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에도 한번 이런 비유를 꺼낸 적이 있었는데.. 라면을 소프트웨어 플랫폼에다 비유하자면 봉지 라면은 PC, 사발면은 태블릿, 컵라면은 스마트폰 정도에 대응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 플랫폼에서 잘나가던 라면이 다른 플랫폼으로 종종 포팅되곤 한다(카카오톡 PC 버전, 오피스 안드로이드 버전처럼). 비록 둘이 맛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식당에서 주문해서 먹는 라면은 집 밖의 거대한 다른 가게에 들어가서(서버 접속) 먹는 것이니 서버 사이드 웹 애플리케이션일 것이며..
분식점 같은 식당 납품을 목적으로 라면 제조사가 면이나 스프만을 대량으로 따로 파는 건 '엔진' 같은 미들웨어 컴포넌트 내지 라이브러리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겠다.

2.
스마트폰은 컴퓨터와 달리.. (1)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4시간 켜져 있고, (2) 열받고 뜨거워질지언정 그래도 팬 돌아가는 소리가 안 나고, (3) 보조 기억장치가 있지만 하드디스크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는 전혀 없다.
그래서 (2)와 (3)을 종합하면 스마트폰은 아주 조용하다. 게다가 얇기까지 하다.
어찌 보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컴퓨터가 존재 가능해졌는지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화면은 옛날 구닥다리 액정 같은 단색이 아니라, 고해상도 천연색 그래픽을 찍어 낸다. CPU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나 메모리까지 총체적으로 왕창 발전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옛날에는 뭔가 영상이 표시되는 기계 자체가 굉장히 미래 하이테크의 상징이었다. 집 현관을 표시해 주는 인터폰이나 자동차 내비 같은 거 말이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모니터는 아날로그 신호에 둥그런 브라운관 형태로나마 진작부터 천연색을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들고 다닐 수 있는 소형 텔레비전이나 인터폰, CCTV 같은 건 원가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의외로 흑백 버전이 2000년대까지 쓰였다. 본인은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며 집을 옮긴 적이 있지만, 컬러 화면이 나오는 인터폰 실물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구경을 못 해 봤다.

그런데 어느 샌가 갑자기 CCTV의 화질이 급격히 향상되고 차량들이 개나 소나 내비에 블랙박스까지 달고 다니면서 블랙박스에 찍힌 사고 영상만 모아서 보여 주는 TV 프로가 큰 인기를 모을 정도가 됐다. 사진과 동영상을 즉각 생성해서 남들 보는 사이버 공간에 용량과 트래픽 걱정 없이 올리는 게 너무 금방, 쉽게 가능해졌다. 이건 1980년대의 SF물들이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 너무 엄청난 변화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컴퓨터 자체도.. 이젠 스마트폰 내부에서 가상 머신을 돌려서 도스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의 Windows 9x를 구동할 수도 있게 됐다. 머리만 비교하면 스마트폰의 CPU가 일반 데스크톱 PC의 CPU와도 성능이 호각이 됐으며, 단지 PC에 비해 부족한 건 입력 장치와 하드디스크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발열이나 전원의 한계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모바일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PC에서 x86 계열 CPU + Windows 계열 운영체제를 총칭하는 '윈텔' 독점 구도도 상당 부분 흔들리게 됐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시장 수요를 창출해 냈으니까. x86은 30년을 넘게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하위 호환성을 자랑하지만, 그 때문에 저전력 모바일에서 빠릿빠릿 움직이는 용도로는 상당히 부적합한 CPU가 돼 버려서 말이다. Windows도 마찬가지다.

다만, 단순히 이미 만들어진 정보들을 받아 보기만 하는 인터넷 단말기 이상으로, 뭔가 글쓰기나 코딩 같은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스마트폰은 문자 입력이 너무 불편한 게 흠이다. 구닥다리 타자기의 인터페이스를 답습하고 있지만 그래도 문자 입력 분야에서 키보드만 한 가성비를 제공하는 물건은 아직까지 없다.

예전에 그나마 전화기 버튼이라도 있던 시절에는 3*4 배열이라는 틀은 고정돼 있었는데..
요즘 스마트폰은 화면의 절대적인 크기나 종횡비까지 전부 그냥 흰 도화지 수준인 거 같다.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글쇠 scheme은 어떤 형태일까? 블루 오션이다 보니 먼저 연구해서 표준 틀을 정착시키는 사람이 그냥 장땡이 돼서 혼자 다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난 잘 모르겠다. 난 한글 입력 쪽은 글쇠배열이 아니라 일단은 근본 메커니즘 연구가 주 관심 분야인지라..

글쇠 수가 너무 많으면 안 그래도 작은 화면에 너무 작은 글쇠 버튼을 잘못 찍어서 오타를 내기 쉽고, 반대로 글쇠 수가 너무 적으면 타수가 늘어나고 이것저것 모드를 바꾸는 빈도가 잦아져서 그것대로 또 입력이 불편해진다.
구글 단모음을 한동안 써 보다가 불편해서 다시 나랏글로 돌아왔다. ㅎ, ㅔ 같은 자모를 한 번에 바로 입력할 수 있어서 편한 것보다, 오타가 나서 불편한 게 더 크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나랏글을 거의 2004년부터 10년 넘게 쓰기도 했고 말이다.

3.
스마트폰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오늘날과 같은 사진· 동영상 업로드 문화를 만들어 낸 건 두 말할 나위 없이 '디지털 카메라' 기능까지 전화기 안에 쏙 들어간 덕분에 가능했다.
오늘날 폰의 카메라가 단순 화소수와 색감만 따지자면 어지간한 보급형 디카의 성능을 다 따라잡고도 남는다. 하지만 폰 카메라가 전용 디지털 카메라를 결코 따라잡지 못하는 게 크게 둘 있는데, (1) 줌과 (2) 부팅 속도이다.

근본적으로 카메라의 형태로 적합하게 설계되지 않은 그 얇은 몸체에다 두꺼운 다기능 렌즈까지 우겨넣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폰 카메라는 줌 기능이 전문적인 카메라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시야각도 한계를 받기 때문에 이걸 극복하려면 별도의 파노라마 합성 앱 같은 것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한 디지털 카메라는 사진을 찍을 때에만 잠시 켰다가 끄는 걸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간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밖에서 사진을 몇백 장씩 산발적으로 찍을 일이 있을 때 전력 소모 부담이 훨씬 덜하다. 부팅도 아예 범용 컴퓨터인 스마트폰보다야 비교할 수 없이 더 빨리 되며, 전원을 켜자마자 거의 곧장 촬영 ready 상태가 된다. 그 반면 스마트폰은 이런 특성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하긴, 피처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스마트폰에 온갖 복잡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될수록 사용자가 알게 모르게 치르는 대가로는 배터리 시간이라든가 폰의 물리적 내구성 같은 게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스마트폰도 켠 직후에 수 초 이내로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PC에 준하는 급의 부팅이 필요하고 엄청난 양의 초기화와 캐싱, pre-fetching을 해 줘야 쓸 수 있는 물건이 되고 있다. 예전에 PDA나 공학용 계산기가 그렇게 부팅 시간이 긴 물건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부팅이 존재하고 악성 코드 걱정을 해야 하는 기기는 다른 전자 기기와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훨씬 더 능동적인 물건이다.

한때는 이런 작은 화면에 찍히는 글자는 초간단 비트맵 글꼴 기반인 게 당연시되었는데 그게 힌팅까지 적용된 미려한 윤곽선 글꼴로 바뀌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예전에 비해 그야말로 엄청난 부담이 추가된 거나 다름없다. 윤곽선 글꼴은 캐싱 없이는 도저히 쓸 물건이 못 되며, 캐싱이라는 건 굉장한 양의 메모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같은 일을 해도 예전보다 메모리와 CPU를 훨씬 더 많이 요구하는 이유는 유지 관리 차원에서의 범용성과 추상성을 높인 대신에 오버헤드가 더 커지고 성능 희생을 감수한 게 매우 크게 작용한다(가상 머신, 가상 함수, 등등등등). 스마트폰의 전력 소비나 부팅 속도도 그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05 08:37 2016/11/05 08:37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90

오늘날이야 우리들의 눈을 현혹하는 온갖 사진과 짤방, 동영상들이 인터넷을 통해 컴퓨터로 현기증 날 정도로 범람하고 터져 나가는 시대이다.
하지만 불과 2~30년 전만 해도 PC는 글이 아닌 그림을 처리하기에는 용량과 성능이 꽤 버거운 물건이었다. 컴퓨터로 뭔가 실사 사진 자체를 구해다 보기가 쉽지 않았다. PC 통신으로 인기 연예인 사진을 단 한 장 다운로드 해서 보는 것조차도 단단히 작정하고 기다릴 준비를 하고서 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도 출처는 종이 화보나 필름 사진 스캔, 또는 아날로그 TV 화면 캡처였다..

21세기에 태어난 애들이 이런 얘기를 듣는 건.. 우리 세대가 부모님에게서 1950, 60년대에 나라가 얼마나 폐허였고 못살았는지를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아아~ 나도 이런 식으로 올드 타이머 꼰대의 대열에 합류하는구나..;;
그래도 난 옛날 컴퓨터 환경 회상이 좋다. 그러니 얘기를 계속하겠다.

그 시절엔 bmp, pcx를 넘어 gif 정도만 돼도 디코딩이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아래아한글 도스용에서 그림을 삽입해 보면 gif는 유독 렌더링이 더뎠다. 그런데 하물며 jpg는... 전용 뷰어가 필요하고 386에 램 얼마 이상, 부동소수점 코프로세서는 필수 이런 걸 요구하는 엄청난 포맷이었다. png 역시 그 당시로서는 신생인 만만찮게 무거운 포맷이었고.

이런 이유로 인해 도스에서 그래픽 뷰어는 나름 단순 텍스트/헥스 뷰어 이상의 유니크함과 전문성(?)을 지녔고 또 그래픽 에디터와는 별개의 입지를 가진 프로그램이었다. GUI 운영체제의 셸이 제공하는 기본 중의 기본, 필수 중의 필수 기능이 그때는 그렇게나 특별한 기능이었다. 도스까지 갈 것도 없이 무려 Windows 95 시절, 웹 브라우저 같은 게 없던 때엔 운영체제 차원에서 jpg 파일을 바로 볼 수 있지 않았다. 그림판은 bmp/pcx 전용이었으니까.;;

그래픽 뷰어는 완전 상업용 제품이라기보다는 셰어웨어로 만들기에 좋은 소재였다. 디렉터리 이동 + 파일 리스트 선택 기능을 구현한 뒤, 사용자가 엔터를 누르면 그 그림을 표시해 주는 게 기본 형태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좀 단조로우니 그래픽 뷰어에는 여러 장의 그림을 슬라이드 쇼처럼 보여주는 기능이 응당 추가됐다. 현란한 화면 전환 효과는 덤이고. 요즘 같으면 화면 보호기와 역할이 비슷해졌다.

비주얼 쪽 말고 다른 방면으로는.. 파일 관리 기능이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단순히 뷰어 이상으로 많은 그림 파일들을 일괄적으로 포맷을 변환하고 크기를 보정하고 효과를 주는 기능이 들어갔다. 이건 전문적인 그래픽 에디터와도 기능이 겹치는 구석이 있지만, 이쪽은 드로잉 기능이 없으며 한 파일이 아니라 여러 파일들에 대한 일괄 편집에 더 최적화되었다.
이런 분야에 속하는 프로그램으로 본인은 현재까지 다음과 같은 제품들을 기억하고 있다.

