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를 끌어올려 분사하는 일을 하는 물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물뿌리개: 일면 주전자처럼 생겼지만 주둥이의 끝은 샤워기처럼 생긴 물통이다. 확 들이붓더라도 물이 넓은 면적에 고르게 퍼져 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다. 다만, 물을 내보내는 메커니즘은 중력밖에 없으니 딱히 신기할 게 없다. 이름 그대로 화단에 물을 주는 용도로 쓴다.
  • 펌프: 진공을 만들어서 압력차를 이용해 물을 끌어올리는 도구이다. 옛날에 오늘날과 같은 편리한 상수도 시설이 갖춰지기 전, 시골에서는 종종 볼 수 있었다.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끌어올리던 시절보다는 많이 발전했지만, 그래도 수동식 펌프는 펌프질을 위해 여전히 사람의 체력이 필요했다.
  • 분무기: 물이나 향수 같은 걸 펌프와 같은 원리로 끌어올린 뒤, 안개처럼 조금씩 뿌옇게 분사한다. 손으로 손잡이를 눌러서 손잡이가 끝까지 들어갈 때까지 그렇게 동작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어떻게 조작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일부 분무기는 노즐 '모드'를 바꿔서 물을 뿌옇게 분사하는 게 아니라 물총처럼 가느다란 물줄기를 찍찍 갈기게 만들 수도 있었다.
  • 스프레이: 분무기보다 기술적으로 더 발달했다. 위의 분무기는 손잡이가 끝에 닿아서 멈춘 뒤엔 더 분사가 되지 않지만, 스프레이는 버튼을 누르고 있는 동안 계속해서 액체가 분사되어 나온다. 스프링이나 태엽, 전기 동력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액체를 밀어내는 역할은? 같이 들어가는 압축 기체가 한다. 그 대신 여기에 들어가는 액체도 역시 단순한 물 같은 게 아니라 아무래도 살충제, 페인트 같은 화학 약품들이다. 아, 그러고 보니 소화기도 따지고 보면 이런 스프레이에 속한다.

총으로 치면 단순 압축 분무기는 반자동 모드이고, 에어로졸 스프레이는 연사가 되는 자동 모드에 해당한다고 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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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인은 액체 연료와 고체 연료의 차이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액체를 끌어올려 뿌옇게 분사하는 기술은 액체 연료를 다루는 핵심 기술이며 기계공학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나 싶다. 유체역학과 열역학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난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세제, 치약, 샴푸 같은 것에 유체의 극미량 분사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찌익 짜서 쓰는 양보다 훨씬 적게 써도 씻는 데 부족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상의 이유로 과다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자동차 엔진에서 분사 기술의 중요성은 그야말로 물으면 잔소리이다.
<이연걸의 정무문> 영화의 맨 앞부분을 보면.. 주인공 진진은 설정상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내연기관이라는 신문물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게 나온다. (오오~ 기계공학..) 그때도 대사를 들어 보면, 선생이 '카뷰레터'라는 장치를 언급한다~!
서양 제국주의는 내연기관이 달린 기계와 총기를 통해서 이뤄진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 당시로서는 엔진 기술이 오늘날의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기술만큼이나 최첨단 기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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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잘 알다시피 공기 중에 연료를 아주 희박하게 분사한 뒤 이를 폭발시켜서 그 힘으로 피스톤을 누르고 바퀴를 굴린다.
이를 수행하는 가장 원시적인 장치가 바로 '카뷰레터'이다. 얘는 말 그대로 분무기처럼 동작을 하여 가솔린+공기 혼합 기체를 엔진에다 보내 준다. 참고로 카뷰레터는 탄소 carbon에서 유래된 탄화물 carburet의 파생어이다.

어린이용 과학 실험 중에.. 빨때를 ㄱ자로 꺾어서 수면에다 꽂은 뒤, ㅡ 모양의 한쪽 끝을 입으로 세게 불면 아래에 있던 물이 빨려 올라가는 실험이 있다. 바로 그 원리이다. 유식한 표현으로는 베르누이의 정리 내지 벤트리 효과이다.
더 나아가 바다에서 사람이 배의 스크류에 빨려 들어가서 사고를 당하는 것, 열차가 빠르게 달리는 쪽으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는 것도 다 유체역학적으로 같은 원리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옛날 이야기를 하겠다.
현대 자동차에서 예전에 만들었던 승용차인 '엑셀'. 그 기원을 찾자면 포니 엑셀, 프레스토 등 더 옛날 차로 거슬러 올라가긴 하는데, 그 중 가장 엑셀스러운 첫 모델은 1989년 4월에 나온 2세대 모델이다. (그러고 보니 저 시기는 아래아한글 1.0이 나온 시기와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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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엑셀은 1300cc, 1500cc GL, 1500cc GLSi 이렇게 세 모델로 출시되었다.
창문도 최하급은 전도어가 수동이고 중간급은 앞좌석 두 개만 자동, 고급은 전좌석이 파워윈도우였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차이는 연료 분사 방식인데, 앞의 둘은 기계식 카뷰레터보다 약간 더 발전한 전자식 피드백 카뷰레터인 FBC이고, 최고급 GLSi는 그 당시로는 최첨단 기술이던 다중분사 MPI 방식이었다.

