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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야기

* 본인은 니코틴의 맛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비흡연자이다. 담배를 접할 일은 앞으로도 평생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잘 알다시피 담뱃값이 크게 올랐다. 그래서 오르기 전 가격으로 담배를 사재기 하려는 흡연자, 그리고 있는 담배도 일부러 꿍쳐 놓고 값이 오를 때까지 안 파는 가게, 사재기를 단속하려는 정부 당국..의 삼파전은 뭔가 병림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은 상식 중의 상식이 된 지 오래이며 대중교통을 포함해 지붕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허용되는 곳은 전혀 없다. 그나마 건물 내에 별도로 지정되어 있던 흡연실도 요즘은 없어지는 추세여서 흡연자들은 근무 중에 담배라도 한 대 피우려면 옥상이나 1층까지 갔다가 와야 하니 시간과 업무 생산성 손실이 많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 위험한 수소 비행선인 힌덴부르크 호 내부에도 흡연실이 있었고 비행기 스튜어디스가 간접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려 죽을 정도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건 둘째치고라도, 비행기 객실 안에서 화기를 반입하고 불을 피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오늘날의 보안 관념으로는 충공깽에 가까운 사실임은 틀림없다.

다만, 군대나 회사에서 “우리 나가서 담배나 좀 피우고 올까?” 이러면서 선임과 후임 사이에 훈훈한(?) 이야기가 오고가고 서로 친해지는 순기능이 있다는 건 본인 역시 인정한다. 어찌 보면 꽤 큰 순기능이다. 담배가 그렇게까지 건강에 나쁘지 않고 연기 냄새가 그렇게까지 역겹지만 않다면 말이다.

나도 어지간해서는 비흡연자의 권리만큼이나 흡연자의 권리도 보장해 주고 싶다. 그래서 지붕 뚫린 바깥에서까지 흡연을 금지시키고 싶지는 않다. 내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며 길빵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냥 달려서 그 사람을 조용히 추월해 가 줄 용의는 있다.

하지만 길빵은 담배 연기가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위험하다. 담배를 든 팔을 잘못 휘둘러서 옆의 사람이 화상을 입는 사고가 실제로 여럿 발생했다. 또한 담뱃재와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은 정말 싫다.
이와 대조적으로 공공장소 화장실이나 아파트 계단 통로에서 몰래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연기와 냄새로 민폐를 끼친다. 개인적으로 완전 혐오. 가끔은 건물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내려가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가 없게 만드는 주범들이다.

이렇듯, 담배는 기체를 퍼뜨려서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큰 불편을 끼친다는 점에서 액체인 술과 다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담배는 무슨 음주운전 교통사고나 주폭 같은 피해를 끼치지는 않으니 해악의 양상이 술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한국 담배인삼 공사의 비공식 슬로건이 “담배 피워 망친 건강 인삼으로 회복하자”라고 한다. =_=;; 진짜라고 믿으면 당연히 골룸..
둘 다 우연히 국가가 전매 독점 관리하는 식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tomorrow와 global을 갖다붙인 영어 이니셜은 아무래도 어거지 성격이 짙다.

담뱃값 인상은 그냥 복지 집행으로 인한 부족한 세수 확보 명분일 뿐이다. 국민 건강 그딴 것 때문이 아니며, 우리나라가 주변 선진국들보다 담뱃값이 싸기 때문에 더 올리자는 주장도 말이 안 된다. 그럼 우리나라가 주변 선진국보다 매우 비싼 생필품들에 대해서는 가격을 내려 줄 용의가 있기라도 한가? -_-;;

다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담배 판매를 통해 왕창 이득을 챙기고 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거시적으로는 담배 때문에 고의로 건강 망쳐서 발생하는 생산성 저하, 사회 비용과 의료보험 재정 탕진이 더 크다.
마치 서울 지하철 보증금보다 1회용 교통 카드의 생산 단가가 더 높으며,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자국의 자동차들을 굴리는 데 쓰느라 더 바쁘지 나중에 더 비싸게 팔려고 꿍쳐놓고 있는 게 아닌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음모론은 그저 음모론일 뿐.

끝으로, 금연 장려를 위해 이런 아이디어가 제안되어 있는데 다들 참 기발하다.

  • 각종 경고문이나 사진을 붙이기에 앞서 담배 이름부터 좀 화끈하게 짓자. 자살초, 폐암말기, 썩은허파, 매독 등.
  • “경고: 이 담배의 판매 수익은 국회의원들의 월급 지급을 위해 쓰입니다” ...;; 내 건강 망가지는 것보다 정치인들 배부르는 게 더 싫구나. 그저 웃프다.

Posted by 사무엘

2015/01/05 08:36 2015/01/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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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교계에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성탄절과 부활절이 이교도(pagan) 절기와 섞여서 교리적으로 많이 변질된 비성경적인 절기라고 간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지키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성육신 탄생 내지 부활 자체를 안 믿는 건 아니다. 단지 예수님의 생일이 12월 25일이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 할아버지, 부활절 달걀과 토끼 같은 걸 만들거나 시행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중요하게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더 중요하게 기념할 뿐이다(일명 성찬식이라고 불리는 주의 만찬).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종교 음악/노래들을 살펴보자.

  • I. 그나마 찬송가 축에 들고 성경 고증대로 예수님의 탄생만을 다루고 있는 <천사들의 노래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같은 건 종교 텍스트로 치면 진짜로 영감 받은 66권 성경 정도의 퀄리티일 것이고..
  • II. 가사가 성경적인 배경이긴 하지만 크게 교리 측면의 영양가가 없고 찬양으로서의 가치도 별로 없는 노래는 외경 정도의 등급일 것 같다. 어떤 예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다.
  • III. 그것보다 더 나아가서 아예 눈썰매, 크리스마스 트리나 산타 할아버지만 나오는 수준의 캐롤은.. 딱히 기독교와 교리적인 관계가 있다고는 볼 수 없고 위경에 가까운 레벨이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외경, 위경급이라고 해서 그게 일고의 가치가 없는 쓰레기이고 배척하자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노래 들으면서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가 아무리 세속화했다고 해도 아예 대놓고 드루이드 교의 마귀적인 의식에 기원을 둔 할로윈보다는 낫지 않은가.
다만, 즐기더라도 오늘날의 크리스마스가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와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있지는 않다는 건 알고서 즐길 필요는 있다. 고증상 예수님의 실제 탄생일은 유대인 절기 중의 장막절에 속하는 가을, 우리로 치면 오히려 추석과 더 가깝다.

뭐, 그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서양에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우리로 치면 꽤 중요한 공휴일이다. 한중일 중에서는 대한민국 우리나라만이 유일하게 정부 수립 극초반부터 이례적으로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고 초대 대통령이 기독교인이었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11월에 공휴일이 전혀 없는 관계로, 10월 9일 한글날 이후의 공휴일은 거의 70여 일 뒤인 성탄절이다. 12월 25일은 학교에서는 대개 겨울방학이기 때문에 성탄절은 근로자의 날과 더불어, 학교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양대 공휴일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은 캐롤 얘기를 계속하겠다.
캐롤은 우리나라에 가사가 번역되어 소개된 <징글 벨>, <울면 안 돼>, <루돌프 사슴코> 같은 게 있는데 그냥 초등학교 음악 책에나 나오는 쉬운 동요 수준으로나 알려져 있다.
뭐, <탄일종>은 크리스마스 컨셉을 꽤 우회적으로 표현한 국산 동요이고, <성탄제> 같은 시도 있으니 국산 컨텐츠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정서와는 사뭇 다른 크리스마스 노래가 많이 있으며,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신곡이 나오고 있다. 짤막한 동요보다야 더 큰 스케일로 말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실버 벨> 같은 것들은 다 1940~1950년대에 발표된 곡이다. 세상에 알려진 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곡으로 내가 아는 것만 열거해 봐도 Do you hear what I hear라든가, 프랑스의 Chants De Noel, The Christmas Song이 있다. 특히 The Christmas Song의 경우 어렸을 때 경험했던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한 추억을 굉장히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첫 단락만 대충 의역 스타일로 옮겨 보면...

매서운 추위 때문에 코까지 빨갛게 시리던 그 날
길거리의 사람들은 에스키모 같은 두툼한 옷차림으로 종종걸음을 했다.
장작불 위로는 밤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고
성가대가 부르는 캐롤이 울려 퍼졌다.


중간엔 “Everybody knows a turkey and some mistletoe”(칠면조 요리와 겨우살이풀. 다들 잘 알지요) 라는 대사가 있어서 본인은 mistletoe라는 단어를 여기서 처음으로 접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용으로 이 식물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가 보다. 우리나라 정서상으로는 everybody knows라고 할 수는 없을 듯. 참고로, 아래 그림에서 딸랑딸랑 소리 나는 종이 말 그대로 jingle bell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나중에 Enya의 White is in the winter night이라는 캐롤 스타일의 노래를 들으니 저 캐롤이 같이 떠올랐다.

