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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크리스천

※ 이 승만

크리스천답게 술· 담배 안 하고 사생활 깨끗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관료들 회식 때, 기생 대신에 각자 자기 부인을 데려 오게 한 사람이다. 여대생· 여배우 끼고 술판을 벌이던 박 정희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

그에게는 프란체스카 이전에 엄청 옛날에 조혼했다가 헤어진 조선인 전처가 있었고 나중엔 임 영신 같은 사람과 스캔들 루머가 나돌기도 했으나, 루머는 루머일 뿐이다. 이 승만은 자기는 이미 유부남이라고 오히려 임 영신을 찼으며, 불륜을 원천적으로 저지르지 않았다. 전처와의 흑역사는, 마치 성경 시대에 일부다처가 용인되었던 것만큼이나 당시 정황상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이는 같은 크리스천이고 똑같이 천재 엄친아이던 여 운형과는 좋은 대조를 이뤘다. 여 운형은 왕년에 여자들 끼고 바람 잔뜩 피웠던 호색한.. ㄲㄲㄲㄲ
김 구도, 여 운형도, 이 승만도 다 명색이 기독교 신자인 민족 지도자였지만, 이들이 정치적으로 간 노선은 잘 알다시피 스타크래프트 세 종족 내지 윈도우/맥/리눅스만큼이나 서로 달랐다.

※ 차 지철

알고 보니 상당히 특이한 사람이다. 박 정희 전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면서 박통의 다른 부하들로부터조차도 미움을 살 정도였고, 결국 10. 26. 사태 때 박통과 함께 김 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만... 이 양반도 의외로 상당히 독실한 '신자'였다고 한다.

'각하'에게는 예쁜 연예인들 데려 와서 시중 들게 했어도 자기 자신은 부인 말고는 다른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늙은 어머니에게 극진한 효자였으며, 의외로 비리와도 담을 싼 타입. 은행 대출 청탁을 받자, 의뢰인과 함께 기도실에 들어가 기도만 한 후 청탁은 들은 체도 안 했다는 흠좀무스러운 일화가 전해진다. 꿍쳐놓은 재산이 없이 청렴했다는 건 사후에 그의 유족들에 의해 잘 입증되어 있고... 지나쳤던 권력욕만 빼면 사후 평판이 싹 달라졌을 사람이다.

※ 조지 W. 부시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사생활에 관한 한 클린턴과 180도 다른 타입인 건 두말 할 나위도 없고, 모 목사님의 증언에 따르면, 재임 중에 백악관으로 인턴 온 어느 학생에게 “학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개인적으로 영접했나요? 만약 그렇다면 백악관 직원들이 참석하는 기도 모임에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요?” 같은 말까지 했다고. 개인적으로 만날 때야 부시만치 다정하고 공손하고 정중한 사람이 별로 없었댄다. -_-;;

내가 몇 차례 글로 썼듯이 저 사람은 약간 띨띨하고 어렸을 때 좀 놀기도 했다가, 교회 다니면서 신앙의 힘으로 '교화'되고 나서 그나마 저렇게 바뀌고 나중에 미국 대통령까지 한, 유능보다는 '그냥 착한 사람' 타입이다.

※ 스티브 유

담배 끊은 걸로 금연 홍보 대사도 하고, 여타 연예인들과는 달리 사생활 깨끗하고, 교회 다니는 거 공언도 하고 다니고... 거기에다 노래와 춤은 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가히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연예인이었는데...

그 후 이미지 완전히 말아먹고 한국에 못 들어오는 미국인이 되어 버린 건, 누가 봐도 자업자득이고 욕 얻어먹어도 싸다. 동정표를 줄 수가 없다. 워낙 이미지가 좋아서 병무청에서도 그를 믿고 병역 미필자로서 미국에 선뜻 보내 줬는데 거기서 정면으로 배신을 때린 거니까. 어차피 4급이어서 현역 가지도 않았을 사람이 왜 그런 식으로 병역을 회피했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남자들이 군대에 대해서 얼마나 민감하고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잘못 짚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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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수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일반 불신자와 똑같이 행동하고, 특히 불륜 저지르고 가정 말아먹은 사람이 많다. 이것 때문에 파면-_-당한 목사 내지 CCM 작곡가 겸 가수도 부지기수이고..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네 사람은, 대외적으로 자기 종사 분야에서는 욕 얻어먹을 짓을 좀 했고 잘못을 저지른 것도 있지만, 의외로 개인과 가정의 측면에서는 예수쟁이로서의 간증을 꽤 잘 지켜서 두 분야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사례이다. 뭐, 사생활만 깨끗하다고 해서 대외적으로 무능하거나 욕 먹을 짓을 한 게 용서되지는 않겠지만. -_- 그래도 세상에는 한 잣대만으로는 제대로 평가하기 곤란한 사람이 많다.

Posted by 사무엘

2011/07/19 08:45 2011/07/1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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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시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라고 한다. 해발 고도가 무려 3600m에 달해 우리나라의 백두산보다도 더 높다!
이 외에도 에콰도르, 콜롬비아 같은 나라들도 높은 고도를 자랑하는 곳이고,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역시 고도가 2240m로, 한라산의 높이를 능가한다. 1968년에는 이곳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는데, 평지보다 산소가 부족해서 참가 선수들이 굉장히 힘들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가 그만큼 옅은 덕에 멀리/높이뛰기의 기록 수립에는 도움이 됐다는 말도 있다.

과학 상식에 따르면, 대류권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고, 물이 끓는 온도도 차츰 내려가서 고지대에서 지은 밥은 설익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에베레스트 산 정상 정도 되는 곳에서 산소통 없이 돌아다니면, 발을 떼어 좀 걷기만 해도 100미터를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숨이 가빠 온다고 한다. 학창 시절 과학동아 잡지에서 읽은 내용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그 높은 산중턱에서 조개껍데기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니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다.

덧붙이자면, 현재 지구를 초월해 태양계의 행성들 내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진 산은, 화성에 있는 올림푸스 산. 백두산처럼 칼데라가 있는 화산 지형인지라, 과거에 화산이었던 걸로 추정된다.
화성에는 지구처럼 물이 없으니 해발 고도 같은 개념은 없고 행성의 평균 반지름이던가 하는 기준의 차이로 산의 높이를 재는데, 저 산의 높이는 25km에 달해서 에베레스트 산의 3배에 필적한다. 게다가 산 전체가 차지하는 면적은 한반도의 그것에 맞먹는다고. (단, 면적이 면적인 만큼, 경사는 굉장히 완만해서 별도의 등산 테크닉이 필요 없을 정도라 함.)

지구 같았으면 활발한 지질 활동으로 인해 아예 산맥이 생겼을 텐데, 그러지는 못하고 화성이기 때문에 그냥 크고 아름다운 단일 산이 생기는 것으로 그친 거라고들 한다. (게다가 화성 자체의 반지름이 지구의 절반밖에 안 된다는 걸 감안한다면 얼마나 큰가?)

지구에서 높은 곳을 살펴보았으니 다음으로는 낮은 곳 차례이다.
먼저 네덜란드가 있다. 국토의 상당수가 간척지이며, 해수면보다 수~십수 m가량 낮은 곳이 많다. 이런 곳에 쓰나미라도 몰아쳤다간 정말... jot망일 듯.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과거에 한메 타자 교사 게임의 배경으로 등장해서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졌다. 툼레이더 2에서 레벨 2의 배경이기도 하고.. 거기 묘사되어 있듯이 그곳은 도시 전체가 수로로 연결되어 있어 배로만 이동 가능하고 자동차가 못 다닌다. 말 그대로 물의 도시. 하지만 주기적으로 폭우의 피해를 심심찮게 당하며, 도시가 매년 진짜로 차츰 가라앉고 있어서 걱정이라 한다.

일본의 칸사이 국제 공항도 비슷한 사정. 토지 보상 문제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오지게 고생해서 바다 위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공항을 만들었는데... 지반이 약해서 섬이 예상보다 꽤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 일본 침몰이 아니라 칸사이 공항의 침몰. 이미 10미터가 넘게 가라앉았고 게다가 부위별로 가라앉는 속도가 다르기까지 하다. 덜덜;;; 이 때문에 이 공항은 건설 비용뿐만이 아니라 유지 보수 비용이 장난 아니게 들고 있으며, 세계에서 공항 이용료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공항의 순위권을 지키고 있다.

이런 인간이 만든 간척지 말고, 진짜 순수하게 자연적으로 지구 중심부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땅은 잘 알다시피 사해(dead sea) 일대이다. 그 해발 고도는 -421m이며, 인근의 여타 사막 지역과의 고도 차이는 7~800m나 된다. 해발보다 세계 무역 센터급 마천루의 높이만치 더 낮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우려나?
요르단 강에서 이곳으로 유입된 물은 증발만 할 뿐 밖으로 빠져나가질 못한다. 그렇잖아도 이곳은 엄청나게 더운 곳이다.

