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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오늘날 한국인들 대부분의 주거 형태, 또는 최소한 선호하고 지향하는 주거 형태는 아파트임이 틀림없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 수도권 중심부의 직장· 상권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집을 잡고 살려고 바둥대고 애쓴다. 하지만 결혼해서 처자식이 생기고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지면 어쩔 수 없이 더 멀고 저렴한 외곽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집이 서울 도심에서 몇 km 멀어질 때마다 주거비는 크게 감소하지만 교통비와 통근 시간이 얼마씩 증가하고 삶의 질은 그에 비례해서 떨어진다는 무슨 연구 결과가 나온 게 있다.
다만, 이공계 출신의 경우, 공장이나 연구소, 사업장이 아예 대놓고 지방에 있기 때문에 인서울에 집착하는 게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문돌이도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해서 외진 데로 발령 나면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래도 안정된 직업을 얻은 지방행이니 사정이 낫다.

이 와중에 아파트는.. 비록 층· 벽간 소음 같은 문제가 케바케로 있긴 하지만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몰려 살기 용이하게 해 주며, 행정 능률과 토지의 이용 효율을 끌어올리는 여러 장점들이 있다. 그에 비해 단독 주택은 특별히 넓은 정원 있고 차고에다 수영장 있고 개집 있고 다락방까지 있는 미국식 전원 생활이 아닌 이상, 왠지 꾸질꾸질하고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좁은 골목길에 치안 안 좋고, 주차 문제도 심각하고.. 더구나 집의 모든 관리를 주인이 일일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점은 느긋한 전원 생활형이라 해도 변함없다. 어지간해서는 그냥 월 몇만 원 관리비로 모든 걸 퉁치는 게 나아 보인다. 이런 점에서 단독 주택과 아파트의 차이는 자동차로 치면 자가용이냐 대중교통+렌트냐의 차이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뭐, 반대로 아파트도 좁고 열악하고 닭장 같은 곳은 단독 주택만도 못한 곳, 돈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 신혼 부부나 잠시 세들어 사는 곳처럼 묘사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동 주택도 급이 다 같은 게 아니기 때문이며, 사실 저게 미국에서 아파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기도 하다. 뭐, 뉴욕 같이 뽁짝뽁짝 대도시는 논외로 하고 말이다.

아파트는 여느 기숙사나 관사, 고시원 같은 곳과 달리, 화장실이 공동이 아니라 각 집마다 따로 있다. 더 좋은 곳은 안방에도 부부 욕실 같은 게 딸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보통은 입구가 여럿 있어서 각 입구마다 층당 집이 둘만 있는 게 보통이다. 층수는 10층 이상으로 쭉쭉 잘도 올라간다.

하지만 맨션인지 빌라인지 하는 곳은 통상적인 아파트만치 높지 않다. 층수는 그냥 한 자리수이며, 입구는 하나만 있다. 그리고 한 층에서 모든 집들이 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뭐, 아파트 중에도 이런 형태인 게 없지는 않긴 하지만, 입구별로 층당 집이 둘씩만 있는 아파트보다는 폐쇄성· 보안성이 약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초가집도 기와집도 아닌 이런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한국 땅에 언제 처음으로 등장한 걸까? 그리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주거용 아파트는 무엇일까?

2. 일제 시대

아파트라는 게 조선 내지 대한제국 시절에 존재했을 리는 만무하고.. 짐작하다시피 이건 일제 시대 때 일본인이 지은 건물이 최초이다. 1930년에 경성 미쿠니(三國)상사라는 곳에서 일본인 직원을 위한 관사를 지금의 회현동에 지었다고 한다. 그게 '미쿠니 아파트'라고 불렸다.

화장실은 공동이고 단순 기숙사· 숙소 같은 느낌을 탈피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으나, 그래도 이게 한반도에서 상업· 업무가 아닌 주거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3층 이상짜리 건물이었다.
지금처럼 여러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그냥 한 채가 전부였지만, 그 시절에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이 아파트 한 채 안에 수십 세대가 한꺼번에 입주해서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미쿠니 아파트는 1990년에 철거돼서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 뒤 1935년에, 같은 회사에서 또 지은 아파트가 바로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로 지어진 '유림 아파트'이다. 얘는 직원 관사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임대· 분양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진정한 아파트였다. 뭐, 그래 봤자 그 시절에 이런 곳에서 살 만한 사람은 일본인밖에 없었다. 조선인은 부자라 해도 이런 데가 아닌 전용 한옥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얘는 '충정 아파트'라고 이름이 바뀐 뒤, 놀랍게도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고 심지어 거주민도 아직 있다! 2019년 현재 한국 땅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가 이 아파트이다.
위치도 어디 엄한 산기슭 비탈길이 아니다. 충정로 역 9번 출구로 나가면 100미터도 채 안 되는 전방에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흐음.. 녹색 도색이 참 추레해 보인다..)
이 아파트는 중간에 호텔로 용도가 바뀌었다가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1979년쯤에 충정로 도로의 확장 공사 때문에 일부가 헐리기도 했다. 그 대신 한 층 더 증축되어 5층이 됐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무허가 불법 증축이었으며, 헐린 것과 인과관계가 있는 증축도 아니었다.

충정 아파트 다음으로 1942년엔 대한 주택 공사의 전신인 '조선 주택영단'이라는 조직 명의로 한국인이 건설한 아파트도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는 게 없으며, 건물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한국인이 지은 아파트의 역사는 역시나 해방 후, 더 구체적으로는 6· 25 전쟁까지 끝난 뒤에나 제대로 시작될 수 있었다.

옛날 일본인들이 건물 하나는 튼튼하게 잘 만들어 놨나 보다. =_=;;; 구 서울 역이나 중앙청 건물처럼 말이다. 사실, 태평양 전쟁이 없었고 일제 식민지가 평화롭게 계속됐으면 아파트도 더 지어졌고 1940년대엔 경성에 아예 지하철이 들어설 수도 있었을 거라고 그런다.
일본은 아예 경기도 용인 정도에다가 일본의 수도를 옮겨서 본진으로 삼고, 조선인들은 지진 많은 자기네 섬이나 아니면 만주 벌판으로 쫓아낼 작정이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런 망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3. 해방 이후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는 1958년 11월, 고려대 근처의 야산 기슭에 지어진 종암 아파트였다(3개동). 철도나 원자로 같은 기간 시설, 공공시설이 아니라 민간 아파트 건물이 지어졌을 뿐인데 준공식 때 무려 할배 대통령이 참석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아파트의 완공이란 게 그 시절엔 보통일이 아니었다. 집집마다 편리하고 위생적인 수세식 화장실이 갖춰진 것조차도 그때는 최첨단 테크놀러지라고 언론 대서특필감이었으니 말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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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암 아파트는 37년을 존속하다가 1995년에 헐렸으며, 그 부지에는 다른 아파트가 재건축되어 들어섰다.

할배 시절은 워낙 가난하고 열악했으니 국내의 아파트 건축 기록이 이런 것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지어진 것은 역시나 그 다음 박통 때부터이다.
박통 때 최초로 지어진 아파트는 1962년과 1964년 두 차례에 걸쳐 완공된 '마포 아파트'이다. 얘는 우리나라 최초로 대규모 단지 형태를 표방하고(10개동 642세대) 지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6개동까지만 지어졌던 1962년 당시의 항공 사진. 광활한 공간이 참 인상적이다.)
이 아파트는 30년 남짓 존속하다가 종암 아파트보다도 더 이른 1991년에 철거되었다. 그 자리에는 마포 삼성 아파트(1994년, 14개동 941가구!!)가 들어섰는데, 얘는 우리나라 최초의 "재건축 아파트"(2세대!)라고 한다.

종암과 마포라는 두 원조 아파트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처음엔 상류층을 위한 고급형으로 출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중에 60년대 중· 후반에는 세운 상가, 낙원 상가 같은 주상 복합 아파트가 만들어졌으며, 미군 간부를 포함해 외국에서 모셔 온 VIP가 처자식 데리고 편히 지내라고 '외인 아파트'도 지어졌다. 이것들 역시 모두 서민과는 큰 관계가 없는 고급형이었다. 대학 교수, 정· 재계 인사, 인기 연예인 같은 계층이나 들어가 살 수 있었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9/08/30 08:33 2019/08/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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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년 말(12월)부터 국내에서는 잘 알다시피 5G 이동통신 기술이 상용화 됐다. 그런데 그런 뉴스가 전해지기 전부터 언제부턴가 집과 각종 공공장소의 와이파이 접속명은 뒤에 5G가 붙기 시작해서 iptime5G 이런 식으로 바뀌었고, 속도도 더 빨라지긴 했다.
똑같은 전자기파와 똑같은 랜선을 쓰면서 어떻게 인터넷 속도가 이렇게 계속 더 빨라질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컴퓨터 클럭 속도는 멈춘 지 15년 가까이 됐지만, 현재까지 아직도 치트키 수준으로 경이롭게 증가하고 있는 건 인터넷 속도인 것 같다.

2.
컴퓨터 키보드의 글쇠들 주변을 보면, 다른 먼지들이 쌓여서 더러워지는 건 이해가 되는데 1~2cm 남짓한 길이의 솜털들은 도대체 어디서 떨어진 건지 모르겠다.
손가락 끝이나 손바닥서 털이 나는 것도 아니고, 사람 얼굴에서 떨어진 털이 거기로 갈 리는 없을 텐데.. 알 수 없는 노릇이다.

3.
옛날에 비해 컴퓨터 장치들이 독립성이 강화되고 더 똑똑해지는 게 느껴진다.
가령, 옛날에 모니터와 이어폰은 전통적으로 자신만의 전용 단자가 있으며(직렬· 병렬 포트나 USB 따위가 아닌), 컴퓨터의 입장에서는 꽂든지 말든지 소프트웨어적으로 별 차이나 반응이 없던 물건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컴퓨터에서 각 모니터의 탈착을 감지할 뿐만 아니라 그 모니터의 종류, 적정 해상도와 주사율까지 알아서 조절하게 됐다. 그리고 사운드 쪽도 이어폰을 꽂은 상태에서 볼륨을 너무 높이면 컴퓨터가 사용자의 청력까지 걱정해 주는 경지에 다다랐다.

옛날 브라운관 모니터는 밝기 조절, 채도 조절, 상하좌우 shift/resize를 전부 별도의 다이얼을 돌려서 해야 했다. 그러나 요즘 모니터는 자체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램 UI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메뉴와 화살표, 엔터 같은 키만 있다.
아울러, 노트북의 터치패드도 단순히 마우스와 호환되는 포인팅 장비가 아니라 자체적인 옵션을 갖고 있고(각종 제스처 인식 여부) 드라이버를 잡아 줘야 하는 물건으로 탈바꿈했다.

4.
본인이 회사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는 CPU, 그래픽 카드, 메모리 등 하드웨어 전반이 전형적인 2010년대 중반급의 사양이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 그런데 화면의 반응이 왠지 굼뜨고 느리게 느껴져서 불편했다. 간단히 창을 마우스로 끌어서 이동시켜 봐도 모션이 매끄럽지 않고 미묘하게 랙이 걸려서 뚝뚝 끊기는 것 같았다.

듀얼 모니터 중 하나가 4K급 해상도여서 혹시 비디오/디스플레이 쪽으로 성능이 딸리는 병목이 존재하나 의문이 들었는데.. 그 예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쪽 문제인 건 맞지만 원인이 컴퓨터 쪽이 아닌 모니터에 있었기 때문이다.
모니터가 4K 해상도에서는 주사율이 30hz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옛날에는 그냥 평범한 모니터가 보통 50hz이고, 좀 좋은 제품은 60내지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주사율이 높으면 마우스 포인터의 이동 모습이 아주 부드러워져서 컴퓨터를 쓰는 인상, 경험, 느낌을 좋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유튜브 동영상만 해도 단순히 화질만 720~1080 HD급이 아니라 프레임 수도 60fps라고 기재된 게 있다. 그건 타 동영상에 비해 모션이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게 티가 나며, 감상할 때 심리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데 모니터에서 초고해상도를 구현하기 위해서 이런 중요한 주사율을 등가교환하다니...;; 컴퓨터가 성능이 아무리 좋아서 화면을 초당 수백 회 고치더라도 사람은 모니터 주사율보다 더 부드러운 화면을 볼 수 없게 된다.
LCD는 과거의 브라운관 CRT보다는 주사율이 낮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30hz는 너무 심한 것 같다.

