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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견인차

다른 자동차를 끌거나 수송하는 자동차는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사다리차가 크게 (1) 이삿짐을 나를 때 혹은 (2) 불 끌 때로 용도가 나뉘듯, 견인차는 크게 (1) 사고· 고장 차량 견인과 (2) 불법· 부정 주차 차량 견인으로 용도가 둘로 나뉘는 것 같다.
그리고 (1)용 견인차는 유난히도 '현대 리베로' 개조 차량이 눈에 많이 띄는 듯하다. 국산차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엔진룸이 앞에 돌출돼 있는 그 트럭 말이다.

사고가 한번 나면 어디서 정보를 입수했는지 정말 광속으로 견인차들이 벌떼같이 달려온다고 한다. 하지만 견인료 바가지를 피하려면 반드시 자기 차의 관할 보험사가 운영하는 견인차를 이용하는 게 좋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차가 퍼졌다면 도로 공사도 자체적으로 인근의 휴게소나 톨게이트 정도까지는 무료 견인을 제공한다고 한다.
승용차 말고 대형 트럭이나 버스를 견인하는 더 크고 아름다운 견인차도 있으나 이런 건 더 보기 어렵다.

한편 이들과는 달리, 공장에서 갓 출고된 신차(특히 승용차 같은 소형차)는 여러분도 모양을 기억하고 있을 거대한 트레일러에다 최하 대여섯 대씩 통째로 싣고 운반한다. 액션 영화에서는 달리는 신차 수송 트레일러를 주인공이 폼나게 탈취해서 거기 있는 차를 곧장 시동 걸어서 달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수리의 여지가 없는 폐차는? 차량을 한 치의 손상도 안 나게 곱게 수송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 생채기가 나건 말건 상관없이 차들을 같은 공간에라도 더 우겨넣어서 나르는 편이다.

자동차 다음으로 철도를 살펴보면.. 기관차는 애초에 동력이 없는 다른 객차들을 견인하라고 만들어진 물건이다. 특히 전기로 달리는 차량들은 디젤 차량보다 퍼질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기 때문에 디젤 기관차가 '구원 운전'용으로 쓰인다. 또한, 본격적인 장거리 주행이 아니라 단순히 역이나 기지 내에서 차량의 분리· 결합, 선로 전환용으로 잠깐 잠깐 쓰이는 소형 기관차를 '입환기'라고 따로 부른다. 오늘날의 특대형 기관차가 아니라 옛날에 도입되었던 상대적으로 소· 중형, 저성능 기관차 중, 4400호대가 오늘날까지 이례적으로 입환용으로 쓰이는 중이다.

끝으로, 선박에도 견인이라는 게 물론 있다. 예인선이라는 선박도 있는데 있는데 이건 구조가 어찌 되나 잘 모르겠다. 오로지 비행기만이 한 기체나 다른 기체를 물리적으로 어찌할 방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전투기를 동원해서 아예 격추시키는 것 말고) 다만, 고정익 비행기는 아직 공중에 뜨기 전에는 타 자동차의 견인을 받는 게 관행이다.

2. 비행기 tow car

고정익 비행기는 주변의 공기를 거세게 빨아들이고 내뿜으면서 움직인다는 특성상, 여객 터미널 주변에서는 자기 엔진으로 자력 이동을 하지 않는다. 특히 후진도 기술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여러 여건상 무리라고 판단하여 그냥 봉인하고 지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타는 여객기들은 출발 직후에 주기장부터 활주로의 자력 주행 구간까지 잠시 동안은 별도의 견인차의 도움을 받아서 움직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항 활주로에서 납작한데 바퀴는 엄청 크게 생긴 이상하게 생긴 트랙터가 바로 비행기 견인차이다. 나름 비행기의 운행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다. 크기는 다양한 편이며, 보잉 747이나 A380 같은 크고 아름다운 여객기를 견인할 정도의 견인차는 최대 시속은 겨우 32.2km인 주제에 엔진은 무려 10400cc 배기량에 1000마력대를 자랑한다. 가격은 억~10억 원대.

비행기는 움직이지 않고 자기 바퀴만 헛도는 현상을 방지하려면 엔진 힘만 강한 게 아니라 자기도 엄청 무거워서 접지력이 좋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견인차의 자체 중량도 수십 톤에 달한다. 또한 철도 차량이 아닌 것이 이례적으로 후진 역시 전진과 거의 대등한 다양한 단수로 할 수 있게 돼 있다.
대형 비행기 견인차는 가격과 엔진 성능으로만 따지자면 이거 무슨 외제 슈퍼카 스포츠카와 별 다를 바 없다. 단지 제로백이나 속도만이 천지차이일 뿐..

3. 스페이스 셔틀의 셔틀

비록 오래 전에 퇴역해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 분야의 최고 특별한 사례로는 우주왕복선을 실어 날랐던 보잉 747 개조 화물기를 꼽을 수 있겠다.

이게 왜 필요하냐 하면.. 우주왕복선은 착륙은 여러 곳에서 할 수 있지만 발사는 반드시 한 곳(케네디 우주 센터. 플로리다 주 소재)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뭐, 착륙 지점도 여러 곳이라고 해 봤자 실제로는 두 곳뿐이긴 했다만(에드워즈 공군 기지 추가. 캘리포니아 주 소재).. 한때 NASA에서 남아메리카의 이스터 섬조차 우주왕복선의 착륙 공항으로 개척할 생각을 했을 정도이니 우주왕복선이 활발히 운용된다면 착륙 가능 공항이 더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지구로 재진입하는 우주왕복선 사령선은 그냥 글라이더일 뿐, 동력 비행이 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발사 기지 외의 다른 곳에 착륙한 사령선은 재활용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다시 발사 기지로 수송해 줘야 된다.
그런데 얘는 크기도 엄청 큰데 일일이 분해해서 육로 수송을 하기에는 기계의 신뢰성 차원에서 리스크가 너무 큰지라, 있는 그대로 항공 수송을 선택하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큰 단일 세포가 타조알이듯, 우주왕복선 사령선은 세상에서 가장 큰 단일 항공 화물이라고 기네스북에도 올랐다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큰 화물기는 AN225이긴 하지만 우주왕복선은 그냥 보잉 747 개조기로 수송된다. 우주왕복선을 기체 안에 집어넣을 수는 없으니 저렇게 위에다가 특수한 방법으로 고정해 놓는다. 그리고 화물을 실은 뒤의 항공역학적인 최적화를 위해 이 비행기는 수직미익이 추가로 달려 있다.

우주왕복선을 위에다 얹는 작업도 특수한 크레인을 동원해서 며칠씩 걸리는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다. 고정을 잘못했다가 우주왕복선이 공중에서 비행기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라도 나는 건 생각도 하기 싫은 악몽일 테니까.
게다가 이 비행기는 우주왕복선을 실은 상태에서는 미국 대륙 횡단조차 한 번에 못 하고 중간에 착륙해서 급유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굉장히 충격적이다. 747은 그냥 승객만 가득 실었을 때는 나름 한국· 일본에서 뉴욕까지도 직항이 가능하지 않던가?

물론 우주왕복선은 승객 400명보다 더 무거운 80톤에 달하는 무게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셔틀 수송기가 빌빌대는 더 큰 이유는 연료 탑재량, 엔진 출력 등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저렇게 우주왕복선을 등짝에다 업은 외형으로는 오리지널 비행기와 같은 수준의 양력이 발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리지널 747 여객기의 순항 고도보다 훨씬 낮은 고도에서 더 낮은 속도로 조심스럽게 비행해야 하며, 항속 거리도 몇 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다고 한다.

그러니 수백만 달러가 깨지는 온갖 번거로운 두벌일을 안 하려면 우주왕복선은 어지간해서는 그냥 발사지인 케네디 우주 센터로 곧장 착륙하는 게 바람직했다. 그러나 하필 거기가 날씨가 안 좋고 폭풍이라도 분다면 이는 활강을 하는 우주왕복선에게 안전상의 악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불가피하게 에드워즈 공군 기지로 가야 했다.

사실, 자체 동력이 없는 우주 비행체를 잘 조종해서 특정 지점에 딱 맞춰 착륙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보통 우주에 다녀온 사람들은 자그마한 캡슐에 탄 채 대서양 망망대해에 낙하산 달고 퐁당 떨어진 뒤, 군함이 좌표를 받고 구조하러 오지 않던가? 그리고 우주왕복선은 이렇게 지구에서 수송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발사되는 과정도 모두 아주 경이로운 물건이다. 연료가 분출되어 기체가 나아가는 방향과 사령선이 달린 곳이 일직선이 아니기 때문에, 무게와 각도 배분이 아주 까다롭다..

4. 유니목/우니모크 -- 만능 자동차

메르데세스 벤츠에서 개발한 '우니모크'(Unimog)라고 바퀴가 굉장히 크고 범퍼와 차체가 높고, 길이는 짧아서 좀 특이하게 생긴 트럭이 있다. 그런데 이게 보통 물건이 아니다. 얘는 유연성, 확장성, 플러그 인 연계, 험지 주행 능력.. 이런 것들이 지구의 그 어떤 육상 교통수단의 추종도 불허하는 세계 최강의 다기능 다재다능 다용도 자동차이다. 뭔가.. 자동차계의 맥가이버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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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을 보면 서스펜션부터가 비범해 보이는데.. 어지간한 험지에서도 하부가 긁힐 걱정 따윈 안 해도 된다.
45도 경사를 오를 수 있으며, 기어도 최저단은 가속 페달을 밟고도 사람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다. (자동차가 보통은 idle creeping조차도 사람 걷는 속도와 대등한데..)

휠을 교체하면 레일 위 주행쯤은 당연히 가능하고, 심지어 운전대도 작업 편의를 위해서라면 좌핸들과 우핸들 실시간 전환이 된다. 그리고 덤프 트럭, 타 차량이나 비행기 견인 등 온갖 파트를 붙여서 작업용 차량으로 개조 가능하다.
이런 차는 군대에서 최고로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100% 정답이다. 독일군 내부에서 당연히 제식용으로 쓰이고 있다.

5. 바거 288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에 이어, 지상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력 이동 가능(= 다른 교통수단으로부터 견인받지 않아도 되는) 기계는.. 이미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독일에서 제작한 초대형 광산 굴착기인 Bagger 288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 공돌이들의 발상과 능력에도 경의를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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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법적으로는 교통수단이 아닌 건설기계일 테고,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에 일반 도로를 주행하기란 어차피 불가능하다. 과거에 나치에서 만들었던 열차포 따위와도 비교가 안 되는 규모이니까... 자력 이동은 광산 지대에서 이동하라고 넣은 기능이지, 도로를 달리라고 넣은 게 아니다.

굴삭기의 경우 바퀴식은 그냥 도로를 달려서 주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타 자동차들보다는 주행 속도가 훨씬 느리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들에게는 추월을 강요하는 약간의 민폐를 끼친다. 무한궤도식은 도로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평소에는 그냥 다른 대형 트럭에 실린 채 수송되기도 한다.

하지만 Bagger 288은 뭐 다른 교통수단에 싣거나 견인 받는 것 자체가 절대 불가능하고.. 자력 이동이 가능은 하지만, 주행 속도는 시속 1km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0.1~0.6km/h, 분당 2~10m) 그렇게 느리게 움직이지만 움직이는 기계에 다른 차가 부딪치면 그냥 통째로 뜯겨져 나가고, 사람은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7/11/06 08:32 2017/11/0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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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신호등 이야기

※ 신호등에서 황색 또는 노란불은 빨강이나 파랑에 비해서 보기 훨씬 어려운 색이다. 하지만 문맥에 따라서 의미하는 바가 생각보다 다양하다.

1.
자동차 교차로의 3색 신호등에서 노란불은 잘 알다시피 초록불이 곧(대략 2~3초 뒤에?) 끝난다는 걸 알리는 신호이다.
보행자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노란불이 없고 그 대신 청색 신호가 훨씬 더 오랫동안 깜빡거리기만 하니 이와 대조적이다.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빨리 건너가라는 뜻에서 청색 점멸이지만, 자동차 교차로는 빨리 건너가기보다는 여기서 속도 줄이고 멈추라는 뜻에서 황색이다.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호등이 갑자기 노란불로 바뀌었을 때가 참 난감하다. 원래 FM대로라면 "정지선을 아직 지나지 않았다면 멈춰라"이긴 하지만 이것도 자동차 제동거리의 특성상 현실에서는 무리인 경우도 있다. 신호· 과속 무인 단속 카메라가 있는 교차로라면 이 딜레마가 더욱 커지며, 이것 때문에 운전 면허 도로 주행 시험에서도 신호 위반 때문에 꽤 억울한 탈락자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신호 위반은 페르시아의 왕자로 치면 피 한 칸만 깎이는 대미지가 아니라(2층 추락) 즉사 트랩이다(3층 이상 추락). 일단 면허를 딴 뒤에는 노란불에도 교차로를 과감히 통과하고 배째라 운전을 눈치껏 할지라도, 일단 연습생 입장에서는 굽신굽신 닥치고 서야 합격할 수 있다.

2.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옛날에, 1978년 이전에 우리나라는 노란불이 "좌회전 신호"였다고 한다. 그리고 자동차 신호등도 초록불이 중간 알림 없이 곧장 빨간불로 바뀌었다고 하니 40년 전엔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했나 싶다. 지금처럼 좌회전용 청색 왼쪽 화살표 + 직진용 청색등 체계는 1978년 9월 이후부터 도입되었다고 그런다. (1978년 9월 11일 동아일보 보도)

이를 보도한 그 당시 신문 기사는 "서울 시내에는 현재 168개소에 신호등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니 이 역시 지금으로서는 굉장한 압권이다. 서울시 전체에 교차로 신호등이 꼴랑 168개만 있었다니. =_=;;

3.
한편, 3색이 아니라 그냥 노란불이 [OXO]와 [XOX], 또는 [OX]와 [XO] 반복하는 곳이 있는데 그건 교차로가 아니라 커브나 비탈길에서 그냥 주의해서 진행하라는 정보 제공의 성격이 강하고..

