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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전 면허의 종류

자동차를 포함해 모든 교통수단들은 잘 알다시피 관련 면허를 취득한 사람만이 운전하고 운행할 수 있는 물건이다.
특수한 유형의 자동차를 몰기 위해 추가로 따야 하는 자격증이 있긴 하다. (버스 운전 자격, 위험물 차량 취급 자격..) 하지만 아무 특성 없고 제일 몰기 쉬운 자그마한 경차라도, 아니 오토바이라도 몰기 위해서는 면허를 따야 한다.
자격증은 보유자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긍정 관점이지만, 면허는 반대로 이를 보유하지 않은 사람은 관련 행위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 관점이 더 강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면허가 다 같은 면허는 아니다. 몰 수 있는 차체의 크기 내지 승차 인원수에 따라 종류가 갈리며, 다음으로 운전의 성격에 따라서 종류가 갈린다. 자동차 운전 면허의 경우, 보통/대형은 차체의 종류를 구분하며, 1종/2종은 운전 성격을 구분한다. 2종 면허에 같이 붙는 편인 '자동'은 면허 조건을 명시하는 부가적인 옵션 중 하나이다.

운전 성격은 무엇이냐 하면 비영리 자가용 운전이냐, 아니면 금전적인 이득이 걸린 영업용 운전이냐 하는 것이다. 영어에서 명사가 셀 수 있는 개념인지 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따진다면(가산· 불가산), 교통수단의 면허에서 매우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자가용/영업용 종류이다.

자동차 면허에서 1종은 원래 비행기로 치면 사업용 내지 운송용에 대응하는 전용 면허였다. 그랬는데 자동차가 워낙 흔해지면서 그런 구분이 많이 옅어졌기 때문에 1종은 그냥 대형+수동 연계 면허인 것처럼 굳어졌다. 그러니 요즘은 대형 면허 없이 보통만으로 긴급자동차 승합차를 몰 수 있고, 2종 면허만으로도 '바사아자' 번호판의 택시 기사가 될 수 있게 조건이 완화되고 있다.

잘 알다시피 1종 보통으로도 트럭은 대형 버스 뺨치는 크기인 무려 11톤급까지 몰 수 있다. 2종은 4.5톤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미 중형 버스를 능가하는 크기이다. 그런 트럭은 차가 아무리 커 봤자 사람이 3명밖에 안 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1종 보통으로 승합차는 아담한 15인승 봉고차급까지만 몰 수 있고, 중형 버스를 운전하려면 1종 대형 먼허가 필요하다. 차량 크기와 승차 인원에 이런 관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독자 여러분은 영업용 자동차 중에 제일 몰고 싶은 차가 무엇인가? 택시는 제일 잽싸고 날렵한 난폭운전 총알 기동이 가능=_=하고.. 대형 버스는 왕창 크고 사람을 많이 태운 상태에서 '버스 전용 차로'라는 메리트를 이용해서 꽤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대형 트럭은 차종에 따라서는 버스보다도 더 거대하며, 운전대가 압도적으로 제일 높고 뒷좌석 내지 천장의 아늑한 개인 공간(침대 또는 다락방)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속도와 통행 우선순위는 제일 낮고 둔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무슨 차량을 몰든 운전은 재미있다. 하지만 쉬고 싶을 때 못 쉬고 운행 스케줄을 맞춰서 불철주야 강제로 운전해야 한다면 그것만 한 고문도 별로 없지 싶다.

2. 차들의 크기와 폭

난 대형 시내버스와 고속· 시외· 관광버스는 동일한 반경의 타이어를 사용하는 대형 버스이고 크기가 거의 같지 않은가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제원표를 보니 시내버스는 대형이라 해도 길이가 11m급인 반면, 고속버스 중에는 12m가 넘는 놈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높기도 후자가 좀 더 높다.

"도로의 구조ㆍ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제5조, 도로법 시행령 제79조, 자동차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제4조"에 따르면, 국내에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의 최대 크기 한계는 길이 13m, 폭 2.5m, 높이 4m이다. 굴절 버스나 트레일러처럼 중간에 꺾임이 있는 놈은 좀 더 길어도 되지만, 꺾임이 없는 단일 차체의 한계는 저렇다.
그리고 무게는 축당 10톤, 전체 40톤이 한계인데, 이건 사람을 태우는 버스는 무게 따위 걱정할 필요 없고 트럭이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현대 유니버스, 기아 그랜버드 같은 버스의 최고 사양을 보면 길이는 거의 12.1 ~ 12.5m에 달하고 폭은 2.49m, 높이는 3.3 ~ 3.5m여서 법적 한계에 거의 근접해 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제일 큰 버스이다. 엔진은 1미터당 1000cc씩 잡기라도 했는지 역시 12000cc를 넘는 배기량에 400마력 이상이다.
화물차 역시 트레일러 말고 25톤 트럭(현대 엑시언트), 또는 그보다 작은 트럭이라도 초장축 모델을 보면 이 한계에 근접해 있다.

이 크기와 무게를 초월하는 차량은 일반 차량들처럼 등록해서 평범한 번호판을 받고 일반 도로를 주행할 수 없다. 공항 활주로, 탄광 내부, 놀이공원 내부 같은 자기 영역에서만 주행 가능하며, 이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또한 군용차 중에서도 승용차나 트럭을 넘어 아예 탱크나 자주포처럼 무기에 더 가까운 건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는 물건이 아니다. 그거 조종 특기는 군에서든 사회에서든 자동차 운전 면허와 동급으로 인정되지도 않으며 별개로 취급된다.

남자라면 왕창 빠른 차 아니면, 이렇게 엄청나게 큰 차를 몰아야 간지가 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 에너지 1/2 mv^2 중에서 m과 v 둘 중 적어도 하나는 왕창 큰 거 말이다.
참고로 국내 기준으로 경차는 길이 3.6m, 폭 1.6m, 높이 2m, 엔진 배기량 1000cc 이내이니 얼마나 작은지가 비교된다..;;

한편, 자동차가 폭의 한계가 저렇게 2m대에 머물러 있는 반면, 철도 차량은 표준궤 기준으로 3m대에서 논다.
"철도차량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과 관련 별첨 자료를 보면 집전 장치를 제외한 높이의 한계는 4.5m이고, 폭은 3.4m가 한계이다. 다만, 차량의 상부와 하부는 폭의 한계가 3.2m대로 약간 줄어든다.
그 좁은 궤도 위에 자동차보다 훨씬 더 뚱뚱한 차량이 올라가서 달린다는 걸 생각하면, 철도가 공간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쓴다는 걸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0 08:32 2019/12/2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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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지금과 같은 고속도로 번호 체계는 2001년에 전면 개편되어 그 해 8월 2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체계는 무식하게 개통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는 게 아니라, 숫자의 번호만 보고도 이 도로가 횡축인지(0부터 시작하는 짝수) 종축(5부터 시작하는 홀수)인지, 대략 어느 위치를 지나는지(대소 비교), 간선인지 지선인지(2~3자리), 지역 순환선인지 같은 것을 얼추 알 수 있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체계는 첫 도입됐던 당시에는 굉장히 참신하고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2004년 버스 노선 개편처럼 말이다. 홀짝으로 종축· 횡축을 구분하는 것은 기존 국도의 번호 체계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이제 고속도로의 번호도 그런 관행을 더 깔끔하게 따르게 되었다. 고속도로도 앞으로 국도처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많이 깔릴 것을 미리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체계의 큰 특징은 개통 시기나 사업 주체가 다르더라도 같은 선형이면 동일한 도로라고 보고 동일한 번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산-천안 고속도로는 혼자 따로 노는 민자이지만 기존 호남 고속도로와 동일하게 25번이며, 부산-대구 민자 고속도로도 기존 중앙 고속도로와 동일하게 55번이다.

이때 서울-안산 고속도로가 서해안 고속도로(15)로 편입됐으며, 반대로 처음에 서해안 고속도로 소속이던 안산-신갈 구간은 깔끔하게 영동 고속도로(50)의 서쪽 구간으로 넘겨서 각각 종축과 횡축으로 선형을 일치시켰다.

이는 마치 서울 지하철 4호선에다가 코레일 과천선과 안산선을 몽땅 하늘색으로 엮어서 '수도권 전철 4호선'이라고 표기한 것과 비슷한 통합이다. 어차피 열차들이 직통 운행을 하니까 말이다. 지하철과 국철의 구분을 없애고,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지하철 고유색인 빨강이 사라진 게 2000년 4월부터이다.

그리고 철도계 역시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동일선상의 직결 운행이 예정된 전철들은 같은 색깔로 표기하고 있다. 경의선과 중앙선이 대표적인 예이고, 지금 수인선도 분당선과 동일하게 노란색으로 표기하고 있다.
김포 경전철의 경우, 비록 시스템적으로 서울 지하철 9호선과 직결 운행을 할 수는 없지만 개념적으로 9호선의 연장선상이라고 보고 9호선과 동일한 금색/커피색을 내세우는 중이다.

시스템이 그런 식으로 바뀌었는데..
고속도로의 경우 요즘 하도 많이 생기고 있어서 정신이 없다. 옛날의 경부라든가 서해안, 중앙, 중부내륙처럼 장거리 간선들을 작정하고 바둑판 형태로 만들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그 대신 여기저기 찔끔찔끔, 복잡한 선형으로 개통하는 게 많은지라, 번호를 어떻게 부여하면 좋을지 직관적으로 예상이 안 되는 게 늘었다. 가령, 15 서해안으로도 모자라서 151(서천-공주)에다 17(평택-파주), 171(용인-서울) 등등..
전라선 철도의 고속도로 버전인 순천-완주는 27이고, 구리-포천은 29..

사실, 제2중부 고속도로도 지금 같은 컨벤션이라면 37보다는 351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결코 짧지 않은 영천-상주조차 301이 됐는데 말이다. 그리고 두 자리 수 번호 중에 x1, x3은 앞으로 쓰일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기왕 이 번호 체계가 깔끔하게 유지되려면 미래에 건설될 고속도로들의 전체 큰 그림에 대한 굉장한 선견지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프로그래밍에다 비유하면, 미래에 구현될 기능까지 다 염두에 두고 부모 클래스와 가상 함수들을 미리 세밀하게 설계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끝으로, 고속도로의 이름은 기점과 종점 도시를 연결하는 형태로 지어지곤 하는데, 어디가 기점이고 어디가 종점일까? 철도만 해도 역의 번호를 부여하는 순서가(상· 하행) 노선별로 굉장히 케바케 뒤죽박죽인데, 비슷한 문제가 고속도로의 작명 방식에도 존재한다.
가나다 순서인지, 서울에서 가까운 순서인지, 바다에서 가까운 순서인지.. 301은 공식 명칭이 영천-상주가 아니라 상주-영천인 걸 보면.. 도대체 원칙이 무엇인지 난 잘 모르겠다.

옛날에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생겼던 시절에는 '간'이라는 단어까지 있어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였는데, 그게 '경부 고속도로'라고 축약되었고, 이후의 고속도로들은 다시 도시 이름을 full로 붙이는 게 유행이 됐다.
가령, 60번 고속도로는 잠시 '경춘 고속도로'라고 불린 적이 있었지만 더 연장된 뒤부터는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됐다.

사실, 한국 도로 공사에서는 궁극적으로는 고속도로에도 이름을 없애고 국도처럼 번호만으로 모든 것을 식별하려 하고 있다. 물론 예전의 오랜 관습이라든가 사업 구간의 차이에 따른 구분 때문에 이름이 가까운 미래에 완전히 없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뿐만 아니라 재래식 톨게이트도 없애는 게 궁극적인 장기 계획이니.. 우리나라의 교통 시스템은 이것저것 바뀌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름 다음에는 '고속도로'라는 칭호를 붙이고, 번호 다음에는 '고속국도'를 붙이는 게 어떨까 싶다. 예를 들어 "호남 고속도로와 논산천안 고속도로는 모두 고속국도 25호선(또는 25번 고속국도)에 속한 구간이다" 같은 식이다.