GLSi의 경우, 차 측면에 Multiple Point Injection이라고 당당히 자랑하는 글귀가 붙어 있을 정도였다. DOHC 흡기 방식이거나 자동 변속기가 달린 차는 측면에 Automatic 내지 DOHC라고 자랑을 치던 시절의 얘기다.

흐음, 기계식 카뷰레터, 전자식 카뷰레터, MPI(완전 전자식)라는 세 계층의 기술을 보니..
이듬해 봄에 발표되었던 마소 Windows 3.0의 리얼 모드, 286 표준 모드, 그리고 386 확장 모드가 같이 연상된다!
그땐 자동차와 컴퓨터 모두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하던 과도기이긴 했다. 전동차로 치면 저항, 쵸퍼, VVVF와 비슷하다.

카뷰레터는 전자 제어가 없이 전적으로 밟은 만큼 밸브가 열리고, 곧이곧대로 연료가 분사되다 보니.. 구조가 단순하고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정비성이 좋았다. 변속기도 수동이었으니 반응 하나는 정말 최강이었을 것 같다.
193,40년대에 미국에서는 퍼져 버린 차를 시골 깡촌의 소녀가 간단한 공구로 뚝딱 수리하는 걸 보고 미국으로 견학을 간 어느 일본군 장교가 경악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전국민이 저렇게 기계를 잘 다루는 나라와는 전쟁을 벌여서 이길 수 없다"라고 직감을 했다고.

미국이 (1) 193,40년대에 이미 마이카 시대가 열렸을 정도로 잘사는 나라이며, (2) 인건비가 높아서 어지간한 작업은 스스로 다 알아서 해야 하는 나라인 것도 있지만, (3) 한편으로 그 시절엔 자동차의 구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하기도 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은 기계식 카뷰레터만으로는 요즘 정도의 엄청나게 까다로운 연비나 배기가스 기준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 지금은 MPI에 이어 직분사라는 GDI 엔진까지 출현했고, 또 그 동작을 제어하는 것 역시 옛날보다 훨씬 더 똑똑하졌다. 컴퓨터가 이것저것 따져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기계식 카뷰레터 기반이던 포니에는 초크 밸브를 개폐하는 스위치도 운전석에 있었다니 참 신기하다. 공회전 때 엔진 회전수를 조절하는 역할도 하고, 또 추운 곳에서 오랜만에 시동을 걸 때는 이거 제어를 잘 해 줘야 했던가 보다. 지금은 그런 밸브는 오토바이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인 듯.

Posted by 사무엘

2015/05/25 08:30 2015/05/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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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교통수단의 동력 메커니즘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듯, 자동차는 내연기관으로 피스톤을 움직이고 그 힘으로 바퀴를 굴린다. 차체는 지면과의 구름 마찰력을 이용해서 나아간다. 엔진이 차체의 하중(과 그로 인한 정지 마찰력)을 직접 상대하는 부담을 덜려면 변속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이 모두 쓰인다.

비행기는 제트엔진으로 움직인다. 연료를 공기와 혼합시킨 후 압축· 폭발시키고 내뿜어서 그 반동으로 나아간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 가스 폭발 사고 하나만 나도 주변이 엄청난 파괴력에 얼마나 박살이 나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힘을 제어하여 자동차와 비행기를 굴리는 걸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 로켓은 아래로 내뿜어서 그 추력 자체로 위로 뜨는 반면, 여타 항공기는 뒤로 내뿜어서 전진만 하고 하늘로 뜨는 건 날개의 양력을 이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항공기의 엔진은 당연한 말이지만 자동차 엔진보다 연료 소모가 많고 후폭풍과 소음도 막대하다. 하지만 결국 엔진이 밀어내는 건 공기일 뿐이기 때문에, 항공기의 엔진은 출력만 높으면 되지 자동차와는 달리 특별히 높은 토크나 동력비 변환 같은 걸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륙할 때가 비행기에 특별히 힘이 많이 필요하며 순항 중일 때보다 연료가 훨씬 더 많이 소모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달릴 때 파일럿이 무슨 1단, 2단 변속을 한다거나 비행기 엔진음이 단계별로 오르내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

