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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건 사고와 관련하여 꼭 볼 만한 명작 영화로는
Flight 93 (2006), 그리고 Sully (2016)가 있다. 실제 사건으로나 영화의 작품성으로나 모두 탁월하다.

1.
전자는 2001년 9 11 테러 당시에 테러리스트에게 피랍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미국 국내선, 보잉 757-222) 여객기 내부에서 벌어졌던 일을 다룬다. 9 11 테러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항공 보안 규정은 지금보다 훨씬 더 널널했다.

사건은 빨간 머리띠를 두른 테러리스트들이 갑자기 승무원들을 제압하고 조종실로 난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중에는 승객들이 힘을 합쳐 기내식 카트로 박치기를 해서 조종실 문을 부수기는 하지만.. 이미 조종간을 잡고 있던 테러리스트가 이판사판 동귀어진 차원에서 비행기를 평지로 추락시켜 버렸다.
추락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커다란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면서 기체는 형체도 없이 박살났다. 그리고 전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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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승객들의 영웅적이고 숭고한 저항 덕분에 이 사건은 저 비행기만 혼자 추락하는 걸로 끝날 수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을 그대로 놔 뒀으면 쟤는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에다 꼬라박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때 미처 무장을 못 하고 긴급 출격했던 미군 F-16 전투기 2기는 얘와 몸으로 충돌할 각오까지 했었다고 한다.
이 기체가 추락한 지점에는 현재 Tower of Voices라는 이름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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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편, 후자는 2009년 1월,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US 에어웨이즈 1549편(미국 국내선, 에어버스 A320-214)의 불시착 사고를 다룬다. ‘설리’는 당시 여객기 기장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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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체는 이륙한 지 얼마 못 가 새떼들과 제대로 충돌한 덕분에 좌우 엔진이 몽땅 망가지고 시동이 꺼져 버렸다. 새가 기체와 단순히 부딪힌 정도를 넘어 엔진으로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공기만 들어와야 하는 엔진 내부에 크고 무거운 생명체 이물질이 들어갔으니 뭐..
기체는 순식간에 글라이더로 전락하고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기장이 얼마나 적절한 상황 판단으로 강에 잘 불시작해서 승객들을 전원 구출했는지는.. 직접 보면 알 수 있다. 공포의 GPWS 경보음을 “웽웽~ pull up!” 단계까지 듣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여객기 기장은 세계적으로도 드물지 싶다.

영화에서는 NTSB 조사관들이 저런 영웅 기장을 과실 있는 가해자인 것처럼 막 의심하고, 그때 비행기를 꼭 이렇게 처박았어야 했냐는 식으로.. 검사가 피의자 심문하듯이 거칠게 몰아세우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 사고 조사 때는 그렇지 않았다. 도저히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에 딱히 빡세게 조사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기장 당사자가 영화에서 상대측 조사관들이 너무 악의적으로 묘사됐다고 이의를 제기했을 정도였다.

3.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도 1971년 1월, 대한항공 포커 27기 납북 미수 사건 정도면 충분히 영화로 만들 만한 스토리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납북 미수라고는 하지만 이건 진짜 북괴 간첩은 아니고 그냥 중2병 또라이의 단독 범행이었다. (대공 용의점 없음) 그렇지만 피의자가 진짜 폭발물을 소지하고 있었고 여객기를 진짜로 이북으로 보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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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승무원들은 매우 적절하게 잘 대처했다. 기내에 탑승 중이었던 보안관이 놀라운 실력으로 테러리스트를 사살했으며, 결정적으로 놈이 기폭시킨 폭탄은 전 명세 부기장이 자기 몸으로 덮어서 폭발을 상쇄했다. 그리고 그분은 순직.. 기체는 다행히 바닷가에 잘 불시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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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강 재구 소령의 비행기 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에 강 소령 전기 영화(1966)도 나오고, 공군의 활약을 다룬 빨간 마후라(1964)도 나왔는데.. 저 일화가 잊혀져 가고 있는 건 아쉬운 일이다.
또한, 보안관이야 1969년 말 YS-11기 납북 사건의 교훈 때문에 도입된 것이지만 그 당시에 소지품 보안 검색은 저런 사제 폭탄의 반입을 허용했을 정도로 여전히 허술했던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31 19:34 2020/10/3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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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배에 대한 밴 플리트 장군의 인물평 / 증언

본인은 맹목적인 사대주의를 권장· 조장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외국(특히 미국)에서 좋은 평판과 예우를 받는 사람이나 물건은 실제로도 매우 훌륭한 인물이거나 우수한 물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정치인과 군인들이 더 깍듯이 받들어 모시던 백 선엽 장군이라든가.. 이 글에서 다룰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건국 대통령 할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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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ident Syngman Rhee is worth his weight in diamonds. That describes him in a nutshell. (리 승만 대통령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기 체중만 한 다이아몬드의 값어치가 나가는 인물이다.)

저 문구를 오래 전부터 어디선가 보긴 했었는데.. 출처를 찾아보니 바로 나온다. 주작이 아니었다~! ㅠㅠㅠㅠ

  • Christian gentleman
  • his whole life has been devoted to the liberation of his country
  • the true meaning of a long and selfless life devoted solely to the welfare of other people -- Korean people) 오로지 동족의 안녕을 위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기 인생을 통째로 바친 위인
  • great patriot 위대한 애국자
  • the immortal Messiah of Korea 한국의 구세주
  • 한국의 마하트마 간디
  • I deem it a very great honor to be called friend 내가 할배의 지인이라는 사실이 영광스럽다.
  • has so much wisdom ... it makes us feel like small boys around him. 워낙 노련 현명한 사람이어서 우리가 그냥 허접 쪼렙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고문관'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유래됐구나~!! ㅋㅋㅋ Komunkuan

"세계에선 극찬하는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을
우리나라만 독재자라고 쌍욕한다.
더 심각한 건,
현재 존재하는 북한 김 정은에 대해선
평화적으로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한다.
악마 김 정은보다 자국 건국 대통령을
죽일 듯 흥분하는 나라
는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하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난 이런 착한 독재가 있다면 단임 직선제 그런 거 없어도 되니 독재 치하에 좀 있고 싶다. 북괴 같은 독재 말고.

할배 대통령에 대해서 꼬리처럼 따라다니는 매우 저열한 중상모략 누명 낙인을 둘 꼽자면 단연 (1) 친일파 청산(?) 문제와 (2) 6 25 개전 초기의 피난과 한강 다리 폭파 타이밍 문제이다.
이에 대해 본인은 (1) Windows 95가 램 4~8MB짜리 PC에서 도스 호환성까지 맞추면서 겨우 돌아가기 위해서 16비트 코드를 재등용했던 것하고 완전히 똑같은 현상이다. 조 병옥, 이 인 같은 애국지사도 괜히 반민특위를 해체시킨 게 아니다.

(2) 방송국의 피랍 등 여러 착오들이 겹쳐진 불운이었지만 악의적인 짓은 절대 아니었고 저 사람은 자기 고국을 절대로 버리지 않았다는 것 위주로 변명과 실드를 갖추고 있다. 특히 중공 입국을 고의로 막지 않아서 우한 폐렴 초기 방역을 완전히 망친 현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진영논리 정치병자라면 6 25 개전 초기의 실책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이것들은 반일정신병과 합쳐져서 사람들 정신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망상 정신병이며 망국병이다.
사람 뇌를 컴퓨터에다 비유하자면 저건 친중종북이라는 악성코드가 침투하는 주요 보안 취약 지점이다.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을 반박해 주고 헛소리들을 잠재워야 한다.
좌좀좌빨의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관과 가치관의 거의 전부가 할배에 대한 증오심에서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 금별과 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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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정말로" 밑에 것들이 지휘 재량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극도로 잘못했거나 자질이 없었을 수도 있다.
군대에서 탈영이나 자살 사고 났다고 닥치고 다짜고짜 무조건 윗대가리 모가지만 쳐서 정말 유능하던 장교의 인생을 망쳐 놓는 것은 문제가 있는 조치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직접, 습관적으로 대놓고 변명이나 틱틱 하면서 아랫사람 탓 핑계 늘어놓는 것.. 짧은 시간 동안 그런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 건.. 우연이나 예외가 아니다. 옛날과 비교했을 때 명백하게 유의미한 변화이다. ---
"높으신 분들이 질이 점점 떨어지고 인성이 타락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북괴에서 사격 과녁에 얼굴이 그려지기까지 했던.. 참 군인 금별이 계시던 시절이 너무  그립다.
"니가 중대장이구나? / 고생 많다. 긴장하지 마. 내가 그리 겁나냐? / 적이 도발을 하면.. '쏠까요' 이렇게 묻지를 마. 일단 닥치고 그냥 쏴. 무자비하게 응징해서 도발할 엄두를 못 내게 하라고. 뒤에 책임은 내가 진다." (☞ 그 당시 동영상. 이를 두고 평소에 늘 실망만 하던 중대장이 바짝 쫄아서 긴장했다는 개드립이 나돌았다.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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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K 방역? 과연?

(1) 1950년대 말, 독일에서 '탈리도마이드'라고 임신 여성의 입덧을 기가 막히게 가라앉혀 주는 약을 선보였다.
효과 탁월하고 독성 없고 동물 대상 실험에서 부작용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엔 정말 기적의 발명품으로 여겨졌지만..
알고 보니 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산모는 괜찮은데 정작 배 속 태아가 약의 성분 때문에 사지의 혈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사지가 짤막 뭉툭 오그라든 기형아가 된 것이다!!

이 약 때문에 전세계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기형아가 태어나 버렸지만 그 시절 미국에서는 피해 사례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전혀까지는 아니겠지만..). '프랜시스 켈시'라는 약학자 출신의 FDA(미 식품의약국) 관료가 인체 임상실험 근거 불충분을 이유로, 온갖 집요한 외압을 뿌리치고 이 약의 수입 판매를 끝까지 거부· 불허했기 때문이다.

이분의 소신 판단이 미국에서 기형아 대재앙을 예방했다는 것이 판명되면서 이분은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훈장까지 받게 됐다.

