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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이큰> 관련 소감

OCN인지 뭔지 영화만 하루 종일 상영해 주는 케이블 TV 채널을 보면.. 한때는 계속 유명 액션 영화만 틀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본인은 원빈이 너무 멋있게 나온 <아저씨>, 또 B급 영화 오마주로 가득하면서 웬 인간 흉기 금발 백인 누님이 일본도 들고 싸우는 <킬 빌>을 TV를 통해 우연히 봤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하나 더 본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테이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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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감은..
역시 흥행하는 영화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다. 리암 니슨 아저씨 너무 멋있다.
특히 딸 유괴범을 전기고문하면서 딸이 있는 곳을 알아내는 장면은 너무 통쾌한 권선징악 장면인지라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해서 봤다. 다같이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저 때 Wake up! I need you to be focused!로 시작하는 대사가 나온다.
다만,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자막 파일은 그 문맥에서 대충 의미만 통하지 영어 원문의 정확한 의도를 다 전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뜻은 대략 이렇다.

“(기절한 마르코를 의자에다 묶어 놓은 뒤) 어이, 일어나! 너를 심문을 좀 해야 하니 정신 바싹 차리고 있어라. 어금니 꽉 깨물어라, 자 간다~ (쇠꼬챙이를 양 허벅지에다 푹~ 박아 넣은 뒤) 자, 기절할 정도로 졸라 아프겠지만 고문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여전히 정신 괜찮지?”

이런 뉘앙스를 제한된 화면에다 문장으로 일일이 다 표현할 수가 없으니 Are you focused yet?을 “이제 정신이 좀 드나?”로 보통 번역하는 편이지만.. 원래 의미는 “아직 괜찮지?”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한다.

마르코는 처음에는 브라이언의 얼굴에다 침까지 뱉으면서 의기양양하게 반항하지만.. 전기로 10초간 지져지는 고문을 두 번 당하고 나니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우리의 멘탈갑 브라이언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태연~하게 이런 이 근안스러운 말을 해 댄다.

“이런 일은 말야, 원래는 외주를 주곤 했어. 그런데 문제는 외주 준 나라들이 대체로 못사는 개도국이어서 전력 공급이 불안했단 말이야..?? 스위치를 켰는데 전기가 안 들어와. 그러니 고문기술자들은 빡쳐서 사람 손톱을 뽑거나 생살에다 산성 용액을 부어 버리곤 했지. 일이 여러 모로 능률이 떨어지곤 했는데.. 여긴 전류가 아주 원활해서 좋아.”
“난 지금 바쁜 처지야. 마르코, 너 순순히 대답 안 하면 전기세 밀려서 단전될 때까지 스위치가 켜져 있을 거다.”

나중에 정보를 얻을 만치 다 얻은 브라이언이 다시 스위치를 켜러 가자 마르코는 완전 겁에 질려서 브라이언에게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애원한다. “I don't know!! PLEASE..!! not that.. please ㅠ.ㅠ” 이 부분 연기를 처절하게 잘했다.
그래 봤자 브라이언은 “I believe you. But it's not gonna save you.”와 함께 스위치를 켜 놓고 나가 버린다. 마르코의 자백은 자기 수명을 불과 몇 분 남짓밖에 더 연장시키지 못했다.
허나, 부모가 수십 년간 피땀 흘리고 갖은 애정을 쏟아 키운 딸애를 창녀촌에다 팔아 버리고 돈은 자기가 챙긴 사악한 악당이라면.. 정말 저 정도 고문은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다.

테이큰은 여타 액션 영화와는 달리 주인공이 친구의 마누라(악역이 아닌 여성!)까지 팔을 쏴 버리는 장면이 나오며,
또 최종 보스와 대면한 뒤에도 일말의 타협 없이 주인공이 그냥 곧바로 악당의 미간을 날려서 사건을 종결짓는다. 사건 전개가 참 자극적이고 짜릿하다.
사실, 브라이언이 친구를 다그칠 때도 “너 자꾸 고집 부리면서 협조 안 해 주면 니 애들은 고아가 될 거다. 아까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팔을 쐈지만 다음엔 급소를 쏠 거야?”라는 요지로 자막이 나왔는데, 이것도 정확하게는 단순히 급소가 아니라 '미간'이다. 영어 대사엔 eyes라는 단어가 들렸던 걸로 기억한다.

위의 장면들을 다 제치고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이 남긴 제일 간지 넘치는 대사는, 역시 딸이 납치당한 직후 전화로 납치범에게 남긴 경고일 것이다. 딸이 외국에서 납치 당했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이 타이밍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납치범들을 상대로 나지막한 말투로 협박한다. 아아..;;

I don't know who you are. I don't know what you want. If you're looking for a ransom, I can tell you I don't have money (....)
If you let my daughter go now, that'll be the end of it. (...)
But if you don't, I will look for you.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

..... good luck.

30초가 넘는 분량의 대사인데.. 난 다 외워 버렸다.

역시 사람은 자기 마음이 가는 곳에 역량이 발휘된다.
매주 교회에서 짤막한 성경 구절을 외운 건 길어야 그 날 저녁까지밖에 안 가고 세부적인 단어와 표현은 하루 이틀 정도 뒤면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저건 그냥 머리에 확...

take는 성경에도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동사인데, 저 영화를 보고 나니 take의 뜻조차도 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갑자기 똘끼를 발휘하여, 저 사건과 대사가 만약 흠정역 성경에 기록되었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 봤다. ㅋㅋㅋㅋ

... 그녀의 아버지가 이르되,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네 혼이 무엇을 원하는지(thy soul desireth) 알지 못하노라. 만약 네가 대속물(ransom)을 원한다면, 너는 확실히 알지니(of a surety) 내게는 돈이 없느니라. (...) 만약 네가 내 딸을 가게 하면 잘하는 것이려니와 만약 가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를 쫓고 너를 찾아내어 너를 반드시 죽이리라, 하니라.
잠시 후에 그녀를 취한(took/taken)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잘해 보라, 하니라.


그러고 나서 나중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지라 “너 나 기억 안 나? 우리 이틀 전에 서로 전화 통화 했었지? 내가 너 찾아낼 거라고 예고했잖아.” 이 말을 들었을 때 마르코는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을까?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_=;;;;

테이큰은 잔인한 폭력뿐만 아니라 창녀촌 배경도 있어서 그런지 국내에서는 생각보다 수위가 높은 19금 등급을 받고 개봉했다.
아무리 자기 딸을 구하려 한다지만 브라이언은 남의 나라에 들어가서 거의 30명 이상의 사람을 죽였다. 모 건설 현장을 완전히 작살을 냈으며 남의 자동차를 최소한 3대를 탈취하고, 고위 공직자의 부인을 총으로 쏴서 다치게 했다.

이 정도면.. 선한 의도라고 해도 브라이언은 법적으로 프랑스를 절대로 곱게 빠져나갈 수 없는 신세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딴 시시콜콜한 디테일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하긴, <킬 빌>에서도 키도 누님이 시퍼런 핫토리 한조 일본도를 비행기 기내에 버젓이 반입한 채 일본 본토로 날아가는 걸 보고, 본인은 피식 웃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아저씨>에서는 그래도 최소한 차 태식이 체포되는 걸로 끝난다. 아무리 나쁜 조폭들을 죽인 거라지만, 일반인이 혼자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많이 학살했다면, 현직 변호사의 자문에 따르면 아무리 명분을 참작하고 봐 준다 해도 무기징역감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식의 경우 원래 특수부대 요원이었고, 아직 능력이 출중해 보이니 도로 국가를 위해 현업 복직하는 것을 조건으로 검찰에서 기소조차 하지 않고 학살극을 유야무야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조폭들이 죽은 건 자기들이 팀킬 벌인 거라고 적당히 위장하고 말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폭력 액션 영화에 너무 심취하는 건 사람의 정신 건강에 그다지 좋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흉악 범죄자에게 권선징악을 속 시원하게 집행을 안 하고 되도 않은 인권 핑계로 직무유기를 저지르니,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영화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된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괜히 종교색 표방하면서 교묘하게 성경이나 하나님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하는 매체보다는, 차라리 종교색 따윈 싹 잊고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게 '덜' 해로운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성경 용어로 설명하자면 전자는 마귀적(반성경적)이며 후자는 육신적(비성경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06/26 19:29 2014/06/2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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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해 버렸으니 허접한 게 아니라, 오히려 500년이나 버틴 대단한 왕조이다”라는 요지로 조선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서울대 중문과 허 성도 교수가 했다는 강연을 보신 분이 있는가 모르겠다. 본인 역시 오래 전에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조선이 그저 말기에 막장으로 치달아서 망할 만하니까 망했고 먹힐 만하니까 일제에게 먹혔다고만 생각하기에 앞서,
조선 역시 리즈 시절에는 기강과 체계가 굉장히 잘 갖춰진 좋은 나라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환단고기 식의 황당한 얘기가 아니라 그럴싸하게 들린다.

