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94년 사이에 조선에서는 전라도 정읍에 조 병갑이라는 이름난 악질 탐관오리가 부임해서 백성들이 학정과 착취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동학 농민 운동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미국 남부의 뉴멕시코 주 '커럼포' 마을의 농장들에서는 웬 늑대 5인조 특공대가 신출귀몰하여 양과 암소 같은 가축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잡아먹어서 주민들이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100여 년 전에 프랑스에는 사람만 물어 죽이는 제보당의 괴수가 있었다지만, 쟤들은 가축만 상대하는 늑대/이리였다. 그런데 얘들은 평범한 늑대가 아니었다.
사람과 덫은 귀신같이 잘 피해 다니면서 지독하게 잡히지 않았다. CCTV도 없던 시절이니 농장주들은 정말 속수무책으로 손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잡아먹는 게 아니라 그냥 유흥을 위해서 양들 수백 마리를 그냥 물어 죽이고 튀기도 했다. 한때는 독이 든 먹이 미끼들을 몽땅 거둬 가서 한데 모아다가 위에 똥을 찍 싸는 여유까지 부렸다! 이 정도면 이놈들은 늑대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늑대 패거리의 우두머리는 시튼 동물기에 나오는 대로 로보(Lobo)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는 아재력이 발동되어 옛날 H.O.T 2집의 “늑대와 양”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ㅋㅋㅋㅋㅋ (늑대 빌어먹을 짐승 같은 XX ㄲㄲㄲㄲㄲㄲ)

사람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맹수 개체가 보고되면 보통은 동물 보호 운동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놈을 잡으려 한다. 걔를 잡는다고 같은 종에 속하는 다른 맹수들까지 싸잡아 학살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동물기의 저자인 시튼이 직접 이놈을 잡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결말은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바로.. 로보가 아니라 놈의 반려자인 하얀 암컷 블랑카를 먼저 잡았다. 놈의 부하들과는 달리 마누라는 철딱서니 없이 부주의하게 행동하는 게 묵인되었고, 어디서든 더 큰 권한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글쎄, 그 당시 사람들은 블랑카를 살려 둔 채로 인질로 활용할 생각은 안 하고 얘를 바로 죽여 버렸다. 이들 패거리에 대한 적개심 복수심 때문에 바로 죽였지 싶다.

블랑카의 시체가 조리돌림 당하는 지경이 되자 우두머리 로보는 인간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평정심을 잃고 멘붕 폭주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걸리지 않았을 허술한 덫에 너무 허무하게, 거의 자살에 가까운 방식으로 걸려서 잡혔다.

로보는 잡힌 뒤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었는지, 인간이 직접 챙겨 주는 먹이를 일절 먹지 않고 버로우 타고 있다가 그대로 굶어 죽었다고 한다.;; 시튼은 당장 가축의 피해를 막은 것은 다행이지만 적을 너무 비열한 방법으로 잡았다며 자책하고 탄식했다.
하다못해 시튼 동물기를 읽은 어느 열 살배기 꼬마가 “아저씨는 나빠요~ 늑대 로보를 그런 방식으로 잡다니 너무 비열하고 치사해요!! ㅠㅠ” 라고 항의 메일... 아니, 편지를 보낼 정도였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잡힌 로보와 블랑카의 실제 사진. ㄷㄷㄷ)

이렇게 블랑카와 로보가 잡힌 과정은.. 뭐랄까 성경의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인류의 타락 과정하고도 좀 비슷해 보인다.
마귀가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꾈 때도 여자가 혼자 있는 순간을 노렸다. 더 호기심 많고 블랑카 같은 구석이 있던 여자가 먼저 선악과를 먹었다.

남자는 저런 상황에서 뱀의 낚시 정도에는 넘어가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분명 숙지하고 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사랑하는 여자와 같이 죽으려고 일부러, 고의로 신의 명령을 어겼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 시초가 아담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브만 먹었으면 죄가 후세에게까지 유전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냐. 특이한 개인별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저게 남자와 여자의 평균적인 종특이다.
여자가 좀 더 감성파에 가깝다. 남자는 다른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여자보다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자를 위해서 자기도 왕창 비논리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려 버린다. 여자를 위해 자기 신념을 바꾸고 삽질 자승자박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목숨도 바친다.;;
“피~ 오빠는 내가 좋아 신념이 좋아? ㅠㅠㅠ” 이런 말에 대부분 넘어간다. 이건 남자 여자 어느 쪽 탓을 할 문제가 아니다!

지존파는 여성 피해자를 매정하게 죽이지 않고 살려 줬다가 잡혔다.
이스라엘에서 여군을 전투병으로 투입하지 않는 이유도.. 단순히 성범죄 발생 때문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여군 전우가 전사하자 남군들이 통제력을 상실하여 으아아아악 폭주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라는 게 보편적으로 이런 생물인 것이다.;; 성경의 삼손은 그 중 한 예일 뿐이다.

이렇듯,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 얘기는 단순 설화 우화로 치부하기에는 굉장히 심오한 인생 원리(!)가 담겨 있다.
남자와 여자는 정말 서로 다른 존재이고 고유한 역할이 있다. 그리고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할 때가 서로가 윈윈이고 좋다!

그러니 지긋지긋한 종북들은 빨리 북한 가서 살 것이며, 꼴페미들은 진짜 여성 해방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아프가니스탄 가서 거기서나 온몸을 바쳐 환경을 바꿔 놨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여기서 남녀 갈등 조장하는 헛소리 늘어놓지 말고 말이다. 그건 번지수 잘못 찾았다. 응? 늑대 얘기로 시작했다가 결론이.. ㄲㄲㄲㄲㄲ.

의사· 경찰· 군인 같은 직업 종사자의 그림에 남자만 묘사돼 있는 게 차별이라고 트집잡는 페미들치고 일반적으로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훨씬 더 많이 부담하는 것, 결혼할 때 남자가 으레 집 장만하는 것, 여성의 갱내 근로가 금지돼 있는 것(근로기준법 제72조), 전쟁터나 각종 사고 현장에서 아이와 여성부터 먼저 구조하는 것.. 이런 걸 불평등이라고 지적하는 년은 내가 아는 한 전혀 없다. 쟤들은 책임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따지는 전형적인 위선자들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부터 데이트 비용은 무조건 1:1로 분담한다고 해서 그렇게 정의가 구현되고 남녀 모두에게 아름다운 세상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남녀의 보편적인 차이점을 일부러 부정하고 무식하게 획일 평등만 추구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본인은 통상적인 남자 여자 특성과 차이점, 성 역할을 어느 정도 지지하는 소신이다. 그러나 이건 (1) 우열을 가리고 계급화를 하라고 있는 차이점이 절대 아니며, 또한 (2) 개인별 예외적인 특성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밖에서 뛰노는 걸 좋아하는 활동적인 여자나, 내성적이고 가정일 좋아하는 남자를 죄인 취급하고 무시하고 왕따 시키라는 얘기가 아니다. 동성애야 정신병이나 죄 중 하나 이상이겠지만, 단순히 성격이 저런 것은 마치 왼손잡이 정도로 가치 중립적인 아웃사이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균적인 남자보다 더 지적이고 똑똑한 여자는 얼마든지 있고, 평균적인 남자보다 신체 능력이 더 좋은 여자도 당연히 있다.
남자가 감정적으로 폭주했을 때 차분히 이성적인 조언을 해 준 현숙한 여자도 있다. 성경에는 당장 빡친 다윗의 폭주를 잘 컨트롤 해 준 아비가일이라는 여성이 나오며, 또 세상 문학에서도 시튼 동물기와는 반대 스토리인 장끼전 같은 소설이 괜히 전해지는 게 아닐 것이다. (아내 말을 안 듣다가 덫에 꽤꾸닥~) 우리나라의 박 정희 대통령도 어진 영부인을 잃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더욱 폭주가 시작되었다는 게 유력한 분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언제나 그런 게 아니다.
그 똑똑한 솔로몬 왕도 예쁜 이방인 여자들에게 놀아나다가 그들의 우상 숭배에까지 빠져서 인생 운지했고.. 아합 왕은 희대의 악녀 왕비 이세벨 덕분에 더욱 암군 폭군으로 흑화했다.
그 반면, 욥은 재앙을 당한 뒤에 철딱서니 없는 아내가 내뱉는 잘못된 막말을 컨트롤 하고 잘 저지했다. 일반적으로는 가정과 교회에서 영적 권위는 남자에게 있는 게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그림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의 소위 여자 목사 문제는 이런 배경과 얽혀 있다.

여자라도 프로 운동 선수라면 일반적인 남자보다야 피지컬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이 프로 운동 선수를 생각한다면 여자의 보편적인 피지컬이 올림픽 종목에서 남녀 구분을 없애도 될 정도로 대등한 것 역시 절대 아닌 것이 현실이다!
(그 반면, 요즘은 남자였다가 성전환 하고 여성 종목에 출전한 여성 선수들이 진짜 여성=_= 선수보다 피지컬이 더 우월해서 밸런스를 파괴하고 있다고 난리도 아닌 지경...)

이런 와중에 "girls can do anything" 꼴페와 "어디 여자가 감히" 꼰대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라떼, 한 1990년대 중후반이 중학교에서 기술과 가정 과목을 남녀에게 모두 가르치기 시작했고, 고리타분한 성역할을 타파해야 한다고 교육과정 차원에서 한창 가르쳤었다. 요즘은 그걸로도 모자라서 학교에서도 대놓고 이상한 페미니즘까지 가르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러나 정말 일반적인 평범한 경우를 생각한다면 결국 옛날 사고방식이 더 옳은 편이다.
세상에 여성에 대해서 부당한 차별이나 유리 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퀴리 부인이나 NASA에 들어간 최초의 여성 과학자 이런 얘기는 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유리 천장뿐만 아니라 유리 바닥도 지금까지 많이 있었으며, 유리 천장이 없어지면 유리 바닥도 같이 없어지곤 한다. 그러면 그 피해는 예외적이지 않은 대다수 여성에게 돌아간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라 하겠다. 이상..;;

※ 여담

1.
본인이 예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성경이 말하는 인류 최초의 죄는 그나마 잡범급이고 낭만적인(?) 죄에 가깝다. 아예 반역을 시도했던 정치범인 루시퍼의 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니 인류에게는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길이 열린 반면, 루시퍼는 재기의 기회 없이 영원한 파멸만이 예정되었다.

2.
이 시점에서 히틀러의 여친 겸 아주 잠깐 아내 역할까지 했던 에바 브라운도 같이 떠오른다. 뭐, 이 여자는 사고를 쳐서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거나(..!!) 이적행위를 한 것은 없고.. 그냥 히틀러로부터 관심과 사랑만 받으려고 애썼던 무개념 순애보 처자였던 것 같다. 정치니 전쟁이니 그딴 건 관심 없다.
오죽했으면 히틀러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랑 너무 안 놀아 준다고 너무 상심해서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정도이니.. 뭔가 성경에서 라헬이 부렸던 앙탈과 비슷해 보인다. (창 30:1)

하지만 히틀러는 에바의 바람과 달리, 자기가 에바와 연애 중이라는 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애인을 직접 충분히 챙겨 주지 못하는 대신, 자기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서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은 보장해 줬다.
그래서 전 국민이 전쟁 때문에 배급이나 받으면서 어렵게 사는 동안에도 저 여자는 금수저 행세를 하며 떵떵거렸다. 1940년대에 휴가 가서 노는 동영상을 무려 "컬러" 필름으로 찍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바 브라운의 '컬러' 사진. 이 처자의 성깔과 현실 감각은.. 영화 Downfall에서 남들은 파티 중에 다들 폭격 피해서 도망치는데 혼자 "다들 지금 뭐 해요? 신나는 음악 틀고 같이 놀아요~~ 난 춤 좀 추고 싶다니까?" 이러는 행적으로 묘사되었다.)