(2) 더 옛날 태평양 전쟁 당시에.. 미국의 해군 정보장교이던 에드윈 레이튼 소령은 일본군이 여러 정황상 진주만을 공습할 것이라고 수차례 보고하고 건의했으나, 상부로부터 의견이 묵살당했다. 결국 진주만은 예고대로 처절하게 털렸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결정권자이던 상부의 책임이지, 레이튼 소령의 잘못은 아니다. 그래서 태평양 전선 사령관이던 허즈번드 킴멜이 책임을 지고 짤렸다.

그러나 레이튼 소령은 "그때 상부에 더 강하게 건의하고 설득했어야 했다. 나는 건국 이래 가장 처절한 정보전 패배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며 자신을 자책했고.. 더욱 분발하여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하고 분석했다. 그래서 훗날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일본군이 언제쯤 어디로 쳐들어올지를 거의 점쟁이 수준으로 정확하게 알아 맞혀서 전세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3) 위의 두 사람은 미국의 사례이구나.
자, 그럼 다음으로 지금 우리나라의 질병본부장을 맡아 왔고 이젠 청장으로 승격도 된 그분은..
정치색이나 악의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성실한 성격에 고생 많이 하고 있어 보이긴 한다. 세금 아까운 어지간한 먹튀 관료들보다야 나은 건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대기업 인사고과로 치면 B 정도인 평타 월급값만 하고 있는 것이지,
무슨 특출난 선견지명, 희생, 헌신이라든가 천재, 기적 같은 단어로 수식해야 할 영웅 행적으로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저 1, 2번의 인물이 막아낸 것과 이뤄낸 것을 같이 비교한다면 더욱 말이다. 심지어 '악의 평범성'의 범주에나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는데, 관련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 정 은경과 아이히만)

4. 로스쿨 교수 출신의 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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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중년 여인은 구치소에 갇혀서 아픈 몸을 이끌고 주 4회 꼬박꼬박 재판을 받았구만 저년은 무슨 엄살이냐?
그리고 성경 이후로 이 정도로 완벽한 교리적 적용과 문자적인 예언 성취는 처음 본다. 설마 저것도 영감 받아서 기록됐나...???

난 진짜 많이도 안 바라고..
저 악의 무리들이 딱 심은 대로만, 자기들이 남을 판단하고 남에게 행했던 대로만 정확하게 거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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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가 무슨 군대를 불법으로 빠졌나, 로스쿨 의대 공기업 대기업 같은 본격 신분 상승 코스에 엄마 아빠 찬스 특혜로 들어갔나?
원래부터 등골 브레이커 종목이고 월급쟁이 서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듣보잡 승마 정도나 기업 협찬 받아서 했던 게 뭐가 그리 잘못인가?

기소조차 못 할 혐의를 가지고 온 국민이 애꿎은 유부녀를 마녀 사냥을 하고 해외 인터폴에 수배까지 하고 얼굴 다 까고 수갑까지 채워서 언론에 대서특필까지 하게 만든 새끼들이... 자기 비리에 대해서는..? 진짜 악마가 따로 없다.
내가 좌빨좌좀 대깨문 부류를 극도로 혐오하며, 죽여야 한다는 급의 극언까지 불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 내로남불 위선이 때려죽이고 싶도록 싫어서(악한 것): 한 70%
    최숭실 vs 조둑 애미추, 북괴 중공 vs 일본 미국.. 잣대가 전혀 일관되지 않음
  • 사상이 옳지 않고 잘못됐으며, 거짓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틀린 것): 약 25%
    우리나라 근현대사 왜곡, 반일 정신병, 동맹과 주적을 서로 뒤바꿔서 인식
  • 나와 생각이 다른 것 자체 때문에 싫은 것(다른 것): 5% 미만

반대편도 비리 저지르고 위선적이기는 마찬가지라고? 말 잘했다. 그러면 네놈들도 똑같이 대통령직 짤리고 교도소 가면 된다. 공평하게 동일한 취급 받으면 나도 이런 글 안 쓴다.
틀린 것만 있으면 나도 정중하게 반박만 하고 말지, 감정적인 반응까지 하지는 않는다.

저 철면피 인간 악마들이 자기들이 입으로 씨부렸던 것, 남에게 들이댔던 잣대를 이제 그대로 되돌려받게 해야 한다는 말(주장, 생각)은.. 악한 생각이 전혀 아니며 정치 편향적인 발언도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음주운전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유족들이 엄벌을 탄원하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봐야 한다!

미국에서 평소에 민간 화재 보험 안 들고 기고만장하다가 자기 집에 불 나니 보험 조합에서 불 안 꺼 주고,
"보험료 몇 배라도 줄 테니 제발 불 꺼 줘 plz" / "안 돼. 그런 요청을 들어 주면 평소에 아무도 보험을 안 들어 놓게 됨."
이렇게 대꾸하는 게 악하거나 비인도 가학적인 사고방식인가? 그게 전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와 거의 똑같은 논리 내지 사고방식은 성경에도 있다. 잠언 1장 뒷부분 말이다. 하나님도 남을 조롱하고 비웃을 줄 아신다.
아니, "살아 있을 때 복음 안 받아들이면 죽어서 지옥"이라는 기독교의 그 시스템 자체도 철저하게 이런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5. 군함도의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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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군함도 강제 징용 조선인의 애절한 낙서라고 전해지는 이 그림 말이다.
실상은 이 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든가 성경의 요한의 콤마(요일 5:7), ‘없음’ 구절 따위가 아니라, 이런 문구야말로 진짜로 “후대”에 “추가”된 주작이다.

“이 낙서는 조선총련 산하 단체인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이 한일수교에 대한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1965년에 제작한 영화 ‘을사년의 매국노’를 촬영하는 가운데 연출된 것이다.
이 영화에 강제연행의 흔적을 담기 위해 제작진 4명이 치쿠호 탄광촌에서 현장 촬영을 했다. 그때 폐허가 된 징용공 합숙소에서 제작진 가운데 녹음을 담당한 여성이 나무를 꺾어 벽에 문제의 낙서를 새긴 것이다.
위조 사실을 상세히 밝힌 西日本新聞의 취재에 대해, 영화 제작진 가운데 한 사람은 당시 폐허가 된 합숙소에서 촬영할 것이 없어서, 제작진이 모두 합의하여 낙서를 새기도록 했으며, 부드러운 필체로 하기 위해 여성에게 쓰도록 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쉽게 말해 저건 진실성 신뢰성이 로스웰 외계인 해부 필름의 그것과 동급이라는 뜻이다!!

  • 백범일지의 허위 주작 의심 기록,
  • 청산리 전투의 전과 주작 의심 사항
  • 유 관순 열사의 진짜 사인
  • 만주에서 심지어 일본군이 조선인을 빨갱이들로부터 보호해 줬던 사실

이런 것들도 알 만한 사람들한테는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만천하에 다 밝혀져야 한다.
지금은 무려 2020년이다. 아직까지도 거짓 주작까지 서슴지 않는 미개하고 저주받을 반일 정신병은 이 땅에서 제발 좀 근절되고 추방돼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20 08:34 2020/10/2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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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0여 년 전,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무착륙 횡단

요즘 An-2니 세스나 172니 하는 경비행기들은 항속거리가 대체로 1000km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찰스 린드버그는 무려 1927년에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로 직접 마개조한 붕붕이 경비행기를 조종해서 대서양을 무착륙 직통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참고로 뉴욕에서 파리까지는 직선 최단거리만으로도 무려 5800km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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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속 300km 정도 될까..? 딱 KTX 열차의 주행 속도로 나아가는 비행기를 꼬박 33시간 동안 혼자서 한숨도 안 자고 조종했다. 한 순간도 조종간을 놓지 않고, 밥도 안 먹고 용변도 그냥 제자리에서 해결하면서 근성으로 날아갔다.. (☞ 관련 자료)

그는 1920년대 기술로 만들어진 가냘픈 경비행기로 초장거리 무착륙 비행을 하기 위해, 닥치고 기체의 무게를 줄이고 연료를 무조건 많이 꽉꽉 채워넣고, 기계 시스템을 최대한 '신뢰성' 있게 꾸미는 데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일체의 편의장비를 제거했다. 엔진은 단발로 편성하고, 교대 운전도 포기하고 자기 혼자 타고, 고도계 속도계 오토파일럿, 무전기, 전등, 비상 탈출용 낙하산 전부 없앴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경마 기수 수준으로 살 빼고 체중을 줄였다.

아문센이 1910년대 기술로 남극점까지 갔다가 살아서 돌아오기 위해 체면 따위 마다하고 개썰매와 개고기까지 적극 활용했으며, 1940년대에 둘리틀 특공대가 항공모함에서 함재기가 아닌 뚱뚱한 육군 폭격기를 이륙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다 떼어내고 눈물겨운 최적화를 한 것과 같은 급의 노력을 한 것이다.

그 결과 린드버그는 파리에 잘 도착했다. 환영 인파들에게 간단히 답례를 한 뒤, 그는 그대로 탈진했다. 다 때려치우고 곧장 근처 호텔에 가서 방 잡고 잠부터 잤다. 비행 시간만 33시간 반이고, 자기 자신은 거의 50시간이 넘게 잠을 안 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으로 귀환할 때는 비행기째로 미군 항공모함에다 싣고 그냥 배 타고 돌아왔다고 한다;;)

1920년대엔 한국인 중에도 안 창남, 신 용욱 등의 비행기 조종사가 최초로 등장하긴 했다. 하지만 동양에서 이제 막 파일럿이 배출될 정도이면 서양에서는 더 앞서가서 저런 엄청난 똘끼를 발산한 사람이 나온 셈이다.
무모하고 위험한 짓을 한 대신, 그는 지금 같은 복잡한 비행 계획 신고, 관제 교신에 착륙료, 영공 통과료 지불 따위 없이 아무도 없고 아무의 통제도 받지 않던 하늘을 최초로 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무한한 자유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 양반은 파리에 도착해서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착륙 지점을 찾는 심정이 어땠을까? 아폴로 우주선이 처음 보는 달 표면 지형을 내려다보면서 착륙 지점을 찾는 것과 비슷했지 싶다~!

2. 20세기 전반과 후반의 비행기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아직..

(1) 로켓 엔진이 없었고 미사일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태평양 전쟁에서 전함을 격침시키기 위해 가냘픈 함재기들이 폭탄을 싣고 직접 날아가서 급강하 폭격을 하거나.. 해수면 근처까지 하강해서 어뢰를 떨궈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원시적이고 위험천만한 기동이지만, 그 시절엔 통상적인 해전이 항공모함 함재기 교전으로 바뀐 것만 해도 공상과학 느낌이 들 정도로 첨단 기술이었을 것이다.