과거에 영화라는 게 처음 발명됐을 때의 기본 프레임 수인 24fps는 30보다도 작은데, 사람이 끊김 없이 자연스러운 영상이라고 느끼는 가히 최소의 마지노 선으로 잡은 값이라고 한다. 이 숫자를 정하기 위해 인지과학적인 실험과 고찰이 들어갔지 싶다.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주사율은 교류 전기의 진동 주기와도 연계해서 설정되었다고 한다. 60hz이면 그와 연계해서 30hz (= 30fps) 같은 식이다. 물론 디지털 동영상에서 프레임 수나 최신 디스플레이에서 주사율은 굳이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정하기 나름이고 기계의 제조 원가나 전력 소모 대비 기술적 한계에 달려 있다.

일반 정지 영상에서 여러 안티앨리어싱 기법이 존재하듯, 영상에서도 motion blur라고 그야말로 애니메이션계의 안티앨리어싱에 해당하는 기법이 있다. 낮은 fps에서도 동영상이 뚝뚝 귾기지 않고 최대한 부드럽게 이어지듯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3D CG로 동영상을 생성하는 그래픽 소프트웨어 내지 각 프레임들을 이어서 동영상을 만드는 인코더가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넣어 주는 기능이 있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화면의 해상도와 프레임 수뿐만 아니라 종횡비 그 자체도 어쩌다가 지금처럼 바뀐 걸까? 어쩌다 보니 컴퓨터용 모니터는 가로로 더 길쭉해졌고 스마트폰은 세로로 더 길쭉해졌을까? 모든 영화들은 종횡비가 동일한 걸까? 이런 것도 알고 보면 내력과 사연이 많이 있는데 기회가 되면 차츰 더 알고 싶다.

5.
SSD는 뭐랄까.. 양날의 검 같다.
기계적인 동작이 없으니 소음 없고 전력 소모 적고, 엄청 빠르고.. 비싼 것만 빼면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압도하여 조만간 주기억장치와 보조 기억장치의 경계를 허물 것 같은 신기술임이 틀림없다. 반도체 공학의 신비로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반도체 기반 보조 기억 장치들은 외형과 단자 형태에 따라 (1) USB 메모리 스틱, (2) SD 카드, 또는 (3) SSD로 나뉘는 듯하다. 그 중 SSD는 광학 디스크(CD/DVD)나 USB/SD와 달리, 하드처럼 같은 C: 고정식 디스크 역할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동작 원리는 기계식 하드와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그러니 하드/SSD만 일컫는 통합 명칭이 필요해 보인다. 고정 디스크? 하드라는 명칭이 너무 굳어졌다면 '기계식 하드/SSD 하드'라는 말이라도 쓰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로컬 디스크에 대해서 파일 시스템이야 요즘은 Windows 기준으로 NTFS가 아닌 곳이 없을 테니 별 의미가 없고.. 디스크가 기계식 하드인지 SSD인지를 되돌리는 API도 GetVolumeInformation 같은 급의 함수에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자동차가 엔진 제어 방식이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원인 불명의 급발진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처럼.. 디스크 역시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일상적으로 편리해진 대신에 뭔가 안정성이 떨어진 것이 있다. 단순 가격 차이를 떠나서 SSD는 기계식 하드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아직 5% 부족한 면모가 있다. 이 사이트의 글을 한번 읽어보자. "화 있을진저, 너희 백업 없이 SSD를 쓰는 족속들아!"

  • SSD는 한번 고장 나면 데이터를 살릴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매체이다.
  • 하드가 충격이나 자성에 약하다면 SSD는 열과 전기 충격에 매우 약하다. (불안정한 전류, 갑작스러운 정전, 컴퓨터 다운, 과열..) 취약한 분야가 서로 다름.
  • 하드는 배드 섹터를 빼고 나머지 부분이라도 읽고 복구가 가능하지만 SSD는 그런 것 없다.

하긴, 정전이 돼서 작업 중인 데이터를 날렸다고 해서 자기 컴의 RAM의 복구를 시도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SSD는 RAM과 같은 구조의 기억장치는 아니지만 SSD도 그만치 훅 가기 쉽다는 뜻이다.

본인도 새로 산 노트북을 사용한 지 불과 5개월 남짓 만에 SSD 불량으로 인한 교환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 경고가 더욱 공감이 갔다.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꼼꼼히 백업하지 않던 기록과 소스 코드를 일부 날렸기 때문이다.
하드디스크는 떨어뜨리고 물에 집어넣은 것도 국가 수사 기관 차원에서 작정하고 털면 무슨 끈질긴 생명체마냥 내용을 어느 정도 복구해 낸다고 한다. 하지만 SSD는 정말로 훅 가기 때문에 이거 뭐 정보 보호와 보안 관점에서는 더 편리할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노트북에서 자주 발생하던 잔고장이 액정 화면의 접촉 불량, 그리고 키캡 이탈이었는데.. 2010년대에 구매한 제품에서는 그런 건 없고 하드와 SSD의 접촉 불량을 더 자주 겪었다. 그러고 보니 운영체제를 재설치하는 통과의례도 Vista 시절부터는 없어졌다. 자동차고 컴퓨터고 모두 지난 20여 년 동안 참 많이 바뀐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9/08/18 19:35 2019/08/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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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N의 군사 활동 양상

6· 25 사변 당시의 유엔군과 지금의 유엔 평화유지군의 관계는, 구 일본군과 지금의 일본 자위대와 비슷한 관계/위상이지 않을까 싶다. 전자가 후자로 바뀌면서 뭔가가 크게 너프 됐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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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유엔 평화유지군은 옛날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누구 편을 들고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옛날 유엔군이 지금처럼 파란 전투모 쓰고 흰 탱크 몰면서 위장이라고는 완전히 포기한 외형으로 북괴와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 대전 때는 연합군, 6· 25 때는 유엔군, 그리고 걸프 전쟁 때는 다국적군이 뭔가 정의의 편에 선 진영이었다. 우리나라는 인류 역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수많은 나라들의 도움을 한몸에 받았다.

2. 탄약창

육군 부대들 중에서 탄약창은 돌아가는 스타일이 공군과 가장 비슷한 곳이지 싶다. 근무 인원에 비해 엄청나게 넓으며, 행군하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곳을 방어한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생방 훈련을 빡세게 하는 것도 공군과 비슷하다.

그도 그럴 것이 탄약창이 보관하고 취급하는 물건들은 전투력의 원천인 총알을 날아가게 하는 폭발력을 내는 위험한 화학 물질들이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움직이게 하는 석유만큼이나 취급에 절대 주의해야 한다. 공격을 받아서 탄약들이 비좁은 곳에서 연쇄적으로 유폭이라도 한다면 Doom 2의 Barrel o' fun이 현실에서 벌어지게 된다..;;
뭐 그래도 탄약창이 비행기를 띄우는 곳은 아니니 공군 기지처럼 반드시 넓은 평지에 있다거나, 활주로 비스무리한 게 있고 새를 쫓아내는 인원을 운용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편, 군함의 경우 배 한 척이 육군으로 치면 병사들의 생활관과 전차와 자주포와 곡사포와 탄약창 역할을 몽땅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다른 곳을 많이 맞아서 부서질 경우, 항해 불가능 상태가 되고 물이 새서 침몰할 수 있다. 하지만 탄약고를 맞아서 탄약들이 폭발한다면.. 평범하게 침몰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큰 배라도 화염 버섯구름과 함께 두 동강 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박살날 수 있다. 승조원들은 거의 다 죽는다..;;

3. 지휘통제소 지하 벙커

공항이나 항공모함에는 관제탑이 있고 철도에도 모처에 종합 사령실 내지 관제 센터가 있다. 그것처럼.. 군대에도 높으신 분들이 모여서 작전 회의를 하는 비밀 지휘통제실이란 게 있다. 지난 2011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지휘했던 그런 장소 말이다.

공항 관제탑이야 시야 확보 때문에 눈에 잘 띄는 높은 곳에 있지만, 철도나 군대의 비밀 장소는 그런 거 없고 일반인들의 눈에 안 띄는 곳에 꽁꽁 숨겨져 있다. 폭격을 맞아도 안전한 지하 벙커 형태가 대부분일 것이다.

안 그래도 군부대는 전지역이 민간인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보안 시설인데, 이런 지휘통제실은 보안 시설 중에서도 더욱 삼엄한 보안 시설이다. 저기는 병(상황병 보직)과 간부를 막론하고 신원 조회를 통과한 인원만 출입할 수 있다. 평범한 생활관이나 연병장 정도를 사진 찍다가 걸리면 카메라를 빼앗기고 벌금이나 영창 같은 경징계를 받는 수준에 그치겠지만, 저기서 얼쩡거리다가 걸리면 아마 군사 재판에 회부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지하 벙커가 한 곳만 있지는 않다.
먼저 관악산 남태령의 수방사 부대 지하에 B1이라는 벙커가 있어서 대통령이 취임 첫 해에 관례적으로 여기를 방문한다고 한다.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 경호처 요원들의 경호 시범을 관람한다던데 벙커 방문도 그렇게 하는가 보다.

그리고 의외로 서울대 내부 지하에도 B5라는 벙커가 있는데... 한국어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B1과 B5는 어차피 같은 관악산이기도 하고 별로 멀지도 않으니 둘이 지하 통로로 연결도 돼 있다고 한다. 또한, 용산의 국방부 청사 지하에도 B2라는 벙커가 있다. (그럼 B3, B4는??)

우리나라 정부뿐만 아니라 미군 역시 자체적인 지하 벙커를 만들어 놓은 게 있다.
일단 서울 안의 미국 영토인 용산 주한미군 부대 내부에 'CC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있다. 참고로 CC는.. 스타크래프트 테란의 건물 명칭의 이니셜과 같다.
과거 전땅크가 12· 12 사태를 일으켰던 당시에 노 재현 국방 장관은 홈그라운드인 국방부 B2 벙커는 너무 가까우니 위험하고.. 근처의 저 미군 벙커로 피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악산뿐만 아니라 청계산에도 군부대가 많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니 본인이 예전에 오른 적이 있는 상적동 쪽에 'CP Tango'라는 이름으로 주한미군 지하 벙커가 하나 더 있다. 우와.. 2005년에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 여사가 성남 서울 공항을 통해 방한한 뒤 곧장 저기를 방문하여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

미군 지하 벙커는 대구의 미군 기지에도 있으며, 앞으로 주한 미군 기지들이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로 통합되고 나면 거기에도 응당 생길 것이다.
CP에서 P는 GP처럼 post를 뜻한다. CC보다는 격이 낮은 듯..

북한은 6· 25 때 평양 시내가 폭격 맞아서 아주 박살이 난 경험이 있고, 미 제국주의 원쑤들의 첩보 위성도 많이 의식할 테니, 지하를 들쑤셔서 별 시설들을 다 만들어 놨지 싶다.

4. 국군 유해의 항공 송환

지난 2012년 2MB 시절에는 1950년 가을, 6· 25 전쟁 중에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군인들 유해에 대한 조사가 미국과 북한 합동으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국군으로 밝혀진 유해가 12구가 하와이를 거쳤다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레카 시절에는 추가적인 송환 실적이 없다가.. 지난 바로 작년에 7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64구의 유해가 추가로 발굴되어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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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를 운구한 수송기가 우리나라 영공에 진입하자 이번에는 우리나라 전투기들이 작정하고 출동해서 수송기를 호위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수송기를 향해 거수 경례를 했으며, 에어 포스 원 명대사보다 더 멋진 말을 현실에서 남겼다. (☞ 링크)

"오랜 시간 먼 길 거쳐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히 호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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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는 유해 수는 훨씬 더 많지만 7년 전과 달리 신원과 유족이 완전히 확인된 유해는 없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전투기들이 멋지게 날아가는 모습을 같은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들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카메라맨이 별도의 비행기를 타고 그쪽을 보면서 촬영한 것들이다.
이런 영상물은 저렇게 언론 보도 자료로도 쓰이고 군 내부에서의 정훈 자료로도 쓰인다. 더구나 군용기는 아무 때나 원하는 대로 쉽게 띄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한번 떴을 때 NG 없이 잘 찍어야 한다.

공군에는 군용기의 공중 촬영만 전담하는 부사관 보직이 따로 존재한다고 한다. 타군의 여느 사진병보다는 훨씬 더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병이 아닌 간부가 맡는다.

5. 개념 연예인

훈훈한 이야기 하나 더 하고 글을 맺겠다.
지난 2016년 말, 배우 이 시영 씨가 MBC의 연말 연예인 시상식에서 버라이어티 신인상을 받았었다. (☞ 링크, 정지 화면 자막 나열)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 출연한 것 때문인데, 저분은 여느 꼴페와는 정반대로 마치 독립운동가 이 시영이 떠오를 정도로 소감을 정말 건전하고 개념 있게 잘 말했다.

