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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빨간 마후라

6· 25 때 육군이야 북괴를 상대로 힘싸움 땅따먹기를 직접적으로 하던 주역이었으니 각종 전투에서 대승하거나 참패한 기록들이 즐비하다. 이런 육군과 달리 해군과 공군은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애초에 북괴 공산군도 육군과 달리 해· 공군은 남한에 비해 그다지 우세하지 않았다. 해군의 경우 개전 초기에 '대한해협 해전'을 시작으로, 동· 서해를 막론하고 바닷길로 침투하는 공산군을 여럿 저지하는 전과를 올렸다. 섬들은 38선 이북 지역도 휴전 당시에 몽땅 국군과 UN군이 점령해 있기까지 했다.

다음으로 공군은? 대놓고 북괴 전투기 패거리와 공중전이 벌어진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땅에서 힘겨운 고지전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동안, 지상을 폭격하는 것으로 아군을 지원하는 임무를 여럿 수행했다.
그 전과 중에는 1952년 1월 대동강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이 있다. 적진의 영공을 용맹하게 뚫고 들어가서 적의 보급로를 끊은 쾌거이며, 옛날 영화인 "빨간 마후라"가 저 작전을 모티브로 따서 만들어졌다. 무려 1964년작인데 컬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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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 참 오랜만에 들어 본다. 요즘 외래어 표기법이라면 그냥 머플러겠지.. 비후까스가 아니라 비프 커틀릿인 것처럼 말이다.
사람에게 다는 머플러는 목도리이고, 기계 엔진에다 장착하는 머플러는 소음기이다. 그리고 '빨간 마후라'는 영화 제목인 한편으로 동명의 영화 주제가가 그대로 공군 군가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그만치 파급력이 컸으며, 또 55년 전의 국산 영화치고는 꽤 잘 만들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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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에 "빨간 마후라"라는 관행을 최초로 만든 원조는 공군의 창군 멤버인 김 영환 준장(1921-1954)이었다고 한다. 어떤 일화가 계기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이미 여러 썰들이 나도니 검색해서 참고하시기 바란다.

2. 팔만대장경을 지킨 파일럿

그런데 이 사람은 도그파이트를 벌여서 적기를 수십 기 격추시킨 에이스라든가, 적진을 불바다 쑥밭으로 만든 전과가 아니라 다른 방면의 행적 때문에 훌륭한 군인으로 추앙받는다. 바로 1951년 8월 무렵, 빨치산 토벌 명령을 받고 출격했지만, 팔만대장경이 소장돼 있는 가야산의 해인사만은 목숨 걸고 항명하여 폭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관총으로 폭탄 대신 총알만 주변에다 퍼붓고 왔다.

이건 전술적으로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정규군끼리의 교전은 이미 38선 근처에서 엎치락뒷치락 고지전 형태로 귀착됐지만, 한 본토에 깊숙이 침투한 게랄라 빨치산들은 지리산 같은 험지에 숨어 들어가 짱박힌 바람에 쉽게 토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 속의 절간들은 놈들이 지내기 좋은 만만한 공간이었다.

산처럼 진군하기 힘들고 엄폐물이 많은 요새에 저격수가 숨어 있다고 치자. 그래서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총알 때문에 아군이 하나 둘 헤드샷 맞고 죽어 나가고 병사들의 사기도 곤두박질 친다. 이 와중에 저격수만 곱게 잡을 방법이 도저히 없다면 별 수 없다. 시간과 여건만 허락한다면 저격수가 있을 만한 곳을 몽땅 폭격해서 불바다로 만들고 모조리 무식하게 깡그리 밀어 버리는 brute force가 제일 확실하다.

현실에서는 지뢰나 시간폭탄만 해도 일일이 어렵고 위험하게 해체하지 않는다. 그냥 안전한 곳에 한데 옮겨 놓고 터뜨려 버리지 않던가? 이와 비슷한 이치이다. 저런 건 그 장치를 설치한 놈을 데리고 와서 족쳐도 해체를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산 속의 문화재는.. 뭐랄까 무고한 민간인만큼이나 군의 입장에서는 피아 식별과 작전 수행을 어렵게 하는 존재였다. 국군이 살인마 싸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적군이 자꾸 민간인으로 위장하거나 혹은 민간인을 방패로 내세우며 비열하게 싸우니까 빡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는 것이다.

뭐, 문화재는 최소한 사람은 아니다만, 빨치산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산 속의 여러 문화재들이 안타깝지만 폭격을 맞고 소실되었다. 그러나 김 영환(당시 대령)은 팔만대장경마저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그는 항명죄로 인해 징계 위원회에 회부됐지만 문화재 보호라는 명분이 참작되어 다행히 실제로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먼 훗날인 2010년, 금관 문화 훈장이 추서되었다.

3. 화엄사를 지킨 경찰

이런 식으로 6· 25 때 군· 경이 항명까지 불사하면서 문화재를 보호한 사례가 최소한 한 건 더 있다.
그 주인공은 군인이 아닌 경찰 간부인 차 일혁 경무관(1920-1958)이다. 공교롭게도 앞의 김 영환 장군과 거의 같은 연배이고 30대 나이 때 사고사한 것도 동일하다.

이분은 1951년 5월경,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지리산 내의 모든 사찰과 암자들을 불지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고작 소수의 빨치산 몇 놈 때문에 수백 년 묵은 거대한 문화재들을 몽땅 잿더미로 만드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화엄사(전남 구례군 소재)와 그 일대 사찰에 대해서는 같이 작전 중이던 군부대와 협의하여 건물을 다 부수는 게 아니라 문짝만 떼어서 불태웠다. 뭐, 문이 없으면 건물 안이 다 보이니 어차피 빨치산들이 은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인사 폭격에 대한 항명과는 다른 별개의 사건이라는 것을 본인은 검색을 추가로 한 뒤에야 확실하게 알게 됐다. 이분에 대해서도 사후에 조계종과 문화재청으로부터 감사장이 추서되었으며, 계급 역시 경무관으로 특진했다.

다만, 이분의 업적이 재조명된 것은 2000년대가 다 돼서였다. 종로 경찰서의 최 규식 경무관이야 북괴 무장공비를 검문하다가 전사했으니 그야말로 당대의 대통령이 직접 추모했으며 동상이 세워지고 태극 무공 훈장에다 경무관 특진까지 광속으로 추서됐지만, 저분은 분야가 다른 관계로 아무래도 그런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뭐 그래도 박 정희 정권은 문화재의 복원과 보존에 굉장히 신경 썼던 정권이긴 하지만 관심이 이런 데에까지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4. 파리와 교토

적군을 쳐부수는 것도 좋지만 역사 유물인 문화재는 적군의 것이라도 보존해야 한다는 관념이 서양에도 응당 있었다. 대표적인 예는 2차 세계 대전 때 프랑스를 점령했던 나치 독일이다.

처음에는 히틀러도 과거의 네로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독재자' 기믹이 있었는지 프랑스 파리의 문화 유물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고 궁지에 몰리자.. 그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점령지를 몽땅 불지르고 부숴 버리라는 광기어린 명령을 부하 사령관에게 내렸다.

이때 프랑스를 점령해 있던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1894-1966)은 차마 그런 짓은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총통의 명령을 씹었으며, 연합군에게 항복했다.
그는 항복하던 당시에는 프랑스 시민들로부터 갖은 욕을 먹고 야유를 당했다. 그러나 그의 항명 사실이 알려지면서 얼마 안 가 프랑스로부터도 감사와 칭송을 받는 영웅 대접을 받게 됐다. 그의 장례식 때는 프랑스 군인 장성과 레지스탕스 지도자들도 찾아왔다.

훗날 이 일화를 배경으로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히틀러가 콜티츠에게 거듭해서 전화를 걸어서 자기 명령이 이행되었는지 확인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콜티츠는 상관이 건 전화를 받긴 했지만 차마 응답은 못 한 채 침묵하고 말이다.
이건 1966년작으로, 역시 "빨간 마후라" 내지 "소령 강 재구"와 비슷한 고만고만한 시기이다. 단, 영상을 검색해 보니 얘는 흑백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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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말고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국이 태평양을 넘어 일본의 수도까지 폭격하면서 도시들을 쑥밭을 넘어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었다. 그래도 천조국 미국도 일본의 경주 급인 교토는 건드리지 않았다. 인도적인 차원보다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였다. 문화재는 남겨 둔다고 해서 연합군을 죽이는 일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앞서 언급했던 파일럿 김 영환도 항명으로 인한 징계를 받게 됐을 때, 콜티츠 장군과 미군의 폭격을 예로 들면서 자신을 변호했다고 한다.

5. 옛날 영화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나라 영화계는 5공 전땅크 시절~민주화 초창기인 1980~90년대 초까지가 좀 침체· 암흑기였지, 더 옛날인 저 60년대는 오히려 여러 명작들이 쏟아져 나오던 중흥기였다. <상록수>(1961),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맨발의 청춘>(1964), <빨간 마후라>(1964), <하녀>(1960)처럼 말이다.

암흑기일 때는 <서편제>(1993)가 고작 100만을 넘었다고 자랑을 칠 정도였지만 <쉬리>(1999)를 계기로 영화계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중반이 돼서야 국산 영화가 모처럼 명작들이 쏟아져 나오며 잘 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이때부터 영화 티켓 발매도 완전히 전산화되어 관람객 수가 정확하게 집계되기 시작했다.

사소한 외형으로는 한 90년대를 전후해서 자막이 세로쓰기가 아닌 가로쓰기로 바뀌었으며, 극장 간판에 벽화 형태로 그려지는 영화 광고도 화가가 정성스레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냥 디지털 인쇄물로 바뀐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19 08:33 2019/06/1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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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 1920년대: 1차 세계 대전 후, 비행기라는 게 군용뿐만 아니라 민간용으로도 극소량 단거리 위주로 쓰이기 시작함.
  • 1930년대: 비행기의 덩치와 성능이 더욱 향상되고 금속 재질+단엽기 형태로 정착함(보잉 247). "비행선이 밀려나고 도태함" (비행기의 성능 향상 +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화재 사고 크리)

  • 194~50년대: "제트 엔진"이 발명되고 여객기에도 적용됨. 대양 횡단이 가능해짐.
  • 1960년대: 여객기의 덩치가 점점 커지기 시작. 삼발기 등장.
  • 1970년대: "보잉 747 초대형 점보 광동체 여객기" 등장. 초음속 여객기까지 등장했으나 가성비 안 맞는 계륵으로 전락함.

  • 1980년대: 쌍발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삼발기가 도태함. (버스로 치면 전방 엔진 버스가 도태한 것과 비슷한 시기) 보잉 747-400 덕분에 "한국-미국이 앵커리지 경유 없는 직항"이 가능해짐.
  • 1990년대: 여객기들의 덩치와 성능이 오늘날과 별 차이 없는 형태로 정착. "항공기관사 퇴출". (버스 안내양이 퇴출된 것과 비슷한 시기)
  • 2010년대: 보잉 747, A380 같은 초대형 여객기가 단종되고 도태하는 중. 기술의 발달 덕분에 쌍발 엔진이 과거의 4발 엔진에 맞먹는 출력과 항속거리를 달성함

아주 흥미진진하다!