미사일이 없으니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탄도 미군의 폭격기가 현장까지 친히 찾아가서 떨구고 갔다. 버튼 하나 누르면 자동으로 핵 미사일이 발사되는 것 따위는 그때 없었다.

그리고 지상이나 수면의 목표물이니까 위력이 강한 폭탄이지, 높이가 자신과 대등한 비행기끼리는 여전히 기총사격에 의존해야 했다. 그래도 옛날에는 이것만으로도 공중전을 벌여서 적기를 잡았다. 일본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만 해도 항공 이동 중에 미군의 습격을 받았으며, 기관총에 벌집이 돼서 전사했다.

(2) 사실은 아직 제트 엔진도 없었다. 독일에서 말기에 간신히 개발에 성공해서 잠깐 투입했던 물건을 제외하면 이때 활약했던 모든 비행기들은 아직 피스톤 왕복 엔진 기반의 붕붕이였으며 프로펠러기였다.

그리고 초음속 비행이라는 것도 전무했다. 그런 것들은 다 종전 후에 등장하고 가능해졌다. 그로부터 몇 년 되지도 않아 6· 25 사변 때 곧바로 P-80 같은 미군 최초의 신형 고성능 제트 전투기가 나타났으니.. 그 시절 사람들이 ‘쌕쌕이’라고 부르며 신기해할 만도 했다.

비행기에서 제트 엔진의 등장은 열차가 증기 기관차에서 디젤이나 전기 기관차로 바뀐 것만큼이나 큰 혁신이었다. 등장 시기도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열차가 좀 더 먼저) 20세기 중반 정도로 비슷한 편이다.

오늘날은 비행기고 배고 미사일이면 다 끝나는 것 같다. 그리고 전투기들이 너무 강해지는 바람에 오히려 2차 대전 시절 같은 툭탁툭탁 공중전이 벌어질 여지가 없어진 감이 있다.

3. 이스라엘의 일란 & 아사프 라몬 국제공항

바로 1년 반쯤 전, 2019년 1월에는 이스라엘의 남부에서 '일란 & 아사프 라몬 국제공항'이라는 커다란 공항이 개항했다. 넓은 땅을 찾다 보니 간척지나 인공섬이 아닌 더운 사막에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공항이 지어졌다.

이 공항은 명칭에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의 이름이 부여된 게 인상적이다. 저건 친형제나 부부의 이름이 아니라 부자(아버지 아들)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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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 라몬은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이스라엘이 배출한 최초의 우주비행사였으나.. 2003년, 컬럼비아 호 우주왕복선 공중분해 사고 때 순직했다. 이때는 이스라엘 전국민이 슬퍼하면서 추모하고 난리가 났다.
다음으로 아들인 아사프 라몬은 부친을 따라 공군 조종사의 길을 갔는데.. F-16 훈련 비행을 하던 중 추락 사고를 당해 2009년,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에 순직했다.

부자가 나란히 나라를 대표해서 항공우주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순직했으니 이들의 이름은 공항의 이름으로 매우 적절하게 쓰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라몬(Ramon)'이라는 명칭은 비록 어원은 전혀 다르겠지만 필리핀의 옛 대통령도 떠오르게 한다. 라몬 막사이사이.
매우 공교롭게도 이 사람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순직했고, 공항 이름에 쓰여도 될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드골 국제공항, 케네디 국제공항..)

세상에 재임 중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은 국가 원수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되겠다 궁금했는데.. 찾아 보니 생각보다 많다. (☞ 링크) 위키백과가 별 걸 다 정리해 놨다.;;

4. 보잉 사

보잉 사는 초창기엔 지금 록히드 마틴이 그러는 것처럼 방산업체로서 군용기의 인지도가 더 높은 기업이었으며, 먼 옛날엔 심지어 선박도 만들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에 여객기 제조의 넘사벽 명가로 잘 자리잡은 데에는 경영자가 비행기 시장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게 크게 기여했다. IT 업체에다 비유하자면 처음엔 SI 외주 개발이나 정부 과제만으로 먹고 살다가.. 온라인 게임 하나 자체 개발해서 초대박을 터뜨린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격이다. 닥치고 비행기를 만들기만 한 게 다가 아니다.

군용기를 만들던 노하우를 살려서 명작 707로 숨통을 튼 뒤, 삼발기 시절에 727, 그리고 대형 점보 여객기가 각광받을 때 747, 적당히 작은 중거리용으로 737, 나중에 여객기의 트렌드가 2발기로 다운사이징 될 때 777로 시장을 적절히 잘 공략했다.

옛날에 초음속 여객기라는 도박이 시도되던 시절에는.. 같이 개발하던 747을 언제든지 화물기로 개조할 수 있게 대비를 잊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판알을 튕겨 보니 초음속기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게 명백해지자, 개발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손 뗐다.

콩코드를 굴리던 영국과 프랑스는 비록 체면과 명성은 얻었지만, 기체를 처음 예상한 것만치 다 생산하지도 못하고 적자 때문에 많이 고생해야 했다.
그 반면 아음속기 747은 1970년대에 여객과 화물에서 모두 흥행 대박을 냈다. 석유 파동 시국에 경제적인 아음속기가 옳은 선택이었음이 더 명백해졌다.

훗날 유럽의 에어버스는 보잉 747보다 더 큰 A380을 내놓으면서 크기면에서 747을 추월했다.
하지만 21세기는 초대형 여객기, 더 나아가 4발기의 시대 자체가 저물고 있었다. 결국 A380도 콩코드와는 다른 이유로 인해 처음 예상 분량만치 생산을 못 하고 단종되게 됐다.
보잉 사는 오랜 역사에 비해 이런 식으로 시대를 잘못 읽은 삽질이 별로 없이 경영을 잘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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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19:35 2020/10/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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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V1, V2 로켓

V1, V2..;;
안 철수가 지금으로부터 30년 가까이 전에 만들었던 안티바이러스 유틸 V3의 전신(백신 1, 백신 2)의 명칭이었고,
비행기 파일럿에게는 이륙 결심 속도, 이륙 안전 속도라고 더 익숙한 용어일 것이다.

그런데 이건 나치 독일이 2차 세계 대전 말, 패색이 짙어져 갈 때 영국을 한방 먹이기 위해 거의 발악을 하며 개발했던.. 초창기 순항/탄도 미사일의 상품명(?) 코드명이기도 했다. 거기서 V는 승리가 아니라 보복 무기(Vergeltungswaffe)라는 뜻의 단어의 이니셜이다.;;

V1은 구조적으로 볼 때 날개 달린 비행기이고 무인 비행 폭탄이었다. 길고 복잡한 전용 발사대에서 양력을 이용해서 이륙하는 방식으로 발사됐다. 비행 속도는 600~700km 정도밖에 안 됐기 때문에 당시의 유인 전투기로 접근해서 날개를 툭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떨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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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V2는 날개 없이 추력만으로 수직 발사되고, 마하 5에 달하는 속도로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는 로켓이었다. 얘는 당시 연합군의 기술로도 요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날아오면 그냥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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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과 V2 모두 1944년부터 45년 초까지 몇천 발씩 발사됐다. 하지만 그 당시 기술로는 비행체를 목표물을 향해 정밀 정확하게 무인 조종하고 유도하는 기술이 심하게 메롱이었기 때문에 적에게(=연합군) 유의미한 타격은 별로 못 줬다고 여겨진다.

오죽했으면 그때는 정말 위험천만한 급강하 폭격기까지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귀한 조종사를 써서 적함을 향해 그렇게까지 무모하고 위험한 기동을 해야만 폭탄을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유인 초음속기 같은 게 없고 전투기조차 프로펠러 왕복 엔진이던 시절에, V1은 나름 초보적인 수준의 제트 엔진(펄스 제트)을 내장하고 있었다. 쌔애액~ 피융 하고 날아갔지, 붕붕붕 털털거리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나치 독일은 패망했지만, V1/V2의 연구 개발을 담당했던 폰 브라운은 미국으로 스카웃 돼 갔다. V2의 구조는 훗날 인류를 달로 보낸 새턴 V 로켓에까지 계승됐다. (이때 V는 그냥 5의 로마 숫자 표기.. 맥OS X처럼.)

전후인 1946년 10월 24일, 브라운 박사 연구팀은 미국에서 V2 로켓을 다시 생산 후, 폭탄이 아니라 카메라를 장착해서 쏴 올렸다.
로켓은 성층권과 중간권을 벗어난 열권이며, 여객기 순항 고도의 10배에 달하는 105km 부근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이 로켓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서 지구의 둥근 윤곽을 찍은 흑백 사진을 남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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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이야 연료가 고갈된 뒤엔 다시 땅으로 자유 낙하했기 때문에 기체고 카메라고 뭐고 다 박살 났다. 허나, 철제 케이스에 담긴 필름은 다행히 손상 없이 무사히 지상에서 회수되어서 현상됐다. 그 덕분에 사진이 찍힌 게 전해질 수 있었다~! 한 장만 찍은 것도 당연히 아니고, 수 초 간격으로 수십, 수백 장을 찍었다.

이렇게 부분적인 모습 말고, 동그란 지구 전체가 한 화면에 담긴 최초의 사진은.. 지구의 대기권뿐만 아니라 중력까지 벗어난 먼 우주로 나간 뒤에야 찍을 수 있었다. 1968년 12월 말, 아폴로 8호에서 찍은 게 최초이다.
이렇듯, 우주 발사체와 군사 무기 미사일은 정말 발효와 부패의 차이만큼이나 본질이 완전히 동일하고 종이 끗발 하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치 독일은 2차 대전 당시에 미사일 비스무리한 거 만들었지, 잠수함 만들었지, 야전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탱크도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열차포도 만들었다.
독일의 과학 기술은 정말 대단하다. 단지, 그게 미국 같은 풍부한 자원과 체계적인 품질 관리 및 제품 양산 시스템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그 동안 일제는 해전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을 만들었다(야마토). 일제는 독일 같은 미사일까지는 미처 못 만들고, 소박하게 폭탄 풍선을 띄워서 미국 서부의 상공까지 날려 보내고 터뜨리려 한 적은 있다.;;;

그때 일본이 대형 전함과 항공모함, 함재기를 만든 것은 임팩트가 굉장히 크지만, 잠수함을 만들고 이걸로 미국 군함을 격침시키기도 했다는 것은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진다. 같은 시기에 잠수함은 아무래도 일본이 아니라 독일의 유보트가 본좌였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담: 머피의 법칙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필 내가 관람을 하는 경기는 꼭 지더라, 세차를 하고 나면 반드시 비가 오더라"처럼.. 세상 만사가 꼭 재수없는(?) 쪽으로만 골라서 일어난다는 징크스를 표현한 경험 법칙이 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따서 이 법칙을 최초로 제안한 미국의 에드워드 머피(1918-1990)라는 사람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니었다. 군 소속의 항공우주 공학자였다~!