한편, 도로 말고 서울의 한강 교량들은 처음에는 개통 순서대로 "제n 한강교"라고 이름을 붙여 왔다. 그러다가 다리의 수가 늘어나고 번호가 뒤죽박죽 꼬여 가자, 번호만 상류에서 하류 순으로 오름차순 리넘버링하는 식으로 개편하지 않았다. 번호 자체를 없애고 마포, 반포, 한남처럼 교량마다 고유한 이름을 붙이게 됐다. 1980년대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취한 조치이다.

교량이야 도로처럼 선이 아니라 강의 특정 지점이라는 점에 가까운 개념이니, 고유한 이름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도 나들목들까지 이름을 싹 없애고 번호만 붙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다만, 나들목도 외국인이 알아보기 쉽게 번호를 병기하자는 의견도 소수나마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07 08:33 2019/12/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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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부 고속도로 금토 JC

용인-서울 고속도로(171)가 개통한 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2009년 7월이니 서울 지하철 9호선의 1차 개통일과 아주 비슷하다.

근처의 경부 고속도로는 수원 이북으로 서울 TG를 넘어 판교 부근까지 10km가 넘게 곧은 직선이다. (다만, 오르내리막 기복은 이따금씩 있음) 한때 비상 활주로를 표방했을 정도로 직선이며, 게다가 지리적으로도 경도의 변화가 거의 없이 위도만 변하는 그 직선이다.
그에 비해 서쪽의 용인-서울 고속도로는 서수지-서분당 등의 구간도 적당히 구불구불한 곡선인 것이 인상적이다.

또한, 얘는 길이가 어중간하게 짧아서 휴게소가 전무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분기점이 전혀 없는 것도 이례적이었다. 허나 바로 작년 말에 경부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금토 분기점이 개통되면서 이 역시 옛말이 됐다.

두 고속도로는 X자 모양으로 교차한다. 경부 하행에서 용인 하행으로 갈아탈 수 있고, 반대로 용인 상행에서 경부 상행으로 갈아탈 수 있다. 다시 말해, 헌릉 IC를 거치지 않고도 용인 고속도로를 드나들 수 있게 해 준다.
금토 JC는 이 두 길목만 존재하는 아주 자그마한 분기점이다. 하행이 더 만들기 쉬워서 작년 여름에 먼저 개통하고, 상행은 산을 깎고서 270도 꼬부랑 턴을 해야 하는 관계로 어려워서 반 년 남짓 늦게 개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머지 방향이야.. 뭐 상행과 하행을 전환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용인 하행에서 경부 하행으로 간다거나, 경부 상행에서 용인 상행의 헌릉IC 방면으로 가는 길목도.. 딱히 가성비가 맞지 않다고 여겨져서 만들지 않았다. 정말 최소한의 조치만 취한 셈이다.

금토 JC는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교차하는 판교 JC를 제치고, 경부 고속도로의 최북단에 있는 분기점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뭐, 판교 JC는 X가 아닌 +형이며, 경부에서는 상행만이 저쪽으로 갈아탈 수 있고, 외곽순환에서는 경부의 하행으로만 갈아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2. 톨게이트가 이원화된 IC

폐쇄식 고속도로에는 고속도로와 일반 도로를 연결하는 IC(나들목)가 있고, 그 길목에는 톨게이트(요금소)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1IC 1TG가 원칙(?)이며, 고속도로에 진입한 차량은 톨게이트를 통과한 뒤에 상· 하행 방향을 선택하여 분기하게 된다.

그런데 드물게 톨게이트가 둘 달린 IC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한 지역에서 동서남북 접두사가 붙은 IC가 여럿 흩어져 있는 것 말고, 한 IC에 대한 톨게이트가 복수인 것 말이다.
경부 고속도로 수원신갈 IC의 경우.. 교통량의 증가를 감당치 못해서 원래 있던 비스듬한 IC는 고속도로 진입 전용으로 바꾸고, 더 남쪽에 시내 진출 전용 IC를 추가로 만들게 됐다. 즉, 수원신갈 TG 쌍은 각 방향별 일방통행 형태로 바뀌었다. 2010년대의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중앙 고속도로 제천 IC도 톨게이트가 둘인데, 여기에는 좀 더 기괴한 사연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렵지만, 처음에 중앙 고속도로의 그쪽 구간은 왕복 2차로에다가 '개방식' 요금제 형태로 건설되고 있었다.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만들기 시작했나 모르겠다. 중앙 고속도로가 최초로 만들어지던 모습을 보는 건 마치 스타크래프트나 Doom의 먼 개발 초기 알파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지 싶다.

그러다가 한창 건설을 하던 중에 감사원의 지적으로 인해 법이 바뀌었다. 1992년 4월엔 앞으로 모든 고속도로는 처음부터 최소한 4차로 이상의 형태로 만들 것이고 지금 당장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고속도로에도 이 원칙을 소급 적용한다는 건설부의 방침이 내려왔다. 그래서 중앙 역시 지금처럼 폐쇄식 4차로라는 정상적인 형태로 뒤늦게 뜯어고치게 됐다.

원래 중앙 고속도로(수직)의 제천 IC 밑으로는 국도 5호선(수평)이 지났으며, 이들은 별다른 톨게이트 없이 평범하게(?) 입체 교차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뒤늦게 확장하고 폐쇄식으로 고치면서, 고속도로와 교차하던 국도의 양 옆에 톨게이트가 설치됐다.

이미 입체교차로 자체는 건재하고 있으니 방향별로 단일 톨게이트로 안내하는 길을 따로 또 만드는 수고를 하지는 않은 것이다. 국도의 일부 구간이 톨게이트로 가로막혀 버렸기 때문에 국도 5호선의 기존 구간은 장평천 이남으로 살짝 이설되었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서쪽과 동쪽의 어느 톨게이트로 진입하더라도 중앙 고속도로의 상· 하행 아무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진출 역시 상· 하행 어느 쪽에서도 동쪽과 서쪽 아무 톨게이트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다.
지도를 보면 인터체인지가 사통팔달 통하는 전형적인 클로버형인데, 서남쪽만(3사분면..;; ) 장평천 때문에 공간이 부족해서인지.. 고속도로 하행에서 국도 동쪽으로 진출하는 연결선의 선형이 좀 다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듯, 교통량 증가 때문이든, 출생의 비밀 때문이든 톨게이트가 2개 이상이 된 고속도로 나들목이 또 있는지 궁금하다.

  • 중부(35): 꽤 옛날에 만들어졌지만 서울· 수도권과 가까운 위치 덕분에 2차로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애초부터 4차로로 만들어졌다. 다만, 이것마저도 너무 비좁아져서 제2중부(37)를 또 만들게 됐을 뿐이다.
  • 중부내륙(45)/통영대전(35)/서해안(15): 역시 처음부터 4차로로 만들어졌거나, 타이밍의 특성상 도중 설계 변경의 타격을 별로 입지 않은 듯하다.
  • 옛 88 올림픽(12): 전구간 2차로로 당당히 만들어졌으며, 알다시피 도로의 저퀄리티와 높은 사고율 때문에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큰 악명을 떨쳤다. 영동 고속도로도 마찬가지였지만 얘는 88보다는 훨씬 일찍 새 도로로 대체됐다.
  • 중앙(55): 얘만 타이밍이 영 좋지 않았는지 거의 혼자 독박 쓰고 낭패를 본 듯하다. 1990년대 초까지 2차로로 길을 한창 닦고 있던 중에 대판 뜯어고쳐야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 처음부터 6, 8차로급으로 지어진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드문 것 같다.
경부 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은 4차로이다가 6을 거치지 않고 곧장 8차로로 확장되고 그 뒤에 서울 구간은 10차로로까지 확장되긴 했지만, 오리지널은 4였다.

외곽순환 고속도로도 지금이야 전구간이 8차로이고 동남쪽의 중부 고속도로와 만나는 일부 구간은 10차로이기까지 하다만.. 먼 옛날에 판교-구리 고속도로 형태로 처음 만들어질 때는 당시 대한뉴스 화면을 보면 역시나 4차로(...)였다. 그나마 용인-서울은 비교적 최근에 그것도 수도권에 건설된 덕분에 처음부터 6차로였다.
철도를 처음부터 복복선으로 부설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만큼이나.. 기존 도로를 연장· 확장하는 게 아닌 이상 처음부터 왕창 거대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닌 듯하다.

다만, 요즘 세상에 어지간한 오지가 아닌 이상이야 고속도로를 겨우 2차로로 만드는 건, 요즘 세상에 철도를 꼴랑 단선으로 만드는 것과도 같은 소탐대실 단견일 것이다.
가령,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대교'라는 이름이 붙었으면서 왕복 2차로인 교량으로 내가 아는 건, 민통선 안의 교동도를 연결하는 교동대교가 유일하다. 그 정도라면 교통 수요 대비 원가 절감을 위해 2차로로 만든 걸 납득하겠다.;;

3. 천안에 있는 휴게소와 나들목

천안은 철도에서는 장항선이 분기하는 곳이며, 고속도로에서는 호남 방면의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분기하는 곳이다.
그리고 북부의 북천안 IC 인근은 수원-신갈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비상 활주로 공용 구간이었기 때문에 도로가 곧은 직선이기도 하다.

경부 고속도로의 행정구역상 천안 구간에는 북쪽에서 남쪽 순으로 나열했을 때 입장, 망향, 천안삼거리, 천안이라는 4개의 휴게소가 있다.
그런데 얘들은 그 순서대로 각각 상행, 하행, 상행, 하행에만 있다. 양방향에 모두 존재하는 휴게소는 없다.
또한, 각 휴게소들 사이에 입장-(북천안)-망향-(천안)-천안삼거리-(목천)-천안의 순으로 IC(나들목)가 등장한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입장 휴게소는 자가용보다는 대형 화물차의 운전자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서 주차 공간이 넉넉하며, 주변의 다른 휴게소들보다 인지도가 낮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덜 혼잡하다는 장점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건물과 주차장이 도로와 일렬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곤 한데, 얘는 휴게소 부지가 도로와는 수직으로 확보되어 있다. 휴게 시설들이 고속도로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망향 휴게소는 인근에 '망향의 동산'이라는 일종의 국립묘지가 있어서 이름이 저렇게 붙었다. 저기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묘지일 뿐, 현충원은 아니기 때문에 꼭 국가유공자나 군· 경만 묻혀 있는 건 아니다. 그 대신 타지에서 죽은 재외 동포가 묻히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1983년 대한 항공 007편 격추 사고 희생자 위령비도 저기 안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양재 시민의 숲에 있는 건 1987년의 858편 폭발 사고 희생자 위령비)

천안삼거리 휴게소는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다른 특이점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저기가 무슨 계기로 언제부터 호두과자로 유명해졌나 모르겠다.

경부 고속도로 천안 북부 구간은 마치 수원-신갈-죽전 일대처럼 도로가 북쪽으로 곧게 쫙 뻗어 있어서 과거에 비상 활주로로도 쓰이던 구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고속도로를 활주로로 공용하던 관행이 없어졌으며, 거기에는 북천안 IC까지 생겼기 때문에 비행기가 뜨고 내릴 가능성은 더 확실하게 없어졌다.