말이 나왔으니 사해 얘기를 좀 더 하자. 사해는 저런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무진장 짜다. 일반 바닷물의 소금 농도는 3.5% 남짓이어서 보통은 퍼센트(1/100)도 아닌 퍼밀(1/1000)로 측정하는 반면, 사해의 농도는 20%가 넘는다. 그것도 모자라서 녹지 못한 소금이 기둥을 이루고 있으며, 요즘 거기는 물의 유입량보다 증발량이 더 많아서 차츰 메마르고 있다고. 몇십 년 뒤엔 사해는 물이 다 증발하고 진짜 소금 뻘밭이 될지도 모른다.;;; ㅎㄷㄷㄷ;;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얼음이 아니라 소금 덩어리이다. -_-;;;

이곳에서 생명체 따윈 살지 못한다. 목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다간 염분으로 인한 탈수 때문에 더 목 말라지고 죽듯이, 민물고기 따위가 여기 들어갔다간 그냥 즉사한다...;;

소금으로 인해 워낙 밀도가 높기 때문에, 여러분도 이미 잘 알다시피, 사해에서는 수영을 전혀 안 해도 사람 정도는 물에 그냥 둥둥 뜬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예 물 위에서 서서 첨벙첨벙 걸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예수님의 기적은 신기하기 그지없다!)
사해 수면에 둥실둥실 떠서 한가롭게 책이나 신문을 읽는 아저씨 사진은 누구나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물에다 계란을 넣어서 가라앉혔는데, 소금을 집어넣자 그게 떠오르는 실험을 한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초딩~중딩 시절엔 소금물의 농도와 관련된 수학 방정식 문제들이 본인을 무척 괴롭혔었다..;;
사해의 물은 민물보다 그만큼 더 단단(?)하고 끈끈하기 때문에, 민물에다 하듯이 다이빙을 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한다.

다만, 사해는 소금뿐만이 아니라 온갖 지하자원의 보고이기도 해서 관광지 이상으로 그 가치가 높다. 인간의 활용 가능성에 관한 한 사해는 결코 죽은 바다가 아니라는 뜻.
통념과는 달리, 전세계에 유통되는 소금의 상당수는 암염으로부터 채취된 것이라고 한다. 염전 생산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염전을 아무 바닷가 지형에서나 조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열이 그렇게도 높은 물을 대량으로 끓이거나 증발시키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사해는 성경에도 응당 등장하며, salt sea라고 창세기부터 여호수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유황불 맞고 폭삭 망한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곳이 여기라고들 한다(소금기둥으로 변한 롯의 아내-_-). 그리고 민수기를 보면 모세에게 반역하다가 산 채로 땅속 지옥으로 떨어져 버린 고라의 얘기가 나오는데, 그들이 있던 곳이 고증상 마침 해발 고도가 가장 낮고, 고로 지옥과도 가장 가까이 있는 이곳 부근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 일대와, 세계의 지붕인 에베레스트 산 일대, 노아의 방주 떡밥이 나도는 아라랏 산 일대, 세계에서 가장 넓은 호수인 카스피 해 일대가 그런 것처럼 사해도 둘 이상의 나라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백두산 관광을 북한이 아닌 중국을 통해 가듯, 관광객들은 사해 관광을 요르단을 경유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익사할 위험이 없다고 자기도 모르게 건너편까지 멀리 수영을 즐기는 관광객이 있는가 본데, 이는 무단 월경으로 오인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우리나라 같은 반도 + 분단국 정서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사해 얘기가 길어지긴 했다만, 고산 지대만큼이나 이런 저지대에 생태학적으로 다른 side effect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 더워지긴 하겠지만, 어차피 해수면보다 1km가 넘게 심하게 낮은 육지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뭐..
태양계에서 압력과 온도의 극단적인 예는 물론 금성 표면이겠지만, 지표면에는 그런 곳이 없다. 그런 금성은 오히려 성층권 이상의 높은 곳의 대기 온도와 압력이 지구의 대류권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하니 흥미롭다.

Summary:

1. 아주 어렸을 때 본인, 지금의 철덕의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그래도 약간 지구과학덕 색깔을 좀 띤 적은 있었다. -_-;;
2. 홍해는 영어로 Red Sea이지만, 홍차는 red tea가 아니다. 어??
3. 민물고기를 직류 전동차, 바닷물고기를 교류 전동차에다 비유한 건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참 적절한 비유 같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은 바로 절연 구간(dead section)!

Posted by 사무엘

2011/07/04 08:00 2011/07/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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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윈도우 플랫폼용 한글 입력기의 개발자이다. 그런데 진짜 옛날 도스 시절, 텍스트 모드가 따로 있던 시절에 한글 입출력 바이오스 같은 건 어떻게 구현했는지가 무진장 궁금해질 때가 있다.
출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입력은 어떻게 구현했을까? 게다가 한글도 모자라서 한자 입력은?
그리고 한글 정도면 양반이지 도스 시절에 일본은 사정이 어땠을까? 한자 변환까지 포함한 일본어 입력이 가능했을까? -_-;;

IBM 호환 PC는 그렇게 그래픽에 최적화돼 있지도 않던 놈이었고.. 영어 아스키 코드밖에 모르는 이런 기계에다가 없는 문자를 찍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오버헤드가 필요했다.

요즘은 잘 알다시피 사운드 카드, 랜 카드 따위는 마더보드에 통합되어 버린 지가 오래이고 GPU, PPU 같은 거나 별도로 부착하는 CPU 애드온이다. (그리고 이마저도 요즘은 본격 통합 기세-_-)
허나 한 25~30년 전에는 한글 카드라는 별도의 하드웨어가 있을 정도였다. '한글 도깨비'. 그때는 그만큼 컴퓨터의 성능이 열악했다.

한글 입출력 바이오스를 만들려면, 일단 바이오스의 글꼴을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하드웨어에 정통해야 했고 메모리 사용량이든 계산량이든 극도의 최적화 작업이 필수였다. 한글 모드에서는 텍스트의 스크롤 속도가 한 2, 30% 정도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 -_-;; 더구나 기본 메모리 640KB는 그야말로 1K라도 아껴야 하는 귀중한 영역이기 때문에, 한자 글꼴 같은 건 XMS/EMS 같은 확장 메모리에다 저장하는 테크닉도 필수였다.

VGA의 기본 텍스트 모드는 잘 알다시피 가로 80글자, 세로 25글자이다. 그런데 아주 신기하게도 한 글자의 크기는 너무나 컴퓨터스럽게 잘 떨어지는 8*16이 아니라, 9*16이다. 그리고 화면 해상도는 640*400도, 640*480도 아니요 720*400이다. 정작 mode 12H 같은 그래픽 모드 중에는 640을 넘는 해상도가 없던 시절이었는데 왜 텍스트 모드만 한 글자의 폭이 8이 아닌 9였는지는 모르겠다.
한글 바이오스들은 16*16 크기의 한글· 한자 글꼴을 사용했으며 640*400 해상도의 텍스트 모드에서 동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때 VGA 텍스트 모드에는 화면 전체의 테두리 색이라는 게 있었다! 베이직에서 COLOR문은 보통 글자색과 배경색을 의미하는 A,B만이 쓰이는데, 셋째 인자도 있어서 이걸 지정하면 화면의 테두리에도 색깔을 줄 수 있었다. 이런 기능을 누가 썼고 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DosBOX나 VMware 같은 에뮬레이터들도 지원 안 하고 있는 기능이다.
그 테두리가 차지하는 픽셀 수는 얼마나 됐을까? 이것까지 감안한 화면 해상도는 얼마였을지를 생각하면 옛날에 비디오와 관련된 하드웨어 제어는 심오함 그 자체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텍스트 모드의 바이오스 글꼴을 다루는 테크닉을 구사한 프로그램은 흔치 않았다. 도스용 노턴 유틸리티(Norton Utility)는 이걸 환상적으로 조작해서 텍스트 모드에서 준 GUI 수준의 비주얼을 만들고 심지어 그래픽 모양의 마우스 포인터까지 구현하는 용자짓을 했다. 그리고 Screen Thief라는 캡처 프로그램은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텍스트 모드를 색깔과 바이오스 글꼴까지 감안한 실제 그래픽 화면 픽셀 그대로 캡처하는 기능이 있었다.
뭐, 한글 바이오스가 구동된 상태에서 노턴 유틸리티 같은 프로그램을 GUI 모드로 동시에 실행했다간 '영 좋지 않은 곳에 하드웨어 접근이 일어나서' 대략 불상사가 발생했겠지만 말이다. "내 컴이 다운이라니!!"

그때는 마우스의 존재 여부를 알아오는 테크닉만큼이나 한글 바이오스의 존재 여부를 알아오는 테크닉도 있었고
이는 텍스트 모드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이 선문자를 깨지지 않고 맞게 출력하기 위해서 필수였다. 도스용 V3이나 MDIR 같은 프로그램들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한글 모드에서는 아스키 번호 1~31번 제어 문자도 원래 얼굴 모양 등 각종 도형이던 게, 1바이트 선문자로 바뀌었던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글 바이오스는 바이오스의 글자 크기가 8*16이기만 하면, 텍스트가 아닌 그래픽 모드에서도 물론 동작했다.
하지만 그래픽 모드에서까지 텍스트를 찍는 프로그램은 전혀에 가깝게 없을 테니 이건 그리 의미는 없는 기능이었다.
그래픽 모드에서 동작하던 프로그램이 crash가 발생하는 바람에 그 상태 그대로 도스로 빠져나가서 도스 프롬프트가 찍힌 게 아닌 이상 말이다.
텍스트 모드에서는 cursor가 아주 빠르게 깜빡거렸지만 그래픽 모드에서는 cursor가 깜빡이지 않는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옛날에 접했던 도스용 한글 바이오스들을 추억 차원에서 몇 개 예나 좀 들어 보자.