Have you seen the mistletoe? It fills the night with kisses.
Have you seen the bright new star? It fills your heart with wishes.
(...)
Green is in the mistletoe and red is in the holly,
Silver in the stars above that shine on everybody.


위의 그림을 같이 보시라. 풀잎은 green이고 holly(열매)는 빨갛다. 저 문화권에서는 겨우살이풀에 저런 심상이 담겨 있는가 보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성탄제)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뭐, 종교적인 면을 빼고 생각하자면, 연말을 앞두고 이렇게 촛불 켜고 칠면조구이를 먹고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명절이 있다는 것 자체는 본인 역시 좋고 훈훈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성경 운운하면서 교리적으로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일체의 관행 자체를 계 11:10의 부정적인 장면과 연관 시키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을 듯.
마치 성경에서 생일이 부정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친구들끼리 일체의 생일 잔치까지 괜히 나쁘다고 매도할 필요는 없듯이 말이다. 그건 그저 사람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인 재량의 영역이 아닐까 한다.

(창세기 파라오의 생일, 복음서 헤롯의 생일. 다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이며, 그 생일 잔치에 하필이면 사람이 죽는다. 각각 빵 굽는 시종장과 침례자 요한. 보통 왕의 생일 정도면 국가적으로 아주 경사스러운 잔칫날이며, 사형 집행은커녕 죄수들을 사면하고 풀어 주는 날인데 저건 굉장히 이례적이고 이상한 사건이다)

어쨌든, 방문자 여러분께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드리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25 08:24 2014/12/2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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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 해 동안은 국군 전방 부대에서 불미스럽고 안타까운 소식이 둘이나 있었다.
다른 계급도 아니고 전역을 겨우 3개월 남짓 앞두고 있던 어느 병장이.. 지금까지 쌓인 게 얼마나 많았으면 돌연 총기 난사 + 무장 탈영이라는 초대형 사고를 쳤다. 그리고 총격전까지 벌인 끝에 자기 인생은 물론 여러 동료 병사와 주변 간부들의 인생까지 덩달아 쫑치게 만들었다.

그 뒤 지난 여름엔 어느 폐쇄적인 부대에서 한 병사가..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하다못해 저렇게 총기 난사를 벌이거나 혼자 자살한 것도 아니고.. 진짜 순수하게 맞아 죽는 초유의 참극이 벌어졌다. 거의 군대판 '일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 인디애나 주 실비아 라이컨스 사건'이나 다름없다.

유 관순 열사가 사형이나 고문치사나 병사가 아니라 간수들에게 순수하게 맞아 죽었다고 최근에야 밝혀졌는데.. 나라 지키러 간 군인이 변태 가학적인 악마 아군에 의해 그렇게 죽은 것이다. 동물이나 심지어 적군 포로에게라도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을 당한 것이다. 이러니 오죽했으면 군대에서 “참으면 윤 일병처럼 되고, 못 참으면 임 병장처럼 된다”라는 웃을 수만은 없는 블랙코미디가 나돌 정도였다.

군대에서 차라리 제2 연평해전 전사자들처럼 적과 싸우다가 적군의 총탄에 산화한 거라면.. 그 무엇도 목숨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일 영예로운 죽음이긴 하다.
천안함의 경우는 적군들 얼굴도 못 보고 전투다운 전투를 못 벌이고 전사자가 발생했으니 위의 경우보다는 좀 더 원통하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영예로운 일이다.

다음으로 훈련이나 다른 근무· 작업 중에 사고로 죽은 거라면 위의 경우보다 더 허무한 축에 들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엄연히 나라 지키다가 순직한 것이다. 그런 죽음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전투력과 아무 관계가 없는 저런 병폐로 인한 원통하고 억울한 죽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근절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을 예방하겠답시고 동기들만으로 구성된 소대를 만들겠다는 안이 나왔는데, 이 역시 멍청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동기들만으로 구성된 학교 학급 안에도 양아치와 일진들이 포진해서 “나보고 형이라고 불러” 이러는 걸 정녕 모르나 보다. 문제의 근원이 계급에 있는 게 아니다. 저건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좀 더 훈련이 혹독하고 힘들어도 좋으니 군대가 일과 후 시간 동안에는 병사들의 사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보장해 줄 수 없을까? 거의 모든 병영 스트레스는 내무 생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니 말이다. 본인이야 뭐 자대 생활을 하지도 않았고, 군대 행정 같은 건 비전문가이니 그저 이런 생각만 부질없이 늘어놓을 뿐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모병제를 해서 진짜 군대에 갈 의향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전문화된 군대를 꾸며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 역시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극심한 저출산 때문에 지금처럼 강제 징병을 하고도 군대에 갈 사람이 부족한 듯하다. 거기에다 복무 기간은 1년 9개월까지 단축되어서 사정은 더욱 심각한 듯. 징병 검사는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고, 덕분에 소총을 쥐어 줘도 될 정도로 정상적인 신체와 멘탈을 갖추지 못한 사람까지 입영하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하는 빈도도 느는 듯하다. 즉,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병제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진단하는 견해도 있다는 뜻이다.

또한 정말로 순수하게 모병제인 일본 자위대는 한국보다 시설 복지가 더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도 구타· 가혹행위가 만연하며 단위 인원당 자살자 비율도 “더 높다”. 애초에 우리나라 국군도 해병대는 순수하게 지원자로만 구성되어 있지만--비록 일단 군대 자체는 무조건 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병과· 직종만이 지원제인 것이긴 해도-- 2011년 한 해 동안 온갖 불미스러운 사고는 다 터지지 않았던가. 이 문제에 관한 한 징병이냐 모병이냐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1년에 우리나라 군대에서 자살하는 장병의 수가 옛날에는 세자리 수였다가 그래도 21세기에 들어선 뒤부터는 수십 명 수준으로 줄었다. 비록 우리나라 국군이 병사 월급이 매우 적고 복지와 보상이 안습한 수준이며 가끔 저런 대형 사고가 터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군 내부의 인권 실상이 겨우 북한 따위에게 디스를 당할 정도는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인권 실상이 좋다고 해 봤자 북한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남자가 10년, 여자가 7년간 군대에서 '썩어야' 하는 나라이다. =_=;;; 그것 자체가 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에 대한 넘사벽급의 인권 유린이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애초부터 국비로 양성된 육사 출신 장교나 복무할 만한 기간을 저쪽 동네에서는 병들이 복무하는 것이다.

아무튼, 군대에서 다시는 저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앙망'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바란다고 해서 저런 일이 또 안 터지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을 빌미로 평소에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이 불건전하던 사람, 국가관이 이상하던 사람들이 옳다구나 물어뜯고 군대에 대해서 대안 없는 비난이나 늘어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광경도 보고 있자니 개인적으로 심기가 무척 불편했다.

예나 지금이나 군 복무는 국민의 의무이지만 한편으로 내 인생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국가의 이름으로 희생시키고 착취당하는 일이다. 군대에 갔다간 나도 위에서 열거한 저런 험한 꼴의 주인공이 될 것 같고..
그래서 기를 쓰고 군대에 안 가려는 병역기피 범죄가 많았다. 또한 마지못해 입대는 했지만 그 뒤 견디다 못해서 도망가 버리는 사람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이름하여 탈영이고 법적 용어로는 군무이탈이다.

군대는 안 그래도 사기와 기강이 중요한 엄격한 집단이며 군대에 가고 싶어서 선뜻 간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런 와중에 국가가 탈영병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잡아 주지 않으면, 까놓고 말해 탈영 안 한 사람이 바보가 될 지경이 되면 군대가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 그래서 탈영은 국민의 의무 수행에 대한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탈세'만큼이나 굉장히 큰 범죄로 간주된다. (물론 애초에 군대를 불법으로 뺀 병역기피하고 형평성이 안 맞다는 비판은 좀 있지만)

하지만 무작정 탈영병을 흉악범마냥 취급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다른 모든 범죄들은 신체의 자유가 있는 상태에서 자기가 고의로 나쁜짓을 저지른 경우이지만, 군무이탈은 국가가 개인으로 하여금 신체의 자유를 군대 안으로 속박하려고 하는데 그걸 견디다 못해 법을 어긴 경우이기 때문이다. 범죄하고는 아무 상관 없이 살았던 청년이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흉악범과 동급으로 취급되고 무작정 법의 철퇴를 맞고 전과자 되고 인생 종치는 건 국가적으로도 손해이다.

이렇게 탈영병 내지 군무이탈자는 법적으로 예외 없이 단호하고 무겁게 다뤄야 하는 한편으로 정상을 참작하여 아량도 베풀어야 하는 이중적인 면모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국군에서는 정기적으로(대략 3년 간격) 육해공 참모총장이 전국의 탈영병들을 상대로 복귀 명령을 내린다. 공고문이 철도역이나 버스 터미널 같은 데에 다 게시된다. 이 특별 기간(대략 2개월 남짓)에 탈영병이 자수를 하면 지금까지 탈영해 있었던 기간에 구애됨이 없이 정상을 참작하여 “최대한 관대하게” 처분해 주겠다는 당근(?)까지 제안한다.