그는 1949년, 비행기가 왕복 엔진에서 제트 엔진으로 넘어가던 그 시절에 최첨단 기술의 산물이던 초음속기를 연구 개발하는 팀에 소속돼 있었다. 레일 위에서 로켓 엔진이 달린 수레 열차를 굴리면서 인체가 강한 중력가속도를 얼마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측정했는데, 결과값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원인을 조사해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별 통제 없이 넘겼던 조건들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수준으로 몽땅 다 엉망진창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머피의 법칙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방심하면 일이 꼬이고 사고가 반드시 난다" 6-sigma라든가 하인리히 1:29:300 법칙처럼 공동 작업을 하는 현장에서 품질 내지 산업 안전 쪽으로 적용 가능한 건전한(?) 법칙이다.
그저 자조적인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더라 /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같은 염세 허무주의 메시지를 의도한 게 아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머피 아재는 자기 법칙이 자기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의미로 주변에서 너무 오남용되는 걸 보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본인은 DJ DOC 노래를 통해서 저런 법칙이란 게 있다는 걸 처음으로 접했다.;;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0/10/13 08:35 2020/10/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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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 -- 포도주 또는 포도즙

웰치스 포도주스는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우리가 쉽게 접하는 음료수이다. 진짜 과즙 에디션과 환타 비슷한 청량음료 에디션(스파클링)이 모두 존재하는데,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를 더 자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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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표는 '토머스 브램웰 웰치'라는 감리교 목사 겸 치과의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주의 만찬 때 사용할 '알코올이 안 들어간 포도즙'을 어떻게 잘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포도즙에 대한 고유한 저온살균법(pasteurization)을 개발했다.

어 그런데 영어 단어가..? 세균학의 아버지인 그 루이 파스퇴르에서 유래되었다. 웰치는 파스퇴르와 거의 동시대인 19세기 사람이었다.
우유나 주스에 대한 저온 살균법은 굉장히 획기적인 기술이었기 때문에 아예 "포도주스를 파스퇴르화한다"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과즙을 살균한답시고 무슨 고기 국물마냥 펄펄 끓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다간 맛 변하고, 비타민 다 파괴되고..

성경에서 wine은 포도주와 포도즙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포도즙을 짜 놓으면 얼마 못 가 발효되어 포도주가 되곤 했기 때문에 언어 차원에서 둘의 구분이 불분명했을 정도였다. 확 깨는 방식으로 비유하자면 지옥과 불못의 관계만큼이나 그게 그 말 같다는 것이다.

더구나 성경에서 wine이 최초로 등장하는 곳은 9장, 노아가 술 취해서 벌거벗고 드러눕는 장면이다. 킹 제임스 진영에서 주장하는 "최초 언급의 법칙"을 감안한다면, 성경의 wine은 문맥상 분명한 근거가 있지 않은 한 '포도주'를 먼저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령, 욥 1:18의 경우 욥의 자녀들이 포도'주'를 마시고 놀던 중에 재앙을 당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 11:19 같은 내로남불 음해 문맥에서까지 '포도주'를 기피하고 '포도즙'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식탐에 술주정뱅이..)

옛날에는 냉장이고 살균이고 아무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깨끗한 물은 세균에 오염되기 쉽고 오래 보존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맥주나 포도주를 음료수처럼 일상적으로 마시게 됐던 곳도 있었다. 물을 김치나 된장처럼 처리한 셈이다.
물을 끓여서 마시면 된다고... 그것도 오늘날이니까 쉽게 가능하지 주전자고 가스레인지고 커피포트고 정수기고 아무것도 없고, 나무를 베어 와서 땔감으로 쓰던 시절엔 어땠을까?

그러니 아무리 술이 나쁜 물질이라고 해도, 그 시절을 몽땅 지금의 잣대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면모가 있다.
오죽했으면 교회에서 알코올 안 들어간 포도즙 잔을 마시려고 저렇게 웰치라는 사람이 안전한 주스 제조법을 개발한 게 무려 180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요즘 시대에 그 시절 핑계를 대면서 술을 합리화하는 것도 궤변이고 잘못됐다.
비타민 결핍증이라는 것도 몰라서 선원들이 픽픽 죽어가던 시절,
"수인성 전염병(장티푸스, 콜레라 등..)이랑 알코올 중독 둘 중에 뭐 고를래?" 하던 암울한 시절하고 지금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 글에서 굳이 "예수님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거하게 술로 제조해 주셨잖아! / 성경에도 위장병을 위해 와인 처방을 좀 하라는 말 있잖아?" 이런 말에 대해 코멘트를 하지는 않겠다.
솔직히 혼인 잔치는 세상적으로 즐거운 자리이니 알코올을 떠올릴 여지가 0.1이나 1만치라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리는 잔을 나누면서 포도주..? 성경이 썩음, 누룩 같은 개념에 대해서 어떤 심상을 갖고 무어라고 일관되게 말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저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다.

크리스천으로서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야 합니다 / 우리 다같이 누룩이 됩시다"..;;; 는 내가 전에도 비유를 든 적이 있지만 "버그 소프트웨어", "BSOD 시스템즈"라는 IT 기업과 비슷한 발상이다. 예수님이 죽음이야 경험하셨지만 설마 시체가 썩었을까..?? (시 16:10, 행 13:34-37 등)

한국 교회는 율법주의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주일성수 금주 금연 같은 외형적인 경건을 강조하는 편인데 왜 포도주 포도즙 문제에서는 대체로 헛점을 보이는 걸까?
술판을 즐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아까 저 누룩이나 썩음처럼 성경 교리에 대한 기본 개념이 덜 정립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이건 세례· 침례 문제, 성탄절· 부활절 문제하고도 일면 비슷한 구석이 있다.

킹제임스 흠정역이라는 성경은 지금까지 출간된 한국어 성경 중에서 wine을 '주'가 아닌 '즙' 쪽으로 가장 편향되게 번역한 역본이다(나쁘다는 뜻은 아님). 심지어 말보회의 한킹도 그렇지는 않다.
아무튼, 성경의 wine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웰치 아재의 행적에 대해 한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창조 진화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종간 합성이란 걸 해낸 위대한 한국인 과학자인 우장춘 박사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듯이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22 08:35 2020/09/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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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철거

건물은 잘 짓는 것뿐만 아니라 잘 부숴서 없애는 것도(철거~!) 고도의 기술과 비용이 필요한 일이다.
지하철 건설에서 제일 저렴하고 무난한 방법이 땅 파헤치고 위에다 철판으로 덮어서 공사하는 개착식이듯, 철거 방식 중에 제일 저렴하고 무난한 방법은 중장비를 동원해 건물을 직접 들쑤시거나 때려 부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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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일이 때려부수기에는 너무 큰 건물이라면 발파 해체를 생각하게 된다. 화약/폭약은 강력한 대신 매우 위험하므로 잘 통제된 환경에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터널 건설 내지 건물 철거 현장에서 폭약을 터뜨리는 걸 들어 보면.. 영화에서 수류탄 터뜨리거나 게임에서 로켓 런처 쏘는 것 같은 경쾌한(?) 쾅~ 쿵~ 소리가 나는 게 아니다. 그냥 총 쏘는 것 같은 따다닥~ 빡~ 소리만 연달아 들린다. 사실은 총도 화약을 터뜨리는 것이긴 마찬가지이지만..

이들 폭약은 전쟁에서 쓰이는 폭탄· 포탄 같은 물건이 아니다. 파편을 날려서 건물을 송두리째 산산조각 내는 게 목적이 아니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 몇 곳만 뎅겅 날려서, 건물이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연쇄적으로 폭삭 주저앉게 하는 것이 발파 해체의 핵심이다.
건물의 급소를 찾아서 최소한의 폭약만 설치하고 터뜨림으로써 건물 전체를 무너뜨리는 건 뭔가 예술의 경지에 가까운 작업이다. 이를 위해 폭약 기술자들이 적지 않은 고민을 한다.

건물뿐만 아니라 배도 마찬가지다. 하부에 어뢰를 제대로 맞으면 거대한 선박도 피격 부위에 구멍이 뚫리고 용골이 휘어지는데, 대미지가 이게 전부가 아니다. 폭압 때문에 위로 붕~ 떴다가 다시 수면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선체가 더욱 찌그러지고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이는 건물이 철거되는 원리와 같다. 어뢰의 위력은 수백~수만 톤에 달하는 배를 수면에서 잠시 뜨게 만들 정도로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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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1994년 김 영삼 시절에 남산 외인 아파트의 발파 해체가 유명한 철거 사례로 사람들 기억에 남아 있다.
다만, 조선총독부 청사는 근처 경복궁이 받을 여파를 우려해서 폭파 대신 그냥 전통적인 방법으로 부수고 철거했다.
그리고 삼풍 백화점은 발파 해체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건물이 워낙 상상을 초월하게 부실하게 지어진 바람에 꼭대기 층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주저앉아서 마치 발파 해체처럼 붕괴됐다. -_-;;;

9 11 테러 때 여객기가 날아와서 충돌했던 세계 무역 센터(WTC) 건물 두 채는 각각 한두 시간 남짓 버티다가 그대로 폭삭 주저앉고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스타에서 테란 건물은 2/3 이상 파괴된 빨피 상태가 되면 스스로 체력이 떨어지다가 펑~ 부서지는데, 쟤도 그런 상태였다고 보면 된다. 단지, 현실에서는 그런 높은 건물의 대미지를 수리할 만능 SCV가 없었던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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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 여러 음모론이 나돈다. 하지만 항공유가 잔뜩 들어있는 중형 여객기가 불타면서 장시간의 엄청난 고열 때문에 건물을 지탱하던 철근이 물러지고 약해졌다는 것으로 일단 공학적인 설명이 된다. 저게 폭약 발파 해체와 동급의 역할을 한 셈이다.

