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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으로부터 이어짐)

왕년에 게임 개발자였던 Bill Williams가 진로를 바꾼 것에는 그의 기구한 성장 내력도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는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이라는 희소 유전병을 지니고 있었다(몇백· 몇천 명 중에 한 명꼴로 걸리는 병이고 아시아· 아프리카계 사람에게는 거의 발견되지 않음. 열성 유전자.). 인체 장기 내부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점액이 선천적으로 이상하게 만들어져서 각종 물질대사와 질병 면역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이 때문에 보균자는 몸의 이곳저곳에서 탈이 나면서 오래 못 살고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한다. 무슨 에이즈도 아니고..?

애초에 그는 13세까지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지만 예상의 3배에 가까운 기간을 산 상태였다.
그가 신학교를 다닌 지역인 시카고는 공기가 그리 안 좋은 곳이었고, 거기서 지낸 2년간의 시간이 그의 지병을 악화시켰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고통과 고뇌 가운데서 Naked Before God: The Return of a Broken Disciple이라는 책을 썼다. 예수님 시대에 ‘나다니엘’이라는 어느 소심하고 병약한 젊은이가 몰래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이 세상의 질병과 슬픔, 고통에 대한 의문의 해결책을 얻는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작가 자신의 삶을 그린 자서전적 소설이다. 교리보다는 영성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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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성경의 욥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요한복음 2~3장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주인공을 설정한 첫 모티브는 막 14:51-52이라고 한다.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그 유명한 사건! 책 제목에 괜히 naked란 말이 들어간 게 아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못 가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마존 서평을 보니 책에 대한 독자 리뷰는 굉장히 좋은 편이다. (구글 도서 서비스는 완전히 엉뚱한 동명이인을 책의 저자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아니므로 착오 없기 바란다.)
15년 전의 그의 대표작인 Alley Cat이라는 게임과는 너무나 딴판인 분위기이지 않은지?

그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 IT계에 있다.
오늘날 전세계에 가장 널리 퍼진 압축 알고리즘인 zip을 고안한 사람은 Phil Katz (1962-2000)라는 천재 프로그래머이다. 도스 시절에 쓰이던 pkzip, pkunzip에서 pk는 당연히 그의 이름의 이니셜이며, 사실 모든 zip 파일은 첫 부분이 PK라는 문자로 시작한다.

jar이나 안드로이드 apk, 그리고 MS 오피스 2007 문서들도 다 zip을 컨테이너 파일 포맷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그 인지도는 얼마나 압도적인가?
도스 EXE의 식별자인 MZ (고안자인 Mark Zbikowski에서 유래)와 더불어 그는 가장 유명한 파일 포맷을 만든 거장 중 하나이다.

Phil Katz는 Bill Williams와 딱 두 살 차이이고, pkzip의 전신인 pkarc를 만든 게 1986년으로 역시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작품을 남긴 사람이다. 게다가 30대 후반의 나이로 요절한 것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빌의 생년과 몰년에다가 2만 더하면 된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듯, pkzip의 개발자는 Bill Williams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급사하여 그 당시 IT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갑자기 늘어난 부를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재산 탕진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채 호텔에서 객사했다 -_-)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IT계라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 가을엔 세상 언론들이 스티브 잡스의 죽음에는 완전 애도하고 자서전까지 만들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로부터 1주일 뒤에 잡스보다 컴퓨터의 발전에 월등히 더 기여한 어느 전산학자가 죽었을 때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유닉스 운영체제의 개발에 참여하고 C언어를 발명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은 영문학의 기반을 다 닦은 셰익스피어를 문학의 천재로 칭송하지만, 그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고 아예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에 참여한 천재 언어학자인 랜설롯 앤드류스 같은 사람은 거의 알지 못한다.

이런 것처럼, 개인적인 재능과는 무관하게 인생의 정확한 행로와 목표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달라지는 게 자명하며, 그리고 사람의 어떤 행적에 대해 사람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하고는 웬지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게임계에도 저런 사연을 남긴 개발자가 있었다는 게 무척 애착이 간다. 그리고 그 Alley Cat 게임도 보통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다시 보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09 08:24 2012/02/0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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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 혹시 옛날에 Alley Cat이라는 아래의 완전 구석기 시대 게임을 해 보신 분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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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해 봤다.
전설의 카세트테이프까지 접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1990년대의 16비트 IBM 호환 PC의 발전은 다 지켜본 세대이기 때문이다.

저 게임의 제목은 우리말로는 딱 ‘도둑고양이’라는 뜻이다.
내가 갓난아기이던 1984년에 만들어진 게임이요, (PC용이 1984년. 8비트 Atari용 원판은 1983년에!)
6만 바이트가 채 안 되는 실행 파일 하나에 게임에 필요한 모든 코드와 데이터가 다 들어있다.
실행하면, 도.도. 시.시. 라~시라솔... 로 시작하는 그 중독성 있는 음악이 나온다.

실행 파일을 들여다보면,

This program requires a color graphics adapter.

라는 문자열이 있다.
This program requires Microsoft Windows도 아니고(과거에 윈도우 3.x용 프로그램이 도스에서 실행되었을 때 뜨던 실행 거부 메시지), VGA도 아니고.. 컴에 CGA가 없을 때 출력해 줄 에러 메시지가 들어있다니 도대체 얼마나 옛날 게임인 걸까? 320*200 4색짜리 그래픽 ㅋㅋ

이 게임을 만든 사람은 Bill Williams (1960-1998)라는 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John Harris라는 다른 프로그래머가 만들다 만 것을 이어받아서 자기 식으로 완수한 거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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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영문 위키백과)

아주 흔하고 동명이인이 많은 이름이긴 한데, William의 애칭이 Bill 아니던가? 그럼 동일 이름 중복?

그야말로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그 열악한 하드웨어에서 어셈블리 코딩만으로 저렇게 고양이가 뛰어다니는 세계를 창조했다는 게 심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존 카맥(John Carmack)이 Doom 엔진을 만들어 낸 나이도 저 때와 비슷하다. 다들 25세가 채 되기 전이다! 천재들은 다 그 나이 때 이미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

저 게임은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아케이드· 플랫폼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HP가 없이 즉사하는 시스템을 별로 안 좋아했다.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놀라게 해서-_-) 그리고 맨날 빗자루에 걷어 채여 날아가는 고양이가 좀 불쌍했다. 드럼통에서 창문 빨랫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그때 딱 창문에서 떨어지는 물건에 이따금씩 맞는 게 싫기도 했고.

하지만 게임의 세계관이 심히 창의적이고 독특한 건 사실이다. 게임은 몰입도가 상당히 높다. 게임 속의 고양이는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길바닥에서 고양이가 좀 지체하고 있으면 개가 달려와서 고양이를 죽인다. 드럼통에도 너무 오래 있으면 밑에서 괴물 머리가 툭 튀어나오면서 고양이를 밑으로 쫓아낸다. 방에 들어가서도 안심할 수 없다. 빗자루의 방해를 안 받고 미션을 완수하려면, 주기적으로 계속 바닥을 돌아다니면서 흙먼지를 묻혀 줘야 한다. 고양이가 좀 발 붙이고 쉴 틈이라곤 없다.

