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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급한 개발 일정 때문에 가끔 야근을 넘어 밤 11시~자정을 찍는 철야가 이어질 때가 있는데..
이때는 회사에서 택시 귀가를 지원해 주고 이튿날 재량껏 몇 시간 남짓 지연 출근까지 허용하곤 한다.
그런데 하루는 내가 지금까지 탔던 택시들 중에 제일 세게 밟는 운전사가 걸려서 퇴근길이 스릴 있고 즐거웠다.

신호를 받아서 출발할 때 내가 이렇게까지 뒤로 쏠렸던 적이 없었다. 이런 G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 정도에나 느꼈던 것 같은데.. ㅎㅎ
요즘 차들은 계기판에 초록-하양-빨강 3단계로 연비 효율(eco??)을 표시하는 기능이 있다. 그런데 이 차의 계기판을 보니 어찌나 밟아대는지 타코미터의 레드 존까지는 아니어도 eco 상태가 수시로 빨강을 드나들었다.

특히 압권은 앞차를 바싹 붙어서 달리다가 커브를 돌면서 바로 추월할 때였다(물론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내가 들은 게 정확하다면 단순 엔진 소리가 아니라 바퀴가 헛도는 특유의 그 끼익 소리까지 났다.

요즘은 시내버스도 무슨 이상한 연비 감시 장치가 달려서 한강 다리를 건널 때도 시속 60조차 절대 안 넘기고, 심지어 오르막에서도 완전 굼벵이 기어가듯이 힘없이 간다. 이 암울한 말세에 이런 큰 믿음과 기백을 지닌 택시를 타다니 기뻤다.

내가 택시 앱에서 운전사를 평가할 때 보통은 별 5개 중에서 4개를 주는데.. 이 아저씨에게는 5개 만점을 줬다. 승객의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택시가 앞으로 더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과속 단속 카메라를 매우 싫어한다.
커브를 틀자마자 바로 횡단보도나 신호등 교차로가 나오기 때문에 정말로 주의해야 하고 속도를 줄여야 하는 곳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그 정도로 극단적인 곳을 제외하면 지금 전국에는 단속 카메라가 불필요한 곳에도 너무 많다.

이것들 대부분은 그냥 변태적이고 악랄한 쓰레기 장비일 뿐이다. 멀쩡히 잘 가고 있는 차들을 괜히 불필요하게 브레이크 밟게 만들고, 시간 낭비 기름 낭비 유령 정체 유발시키고, 교통사고 예방엔 별 도움도 안 되고..
이것도 남이 나보다 잘 사는 꼴 못 봐 주는 빨갱이 공산주의 사고방식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남이 나보다 먼저 빨리 가는 꼴 못 봐 주는 거 말이다.

특히 구간 단속은.. 아오 빡쳐.. 미친놈들. 세금이 어지간히도 고픈가 보군.
경부 고속도로 경주-영천 6차로 확장 구간에도 하나도 위험하지 않은 구간에 영천-건천 사이에 길다란 구간 단속 때문에 톨비가 아까워지고 고속도로를 이용할 마음이 싹 사라진다. 그냥 근처의 4번 국도를 타고 말지.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던 시절엔 갓길도 없고 길이 구불구불 진짜로 위험했기 때문에 시속 100도 아닌 80으로 구간 단속을 했던 것을 이해한다. 이 구간에서 실제로 사고가 잦기도 했는지.. 거의 애원하는 수준으로 "제발 천천히 가삼"이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길이 멀쩡하게 넓게 다 뚫린 뒤에 도대체 저기를 특정 지점도 아니고 구간 단속을 시켜 놓은 이유가 도대체 뭘까..?

감포로 가는 긴 토함산 터널도 멀쩡하게 길 닦아 놓으면 뭐하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꼴랑 시속 80 구간 단속..;; 아예 포복으로 기어 가라고 해라.. ㅡ,.ㅡ;;
이건 “과학고 애들은 의대 진학 무조건 금지 / 대형 마트는 특정 요일 특성 시간대에 무조건 셧다운”에 맞먹는 막장 악법 폭거이다.

요즘 우리나라 위정자들은 어느 분야건 일어나는 현상 그 자체만 찍어누르고 금지하고 규제하고 벌 주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들 같아서 몹시 답답하다.
교통사고도 나기만 하면 맨날 하는 짓은 닥치고 속도 제한 걸고 신호등과 단속 카메라를 늘리는 것뿐.. 문제의 본질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다른 비효율과 부조리와 꼼수 편법만 늘린다.
그럼 음주운전 교통사고 가해자 같은 범법자에게 벌이라도 속 시원하게 엄청 세게 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더 열불 날 지경이다.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난 에스컬레이터 주행 속도는 지금보다 2배 이상 좀 올려 놓은 뒤에나 “걷거나 뛰지 마세요” 캠페인을 하든가 하고..
굳이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할 거면 시속 150 이하(고속도로), 120 이하(국도) 정도로나 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ㄲㄲㄲㄲ
과속보다 10배 100배까지는 아니어도 2~3배 이상 더 단속해야 하는 건 지정 차로 안 지키는 애들, 1차로에서 버젓이 천천히 지속 주행하는 애들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하루는 비가 철철 내리는 날에 자동차 전용 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날씨가 안 좋다지만 차들이 인간적으로 너무 천천히 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겨우 이 정도 젖은 건 요즘 자동차로는 100~120씩 밟아도 미끄러질 일 없고, 커브도 약간만 감속하면 안전하게 돌 수 있다.

어떨 때는 나는 커브의 더 안쪽에 있고(더 작은 회전반경) 앞차는 더 바깥쪽에 있는데... 나는 70~80의 속도로 브레이크 안 밟고 쓰윽 커브를 돈 반면, 앞차는 더 완만한 커브를 더 천천히 돌면서도 뭐가 그리 불안한지 브레이크 경고등이 수시로 켜지는 게 보였다.

내 경험상, 이렇게 어두컴컴 비 내리는 날씨에 100 넘게 밟는 차보다 더 위험한 민폐는.. “헤드라이트 안 켠 스텔스” 차들이다!!
안 그래도 백미러도 물방울이 달라붙어서 시야가 안 좋은데.. 낮이더라도 불을 켜 줘야 안전하다.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과속 탓만 할 게 아니라 지정 차로, 헤드라이트 등 도로의 안전을 저해하는 더 치명적인 요인은 얼마든지 있다. “아우토반은 아예 속도 무제한이고 150~200씩도 막 밟는데 어떻게 사고가 거의 안 날까?” 한국인이 독일인보다 유전자 차원에서 열등하고 선천적으로 운전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인 게 아니라면, 그건 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의 차이 때문인 것이다.

혹시 오해할까 봐 얘기하는데, 내 차는 무슨 외제차 슈퍼카 따위가 절대 아니다. 그냥 평범한 국산 양산차일 뿐이다.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유령 정체를 유발하지 않고 도로의 소통을 원활히 하려면 지정 차로를 반드시 지키고, 브레이크를 쓸데없이 밟지 않아야 한다.

본인의 경우, 평소에 차를 아주 부드럽게 천천히 모는 건 전적으로 기름을 아끼기 위해서일 뿐이다.
연료비를 전혀 생각할 필요 없이 오로지 안전만이 목적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과격하고 빠르게 몰아도 충분히 안전하다.

* 참고

(1) 단속 카메라의 단속 조건

길거리에 있는 신호· 속도 위반 무인 단속 카메라들의 단속 기준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관대한 편이다.
신호의 경우, 빨간불이 된 뒤에 정지선을 넘어가고 교차로의 중앙까지 통과해서 완전히 건너가야만 신호 위반으로 처리된다.
단순히 노란불일 때 교차로를 통과한 것, 또는 급히 정지는 했지만 정지선을 살짝 넘은 것만으로는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된다.

다만, 노란불에 교차로를 급히 통과하느라 과속을 하기 쉬우니 이건 주의해야 한다. 신호에 안 걸리는 대신 과속에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카메라에 단속은 되지 않더라도 그 상황에서 사고가 나면 골치 아파지는 건 변하지 않는다.. 정말 예상 불가 회피 불가였다는 정황을 입증하지 못하면 신호 위반 때문에 과실이 추가될 수 있다. 특히 도로 주행 시험 중이라면 노란불 딜레마 상황에서 대처를 잘못하는 바람에 운 나쁘게 실격당할 수 있다.

신호 다음으로 과속은.. 난 얼추 10%까지 유도리인 줄로 알고 지금까지 알고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더 관대하더라.
시속 60인 시내 도로에서는 71까지, 시속 100인 고속도로에서는 122까지, 거의 20% 초과까지는 단속하지 않고 봐 준다.
다만, 이 역시 카메라가 단속하는 기준은 법적으로 과속인 조건(+10km/h 초과)보다는 약간 더 널널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0이라는 숫자는 측정 오차를 감안한 유도리일 뿐이다.

(2) 과속방지턱

잘 닦인 도로에 저렇게 신호등 교차로와 단속 카메라가 있다면, 시골길에는 회전 교차로와 '과속방지턱'이 있다.
과속방지턱은 단속 카메라와는 완전히 다른 원리로 차들이 속도를 못 내게 만드는 물건인데..
사실 도로에 칠만 해 놨지 실제로 봉긋 튀어나오지는 않은 허수아비 훼이크 과속방지턱도 적지 않다.

운전을 하면서 저 무늬가 진짜 방지턱인지 아니면 훼이크인지를 최대한 빨리 인지하는 게 속도를 즐기는 드라이버에게 꼭 필요한 눈썰미 덕목이라 하겠다.

(3) 안전벨트

안전벨트 착용이 법적으로 강제 의무인 곳

  •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 전좌석 안전벨트 착용이 필수이다. 이 때문에 도시형 시내버스 말고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광역 급행 좌석형 버스는 입석 전면 금지가 논란이 됐던 것이다. (법과 현실의 괴리)
  • 비행기 이착륙: 이 때문에 여객기는 아무리 가축수송 노선이라도 육상 교통수단 같은 입석이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안전벨트가 없는 곳

  • 시내버스: 시내에서 워낙 천천히 다니면서 처음부터 좌석보다는 입석 승객 위주로 운용되므로. 벨트가 의미가 없음.
  • 오토바이: 처음부터 탑승자가 실외에 노출되는 교통수단은 결박을 해서 더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 이륜차는 벨트 대신 헬멧 착용이 상시 의무이다.
  • 철도 차량: 평소에 워낙 잘 통제되어 있어서 자동차 같은 급커브 급제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더라도 입석이 얼마든지 허용된다.

열차가 달리다가 누가 죽을 정도의 큰 사고가 난다면(탈선· 추락) 그건 정말 안전벨트 따위로 감당 가능한 사고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륜차는 고속도로를 포함한 자동차 전용 도로에 들어갈 수 없다. 단, 이건 우리나라가 세계 추세 이상으로 법이 너무 경직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4) 과적/정원 초과

자동차에는 속도 규제뿐만 아니라 승차 정원 초과(사람)나 과적(물건)에 대한 규제도 있다. 둘 다 법적으로 10% 초과까지는 봐 준다.

그러니 법적으로는 최소한 10인 이상 타는 봉고 승합차부터는 합법적인 승차 정원 초과가 가능하다. 단, 13세 이하 초등학생은 2/3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5인승 승용차에 어른 3 + 초딩 3이 탄 것은 10% 유도리와 무관하게 합법이다.
그리고 승차 정원의 10% 유도리는 고속도로를 주행하지 않을 때에만 허용된다. 입석형 시내버스는 이런 승차 정원 제한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예외이다.

