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뿔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천재 예술가(화가 겸 조각가)이다.
그는 성경의 인물 중에서 다윗을 조각으로 남겼으며(1501~1504, 보통 '다비드'라고 알려져 있..), 또 모친 마리아의 품에 안긴 형태이긴 하다만 예수 상도 만들었다(피에타, 1499). 이 둘은 워낙 엄청난 명작이기 때문에 조각가의 이름만 검색해도 이미지 검색에서 곧장 걸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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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는 다윗과 예수뿐만 아니라 모세 상도 만들었다(1515).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에 들어가는 장식 차원에서 만든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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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머리에 뿔이 달려 있다.. 왜..?
참 놀라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 성경이 그렇게 (잘못) 번역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시내 산에 다시 올라가서 하나님을 오랫동안 독대하고 십계명 돌판을 다시 제조한 뒤에 하산했는데.. 출 34:29에 따르면 하나님 버프를 받은 덕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서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머리가 빛나는 게 아니라 얼굴 말이다.;;

허나, 그 중세 시절에 가톨릭 교회에서 쓰이던 제롬의 라틴어 벌게이트(불가타) 성서에서는 his face shone (= shined) 부분이 his face was horned라고 번역되었다.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성경 번역의 먼 조상뻘인 위클리프 성경도 벌게이트의 영향을 받았다 보니 그렇게 됐고, 두에 랭스 가톨릭 성서까지도 다 출 34:29에 horned가 들어가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 혼자 올라가서 하나님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머리에 졸지에 뿔이 돋아 버린 거다..;;
뿔 난 모세, 앵그리 모세스.. 괜찮은 컨셉인 거 같다.
그 앞에 금송아지 사건 때문에 빡쳐서 뿔이 돋은 거라고 하면 차라리 훨씬 더 자연스럽겠다만, 저건 도대체 뭐냐. ㄲㄲㄲㄲㄲ

뭐, 뿔이 빛보다는 조각으로 표현하기 훨씬 더 유리하긴 하다만..ㄲㄲㄲㄲㄲㄲ
그리고 뿔은 성경에서 흉물이 아니라 긍정적인 심상이 강하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오죽했으면 '구원의 뿔'(시 18:2; 눅 1:69)이라는 명칭도 있을 정도이다.

저걸 최초로 찾아내서 바로잡은 사람은 그럼 누구이며 언제쯤의 일일까...??
옛날에는 사람들이 지식·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글을 다루는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성경에도 본문 계보의 정확도와 별개로 오역이나 실수가 종종 들어갔던 모양이다.

이런 악의적이지 않은 오류는 원어를 아는 소수의 학자 집단에서 경험적으로 알려지고 알음알음 공유되었다. 그러나 그걸 바로잡아서 역본을 또 만드는 건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개정한 뒤에 오역이 또 발견되면 어떡하려고..? 게다가 이때는 컴퓨터고 인터넷이고 아무것도 없고 종이의 가격도 엄청 비쌌다는 걸 생각하자.

에라스무스의 공인 본문이 나오고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개신교 쪽에서 라틴어로도 모자라 독일어와 영어로 성경 번역을 주도하면서 오랜 번역 오류가 고쳐졌던 게 아닌가 싶다.
그 반면, 가톨릭은 이때 본격적으로 고인물 썩은물이 돼 갔던 것 같다. 자신이 파문한 이단자들이 일으키는 변화를 당연히 전혀 수용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무려 1580년대에 안티 종교 개혁 차원에서 만들어진 두에 랭스 역본까지도 모세의 뿔이 여전히 들어있었던 것이다. (☞ 링크)

물론 개신교 계열의 옛날 성경도 과도기적인 실수나 오류가 있었다.
10여 년 전에 영국에서 만들어졌던 KJB: The book that changed the world라는 다큐 영상을 보면, 제임스 왕이 성공회와 청교도를 중재하면서 새로운 끝판왕 성경을 만들 것을 지시하는 과정이 잘 묘사돼 있다.

제임스 왕은 성공회에서 사용하던 비숍 성경은 대놓고 오역이 많다고 깠고, 청교도들이 사용하던 제네바 성경은 번역 스타일이 편향되고 잡다한 난외주와 주석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꼴도 보기 싫다며 깠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 모두까기 소신이었다.

그래서 두 진영 학자들을 한데 모아서 서로 교차검증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성경 번역을 시작했는데.. 성공회 진영의 대표 학자가 "그래도 기존 비숍 성경이 더 나으니 그거 스타일대로만 따라가면 별 문제 없겠는뎁쇼"라고 사석에서 국왕 폐하에게 은근슬쩍 자랑을 했다.
허나, 제임스 왕은 표정이 썩으면서 바로 말을 끊고 이렇게 맞받아 쳐 버렸다.

"뭐, 비숍 성경이라고?? 전 11:1 '빵을 물에다 던져 넣어라'가 '빵을 젖은 얼굴 위에다 놔 둬라'라고 황당하게 오역돼 있는 그 역본 말여?? 오 맙소사!
이번에 비숍 성경보다 더 나은 성경을 니가 책임지고 새로 만들지 못한다면.. 짐이 손수 니 얼굴을 물에 적셔서는 그 위에다 빵을 올려놓을 테니 그리 아시오"


끄응.. 요 유튜브 동영상 56:18 이후 지점을 참고하시라. 저건 창작 각색인지, 아니면 무슨 조선 왕조 실록처럼 잉글랜드 왕조 실록에 기록된 160x년대의 실제 대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를 보니 비숍 성경은 진짜로 전 11:1이 젖은 얼굴 위에다가 빵을 놔 두라고 혼자 특이하게 번역돼 있더라..! (☞ 링크)
하지만 얘는 모세가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돼 있지는 않았다. ㄲㄲㄲㄲ

이래서 옛날 성경은 그냥 역사에만 이름이 남아 있지 오늘날까지 교회 예배 때 쓰지는 않는구나. -_-
두에 랭스 역본은 내가 알기로 가톨릭의 킹 제임스 비슷한 고전 역본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나온 시기가 비슷하고 같은 고어체이기도 해서.. 하지만 유럽 역사나 교회사깨나 아는 신자들은 그 역본의 오역을 뻔히 얘기하며, 저 모세의 뿔 일화도 당연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개신교(?) 쪽의 킹 제임스 성경은 400년 넘게 묵은 옛날 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무오하다는 유일주의를 믿는 진영이 있다. 본문의 내용이 이역 수준을 넘어 완전히 다른 것도 있고, 또 성경에 대한 인식과 믿는 방식이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여담

  • '피에타'는 옷과 피부 묘사야 뭐 신의 경지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아무리 봐도 마리아가 덩치가 너무 크게 나온 것 같다..;;
  • 그림 중에서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이고.. "최후의 만찬"은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3/26 19:35 2022/03/2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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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대 세계 대전 비교

  • 1차 대전: 기관총, 참호전
  • 전간기~2차 대전: 항공모함, 무전기와 레이더, 뇌격기, 급강하 폭격
  • 2차 대전 말기에 개발된 것: 제트기, 로켓, 핵무기

육군에서 백병전이란 게 거의 사라지고 제식이나 총검술 따위는 그냥 보여주기 레거시가 되었듯.. 공중에서도 전투기끼리 도그파이트를 벌이며 처절한 기총사격 따위 하는 건 진작에 없어졌다. 육해공 모두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 날아온 미사일 맞고 그대로 끝난다.

  • 1차 대전: 영국에서 포탄이 불량인 게 많아서 애먹었다. 유대인 과학자가 포탄의 대량 생산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서 승전에 큰 공을 세웠다.
  • 2차 대전: 미국에서 어뢰가 불량인 게 많아서 애먹었다. 영국과 미국 모두 적국의 암호를 해독해 내서 승기를 잡았다.

  • 1차 대전 때는 일본이 연합국 승전국의 말석에 있었지만 그 뒤로 추축국 전범국으로 흑화했다.
  • 2차 대전 때는 중국이 연합국 승전국의 말석에 있었지만 요즘 하는 짓을 보면 다음에는 세계를 대적하는 악역으로 흑화할 것만 같다. 잠깐 일제의 피해자였다고 실드만 치기에는 갈수록 선을 넘고 있다.

  • 1차 대전 이후에 국제연맹이 창립됐지만 제 구실을 못 하고 2차 대전을 막지 못했다. 이때는 민족자결주의가 제정되었다.
  • 2차 대전 이후에 연맹을 대체하는 국제연합, UN이 창립됐고 무려 세계 인권 선언이 제정되었다. 허나 미래엔 과연 얘도 무용지물이 돼서 국제연맹과 같은 길을 가게 될까?

2. 무기들의 변화· 발전 양상

탱크, 대포, 전함은 크기가 2차 대전 때까지 덩치가 왕창 커졌다가 그 뒤로는 다시 좀 작아졌다. 핵무기와 미사일의 개발, 그리고 항공기의 발달 덕분에 저런 형태의 무기가 기동성까지 희생할 정도로 지나치게 거대할 필요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은 2차 대전 시절에 세계에서 제일 큰 탱크와 제일 큰 대포까지는 만들었다. 실험적으로나마 아음속 순항 미사일(V1), 초음속 로켓 기반 미사일(V2), 포신 150m짜리 장거리 대포(V3)..;; 이거 뭐 어떻게든 탄환을 멀리 쏘는 방법은 온몸으로 공돌이들을 갈아넣으면서 연구했었다.;;

하지만 항공모함을 만들거나 초대형 전함을 만들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1차 대전 때 지면서 해군이 몽땅 봉인 당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만들었던 것도 다 빼앗겼고.. 그래서 바다에서는 비대칭 전력인 잠수함에 목숨 걸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세계에서 제일 큰 전함을 만든 곳은 섬나라 일본이었다. 특히 야마토 전함은.. 뭔가 전함계의 임페리얼(자동차) 같다. 제대로 운용할 능력이 없으면서 무리해서 너무 큰 물건을 만들었다가 죽도 밥도 못 쑤게 돼 버렸다.

처음엔.. 이런 하찮은 싸움에 내보내기에는 가오가 안 서고 전력을 아껴야 한다는 명목으로 봉인..
그런데 나중에는 이렇게라도 장렬히 산화하지 않으면 가오가 안 서는 신세가 됐으니.. 계륵 그 자체이다.

전투기, 잠수함, 항공모함은 저런 클래식한(?) 무기와는 반대로 천조국에서 현재 만들어진 물건이 세계 대전 때의 물건보다 더 크다.
특히 잠수함은 원자력의 혜택을 제대로 입었다. 동력원이 원자력으로 바뀌고 핵 미사일까지 발사 가능해지면서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무기가 돼 버렸다.

슬금슬금 몰래 잠입해서 배를 상대로 어뢰나 쏘고 튀던 옛날만 생각했다간 큰코다친다.
잠항 능력도 겨우 테란 고스트나 레이스에 가깝다가 이제는 플토 다크템이나 옵저버와 비슷해진 것이다.

