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지난 2009년 말에 성경을 7독까지 했다. 그러나 그 후 한동안 개인적인 게으름, 바쁜 스케줄 등의 이유로 인해 성경을 읽지 않고 지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다시 각성하여, 석사 과정에 있는 동안 최소한 한 번은 더 완독해서 8독까지 달성할 계획이다.
성경을 꼬박꼬박 읽다 보면 블로그에도 성경 관련 글을 더욱 자주 쓰게 될 것이다.

최근엔 출애굽기를 읽었는데, 이번 기회에 모세에 대해서 심층 논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또 직업병이 발동하여 장문의 글을 쓰게 됐다. 특별히 성경 본문뿐만이 아니라 유명한 관련 영화인 <이집트의 왕자>(1998. 애니메이션)와 <십계>(1956)도 끼워넣었다.

영한사전을 보면 중학교 수준의 매우 중요한 단어는 별이 세 개, 고등학교 수준은 투스타 이런 식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성경의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중요도 랭크를 매긴다면 모세는 단연 별 세 개짜리일 것임이 틀림없다.

★★★: 불신자들도 상식적으로 다 알고 관용적으로 인용하는 인물. 예수, 마리아, 모세, 아담, 이브, 솔로몬, 베드로, 유다, 아브라함, 다윗, 골리앗
★★: 위보다는 좀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명하고 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 여호수아, 바울, 사울, 누가, 요한, 이삭, 이스라엘과 12지파
★: 일단 성경의 책이름에 등장하는 마이너 인물들, 그리고 덜 유명하지만 그래도 성경에서 두 번 이상 언급되는 인물. 요엘, 요나, 호세아, 스가랴, 히스기야, 스바냐. 이세벨, 발람..
(-): 이 정도까지 알면 꽤 '골수'이며,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사람임. 아히도벨, 아비멜렉, 아사헬, 고라, 데메드리오, 맛디야, 아가보, 나봇 ...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학정으로부터 구한 민족 지도자이며, 하나님과 직통으로 대화하고 그분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온 위대한 대언자이다(신 34:10-12). 골수 유대교 신자들은 '모세' 하면 정말로 꺼뻑 죽는다.

그런데 그런 모세는 그 누구보다도 출생이 위태로웠다. 이집트가 유대인들을 노예로 삼고, 심지어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강제로 죽여 버리던 시절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때는 태아 성감별이라든가 강제 낙태 기술은 없었던 듯-_-;;;
대피라미드는 불가사의가 아니며 강제 노역이나, 외계인(?)의 힘으로 만든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가 강제 노역으로 거대한 건축 사업을 벌인 것 자체는 사실이다. (출 1:11-14)

이때 모세의 어머니는 3개월째 애를 숨겨서 키웠는데, 나중에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애엄마는 아이의 최후를 차마 자기 눈으로 못 보겠다며 아기 모세를 바구니에다 넣고 강물에 띄워 보낸다. 누나인 미리암은 바구니가 어디까지 떠내려가나 하염없이 강을 쳐다만 볼 뿐. <이집트의 왕자>(이하 '이왕')가 이 장면을 뮤지컬 형태로 잘 묘사하고 있다.

Brother, you’re safe now
And safe may you stay
For I have a prayer just for you:
Grow baby brother
Come back someday
Come and deliver us too
(자장가의 일부)

그런데 그 모세를 이집트의 공주가 발견했다. “흠. 어느 유대인 가정에서 (우리나라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린 애새끼군?” 이렇게 넘길 수도 있었는데 마침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공주는 모성애가 발동하고, 아기를 입양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건 에스더기 만만찮게 드라마틱한 스토리이다.

이때 미리암은 “공주님, 혹시 젖 먹일 유모를 찾으세요?”라고 제안했다. 덕분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자기 친아들의 유모 노릇을 하면서, 국가로부터 삯을 받고 애를 젖을 뗄 떼까지 키웠다. 그 후 애는 국가에 반납. -_-;; .. 이 성경의 스토리이나,

'이왕'에서는 저 장면이 안 나온다, 모세는 그냥 닥치고 바로 왕궁 행이다. 공주도 아니고 왕비가 입양한다.
그러나 '이왕'에서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자기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모세의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성경에 없는 내용을 나름 각색했다.