"이 상을 제가 받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일주일도 안 되게 군대 다녀와서는 상을 받는다는 게 너무 죄송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고 계시는 국군 장병들께서 주시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고맙게 받겠습니다. (...) 지금까지 많은 군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제가 안전하고 행복한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


개인적으로 완전 감동 받았다. 영화 <언니>가 저런 훌륭한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쫄딱 망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8/10 08:35 2019/08/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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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ndows 명령 프롬프트에서의 UTF-8 지원

본인은 1년 남짓 전에 UTF-8 인코딩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Windows도 콘솔 환경에서 UTF-8이 지원되는 날이 올까 썰을 푼 적이 있었다.
이건 Windows 10이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chcp 65001이 가능해졌다. 명령 프롬프트와 배치 파일에서 깨지는 문자열 걱정 없이 파일 이름이나 각종 메시지를 지정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임이 틀림없다.

사실, 콘솔 자체는 문자의 특정 인코딩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임의의 바이트 나열을 주고받을 수 있는 '파일'일 뿐이다. 그러니 콘솔의 코드 페이지가 437이건 949건 65001이건 전혀 상관없이 프로그램은 모조리 생까고 아무 인코딩으로나 유니코드 문자열을 printf 같은 함수로 출력할 수 있다. 가령, chcp 949 상태이더라도 consoleapp.exe > output_in_utf8.txt 는 깨지는 문자 없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C# 같은 언어로 콘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System.Console.WriteLine을 해 보면, 닷넷 프레임워크가 현재 콘솔의 코드 페이지 번호에 따라(아마도 GetConsoleOutputCP 함수) 문자열을 1바이트 단위 기반으로 변환해서 출력한다.
그러므로 chcp 949 상태에서 듣보잡 한자를 찍으면 깨진 문자열이 아니라 완전히 정보가 소실된 ?로 바뀌어 찍히며, 이는 >를 이용해 파일로 redirect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chcp 65001을 해 줘야 이런 손실이 없어진다.

상황이 이러한데.. 현재 운영체제는 새로운 셸인 PowerShell 말고 기존 명령 프롬프트에 대해서는 chcp 65001이 그냥 가능은 하다는 선에서만 지원을 멈춘 듯하다. 하위 호환 문제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UTF-8를 디폴트로 구동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새로운 콘솔 프로세스를 생성해서 거기 코드 페이지를 65001로 변경하는 작업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꽤 번거롭고 지저분하다. Windows의 콘솔 API들은 자기 자신의 코드 페이지를 변경하는 것만 직통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하긴, 437이니 949니 하는 ANSI 코드 페이지라는 건 유니코드를 지원하지 않는 레거시 앱들과의 호환 때문에 존재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시스템의 기본 코드 페이지가 65001이더라도 저런 디폴트 fallback용 코드 페이지는 계속해서 존재해야 할 것이다.
배치 파일은 @echo off로 시작하는 게 거의 관행인데, @를 거의 메타커맨드 식별자화해서 앞에 @encoding 이런 식으로 인코딩을 지정하는 것도 아주 황당한 생각은 아닐 것 같다.

더 궁극적으로는 굳이 콘솔에만 국한되지 않더라도, Windows API에서 A 함수와 W 함수는 UTF-8이냐 UTF-16이냐의 차이밖에 없어지는 날이 올까? UTF-8을 native로 지원한다는 표식이 된 프로그램에 한해서라도 말이다.
물론 요즘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이야 처음부터 W 함수만 쓰겠지만.. 타 플랫폼에서 1바이트 문자열 기반으로 유니코드를 지원해 온 프로그램을 포팅할 때는 저런 접근 방식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레거시 프로그램들과의 호환은.. 지금 마소에서 high DPI 지원을 위해서 기를 쓰고 제공하는 샌드박스 가상화 계층만 만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manifest 파일에 native UTF8을 지원한다고 명시해 주는 식으로 말이다.

2. 메뉴 간소화

기능이 너무 많아서 메뉴가 "파일, 편집, 보기, 도구"부터 시작해 10개를 훌쩍 넘어가고, 각 카테고리별로 항목들이 20개 가까이 주렁주렁 달린 방대한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자. 사용자에게 굉장히 위압적으로 보일 것이다.

더구나 이런 메뉴들은 static한, 고정된 기능 나열 목록일 뿐이다. 파일 내지 글꼴 같은 다이나믹한 목록이 아니며,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곧장 고를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아니다. 프로그램의 모든 기능을 골고루 다 쓰면서 지내는 사용자는 당연히 극소수이고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런 압박스러운 메뉴를 어찌해 보려는 노력이 먼 옛날부터 있었다.
자주 쓰는 기능과 그렇지 않은 기능을 프로그램 개발사에서 답정너 분류한 뒤.. 메뉴를 반토막 간소화해서 보여주는 옵션을 갖춘 프로그램의 예로는.. 도스 시절 MS QuickBasic IDE, 그리고 아래아한글 2.1과 그 이후 버전이었다. 메뉴에서 사라진 기능이라 해도 단축키로는 물론 상시 접근 가능하다.

아래아한글의 경우, 워디안/2002 이전의 3.x~97에도 간소화 메뉴 옵션이 있었던가 그건 잘 모르겠다.

마소에서는 딱 2000년대 초에 일명 Personalized menu라는 걸 도입했다. 사용 빈도를 동적으로 체크해서 오랫동안 안 쓰인다 싶은 메뉴는 감춰 버리고, 메뉴를 꺼낸 지 시간이 좀 오래 지나거나 맨 아래의 ▼을 눌러야만 메뉴가 마저 다 나오게 했다.
Windows 2000/ME의 시작-프로그램 메뉴, 그리고 MS Office 2000/XP/2003 정도에서 이런 메뉴를 볼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마소의 입장에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진행한 실험이었으며, 실제로 메뉴 첫인상을 좀 단순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사용자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아서 최종적으로는 FAIL 판정을 받았다. Office 길잡이 같은 급의 병맛 흑역사는 아니었지만 몇 년 못 가 없어졌으며, 결국 2000년대 후반부터는 리본 인터페이스가 도입되었다.

참고로 Visual Studio IDE는 일반인이 쓰는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그런지.. MS Office의 UI 엔진을 그대로 쓰던 시절에도 Personalized menu가 쓰인 적이 없었다. macOS에도 저런 게 도입된 적은 없지 싶다.

3. macOS

한편, macOS는..

  • 응용 프로그램 패키지(.app)는 하위 디렉터리와 그 밑의 여러 파일들로 구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Finder에서는 단일 파일인 것처럼 취급해 준다.
  • 그 반면, zip 압축 파일은 그냥 단일 파일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들어있는 하위 디렉터리와 파일들을 실제 파일과 다를 바 없이 seamless하게 표시해 준다.

없는 디렉터리를 있는 것처럼 표시하고, 반대로 있는 디렉터리를 숨기는 가상화를 구현하느라 애 많이 썼을 것 같다.
app 패키지도 안드로이드 apk처럼 그냥 압축 파일 컨테이너에다 넣어 버리지 싶은 생각이 든다. 성능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은 건지?

그리고 macOS는 GUI 응용 프로그램은 app이고 콘솔 프로그램은 그런 껍데기 없이 a.out 실행 파일인 건가? 일반 실행 파일과 달리 app은 표준 C 함수 말고 NSWorkspace 소속의 코코아 API를 써서만 실행할 수 있는 거고? (내부의 하드코딩된 경로에 일반 실행 파일이 있긴 함) 그 관계를 잘 모르겠다.

내 경험상 mac은 프로세스 간 통신이 Windows보다 제약이 심하고 폐쇄적인 것 같다. 특히 훅킹 같은 게 없기 때문에 macOS용으로 Spy++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는 듯하다.
게다가 한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으로 키 입력을 보내는 게 요 1, 2년 전쯤 시에라에서부터 막혔다. 사용자가 제어판을 열어서 동의를 찍은 프로그램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macOS에서는 날개셋 편집기나 외부 모듈 같은 프로그램은 만들어도 날개셋 입력 패드 같은 구현체는 만들 수 없겠다. 또한 외부 모듈에서 키 입력을 보내는 날개셋문자도 구현할 수 없겠다. =_=;;

4. 맥 계열과 타 PC와의 차이

(1) 같은 파일이 컴퓨터를 옮기니까 크기가 몇십 MB씩 차이가 나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Windows는 전통적으로 1024 기반의 MiB 단위를 쓰는 반면, 맥은 그냥 깔끔하게 1000 단위로 자리수를 매겨서 발생한 차이였다.

(2) 그러고 보니 맥OS는 메시지 박스에서의 버튼 배치 방식도 Windows와 다르다. '예'에 해당하는 1순위 버튼이 색깔도 파랗게 강조된 형태로 대화상자의 맨 오른쪽 아래에 있다. 이건 뭐 그냥 디자이너의 취향 차이인 것 같다.

(3) 일반적으로 키보드의 좌측 하단에는 modifier key들이 ctrl, fn, win, alt의 순으로 배치돼 있다. 그러나 애플 제품들은 맥북/아이맥 구분 없이 다 fn, ctrl, alt, cmd(win)의 순이기 때문에 1234가 2143으로 기묘하게 바뀌어 있다.
서로 알력 싸움에 따로 노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두 종류의 컴퓨터를 드나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게 불편하기 그지없다..;;

5. 안드로이드와 iOS

요즘 전세계에 보급된 스마트폰들에서 안드로이드와 iOS의 점유율이 적게는 7:3, 많게는 4:1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 둘을 더하면 진짜 99.99%이고, Windows Phone 등 타 운영체제는 이제 유의미한 점유율을 완전히 상실한 듣보잡이라고 한다. 마소에서도 Windows 기반의 자체 모바일 운영체제는 이미 포기하고 접었고..

오픈소스 진영에다가 구글· 삼성의 막강한 지원 덕분에 안드로이드는 확실한 주류가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iOS가 무시 가능한 처지인 건 아니다.
이건 마치 전세계 도로의 우측통행 vs 좌측통행의 점유율과 비슷한 구도인 것 같다. 내 기억으로 저것도 비율이 3:1 내지 4:1쯤이지 싶다.

좌측통행이 분명 비주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극소수인 건 아니며, 영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존재감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 선진국들이 엄연히 좌측통행을 하고 있다. 그러니 완전히 없어질 수가 없다.
이런 좌측통행의 점유율과 위상이 마치 오늘날 iOS의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오래된 생각이다. (CPU 업계에서 리틀 엔디언과 빅 엔디언의 점유율 비율은 어찌 되었나 궁금해지기도 한다만..)

그러고 보니 세벌식도 여전히 1%가 채 안 되고, 내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위가 약한 마이너이구나..;;
더구나 지금 세벌식을 쓰는 사람들도 자기 자식에게까지 차마 세벌식을 권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걸 생각하면 일면 우울해진다. 타자가 편리한 것보다 당장 생활에서 불편하고 번거로운 게 더 크게 느껴지는가 보다.
그나마 명분이 옳고 객관적으로 이론적으로 성능이 우수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8/04 08:34 2019/08/0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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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예전에 <소령 강 재구>(1966)라는 전기 영화를 소개한 바 있다. 군대 미화라는 프로파간다 홍보 성격도 강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옛날 영화인 것치고는 그럭저럭 수작이다.
이건 수십 년 전 과거를 일부러 회상하면서 만든 게 아니다. 가령, <상록수>(신 상옥, 1961)야 1930년대에 최 용신 선생의 활약을 다루고 있으니 그 시절의 관점에서도 과거이다. 그러나 <소령 강 재구>는 영화에서 다루는 시기(1959~65)와 영화가 제작된 시기(1965~66)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 그 시절의 모습을 고증 오류 걱정 따위 없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1. "새 마음의 샘터"

각색된 스토리이긴 하다만, 이 영화에서는 껄렁껄렁하고 사고 좀 치던 어떤 문제아 양아치 청년이 입대해서 강 재구가 통솔하는 소대의 부하 병사로 들어온다. (트위스트 김 분)
강 재구는 엄격하면서도 자상하게 얘를 최대한 챙겨 주지만.. 그는 군에서도 군용차를 훔쳐 몰다가 밖에서 교통사고를 내는 대형 사고를 친다. 그는 결국 영창에 수감된다. (그나마 상관인 강 재구가 많이 실드 친 덕분에 군법 회의 회부+군 교도소 대신, 영창 20일으로 감형)

그리고 강 재구는 영창을 찾아가서 자기 부하를 격려하고 선물까지 주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책이라는 선물을 처음 받아 봤습니다. 으흐흐흐흐흙 ㅠㅠㅠㅠ"
"몸조심해라. 그리고 석방되면 새 사람이 되는 거다. 알았지?"