그리고 탱크, 대포, 군용기들은 원래 보병을 화력 지원하라고 만들어졌지만, 결국은 유유상종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탱크는 탱크로 잡고, 포는 포 쏴서 잡고, 군용기 역시 전투기로 잡는 게 제일 낫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격수조차도 같은 저격수로 저격해서 잡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니 쟤들도 자기 코가 석 자가 되고, 원래 도입 목적이던 아군 보병 지원이라는 비중이 작아지게 된다.;;

3. 탱크

앞에서 다뤘던 무기 얘기의 연장선인데..
6 25 사변 당시엔 소련제 땅끄 242대(T-34)가 남한 땅을 짓밟았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수많은 러시아 땅끄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재블린 미사일을 맞고 훅 가면서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거대한 전함이 자그마한 어뢰나 항공모함 급강하폭격기의 밥이 된 것처럼, 탱크도 이제 예전 같은 만능 무기라는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 같다.

미사일 한 방 가격이 1억대라지만, 그걸로 50억~80억씩 하는 탱크를 박살내기 때문에 이거 굉장히 수지맞는 장사이다. 스커지로 사이언스 베슬 잡는 교환비를 아득히 능가한다.
예전에 팔레스타인 하마스인가 걔들이 쏘는 로켓의 단가는 n이지만, 그걸 요격하는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의 단가는 10n인지 100n인지.. 그러던 게 떠오른다.

4. 과거의 전범국, 오늘날의 전범국

20세기 초에 독일은 정말 눈부신 과학기술 강국이었다.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신학, 철학, 법학, 예술 쪽도 세계를 이끌었다. 그리고 일본이야.. 서양 문물을 잘 받아들이면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력 주도 근대화에 성공해서 열강의 일원으로 등극했다.

이 정도 나라라면 국뽕에 빠져도 이상할 게 없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쟤들은 너무 자만하는 바람에 20세기에 세계를 상대로 사고를 거하게 치다가 자멸했다.
특히 소련 말이다. 독일은 독소 전쟁에서 소련과 대판 싸우다가 패배했고, 일본은 패망하기 직전에 소련으로부터도 선전포고를 받으면서 완벽하게 확인사살 당했다.

이 두 나라는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가 졌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 학살 포로 학살 같은 흉악 전쟁 범죄도 워낙 크게 저질렀기 때문에 전범국이라는 낙인이 제대로 새겨지게 됐다.
얘들은 그 댓가로 나라가 송두리째 멸망하는 것만 면할 뿐, 주요 산업· 군사 시설들이 몽땅 거세되면서 전쟁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짜끄레기 농업· 경공업 국가로 전락할 뻔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되지 않았다.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소련이 냉전으로 인해 미국의 적성국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소련에게 박살났던 두 전범국들은 소련을 견제하는 반공의 방패막이 명목으로 결국은 다시 지원받고 재건되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웃 한국의 6 25 사변 때 서플라이 디포 역할을 하면서 완전히 기사회생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냉전도 끝나나 싶었는데.. 2022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가 또 세계의 적으로 등극했다.

덕분에 과거에 소련에게 패했던 전범국들이 또 살 판 났다. 독일은 지난 70여 년에 달하던 봉인을 풀고 재무장을 하는 중이다. 일본은 이럴 때 국제 사회에게 잘 보이고 점수 따서 꿈에도 그리던 UN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으려 노력 중이다. 국제 관계에서 영원한 친구는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걸 느낀다.

5. 전쟁/전투 관련 명언들

  • 빈 라덴을 용서하는 건 신이 할 일이다. 그러나 빈 라덴과 신의 만남을 주선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다. -- 2010년경 미국 해병대 표어
  • 제군들은 조국을 위해 죽지 마라. 적군이 우리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 조지 패튼 장군
  •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 태평양 전쟁 당시 윌리엄 홀시 제독
  • 북한/베트남/쿠바를 폭격해서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 -- 커티스 르 메이 장군
  • 적의 뇌를 먹어 삼켜라. 그렇게 힘의 근원을 취하라. -- 메이어 다간 (전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
  • 나는 만년 전사다. 여러분도 전사가 되어라. -- 남 재준 (전 국정원장)
  • 이제 우리는 3천 년 역사 동안 한 번도 지지 않은 동맹을 얻었다(히틀러). / 그럼 이제 한 번은 질 때가 됐군.. ㅋㅋㅋ -- 2차 세계 대전 때.. 처칠
  • 네놈들 앞으로 하늘이 새까맣게 가려질 정도로 수많은 화살들이 날아올 것이다. / 그럼 우리는 그늘 아래에서 시원하게 싸우겠구만. ㅋㅋㅋ -- 영화 300

Posted by 사무엘

2022/03/24 08:35 2022/03/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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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와 피난

작년 8월 여름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고, 나라 전체가 탈레반 집단에게 점령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50여 년 전, 남베트남이 망할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저 나라는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해방된 뒤에도 역사가 참 파란만장했다. 한때는 여기에 웬 소련 공산당 빨갱이들이 들어와서 1980년 무렵엔 전쟁이 벌어졌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 등의 자유 진영에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대거 보이콧 했던 이유가 이 전쟁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엔 여기는 이슬람 꼴통들 천지로 전락했다.
1970년대에 나라가 잘 살고 여성도 자유로운 복장으로 길거리를 활보했는데, 2010년대가 되니 옛날에 건물이 있던 곳은 폐허가 되고 여성은 부르카인지 히잡인지를 뒤집어쓴 답답한 복장으로 바뀌어서 혼자 함부로 길거리를 다니지도 못하게 됐다. 둘을 비교한 사진을 보신 분이 있을 것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약소국 신생 독립국들이 2차 대전 이후로 무작정 강대국으로부터 해방만 되는 게 장땡이 아니었겠다 싶다. 그럼 이제 식민지 착취나 인종 차별 같은 건 없겠지만, 그 뒤로도 내전이 벌어져서 동족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고, 식민 통치보다 더 악랄한 싸이코 폭군이 등장해서 나라 말아먹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당장 이북이 저 지경이 돼 있다. 그 반면 우리나라의 건국과 역사 흐름은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제아무리 천하의 미국 천조국이 쬐끄만 자유 진영 국가를 지원하고 도와준다 해도.. 그 지원 대상 국가가 도를 넘게 부패해 있고 자기들 스스로 자기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사가 없다면 아무 소용 없다. 무기를 지원해 봤자 그 무기가 빼돌려지거나 심지어 적에게 넘어간다면 미국이라도 미쳤다고 그 나라를 도와주겠는가.

이 패턴은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6 25의 극초반에는 군기가 잔뜩 빠져서 허겁지겁 후퇴만 하는 오합지졸 국군을 보고는 미국의 반응은 “이 자식들 노답~~”이었다. 후퇴 금지 즉결처분이라든가 제주도 망명 정부 계획이 최후의 수단 차원에서 괜히 나왔던 게 아니었다.

그랬는데 서울 한강 이남에서는 어느 무명 용사가 “저는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이 자리를 절대 뜨지 않고 지킬 것입니다. 부디 탄약을 더 주십시오”라는 명대사로 맥아더 장군을 감동시켰다. 다음으로 낙동강 전선에서는 무려 사단장이라는 백 선엽 장군이 야전에서 직접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날 쏴 죽여도 좋다”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미국도 다시 적극적으로 한국을 도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고, 얘기가 또 옆길로 많이 샜다. 다시 아프가니스탄 얘기로 돌아오면..
알고 보니 저 나라는 영해라는 게 없는 내륙국이더라. 어쩐지 그래서 탈출하는 사람들이 배가 아니라 수송기를 타려고 난리를 쳤던 것이었다.

그런데 비행기는 빠르기는 하지만 선박보다 수송 능력이 훨씬 부족하다.
그런 데다, 비행기는 타 교통수단과 달리 외벽 같은 데에 껴서/붙어서/몰래 짱박혀서 탑승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조건은 피난민에게는 굉장한 악재이다. 그래서 어디 못사는 나라에서는 어떻게 몰래 탔는지 “여객기의 랜딩기어 수납 공간에 어느 밀입국자가 숨진 채 발견” 이런 사건이 보도될 때가 있다.

그런데 하물며 비행기의 외벽에 끼어 탔다가 비행 중에 떨어져서 죽는 건.. 정말 희대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건.. 9 11 테러 때 창 밖으로 뛰어내린 희생자 이후로 거의 20년 만에 처음 봤다.

2.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 화물기 추락 사고

지금 저 동네의 정치 시국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일이긴 하지만..
9년 전, 2013년 4월에는 무거운 미군 장갑차를 싣고 아프가니스탄 소재의 미 공군 기지를 이륙했던 보잉 747-400 개조 화물기가 갑자기 추락하는 대형 사고가 났었다. (내셔널 항공 102편 추락 사고) 원인은 화물 적재 불량이었다. (☞ 사고 영상)

육상 교통수단은 짐을 제대로 묶지 않으면 가다가 짐이 떨어지는 바람에 “주변 차”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나 선박은 엄청 무거운 짐을 제대로 묶지 않으면 비행/항해 중에 짐이 한쪽으로 쏠리고 기울어져서 자기가 추락이나 침몰 같은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저 사고의 경우, 비행기가 이륙해서 기수가 살짝 위로 들렸을 때.. 화물칸 장갑차의 결박이 풀려 버렸다.
15톤이 넘는 무거운 장갑차는 뒤로 굴러가서 벌크헤드를 쳐 버렸고, 이 때문에 비행기의 미익을 조종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무게중심이 기체의 뒤쪽으로 급격히 쏠리면서 기체의 받음각이 치솟고, 이로 인한 항력도 엔진의 출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올라갔다.
이 때문에 그 화물기는 이륙한 지 얼마 되지도 못해서 실속에 빠진 채 지상으로 힘없이 추락했다. 승무원 7인 전원 사망.

추락하지 않았더라도 조종을 못 하니 1985년의 JAL123편 같은 꼴 나서 언젠가는 자세가 어긋나고 추락했지 싶다.
에.. 자동차에다 비유하자면 몇십 톤짜리 강철 코일을 실은 트레일러가 겁도 없이 교차로에서 고속 급선회를 하다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강철 코일 따라 차량이 통째로 옆으로 뒤집힌(전도) 걸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자동차는 그냥 뒤집히는 걸로 끝나지만, 비행기는 양력을 잃고 추락한 것이다.
이제 앞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군용기 또는 미군에서 외주 준 민항기가 뜰 일은 없어지는 건가..?? 문득 저 사고 생각이 났다.