참고로 히틀러와 에바의 나이 차이는 우리나라 할배와 프란체스카의 나이 차이하고 비슷한 정도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21 08:35 2021/11/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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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번역 스타일의 차이

이 글에서는 KJV 유일주의자가 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인 교리 분야의 텍스트 변개가 아니라, 그냥 번역 스타일의 차이(이역)에 더 가까운 주제들을 다루었다.

1. 비인격적(?)인 표현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은 현대에 번역된 성경들에 비해 뭔가 덜 인격적인(?) 대명사를 써서 번역된 구절이 좀 있다.

(1) 먼저 떠오르는 건 열왕기상 3장의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 장면.
영어를 잘 읽어보시면 문제의 갓난아기를 전부 it으로 가리키고 있다. 아기의 성별이 뭔지 모르는 문맥인 것도 아니고, 두 여인이 나름 아들이라고 거듭 거듭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he/him을 쓰지 않았다.

아기 예수, 그리고 창세기에서 베레스와 세라(창38:27-29)의 출산처럼 다른 곳에서는 갓난아기에게 성별을 부여한 인칭대명사를 얼마든지 사용한 사례가 있다. 그런데도 솔로몬의 재판만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히브리어 원어가 그렇게 쓰여 있어서? 아니면 진짜 엄마가 나서기 전까지는 왕이 아기를 진짜로 물건 취급하고 divide it, slay it 이런 명령까지 내렸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2) 성령님의 기도 중보를 말하는 유명한 롬 8:26에서 the Spirit을 itself라고 가리킨 것도 유명하고 심지어 오역 논란을 빚고 있기도 하다.
성령은 물이나 불, 바람, 기름 같은 무생물로 예표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명백하게 하나님의 삼위 구성원이고 인격적인 존재이다. 그런데도 himself가 아닌 itself라고 번역된 것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원어가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3) 예수님 관련 예언인 눅 1:35에서는 다른 거의 모든 성경은 the Holy One (거룩한 이, 거룩하신 분)이지만 KJV만은 아예 the holy thing (거룩한 것)이다.
KJV를 번역했다는 흠정역조차 오래 전 초창기에는 '거룩한 이'라고 의역을 해서 출간됐었다. 그러다가 "우리 통념상 어색하더라도 KJV를 번역했다면 닥치고 KJV 단어에만 충실하게 옮겨야 합니다" 이런 설득과 권면이 받아들여져서 지금처럼 번역이 수정됐다.
그 예언은 예수님의 육신, 생물학적인 단백질 덩어리 몸만을 가리키는 문맥이기 때문에 thing이라는 것이 이쪽 진영의 입장이다.

사실, KJV는 요즘 영어처럼 하나님/예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시하는 처리조차도 돼 있지 않다. 그런 관행 자체가 후대에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2. 더대오? 렙배오?

마 10:3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 제자들 명단의 일부이다.
다른 모든 성경들은 “빌립, 바돌로메, 도마,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인 야고보, 그리고 다대오(Thaddaeus)”라고 돼 있다.
그런데 킹 제임스 성경은 다대오가 그냥 다대오가 아니라 “다대오라는 별명을 가진 렙배오(Lebbaeus)”라고 돼 있다. 이 렙배오라는 명칭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본인은 KJV 유일주의에 입문한 지 어언 20년 가까이 돼 가지만, 이런 차이가 있는 건 꿈에도 몰랐다.;; 사실은 다대오가 가룟 유다와 동명이인인 제자 유다를 가리키고, 요 14:22에서 질문을 한 그 사람이란 것도 지금까지 별로 인지를 못 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이 사실을 내가 원래 다니던 교회가 아니라 여친 교회의 설교에서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개역개정 쓰는 일반 기성교회)
이분들도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모르시는 건 아니구나. 한 수 배웠다.

사실, KJV 유일주의 진영에 들어오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 “하나님이 육체 안에 나타나셨고” 같은 교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더 자극적이고 치명적인 차이점/변개 내역에 대해서 자주 듣지, 저런 단순 정보 전달 쪽의 성경 번역 차이에 대해 들을 기회는 생각보다 드물다. (압살롬의 반역 본문에 나오는 40년 vs 4년 같은 것도..)
렙배오인지 랩배틀인지 저것도 뭐.. 루시퍼, 갈보리, 이스터처럼 유명한 명칭은 아니니까 말이다.

야고보와 유다는 신약 성경에서 헷갈리는 동명이인이 굉장히 많은 명칭 중 하나이다. 저 다대오 유다는 가룟 유다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하고도 다른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나저나 다대오의 영어 스펠링을 보니.. 옛날에 애니매트릭스의 첫 에피소드 “오시리스의 마지막 비행”에서
Good bye, Thadeus / Good bye, Jue / Fly baby, fly!
대사가 떠오르는군..;; 매트릭스가 아예 삼위일체도 나오고 이것저것 성경에서 모티브를 딴 명칭이 여럿 있었던 걸로 내가 기억한다.

3. 한킹(말보회)과 흠정역의 차이는?

번역자의 인성과 자질 논란 같은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를 몽땅 배제하고..! 순수하게 텍스트만 따져보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 흠정역은 이집트, 페르시아, 에티오피아처럼 세속적으로 통용되는 것을 제외하면 책 이름과 고유명사 외래어를 개역성경과 동일하게 표기했다. 한킹은 그렇지 않다 '스카랴/슼, 판관기(사사기) 등'
  • KJV, 그리고 흠정역, 개역성경 등은 인용을 나타내는 여닫이 문장부호가 없다. 하지만 한킹은 어째 따옴표를 임의로 넣었다. 하나님/예수님 가라사대 같은 인용문들을 볼 것.

  • 흠정역은 번역 방침과 번역자의 신념으로 인해 KJV에서만 튀는 단어를 티 안 나게 최대한 보수적(?)으로 번역한 반면, 한킹은 튀는 쪽으로 번역했다. 창 1:28 replenish가 한킹은 '다시 채우다'이지만 흠정역은 그냥 '채우다'이다.
  • 한킹은 창 22:8 God will provde himself a lamb을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실 것이다"라고 번역한 유일한 역본이다.
  • 흠정역은 노아의 흑역사, 잠 23의 극딜 같은 극도로 부정적인 상황이 아닌 한, wine을 몽땅 '주'가 아닌 '즙'이라고 번역했다. 그래서 요한복음 가나의 혼인 잔치에 포도주 대신 포도즙이 등장하는 유일한 역본이기도 하다. 한킹은 그렇지 않음.
  • 흠정역은 구약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 우상 숭배 장소인 grove(창 21:33)를 그대로 '작은 숲'이라고 번역했지만 한킹은 타 성경 같은 '아세라 목상'도 아니고 그냥 '아세라'라고 번역했다. 고증과 교리 특성상 그렇게 했다고 당당히 해명을 하고 있다.
  • 반대로 흠정역이 고증(?)을 이유로 달리 번역한 단어 중 하나는 candlestick이다. 한킹은 촛대, 흠정역은 등잔대임. (그 시절에 파라핀 양초가 존재했었느냐의 여부..)
  • 한킹은 신약의 경우, 영어 KJV가 아니라 TR 본문을 따라 번역한 곳도 있다. 이 점은 초판 서문에도 명시돼 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고후 13:11 잘 있으라, 바이바이(farewell)를 뜬금없이 '기뻐하라'라고 옮겼다.

  • 흠정역은 2011년에 나온 제5판 400주년 기념 에디션이 최신이고, 조만간 마지막 6판 개정이 계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킹은 2010년대 더 나중에 또 개정된 것이 있지 싶은데.. 이건 본인은 잘 모르겠다.
  • 요즘 나오는 한킹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킹은 한글 본문에서 고유명사를 고딕체로 표기하지 않아서 읽기 좀 불편한 감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1/10/21 08:36 2021/10/2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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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짐승의 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그 이름도 유명한 짐승의 표, 그리고 짐승의 수 666은..

(1) 당연히 명백히 매우 부정적인 심상이다.
계 14:9-10의 구절로 미뤄 보건대 이건 구원을 상실한 영원한 고통과 형벌을 수반한다. 또한 20:4에 따르면, 반대로 이걸 받지 않아야만 예수님의 지상 재림 때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의 표가 무엇이고 수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실체는 “아직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모른다”가 가장 가장 합리적인 해답이어 보인다.
바코드, 베리칩, 이상한 백신.. 지금까지 예상이 이만치 빗나갔으면 이젠 좀 회개하고 자기가 성경을 적용하는 방식을 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 때문에 지금까지 시험 들고 성경에 대한 믿음, 종말에 대한 믿음이 파괴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3) 짐승의 표는..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짐승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 나서 그 증표로써 받는 것이다.
영적인 가치 판단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단순 과학 기술 문명의 이기는 짐승의 표가 절대로 아니다. 이건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사실인데.. 1990년대부터 교회에서 종말 설레발 함부로 치지 말고 분간을 제대로 했어야 했다.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지불식 중에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느부갓네살 왕 시절에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지불식 중에 왕의 황금 형상에 절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침례교회에서 누군가 당사자가 모르는 사이에 침례를 주는 게 불가능한 것과도 같다. (유아세례야 뭐 애 당사자가 너무 어리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받을 수 있겠지만.. 침례는 그렇지 않다!)

(4)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구원받은 신약 교회 성도들은 이미 휴거되어 올라가고 없고 대환란을 겪지 않는다. 저런 짐승의 표 따위를 마주칠 일이 없다. 올레~!!!
신약 성도들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볼 준비만 하면 된다.

그 대환란을 겪지 않는다고 해서 생활 속에서 예수쟁이로서 일상적인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거나 환란과 고난을 겪지 않는다는 말은 절대 아닌데(행 14:22, 딤후 3:12, 벧전 4:12 따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안타깝지만 엄청나게 많다.;;

지금 우리가 "그때 짐승의 표를 절대 받지 않게 용기 주시옵소서. 고문 당하지 않고 단칼에 순교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열심히 하는 건.. 창세기 50장에서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부디 우리를 해코지를 하지 말고 변함없이 너그럽게 봐 주시옵소서" 이런 간구를 하는 것과 비슷한 짓일 것이다.
예수님과 100가지가 넘게 닮았다는 요셉이 그때 펑펑 울었듯이, 저런 웃픈 기도는 분명 예수님을 울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갸륵하고 기특해서 감동받아서 우시는 건 절대 아니다~!

2. 성경의 예언

본인은 성경의 예언들 중에 2000여 년 전의 예수님의 초림과 명백하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 것, 긴가민가 뜬구름 잡는 것 같고 너무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처럼 보이는 것들은 그냥 “아직 이뤄지지 않은 예언, 재림 때 문자적으로 이뤄질 예언”이라고 본다. 특히 계시록 4~19장 사이 말이다.
전부 다 비유 은유 묵시이고, 지난 2000여 년 교회 시대 동안 서서히 이뤄져 왔다는 식으로 보지는 않는다. 문자적으로 사실이긴 한데, 시기와 장소와 적용 대상이 다르다.. 이게 더 건전한 관점이다.