2. 뜨는 원리

물체가 공중에 뜨는 힘의 원천으로는 부력(비행선), 양력(비행기), 또는 추력(로켓)이 있다. 닥치고 높게 떠서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가려면 추력이 필요하겠지만, 지구 안에서 잠시 떴다가 수평 이동을 멀리 하는 용도로는 양력을 이용하는 게 경제적이다.
고정익 비행기에서 추력을 발생시키는 엔진은 기체를 들어올리는 게 아니라 그냥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쓰인다. 후자는 전자보다는 훨씬 덜 힘든 일이다.

비행기가 양력을 얻기 위해서는 날개가 달려 있어야 한다. 자동차는 고속 주행 중에 살짝 떠 버려서 제동· 조향 능력을 상실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스포일러'가 뒤에 장착되곤 한다. 이건 비행기의 날개와 정반대로 양력을 상실시키는 역할을 한다.

비행기가 양력을 받아 뜨는 원리에 대해서 베르누이의 원리, 벤추리 관, 긴 경로(날개 윗쪽이 윤곽이 더 완만하고 길다) 등 잘못된 이론이 오랫동안 항공 전공 서적에 별다른 검증 없이 소개돼 왔다. 그런데 난 잘못된 이론과 맞는 이론 모두 잘은 모르겠고 완벽하게 내 것으로 소화를 못 했다. 양력은 부력보다는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려운 힘이니까.. 그 뿐만 아니라 이 자연에는 전자기력처럼 이해하기 더 어려운 현상도 많다.

비행기에는 공기를 사정없이 휘젓고 내뿜기 위해 뭔가 커다랗게 뱅글뱅글 돌아가는 물체가 어떤 형태로든 달려 있다. 그 물체의 종류로는 프로펠러가 제일 대중적인데.. 비행기의 (1) 프로펠러는 선박의 스크루와 개념적으로 동일한 역할을 한다. 프로펠러를 돌리는 엔진은 피스톤 왕복 또는 터보프롭 방식 중 하나인데, 비행기에서 자동차 같은 왕복 엔진은 완전 초소형 경비행기 급에서나 쓰인다.

이론적으로 비행기도 배처럼 프로펠러가 뒤에 달린 형태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공기의 밀도와 바닷물의 밀도는 서로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에 생긴 모양이 동일하지는 않다. 선박의 프로펠러는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형태이기 때문에 screw라고 불린다.

헬리콥터는 프로펠러로 추력이 아니라 양력을 직접 발생시켜서 뜨는 비행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로펠러 자체가 회전익, 즉 날개 역할을 하며 이를 (2) 로터라고 부른다. 로터라고 해서 프로펠러와 크게 다른 물건은 아니기 때문에 틸트로터 같은 특이한 수직 이착륙기도 존재할 수 있다. 같은 바람개비를 각도만 조절해서 이륙할 때는 헬리콥터의 로터처럼 쓰고, 순항할 때는 일반 프로펠러처럼 운용하니까 말이다.

오늘날 비행기에서 주력으로 쓰이는 제트 엔진이 왕복 엔진과 다른 점은.. 연료를 태운 배기 가스까지도 그냥 곱게 배출하는 게 아니라 세차게 내뿜어서 추력을 내는 데 쓴다는 점이다. 즉, 제트 엔진은 노즐이 달려 있다. 단지, 산화제를 자체 탑재한 게 아니라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다는 것만이 로켓과 다른 점이다.

터보 제트, 터보 팬 같은 제트 엔진에도 (3) 팬 블레이드라는 바람개비가 달려 있다. 하지만 이건 공기를 빨아들이고 압축하는 용도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펠러와는 성격이 다르다.
비행기 엔진을 넘어 로켓 엔진이 되면 노즐 꽁무니에서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르며, 오로지 추력에만 의존해서 날아가기 때문에 딱히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건 없다.

육해공을 막론하고 교통수단에 피스톤 왕복 엔진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철도 차량에서는 가능한 한 전철이 쓰이고 있으며 비행기도 덩치가 조금만 커지면 제트 엔진이 쓰인다. 자동차와 선박만이 왕복 엔진이 대세인 듯하다. 프로펠러는 비행기와 선박이, 고무 바퀴는 자동차와 비행기가 공유하고 말이다.

3. 조종법

(1) 페달
자동차는 두 페달(가속, 브레이크)을 동시에 밟을 일이 없고, 또 클러치 페달이 추가로 있는 수동 변속기 차량과의 호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오른발 하나만으로 두 페달을 모두 밟는다. 자동 변속기 차량에서는 왼발은 그냥 하는 일 없이 논다.

하지만 비행기는 두 페달을 동시에 밟을 일이 있기 때문에 양발을 모두 쓴다. 게다가 페달의 위쪽을 밟는 것과 아래쪽을 밟는 것의 구분도 있다. 비행 중일 때는 페달이 방향타 역할을 하고, 지상에서는 랜딩기어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핸들을 돌리는 게 아니라 양 부위별로 브레이크를 다르게 걸어서 택싱 중인 기체의 방향을 조절한다.

(2) 엔진 가동
자동차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동안만이(가속, 오르막 오르기 등) 실질적인 힘을 쓰는 상태이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시동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연료 분사만 하거나(아이들링), 아니면 평지· 내리막에서 바퀴를 따라 엔진이 관성으로 저절로 돌아가는 퓨얼컷+엔진 브레이크 타력 주행 상태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엔진이 그렇게 아이들링인 상태인 건 글라이더처럼 활강하면서 서서히 추락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행기는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언제나 힘차게 돌아가면서 기체를 움직이고 양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페달을 밟는 깊이로 출력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마치 선풍기/에어컨의 출력처럼 손으로 조작하는 스로틀 레버의 위치로 출력을 조절한다.

비행기 엔진은 공기를 상대로만 돌아갈 뿐, 자동차 엔진처럼 무거운 차체와 지면 사이의 마찰력을 극복해야 할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와 같은 변속기가 달려 있지는 않다.

(3) 조향
자동차의 핸들은 한 축(비행기로 치면 yaw)만 조절하지만, 비행기의 조종간은 조이스틱 같은 형태로 두 축(대략 roll, pitch)을 조절한다.

비행 중에 방향을 전환할 때는 조종간뿐만 아니라 얼추 yaw를 담당하는 페달까지 적절히 밟으면서 전환한다.
그리고 상승· 하강할 때는 조종간뿐만 아니라 엔진 출력도 적절히 조절하면서 고도를 바꾼다.
이륙할 때 앞부분이 먼저 뜨고, 착륙할 때는 뒷부분이 먼저 착지한다.

활주로에서 충분히 속도가 붙어서 이제 이륙을 중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을 V1 속도 도달이라고 하며, 조종간 당기고 자세 잡아서 뜨기만 하면 되는 직전 속도를 rotate 속도라고 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무슨 제1~3 우주 속도(탈출 속도) 같은 용어를 듣는 느낌이다. 그리고 자동차에도.. 이제 노란불이 되더라도 급정거를 할 수 없고 교차로를 무조건 빨리 통과해야 되는.. 교차로에서의 V1 속도, 지점 같은 개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비행기를 조종하려면 이런 기본 중의 기본 스킬 말고도 무수한 항공 관제 규약, 비행기 기기 조작 매뉴얼을 숙지해야 한다.

옛날에는 비행기도 자동차와 별 차이 없는 피스톤 회전 엔진을 사용해서 시동 걸면 털털털털 부우웅~ 소리가 났지만.. 앞서 역사에서 언급했듯이 1940~1950년대부터 제트 엔진이 보급된 뒤부터는 엔진 소리가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다. 6· 25 전쟁 당시에 미군 전투기에 '쌕쌕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로켓 엔진은 그냥 자기 연료와 산화제만 연소시켜서 뿜지만 비행기 엔진은 주변 공기도 왕창 빨아들여서 내뿜는다.

비행기가 타 교통수단과 크게 다른 점은.. 엔진이 꺼지면 곱게 정지나 표류가 가능한 게 아니라 그대로 추락과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한번 자세가 어긋나서 양력을 잃고 실속에 빠지면, 엔진 출력 올리고 밟기만 한다고 해서 곧장 자동으로 회복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종이 어렵다. 물론 자동차도 타이어가 접지력을 상실하고 미끄러지면 매우 큰 위험에 빠지지만, 그 위험이 비행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헬리콥터는 고정익기보다 이런 게 더 취약하고 불안하다.

4. 기내 화재로 인해 발생한 항공 사고

지금 이 시각에도 전세계에 얼마나 많은 비행기들이 평온하게 날아다니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비행기는 매우 안전한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가 전혀 없는 건 아니며, 그 드문 사고는 이· 착륙 중에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이륙은 연료가 제일 많이 들어있어서 비행기가 제일 무겁고 엔진 출력도 제일 세게 땡기는 때이다. 활주로의 길이는 제한돼 있는데 이미 충분히 가속하여 활주해 버린 뒤에 무슨 이유로 인해 공중으로 뜨지 못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반대로 착륙하려면 엔진 출력과 기체 주행 속도를 줄이고 또 줄여야 하는데.. 이렇게 느려지면 기체의 자세 제어와 조종도 제대로 안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위치를 잡기가 더욱 어려우며, 돌발상황에 취약해진다. 착륙하려다가 실패/포기하고 재이륙하는 건 조종사에게 굉장한 부담을 주는 기동이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 말고 내부 요인 때문에 발생한 사고도 있다. 옛날에는 기체의 구조적인 결함으로 인한 사고도 있었지만, 그건 수십 년간의 사고 데이터 분석과 비행기 제조사들의 기술 발달 덕분에 없어지는 추세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차라리 정비 불량의 비중이 더 높으며,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화물칸의 화재'로 인한 사고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163편(1980년 8월 19일, 록히드 트라이스타)은 이륙 7분 만에 화물칸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기껏 회항하고 비상 착륙까지 아주 극적으로 성공적으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비행기가 곧장 서지 않고 엔진도 꺼지지 않고, 문도 제대로 안 열렸다.

300명이 넘는 승객과 승무원들은 착륙 후에 지상의 기내에서 옴짝달싹 못 하다가 화마에 희생되어 전원 사망했다. 대놓고 추락이나 공중 분해도 아니고 이렇게 멀쩡히 착륙 후에 탑승자가 전원 사망한 사고는 무척 이례적이다. 착륙 후에 기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탈출이 지체되었는지, 그리고 무슨 수하물에서 왜 화재가 발생했는지는 밝혀지지 못하고 미스터리로 남았다.

남아프리카 항공 295편(1987년 11월 28일, 보잉747-200 계열)은 이륙 후 9시간째 잘 날고 있던 중에 역시 화물칸에서 불이 났다. 화재는 맨 앞 조종실에까지 연기가 들어올 정도로 심각해졌으며, 비행기는 조종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결국 아프리카 마우리티우스 섬 근처의 인도양 바닷속으로 추락했다. 역시 전원 사망.

이 사고도 어느 화물에서 화재가 왜 발생했는지는 밝혀지지 못했다.
날짜를 보고 눈치 챈 분도 계시겠지만 이건 대한항공 858편 폭파 테러의 "바로 전날"에 발생한 사고이다. 858도 추락 내지 실종 지점이 나름 인도양 권역인 것이 비슷하다. 비록 후자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지만 말이다.

