면까지 일축하고 제멋대로 사는 방탕한 인생들은 그리 멀지도 않은 15절부터 '거짓 대언자(선지자)를 조심하라' 이런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건 어떤 놈이 거짓 선지자인지 아닌지 판단부터 해야 실천할 수 있는 명령일 텐데 말이다.

(4) 그 유명한 빌 4:13 "내게 힘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도..
'우와~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대!'라고 들뜨기 전에 앞의 12절을 포함한 주변 문맥을 좀 보도록 하자.

그 구절에서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말은.. 돈 왕창 벌고 대박 내고 출세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힘으로는 못 하는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것, 고난 중에도 기뻐하고 궁핍 중에도 만족하는 걸 그리스도 안에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너무 시시하고 김 빠지지?? ㅋㅋㅋ
하나님이 내가 구하는 걸 뭐든지 들어 주신다는 말 앞에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단서가 먼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 말씀은 지 꼴리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제발 시기와 대상을 분별하고 균형 있게 총체적으로 머리에 입력하고 적용하도록 하자~!

9.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

(1) 나는 예수 믿고 성경 읽고 교회 댕긴다는 사람이 구원 확인 질문을 귀찮아하거나 불쾌해하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이상한 신자(?)도 넘쳐나는 와중에, 교회에 그 어떤 행실 이상한 개독들이 우글거린다고 해도 난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여긴다.

(2)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공산당이 싫어요”를 불편해하거나 정치 발언(?)이라고 매도할 수 있는지 정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왜, 클레멘타인 영화를 봤더니 암세포가 암에 걸려 죽었다고 그러잖는가..? 이런 비정상적인 인간들이 넘쳐나니 나도 15~20년쯤 전에 반일정신병 초기로 들어가려던 게 싹~ 자가치료가 돼 버렸다.

친일파보다 훨씬 더 위선적인 놈, 나라에 훨씬 더 큰 해를 끼치는 놈들이 우글거리는데 아직도 친일파 타령이나 하고 있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위의 둘을 영적으로 거의 동급의 이상한 현상으로 취급한다.

10. 개인적인 원수와 인류의 원수

개인과 인류의 차이는..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는 아폴로 11호 달 착륙 명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고, 또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도 유의미한 차이를 만든다.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라 나 개인의 구원자라고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처럼 개인적인 '원수'와 보편적인 '원수 마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개인적인 원수는 일곱 번에 일흔 번(49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한 반면, 원수 마귀와 마귀의 자식들은 싸워 무찌르라고 하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자신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지, 인류의 원수 내지 민족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류에 빠져서 이를 거꾸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꼭 저런 영적· 종교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말이다. 개인적 원한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자들이 북괴와의 평화(?), 김 정은과의 화해는 어쩜 그렇게 쉽게 입에 담는 걸까?
성경으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성경을 자신에게 맞추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1. 죄 또는 정신 질환

(1) 고의로 짓는 추악한 죄를 무슨 연약함 내지 질병 정도로 치부하며 합리화하는 건 아주 아주 잘못된 짓이다.
특히 자기가 잘못해서 벌받는 걸 박해, 시련 연단 따위로 포장하는 거 완전 극혐.. 대가리 깨뜨려 버리고 싶다.

(2) 하지만 반대로, 진짜로 정신질환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고 망상, 집착, 불면증 우울증, PTSD 트라우마 등등에 시달리는 건 죄와는 전혀 무관하며, 성경이 다루는 영역이 아니다!!

대놓고 복음을 거절하는 게 아니고 성경 말씀을 믿는다는데도 저러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 마귀야 물러가라"...를 외치면서 환자를 잡을 게 아니라, 그냥 정신꽈 치료를 받게 하고 약 먹이고 주사 놔야 될 것이다.

목사는 그런 사람까지 감당하는 직업이 아니다. 혼과 영을 괜히 구분하는 게 아니니까..
본인도 지난 10여 년 동안 (1)은 왕창 파고들면서 비판하고 까는 편이었지만.. (2)에 대해서는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 무슨 사도의 표적이 존재하는 시대도 아닌데 역할 분담은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기도 응답으로 아주 가끔 난치병이 치료되는 것은 개인마다 케바케일 뿐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환자 누구에게든 손만 얹어서 바로 나았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 단, 어떤 사람의 증상만 보고는 이게 위의 (1) (2) 둘 중 어느 상황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다.
  • 성경에 교만을 정죄하고 까는 논조는 차고 넘치는데.. 반대로 교묘한 인격 비하 말살인 가스라이팅에 대해서 다루는 게 있는가..?? 문득 궁금해진다. 일단 내가 당장 떠오르는 건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16 08:35 2022/06/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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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거 없이 믿어야 하는 것, 그 대신 논리적으로 성립하는 것

뭐 이미 여러 번 했던 말이지만, 나는 이 맛에 성경 읽고 예수 믿는다. 이 정도의 합리성을 갖춘 하나님을 믿는다.
증명이 불가능하여 일단 믿어야 되는 게 있지만, 그 대신 성립하는 논리 체계가 있다.

(1) 인간에게 절대로 공평해야 하는 건 정말로 공평하다. 상대적인 것, 본질적이지 않은 여건들만 제각각이고 불공평하다. (재산, 신체 능력, 지적 능력..) 인간이 구원받는 것에 그런 불공평한 요소들이 개입하는 일은 일절 없다!
인간이 선행으로 구원받는다면 신은 모든 인간이 선행을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여건을 절대적으로 공평하게 마련해 줘야만 한다. (그건 훗날 천년왕국 시절이지, 지금은 아님!)

(2) 일한 댓가로 뭔가를 받는 게 아님. 먼저 구원부터 받고 안식부터 한 다음에 일한다. 그 다음에 훨씬 더 수준 높은 보상을 받는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내 개인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를 모를 뿐이다. 그 대신, 내가 구원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거나, 신의 존재 여부가 불가지론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3)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이,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무조건 천당 간다. 죄성이 있지만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런 특례가 적용되는 애들은 유아세례 내지 침례의 대상도 아니며, 살아 있는 동안 체벌이라도 불사하는 의의 훈육이 필요하다.

(4) 인간이 잡범급 불순종 죄를 지어서 타락하고 자연 세계가 저주를 받고 후손들까지 낙원에서 쫓겨났을 정도라면.. 루시퍼는 더 옛날에 아예 정치범급 반역죄를 지어서 자기네 세상/왕국이 송두리째 멸망했었다.
이 비례 관계를 생각하면 간극 재창조는 하~~~나도 이상할 것 없고 오히려 아주 합리적인 교리인 걸 알 수 있다. (그 이전 세상이 어떤 형태였겠는지 디테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

(5) 탈북자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대한민국 교도소에 갇히지, 북으로 도로 송환은 절대 되지 않는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영원히 보장이다. 선행으로 구원을 얻은 게 아니니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그리고 일상적인 고난이나 시련, 박해를 겪을지언정, 하나님의 진노인 야곱의 대환란을 겪지는 않는다.

(6) "그때에 성경 역본 세계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가 선호하는 번역을 취사선택하였더라"... 처럼 되지 않고 절대 기준인 말씀이 있다.

2. 신앙 생활의 유불리

예전에도 한번 했던 말이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언급하자면..