사실, 성경에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예언이 더 많이 적혀 있다. 은사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욜 2:28조차도 오순절 때 이뤄진 게 아니라 아직 이뤄지지 않은 예언이다.
그런데 당장 이해가 되지 않고 실감이 안 간다고 해서.. 성경이 문자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걸(예: 1천 년, 영과 혼의 구분 따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3. 구원의 확신

(1) 진심어린 동의 없이 영접 기도 달랑 읊고는 거짓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매우 잘못됐지만..
반대로 성경에 뻔히 기록된 약속을 근거로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 자체가 교만(!!!!)이라고 이상하게 몰아세우는 것도 매우 잘못됐다.

(2) 예수님이 언제 오시나, 내일 내게 무슨 일이 닥치나, 짐승의 표의 정체가 무엇이냐 이런 게 불가지론이지..
신이 존재 여부 자체 내지 하나님의 아들 신분으로서 신자의 구원 여부와 사후 세계가 불가지론인 건 절대 아니다.

(3) 신앙 생활이 우리 인간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는 건 믿음만으로 아무 값없이 우리의 노력이 전혀 없이도 구원을 공짜로 얻는 것, 먼저 쉬고 은혜를 누리고 나서 일을 하는 것, 구원이 영원히 탄탄히 보장되어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 반면, 인간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는 건 개인의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고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알 수 없는 것, 성경대로 경건하게 살면 당장 세상적으로 불이익을 겪고 손해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건 몰라도 "평생 죄 짓고 살다가 나 죽기 바로 직전에만 믿으면 되겠네?"가 호락호락 가능하게 해 놓지는 않으셨다.

(4) 비슷한 예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랑과 공의를 겸비하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신 것,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모든 인생 내역과 마음 속 생각이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날 거라는 사실이다.
그 반면, 잘못된 두려움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두려워해서 죄에 동참하는 것,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해서 "이러다 지옥 가면 어떡하나, 대환란 때 단칼에 죽지 못하면 어떡하나" 같은 자포자기 두려움이다.

  • 입문(쉬움): 중생,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 첫 성령 침례, 구원받은 죄인
  • 마스터(어려움): 성화, 죄의 권능/임재로부터 구원, 지속적인 성령 충만, 예수님의 제자

복음서에서 말하는 누구나 쉽게 값없이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 구원에서 시작했다가.. “나보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부자가 하나님 왕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런 오락가락 말씀을 보고는 헷갈려서 오류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구약과 신약의 관계와 공통점과 차이, 세대적 진리 같은 얘기가 통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오락가락 구절에 대한 긴 설명을 이 자리에서 하지는 않겠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는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2)를 다 완수하지 못했다고 해서 (1)마저 박탈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전부이다. (1)을 이뤘으니 (2)는 필요 없다는 둥 다른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본인의 비장의 무기인 “탈북자가 남한에 오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남한 교도소에서 벌을 받지, 북한으로 도로 송환은 절대 되지 않는다.” 비유를 들어도 납득하는 분이 지금까지 본인의 경험상 거의 없었다.ㅠㅠㅠㅠㅠㅠ (우파인데도)

4. 이스라엘

교파에 따라서 견해가 일치하지 않기도 하는 주제를 다루게 되어 좀 조심스럽지만.. 뭐 본인의 소신을 말하라면,
본인은 교회(신자)와 이스라엘(유대인)은 서로 다른 존재이며,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 회복될 거라고 믿는다. 왜냐고..?? 그냥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고 그게 다 이상한 비유 영해 묵시라고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예수 믿어 구원받으면 신약 교회 신자 신분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대체로 눈이 멀었고 심판 받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신자가 유대인들 징벌/심판의 도구를 자처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반유대주의는 잘못됐다. 본인은 영적 유대인 내지 대체 신학을 지지하지 않는다.
맨날 심판 심판 하지만 궁극적으로 회복된다, 완전히 끝나고 파멸되지는 않는다는 게 구약 성경이 맨날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는 내용이다.

다만, 1948년에 건국된 지금 세속 국가 이스라엘이 성경의 타임라인과 얼마나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민족 혈통 개념이 극히 희박해진 지금 유대인이 나중에 다시 열두 지파로 나뉘어서 계시록에 기록된 미래의 환란 성도 역할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겠는지..
이런 현실적인 디테일을 생각하자면 나도 이해되지 않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면모가 있긴 한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더 엄청난 초자연적인 기적도 믿는데 겨우 저 정도는 못 믿을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옛날에 우리나라 할배 대통령은 늘그막에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교류하며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하지만 일본하고는 특이한 과거사 때문에 우리만의 고유한 정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양자인 이 인수 박사의 회고. 난 할배가 하야하지 않았으면 한일 수교는 언제쯤 어떻게 이끌었을지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하다. 박통이 암살 당하지 않았으면 핵무기까지 기어이 정말 만들어 냈을지 궁금한 것처럼..)

그런데 그런 것처럼 하나님 역시 유대인하고는 좀 색다른 고유한 경륜이 있을 거라는 건 매우 합리적인 추론이며 실제로 그러하다. 쟤들은 선민인 한편으로, 예수님을 대놓고 거부하고 십자가에 매단 민족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서 걔들은 초대 교회 시절에 행 2:38 같은 회개의 침례가 따로 필요했으며, 그게 심지어 구원의 조건이기까지 했다. 저 침례는 우리처럼 먼저 구원받고 나서 신앙 고백 후에 받는 침례가 아니다.

요즘 유대인 중에는 뭔가 예수님을 믿긴 해 보이는데 예슈아 이러면서 이상하게 행하는 메시아닉 쥬라는 집단이 있다. 얘들이 부정적인 존재인지, 아니면 그 정도 믿는 거라도 감지덕지 여겨야 하는지 갖고 크리스천들이 다투는 건.. 마치 정치판에서 윤 석열이나 이 준석 같은 인물에 대한 견해 때문에 우파 진영 내부에서 호불호 갈리고 싸움 벌어지는 것과 쏙 빼닮은 현상으로 보인다.
정말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 어쩌면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바울과 바나바의 마가 논쟁하고 비슷한 건지도 모른다.

5. 심경의 변화

  • 마 11에서 침례인 요한이 별안간 예수님에게 자기 제자들을 보내서 당신이 정말 '그 VIP'가 맞는지 확인 질문을 함.
  • 삼상 27에서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생활에 지쳐서 사울의 적에게 잠시 투항하기도 함. (그래도 그 계획은 나가리 나고 고국으로 잘 돌아옴)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그리고..

  •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를 앞두고 사람을 지으신 것을 repent 하셨다.
  • 하나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더 강퍅하게 하셨다.

이런 것은 하나님도 무슨 실수· 후회를 한다거나 자괴감을 느끼고 잘못을 뉘우친다거나, 혹은 사람의 마음을 무슨 로봇처럼 마인드 컨트롤이라도 하시는 듯이 읽힐 소지가 있다. 그런 게 아니다.
하나님이 repent 하신 것은 근심하고 슬퍼하고 애통해하신다 정도의 뜻이다. 그리고 후자는 이미 마음을 한쪽으로 삐딱하게 굳힌 사람이 더 치우치게 내버려 두고 부추긴다는 뜻이지, 방향 자체를 사람의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조종한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보다 자비로운 것은 자비가 아니고,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건 의로움이 아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보상을 바라는 것은 질 낮은 욕심이 전혀 아니며, 그 자체가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 보상조차 필요 없다는 건 마치 구원의 확신을 교만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지나친 의로움이며 오류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0/12 08:35 2021/10/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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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의 역사와 성경 번역의 역사

우리나라 자동차

  • 한국 땅에서 자체 조립-_-되어서 굴러간 최초의 자동차: 시발(1955)..;;
  • 시발 같은 영운기 야메 조립이 아니라, 국내에서 정식 면허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 코티나(1968)
  • 국내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1975)
  • 최초로 전륜구동: 프레스토(1985)
  • 최초로 전자제어 다중 연료분사(MPI): 엑셀(1989)
  • 최초로 DOHC 흡기 방식: 엘란트라(1990)
  • 최초로 자체 개발 엔진 탑재: 스쿠프 터보(1991. 알파 엔진)
  • 최초로 로열티 전혀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100% 독자 개발: 액센트(1994)

영어 성경

  • 최초의 중세 자국어 신약 성경(그 자체가 문화충격): 위클리프(139x.. 조선 건국과 비슷)
  • 종교 개혁 이후, 바른 원문 계보에서 최초로 번역: 틴데일(153x.. 신약+모세오경+알파.. 아직 전서는 아님)
  • 최초로 왕이 허락한 신구약 전서: 커버데일(1535.. 이제 번역자가 순교자가 되지 않아도 됨..;;ㅜㅜ )
  • 외국 인쇄 후 밀반입이 아니라 최초로 잉글랜드 내부에서 자체 인쇄: 매튜(1537)
  • 최초로 국비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공역: 그레이트(1540)
  • 최초로 라틴어가 아닌 원어 기반 번역, 오늘날과 같은 장절 구분 도입: 제네바(1560)
  • 모든 논란 종결: 킹 제임스(1611)

이 성경들 중에 바로 제네바 성경이..
잉글랜드 메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서 칼빈이 접수하고 있던 제네바로 망명한.. 청교도 개혁주의 학자들이 만든 성경이다.
칼빈도 선 넘는 신성모독자나 이교도를 사형에 처하긴 했지만.. 그래도 “죽여도 내가 죽이지, 교황이나 가톨릭 군주한테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정도의 지론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 성공회 계열의 비숍(157x) 성경도 있긴 했는데 얘들의 특징은 당장 기억이 안 난다.
유럽의 많고 많은 언어들 중에 영어만이 저렇게 16세기 성경 번역 계보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자세한 설명은 이 링크를 참고하시라. "칼빈과 영어 제네바 성경"

그렇다. 자동차 얘기는 밑밥으로 던졌던 것일 뿐이었다. 둘이 같이 외우면 꽤 재미있다~! ^^

2. 다수와 소수

법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상황에서는 그래도 A가 가해자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이런 식의 문장을 종종 접한다. 그런데 다수설 소수설이라는 건 도대체 누구의 설을 가리키는 걸까?

"...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겠지만 10여년 전 학술 기자로 법학계의 표절 문제를 취재하면서 접했던 실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각종 법학 개론서를 보면 다수설, 유력설, 소수설이란 항목이 나온다. 그런데 그 다수라는 게 우리 학계의 다수가 아니었다. 일본 법학 개론서에서 하나의 조항에 대해 이런 해석을 한 사람은 누구누구 실명으로 거론돼 있는데 그것을 통째 베끼는 과정에서 일본 교수 이름을 쓸 수가 없으니 15명 정도 되면 다수설, 7~8명이면 유력설, 2~3명이면 소수설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긴 당시 국내 최고의 법학과 교수라는 사람은 일본 교과서를 통째 베끼는 과정에서 과감하게도(?) 자신이 쓰지도 않은 일본 저자의 책을 '졸저'라는 이름으로 주(注)에 달아놓기도 했다." (원문이 있는 곳)


끄응....;;;
성경 원문비평학에서 맨날 나오는 다수 사본, 소수 사본 이런 개념과 논쟁거리가 법학 쪽에도 거의 똑같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_<
원문비평학에서도 "더 오래된 / 신뢰할 만한 필사본에는 이 구절이 없음" 이러는데.. 저기서 말하는 오래된 필사본이 정체가 뭔지 실제로 뭔지 알게 되면 역시 경악하게 될 것이다.