이것은 여러가지 효과를 노린 것 같다.
탈영 기간에 비례해서 처벌의 수위가 마치 채무 이자마냥, 주차장이나 도서관의 연체료마냥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면 장기 탈영병은 탈영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수 의욕을 잃고 아예 자살 같은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은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좋은 결과가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무조건적으로 봐 줄 수만은 없으니 저렇게 군대판 “어서 돌아오오”를 정기적으로 시전하여 특정 기간에만 미끼를 내던지는 게 군무이탈자들의 심리를 동요시키는 효과도 있고 적절해 보인다.
거기에다 탈영에 대한 실질적인 공소시효를 최대한 늘리는 건 덤이다. 40대 초중반의 나이까지 끝까지 탈영 안 하다가 붙잡히면 나중에는 군무이탈에 대한 공소시효는 끝나더라도 '명령 불복종죄'로 처벌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지금까지 내려진 군무이탈자 복귀 명령을 보면.. 적용 대상이 “1963년 12월 1일 이후로 육해공군 복무 중에 군무이탈 중인 자”라고 돼 있다.

현재까지 잡히지 않은 가장 오래 된 탈영병이 탈영한 때가 1988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죽었거나 외국으로 밀항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기준 날짜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반세기 전, 비현실적으로 까마득하게 먼 과거인 1963년인 걸까? 작정하고 엄청난 옛날을 잡고 싶거들랑 아예 “1940년대 말의 건군 이래로”, 혹은 “1953년 휴전 이래로”라고 해도 될 텐데? 궁금하지 않으신지?

그 이유는 국가에서 1963년 11월 30일과 그 이전에 발생한 탈영은 모두 정식으로 사면을 해 줬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나라가 워낙 혼란스러웠고, 개인 사정상 도저히 불가피한 생계형 탈영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저 때는 박 정희가 군복을 벗고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민생 안정을 위해 이것저것 여러 조치가 취해지곤 했다. 역사 기록을 찾아 보면, 공교롭게도 출입국 관리법 위반자도 1963년 11월 30일 이전 것들은 다 사면해 줬다고 한다.

1963년은 한국 철도사에서는 서울교외선이 전구간 개통한(8월) 해이다. 그 이전의 1962년엔 군사 정권이 들어섰고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됐다. 그리고 이때 현재까지 우리나라 역사상 최후의 화폐 개혁이 행해져서 '원'이라는 단위가 쓰이기 시작했다. 1962년은 박통 정부가 독립 운동가들을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찾아내어 훈장을 추서하고 예우한 해이기도 하다. 유 관순, 윤 봉길 등 네임드급 인물들이 다 이때 훈장을 받았으니 말이다.

1963년 12월 1일이라고 하면 바로 그 정도로 옛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시스템과 기강이 잡힌 이상, 앞으로 정부가 군무이탈자들을 사면하는 일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여 수배 중인 누적 탈영병의 수는 역시나 전군을 통틀어 70여 명 수준이라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연간 군대에서 발생하는 자살자 수와 얼추 비슷하다. 탈영하고도 안 잡히려면 이 사회에서는 주민등록도 말소되고 그야말로 완전 '없는 사람'으로 지내야 한다. 따로 국가나 군대에서 처벌을 안 해도 그렇게 매장당한 채 고생하는 것 자체가 탈영에 대한 처벌이나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에는 어떤 사람이 과거에 열차를 상습적으로 몰래 무임승차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무임승차 금액을 변제한다고 코레일에 100만원을 기탁하고 간 훈훈한(?) 사례가 있었다. 그 사건들은 이제 증거도 없고 공소시효도 옛날에 다 지났으니 100만원은 코레일의 입장에서는 그저 기부액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마치 그것처럼, 지난 2006년엔 한번은 무려 18년 가까이를 도피 생활을 하는 바람에 심지어 가족하고도 연락이 끊어져 버린 30대 후반의 안타까운 아저씨가 끝내는 자수한 경우가 있었다. 이런 사람은 군대의 입장에서도 병사로 막 부리기가 민망하니.. 그는 1개월 남짓만 형식적으로 병영 캠프를 하다가 복무 부적격 심사에 통과되어 어쨌든 드디어 정식으로 전역했다고 한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군대가 탈영병이 발생할 일이 없을 정도로 내부 부조리와 비극이 없는 군대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월급을 많이 못 주더라도 병사들의 마음을 사는 방법은 다른 쪽으로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22 08:36 2014/12/2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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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가 옛날보다는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대한 경각심이 좀 생겼고 불시단속도 강화된 관계로..
기업들 역시 대기업·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직원들의 컴퓨터에 혹시 불법복제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는지 자체 단속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소프트웨어 자체를 생산하는 일을 하는 IT 기업에서는 추가적으로 민감한 물건이 더 있다.
자사가 개발하는 제품의 내부에 혹시 오픈소스 솔루션이 예기치 않게 들어가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당장 돈을 안 들이고 원하는 문제를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출처 명시 없이, 혹은 라이선스가 요구하는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그런 솔루션들을 자기 소스 코드에다 불쑥 집어넣었다가는..
글쎄, 그 회사와 회사 제품이 완전 듣보잡 마이너 내수급이라면 별로 문제되지 않고 넘어갈지 모른다.
그러나 외국으로도 널리 널리 쓰이고 돈을 빗자루로 긁어모으는 인기 프로그램이라면 얼마 못 가 당연히 걸리고 발목 잡히게 된다.

왕년에 병역비리 내지 논문 표절을 저지른 사람이 나중에 고위 공직자가 되려 할 때 청문회에서 탈탈 털리듯이 말이다.
오픈소스를 표방하는 자유 소프트웨어라고 해서 저작권이 전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나 완전히 제멋대로 고치고 이득을 챙겨도 되는 '인류 공용 자산'급인 public domain이 아니다.

방대한 분량에 복잡한 로직을 가진 소프트웨어는 설령 소스 코드가 있다 해도 누가 함부로 찔끔찔끔 고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설령 컴파일된 바이너리이고 소스 코드가 없다 하더라도, 여기에 어떤 오픈소스 솔루션이 무단으로 포함되었는지 정도는.. 오픈소스 진영에서 매의 눈으로 감시해서 다 적발해 낸다. 컴파일된 바이너리 코드의 패턴 분석을 정교하게 하는 듯.

그래서 그렇게 자기는 이윤을 챙기면서 엔진 내부에 무료 오픈소스를 무단으로 사용한 양심불량 소프트웨어는 hall of shame 같은 데에 올라서 업계에서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며,
GPL 라이선스 급의 오픈소스를 잘못 따다가는 그걸 사용한 프로그램 전체에 대해 소스 공개라는 형벌(?)을 당하게 된다. 실제로 그런 소스 공개형을 당한 사례도 몇 건 있다. 물론, 프로그램 소스만 공개이지 그 소프트웨어 제품에 사용된 각종 데이터나 리소스까지 죄다 공개는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기술 유출은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 자사 직원들만치 꼼꼼하게 감시하지는 않는 하청업체로부터 납품받은 소스에 이런 지뢰가 들어있어서 골탕을 먹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납품 계약을 할 때부터 그 솔루션에 오픈소스 저작권 문제가 확실하게 없다는 걸 확인시키며, 문제가 생길 경우 이런 책임을 지우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걸 본인은 업계에서도 경험했다.

여담이지만, 요즘은 응용 언어학에서 다루는 말뭉치(코퍼스)에도 저렇게 저작권 바람이 불고 있다.
그래서 국립 국어원에서도 21세기 세종 계획 성과물로서 세종 말뭉치를 배포하다가.. 저작권이 문제가 되는 데이터를 빼고 분량이 다소 감소한 말뭉치를 새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IT업계의 오픈소스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2.
요번 학기에 학교에서 오픈소스와 관련된 세미나 수업을 들었다. 오늘날 IT 업계에서 오픈소스라는 트렌드가 차지하는 비중을 더욱 절실히 알 수 있었다. 자유 소프트웨어는 무엇이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무엇인지, 그리고 리눅스 진영과 리처드 스톨먼 진영의 차이는 무엇인지 예전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아는 게 없었는데 이제 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유익했다.

오늘날은 정말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github, sourceforge 같은 오픈소스 진영의 저작물을 이용하지 않고는 실용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대단히 어렵거나 가성비가 안 맞아 의미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 오픈소스 진영에서 활동한 이력은 만천하에 공개된 자기 스펙과 자산이 되기 때문에, 당장 소프트웨어의 무료 공개로 인한 금전 손실 이상의 이득이 돌아온다는 말에는 공감이 됐다.

