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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지역에 시내버스가 다니는데 정시성, 속도, 편의성 어느 것 하나 승객을 만족시켜 주는 게 없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주민들은 콩나물 시루 같은 만원 버스 안에서 매일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참다못해 너도 나도 다들 자가용을 끌고 나오는 바람에 도로는 아침과 저녁마다 체증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고 치자.

그러니 시민들은 관공서를 상대로 끊임없이 버스 증차를 요구하며, 정치인들 역시 이를 공약으로 즐겨 내세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증차라는 건 만만하게 선뜻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버스를 한 대 구입하는 데는 1억이 넘는 비용이 필요하며, 기사를 추가로 고용해야 하므로 인건비까지 증가한다. 게다가 기껏 추가한 차량은 교통량이 적은 낮 시간엔 그저 놀고만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정이 이러하니, 버스 회사는 지금도 적자 때문에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형편인데 버스를 늘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 증차보다 교통 공학적으로 월등히 더 좋은 접근 방식은 바로 버스 ‘증속’이다. 속도를 올림으로써 동일 대수의 차량으로 더 높은 회전율을 내는 것이다.

버스 한 대가 20km짜리 노선을 시속 20km로 완주하면, 그 노선의 버스 배차간격은 1시간이 된다. 여기에다가 동일 속도의 버스를 한 대 더 추가하면 배차 간격을 30분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버스의 속도를 40km/h로 올리면 버스 한 대의 운영 비용만으로도 30분 배차를 달성할 수 있다. 더구나 승객은 예전에 비해 절반의 시간만으로도 목적지에 갈 수 있으며, 승객이 빠른 버스로 몰리는 덕분에 자가용이 줄어든다면 가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하겠다.

결국 버스가 빨라지면 대중교통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운임 인상 요인이 줄어들며, 대중교통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는 게 아니라 흑자 경영의 토대가 마련되는 효과가 생긴다. 대도시 간선 도로에 버스 전용 차선이 바로 이 효과를 의도하고 만들어져 있다.
(한 우진의 교통 평론 http://blog.naver.com/ianhan/120005191675 참고)

2.

흔히,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이라고 그런다. 물고기를 그냥 주는 것보다도,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더 좋은 일이라고 그런다. 그런 것처럼, 경제에서도 사실 가장 좋은 복지는 성장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마치 지금 사형 제도가 오· 남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져 있듯, 지금은 무슨 산업혁명 초창기도 아니고 대부분의 기업주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선동하는 것 같은 그런 악마가 아니다. 자기가 먹고 살 만하고 사업을 마음껏 해서 돈 많이 벌 수 있겠다 싶으면 투자와 고용에 '복지'까지도 저절로 이뤄지게 돼 있다. (노동자와 기업주 사이의 균형 있는 시각을 원한다면 송 현 선생님의 이 글도 일독을 권한다.)

또한, 복지라는 건 도덕 해이를 야기할 정도로 그냥 공짜로 퍼 주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복지 수혜자라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일을 하고,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쪽으로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 기회의 평등일 뿐이지, 결과물의 일방적인 평등이어서는 안 된다. 성경도 율법을 보면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를 그렇게도 강조하면서도, 신체 멀쩡한 사람에게 공짜 퍼주기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허용 안 한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먼저 돈을 빼앗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직이다. 그저 표나 더 얻으려고, 어차피 내 돈이 아닌 쌈짓돈이니까, 뒤의 결과를 생각도 안 하고 밑 빠진 독 메우듯이 세금을 탕진하는 정치인에게 정부를 맡겨서는 안 된다. 자기가 더 잃을 게 없는 처지라고, “에라이 이 더러운 세상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지지하는 것..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랬다간 안 그래도 더러운 세상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더 망가지게 된다.

도대체 무슨 돈으로 시행할지 대책을 알 수 없는 일방적인 무료 급식, 반값 등록금, 그리고 앞서 말한 ‘버스 증차’ 같은 것보다는.. 차라리 굳이 고학력이 필요 없는 직종에는 무리하게 대학을 안 간 사람도 충분히 대우받게 사회 구조를 조정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리고 버스 회사의 적자만 한없이 세금으로 때울 바에야, 차라리 과감하게 혼잡한 도로의 차선 하나를 버스 전용 차선으로 떼어내서 버스 회사가 스스로 버스의 경쟁력을 올리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 심지어 당장은 자가용 운전자들로부터 반발과 욕 얻어먹는 것까지 감수하고라도 말이다. 어느 분야든 이런 일을 추진해 줄 지도자는 없는 걸까?

3.

솔직히 모든 사람이 이유를 막론하고 똑같은 부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며 성경적으로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저런 불가능한 일을 선동하면서 사회 계급을 갈아엎으려다 다같이 쫄딱 망해서 똑같이 가난해지기는 아주 쉽다. 역사적으로 공산주의가 실패했듯이 말이다. 공산주의의 폐해는 대학교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팀플(조별 과제) 하나만 해 봐도 실감할 수 있다고 그런다. “능력껏 벌어서 필요한 만큼 쓴다”가 얼마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발상인지를 말이다.

그러니, 파이의 절대적인 크기를 어떻게든 키워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부자는 훨씬 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접근 방식이 현실에서는 그나마 더 나은 발상인 것이다. 오늘날 다뤄지는 수정 자본주의라는 것은 그 가난한 사람과 부자 사이의 비례상수 정도만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자, 이제 결론을 말하겠다.나는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철도 덕후이다. 그런데, 나의 성장 과정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었다. 철도에만 완전 미치고 빠져 있느라 나의 자폐 외곬 기질이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건 아주 큰 오해이다.

오히려 철도 덕분에 나는 자폐(?) 기질이 그나마 해소되었고,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식견까지 전무후무한 정도로 올라갔다. 내가 늘 말하지만 대표적으로 음악부터 시작해서 과학, 공학, 역사, 지리 등~ 심지어 신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경제에다 비유하자면 철도는 김 용묵이라는 국가 안에 존재하는 공룡 대기업이다. 그런데 철도에 100만큼 몰두하는 덕분에 다른 인문계, 이공계, 예체능 등까지 최대 20~30 정도는 혜택을 입었다는 뜻이다. 철도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철도가 창출한 각종 고용과 투자 덕분에 다른 분야도 부자가 되었다.

철도마저도 없었으면 이런 효과는 있을 수 없었다. 당장 겉으로 보이는 빈부격차 양극화를 해결한답시고, 철도 오덕질 해 대는 게 보기 안 좋다고 철도에다가만 각종 규제를 넣고 세금을 때리는 식으로 문제를 접근했다면, 철도는 물론 그나마 좀 살아나던 여타 분야 관심사까지 죽게 됐을 것이다.

흔히 박 정희 좋아하는 사람들은 40여 년 전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대동맥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옛날을 회상하는데, 나의 경제의 대동맥은 바로 Looking for you의 리듬과 박자에 맞춰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는 철도가 내 인생에 지금까지 끼친 선한 간증을 언제든지 누구에게라도 증언할 수 있다..

1부터 3까지 서로 비슷하면서도 문맥이 다른 여러 비유들을 동원하여 글을 썼다. 요컨대 어느 분야든, 즉 개인이든 국가든, 발전을 위해서는 인위적인 규제나 일방적인 퍼주기가 아니라,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시너지 효과와 선순환을 유도하는 시스템을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 경영을 해야 함을 느낀다.

덧붙이는 말)

어떤 유명인사는 “대통령 마음껏 욕해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표현의 자유는 아주 충분하며 그 사람 역시 그 자유를 이용해, 지금까지 신변의 위협 없이 대통령 욕을 실컷 해 왔을 텐데, 도대체 또 뭐가 부족해서 겨우 그런 소박한 소원과 목표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와 대조적으로, 투스타 출신의 유명한 모 전직 대통령의 동상과 사진 앞에서는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노인들이 아예 합장과 분향까지 하면서 “님은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이러기까지 한단다. 물론, 정치 성향이 그와 다른 젊은이들은 아주 꼴깝이라고 그런 모습을 보기를 역겨워한다.

난 똑같이 찌질하게, 반대편의 '슨상님'이나 거론하면서 네거티브로 나가지는 않겠다. 오히려 반대로 긍정적으로 진취적으로 결론을 내려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가 무슨 북한도 아니고, 그 대통령을 숭배(?)하지 않으면 체포, 구금, 고문하는 나라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옛날을 살았던 사람들은 북한의 무력 도발과 악행에 얼마나 이골이 나 있었고 얼마나 뼈저린 가난에 한이 사무쳐 있었을까? 난 “인간이 배가 고프면 인간성이고 이념이고 나발이고 그런 거 없다.”를 아주 굳게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난 이렇게 선언한다. “대통령 마음껏 욕해도 되는 세상”을 바랄 바에야 차라리, “저 투스타보다 더 존경받고 빠돌이 빠순이가 더 많은 대통령”이 좀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성경적으로 볼 때 의로운 훌륭한 통치자가 반드시 인기가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내 말은, 문제의 말단 결과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 나라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지도자, 재임 중이 아니라 재임 후에 정말 진심으로 우호적인 평가가 나오는 지도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런 지도자라면 장기 집권 내지 독재 좀 해도 된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겨우 5년 단임 만에 쇼부를 볼 수 있겠는가. 사실, 지금의 1987년 헌법 자체도 20년이 넘게 장수했고 좀 업데이트 할 때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12/12 08:32 2012/12/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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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릿 인자로 또 템플릿 타입을 받는 타입의 변수 선언이

A<B<C > > d;
이런 식으로 돼 있는 옛날 C++ 코드를 보니 문득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는 템플릿 인자를 닫는 > 가 중첩될 때, 여러 >를 >>로 붙일 수가 없었다.
타입 선언인지 일반 연산인지 문맥을 고려하지 않는 전통적인 parser는, 이것을 비트 shift 연산자로 인식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오류크리.
그래서 > 사이를 강제로 띄워 줘야 했는데 이것이 보기에 그리 좋지는 않음이 자명한 노릇이었다.