요것들은 1980년대 이야기이니 지금과는 상황이 동떨어진 것 같지만.. 지난 2011년 7월 말, 아시아나항공 991편 화물기의 추락 사고도 원인이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얘는 범인은 밝혀졌지만 역시 왜 뜬금없이 불이 붙었는지는(범행 동기??) 불명으로 남았다.
화물칸 화재로 인한 비행기 추락 사고들은 여느 인재들과 달리 정확한 원인이 규명된 게 별로 없는 것이 더욱 괴이하다.

자동차도 나름 내연기관이 달려 있으며, 비행기만치는 아니어도 사고 시에 화재 위험이 존재하는 물건이다. 그래도 리튬이온과 달리, 자동차의 무거운 재래식 납-황산 배터리는 불이 붙거나 폭발하지는 않는 게 다행이다.
대형 냉동 창고에서 쓰이는 암모니아 냉매는 폭발하지만, 가정용 냉장고의 CFC 내지 그 대체제 냉매는 폭발하지 않고 안전한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13 08:35 2019/06/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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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 보훈의 달 6월이 됐고 현충일도 지났는데 문득 다시 생각해 본다.
세계의 많고 많은 나라들 중에 이 코리아라는 나라는 왜 이런 기구한 근현대사를 보유하게 된 걸까? 중· 근세에 걸출한 수학자· 과학자 하나 배출한 거 없고, 하도 자랑할 인물이 없었는지 지폐에는 오로지 조선 시대 유학자 먹물들밖에 없는 걸까?

그걸로도 모자라서 왜 하필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추악하고 비열하고 더러운 생물인 북한 공산 괴뢰 집단과 대면하게 되었으며, 그 졸개 똘마니 하수인인 종북좌빨들과 이 2020년대를 앞두고도 지겹도록 싸우는 지경이 됐을까?

이웃 일본은 국력이 너무 강해서 한번 거하게 사고를 쳤다가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됐는데, 이놈의 나라는 왜 반대로 군대에 강제로 안 가면 안 되는 나라가 됐을까?
이건 자기 나라를 비하하고 역사 왜곡하는 좌좀 이념을 퇴치하기 위해서 한 번쯤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의문이다. 계산 결과인 "때려잡자 김 정은! 뒤죄앙 문져라!"만 마구 외치기 전에 계산 배경과 과정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제일 간단히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정학적으로 좀 독특한 반도 위치에, 규모는 작고 인구 수 별로 없고, 석유가 펑펑 난다거나 지하자원 많지 않고, 그렇다고 과학 기술 군사 경제가 막 뛰어나게 부강한 것도 아닌데..
어째 언어와 문화는 아주 독특해서 진작에 이웃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로 흡수되지 않았고, 특히 20세기 중반에 앗싸리 공산화되지도 않았고... =_=;;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답이 없는 유별난 상태로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고유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이 정도의 자유와 풍요까지 덤으로 누리며 살고 있는 대가가 지금 같은 지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민족이 진작에 중국 소수 민족으로 편입해 들어갔거나, 선진국 일본이나 미국 밑으로 귀순해 들어갔으면 처음에 좀 자존심 접고 설설 기는 게 힘들 뿐, 개돼지마냥 빌어먹고 생존하는 건 더 편할지도 모른다.

또한, 반대편 극단으로 남한이 6· 25 전쟁에서 져서 한반도가 진작에 김 일성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다면.. 수십 년에 달하는 극심한 체제 경쟁, 긴장과 갈등이 없었을 테니 북한 정권도 지금 같은 급의 상또라이(주체사상, 8월 종파 사건, 핵무기 등등..)로 흑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1990년대에 중국· 소련처럼 경제 하나만은 개방으로 갔을 수도 있다. 가능성이 0은 아니다.

허나, 그래 봤자 수십 년 동안 한반도 전역의 한국인들이 겪게 됐을 자유 없는 지옥 같은 참상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이미 194, 50년대에부터 북괴의 학정에 학을 떼고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허튼소리 지껄이는 빨갱이는 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건 변함없다.

아무튼 이 나라 이 민족은 삐끗 잘못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못될 수도 있었고 민족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꿋꿋이 버텨 왔다.
국제어인 영어와는 너무 딴판인 괴팍한 언어를 쓰고 있는데, 그에 맞춰 외국 석학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우수한 고유 문자를 창제하고 기계식 타자기를 만들었다.

한중일 중에서 유일하게 성탄절이 공휴일일 정도로 나름 기독교 복음도 많이 들어왔다.
군사정권 독재를 경험했으나, 정말 유례를 찾기 힘든 선한 독재 덕분에 나라가 부강해졌다.
6· 25 때는 세계의 전쟁 역사상 전무할 정도로 수많은 나라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때 이후로 이런 규모의 UN군은 현재까지 결코 다시 조직되지 않았다.

이런 여러 역사 정황을 살펴보면.. 내 조국이라는 나라는 충분히 유니크하며, 일말의 애착을 갖고 감사할 만한 여지가 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어쩌다 보니 전공과 연구 개발도 한글· 한국어 정보 처리 쪽으로 가게 됐다. 왕의 명령으로 성경을 번역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왕의 명령으로 고유 문자를 창제한 나라이지 않은가..?

그래서 더욱 바라기는.. 이 반도에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만한 선하고 유니크한 발명· 문물이 나왔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나라를 좀먹는 빨갱이들은 제발 get off my country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걔네들한테서 이상한 물 먹은 사람들은 하루빨리 산업화 되고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 내가 험악한 말투의 글 좀 안 써도 되게 말이다. 이런 내력을 지닌 나라가 인제 와서 겨우 이렇게 허망하게 폭삭 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건국과 달 착륙

지난 1969년 7월에 아폴로 11호 우주선을 통해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 닐 암스트롱이야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고 말한 건 너무 유명하다. 그런데 그거 말고,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달 착륙선 선장이던 올드린은 감격에 벅차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기회를 빌려, 나는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든, 지금 어디 있든, 잠시 멈춰 지금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감사를 드려 주시기(give thanks)를 요청합니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으니 종교색을 배제하려고 '신에게 감사'라고 안 하고 '각자의 방식대로'(in his or her own way)라고 표현을 했다만..
저 대사를 보면 난 1948년 5월, 제헌 국회 본회의 때 감사 기도를 제안했던 할배의 애드립이 곧장 오버랩 된다. 상황과 표현이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 같은 날이 사람의 힘으로만 오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중요한 순간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인다.

※ 할배 생각

  • 일본이 핵폭탄 맞고 전쟁에서 지기만 했다고 조선이 저절로 해방된 게 아니다. (적극적인 독립 의지 표명 필요)
  • 그저 일제만 몰아낸다고 다가 아니며, 그 뒤에 제대로 된 나라를 세워야 한다.
  • 통일만 한다고 장땡이 아니며, 무슨 통일인지를 따지고 자유와 개방이 있는 바른 체제로 통일을 해야 한다.

예수쟁이들이 그저 예수 믿고 구원만 받는다고 끝이 아닌 것만큼이나, 저것들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까마득한 1940년대에 위의 세 아이템들을 완벽하게 간파한 사람은.. 제아무리 민족주의자니 애국자니 독립 운동가니 뭐니 하는 집단 내부를 뒤져 봐도 정말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극소수였다.

특히 공산주의 사상과 공산주의자 빨갱이들의 수법까지 다 꿰뚫고 있던 국제정세 전문가는 전무..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남한, 대한민국의 건국의 아버지는 위의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인물이었다.

* 할배가 모세와 아주 비슷한 점

  • 타지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가 7, 80대.. 다 늙어서야 지도자가 됨
  • 거의 초월적인 계기로 민족의 해방을 경험함 (원자탄 / 이집트 재앙+홍해 경부 고속도로)
  • 당사자는 말년의 실수 때문에 민족이 부흥하는 걸 제대로 못 보고 타지에서 죽음
  • 외국인 여자와 결혼(정확히는 재혼)함

* 할배가 다윗과 꽤 비슷한 점

  • 왕위에 오르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부하의 월권· 과잉충성 등으로 본의가 아니게 인명 희생을 좀 겪음
  • 내전 겪고 피난 다녀온 적 있음(6·25 / 압살롬 반역)
  • 난리가 나서 위급한 와중에 중상모략 같은 걸 제대로 분별 못 하고 행정 착오를 저지른 것은 어디서나 불가피한 인지상정임 (삼하 19:27-30)

할배는 대한민국의 국부, 건국 대통령 초대 대통령이자 과거에 임시정부 대통령이었고, 일제로부터 현상금이 걸린 항일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할배는 잘한 것하고 잘못한 것을 수치화해 보면 둘이 거의 0의 개수부터가 차이가 날 것이다.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과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다르다. (창 3:15)

잘못한 건 바로 눈에 띄고 티가 나지만.. 잘한 것은 일반인이 범접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스케일이다.
뮬란 대사처럼 말이다.

I've heard a great deal about you, Fa Mulan. You stole your father's armor, ran away from home, impersonated a soldier, deceived your commanding officer, dishonored the Chinese Army, destroyed my palace! AND YOU HAVE SAVED US ALL.


라이온 킹에서 스카가 선왕 무파사의 '무'짜만 꺼내는 것도 싫어한 것처럼.. 할배의 공로는 잘도 누리고 있으면서 할배를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극우 수꼴로 몰고 가는 이 분위기는 오늘날 남한이 이념과 정체성 전쟁에서 북괴의 공작에 완전히 넘어가서 져 버렸음을 보여준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고 성경에도 대언자· 선각자가 꼭 자기 친족과 고향에서는 존경을 못 받는다는 말이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돼 있을 정도이긴 하지만(마 13:57, 막 6:4, 눅 4:24, 요 4:44).. 그래도 후조선 땅에서 할배에 대한 병적이고 악의적인 왜곡은 동서고금 평균을 넘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수준이다.

※ 통일보다 더 중요한 건 북한 지역의 체제 정상화

통일보다 더 중요한 건 북한 지역도 뭔가 제대로 된 정상인 정권이 들어서고 자유와 개방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걸 이루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멸공 북진 흡수 통일이겠지만, 이젠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고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서 그런 통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
그렇다면 꼭 통일이 아니어도 좋다. 북한을 남한과는 서로 다른 나라로 완전히 인정한 뒤, 이웃 중국이나 일본 가듯이 비자 받아서 여행 다녀오고 통신 정도나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허나, 현재 그 정도 개방마저도 할 수 없는 건 전적으로 북괴가 비정상적이고 잘못된 체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놈들은 남한까지도 자기처럼 생지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민족 사칭하고 남한의 역사를 왜곡하고 정체성을 부정하는 더욱 흉악한 체제이다.