3. 다양한 번역과 의미

신학이나 종교학 쪽에 학술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도 둘 이상 여러 역본을 참고하며 읽곤 한다. 동일 구절이 역본마다 미묘하게 다르게 번역되었으면 그 차이점을 곱씹으면서 "음 역시 성경의 원어를 현대인의 언어로 옮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이러며 넘긴다. 다양한 번역본들의 대동소이한 다양한 의미를 섭렵하면 그에 비례해서 옛날 성경의 원래 의미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KJV 유일주의자의 생각은 이와 좀 다르다.
인간이 저술한 다른 평범한 문학 작품이나 고전이라면 모를까,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 기록된 유일한 텍스트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을 사용해서 온전히 보존해 주셨다.

굳이 다양한 번역을 통해서 다양한 의미를 곱씹을 필요가 없다.
텍스트를 KJV 단 하나로 고정시킨다 하더라도, 성경엔 거기서 또 다양한 번역이 나올 수 있는 중의적인 표현이 이미 넘쳐나기 때문이다.

제일 대표적인 예로 창 22:8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이 있다. 이건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신다"일까, "자신을 위해 어린양을 따로 예비하신다"일까..??
이건 KJV가 모호하거나 부정확하게 번역된 게 아니다. 원어에 원래 들어있던 중의적인 표현까지 통째로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된 것이다.

그거 말고.. '사탄의 왕좌'이냐 '사탄의 자리'이냐?? '맏아들'이냐 그냥 '아들'이냐? '이스터'냐 '유월절'이냐?
'순교자'냐 '증인'이냐? '주여'냐 '예수여'냐 같은 것은 맞고 틀림의 문제이다. 둘 다 옳을 수가 없다.
성경이 변개됐느냐, 성경에 오류와 모순, 혼란과 혼돈이 생기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풍성한 의미 차원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그런데 현대 역본들은 정작 KJV의 함축· 다의· 중의적인 번역은 읽기 힘들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다른 표현으로 바꿔 버리곤 했다. 창 22:8은 God will provide FOR himself a lamb이라고 해서 하나님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한다는 의미는 제거했으며, KJV에서 대명사로 번역한 단어는 문맥상 실제로 가리키는 인물 이름으로 치환해 버린다거나 했다. 이것 역시 생각할 점이다.

4. 전하는 방법

주변에 KJV라는 성경을 소개할 때.. "이건 지난 수백 년 동안 영어권 국가에서 읽혀 왔으며 유명하고 위대한 옛 설교자와 복음 전도자들이 사용했던 고전이에요. 종교개혁 성경이에요. 한번 읽어 보세요" 이렇게 여러 좋은 옵션 중 하나로서 권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날을 세워서 "KJV만 옳고 다른 성경들은 변개된 곳이 적어도 한 군데 이상 있습니다"라고 강하게 팩트폭격을 하는 방법이 있다.
이것도 더 세분화하면 KJV를 단순히 가장 뛰어나고 정확한 번역본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아예 절대무오 최종 권위이고 원어 원문과 동급, 아니 그걸 능가한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이렇게 KJV를 좋은 성경 역본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KJV만이 옳은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 두 모드는 내 경험상, 상황에 따라 적절히 잘 선택해서 구사해야 할 것 같다. 복음 전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성경은 최소한 사람의 구원을 가르는 문제는 아니니 유도리의 폭이 넓다.

다만, 예수 믿어 구원 받았다면서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자신의 말씀을 오류 없이 정확하게 보존해 주셨다고 믿지 않는 것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 "예수님이 가까운 미래에 문자적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당신의 삶에 관심을 갖고 개입하고 계신다"를 차마 못 믿는 '구원받은 불신자'에 가까운 안타까운 모습이긴 할 것이다.

5. 음모론이 개입한 성경 역본

본인은 KJV 유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진영으로부터 KJV에 대한 온갖 반대 주장과 트집들을 접해 왔다.
이 구절은 오역이고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비판은 차라리 나은데.. 그 중에는 제임스 왕에 대한 온갖 중상모략도 적지 않았다. 왕권신수설 꼴통 꼰대, 호모 변태, 심지어 프리메이슨...

그럼.. 같은 방식으로 동성애 옹호, 예수님 신성 부인 등 그들이 지지하는 현대 역본 번역자들의 놀라운 사상과 신앙관에 대해서는 공평하게 살펴봤나 모르겠다. 차라리 엄청 보수적이던 옛날 사람인 제임스 왕이 훨~~씬 더 건전할 정도인데..
이렇게 맞불을 놓을 수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호불호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뒷배경엔 돈줄을 쥔 악한 빅브라더 조직이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지금까지 늘 존재해 왔다.
성경 역본 분야에서는 원래 KJV 유일주의의 강경 지지자들이 New Age Bible Versions 운운하면서 음모론을 제기하곤 했는데..
본인은 완전히 반대로 제임스 왕이 무슨 프리메이슨이고 둥근 눈깔과 컴퍼스가 그려진 KJV 책이 있네 하는 낭설도 접하고는 크게 놀랐다. 허허.. 이런 식의 음모론 놀이는 나도 자신 있는데..;;

석공이라고 하니까 성경적인 심상이 곧바로 떠오르는 건 성경에서 자체적으로 매우 자주 인용한 예언 중의 하나인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이다. (막 12:10 등)
오늘날 가장 인지도 높은 영어 성경인 NIV는 cornerstone을 capstone이라고 번역한 유일한 역본인 거 다들 아실랑가 모르겠다?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 제일 꼭대기에 얹히는 그 삼각형 뿔 모양의 돌멩이 말이다. 모퉁잇돌은 건축물의 아래에 놓이지만, 캡스톤은 건축물의 위에 놓인다.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다~!

NIV는 히브리서에 나오는 '개혁의 때'도 'new order'이라고 대놓고 '새 질서'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여기서 길게 글을 쓰지는 않겠지만.. 나도 프리메이슨, 뉴에이지 음모론 한때 왕창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깔 게 없어서 제임스 왕을 프리메이슨이라고 깐다면, 나는 같은 방식으로 얼마든지 더 받아쳐 줄 수 있음을 밝힌다. NIV 정도는 돼야 프리메이슨이 개입한 역본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시대에 프리메이슨은 그냥 상류층 인사들의 사교 클럽에 가까웠다.
일제 시대에 창씨개명을 한 사람이 다 반민족 악질 친일파는 아니듯이, 프리메이슨이라는 것 자체에 그렇게 또 너무 과민반응을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도 가 봐도.. 저런 컴퍼스가 그려진 묘비를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이상이다. 이 글에서 나열한 여러 아이템들이 성경 역본 문제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시길 바란다.
본인은 프리메이슨 음모론보다 대한민국 철도청의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음모론을 훨씬 더 진지하게 믿는다.

Posted by 사무엘

2021/09/06 08:35 2021/09/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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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 용어들

1. 인내(perseverance)

100여 년 전에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Endurance라는 이름이 붙은 배를 타고 남극까지 갔다가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왔다. 배의 이름이 '인내'라는 뜻인데 선장이 배의 이름값을 톡톡히 치렀다.

그런데 2021년 초에는 비슷하게 '인내'라는 뜻이지만 스펠링은 다른 Perseverance이라는 이름의 미국 우주 탐사선이 화성에 착륙했다.
굳이 순우리말로 바꾸자면 하나는 참음이, 다른 하나는 견딤이 정도 되겠다. RSA 암호화도 로컬라이즈 하자면 무슨 박이정, 김이박 암호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듯이 말이다.;; (그냥 자기 성 이니셜..)

요런 태양계 시뮬레이터(☞ 링크)를 돌려 보면, 2020년 9~10월.. 요 때가 지구와 화성이 제일 가까워지는 때임을 알 수 있다. 화성 탐사선은 2020년 하반기 동안 그 타이밍에 맞춰 최단 시간 최단 거리로 화성에 도착하는 경로를 타고 날아갔다.

더 찾아보자면.. 1988~1990년 사이에는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진짜로 얼추 가깝게 일렬로 늘어서 있어서 보이저 2호 탐사선이 이들을 나란히 촬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해서는 그런 거 전혀 없었으며, 뉴 호라이즌스는 오로지 명왕성만을 향해 9년 동안 외로운 항해를 했던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난 칼빈의 5대 강령 중 마지막인 '성도의 견인'이 perseverance가 아니라 preservation인 줄로 막연히 알고 있었다.;;
저 견인이 불법주차 차량 견인 할 때의 견인일 리는 없겠지만.. -_-;; (그런데 끌어당겨서 이끌어 주신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저게 구원의 영원한 보장하고도 관계 있는 강령이니 보호 preservation이 심상 면에서 어울리지 않는가?
견인 할 때 '인'은 참을 인 짜였나 보다. 뜻이 직관적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는 아니다.

영어로도 인내 하면 patience나 아까 저 인듀어런스가 더 친숙하지, perseverance는 좀 생소하다. 에디슨의 명언에 등장하는 perspiration처럼 pers*로  시작하는 어려운 단어의 양대 산맥인 것 같다. 그래도 perseverance도 성경에서 엡 6:18에 딱 한 번 나오긴 한다.

2. 상징

우리나라 헌법은 그 유명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시작한다.
이 나라의 총체적인 정체성을 규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 제일 먼저 제1조에 나온다. 이 조항 때문에 대한민국은 민족 정서나 정통성만 옛 조선을 계승할 뿐, 정치 모델은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법학자가.. 자기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헌법 제1조가 제일 사이다 같고 후련하고 자랑스럽다고 회고했던 바 있다. 심지어 이 조항에 곡을 붙인 민중가요도 있다..;;

그런데 일본 헌법은..;; 덴노, 천황부터 나온다.
“제1조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국민의 총의로부터 나온다.”
이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상징’이라는 단어가 거듭해서 쓰인 유명하고 인상적인 문장 예시인 것 같다.

그런 것처럼.. 신약 교회에서 행해지는 침례, 그리고 주의 만찬에서 쓰이는 빵과 포도즙은.. 그 자체가 다른 종교적인 효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그냥 ‘상징’일 뿐이다~!
오늘날 일본 천황이 정치적인 권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외치면서 옛날 같은 또라이 짓을 또 반복하지 못하도록 힘을 빼 놓음)

3. 살, 뼈, 피

성경에서 육체의 구성요소로서 살(flesh)과 나란히 언급하는 유의어로는 뼈와 피가 있다.

: 아담이 이브에 대해서 한 말이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였다(창 2:23). 예수님의 말씀 중에도 있다. "영에는 살과 뼈가 존재하지 않는 반면..." (눅 24:39).
또한, 마귀가 가장 악랄한 육체 고문 얘기를 꺼내면서 뼈와 살을 거론하기도 했다(욥 2:5). 그러니 김 성모 만화에조차 뼈와 살을 분리해 주겠다는 대사가 들어간 것이지 싶다.

: 이건 기독교 신자에게는 주의 만찬 때문에 아주 유명할 것이다. 그리고 엡 6:12에서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는 게 아니며"라고 언급되었다.
그 밖에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고전 15:50),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간파할 능력도 없는 존재라고 나온다(마 16:17).

하긴, 성경적으로는(그리고 아마 의학적으로도 실제로)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피가 만들어지는 곳이 뼈(골수)이다. 그러니 살과 뼈와 피는 마치 몸, 혼, 영만큼이나 거의 삼위일체 급으로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인 듯하다. 정확히는 몸(살-뼈-피), 혼, 영 이런 관계가 되겠다.