이게 저 영화 중에 나오는 대사다. 역시 1966년작 영화답다.;;
군대는 쌩 양아치를 사람으로, 더 나아가 조국 근대화의 역군으로 개조시켜 주는 곳이라는 정말 개 오글거리는 메시지가 담긴 대목인데.. 훗날 삼청교육대가 괜히 나온 게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본인은 지금도 "삼청교육대 다시 세워가 싹 다 잡아 쳐넣어야 나라가 산다"에 80%쯤은 동의하는 사람이다.

자, 그 얘기는 됐고.. 그런데 영화 스크린에 실제 책이 버젓이 노출돼 있는 게 신기했다. "새 마음의 샘터"???
1960년대의 한국 영화에 벌써 간접광고라는 게 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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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해 보니 동서양 각종 격언 명언 잠언들만 몇천 개를 엮은 책이고, 편저자가 '이 성수'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중고책 자료를 검색해 보니.. 영화에 등장한 바로 그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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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이 1963년 9월 20일. 강 재구 소령이 장교로 복무한 지 수 년 남짓 뒤에 새로 나온 책이다. ^_^
가격은 고작 400원.. 저 때는 우리나라에서 '환'에서 지금의 '원'으로 마지막 화폐 개혁을 한 지도 얼마 안 됐던 때다. 저 정도 두툼한 책은 요즘 물가로는 못해도 3만원 가까이는 하지 싶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 책은 종이가 온통 누렇게 바랬지만, 책이 처음 만들어졌던 시절에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종이의 색깔이 순 화이트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이 세월의 격차이다. ㅎㅎ
뉴욕 자유의 여신상도 지금이야 녹슬어서 시퍼렇지만, 처음 만들어졌던 시절엔 갈색 구리색이었듯이 말이다.

2. 서울-인천 시외버스

그리고 다음으로.. 강 재구는 고향이 인천이었다. 그래서 생가가 있는 인천과 학교가 있는 서울을 드나들었는데.. 이때 무슨 교통수단을 이용했을까?
시기가 1950~60년대 사이이기 때문에 이때는 아직 수도권 전철이란 게 없었다. 경인선 철도가 단선 비전철이었다니! 전철은커녕 아직 증기 기관차가 현역이고, 경인선처럼 단거리 수요가 좀 많은 곳에서는 디젤 동차 정도나 다녔다.

그리고 경부/경인 고속도로도 없었다. 이 말인즉슨 고속버스 역시 없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 그레이하운드니 벤츠 같은 외제 고속버스가 등장한 건 1970년대 경부 고속도로의 개통 이후부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인천은 그 정도의 고급 고성능 버스까지 투입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짧기도 하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교통수단은 버스인데.. 1960년대답지 않게 '놀랍게도' 문이 앞바퀴의 앞쪽에만 달려 있어서 오늘날의 대형 버스와 비슷해 보인다. 최소한 그 시절의 하 동환 자동차 국산 버스는 아닌 것 같다.
이 차량은 정체가 무엇이며 어디서 운영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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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영화 장면에 잠깐 등장하는 "韓進(한진) 뻐스"라는 힌트를 통해 얼추 답을 얻게 되었다.
한진 그룹의 창업주인 조 중훈은 대한 항공을 인수하기 전, 1961년 8월에 '한진 관광'이라는 한진 고속의 전신급 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좌석형 직행 시외버스를 서울-인천이라는 단일 노선에다 운행했다고 한다. 고속버스는 아니지만 그 시절 여건상으로는 고속버스에 준하는 꽤 참신한 고급 교통수단이었던 셈이다.

차량의 정체는.. 주한미군용 통근 버스와 동일한 차종이었다고 한다. 정확한 차종 모델은 잘 모르겠다.
다른 곳에서 우연히 구한 1965년도 주한 미군 기지 사진에 나온 저 버스와 일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면샷도 있으면 확실하게 비교 가능할 텐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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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다. 이런 식으로 옛날 영화를 통해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ㅎㅎ
하긴, 하 동환 버스도 수출용 에디션 중에는 요즘 버스처럼 앞바퀴 앞에 문이 달린 물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중문으로도 모자라서 후문까지 있다니.. 꽤 신기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반면, 훗날 1971년에 실미도 부대원들이 탈취한 버스는 신진(대우 자동차의 전신) FB100LK였고, 서울-인천이 아닌 "수원-인천" 시외버스였다. 얘는 희소성이 상대적으로 덜하니 이 자리에서 사진은 생략하겠다. 문은 중문 하나만 있다.

* 보너스: 옛날 영화의 사운드 효과

옛날에 컴퓨터그래픽이란 게 없던 시절에는 자막 하나 필름에다가 집어넣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물며 특수한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온갖 기상천외한 촬영 기법과 모형, 꼼수가 동원돼야 했다.
그러다가 세계 최초의 CG 접목 영화라고 일컬어지는 게 무려 1982년작 "트론"이며,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엔 애니메이션 영화나 TV CF에서도 CG가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영화계에서는 터미네이터 2와 쥬라기 공원 같은 걸출한 명작도 나왔다.

하지만 순수 CG는 분량이 생각보다 적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촬영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컸다. 이족보행 로봇은 진짜 로봇 세트를 만들어서 근성으로 한 프레임씩 찍었고, 핵 폭발로 건물들이 날아가는 장면은 그냥 건물 모형을 부순 것이며, 한 장면에서 동일 인물이 두 명 나오는 건 실제 쌍둥이 배우를 동원한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영상뿐만 아니라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나 게임에서 나오는 총 소리는 현실의 총 소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 상황을 녹음한 게 아니라 그 분위기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효과음을 따로 만든 것이다. 말발굽 소리 같은 것도 실제로 비싼 말을 굴리지 않고 다른 물건으로 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 벌래 씨(1941-2018)라고 영상 음악이 아니라 음향 효과의 최고 권위자 전문가가 있었다. 이분은 왕년에 펩시 콜라 CF에 들어갈.. 아주 시원한 느낌이 드는 병 따는 소리를 좀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마치 에디슨이 전구 필라멘트로 쓰이기에 적당한 재료를 찾기 위해 수백, 수천 번의 실패를 반복했듯이, 숱한 실험을 하다가 결국 콘돔(...!)을 여러 개 겹쳐서 부풀렸다가 터뜨려서 '쓰뽁~~' 소리를 만들어 냈다. (☞ 들어 보기 24~25초)

펩시 본사에서는 이 결과물에 대단히 만족했는지.. 그에게 보수로 백지수표를 줬다고 한다. 그게 소령 강 재구와 비슷한 시기인 무려 1960년대의 일이다. 디지털 사운드 에디터 따위 없이 완전 아날로그 실물만 써서 저런 소리를 만들고, 결과물을 릴 테이프에다가 녹음을 해서 보내 줬었다. 뭐랄까.. 시발 자동차의 개발 주역 중 한 분이던 일명 '함경도 아바이' 김 영삼처럼 한 분야의 장인 달인 엔지니어인 것 같다. 존경스럽다.

하긴, 굳이 펩시 CF가 아니라 어지간한 맥주 CF에서 나오는 병 따는 소리도 현실에서 평범하게 딸 때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과장이 많이 섞인 소리이긴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29 08:36 2019/07/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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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한 사건들

지난 4월 27일 자정 시간대에는 웬 20대 아가씨가 예쁘장한 흰 원피스 차림으로 부산의 어느 상가 건물에 들어가서는.. 옷을 홀랑 벗고 알몸으로 거기 소화전 안에 들어있던 분말 소화기를 계단 복도와 상점에 뿌리면서 난동을 부렸다. 벗은 옷과 신발은 그 건물의 옥상에다 고이 남겨 두고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뒤 그녀는 잽싸게 도망쳐서 현장을 빠져나갔는데.. 그로부터 겨우 5~6시간 남짓 지난 아침에 부산이 아닌 창원에서 죽은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한다.

이 정도면 2010년 오창 맨홀 변사 사건, 그리고 2011년의 문경 십자가 시신 사건에 필적하는 엽기적이고 괴이한 사건으로 보인다. 외국으로 치면 2013년의 엘리사 람 의문사 사건 같기도 하고..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잡히지 않고 탈출이 가능했는지, 그리고 택시까지 벌거벗은 채로 탔을 리는 없을 테니 또 다른 옷과 차비는 어디서 어떻게 났는지?? 공범· 협조자가 없이 젊은 여자가 겁도 없이 한밤중에 혼자서 저러고 사라질 수는 없어 보인다.

그 뒤엔 왜 하필 창원까지 갔고 거기서는 어디서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목숨을 끊은 걸까?
게다가 나흘 동안 행방이 오리무중이다가 시신이 5월 1일에 뒤늦게 발견된 게 아니다!
알몸 소화기 난동 사건과 별개로 27일 아침에 창원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 시신이 발견됐고 신고가 접수됐다. 이거 자체는 매스컴에 보도될 가치도 없는 평범한 사건일 뿐인데, 5월 1일에야 갑자기 뜬금없이 "나흘 전에 창원에서 발견됐던 그 시신은 부산 알몸 소화기 난동 당사자로 추정된다"라는 보도가 나간 것이다.

그거야말로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하는 주장인가? 보도가 나가던 당시엔 아직 국과수의 DNA 감정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행적에 온통 아귀가 안 맞는 미심쩍은 의문점들밖에 없다.
더 자세한 사연은 고인의 유족이 공개를 원치 않는다고 하니 더 보도되는 게 없이 사건이 묻힐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참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최소한 술이나 약에 취한 상태이지, 맨정신으로 알몸 소화기 난동이 가능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 정도면 곳곳에 CCTV가 가득하고 도시의 치안이 세계 평균을 상회할 정도로 좋은 축에 든다. 어지간해서는 여자가 혼자 밤에 길거리를 다녀도 봉변 당할 걱정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이 한밤중에 갑자기 혼자 어디론가 뛰쳐 나갔다가 나중에 시신으로 발견된 안타까운 사례가 몇 건 존재한다. 특히 술 마신 뒤, and/or 누구와 말다툼 하고서 삐쳤을 때 말이다.

1. 영등포 노들길 살인 사건 (2006. 7. 4.)

피해자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취준생이었는데, 어느 고향 친구 겸 고등학교 동창을(동성임)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홍대거리 일대에서 술을 새벽 1시가 넘게까지 많이 마셨다. 문헌에 따라서는 이 날이 피해자의 생일이었던가 보다.
그 뒤 이들은 양화 한강 공원에서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는지 한강을 건너 당산 역 쪽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피해자가 집이 한강 이남의 신림동 쪽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랬는데 그녀는 술기운에 갑자기 기분이 변했는지.. "나 좀 혼자 있고 싶어. OO야, 오늘 즐거웠다. 그럼 ㅂㅇㅂㅇ!" 하면서 목적지 부근에서 택시에서 먼저 내렸다. 그리고는 한강 공원 방향의 캄캄한 골목길로 정처 없이 뛰어가 버렸다. 저 때가 7월 3일 새벽이었다.
이것으로 그녀는 지인과의 연락이 영원히 끊겼다. 더구나 피해자는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명목으로 휴대전화를 해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폰 연락도 아예 되지 않았다.

다음 4일 아침에 그녀는 더 서쪽의 성산대교 인근의 노들로 도로 옆의 수로에 알몸 시신으로 버려진 채 발견됐다. 그것도 꽤 민망한 포즈 상태였다고 한다. 강간· 살해범이 시신을 일부러 그런 자세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녀의 옷과 소지품들은 그냥 초기의 실종 장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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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생전의 습관 증언과 정황상--(1) 옷에 타인 지문이 전혀 없음 (2) 예전에 집에서도 대뜸 옷을 홀랑 다 벗는 주사를 딱 한 번 부린 적 있음--.. 그녀는 강제로 탈의됐다기보다는 술기운에 정신줄을 놓고 먼저 자발적으로 탈의한 것으로 보인다. 한밤중에 이 얼마나 위험한 미친 짓인가? 여기가 무슨 자기 집 안방인 걸로 착각했나 보다.

심야에 헐벗은 채로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던 그녀는 음욕을 품은 어느 싸이코패스의 표적이 됐으며, 납치 당해서 최대 하루 남짓 처참한 능욕을 당한 뒤에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결박, 손등에 담배빵, 음부에 이물질..) 시신은 발바닥까지 아주 깨끗한 상태였고 사후 경직도 없었다. 체내에 음식물은 소화되고 없었고 알코올 성분 역시 다 분해되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는 실종 이후에 10수 시간 이상 의외로 오랫동안 생존했으며, 죽은 지 불과 수 시간 안에 시신이 신속하게 발견된 셈이다. 범인이 시신의 유기도 개인 차량까지 동원해서 매우 능숙하고 신속하게 했을 테고 말이다. 공범이 1인 정도 추가로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과 관련된 몇몇 목격자의 증언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들이 목격한 것이 피해자 당사자가 정말 맞는지는 판명되지 않았다. 그나마 시신이 발견되기 불과 두어 시간 전에, 어느 견인차 기사가 시신 유기 지점 근처에 승용차가 세워져 있고 주변에서 웬 남자 두 명이 "어, 저거 경찰차야?" "아니, 그냥 견인차인데?"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목격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이게 제일 유력한 용의자의 행적으로 보이지만, 그 차량을 색출하지는 못했다.