항공기의 엔진에 경유-중유 같은 디젤 연료가 쓰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공유는 휘발유와 등유 사이의 등급에 속하며, 액체 연료 로켓에 들어가는 연료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단순히 뭔가를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연료를 폭발시킨 배기가스 자체를 내뿜어야 하기 때문에, 비행기만은 여타 교통수단과는 달리 '전기 동력화'를 전혀 할 수 없다. (배는 전력 공급 문제 때문에 기름으로 달리지만, 그래도 아예 원자로를 내장하고 전기로 움직이는 원자력 잠수함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배가 나아가는 원리를 자동차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좀 특수한 상황인 것 같다.
무거운 바닷물 속에서 거대한 스크루를 회전시켜서 추진력을 만들려면 배의 엔진에는 역시 높은 회전수보다는 낮은 회전수에 높은 토크가 필요할 것이고, 이런 상황에는 디젤 엔진이 매우 적합하다. 유원지 가서 보트에서 노를 젓거나 페달 밟아서 오리배라도 몰아 본 분은 아시겠지만, 물에서 배를 움직이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러니 배의 엔진은 자동차 엔진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배에 철도처럼 디젤-전기 기관이 쓰이기도 하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배는 자동차와는 역학적 여건이 다른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구름 마찰력에 의해 나아가는 게 아니며(스크루는 바퀴가 아니다!), 엔진에 배의 하중이 그대로 걸리는 형태가 아니다. 무게를 직접 받는다면 최하 수백~수만 톤에 달하는 거대한 배는 도저히 나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배는 구동축이 수중에 있기 때문에 공기보다야 엔진에 기본적으로 걸리는 부담이 훨씬 더 크겠지만, 갓 출발할 때이든 순항 중일 때이든 그 부담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동력비 변환 외에 자동차 같은 다이나믹한 변속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배를 탈 일이 있으면 엔진 소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좀 더 주의 깊게 들어 봐야겠다.

자동차도 제트 엔진을 장착한 초음속 자동차가 사막에서 시운전을 하는데 배에도 굳이 내연기관이 아니라 제트엔진을 장착해서 가게 할 수도 있다. 어차피 망망대해에서는 뒤로 공기를 뿜으며 후폭풍을 일으켜도 위험할 게 없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이 경우 배는 무척 빨리 움직일 수는 있지만 연비도 크게 감소하는 게 불가피하다. 군함 중에는 경제성과 기동성을 겸비하기 위해 내연기관과 제트 엔진이 모두 달린 배가 있다고 한다.

끝으로, 배가 제동은 어떻게 하겠는지를 생각해 보자. 자동차처럼 브레이크를 밟아서 구동축만 붙잡고 있는다고 서는 게 아니며, 주변은 온통 물뿐인데 땅을 붙잡아서 마찰을 일으켜서 설 수도 없다.
배가 제동을 걸려면 정말 엔진의 동력을 뒤로 향하게 하는 역추진을 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초대형 선박은 그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 때문에 속도를 바꾸기가 대형 트레일러나 열차보다도 훨씬 더 힘들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다음은 관련 추가 잡설들이다.

1. 대형 선박은 자동차처럼 키 꽂고 START만 돌린다고 해서 바로 시동이 걸리는 게 아니며, 시동 걸어서 초기화하는 데만 30분~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무슨 예열 과정이라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엔진이 얼마나 거대하면 컴퓨터 운영체제의 부팅도 아니고 기동하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릴 수 있을까?
참고로 디젤 기관차의 시동을 거는 장면은 류 기윤 님 같은 철덕 기관사가 올린 UCC를 통해 본인은 접할 수 있었다. 일반인이 평소에 듣을 수 없는 웽~ 소리가 난다.

2. 전세계의 항구들은 주변 지형과 시설 구조가 완전 제각각이다. 그에 반해 전세계를 누비는 배들은 덩치가 몹시 크고 가감속이 더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배가 항구의 원하는 위치에 제대로 들어오도록 인도하는 일은 매우 몹시 중요하며, 이 일을 하는 사람을 도선사라고 한다.
교통덕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도선사는 교통· 운수업에서는 비행기 조종사에 필적할 정도로 어렵고 중요한 일을 하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종사자의 수도 적고 고령이며, 그 업종에서는 가히 최강의 연봉을 받는다. 게다가 도선사는 영어로는 조종사와 동일한 파일럿(pilot)이라고 불린다.