1. 본인이 난생 처음으로 접했던 IBM 호환 PC는 대우 전자에 개발한 286 AT였는데, config.sys의 DEVICE 문을 통해 구동하는 자체(대우에서) 개발 소프트웨어 기반 한글 바이오스가 들어있었다. 즉, 일단 load된 후엔 메모리에서 제거하는 방법이 없어서 불편했다. (그 당시 sys 파일은 com 실행 파일과 기술적으로 비슷한 구조가 아니었겠나 싶다.)
Alt+한영을 누르면 한글 바이오스 메뉴가 떠서 영문 전용/조합형/완성형 같은 모드를 바꿀 수 있었고, Alt+한자를 누르면 일시적으로 영문 전용 모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대우 전자에서 개발한 만큼, 조합형과 완성형뿐만이 아니라 당시 악명 높던 DH 완성형도 지원했는데, 얘는 알파벳 소문자+대문자를 묶어서 한글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한글 코드의 표준화가 일단락되면서 깔끔하게 묻혀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텍스트 + 한글 모드일 때는 화면의 맨 아래에 자그마하게 현재 한글/영문 모드인지, 완성형인지 조합형인지 같은 상태가 파란 배경의 줄에다 떴다. (그래픽 모드일 때는 그런 거 없음) 텍스트 모드에서 그런 걸 어떻게 구현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신기하기 그지없다.
물론 아까 말했던 VGA 테두리도 그보다 더 아래에 표시되었다.

한글을 입력하다가 bksp를 누르면 그냥 바이트 단위로 지워졌다. 즉, '한'을 입력하다가 bksp를 누르면 '하'가 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조합이 끝나면서 KS 완성형 기준 '한'을 구성하는 %C7%D1 중 %C7만 남아서 깨진 문자가 보였다.
우연히 한글 초성만 입력해 놓고 한자 키를 누르니까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온갖 특수문자들이 펼쳐져서 이것도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2. 한글 MS-DOS를 판매한 MS도 응당 자체 한글 바이오스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생각해도 참 대단한 건, MS에서 만든 한글 제품은 텍스트 모드에서도 깨진 문자를 보여주는 법이 없었다.
조합 중인 문자든 조합이 끝난 문자든, 한글은 알아서 자동으로 2바이트씩 한꺼번에 지워졌다. 조합 중인 글자를 조합의 역순으로 차곡차곡 '한' -> '하' 식으로 지워 주기에는 도스 환경이 너무 열악했고, MS가 개발한 한글 바이오스는 그냥 한글을 한꺼번에 지웠다.

GWBASIC, QBASIC 같은 프로그램은 한글판이 따로 있었는데, 한글 바이오스를 구동하지 않고 한글판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글자만 깨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컴퓨터가 다운됐었다!
그러나 텍스트 모드에서 GUI를 구현한 한글판 프로그램들을 잘 살펴보면, 메뉴 같은 게 배경에 있는 한글의 2바이트를 반으로 가르게 될 경우 나머지 1바이트도 알아서 지워서 표시해 줬다. 어떤 경우에도 깨진 한글의 잔해 바이트가 표시되는 일이 없었다.

아마 한글 바이오스뿐만이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 차원에서 무슨 특수한 처리를 한 것 같긴 한데, 그 대신 당시 MS에서 만든 한글판 프로그램들은 한글 바이오스가 없으면 동작하지 않고, 속도도 느리고 이래저래 파워 사용자들에게서 욕 많이 먹었다. 특히 QuickBasic 한글판은 라이브러리 파일이 영문판과 호환되지 않는 등 최악의 제품이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현재 '마소바탕'이라고 하여 MS 한글 바이오스가 내장한 조합형 글꼴을 그대로 지원하고 있다. 조합 구조가 전통적인 8*4*4벌 도깨비 글꼴과는 다른데 이런 것까지 복원해 냈다.

3. 끝으로 태백한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1994~95년까지 32비트 코드로까지 비교적 오래 개발되었고, 도깨비 글꼴을 그대로 지원한다는 점이 무척 좋았다. 얘는 아마 조합 중인 한글을 음소 단위로 지우는 기능이 있었지 싶다.

도스도 모자라서 영문 윈도우 3.x에서 한글을 구현해 냈다는 한메한글 같은 프로그램은 운영체제의 무슨 계층에서 훅킹을 해서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걸까? 파워 사용자 중에는 영문 윈도우+한메한글이 오히려 한글 윈도우보다 더 안정적이고 좋았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32비트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한글 IME는 DLL이 아닌 EXE이긴 했는데, 그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메카니즘을 썼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 시절에는 한 프로세스가 시스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쉬웠을 테니까 그 원리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건 없었을 것이다.

이것저것 잡설이 길어졌는데, 추억에 공감하시는 분이 있다면 용자.

한글 윈도우 3.1은 실행 전에 언제나 아래와 같은 경고문이 떴었다.
보다시피 MS는 분명히 Hangeul이라는 명칭을 썼었다. 허나 지금 대세는 Hangul이 압도적으로 굳어져 버린 듯.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6.0부터는 표기를 Hangul로 바꿨다.

Warning: For correct execution of DOS Box in Hangeul Windows 3.1,
You should use Hangeul Windows 3.1 standard HBIOS.

Warning: Your DOS is not compatible with Hangeul MS-DOS. You may have
some problems when you use Hangeul Windows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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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1/06/30 08:47 2011/06/3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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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국적인 대한민국의 건국 정체성에 대해서는 잘 알다시피 두 개의 극단적인 평이 있다.
엄친아 이 승만의 영도력으로 그 어렵고 열악하고 위태롭던 여건하에서(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무슨 권리가 있는 전승국도 아니었다!) 중국도, 소련도 아닌 미국을 끌어들여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한반도에다 기적적으로 세웠으며, 더구나 초대 대통령이 크리스천이었던 덕분에 제헌 국회 때 감사 기도까지 올렸더라...;; 이건 밝은 면만 본 것이다.

이 국가의 사회 시스템에 대해 굉장한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굳이 여기서 또 설명하지는 않겠다. 단적인 예로 인터넷 상에 이 승만을 칭송하는 글의 양하고, 악담과 저주를 퍼붓는 글의 양의 비율이 어떻게 되던가? -_-

그런 것처럼, 미국의 태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건국 이념이 담긴 메이플라워 서약에서부터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이 들어가고 지폐에 “In God We Trust”가 들어간 기독교 국가라고 자랑스러워하는 기독빠가 있는가 하면,
사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포함한 미국의 건국 공신들의 상당수는 그저 이신론(deism)을 믿었을 뿐이며 성경의 하나님을 믿은 게 아니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심지어 그들이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주장까지 있다..;;
또한, 과거의 흑인 노예라든가 인디언들 학대 문제 같은 흑역사를 들추면서 미국을 까는 사람도 있다.

뭐, 미국이 아무리 기독교 냄새가 짙다 해도 미국의 국교가 기독교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기라도 한 건 아니며, 독일처럼 목사가 아예 공무원이기라도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시간이 갈수록 기독교 냄새가 옅어지고 있고, 이를 미국 내부의 크리스천들은 배도와 타락-_-이라고 표현한다.

본인은 개인 신념상의 친미와 반미 중 하나만 고르라면 명백하게 친미이다.-_-;;;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오지랖을 떨면서 잘한 것도 있고 병크를 저지른 것도 다 있겠지만, 미국이 지금까지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에 기여하고 유익을 끼친 것이, 잘못한 것을 월등히 압도한다고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한다. 소련·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가 세계 패권 국가였다고 생각해 봐라. 미국보다 훨씬 더 나쁜 짓 많이 했겠지..
특히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한민국 같은 나라가 반미 할 자격이라고는 정말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그나마 국민 의식이 선진적인 덕분에, 저렇게 많은 자유가 있으면서도 나라가 그 정도나마 질서가 유지되고 잘 돌아간다. 부자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보다 낫고, 기부나 상속에 대한 문화도 더 낫다. 국민 대다수가 그냥 시골에서 자영업이나 농업에만 종사해도 집과 차 장만하고 심지어 호신용 총까지 장만해서 잘 산다. 그러나 소수 똘똘이 엘리트들은 그야말로 세계를 호령한다.

미국은 9· 11 테러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역사상 자국 영토가 적의 침략을 직접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한반도는 역사상 침략을 몇 번 받았다더라? -_-) 미국의 현충일인 재향 군인의 날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 나가서 남을 위해 싸운 자국 군인을 기리는 날이다.
이 뿐이던가? 미국은 건국 당시부터, 선거로 뽑힌 국가 원수가 지정된 임기 동안만 나라를 다스리는 공화정 대통령제를 시행했다. 200여 년의 역사 동안 비록 대통령의 암살은 있었을지언정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적이 없고 정권이 비교적 평화롭게 잘 교체되어 온 것도 한국의 현대사와 비교하면 정말 대단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그 미국의 주요 전직 대통령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봤다. 미국 시민권 득템 시험을 통과하려면 이런 거 달달 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 스티브 유 씨도 공부 열심히 했을 것이고. -_-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본인은 “기독교인은 무조건 기독교인 대통령을 지지해야 한다” 주의가 절대 아니다. 오해 없기 바란다. 글 중에 나오는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대체로 이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문장을 “김 용묵도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이 미국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로 확대 해석해서 받아들이지도 말기 바란다.