이런 집단/체제과 뭐, 통일..?? 그리고 통일 준비 차원에서 퍼주자?
이런 놈들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사기꾼 빨갱이이고 모조리 다 죽여야 된다.
이런 암세포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국민의 1%, 10%, 최악의 경우 절반이라도 학살되는 피바람이 불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희대의 사기극에 비하면 4대강이니 조무래기 방산비리니, 고위층 병역기피니 하는 건 어설픈 풋 사과에 불과하다.
이런 반역자 빨갱이들이 이미 법조계 교육계 정치계를 장악한 와중에 조무래기 친일파 후손이니 지랄은 그냥 애들 장난일 뿐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북괴가 정상적으로 자기 나라의 경제력 군사력을 키워서 우리나라를 침략하려 한다면 차라리 낫다. "적이지만 훌륭하다, 우리가 한 수 배울 게 있다"라고 인정할 수라도 있다. 옛날에 일제가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 북괴는.. 진짜 선한 것이라고는 없고, 라이온 킹 스카가 심바에게 "우린 가족이잖니~~ ^_^" 하듯이, 처키가 앤디에게 "우린 친구잖니~~ ^_^" 하듯이 온갖 지저분한 거짓 평화 공세를 늘어놓고 남한을 삥뜯는 게 너무 싫다.
거기에 끌려가서 '우리 민족끼리' 이 짓 하는 놈들, 우리나라 역사를 부정하고 정체성을 비하하는 놈들, 맨날 천날 친일파 드립만 치는 놈들은 더 싫고 한 하늘 아래에서 상종을 하고 싶지 않다. 남들한테는 반미 반미 거리면서 자기 자식 새끼는 미국 유학 보내는 놈들보다야 차라리 평범한 안보 장사꾼 위선자가 더 낫다.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할배 때 6·25 전쟁 중에 벌어졌던 온갖 광기와 보복과 학살은.. 90%는 실드가 쳐진다. 빨갱이는 그런 극약 처방으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개지랄과 발악을 해서라도 척결했어야 했다.
이것들은 10년 이상 본인의 아주 오래된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07 08:33 2019/06/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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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관련 이야기들

1. 6단의 존재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승용차들의 변속기는 수동 5단, 자동 4단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경차가 아닌 이상 6단 정도가 기본이 됐다. 자동 변속기가 다단화에 유리한지라, 단수가 옛날과는 반대로 수동보다 오히려 더 늘어나 있다.
요즘 자동차들이 디젤도 아닌 휘발유 엔진으로 시속 120대의 고속 주행 중에도 어지간해서는 2000 초중반대의 엔진 회전수가 유지되는 것에는 엔진 출력 향상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은 변속기의 다단화도 기여했다.

본인 차의 경우, 시속 110~120 정도를 넘어가면 평소에 켜져 있던 초록색 eco 램프가 꺼진다. 엔진 출력의 한계와 공기 저항 때문에 이제 경제 속도 영역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래도 약간만 밟고 있으면 2000대 후반인 엔진 회전수에서 130~140까지는 아무 무리 없이 나온다.
다만, 150km/h를 넘어가지는 않으며, 이때부터는 차가 힘이 딸리는지 눈에 띄게 잘 안 나아간다. 더 세게 꽉 밟아야 된다. 그러면 엔진 rpm이 확 치솟으면서 속도도 슬금슬금 올라간다.

이런 동작으로부터 유추하건대 내 차는 변속기는 분명 6단이지만, 극한의 최대 출력/최대 속도는 다시 그 아래의 5단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그렇지~ 레드존에 근접하는 6500rpm에서 6단의 기어비가 유지된다면 차의 주행 속도는 거의 300km/h를 넘겨야 할 텐데 그게 이 엔진의 배기량과 토크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 체급의 엔진에서 최고단인 6단은 단순히 고속도로 주행 중의 고연비 경제 운전을 위해서 존재하는 듯하다.

다른 물리적인 제약이 없다면 변속기의 단수는 많을수록 좋다. 그러면 최저 내지 실용 rpm으로 엔진 힘이 견디는 최고 속도를 효율적으로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단수가 너무 늘어나면 변속기가 그에 비례해서 복잡해지고 무거워지며, 차값도 그에 걸맞게 비싸진다. 그래서 6단 변속기는 "어차피 일상생활에서 이 정도로 고속 주행할 일이 얼마나 되냐? 최고 속도를 커버하지도 못하는데"라는 이유로 가성비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D를 놓고 있다가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지금 변속기가 몇 단 상태인지를 계기판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본인 차의 경우, 초기에 6단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6단이었더라도 5단으로 낮춘 뒤에 5단을 표시한다. 물론 그 상태로 +를 눌러서 다시 6단으로 되돌릴 수는 있지만, 그걸 기본 상태로 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6단이 존재감이 더욱 없어 보인다.

2. 유리 썬팅

본인은 길거리에서 아주 가끔 대우(!) 프린스나 에스페로, 현대 각그랜저, 쏘나타 3처럼 연식이 20년이 넘은 엄청난 옛날 자동차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옛날 자동차와 최소한 2000년대 이후의 자동차의 외관상 큰 차이 중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유리 코팅/썬팅/틴팅(tinting)인 것 같다.

옛날 차들은 밖에서도 차 내부의 동승자가 훤히 보이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 차들은 옆에서 아주 가까이 접근해서 들여다봐야 차 내부가 보일까 말까이고 어지간해서는 내부를 볼 수 없다.

차량용 유리에 검고 어두운 X팅이 되어 있으면 눈부신 햇볕과 자외선을 걸러낼 수 있고 탑승자의 프라이버시도 보장할 수 있어서 좋다. '와장창' 산산조각 나며 깨지지 않게 특수 처리되는 것만큼이나 썬팅도 특수 처리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너무 짙어서 내부가 하나도 안 보이다시피할 정도의 X팅은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싸제 튜닝으로 간주된다. 그러면 밖에서 안이 안 보일 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밖이 제대로 안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바깥 백미러가 잘 안 보이고, 그리고 한낮이 아닌 밤에는 시야가 더 쥐약이 된다. 이는 매우 높은 확률로 교통사고로 이어진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2000년대 언제부턴가 국내에 출시되는 차들에 기본으로 썬팅이 들어가기 시작했거나 그 농도가 올라가긴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된 내력이나 법적 근거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하다.

여담이지만 본인은 지금 굴리고 있는 차가 내 생애의 첫 차이며, 얘는 도중에 중고로 팔지 않고 폐차할 때까지(사고 내지 지나친 노후화) 계속 탈 생각이다.
나 같은 평범한 흙수저 직장인이 굴리는 차가 30여 년 전에 꿈의 자동차로 불렸던 각그랜저보다 성능 더 좋고, 안전· 편의 시설이 더 많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3. 시내버스의 에코 드라이브 시스템

요즘 서울 시내버스를 타 보면 내비게이션처럼 생긴 검은 화면에 연료계인지 타코미터인지 모를 곡선이 그려져 있고, 옆에는 변속 단수가 표시된 게 보인다. 시내버스의 운전석에 앞뒤 차량(동일 노선을 달리는 다른 버스)의 위치, 거리, 도달 시간을 알려주는 단말기가 탑재돼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만, 저건 정체가 뭔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알고 보니 저건 고연비 경제 운전을 독려하기 위한 운전 통제 장치였다. 기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속도 대비 기어 단수가 낮고 엔진 회전수가 높으면 경고음이 나오고 점수(?)가 깎인다. 승용차의 액티브에코 같은 기능보다 강제성이 더 높다.

어쩐지 요즘 버스들은 좋게 말하면 난폭운전 없이 참 부드럽게 나아가고, 나쁘게 말하면 박력 없이 너무 약하게 밟는 게 느껴졌다. 전방이 아무 장애물도 단속 카메라도 없는 버스 전용 차로이고, 심지어 1km가 넘게 중간 정류장이 없는 한강 교량 구간이더라도 주행 속도가 60km/h는 절대로 안 넘는다는 것을 본인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거 덕분에 연료 아끼고 배기가스 덜 나오는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버스가 승객조차 답답하게 느낄 정도로 너무 굼떠서 불편해졌다는 반응도 있다. 적당히 좀 밟아서 빨리 가도 되는 첫차나 막차 같은 시간대에도 완전 FM대로만, 1500rpm을 안 넘다시피하는 정속 주행을 하니.. 새벽에 남들보다 아주 일찍 출근해야 하는 업종--환경 미화원, 일용직 근로자..-- 종사자들에게는 악재가 된 것이다.

또한, 노선에 오르막이 많아서 원래부터 연비가 좋게 나올 수 없고 좀 세게 밟아야 하는 버스들도 통제 장치의 개입으로 인해 더 느려지고 둔해졌다고 한다. 이건 통제 장치가 갓 도입된 초창기에 나타났던 시행착오이며, 현실의 지형을 감안해서 엔진 출력을 지나치게 후려치지 않게 동작 방식이 차츰 개선되었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지 싶은데.. 본인은 과속 폭주를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렇게 달리는 차에 동승하는 것도 좋아한다. 앞뒤좌우로 강렬한 G(가속도)를 느끼면서 쏠리는 그 느낌이 좋다. 난폭운전 총알택시 같은 건 꼭 직접 타 보고 싶다.

4. 시내버스와 고속버스의 엔진음

이 시점에서 문득 의문이 드는 게 있다. 시내버스의 엔진 소리와 고속버스의 엔진 소리는 서로 완전히 동일할까?
시내버스도 충분히 낮고 칼칼한 소리가 나니 언뜻 보기에 그게 그거 같고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좌석· 광역· 고속버스를 타 보면 시내버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굵직하고 털털거리는 이펙트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시내버스는 걸핏하면 신호에 걸려서 멈추고, 몇백 m 간격의 정류장마다 또 서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고rpm의 엔진음이 나올 일이 없다. 비록 폭과 타이어 크기는 8톤 트럭과 대등해 보이고 똑같은 45인승 대형 버스 차급인 것 같지만 두 버스는 제원에 차이가 있다.

길이부터가 시내는 11m대이지만 고속은 12미터가 넘는다. 트럭으로 치면 같은 덩치여도 초장축/장축의 차이와 비슷해 보인다.
높이도 시내는 상대적으로 더 낮아서 납작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 반면, 관광· 전세를 포함한 고속버스는 3m를 훌쩍 넘어서 3.3~3.5m에 달한다. 밑에 짐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엔진 역시 차이가 난다. 시내버스는 막 고속 주행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10리터대의 배기량에 그냥 300~330마력대이지만, 고속은 큰 덩치와 고속 주행에 걸맞게 12리터대의 엔진에 4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낸다.
이런 덩치의 차이 때문에 시내버스와 고속버스는 공회전 내지 갓 출발할 때의 초기 엔진 소리조차도 pitch와 음색이 약간 다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은 현대 자동차 기준으로 시내버스(에어로시티)와 고속버스(유니버스)의 중간에 속하는 차급(유니시티)도 있다. 광역 급행 좌석버스용으로 쓰라고 말이다. 얘 정도만 돼도 단순 시내버스보다는 약간 더 높고 엔진 소리와 승차감이 고속버스에 더 가까워 보인다. 대형 버스의 세계도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것 말고 학교 셔틀버스나 통학· 통근 버스는 장거리 고속 주행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그냥 에어로 시티 같은 시내버스급 차량에다가 필요에 따라 좌석만 잔뜩 배치해서 굴린다. 에어로 시티라는 이름의 버스 자체는 RB 이후로 1990년대에 굉장히 옛날에 등장했기 때문에 요즘 차종은 이름 앞에다가 '뉴 슈퍼'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여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04 19:33 2019/06/0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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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이날 특집

올해 5월은 참 공교롭게도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모두 주일과 겹쳤다. 어린이날은 대체 공휴일이라도 있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으니 "부처님, 실망이에요"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ㅡ,.ㅡ;;

그래서 본인은 지난 5월 5일엔 이에 맞춰서 회중 찬송곡을 골랐다.
가사에 "어린아이 같은/처럼" 비유가 들어있는 것, 명랑한 분위기에 화자의 관점이 동심인 것들을 주로 골랐다.