(1) 인간에게 유리한 것: 믿음만으로 구원받고, 구원부터 먼저 받은 다음에 헌신하고 섬기고 일한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
이건 인간 직장으로 치면 월급부터 먼저 받고 나서 일하는 것과도 같은 정말 파격적인 조건이다. 세상 다른 종교에서 사람들이 얻으려고 죽어라고 노력하는 것을..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먼저 받고 나서 그 다음에 더 고차원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2) 인간에게 불리한 것: 개인의 미래를 알 수 없으며, 특히 죽을 타이밍은 절대 알 수 없음. (죽기 직전에만 믿고 구원받겠다는 잔머리 봉쇄) 이건 학교 선생이 시험 문제를 학생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신의 권한이고 재량의 영역이다.
또한 기도 응답도 꼭 인간이 원하는 때에 인간이 원하는 형태로 온다는 보장이 절대 없는 것 역시.. 일면 답답하며 불리한 점이다.

합법적으로 알 방법이 없다고 돼 있는 걸 귀신이니 무당이니 점 굿 이상한 예언기도?? 동원해서 알려고 하고,
명백하게 답이 나와 있는 건... 그렇게 믿는 걸 교만이니 어쩌구 하는 것이.. 인간의 뒤틀린 심보이다.

신앙 생활에는 인내와 기다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남과의 상대적인 비교, 외형적인 간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자극적인 것만 쫓아가는 것.. 이런 것과는 완전 상극이다.
하지만 내가 성경을 통해 접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인간에게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이 모두 갖춰져 있다. 권리와 의무가 같이 있지, 오로지 의무만 있는 종교 노예가 아니다. 헌신을 명목으로 신앙 열정페이 착취 같은 것도 없다.

3. 죽음과 관련된 가치관

(1) 귀신 이야기: 죽은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으로 가서 현 세상과는 영원히 격리된다. 죽은 사람 흉내를 내는 극소수의 더러운 영은 있을 수 있지만, 우리와 함께 살았던 바로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이렇게 이상한 형태로 나타날 일은 절대 없다. 다윗은 "나는 그에게 가려니와 그는 내게 오지 않을 거다"(삼하 12:23)라고 정확하게 통찰했었다.

(2) 영혼 결혼식: 결혼 제도는 사람의 사후에는 의미나 효력이 없다. 이게 현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성경에서 “부활이란 게 있다면 이 여자는 칠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이건 사두개인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나름 굉장히 머리를 굴려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질문이었다(마 22:28).

(3) 죽은 동물에 대한 추모: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인간과 달리 불멸의 혼과 내세가 존재하지 않는다. 죽으면 그대로 소멸되고 끝이다. 물론 그 동물들 '종' 자체는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존재하겠지만, 과거에 인간과 그런 경험과 기억을 교감했던 바로 그 동물 개체는 영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죽은 사람이나 죽은 동물을 기억하면서 슬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며, 어차피 죽으면 끝인 동물을 마음껏 학대해도 된다는 얘기도 아니다. 나야 개인적인 감정만 생각하자면 동물이 아니라 아예 죽은 호박 식물까지도 추모하고 싶다.
하지만 추모도 정도껏 하지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을 갖고 정신줄 놓을 정도로 엉엉 꺼이꺼이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삶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논어 11편 11장.. 공자)

"내가 땅의 것들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내가 하늘의 것들을 말하면 너희가 어떻게 믿겠느냐?" (요한복음 3:12)


"난 그런 건 몰라" vs "답을 뻔히 알려 줘도 니들이 못 받아들이는구나"
이게 바로 인간이 저술한 책과 신이 저술한 책의 관점 차이이다.

성경을 읽으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성격이 얼마나 다르며 사후에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관념은 우주나 외계인, 외계 생명 같은 것에 대해서도 영향을 끼친다.
본인은 비록 100% 단정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이런 우주의 규모와 인간의 과학 기술을 감안할 때, 인간이 지구 밖에서 다른 지적 생명체와 마주친다거나 지구 밖의 다른 행성에 정착해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4.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 한자에 양 양(羊)를 부수로 아름답다(美), 의롭다(義) 등의 추상적이면서 굉장히 좋은 뜻의 글자가 굉장히 '뜬금없이' 들어있다.
    개인적으로 무슨 한자에 숨겨진 창세기 같은 설을 다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배 선(船)짜의 8이 노아의 가족을 상징한다는 식의 끼워맞추기보다는 차라리 저게 훨씬 더 개연성과 설득력이 있다.

  • 강물은 하류로 갈수록 점점 짜워지지 않는다. 강과 바다가 경계가 있어서 바다에서부터 탁 짠물이 시작된다. (기조력 때문에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는 건 논외)
  • 달과 태양이 하필 지구에서 겉보기 크기가 거의 같다.
  •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언어라는 것도 우연히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꽥꽥뷁뷁으로부터 파싱에 스택이 필요할 정도의 복잡한 문법이 저절로 도출되기란..

  • 하필 기원전 5xx~4xx년대부터 중국 대륙에 공자를 비롯해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뜬금없이 출현했다. 석가모니의 탄생과 불교의 창시조차도 얼추 이 시기이다. 남유다 왕국의 멸망과 유대인 바빌론 포로기하고 정말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잠언과 전도서의 전파)

세속 세계사의 관점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상하리만치 존재감이 별로 없다. 그러니 모세가 홍해를 갈랐는 것이, 솔로몬 왕 때 정말 그렇게 금과 은이 넘쳐났었는지, 이것들이 진짜 역사적으로 사실인지 선뜻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 세계사에서는 유대교나 기독교와는 별로 접점이 없고 오히려 대척점에 있었던 이집트, 그리스, 로마 같은 나라의 문명이 훨씬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러나, 그러나.. 기원전 5xx~4xx년대의 저 트렌드는 유대인 내지 성경적인 배경을 토대로 형성되었던 것 같다. 내 느낌상으로는 말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아 당연히... 이런 증거들은 신의 존재나 지적설계 창조에 대한 '심증'일 뿐이지, 물증은 아니다.

예전에도 한번 했던 말이지만.. 난 구글 지도 상으로 아라랏 산 정상에 방주의 흔적이 있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성경에 기록돼 있고 예수님이 직접 언급을 하셨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를 믿을 뿐이다.;;
논리를 통해서 믿어야 할 게 있고, 증명 없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염두에 두고 믿어야 할 게 따로 있다.

군대가 아주 제한된 상황에서 제한된 대상에게 살인이 허용되는 조직이고,
첩보기관이 아주 제한된 상황에서 악으로 악에 맞서고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를 실천하는 곳이듯..
종교는 아주 제한된 초월적인 영역에 대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와 원천봉쇄의 오류, 진영논리가 허용되는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5. 거리 설교 노하우

끝으로.. '복음 선포, 거리 설교'에 대한 자료를 이 블로그 말고 html 고정 페이지에다가 올렸음을 알리며 글을 맺겠다. (☞ 보러 가기)

이건 지금으로부터 5년쯤 전에 개인적으로 만들었던 비공개 private 자료이다.
불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내용이 아니고, 신자들의 일반적인 신앙 생활과 관련된 내용도 아니다.
신자가 불특정 다수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불신자의 반응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면 좋을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같은 아이템들을 서술한 매뉴얼이다. 이런 글을 읽을 만한 독자층이 매우 좁으니 굳이 공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오랫동안 봉인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만들어서 혼자 갖고 있어 봤자 지금까지 제대로 활용할 곳도 없었고, 이 내용 갖고 생산적인 토의를 할 만한 상대도 없다 보니.. 이제야 그냥 봉인을 해제하고 글을 html 형태로 편집해서 개인 홈페이지에다가 올리게 됐다.
A4 7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며, 여러 모로 블로그보다는 영구 박제 자료 아카이빙 형태가 바람직하다.