조지 워싱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그 당시 국가 원수로서의 주변의 비교 대상이 왕밖에 없다 보니, 아직은 공식 석상에서 자신을 3인칭 '짐'-_-이라고 부르고 왕처럼 행세한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훌륭한 본도 충분히 보였다.
그는 미국의 당시 국력에 비해서 개인적으로 이미 굉장한 부자였기 때문에, 연봉을 안 받고(요즘도 뭐 연봉 1$ CEO들이 있으니까^^) 대통령 직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기 이후에는 가난한 사람 중에도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선례를 남기려고 연봉을 받았다. 또한 결정적으로 그는, 후세에 독재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며 2선까지만 한 후 깨끗이 물러났다.(물론, 이 양반은 어차피 권좌에 안 있어도 워낙 잘 살았고 아쉬울 게 없던 처지이기도 했지만. ㄲㄲ)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도 애초에 부카니스탄 같은 막장 정부를 수립한 게 아니었던 이상, 딱 3선까지만 하고 스스로 물러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주위의 아부꾼들이 자꾸 부추기니까, 진짜 국민이 원하는 줄 알고, 고스톱으로 치면 스톱을 안 하고 쓰리고 포고 하다 피박 나서 딥다 바가지 썼다. -_-;;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이 단일 국가라기보다는 아직 array/set of States에 가깝고(united가 아니라!) 껀수만 생기면 얼마든지 서로 찢어질 수도 있던 시절... 남북 전쟁이라는 비극까지 벌어지던 시절에 미국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연합한 국가로서의 미국의 근간을 세운 위대한 지도자이다.
링컨 하면 노예 해방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그렇다고 해서 흑인을 백인과 완전히 동등하게 대우하고 동등한 권리를 줘야 한다고까지 주장한 박애주의자는 물론 아니었다. 그때 아직 시대가 어느 시대였는데..
또한,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링컨> 같은 기독교 서적까지 있긴 하지만, 이 사람은 평생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으며, 신앙면에서 무척 회의적으로 지냈다는 설도 전해진다. 그래서 골수 남부 백인 출신인 피터 럭크만 같은 성경학자는, 링컨 대통령이 사실 구원 받았다는 증거조차도 없다고까지 그를 깐다.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끼리라 해도 정치 성향이 일치할 수는 없는 모양.

시어도어 루스벨트: 20세기 초에 상당히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발휘한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가쯔라-태프트 밀약을 승인한 정권의 수뇌였으니 감정이 좋을 수는 없을 듯. “미국이 보기에도 조선이라는 듣보잡 나라는 식민지로 좀 먹혀도 이상할 게 없는 미개한 나라인 반면, 러일 전쟁에서 당당히 이긴 너희 일본은 본격 선진국 강대국 인증. 일본이 조선을 갖도록 하고, 나 미국은 필리핀을 사이좋게 나눠 갖겠다.”
그 당시는 이런 합의가 힘의 균형이요 세계 평화와 국제 사회의 질서로 간주되었으며, 이런 거 중재를 잘 한 게 아예 노벨 평화상감이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샤바샤바가 몰래 되고 나니까, 이 승만 같은 사람이 나중에 뒤늦게 미국을 상대로 아무리 조선 독립을 호소하며 외교 로비를 해도, 얘기는 이미 다 끝났으니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

우드로 윌슨: 민족 자결주의를 주장하고 국제 연맹을 창설한 저명한 대학 교수 겸 정치인.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인 이 승만에게 박사 학위를 준 지도 교수이다. 하지만 그의 지론은 정세상 조선의 독립에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이에 낙담한 이 승만이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아무리 배워 봤자 결국 세상은 법과 원칙이 아니라 강대국 꼴리는 대로만 돌아가니 아무짝에도 쓸모 없군요. 내가 낸 등록금 다시 돌려 주세요”라는 뼈 있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윌슨은 미국에서, 이 승만은 한국에서 각각 현재까지, 박사 학위를 소유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명예 박사 말고) 쉽게 말해 최고 고학력자라는 뜻.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 정책을 밀어붙인 걸로 유명한 사람이고,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12년이나 대통령을 한 합법적 독재자이다. 그때까지 미국 헌법에 중임 제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긴 했지만, 통상 대통령은 많아야 2선까지만 하고 제 발로 물러났었는데, 이 사람은 덥석 4선까지 해 버린 것. 그래서 대공황과 훗날 2차 세계 대전의 진주만 폭격 사이엔 기간이 꽤 긴 것 같은데, 이례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은 동일 인물인 것이다.
그는 소아마비를 앓아서 휠체어를 탄 것으로 유명하다. 종전을 앞둔 1945년에 돌연사했다. (뇌출혈로 인해 왕하 4:19의 장면처럼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서거 후에 대통령의 중임 제한이 헌법으로 추가로 명시되었다.

해리 S. 트루먼: 부통령을 하다가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인해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양반. 대통령이 되자마자 194~50년대에 세계의 역사를 바꾸고 한국의 운명도 바꾸는 중요한 결정을 여러 차례 내렸다. 먼저 일본에다 원자폭탄의 투하를 승인함으로써 본격 2차 세계대전 종결자로 등극하였으며, 6· 25 때는 반대로 맥아더 장군의 과격한 행동거지를 견제하고 오히려 그를 해임하기도 했다.
이것 때문에 맥아더를 오로지 민족의 은인으로만 아는 반공 진영에서는 트루먼을 싫어하는 편이나, 맥아더도 당시에 하극상을 벌이면서 너무 무모한 작전을 강행하기도 했었다.

리처드 닉슨: 풍채 좋고 업적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양반이다만, 워터게이트 사건 하나로 이미지 다 말아먹었다. 결국 탄핵 당하기 직전에 사임했으며,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임기를 다 못 채우고 굴욕적으로 자방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았다. (본진 털리고 엘리 당하기 직전에 겨우 gg 치고 먼저 나갔다 -_-)

존 F. 케네디: 아주 유명한 대통령. 40대 초반의 상당히 젊은 대통령이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가톨릭 신자였다. 케네디의 집안은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 배출'을 위해서 자녀들끼리 극성스러운 경쟁과 엄친아 스펙 쌓기 스파르타식 교육이 행해졌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는 교회 헌법상 국적이 둘이다(다른 하나는 바티칸-_-). 이 때문에 케네디는 대선 후보 시절에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만약 미국의 국익과 바티칸 시국의 국익이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같은 낚시성 질문까지 주변으로부터 받았다고.
종교가 천주교라는 점, 취임 선서 때 무엄하게도(?) 성경에 손을 얹지 않은 점, 게다가 공립 학교에 비치돼 있던 십계명을 철거하고 성경 공부· 기도 시간을 없앤 점들 때문에 미국 내부의 크리스천들로부터는 나라의 기강을 싹 말아먹었다고 정말 축시의 참배급으로 가루가 되도록 폭풍처럼 까이고 있다.

잘 알다시피 케네디는 상당히 괴이하게 암살당했다. 그런데 그 암살범도 이내 암살을 당해 버려서 케네디의 죽음은 각종 음모론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무명 병사의 군대 의문사도 아니고 한 대통령의 죽음에 왜 이렇게 의혹이 많나? ㄲㄲ

로널드 레이건: Reagan이라고 적혀 있어서 '리건'이라고 낚이기 쉬운데, great처럼 이때 ea는 '레이건'이라고 발음된다. ㄲㄲ 1980년대, 우리나라의 5공 시절을 풍미했던 대통령으로, 70대의 상당한 고령으로 대통령에 취임했고 퇴임 후에도 90세가 넘게 장수했다.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우리가 처한 온갖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저 작은 책 안에 다 들어있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조지 부시: 이 사람과 관련해서는 걸프 전쟁밖에 생각 안 난다. 이 사람 자신은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출신.
듣자 하니 대선 시절엔 경쟁 후보를 상대로 사형 제도 드립을 시전하여 지지율을 뺏어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세상에, 자기 가족을 죽인 살인범에게도 사형 집행을 반대하겠다니, 이런 반인륜적인 불온사상의 소유자가 어찌 대통령이 될 수 있겠습니까 ㄲㄲㄲㄲㄲ” 나도 크리스천으로서 사형 제도를 적극 지지한다만 저건 말장난스럽고 좀 유치하다.. -_-;;

빌 클린턴: 스캔들 하나 때문에 탄핵 위기까지 갔던 양반. 닉슨과 마찬가지로 스캔들 자체보다도 그걸 무마하려고 거짓말을 한 게 그의 입지를 더욱 위협했었다. 문란한 사생활에다가 예수회 소속의 대학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미국의 보수-_- 기독교 진영에서는 그를 무척 싫어했지만, 대통령으로서 행적에 대한 세속 평가는 좋은 편이다.