오전에는 "예수께로 가면"(If I come to Jesus), "주와 같이 길 가는 것"(2절 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이 우선 선택됐다.
그 밖에 "나 주의 믿음 갖고"도 평소라면 오후에나 불렀을 곡이지만 이번에는 오전에 선택했다.

오후에는 "어린아이처럼 오라 하시네"(다시 살리라)를 골랐으며,
회중 찬송보다는 특송용에 더 가깝다만 실험적으로 "나는 비록 미약하나"(I may not be all that you are)를 불러 봤다.

한국어 가사는 "주는 나의 목자이시니" 이러면서 굉장히 점잖게 번역됐지만, 원래의 영어 가사는 "내가 겉으로는 보잘것없어도 난 주님의 자녀이다. 날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뒷담화 하지 마셈~"(Don't tease me or mistreat me. Don't abuse me. You can even talk about me but I'm still His child)..
보기보다 굉장히 애같은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어린이 찬송 "나는 진군하는 보병이나 ... 나는 주님의 군병"와 비슷한 구성이긴 한데, 레알 어린이 찬송을 고르는 것과는 양상이 약간 다르다. 진짜 어린이용 동화냐 성인용 동화냐의 차이와 비슷하다.
성경에서 어린아이 심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한 건 복음서의 묘사가 아주 유명하고, (마 18:3-5 등)
부정적으로 말한 것은 사랑장이 잘 알려져 있다. (고전 13:11) 심지어 사탄의 인형 3 영화에서도 군사학교에 입학한 앤디한테 교장이 저 구절을 인용했을 정도이다.

그 밖에도..

  • 새해에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 석가탄신일과 겹쳤던 주일엔 "나는 인생의 산과 들 방황하며"
  • 야유회? 수련회?를 가서는 좀 더 자연을 묘사하고 있는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 교회 대청소를 앞두고는 가사에 "힘써 일하세"가 있는 열심과 헌신 카테고리의 곡
  • 간증 집회 전에는 "지금까지 지내 온 것", "날 구원하신 것 감사"..
  • 세월호 참사 때는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작사자도 가족을 선박 사고로 잃고서 이 가사를 지었음)
  • 현충일, 광복절, 6·25 같은 이벤트와 가까울 때는 "어느 민족 누구게나"

요런 매뉴얼이 구축되어 있다.
본인은 전문적인 연주자나 작곡자가 아니지만, 이미 있는 곡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골라 내는 것만으로도 맡은 직분에 대한 자긍심을 느낀다. 이런 고정된 이벤트 말고도 그 날 주보에 기재된 성경 암송 구절이나 읽어보세요 묵상 내용과 관계가 있는 곡을 발굴해 낸 적도 있었다.

2. 특송

교회 예배 때 온 회중이 즉석에서 제창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게 게임의 초당 수십 프레임 급 실시간 렌더링이라면,
한 곡을 집중적으로 연습해서 부르는 찬양대 '특송/합창'은 1프레임 당 긴 시간이 걸리는 영화 CG의 오프라인 렌더링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영역이 다르다.

특송을 부를 때는 회중 찬송 수준에서 실현되지 못하는 화음 성부, 돌림노래 같은 것을 모두 반영해서 더 공을 들여서 찬송을 부를 수 있다.
교회에 비치된 찬송가에는 없는 곡을 준비해서 부를 수도 있으며, 책에 있더라도 단선악보뿐이라면 중창/합창용 악보를 따로 구해서 부를 수도 있다.

즉, 특송은 '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음과 같이 특별한 실험을 시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특송곡은 다음 중 한 출처를 통해 결정된다.

  • 책에 없는 신곡 도입
  • 책에 있지만 불린 적 없는 신곡 개척
  • 책에 있는 친숙한 곡이지만 부르는 방식을 강화· 개량

전주· 간주까지 다 갖추고 있고 그냥 악보에 있는 대로만 부르면 되는 합창곡이 아니라 단순한 곡이라면 다음과 같은 강화· 개량을 한다.

  • 가사나 박자· 멜로디가 비슷한 관련곡들 메들리 편성
  • 간주 중에 가사와 관련된 성경 구절 낭송 삽입
  • 여건이 되면 피아노 외의 다른 보조 악기 동원 (플루트, 바이올린, 색소폰, 기타..)
  • 단선악보라면 악보를 읽어보고 자체적으로 화음 넣기

그리고 1년에 한 번 정도는 이런 것도 시도한다.

  • 전원 무악보 암송: 그 대신 이때는 다른 음악적인 난이도는 최대한 낮춘다.
  • 반주자도 같이: 반주자에게도 강단에 설 기회를 준다. 다른 임시 반주자를 섭외하거나 아예 무반주 아카펠라를 해서.

청년부 특송 지휘를 몇 년 해 보니 운영 원칙이랄까 매뉴얼이 얼추 이렇게 정리된다.
난 교회 찬양대라고 해서 틀이 박힌 듯이 몽환적인 반주에다 변성기 안 지난 미소년들이 하얀 까운 걸치고 노래 부르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냥 평범한 방법론으로 어떤 찬송가 곡의 가사와 멜로디를 최대한 뽕을 뽑는 특송을 편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한편으로, 듣는 성도들에게는 관련 성경 말씀과 교리를 기억에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훌륭한 특송이라고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처럼 노래를 지어서 교리를 가르치는 건 아주 좋은 방법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02 08:32 2019/06/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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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자료 준비하느라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에 만들었던 그림인데.. 신기하게도 내 개인 블로그에다가는 아직까지 공개한 적이 없었구나!

성경은 안 그래도 삼위일체처럼 인간이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을 다루는 데다, 잠 26:4-5처럼 표현이 대놓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듯이 보이는 대목이 종종 나온다.
당장 몇 가지 예만 들어 봐도 "은혜와 사랑 VS 율법과 공의", "자유의지 VS 예정과 섭리" 같은 것 말이다. 편의상 "파랑 VS 빨강"이라고 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럴 때 성경의 전체 숲 그림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선택하는 방법은

  • 자기가 믿고 싶은 부분만 돌쇠같이 닥돌 해서 물의를 빚는다. (파랑 아니면 빨강. 다른 쪽은 무시)
  • 아니면 성경에서 일체의 색깔을 제거하고 비성경적인 중도로 빠진다. (회색)
  • 아예 보라, 분홍... 초록색을 내세우는 이상한 부류도 있다.

이 셋 중 하나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이때 가장 합리적인 솔루션은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충돌이 일어나는 경로는 평면이 아닌 입체교차로를 만들어 충돌을 해소시킨다.
빨강은 이 문맥과 대상에서 직접 적용되는 것이고, 파랑은 다른 문맥과 대상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타 문맥에서는 영적인 '적용'과 교훈, 유익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문자적인 해석은 아니다.

  • 크리스천도 살면서 많은 어려움과 환란을 겪지만(행 14:22), 그건 미래에 예고된 유대인의 대환란과는 전혀 다른 얘기이다.
  •  6천여 년 전의 6일 창조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창조 교리이지만, 세상의 창조가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 더 크게 현 세상 이전에는 다른 창조와 파멸, 다른 홍수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식.

내가 만들었던 그림 중에서 성경 노선도는 교리 논란이 없는 평범한 부류이니 기독교계 커뮤니티들에 굉장히 많이 퍼져 나갔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도 귀하고 소중한 책이라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고 난해한 구절, 교리적으로 모순되는 듯한 구절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 걸까?

성경보다 똑똑해서 자기가 성경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이상한 똑똑이가 아니라, 성경 안에서 똑똑한 진짜 똑똑이가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4/29 19:32 2019/04/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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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 관련 개념 복습

예전에도 신앙 관련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지만, 성경적으로 인간이 구원받는 길 내지 방법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는 알량한 믿음이라는 제일 바보같고 나약한 자유의지가 전부이다. 그것 말고 다른 어떤 외모나 스펙이나 능력도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예수 믿을 정도의 지적 능력조차도 없고 스스로 선과 악을 분간 자체를 할 수 없는 너무 어린 애들, 정신지체 박약아는.. 그냥 무조건 구원 받는다. 걔들도 따지고 보면 죄가 있지만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고.. 예수님을 믿을 능력이 없지만 그분을 거부할 능력도 없어서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없는 용어이지만 본인은 이 개념을 편의상 '특례 구원'이라고 일컬어 왔다. 이런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는 이 블로그를 찾아와서 이 글을 직접 읽을 정도의 분들에게는 해당사항 없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수학에다 비유하면 방정식의 근 중에서 그냥 너무 자명한 trivial solution과 비슷한 개념이다. 생물학으로 치면 무성 호흡/생식 같은..??

이런 논리를 따라, 본인은 어린아기들이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원죄 때문에, 혹은 유아세례를 안 받았기 때문에 지옥 간다는 말도 안 되는 교리를 일단 전혀 믿지 않고 부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너무 강조하는 나머지, 인간의 일체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선물 받으실 분?" / "저요, 저도 좀 주세요!"라고 응답하고 손 내미는 것도 자기의 의이고 선물에 대한 대가(!)인 것처럼 이상하게 몰아가는 설명도 배격한다.

'무조건적인 선택'과 '거부할 수 없는 은혜'는 앞서 언급했던 '특례 구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성립한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 상태를 '전적 타락'이라고까지 부르는 건 '글쎄요~' 싶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밖의 문맥에서는 인간이 얼마든지 제 발로 구원의 길을 거부하고 지옥 갈 수 있다. 그리고 그건 하나님의 전지전능이나 사랑이나 공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현상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하지 못하면 정말 온갖 골때리는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6· 25 대한해협 해전 때의 동해상의 북괴군 600명하고, 광주 5· 18 북괴군 600명을 헷갈리듯이 말이다.

직접적으로 동일한 문맥을 다루는 구절은 아니지만 눅 14:16-21 같은 비유 얘기를 봤을 때... 그리고 인류 역사와 지금 세상 현실을 고려했을 때..
추측하건대 미래에 하늘나라에 가 보면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보다는 특례 구원을 받은 사람이 훨씬 더 많긴 할 것 같다.

마치 증기 기관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의 동력원으로서는 완전히 도태했지만 발전소에서 전력 생산용으로는 압도 다수인 주류이듯이(화력, 원자력이 모두 증기 터빈을 돌리므로!)...
선박이 장거리 여객에서는 비행기에 밀려 완전히 도태했지만, 일반인들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물류에서는 여전히 본좌이듯이..

그때가 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지 못했던 큰 그림을 보게 되지 싶다. 민망하고 불편한 진실이지만,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을 가치가 없어서 외면하고 있는 죽음이 이 세상의 음지에서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있겠는가?