확실히 IT 업계에서 경력을 쌓는 방식의 패러다임이 바뀌긴 했다. 내 지인 중에서도 이 바닥에서 워낙 유명한 사람이 있다. 그 친구는 이런 수업 따위는 들을 필요가 없거나, 아니면 나처럼 따로 자료 찾으며 과제를 낑낑대며 할 필요조차 없이, 평소에 하던 오덕질을 갖고 학점 따위 그냥 날로 먹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내게 오픈소스라는 건, 이거 소스 코드 하나쯤은 공개해 버려도 내 밥줄에 아무 지장 없고 그것보다 더 나은 것 정도는 얼마든지 또 만들어 낼 수 있고, 이 프로그램의 UI, 데이터 파일들을 업계 표준 관행으로 굳히는 효과까지 노릴 수 있는 괴수들의 전유물일 뿐인 것 같다. =_=;; 물론 그런 진영에서 기여를 하는 프로그래머들이 매우 고마운 대인배인 건 사실이지만, 일단은 무슨 희생, 헌신, 자선 행위라기보다는 “가진 자의 여유” 구도라는 것이다.

또한, 마냥 다 공개하는 게 능사만은 아닐 텐데.. “경쟁자가 따로 이득을 보기 vs 경쟁자를 원천 견제하고 차단하기”라는 결말의 차이가 어떤 과정에서 생기는지 궁금하다. 가령, IBM은 하드웨어계의 오픈소스라 할 수 있는 PC 규격을 내놓았고 그게 결국 세계를 평정하긴 했지만, 이 때문에 정작 자기는 아무 이득도 못 보고 PC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됐단 말이다.

id 소프트웨어에서도 둠과 퀘이크의 소스를 공개하긴 했지만, 그래도 해당 세대의 기술이 충분히 한물 갈 정도로 굉장히 나중에 공개하지 않았던가. 물론, 엔진을 유료로 판매하기도 하는데 소스를 돈 주고 산 업체들이 손해를 보지 않게 하려고 좀 늦게 공개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오픈소스가 과연 개발자와 사용자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로 계속 명맥이 유지되는 게 가능할지 지켜볼 일이다.

아 그리고,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완성품을 복사해서 사용하는 것만 무료이지 여전히 소스 비공개 사유 소프트웨어이다. 물론 오픈소스 저작물을 사용한 것도 최소한 C++ 코드 내부엔 전혀 없다. 거기 들어있는 모든 모듈의 모든 기계어 코드는 한 치의 예외 없는 100% 자작이다.
전세계에 한국어와 한글이 쫙 퍼져 있고 세벌식 자판이 주류 글자판이 돼서 누구나 이런 응용 한글 입력 엔진의 필요를 느끼고 있고 사용자가 왕창 많고 거기에 다른 형태의 돈줄까지 있다면야 내가 거기에 공개적으로 기여를 해서 오픈소스계에 등단(?)할 수도 있겠지만.

시장과 수요 자체가 극도로 마이너한데... 공개해 봤자, 한글 IME를 연구하는 일부 극소수 오덕들에게나 좋은 일을 하게 되고, 내가 노력을 보상받는 길도 없고, 날개셋의 리눅스나 맥 버전을 뚝딱 책임감 있게 만들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 와중에..
무작정 오픈소스화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오픈소스 진영이 있다고 해서 모든 프로그래머가 흙 파서 먹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8.0 정도가 나온 뒤부터는 내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생존 방법에 대해서도 슬슬 생각을 해 봐야겠다.

3.
저건 나름 학점이 붙은 과목이기 때문에, 세미나만 있는 있는 게 아니라 과제도 있었다. 관심이 가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하나 선정해서 그에 대해 조사를 하고, 관심이 있으면 자그마한 오타 수정이라도 직접 하나 contribute를 해 보라는 것.

그래서 평소에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관심이 무진장 많으며, 나보고도 줄곧 이것저것 다른 언어를 익혀 보라고 권유를 하던 대한민국 오픈소스 진영의 거물이자 프로그래밍의 천재 T모 군의 도움을 받았다. (IOCCC 입상자 ㅋㅋㅋㅋ) 권유의 대상도 예전부터 파이썬, D, 자바스크립트로 계속 바뀌어 오다가 요즘은 Rust로 정착했다.

Rust는 모질라 재단에서 자체 개발한 새로운 절차형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이다. Java/C# 같은 언어는 full-time 쓰레기 수집기가 갖춰진 별도의 가상 기계에서 동작하는 반면, 이 언어는 그런 형태의 쓰레기 수집기가 없이 C++과 동급의 네이티브 코드로 컴파일되는 언어이다. 메모리 관리 수준은 걍 Windows RT의 C++/CLI와 비슷한 급이 되겠다.

웹 브라우저 렌더링 엔진을 만드는 단체가 웬 PL을 새로 만들게 되었는지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렌더링 엔진도 응당 GPU와 멀티코어의 도움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 페이지들이 자연스럽게 멀티코어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단일 페이지가 멀티코어를 적절히 활용하게 만들자니 C/C++로 만들어진 기존 코드들은 답이 없는 지경이었나 보다.

또한 C/C++은 알다시피 빌드 시간이 매우 길고 컴파일러가 잡아 주지 못하는 메모리 관련 버그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등, 대형 프로젝트의 진행에 전통적인 한계와 약점도 적지 않다. 그래서 대형 프로젝트의 개발과 유지에 적당한 새로운 언어를 찾았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자 언어를 직접 고안하게 되었다.

이 언어는 모질라 재단에 소속되어 있던 개발자인 Graydon Hoare가 개인적으로 설계하던 언어를 재단이 인수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지금은 모질라 재단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도 Rust의 개발을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어서 0.12까지 나왔는데.. (12는 소수점이 아니라 그냥 정수. 0.2보다 최신 버전임) 긴 베타 기간을 거친 후, 가까운 미래에 Rust의 1.0 정식 버전이 나올 예정이라 한다.

즉 멀티코어 병렬 처리 편의와 자동 메모리 관리, 그리고 성능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언어라는 뜻인데, 구글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발한 Go라는 언어하고도 경쟁 구도인 듯하다. 하지만 둘은 패러다임이 좀 다른 언어이다.

Rust에서 모든 값은 그 값이 대입된 변수나 구조체 필드, 넘겨받은 함수 인자 등의 이름에 귀속된다. 이름은 자기에게 귀속된 값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며, 다른 이름으로 값을 대입하면 그 이름으로 소유권이 이전된다. 예를 들어, 다른 언어에서 a = b와 같은 대입 연산은 b의 값을 a로 복사하거나, b가 가리키던 객체를 a도 함께 가리키겠다는 의미를 갖는 데 반해, Rust에서는 b가 가지고 있던 값을 a로 이동시킨다는 의미가 된다. C++로 치면, C++11에서 첫 도입된 R-value reference type과 개념적으로 비슷하다.

만약 함수의 리턴값을 받지 않는다던가 하는 일로 인해 소유권을 넘겨주지 못한 채로 이름이 사라지게 되면, 거기에 귀속되었던 값도 함께 사라지면서 그 값을 담았던 메모리도 해제되게 된다. 프로그래밍 언어 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binding과 object의 생명 주기를 일치시킨 셈이다.

Rust 컴파일러는 컴파일 단계에서 소유권이 어떻게 이전되는지를 모두 추적할 수 있으며, 필요한 메모리 할당 및 해제 코드를 컴파일 중에 정확한 위치에 삽입한다. 이런 방법으로 Rust는 런타임 오버헤드가 없는 안전한 메모리 관리를 이루어 낸다.
일단 대충 이 정도 조사하면서 그쪽 진영에서 뜨고 있는 이슈와 작업 진행 방식들을 조사해 봤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14 08:34 2014/12/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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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나 같은 컴퓨터쟁이 코더에게는 '통역(사)'라고 하면 컴파일러의 반의어인 인터프리터가 바로 떠오르는 동시에, 니콜 키드먼이 통역사로 연기하는 10년 전쯤의 영화 인터프리터도 생각난다.

성경에서는 단순히 풀이/해석 말고 진짜 외국어 통역을 뜻하는 interpret은 창세기에서 이집트 총리가 된 요셉과 자기 형들 사이의 대화, 그리고 저 멀리 신약 성경에서.. 통역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외국어 방언 쓰지 말고 “그 입 다물라”라고 권면한 것 정도가 등장한다.
아울러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통번역 대학원 출신의 스페인어 박사급 전문가이시다. 그래서 왕년에 대학 강단에 서기도 하고 국가적으로 꽤나 높으신 분들 행사의 통역에 동원된 경력이 있으며, 관련 국가고시 문제 출제에도 참여한 적이 있으시다.

통역은.. 문자 언어를 비교적 충분한 시간 동안 고퀄리티로 옮기는 '번역'과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오프라인 렌더링과 실시간 렌더링의 차이랄까..
그런데 통역도 방식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화자 먼저 한 문장을 말하고서 쉬는 동안 통역이 말하는 '순차통역'은 그나마 양반이다. 그 반면, 듣는 사람은 헤드폰을 끼고 있고 화자는 쉬지 않고 계속 말하는 걸 통역사가 딴 장소에서 부랴부랴 옮기는 '동시통역'이 있다.