일단 C++ 계보의 언어들은 문법 차원에서 변수 선언을 명시하는 토큰이 없고(파스칼의 var과 콜론, 베이직의 Dim과 as 같은), 달랑 “타입 변수명”이라는 아주 문맥 의존적인 문법만을 바탕으로 변수 선언을 컴파일러가 알아서 추론해야 하기 때문에 파싱이 까다로운 게 사실이다. 게다가 C++부터는 변수 선언은 객체 선언과 동급이 되어, 함수 몸체 내부 어디에서나 마음대로 올 수 있지 않은가.

훗날 C++ 언어가 C++11로까지 확장되면서, 언어가 명시하는 스펙 자체가 바뀌면서 >>를 붙여 써도 괜찮게 되었다.
비주얼 C++의 경우, 2003은 >>가 확실하게 인식되지 않았는데, C++11이 정식으로 제정되기 전부터 2008쯤부터 이미 >>를 지원하고 있었다.

이런 문법의 변화로 인해, 클래스 A는 type을, 클래스 B는 int를 받는 템플릿 클래스라고 했을 때

A<B<30>>1> > p;

라는 코드가 과거에는 30>>1이 15라고 계산되어 컴파일이 되었지만, 이제는 되지 않는다. >>가 템플릿 인자를 닫는다는 의미로 먼저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함수 호출 문맥에서는 ,가 콤마 연산자가 아니라 인자 구분자로 먼저 인식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바뀐 문법에서는

A<B<(30>>1)>> p;

라고, 뒤의 >를 붙일 수 있는 대신 진짜 템플릿 인자 내에서의 산술 연산은 괄호로 싸 줘야 <, > 사이의 모호성을 막을 수 있다.
사실, 템플릿 인자 안의 숫자는 어차피 컴파일 시점에서 값이 다 결정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복잡한 연산이 들어갈 일은 거의 없다. 산술 연산을 괄호로 반드시 싸야 하게 만들고 그 대신 템플릿 인자의 < >에 편의를 더 주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정책인 것이 사실이다.

뭐, 괄호도 해 주고 >를 띄워 주기까지 하면, 어느 구닥다리 C++ 컴파일러에서나.. 컴파일 가능한 코드를 만들 수 있긴 하지만, 미관은 제일 떨어지겠지. ㅋㅋ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일반 함수 포인터 말고, C++ 멤버 함수 포인터를 명시할 때 그냥 이름만 써 줘도 괜찮은 수준이었는데
나중에는 반드시 &를 붙이고 scope도 명시해 줘야 하게 문법이 좀 더 엄격하게 바뀐 걸로 기억한다. 한 VC++ 2005쯤부터이다. for(int x=0; ... )에서 x의 scope만큼이나 전형적인 호환성 문제이다.

이렇듯 C++이 어제나 오늘이나 큰 뼈대는 변함없고 계속 새로운 기능이 추가만 되는 것 같아도,
이미 있던 문법도 야금야금 바뀌어 온 게 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2/12/10 08:30 2012/12/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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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고속철 정차역 총정리

서울, 부산: 경부 고속철의 시종착역이다. 서울은 대부분의 시내 구간을 여전히 기존 경부선 재래선과 공유하는 반면, 부산은 2차 구간이 개통하면서 대부분의 시내 구간을 지하 부설 신선으로 지나게 되었다는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서울 방면 차량 기지는 서울 이북의 경의선 행신 역에 있으나, 부산 방면 차량 기지는 더 남쪽에 있지 않다.

대전, 동대구: 고속철의 대표적인 중간 정차역으로, 고속철 노선 중 기존 경부선 일반열차와 그대로 환승이 가능한 유이한 역이다. 앞으로 수 년 뒤면 여기에도 시내 구간을 지상 고가로 통과하는 고속선이 개통되어 고속철이 기존 경부선과 완전히 분리되고 시내 통과 시간은 더욱 단축될 예정이다.

광명: 경부 고속철의 서울 서쪽 첫 정차역이다. 승강장이 반지하인 관계로, 전국의 일반열차 철도역 중 역사 전후로 선로가 지상으로 전혀 보이지 않는 유일한 역이라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영등포-광명 셔틀 전동차가 다니고 있다. 서울-대전-동대구-부산과 이 광명을 제외하고, 앞으로 소개되는 나머지 고속철 정차역들은 모두 승강장이 지상 고가에 있다.

천안아산, 오송: 이들은 대전-서울 사이 구간에 신설된 고속철 정차역인 동시에 일반열차 철도역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역들이다(각각 장항선, 충북선). 전자는 T자형으로 다소 치우친 환승이고 두 역이 서로 이름도 다르지만, 후자는 +자형으로 꽤 정확히 포개진 형태이다. 전자는 고속철 건설 당시부터 계획되어 있었지만 후자는 PIMBY 현상으로 인해 나중에 추가된 영 좋지 않은 역이다.

김천구미: 대구-대전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정차역으로, 오송· 울산과 더불어 고속철 2차 개통 때 추가로 건설된 역이다. 하지만 김천과 구미 어느 도시로부터도 시내에서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안 좋고 역세권도 안습하다.

신경주: 비록 2차 개통 때에야 추가로 개통했지만 고속철을 구상하던 시절에 애초부터 계획은 돼 있던 역이다. 고속철 선로가 가장 급격한 커브를 트는 지점에 있다. 앞으로 동해남부선이 이쪽으로 이설되어서 이 역은 기존 동해남부선-중앙선 경주 역의 역할까지 흡수하는 환승역이 될 예정이다. 고속철 역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금정 역 같은 방향별 복복선 승강장이 생긴다.

울산: 울산 시내에서 굉장히 멂에도 불구하고 이용객이 예상치를 크게 웃돈 덕분에, 2차 신설역 중에서 그래도 가장 성공하고 잘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 역이다. 고속철 울산 역은 서쪽 극단에 있고, 기존 동해남부선 울산 역은 태화강 역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동쪽 극단에 계속 공존할 예정이다. 참고로 울산 공항도 울산의 동쪽 끝에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2/12/08 08:33 2012/12/0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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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보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사람의 믿음을 세우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한 이래로, 이 세상에는 인간이 같은 인간을 무참히 망가뜨리고 죽이는 흉악 범죄가 양지나 음지에서 무수히 저질러져 왔다. 그 중에도 죄질이 특히 나쁜 축에 드는 것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연약한 미성년자 내지 자신을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을 납치· 감금하여 여럿이서 학대하고 괴롭히고 심지어 고문까지 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짓이다. 영어로는 torture murder이라는 비공식 용어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5년쯤 전엔 일본에서는 일명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이라 하여, 제목부터가 섬뜩한데 정말 인류 역사상 이 정도로 흉악하고 인간의 마귀적인 본성이 그대로 표출된 사건이 있었을까 싶은 torture murder가 벌어진 적이 있다. 이 글에서 구체적인 사건 내역을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겠다.

사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전인 1965년엔 미국에서도 실비아 라이컨스(Sylvia Likens)라는 소녀가 부모 사정으로 인해 타지에서 맡겨져 키워지던 중에, 집주인 아주머니와 주변 아이들로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의 학대와 왕따, 고문을 당한 끝에 겨우 1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채 경찰에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돌이켜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학대를 깊이 살펴보았노니,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라.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편에는 권세가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도다. (전 4:1)

후자의 경우 미국 인디애나 주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법정 증언을 바탕으로 2007년엔 엘렌 페이지가 주연으로 나오는 An American Crime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콘크리트 살인 사건도 자국 내부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건 그냥 AV 배우를 동원해서 선정적인 고어물 성인물 영화로 돈이나 벌려는 의도에 가까웠다. 그 반면, 미국의 영화는 다른 나라도 아니고 꿈과 희망이 있는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 불리며 소위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졌다고 하는 아메리카라는 나라에서까지, 옛날에 이런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졌었다는 분노와 자성의 뉘앙스가 제목에 담긴 것 같다. 감독이 제목을 하필 왜 저렇게 뽑았겠는지를 생각해 보시라.

난 An American Crime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보다가 열받아서 차마 끝까지 못 본다고.. 모니터를 때려부수고 악역 배우를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그런다. 아무 죄책감 없이 군중 심리로 피해자를 심심풀이 하듯 때리고 괴롭히고 굶기고 배에다가 불에 달군 바늘로 글씨를 새기고는... 나중에 법정에 가서는 “몰라요. 기억 안 나요. / 남들이 다 하니까. 그게 그렇게까지 심한 잘못인 줄은 미처 몰랐네요.” 이렇게 발뺌을 하는 뻔뻔한 인간 종자를 보노라면, 누구라도 짜증과 살인 충동이 하늘로 피어오르지 않겠는가.

게다가 저 영화는 일본 영화와는 달리 그렇게 선정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실비아가 당한 가혹행위에 비해 영화의 묘사는 정말 정말 많이 희석되고 절제되고 수위가 완화된 것이다.