-- 복음 자체야 고전 15에 매우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다. 하지만 “예수 믿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그 전에 불신자가 이해 내지 동의하지 못하는 전제조건과 배경 설정을 말해야 하는 게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 이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함을 느꼈다. 신의 존재, 내세의 존재, 그 근거인 성경의 신뢰성, 정확하게 믿어야 하는 대상 등을 소개하다 보면 내용은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 이는 마치 교육과정과도 비슷하다. 거리설교에 시간은 한정돼 있고 청자의 집중도도 매우 제한돼 있다. 마냥 자기 성경 지식이나 인생 간증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불신자의 입장에서 교육학적으로 꼭 필요한 아이템들을 논리적으로 개연성을 갖춘 순서대로 조리 있게 편성할 필요를 차츰 느끼기 시작했다.

-- 범죄 경력 없이 그냥 하루하루 돈 벌고 남 하는 대로 적당히 유흥 즐기고,
“기독교는 다 좋은데 너무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자기 안 믿으면 다 지옥이라고 그러니 싫다.”
“죽으면 다 끝이거나 혹은 어찌 될지는 죽어 봐야 알겠지.”
“성경은 도덕 경전 수준의 내용은 있겠지만 일부 설화나 고증오류도 있고 잔혹한 내용, 요즘 시대에 안 맞는 내용도 있겠지” 정도로 생각하는 통계상으로 가장 평범한 전형적인 불신자를 설정했다.

-- 필요 이상으로 세상의 악한 풍조 책망은 하지 않는다. 그건 악한 원인에 의한 결과일 뿐이므로 거리설교에서는 원인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 음란방탕이나 동성애 같은 거창한 사회 이슈를 책망하기에 앞서 각 개인 단위로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다, 죽으면 다 끝이다” 이런 것부터나 반박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아이템을 모으다 보니 챕터가 0부터 13까지 무려 14개나 나왔다.
예수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분이라면 제각기 자기만의 거리 설교 레퍼토리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본인은 이 우한 괴질 시국에서도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고 길거리에서 손수 선포의 어리석음(고전 1:21)을 실천하고 계시는 이 땅의 복음 전도자들을 응원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13 08:35 2022/06/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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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자연 세계가 성경이 말하는 죄로 인한 저주를 받지 않았다면.. 우리가 인지하는 생화학이라는 분야의 과학 관찰 결과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더 길고(창5, 사 65:20) 육식동물들도 초식을 했을 거(사 65:25)라는 건 좀 고전적인 이야기이다. 더 생각해 보면...

(1) 식물이 더 빨리 쑥쑥 큼직하게 잘 자랐을 것이다.
힘들게 밭 갈고 잡초 뽑고 약 치지 않아도, 유전자 다양성과 면역력을 몽땅 삼싸먹으며 마개조 학대에 가깝게 품종개량을 하지 않아도.. 식용 열매가 큼직하게 많이 잘 맺혔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호박이 자라는 걸 가까이에서 관찰해 보니 이 생각이 절실히 들더라.

(2) 동식물에 지금 같은 원인 모를/악질적인 병충해가 없었을 것이다.
식물의 적은 식물이고 서로 견제하고 말려 죽이고 독을 만들어서 내뿜고.. 우한 괴질 같은 이상한 바이러스가 생긴 걸로도 모자라서 자꾸 이상한 변이가 생겨나는 거 말이다.
이런 메커니즘의 과학적 디테일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이런 것도 성경적으로는 응당 죄의 저주가 야기한 결과이다.

(3) 모기가 흡혈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난 예수님은 성육신했던 당시에 더운 여름에도 모기에 물려서 피를 빨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4) 인간 포함 동물의 배설물이 지금 같은 끔찍한 외형과 악취를 내뿜지 않고, 시종일관 그냥 태변과 비슷한 형태였을 것이다.

(5) 인간 포함 동물의 사체가 지금 같은 끔찍한 외형과 악취를 내뿜지 않고, 그냥 죽은 식물이 말라 비틀어져 분해되는 것과 별 차이 없이 분해됐을 것이다.

그래서 만해 한 용운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똥, 그보다 더 더러운 건 시체.. (+ 그보다 더 더러운 건 네놈들의 마음)"라고 그랬었다. 이건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모두 굉장히 잘 통찰한 발언이다!

이 정도면 혈액도 그렇고.. 뭔가 단백질의 분자/원자 구조 차원의 왜곡이 발생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나님이 3천여 년 전의 옛날 사람인 욥이 아니라 양자역학과 DNA 분자생물학을 아는 현대의 물리학자 생물학자 등등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욥기 38~41장 사이의 배틀을 뜬다면 어떤 질문을 하실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하다..!!!

"내가 태초에 공간의 중심을 중성자로 채웠을 때 넌 어디에 있었느냐? 알고 있다면 말해보아라. 중성자의 붕괴는 전자와 양성자를 낳고 원소를 생성시키는데 그 중성자 붕괴의 반감기는 누가 정했느냐?" 아마 이런 식으로 얘기가 나올 테니까.. =_=;;

신의 창조를 믿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막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탄적인 생각 이런 식으로 매도하고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정도까지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진화론은 무신론보다는 죄의 저주를 받은 이 자연 세계에서 존재하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과 죽음을 관찰하면서 만들어진 이론이고, 그 관찰 자체는 과학적으로 명백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원 말고 생명의 "분화" 말이다.

지금 자연에 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지적설계의 산물 "만" 있는 건 절대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
모기의 흡혈은 말할 것도 없고..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다 남의 알을 밀어내고 자기 알 슬쩍 낳는 습성도 그럼 하나님이 처음부터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일까?
마냥 적대시하고 대립할 게 아니라, 그림이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게 바람직한 문제 접근 방식이라 여겨진다.

그럼 다음으로, 위의 (1)에서 논했던 식물의 생산력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인간은 4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사를 지어서 식물의 몸체나 과육을 주식으로 먹으며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 공업을 위한 석유, 물, 희소 화학 원소뿐만 아니라 저런 농작물 종자도 전략 안보 물자인 게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은 과학 기술이 발달해서 식량 생산이 획기적으로 늘었으며, 지구에서 50억을 넘어 80억 인구를 부양 중이라고 그런다. 질소 합성법을 개발하고 오랫동안 어마어마한 품종 개량까지 한 덕분이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건 인간의 욕심이나 정치·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지, 절대적인 식량 생산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난 도시 촌놈 농알못이다 보니, "그럼 열매 먹고 남은 씨 중에 큼직하고 소금물 아래로 가라앉는 걸 아무거나 심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일부 곡물은 종자 회사가 특단의 생산력 마개조 최적화를 한 종자를 매년 구입해야 된댄다.
그 최적화는 당대에만 유효할 뿐, 후대로 유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걔가 맺은 과육 안에 들어있는 씨를 또 뿌려 갖고는.. 원래 종자와 동등한 양과 질을 지닌 열매가 절대로 맺히지 않는다.

인간들이 도대체 식물에다가도 무슨 짓을 하길래..???? 그냥 비료 주고 약만 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렇다고 종자 회사가 악의적으로 종자에다가 터미네이터 락을 건 것은 아니고.. 단순히 유전적인 특성이 계속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에 생산력이 떨어지는 거라고 한다.

군견이나 경주마 같은 건 체력 좋은 우수한 놈이 대대로 계속 나오도록 혈통을 특별히 보존한다고 하는데 옥수수 종자는 어떻게 관리되나 모르겠다.
이 품종 개량이라는 게 죄로 인한 땅의 저주를 근본적으로 완전히 풀어 버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저 조건부로 일사적으로 우회· 회피만 했을 뿐이다.