4.
밤에는 차량 통행이 매우 드문 교차로의 3색 신호등이 적색 점멸 또는 황색 점멸로 바뀌기도 한다. 이건 각각 '반드시 정차 후 주위를 살피며 통과', '꼭 완전히 정차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주위를 살피며 조심해서 통과'라는 뜻이다. 자동차 신호등이 그렇게 바뀌고 나면 횡단보도는 신호등이 아예 꺼진다.

이건 약간 리스크를 올린 대신 쓸데없는 신호 대기를 줄여서 피차 편하게 잘 통과하라는 취지로 도입된 시스템이다. 그러니 비보호 좌회전과도 좀 비슷한 위상이다. 그런데 저게 초록불과 완전히 동일한 신호인 줄 알고, 혹은 도로에 나 혼자밖에 없기라도 한 듯이 전속력으로 쌩 질주하다가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

사람이 발이 인도에 있다가 차도로 이동할 때(횡단보도 건널 때, 차에서 내릴 때 등등), 그리고 차가 측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 길과 길이 만나는 곳으로 진입할 때는 모름지기 "겁대가리"라는 게 발동해야 한다. 총기를 다룰 때 모든 총은 장전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다뤄야 하듯, 도로에서는 옆에서 무엇이든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고 횡단하거나 차를 몰아야 한다.

더구나 점멸 신호는 초록불의 보호를 정식으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니 더욱 몸을 사려야 한다. 특히 보행자가 이유 불문하고 갑이며 왕이다. 저런 곳에서 보행자를 치기라도 하면 인생이 더 꼬이게 된다.

5.
끝으로, 철도는 (1) 궤도 위만 달리며 (2) 가감속이 자동차보다 훨씬 더 더딘 교통수단이라는 특성상, 신호등을 운용하는 방식이 자동차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초록은 정상 주행, 노랑+초록은 조금 감속, 노랑은 많이 감속+서행, 빨강은 완전 정지 순으로 의미가 통용된다. 쉽게 말해 "이 신호등이 곧 빨강으로 바뀔 것이다"가 아니라 "이걸 지나친 뒤에 다음에 마주치는 신호등은 빨강일 테니 미리 감속하라"라는 뜻이다. 매우 신기한 차이점이다!

그나마 ATC급 이상 신호 체계에서는 기관사가 창 밖으로 신호등을 볼 필요도 없고 아예 차내의 계기판에 지금 선로 구간의 신호가 곧장 표시된다.
비행기는 한번 뜨고 나면 밖에서 전혀 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 기껏 격추만이 가능하다. 우주 발사체도 최악의 경우 주변에 다른 피해를 끼치지 말라고 자폭 명령 정도만 내릴 수 있으며, 한번 연소가 시작된 뒤부터 제어가 안 되는 고체 연료 로켓은 그 위험성이 더하다.

그러나 철도는 선로와 차량과 신호 시스템이 일심동체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신호를 어기고 폭주한다면 강제로 차량을 세우는 장치가 다 구비돼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잘 통제받는 교통수단이 바로 궤도 교통수단인 철도이다.

6.
신호등을 보면 컴공과의 운영체제 이론 수업 시간에 배우는 스레드 동기화(도로라는 리소스에 한 방향의 차량만 접근)와 스케줄링(시간 배분) 생각이 난다.

강제로 적록으로 차들의 흐름을 제어하는 신호등은 컴퓨터로 치면 각 프로그램마다 강제로 CPU 시간을 할당해 주는 선점형 멀티태스킹이라 볼 수 있다. 그 반면 로터리나 점멸 신호등은 협력형 멀티태스킹이다.
로터리는 신호대기가 없어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교통량이 너무 많아지만 강제 신호보다 비효율적인 체계가 된다.

미래에 도로는 신호 시스템이 교통 상황을 감안하여 더 융통성 있고 똑똑해지는 쪽으로 발전하지 싶다. 중앙선 가변차로 같은 건 옛날에 잠깐 시도되었다가 운전자가 헷갈리기 쉽고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폐지되었는데, 만약 자동차가 대로 한정으로라도 무인 운전 시스템 기반으로 완전히 물갈이되고 중앙 관제 센터가 도로의 모든 자동차들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가변차로도 얼마든지 재등장 가능할 것이다. 철도로 치면 선로가 그냥 상하행 고정 복선이던 것이 첨단 신호 시스템 덕분에 단선병렬로 바뀌는 것과 같다.

본인은 그런 것 말고도 교통 효율을 위해서는 인적이 드문 곳의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요청을 했을 때에만 신호를 주는 것, 그리고 자동차 신호등에도 신호 변경 예상 시간을 안내해 주는 것이 필요하고 생각한다.

7.
비행기에는 상하 고도를 변경하여 이륙, 순항, 착륙이라는 절차가 있다. 그런데 자동차 운전은 비록 상하는 아니지만 좌우로 차선을 변경하는 게 개념적으로 이착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태우고 제일 바깥의 4~5차선에서 출발한 뒤, 수 km 이상 지속적인 고속 주행을 할 때는 중앙선 근처의 1~2차선으로 간다. 바깥 차선은 정차하거나 끼어드는 차들이 많아서 원활한 주행이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 뒤 정차하거나 타 IC로 진출할 때가 되면 슬슬 차선을 바꿔서 다시 바깥 차선으로 돌아간다. 이게 비행기의 착륙과 비슷한 절차인 것 같다.

8.
그런데, 검색을 해 보니.. 신호등이 고장 나거나 회로가 꼬여서 그냥 곱게 꺼지기만 한 게 아니라, 양방향이 "모두 초록불"이 돼 버려서 차량들끼리 측면충돌 사고가 난 경우가 있더라!! 이건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먹는 우물· 상수도에 독이 들어갔다거나 신호등계의 급발진 사고가 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완전 생사람 잡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소프트웨어의 버그도 아니고 하드웨어· 환경 여건으로 인한 전자기기의 오동작· 폭주를 예방하는 방법이 없을까..;

그리고 사실은 신호등이 제 기능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신호등이 파란불이더라도 건너편 차들이 못 빠져나가고 있어서 들어갈 공간이 없으면 교차로를 통과해서는 안 된다. 꼬리물기는 차량 소통의 데드락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도로에 다른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경찰이 수신호를 하고 있다면 그 수신호가 신호등보다 우선순위가 더 높기 때문에 경찰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쪽에서 신호를 하고 있던 경찰들이 실수로 일관성 있게 신호를 못 내려서 사고가 날 때도 있다. 이건 국가에다 소송을 걸어서 보상받는 길이 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09 08:25 2017/08/0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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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이야기

본인은 철덕이다. 철도는 레일 위에서 앞이나 뒤로만 달릴 수 있고 차체가 스스로 조향을 할 수 없는 1차원 교통수단이다. 그런데 1차원 교통수단이 철도만 있는 건 아니다.
경전철 중에는 모노레일이 있다. 궤도가 2개(좌우 바퀴용)가 아닌 1개의 궤조로만 구성된 작은 교통수단을 일컫는데, 모노레일은 아래의 궤도를 붙잡고 위로 달리는 놈이 있는가 하면 위의 궤도에 매달려서 아래로 달리는 놈도 있다.

모노레일 정도 되면 그 구조가 케이블카와도 상당히 근접하게 된다. 모노레일은 그래도 금속이나 시멘트로 된 단단한 궤도에 붙어서 다니지만 케이블카는 비록 금속이긴 해도 신축성 있는 '줄'에 매달려서 다닌다. 단, 케이블카는 여느 궤도 교통수단과는 달리 여러 량이 연결되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열차'의 범주에서는 다소 멀어진다.

케이블카는 줄만 깔아 주면 되기 때문에 궤도 관련 구조물이 주변 환경에 끼치는 여파가 덜하다. 그렇기 때문에 산에서 봉우리를 빠르게 잇는 교통수단으로 즐겨 쓰인다. 물론 길고 무거운 줄을 '최초로' 부설할 때는 그 아래 환경에 대한 파괴가 어느 정도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줄에 매달린 차량은 위에 바퀴가 달려서 케이블 위에서 굴러가는 형태로 움직일 수도 있고, 발상을 달리하여 차량은 줄 위에 가만히 놓여 있는데 기계실에서 줄 자체를 밀거나 당겨서 차량들을 한꺼번에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전자는 엘리베이터에 가깝고 후자는 에스컬레이터에 가깝다.

스키장의 언덕을 오르는 용도로 운용되는 곤돌라/리프트는 보통 후자 형태이며, 얘는 그냥 좌석 달린 에스컬레이터나 마찬가지이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도 차량 자체에 무슨 범퍼카처럼 모터가 달렸다거나 선로에 제3궤조 같은 게 있지는 않다고 한다. 처음에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만 중앙 기계실에서 줄을 당겨서 차량을 끌어올려 준 뒤, 내려가면서 뱅글 도는 건 전부 무동력 관성 주행이라고 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전통 보존 차원에서 지금도 운행되는 노면전차도 차량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줄이 움직이더라. 가파른 언덕 때문인지 19세기 기술로는 줄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중앙 집권' 방식이 더 나았던 모양이다.

본인은 서울 남산은 맨 처음 걸어서 등산으로 정상까지 올랐고, 그 뒤엔 가족을 데리고 케이블카로도 가 봤다.
케이블카는 좌석 같은 건 없고 단칸방 같은 차량에 대형 버스와 맞먹는 45명의 인원이 꽉꽉 입석 밀착해서 탄다. 운행 시간도 3분 남짓밖에 되지 않으니 그냥 공항에서 탑승동과 비행기를 연결하는 그 단거리 입석 셔틀버스를 탄다는 기분으로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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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차량은 딱 두 편성이 다닌다. 차량을 한 대 보내고 나서 뒷차가 올 때까지의 시간은 내 경험상 5~10분 정도는 잡아야 한다. 그러니 단위 시간당 수송 능력은 딱 답이 나올 것이다. 한번 차량이 도착하면 생각보다는 줄이 많이 없어진다.
그나저나 남산 케이블카는 의외로 국가가 아니라 민간 소유이더라. 마치 남이섬처럼 말이다.

산악용 같은 게 아닌 이상, 케이블카는 반드시 공중에 떠 있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급경사만 잘 넘으면 되니까 말이다. 구시대 철도에 존재했던 인클라인(강삭철도)도 개념적으로는 케이블카의 일종이다. 물론 얘도 한 량씩 끌어올려야 하니 무진장 불편하다.

궤도 위만 달리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뭔가 줄을 붙잡고 달리거나, 줄에 매달린 채 움직이는 교통수단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는 않다. 그래도 차체가 직접 선로 위를 굴러가는 것보다는 줄에 매달려서 움직이는 게 게 오르막 같은 걸 오를 때는 더 나은 면모가 있다. 엘리베이터는 아예 수직 강하를 해야 하니 구동 원리가 정확하게 이 범주에 속하긴 한다. (물론 교통수단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뭣한 물건이지만)

철도는 작은 마찰로 인해 수송 효율이 좋은 것과 별개로 오르막에는 매우 취약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보조가 과거에 더욱 필요했다. 케이블카나 곤돌라 같은 물건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교통수단의 구동 원리에 대한 안목을 더 넓힐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12 08:38 2017/07/1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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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옛 모습

1. 한강 물줄기

난 옛날 조선 시대엔 서울이 규모가 굉장히 작았다는 것까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좁게는 사대문 안 한정이고 제2권역으로 더 확장해도 지금의 내부순환로와 얼추 비슷한 성저십리 안이다. 그래서 남산이 지금의 관악산이나 청계산만큼이나 서울의 남쪽 끝이었으며, 한강 강변에는 이미 사형장(새남터, 절두산, 사육신묘), 발전소 같은 시설이 있을 정도였다.

오늘날 미군 부대가 들어서 있는 용산 부지는 예로부터 원래 병영이 있던 한양 외곽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거여· 마천 일대의 특전사 부대만큼이나 외곽인 셈인데 지금은 그 군부대조차도 신도시 개발과 아파트 건설의 등쌀을 견디지 못하고 이전 예정이다. 더 남쪽으로 가면 지금의 김포 공항 같은 공항이 여의도에 있었다.

잠실엔 말 그대로 누에밭이나 있었고, 마장동에는 말을 키우는 시설이 있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이미 거기만 해도 서울 중심지에서 벗어난 외곽이었던 것이다. 20세기 이후의 현대와 같은 교통· 통신, 전기, 건축, 상하수도 인프라를 잣대로 옛날 도시의 규모 한계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그런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한강의 모양도 지금과는 굉장히 달랐다는 사실은 본인이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고 굉장히 충격적이다.
옛날에는 한강물이 굉장히 맑고 얼추 바닷가 같은 모래사장도 있어서 사람들이 저기서 바로 해수욕 하듯이 수영을 했다는 것까지는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밤섬이 일부 폭파되고 여의도 부지가 개발되고, 1980년대 중반의 5공 시절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이 진행되어서 올림픽대로가 닦이고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에 온통 고수부지와 공원이 만들어진 것까지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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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옛날 사진을 보니 한강이 원래는 지금보다 하중도가 더 많이 있었고 강폭과 수심이 지금보다 더 작고 얕았던 것 같다. 건축 용도로 한강 바닥의 모래를 많이 파내기도 했다고 들었다만..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난지도나 뚝섬은 여의도만큼이나 진짜 문자 그대로 한강의 지류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심지어는 잠실도 섬이었다. 세상에 '잠실島'라니! 무슨 대체역사물에 나오는 가상의 서울 모습도 아니고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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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제는 한강에다가 철교를 표함한 교량을 놓았으며, 철길이 나 있는 서쪽(서울 동남쪽의 산들을 피해서)으로 여의도와 영등포 일대를 경성부에 편입시켰고 1920년대 을축년 대홍수를 한번 당한 뒤엔 저지대에 대한 치수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강의 물줄기를 뜯어고치거나 오늘날 강남이라 불리는 지역(그 당시 광주군)을 수도권 배후로서 개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6· 25 전쟁 때 개전 사흘 만에 서울을 빼앗겼다는 말도 지금처럼 도봉구부터 강동· 송파· 강서· 금천구 같은 거대한 영역을 몽땅 빼앗겼다는 게 아니라 그냥 한강 이북을 빼앗겼다는 뜻이었다.