보글보글만큼이나 게임에 갑툭튀하는 랜덤한 요소가 많다. 화살표 키도 어떻게 조작하냐에 따라 고양이의 이동 속도와 점프 방향이 생각보다 다양하게 바뀐다. 나름 머리를 써서 만들었다는 흔적을 느낄 수 있다. PC 스피커만으로 상당히 정교하게 합성해 낸 효과음도 일품.

이 게임은 딱히 엔딩이 없어서, 퀘스트를 달성해서 암고양이를 만난 뒤에도, 진행 속도와 난이도만 더 올라간 채 게임은 한없이 반복되었다. 또한 원래 PC가 아닌 게임기용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PC 버전도 종료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컴퓨터를 그냥 끄거나 Game Wizard 같은 유틸리티의 Crash back to DOS 기능을 사용해서 빠져나가야 했다.

난 Bill Williams의 작품이라고는 Alley Cat밖에 알지 못하지만, 외국에 있는 어느 고전 게임 개발자 열전 사이트에서는 그를 1980년대를 풍미한 천재 게임 개발자라면서 게임 디자인계의 ‘스탠리 큐브릭’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His games are completely original and stunning.”

그는 1990년대에는 게임 개발을 완전히 접고, 뜻밖의 진로를 선택했다.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목회를 할 의향으로 시카고에 있는 루터 신학교에 돌연 입학하여, 1994년에는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재학 중에도 성경 탐구에 대한 열의가 남다른 우수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2/02/07 08:18 2012/02/0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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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우중(전 대우 그룹 회장) 씨는 경기고 출신인데 학창 시절에 좀 '놀아서' 서울대는 못 가고 연세대 상경과에 갔다고 한다.

2. 도올 김 용옥 박사(인문학자, 방송인)도 역시 학창 시절에 일탈도 하고 패싸움도 일삼을 정도로 좀 '놀았고', 특히 수학이 완전 바닥을 기는 바람에 서울대를 못 가고 고려대에 갔다고 한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형들은 다 KS(경기고-서울대) 라인에 교수가 돼 있는데 자기만 가문에서 학벌이 가장 안 좋아서 컴플렉스가 있었고 함. 그것이 훗날 그의 '학위 수집증' 기질에 영향을 준 것 같다.

3. 김 진우 교수(일리노이 주립대 언어학 명예교수, 연세대 석좌교수)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굉장히 잘 했고 원래 서울대 언어학과를 가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Catch Me If You Can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교통· 통신이 열악하던 옛날에, 하나밖에 없던 서울대 지원서가 어이없는 이유(가정사 관련..)로 소실되는 바람에 서울대에 지원 자체를 못 하고 차선책으로 연세대 영문학과에 가게 됐다고.
그래도 그 덕분에 최 현배 박사도 만나고, 지금은 서울대 대신 연세대 라인 인맥에 합류. 이분은 모교인 연세대에도 언어학과를 개설하고 싶어하는 1人이시라 한다.

4. 오 준호 교수(KAIST 전자공학)는 우리나라 최고의 로봇 전문가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카이스트' 하면 '휴보 로봇'이 떠오르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어릴적부터 기계 덕후였고 뼛속까지 공돌이였다. 당사자의 회고에 따르면, 공부에는 한동안 손을 놓고 지내다가 고등학교 때 수학에서 극한이라는 개념을 배우면서 공부에 순식간에 물미가 텄고, 교육과정을 다 따라잡았다고 한다. 흠좀무.
그러나 대학은 서울대 대신 연세대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독일어를 도저히 못 해서였다고 한다. -_-;;

좀 노느라 서울대를 못 간 바람에(3은 제외) 대신 간 학교가 연세대· 고려대급이라니 오늘날의 수험생들에겐 참 경악스럽긴 하지만,
옛날에는 대학 진학률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고 지방 국립대의 위상도 높았으며, SKY 그룹 안에서도 학교간 지원자의 학력 격차가 지금보다 더했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오늘날처럼 재수· n수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시절은 더욱 아니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기업인인 1을 제외한 2~4는 모두 석· 박사는 외국에서 마쳤다.

그리고 4번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게 있는데, 외국에도 역사적으로 라틴어 때문에 학력 발목이 잡힌 유명인사가 꽤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처럼.

끝으로, 본인은...
학부는 당시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을 가장 많이 인정해 주던 곳으로 가고,
대학원은 적성에 맞는 과를 찾다 보니,

서울대하고는 둘 모두 인연이 없게 됐다. 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2/02/01 08:52 2012/02/0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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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행적에 대한 오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올해의 마지막 글로 채택된 주제는 이것. ㅎㅎ

1. 공 병우 박사
...는 한글 타자기를 최초로 만든 분이 아니다. 세벌식 한글 속도 타자기 내지 한영 겸용 타자기의 최초 발명자일 뿐, 한글 타자기 자체의 최초 발명자는 아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본인에 대해서도 세벌식 글자판이나 세벌식 한글 입력기를 최초로 만들었다고 오해하는 분이 좀 계신다. 이는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세벌식 자체만을 쓰는 게 목적이라면 기존 MS IME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세벌식 모아치기도 현재 내 프로그램만 지원하는 기능은 아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정체성에 대해 가장 짧게 설명하자면, “한글 입력기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요소와 기능을 프로그래밍 가능하게 해 놓은 시스템인데, 그 체계가 철저히 세벌식의 사고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어쨌든 말이 어렵다. ^^

2. 우 장춘 박사
...는 씨 없는 수박의 발명자가 아니다. 그걸 발명한 사람은 따로 있으며(일본인), 우 박사는 “우리나라도 품종 개량에 투자를 해야 농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 기술로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차원에서 씨 없는 수박을 한국에 가져와 재배하는 시범을 보였을 뿐이다. 그분의 업적은 다른 전문 분야에 따로 있으며, 대표적인 게 유전학 쪽의 종의 합성 이론임.

그는 을미사변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한 친일파 아버지 우 범선의 아들이었고, 일본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 한국어가 어눌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진짜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한 분이며, 대한민국 초기에 각종 장관직 감투도 마다하고 오로지 한국의 영농 선진화에 헌신한 존경스러운 위인이다.

3. 이 휘소 박사
...는 핵 물리학자가 아니다. (ㅠㅠ)
김 진명 씨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때문에, 전세계에서 알아주는 소립자 물리학의 대가가 유독 고향인 한국에서만 핵 물리학자로 와전되어 있다. ㅋㅋㅋㅋ

본인에게는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며 카이스트에서 물리학 박사까지 마친 수학· 물리 괴수인 친구가 하나 있다. 맨날 실험 기기와 씨름하기보다는 초끈 이론이 어떻고 하는 걸 연구한다기에(이게 이과대와 공대의 차이인가?) 걔에게 “그럼 네가 하는 연구가 故 이 휘소 박사의 연구 분야와 비슷하냐? 이건 좋은 질문 맞지?”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둘 다 yes였다. ^^;;

그런데 나도 그 소설이 아니었으면, 이 휘소 박사라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넘어갔을 것 같다. 조국의 핵무기 개발 연구 같은 거창한 민족주의 떡밥이 없었으면, 현대 물리학에 문외한인 평범한 사람이 초끈 이론 따위가 알 게 뭐고 양자역학이 알 게 뭔가? -_-;;

소설 내용이 고인드립이라고 그의 유족들이 불쾌해하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법원의 판결은 “사실에 대한 왜곡이긴 해도 고인을 '아주 긍정적인 쪽으로' 왜곡한 것이기 때문에 사자 명예 훼손은 아님” 쪽으로 났지 싶다. 나도 공감한다.