끝으로.. 영동 고속도로의 마성 IC가 에버랜드를 위한 IC라면, 남쪽에 있는 목천 IC는 독립 기념관을 위한 IC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마성은 1976년에, 그리고 목천은 1986년에 해당 시설들이 생긴 뒤에 추가로 만들어졌다.

4. 중앙 고속도로 단양 휴게소

지난 추석에 고향을 다녀올 때는 정체 구간을 우회하느라 모처럼 중앙 고속도로를 실제로 달려 보게 됐다.
그 와중에 화장실(급똥...;;ㄲㄲㄲ) 때문에 단양 휴게소를 우연히 들렀는데, 마침 얘도 공교롭게도 평범한 휴게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본선상에서 휴게소 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휴게소 진입로가 무슨 어지간한 나들목/톨게이트의 진입로 같았다. 거의 ? 모양으로 한참을 꼬불꼬불 올라간 뒤에야 휴게소 건물이 나타났다.
휴게소를 언덕을 깎아서 옆에 가까이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언덕 위에다 만들었다. 그래서 본선과의 높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진출입로가 불가피하게 길어진 것이다. 이런 휴게소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휴게소를 굳이 그런 형태로 힘들게 만든 이유는? 여기 일대는 주변이 온통 산이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상행과 하행이 서로 7km에 가깝게 떨어져 있으며, 둘 다 형태가 저렇다.;; (특히 경부 고속도로 입장 휴게소처럼 휴게소 건물이 고속도로와는 수직으로 배치) 이럴 거면 얘도 상· 하행 통합으로 큼직한 놈 하나만 만들지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단양 휴게소는 접근하기가 조금 힘든 대신, 다른 여느 휴게소에는 없는 유니크템을 보유하고 있다.
하행 방면의 경우, 건물 뒤에 넓은 풀밭과 '힐링 테마 공원'이라는 게 있다. 자그마한 야외 민속 박물관 컨셉으로 물레방아, 절구, 장승, 각종 뚝배기 같은 게 꾸며져 있어서 쉬어 가기 좋다.

그리고 상행은.. 아예 인근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 적성비"에 다녀올 수 있다. 휴게소 내부에 저렇게 언덕을 오르는 길과 안내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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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한때 신라가 여기까지 영토를 확장했었다는 땅밟기 인증 표식이다.
경부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고속도로 개통 관련 기념비와 위령비를 답사할 수 있다면, 이 휴게소에서는 저런 걸 잠시 보고 올 수 있다는 게 매우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이 휴게소에는 중앙 고속도로 개통 기념비도 있다!
본인은 동선과 스케줄 때문에 깜깜한 밤에야 여기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주변 풍경은 다른 블로그의 링크로 대체하도록 하겠다.

이렇듯.. 중앙 고속도로는 단순 아우토반 이상으로 재미있는 사연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험준한 산악 지형이라 하면 영동 고속도로가 떠오르는 편이지만, 영동 고속도로에서 진짜 영동 산악 지형은 동쪽 끝에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나머지 경기도 구간에서는 넓은 평지가 더 많다.
하지만 중앙 고속도로야말로 온통 산이다. 오르막엔 저속 차량용 전용 차로가, 내리막엔 구간 단속 카메라가 도대체 몇 개가 나오나 모른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01 08:38 2019/12/0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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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흡연과 재떨이

오늘날은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금연이 당연한 사회 풍조로 정착했다.
군대에서 보급 담배는 진작에 없어졌으며, 담뱃갑에는 끔찍한 사진과 함께 경고문이 반드시 일정 크기 이상으로 부착되는 게 의무가 됐다.

버스 정류장을 포함한 모든 공공장소와 대중교통 내부에서는 담배를 일체 피울 수 없다. TV 드라마 같은 데서 담배를 뻑뻑 피우는 모습을 내보내는 것조차도 금지됐으며, 부득이하게 흡연 동작이 포함된 영화 장면 따위를 인용할 때는 담배가 무슨 흉기이기라도 한 것처럼 모자이크 처리를 하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강하게 규제를 걸고 금기시해도.. "흡연은 폐암을 유발합니다", "당신이 지불한 담뱃값은 국회의원들 월급 주는 데 쓰입니다" 등의 온갖 기발한 문구로 경고를 해도..
그래도 담배를 피울 사람은 여전히 피운다.. =_=;; 수 년 전에 담뱃값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폭등했어도 담배 판매량과 매출은 이내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하니 말이다.

옛날에는 그런 풍조를 반영하여 승용차에도 앞쪽 대시보드의 아래엔 시거라이터 잭(...)과 재떨이가 있었으며, 좀 고급 승용차는 뒷좌석 도어의 안쪽에도 재떨이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요즘 차는 뒷좌석 재떨이까지는 없다. 전국 지도(< 내비게이션)라든가 돌돌이 닭다리 창문 개폐 크랭크(< 파워윈도우)만큼이나 이제는 찾아볼 수 없어진 물건이다.

그래도 내 차를 살펴보니 시거라이터는 있다. 지금까지 동전통으로 사용했던 자그마한 통이 알고 보니 재떨이였구나..;; 물론 지금까지 이 통에는 담뱃재가 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옆에 하이패스 단말기를 연결해 두는 소켓은.. 자동차에만 존재하는 전자기기용 플러그이기라도 한가 모르겠다.

자, 비행기와 관계 없는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이런 강력한 금연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여객기의 화장실 안에는 재떨이 비스무리한 물건이 2019년 현재까지도 의외로 여전히 남아 있다.
기내엔 흡연은커녕 액체 연료 라이터조차도 반입을 못 할 텐데, 그리고 기내 금연은 여객기의 내구연한보다 더 오래 전부터 시행되었을 텐데?
심지어 금연 표지판 바로 옆이나 밑에 재떨이가 버젓이 비치되어 있기도 하다. 왜 그런 걸까?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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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화장실에다 연기 감지기를 설치하고 제발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계도를 해도 말 안 듣고 담배를 몰래 피우는 사람이 수많은 탑승객들 중에 꼭 한둘씩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노선이면 그 긴 시간 동안 담배를 전혀 피울 수 없으니 괴로울 법도 하다. 비행기에 고속버스처럼 휴게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기어이 피울 거면 일말의 양심을 발휘해서 담뱃재와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여기에다가 버리기라도 하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재떨이를 남겨 놓은 거라고 한다..;; 버릴 곳이 없어서 담배 꽁초가 휴지통을 포함한 아무 데나 떨어지면 최악의 경우 다른 쓰레기에 불이 붙어서 기내에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재떨이는 기내에서 흡연이 가능하던 시절의 잔재 레거시가 아니며, 새로 만들어진 비행기도 반드시 갖춰야 하는 법적 의무 사항이다. 마치 자동차에 법적으로 방향지시등과 헤드라이트, 안전벨트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흡연자들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화재 예방을 위해서 갖다 놓은 거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육해공 대중교통 중에서 그나마 흡연이 제일 자유로운 곳은 역시나 선박인 것 같다. 갑판이 있으니까..;;.

여담이지만, 극장에서 영화 본편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불이 켜지는 것도 '금연 비행기 내부의 재떨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존재하는 관행이다. 영화 제작자들이 엔딩 크레딧을 아무 이유 없이 만드는 게 아니고, 도의적으로 원칙적으로는 모든 관객들이 이것까지 다 진지하게 봐야 영화가 완전히 끝나는 게 맞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을 켜건 말건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시작하면 자리를 뜨고 나가는 관객이 적지 않으며, 이때 조명이 없으면 깜깜한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그런데 이러다 사람이 다치면 극장에 대한 고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빗거리를 없애기 위해 "조기 조명 ON"이라는 권장되지 않는 관행이 극장에 존재하게 되었다.

2. 비행기 이모지

유니코드에는 U+1F6EC Airplane Arriving이라는 이모지가 있는데..
본인은 이걸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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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비행기는 다들 아시다시피 착륙할 때도 이륙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수가 위를 향하고 있다. 뒷쪽이 앞쪽보다 먼저 착지한다.
이와 달리 저 그림처럼 기수가 아래를 향한 채로 하강하는 건 아무리 봐도 착륙이 아니라 추락하는 모습이다..;;;

일출 노을 풍경과 일몰 노을 풍경을 일반적으로 서로 구분할 수 없듯이.. (그림자 방향이나 지형 같은 단서가 없다면)
정지 사진만으로 비행기의 이륙과 착륙을 구분하는 건 내가 알기로 불가능하다. 굳이 따지자면 이륙이 착륙보다 미세하게나마 더 고각이긴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모지에서는 그냥 편의상 기수의 방향과 랜딩기어의 수납 여부로 이륙과 착륙을 구분시켜 놓은 것 같다.

3. 우주 발사체와의 차이

고정익 비행기와 우주 발사체(인공위성? 로켓?)는 모두 지표면에서 끊임없이 수평 이동을 해야 고도가 유지되며, 속도가 너무 느려지면 추락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당연한 말이지만 요구되는 속도의 수준과 추락 조건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 급이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마치 육상 교통수단들이 고속으로 갈수록 더 가속하기가 어려워지는 건 공기 저항 때문일 뿐이지, 무슨 광속에 가까워지면서 상대성 이론에 따라 질량이 증가하기 때문은 전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비행기가 빠르게 이동하는 이유는 날개의 상하로 공기의 압력 차이를 만들고 이로부터 양력을 얻어야 뜰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연료를 연소시키기 위해서 공기 중의 산소가 필요하지만, 비행기는 엔진을 돌리는 것뿐만 아니라 뜨는 것 자체를 위해서도 공기라는 유체가 필요하다. 이걸 유지할 만한 속도를 못 내어 비행기가 양력을 잃고 조종성까지 상실하는 것을 실속(stall)에 빠졌다고 말한다.

한여름에 날씨가 너무 더워지면 공기가 부피가 커지고 밀도가 낮아지는데, 이러면 비행기도 뜨기가 어려워져서 활주거리가 길어진다. 그래서 작은 공항에서는 폭설도 아니고 폭염 때문에 큰 비행기가 뜨지 못해서 결항될 수 있다. (이륙 활주 공간 부족)
또한, 이륙 후에도 공중에서 공기가 갑자기 희박해지는 곳을 지나면 비행기가 고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아래로 주저앉게 된다. 이건 폭염으로 인한 레일의 팽창 때문에 고속철이 서행 운행하는 것만큼이나 비행의 악재로 작용한다.

이런 비행기와 달리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발사체는 공기와 전혀 무관하게 움직인다. 실속이고 상승 기류고 난류고 나발이고 없다. 애초에 공기를 받는 날개가 있지도 않으며, 로켓은 양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추력만으로 날아간다. 비행기의 제트 엔진과 달리, 로켓은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연료와 함께 산화제를 자체적으로 내장하고 있다.

그리고 로켓은 그야말로 공기와의 마찰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그나마 돌파해 봤다는 지구 적도 표면의 자전 속도보다도 10배 이상 빠르게 이동한다.
지표면으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속도보다 수평 이동하는 속도가 커야 지구를 향해 "한없이 추락"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우주 발사체가 추락하지 않고, 그리고 연료도 거의 쓰지 않으면서 비행(?)하는 비결이다.

달로 가는 로켓이라고 해서 무슨 위를 바라보고 달을 향해서 한없이 쭉쭉 올라가는 게 아니다. 우주로 나가는 모든 로켓들은 단별로 가동 시간이 보통 겨우 몇 분, 길어야 10분을 채 넘기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많은 연료를 몽땅 소모하면서 수직으로는 겨우 수십~수백 km 위로만 올라가며, 발사체가 지상의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에는 기수를 기울여서 수평으로 필사적으로 가속한다. 지구 궤도를 도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로켓의 목적인 것이다.