지금과 같은 서울 개발은 1960년대 이후 박통 때부터 시작됐다. 휴전 이후 서울이 안 그래도 북괴와 더 가까워져 버렸는데 북쪽에는 또 북한산이라는 거대한 장애물도 있으니, 북쪽으로 서울을 확장하는 건 도저히 안 되겠고 한강 이남을 서울로 편입시켜서 본격적으로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저런 하중도들은 확실하게 섬도 내륙도 아니면서 교통이 불편하고 장맛비만 맞으면 침수되니, 개발 효율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좋은 땅이 아니었다. 그래서 땅을 리모델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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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 사업 같은 걸 바다가 아닌 하천 버전으로 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그래도 그렇지 인간의 토목 기술은 한강 같은 큰 강의 물줄기도 저렇게 마음대로 바꿔서 지도의 그림까지 송두리째 달라지게 하는구나.
석촌 호수가 그냥 생긴 게 아니라 바로 옛날에 한강의 본류(섬의 남쪽)가 지나던 흔적이라고 한다. 여러 모로 흥미롭다.

2. 강북의 옛날 버스 터미널과 운동장

그럼 다음으로 교통 쪽 얘기로 넘어가겠다.
부산에 지금과 같은 김해 공항이 있기 전에 수영 비행장(지금의 센텀시티 부지)이라는 게 있었듯, 서울도 김포 공항이 생기기 전엔 무려 여의도에 민· 군 공용 비행장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서울의 덩치가 커지면서 공항은 저 서쪽 끝으로 이전했다. 김포 비행장은 시작은 공군 기지였는데 완전한 싸제 민간 공항으로 바뀐 것이다.

공항처럼 철도 역시 도시가 커짐에 따라, 혹은 복선전철화 개량을 하는 과정에서 역과 선로가 외곽으로 이설되거나 지하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서울, 영등포, 청량리 같은 역은 그래도 일제 강점기에 처음 생겼을 때의 위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1920년대 초에 진짜 서울 역이던 서대문 역이 없어지고 그 앞의 남대문이 서울/경성 역할을 하게 된 변화는 있지만, 그건 여느 외곽 이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굳이 따지다면 대구 역과 동대구 역의 변화 양상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볼 만하다.

그러면 육상 교통수단인 고속버스 내지 시외버스 터미널은 어떨까?
일단 지금의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은 1970년대 후반부터 건설이 시작되어서 1981년에 개장한 것이다. 1970년대엔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과 함께 고속버스 시대가 열리긴 했는데, 서울 여기저기에 고속버스 회사와 터미널이 난립하기 시작한지라 이것들을 이용하기 쉽게 통합하고 이 참에 강남 지방을 육성하는 게 목적이었다.

동서울 터미널은 이보다도 더 늦은 1990년은 다 돼서야 등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중부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좋은 곳에 버스 터미널을 더 만들어서 경부 고속도로의 수요를 분산하는 게 목표이다. 앞으로 평창 동계 올림픽 덕분에 강원도 쪽의 철도 접근성이 좋아지면 시외버스의 위상이 다소 낮아지겠지만, 그래도 철도로 최전방까지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이 터미널은 군인들이 여전히 많이 먹여살릴 것 같다.

강남 고속과 동서울 터미널이 서울의 고속· 시외버스들을 평정하기 전에는 서울에 용산, 신촌 등 여러 곳에 버스 터미널과 정류장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것들을 통합할 목적으로 1969년엔 아마 곧 완공될 경부 고속도로의 개통을 염두에 두고 그 당시로서는 마장동, 지금은 용두동의 동대문구청 부지에 '마장 터미널'이라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만들어졌다. 이건 20년간 운영되다가 1989년, 동서울 터미널의 개장에 즈음해서 없어졌다.

이건 당시 철도의 역사와 관련지어 생각해 봐도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경춘선 철도가 지금이야 중앙선 망우 이후 구간에서 시작되지만 옛날에는 광운대(성북) 역에서 드리프트를 해서 뻗어나갔고, 더 옛날 완전 초창기에는 성동이라는 자체적인 시점을 갖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제기동 역의 2번 출구와 그 북쪽이 옛 경춘선 선로 겸 경춘선의 시점인 '성동' 역이 있던 자리였다.

그랬는데 1971년에는 경춘선의 서울 시내 시점이던 성동-성북 구간이 폐선되고 그때부터 경춘선은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성북에서 분기하는 것으로 형태가 바뀐 것이다. 경춘선에는 화랑대와 신공덕 역뿐만 아니라 훨씬 더 전에 사라진 역이 있다.
제기동에서 용두는 직선 거리로 600미터가 채 안 된다. 비슷한 시기에 한쪽에서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생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철도가 없어진 셈이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동대문 운동장 vs 잠실 경기장도 이런 동마장 터미널 vs 강남 터미널 같은 관계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동대문 운동장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었던 역사 깊은 체육 시설이지만 서울 올림픽 때는 딱히 쓰이지 않다가 벌써 10년쯤 전에 철거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4호선 지하철역 승강장은 벽면에 온통 호돌이가 그려져 있어서 여기가 올림픽 시설이기라도 했는지 보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더라.

3. 서울 톨게이트

그럼, 서울의 관문 이야기 하나만 더 하고 글을 맺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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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의 사진을 검색해 보면 완전 옛날에 그냥 발로 만든 듯한 서체이던 시절, 그리고 HY울릉도체를 쓰던 시절(2000년대 말까지), 그 뒤로 지금의 서울남산체를 쓰는 시절 이렇게 셋으로 크게 나뉜다.

서울 톨게이트도 처음에는 양재 IC 이남에 말 그대로 서울의 남쪽 끝에 있었다. 그러다가 1987년 10월에 쿨하게 청계산 기슭의 달래내고개를 건너서 저 남쪽 성남 궁내동으로 톨게이트를 옮기고 폭도 크게 확장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저 시기는 공교롭게도 대한항공 858편 사고가 터지기 얼마 전이었다. 당시 계획을 잡아 놨던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의 건설까지 염두에 두고 톨게이트를 넉넉하게 남쪽으로 옮긴 듯하다.

예전에 서울 톨게이트가 있던 자리는 잘 알다시피 '만남의 광장 휴게소'가 돼 있다. 서울 방향은 죽전 휴게소가 마지막인데, 부산 방향은 어째 서울을 벗어나기 전에 이런 휴게소가 있는 게 인상적이다.

하긴, 1980년대 초에는 원효대교도 민자로 건설된 관계로 잠시 통행료를 걷던 시절이 있었다. 다리 자체는 4차선밖에 안 되어 마포나 한남에 비해 아주 작은 주제에 다리의 남단은 폭이 꽤 넓은 편인데, 이게 바로 과거에 톨게이트가 있었던 흔적이다. 그러다가 얼마 못 가 다리가 국가 소유가 되면서 이내 무료로 바뀌었다.

2020년대에는 전국의 고속도로에서 톨게이트가 없어지는 걸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러면 서울 톨게이트 주변에 차들을 수용하느라 필요하던 방대한 공간들도 필요 없어지고 용도가 공원이나 휴게소 같은 다른 형태로 바뀔 것이다. 물론 통행료 과금 체계를 최첨단으로 바꾼다는 말이지, 톨게이트의 제거가 고속도로의 무료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예전에는 개방식에서 구간내 무료였던 곳도 그때부터는 단 1km를 이용했어도 기본요금이 부과되게 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23 08:35 2017/06/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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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이야기

1. 전근대 시절의 장거리 항해

본인은 초-중딩 시절에 대항해시대 2 게임을 즐겼던 세대이다. 이 게임과 세계 역사 만화책과 학교에서의 세계사 공부를 통해 서양에서는 과거의 중세와 근세 사이에 범선만 달랑 타고 신대륙을 막 개척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배웠다.

현실에서 전쟁은 스타크래프트나 FPS 게임이 아니다. 과거에 양치기 목동은 절대로 낭만적인 전원 생활을 누리는 게 아니었다. 현실에서는 하다못해 결혼 생활조차도 소꿉놀이와는 딴판인 티격태격 전쟁이다.
그리고 그것처럼 배 타고 멀리 떠나는 것도 절대로 편한 일이 아니다. 최첨단 문명의 이기와 통신 장비가 있는 오늘날도 그러한데 하물며 옛날에는.. 선원 생활의 열악함과 비참함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영양 문제다. 지금 같은 냉장 냉동 기술이 없으니 모든 식품은 닥치고 소금에 절여서 보관해야 했다. 비타민이라는 걸 몰랐으니 각기병이나 괴혈병 같은 병의 원인조차 알지 못했다. 장거리 항해를 한번 하고 나면 괴혈병 때문에 건장하던 근육질 선원들이 시름시름 앓다 픽 죽어 나갈 지경이었다. 세포들이 형체 유지를 못 하고 몸 곳곳에서 피가 철철 나다가 죽는 건 오늘날로 치면 거의 방사선 피폭에 준하는 끔찍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기 전엔 뱃사람 업계에 미신과 괴담 같은 것도 얼마나 많이 나돌았을지 모를 일이다.

화재 예방을 위해 배에서는 온수 목욕 같은 것도 할 수 없었다. 또한 과거의 범선은 폭풍우와 높은 파도만 악재인 게 아니라, 망망대해에서 바람이 오랫동안 너무 안 불고 잔잔한 것도 끔찍한 재앙이었다. 배가 나아가질 못하면서 선원들이 그 안에서 꼼짝없이 굶어 죽기 때문이다.
배 안의 도구와 시설이 원시적일수록 승선 근무는 공동 작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으며, 한 명만 잘못하면 다같이 죽는 위험이 더 컸다. 그러니 거기 조직 문화는 반쯤은 군대와 다를 바 없었다. 채찍질과 교수형 등 온갖 전근대적인 규율과 잔혹한 처벌로 선원들을 통제해야 했다.

그러니 선원들의 생활이 얼마나 헬이었을까? 이런 것들이 바로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만 해서는 알 수 없는 레알 대항해시대의 실상이다.
그 시절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양을 누볐다는 배가 덩치가 이렇게 작았다는 사실에 추가적으로 굉장히 놀라게 된다. 배수량이 겨우 몇백 톤이 될까말까인 쪽배 유람선에 10~20여 명의 남정네들이 타고 도대체 어떻게 대륙을 건널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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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엔진도 없이 돛만 달랑 달고, 게다가 금속도 아닌 나무로 만들어진 배가 요즘의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 같은 덩치일 수는 없다. 건축· 재료공학적으로 따져볼 때 목선은 길이 약 100미터, 배수량 2000톤 정도가 사실상의 한계로 여겨진다고 한다.

목재는 쇳덩이처럼 무슨 용접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금속보다 약한데 이어 붙이는 시점에서부터 강도가 더욱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 덩치를 부분적으로 초과하는 목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목선의 끝물인 19세기 중후반은 가서야 예외적으로 등장한 것들이며, 덩치를 무리해서 키우느라 항해 중엔 펌프로 물을 일일이 빼 줘야 하는 등 태생적으로 지병을 안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니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같은 거대한 선박을 목재만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있다.. 허나 그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
300큐빗은 1큐빗을 50cm 남짓으로 잡아도 150m 남짓한 길이이다. 방주가 무슨 타이타닉을 능가하는 덩치였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얘는 표류만 하지 항해 기능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었으니 어지간한 배들이 갖는 유체역학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웠을 것이다. 항공기에다 비유하자면 비행선이 아니라 그냥 기구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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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목재의 한계 얘기가 기왕 나왔으니 첨언하자면, 옛날에 황룡사 9층 목탑도 어떻게 존재 가능했을까 싶은 의문이 추가로 든다. 기록대로라면 높이가 거의 80m에 달하는 건물을 나무로 만들었다는 얘기인데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콘크리트 건물처럼 딱 직육면체 형태로 그렇게 높은 목조 건물을 만들 수는 없고, 위로 갈수록 면적이 좁아지긴 해야 할 것이다. 롤러코스터조차도 에버랜드 T 익스프레스 같은 목제는 철제보다 내부 구조물이 훨씬 더 많고 복잡하고, 철제처럼 360도 상하 회전을 구현하지 못하지 않던가.