이 사건은 안타깝게도 용의자를 한 명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장기 미제 사건으로 전락했다. 사건 사고·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이 사건이 불과 1년 전에 벌어졌던 다른 미제 사건인 신정동 연쇄 살인과 수법이 아주 비슷하다는 것도 이미 알 것이다.

2. 마포 여대생 실종 사건 (2016. 12. 21.)

노들길 살인 사건 이후로 거의 10년 뒤, 이번 사건의 희생자는 더 어린 여대생이었다. 그녀는 12월 14일, 종강을 앞두고 같은 과 친구 몇 명을 만나서 역시 홍대 인근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래도 아직 버스와 지하철이 끊기지는 않은 11시 무렵이었으며, 그녀 역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만취도 아니었다. 2차를 하러 이동하던 중 그녀는 갑자기 "잠시 저쪽에 좀 다녀오겠다"란 말을 남긴 뒤 뜬금없이 자리를 이탈하여 자취를 감췄다.

피곤해서 먼저 귀가하고 싶으면 말을 그렇게 하면 됐을 텐데 그리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기 집에 가는 버스를 탄 것도 아니었으며(마포09), 혼자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는지 망원 한강 공원으로 갔다. 이마저도 버스의 종점까지 간 뒤에 내렸으면 더 가까이 도달했을 텐데, 그리하지 않고 먼저 내려서는 거기까지 터덜터털 걸어 갔다.

그녀는 자정에 가까운 으슥한 시각에 한강 공원 방면의 지하도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으며, 그 뒤로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다.

그녀는 실종된 지 거의 1주일이 지난 21일 오전에야 한강에서 익사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인상착의가 실종 당시의 모습과 동일하고 신발도 고스란히 신고 있고, 다른 외상 없고, 금전이나 치정으로 인한 원한 관계 없고.. 부검 결과도 사후에 물에 던져진 게 아니라 순수한 익사이며 딱히 자살이라도 할 동기도 없었으니..

다소 허무하게 들리겠지만 결론은 하나.. 이건 단순 사고사· 실족사로 처리되었다.
술에 너무 취해서 땅과 물이 분간이 안 됐는지, 왜 한강 공원으로도 모자라서 굳이 물에 들어갈 생각을 했는지는 불명이다.
비록 피해자가 노들길 살인 사건 같은 급의 강력 범죄에 희생된 정황은 없지만.. 그래도 그 10년 전 사건과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한 것도 있어 보인다. 괴이하다.

3. 목동교 무단횡단 사망 사고 (2017. 4. 27.)

이건 자살도, 실족사도, 강력 범죄도 아닌 다소 엽기적인 교통사고이다. 그래서 언론에서 통용되는 사건 명칭 같은 것도 없다.
한 여대생이 지인과 한창 술을 마신 뒤, 혼자 택시를 타고 귀가도 정상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가 양천구 목동교의 진출입로에서 서행하고 있을 때 그녀는 술기운 때문인지 갑자기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고 나가 버렸다. (돈도 안 내고?? ㄲㄲ) 이건 노들길 살인 사건의 발단과 매우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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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택시 기사가 만류할 틈도 없이, 그녀는 무려 8차선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시도했다.
다행히 한쪽은 횡단을 마쳐서 중앙선 부근에 도달했으나, 이때 버스 1에 치여서 중앙선 건너편의 반대편 차로로 튕겨 나갔다. 그 다음으로 곧장 버스 2에 치여서 뼈가 으스러지고 머리까지 다치는 치명상을 입었고, 뒤따르던 택시와도 부딪쳐서 총 3대의 차량에 치였다. 마지막 택시에 치일 때는 이미 서 있을 수조차 없었을 것 같은데 차 바퀴에 깔리지는 않았나 모르겠다.;;

여기는 어둡고 으슥한 골목길이 아니니 범죄의 표적이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차들이 쌩쌩 달리는 8차선 도로 한복판에 만취자가 혼자 내던져진 결과는 보다시피.. 그녀는 근처의 이대 목동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차에 세 번이나 치이면서 이미 사경을 헤매는 만신창이가 됐으며 28일 새벽에 끝내 숨졌다.

세 운전사들 모두 커리어가 꼬이고 운전에 트라우마가 생길 운 나쁜 사고에 휘말리긴 했다. 그나마 버스 1과 택시의 운전사는 차를 세우고 경찰 신고와 후속 조치를 취했지만, 정작 그녀를 제일 크게 다치게 한 버스 2의 운전사는 퍽 소리에 "그냥 물건에 부딪혔나 보다"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가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무거운 벌을 받게 됐다.

4. 부산 서면 여대생 실종 사건 (2015. 10. 15.)

이건 벌건 대낮에 벌어졌고 당사자도 다행히 목숨은 부지한 채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사건 전개 과정에 미심쩍은 게 많다는 점에서 알몸 소화기 난동 사건과 일면 비슷하다.
11일 오후 2시쯤에 이 여대생은 어느 음식점에서 알바 동료들과 함께 낮술(!!)을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남친과 전화 통화를 한 뒤, 혹은 전화 통화를 하러 밖에 나간 뒤에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실종 신고는 가족들에 의해 이튿날인 12일에 접수됐다. 경찰은 수색 끝에 사흘 만에야 그 식당에서 직선 거리로 200m 남짓 떨어진 인근 빌딩의 간이 옥상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온몸에 골절· 타박상을 입은 상태로 며칠간 꼼짝달싹 못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으니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곧장 병원에 가야 하는 심각한 상태였다. 그래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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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통화가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술기운에 의식의 흐름을 따라 아무 건물에나 들어갔다. 혼자 건물에 들어가는 모습 자체는 CCTV에 찍혔다고 한다. 알몸 소화기 난동처럼 말이다.
그리고 제일 꼭대기에서 더 낮은 간이 옥상으로 자살 시도건 실족이건 어쨌든 떨어졌는데, 이 정도는 즉사할 만한 높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숨이 붙은 채로 며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것 같다. 발견이 며칠 더 늦어졌다면 그 상태로 진짜로 죽었을 수도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당사자의 가족이 당사자의 명예 보호 차원에서 필사적으로 언론 보도 내용을 부정하면서 기레기들이 고인의 행실에 대해 완전 추측성 소설을 쓴다고 무작정 욕하고 까는 글도 나온다.
그런데 그런다고 팩트가 부정되나..;; 술 취해서 뛰어내린 게 아니고 그 타박상은 추락이 아니라 다른 범죄자에게 맞아서 생긴 거라면, 그에 합당한 증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말들은 걸러가며 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사건들을 정리해 보니.. 술이 도대체 사람을 정신줄을 놓고 겁대가리를 상실시켜서 어떤 지경으로 만드는지 경악하게 된다. 싸이코패스 범죄 가해자를 만드는가 하면, 완전 기상천외한 실종자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글쎄, 부산에서 밤에 실종됐다가 장산 대천 공원 호수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여대생(2012. 4. 12.)은 "마포 여대생 실종 사건"과 꽤 비슷하며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저건 그래도 술은 개입하지 않은 단순 사고사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09 08:36 2019/07/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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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ndows 재설치

(1) 본인 주변의 어떤 컴퓨터는 절전이나 최대 절전 말고 '시스템 종료'로 확실하게 껐는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다시 와 보면 무슨 좀비처럼 저절로 다시 켜져 있곤 했다. 사람이 건드린 건 당연히 전혀 아니고..
절전 상태에서 깨어나는 게 아니라 완전히 꺼졌던 컴퓨터가 왜 어떻게 저절로 다시 켜지는지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컴퓨터를 끄는 걸로도 모자라서 플러그까지 완전히 뽑아야 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건 검색을 해 보니 2015~16년경 Windows 10 초창기에 존재했던 버그였다.

(2) Windows가 맛이 가서 제대로 부팅이 되지 않을 때 안전 모드로 부팅한다거나, 컴을 팩토리 리셋 시키기 전에 최소한 백업이라도 하기 위해서 긴급 명령창이라도 열려면 파란 배경의 Windows RE (Recovery Environment)에 들어가야 한다.
부팅 때 F8 같은 특정 단축키를 눌러서 여기로 바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구만.. 꼭 부팅 중에 컴퓨터를 강제로 끄는 무식한 삽질을 5~10번쯤 해야 그제서야 "잠시 기다려 주세요"와 함께 저리로 들어가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안 든다.

(3) Windows를 새로 설치한 직후에 다중 모니터를 연결해 봤는데.. 무작정 꽂기만 한다고 장땡이 아니구나. 2개 중 HDMI 케이블로 연결한 4K급 모니터는 아무리 제대로 꽂아도 화면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픽 드라이버를 업데이트 한 뒤에야 잡히더라.

그래도 요즘 컴퓨터는 수십 년 전 옛날에 비해 새 하드웨어를 꽂아서 사용하는 게 얼마나 간편 편리해졌나 모른다. 상당수가 plug & play와 USB 덕분인데, 생각해 보니 두 기술이 동시에 같이 등장한 건 아니라는 게 의외이다.

2. 자동 시작 프로그램 목록

그나저나 Windows 10은 아마 3.x 이래로 20년 가까이 변함 없던 '시작 프로그램' 등록 지점을 변경했구나. 난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어쩐지 '시작프로그램'이라는 폴더가 왜 안 보이나 했다. Windows 8 시절에도 변함없었던 것 같은데..
디렉터리 기반인 건 변함없지만 그게 시작 메뉴의 목록 디렉터리 아래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바뀐 것 같다.

운영체제가 부팅될 때 자동으로 실행시킬 프로그램의 목록은 저 디렉터리뿐만 아니라 레지스트리에도 여러 군데가 있다. 이것만 한데 정리해도 블로그 글 한 편이 써지지 싶다. 도스가 사라지면서 config.sys와 autoexec.bat가 없어졌지만, 걔네들이 하던 기능까지 없어진 건 아닌 셈이다.
리눅스나 macOS는 자동 시작 프로그램 목록을 어디에서 지정하는 걸까? 궁금해진다.

아울러, 요즘 Windows는 SMB(쌈바)가 기본으로 깔리지 않는가 보다. 랜선 꽂고 인터넷이 멀쩡히 되는데 탐색기에서 \\로 시작하는 공유 폴더 서버에 왜 이리 접속이 안 되나 했더니.. "프로그램 추가/제거"에서 해당 기능을 설치해야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로컬 보안 정책'을 고치라니 뭐니 하는 말이 있었지만, 그걸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3. embedded 컴포넌트로 활용 가능한 브라우저

2010년대 이후로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IE의 독주가 꺾이고 크롬, FireFox, Edge 같은 대체 브라우저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IE는 여느 브라우저들과 달리 컴포넌트화가 잘 돼 있다. 그래서 임의의 프로그램 내부에 IE 기반의 브라우저 창을 집어넣어서 단순 HTML 내지 웹 컨텐츠를 표시할 수 있다. 기술 기반은 잘 알다시피 COM/ActiveX이고 말이다.

IE 말고 다른 브라우저 창을 내 프로그램에다가 내장시키는 건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IE는 이쪽 고정 수요 때문에 계속 없어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것 같다.

4. 잠금 화면의 배경 그림

Windows 8(.1)까지만 해도 안 그랬던 것 같은데.. 10부터는 부팅 직후, 또는 Win+L을 눌렀을 때 나타나는 잠금 화면에 기본적으로 근사한 각종 자연 경관 배경 그림이 나타난다. 각종 업데이트를 받기에도 네트워크 트래픽이 빠듯할 텐데, 어떤 서비스는 거기에 또 짬을 내서 그림 파일도 찔끔찔끔 받아 놓는가 보다.

이 그림도 분명 디스크 어딘가에 파일 형태로 저장될 텐데, 슬쩍 빼돌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팁이 나돌고 있기 때문에 검색해 보면 다 나온다. 그런데 본인이 문득 궁금한 건 이 그림들을 마소의 어느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누가 어디서 이런 사진들을 구해서 올리느냐 하는 것이다.
Windows와 mac 진영 모두 근사한 자연 경치 사진을 공급받는 비밀 거래처가 있는 것 같다. 그건 개인일 수도 있고 기업일 수도 있다. Windows XP의 초원 배경은 이미 아주 유명한 사례이다.