1. Graphic Workshop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 컴퓨터 잡지/서적을 통해 알게 됐다. 1990년대 초인 꽤 옛날부터 개발되어 온 프로그램이며, 내 기억이 맞다면 GIF를 굉장히 일찍부터 지원해 온 걸로 유명했다.
스크린샷을 보면 알 수 있듯, 전반적으로 셸은 파란 배경의 단순한 텍스트 모드에서 동작했고 단순 표시뿐만 아니라 포맷 변환, 크기 조절 같은 그림 파일 관리 기능도 갖추고 있었다.

1989년에 처음 개발됐는데 91년에 벌써 버전이 6을 넘어간 건 도대체 개발과 버전업이 어떻게 돼 왔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MS Word는 다른 제품과 번호를 맞추기 위해서 2에서 바로 6으로 넘어가긴 했다만..;;
개발사인 Alchemy Mindworks라는 회사는 지금도 살아 있으며, 이 프로그램은 Windows용으로 계속 개발 중이다.

2. SEA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픽 뷰어 중에서는 느낌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단, 왓콤 C/C++ 32비트 에디션으로 만들어진 덕분에, 게임도 아닌 것이 첫 실행 때 DOS/4GW(도스 익스텐더) 로고가 떴다.
성능면에서는 jpg 파일의 디코딩이 경쟁 프로그램들 중 가장 빠르다고 자처했다. 그림뿐만 아니라 소리 파일 재생이 됐으며, 동영상도 AVI 중에 1990년대 중반 런렝쓰 정도의 간단한 방식으로 압축 된 건 바로 재생 가능했다.

스크린샷을 보면 알 수 있듯 일괄 변환과 슬라이드 쇼 기능 정도는 물론 갖추고 있었으며,
이 모든 것에 더해서 전반적인 GUI 껍데기도 NextStep 운영체제를 흉내 낸 듯한(바탕에 검정 제목 표시줄) 상당한 고퀄이었다.
여러 모로 인상이 좋고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잘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비등록 셰어웨어 버전도 첫 실행 때 '등록 해 주세요. press any key'가 뜨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제약이 없어서 상당한 대인배이기까지 했다.

3. ACDSee

운영체제에 gif/jpg/png급 그림 파일을 보는 기능이 자체적으로 없던 Windows 95~98/2000 시절에는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유용하게 썼다. 이름이 똑같이 '씨'인데 앞의 도스용 프로그램은 sea이고 요 프로그램은 see이다.
얘도 한때는 내가 운영체제를 새로 설치한 뒤에 MDIR만큼이나 곧장 설치하는 필수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굉장히 유용하게 썼다. SEA의 Windows 버전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해당 기능을 운영체제가 흡수한 뒤에는 정말 자연스럽게 존재감이 싹 없어져 버렸다.

그 첫 신호탄은 Windows에 IE 웹브라우저가 포함돼 들어가면서 기본적인 그래픽 뷰어 문제는 사실상 제공되기 시작한 사건이다.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게 글과 그림으로 이뤄져 있으며 웹브라우저는 그 자체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은 아니고 훌륭한 그래픽 뷰어였기 때문이다. 단, IE는 옆 파일을 바로 열람하는 기능조차 없고 진짜 보는 것 하나만 가능하기 때문에 전문 뷰어/슬라이드 쇼 프로그램이 여전히 존재 의미가 있었다.

한 디렉터리 안에 있는 그림 파일들을 IE 창에서 쭈욱 열람하기 위해서 그 디렉터리를 기준으로 <img src="...."/> 태그를 쭈욱 나열하는 html 파일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을 짜서 개인적으로 활용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이건 썸네일만 읽어들이는 게 아니라 파일들을 몽땅 한 페이지에다 읽어들이는 것이니 성능면에서는 좀 안습한 짓이긴 하다.

그리고 둘째 확인사살은 Windows XP이다. 얘부터는 탐색기 내부의 파일 리스트에서 그림 썸네일을 보는 편의 기능이 크게 강화되었으며, 그럭저럭 가볍고 괜찮은  그래픽 뷰어까지 내장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별도의 싸제 그래픽 뷰어 프로그램에 대한 필요는 거의 사라졌다. 이런 이유로 인해 기존의 그래픽 뷰어들은 생존을 위해서 포토샵 같은 이미지 보정 기능을 더 강화한다거나 디지털 카메라 사진 관리 같은 더 차별화되고 전문적인 영역으로 넘어갔으며, 내 기억 속에는 현업에서 다들 물러나고 추억의 영역만 남게 되었다.

한때는 Paint Shop Pro에 내장돼 있는 Browse 기능도 유용하게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MS Office에서도 2003부터 Picture Manager라는 유틸리티가 생겨 있다. 예전에는 희귀했던 기능들이 지금은 다 기본으로 내장되고 대중화가 된 것이다.
단, Windows XP의 기본 그래픽 뷰어는 애니메이션 GIF를 재생하는 것까지도 지원했는데 Vista 이후부터는 그 기능은 없어졌다. 왜 빠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여기까지가 그래픽 뷰어 프로그램에 대해 본인이 갖고 있는 추억이다.
하긴, 음악을 듣는 것도 한때 꽤 먼 옛날엔 거원 제트오디오, WinAmp 같은 프로그램을 따로 썼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그냥 WMP만 쓰지 다른 건 안 쓰게 됐다.
그래도 동영상은 WMP가 코덱과 자막 등 부족한 구석이 많이 있어서 팟/곰 같은 제3자 프로그램이 여전히 살아 있다. 내가 알기로 마소에서 WMP도 거의 IE11만큼이나 이제 더 만들 게 없는지 별로 육성은 안 하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5/16 08:32 2016/05/16 08:32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27

문자· 문서를 처리하는 기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계식 타자기가 발명된 뒤 나중에는 전자식 타자기가 만들어지고, 그게 더 나중에는 컴퓨터가 달린 휴대용 워드 프로세서 기기 형태로 발전했다.

그 뒤 특정 장치에 구애받지 않고 범용 컴퓨터에서 동작하는 워드 프로세서 소프트웨어도 개발되긴 했지만 이 역시 특정 컴퓨터 내지 프린터 번들의 성격이 강했다. 아무래도 워드 문서의 최종 목적지는 인쇄였던지라 프린터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윤곽선 글꼴이 없었으니 글꼴부터가 애초부터 프린터의 해상도에 따라 도트판/레이저판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척박한 여건에서 옛날 도스 시절에 '한글'을 처리할 수 있는 워드 프로세서가 몇몇 컴퓨터 선구자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되었던 도스용 한글 워드 프로세서로 제대로 살아남은 건 아래아한글밖에 없다.
관공서에서 많이 쓰였던 '하나' 내지, 삼보 컴퓨터 번들로 제공되었던 '보석글'(엄밀히 말하면 순수 국산 프로그램은 아님)은 그래픽 기반이 아니었기 때문에 편집 중에 각종 속성들은 태그 부호로 표시되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0. 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5년까지 금성이 아닌 LG 소프트웨어라는 브랜드로도 생각보다 오랫동안 개발됐다. 95년이면 아래아한글은 이미 Windows용까지 나왔을 정도였으니 시대에 너무 뒤쳐지긴 했다. 물론 금성/LG 소프트웨어에서도 그 시기에 다른 팀을 꾸려서 Windows용 '윈워드'라는 제품을 개발했으며 이걸 2.0까지도 만들긴 했지만... 더 오래는 못 갔다.

‘하나’도 아래아한글처럼 문서 확장자가 hwp였다. 하지만 둘은 동일한 포맷은 물론 아니었다. 아래아한글이 하나 문서를 읽거나 쓰는 건 ‘공용(공통) 파일’이라는 이름으로 최소한 아래아한글 2.5나 3.0 등 도스용 에디션의 막바지 시절에야 추가됐다. 자기 hwp와 구분을 위해 확장자는 일부러 kwp라고 했다.

하나와 아래아한글 모두 관공서에서 사랑받은 프로그램답지 않게 한때 보안이 좀 허술했다. 하나의 경우 암호를 걸어서 저장해도 암호가 문서 파일의 헤더에 평문으로 버젓이 저장되었는지 군대에서 이렇게 암호를 뚝딱 풀어서 중대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는 분의 무용담이 전해진다.

한편, 1994년경엔 아래아한글 2.1 (2.1과 2.5 공용) 파일 포맷의 암호도 어느 서울대 출신의 천재 해커에 의해 뚫려서 화제가 됐는데..
이건 이적행위 증거를 찾으려고 지금의 국정원, 당시의 안기부에서 작정을 하고 해커를 고용해서 뚫은 것이었다고 한다. 개발사인 한컴이 이적행위를 했다는 건 물론 아니고, 사용자 중에 불온문서를 만든 사람이 있었다는 뜻.
단순한 오덕질이나 사적 이익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 그리고 또한 단순히 한 특정 문서의 암호만 brute force 방식으로 대입해서 알아낸 게 아니라 전반적인 암호화 알고리즘 자체를 파악하고 예측하는 데 성공해 버렸다는 점이 무척 놀랍다.

그 당시 한컴은 2의 32승 운운하면서 “암호를 걸었던 사람이 암호를 잊어버리면 우리조차도 암호를 풀 수 없다. 암호를 뚫으려면 13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언론 보도까지 내면서 아주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3.0 버전에서는 즉시 암호화 알고리즘을 변경해야 했다.

그럼 다음부터는 자체한글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된 프로그램 얘기를 하겠다.
본인은 오래 전에 윤곽선 글꼴로 한글을 찍는 기능이 어떤 형태로든 있었던 도스용 프로그램을 주목하여 몇 가지 예를 든 적이 있다.
아래아한글 2.x를 제외하면 그래픽 에디터 내지 배너 프로그램이 걸려들곤 했는데, 그것들 말고 아래아한글과 비슷한 급의 상업용 워드 프로세서로는 다음 두 프로그램이 있다. 단, 본인은 어렸을 때 이들 프로그램을 직접 써 보지는 못했다.

1. 사임당

난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5만원권 지폐를 신권 형태로 첫 발행했을 때 이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지폐에 들어간 모델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써 본 적도 없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그렇게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임당은 윤곽선 글꼴, 위지윅, 컬러 지원, 그래픽 처리 등의 기술적인 면에서는 아래아한글 2.x 초반대 버전보다 더 뛰어나면 뛰어나지 절대로 못하지는 않았던 매우 우수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기능들은 따지고 보면 오히려 아래아한글이 도입 타이밍이 더 늦거나 전문용에만 오랫동안 봉인돼 있었다. GUI만 봐도 뭔가 비범한 구석이 느껴지지 않는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기 '무른연모'라는 글자를 보아하니 휴먼샘체/팸체(안상수체는 아님) 같은 한글 가변폭 글꼴도 잘 지원하고 있었다.
사임당은 분명 시대를 앞서갔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비싼 가격과 강경한 복제 방지 정책 때문에 그리 많이 보급은 못 됐으며 아래아한글을 실질적으로 위협하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사임당의 개발사인 한컴퓨터 연구소/주식회사도 오늘날의 한글과컴퓨터 못지않은 워드 프로세서 개발 전문 기업이었다. 예전부터 사임당의 전신인 '한글 2000'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사임당 말고도 저가 보급형 프로그램인 '쪽박사, 글박사' 같은 프로그램을 따로 개발했다. 글박사의 경우 본인도 초딩 시절에 컴퓨터 잡지에 소개된 걸 본 기억이 있다. 무려 1992년에! 하지만 이 역시 실물을 직접 써 보지는 못했다.