2. 근대: 기계화가 됐지만 여전히 원시적임

아무튼, 그러다 근대에 와서는 실용적인 수준의 증기 기관이 발명되었고, 땅에서 마차보다 빠른 철도 차량도 만드는 와중에 이 기관을 선박에다가 써먹으려는 시도도 응당 행해졌다. 오늘날처럼 스크류 프로펠러가 정착하기 전의 과도기에는 외륜이나 물갈퀴 같은 다양한 동력 전달 메커니즘이 등장했으며, 이때부터 배의 재질도 목재에서 금속으로 바뀌었다. 불을 때는 연소를 나무로 만든 기계 안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인류 역사상 몇천 년의 짬밥을 먹어 온 목재 범선이 주력 교통수단에서 드디어 퇴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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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선은 증기 기관차와는 달리 왠지 유럽이 아닌 미국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든다. 허클베리 핀, 톰 소여의 모험처럼 말이다.
다만, 증기선의 선구자이던 존 피치 같은 사람은 당대에 성공을 못 하고 빈곤에 허덕이다가 자살로 불운한 생을 마감했다. 훗날 디젤 엔진의 발명자도 자살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런 선구자들의 노력을 거쳐서 1910년대에는 잘 알다시피 초대형 증기 여객선인 타이타닉 호가 건조되기에 이르렀다. 전장 269m, 배수량 52310톤짜리다.

오늘날이야 비행기가 있으니 저런 대륙간 장거리 여객선은 필요가 없어졌고 배는 그냥 라이너나 관광 크루즈 위주로 바뀌었다. 물론, 여객 분야 한정으로만 말이다. 국가와 대륙간의 화물 수송은 타 교통수단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대량 수송 가성비 때문에 선박이 여전히 영원무궁토록 본좌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런 무역선 제조사들과 무역선을 조종하는 상선사관들이 없으면 굶어죽고 말라죽는 거 순식간이다.

타이타닉 호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참 원시적이다 싶은 것은.. 먼저 엔진이다. 20여 개가 넘는 대형 보일러에 엔진 2기, 증기터빈 1기로 중무장하고 굴뚝도 4개나 달려 있었던 반면, 요즘의 디젤 엔진은.. 그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덩치의 주 엔진 1 + 보조 엔진 1기만으로도 타이타닉과 비슷한 덩치의 배를 비슷한 속도로 굴릴 수 있다.
놀라울 정도로 가벼우면서 방한 보온 효과는 탁월한 요즘 첨단 재질의 패딩 점퍼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2200명이 넘는 타이타닉 탑승 인원 중에서 승객이 아닌 직원이 이미 800명을 훌쩍 넘고 거의 900명에 가까웠다는 점도 날 놀라게 한다.
굳이 항해에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지하의 기계실에서 보일러에다 삽으로 열심히 석탄을 퍼 넣던 화부부터가 이미 170여 명이나 됐다. 갤리선 시절의 노꾼보다는 발전한 작업 형태인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매우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이었다. 거북선도 1척의 정원이 150명가량이었는데 그 중 무려 과반인 8~90명은 노꾼이었다고 하니...;;

또한 거기 안의 상점에서 일한다거나 승객간 우편· 통신을 담당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타이타닉 배가 자기 직장이고 월급을 받는 터전이었던 사람들의 수가 그만치 됐다. 배 안에서 일종의 '작은 사회'를 꾸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오늘날은 비행기에 법적으로 승객 50명당 승무원이 겨우 1명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비행기나 열차를 조종하는 인력도 1인 승무를 하네 마네 싸우는 중인 세상이다. 이걸 감안하면 요즘은 얼마나 사람 수가 줄었는지 알 수 있다.
까놓고 말해 타이타닉 호에 탔던 승객들은 요즘 식으로 치면 보잉 747이나 A380급 여객기 세 대면 다 실어나를 수 있다.
옛날 배의 덩치가 너무 작았던 것에 한번 놀랐고, 덩치가 커졌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하긴, 전투기· 폭격기, 미사일 같은 게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에 딱 2차 세계 대전 타이밍 때는 전함도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게 돌아다니긴 했다. 요즘은 항공모함이 아닌 이상 그렇게까지 큰 배를 굴릴 필요가 없다.

3. 해군과 해전의 역사

기왕 배의 역사 얘기가 나왔으니 해전의 역사 얘기도 조금만 더 하자면..
선원 생활도 고되고 군생활도 고된데 둘을 합쳐 놓은 해군 수병은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악의 기피 직종이었다. 하지만 내륙국이 아닌 이상 바다를 장악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으니 어떤 나라든 해군을 육성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섬나라의 경우 그 필요성이 더욱 컸다.

해군은 배가 전장 겸 내무반이니 육군 같은 행군이나 숙영, 각개전투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함(배를 버리고 바다로..) 같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당연한 말이지만 수영을 잘해야 한다.
먼 옛날, 로마 제국이 있던 시절에는 인간의 무기들이 화력이 약했기 때문에 큰 배를 단번에 부숴 버릴 수 없었다. 그나마 배가 온통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니 불화살 같은 걸로 화재를 일으키는 것이나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껏해야 배와 배끼리 부딪치거나 다리를 놓고 서로 근접해서 냉병기로 육박전을 벌이는 식으로 싸웠다. 그리고 배 자체는 그냥 나포와 노획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화약이 발명되고, 파편을 날리는 폭탄 대신 볼링공 같은 탄환을 날려서 배를 부수는 재래식 대포가 등장했으며, 이것이 함포가 되어서 성능이 갈수록 향상되었다. 배가 크고 무거워야만 더 크고 반동이 강한 함포를 얹을 수 있으며, 더 많은 승무원을 싣고 더 멀리까지 오랫동안 항해할 수 있다.

그러니 제국주의 군국주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20세기 중반까지는 군함의 크기가 갈수록 커졌다. 그러다가 앞서 얘기했듯이 군용기와 미사일의 등장으로 인해 군함의 대형화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군함을 잡는 용도로 같은 군함의 함포만 있는 게 아니라 기뢰, 어뢰, 잠수함 같은 기묘한 물건도 등장했으며, 그런 것들을 퇴치하여 기함을 호위하는 용도로 구축함 같은 배가 또 따로 등장하게 되었다.

바다 위의 비행장인 항공모함은 태평양 전쟁 같은 전쟁이 또 터진다면 모를까 세계 경찰 우주 방어 미국 같은 나라가 아니면 또 쓸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유지비가 정말 억 소리 나게, 작살나게 깨진다는 것 하나는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
2차 세계 대전이 컴퓨터, 핵무기, 미사일이 발명되기 (직)전에 벌어진 전쟁이라는 점에서 그래도 한 박자 이전 세대의 전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4. 운하

육상 교통수단에 교량이 있다면, 선박에는 reverse 버전인 운하가 있다.
자동차나 열차가 물 위를 최단거리로 가로질러서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교량을 건설하듯, 반대로 배도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최단거리 횡단 가능하도록 육지에다 운하라는 수로를 건설하니 말이다.
선박은 평소에는 끝없이 펼쳐진 2차원 평면에 가까운 망망대해 위를 다니지만, 좁은 운하를 통과하는 중에는 앞뒤로밖에 진행할 수 없는 열차와 비슷한 처지가 된다. 흥미로운 면모이다.

운하는 총기가 화살을 도태시키듯이 기선이 범선을 확인사살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자체 동력을 가진 기선은 어느 지형에서나 고정된 속도가 나오니 정시성이 보장되는 반면, 범선은 그런 곳에서 제대로 주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이라는 게 주변이 온통 차가운 바닷물이어서 공기와의 온도 차이가 생겨야만 발생하는데, 온통 땅으로 둘러싸인 좁은 물길에 불과한 운하에서는 그런 바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하로는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 그리고 남북 아메리카 대륙 사이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가 있다. 파나마 운하가 수에즈보다 더 나중에 만들어졌으며 건설 난이도도 훨씬 더 높았다.

수에즈 운하는 그냥 배가 길을 따라 설렁설렁 지나가면 되고 폭도 넉넉하지만, 파나마 운하는 놀랍게도 양 말단의 해수면 높이가 서로 다르다. 그래서 물을 채웠다 빼기를 반복하는 여러 도크를 단계적으로 거치면서 고도를 올려야 한다. 철도로 치면 이건 완전 인클라인 내지 스위치백 방식이나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이런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파나마 운하는 하루에 최대 30여 척 남짓한 배밖에 통과할 수 없다.

비행기에 협동체와 광동체가 있고 철도 궤간에도 광궤· 협궤가 있듯, 운하에는 응당 폭의 제한이 존재한다. 열악한 환경에 만들어진 파나마는 수에즈만치 큰 배는 통과할 수 없다. 그리고 아까 언급한 단계별 진행 특성으로 인해, 폭뿐만 아니라 길이의 한계도 존재한다. 2010년대에는 선박 통행 트래픽 증가와 대형화에 대응하기 위해 두 운하 모두 확장 공사도 거쳤다고 한다.

5. 배의 닻

좀 무식한 얘기이다만 본인은 선박이나 해운 쪽으로는 문외한이다 보니 오랫동안 닻과 돛의 차이도 잘 모르고 있었다. 용도가 서로 완전히 다른 부품이구만.. 돛이야 배의 동력원이 엔진으로 바뀐 뒤부터는 필요 없어졌지만 닻은 자동차로 치면 정말 주차 브레이크 같은 필수품이다.

둥실둥실 물에 떠 있는 배에다가 자동차처럼 바퀴에 굄목을 설치하거나, 접지 마찰을 이용한 브레이크를 장착할 수는 없다. 그러니 배의 중량을 증가시키는 걸 감수하고라도 무거운 갈고리 같은 걸 따로 달았다가 바닥에 내려서 그걸로 배를 정박시켜야 한다. 왕창 큰 배의 경우, 닻만 해도 수 톤~10수 톤에 달하는 육중한 쇳덩어리가 장착된다.

배는 브레이크가 없는 관계로 어지간해서는 그냥 관성과 자연 감속에만 의존해서 정지시키지만.. 만약 불가피하게 급제동을 해야 하면 엔진을 역추진하거나 이 닻을 내려뜨린다(비상투묘). 대형 여객기가 착륙 직후에 여전히 시속 200이 넘게 속도가 붙어 있는데.. 랜딩기어의 브레이크뿐만 아니라 엔진 역추진과 플랩· 스포일러까지 총동원해서 필사적으로 감속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다만, 무리하게 투묘했다가는 배가 서는 게 아니라 반대로 랜딩기어를 붙잡고 있던 부품이 저항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고 떨어져나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집채만 한 배를 고정시켜 준다는 우직한 심상으로 인해 배나 해군의 상징에는 닻이 꼭 그려져 있다.
성경에서는 사도행전 27장, 바울이 배 타고 로마로 가는 장면에서 배의 닻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사도행전 27장은 나 같은 육지 사람이 읽기만 해도 뭔가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하물며 그쪽 업계 종사자 중에 크리스천이신 분이 읽으면 더욱 의미심장할 것 같다.

여기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딱 한 번, '소리 내다'가 아니요, '건전한'도 아니요, '수심을 측정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로 sound가 나오기도 한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줄자 같은 걸 내려뜨려서 수심을 측정했겠지만, 동사가 sound이다 보니 그 시절에 마치 초음파 같은 걸 쏘기라도 해서 깊이를 측정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으로 성경에서 또 닻이 나오는 곳은 그 유명한 히 6:19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anchor of the soul)이다. 인생이라는 항해 중에 둥실둥실 불안하게 이리 휩쓸리고 저리 끌려가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반석, rock-solid함을 나타낼 때 닻이라는 물건을 동원해서 비유한 게 인상적이다. 히브리서는 저자에 대해서 논란이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배 타고 전도 여행 많이 다닌 바울이 썼다는 것이 유력한데, 이 점을 생각하면 표현에 더욱 수긍이 간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12 08:32 2017/06/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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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비행기 조종

공군 관계자 인맥 덕분에 작년 여름에 한번 만져 봤던 경비행기 조종 시뮬레이터를 약 반 년 만에 또 조종할 기회가 있었다.
귀한 기회를 제공해 주신 분은 현역 시절에 KF-16 전투기의 베테랑 조종사였고 사업용 비행기 조종 면허까지 갖고 있는 그야말로 넘사벽급의 항공 전문가이다.

비행기 조종 면허는 자가용 < 사업용 < 운송용의 순으로 레벨이 올라간다. 상위로 갈수록 취득을 위해 적립해야 하는 단독 비행 시간 경력도 기하급수로 늘고(수십, 수백, 천수백 시간 순) 되기가 더 어려워진다. 자가용은 경비행기 정도 몰면서 자기 혼자 아니면 가족· 지인 몇 명을 무료로 동승시켜서 비행하는 것까지만 가능하다. 사업은 남 또는 남의 물건을 돈 받고 비행기로 운송하는 게 허용되는 최소한의 등급이다. 굳이 운송이 아니더라도 남에게서 돈 받고 자기 혼자 경비행기로 항공 촬영 같은 걸 해 주는 것도 사업의 영역에 속한다.

운송용 면허까지 따야 항공사에 취업을 할 수 있으며, 수십~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2명이서 조종하는 거대한 여객기를 조종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경력을 왕창 쌓아서 궁극적으로 여객기 기장이 될 수 있다. 이쪽 바닥의 진입장벽이라는 게 저렇다.

저 조종사 어르신의 경우 애초부터 민항사 진출에 별 관심이 없고 공중전 전투교리만 연구하는 뼛속까지 군대 체질이어서 사업용 수준인 거지, 단순 실력과 짬으로 치자면 마음만 먹으면 운송용 면허도 얼마든지 취득 가능한 상태이시리라 생각된다. 실제로 저분은 조종장교로 들어오는 공군 후배들이 다들 궁극적으로 안정적인 민항사만 생각하지 테스트 파일럿이나 항공 방산업체 등 더 다양한 길을 생각하지 않는 걸 아쉬워하셨다.