각종 산기슭이나 강변의 공원 공터에 '무단 경작 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남의 사유지라면 당연히 무단 경작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차피 누구의 땅도 아니고 야생 자연을 재현해 놓은 곳에다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식물을 좀 심어서 가꾸는 게 왜 문제이고 금지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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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차도 현재 세상의 자연이 에덴 동산 같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관상용 꽃, 풀, 나무 따위를 심는 게 아니라 먹을 만한 열매를 얻기 위한 작물을 심으려면, 주변 환경을 있는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절과 변형을 많이 가하고 물과 온도, 영양분 튜닝을 많이 해야 한다.

냄새 나는 퇴비를 잔뜩 뿌려야 하고,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 비닐 등 각종 구조물을 설치해야 하고, 병충해 대비를 하느라 심지어 독한 농약도 쳐야 한다. 게다가 작정하고 이런 식용 작물을 재배하는데 겨우 한두 그루만 심지는 않을 테고..
결국은 작은 텃밭이라도 농작물이 자라는 곳은 천연 자연과는 다른 장소가 되어 버린다. 이는 공원의 설립 취지를 망치므로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과육을 많이 내는 쪽으로 품종개량된 작물은 야생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집돼지가 멧돼지에 비해 야생에서 제대로 생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온통 시퍼런 식물들로 가득한 동남아시아 열대우림 정글이 정작 '녹색 사막'이라고 불리며 광합성 산소 공급 이외에 실질적인 인구 부양은 못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땅에 임한 천연 자연에 대한 저주의 증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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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농사의 특성이 자연의 특성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감을 잡았다면..
강가나 공원 등, 적당히 흙 밟을 수 있고 수풀 우거진 곳이라고 해서 각종 음식물 쓰레기--그것도 축축하고 냄새 나는 것--를 함부로 버리거나 파묻고, 심지어 방뇨까지 하면서 “어차피 다 거름이 될 거니까 괜찮다” 이러는 게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사고방식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쓰나 배설물이 썩고 분해되면 물론 거름이 되기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하루 아침 한두 시간 만에 뚝딱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흉측한 비주얼과 악취, 벌레, 위생 문제 뒷감당은 어찌 하려고?
거름을 만들 거면 자기 텃밭이나 뒷간, 아니면 정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에서나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공공장소에서는 자제해야 한다.

심지어 천연 퇴비 말고 화학 비료도 마찬가지다. 화학 비료는 당장 공기 중에서 악취를 풍기거나 세균과 벌레를 꼬이게 하지 않는다. 분해가 잘 되지 않는 플라스틱 같은 물질이 아니며, 중금속이나 농약 같은 유독성 물질도 아니다.

얘는 흔한 편견과 달리, 성분 자체가 식물이나 인체나 환경에 해로운 게 아니다. 단지, 식물에게 필요한 영양 성분이 일부만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문제이다. 그래서 잉여 분량이 토양을 산성화시키고, 물에 씻겨 들어갔을 때 부영양화를 야기해서 수중 생물을 공멸시킨다.

다시 말해 얘는 환경에 문제를 끼치는 방식이 다른 여느 인공 화학 물질과는 좀 다르다. 어찌 보면 식물계의 정크푸드 인스턴트 식품인 건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싼 가격에 풍부한 영양을 공급하고 효과도 있지만..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고 건강이나 환경을 해칠 위험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말이다. 식물계의 도핑 약물까지는 아니고 가공식품에 가까운 듯.. ㄲㄲㄲ

이런 이유로 인해 농지가 아닌 공원이나 텃밭 수준에서는 농약과 마찬가지로 화학 비료의 사용도 금지된다. 허나, 현실에서는 이런 걸로 영양을 팍팍 주입하지 않으면.. 농사에 들인 노력 대비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는 과육이 풍부하게 많이 맺히질 않는다. 병충해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식량을 생산하는 논밭은 평범한 자연과는 형태가 좀 다른 곳이 될 수밖에 없다.

이상이다.
잡초 및 병충해와 싸우며 힘겹게 자라고 있는 텃밭의 호박이나, 새끼들 데리고 산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아 다니는 멧돼지들이나.. 다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롬 8:22) 사례에 속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인간들이 너무 먹고 살기 힘들어서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는 건 성격이 약간은 다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05 08:35 2022/06/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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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진영이라고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똑똑하고 재능 많고 본업인 음악뿐만 아니라 온갖 잡학에 관심 많고 머릿속이 복잡다단한 4차원 구조인 사람 같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는 요 몇 년 전부터는 종교 쪽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중임을 공개적으로 티를 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자신의 구도(?) 과정을 긴 간증문으로 써서 공개하고 영상도 올리는 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호불호가 갈린다.

먹고 사는 분야에서는 충분히 성공했으니, 그 다음으로 신이나 내세 같은 분야의 지적 욕구가 생긴 것 같다. 하긴, 예전엔 이 병철 삼성 창업주조차도 늘그막에는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이 어째서 이 모양 …” 이런 부류의 수십 개에 달하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했던 바 있다.

나도 종교 분야를 어린 시절에 진작에 입문하지 않고 아재 꼰대 나이가 돼서야 관심이 생겼다면.. 박 진영 씨처럼 혼자 여기저기 찾아보고 기웃거리다가 왕창 마이너 특이한 델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ㄲㄲㄲㄲㄲㄲ 지금도 이미 충분히 마이너한 델 갔지만..

본인은 정작 저 사람이나 저 사람 곡을 잘 모르며, 간증문을 제대로 다 읽어 보지도 않은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힌다.
허나, 잘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생각하는 기독교 교리는 어느 교파의 관점에서 봐도 다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일부 주장은 극단적 세대주의를 띄는 게 있어서 좋은 까일거리 먹잇감이 된 듯하다. 신약 교회 신자는 바울 서신 말고 다른 성경책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걸 넘어서 아예 필요하지 않다느니.. 이 정도면 윤 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북을 선제공격할 것이고, 최저임금도 없이 주 120시간 로동 착취를 시킬 것이고 의료보험을 몽땅 민영화시킬 거라네 하는 헛소리 급이다.

심지어 구원파 영향을 받은 말도 있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난 솔직히 말해서 구원파의 교리 자체도 잘 모른다. 그냥 자기가 구원 받은 날짜에 너무 집착하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 회개할 필요 없고 마음껏 죄 짓고 살아도 된다고 설마 "정말로 그런 정신나간 주장을 하나?" 이 정도가 내가 아는 바의 전부이다.

저런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박 진영의 간증 내지 신앙관은.. 온건 세대주의 기반인 독립 침례교회 쪽 진영에서도 논란이 많다. 무작정 호의적이지 않다.
내가 파악한 게 맞다면.. 저 사람은 머리 좋고 해골 내부 구조가 복잡하고 이것저것 탐닉한 게 많다 보니, 복음까지도 너무 복잡하게 접근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기미가 보인다. 나는 다른 낭설들 말고 바로 그게 우려된다.

내가 내 자유의지로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자발적으로 영접하고 믿어서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구원을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다. 이렇게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 "내가 억지로 힘들게 믿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저절로 믿어져야 구원받는 거다.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을 받아야 한다"
  • "뭘 깨달아야 구원받는다" (회개의 선행 조건으로 내가 죄인인 걸 깨닫긴 해야 하는데, 저기서는 그 말을 하는 게 아님)

뭐랄까, 맞는 말 같으면서도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초신자를 더 갈팡질팡 헷갈리게 하는 식으로 워딩을 하는 것 같다. "주여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 (막 9:24) 상태인 초신자들이 이것 때문에 거의 공황 수준의 혼동을 겪었다고 한다.