택시에 운전사를 제외하고 4명 이상 승객의 탑승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승차 거부이다. 트럭에 위험한 과적을 강요하지 말아야 하는 것만큼이나 정원 초과도 승객이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1/09/09 08:34 2021/09/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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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의 역사와 성경 번역의 역사

우리나라 자동차

  • 한국 땅에서 자체 조립-_-되어서 굴러간 최초의 자동차: 시발(1955)..;;
  • 시발 같은 영운기 야메 조립이 아니라, 국내에서 정식 면허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 코티나(1968)
  • 국내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1975)
  • 최초로 전륜구동: 프레스토(1985)
  • 최초로 전자제어 다중 연료분사(MPI): 엑셀(1989)
  • 최초로 DOHC 흡기 방식: 엘란트라(1990)
  • 최초로 자체 개발 엔진 탑재: 스쿠프 터보(1991. 알파 엔진)
  • 최초로 로열티 전혀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100% 독자 개발: 액센트(1994)

영어 성경

  • 최초의 중세 자국어 신약 성경(그 자체가 문화충격): 위클리프(139x.. 조선 건국과 비슷)
  • 종교 개혁 이후, 바른 원문 계보에서 최초로 번역: 틴데일(153x.. 신약+모세오경+알파.. 아직 전서는 아님)
  • 최초로 왕이 허락한 신구약 전서: 커버데일(1535.. 이제 번역자가 순교자가 되지 않아도 됨..;;ㅜㅜ )
  • 외국 인쇄 후 밀반입이 아니라 최초로 잉글랜드 내부에서 자체 인쇄: 매튜(1537)
  • 최초로 국비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공역: 그레이트(1540)
  • 최초로 라틴어가 아닌 원어 기반 번역, 오늘날과 같은 장절 구분 도입: 제네바(1560)
  • 모든 논란 종결: 킹 제임스(1611)

이 성경들 중에 바로 제네바 성경이..
잉글랜드 메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서 칼빈이 접수하고 있던 제네바로 망명한.. 청교도 개혁주의 학자들이 만든 성경이다.
칼빈도 선 넘는 신성모독자나 이교도를 사형에 처하긴 했지만.. 그래도 “죽여도 내가 죽이지, 교황이나 가톨릭 군주한테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정도의 지론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 성공회 계열의 비숍(157x) 성경도 있긴 했는데 얘들의 특징은 당장 기억이 안 난다.
유럽의 많고 많은 언어들 중에 영어만이 저렇게 16세기 성경 번역 계보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자세한 설명은 이 링크를 참고하시라. "칼빈과 영어 제네바 성경"

그렇다. 자동차 얘기는 밑밥으로 던졌던 것일 뿐이었다. 둘이 같이 외우면 꽤 재미있다~! ^^

2. 다수와 소수

법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상황에서는 그래도 A가 가해자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이런 식의 문장을 종종 접한다. 그런데 다수설 소수설이라는 건 도대체 누구의 설을 가리키는 걸까?

"...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겠지만 10여년 전 학술 기자로 법학계의 표절 문제를 취재하면서 접했던 실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각종 법학 개론서를 보면 다수설, 유력설, 소수설이란 항목이 나온다. 그런데 그 다수라는 게 우리 학계의 다수가 아니었다. 일본 법학 개론서에서 하나의 조항에 대해 이런 해석을 한 사람은 누구누구 실명으로 거론돼 있는데 그것을 통째 베끼는 과정에서 일본 교수 이름을 쓸 수가 없으니 15명 정도 되면 다수설, 7~8명이면 유력설, 2~3명이면 소수설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긴 당시 국내 최고의 법학과 교수라는 사람은 일본 교과서를 통째 베끼는 과정에서 과감하게도(?) 자신이 쓰지도 않은 일본 저자의 책을 '졸저'라는 이름으로 주(注)에 달아놓기도 했다." (원문이 있는 곳)


끄응....;;;
성경 원문비평학에서 맨날 나오는 다수 사본, 소수 사본 이런 개념과 논쟁거리가 법학 쪽에도 거의 똑같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_<
원문비평학에서도 "더 오래된 / 신뢰할 만한 필사본에는 이 구절이 없음" 이러는데.. 저기서 말하는 오래된 필사본이 정체가 뭔지 실제로 뭔지 알게 되면 역시 경악하게 될 것이다.

3. 다양한 번역과 의미

신학이나 종교학 쪽에 학술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도 둘 이상 여러 역본을 참고하며 읽곤 한다. 동일 구절이 역본마다 미묘하게 다르게 번역되었으면 그 차이점을 곱씹으면서 "음 역시 성경의 원어를 현대인의 언어로 옮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이러며 넘긴다. 다양한 번역본들의 대동소이한 다양한 의미를 섭렵하면 그에 비례해서 옛날 성경의 원래 의미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KJV 유일주의자의 생각은 이와 좀 다르다.
인간이 저술한 다른 평범한 문학 작품이나 고전이라면 모를까,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 기록된 유일한 텍스트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을 사용해서 온전히 보존해 주셨다.

굳이 다양한 번역을 통해서 다양한 의미를 곱씹을 필요가 없다.
텍스트를 KJV 단 하나로 고정시킨다 하더라도, 성경엔 거기서 또 다양한 번역이 나올 수 있는 중의적인 표현이 이미 넘쳐나기 때문이다.

제일 대표적인 예로 창 22:8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이 있다. 이건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신다"일까, "자신을 위해 어린양을 따로 예비하신다"일까..??
이건 KJV가 모호하거나 부정확하게 번역된 게 아니다. 원어에 원래 들어있던 중의적인 표현까지 통째로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된 것이다.

그거 말고.. '사탄의 왕좌'이냐 '사탄의 자리'이냐?? '맏아들'이냐 그냥 '아들'이냐? '이스터'냐 '유월절'이냐?
'순교자'냐 '증인'이냐? '주여'냐 '예수여'냐 같은 것은 맞고 틀림의 문제이다. 둘 다 옳을 수가 없다.
성경이 변개됐느냐, 성경에 오류와 모순, 혼란과 혼돈이 생기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풍성한 의미 차원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그런데 현대 역본들은 정작 KJV의 함축· 다의· 중의적인 번역은 읽기 힘들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다른 표현으로 바꿔 버리곤 했다. 창 22:8은 God will provide FOR himself a lamb이라고 해서 하나님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한다는 의미는 제거했으며, KJV에서 대명사로 번역한 단어는 문맥상 실제로 가리키는 인물 이름으로 치환해 버린다거나 했다. 이것 역시 생각할 점이다.

4. 전하는 방법

주변에 KJV라는 성경을 소개할 때.. "이건 지난 수백 년 동안 영어권 국가에서 읽혀 왔으며 유명하고 위대한 옛 설교자와 복음 전도자들이 사용했던 고전이에요. 종교개혁 성경이에요. 한번 읽어 보세요" 이렇게 여러 좋은 옵션 중 하나로서 권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날을 세워서 "KJV만 옳고 다른 성경들은 변개된 곳이 적어도 한 군데 이상 있습니다"라고 강하게 팩트폭격을 하는 방법이 있다.
이것도 더 세분화하면 KJV를 단순히 가장 뛰어나고 정확한 번역본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아예 절대무오 최종 권위이고 원어 원문과 동급, 아니 그걸 능가한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이렇게 KJV를 좋은 성경 역본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KJV만이 옳은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 두 모드는 내 경험상, 상황에 따라 적절히 잘 선택해서 구사해야 할 것 같다. 복음 전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성경은 최소한 사람의 구원을 가르는 문제는 아니니 유도리의 폭이 넓다.

다만, 예수 믿어 구원 받았다면서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자신의 말씀을 오류 없이 정확하게 보존해 주셨다고 믿지 않는 것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 "예수님이 가까운 미래에 문자적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당신의 삶에 관심을 갖고 개입하고 계신다"를 차마 못 믿는 '구원받은 불신자'에 가까운 안타까운 모습이긴 할 것이다.

5. 음모론이 개입한 성경 역본

본인은 KJV 유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진영으로부터 KJV에 대한 온갖 반대 주장과 트집들을 접해 왔다.
이 구절은 오역이고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비판은 차라리 나은데.. 그 중에는 제임스 왕에 대한 온갖 중상모략도 적지 않았다. 왕권신수설 꼴통 꼰대, 호모 변태, 심지어 프리메이슨...

그럼.. 같은 방식으로 동성애 옹호, 예수님 신성 부인 등 그들이 지지하는 현대 역본 번역자들의 놀라운 사상과 신앙관에 대해서는 공평하게 살펴봤나 모르겠다. 차라리 엄청 보수적이던 옛날 사람인 제임스 왕이 훨~~씬 더 건전할 정도인데..
이렇게 맞불을 놓을 수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호불호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뒷배경엔 돈줄을 쥔 악한 빅브라더 조직이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지금까지 늘 존재해 왔다.
성경 역본 분야에서는 원래 KJV 유일주의의 강경 지지자들이 New Age Bible Versions 운운하면서 음모론을 제기하곤 했는데..
본인은 완전히 반대로 제임스 왕이 무슨 프리메이슨이고 둥근 눈깔과 컴퍼스가 그려진 KJV 책이 있네 하는 낭설도 접하고는 크게 놀랐다. 허허.. 이런 식의 음모론 놀이는 나도 자신 있는데..;;

석공이라고 하니까 성경적인 심상이 곧바로 떠오르는 건 성경에서 자체적으로 매우 자주 인용한 예언 중의 하나인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이다. (막 12:10 등)
오늘날 가장 인지도 높은 영어 성경인 NIV는 cornerstone을 capstone이라고 번역한 유일한 역본인 거 다들 아실랑가 모르겠다?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 제일 꼭대기에 얹히는 그 삼각형 뿔 모양의 돌멩이 말이다. 모퉁잇돌은 건축물의 아래에 놓이지만, 캡스톤은 건축물의 위에 놓인다.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다~!

NIV는 히브리서에 나오는 '개혁의 때'도 'new order'이라고 대놓고 '새 질서'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여기서 길게 글을 쓰지는 않겠지만.. 나도 프리메이슨, 뉴에이지 음모론 한때 왕창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깔 게 없어서 제임스 왕을 프리메이슨이라고 깐다면, 나는 같은 방식으로 얼마든지 더 받아쳐 줄 수 있음을 밝힌다. NIV 정도는 돼야 프리메이슨이 개입한 역본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시대에 프리메이슨은 그냥 상류층 인사들의 사교 클럽에 가까웠다.
일제 시대에 창씨개명을 한 사람이 다 반민족 악질 친일파는 아니듯이, 프리메이슨이라는 것 자체에 그렇게 또 너무 과민반응을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도 가 봐도.. 저런 컴퍼스가 그려진 묘비를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이상이다. 이 글에서 나열한 여러 아이템들이 성경 역본 문제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시길 바란다.
본인은 프리메이슨 음모론보다 대한민국 철도청의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음모론을 훨씬 더 진지하게 믿는다.

Posted by 사무엘

2021/09/06 08:35 2021/09/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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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나아가면서 그리는 궤적은 직선 아니면 원호이다. 핸들을 꺾은 채로 가만히 있으면 좌우 어디로든 원호 궤적을 그린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의 커브 역시 이런 모양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다. 고속도로는 커브의 회전 반경이 더 크다. 하지만 직선과 원호만이 궤적의 전부가 아니며, 그 중간 단계에 속하는 궤적도 쓰인다.