조지 W. 부시: 젊었을 때 방황도 하고 좀 '놀기도' 했다가 나중에 기독교 신앙으로 교화되고 정신을 차린 케이스이며, 예일대도 사실 가문빨로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정말 친절하고 온화하며, 클린턴과는 달리 사생활도 깨끗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치인으로서는 좀 띨띨.. -_-;; 이 양반에 대해서 뭐 전쟁광이네 어쩌네 하는 모함에는 난 별 관심이 없다만, 진짜 어눌했던 건 사실이다.
그나마 신앙빨 하나 내세워서 재선까지도 아슬아슬하게 성공함. 부자가 나란히 대통령이 된 사례로 미국 역사상 둘째라고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사람들 말고도 미국 역사를 공부해 보면 재미있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성경의 열왕기처럼 누가 왕이 돼서 죽을 때까지 실컷 나라를 통치하다가 또 자기 아들에게 왕위 물려주는 패턴이 아니라,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해서 지정된 임기 동안만 통치를 하게 하는 나라의 내역은 색다르지 않을 수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24 08:45 2011/06/2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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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우 교수 (언어학자)

김 진우 교수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한 언어학자로, 특히 음운론 분야에서 세계구급 권위자이다. 한국에서는 <언어>의 저자라고 말하면 그쪽 분야 전공자들은 알아듣지 싶다.
이분은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60년대 초에 미국에 건너가서 한국인 최초로 UCLA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 1964년 석사, 1966년 박사......;;; 뭐야 이거 무서워..;1)

그리고 1967년엔 곧장 일리노이 주립 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여 미국에서 언어학을 가르쳤으며, 아예 언어학과 학과장까지 역임했다고 한다. 1982년엔 발행처는 모르겠지만 무슨 미국 인명 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고.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뭘 잘해야지 저렇게 될 수 있는지는 내게 묻지 말라..ㄷㄷㄷ;;

교수가 된 지 40년도 더 지난 지금 이분은 학계에서 가히 만렙 중의 만렙을 찍었다. 일리노이 대학 명예 교수에, 학부 모교인 연세대로부터도 “국내에서도 후학 좀 양성해 주삼” 거듭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어 2007년부터 석좌 교수로 부임. 몸이 둘일 수가 없는 게 아쉬울 뿐이지 한국과 미국 어디에서도 와 달라는 곳이 쇄도하는 저명한 석학이 되었다.

서 남표 카이스트 총장과는 한 살 차이. 나이도 비슷하고 미국 유학 가서 대학 학과장을 역임한 교수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_=;;

본인은 이번 학기에 국어 음운론 연구를 들었는데 교수님이 왕년에 저 정도로 괴물이셨지는 미처 몰랐다..;;
내가 언어학 쪽으로 뭘 좀 알면 저런 유명한 교수님에게서 많은 걸 얻고 배워 갈 수 있을 텐데, 나의 그릇 크기가 못 따라간다. -_-;;
지금까지 내가 낸 과제물들을 보고 얼마나 민망해하셨을까? ㅠㅠㅠㅠㅠㅠㅠ

회식 자리에서 잠시 얘기를 나눠 본 바로는 김 진우 교수님은,
제임스 맥콜리 교수(시카고 대학 언어학)와 비슷한 연배이기도 하고, 그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맥콜리 교수는 머리가 워낙 비상해서 언어학을 재미로 즐길 줄 아는 양반이었음”이라고 회고하심. 흠좀..;;;
그리고 본인에게 덧붙이기를 “오, 그나저나 자네가 맥콜리 교수를 어떻게 아나?” 이러더이다.

워싱턴 대학의 故 서 두수 교수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잘은 모르지만 미국에서 국어학· 한국학 가르치는 사람이다 보니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 봤다고 말씀하셨다. 교수 세계는 엄청나게 좁고 좁은 바닥이다 보니 원래 서로 다 안다. ㅡ,.ㅡ;; 그분의 아드님이 그 이름도 유명한 카이스트 서 총장이라고 내가 얘기하자 그건 처음 들었다며 놀라셨다.

첫 수업 시간에 언어 현상에 대한 관찰, 가설 같은 걸 강조하실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분은 사실 이공계 마인드도 투철해 보였다. 수학· 과학 같은 과목도, 좋고 싫고를 떠나서 학교 공부는 시험만 쳤다 하면 다 100점씩 맞았다네.. ㅠㅠ

의대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외과 치료가 적성에 안 맞아서 진로를 바꾸셨다고 한다. 이공계 대학원을 갔으면 자기도 서 남표 같은 거창한 사람이 됐을 거라고 웃으셨지만... 선생님, 선생님은 이미 언어학에서도 충분히 넘사벽급 만렙을 찍어 계십니다.
하긴, 언어학 자체가 추상적인 계층으로 들어가면 다 수학, 논리학인 것도 사실이고.

역시 교수 될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보는 건가 보다. ㅠㅠㅠ
허나, 이분의 고학 시절 회고록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나는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억압적인 환경속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일제 강점기, 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등 교육 환경도 열악했다.
그러나 나는 가난이 무지의 핑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오늘의 풍요로운 환경을 활용하지 않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는 서글프고 안타깝다.
왜냐하면 나는 최상의 조건 속에서 단지 평범함만을 좇는다면 그건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분, 학비 벌려고 백인들에게서 멸시 받으면서 접시 닦던 시절에는 '내가 미국까지 가서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그냥 돌아가서 한국에서 고등학교 영어 교사만 해도 충분한데' 이런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고.2)
그때 학업을 때려치웠으면 오늘의 김 진우 교수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 남표 총장도 미국의 고등학교와 MIT 학부 시절에 자기 말마따나 호스로 물 쏟아붓듯이 밀려드는 학교 수업 물량 공세에 미칠 지경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사람도 고학을 했으며, 그 당시엔 요즘 같은 자살 따윈 생각할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댄다.

이런 걸 생각하면 옛날과 지금의 환경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교통과 통신 기술의 발달, 정보 접근성의 평등, 물질적인 풍요 면에서는 과거보다 확실히, 월등히 더 좋아졌다. 이는 본인의 세대가 우리 부모 세대에 고마워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 시스템이 갖춰진 대신에 신세대들이 치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대가도 있다.
과연 요즘 대학은 옛날 정도의 고학으로 학비 조달이 가능할까?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가능성이 옛날과 지금을 비교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미국은 자녀 나이가 18세만 되면 부모가 경제 지원을 딱 끊어 버리는데, 한국은 무슨 부모가 결혼한 자녀의 집까지 마련해 줘야 하나? 나약한 것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과연 요즘 월급 모아서 집 사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어느 쪽 말도 일리가 있는 면도 있고, 어느 쪽 말도 좀 어폐가 섞인 비약도 있어 보인다. 그 중 어느 게 더 설득력이 있는지는 내 능력으로는 더 결론을 못 내리겠다.
본인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야 고생을 모르고 편하게 자라고 나약한 면모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기성세대가 까는 것만치 그렇게까지 개념 없고 구제불능도 분명 아니다. 그들도 다 자기 살 길 찾아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며, 정말 어지간히 어려울 때 자살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사회 구조적으로 답이 안 보이니까.. -_-;;

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 구조에 대한 괜한 피해· 비관 의식을 불식시키려면 이런 사회 구조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도 한번쯤 필요한 것 같다.

김 진우 교수 얘기하다가 갑자기 얘기가 옆길로 많이 샜네..;;
아무튼 저분은 천재에다 노력형... 뭐 더 말이 필요없는 타입 되시겠다. 그저 존경스러울 뿐.
나도 좀 불안한 진로를 가고 있고 학교와 회사 같이 하느라 힘들긴 하지만, 내가 정말로 도저히 못 견딜 정도로 힘든 상태인지는 다시 생각을 해 봐야겠다.


Notes:
1) 재미있게도, 분야만 다를 뿐 출신 학교가 거의 같은 동명이인이 존재한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UCLA에서 경영학 석사, 그리고 나중에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가 된 김 진우 교수도 있다. 정말 헷갈리기 쉽겠다. -_-; 물론 경영학과 교수는 언어학 김 진우 교수보다는 훨씬 젊은 분이다.

2) 여담으로, 유학을 갔다 온 건 아니지만 카이스트에도 좀 비슷한 위상으로 신분을 바꾼 분이 계신다. 기초 필수 영어 과목과 교양 영문학을 가르치는 인문 사회 과학부의 이 수현 교수인데, 무려 15년 가까이나 중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홀연히 부산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영문과 박사 학위를 받고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 지금은 역시 만렙 찍은 후 이미 명예교수가 되셨다. 그 나이에 교사에서 교수로 업글한다고 해서 돈· 시간 면에서는 그리 메리트가 없을 텐데 정말 공부 그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17 19:18 2011/06/1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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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삼성맨들은 다루고 지내는지 모르겠다만.. 우리나라에는 아래아한글과 MS 워드 다음으로 훈민정음이라는 워드 프로세서가 있다.

아래아한글이 대한민국의 도스용 워드 프로세서 시장을 석권하기 전,
도스 시절엔 보석글, 하나-_-, 신사임당, 심지어 21세기 같은 전설의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이런 건 컴퓨터 old timer라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허나 Windows로 가면 어떨까? 윈도우용 아래아한글이 출시되기 전인 1990년대 초중반엔 아리랑, 글사랑, 파피루스 등 다양한 윈도우 3.x용 국산 워드 프로세서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삼성 전자에서 개발한 훈민정음도 그 중 하나였다.

아리랑: IT 벤처 핸디소프트에서 개발. 사장이 아마 카이스트 출신이었을 거다.
글사랑: (김사랑이 아님 ㄲㄲㄲ) 글꼴 개발로 유명한 휴먼컴퓨터에서 개발. 문방사우라는 DTP 프로그램을 개발한 기술도 있는 곳이니까..
파피루스: 한메 타자 교사와 한메 한글을 만든 한메소프트에서 개발. 나름 한글 처리 쪽 기술이 있는 업체이다.
훈민정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야, 우리나라에 그런 제품도 있었어요?” / “네, 있었습니다.”
물론 얘네들은 윈도우 95와 윈도우용 아래아한글 3.0의 등장을 전후하여 제대로 망하고 진정한 흑역사로 전락했다.. -_-;; 훈민정음을 제외하면 32비트 버전조차 개발되지 못했지 싶다.