난 박 진영의 글 때문에 '믿음'이라는 벡터의 방향과 출처에 대한 키배와 논쟁이 굉장히 심하게 벌어졌었다는 걸 뒤늦게야 들었다.
겨우 이 따위 게 논란거리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 했었는데..
faith가 아니라 believe여야 한다느니(둘 중 하나를 have faith 내지 belief로 바꿔야겠지... 품사부터 좀 동기화시켜야..)
faith of Jesus Christ를 받아야 한다느니 그런 말이 나돌더라.

흠정역은 우리말 성경들을 통틀어서 롬 3:22 / 갈 2:16 faith of Jesus Christ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번역한 유일한 역본이다.
"엥? of니까 원래 '의'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of는 생각보다 굉장히 중의적이며,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이다. 다른 성경들은 전부 '를'이라고 돼 있다. 차이점이 뭔지 아시겠는가?

이건 킹 제임스니 변개니 하는 내용 차이 이슈가 아니라, 단순 번역 이슈이다. 게다가 이거.. 내가 알기로 흠정역의 주 번역자인 정 동수 목사 본인의 소신보다도 다른 여러 목회자들의 강력한 권면과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를' 대신 '의'가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말보회 한킹 진영에서는 흠정역의 번역 때문에 저렇게 "믿어야 구원"이 아니라 "믿어져야 구원"이라는 오류가 생긴 거라고 비판하니.. 그저 골치 아플 따름이다. 참고로 말보회는 야고보서와 히브리서는 신약 교회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세대주의를 굉장히 강하게 지지하는 진영이다. 쟤들은 '믿어져야 구원' 이걸 오히려 칼빈 예정론과 결부시켜서 역공을 가하기도 한다.

일단 난 흠정역의 번역에는 크게 토를 달지 않을 생각이다. 예수님이 믿음의 창시자이고 예수님도 이 땅에서 뭔가를 믿는 본을 보이신 것 자체는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예수님께 믿음을 구하고 새 믿음을 공급받는 것은 구원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이건 박 진영 씨도 부디 앞뒤 순서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예수 영접을 위해서 맨 처음부터 예수님의 믿음을 받아야 된다는 논리는.. 순환논리이고 궤변처럼 들린다. 압축 유틸리티를 설치하기 위해서 압축을 풀어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압축 유틸은 바로 실행 가능한 exe/msi 형태로 배포하는 게 상식입니다~~)

박 진영 씨가 그저 종교 지식 덕후가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해서 구원까지 받았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단지, 이 사태를 보니 인간은 같은 글에 대해서 역시나 다들 자기 관심사와 자기 진영 논리대로 남을 즐겨 판단한다는 것 절실히 느껴진다. 극단적 세대주의 탓, 흠정역 번역 탓.. 예시를 보면 명확하지 않은가?

난 그런 교리 노선을 떠나서 누구든 복음의 단순함을 왜곡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비행기가 어떻게 공중에 뜰 수 있는지.. 유체역학 항공역학 물리 법칙을 하나도 모르고 수학적으로 증명을 못 해도,
"이 비행기는 중간에 추락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잘 날아갈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믿고 비행기를 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안 믿어지면..? 옛날에 북한 김 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외국 나갈 때도 평생 열차만 타고 육로로만 다녀야 되는 거다.

"아~ 해외여행을 5년쯤 다니니 어느날 갑자기, 이제야 믿음이 생겨서 비행기를 안심하고 편안하게 탈 수 있게 됐어!!"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개인 간증으로서는 좀 드라마틱한 일일 수 있지만, 5년 동안 불안불안하게 탔던 자기만 집착이 심한 비정상이었던 것일 뿐이다. 그런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일반적인 교리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결국은 자기가 안 믿은 걸 갖고 하나님 쪽에서 믿음을 안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탓"이 나와서는 심히 곤란하다. ㅡ,.ㅡ;;;

내 경험상, 어설프게 영어 성경 읽으려고 애쓰기 전에 국어 공부부터 해야 될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역으로 성경을 별 오류 없이 분별하면서 제대로 읽을 정도가 되면, 세상 학문을 할 지적 능력도 이미 크게 갖춰져 있게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26 08:36 2022/05/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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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킹 제임스 성경은 제임스 1세 왕이 즉위한 지(1603)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초기인 서기 1604년에 번역 위원회가 조직되고 작업이 시작되었다. 완료되고 출간된 건 그로부터 약 7년이나 지난 1611년..

나라 모양새를 보아하니 교회 통합과 국민 단결을 위해 새 성경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시급히 느꼈던 모양이다. 조선의 한글은 1418~1450년에 달하는 세종대왕 통치 기간 중에서 비교적 말기에 만들어졌으니(144x년대..) 이와 대조적이다.

킹 제임스 성경과 비슷한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졌던 것들, 존재했던 주요 인물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대체로 1600년대를 전후해서 만들어졌다.
  • 돈 키호테: 1605~1615년. 작가인 세르반테스도 스페인 사람으로서 성경에 아주 능통 박식했다고 한다.
  • 두에-랭스 가톨릭 성경: 신약이 1582년에 먼저 나왔고, 구약까지 완역 전서는 1609~1610년에 출간됐다. 가톨릭의 KJV나 마찬가지인 듯..
  • 제임스타운: 1607년에 영국이 북미 대륙에 최초로 개척한 식민지이다. 이때 추장의 딸이 그 유명한 포카혼타스였다.
  • 갈릴레이 갈릴레오: 1609~1610년 사이에.. 당시 최신 문물이었던 망원경을 이용해서 목성의 위성들을 인류 최초로 발견했다.
  • 존 네이피어: 로마 교황을 왕창 싫어했던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1590년대에 이미 로그라는 것을 발견? 고안했다.
  • 동의보감: 1612년. KJV와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 영창대군: 1606년생, 1614년 사망.
  •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도 막부: 1610년대에 출범.

세상에서 다루는 세계사의 관점에서 제임스 왕은 전임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 비해 그리 훌륭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뭐, KJV의 권위가 그런 일개 군주의 인성에 좌우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사람 역시 일각에서 모함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똑똑하고 성품이 올바르고 성경적인 사고방식이 입력돼 있던 사람이었다. 일단 국비를 투입해서 성경을 만들 생각부터가 군주가 독실하지 않고서야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정치적인 행적은 다 제끼고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역사 잡학은.. 제임스 1세 왕이 담배를 개인적인 소신상 극혐해서 금연 운동을 거의 세계 최초로 추진했던 군주라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A Counterblaste to Tobacco -- 담배를 반대(극딜)하며
이건 저 왕이 1604년, 즉, 성경 번역과 같은 시기에 친히 저술했던 에세이.. 소논문 급의 글이다. 끝의 결론 부분은 다음과 같다.

"A custome lothsome to the eye, hatefull to the Nose, harmefull to the braine, dangerous to the Lungs, and in the blacke stinking fume thereof, neerest resembling the horrible Stigian smoke of the pit that is bottomelesse."
(담배는) 꼴도 보기 싫은 냄새와 광경. 뇌에 해롭다. 폐에 위험하다. 시커먼 연기는 이거 무슨 무저갱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같다.


저 글에서 위의 결론 부분은 기독교니 성경이니 하고 아무 상관 없이 그냥 세상적인 금연 운동을 하는 진영에서도 즐겨 인용하는 유명한 텍스트이다.