당연히 동시통역이 훨씬 더 정신없고 어려우며 보수가 더 높다.
게다가 순차인 경우, 화자는 바로 옆에 있는 통역사를 의식해서 더 또박또박 천천히 말을 하는 편이며, 통역사 역시 잘 못 알아들으면 화자에게 “뭐라고요?” 이럴 기회라도 있는 반면..
동시통역의 경우 화자와 통역사는 격리되어 있으며, 화자는 통역사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진짜 자비심 없이 자기 할 말만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영화 인터프리터에 나오는 것처럼 UN 회의를 동시통역하는 정도이면.. 난이도와 중요도가 정말 톱 중의 톱이며, 그야말로 최고의 정예 통역사가 최고의 보수를 받으며 일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대신, 오역 때문에 무슨 국가적으로 중대한 일이 틀어지기라도 했다가는 사고를 낸 통역사는 교도소에 갈 각오도 해야 할 것이고.
단순 관광 가이드 통역 수준이 아니라, 각종 전문 분야 설교나 연설의 동시통역을 하려면 양 외국어 자체만 기똥차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며, 통역 이론과 방법론에 대한 추가적인 학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군대도 미군과의 의존성이 높다는 특성상 어학병이라는 보직이 존재한다. 물론, 날고 기는 영어 귀재들에 비해 TO는 바늘 구멍 수준이지만 말이다. 카투사야 어느 정도 이상의 공인 영어 점수만 받고 나면 그 뒤부터는 추첨이지만, 어학병이 되려면 정말로 토익 정도는 만점에 가깝게 나와야 하며, 겨우 본토에서 머리로만 주입한 수준을 초월하는 영어 실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통역을 해도 순차이지, 일개 군인이 설마 동시통역까지 맡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박 근혜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을 할 때 방송사들은 한국인이 구사한 영어를 동시통역해서 연설 내용을 생방송으로 내보냈었다.
아, 그나저나 먼 옛날엔 국내 방송사에서 아침 7시 뉴스를 하기 전에 '세계 뉴스'라고 해서 CNN, NHK 등 주요 외신의 하이라이트 한 토막을 자막 내지 더빙으로 내보낸 적이 있었다. 생방송은 아닐 테니 동시통역까지는 아니었을 테고. 인터넷으로 어중이떠중이 다 세계 뉴스에 접근이 가능해진 오늘날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아련한 추억이다.

어쨌거나 외국어 잘하는 사람이 참 부럽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02 19:26 2014/12/0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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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

1. 오목은 선수(흑돌)가 굉장히 유리한 반면, 윷놀이는 잡히는 것 때문에 선수가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는 게 굉장히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특히 보드에 처음 놓이는 말이 기존 말을 잡는 거는.. FPS로 치면 개념적으로 spawn으로 인한 텔레프래깅과 동일하다.

2. 윷놀이는 자동차가 발명되기 한참 전에 고안된 게임이겠지만 말의 주행 패턴이 자동차 수동변속기와 굉장히 닮은 것 같다.
도-개-걸-윷-모는 1~5단, 빽도는 후진 1단

3. '지옥'은 윷놀이의 랜덤함과 사행성을 더욱 배가시켜 놓은 요소임이 틀림없다.

4. 옛날에.. 한 1992~94년 사이이던가..? 어떤 은행원 아저씨가 윈도 3.1용으로 윷놀이 게임을 만든 게 있어서 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추어 프로그래머일 텐데 파일 구성상으로는 비주얼 베이직은 아니고.. 나름 쌩 Windows API를 써서 C언어로 만들었지 싶다.
나름 자기 아들이 윷을 던지는 동영상까지 들어있었는데.. 그 시절에 그런 개발 환경과 동영상 촬영 장비를 생각하자면 보통 집안은 아니었던 것 같다.

5. 프로그래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윷놀이 컴터 AI를 만드는 거 생각보다 재미있을 듯하다. 일단 윷말 놓는 방식이 가짓수가 굉장히 많으며, 굽는 것, 다음에 잡힐 확률, 그리고 각 말이 빽도가 걸렸을 때 후진하는 방향 state 같은 것들도 은근히 처리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5m + 4n + 3 = 10 or 12 이런 거 어쩌면 선형계획법으로 모델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변수 정수 연립방정식 푸는 건 지뢰찾기를 풀 때도 써먹곤 했는데 어쩌면 그것과 비슷한 논리인지도..;;

* 펜티엄 4 + 윈도 XP 초 구닥다리 똥컴에서는.. 페이스북처럼 자바스크립트가 왕창 돌아가는 페이지는 IE8로는 먹통 수준으로 너무 느려서 도저히 열람을 할 수가 없고..
역시 크롬이 정답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1/30 08:36 2014/11/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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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건데..
C/C++에서 default문은 굳이 case의 맨 마지막에 있지 않아도 된다. =_=;;;
그래서 case 1: .. default: ... case 2: 이런 식으로 라벨들이 따라오고 일부 항의 끝에 break까지 생략되어 있다면 생각보다 꽤 기괴한 로직을 구현할 수도 있다.

뭔가 발상의 전환이 느껴진다. 어떻게 활용 가능한지는 더 생각을 해 봐야겠다.
물론 파스칼의 case else문은 그렇지 않으며, 반드시 맨 마지막에 와야 한다.

2.
컴퓨터에서 부동소수점은 연산을 하는 게 까다로워서 하드웨어적인 도움을 진작부터 받아 왔다. 하지만 연산뿐만 아니라 이미 있는 수를 10진법 형태의 문자열로 나타내거나 문자열로부터 역변환하는 것도 생각보다 몹시 어렵다. 에니악 같은 초창기 컴퓨터가 괜히 굉장한 비효율을 감수하고라도 10진법 기반으로 설계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와 관련된 정보는 printing float numbers 같은 키워드로 구글링을 하면 얻을 수 있다.
이 작업은 어떤 f * 2^e에 대해서 f' * 10^e' <= f * 2^e < (f'+1) * 10^e'가 성립하는 최소의 f'/e'를 찾는 것인데, 결국 컴퓨터 프로세서가 기본 단위로 처리 가능한 범위를 넘는 big number 연산까지 필요할 정도라고 한다.

2진법 부동소수점은 1/2^n이 아닌 사실상 거의 모든 소수들이 순환소수로 표현되어 뒷부분이 잘린다. 0.1, 0.3 이런 소수도 컴퓨터에서 표현되는 형태는 순환소수라는 뜻이다. 순환소수를 화면에 출력할 때는 그래도 10진법 유한소수인 것처럼 표시하는 것이니 컴퓨터에서 부동소수점은 본질적으로 100% 정확한 정밀도가 보장되지 않는 셈이다.

3.
Visual C++ 201x는 200x에 비해서 매우 강력해진 인텔리센스, 새로 디자인된 IDE, C++1x 언어 기능 같은 게 부각되는 편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IDE가 매우 편리해진 면모가 최소한 둘 있는데...
이제 IDE의 버전이 올라갈 때마다 프로젝트 파일을 매번 강제로 업그레이드 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컴파일러 툴킷을 직접 고를 수 있게 된 점이다.

이로써 IDE가 개별 프로젝트나 빌드 툴과는 좀 더 독립한 구도가 됐다.
이것은 딱히 새로운 기능 추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옛날에 도스 시절에 멀티부팅 기능이 추가된 것만큼이나 매우 편리해진 조치이다. (autoexec.bat / config.sys에 일종의 조건부 실행 로직을 추가하여, 부팅 configuration을 직접 고를 수 있는 것)

4.
본인은 예전에 precompiled header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에도 언급했지만, 본인은 성질이 좀 급한 관계로 PCH 없이 소스 코드가 엄청난 분량의 인클루드 반복 때문에 컴파일 속도가 굼뜨는 걸 못 참는다.
그런데, 프로젝트 전체를 분석하면서 중복 인클루드로 판단되는 파일들을 자동으로 감지해 주는 기능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것들을 stdafx.h로 대체하고 그 파일에다가 인클루드들을 몰아 넣는 것이다. 물론, 빈번하게 인클루드되긴 하지만 수정도 빈번하게 되는 편이기 때문에 pch에다 넣어서는 안 되는 것 판단은 사람이 하면 된다.

이건 마치 데이터베이스에서 테이블과 쿼리들을 분석하면서 자주 쓰이는 테이블 내지 애트리뷰트는 인덱스를 넣는 최적화 기능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5.
자동차의 특성이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특성과 매우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점이 몇 가지 있다.

  • 내릴 때 실내등이나 각종 라이트가 완전히 꺼졌는지 확인하고, 블랙박스는 장시간 주차시 자체 전원 차단 기능이 켜져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 메모리 leak 예방과 개념적으로 일치한다.
  • 급발진: 아주 희귀한 상황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치명적인 버그에 해당한다.
  • 자동 vs 수동 변속기: 옛날이라면 컴파일러가 자동 생성한 코드 vs 수제 어셈블리 코드.. 정도와 대응하고, 지금이라면 managed vs native 코드와 대응하는 듯하다. 요즘은 자동 변속기도 어지간한 수동 조작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효율이 굉장히 좋아졌으니 말이다.

