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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에는 prophe- 이라는 형태소로 시작하는 '예언' 관련 단어 3인방이 있다.
prophecy 예언(명사), prophesy 예언하다(동사), 그리고 prophet 저걸 행하는 사람 예언자(명사). 이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는 개역성경의 표현인 '선지자'라는 번역도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킹제임스 흠정역'은 저 prophe- 단어군(-sy, -cy, -t)을 한 치의 예외 없이 모두 '대언-'이라고 옮겼다. 이건 우리말 성경 중에 1990년대 중반, 안티오크 권위역에서 처음으로 시도했고 그걸 흠정역이 그대로 계승한 관행이다.

(0)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대신 전하기, 또는 그렇게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대언'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한 속성은 미래 예언이다. 성경이 인간의 개똥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인 증거 중 하나도 바로 예언이 확률적으로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문자적으로 많이 적중했다는 것에 있다.

쉽게 말해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 것이긴 한데, 그 대언 중에 (1) 미래 "예언"도 있다는 것이다. 관계가 이렇게 정리된다.
성경 중에서 요한계시록은 prophecy에 속하는 책이라고 분류된다. 이건 당연히 예언을 말한다. 후자까지 몽땅 대언이라고 싸잡아 풀이해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요한계시록이 성경 중에서도 어떤 특성을 갖는지를 알 수 없어진다. 사도행전이 교회의 역사서라면 계시록은 미래 예언서이지 않겠는가.

흠정역이 성경 번역으로서 매우 아쉬운 점은 성경에서 예언이라는 키워드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이건 본인뿐만 아니라 여러 목사님들도 지적하며 우려하는 면모이다. 흠정역이 다른 부분에서는 완성도 높게 잘 번역된 것도 있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다.
표면적인 이유는 예언이라고 하면 자꾸 은사주의 점쟁이의 예언 기도... 가령, "너는 몇 월 몇 일 몇 시에 무슨 일이 터질 것이고.. 이 번호의 로또를 사면 당첨될 것이다" 이런 걸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4장에다가 '예언'이라는 단어를 넣는 걸 껄끄러워한 것이다.

하지만 시한부 종말 갖고 뻘짓 하는 인간들이 있다고 해서 휴거나 종말, 예수 지상 재림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언 갖고 이상한 뻘짓 하는 인간들이 있다고 해서 성경에 예언이라는 개념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꼭 초자연적인 점쟁이급 예언이 아니더라도.. "너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구원받지 못한 채 죄 가운데 죽는다면 지옥에 가게 된다" 같은 원론적인 얘기만으로도 이미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 것이다. 예언과 대언은 서로 대립하고 상충하는 관계가 아니다.

말씀 보존 학회에서는 흠정역을 20여 년째 아주 부정적으로 까내리고 비방하는 편인데.. "우리 한킹을 도둑질한 짝퉁" 같은 영양가 없는 저질 네거티브 말고 "예언이 없는 성경" 이런 식으로 흠정역의 진짜 약점에 대한 공략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계 19:10 "... testimony 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의 경우, 옛날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대언'이었다가 나중에 나온 개역개정에서는 '예언'으로 바뀌었다~!
이는 킹 제임스 계열이 아닌 성경을 만드는 진영에서도 prophecy의 번역이 쉽지 않은 고민거리라는 걸 시사한다. "예수 믿는 증거는 말씀 선포/대언" vs "예수님이 하나님인 증거는 미래 예언 능력" 이렇게 뉘앙스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언에 예언이라는 뜻도 있다고 풀이하고 넘기는 것보다는..
반대로 예언에 대언이라는 뜻도 있다고 간주하는 게 솔직히 훨씬 더 나은 발상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서는 '예언'이라고 하면 점쟁이 예언을 떠올리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미래 예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가 담긴 진리, 선언 등등이 다 포함된다고 뜻을 확장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렇게 뜻을 확장하는 데는 대언보다는 그냥 예언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2.
예전에 흠정역 진영의 모 목사님이 쓰신 글을 보니 성경의 '예언'은 豫言(미리 예)이 아니라 預言(맡길 예)이라고 주장한 게 있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인지? 그 두 한자는 우리 국어에서는 딱히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둘 다 '미리'라는 뜻이 있고, 預에 보조적으로 '맡기다'라는 훈이 덤으로 들어가 있는 정도이다.
잘 모르겠으면 사전 찾아보고 예+한자 한번 눌러 보시라.

옛날 국한문 혼용 개역성경에서 고린도전서 14장을 펴 봐도 내가 찾아보기로 다 豫言이다. 預言이 아니다.
더 옛날, 19세기 이 수정 번역본에서 預言을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엔 그것조차도 그냥 '미리'라는 뜻에서 豫와 별 차이 없는 뉘앙스와 의도로 預를 쓴 것이다.
맨 처음에 預言으로 맞게 시작했다가 무슨 은사주의 물 먹어서 변질돼서 豫言으로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우리말에서 예언, 예고, 예지, 예상.. 이런 미래의 의미일 때는 모두 豫이다.
예금, 예치, 예탁 등 금융 문맥에서나 '맡기다'라는 뜻으로 預가 들어간 게 고작이다. 그리고 이런 용례는 현대에 와서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도입됐을 뿐이다.

그럼 예언이 豫言이 아니라 預言이면, 저 조어 원리대로라면 돈이 아니라 말을 맡긴다는 뜻인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자기 말을 남에게 맡긴다고??
그런 뉘앙스를 단어로 표현하려면 하다못해 '차력'이랑 같은 조어법으로 차언이라고 해야 한다! 借力도 자기 원래 힘이 아닌 원천을 빌려서 괴력을 발휘하는 거잖아. 차언은 이와 완전히 동일한 상황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이런 한자 구분은 사실도 아닐 뿐더러, '대언'의 옹호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3.
한자가 무엇이건 '예언'에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함."(1) 이라는 뜻이 확장되어
"신탁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또는 그런 말"(2)이라고 아주 훌륭한 뜻풀이가 국어사전에 등재돼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표준 국어대사전을 인용했다는 네이버 사전에는 (2)가 豫言에 들어가 있고, 고려대 한국어 사전도 그러하다.
현재 표준 국어대사전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2)가 預言로 옮겨지긴 했는데, 이건 아마 후대에 인위로 수정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네이버 사전과 결과가 다른 거겠지..
이런 차이점에서 알 수 있듯, 豫와 預는 처음부터 의미가 칼같이 딱 구분돼 있지 않았다.

이 '예언'은 고린도전서 14장 일대에서는 거의 다 말씀 선포, 설교에 가까운 의미이다. 사실, '방언'조차도 이 문맥에서는 타 외국어로 설교를 한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예언이 방언보다 낫다"는 말은 "말씀 선포를 자국어로 하는 게 외국어로 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복음서에서 폭도들이 예수님을 결박한 뒤, 눈 가리고 죽빵 날리고서 한 말이 "누가 너 때렸게? 알아맞혀 봐라 ㅋㅋㅋ"이었다. 이 '알아맞히다'는 prophesy이다.
에스겔 37장에서 메마른 뼈들을 살아나라고 선포 내지 주문을(?) 외우는 것도 prophesy였다.
계시록 19:10 예수님의 증언이 prophecy의 영.. 이건 아까 언급했었고.

이 모든 상황을 가장 잘 커버하는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라는 뜻인 예언(2)이다. 그 진리 중에 "미래에 일어날 일"도 있을 수 있으며.. 그걸 인간이 전한다는 뜻에서 대언이라는 뉘앙스가 저절로 포함된다.
출 7:1 "모세는 신이고 아론은 모세의 prophet"이 될 것이다.. 요 구절이 그나마 거창한 예언자 선지자가 아니라 단순 대변인, 대언자와 가장 가까운 용례이다. 마치 히브리서 9장에서 언약과 유언(16절)이 갈리는 것 같은 미묘한 상황이 된다.

그 반면, 대언(0)에는 표준 국어 대사전 어디에도 기독교적인 의미가 공식적으로 없다. 보충 설명을 더 많이 해 줘야 된다.
겨우 은사주의 예언기도(!!!) 뻘짓을 두려워해서 성경에서 예언이라는 개념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별자리 점쟁이들한테나 예언을 남겨두는 건(사 47:13).. 좀 많이 무리수가 아닐지?
그건 신천지들이 성경 공부 많이 한다니까 우리는 성경 공부 하지 말자는 식의 발상이다.

성경은 애초에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기준부터 미래 예언이 이뤄지느냐, 빗나가느냐(신18:22)였다.
예언의 세속적인 원래 뜻 (1)을 먼저 존중하고서, 성경적으로 (2)라는 용례와 의미도 더 있다고 보조하는 쪽으로 이해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 시작점은 (0) 대언보다는 (1) 예언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10/19 19:35 2026/10/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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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인천 공항이 그야말로 나라를 대표하는 넘사벽 킹왕짱 대표 '중추' 공항으로 등극해 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의 우두머리 중에서 서울 시장, 여러 국립대들 중에서 서울대, 여러 교육대학교들 중에서 교원대의 총장이 더 예우를 받는 것처럼(차관급이 아니라 유일하게 장관급), 국내 공항들 중에서는 인천이 유아독존이다.
얘는 운영 주체부터가 '인천 공항 공사'로 따로 있을 정도이다. 한국 공항 공사의 관할이 아니다.

이런 인천 제1군의 다음으로, 그나마 수요가 많고 흑자를 내고 있는 제2군 '거점' 공항은 다음과 같다.

(1) 김포: 수도권에 제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입지와 수요가 압도적이다. 다만, 근처의 인천 공항의 영향으로 인해 국제선이 막 활성되지는 않았다. 그냥 국내선(특히 제주)에다 중국(+대만)· 일본 단거리 수요로 먹고 산다. 정확히는.. 김포는 규정상 반경 2000km 이내 노선만 취항한댄다.

(2) 김해: 전국 모든 공항을 통틀어, 인천 "다음으로" 장거리 국제선이 가장 많이 활성화돼 있다. 쉽게 말해 인천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유럽· 미주 노선이 있는 유일한 국제공항이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대도시라는 입지 덕분이다. 게다가 그 경남· 부산권에서 미국으로 가는데 인천 공항부터 가는 건 방향도 안 맞으니..

참고로 김포는 인천 공항의 개항 직후부터 약 2년 반 동안은 100% 국내선 전용 공항으로 격하됐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3년 11월 말에 하네다 행부터 재취항하면서 단거리 노선 한정으로 국제선 간판을 다시 달았다.
2003년 10월 말엔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가 완전히 퇴역했는데, 그로부터 1달쯤 뒤의 일이었다.

김포에 국제선이 다시 생긴 것처럼, 지금은 반대로 인천에서도 제주 국내선을 야금야금 뚫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과연 성사될지 모르겠다. 철도에다 비유하자면 "영등포 역, 대구 역에도 KTX 정차"와 비슷한 떡밥이지 싶다.

(3) 제주: 대도시는 아니지만 섬, 그것도 가장 큰 섬이라는 독보적인 특징이 있다. 여기와 본토 사이엔 육상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비행기 100% 독점이다. 국내선 때문에 승객이 엄청나게 많고 바쁘며, 국제선도 중국· 일본을 넘어 동남아 정도는 있다.

김포-제주는 시내버스 급의 간격으로 비행기가 다니는 엄청난 트래픽을 자랑한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항로라고 세계 항덕들과 항공업계 차원에서도 익히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철도도 아닌 주제에 항로가 복선화됐을 정도이다.

"그렇게도 수요가 많고 비행기표를 못 구해서 난리이면 B747/A380 같은 대형 광동체기를 팍팍 집어넣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고 이는 매우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제주 공항이 그 정도로 거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제주 공항의 활주로도 스펙상으로 법적으로, 대형기가 이착륙을 하라면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거 한 대 받는 동안 737급 기체 네댓 대가 꼼짝달싹 못 하고 존버해야 된댄다. 공항이 마비돼 버리니 단위 시간 동안 처리 가능한 승객 수가 오히려 감소하며, 수지타산도 떨어진다.

(제주 공항에는 활주로가 X자 모양으로 2개 있긴 하지만.. 다른 하나는 2km도 안 될 정도로 너무 짧아서 실용적으로 쓸 게 못 된다. 그래서 사실상 원래 것 하나밖에 안 쓰이는 상황이다.
원래는 한쪽 바람으로 바람이 너무 심할 때 다른쪽 활주로를 쓰라는 취지로 활주로가 평행이 아닌 수직교차형으로 만들어졌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서귀포 공항을 어정쩡한 크기로 새로 지을 게 아니라 제주 공항을 어떻게든 확장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도 공항 바로 근처까지 건물이 다닥다닥 늘어선 현 상황에서는 매우 난감해져 있다. 여러 모로 답이 없군;;

다음으로, 김포-김해는 김포-제주보다는 덜 혼잡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요가 많고 수지타산이 맞는다.
육지에서 그 많은 고속버스와 고속철도들이 수요를 엄청나게 흡수하고 있는데도 항공 수요가 여전히 그만큼 또 있다는 게 대단한 지경이다.
이렇게 김포, 김해, 제주 다음으로는 청주, 대구, 무안도 일단 지방 거점 공항이라고 한다.

(4) 청주는 우리나라의 정중앙에 있으니 대전 같은 곳에서 이용하기 좋겠다. 게다가 통금 없는 24시간 운영이라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좁은 우리나라에서 어정쩡한 위치로 인해 국내선은 일단 제주밖에 없으며.. 국제선도 역시 중국 일본에 일부 동남아밖에 없다. 시간 제약은 없지만 공군과 활주로를 같이 쓴다는 한계도 있다.