5. Windows - 설정 창의 불편한 점

요즘 Windows는 버전업을 거듭할수록 제어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운영체제의 모든 설정을 메트로 앱인 '설정'으로 하게 UI를 옮기려는 게 보인다.

(1) 그런데 이놈의 설정 앱은 좀 여러 개를 띄울 수 없나? 프로그램 추가/제거 같은 창을 꺼내 놓은 상태로 디스플레이/개인 설정 같은 걸 띄우려니 기존 창이 바뀌어 버리는 게 굉장히 불편하다. 10수년 전에 탭이 없던 IE6 시절에, 응용 프로그램에서 인터넷 링크를 클릭하면 기존 브라우저 창에서 그 링크가 열려서 짜증 나던 게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

(2) '설정'에서는 키보드의 연타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이 1803 내지 1809 빌드 기준으로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그런 키보드 설정은 기존의 제어판에 들어가서 하라고 링크라도 띄워 놔야 되는데 그것도 없는 건 문제인 것 같다.
마우스의 경우, '설정'에서는 좌우 버튼 교환이나 휠 스크롤 분량 같은 대중적인(?) 옵션만 있다. 포인터 모양을 바꾸는 매니악한 옵션은 제어판에 가서 하라고 '추가 마우스 옵션' 링크가 표시되어 있다. 키보드는 그런 게 없고 '고급 키보드 옵션'은 그냥 IME/문자 입력 쪽 설정밖에 안 나온다.

(3) 요즘 Windows 10에서 중국어· 일본어 IME를 쓰고 싶으면 해당 언어와 키보드만 등록하는 게 아니라, 언어 팩을 다 받아서 설치해야 하는 것 같다. 전자까지만 하면 IME가 뜨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어· 일본어 입력이 되지 않는다.
20년쯤 전 먼 옛날에는 마소에 내장돼 있는 외국어 IME를 처음 등록할 때 운영체제 CD를 집어넣어야 했다. Vista~7에서는 그냥 전세계 언어가 다 깔렸었는데 이제는 인터넷으로 받는 형태로 절차가 바뀐 것 같다.

(4) 그리고 외국어 UI 팩이나 입력기, 필기· 음성 인식 데이터를 받고 설치하는 버튼을 실수로 잘못 눌렀는데, 작업을 취소하는 버튼을 왜 마련해 놓지를 않았는지? 이것 때문에 꽤 당혹스럽고 불편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_=;;

6. 입력 도구모음줄의 불편한 점

오늘날 Windows 10에서는 IME에 대해서 브랜드 아이콘(한)과 상태 아이콘(가/A) 딱 둘만 작업 표시줄에 붙어 있는 극도로 단순화된 아이콘 표시 모델을 지원한다. 요건 사실 2012년의 Windows 8때부터 도입된 것이니 생각보다는 오래됐다.

지금도 과거의 XP~7 시절을 풍미했던 길쭉한 입력 도구모음줄을 쓰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특히 키보드에 한자 키가 없거나, 그 키를 자기 멋대로 가로채는 프로그램(MS 오피스 프로그램..)에서 한글 IME의 고유 방식대로 한자 변환을 하려면 이 도구모음줄이 필수이다. 한자(漢) 버튼이 노출되어 있어서 마우스 클릭이 곧장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도구모음줄을 꺼내는 옵션이 꽤 찾기 어려운 구석진 곳에 있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이 도구모음줄이 불편한 점 중 하나는 floating 상태일 때 화면에서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는 배경색이 순 화이트이기 때문이지 싶다.

이 도구모음줄은 도입된 이래로 배경색은 줄곧 작업 표시줄의 색깔과 일치해 왔다.
Windows 98/2000/ME에서는 회색, XP에서는 파랑 같은 테마 색 또는 회색(고전), 그리고 Vista/7에서는 역시 검정..
그러니 10에서도 저 패턴이라면 배경색이 작업 표시줄의 색깔과 같은 검정이어야 할 텐데, 어째 제목 표시줄의 색깔과 같은 흰색이 됐다.

제목 표시줄도 흰색이지, 프로그램의 일반 클라이언트 영역도 흰색이지,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도구모음줄 주변엔 아무 테두리도 없고 그림자도 없으니..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역대 Windows들 중에 TSF 도구모음줄의 배경색이 흰색인 버전 자체가 Windows 10이 유일하다시피하다. 8과 8.1에서는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난다만 걔네들도 흰색은 아니었지 싶다.

하지만 이 도구모음줄은 MDI 창이라든가 HTML 도움말처럼 마소에서 더 개발이나 지원을 하지 않는 레거시일 뿐이니, 얘에 대한 개선은 앞으로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7. caret의 깜빡임이 멈추는 현상

이제 단순히 불편한 점을 넘어 버그 얘기를 좀 해 보자. 내 컴퓨터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요즘 Windows에서 날개셋 편집기, 메모장, 워드패드처럼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caret(키보드 커서)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띄워서 가만히 놔둬 보면..
caret이 딱 5번 깜빡이고 나서 6번째로 나타난 뒤부터는 깜빡이지 않고 그대로 멈춰 버린다.

Windows 10의 1803과 1809 버전에서 모두 확인했는데 이런 버그가 왜 생겼나 모르겠다. 2015~16년대의 구버전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아니, 수십 년 전의 Windows 95 이래로 이런 현상은 처음 본다.
Spy++로 들여다보면.. caret을 깜빡여 주라는 메시지 자체가 더 오지 않고 멈춘다. 그에 반해 아래아한글이나 MS Word 같은 전문 워드 프로세서는 이런 메시지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caret을 운용해서 그런지 깜빡임이 멈추지 않는 것 같다.

8. Dependency Walker의 오동작

이전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던 것 같은데.. Windows 10 1809를 설치한 뒤에는.. 각종 실행 파일을 Dependency Walker 유틸로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게 다소 불편해졌다.
Windows 7쯤부터 운영체제의 자체 제공 EXE/DLL들은 kernel32.dll의 함수들을 kernel32로부터 직통으로 import하는 게 아니라 프로세스, 스레드, 파일, DLL로딩 등 각종 세부 분야로 나뉜 가상의 DLL로부터 import하기 시작했다. comctl32의 로딩 방식은 side-by-side assembly 방식으로 바뀌더니 kernel32는 저렇게 바뀌었다는 게 흥미롭다.

그런데 Windows 10 1809 버전에서는.. KERNEL32.DLL은 API-MS-WIN-CORE-PROCESSTHREADS-L1-1-1.DLL에 의존하고, 후자는 또 전자에 의존하는 구조가 돼서 여기서 일종의 무한루프에 빠진다.
비록 Dependency Walker 자체가 뻗는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이 때문에 분석 시간이 굉장히 길어지고 모듈 분석 트리도 쓸데없이 거대하고 지저분한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문제가 개선됐으면 좋겠지만 Dependency Walker는 무려 Windows Vista 초창기인 2006~7년 이후로 개발이 중단되고 버전업이 없으니 아쉽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28 08:38 2019/06/2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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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 밖에서 알게 모르게 바뀐 것들 관찰

  • 카페에서.. 밖으로 가져가지 않고 실내에서 마시는 음료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아 주는 게 금지되었다.
  • 백 종원 편의점 도시락에는 원래 동그란 혼합소시지 두 개와 함께 노란 계란말이가 상징처럼 곁들어지곤 했다. 그러다가 지난 16년인가 17년 계란 파동 때부터는 생산원가가 너무 올라서 그런지 다른 가공육으로 슬쩍 대체되었다. 그렇게 1~2년쯤 계속되더니 얼마 전부터는 다시 계란말이로 돌아온 듯하다. 반갑다.
  • 그리고 한때는 카드를 결제하는 수많은 무인 기계들은(셀프 주유/제품 주문, 승차권 발권 등) 말 그대로 카드를 쓰윽 '긁는' 형태가 많았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싹 없어진 것 같다. 무조건 카드를 '꽂았다가 빼는' 형태로 바뀌었다. 무슨 보안 강화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고 하는데 구체적인 사유는 잘 모르겠다.

하긴, 카드로 단돈 몇천, 몇만 원을 긁을 때마다 매번 서명을 하던 번거로운 관행도 사라진 지 벌써 수 년째 됐다. 오랜만에 20만 원 가까운 금액을 결제할 때 서명을 하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2. 음식 관련

(1) 육개장은 여느 국밥이나 탕류와 달리, 질그릇 뚝배기에 담지 않고 냉면과 동일한 큼직한 금속 그릇에다 담는 게 유행인 걸까? 이것도 문득 궁금해진다.
글쎄, 검색을 해 보니 뚝배기에 담긴 육개장도 없지는 않지만, 본인이 집이나 직장 주변의 여러 식당에서 먹어 본 바로는 다들 금속 그릇이었다.

(2) 국과 찌개와 전골의 경계는 무엇인지(단순히 국물과 건더기 비중??),
똑같이 생선을 넣어서 만든 시뻘건 국물 요리인데 꼭 횟감으로 쓰고 남은 재료를 넣은 것만 '매운탕'이고 나머지는 그냥 찌개/탕인지(고등어/꽁치/대구).. 구분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3) 된장과 김치는 한식에서 국 또는 찌개를 담당하는 양대 재료 계열이 아닌가 싶다.
내 경험상으로도 된장에다가는 시래기나 우거지를 곁들이지, 김치나 묵은지를 된장과 함께 요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또한 된장은 인스턴트 라면 스프로 재현하기가 어려운지, 육개장이나 김치찌개 라면은 있어도 된장찌개 라면은 못 봤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렇게 된장과 김치는 각각 애완동물의 양대 계열인 개와 고양이에 대응하는 심상이 느껴진다.;;
옛날에 어떤 아저씨의 발언 때문에 '개와 돼지'의 연상 비중이 올라갔으며 사실, 성경에서도 둘을 부정한 동물이라고 부정적인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마 7:6; 벧후 2:22). 허나, 가축이 아닌 애완/반려동물로서는 개와 어울리는 것은 고양이인 듯하다. 주위를 살펴보면, 개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고양이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서 취향이 아주 분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

3. 아날로그 카운터

지금처럼 기계란 기계에 LCD/LED 디스플레이가 몽땅 깔리기 전, 옛날에는 각종 가변적인 정보를 공개적으로 표시할 때 롤지나 플랩 같은 아날로그 매체가 많이 쓰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히 점수나 시각, 수량 같은 숫자는 정확하게 무슨 명칭으로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위로 뱅글뱅글 돌아가면서 각 자릿수를 표시하는 카운터가 있었다. 수량을 나타내는 카운터가 쓰인 곳으로는..

  • 자동차 계기판의 구간· 적산거리계
  • 테이프 재생기
  • 주유기 (주유량과 금액이 쭉쭉 올라가는..)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테이프 재생기의 경우, 카운터 옆에 버튼이 두 개 있었다. 한 버튼은 카운터를 0으로 초기화하는 놈이요, 다른 하나는 카운터가 돌아가다가 0이 됐을 때 재생이나 감기 등을 자동으로 중단시킬지 옵션을 지정하는 놈이었다(오오!!).

자동차야 주행으로 인해 한없이 증가만 하는 적산거리계와는 별개로, 구간거리계에는 역시 0 초기화 버튼이 있었다. 이런 reset 버튼이 별도의 동력 없이 어떤 원리로 동작하는지는 마치 진공 청소기의 코드 감기 버튼만큼이나 궁금해진다. (탄성 같은 걸 사용하겠지..)
아 그나저나, 이런 아날로그 카운터가 오늘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가스나 수도 계량기에서는 여전히 쓰이고 있긴 한다.

4. 칸막이

2010년대 들어 육상 대중 교통수단에서 칸막이가 생김으로써 풍경이 바뀐 분야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지하철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버스 운전석을 에워싸는 투명 칸막이이다. 20세기, 그리고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보기 어려웠던 물건들이다.

전자는 잘 알다시피 승강장 투신 자살이 급증하고 사회 문제로 공론화되면서 수백 개에 달하는 많은 역들에 결국 모두 설치됐다.
후자는 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폭행 사건이 몇 건 발생하면서 등장했다. 이전에는 주행 중에 기사를 폭행한 것만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았지만 2010년대 중반쯤엔가 그때부터는 정차 중에 폭행한 것도 동일한 수위로 처벌되게 법이 강화되었다.

5. 구기 종목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공놀이들이 존재한다. 그 중 야구, 축구, 농구는 세계구급 경기가 치러지며 억대 연봉을 자랑하는 프로 선수도 있고, 돈줄이 장난 아니게 많이 얽힌 인기 종목이다.