모세가 왕궁을 나섰는데 미리암· 아론 남매와 극적으로 마주친다. 미리암은 '앗, 왕자님께서 웬일로 이런 누추한 곳에...' 하다가 수십 년 전 모세의 얼굴을 곧바로 알아보고는 “아, 드디어 네가 커서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러 왔구나!” 하면서 잔뜩 설레발을 친다.

그러나, '이왕'의 설정상 자기 가족 얼굴도 모르는 모세는 “너 미쳤니?”라는 식으로 응수한다. 미리암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나 필사적으로 “넌 지금이라도 알아야 돼. 넌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구! 친어머니가 널 강물에다 띄워 보낸 후 이집트 왕궁으로 입양된 거야! 잘 모르겠으면 아버지 되는 사람에게 물어 봐!” 라고 소리친다.
아론은 그저 데꿀멍 하면서 “왕자님, 제 여동생이 사람을 못 알아보고 헛소리를 하는가 봅니다.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만 할 뿐.

굉장히 불쾌해진 모세는 미리암 네년을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내리고 돌아선다. 그러나 이때 미리암이 흐느끼면서 부르는 자장가 한 소절이 모세의 옛날 기억을 깨운다.

잠시 후에 나오는 1분 30초 남짓한 벽화 CG 애니메이션은(모세의 악몽) 본인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히 경이로움과 충격 그 자체였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성경은 성경이고 영화는 영화. 성경에서 모세가 정체성 때문에 저렇게 고뇌한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때 유모(=친엄마 ㄲㄲ)에게서 철저하게 정체성과 사상 교육을 받은 채 궁궐로 들어갔으며, 훗날 장성해서는 애국 애족 정신이 충만하여 자발적으로 왕자 자격을 포기하기까지 했다고 나온다. (히 11:24-25; 행 7:23)

모세는 의협심이 너무 충만한 나머지, 동족을 때리는 이집트 노예 감독을 암살해 버렸는데... 정작 동족들은 그 선한 뜻을 못 알아보고 “당신은 우리도 그렇게 죽일 작정이냐?”하고 되물었다. 그렇다. 모세는 배척받은 민족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모세에게 민족주의자적인 이념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쌍것들 피지배민이라 해도, 사내아이를 죄다 죽여 버리는 건 이집트의 왕자가 보기에도 너무 불쌍하다는 식으로, 꼭 그렇게 해야만 했냐는 그냥 인도적인 차원에서 동정한다. 그가 이집트 노예 감독을 죽이는 것도 계획적인 살인이라기보다는 동작을 단순히 stop 시키려 했는데 과실치사가 발생한 것처럼 묘사된다.

이런 뉘앙스의 차이를 잘 분별하도록 하자. 마치 실존 인물인 최 용신이 얼마나 억세고 강인한 분이었는데, <상록수>의 채 영신은 상사병이나 앓는 식으로 너무 유약하게 그려져 있어서 샘골 학원 당사자들이 심 훈 소설을 싫어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모세는 그렇게 이집트에서 사고를 친 후 광야로 도피한다. 그리고 거기서 양치기 일을 한다. 십보라와 만나서 결혼하는 장면에다 저 정도 각색 애드립을 넣은 건 애교로 봐 줄 만한 수준.
영화 <십계>를 보면, 모세와 관련된 모든 역사 기록이 이집트 왕조 실록에서 말소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가히 이집트의 흑역사가 된 셈이다.

모세가 목자가 되었다는 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그의 신변에 훨씬 더 심각한 변화였다.
양치기는 이집트에서 3D 중의 캐 3D로 취급받는 천한 직종이었다. (창 46:34) 한국으로 치면 백정급? 그런데 이집트의 왕자가 이전의 모든 지위를 잃고 양치기로 전락한 것이다..
양치기는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그 고충을 토로하듯이(창 31:38-40) 정말 힘들고 고달픈 일이지, 절대로 낭만적이고 전원적인 직업이 아니었다.

이집트의 왕자로 40년, 목자로 40년을 산 뒤에야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집트로 돌아온다.
성경은 이때 모세의 가정이 귀환하는 도중에 겪었던, 잘 알려지지 않은 깜짝쇼 해프닝에 대해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자기 둘째 아들에게 할례를 안 베풀고 있다가, 여관에서 하나님에게 끔살 당할 뻔한 것이다. (출 4:24-26)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은 이 사건이 기록된 출애굽기 4장 뒷부분을 읽다가 이 에피소드 때문에 어리둥절해하고 깜짝 놀라곤 한다.