대구는 군위군을 합병까지 했는데 군부대 겸 공항이 그리로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무안은 사고가 났다고 언제까지 영업을 중단하고 반영구적으로 공항을 폐쇄하려는지 모르겠다.

흑자가 나는 공항은 김포, 김해, 제주 다음으로 청주가 거의 마지노 선이라고 한다.
울산, 여수, 광주, 사천 같은 3군으로 가면 인지도가 더욱 감소한다. 어떤 공항은 아예 국제선을 취급하지 않는 국내선 전용이기도 하다.

원주 공항은 공식 명칭이 '원주(횡성)'이지만, 포항 공항은 공식 명칭이 '포항경주'로 바뀌었다. 전자는 공군과 겸용하는 공항이지만 후자는 해군과 겸용하는.. 전국 유일의 해군 소유 공항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 반면, 울산 공항은 군과의 접점이 전혀 없는 순수 민간 공항이다. 얘는 KTX 울산 역보다도 울산 시내에 더 가까이 있으며 태화강 역과의 연계도 괜찮은 편이다.

※ 공항 안팎의 관제소

비행기가 다니는 활주로나 심지어 공중에 무슨 신호등· 신호기 따위를 설치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에서는 교통 통제가 지상 관제 시설과의 무선 교신으로 행해진다.
항공 관제라 하면 공항 활주로의 중앙에 제일 높이 솟아 있는 관제탑이 으레 떠오른다. 거기만 해도 사진 촬영조차 금지되는 중요 보안 시설이지만, 공항 관제탑만이 관제의 전부인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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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순항 중일 때는 매우 넓은 영역에서 항로 관제(지역, area)를 받는다. 그리고 착륙을 앞두고 공항 반경 수십 km 이내에 왔을 때는 접근 관제(approach)를 받으며.. 한 공항 안에 들어왔거나 아직 거기 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 공항 관제(tower / ground)를 받는다.
즉, 항로-접근-공항 순의 3단계 tier가 존재한다. 항공 관제사를 육상 선수에 비유하자면, 이들 영역은 마치 단거리 장거리처럼 세부 종목이 다른 셈이다.

항로 관제는 "현재 고도 어디 피트로 상승을 요청합니다" / "귀 항공기를 고도 어디 피트로 허가합니다" 이러는 관제를 말한다. 항공 사건사고 다큐에서 어디 고장이 발생한 비행기의 조종사가 다급하게 지상과 대화를 나누는 상대도 이쪽이다. 국제선 비행기가 남의 나라에 지불하는 영공통과료엔 이런 항로 관제를 받는 비용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 권역에서 항로 관제를 하는 곳은 '항공 교통 본부' 소속의 '인천 항공 교통 관제소'이다. 본부 사무소는 대구에 있지만 실제 관제소는 인천 공항의 동북쪽에 있는 듯.. 철도로 치면 지금 서울 구로에 있는 철도 교통 관제센터와 비슷한 위상이다.

사실, 항로와 공항의 중간에 있는 tier 2 '접근 관제소'가 대외적으로 거의 국정원 급으로 제일 베일에 싸인 것 같다. 전국 곳곳에 딱 14곳이 있는데, 인천, 김포, 서울성남 권역은 '서울 지방 항공청' 소속의 '서울 접근 관제소'에서 맡는다. 서울 접근 관제소는 인천 공항의 동북쪽에 항로 관제소의 바로 옆에 나란히 놓여 있다.

인천처럼 몰려드는 비행기가 많은 곳에서는 접근 관제소가 "너는 뺑뺑이 좀 돌다가 저 비행기 다음으로 들어가세요"라고 정리를 해 주고, 최종적으로 공항 관제탑에서 "너는 저 n번 활주로에 요 방향으로 착륙하세요"라고 허가를 내 준다.

공항뿐만 아니라 이런 관제 시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옛날에 찰스 린드버그 같은 사람은 그야말로 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횡단 비행을 시도한 덕분에.. 저런 복잡한 관제 절차 따위 하나도 없이 깔끔하게 날아갔으며, 남의 나라에 무단 입국도 할 수 있었다. 옛날엔 위험도 있었지만 저런 낭만도 있었다~!

※ trivia

(1) 우리나라는 땅이 좁은 걸 감안하더라도, 그 국력과 인구와 경제력을 감안하면 타 국가 대비 공항이 적은 축에 든다고 한다.
하긴, 일본은 인구 50~100만짜리 소도시에도 그냥 공항도 아니고 국제공항이 떡 있어서 우리나라 LCC 편으로 인천에서 직항을 타고 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확실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2) 옛~날, 1996년쯤엔가 마이클 잭슨이 방한했을 때는.. 당사자야 물론 김포로 들어왔지만 거대한 공연 장비 화물들은 수송기에 따로 실려서 오산 공군 기지를 통해 반입됐다고 한다. 공간 넉넉한 인천 공항이 그때 있었다면 이렇게 두벌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3) 나라 차원에서 의전이 필요한 외국 정상 귀빈들은 여느 민간 공항이 아니라 군 공항인 서울 공항에 다이렉트로 들어오는 편이다. 꼭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무슨 6 25 전사자 유해라도 송환한다면 역시 무조건 서울 공항행이다. 그리고 이건 착륙 후 활주로에서 의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송 단계에서 전투기까지 보내서 호위해 준다.
허나, 북한의 고위 정상은 예외다. 무슨 회담이나 국제 스포츠 행사 때문에 북한 사람이 판문점 육로가 아니라 뱅기로 방남한다면.. 그냥 인천 공항으로 들어오게 한다. 주적에게 서울 공항의 내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게 우리 측 방침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4)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미래에 새로 만들려고 하는 공항들은..
-- 대도시: 부산 동남권 가덕도, 대구-군위, 현 서울 공항의 민간화(아직은 떡밥 수준)
-- 섬: 울릉도, 백령도, 제주 서귀포
정도인 것 같다. 공항의 분야와 성격이 서로 꽤 다르다.
여객기는 꼭 200명씩 타는 보잉 7xx급 제트기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인구 적은 섬에는 버스 한 대 체급의 붕붕 프로펠러기라도 실속 차리면서 날아다니면 좋을 것이다.

(5)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공항은 무려 1910년대 일제 시대 초기에 개항했던 여의도 공항으로 여겨진다. 그때는 합정과 노량진만 해도 조선 시대 기준으로는 사형장이나 무덤이 있었고, 20세기 기준으로 발전소가 있을 정도의 외곽 오지였다. 그러니 하물며 여의도라면 비행장을 만들고도 남는 교외였다.
그 여의도 공항 활주로가 나중에 여의도 광장으로 바뀌었고, 더 나중에 2000년대부터는 지금의 여의도 공원으로 바뀌었다.

물론 ICAO가 출범하고 현대적인 민간 항공 체계가 정립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었으니 이 체계 하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공항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김포이다.
그래서 해방 이후 임시정부 요원들은 여의도 공항으로 입국한 반면, 훗날 이 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 하와이로 갈 때 김포 공항에서 출국했다. 제주 공항은 더 나중인 1969년에야 국제로 승격됐다.

(6) 사람이 무슨 상가 같은 게 없이 복도만 겁나게 길게 늘어서 있는 길을 갈 일은 흔치 않다. 개인적으로 이런 곳은 코엑스 내부의 지하 복도, 지하철 7호선 청담 역 내부, 인천 공항 입국장 정도가 떠오른다.;;

(7) 대전 지하철 1호선 대전 역이 매우 깊은 이유는 고속철도의 대전 시내 구간이 지하에 만들어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 공간을 피해서 깊게 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지하화되지 않음)
서해선 김포공항 역이 부산 지하철 만덕 역보다도 깊은 이유는.. 선로가 강이나 언덕 아래가 아니라 활주로 아래를 지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쪽으로 개화산과 한강 아래도 지나고.. 정말 모든 지상 지형을 쌈싸먹어 버리면서 근성으로 길을 만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6/09/29 08:35 2026/09/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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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뮤지컬 관람

본인은 지난 6월, 일본 출장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됐던 시기에 아내 인맥으로 대학로에서 뮤지컬 '시데레우스'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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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17세기 초에 망원경이라는 도구의 도움으로 목성의 위성들을 발견하고, 요하네스 케플러와 학술 교류를 하면서 지동설을 정립하던 과정을 극화한 작품이다. 과학사를 소재로 한 이례적인 국산 창작 뮤지컬로, 2019년에 초연을 해서 올해는(2026년) 벌써 5연째였다.

아시다시피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공기 저항이 없는 한 모든 물체는 언제나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걸 규명한 걸로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진자의 등시성 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요하네스 케플러를 만나면서 연구의 범위가 우주로 확장됐다.

그도 처음에는 지동설이 정말 맞을까 긴가민가 했다. 하지만 목성의 위성 등, 천동설로 설명이 안 되는 더 복잡한 천체 현상들을 발견하면서 지동설에 확신을 갖게 됐다.
이들이 관측만으로 정립한 사실들을 수십 년 뒤 뉴턴이 미적분학과 고전역학을 정립하면서 수학 이론 차원에서 쐐기를 박았다.

우리가 지금 너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천체의 운동 패러다임이 저 1600년대에는 정말 사고방식의 대격변이었겠구나 싶었다. 갈릴레이나 케플러 같은 17세기 우주덕들이 지금처럼 우주 망원경에다 현대 우주론의 연구 성과들을 본다면 놀라서 까무러치지 싶다.

여담으로는..

  • 갈릴레오의 딸은 세례명이 '마리아 첼레스테'였다고 한다. (본명은 따로 있음) 19세기 말에 악명을 떨쳤던 전설적인 유령선도 이름이 '메리 셀러스트'이다! 일단 같은 이름이란 게 공교롭게 느껴진다. 뭐, 얘도 처음엔 이름이 아마존 호였다가 나중에 저렇게 개명됐다.
  • '토리첼리'가 갈릴레이의 제자였다. 그 옛날에 수은 76cm, 물 10.3m.. 이렇게 대기압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규명한 사람이다.
  • 천체의 운동이 수학적인 질서가 있으면서도, 그게 역설적으로 너무 카오틱하기도 해서 해석적인 일반해를 정확하게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훗세에 의해 추가로 증명되었다(삼체 문제..).

  • 천동설 vs 지동설 다음으로 천문학이 비교적 현대에(20세기 중후반) 논쟁을 벌였다가 결판이 난 분야는.. 우주의 기원과 관련하여 정상우주 vs 대폭발이었다. 이때는 갈릴레이나 뉴턴 연배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우주가 팽창한다"라는 개념까지 정립된 상태였다.

  • 17세기 저 때의 물리학은 “현상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사과가 떨어지는 운동에 대해 정확하게 기술하고 계산과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해도.. 그 중력이란 게 본질적으로 왜 생기는지늘 규명하는 건 또 별개의 영역이다. 그걸 캐기 위해 현대 물리학은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을 개척했지만.. 여전히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다.

  • 그러고 보니 망원경은 거시세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작고 안 보이는 목표물(건물, 지형, 천체..!)을 확대해 보여주는 기기이고, 현미경은 그냥 크기가 절대적으로 너무 작아서 안 보이는 목표물을 확대해 보여주는 기기이다. 흠, 그럼 안경은 스케일이 둘의 중간인 건지..
    역사적으로는 망원경과 현미경 모두 1600년대 초에 비슷한 시기에 첫 등장했다. 그 뒤 둘은 자기 역할에 맞게 특화되고 따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2. 우주에 대한 성경의 서술

내가 아는 한, 성경은 천체를 분류하는 게 해와 달과 별들.. 이걸로 끝이다. 별은 집단으로 다뤄지며, 욥기 38장 같은 데서 특정 별자리 이름이나 좀 나오는 정도이다.

그런데 성경엔 영킹 기준으로 딱~~ 한 번 planet 행성이라는 단어가 나온다(왕하 23:5). 해와 달 다음으로 별들, 하늘의 군대/군상 같은 통상적인 용어가 아니라 행성이라니! 이게 뭘 의미할까? 비킹에서는 그냥 별자리, 성단 등이라고 바뀌어 번역됐다.

성경에는 참교육이나 분노의 질주 같은 개념은 있다.
그러나 성경에 이 땅(지구), 해와 달과 별 말고 '태양계'라든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같은 특정 '행성'을 암시하는 용어나 개념은 내가 알기로 전혀 없다. 그런 건 인간들이 훗날 망원경을 발명하고 로켓과 인공위성을 발명하면서 관측과 탐사를 해서 알아낸 것들이다.

물론 그 전 까마득한 옛날에도 인간은 육안으로도 목성을 넘어 무려 토성까지 어렴풋이 관측을 해냈다.
허나, 그때는 지금 우리가 아는 것 같은 항성과 행성이라는 엄밀한 구분이 없었다. 수성이니 화성이니 목성이니도 1~6등성 범주에 드는 독특한 별 중의 하나로 여겨졌을 것이다.
왕하 23:5의 planet은 "어둡지만 가까운" 수성 화성 목성 같은 천체건, "까마득히 멀면서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건.. 뭔가 움직임이 독특하고 인간 눈에 띌 만한 천체 픽셀을 통틀어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비슷한 예로 베드로후서 3장에 나오는 elements 원소도 있다.
현대의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야 이 단어를 읽으면서 화학 원소를 떠올리겠지만.. 성경의 저 본문은 돌턴의 원자설과 원소 체계 같은 게 없던 시절에 기록되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같은 단어가 어떤 분야의 101급, '개론, 초등 원리' 비슷한 뜻으로도 쓰였다. 뭐, 화학 원소 내지는 그에 맞먹을 정도로 어떤 system의 구성원, 구성요소 같은 걸 떠올려도 될 것 같다.