사임당, 글박사 등의 스크린샷을 보면 저기서 만든 워드 프로세서들은 전통적으로 세로획도 1픽셀인 고딕 계열 글꼴을 UI 표시용 한글 글꼴로 써 왔다. 세로획이 2픽셀인 명조 계열 글꼴을 사용한 아래아한글과는 대조적이다.

2. 21세기 워드

아래아한글과 사임당으로도 모자라서 도스에서 한글 윤곽선 글꼴을 지원했던 그래픽 워드 프로세서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은 알집과 카발(온라인 게임)로 유명한 그 회사가 먼 옛날 초창기에 만들었던 제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인은 실물을 써 보지는 못했지만 컴퓨터 잡지에서 광고를 한 건 봤다. 글꼴을 가지고 대놓고 아래아한글을 디스하고 있었다.
모 제품은 가격이 8만 8천원이나 하는데도 글꼴이 꼴랑 다 깨지는 비트맵 명조로밖에 안 나오는 반면,
우리 21세기 워드는 그거 거의 반값으로도 아주 미려한 윤곽선 글꼴 신명조가 나온다고...;;

디스 당한 모 제품은 뭔지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 돼 있지만, 누가 봐도 아래아한글 2.0이던가 2.1의 일반용인 건 뻔한 노릇이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아래아한글도 2.5 버전에 와서야 일반용/전문용 구분을 없애고 16비트 컴퓨터에서도 컬러와 윤곽선 글꼴을 실현시켰지만.. 때가 좀 늦은 조치였다.

21세기 워드는 글자 크기 조절과 윤곽선 글꼴을 빼면 나머지 워드로서의 기능은 아래아한글 1.5x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화면을 딱 봐도 색상이나 글꼴은 아래아한글 1.5x를 대놓고 오마주한 것 같지 않은가? ㅎㅎ
단, 한글의 비트맵 글꼴 명조체는 아래아한글 1.5x가 사용하던 그 명조와는 다르다. 아래아한글은 custom 3차원 조합 테이블을 사용한 약간 더 정교한 글꼴인 반면, 21세기는 그냥 그 당시에 널리 통용되던 초중종 8*4*4벌 도깨비 조합 규칙으로 구현된 명조이다.

어떻게 아냐고? 다 방법이 있다.
도깨비 조합형은 세로줄형 모음에서 받침 ㄴ일 때와 이외의 다른 모음일 때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편'(집)일 때와 (입)'력'일 때 ㅕ가 길이가 똑같아서 받침 ㄴ일 때 아래 공간이 약간 허해 보인다.
그 반면, 지금 <날개셋> 편집기의 '바탕'으로 채용돼 있는 아래아한글의 명조는 받침 ㄴ일 때 세로 모음들이 딱 1픽셀 더 길어서 아주 조금 더 균형이 잡혀 보인다. 이런 작은 차이가 존재한다.

사소한 글꼴 디테일 얘기는 그렇고.
그 당시 이스트소프트는 파릇파릇한 공대생 몇 명이 갓 창업한 벤처/스타트업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기술과 영업 역량에 한계가 있었다. 물론 그 여건에서 천재 프로그래머 몇 명이 이 정도를 뚝딱 만든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건 맞지만, 그런 몇 가지 차별화 요소만 갖고 아래아한글이라는 기득권 아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1세기 워드는 사임당 정도의 엘리트주의로 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망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걸 계기로 이스트의 창립자분은 뭔가 깨달은 게 있었는지, "그냥 기술적으로 뛰어나기만 한 제품"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잘 어필되고 실질적으로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생각을 급선회하게 됐다고 한다. 하긴, 에디슨도 처음엔 자기 오덕질대로만 외곬스러운 발명을 하다가 나중에야 그렇게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21세기 워드를 만들었던 회사는 그로부터 6, 7년쯤 뒤 21세기가 실제로 임박하자, 이번엔 '새 폴더'를 비롯해 아주 익살스러운 외형의 압축 프로그램을 무료로 뿌리면서 컴백했다. 본인은 2000년 말, 알집을 4.8대 버전 때 처음으로 접했다. 그런 식으로 잘나갈 수도 있었고 "개인에게만 무료, 기업은 유료" 정책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는데.. 프로그램이 압축 본연의 기능이 탄탄하지 않다는 나쁜 소문이 2000년대 초중반에 워낙 퍼지면서 안 쓰게 됐고.. 지금은 빵집을 거쳐서 반디집이 국민 압축 프로그램 타이틀을 물려받았다. 빵집은 퀄리티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보다시피 개발이 중단됐으니 말이다.

워드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딴 얘기가 길어졌네.
아무튼, 저 두 프로그램들은 아래아한글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도스가 아닌 Windows 얘기이긴 하지만 지난 2014년 가을엔 삼성조차 1992년 이래로 개발돼 왔던 훈민정음을 완전히 포기하고 MS 워드로 복귀를 선언했다. 훈민정음은 처음부터 Windows용으로 개발됐고, 버전 4.5 시절엔 마치 Visual Basic 4처럼 16비트용과 32비트용이 동시에 따로 출시된 탄탄한 제품이기도 했는데 말이다.

훈민정음이 GG를 쳤는데 그럼 아래아한글은? 지금까지 쌓인 인프라가 워낙 많고, 또 아래아한글과 워드는 내부 구조가 서로 너무 다르다 보니 사용자가 하루아침에 전멸하고 쫄딱 망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갈라파고스화' 알박기 덕분에 겨우 연명하고 있는 비중도 크며, 학교· 군대· 관공서가 아닌 사기업에서 HWP의 입지는 이미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젠 워드, 엑셀 같은 너무 흔한 필수 프로그램은 그냥 다 공짜로 뿌리는 거나 다름없는 세상이 되기도 했고.
그러니 이스트도 결국은 돈 되는 건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진작부터 과감하게 카발을 개발한 것 같다. 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계가 앞으로 어찌 되려나 참 눈 돌아가겠다.

Windows의 개발 역사에 대해서는 현직 마소 고참 개발자인 레이먼드 챈 아저씨가 The Old New Thing이라는 개인 블로그에서 10년이 넘게 오늘날까지도 구수한 입담으로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처럼 개인적으로는 아래아한글 1.0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몽땅 꿰뚫고 있는 어떤 개발자가 아래아한글 내지 그 시절 경쟁 워드 프로세서들의 역사를 구구절절 회상하는 코너가 좀 있으면 좋겠다. 필기체가 개발된 사연, 1.2 버전에서 테트리스 게임이 개발된 사연, 한컴 2바이트 코드의 제정 경위, 옛날 공 병우 박사와의 인연 등등 얘기가 엄청 많을 것 같은데..!

Posted by 사무엘

2015/10/30 08:34 2015/10/30 08:34
, , , ,
Response
No Trackback , 5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154

고전 소프트웨어의 추억을 발굴하는 작업은 변함없이 계속된다.
몇 달 전엔 비트맵 그래픽 에디터 얘기를 했다. 구글링으로도 좀체 정보를 발견할 수 없던 Splash와 Image72를 찾아 냈다. 이어서 오늘은 도스용 셸 유틸리티 얘기를 해 보겠다. 출처를 도저히 알 수 없었던 한 외국산 프로그램의 정체를 또 파악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름하여 Packard Bell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 도스 시절엔 부팅이 끝나면 화면에 뜨는 건 시꺼먼 화면에 C:\ 프롬프트가 전부였다. 이런 인터페이스로는 초보자건 전문가건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기가 몹시 불편했기 때문에, 컴퓨터에 존재하는 다른 프로그램들을 빠르고 편하게 실행시켜 주는 '셸'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 별도로 여럿 만들어지곤 했다.

전문가를 위해서는 MDIR이나 노턴 커맨더처럼 파일 관리 유틸리티를 겸하는 셸이 쓰였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파일 정보만 표시하면 되니 보통 텍스트 모드에서 실행되었다.
그러나 초보자를 위해, 당시의 Windows 3.0에 준하는 GUI를 표방하면서 알록달록한 아이콘이 나오는 그래픽 셸도 있었다. 골치 아픈 단축키를 외울 필요 없이 마우스 클릭만 하면 원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었다.

MS-DOS 버전 4인가 5부터 제공되었던 '도스셸'은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되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래도 전자와 후자 중에서는 전자의 성격에 더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래도 GUI의 불모지인 도스에서 나름 마우스 드래그 드롭을 구현했고, 프로그램의 색상과 화면 모드를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자, 그 와중에 저 '패커드 벨'이라는 프로그램은 우리 집 컴퓨터에 처음부터 있었던 프로그램은 아니고, 친구 집 컴퓨터에서 접했다. 그런데 GUI가 굉장히 고퀄이고 화면이 예뻤다. 16색 VGA에서 실행되는데 투박한 표준 팔레트를 쓴 게 아니라 보다시피 자체적으로 팔레트 색상을 재정의했으니 더욱 이색적인 느낌이 났다. 색상도 그렇고 글꼴도 그렇고, 알록달록한 아이콘까지, 뭔가 프로그래머가 대충 발로 그린 게 아니라 그래픽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티가 났다. 어린 시절에 본인은 저렇게 "나만의 세계가 느껴지는 비주얼"을 보면 아주 사족을 못 썼다.

저 스크린샷에서는 안 보이지만, 원래는 마우스 드라이버가 있건 없건 마우스 포인터도 나타난다. 그런데 포인터도 운영체제가 그냥 기본으로 주는 작고 투박한 화살표가 아니라, 무려 살색의 사람 손가락 모양이다. 요즘으로 치면 웹 브라우저에서 링크를 가리킬 때 나타나는 그 마우스 포인터와 비슷하다.
화살표 키를 누르면 지금의 마우스 포인터 위치에서 그 화살표 방향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버튼으로 포인터가 이동하는데, 이것도 즉시 되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궤적을 그리면서 이동한다.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워드 프로세서나 그래픽 에디터가 아니고, 그렇다고 게임도 아니고.. 자체 한글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는 외국산 도스용 유틸리티가 그래픽 모드에서 가변폭 영문 글꼴 출력까지 구현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몹시 드문 일이었다.
도대체 이 프로그램은 누가 언제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서 뒤늦게 인터넷을 수소문했지만, 정보를 도저히 얻을 수 없었다.