그리고 어느 건물이든 한번 무게 균형이 깨져서 주저앉기 시작하면.. 그 뒤부터는 차곡차곡 도미노이며, 다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이다.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의 붕괴는 최소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에 맞먹을 정도로 괴이하고 설명이 안 되는 미스터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건물이 붕괴되면 먼지가 어쩜 저렇게 많이 나는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심에서는 그런 부작용 없이 아주 조용하고 가늘고 길게 티 안 나게 건물을 철거하는 방법도 쓰이고 있다. Tecorep이라고 불리는 공법이 있다.

대표적인 예는 일본의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이다.
우리나라 영친왕(일제 시대의 구 조선 황실 사람..)과 관련된 역사적 사연이 많은 곳이었는데, 신관 건물은 노후화로 인해 2011년에 영업을 중단하고 2012년 가을부터 이듬해 상반기까지 무려 7개월에 걸쳐 천천히 건물 높이가 조금씩 낮아지는 식으로 해체되고 철거되었다. 이건 당시에 언론으로부터 주목도 많이 받았는데, 발파 해체와는 반대편 극단에 선 공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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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0/09/20 08:35 2020/09/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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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 역

1959년작 명작 영화 '벤허'에서 벤허 역을 맡은 주연 배우는 찰턴 헤스턴(2008년 작고)이라고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이 '십계'에서 모세 역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벤허에서 뒷모습만 나오는 예수님 모습은 누가 연기했을까..??

벤허에서 특히 압권인 건 죄수 노예들을 호송하던 로마 군인이 "어이, 거기 민간인! 누가 저 죄수(벤허)에게 물 주랬어?" 호통과 함께 예수님을 째려봤는데.. 거의 20초 가까이 벙찌고 있다가 예수님과의 기싸움에 압도 당하고, 급 시무룩해져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 휴식 끝. 출발한다. 가자!" 이러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정말 인상적인 연출이었다. 요한복음 8장의 "죄 없는 자부터 먼저 돌을 던져라 → 급 시무룩"에서 모티브를 따기라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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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의 "그 동정의 눈빛과 음성을 나는 잊을 수 없겠네.. 내가 영원히 사모할 주님 부드러운 그 모습을" 가사가 자동 재생되는 것 같다.
예수쟁이라면 성경 구절뿐만 아니라 찬송가도 많이 알아 두면 살면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도움이 된다.

예수님을 연기한 배우는 당시 영화의 credit에는 등재되지 않고 비밀로 부쳐졌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계기를 통해 클로드 히터(1927~)라는 배우라는 것이 알려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을 안 해 봤는데 신기한 노릇이고.. 또 에어컨과 히터 할 때 그 히터 Heater가 사람의 성씨인 게 특이하다.
하긴, 에어컨의 발명자는 성씨가 캐리어였지.. 프로토스 캐리어와 같은 단어다..;;

2. 하나님의 음성

한편, 1998년에 개봉했던 '이집트의 왕자'는 애니메이션인 관계로 출연진이 배우가 아니라 성우인데.. 이때도 하나님 목소리 역은 credit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은.. 모세 역 성우가 음성변조로 하나님까지 1인 2역을 했었다.

"너는 이제 파라오에게 돌아가서 도탄에 빠진 네 동족을 구해낼지어다." / "헉, 저는 말이 둔해서 그럴 수 없사옵니다" 대사를 동일 성우가 다 말했다는 뜻이다.

이런 예가 그 업계에서는 드물지 않다.
월트 디즈니 포카혼타스에서도 랫클리프 총독과 위긴스 비서는 서로 음색이 완전히 다르며, 상대방 말을 끊으면서 대화하는 장면까지 있는데도 성우가 동일 인물이다.
스타크에서도 마린, 고스트, 배틀크루저 등 상상하기 어려운 유닛들 목소리가 다 동일 인물(크리스 멧젠..)이다.

3. All Dogs Go To Heaven

본인은 수십 년 전 먼 옛날에 영어 회화 학원에서 All Dogs Go To Heaven (1989)이라는 만화영화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다.
너무 어린 시절의 너무 오래된 경험인 관계로, 지금은 거의 모든 장면과 스토리를 까먹어 버렸고 "oh Charlie, you can never come back~" (찰리 씨, 그랬다간 여기에 다시는 못 돌아와요~~ ㅠㅠㅠ)라고 천사 암캐(?)가 경고하는 말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얘는 사후 세계를 다뤘다는 점에서 "신과함께"와 살짝 비슷한 장르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제목부터가 심상이 전 3:21이나 계 22:15와는 완전 상극이다. 반성경 반기독교(anti-)까지는 아니어도 "비"(non-)성경적인 설정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뭐, 계 22:15의 경우, 진짜 동물 개를 가리키는 건 아니지만...)

왜냐하면 성경에 따르면 오직 인간만이 하늘(천당) 아니면 지옥이라는 사후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안 믿고도 특례로 구원받고 천당 갈 수 있는 존재는..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이 없고 예수 믿거나 거부할 능력 자체가 없는 영· 유아, 정신지체 장애아뿐이다. all dogs go to heaven이 아니라 all babies go to heaven인 것이다.

동물은? 평생 우리에 갇혀 살다가 도축되어 멍멍탕으로 잡아먹힌 개든, 인간을 대신해서 지뢰를 밟고 산화한 군견이든.. 죽으면 그대로 완전히 소멸되고 사라진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간다거나 하는 건 없다.
사후 세계에도 다른 동식물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동물은 현 세상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갖고 인간과 교감했던 그 동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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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나름 성경으로 치면 개에 대한 "book of life"(계 20:12)를 묘사해 놓은 모습이다. 물론 저 장면은 성경의 실제 백보좌 심판하고는 백만 광년 억만 광년 떨어진 묘사이다.;;;

허나, 게임을 현실 고증에만 너무 충실하게 만들면 재미가 나질 않고 이말년 씨리즈의 두덕리 온라인 꼴 나며.. 성경 고증에만 너무 충실하면 우주 SF물은 전혀 만들어질 수 없고 동물의 의인화도 전혀 할 수 없으니.. 영화는 그런 사항을 배제하고 만들어진다.
(사실 성경까지 갈 것도 없이 항공 우주역학과 기초 기계공학 고증에만 충실해도 이족보행 합체 로보트라든가 우주 SF물은 성립이 전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작품 얘기로 돌아오면.. 주인공 찰리는 멀쩡히 천당· 낙원에 들어가서 편히 쉴 수 있는데도 자기는 억울하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이대로 죽을 수 없댄다. 복수를 해야 된다며 자기 수명 시계의 태엽을 무단으로 거꾸로 돌려 놓고는 다시 현 세상으로 도망친다. 헐~~ ㅠㅠ 쿵 퓨리에서는 해킹으로 시간을 워프 시키고 죽은 사람도 살려 내고 총상을 치료하더라만...

저기서도 온도 단위 드립이 나오는 게 흥미롭다. "이곳 천당은 온도가 73도로 유지되는 아주 안락 쾌적한 곳이랍니다. 화씨로요."
하긴, 섭씨로 73도인 곳이 천당일 수는 없을 거다. 다만, 그 정도 온도만으로 아예 반대편 지옥이라고 불리기는 좀 부족하고, 거긴 그냥 사우나 정도일 것이다.

결말부에서는 찰리의 수명 시계가 완전히 멈춰 버리고.. 찰리 역시 "난 깽판을 너무 많이 쳤으니 이제 지옥으로 가는 거죠?"라고 자포자기 하지만.. 저 천사 암캐가 "아니요, 당신은 목숨을 바쳐 의로운 선행을 했기 때문에 여전히 돌아올 수 있어요" 그러면서 해피엔딩이 나오긴 한다.

신과함께도 그렇고, 성경 교리 없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매체들은 그냥 평범한 권선징악 코드로 귀착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 매체에서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눅 23:42-43) 얘기 같은 게 등장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15 08:34 2020/09/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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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쪽의 여러 생각들

1. '필요만큼 분배'의 허구성

예전에 한번 얘기했던 것이지 싶은데..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분배한다" 이건 보면 볼수록 절대 실현 불가능하고 잘못됐고 섬뜩한 거짓 선동 구호라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의 완벽한 예시 중 하나이다.

저런 문맥에서 '필요'라는 단어는 "하나님은 님에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님에게 필요한 걸 응답해 주신다" (빌 4:19)이럴 때에나 쓰인다. 마치 '복수/보복'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신의 전담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법과 공권력에 의한 형벌 집행은 제외)
인간이 무슨 하나님인가? 인간이 인간의 필요를 하나님만치 정확하게 알고 하나님만치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나??

하나님이 지금까지 너에게 필요한 것만치 먹을 것과 입을 것 공급해 주신 것(딤전 6:8..;; )에도 지금까지 만족해 본 적이 전혀에 가깝게 없었을 인간들이 어디 필요에 따른 아름다운 분배 운운하고 있는가?

인간이 자기 소유에 대한 책임감이 없이 남의 소유를 지 꼴리는 필요에 따라 분배했다간 무슨 꼴 나는지는.. 대학교 조별과제 해 보거나 각종 공공물품을 자율 비치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목욕탕 여탕의 수건과 비누, 비행기 기내의 담요, 양심 자전거..) 필패가 입증된 실험을 굳이 또 해 볼 필요가 없다.
마치 인류 최고의 부자 겸 천재였던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다"라고 결론을 내린 그 실험을 또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 신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은가?

저건 "사람이 먼저"만큼이나 불순한 무리들의 유명한 기출 문제이다. 그러니 우리는 두고두고 잊지 말고 곱씹으면서 다음에는 쟤들이 또 무슨 문제를 낼지를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2. 감언이설

  •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세금 도둑이 많은 거다:
    그런데 보통은 그런 말을 하는 놈이야말로 진짜 세금 도둑, 아니 좀도둑을 넘어 세금 대도에 나라 등골 브레이커이다.
  • 성적보다 인성이 더 중요하다:
    부분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구석도 있긴 하지만, 이걸 무슨 자랑인양 대놓고 떠벌리는 놈들은 대체로 성적과 인성 둘 다 엉망이고, 특히 인성은 더 쓰레기인 경우가 허다하다.