3. 과학과 종교의 경계

뮤지컬에서 케플러의 대사 중에는.. "나는 신을 안 믿는 게 아니고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우주는 그저 신이 창조한 미지의 안알랴줌 공간인 것이고 그걸 관찰해서 정체를 밝히는 건 자연과학 하는 사람의 별개의 영역일 뿐이다"란 요지의 말이 있었다.

과학은 자연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실험했을 때 누구에게나 똑같은 결과가 재현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는 학문이다. 과연 그러한가, 가설이 맞는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입증하는 학문이다. 이런 정상적인 방법론만 동원했다면 부정이니 사기니 틈탈 여지가 전혀 없다. 증거 없이 일단 믿는 신앙이나 신학하고는 완전히 다른 분야이다.

교황청은 지동설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게 마음에 안 들었으면 갈릴레이를 잡아 족칠 게 아니라, 선량한 과학자들의 눈을 현혹하는 결과를 내는 망원경부터 때려부수고 망원경 제조업자부터 화형 시켰어지??? 개인적으로는 뮤지컬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뭐 아침이 오는 게 싫다고 수탉을 죽이는 것과 같은 뻘짓이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괜히 갈릴레이를 종교 프레임 씌워서 괴롭힌 것도 죄다 뻘짓이었다.

혹시 설마 '안알랴줌'이 불편하거나 불경스럽게 들리시는가? 하나님은 당장 우리 삶 속에서도 갑자기 이유 없는 고난을 주실 때가 있고, 예수님 재림 날짜도 안 알려주시고, 나 언제쯤 죽는지도 안 알려주신다. 우리 일상 속에서 안알랴줌이 엄청 많다. 하물며 자연과학 영역에서 안알랴줌 정도는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하여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하나 더..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교황청이라는 데가 오로지 성경의 문자적인 묘사에만 집착하면서 천체의 움직임을 직접 관찰할 생각이라고는 1도 안 한 고지식한 반지성주의 꼰대 집단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쟤들도 이 바닥에 굉장한 조예가 있었다. 이스터가 언제, 성모승천일이 언제, 날짜와 절기를 따지는 일에 진심이었다. 달력 역법의 이름에 괜히 교황 이름이 붙은 게 아닌 걸 생각해 보자.

1582년에 제정되어 오늘날 전세계 공통으로 통용되고 있는 그레고리력 말이다.
"윤년을 4의 배수 연도마다 한 번씩 무조건 넣으니까 갈수록 오차가 생기더라~ 그래서 400의 배수가 아닌 100의 배수 연도에는 열외를 넣자"
거기 교황과 추기경들은 예나 지금이나 머리 하나는 최고로 날고 기는 똘똘이들이다. 전세계 종교 수장이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니.. 지금으로부터 400년도 더 전에 저 정도 관찰을 하고 대안까지 생각해 낸 집단이란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는 자기네 무슨 왕 재위 n년.. 이렇게 연호를 쓰다가 19세기 말이 돼서야 서구화 근대화 명목으로 서기 연도와 그레고리력을 도입한 편이었다.
그런데 저 동네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도 전에 저런 달력을 제정해서 쓰고 애초에 기준 연도도 '서력'이었다니, 이것도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천동설 지동설 관련해서는 옛날에 이상한 ㄸ고집을 부렸던 것 같다.

4. 태양계 행성들의 주요 제원(?)

  • 자전축: 0도 부근(수성, 토성, 해왕성), 23도 부근(지구, 화성, 목성), 90도 전도(천왕), 180도 전복(금성)
  • 중력가속도: 3.7 (수성, 화성), 8~12 (금성, 천왕성, 지구, 토성, 해왕성), 25 (목성)
  • 자전 주기: 10시간(목성, 토성), 16~17시간(천왕성, 해왕성), 1일(지구, 화성), 58일(수성), 243일(금성) + 27~30일 부근(달, 태양)
  • 표면 대기압: 0 부근(수성, 화성), 1~1.x(지구), 95(금성)

수성은 태양과 워낙 가깝다 보니 공전 주기가 엄청 짧으며(각속도), 실제 공전 속도(선속도)도 혼자 초속 47km에 달할 정도로 겁나게 빠르다. 공전 궤도의 이심률도 독보적으로 가장 크다(타원에 가까움).
화성은 지구와 자전 주기가 비슷하고 자전축 기울기도 비슷하다.

지구야 뭐 표면에 물(바다)이 있고, 달이라는 이례적으로 큰 위성이 있는 게 특이하다.
금성은 지구와 크기가 비슷하고 거리도 가장 가깝지만.. 고체 땅이 있는 지구형 행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엄청난 고온 고압 불지옥이다. 자전 속도가 끔찍히 느리고 심지어 역행 자전인 것도 특이점이다. 금성만 왜 저렇게 됐을까.;;

그리고,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행성이 있을 법도 한데 왜 텅 비었고 소행성대만 있는 걸까?
수성이 공전이 빠르다면 목성과 토성은 그 큰 덩치로 자전이 왕창 빠른 게 특징이다. 특히 토성은 자전 원심력 때문에 적도 쪽이 대놓고 부푼 게 티가 날 정도이다. 그렇잖아도 가스형 행성이기도 하니..

끝으로, 하나 더 생각할 만한 건.. '태양일'(또는 회합일)이다.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 도는 자전 주기는 23시간 56분 남짓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지구가 1/365.25만치 공전을 하니, 지구가 태양을 바라보는 각도도 미세하게 더 나아가 있다. 그래서 지구도 4분만치 더 돌아야 하늘에서의 태양 위치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이를 더함으로써 지구의 태양일은 24시간이 된다.

이건 1/(자전 시간)이라는 각속도가 1/(공전 시간)이라는 각속도만큼 느려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앞의 값에다가 뒤의 값을 빼면 태양일에 해당하는 각속도가 나온다. 그리고 이 각속도의 역수가 곧 태양일이 된다.
지구와 화성은 이렇게 이해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은데.. 자전이 매우 느린 수성과 금성은 일이 굉장히 재미있어진다.

수성은 자전(약 58.x일)을 3번 하는 동안 공전(약 88일)을 2번 하는 형태로 조석 고정이 돼 있다.
달처럼 1:1이 아니라 3:2라니.. 수성이 공전 궤도가 이심률이 크기 때문에 이런 형태가 된 듯하다.
1/x - 1/(x+1) 의 값은 1/(x*(x+1))이니, 1/2 - 1/3은 1/6이다. (6 = 2*3 = 3*2)
실제로 수성의 태양일은 자전 주기의 3배 겸 공전 주기의 2배인 약 175일이다. 수성의 태양일은 지구나 화성과는 달리, 자기 자전 주기와는 차이가 엄청나게 많이 난다.

그리고 수성의 하늘에서 해가 떴다가 지는 건 단순히 지구 일출 일몰의 slow motion 겸 확대(태양이 훨씬 더 가까이 있으니) 버전이 아닐 것이다.
해가 중천까지 좀 올라가더니만 도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대로 완전히 지는 것도 아니고 다시 뜬다. 게다가 수성의 공전 궤도의 특성상, 태양의 크기 자체도 멀어지면서 작아졌다가 다시 커지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니 굉장히 기괴한 모양이 될 것이다. 수성은 이 점에서 아주 특이한 행성이다.

다음으로 금성은.. 자전 방향이 역행이어서 해가 서쪽에서 뜬다. 자전 각속도에서 공전 각속도를 빼는 게 아니라 더해 주면 된다. 1/(1/243.02+1/224.70)의 역수는 약 116~117일.. 즉, 금성의 태양일은 각속도 버프를 받는 덕분에 자기 자전 주기의 절반으로 줄어들며, 수성의 태양일보다도 짧다.

금성의 하늘에서 태양의 움직임은 수성 같은 기괴한 변화 없이 지구 일출 일몰의 역주행 slow motion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실제 금성의 지표면에서는 태양 따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수성이나 금성의 공전 주기는 저 갈릴레이 시대에도 망원경 관측을 통해 일찌감치 알려져 있었다. 이 행성들의 복잡한 위상 변화가(커졌다 작아졌다, 초승달-보름달 등등) 천동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우니 지동설의 근거로도 제시될 정도였다. 그러나 자전 주기는 행성의 표면을 정밀히 관측해야 하기 때문에 알아내기 몹시 어려웠다.
무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수성은 1:1로 조석 고정되어 자전 주기도 공전 주기와 동일한 88일일 거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금성은 구름 때문에 완전 불명 오리무중 미스터리였고.. (하긴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금성은 마이애미 해변 같은 곳일 거라고 예상됐었다ㄲㄲㄲㄲ)

그래서 수성과 금성의 정확한 자전 주기는 1960년대에 전파 레이더가 발명된 뒤에야 알려졌다고 한다.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는 마치 지구 임의의 지점에서 위도와 경도를 측정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렇게 엄청난 난이도의 차이가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6/09/15 08:35 2026/09/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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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난 “A 상황에서 이러이러한 걸 당했으니, 그럼 그와 반대인 B 상황에서는 반대로 내가 이러이러한 걸 할 수 있겠네? 그래야 공평하고 일관성 있지?”
이런 걸 매사에 진지하게 따지는 편이다. 각종 사회 시스템이나 심지어 신학에서도 말이다.

(1) 우리나라에서 핸들을 잡는 사람이라면 이 나라의 도로교통법이란 게 보행자에게 얼마나 미치도록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짜여 있는지를 알 것이다. 그러니 운전하는 동안 잠재적인 사고 유발자, 차 끌고 다니는 죄인 취급받으며 그렇게도 억압받고 몸 사렸으니..!! 내가 차에서 내린 보행자일 때는 반대로 그 권리를 막 행사한다. 차들을 보면서 절대로 쫄거나 몸을 사리지 않는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가 무조건 닥치고 왕이다. 내 모습을 운전자에게 충분히 드러내 보이고 손 들고서 건너겠다는 의사를 확 표시한 뒤부터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발을 도로로 들이민다.
갑자기 튀어나온 차 때문에 놀랐다면 확 인상 쓴다. 정지선 넘어서 멈춰선 차가 있으면 툭 치거나 신경질도 내 준다.

“닌 운전 그 따위로 했으면 신고 당해서 금융치료 먹었을 수도 있다. 심지어 나쁜 마음 품은 보험사기범한테 잘못 걸렸으면 인생이 훨씬 더 꼬였을 수도 있다. 그냥 나같은 관대한 사람한테 쌍욕만 한번 먹고 넘어가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알았냐?” 이걸 각인시켜 준다.

(2) 난 혼잡한 전철에서 자리에 앉아 있고, 내 곁에 노인이 있더라도..
좀 냉정한 얘기지만 꼭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이나 다른 불편한 생각을 느끼지 않는다.

전철에는 이미 노약자석이 갖춰져 있고 그걸로 모자라서 웬 임산부 보호석까지 생겨 있다. 그렇잖아도 일반인이 앉을 자리가 너무 부족하다.
결정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은 누구나 그 많은 전철들을 10원 한 장 안 내고 다 공짜로 탄다. 요즘 같은 물가에 그 정도면 이미 도 넘치게 보상과 예우를 받고 있는 거 아니냐?
그것도 모자라서 자리까지 양보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는다. 시내버스의 앞쪽 좌석이라면 모를까, 전철에서는 말이다.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짜여 있다.

지금 안 그래도 사회가 험악해져서 어른들이 애들이 담배 피우는 걸 훈계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전철 노약자석이 침범 당하는 경우는 정말 극히 드물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3) 교도소에 에어컨..??? 에어컨과 전기료가 너무 싸고 흔해빠져서 달동네 독거노인 쪽방촌 방구석까지 에어컨 찬바람이 숭숭 나오는 세상이 아닌 한, 절대로 추호도 달아 줘서는 안 될 것이다.
교도소에서 열사병 걸려서 디지는 죄수가 전국에서 매주 몇십 명쯤, 농촌에서 땡볕에 밭일 하다가 안타깝게 돌아가시는 어르신 비율만큼은 좀 나왔으면 좋겠다. 세금 아끼고 교도소 공간도 좀 확보하게 말이다.

이렇게 간접적으로라도 사형 집행 좀 해야 하지 않겠냐? 차라리 교수대 사형을 집행하는 게 자비롭고 인권에 여러 모로 부합할 것이다.
잔인하다고? 그러면 교도소 공간이 부족해서 난리라고 징징대지를 마시든가!!

난 용형 같은 프로에서 "어느 범죄자가 잡혀서 죄값을 정당하게 치를 생각을 안 하고, 비열하게 ㅈㅅ이나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런 놈들은 막 몰아붙여서 자살이라도 많이 해서 세금 아끼도록 나라에서 유도를 좀 했으면 좋겠다. 이 나라는 어차피 과학 수사가 충분히 발달했고, 누명 써서 억울하다고 누가 자살할 일은 없다시피하니.. 그런데 증거 충분하고 진짜 죽여야 할 놈에게 사형 선고와 집행은 안 한다. 저런 것들한테 들어가는 음식이 아깝고 산소가 아깝다.

나라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니 그 나라 구성원 개인이 생각이 이렇게 독해지고 모질어지는 것이다. 테이큰이나 아저씨나 모범택시 같은 장르는 앞으로 영원히 번창할 것이다.