3. 전투기의 호위

지난 2018년에는 6· 25 사변 장진호 전투 현장에서 발견된 국군 전사자들 유해를 하와이에까지 가져가서 신원 확인 후, 다시 우리나라로 송환한 일이 있었다.
유해를 실은 수송기가 우리나라 영공에 진입하자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맞춰 전투기들을 무슨 보디가드처럼 출격시켜 수송기의 양쪽을 엄호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수송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이렇게 인사했다.

“오랜 시간 먼 길 거쳐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 영상)

이게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니..

태양의 후예에서 “성공한 인질 구출 작전에 무슨 책임을 지겠다는 말씀입니까? 정치와 외교는 제 책임입니다. 우리 국민을 무사히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사처럼 사이다이고..
현충원에 있는 할배 묘지에 새겨져 있는 헌시 “민족의 독립을 되찾아 우리를 나라 있는 백성 되게 하시고”처럼 감동적이다. 그리고 2013년 레카 시절 국군의 날 기념식 영상처럼 뭉클하다.

지난 8월에 모종의 계기로 홍 범도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올 때에도 전투기들이 똑같이 수송기를 호위했다. 이때는 3년 전에는 안 했던 섬광탄까지 폭죽처럼 쏴 줬다. (☞ 영상)
홍 범도는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자유시 참변을 겪고, 그 뒤엔 소련 인민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헤이그 밀사 중 하나였던 이 위종처럼 말이다. 소련으로 가긴 했지만 딱히 한국에서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이나 북한의 건국과 연루된 것은 없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독립운동가나 6· 25 참전 용사의 유해가 귀환할 때 전투기 호위를 했는데, 지난 도쿄 올림픽 때 대만에서는 선수들이 귀국할 때 이런 이벤트를 시행했었다.
대륙을 꺾고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너무 기특하다면서, 귀국하는 선수들이 탄 여객기의 주위에 미라주2000 전투기를 네 대 띄워서 호위해 준 것이다. 총통 각하가 특별 지시를 내린 거라고 한다. 공군이 이런 의전에도 동원될 때가 있는 셈이다.

4. 세계에서 제일 큰 비행기의 최후

인류가 만들어 낸 역대 가장 거대한 비행체야 나치 독일 시절의 힌덴부르크 비행선이다. 허나, 부력이 아닌 양력으로 날면서 가장 많은 payload를 싣고 이륙 가능한 세계 최대 비행기는 바로.. 구소련에서 지난 1988년에 개발했던 An-225였다. 여객기가 아니라 화물기 겸 군 수송기 용도로 만들어졌다.

얘는 그 큰 보잉 747은 말할 것도 없고, A380보다도 더 컸다. 요즘은 저런 4발(엔진 수) 비행기조차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단종되는 추세이지만 An-225는 무려 6발이었다. 그리고 예비용 자매기가 구소련의 붕괴 시국으로 인해 끝내 만들어지지 못한지라, 얘는 동형의 다른 기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유일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워낙 덩치가 큰 덕분에 부란 우주왕복선도 실어 나르고 다른 여객기의 벌크헤드 같은 대형 부품도 수송하고..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도 있었다.
30년 넘은 낡은 비행기이다 보니 내부 기기들이 지금 관점에서는 낙후했으며, 조종을 위한 승무원이 좀 많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세계의 항덕들이 주목해 온 이 역사적인 비행기가 그만 소실되었다. 다른 사고도 아니고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수리 불가능한 손상을 입고 대파 당했다. 비행 중 격추는 아니고, 공항 격납고에 가만히 주기 중이었는데 공습을 받아 같이 박살 난 것이다. 전쟁이 야기한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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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나라 내부에서의 최대 항공 사고

그나저나.. 우리나라 국적의 여객기가 옛날에 겪었던 네임드급 사건· 사고로는 북괴가 저지른 대한항공 858편 폭파(1987), 소련에 의한 007편 격추(1983), 괌에서 801편 착륙 실패 추락(1997) 등 여럿 있다. 이것들은 사고 장소는 다들 외국이었다.
정작 대한민국 내부에서 벌어진 역대 최대 규모 항공 사고는.. 의외로 국적기의 사고가 아니어서 인지도가 별로 높지 않다. 바로 2002년 4월 15일에 악천후 속에서 부산 김해 공항에 착륙하려다 실패하고 인근 야산에 추락한 중국 국제항공 129편 사고이다.

이 사고로 승객 155+승무원 11명 중에 130명이 사망하고 36명만 살아남았다. 승객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이건 1993년에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 733편 추락보다 더 큰 사고였다(68명 사망, 48명 생존).
이 두 사고는 지형 때문에 착륙 난이도가 높은 공항에다, 악천후와 조종사 과실까지.. 발생 원인이 서로 좀 비슷하다. 하지만 아시아나 733은 추락 후에 다행히 화재와 폭발이 없었던 반면, 저건 그렇지 않아서 더 처참한 사고가 되었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여객기 한 대의 추락만으로 무려 500명이 넘는 사람이 몰살 당했다거나..=_=, 천조국처럼 여객기가 납치 당해서 고층 건물과 충돌하는 엽기적인 일을 자국 내부에서 당한 적은 없다.
본인조차도 2002년 5월 25일, 대만의 중화항공 611편 공중분해 추락 사고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작 저 사고는 한참 뒤 나중에야 뒷북으로 접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부산에서는 김해 공항을 대체할 더 크고 안전한 동남권 공항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었다. 게다가 김해는 군 공용이기까지 한 관계로, 민항기의 운용에 제약이 더 크다.
굉장히 오랫동안 진통이 많았는데 결국은 가덕도에 신공항의 건설이 확정되었는가 보다.
서울에 공항이 여의도-김포-인천의 순으로 확장되었다면, 부산은 공항이 수영-김해-가덕도의 순으로 확장되는 모양새이다.

한편, 우리나라 국적기에서 사망자가 수십 명 이상 발생한 심각한 대형 사고는 저 801편 사고 이후로 현재까지 20년이 넘게 전무하다.
메롱 상태인 나라 말고, 세계를 통틀어 나름 선진국의 플래그십 항공사가 낸 '마지막' 대형 사고 기록은 현재로서는 2009년 에어 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가 차지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3/16 08:35 2022/03/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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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뢰와 올무

전쟁터에서 적군을 총포를 쏘거나 수류탄을 터뜨려서 죽일 수 있지만, 지뢰나 부비트랩 같은 걸로 더 교묘하게 죽일 수도 있다.
동물을 사냥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포수가 총을 쏴서 잡을 수 있지만, 지뢰의 사냥 버전격인 덫이나 올무, 함정도 있다.

지뢰의 경우, 비록 현실이 시궁창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다같이 사용을 금지하려는 협약이 맺어지고 있다.
옛날에 전쟁도 낭만주의에 입각해서 하던 시절엔 잠수함이나 저격수조차 신사답지 못하고 치사하고 비열하다는-_- 볼멘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다. 무장한 적군을 낚고 유인하고 속여서 죽이는 것이야 잔인하다느니 비인도적이라느니 따질 필요가 없다.

단지, 지뢰는 한번 설치하고 나면 설치한 쪽에서도 제대로 파악과 통제가 안 되고 훗날 적군뿐만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까지 아무나 잡을 수 있는 게 문제이다. 그래서 금지할 뿐이다. 독가스를 금지하는 것과 좀 비슷한 이유랄까..??
아무나 밟았을 때 무작정 터지는 지뢰 말고, 아군이 보고 직접 격발시켜야 터지는 크레모아 같은 지뢰 바리에이션은 저런 규제 대상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동물 사냥 쪽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유해조수라 하더라도 총 쏴서 바로 숨통을 끊든가, 포획틀을 설치해서 가두는 식으로 잡아야 한다. 올무로 발목만 묶어 놓고 죽을 때까지 고통스럽게 방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거 무슨 발목 지뢰도 아니고..

이건 동물 사냥용 올무가 사람도 해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동물의 입장에서 비인도적이고 잔인하기 때문에 금지이다. 지뢰가 금지인 이유하고는 관점이 살짝 다르다.
게다가 동물을 목을 조르거나 흉기로 때려서 잔인하게 죽이는 것, 같은 종의 동물이 보는 데서 죽이는 것도 법을 FM대로 적용하자면 다 동물학대죄이다. 현실에서 법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단, 쥐덫은 당연히 예외이다. 쟤들은 해를 끼치는 게 워낙 많은 데다, 애초에 산을 초월하여 실내까지 대놓고 침입한다. 그러니 이건 야생동물 사냥이라기보다는 해충 구제에 가까우며, 거의 파리 모기 바퀴벌레 잡듯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게 된다.
그리고 민통선 이북에서는 애초에 엽총을 반입해서 유해조수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올무를 설치하는 게 부득이하게 허용된다고 한다.

그러니 민통선 이북과 DMZ 안은 워낙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사냥용 올무가 허용일 뿐만 아니라 지뢰도 절대로 없어질 수가 없는 위험한 동네인 셈이다. 사람과 동물에게 모두 말이다. 비무장.. 총을 사용할 수 없게 해 놓으니 다른 꼼수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물과 사람, 그리고 동물 중에서도 일반적인 놈과 해로운 놈을 바라보는 법의 관점이 이렇게 차이가 있다.

2. 산탄총과 엽총

우리나라는 총검 같은 흉기에 대한 규제가 세계 평균 이상으로 까다롭고 심한 편이다. (이것 말고 또 규제가 심한 분야로 보이는 건 이륜차의 고속도로/자동차 전용 도로 주행 금지..)
좁아 터진 동네에서 국력과 공권력이 약하고 과학 수사 기술이 부족하고 사회는 혼란스러우니, 그냥 명분과 이유를 불문하고 폭력 자체를 일체 못 쓰게 찍어 누르는 쪽으로 법과 행정 체계가 짜인 것 같다. 그게 사회를 제일 저렴하고 쉽게 통제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런 오랜 관행이 도가 지나쳐서 정당방위를 너무 인정하지 않는 게 비판받고 있다. 괴한이 자기를 칼로 찔러 죽이려 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결국 돌로 쳐서 사망· 중상을 야기하고 간신히 빠져나오면 과잉방어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맨손 격투만으로 칼을 빼앗아서 멀리 던져 버리기만 해야 정당방위라니.. 이건 말인지 방귀인지 무슨 참신한 개드립인가?
"차가 갑자기 급발진 폭주하면 냉정하게 브레이크 밟고 기어 N으로 바꾸고,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옆의 담장을 긁거나 앞차를 박아서라도 세웠어야지? 왜 요리조리 피하면서 차가 계속 속도가 붙게 놔 두다가 더 큰 사고를 냈냐? 그러니 너는 유죄" 이것보다 더한 어거지가 아닐 수 없다.