본인은 이 프로그램의 이름이 Pen Bel(l) Desktop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왕년에 베이직 프로그래머였으니 PB라고 하면 파워베이직의 이니셜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저 추억의 프로그램의 실행 파일에도 PB라는 문자가 포함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저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얻은 곳은 IE is evil!로 유명한 이 사람의 GUI 갤러리 웹사이트였다.
도스는 말할 것도 없고 Windows 3.1 시절까지만 해도 기존의 허접 구닥다리 '프로그램 관리자'를 대체하는 싸제 셸 유틸이 수요가 있었다. 노턴 데스크톱, 그리고 MS의 흑역사 Bob 같은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어? Packard Bell 내비게이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3.5 버전은 완전히 Bob처럼 그래픽 기반으로 바뀌었지만, 1.1은 보아하니 도스용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색상과 외형이 웬지 도스용 프로그램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튜토리얼, Support, your software처럼 큰 메뉴 구성이 꽤 비슷해 보이는 데다 자음 이니셜이 일치하기도 하니 동일 회사의 프로그램일 거라는 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이 키워드로 구글링을 계속했다.. 그러나 일단 '패커드 벨'은 컴퓨터 제조 회사인지라 걸려 나오는 것은 온통 컴퓨터 사진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어느 국내 블로그에서 드디어 월척을 낚는 데 성공했다. 내가 찾던 바로 그 프로그램의 스크린샷이 나온 것이다. 프로그램과 개발사 이름이 동일하게 '패커드 벨'인 듯하다.
이 회사는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가 주력 상품이고, 프로그램은 자기 컴퓨터에 번들로 설치되는 것 위주로만 개발한 듯하다. 소프트웨어만 전문으로 만든 게 아닌데도 1991년경에 도스와 Windows용 셸을 모두 그것도 상당히 뛰어난 퀄리티로 만든 것이 무척 대단하게 느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이 도스용 '패커드 벨' 셸은 메뉴 구조가 좀 특이했다. ESC를 누르면 도스셸이나 '로터스 웍스' 같은 붙박이 고정 프로그램이 있고, 'Your software'을 골라야만 아까와 같은 프로그램 아이콘 리스트가 나타났다. 패커드 벨 컴퓨터에는 원래 '로터스 웍스'도 번들로 제공되었던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로운 프로그램을 등록하는 화면이다. 아이템에 사용할 '아이콘', 밑에 표시할 텍스트, 그리고 실제로 실행할 프로그램 이렇게 세 가지 정보를 서로 다른 화면에서 지정해 줄 수 있다. 아이콘은 저 35종류의 기성 그림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고 다른 외부 그림 파일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게 특이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이다. 기성 그림들은 각각 어떤 컨셉으로 만든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저 스크린샷에서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원래 이 프로그램은 하드디스크에 존재하는 모든 실행 파일들을 아래의 리스트에다가 표시해 준다. 그래서 사용자는 일반적인 파일 열기 대화상자를 다룰 때처럼 매번 디렉터리를 오갈 필요 없이 한 목록에서 실행 파일을 곧장 선택할 수 있었다. 이건 사실 MS 도스 셸에도 있던 기능이다. 2~30여 년 전, 한 하드디스크가 크기가 수십~100수십 MB밖에 하지 않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 다시 저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면 무척 감회가 새롭고 흥미진진할 것 같다.

도스 셸 하니까 생각나는데, 옛날에 MS-DOS 4.0은 우리가 아는 그 4.0만 있는 게 아니라 '멀티태스킹 에디션'이라고 유럽 쪽에서 주로 쓰인 다른 브랜치가 있었다고 한다. 16비트 Windows가 사용하던 New Executable 포맷도 사실은 이때 처음으로 제정되었다고 하고.

또한, 국내에서 개발된 그래픽 위주 도스 셸로는 먼 옛날(1993년쯤) 이 종하 씨가 개발한 '능금'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옛날에는 '파란연필'이라는 텍스트 에디터도 개발했던 분인데 본인은 요것들은 옛날 컴퓨터에서 다 직접 써 봤다.
'능금'은 셰어웨어였으며, 비등록 공개판은 등록할 수 있는 그룹과 프로그램 개수에 제한이 걸려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픽 셸로서 '능금'이 지닌 가장 독특한 점은.. 한 아이템에 대한 아이콘을 최대 5개까지 연달아 지정해서 초보적인 수준의 '움짤'을 만들 수가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외부 파일 사용 가능함. 저 스크린샷을 보면 '그래픽'의 경우 물결이 출렁거렸고, '게임'은 테트리스 블록이 내려가는 모습이 반복되곤 했다.
그래도 '능금'의 기본 팔레트 화면과 저 아이콘들은 '패커드 벨'에 비하면 좀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들긴 한다. ^^

Posted by 사무엘

2015/07/07 08:34 2015/07/07 08:34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113

※ 컴퓨터 & 프로그래밍

1.
예전에 본인은 시스템 종료 중에라도 사용자가 무슨 동작을 취하면, 컴을 아주 꺼 버리는 시스템 종료가 아니라 그 뒤 '재시작'으로 종료 모드를 바꾸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것과 비슷한 제안인지도 모르겠는데, 또 하나 아이디어를 내자면 이렇다. 사용자가 한동안 컴퓨터를 건드리지 않아서 모니터가 꺼지거나 컴퓨터가 절전· 최대 절전· 종료 등으로 바뀌게 되면, 그 모드로 진입하기 전에 화면에 10초나 5초 정도 카운트다운을 좀 띄웠으면 좋겠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처럼 화면을 빤히 보고 있으면서 키보드· 마우스만 안 건드리고 있는데 화면이 갑자기 꺼져 버려서 당황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화면 보호기 정도는 카운트다운 없이 바로 진입해도 상관 없겠지만 아예 하드웨어적인 변동이 생기는 저런 모드는 예고가 있으면 좋겠다.

2.
동영상 엔진인 '코덱'과 과거의 컴퓨터 통신 장비인 '모뎀'이 정확히 같은 조어법에 의해 거의 같은 구조의 이니셜을 가진 단어이구나.

3.
식당에서 주문을 한 뒤에야 "아 손님, 죄송하지만 재료가 떨어져서 그 메뉴는 지금 제공이 안 됩니다"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허탈하잖아. 애초에 메뉴판에 그런 메뉴는 disable된 상태로 시각 피드백이 있으면 좋겠다.

4.
공동 작업을 하는 코드의 명칭에 영어 스펠링이 틀린 게 많아서 작업에 지장을 적지 않게 받은 적이 있었다. 검색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분명 availableItem이런 단어가 있는 걸 봤었는데 나중에 보니 avalible이라고 돼 있는 식.
이건 당장 버그나 성능 같은 동작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또 다른 형태의 민폐이다. 도서관으로 치면, 책을 보고 나서는 자기 분류 코드상으로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다 책을 꽂은 것과 같다. "잘못 꽂힌 책은 없는 책과 같습니다. 정리는 사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열람하신 책은 그냥 여기에 놔 두세요" ;;;;

5.
관광 가이드를 매뉴얼과 스케줄 대로 승객들을 안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다가 비유한다면, 이 사람이 수행하는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는 정말 그야말로 try ... catch문으로 빽빽이 무장하고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갑자기 아플 때, 뭔 물건을 놔 두고 왔을 때,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 긴급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행 중 일부가 없어져서 못 찾을 때 등등.. 그 어떤 예외 상황에서도 패닉과 스케줄 펑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의연히 대처가 가능해야겠다.

6.
Windows 환경에서 응용 프로그램이 자기 영역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메모리 주소는 64KB 이상부터이다. NULL 포인터인 0자체뿐만이 아니라 첫 64KB는 가상 메모리 영역 설계 차원에서 봉인되어 있으며, 이 주소에 메모리를 읽거나 쓰는 건 무조건 에러가 난다. 사실, 0 자체뿐만 아니라 64KB 정도까지는 막혀 있어야 NULL포인터 자체뿐만 아니라 NULL로부터 구조체 멤버를 참조한 포인터도 에러로 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 ((POINT *)NULL)->y처럼.

아울러, 과거의 Windows 9x는 이보다 제약이 더 커서 64KB가 아니라 상위 4MB까지가 추가로 막혀 있었다. 64K부터 4M까지의 영역은 16비트 프로그램(도스용 & Windows용 모두)이 사용한다. (☞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

이런 이유로 인해 전통적으로 32비트 Windows 프로그램들은 시작 주소(preferred base)가 딱 4MB로 맞춰지곤 했다. NT 계열에서는 꼭 4MB가 아니라 64KB 이상 아무 지점이어도 상관이 없지만, 4MB 이상이어야 윈도 9x와 NT계열에서 모두 실행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오늘날까지도 하드디스크가 C로 시작하는 디스크 드라이브 관행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다.
플로피 디스크가 완전히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A, B 드라이브는 사실상 결번으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요즘은 하다못해 USB 메모리 드라이브를 거기에다 할당해도 될 것 같은데!

※ 알고리즘

7.
longest common subsequence를 구하는 문제와 longest increasing subsequence를 구하는 문제는 서로 관련이 있는 무척 흥미로운 문제인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후자는 임의의 sequence와, 그 입력을 오름차순으로 정렬한 sequence와의 longest common subsequence를 구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후자는 전자 문제로 다항 시간 만에 변환 가능한 special case이다.

두 문제는 일단 다이나믹 프로그래밍으로 O(n^2)의 복잡도로 풀 수 있지만, 더 작고 특수한 케이스인 후자는 O(n log n)의 해법도 있다.
전자 문제는 문장의 정확도를 구하는 알고리즘, 소스 코드의 diff 툴 등 활용되는 분야가 굉장히 많다. 지금은 어떤가 모르겠는데 내 때에는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의 첫째 날 1번 문제가 해법이 이 형태로 귀착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999년도의 꽃병 문제는 대놓고 저런 타입이었고, 2000년도의 palindrome 문제도 자신과 자신을 역순으로 뒤집은 단어와의 longest common subsequence를 구하는 것과 동일하다.

8.
엑셀에서 파이 모양 차트를 그리면 아이템별로 파랑, 빨강, 주황 등 알록달록한 색깔이 배당되어 차트가 그려진다.
그런데 최초의 색깔인 파랑부터 아이템 N에 이르기까지, 색깔을 선별하는 방식이 과연 무엇일까?
Office 2003까지는 뭔가 보라색 위주의 우중충하고 칙칙한 색깔 위주였는데 2007부터는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더 세련되게 바뀌었다.

이건 뭔가 RGB나 hue 같은 색공간에서 최대한 균등하게, 마치 흑에서 백으로 디더링 픽셀을 하나씩 채워 나가듯이 색깔을 뽑아낸 것 같다(관련 링크). 그 구체적인 알고리즘이 궁금하다.
그리고, 이런 픽셀 채우기 문제의 domain을 2차원 평면이 아니라 3차원 공간으로 확장하면 문제의 난이도가 어찌 되는지도 궁금하다.

※ 자동차

9.
자동차 차량 취급 설명서의 각종 선택사양에만 적용되는 설명들은 C/C++ 코드에서 #if #endif 전처리기에 대한 아주 좋은 예시라 여겨진다.

10.
오늘날 "일찍 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 말은 "일찍 움직이는 차가 주차 자리를 차지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기타 미분류

11.
공항 안에 개인 물품 보관함 같은 게 있으면 단독 여행 시에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과 계절이 크게 다른 지역을 여행 갈 때 지금 입은 옷을 보관해 놓는다거나, 반입 금지 내지 무게 제한에 걸린 물건을 귀국 때까지 임시로 보관할 수 있게 말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당사자가 보관함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게 곤란하니, 추가 비용을 부담해서 보관 대행을 맡길 수 있어야 하겠다.

12.
비행기와 열차의 큰 차이:
열차는 출발 15분 전부터 승강장으로 입장이 가능한 반면, 비행기는 출발 15분 전에 탑승이 종료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담인데, 내 경험상 인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견인차에 끌려 터미널을 떠난 순간부터 활주로에 진입하여 이륙을 시작할 때까지도 거의 정확히 15분이 소요된다.