참 오랜만에 구원 기본 개념에 대해 복습해 보았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서도 얘기할 것이 많은데.. 시간과 지면 관계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구원만 받고 어리고 육신적인 신자에 대한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자꾸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의심하며, 심지어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식으로 잘못 생각하는 편이다.
자살은 인간이 저지르는 다른 끔찍하고 흉악한 죄들보다 특별히 다르게 취급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의롭게 자결했다고 구원을 얻지는 못하듯, 세상 비관해서 혹은 고문 당하는 게 두려워서 자살했다고 해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2. 성경과 세속 과학, 학문과의 관계

정말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실험만 하는 과학이라면, 그 알량한 방법론을 동원해서 신의 존재를 대놓고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는 없다. 사실은 교계에서 그렇게도 정죄하는 진화론을 절대무오한 진리라고 입증하지도 못한다. 그쪽 세계에서는 실험 결과에 따른 귀납적인 학설과 확률과 통계만이 있을 뿐이다.

원래 과학과 종교?신앙?은 서로 별개의 영역인 게 맞다. 그럼 창조니 진화니 하면서 싸울 필요가 없는 건가? 마냥 안심하면 되냐? 그렇지는 않다.
과학 그 자체는 자연 계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이기 때문에 가치 중립적이다. 잘 연구해서 나쁠 것 없다. 그러나 거짓되이 과학이라고 불리는 학설이 대놓고 신을 부정할 수는 없더라도, 그 사고방식이나 연구 방법론· 패러다임을 잘못 적용하여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할 수는 있다. 이게 파괴된 신자는 진짜 볼장 다 본다.

"성경에 어차피 요런 부분에는 오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나 성경의 존재 가치가 싹 부정되는 건 물론 아닐 거다. 하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 기록돼 있는 엄청나고 극단적인 예언들도 그렇게 정밀하게 문자 그대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거다. 비유와 교훈 등 우리에게 좋은 쪽만 재해석해서 받아들이면 된다. 히브리어를 보면 어떻게 그리스어를 보면 어떻고.."

요게 아주 위험하고 돼먹지 못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고 특정 부분만 분별 없이 무식하게 문자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물의를 빚는 교파 종파에 대해서도 본인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대안이 저런 지적 사기가 돼서는 안 된다. 본인은 성경은 세상의 여느 학문과 같은 방식으로 취급하고 접근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라고 믿는다.

3. 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된 구절

성경에는 "곡식 밟는 소의 입에다 마개를 씌우지 마라"(신 25:4, 가축이 적당히 자유롭게 먹으면서 일하게 해 줘라)가 의외로 신약에서 두 번이나 더 언급된다. (고전 9:9, 딤전 5:18) 주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의 보상과 관련된 문맥에서이다.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가 합 2:4에서 '자기'(his)가 빠진 바리에이션으로서 세 번 더 나온다. (롬 1:17, 갈 3:11, 히 10:37) 이에 덧붙여 "네 부모를 공경하라"도 십계명인 출 20:12뿐만 아니라 신 5:16, 엡 6:2에서 반복되며, 복음서에서도 인용 형태로 마태· 마가· 누가에 거듭 등장한다.

그런데 이것뿐만 아니라 뭔가 좀 생뚱맞아 보이는 구절도 성경에서 톱급으로 자주 거듭 반복해서 인용된 게 있다. 바로 시 110:1이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요한복음을 제외한 다른 세 복음서에서 연이어 copy & paste 수준이고(마 22:44, 막 12:36, 눅 20:43), 행 2:35와 히 1:13에서 추가로 나온다. 거기에다가 히 10:13도 재차 언급이라고 볼 수 있으니.. 횟수가 가히 압도적이다.

"소의 입마개"만치 인간의 실생활과 관련이 있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라"만치 보편적인 인륜을 다루지 않고,
그렇다고 "믿음으로 살리라"만치 인간의 구원과 관련이 있지도 않은 저 말은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언제 왜 한 말이고 문맥이 뭘까?

시간과 지면 관계상 저 구절의 모든 문맥과 의미를 강론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만 말하자면 저건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에게 한 말이다.
성경은 도덕 경전이나 역사 기록이나 복음과 구원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건 부가적인 2순위 이하의 목표일 뿐이다. 그 전에 하나님의 주 관심사와 성경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통치임을 알 수 있다. 세상 용어를 동원해서 표현하자면 다분히 정치적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은 온갖 시사· 종교 난제들을 가져와서 그분에게 질문을 했다. (부활의 때에 누구 아내? 율법에서 가장 큰 명령? 카이사르에게 납세? 등등등~) 떠보고 트집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로든, 아니면 정말 몰라서든지..

예수님은 그런 것쯤은 막힘없이 전부 즉답을 하셨고 사람들을 데꿀멍 시켰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 인간에게 물으신 건 단 하나였다.

"그럼 이제 내가 니들에게 하나 좀 물어 보마. 너희는 내 정체가 정확하게 무엇인 것 같냐? 시 110:1을 봐. 다윗이 자기 비속 후손을 보고 '주'라고 존대해서 부르는데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 뒤로 사람들은 버로우 타 버리고 더는 예수님에게 딴지를 걸지 못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시 110:1은 그 문맥에서 인용되었으며, 그게 복음서에 3회 반복해서 기록되었다.

또한, 나중에 배반당하고 체포된 뒤의 행적도 생각할 만하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다른 온갖 쓰잘데기없는 거짓 고소들에는 하나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너 정체가 뭐냐? 넌 정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물음에는 정말 솔직 담백하게 대답하셨기 때문이다. (마 26:62-65, 막 14:60-63, 눅 22:66-71)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믿기만을 바라셨다. 예수의 부활조차도 곧이곧대로 믿기 싫고, 그래도 역사 팩트와 후폭풍 증거까지 송두리째 외면할 수는 없으니 제자들의 자칭 예수 부활 "체험" 사건 이 따위로 둘러대는 짓 하지 말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슨 "P와 NP는 과연 동일할까?", "리만-제타 함수의 자명하지 않은 근은 실수부가 정말 몽땅 1/2일까?", 아니면 "광주에 과연 북괴 공작원들이 잔뜩 침투되었을까?" 같은 걸 묻지 않으신다.
그런 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연구해서 답을 구하든가 말든가 하면 되고, 그 전에 정말 똑바로 알아야 하는 건 그리 높은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너에게 예수는 어떤 분인가?" 하나이다.

요한복음은 시 110:1의 직접 인용은 없지만 기록 목적이 독자들 예수 믿게 하는 것(요 20:31)이라고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분명하게 대놓고 적어 놓았다.

4. 신앙 생활이 인간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는 것

예수 믿고 구원받은 뒤의 신앙 생활은 인간에게 철저하게 유리하게 짜인 것도 있고 불리한 구조로 된 것도 있다.
유리한 것은.. 뭔가 좋은 것을 사람이 "먼저" 받아서 동기 부여를 받은 뒤에, 그 다음에 사람 쪽에서 베풀고 헌신하고 인내하고 희생하는 구도라는 것이다.

먼저 구원부터 받고 나서 침례를 받든지 믿음의 선한 행위를 하든지 성장을 하든지가 그 다음에 이어진다.
일단 쉬고 나서, 달콤한 은혜의 말씀부터 먹고 나서, 즐기는 것부터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일을 하고 헌신한다. 일이 먼저가 아니다. 인간이 만든 세상 기업 중에 입사 후에 월급이건 일당이건 보수를 받고 나서 다음부터 일하는 곳이 있던가? 세상에서야 소득 주도 성장은 마치 "일단 서울대부터 보내 주면 나도 공부 열심히 할게요" 같은 미친 개소리이지만.. 성경적인 신앙 원리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다!

다른 대부분의 종교에서 최종 목적지, 만렙, 해탈의 경지라고 말하는 '구원' 내지 성인 성자(saint) 칭호가 이 바닥에서는 그냥 기본으로 따 놓은 당상이다. 근성 충전을 위해 일단 한 대 맞고 시작... 이 아니라 일단 구원부터 받고 시작이다.
창세기 1~2장의 천지 창조만 생각해 봐도 하나님은 6일간 일하고 나서 일곱째 날이 쉬는 날이었지만, 아담과 이브는 만들어지고 결혼하고 honeymoon부터 즐긴 뒤부터 동산 관리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리아와 마르다 얘기도 있다(눅 10:38-42).

그 반면, 인간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는 것, 혹은 이것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 사항도 있다.
신앙 생활이란 건 본질적으로 당장 보이고 들리는 대로, 편한 대로 직관적인 대로, 남들 다 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다. '바보 같아 보이고 손해 보는 듯이 보이는 좁은 길 역행'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결단과 행동은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직접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둬서 물리적인 여건이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을 하나님이 굳이 수습해 주고 undo 해 주시는 경우 역시 일반적으로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 생활이 무슨 공밀레 같은 신밀레 열정페이 착취는 절대 아니다.
인간이 인간의 본성· 성품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 단단하고 입에 쓴 말씀, 실행하기 힘든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먼저 다 당하고 겪어 놓았다. 그때는 이런 믿는 구석으로 요렇게 하면 된다고 선례, 모범, 샘플이 마련돼 있다.

어려운 시험 문제나 과제에 대해 원리, 예제, 유사한 기출문제, 힌트를 듬뿍 주긴 한다. 그러나 대놓고 정답을 가르쳐 주는 일은 결코 없으며, 하물며 시험 문제를 미리 유출해 줄 리는 절대 만무하다. 모든 과제는 자신의 문장을 써서 직접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절대로 '안알랴줌'인 것의 대표적인 예는.. 세대 경륜 급의 큰 그림 이상으로 각 개인의 구체적인 미래 예언,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시기이다. 나에게 내일 어떤 일이 닥칠지는 완전 랜덤 케바케이다.
그것만 좀 알면 딱 죽기 직전에만 예수 믿고 구원을 먹튀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인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꼼수 부리면서 편하게 살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겨우 그런 걸로 농락당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는 않으셨다.

자,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비교해 보면.. 신앙 생활 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드시는가, 어떤가?

5.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

  • 군대는 일반적으로 최악의 범죄라 여겨지는 살인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다. 하지만 자기 집 지키느라 불가피한 정당방위도 허용되는 마당에, 하물며 나라를 지키느라 지휘관의 명령대로 전쟁터에서 무장한 적군을 죽이는 것은 형법상의 살인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정반대로 숭고하고 영예로운 일이다.
  • 국정원 같은 첩보 기관은 "악에는 악으로 맞선다, 이이제이,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다. 절대악을 퇴치하기 위해 필요악 역할을 맡고, 작은 악을 동원해서 더 큰 악을 예방하는 궂은일을 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건 나쁜짓이며, 공산주의자 빨갱이들이나 사용하는 수법(거짓말, 위장 침투..)으로 여겨진다.
  • 끝으로 종교는 겉으로 언뜻 보이는 결과만 보자면 정신승리, 진영논리,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분야이다.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라는 과학 팩트는 "그럼 최초의 생명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를 설명하지 못한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무한순환을 끊으려면 결국 처음에 한 번은 비논리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예수 믿으면 물질적인 복 받고 부자 되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북한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극단적인 박해 지역이 아닌 한, 무조건 쫄딱 망하고 거지 되고 감옥에 갇히고 죽지도 않는다. 구원받아서 신분이 바뀌는 것과 개인이 물질적으로 잘 되거나 못 되는 건 별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경적인 건전한 경제관과 시스템이 갖춰져서 잘살게 되고 중산층이 늘고 부강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게으른 개인을 일일이 다 먹여 살려 주는 게 아니다.