다른 제도는 몰라도 특히 조선왕조 실록은 훈민정음에 버금가는 위대한 문화 자산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뭔가... "성경에 과학적으로 아주 정확한 진술이 있다.." 그런 예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

본인에게는 그분의 성함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저 강연을 한 허 성도 교수는 '한국사 사료 연구소'에 재직하였으며,
유니코드가 정식 제정되기 전에 아래아한글이 제공하던 '제2수준 확장 한자'를 제정하고 글자를 직접 그리기까지 했던 분 중 하나이다. 아래아한글의 도움말 credits에도 이름이 당당히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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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로 우리나라 문화와 관련해서 공적이 뚜렷한 분임이 틀림없다.흔히 한글 전용론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한문 고전을 통해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소수의 전문가를 양성해서 고전을 번역을 해야지, 그걸 빌미로 전국민에게 어려운 한자· 한문을 원어 그대로 가르치기에는 국가적인 손실과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허 교수는 그 주장이 가리키는 '소수의 전문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대단한 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올해에 갓 정년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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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4/03/16 08:16 2014/03/1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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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래아한글의 역대 버전 중, 96과 97은 실행되면서 스플래시 화면이 나올 때 짤막한 효과음(음악 멜로디)이 나오던 전무후무한 버전이었다.
96은 경쾌한 사과나무.wav (도~~ 미파솔..로 시작하는)이었고 97은 그것 말고도 여러 종류의 음향이 더 추가되었다. 물론 워디안 이후 후대부터는 그런 것 없고. 이런 것도 다 일시적인 유행이었다.

오늘날은 아예 Windows조차도 8부터는 로그인 로그아웃 소리가 없어졌다.
먼 옛날 3.x 시절에 사운드 카드가 지원된 이래로, 시작 효과음은 그 유명한 tada.wav부터 시작해 뭐가 들어가도 들어갔는데.. 완전히 없어진 건 8이 처음이다.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게 옛날만치 그렇게 막 유세 떨 일이 아니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설치 프로그램이 원래 전체 화면을 차지하는 형태이다가 조그마한 마법사 대화상자로 바뀐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고 말이다.

2.
지금이야 MS Office 제품들이 리본 UI를 사용하여 인터페이스가 여타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었지만..
먼 옛날, Office 95 시절이 문득 생각난다.
Windows 95의 출시에 맞춰서 완전히 32비트로 포팅된 첫 버전이었으며, 동시에 Office가 운영체제의 표준 메뉴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던 마지막 버전이었다.
다만, 약간의 애드립이 생각지 못한 곳에 있었는데.. 아래 스크린샷에서 프로그램 상단의 타이틀/캡션 바 영역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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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95 프로그램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캡션 바를 자체적으로 그렸다.
그래서 Microsoft는 그냥 일반 폰트가 아니라 그 당시 쓰이던 MS 로고타입 형태 그대로 그려졌으며, 검은색에서 짙은 군청으로 바뀌는 그러데이션이 적용되어 있었다.
잘 알다시피, 캡션 바에 그러데이션이 추가된 것은 윈도 98부터이지 95엔 아직 그런 게 없었다. 응용 프로그램이 WM_NCPAINT를 처리하여 직접 그렸던 것이다.

정말 일시적인 유행이었지만 그 시절에 외국 프로그램 중엔 캡션 바를 이 스타일을 따라 그렸던 프로그램도 소수 있었다.

3.
사실 Windows는 GUI 외형이 Mac OS에 비해 매우 단순한 편이었고, 그 대신 색상을 다양한 스타일로 지정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XP 이후부터는 큰 변화가 생겼다. Luna 테마는 파랑-은색-황록이라는 세 색상표만 지원했고, Vista부터는 Aero 창틀의 색깔만 사용자 지정이 될 뿐 나머지 색상은 고정 불변이 됐다. 예전의 재래식 외형은 '고전 테마'라는 legacy로 전락했다.

시스템 색상을 customize할 일이 없어졌다. GetSysColor 함수는 원래 수십 가지의 색상 요소들을 제공하지만 응용 프로그램은 사실상 COLOR_WINDOW(TEXT), COLOR_HILIGHT(TEXT), COLOR_BTNFACE 같은 것밖에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사실은, 선택된 아이템을 표시할 때도 COLOR_HILIGHT나 반전(InvertRect)이 아니라 엷은 파랑 효과를 쓰는 게 유행이 됐다.

옛날에 Microsoft Plus! 같은 확장팩이 제공했던 '테마'들은 색상, 마우스 포인터, 효과음을 한데 모은 세트였지만.. 지금은 Windows도 맥 OS처럼 어찌 보면 사용자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다. 지금의 외형 자체가 곧 Windows의 정체성과 같다는 점을 더욱 내세우려는 것 같다. 색상표는 이제 사실상 시각 장애자 내지 전력 절약용으로나 의미가 있는 '고대비'밖에 안 남았다.

4.
Windows는 파일/디렉터리 목록을 이름 순으로 정렬해서 표시하더라도 디렉터리(폴더)와 파일은 따로 분류해서 보여주는 반면, Mac OS는 이들을 다 한데 섞어서 보여준다. 디렉터리도 특수한 형태의 파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아무래도 파일과는 개념적으로 다른 존재로 보느냐의 차이 같다.
또한 마우스 휠을 인식하는 대상도 Windows는 키보드 포커스를 받고 있는 창이지만, Mac은 마우스 포인터가 놓여 있는 창이다.

참, 맥OS는 메뉴나 대화상자에 액셀러레이터 키가 전혀 없는 게 굉장히 뜻밖이다.

5.
유튜브나 스마트폰의 동영상 재생 앱 등... 요즘은 이게 유행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멀티미디어 재생 컴포넌트들은 Pause(||) 버튼만 있지, 완전 정지 Stop(■) 버튼이 없다.

파일을 열었으면 나중에 반드시 닫아야 한다는 프로그래머스러운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본인 같은 사람에겐 그런 디자인이 심리적으로 좀 불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정말 Stop이 없어도 될까? 굳이 프로그래머가 아니더라도 옛날 카세트 및 비디오 테이프 재생기 역시 기계적인 특성 때문에 Pause와 Stop은 성격이 상당히 다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리소스 제약 같은 걸 생각하지 말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오로지 틀고 싶을 때 틀고 끄고 싶을 때 끄는 것만 생각하면, 원론적으로야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긴 해 보인다.

6.
top-to-bottom과 bottom-to-top이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당장 좌표계만 해도 수학에서는 아래에서 위가 y축의 양의 방향이지만.. 컴퓨터 화면에서는 위에서 아래가 y축의 양의 방향이다.