쉽게 말해 비행기는 한국에서 미국까지 날아가는 10몇 시간 내내 엔진이 켜져 있다. 그러나 로켓 내지 우주 발사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핵심이다. 달로 갈 때는 지구를 도는 타원 궤도의 이심률을 키우고 달 궤도로 끌려가기 위해서 또 가속을 하지만, 그 가속 시간 역시 단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며칠 동안 날아가는 건 전부 관성 무동력으로 행해진다.
비행기와 로켓이 서로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1/01 19:34 2019/11/0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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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교통수단

1. 기술 디테일

자동차가 자그마한 승용차 급이다가 대형 버스나 트럭 내지 그 이상으로 커지면 내부 구조가 다음과 같이 바뀐다.

(1) 엔진
휘발유 기반이다가 디젤로 바뀐다. 디젤 엔진은 휘발유 엔진보다 더 복잡하고 무겁고 비싸지만 저속 토크가 더 강하며, 실린더의 개당 부피에 제약이 없어서 엔진의 대형화에 근본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령, 4기통만으로 4000cc에 달하는 엔진은 디젤로는 구현 가능하지만 휘발유로는 가능하지 않다. 이런 차이는 양 엔진의 점화 방식의 차이 때문에 존재한다(점화 플러그 vs 압축 착화).

물론 디젤 엔진 정도야 대형차 전용인 건 아니며 소형 승용차에도 쓰인다. 하지만 반대로 휘발유 엔진이 대형차에서 쓰이는 일은 없다. 휘발유 엔진의 GDI와 디젤 엔진의 CRDI는 둘 다 direct injection으로 끝나는데 각각 자기 분야에서 무엇을 크게 개선한 기술인지 궁금해진다.

참고로, 자동차 말고 타 교통수단들도 작은 놈은 자동차 같은 왕복 피스톤 엔진을 사용한다. 그러다가 덩치가 더 커지면 철도 차량은 아예 전기 모터로 갈아타고 비행기는 제트 엔진을 장착하게 된다.

(2) 브레이크
승용차 수준에서는 방열 성능과 정비성이 더 뛰어나고 제동력 조절도 용이한 디스크 방식이 앞뒤 바퀴에 모두 쓰인다. 그러나 대형차로 가면 닥치고 제동력이 더 좋은 드럼 방식이 적어도 뒷바퀴에는 여전히 지존이다. 다만, 대형차 말고 아예 경차도 원가 절감을 위해 드럼 브레이크가 쓰이곤 한다.

그리고 승용차와 소형 트럭에서는 제동력을 전하는 매체가 브레이크액이라는 액체인 반면, 중형급 버스나 트럭(4~5t쯤?)부터는 역시나 성능이 좋다는 이유로 압축 공기가 쓰인다. 대형차에서 걸핏하면 '축~ 취익~' 방귀 소리가 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브레이크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 자주 많이 밟으면 엔진만큼이나 과열될 수 있다. 브레이크액이 끓을 정도가 돼서 페달을 밟아도 쑤욱 들어가기만 하고 제동이 전혀 안 걸리는 것은 vapor lock 현상이다. 그리고 브레이크 패드가 달궈져서 제동력이 떨어지는 건 fade 현상인데, 디스크보다는 드럼 방식이 더 취약하다.
대형차는 브레이크액 방식이 아니니 vapor lock 현상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fade 현상과 아예 공기압의 고갈을 조심해야 한다. 계기판에 브레이크 공기압 게이지가 달려 있다.

(3) 변속기
승용차급에서는 자동 변속기가 대세가 된 반면, 대형 상용차(트럭, 버스)에서는 차량 가격과 성능, 연비 같은 효율 문제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수동 변속기가 주류이다.
그리고 100~400마력짜리 자동차 레벨에서 수동 변속기라면 그냥 톱니바퀴만으로 감당 가능하다. 철도 차량도 짤막한 디젤 동차는 이런 식으로 동력을 변환한다.

그러나 수천 마력의 출력으로 여러 객차를 끄는 기관차에서 기어만으로 동력 변환을 하려면 변속기가 너무 커지고 복잡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은 약간 떨어지지만 동력을 간접적으로 전해서 변환하는 유체 변속기 내지 토크 컨버터가 쓰이며, 자동차에서도 자동 변속기는 이 방식을 쓴다.

아울러, 전기도 교류는 같은 전력에서 전압-전류 출력 변환이 용이하니, 대형 디젤 기관차는 변속기 오일 대신 전기를 중간 매체로 사용해서 디젤 전기 기관차 형태인 게 보통이다.

사실은 철도 차량까지 갈 것 없이 버스 중에도 저상 버스는 커다란 물리적인 기어박스를 원하는 형태로 밑에 장착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인해, 불가피하게 자동 변속기가 장착되어 왔다. 허나 최근에는 그런 기술적인 한계가 극복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저상 버스에도 수동 변속기가 널리 보급되면 기사가 운전하기는 더 힘들지만, 버스 회사의 입장에서는 구입 단가가 저렴해질 수 있겠다.

(4) 서스펜션
세상의 자동차들은 바퀴와 차체가 곧이곧대로 딱딱하게 붙어 있는 게 아니다. 한쪽으로 충격을 받으면 그걸 흡수하여 반대편으로 들썩거린다. 마치 초고층 빌딩이 바람을 맞으면 미세하게나마 흔들리게 설계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 같다.

육상 교통수단에는 이걸 담당하는 서스펜션 내지 현가장치라는 게 있어야 좋은 승차감이 보장될 수 있다. 자동차가 아닌 마차 시절에도 초보적인 형태의 현가장치는 고안되어 쓰여 왔다.
철도는 길이 워낙 곧고 부드러우니 차량에 이런 게 전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만, 그래도 거기에도 간략하게나마 자동차와는 다른 형태의 현가장치가 있다. (철도 차량에는 차동 기어는 없음. 커브를 돌 때 좌우 바퀴의 회전수를 달리하여 동력을 전하는 장치)

승용차의 바퀴 주변을 보면 지면과 수직으로 코일 내지 스프링이 둘러진 막대기가 보이는데, 그게 서스펜션이다. 더 세부적인 방식으로는 multi-link 방식, rigid axle 방식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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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대형 트럭의 뒷바퀴를 보면 통상적인 스프링이 아니라 무슨 활 모양의 휘어진 작대기가 지면과 수평으로 여러 겹 둘러진 게 보인다. 요것은 대형차에서 주로 쓰이는 판(leaf) 스프링 서스펜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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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스프링 서스펜션은 코일 스프링보다 승차감이 별로이지만, 그래도 역시나 저렴하고 강한 충격과 하중에도 안 부러지고 버티기 때문에 천상 대형차용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정비를 제대로 안 하다가 판 스프링 중 일부가 주행 중에 부러져서 떨어지고, 그걸 뒷차가 밟는 바람에 휙 튕겨 날아가서 주변의 차들에게 사고를 유발하는 민폐를 종종 끼치곤 한다.

특히 지난 2018년 1월, 중부 고속도로 이천시 구간에서는 달리던 승용차의 앞으로 웬 철판이 날아들어 신혼 부부 신랑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고가 났는데.. '죽음의 철판'이라고 불린 그 물체도 바로 불상의 화물차에서 부러지고 떨어져 나간 판 스프링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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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밟아서 반대편 차로로 튕긴 주범은 어느 관광버스였다. 경찰에서 두 달이 넘게 빡세게 CCTV를 판독하고 조사한 끝에 기어이 찾아냈다. 하지만 깜깜한 밤에 길쭉한 철판 조각이 떨어진 것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버스 기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철판을 떨어뜨린 차량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2. 특수한 대형 자동차

세상에는 엔진이 달렸고 바퀴가 굴러가지만,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일반 도로에서 주행할 수 없는 자동차가 있다. 이런 차들은 특수한 구역 내부만 주행할 수 있으며, 통상적인 등록 절차를 거친 '바사아자'(자가용일 리는 없을 테니) 번호판이 달려 있지도 않다. 일반 도로를 주행할 수 없는 이유는 대체로 길이나 폭 같은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에버랜드의 주차장 셔틀버스가 좋은 예이고, 더 일반적으로는 공항 계류장에서 이런 특수한 자동차들이 여럿 볼 수 있다. 비행기를 활주로까지 밀고 당겨 주는 토잉카라든가, 탑승교가 없는 공항에서 승객을 비행기까지 단거리 수송하는 일명 램프 버스/에이프런 버스 말이다.

전자의 경우, 보잉 747급의 대형 여객기를 옮겨 주는 물건은 공사장이나 탄광에서 쓰이는 어지간한 중장비· 건설 기계보다도 출력이 훨씬 더 높다. (거의 1000마력 근처) 토잉카는 바퀴의 공전 현상 없이(= 충분한 접지력) 비행기를 견인하기 위해 자기 자신부터 엄청나게 무겁게 만들어지며, 엔진도 그에 상응하는 출력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램프 버스는 어차피 경사가 전혀 없는 공항 계류장만 다닐 테니 기존 시내버스보다도 바닥이 극도로 낮다. 폭과 길이는 도로교통법에서 규정된 한계를 씹어먹을 정도로 더 크지만(비행기 승객을 한번에 모두 태우기 위해서) 좌석은 아예 전혀 없다. 도시형 입석 시내버스보다 더 단거리 가축 수송에 최적화돼 있는 셈이다.

얘들은 차량 크기뿐만 아니라 배기가스 규제 쪽도 통상적인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오래된 연식의 차량도 계속 굴러다닌다고 한다. 글쎄, 아예 전기차로 바꿔 버려도 될 것 같다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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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국내의 경우 원주 공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터미널과 활주로가 1.7km 가까이 멀리 떨어져 있으며, 중간에 일반 차도를 지나야만 두 장소를 왕래할 수 있다. 그래서 램프 버스도 일반 자동차들과 동일한 번호판에 동일한 체격인 일반 버스이다. 뭐, 저기는 국제 공항도 아니고 제주도 행 대한 항공 여객기가 하루 한 편 다닐까 말까인 군소 공항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된다.

공항을 벗어나서 여객이 아닌 화물· 중장비· 건설 기계 분야로 가면 역시나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특수 차량을 볼 수 있다.
Mack Titan처럼 road train이라고 불리는 초대형 트레일러는 그래도 그 나라의 도로교통법에 맞게 설계되었고 일반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이다. 그것 말고.. 광산에서 쓰이는 트럭 중에는 통상적인 길이· 높이· 폭과 축중량 한계를 몽땅 무시한 괴물이 있다. Terex Titan, Komatsu 930E, CAT 797F 이런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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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은 공장에서 생산되고 나서 광산 현장으로 이동은 어떻게 했겠는지 궁금하다.
하긴, 가끔은 여러 개의 차선을 점유하는 초대형 화물--로켓 부품 같은?--을 일반 도로에서 트레일러로 불가피하게 수송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는 미리 허가를 받은 뒤에 앞뒤로 에스코트 하는 차량을 두고 옛날 적기 조례가 적용되었던 것처럼 진짜 살금살금 조심조심 움직여야 한다. 이런 짓은 주변에 끼치는 민폐가 크기 때문에 한밤중에 몰래 하는 편이다.