3. 군사 목적으로 수륙 양용차라는 게 있다. 그리고 철도계에서는 도로와 레일 위를 동시에 달릴 수 있는 특수 자동차도 있다. 흠, 이들을 통합하면 물과 육지는 전천후로 달릴 수 있는 교통수단이 나올 수 있을 듯.
다만, 비행기와의 통합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엔진 구조와 사용 연료가 근본적으로 다르고 날개를 접었다 꺼내는 설비도 필요할 테고... 굳이 무리해서 만든다고 해도 고정익보다는 헬리콥터 같은 회전익 겸용차가 더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4. 자전거를 타고 평지에서 정지 상태에서 처음으로 전진할 때는, 페달을 밟는 것보다 땅을 발로 뒤로 차는 게 힘이 덜 들 때가 있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페달 밟는 부담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배가 물을 박차고 나아가는 것에도 이와 비슷한 차원의 역학이 적용되는 게 있는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2/08/18 08:18 2012/08/1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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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 기관차와 외연 기관

철도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산업화의 주역이던 증기 기관차이다.
우리말의 경우 기차(汽車)라는 한자어부터가 증기라는 뉘앙스를 잔뜩 담고 있는 단어이며, 칙칙폭폭 역시 증기 기관차에서 유래된 의성어이다.
철도 건널목 표지판은 연기를 모락모락 내는 증기 기관차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증기 기관차가 달리면서 연기를 온 천지에다 뿌려대는 모습을 보면, “기차 화통 삶아먹었나?”란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 아마 중국어로는 기차를 아예 火車라고 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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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드보르작이 증기 기관차를 보고 철덕이 되었던 반면, 21세기의 철덕은 전자음 옥타브를 들으면서 쾌감을 느낀다.
오늘날의 철도 차량 중에 저렇게 연기를 뿜으면서 칙칙폭폭 하면서 달리는 녀석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억 속에 각인된 철도의 첫 구현체인 증기 기관차에 대한 인상은 너무나 뿌리 깊다. 마치, 플로피 디스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3.5인치 디스켓 아이콘은 ‘저장’ 아이콘으로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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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요즘 건설되는 철도는 복선 전철이 기본이요 전부 고가이다. 건널목은 절대 만들지 않으며 무조건 입체 교차이다. 그러니, 철길 건널목 하면 표지판의 증기 기관차가 암시하듯, 옛날의 꾸질꾸질한 기관차형 열차만을 사람들이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일리가 있다.

본인은 디젤 동차인 새마을호 연구 전문이기 때문에, 철덕치고는 열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증기 기관차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증기 기관차에 대해서 한번 좀 기계공학스러운 글을 써 볼까 한다. 역사든 지리든 음악이든 과학이든, 철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학문은 나의 친구이다. ㅋㅋ

물리학에는 열역학이라는 분야가 있으며, 열역학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궁극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열로 바뀐다.
하지만 반대로 열을 에너지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며, 모든 열을 에너지로 바꾸지는 못한다. 그 일을 하는 물건을 통상 기관 내지 엔진이라고 부른다.

그 기관 중 증기 기관은 외연 기관이라고 불린다.
증기 기관은 연료를 태워서 물 같은 다른 매개체를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의 힘으로 피스톤이나 터빈을 움직인다. 연소가 동력을 만드는 곳과는 별개의 장소인 보일러에서 행해진다는 점에서 ‘외’(external)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
밥솥 내지 냄비에서나 나오는 그 연약한 수증기가 평소보다 10수 배로 압축만 하면 집채만 한 무거운 열차를 움직이게도 한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요즘이야 기관차형 열차에는 기관차 뒤에 발전차가 편성되어 있다. 객실 내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발전차가 아니라 석탄을 실은 별도의 화차가 한 량 필요했다. ^^;; 기관사 밑에서 일하는 조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삽으로 석탄을 아궁이에다 열심히 퍼 넣어야 했다. ㅎㄷㄷㄷ;;
그리고 증기 기관차를 굴리기 위해서는 역에는 급수탑이 필요했다. 수원, 영천 등 몇몇 역에 있던 급수탑이 지금은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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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철도 차량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당시 증기 기관차의 특징 중 하나는 바퀴 크기가 큼직했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앞바퀴가 유난히도 큼직한 자전거가 존재하기도 했던 것과 따지고 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증기 기관차는 꼭 둥근 원통형이고 색깔은 새까맸다. 어차피 매연 묻어서 시꺼멓게 되는 걸 가리려고 검은색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듯.
또한 증기 기관차는 20세기 중반에 세상에 컬러 사진이 보편화할 무렵엔 모두 은퇴했기 때문에, 최소한 연기를 뿜으면서 달리는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보기는 쉽지 않은 물건이기도 하다. 특히 정지 사진이 아닌 컬러 동영상은 더욱 찾기 힘들 것이다.