Windows에는 spin, 혹은 up-down이라고 불리는 컨트롤이 있다.
얘는 언제나 위에 있는 ▲ 버튼 혹은 위(↑) 화살표 키를 눌렀을 때 숫자를 증가시키고, 그 반대의 조작을 하면 숫자를 감소시킨다.
안타깝게도 이 동작을 정반대로 바꾸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컨트롤의 동작을 교묘하게 서브클래싱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저 컨트롤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제어판에서 입력 항목의 배열 순서를 바꾸는 용도로도 쓰이는데..
입력 항목들은 위에서 아래로 오름차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 ↑가 아니라 ↓를 눌렀을 때 숫자가 증가하고 아래로 가게 하고 싶으나 그렇게는 못 하고 있다.
이건 솔직히 사용자를 굉장히 헷갈리게 만들 수도 있는 면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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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노트북의 터치패드를 손가락으로 상하 드래그를 했는데, 위에서 아래로 그었을 때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시킬지,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스크롤시킬지도 보통은 옵션으로 존재한다.
본인이 선호하는 건 위에서 아래로 그었을 때 화면은 아래에서 위로, 즉, 아래 페이지의 내용을 표시하는 것이다. ↓ 키를 눌렀을 때와 같다. 손가락은 전체 내용에 대한 화면(view)의 상대적인 위치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의 위치를 지금 표시되어 있는 텍스트의 상대적인 위치와 같은 것으로 본다면.. 소프트웨어의 동작은 저것과는 반대가 되어야 직관적일 것이다. 결국 이것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답이 없는 문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2/15 08:26 2014/02/15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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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에 대해서 더는 글을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또 하나 글을 쓰게 됐다.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게임 중 이벤트가 하나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페르시아의 왕자에는 주인공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이상한 이벤트가 있다.
레벨 4에서 클리어 관문을 열고 나오면 거울이 하나 생겨서 길을 가로막는다.
이 거울을 도움닫기 점프로 깨뜨리면 진행은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때 자기 영혼 내지 그림자? 도플갱어가 빠져나가고 그 과정에서 왕자는 HP가 1로 다 깎여서 죽기 직전의 상태가 된다.

도플갱어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작자 조던 메크너가 무엇을 의도하고 이런 걸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도플갱어가 왕자에게 하는 짓은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다.
레벨 6에서 뚱보를 죽인 뒤에 벼랑을 앞두고 서로 만났을 때는, 도플갱어가 문을 쾅 닫아서 왕자를 벼랑 아래로 빠뜨려 버린다.

그 뒤로 도플갱어는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게임이 끝날 때가 다 된 레벨 12의 꼭대기 층에서야 등장한다. 원수진 것 때문에 서로 칼을 뽑고 대적하지만 그래도 성질 죽이고 칼을 집어넣고 서로 합체를 해야 살 수 있다. 재결합을 한 뒤에는 보상 차원에서인지 전체 체력이 1 증가된다.

이 글에서는 그 전에 레벨 5에서 발생하는 이벤트에 대해서 좀 분석을 해 봤다.
레벨 5에는 전체 체력을 1 늘려 주는 대형 물약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왕자가 먹을 수 없다. 도플갱어가 먼저 와서 진짜 말 그대로 정확하게 '먹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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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옛날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옛날 생각이 나실 것이다.
1층과 3층에 문이 있는데 물약이 있는 3층 문은 닫혔기 때문에 낮은 1층으로 먼저 들어가야 한다.
1층 문을 진입하는 순간, 발판 때문에 문은 쾅 닫힌다. 왔던 길로 못 돌아간다. 미우나 고우나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상태가 되고, 어떻게든 저 무시무시한 왕복 톱날 2개를 통과하여 물약을 먹으러 가야 한다.

톱날을 통과하면 곧장 1층과 3층 문을 모두 여는 발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3층 문이 열리자마자 3층에서는 왕자의 도플갱어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물약을 쳐묵쳐묵 한 뒤 달아나 버린다.
톱날을 지나면서 힘들게 묘기는 우리가 다 했는데 갑자기 저 녀석이 소중한 물약을 먹튀하다니..

일단, 맵의 디자인이 굉장히 교활하게 돼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문을 여는 발판이 하나만 있어도 될 게 굳이 2개씩이나 있다. 왼쪽 것과 오른쪽 것 중에 오른쪽 것은 3층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무조건 밟지 않을 수가 없다. 둘 중 어느 것을 밟더라도 1층과 3층 문이 모두 열린다. 그리고 3층이 열리는 순간 왕자가 미처 3층으로 다 올라가기도 전에 도플갱어가 먼저 달려온다..

결국, 왕자가 3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저 문이 최대한 늦게 열리게 하려면..
두 발판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왕자가 두 발판을 사이에서 오른쪽이 아닌 왼쪽을 보고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이게 꽤 어렵다. 그래도 오른쪽의 둘째 톱날의 앞에 바싹 붙어 선 뒤, 오른쪽으로 점프를 하면 왼쪽 발판을 밟지 않고 양 발판의 사이에 설 수 있다.

그 상태에서 3층으로 올라감과 동시에 3층 문이 열리게 하면 그나마 시간을 최대한 벌 수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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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가 도플갱어보다 먼저 물약에 닿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최선을 다해도 결국 위와 같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본인이 시도한 것은, 3층 문을 열어서 도플갱어가 들어올 때쯤 도로 1층으로 내려가서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었다. 1층의 닫힘 발판은 1층 문뿐만 아니라 3층 문까지 한꺼번에 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엄청나게 어렵다. 아까 저 그림처럼 3층 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왼쪽을 보고 있는 상태를 먼저 만들어야 하는 데다, 거기에다 추가적인 묘기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준비됐으면 발판을 밟아서 3층 문을 연 뒤,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서 2개의 톱날을 도움닫기 점프로 한번에 통과하고 1층으로 떨어져서 닫힘 발판을 밟아야 한다! 타이밍이 안 맞으면 톱날에 찍혀 끔살당한다.

그래도 이것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랄한 우리의 도플갱어는 닫힌 철문도 통과하고서 물약을 훔쳐 먹고 유유히 사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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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정말로 답이 없고 불가능이긴 하다.

2중 톱날은 왕자의 진행 속도를 크게 낮추는 어려운 트랩이다.
레벨 8의 경우, 클리어 관문을 열기 위해서 2중 톱날을 왕복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러고 나니까 철문이 닫혀 있어서 꼼짝없이 갇혔는데, 이때 공주가 보낸 생쥐가 문을 열어 주는 게 원래의 설정이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2중 톱날도 아무 거리낌없이 통과하여 철문이 완전히 닫히기도 전에 자력으로 빠져나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유튜브에서 괴수들의 플레이 동영상을 보면 그런 게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쥐가 굳이 출동할 필요가 없다!)

레벨 8에는 그런 플레이가 있는 반면, 레벨 5에서 도플갱어를 따돌리고 대형 물약을 먹는 데 성공했다고 하는 테크닉이나 플레이 동영상은 인터넷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MEGAHIT 치트를 써서 게임을 실행한 뒤, 도플갱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K(현재 화면에 있는 몹을 죽임)를 누르면 도플갱어가 사라진다. 이를 활용하면 레벨 5에서 대형 물약을 먹을 수 있게 되며, 레벨 6에서도 도플갱어가 있는 절벽 건너편으로 올라가는 것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치트를 써서 만들어 낸 결과일 뿐이다.

참고로, 2007년에 나온 3D 리메이크작인 <페르시아의 왕자 클래식>은 이 시스템이 좀 개선되었다.
2층에서 3층 문을 열었다가 1층으로 잽싸게 되돌아와서 그 문을 닫아버리면, 도플갱어는 왔다가 물약을 못 훔치고 되돌아간다. 그래서 레벨 5에서도 대형 물약을 먹고 체력을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리메이크작은 톱날이 2개이던 것이 1개로 줄고 왕복 주기도 원작보다 훨씬 더 길기 때문에, 통과하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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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4/01/21 08:32 2014/01/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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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중학생이던 1996년 말, 친구 집의 컴퓨터를 통해 우연히 툼 레이더라는 게임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페르시아의 왕자 같은 파쿠르 액션이 full 3D로 구현되어 나오고 게다가 주인공이 듀크 뉴켐스러운 마초 근육맨이 아닌 아리따운 아가씨라니!
툼 레이더 시리즈는 전세계적인 히트를 쳤으며 게임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이버 모델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롤스로이스에 이어 또 '영국'이 만들어 낸(냈던) 명작에 대한 리뷰를 좀 써 보겠다.