부당하게 먼저 선빵 날리고 피해를 끼친 놈이 큰 벌을 받는 게 아니라, 그냥 결과적으로 상대방을 더 많이 때린 놈이 더 큰 벌을 받는 것은 지나친 행정 편의주의이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에 "바퀴가 굴러가는(= 운동 에너지가 존재하는) 차들끼리는 무슨 대놓고 중앙선 침범하고 배째라 한 게 아닌 한 100:0은 없다. 똥이라도 더러우니까 피했어야지 그러지 못했으니 너도 과실 쪼금~~" 이러던 미개한 관행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뭐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는 총칼을 소지하려면 각 물건별로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았더라도 그걸 길거리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내 보이며 다닐 수 없다. 특히 열병기인 총은 내돈내산인 물건마저도 평소에 경찰서에 영치해 놓아야 하며, 수렵 기간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불출해서 사용할 수 있다.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생각 같아서는 나라에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모든 날붙이의 소지를 금지해 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란 당연히 절대 불가능하다. 일본도(刀) 진검이나 군용 대검이야 명백한 규제 대상인 반면, 문구류인 커터나 부엌 식칼은.. 몽땅 없앴다간 아예 일상생활을 진행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해친 범죄자가 흉기를 미리 치밀하게 준비해서 챙겨 갔느냐, 아니면 범행 현장에서 눈에 띄는 것을 우연히 집어서 사용했느냐 하는 건 죄질을 측정하고 형량을 산정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는 부엌칼이나 과도를 평소에 눈에 잘 띄지 않고 찾기 어려운 곳에 두는 게 좋다.

칼 다음으로 총도 마찬가지다. 군경이 아닌 민간용으로 규제가 그나마 가장 느슨한 총은 사냥용 산탄총이나 공기총 수준이다.
강선이 새겨진 군용 소총은 사정거리가 길고 위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안 되고, 권총은 작아서 불순한 목적으로 몰래 숨기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 이런 건 제아무리 민간 총기에 관대한 미국 같은 나라라고 해도 절대로 호락호락 허가해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이 무진장 넓은 나라에서 집을 도적이나 야생 맹수로부터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무장은 있어야 한다. 산탄총은 그 특성상, 정확하게 조준하지 않아도 얼추 잘 맞는 대신에 유효 사정거리가 수십 m급으로 짧다. 그리고 위력에 비해 몸체가 아주 큼직하기 때문에 몰래 숨기고 다닐 수도 없다. 군용 사격도, 스포츠 사격도 아닌 저런 특성을 갖춘 총이 수렵 내지 민간 무장 용도로 허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크고 위력이 약한 총 말고, 위력이 강한 총은 군대의 전유물이다. 반대로 작은 권총은 경찰의 전유물인 게 흥미롭지 않은가? 평소에 국민에게 불필요한 위압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과거 일제 시대엔 국가에서 이런 배려는커녕 오히려 위압감을 더 주기 위해서.. 헌병과 순사가 총은 물론이고 길다란 일본도를 치렁치렁 차고 다녔다는 걸 생각해 보자. 심지어 학교 선생까지도 그러고 다녔으니 말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산탄총의 길다란 총열을 일부 잘라내서(!!) 권총처럼 크기를 줄인 sawed-off shotgun이라는 물건도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심지어 뒤의 개머리판도 좀 깎아내서 길이를 더 후려치는데.. 그러고 보니 이런 산탄총은 군용 소총과 달리, 총신이 목재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니 톱질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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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총기의 정확도를 희생한 대신 은닉 휴대성을 얻은 불법 개조이다. 신고와 허가 없이 임의로 샷건을 길이를 줄여서 사용하는 것은 의외의 중범죄로, 걸리면 벌금· 징역 급의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범죄 조직에서 이런 짓을 많이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Doom 2 게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스타 무기인 슈퍼 샷건부터가 설정상 이런 sawed-off 샷건이다.;;

우리나라는 총기 규제는 왕창 엄격한 반면, 상시 징병제라는 병역 의무 때문에 성인 남성 대부분이 총을 다뤄 본 경험 자체는 있는 아이러니한 나라이다. 사격장에서 평범한 한국 남자들이 총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보고 일본이나 미국 사람들이 놀랄 정도라고..

민주화 이전, 군사 독재 하에 반쯤 병영국가이던 시절에 나라에서 가르친 그 군대 노하우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난 1992년 미국 LA 폭동(일명 4· 29) 때, 일부 한인들은 신속하게 진지를 구축하고 자경단을 꾸려서 흑형들을 쫓아냈다. 실제로 무장하기도 했지만 장난감 기관총이나 탄피 비스무리한 걸 갖다놓으면서 외형상의 화력을 부풀리고 뻥카도 쳤다고 한다. 이건 기지를 발휘한 아주 적절한 대응이었다.

하물며 더 옛날인 1980년 광주 사태도, 시민들이 무장하고 탱크 몰고 다닌 것 자체는 꼭 북괴 공작원이니 북한군 개입이니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같은 맥락에서 수긍이 갈 것이다. 본인은 예전에 예전에 한번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옛날에 북괴나 일제는 우두머리를 우상화하고 떠받들기 위해서, 혹은 주변 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를 확장하기 위해서 군국주의 짓거리를 했다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거 없었다. 그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박멸하기 위해서, 바로 이웃 북괴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서..
지극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목표 하나만을 위해서 온 나라가 그렇게 병영처럼 돌아가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픈 일이지만, 그때는 나라가 가난하고 힘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3/10 08:35 2022/03/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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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은 미국-일본이건(태평양 전선), 영국/소련-독일이건(서부 전선) 각색해서 영화 만들 것들이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 두 영화를 주목하며 독자 여러분께도 추천하고자 한다.

(1) 핵소 고지 Hacksaw Ridge (멜 깁슨 감독, 2016) -- 데스몬드 도스(1919-2006)의 일대기
(2) 언브로큰 Unbroken (안젤리나 졸리 감독, 2014) -- 루이스 잠페리니(1917-2014)의 일대기


보다시피 이 두 실존 인물은 거의 동갑내기였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적병이나 적함· 적기를 공격해서 무력화시키는 통상적 무공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초인적인 행적을 남기고 영웅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영화도 나름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그리고 유명한 배우 출신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 나름 기독교 색채를 집어넣었다는 것, 평이 꽤 좋다는 것이 일치한다.

1.
핵소 고지는.. 주인공이 제칠일안식교 신자였다. 무정부 반전 평화주의자는 아니어서 진주만의 복수를 하고 싶고 군 복무는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집총은 거부하는 좀 이상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항명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됐지만.. 여차여차 해서 의무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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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45년, 오키나와 상륙 전투에서 총 대신 구급상자를 들고 위험한 적진을 종횡무진하면서, 수십여 명의 부상병들을 혼자 구출해 냈다. 그들은 구출되지 못했으면 다들 그대로 죽거나 적의 포로가 됐을 것이다.
의무병은 전장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119 구급대원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보직인지는 2002년 제2 연평해전 때 박 동혁 병장이 다쳤던 걸 생각해 보시라.

이 공로 덕분에 그는 순식간에 영웅이 됐다. 동료와 상관들이 다 너를 얕잡아 봐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죄를 했다. 나중에는.. 레알인지 각색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네 소대는 왜 아직 진격하지 않는 거냐? / 아, 도스 이병의 기도가 아직 안 끝났지 말입니다." 이렇게 신앙까지 당당히 인정받는 지경이 됐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군 측 인물이 뭔가 말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더라.

2.
다음으로 언브로큰은.. 주인공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육상 선수 출신이었다. (흠 육상 선수라니 뭔가 에릭 리들 같은 느낌이..)
그는 그 다음 1940년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하려 했지만 이제는 올림픽 경기 대신 전쟁터에 나가게 됐다. 게다가 올림픽 개최 예정국이 아예 적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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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폭격기 승무원으로 복무했는데.. 하루는 격추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정비 불량으로 인해 기체가 태평양 망망대해에 추락했다. 구명보트에서 무려 7주를 근성으로 버티다가 구조됐지만, 운 나쁘게도 아군이 아니라 일본군에게 구조되어서 포로로 전락했다.

그는 일본 해군 수용소에서 2년 넘게 고생했다. 일본한테도 얼굴이 알려진 유명한 운동 선수여서 더 고생했다. 특히 수용소의 간수 일본군이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아주 가혹하게 대했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주인공이 혹독한 노동에 기진맥진했던 상태에서 무거운 통나무를 들고 땡볕에 서 있는 가혹행위까지 감당해 낸 것이다. (통나무를 떨어뜨리면 총살이라고 위협..) 주인공은 그 상태로 무려 40분 가까이 초인적인 힘으로 버티면서 간수를 노려보며 압도해 버렸다. 주 기철 목사 전기 영화라면.. 솟은 못 위를 맨발로 걸은 일화가 이 장면에 대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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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쟁이 끝난 덕분에 주인공은 해방되고 무사히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해서 심신의 장애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적국인 일본을 용서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일본에서 나가노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1998년엔 노구를 이끌고 일본을 방문도 했었다. 그러나 예전에 그를 학대했던 간수 등 일본군 출신 인물들은 짱박혀 숨어서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천조국은 "미드웨이" 같은 전투 분야에서도 짱이고, 저런 휴먼 드라마 분야에서도 그냥 짱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3 19:33 2022/02/0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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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컴퓨터라는 건 20세기 중후반에 “(1) 진공관 → (2) 트랜지스터  (3) IC 회로  (4) 그 이후 LSI/VLSI 집적회로”의 순으로 내부 부품이 고도화· 첨단화돼 왔다고 배웠다. 집적회로 안에 트랜지스터가 몇천, 몇만 개씩 들어있고 0의 개수가 뻥튀기됐다고 말이다.
이 덕분에 컴퓨터는 메모리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면서 시공간이 워프 됐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크기는 놀라울 정도로 작아져서 드디어 개인용 컴퓨터(PC)라는 것까지 존재할 수 있게 됐다.

더 세부적인 역사를 살펴보자면, 컴퓨터는 아직 1세대 시절에 “(1) 전동식이던 것이 완전 전자식으로 변모, (2) 10진법 대신 순수 2진법 기반, (3) 튜링 완전, (4) 프로그램 내장형”이라는 큰 격변을 거쳤다. 이에 대해서는 본인은 수 년 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특히 (3)을 통해 컴퓨터는 동적 메모리 접근과 능동적인 로직 구현, 즉 프로그래밍이란 게 가능해졌다. 그리고 (4)를 통해 메모리에 코드와 데이터가 모두 적재되고 소프트웨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게 됐다.

그 다음으로 후대의 전자식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논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잣대는 바로.. CPU가 한 번에 취급하는 정보량의 단위 크기이다. 이것도 8, 16, 32, 64비트라는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 단계별로 정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이 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라떼는 말이야 컴퓨터가.. 그땐 그랬지!”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1. 8비트 (1980년대 초)

  • 기종간 파편화가 엄청 심했다.
  • 보통 모니터+본체, 또는 본체+키보드 일체형.
  • 아무것도 안 꽂고 켜면 롬 베이식이 들어있곤 했다.