다만, 박통이 핵무기나 그에 준하는 무서운 무기(장거리 미사일?)를 개발하려고 노력을 한 건 사실인 듯하다. 후임인 전 두환이 자기네 쿠데타 정권을 미국으로부터 승인받는 조건으로, 그 무기 개발 계획을 분명 백지화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박통이 허무하게 암살 안 당했으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핵무기 보유국이 됐을 거라고 그리워하는 분도 계심.

저런 시대 정황에다, 의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한국 출신 천재 물리학자, 그리고 환빠스러운 민족 정서가 합쳐져서 <무궁화꽃...> 같은 허구 소설이 한때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게 아닌가 싶다. 이 휘소 박사는 생전에 박통의 군사 독재를 매우 싫어하고 비판했던 사람이다.

4. 아인슈타인
...은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 상을 받은 게 아니다.
당시로서는 상대성 이론이 대단한 업적이긴 했으나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그가 노벨 상을 받은 분야는 광전 효과(광양자 가설)이다.

그런데 이 사람 하면 역시 이 휘소 박사만큼나 원자 폭탄이 떠오르니, 어째 일반 사람들에게 현대 물리학의 총아는 원자력이나 핵무기로 집약되는 듯하다. 이거 뭐 스타크래프트 테란의 코우벌트 옵스(Covert ops) 애드온의 이름이 피직스 랩(Physics lab)이 돼야 하는 건 아닌가 몰라. ㄲㄲㄲㄲㄲ

5. 그리고 끝으로, 저런 사례들만큼이나,
예수님은 사대성인, 성인군자, 유대인의 혁명가, 사상가, 철학가, 도인, 교주 레벨이 절대 아니다. -_-;;;

예수님은 성육신한 하나님이며, 신으로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을 주신 분이자 그 선물 자체이다.
그래서 인간의 식량이나 교육이나 주거나 경제· 사회· 정치 문제가 아니라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해 놓으셨다. 예수님만이 인류의 유일무일한 구원의 통로이다.

세상 어느 종교들도 신이 죄 문제 때문에 자신의 창조물(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 어느 종교도 교주가 죽었다가 스스로 부활하고 승천했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빈 무덤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청 호화찬란한 무덤이라든가, 방부 처리된 성인 내지 교주 시신을 자랑하는 곳은 몇 곳 있다. ㄲㄲㄲ)

대중들에겐 뭔가 임팩트가 크고 육신적인 감각으로 내세우기 쉬운 업적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실은 그것 너머에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30 19:11 2011/12/3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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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생각들

1. Shrink는 압축이 아니다

파일 단위로 문서(document)를 취급하는 대부분의 응용 프로그램들은 파일 내용을 메모리로 전부 읽어들여서 처리를 하며, 저장도 내용 전체를 한꺼번에 한 파일로 쓴다.
뭐, 개발툴 같은 경우 여러 파일을 묶어서 프로젝트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개개의 파일을 읽어들여 편집하는 건 전체 단위이다.

하지만, 부분적인 수정이 빈번히 발생하고 매번 파일 전체를 메모리로 읽고 쓰기에는 용량이 너무 커질 수 있는 자료구조는 위와 같은 단순한 방식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데이터베이스라든가, 이메일 클라이언트의 편지함, 그리고 가상 기계 프로그램이 만들어 내는 가상 디스크 같은 건, 프로그램 메뉴를 살펴보면 Compact 내지 Shrink라는 명령이 반드시 존재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데이터들은 오래 사용하다 보면 파일 내부에 fragmentation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그 양이 누적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shrink를 해 줘야 파일 크기가 실제 내부 데이터가 차지하는 크기와 비슷하게 최적화되며, 데이터를 다루는 performance도 좋아진다.

사실은 오늘날 컴퓨터에 존재하는 파일 시스템 자체부터가 이와 비슷한 발상으로 관리되며, 그래서 '조각 모음'이 필요한 형태이다. 윈도우 비스타 이상부터는 그걸 운영체제가 서비스(시스템이 내부적으로 돌리는 프로세스)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알아서 돌려 준다. 뭐, random access에 최적화되어 있는 SSD 메모리는 그런 패러다임조차 바꿔 놓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데이터베이스나 관련 프로그램들이 그 기능을 '압축'이라고 번역해 놔서 나를 몇 차례 굉장히 혼동시키곤 했다. shrink의 결과가 파일 용량 감소인 건 사실이지만, 재배치 내지 정리와 훨씬 더 가까운 개념이 어떻게 압축이라 불릴 수 있는가? 서랍 정리와 방 정리를 군대식으로 잘 해서 방이 예전보다 넓어 보이는 게 어떻게 물건을 압축한 결과라 볼 수 있겠는가?

전산학, 컴퓨터, IT 쪽에 최소한의 감각이 있는 사람이 압축이라 하면 바로 떠올리는 개념은, 무손실이든 손실이든 압축 알고리즘이며, 결과물의 크기는 줄어드는 대신 데이터를 읽고 쓰는 cost가 커지는 그런 tradeoff이다. 그러니 데이터베이스를 압축하겠다고 하면 개념에 굉장한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차라리 과거 도스 시절에 존재했던 Stacker, DoubleSpace, DriveSpace 같은 디스크 압축 프로그램은 진짜로 그런 의미의 압축이 맞았다.

그럼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shrink 내지 compact를 어떻게 번역하면 우리말로 더 잘 와 닿을지 고민된다. 한 단어로는 어려울 것 같고 끽해야 내부 메커니즘을 표현한 '파일 내부 구조 재정리'라는 뜻이 담긴 표현을 써야 하지 않겠나 싶다.

2. Everett

미국 북서부의 워싱턴 주, 시애틀 근교에는 Everett(에버렛)이라는 도시가 있다. 그런데,

- 윈도우 프로그래머로서: 비주얼 스튜디오 2003의 코드명이 이것이었다.
- 교통· 항공· 우주 매니아로서: 이곳에 보잉 사의 세계 최대 규모의 비행기 조립 공장이 있다. 항공 덕후라면 이 사실이 바로 떠오를 것이다. ㅋㅋ

VS 닷넷 초기인 2002/2003이 버그가 많다고 욕 많이 얻어먹긴 했다. 하지만,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개발을 6년간 VS 2003으로 해 본 본인으로서는 그게 그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다. 닷넷이 아닌 Win32 native의 관점에서 봐도 오히려 VS 6.0보다 향상된 기능이 많고 UI가 깔끔해져서 반갑게 잘 쓰며 지냈다.