본인은 예전에도 몇 차례 글을 썼듯이, 비디오 게임의 역사 중에서 3차원 그래픽 기술이 막 도입되던 1990년대 중· 후반의 과도기가 가장 흥미진진한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id 소프트웨어의 엔진이 울펜슈타인, 둠, 퀘이크를 거치면서 발전해 가던 시절,
2.5D와 완전한 3D 사이의 과도기이던 켄 실버맨의 빌드 엔진을 쓴 게임(듀크 뉴켐, 섀도우 워리어),
목각인형에서 진짜 사람으로 발전하던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
실사 사진을 쓰다가 최초로 3D 폴리곤으로 바뀐 모탈 컴뱃 4 등등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툼 레이더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안 그래도 엔하위키나 한국어 위키백과는 각 시리즈 별 설명이 부실한 편이기도 하니 한번쯤 이런 내력을 나열해 보는 것도 흥미롭지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1

그야말로 전설이 아닌 레전드를 창조한 첫 작품이며, PC 플랫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스를 지원했다. 눈이 종종 쌓여 있는 숲, 광활한 고대 유적지, 피라미드 등을 돌아다니면서 말 그대로 묘지를 터는 본분에 충실한 형태였다. 몹 중에 인간은 흔치 않았던 걸로 기억하며, 혼자서 퍼즐을 풀어 나가는 비중이 컸다.
1부터 3까지는 같은 엔진 기반으로, 그래픽이나 게임 진행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 2 (starring Lara Croft)

1이 대성공을 거둔 뒤, 2부터는 도스 대신 Windows용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2는 1에 비해 폴리곤 수가 늘어서 라라가 아주 약간 더 예뻐졌으며, 기술적으로 무리였던 팔랑거리는 말총머리가 드디어 구현되었다.
그리고 동적 광원을 구현하면서 flare(섬광탄) 아이템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물에는 언제나 수영만 있던 것과 달리 얕은 물에서 걷는 wading이 추가되었으며, 암반을 오르는 climbing이 추가되었다.

2는 첫 시작을 만리장성에서 하고, 결말부에서 최종 보스도 용일 정도로 배경에 중국에 대한 비중이 가장 높다. 1보다 대인 전투의 비중이 높아졌으며 무덤 말고 도시, 선박 등 인간이 만든 시설도 많이 등장한다. 무기는 샷건뿐만 아니라 M16 소총, 작살총도 추가되었다.
보트나 스노우모빌 같은 탈것을 이용하는 동작도 처음으로 추가되었다. 생각해 보면, 주인공이 탈것을 이용할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은 매우 드물다. 용 정도나 타는 옛날 황금도끼 말고 딴 게 뭐 있었던가??

※ 3 (라라 크로프트의 모험)

3은 2와 같은 맥락으로 더 큰 변화가 이뤄졌다. 그래서 단순한 유적지 털기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전세계 방방곡곡을 배경으로 한 액션 어드벤처로 바뀌었다. 덕분에 게임 배경이 역대 툼 레이더 시리즈 중 가장 넓어서 인도, 남태평양 섬, 남극, 미국 AREA 51, 런던 자택 근처가 레벨로 모두 등장한다. 그리고 각 레벨별로 라라의 복장도 가장 다양해졌다. 지역별로 레벨 플레이 순서를 사용자가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도 3이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갖추고 있었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라라에게는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기력을 소비하면서 잠시 동안 전력질주를 하는 sprinting이 추가되었으며 엎드리기(crouching), 천장을 잡고 건너기 같은 동작이 추가되었다. 그래픽이 개선된 건 총기 격발 후에 발생하는 탄피와 연기 흔적, 그리고 물에서 나타나는 특수효과가 일부 개선된 정도다. 슬슬 엔진의 약발이 다할 때가 되고 있었고, 라라 팬으로부터 불만도 들어오고 있었다. 3이 이룬 것은 같은 시스템 하에서 단순 양적 팽창 위주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음 편부터는 시대에 맞추어 엔진이 교체되었다.

※ 4 (마지막 계시)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싹 다시 개발되었다. 시작 화면, GUI 글꼴 같은 게 전부 바뀌었다. 여권 수첩 형태의 메뉴나 동그란 고리 형태로 나오던 인벤토리 링도 다 없어졌다.
4는 오로지 이집트 주변만 공략하여 순수하게 유적지 털기 미션으로 되돌아갔으며, 라라의 의상도 시종일관 기본 단일 복장으로 바뀌었다. 그렇잖아도 툼 레이더 4가 나온 1999년은 <미라>(Mummy)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던 해이기도 해서 더욱 이집트스러운 기억이 깊게 남아 있다.

4는 엔진이 교체되면서 그래픽이 예전보다 대대적으로 향상되었다. 드디어 모든 텍스처에는 하이컬러 안티앨리어싱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라라의 외형도 더욱 매끄럽고 예뻐졌다. 복잡한 지형에서 발생하던 1~3 엔진 특유의 그래픽 glitch가 거의 다 사라졌다. 3에서 바뀌었는지 4에서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이템이 여전히 2D 스프라이트로 표현되던 것들도 드디어 순수 폴리곤으로 바뀌었다.

4에서는 예전 시리즈에서 전통적으로 등장하던 라라 저택 연습 미션이 없어졌고, 그 대신 게임 전반부에서 라라가 어렸을 때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그리고 줄을 타고 오르는 동작이 추가되었으며 여러 아이템을 조립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드는 시스템이 도입됐다. 또한, 4는 역대 툼 레이더 시리즈 중 레벨 수가 가장 많고 플레이 시간이 가장 길었다고 한다. 그 중 열차 안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사막 열차 레벨은 상당히 참신한 디자인.
이 게임의 엔딩은 라라가 죽는 걸(최소한 그걸 암시하는)로 끝난다. 왜 그 잘 나가는 캐릭터를 죽이는지, 시리즈를 벌써 종결지으려는 건지 제작사의 의도를 알 수 없는 대목이다.

※ 5 (크로니클 연대기)

1부터 5까지는 각각 1996년부터 2000년까지 1년 간격으로 그 해의 하반기에 제품이 출시되었다. 5편인 크로니클은 4편과 거의 같은 엔진 기반에 컨텐츠만 다르다. 라라 크로프트는 죽고 없는데 그녀가 살아 생전에 남긴 무용담을 회상하며 플레이한다는 설정. 그래서 3편만큼이나 다양한 복장으로 과거 유물과 현대 도시를 아우르면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한다.

5는 이상한 설정으로 인해 예전 시리즈만 한 대박은 못 친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다만, 이때 제작사가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상당히 대인배적인 조치를 취했는데, 바로 레벨 에디터를 게임과 더불어 공식 배포했다.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걸출한 캠페인 에디터인 StarEdit인 셈.

덕분에 툼 레이더 4~5 엔진은 내가 알기로 역대 툼 레이더 시리즈들 중 단순 의상 패치 이상으로 full-featured custom 레벨 MOD가 존재하는 최후의 엔진이다. 그래서 인터넷엔 라라 크로프트 하앍하앍 하는 전세계의 양덕후들이 만들어 올린 custom 레벨 파일 및 플레이 동영상들이 즐비하다.
1~3 엔진은 에디터가 있다 하더라도 요즘 기준으론 그래픽이 너무 심하게 후져서 별로. 4~5 엔진 정도는 돼야 그나마 할 만하다.