8비트 컴은 화면 해상도가 너무 낮아서 한글 한자 표현이 난감했다. 한 화면 전체의 정보량이 겨우 64KB에 머물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등급의 컴퓨터는 메모리로나 처리 속도로나 8*8 256자짜리 라틴 알파벳 외의 다른 문자를 취급하는 건 영 메롱이었다.
(일본이 1980년대에 다른 분야가 아니라 게임에서 온갖 창의적인 작품을 내놓으며 펄펄 날았던 이유 중 하나도.. 짐작 가능하다시피 업무용이 아니니 자국 문자 처리를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분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ㅡ,.ㅡ;; )

그리고 이때는 C 컴파일러조차 사치품이었다. 제품 가격으로나, 구동 요구 조건으로나, 생성된 코드의 성능으로나..
그러니 본격적인 프로그래밍을 위해서는 어셈블리어가 필수였다. 물론 이 시절 컴퓨터의 어셈블리어는 요즘 컴퓨터의 어셈블리어보다는 훨~~씬 더 단순하긴 했다.

8비트는 임베디드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다루는 개인용 컴터의 최소 마지노 선이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그나마 얘는 1바이트의 정보량을 오늘날처럼 1옥텟과 동일한 8비트로 고정했다는 의의가 있었다. 더 옛날 컴퓨터들은 1바이트의 크기가 이보다 더 작고 들쭉날쭉이기도 했다~!

2. 16비트 (1980년대 말)

  • 뭔가 현대적인 컴퓨터 외형이 이때 갖춰졌다. 바이오스와 운영체제가 더 분명하게 분리됐다.
  • 모니터, 본체, 키보드가 모두 분리됐다. 그리고 테이프나 롬팩 대신 디스켓, 하드디스크.
  • 재귀적인 디렉터리 구조가 존재하는 파일 시스템.
  • IBM 호환 PC, 교육용 PC 등등 표준화 규격도 정착

과거 MS-DOS 2.0이 바로 CP/M에서 비롯됐던 8비트 잔재를 16비트로 확장한 것에 가까웠다. COM 대신 EXE, 재귀적인 디렉터리 구조 같은 것 말이다.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고부터 모니터에 찍히는 글자의 크기부터가 확 작아지고 화면이 큼직해졌다. 640*480급의 고(?)해상도에서 14~16픽셀 크기의 글꼴이 지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해상도에서는 256색 이상 색깔을 더 많이 표현할 수 있게 됐고.. 물론 이를 실제로 구경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싼 그래픽 카드와 컬러 모니터도 필요했다.

3. 32비트 (1990년대 초중반)

주소 공간이 그럭저럭 꽤 넓어진 덕분에.. 이제야 현대적인 컴퓨터의 내부 구조를 좀 제대로 실현할 수 있게 됐다. 가상 메모리, 보호 모드, 선점형 멀티태스킹/멀티스레딩.. 그리고 80386은 가상 메모리 구현을 위한 메모리 주소 매핑을 CPU 차원에서 바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각종 메모리에서 지긋지긋한 64KB 제약이 없어지고, 이 제약을 우회하려는 온갖 지저분한 꼼수 기법들을 익힐 필요가 없어졌다. (메모리 모델, EMS, XMS 등등)

32비트는 아키텍처가 오랫동안 안정되어서 굉장히 장수한 시기이다. 80386 이후로 486, 펜티엄 시리즈 등의 여러 CPU들이 등장했지만 얘들은 전부 32비트였다.
80486부터 캐시 메모리가 첫 등장했으며, 부동소수점 보조 프로세서가 CPU에 내장되기 시작했지만, 이런 건 소프트웨어의 호환성에 영향을 주는 변화가 아니다. 286에서 동작하지 않는 386 32비트 전용 프로그램은 엄청 많지만, 486에서만 동작하고 386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제 PC와 워크스테이션이라는 체급 구분이 서서히 없어졌다. 3D 그래픽 렌더링도 Windows나 mac에서 바로..

4. 64비트 (2000년대 중후반)

64비트는 그냥 4GB 제약이 없어진 32비트의 연장선에 가깝다. 이전의 32비트에서 컴퓨터의 근간이 다 완성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PC에서 64비트는 멀티코어 패러다임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고 보편화됐다. (인텔 Core2 Duo CPU) 그래서 32비트 전용 멀티코어나 64비트 싱글코어 CPU는 거의 존재감 없다.

이제는 슈퍼컴퓨터 전용 아키텍처라는 것도 없어졌다.
그런데.. 메인프레임은 Cray도 아니고 x86도 아니고.. 몇 비트짜리에 무슨 아키텍처와 어떤 특성을 가진 컴퓨터인지?? 난 잘 모르겠다.

옛날에는 억대의 슈퍼컴퓨터나 64비트 CPU를 썼지만, 지금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스마트폰의 CPU조차 다 64비트이다. 작다고 해서 16비트/32비트 따위를 쓰지는 않음. 요즘은 경전철이라고 구닥다리 협궤를 쓰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철차륜).
이제 모바일은 모바일이지, 임베디드와는 영역이 많이 달라졌음을 뜻한다. 전광판이나 자판기 같은 것에 들어가는 8비트 임베디드 MCU는 철도에다 비유하면 탄광 안에다 부설한 미니 협궤에 대응할 것이다. 채굴한 광물을 실어 나르는 용도이지, 여객용이 아니다.

※ 여담

(1) 8비트 시절에 화면 해상도가 얼마나 낮았는지를 실감해 보자.. 터미널 콘솔 하나 얹기도 버거워 보이는 환경에서도 무려 GUI를 만든 용자가 있긴 했다.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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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DORE 64에서 64란, CPU가 64비트...는 개뿔, 메모리가 64KB라는 뜻이었다. ㄷㄷㄷㄷㄷ

(2) 옛날에 펜티엄 CPU가 등장했을 때는 이게 64비트라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펜티엄이 64비트로 확장한 건 주메모리와 CPU 사이의 데이터 버스의 대역폭뿐이다. 명령 집합, 레지스터 같은 내부 구조와 실질적인 동작이 64비트 단위로 돌아가는 건 당연히 아니다. 반대로 옛날에 386 SX는 원가를 낮추기 위해 CPU만 32비트이고 데이터 버스는 16비트였다.

(3) Windows NT의 구버전은 DEC Alpha 같은 64비트 CPU를 지원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운영체제 자체는 여전히 32비트 기준으로만 동작했기 때문에 64비트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마치 동시대의 Windows 3.x가 386/486에서도 16비트 코드 기준으로 동작했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일부 멀티태스킹 기능을 제공할 때만 386 CPU 기능을 사용)

Posted by 사무엘

2022/01/29 08:34 2022/01/2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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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의 역대급 흑역사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전국 곳곳에서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참사· 재해를 겪곤 했다. 그런데 사고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만들어졌던 김 영삼 말고, 김 대중 시절에 특별히 정말 가슴 아픈 비극이 벌어진 게 있었다. 바로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이다.

이건 본인이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때 현장에서 구조됐던 유치원생이 지금은 20대 후반의 성인 사회인이 됐을 정도이니, 세월이 많이 지났다.
작년 12월 9일엔 SBS 꼬꼬무에서 이 사건을 다뤘었다. (☞ 링크)
이야기꾼이던 장 도연 씨는.. 그 당시에 새까맣게 타고 녹은 숯덩이 시신만으로도 부모가 자기 아이를 바로 알아봤다는 말을 하다가, 자기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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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이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방송을 탔다..)

씨랜드 참사는 보면 볼수록 어쩜 이렇게 최악에 최악의 상황만 골라서 일이 터진 건지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 소망 유치원에서는 하필 며칠 전에 서울 강동 교육청 주관의 "여름방학 생활 지도를 위한 원장 회의"에서 유아 숙박 수련 활동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놓고 무시하고 캠핑을 보냈다.
  • 그런데 캠핑 보낸 곳은 하필 온갖 불법과 비리를 감행해서 용도 변경하고, 싸구려로 허술하게 지어지고 화재에도 엄청 취약한 수련원이었다.
  • 그 많고 많은 방 중에서 하필 그 유치원생들이 자고 있던 3층 방 301호에서 화재가 났다.
  • 그리고 하필 그 방에만 화재 발생 당시에 인솔 교사가 전혀 없었다.
  • 하필 그때 화재경보기도, 소화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초기 진화가 안 됐다.
  • 하필 그 수련원은 교통도 엄청 불편한 곳에 있어서 소방차가 오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다.

그 (가)건물은 온통 가연성 단열재로 둘러져 있었기 때문에 화재는 기름에 불 붙은 듯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건물은 어지간한 목조건물 이상으로 정말 활활 잘 타서 깡그리 잿더미로 변했다. 목조건물보다 훨씬 더 짙은 유독가스를 내뿜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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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씨랜드 수련원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인솔 교사들이 무려 544명이나 있었다. 그 중 소망 유치원은 방 두 개를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인 301호에서 자던 유치원생 18명은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하고 울부짖다가 전원 몰살 당했다.
거기에다 2층에서는 부천에 소재한 어느 유치원 여자애 한 명만 유일하게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고, 애들을 구조하다가 순직한 교사와 강사가 4명까지 추가로 총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2. 화재의 원인

그런데 정작 이 처참한 화재가 최초로 발생한 원인은 의외로 썩 명확하게 규명돼 있지 않다. CCTV 기록이나 목격자 같은 것도 없다.
국과수의 공식적인 조사 결과는 모기향 불이 실수로 번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피해자 유족을 비롯해 씨랜드 건물의 구조를 불신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며, 아마 누전 합선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모기향설은 화재 책임 면피를 위한 구실일 뿐이라고 말이다.

불이 복도 같은 엄한 데가 아니라 애들이 자던 301호 안에서 시작됐다는 건 명백한 팩트이다. 이게 성립하는 한, 본인은 전기설도 무작정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 거기서 추워서 전열기라도 가동했거나 더워서 에어컨을 틀었거나 뭔가 전기를 써야 누전 화재가 발생할 수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그런 저렴한 가건물에 에어컨이 있었을 리는 없고, 전등이나 선풍기 하나 남김없이 다 끄고 잤을 테고.. 요즘처럼 개인 스마트폰을 충전할 것도 없던 시절에 그 방에서 전기 화재가 발생할 껀덕지가 내가 보기엔 별로 없다.
실제로 그 애들은 갯벌 체험에 물놀이 등 하루 종일 노느라 정신없었고, 숙소에 들어가서는 덥네 춥네 따질 것도 없이 곧장 몽땅 기절했다고 한다. 쟤들은 중고딩이나 초딩도 아니고 겨우 6~7살짜리 유치원생임을 기억하자. 야영 캠프 수련회 같은 건 아무리 못해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는 된 뒤에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 반면, 촛불이나 모기향이 재수 없어서 밤중에 곁의 가연성 물질에다 엎어지기라도 하면 대형 화재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씨랜드의 경우도 불이 난 것 자체보다는 건물 자체가 가연성 자재로 뒤덮여 있었던 게 더 문제였을 뿐이다.
그러니 국과수나 법원에서 있지도 않던 모기향을 대놓고 주작한 게 아니라면, 이건 국가 기관의 공신력 있는 기록을 심하게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것도 무슨 한강 의대생이 실족사 했냐, 아니면 타살 당했냐 같은 문제처럼 보인다...