그것은 바로 클로소이드(clothoid curve)이다. 얘는 정속 주행하면서 핸들을 일정한 각속도로 돌릴 때 차량이 그리는 궤적이다.
핸들이 돌려져 있긴 하지만 그 각의 변화가 없는 채로 차가 정속 주행하면 잘 알다시피 원호가 그려진다. 그러나 그 곡률도 일정하게 변하면 저런 더 복잡한 곡선이 나온다는 것이다. 간단히 코딩을 해서 궤적을 그려 볼 수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차를 몰고 이런 커브를 돈다고 생각해 보자. 핸들을 서서히 더 꺾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이 궤적은 보다시피 각에 정비례해서 중심으로부터의 거리를 일정하게 줄였을 때 나오는 소용돌이 궤적과는 다르다. 매개변수를 통해 수학적으로는 이렇게 표현된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호라면 [cos(t), sin(t)]라고 너무 간단하게 표현되겠지만, 움직이는 동안 각도가 계속 변하다 보니 식이 저렇게 이상하게 바뀌었다.
극좌표로는 어째 표현할 방법이 없는가 모르겠다. 원호는 아예 상수가 되어 버리는데 말이다. 다만, 얘는 직교좌표에 친화적인 직선과도 접점이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극좌표를 동원한다고 해도 더 간편· 간단한 형태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cos(x)^2가 아니라 cos(x^2)라는 걸 유의하시라. 이건 고등학교 수준의 삼각함수 덧셈 정리의 제곱 법칙 등으로도 전혀 요리할 수 없다. 저 함수의 부정적분은 같은 초등함수들의 조합으로 나타낼 수 없다.

이 궤적은 그래도 중심점에 완전히 붙어 버리지는 않고 뱅글뱅글 돌게 된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도 현실의 자동차는 핸들을 무한히 꺾을 수 없기 때문에 도로에서는 이 궤적의 극히 일부만을 이용해서 직선과 원호를 연결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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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과 원호만 적절히 연결해도 수학적으로는 연속이고 미분 가능한 궤적이 나온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치 않아서 운전자가 핸들을 돌리는 속도까지 감안한 완화 곡선이 쓰인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이 개념은 심지어 핸들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철도에서도 예외 없이 쓰인다. 그래서 R=400, R=3000짜리 커브라고 해도 그 지도에다가 반지름이 그만 한 원을 그려 봐도 철길의 선형은 그 원보다 훨씬 더 완만해 보인다.

이게 천체의 운동이나 우주 탐사선의 궤적을 기술하는 식과 접점이 있으려나..?? 당장 사고실험을 해 봐도 그건 운동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른데 같을 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심상이 서로 미묘하게 비슷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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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몇백 년 전에 유럽의 수학자들은 자연과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어지간한 운동들을 몽땅 다 미적분 해석학으로 기술해 냈다. 예전에 다뤘던 사이클로이드, 현수선 같은 것 말이다. 그것도 컴퓨터나 계산기가 없던 시절에 머리와 종이만으로 증명을 해 내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경이롭다.

Posted by 사무엘

2021/09/04 08:35 2021/09/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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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우리나라와 일본과 미국이 건축· 교통 분야의 기술 격차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고속도로: 고속철: 우주선이라는 비례식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겠다.
이 글에서는 그 시절에 대한 영상 기록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신칸센

다음 링크는 1964년에 개통했던 일본 도카이도 신칸센의 건설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 보기) 이런 귀한 기록을 굉장한 고화질로 유튜브에서 볼 수 있구나~! 1970년도 아니고 1960년대의 컬러 영상이다. 감동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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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 "1963년 3월 30일, 256km/h 달성" 인증 패찰이 붙어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13분 50초 부근)
그러니 신칸센이 아직 정식으로 개통하기도 전이었던 1963년작 만화영화 봉팔...아니 에이트맨에 벌써부터 신칸센 모양의 열차가 등장했던 것이다. "나를 이길 자 그 무엇인가 자동차보다 빠르고 기차보다 더 빠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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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분 25초. 어설픈 손글씨 숫자가 적힌 아날로그 계기판을 보면 엄청난 옛날인 걸 알 수 있긴 한데, 문제는 속도가 300까지 찍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로부터 20년 뒤인 1984년에 경부선 천안-평택 사이에서 시속 140km 시운전 성공 이러는 수준이었는데.. =_=;;

쟤들은 1960년대에 시속 200 이상 고속철을 세계 최초로 100% 순수 자체 기술로 만들었다는 거다.. 늘 감탄이 나온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는 기를 쓰고 시속 100짜리 경인과 경부 고속도로를 닦았고, 일본은 시속 200짜리 고속철을 만들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천조국은 음.. 우주선을 만들어서 인간이 달에 다녀왔다..;; 뭐 그건 그렇고..

끝으로 하나 더.
우리나라는 서울 시내를 지나는 고가 철도가 도시철도인 지하철 2호선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은 대도시 도심 구간에 온통 고가 철길이 놓여서 신칸센이 마치 지하철처럼 다닌다.

왜냐..? 우리나라는 서울 시내에서는 KTX도 그냥 기존선으로 다니지만, 신칸센은 도심 구간에서 기존선 직결 운행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궤간이 아예 다르니까.
이런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해 일본의 고속철은 기존선 직결 운행이라는 개념이 그냥 없다. 이름조차 열차가 아닌 선로 지향적으로 '신간선'이라고 지은 게 다 이유가 있다.

2. 아폴로 13

영화 “아폴로 13”.. 무려 25년도 더 전, 라이온 킹이니 포카혼타스니 이러던 시절의 옛날 영화인데.. 본인은 요 얼마 전에야 드디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진지하게 봤다. 이런 명작을 이제야 접하다니..

난 이런 영화가 있다는 걸 처음 접한 건.. Windows XP 다음으로 나온 Windows Vista에 기본 내장돼 있던 예제 동영상이었다. 보신 적 있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
그때 내셔널 지오그래픽 해저 생물 영상 클립이랑, 저 영화에서 폭발 사고가 난 아폴로13 우주선을 어떻게 지구로 귀환시킬지 지상 관제 요원들이 토론하는 장면 클립. 이렇게 두 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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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 유턴: 우주선이 얼마나 손상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엔진 시동 걸었다가 더 큰일 나면 어쩌려고?
  • 자연 선회: 물과 전기가 부족하고 보급 물자도 달에 실제로 내려가는 2명분밖에 없는데.. 며칠 동안 3명이 달 착륙선(LM)에서 어떻게 버티려고?

그 외에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다음과 같다.

(1) 그 시절에도 컴퓨터라는 기계 자체는 존재했지만.. 너무 크고 희귀하고 비싼 몸이었기 때문에 인간 계산수와 계산자라는 물건 역시 아직 현역이었다. 주판으로 지수와 로그를 다룰 수는 없기 때문에..
참 격세지감이다. 인간이 50년 전에 겨우 이런 기술만 갖고도 달에 갔다 왔었다는 거다.

(2) "안녕하세요 지구에 계신 여러분. 우주선 안의 무중력 상태가 어떻냐면요~"
유튜브 브이로그라는 게 유행이 되기 40년도 더 전에 이 아저씨들은 저런 거 생중계를.. 아날로그 비디오 카메라로 했었다~!

(3) 우주 공간에서 달 착륙선(LM)이 유턴 후 사령선(CM)과 주둥이를 맞추는(도킹) 절차가 실제로 저렇게 진행됐구나. 조종사들이 조이스틱 당겨서 테트리스의 작대기 블록 집어넣듯이 구멍 맞춰 주고..;;
새턴 로켓이야 지표면에서 발사되는 거니까 일반인들도 발사 장면을 볼 수 있지만, 달 착륙선도 소형 로켓이다. 이게 돌아가는 장면은 영화가 아니면 일반인이 제대로 볼 일이 없다.

(4) 21세기를 사는 후대의 사람 중 일부는 "그때 인간이 진짜 달에 가긴 했었냐? 별로~" 이런 음모론을 제기하는 반면, 그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폴로 11호와 12호를 거치고 나니 이제 달에 가는 건 전혀 특별하지 않은 당연한 일상이 돼 버렸다. "아 그래? 또 갔나 보네" 마치 군 입대를 한 친구의 휴가가 반복되자 "아 그래? 또 나왔어?" 이러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보고 나서도 딱 사흘 만에 감격이 싹 식고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처럼 달 착륙에 대한 감격과 국민적 관심도 놀라울 정도로 금방 가라앉았다.

오죽했으면 우주비행사의 부인이 기레기들의 행태에 분노해서 "달에 착륙하는 것 따위는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고 매스컴 탈 일이 아니라더니, 달에 착륙을 못 하는 건 어째 드라마틱한 일이 되나요?"라고 쏘아붙이는 장면도 나온다.
평소엔 관심이 없다가 임무가 실패하고 승무원들이 죽게 생기자 뒤늦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에 빡친 것이다.

(5) "내가 책임자로 있는 한 우주에서 희생되는 미국인 같은 건 없다. Failure is not an option. (이건 뭐 군인이 전투에서 2등이란 없다.. 뭐 그런 어감의 대사..)" ㅠㅠㅠㅠㅠㅠ

(6) 지상 관제센터로부터 지시를 받으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객차를 떼어내고 이것저것 하는 건 영화 튜브와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아폴로13이 튜브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명작이지만.. 지하철 객차 정도나 분리시키는 허구 픽션이랑, 우주선 SM(기계선)을 떼어내고 최종적으로 LM도 떼어내는 '실화' 영화가 어째 비교가 되겠나. (CM만이 지구로 돌아옴)
승무원들은 지구 재진입을 앞두고 자기 목숨을 부지해 줬던 LM까지 떼어낼 때 "she was a good ship" RIP를 읊었다..;;

(7) 재진입하는 절차, 이산화탄소 제거기를 야메로 돌리는 절차.. 장삐쭈의 '유격' 시리즈에서 말 끝마다 "...하는 절차를 밟아 보도록 하자" 이러는 그 쏘가리 생각이 나더이다..;;; ㅋㅋㅋ.

(8) 재진입을 앞두고 한 승무원이 동료들에게 “Gentlemen, it's been a privilege flying with you” 라고 말하는데..
이건 영화 타이타닉에서 바이올린 악사들이 최대한 버틸 수 있는 순간까지 찬송가를 연주하다가 결국 “Gentlemen, it has been a privilege playing with you tonight” 이렇게 말한 뒤 작별하는 것과 굉장히 비슷해 보인다. 이렇게 같이 뭔가를 수행하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다는 끝인사이다.

(9) 아폴로 13호가 통상적인 우주선과 달리 왜 3분이 넘도록 한참동안 응답이 없고 재진입 딜레이가 길었는지는.. 내가 아는 한 정확한 이유가 밝혀져 있지 않다고 한다. 달 뒷면으로 들어갈 때, 그리고 재진입 하느라 엄청나게 열받고 있을 때.. 우주선은 관제소와 통신이 완전히 끊긴다.