시간과 분량 관계상 지금 그 문맥에 대해서 모든 설명을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대략 이런 상황을 상상하면 된다.

모세: 여보, (켁켁 숨막혀..) 그러게 둘째 아들에게도 (크허헉~) 할례를 해야 된다고 전에 내가 말했잖아! (나 죽겠어..) 그러니 제발 군소리 말고 지금 어서..;; (으윽~)
십보라: ㄲㄲㄲㄲㄲ 어휴 이런 야만적인 짓을 왜 하는지 몰라... (할례를 행하고 아들의 포피를 베어 던지면서) 이제 됐어요? 당신은 참 피비린내나는(bloody) 남편이군요.


십보라의 말은 기가 찬 듯한 비아냥거림에 가깝다. 모 성경 역본처럼 “당신은 피로써 맺어진 나의 달링님이에요” 같은 사랑 고백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본문으로 미뤄 볼 때, 모세는 이방신의 제사장의 딸인 십보라와 결혼한 후, 저런 할례를 포함하여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가정 불화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왕'에서 묘사된 것처럼 십보라가 이스라엘 백성하고 같이 홍해를 건너고 미리암과 함께 얼싸안고 기뻐하다가 “Look at your people. They are free!” 같은 멋진 말로 엔딩을 장식했을 가능성은.. 유감스럽지만 대단히 희박하다. 오히려 십보라는 모세를 따라다니는 데 염증을 느끼고, 도로 친정으로 돌아갔다가 출애굽기 18장에서야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에서는 모세-십보라 부부가 파라오 앞에 나아가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 역시 완벽한 허구이다. 성경에 따르면 오히려 영화에서 믿음을 저버리고 모세에게 야유를 퍼붓는 사람으로 나오는 아론이 모세와 함께했으며, 그가 처음부터 모세의 대변인 노릇을 했다.
모세와 아론은 이집트에 재앙을 퍼붓기에 앞서 먼저 동족들 앞에서 표적을 행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민족을 구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인정을 받았다. “파라오님, 우리 민족 대표가 이집트를 향해 할 말이 있답니다. 잠시 좀 들어 보시죠.”

그러나 모세는 사실 파라오 앞에 서는 걸 극도로 꺼리고 두려워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대면했을 때도, 자기는 그 일 못 하겠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하나님을 불쾌하게 할 정도로 얼마나 뒤로 내뺐던가? 예전에 이집트에서 사고 친 것도 있고, 또 한때 내 집이었던 이집트를 상대로 적대적인 행위를...
나라도 하기 싫었겠다. 나이도 80이나 되고 나니, 젊었을 때의 그 혈기와 깡은 찾을 수 없었다. 모세는 그냥 목자로 살면서 손자 보면서 잔돈으로 애새끼들 과자나 사 주고 조용하게 살다 가고 싶었을 것이다.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대놓고 당당하게 “우리 백성을 종살이에서 풀어 주시오!”라고 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이집트 담화는 벌벌 떨면서 쥐꼬리 만하게...

“광야에서 종교 의식을 행하고 오게, 우리 민족에게 한 며칠간만 휴가를 주면 안 될까염? 안 그러면 우리 민족이(이집트가 아님!) 신님에게서 천벌을 받거든요. 유대인들이 죽으면 노예 노동력도 감소하니까 이집트의 국익에도 어차피 안 좋지..... 않겠습니까요?”


이런 애원, 탄원, 아니면 협상급이 되고 말았다.
'이왕'에서는 모세하고 형 람세스(현재의 파라오)가 극적으로 상봉해서 얼싸안는 장면도 나오지만, 성경에 그런 설정은 없으며,
파라오가 모세의 저런 연약함에 호소하는 간청에 귀를 기울였을 리도 없었다.
노예 주제에 웬 자기네 듣보잡 루저 민족신에게 종교 의식을 행하겠다니.. (이집트의 종교는 다신교적이다)
이것들이 군기 빠지고 살 만하니까 종교 타령이나 한다는 식으로 파라오는 알아들었다.