자매품으로는 skin and flesh가 있고, 물과 피도 있다. 물과 피는 요일 5:6,8의 그 삼위일체 구절, 그리고 요 19:34에서 예수님이 옆구리가 창에 찔리면서 흘러나온 체액이라고 언급되었다.
세상 관용어 중에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 "내 눈에서 눈물이면 니 눈에서는 피눈물"(!!) 같은 말이 있으니.. 물의 대구· 반의어로는 불뿐만 아니라 피도 임팩트가 꽤 크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살 - 피 - 물 - 불" 이렇게 뭔가 의미가 연결된다.

4. man과 virgin

영어에서 man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주변 문맥에 따라서는 woman의 반의어인 남자라는 뜻도 있고, child/kid의 반의어인 성인이라는 뜻도 있다. (대표적으로 고전 13.. "내가 커서 어른이 된 뒤에는 초딩의 길을 버렸노라")
물론 요즘이야 의미를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면 male이나 adult 같은 단어가 대신 쓰이며, 성별 구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강조하려면 person이 투입되기도 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성인 남자만이 진정한 능력과 책임감을 갖춘 사람으로 취급돼서 그런지 구분의 필요성이 현대보다 덜했는가 보다.

man이 남자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는 뜻이라면, virgin은 여성에서 출발한 '미혼자, 동정'이라는 뜻이다. 미혼 여성이니까 처녀라는 뜻이 굉장히 강해지지만 virgin은 넓은 의미에서는 꼭 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14만 4천 명의 사람들은.. 여자와 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virgin이라고 지칭되었다.
성경이 레즈비언-_-;;;을 말할 리가 없는 이상, virgin은 그냥 동정이라는 뜻이다.

man과 virgin 모두 성경에서도 중요하게 쓰이는 단어인데.. 관계가 이렇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5. 이론 (theory) -- 창조

세상에는 자연의 기원과 관련하여 성경과 과학이라는 토끼 두 마리를 모두 잡으려 하는 진영이 있다. 본인은 이와 관련하여 "(1) 세상은 절대자가 치밀하게 설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연히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와, "(2) 우주 및 지구는 나이가 수천 년 남짓하며 젊다"를 구분해서 생각한다. 둘은 마치 인공위성과 우주 발사체만큼이나 주 관심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1)은 솔직히 자연과학의 연구 방법론으로 증명이나 반증할 수 없다. 그리고 신만 개입하면 되니 유신론적 진화론도 가능하고 연대기에 막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2)는 일단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대두된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얼마나 되냐, 방사성 연대 측정법에는 오류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신의 존재 여부를 배제하고 과학만으로 얼마든지 따져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창조론은 진화론과 달리, 과학적 연구방법론을 갖추지 못한 신앙 신념 주장일 뿐이고 과학 이론이라고 불릴 수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이야 말할 것도 없고 (2)조차도 과학적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고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각종 위키 사이트에서는 이 학설(?)이 창조론이 아니라 '창조설'이라고 등재돼 있다. theory가 아니라 doctrine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이 아니라 신학이나 철학의 영역으로 분류한다.

세계사에서 "먼로 독트린"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 신경 끄고 간섭하지 마라" 이건 그냥 선언이고 정의일 뿐, 논리를 따지고 논쟁할 대상은 아니다. 세상은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 의도적으로 설계됐다는 성경의 진술 역시, 저 먼로 대통령의 연설만큼이나 선언, 학설 떡밥, 주장, 종교 교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의 창조를 믿는 사람이 애시당초 창조론이니 창조설이니 하는 용어에 꼭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일례로, 내가 노아의 홍수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쓰여 있고, 예수님이 그걸 역사적 사실이라고 언급하고 인용했고, 성경 기록이 충분히 정확하게 잘 보존되고 전수됐기 때문이다. 무슨 인공위성 지도를 보니 아라랏 산 정상에 방주 잔해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성경에도 피에 대해서라든가 위생 관념 같은 일부 진술은 과학적으로 옳고 명백히 시대를 앞섰던 것이 있다. 이에 대한 지식은 성경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모함 험담 따위를 반박하고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경이 하나님의 존재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입증하는 책인 건 결코 아니다. 자기 신앙을 과학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는 내 경험상 별 영양가 없다. 내게는 노아의 방주 흔적이 현장에 남아 있는 것보다 킹 제임스 성경이 무오하게 전해져 온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이다~!

쟤들은 신이 존재하는 과학적 증거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는 배제하고..;; (1)이 아니라 (2)라도 제대로 공략해야 할 것이다. 통상적인 연대 측정법을 과학 실험을 통해 부정하고 모든 지질 변화를 노아의 홍수 하나만으로 설명하면서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고 주장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과학 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학 분야는 아니지만 옛날에 고고학자 헤이에르달이 몸소 뗏목만으로 바다를 건너서 자기 학설을 입증했듯이 말이다.

6. 이론 (theory) -- 간극

다음으로.. 창 1:1-2 사이에 긴 간극이 있다는 성경 해석 체계를 '간극 이론'이라고 한다.
간극이야 애초에 자연과학이 아니라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는 연구방법론으로서 자기 도메인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theory라고 불리는 것에는 논란이 없다.

그런데, 간극을 교리적으로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건 당연한 성경적 사실이지, 무슨 따지고 논쟁하고 따지고 반박할 여지가 있는 이론이란 말이냐?"이다. 즉, theory라고 불리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여기며 그냥 gap fact라고 부른다.

간극 이론은 천문학이나 지질학에서 말하는 긴 연대기와는 전혀 무관하다.
"물은 언제 창조됐고 천사들과 루시퍼는 언제 창조됐냐?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해 봐도 6일 창조 도중은 절대 아니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6일을 제멋대로 늘어뜨릴 수는 없으니 답은 결국 그 이전 세상밖에 없구나" 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과학의 긴 연대기와 일치하는 건 그 다음으로 그냥 덤일 뿐이다. 과학부터 먼저 생각한 뒤에 성경을 거기에 끼워 맞춘 게 절대로 아니다.
창조과학 진영에서 젊은 지구의 증거를 일부 들이대는 건.. 만약 정말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면 그건 6천여 년 전 6일 재창조의 얼마 안 되는 흔적일 것이다.

3과 4를 종합하자면.. 창조설 내부의 분파로 간극 이론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이게 이 문제의 가장 합리적인 해답이다. 물론 나 같은 신자의 신념에 따르면 창조와 간극 다 그냥 팩트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1/07/19 08:35 2021/07/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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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아카라이브 냥드립 채널에서 누군가가 성경 창세기의 소돔 이야기를 만화로 각색해 놓은 것을 봤다. 굉장히 재미있게 잘 그려 놔서 본인은 아놔..ㅠㅠㅠㅠㅠ 현웃 하면서 봤다. (☞ 링크)
신성모독적인 요소 없으면서 적당히 오덕과 비속어와 개그 패러디 코드가 들어있는 요런 스타일의 만화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소돔잘알인 롯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뉴비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여기 계시다간 직장 활동에 문제가 생깁니다. / 백수인데 / 그 직장 말고" ㄲㄲㄲㄲㄲㄲㄲ
  • "소돔인의 패악질을 본 천사들은.. 이 새끼들은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 "븅신같은 ㄴ이 하지 말라는 짓은 꼭 해 가지고.. 보고 싶다 썅년아!!" (롯.. 자기 부인을 잃은 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와.. 소돔과 고모라를 석기시대로 되돌려 준 천사가.. 알고 보니 커티스 르메이 아재였어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단, 우리엘..?? 그런 이름은 성경에 없음)

1.
저기서 의미심장한 관찰은..
"노아 때처럼 대홍수를 터뜨릴까요? / ㄴㄴ. 다시는 물로써 심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 않느냐"이다.
실제로 성경적으로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심판은 규모와 수위 면에서 서로 대등한 twin을 형성한다. 예수님도 노아의 날과 롯의 날을 대조해서 언급하셨고, 베드로후서 2장에서도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심판이 나란히 나온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이들은 사건 이후에 자녀가 애비를 상대로 민망한 짓을 했다는 공통점까지 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노아의 아들 '함'이..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멸망 이후에는 롯의 딸들이 말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굉장히 동심파괴적인 요소이다.
단, 전자는 애비가 스스로 술 마시고 취해 자빠졌고, 후자는 딸들이 애비한테 술을 강제로 먹였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창세기의 사건들과 달리, 베드로후서 3장에 나오는 불 심판은 규모와 차원이 완전히 다른 심판이며.. 그 이전의 물의 넘침도 노아의 홍수보다 훨씬 더 큰 심판과 간극을 암시한다.

2.
성경을 좀 읽은 사람이라면 창세기 19장뿐만 아니라 사사기 19장에서도 소돔 고모라와 거의 판박이 장면이 또 나온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상에 자기 딸을 내어 주겠다니 저런 막장 쓰레기 애비가 있나”라고 읽을 게 아니라 그 반대다. 집단 동성애 광기가 얼~~~마나 흉측하고 끔찍하고 차마 형용조차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짓이었으면 정상적인 애비가 자기 친딸을 희생양으로 치러서까지 수습하고 무마하려 애썼을까..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버스를 제어하지 못해서 운전사가 불가피하게 주변의 누구를/어디를 치느냐 고민하다가.. 눈물을 머금고 자기 친자식을 선택하는 상황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
“차라리 내 딸을 줄 테니, 같은 남자끼리는 제발 그러지 마세요~ 평범한 강간 범죄자가 될지언정 인간이기를 포기하지는 마세요” 말이다. 비역질은 무슨 인권 라이프스타일 따위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사기 19장에서는 결국 남성 손님 대신 그 손님의 첩이 폭도들에게 끌려 나갔다. 남색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첩은 밤새도록 온갖 학대를 당한 뒤 이튿날 아침에 결국 죽었다.;;

3.
마지막으로, 이 만화에서 기독교 교리 차원에서 약간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딸을 팔아먹긴 했지만 소돔 기준으로 '그나마' 의인이었던 롯을 살리기 위해" 부분이다.
이건 100% 정확한 진술이 아니다.

벧후 2:7에서 롯이 의인이었다고 말하는 건.. 롯이 소돔의 돈고춘 새키들에 '비해서' 의인이었다는 게 아니라, 완전히 구원받아서 예수님의 의가 대신 전가된 수준으로 의인이었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육신적이었고 소돔과 고모라에 제 발로 가서 고난과 삽질을 자처했고 민망한 흑역사를 남겼지만.. 죄인 신분은 아니라는 그런 차원이다.

  • 구약에서 완전 개망나니처럼 살았지만 신약에서 입 싹 씻고 의인 보정을 받아 있는 인물은 무조건 구원받은 사람이다. 삼손, 롯.. (단, 사울은 이런 레퍼런스가 신약에 존재하지 않아서 긴가민가)
  • 그 반면, 신약에서도 대놓고 부정적으로 언급된 구약 인물은 지옥 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카인, 이세벨, 발람.
  • 그리고 신약에서 최후가 안 좋은 사람(아나니야와 삽비라, 데마 등), 구약에서 벌을 받아 그냥 목숨을 잃은 사람(웃사 등)은 단순히 그 사실만으로 구원 여부를 단정지을 수는 없으며, 내 생각에는 구원은 받았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고 보니 롯은 부인과 사위와 전재산 다 날리고 나서 결국 텐트.. 아니, 동굴로 들어가서 야인 생활을 시작했구나! 포도원 농부라도 된 노아보다 더 막장으로 전락하긴 했다.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1/07/07 19:35 2021/07/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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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질적이지 않은 오해와 중상모략

세상에는 기독교의 탈을 쓴 이단 사이비가 여럿 있다. 이단들은 단번 속죄 구원의 영원한 보장 교리를 이상하게 배배 꼬는 경향이 있다.
아예 구원의 상실,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건 예사이고, 반대편 극단으로 가서 이제 죄 용서 받았고 구원받았고 무슨 짓을 해도 지옥은 안 가니 "니 꼴리는 대로 살아도 된다, 심지어 일체의 참회나 회개를 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롬 6:1-2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헛소리를 하는 곳도 있다.