………라고 썼는데,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저 수련원의 방마다 에어컨 실외기처럼 보이는 물건이 있긴 하다. 평양 아파트에도 없다는 물건이 그래도 저 씨랜드 수련원 컨테이너 가건물에는 있었던가 보다. 그걸 가동하고 있었다면 진짜 전기 화재였을 수도 있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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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동하지 않은 소화기

그리고 그 당시 뉴스 보도 영상을 보니..
씨랜드 수련원 현장에서 나뒹굴던 소화기는 그래도 압력 게이지가 달려 있는 신형 축압식 소화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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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가압식 소화기는 폭발 위험 문제로 인해 1997년 무렵부터 국내에서 판매와 유통이 금지됐다. 축압식 소화기는 더 안전하고, 스프레이처럼 손잡이를 쥐고 있는 동안만 소화액을 끊어서 분사할 수 있으며, 분출력이 고갈되어 고장 났으니 교환해야 된다는 걸 게이지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어서 여러 모로 좋다.

씨랜드 수련원은 1998년에 개업했다고 한다. 그러니 쟤들도 나름 폐급이 아니라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신형 소화기를 갖추긴 했던 것이다. 무슨 10년 묵은 쌍팔년도 폐급 가압식 소화기도 아닌데 왜 저것마저 불량이어서 동작하지 않았는지는 개인적으로 좀 이해가 안 된다.
설마 실제로 동작하는 소화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인테리어 가짜 소품을 갖다놨던 걸까..??

즉, 이 건물은 용도 변경 부실 시공이 문제이지, 시설의 노후화가 문제일 여지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소화기도 그렇고 전기 시설도 그렇고.. 그래서 본인은 화재의 원인에 대해서도 무슨 피복 벗겨진 전선이 떠오르는 전기설을 선뜻 공감하지 않는 것이다.
관례적으로는 원인 불명의 화재는 몽땅 전기 때문으로 적당히 얼렁뚱땅 때우고 조사를 끝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긴가민가한 원인을 조사하느라 미관에 좋지도 않은 현장을 마냥 세월아 네월아 보존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모기향이라는 다른 원인을 굳이 찾아낸 게 조사를 더 꼼꼼히 한 것에 가깝다.
이 시체가 소사· 익사를 한 건지, 아니면 먼저 죽고 나서 물불에 던져진 건지를 판별할 수 있듯, 전선도 여기서 직접 불이 난 건지 아니면 다른 화염에 휩싸여서 불탄 건지 정도는 육안 판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진짜로 누전 때문에 발생한 화재는 통계 수치보다 드물다.

4. 관련 인물의 처분과 근황

소망 유치원은 사고가 매스컴을 탄 당일 곧바로 허가가 취소되고 폐쇄됐다. 30대 중반이던 유치원 원장은 1심에서 금고 5년이 선고됐지만, 훗날 감형되어 2년 반만 복역하고 2001년 말에 출소했다.
이 사람의 잘못은 교육청의 지침을 무시하고 수련원 입소를 강행한 게 작고, 화재 때 애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않고 먼저 대피한 게 크다고 하겠다. (직무상 긴급피난 불허)

사고 10주기인 2009년경엔 이 사람의 근황 인터뷰가 월간조선에 실렸다. 유아교육 쪽 일은 완전히 연을 끊은 채, 딸 키우는 주부로 잠적하며 살고 있댄다. (☞ 링크)

그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차라리 그때 자기도 화재 현장에서 죽거나 화상이라도 입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때 교사들은 301호의 바로 맞은편 314호에 있었고 불이 났다는 걸 정말로 몰랐을 뿐이라며.. 특히 밖에서 삼겹살과 쏘주 회식 중이었던 건 절대 아니라고 여전히 강하게 부인했다. 본인 포함 교사들은 다 교회 다니는 신자여서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면서..

물론 건물을 이탈하지 않았다고 해도 애들을 구조하지 않고 혼자 빠져나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형사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저 주장은 본인이 보기에도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그냥 "이디 아민이 개싸이코 망나니 폭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식인까지 한 건 절대 아니다~"(요리사의 증언) / "내가 보기로 타이타닉 호는 침몰 후 두 동강이 난 건 절대 아니었다"(사고 후 청문회에 불려간 모 승무원의 증언) 이런 부류의 실드처럼 들린다.

다음으로, 이 따위 건물을 갖고 영업을 한 씨랜드 수련원 사장은 죄가 당연히 더 무거우니 더 큰 벌을 받았는데.. 보도 자료에 따르면 처음엔 금고 5년에다 징역 2년 6월.. 도합 7년 6월이 선고되긴 했다. 금고와 징역을 조합할 수도 있는 건가?
기간으로만 따지면 삼풍 백화점 이 준 회장의 형량과 동일하지만, 이것도 나중에는 5년 정도로 감형됐다.

삼풍 그룹 회장이야 만기 출소 후에 얼마 못 가 죽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출소 후에도 같은 부지를 갖고 어떻게든 편법으로 돈 벌려고 난리를 치다가 지금은 거기 바로 근처에다 제주도 컨셉의 '야자수 카페'를 만든 것 같다. 이거 경영자가 씨랜드 사장과 동일 인물이라는 게 정황상 거의 확실해 보여서 뒤늦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동일 이름, 동일 나이, 동일 지역!!

하긴, 그 사람이 씨랜드와 무관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씨랜드와 전혀 무관합니다. 악의적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엄정 대응하겠습니다"라고 공지를 진작에 당당히 했을 것이다.
전재산을 피해자 보상금으로 뜯겨서 파산· 몰락하고 타지에서 조용히 찌그러져 귀양살이를 하는 게 아니라.. 멀쩡히 재기해서 같은 곳에서 희생자 위령비 하나 없이 다른 장사나 하고 있는 건.. 파렴치가 선을 넘는 것 같다. 이 사실이 꼬꼬무의 보도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버렸으니 이제는 저기도 사업에 애로사항이 꽃피지 싶다.

5. 씁쓸한 결말

요컨대 씨랜드 참사의 주범은 (1) 건물주, (2) 건물주와 결탁하고 뇌물 받아서 건축과 사업 허가를 내 준 부패 공무원, (3) 구조 조치 제대로 안 한 교사 정도의 세 그룹으로 나뉜다. 1과 3의 처벌도 너무 가볍거니와 2는 처벌이 없다시피했던 게 울화통이 터진다. 그나마 2를 구속이라도 시키는 데 일조한 어느 양심선언 공익제보 공무원은 눈총을 견디다 못해 이듬해에 퇴직을 하게 됐다. 이게 암담한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열나게 노력해서 보릿고개는 탈출했어도 사회 관행은 8, 90년대가 되도록 여전히 미개했다. 법과 원칙과 안전 의식이 없고 온갖 적당히 편법이 만연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게 아니라, 공무원들을 접대하고 기름칠 하면 되게 만들 수 있다. 남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 혼자 안 하고 있으면 자기만 바보가 된다. 법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는데, 보안 취약점을 이용해서 해킹해서 악성 코드를 주입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합숙 캠프에 보내지 말라는 교육청 지침도 딱히 교통사고나 화재 가능성까지 내다보는 선견지명 차원에서 만들어진 건 아니었을 것이고, 그 정도는 꼬우면 생깔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차가 전혀 없는데 빨간불 신호 기다리는 게 귀찮아서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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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애들을 화장해서 서해안의 씨(sea)랜드 수련원과는 정반대 방향의 강원도 동해 바다에다 뼛가루를 뿌리고, "OO야, 하늘나라에서 꼭 만나자~~"라고 부모가 울부짖는 걸 보니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고 보니 301호는 제일 끝이고 탈출 계단도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어서 탈출하기 제일 쉬운 위치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저렇게 됐던 걸까! 이걸 생각하니 나도 괜히 또 열받는다.. >_<

서울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시절에 메달을 땄던 유명 아이스하키 선수 아주머니가 이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그 뒤의 조치로 인해 더 상처를 입고 나라에 대한 애정이 싹 사라져 버렸으며, 이 때문에 메달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 간 게 매스컴을 탔다.
미개한 관행은 집권 여당이 누군지하고는 별 관계 없는 총체적인 문화, 의식, 분위기, 풍조 문제였다. 긴 시간 동안 많은 수업료와 진통을 치르면서 차차 개선되었을 뿐이다. 그동안 달라진 게 없는 건 아니다.

확실히.. 옛날엔 세월호보다 더 처절하고 더 큰 사건 사고가 벌어졌어도 2010년대 같은 미친 유언비어 정치 선동과 반정부 시위 폭동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이건 지금이 옛날보다 더 퇴보한 게 명백한 사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20 08:35 2022/01/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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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

(1) 외세 때문에 못 하고 있는 게 절대 아님
내가 정말 양심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야..
이 지구상에서 정말 중공만치 한국의 남북 통일을 온몸으로 반대하고 북괴 체제의 존속을 지지하는 악한 나라가 또 있냐..??
6 25 사변이 벌어졌던 시절이나, 그로부터 70여 년 뒤의 지금이나 한결같이 말이다.

유엔군이 38선 넘어서 북진을 하니까 칼같이 개입해서 저지한 게 저놈들 아니었냐?
그걸 놔두고 도대체 무슨 염치로, 무슨 양심으로, 무슨 유체이탈 정신승리 화법으로.. 통일이 웬 얼어죽을 일본 미국의 반대와 방해 때문에 안/못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2) 이제는 남북 통일 한다고 해서 국력이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음
그리고 이 인간들은.. 남한 북한이 합쳐지면 한국이 순식간에 일본 미국을 능가하는 강대국 부자 나라가 될 거라고 진짜 진지하게 생각하는 걸까? 허 참..

남한과 베트남이나 필리핀이 합쳐지면 일본을 능가하는 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남한과 독일 정도가 합쳐져야 이제 일본과 맞장뜰 만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하물며 북괴가 베트남· 필리핀보다 더 잘사는 나라이기라도 하나?? 어이구..

본인의 정치 성향이 마음에 안 드는 애들, 싫은 애들.. 그 누구든지 입이 있으면 말해 봐라. 변명이든 반박이든 해 보셔~ 도전장 날린다.
이래서 반일정신병은 정상적인 지능과 양심으로는 절대 걸릴 수 없는 병인 거다.