결국 제 1라운드에서 모세는 처절한 참패를 당했다. 자유가 찾아오기는커녕 파라오는 끄떡도 안 했고 오히려 노동 강도만 더욱 늘었다.
모세는 동족을 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손발리 오그라들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출 5:22-23)
그런데 이때 영화에서 또 등장하는 누나 미리암. 그녀는 특히 아론과 대비되어 완전 눈물나게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믿음의 여인으로 묘사된다. 이 점에 관해서는 모세의 누나가 아니라 거의 어머니 수준이다. 비록 성경에는 없는 대사이지만, 이런 캐릭터가 좀 있어야 영화의 감동이 살아나겠지. ㅎㅎ

Moses. Hear what I say. I have been a slave--all my life. And God has never answered my prayers until now.
God saved you from the river, he saved you in all your wanderings. Even now he saves you from the wrath of Pharaoh.
God will not abandon you. So don’t you abandon us.

“하나님은 너를 결코 버리지 않으셔. 그러니 너도 우릴 버리지 말아 줘!”

그리고 본격적으로 파라오를 굴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재앙이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The Plagues라는 뮤지컬이 나온다.

(글이 길어지니 이후 내용은 下에서 계속하겠다.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1/19 15:14 2011/01/19 15:14
,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6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452

친이스라엘이 살 길이다

1.
http://news.donga.com/Inter/3/02/20101123/32816154/1
이스라엘은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해 강력하게 비난했다.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외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은 `미친' 체제를 저지하고 쓰러 뜨려야 할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케 한다"면서 "그들의 무기 확산과 도발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중략) 이스라엘의 대표적 영자신문인 예루살렘 포스트는 이날 인터넷판에서 북한의 연평도 공격을 자세히 보도한 뒤 리베르만 장관의 성명을 톱기사로 전했다.

독자 여러분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우리와는 지리적으로 멀고 딱히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도 없는데, 괜히 반기독교 반유대주의 감정에 편승하여 안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나 모르겠다.
물론 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찾는 과정이 아무 마찰 없이 된 건 아니며, 그들 역시 무력의 오· 남용으로 필요 이상으로 이웃 나라에게 민폐 끼친 것도 있다(그게 없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북한 수준으로 국제법 어기고 깽판 부리고 무법천지 난동을 벌인 것도 아니며, 나름대로 국제적으로 승인 받고 합법적으로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많이 애썼다.

또한 오늘날의 미국은 어차피 옛날처럼 이스라엘 편만 일방적으로 들어 주는 나라도 이제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 위정자가 대북 정책 때문에 골치인 것만큼이나, 미국의 위정자는 이놈의 이스라엘 때문에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라고 한다. 원칙대로라면 이스라엘 편 들어 줘야 하는데 쪽수가 더 많은 아랍권 눈치도 안 살필 수는 없고.
이 글에서 이스라엘의 국제 정세나 외교 문제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크리스천으로서 구국의 일념으로 분명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첫째, 우리는 이스라엘을 고마워하고 본받아야할망정, 욕할 자격이라고는 정말 없는 처지에 있다.
둘째, 성경대로라면 우리는 이스라엘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단적인 예로, 국익을 위해서 요즘 형제 국가로 통하는 터키 이상으로 더 가깝게 지내야 한다.

2.
이스라엘은 대한민국과 비슷한 시기인(3개월 전) 1948년 5월에 정부가 수립됐다. 남한보다 영토가 더 좁고 인구도 더 적고 열악했다. 남한처럼 이북 정도가 아니라 가히 사방에 적들이 깔려 있었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자기네도 사정이 어렵고 대한민국과 딱히 친한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6 25 때 UN의 각종 회의에서 남한에게 유리한 편을 들어 줬으며, 한국에 의약품과 식량을 지원했다! 남한이 북한보다 더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정부인데도 북한의 불법 무력 도발에 의해 축출당할 위기에 처하게 됨을 알고부터이다. 원래 의도대로라면 이스라엘은 전투 병력까지도 파견해 줄 작정이었다고 한다.
(하긴, 그 당시엔 터키도 도와 줬고, 지난번에 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아이티 같은 나라도 남한을 도와 줬으니, 우리나라가 그 당시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가 실감이 간다.)