2. 신앙 시스템에도 그런 논리와 일관성이 있음

이 다음부터는 성경/신학 얘기다.

(1) 성경의 하나님은 음행을 그렇게도 싫어하고 엄히 금지한다.
결혼을 한 게 아니라면 피임을 하더라도 관계하는 것 자체가 음행이고 죄악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결혼한 부부라면? 피임을 하건 말건, 그 어떤 방식으로 놀건 서로 동의만 했다면 모조리 다 부부 재량이고 합법이다.
(법적으로, 외형적으로 혼인신고나 예식을 못 했더라도, 어디서든 서로 정말 평생 책임지겠다고 맹세하고 결혼에 준하는 동거를 한 거라면 그것도 물론 OK)

난 아내하고 같이 자기 전 기도할 때 아내가 민망해할 정도의 직설적인 얘기도 막 대놓고 털어놓는다. 그걸 못 할 이유가 논리적으로 추호도 없다.

(2) 전에도 한번 말했었지만..
이 세상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 부부가 하나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한 것, 사탄 마귀의 꼬임에 넘어간 것 때문에 이 정도로 동반 타락하고 망가졌다. 그래서 후손들도 이렇게 죽도록 고생하게 됐다.

그 정도라면 아예 하나님 자리를 대놓고 노렸던 정치범 사탄 마귀는..?? 모든 지위를 박탈당하고 세상이 변형을 넘어 싹 멸망당했어야 마땅하다. 잡법과 내란 정치범 역적은 죄의 등급이 완전히 다르다.
간극이 없기는 뭐가 없냐..? 난 이 시나리오 없이 창세기 3장을 도대체 어떻게 문자적으로 설명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성경이 로마 제국 시절의 그 옛날부터.. 지금 우주 로켓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있는 현대까지 건너뛰고 예수님 재림을 예언할진대...
과거에 지질 시대와 지금 정도의 넘사벽 간극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논리적으로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3)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수많은 어린애 아기들이 피지 못하고 죽는 걸 허락하고 계신다. 각종 질병, 사고, 굶주림,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 선과 악을 판별할 능력이 전혀 없는 애들은 죽어서 무조건 다 천당 간다. 죄성이 있지만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그 애들의 사후 영원세계는 다 보장돼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현실에서의 그런 비극적인 상황도 허락하시는 거다.
이 세상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건 뭐 성사를 받았건 그런 거 쥐뿔 하나도 상관 없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품과 맞는다.

나는 뭐 분당 ㅅㅁ 교회의 아프가니스탄 병신짓이나, 어디 교회 먹사가 돈이나 이성 관계 쪽으로 사고 쳐서 기독교계가 욕먹는 건..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건 걔네들 사정이니까.
세종대왕과 이 순신 장군이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죄를 지은 게 있을 수 있고, 죄 가운데 죽었다면 지옥 갈 수 있다. OK 그것도 교리적으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저런 어린애들 아기가 원죄 때문에 몽땅 다 지옥 갔다고 말한다면 그런 교리는 못 받아들이고 그런 신은 못 믿었을 것이다. 특히 남에게 믿으라고 이렇게 블로그에다 글을 쓰고 당당하게 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주권이라는 명분으로 “신이 엿장수 마음대로 하기 나름”이 가능한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사람이 제각각 불공평한 환경에서 태어나거나 불공평한 방식으로 죽는 것이야 그럴 수 있는 영역이지만.. 사후세계가 아예 아무 기회도 없이 영원한 지옥불이라고..?? 이건 정말 아니다.

자, 그 “대신” 그 어린아이 아기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그런 특례구원이 적용되는 동안, 게임으로 치면 주인공 캐가 아직 깜빡거리면서 무적 상태인 동안은 부모로부터 절대적으로 의로 양육을 받아야 한다. 스스로 죄에 대한 책임능력이 생기는 때를 대비해야 한다.

단순히 애가 부모 욕심만큼의 학교 성적을 못 낸다고, 부모 마음에 안 든다고 감정적으로 패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도 넘게 사고 치고 부모 속이고 사회 질서에 반항하는 건 다리몽둥이 부러지게 패고 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애 부모가 “니놈은 인간 안 되겠으니 그냥 이 애비랑 같이 한강 뛰어들어가서 죽자” 이런 마인드로라도 훈육해야 한다.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건 말건, 어디 법의 사각지대 한구석에서 흉악한 아동학대는 어차피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진짜 정당한 훈육을 틀어막으니 온 나라가 반대로 정신나간 진상 학부모와 금쪽이 촉법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것이다. 나라는 싹수가 노래지고 단단히 망조 들어 가고, 참교육 웹툰의 소재는 영원히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이상. 난 이런 식으로 알고리즘이 짜여 있다. 너무 계산적인 건가.. ㅋㅋㅋㅋㅋ

3. 먼저 확실한 큰 약속을 받은 걸 근거로, 작은 불확실한 것에 믿음을 행사함

아 그런데..!! 기독교 교리와 하나님의 성품은 저렇게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영역만 있는 게 아니다.
저렇게 영원과 관련되고 공리, 기초에 해당하는 부분은 명료한 반면, 일상적인 것, 일시적인 영역에서는 "직선에는 하나님이 없다" 이것도 고려해야 한다.

... "여전히 모든 것이 명료해야 한다는 직선의 믿음으로 달려가는 분이 있는가. 그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닐지 모른다." (☞ 직선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링크)

굉장한 통찰이 담긴 글이군. 공감한다.
하나님은 의외로 MBTI T가 전혀 아닌 면모가 있다.
하나님께서 무슨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대를 위해 소는 좀 희생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이공계나 경영공학에서 말하는 최적화 전략에 따라서 일하시는 게 전혀 아니다.

무슨 자연과학 탐구하듯이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해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고 매사에 반드시 저런 식으로 일하실 것이다~~ 요런 input을 넣었으면 저런 output이 즉시 튀어나올 것이다" 상관관계를 추론하고 예측하는 건 무의미하고 가능하지 않다. 그게 완전히 가능하다면 애초에 믿음이란 게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누가 죄 짓는다고 해서 무슨.. 컴퓨터 운영체제에서 메모리 영역을 잘못 건드린 프로세스가 예외 날리고 강제 종료되듯이 바로 커트 당하는 게 아니다.
성경부터가 맨 처음 창세기에서 악인 카인이 벌받아 디져서 정의구현된 게 아니라, 오히려 선한 아벨이 먼저 살해당하는 걸로 시작한다. 그리고 욥기는 온통 하나님의 알 수 없는 면모에 대한 인간의 고뇌로 가득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고, 늘 하나님이 옳고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먼저 입어 있다. 궁극적으로는 악은 멸망하고 선이 승리한다.
큰 그림에서 하나님은 오래 참으면서 역사를 여전히 아주 여유롭게, 좀 시쳇말로 배짱장사에 가까울 정도로 너끈히 주관하고 계신다.

괜히 인간이 선행 노력이 아니라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게 시스템이 짜인 게 아니다. 이 패턴을 이해하지 못하면 답답해서 신앙생활 못 한다.
신자조차 당장 닥친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서 징징댈 때가 있는데 하물며 불신자는.. 뭐 "신이 존재한다면 왜 세상이 이러쿵저러쿵...하냐" 이런 불평불만 볼멘소리의 99.9%는 저걸 이해 못 하거나 공감하지 못해서 나오는 것이다. 진짜 그렇다.

세상에서는, 사회에서는 "월급부터 먼저 주면 그 다음에 일할게요"라든가 "서울대부터 입학시켜 주세요, 그 다음에 저도 공부 열심히 할게요" 이건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복음은 "구원부터 먼저 공짜로 거저 주세요. 즐기고 누린 다음에 성장해서 헌신하고 인내하고 내 십자가를 질게요"로, 순서가 반대이다!

신자는 앞으로 구원이 영원히 보장돼 있는다. 요한계시록 대환란 같은 것도 절대 겪지 않는다. 최소한 "나 정말 구원받았을까? 그건 죽어 봐야 알지"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스케일이 더 작은 환난이나, 하나님 뜻을 알 수 없는 것, 직선이 아니라 곡선인 하나님의 이끄심 정도는 믿음으로 버티고 시험도 감내한다. 이 큰 그림을 이해하시겠는가?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심지 않은 걸 거두고 착취하는 갑질 악덕업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무슨 죄 마음껏 지으라는 라이선스인 것처럼 생각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고 말도 안 되는 발상인지!! (구원 말고도 잃을 게 얼마나 많은데) 탈북자가 재북송만 안 될 뿐 대한민국 교도소에서 무기징역이나 사형수로 사는 건 얼마나 비참하겠느냐 말이다.
저건 어린아기, 애들은 죽어도 무조건 다 천당 가니까 마음껏 학대하고 죽여도 되고 심지어 낙태도 해도 되겠네? 그거와 완전 동급의 생각일 뿐이다.

난 이렇게 명쾌한 신앙 논리를 깨우친 곳이 한킹이건 흠정역이건 어쨌든 킹 제임스 진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교리 노선을 지지한다. 말보회가 아무리 이단 소리를 듣건, 이 송오 목사가 말년에 얼마나 이상하게 흑화했건 그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것보다 더 깔끔하게 건전하고 성경의 법리를 문자 그대로 잘 풀이해 주는 진영이 있으면 고려하고 논쟁도 응할 의향이 있지만.. 그런 진영이 또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26/09/10 08:35 2026/09/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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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력량, 전기료

전기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고 광속으로 흘러가 버리고, 축적된 양을 무게나 비주얼 같은 직관적인 방법으로 확인하기가 난감하다.
그래도 아주 대충 간략하게라도 전기 저장 매체들의 용량과 비용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 1.5볼트 AA 건전지 하나: 약 3~4와트시
  • 3.7볼트, 20Ah(2만 밀리Ah)짜리 보조배터리: 약 70와트시
  • 내연기관 승용차용 12볼트, 70Ah 납 배터리: 700~800와트시 (단, 납 배터리의 특성상, 현실에서는 저 용량의 거의 절반 정도까지만 소모하고 어서 다시 충전해 주는 게 안전함)
  • 비슷한 배터리 전기 승용차의 리튬 이온 배터리: 대략 70~80킬로와트시

이와 관련하여 생각할 만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일반적인 스마트폰 한 대를 하루 종일 켜 놓기만 했을 때 사용하는 전력량은 10~40와트시 남짓이다.
그러니 스마트폰을 리튬이온 배터리가 아니라 건전지로 가동하려면 디지털 도어락에 들어가는 정도의 건전지(AA 사이즈 4개? 8개?)를 거의 매일 몽땅 갈아 줘야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ㅎㄷㄷㄷㄷ 도어락은 거의 1년에 1번꼴로만 건전지를 갈면 된다는 걸 생각하면.. 전력 소모량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2) 전기차는 배터리가 통상적인 내연기관차 납배터리의 90~100배 용량을 자랑한다.;; 물론 그 대신 차 무게는 500kg, 30~40% 정도 더 나간다.
승용차라는 게 원래 사람이 최대 5명이 탈 수 있는 차다. 그런데 동일 차급의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만으로 사람 5명 이상의 무게를 더 먹고 시작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이 때문에 전기차는 단순히 엔진음 작고 조용하기만 한 게 아니다. 묵직하고 운전 특성이 내연기관차와 많이 다르다. 타이어나 서스펜션, 브레이크도 동급의 내연기관차보다 더 튼튼하고 더 비싼 걸 써야 한다. 디젤 차량이 동급의 휘발유 차량보다 더 무겁고 튼튼한 것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하다.

(3)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 요금은 1000와트시(= 1 킬로와트시) 당 120~200원대이다.
뭐, 이 나라의 전기 요금 체계는 아주 복잡 다양하기 때문에 이렇게 단편적으로만 표현하기가 난감하다. 하지만 월 300킬로와트시 이내만 써서 누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일 저렴한 기본 단가만 산출하면 이렇다.

참고로 요즘 전기차 충전 요금도 1kWh 당 3~400원 돈이니 건물 전기와 크게 차이 나지 않거나 약간만 비싼 수준이다.
여기에다 저 전기차 배터리의 최대 용량을 곱해 보시라. 전기차는 움직이는 데 드는 비용이 기름값 대비 매우 저렴하다는 걸 숫자를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충전료가 갈수록 오르고 있으며, 전기차의 배터리 100% 충전 연비가 동급 기름차의 만땅 연비에 비할 바는 못 된다는 것 역시 고려할 사항이지만 말이다.

2. 자동차의 배터리

내연기관이라는 건 처음에 시동을 걸 때 외력을 전해 줘야 한다. 이 때문에 자동차에는 배터리 기반의 starter가 쓰이는데, 시동을 걸 때 생각보다 전기가 많이 든다.
키를 start로 돌리는 0.x초? 1.x초 남짓한 시간 동안 승용차 급이라도 1000W~3000W에 달하는 전기가 소모될 수 있다. 이걸 전력량으로 환산하면 0.3에서 1와트시에 달한다.

시동이 잘 안 걸려서 수 초 이상 끼릭끼릭 거리고 있으면 그 시간 동안 저만 한 전기가 계속 빠져나간다.
이건 온갖 무거운 쇳덩어리 부하가 걸려 있는 차 엔진 크랭크를.. 시동 유지 가능한 최소 회전수 이상으로 돌려주는 만만찮은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동차용 납 배터리는 용량 대비 저렴하지만 매우 무겁고 충전 속도도 매우 느리다. (별로 커 보이지도 않는 저 상자가 15~20kg이나 한다니..)
게다가 방전 상태에서 오래 방치하면 그대로 변질돼서 더 충전 못 하고 완전히 못쓰게 돼 버리는 등 까탈스러운 특성도 적지 않다.