처참했던 실제 사건의 결말에 비해, 영화는 감독의 희망 사항 내지 관객의 해석이 필요한 여지를 결말에다 두리뭉실하게 남겼다. 실비아가 죽지 않고 거투르드 아줌마의 집을 탈출하여, 부모의 품에 안기는 설정이 들어간다. 그런데 다시 거투르드의 집으로 돌아가니 자기의 몸은 죽어 있고, 그와 함께 탈출한 줄 알았던 실비아도 싹 사라지고 다시 고향의 회전목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실제로 실비아는 극도의 영양실조에다 구타로 인해 발생한 뇌와 내장의 출혈이 도지면서, 목욕 도중에 사망했다.)

우울한 실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답게,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도 단조풍의 굉장히 구슬픈 여성 아카펠라 노래이다.

이 영화는 세상에서의 고통과 아픔, 슬픔으로부터 벗어난(상징적으로나마) 실비아가 혼자 회전목마에 탄 채, 다음과 같은 독백 대사를 읊는 것으로 쓸쓸하게 끝난다.

And me? I returned to the carnival. The only place I always felt save.
Reverend Bill used to say, “For every situation God always has a plan.
I guess I'm still trying to figure out what that plan was.

(모든 사건이 일단락된 뒤) 그리고 난.. 놀이동산으로 돌아왔어요. 내 마음의 유일한 고향으로요.
빌 목사님은 전에 이렇게 얘기하셨죠.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은 뜻하신 계획이 있으시다고..
난 아직도 그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찾아 헤매는 중인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분은 이 대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내가 보기에 이것은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실비아 같은 불쌍한 아이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했나?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긴 하나?”와 같은 식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원망 메시지를 아주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한 것이다.

이런 거야 세상의 불신자들이 역사상 한두 번 제기해 온 의문이 아니니 이상할 것 없다. 그리고,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상에서 흥행하는 영화들치고 성경에 대한 믿음을 세워 주는 친기독교 성향의 결론으로 끝나는 게 어디 하나 있긴 하던가? 예수 믿는 사람은 십중팔구 무개념 광신자로 묘사되거나, 개나 소나 사랑이니 용서니 하는 것밖에 모르는 위선자, 아니면 위급한 상황에서 쩔쩔매고 '기도밖에 할 줄 모르는' 찌질이 루저로 나온다. 이 셋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내가 용서를 못 하는 살인범을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하냐?”(영화 <밀양>) 같은 식으로 기독교 교리를 완전히 거짓으로 왜곡하거나, 민감한 부분만 이상하게 배배 틀어 적용해서 오해를 사게 만들고, 뭔가 말이 안 되고 모순되고 몰상식한 것으로 전달한다.
또,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이런 왜곡에 불구하고 천주교 신부· 수녀에 대한 묘사는 교회 예배당이나 목사 쪽에 비해 월등히 더 낫다는 점도 특이한 점.

자, 대놓고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제외하고, 여러분이 보았던 일반적인 세속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들 중에서 본인이 지금까지 열거한 특성에서 벗어나는 작품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꼭 알려 주시기 바란다. 본인도 적극 고려하도록 하겠다.

얘기가 잠시 옆길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본인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An American Crime에서 실비아의 마지막 대사를 보아하니, 그 심상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다음 찬양이 생각 나서였다. 바로, Ron Hamilton--이름으로 검색해 보면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중년 남자 모습이 많이 뜨는데, 그분이다--Rejoice in the Lord 되겠다. 가사 첫 줄에 곧바로 “하나님은 섭리나 계획 없이는 결코 역사하지 않으신다”란 말이 나오니까.. 게다가 하나님은 실수도 결코 하지 않으신댄다!

God never moves without purpose or plan
When trying His servant and molding a man.
Give thanks to the Lord though your testing seems long;
In darkness He giveth a song.

O rejoice in the Lord. He makes no mistake.
He knoweth the end of each path that I take.
For when I am tried and purified,
I shall come forth as gold.


이 곡은 클래식한 리듬과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는 최근인 1978년에 발표되었다.
세상에는 성경의 욥이나 요셉이나 다윗처럼, 정말 억울하고 미래가 안 보이는 멘붕 상태에서도 우리 같은 현대인들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긴 인고의 시간을 잘 견딘 끝에 정말로 '황금처럼' 연단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물론 있다. (가령, 요셉은 누명이 벗겨지고 감옥에서 곧 풀려날 거라는 희망고문만 2년을 견뎌야 했다. 감옥에서 썩은 전체 기간이 2년이 아니다!)

그러나 긴 시간을 참고 견딘다고 해서 다 그 사람들처럼 언젠가 이 세상에서 인생을 반드시 펴는 건 아니다.
또한 실비아 라이컨스처럼 연단이 아니라 아예 폭력과 학대의 희생양이 된 채, 피지도 못하고 져 버린 인생도 역사적으로 한둘이 아닐 것이다.
찬양 가사는 세상의 참혹한 현실과 비교해 보면 그저 비현실적인 망상에 불과한 것이며, 작사자는 그저 책임지지 못할 말을 쓴 것일까?

하나님의 뜻 중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고, 당장 보기 안 좋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 의지 명목으로 잠시 '허락하시는 뜻'도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후자에 속하는지에 대해서야 나라고 해서 뾰족한 해답을 알고 있을 리 없다.
더구나 세상적으로 잘못되고 비극을 맞이한 사람들을 죄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욥의 친구들처럼), “예수 안 믿어서”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몰상식한 짓은 난 극도로 싫어하며, 그런 식의 논리 전개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어차피 사실도 아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논증을 못 하면 마치 귀류법처럼 간접적으로, 역으로 접근할 수는 있다.
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을 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어차피 그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신에게 감사와 찬양을 돌릴 사람도 아니다. 예수님더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하던 죄인들이, 예수님이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아서 십자가에서 못을 으랏차차 뽑아 내고 초자연적으로 내려와 버렸다고 해서 그들이 그분을 믿었겠는가? (예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믿길 진짜로 원하시는 그 성품과 면모를 믿고 따르겠는가!?) 난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공개 석상에서 어떤 유명한 무신론자가 “자 신아, 네가 존재한다면 지금 3분을 줄 테니 이 공개 석상에서 날 죽여서 너의 영광을 드러내 보아라”라고 고래고래 독설을 날렸다. 성경에 기록된 그런 성품을 가진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그런다고 해서 진짜 그 무신론자를 죽여 버릴 리가 있겠냐 말이다.

솔로몬이 명판관으로 두고두고 칭송받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가 과학 기술을 육성해서 최첨단 유전자 감식 기술로 진짜 애엄마를 논리적으로 가려내고, 집집마다 CCTV를 설치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 아이 바꿔치기 범죄 따위는 저지를 엄두를 못 내게 하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 절대로 아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적으로는 아주 훌륭한 통치자로 칭송받을지 모르나, 그건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이 세상의 죄로 인해서 인간에게 온갖 비극이 찾아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 역시 그걸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인간으로 직접 세상에 내려오시고, 비록 불신자들이 당장 이해나 수긍을 못 할 방법을 쓰셨지만 죄 문제도 해결하고 구원의 길도 마련해 놓으셨다. 단지 그 방법에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일 뿐이지..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창조주가 자기 피조물에게 학대를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려 죽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 반박당하거나 없어질 교리를 가진 체계가 아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라 불리는 이 세상의 참 신은 사람들에게 많은 걸 안 바라고 '믿음'이라는 것 하나만 원하신다. 히 11:6을 읽어 볼 것. 피조물이 있다면 창조자가 있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이건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게 바라는 것치고는 너무 소박하지 않은지? (그러나 그게 소박한 요구가 아니라는 걸, 살아 보면 곧 알게 된다.. ^^) 어떤 사람은 미국이나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 태어나는 등, 모든 물리적인 여건이 불공평함에도 불구하고 구원 조건 같은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요소는 정말로 공평하다.

설령 이 세상에서는 정말 비참하고 불행하게 살다 요절하더라도, 현세와 내세를 모두 합하면 정말로 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고, 현세에서 못 받은 것은 죽어서 다 정산받게 된다. 선과 악을 스스로 분간도 못 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죽거나 정신 지체 장애인 사람에게는 아예 특별전형까지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하나님의 경륜이 아직 여전히 100% 이해는 안 가더라도, 그렇게까지 비난할 정도로 비합리적이고 나쁘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 체계 하에서는 원칙과 질서가 있다.

신의 존재 여부는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지도 않고, 반증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의 알량한 과학으로 정체가 덥석 파악 가능한 신이야말로 허접한 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창조론자들이 즐겨 주장하듯이 이 세상이 과학적으로 절대로 우연히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식의 증거들.. 아주 좋다. 그러나 반대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부조리와 비합리도 세상엔 응당 존재하며, 그 사실을 크리스천이 굳이 부인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가령, 이 세상엔 아름다운 생명체도 있지만 파리· 모기나 바이러스나 기생충 같은 생명체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는 이런 '아리까리'한 면모가 존재한다. 하나님을 향해 굴러가려는 영적 바퀴의 정지 마찰력을 극복하려 할 때 초기에는 정말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 다음에 이어질 내 말을 주의 깊게 읽어 보아라. 그걸 극복하는 데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 논리 같은 다른 잘난 스펙이 필요한 게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게 돼 있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고 고맙게 느껴지지 않는가??