(10) "나는 지금도 밤하늘의 밤을 볼 때마다 우리를 생환시키기 위해 애썼던 수많은 관계자들의 노고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류는 앞으로 누가 언제 달에 다시 가게 될지 늘 기대해 봅니다." (결말부 주인공의 마지막 나레이션) ㅠㅠㅠㅠ ♥♥♥

Posted by 사무엘

2021/08/29 08:35 2021/08/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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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치 독일, 일본 제국, 차우세스쿠의 몰락

1945년 4월 말,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처형 당하고 처참하게 시신 능욕을 당하는 걸 보고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자기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으며, 자살한 자기 시신을 철저히 화장해 없애서 적에게 신원 확인이 안 되게 하라고 부하들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으며, 치열 대조를 통해 히틀러의 시신이 확인됨)
무솔리니가 죽은 지 겨우 이틀 뒤에 히틀러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 뒤 1989년 12월 말, 루마니아의 공산 독재자 니콜라 차우세스쿠가 시민 혁명에 의해 축출되고 처형 당했다. 20세기의 독재자 중에서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멍청한 짓을 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번엔, 이 사건을 접하고는 평소에 켕기던 게 많아서 “우리도 까딱 잘못했다간 이렇게 되는 거 아냐?”라고 와들와들 떨고 당황했던 인간들 중 하나는 북괴 김씨 일가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니 당연히 주민들이고 군인이고 서로 더욱 감시하고 밀고하게 만들고, 그런 비생산적인 짓거리에 세금과 공권력을 더욱 투입하고..
북한은 그야말로 역대급으로 폐쇄적이고 내부에서 항쟁, 혁명, 쿠데타 같은 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형태로 사회 구조가 더욱 썩고 곪아 버렸다.

영화 “Downfall/몰락”(2004)은 히틀러가 전쟁에서의 패색이 짙어지자 부하들을 탓하며 광분하다가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행적이 잘 묘사되어 있다.
다음으로 “일본 패망 하루 전”(2016)은 역시 항복 열흘쯤 전부터 원자폭탄 두 방 맞은 것 하며, 히로히토 천황은 어린 신민들을 위하야 어엿비 너겨 항복을 결단하는데 밑에서 또라이 같은 장교들이 항명하여 쿠데타를 벌이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일본에서 스스로 ‘일본 패망’ 이딴 식으로 영화 제목을 붙인 건 당연히 절대 아니다.. ㅋㅋ 저건 우리나라 개봉 때 붙은 로컬라이즈된 제목이다.
이 둘은 동양과 서양에서 제각기 2차 세계 대전의 추축국 전범국이었던 두 나라가 말기에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영화들이라 하겠다.
독일의 히틀러는 총통으로서 국가 원수와 군 사령관 역할을 겸한 반면, 일본 천황은 신민들에게 얼굴조차 안 비치는 신이고 밑에 육군과 해군이 제멋대로 놀면서 폭주했다는 차이가 있다.;;

독일이 패망하는 영화가 제목이 Downfall인데.. 일본이 원폭 두 방을 맞고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을 때 일본을 상대로 시행되려 했던 특급 전면전 작전의 이름도 Downfall이었다.
북괴 정권이 일제나 나치 독일처럼 멸망하지 못하고 김씨 일가가 차우세스쿠 같은 최후를 맞이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2. 중요한 개념 정리

(1) 남한과 북한이 이산가족들의 눈물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서로 왕래를 금지하는 이유는..

  • : 간첩, 공작원들이 지령 받고 와서 불순한 짓을 할까 봐 두려워서
  • : 자기 주민들이 바깥 사정을 알게 되고 자기 체제의 치부도 알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렇기 때문에 북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고 이념 앞에서 가족도 없고, 남한 체제에 동화되지 않을 정도로 멘탈이 강제 개조된 인간흉기만을 남한에 공작원으로 보낸다.
그리고 반대로 남한에서는 그 어떤 종북분자들도 아예 북으로 가서 눌러앉아 살라는 말은 절~~~대로 안 듣는다. OK???

이게 반박불가인 팩트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디 반박할 테면 반박해 보셔~)
그러니 이 본질적인 방해 요인을 해소하지 않고서 남북 교류니 협력이니 개방이니 헛짓 하는 건 전부 그냥 돈지랄 정치 쑈 사기극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국제 정세가 바뀌면 언제라도 파토 날 수 있다.
자유로운 서신 왕래나 전화 통화 하나 없이 무슨 개방이여 미친..

(2) 종북과 좌빨은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속성이다.

  • 좌빨: 북괴에 대한 호감도나 충성도와는 무관하게 그냥 우리나라 경제 구조를 증세, 공유 위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처럼 바꾸고 싶어함. 부자들 증오하면서 자기는 부자가 되고 싶어함.
  • 종북: 우리나라 정치 경제 구도와는 무관하게 그냥 우리나라 정체성을 부정하고 북괴 수뇌에게 충성하고 저쪽에 못 퍼 줘서 안달. 미국/일본 잣대와 중국/북괴 잣대가 심각하게 일관성 없음.

그러니 서로 다르긴 하다. 종북은 아니고 좌빨만 강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둘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만 해당하고 다른 하나가 완전 강경하게 정반대인 사람은 거의 없다. 미사일 아니면 발사체, 간첩 아니면 활동가(!!)라는 차이밖에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3) 오늘날의 북괴는 무슨 스탈린, 레닌이 어떻고 하는 공산주의 집단은 아님.
공산주의 이념보다는 '공산주의자의 수법'만 그대로 계승해서 자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집단이다. 이게 핵심..

3. 현실 직시

(1) 고래잡이를 근절시켜 준 것은 그린피스의 무식 과격한 시위가 아니라 고래기름 대체재의 개발이었다.

(2) 고문과 강압수사를 이만치라도 없앤 건 DNA감식, CCTV 등의 과학수사이지, 민주팔이 데모꾼들의 깽판 시위가 절대 아님.
민주화를 골백 번 한다 해도 고문과 강압수사를 동원해서라도 용의자를 잡아내야 할 강력 범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3) 산의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게 하고 벌거숭이 민둥산을 푸르게 지키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한 것은.. 무슨 자연 보호 운동 따위가 아니라 화석연료이다(땔감의 역할 대체). 그리고 그 더티한 화석연료조차 쓰지 않아도 되게 해 준 것은 정말 역설적이게도 원자력이다!!

(4) 1940년대의 일제를 굴복시킨 것은 사랑의 원자탄 fat man과 little boy이지, 무슨 아가리 파이팅이나 맨주먹 항쟁 따위가 아니었다.
(아 물론, 일제를 굴복 항복시켰다고 해서 한반도가 100% 자동으로 해방되지는 않을 수 있었고, 일제만 물러난다고 해서 거기가 자동으로 한국인 소유로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었다. 거기부터는 한국인의 독립 운동이 기여한 것도 약간 있음)

(5) 우리나라가 민주주의가 잘 정착한 건 그나마 독재 흉내나 좀 냈다는 대통령들부터가 사실은 민주주의를 적극 추구했으며, 호구에 가깝게 너무 착하고 선량하고 순진해 빠졌던 덕분이다. 세상에 어느 정신나간 바보 등신 독재자가.. 자기더러 물러나라고 시위를 하던 학생들이 다치자 문병을 갔으며, 너희들이 장하다고 칭찬을 했느냐 말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선량하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데모질 좀 해 봤자 옛날의 북한, 중공, 헝가리, 캄보디아처럼, 요즘 미얀마처럼 총칼과 탱크에 진작에 싹 다 진압되고 갈려 나갔을 것이다.

아이고 이런 예가 얼마나 더 있을까? 현실을 좀 똑바로 직시하도록 하자.
현실을 직시할 줄 모르니까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오로지 "일제와 독재에 항쟁"밖에 없는 줄 안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은 민주 의식 저항 의식이 부족해서 김씨 왕조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느니, 열심히 일하지 않고 게을러서 남한보다 못살게 됐다느니(혹은 미국놈들이 경제 봉쇄를 해서-_-) 같은 개 헛소리가 찍찍 나오는 것이다. 이건 사상과 분별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4. 사상 단속

본인의 지인 중에는 현역 군 장교도 있고 국· 공립대의 교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보아하니 이분들은 소속의 특성상 개인 SNS에서 정치· 종교 분야의 자기 사상과 견해를 표현하는 것에도 좀 제약을 받는 것 같다. 상부에서 자기들의 SNS 계정까지 모니터링이라도 하는지, 몸을 사리시는 게 느껴진다.

내가 알기로 공무원은 타 영리 활동 겸직(사교육 교사, 대리운전, 알바 등..)이나 노조 설립, 정당 활동 정도가 금지이다. 비영리로는 시인 등단까지도 가능한 걸로 아는데.. 왜 업무 외의 영역인 사생활에 저런 제약이 가해지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저런 지엽적인 사상 단속은 그리도 꼼꼼히 하면서..
지금 공립 학교에서 어린애들한테 철저하게 정치 이념을, 그것도 매우 해롭고 악하고 불순하고 잘못된 쪽으로 주입해 넣고 있는 전교조 교사들 단속은 교육계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가? 난 이에 대해 깊은 회의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교사를 뽑을 때 인성 면접에서 다같이 “김XX 개XX”를 소리내어 복창하고 동의시키든가, 그게 민망하고 남사스러우면 임용 시험에서 필적 확인 문구로라도 저걸 필사시켜야 하지 않나 싶다.
민망하고 남사스럽다고 최소한의 인증을 안 하다 보니 지금은 교육계가 정말 심각한 수준으로 적화됐기 때문이다.

사상이 저쪽으로 불량한 놈들은 사형, 추방, 삼청 교육대, 정신병원 중 하나가 마땅하겠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법조인, 성직자, 정치인, 교육자 같은 직업은 절대로 가질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냥 사기업 월급쟁이나 자영업 장사로 자기 전공 기술만 이용해서 밥벌이를 할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권위와 영향을 행사하는 직업은 절대로 넘볼 수 없게 해야 한다.

5. 죄책감??

또한 본인은 군인(특히 일개 병사가 아니라 사관생도나 장교)이나 사형 집행관이라는 사람이 자기 직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쓸데없이 죄책감 운운하는 게 굉장히 싫고 마음에 안 든다.
그건 의대생이나 현업 의사가 무섭거나 비위 상한다고 해부 실습 내지 수술을 못 하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그럼 애초에 그 업계로 가질 말았어야지..

사형수한테 밧줄 씌우고 교수대 버튼 누르는 교정직 공무원은 자기 감정이 아니라 불쌍한 피해자 유족을 대변하는 심정으로 일을 해야 한다. 어디 뱃대지가 불러서 갑자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자빠졌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북 통일이니 협력이니 하기 전에, 먼저 북한에 올바른 통치 체제를 이식하고 개방을 시키고 서신과 통신 왕래라도 시켜야 된다. 그게 억만 배는 더 중요한 일이다.
인과관계와 우선순위를 이렇게 따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이런 게 정치 성향이나 종교관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사항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비정상인가..?? ㅡ,.ㅡ;;;

내 경험상 필요악을 없애자고 선동하는 놈들은 그놈들이야말로 진짜 절대악이 아닌 적이 없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8/18 08:35 2021/08/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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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대 관련

지난 2011년에 해병대가 총기 난사와 여객기 오인 사격 사건 때문에 욕 먹고 구설수에 올랐다면, 2014년은 육군 전방 부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와 가혹행위 살인 사건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22사단 임 병장, 28사단 윤 일병). 둘 다 지금으로서는 제법 먼 과거의 일이 됐지만 말이다.

그런데 저 2014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승용차로 군 입대 이동 중이던 일행에 의한 고속도로 교통사고가 두 건이나 발생하기도 했다. 차는 아마 렌트한 거지 싶은데, 둘 다..

  • 승용차에는 사람이 빈틈 없이 꽉 타고 있었고,
  • 갓길에 정차 중이던 대형 트럭을 들이받았으며,
  • 탑승자 중에 사망자가 발생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5월엔 의정부 306 보충대로 가던 차량이 저렇게 사고가 나는 바람에 탑승자 6명 중 2명이 사망했다. 군 입대 당사자는 중상을 입어서 보충대 대신 병원으로 가게 됐다. (참고로 306 보충대는 2014년 말에 폐지되어 없어짐)

그 뒤 10월 28일에는 아마도 논산 입소대대로 가는 중이던 차량이 호남 고속도로에서 거의 같은 사고를 냈다. 차가 완전히 박살 나면서 운전자, 입대 당사자를 포함한 5명의 청년들이 전원 사망하고 말았다.