심지어 금성(현 LG) 전자도 '윈워드'라는 워드 프로세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는 걸 아시는가? WinWord.. MS 워드의 실행 파일 이름과 동일하다. 하긴, 동일 회사에서 도스용으로 개발한 '하나 워드 프로세서'는, 학교와 관공서에서 정식 채택된 덕분에, 후진 기능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살아남았다만, 윈워드는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특히 경쟁사의 제품인 훈민정음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_-;;

자, 그럼 훈민정음 워드 프로세서 얘기를 더 하겠다.
얘는 나름 1992년부터 개발돼 왔고, 윈도우용 아래아한글 3.0이 나올 무렵엔 4.0대 버전으로 올라갔다.
본인이 가장 가깝게 접한 버전은 바로 4.5이다.
삼성에서 후원이라도 했는지, 1996년도 PC 경진대회 지역(경상북도) 예선 참가자들에게 훈민정음 패키지가 확장팩(각종 글꼴, 클립아트들)까지 통째로 경품 차원에서 배포되었기 때문이다. 득템~

이때는 잘 알다시피 시기적으로 윈도우 95 과도기였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16비트용과 32비트용으로 따로 배포되었다. 기능은 거의 동일하지만 16비트용은 4.5 버전이었고, 32비트용은 95라고 불렸다.
아래아한글은 국내 최초+유일의 Win32s 기반 32비트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고 MS Word는 연결 고리 없이 95부터 곧바로 32비트로 넘어가 버렸다면, 훈민정음은 나름 16비트와 32비트를 따로 만든 셈. 한 소스에서 별 잡음 없이 두 에디션을 만들 정도로 프로그램을 잘 짰던가 보다.

여담이지만, MS가 역사상 동일 버전의 제품을 16비트와 32비트로 따로 만든 것은 비주얼 베이직 4가 유일했지 싶다. 이는 이 자리에서 자세한 내역을 다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비주얼 베이직의 제품 성격의 특이성 때문으로 추정된다. 비주얼 C++은 그냥 32비트용 4.0과 16비트용 1.52를 묶어서 배포했으니 동일 버전 제품은 아니니까 말이다.
또 덧붙이자면, MS는 Win32s를 만들어 놓고는 정작 자신들은 Win32s 기반 프로그램을 (전혀) 만들지 않았었다.
MS에서 개발한 프로그램 중에 MFC 사용하는 건 극소수인 것과 비슷한 맥락. -_-;;

지속적인 버전업이 되지 못하고 곧 망해 버린 여타 마이너 국산 워드 프로세서들과는 달리, 훈민정음은 삼성 기반이라는 탄탄한 돈줄 덕분에, 상업성을 완전히 상실한 후에도 꽤 오래 살아남았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이 건희 회장이 훈민정음에 애착을 꽤 두고 있었다고 한다.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자기 회사가 한글 처리 기술 및 워드 프로세서 개발 기술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특별한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는데.

IMF 시절, 아래아한글이 MS에게 잡아먹혀서 ㅈ망할 뻔 했을 때(아래아한글 개발 중단 및 소스 인계-_-를 조건으로 MS로부터 자금 투자), 평소 한컴 및 아래아한글의 행보를 비판해 온 사람들은 차라리 이 기회에 아래아한글이 완전히 망해 버리고 훈민정음이 1인자로 등극했어야 했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동작 방식이 아래아한글과는 완전히 다른 워드 프로세서에 국민들이 과연 그렇게 쉽게 호응과 적응을 할 수 있었을까? -_-

훈민정음은 1990년대 말까지 정음 오피스, 어린이 훈민정음, 남북 통일 워드 프로세서 등 여러 형태가 존재하다가 지금은 스마트폰 앱으로도 나오고 또 정음 Global 같은 솔루션으로도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삼성 컴퓨터에 번들로 공급되지만 패키지 소프트웨어로도 아직까지 나오는 것 같다. 워드 프로세서의 핵심 개발 인력이 넥스소프트로 독립해 나가고, 그 중 넥셀은 지금 완전히 한컴으로 넘어갔을 텐데 아직까지 삼성 내부에 개발팀이 있기라도 한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15 19:10 2011/06/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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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행적

대부분의 네티즌들과는 달리, 미국의 보수 우익 크리스천들은 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굉장히 싫어한다.
그 이유인즉슨, '겉으로는 크리스천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신은 골수 이슬람이다', '복지와 분배라는 허울 좋은 명분 하에 국고를 펑펑 축내고 있다', '미국을 점점 친아랍 반기독교 반이스라엘 노선으로 교묘하게 몰아 가다 대차게 나라 말아먹을 것이다' 등등.

오바마를 싫어하는 사상적 배경이 뭔지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걔네들은 부자 내지 사유 재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실, 미국처럼 청부 사상을 표방하는 게 원래는 이상적이지..;;) 정말로 사회 구조가 삐딱하게 돼 있어서 국가가 부자에게서 세금 팍 걷어서 뭘 좀 하겠다고 하면, 그런 발상조차도 곧바로 공산주의, 빨갱이로 와전될 지경.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통념과는 달리, 걔네들은 총기 금지 정책도 극렬 반대한다. 총 들고 자기 집 지키는 건 헌법에도 명시된 아주 신성한 권리인데, 그렇게 총을 빼앗기고 나서 다음엔 성경을 빼앗길 거라고까지 우려한다. 아무리 군 복무 중에 사고로 죽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없앨 수는 없듯(그리고 한국은 아마도 징병제도), 그들은 총에 대해서도 그런 정도로 생각한다. 뭐, 미국은 성경적인 기반 위에서 정치가 안정되다 보니, 개인 총기가 허용되고도 소말리아 같은 꼴이 안 난 건 대단하긴 하다.

어쨌거나, 그들이 오바마에 대해서 보이는 혐오감의 수위라든가 사상적 배경 등은 우리나라로 치면 일부 계층이 주장하는(던) '노 무현은 빨갱이다'와 굉장히 비슷한 구석이 있다. -_-;;

솔직히 본인은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치 오바마를 좋아하지도 않고, 보통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만치 부시를 싫어하지도 않았다.
뭐, 몇 년간 오바마를 지켜보니까 그도 일부 계층에서 그렇게 오버하는 것만치 나라를 막장으로 다스리는 건 아닌 거 같다만, 그래도 잘은 모르겠다.

다만, “오바마가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겠다”라고 협박을 하는 친구들도 있는 걸 보면 오바마가 골수 이슬람이 아닌 건 확실한 것 같다. -_-;; 그렇다고 그가 구원받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겠지만. 이 정도가 그나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가 싶다.
미국에서는 일단 정치 생명이 유지되려면 크리스천들로부터 표를 받아야 하고, 자기 소신과는 상관없이 킹 제임스 성경에다가 손을 얹고 선서를 해야 하니까...;;

이런 사실들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 통솔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지도자는 늘 자기 소신대로만 행동할 수는 없다.

독재자의 딸-_-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박 근혜 씨. 서울 현충원에서 아버지의 묘지를 참배해서 특정 계층으로부터 욕 얻어먹었지만, 나름 호남 지방에 가서는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사죄-_-도 해서 이번엔 반대 진영으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전에 내가 예를 들기도 했지만, 노 무현 전대통령이라고 해서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 같은 이슈에 대해 진보 진영 입맛에 맺는 결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이 명박 대통령은 재임 중에 종교 편향 행위(?) 때문에 욕 많이 얻어먹었지만, 선거 유세하던 시절에만 해도 법당에 가서 불상 앞에서 절까지 한 적이 있으며, 그때는 당연히 크리스천들로부터 까였다. -_-;;

미국의 9· 11 테러와 심지어 카트리나 같은 대재앙이 미국이 아랍 국가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이스라엘 땅을 떼어 주고 유대인들을 몰아낼 때마다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이 두 사건이 언제 일어났나? 그 이름도 유명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치는 좀 못했어도 오로지 기독교 신앙에 충실하다는 메리트 하나 덕분에 재선까지 성공한 양반의 재임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동성애와 낙태의 합법화에 반대하고 사형 제도에 찬성했다 하더라도, 저런 국제적인 이슈까지 독단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일련의 현상과 비슷한 맥락으로, 본인은 오래 전부터 성경의 이 구절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해 왔다.

요담이 자기 아버지 웃시야가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였으나 주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악하게 행하였더라. (대하 27:2)

왕은 선한 통치를 하려 하는데 정작 백성들이 악했다니. 이 얼마나 생뚱맞은 진술인가!
세상의 거의 모든 역사 기록이나 문학 작품에는 악한 통치자 밑에서 신음하는 백성들만 나오지 그 반대의 경우는 찾을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런 정서가 더 심하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맨날 민초들이 힘을 합쳐서 외적을 물리쳤다고만 하고...

그러나... 정말 객관적으로 보면 역사상 악한 통치자만큼이나 악한 백성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악한 통치자도 그런 악한 백성 가운데서 나오게 마련이다.
악덕 기업주만 있는 게 아니라 무능하고 게으르고 악한 직원들 때문에 망한 사장도 엄청 많을 것이다. 진실은 신만이, 하나님만이 알고 있겠지만.
내가 성경이 좌우 이념에 치우치지 않으며, 인간의 입맛과 사고방식에 맞춰 기록된 책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사상, 종교, 색깔, 이념 때문에 사회가 분열되고 온갖 다툼과 비극이 발생해 왔다고들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걸 싹 없애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생각, 그리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옳다는 생각이 '실용'의 탈을 쓰고 팽배하는 건.. 더욱 위험한 현상이 아닐지.