뭔가 그럴싸한 기독교 변증을 기대하고 있던 불신자라면 이런 무데뽀 정신승리법(?) 같은 본인의 결론에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이게 엄연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신 걸 난들 어떡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선뜻 '믿음'을 선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증거도 먼저 남겨 주셨다. 이 갈림길로 인한 유신론 무신론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나, 그 믿음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정 사건에 따라 좌지우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갖고 있던 모든 편견을 버리고, 진지하게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 각자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2/12/03 19:27 2012/12/03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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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의 템플릿에서 인자로 쓰이는 것은 정수 아니면 자료형이다. 자료형은 class 또는 typename으로 명시해 줄 수 있으며, 이 자료형 인자는 (1) 클래스 내부의 멤버 변수의 자료형, 또는 (2) 멤버 함수의 인자나 리턴값의 자료형으로 쓰일 수 있다.

template<typename T>
class Foo {
public:
    T Bar;
};

그러니 위와 같이 생긴 클래스는 Foo<int>, Foo<char *>, Foo<RECT> 등 여러 형태로 활용할 수가 있는데,
이건 뭐지..?

Foo<int(PCSTR)> f;

이것은 int (*)(PCSTR)처럼 함수의 포인터를 지정한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타입 문자열이다.
이것은 템플릿 인자에서만 허용되는 문법인데, 클래스의 멤버 함수의 프로토타입을 지정한 것이다. 이렇게 선언된 클래스에서는 Bar가 멤버 변수가 아니라 아래와 같이 호출 가능한 멤버 함수가 된다! 클래스의 형태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int x = f.Bar("hello, world!");

물론, Bar 함수의 몸체는 사용되는 템플릿 인자별로 모두 정의를 해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링크 에러가 난다.

template<>
int Foo<int(PCSTR)>::Bar(PCSTR p)
{
    return (int)p;
}

결국 멤버 함수의 인자와 리턴값이 템플릿의 인자에도 들어가고 함수 자체에도 중복 기재되는 셈이다.

Bar에 대해서 f.Bar()처럼 함수 호출이 가능하려면 Bar는 ()연산자가 오버로드되어 있는 클래스 개체이거나, 함수 포인터 타입이거나 함수 포인터로 형변환이 가능한 클래스 개체여야 한다.
그런데 그에 덧붙여 클래스 멤버 문맥에서는 위와 같은 멤버 함수 선언도 들어갈 수도 있으니, C++의 템플릿은 정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virtual int(PCSTR) 같은 가상 함수 선언도 가능하다!

export 키워드가 괜히 백지화된 게 아님을 느낀다. 템플릿은 워낙 너무 방대한 언어 규격이기 때문에, 템플릿의 몸체를 다른 번역 단위로부터 끌어다 쓸 수 있으려면 템플릿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좀 더 좁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멤버 함수를 완전히 customize하는 문법은, 단순히 신기한 것 이상으로 활용 방안이나 유용한 구석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C++ 프로그래밍을 10년이 넘게 해 왔지만, 템플릿으로 저런 것까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건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비주얼 C++ 2003도 저게 가능할 정도이니 이건 최신 문법은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그 반면 xcode에서는 이게 지원되지 않는다.

함수 개체를  함수의 인자로 전달할 때는 전통적인 함수 포인터뿐만이 아니라 C++11에서 추가된 람다 함수 오브젝트를 손쉽게 넘겨 줄 수 있다. 이때 템플릿이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한다. 가령, 정렬 함수를 호출할 때 비교 함수를 익명 함수로 간단히 알고리즘을 짜서 전해 주면 되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그 반면 클래스가 함수 오브젝트를 멤버로 받는 건 아무 의미가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 대신 클래스 멤버가 템플릿일 때는 이것이 멤버 변수도 되고 아예 멤버 함수도 될 수 있는 자유도가 제공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2/12/01 19:21 2012/12/0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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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소식, 내 계획 짬뽕

1.

2012년이 다 저물어 가고 있다.
일단, 올해 하반기에는 문화· 정치적으로 모처럼 아주 기쁜 소식이 있었으니 그것부터 먼저 회고하고 넘어가야겠다.
바로 한글날이 22년 만에 다시 빨간날로 회복된 것! 그것도 미우나 고우나 이 명박 정권 때 이뤄졌다.
결정이 하도 지지부진하니 내년 달력을 만드는 업자들이 “이거 한글날은 빨간날로 해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빨리 결정해 주세요!” 라고 독촉을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결국은 통과됐다.

알다시피 한글날은 원래 과거의 식목일처럼 공휴일인 기념일이었다. 그랬는데 노 태우 정권 때 공휴일에서 제외되어, 근처의 '철도의 날', '학생의 날'처럼 안 쉬는 여러 기념일 중 하나로 전락했다.
노 무현 정권 때는 국경일로 승격됐으나, 제헌절처럼 “안 쉬는 국경일”이라는 희대의 이상한 어정쩡한 날이 되었다.

그래서 한글 학회, 한글 문화 연대 같은 순수주의 어문 운동 단체에서는 수 년째 정부를 상대로 청원을 넣고 시민 계몽을 하고, 올해는 특히 온갖 기자 회견과 퍼포먼스를 연 끝에 드디어 승리를 쟁취해 냈다.
너무 무리하게 말을 순화하자는 식으로 약간 극단적인 주장에 모두 공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단체들이 정말 훌륭한 일을 해 냈다. 잘한 건 잘한 것으로 인정하고 이들의 열정을 칭송해 주자.

한글날 공휴일 지정을 가로막아 온 최종 보스는 역시나 경제 단체였다.
경제 단체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산업 기능 요원 제도도 병무청이 단호하게 못 없앴다는 점을 감안하면, 얘들이 하는 짓이 다 병크는 아니다. 허나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논리로 한글날 공휴일화를 반대하는 건 이미 안 통하는 논리이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노동자들의 근로 시간이 이미 세계 최상위를 다툴 정도로 길며, 우리나라는 대체 공휴일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날짜수만 평균 이상이지 실질적인 노는 날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설령 공휴일이 정말 너무 많다면, 성탄절과 석가탄신일부터 칼질을 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종교 공휴일 때 노는 나라는 주변의 CJK 중에서도 K밖에 없다. 이것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인데 왜 국민들 뜻대로 선뜻 안 되는 걸까?

“국경일 중에 삼일절 같은 날은 중요한 날이긴 하지만, 딱히 기쁜 날은 아니다. 그러나 한글날은 해당 국가의 정치나 종교와 관련이 없으면서 오로지 문화적으로 레알, 진정으로 경축할 가치가 있는 기쁜 날이다.” 이 점을 기억하자.
한글날도 공휴일이 됐는데 이제 사형 집행만 좀 부활하면 정말 잃어버려진 과거 회복이고 기쁜 일이 될 텐데...

2.

자, 그리고 비주얼 스튜디오 2012를 드디어 회사에서 깔아서 써 봤다.

외형이 또 심하게 달라졌다. 아무리 버전업이 돼도 3.x나 6.x나 아이콘 하나 안 바뀌고 외형이 심하게 변화가 없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비하면 MS의 변화를 위한 변화 저력은 정말 대단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2012는 우중충한 군청+보라 배색이던 2010과는 달리, 은색· 회색· 흰색 배색으로 확 바뀌었으며, 2010과는 달리 non-client 영역에 일반적인 thick frame조차도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옛날의 아래아한글 97급으로 외형이 독자적인 형태가 됐다는 뜻이다.

16컬러풍으로 회귀한 아이콘 디자인, 그러데이션에서 단색(solid color)으로, 동그란 모서리에서 각진 사각형으로 회귀한 건 영락없이 10여 년 전의 VS .NET 첫 버전을 떠올리게 하는 외형이다. 아니, 윈도우 8 자체가 전반적으로 복고풍이다.
물론, 배색만 단순해졌을 뿐, 안티앨리어싱이 적용되어 아이콘의 색상 수 자체는 여전히 트루컬러급이다. 16컬러 “풍”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진짜 16컬러로 후퇴한 건 아님. ㅎㅎ

외형뿐만 아니라 2012는 기능도 무척 강화되어, IDE 에디터에서는 사용자가 선언한 명칭이 청록색으로 따로 표시되고, 굳이 Ctrl+Space를 누르지 않아도 첫 타부터 인텔리센스 자동 완성이 슝슝 튀어나온다. 오오~~

그리고 성능 분석과 프로파일링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으며, 소스 코드 정적 분석 기능이 드디어 추가되어 고품질 코드를 만드는 데 더욱 기여하게 되었다. 정적 분석 기능은 이전 버전의 VS에서도 있긴 했으나, 제일 비싼 엔터프라이즈급 버전에만 있었기 때문에 개인 인디 개발자가 접하기는 어려웠다.

<날개셋> 당장 다음 버전은 여전히 VS 2010으로 빌드할 예정이나, 이 버전의 사용 기간은 의외로 짧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적 분석을 돌려서 소수나마 코드에 존재하는 몇몇 논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3.

