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5월 말, 석가탄신일 연휴 때 고향에 가서 부모님께서 쓰시는 컴퓨터를 여러 군데 손 봤다. XP 정도나 돌릴 수 있는 구형 컴퓨터이다. 내가 없는 사이에 컴퓨터 A/S를 받아서 하드를 포맷하고 운영체제를 새로 설치했다고 하던데, 파일 시스템이 웬 생뚱맞게 FAT32로 되어 있어서 당장 NTFS로 바꿨다.

그리고 드디어 IE7을 설치했다. 부모님의 반응은 “서울 컴퓨터와 같은 인터페이스이구나”였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XP가 없고 비스타만 있기 때문이다. 탭을 지원하고 메뉴가 기본적으로 숨어 있는 IE7의 외형과, 그렇지 않은 IE6의 외형은 부모님이 보시기에도 차이가 명백했던 것이다.

때가 2010년인데 IE8이 아닌 IE7을 선택한 이유는 짐작하다시피 병맛 같은 국내 사이트 때문이다. 교사가 쓰는 컴퓨터에다 NEIS가 안 돌아가는 브라우저를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본인 역시 IE8을 비스타 64비트에서 한번 설치해 봤다가 국민 은행 뱅킹이 에러 메시지도 없이 그냥 전혀 동작하지 않는 걸 보고, 혼비백산하여 곧바로 IE7로 복귀해야만 했다. 본인의 개인 노트북에만 IE8을 설치해 쓰는 중이다.

IE8이 IE7보다 그렇게도 가벼워지고 성능이 향상되고 ACID 지수도 올라갔다고 하는데 본인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탭의 윗부분 색깔이 colorful해졌다는 차이밖에 안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본인은 얼리 어답터 기질은 다 죽어서 업데이트 같은 걸 귀찮아하는 타입. O<-<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지금까지 서울 각지에서 이용해 본 PC방들은 어쩜 이리도 한결같이 IE6을 쓰고 있으니 과연 충격과 공포이다. 각종 통계에 잡히는 IE6 사용자들의 상당수가 PC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윈도우 XP sp3이면 어차피 IE8까지 돈도 안 들이고 업그레이드 가능한데 왜 이런 투자에 인색한 걸까?

여기서 IE의 역사를 좀 살펴보자. 1은 가히 듣보잡이고, 2는 윈도우 95 번들로 제공된 최초의, 그러나 정말 빈약한 버전이었다.
3은 드디어 넷스케이프 3과 맞장뜨기 시작한 버전인데, 넷스케이프의 플러그 인에 대응하여 ActiveX를 최초로 내장했다. IE3은 MS가 개발한 프로그램 중 전무후무하게 toolbar에 텍스처가 존재했으며, 마우스가 가리키고 있는 버튼에만 윤곽이 나타나는 소위 flat 스타일 toolbar를 최초로 도입한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나름 산뜻한 외형을 지향했다는 뜻.

오늘날의 IE의 근간이 잡힌 건 4부터이다. HTML 도움말, 액티브 데스크톱 같은 갖가지 기술이 이때 첫 도입됐다. 5에서는 complex script, global IME 등 다국어 처리 능력이 크게 강화된 걸로 기억하며, 무려 윈도우 3.x를 지원한 마지막 버전이다. 그 이후의 버전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하겠다.

윈도우 XP와 같은 시기에 출시된 IE6이 수 년간 엄청 장수하고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MS에서는 이제 IE 팀을 해체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하는데 흠좀무. 그러던 차에 2004년 가을을 생생히 기억한다. 모질라 재단에서 파이어폭스라는 획기적인 브라우저를 내놓으면서 현재까지 IE의 독점 구도를 크게 무마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은 잘 알다시피 구글 크롬까지 빠른 속도를 강점으로 승부 중이다.

2.
오늘날처럼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게 생기기 전, 너도 나도 나모 웹에디터 같은 프로그램으로 아기자기한 홈페이지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딱 그런 옛날 스타일 홈페이지를 보면 감회가 새롭다. 애니메이션 gif,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플래시, 그리고 테크노트나 제로보드 기반 게시판들. 본인이 학창 시절 때 몇몇 선생님들이 만든 홈페이지가 아직도 그런 스타일이다. 옛날 생각이 난다.

본인이 인터넷이란 걸 처음 접한 게 1997년 말이다. 내가 저장해 놓은 적이 없는 새로운 글과 그림이 화면으로 쏟아져 나오는 게 이리도 신기할 수 없었다. 그때 조선일보던가 MBC던가.. 국내 언론사들은 웬 VivoActive player라는 듣보잡 ActiveX로 동영상도 보여주곤 했다. 물론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열악한 화질이었지만 말이다. 그때는 RealAudio/Video도 있었으나, 컴퓨터와 네트워크 속도의 향상 덕분에 이내 mp3 등에 캐발리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넷스케이프도 IE에 완전히 발린다.

3.
맥 OS에는 애플에서 자체 개발한 사파리라는 브라우저가 기본 내장되어 있다. 비록 사파리는 크로스 플랫폼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윈도우에서는 별 재미를 못 보고 있는 모양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그렇게 윈도우, 맥, 리눅스를 다 날아다니는 프로그램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저나 맥 OS 클래식은 9까지만 해도 메모리 보호와 선점형 멀티태스킹조차 지원되지 않았다니 대체 뭐야... 90년대 말까지 쓰이던 운영체제가 기술적으로는 그 허접한 윈도우 3.1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말인지? CPU가 16비트였는지 32비트였는지? PC 쪽과는 역사가 너무 다르니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어렸을 때부터 본인에게 매킨토시에 대한 이미지는, 전자 출판과 복잡한 그래픽 작업처럼 PC하고는 가히 넘사벽인 최고급, 최고가 컴퓨터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맥 OS X에는 그림판뻘 되는 간단한 그래픽 편집기를 내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도 깜짝 놀랐다. 워드패드와 메모장 둘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는 TextEdit는 있지만 그림판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은 없다니... =_=

Posted by 사무엘

2010/06/18 08:55 2010/06/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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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소개하는 두 게임은, 본인이 좋아한 장르가 아니고 즐겨 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기억에 비교적 좋게 남아 있는 고전 게임이다.

1. LHX

헬리콥터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1992년 5월, 초등학교 4학년의 나이로 본인이 최초로 접한 개인용 컴퓨터가 286 AT급 기종이었다. 40MB짜리 하드디스크의 GAME 디렉터리 아래에 기본으로 깔려 있던 게임이 페르시아 왕자 1과 바둑(the many faces of go던가? 그 유명한 프로그램), 그리고 이놈이었다. 그러니 이 게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요?