왜, 몇 년 전엔 김 충배 육사 교장의 편지라고 해서 정체불명의 ‘박빠성’(?) 글이 나돌았다. 기억하시는가? 거기 보면 앞부분에 “미국의 케네디 행정부는 박 정희 혁명 정부를 승인하지 않고 한국을 냉대했다” 같은 대목이 있다. 쿠데타를 일으켰지, 옛날에 남로당 경력까지 있지, 그래서 미국 정부가 박 정희에 대해서 처음엔 미덥잖게 여겼던 게 사실이며, 박 정희가 그 오명을 불식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민족일보 빨갱이 조작 사건 같은 걸 일으키기도 했다고 본인은 들었다.

그런데 이때에도 이스라엘은 은혜를 베푼다. 박 정희 정부를 국제적으로 승인했다. 미국과 그렇게도 짝짜꿍이 잘 맞는 나라가 한국을 인정해 줬으니 이게 박 정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겠는가? 게다가 이스라엘은 영농, 수자원, 안보 등 여러 방면에서 한국을 돕고,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는 노하우를 전수해 줬다. 단적인 예로 박통 시절에 한반도에 민둥산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20세기에 산림녹화 사업이 제일 성공한 걸로 손꼽히는 두 나라가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이라는 건 상식이지 않은가.

그러나 박통은 몇 년 못 가 이스라엘과의 우정을 저버렸다. 뭐, 그 심정은 이해한다. 그 시절에 중동으로 노동자 보내서 토목· 건축 사업 벌이고 외화 벌기 위해, 결국은 이스라엘 대신 아랍 편을 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석유 문제도 있다. 1970년대에 석유 파동은 얼마나 치명타였겠는지 생각해 보라.

박통 초기이던 1964년에 한국에 이스라엘 대사관이 개관하였으나, 훈훈하던 두 나라의 외교는 대한민국의 노골적인 친아랍 노선으로 인해 점점 막장으로 치달았다. 급기야 1978년에는 한국 정부의 냉대 하에 이스라엘 대사관이 철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6일 전쟁의 영웅인 이스라엘의 모세 다얀 장군--훗날 이스라엘의 외무장관이 됨--이, 이대로는 남한과의 외교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뭔가 대만과 중국 사이의 관계 같은 게 된 듯.
그 후 1979년 10월, 박통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런 얘기는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박까나 박빠 진영에서는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_-;;
폐쇄되었던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전 두환까지 거치고서 먼 훗날, 1992년에야 다시 문을 열었다.
솔직히 과거에 이스라엘이 우리를 도와 준 것만큼이나 우리나라가 이스라엘을 지금까지 도와 준 적이 있었나? 내 생각엔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권리로 이스라엘을 욕한단 말인가?

그런 마당에 이스라엘이 지난 연평도 무력 도발에 대해서 우리나라 편을 들고 북한을 맹비난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을 걔네들이 우리나라 위정자보다도 훨씬 더 속 시원하게 해 줬다. 물론 이스라엘은 북한과 사이가 좋은 나라들과 어차피 대체로 적대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북한더러 잘 쐈다고 지랄을 하는 몇몇 개념 없는 중국 짱깨들에 비해 쟤들이 얼마나 훌륭한가?

뭐, 이스라엘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병역기피자도 있고 별 희한한 일도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걔네들 특유의 애국심과 상무 정신(적에게 절대로 비굴하지 않고, 내가 적에게 당하면 반드시 수 배로 강경 보복..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도 역시 우리가 오히려 배워야 할 점인 것이다. 북한 성질 건드리지 말고 고분고분 무조건 평화밖에 모르는 사고방식으로는 일제 강점기 때 독립 운동도 할 필요 없고, 이 완용의 친일 논리도 합리화 가능할 것이다.