3. 쌍동체 비행기

지금까지 글이 대부분 초대형 특수 자동차 위주로 진행됐는데, 초대형 특수 비행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는 An-225 내지 에어버스 A380이 1위를 다투고 있다. 비행정까지 포함하면 옛날의 휴스 H-4 허큘리스가 명목상 최대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마치 아이스크림 쌍쌍바처럼 꼬리날개를 포함한 동체가 둘로 구성된.. '쌍동체' 비행기가 있었다. 뭐 그때는 쌍동체라고 해 봤자 기체 전체의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복엽기만큼이나 당대의 제한된 기술만으로 비행기의 성능과 수송력을 끌어올리려던 여러 시도 중 하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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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상 과학 소설에서는 보잉 747 같은 대형 여객기가 2개 내지 3개의 동체로 편성돼서 한번에 무슨 타이타닉처럼 1000~2000명씩 타는 게 묘사된 걸 본인은 읽은 기억이 있다. 무슨 열차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얼추 비슷하게 현실이 된 게 있다.
Stratolaunch라는 회사에서 로켓을 완전 지상이 아닌 공중에서 저렴하게 발사하기 위해, 로켓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특수 쌍동체 비행기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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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의 폭이 117m에 달한다고 한다. 기체 대비 저 깨알같은 사람의 크기를 비교해 보시라..;;
얘도 통상적인 규격 하에서 만들어진 공항 활주로에서 이착륙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휴스 H-4 허큘리스를 제치고 전세계에서 폭 하나는 제일 큰 비행기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폭만 무식하게 크고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가녀리게 생긴 저 비행기에서 로켓 발사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엔 이런 식으로 특이하게 거대하게 생긴 특수 목적 교통수단이 분야별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선박이야 원래부터 워낙 거대한 놈 천지이며, 뭔가 외형이 크게 특이하게 바뀌면서 덩치가 커지는 게 없으니 논외로 하자.

Posted by 사무엘

2019/10/06 08:33 2019/10/0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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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 1920년대: 1차 세계 대전 후, 비행기라는 게 군용뿐만 아니라 민간용으로도 극소량 단거리 위주로 쓰이기 시작함.
  • 1930년대: 비행기의 덩치와 성능이 더욱 향상되고 금속 재질+단엽기 형태로 정착함(보잉 247). "비행선이 밀려나고 도태함" (비행기의 성능 향상 +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화재 사고 크리)

  • 194~50년대: "제트 엔진"이 발명되고 여객기에도 적용됨. 대양 횡단이 가능해짐.
  • 1960년대: 여객기의 덩치가 점점 커지기 시작. 삼발기 등장.
  • 1970년대: "보잉 747 초대형 점보 광동체 여객기" 등장. 초음속 여객기까지 등장했으나 가성비 안 맞는 계륵으로 전락함.

  • 1980년대: 쌍발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삼발기가 도태함. (버스로 치면 전방 엔진 버스가 도태한 것과 비슷한 시기) 보잉 747-400 덕분에 "한국-미국이 앵커리지 경유 없는 직항"이 가능해짐.
  • 1990년대: 여객기들의 덩치와 성능이 오늘날과 별 차이 없는 형태로 정착. "항공기관사 퇴출". (버스 안내양이 퇴출된 것과 비슷한 시기)
  • 2010년대: 보잉 747, A380 같은 초대형 여객기가 단종되고 도태하는 중. 기술의 발달 덕분에 쌍발 엔진이 과거의 4발 엔진에 맞먹는 출력과 항속거리를 달성함

아주 흥미진진하다!

2. 뜨는 원리

물체가 공중에 뜨는 힘의 원천으로는 부력(비행선), 양력(비행기), 또는 추력(로켓)이 있다. 닥치고 높게 떠서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가려면 추력이 필요하겠지만, 지구 안에서 잠시 떴다가 수평 이동을 멀리 하는 용도로는 양력을 이용하는 게 경제적이다.
고정익 비행기에서 추력을 발생시키는 엔진은 기체를 들어올리는 게 아니라 그냥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쓰인다. 후자는 전자보다는 훨씬 덜 힘든 일이다.

비행기가 양력을 얻기 위해서는 날개가 달려 있어야 한다. 자동차는 고속 주행 중에 살짝 떠 버려서 제동· 조향 능력을 상실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스포일러'가 뒤에 장착되곤 한다. 이건 비행기의 날개와 정반대로 양력을 상실시키는 역할을 한다.

비행기가 양력을 받아 뜨는 원리에 대해서 베르누이의 원리, 벤추리 관, 긴 경로(날개 윗쪽이 윤곽이 더 완만하고 길다) 등 잘못된 이론이 오랫동안 항공 전공 서적에 별다른 검증 없이 소개돼 왔다. 그런데 난 잘못된 이론과 맞는 이론 모두 잘은 모르겠고 완벽하게 내 것으로 소화를 못 했다. 양력은 부력보다는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려운 힘이니까.. 그 뿐만 아니라 이 자연에는 전자기력처럼 이해하기 더 어려운 현상도 많다.

비행기에는 공기를 사정없이 휘젓고 내뿜기 위해 뭔가 커다랗게 뱅글뱅글 돌아가는 물체가 어떤 형태로든 달려 있다. 그 물체의 종류로는 프로펠러가 제일 대중적인데.. 비행기의 (1) 프로펠러는 선박의 스크루와 개념적으로 동일한 역할을 한다. 프로펠러를 돌리는 엔진은 피스톤 왕복 또는 터보프롭 방식 중 하나인데, 비행기에서 자동차 같은 왕복 엔진은 완전 초소형 경비행기 급에서나 쓰인다.

이론적으로 비행기도 배처럼 프로펠러가 뒤에 달린 형태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공기의 밀도와 바닷물의 밀도는 서로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에 생긴 모양이 동일하지는 않다. 선박의 프로펠러는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형태이기 때문에 screw라고 불린다.

헬리콥터는 프로펠러로 추력이 아니라 양력을 직접 발생시켜서 뜨는 비행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로펠러 자체가 회전익, 즉 날개 역할을 하며 이를 (2) 로터라고 부른다. 로터라고 해서 프로펠러와 크게 다른 물건은 아니기 때문에 틸트로터 같은 특이한 수직 이착륙기도 존재할 수 있다. 같은 바람개비를 각도만 조절해서 이륙할 때는 헬리콥터의 로터처럼 쓰고, 순항할 때는 일반 프로펠러처럼 운용하니까 말이다.

오늘날 비행기에서 주력으로 쓰이는 제트 엔진이 왕복 엔진과 다른 점은.. 연료를 태운 배기 가스까지도 그냥 곱게 배출하는 게 아니라 세차게 내뿜어서 추력을 내는 데 쓴다는 점이다. 즉, 제트 엔진은 노즐이 달려 있다. 단지, 산화제를 자체 탑재한 게 아니라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다는 것만이 로켓과 다른 점이다.

터보 제트, 터보 팬 같은 제트 엔진에도 (3) 팬 블레이드라는 바람개비가 달려 있다. 하지만 이건 공기를 빨아들이고 압축하는 용도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펠러와는 성격이 다르다.
비행기 엔진을 넘어 로켓 엔진이 되면 노즐 꽁무니에서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르며, 오로지 추력에만 의존해서 날아가기 때문에 딱히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건 없다.

육해공을 막론하고 교통수단에 피스톤 왕복 엔진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철도 차량에서는 가능한 한 전철이 쓰이고 있으며 비행기도 덩치가 조금만 커지면 제트 엔진이 쓰인다. 자동차와 선박만이 왕복 엔진이 대세인 듯하다. 프로펠러는 비행기와 선박이, 고무 바퀴는 자동차와 비행기가 공유하고 말이다.

3. 조종법

(1) 페달
자동차는 두 페달(가속, 브레이크)을 동시에 밟을 일이 없고, 또 클러치 페달이 추가로 있는 수동 변속기 차량과의 호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오른발 하나만으로 두 페달을 모두 밟는다. 자동 변속기 차량에서는 왼발은 그냥 하는 일 없이 논다.

하지만 비행기는 두 페달을 동시에 밟을 일이 있기 때문에 양발을 모두 쓴다. 게다가 페달의 위쪽을 밟는 것과 아래쪽을 밟는 것의 구분도 있다. 비행 중일 때는 페달이 방향타 역할을 하고, 지상에서는 랜딩기어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핸들을 돌리는 게 아니라 양 부위별로 브레이크를 다르게 걸어서 택싱 중인 기체의 방향을 조절한다.

(2) 엔진 가동
자동차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동안만이(가속, 오르막 오르기 등) 실질적인 힘을 쓰는 상태이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시동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연료 분사만 하거나(아이들링), 아니면 평지· 내리막에서 바퀴를 따라 엔진이 관성으로 저절로 돌아가는 퓨얼컷+엔진 브레이크 타력 주행 상태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엔진이 그렇게 아이들링인 상태인 건 글라이더처럼 활강하면서 서서히 추락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행기는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언제나 힘차게 돌아가면서 기체를 움직이고 양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페달을 밟는 깊이로 출력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마치 선풍기/에어컨의 출력처럼 손으로 조작하는 스로틀 레버의 위치로 출력을 조절한다.

비행기 엔진은 공기를 상대로만 돌아갈 뿐, 자동차 엔진처럼 무거운 차체와 지면 사이의 마찰력을 극복해야 할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와 같은 변속기가 달려 있지는 않다.

(3) 조향
자동차의 핸들은 한 축(비행기로 치면 yaw)만 조절하지만, 비행기의 조종간은 조이스틱 같은 형태로 두 축(대략 roll, pitch)을 조절한다.

비행 중에 방향을 전환할 때는 조종간뿐만 아니라 얼추 yaw를 담당하는 페달까지 적절히 밟으면서 전환한다.
그리고 상승· 하강할 때는 조종간뿐만 아니라 엔진 출력도 적절히 조절하면서 고도를 바꾼다.
이륙할 때 앞부분이 먼저 뜨고, 착륙할 때는 뒷부분이 먼저 착지한다.

활주로에서 충분히 속도가 붙어서 이제 이륙을 중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을 V1 속도 도달이라고 하며, 조종간 당기고 자세 잡아서 뜨기만 하면 되는 직전 속도를 rotate 속도라고 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무슨 제1~3 우주 속도(탈출 속도) 같은 용어를 듣는 느낌이다. 그리고 자동차에도.. 이제 노란불이 되더라도 급정거를 할 수 없고 교차로를 무조건 빨리 통과해야 되는.. 교차로에서의 V1 속도, 지점 같은 개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비행기를 조종하려면 이런 기본 중의 기본 스킬 말고도 무수한 항공 관제 규약, 비행기 기기 조작 매뉴얼을 숙지해야 한다.

옛날에는 비행기도 자동차와 별 차이 없는 피스톤 회전 엔진을 사용해서 시동 걸면 털털털털 부우웅~ 소리가 났지만.. 앞서 역사에서 언급했듯이 1940~1950년대부터 제트 엔진이 보급된 뒤부터는 엔진 소리가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다. 6· 25 전쟁 당시에 미군 전투기에 '쌕쌕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로켓 엔진은 그냥 자기 연료와 산화제만 연소시켜서 뿜지만 비행기 엔진은 주변 공기도 왕창 빨아들여서 내뿜는다.

비행기가 타 교통수단과 크게 다른 점은.. 엔진이 꺼지면 곱게 정지나 표류가 가능한 게 아니라 그대로 추락과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한번 자세가 어긋나서 양력을 잃고 실속에 빠지면, 엔진 출력 올리고 밟기만 한다고 해서 곧장 자동으로 회복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종이 어렵다. 물론 자동차도 타이어가 접지력을 상실하고 미끄러지면 매우 큰 위험에 빠지지만, 그 위험이 비행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헬리콥터는 고정익기보다 이런 게 더 취약하고 불안하다.