6.
세상에는 분야를 불문하고 여러 단체가 공동으로 뭔가 통합 작품이나 프로토콜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따지고 보면 킹 제임스 성경도 성공회와 청교도가 연합해서 작업한 그런 통합 작품이다.
하지만 그런 통합 작품이 실질적인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그냥 기여를 가장 많이 한 단체의 전유물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HFT 통합 글꼴: 지금은 아래아한글밖에 안 쓰는 완전 옛날 유물이 됐다.
  • 공동번역 성서: 에큐메니컬 성경이라지만 현실은 역시 천주교 전용 성경일 뿐이다.
  • 타이젠 OS: 당초 취지와는 달리, 컨소시엄을 구성하던 협력사들은 다 빠져나가고, 사실상 삼성 전자밖에 관심이 없는 모바일 OS가 됐다.

삼성은 예전에도 아래아한글과 MS 워드가 뻔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과는 별개로 훈민정음을 오랫동안 밀었다.
그런 것처럼 모바일 OS 하나 정도는 우리가 자체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타이젠을 꾸준히 미는 듯하다. 안드로이드와 iOS의 텃새에도 불구하고 정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타이젠 앱 프로그래머를 육성하는 중이다.

7.
비주얼 C++이 컴파일러, IDE, 디버거 등 모든 차원에서 64비트를 완벽하게 자체 지원하기 시작한 건 2005부터이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부터 굉장히 궁금했던 게...
devenv IDE는 예나 지금이나 32비트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64비트 바이너리를 아무 제약 없이 바로 디버깅 하고 메모리 내부를 잘도 들여다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운영체제 차원에서 64비트와 32비트가 서로 얼마나 격리되어 있는지는 이 바닥에 짬밥깨나 있는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나 잘 알 테고. 그러니 결론은 하나. 별도의 64비트 EXE를 띄워서 IPC(프로세스 간 통신)를 하지 않고서는 이 정도의 자연스러운 연계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이 예상이 맞는 듯하다. 32비트 프로그램을 디버깅 할 때는 안 그러는데 64비트 프로그램을 디버깅 할 때는 msvsmon이라는 일종의 64비트짜리 원격 디버그 호스트 프로그램이 같이 뜬다. 그리고 디버깅이 끝나면 얘도 실행이 종료된다. EXE 크기가 수MB에 달하는 결코 작지 않은 프로그램이긴 한데, 얘가 뭔가 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8.
끝으로.. 시간 복잡도, 공간 복잡도라고 하면 전산학에서나 다루는 무슨 뜬구름 잡는 개념처럼 들리기 쉬운데, 현실에서도 의외로 간단한 예가 있다.

먼저, 자전거를 잠그는 자물쇠로는 열쇠 방식이 있고 숫자 다이얼 방식이 있다.
전자는 열쇠만 있으면 금방 자물쇠를 딸 수 있다. 후자는 번거로운 열쇠를 챙기지 않아도 되지만 원하는 숫자까지 다이얼을 맞추고, 다시 잠김 모드로 옮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는 프로그래머로서 이걸 경험할 때마다 시간/공간의 tradeoff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열쇠 자물쇠는 열쇠라는 공간이 필요하고 열쇠를 분실하지 않게 주머니 관리를 잘 해야 하지만, 열고 잠그는 건 배열 테이블을 참조하듯이 O(1) 시간 만에 즉시 끝낸다.
숫자 자물쇠는 열쇠가 없어도 되어 심리적으로 편하지만, 다이얼을 맞추기 위해 마치 매번 탐색을 하고 연결 리스트의 노드를 찾듯이 O(n) 시간 작업을 매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에 브라운관 모니터가 어느 수준 이상의 대형화가 도저히 불가능하고 LCD 모니터에 밀려 도태한 주 이유가..
바로 화면 크기 n에 따른 공간 복잡도가 O(n^3)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무게나 가격까지 그 정도로 급격하게 증가했고.
색감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자총을 뒤에서 화면 크기만큼이나 거리를 두고 쏴 줘야 하니, 화면의 크기가 커질수록 어마어마한 양의 공간을 잡아먹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구본(지구의)도 생각난다.
알 만한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메르카토르 도법 평면 지도에는 아프리카 대륙은 실제보다 굉장히 작게 나오고, 그린란드 내지 러시아는 말도 안 되게 면적이 부풀려져 있다.

왜곡 없이 둥근 지구 위에서 세계 각국의 위치에 대한 실질적인 공간 감각을 키우는 데는 지구본 만한 게 없다. 그리고 지구본이 비치된 책상 앞에서 누가 머리 싸매고 있으면 왠지 간지 나고 멋있어 보이기도 하나..

지구본 얘도 크기에 따른 공간 복잡도가 O(n^3)인 부피를 차지하는 물건이고, 안 쓸 때 딱히 접거나 분해해서 부피를 축소시키는 방법도 여의치 않다 보니 실용성이 떨어진다.
현실적으로는 입체 효과까지 지원하는 구글 어스 같은 지도 어플이 대안이지만.. 그래도 이런 건 실물이 아쉽기도 하다. (어플은 여러 사람이 한 지구의 여러 지점을 한데 공유하면서 서로 비교할 수 없음)

다시 프로그래밍 얘기로 돌아오자면, 현실에서는 단순무식한 알고리즘이 O(n^2) 정도의 복잡도가 나오는 게 약간 머리를 굴림으로써 O(n log n) 정도로 최적화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정렬이 대표적인 예이고, 그 외에도 빠른 푸리에 변환이라든가 최장 증가 수열 찾기 문제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단순무식하게 접근했을 때 지수함수 복잡도가 되는 게, 다이나믹 프로그래밍으로 중간 계산 결과를 저장함으로써 메모리 복잡도 O(n^2), 시간 복잡도 O(n^2) 내지 O(n^3)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예 O(n)으로 간단하게 줄어드는 건 피보나치 수열이나 팩토리얼을 구하는 것처럼 문제 자체가 극도로 단순한 경우밖에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1/19 08:22 2014/11/1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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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의 실상

다음은 오랫동안 게이로 살다가 수 년 전에 전향했다는 어떤 사람이 털어놓은 양심선언이다.

식성, 항문성교, 변실금, 곤지름, 찜방...
와.. ㅠ.ㅠ 정말 상상 이상으로 더럽고 혐오스럽고 충격적이고 끔찍하다..!
내 블로그를 구독하는 분들과도 한번쯤은 공유할 필요를 느껴서 부득이하게 이런 유쾌하지 못한 링크를 소개하게 되었다.

참고로 저건 종교적인 편견이나 훈계 같은 거 없다. 그냥 그 바닥의 실상만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 놓은 것이니 누구라도 부담 없이 보시면 된다.
마치 알베르토 리베라의 게이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동성애라고 해서 사람이 무슨 자웅동체처럼 행동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들 사이에서도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이 있다. 그런데 동성끼리 이성 흉내를 내려다 보니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추잡한 짓을 하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평생 한 배우자(?)하고만 그러는 게 아니다. 게이바에서 서로 식성이 맞고 죽이 맞는 사람끼리 원나잇 스탠드를 하는데, 평생 수십~수백 명의 파트너를 만나서 그 짓을 한다.

“... 여기에 중독되면 그때부터는 동성애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 그 쾌감은 일반 남성들은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으으.. 오싹... ㅠ.ㅠ
지금까지는 나도 그냥 장난조로 “ㅉㅉㅉ 세상에 많고 많은 예쁜 여자들을 놔 두고 같은 남자가 좋냐?” “짝! / 찰지구나” 이러면서 낄낄대기만 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는데, 생각보다 심각하고 무서운 짓인 것 같다.

병맛 웹툰 작가 엉덩국은 <성 정체성을 깨달은 아이>라는 만화를 올려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한편으로 게이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했다는 질타를 받아서 다음과 같은 해명 만화도 올렸다.

“게이라고 해서 아무 남자나 좋아하고 밝히는 건 아니라는 거군요”라는 명제는 '식성'을 감안했을 때 확실히 '참'인 듯하다.
그러나 그 작가도 앞의 저 링크에 소개된 웹툰을 좀 일독을 했으면 싶다.

아무튼,
동성애의 커밍아웃이 아니라 음지에 가려져 있던 동성애자 바닥에 대한 과감한 커밍아웃이 하나 떡 올라오니, 이미지 수습을 위한 반박도 응당 올라왔다.
“모든 게이가 다 그러는 거 아니다, 저거는 게이 중에서도 아주 예외적이고 진짜 음란한 극소수 변태들의 예일 뿐이다.” 같은 식.
그러나 친절하게도 그에 대한 재반박까지 올라와 있다.