(3) 이제는 통일이 아니라 그냥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를 바라야 함
사실, 우리나라가 남북통일을 할 거면 쌍팔년도 이전의 할배나 원조가카 시절에 무력· 흡수통일 형태로 했어야 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은 이제 사람들 세대가 바뀌어 버릴 정도로 장기화돼 버렸고, 북한 체제가 저절로 무너질 수 있던 기회까지도 다 놓쳐 버려서 이젠 때가 너무 늦었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제는 무리하게 통일을 바랄 게 아니라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부터 먼저 바라야 한다. 사실, 통일을 하려는 이유도 북한 주민들에게 저걸 주는 것 말고 다른 의도가 없다.
북한을 평범하게 왕래할 수 있는 중국· 일본 같은 정상적인 외국으로라도 먼저 만드는 게 절대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4) 북괴의 흉계
남조선이 멸공통일, 반공통일, 승공통일, 평화통일의 순으로 기조가 바뀌는 동안,
북괴는 전면 남침, 무장공비, 납치 폭파 테러이다가 그 다음으로 잠수함, 핵과 미사일로 기조가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은 패전 후에 GHQ한테서 교육받고 군국주의 쫙 빼내고 나라 체제가 싹 개조되기라도 했다. 그 뒤 일부 소수 또라이들이나 되도 않은 독도 갖고 트집잡고 지랄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북괴는 진짜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림 반푼어치도 바뀐 게 없는뎁쇼..?? 과거의 망령이랑 현재의 적을 구분할 줄도 모르냐?

우리나라한테 저지른 짓에 대해 일본이 한 것만치라도, 영혼 없는 립서비스 사죄 보상이라도 한 것조차 단 1도 없고..
그렇게 퍼주고 평화 지랄해서 지금 북한 주민이랑 검열 없는 편지 왕래, 전화 통화, 북한 내부로 개방된 인터넷..
도대체 뭐 어느 거 하나 이뤄진 게 있나..??

민주당 간첩과 북괴 체제야말로 진짜 시대착오적인 애들일 뿐..
그나마도 아주 좋게 점잖게 신사적으로 말했을 때 시대착오적인 거고, 감정대로 현실대로 말하면.. 바로 가스실로 보내고 대가리에 총알 구멍 내야 될 애들이다.
굳이 목숨은 부지하고 싶거들랑 삼청이 아니라 오청 백청교육대라도 보내서 두뇌 구조를 개조시켜야 된다.

'공산주의' 와 '공산주의자'는 같지 않으며 '좌파'와 '종북'도 전부 다른 개념이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다들 나쁜놈이거나 아니면 나쁜놈의 사상적 근간으로 오· 남용되고 있는 건 다 동일하다.

2. 사악하고 불순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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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저런 상황에서

"자유라는 게 왜 중요할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왜 피흘려 가며 이를 지켜내야 했을까요?"


이렇게 묻는 게 정상적이고 도덕적이고 인륜에 부합하고 올바른 질문이란다, 이 머저리 바보천치 등신아.
저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곧바로 민족 해방 항쟁이 미제 원쑤들에 의해 좌절됐다는 말 튀어나오겠지.

의병이고 독립군이고 싹 다 토벌되고 없어진 일제 식민지도 전쟁 없는 평화 상태였고,
학교에서 죄없고 약한 애가 양아치한테 고분고분 삥뜯기는 것도 싸움질 없는 평화 상태라구.. 안 그래, 이 사악한 위선자야?

3. 자살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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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한두 번만 있었으면 그냥 우연일 수 있겠지만.. 줄줄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정권에 반대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코렁탕 먹는다거나.. 심지어 장 준하, 최 형욱처럼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하는 사건이 민주화 이전 군사 독재 시절에나 있는 줄 알았지?

반세기 전 버전은 그나마 반공과 경제 개발을 위한 선한 독재이기라도 했다.
하지만 이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독재이다. 진짜 지들만 해쳐먹고 나머지는 다 거지 되는 진짜 악한 독재란 말이다.

차이점을 모르겠으면..?? 니들만 책임지고 고생하면 내가 이런 글 올리지도 않는다. 정상인들까지 싸잡아서 고생하게 만들지는 말라고..!!
반대편 야당 진영에서 허구헌날 이런 자살 릴레이가 터졌어 봐라.. 무슨 난리를 쳤을까..?? 이걸 생각하면 소름이 쫙 돋는다.

지난 5년?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지켜본 바로는..
선의 편, 정의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딱 인상을 보면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떳떳하고 당당하다는 게 느껴졌다.

“그저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애국이 하루아침에 매국으로 뒤집힌 거라면 차라리 내가 죄인이 되고 말겠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내 명령에 따르기만 한 부하들은 아무 잘못 없으니 건드리지 마라. 나는 또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동일하게 행동하고 처신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딱~ 이러니 가슴이 다 뭉클해지는 것 같았다.

다른 어떤 사람은 그 어떤 변명도 없이 너무 순진할 정도로 고매하고 도도하게 “나는 애초에 죄가 없다. 세월이 흐르면 결국 역사가 공정하게 평가해 줄 것이다. 어차피 살 만치 다 산 인생인데, 구차하게 항소니 탄원이니 하는 것 자체가 적들이 짜 놓은 유죄 프레임에 말려드는 추한 짓이다” 이랬다.

그러나 그러나..
악의 편에 선 놈들은 정말 오로지 남 탓, 뭐시기 때문, 누구 때문.. 왜 나만 갖고 그래... 이었다. 그저 주둥아리로 말이 많고 변명이 많았다.

아니면 자살이나 싹 해서 책임 회피하고 수사를 흐지부지 시키고 혼자 도망가곤 했다. 아니면 자살 '당하거나' 말이다.
이건 정황상 결백 호소, 억울함 호소나 자기 명예 설욕을 위한 자결이라고도 절~~대로 간주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각 사람들이 누군지는 차마 대놓고 얘기하지 않겠다.
올해 봄엔 대통령이 바뀔 예정이긴 한데.. 이번엔 제발 악의 무리가 아니라 정의와 선의 편에 선 사람이 지도자로 선출되었으면 좋겠다.
'멸공'이니 '우리의 주적은 북한' 같은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한 소리가 논란거리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이 좀 왔으면 좋겠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이 멸공을 외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
-- 그럼 군대 갔다 온 대통령이 북괴를 옹호하는 건 말이 되고?
-- 그럼 일제 시대를 직접 겪지도 않은 사람이 반일 거리는 건 말이 되고?


멸공은 당연한 절대선이다.
멸공 갖고 전쟁 선동 지랄하는 건 절대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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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2/01/17 08:35 2022/01/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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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에 일본은 한반도에서 토지 조사 같은 것만 한 게 아니다. 자기가 다스리는 조센징들이 옛날에 무슨 찬란한 문화재 유물들을 만들었는지도 아주 면밀히 조사했다.
그래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跡圖譜)라는 총 15권짜리 방대한 도감을 1915년부터 1935년까지 무려 20년에 걸쳐 편찬해 냈다.

왜, 1910년대에 돌덩이가 다 무너진 폐가 흉가 수준의 불국사와 석굴암의 모습 사진을 보신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거 출처가 이 도감이다. 일본인들이 촬영해서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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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제5권, 불국사는 제4권에 수록돼 있다.)

그리고 각종 역사 만화나 교과서를 보면, 북한 지역에 있는 문화재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 흑백 사진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역시 일제 시대에 일본이 촬영한 저 도감의 옛날 사진을 인용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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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990년대부터야 냉전이 끝나고 남북 민간 교류가 잦아지고 정보 통신 기술도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예전에 비해서는 북한의 현지 정보도 훨씬 더 풍부하게 얻을 수 있게 됐다(현대에 컬러로 찍은 사진도 포함..). 하지만 그 전에는 개성의 선죽교 사진조차도 일제 시대에 찍힌 흑백 사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구한말 조선/대한제국의 공권력으로 이런 것들을 파악하고 기록을 남긴 게 아니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우리나라 네임드급 독립운동가들이 대대적으로 발굴되어 각종 훈장이 추서된 게 1962~63년, 원조가카의 집권 초기라면,
우리나라 네임드급 문화재들이 대대적으로 조사되고 사진이 처음으로 찍힌 건 1910년대 일제 시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저건 “식민지에 원래 이런 문화재들이 있었는데 이제 이것들도 다 우리 일본 것이 됐다. 그러니 우리가 철저히 관리해야지” 그런 정치 행정적인 차원에서 조사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걔들도 최소한 이상한 감정--심지어 조선에 대한 열등감까지!!!--을 갖고 “다 때려부숴 버려야지, 없애서 조센징들 민족 정기를 말살해 버려야지” 이러지는 않았다.

일제 시대의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뭐시기 하는 그 아저씨는.. 정치 쪽은 가혹한 헌병 무단 통치 때문에 우리 쪽에서 썩 좋게 볼 수 없는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의외로 불상 덕후에 문화재 덕후 기질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반도의 문화재들을 보존하고, 그게 일본 본토로 무단 반출되지 않게 하는 일에 나름 애쓰기도 했다.

일례로, 그 당시의 석굴암 복원 작업은 졸속 날림으로 진행된 게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언정, 최소한 악의적인 고의 훼손은 절대 아니었다. 폭탄 맞은 듯한 폐허 상태에 비하면 그 기술과 자금 하에서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든 거지, 악화시킨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석굴암이 저런 막장 상태가 되도록 수백 년째 방치한 건 숭유억불의 조선 왕조였으니 말이다.

석굴암이 옛 신라인들의 넘사벽 lost technology를 동원해서 만들어졌는데 왜놈들이 어설프게 콘크리트를 쳐발라서 망가뜨리는 바람에 습도 조절이 안 되고 내부 상태가 꼬였네 뭐네 하는 소리는 2020년대에는 좀 안 나와야 할 것이다. 걔들은 문화재를 진짜로 다 때려부순 중공 문화대혁명 홍위병이나 요즘 탈레반 집단보다는 정신 세계나 행정 시스템이 더 나은 애들이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조선 임금들의 초상화인 '어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 6· 25 사변 중에 소실된 것, 그리고 결정타로 부산 용두산 대화재 때 전부나 일부가 소실된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까지 원본이 제대로 보존된 게 별로 없는 지경이다.
그런데 순종을 비롯해 일부 왕의 어진은 2010년대에 그림을 다시 그려서 복원이 완료되기도 했다. 이때는 소실된 부분을 무엇을 토대로 유추해 냈을까?

바로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어진을 흑백으로나마 사진을 찍어 놓은 자료가 있어서 이를 참조해서 복원했다.
일부 소실인 경우, 색깔이야 불타지 않고 남은 부분으로부터 유추가 가능하니까 흑백 사진만 있으면 전체 복원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순종의 경우, 김 은호 화백이 어진을 그리는 모습까지 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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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저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자료인지, 아니면 다른 별개의 촬영 기록인지 본인은 잘 모르겠다.