13.
"바탕체 레귤러"라는 서체 이름을 보고는 바탕체 볼드가 아니라
"바탕체 라지"가 순간적으로 먼저 떠올랐다.
요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_=;;
하긴, 아메리카노가 생각이 안 나서 순간 "아프리카노요"라고 주문을 했다는 사람 얘기도 있으니..;;

14.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우측통행, 도로명 주소 등 일상생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여러 규범이 바뀌었으며, 이런 차원에서 단위도 비표준 단위가 통상적으로 쓰이던 곳까지 SI 단위가 강제 추진되었다.
고기의 무게는 오래 전부터 '근'이 거의 전멸하고 100그램 단위로 다 정착을 한 것 같지만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곳은 부동산에서 다루는 건물이나 땅의 면적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1평'을 '3.3제곱미터'로 바꿔서 실생활에서 유리한 게 없다.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음절수도 너무 많아서 발음하기가 불편하다. 바꿀 거면 사람이 실제로 생각하는 넓이의 덩어리도 1제곱미터나 10제곱미터 단위로 업데이트가 돼야 할 텐데.
참, 그나저나 화면의 크기를 표기할 때 으레 쓰이는 '인치'는 센티미터로 바뀌기라도 했는지 궁금하다. 여기도 평이나 근 만만찮게 좀 이상한 단위가 관습적으로 쓰여 온 곳이니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4/19 08:36 2015/04/19 08:36
, , , , ,
Response
No Trackback , 7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084

오늘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개발되었던 비트맵 그래픽 에디터인 Image72와 Splash!를 소개하겠다.
이들은 닥터할로(원래 이름은 드로잉 할로라고 하는..) 나 딜럭스 페인트 같은 프로그램에 비해 인지도가 이상할 정도로 듣보잡인 것 같다.
진작부터 추억을 회상하는 글을 올리고 싶었으나, 정보가 넘쳐나는 구글과 잡학 지식의 보고인 위키백과를 검색해 봐도 나오는 정보가 너무 없었다.

이름뿐만이 아니라 제작사까지 같이 넣어 줘야 그나마 외국 사이트 위주로 몇 개가 뜨는데, 그래도 자료가 드물다.
국내에서는 운영자가 뭘 하는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dreamphp라는 사이트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국내외 고전 소프트웨어 소개와 스크린샷 리스트가 있고 거기에 Image72와 Splash!도 나란히 소개돼 있다. 가히 고전 소프웨어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듯. (단, 소개와 스크린샷만 있지 프로그램의 다운로드는 제공 안 함)

본인은 초· 중딩 시절엔 컴퓨터가 256컬러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끼곤 했다.
게다가 그래픽 에디터는 여타 분야의 프로그램과는 뭔가 다른 독특한 UI와 포스가 존재해 왔으니 말이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어른이 된 뒤 다시 접하니 마치 이산가족을 상봉한 듯한 느낌이다.

1. Image72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여 년 전, 본인이 집에서 486 컴퓨터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 그때 컴에 기본으로 깔려 있던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얘는 메뉴가 없이 그저 검정 배경에 단순한 UI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닥터할로를 닮았다. 그리기 기능은 Windows의 그림판 같은 그저 그런 수준.

표준(?) 버전은 640*480 16색 VGA에서 실행되었다. 단색 버전과 심지어 Image256이라는 256색 SVGA 버전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난 실물을 못 봤다.
또한, A4tech라는 제작사에 대해서도 현재는 알려진 게 없다. 다른 제품을 더 만든 게 있는지, 혹시 이 프로그램은 DOS 말고 다른 플랫폼 포팅도 됐는지 같은 것들. 단, 검색을 해 보니 미국이 아닌 타이완 국적의 기업이며 저 링크된 회사와 정체성이 동일한 회사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 존재감이 완전히 묻혀져 가는 Image72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를 알고 계신 분의 제보를 기다린다.

2. Splash!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320*200 저해상도에서 256색을 지원한 프로그램이다. 게임 말고 이런 그래픽 모드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드물었다.
개발사는 Spinnaker software. 지금도 있는 회사이긴 하나, 그때로부터 워낙 긴 시간이 흘렀다 보니 Splash!의 개발사와 동일한 곳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맞는 것 같긴 하다만)

우리가 놀랄 만한 점은, 이 프로그램은 1988년 12월에 출시되었다는 점이다.
VGA 그래픽 카드가 출시된 게 1987년이다. 그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에 VGA의 256색을 모두 활용하는 거의 초창기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Splash!는 출시 당시엔 굉장한 화제를 모았다. 당대의 컴퓨터 잡지들도 앞다퉈 소개할 정도였다고 한다. 마치 19세기나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소수의 컬러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다만, 화면 해상도는 그렇다 쳐도 편집할 수 있는 그림의 크기도 화면의 크기를 넘어갈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건 좀 아쉬운 점이다.

Splash!를 보니 다음으로, 팔레트 관련 추억을 좀 늘어놓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컴퓨터의 그래픽 모드에서 256색은 2색/16색 같은 저색상도 아니고 하이/트루 같은 고색상도 아닌 딱 중간을 차지하는 독특한 모드이다. 1픽셀의 정보량이 딱 1바이트여서 프로그래밍이 쉬운 한편으로, 팔레트의 중요성이 가장 커진다. 어떤 색들을 선별해서 256개에다가 배당하느냐에 따라 해당 그래픽의 분위기가 싹 달라지곤 했다. 특히 게임들 말이다.

VGA 그래픽 카드가 모드 13h에서 기본 제공하는 256색 팔레트는 다음과 같았다. 기존 16색 이후로는 흑백 32단계와 고채도 원색 그러데이션이 잠시 나온 뒤, 형광/파스텔톤의 색이 3단계 명암으로 나열된다. 저 색깔띠 자체는 예쁘지만, 배색이 게임 같은 그래픽을 표시하는 데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명한 VGA 팔레트로는 1990년대를 풍미한 명작 그래픽 편집기인 딜럭스 페인트가 제공한 팔레트가 있다. 나름 미술 전문가가 설계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정도는 돼야 좀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상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이 팔레트는 그대로 각종 게임들에서 많이 쓰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이야 웹 표준이라고 하면 HTML5를 떠올리지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만 해도 웹 그래픽에도 256색 디스플레이를 배려하여 web-safe한 표준 색상 규정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시는가?
RGB 각 축당 6단계 명암을 줘서 총 6^3 = 216개 색상이 나오니 그걸 순서대로 배당하고, 나머지 40개 색깔은 호환용이나 흑백 등 다른 용도로 비워 두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51*n(n은 0이상 5이하, 이상 6단계)을 해 주면 n이 최대값 5일 때 성분값이 딱 255 최대값이 된다.

색깔을 그런 식으로 배당하는 게, 마치 유니코드에서 나눗셈/나머지 연산만으로 한글 자모 정보를 추출하듯이 원하는 RGB대역의 색깔 인덱스를 계산만으로 얻는 데 유리할 것이다.
차라리 VGA의 기본 256색 팔레트도 그렇게 원시적인 방식으로 색을 배당할 법도 한데 나름 파스텔톤 색깔띠를 만든 게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날 그래픽과 디스플레이 기술이 불과 20여 년 전에 비해 얼마나 까마득하게 발전했는지를 실감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5/03/24 19:39 2015/03/24 19:39
, , , ,
Response
No Trackback , 8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076

1.
먼 옛날, 윈도 98을 쓰다가 2000으로 갈아탔을 때, 난생 처음으로 Windows NT 계열을 구경하고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NT 계열은 일단 마의 리소스 퍼센티지 제약이 없었으며, 말로만 듣던 2바이트 문자열 기반의 유니코드 API가 잘 지원되었다. 이 둘은 매우 크게 다가온 아이템이다.
작업 관리자가 9x 계열에 비해서는 넘사벽급으로 잘 만들어져 있었고, 도스창이 아닌 정식 명령 프롬프트가 제공되었다. 이 외에도 EXE/DLL 내부의 리소스를 수정하는 API가 사용 가능한 것도 좋았다. (9x 계열은 16비트 바이너리의 리소스만 고칠 수 있었음)

윈도 95/98에서는 못 보던 파일은 ntoskrnl.exe, csrss.exe, lsass.exe, ntdll.dll, hal.dll, ntvdm.exe, svchost.exe 등이다.
그 반면, 윈도 9x의 잔재이던 파일은 msgsvr32.exe, win386.swp, system.dat, user.dat, winoa386.mod, *.vxd, win.com 같은 것이다.

윈도우 2000/XP부터는 NT 커널 덕분에 주기적으로 재부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재설치도 거의 할 필요가 없어진 건 Vista 이상인 듯하다. XP는 이 범주에까지 넣기에는 좀 2% 부족한 구석이 있었다.

2.
과거에 Windows 9x 시리즈와 Windows NT는 구조적으로 여러 차이가 있었지만, 프로그래머의 관점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식성'이었다.
NT는 하드웨어에 종속적인 계층이 철저히 분리되어 설계되었으며 커널이 대부분 어셈블리가 아니라 C/C++이라는 '고급 언어'로 작성되었다. 마치 유닉스처럼. 덕분에 인텔 x86뿐만 아니라 90년대 당시로서는 MIPS, Alpha 등 다양한 아키텍처용 윈도 NT가 나오기도 했다.

NT는 설계 차원에서 특정 하드웨어의 특성에 맞는 '타협'을 별로 안 하고 추상화 계층이 많이 존재하다 보니 깔끔함, 안정성, 범용성 등 많은 장점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시절에 벌써 유니코드를 염두에 두고 wide string을 기본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상당한 선견지명이다. 물론 그 대신 시스템 요구 사항이 당연히 1990년대의 가정용 PC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메모리와 속도 모두.

이런 NT와는 달리, Windows 95는 이상이 아닌 현실을 추구하였다. 도스와 윈도 3.1을 돌릴 수 있는 정도의 램 한 자릿수 MB대 똥컴을 타겟으로 하여 Win32 API를 최대한 많이 구겨 넣었다. 이 과정에서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유니코드 API조차도 메모리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잡아먹는 다고 판단되어 과감히 짤려 나갔다.

9x 커널의 소스에는 도스 레거시를 비롯해 오로지 x86 CPU에만 최적화된 쑤제 어셈블리 코드가 난무하였다. 그렇게까지 극도로 최적화를 하고 성능을 짜내야만 메모리 사용량을 1K라도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9x는 NT보다 배고픈 운영체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S/2를 PC 환경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Windows 천하통일을 이루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은 NT가 아니라 95였음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OS/2를 개발하던 마소의 엔지니어들이 떨어져 나가서 따로 만든 게 NT라고는 하지만, OS/2 자체는 NT 같은 이식성 있는 형태라기보다는 9x에 더 가까운 어셈블리 최적화 컨셉이었다고 한다. OS/2는 NT 뺨치는 수준의 앞서 나간 최첨단 운영체제이긴 했지만, 내부 구조가 이식성보다는 역시나 x86에 너무 종속적이었다는 뜻. 그래서 다른 아키텍처로 이식은커녕, 같은 x86 컴에서 가상화 소프트웨어로도 돌리기가 곤란할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지금은 x86에서 맥 OS X 해킨토시까지 돌리는 세상이 됐는데 설마 OS/2를 못 돌리나 싶다.)