그 시절엔 단순한 화면 스크롤이나 스프라이트의 2차원적인 이동 말고 전체 화면급으로 프레임이 완전히 새로 바뀌는 애니메이션 자체를 보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컴퓨터 성능이 뒷받침을 못 해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동소수점 전용 프로세서조차 없던 그 열악한 기계에서 비록 허접하게나마(텍스처 같은 것도 없고 그저 solid color ^^) 3차원 공간이 구현되고 헬리콥터 조종석이 1인칭 시점으로 보이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인트로 화면에서 LHX 글자와 ■●▲ 도형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애니메이션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캐드 프로그램 같다. 본인이 먼 훗날에 3차원 그래픽 시연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됐을 때도 둠, 퀘이크와 더불어 이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다. 아 이제야 나도 저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론적인 배경을 터득했구나!

꽤 현실감을 추구했던 만큼, 헬리콥터의 체력은 단순히 hit point 하나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라, 속도계의 일부가 깨지거나 어느 부품이 날아가거나 무슨 기능이 박살나는 것처럼 무척 세세한 묘사가 지원되었다. PC 스피커로 나오는 소리 역시 백미. 본인은 도스 시절에 하드웨어 제어 프로그래밍 경험이 전혀 없이 32비트 윈도우 운영체제로 바로 넘어간 세대이기 때문에, 옛날에 그런 걸 갖고 놀았던 시절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진다.

LHX의 개발자는 Brent Iverson이다. 프로필을 보니 예술 쪽과 전산학 내공을 두루 갖춘 굉장히 탁월한 프로그래머인 것 같다. 과거에 유명한 2D 그래픽 프로그램이던 딜럭스 페인트의 도스용 포팅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상업용 게임들이 320*200 256컬러 VGA에서 돌아가던 시절에는 딜럭스 페인트가 오늘날의 포토샵 정도로 스프라이트 만들 때 필수 툴이었다. ^^;;)
듣기로는 군 복무 경력도 있는 듯? 그러니 저런 사실적인 군사 미션 게임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은 LHX 화면 녹화 동영상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rbgJGg5yd1A (인트로 화면)
http://www.youtube.com/watch?v=VC3OUrgf1Lg (게임 플레이)

2. 대항해시대 2

대항해시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명작이었다고 평가 받는 작품. 본인에게는 국산 게임인 <그 날이 오면 3>만큼이나, 음악이 아름다워서 기억에 남는 게임이다.
오프닝부터... 툭툭툭툭 툭툭툭툭.. 빠암 빠암.. 빠암 빠암.. 빠 밤 빰... ^^;;
그리고 비록 3D와는 관계가 없고 16컬러이기까지 하지만, 그래픽 역시 16컬러치고는 색상이 미려하고 고해상도의 장점을 살려 깔끔한 편이다.

다음은 이 게임의 오프닝 동영상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EM143YYEdEg

일본물에 조예가 깊은 분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이 게임의 음악들을 작곡한 사람은 칸노 요코라는 40대 중반의 여성 음악가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작곡을 했다는 음악 신동이라 한다. 캐릭터 선택 음악, 항해 중 음악 등등... 아주 낭만적이다.
이 사람은 유수의 게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몇몇 드라마 주제곡도 작곡했으며, 한국에도 팬이 많다.

이 게임은 한글화도 되어 나왔다. 요즘처럼 유니코드도 없고 문자 처리의 국제화와 관련된 그 어떤 표준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localizing은 상당한 고역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름을 입력할 때 쓰이는 한글 입력 루틴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키보드를 이용한 두벌식 한글 입력 같은 건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으며, 한글 자모를 화살표로 일일이 선택한 후 조합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처럼 터치 스크린이나 포인팅 장비가 대중화하기 전부터도, 아주 제한된 key만으로 한글이든 로마자든 글자를 입력해야 하는 환경이 있었다. 게임, 특히 오락실 게임에서 말이다. 알파벳과 숫자 정도야 그냥 A부터 Z까지 위 아래 화살표로 고르고, 대소문자마저 무시하고서 이니셜만 입력하게 해도 되지만 한글은 그보다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글은 그래도 그런 환경에서 입력을 구현이라도 할 수 있지, 일본어와 한자로 가면 정말 답이 안 나온다. 일본이 다른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오직 게임 산업이 발달한 것은 그나마 가장 locale-neutral한 분야여서 그렇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우리나라가 한글 처리에 특화된 아래아한글이라는 워드 프로세서가 강세이듯,
일본도 외국 기업이 흉내 내기 어려운 수준의 일본어 처리 능력을 자랑하는 이치타로(일태랑)라는 토종 워드 프로세서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래아한글만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지는 못하고 결국 MS 워드에게 발리고 있는 듯? 하긴, 일본은 IME마저 패키지 소프트웨어로 팔리는 나라이니, 문자 사정이 한국과는 마치 지구와 금성의 차이만큼이나 극단적으로 다르다. 그래도 한국에도 <날개셋> 같은 3rd-party 입력기가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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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얘기가 문자 쪽으로 새었다. 다시 게임 얘기로 돌아오자면..
풍부한 리소스와 하드웨어 환경만이 명작 게임을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 것 같다.
개나 소나 3D를 써야 하는 오늘과는 달리, 옛날에는 오히려 제한된 자원의 특성을 이용해서 더욱 창의적인 방식의 게임이 많이 시도되었다. 레밍즈나 테트리스 같은 게임이 3D로 컨버전된 후 완전 ㅈ망이지 않았던가.
또한, 그야말로 불멸의 명작으로 평가 받는 스타크래프트도 3D가 전혀 아니며, 무려 윈도우 95에서 실행 가능하고 640*480 256컬러로 돌아가는.. 초 구닥다리이다.

본인은 온라인 게임류를 별로 안 좋아해서 품질 좋은 패키지 게임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게임 업계의 현실은 불법 복제 걱정이 없는 온라인밖에 답이 없는 모양이다.
마치 노트북도 4:3 화면을 선호하는데 온통 와이드 화면밖에 안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6/17 09:04 2010/06/1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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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부 청사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시기적으로 우리나라의 1990년대 중반에 해당하는 김 영삼 정권 때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고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되었으며, 고속도로 통행료의 징수 방식이 후불제로 바뀌었다. 직할시가 이때부터 광역시로 바뀌기도 했다. 물론 성수 대교와 삼풍 백화점의 붕괴, 그리고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같은 비극적인 대형 참사도 이 정권 때 유독 많았다.

이외에도 1994년엔 서울 600주년을 기념한 타임캡슐 매장 행사가 열렸고 여기에 아래아한글 2.5가 포함되기도 했다. 이에 덧붙여 또 의미 있는 거사가 추진된 게 있다. 바로 반세기 가까이 광화문과 경복궁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조선 총독부 청사가 1995년에 헐린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나저나 세종로는 예나 지금이나 폭이 기겁을 할 정도로 넓고 아름답다. 저 차선 수를 봐라...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길이라 함.)
조선 총독부 청사는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주권을 빼앗긴 후 일제가 경복궁 건물의 일부를 헐고 그 부지에다 지은 건물이다. 둥근 돔은 마치 옛날 서울 역의 외관을 떠올리게 하며, 1920년대에는 그게 고급스러운 유행이었던 것 같다. (조선 총독부 청사 1926년, 서울 역 1923년)

하지만 우리로서는 침략자요 민족의 원수들이 사는 곳으로 정말 치욕의 기억이 사린 건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위치조차 경복궁을 딱 가로막는 구도이니 말이다. 그 당시엔 조선 총독부로 들어가 요인 암살과 건물 파괴를 시도한 독립 운동가들의 의거도 물론 있었다. 동양 척식 주식회사(흠,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생각나네)와 더불어 테러 대상 1순위.