4. 기내 화재로 인해 발생한 항공 사고

지금 이 시각에도 전세계에 얼마나 많은 비행기들이 평온하게 날아다니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비행기는 매우 안전한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가 전혀 없는 건 아니며, 그 드문 사고는 이· 착륙 중에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이륙은 연료가 제일 많이 들어있어서 비행기가 제일 무겁고 엔진 출력도 제일 세게 땡기는 때이다. 활주로의 길이는 제한돼 있는데 이미 충분히 가속하여 활주해 버린 뒤에 무슨 이유로 인해 공중으로 뜨지 못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반대로 착륙하려면 엔진 출력과 기체 주행 속도를 줄이고 또 줄여야 하는데.. 이렇게 느려지면 기체의 자세 제어와 조종도 제대로 안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위치를 잡기가 더욱 어려우며, 돌발상황에 취약해진다. 착륙하려다가 실패/포기하고 재이륙하는 건 조종사에게 굉장한 부담을 주는 기동이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 말고 내부 요인 때문에 발생한 사고도 있다. 옛날에는 기체의 구조적인 결함으로 인한 사고도 있었지만, 그건 수십 년간의 사고 데이터 분석과 비행기 제조사들의 기술 발달 덕분에 없어지는 추세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차라리 정비 불량의 비중이 더 높으며,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화물칸의 화재'로 인한 사고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163편(1980년 8월 19일, 록히드 트라이스타)은 이륙 7분 만에 화물칸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기껏 회항하고 비상 착륙까지 아주 극적으로 성공적으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비행기가 곧장 서지 않고 엔진도 꺼지지 않고, 문도 제대로 안 열렸다.

300명이 넘는 승객과 승무원들은 착륙 후에 지상의 기내에서 옴짝달싹 못 하다가 화마에 희생되어 전원 사망했다. 대놓고 추락이나 공중 분해도 아니고 이렇게 멀쩡히 착륙 후에 탑승자가 전원 사망한 사고는 무척 이례적이다. 착륙 후에 기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탈출이 지체되었는지, 그리고 무슨 수하물에서 왜 화재가 발생했는지는 밝혀지지 못하고 미스터리로 남았다.

남아프리카 항공 295편(1987년 11월 28일, 보잉747-200 계열)은 이륙 후 9시간째 잘 날고 있던 중에 역시 화물칸에서 불이 났다. 화재는 맨 앞 조종실에까지 연기가 들어올 정도로 심각해졌으며, 비행기는 조종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결국 아프리카 마우리티우스 섬 근처의 인도양 바닷속으로 추락했다. 역시 전원 사망.

이 사고도 어느 화물에서 화재가 왜 발생했는지는 밝혀지지 못했다.
날짜를 보고 눈치 챈 분도 계시겠지만 이건 대한항공 858편 폭파 테러의 "바로 전날"에 발생한 사고이다. 858도 추락 내지 실종 지점이 나름 인도양 권역인 것이 비슷하다. 비록 후자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지만 말이다.

요것들은 1980년대 이야기이니 지금과는 상황이 동떨어진 것 같지만.. 지난 2011년 7월 말, 아시아나항공 991편 화물기의 추락 사고도 원인이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얘는 범인은 밝혀졌지만 역시 왜 뜬금없이 불이 붙었는지는(범행 동기??) 불명으로 남았다.
화물칸 화재로 인한 비행기 추락 사고들은 여느 인재들과 달리 정확한 원인이 규명된 게 별로 없는 것이 더욱 괴이하다.

자동차도 나름 내연기관이 달려 있으며, 비행기만치는 아니어도 사고 시에 화재 위험이 존재하는 물건이다. 그래도 리튬이온과 달리, 자동차의 무거운 재래식 납-황산 배터리는 불이 붙거나 폭발하지는 않는 게 다행이다.
대형 냉동 창고에서 쓰이는 암모니아 냉매는 폭발하지만, 가정용 냉장고의 CFC 내지 그 대체제 냉매는 폭발하지 않고 안전한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13 08:35 2019/06/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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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자동차 기반의 장거리 대중 교통수단으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라는 이원화된 시스템이 존재한다.
사실, 법적으로는 이들은 일반형 시외버스, 직행형 시외버스, 고속형 시외버스라는 세 부류로 나뉘는데, 고속형 시외버스가 고속버스라고 여러 모로 특별 취급을 받는 구도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외버스들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갈수록 직행화하고 고속버스와 형태가 비슷해지고 있다.

본인은 옛날 대학 시절에 경주에서 울진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없이 국도만 타느라 울진까지 가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렸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더구나 이런 지방 왕래 수요가 많을 리가 없으니, 버스도 무슨 완행 열차가 정차하듯이 온갖 시골 정류장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래야 수지가 맞을 것이다.

지방에서 시외버스는 원래 이런 식으로 운행되고 있다. 울진 같은 경북의 오지뿐만 아니라 당장 강원도의 전방에서 차가 없는 사람들의 이동을 책임지는 것도 시외버스가 유일하다. 화천· 양구 같은 곳에 철도가 있나, 공항이 있나? 동서울 터미널에 괜히 군인들이 우글거리는 게 아니다.

다만, 요즘은 집집마다 승용차를 굴리는 세상이며, 중소 규모 이상의 도시에는 철도 같은 대체제도 있다. 전국에 고속도로도 워낙 촘촘하게 많이 건설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버스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촘촘한 단거리 이동보다는 장거리를 어설픈 중간 경유 없이 승용차보다 더 빠르고 편하게 가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반형 완행 시외버스는 저런 시골 지방 말고는 없어지는 추세이다. 철도로 치면 간이역들이 갈수록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고속버스는 시외버스의 고급 특화 케이스이기 때문에 시외버스보다 노선이 훨씬 적다. 그 덕분인지 승차권 발매· 예매를 위한 단일 통합 전산망도 2000년대 초부터 시외버스보다 훨씬 더 잘 갖춰져 있었다. 과거 1980년대에 철도 승차권 전산 발매도 새마을호에 제일 먼저 적용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길이가 100km 이상이고, 전체 구간의 60% 이상을 고속도로로 달리는 노선에만 고속버스가 투입될 수 있다. 고속도로는 그 정의상 최대 속도가 100km/h 이상으로 정해진 곳이니 고속버스의 정의에는 속도와 거리에 모두 100이라는 숫자가 존재하는 셈이다.

경주-대구 사이에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노선이 모두 존재해서 서로 경쟁 중이다. 저기는 80km가 안 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100km 이상 규정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고속버스 노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중이다. 마치 이화여대 초등교육과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사립 기관이듯이 말이다. (국립 교육대들보다 먼저 존재했음)
뭐, 신경주 역에서 KTX를 타면 동대구 역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운임과 역 접근성 때문에 버스도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역이 시내에서 너무 멀므로..)

그리고 고속버스는 태생적으로 중간 정차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시점과 종점만 있는 시외버스라는 게 원래는 고속버스의 전유물이었다. 고속버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두세 시간 간격으로 정차하고, 아니면 시점 또는 종점과 동일한 지역에 소재한 정류장에 딱 한 번만 추가 정차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대구-서울 고속버스이다. 상행은 동대구 역 근처에 있는 터미널을 출발한 뒤에 서대구 정류장을 들렀다가 서울로 가며, 하행은 반대로 서대구 정류장을 들렀다가 터미널로 간다. 대구 시내 안에서 터미널과 정류장 사이만 왕복하는 용도로는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즉, 쟤들은 터미널을 출발하자마자 곧장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않는다. 굳이 대구 시내를 횡단해서 서대구 정류장을 경유하느라 고속버스의 표정속도가 하락하는 건 개인적으로 아쉽게 느끼는 점이다.
이 정도만이 고속버스에게 허용된다. 이런 고속버스와는 달리, 동서울을 출발한 직행 시외버스는 경주에서 승객을 하차시킨 뒤 포항까지도 간다.

다음으로 운임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고속버스는 시외버스보다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교통수단으로 간주되어 운임에다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즉, 원가 대비 차삯이 더 비싸다. 하지만 겨우 고속버스가 사치품인 것은 무슨 1970년대에 경부 고속도로라는 게 처음 생겼고 버스 안에 안내양까지 탑승하던 시절의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법리적으로 볼 때 부가세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고속버스에는 1991년인가 92년부터 우등이라는 등급이 생겨서 좌석 수가 더 적고 넓고 큼직한 대신, 더 비싼 버스가 등장했다. 열차는 상위 등급이 정차역 수가 적고 더 빨리 가는 반면, 고속버스는 처음부터 중간 무정차를 표방했기 때문에 우등이라고 해서 더 빠른 건 아니다. 그 대신 버스는 그 구조상 한 차량 안에서 특실/일등석(!) 같은 구분은 없다.

새마을호에 종아리 받침대가 달린 한국 철도 역사상 최고급 좌석이 등장한 것도 비슷하게 1990년대 초인 것으로 본인은 기억하는데.. 우등 고속을 의식한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우등 고속이 더 나중인지는 정확한 시기와 역학관계를 잘 모르겠다. 승차감과 좌석 앞뒤 간격은 철도인 새마을호가 더 낫고(특히 특실은!), 좌석과 팔걸이의 폭은 아예 2-1 배열인 우등 고속이 더 컸던 것으로 본인은 기억한다.

직행형 시외버스에도 우등형 좌석 차량이 있다. 단, 얘들은 앞뒤 간격이 우등 고속보다 약간 더 좁아서 28인승이 아닌 33인승이다.

고속버스 업계에서는 우등 고속이 생긴 지 25년 가까이 지난 2017년부터 우등보다도 더 고급스러운 21인승 프리미엄 우등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건 서울-부산 같은 소수 장거리 노선 말고는 막 보급되기 어려울 듯하다. 우리나라가 무슨 1000km짜리 노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속도의 향상 없이 내장재만 잔뜩 고급화해서 비싼 운임을 받는 건 타 교통수단 대비 경쟁력을 확보하기 곤란하다. 다만, 좌석에 콘센트나 폰 충전 단자가 있는 버스라면 개인적으로 귀가 약간 솔깃해지긴 한다!

지금이야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시외버스도 고속버스 못지않은 승차권 전산 발매 인프라를 갖췄고, 심지어 시내/광역버스처럼 교통카드 결제가 가능해지기도 했다. 줄 서서 창구에서 표 사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맨 처음에는 무인 예매 발권기라는 게 생겼고 2000년대 초반에는 홈티켓이 유행했는데, 이제는 그냥 모바일 승차권을 써도 된다.
그리고 고속버스도 무조건 한 차량으로 시점-종점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휴게소 환승이라는 것도 이미 10여 년 전에 생겼다.

그 전에 옛날에는 고속버스의 승차권 전산 발매 시스템이 통합돼 있지 않아서 일부 지역은 kobus, 일부 지역은 이지티켓(easyticket)으로 별도의 사이트를 이용해야 했다. 그 시절에 동영상 코덱들이 난립하고 휴대전화 충전 단자들이 통일돼 있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대구는 대도시에 걸맞지 않게 고속버스 터미널이 회사별로 찢어져 있던 것으로 악명 높았다. 동부/서부 이렇게 정말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진 게 아니라, 똑같이 동대구이고 그냥 한 블록 간격인데 회사가 관할하는 행선지별로 터미널이 찢어진 것이다. 더구나 이게 전산 시스템에도 반영돼서 '대구 한진', '대구 동양' 같은 식으로 찢어졌으니 병크가 따로 없었다.