쟤는 천상 시동 걸 때 짧고 굵게 소모한 뒤에.. 오래 주행하면서 가늘고 길게 서서히 충전하는 것에만 특화돼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전자기기용 배터리처럼 써먹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 배터리만 덩치를 키워서 실용적인 전기차를 만드는 건 곤란하다. 20세기 초에는 이런 배터리를 밑천으로 전기차를 만들었으니 곧 내연기관차에게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배터리 전기차가 고속버스와 대형 트레일러, 대통령 방탄차, 군용차(!!!), 건설기계, 모터스포츠(F1 머신!!)의 영역까지 진출 가능할까?
그게 안 되면 전기차는 그냥 내연기관차가 차지하던 파이의 일부만 분담하는 것에 머무르지 싶다.
배터리라는 게 사람이 들고 다니는 기기의 동력원으로는 적당하지만, 사람이 들어가고 타고 다니는 대형 기기의 동력원이 되기에는 크기와 무게, 충전 속도, 안전 문제 등이 걸리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대형화가 어렵다.

몇몇 자동차나 소형 드론, 모터보트는 전기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여객기나 심지어 전투기, 초대형 화물선, 유조선은 배터리 전기는커녕 천연가스나 수소 연료전지로도 요원하다. 에너지 저장 효율에 관한 한 액체 석유를 능가하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3. 배터리의 충전 가능성, 재활용 가능성

(1) 오늘날 같은 리튬 이온 배터리가 보급되기 전에는 전기 자동차라든가, 심지어 잠수함에도 그 거대한 납-황산 배터리가 어쩔 수 없이 쓰였다고 한다. 물에 잠긴 채로 내연기관을 가동할 수는 없으니까.;;

이러니 옛날 2차 대전 시절의 잠수함은 평소에는 떠 다니다가 잠깐 잠수할 때만 마치 고스트나 레이쓰가 클로킹 쓰듯이 잠수를 해야 했을 것이고.. 잠수 중에는 기동성이 그야말로 극악으로 떨어졌을 것 같다. 어뢰를 몇 번 피하느라 급기동이라도 하고 나면 배터리가 다 방전됐을 것 같은데..

(2) 옛날에 아폴로 계획 때 15, 16, 17호에서는 잘 알다시피 월면차가 투입됐었다. 얘들도 공기가 없는 달 표면을 주행하니 동력원은 응당 전기였으며.. 구체적으로는 은-아연 전지가 쓰였다고 한다.
재충전 가능하지 않은 그냥 일차전지이다. 달에서 한 1주일 머물면서 월면차의 배터리를 충전해 가며 장거리 주행을 하는 건 계획에 없었으니 말이다.

전지의 성능은 전압 36V에 전류량 242Ah이었다고 한다. 이걸 곱하면 전력량이 9KWh에 약간 못 미친다. 공교롭게도 "지구 기름차 - 월면차 - 지구 전기차" 배터리 용량이 얼추 등비수열을 형성한다.
그래도 달은 중력이 지구의 1/6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저 정도면 나쁘지 않고 충분한 용량이었던 것 같다.

(3) 배터리는 그 어떤 재료를 써서 만들든 공통적으로..
날씨가 너무 추우면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그리고 계속 쓰다 보면 성능이 서서히 열화되고 충전 가능 용량이 줄어든다는 특성이 있다. 날씨로 인한 열화는 일시적이고 가역적이기라도 하지만, 노후화(?)로 인한 열화는 비가역적이다.

마치 한겨울에 수도꼭지를 약간이라도 틀어서 수도관을 얼지 않게 하는 것처럼.. (일부러 물 틀어서 드는 수도료 << 동파된 수도관의 복구 비용이어서;; )
배터리는 자기 전력을 소모해서라도 주변 온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시키고 나서 사용하는 게 역설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 있는 듯하다.

(4) 글쎄, 애초에 충전이 안 되는 전지를 다 써 버린 거나, 충전 용량이 현저히 떨어진 오래된 배터리나..
다들 간단한 방법으로 직접 충전은 못 하더라도 재료를 재활용할 수는 있다.
그 금속 재질을 화학적으로 녹이고 재가공해서 새 배터리/전지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건 단순 충전보다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애초에 금속이란 게 견고한 물질이다 보니 재활용 효율이 타 재질의 쓰레기 대비 월등히 높다. 배터리 중에서는 자동차용 납 배터리가 그 효율이 99%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관련 산업이 자동차 산업의 역사와 함께하며 완전히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오늘날 많이 쓰이고 있는 리튬 이온 배터리는 세계적으로 재활용 효율이 겨우 5%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납보다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문제의 해결이 절실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22 08:35 2026/08/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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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지금으로부터 한 달쯤 전, 지난 제헌절 무렵에 본인은 아내와 함께 매일 진행하는 성경 통독이 '에스라'에 진입해 있었다. 즉, 바빌론 포로기 종료와 예루살렘 귀환 시기이다.

에스라기 3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70년 만에 고향으로 귀환했다. 그래서 제단부터 만들어서 의식율법을 다시 시행하고, 뒤이어 성전도 재건하기 시작했다.
성전 기초가 놓이자 사람들이 너무 감격해서 환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회의 통곡도 했다. 아주 어린 시절에 솔로몬의 성전을 어렴풋이 본 적 있었던 노인들이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그 무렵에 방영됐던 SBS 꼬꼬무 232화는 참 공교롭게도 재건과 정반대인 철거를 다뤘다. 바로 1995~96년에 진행됐던 조선총독부 청사의 철거 말이다. 이것도 지금으로부터 무려 30여 년 전의 일이 됐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10년 가까이 건축한 끝에 1926년에 완공됐다. 그게 광복 50주년, 그리고 완공 얼추 70년 만에 드디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철거된 것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 명목으로, 1995년 광복절에 지붕 맨 꼭대기의 첨탑 하나만 먼저 크레인으로 들어서 뜯어냈다. 이게 철거의 첫단추를 끼운 퍼포먼스였다.

에스라서에서는 성전 재건의 기초가 놓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렇게 감격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식민 지배의 원흉 본부 건물의 철거가 시작됐을 때 사람들이 감격하고 환호하고 난리였었다.
두 사건이 서로 굉장한 대척점? 안티테제를 형성하는 것 같다.

꼬꼬무를 보니 그 당시에 첨탑을 끌어내리기 위해 대형 크레인을 현장 부근에 미리 설치한 것, 건물의 내부에서 보관 중이던 수많은 문화재들을 미리 대피시킨 것(그 당시엔 조선총독부 청사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어서..) 등 숨겨진 비화가 많이 있었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경복궁과 너무 가까이 있는 관계로, 섣불리 폭파 같은 과격한 방법으로 해체하기는 어려웠다. 중장비를 동원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한뼘 한뼘 조심해서 뜯어내다가.. 1년쯤 뒤, 마지막 남은 자그마한 벽면만 역시 상징적인 차원에서 폭파해서 무너뜨렸다고 한다.
제일 먼저 뜯어냈던 첨탑은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의 야외 전시장으로 옮겨져서 처참하게 낡아 가는 중이라고 꼬꼬무에서 언질을 줄 법도 한데.. 이에 대한 언급은 더 없었다.

난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는 찬성이고 잘했다는 소신이다. 웬만하면 보존해서 다른 건물로 사용할 법도 하지만, 쟤는 용도뿐만이 아니라 위치도 광화문과 경복궁 사이에 너무 안 좋은 구도로 있었다. 옛 서울 역 건물 같은 건물이 아니다.
그나저나 조선총독부가 무슨 종로 경찰서 같은 시설도 아닌데, 지하에 웬 유치장이나 고문실 같은 방이 있었는지는 좀 의문이다. 총독부 청사의 지하엔 위급 상황에서 VIP의 피신용 패닉룸 벙커 같은 거나 있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나?

2. 친일파(?) 금수저 가문 출신 여배우

난 누군지도 몰랐는데 최근에 참교육 드라마 때문에 얼굴 알게 된 어느 예쁘장한 여배우가 말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굉장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람은 정말 엄청난 가문 출신이었구나.;;;
별 생각 없이, 정말로 모르고 내뱉은 말 때문에 당사자도 엄청 골치 썩었고, 소속사라든가 그녀와 계약 맺었던 기업들도 "아이고 두야" 하며 뒷목 잡았지 싶다.

저 정도면 집안 조상님이 그냥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일제에 소극적으로 순응하고 부역한 수준을 넘어서기는 하는 것 같다.

  • 고종 황제도 치료했었다고? 그 신분과 능력으로 아예 고종의 암살에나 관여하지 않았으면 다행이고, 그리고 칼빵 맞고 실려왔던 이 완용 대감님한테도 당대 최고의 의술을 베풀면서 치료했었네?
  • 소록도에서 근무했었다고? 그때 거기서 일했던 의사들은 여수 애양원에서 나병 환자 섬겼던 손 양원 목사와는 영 딴판인 일을 했던 거 같은데?
  • 내선일체 모범 가정이라고 신문에 소개된 게 무슨 1940년대였으면 나도 이해한다. 근데 이거 뭐 민족말살이니 문화통치니 아무것도 없고 3· 1 운동도 일어나기 전 1916년에 벌써 대문짝만 하게 소개된 거면..

나도 반일정신병 극혐하는 소신이고, 이딴 일 갖고 미개한 연좌제는 절대 반대한다. 하지만 조상의 저 행적 자체를 "그 시절에 친일 안 한 사람 어딨냐" 그러면서 다 물타기 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소설 "꺼삐딴 리" 이 인국 박사의 판박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의사는 환자가 누구건 의술을 베풀어야지, 매국노라고 치료도 하지 말아야 하냐" 이렇게 반문하는 혹자가 있는데.. 이건 좀 논점일탈이다. 이때 이 완용은 평범하게 다치거나 아픈 것도 아니었고, 의거에 의한 저격을 당한 상태였다.
의료인으로서 매국노도 치료한 것 자체를 반인륜 반민족 행위로 간주해서 후세가 단죄하는 것까지는 에바라고 쳐도, 그건 자랑스럽게 떠벌릴 이력도 절대 못 되지 않겠는가?

문 재인이 변호사 시절에 페스카마 호 흉악범들 옹호했던 것도 직업적으로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었다. 하지만 정치 성향에 따라서는 그의 그런 과거 행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들은 그런 견해를 가질 권리가 있다.
하물며 이 완용을 치료했다는 의사에 대해 일단 부정적인 편견을 갖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이걸 반일정신병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무슨 빨간 대게 그림을 갖고 욱일기라고 트집 잡는 짓거리야 진짜 반일정신병이겠지만.. 이건 그와 다른 상황인 것이다.

아 물론 당연히.. 후손인 저 여배우 당사자가 뭘 직접적으로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
성형 의혹도 아니고 사생활 스캔들도 아니고, 마약 도박 음주운전 아니고, 과거 학폭 가해자 내력이 폭로된 것도 아니고 그런 부류는 전혀 아니긴 한데..

다만,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 인기로 먹고 사는 직업을 선택했는데 괜히 할 필요 없는 말을 스스로 늘어놓는 바람에 커리어에 약간 태클 걸리고 흑역사 논란거리 스크래치가 추가된 건 누구라도 실드 치기 어려워 보인다. 국민정서법의 여파를 한동안 좀 감내를 해야 할 것 같다. -_-;;;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자랑했으면, 마찬가지로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게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 하겠다.

당장 대놓고 몰락했다기보다는, 더 몸값 올라가고 더 출세할 기회가 꺾인 거지.
그래도 아까도 말했듯이 이게 무슨 활동 중단에 자숙까지 할 심각한 허물은 절대 아니니,
이 참에 어디 좋은 일 하는 단체에 기부 많이 하거나, 역사 관련 영화· 드라마에 선역으로든 악역으로든 쿨하게 출연료 안 받고 출연하거나.. 이런 걸로 얼마든지 퉁치고 넘어갈 수도 있다고 본다. 저 사람이 부디 이 상황을 지혜롭게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난 예전에도 글로 몇 차례 썼지만, 한국이 해방된 건 100% 전적으로 미국 덕분이지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은 하나도 기여한 게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을 패퇴시키고 몰아낸 건 미국의 군사력, 특히 그놈의 원자폭탄이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도 그렇게 죽을 힘 다해서 독립 의지를 표출하고 호소하지 않았다면.. 일본이 패전한 뒤에도 그게 한국의 해방·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수 있었다. 아니 최악의 경우는.. 아예 같은 추축국 진영으로 취급 받고 더 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다.

반일정신병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할배를 좋아하는 우파일 텐데.. 저런 식의 '독립운동 뻘짓론'을 리 승만 할배가 들었다면.. 아마 땅을 치고 통곡하거나, 격분해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지 싶다.
할배는 미국을 상대로 그놈의 알량한 광복군 병력을 거짓말로 뻥튀기까지 하면서 "우리도 일본을 상대로 싸울 수 있다~ 우리도 연합국의 승전에 밥숟가락 얹었다" 필사적으로 호소했던 사람이었다!