3.
잠시 딴 얘기를 좀 꺼내겠다.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이 얘기를 할 때 굉장히 말을 아껴야 하는 분야가 둘 있다.
첫째는 종말론 쪽이다. 특정 인물, 특정 과학 기술 내지 세상 정세에다가 함부로 말세니, 누가 적그리스도니, 666이니 재림이니 하는 말 갖다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 금기를 어긴 분별력 없는 크리스천들이 시한부 종말론 드립을 쳐서 망쳐 놓은 간증이 가히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이 마지막 때인 것은 틀림없지만 어느 타이밍에 휴거가 일어날지, 주님 다시 오시기 전에 북한 정권이 붕괴할지, 지금보다 얼마나 더 막장인 대통령이 정권을 잡을 때쯤에 세상이 끝날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Y2K 드립, EU 회원국과 요한계시록의 열 뿔 드립...;; 지금까지 그만치 예언이 빗나갔으면 이젠 좀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리고 둘째는 “저건 예수 잘 믿어서 복 받은 거다 / 안 믿어서 벌 받은 거다” ← 요런 부류의 말... 정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대해 그렇게 즉각 결정론적으로 반응하시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말 잘못 하면 정말로 불신자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정 떨어지게 만들고 하나님에 대해 오해를 하게 만든다.
무슨 대규모 재난이라도 발생했다 하면 걔네들이 우상 숭배하다 벌 받은 거라는 말도 안 되는 개드립을 치는 유명 목사가 국내엔 꼭 있는 거 같은데... 그건 누가 아프기만 하면 다 마귀 들려서 그런 거라고 갖다붙이는 무식한 부류들과 다를 바 없다.

예수 전혀 안 믿는 우상숭배 천국인 일본이 오늘날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부자 나라 축에 든다.
또한, 태풍이나 쓰나미로 부족이 몰살당한 미개 부족 중엔 선교사가 들어가서 나름 ‘복음화’가 돼 있던 부족도 있었다. 왜 그렇게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하냐 말이다.

그런데, 이런 두 가지 금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오늘날까지도 단정적으로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주제는 이스라엘, 유대인이다!
“저건 이스라엘을 괴롭혀서 벌 받은 거다,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서 복 받은 거다”
차라리 저건 오늘날에도 엄연히 유효하고 적용 가능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를 자기도 축복하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를 자기도 저주하겠다고 성경에 수차례 약속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창 12:2-3) 세상에 하나님이 존재하는 증거 중 하나가 이스라엘인 것이다.

미국의 경우 2001년의 9 11 테러도, 2005년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도 다 부시 대통령이 아랍 국가들을 옹호하고 이스라엘 땅을 빼앗아서 걔네들에게 넘겨줄 때 벌어진 비극이라고 풀이한 자료가 있다. 본인은 차라리 그런 자료에 훨씬 더 신뢰가 간다. 앞서 언급한 박 정희 정권의 몰락도 친아랍 노선과 함께 시작된 거라고 볼 수 있을까?

4.
이렇듯, 친이스라엘은 세상의 정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특히 우리나라는 은혜를 입었다는 역사적인 배경상, 이스라엘을 배척할 명분조차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너무 힘들어서인지 지금의 소위 ‘장로 대통령’마저도 과거의 박 정희 같은 불교 신자 대통령과 별 차이가 없이, 이스라엘보다는 두바이, 아랍 에미리트 같은 데에 훨씬 더 관심이 가 있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친이스라엘 노선이야말로 나라가 잘 되는 길인데 말이다.

다음은, 이스라엘이 6 25 당시의 우리나라 외에도 각종 재난 때 다른 나라들을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지를 열거한 자료이다. 월남전 시절에는 다른 나라에서 다 거절한 베트남 보트 난민들까지도 이스라엘이 인도적 차원에서 받아 줬다고 한다;;;
이외에 저기는 사이트 첫 화면에도 이스라엘에 대해서 여러 오해를 풀 수 있는 자료가 많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읽어보기 바란다.
http://www.conceptwizard.com/info.html

전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가 횡행하고,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100가지 잘못하는 것보다 이스라엘이 이따금씩 과격 대응으로 한두 개 좀 잘못하는 것에만 예의주시하는 이유에는.. 영적인 배경이 있다는 게 성경의 설명이다. “마귀가 유대인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유대인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미친 짓, 바보짓이다. 반유대주의는 그 어떤 명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에게서 난 생각이 절대로 아니며, 기독교가 지지하는 교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아니, 예수님이 죽으시지 않았으면 우리 죄값이 어떻게 사해질 수 있었겠는가? 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짤방은 영화 <회복>(김 종철 감독)의 한 장면. 시 122:6(Pray for the peace of Jerusalem)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11 08:48 2010/12/11 08:48
,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10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428

독립영화 <회복>

※ 요약
 
1월 17일 오전 예배 때 우리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소개 받은 독립영화 <회복>(김종철 감독)을 그 날 저녁에 청년부 명의로 단체 관람을 했다. (뭐 그래 봤자 본인 포함해 총 5인이었지만..)
 