운영체제의 코드명인 시카고(윈도우 95), 휘슬러(윈도우 XP), 롱혼(윈도우 비스타) 등과는 달리, 개발툴은 아무나 쓰는 제품이 아니다 보니 코드명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코드명이 있긴 하다.
비주얼 스튜디오 2005의 코드명은 Whidbey, 2008의 코드명은 Orcas이다. 단, 오피스 제품이 코드명이 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못 들었다.

이 글 쓰는 과정에서 미국 지리 공부를 좀 했다. 미국의 행정 수도인 워싱턴 D.C.는 말 그대로 미국의 초기 역사가 담긴 동부 끝자락에 있는 반면, 워싱턴 주는 전혀 동쪽에 있지 않으며 그 반대이다. 워싱턴 주와 워싱턴 D.C.는 지리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으니, 뉴욕 주와 뉴욕 시의 관계처럼 생각해서는 절대 절대 안 된다. ^^;;;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있는 곳은 시애틀. 고로 이곳 근처이며 역시 서쪽 끝 되겠다.

이름도 비슷하고 옛날에 윈도우 95의 임팩트가 크기도 했으니, 난 한동안 MS가 시카고에 있는 줄 알았으며, 고로 실리콘 밸리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치 칼텍과 MIT 사이만큼이나 엄청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 게다가 빌 게이츠는 하버드 중퇴이기도 하니 웬지 그의 주 활동 영역도 동부였을 것 같지 않나? -_-;;;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빌 게이츠가 2008년 6월 27일에 은퇴했으니, 나 병특 마치기 딱 사흘 전에 은퇴했다.
나는 이제야 군필자가 되어서 한국에서 제약 없는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던 반면, 그 양반은 그때 기업 경영자로서 완전 만렙 찍고 은퇴했다. ㄷㄷㄷ

3. 김 명호

우리나라에 김 명호라는 이름은 여러 동명이인이 존재하는데, 다들 IT나 최소한 이공계에서 쟁쟁한 실력자들이다.

-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 기술 임원인 김 명호 상무. IT 매니아라면 이름 안 들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 카이스트 전산학과의 김 명호 교수. 우리나라에서 얼마 안 되는 데이터베이스 전문가이다. 아, 그러고 보니 카이스트 황 규영 교수도 DB 쪽은 가히 만렙 찍은 분이 아니던가(빡센 강의 커리큘럼 때문에 학부생들로부터 별명이 '황디비'..). 카이스트는 DB에 강하다. ㄲㄲ

- 그리고, 성균관 대학교의 수학과 교수였고, “석궁-_- 테러”로 유명한 김 명호 박사. 좋게 말하면 정말 머리 좋고 유능한 학자이고, 좀 삐딱하게 말하자면 너무 강직하고 현실과 타협을 못 하고 일종의 똘끼도 보이는 천재 타입의 인상? 그 근성이 지나쳐서 교수 재임용에 탈락하고 나중엔 살인 미수 혐의로 징역까지 몇 년 살다 2011년 초에 출소했다.
세상 부적응형의 천재 타입이라면 정말 교수가 아니면 할 일이 없을 텐데, 그 연세에 범죄자로 전락하여 교도소 나와서 앞으로 뭐 하고 사시려나 좀 걱정되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10 19:27 2011/12/1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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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성장 단계

생산 설비가 따로 필요하지 않은 IT 기업을 기준으로,

1. 완전 소규모 회사 내지 신생 벤처는 건물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즉, 주소가 xx호로 끝남. 건물은 오피스텔이나 대학교 안의 창업 센터 같은 곳이 보통임.
규모가 너무 작고, 이런 회사는 생기거나 망하는 일도 잦은 편이기 때문에 아직 병역 특례 같은 건 없다.

2. 그러다 약간 규모가 커진 중소기업은 일반 상업용 건물의 층을 하나 차지한다. 주소가 무슨 빌딩 x층으로 끝남. 전형적인 병역 특례 기업 정도의 규모가 된다.

3. 회사가 더 커져서 제법 인지도 있는 중견기업이 되면, 위치 좋고 임대료 비싼 유명 대형 건물의 여러 층을 차지하게 된다. 주소는 x~y층으로 끝남. 한컴이나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액토즈소프트가 대표적인 예.
이쯤 되면 석사 이상의 전문 연구 요원 병특을 뽑을 법도 한 여건이 될 것이다.

Notes:
- 2와 3 사이는 간극이 큰 편이기 때문에, 두 단계의 중간 정도의 위상에 해당하는 회사도 많다.
- 모기업의 본사가 다국적 공룡 대기업이라 해도, 그 기업의 지역 지사는 그냥 중소· 중견기업의 위상이다.

4. 나중에 전국구 이상 수준으로 사업이 잘 풀리면 회사가 빌딩을 사게 되고... 자신만의 사옥을 갖게 된다. 넥슨이나 NHN, 그리고 최근에 이 단계로 레벨업을 한 안철수연구소처럼!

드디어 건물 이름이나 번지만으로 끝나는 주소 득템이다. 이쯤 되면 회사에서 딱히 홍보를 안 해도 입사 지원자들이 줄을 서고 경쟁률이 올라간다. 병특 인력 따위도 전혀 필요하지 않다.
넓은 부지를 확보하느라 도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날 수는 있겠지만, 아무려면 어때, 이쯤 되면 통근 버스를 굴릴 여건도 될 텐데.

5. 그리고, 세계구 수준의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급이 되면, 회사의 최종 완전체는 단지(complex), 캠퍼스(campus)가 된다. 신입 사원을 채용하는 절차도 며칠에 걸쳐 가며 완전 복잡해지고 전문화한다. ㅋ
동이나 우편번호를 독자적으로 할당받는 규모가 될지도..;; 통근 버스 정도가 아니라 캠퍼스 내부의 셔틀버스가 필요해질 수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08 19:33 2011/12/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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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마 다리 붕괴 사고

중· 고등학교의 물리 시간에 '타코마의 다리 붕괴 사고'에 대해 들어 본 분이 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ahoma는 윈도우 운영체제의 유명한 글꼴 이름이고, 여기서 지명은 미국 서북부의 워싱턴 주에 있는 Tacoma 시이다.

1940년 7월 1일에 바닷가 해협에 개통된 이 다리는 불과 4개월 만인 11월 7일, 강풍에 다리 전체가 널뛰기 하듯 들썩들썩 흔들리더니 와르르 무너져내려서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비록 다리가 기둥이 적고 무척 가벼운 구조로 건설되어 바람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당초 설계 기준보다는 훨씬 더 약한 풍속(초속 19m가량)에 다리가 아주 개발살이 났기 때문에 건축 공학계의 의문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2차선, 편도는 겨우 1차선밖에 안 되는 좁은 다리였으니 오늘날 서울의 한강에 놓인 8차선급의 크고 아름다운 '대교'들을 생각해서는 곤란하겠다. 사실은 1980년 이전에는 한강 다리들도 넓어 봤자 4차선급밖에 안 됐다가 나중에 다시 확장된 게 태반이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된 구조물이 저렇게 물렁물렁 출렁거릴 수 있는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이 붕괴 사고는 3년 전의 힌덴부르크 호 폭발 사고(1937. 5. 6.)와 더불어, 그 과정이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녹화되어 기록이 전해지는 얼마 안 되는 사고이다. 그것도, 오늘날처럼 스마트폰으로 아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절과는 넘사벽급으로 다른 20세기 초중반에 말이다.