수천 년 유구한 짬밥을 자랑하는 인간의 죄성이란 걸.. 같은 죄인인 일개 인간이 그렇게 호락호락 순식간에 쉽게 척결 가능할 거라고는 절대 기대하지 마시길. 기대했다간 반드시 실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만 더 어려워진 게 아니라, 방망이 깎던 노인 타입의 외곬수 장인도 앞으로는 더욱 자취를 감추고 찾아볼 수 없어질 것이다.

3. 파벌? 중립?

"나는 정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오로지 예수파다" 이러는 사람치고 진짜 중도인 사람을 나는 평생 거의, 전혀 본 적 없다.
저건 "능력만치 벌어서 필요한 만치 분배한다"처럼 그냥 아무한테나 적당히 듣기 좋으면서 현실성 없고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궤변으로 오· 남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덕길에서 자기 혼자만 N으로 해 놓고 브레이크 하나 안 밟고 있으면서 "난 어디로도 치우치거나 끌려가지 않는 중립" 이러는 것과 같다.
고전 1:12 같은 일갈은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4. 그들의 진짜 관심사

"사회/공산주의자들은 사실 가난한 사람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냥 부자와 잘난 사람들을 증오할 뿐이다."

우와 정말 최고의 팩트폭격 명언인 것 같다.
환경 단체는 사실 환경에 관심이 있는 게 전혀 아니고..
여성 단체는 사실 진짜 여성 인권에 관심 있는 게 절~대 아닌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똑같이 환경을 파괴하거나 똑같이 여성을 유린해도 그 주체가 누구 편이냐에 따라서 반응이 극과 극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국/북한 vs 일본/미국? 여당 야당?

단적으로 말해 그 어떤 골수 페미나 여성 인권 단체도, 위안부 할머니 타령 늘어놓는 그 어떤 박애주의자도, 민주당 정치인이 저지른 성추행이나 중국 국경에서 처참하게 착취당하는 북한 불쌍한 여성들에 대해 목소리를 낸 적이 있던가..?? 전혀 절대 없다.

맨날 분배니 평등이니 외치는 공산주의자들은 실제로는 부의 독식을 추구하는 계급주의자일 뿐이다.
그냥 평범하게(?) 혼자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기만 한 자본가 기업가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나쁜놈이다.
내가 대외 이미지 깎이는 것까지 감수하고서 가장 좋은 빨갱이는 죽은 빨갱이라는 극언까지 괜히 공개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5. 남한과 북한

북한은 자유와 개방과 사유재산과 올바른 통치 체제가 훨씬 더 먼저 절실히 필요하지, 그에 비하면 통일은 0이 몇 개쯤 더 붙을 정도로 덜 중요한 후순위의 문제이다.

마치 옛날에 남한이 북괴의 침략을 막아내고 가난을 떨쳐내는 게 억만 배 이상 더 중요했지, 그에 비하면 대통령 직선제나 민간인 출신 대통령 같은 건 훨~~~~씬 덜 중요한 후순위였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저것만 이뤄지면 민주화 따위는 꼭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되면 좋지만 굳이 안 돼도 상관없는 옵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건국 초창기의 할배 시절이건, 군사정권 시절이건 북한에게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 사유재산, 신앙의 자유 같은 기본적인 건 애초에 진작부터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하게 절대적으로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관과 이념 논쟁에서 쓸데없는 소리에 '어 그런가 보다' 하고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통일이라는 것은 당연히 북한을 저렇게 개선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없다면 통일 따위 전혀 할 필요 없으며, 꼭 남북 통일을 해야만 북한을 저렇게 개선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6. 전제조건

좌빨들의 선동은 대체로

  • 북한은 아주 평범하고 정상적인 체계이며, 지도자가 백성들을 먹여 살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데도 불가항적으로 불가피하게 못살고 있다
  • 자본가가 근로자들을 강제 감금하고, 때려치우고 나가려는 사람까지 해코지 하면서 부려먹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 (진짜 그러고 있는 곳은 따로 있는데??)

이 두 전제조건이 성립해야 말이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저건 전혀 성립하지 않으므로 그 선동들도 그냥 bullshit이다.

종북 무리들이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그냥 거기 가서 살아라"라는 말을 절대 듣지 않는 것처럼,
악성노조들은 "악덕업주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그 직장이 그렇게 싫으면 당장 사표 쓰고 때려치우고 나와라"라는 말도 절대로 듣지 않는다. 삼성은 싫지만 삼성이 주는 월급은 좋기 때문이다.

7. 정상적인 외국부터 돼야..

5번의 연장선인 얘기인데.. 남한이 북한과 통일을 하고 싶거들랑 북한을 정상적인 외국으로 만들 생각부터 해야 한다. 정상적인 외국조차 아닌 나라/집단하고 제대로 통일해서 정상적인 한 나라 한 체제를 만든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이 생각을 어떤 논객은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이나 중국에 갈 때와 동일하게 북한도 외국으로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해야 한다. 인터넷도 되고 서신 왕래와 전화 통화도 돼야 한다. 다시 말해 북한은 켕기는 게 없이 개방돼야 한다.
"민간에서는 북한하고 이미 할 거 다 하고 있고 불편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굳이 수뇌부를 합쳐서 정치적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나?" 정도가 되면 그때야말로 그놈의 우리 민족끼리 명분으로 슬슬 통일을 논의해도 괜찮다.

개방은 하나도 된 것 없이 북괴 체제는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면서 그냥 북에다 퍼주자, 무조건 오냐오냐..
이건 순도 99.99%의 간첩 역적 매국노 빨갱이이니 저러는 놈들은 몽땅 다 쳐죽여야 된다.

8. 같은 잣대

지금 사회 공산주의 친종북 정치인 패거리들이..

(1) 북한에게 무한 관용과 아량을 베풀듯이 어디 한번 "같은 민족"인 탈북자라든가 이명밝근혜 및 그 지지자들도 동일하게 대해 봤으면 좋겠다. 안 그럴 거면 민족드립 좀 집어치우든가..

(2) 맨날 재벌들 삥뜯어서 분배하자고 떠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지들도 자기 사재 한번 1%라도 기증· 기부 하는 꼴 좀 봤으면 좋겠다.
니들도 왕창 부자인 거 다 알고 있다. 남의 돈을 갖고는 무슨 생색을 못 내겠냐?
자기 돈으로 분배하는 건 선거법 위반이고, 세금으로 분배하는 건 합법인 식인 거...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9. 대북 전단

대북 전단이 아직도 굉장히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북괴 수뇌부에서 아주 무서워하고 골치아파 하고 있다는 걸 남쪽 빨갱이 정치인들의 저 히스테리한 반응을 보니 간접적으로나마 확신할 수 있다.
연체동물에다가 소금 뿌렸을 때 같은 본능적인 거부 반응 말이다.

그 전에는 솔직히 나조차도 “아이고 저래 가지고 북한으로 제대로 날아가긴 하냐? 보는 사람이 있긴 하냐?”
회의적이었는데.. 정신이 번쩍 든다. 진짜로 가고, 보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구나.
거리설교 때 나눠주는 전도지 이상으로 효과가 있다.

물론 정치인 말고 접경지역 주민들은.. 조금만 더 애국심이 있었다면 “우리 걱정은 말고 마음껏 뿌려라. 어차피 저놈들도 재래식 병력은 와해된 지경이고 우리 위협 못 한다. 지금 좀 불편 불안을 감내하더라도 저 북괴 정권을 빨리 끝장내야지.”

그랬겠지만.. 호의를 권리로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고, 현실에서는 안 중근 아들 같은 변절자를 마냥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건 넘어가자.

일제 시대 때도 권총이나 폭탄 의거 한 건 터지면 그거 보복으로 인근 주민들이 엄청난 불편을 겪었고.. 심지어 독립투사를 숨기고 있다는 누명을 쓰고 마을이 통째로 순삭 몰살당하기도 했다. 그 시절엔 독립투사들도 인근 주민에게 민폐 많이 끼쳤다, 그지?

10. 5 18

생일은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이고
5 18은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분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 일관된 판단

본인은 다음 pair들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고 정확하게 동치라고 생각한다.

(1) 교리 일치 없는 종교 통합 에큐메니컬 운동
vs 이념 일치 없는 불순한 남북 화해(?) 협력 짓거리, 퍼주기

(2) 킹 제임스 성경이 소위 original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한 이유 (전자는 실물이 존재, 후자는 현재 실물 없음)
vs 친중종북이 친일보다 더 나쁜 이유 (전자는 실물 존재, 후자는 현재 실물이 사실상 없음)

(3) 사탄 마귀 같은 건 없다. 지옥은 없다.
vs 종북 간첩 같은 건 없다.

(4)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
vs 아가리와 주둥이로만 자기도 김 xx 싫어하고 북한 체제 싫어한다고 말하지 말라. 정말 싫다면 저놈들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반일반미 친중종북 거짓 선동에 끌려가지도 마라.


아이템이 또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여기까지.
예수밖에 구원의 길이 없다고 말하는 종교를 믿는데.. 그 교리를 텍스트로 명시하는 성경도 단 한 종류만 맞고 나머지는 틀렸다고 믿는 게 이치에 맞다. 그리고...

  • 예수님께 그냥 무릎을 꿇느냐 아니면 "경배"를 하느냐, (마 8:2 등 복음서에서 여러 곳)
  • 예수님이 하나님의 종이냐 "아이"이냐, (행 4:27)
  • 사탄의 왕좌냐, 아니면 그냥 "자리"이냐 (계 2:13)

이것처럼,

  • "자유 민주주의"냐 그냥 민주주의냐(혹시 인민 민주주의??),
  • "건국"이냐 정부 수립이냐,
  • "북한 공산 괴뢰"냐 조선 민주주의 공화국이냐

본인은 성경의 변개를 관찰했던 양심과 판단력을 완전히 일관되게 동일하게 적용했을 때, 오늘날 역사 교과서의 변개도 동급의 매우 불순하고 악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저 문맥에서 기어이 '자유'를 뺐다고라..
골 1:14에서 '그분의 피를 통하여'를 삭제한 것과 같은 급의 변개가 아닌가?
6· 25 사변 때 수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뭘 지키려고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는데?