그 후 일제는 패망했다. 마음 같았으면 저 얄미운 건물도 당장 부숴 버리고 싶었을 것이고, 실제로 초대 대통령인 이 승만부터가 수 차례 이를 계획하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당시 얼마나 가난했던가. 근처의 경복궁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저놈만 곱게 폭파할 비용도 기술도 없었고, 당장 우리나라 정부가 사용할 건물도 없는 마당에 그 건물은 한동안 대한민국 정부의 중앙청으로 쓰이게 됐다.

세월이 흘러 인근에 정부 종합 청사 건물이 따로 지어지면서, 조선 총독부 청사는 잠시 국립 중앙 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을 철거해야 하느냐 그냥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보존하느냐를 두고 양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특히 한글 학회처럼 민족 성향이 강한 단체에서는 저 흉물을 하루빨리 철거해 달라고 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청원을 해 왔다.

본인은 뭐 그렇게 풍수지리 같은 건 안 믿는다. 뭐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쇠말뚝을 박고 뭘 관통시키고 이런 거... 별로 관심 없다. 하지만 본인은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그때 조선 총독부 건물은 철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상술했듯이 경복궁을 가로막는 저 위치가 너무 부자연스럽고 우리나라 문화 유적에 대한 좋은 인상을 못 준다.
둘째, 차라리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서대문 형무소 같은 장소야 당장 피지배자들이 직접적인 고초를 겪었던 곳이고 보존 가치가 있지만, 저기는 어차피 한국 서민이나 독립 운동과는 별 관계가 없는 곳이었으며 역사 교육 효과보다는 생뚱맞음과 민족적 반감만 더 키운다.

게다가, 믿거나 말거나, 서울을 방문한 일본인들의 필수 관광 코스가 저기였다고 한다.
자기 민족이 한때 남의 민족을 관광-_-했던 본부로 반드시 관광 간다는 것. 어???

그래서였을까?
김 영삼 정권 때 본격적으로 조선 총독부 청사 철거 떡밥--독도 폭파 떡밥도 아니고--이 나돌기 시작했을 때, 일본 정부는 공문까지 보내어 우리에게 아주 정중하게 이렇게 제안했다.
"이건 그래도 옛날에 우리가 지은 건물이니, 우리가 알아서 곱게 해체해서 잔해를 본국으로 가져가 보관하겠다. 모든 과정의 비용은 우리가 일체 부담하겠다"고 말이다.

와.. 이건 무슨 전사자 유골 찾아 가는 것도 아니고...;;; 저 말에 무슨 뉘앙스가 깔렸는지는 빤히 보이지 않는가?
이 말에 빡친 김 영삼 대통령은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씹었으며, 도리어 대통령 특명을 내려서 서둘러 건물을 헐어 버렸다고 한다. 일부는 폭파하고 돔 같은 일부 주요 부품(?)만 독립 기념관으로 가져가서 보존해 놨다. 그때 외인 아파트만 폭파한 게 아니다. ^^ 이것 덕분에 당시 대통령의 지지도가 크게 올라갔다는 후문.

이 일에 대해서
"그래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인데 왜 굳이 우리 돈까지 들여서 헐어 버렸냐?"
"그나마 철거도 일본이 알아서 완전 공짜로 해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왜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했냐?"
뭐 이런 말도 오가곤 했으나, 본인은 별로 영양가 있는 말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때도 그렇잖아도 일본이 독도 망언 엄청 하던 시절이었으며, 이 때문에 사기업도, 공기업도 아니고 무려 정부 기관이었던 철도청조차 열차 내 일본어 안내 방송을 잠시 중단한 적까지 있었다. 과연 대인배이다. ㅋㅋ

참고로, 6 25 때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이 총독부 청사는 무척 튼튼했다고 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말하듯,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도로· 건물· 철도 따위가 오늘날까지도 끄떡없을 정도로 전반적으로 잘 만들어졌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_=;;

성인이 되고 서울에서 좀 살아 보니까, 서울 지리를 아는 게 세상 문물을 접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낀다.
성북동이 어디 있는지, 서울의 도시 개발 역사가 어땠는지 까맣게 모르는 상태에서 <성북동 비둘기> 같은 시가 감흥이 와 닿을 수가 없으며,
동작동이 어딘지도 모르고서 동작동 국립 묘지 운운하는 반공 웅변 원고 외우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을 이용해서 경복궁 구경을 하고 왔는데 그 터에 옛날에는 저런 건물이 있었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간다.

다음은 이 글 내용과 관련하여 덧붙이는 아이템들.

1. 일본이 저런 식으로 우리에게 무언가 슬쩍 제안을 한 사례가 나중에 또 있었다. 바로 1999년, 김 대중 정권이 김 종필 총리를 위시하여 웬 한자 병용 병크를 터뜨렸을 때의 일이다. 그 해 2월 11일에 서울에 온 일본 외무 장관 '고무라 마사히코'는 우리나라의 홍 순영 외무 장관에게 "기왕 한자를 병용할 거면 우리 일본식 한자를 써 주시죠? ㅋㅋ"라고 요청을 했다.
비단 이런 사례뿐만이 아니라, 또 민족 감정 같은 걸 배제하더라도 일본인의 관점에서야 한국이 한글 전용보다는 한자 혼용하기를 훨씬 더 원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 학회 같은 진영에서는 이 사실을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며 그에 대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 대로 선생님의 글을 참고하자.

2. 그나저나 왜 자꾸 "일제 36년"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뺄셈도 못 하나? 1945-1910은 35이지 36이 아니다. 게다가 8월 29일부터 8월 15일까지니까 엄밀히 말하면 만 35년도 아니고 34년 350몇 일이다!
나라 주권을 외세에게 빼앗겨 지낸 게 뭐가 자랑스럽다고 무슨 사람 나이처럼 1을 덧붙이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0/06/15 08:27 2010/06/1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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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하이패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유료 도로이다.
요즘은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 국도도 4~8차선에 중앙 분리대까지 갖추고 고속도로 뺨칠 정도로 좋은 자동차 전용 도로로 건설된 경우가 있지만, 최대 시속 80km짜리 도로와 100km 이상짜리 도로는 커브의 반경이 다르고 설계 과정에서 뭐가 달라도 차이가 나는 법이다.