어휴~ 이러니 자동차 보험이 26세 이하는 보험료가 왕창 비싼 것이지 싶다.;;
군대와 관련하여 제일 어이없고 안습하고 안타까운 교통사고는 2018년 12월 말, 화천에서 군 복무 중이던 아들을 면회 후 귀가하던 차량이 산길에서 전신주와 나무를 들이받고 수로로 굴러 버린 사고이지 싶다.

더 큰 차량과 부딪친 것도 아닌 단독 사고이고 무슨 수십 m 아래의 절벽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운전자는 음주나 졸음 정황도 없었는데.. 탑승자들은 운전자인 부친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었고(모친, 누이 둘, 여친),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것 같다.
차가 구르는 동안 운전자를 제외한 4명 전원이 차 밖으로 튕겨 나가고 ‘사망’했다..;;

그 아들은 그 당시 즉시 위로 휴가, 청원 휴가를 잔뜩 받긴 했다고 전해지는데.. 일가족이 몰살당한 군인한텐 휴가 정도가 아니라 아니라 아예 의병/의가사 제대라도 시켜 줘야 하지 않을까?
운전자도 2016년 부산 싼타페 급발진 당사자와 동일한 트라우마에 평생 시달릴 것 같다. 저 사고도 일가족 4인 몰살에 운전자만 살아남은 비극이었으니..

갑툭튀 한 짐승 같은 걸 피하려고 핸들을 꺾다가 이런 참극이 벌어진 건지? 나로서는 이 정도 추측밖에 못 하겠다.
저기가 무슨 시속 100 이상으로 밟을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주변 현장을 봐도 길을 좀 이탈해서 사고가 나 봤자 단독으로는 사람이 죽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을 것 같은데.. 탑승자들이 운이 지독하게 나빴던 것 같다. 그래, 과거에 이런 일도 있었다.

2. 안전벨트

탤런트 석 광렬과 조 문정. (전자는 모르겠고 후자는 대우 전자 “탱크주의 제품이거든요. 저희가 노력할수록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잖아요?” 그 멘트를 날렸던 여성 연구원을 연기한 배우...;; )
각각 1968년, 1970년생인 비슷한 연배인데, 모두 1994년에 자가용 교통사고로 겨우 2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그 사고라는 게 음주도 아니고, 고속도로에서 한 150 넘게 밟다가 박은 것도 아니고, 중앙선 침범 정면충돌이나 화재나 추락이나 대형차 사이에 끼인 것도 아니고..
둘 다 그냥 미끄러져서 혼자 주변 구조물을 들이받은 ‘단독사고’에 지나지 않았다.

요즘 차량이라면 일단 ABS가 무조건 필수가 됐으니 저런 사고 자체가 안 나거나 사고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고, 거기에다 에어백과 안전벨트의 도움을 받았다면 겨우 저 정도 사고로 운전자가 죽기까지 할 가능성은 0으로 쫙 수렴했을 것이다.

허나, 25년 전에 그랜저급이 아닌 승용차였으니(각각 스쿠프, 액센트) ABS와 에어백은 없다 치고.. 거기에다 두 분 다 벨트를 안 했지 싶다. 그래서 충돌과 함께 어디 심하게 부딪치고 튕겨나가고 그 결과가 각각 뇌사와 즉사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3. 대인 역과 사고

교통사고 중에는 차와 차끼리 부딪히는 것 말고 차와 보행자가 부딪히는 것도 있다. 이런 사고는 대물 보상을 할 것은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저속에서도 사람이 죽거나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차 vs 차 사고보다 훨씬 더 높다.
특히, 사람이 죽을 정도로 차가 과속을 한 게 절대 아니었는데 피해자가 현장 즉사 급으로 죽었다면.. 그건 피해자가 내던져지고 튕겨나갔기 때문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넘어져서 차 바퀴에 깔리고 짓이겨졌기 때문이다.

(1) 2016년 11월, 서울 도봉 운전 면허 시험장에서는 한 응시생이 앞의 출발 신호만 보고 출발했다가 앞에 불쑥 걸어 들어오던 다른 응시생을 보지 못하고 살짝 쳤다. 가해 응시생은 너무 놀라서 허둥대다가 또 악셀을 밟아 버렸고, 피해자는 바퀴에 깔려서 즉사했다. 이건 군대 사격장에서 사람이 아무 통제 없이 총구 앞을 서성거리다가 오발 사고가 난 거나 마찬가지인 비극이었다.

(2) 2021년 1월, 그 유명한 파주 시내버스 롱패딩 문 끼임 사고도 피해자가 결국은 질질 끌려가다가 신체가 버스 뒷바퀴에 깔리는 바람에 즉사했다. 보아하니 피해자는 내릴 때 카드 태그를 깜빡해서 팔만 황급히 차내로 도로 집어넣다가 변을 당한 것 같다.

(3) 그리고 2021년 5월, 승용차가 좌회전 하다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어느 모녀를 친 사고도.. 애엄마는 바퀴에 깔리는 바람에 현장에서 즉사했다. 저런 곳에서는 그렇잖아도 A필러에 가려지고 못 봐서 사람을 치는 사고를 내기 쉬운데.. 운전자가 말 그대로 눈깔이 썩어-_- 있는 상태에서 운전을 강행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여론은 어지간한 음주운전 대인 사고 급으로 크게 분노했다.

4. 나머지

(1) 뒤집힌 채로 머리부터 아래로 떨어짐

  •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사고 때 교각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가 아래로 추락한 시내버스는 탑승객 31명 중 운전사 포함한 무려 29명이 사망했다.
  • 2010년 7월 일명 인천대교 김여사 사고.. 공항 리무진이 사고 차량을 피하려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뒤집힌 채로 아래로 추락해서 승객 24명 중 12명이 사망했다.

(2) 큰 차의 아래로 쏙 들어감. 엔진룸이 아니라 A필러 쪽만 그대로 충격을 받고 승객 탑승 공간이 짜부러진다. 탑승자 몰살을 면하기 어려움.

  • 아까 언급했던 2014년 10월자 군 입대 친구 배웅 사고. 커브를 잘못 돌아서 갓길에 세워졌던 작업용 트럭을 그대로 들이받음.. 입대자 당사자를 포함한 5인 전원 사망.
  • 역시 아까 언급했던 2016년 8월, 부산 싼타페 급발진 사고. 계속 피하다가 결국 대형 트레일러의 뒤꽁무니를 들이받는 바람에 운전자 제외한 나머지 탑승자 4인 사망.

(3) 반대로 큰 차가 승용차를 들이받거나 심지어 올라타 버려도..

  • 2009년 4월, 서울 우이동 교차로에서 공차회송 중이던 관광버스가 긴 내리막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앞에 서 신호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추돌하고 밟고 올라감. 마침 차 한 대에 정원 초과 탑승하여 계모임 장소 이동 중이던 성인 여성 7인 전원 사망.
  • 2016년 7월, 영동 고속도로 봉평터널 인근 연쇄 추돌 사고.. 졸음운전을 하던 관광버스가 앞의 렌터카 승용차를 시속 100km 남짓한 속도로 그대로 추돌. 운전자 제외한 탑승자 4인 사망.
  • 2017년 7월, 경부 고속도로 양재IC 인근에서 M 광역버스가 역시 졸음운전으로 앞의 승용차 추돌하여 탑승자 2인 전원 사망.

(4) 작은 차가 큰 차의 앞뒤로 끼임

  • 2013년 12월, 경부 고속도로 하행선 경주-울산 부근의 정체 구간에서 벽돌을 가득 실은 25톤 트럭이 앞의 아반떼 승용차를 추돌함. 승용차는 앞의 25톤 탱크로리와 뒤의 트럭 사이에 끼여서 완전히 구겨지고 아작남. 승용차엔 마침 두 집의 어머니와 각각의 아이들 둘.. 총 6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 사고로 전원 사망..
  • 2016년 5월, 남해 고속도로 터널 9중 추돌 사고. 모닝 승용차 하나가 대열 운행 중이던 버스 두 대 사이에 앞뒤로 끼여서 탑승자 4명이 전원 사망했다.

(5) 승용차는 뒤에 연료탱크가 있다. 뒤를 세게 추돌 당하면 낮지 않은 확률로 불이 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하필 전부 다 음주운전 사고들이네..

  • 2012년 6월 새벽, 음주운전 승용차가 앞에 멀쩡히 잘 가고 있던 승용차를 시속 180km 속도로 추돌.. 앞차는 화재가 발생해서 공항 직원 일가족 4명이 전원 사망했다.
  • 2015년 2월 새벽, 구미에서도 음주운전 차량이 앞의 경승용차를 엄청난 과속 상태로 추돌.. 앞차는 불이 나서 탑승자 4명이 전원 사망했다.
  • 그리고.. 다음과 같이 안타깝고 암을 유발하는 사례가 또 있었다.

5. 고속도로 1차로에서 2차 사고 + 차량 전소 + 여성 운전자 사망

(1) 지난 2021년 1월 4일 밤 11시 무렵, 경부 고속도로 상행선 판교IC 부근에서,

  • 어떤 30대 여성 운전자가 칼치기 차량 때문에 놀라 피하다가 핸들을 잘못 꺾고.. 1차로의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단독사고 냄.
  • 그래서 멈춰 서 버렸는데.. 얼마 후 뒤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맹렬한 속도로 역시 1차로를 달리다가 저 차를 들이받음. (심야이기 때문에 버스 전용차로가 시행 중이지는 않음. 승용차도 1차로 주행 가능)
  • 차에 불 나고 여성 운전자 사망.

(2) 2020년 7월 22일 밤 10시 45분쯤, 제3경인 고속화도로 고잔TG 부근에서,

  • 1차로를 달리던 차량 A가 앞차 B를 살짝 추돌해서 사고 처리 때문에 둘 다 멈춰 섬.
  • 그런데 이때 20대 여대생 두 명이 탔던 차량C는 1차로를 달리다가 얘들을 발견하고 간신히 멈춰 섬.
  • C는 슬슬 차로를 바꿔서 다시 출발하려 했는데.. 1차로에서 차량D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다가 저 차를 추돌. 차량 C는 불이 나서 전소하고.. 탑승해 있던 여대생 두 명은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

(2)의 경우, A와 B 일행은 트렁크 개방이나 삼각대 같은 안전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해자 B는 음주 사실이 들통나지 않으려고.. 여느 사설 바가지 견인차가 아니라 도로 관리 시설에서 안전을 위해 사고 차량을 무료로 밖으로 견인해 주겠다는데도 거절하고, 30분이 넘게 1차로에서 시간 끌며 차 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명목상 자기 보험사의 견인차를 기다린 거라고는 하는데..

요컨대 (1)은 들이받은 차가 음주였고, (2)는 차를 멈춰서게 만든 민폐 당사자가 음주였다. 들이받은 가해자 당사자의 죄질은 그냥 평범한 전방주시 태만과 과속이었다. 그런데 피해는 정말로 된통 당했어야 할 B가 아니라 애매한 C가 고스란히 뒤집어쓴 것이다.;;
괘씸하긴 하지만 그래도 음주운전자가 C 차량 탑승자를 직접 죽인 건 아니어서 인과관계를 따지기가 참 난감하다.