3.
더 옛날, 도스 시절에는 뭔가 새로운 하드웨어를 사용하려면 램 상주 프로그램을 덕지덕지 실행해 놔야 해서 몹시 불편했다. CD롬조차도!

  • 사운드: sound / unsound (굉장한 옛날 유물. 왠지 '불건전하다!'가 생각 나는 건 기분 탓. ㅋㅋㅋ)
  • 그래픽: simcga, msherc (이것도 옛날 유물. msherc의 경우, QuickBasic에도 포함돼 있었다.)
  • 마우스: mouse (단, 윈도 3.x는 별도의 램상주 드라이버 없이도 마우스를 스스로 인식하여 실행되었음!)
  • CD롬: mscdex (기본 메모리를 상당히 많이 차지했음)

아마 USB 포트가 도스 시절에 도입됐다면, 이걸 인식시켜 주는 램 상주 프로그램도 당연히 필요했을 것이다.
아, 텍스트 모드에서 한글을 구동해 주는 프로그램도 빼먹을 수 없다. hbios / mshbios(윈도 95) 같은 것.
그 외에 화면 캡처나 게임 위저드 같은 램 상주 유틸리티는 하드웨어 인식보다는 편의 기능 분야에 속한다.

요즘은 환경변수 같은 건 PATH에서나 제일 많이 쓰이고, C/C++ 프로그래머에게는 컴파일러의 동작에 필요한 include 및 라이브러리 디렉터리를 지정할 때나 쓰이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옛날에 사운드 블래스터라는 사운드 카드가 있던 시절에는 기본 IRQ 번호던가 뭔가도 환경변수에다 지정해 놓곤 했으며, 각종 게임의 환경설정 프로그램에는 사운드 종류와 그런 세부 정보도 입력을 받곤 했다.

이것도 정말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됐다.
도스용 프로그램들에는 파일 메뉴에 '도스 나들이(DOS Shell)' 기능이 있던 시절이니까 말이다.
운영체제가 이렇게 방대하고 권한이 커지면서 상당수의 유틸리티들은 의미를 퇴색했으며, 전문화된 고급 셸 아니면(토탈 커맨더 같은) 더 전문적인 유지보수 유틸리티(노턴 고스트?) 내지 안티바이러스/보안 쪽으로 업종을 세분화· 전환하는 게 불가피해졌다.

4.
태초에 도스는 검은 화면에 흰 프롬프트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명령어를 입력하는 환경도 굉장히 자비심이 없었다.
삽입/삭제 모드 같은 개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이미 입력된 글자를 지우지 않고서는 앞 글자로 cursor를 옮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즉, 왼쪽 화살표만 눌러도 마치 bksp를 누른 것처럼 앞글자가 지워지면서 cursor가 앞으로 이동했다.

명령 히스토리는 직전의 딱 한 단계만 지원했다. F1~F3을 눌러서 직전 명령을 한 글자씩 복구하거나 첫 n 글자 또는 전체를 한꺼번에 불러오곤 했다. 그 시절을 혹시 기억하는 분이 계시는지?

그나마 doskey.com이라고 아마 도스 3~4쯤에서 추가된 걸로 추정되는 외부 명령 램 상주 유틸리티를 실행하면 위/아래 화살표로 히스토리가 가능하고 좌우 cursor 이동이 자유롭게 가능해졌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능이 옛날에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액세서리 기능이었던 것이다.

윈도 NT의 명령 프롬프트는 기본적으로 이 모드인 듯한데, 그런데 tab을 눌러서 파일/디렉터리 이름을 자동 완성하는 기능은 윈도 XP에서 처음으로 추가되었다. 세상에, NT4와 2000 시절까지만 해도 이런 기능이 없었으며, tab을 누르면 그냥 문자적인 탭이 그대로 삽입되곤 했다.

단, 기능 추가만 있는 건 아니다. 윈도 XP까지는 탐색기에서 파일이나 디렉터리를 명령 프롬프트에다 drag & drop을 하면 그 이름을 자동으로 삽입해 주는 기능이 있었는데 아마 윈도 Vista부터는 그 기능이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다. 보안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고 하는데 이런 편리한 기능에 도대체 무슨 보안 문제가 있는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명령 프롬프트를 전체 화면으로 실행하는 기능 역시 Vista에서부터 삭제되었다. 딱히 별 의미가 없어지기도 했으니.
어디 이 뿐이랴. 2000까지만 해도, 콘솔창 내용을 마우스로 긁는 '빠른 편집' 모드는 곧장 사용 가능했던 반면 XP부터는 먼저 속성 창을 거쳐서 강제로 켜야만 사용 가능하게 바뀌었다. 이건 보안 이유 때문은 아니고, 마우스를 지원하는 도스용 프로그램과의 호환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고 한다.

제아무리 도스 기반이 아닌 NT 계열의 명령 프롬프트라 해도, 문자 인코딩부터가 2바이트 ANSI 코드 페이지와 여전히 얽혀 있고 도스의 흔적을 완전히 걷어내지는 못한 듯하다. 그래도 64비트부터는 16비트 코드 자체가 이제 지원되지 않는데 더 좀 걷어내도 되지 않나 싶다.
기존 명령 프롬프트보다 더 강력한 대체제라고 일컬어지는 PowerShell이라는 물건이 있긴 하나, 본인은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고 이게 특별히 장점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아 그리고. 지긋지긋한 Terminal 내지 굴림체 말고 Consolas 내지 Courier, Lucida Console 같은 글꼴을 좀 쓰고 싶은데 Wndows는 공식적으로는 명령 프롬프트의 글꼴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방법을 제공하지 않는다. 마치 uxtheme을 해금/탈옥시키듯이 레지스트리를 조작해서 글꼴을 바꾸는 방법이 인터넷에 있긴 한가 본데 본인은 성공하지 못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3/02 19:28 2015/03/02 19:28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068

본인이 지금까지 게임 포함 고전 소프트웨어에 대해 글을 잔뜩 올린 것은 그래도 플랫폼은 PC 한정인 편이었다. 운영체제는 응당 16비트 도스/윈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옛날 8비트.. 아무래도 롬 베이직을 빼면 롬 카트리지를 꽂아서 게임밖에 할 게 없었던 더 옛날 컴퓨터에 대한 추억도 없는 건 아니다.

본인은 난생 처음 접한 개인용 컴퓨터가 286 AT인 관계로, 저 컴퓨터는 친구 집에서 어깨 너머로 구경만 했지 개인적으로 소장한 경험은 없었다.
그런 플랫폼용으로 프로그램 개발은 어떻게 했을까? 16비트도 모자라서 8비트이면 int도 char과 크기가 같을까? 몇만 바이트밖에 안 되는 허접한 메모리로 어떻게 저런 게임을 만들 수 있었을까? 1980년대 초니까 C 컴파일러조차도 없이 그냥 기계어/어셈블리 직통 코딩을 했을까?

그런 컴퓨터와 아예 8비트 아케이드 게임기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그리고 MSX인지 뭔지는 무슨 규격이지? 난 그런 건 전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일본이 유난히도 이런 플랫폼용 게임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5개의 게임도 다 일제이다.
하지만 본인은 정작 일본에서 동전 품절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는 슈퍼마리오는 전혀 접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황금도끼나 보글보글도 PC 도스용을 접했지 오락실용은 접한 적이 없다. 오락실용이 더 완성도가 높고 재미있는데도 말이다.

1. 남극 탐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어 원제는 Antarctic Adventure로, 1984년에 일본 코나미에서 MSX용으로 개발했다.
구멍과 바다표범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펭귄을 잘 달리게 하는 게 목표이다. 구멍에 빠지거나 바다표범에 부딪히면.. 주인공인 펭귄이 죽거나 다치지는 않지만.. '지연'이 발생해서 제한 시간 안에 도착을 못 하고 미스가 난다.

BGM은 잘 알다시피 다른 음악이 아니라 스케이터 왈츠라는 고전 음악이다.
그리고 레벨을 클리어하면 가상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남극 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의 국기가 뜨는데, 이는 이 게임이 완전한 허구의 게임성보다는 일종의 교육용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주행 거리 단위는 km를 m로 거의 1/1000에 가깝게 너프시켜도 모자랄 판에 뻥튀기가 너무 심하다.

2. 캐슬 엑설런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5년에 일본 아스키 사에 MSX 및 여타 플랫폼용으로 개발한.. 일단은 아케이드 게임이지만 슈파플렉스처럼 퍼즐 요소가 굉장히 강하다. "도미솔미 파레솔~~ 도미솔미 파레도" 요런 BGM이 유명하다. 참고로 아스키는 MSX 규격을 제정하는 데 동참했던 그 회사이다.

얘가 게임 메카닉면에서 여타 게임들과 다른 점은.. 점프가 단순히 일시적인 추진력으로 공중에 떴다가 즉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일종의 제트팩을 몇 초간 동작시키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면 각종 기물이나 적들의 위치가 원상복귀되어 버린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단, 없애 버린 기물이나 적이 다시 생기지는 않는다.

이 게임은 레벨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캐슬'을 구성하는 가로 10*세로 10 총 100개의 방 전체가 거대한 단일 레벨이다. 그리고 지형과 기물, 각종 열쇠 조합을 이용한 굉장히 까다로운 퍼즐을 풀어야 공주가 있는 방까지 갈 수 있다. 주인공은 각종 움직이는 트랩이나 적에게 걸리면 HP 없이 바로 죽는다. 그리고 무기가 없어서 적은 움직이는 기물이나 트랩을 이용해서만 죽일 수 있다.
난 당연히 엔딩은 못 보고 포기했지만, 그래도 뭔가 중세풍의 성 안에서 각종 보석을 먹는 게 잠시나마 재미있긴 했다.

3. 덱스더(Thexder)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말로 표기와 영어 스펠링이 굉장히 헷갈려서 그 동안 검색을 하고 싶어도 못 하곤 했다. 원제품의 로고타입을 보면 T가 영락없이 C처럼 적혀 있기도 해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Dexter라는 이름도 있다.
그런데 PC용에는 포팅을 한 기업인 '1987 시에라 온라인'이라는 문구가 뜬다는 걸 기억을 되살려서 역추적 후 검색에 성공했다.

친구 집에서 패미컴용을, 그리고 나중에 초딩 시절에 개인적으로 PC DOS용도 해 봤다. PC용은 극악의 종횡비를 자랑하는 CGA 640*200 16색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되었다. 물론 원작은 1985인가 86년에 Game Arts라는 일본 기업에서 개발되었으며, 그 당시 수십~수백만 카피가 팔렸을 정도로 굉장히 히트 치고 성공한 작품이라고 한다.

게임 주인공은 이족보행과 비행 기능을 모두 갖춘 로봇이다. 아케이드 게임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각도를 목표물을 자동 조준하여 총을 쏘는 기능이 있다. (이것 말고 자동 조준을 하는 게임으로는 난 툼 레이더밖에 못 봤다~!)
비행 모드에서는 덩치가 좀 더 작아지고 낙하· 추락을 안 하게 되지만 자동 조준을 못 하며 중간에 정지를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생긴다.

이런 상태에서 던전 안의 수많은 장애물· 몬스터들을 죽이거나 피하면서 던전을 빠져나가는 게 게임의 목표다. 게임을 잘 못하면 적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걔네들에게 다구리 당하다가 게임오버 된다.
SF스러운 느낌이 나면서 한편으로는 단조 특유의 구슬픈 느낌이 나는 BGM도 인상적이다.