그러다가 대구에 드디어 동대구 역과 연계되고 기존 동부 시외버스 정류장과 백화점까지 통합한 동대구 통합 고속버스 터미널이 완공됐으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진작에 그렇게 됐어야 했다.
이 추세라면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라는 두 체계는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합해도 되지 않나 싶다. 육군이 서부와 동부 전선 야전군(제1, 제3)을 통합해서 그냥 전방 담당 사령부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별다른 특권이 아니며 직행 시외버스와 고속형 시외버스의 경계가 굉장히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고속버스만 타 시외버스와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별로 없다. 단일 시외버스 체계에서 시골 지방을 위한 완행 아니면 직행 구분만 하면 될 것 같다. 차량과 전산망 말고 터미널 건물은 요즘 모든 지역들이 고속과 시외 구분 없이 통합해서 만드는 게 대세가 된 지 오래다.

한반도에 철도와 시내버스까지는 일제 시대에도 있었던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고속철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 고속도로와 고속버스라는 것은 그 시절을 넘어 할배 슬하의 1공화국 시절에도 없었다. 1970년대 박통 때에 와서야 등장했다.
사실, 일제 시대 경성 시내 사진을 봐도 길거리에 자동차와 노면전차까지는 다니지만, 길에 차선이 그어지고 신호등이 설치된 걸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미국 LA는 1940년대 모습이 이미 우리나라의 1970년대 이상 같고 자동차의 모양만이 옛날 디자인 같은데.. 참 대조적이다.

그렇게 길거리에 교통 시설이 아무것도 없다시피했기 때문에 미군정은 1946년에 자기 재량으로 한반도에서 자동차의 통행 방향을 좌측에서 우측으로 곧장 변경할 수 있었다. 자동차가 극히 드물던 시절, 고속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 치면 비행기를 타는 것 같은 희소한 경험이던 시절에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을지가 궁금하다.

또한 저것보다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운전석 옆에 안내양이 앉는 작은 의자가 있던 시절, 그리고 우등 고속의 오른쪽 맨 앞자리(3번)에 냉장고와 이동식 공중전화가 비치되어 있던 시절, 현대도 대우도 아닌 아시아 자동차 버스가 있던 시절도 개인적으로 문득 그리워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28 19:33 2019/03/2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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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중부 고속도로(37)는 중부 고속도로(35)의 서울-수도권 구간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건설된 고속도로이다.
도로를 확장해야겠는데 기존 도로는 다들 평지가 아닌 고가 교량 형태여서 그걸 건드릴 수는 없다. 그래서 옆에 도로를 더 만들게 됐다.

그럼 보통은 기존 도로는 전부 하행, 새 도로는 전부 상행.. 이런 식으로 개편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나, 중앙분리대를 제거하고 각종 도로 표지판들을 변경하고 진출입로를 이설하는 작업마저도 여의찮았는지 결국 기존 도로는 하나도 안 건드리고 그대로 놔 두게 됐다. "새 도로 추가.. 그 대신 새 도로는 중간에 진출입로가 없는 직행" 컨셉으로 제2중부 고속도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결과는 운전자들에게 "중부냐, 제2중부냐" 하는 눈치 게임으로 전가됐다.

중부와 제2중부가 병행하는 구간, 그리고 그 이북으로는 휴게소가 다음과 같이 3개가 존재한다.

(1) 마장 프리미엄 휴게소

중부와 제2중부 고속도로 사이의 섬이라는 꽤 적절한 위치에 굉장히 거대한 규모로.. 거의 복합 쇼핑센터 컨셉으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2013). 도로들보다 나중에 생겼다는 점으로 인해 진출입로에 입체 교차로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중부에서는 상행만(하남 방면), 제2중부에서는 하행(청주 방면)만 이 휴게소에 접근 가능하다.

즉, 두 고속도로에서 한 휴게소를 공유하지만 방향은 제각기 반쪽짜리이다. 그리고 방향별로 주차장이 서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들어왔던 차량이 방향을 바꿔서 나갈 수는 없다.

(2) 이천 휴게소

상행과 하행 휴게소가 제각기 3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상행은 두 고속도로가 공유하며, 나갈 때 중부와 제2중부 정도야 도로를 바꿔치기 할 수도 있다.
하행은 마장 프리미엄 휴게소와 아주 가까이 있는데, 얘는 오로지 중부 고속도로의 하행만 접근 가능하고 제2중부는 해당사항 없다. 그쪽은 어차피 마장 휴게소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 구간에서 중부+상행이라면 마장과 이천 휴게소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중부+상행과 중부+하행은 이천 휴게소만 이용 가능하며, 제2중부+하행은 마장 휴게소만 이용 가능하다.

(3) 하남드림(구 만남의 광장) 휴게소

경부 고속도로에 있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의 중부 고속도로 버전이다. 과거에는 실제로 이름도 동일하게 '만남의 광장'이었다고 한다.
다만, 얘가 경부 고속도로 만남의 광장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 경부 만남의 광장은 그래도 과거에 톨게이트가 있었고 현재도 시내 도로와 고속도로의 경계인 지점에 있는 반면, 하남드림은 앞뒤로 여전히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상에 있다.
  • 경부 만남의 광장은 상행 방면에서는 진입할 수 없는 반면, 하남드림은 상행 방면에서도 지하도를 거쳐서 진입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부의 상행에서는 죽전 휴게소가 마지막 휴게소이지만 중부의 상행은 하남드림이 마지막 휴게소이다.
그리고 이 두 만남의 광장은 모두 서울/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요금제가 개방식으로 바뀐 구간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들을 진행 방향별로 분리하지 않으며, 나갈 때는 상행이나 하행 아무데나 자유롭게 나가면 된다. 단지, 경부 만남의 광장은 들어오는 게 하행에서만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21 08:31 2019/03/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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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학회 사건 때 투옥되기도 했던 교사 겸 국어학자 정 태진 선생, 그리고 미군 장성인 조지 패튼과 월튼 워커..
이 사람들은 1940~50년대에 모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당시의 비포장 도로 사정을 감안하면 차가 절대로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저 인물들이 당한 사고는 안전 벨트를 매고 있었다면 사람이 죽을 정도의 사고는 절대 아니었다. 더구나 보행자도 아니고 차량 탑승자가 말이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자동차에는 안전 유리 정도나 도입되었지, 안전 벨트 비스무리한 물건은 아직 비행기 조종석을 벗어나지 못한 단계였다. 사고가 나면 탑승자는 관성 때문에 앞으로 튕겨나가서 좌석이나 유리창과 부딪치고, 최악의 경우 밖으로 날아가서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니 장성급 VIP라 해도 교통사고가 났다 하면 얄짤없이 사망 아니면 중상을 면할 수 없었다. 하물며 정 태진의 경우는 아예 군용 트럭 짐받이에 아슬아슬하게 낑겨 타고 있다가 차가 전복됐으니 원..

기술의 발달 덕분에 자동차가 예전보다 얼마나 더 안전해졌는지를 실감한다. 안전 유리조차도 없던 자동차 초창기엔, 믿어지지 않지만 겨우 시속 30~40km로 달리다가 정면 충돌이 나도 사람이 죽을 수 있었다. 8기통 5000cc로 자동차 최대 출력이 30~40마력이던 100년 전쯤 시절 얘기다.
한편으로, 쿨하게 벨트 따위 없이 빠르기도 엄청 빠른 고속철이라는 교통수단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사람이 교통수단의 곁에서 얼쩡거리다가 죽거나 다쳤다고 하면, 보통은 저렇게 달리는 자동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떠올린다.
무겁고 딱딱한 쇳덩이인 자동차와 퍽 부딪치고 나서 딱딱한 아스팔트· 시멘트 바닥으로 내던져지면 사람은 신체 곳곳이 부러지고 꺾이고 긁힌다. 하지만 아예 신체가 차 밑으로 들어가서 바퀴에 깔리는 것보다야, 차라리 튕겨 나가서 내던져지고 구르는 걸로 끝나는 게 나을 것이다.

일반적인 자동차에 치인 결과가 이러한데, 하물며 훨씬 더 무거운 열차에 치이거나 깔리면 시체가 온전히 남지도 못할 것이다. 지하철 선로 투신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끔찍한 자살 방법이다.
단, 철도에는 굳이 달리는 차량에 치이지 않고도 끔살 당하는 다른 고유한 방법이 있다. 바로 전차선에 감전되는 것이다..;;

열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면 사람이 근처에만 있어도 빨려 들어가서 죽거나 다치듯, 고압 전차선은 굳이 완전히 접촉하지 않고 십수 cm 남짓 근처에만 도달해도 감전될 수 있다.
또한, 똑같이 감전사해도 그냥 말단 부위에 화상만 남기고 비교적 곱게 죽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열을 너무 많이 받아서 온몸이 순식간에 새까만 숯덩이 가루가 되기도 한다.

전압과 전류, 신체 상태가 어떻게 맞물리면 저렇게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전철이야 다들 가공전차선(공중) 방식이니, 감전 사고가 나는 건 사람이 일부러 열차의 지붕으로 올라가는 뻘짓을 했을 때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전철은 제3궤조 집전식이니 그 바닥은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서양에는 touch the third rail (왕창 위험한 짓을 함)이라는 관용구까지 있다.

한편, 비행기와 선박은 자동차처럼 곱게 바퀴만 굴리는 게 아니라, 주변의 유체(공기 또는 물)를 빨아들이고 뒤로 내뿜는 추진 장치가 밖에 돌출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주행 여부와 관계없이 시동이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곁에 있으면 더욱 위험하다.

선박의 경우, 주변에서 작업하던 인부가 스크루에 빨려들어가 끔살 당할 수 있다. 이런 사고는 범선이나 심지어 증기 외륜선 시절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던 부류일 것이다.
헬리콥터의 경우, 커다란 메인 로터는 머리 위 높은 곳에서 돌아가니까 괜찮지만, 테일 로터에 사람이 부딪히는 사고가 날 수 있다. 선풍기 날개에 손가락을 다치는 것 정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심각한 부상을 야기한다.

그리고 이 바닥의 갑은 제트기의 팬에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수십~100수십 톤에 달하는 대형 비행기를 그냥 밀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공중에 띄우기까지 해야 하는데.. 엔진의 힘이 얼마나 돼야 하며, 단위 시간 동안 빨아들이고 팽창시켜 내뿜는 공기의 양이 얼마나 될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단순히 새 정도가 아니라 사람도 당연히 빨려들어갈 수 있다.

지난 2006년 1월 16일에는 미국 엘 파소 공항에서 항공 정비사가 보잉 737 국내선(컨티넨탈) 여객기의 팬에 빨려들어가는 사고가 실제로 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합성이나 주작이 아닌지 신빙성이 약간 의심은 된다만, 사고 현장의 사진도 검색해 보면 나온다. 해당 엔진 전체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바닥까지 온통.. 사람은 뼈도 옷도 유품도 없고 형체가 전혀 없이, 그냥 시뻘건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됐더라..;;

FPS 게임에 나오는 gib(피떡)라는 것의 더 잔혹한 실사판을 볼 수 있었다. 그냥 사람이 사지 잘리고 바닥에 피 흘리며 죽어 있는 어지간한 전쟁터나 교통사고 현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사고가 난 뒤의 모습 말고, 심지어 옆 비행기에서 그 사람이 실제로 쏙 빨려들어가서 죽는 모습을 촬영했다는 동영상까지도 굴러다니는 게 있는데, 이건 합성 주작인 것 같다. 하지만 사건 자체는 실제로 일어난 게 맞다.

요약하자면..