정말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내용이었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런 기독교 컨텐츠가 외국물 번역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으며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일제 강점기 교회 수난사라든가 북한/조선족 지하 교회 이야기처럼 민족주의 정서(?)가 전혀 없이도 이렇게 감명 깊은 영상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스라엘의 문자적 회복을 믿고 예수님의 전천년 재림을 사모하는 바이블 빌리버라면 누구라도 볼 가치가 있음을 본인의 이름을 걸고 추천하는 바이다.
 
이 정도의 감격은, 본인이 KJV 초창기에 읽은 바 있는 <에큐메니즘의 이상과 우상>(구영재 저) 이래로 처음인 것 같다. 이것도 번역서가 아닌 국내 저서라는 게 믿기 어려운 수준인 책인데, 그 책이 다루는 분야는 유럽의 종교 역사 내지 국제 정세인 반면, 저 영화는 이스라엘이라는 점이 차이이다.
 
※ 첫인상
 
목사님께서 처음에 이 영화에 대해 언급하셨을 때 본인은,
뭐 또 할리우드에서 쉰들러리스트라든가 아니면 비슷한 급의 시사/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나.. 유대인 관련 음모론은 다루나.. 그 정도로 짐작만 했을 뿐, 정보가 없었다.
 
제목이 '회복'이라고 하기에, 주찬양 선교단 극렬 매니아인 본인의 머리에 바로 뜨는 인덱싱 결과는, 그저 10집 앨범 <회복>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고, 이 <회복>은 놀랍게도 국내에서 제작된 독립영화이다. 감독은 수십 회의 이스라엘 방문 경력을 지닌 이스라엘 전문가였다.
관람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크리스천들이고 교회에서 추천을 받아서 보거나 아니면 아예 단체 관람을 하는 경우였다.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면 영화 상영 전에 거의 10~15분은 온갖 광고들이 나오는데 역시 독립 영화이다 보니 그런 게 전혀 없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본인은 예전엔 영화관의 내부 모습이 철도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항과 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상영 도중에 일부 사람들이 나가거나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정차역). 들어갈 때 사람이 표를 검사한다는 것, 처음에 비상시 대처 요령이 방송된다는 것 등이 공항 내지 비행기 여행과 매우 비슷하다. ^^ 역시 경험이 안목을 키우는 것 같다.
 
※ 영화 내용
 
예수님을 믿는 어느 유대인 가정이 괴한으로부터 폭탄 테러를 당하는 얘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런 짓은 90% 이상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치부하기 쉬운데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
폭발 현장을 분석한 결과 이것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를 전역한 사람의 소행으로 판명된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자까지 군대로 징집해야 할 정도로 국방이 위태롭다.
그런데 서로 그렇게도 사이가 나쁜 이스라엘과 인근 팔레스타인 국가들은 그래도 일말의 공통분모를 공유하는 게 있다. 바로 예수님을 안 믿으며, 기독교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진정한 우군인 크리스천들에 대해서 온갖 나쁜 감정을 갖고 있고 오히려 적군과 그런 사이라니!
마치 빌라도와 헤롯이 전에는 원수였다가 예수님으로 인해 친구가 되었듯이(눅 23:12), 이들 사이의 불의한 동맹은 적그리스도에게 낚여서 그를 메시야로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대다수의 불신자들이 천주교와 기독교를 분간할 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천주교니 개신교 나부랭이 따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저 구교 신교 할 것 없이 자신들을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정죄하고 괴롭히고, 십자가 내밀면서 못살게 군 코쟁이 원수일 뿐이다. 까놓고 말해 그들은 히틀러도 기독교의 교리대로 유대인들을 학살했다고 믿는다. 그러니 기독교 얼마나 싫어하겠는가?
 
이스라엘 내부에서 정통 유대교는 국교로 강제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그렇게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정통 율법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들 중 일부가 그렇다는 거지, 이스라엘 내부에도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자유주의자 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나라 법에 의해서 박해 내지 벌을 받는 건 아니다. 단지 왕따가 되고 그런 유대교 신봉자들로부터 사회적 배척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배척하는 짓이 너무 오버이다 싶으면 이스라엘 경찰이 출동해서 제지도 하긴 하지만.. 그들도 이런 일에서는 좀 손 떼고 싶어한다.
 