그래서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수준에 맞춰 더욱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박쥐, 기회주의자처럼 돼 가는 것 같다. 그러면서 정부와 시민 사이의 불신풍조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_-
차라리 분명한 소신과 색깔이 대접받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뭐 옛날에 그런 이념도 어차피 다 폐단과 부작용을 경험하고 나서 트렌드가 오늘날처럼 바뀐 거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12 08:53 2011/06/1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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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여러 잡설

※ 서울 3대 전철 회사들의 전동차에서 방영되는 동영상의 주된 테마

서울 메트로: 2005년부터 도입된 2호선 신형 차량을 주축으로 하여, 차내 동영상 방송 트렌드를 가장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자기네가 전국에서 역사가 제일 긴 지하철 회사라는 걸 강조하면서 옛날 흑백 사진도 보여주고, 지금까지 수송 거리 n억 킬로미터, 수송 인원 n백억 명.. 같은 걸 자랑한다.
그리고 대국민 캠페인을 제일 열심히 한다. 무리해서 승차하지 말라, 내릴 사람은 전역에서 미리 내릴 준비를 하라, 두 줄로 서라 등.. 테러· 화재 시의 대처 요령 같은 걸 계속해서 방영한다. 이런 분위기는 오로지 서울 메트로 구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코레일: KTX를 운행하는 전국구 회사인 만큼, 철도 자체가 친환경 녹색 교통수단이라는 걸 귀가 따갑도록 강조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이용하면 나무 n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습니다' 드립. 그러면서 가끔 철도 안전 캠페인도 틀어 준다. 컬러 모니터는 1호선 같은 주류 노선에서는 보기 힘든 편이며, 중앙선· 경춘선· 경의선· 광명 셔틀 같은 곳에서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철(SMRT): 역사가 가장 짧고 구세대 LED 전광판을 가장 먼저 도입한(당대엔 이게 롤지나 플랩 표지판에 비해서 최신형이었음) 회사인 만큼, 컬러 모니터의 도입은 가장 늦다. 하지만 요즘 심심찮게 컬러 모니터로 시설이 교체되고 있는 중이다. 도철이 보여주는 건 맨날 자기네 기술력 자랑뿐이다. 자체 전동차 SR-001은 절대 빠지지 않으며, 음 사장님이 인건비 절감 고효율 경영을 위해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걸 홍보하느라 바쁘다.
도철은 과거에 지하철 벽 프로젝션 광고를 가장 먼저 시도했고, 심지어 주행 중 터널 홀로그램 광고라는 엽기적인 시스템도 도입했으며, 서울 3대 전철 회사 중 스크린도어를 가장 먼저 전구간 완성한 회사이기도 하다.

Excercise: 서울 1기 지하철(1~4호선)과 비교했을 때, 2기 지하철(5~8호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시스템을 모두 고르시오.
(1) ATC 신호 시스템
(2) LED 전광판
(3) VVVF 인버터
(4) 1인 승무
(5) 직· 교류 겸용 전동차
(6) 콘크리트 노반
(7) 장대 레일

※ ABB? ABBA?

잘 알다시피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의 VVVF 인버터는 ABB라는 유럽계 회사(스웨덴)의 제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1970년대의 유명 팝송인 Dancing Queen을 부른 가수 그룹의 이름은 ABBA이고 이들의 국적은 스웨덴!
Dancing Queen과 서울 지하철과의 묘한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ㄲㄲㄲㄲㄲㄲ

※ 아래아한글 2007

아래아한글 2007은 2006년 한글날에 출시된 후 2010년 3월에 차기작인 2010이 출시될 때까지 3년 반 가까이 지냈던 메이저 버전이다. 그렇다 보니, 두 버전 사이의 간극은 MS 오피스 2003과 2007의 간극에 맞먹는다(2003년 가을 ~ 2007년 초).
그 동안 2007은 업데이트가 굉장히 많이 뿌려졌으며, 2007 RTM과 지금의 2007은 가히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하게 되었다.

단순히 보안 패치 같은 보이지 않는 안정성 차이뿐만이 아니라..
F4 구역을 잡은 상태에서 Ctrl+Home/End가 동작하냐 안 하냐
키매크로와 스크립트 매크로가 동작하냐 안 하냐 같은 당장 눈에 띄는 기능 차이도 적지 않다
.
그렇기 때문에 아래아한글 2007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님, 버전 번호가 뭔가요? 최신 패치는 설치하셨나요?”부터 물어 봐야 할 지경이다.
About 화면에 아직도 (c) 2006이라고 적혀 있는 아래아한글 2007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 원격 터미널 클라이언트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1. CPU 사용량의 편차가 크지만, 어쨌든 오랫동안 끊임없이 켜져 있고 돌아가야 하는 프로그램: 서버
2. 끊임없이 CPU를 혹사하면서 실시간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 게임, 시뮬레이션
3. 사용자에게 클라이언트 상으로 뭔가를 오랫동안 표시하고 보여주는 게 목적인 프로그램: 프레젠테이션, 동영상
4. 로컬 환경에서 사용자의 응답에만 그때 그때 반응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의 GUI 기반 애플리케이션

일반적으로 개인이 PC에서 다루는 프로그램의 유형은 4가 대부분이다 보니, 컴퓨터는 사용자가 오랫동안 키보드나 마우스를 건드리지 않으면 화면 보호기를 돌리고, 더 시간이 흐르면 컴퓨터의 전원을 부분적으로 차단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쁘지 않은 전략이며, 절전과 환경 보호까지 달성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전세계에서 동작 중인 수많은 컴퓨터들이 잡아먹는 전기는 가히 엄청난 양이며, 이래서 IT 산업이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1~3이 돌아가고 있다면 사용자가 건드리지 않더라도 컴퓨터가 꺼져서는 안 된다. 특히 3은 CPU 부하는 그리 크지 않은 것에 비해 모니터가 절대로 꺼져서는 안 된다는 특이점이 존재한다.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3과 같은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WM_SYSCOMMAND의 SC_MONITORPOWER와 SC_SCREENSAVE 메시지에 별도로 응답하여, 내가 실행되고 있는 동안은 화면 보호기나 절전 모드가 동작하지 않도록 운영체제에다 요청을 해야 한다.

FTP나 웹브라우저 같은 프로그램은 다운로드가 진행 중일 때는 모니터는 끄더라도 컴퓨터는 안 꺼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PuTTY 같은 원격 터미널은 어떨까? 통신 기능은 있지만 딱히 대용량 파일 전송에 최적화돼 있지는 않다. 그냥 프롬프트에서 놀고 있을 때는 장시간 무응답 시 접속을 끄고 컴퓨터도 끄게 할 수 있지만, 서버 접속하여 명령줄로 한창 긴 빌드를 걸어 놓은 상태인데 컴퓨터가 그렇게 정신줄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두 상태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 미묘한 개념 차이

퍼센트는 비율을 나타내는 매우 유용한 단위이다.
그런데 60%라는 수치가 30% 증가하면 78%가 될까, 90%가 될까?
퍼센트에도 퍼센트가 적용된다고 보면 60%의 30%에 해당하는 18% 증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퍼센트 수치가 문자 그대로 덧셈으로 증가했다는 차이를 나타낼 때는 '퍼센트 포인트'라는 단위를 쓴다. 속도로 치면 가속도에 해당하는 개념 되겠다.

따라서 2%이던 실업률이 3%가 되었다면, 실업률은 겨우 1% 포인트 증가한 것이지만,
무려 50%나 증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통계는 수학적이고 객관적이지만, 이를 이용한 말장난 숫자놀음에 놀아나지는 말아야겠다.
'흉악 범죄자 싸이코패스들은 100% DHMO라는 위험한 약물에 중독되어 있으며 이걸 매일 마시지 않으면 못 산다' 같은 루머조차도 과학의 이름으로 퍼뜨릴 수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비슷한 예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경을 많이 찍어낸다고 들었는데, 성경뿐만 아니라 외국의 화폐도 굉장히 많이 찍어서 수출한다.
우리나라가 6· 25 당시에는 일본에서 임시로 돈을 찍어서 쓰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의 조폐 기술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듣자하니 EU 유로화 화폐를 거의 전량 한국에서 만든다고 함.

그런데, 돈을 얼마짜리만치 만들어서 수출했다고 하면, 이건 우리나라가 챙긴 액수(제조 원가+이윤)를 말하는 걸까, 찍어낸 돈 자체의 액면가를 말하는 걸까?
이것도 마치 퍼센트와 퍼센트 포인트의 차이 같은 미묘한 개념 차이가 발생하는 영역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27 19:48 2011/05/2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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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아Q정전>(阿Q正傳)이라는 이름도 참 괴상한 소설을 본인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접했다.
주인공인 아Q는... 그야말로 정신과 가치관이 병들 대로 병들었으면서 자기가 병들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는 빈곤층 하층민에다 요즘 시쳇말로 잉여인간 빵셔틀-_- 동네 북인데.. 아예 대놓고 백치 아다다 같은 타입이라거나 불쌍하고 착해 빠진 인물이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뭔가 오타쿠 내지 찌질이 같은 이미지가 느껴지는 한편으로, 자기 자신도 기회주의적이고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는 잔인한, 비열함 그 자체인 인간 쓰레기 타입이다.

아Q에게는 자기만의 인생 테크닉이 있었다. 일명 '정신 승리법'.
말만 들어 보면 무슨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요령이라든가, 공부 비결, 정신 무장 같은 게 연상되지만... 그런 것과는 전-_-혀 거리가 멀다.
현실에서 무슨 짓을 당하든, 알량한 자존심 하나만으로 “내가 지금 육신은 쳐 맞고 있어도 정신으로는 너를 이긴 것이다”.. 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고 상대방을 멸시한다. 이게 정신 승리법이다. -_-;; 헐~ 이 똥배짱의 원천은 대체 뭐냐?