또한 동성애에 대해서 아무리 변명과 합리화를 늘어놓는다 한들, 다음과 같은 정말 근본적인 결말까지 반박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동성애는 정말 마약 이상으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는 마귀의 속임수임이 틀림없다.

“나이 든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습니다.
젊음의 때가 가고 30대가 넘어 식성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하면 동성애자들은 그 후로 절대 고독과 외로움 속에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나이 든 동성애자는 서로 얘기 안 해도 누가 에이즈에 걸렸는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젊은 동성애자나 일반인에게 이런 것들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나는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도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당신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동성애자 운동을 성소수자(?)라고 지지하는 대인배 진보주의자들이 많다. 한번 동성애 세계가 어떤지 제대로 알기는 한 뒤에 같이 싸우든가 말든가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형 제도 논쟁을 할 때 “니 가족이나 애인을 죽인 흉악 범죄자한테도 사형 반대하겠냐?” 이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거시기하게' 논리를 들이대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일부 박애주의자 중에는 진짜로 “응, 그래도 반대할 거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동성애는 어떨까? “니 아들이 나중에 남자를 데려와 놓고는 '아버지, 저는 이 남자가 좋습니다' 이래도 괜찮겠냐? 니 집 주변에 게이바가 잔뜩 있어도 애들을 안심하고 키우겠냐?” 이런 질문에 선뜻 “응!”이라고 기꺼이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아무리 멋있는 걸로 치장한다 해도 죄는 결국 죄일 수밖에 없다.

흔히 이성애자 중에서도 바람 피우고 간음 저지르는 인간들도 죄 짓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는 식으로 퉁치려 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식의 문란한 정도로 치자면 동성애자가 훨씬 더하다. 그리고 이성애자는 최소한 부끄러운 줄은 알고 몰래 그런다. 요즘 게이들처럼 퍼레이드를 하고 난장판을 벌이지는 않았다. 오죽했으면 옛날에 에어장도 도망쳐서 에어컨 실외기에 매달려 있다가 장렬히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는가?
성경에서도 다윗이 저지른 죄는 밧세바와의 간음이다. 차라리 그 정도면 양반이지, 요나단과 그 짓-_-을 한 것이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_-;;

사실 우리나라나 미국 같은 자유 진영 국가에서는 지금도 저렇게 게이로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
그런데도 저 사람들이 저렇게 합법화에 뭐에 난리를 치는 이유는 단순히 '금지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그 정도까지 간다면 나는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자기가 본성에 어긋나는 흉한 짓을 해서 병에 걸려 놓고는 그걸 전부 국민 세금으로 치료받는다면, 그건 음주운전 하다가 교통사고 낸 걸 아무 처벌도 없이 단순 실수 교통사고와 똑같이 보험으로 보상해 주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결국 그렇게 해서 증가한 보험료 부담은 고스란히 다른 모든 선량한 운전자들에게 돌아온다.

멀쩡한 국어사전의 '결혼' 뜻풀이도 뜯어고칠려고 하는 거 같던데 그것도 “난 절대 반댈세.” -_-;;;; '남자'와 '여자'이던 것을 '배우자'와 '파트너' 이 따위로 바꾸는 것 말이다.
이 세상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는 세력들은 그런 인권 좋아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아주 교묘하게 잘 이용해 먹을 줄 안다. 종북· 용공 사상 쪽도 그렇고 말이다. 내가 그래서 그런 성향을 매우 싫어하는 것이다.

이렇듯, 동성애는 해롭지 않고 중립적이며 '취존'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성향이 절대로 아니다. 이성애의 범주 안에 들기는 하는 죄악하고는 '레베루'가 다르다. 이 글이 나의 종교색이 전혀 가미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굳이 성경 같은 걸 배제하고 보더라도 동성애는 망국병이고 절대로 합법화되어서는 안 된다.
게이 커밍아웃을 일베충-_- 커밍아웃보다 더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 정상인 분위기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구태여 이런 글까지 올리게 됐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그러고 보니 성경 역본도 NIV는 고린도전서에서 게이들을 전부 까는 내용을.. homosexual offender이라고 바꿔 놓기도 했다. 게이 중에서도 offender라는 일부만이 잘못된다는 뉘앙스가 들어가게 한 것이다. 변명과 합리화는 늘 이런 식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본인이 옛날에 쓴 <음란한 성경은 가라> 글을 참고하시라.

Posted by 사무엘

2014/09/25 08:35 2014/09/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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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고등학생이 스마트폰 앱을 뚝딱 만들고 안드로이드나 애플 사의 앱스토어에다 등록하는 소프트웨어 유통망까지 확립된 시대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는 개인이 만든 소위 '공개 소프트웨어'라는 것들이 PC 통신을 통해 배포되곤 했다. 게임, 업무 등 분야도 엄청 많았으며, 이거 하나로 스타 개발자로 유명세 타는 사람 역시 응당 있었다.

개발자들 중엔 대학생이 많았다. 도움말이나 리드미 파일을 보면, PC 통신 ID뿐만 아니라 개발자 자신의 소속 학교, 학과, 학번(연도만)까지 밝히곤 했다. 그들은 지금은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더 어린 중· 고등학생이 그 정도 퀄리티의 도스용 프로그램을 만들기엔 리소스도 부족하고 컴퓨터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으며 기계값이 아직 너무 비쌌다. 하물며 Windows용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더 좋은 컴퓨터에 더 비싼 개발 환경이 필요했을 테고.

국내 개발자들은 당연히 자기 프로그램의 UI를 한국어로 만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프로그램들은 아무리 간단하고 작은 규모라 해도, 한글 바이오스에 의존하는 텍스트 모드보다는 그래픽 모드에서 '자체 한글' 기반으로 동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때 자연스럽게 필요해지는 것은 그래픽 모드에서 한글을 찍어 주고 때로는 입력까지 처리해 주는 일명 '한글 라이브러리'이다.

옛날에 도스 시절에 자체 한글을 구현한 라이브러리를 만들어서 PC통신으로 뿌리고 잡지에 강좌를 올리고 책도 쓰며 유명세 타던 프로그래머들은 굉장히 날고 기는 수재들이었다.
아예 게임을 만드는 급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VGA 그래픽 하드웨어를 제어하고 여러 래스터 그래픽 알고리즘을 최적화된 어셈블리어 코드로 직접 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한글 입력 오토마타를 깔끔하게 짜는 것도 아무나 선뜻 할 수 있는 난이도는 아니었다(특히 두벌식은 더 어려움).

그래서 공개 소프트웨어 리드미의 '감사의 글'(acknowledgements)을 보면, “본 프로그램은 이런 한글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였으며, 우수한 미들웨어를 무료로 공개해 주신 누구누구에게 감사합니다” 같은 문구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열악한 환경의 특성상, 그 시절에 한글 라이브러리는 사실상 그래픽 라이브러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마우스에 간단한 대화상자까지 제공하는 통합 GUI 라이브러리로 발전하곤 했다.

아래아한글의 개발사로 유명한 한글과컴퓨터 사에서는 아무래도 저런 기술의 본좌이었을 테니, 1991년엔가 <컴퓨터 속의 한글>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싸제 한글 라이브러리를 개발한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이 책을 참고하여 터를 닦은 뒤, 자기만의 살을 붙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API를 설계해서 물건을 만들었다.

회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는 PC 통신 시절에 '터보이빨'이라는 닉으로 유명하던 임 인건 씨가 있다. 이분은 그 이름도 유명한 '한라프로'라는 걸출한 물건을 개발하여 상업용으로 판매도 했으며, 아마 서울대 기계공학과 재학 시절에 터보 C 정복이라고 책도 하나 썼다. 본인 역시 아래아한글 1.x로 편집· 조판되어 있던 이 고전을 읽으면서 C언어 기초를 닦았었다.

어디 그 뿐이랴? 지금까지도 인터넷 검색을 하면 굴러다니는 '프로그래머 십계명'이라는 글도 저분 작품이다.
이 정도면 저분은 거의 프로급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같은데... 프로필을 보면 알 수 있듯 저분은 프로그래밍이 본업이 아니다. 훗날 저분은 같은 학교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업계에서 고급 엔지니어 경력을 쌓다가 지금은 '성진 C&C'라고 금속, 재료 쪽 중소기업의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또 '한라프로'와 더불어 한글 라이브러리의 양대 산맥이던 물건으로는 '허르미'가 있는데, 이걸 개발한 분은 한 우진 씨이다. 국내의 유명 철덕인 한 우진 씨(미래철도 DB)와는 동명이인임.