자, 생각을 해 보자.
전근대 왕조 시절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담배라는 값비싸고 신기한 신문물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보통은 왕과 신하들이 좋다고 서로 맞담배를 피워 댔다. 궁궐 안의 어전회의 장소가 냄새와 연기로 뒤덮여서 너구리굴처럼 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_=;;
그러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니 담배와 관련된 문화와 예절도 차차 생겨났다.

그 와중에 잉글랜드의 제임스 왕은 담배 연기를 보고는 계 9:1-2 말씀.. 대환란 재앙 때 무저갱(바닥 없는 구덩이)이 열려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떠올린 것이다..!!
1600년대 옛날 사람이니까 뭘 보든 성경 구절 묘사를 더 잘 떠올렸을 것이다. 옛날에는 담배 연기가 시꺼멓기라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술이야 인간과 함께한 내력이 담배보다 훨씬 더 길기 때문에 성경에도 대놓고 언급된다. 그리고 1700년대 조선 영조의 금주령이나 20세기 초 미국의 금주법 같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담배는..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가 즐겨 피우는 담배", "의사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담배" 이런 광고가 19~20세기 사이에 나돌 정도였다. 세계적인 금연 운동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담배는 성경에 직접적인 언급도 없다. 현대의 예수쟁이들은 "단순히 해로운 화학 물질에 중독되지 말고 하나님의 성전인 자기 몸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관리하라"라는.. 간접적이고 보편적인 2차 말씀에 근거해서 담배를 안 피울 뿐이다. 즉, 굳이 담배에만 적용되는 말씀은 아닌 셈이다.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 제임스 왕의 금연 운동이 시대를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만, 이 사람도 세금 수입 때문에 당장 제임스타운 같은 식민지에서 담배의 재배까지 다 금지한 건 아니었다. 이건 뭐 정치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면모였다. (이스라엘/유다 왕국의 선한 왕들도 산당들은 어지간해서는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니...)

그리고 성경에.. "경건치 아니한 자는 악을 캐내나니 그의 입술에는 타오르는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as a burning fire" (잠 16:27) 이런 말씀이 있긴 하다. 설마 대놓고 담배를 저격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굉장히 그럴싸해 보인다.;;

행 2:3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 as of fire"가 꼭 '낼름 이글이글 불꽃처럼 생긴 혀'를 말한다면,
잠 16:27은 '활활 타는 불'처럼 생긴 그 무언가를 가리킨다.
그 다음으로 내가 떠오르는 문구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인기 아이돌 마츠야마 아이 씨입니... 아!!
왠지 표정이 맛이 가 있습니다! 게다가 손에는 담배 같은 것이~!! 평소의 아이 씨가 아닙니다!!" --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종말편
(어이 거기 사회자, X나 시끄러워.. 날 물로 보지 마)


전부 '무엇처럼 생긴 것'이라고 대상을 비유로 가리킨다. =_=;; ㄲ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2/05/18 08:35 2022/05/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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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교(cargo cult) 신앙

1940년대 태평양 전쟁 당시에 남태평양의 뉴기니, 멜라네시아 일대의 섬에서는..
비행기 타고 착륙하거나 배 타고 상륙해서 신기한 선물--스팸 통조림, 의약품 따위--을 잔뜩 뿌려 주는 미군을 무슨 UFO 타고 날아오는 외계인쯤으로 여기고 숭배하기 시작한 섬 원주민 종족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쟁이 끝나고 더는 수송기와 군함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들은 그 비행기와 배를 기다리는 제사를 지내고, 비행기 착륙 유도원의 손짓을 종교 의식으로 승화시켜서 흉내 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종전 후에 이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는 굉장히 놀랐다. 인류학자, 종교학자, 고고학자들은 이 토속신앙에다가 cargo cult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류 역사 초창기에 종교라는 게 이런 식으로 생겨났겠구나~!"

게다가 이것도 세부 교리(?)가 지역별로 파편화까지 됐다. 어떤 곳에서는 비행기를 숭배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배를 숭배하고.. 특히 바누아투라는 섬나라에는 대놓고 미군 해군 장교의 이름을 딴 '존 프럼(John Frum)'교라는 화물교 교파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전후에 맥아더를 맥 쇼군이라고 신성시한 것과 비슷하달까..;;;

미국인 선교사들이 거기에 다시 들어가서 원주민에게 기독교 복음도 전하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비행기는 그냥 평범한 인간 기술자가 개발한 기계임. 자연의 특성을 이용해서 공중에 뜨는 것일 뿐, 주술이 아님.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깥 세상은 전쟁이 끝났음. 그러니 님이 보셨던 그 비행기나 배가 여기를 다시 찾아올 일은 없습니다. (이제 아무리 종교 의식을 치르고 빌어도 소용없어요)"


그랬는데 그 원주민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네는 예수라는 신의 아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2천여 년째 기다리고 있다면서요?
2천 년도 기다리는데 우리는 겨우 20년밖에 안 지났습니다. 얼마든지 더 기다릴 수 있지요"


....;;;;;;
와 나라도 할 말이 없다.. 완벽하게 설득당함..ㅠㅠㅠㅠㅠ
정확하게는.. 저건 데이비드 애튼버러라는 영국의 유명한 인류학자가 존 프럼교 신앙을 가진 원주민을 인터뷰 하면서 받은 답변이라고 한다.

저건.. 더 옛날에 슈바이처한테 어떤 토인이 "아니, 백인들은 서로 잡아먹지도 않는다면서 전쟁에서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여요?"
이렇게 말한 거 이래로 정말 최고의 명답변인 것 같다.

내가 듣기로는 화물교 신앙이 퍼져 있던 여러 지역들도 이제는 어지간히 문명의 이기를 접했다고 한다. 미군 군용기와 군함이 무슨 종교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냥 경로의존성, 전통, 추억 보정 차원에서 CARGO CULT를 시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건 전쟁이 끝났다는 걸 수십 년째 받아들이지 않은 일본군 패잔병하고 좀 통하는 구석이 있는 극단인 것 같다.

참고로 미군은 이런 화물교 신앙이 있건 말건, 1952년 이래로 지금까지도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때 미크로네시아, 마리아나 군도, 팔라우 등의 섬에 수송기를 날려서 생필품, 장난감, 식품 등의 선물을 뿌려 주고 있다. 단, 현대에 와서는 호주 공군 및 일본 자위대하고도 같이 수행한다고.. (☞ 보도 자료 중 하나)

세상에 이렇게 화물교도 있는데..

(1) 철도교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를 근간으로 도로 정체로부터의 구원을 믿는 모 신흥 종교이다.

(2) 라면교는.. 끓는 물에 죽으셨다가 3분 만에 부활하신 기적을 믿는 신흥 종교이다. 비빔면이나 뿌셔뿌셔 같은 부류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ㄲㄲㄲㄲㄲ

(3) 1986년에 창시되어서 현재까지 청주 모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불교는.. 한국학 연구원과 각종 인터넷 신문에서도 취재를 나갔을 정도였다. (☞ 보도 자료 , 보도 자료 2) 가정집에 모여서 이불 뒤집어쓰고 성경 읽고 찬송가 부른다는데 이 정도면.. 신흥 종교라기보다는 그냥 특이 교파 정도로 봐야 하지 않을지.. =_=;;

(4) 인도양 북부에 인도와 버마· 태국 사이의 망망대해에는 North Sentinel Island라고 60㎢ 남짓한 면적의 작은 섬이 있는데.. 여기에는 '센티널 족'이라고 불리는 원시 생활 원주민이 50~200명 남짓 살고 있다. 이들은 외지인의 접근에 극도로 적대적이며, 이 때문에 여기는 2022년 현재까지도 서양 문명이 전혀 닿은 적 없이 고립된 동네이다.
당연히 선교사가 들어가지도 못해 있다. 2018년경에는 어느 미국인 선교사가 어설프게 잠입을 시도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고는 다윈 상이나 받았다. -_-