유료 도로이다 보니 고속도로에는 요금을 징수하는 톨게이트가 필요하다. 지하철을 탈 때와 내릴 때 각각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카드를 찍듯이, 고속도로도 들어가고 나가는 과정이 있는 폐쇄식 톨게이트 체계가 기본을 이룬다.
하지만 수도권에는 진출입로가 지방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존재하고 고속도로를 매일 이용하는 출퇴근 차량도 엄청 많다. 이런 곳은 그냥 주요 구간에 개방식 톨게이트를 설치하여,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 고정된 요금만 징수하고 있다. 즉, 이런 곳은 한번 돈만 내면 끝이며, 뭘 받았다가 반납하고 정산을 할 필요가 없다. 또한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않는 구간만 이용한다면 고속도로를 무료로 드나들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톨게이트는 차량 소통을 매우 심하게 방해한다는 것. 빠르게 잘 달리던 차를 기어이 세워서 돈 계산까지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최 덕규 씨는, 저서 <길이 제대로 돼야 나라가 산다>에서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똥자루 고속도로다!"라고 혹평하면서 이놈의 톨게이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 없애야 한다고 통렬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고속도로 유지비를 기름값에다 추가하든지 해서 재정은 다른 방법으로 마련하고, 전국 고속도로의 톨게이트 직원들에게 다른 일자리를 알선해 주고서 죄다 내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톨게이트만은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말이다.

이 불편을 체감상으로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지난 김 영삼 정권 때는 고속도로 통행료 후불제가 시행되었다. 물론 통행료 후불제도 엄밀히 말하면 조삼모사격 조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에도 목적지를 유동적으로 변경할 수 있고(미리 목적지에 대한 통행료를 내는 게 아니라, 최종 목적지에서 돈을 내므로) 당장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 오버헤드가 크게 줄어들므로, 선불제보다는 기분상으로 고속도로 이용하는 느낌을 더 낫게 만들었을 것 같다.

그러다가 21세기에는 IT 강국-_- 대한민국답게 거물급 물건이 도입됐으니, 바로 하이패스이다.
차가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면 그 차에 장착된 하이패스 단말기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자동으로 무선 통신을 하여, 카드에서 통행료가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차를 세우고 번거롭게 현금 챙길 필요 없어서 좋고, 도로 공사 입장에서는 돈 걷는 단순 노동 직원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하이패스 카드 충전 명목으로 목돈을 선금으로 미리 챙길 수 있어서 좋고...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좋다 보니, 도로 공사 측에서는 하이패스를 적극 홍보하고 장려하고 있다. 하이패스 이용 차량은 전용 출구로 톨게이트를 더욱 빠르게 통과시켜 주고 통행료를 약간 할인까지 해 준다. 하지만 하이패스가 필요할 정도로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단말기 설치비를 회수할 만한 큰 장점이 없으니 고속도로의 모든 진출입로가 하이패스 전용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아무리 손전화가 대중화하더라도 공중전화가 아주 없어질 수는 없으며, 시내버스 안에 현금통이 아예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서울 시내버스는 옛날에 현금 승차는 아니고 토큰이라는 게 따로 있었는데, 2004년의 요금 개편 후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구나.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따금씩 문제가 되고 있는 건 하이패스 단말기의 오작동이다. 하이패스 전용 출구는 차단기가 쓱 내려와 있다가 하이패스 단말기와 거래가 정상적으로 처리되는 순간 차단기가 올라간다. 톨게이트를 들어설 때 차를 완전히 세울 필요는 없지만 시속 30km 정도로 서행하라고 도로 공사는 권장하나... 실제로 차들은 시속 최하 50~60km로 쌩 통과한다. 그래도 문제는 거의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인식이 안 되면?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계속 달리던 차는 차단기와 충돌하게 된다. 이거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차단기를 들이받아 박살내고 차는 범퍼만 약간 긁히고서 통과라도 무사히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앞에 차단기라는 장애물이 쓱 내려오니 대부분의 운전자는 이때 본능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옆으로 꺾게 된다.
건물과 부딪치고, 뒤따라오던 차들이 연쇄 추돌을 일으키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몇 차례 있기도 했던지라,
도로 공사는 하이패스 출구의 차단기를 딱딱한 금속 재질에서 고무 재질로 교체하기도 했다. 차단기와 충돌해도 차에 아무 손상이 가지 않으며 차단기 역시 휘어지기 때문에 파손이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일종의 훼이크 과속 단속 카메라 내지, 훼이크 경찰차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장애물을 피하려는 핸들+브레이크 급조작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를 예방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이 점을 악용하여, 톨게이트 차단기를 씹고 통행료를 안 내고 달아나는 운전자가 생겼다고 한다.

멍청한 친구 같으니.. 자기 차 번호가 버젓이 노출돼 있는데, 당연히 걸릴 수밖에 없는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상습적으로... 보험 사기나 자동차 속도 위반 같은 거 요즘 얼마나 잘 잡아 내냐 말이다.
마치 공항에서 출입국 금지자 단속을 하듯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번호판을 단 차가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경보음이 울리고, 직원들이 곧바로 출동해서 차량 진입을 저지한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하이패스가 동작하지 않아서 차를 근처에 세워서 수동 정산을 끝낸 후, 고속도로를 횡단하여 자기 차로 가던 한 운전자가 다른 차에 치여 숨진 일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판결은 도로 공사 쪽에 상당히 불리한 쪽으로 내려졌고, 그쪽에서 사망자 유족에게 상당한 액수의 보상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는 하이패스가 오작동이 없어야 할 텐데 말이다. 오작동률이 0.몇 % 미만이라지만, 하루에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차들이 대체 몇 대인가.

고속도로 통행료도 T머니(교통 카드) 결제가 되게 하면 어떨까? 아, 이미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자가용을 몰고 다닐 정도인 사람이라면 경제력도 뒷받침되고 응당 신용카드 같은 것도 있을 테니, 굳이 교통 카드 따위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혼자서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이따금씩 하이패스 없이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선불식 교통 카드 한 장만으로 고속도로 통행료 결제까지 된다면 편리하지 않겠나 싶다.

아무쪼록, 자동차 운전자의 세계도 대중교통 이용자의 세계만큼이나 이런 저런 사연이 많다.

Posted by 사무엘

2010/06/14 08:59 2010/06/1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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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의 템플릿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매우 강력하고 유용한 개념이다.
C++에다가 제네릭/메타 프로그래밍--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그램.. 즉 더욱 추상화된 기법--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 줬기 때문이다.

swap, min, max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옛날에는 문법적으로 매우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매크로를 쓰고 위험한 typecasting을 해야 했던 것을, 템플릿 덕분에 언어의 정식 문법으로 아주 깔끔하고 type-safe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된 게 많다.