※ 6 (어둠의 천사 AOD)

툼 레이더의 제작사인 코어 디자인은 라라 크로프트라는 희대의 대박 아이템이자 황금알 낳는 거위를 창조해 놓고는 영업이랄까 운영을 썩 잘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3에서 4로 넘어갈 때 좀 혁신을 한 걸 제외하면, 계속 같은 엔진과 게임 시스템만 지겹게 우려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배가 산으로 가는 듯한 스토리를 전개하며 4편에서 라라 크로프트를 덥석 죽여 버린 건 팬들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런 와중에 거의 3년간의 침묵을 깨고 툼 레이더의 다음 시리즈인 어둠의 천사가 나왔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기술은 분명 크게 발전했다. 물리 엔진이 도입되었고 라라의 손발 모션은 지형을 반영하여 더욱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픽 디테일 레벨을 올리면, 그림자도 그냥 바닥에 시꺼먼 타원으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실제 광원과 라라의 체형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이 작품에서 라라 크로프트는 과거에 죽었다가 아무 개연성 없이 불쑥 살아서 돌아왔으며, 고대 유적지를 돌아다니는 묘지 도굴꾼 컨셉에서도 더욱 멀어졌다. 전통적인 복장 대신 군복과 청바지 차림으로 의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6은 기술의 진보는 분명 있었으며 국내에서는 툼 레이더 시리즈 중 최초로 완전 한글화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괴상한 정체성과 많은 버그들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지고 뭔가 핀트가 안 맞는 작품으로 전락했으며,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7 (레전드)

툼 레이더의 본디 제작사이던 코어 디자인은 6 이후로 제작사 타이틀을 반납하고 그저 그런 게임 개발사로 남아 있다가 2007년쯤에 망했다. 그 뒤 툼 레이더의 개발은 영국이 아닌 미국의 크리스탈 다이나믹스로 넘어갔는데 얘가 툼 레이더 시리즈를 다시 물건으로 회복시켜 놓았다.

2006년 봄에 출시된 레전드는 툼 레이더의 '제2기' 시대를 열었다. 툼 레이더의 기본 복장이 되돌아왔으며 유적지 탐험 패턴도 복귀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조작도 다 뭔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바뀌었다. 언제나 자동 세이브가 되고 굳이 별도의 키를 누르지 않아도 절벽에서는 자동으로 매달리는 등, 퍼즐 난이도는 예전보다 더 쉬워졌는데 이건 요즘 게임기용 게임들의 추세가 다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레전드에 대한 반응은 전반적으로 좋았다. 하지만 예전하고는 너무 이질적으로 바뀐 게임 시스템에 대해서는 게이머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맨날 동료하고 얘기를 주고받는 것도 예전에는 없던 관행이었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레전드로 희망찬 데뷔 선언을 한 크리스탈 다이나믹스는 그 이듬해에 Anniversary라고 불리는 시리즈도 내놓았다. 이것은 툼 레이더 1을 오늘날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 8 (언더월드)

레전드의 명성을 계승한 후속 시리즈이다. 라라 크로프트가 배를 타고 세계 각지를 이동하면서 미션을 수행한다. 덕분에 레전드에 비해 잠수와 수영의 비중이 더 높다. 고전 복장은 사라졌으며, 그나마 이것과 가장 비슷한 복장은 태국 숲 미션에서 입는 까만 셔츠와 핫팬츠 복장이다.

라라 크로프트의 집이 난장판이 되는 건 옛날에 2의 맨 마지막 레벨 Home Sweet Home에서 침략자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게 전부였는데... 이번 언더월드에서는 첫 미션에서 집이 불바다가 되는 걸로 시작한다. 그래서 집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번엔 레전드 시절의 동료가 라라에게 무슨 원한이 생겼는지 권총을 쏴 댄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다행히 원한을 살 만한 짓은 라라가 아니라 라라의 도플갱어의 소행으로 밝혀져 오해는 나중에 풀리지만... 스토리 전개가 재미있다.

도플갱어라.. 옛날에 1편에서 베이컨 라라가 있긴 했고.. 더 옛날 고전 게임 중엔 페르시아의 왕자 1에서도 왕자를 골탕먹이다가 나중에 합체하는 영혼 도플갱어가 있었다. 정말 별의 별 걸 게임에다 다 집어넣었다.

※ 9

자... 1996년 이래로 근 15년간 라라 크로프트를 쌍권총 찬 고고학자로 우려먹어 온 건 약발이 다한 모양이다.
크리스탈 다이나믹스는 5년간의 잠수 끝에, 이제 예전의 스토리를 다 뒤집어엎은 리부트작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1편과 마찬가지로 부제가 없이 이름이 그냥 툼 레이더이다.

라라는 더욱 어려졌으며, 도도한 특수요원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제 막 생존술을 터득해야 하는 연약한 여고생/여대생 컨셉으로 바뀌었다. 어린 라라 떡밥은 지난 4편에서 잠시 등장한 적이 있지만 그걸 떠올려서도 물론 곤란하겠다. 예전의 라라가 인디아나 존스 컨셉이었다면, 지금의 라라의 위상은 거의 생존왕 로빈슨 크루소나 심지어 베어 그릴스-_-를 생각해도 될 것 같다.

9의 설정상 배경은 일본 열도 인근에 있는 어느 섬이다.
사실, 툼 레이더 시리즈에서 일본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코어 디자인 시절에는 없었고 크리스탈 다이나믹 때 레전드와 9에서 딱 두 번이었다. 코어 시절에 툼 레이더의 배경은 오히려 중국, 네팔, 티베트 같은 대륙이 더 자주 등장했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서 한국은 영토가 너무 작기도 하고 게임이나 영화 같은 매체에 선뜻 등장하기에는 정치적 민감성도 크고 역시나 콩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픽이야 뭐, 피부에 핏자국이 묻고 각각의 머리카락들이 찰랑거리는 걸 볼 수 있을 정도로 사실에 가깝게 발전했다.
AOD에서 레전드로 넘어갈 때를 능가하는 엄청난 쇄신이 있었는데, 반응은 역시 좋은 편이다. 9 이후로 툼 레이더 시리즈가 과연 또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3/12/07 08:32 2013/12/0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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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국가(national anthem)들

한 나라의 상징으로는 깃발(국기), 꽃(국화) 등과 더불어 노래(국가)가 있다.
난 우리나라의 여러 상징들이 전반적으로 개성 있고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고유 문자인 한글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소나무, 태권도, 무궁화 다 좋다. 국기인 태극기도 적당한 상징성과 복잡도로 잘 만들었다.

다만, 그런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좋아하는 상징은 국가인 애국가이다. 다소 밋밋한 가사, 그리고 시작 부분의 너무 어색한 박자 때문이다(갖춘마디에다가 못갖춘마디 스타일의 박자를 얹음). 뭐, 덜 좋아한다는 거지, 아주 싫다는 뜻은 아니지만.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2.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난 개인적으로 1절과 4절은 모두 외우고 있고, 2절과 3절은 첫 단의 가사만 기억하고 있었다. 군대 훈련소에 있던 동안은 각 절을 매일 돌아가면서라도 훈련병들에게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다 외우게 했던 것 같다.

그럼, 대한민국 말고 다른 나라들의 국가는 어떨까?
내가 멜로디를 완전히 알고 있는 외국 국가로는 미국, 중국, 영국, 독일, 그리고 북한이 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영국과 독일의 국가 멜로디는 이미 자동으로 숙지하고 계실 것이다. 찬송가에 동일 멜로디의 찬양이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피난처 있으니>와 <시온 성과 같은 교회>.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혹은 작별의 노래) 멜로디에다가 애국가 가사를 끼워서 부른 적이 있었다.

중국의 국가는 영락없는 행진곡 군가 스타일이어서 호전적이고 씩씩한 느낌이다.
중국 국가는 '칠라이'(일어나라), '치안찐'(전진)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들린다. "앞으로 용진 또 용진" 이러는 우리나라 <육군가>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가사의 주제는 "자, 노예로 살기 원치 않는 인민들이여, 함께 일어나 적들을 무찌르고 새 세상을 건설하자. 빠샤!" 정도?

노래를 부를 때는 성조를 전혀 표현할 수가 없어진다. 그럼 중국어를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생기지는 않나 모르겠는데, 하지만 의외로 문맥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식별이 된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사실 한국어도 완전 말도 안 되는 모호성이 적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소년/소녀, 그년/그녀, 내/네 등).

미국의 국가는 가사가 전투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만 멜로디는 군가풍이 아니며 오히려 3박자 계통이다. 그리고 가사 중에 국기인 성조기에 대한 묘사가 있는 게 특징이다. "그 치열한 전장에서도 우리의 성조기는 당당히 펄럭이고 있었노라."
가사 끝부분에 나오는 "자유의 땅, 용사의 고향"이라는 표현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짐작케 한다.