상황이 이러니.. 일반 도로에서는 지방 경찰청이 (1) 신호와 (2) 과속만 죽어라고 단속하고, 고속도로에서는 신호 걱정은 딱히 안 해도 되니 (1) 졸음운전과 (2) 2차 사고를 예방하려고 애쓰는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1/08/09 08:35 2021/08/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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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 찬송가에 수록된 제일 최신곡

한때 우리나라 교회에서 널리 쓰인 찬송가는 잘 알다시피 558곡짜리 통일 찬송가였다.
(난 21세기 새찬송가라는 건 진지하게 사용하고 분석해 본 적이 없어서 얘에 대해서는 뭐라 단정적으로 말을 못 하겠음. 그래서 라떼 옛날 것 기준으로..)

통일 찬송가는 편찬 위원들의 창작곡을 일부러 집어넣은 것을 제외하면, 수록곡들 중에 제일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1938년작인 “온 세상 위하여” 정도였다. (명목상 이것보다 미묘하게 더 최근인 곡도 있긴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루도록 하겠음)

요컨대 이 클래식 찬송가들은 대체로, 사실상 전부 다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핵무기, UN 따위의 등장 이전 말이다.
난 개인적으로 저것들이 등장하기 전과 등장한 후의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생활 방식은 서로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음악 자체만 해도.. 내가 잘은 모르지만 국민악파니 신고전주의니를 거친 뒤, 20세기 중반쯤부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실용/세속 영역에 속한 '현대 음악'이 주류로 등장했다. 통상적인 클래식 장르는 뭔가 매니악한 별개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성탄절을 소재로 하는 노래들도 1940년대쯤부터 예수 성탄 찬송보다는 세속적인 캐롤로 확 바뀌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the Christmas song 등..
한때는 롤스로이스가 엘비스 프리슬리한테도 “당신 같은 딴따라한테는 우리 차의 품격이 어울리지 않습니다”라고 퇴짜 놓고 차를 안 팔았을 정도였던 것 아시는가? (그래도 나중엔 결국 팔았다고 함)

그리고 분야를 완전히 바꿔서 과학 쪽으로 가면.. 지금 지구의 대기는 이산화탄소 농도만 증가한 게 아니라 방사능도 전지구적으로 극미량이나마 증가해 있다고 한다. 원자폭탄 투하와 각종 핵실험 때문에..
물론 그게 인체에 당장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 정도 변화에도 민감한 초정밀 기계를 만들 때는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오죽했으면 1945년 이전에 만들어진 강철이 필요하다고 태평양 전쟁 때 가라앉은 일본 전함의 잔해 고철을 끄집어내서 재활용할 정도라고 한다. 바닷물 속에 쳐박혀 있으면 다른 방식으로 부식될지언정, 방사선으로부터는 완벽하게 차폐를 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학 기술은 공기 중에 정말 새 발의 피만치도 들어있지 않은 방사능을 감지하고, 방사성 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도 하고, 납 성분도 덤으로 감지해서 무연 휘발유까지 만드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

지질학에서 6500만 년 전, 46억 년 전 할 때의 before present 기준 연도는 바로 이런 관측이 시작된 시기 근처인 1950년 1월 1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것처럼.. 195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찬송가들은 1945년 이전에 만들어진 철과 비슷한 대표· 상징적인 의미가 영적 분야에 있는 것 같다.
다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산마다 불에 탄다 고운 단풍에” 같은 창작곡은 1967년작이다~~ ㅎㅎ

2. 앨버트 심슨, Once it was the blessing

앨버트 심슨은 찬송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를 작사한 캐나다의 목사, 신학자이다.
이 사람이 작사한 찬송가 중에는 저것 말고도 "Once it was the blessing"이라는 게 있다.

"한때는 난 오로지 복만 잔뜩 받고 싶어했는데 지금은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한때는 난 '필'에 꽂히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말씀을 더 좋아합니다.
한때는 열심히 간구 기도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이용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하나님이 날 사용해 주시길 원합니다.
...
한때는 내 혼자 뭘 열심히 해 보려 애쓰고 낑낑댔지만 지금은 난 그분 안에서 평안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해 있고 그분이 모든 것이십니다."


송 명희 시 같은 대구로 가득하면서 신앙 생활과 영적 성숙의 본질이 잘 담긴 굉장히 훌륭한 시임이 틀림없다.
본인은 몇 년 전에 울 교회의 주보를 통해서 이 시를 처음으로 접했다. 담임목사님께서 엄청난 학구파 독서광에 거의 걸어다니는 신앙 서적 검색엔진 급이신 분이어서..; 온갖 출처로부터 신앙 생활과 관련된 유익한 글이 있으면 일부 excerpt를 소개하곤 하셨기 때문이다.

난 신앙 서적 검색엔진은 아니지만 회중 찬양 선곡과 인도 짬이 10수 년.. 내 찬송가 책이 다 낡고 성경책 이상으로 너덜너덜할 정도로 책을 많이 뒤진 상태였다. 걸어다니는 찬송가 검색엔진은 얼추 된다.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복음 찬송가' 책에 저 시와 비슷한 내용의 가사가 담긴 신곡을 본 적이 어렴풋이 있었다. 직접 불러 보거나 들은 적 없이, 악보를 눈으로 대충 읽고 지나갔던 기억만으로 말이다.

그걸 찾아냄으로써 "768장 복을 바라던 나 주를 바라고"가 울 교회에서 회중 찬송 때 최초로 소개되었다. 요런 것도 찬양 인도자가 경험하는 작은 보람이다.

기존 통일 찬송가에도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이라고 곡이 실려는 있지만..
얘는 가사가 굉장히 딴판으로 번역되는 바람에 사람이 성숙하여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원문의 저런 반전 역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은혜를 구했더니 은혜, 신유를 구했더니 신유..;;;; 바뀐 게 없잖아~~ ㅋㅋㅋㅋㅋ

3. 웬일인가, 웬 말인가

우리말 찬송가 중엔 ‘웬일~’ 이렇게 놀라움, 경악을 뜻하는 ‘웬’이라는 글자로 가사가 시작하는 곡이 두 개 있는데.. 작사자는 서로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멜로디가 동일하다. 가사가 5절까지 있는 것까지도 같다~!
하나는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라고 예수님이 감히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셨다니~! 그렇게 감격하고 놀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웬일인가, 내 형제여”라고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너 그렇게 안 믿다가 죽어서 지옥 가겠구나, 마귀를 좇고 재물만 좇다가 나중에 쫄딱 망하겠구나, 불에 활활 타겠구나, 인실X을 체험하겠구나..;;” 이렇게 경고하는 굉장히 부정적인 내용이다. 찬송가에 속해 있지만 내용은 찬양이라기보다는 복음성가에 더 가깝다.

게다가.. 찬송가 가사라는 게 보통은 한국어 번역이 영어 원문보다 더 부드럽게 희석되고 미화되는 편이다. 영어에서 hell이 있다 해도 그대로 번역 안 하는 편인데..
“웬일인가 내 형제여”는 한국어 가사가 영어보다도 ‘지옥’이 더 많이 나온다~! 이건 굉장히 이례적인 번역 스타일인 것 같다.

이 정도로 청자에게 부정적인 경고, 책망조의 가사는 개인적으로 딴 데서는 주찬양 1집 “참 소경” 정도밖에 못 봤다.
“(말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를 못 하는 사람이 벙어리, 앞 못 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소경 등등등~) 당신은 소경이 아닌가 / 당신은 병신이 아닌가” 이런 가사이다.;; 이건 가사가 노래 없이 시의 형태로 먼저 존재했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영어 찬송가는 tell과 롸임을 맞춰서 hell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 “웬일인가..”뿐만 아니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도 딱 저 롸임이 존재한다~!

4.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이 유명한 찬송가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지금의 형태로 완성됐기 때문에 내력이 좀 복잡한 곡이다. 깔끔하게 단일 작사자나 작곡자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원곡은 스웨덴 민요 멜로디에다가 언어조차도 영어가 아니었다고 한다. 독일어와 러시어 가사부터 먼저 있다가 나중에 영어 번역이 몇 가지 나왔으며, 가사는 3절까지 있던 것이 추후에 4절이 추가됐다.
이 때문에 이 곡은 처음 1, 2절은 자연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 8편 같은 분위기이지만 3절은 "살아 계신 주" 같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 얘기, 그리고 4절은 무려 재림 얘기까지 기독교 교리가 두루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엔 1949년작 영어 가사가 채택되어 있다. 이거 가사를 번역한 사람이 4절을 추가하고 멜로디를 개작도 한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은 연식에 비해 최종 작사· 작곡 연도가 2차 세계 대전까지 지난 굉장한 현대라고 기재되어 있다.
게다가 영어 가사만 바리에이션이 있는 게 아니다. 한국어 번역도. 가톨릭 쪽 번역과 개신교 쪽 번역이 서로 나뉜 상태이다.

이 곡의 영어 가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2절에서 "그랜저"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grandeur는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의 이름으로나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웅장함, 장관' 이런 뜻을 지닌 보통명사이기 때문이다. When I look down from lofty mountain grandeur.. 그랜저가 저렇게 쓰인 걸 본인도 난생 처음 봤다.

그랜저는.. 한때 지존파의 살생부에 이 차의 차주가 올라가 있을 정도였고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저로 답했습니다" 이런 정신나간 CF도 만들어졌을 정도로 고급차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그랜저가 30년 전만치 고급차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도 여전히 아무나 탈 수 있는 서민형 차는 아니다.

5. 샤론의 꽃 예수

멜로디가 굉장히 예쁜 곡답게, 현대에 속하는 1920년대에 발표된 곡이다.
얘는 4개의 절로 된 가사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결교의 4대 강령과 순서대로 대응하는 것 같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 그래서 신유에 해당하는 3절을 보면 얘는 찬송가 중에서는 흔치 않게 “질병을 고쳐 주소서”라는 간구가 들어있다~!

아울러, 영어 가사는 똑같이 my life이지만 1절은 중생(거듭남)이라는 갓 구원 문맥이기 때문에 “내 생명”이고, 2절은 그 뒤의 성화되어 가는 모습(성결) 문맥이기 때문에 “나의 삶”인 것도 주목해 보자.
아 2:1 rose of Sharon은 ‘무궁화’라고 통용되는 단어인데.. 정작 무궁화를 국화로 쓰고 있는 나라에서는 장미나 무궁화도 아니고 수선화라고 더 널리 알려져 있다. ㅎㅎ

이렇듯, 어떤 찬송가는 아주 원론적이고 무난한 메시지만 있는 게 아니라 특정 노선이나 교파의 교리를 좀 더 부각시킨 경우도 있다. 이러니 종말이나 천국을 소재로 한 찬송가는 가사를 쓰기가 난감해진다.

그런데.. “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이 거역하는 인생을 은혜로 택했네 … 자랑하지 않게 함이요, 하나님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 요 곡은..
개신교/기독교라면 차이가 존재할 리가 없는 구원과 은혜라는 공통 교리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예정론 냄새가 같이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꼭 장로교가 아니어도 크게 신경 안 쓰고 부르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1/07/30 08:33 2021/07/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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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 용어들

1. 인내(perseverance)

100여 년 전에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Endurance라는 이름이 붙은 배를 타고 남극까지 갔다가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왔다. 배의 이름이 '인내'라는 뜻인데 선장이 배의 이름값을 톡톡히 치렀다.

그런데 2021년 초에는 비슷하게 '인내'라는 뜻이지만 스펠링은 다른 Perseverance이라는 이름의 미국 우주 탐사선이 화성에 착륙했다.
굳이 순우리말로 바꾸자면 하나는 참음이, 다른 하나는 견딤이 정도 되겠다. RSA 암호화도 로컬라이즈 하자면 무슨 박이정, 김이박 암호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듯이 말이다.;; (그냥 자기 성 이니셜..)