그리고 static 배열의 크기(원소 개수)를 되돌리는 매크로인 ARRAYSIZE도 생각해 보자.
C 시절에는 sizeof(x)/sizeof(x[0]) 와 같은 식으로 구현했다. 물론 이 값들은 모두 컴파일 시간 때 이미 결정이 되기 때문에 실제로 나눗셈 연산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템플릿을 이용하면...
template<typename T, size_t N> char (*__GetArraySize(T (&n)[N]))[N];
#define ARRAYSIZE(x)   sizeof(*__GetArraySize(x))

자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가시는가?
무슨 타입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N개짜리 배열의 참조자를 받아서 N개짜리 char형 배열의 포인터를 되돌리는 함수를 템플릿으로 선언한다.
그 후, N의 함수의 리턴값을 역참조한 배열의 크기를 sizeof로 구하면... 당연히 char형 배열의 크기는 본디 배열의 원소 개수와 일치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함수의 몸체를 정의할 필요조차 없다! 마치 &( ((DATA*)NULL)->member ) 가 에러를 일으키지 않고 멤버 오프셋을 되돌려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템플릿이 아예 배열의 참조자를 받게 함으로써 좋은 점은, 이 매크로에다가 static 배열이 아니라 단순 포인터를 집어넣으면 컴파일 에러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 sizeof(A)/sizeof(A[0])보다 타입 safety도 보장되고 훨씬 더 좋다.
(), *, [] 등이 뒤섞인 복잡 난해한 C/C++ type string 읽는 법에 대해서는 이전에 별도로 글로 다룬 바 있다.

template<typename T, size_t N> size_t ARRAYSIZE(T (&n)[N]) { return N; }

물론 위와 같이 코드를 쓰면 더 간단하고 알아보기도 쉽게 동일한 효과를 이룰 수 있지만, 최적화를 하지 않은 디버그 빌드는 불필요한 함수 호출이 계속 일어나는 문제가 있다. 배열의 크기 정도는 컴파일 타임 때 모든 계산이 딱 일어나게 하는 방법을 쓰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이렇게 템플릿은 매우 편리한 개념이긴 하나, 한계도 분명 있다.
템플릿은 동일한 패턴을 지닌 여러 다른 코드들을 찍어내는 ‘틀’과 같다. 하지만 이 틀 자체는 한 번만 정의해 놓고 링크 타임 때 여러 오브젝트 파일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게 할 수는 없다. 최적화처럼 기술적으로 여러 난관이 있기 때문이다. 템플릿 인자로 들어온 타입이 int일 때, double일 때, 심지어 개당 100바이트가 넘는 구조체일 때 이들에 대한 각종 비교나 대입 연산과 최적화 방식과 코드 생성 방식은 완전히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인해 템플릿의 정의 효과는 오로지 한 소스 코드, 한 translation unit 안에서만 유효하며, 템플릿 클래스나 함수는 모든 소스 코드에 헤더 파일의 형태로 매번 include되어야 한다. 몸체까지(body; definition; implementation) 죄다 말이다. 일반적인 클래스의 함수처럼 선언 따로, 정의 따로일 수가 없다. 사실은 템플릿 코드에 대한 에러 체킹 자체도 템플릿이 인자가 들어와서 어떤 형태로든 실현(realize)이 됐을 때에야 할 수 있다.

그러니 템플릿으로 구축된 각종 함수와 클래스는 소스 코드가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그 소스 코드를 고치면 템플릿을 include하는 모든 소스 파일들이 재컴파일되어야 하는 등 프로그래밍 상의 한계가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이 한계는 C++ 언어의 컴파일/링크 모델이라든가 기존 컴파일러들의 오브젝트 파일 포맷 내지 컴파일러/링커의 동작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극복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구조적인 불편을 해소하고자 C++ 표준 위원회가 제안한 것은 export 키워드이다.
흔히 import/export하면 윈도우 프로그래밍 세상에서는 DLL 심볼을 내놓거나 가져오는 개념을 떠올리는데, 이 문맥에서는 그런 건 아니다. 한 translation unit에 존재하는 템플릿 함수 구현체를 다른 translation unit이 그 경계를 초월하여 링크 타임 때 가져다 쓸 수 있게 하는 흠좀무한 개념이다. 즉, 템플릿 몸체에 대한 export를 뜻한다.

헤더 파일에다가는

export template<typename T> void Swap(T& a, T& b);

이라고 해 놓고 모처의 cpp 파일 한 군데에다가는

export template<typename T> void Swap(T& a, T& b)
{
    T c(a); a=b, b=c;
}

이런 식으로 써 놓음으로써,
Swap 함수는 export라고 마크가 되어 있으니 자기 translation unit에서만 쓰지 말고, 다른 단위에서도 필요하면 링크 때 가져다 쓸 수 있게 한다는 게 당초 의도였던 모양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템플릿으로 들어간 클래스 멤버 함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export가 없으면 저 함수 body는 마치 static 변수/함수처럼 그 소스 파일 내부에서만 유효하고 다른 소스 파일에서는 링크 에러가 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본 컴파일러 개발사들은 '이뭐병, 이딴 걸 무슨 얼어죽을 표준안이라고 내놓냐' 하는 반응이었고..
비주얼 C++, gcc 등 유수의 컴파일러들은 이 키워드의 구현을 포기/거부하고 말았다.
비주얼 C++의 경우 도움말에 Nonstandard Behavior로 자기는 이 키워드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명시까지 되어 있다. 2010은 모르겠고 2008까지도 마찬가지임.
하지만 마이너급 컴파일러 중엔 export를 구현 안 한 놈이 없는 건 아니라고 한다. 흠좀무.

컴파일해 놓은 코드를 짜깁기만 하는 게 링크인데, 저걸 구현하려면 링크에다가 다시 컴파일을 하고 재링크(?) 과정을 집어넣어야 한다. C/C++의 정상적인 빌드 루트와는 정면으로 모순되는 과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컴파일러 개발사들이 떡실신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인해서 export는 C++의 흑역사 키워드로 전락해 있다.
옛날에 MS는 링크 과정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려고 COFF 방식 obj 파일과 PE 방식 exe 파일을 채택했다고 하던데, 하지만 요즘은 워낙 translation unit을 넘나드는 링크 타임의 코드 생성과 전역 최적화 같은 기술이 대세가 돼 있다 보니, export 키워드의 의도가 옛날만치 그저 병맛나게 들리지만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유명무실하던 auto가 리모델링되고 서울 지하철 5호선 마곡 역이 13년만에 부활했듯이 export 키워드도 의도 자체는 좋은데.. 언젠가 부활할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C++의 차세대 표준인 C++0x에서는 export를 아예 빼 버리고 백지화하자는 제안까지 나온 상태이니, 과연 지못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6/12 09:27 2010/06/1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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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특 시절

본인은 올해로 예비군 2년차이고 전반기 향방 작계도 받았다. 이 달 말이면 군필자가 된 지 드디어 만 2년이 된다.
본인이 그럴 때 전투복 상의 안에 늘 즐겨 입는 옷은 병특 회사에서 받은 체육 대회 참가용 티셔츠(물론 회사 로고가 새겨진)이다. 이제 그 회사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니, 가끔 집안에서 입거나 아니면 이런 용도로나 쓴다.

향방 작계 가서 하는 건 동네 산책, 심폐 소생술, 8자 매듭 포박 정도뿐이다. 이번에 가니까, 전투모는 아예 따로 제출했다가 퇴소 때 돌려받는 시스템이 추가되어 있었다. 전투모는 무조건 지참해야 하는 예비군 복장이면서 정작 훈련 때는 전혀 쓰이지 않는 정말 아이러니한 물건이다. ^^;;; (훈련 중엔 거기서 지급하는 헬멧? 철모? 화이바만 쓰므로)

우리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나서 군대라는 산을 넘고 나니까, 그 전과 후에 인생을 보는 느낌이 확 달라져 보인다. 정말 대학 입시에 이은 제 2의 큰 관문이 맞다.