지난 12년간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통해 얻은 것은

  • 수능, 내신 다 씹어먹고 대학 진학 성공
  • 한글 연구 진영에서는 절대부동의 인지도 확보. 병역특례 TO도 사실상 그것 덕분에 얻은 거나 마찬가지
  • 인디 소프트웨어 개발자(개인 개발자) 커뮤니티에서의 인지도 확보
  • 보수적으로 잡았을 때 국내외에 몇천 명 정도로 추정되는 사용자와 잠재적 지지자. 국내는 물론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나라의 현지인이나 교포에게서 한글 로마자 입력 방식, 신세벌식, 세벌식 무한 낱자 수정 등등을 고맙게 잘 쓰고 있다는 연락 받았을 때 굉장한 보람 느꼈음.
  • 몇 차례의 대회/소프트웨어 공모전 입상을 통한 통산 몇백만 원 정도의 상금 수입
  • 거기 들어간 기술의 일부를 떼어 주는 개인 개발 용역으로 통산 1천몇백 만원 정도의 수입 (그리 큰 액수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덕업일치를 이루면서 번 돈이라는 게 중요)
  • 학부 시절, 졸업/개별연구 명목으로 5학점 정도의 전공 학점 기여. 학술지 논문 1회 게재
  • 석사 논문 주제와 학위

그리고 무엇보다, 한글을 내가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도 입력하고 다룰 수 있으면서도 마치 기계식 타자기를 컴퓨터로 옮겨 놓은 듯한 한글 오덕질용 작고 가벼운 에디터. 그리고 Windows 운영체제에서는 거의 만렙을 찍은 한글 IME가 내 컴퓨터에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정신적 만족감. 그걸 내가 혼자 다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성취감. 이로부터 파생되는 한글에 대한 자부심, 애국심 등등이다.

다음으로 잃었거나 어쨌든 줄어든 것은..

  • 적절한 대학 GPA (ㅋㅋㅋㅋㅋ)
  • 의대,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등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 쌓을 기회 (정말 하나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 여타 분야나 IT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익힐 여유
  • 연애와 결혼 기회 (...)

이 정도면 수지 맞는 장사이려나..? ㅋ

4.

내가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한국어 공학'에 비해서 '한글 공학'의 위상이 굳건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한국어 공학과 한글 공학은 목표는 비슷하지만 다루는 대상과 방법은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내 관심분야는 '한국어 공학'이 아니라 '한글 공학' 쪽이다.

한글 자체만으로 오덕질을 할 거리가 전혀 없고, 더 발전할 거리가 보이지 않았다면 나도 그냥 사전학, 코퍼스 언어학, 자연 언어 처리 같은 데 관심을 뒀을 수도 있다.
아니, 언어학 쪽에 관심을 둘 필요조차 없이 그냥 자동차나 컴퓨터, 심지어 철도만 연구하는 평범한 공돌이의 길을 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자가 저렇게 있는 걸 보니, 그걸 연구하지 않고서는 다른 분야는 도저히 못 파겠다..

물론, 지금 분위기를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지금이 옛날 같은 타자기나 XT/286 컴 시대도 아니고 문자 기계화 자체만으로 뭘 더 연구할 게 있는지 의아해할 만도 하다.

그래서 '한글 공학'은 문과 계열보다 오히려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은 여타 분야 이공계(특히 입력기 쪽)나 디자인 분야(당연히.. 글꼴 쪽) 종사자들이 더 연구하는데.. 그쪽에서는 반대로 언어학 기반이 없으니 연구의 깊이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글은 주변의 한자나 라틴 알파벳이나 일본 가나와는 구조가 확연히 다른 문자이고, 그 조합 원리 자체만을 이용해 얼마든지 오덕질을 하고 입출력 기능을 더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다. 내가 늘 말하지만 한글은 두벌식으로만 입력하기에는 너무 아깝고 천편일률적인 정사각형 네모꼴로만 쓰기에도 너무 아까운 문자이다. 그래서 그런 학문 경계들을 허물고, 한글 입력과 출력 모두에서 새로운 솔루션을 만드는 게 꿈이긴 하나...

대학원의 박사 진학은 일단 좌절되었다.
나는 정말 이 분야를 가고 싶고 특정 교수의 학풍을 계승하고 싶은데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진 것이라면, 몇 번이고 입시에 재도전을 했겠지만, 나는 그런 경우가 아니니 내 연구 주제를 감당이나 지도를 못 하겠다고 교수님들이 날 받아 주지 않았다.

내 연구 주제는 특정 단과에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딱 석사를 마쳤던 대학원에서 박사를 안 받아 주면 나는 딱히 다른 대학원을 갈 데도 없다. 그러니 난 최종 학력은 그냥 석사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논문 쓰는 게 힘든 한편으로 재미있었고 이런 걸 또 쓰라면 쓰겠는데, 그걸 하지 말라니 어쩔 수 없지. 이해를 하며, 원망은 안 한다.

한편으로는 이게 밥벌이가 돼야 할 텐데 하는 우려도 좀 든다. 당장 내가 몇 달 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 날개셋 마이너 업데이트 (6.7x. 다음 달 초-중순쯤 나올 예정)
  •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놓은 것들에 대한 문서를 재정비. 홈페이지와 프로그램 도움말 주요 내용을 영작
  • 날개셋 메이저 업데이트 (6.9? 7.0? 윈도우 8용 IME 온전히 완성)

정도. 이미 내가 벌여 놓았고 관성 때문에 계속 진행해야 하는 일들은 이 정도에서 몇 개월 안으로 슬슬 끝을 볼 생각이다.
그 다음으로는 공부가 너무 소홀했던 IT 여타 분야 기술과 지식도 좀 독학하고, 무엇보다도 글꼴로 체제 변환을 하여 비밀 프로젝트를 몇 년간 진행할 예정이다.

그 결과물을 학계와 업계에 발표했는데도 이와 관련된 다른 일자리나 추가 수입이나 반향이 없다면..
2015년쯤 이후부터는 본인도 한글 관련 연구는 다 접고, 그냥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돌아가거나 심지어 철도 업종으로 전업을 하거나, 공무원/고시 준비생-_-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뭐, 그 정도의 최악의 상황까지도 각오는 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20대와 30대 초반을 정말 건전하고 뜻있는 일을 하는 데 정열을 바쳤다는 사실에는 어떤 경우든 후회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2/11/29 08:29 2012/11/2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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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전설이 아닌 레전드 급의 SF 영화이다.
이게 1968년 4월에 개봉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때는 아직 인터넷은커녕 그 전신인 알파넷(1969)조차 없고,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폴로 계획은 겨우 무인 테스트만 하던 시절. (첫 유인 비행인 7호가 1968년 10월에 시행) 평면 컬러 모니터? 그런 게 어디 있었겠나.
그때 스탠리 큐브릭은 CG 없는 아날로그 기술만으로 인간이 역사상 띄운 적이 없었던 디자인의 우주 정거장과 우주선을 최강의 정확한 고증으로 깨끗한 화면에다 담아 냈다!

새까만 우주 세트에다가 우주 정거장과 우주선 구조물은 한 프레임씩 눈꼽만치 이동시키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극중에 나오는 매뉴얼과 문서에는, NASA와 우주 개발 산업체들 자문까지 받은 실제 우주 여행 관련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세상에, 팬 아메리칸(팬암) 항공사 마크가 그려진 우주 왕복선이라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냉전 상태에서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저 때는, 지금으로부터 한 30년만 뒤면 저것들이 다 현실이 되어 있을 거라고 충분히 예상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SF는 SF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지금은 오히려 2001년이 10년도 더 전의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격세지감.. ㅜ.ㅜ.

여담이지만,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묘사된 우주 장면과,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브루드워 말고)의 오프닝 동영상에서 묘사된 우주 장면을 대조해 보니 흥미롭다. 전자는 후자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고채도로 천체와 발사체를 그렸으며, 발사체의 불꽃이나 그림자가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물론 만들어진 시기가 서로 넘사벽 급으로 차이가 있으니 기술 수준의 차이를 비교하는 건 정말 아무 의미가 없다.

2. Who Framed Rogger Rabbit?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

영어에는 뭔가 “만들다, 구성하다, 짜맞추다”라는 아주 건전한 의미를 지닌 단어에 안타깝게도 “날조· 위조· 변조하다, 누명을 씌우다”라는 뜻도 같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제철소, 대장간라는 뜻인 forge(스타크래프트 프로토스 건물!)가 그렇고, 비슷한 맥락으로 frame도 그렇다. 성경에서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frame 당해서 옥살이를 했다고 생각하면 용례가 딱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어쨌든, 저 제목의 영화.
만화영화도 아니고 실사 영화도 아니고, 요즘 같은 100% CG 영화도 아니고..
실사와 2D 수제 만화의 합성이라는 초유의 하이브리드 영상물이다.
비록 합성 영화라는 장르가 저게 최초나 최후인 것은 아니지만, 합성 영화 중에서 제일 유명한 작품은 단연 저것이다.

저건 단순히 실사에다가 그림을 끼워 넣은 정도의 수준을 훨씬 초월한다.
만화 캐릭터에도 현실 세계의 광원과 그림자가 반영되어 입체감이 느껴지는 건 물론이고,
현실의 인물과 만화 캐릭터가 같이 만화의 자동차를 타고 현실의 도로를 주행하며,
현실의 인물이 만화 세계의 길을 가고 건물로 들어간다.
디즈니 만화의 캐릭터와 말괄량이 뱁스의 캐릭터가 한데 등장하는 건 덤.
정말 어떻게 만들었을지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무려 1988년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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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 후반이 PC 게임이 2D에서 3D로 넘어간 과도기라면,
그보다 앞선 1990년대 초· 중반은 영상물에 CG가 차츰차츰 도입되던 과도기였다.
그 이름도 유명한 <쥬라기 공원>이 나온 게 이 시기이다. 없는 공룡을 만들어 내기 위해 CG에, 로봇에, 미니어쳐에다 별의별 기술이 다 동원됐다. 그래도 기술적인 한계가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티라노사우루스와의 일대일 조우 같은 근접+액션 씬은 불가피하게 비 내리는 밤에 일어나는 일로 설정해야 했다고.