4. 마피 (Mappy)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3년에 일본 남코에서 개발한 아케이드 게임으로, 동작 플랫폼이 위의 둘과는 좀 다르다. 위키백과에서도 MSX가 아니라 '아케이드'라고만 소개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본인 역시 이건 동전을 넣어서 사용하는 동네 문방구의 오락기로만 구경해 봤다.
주인공은 쥐이고 적들은 고양이인데, 고양이를 피하면서 아이템들을 모두 모아야 한다.

고양이를 직접 공격해서 죽일 수는 없으며, 문을 적절한 타이밍에 열어서 기절시킬 수만 있다. 그리고 굉장히 특이한 규칙이 있는데, 봉봉 패드를 타고 점프 내지 낙하 중일 때, 다시 말해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상태일 때는 고양이와 닿아도 죽지 않는다. 요 타이밍을 잘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안전하다고 해서 봉봉 패드만 계속 연달아 타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러면 패드가 나중에 끊어져서 화면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E단조의 BGM 멜로디도 20년 가까이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었는데 본인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신기하다.
그리고 정식 오락실도 아니고 마치 뽑기 기계처럼 비치된 '동네 문방구의 오락기'라고 하니까 또 추억이 돋는다. 요즘은 그런 용도의 게임은 스마트폰 게임이 다 대체해 버렸으며, 3, 40대 아저씨들이나 옛날 추억을 살리려고 에뮬레이터와 롬 파일을 구해서 PC에서 게임을 즐기는 지경이 됐다.

일본에서는 패미컴(family), 퍼스컴(personal) 등.. 한국 같았으면 그냥 알파벳 이니셜을 그대로 썼을 텐데 영어 단어를 제멋대로 뚝뚝 잘라 내서 말은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요술나무 (Magical Tree)

남극탐험과 마찬가지로 코나미에서 1984년에 MSX용으로 개발한 작품이다. 제목을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였는데 구글에서 MSX tree climbing game이라고만 쳤더니.. 이거 뭐 내가 원하는 답이 즉시 튀어나와서 기억을 복원할 수 있었다. 역시 무서운 구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깃털 달린 모자를 쓴 귀여운 인디언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나무를 수직으로 끝도 없이 타고 오르는 게 목표인 게임이다. 9개의 스테이지를 거치면서 설정상 총 2004m를 올라가야 한다. 한라산보다 약간 더 높구나.
게임 BGM을 말하자면, 평소에는 F장조 파~도 파~도 파라솔파도... 요렇게 시작하는 명랑한 멜로디 6마디가 무한 반복된다. 아, 한 스테이지에는 화면의 중앙에 나무 기둥이 있는 보통 모드가 있고, 중앙 대신 좌우 양 끝에 나무 기둥이 있는 특별 모드가 있다. 특별 모드에서는 반음 간격의 뚜두뚜두...만 반복되면서 뭔가 위기 상황인 듯한 분위기가 난다.

주인공을 방해하는 건 무슨 게처럼 수평 비행을 하는 부엉이, 번개를 떨어뜨리는 먹구름,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애벌레 등이다. 아이템으로 칼과 활이 있는데 이건 점수만을 줄 뿐 무기가 아니다. 이 게임엔 주인공에게 무기를 사용한 공격은 없으며 단지 사과를 떨어뜨리고 굴려서 적을 없애는 시스템만이 존재한다.

끝도 없이 높이 솟은 나무 위에 성이 있는 게 '재크와 콩나무' 동화 같은 느낌이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15/01/27 08:26 2015/01/27 08:26
, ,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055

1.
우리나라가 옛날보다는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대한 경각심이 좀 생겼고 불시단속도 강화된 관계로..
기업들 역시 대기업·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직원들의 컴퓨터에 혹시 불법복제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는지 자체 단속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소프트웨어 자체를 생산하는 일을 하는 IT 기업에서는 추가적으로 민감한 물건이 더 있다.
자사가 개발하는 제품의 내부에 혹시 오픈소스 솔루션이 예기치 않게 들어가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당장 돈을 안 들이고 원하는 문제를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출처 명시 없이, 혹은 라이선스가 요구하는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그런 솔루션들을 자기 소스 코드에다 불쑥 집어넣었다가는..
글쎄, 그 회사와 회사 제품이 완전 듣보잡 마이너 내수급이라면 별로 문제되지 않고 넘어갈지 모른다.
그러나 외국으로도 널리 널리 쓰이고 돈을 빗자루로 긁어모으는 인기 프로그램이라면 얼마 못 가 당연히 걸리고 발목 잡히게 된다.

왕년에 병역비리 내지 논문 표절을 저지른 사람이 나중에 고위 공직자가 되려 할 때 청문회에서 탈탈 털리듯이 말이다.
오픈소스를 표방하는 자유 소프트웨어라고 해서 저작권이 전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나 완전히 제멋대로 고치고 이득을 챙겨도 되는 '인류 공용 자산'급인 public domain이 아니다.

방대한 분량에 복잡한 로직을 가진 소프트웨어는 설령 소스 코드가 있다 해도 누가 함부로 찔끔찔끔 고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설령 컴파일된 바이너리이고 소스 코드가 없다 하더라도, 여기에 어떤 오픈소스 솔루션이 무단으로 포함되었는지 정도는.. 오픈소스 진영에서 매의 눈으로 감시해서 다 적발해 낸다. 컴파일된 바이너리 코드의 패턴 분석을 정교하게 하는 듯.

그래서 그렇게 자기는 이윤을 챙기면서 엔진 내부에 무료 오픈소스를 무단으로 사용한 양심불량 소프트웨어는 hall of shame 같은 데에 올라서 업계에서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며,
GPL 라이선스 급의 오픈소스를 잘못 따다가는 그걸 사용한 프로그램 전체에 대해 소스 공개라는 형벌(?)을 당하게 된다. 실제로 그런 소스 공개형을 당한 사례도 몇 건 있다. 물론, 프로그램 소스만 공개이지 그 소프트웨어 제품에 사용된 각종 데이터나 리소스까지 죄다 공개는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기술 유출은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 자사 직원들만치 꼼꼼하게 감시하지는 않는 하청업체로부터 납품받은 소스에 이런 지뢰가 들어있어서 골탕을 먹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납품 계약을 할 때부터 그 솔루션에 오픈소스 저작권 문제가 확실하게 없다는 걸 확인시키며, 문제가 생길 경우 이런 책임을 지우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걸 본인은 업계에서도 경험했다.

여담이지만, 요즘은 응용 언어학에서 다루는 말뭉치(코퍼스)에도 저렇게 저작권 바람이 불고 있다.
그래서 국립 국어원에서도 21세기 세종 계획 성과물로서 세종 말뭉치를 배포하다가.. 저작권이 문제가 되는 데이터를 빼고 분량이 다소 감소한 말뭉치를 새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IT업계의 오픈소스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2.
요번 학기에 학교에서 오픈소스와 관련된 세미나 수업을 들었다. 오늘날 IT 업계에서 오픈소스라는 트렌드가 차지하는 비중을 더욱 절실히 알 수 있었다. 자유 소프트웨어는 무엇이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무엇인지, 그리고 리눅스 진영과 리처드 스톨먼 진영의 차이는 무엇인지 예전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아는 게 없었는데 이제 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유익했다.

오늘날은 정말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github, sourceforge 같은 오픈소스 진영의 저작물을 이용하지 않고는 실용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대단히 어렵거나 가성비가 안 맞아 의미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 오픈소스 진영에서 활동한 이력은 만천하에 공개된 자기 스펙과 자산이 되기 때문에, 당장 소프트웨어의 무료 공개로 인한 금전 손실 이상의 이득이 돌아온다는 말에는 공감이 됐다.

확실히 IT 업계에서 경력을 쌓는 방식의 패러다임이 바뀌긴 했다. 내 지인 중에서도 이 바닥에서 워낙 유명한 사람이 있다. 그 친구는 이런 수업 따위는 들을 필요가 없거나, 아니면 나처럼 따로 자료 찾으며 과제를 낑낑대며 할 필요조차 없이, 평소에 하던 오덕질을 갖고 학점 따위 그냥 날로 먹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내게 오픈소스라는 건, 이거 소스 코드 하나쯤은 공개해 버려도 내 밥줄에 아무 지장 없고 그것보다 더 나은 것 정도는 얼마든지 또 만들어 낼 수 있고, 이 프로그램의 UI, 데이터 파일들을 업계 표준 관행으로 굳히는 효과까지 노릴 수 있는 괴수들의 전유물일 뿐인 것 같다. =_=;; 물론 그런 진영에서 기여를 하는 프로그래머들이 매우 고마운 대인배인 건 사실이지만, 일단은 무슨 희생, 헌신, 자선 행위라기보다는 “가진 자의 여유” 구도라는 것이다.

또한, 마냥 다 공개하는 게 능사만은 아닐 텐데.. “경쟁자가 따로 이득을 보기 vs 경쟁자를 원천 견제하고 차단하기”라는 결말의 차이가 어떤 과정에서 생기는지 궁금하다. 가령, IBM은 하드웨어계의 오픈소스라 할 수 있는 PC 규격을 내놓았고 그게 결국 세계를 평정하긴 했지만, 이 때문에 정작 자기는 아무 이득도 못 보고 PC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됐단 말이다.

id 소프트웨어에서도 둠과 퀘이크의 소스를 공개하긴 했지만, 그래도 해당 세대의 기술이 충분히 한물 갈 정도로 굉장히 나중에 공개하지 않았던가. 물론, 엔진을 유료로 판매하기도 하는데 소스를 돈 주고 산 업체들이 손해를 보지 않게 하려고 좀 늦게 공개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오픈소스가 과연 개발자와 사용자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로 계속 명맥이 유지되는 게 가능할지 지켜볼 일이다.

아 그리고,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완성품을 복사해서 사용하는 것만 무료이지 여전히 소스 비공개 사유 소프트웨어이다. 물론 오픈소스 저작물을 사용한 것도 최소한 C++ 코드 내부엔 전혀 없다. 거기 들어있는 모든 모듈의 모든 기계어 코드는 한 치의 예외 없는 100% 자작이다.
전세계에 한국어와 한글이 쫙 퍼져 있고 세벌식 자판이 주류 글자판이 돼서 누구나 이런 응용 한글 입력 엔진의 필요를 느끼고 있고 사용자가 왕창 많고 거기에 다른 형태의 돈줄까지 있다면야 내가 거기에 공개적으로 기여를 해서 오픈소스계에 등단(?)할 수도 있겠지만.

시장과 수요 자체가 극도로 마이너한데... 공개해 봤자, 한글 IME를 연구하는 일부 극소수 오덕들에게나 좋은 일을 하게 되고, 내가 노력을 보상받는 길도 없고, 날개셋의 리눅스나 맥 버전을 뚝딱 책임감 있게 만들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 와중에..
무작정 오픈소스화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오픈소스 진영이 있다고 해서 모든 프로그래머가 흙 파서 먹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8.0 정도가 나온 뒤부터는 내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생존 방법에 대해서도 슬슬 생각을 해 봐야겠다.

3.
저건 나름 학점이 붙은 과목이기 때문에, 세미나만 있는 있는 게 아니라 과제도 있었다. 관심이 가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하나 선정해서 그에 대해 조사를 하고, 관심이 있으면 자그마한 오타 수정이라도 직접 하나 contribute를 해 보라는 것.