이제 다 지난 일이니까 슬슬 털어 놓는 얘기이다. 뭐, 내막을 이미 아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본인은 윈도우용 온라인 게임 개발 회사 두 곳을 거치면서 병특으로 병역 의무를 수행했다.
전직을 한 번 했다는 얘기인데, 의무 근무 기간인 1년만 딱 채우고 나서 대우가 더 나은 곳으로 냅다 튄 게 아니라, 순수하게 회사가 망해서 전직한 것이었다. 그래도 첫 직장은 내게 생명 같은 병특 TO를 준 곳인데 내가 무슨 달다 쓰다 말을 할 자격이 있으리요?

그 회사에서 만든 게임은, 비록 아주 유명한 대박은 아니지만 매니아 계층들로부터는 아주 사랑 받던 게임이었다. 망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다시 하고 싶다고 그리워하는 사용자의 블로그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나중에 간 곳은 회사 자체는 아주 튼튼하고 유능한 게임 개발자들이 꼭 가고 싶어하는 곳이었다. 벤처 기업으로 시작했으나 이제 큰 건물의 여러 층을 차지하고 어느 정도 중견 기업 수준으로 성장한 규모였다. 송년회나 체육 대회도, 꾀죄죄한 작은 회사 다닐 때는 경험할 수 없는 으리으리한 스케일로 치렀었다.
게다가 이 직장은 본인이 지금까지 서울에서 다닌 직장 중 집에서도 가장 가까웠던지라, 마음만 먹으면 자전거 출퇴근조차 가능한 곳이었다.

여러 모로 좋았으나... 내가 근본적으로 게이머나 게임 개발 적성이 전혀 아니니 그곳 역시 본인의 생업이 될 수는 없는 분야였다. 게다가 거기는, 회사 자체야 건재하지만 내가 소속되어 있던 스튜디오가 내가 병특이 끝난 후 2년이 채 안 지나서 망했다. 프로젝트가 접혔다.

사실 내가 입사하던 당시부터도 그 스튜디오는 이미 만들어 놨던 게임을 고치고 또 고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출시가 꽤 심하게 지연된 상태였다. 그 후에 행해진 작업은 온라인 게임을 전혀 안 하는 내가 보기에도 시스템을 WOW와 굉장히 비슷하게 고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서비스도 못 해 보고 경영진으로부터 돈과 시간 먹는 하마라고 낙인 찍힌 채, 더는 돈과 시간을 못 주겠다고 접게 된 것이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백수십억 원대의 자금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말이다.

첫 직장에서 만들던 게임은 Direct3D SDK만 갖고서 밑바닥에서 완전 쌩으로 모든 걸 만들어 놓고 있었다. 후덜덜..;;
다음 직장의 게임은 게임브리오 기반이었다. 나름 상업용 게임들이 비주얼 C++을 써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개발 중이던 게임을 테스트한답시고 바닷가, 숲 속, 중세 도시, 창공, 던젼 등 여러 맵들을 돌아다니면서 마치 여기가 내 집인 것 같은 아늑함(?)을 경험하기도 했었는데... 모든 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

어지간한 게임 개발 회사에서는 남이 짜 놓은 코드를 고치고 덧대는 잔업이나 한다.
자기가 진지하게 따로 시간을 투자하여 코드를 공부하지 않는 한 3D 그래픽 이론이라든가 게임 엔진 구현 원리 같은 근본 테크닉을 배울 기회는 없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직장에서 괜히 당신에게 돈까지 주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회사들을 거치면서 내가 만난 '직속 상사'들의 컴퓨터 실력은 제각기 정말 대단했다. 그들 역시 대학 졸업 후 처음엔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서 그 바닥에 최소한 10년이 넘게 구르다가 관리자의 자리에 오른 사례일 것이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니, 근본적으로 저 길이 내게 맞는 적성이라 할 수 있을까?

미래에 나의 소속이 또 바뀌면 지금 다니던 직장에 대한 추억도 블로그에 언젠가 올라올 것이다.
그나저나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직장인에게 일정 예측이란 분야를 막론하고 정말 영원히 해결 불가능한 스트레스로 남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0/06/11 08:42 2010/06/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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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공익 광고들

1. 주제: 공중도덕
파란 정장 차림의 한 남성이 갑자기 털이 북실북실 나면서 원숭이로 변한다. 그리고는 새치기, 운동 경기장에서 난동 등 갖가지 추한 행동을 다 한다.
거의 1990년대 초반에... 엄청 옛날에 본 광고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엔 그러고 보니 전화기도 다이얼이요, TV도 채널 바꾸는 다이얼이 있었구나.
사람 얼굴이 원숭이 얼굴로 바뀌는 CG가 하도 엽기적이고 흉악했던지라, 초등학교나 그 이전에 봤을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2. 주제: 환경
어느 아날로그시계가 물속에 빠져서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그런데 시계 바늘은 째깍거리면서 점차 자정으로 다가가고, 물은 점점 흐려지고 더러워져서 시계를 볼 수가 없게 된다. 아마 시계도 고장 나서 작동을 멈췄지 싶다. 어린 나이에 보기에 은근히 무서운 인상을 받았다.

3. 주제: 환경
남녀 어린이들이 하얀 세트장에서 놀고 있는데, 바닥 곳곳이 시꺼멓게 변하고, 그런 구역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있을 수 있는 공간도 갈수록 좁아진다. 애들은 겁에 질리고...
이것도 보기 무서웠다.

4. 주제: 과소비
새까만 세트를 배경으로 어느 중년 남성과 여성이 번갈아가면서 풍선을 분다. 부풀어 오르는 그 풍선에는 외제차, 고급 양주, 보석 등의 사진이 번갈아가며 오버랩된다. 그러다 나중에 풍선은 펑! 터지고 “과소비는 나라 경제를 어렵게 만듭니다”라는 무거운 멘트가 나간다.
닥치고 근검 절약 국산품 애용하자고 한창 밀어붙이던 5공스러운 이념이 좀 담긴 공익 광고이긴 하나, 오늘날도 곱씹을 가치는 있는 내용이다.

"국민 소득 4천 $. 소비 수준은 2만 $." 와.. 정말 언제적 멘트냐..;;
옛날 <과학의 노래>에서 수출 100억 $, 국민 소득 1천 $.. 이랬지 싶은데.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국민 소득 2만 $에는 도달 못 해 있다. 흠좀무.

5. 주제: 에너지 절약
다른 건 기억 안 나는데, 나중에 석유 드럼통이 견디질 못하고 옆으로 쿵!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6. 주제: 음주 운전
사고로 처참하게 부서진 차 옆에 운전자가 바깥까지 튕겨나간 채 죽어 있다. 그런데 카메라의 역방향 재생이 시작된다. 차가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오고 운전자가 다시 운전석으로 쓰윽 돌아온다. 차는 비틀거리면서 한없이 후진을 반복하는데... 재생이 끝나는 곳은, 바로 운전자가 술잔을 거하게 짠~ 부딪치는 지점.
나름 참신하게 잘 만든 광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름은 되돌릴 수 있어도 생명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술 마시고 나서 '필름 끓겼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니 무척 잘 만든 광고 카피이다. 마치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갑니다"처럼 말이다.