이런 소리를 정상적인 크리스천이 들으면 "그건 성경의 가르침을 일부만 그것도 아주 잘못 적용한 이단 교리일 뿐이다. 성경은 그런 막장 결론을 의도하거나 조장하지 않으며, 우린 그런 가르침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라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영화 밀양에서 묘사된 것처럼 "나는 신에게 다 용서받았으니까 괜찮아~" 이러는 양심 마비자를 제정신 박힌 크리스천이라고 간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비슷한 논리로, 진화론에 대해서도 진화론적 세계관, 무신론, 유물론, 우생학, 사회 진화론 이런 것까지 연루시키면서 이놈의 사탄 마귀적인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서 나치즘과 공산주의가 생겨났고 젊은이들의 정신이 황폐해지고 어찌 됐네 이렇게 프레임을 씌운다면... 단순히 과학 이론으로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하고는 더 대화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진화론자라도 "흑인은 인간과 짐승 사이에 진화가 덜 된 생물이다" 이딴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개인적인 소신은 당연히 "이 우주와 생명이 우연히 저절로 생긴 게 아니고 절대자가 있다"라는 신의 창조이다. 그 정도 진화가 가능하다고 해서 인간 정도의 고등한 생명체가 그런 진화의 산물로 저절로 생기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믿음을 발휘할 영역과 과학 관찰로 승부할 영역,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파생 효과 내지 오해· 중상모략 같은 것은 분명하게 분간해서 주장해야 할 것이다.

2. 과학 관찰은 종교색과 무관

이 세상 학계에서는 누구 말마따나 그저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어서 과학 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걸까? 20세기에 천문학계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생각해 보면, 이 문제를 좀 다른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천동설과 지동설, 창조와 진화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천문학계에서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대폭발설(일명 빅뱅)과 정상 우주론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 당시엔 두 이론이 모두 상대편 이론을 완전히 제압할 정도로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심상을 고려하면 오히려 빅뱅이 뭔가 시작과 기원, "빛이 있으라" 같은 창세기 1장 느낌이 물씬 풍긴다. 게다가 빅뱅이라는 개념을 1930년대 초에 최초로 제안했던 사람은 천문학자 겸 현직 가톨릭 신부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무신론 과학자들은 이를 심리적으로 거부했다.

이와 달리 정상 우주론--딱히 기원이 없고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동일하게 있음--은 벧후 3:4의 심상과 비슷하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이건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깐다. -_-;;
그랬는데.. 훗날 우주 배경 복사라는 게 발견되면서 이 주제는 빅뱅이 맞는 것으로 사실상 결론 지어졌다. 정상 우주론은 천동설 급으로 완전히 폐기된 건 아니지만 거의 소수설 비주류로 전락했다.

요지는.. 세상 학계도 과학적인 증거만 있다면 창세기 냄새가 좀 풍기는 학설이라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공립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세상 인명 사전에서 예수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다음으로 "사흘 만에 부활했고 승천했다"라고 차마 쓰지 않는/못하는 것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비슷한 예로 초능력이니 UFO니 하는 것도 꼭 기독교계에서 사탄의 미혹 운운하며 난리를 치지 않더라도,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하지 않으면 이 바닥 종사자들이 알아서 배척한다.

물론 과학이 만능은 아니고 과학으로 알 수 없는 현상도 많다. 하지만 그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지성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정작 창조 과학 진영에서는 빅뱅을 여전히 배척한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빅뱅이 기원이라는 개념 자체는 성경과 일치하지만 연대기는 젊은 우주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창 1:1,3이나 벧후 3:4가 지구를 넘어 우주의 기원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구절인지 잘 모르겠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땅의 원 위에 앉으신 이"가 딱히 지구가 둥글다는 걸 말하지는 않으며, 계시록에 나오는 "땅의 네 모퉁이"가 지구가 평평하다는 걸 말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성경에 따르면 세상이 과거에 있었던 세상, 현 세상, 다가올 세상이라는 세 종류가 존재하고 하늘도 세 계층이 있다는 것 정도까지만 알 수 있다. 그 개념이 현대의 지질학이나 천문학이 밝혀낸 자연의 모습과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인간이 적절히 잘 풀어야 하는 숙제일 것이다. 다만, 성경이 문자적으로 사실이기 위해서 반드시 젊은 우주, 젊은 지구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본인의 소신이다.

3. 창조 과학의 정체성

창조 과학회라는 곳에서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성경 내용은 문자적으로 옳고 정확하며, 과학적으로 사실이다.
  • 이 세상(우주, 지구, 생물..)은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 지구와 우주의 나이는 젊다.

성경이 오류가 없고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은 본인도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창세기의 6일, 계시록의 1000년이 대표적인 예이다. 성경에 나오는 각종 인물, 명칭과 숫자들, 사건들은 대놓고 비유 허구라고 명시된 게 아닌 한 당연히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정확한 레알이다. 피나 일부 위생 관념에 대해서 말한 것은 분명히 시대를 앞섰던 것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성경이 원자와 분자를 논하고 definition, theory, lemma가 나오는 이공계 학술서적 스타일로 저술된 책은 또 아니다.
성경에는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만 나오지, 당장 금성 화성 목성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난 성경에 딱히 지구 자체가 둥글거나 평평하다고 말하는 암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욥기 38장에서 하나님의 질문은 이런 식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내가 우주를 한 점에서 시작해서 대폭발 시킬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니가 인간 DNA의 염기 서열을 아느냐? 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 붙어 있고 전자가 원자핵을 돌게 하는 힘이 어디서 나고 그게 무엇 덕분에 가능한지 니가 아느냐?
길바닥의 이끼도 해내는 광합성의 명반응 암반응 메커니즘을 니가 아느냐? 네가 전자기파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능히 측정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성경이 문자적으로 사실이긴 한데.. 도대체 어느 문맥과 scope까지 문자적인 사실인지, '모든'이라고 했을 때 얘는 도대체 어느 범위의 전체를 말하는 건지 정도는 그래도 최소한 성경이 자체적으로 정해 놓은 원칙에 따라 분간을 해야 한다. 그러니 창조 과학이라 해도 과학뿐만 아니라 바른 신학을 저변에 깔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 지적 설계는 심증으로서는 매우 유력하며 신앙을 갖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시 19나 롬 1:19가 말하는 일명 자연 계시 말이다. 하지만 신의 존재는 과학으로 증명도 반증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이것이 과학의 관점에서 '물증'이 될 수는 없다.
이건 당연한 귀결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조금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창조 과학 진영에서 위의 두 명제.. 즉, 성경의 사실성과 지적 설계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 다음으로 끄집어낸 카드가 바로 젊은 지구이다.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는 학설? 가설 자체는 신학하고 전혀 무관하게 오로지 과학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이다.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다', '성경은 사실이다' 이런 것과는 좀 성격이 다르다.

이게 제대로 진행됐다면.. 세상 학계에서도 "난 무신론자여서 성경이니 신이니 그딴 건 모르고 믿지도 않음.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층을 관찰하고 물리 법칙을 생각해 보니 우주와 지구의 나이는 1만 년 이내로 보인다" 이렇게 주장하는 과학자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그러한가? 창조 과학이 성경과 과학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잡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무척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서는 젊은 우주/지구에 대한 일말의 증거가 있다면 그건 아담 이래로 재창조된 현 세상의 연대기가 젊다는 과학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good luck~! 우주 배경 복사나 방사선 연대 측정법의 허를 찌르면서 부디 과학계에 좋은 기여를 하길 바란다. 무슨 지구 온난화 허구설, 지구 평평 같은 이상한 유사과학 음모론으로 치부되지 말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04 19:35 2021/06/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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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용어 분석

1. for one's sake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경의 맨 처음 책인 창세기에서는 주요 성경 용어들이 약간 뜬금없는 문맥에서 최초로 등장하곤 한다.
창세기에 존재하는 KJV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replenish,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같은 게 있는데,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아이템은 저런 것들보다는 훨씬 덜 유명해 보인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에게 내리시는 징벌이 창 3:17에 기록돼 있다.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그런데 다른 모든 성경들은 because of you인 반면, 킹 제임스 성경은 유일하게 for thy sake라고 쓰여 있다.

똑같이 인과관계를 나타내더라도 for one's sake는 굉장히 긍정적인 심상이다. because of가 중립적이거나 약간 미묘하게 부정적인 심상인 반면, 쟤는 ‘누구 덕분에,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배려해서· 감안해서’라는 심상이 담겨 있다.
까놓고 말해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50명, 40명~10명이라도 있으면 걔네들을 생각해서라도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for their sakes라는 표현이 쓰였다.

게다가 replenish가 창 1:28뿐만 아니라 노아의 홍수 이후인 9:1에서 또 나오는 것처럼, for one's sake는 역시 근처인 8:21에서 거의 동일한 문맥을 배경으로 한 번 더 등장하기도 한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또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물론 둘 다 우리말로는 because of와 마찬가지로 '-로 인하여'라고 번역해도 별 무리는 없다.
하지만 KJV도 because of가 엄청나게 많이 쓰이는데 굳이 이걸 놔두고 for one's sake가 따로 쓰였다는 것은.. 땅에 내려진 원초적인 심판과 저주조차도 그저 사람들을 엿먹이고 불편하게 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 인간의 처지에 대한 하나님의 다른 뜻과 배려가 담겨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당장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말이다.

사실은 굳이 sake까지 안 쓰더라도 영어는 전치사 for이 단독으로 ‘위하여’(좋은 목적 one's sake) 내지 ‘인하여’(이유, 인과관계 because of)라는 뜻을 모두 지니는 구석이 있다. 이 용법을 생각하게 하는 대표적인 찬송가는 바로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이다.

영어로는 Jesus died for me와 Jesus died for my sins가 모두 성립한다. 그런데 저 찬송가 후렴의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는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죄 자체는 뭔가 ‘위해서 죽어야’ 할 가치가 있는 좋은 대상은 전혀 아니지 않은가?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 죽는다면 모를까..?

이건 희소병을 희귀병이라고 잘못 표기한 것과 비슷한 오류로 보인다! 그래서 어떤 찬송가 책에서는 후렴 가사를 “나의 죄 인하여”라고 수정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차이점 같다.
예전에도 글로 쓴 적이 있지만, 영어의 sake는 behalf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제한적인 특정 문맥과 용법에서만 쓰인다. 한국어 문법 체계로 치면 '의존명사'와 매우 비슷한 물건이라 하겠다.

2.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

창세기 6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이다. 이건 대다수의 기성 교회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해석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사람처럼 생기긴 했지만 생물학적으로 사람과 동일하지는 않은 천사가 인간 여성과 결합함으로써 초인적인 괴수· 거인 잡종이 태어났다. 창 6:4에 나오는 네피림..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거인이라고 번역한 이놈은 말 그대로 로버트 워들로를 능가하는 거인이었다. (20세기 초, 키가 272cm까지 갔던 관측 이래 인류 최장신 미국인)

신 3:11에 따르면, 바산의 왕 '옥'도 침대의 길이가 9큐빗.. 약 4.5미터.. 거의 아반떼 승용차와 비슷한 길이였다고 나온다. 인간의 침대가 말이다. 그리고 골리앗의 키가 6큐빗 플러스 알파다(삼상 17:4). 거의 3미터 이상..
그러니 창세기 6장의 거인도 무슨 영적 거장이니, 카인의 후예 따위로 이상하게 갖다붙일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생물학적 거인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바람직한 해석이다.