Posted by 사무엘

2022/04/26 19:35 2022/04/2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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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구원

기독교 은혜의 복음에서 굉장히 논란이 되고 트집도 많이 잡히는 낭설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평생 내 마음대로 죄 지으며 살다가 죽기 직전에만 달랑 예수인지 뭔지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소리네?? 뭐 그런 어거지가 다 있어?”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Y/N 하나로만 굳이 답한다면 흔쾌히, 단호히 Y이다.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자면, 이건 다른 단골 드립인 “이 순신/세종대왕 드립”보다는 논파하기 훨씬 더 쉬운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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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을 받았습니다” 광고를 기억하시는가? 생명보험 가입해서 보험료 딱 한 번만 내고는 가입자가 다음날 바로 급사해 버렸는데.. 어쨌든 면책 기간 없고 계약 위반도 아니니 1회분 보험료의 500배에 달하는 보상금이 나온 적이 있었다.
이런 일이 성경적으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합법이니까.

누가복음엔 평생을 흉악범으로 살다가 십자가형 당한 강도가 바로 옆의 예수님께 로비(?) 잘 해서 당일 바로 구원받은 얘기가 나온다. 훗날 “죽기 직전” 드립이 많이 나올까 봐, 진짜로 죽기 직전에나 달랑 구원받은 사람 예시를 대놓고 수록해 줬다. ㅋㅋㅋ

게다가.. 이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십자가에 달렸던 바로 직후엔 그 구원받은 강도도 예수님을 같이 조롱하고 욕했었다!
마 27:44의 ‘강도’는 분명히 복수형이다. 두 명 다 욕했다는 뜻이다.
그랬는데 둘 중 한 명은.. 심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나중에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한 것이다.
예수님 면전에서 욕과 조롱까지 하다가 구원받았다고라? 세상에 이것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인생 역전이 어딨을까?

자, 그래서 원 질문에 대한 답변은 Yes임을 논증했다.
그럼 그 복음이 말도 안 되는 어거지인가? 하나님이 구원 먹튀, 모랄 해저드를 조장하고 있는 것인가?
그건 절대 아니고 답이 No.. 아니 No를 넘어서 God forbid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언제 죽을지 절대 알 수 없다. “죽기 직전에만 믿으면 되겠네?”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다음날 꽤꼬닥 급사할 수 있다. 당연히 구원 못 받은 채로.. ㅡ,.ㅡ;;

이건 학교 선생이 아무리 자비로워도 시험 문제를 대놓고 유출은 절대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국영 소방서가 없는 곳에서 민간 화재 보험(공제 조합)을 평소에 안 들었다가 자기 집에 불 나면 아무도 안 도와주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그건 보험사가 야박하고 잔인한 게 아니다. 그때 호락호락 불을 꺼 주면 평소에 아무도 보험을 안 들 테니까..

하나님은 겨우 죽기 직전 구원 먹튀 같은 알량한 잔머리로 결코 농락· 조롱당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 때는 코로나 걸려서 당일 투표 못 할까 봐 두려워서 사전투표 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우리는 그것보다는 자기 미래 대비를 좀 해야 될 것이다.

둘째, 병이나 사고로 급사하지 않고 자연사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지금도 안 믿는 사람이 더 나이 들어서 고집 세고 완강한 늙은 꼰대가 된 뒤에 복음이 과연 믿어질까..? 그런 일은 생각만치 호락호락 일어나지 않는다. 7, 80대 노인이 정치 성향이 180도 달라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보시라.

글쎄, 돈 날리고 건강 잃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뒤에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서 종교에도 관심 생기고 성경 읽고 싶어지고 그럴 수는 있겠지만.. 이것도 누구나 그러라는 보장은 없다.

십자가의 강도는 그저 예수님께 잘 보이려고 얼굴도장 찍은 게 아니다! 갑자기 마음이 확 바뀌어서 자기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같이 예수님을 까던 십자가 동기(?)에게 버럭 하고는.. 예수님을 무려 ‘주여 Lord’라고 불렀다. 이 정도는 되니까 아무 선행 없이도 구원이 이뤄진 것이다. (킹 제임스 성경만이 눅 23:42가 ‘예수여’가 아니라 ‘주여’라고 적혀 있음!!)
이걸 죽기 직전에 쟁취해서 먹튀하는 거..??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끝으로 셋째, 위의 질문은..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 건 아주 억압적이고 자유를 박탈당하고 손해 보고 호구처럼 사는 것이다, 그러니 믿을 거면 최대한 늦게 믿는 게 낫다”라는 프레임이 깔려 있다. 그러니 이건 엄밀히 말하면 질문의 전제조건부터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내 인생의 기원과 목적을 정확하게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게 되고.. 죄 짓는 걸 자유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죄를 자연적으로 멀리하고 싫어하게 되고, 진정한 기쁨과 평안과 감사라는 게 생기고..
이런 이익 gain을 어린 시절 젊은 시절부터 누리지 못하고 죽기 직전에야 달랑 겨우 구원받는 건 먹튀가 아니라 손해이다.

성경의 전도서는 “나도 솔로몬의 반만치라도 금수저 쥐면서 부귀영화 누리고 미녀 1000명하고 원나잇도 해 봤으면 좋겠다 -_-”가 아니라,
니들은 나처럼 헛되고 헛된 거 삽질하면서 인생 낭비하지 마라.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 찾아서 잘 섬겨라~ 그게 너한테도 이득이다”의 취지로 기록됐다는 걸 잊지 마시라! 이 점에 대해서는 재작년에 본인이 쓴 글도 참고하시길 바란다. (☞ 링크)

자기들이 보기엔 뉴비 쪼렙 ㅈ밥(?)일 뿐인 인간들이 아무 노력이나 공로 없이 구원을 너무 쉽게(?) 받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발끈하는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다. 성경에 기록된 포도원 비유(일한 시간과 관계 없이 동일한 일당이라서 발끈), 그리고 탕자의 비유에서 발끈하는 형과 정확하게 같은 심정으로 보인다. 읽어 보면 진짜 기가 막힐 정도로 일치한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라든가 보편적인(=구원받은 신자라면 누구나) 휴거도 99%의 확률로 안 믿는다.
애초에 자기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 게 아닌데,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고 납득이 안 되고 자존심 상하는 걸까?
가령, 살인자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 자살한다고 구원이 취소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구원받고 나서 사람이 도로 펑펑 죄를 짓는 걸로도 모자라서, 마음에 180도 변해서 더 이상 예수 안 믿고 아예 타 종교로 개종을 할 정도로 배교해도 구원이 유지되나?”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해서 묻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먹튀 구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답변 가능하다. 원론적인 답변은 Yes.. 인간이 설령 그런 짓까지 하더라도 구원은 유지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타 종교로 개종을 할 정도로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뀌는 사람이라면 한 90% 이상은 애초에 구원도 안/못 받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10억을 받았습니다”에 가까운 아주 극단적인 로또 급 예외일 뿐, 압도 다수의 경우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수님께서 비참한 나를 위해서, 나의 그 끔찍한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니~~!! 엉엉엉” 이랬던 사람은.. 무슨 당장 의를 행하고 순교도 가능할 정도로 강한 용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성경 말씀이 믿어지고 죄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긴가민가 고민은 하는 게 정상이다.
내 노력으로 죄 안 지으려고 불끈 노력하다가 롬 7:24의 바울처럼 현타를 느끼고 멘붕 좌절하고, 그러면서 내 육신을 죽이는 훈련을 하며 커 가는 게 정상적인 코스이다.