지난 여름에 첫 실습을 했을 때는 전혀 모르거나 눈치를 제대로 못 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비행기는 단순히 뜨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공중에서 자세 제어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1) 단발 프로펠러기는 조종간을 놓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기체가 서서히 쏠린다. rolling이니 자동차로 치면 전도· 전복에 해당한다. 자동차가 D 상태에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앞으로 슬금슬금 나아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인가 싶다.
헬리콥터는 기체가 로터의 회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걸 상쇄하려고 아예 꼬리날개를 달아야 할 정도인데, 그런 특성이 고정익 프로펠러기에도 어느 정도 있구나. 쌍발 이상이어서 프로펠러가 좌우로 짝수 개 달린 비행기라면 각 프로펠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게 돼 있지 싶다.

(2) 비행기 조종석엔 페달이 두 개 달렸는데, 자동차처럼 브레이크/액셀은 아니고..;; rudder이라고 불리는 왼쪽/오른쪽 브레이크 겸 방향타이다. 조종간으로만 방향 조절을 하는 게 아니다. 조종간은 좌우로 돌려서 roll(좌우로 갸우뚱)을, 앞뒤로 당기거나 밀어서 pitch(상하로 끄덕끄덕)를 바꾸는데, 방향타로는 본격적으로 yaw(좌우로 설레설레)가 가능하다.

그리고 자동차와는 달리 비행기의 페달은 상부와 하부의 부위 구분도 있다. 공중에서 비행 중일 때와 지상에서 활주 중일 때 방향을 바꾸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행기의 랜딩기어 바퀴 자체는 구동축도 없고 방향을 전환하는 조향 장치도 없다. 단지 양쪽 추력을 불균일하게 줘서 마치 탱크가 조향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조향한다. (무한궤도도 일부 바퀴만 돌리는 건 불가능하니까.)

이륜차는 앞/뒤 브레이크 손잡이가 따로 있는데 따로인데 비행기는 좌/우가 그런 식으로 달린 구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엔진 출력을 낮춰서 속도가 낮아지면 비행기가 확실히 더 조종이 잘 안 되고 내가 마음먹은 것만치 움직이지 않더라. 그런데 착륙을 하려면 그 속도를 낮춰야 한다..;; 그래서 더욱 어려운 절차가 된다.

  • 하강할 때 기수를 낮추는 것과 엔진 출력 줄이는 걸(조종간과 스로틀 레버) 어떻게 조화를 맞출지,
  • 선회를 할 때 조종간과 페달을 어떻게 조화를 맞출지,
  • 언제쯤부터 착륙 준비를 해서 속도와 고도를 조절하는 게 좋은지, 연착륙-경착륙-추락-_-의 경계는 무엇인지.

뭐 이런 것들이 아직 감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다.
그래도 자동차 운전 연습을 다시 하는 느낌이고.. 비행기 조종은 재미있었다~!.

2. 콩코드 생각

옛날에 전설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잘 알다시피 매우 작았다. 좌석 배열은 그냥 고속버스와 동일한 줄당 2*2이었으며 한 대에 승객이 100여 명 남짓밖에 못 탔다. 그 뿐만 아니라 안전 문제로 인해 창문도 과장 보태면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크기여서 밖을 보기가 어려웠다.

이것 말고 콩코드가 오늘날의 양산형 아음속 여객기와 기술적으로 다른 점은 '델타익 + 터보 제트 엔진' 형태라는 것이다(아음속 여객기들은 후퇴익 + 터보 팬). 이것은 민항기보다는 전투기에 더 가까운 면모였다.
큼직한 델타익은 구조적으로 양력을 더 많이 발생시키고 실속의 위험이 적으며 연료를 실을 공간도 더 많이 확보해 준다. 그러나 이런 날개에는 플랩 같은 보조 양력/항력 발생 장치를 장착할 수 없어서 날개 자체의 받음각만으로 항공역학적인 조절을 해야 한다.

이 말인즉슨, 콩코드는 동체의 자세로 큰 받음각을 만들어야 하며, 여느 여객기들보다 더 가파른 각도로 뜨고 내려야 함을 의미한다. 콩코드가 이륙 때 앞의 부리/주둥이를(?) 아래로 숙이는 기능이 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인데, 그 기능이 왜 필요한지는 본인도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었다. 초음속 비행을 위해서 무슨 엔진의 물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처음부터 고각으로 가파르게 이륙해야 하나 정도로만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콩코드는 뾰족한 부리를 보면 학처럼 생기긴 했는데, 동체와 랜딩기어 사이의 다리(?)도 굉장히 높고 길쭉해서 마치 학의 다리를 연상시킨다. 이 역시 이착륙 때 기수를 드는 각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하여 그렇게 설계된 거지 싶다. 그렇게 동체를 높게 유지하지 않으면 기수가 앞부분부터 확 들릴 때 동체 뒷부분이 땅과 접촉하여 긁히는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가 날 테니까 말이다.

그 반면, 비행기들 중에서도 군용 수송기는 콩코드와는 디자인 형태가 정반대이다. 랜딩기어 다리가 극단적으로 짧으며, 동체가 워낙 낮아서 날개가 동체의 제일 높은 부위에 달려 있을 정도이다(날개 밑에 달린 엔진이 바닥을 긁지 않게 하려고).
걔네들은 별도의 탑승교 없이 험지에서 화물 적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바닥을 의도적으로 낮게 만든 것이다. 버스로 치면 저상 버스인 셈이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뿐만 아니라 착륙할 때도 뒷부분부터 앞부분의 순으로 땅에 닿는 이유를 그저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수준으로 완전히 감을 자고 이해하고 있다면 항공역학에 대한 감이 상당히 잡혔다고 볼 수 있겠다. 난 솔직히 아직 좀 알쏭달쏭함..;  추락 사고가 날 때는 비행기가 앞부분부터 먼저 땅에 닿곤 한다.

그나저나, 과거에 미국 팬암 항공사에서 콩코드를 운용한 적이 있었나 하는 착각이 들려 한다. 걔네들이 왕년에 아무리 잘나갔어도 그 정도 돈지랄을 하지는 않았으며, 콩코드는 공동 개발사인 영국과 프랑스에서만 대서양 건너 미국을 왕래하는 항공편에서 운용했다. 태평양을 건너기에는 항속 거리가 부족했으며(안습 연비..), 미국 같은 대륙의 국내선으로 굴리기에는 내륙에서의 초음속 비행이 허용되지 않아서 여러 모로 무리였다(지상에까지 전해지는 소닉 붐 피해).

하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에서는 팬암에서 우주왕복선까지 날리는 장면이 나오긴 한다만 그건 SF 작가의 상상에만 그치고 실현되지 못했다. 팬암은 망했고 우주왕복선도 다 퇴역했으니...
오리지널 팬암이 망한 것과 구소련이 망한 것, 그리고 우리나라가 UN에 정식 가입한 때는 모두 1991년으로 비슷한 시기이다.

3. 보잉 시리즈

기술이 발달하면서 비행기는 20세기 중반이 채 되기 전에 복엽기에서 단엽기로 바뀌었으며, 어지간한 대형 여객기라 해도 엔진이 4발기가 아닌 2발기가 대세가 됐다. 자동차로 치면 요즘 DOHC 4기통 2000cc급 차가 옛날의 SOHC 6기통 3000cc급 차량보다 더 뛰어난 출력을 내고 연비는 더 좋은 것과 비슷한 급의 발전이다.

보잉 707은 4발 터보 제트 여객기였다. 굉장한 옛날 비행기인 관계로, 엔진이 4개나 달렸지만 여전히 협동체였다. 단지 좌석 배열을 2*2에서 3*3으로 키운 것에 의미가 있다.
727은 보잉이 만들었던 최초이자 최후의 유일한 3발기이다. 하지만 가성비가 떨어지고 단점이 많다는 점으로 인해 단종됐다.
737은 오늘날까지 보잉이 생산하는 여객기 중 덩치가 가장 작은 놈이지만 가성비가 좋아서 전세계의 저가 항공사들로부터 매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엄청 많이 팔렸다.
747은 1970년대에 개발된 최초의 대형 광동체 여객기이며 707을 제외하면 7xx 시리즈들 중 유일한 4발기이다. 일명 '점보'라고도 불리며 보잉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A380이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기였다. 2층에도 일부 객실이 있다(A380은 2층도 일부를 넘어 1층과 거의 대등한 규모의 객실 있음)

757은 보잉에서 개발한 협동체 여객기 중에서 가장 큰 놈이다.
767은 보잉에서 개발한 광동체 여객기 중에서 가장 작은 놈이다. 하지만 757과 767은 어중간한 포지션으로 인해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덜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777이 그 뒤로 중대형 중장거리 여객기로서 초대박을 쳤다. 2발기이니 수송 능력이 747과 동급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엄연한 광동체에다 최신 기술이 적용되어 2엔진만으로 4엔진에 준하는 성능과 항속거리를 달성했으며, 747보다 경제성이 훨씬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787은 777과 비슷한 체급을 계승하는 후속 여객기로, 보잉에서 개발 중이라고 한다.

보잉 7xx의 역사가 컴퓨터로 치면 마치 80x86 이런 CPU의 역사를 보는 것 같다.
80186이 유독 위상이 특이하고 존재감이 없는 것처럼(애초에 PC용이 아니었음), 보잉 717도 위상이 특이하고 존재감이 없는 듣보잡이다. 717은 보잉이 예전에 인수한 맥도넬 더글러스 사에서 개발한 항공기를 그것도 1990년대 말에 잠깐 끄집어내서 생산하다가 말았던 소형 쌍발 여객기에 붙여진 모델명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05 08:36 2017/04/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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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건 사고 열전

1. 대한 항공

수많은 자동차 교통사고 사례들을 보면 신호 위반, 졸음 운전, 2차 사고, 전방-측면 주시 태만 등등 여러 정황과 공통점들이 정리가 되듯, 비행기 사고들도 그런 특성이 파악된다. 시뮬레이터로 걍 맛보기로나마 조종도 살짝 해 보니까 디테일이 예전보다는 더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대한 항공은 1990년대 말에는 보잉 747 대형 항공기를 1년에 한 대씩 3년 연속으로 깨먹는 사고를 낸 걸로 악명이 높았다. 20여 년 전 1997년에 괌에서 추락한 801편 사고가 대한 항공이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낸 ‘여객기 초대형 사고’이며, 1999년 12월에 낸 화물기 8509편 사고가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낸 사망자 발생 인명 사고이다.

그때는 대한 항공 저거 안 되겠다고 국제적으로도 보이콧 움직임이 벌어질 정도로 대한 항공은 큰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때 뼈를 깎는 쇄신을 한 덕분에 지금은 대한 항공은 매우 안전한 항공사로 거듭났다. 단지 땅콩 회항 같은 웃프고 병신 같은 해프닝만 있었을 뿐.

그 당시에 대한 항공에 대해서는 공군 출신 조종사들간의 고압적인 서열과 “까라면 까” 권위주의가 정당한 지적질과 정상적인 의사소통까지 방해해서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조종 중에 공식적으로 한국어의 사용까지 금지시켰다. 기장은 부기장에게 반말, 부기장은 기장에게 높임말이라는 관습부터가 괜히 서열을 조장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종사들의 의식과 근무 분위기는 개선됐을지 모르지만, 경영진들의 의식은 개선되지 않았는지 완벽한 권위주의 병크인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비록 이건 사람이 죽거나 다친 사고는 아니지만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비웃음감이 됐다.

뭐 그건 그렇고.. 대한 항공은 더 옛날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는 분단된 나라 사정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비극적인 사고에 연루되기도 했다. 잘 알다시피 당시 미수교 적성 국가인 소련으로부터 격추를 두 번이나 당했고, 북한 폭탄 테러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90년대의 747기 깨먹은 사고들이 한 그룹으로 묶이듯이 저 세 사고도 성격상 한 그룹으로 묶인다.

1978년 4월에 벌어진 902편 격추와 1983년 9월에 벌어진 007편 격추는 모두 일단은 (1) 우리 여객기가 항법사의 실수로 소련 영공에 잘못 들어갔고 (2) 소련 전투기의 “꼼짝 말고 손들어” 요구에 제대로 반응을 못 했기 때문에 벌어졌다. 지금은 개인용 자동차 내비에도 당연히 보급돼 있는 GPS가 그때는 국제선 민항기에도 없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조종실에는 조종사 2명에다가 항공 기관사, 그리고 항법사까지 다 따로 4명이나 타고 있었다.

소련의 전투기 조종사들도 살인마 싸이코패스는 아니니 “저건 그냥 민항기인데..?”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민항기처럼 위장하고 날아다니는 미국 정찰기도 있고, 마침 저 비행기는 명령에 불응하고 도주하려고 상승하는 기미도 보이고 하니 격추 명령이 떨어져서 공격을 하게 되었다.

902편의 경우, 다행히 직타를 맞지는 않았지만 스플래시 대미지 때문에 왼쪽 날개 부위 등에 비행 불가능한 손상을 입었다. 그래도 조종사가 혼신을 다해 조종한 덕분에 비행기는 북극권의 얼어붙은 호수 위에 비상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승객도 2명만 잃고 모두 생존했으며, 그 2명도 추락 충격이 아니라 미사일 파편 때문에 숨진 것이었다.

이 사고 이후 항법사는 사표를 내고 항공업계를 떠났다. 그 반면, 위기 상황에서 비상 착륙을 훌륭하게 성공시킨 조종사들은 지금으로 치면 2009년 허드슨 강의 기적(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한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만큼이나 칭송 받고 국내외로 상을 받았다. 형식적인 징계만 잠깐 받았다가 금세 조종사로 복직했다. 사실, 소련부터가 저런 상황에서 저런 조종을 해낸 조종사는 평범한 민항기 조종사가 아니라 고도의 스파이 내지 공작원일 거라고 의심하여 고강도 조사를 했을 정도였다.