3. 성경이 말하는 독립과 자유

이번 광복절의 다음날엔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 설교 제목부터가 “그리스도인의 독립과 자유”였다.
성경 본문은 그 유명한 갈 5:1 “다시는 속박(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 구절이 제일 좁은 의미에서 말하는 건.. 구원에 관한 한 다시는 할례니 안식일이니 하는 율법주의로 돌아가지 말라는 경고이다.
하지만 이건 비유대인에게는 막 심각하게 와 닿지는 않는 주제이다. 적용 범위를 신약의 범위에서 조금 넓히면.. 기껏 구원받았더니 도로 육신의 죄악된 생활로 돌아가지 말라~~ 까지도 포함된다.

더 나아가, 옛날에 할배 대통령은 “우리는 일제로부터 너무나 어렵게 힘들게 해방됐고, 공산당으로부터도 자유를 끝내 지켜냈다. 우리는 이제 문화, 경제, 군사 등 어느 분야에서든 절대로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한다. 내가 우리 민족에게 남기는 유언은 갈 5:1”이다.”라는 요지로 말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건 기독교 교리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제일 넓은 영적 적용일 것이다.

아무튼.. 이런 배경이 있으니 본인도 오후에 준비 찬송을 인도할 때는 자유가 들어간 곡들을 쭉 검토하고 골라 봤다.
0순위로 곧바로 무조건 바로 떠오르는 건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되시겠다.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라”도 좋은 예시이다. “내게 자유 주시려고 주가 고난 당했네”가 있다.

“놀라운 주의 은혜” Wonderful grace of Jesus에는 setting my spirit free와 giving me liberty가 나란히 나온다. 우리말에는 “참 자유 주신 주” 정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놀라운 주의 은혜”와 “주 보혈로 날 구해 준” And can it be that I should gain의 가사에는 둘 다 쇠사슬이 끊어졌다는 묘사가 있다.

  • Chains have been torn asunder, giving me liberty
  • My chains fell off, my heart was free (사도행전 12장, 감옥에 갇혔던 베드로가 풀려나는 장면을 대놓고 오마주..)

하지만 우리말 번역 가사에는 이런 것들이 빠졌다.
우리말 찬송 중에 뭔가 쇠사슬이 끊기고 풀렸다는 묘사가 있는 곡은.. 찬송가라기보다는 캐주얼 복음성가 후크송(?)에 더 가까운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가 전부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17 19:35 2026/08/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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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여러 물질 중에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같은 유기화합물이 아니라 금속류는.. 생명체의 구성 성분과는 접점이 없어 보인다. 뭐, 생명체는 기계가 아니며 뼈가 쇳덩어리로 돼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마그네슘, 아연, 망간 같은 일부 금속만이 극미량이나마 인체에서 생체 화학 반응의 촉매 명목으로 쓰인다. 아, 철은 화합물 형태로(헤모글로빈) 아예 혈액에 들어있는 성분이다. 그래서 이런 금속 성분은 너무 없으면 비타민이 부족한 것과 비슷한 결핍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허나, 저런 금속들과 반대로 인체에 매우 해로운 금속도 있다. 납, 수은, 카드뮴은 그야말로 위험한 중금속 3관왕으로 여겨진다.
영양분 합성이나 흡수, 항상성 유지에 기여하는 건 없으면서 괜히 유익한 금속이 들어가야 할 자리만 차지하고, 신경계를 교란하고, 그러면서 몸에 배출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이런 해로운 금속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전기의 저장과 관계가 있다.
황산-납은 예나 지금이나 자동차 배터리의 절대지존이고, 수은은 한때 동전 모양의 수은 건전지가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니켈-카드뮴은 중· 소형 전자기기의 배터리로 많이 쓰였다.
수은과 카드뮴은 대체제 덕분에 이 바닥에서 퇴출되긴 했다. 그래도 건전지나 배터리는 무엇으로 만들건 몸에 좋지 않고 화재· 폭발 위험까지 있는 화학 물질이 쓰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1. 카드뮴

사람이 이런 중금속을 대놓고 우적우적 씹어 삼켜서 섭취하지는 않는다;;
산업 현장에서 납이나 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포함된 쇠붙이를 용접할 때나 녹일 때.. (1) 그것들의 증기 내지 미세입자를 호흡기를 통해 체내 흡입하는 편이다. 전문용어로는 fume이라고 한다.

아니면 수질 오염이나 토양 오염으로 인해 그런 중금속 성분이 인체에 들어올 수 있다.
(2)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오염된 물에서 성장한 수산물을 먹을 때.. 혹은 (3) 오염된 토양에서 자란 농산물을 먹을 때 말이다.

그리고 중금속 성분은 해당 금속 순물질일 수도 있고, 다른 화합물 형태일 수도 있다.
화합물의 특성은 그 화합물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 순물질의 특성과 같지 않다. 하지만 순물질부터가 인체에 해로우면.. 화합물도 다른 성질은 바뀔지언정 인체에 해롭다는 특성은 대체로 변하지 않는 편이다.

20세기 중반에 일본에서 유행했던 공해병 중 하나인 '이타이이타이 병'은 수질 오염으로 인한 카드뮴 중독이 원인이었다. 카드뮴은 체내에서 정상적인 칼슘의 흡수를 방해해서 뼈를 극도로 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몸에 오만 가지 탈을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까지 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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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초딩 꼬마 시절에 이 병 이름을 들었다. 그 뒤 '토스트 소녀' 게임에서 여캐 주인공이 장애물과 부딪히는 미스가 났을 때 "이타이~이타이 ㅠㅠㅠ" 이러는 걸 들으니 느낌이 참 묘했다. ㄲㄲㄲㄲㄲ)

심지어 담배 연기에도 카드뮴이 극미량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건 무슨 니코틴처럼 담배라는 작물 자체에 카드뮴이 들어있다거나, 담배의 제조 과정에서 일부러 그게 첨가된다는 뜻은 아니다.
농사 지을 때 투입되는 인산염 계열 비료에 카드뮴이 화합물 형태로 포함돼 있고, 그게 담배 식물 몸체에도 농축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이건 근본적으로는 토양 오염의 후유증이지, 담배만의 문제가 아니겠지만..
담배나 인삼은 지력 소모가 유난히 심한 빡센 식물이니 비료가 특별히 많이 쓰여서 문제의 여파가 더 큰 듯하다.
담배 연기에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의 동위원소까지 들어있는 것도 카드뮴과 같은 원리 때문이라고 한다.

2. 납

납은 적당히 물렁물렁하고 녹는점이 낮고, 가공하기 쉽고.. 그러면서 꽤 무겁다는 특성으로 인해 유용한 구석이 매우 많은 금속이다. 그래서 자동차 배터리의 전극뿐만 아니라 퓨즈에도 쓰이고 총알 탄두에도 쓰이고.. 방사선 차폐 용도로도 쓰인다.

하지만 납이라는 물질의 '대외 이미지'는 철이나 구리에 비해 썩 좋지 않다. 인체 안에 들어가면 뇌세포 죽이고 뼈와 신경을 망가뜨리고 인체에 온갖 해악을 끼치는 독극물이어서 그렇지 싶다.
납 역시 굳이 납땜할 때 증기 흡입 형태로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토양 오염이나 물 오염으로 인해 생물 농축 형태로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납은 에틸기가 여럿 결합한 유기금속 화합물 에디션이 있다. 이름하여 테트라(4)에틸납.. 화학식은 (CH3CH2)4Pb이다.
이건 상온에서 무색 액체로, 오리지널 납과는 형태가 완전히 다른 물질이다. 납이 다른 유기물과 뒤죽박죽 섞인 혼합물인 정도가 아니고 화합물이기 때문이다.

얘는 잘 알다시피 자동차용 휘발유 엔진에서 연료의 옥탄가를 올리고 노킹 현상을 없애 주는 아주 유용한 첨가제였다. '유연 휘발유'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발명됐다.
이 물질의 제조사는 '테트라에틸납'에서 부정적인 어감을 주는 납이라는 단어를 뗐다. 뭔가 알코올스러운 느낌이 드는 '에틸'만 선택했다. 그리고는 '에틸 휘발유, 에틸 가솔린'이라는 상표명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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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 킬로그램/킬로미터에서 뒤의 단위를 떼고 '키로'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작명 같은데..
하지만 이름에서 납을 뗀다고 해서 이 물질에 납 성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첨가제가 들어간 휘발유가 엔진에서 연소되자.. 배기가스에도 납이 환원된 형태로 씀풍씀풍 섞이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 전에 테트라에틸납을 제조하던 근로자들부터가 공장에서 납을 마시면서 시름시름 앓고 죽어가기 시작했다.

제조사에서는 그건 일부 근로자들이 과로로 골병 든 것이라고 치부하면서 납과의 인과관계를 필사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방사성 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해서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는데.. 대기 중에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납 성분 때문에 실험이 안 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일본처럼 카드뮴(이타이..)이나 수은(미나마타)이 아니라 납으로 인한 공해병을 그것도 1920년대에 자동차 굴리면서 경험할 수 있었던 나라는 전세계를 통틀어 미국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백금 촉매 기반의 삼원 촉매 정화 장치라는 게 발명됐는데, 이 납 성분은 자기도 해로운 데다 삼원 촉매 정화 장치를 망가뜨려서 다른 배기가스들까지도 제대로 정화를 못 하게 만든다.

이 정도면 유연 휘발유는 노킹 방지 성능이 제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환경 문제 때문에 절대로 쓰일 수 없는 물질로 확인사살 당하게 됐다.
대체제인 무연 휘발유는 일단 원유를 과거보다 더 빡세게 정제해서 옥탄가를 올리고, 거기에 납이 아닌 다른 유기물을 첨가해서 제조된다고 한다.

납 이야기가 꽤 길어졌네..
하긴, 무겁다는 점 때문에 납뿐만 아니라 열화우라늄도 총탄이나 포탄의 탄두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이 설정이 스타크래프트 마린의 사정거리 업그레이드에도 들어가 있다.
그래도 자연 원소 중에서 상온에서 밀도가 가장 높은, 가장 무거운 금속은 오스뮴(Os)이라고 한다. 원자 번호가 가장 큰 자연 원소는 우라늄이고 말이다.
텅스텐은 무게도 무게지만 녹는점· 끓는점이 매우 높은 걸로 유명하다. 금이나 납은 매우 무겁긴 하지만 녹는점은 낮다.

3. 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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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이지만 납보다도 밀도가 더 높은(무거운!!) 매우 특이한 물질이다.
반짝반짝 은색 광택이 나는 금속 같은데 물처럼 주르륵 흐르고, 무겁고, 동글동글 알아서 잘 뭉치고..
수백 년 전 옛날 사람들은 이런 신비로운 수은을 화장품처럼 써서 피부에 쳐발쳐발도 했었다. 수은을 그런 용도로 써서는 안 된다는 걸 인간이 깨우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 텐데..;;

수은은 앞서 얘기했던 건전지뿐만 아니라 형광등과 온도계에도 쓰였다. 이 때문에 '수은주'가 온도계를 의미하는 관용어로 아직까지도 쓰인다.
하지만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이며, 증기가 몸에 들어가기 쉽다. 우리나라에서는 먼 옛날, 1988년에 온도계 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문 송면'이라는 이름의 겨우 15살짜리 소년이 급성 수은 중독에 걸려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온도계에다 수은을 주입하는 일을 밀폐된 공간에서 안전 장비도 없이 하면서 치사량의 수은 증기를 흡입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수은은 생물 농축을 통해서도 들어올 수 있다. 자연 오만 데서 조금씩 쌓인 수은이 바다로 들어가고, 그게 그 일대에 사는 어패류의 내부에 쌓이고, 그 어패류를 사람이 먹으면서 말이다. 수은뿐만 아니라 살충제 DDT, 미세 플라스틱 같은 다른 해로운 성분들도 이런 식으로 농축된다.

인간 사회에서 어떤 일을 추진할 때 하청 단계가 늘어나면 작업자가 받는 비용이 전 단계의 절반 이하로 팍팍 깎이곤 한다. 생물 농축은 이와 정반대다. 먹이 사슬 단계가 늘수록 그 농도가 몇 배로, 폭발적으로 올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생선 중에서도 참치, 상어처럼 덩치 크고 딴 어류들을 많이 잡아먹는 아이일수록 수은이 들어있을 가능성도 크게 높아진다. 생선에 기생충이야 가열만 하면 없어지겠지만 중금속은 그렇지 않다.

수은은 이런 생물 농축 과정에서 메틸기가 붙어서 유기금속으로 바뀐다. 메틸기가 하나만 붙은 CH3Hg 메틸수은은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아까 유연 휘발유는 '에틸기'가 4개 붙은 납 화합물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이번엔 에틸이 아니라 메틸이다.;;

같은 독극물이어도 암모니아나 테트라에틸납 같은 건 산업적으로 다른 유용한 구석이라도 있다. 그러나 메틸수은은? 잠시 농약이나 방부제 같은 데에 쓰이기는 했지만, 인체에 너무 위험하고 다른 대체제도 많기 때문에 퇴출됐다.
산업적인 쓸모가 있는 게 아니어서 인간이 일부러 제조하지는 않는다. 즉, 이건 그냥 해양 미생물이 수은을 가공한 결과물일 뿐이다.

오염된 물 속의 메틸수은이 쌓이고 쌓여서 발생했던 대표적인 공해병이 바로 미나마타 병이었다.
이타이이타이는 카드뮴이고 물 또는 토양과 식물이 출처였던 반면, 미나마타는 수은이고 출처가 물과 동물 계열인가 보다.