그에 반해 피구, 족구, 발야구 같은 건..;;
뭔가 학교 체육 시간이나 회사원들 워크숍에서도 많이 하지만, 정작 공인된 협회· 단체가 없고 프로 선수나 국제 경기 따위도 없는 비주류이다. 공도 그냥 축구공이나 배구공을 그대로 쓴다.

가위바위보와 팔씨름조차도 협회가 있는데 저것들은 그냥 민간 차원으로만 전승되는 공놀이이인가 싶은 의문이 든다.
뭐, 배구는 분명 프로 경기까지는 있지만 위의 야축농에 비하면 비인기 마이너인 것 같다. 얘만 왜 모래사장 버전인 '비치발리볼'이라는 바리에이션이 존재할까 생각해 봤는데.. 하긴, 모래밭에서는 농구공 드리블이 도저히 되지 않을 것이고, 굉장히 넓은 공간이 필요한 축구와 야구도 마찬가지.. 그러니 배구 정도가 적합하다.

6. 각종 관계 비유

(1) 이와 잇몸의 관계는 자동차에서 타이어와 휠의 관계와 아주 비슷해 보인다.;;

(2) 마네킹, 더미, 러브돌(;;): 똑같이 사람 모양의 인형이지만 용도가 서로 완전히 다르며, 세부적으로 만드는 방식도 차이가 있다.

(3) 스마트폰은 화면을 켜는 순간부터 배터리 소모량이 치솟는다.
이는 자동차로 치면 시동만 걸려 있다가 액셀러레이터 페달까지 밟아서 연료 소모가 폭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4) 해동했던 고기를 또 냉동하는 것은 고기의 품질에 굉장한 악영향을 끼친다. 이는 마치 사진을 jpg로 저장했다가 또 고치고 저장하는 걸 반복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5) 옛날에 미혼 여자는 댕기머리를 하고 기혼 여자는 머리카락에다 비녀를 꽂았다. 남자는 미혼일 때는 역시 댕기머리가 있었던 것 같고, 결혼한 뒤에는 상투를 틀었다.
오늘날은 남자는 별 특이 사항이 없고, 여자는 파마머리가 사실상 기혼의 상징인 것 같다. 찰랑찰랑한 생머리가 나이 들어서까지 유지되지는 않는가 보다.

(6) 여객기 이코노미석의 좌석은 관례적으로 파란색 계열이다. 영화관의 좌석은 관례적으로 죄다 빨간색 계열이다.
그에 반해 열차 좌석은 KTX나 무궁화호 일부 객실의 경우처럼 초록색도 있는 편이고 케바케이다.
버스나 일반적인 강당의 좌석은 빨강이나 갈색 위주인 것 같다.

(7) 지금은 없어졌지만 미국 팬암 항공사는 1920년대에 창립되고 20세기 중반에 나름 세계를 호령하는 리즈 시절을 구가했다는 점에서 구소련과 비슷하다. 둘 다 1991년 12월이라는 꽤 비슷한 시기에 망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도 동일하다.

팬암 이후로 미국에는 팬암 같은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진 단일 메이저 항공사가 존재하지 않고 유나이티드, 델타, 아메리칸 이렇게 3개가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중국도 국토가 거대해서 그런지 국영 항공사가 3개로(국제, 동방, 남방) 나뉘어 있다.
팬암은 마소의 Windows/Office XP보다 훨씬 전부터 경험 ,경험(experience)를 강조하는 광고를 내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7. 나머지

(1) 중이 제 머리는 못 깎으며, 컴공과만 나왔다고 해서 컴퓨터 조립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아무리 최정예 특전사네 UDT네 뭐네 해도 맨몸에 총 맞으면 죽는 건 똑같다. (스타에서 마린과 고스트의 체력 차이는..??)
제아무리 골수 철덕이어도 명절 귀향 열차 승차권을 뚝딱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변에서 본인에게 이런 걸 문의하는 분이 가끔 계신데..;; 번지수 잘못 찾은 거다. ㅠㅠ

(2) 세상에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군대라는 비민주적인 조직이 있어야 하고, 위장 조작까지도 불사하는 첩보 기관이 음지에 있어야 한다.
아무리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무자비한 이념을 지지하지 않는다 해도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이 없을 수는 없다. 이는 세상에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예인 듯하며, 이런 생각과 관찰이 법리에도 응당 영향을 끼친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25 08:37 2019/06/2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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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크기별 분류

1. 야외 시계탑

오늘날이야 스마트폰 덕분에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정확한 현재 시각을 얻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해시계· 물시계 같은 자연(?) 시계 말고 자체적으로 돌아가는 시계라는 건 전근대 시절 기계 기술의 정수가 담긴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다.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안정되게 균일한 속도로 움직이는 기계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리고 시계가 널리 보급된 뒤에도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일반인들은 정확한 표준 시각을 알기 위해서 오랫동안 텔레비전 방송의 시각 표시와 시보에 의존해야 했다.

시계가 집집마다 개인마다 쉽게 보유 가능한 물건이 아니었던 시절에는 공공장소· 광장에 커다란 시계탑이 세워지곤 했다. 철도역 광장 같은 곳도 당연히 포함이었다. 이건 20세기 초중반까지, 아직 노면전차와 증기 기관차가 다니고 건물은 온통 빨간 벽돌 외형에다 목재 인테리어가 보편적이던 시절의 얘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대 병원 시계탑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계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능한 한 멀리서도 시각을 확인하라고 탑은 높게 세워졌다. 그렇잖아도 수백 년 전의 옛날 시계들은 추에 작용하는 중력을 동력원으로 삼아서 돌아가는 아주 원시적인 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크고 높게 만드는 게 구조적으로 유리했다.

시계탑은 바늘의 위치로 시각을 시각적으로(?) 표시할 뿐만 아니라, 주요 이벤트는 소리로도 멀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뎅뎅' 소리가 나는 종이란 게 달렸다. 옛날에는 시계탑의 종은 사람이 직접 쳤던 것 같다..;;

오늘날이야 시계가 너무 흔해진 관계로 시계탑이라는 시설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일부러 보존하는 것 말고, 공익을 위해 새로 만들 일은 없어졌다.

2. 실내 벽걸이 -- 대형

금속의 탄성을 이용한 용수철과 태엽 같은 장치가 발명되면서 기계식 시계는 더욱 작아질 수 있게 되었다.
실내에 비치 가능한 시계 중에서 가장 큰 물건은 디스플레이 아래로 '추'가 진자 운동을 하는 '괘종시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런 시계는 매시 정각에는 그 시각 수만큼, 그리고 매시 30분에는 또 한 번 종이 쳤다. 추가 노출돼 있어야 하는 이유라든가, 시계 바늘 위치에 따라 종이 연결되는 원리는 난 잘 모르겠다.

오늘날의 전자식 아날로그 시계는 제일 시끄러워 봐야 1초 간격으로 tick, '째깍' 소리가 나는 반면..
요런 기계식 시계는 근처에서 가만히 들어 보면 정말 사전적인 의미의 '똑딱똑딱'에 충실한 소리가 났다. 마치 열차로 치면 증기 기관차의 고전적인 '칙칙폭폭' 같은 소리인 셈이다. (참고로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이라는 그 동요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인 1920년대에 작곡됐음)

글쎄, 요즘은 초침 달린 아날로그 형태이면서 '째깍' 소리조차도 안 나는 물건이 있고, 심지어 초침이 계단식이 아니라 물 흐르듯이 등속 운동을 하는 놈도 있지만.. 그래도 등속 운동 시계는 주류 디자인은 아닌지라 흔히 볼 수 있지 않는 듯하다.

전자식 시계는 서 버렸다면 건전지를 교체한 뒤, 뒷면의 자그마한 다이얼을 아무 방향으로나 돌려서 시각을 맞추면 된다.
하지만 기계식 괘종시계는 절차가 이와 달랐다. 무슨 자그마한 공구를 시계 표면의 작은 구멍에다가 집어넣고 돌려서 일명 '밥을 줘야' 했다. 태엽을 조이는 작업이다.

바늘 위치는 별도의 다이얼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절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직접 조절하면 됐다. 태엽을 조이고 바늘 모양을 맞춘 뒤에, 무슨 트리거를 또 조작하고 나서 추를 흔들어 주면.. 그때부터 추는 멈추지 않고 시계 바늘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다른 어르신이 시계를 조작하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전부인지라 기억이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신기하기 그지없다. 자동차로 치면 타이어를 교환하는 작업 같기도 하고, 밀어서 시동 거는 작업 같기도 하고..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 뒤에는 시계 바늘을 강제로 역방향으로 돌리는 조작을 해서는 안 됐다. 그러면 바늘과 연결된 내부 장치가 망가질 위험이 있었다. 특성이 전자식 시계와는 여러 모로 달랐다.

3. 실내 벽걸이 -- 소형

뭐, 기계식으로도 시계의 소형화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단지 가성비가 차이가 날 뿐이다.
괘종시계보다 작은 벽걸이 시계는 오늘날도 볼 수 있듯이 지름 수십 cm 남짓한 동그란 원반형 시계가 될 것이다.
기계식 시계는 무조건 아날로그이겠지만 전자식 시계는 아날로그/디지털이 모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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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괘종시계의 소형화 변종으로 '뻐꾸기 시계'라는 것도 있었다. 시계 본체가 새장 모양이고, 매시 정각에는 뻐꾸기 인형이 튀어나오는 그 물건 말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중반이 돼서야 소개돼서 200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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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물건의 원형을 처음으로 생각해 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얘 덕분에 "뻐꾹 왈츠"라는 곡도 인지도가 올라가고, 웬 뻐꾸기가 시계와 관련 있는 새처럼 사람들 기억에 새겨지게 됐다.
뻐꾸기 벽시계는 시기적으로 최근인지라, 무늬만 괘종시계이지 내부 메커니즘은 이미 전자식으로 다 바뀐 물건이었다.

4. 탁상

시계가 더 작아지면 이제 벽에 고정시켜 놓는 게 아니라 탁상시계 내지 자명종 같은 급이 된다. 귀가 두 개 달렸고 때르르릉~ 울리는 바로 그 시계 말이다.
얘는 사용자가 시계 본체에 수시로 손을 뻗어서 접근 가능하다는 점이 벽시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알람 기능이 이 레벨에서 드디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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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금속판을 물리적으로 때리는 방식으로 알람 소리가 동작했다. 구식 다이얼 전화기의 따르르릉 소리처럼 말이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다들 그냥 전자음으로 바뀌었다.

본인은 옛날에 전자식 디지털 탁상 시계가 콘센트 하나를 떡 차지하여 돌아가는 형태인 걸 본 기억이 있다. 배터리도, 메모리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플러그를 빼 버리면 시계는 바로 꺼졌다. 저장하고 있던 시각도 날아갔기 때문에 매번 다시 맞춰 줘야 했다.
그에 반해, 요즘 시계는 전자식으로 돌아간다 해도 전력 소모가 굉장히 작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그냥 건전지만으로 몇 달은 버틴다. AC 전원 자체를 쓰지 않는다.

그나저나 과거에 컴퓨터도 전자식이 아닌 전기식이 있었듯이, 시계에도 메커니즘은 기계식인데 동력만 태엽 대신 모터로 조달하는 '전기식 시계'라는 게 있긴 했다고 한다.

5. 회중

이제 사람이 목에 걸거나 주머니에 넣어서 휴대 가능한 정도로 시계의 크기가 더욱 작아졌다. 이것보다 조금만 더 작아지면 손목에 두를 수 있게 된다. 회중시계에는 '시곗줄'이라는 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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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중시계라 하면 옛날에 의사나 철도 기관사가 한때 사용했던 물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앞부분에서 토끼가 차고 있던 물건, 아이작 뉴턴이 달걀 대신 물에다 삶아 버린(...) 물건, 그리고 윤 봉길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김 구 주석과 맞교환한 물건 정도로 본인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의사들이야 수술칼을 집고 정교한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시절의 크고 무거운 손목시계는 거추장스러우니까, 그리고 철도 기관사는 매번 종합 사령실과 시각을 동기화시키고 정시 운행을 해야 하는데 붙박이 벽걸이 시계는 조작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 중간 위상인 회중시계가 선호되었다고 한다.

6. 손목

이렇게 작은 시계를 기계식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역시 매우 어려웠으며 제품도 고가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손목시계가 있으면 활동하는 데 굉장히 편리하기 때문에 20세기 중반쯤부터는 군사 같은 업종을 중심으로 차츰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40년대 말에 한반도에 들어온 소련군들이 손목시계만 잔뜩 약탈해서 주렁주렁 차고 다녔으며, 6· 25 때 비밀 작전을 펼치던 군인들도 한데 모여서 자기 손목시계의 시각을 동기화시킨 뒤, 각자 흩어져서 작전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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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손목시계가 저렴하게 널리 보급된 것은 아무래도 전자식 시계가 발명된 20세기 후반부터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손목시계는 외형이 미묘하게 남녀 구분도 있는 게 특징이다.
이상이다.