요런 태양계 시뮬레이터(☞ 링크)를 돌려 보면, 2020년 9~10월.. 요 때가 지구와 화성이 제일 가까워지는 때임을 알 수 있다. 화성 탐사선은 2020년 하반기 동안 그 타이밍에 맞춰 최단 시간 최단 거리로 화성에 도착하는 경로를 타고 날아갔다.

더 찾아보자면.. 1988~1990년 사이에는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진짜로 얼추 가깝게 일렬로 늘어서 있어서 보이저 2호 탐사선이 이들을 나란히 촬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해서는 그런 거 전혀 없었으며, 뉴 호라이즌스는 오로지 명왕성만을 향해 9년 동안 외로운 항해를 했던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난 칼빈의 5대 강령 중 마지막인 '성도의 견인'이 perseverance가 아니라 preservation인 줄로 막연히 알고 있었다.;;
저 견인이 불법주차 차량 견인 할 때의 견인일 리는 없겠지만.. -_-;; (그런데 끌어당겨서 이끌어 주신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저게 구원의 영원한 보장하고도 관계 있는 강령이니 보호 preservation이 심상 면에서 어울리지 않는가?
견인 할 때 '인'은 참을 인 짜였나 보다. 뜻이 직관적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는 아니다.

영어로도 인내 하면 patience나 아까 저 인듀어런스가 더 친숙하지, perseverance는 좀 생소하다. 에디슨의 명언에 등장하는 perspiration처럼 pers*로  시작하는 어려운 단어의 양대 산맥인 것 같다. 그래도 perseverance도 성경에서 엡 6:18에 딱 한 번 나오긴 한다.

2. 상징

우리나라 헌법은 그 유명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시작한다.
이 나라의 총체적인 정체성을 규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 제일 먼저 제1조에 나온다. 이 조항 때문에 대한민국은 민족 정서나 정통성만 옛 조선을 계승할 뿐, 정치 모델은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법학자가.. 자기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헌법 제1조가 제일 사이다 같고 후련하고 자랑스럽다고 회고했던 바 있다. 심지어 이 조항에 곡을 붙인 민중가요도 있다..;;

그런데 일본 헌법은..;; 덴노, 천황부터 나온다.
“제1조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국민의 총의로부터 나온다.”
이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상징’이라는 단어가 거듭해서 쓰인 유명하고 인상적인 문장 예시인 것 같다.

그런 것처럼.. 신약 교회에서 행해지는 침례, 그리고 주의 만찬에서 쓰이는 빵과 포도즙은.. 그 자체가 다른 종교적인 효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그냥 ‘상징’일 뿐이다~!
오늘날 일본 천황이 정치적인 권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외치면서 옛날 같은 또라이 짓을 또 반복하지 못하도록 힘을 빼 놓음)

3. 살, 뼈, 피

성경에서 육체의 구성요소로서 살(flesh)과 나란히 언급하는 유의어로는 뼈와 피가 있다.

: 아담이 이브에 대해서 한 말이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였다(창 2:23). 예수님의 말씀 중에도 있다. "영에는 살과 뼈가 존재하지 않는 반면..." (눅 24:39).
또한, 마귀가 가장 악랄한 육체 고문 얘기를 꺼내면서 뼈와 살을 거론하기도 했다(욥 2:5). 그러니 김 성모 만화에조차 뼈와 살을 분리해 주겠다는 대사가 들어간 것이지 싶다.

: 이건 기독교 신자에게는 주의 만찬 때문에 아주 유명할 것이다. 그리고 엡 6:12에서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는 게 아니며"라고 언급되었다.
그 밖에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고전 15:50),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간파할 능력도 없는 존재라고 나온다(마 16:17).

하긴, 성경적으로는(그리고 아마 의학적으로도 실제로)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피가 만들어지는 곳이 뼈(골수)이다. 그러니 살과 뼈와 피는 마치 몸, 혼, 영만큼이나 거의 삼위일체 급으로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인 듯하다. 정확히는 몸(살-뼈-피), 혼, 영 이런 관계가 되겠다.

자매품으로는 skin and flesh가 있고, 물과 피도 있다. 물과 피는 요일 5:6,8의 그 삼위일체 구절, 그리고 요 19:34에서 예수님이 옆구리가 창에 찔리면서 흘러나온 체액이라고 언급되었다.
세상 관용어 중에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 "내 눈에서 눈물이면 니 눈에서는 피눈물"(!!) 같은 말이 있으니.. 물의 대구· 반의어로는 불뿐만 아니라 피도 임팩트가 꽤 크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살 - 피 - 물 - 불" 이렇게 뭔가 의미가 연결된다.

4. man과 virgin

영어에서 man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주변 문맥에 따라서는 woman의 반의어인 남자라는 뜻도 있고, child/kid의 반의어인 성인이라는 뜻도 있다. (대표적으로 고전 13.. "내가 커서 어른이 된 뒤에는 초딩의 길을 버렸노라")
물론 요즘이야 의미를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면 male이나 adult 같은 단어가 대신 쓰이며, 성별 구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강조하려면 person이 투입되기도 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성인 남자만이 진정한 능력과 책임감을 갖춘 사람으로 취급돼서 그런지 구분의 필요성이 현대보다 덜했는가 보다.

man이 남자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는 뜻이라면, virgin은 여성에서 출발한 '미혼자, 동정'이라는 뜻이다. 미혼 여성이니까 처녀라는 뜻이 굉장히 강해지지만 virgin은 넓은 의미에서는 꼭 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14만 4천 명의 사람들은.. 여자와 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virgin이라고 지칭되었다.
성경이 레즈비언-_-;;;을 말할 리가 없는 이상, virgin은 그냥 동정이라는 뜻이다.

man과 virgin 모두 성경에서도 중요하게 쓰이는 단어인데.. 관계가 이렇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5. 이론 (theory) -- 창조

세상에는 자연의 기원과 관련하여 성경과 과학이라는 토끼 두 마리를 모두 잡으려 하는 진영이 있다. 본인은 이와 관련하여 "(1) 세상은 절대자가 치밀하게 설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연히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와, "(2) 우주 및 지구는 나이가 수천 년 남짓하며 젊다"를 구분해서 생각한다. 둘은 마치 인공위성과 우주 발사체만큼이나 주 관심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1)은 솔직히 자연과학의 연구 방법론으로 증명이나 반증할 수 없다. 그리고 신만 개입하면 되니 유신론적 진화론도 가능하고 연대기에 막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2)는 일단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대두된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얼마나 되냐, 방사성 연대 측정법에는 오류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신의 존재 여부를 배제하고 과학만으로 얼마든지 따져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창조론은 진화론과 달리, 과학적 연구방법론을 갖추지 못한 신앙 신념 주장일 뿐이고 과학 이론이라고 불릴 수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이야 말할 것도 없고 (2)조차도 과학적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고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각종 위키 사이트에서는 이 학설(?)이 창조론이 아니라 '창조설'이라고 등재돼 있다. theory가 아니라 doctrine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이 아니라 신학이나 철학의 영역으로 분류한다.

세계사에서 "먼로 독트린"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 신경 끄고 간섭하지 마라" 이건 그냥 선언이고 정의일 뿐, 논리를 따지고 논쟁할 대상은 아니다. 세상은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 의도적으로 설계됐다는 성경의 진술 역시, 저 먼로 대통령의 연설만큼이나 선언, 학설 떡밥, 주장, 종교 교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의 창조를 믿는 사람이 애시당초 창조론이니 창조설이니 하는 용어에 꼭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일례로, 내가 노아의 홍수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쓰여 있고, 예수님이 그걸 역사적 사실이라고 언급하고 인용했고, 성경 기록이 충분히 정확하게 잘 보존되고 전수됐기 때문이다. 무슨 인공위성 지도를 보니 아라랏 산 정상에 방주 잔해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성경에도 피에 대해서라든가 위생 관념 같은 일부 진술은 과학적으로 옳고 명백히 시대를 앞섰던 것이 있다. 이에 대한 지식은 성경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모함 험담 따위를 반박하고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경이 하나님의 존재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입증하는 책인 건 결코 아니다. 자기 신앙을 과학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는 내 경험상 별 영양가 없다. 내게는 노아의 방주 흔적이 현장에 남아 있는 것보다 킹 제임스 성경이 무오하게 전해져 온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이다~!

쟤들은 신이 존재하는 과학적 증거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는 배제하고..;; (1)이 아니라 (2)라도 제대로 공략해야 할 것이다. 통상적인 연대 측정법을 과학 실험을 통해 부정하고 모든 지질 변화를 노아의 홍수 하나만으로 설명하면서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고 주장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과학 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학 분야는 아니지만 옛날에 고고학자 헤이에르달이 몸소 뗏목만으로 바다를 건너서 자기 학설을 입증했듯이 말이다.

6. 이론 (theory) -- 간극

다음으로.. 창 1:1-2 사이에 긴 간극이 있다는 성경 해석 체계를 '간극 이론'이라고 한다.
간극이야 애초에 자연과학이 아니라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는 연구방법론으로서 자기 도메인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theory라고 불리는 것에는 논란이 없다.

그런데, 간극을 교리적으로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건 당연한 성경적 사실이지, 무슨 따지고 논쟁하고 따지고 반박할 여지가 있는 이론이란 말이냐?"이다. 즉, theory라고 불리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여기며 그냥 gap fact라고 부른다.

간극 이론은 천문학이나 지질학에서 말하는 긴 연대기와는 전혀 무관하다.
"물은 언제 창조됐고 천사들과 루시퍼는 언제 창조됐냐?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해 봐도 6일 창조 도중은 절대 아니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6일을 제멋대로 늘어뜨릴 수는 없으니 답은 결국 그 이전 세상밖에 없구나" 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과학의 긴 연대기와 일치하는 건 그 다음으로 그냥 덤일 뿐이다. 과학부터 먼저 생각한 뒤에 성경을 거기에 끼워 맞춘 게 절대로 아니다.
창조과학 진영에서 젊은 지구의 증거를 일부 들이대는 건.. 만약 정말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면 그건 6천여 년 전 6일 재창조의 얼마 안 되는 흔적일 것이다.

3과 4를 종합하자면.. 창조설 내부의 분파로 간극 이론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이게 이 문제의 가장 합리적인 해답이다. 물론 나 같은 신자의 신념에 따르면 창조와 간극 다 그냥 팩트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1/07/19 08:35 2021/07/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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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징

중앙(55), 중부내륙(45), 혹은 종축에 비해 인지도가 훨씬 떨어져서 이름도 기억 안 나는 30, 40 같은 횡축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국내 고속도로의 원조 대부인 경부 고속도로를 달려 보면.. 경부의 압도적인 특징이 곧바로 느껴진다.

(1) 일단, 차로가 많고 엄~청 넓다. 어지간한 구간들은 다 8차로이고 서울 부근에서는 심지어 10차로까지 있다. 그러니 파란 차선 버스 전용 차로도 볼 수 있다.
다른 고속도로들은 길가나 나들목 주변, 휴게소 주변이 오지 깡촌인 편인데 경부의 수도권 구간은 거기까지도 온통 건물이 지어졌고 방음벽이 쳐져 있다. 특히 수원 IC나 죽전 휴게소 주변은 뭐.. 도시 고속화도로이지, 고속도로의 주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 그리고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경부는 거리 대비 놀라울 정도로 고가, 터널이 적고 평지 위주이다. 지금처럼 무식하게 산을 직선으로 뚫을 정도의 넉넉한 기술과 자금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터널은 영동-옥천-대전 사이에 집중되어 있고 그나마 경상도에는 전체를 통틀어 어째 겨우 150미터 남짓한 길이의 경주 터널 딱 하나가 있을 뿐이다.