독일의 국가는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버 알레스 위버 알레스 인 데르 벨트"(우리 독일이 세계 킹왕짱)라고 시작하는 첫부분이 인상적이다. 가사의 나머지 부분도 전투적인 요소는 별로 없이 그냥 자기 나라 찬가이다.

영국의 국가 <God Save the Queen>은 군주인 (여)왕에 대한 축복송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찬송가뿐만 아니라 Noteworthy Composer 악보 프로그램에도 예제 데이터로 곡이 통째로 실려 있다.

다음으로, 북한의 국가는 제목이 남한과 동일한 <애국가>이다. 김씨 부자에 대한 우상화가 지금처럼 극심해지기 전에 미리 만들어져서 그런지 노래 자체는 의외로 전투적이거나 위수김동을 전파하는 내용이 없다. 그냥 평범한 조국 찬가 스타일이고, 어찌 보면 남한의 애국가보다 퀄리티가 더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주요 행사 때는 애국가보다 별도의 장군님 찬가를 더 즐겨 부른다고 하니 '역시나'이다. 북한 애국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 있으니 더는 하지 않겠다.

이스라엘의 국가는 역시 이스라엘 아니랄까봐, 국가가 웬 단조라는 것 정도만 기억한다. (찬송가 중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요풍의 단조)

끝으로, 일본의 국가는 <기미가요>인데.. 지극히 일본스럽다. 일본 사람이 자기 내면을 잘 표현하지 않고 말을 모호하게 하는 걸 즐기고, 헌법조차 덴노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주 모호한 문장으로 시작하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임의 대(代)는 1000대까지.. 8000대째에 작은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너무나 짧고 의미도 밍숭생숭하기 그지없는 가사이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가라나? 멜로디의 음계 또한 전통적인 서양 음악 스타일을 떠올렸다가는 놀라게 된다.

모든 일본인들이 이런 기미가요를 국가로서 좋아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한다. 똑같은 군주 찬가여도 대놓고 신을 거론하며 마음껏 복을 비는 영국 국가하고는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가사 내용에 대해 또 딴지를 걸자면, 돌멩이는 무슨 눈덩이나 흙덩이도 아닌데, 긴 세월이 흐르면 커지기보다는 닳고 쪼개지지 않나 싶기도 하다.

기미가요는 가사 자체는 너무 추상적이다 보니 별로 문제될 게 없으나, 역시 일제 군국주의와 함께 강제로 보급되고 퍼진 이력이 있다 보니, 한국처럼 일제의 피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에서는 좋은 평판을 못 받고 있는 노래이다.

다른 나라들은 그렇다 치고 한중일 CJK만 살펴보더라도, 국가가 삼국이 서로 극과 극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세계의 국가들을 군가/전투형, 군주 찬가형, 국가 찬가형 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23 08:25 2013/09/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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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잡설

* 스포츠는 내가 극도로 관심이 없는 분야 중 하나이다만..

1. 잘 알다시피.. 2020년 하계 올림픽의 개최지로 일본 도쿄가 선정되었다.
전쟁 범죄를 전혀 반성하지 않은 나라, 더구나 방사선 유출 사고까지 친 나라가 어째 올림픽을 또 유치해 냈는지에 대해 의아해하는 분이 적지 않다만, 아무튼 이로써 일본은 1964년 이래로 거의 반세기 만에 올림픽을 동일 도시에서 또 하게 됐다.
일본은 1988년 올림픽에서 나고야에서 올림픽을 유치하려 했으나, 잘 알다시피 52:27의 표로 우리나라 서울에 패했던 적이 있다. 이른바 바덴바덴의 기적이다.

2. 그 전까지 역사상 올림픽을 두 번 개최한 동일 도시는 그리스 아테네(1896/2004)와 프랑스 파리(1900/1924)가 있고, 세 번은 런던(1908/1948/2012)뿐이었다.
미국은 올림픽을 네 번이나 개최한 유일한 국가이지만, 전부 다 다른 지역이다(1904/1932/1984/1996).
독일은 두 번 개최하긴 했으나, 나치 독일-베를린(1936), 그리고 서독-뮌헨(1972)이어서 둘의 위상이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도 다른 지역에서 두 번 개최한 나라이다(1956/2000).

3. 사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아니었으면 20년 전인 아예 1944년에 올림픽 개최가 예정되었을 선진국이었다. 그로부터 20년 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의 개최에 맞춰 세계 최초로 상용 최대 속도가 시속 200km를 넘는 신칸센 철도를 개통했었다. 신칸센은 표준궤일 뿐만 아니라 같은 표준궤 철도 중에서도 열차의 폭이 한국이나 유럽의 철도 차량보다 수십cm가량 더 넓게 설계되었다. 그래서 한 줄에 2-2뿐만 아니라 2-3 좌석 배치도 있다. 협궤 철도의 한계에 이골이 난 걸까.

전쟁은 일본의 올림픽 개통뿐만 아니라 지하철의 개통까지도 늦췄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긴자 선이라 불리는 도쿄 지하철을 1927년에 개통했었다.
그러나 그 다음 노선인 마루노우치 선은 그로부터 또 무려 27년이나 지난 1954년에야 개통할 수 있었다.
전쟁 때문에 물자가 부족하니, 신규 철도 건설은 고사하고 이미 있는 철도 선로도 뜯어가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4. 2020년 이전에 일단 요 몇 년간은 남아메리카 브라질이 꽤 주목을 받을 것 같다.
2014년 FIFA 월드컵도 브라질, 2016년 올림픽도 브라질(리우데자네이루)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림픽의 경우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개최이다.
월드컵은 매 경기가 서로 다른 지역의 다양한 경기장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올림픽과는 달리 개최국만 지정하지 도시 이름까지 하나로 콕 지명되지는 않는다.

5. 끝으로, 축구 얘기를 좀 한 후 글을 맺겠다.
지금이야 우리나라는 홈그라운드에서 무려 4강에까지 진출한 적이 있고 얼마 전엔 원정 16강까지도 진출한 축구 강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의 시작은 심히 미약했다는 걸 알 만한 분들은 다 알 것이다.

광복 후 최초 참가였던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1라운드에서 멕시코를 5:3으로 이겼으나, 2라운드에서 우리나라는 스웨덴에게는 무려 12:0으로 패해서 올림픽 역사상 최다 실점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1954년에 첫 참가한 FIFA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 월드컵은 스위스에서 열렸는데, 헝가리에게 9:0, 터키에게 7:0으로 졌다. 월드컵에서 9점차라는 실점 규모는 역사상 공동 1위이다.

물론 이건 부끄러워할 기록이 전혀 될 수 없다. 해방 직후에, 또 전쟁으로 전국토가 폐허가 된 직후에, 국제 스포츠 경기 참가를 위해 나라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시피하던 시절이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의 경우, 선수들은 먼저 부산까지 열차를 타고 간 뒤 일본을 거쳐서 각종 배와 경비행기를 갈아타면서 런던까지 가는 데만 무려 3주가 걸렸었다! 배 타고 갑판 위에서 축구 연습을 했다면 믿으시겠는가?

의류비(단복, 운동복 등)나 숙소 체류 비용조차 제대로 못 내서 완전 추레한 촌티를 팍팍 낸 채, 이들은 도착 직후에 시차 적응도 못 한 채 경기를 뛰어야 했다. 사정없이 쏟아지는 공격에 골키퍼는 상처투성이가 되는 투혼을 발휘하면서 온몸으로 공을 막아 냈다. 오히려 12:0으로, 9:0으로밖에 지지 않은 게 대단하다고 외신들이 골키퍼를 칭찬할 정도였으니... 눈물젖은 빵+헝그리 정신의 결정체가 아닐 수 없다.
스포츠도 나라가 부강하고 잘 살아야 제대로 육성이 가능하다는 걸 느낀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15 08:30 2013/09/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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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방 지역에 있는 PC방, 식당, 여관 같은 업소들이 군인들을만을 상대로 굉장한 바가지 요금을 받는 게 공공연한 관행이라니, 굉장히 충격이다.
이건 휴가철 때 해수욕장이나 유원지 민박들이 바가지 요금을 받는 것보다 죄질이 훨씬 더 나쁘다.