※ 여기서 잠깐, 힌덴부르크 호 폭발 (또 교통수단 얘기 작렬)

- 그렇잖아도 힌덴부르크 호를 촬영하러 언론사가 일부러 취재를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그랬는데 다 와 가지고 비행선이 화염에 휩싸이면서 폭발· 추락하자 리포터 양반이 “오 끔찍합니다.. 세계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라고 절규를 남겼다.
- 대서양을 건너는 교통수단의 사고로는 비록 승객수 차이가 많이 나긴 하지만 타이타닉 호와 비교될 만하다. 대형 국제 여객선과 비행선 모두, 오늘날은 실용적인 항공기에게 자리를 내 주고 자취를 감춘 상태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한 이 비행선은 미국 뉴저지 주의 레이크허스트 해군 비행장까지 가는 데 꼬박 사흘이 걸렸다. 한편, 영국의 사우샘프턴을 출발한 타이타닉은 출발 후(4. 10.) 닷새(4. 15.) 만에 침몰했고, 이는 목적지인 뉴욕까지 직선 거리로 75~80% 정도 도달한 지점이었다.

비록 비행선이 선박보다 더 빠른 것은 자명하나, 비행선은 여전히 승객의 수면을 챙겨야 할 정도로 속도가 대단히 느렸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느린 배보다 2~3배밖에 빠르지 않았다는 뜻이니 말이다. 진짜 자동차 속도이다. (이 비행 시간을 훗날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는 무려 4시간대 이내로 단축시키기도 했고.)

※ 타코마 다리 붕괴

- 후세에 길이 남을 이 특종 명장면은 다리 정면과 아래 등, 여러 각도와 장면에서 찍은 게 전해진다. 출렁거리는 모습은 모 대학의 연구팀에서, 무너지는 모습은 어느 민간인이 제각기 촬영했다고 한다.
- 중간에 다리를 못 건너고 버려진 승용차는 정말 지못미. 그래도 운전자가 차를 버리고 탈출한 건 당연히 잘한 행동임.
- 어째 컬러 동영상이 전해진다. 1940년에 정지 사진도 아니고 컬러 동영상 기술이 있었나? 아니면 흑백 동영상을 나중에 컬러로 복원했는지?

타코마 다리의 붕괴는 그래도 무슨 부비트랩처럼 갑자기 무너진 게 아니어서 사람들이 일찌감치 대피했고, 그래서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리고 붕괴 원인이 성수 대교와는 달리 부실 공사 같은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 당시 건축학계가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던 변수 때문이었는데...

잘 알다시피 바람이 다리를 직접적으로 때리는 세기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바람으로 인해 주변에 발생한 공기 진동이 문제였다. 어떤 물체에는 고유 진동수라는 게 있는데, 이와 같거나 최소한 겹쳐지는 배수급의 진동을 지닌 외력이 거기에다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같은 힘으로도 더욱 큰 진동이 내부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그 불안정한 상태가 갈수록 심해지면 그 물체는 파괴됨.

일상적으로도 자연에는 수많은 파동이 존재한다. 우리가 자연에서 듣는 음파만 해도 무수히 많은 파동이 겹쳐진 복잡한 파동이지만, 서로 간섭을 일으켜서 많이 상쇄도 된다. 그 무수히 많은 파동들이 우연히 다 겹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로 돌변할 가능성은, 데이터 운이 억발로 없어서 퀵 정렬이 하필 매 루프마다 최악의 pivot만 골라서 시간 복잡도 O(n^2), 공간 복잡도 O(n)이 될 가능성만큼이나 낮다. (내가 생각해도 참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ㄲㄲ)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매체에서 자주 과장되어 묘사되는 장면이긴 하다만, 여성이 굉장히 높은 옥타브로 괴성을 질렀더니 유리창이나 유리컵이 박살 나는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엇, 그러고 보니, 함성에 무너져 내린 여리고 성도 생각나는구나(수 6:20)? 허나 그건 과학 현상이라기보단 초자연적인 기적에 더 가깝겠다.

자동차의 소음기는 반대로 그런 음파 에너지를 counter-음파로 상쇄하여 엔진 소음을 줄여 주는 물건이다. 이게 없으면 자동차도 무슨 오토바이처럼 터덜 털털털 부우웅~ 하는 짙은 소리가 그대로 들리게 된다.

1831년, 영국 맨체스터 근교의 브로스턴 다리는 많은 군인들이 오와열을 맞춰서 행군하자 그 직후 무너졌다. 군인들의 발을 맞춘 박자가 다리의 고유 진동수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7월, 서울 강변의 테크노마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진동 소동이 벌어졌을 때도 혹시 이것과 비슷한 현상이 아니냐며 타코마 다리 사고가 언론의 주목을 잠시 받기도 했다.

그리고 끝으로...
1990년대 도스 시절 게임을 즐긴 친구라면, 타코마 다리와 관련하여 역시나 이 장면이 생각나지 않는지? ㄲ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페르시아의 왕자 2는 최종 보스인 Jafar만이 있을 뿐, 딱히 레벨별 보스가 존재하지는 않는 게임이다. 그냥 퍼즐을 풀어서 레벨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끝인데..
날으는 양탄자를 타고 동굴 world를 빠져나가기 직전의 막바지 단계에 이런 이벤트가 있다. 방법을 모르면 통과하기 굉장히 어렵고 짜증 난다.

여기서 핵심은, 저 죽지 않는 해골 악당과 적당히 칼싸움을 하고 있다가 다리가 와르르 무너질 때, 해골만 해치우고 자기는 다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왕자는 설정상 자기 칼을 떨어뜨린다. -_-;; Jordan Mechner의 게임답게 이 게임은 영화 같은 기믹이 풍부하다.

일종의 bug exploit을 이용해서 해골을 해치우지 않고 다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따라서 칼을 잃지도 않고 건너편의 돌문을 통과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러기는 굉장히 어렵다.
해골과 싸우지 않고 왼쪽의 돌문으로 달려가면, 해골도 오른쪽으로 가서 발판을 눌러 돌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로직상으로는, 해골과 싸우지 않고 왕자가 관문 근처로 가면, 그 해골이 발판에 도착하기도 전에 문이 강제로 쿵 닫히게 돼 있다. 그런데 이런 로직조차도 헛점이 있긴 했다. ^^
나중에 궁궐 world에서 나오는 허리 자르는 칼을 포복하지 않고 점프로 통과하는 게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역시 bug exploit)

Posted by 사무엘

2011/12/01 08:27 2011/12/0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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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슈퍼스타K> 라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인기였다. 작년의 시즌 2에 이어 올해의 시즌 3이 지난 주에 끝났다. 결과는 울랄라 세션의 압승.