이에 덧붙여 증기 기관차의 트레이드마크는 역시 특유의 '웨에에엥!' 기적 소리인데.. 이건 어떻게 만들어 낸 소리인지 모르겠다.

증기 기관은 오늘날의 내연 기관에 비해서야 구조가 간단해서 만들기 쉽고, 저속에서도 비교적(언제까지나 '비교적!') 토크가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마차보다야 월등히 더 뛰어난 수송력으로 물류 혁명을 달성한 건 사실임. 그리고 무슨 방법을 써서든 물을 끓게만 만들면 됐으니 옥탄가가 크지 않은 저가의 저질 연료를 써도 괜찮은 점 역시 장점이었다.

그때 증기 기관차에는 별도의 변속기라는 게 없었다. 외연 기관은 태생적으로 연소 따로, 구동 따로인데 어차피 바퀴의 부하가 엔진에 바로 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냥 석탄 열나게 많이 때면 빨리 가고, 적게 때면 느려졌다. 수증기가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유체/유압 변속기 역할을 자연스럽게 했다.
변속기가 없기 때문에 그 대신 기관차의 바퀴 크기 자체가 동력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으며, 바퀴마다 크기가 들쑥날쑥이기도 했다. 여객용 기관차는 속도를 중요시해서 바퀴가 유난히 크고, 화물용 기관차는 견인력을 중요시해서 작은 바퀴 여러 개였던 식.

나름 증기 기관도 발전을 거듭하여 처음 발명되었을 때보다 더욱 출력이 향상되고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런 동력을 쓰는 열차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많았다.
증기 기관 자체가 물리학적으로 볼 때 태생적으로 미치도록 열효율이 저조하고 열차를 굴리기에는 출력이 부족했다. 가감속이 쥐약이고 고속화 역시 곤란했다.

또한 증기 기관은 보일러가 필요하고 물탱크에 석탄까지 있어야 하다 보니, 구조는 단순하지만 덩치가 커지는 게 불가피했고 소형화하기가 곤란했다. 증기 기관이 자동차의 동력원으로는 실패하고 그나마 철길이라든가 증기선으로 살 길을 찾은 게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비열이 큰 물이 끓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석탄 같은 고체 연료는 취급하기가 번거로워서 여전히 큰 골칫거리였다. 시동 시간이 굉장히 길고, 차를 세우거나 움직이게 하는 게 고역이었다는 뜻. 연탄재 치우는 것만 해도 얼마나 귀찮은데 다량의 석탄재 처리는 어떻게?

마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순전히 관광 목적으로 streetcar (바닥의 전선을 잡고 달리는 legacy 시가지 교통수단)를 운행하듯이, 요즘 일부 국가에서는 관광용으로 일부러 증기 기관차를 굴리는 곳이 있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걔네들은 석탄 대신 석유나 가스로 물을 끓인다. 200년 전의 증기 기관차를 100% 그대로 재연한 건 아니라는 뜻. 사실,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실용화한 시기 자체가 영국의 산업 혁명과 맥을 같이하며, 오늘날처럼 대량의 석유를 값싸게 전세계에 공급하는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이었다.

환경면에서도 증기 기관차 역시 석탄이든 석유든 엄연히 화석 연료를 태워서 달리는 만큼, 그 큼직한 굴뚝에서는 수증기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달릴 때 방출되는 엄청난 양의 그을음 내지 매연은 친환경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존재였다.

18세기에 발명되어 인류의 동력원으로 활동한 증기 기관(핵심 인물: 제임스 와트)은 19세기 중후반이 되어서야 내연 기관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최소한 육상 교통수단의 동력원에서는 확실하게 은퇴이다. 내연 기관이야 다임러, 벤츠, 오토 같은 사람이 공헌한 가솔린 기관도 있고 디젤 기관도 있으며 심지어 제트 엔진이나 로켓도 이에 속하지만, 외연 기관은 사실상 증기 기관과 동치나 마찬가지인 개념인 것 같다. (뭐, 스털링 엔진 같은 특이한 엔진도 외연 기관이라고는 하지만)

Posted by 사무엘

2010/11/17 20:18 2010/11/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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