※ 여담: 문화재 관련 박물관

문화재 관리 얘기가 나왔으니, 이것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얘기도 같이 안 할 수가 없겠다.
박물관이야 워낙 분야가 다양하긴 하지만 무슨 국립 박물관이라 하면 일단은 상술했던 옛날 전근대 시절의 국보/보물 문화재를 전시해 놓은 곳을 말한다. 역사 박물관이라든가 아예 미술관하고는 영역이 약간 겹칠 수 있겠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일제 시대에도 한반도엔 총독부 박물관이니, 이왕가 박물관이니 하는 전시 시설이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국립 중앙 박물관’이 그 역할을 대체하게 되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주, 제주, 전주 등 10여 곳에 국립 박물관 에디션이 있긴 하지만.. ‘중앙’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은 박물관은 서울 에디션이다.

엄청 옛날에는 국립 중앙 박물관이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고궁 안에 있었다. 1980년대에는 조선총독부 청사에 입주하기도 했었으나, 훗날 그게 헐리면서 지금과 같은 용산 부지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됐다. 전에는 거기가 미군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 여담: 과학관

다른 관련 주제를 하나만 더 열거하자면..
이런 옛날 문화재 박물관 말고 나라에서 직접 운영하면서 여러 지역에 ‘파생 에디션’까지 존재하는 또 다른 관람 시설은.. 바로 ‘과학 박물관’, 일명 과학관이다.

얘 역시 나름 일제 시대부터 전신이 존재했었다.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자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기존 건물이 ‘은사 기념 과학관’으로 바뀌었는데, 이게 해방 후에도 이름만 ‘국립 과학 박물관’으로 바뀌어서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는 와룡동, 혜화 역 근처 지금의 위치에 ‘국립 서울 과학관’이 건립되었다. 하지만 부지가 너무 좁기도 하고 나중에 대전 엑스포가 개최되기도 했으니 대전에 엄청 큰 과학관이 새로 건립되면서 얘가 ‘중앙’ 타이틀을 대체하게 됐다. 즉, 국립 중앙 박물관과 달리, 국립 중앙 과학관은 대전에 있다.

지금은 수도권의 과천을 포함해 대구, 부산 같은 몇몇 대도시에 국립 과학관이 몇 곳 더 있다. 기존의 서울 과학관은 ‘어린이’ 과학관으로 리모델링 됐으며, 이와 별개로 강북에 서울 시립 과학관이 추가로 더 개관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9 19:35 2021/12/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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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엔.. "조선/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망하지 않고 왕정인지 입헌군주제인지가 20세기 후반까지 유지됐다면?" 같은 낭만적인 상상을 배경으로 소설이나 드라마가 만들어진 게 좀 있다.

뭐, 현실에서는 조선이 그때 일제한테 안 먹혔으면 러시안스키들한테 먹혔겠지.. 이게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았고 상황이 여전히 암울했겠지만 말이다. 러시아 제국은 한반도에 그렇게까지 큰 욕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후신인 소련 공산당은 자비심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됐으면 이 위종이나 홍 범도 같은 애국자 독립투사가 소련으로 귀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친일 성향의 구한말 개화파들의 노선이 1900년대 이후까지 더 오래 지속됐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솔직히 "만약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고 일본이 졌다면?" 이건 현실적으로도 굉~~장히 설득력 있고 그럴싸한 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재로 한 대체역사물이 있다는 얘기는 난 딱히 못 들었다.

주 타겟이던 한반도가 세계적으로 별로 존재감이 없고 별로 장사가 안 되는 소재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리고 그 당시엔 러시아가 이기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일본이 이기는 게 훨씬 더 극적이고 이례적인 일이었다. 즉, 현실이 픽션보다 더 픽션 같았으니 굳이 대체역사물이 또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2차 세계 대전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에서 워낙 드라마틱한 전투 승리 내지 초인적인 인간 승리 스토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스토리에 창작 각색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전기/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전쟁 영화도 지금까지 한두 편 만들어진 게 아니다. 가령, 미드웨이 해전이나 진주만 같은 건, 진작에 영화가 만들어졌다가 후대에 각종 CG를 곁들여서 리메이크작이 또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뻔히 다 아는 스토리만 곧이곧대로 차용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은 밀덕 역덕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가 워낙 많기 때문에 "만약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면? 조금만 핀트가 어긋났다면?" 이렇게 생각할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자면 "만약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때 전땅크 대통령이 제 시각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때 현장에 있었다면? 그때 폭발에 휘말려 순직해 버렸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어떻게 달라지게 됐을까..??" 이런 것 말이다.

그래서.. 발상을 달리하여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대신 추축국 진영이 승리했다면? 혹은 추축국이 일부라도 그렇게 흑화하지 않고 연합국과 잘 지냈다면?"을 상상한 대체역사물이 좀 있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것 일부만을 소개한다.

1. 비명(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찾아서 (1987) 복 거일 .. 독일만 망함

영어 공용화 논란 및 우파 진영 논객으로 유명세를 탔던 복 거일 씨가 소싯적에 발표한 소설이다. 나름 국내에서 만들어진 고퀄의 대체역사물이다. 얘랑 비슷한 스토리 전개로 예전에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대체역사물 영화가 한일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이 작품에서는 안 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실패"해서.. 이토 상은 부상만 입을 뿐, 1920년대까지 생존하며 장기 집권한다. 덕분에 일제 식민 통치나 대외 외교가 좀 더 젠틀하게 나간다.
정말 상상이 안 되지만 일본은 미국·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북 아시아를 무난히 접수한다. 2차 세계대전은 유럽 서부 전선 위주로만 벌어졌으며, 핵폭탄은 일본이 아니라 독일에 떨어진다. =_=;; (브레멘 & 드레스덴 ㄷㄷㄷㄷㄷ)

이로 인해 무려 국제연맹이 20세기 후반까지 존속하며, 한반도 역시 영원히 독립되지 못하고 대만이나 류쿠, 오키나와 같은 일본 식민지로 남는다.
일본은 미국, 소련에 이은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한반도에서 태어난 어느 2등 신민 조선인이 출생의 비밀을 뒤늦게 알게 되고서 어찌어찌 한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2. 높은 성의 사나이 (1962) 필립 K. 딕 .. 추축국이 몽땅 승리 (☞ 영화 소개)

이 장르의 거의 원조인 것 같은데.. 얘는 제일 비관적인 설정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프랭크 루스벨트 대통령이 암살 당해서 대통령이 못 되고, 뉴딜 정책이 시행되지 않고, 무기 대여법이 시행되지 않아서 2차 대전 유럽 연합국들이 빌빌대고.. 진주만 공습 때 미국의 함대가 몽땅 박살 난다.
결국 영국이 항복하고 미국도 독일· 일본의 합동 공격을 버티다 못해 조건부로 항복한다. 소련도 미국의 지원을 제대로 못 받으면서 독소 전쟁에서 패배해서 중세 시대로 되돌아간다.

유럽은 나치 독일 천지가 되고, 미국조차 서부는 일본, 동부는 독일이 접수하고 중부는 무법천지인 막장 상태로 전락한다.
전세계에 종교는 금지되고 히틀러 숭배만 허용된다. 독일의 과학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이이이일!!! 이 현실이 된다.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지배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둘도 사이가 마냥 좋지는 않은 견제 관계가 된다. 마치 현실에서 중공 VS 소련처럼..??

3. 당신들의 조국 (1992) 로버트 해리스 .. 일본만 망함 (☞ 영화 소개)

이 작품에서는 나치 독일이 우연한 계기로 에니그마 암호의 해독 체계를 바꿔 버리며, 이 때문에 연합국이 더는 맵핵을 쓰지 못하게 된다. 독일은 유보트로 세계의 제해권을 장악한 뒤 영국과 소련을 봉쇄시키고, 미국에 V2니 V3이니 로켓까지 날려보낸다.

결국 미국이 독일과는 강화 조약을 맺고, 독일은 세계 최강 패권국이 된다. 이 세계관에서는 일본만 핵폭탄을 맞고 그대로 항복한다.
뭐 이런 설정 말고는 얘는 30년 전 전의 "높은 성의 사나이"와의 변별성을 잘 모르겠다.

아, 참고로, 2번 "높은 성의 사나이"의 경우 굉장히 참신한 게.. 이 소설 내부에 또 가상의 소설이 있다고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세상이 이렇게 되지 않고 만약 연합국이 승리했다면..??" 이렇게 뇌피셜을 펼치는데,

여기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무사히 집권한 뒤 3선 이상 연임을 하지 않고 물러나며, 히틀러는 패전 후 자살에 실패하고 체포되어 전범 재판을 받고 처형된다.
그 뒤,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벌여서 소련이 작살나고 영· 미에 의해 분할된다. 그런데 그 뒤엔 영국과 미국도 서로 대립하게 된다. 흠..

흥미롭지 않은가? 대체역사물도 이런 식으로 상상하고 만들기 나름인 것 같다.
옛날 독일 영화인 '롤라 런'을 보면, 주인공이 집을 뛰쳐나갈 때 누구랑 부딪히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이 나비 효과마냥 완전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하물며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전쟁터라면 그런 간발의 타이밍 차이로 전황이 달라진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지 싶다. 그러니 이미 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그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다면..?? 이런 걸 소재로 영화나 소설을 만드는 건 충분히 흥미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현실에서 벌어졌던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과 한반도 광복은.. 그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이고 굳이 또 픽션으로 각색할 필요가 없는 기적적인 사건에 가깝다.
옛날에 어지간한 지식인들이 괜히 변절했던 게 아니다. 이제 항일 독립 운동이란 씨가 말라 버렸으며 일체의 희망이란 없고, 이놈의 일제가 망할 가능성이란 없다고 다들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 상태로 세대가 바뀌게 생겼으니 신세대들은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지경이고.. "일제가 이렇게 갑자기 망할 줄 몰랐으니까"는 절대로 궁색한 변명이 아니었다. 이렇게 일제 시대가 1950년대 이후까지 계속됐으면, 독립 운동 대신 그냥 2등 신민 조선인의 차별 철폐, 인권 개선, 참정권 보장 따위를 요구하는 투쟁이나 벌어지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한테는 정서적으로 참 꺼림칙하겠지만, "조선이 영원히 해방되지 못했다면?" 이런 대체역사물이 "조선이 일제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에 왕정이 계속 유지됐다면?"보다는 당연히 훨씬 더 더 현실적인 대체역사물인 셈이다.
심 훈의 "그날이 오면"은 우리 민족의 염원을 표현한 시일 뿐, 무슨 대체역사 소설은 아니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7 08:34 2021/12/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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