(1)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화면에 흡수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는 시계의 형태는 "3. 벽걸이 소형" 다수, "4. 탁상" 소수, "6. 손목시계" 소수 정도인 것 같다. 스마트폰은 굳이 따지자면 회중시계에 가깝고, 스마트워치는 손목시계 그 자체의 변종에 가깝다. 시계탑, 괘종, 회중시계는 멸종이다.

(2) 옛날에는 매일 한 장씩 찢어 내는 달력도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사라졌다.
그리고 로마 숫자를 1부터 12까지나마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던 곳도 시계였는데 이 역시 요즘 시계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3) 시계 바늘의 위치와 관련해서..
시계 가게에 있는 시계들은 바늘이 일부러 전부 제각각 랜덤으로 맞춰져 있다는 건 상식이었다. 동기화 메커니즘이 없던 시절엔 모든 시계들을 정확하게 맞춰 놔도 어차피 얼마 못 가 전부 다 어긋나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든 CF는 소비자의 심리를 고도로 겨냥해서 바늘의 모양이 제일 괜찮은 10시 10분으로 맞춰 놓네 마네 하는 말이 있었다.
우리는 바늘이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needle이 아닌 hand라고 부른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4) 컴퓨터에서는 Windows 3.x까지만 해도 시계 앱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시각 표시는 그냥 운영체제 셸의 작업 표시줄에 나타나는 기능으로 축소되었다.
다만, 전문적인 스톱워치/알람 앱은 스마트폰에 존재한다.

(5) 그러고 보니, 용(dagon)이나 성(castle)뿐만 아니라 '종'(bell)도 동양과 서양의 심상이 서로 차이가 난다.
동양의 종은 왕창 거대하며, 나무로 된 큰 막대기로 종의 겉면을 쳐서 소리를 낸다. 그러나 서양의 종은 그렇게까지는 크지 않고, 손잡이를 잡아당겨서 종 내부의 금속판을 속면과 충돌시켜서 소리를 낸다. 소리도 '뎅뎅'보다는 '땡땡 딸랑딸랑'에 가깝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에 종근당 CF에서 마지막에 늘 나왔던 "CG 황금색 종 + '뎅' 소리" 씬은.. 서양식 종 비주얼에다가 동양식 종소리를 넣은 일종의 짬뽕이다.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6) 끝으로, 건물 말고 자동차 내부의 시계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고 글을 맺겠다.
옛날, 한 1980년대까지는 계기판에서 속도계 옆에 아날로그 시계가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공간은 엔진 회전수를 나타내는 타코미터로 대체되고, 시계는 계기판 또는 대시보드에 디지털 형태로 자그맣게 나오는 형태로 바뀌었다.

요즘 사람에게 스마트폰이 있다면 요즘 자동차는 내비게이션이 달려서 이게 진행 속도와 현재 시각을 자동차의 오리지널 계기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다. 그래서 자동차의 자체 시계는 차내 영상 서비스와 통합되어서 따로 나오지 않는 추세이다. 다만, 버스는 앞유리에 자동차 부품으로서가 아니라 완전 별개의 액세서리로서 시계가 걸려 있기도 하다. 승객들이 보라고 말이다.

오히려 차량용 블랙박스가 서버 동기화· 통신 같은 기능이 없기 때문에 내부 시계의 시각이 어긋날 여지가 있다. 여기 시각까지 자동 동기화되는 건 내비와 자동 연계가 되는 순정 블랙박스가 등장하면 도입되지 싶다.

옛날에 자동차의 기기들이 대체로 아날로그· 기계식이던 시절에는 시동이 꺼져 있을 때도 도어의 창문을 돌려서 개폐할 수 있었고.. 연료계 바늘은 언제나 실제 연료량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아날로그 시계도 상시 동작하고 있었다. 요즘 자동차에서는 이런 특성을 찾을 수 없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10 08:29 2019/06/1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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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 이야기

1. 바퀴를 굴릴 수 없는 곳에서 짐을 나를 때

인간은 손으로 다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짐을 간편하게 한데 넣어 다니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가방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 가방도 운반하기 위해서는 손을 사용해야 하니, (1) 손을 전혀 쓰지 않고 싶거나 (2) 팔과 손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짐을 날라야 할 때는 백팩이나 배낭처럼 어깨에다 메는 물건을 사용하게 된다.
참고로 바퀴 달린 캐리어는 끌기 위해 여전히 손을 하나 써야 하기 때문에 (1)은 충족하지 못하지만, 바퀴 덕분에 (2)는 그럭저럭 충족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메는 부류에 속하는 물건 중에는 '지게'라는 것도 있다. 얘는 짐을 몽땅 감싸는 게 아니라 짐의 아래만을 받치는 형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게는 그 위에 쌓는 짐의 크기에 그다지 제약을 부과하지 않으며, 짐꾼의 체력이 허용하는 한 굉장히 많은 짐을 싣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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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원본에다가 뭔가 어설프게 색을 입힌 사진인 듯..)
지게는 왠지 옛날에 나무꾼들이 많이 사용했을 것 같다. 하지만 얘는 나무 말고 다른 짐을 나르는 데도 많이 사용되었으며, 오늘날도 나무는 아니고 알루미늄 재질의 지게가 만들어져 쓰이고 있다. 대문자 A 글자를 닮은 외형 덕분에 영어권에서는 A-frame carrier라고 불린다.

지게가 하필 나무꾼의 상징으로 등극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이 다른 백팩이나 캐리어도 아니고 지게를 동원해서 저렇게 많은 짐을 꾸역꾸역 날라야 하는 상황이란, 바퀴를 활용할 수 없을 때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꼬불꼬불 좁은 산길은 이 조건에 완벽하게 해당된다. 거기서는 자동차는커녕 수레조차 끌 수 없으며, 캐리어의 그 작고 연약한 바퀴 역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열악한 지형을 감당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운송 수단은 사람의 다리와 지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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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게 부대

과거 6· 25 전쟁 중에는 민간 지게꾼들이 미군에 의해 대거 징발되어 수송· 보급 임무를 수행했다. 일명 '지게 부대'인데.. 명칭이 뭔가 '부대찌개'를 연상케 한다. 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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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한반도는 온통 산지이고 도로다운 도로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엔 차도가 그나마 전국에서 제일 잘 닦여 있던 경성 시내조차도 아스팔트 포장이나 차선이나 신호등 따위 없었다. 아무 시설이 없으니 해방 후 미군정이 1946년 봄에 자동차의 통행 방향조차 우측으로 곧장 변경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물며 서울을 벗어나면 그냥 전부 흙길 뻘밭..

지게 부대는 1951년 이후의 첩첩산중 고지전에서나 운용한 게 아니라 1950년 7월, 이미 대전이 함락되고 낙동강 고지를 사수하네 마네 하던 시절부터 운용되었다.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 비화만 봐도 알 수 있듯, 대전-대구 사이 구간 역시 지형이 만만찮게 험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다른 글동영상이 이미 많이 올라와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란다. 원래 3, 40대 장정들만 모집한다고 광고했는데 더 어린 소년들과 60대 노인들까지 왕창 몰렸다고 한다.

<야인시대>에서 김 두한이 기를 쓰고 "4딸라!"를 고집하면서 올리려고 했던 건.. 이렇게 미군에 고용되어 부역한 민간인들의 임금(일당)이었던 셈이다. 뭐, 지게꾼들 말고 배에 산더미처럼 쌓인 보급품들을 하역하는 알바(?)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그 시절 물가 기준으로 실제로 받았던 일당은 낮과 밤이 서로 차이가 있긴 했지만, 평균을 내면 4딸라는 개뿔, 1$도 안 되는 50센트 남짓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건 미군이 로동력을 저렴하게 착취한 게 결코 아니었다. 노동 여건을 비롯해 그 시절의 병사 월급이나 타 업종 소득과 환율을 총체적으로 감안하면.. 저것도 오히려 넉넉하고 후하게 준 것이었다. 그래서 지원자가 몰렸었다.
드라마 내지 원작 소설에서는 무슨 근거로 무슨 약을 빨고 하필 4딸라를 고집했던가 모르겠다..

또한, 한반도의 이런 안습한 도로 사정은 남한뿐만 아니라 북괴의 입장에서도 동일하게 불리한 요인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인천 상륙 작전으로 허를 한번 찔리자 놈들도 보급로가 완전히 작살나서 곧 후퇴해야 하게 됐다.

3. 나무꾼

지게가 나왔으니 말인데.. 옛날에는 나무를 벨 때 <선녀와 나무꾼>, <금도끼 은도끼> 같은 전래동화에 묘사된 바와 같이 도끼를 주로 썼던 것 같다. 인간의 팔힘만으로 육중한 나무를 찍어서 쓰러뜨리는 건 굉장히 힘든 노동이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도 없을 리가 있겠나...

지금은 톱이 주류로 바뀌었다. 옛날에도 톱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흥부전>에서 박을 썰어서 개방하는 장면에서나 봤던 것 같다.
요즘은 그냥 톱이 아니라 동력 엔진이 달린 전기톱, 사슬톱, 기관톱(??)이 있으니 힘을 덜 들이고 나무를 벨 수 있다. 하지만 대단히 위험한 건 감수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이야 전기, 가스 같은 편리한 에너지 덕분에 옛날처럼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나무를 벨 필요는 없어졌다. 원시적인 지게보다는 지게차 같은 다른 육중한 동력 기계가 더 친숙한 세상이 됐다. 이제 도끼는 망치에 가까운 소형 버전이 유리창 깨고 자물쇠 딸 때, 비상 탈출용으로 쓰이는 것 같다.

더티한 화석연료가 역설적으로 산림을 보호해 주고, 원자력은 화석연료를 아껴 준다는 것이 반박불가의 진리이다. 인류가 문명의 이기들을 다 때려치우고 하루아침에 석기시대로 돌아가서 살 게 아니라면 말이다. 산업화 되기 전인 조선 시대 내지 북한이 온통 민둥산인 건 이유가 있다.

뭐, 조선 시대나 6· 25 전쟁 당시가 아닌 지금도 벌목 자체는 행해지고 있을 것이고.. 또 히말라야 산맥 같은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등산가들의 수많은 보급 물자들을 같이 날라 주는 현지인 짐꾼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 역시 결국은 지게 같은 원시적인 도구를 써서 짐을 나른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무슨 군부대나 차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담이지만 과거에는 나무꾼을 '나뭇군'이라고 표기했었다. 그리고 30년쯤 전에 맞춤법이 바뀌면서 '나무꾼'이라고 바뀌었다. 일꾼, 짐꾼, 몰이꾼처럼 말이다. 이 접미사는 사이시옷 대신 된소리 형태로 표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4. 언어 관련

끝으로.. '지게'는 스펠링이 '개'가 아니라 왜 '게'인 걸까?
명사화 접사 '-개'와 '-게'는 공교롭게도 모두 용언 어간 뒤에 붙어서 그 동작을 수행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라는 의미를 만들어 준다. 전자는 베개, 지우개, 가리개, 덮개 따위가 있고 후자는 집게, 그리고 지게 정도가 있다.

의미와 용례가 비슷해 보이는데 왜 이런 구분이 생긴 것일까? 얼마 있지도 않은 후자를 '집개, 지개'라고 통합하면 많이 어색하려나? 둘의 어원이 궁금하다.
아, '-개'의 경우, 드물게나마 체언 뒤에 붙는 '-쟁이'와 비슷한 역할도 한다. 오줌싸개, 코흘리개 말이다. 이때는 '-개'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된다. '-게'에는 이런 용법이 존재하지 않으니 참 흥미로운 면모라 하겠다.

다음으로, '지게'를 사람 등에다 장착하는 동작을 표현하는 용언으로는 '지다'뿐만 아니라 '메다'도 있다. 그리고 '-게' '-개'뿐만 아니라 '메다'와 '매다'도 만만찮게 헷갈린다.
'메다'는 어깨에 짊어지는 것, 무형의 임무를 떠맡는 것, load, charge와 관계가 있고.. '매다'는 매듭, 매달기, 묶는 것과 관계가 있다(tie, bind).

거기에다 추가적으로 김매기는 '매다'이고, 뭔가 채워져서 막히는 것도 '메다'이다.
그래서 목을 어떻게 해서 자살하는 건 '매다'(묶어서 대롱대롱..)이고, 목이 어떻게 돼서 말이 안 나오는 건 '메다'이다.
이상이다. '지게'에서 시작해서 별 희한한 주제의 얘기들이 다 튀어나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9/05/30 08:34 2019/05/3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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