첫째는 민간인이 휴가를 떠나는 건 전적으로 당사자의 자발적인 선택과 의지인 반면 군복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간부들은 그나마 위수지역이 넓은 편이고 승용차라도 있지, 병들은 꼼짝없이 그 지역에서 호구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말 그 지역 상인들이 도저히 먹고 살기 힘들다면,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요금을 올리면 된다.
국가에 자기 인생을 희생하여 충성하는 군인에게 할인을 해 줘도 모자랄 판에(철도 같은 일부 공공요금은 실제로 그러함) 바가지라니, 이건 정말 군납비리만큼이나 국방부나 정부 차원에서 나서서 저런 부조리를 단호하게 근절해야 하지 않나 싶다.

수 년 전에 강원도 모 지역 모 부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바가지가 해도 해도 너무한 지경에 이르자, 사단장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휘하의 모든 병과 간부들에게 그 지역의 상점과 숙박시설을 절대로 이용하지 말고, 휴가와 복귀 시엔 간부들 차를 타고 군부대와 시외버스 터미널 사이를 직통으로 이동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지역 상점들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헌병들은 그 지역을 순찰하면서 다른 군기 위반자가 아니라 상점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군인들을 적발했다.

이 일이 있고 나자 지역 경제가 다 망하게 된 상인들이 항복(?)해서 요금을 여타 지역 수준으로 내렸다나 어쨌다나.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돈과 관련된 사항만이 전부가 아니다.
다른 사례로는, 외박 나갔던 군인들이 위수지역에 있는 불량배 고등학생 패거리한테 심하게 맞고 다쳐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군인들은 민간인과 얽히면 법적으로 굉장히 골치아파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냥 피하거나 순순히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 이 꼴을 목격한 대대장이던가 사단장이 격분했다. “어떤 놈이 감히 내 부하들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나? 당장 이실직고하지 못해?”라고 다그쳐서 진상을 파악하고, 5분 대기조까지 편성해서 결국 가해자들을 잡아내고 합의 내지 처벌시켰다.

시스템 클럽에 가 보면 지 만원 박사의 회고록에도 월남전 참전 중에 겪은 비슷한 일화가 수록돼 있으니 참고하시라.

“앞으로 C-레이션(미군 전투 식량)이 필요하면 내게 전화하라. 하지만 만일 내 병사에게 손을 또 한번 대면 그 때엔 주먹과 무력으로 다스릴 것이다.” 전쟁터에서 존중돼야 할 전투병들이 옷이나 깨끗히 다려 입고 지내는 헌병 따위에게 뺨을 맞고 다닌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까불던 헌병들이 그날 전투병들의 맛을 톡톡히 본 것이다. 그후 그 초소를 지나는 내 부대 차량들은 언제나 기분좋게 프리패스됐다.


자, 이런 것들이 바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챙겨 주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방법이다.
저런 지도자 밑에서라면 내 목숨 바쳐서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있겠다고 병사들의 마음을 사는 방법이다!

훈련할 때, 굴릴 때는 정말 가혹하게 빡세게 굴리더라도 상벌을 확실하고 공정하게 주고, 진짜 위급한 전쟁터에서야말로 진정한 전투력과 전우애가 나오게 하고..
초병은 직속상사의 명령 외에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는 걸 윗사람들이 솔선수범해서 실천하고..

나라가 예산이 모자라서 병사들에게 월급을 알바 최저임금 수준만치도 못 준다면, 돈 안 드는 저런 리더십이라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소한 “간부, 고참들부터 죽인 뒤에 북한군 쏘겠다” 이러는 병사는 국군내에 없어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09 08:23 2013/09/0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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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글로 쓴 적이 있듯이 본인은 <놀라운 주의 은혜>(Wonderful Grace of Jesus)라는 찬양곡을 굉장히 좋아한다.

작사· 작곡자인 할도 릴레나스는 본인이 기억하는 위대한 노르웨이 출신 3인 중 하나이다.
5차 이상의 방정식은 대수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닐스 아벨, 세계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한 로알 아문센과 더불어서 말이다. (단, 할도 릴레나스는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거기서 귀화해서 살았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노르웨이계 미국인이긴 하다.)
곡에 대한 찬사는 그때도 실컷 늘어놓았으니 이 글에서 또 반복하지는 않겠다.

이 곡은 마지막 단에서 “O magnify the precious name of Jesus! Prase His Name!”이라는 가사로 끝나고 “magnify the precious” 마디에서는 임시표 #으로 인해 알토 및 베이스의 음이 반음 올라간다. 후렴 직전의 마지막 단에서 이 곡의 주제라 할 수 있는 “for the wonderful grace of Jesus reaches me” 가사가 나오는 곳과도 비슷한 코드(chord)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래음을 반음 올리지 않았으면 소프라노와 알토 사이의 음정이 단7도와 완전8도였을 텐데 임시표로 인해 음정이 반음 내려감으로써 이들은 모두 감음정으로(감7, 감8) 바뀐다.
비전공자인 관계로 난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증/감음정은 통상적인 완전/장/단음정에 비해 듣는 사람을 긴장시키고 자극을 주는 효과가 더 큰 것 같다. 심지어 Looking for You에도 곡 전반부가 끝날 때 완전 짜릿한 감음정 화음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기보법과 관련하여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알토는 '레'에 #이 붙었기 때문에 반음 올린 검은 건반으로 쳐야 한다. 하지만 소프라노의 '레'는 원래의 흰 건반으로 쳐야 한다. 그래야 감음정이 나온다.
내가 알기로 올림표, 내림표, 제자리표 같은 임시표들의 scope은 해당 마디가 끝날 때까지이다. 그리고 옥타브를 불문하고 어떤 곳에서든 해당 음은 모두 임시표를 적용하여 쳐야 한다.

자, 이 임시표의 scope은 소프라노/알토 같은 화음 파트까지 초월하여 적용되는 것일까? 아니면 따로 적용되는 것일까?
위의 그림처럼 알토 파트의 '레'에 #을 붙였다 하더라도, 나는 저렇게만 악보를 그려 놓으면 원칙대로라면 소프라노의 높은 '레'도 #이 적용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컴퓨터용 악보 편집 프로그램인 Noteworthy Composer는 내 생각대로 악보를 재생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본인의 모 지인은, 임시표의 scope은 파트별로 따로 가는 게 맞으며 그 내용을 음악 교사 지도서에서도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럼 도대체 뭐가 맞는 거지?

고민 끝에 동일곡의 다른 악보들을 찾아 봤다.
곡의 퀄리티에 비해서 국내에서는 생각만치 유명하지 않은 게 유감이다만,
이건 워낙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유명한 찬양이기 때문에 구글링만 하면 악보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단, 문제는 대부분이 유료로 판매하는 악보라는 점.
유료 악보 사이트들은 첫 페이지의 내용은 대부분 견본 명목으로 보여주지만, 내가 원하는 부분은 불행히도 곡의 끝부분이다. 그래서 다른 예를 찾는 데 애로사항이 꽃펴 있었다.
오랜 검색 끝에 악보를 딱 하나 어렵게 구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본인이 제기했던 문제를 의식해서인지 소프라노의 높은 '레'(pre-)에 제자리표가 적혀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을 아주 곧이곧대로 삐딱하게 해석하자면, 반대로 그 다음의 알토의 낮은 '레'(-cious)도 제자리표를 적용하여 쳐야 한다. 즉, 이 표기도 논리적으로 완전히 엄밀하지 못하다.

그러니 Noteworthy Composer는 이렇게 임시표를 일일이 지정해 줘야 원곡대로 음이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걸 보면, 악보를 읽는 것도 언제나 컴퓨터처럼 절대적인 원리원칙이 있는 게 아니라 가끔은 '유도리', 휴리스틱이 동원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표기가 엄밀하지 않은 두리뭉실한 예가 심지어 수학에도 있다. 6/2(1+2) 내지 48/2(9+3)의 계산값이 무엇이냐 하는 게 아주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지 않았던가?