비교적 온전하게 남은 보잉 707 기체는 소련이 꿀꺽 했다. 기체를 다 뜯어서 분석하면서 자기네 기술 개발에 활용했다고 한다. 졸지에 경쟁 적성국인 미국의 항공기를 하나 얻은 건 옛날에 전투기 조종사 노 금석 씨가 귀순해서 우리가 뜻하지 않게 Mig-15를 득템한 것과 같은 급의 횡재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남짓 뒤에 벌어진 격추 때는 저런 기적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007이라고 하면 제임스 본드의 007 시리즈뿐만 아니라 비극적인 사고가 떠오르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격추로 인해 승객 246+승무원 23 총 269명의 인원이 전원 사망했기 때문에 이건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적기의 사망자 수 1위의 사고이다. 게다가 바다 위에 떨어졌기 때문에 일부 유품을 제외하면 아무 잔해나 시신도 수습을 못 했다.

이때는 전국적으로 극심한 반소(그리고 반공도 더불어..) 감정이 벌어졌으며 미국 역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신랄하게 디스했다. 소련은 민항기인 줄 몰랐다고 잡아뗐지만 미국은 정치적 후폭풍을 감수하고 첩보 도청 기록까지 폭로하면서 소련의 거짓말을 버로우 태웠다. 이건 미국이 지금까지 소련을 도청해 왔다는 사실 자체를 터뜨리는 것이니 마피아 게임에서 경찰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큰 모험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4년쯤 뒤, 1987년 11월에는 대한 항공 858편이 인도양 상공에서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탑승자 전원 사망+실종이라는 끔찍한 참사를 당했다. 중동에서 고생하며 돈 벌다가 이제 좀 휴가차 고향으로 돌아가던 무고한 노동자들을 죽였으니 이건 일제 해방 후에 겨우 귀국하던 무고한 노동자들을 수장시킨 우키시마 호 폭침 사고와 같은 급의 죄질이다.

의외로 작은 폭탄으로 기체에다 자그마한 구멍만 내도 비행기 전체를 순식간에 작살내는 게 가능하다. 기체가 워낙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바늘 구멍 하나만 생겨도 안팎의 압력차를 감당치 못해서 기체가 박살 나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풍선이 펑 터지고 작은 구멍으로 댐 전체가 무너지고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이 폭발한 것도 다 비슷한 원리이다.

우리나라는 북한 테러범의 비행기 하이잭을 몇 번 겪은 뒤부터는 조종실 보안은 미국 국내기보다도 철저해졌다. 또한 국제적으로 위탁 수하물 폭탄 테러가 없지 않았기 때문에 승객과 짐이 반드시 모두 일치할 때만 비행기가 뜨게 규정이 정착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또 위탁 수하물 폭탄 테러를 막지 못한 것은 참 애석한 일이었다.

뭐, 약간의 추적을 통해 범인을 금세 잡긴 했다. 북괴의 테러범 중 중년 남성은 신속하게 청산가리를 깨물어서 자살했지만 젊은 여성(김 현희)은 실패하고 체포되었고, 결국 전향해서 지금까지 살아 있게 됐다. 다만, 김 현희의 가족은 당사자의 자살 실패로 인해 징벌 숙청을 당했다는 것이 탈북자의 증언이다.

5공 시절 희대의 병맛 자작극인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과 시기적으로 비슷한 것으로 인해, 858 폭탄 테러마저도 북풍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 논리도 처음엔 “단순 항공 사고를 북한 소행으로 위장한다” 정도이던 것이 아예 “안기부가 일부러 비행기를 폭파시켰다”로 뻥의 규모가 커졌다. 무슨 “박 근혜가 잠수함을 보내서 세월호를 침몰시켰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건 88 서울 올림픽 개최의 방해를 노리고 북한이 벌인 테러가 100% 맞으며 엄연한 팩트이다.

수백 명을 죽게 한 흉악 테러범을 국가에서 괜히 사면까지 해 준 게 아니다. 가해자 당사자를 증인 차원에서 시퍼렇게 살려 둠으로써 저런 쓸데없는 음모론을 버로우 태우려는 목적도 있다. (달에 갔다 온 아폴로 승무원들도 멀쩡히 살아 있어서 자작극설 음모론자들을 관광 보내곤 했다. / 반대로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의 경우, 가해 용의자가 신속하게 살해당함은 물론이고 그 용의자를 죽인 사람까지 곧 죽어 버렸으니 온갖 음모론이..)

어디 그 뿐이랴? 오죽했으면 북한의 고위 관리마저 말실수로나마 테러를 시인하며 자폭했을 정도이니 빼도 박도 못 한다.
“우리는 KAL기 사건 이후로는 한 번도 테러 저지른 적 없어. 우리 공화국을 테러 지원국으로 낙인 찍는 건 억울하다구.” 그러니 KAL기 테러는 확실하게 자기 소행이라는 얘기잖아. ㅋㅋㅋㅋㅋ 마치 성경에서 요셉의 형들이 첩자로 몰리니까 묻지도 않은 가족 관계까지 술술 다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꼴이 됐다.

858편의 경우, 앞서 발생한 격추 사고와는 달리, 대한 항공에 지금과 같은 하늘색 신도색이 도입된 뒤에 벌어진 사고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좀 더 최근 사건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은 이웃 JAL의 도색을 베낀 스타일을 쓰다가 도색을 싹 교체한 것도 007편의 사고 이후에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의도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조금 정치색 넣은 발언을 하자면, 민항기 오인 격추나 폭탄 테러를 미국이 저질렀으면 아마 우리나라 좌빨들은 두고두고 트집 잡으면서 시체팔이 하며 난리를 쳤을 것이다. 쟤들이 일본· 미국을 욕하는 것과 중국· 북한에 침묵하는 것은 절대로 동일한 판단 잣대가 아니라는 게 익히 알려진 사실이니까. 쟤네들의 말에도 일부 팩트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외눈박이의 말이 문맥과 팩트의 전부인 줄로 아는 건 매우 잘못된 태도이다.

2. 그 밖에

(1) 지구 방방곡곡에 통신과 첩보용 인공위성들이 날아다니는 21세기라고 해서 인간이 지구 표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이 잡듯이 다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대양 망망대해 위에서 비행기가 갑자기 폭발하거나 추락하면 지금도 비행기가 시체고 잔해고 거의 발견을 못 하고 깔끔하게 증발하는 게 가능하다. 비교적 최근인 2014년에 발생한 말레이시아 항공 370편 실종 사고는 그런 극단적인 사례이다. 뭐, 그건 공중분해가 아니며 정황상 기체가 고스란히 추락해서 바다에 처박힌 게 확실해 보인다고 한다.

(2) 제트 여객기가 등장한 초창기에는 정비 불량 내지 심지어 설계 불량으로 인해 멀쩡히 비행하던 중에 비행기가 뒷문이 열리거나 심지어 공중분해 되는 끔찍한 사고가 있긴 했다. 중화 항공 611편 공중분해(2002)는 막 옛날도 아니다. 얘도 과거의 대한 항공 만만찮게 4년 주기로 대형 사고를 치곤 해서 위험한 항공사로 평이 안 좋은 편이었는데 다행히 요즘은 좀 조용하다.
엄청 높은 고도에서 사람이 내팽개쳐지면 아예 공중에서 기절하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고 한다. 아니면 착수 충격으로 곧장 죽지, 끝까지 살아남았다가 바닷물에서 익사하는 경우는 잘 없다. 참고로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 폭발 사고 때도 승무원들은 폭발 직후에는 살아 있다가 나중에 착수 충격으로 사망했다.

(3) 비행기는 예로부터 테러의 좋은 표적이 돼 왔기 때문에 9· 11까지 겪은 오늘날은 비행 중에 조종실은 같은 승무원들이 드나들 때 외에는 절대로 개방되지 않게 보안 규정이 강화되었다. 문 자체도 어지간한 총탄으로는 꿈쩍도 안 하도록 잠금 장치가 튼튼해졌다.
그런데.. 비록 극소수의 사례이긴 하지만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반대로 조종사 쪽에서 '너 죽고 나 죽자' 심보로 거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도 있었다.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1999)는 비록 이집트에서는 자국민 감싸기 차원에서 실드를 치고 있는지 모르지만, 객관적인 정황상으로는 부기장의 고의 자살 추락이 매우 유력한 상황이며, 저먼윙스 9525편 추락 사고(2015)는 부기장이 기장을 화장실로 보낸 사이에 문을 걸어잠그고 모든 신호와 통신을 씹고 비행기를 추락시킨 기록이 다 남아 있다. 테러리스트를 절대 들어올 수 없게 만들어진 튼튼한 문이 이번엔 부기장의 행동을 저지시킬 여지를 차단한 것이다.
이런 일도 있고 하니 다른 교통수단은 몰라도 대형 여객기는 1인 승무가 정서상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4) 옛날에는 페리나 관광 열차도 아니고 제트 여객기를 이용한 남극 관광이 있었구나..! 1979년 11월에는 에어 뉴질랜드 901편이 남극의 설산과 부딪치고 추락하는 바람에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났다. 한 지점을 기준으로 바뀐 비행 계획을 다른 지점에서 잘못 적용해서 엉뚱한 곳을 날았으며, 위 아래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시야 화이트아웃 현상으로 인해, 조종사들이 바로 앞에 있는 산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또한, 사고 지점이 워낙 오지· 험지이기 때문에 시신과 일부 잔해를 제외한 나머지 기체는 치울 엄두를 못 내고 지금까지 남극에 버려져 있다고 한다. 이 사고 이후로는 민항기를 이용한 남극 영공 비행은 국제적으로 전면 금지됐다.

(5) 일본에서는 큰 사고까지는 아니지만 아찔한 순간을 좀 겪은 적이 있었다.
2011년 9월 6일 밤 10시 50분경, 오키나와의 나하 공항을 출발해서 도쿄 국제공항으로 가던 전일본공수 140편 여객기(보잉 737)가 조종사의 부주의로 인해 약 10초간 roll 각도가 90도를 넘어 거의 130도까지 뒤집히는 배면비행을 했다. 이건 '전도'를 넘어 '전복'에 가까운 수준이니, 전투기가 아닌 여객기가 의도치 않게 배면비행을 한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기장이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부기장이 조종실 문 개폐 스위치 대신 실수로 꼬리날개의 방향타 스위치를 잘못 누르는 바람에 비행기가 요동을 친 것이었다. 그 10초 동안 비행기는 양력을 크게 잃고 거의 1900m에 가까운 고도를 하강했지만, 잘못을 깨달은 조종사들이 급히 자세를 바로잡아서 상태를 원상 복귀시켰다. 어쨌든 목적지에 무사히 착륙하긴 했다. 이때는 비행기가 순항 중이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밤에 창문 닫고 안전벨트 차림으로 자고 있었으며, 어차피 비행기가 자유 낙하에 가까운 추락 중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객들은 배면비행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울러, 2001년 1월 31일에 발생한 일본 스루가만 상공 니어미스 사고는 JAL 소속 여객기 두 대(보잉 747 vs DC-10)가 관제 실수로 인해 동일 고도에서 마주쳐서 공중 충돌할 뻔한 사고로, 서류상으로는 준사고가 아닌 사고로 분류되어 있다. 정말 큰일날 뻔한 순간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3/19 08:34 2017/03/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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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급발진

지난번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운전 중에 발생하는 위험 돌발 상황에 대해 좀 생각해 보겠다. 대표적으로 급발진이 있다.
난 안 겪어 봐서 모르겠지만 엔진이 폭주하고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다면 기어를 N으로 바꾸면 큰 불은 끌 수 있지 않나? 그게 안 되면 시동이라도 끄거나 아니면 도로 옆 벽면을 긁으면서 세우는 걸로 개인적으로 매뉴얼을 구축하고 있다. 점점 더 강력하고 차의 엔진 내지 외형을 파괴하는 방법이라도 동원해서 차를 세운다. 머릿속 운전 프로그램이 try 블록 안에서 돌다가 catch(SUAException e)으로 침착하게 잘 분기해 줄지는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Sudden Unintended Acceleration)

시동을 끄는 것에 대해서는 핸들과 브레이크가 잠겨 버리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당장 전방에 장애물이 있지는 않아서 몇백 m 정도는 더 나아갈 수 있고(특히 충돌을 피하려고 당장 비어 있는 중앙선을 넘어간 직후), 어떻게든 차가 속도가 붙는 것만을 막고 싶으면 상황에 따라서는 시동을 끄는 게 꼭 자충수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더 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 위험한 방법이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앞의 장애물을 어설프게 요리조리 피하면서 차가 속도가 붙는 걸 방치했다간... 도저히 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더 끔찍한 꼴 나기 때문이다. 그때는 local maximum만 그리디 알고리즘으로 쫓아가서는 안 된다. 정말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하다못해 핸들을 확 꺾어서 차를 전복이라도 시켜서 바퀴를 지면에서 떼어 놓는 것도 불사해야 하리라 여겨진다.

급발진을 규명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마치 UFO를 연구하는 사람과 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 UFO와 급발진은 모두 기존 업계나 학계, 정부 기관에서는 공식적으로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급발진은 다 페달을 반대로 잘못 밟은 운전자의 과실일 뿐이고 UFO는 다 당사자들이 헛것을 본 것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현대의 과학과 기술로 규명은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초자연적인(?) 현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거 무슨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도 아니고 UFO의 증인, 급발진의 증인이라니 참 느낌이 므흣하다..;;
현직 택시 기사 중에 자기 생업과 관련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독특한 분이 있어서 좀 소개하도록 하겠다.

닉: 꿈돌이/택시불만제로/택시독립 (!)

택시 이용과 관련된 유익한 정보, 그리고 현업 택시 기사들의 고충 같은 글이 있어서 그럭저럭 볼 만하다. "고갱님들은 불법 승차거부에 절대로 호락호락 당하지 마세요. 승차거부를 안 하는 대다수의 선량한 택시 기사들을 생각해서라도 승객 여러분들이 신고를 불사하면서 강하게 대처해 주셔야 불법 행위가 근절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새겨들을 만하다.