그런데 수은에 메틸기가 하나가 아니라 2개 붙으면 '디메틸수은' (CH3)2Hg이 된다. 이건 수은이나 메틸수은을 아득히 능가하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맹독 극독으로 위력이 업그레이드;;;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전설을 넘어 레전드 급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고 사례가 있다. 1996년 8월,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화학과의 대학원생도 아니고 엄연히 교수이던 캐런 웨터한(Karen Wetterhahn)이라는 과학자가 맨손도 아니고 라텍스 장갑까지 낀 채로 실험을 하다가 디메틸수은 몇 방울을 손에 잠시 흘렸다. 곧바로 닦아냈다.

그랬는데, 겨우 그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디메틸수은은 장갑을 통과하고 사람의 피부로 흡수돼 들어갔다.
그로부터 무려 5개월쯤 뒤인 1997년 초부터 그녀는 뇌가 상하고 신경이 파괴되고 시청각 장애가 생기면서 폐인이 돼 갔고.. 10개월 뒤인 1997년 6월에 사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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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 정도면 거의 청산가리나 방사능 피폭이나 독사 맹독에 맞먹는 독이 아닌지..???
수은이 아무리 유독하기로서니, 증기가 아니라 액체 수은을 손으로 좀 만졌다고 해서 바로 체내로 흡수되고 몸에서 탈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디메틸수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먹은 것도 아니고, 증기를 흡입한 것도 아니고, 피부에 그렇게 아주 소량이 잠깐 접촉한 것만으로! (이 정도면 뭐 사람 암살이나 ㅈㅅ 도구로 악용될 수도 있겠다;;)

일반인이 이런 미친 물질을 접할 일은 사실상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자연에서 합성되는 건 그냥 '메틸수은'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디메틸수은은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으며, 인간에게 딱히 다른 쓸모도 없다. (일부러 제조할 일 없음)

이상이다. 글을 이렇게까지 길게 쓸 작정은 아니었는데 엄청 길어져 버렸네;;
오늘은 해로운 중금속 3관왕 위주로만 썰을 풀었지만, 나중에 언젠가 금속이나 합금, 원소 쪽으로도 더 범용적인 글을 쓸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13 08:35 2026/08/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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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역시, 특례시, 특별자치도 등등~

우리나라의 서울은 조선 시대에 한양/한성, 일제 시대에 경성부라고 불렸다. 해방 후엔 잠깐 서울시였다가 정말 초창기인 1946년에 서울특별시라고 정착했다.
그 뒤.. 나중에 부산이 1963년엔가 부산직할시로 바뀌면서 경상남도로부터 독립했다.

이렇게 직할시 승격 테크는 1981년에 인천과 대구가 나란히 승격된 걸 시작으로, 1986년에 광주, 1989년에 대전, 1997년에 울산의 순으로 이어졌다. 5공 시절에 이런 직할시가 제일 많이 생긴 셈이다(인천, 대구, 광주).

인천은 처음에는 직할시 동기였던 대구와 대등한 체급이었던 반면, 40년 후 지금은 부산을 추월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마치 인도의 인구가 중국의 인구를 추월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랬는데 오늘날은 이런 통상적인 행정구역 체제가 소리소문 없이, 야금야금 바뀌는 중이다. 이름에 자꾸 '특'자가 들어가고 있다.
그 첫 시작은 '특별자치도'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한 제주도(2006)이다. 제주도(제주시, 서귀포시)가 전라남도로부터 독립했다. 그 뒤, 강원도(2023)와 전라북도(2024)가 특별자치도로 바뀌었다.

도가 아닌 시 레벨에서는 2012년에 출범한 세종시가 전국에서 유일한 특별자치시이다.
그 다음으로는 경기도의 화성, 고양, 수원, 용인 4개 도시는 '특례시'라고 칭호가 바뀌었다. 거기에다 경남 창원까지 추가돼서 특례시는 총 5개 있다. 광역시는 울산을 마지막으로 더 만들지 않고 있다.

특례시는 광역시와 달리 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정치· 행정적인 부담은 덜하다고 한다. 태양계에서 행성 다음으로 왜행성 같은 느낌도 드네..;;
이렇게 바꿔 놓으면 무슨 떡고물이 날아오기라도 하는지 왜 자꾸 특을 붙이려는지 잘 모르겠다.

가장 뜬금없는 참신한 변화는 요 근래에 이뤄졌다. 전라남도와 광주가 합쳐져서 광주전남특별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건 대구와 군위군이 합쳐진 것도 아니고 완전히 차원이 다른 변화이다.

앞으로는 '광주'를 경기도 광주와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 예전 같은 '광주광역시' 대신 도로 '전라도 광주', '7시 광주'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 모양으로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는 예전 명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반면, / 모양으로 전라도와 강원도는 공식 명칭이 '특'자가 붙고 뭔가 바뀌었다.

2. 광역시들의 특징

울산은 직할시였던 적이 없이 바로 광역시로 승격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이며.. 전국에서 지하철이 없는 유일한 광역시이다.
대전은 전국에서 공항이 없는 유일한 광역시이다. 대타로 청주 공항이 있을 뿐.. 서울 시청에서 인천 공항까지의 직선 거리랑, 대전 시청에서 청주 공항까지의 직선 거리는 둘 다 40여 km가량으로 비슷하다.

인천은 전국에서 KTX가 없는 유일한 광역시이다. (아직까지는)
광주는.. 광역시급 도시치고는 각종 상업시설이 없는 게 많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인 예시는 생략하겠다.

대전은 중형 중전철 형태의 지하철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광역시이다. 대전 지하철 이후에 등장한 지하철들은 모두 경전철(인천 2, 용인, 의정부) 아니면 대형 중전철(서울 9, 신분당)이기 때문이다.
대구는 평범한 경전철을 넘어 아예 모노레일을 도시철도로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광역시이다. (대구 3)

대구와 인천은 하위 행정구역으로 '군'을 둘 보유하고 있다. (달성, 군위 / 강화, 옹진)
부산은 기장군, 울산은 울주군을 하나씩 보유.
대전과 광주는 군이 없다. 대전의 경우, 옛날에 대덕인지 유성인지가 충청남도 소속의 군이었지만 나중에 대전 소속의 구로 바뀌었다.

대전과 광주는 아직까지는 광역전철도 없다. 그래도 대전은 지하철 1호선을 잘 만들었고 대전-충청 광역전철도 개통이 임박한 반면, 광주는 상황이 좋지 않다.
시내의 선로를 너무 많이 걷어내고 광주 역까지 저렇게 망한 걸 보면 가까운 미래에 광역전철의 수혜를 받기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지하철 2호선이나 어서 만들어져서 1호선을 보조해 줘야 할 듯..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대전과 대구 모두 기존 경부선 선로를 이용해서 광역전철을 구축했는데, 부산은 경부선을 활용한 건 없다는 게 특이하다. 동해남부선을 개량해서 울산과 부산 사이를 이었을 뿐. 오히려 부산 지하철 2호선의 북부 구간이 경부선과 비슷한 선형이다.

다음으로, 부산과 인천은 과학기술원이 없다. 과학기술원이야 대전이 원조이고 서울에도 경영대학원과 작게나마 도곡캠이 있는 반면.. 부산과 인천은 진짜로 아무 접점이 없다. (대구, 울산, 광주에만)
아, 생각해 보니 그래도 고등학교 레벨인 과학 영재학교는 원조 1호가 부산에 있긴 하다.
부산 울산은 원자력 발전소와 가까운 편. 대전은 원전이 아니라 원자력 연구원이 있다.

이상이다.
부산뿐만 아니라 대구도 인프라가 의외로 빵빵한 것 같다. 지금까지 나열했던 뭐가 '없는 곳'의 예시에 대구는 단 하나도 걸려들지 않았다.;;
인천 송도와 부산 송도가 의외로 헷갈리네.. 둘 다 바닷가이지만 전자는 갯벌을 간척해서 만든 신도시 이름이고, 후자는 해수욕장 이름이 됐다는 차이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09 19:35 2026/08/0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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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뭔가 움직이는 모든 기계 장치들은 물리 법칙을 절대로 거스르지 못한다.
쉽게 말해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르며 공짜가 없다. 작용-반작용이라든가, 열역학 제1, 제2 법칙 같은 것을 죽었다 깨어나도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기계는 대체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주변 환경을 더 크게 교란한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에어컨은.. 실내의 쬐끄마한 공간을 시원하기 위해서 바깥으로는 그 시원하게 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열을 내보내야 한다. 에어컨은 지구 전체의 관점에서는 냉각기가 아니라 열 발생기나 다름없다.

비행기는 혼자 하늘을 우아하게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변 공기를 엔진의 힘으로 몽땅 다 빨아들이고 내뿜고 밀어내고 흐트리고 뒤엎는 기동을 하고 있다. 주변에 끼치는 난류, 소음, 열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비행기는 그 어떤 종류라도 비행 중에 미치도록 시끄러운 것이다. 엔진을 아무리 조용하게 만들어도 팬이고 로터고 걔네들이 돌아가는 소리, 공기를 찢는 소리를 이보다 더 줄이는 건 불가능하다. 날으는 양탄자 같은 건 현실에서 존재 불가능하다.

자동차는 비행기보다야 조용히 굴러가는 것 같지만 이 역시 배기가스에 타이어 마모, 소음, 잔열 등, 온갖 사이드이펙트를 남긴다.
우주 전체 관점에서는 거의 모든 기계는 고품질 에너지(전기, 화학에너지)를 저품질 에너지(열)로 바꾸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하다못해 컴퓨터에서 나오는 열도 이 범주에 아주 정확하게, 완벽하게 해당된다.

그러니 딱 하나 유일하게 전열기만이 열역학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정직한 기계이다. 전기장판, 전기난로..
다른 기계들에서는 열은 원하지 않는 사이드이펙트인 반면, 전열기만은 열이 처음부터 인간이 원하는 결과물이니까 말이다!

자, 학교에서 이렇게 과학 법칙을 배움으로써 학생은 영구기관 같은 사기 거짓부렁에 속지 않을 지성과 분별력을 얻게 된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방법론으로 사회 법칙을 배워서 "모두가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하는 이상적인 사회" 그딴 것도 영구기관과 100% 동급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숙지해야 할 텐데.. 뭐 그건 딴 영역 얘기이고..

난 여기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의 장면이 설마 이랬을까? "자 자, 난 승천할 겁니다. 내가 양력을 얻기 위해서 공기 가르는 엄청난 소음과 제트 후폭풍이 뿜어져 나올 테니.. 여러분들, 안전을 위해서 좀 멀리 물러서세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내가 없더라도 주변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음 전하는 거 잊지 마시고??"

성경에서 안전을 위해서 주변 사람들더러 물러서라고 지시하는 게 나오는 건..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 아니면 민수기에서 고라가 서 있던 땅이 꺼지기 직전.. 이 정도가 전부다.
성경에 나오는 초자연적인 기적들은 인간의 문명의 이기 같은 사이드이펙트가 없다. 깔끔하다. 완벽하다.

병 치료도 현대 의학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아예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치병 전신마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리는데 이건 뭐 그냥 넘사벽이 아닌가?
아 물론 인간이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해서 온갖 사기꾼 돌팔이들을 퇴치하고 지금 같은 찬란한 보건 의료 인프라와 현대의술을 이룩한 거 정말 대단하기는 하다. 허나, 그게 인간의 죄와 노화와 죽음을 근본적으로 다 극복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이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관련 분야 얘기를 하자면..
교회는 성장이나 자기 방어를 위해서 세상 정치인이나 기업가 같은 방법론을 쓰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아예 물리적인 폭력이나 해코지, 예배 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세상 공권력에 도움을 호소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자들 중에 이단 교리 신봉자라든가, 외형적인 죄를 반복해서 지으면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 남을 이간질하고 공동체의 물을 흐리는 사람이 있으면 징계하여 쫓아낼 수 있다. 그 정도 필터링과 분리쯤이야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당연한 권리이고 재량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대를 위해서 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일을 추진하거나, 목적을 위해서 수단은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거나, 뻥카 허세 여론몰이 여론조작, 불신자와 무슨 로비 거래, 무슨 코스프레.. 이러지는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짓거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사도행전 5장 극초창기 때 아나니야와 삽비라를 바로 죽여 버리신 거다.

이 주제에 대해서 할 말이라든가 예시를 들 게 매우 많지만, 일단 시간과 분량 관계상 생략하겠다. 허나,
그렇게 하지 않고 교리적인 순수성을 잃고 세상과 타협하고 돈 잔뜩 벌고 덩치만 잔뜩 키운 교회는.. 그냥 기형적인 나무가 돼 버린 겨자씨와 같고, 부풀어 버린 누룩과 같다.

자기 교인 1명이 새로 생기는 과정에서 교회 밖에서 실족한 사람이 5명 생기고 개독안티가 10명 추가된다. 이런 식이면 앞서 말했던 대로 주변에다 열을 훨씬 더 뿜어내면서 자기 내부만 조금 시원하게 하는 기계와 개념적으로 뭐가 다르겠는가?

교회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성장하고 확장되는 게 무슨 폰지 사기의 피해 규모가 커지는 것 같은 현상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희생해 버렸는데 교회가 무슨 존재 가치가 있겠나? 당장 회개하고 참회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흔적도 없이 파괴돼 버렸던 옛 성전 꼴밖에 나지 않을 것이다.