<포레스트 검프>에서 죽은 유명인사가 영화 출연진과 얘기를 나누고(존 레논, 케네디..) 사지 멀쩡한 배우가 다리 없는 상이 군인으로 바뀌어 나오는 것은 CG 약간에다가 필름 한 장 한 장씩 수작업으로 편집한 노가다라고 한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특수 효과를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실사 영화뿐만 아니라 만화영화도 마찬가지이다. 2D 만화영화라 해도 배경에는 슬슬 CG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디즈니의 <알라딘>에서는 용암이나 궁전 같은 배경과 양탄자 캐릭터에서, <미녀와 야수>에서는 역시 무도회 배경이 그 예이다. 1994년의 <라이온 킹>에서는 웅장한 들소 떼 돌진(stampede) 장면이 CG 합성이다.

그렇게 기술이 발전한 끝에 1995년에는 윈도우 95만 출시된 게 아니라 최초의 100% CG 만화영화인 <토이 스토리>가 나왔고, 우려와는 달리 흥행에 대성공을 거뒀다. CG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예측하고 투자를 했던 스티브 잡스도 이를 계기로 Pixar 사와 함께 기사회생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이다. 애플 사에서 쫓겨났다가 훗날 드라마틱한 복귀.

그 뒤의 발전은 여러분도 다 아시는 바와 같다. 1997년, 없는 배를 정확한 고증과 함께 만들어 낸 장편 영화 <타이타닉>은 CG뿐만이 아니라 멕시코에 실물 90% 크기짜리 세트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졌다. 예산 절감을 위해 배의 좌현과 우현 중 한쪽만 실물을 만든 뒤, 만들지 않은 현은 만든 현을 기준으로 촬영하고 나서 영상을 편집하여 좌우 교대(mirroring)를 시켰다고 한다. 심지어 배우들에게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좌우를 바꾼 동작 연기까지 연습시켰다고 하니 경악스럽다. (가령, 식사로 치면 왼손으로 밥을 먹게 하는 것)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정말 영화 감독이 상상하는 그 어떤 영상도 CG의 힘으로 창조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매트릭스>, 그리고 나중에 <월E> 정도까지만 말하겠다. 10여 년 전에 <타이타닉>을 만들었던 감독은 2009년엔 <아바타>로 자기가 만들었던 신기록을 자기가 또 깨뜨리고 말았다. 2010년대부터는 아예 전용 가글을 쓰고 감상하는 3D 영상이 대세이며, 옛날에 만들었던 명작 영화들까지 3D로 다시 만들어 개봉을 할 정도이다..

반세기 전에 1950년대의 영화 <십계>에서는 하늘은 색칠한 세트인 게 노골적으로 티가 났으며, 홍해가 갈라지는 모습은 허접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영화 음악은 전자 음향이 없이 오케스트라가 직접 일일이 연주해서 만들었다. 1970년대의 <타워링>까지만 해도, 없는 마천루를 만들어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천루의 모습은 역시나 당연히 야경만 볼 수 있었다. 그랬는데 지금의 기술 수준은 정말 격세지감, 상전벽해 그 자체이다..

아, 글을 맺기 전에 한 마디. 만화영화의 유사품(?)으로는 점토 인형을 빚어서 한 프레임씩 찍는 '클레이메이션'이 있었다. CG가 아니지만 그래도 3차원 실사 영상이니 마치 CG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긴 했다. 그리고 옛날에 KBS에서는 아동용 TV 프로로 아예 대놓고 인형극을 방영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요즘은 그냥 CG에 밀려 자취를 감춘 듯하다. KTX 홍보 애니메이션도 CG로 뚝딱 만드는 세상이 됐으니. ^^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개그맨 출신의 심 형래 씨가 CG에 애착이 많은 방송인이었고 한때 영화 감독에까지 도전했으나...
용가리, D-War (, 그리고 라스트 갓파더)까지 만든 뒤 지금은 완전 처참하게 몰락했으며, 영화계의 먹튀, 황 우석이라는 치욕적인 소리까지 듣고 있다.

불굴의 열정을 높게 사 주기에는 영화라는 걸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너무 모르는 사람이었을뿐만 아니라 임금 체불부터 시작해 도덕적으로도 비리 비위가 너무 많이 폭로되었으며, 잘못은 뉘우치지 않고 툭하면 애국심 드립이나 치면서 특혜와 지원은 다 받아 놓고, 그걸로 해 놓은 게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11/26 19:37 2012/11/2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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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지름

난 초등학교 때 컴퓨터를 처음으로 접했고,
중학교 때 PC 통신,
고등학교 때 인터넷과 이메일,
대학교 때 휴대전화와 개인 홈페이지를 순서대로 접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순서가 아주 점진적이고 자연스럽고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은 무려 대학원 석사를 졸업한 뒤, 2012년 11월에야 장만하게 되었다. 대수로는 제5대째이다.
물론 이것은 어지간한 여타 사람들에 비해서는 시기적으로 굉~장히 엄청나게 늦게 도입한 것이다.

지금까지 스마트폰을 안 쓴 이유는 딱히 없었다.
이게 일부 분야에서 매우 편리한 물건인 건 사실이지만, 난 이미 PC로 필요한 정보 처리와 프로그래밍은 다 하고 있으며 이미 쓰는 전화기를 만족스럽게 쓰고 있고, 스마트폰이 그저 남들이 다 쓴다는 군중 심리만으로 그 가격을 투자하면서까지 쓸 가치가 있는 새로운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른 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또한 스마트폰은 기존 PC와 본질적으로 거의 동일한 기능이 좀 더 작은 기계에서 돌아간다는 차이만 존재할 뿐, 과거에 컴의 성능이 16비트에서 32비트로, 단색에서 트루컬러로 바뀌던 것처럼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정도의 신기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글자를 빨리 못 입력하는 게 크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찌감치 컴퓨터를 썼던 경험이, 지금은 오히려 유행에 대한 반응을 둔감하게 만든 셈이다.

그러다가 기존 전화기가 고장이 나면서 스마트폰을 도입하게 됐다. 시대가 시대인데 피처폰을 굳이 수리까지 하면서 쓸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스마트폰이 특별히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면모는 다음과 같다.

  • SNS 앱 연동
  • 지도 + 길/장소 찾기
  • 어디서나 부담없는 크기와 무게의 기기로 무선 인터넷 접속. 노트북은 WIFI에 붙는 것만 가능하지만 폰은 자기가 직접 연결을 할 수 있다.
  • 유용성뿐만 아니라 그와는 별개로 일단 품위와 간지

태생적인 한계이겠으나, 피처폰이든 스마트폰이든 모바일 기기는 문자 입력이 제일 불편한 건 변함없다. 제조사의 특성상 입력 방식이 천지인밖에 없다. 골수 나랏글 유저인 본인에게 천지인은 직관적이지 않아 너무 불편하고, 두벌식 쿼티는 각각의 버튼이 너무 작아서 오타가 잘 난다.

쿼티라 해도 그 작은 기기에서 열 손가락을 다 동원하는 타자 따위는 기대할 수 없으며, 검지-엄지의 독수리 타법의 부활이다. 역시 문자 입력은 PC를 따를 기기가 없음을 느낀다.
카카오톡을 깔고 나니 “오오, 사무엘 님 드디어 카톡 들어오셨어요?” 인사가 막 들어오는데.. 타자가 불편해서 카톡질은 오래 못 하겠다. 카톡이 있으니 PC뿐만 아니라 폰으로도 인스턴트 메신저가 하나 더 생긴 거나 다름없는 반면,. 나의 폰타는 PC에서의 세벌식 타속에 비해 고작 1/4~1/3밖에 안 된다. ㄲㄲ

또한, 쿼티 배열을 쓴다 하더라도 나오는 배열은 1~3단으로 국한이지 4단은 없다. 그래서 모바일에서는 숫자와 기호를 섞어 쓰는 것조차도 매우 심하게 불편해진다. 인터넷 URL 내부에 무심코 들어있는 숫자가 유난히도 입력하기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지는 건 PC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경험이다.

내가 예전에도 잠시 글로 썼듯이, 스마트폰에서는 두벌식 세벌식 논쟁도 PC에서와 같은 의미는 사실상 없다. 마치 유니코드 앞에서 조합형 완성형 논쟁이 김이 확 빠지고 의미가 없어진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 어차피 열 손가락으로 제대로 된 타자를 할 수가 없고 장타도, 모아치기도 필요 없으며, 세벌식은커녕 두벌식을 집어넣기에도 화면이 부족한 공간에서 굳이 세벌식에 연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모바일은 두벌식이고 세벌식이고를 떠나서, 두벌 세벌 논쟁의 주 무대이던 타자기 식 글쇠배열 패러다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어떻게든 글쇠를 구겨 넣어서 스마트폰에서도 “도깨비불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원론에 충실한 한글 입력 방식이 좀 있긴 해야 할 것 같다. 신세벌식 같은 글쇠 중첩은 확실히 이런 데서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직업병이다 보니 문자 입력 얘기가 또 길어져 버렸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서 굉장히 아쉬워진 것 중 하나는 역시나 배터리 용량이다. 하루를 놔 두니까 진짜 배터리의 절반이 싹 소모되어 버린다. 매일 충전 안 하면 못 견딜 것 같다.