그래서 평소에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관심이 무진장 많으며, 나보고도 줄곧 이것저것 다른 언어를 익혀 보라고 권유를 하던 대한민국 오픈소스 진영의 거물이자 프로그래밍의 천재 T모 군의 도움을 받았다. (IOCCC 입상자 ㅋㅋㅋㅋ) 권유의 대상도 예전부터 파이썬, D, 자바스크립트로 계속 바뀌어 오다가 요즘은 Rust로 정착했다.

Rust는 모질라 재단에서 자체 개발한 새로운 절차형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이다. Java/C# 같은 언어는 full-time 쓰레기 수집기가 갖춰진 별도의 가상 기계에서 동작하는 반면, 이 언어는 그런 형태의 쓰레기 수집기가 없이 C++과 동급의 네이티브 코드로 컴파일되는 언어이다. 메모리 관리 수준은 걍 Windows RT의 C++/CLI와 비슷한 급이 되겠다.

웹 브라우저 렌더링 엔진을 만드는 단체가 웬 PL을 새로 만들게 되었는지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렌더링 엔진도 응당 GPU와 멀티코어의 도움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 페이지들이 자연스럽게 멀티코어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단일 페이지가 멀티코어를 적절히 활용하게 만들자니 C/C++로 만들어진 기존 코드들은 답이 없는 지경이었나 보다.

또한 C/C++은 알다시피 빌드 시간이 매우 길고 컴파일러가 잡아 주지 못하는 메모리 관련 버그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등, 대형 프로젝트의 진행에 전통적인 한계와 약점도 적지 않다. 그래서 대형 프로젝트의 개발과 유지에 적당한 새로운 언어를 찾았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자 언어를 직접 고안하게 되었다.

이 언어는 모질라 재단에 소속되어 있던 개발자인 Graydon Hoare가 개인적으로 설계하던 언어를 재단이 인수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지금은 모질라 재단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도 Rust의 개발을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어서 0.12까지 나왔는데.. (12는 소수점이 아니라 그냥 정수. 0.2보다 최신 버전임) 긴 베타 기간을 거친 후, 가까운 미래에 Rust의 1.0 정식 버전이 나올 예정이라 한다.

즉 멀티코어 병렬 처리 편의와 자동 메모리 관리, 그리고 성능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언어라는 뜻인데, 구글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발한 Go라는 언어하고도 경쟁 구도인 듯하다. 하지만 둘은 패러다임이 좀 다른 언어이다.

Rust에서 모든 값은 그 값이 대입된 변수나 구조체 필드, 넘겨받은 함수 인자 등의 이름에 귀속된다. 이름은 자기에게 귀속된 값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며, 다른 이름으로 값을 대입하면 그 이름으로 소유권이 이전된다. 예를 들어, 다른 언어에서 a = b와 같은 대입 연산은 b의 값을 a로 복사하거나, b가 가리키던 객체를 a도 함께 가리키겠다는 의미를 갖는 데 반해, Rust에서는 b가 가지고 있던 값을 a로 이동시킨다는 의미가 된다. C++로 치면, C++11에서 첫 도입된 R-value reference type과 개념적으로 비슷하다.

만약 함수의 리턴값을 받지 않는다던가 하는 일로 인해 소유권을 넘겨주지 못한 채로 이름이 사라지게 되면, 거기에 귀속되었던 값도 함께 사라지면서 그 값을 담았던 메모리도 해제되게 된다. 프로그래밍 언어 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binding과 object의 생명 주기를 일치시킨 셈이다.

Rust 컴파일러는 컴파일 단계에서 소유권이 어떻게 이전되는지를 모두 추적할 수 있으며, 필요한 메모리 할당 및 해제 코드를 컴파일 중에 정확한 위치에 삽입한다. 이런 방법으로 Rust는 런타임 오버헤드가 없는 안전한 메모리 관리를 이루어 낸다.
일단 대충 이 정도 조사하면서 그쪽 진영에서 뜨고 있는 이슈와 작업 진행 방식들을 조사해 봤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14 08:34 2014/12/14 08:34
, ,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039

1.
아래아한글의 역대 버전 중, 96과 97은 실행되면서 스플래시 화면이 나올 때 짤막한 효과음(음악 멜로디)이 나오던 전무후무한 버전이었다.
96은 경쾌한 사과나무.wav (도~~ 미파솔..로 시작하는)이었고 97은 그것 말고도 여러 종류의 음향이 더 추가되었다. 물론 워디안 이후 후대부터는 그런 것 없고. 이런 것도 다 일시적인 유행이었다.

오늘날은 아예 Windows조차도 8부터는 로그인 로그아웃 소리가 없어졌다.
먼 옛날 3.x 시절에 사운드 카드가 지원된 이래로, 시작 효과음은 그 유명한 tada.wav부터 시작해 뭐가 들어가도 들어갔는데.. 완전히 없어진 건 8이 처음이다.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게 옛날만치 그렇게 막 유세 떨 일이 아니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설치 프로그램이 원래 전체 화면을 차지하는 형태이다가 조그마한 마법사 대화상자로 바뀐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고 말이다.

2.
지금이야 MS Office 제품들이 리본 UI를 사용하여 인터페이스가 여타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었지만..
먼 옛날, Office 95 시절이 문득 생각난다.
Windows 95의 출시에 맞춰서 완전히 32비트로 포팅된 첫 버전이었으며, 동시에 Office가 운영체제의 표준 메뉴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던 마지막 버전이었다.
다만, 약간의 애드립이 생각지 못한 곳에 있었는데.. 아래 스크린샷에서 프로그램 상단의 타이틀/캡션 바 영역을 보시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Office 95 프로그램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캡션 바를 자체적으로 그렸다.
그래서 Microsoft는 그냥 일반 폰트가 아니라 그 당시 쓰이던 MS 로고타입 형태 그대로 그려졌으며, 검은색에서 짙은 군청으로 바뀌는 그러데이션이 적용되어 있었다.
잘 알다시피, 캡션 바에 그러데이션이 추가된 것은 윈도 98부터이지 95엔 아직 그런 게 없었다. 응용 프로그램이 WM_NCPAINT를 처리하여 직접 그렸던 것이다.

정말 일시적인 유행이었지만 그 시절에 외국 프로그램 중엔 캡션 바를 이 스타일을 따라 그렸던 프로그램도 소수 있었다.

3.
사실 Windows는 GUI 외형이 Mac OS에 비해 매우 단순한 편이었고, 그 대신 색상을 다양한 스타일로 지정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XP 이후부터는 큰 변화가 생겼다. Luna 테마는 파랑-은색-황록이라는 세 색상표만 지원했고, Vista부터는 Aero 창틀의 색깔만 사용자 지정이 될 뿐 나머지 색상은 고정 불변이 됐다. 예전의 재래식 외형은 '고전 테마'라는 legacy로 전락했다.

시스템 색상을 customize할 일이 없어졌다. GetSysColor 함수는 원래 수십 가지의 색상 요소들을 제공하지만 응용 프로그램은 사실상 COLOR_WINDOW(TEXT), COLOR_HILIGHT(TEXT), COLOR_BTNFACE 같은 것밖에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사실은, 선택된 아이템을 표시할 때도 COLOR_HILIGHT나 반전(InvertRect)이 아니라 엷은 파랑 효과를 쓰는 게 유행이 됐다.

옛날에 Microsoft Plus! 같은 확장팩이 제공했던 '테마'들은 색상, 마우스 포인터, 효과음을 한데 모은 세트였지만.. 지금은 Windows도 맥 OS처럼 어찌 보면 사용자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다. 지금의 외형 자체가 곧 Windows의 정체성과 같다는 점을 더욱 내세우려는 것 같다. 색상표는 이제 사실상 시각 장애자 내지 전력 절약용으로나 의미가 있는 '고대비'밖에 안 남았다.

4.
Windows는 파일/디렉터리 목록을 이름 순으로 정렬해서 표시하더라도 디렉터리(폴더)와 파일은 따로 분류해서 보여주는 반면, Mac OS는 이들을 다 한데 섞어서 보여준다. 디렉터리도 특수한 형태의 파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아무래도 파일과는 개념적으로 다른 존재로 보느냐의 차이 같다.
또한 마우스 휠을 인식하는 대상도 Windows는 키보드 포커스를 받고 있는 창이지만, Mac은 마우스 포인터가 놓여 있는 창이다.

참, 맥OS는 메뉴나 대화상자에 액셀러레이터 키가 전혀 없는 게 굉장히 뜻밖이다.

5.
유튜브나 스마트폰의 동영상 재생 앱 등... 요즘은 이게 유행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멀티미디어 재생 컴포넌트들은 Pause(||) 버튼만 있지, 완전 정지 Stop(■) 버튼이 없다.

파일을 열었으면 나중에 반드시 닫아야 한다는 프로그래머스러운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본인 같은 사람에겐 그런 디자인이 심리적으로 좀 불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정말 Stop이 없어도 될까? 굳이 프로그래머가 아니더라도 옛날 카세트 및 비디오 테이프 재생기 역시 기계적인 특성 때문에 Pause와 Stop은 성격이 상당히 다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리소스 제약 같은 걸 생각하지 말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오로지 틀고 싶을 때 틀고 끄고 싶을 때 끄는 것만 생각하면, 원론적으로야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긴 해 보인다.

6.
top-to-bottom과 bottom-to-top이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당장 좌표계만 해도 수학에서는 아래에서 위가 y축의 양의 방향이지만.. 컴퓨터 화면에서는 위에서 아래가 y축의 양의 방향이다.

Windows에는 spin, 혹은 up-down이라고 불리는 컨트롤이 있다.
얘는 언제나 위에 있는 ▲ 버튼 혹은 위(↑) 화살표 키를 눌렀을 때 숫자를 증가시키고, 그 반대의 조작을 하면 숫자를 감소시킨다.
안타깝게도 이 동작을 정반대로 바꾸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컨트롤의 동작을 교묘하게 서브클래싱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저 컨트롤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제어판에서 입력 항목의 배열 순서를 바꾸는 용도로도 쓰이는데..
입력 항목들은 위에서 아래로 오름차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 ↑가 아니라 ↓를 눌렀을 때 숫자가 증가하고 아래로 가게 하고 싶으나 그렇게는 못 하고 있다.
이건 솔직히 사용자를 굉장히 헷갈리게 만들 수도 있는 면모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외에도, 노트북의 터치패드를 손가락으로 상하 드래그를 했는데, 위에서 아래로 그었을 때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시킬지,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스크롤시킬지도 보통은 옵션으로 존재한다.
본인이 선호하는 건 위에서 아래로 그었을 때 화면은 아래에서 위로, 즉, 아래 페이지의 내용을 표시하는 것이다. ↓ 키를 눌렀을 때와 같다. 손가락은 전체 내용에 대한 화면(view)의 상대적인 위치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의 위치를 지금 표시되어 있는 텍스트의 상대적인 위치와 같은 것으로 본다면.. 소프트웨어의 동작은 저것과는 반대가 되어야 직관적일 것이다. 결국 이것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답이 없는 문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2/15 08:26 2014/02/15 08:26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931

« Previous : 1 : 2 : 3 : 4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3/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2078260
Today:
327
Yesterday:
1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