요즘은 음주 운전뿐만 아니라 '운전 중 전화질'도 안전을 아주 위협하는 요소로 등극한지라, 외국에서는 Don't text and drive라고 교통사고 장면을 꽤 노골적으로 잔인하게 묘사한 공익 광고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나저나 음주 운전 단속은 꽤 엄격하게 하는 걸로 아는데, 우리나라는 성 범죄는 여전히 왜 이리도 술에 관대한 걸까?

7. 주제: 언어 순화
앵무새가 ‘저 녀석! 저 녀석!’ 이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학습한 말을 흉내 내는 게 나온다.
평소에 앵무새 주인이 말을 험악하게 하다 보니, 말을 조심해야 할 곳에서 앵무새가 자기 주인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나름대로 시간 순으로 배열했다. (1 oldest, 7 latest)
기억에 남는 공익 광고들을 나열해 보니까 은근히 많네... 혹시 이런 것들 기억하는 분은 없으신지?
.
.
.

이 글을 쓰고 난 후...
http://www.kobaco.co.kr/ 에서 위의 공익 광고 방송들을 다 열람해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참 대단하다. -_-;; 그래도 내 기억도 상당히 정확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1990 늑대인간
1989 생활하수
1990 런칭
1989 풍선
1990 스위치
1991 필름역회전
1995 앵무새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건,
요즘 광고들은 처참하거나 무서운 장면을 옛날만치 노골적으로 내보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건 단순히 본인이 나이가 들고 감수성이 무뎌져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노골적인 공포감과 혐오감 조장은 지양하는 한편으로 메시지는 더욱 implicit(간접· 암시적)해졌다.
가령, 옛날 광고에서는 무질서 난동 부리는 나쁜놈을 저렇게 원숭이로 묘사하여 노골적으로 깠다면, 요즘은 마치 서울 메트로 광고처럼 럭비 선수에다 비유해서 "님들은 럭비 선수가 아닙니다. 지하철 탑승을 그렇게 하는 건 반칙입니당^^"이라고... 재치를 동원하는 식.

환경을 소재로 한 광고만 해도, 옛날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하게 주변 환경이 시꺼매지고 더러워지는 모습, 물고기들이 몰살 당해 물에 떠오른 사실적으로 묘사한 반면, 1996년도 광고를 보면 그냥 민속 그림을 CG로 애니메이션화해서 보여주면서 "그 (물이 깨끗하던) 시절이 정말 그립습니다"라고 표현의 수위가 한결 누그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6/10 08:57 2010/06/1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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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가 다니는 경부선 역들 분석

※ 서울
역무 시설: 선로 위 고층
승강장 선로: 평지
선로 품질: 기존선
KTX: 경부선 전부
일반열차: 경부선 전부. 누리로 포함
광역전철: 서울-천안 급행과 경의선이 있으나, 이들 모두 굉장히 드물게 운행되는 열차임
지하철: 1, 4호선
비고: 백화점과 붙은 민자 역사

※ 용산
역무 시설: 선로 위 고층
승강장 선로: 평지
선로 품질: 기존선
KTX: 호남선 전부
일반열차: 호남· 전라· 장항선 전부. 누리로 포함
광역전철: 1호선 완행과 급행, 중앙선. 광역전철 연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역이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 역
비고: 전자 상가· 백화점 등과 붙은 민자 역사

※ 광명
역무 시설: 지하
승강장 선로: 맨 아래 지하. 자연 채광이 들어오긴 하지만 꽤 깊은 지하역이다.
선로 품질: 고속선 연결선
KTX: 경부· 호남선 일부
일반열차: 없음
광역전철: 영등포-광명 4량 셔틀 전동차. 배차 간격 매우 긺
지하철: 없음

※ 천안아산
역무 시설: 지상
승강장 선로: 맨 꼭대기 층. 광명 역과는 정반대로 지상 고가역이다. 안산선 상록수 역과 비슷한 구조.
선로 품질: 고속선 정중앙임! 통과 열차는 이 역을 시속 290km 이상의 속도로 통과한다. 이 역에서 한번 정차해 버리면 시간을 한 10분 정도 까먹는다.
KTX: 경부· 호남선 일부
일반열차: 이 역은 수직으로 교차하는 장항선 아산 역과 환승이 가능한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아산 역이 장항선 전열차를 취급한다. 누리로 포함
광역전철: 역시 환승역인 아산 역에서 1호선 전동차가 다니나, 배차 간격이 매우 긺
지하철: 없음

※ 대전
역무 시설: 선로 위 고층
승강장 선로: 평지
선로 품질: 기존선
KTX: 경부선 전부
일반열차: 경부선 전부
광역전철: 없음
지하철: 1호선과 연계가 잘 되어 있다. 지하철은 KTX의 대전 시내 지하 통과를 염두에 두고 매우 깊게 건설되었다.
비고: 역사가 오래 된 역인 만큼, 누리로와 광역전철이 없다는 것만 빼면 전반적으로 서울 역과 비슷한 위상이다. 타러 들어가는 곳과 내리고 나오는 곳이 구분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 대전 고속버스 터미널도 마찬가지 구조를 하고 있다. 한때는 대전 역을 무정차 통과하는 KTX도 있었으나 지금은 다 흑역사가 됐음.

※ 동대구
역무 시설: 평지
승강장 선로: 언덕 아래 평지. 지형의 특성상 꽤 특이한 구조가 됐다.
선로 품질: 기존선
KTX: 경부선 전부
일반열차: 경부선 전부
광역전철: 없음
지하철: 1호선이 지나지만 역까지 조금 멀다.
비고: 대구선과의 환승 노선이다. 고속버스 터미널과도 연계가 매우 잘 되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 부산
역무 시설: 선로 위 고층
승강장 선로: 평지
선로 품질: 기존선
KTX: 경부선 전부
일반열차: 경부선 전부
광역전철: 없음
지하철: 1호선이 지나지만 역 광장을 지나야 하고 역까지 조금 멀다.
비고: 서울 역과 비슷한 유리 궁전이다. KTX 정차역 중에 아직까지 역전 광장이 가장 넓게 남아 있는 역이다.

다들 자신만의 개성이 넘친다.
대구 이남에 있는 구포· 밀양 역은 KTX가 다 정차하지는 않으면서 고속신선이 아닌 기존선상에 속하는 역이다. 하지만 본인이 답사한 적이 없어서 자료가 없으므로 기재를 생략했다.
다음은 KTX 잡설들.