로버트 워들로는 성장판이 정신줄 놓는 병에 걸려서 키만 비정상적으로 커졌던 것이다. 발이 자기 체구와 체중을 감당하지 못해서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였으며, 나중에는 발목 부상으로 인한 패혈증 때문에 20대 초반의 나이로 죽었다.

그러나 골리앗은.. 지팡이는 개뿔.. 그 키에다가 무거운 갑옷 입고 창을 들고, 전투력도 인간 흉기 급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교단 교파에서도 골리앗이 무슨 영적 거장이었다니 장수였다느니 헛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다윗은 짱돌이 아니라 영적인 돌로 신학 논쟁과 키배로 골리앗을 '영적으로' 제압했게?

이런 괴수들은 다 인간의 정상적인 평범한 유전자로부터 나온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적으로도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 또는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는 보편적인 심상을 갖지만, 구약에서 창세기와 욥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라는 용례가 명백히 존재한다. (욥 1:6, 38:7 등)

본인은 '하나님의 아들들' 그리고 "being old and full of days"라는 표현의 유사성을 근거로 욥기의 저자 자체가 모세일 것이라고도 추측을 한다만, 이건 뭐 논쟁할 정도로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3. 창세기 나머지

(1) 포도주 wine
잘 알다시피 9장에서 노아가 만취해서 곤드레만드레가 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전에도 한번 얘기했었지만.. 본인은 교리적인 근거(가나의 혼인 잔치, 빵과 잔 만찬 따위)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wine은 “즙 < 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최초의 언급 법칙을 감안했을 때 말이다.

특히 마 11:19, 눅 7:34처럼 명백히 부정적인 음해 문맥에서까지 무알코올 포도즙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식탐 다음에 술주정이 따르는 것은 신 21:20 (부모가 막장 패륜 자식을 고발해서 죽여버리기~!! ㄷㄷ)과 대조해 봐도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성경이라 해도 문맥상 필요하다면 술도 나오고, 심지어 “There is no God”이라는 불신자 말 인용도 나오는 법이다.

(2) 누룩 없는 빵(unleavened bread 무교병)
19장에서 롯이 소돔에서 천사들을 잔치까지 베풀면서 대접하는데, 잘 부풀어오른 부드럽고 맛있는 빵이 아니라 저런 빵이 등장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율법 유월절하고 아무 관계 없는 상황인데 이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잠시 후에 소돔 불벼락을 앞두고 쟤들도 마치 이집트를 탈출하듯이 이 집을 허겁지겁 빨리 탈출해야 했던 건 사실이지만, 롯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혹시 손님으로 가장했던 천사들이 "누룩 없는 빵으로 플리즈~~" 라고 커스텀 주문을 했던 것은 아닐까?
본인은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관련 강해나 주석을 아직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했다.

(3) 사랑
성경에서 최초로 이 단어가 등장하는 곳이 바로 22장, 하나님이 아브라함더러 아들 이삭을 번제 헌물로 바치라고 명랑하는 문맥이다.
모세오경 중에서는 마지막 책 신명기가 사랑이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고, 특히 “{주} 네/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유일하게 나온다.

(4) 묵상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바라보니, 보라, 낙타들이 오더라." (창 24:63)
여호수아기나 시편을 보면 “주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한다/하라”처럼 묵상의 대상이 같이 언급되는 반면.. 창 24:63에서는 목적어가 생략된 채 꽤 뜬금없이 이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다.
그러니 세상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면, 이삭이 들판에서 눈을 감고 가부좌 틀고서 엄근진한 자세로 참선, 요가, 단월드 기수련, 파륜궁, 관심법(!!) 시전을 하는 장면이 떠오르기 쉽다.. ㅡ,.ㅡ;; 골수 예수쟁이인 나조차도 이 정도 선입견과 편견은 생겨 있다.

핵심은.. 묵상은 명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런 구절을 읽으면서 시 119:15 “내가 주의 훈계들을 묵상하고 주의 길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내지, 찬송가 가사로도 있는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시 19:14)가 연결돼야 하는데..
온갖 잡다한 다른 유사품이 떠오르는 게 바로 마구니들이다.. 진짜 마구니는 법봉으로 대가리 깨뜨린다고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옛날의 천조국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성경을 읽은 덕분에 ?Z라는 단어를 보고 욥의 고향 우스 UZ를 먼저 떠올렸었다.
하지만 현대의 어린이들은 오즈의 마법사 OZ를 먼저 떠올린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뭐, 요즘은 오즈조차도 해리 포터에게 밀려서 한물 간 지가 오래이지만 말이다.

이런 것 말고도, 세상 매체(영화, 게임, 드라마 따위)들을 접하던 사고방식으로 성경을 읽다 보면..

4. 유령

  • 그때에 내 얼굴 앞으로 한 영이 지나가므로 내 살의 털이 곤두섰느니라. (욥 4:15)
  • 제자들이 그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불안해하여 이르기를, 영이다, 하고 두려워서 소리 지르거늘 (마 14:26)

성경에도 딱~ Ghostbusters 풍의 공포 영화를 떠올릴 만한 정면이 이렇게 존재한다. 성경이 말하는 혼과 영이 각각 귀신과 유령으로 바뀌는 것이다. 심지어 번역 자체도 그런 스타일로 돼 있다(KJV 제외).

한 30년쯤 전엔 고스트버스터스가 “유령 대소동”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용 TV 만화영화로도 방영됐었다. “유령이 나타났다, 잔꾀와 속임수로 사람들 괴롭히는 유령이다~ㅎ”라는 주제가는
“뱀이다 뱀이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뱀이다~ㅎ” 트로트 “참아 주세요”와 굉장히 비슷한 풍이었다.. ㅠㅠㅠ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영에는 원래 호러 요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한 영이 나아와 {주}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그를 설득하겠나이다, 하거늘 (왕상 22:21)
  •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 24:39)

요 4:24를 “하나님은 유령이시니...”라고 번역하는 게 말이 되겠는가?
ghost도 마찬가지. 성령님 the Holy Ghost 아니면 숨지다 give up the ghost라는 두 용례로만 쓰였다.

여담이지만, 본인의 어린 시절에 학원인가 학교에서 이름이 '혜령'인 여자애가 있었는데.. 별 상관도 없는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짓궂은 남자애들로부터 놀림 받곤 했다.
본인의 이름 별명 중 하나이던 묵사발, 도루묵 따위보다는 훨씬 더 점잖아 보이는데 유령이 뭐가 그리 대수였나 모르겠다. 뭐 여자여서 유령이라는 말에 더 민감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보니 귀신은 긴 생머리에 소복 입은 하얀 처자가 떠오르는 동양 스타일에 가깝고, 유령은 얼굴 찌그러뜨리고 해파리처럼 흐물흐물 거리는 게 서양 스타일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저승사자(!!)만 해도 동양은 검은 옷 검은 갓 차림의 아재이고, 서양은 낫 들고 있는 해골 아저씨이듯이.. 아이고, 갑자기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얘기가 많이 튀어나왔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1/03/25 08:34 2021/03/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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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에 인간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직접 다녀오는 정말 초유의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정말 세계가 열광했다.
우리나라는 1969년 7월 21일 월요일, 아폴로 11호 달 착륙일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지구 반대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전쟁 중이었는데, 저거 중계방송을 다같이 시청하려고 잠시 휴전을 했을 정도였다.

그 시절 수많은 꼬꼬마들이 저 광경을 보면서 나도 공부 열심히 해서 공무원이나 연예인이 아니라 위대한 과학자/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굳혔다.
그리고 2000년쯤이면 인간이 화성에도 가고 달에 식민지 하나 정도 건설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우주를 배경으로 다리 달린 로봇이 나오는 수많은 SF물들이 만들어졌다.
그런 작품에서는 비행기처럼 날개 달리고 항공역학적으로 아주 새끈하게 만들어진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비행체들이 우주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외계인 군단을 때려잡았다. (그에 비해 실제 아폴로 우주선 LM 달 착륙선의 모양은... ㄲㄲㄲㄲㄲ)

허나, 실제로 2020년이 돼 보니 현재 인간의 우주 진출 현황은 어찌 됐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에서 묘사됐던 2001년과, 실제 2001년의 차이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난 수십 년 동안 천문학도 발전하고 항공우주 기계공학 기술도 눈부시게 더 발전했지만.. 그것과 유인 달 탐사 내지 우주 식민지 개발은 별개의 문제였다. 우주 개발은 전쟁이나 결혼 생활만큼이나 매체(게임, 영화..)와 현실과의 괴리가 매우 매우 큰 분야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식의 설레발이 세상뿐만 아니라 기독교계에도 미래 예언과 관련하여 많이 있었음을 나는 신자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을 넓게 영적으로 하는 방법론이 가장 건전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지지한다.
6일이나 7년이나 1000년 같은 기간을 특별한 다른 단서가 없는 한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 당장 이해가 안 되고 실감이 안 가는 부분이 있어도.. 판단을 보류하고 가만히 묻어 둘지언정, 말을 제멋대로 바꾸고 뜯어고치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고,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고,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구분하고, 영과 혼을 가능한 한 구분하고, '채우다'와 '다시 채우다'를 구분하고.. 그러니 세대주의에 대해서도 태생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대외적으로 평이 안 좋은가 했더니.. 시한부 종말론과 얽혀서 오해를 살 짓을 한 게 있긴 했다.

인류의 시작과 과거 역사가 4천 년쯤 전으로 굉장히 구체적인 값이 나오니, 인류의 종말 시기도 지금쯤이면 굉장히 가까워진다.
물론 세대주의 자체가 어디 악성 이단 사이비처럼 몇 월 며칠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니 “직장 그만두고 산속에 들어가고 재산 다 교회에 갖다바쳐라” 같은 미친 짓을 권장하고 조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런 움직임이 발생할 빌미는 제공했으며, 결정적으로 종말의 징조, 조짐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불발한 설레발을 너무 많이 쳤었다.

  • 이스라엘 건국
  • 유럽 연합 결성
  • 20세기의 아주 카리스마 넘치던 모 교황과 세계적인 에큐메니즘 운동, 세기말 Y2K 문제
  • 그러면서 세계 단일 정부 단일 종교 떡밥..

이런 거 말이다.

아, 20세기 중반부터 일어난 저런 사건들이 과거에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격변인 건 사실이다.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에 비견될 만도 하다.
그리고 세상은 갈수록 악해지고 빗장 풀리고 타락하고 심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큰 그림’ 역시 사실이다. 뭔가 성경적으로 의미 부여를 하고 싶은 그 심정은 이해가 된다. 전부 비유 묵시라고 헛소리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갖다붙이고 적용하려고 노력해 보는 게 차라리 더 나은 자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국제 정세나 과학 기술은 아주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요소이다. 언제라도 “아니었나 보네, 아님 말고”를 시전하면서 버릴 수 있게,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서 아주 가볍고 얕게 참고만 하고 있어야 하는 사항이다. 성경에는 인류의 역사와 관련하여 철기 시대, 불의 발견, 바퀴의 발명조차도 나와 있지 않다는 걸 생각하자.

아예 초대 교회 사람들부터가 “이때쯤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지..” 생각하다가 죽었고, 중세 때 스코틀랜드 교회 사람들은 저 교황이 '그' 적그리스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교황이 소속된 집단이 몇백 년 뒤에는 개신교를 상대로 에큐메니즘 운동을 주관하는 날이 올 거라고 그 옛날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있었을까?