예수 믿어서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은 영적 복을 받고, 설령 가난하더라도 그 처지만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 주님께서 내게 지금 당장 허락하신 처지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를 강하게 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할 수 있게 되는 건 별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이다.

"남들보다 가난하지만 난 영적으로는 부자.." 영이건 정신이건 이것도 정신승리라면 정신승리이다. 하지만 이건 아Q의 정신승리와 달리, 성경적인 근거와 보장이 돼 있는 건전한 정신승리인 것이다.
상대적 빈곤에 연연하는 사고방식부터가 달라져 있지 않으면 어차피 하나님이 물질을 아무리 많이 공급해 주셔도 인간은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면서 불만족 불평 악순환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4/21 08:33 2019/04/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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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주 통신망

인류는 19세기에 전깃줄을 이용한 전화라는 유선 통신 기술을 발명해 냈으며, 20세기 초에는 아예 전자기파를 이용한 장거리 무선 통신 기술까지 개발했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통신 위성 덕분에 아예 둥근 지구의 반대편으로 전화와 TV의 전파를 실시간으로 주고 받는 게 가능해졌다. 위성 생중계가 최초로 시작된 올림픽이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었다고 그런다.

그러니 유선 전화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무선 전화도 오래 전부터 있긴 했다. 단지 기계값과 시간 당 통화료가 아주 비싸기 때문에 자동차나 선박에 장착되는 사치품 내지 아주 특수한 물건으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말부터는 그냥 전국민 1인 1휴대전화 시대가 시작됐다. 이를 위해서 전국 곳곳에 휴대전화 기지국이 건설되었으며, 각종 건물과 지하철 내부에도 중계기가 설치되었다.

전깃줄 중에 진짜로 전기를 보내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굵은 송전선은 지상의 산들과 철탑 위로 아주 높고 길게 뻗어 있다. 요즘 만드는 도시들 내부에서는 지중화되어서 지하로 지난다.
다음으로, 동축 케이블이니 광섬유 케이블이니 하는 이름으로 데이터 통신을 담당하는 전깃줄들은 대륙과 대륙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바다 밑으로 쫙 깔려 있다. 해저 지진이 나서 이런 케이블이 파손되면 주변 국가들의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인간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구 곳곳에 깔아 놓은 통신 인프라를 생각하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민간보다는 군용에 더 가까운 레이더(radar) 관련 기술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레이더의 발명은 비행기의 발명 그 자체만큼이나 비행기의 운용· 관제 방식과 공중전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본에서는 자국인 과학자/공학자가 아주 훌륭한 레이더용 안테나(야기-우다 안테나)를 발명했는데, 그걸 군부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병크를 저질렀다. 그래서 정작 적국인 연합국(영국)이 그 기술을 활용해서 전쟁에서 일본을 관광 태웠다는 안습한 일화까지 전해진다.
레이더도 원래 레이저(laser)처럼 복잡한 단어들 이니셜로 만들어진 단어이지만, 지금은 그 자체가 새로운 형태소처럼 쓰인다.

그런데 경이로운 통신 기술은 지구 대 지구 스케일만 있는 게 아니다. 지구 대 우주 분야도 있다.
까놓고 말해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의 활동 동영상은 어떻게 해서 지구로 실시간 중계될 수 있었을까?
뉴 호라이즌스 호가 보낸 명왕성 사진은 어떻게 해서 지구로 잘 전달될 수 있었을까?
신호가 가는 데 편도로만 17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보이저 탐사선은 어떻게 지금도 지구와 교신이 되고 있을까?

우주로 나가려면 적도 근처에다 우주 센터와 발사대를 만들고 로켓만 죽어라고 쏴 올릴 게 아니라, 로켓에 실린 탐사선이 보내 주는 정보를 넙죽넙죽 잘 받기 위한 통신 시설도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NASA에서는 진작부터 Deep Space Network(심우주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전파 수신용 거대한 접시형 안테나 기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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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중반까지만 해도 우주는커녕 지구 표면의 남극이나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탐험하는 사람들과도 실시간 무선 통신이 가능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생사를 곧장 확인할 수 없었다. 주변 풍경 인증샷은 탐험가들이 카메라로 찍은 뒤에 무사 귀환할 때까지 필름을 반드시 잘 간수해야만 전해질 수 있었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 탐사가 그런 식으로 답답하게 진행되지 않고 전세계 텔레비전으로 전파를 타고 생중계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안테나 기지는 로켓이 실제로 발사되고 수많은 관중들이 몰리는 우주 센터보다는 존재감이 훨씬 덜하다. 하지만 이런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우주 탐사의 숨은 일등공신이라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NASA 내부에서 이 안테나 기지를 관리하는 부서는 '제트 추진 연구소'이다. 이름만 봐서는 만년 발사체 연구만 할 것 같은 곳에서 통신망까지 연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프라의 대부인 전 길남 박사/교수도 젊은 시절에 저기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저기는 비행기용 제트 엔진(터보 팬 같은..?)을 연구하는 곳이 전혀 아니다. 엄연히 산화제까지 같이 들어있는 우주 발사체용 로켓 엔진의 연구가 본업이다. 하지만 저 연구소가 처음 생겼던 당시에는 '로켓'이라는 단어가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이 저렇게 붙은 것이다.

비슷한 다른 예로는 IBM이 있다. 이름에 '컴퓨터, 정보' 같은 단어가 들어가기에는 역사가 너무 긴 기업인 관계로, 오늘날까지도 고작 '국제 사무용품 기기'라는.. 마치 국제시장 같은 매우 낡은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워낙 넘사벽급의 기술과 인지도를 자랑하는 세계구급 기업이니 이름 따위는 바꿀 필요가 없다.

제트 추진 연구소 때문에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다시 안테나 얘기로 돌아오기로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 기지에 만들어진 안테나는 지름이 30m대 내지 70m대까지 있을 정도로 매우 거대하다.
그리고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이 대략 120도대의 경도 간격으로 세 군데가 존재한다. 그래야 임의의 지표면에 도달한 전파가 지구의 자전에 구애받지 않고 셋 중 적어도 한 곳 이상에서 언제나 수신 가능하기 때문이다.

  •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 바스토우 모하비 사막 (UTC-08:00)
  • 스페인 마드리드 (UTC+01:00)
  •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UTC+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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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지구를 북극점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에서 세 기지가 감지 가능한 신호 영역을 나타낸 것이다.
가령,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신호를 최초로 잡아서 전세계에 타전한 곳은 미국이 아닌 오스트레일리아 기지였다. 미국에서도 잡히긴 했지만 저쪽이 신호가 더 또렷했다고 한다.

보행자와 차들로 북적대는 육지의 도로와 달리, 비행기가 순항하는 공중이나 배가 항해하는 공해는 장애물이 없다시피하다.
하물며 우주의 스케일은 지구를 훨씬 능가한다. 우주는 정말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방대 광대하게 텅 빈 공간이다. 태양계 행성들의 크기는 행성들 간의 거리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 탐사선은 한번 가속을 한 뒤엔 관성으로 한없이 등속 운동만 하면 되며, 전파도 그냥 조준만 잘 해서 쏴 주면 지구나 탐사선에 도착하는 건 그냥 시간 문제일 뿐이다. 다른 장애물에 부딪칠 걱정은 사실상 할 필요가 없다.

우주 공간에서 지구와 탐사선의 사이에 물리적인 장애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건 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외행성 탐사선의 경우, 지구와 워낙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파도 진행하는 동안 점점 넓게 퍼지고 신호가 약해진다. 게다가 지표면에서는 주변에 숱하게 돌아다니는 지구 발 노이즈들을 걸러내고 그 약한 우주 발 신호만 증폭해서 받아야 한다.

신호를 보낼 때야 지구에서 최신 설비로 최고 출력 고주파로 그나마 최대한 빵빵하게 쏘겠지만, 가녀린 탐사선에서 지구로 보낸 신호를 받는 것은 정말 보통일이 아닐 것 같다.
안테나가 괜히 저렇게 거대한 게 아니다. 그나마 지금은 기술의 발달 덕분에 옛날 같은 지름 70m짜리는 필요하지 않고 30m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런다.

그나마 보이저보다 나중에 더 최신 기술로 발사됐고 지구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뉴 호라이즌 호도 거기서 지구까지 전파가 도달하는 데 4~5시간을 잡아야 한다. 그런 propagation delay와는 별개로, 데이터의 전송 속도도 초당 수백 바이트, 1980년대의 2400~9600bps 모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거리가 너무 멀고, 탐사선의 전파 출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건 뭐 어쩔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탐사선은 자기 메모리에 저장해 놓은 수십 GB에 달하는 사진들을 지구로 찔끔찔금 보내느라 그야말로 세월아 네월아 애써야 했다.
propagation delay인 4~5시간만 지나고 나면 지구에서 인터넷 하듯이 고화질 명왕성 사진이 짠~ 뜨는 건 인류의 기술로는 아직 가능하지 않다.

지구가 둥글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빛의 속도조차도 느리다는 걸 실감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자기 전공과 생업에 대해서 무슨 생각이 들지 궁금해진다.
더 나아가 달 같은 데서 지구의 인터넷을 연계해서 쓰는 게 가능해질까? 흥미로운 상상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9/04/18 08:31 2019/04/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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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자동차 기반의 장거리 대중 교통수단으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라는 이원화된 시스템이 존재한다.
사실, 법적으로는 이들은 일반형 시외버스, 직행형 시외버스, 고속형 시외버스라는 세 부류로 나뉘는데, 고속형 시외버스가 고속버스라고 여러 모로 특별 취급을 받는 구도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외버스들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갈수록 직행화하고 고속버스와 형태가 비슷해지고 있다.

본인은 옛날 대학 시절에 경주에서 울진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없이 국도만 타느라 울진까지 가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렸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더구나 이런 지방 왕래 수요가 많을 리가 없으니, 버스도 무슨 완행 열차가 정차하듯이 온갖 시골 정류장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래야 수지가 맞을 것이다.

지방에서 시외버스는 원래 이런 식으로 운행되고 있다. 울진 같은 경북의 오지뿐만 아니라 당장 강원도의 전방에서 차가 없는 사람들의 이동을 책임지는 것도 시외버스가 유일하다. 화천· 양구 같은 곳에 철도가 있나, 공항이 있나? 동서울 터미널에 괜히 군인들이 우글거리는 게 아니다.

다만, 요즘은 집집마다 승용차를 굴리는 세상이며, 중소 규모 이상의 도시에는 철도 같은 대체제도 있다. 전국에 고속도로도 워낙 촘촘하게 많이 건설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버스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촘촘한 단거리 이동보다는 장거리를 어설픈 중간 경유 없이 승용차보다 더 빠르고 편하게 가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반형 완행 시외버스는 저런 시골 지방 말고는 없어지는 추세이다. 철도로 치면 간이역들이 갈수록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고속버스는 시외버스의 고급 특화 케이스이기 때문에 시외버스보다 노선이 훨씬 적다. 그 덕분인지 승차권 발매· 예매를 위한 단일 통합 전산망도 2000년대 초부터 시외버스보다 훨씬 더 잘 갖춰져 있었다. 과거 1980년대에 철도 승차권 전산 발매도 새마을호에 제일 먼저 적용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길이가 100km 이상이고, 전체 구간의 60% 이상을 고속도로로 달리는 노선에만 고속버스가 투입될 수 있다. 고속도로는 그 정의상 최대 속도가 100km/h 이상으로 정해진 곳이니 고속버스의 정의에는 속도와 거리에 모두 100이라는 숫자가 존재하는 셈이다.