가끔은 미스터리한 교통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추리와 평론을 하는데, 이분은 놀랍게도 여느 운전자들과는 달리 차량 급발진 같은 건 절대 없다는 게 일관된 지론이다. 옛날 글들 검색해 보시길. "처녀가 애를 낳았습니다 / 선풍기 틀고 자면 죽습니다"와 "멀쩡하던 택시가 갑자기 급발진 폭주를 일으켰습니다"를 동급으로 칠 정도이다. 너무 당당하고 단호하고 강경하게 주장하니 그런 글에는 "무슨 개소리를.. 너 혹시 현기차 알바냐" 이런 부류의 익명 악플들이 잔뜩 달려 있다. -_-;;

지난 2009년 5월에 발생한 한티 역 택시 역주행 사고에 대해서도 급발진은 택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택시가 갑자기 오르막을 시속 100이 넘는 속도로 폭주하다가 결국 장애물과 충돌하여 차체가 두 동강 나고, 탑승자인 기사+여성 승객2 세 명이 모두 즉사한 끔찍한 사고 말이다.

이에 대해 저분은 운전자가 1차 사고의 측면 충돌로 인해 머리에 큰 충격을 받고 졸도했으며, 겁에 질린 조수석 승객이 핸들만 요리조리 돌리면서 고속 주행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일 거라고 추리를 늘어놓았다. 다만, 내가 보기에도 그럼 기사가 어떻게 액셀을 꾸욱 밟고 있는 채로 의식을 잃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기관총 사수가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채로 전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급발진 추정 교통사고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하려나 모르겠다.
엔진 작동 내역과 관련된 결정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긴 하면서도(급발진이 순수하게 복불복 운빨 미스터리의 영역이 아닐 거라는 뜻) 영업 기밀 운운하면서 급발진에 대한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다 운전자의 과실로만 떠넘기고 있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미심쩍고 괘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가 잘못해서 사고 내 놓고는 걸핏하면 급발진 핑계 대는 비양심 진상 운전자도 안타깝지만 있다. 진실은 과연 어느 극단 중에 있을지?

사무직 종사자들은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는 게 일일 것이며 본인 같은 프로그래머도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택시· 버스· 트럭 운전사들은 근무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하루 종일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잡고 차를 굴리는 게 일이다. 근무 중에 각종 정보 통신 장비 같은 걸 들여다볼 여유는 없다. 영상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이 시대에도 이런 업종 때문에 라디오 방송이 안 망하고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택시 운전을 은퇴 후 용돈벌이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full time 생계로 하는 거라면 그걸 하면서 블로그질까지 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아무튼 저분은 최근까지도 블로그를 잘 운영하시는 듯하다. 뭐, 교통사고 분석에 대한 판단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긴다.

12. 피시테일

고속 주행 중에 전방에 갑자기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혹은 갑자기 끼어드는 차가 있을 때... 보호본능으로 핸들을 확 꺾어서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때가 있다.
특히 비접촉 뺑소니 사고 블랙박스 영상들을 보면 더욱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가해 차량은 아무 탈 없이 유유히 사라져 버렸는데 자기만 놀라서 휘청거리다가 가로수를 들이받거나 전도· 전복되거나 심하면 옆의 비탈길로 추락하거나 한 거.

갑자기 옆에서 끼어드는 차량 정도면 "배째. 접촉사고 나 봐야 니 과실 100%야" 상황이었다면 차라리 같이 부딪치는 게 나았을 것이다. 피하다가 혼자만 더 큰 사고를 당하고 덤탱이 쓸 바에야 말이다.
길바닥에 갑자기 튀어나온 장애물, 불법주차 차량, 무단횡단자, 심지어 야생동물을 피하느라 안타까운 사고가 나곤 한다. 핸들을 꺾더라도 차량의 제어가 가능하고 수습 가능한 한도 내에서 꺾어야 한다. 옆에 피할 자리가 있는지, 혹시 뒷차가 추돌하지 않겠는지도 총체적으로 따지고 말이다.

결국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피하는 것 vs 차라리 부딪치는 것"의 가성비를 잘 따져야 할 텐데 물론 이런 요령과 경험도 운전자에게 금방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뭐, 저런 게 아니라 아예 정면에서 집채만 한 버스나 트럭이 역주행으로 폭주하고 있기라도 하면 그건.. 워낙 극단적인 상황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닥치고 피하긴 해야겠다.

이렇게 급발진이 '가속으로 인한 위험'이라면, 반대로 '회피나 제동 기동으로 인한 위험'으로 피시테일 현상이 있다.
급핸들이나 급브레이크 조작을 한 뒤에 차가 갑자기 좌우로 요동치면서 비틀거리더니 전복· 전도되는 경우가 많다. 난 저런 상황까지 겪은 적은 없어서 "왜 저렇게 될까? 중심 잡기가 그렇게 힘든가? 핸들과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나? 딱히 타이어가 터지거나 한 것도 아니고 빗길이나 빙판길도 아닌데?" 이런 의문을 품곤 했다. 하긴, 핸들과 브레이크가 평소처럼 말을 듣질 않으니까 사고가 나는 거겠지.

고속 주행 중인 자동차가 무거운 엔진이 장착된 앞은 그럭저럭 중심을 잡았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뒷부분이 중심을 잃고 출렁출렁 요동치는 것을 fish tail 현상이라고 한다. 전륜구동 FF 차량에서 발생하기 쉽다고 하지만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이 구동축의 방향은 아닌 관계로, 다른 형태의 차량에서도 수틀리면 발생할 수 있다.

요즘은 차들이 ABS에 VDC(자세 제어 장치)까지 장착돼 있어서 고속 주행 중에도 묵직하고 안정성이 많이 향상됐다. 차체가 떠 버리지 않게 뒷부분에 스포일러를 장착하는 것도 피시테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피시테일 현상이 발생하면 침착하게 차가 쏠리는 쪽의 반대쪽으로 조향을 반복하면서 중심을 잡긴 해야 하는데, 이때 브레이크는 절대 밟아서는 안 된다고 그런다. 그건 차가 한데 쏠리는 현상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제동은 중심부터 잡은 뒤에 시도해야 한다.

13. 양발운전

이번엔 또 다른 현직 택시 기사의 블로그를 소개하겠다.

닉: 두발로

이번 주인공은 자기 애마를 번호판도 안 가리고 버젓이 인증샷 찍어서 올렸을 정도인 분인데, 앞의 분보다 더 독특한 주장을 하고 있다. 다름아닌... "차는 발을 옮겨 가면서 운전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이다.
이분은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는 양발운전의 신봉자이다. 블로그는 온통 양발운전의 유용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동차 제조사와 자동차 공학 교수들에 대한 비판과 성토의 글로 가득하다. 글을 자주 올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근까지 정말 꾸준히 올리고는 있다.

본인은 예전에 밝혔듯이 한동안 양발 운전을 했다. 1종 보통 면허를 따긴 했지만 장롱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서 수동을 몰던 감을 다 잊어버렸다. 그 뒤 자연스럽게(?)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아 오다가 양발 운전에 대한 대외 이미지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자가교정을 해서 요즘은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서는 언제나 한발 운전으로 습관을 고쳤다.

하지만 이건 운전 능률이나 안전 같은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대외 평판 때문에 고친 것이다. 오르막에서 출발할 때나(밀림 방지), 전/후진을 반복하며 주차할 때(잦은 페달 조작)는 지금도 종종 옛날 버릇이 살아나서 예외적으로 왼발 브레이크를 쓴다. 요컨대 본인은 두 운전 방식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다.

자동차의 페달이 지금처럼 배치된 건 가장 근본적으로는 클러치 페달이 존재하던 수동 변속 차량과의 역사적 호환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액셀과 브레이크는 서로 동시에 밟을 일이 전혀 없는 페달이니 꼭 별도의 발을 배당할 필요도 없고 기존 관행을 굳이 꼭 바꿀 필요가 없다. 비행기와 철도 차량 역시 가속과 감속은 한 손으로 조작하는 레버 하나로 간단히 끝내고 있지 않던가? 최소한 저 블로그에서 까는 것처럼 "사고 많이 내서 차 많이 팔아먹으려고 일부러 왼발 브레이크를 채택하지 않았다, 이것은 치밀한 음모이다"까지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런 수동 변속기 같은 legacy를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처음부터 액셀 오른발, 브레이크 왼발로 만드는 것도 직관적이고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삐딱한 자세야 브레이크가 클러치처럼 왼발로 밟기 딱 좋은 위치에 달려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이니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발로 두 페달을 모두 밟는 지금 체계에서도 액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려서 잘못 밟는 운전 미숙 사고는 얼마든지 난다. 그러니 왼발 브레이크만 유달리 혼동 위험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대신 발을 옮기는 딜레이 없이 거의 곧장 브레이크와 액셀을 교대로 밟는 장점은 꽤 크다고 여겨진다.

요컨대 본인은 왼발 브레이크는, 수동+클러치를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 마치 숟가락을 집고 글씨를 쓰는 손의 방향이 왼손인 것만큼이나 취존 가능한 영역이 아닌가 생각한다. 막연하게, 별 근거 없이 왼발 브레이크가 무작정, 떼빙(대열 운행)이나 우측 차로 추월만치 위험하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오른발 위치에 맞게 맞춰진 페달을 왼발로 무리해서 밟느라 운전 자세가 이상해지는 건 문제라고 본다. 평소에 언제나 왼발로 밟을 거면 편하게 밟을 수 있게 세팅이라도 해 놓고 써야 한다.

그러니 혼자 특이한 주장을 하면서 기득권 세력과 꿋꿋이 싸우는(?) 저분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난 안 그래도 세벌식에 킹 제임스 성경 등 지금도 이미 마이너한 것들에 너무 많이 몰입해 있으니 가성비가 그리 안 맞는 마이너의 길을 굳이 더 가고 싶지는 않다. 한 발로 액셀과 브레이크를 모두 밟는 건 무슨 두벌식이고, 브레이크에다 별도의 발을 배당한 건 세벌식이기라도 하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_=;;

Posted by 사무엘

2017/01/23 08:39 2017/01/2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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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속도로 포함 자동차 전용 도로의 1차로는 상시 점유해서는 안 된다. 뒤에서 추월 차량이 오면 비켜 줘야 한다. (모든 차로가 막히는 정체 상황이라면 예외) 원활한 차량 흐름과 교통 안전을 위해서는 추월은 언제나 좌측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시내 도로 맨 구석의 직· 우 겸용 차선이라면, 내가 직진이어서 빨간불 때 멈춰 섰고 뒤에서 우회전 차량이 지나가려고 빵빵거린다 해도 미안해하거나 일부러 비켜 줄 필요가 전혀 없다. 뒷차가 무슨 출동 중인 구급차· 소방차가 아닌 한.

이것은 반드시 비켜 줘야 하는 경우와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의 대표적인 예인데, 이 둘을 반대로 잘못 아는 운전자도 있는가 보다.

2.
한적한 도로에서 건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횡단보도가 파란불이 되고 차도는 빨간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인간적인 심정에서야 경찰이나 단속 카메라만 없다면 이런 신호는 무시하고 눈치껏 그냥 가 버리고 싶다.

주변에 다른 차가 없다면 나 혼자서야 종종 재량껏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앞차가 신호를 지키기 위해서 비록 무의미하게나마 횡단보도 앞에 정지했는데 뒷차가 앞차를 향해 그냥 무시하고 가라고 빵빵거리는 경우가 있다. 그건 좀 심하게 몰상식하고 개념 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호의(횡단보도 신호 무시를 묵인)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와 같은 급이다. 무시하더라도 원래는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서 무시해야 한다. 남한테까지 자기 습관을 강요하지는 말아야지?

바쁜데 에스컬레이터의 왼쪽 레인의 전방에서 혼자 떡 멈춰 서서 길막 하는 사람이 있으면(오른쪽 레인은 사람들로 이미 꽉 찼고) 나라도 답답해서 그 사람 바로 뒤에서 헛기침 하면서 눈치 주고, 심하면 "실례합니다" 이러면서 비집고 걸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빈 횡단보도에서 빨간불 때문에 서 있는 앞차에게 신호위반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상황이 완전히 다르니까 말이다.

3.
견인차는 제아무리 싸제 사이렌을 울리고 불빛을 요란하게 반짝여서 소방차 코스프레를 해 봤자 법적으로 긴급자동차가 전혀 아니다. 저 아저씨들도 먹고 살기 빠듯한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것을 받아 주고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무리해서(특히 신호 위반/정지선 위반 같은 걸 감수까지 하면서) 비켜 준다거나 할 필요 따윈 전혀 없다.

4.
전방의 교차로의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뀌었을 때.. 정작 앞차는 서려고 마음먹었는데 뒷차는 "이 정도 타이밍이면 앞차도 그냥 건너가겠지"라고 생각하고 가속을 하는 바람에 뒷차가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가끔 나곤 한다. 그럼 물론 뒷차의 100% 과실로 찍힌다. 한 차선에 양쪽의 차가 동시에 진입하려다가 서로 상대방을 피하느라 휘청대다 사고 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건 좌우 버전이고, 저건 앞뒤 버전 되겠다.

이런 사고는 비록 과실 판정을 받지 않더라도 앞차의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려면, 노란불 때 급히 정지를 할 것 같으면 비상등을 잠시 깜빡여서 "난 설 거다"라고 뒷차에게 알려 주는 게 좋을 것이다. 단순히 브레이크 경고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고속도로에서 전방에 갑자기 정체 구간이 나타날 때 비상등을 켜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이것도 완전 지뢰임..).