난 늘 강조하지만, 이 바닥은 동일한 방법론을 재귀적으로 일관되게 적용하여 판단한다. 참고로 성경과 역사를 합친 '교회사'도 진영과 관점에 따라 왜곡이 아주 심한 분야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12 08:35 2020/09/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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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 관순 열사의 모습

유 관순은 겨우 100여 년 남짓 전의 근현대 사람이고 초등학교 위인전에서도 언급되는 톱 네임드급 위인인 것치고는.. 검증되지 않은 myth와 알 수 없는 mystery가 의외로 많은 인물이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까지도 추가적인 사료 발굴을 통해 정정된 사항들이 적지 않다. 오랫동안 1904년생으로 알려졌다가 1902년생으로 정정되고, 징역 7년형이던 게 5년으로 바뀌고, 형무소에서의 정확한 사인도 2013년에야 기록을 통해 밝혀졌지 않던가?

그 뿐만이 아니다. 이분은 멀쩡히 서울에서 순국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해가 남아 있지 않고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도 극히 드물다.
의열단 내지 한인애국단 소속의 독립투사들이 거사를 벌이기 전에 근사하게 혹은 비장하게 포즈를 취한 사진을 남기곤 했지만(안 중근, 윤 봉길, 이 봉창..) 유 관순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녀는 학생이었고, 만세 운동 자체를 "난 오늘만 산다" 급으로 무조건 죽을 각오를 하고 벌인 건 아니었다. 애초에 "난 오늘만 산다" 같은 항일 투쟁 패러다임 자체가 3· 1 운동이 실패하고 이런 만세 시위만으로는 독립을 쟁취할 수 없겠다 싶으니까 등장한 것이다. 또한 그때는 경제력 없는 어린 학생이 사진을 쉽게 남길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 1 운동 전날 밤에 유 관순이 자기가 직접 그린 태극기 하나 들고 동지나 친구들하고 포즈를 취한 인증샷 하나 없는 것은 일면 아쉬운(?) 점이다.
오죽했으면, 얼마나 사진이 없었으면 유 관순의 공신력 있는 독사진--단체로 같이 찍힌 것 말고--이랍시고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일제가 찍은 죄수 머그샷밖에 없다! 이게 유일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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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맹목적인 국뽕 반일 종족주의를 배격하고 조선 시대를 극혐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모 진영에서는 이 사진에 대해서 이렇게 의혹을 제기했다.
그 시절에는 미혼 소녀는 댕기머리이고 기혼 여성은 비녀+쪽머리가 보편적이었는데, 미혼인 유 관순이 왜 유부녀 헤어스타일이냐는 것이다.

유 관순은 안 그래도 저렇게 온통 의혹투성이인 인물인데 저 사진은 애초에 이화학당 학생 유 관순이 아니라 아예 다른 유부녀 동명이인 아줌마가 아니냐는 극단적인 의문까지 제기한다..;; 헐..
황당해 보이지만 완전 터무니없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다음은 유 관순의 형무소 동기이던 임 명애 열사의 머그샷이다. 이분은 1886년생으로 유 관순보다 띠동갑 이상으로 나이가 더 많았고 진짜 유부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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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명애와 비슷한 연배의 유부녀인 어 윤희 열사도 머그샷이 이와 비슷한 풍이다.
그 반면, 1919년 말과 이듬해에 만세 시위 시즌 2를 일으켰다가 경찰서 정모를 했던 비슷한 연배의 여학생들 사진을 보자. 박 양순, 박 신삼은 명백하게 댕기머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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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화라는 학생은 댕기를 머리 위로 감아올린 것을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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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10대 학생들은 얼굴이 명백하게 앳되어 보이는 반면, 오늘날 전해지는 유 관순의 얼굴은 꽤 노안이다. 내가 보기엔 인상으로나 헤어스타일로나 학생보다는 아줌마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_=;; 물론 우리는 그 이유가 고문과 구타를 너무 많이 당해서 얼굴이 부어 터졌기 때문이라고 배워 왔다.

그럼 학생과 아줌마의 중간에 속하는 이 사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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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순경 열사는 1902년생으로 유 관순과 동갑이다. 다만, 투옥되었던 당시에 학생은 아니었고, 학교를 졸업해서 세브란스 병원의 간호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딱 1920년 당시에 이분이 벌써 결혼까지 한 상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서 구체적인 개인사가 전해지지는 않으나, 이분의 장녀라는 사람이 1920년대 중후반생으로 추정된다. 그 시절의 결혼 생활이 아이 없이 신혼만 5~6년씩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순경의 헤어스타일은 유 관순과 비슷한 쪽머리이다. 이 정도라면 저 시절 머그샷 사진의 헤어스타일과 당사자의 결혼 여부에 딱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겨우 그 정도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 유 관순 사진 자체가 가짜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좀 무리일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윤 봉길의 체포 장면 사진을 갖고도 저건 진짜 윤 봉길 사진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가 재반박되고.. 그 정도 합리적인 의심과 의혹 제기 및 검증은 건전한 학문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유 관순은 10대 소녀라는 특이한 프로필로 인해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게 너무 많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최근에 추가로 발견되었다는 유 관순의 이화학당 입학 초기 사진을 첨부하며 이 주제의 이야기를 마치겠다. 이 얼굴이랑 불과 몇 년 뒤의 형무소 머그샷이 동일 인물이라 간주할 수 있겠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이거 무슨 광수 얼굴 찾기 게임 같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주 기철 목사의 일화

예전부터 여러 번 언급한 적 있는 사항들을 다시 정리하자면..
본인은 예수쟁이 신자로서 주 기철 목사를 매우 존경한다. “다섯 가지 나의 소원”이라는 그의 설교문은 오래 전부터 내 타자연습 프로그램의 연습글로도 들어가 있었을 정도이다. 다만,

(1) 저 사람이 대단한 거지, 그 당시에 가족을 동반한 집요한 협박에 못 이겨서 신사참배에 타협한 다른 사람들을 ‘도를 넘게’ 욕하거나 매도하지는 않는다.
그 시절에 총독부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 윤 봉길 의사를 비난하는 보도를 냈던 국내 언론사들을 친일매국(?) 어용언론이라고 욕하는 게 아무 쓰잘데기없는 어리석은 짓인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2) 전설처럼 따라다니는 ‘맨발로 못 위를 걸은 일화’는 도대체 언제 어느 형무소(의성? 평양?)에서 벌어진 일이고 출처가 누구의 증언이며, 신빙성이 있는 사건인지 내 노력으로는 분별과 검증을 더 못 하겠다.
일본으로부터 저 정도로 비슷한 레벨의 끔찍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어떤 분야의 지조를 지킨 건 신라 박 제상 이래로 처음이 아닌가 싶은데..?

(3) 한국의 기독교 수난사 순교사가 오로지 일제 말기밖에 없었던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가는 것을 매우 불편하고 불쾌하게 생각한다.
1950년 가을~겨울에 전국 각지에서 온갖 냉병기로 두들겨맞고 머리에 총알 박혀 순교한 더 많은 순교자들을 언급하는 건 무슨 정치 발언으로 매도돼 가니.. 정말 어이가 없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분별력을 지닌 상태가 아니다. 3· 1 운동 당시에 유 관순 말고 다른 여성 독립 운동가들도 재조명되어야 하듯, 이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3. 신념형 친일파 박 중양

세상에 유 관순이나 주 기철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구한말부터 일제 말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인 중에는 아무 사심 없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가깝게 지내기를 원했던 친일파도 있었고, 돈과 벼슬까지 받으면서 나라를 팔아먹은 나쁜놈, 마냥 생계형 부역이라고 실드 치기에는 도를 넘은 부역자 등 여러 종류의 친일파가 존재했다.

특히 세월이 흐르면서 1930년대쯤부터는 일본은 절대 망할 일이 없고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하는 건 아예 불가능하겠다는 인식이 짙어졌다. 그건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니 인정하고, 일본 내에서 2등 신민인 조선인의 인권과 권익을 향상시키는 운동을 하는 게 순리이겠다고 노선이 바뀌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박 중양(1872-1959)이라는 인물은.. 부귀영화와 개인 영달 기회주의형이 아니라 그냥 조선을 자기 신념상 너무 혐오해서 충성의 대상을 일본 정부로 바꾼 좀 이례적인 사람이었다. 김 옥균 같은 친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개화파들이 잔혹하기 그지없게 가족까지 몽땅 숙청되는 걸 보고는 이놈의 X같은 야만적인 나라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앞장서지는 않았고,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고 괴롭힌 것도 아니고.. 일제 시대 때 일본으로부터 월급 받는 관료로서는 아주 강직 청렴하게 처신했다고 한다. 다른 일본인들을 부하로 부릴 정도로 높은 등급의 관료가 됐으니 원... 윤 치호와 비슷한 위치 같은데.. 그 사람보다는 한 타이밍 더 일찍 신념이 저렇게 바뀐 셈이다.

해방 후에 반민특위에 회부됐을 때도 이 사람은 "일제가 그렇게 폭삭 망할지 몰랐어~! 그래도 처자식 먹여 살려야 했잖아!" 같은 구차한 변명 따위 없었다. "조선인들은 더 고매한 일본인의 통치를 받는 게 객관적으로 더 이익이다"라는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저 팩트가 마음에 안 들어서 굳이 날 죽여야겠다면 죽여라. 난 아무 미련 없다. 하지만 나 말고 일제 시대 유능한 인재들을 친일파로 몰아서 해코지하지 말고 오히려 잘 이용해 먹을 생각을 해라. 그리고 애국자의 탈을 쓴 다른 위선자들에게 속지 마라."라고 당당하게 덧붙였다..;;

그러니 이 양반은 돈과 권력을 좇는 여느 기회주의형 악랄 친일파는 아니라는 것에 조사관들의 견해가 일치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저 양반은 투옥과 처벌이 아니라 정신 감정이 필요하다"였다.

뭐, 조선 정부에서(고종과 민 씨 일가..) 개화파를 완전히 박살을 내는 현실을 똑같이 보고서 박 중양은 신념형 친일로 돌아섰다. 윤 치호도 자국민의 국민성에 절망한 나머지 변절해 버렸다. 하지만 구한말 때 직접 죽을 위기를 겪었던 이 승만은 그리하지 않았다. 우리는 솔직히 할배에 대해서는 그의 독선을 욕할 게 아니라 무슨 뚝심과 근자감으로 조선이 망한 후에도 외국에서 무국적자로 살면서 줄곧 독립 운동을 했는지.. 그걸 더 대단하게 여겨야 하지 싶다.