구원이란 정말 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머리와 가슴 사이의 어마어마한 거리를 실감케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서 구원받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을 못 하는 사람도 많다.
한번 구원을 제대로 받긴 한 사람이라면 휴거 못 되는 것, 지옥 가는 건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 없고, 그 대신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매 1분 1초를 한 순간도 빠짐없이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분과 나의 사고방식이 동기화가 돼 있지 않았다면.. 그 심판석은 어지간한 화생방 훈련 이상으로 눈물 콧물 빼는 처절한 회한의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구원과 관련된 온갖 낭설과 오해가 바로잡히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사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4/06 19:35 2022/04/0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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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뿔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천재 예술가(화가 겸 조각가)이다.
그는 성경의 인물 중에서 다윗을 조각으로 남겼으며(1501~1504, 보통 '다비드'라고 알려져 있..), 또 모친 마리아의 품에 안긴 형태이긴 하다만 예수 상도 만들었다(피에타, 1499). 이 둘은 워낙 엄청난 명작이기 때문에 조각가의 이름만 검색해도 이미지 검색에서 곧장 걸려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그는 다윗과 예수뿐만 아니라 모세 상도 만들었다(1515).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에 들어가는 장식 차원에서 만든 것인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세의 머리에 뿔이 달려 있다.. 왜..?
참 놀라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 성경이 그렇게 (잘못) 번역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시내 산에 다시 올라가서 하나님을 오랫동안 독대하고 십계명 돌판을 다시 제조한 뒤에 하산했는데.. 출 34:29에 따르면 하나님 버프를 받은 덕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서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머리가 빛나는 게 아니라 얼굴 말이다.;;

허나, 그 중세 시절에 가톨릭 교회에서 쓰이던 제롬의 라틴어 벌게이트(불가타) 성서에서는 his face shone (= shined) 부분이 his face was horned라고 번역되었다.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성경 번역의 먼 조상뻘인 위클리프 성경도 벌게이트의 영향을 받았다 보니 그렇게 됐고, 두에 랭스 가톨릭 성서까지도 다 출 34:29에 horned가 들어가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 혼자 올라가서 하나님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머리에 졸지에 뿔이 돋아 버린 거다..;;
뿔 난 모세, 앵그리 모세스.. 괜찮은 컨셉인 거 같다.
그 앞에 금송아지 사건 때문에 빡쳐서 뿔이 돋은 거라고 하면 차라리 훨씬 더 자연스럽겠다만, 저건 도대체 뭐냐. ㄲㄲㄲㄲㄲ

뭐, 뿔이 빛보다는 조각으로 표현하기 훨씬 더 유리하긴 하다만..ㄲㄲㄲㄲㄲㄲ
그리고 뿔은 성경에서 흉물이 아니라 긍정적인 심상이 강하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오죽했으면 '구원의 뿔'(시 18:2; 눅 1:69)이라는 명칭도 있을 정도이다.

저걸 최초로 찾아내서 바로잡은 사람은 그럼 누구이며 언제쯤의 일일까...??
옛날에는 사람들이 지식·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글을 다루는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성경에도 본문 계보의 정확도와 별개로 오역이나 실수가 종종 들어갔던 모양이다.

이런 악의적이지 않은 오류는 원어를 아는 소수의 학자 집단에서 경험적으로 알려지고 알음알음 공유되었다. 그러나 그걸 바로잡아서 역본을 또 만드는 건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개정한 뒤에 오역이 또 발견되면 어떡하려고..? 게다가 이때는 컴퓨터고 인터넷이고 아무것도 없고 종이의 가격도 엄청 비쌌다는 걸 생각하자.

에라스무스의 공인 본문이 나오고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개신교 쪽에서 라틴어로도 모자라 독일어와 영어로 성경 번역을 주도하면서 오랜 번역 오류가 고쳐졌던 게 아닌가 싶다.
그 반면, 가톨릭은 이때 본격적으로 고인물 썩은물이 돼 갔던 것 같다. 자신이 파문한 이단자들이 일으키는 변화를 당연히 전혀 수용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무려 1580년대에 안티 종교 개혁 차원에서 만들어진 두에 랭스 역본까지도 모세의 뿔이 여전히 들어있었던 것이다. (☞ 링크)

물론 개신교 계열의 옛날 성경도 과도기적인 실수나 오류가 있었다.
10여 년 전에 영국에서 만들어졌던 KJB: The book that changed the world라는 다큐 영상을 보면, 제임스 왕이 성공회와 청교도를 중재하면서 새로운 끝판왕 성경을 만들 것을 지시하는 과정이 잘 묘사돼 있다.

제임스 왕은 성공회에서 사용하던 비숍 성경은 대놓고 오역이 많다고 깠고, 청교도들이 사용하던 제네바 성경은 번역 스타일이 편향되고 잡다한 난외주와 주석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꼴도 보기 싫다며 깠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 모두까기 소신이었다.

그래서 두 진영 학자들을 한데 모아서 서로 교차검증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성경 번역을 시작했는데.. 성공회 진영의 대표 학자가 "그래도 기존 비숍 성경이 더 나으니 그거 스타일대로만 따라가면 별 문제 없겠는뎁쇼"라고 사석에서 국왕 폐하에게 은근슬쩍 자랑을 했다.
허나, 제임스 왕은 표정이 썩으면서 바로 말을 끊고 이렇게 맞받아 쳐 버렸다.

"뭐, 비숍 성경이라고?? 전 11:1 '빵을 물에다 던져 넣어라'가 '빵을 젖은 얼굴 위에다 놔 둬라'라고 황당하게 오역돼 있는 그 역본 말여?? 오 맙소사!
이번에 비숍 성경보다 더 나은 성경을 니가 책임지고 새로 만들지 못한다면.. 짐이 손수 니 얼굴을 물에 적셔서는 그 위에다 빵을 올려놓을 테니 그리 아시오"


끄응.. 요 유튜브 동영상 56:18 이후 지점을 참고하시라. 저건 창작 각색인지, 아니면 무슨 조선 왕조 실록처럼 잉글랜드 왕조 실록에 기록된 160x년대의 실제 대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를 보니 비숍 성경은 진짜로 전 11:1이 젖은 얼굴 위에다가 빵을 놔 두라고 혼자 특이하게 번역돼 있더라..! (☞ 링크)
하지만 얘는 모세가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돼 있지는 않았다. ㄲㄲㄲㄲ

이래서 옛날 성경은 그냥 역사에만 이름이 남아 있지 오늘날까지 교회 예배 때 쓰지는 않는구나. -_-
두에 랭스 역본은 내가 알기로 가톨릭의 킹 제임스 비슷한 고전 역본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나온 시기가 비슷하고 같은 고어체이기도 해서.. 하지만 유럽 역사나 교회사깨나 아는 신자들은 그 역본의 오역을 뻔히 얘기하며, 저 모세의 뿔 일화도 당연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개신교(?) 쪽의 킹 제임스 성경은 400년 넘게 묵은 옛날 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무오하다는 유일주의를 믿는 진영이 있다. 본문의 내용이 이역 수준을 넘어 완전히 다른 것도 있고, 또 성경에 대한 인식과 믿는 방식이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여담

  • '피에타'는 옷과 피부 묘사야 뭐 신의 경지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아무리 봐도 마리아가 덩치가 너무 크게 나온 것 같다..;;
  • 그림 중에서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이고.. "최후의 만찬"은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3/26 19:35 2022/03/2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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