본인은 평소에 연예· 오락 쪽은 완전히 담을 쌓고 신경을 끄고 지내는데 이런 걸 어떻게 아냐 하면, 누나가 그걸 매주 즐겨 봐서이다. ‘울랄라 세션’의 팬이다. ㅋ 저 사람들은 나이가 좀 많은 것만 빼면, 장르를 불문하고 폭발하는 가창력에 댄스까지 정말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엔터테이너이긴 하다. 애초에 심사위원들도 이 팀은 아마추어급이 아니고 수준이 다른 팀과 너무 차이가 난다고 인정했을 정도이니까.

그런데 TOP 3에까지 오른 팀 중엔 남녀 듀오인 ‘투개월’이라는 팀이 있다. 미국 교포인지라 뉴욕 지역 예선을 통과했다. 팀원이 모두 겨우 10대 고등학생 나이인데, 잘생기고 예쁘고 노래도 잘 부른다(男 도 대윤, 女 김 예림).

특히 김 예림은 뭐랄까 낮으면서 몽환적인 목소리가 포인트인데, 심사위원 중 한 분인 윤 종신은 김 예림에 대해 ‘뉴욕 예선 참가자들 중 가장 독특한 목소리의 소유자’라고 평한 바 있다. 나도 그게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울랄라세션보다는 투개월에 더 호감이 가는 편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김 예림의 목소리가 곁들어진 남녀 듀엣을 여러 번 듣고 있다 보니, 나의 잠재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파묻혀 있던 먼 과거의 어떤 기억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이거 뭔가 익숙한 분위기의 노랫소리라는 느낌이 든 것이다.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동질감을 느낀 원본의 검색 결과는 바로 주찬양 선교단이었다.

9집 <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여>의 5번 트랙 <와서 우릴 도우라>.
이 앨범은 전반적인 주제가 선교· 헌신이며, 저 트랙은 행 16:9의 표현을 근거로 당대로서는 좀 파격적인 리듬과 멜로디의 곡이었다(1993년 4월에 발매된 앨범임).

‘와서 우릴 도우라’ 코러스가 몇 차례 반복된 후 남녀 듀엣이 나오는데, 그때 곁들어지는 여자 가수의 목소리도 저것처럼 낮고 중후한 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가수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어지간 한 거 다 외우고 있는데..;;

자, 더 말이 필요 없으니 직접 듣고 비교해 보시라.

(1) 투개월의 <Brown city> 中


(2) <와서 우릴 도우라> 中

물론 두 곡 자체는 분위기가 서로 사뭇 다르긴 하지만, 두 가수의 목소리에서 좀 동질감을 느낄 만한 공통분모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지?
참고로, 주찬양 선교단의 싱어와 슈스케의 김 예림의 현재 실제 나이 차이는 아마 거의 모녀지간-_- 수준일지도 모른다.

내가 학교에 가서 슈스케 얘기를 꺼내자 주변 친구들은 “오, 너도 그걸 봤구나” 하면서 신기해하는 반응이었다. 평소에 내가 TV를 전혀 안 보고 지낸다는 걸 아니까.;;

본인은 고등학교 시절엔 주찬양 선교단만 듣다시피하면서 앨범 내용을 머리에 다 집어넣고 지냈다. 오히려 주변의 어른들이 “어, 이건 우리 세대 때 즐겨 듣던 음반인데 네가 더 잘 알고 있네” 이러실 정도였다.

우리 누나는 예전엔 H.O.T.를 좋아했고 다음으로 Back Street Boys를 좋아했고, 특정 농구 선수나 외국의 영화배우를 좋아했다가 그게 사그라지는 등, 연예인 아이돌을 좋아하는 평범하고 전형적인 타입이었다.

그 반면, 나는 그런 데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내 할 일밖에 안 했다.
그러나 뭔가 하나를 일단 좋아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리며, 그게 평생 지속되고 그 분야의 완전히 끝장을 보고 작살을 내 버리곤 했다.

어렸을 때 ‘빠돌이, 빠순이’ 기질을 적당히 발산하던 사람은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그게 없어지고 다시 평범한(?) 사회인으로 돌아가는 반면, 나는 그렇지 않다.

새마을호에서 흘러나왔던 Looking for you 음악을 듣는 감흥은 2004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함이 없고 나를 철도에 미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철도에 관한 한은 첫사랑이 전혀 식지 않았으며(계 2:4) 시종일관 동일하다. 이 기질이 평생, 아니 하늘나라에서까지 지속될 걸로 예상된다.

어쩌면 나 같은 부류가 정말 무서운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철도 음악보다 먼저 접한 건 그래도 주찬양 선교단이었으니, 이건 불행(?) 중 다행인 걸까? ㅋ

Posted by 사무엘

2011/11/17 08:41 2011/11/1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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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고향집에 있는 부모님께서 사용하시는 PC는 내가 쓰는 PC보다야 훨씬 더 구닥다리 기종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펜티엄 3에 램은 192MB인 윈도우 2000/ME급 사양이었다. 완전 골동품..;;

그런데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서 서비스를 받고 났더니, 도대체 누구에게서 서비스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컴퓨터에 윈도우 XP가 깔려 있었다.;;
잘 알다시피 XP는 못해도 램이 256MB 정도는 돼야 쓸 수 있는 덩치이지 않은가. 부팅에서부터 간단한 인터넷 확인을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본인의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결국 본인은 내가 대학 학부 시절에 쓰던 펜티엄 4 + 램 512MB짜리 컴으로 PC를 교체해 드렸다. 부모님이야 진짜로 간단한 인터넷 접속 + 워드 작업밖에 안 하시기 때문에 기계가 물리적인 고장만 안 난다면 이 컴을 앞으로 10년-_-은 더 쓰실 법도 해 보였다. 한때 내가 개인 작업용으로도 쓰던 컴이었으니, 인계 당시 최적화는 잘 되어 있었고 윈도우 XP의 체감 속도는 씽씽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고향에 가서 확인해 보니, 악성 코드가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컴의 성능을 다 깎아먹고 있었다.
부팅 직후에 시작 메뉴를 열어서 웹브라우저를 띄울 때 운영체제가 굼뜨는 모습이 꼭 옛날의 램 192MB짜리 컴을 쓰던 것과 비슷했다. 램이 그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은 컴에서 말이다.;;

시스템 정보 → '로드된 모듈'을 보면 정체 불명의 이상한 dll이 explorer.exe 내지 iexplore.exe에 달라붙어 있었고, 파일을 지우고 레지스트리를 아무리 정리해도 이런 파일은 재부팅 후에 잡초처럼 계속 생겨나곤 했다.
USB 포트로 메모리 스틱이나 외장 하드를 이 컴에다가 꽂았다가 빼서 확인해 보면, 역시나 루트 디렉터리에 이상한 exe와 autorun.inf가 생겨 있었다.

나는 이런 부류의 악성 코드들이 운영체제에 어떤 방식으로 기생하는지, 어떻게 전염되는지 기술적 디테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
내 컴퓨터에 지금까지 그런 것들이 침입한 적이 없으며, 내가 스스로 대처한 경험이 없다. 난 내 컴에 백신도 전혀 안 깔고 지낸다.