4. 이 승만 정권 때 처형 당한 최 능진, 조 봉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첫 헌정 체제이던 이 승만 1공화국은 군사정권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단과 6· 25 전쟁을 직접 겪었던 만큼 반공 성향이 매우 강했으며, 나라 분위기가 그쪽으로는 극도로 민감하고 경직돼 있었다. 통일이라는 건 당연히 북진 멸공 통일을 해야지, 감히 화해와 평화 통일 운운하는 것만으로도 빨갱이로 몰리고 잡혀갈 수 있었다.

난 개인적인 신념으로는 그게 이해가 되며 일면 옳다고도 생각한다. 김 일성 같은 사악한 저질 집단은 애초에 대화고 화해 따위가 가능한 상대가 아니다. 놈들의 개수작에 속지 말고, 힘으로 완전히 없애 버릴 수 없다면 단호하게 분리와 격리라도 하는 게 백 번 옳다. 통째로 적화통일이 될 뻔했던 것을 온갖 개지랄 발광 발악을 한 끝에 겨우 반반으로 퉁친 것이다.

다만, 모든 애국자나 독립운동가들이 국제 정세를 보는 안목이 할배와 같지 않았으며,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에 대한 정확한 분별력을 지니지는 못했다. 저것들은 지금 나라의 여건상 친일 부역자 출신 군경을 동원해서라도 몽땅 제거해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이 일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최 능진의 경우 경찰 고위 간부로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친일 부역자 청산을 부르짖었고, 이 때문에 이 승만뿐만 아니라 조 병옥과도 크게 대립하여 갈등을 빚었다. 최 능진은 과거의 일제 시절부터도 안 창호 라인이었고 독불장군인 이 승만을 싫어했다.

결국 이 사람은 이 승만 정권의 눈밖에 나고 종종 체포되고 투옥되다가.. 결국 6· 25 전쟁 중에 '혁명의용군 사건'에 연루되어 빨갱이 부역 혐의로 처형당했다.
훗날 비슷한 연배의 조 봉암(1898-1959)이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된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들은 통일도 대화와 평화 노선을 주장했다.

자, 지금 할배를 정치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승만의 국제연맹 위임 통치 청원을 보고도 나라를 팔아먹네 뭐네 매국노네 하면서 날뛴다. 그렇지 않은가?
1950년에 조 봉암이 제안했던 "UN 감시 하의 총선거를 통한 평화 통일"은 그들이 국제연맹 위임 청원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빨갱이로 몰리기 딱 좋은 혐오 발언이었다. 두 케이스 다 발언 당사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오해가 있었다.

솔직히 이 승만이 외교 노선을 아무리 펴봤자 국제 연맹 시절의 강대국들이 일본의 합법적인 식민지이던 조선의 독립에 관심이 없었다. 그와 완전 동급이다. 저런 민족주의자 애국자들도, 개인으로서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북괴가 공산 적화 흉계를 내려놓을 리는 만무했으며 남북 평화 통일 따위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우리 끼리 친일 청산도 다 하고 공산화도 되지 않은 깨끗한 나라..? 도대체 무슨 수로 가능하다는 건가? 이렇게 국민성 더럽고 국력은 쥐뿔도 없던 헬조선 반도 땅에서? 이 승만 없이 김 구나 여 운형만 대통령 됐으면? 광복군이 제대로 참전만 했으면? 그러면 김 일성도 이렇게 흑화하지 않고 개과천선했을까? 허 참.. 난 내 사고실험의 결과를 봐서는 전혀 상상이나 동의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인생을 산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는 7, 80년 전 같은 무지와 야만의 시대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반쯤 불가피, 반쯤 지나친 오바). 그리고 빨갱이 자체가 없어진다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서 고생하는 사람도 없어질 테니 이 나라의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09 08:33 2020/09/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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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부터 세계는 제국주의와 왕정이 몰락했으며, UN을 비롯한 온갖 국제기구들이 생기고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지금과 얼추 비슷해졌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대략 반세기쯤 전이던 1800년대 말~1900년대 초 사이는 상황이 어땠을까?

우리나라야 아직 한양 시내 길바닥에 똥덩어리가 굴러다녔고 어설픈 친일 성향 개화파들은 고종과 민씨 일가에게 작살이 났던 때이다.
그러자 일본은 각성하여 민비를 살해하고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경쟁자들을 쳐발랐으며, 조선을 군대 해산, 외교권 박탈 등의 순으로 차근차근 차 떼고 포 떼서 식민지로 만들어 나갔다.

김 구가 암살 당하는 바람에 남북 사이의 온건 중재자가 없어져서 북한이 더욱 폭주하고 6 25 개전이 앞당겨졌다고 보는 주장이 있는데.. 난 그에 대한 진위 여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논리라면 조선이 김 옥균에게 행한 야만적인 짓거리가 일제를 자극하고 조선을 더욱 강경하고 폭압적으로 대하게 만들었다는 견해도 동등하게 성립할 것이다.

그렇게 조선이 망해 가던 동안 바깥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꽤 의미심장한 일들이 있었다. 특히 철도와, 자동차와 증기선, 전화의 발명 덕분에 나라와 나라들이 서로 손잡고 가까워지려는 시도가 있었다.

(1) 제네바 협약이 2차까지(1864, 1906) 맺어지면서 "전쟁을 해도 최소한의 룰은 지키면서 하자. 전투력을 상실한 포로나 부상병에게는 최소한의 인도주의적인 대우를 하자" 이런 규칙이 제정됐다. 만국 우편 연합(1874)이라는 국제 기관도 생겼다.

(2) 더 나아가 만국 평화 회의라는 게 1899년과 1907년에 두 번 개최되었다. 장소는 모두 네덜란드 헤이그.. 그렇다. 2차의 경우 우리나라도 참석하려 했지만 일제의 방해 때문에 그러지 못한 바로 그 회의이다.
이 시절의 명칭에는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만국'이라는 단어가 유독 자주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world)가 저렇게 번역된 건데, 이것도 일본에서 만든 용어인 것 같다.

(3) IPA라고 불리는 국제 음성 기호(1888)가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인공어 에스페란토(1887)도 공표되었다. 즉, 언어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가 있었다.

(4) 근대 올림픽 경기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1896, 그리스 아테네)

(5)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제 우리 땅에 돌아가서 모여 살아야겠다는 '시온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국제 시오니스트 총회는 1897년부터 1901년까지 총 5회 개최되었다. 그 전에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반유대주의 드레퓌스 누명 사건이 상당한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6) 한편, 인류 역사상 최초로 빨갱이라는 것이 이때쯤 생겼다. 공산당 선언(1848, 1870~)과 인터내셔널가(1870~1880)의 유래를 생각해 보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1859), 그리고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성경 개정..을 가장한 변개(1881)도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변화이다.

(7) 암울했던 조선 구한말과 달리, 이 시기는 유럽에서는 '벨 에포크'라고 불리는 과학 기술 황금기였다. 물론 거기 자국민도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고생하는 건 식민지와 별 차이 없었겠지만, 나라 자체는 부강해지는 중이었다. 유럽 내부에서는 별다른 전쟁도 없이 평온하고, 각종 낭만주의 낙관주의가 싹트고 있었다.

"15소년 표류기, 우주 전쟁, 80일간의 세계 일주"처럼 미지의 신세계를 갈망하는 소설이 나왔으며, 거대한 대포를 쏴서 우주로 나가는 상상도 하기 시작했다.
일본 역시 유럽 스타일로 근대화를 잘한 덕분에 저 때가 나름 잘나가던 리즈 시절이었다. "나디아"가 괜히 저 시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리고 20세기 초엔 아직 제국주의와 우생학이 있었다. 최첨단 과학 기술을 이룩한 백인은 우월한 반면, 유색 인종들은(일본은 제외..;;) 진화가 덜 됐고 미개하다. 그 때문에 백인들이 가서 적당히 부려먹고 산업화시키고, 기독교로 개종도 덤으로 시켜 주는 게 걔네들한테도 좋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아직 핵무기는 없었지만 기관총만으로도 충분히 인류 최강의 병기로 여겨졌으며 미개인들을 제압하는 데 충분했다.
(기관총 발명 이전 시절의 식민지 개척이나 노예 반출은 적극적인 침략과 납치보다는.. 원주민들 내부에서 이미 노예였던 사람들을 사 온 게 더 많았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나중에 나치즘도 20세기 초 사람들의 관심사와 트렌드가 축적된 것들이 약간만 변조되고 응용되어 만들어졌지, 아무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관총이 처음에는 유럽인이 미개인들을 제압할 때 쓰였지만 나중에 1차 대전 때는 결국 같은 유럽인들을 참호에 처박아 넣고 죽일 때도 쓰이게 됐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본인은 한때는 초보 역덕들의 성지인 2차 대전 시절 역사만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반세기쯤 더 전의 20세기 초 역사에도 관심이 간다. 러일 전쟁처럼..
내가 철도에 입문했을 때도 처음에는 오로지 지하철, 새마을호 일색이다가 증기 기관차에까지 관심이 확장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그것처럼 이쪽 덕력이 느니까 더 옛날까지 관심이 확장된 것 같다. -_-;;

자고로 역사라는 건 (1) 지금과 별 관계도 없는 너무 먼 고대사보다는 근현대사를 더 비중 있게 봐야 하고, (2) 국사와 세계사를 같이 연계해서 봐야 한다는 게 본인 생각이다. 유럽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역사도 말이다.
그래야 어떤 형태로든 역사왜곡 국뽕을 차단할 수 있고, 약간의 따끔한 동심파괴 팩트폭격 대신 역사로부터 배울 수가 있다. 지금이 무슨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국뽕이나 투여하면서 정신승리 대리만족을 해야 하는 암울한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독일이 과거의 반인륜 전쟁 범죄를 반성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이 나라 역시 조선 말기가 얼마나 개막장으로 형편없고 병신같았는지를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130여 년 전의 삽질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그걸 알고 나면 반대급부로 한민족 역사상 현재 맨 마지막으로 세워진 국가 대한민국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저절로 체득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07 08:31 2020/09/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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