고속도로보다 훨씬 더 먼저 만들어진 경부선 철도만 해도 부산이나 구미 일대에 터널이 종종 등장한다. 후대에 선형 개량하면서 만든 터널 말고, 오리지널 단선 시절에도 남성현, 왜관 터널 같은 게 있었다(지금은 쓰이지 않고 관광지, 와인 창고 등으로 개조).

경부 고속도로는 그것보다도 터널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만들었던 터널 중에 엄청나게 고생하며 힘들게 만들었던 놈이 바로 당재 터널이며, 걔는 30년 남짓 쓰이다가 해당 구간 자체가 경부 고속도로에서 은퇴하게 됐다.

(3) 경부 고속도로의 개통 이래로 40년 가까이 오리지널 4차로였던 영천-경주-울산 구간이 지난 2010년대 말에야 6차로로 확장됐고, 경부에서 2021년 현재 최후까지 4차로로 남아 있는 도저히 경부 같지 않은 구간은 옥천 주변이 유일하다.

그나마 평지 구간은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2003년경에 고가와 터널로 대체됐던 구간은 사실상 반영구적으로 4차로로 봉인되어 남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중부 고속도로(35)도 고가를 확장할 수는 없어서 옆에 제2중부(37)를 또 만들었으니 말이다.

옥천에는 경부 고속도로 옛 구간, 그리고 경부 고속철도도 대전 시내 구간이 완공되기 전에 쓰였던 연결선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교통 관련 레거시들이 명물이라고 홍보해서 철덕 교통덕 관광을 유도해도 될 것 같은데..

한편, 경주 터널도 처음에는 2차로짜리 터널 두 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그건 이제 상행만이 독점해서 사용한다. 하행은 새로 뚫은 3차로짜리 터널이 담당하게 됐다.
상행과 하행 터널이 건설 시기가 거의 5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는 게 인상적이다. 그리고 상행은 마지막 차로 하나가 사실상 남기 때문에 그건 실선을 그어 놓고 갓길로 활용한다고 한다.

2. 고속도로의 노래

고속도로의 노래라는 게 있다. 요즘 세대들이 알 리가 없겠지만 사실은 본인조차도 당대에 들어 본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대한뉴스 경부 고속도로 준공 소식에서 흘러나오던 BGM이 바로 이것이다. (☞ 링크) “아침 햇볕 신선한 푸른 하늘 ... 천리를 주름잡는 고속도로”

그런데 이게 동요 가을길(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 가을길은 비단길 ☞ 링크)과 미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 처음에 박자는 다르지만 "미미미 미파솔" vs "미미미파 솔솔솔" 약간 비슷한 멜로디로 올라감.
  • 높은음/낮은음 합창이 꾸며져 있고 파트별로 "랄랄랄라라" 나뉘는 부분이 있음.
  • 인도와 차도라는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길을 소재로 하고 있음.

이런 점에서 혹시 동일 작곡자의 곡이 아닌가 의문도 들었지만 그렇지는 않네.
물론 전자는 그냥 자연 환경에 대한 서정적인 노래인 반면, 그야말로 조국 근대화와 번영 프로파간다가 노골적으로 쫙~~ 깔렸다는 차이가 있다. =_=;;;

그래서 "가을길"은 초등학교 저학년은 아니고 아마 라떼 기준 내 기억으로 4학년 이상의 중-고학년 수준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화음 합창이라는 게 이렇다는 것을 거의 처음으로 알려 준 굉장히 예쁜 노래였다고 기억에 남아 있다.

뭐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 하나 겨우 스스로 만들어 낸 거 갖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난리를 치던 동안..
천조국은 고속도로야 이미 몇십 년 전에 전국에 거미줄처럼 깔아 놔서 이름 없이 번호로 분류해야 할 지경이며 최초가 뭔지는 기억도 안 나는 상태였다. 그리고 저 때는 아예 인간을 달로 보낸 걸 경축했더라만..
그래도 산업화 근대화라는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3.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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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천하의 경부 고속도로가 꼴랑 4차로에 중앙분리대가 없거나 풀밭이었다니..
서울 톨게이트가 저렇게 차로 수가 적고 좁았다니..
자동차들 연식을 보면 80년대도 아니고 확실히 70년대이긴 한데 사진이 컬러라니..!!
여러 모로 멋지고 진귀한 기록들이다. ^^;; 원판은 흑백인데 인위로 상상해서 색을 입힌 건 아니기를 바란다.

4. 순직자의 후손, 한국 도로 공사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경부 고속도로 건설 중 순직자 77명 중에..
후손이 선친의 뜻을 이으려고 도로공사에 취업한 사례도 있었구나! (김 기일 씨. 한국 도로공사 1989~2021 재직 후 부장으로 정년퇴직) 게다가, 유공자 자녀라는 특혜 같은 것도 없이 평범하게 공채 뚫고 들어갔던 모양이다. (☞ 관련 링크)

철도 쪽에야 걸출한 철도 명문 가문을 개척한 김 재현 기관사의 후손들이 있다. 30도 못 된 나이로 6· 25 전쟁 때 대전 부근에서 순직했지만(윌리엄 딘 소장 구출 특공대를 수송하기 위해 열차 운전) 현재 외손자 홍 성표 씨까지 코레일 소속 기관사가 돼 있으니 말이다.
그것처럼 고속도로 분야에 비슷한 사연을 지닌 후예가 있(었)다는 것 역시 흥미롭다.

도로공사는 국내의 모든 고속도로들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국도나 지방도처럼 전국의 다른 모든 도로들은 그 도로가 지나는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반면, 고속도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경부 고속도로만 해도 법적으로는 양재 IC 이남만이 한국 도로공사에서 관리하는 최대 시속 100~110짜리 진짜 고속도로이다. 그 이북은 그냥 강변북로 같은 시속 80짜리 서울 시내 관할의 자동차 전용 도로일 뿐이다. 정식 명칭은 '경부 간선 도로'.

단지, 폐쇄식 톨게이트가 있는 곳과 버스 전용 차로가 적용되는 곳이 법적인 고속도로의 시종점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운전자들에게 혼동의 여지가 있다. 양재 IC는 1987년 11월, 지금의 서울 톨게이트가 성남 궁내동에 세워지기 전에 최초의 서울 톨게이트가 있던 곳이기는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7/16 08:34 2021/07/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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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아카라이브 냥드립 채널에서 누군가가 성경 창세기의 소돔 이야기를 만화로 각색해 놓은 것을 봤다. 굉장히 재미있게 잘 그려 놔서 본인은 아놔..ㅠㅠㅠㅠㅠ 현웃 하면서 봤다. (☞ 링크)
신성모독적인 요소 없으면서 적당히 오덕과 비속어와 개그 패러디 코드가 들어있는 요런 스타일의 만화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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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돔잘알인 롯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뉴비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여기 계시다간 직장 활동에 문제가 생깁니다. / 백수인데 / 그 직장 말고" ㄲㄲㄲㄲㄲㄲㄲ
  • "소돔인의 패악질을 본 천사들은.. 이 새끼들은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 "븅신같은 ㄴ이 하지 말라는 짓은 꼭 해 가지고.. 보고 싶다 썅년아!!" (롯.. 자기 부인을 잃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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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소돔과 고모라를 석기시대로 되돌려 준 천사가.. 알고 보니 커티스 르메이 아재였어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단, 우리엘..?? 그런 이름은 성경에 없음)

1.
저기서 의미심장한 관찰은..
"노아 때처럼 대홍수를 터뜨릴까요? / ㄴㄴ. 다시는 물로써 심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 않느냐"이다.
실제로 성경적으로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심판은 규모와 수위 면에서 서로 대등한 twin을 형성한다. 예수님도 노아의 날과 롯의 날을 대조해서 언급하셨고, 베드로후서 2장에서도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심판이 나란히 나온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이들은 사건 이후에 자녀가 애비를 상대로 민망한 짓을 했다는 공통점까지 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노아의 아들 '함'이..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멸망 이후에는 롯의 딸들이 말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굉장히 동심파괴적인 요소이다.
단, 전자는 애비가 스스로 술 마시고 취해 자빠졌고, 후자는 딸들이 애비한테 술을 강제로 먹였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창세기의 사건들과 달리, 베드로후서 3장에 나오는 불 심판은 규모와 차원이 완전히 다른 심판이며.. 그 이전의 물의 넘침도 노아의 홍수보다 훨씬 더 큰 심판과 간극을 암시한다.

2.
성경을 좀 읽은 사람이라면 창세기 19장뿐만 아니라 사사기 19장에서도 소돔 고모라와 거의 판박이 장면이 또 나온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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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자기 딸을 내어 주겠다니 저런 막장 쓰레기 애비가 있나”라고 읽을 게 아니라 그 반대다. 집단 동성애 광기가 얼~~~마나 흉측하고 끔찍하고 차마 형용조차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짓이었으면 정상적인 애비가 자기 친딸을 희생양으로 치러서까지 수습하고 무마하려 애썼을까..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버스를 제어하지 못해서 운전사가 불가피하게 주변의 누구를/어디를 치느냐 고민하다가.. 눈물을 머금고 자기 친자식을 선택하는 상황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
“차라리 내 딸을 줄 테니, 같은 남자끼리는 제발 그러지 마세요~ 평범한 강간 범죄자가 될지언정 인간이기를 포기하지는 마세요” 말이다. 비역질은 무슨 인권 라이프스타일 따위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사기 19장에서는 결국 남성 손님 대신 그 손님의 첩이 폭도들에게 끌려 나갔다. 남색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첩은 밤새도록 온갖 학대를 당한 뒤 이튿날 아침에 결국 죽었다.;;

3.
마지막으로, 이 만화에서 기독교 교리 차원에서 약간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딸을 팔아먹긴 했지만 소돔 기준으로 '그나마' 의인이었던 롯을 살리기 위해" 부분이다.
이건 100% 정확한 진술이 아니다.

벧후 2:7에서 롯이 의인이었다고 말하는 건.. 롯이 소돔의 돈고춘 새키들에 '비해서' 의인이었다는 게 아니라, 완전히 구원받아서 예수님의 의가 대신 전가된 수준으로 의인이었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육신적이었고 소돔과 고모라에 제 발로 가서 고난과 삽질을 자처했고 민망한 흑역사를 남겼지만.. 죄인 신분은 아니라는 그런 차원이다.

  • 구약에서 완전 개망나니처럼 살았지만 신약에서 입 싹 씻고 의인 보정을 받아 있는 인물은 무조건 구원받은 사람이다. 삼손, 롯.. (단, 사울은 이런 레퍼런스가 신약에 존재하지 않아서 긴가민가)
  • 그 반면, 신약에서도 대놓고 부정적으로 언급된 구약 인물은 지옥 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카인, 이세벨, 발람.
  • 그리고 신약에서 최후가 안 좋은 사람(아나니야와 삽비라, 데마 등), 구약에서 벌을 받아 그냥 목숨을 잃은 사람(웃사 등)은 단순히 그 사실만으로 구원 여부를 단정지을 수는 없으며, 내 생각에는 구원은 받았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고 보니 롯은 부인과 사위와 전재산 다 날리고 나서 결국 텐트.. 아니, 동굴로 들어가서 야인 생활을 시작했구나! 포도원 농부라도 된 노아보다 더 막장으로 전락하긴 했다.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1/07/07 19:35 2021/07/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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