정말, 비행기가 이륙을 중단할 수 없는 속도만큼이나, 자동차에도 이 정도로 가속이 됐고 교차로와 가까워졌다면 이제 노란불이 되더라도 교차로에서 설 게 아니라 빨리 통과해야 한다는.. 무슨 한계 속도 같은 개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자동차에 내비게이션과 연계하여 그런 걸 안내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건 무인 운전 시스템을 구현할 때도 필요한 알고리즘이어 보이는데?

5.
좌회전 신호가 거의 끝나 갈 때, 아니면 비보호 좌회전인 곳에서 앞차만 믿고 따라 좌회전을 하다가 맞은편의 직진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가 종종 난다. 이런 건 좌회전한 쪽이 신호 위반에 준하는 굉장히 불리한 판정이 나므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 밖에, 파란불이 돼서 직진을 하는데, 내 옆에는 탑차 같은 큰 차가 있어서 딱히 시야가 확보돼 있지 않다. 그런데.. 무단횡단자나 꼬리물기 차량이 쌩 가로질러 지나가서 옆의 차는 멈췄는데, 나는 그런 게 있는 줄 모르고 계속 직진하다가 그 무단횡단자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도 난다.
이런 건 정말 운이 나빴다고밖에 볼 수 없겠다. 과실이야 부딪친 놈에게 더 크게 잡히겠지만, 무단횡단자는 그저 답이 없다.

6.
예전에도 한번 글로 쓴 적이 있듯이, <블랙박스로 본 세상> 동영상들을 쭈욱 보고 있으면 교통사고라는 게 어쩌다가 나는지 유형, 공통점, 패턴이 쫙 분류된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이 또 느낀 게 있다.

"내가 왼쪽 차로/1차로로 갔던 것은 우회전 할 반경을 얻기 위함이었다!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이러다 사고 나는 게 참 많다는 거.
자매품으로는, "내가 우측 차로로 갔던 것은 유턴 할 공간을 얻기 위함이었다!"도 있다.

나름 버스나 트럭 같은 큰 차를 몰고 있거나, 혹은 승용차라도 도로가 폭이 4차선(편도 2차선) 이하의 좁은 곳이어서 후진 없이 한 번에 돌려고 저런 행동을 했을지 모르지만 저건 뒷차 운전자를 헷갈리게 하며 사고의 위험이 높은 행동이다. 현실에서는 상대방이 병신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매우 높은 과실이 잡혀서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며, 차후 자동차 보험료가 오르는 등 대가를 치른다.

자동차에는 평범한 좌우 회전용 깜빡이만 있지, 유턴이나 고반경 회전을 예고하는 깜빡이는 없다는 걸 명심하자. 또한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은 헷갈릴 것 없이 우회전은 최고 구석 차로에서만 가능하며 유턴은 1차로에서만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7.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는 일단 법적으로는 차도에서 달리는 것이 맞지만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인도 주행도 하며, 운전자의 습성에 따라서는 자전거에서 내린 상태가 아닌 탄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한다. 일부 지역은 횡단보도와 인도에 대놓고 자전거 진행로를 나타내는 차선이 그어지고 전용 포장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자전거의 진행로는 인도나 차도 하나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자전거 운전자가 유도리 있게 취사선택 가능하게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어 보인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처럼 자전거가 무슨 떼거지처럼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니니.
횡단보도 신호를 따라 천천히 갈 것이고 사고가 났을 때 보행자보다 더 불리하게 처분되는 것에 이의가 없다면 인도로 가고, 횡단보도가 빨간불이더라도 자동차처럼 같이 직진하고 싶으며, 위험하지만 그래도 자동차에 비해서 약자로 대접받는 게 낫다 싶으면 차도로 가게 말이다.

단, 차도로 갈 경우 역주행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법으로 막아야 한다. 역주행을 할 거면 무조건 인도로 가야 한다.
특히 최악인 것은 역주행인 주제에 교차로에서 코너링까지 하는 거.. 자동차 운전자를 정말 놀라게 한다. 이 상태로 충돌 사고라도 나면 자전거 운전자 과실로 몰빵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아예 엔진이 달린 오토바이라면 선택의 여지 없이 차도로만 달려야 할 것이고 근처의 횡단보도나 교차로까지 주차· 출차를 위해 불가피한 초단거리 주행을 제외하고는 인도 주행은 금지다. 그리고 차도라 하더라도 최우측 차선에서 자동차의 틈새로 달리는 것도 금지다. 그건 자전거에게만 허용돼 있다. 그 상태로 차량의 도어가 갑자기 확 열려서 개문사고라도 나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

8.
운전자에게 '전방 주시 의무'가 있는 것처럼, 보행자도 차도에 발을 디딜 때면, 동급의 강한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측면 주시'를 강력한 권장 사항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이어폰도 잠시 빼고 말이다.
길 건너편에 목적지 또는 합류할 일행, 탑승할 차가 있을 때 그것만 보고 쪼르르 달려가다가 사고 난다.

한 차선은 직진 차로인데 신호가 빨간불이어서 차들이 서 있다. 한 보행자가 이 틈을 이용해 무단횡단을 한다. 그런데 그 차선의 옆 차선은 좌회전 차선이어서 차들이 달려올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지금 당장 텅 빈 것만 보고 건너다가 사고가 난다. 아까 운전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큰차에 가려져서 옆 차로에서 달려오는 차를 못 봐서 그 차에 치이기도 한다.

운전자와 마찬가지로 보행자도 당장 지나가는 차가 없는 도로에서 무단횡단의 충동을 얼마든지 느낀다. 그런데 그럴 거면 좌우 측면을 충분히 주시하고 정말 at your own risk로 잽싸게 민폐 안 끼치고 빨리 건너가야 한다. "불륜 저지를 거면 내가 모르게 하고 나한테 걸리지만 마라. 걸리면 뒈진다" 같은 마인드로 말이다. 그럴 자신 없으면 마음 가라앉히고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9.
그리고 시내버스가 기사 아저씨의 귀차니즘 같은 이유 때문에 인도에 바싹 붙어 정지하지 않고 승객을 하차시키는 바람에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 앞만 보고 쪼르르 내린 승객이 시내버스의 옆 여백으로 지나가는(특히 우회전) 자동차 내지 이륜차와 부딪치는 거다.

물론 이건 버스 기사의 과실이 최소 70%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 하지만 멈춰 설 기미가 보이는 버스 뒤에서 다른 차량 운전자도 좀 조심해야 하고, 승객도 발이 차도에 닿을 것 같으면 좌우, 아니 차가 오는 오른쪽 방향을 주시하는 센스가 필요해 보인다. 밖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버스는 문이 열릴 때 밖으로 돌출되지 않기 때문에 택시· 승용차와 같은 급의 개문 사고가 나지는 않는다.

10.
끝으로.. 교통사고라는 건 내지도 당하지도 않아야겠지만, 일단 그런 불행한 이벤트에 말려 버렸다면 상황이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빠지는 일은 없게 사후 대처도 침착하게 잘해야 한다.
고속도로 한복판 같은 곳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2차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아니고 남이 당한 사고의 수습을 돕다가 사고 현장으로 그대로 돌진해 온 다른 차에 치여서 중상· 사망을 당한 의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적지 않다.

"이 정도면 뒷차도 충분히 인지하고서 속도 줄이고 서겠지"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떤 막장 차량이 달려와서 교통사고 현장에 그대로 꼬라박을지 알 수 없다. 그게 운동 에너지에서 질량이 왕창 큰 졸음운전 대형 트럭이 될 수도 있고, v가 왕창 큰 과속 승용차가 될 수도 있다.
차를 최대한 갓길로 빼고, 그럴 수 없으면 사람이라도 차를 벗어나서 도로 밖으로 멀리 대피해야 한다. 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완전 자살행위다.

움직일 수 없는 고장· 사고 차량이 불가피하게 도로를 틀어막게 됐으면 비상등을 켜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트렁크도 열고 차량의 존재감을 최대한 알려야 한다. 사람이 200미터 후방까지 가서 삼각대를 설치하고 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하니 삼각대 자체에 무슨 원격조종 동력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밤에는 스스로 터지는 불빛이 가시성이 좋다고 하는데 화약이 들어간 물건이어서 유통과 소지에 제약이 걸려 있다고 한다. 비현실적인 법률에 대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20 08:37 2017/01/2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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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강 위에 교량(다리)을 건설한다고 하면 우리는 강의 양쪽 건너편을 잇는 통상적인 형태의 다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리가 꼭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강을 따라 그냥 물 위를 지나는 다리도 드물지만 있다. 쉽게 말해 강과 수직이 아니라 평행인 다리 말이다.

작은 개천의 경우 물줄기를 따라 그 위에다 길을 놓아서 개천을 완전히 덮어 버린 '복개 고가 도로'가 있긴 하다. 과거에 서울의 청계천도 그 위에 고가 도로가 닦여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철거된 걸로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일개 도로만으로 복개가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폭이 큰 하천에도 남단이나 북단을 나란히 지나는 교량이 있다.

그런 교량은 아무 이유 없이 만드는 건 아니고.. 강을 따라 닦였던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건설되곤 한다. 차선수를 늘려야 되는데 한쪽은 강이고 다른쪽은 바위산이거나 이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확장의 여지가 없을 때 말이다. 그럼 다리를 놓음으로써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강을 건너는 다리라면 남단과 북단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기 위해 당연히 직선 형태로 만들어지는 반면, 강을 따라 지나는 다리는 교량 주제에 커브가 존재하기도 한다.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에서는 북단의 강변북로와 남단의 올림픽대로에 이런 다리가 모두 존재한다.
강변북로는 1970년대에 먼저 4차선이라는 초라한 규모로 건설됐다. 이거 건설과 확장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때는 용산-왕십리 방면의 경원선 철길을 없애 버리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제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 철도 관계자가 이를 필사적으로 만류한 덕분에 그렇게 되지 않았으며, 경원선은 오히려 용산-성북 복선전철로 거듭났다.
그리고 강변북로의 기존 도로는 서쪽 방면 전용이 되고, 동쪽 방면 도로는 일부 구간이 교량 형태로 새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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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올림픽대로는 1980년대의 5공 시절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올림픽의 유치에 성공한 그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여 평범한 '강변남로' 대신 저런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하긴 이 도로는 김포 공항과 서울 올림픽 경기장을 직통으로 쭉 잇기도 하니 이름이 88 올림픽 '고속도로'보다는 훨씬 더 타당성과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올림픽대로는 노량진동과 동작동 사이의 2km 남짓한 구간이 '노량대교'라고 불리는 교량이다. 강변북로와는 달리 처음 만들어진 1986년 당시부터 상· 하행이 모두 교량이다. 다만, 30년 전 처음부터 지금 같은 광활한 10차선은 아니었으니, 지금 여기를 달려 보면 다리가 덕지덕지 작은 구획으로 나뉘었다가 확장되고 합쳐진 흔적을 볼 수 있다. 교량의 폭을 확장하는 건 터널의 폭을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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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대교는 엄연히 이름이 붙어 있는 교량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대로 내부엔 교량 구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어떤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다리는 한강을 '건너는' 다른 교량들을 아래로 지나서 입체 교차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운전자가 노량대교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샌가 교량에 진입했다가 어느 샌가 빠져나가 버린다.

다음으로, 서울을 빠져나가서 국도 6호선을 타고 양평 쪽으로 가 보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의 아래로 강이 유유히 흐르는 게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다.
원래 거기는 험준한 지형 때문에 좁고 구불구불한 2차선짜리 도로였지만 1990년대에 공사를 통해 4차선으로 확장됐다. 남한강이 북한강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중앙선 철도로 치면 양수-신원 사이 구간)에서는 땅에서 도로를 확장하기가 여의찮은 관계로, 동쪽 방면 도로는 강변북로처럼 강 위에 교량을 나란히 설치하는 방식으로 부설했다. 이 다리는 이름이 '용담대교'이며 지난 1996년에 개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담대교는 나름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이다. 이 사진보다 색감이 더 아름다운 사진도 있는데 그건 다 가로 크기가 500픽셀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남)한강은 서울 시내 구간과는 달리 상수도 보호 구역이라는 것이다. 수질 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일체의 개발· 건축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양평이 괜히 경치가 좋은 게 아니다. 강가는 온통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도 6호선의 교량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굉장히 특수한 공법을 동원해서 건설됐다고 한다.

끝으로, 유사한 사례가 아니라 대조군을 소개하고서 글을 맺겠다.
경부선 철도는 잘 알다시피 밀양의 삼랑진 역 이남부터 낙동강을 나란히 따라 달린다. 그런데 거기도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노반 확보를 어찌 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한쪽은 그냥 강이고, 다른 한쪽은 바위산이었던 것이다.

경부선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교량을 만드느니 차라리 산에다 불가피하게 터널을 뚫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삼랑진-원동-물금 일대엔 상행은 그냥 평지인데 하행만 터널을 지나는 기묘한 구간이 몇 군데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 지도 캡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철도는 좌측통행인 건 다들 아실 테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경부선은 상행 방면이 먼저 생겼고 복선화 공사 때는 오른쪽에다 하행 선로를 '나중에' 추가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터널까지 뚫지는 않아도 되는 쉬운 곳에다가 선로를 먼저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상. 본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교량 중에는 강을 수직으로 건너는 놈만 있는 게 강을 나란히 따라가는 놈도 제한적이나마 있다.
  2. 그런 교량은 대체로 산과 강 사이에 낀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지곤 한다.
  3. 다만, 경부선 철도의 경우 낙동강 구간에서 그 흔적이 편도 교량이 아니라 편도 터널로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0 08:28 2016/10/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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