천안아산 역 건물 내부의 아래층에서 좀 있어 보면, 위층에서 무정차 KTX가 쌩 통과할 때의 진동이 거기까지 전해진다. 길이가 거의 380m에 달할 정도로 긴 18량짜리 KTX의 주행 진동이 느껴지는 시간은 겨우 4초가 될까말까이다. 그만큼 빠르게 지나간다는 뜻이다. 시속 300km이면 1초에 무려 80m를 넘게 나아가기 때문이다.
마치 공항의 탑승 게이트에서 저 멀리 이륙하는 비행기의 진동을 느끼는 것 같다. 하긴, KTX의 주행 속도는 V1 속도를 넘어선 비행기의 이륙 속도와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천안아산 역과 장항선 아산 역은 T자 환승역으로, 천안아산 역의 경우 환승 통로가 한쪽 끝에 몰려 있다. 부산 방면(즉, 상행 열차는 맨 뒷칸, 하행 열차는 맨 앞칸. 18호차)에서 내려야 환승을 편하게 할 수 있다. 실제로 KTX-장항선 환승으로 열차 승차권을 구입할 경우, 그 칸에 가깝게 KTX 좌석이 배정된다고 한다.
18호차 같은 맨 뒷칸에 타 보면 KTX의 은은한 구동음을 들을 수 있다. 여러 번 들어 본 본인의 결론은 신시사이저 건반 소리와 비슷하다. 예전에는 역에 도착할 때 제동 거는 소리가 굉장히 귀에 거슬리고 시끄러웠는데 이것도 요즘은 좀 개선된 것 같다.

그나저나 지금은 김천구미 역 공사 때문에 KTX가 한 8월 말까지는 그쪽 구간에서 서행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구간을 지나는 경우 운행 시간이 5~10분 정도 지연된다. KTX 이용을 계획하고 있는 분이라면 이 점을 감안하는 게 좋겠다.
2008년 초엔 KTX가 천안아산 역 부근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서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기서는 서행을 안 한다. 한 2009년부터는 KTX의 최고 주행 속도가 300에서 305로 상향 조정되어 체감 속도가 더 오르기도 했다.

김천구미야 대전과 대구 사이에 역을 하나쯤 만들 수도 있다고 치지만 오송은 도대체 무슨...;; 대전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조치원쯤에 역을 또 왜 만들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잖아도 논산-천안 고속도로 덕분에 도로는 호남 지방 가는 길이 더욱 곧고 빨라져 있는데, 철도는 뭘 하는 짓인지 원..;;

Posted by 사무엘

2010/06/09 08:14 2010/06/0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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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2010/6/2)

교회 친구들과 함께 모처럼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춘천으로 놀러 갔다 왔다.

닭고기로 이런 요리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준 별미 닭갈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양강 다목적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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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가는 길목에서 만난 아름다운 폭포.
물을 떠 마시다 보니, 기드온의 300 용사 생각이 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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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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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06/08 09:03 2010/06/0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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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잡설

1.
요즘은 열차 안에서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며 간식거리를 파는 영업 사원을 거의 찾을 수 없어져 있다. 옛날에는 소위 홍익회라는 곳에서 그런 영업을 했으나 철도청이 공기업으로 바뀐 뒤부터는 이미 진작부터 흑역사가 됐고, 지금은 장항선에서 시범 운영했던 카페 객차라는 게 전노선과 특히 새마을호로도 확대되어 예전의 영업 사원을 대체하고 있다. 즉, 이제는 뭘 먹고 싶으면 영업 사원이 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카페 객차로 직접 가야 한다. 새마을호는 예전부터 식당칸이 있었으므로 용도 변경이 더욱 쉬웠을 것이다.

다만, KTX 내부에서는 카트를 끌고 커피 같은 걸 파는 영업 사원이 여전히 돌아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 KTX(산천 말고)는 구조적으로 카페 객차 나부랭이 따위는 못 만들며, 어차피 코레일은 모든 고급 인터페이스 투자를 이제 KTX에다가만 최우선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춘선 열차에서는 여전히 예전의 클래식한 영업 사원을 볼 수 있다. 몇 달 후면 없어질 노선에다가 굳이 카페 객차를 편성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재래식 영업을 하는 것임. 경춘선 자체가 장항선만큼이나 여행· 관광 성격이 강한 노선인데 그런 영업 사원이 돌아다니니 더욱 운치가 난다.

2.
단선 비전철 철도는 길 자체에 대한 흔적이 주변에 가장 남기지 않는 교통수단이다. 쉽게 말해서 자동차 안에서 좌우를 살펴보면 맞은편 차선이 보이고 울타리나 가드레일 같은 도로 시설이 보인다. 그리고 복선 철도라면 맞은편 선로가 보일 것이고 전철인 경우 전력을 공급하는 전봇대도 시시때때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반선 비전철 선로를 달리는 열차 안에서는? 좌우를 아무리 살펴봐도 철도 시설과 관련된 걸 찾을 수 없다. 마치 비행기나 배에서 창밖을 보는 것처럼 우리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 철도는 차량의 폭은 버스보다 훨씬 더 크면서 선로가 차지하는 폭은 자동차 도로보다 훨씬 좁다. 궤도 위만 달린다는 특성상 공간을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전철의 경우, 전차선을 선로 위에다가 설치함으로써 거추장스러운 공중 전차선과 전봇대를 제거한 전철도 있긴 하나 우리나라에는 그런 게 없고 이제 경전철 같은 데서나 도입되는 중이다.

3.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로 시작하는 유명한 트로트가 있다. 그런데 이 가사에서 호남선을 경부선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열차의 목적지가 목포가 아닌 부산으로 바뀐다면 노래의 뉘앙스도 확 달라질 것이다.

4.
이번엔 서울 지하철 얘기이다.
본인의 경험상, 서울 메트로는 수도권 전철을 운영하는 회사들 중에 지하철 질서/안전 수칙을 가장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곳이다. 이 점에서는 그저 행복 미소만 강조하는 SMRT(도철)와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야구나 축구에다 비유해서 "지하철에서 골키퍼처럼 다리 쩍 벌리고 앉는 것은 반칙입니다" 같은 식으로, (특히 서메는 야구 선수를 홍보 대사로 자주 위촉해서 쓰기도 했으므로)
최대한 딱딱하지 않게 재미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옛날에는 지하철에 무질서하게 비집고 승차하려는 승객을 럭비 선수에다 비유한 UCC를 틀어 주기도 했다.
홍보하는 주제로는 "제발 문 닫힐 때 무리하게 타지 마세요", "우측 통행을 하세요", "보고 난 무료 일간지는 선반에다 놔두지 마세요", "혼잡한 열차에서 내릴 땐 전역에서부터 미리 준비를 해 주세요" 같은 게 있다.

다른 어느 교통수단보다도 승객에 대한 안전 교육과 질서 유지 협조 당부가 필요한 항공업계에서는 저런 트렌드를 도입하지 않으려나 궁금하다.... 라고 쓰려고 했는데 이미 당연히 그러고 있다. 안전 수칙 동영상을 어린애들까지 동원해서 최대한 재미있게, 안 따분하게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 http://hansfamily.kr/950 참고할 것.

Posted by 사무엘

2010/06/07 08:48 2010/06/0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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