경주-대구 사이에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노선이 모두 존재해서 서로 경쟁 중이다. 저기는 80km가 안 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100km 이상 규정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고속버스 노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중이다. 마치 이화여대 초등교육과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사립 기관이듯이 말이다. (국립 교육대들보다 먼저 존재했음)
뭐, 신경주 역에서 KTX를 타면 동대구 역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운임과 역 접근성 때문에 버스도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역이 시내에서 너무 멀므로..)

그리고 고속버스는 태생적으로 중간 정차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시점과 종점만 있는 시외버스라는 게 원래는 고속버스의 전유물이었다. 고속버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두세 시간 간격으로 정차하고, 아니면 시점 또는 종점과 동일한 지역에 소재한 정류장에 딱 한 번만 추가 정차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대구-서울 고속버스이다. 상행은 동대구 역 근처에 있는 터미널을 출발한 뒤에 서대구 정류장을 들렀다가 서울로 가며, 하행은 반대로 서대구 정류장을 들렀다가 터미널로 간다. 대구 시내 안에서 터미널과 정류장 사이만 왕복하는 용도로는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즉, 쟤들은 터미널을 출발하자마자 곧장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않는다. 굳이 대구 시내를 횡단해서 서대구 정류장을 경유하느라 고속버스의 표정속도가 하락하는 건 개인적으로 아쉽게 느끼는 점이다.
이 정도만이 고속버스에게 허용된다. 이런 고속버스와는 달리, 동서울을 출발한 직행 시외버스는 경주에서 승객을 하차시킨 뒤 포항까지도 간다.

다음으로 운임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고속버스는 시외버스보다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교통수단으로 간주되어 운임에다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즉, 원가 대비 차삯이 더 비싸다. 하지만 겨우 고속버스가 사치품인 것은 무슨 1970년대에 경부 고속도로라는 게 처음 생겼고 버스 안에 안내양까지 탑승하던 시절의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법리적으로 볼 때 부가세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고속버스에는 1991년인가 92년부터 우등이라는 등급이 생겨서 좌석 수가 더 적고 넓고 큼직한 대신, 더 비싼 버스가 등장했다. 열차는 상위 등급이 정차역 수가 적고 더 빨리 가는 반면, 고속버스는 처음부터 중간 무정차를 표방했기 때문에 우등이라고 해서 더 빠른 건 아니다. 그 대신 버스는 그 구조상 한 차량 안에서 특실/일등석(!) 같은 구분은 없다.

새마을호에 종아리 받침대가 달린 한국 철도 역사상 최고급 좌석이 등장한 것도 비슷하게 1990년대 초인 것으로 본인은 기억하는데.. 우등 고속을 의식한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우등 고속이 더 나중인지는 정확한 시기와 역학관계를 잘 모르겠다. 승차감과 좌석 앞뒤 간격은 철도인 새마을호가 더 낫고(특히 특실은!), 좌석과 팔걸이의 폭은 아예 2-1 배열인 우등 고속이 더 컸던 것으로 본인은 기억한다.

직행형 시외버스에도 우등형 좌석 차량이 있다. 단, 얘들은 앞뒤 간격이 우등 고속보다 약간 더 좁아서 28인승이 아닌 33인승이다.

고속버스 업계에서는 우등 고속이 생긴 지 25년 가까이 지난 2017년부터 우등보다도 더 고급스러운 21인승 프리미엄 우등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건 서울-부산 같은 소수 장거리 노선 말고는 막 보급되기 어려울 듯하다. 우리나라가 무슨 1000km짜리 노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속도의 향상 없이 내장재만 잔뜩 고급화해서 비싼 운임을 받는 건 타 교통수단 대비 경쟁력을 확보하기 곤란하다. 다만, 좌석에 콘센트나 폰 충전 단자가 있는 버스라면 개인적으로 귀가 약간 솔깃해지긴 한다!

지금이야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시외버스도 고속버스 못지않은 승차권 전산 발매 인프라를 갖췄고, 심지어 시내/광역버스처럼 교통카드 결제가 가능해지기도 했다. 줄 서서 창구에서 표 사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맨 처음에는 무인 예매 발권기라는 게 생겼고 2000년대 초반에는 홈티켓이 유행했는데, 이제는 그냥 모바일 승차권을 써도 된다.
그리고 고속버스도 무조건 한 차량으로 시점-종점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휴게소 환승이라는 것도 이미 10여 년 전에 생겼다.

그 전에 옛날에는 고속버스의 승차권 전산 발매 시스템이 통합돼 있지 않아서 일부 지역은 kobus, 일부 지역은 이지티켓(easyticket)으로 별도의 사이트를 이용해야 했다. 그 시절에 동영상 코덱들이 난립하고 휴대전화 충전 단자들이 통일돼 있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대구는 대도시에 걸맞지 않게 고속버스 터미널이 회사별로 찢어져 있던 것으로 악명 높았다. 동부/서부 이렇게 정말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진 게 아니라, 똑같이 동대구이고 그냥 한 블록 간격인데 회사가 관할하는 행선지별로 터미널이 찢어진 것이다. 더구나 이게 전산 시스템에도 반영돼서 '대구 한진', '대구 동양' 같은 식으로 찢어졌으니 병크가 따로 없었다.

그러다가 대구에 드디어 동대구 역과 연계되고 기존 동부 시외버스 정류장과 백화점까지 통합한 동대구 통합 고속버스 터미널이 완공됐으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진작에 그렇게 됐어야 했다.
이 추세라면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라는 두 체계는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합해도 되지 않나 싶다. 육군이 서부와 동부 전선 야전군(제1, 제3)을 통합해서 그냥 전방 담당 사령부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별다른 특권이 아니며 직행 시외버스와 고속형 시외버스의 경계가 굉장히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고속버스만 타 시외버스와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별로 없다. 단일 시외버스 체계에서 시골 지방을 위한 완행 아니면 직행 구분만 하면 될 것 같다. 차량과 전산망 말고 터미널 건물은 요즘 모든 지역들이 고속과 시외 구분 없이 통합해서 만드는 게 대세가 된 지 오래다.

한반도에 철도와 시내버스까지는 일제 시대에도 있었던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고속철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 고속도로와 고속버스라는 것은 그 시절을 넘어 할배 슬하의 1공화국 시절에도 없었다. 1970년대 박통 때에 와서야 등장했다.
사실, 일제 시대 경성 시내 사진을 봐도 길거리에 자동차와 노면전차까지는 다니지만, 길에 차선이 그어지고 신호등이 설치된 걸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미국 LA는 1940년대 모습이 이미 우리나라의 1970년대 이상 같고 자동차의 모양만이 옛날 디자인 같은데.. 참 대조적이다.

그렇게 길거리에 교통 시설이 아무것도 없다시피했기 때문에 미군정은 1946년에 자기 재량으로 한반도에서 자동차의 통행 방향을 좌측에서 우측으로 곧장 변경할 수 있었다. 자동차가 극히 드물던 시절, 고속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 치면 비행기를 타는 것 같은 희소한 경험이던 시절에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을지가 궁금하다.

또한 저것보다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운전석 옆에 안내양이 앉는 작은 의자가 있던 시절, 그리고 우등 고속의 오른쪽 맨 앞자리(3번)에 냉장고와 이동식 공중전화가 비치되어 있던 시절, 현대도 대우도 아닌 아시아 자동차 버스가 있던 시절도 개인적으로 문득 그리워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28 19:33 2019/03/2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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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중부 고속도로(37)는 중부 고속도로(35)의 서울-수도권 구간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건설된 고속도로이다.
도로를 확장해야겠는데 기존 도로는 다들 평지가 아닌 고가 교량 형태여서 그걸 건드릴 수는 없다. 그래서 옆에 도로를 더 만들게 됐다.

그럼 보통은 기존 도로는 전부 하행, 새 도로는 전부 상행.. 이런 식으로 개편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나, 중앙분리대를 제거하고 각종 도로 표지판들을 변경하고 진출입로를 이설하는 작업마저도 여의찮았는지 결국 기존 도로는 하나도 안 건드리고 그대로 놔 두게 됐다. "새 도로 추가.. 그 대신 새 도로는 중간에 진출입로가 없는 직행" 컨셉으로 제2중부 고속도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결과는 운전자들에게 "중부냐, 제2중부냐" 하는 눈치 게임으로 전가됐다.

중부와 제2중부가 병행하는 구간, 그리고 그 이북으로는 휴게소가 다음과 같이 3개가 존재한다.

(1) 마장 프리미엄 휴게소

중부와 제2중부 고속도로 사이의 섬이라는 꽤 적절한 위치에 굉장히 거대한 규모로.. 거의 복합 쇼핑센터 컨셉으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2013). 도로들보다 나중에 생겼다는 점으로 인해 진출입로에 입체 교차로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중부에서는 상행만(하남 방면), 제2중부에서는 하행(청주 방면)만 이 휴게소에 접근 가능하다.

즉, 두 고속도로에서 한 휴게소를 공유하지만 방향은 제각기 반쪽짜리이다. 그리고 방향별로 주차장이 서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들어왔던 차량이 방향을 바꿔서 나갈 수는 없다.

(2) 이천 휴게소

상행과 하행 휴게소가 제각기 3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상행은 두 고속도로가 공유하며, 나갈 때 중부와 제2중부 정도야 도로를 바꿔치기 할 수도 있다.
하행은 마장 프리미엄 휴게소와 아주 가까이 있는데, 얘는 오로지 중부 고속도로의 하행만 접근 가능하고 제2중부는 해당사항 없다. 그쪽은 어차피 마장 휴게소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 구간에서 중부+상행이라면 마장과 이천 휴게소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중부+상행과 중부+하행은 이천 휴게소만 이용 가능하며, 제2중부+하행은 마장 휴게소만 이용 가능하다.

(3) 하남드림(구 만남의 광장) 휴게소

경부 고속도로에 있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의 중부 고속도로 버전이다. 과거에는 실제로 이름도 동일하게 '만남의 광장'이었다고 한다.
다만, 얘가 경부 고속도로 만남의 광장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 경부 만남의 광장은 그래도 과거에 톨게이트가 있었고 현재도 시내 도로와 고속도로의 경계인 지점에 있는 반면, 하남드림은 앞뒤로 여전히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상에 있다.
  • 경부 만남의 광장은 상행 방면에서는 진입할 수 없는 반면, 하남드림은 상행 방면에서도 지하도를 거쳐서 진입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부의 상행에서는 죽전 휴게소가 마지막 휴게소이지만 중부의 상행은 하남드림이 마지막 휴게소이다.
그리고 이 두 만남의 광장은 모두 서울/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요금제가 개방식으로 바뀐 구간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들을 진행 방향별로 분리하지 않으며, 나갈 때는 상행이나 하행 아무데나 자유롭게 나가면 된다. 단지, 경부 만남의 광장은 들어오는 게 하행에서만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21 08:31 2019/03/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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