Posted by 사무엘

2013/08/17 08:20 2013/08/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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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흔히 육해공 3군으로 나뉘는데, 이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육군: 땅개로 설명 끝이다. 장병들은 병영에서 생활하면서 각종 작업이나 일과 수행을 위해 온갖 장소를 돌아다녀야 한다. 보병+소총수라는 제일 기본 보직이 있으며 이들에겐 행군 능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단, 의사 중에 TOP은 외과 의사이듯이, 육군 중의 TOP 병과는 역시 포병이 아닌가 싶다.
  • 해군: 배가 곧 생활 공간 겸 전장이기도 하다는 게 중요한 특징이다. 해군만의 그 특유의 세일러 복장이 있다. 육군에 행군과 화생방이 있다면 해군엔 전투수영이 있다. 연평해전, 천안함 등의 사건으로 인해, 근래까지 병사들 중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한 전사자가 제일 많이 나온 곳이다.

그리고,

  • 공군: 여타 군과는 달리 공군은 소수의 전투기 조종사를 지원하고 비행장· 기지 내부를 방어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투 병과의 비중이 높으며, 병사가 무슨 비행기 타고 영공을 지키다가 전사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육군 같은 행군· 숙영은 없지만 화생방의 비중이 높다.

공군 훈련소에서 수류탄 훈련은 완전 야메로 넘기면서 교관이 “너희들이 이걸 던지는 상황이라면 전쟁은 이미 진 거다.”라고 말하는 건 유명한 일화인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지 바깥을 몇 겹으로 지키고 있던 육군 병력이 전멸했다는 뜻이므로.

군용기에는 비행기 대 비행기가 싸우는 전투기만 있는 게 아니다. 지상에다 다량의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 전문인 폭격기도 있고, 정찰기· 조기경보기도 있다. (한편, 전투와 폭격을 겸할 수 있는 공격용 군용기를 전폭기라고 한다)
그리고 또 무시 못 할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다름아닌 수송기이다. 방대한 물량이 생명인 오늘날의 전장에서 군대 유지의 생명은 보급이다. 수송기는 이 보급을 책임지는 물건이기 때문에, 비록 전투기 같은 화려함은 없을지언정 전쟁에서의 숨은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배보다 수송량은 부족하지만 속도가 워낙 넘사벽이니..

역사적으로 볼 때 월남전의 상징이 헬리콥터라면, 걸프전 하면 수송기를 떠올려도 좋다. 다량의 수송기 덕분에 그 먼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에 미국(+다국적군)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조종사밖에 못 타는 전폭기만 먼저 도착해 있으면 뭘 하나. 정비 인력, 각종 부품, 무장, 보급이 없는데?

군용 수송기는 웬지 프로펠러기가 많이 눈에 띄는 것 같다. 본인의 직장이 있는 판교도 아무래도 서울 공항과 가까운 곳인지라 종종 수송기가 저공으로 날아다니는 게 눈에 띈다.
굳이 군용기뿐만이 아니라 화물기가 전반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얘네들은 민항기에 비해 랜딩기어가 굉장히 낮은 걸 볼 수 있다. 개로 치면 다리가 몹시 짧은 닥스훈트 같은 품종? 기체가 지면에 더욱 가까이 있다. (왼쪽은 보잉 737, 오른쪽은 수송기 C-141)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것은 사실 화물을 싣는 모든 교통수단들이 공통으로 갖는 특징이다. 기체의 높이가 낮아야 무거운 화물을 기내에 반입하기가 쉬우니까. 시내버스만 해도 사람이 타기 불편하다고 저상 버스가 있는 지경인데 하물며 화물은 어떠하겠는가? 짐받이에다가 탑승교를 마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영화에서도 종종 보지만, 수송기의 뒷문은 아예 아래로 열어젖혀서 화물을 싣는 입구 램프(ramp)로 종종 쓰인다. 중세 영화 장면에서 성(castle)문을 바닥 쪽으로 열어서 문짝을 그대로 도랑과 성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bridge)로 쓰듯이 말이다.
이렇게 비행기의 기체가 지면과 가깝게 낮아지다 보니, 날개는 기체에서 상당히 윗부분에 달릴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야 날개 밑에다 엔진이든 프로펠러든 달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수송기의 외형은 일반 민항기와는 살짝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날개의 구조는 비행기의 연비 절약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특성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군용차만 해도 사륜구동에 차체가 온통 무거운 쇳덩이여서 튼튼하고 힘은 좋다만, 완전 기름 먹는 하마이지 않던가. 군용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장에서 임시로 만들어진 거칠고 험악한 활주로에서도 안 부서지고 뜨고 내릴 수 있게 튼튼하고 다소 무겁게 만들어진다. 그러니 군용 수송기는 민항기보다 경제성이 여러 모로 떨어진다.

앞서 말했듯이 수송기는 전투기보다 '간지'가 덜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종 병과를 전공한 정예 공군 장교가 도저히 전투기를 조종할 수 없게 됐을 때 차순위로 빠지는 게 수송기나 헬리콥터 쪽 보직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보직으로 가는 인원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전투기의 조종간을 잡은 경험만이 공군 장성으로 진급할 때나 전역 후 민항사로 재취업할 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수송기 경력은 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송기도 전쟁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니, 그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 덧붙이는 말

1. 수송기 추락 사고

우리나라는 1982년에 도대체 무슨 마가 씌였는지 군 수송기가 두 대나 산에 추락하는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하나는 2월에 제주도 한라산이고, 다른 하나는 6월에 서울 청계산.
사고의 원인(악천후 때문에 방향· 위치 감각 상실), 사고 기체(C-123),
게다가 인명 피해(50여 명의 탑승 장병 전원 사망)까지 완전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그 이듬해에 민간에서 워낙 큰 사건· 사고가 또 나긴 했지만(KAL기 추락, 그리고 아웅산 폭탄 테러)
5공 시절에 군 내부에서 발생한 저 사고는 완전히 흑역사로 치부되고 비밀로 함구되었으며, 희생자 유족은 제대로 된 보상이나 예우도 못 받았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관련 자료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저런 거야말로 재조명과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슈가 아닌가 싶다.
과격한 훈련 중에 전투기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날씨 때문에 육지 지형을 파악 못 해서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게 애석하다. 뭐, 기체의 노후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는 듯하지만 말이다.

2. 조종사가 되기

항공업계는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위험한 전문직군이다 보니, 의료계와 더불어 조직 내부의 군기가 세고 그 대신 종사자의 대우도 매우 좋은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공군 사관학교 + 조종 병과로 가는 것이다. 군기 바짝 든 건장한 공군 출신 조종사는 민항사에서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이건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가 보장돼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어릴 적부터 몸 좋고 공부도 매우 잘해야 하거니와, 돈이 안 드는 대신 인생의 상당량을 국가를 위해 고된 군생활에 바쳐야 한다.

게다가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의무 복무 기간은 10년이지만, 공군 조종사만은 그 기간이 15년이다. 양성 비용이 워낙 많다 보니 국가에서 좀 더 오래 뽕(?)을 뽑아야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예전에는 군을 거치지 않고 민간 테크만으로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사실상 외국으로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미국은 자동차는 이미 신발이나 다름없는 필수품이고, 진짜 돈 많은 유명인사는 자동차를 넘어 자가용 비행기까지 날리는 천조국이니 말이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져서 국내에도 차츰 항공 관련 학과가 개설된 대학이나 조종사 양성소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국내든 국외든 그야말로 극심한 돈지랄은 불가피하다. 그 비싼 비행기를 조종하는 법을 배우는 게 돈으로나 노력으로나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을 거쳐서 배출된 조종사는 한동안 자기 연봉에서 교육비가 공제된다. 그런 식으로 채무를 청산한다. 청산이 완료되기 전에 조종사가 그 회사를 퇴사한다면 미납 교육비를 모두 뱉어 주고 나가야 한다.

그러고 보니, 대한 항공 조종사 출신인 말씀 보존 학회 대표가 문득 대단하게 보인다. =_=;;; 공사가 아닌 민간 출신이다. 킹 제임스 진영을 이끄는 사람들은 다들 참 똑똑한 사람들이긴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3/08/05 08:36 2013/08/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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