겨우 1, 200년 남짓 전에 알량한 과학기술 몇 건이 개발된 걸 갖고 성경 계명이 전근대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고 어쩌구저쩌구 깝치는 사례가 많다.
뭐, 인간이 발명한 게 다 나쁘고 해롭고 무익하다는 건 아니다. 어떤 건 선하고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 가령, 인간이 솔로몬의 재판을 직접 재현할 수는 없으니 CCTV와 DNA 감식 기술을 개발한 것이야 매우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과학기술과 문명의 이기는 그걸 운용하는 비용, 그게 장기적으로 끼치는 부작용, 그것 때문에 인간들이 딴 데서 보이지 않게 알음알음 치르는 다른 댓가를 일절 함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까지 다 총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과학기술이니 문명의 이기니.. "생각만큼" 그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세상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그 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 해서 인간이 삽질하고 고생하는 예야 많~~다. 사형 집행 안 하는 것도 대표적인 예이고.
그러니 인간이 쪼금 대가리 굵어지고 대단한 거 찾아내고 만들어 냈다고 성경의 권위가 실추되면 어쩌나 걱정은 절대 할 필요 없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성경의 권위와 위상에 흠집이 갈 일은 없다.

그 대신 세상을 상대로 그렇게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교회 역시 성경이 일하는 것처럼 일해야 한다.
성경에 초자연적인 기적이 기록돼 있다면, 그걸 믿는 사람들 역시 초월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초월적인 믿음을 행해야 한다. 그래야 불신자들도 "쟤들은 진짜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보구나" 그런 걸 느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교묘한 부작용 같은 게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06 08:35 2026/08/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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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단순히 성경 어휘 이슈나 기본 교리 말고.. 경건, 영성 쪽으로 글을 쓰는 건 엄청 오랜만이고 이례적이지 싶다. ㄲㄲㄲㄲㄲㄲㄲ

1. 선교사 짐 엘리엇

1940년대 후반~1950년대 그 무렵에 우리나라에는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손 양원 목사가 있었다. 자기 아들들을 죽인 좌익 폭도들을 용서했는데 나중엔 자기도 공산당에게 순교한 분이다.

한국에 선교를 하고 복음 전하기 전에 먼저 6· 25 참전부터 선택했던 윌리엄 해밀턴 쇼(1922-1950)라는 엄청난 분이 있었다. "위급할 때 도와주는 친구, 자기 목숨까지 바치는 친구가 참 친구이다"를 몸으로 실천한 분이었는데 그 꿈을 다 펴지 못하고 전사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는 짐 엘리엇(1927-1956)이라는 선교사도 있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중남미 에콰도르라는 나라의 내부에 있는 '아우카'라는 미접촉부족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자기 인생을 다 바쳤다. 쟤들은 외부인은 닥치고 죽이고 보는 아주 폐쇄적인 집단이었다고 한다.

짐 엘리엇은 본인 포함 5명으로 선교팀을 꾸렸다. 그리고 경비행기를 타고 쟤네 마을 상공을 날면서 선물 바구니부터 마구 떨구면서 저쪽 마음을 열어 나갔다.
그리하여 1956년 1월, 접선을 성사시켜서 부족 대표를 한번 만났다. 그러나 부족 내부에서 악의적인 오해와 이간질 같은 불상사로 인해 그들은 겨우 며칠 뒤, 원주민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그만.. 전원 살해당하고 말았다.

선교사들은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호신용으로 공중에 위협 사격도 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을 향해 쏘지는 않고 자기들이 죽음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화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죽으면 바로 천당으로 가니 걱정 없다. 그러나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저 사람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라는 신념을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과 유럽 사회는 크게 술렁거렸다고 한다.
옛날 대항해시대 스페인이라든가 19세기 제국주의 시절 같았으면 "저 미개한 야만인들을 당장 토벌하고 놈들을 기독교로 강제로 개종시켜야 한다" 이랬겠지만.. 때가 20세기 중반이니 이번엔 조금 다른 관점의 반응이 나왔다. (실용주의?)

"거 봐, 쟤들은 수백 년 동안 외부와 접촉을 일절 거부하고 침입자를 죽여 온 부족이잖아.. 왜 쓸데없이 저런 데에 선교하러 가서 자기 명을 재촉했을까? 그 친구.. 공부도 잘하고 장래가 촉망되던 인재였는데??? 완전 재능낭비이구만!"

그랬으나..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짐 엘리엇 등 몇몇 선교사들의 아내(= 미망인)가 몇 년 뒤에 그 부족을 다시 찾아가자 원주민들은 정말 큰 충격을 받고 사랑과 용서에 감화됐다고 한다.
원주민들 대다수가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며, 부족의 외부인 살해 문화가 사라졌다. 심지어 짐 엘리엇 일행을 직접 창으로 찔러 죽였던 부족의 전사는 목사가 됐다고 전해진다.

짐 엘리엇은 20대 초반 때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라고 다짐을 일기에 쓴 것으로 유명하다. 애초에 "주여, 저를 주를 위해 써 주십시오, 저를 주의 일에 정말 새하얗게 탈탈 불태워 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입버릇처럼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도 마찬가지다. 아까 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낭비라니요? 제 남편은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이 순간만을 위해 인생을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이제야 그 꿈을 계획대로 이룬 건데 뭐가 낭비입니까? 다시는 말을 그런 식으로 하지 마세요."라고 단호히 일축했었다. (저분은 복음서에 나오는 향유 옥합 여인 이야기의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었지 싶다.)

그리고 그분은 No Graven Image이라고.. 표면적으로 선한 의도이기만 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내 뜻을 들어주고 당장 형통케 해 줘야만 한다"라는 생각의 위험성을 저격한 소설도 썼다(1966년). 자기 남편을 모티브로 한 주인공을 넣어서 말이다. 하나님이 아까 그 해밀턴 쇼나 짐 엘리엇 같은 사람을 역설적으로 왜 일찍 데려가셨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뭔가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20세기 중반 현대에도 저런 선교사가 있었다는 게 개인적으로 정말 놀랍게 느껴진다.
이 정도면 짐 엘리엇은 친아들의 살해범을 용서한 손 양원 목사보다 더하고, 와이프는 주 기철 목사를 내조했던 오 정모 사모보다 더 강직했던 분 같다.

* 저런 일이 있고 반세기 가까이 뒤, 2018년에는 '존 앨런 차우'라는 이름의 선교사가 인도 부근의 미접촉부족인 '센티널 족'이 사는 노스센티널 섬에 무단 접근하다가.. 원주민으로부터 화살세례를 받고 죽었다. 이 사람은 그 해에 다윈 상을 받고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ㄲㄲㄲㄲ
저 사람은 과연 짐 엘리엇 정도로 기도 잔뜩 하고 준비하고 원주민들을 진짜 사랑하는 마음으로 접근했었는지..
아니면 그냥 중2병 관심병자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설마 저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센티널 족을 상대로 뭔가 일을 하셨는지?? 나로서는 판단을 못 하겠다.

2.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체임버스는 우리나라에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My Utmost for His Highest라는 경건 묵상집으로 유명한 목사이다. 그야말로 “나의 최고존엄에 대해서 내 뼛속까지 진심을 다해서 생각한다, 깊이 묵상한다, 그분께 바친다, 헌신한다” 이런 뜻이다.

책이 대체로,

  • “당신은 양심을 통해 속삭이는 성령님의 권고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영이 건강한 상태입니까?”
  • “거리끼는 게 있다면, 꺼림칙하다면, 좀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면 이미 글러먹은 것입니다. 하지 마십시오”
  • “당신의 종교 행위가 신앙 생활의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아무리 좋은 취지로 시작한 것이라도 죽은 껍데기로 전락하고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요지의 내용이다.
제대로 예수쟁이로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자기랑 너무 안 맞고 뜬구름 잡고 재미없는 얘기밖에 없어서 오래 못 읽는다.

가령, 갓 구원받은 영적 뉴비 아기들을 위한 초급 입문서에서는 “기도를 생활화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중급에서는 “자기 간구만 할 게 아니라 남을 위한 중보기도가 더 수준 높은 기도입니다” 이러는데..
최고봉에서는 그건 너무 당연한 거고 “중보기도라는 명분으로 자기 의가 교묘히 드러나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이러는 식이다. 그러니 고급이다.
애초에 중보기도 자체를 할 줄 모르거나 해 본 적 없는 사람은 저 책이 무슨 상황을 다루는지 이해를 당연히 못 한다.

저 사람은 1874년생으로, 김 구, 이승만, 윈스턴 처칠, 앨버트 슈바이처 같은 인물과 동시대 동갑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서양은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한편으로 제국주의, 황금 만능주의, 극심한 빈부격차, 시궁창이던 노동자 인권, 기존 윤리관의 타락 등 온갖 잡음도 많았다.

그래도 한편으로 서양에서 저 정도의 영성을 자랑하는 목사도 있었으니 그 문화권이 진짜 회복 불가 막장까지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이 썩지 않게 하는 소금 역할을 한 셈이다.
저 사람은 1차 세계대전 때 종군목사 명목으로 사역하다가 1917년에 겨우 43세의 나이로 맹장염이던가 오늘날 관점에서는 별로 치명적이지 않았을 병 때문에 소천했다. 불의 전차 ‘에릭 리들’(1902-1945)과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최고봉이라는 단어는 옛날에 현대자동차 각그랜저의 광고카피이던 “고급 승용차의 최고봉” 이후로 이 책 제목에서 처음 듣는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난 바로 이 책을 선물로 받으면서 지금 내 와이프가 된 자매와 교제를 시작했다...!!
“책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답례를 드리고 싶은데 우리 밥 같이 좀 먹을 수 있을까요?”로 시작해서.. 뭐 그렇게 됐다.

3. 위로와 평안 찬송

모든 기독교 찬송가에는 찬양과 경배, 예수 그리스도, 사랑, 기쁨 등등등과 더불어 중후반부에 '위로와 평안'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여기에 속한 곡이 적지 않고 꽤 된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에 한 번꼴로 컨디션 조절 실패 때문에 외출 중 급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때 신속히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고 산출물을 원없이 흘러보낼 때...
농담이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하늘 문이 열리고 세상이 다시 보이는 것 같았다. 땅에서는 새장 문이 열리고 하얀 비둘기들이 푸드득 파란 창공을 향해 날아가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머릿속에서 "펴어어어엉~~ 화아아아아아~~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가 자동 재생된다!! =_=;;;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는 거 실사판을 경험하게 되더라.

약간 다른 상황을 또 말하자면,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 받을 때 말이다.
기계가 드르르륵 키이이잉 쇳소리와 함께 내 잇몸 구석을 쑤시고 신경을 건드릴 때..
그땐 난 의도적으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를 떠올린다.

이때는 자동 재생은 아니고 강제 재생을 한다.;;; ㅠㅠㅠㅠ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낫더라.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_-;;
찬송가라는 게, 굳이 가사 내용이 다 공감되지 않더라도, "제발 공감되게 나를 바꿔 다오"를 다짐하면서 부르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햐~ 저건 세월호 같은 사고로 가족을 다 잃은 슬픔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면서 지어진 찬송가인데.. 100년 이상 뒤에 태어난 어느 후대 사람은 그걸 치과 치료를 극복하는 용도로 써먹고 있구나~! ㅋㅋㅋㅋㅋ

내가 1번과 2번에서 너무 위대한 신앙의 선배 이야기를 하다가 3번에서 갑자기 병맛으로 컨셉을 바꾼 이유는..
예수쟁이의 신앙 생활은 홀리한 주일 따로, 세속적인 평일 따로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심지어 화장실에서 X을 쌀 때라도(성경에 이런 직접적인 예시는 없지만 ㄲㄲㄲㄲㄲ) 무엇을 하건 하나님 영광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고, 정말 어느 상황에서든 예수님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3번부터, 작은 것부터 생활화하고 그게 더 발전해야 나중에는 2번 같은 묵상과 1번 같은 행적도 나올 수 있다.

밥먹기 전, 자기 전, 점잖게 격식 차려서 기도할 때도 있지만 여호사밧 왕은 전쟁터에서 위험에 빠졌을 때 "으악!!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부르짖은 것조차도 일종의 긴급기도였다(대하 18:31). 그리고 그 기도는 응답됐다.

그게 살전 5:17에서 말하는 "끊김 없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의 의미일 것이다.
공부고 생업이고 다 때려치우고 CPU 사용량을 100% 기도 process에만 몰빵하라는 말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세상적인 일을 마치고 idle time이 됐을 때마다 언제든지 끊김 없이 예수님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하다못해 감탄사도 말이다.
깜짝 놀랐을 때, 혹은 갑자기 안 좋은 상황이 닥쳤을 때.. "썅~ 젠장, X발"을 내뱉을 바에야 차라리 진지하게 "오 주여~"가 나와야 할 것이다.
주여 주여 장난으로 헛되이, 망령되이 입에 담지는 말아야겠지만, 필요할 때 진심으로 언급하는 건 오히려 바람직하고 권장된다고 하겠다.

이러면 보통은 감사와 찬송이 더 나오지, 무슨 한국인의 정서라는 서러움, 한맺힘 이런 감정은 어지간해서는 맺히지 않을 것이다. 아리랑 대신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 나올 것이다.

성령 충만한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광신적인'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광신은 흔히 불신자나 개독안티들이 세상 매체에서 프레임 씌우는 그런 이상한 결과물이 나오는 광신이 절대 아닐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요즘 참교육을 너무 많이 봤나.
'여기에 모인 우리' 찬양을 부르다 보니 이 처자가 생각나더이다. 이 믿음 더욱....!!!! =_=;;;;;

Posted by 사무엘

2026/08/01 08:35 2026/08/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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