  • 육상 교통수단은 그 특성상 움직이는 차체에 사람이 치이거나 깔리는 교통사고가 날 수 있다. 차와 차끼리도 서로 부딪칠 수 있다.
  • 그에 덧붙여서 철도는 전차선이 존재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보니 차체의 운행 여부와 관계 없이, 아니 오히려 반대로 정지해 있을 때 감전 사고가 날 수 있다.
  • 다음으로, 땅 위에서 바퀴를 굴리는 형태가 아닌 교통수단들은(비행기, 선박) 추진 프로펠러에 빨려들어가는 사고가 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17 08:32 2019/03/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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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통신 기술이 옛날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눈부시게, 폭발적으로 발달했다.
전화기만 해도 처음 발명됐던 시절엔 가히 혁신 혁명이었는데 오늘날은 무전기를 넘어 휴대전화와 인터넷까지 일상이 됐으며, 무선 인터넷이 10~15년 전의 유선 인터넷보다 더 빠른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작은 기기로 글과 음성은 말할 것도 없고,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을 아날로그도 아닌 디지털 형태로 지구 반대편으로 즉시, 당연한 듯이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런 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국가 차원에서 긴급한 상황을 빨리 알리기 위해 봉화와 파발이 쓰였다. 봉화는 전파 속도가 비교적 빠른 대신, 전할 수 있는 게 불/연기의 on/off 정도이니 정보량으로 치면 겨우 두어 비트 남짓한 정말 최소한의 상태밖에 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봉화가 빨라 봤자.. 조선 시대 기준으로 제일 이상적인 상황과 근무 조건을 가정했을 때, 부산에 적이 침입했다는 소식이 봉화들을 거쳐서 400km가 넘게 떨어진 한양의 조정까지 전해지는 데 대략 두세 시간 정도 걸렸을 거라고 그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휴대폰 기지국도 없고 전화선도 없던 시절엔 이런 식으로 위급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파발은 사람이 말 타고 현장까지 물리적으로 달려가서 문서를 전하는 것이니 정보량은 많지만 속도가 거북이 수준일 수밖에 없다. 길목에는 지친 말을 교체해서 바꿔 타는 곳이 일정 간격으로 갖춰져 있었다.

이런 봉화와 파발은 내륙에서의 통신 수단이다.
교통과 통신의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파발마는 통신을 위한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선박 같은 업계에는 '교통수단 간의 통신'도 필요하며, 이와 관련된 표준 규격이 오래 전부터 제정되고 쓰여 왔다. 전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이 발명되기 전부터 말이다.

철도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한 폐색 구간에 둘 이상의 열차가 절대로 동시에 진입하지 않게 하기 위한 통신· 안전 장비가 도입되었다.
선박이야 조향이 가능하므로 철도 같은 그런 경로상의 제약은 없다. 하지만 걔네들은 인간이 환경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망망대해를 돌아다닌다! 바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을지 알 수 없고 무슨 정체불명의 괴선박 유령선과 마주칠지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철도와는 사정이 다르다.

비행기의 경우, 위급한 상황에서 비상 착륙은 어느 나라에서든 인도적인 차원에서 무조건 허용하게 되어 있다. 굳이 기체의 이상이 아니라 기내에 응급 환자라도 발생하면 아까운 연료를 버리기까지 하면서 착륙하게 된다.
그것처럼 망망대해에서 조난 신호를 보낸 선박이 있으면 신호를 받은 근처의 다른 선박이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달려가서 구해 주도록 국제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

이건 의무이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 없이 고의로 그 요청을 외면한 선박은 나중에 처벌 받는다. 어떤 경우건 일단 사람 목숨은 구하고 나서 그 다음에 구조자들이 자기 일을 못 해서 손해 본 비용을 관계자나 보험사를 상대로 청구하든가 말든가 한다.
꼭 조난 말고도.. 거대한 선박들이 나눌 만한 질문· 응답 내지 주변에 전파하는 자기 상태 정보는 패턴이 뻔히 정해져 있다.

  • 본선은 후진 중이다.
  • 본선 주변에 사람이 바다에 빠져 있다, 또는 잠수부가 작업 중이다. 그러니 주의하라.
  • 본선은 지금 통제가 안 되고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
  • 당신 즉시 정지하라.
  • 도와달라, 도선사를 보내 달라 등등..

여객기에는 자신이 테러리스트에게 장악당해 있음을 외부에 알리는 불빛 표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택시도 지붕의 택시등이 평소와 달리 뻘겋게 번쩍거리는 건 기사가 택시 강도를 만났다거나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리는 표식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상태를 비언어적인 간편한 수단을 동원하여 잘 보이고 잘 들리게 표현하고, 때로는 간단한 임의의 written language까지 전하는 체계가 선박 쪽은 일찍부터 훨씬 더 정교하게 발달했다. 뭔가 수화 같은 느낌이 드는데.. 선박의 항해사 내지 조타수라면 이 규약은 당연히 달달 외워서 골수에 박혀 있어야 할 것이다.

1. 가장 먼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호기(signal flag)라는 게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깃발들은 무슨 국기가 아니라 A~Z까지 알파벳을 의미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백지에다 커다랗게 알파벳을 그려 넣고 펄럭일 법도 해 보이는데, 누가 왜 언제 무슨 계기로 이런 도안을 따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독성· 시안성 면에서 장점이 있으니까 만든 게 아닐까?

알파벳 26자 말고 숫자와 특수 용도 깃발도 더 있어서 신호기 한 세트는 총 40종류의 깃발로 구성된다. 그리고 모든 신호기 도안은 빨노파+흑백 이렇게 5종류의 색만 써서 그려져 있다. 딱 삼원색+무채색.. 한국어에서 용언이 존재하는 기본색들로만 그려졌다는 뜻이다.
아래의 퇴역 군함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깃발들은 만국기가 아니라 다 신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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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깃발들은 알파벳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단독 또는 두 종류가 결합되어서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A는 "본선 주변에서 잠수부가 작업 중이니 천천히 통과하라"이고, B는 "위험물 운반/하역 중"이다. 예/아니요는 Y/N이 아니라 C/N이다.

이런 것들이 규약이 다 정해져 있다.
또한, 알파벳을 "에이 비 씨"(영국/미국)나 "아 베 체"(독일) 같은 특정 언어대로 읽는 게 아니라 "알파, 브라보, 찰리, ..." 식으로 더 튀게 읽는다. '델타'(D)처럼 비슷한 그리스 문자의 독음에서 따 온 것도 있지만 모든 글자가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에코(E)는 국내에서도 2와 E를 구분하기 위해서 쓰인다. 유니코드 코드값 같은 16진수를 다룬다거나 자연상수가 등장할 때 말이다.

한국어만 해도 굳이 2와 e가 아니어도 숫자 '삼'과 '사' 같은 건 헷갈리기 쉽다. 그래서 주유소 같은 데서는 '잉이삽산' 식으로 받침 발음을 왜곡해서 clearify하지 않던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알파벳의 발음도 '엠'과 '엔' 같은 건 시끄러운 곳에서 청각적으로 명확한 분간이 어렵다. 거기에다 언어 중립성 같은 문제가 있기도 해서 저런 국제 명칭이 따로 제정된 듯하다.
한자에는 숫자의 변조를 막기 위해서 갖은자라는 게 존재하는데, 글자 언어가 아닌 말소리 언어에서는 발음의 혼동을 막기 위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는 게 흥미롭다.

2. 그리고 다음으로 수기 신호(flag semaphore)가 있다.

이건 동일한 도안인 깃발이 두 개 있고 그걸 사람이 양팔로, 마치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각각 어느 각도로 들고 어떻게 흔드느냐에 따라 표현하는 글자가 달라지는 체계이다. 수기용 깃발은 바다에서는 빨강+노랑, 육지에서는 하양+파랑으로 정해져 있지만, 사실 깃발 자체보다는 사람의 팔이 변별 요소 역할을 한다. 깃발은 신호수의 팔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더 분명히 드러내 주는 역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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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신호는 깃발 두 개만 있으면 되니 전용 신호기보다는 준비물이 단순하다. 하지만 표현 가능한 정보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숫자의 신호와 알파벳의 신호가 동일하다. 그래서 이 신호가 문자인지 숫자인지를 나타내는 수기를 먼저 보여준 뒤 다음 글자가 이어진다.

3. 끝으로, 발광 신호와 모스 부호가 있다.

'신호기'라고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무슨 철도 신호기 같은 물건이 떠오른다만.. 저기서 기는 당연히 旗(banner)이지, 機가 아니다. 그리고 신호기건 수기건 다 깜깜한 밤이나 짙은 안개처럼 시야가 제한된 곳에서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때는 커다란 헤드라이트 같은 조명을 상대방 선박에게 비추고 이걸 주기적으로 깜빡여서 신호를 보낸다. 저런 A~Z, 0~9 같은 숫자를 그 이름도 유명한 모스 부호계로 인코딩 하고, 깜빡이는 시간 간격으로 돈(점)/쓰(선)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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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는 잘 알다시피 전신을 보낼 때 사용되지만, 가까이 있는 선박끼리는 저렇게 눈에 보이는 빛의 형태로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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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와 점자는 무슨 관계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난 모스 부호는 뭔가 허프만 트라이(trie)처럼 여러 글자들을 쭉 늘어놓아도 모호성이 없는 binary 부호 체계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살펴보니 그렇지 않더라. 글자 경계 구분을 따로 해 줘야 한다. 가령, 돈만 4개 늘어놓으면 H가 되기 때문에 E(1개), I(2개), S(3개)는 사이에 구분자를 넣어 줘야 표현 가능하다.

옛날에 울펜슈타인 3D 게임에서도 어떤 레벨의 BGM에는 '띠디디.. 띠 띠디..' 이렇게 히틀러를 제거하라는 지령의 모스 부호가 비프음 형태로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월남전 때 베트콩에게 포로로 붙잡혔던 어느 미군이 말은 위에서 억지로 시킨 대로 하지만, 눈을 깜빡이는 걸로 torture(놈들이 포로들에게 고문을..)이라는 단어의 모스 부호를 표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정도면 교묘하게 숨겨진 모스 부호는 추리 소설에서 다잉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고 문제의 해결 단서까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재래식 우체통 편지도 간신히 오늘 내일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마당에 전보 서비스가 아직도 있긴 한가 보다. 본인은 지난 2000년, 정보 올림피아드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교회 어르신에게서 축전을 받았던 게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보라는 걸 접한 경험이었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유한한 개수의 문자를 어디서나 편리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부호화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는데 동양의 한자라는 문자는 이런 실용성과는 너무 안 어울려 보이는 게 사실이다.

끝으로, 본인이 갑자기 이런 재래식 선박 신호 체계를 찾아 본 이유를 얘기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6· 25 개전 초기의 대한해협 해전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 "J.F (너의 국기를 게양하라.)"
  • "N.H.I.J.P.O (너의 국적을 제시하라.)"
  • "I.J.G (언제 어디를 출항하였는가?)"
  • "L.D.O (목적항구가 어디인가?)"
  • "K (정지하라)"
  • "O.L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이런 것들.

관련 이야기들을 찾아보면 그 당시 우리나라 해군이 북괴 선박에게 실시했던 구체적인 검문 절차를 알 수 있다. 그땐 날이 저물어 있었기 때문에 수기 다음으로는 발광 신호로 저 글자들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 알파벳 이니셜들이 의미하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저 이니셜들은 대한해협 해전 이야기 말고 다른 어떤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재 사용되는 신호용 알파벳과 의미들은 1969년에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제정된 거라고 한다. 그러니 6· 25 전쟁 당시와는 체계가 다르다.
그럼 옛날 신호 체계는 어떠했는지 검색을 해 보면.. International Code of Signals 1931년판이라는 게 나온다. 하지만 너무 옛날 책이어서 그런지 인터넷 상으로 내용을 열람할 수는 없어 보인다. 천하의 구글도 이 책을 스캔 뜨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 이니셜들이 정말로 그때 국제적으로 통용되었던 신호가 맞는지는 본인은 아직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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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9/02/10 08:33 2019/02/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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