저분 역시 물건만 만들어 공개하고 끝이 아니라, 한글을 구현하는 기술 디테일을 친절하게 저술까지 해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카이스트 전산학과에서 학, 석, 박을 마치면서 멀티미디어 데이터 압축 알고리즘 쪽 전문가가 되었다. 졸업 후엔 삼성 전자에서 몇 년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가천 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다들 왜 저렇게 똑똑한 거야..;;; ㅜㅜ
후대에 등장한 많은 한글 출력 라이브러리들은 한컴 사의 책이든, 위의 두 제품의 영향을 어떤 형태로든 받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은 시대의 흐름답게 슈퍼 VGA를 지원하고 32비트 환경(Watcom C/C++ 내지 DJGPP)을 지원하는 식의 발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저런 선구자들에 비해, 본인은 도스 시절이 다 끝난 뒤에야 한글 관련 솔루션의 개발에 입문했다. 하드웨어 제어나 그래픽 알고리즘, GUI 따위를 자체 구현할 필요는 전혀 없고 내 입력기는 그렇다고 자동 완성, 상용구, 속기 같은 NLP/lexicon 기반요소가 등장하는 것도 전혀 아닌데 도대체 이 바닥에서 무슨 일을 한 걸까?

그런 것들이 없는 대신에 내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한글을 자모 단위로 조작하는 기본 동작에만 초인적인 집중과 최적화를 했으며, 온갖 똘끼 넘치는 아이디어들을 구현하게 됐다.

아울러, 내 프로그램은 다른 건 몰라도 자체 편집기에서 도스 시절의 비트맵 글꼴을 출력하는 루틴만은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 옛날 추억과 한글 프로그래밍 정신 계승(?),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한글 조합 자모나 옛한글 표현 같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건 한글을 가장 가볍고 단순하게, 마치 컴퓨터 속의 기계식 타자기처럼 원시적으로 출력해 주는 시스템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본인은 지금은 타자기 시절이나 도스 시절과는 다른 차원의 한글 프로그래밍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한국어를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한글 자체에 대한 엔지니어링이 연구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을 다 마치고, 가까운 미래에 박사까지 다 마치고 20년쯤 뒤 먼 미래엔 뭘 하고 있을까? 한글 가지고 더 창의적으로 먹고 살 거리가 없으면 진짜로 철도로 업종 전환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4/09/09 08:30 2014/09/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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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수록된 사례에는 심각한 사건도 있고 그저 '웃프기만' 한 사건도 있다. 이 글은 어떤 경우든 고인드립의 의도는 없음을 밝힌다.

1. 에어장

2003년 12월, 개독안티들로 하여금 한국 교회를 모독할 빌미를 만천하에 제공한 흑역사다. “이 행동으로 인하여 '당신'(thou)이 {주}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삼하 12:14) 처럼 말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아래의 2도 벌어진지라 둘이 함께 엮이곤 한다. 사람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졌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2는 백주대낮에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떨어졌고 당사자가 생존한 반면, 1은 밤에 당사자가 에어컨 실외기를 붙잡고 있다가 떨어져서 사망했다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사건이다.

2.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한 40대 남성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자 멘붕에 빠지면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는 부인을 흉기로 찌르고는 자기 집 베란다에서 자살 소동을 벌였다. 경찰과 119 구조대가 출동해서 그를 말렸지만 그는 막무가내 횡설수설이었다. 윗층에서는 기자가 마이크를 아래로 들이대면서 그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원하시는 게 뭐예요?” “원하는 거 없습니다.” “그럼 왜 그러시는데요?” 그 뒤, “억울해서요..”와 함께.. 희대의 명대사가 등장한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화되는 현실 속에..! (살 수가 없습니다)”

정신이상자의 단순 헛소리치고는, 병신 같지만 왠지 임팩트 있고 엄청 멋있는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운율도 잘 맞고 패러디되기도 딱 좋다.
문을 부수고 집으로 쳐들어온 경찰이 그를 끌어내려 했지만 그는 옷이 찢어지면서 속옷 바람으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밑에 안전 매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그는 경상만 입고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 이후로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여담이지만 2003년 11~12월에는 투신 자살 사건이 유난히 많았다. 속도위반으로 20대 때 덥석 결혼했다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애들을 아파트 난간에서 먼저 떨어뜨려 죽이고 자기도 떨어져 죽은 애엄마, 심지어 한강 다리에서 애들을 떨어뜨려 죽인 다른 막장 엄마도 있었고 수능 성적을 비관한 자살도 많았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는 통탄이 나올 법도 했다.

3. 프란츠 라이헬트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재봉사 겸 발명가이다. 그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사람을 안전하게 착지시켜 주는 물건, 다시 말해 낙하산을 생각하고 있었다. 재봉사가 생각할 수 있는 적절한 분야의 발명 같다.

그는 낙하산을 사람이 입는 '낙하옷'이라는 형태로 만들었다. 마치 이불을 뒤집어쓴 것 같은 두툼한 옷을 걸치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공기 저항을 높여 주는 커다란 천이 탁 펼쳐지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자신이 직접 시연해 보이려고 1912년 2월 4일, 여러 구경꾼들과 카메라 기자들을 초청한 뒤 에펠 탑 2층 60여 m 높이에서 뛰어내렸는데...

낙하옷은 펼쳐지지 않았다. ㅠ.ㅠ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땅바닥에 부딪혔으며 현장에서 즉사했다..;; 한국식 나이로 향년 겨우 34세의 나이로.
마치 에어백 발명한 걸 테스트하겠다고 발명자가 직접 자동차 충돌 실험을 했는데 에어백이 안 터지고 사람은 중상 아니면 사망을 당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의 추락 장면을 담은 무성 흑백 동영상만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뿐이다.

사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낙하산이나 비행기 발명의 선구자 중에서 이런 식의 사고로 비명에 간 사람들이 좀 더 있다. 글라이더의 연구자인 오토 릴리엔탈도 그렇고. 인간이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이런 부류의 희생이 따르곤 했다.

4. 성 재기 남성연대 대표

운영하는 시민 단체에 재정 후원을 호소하고는 사진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비굴하게 돈만 그냥 낼름 받아 먹지 않겠다. 빌린 돈은 반드시 갚겠다. 이건 우리의 절박한 심정을 알리는 충격 퍼포먼스일 뿐이다. 죽겠다는 것 절대 아니다. 난 수영 잘한다. 당당히 살아서 나올 거고 저녁에 같이 삼겹살 파티나 하자” 이런 입장;;;

그는 어마어마한 높이에서 물 표면에 떨어질 때 신체에 전해지는 충격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그건 수영 실력으로 극복 가능한 게 아니란 말이다.
그는 물에 떨어지자마자 추락 충격과 수온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으며, 한참을 하류로 떠내려간 뒤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타박상 입고 의식을 잃은 것만으로는 죽지는 않을 텐데 그 뒤부터는 물 속에서 자기 몸을 조절을 못 하니 어차피 익사하는 것이다.
(옛날 툼 레이더 게임에서는 라라가 아무리 높은 데서 떨어져도 땅바닥이 아닌 물에만 떨어지면 멀쩡하게 괜찮은데, 이건 굉장한 물리 고증 오류라 생각된다. -_-)

남성연대가 하는 일을 보니 최소한 해롭지는 않고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대표가 저렇게 허망하게 가 버리다니 안타깝다. 표 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성 씨의 투신 예고 소식에 “예고를 한 이상 우리가 대비는 해야지요.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에게는 돈이 아니라 정신과 상담과 심리 치료가 필요합니다”라고 아주 신사적으로 교묘하게 엿먹이는 주장을 SNS에다 올렸고, 이에 성 씨 역시 “네놈은 입닥쳐라”라고 강하게 응수했다.

저 사람을 수색하느라 수 년 전에 실종됐던 다른 사람의 시신을 두 구 덤으로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신의 어느 유족이 성 재기 씨에게 개인적으로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인터넷 게시판에다 글을 공개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성 씨는 좀 무모하긴 했어도 죽는 순간까지도 남 좋은 일 했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5. 우리나라의 모 전직 대통령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매우 이례적인 전직 대통령. 누군지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정치 성향에 따라서는 이 사람의 죽음을 거의 에어장의 죽음과 거의 동급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중력절=_= 운운까지 하면서 희화화· 능멸하기도 하는데, 그건 차라리 날카로운 팩트를 들이대면서 어떤 사상이나 행적을 비판하고 까는 것도 아니고 난 그런 비매너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나 역시 내가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능멸을 매우 싫어하며, 내 사이버 공간에서 그런 게 내 눈에 띄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이 존중받고 싶으면 너 역시 남을 존중하라.)

다만, 부정선거 하야만큼이나, 그리고 부하 총에 맞아 죽은 것만큼이나... 저 사람의 투신 자살도 무슨 동정의 여지가 있다거나 명예로운 최후는 절대로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들 말고도 추락사와 관련해서 웃픈 사례들은 다윈 상 역대 수상자들을 찾아보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대전에서 배출된 한국인 최초의 다윈 상 수상자도 그렇고, 번지 점프를 했는데 끈 길이가 패드 높이보다 더 길어서 추락사한 사람도 있다. -_-;;
이런 일련의 사례들을 보면서 인생은 참 덧없으며 저렇게 죽거나 살 수도 있다는 걸, 생업에 정신없이 매달리는 중에도 잠시나마 생각해 봐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08/30 08:33 2014/08/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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