저런 악성코드를 완전히 뿌리뽑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본인은 집 컴의 C:를 그냥 밀어 버리고 운영체제를 다시 설치했다. 사실, 컴퓨터의 상태가 굉장히 안 좋기도 했다.
마침 내가 대학 시절에 만들어 놨던 윈도우 XP sp0(-_-) 원본 씨디가 있어서 그걸 썼다.
XP sp2 통합 씨디 이미지를 갖고 있긴 하지만, 또 씨디 굽기가 귀찮아서..;;
허나 그것이 본인에겐 고난의 시작이었다..;;

운영체제 자체의 설치는 40분 남짓한 시간 만에 별 탈 없이 됐다.
그래픽 카드는 nVidia GeForce의 완전 구닥다리 초창기 모델이어서 그런지, 별도의 드라이버를 설치할 필요조차 없이 운영체제가 알아서 잡아 줬다.
원래 그래픽 카드가 잡혀 있지 않으면 그냥 800*600 슈퍼 VGA의 제일 기본 VBE 모드만 가능하다. 그것보다는 약간 나아진 셈이다.

그리고, XP 이전 2000 이하의 OS는 그래픽 카드 드라이버를 설정 안 하거나 안전 모드로 부팅한다거나 하면, 아예 640*480 16컬러 VGA밖에 지원되지 않았으니 그 시절은 참 어지간히도 암울했었다. 단, 덧붙이자면, 9x 계열과는 달리 2000은 원시적인 16컬러 VGA에서도 화면이 바뀌는 곳에서 마우스 포인터가 깜빡거리는 현상이 없던지라, 얘는 하드웨어 제어를 어떻게 하는지 본인은 개인적으로 궁금증이 들곤 했다. 이것이 NT 커널의 위력인가..?

악성 코드 없이 광속으로 반응하는 청정 OS를 써 보는 기쁨도 잠시. 새 OS는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20세기의 유물로 전락한 전화 걸기 대화상자가 뜨는 걸 보고 경악했다.
어라? 네트워크가 전혀 설정되어 있지 않았고, 장치 관리자에 가 보니 이더넷 컨트롤러의 드라이버가 정체 불명이라고 찍혀 있었다.

본인의 컴퓨터 하드웨어 지식은 “요즘은 랜 카드나 사운드 카드는 다 마더보드 내장인데 OS가 알아서 다 잡아 주지 않나?”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두 가지 카드는 다음과 같았다.

1. 2001년에 나온 구닥다리 SP0이어서 못 잡는 것이 아닐까? SP2를 따로 설치하면 아마 자동으로 잡힐 것이다. (잘 알다시피 윈도우 XP SP3은 SP1 이상을 요구하며, SP0에서 바로 설치 못 함)
2. 아니면, 이 컴퓨터의 랜 카드의 메이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Realtek 브랜드의 드라이버 아무거나 설치해 주면 될 것이다.

사실, 최신 운영체제는 무엇보다도 최신 하드웨어의 지원 능력면에서 구버전보다 우월하다. 이 점에서는 심지어 과거의 윈도우 ME도 98 SE보다 훨씬 더 낫다. 98만 해도 드라이버를 따로 설치 안 하면 USB 메모리조차 인식을 못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50여 MB에 달하는 SP2 설치 파일을 다른 곳에서 애써 복사해 오고, 내가 아는 랜 카드 드라이버를 몇 개 구해서 설치해 봤다. 하지만 두 시도 모두 실-_-패로 끝났다. 특히 SP2는 이 운영체제가 어둠의 경로-_-로 설치된 거라는 걸 알기라도 했는지 제품 시리얼 번호를 갖고 트집을 걸면서 더 진행을 거부하였다.

이런 와중에 새 OS는 설치된 지 불과 몇십 분 만에 또 악성 코드에 감염됨으로써 나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인터넷이 아예 안 되는 컴퓨터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범인은 아까 그 프로그램들을 복사· 설치하기 위해 꽂은 어머니의 USB 메모리였다. 그 메모리는 이미 예전 컴퓨터로부터 악성 코드가 묻을 대로 묻어 있었을 것이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USB 메모리의 autorun을 실행하지 않게 하는 윈도우 보안 패치는 생각보다 한참 뒤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 컴퓨터의 OS는 업데이트 하나 없는 XP sp0으로, 온갖 보안 결함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호구이지 않던가. 이런 우라질레이션..;; -_-;;

도대체 CD롬도 아니고, 디스켓이나 다름없는 USB 메모리를 꽂기만 하면 자동으로 autorun이 돌아가게 해 놓은 친구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기능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키보드 입력을 버퍼 크기 제한도 없이 받아들이는 C언어의 gets 함수만큼이나 보안 면에서 멍청하고 위험한 디자인이 아닌가?

그런 주제에 윈도우 XP의 설치 프로그램은 설치 도중에 자기 운영체제와 웹브라우저에 대해서 '가장 강력하고 보안이 뛰어나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으니 그 어이없음에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뭐, 10년 전에 그랬다는 소리니까 봐 주자.;; 9x 계열이 갖고 있던 자유도와 유닉스 계열의 엄격함과 탄탄함(robustness)은 동시에 충족될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이념이니까 말이다.

이미 시스템 정보에는 악성 코드 DLL이 올라가 있었고, 레지스트리에서는 역시 정체 불명의 실행 파일이 시작 프로그램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탐색기에서 드라이브를 열 때의 동작 방식도 이상하게 바뀌었다.
악성 코드를 없애려고 운영체제를 재설치했는데 일이 꼬여서 이렇게 되었고 랜 카드도 전혀 잡히지 않았으니, 본인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SP2가 적용된 윈도우 XP 원본 씨디를 또 만들었다. 귀찮아서 안 하려 한 짓을 결국은 하게 됐다. 그리고 그걸로 XP SP0을 밀고 윈도우를 또 새로 설치했다. 그래서 악성 코드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심판으로 또 없애 버렸지만, SP2로도 랜 카드는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참다못해, 이놈의 랜 카드의 정체가 뭔지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의 케이스를 개방해야 했다. 랜 카드는 ASUS 마더보드 내장형이었는데, 모델명별로 자기만의 랜 카드 드라이버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장치 관리자에서 드라이버를 이걸로 업데이트하자 드디어 네트워크 설정이 잡히고 인터넷이 되기 시작했다. 휴우...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인터넷이 되니 이제 큰 불은 껐다. 다른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기 위해 가상 CD 구동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그리고 구닥다리 IE6을 당장 IE8로 교체했다. 세상에 컴퓨터 역사상 굴지의 IT 기업들이 앞장서서 “고객님, 제발 이 버전 쓰지 말고 업그레이드 하세요!”라고 하소연을 하고, 너무 오래 살아남아서 죽지 못해 사는 좀비처럼 된 소프트웨어가 IE6 말고 또 있을까?