배척을 어느 정도 받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 얼굴을 사진 찍어 간 후 전단지를 마을에다 뿌린다. 이 사람은 요주의 인물이고 '당신들을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불순분자이니 조심하라는 내용으로 말이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집 앞에서 농성도 하고, "2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 "당신네 종교 때문에 히틀러는 지금도 외롭지 않을 거다" 같은 폭언 악담도 한다.
심지어는 교회 앞에서 죽치고 앉아 농성을 하거나 예배 진행을 못 하게 난동을 부리고, 예배당을 드나드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려고 1인 시위, 침묵 시위 별 걸 다 하더라. 그 중에 엄청 과격한 사람들은 아까처럼 폭탄 배달까지..
 
사람이 인간의 육신을 자극하는 종교 하나에 심취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느꼈다.
새까만 정장과 모자에 긴 턱수염을 한 랍비 아저씨가 평소에는 그래도 일말의 멋이 있어 보였는데.. 저러는 모습을 보니까 싸이코처럼 보였다. -_-;;
유대교 회당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는데, 거기는 오히려 천주교 성당과 분위기가 비슷해 보였다. 기도문 암송하고, 남녀 할 것 없이 머리에 면사포 뒤집어쓰고..
 
그들은 진짜로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냥 2천 년 전에 죽은 사람 내지, 기존 유대교 체계에 반발하여 새로운 종교를 만든 이단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기네 나름대로 메시야의 조건을 규정해 놓고 있는데, 지금까지 몇몇 랍비는 그 조건 중의 일부만을 충족한 경우가 있으나 완전한 메시야는 아직 안 왔다는 식이다.
신약 성경도 내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다. 유대인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는 구약 성경뿐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독교와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유대교 환경에서, 그것도 2, 30년 전만 해도 전국에서 정말 몇백 명에 불과하던 "메시야닉 쥬" --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인 -- 가 지금은 1만 4천여 명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로마서 11장 내용이 진짜 자기네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유대인의 인터뷰를 보게 될 줄이야! 이런 사람들의 영향으로 대환란 때 14만 4천 명의 유대인 환란 성도가 준비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전도지 나눠 주고, 도로변에 현수막을 펼치면서 정말 과감하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방해도 많이 받았다. 예수님의 승천 후, 복음은 지금까지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온 거라 한다.
유럽은 이제 교회에 노인들밖에 안 남았고 오히려 아시아에서 역선교를 해 온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던 한국도 100년 전의 평양 대부흥은 이제 안드로메다로 갔고, 크리스천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는 중에 정작 예수님을 배척했던 이스라엘이 꿈틀꿈틀 각성 중이다. 정말 이제 이방인 경륜은 끝이 얼마 안 남았다!
 
유대인의 실족과 실패만으로도 이방인들에게 얼마나 큰 유익을 끼쳤는데, 하물며 이들이 나서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으로부터 받은 복을 세상으로 나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밝아지고 그들은 일등 선민 노릇을 하게 될까? (롬 11:12)
메시야닉 쥬들은.. 자기 동족이 지금까지 이방인들로부터 당한 설움을 이제 자기들한테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며 동족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은 자기를 박해하는 게 신명기 13장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는 신명기 13장이 아니라 신명기 18:15가 적용된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역시 유대인들은 지금도 표적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민족인가 보다. 예수님을 좀 보여달라고 했더니 꿈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체험으로 표적을 보고 곧장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영화 중에 줄을 잇는다. 영화 앞부분에서 폭탄 테러를 당한 그 사람도 정말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았다.
물론 이들이 다 바르게 믿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영화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예수 믿고 구원은 받았는데 아직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여전히 사도행전 15장처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예수님을 배출하였으나 수천 년을 예수님 없이 지내 온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새로운 흐름!
모세오경을 골수로 암기하면서 자란 그들이 스스로 홍해가 갈라진 기적이나 여리고 성이 무너진 기적보다 더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유대인의 덕을 본 이방인 중 하나로서, 본인에게 큰 도전과 유익이 되는 다큐멘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국민 대다수가 영어 무진장 잘 한다는 건 엄청 부러웠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이냐 하는 말싸움까지 유창한 영어로... =_=;;
영화 중에는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데, 원래 오리지널 구절은 이렇다.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 122:6)

이상 이것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20 09:44 2010/01/20 09:44
,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7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52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870705
Today:
1903
Yesterday:
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