컴퓨터만 해도.. 오늘날 같은 극도의 정보화 시대가 순기능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지금 전자, 컴공, 언어 처리, 바이오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이공계들이 추구하는 상당수의 목표는 인간을 닮고 인간처럼 생각하면서 인간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할 줄 아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걸 만들기 위한 밑천인 실제 인간 군상들의 동선과 행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기반도 다~~ 갖춰져 있다. 이게 마냥 좋은 의도로만 쓰일 거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최소한 1980년대에 우려했던 것처럼 금수저들만 비싼 컴퓨터를 마음껏 쓰면서 정보와 기술을 독점하고 대중을 통제하는 무식한 사회 같은 건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그 시절 음모론자들은 블랙박스와 CCTV 덕분에 질서와 치안이 상상을 초월하게 개선되는 것, 그리고 오픈소스 진영이 등장해서 정말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양의 정보와 기술들이 무료로 풀릴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성경에서 용이 불을 뿜는 게 미래에 등장하는 탱크나 미사일을 의미하는 거라고 이상하게 갖다붙이는 사람도 있고,
한술 더 떠서 미래엔 석유가 고갈되어서 사람들이 성경의 묘사대로 문자 그대로 다시 말 타고 냉병기를 들고 싸우게 될 거라고.. 아인슈타인이 3차 세계대전 이후 다음 전쟁의 양상을 예측했던 것과 같은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후자조차도 100% 장담은 하기 어렵다. 2010년대부터 셰일 가스가 재발굴되어 지금처럼 다시 기름값이 팍 내려가고 석유 고갈 예상 시기가 한참 늦춰질 거라는 점까지 예상한 사람은 내가 못 봤다.

그러니.. 성경으로 미래 전망은 함부로 설레발 치지 말고 영원까지 길게 보는 안목을 갖고, 한낱 국제 정세나 일개 과학 기술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불가지론에 가까운 냉정한 자세로 판단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성경은 거의 1900년 전의 요한계시록 기록 시점부터 "내(예수)가 속히 오리라(come quickly)"라고 약속해 놓았다. 도대체 어느 기준으로 '속히'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세상 정세와는 아무 상관 없이 “예수님이 지금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겠구나”, 핵무기고 스마트폰이고 구글이고 중공 폐렴이고 전부 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 그땐 그랬지” 이렇게 회상할 각오를 하고..
따분하고 재미없어 보이지만 그냥 원론적인 지침에 충실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최후 승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신의 존재 여부야 불가지론의 대상이 아니지만, 종말 내지 예수님 재림 시기는 인간들 입장에서는 불가지론인 게 맞다고 성경에서 대놓고 쓰여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으로 살지 않고 어설픈 사회 정세 음모론에다가 믿음의 근간을 두면.. 그 음모론이나 예상이 빗나갔을 때 다른 성경의 건전한 가르침까지 같은 급으로 매도되고 부정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초신자가 실족하고 믿음이 파괴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지금은 무려 2020년이다. 이제는 근미래에 대해서 과거에 전망했던 것, 그리고 빗나간 예언들에 대한 경험과 데이터도 그럭저럭 쌓이고 있는 중이다. 다미선교회 병크, Y2K 설레발, 2012년 종말 떡밥.. 전부 도대체 몇 년 전의 해프닝이 되고 있나? 이 와중에 아직 바코드, 베리칩 음모론 믿는 사람은 좀 없어야 하지 않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에서 묘사된 실제 대환란기는 언제쯤 어떤 형태로 실현될지 개인적으로는 노무노무 궁금해 죽겠다. 정말 흥미진진한 사건이 될 것이다.

1940년대 말, 우리나라의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조선이 해방될지 몰랐으니까~!!”라고 변명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예수님이 그렇게 꿈에도 상상 못 하던 시기에 덥석 오실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요)!! / 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죽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ㅠㅠㅠ” 이렇게 변명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분명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천국 가면.. 모인 사람들끼리 아마,

  • "라떼는 말이야 성경 몰래 베껴가면서 읽다가 걸리면 화형이었어"
  • "라떼는 말이야 영어 성경이 200종류가 넘게 나왔고 역본 내용의 차이 갖고 키배가 벌어졌어"
  • "흥, 나는 그 세상에서 살아 본 적도 없이 바로 왔거든?" (☜ 이 케이스가 아마 제일 많을 것임..)
  • "웃기시네. 니들이 공중으로 번개같이 들려 올라가는 그 느낌을 알아?"

서로 출신과 배경 갖고 약간의 알력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성품이 변화된 뒤이기 때문에 선 넘는 진흙탕 싸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1/03/10 19:35 2021/03/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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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례교

기독교의 여러 교파 중 침례교는..

  • 딱히 종교 개혁에서 유래되지 않았고, 더 옛날부터 있었다고 여겨진다. 천주교는 물론이고 일부 개신교 교파로부터도 박해를 받았다.
  • 이름이 말하는 바와 같이 세례가 아니라 침례가 성경적으로 옳다고 본다. 온몸이 물에 잠겼다가 나와야 된다.
  • 침례는 이미 구원받은 후의 신앙고백 인증일 뿐이지, 그 자체가 구원의 조건이거나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 특히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건 할례나 안수 따위와 아무 상관 없는 관행이고, 대상과 방법이 모두 잘못됐다. 적어도 10대 정도의 나이가 됐고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하고 내 믿음을 자기 말로 고백할 능력이 돼야만 침례를 준다.

* 개인의 혼의 자유의지를 매우 존중하며 단호한 정교분리를 주장한다. 미국이 민간에서의 강한 기독교 배경에도 불구하고 독일처럼 국교가 있고 목사가 공무원인 나라가 되지 않은 것에는 침례교인들이 매우 큰 기여를 했다!
미국의 건국 모델은 후대에 세워진 세계 다른 나라들과 정부에도 선한 모범 참고 사례가 되었다.

* 침례를 받을 자격이 안 되는 너무 어린 아이,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이 없는 아기 등은 죽으면 그냥 바로 천국으로 간다. 유아세례를 받았건 말건 그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내가 이 개념에다가 개인적으로 붙인 명칭은 ‘특례 구원’이다. 이런 애들은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은 자기 죄 가운데 죽었다면 지옥에 갈 수 있다. 하지만 낙태돼서 죽은 애들, 영 유아 때 병에 걸리거나 굶어 죽은 애들, 그리고 특별히 올해 초에 전국민에게 큰 슬픔과 분노를 안겼던 학대 피해자인 정인이 같은 애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

사실, 천국에 가 보면 예수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보다, 저런 특례구원으로 온 사람이 인류 역사상 더 많을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 헤롯 왕에게 학살당한 2살 이하 동갑내기 아기들이 지옥에 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여겨지지 않는다. 만약 그런 거라면 개독안티들이 이것 갖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온갖 신성모독적인 조롱을 늘어놔도 실드를 칠 수 없을 것이며, 사실 나조차 기독교 안 믿었을 것이다. 아니면 믿더라도 민망해서 혼자만 조용히 믿고 말지, 이렇게 당당하게 교리를 설파하고 불신자와 논쟁할 엄두는 못 냈을 것이다.)

그 대신 이렇게 어리고, 특례 구원 실드가 있는 애들에 대해서는 부모가 반드시 의로 양육해서 특례 실드가 끝난 이후의 일생에 대한 대비를 시켜 줘야 한다. 의로 양육한다는 건 필요한 경우 체벌도 불사한다는 뜻이다. 어머니의 회초리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 나중에 지옥 형벌도 무서워할 줄 알게 된다.

난 침례의 대상과 방법에 대한 의미, 개인의 자유의지와 정교 분리, 아기의 구원 여부에 대해 침례교에서 말하는 것만치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원칙과 체계가 있는 교리를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다.
난 그래서 이 교리를 믿고 지지한다. 이 정도 완성도는 되니까 주위에 복음도 전할 수 있고 기독교 관련 글을 쓰고 논쟁도 할 수 있게 됐다.

이 주제에 대해서 본인과 생각이 다른 분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성품과 예정 vs 자유의지에 대해 저것보다도 논리적으로 더 잘 분간하는 교리를 믿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삼분법(영 혼 몸 구분), 하나님 왕국과 하늘의 왕국 구분(하나님 ≠ 하느님이듯이!), 창 1:1-2 간극, 문자적인 천년왕국과 세대주의 같은 건 침례교 내부에서도 똑같이 가르치지는 않는 교리들이다.

2. 종교 개혁의 유산

옛 종교개혁자들이 후세의 크리스천들에게 남겨준 것,
혹은 원래 있었다가 모종의 이유로 봉인됐던 것을 성경을 통해 재발굴 재조명해 준 것은..

(1) 이신칭의

  • a. 마음의 회개 없는 거짓 구원, 그저 "울 교회 오세요, 그럼 님하에게 이득입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삽니다" 거의 종교 영업사원 수준의 easy believism
  • b. 혹은 반대로 아예 행실의 회개와 변화가 없는 건 구원받은 것도 아님. 예수님을 단순 구원자뿐만 아니라 니 행실의 '주권자'로도 반드시 받아들여야 된다 lordship salvation

둘 다 매우 잘못된 극단이다.
내가 여러 번 강조하지만, b가 자주 저지르는 오류가 뭐냐 하면 꼭 나쁜 행실만 죄인 줄 안다는 것이다. 예수 안 믿은 거 자체부터가 엄청난 죄였고 거기서 돌이키는 게 진짜 구원을 가져다주는 회개인 걸 좀 헷갈린다.

"저는 앞으로 술 담배 끊고 모든 악한 행실을 끊고 예수님처럼 경건하게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니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영접 기도를 이딴 식으로 해서는 절대로 구원 못 받는다! 절대로~!! 알겠는가?
a야 너무 수준 낮고 더 논할 가치도 없으니 제낀다.

(2) 만인 제사장

  • a. 목사님은 거~룩한 주의 종님임. 목사의 축도를 안 받으면 예배가 끝난 게 아님. 차 살 때, 가게 개업 했을 때는 영험한 목사님 초빙해서 안수 기도라도 좀 받아야 됨.
  • b. 아예 목사 직분 자체가 니골라 당의 잘못된 교리이다. 예배와 친교의 구분이 없다.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설교한다.;; (헐~)

이 역시 둘 다 잘못된 극단이다.
직분과 역할의 차이를 전부 우열 계급 투쟁으로 프레임 씌우고 체제를 전복시키는 거.. 보통 빨갱이들의 수법이다.

(3) 변개되지 않은 올바른 성경 본문 그 자체
내가 보는 성경은..

  • 헤롯 왕이 지목한 베드로 처형 시점이 유월절이 아니라 이스터라고 돼 있고(행 12:4),
  • 루시퍼와 갈보리라는 명칭이 있으며,
  • 계시록에 증인이 아니라 순교자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피', '지옥' 이런 단어가 여타 성경보다 더 자주 등장한다.
  • '이사야+말라기 = 대언자들'이지.. 이거 무슨 1+1=1도 아니고, 말라기의 예언까지 이사야라고 몽땅 퉁치는 오류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막 1:1-3)

뭐 등등..
에라스무스로부터 시작해서 루터는 바른 본문에서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고, 칼빈은 제네바에서 KJV의 전신인 제네바 성경이 나올 수 있게 해 줬다.

(4) 그 밖에 루터는 너무 엄근진스럽거나 몽환적이기만 하던 교회 음악도 진입장벽을 낮추려 애썼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직접 작사 작곡하기도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2/19 08:36 2021/02/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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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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