과거의 피처폰은 송· 수신 안 하고 가만히 놔 두면 이틀을 놔 둬도 세 칸이 그대로 유지되었었다.
지난 가을에 회사 야유회로 제주도로 놀러 갔을 때, 본인은 전화기를 완전히 충전시켜 놓은 채로 그대로 가져서 2박 3일을 잘 버티고 돌아왔다. 별도의 충전기를 챙겨 가지 않았다. 제주도까지 가서 딱히 전화질을 할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쓰는 다른 사람들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숙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틈만 나면 자기 전화기를 충전하려고 방의 콘센트마다 난리가 났었다. 멀티탭을 챙겨 다녀야 할 지경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스마트폰 세상에 끼어든 이상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난 휴대전화는 모름지기 통화 품질 좋고 배터리 오래 가고, 충격에 강하고 튼튼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통화 품질은 모르겠지만 고가의 컴퓨터와 디스플레이와 네트워크 장비를 내장하느라 내구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배터리 많이 먹는 방향으로 변화한 게 틀림없으며, 그건 나로서는 아쉬운 점이다.

아무튼, 난생 처음으로 써 보는 스마트폰은 내 삶의 양상도 앞으로 적지 않게 바꿔 놓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앱을 본격적으로 만드는 날이 과연 올지는 모르겠다. 현실은 PC에서 윈도우 8 메트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테니.

내가 비록 PC는 맥북을 갖고 있지만 스마트폰은 안드로이드 계열이 선택되었다. 요즘 IT 트렌드를 잘은 모르겠지만, 스티브 잡스 옹의 별세 이후 애플이 잡스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중이라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지인 중에는 아이폰 쓰다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안드로이드로 갈아타는 사람까지 있다.
차라리 애플 계열의 모바일 제품은 더 나중에 아이패드를 써 볼까 싶은데, 이건 언제쯤 지르게 될지 아마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ㅎㅎ

그나저나, 스마트폰을 장만한 뒤에도 KT를 사칭하는 스마트폰 교체 광고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온다.
재고 단말기들을 처분 못 해서 이 인간들이 정말 난리인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12/11/24 08:35 2012/11/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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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액체

흔히 화학적으로 물질의 상태는 플라즈마 같은 특수한 상태를 제외하면 통상 기체(gas), 액체(liquid), 고체(solid)라는 세 상태 중 하나로 분류된다. 그 중 기체와 액체는 고유한 형체가 없으며 고체와는 다른 공통점을 공유하기 때문에, 유체(fluid)라고 한데 분류되기도 한다. 내부에 부력과 양력이란 게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논하는 '유체 역학'이라는 물리 분야도 있다.

그런 유체 역학의 관점에서는 고체가 아웃사이더이다. 하지만 액체를 아웃사이더로 보는 관점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액체에는 액체 그 자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너무나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물’이라는 물질이 있다. 물이 얼마나 흔해 빠진 물질이면서 한편으로 얼마나 특이한 물질인지는 화학을 전공한 사람이 본인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고체 얼음이 액체 물보다 부피가 더 크고 밀도가 작아진다는 것 하나만 생각해도 말이다.

물이 특이한 점은 지구의 특이한 점과도 결부된다. 물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상온'이라는 기온대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매우 드문 물질 중 하나이다. 생각을 해 보시라. 물과의 혼합물 말고 화학적인 순물질(원소 또는 화합물) 중에서 액체인 놈이 또 뭐가 떠오르는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수은 같은 것 말고는 선뜻 떠오르는 게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구 역시 전우주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표면의 대부분이 바다라는 '액체'로 뒤덮여 있는 매우 희귀한 행성이다! 다른 행성들은 혹독한 저온 또는 고온 때문에 표면 전체가 고체 아니면 기체이다. 착륙할 땅이 없는 목성 같은 행성의 경우, 표면과 가까워질수록 방사능과 유독가스의 농도 및 압력이 겉잡을 수 없이 짙어지면서, 접근하는 모든 물질을 파괴하고 으스러뜨리게 된다.

2. 알코올

지구상에는 물 말고도 '기름'이라는 액체가 있다. 기름은 (1) 물보다 가볍고 (2) 물과 섞이지 않으며 (3) 불에 잘 타는 액체의 총칭으로, 화학적인 특성만을 규정할 뿐, 화학적으로 특정 성분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저 세 속성 중 일부만을 만족하는 물질은 지구상에 거의 없기라도 한지? 어떻게 저 세 특징을 한데 '기름'이라고 싸잡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던 점이다.

(1)과 (2) 때문에 기름에 붙은 불은 물을 뿌려서 꺼서는 안 된다. 또한 (2)는 '물과 기름'이라는 관용구까지 만들어 냈을 정도로 유명한 특성이며, 씻어 내는 것도 물만으로는 안 되고 비누나 세제를 필요하게 만드는 더티한 주범이다. 그리고 (3) 때문에 기름은 '연료'로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기름의 통상적인 특성에 비해 알코올은 좀 색다른 면모가 있는 물질이다. 분명 물보다 가볍고 불에 잘 타는 액체인데.. (2)는 아니다. 물과 잘 섞인다!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해 물과 섞인 알코올의 분별 증류가 가능할 정도이다. 세상에 물과 잘 섞이는 액체 연료가 알코올 말고 또 있나..?

이 때문에 알코올은 천연 가스만치 위험하지는 않으면서도 다른 연료에 비해서 깨끗하다는 심상을 주며, 이는 실제로 맞는 말이다. 물만큼이나 쉽게 증발하여 흔적 없이 잘 사라진다. 에탄올을 괜히 소독용으로까지 쓴 게 아니다. (피부에 묻은 에탄올이 증발하면 물이 증발할 때보다 더 시원한 느낌이 든다.)

또한 연소 과정에서도 알코올은 그을음 없고 높은 온도를 잘 낸다. 이게 유용한 면모여서인지, 알코올 램프(+비커+삼발이..^^)는 테란전에서 캐리어가 프로토스의 상징인 것처럼 과학 실험의 상징이다. 가스나 석유 대신 알코올을 쓴다는 뜻. 물론, 굉장한 고온이 필요할 때는 가스를 연료로 쓰는 토치나 분젠 버너가 동원되겠지만.

파라핀 촛불의 노란 겉불꽃이 1400~1500도 정도인 반면, 알코올 램프의 파란 겉불꽃은 1700도를 넘어서 더 뜨겁다. 양초에 비해 알코올 램프의 심지는 더 굵직하다. 촛불은 불기만 해도 꺼지지만 알코올 램프는 불어서 끌 수 없으며 이는 위험한 시도이다. FM은 불길 위에다 램프 뚜껑을 확 씌워서 공기 공급을 끊어서 끄는 것이다. 불을 끈 뒤, 뚜껑을 다시 열어서 알코올 증기를 내보낸 뒤, 다시 닫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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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은 상온에서 액체이긴 하지만 알코올이 너무 적은 상태로 램프가 장시간 방치되면, 증발한 알코올 가스가 램프 안에 고이게 되고, 이게 나중에 램프를 켜는 불꽃에 닿는 순간 한꺼번에 퍽 폭발할 수 있다. 이게 무슨 어지간한 도시가스 누출 사고처럼 실험실을 다 박살 낼 정도의 비극을 부르지는 않겠지만, 램프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다치게 할 수준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실 안전 수칙에는 어딜 봐도 “알코올 램프에는 알코올을 최소한 2/3 이상의 양으로 충분히 채워 둘 것”이 명시되어 있다.

3. 술

알코올은 수산화(OH) 기질을 담고 있는 여러 탄화수소 화합물의 총칭이기 때문에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건 역시 분자 구조가 간단한 에탄올과 메탄올. 둘 중에서는 메탄올(CH3OH)이 에탄올보다((C2H5OH)도 더 단순한 가장 간단한 구조이며, 이게 알코올 램프를 포함해 연료로 공업적인 용도로 쓰이는 물질이다.

그러나 알코올은 연료로만 유명한 물질이 아니다. 알코올은 그 이름도 유명한 '술'의 주성분이기 때문이다.
일단 메탄올은 그야말로 샤악이나 마찬가지인 맹독성 물질로, 인체에 들어가면 장기를 심각하게 손상시킨다. 10ml남짓만 섭취해도 눈이 멀어 버리고, 30~40ml가 체내에 들어갔다간 죽는다. 주사기나 스포이트 하나를 차지할 만한 적은 양만 먹어도 그 정도의 참극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독약을 먹고 죽는 건 뭘 먹든 굉장히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그런데 알코올에 속하는 화합물 중 유일하게 에탄올은 얘기가 좀 다르다. 물론 무슨 식용유 같은 부류가 아니며, 많이 먹어서 몸에 좋을 건 절대 없지만... 그래도 먹는다고 메탄올처럼 저렇게 곧바로 몸이 망가지고 죽는 건 아니며, 신체를 약간 각성시키고 기분을 전환시키는 효과가 있다. 왜 하필 에탄올만 그런 걸까?