이건 어찌 보면, 오늘날 인터넷 공간의 암적 존재인 키배 워리어들의 난독증 내지 병신 논리하고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ㅜㅜ
작가인 루쉰이 설마 21세기 트롤· 찌질이의 존재까지도 예견한 건 아니겠지. -_-;;

루쉰은,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만을 간직한 채 막장 테크를 타고 있던 청나라와, 이 분위기에 편승하여 눈깔이 완전히 썩어 있던(= 맛이 간) 주변 백성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시국이 어느 정도로 막장이었냐 하면, 일본군이 중국인들을 누명을 씌워 학살하고 있는데도 같은 중국인 구경꾼들이 “와 재미있다, ㅋㅋㅋㅋ 어서 죽여라 죽여!” 할 정도였으니까...

자기 조국이 서구 열강에게 캐관광 당하든 어찌 되든 말든, 우리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승리해 있는 것이고 나만 잘 살면 되고 피아 식별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루쉰은 이런 현실을 몸서리치게 혐오했으며, 이를 아Q라는 인물의 막장 인생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풍자했다. 실제로, 당시 소설이 출간되자 독자들은 아Q의 행적을 보고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 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루쉰은 사상가 겸 사회 개혁가였고, 중국스러운 유교· 봉건 사회 시스템을 굉장히 싫어했다. 일종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같은 생각? 또한, 중국의 문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굉장한 한자 안티로도 이름을 날렸다. “이놈의 빌어먹을 한자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중국 인민은 진짜로 망한다” 정도의 극언까지 남겼으며,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한창 한글· 한자 논쟁이 뜨겁던 시절에 한글 진영이 즐겨 인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컴퓨터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한자의 구조적인 단점이 그나마 많이 가려졌으니 망정이지, 그가 살던 시절은 컴퓨터도 없었고, 간체자도 없던 때였다.
한국에서처럼 가~끔씩 유식한 티 낼 때나 한자 한두 자 인용해 주는 것하고, 아예 100% 그 복잡한 한자만으로 모든 생활을 해야 하는 건 서로 가히 차원이 다르다. 루쉰의 눈에는 한자는 정말 높은 문맹률의 주범이요, 그렇잖아도 무지한 국민들을 진짜 우민화하고 암흑 속에 가두는 주범으로 충분히 보일 만도 했을 것이다.

그가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1만여 명에 달하는 조문객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그는 조국과 동포를 향해 신랄한 비판과 독설을 퍼부었으나 조국과 동포를 한 순간도 저버리거나 잊은 적이 없던 애국자였다. 그 시절에 중국에서 루쉰 같은 선각자가 살았던 건 국가적인 축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정신 승리법'은 아무리 다시 봐도 그 의미가 21세기에 위와 같이 재조명되어 정말 웃긴다.. -_-;;;

Posted by 사무엘

2011/05/23 08:40 2011/05/2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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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id 소프트웨어는 PC 환경에서 궁극의 최적화 기술을 선보이며, 1인칭 3차원 FPS 장르를 개척한 선두주자였다. 둠(Doom)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불멸의 명작으로 기록되었고 수많은 매니아· 폐인들을 양산했다. id의 기술력은 그 후에도 Quake 시리즈로 이어지며 발전을 거듭했다. 후속작인 퀘이크는 이 장르에서 스프라이트가 아닌 100% 3D 폴리곤을 실현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음침한 던전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살벌한 울음 소리. 피떡이 된 몬스터 시체들;;
둠은 잔인성과 폭력성 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특히 SF에다가 오각형, 염소 머리 등 지극히 오컬트· 사탄주의-_-를 가미한 세계관은 기독교 진영으로부터도 풍부한 까임거리를 제공했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를 내고 자살한 어느 비행 청소년은 평소에도 Doom 중독자였으며, 게임을 하듯 사람을 죽이고 싶어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처럼. ㄲㄲㄲㄲ

그랬는데 일대일 대전 격투 게임 분야에도 Doom과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는 명작이 있다. 바로 모탈 컴뱃(Mortal Kombat).
그 장르의 게임으로는 의외로 미국산 게임이 별로 없다. 본인이 아는 건 삼국지 무장쟁패,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버추어 파이터 따위가 고작인데, 어느 것도 미국산이 아니다.

그에 반해 모탈 컴뱃은 미국산이다. 하지만 게임 로고에서부터 용의 그림이 등장하고 좀 동양스러운 느낌이 난다.
모탈 컴뱃은 1992년, 그러니까 울펜슈타인과 버추어 파이터 1하고 비슷한 시기에 첫 편이 나온 후, 오늘날까지 꾸준히 후속편이 출시되어 왔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K 발음이 나는 C에 일부러 K를 집어넣었다. 코브라도 Kobra. 그렇게 적으니까 꼭 한국스러운 느낌이 나는구나(Korea? Corea?).

모탈 컴뱃이라는 말 자체는 격투 룰을 가리킨다고 한다. 마치 배틀 로얄(Battle Royale)처럼 말이다.
본인이 중딩 꼬꼬마이던 시절에, 주인공의 그래픽이 실사처럼 아주 큼직하고 정교하고, 마지막에 Finish him/her!이 나오는 격투 게임을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게임이 바로 저 게임이었다.

그리고 스프라이트는 '실사처럼'이 아니고 '실사'가 맞다. 모탈 컴뱃은 1995년에 출시된 3편까지는, 비록 2D 도트이지만 액션 배우의 움직임을 그대로 촬영한 스프라이트를 써서 상당히 획기적인 그래픽을 선보였다. 실사 이미지로부터 잘 편집된 256색용 스프라이트를 얻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대단하다. 그야말로 엄청난 노가다였을 것이다.
(무려 1989년에 페르시아의 왕자의 스프라이트를 만들 생각을 했던 조던 메크너만큼이나 획기적인 시도이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본인은 옛날에 256색 모드에서 궁극의 팔레트 최적화도 엔지니어들의 어지간한 덕력과 근성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크래프트를 생각해 보라. 어떻게 그 그래픽에서 8종족 색깔별로 클록킹 유닛(알파 블렌딩)을 구현했으며, 퀘이크는 동적 광원을 구현했겠는가!

이 게임의 백미는 격투 말미에 다 죽고 헤롱헤롱하고 있는 상대편을 필살기로 끔살하는 일명 Fatality 기술이다.
퀘이크 3 아레나에 레일건이 있고, 카트라이더에 드리프트가 있으며, 스타크래프트에 스팀팩과 사이오닉 스톰이 있다면...
모탈 컴뱃에는 Fatality가 있다.

이게 정말 성경에 나오는 '인간의 상상하는 바가 원천적으로 악하다'(창 6:5, 8:21)는 걸 입증하는 것 같다. 사지를 각을 뜬다거나, 전기로 지지거나 산 채로 불태우거나 뭐 기타 등등...;;
주인공별로 가히 기상천외한 엽기적인 방법으로 상대편 캐릭을 작살을 낼 수 있다. 저런 현란한 비주얼을 어떻게 만들 생각을 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그런 거 보면 쾌감이 느껴진다. 아담의 본성이다. -_-

그 후 모탈 컴뱃 4는 당대의 게임계의 추세에 따라 드디어 주인공이 3D 폴리곤으로 바뀌었다. 비록 그때는 현란한 각도 회전을 대가로, 예전의 2D 스프라이트가 뽐내던 도트 단위의 화려한 비주얼은 어느 정도 희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3D 그래픽은 가히 실사나 다름없다. full 3D 게임이 처음으로 나오던 때는 버추어 파이터도 주인공이 가히 목각 인형에 불과했고, 퀘이크도 파티클은 그냥 사각형 픽셀로 처리될 정도로 허접했다.

동양스러운 느낌 하니까 생각나는데, 퀘이크 3 아레나도 싱글 플레이의 최종 보스인 Xaero는 사이보그 로봇이 아니고, 오크나 저그 같은 괴물도 아니다. 대머리에 중국 내지 티벳 승려 차림을 한 아저씨이다. 예전의 FPS 게임들의 최종 보스가 무식하게 높은 HP + 물량전 컨셉이었다면, 퀘3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마치 결투를 하듯 정밀도가 높은 레일건으로 플레이어와 승부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본인은 퀘3을 처음 하던 시절에 무척 놀랐었다. FPS에다가 격투 게임 비슷한 디자인을 도입한 셈이다.

모탈 컴뱃은 툼레이더나 둠처럼 영화화도 되었다. 동양을 배경으로 말이다. 퀘이크에 매니아 계층인 '퀘이커'(개신교 교파인 퀘이커 말고-_-)가 있다면, 모탈 컴뱃도 '모탈리안'이라고 불리는 매니아 계층이 서양에는 굉장히 많다고 한다.
유튜브에 스타크래프트 실사판이 나돈 적이 있었는데-_- 이 양덕후 모탈리안들은 모탈 컴뱃 실사판도 만들어서 UCC랍시고 올린다. ^^;;

대전 액션 게임의 내레이션은 톤이 극도로 낮고 좀 사악한(?) 느낌이 나는 남자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Fight one. Ready, go” / “Round one. Fight!” / “You win” 등. -_-

이렇게 본인이 갑자기 모탈 컴뱃에 대해서 글을 쓴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에 본인이 만들었던 오목 게임의 이름도 아마 모탈 컴뱃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서이다. 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5/05 09:03 2011/05/0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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