물론, 술은 그 약간의 순기능만 논하기에는, 사람을 개로 만들어서 인류에게 역사적으로 끼친 해악도 솔직히 너무 크다. 인류 역사상 세상의 그 어떤 마약보다도 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가정을 파괴한 약물이 바로 알코올이다. 각종 종교라든가 종교 수준의 엄격한 도덕을 요구하는 집단에서 술을 괜히 절대적으로 죄악시· 금기시하는 게 아니다. 술만 처먹으면 괴물로 변해서 부인이나 아이들을 때리는 가장을 둔 가정 구성원의 피눈물은 당사자가 아니면 정말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지난 여름엔, 만취 상태에서 정신줄 놓은 어느 운전자가 공항 고속도로에서 시속 거의 180에 가까이 과속을 하다가 앞서 가던 승용차를 추돌시켰었는데 그 사고 기억하시는가? 뒷부분을 추돌 당한 승용차는 화재가 났고, 일가족 네 명이 차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몽땅 몰살을 당했다! 도대체 정체도 없이 고속도로를 멀쩡히 잘 달리던 차가 중앙선 침범 정면충돌도 아니고 추락도 아니고, 어떻게 추돌을 당해서 일가족이 몰살 당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게 가능한 정확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보험사들도 바보는 아니니,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자해나 다름없다고 봐서(=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쌤통이라는 뜻) 자차 보상은 안 해 준다. 대인· 대물 보상은 가해자가 최대 200만원까지는 부담해야 하고, 그 이상 넘어가는 액수만 원래는 보상을 안 하다가 하기 시작했다. 음주운전은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에서 열외되는 11대 중과실에 당연히 속하며, 각종 벌금이나 징역 같은 행정 처분에 대해서는 보험사도 면책이다. 아마 저 운전자는 차도 내 기억으로 제네시스이던데 자비로 수리하거나 폐차해야 하고, 면허 취소에 100% 구속에 몇 년간 교도소에서 징역 살면서 술로 인한 패가망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 봤자 피해자 유족들의 입장에서는 사형에 처해도 분이 안 풀리겠지만.

제아무리 “술은 취하지만 않을 정도로 마시면 된다”라고 술에 관대한 사람이라 해도,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음주운전에 대해서까지 관대한 사람은 없다. 얼굴 안 뻘개져도 한 잔을 마셨으면 한 잔만치 소량이나마 취한 것이고,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신체와 머리의 대처 능력이 감소해 있다. 그리고 술을 금지하는 종교는, 동일한 맥락에서 음주운전이 아니라 아예 “음주생활”을 하지 말자는 차원에서 술을 금지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같은 일반인이 먼저 술을 입에도 안 대야, 진짜 알코올 중독자 개차반들도 술을 끊게 될 테니까.

그런데 이놈의 술은 아무리 얄밉다 해도 아주 없앨 수는 없다. 세속의 관점에서 술은 안타깝게도 사회와 문화 전반에 현실적으로 너무 깊게 뿌리박혀 있다. 제아무리 혼자 의롭고 유능한 통치자, 아니 독재자가 나타난다 해도 술은 못 없앤다. 우리나라의 서슬 퍼런 독재 정권도 관습상의 음력 설(구정)은 결국 못 없앴으며, 이스라엘의 선한 왕도 산당들을 못 없앴듯이 말이다. 조선 영조 때의 금주령, 20세기 초 미국의 금주법도 성공하질 못했다. 법으로 금지해도 술 마실 사람들은 결국 어둠의 경로로 구해다 마시면서 사회 구조는 더 망가져 왔다.

술을 금지할 수는 없으니 결국 높으신 분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담배와 마찬가지로 술도 유통을 합법화는 하되 세금을 왕창 매기는 것이다. 이건 꼼수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리고 솔직히 술· 담배로 거둬들이는 세금 수익보다, 술· 담배 때문에 건강 망쳐서 발생하는 의료보험 추가 지출, 각종 사고 수습 비용이 여전히 더 “많다”. 술· 담배 많이 소비해 주는 건 국가의 입장에서도 세금 셔틀 애국(?) 행위가 아니다! ㅎㅎ

우리나라도 못 살던 시절엔 의료 소독용 에탄올을 몰래 빼내서 물에다 섞어서 술이랍시고 마시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의료· 공업용으로 쓰이는 알코올은 주류용 알코올 같은 세금이 붙어 있지도 않으니 일거양득. 그러니 요즘은 그런 짓 하지 말라고 비주류용 알코올은 에탄올이라 해도 색소나 메탄올이나 여타 독극물을 약간씩 섞어서 공급되며, 당연히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 천연 가스는 누출을 감지하기 쉬우라고 냄새 나는 물질이 가미되어 공급되는데 알코올에는 이런 사연과 후처리가 있는 셈이다.

4. 맺는 말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휘발유)을 넣고, 식용유로 튀김을 만들어 먹다가 액체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고 알코올의 특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고, 이 글까지 쓰게 됐다.
물과 섞이면서 불에도 잘 타는 알코올 같은 물질이 세상에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게다가 그런 부류에 속하는 물질이 하필 술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니.

알코올은 분명 유용한 연료이며 여러 용도로 쓰인다. 하지만 그 자체의 폭발력이나 화력, 쉽게 말해 옥탄가가 천연 가스나 석유에 비할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그랬으면 진작에 자동차용 연료로도 개발됐겠지. 어차피 알코올 자체도 공업적으로 합성할 때는 석유의 추출물로부터 만들어지기도 하니 아주 별개의 물질도 아니다.

한국어의 외국어 표기법은 모음이 연달아 오는 것을 싫어하며 특히 장모음을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알콜'이 아니라 '알코올'이 됐을까? alcohol이라는 단어의 구조에서 볼 수 있듯, 사실 원래 단어는 '알코홀'에 가깝다. 음절이 하나 더 들어있기 때문에 '알콜'로까지 줄이지는 않고 '알코올'로 적는 듯하다.

이 단어는 이례적으로 어원이 아랍어이다. 아랍어에 유난히 '알'자가 많은데, 이는 영어로 치면 the와 비슷한 아랍어의 관사이다. '알코올'의 '알' 역시 같은 용도의 형태소이다. 심지어 알고리즘, 대수학(algebra) 같은 수학스러운 용어들도 어원이 아랍어 내지 아랍의 고유명사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11/21 11:55 2012/11/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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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경전철 시승 소감

- 의정부 경전철은 잘 알다시피 부산에 이어 서울-수도권에 상륙한 최초의 경전철이다. 원래 용인 경전철 에버라인이 진작에 개통했어야 하는데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정시 개통이 '나가리'가 났고, 그 사이에 부산이 지하철 4호선과 김해선을 통해 국내 최초로 경전철 시대를 엶으로써 선수를 쳤다.

- 경전철은 차량이 작은 덕분에 확실히 날래고 잽싸다. 문도 빨리 닫히고 금방 출발하고, 게다가 탁월한 가감속과 작은 회전 반경은 기존 대형 전동차 중전철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요소이다.

- 특히 급커브를 돌면서도 일반 철도 특유의 키링키링 쇳소리가 나지 않는 건 인상적이다. 다만, 전동차의 주행 소음은 큰 편이다. 차체가 작고 방음 설비도 덜 갖춰져서 차내에서 소리가 기존 중전철에 비해 더 크게 들리는 듯하다.

- 100% 진짜 무인. 신분당선과는 달리 승무원 1인 탑승조차도 없다. 게다가 종착역 도착 후 회차를 위해 차량이 인상선에 들어가려 할 때도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내리시기 바랍니다” 이런 거 없다. 그냥 차내에 짱박혀 있어도 된다. 얘들은 도중에 운행을 마치고 기지로 들어가는 열차도 없으려나..??

- 기관실이 없는 관계로 앞뒤가 훤히 보이고, 천장 위로 전차선이 없고 옆으로 전신주도 없다. 스크린도어가 있으니 어차피 선로 추락 우려가 없다면 제3궤조 방식도 승산이 있는 듯하다. (참고로 용인 경전철은 스크린도어가 없음)

- 서울 지하철 2호선 지상 고가 구간처럼 의정부 시내 전망이 한눈에 보인다. 그러면서 선로 구조는 부산 지하철 4호선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지하 구간이 전혀 없고 2량 1편성인 점은 오히려 김해 경전철과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단, 김해 경전철은 전기 규격만 750V 3궤조 집전 방식인 것만 빼면 쇠바퀴에 1435mm 표준궤인 것은 기존 철도와 똑같은 경전철이므로 참고할 것.

- 2량 1편성에 작은 폭은 마치 수인선 협궤 열차를 보던 느낌. 또한 차량 1량당 문이 3개인 것은 부산 지하철 1호선 열차에 이어 전국에서 둘째 사례이다.

- 차내와 승강장의 전광판은 의외로 검소(?)하게 꾸몄는지 컬러 LCD 화면이 아니라 그냥 LED 기반 도트 매트릭스 + 비트맵 글꼴이다.

- 다만, 그렇잖아도 운임이 1300원으로 비싼데, 장거리 간선도 아닌 주제에 환승 할인이 안 되는 건 병크이고 자충수로 보인다. 주말엔 의정부 사람들이 어디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가족 단위로 놀이기구 이용하듯이 경전철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기도 한다고 함.. 안습.

- 의정부 역과 시청 역 사이엔 아래로 복선도 아니고 2복선 철길이 지나는데, 이건 그냥 기존 경원선의 선로이다. 교외선과의 분기를 앞두고 선로가 잠시 복선에서 2복선으로 늘어나 있는 것이다.

- 민간 경전철은 기존 중전철 기반의 지하철이나 광역전철과 섞이지 않으려 하는 티가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이 일단 환승 할인이 없으며, 전철 내부에서는 아까처럼 시청이나 의정부처럼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역명과 겹치는 명칭도 대놓고 자기네 노선의 역을 식별하는 데 쓴다.

일종의 namespace 충돌인 셈인데, 비슷한 일이 용인 경전철이 개통하면 벌어질 것 같다. 환승역인 분당선 기흥 역과 에버라인 구갈 역부터 역명이 서로 다르며, 에버라인 측은 자기네 역명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그런다. 총신대입구-이수 꼴 나려나 보다. 이런...;;

Posted by 사무엘

2012/11/15 08:22 2012/11/1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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