비주얼 C++ 6도 너무 오래 살아 있는 소프트웨어이긴 하지만, 일단 이건 불특정 다수가 쓰는 프로그램은 아니고. 그런데 요즘은 어느샌가 IE 7마저도 이제 지원 안 할 거니까 업글하라고 눈칫밥을 주는 웹사이트가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

IE 7이나 8을 XP에서 첫 설치하려면 무슨 IME의 동작과 관련된 운영체제 패치부터 먼저 설치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IE는 잘 알다시피 문자 입력과 관련된 괴이한 현상이 심심찮게 존재하는데, 역시 서로 민감한 부위를 건드리긴 하는가 보다.
플래시 메모리에 묻어 있는 악성 코드도 못 걸러내는 주제에, 웹브라우저가 자동 다운로드 기능을 차단하는 건 본인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불편했고 헛다리 짚는 듯한 느낌이었다. 필요한 팝업창을 차단해서 불편한 것보다 더 불편했다.

이런 식으로 컴퓨터를 대강 세팅했다. 고향에서 맨날 밥만 얻어먹고 가는 게 아니라 이번엔 고향집 컴퓨터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아버지 차에다가 내 돈으로 기름도 몰래 채워 넣는 등, 이쁜 짓(?)도 좀 하고 왔다. ^^;;
허나, 내년 설날에 고향에 가 보면 또 컴퓨터에 악성 코드가 덕지덕지 묻어 있을 것 같다. -_-;;; 혹시 부모님 직장의 컴들은 이미 다 오염돼 있지는 않나 모르겠다. 여쭤 보니 운영체제도 비스타/7이 아니라 XP라던데.. 더욱 걱정된다.

글을 맺으며..;;

1. 이번 일을 계기로, 보안 패치 없는 윈도우 XP는 정말 쓰레기라는 걸 체험했으며, 컴퓨터 환경에 따라서는 랜 카드도 저렇게 잡아 줘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2. 옛날에 윈도우 9x는 설치 GUI가 아예 윈도우 3.x 엔진 기반이었다. 그리고 9x만의 특징인데, 오래 쓰다 보면 가끔 메뉴의 ▶ 모양이라든가 윈도우의 버튼들이 숫자· 문자로 바뀌는 기괴한 버그가 나타나곤 했다. 아무리 옛날에 PC 환경이 열악했다고 해도, 그런 허접하고 불안한 운영체제를 어떻게 몇 년간 썼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3. 악성 코드는 정말 구제역 같은 느낌이 든다. 컴퓨터 보안 쪽으로 더 알고 싶다.

4. 윈도우 비스타가 깔린 본인의 컴은 데스크톱과 노트북 모두 3~4년째 OS의 재설치 없이 악성 코드 청정 지대이며, 이상 무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11 19:25 2011/10/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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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노래 해설

1.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 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 새 세상 밝혀 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의 자랑 문화의 터전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2.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 넉 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한글은 우리의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3. 한 겨레 한 맘으로 한데 뭉치어 힘차게 일어나는 건설의 일꾼
바른 길 환한 길로 달려 나가자 /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
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이 노래는 제목이 그냥 <한글 노래>이다.
즉, 한글날과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한글 자체에 대한 찬가라는 점에서, 제헌절 노래나 삼일절 노래, 6· 25 노래 등과는 위상이 좀 다르다.

한글 노래는 언제 봐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참 감동적이다.
지난 2004년엔 본인, 가사를 손으로 필사한 적도 있다.

잘 알다시피, 이 노랫말을 지은 분은 외솔 최 현배 박사이다. 많고 많은 국어학자 중에 그분 정도로 한글을 진정 사랑한 분만이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수준의 역동적인 가사를 쓸 수 있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1절은 한글 창제의 감격을 묘사했다.
외솔의 동지이자 조선어 학회 사건 당시의 fellowprisoner (롬 16:7, 골 4:10, 몬 23)이었던 석인 정 태진 선생이 1949년 <한글날을 맞이하여>라고 발표한 논설을 보면 비슷한 표현을 볼 수 있다.

“과연 그 날이야말로 우리 배달민족이 길고 긴 어두움에서 새로운 빛을 보던 날이었고, 그 날이야말로 과연 우리 민족이 오래오래 죽음의 길을 걷던 발길을 돌려서 영원의 삶의 길로 나아오던 바로 그 날이었던 것입니다.”

영생의 길.. 가히 종교적인 수준의 찬사인걸? (단, 너무 기쁨에 겨웠는지, 글 중엔 한글과 우리말을 그렇게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은 표현도 좀 나오며, 6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기엔 다소 구태의연한 권면도 없지는 않음)
내 신앙관과 짬뽕을 하자면, 그야말로 성경에 나오는 의의 태양(말 4:2) 같은 심상이다.
주찬양 선교단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의 2번 트랙 <빛>을 BGM으로 깔면 적절할 것 같다.

2절은 한글의 우수성이 묘사되어 있다.
외솔의 저서 <한글갈>에 있는 문장을 보면, 노래 가사는 저서의 요약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글은 그 짜임이 가장 과학스럽고 그 자형이 정연하고 아름다우며, 그 글자 수가 약소하고도 그 소리가 풍부하며, 그 학습이 쉽고도 그 응용이 광대하여 글자로서의 모든 이상적인 조건을 거의 다 갖추었다 할 만하니, 이 글자를 지어낸 세종대왕 한 사람 당대의 밝은 슬기가 능히 천고만인의 슬기를 초월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글자를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하니 이는 고금이 다름없고 안팎이 한가지이다.”

한글을 ‘민주의 근본’이라고 칭한 것도 단어를 아무렇게나 선택한 게 아니다. 외솔의 평소 지론이 담겼다.
배우기 쉽고 편리한 글자로 문맹을 퇴치하고 국민들을 똑똑하게 만들어야만 민주주의도 실현된다는 그분의 철학은, 유고작인 <한글만 쓰기의 주장>을 읽어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3절로 가자.
전통적인 기독교 찬송가를 보면, 앞부분은 예수님이나 크리스천의 삶에 대해서 노래하다가도 마지막 절은 재림, 천국, 내세 같은 거시적인 주제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코레일의 사가 Oh Glory Korail도 보아라. 마지막 절은 한국 철도가 대륙을 넘어 세계로 뻗어간다고 스케일이 확 커지지 않던가. ㄲㄲㄲ

그런 맥락에서 한글 노래의 마지막 3절은, 한글을 통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김 동길 전 연세대 교수가 1980년대에 한글 문화권에 대해서 글을 썼듯이 말이다.

물론 21세기가 된 지금, 현실은 시궁창이다. 굉장히 시궁창이다.
외국어는 범람하고 국어 문법은 갈수록 잡-_-탕이 돼 간다.
그리고 미래가 안 보이는 경제 불황과 영적 배도와 타락, 그리고 막장으로 치닫는 사회 시스템 앞에서는... 한글이고 나발이고 답이 없다. -_-
나도 솔직히 육신적인 심정으로는 한글 문화권 나부랭이 따위를 바라느니(교리적으로 다분히 후천년주의적이기도 하다ㅋㅋㅋ), 차라리 하늘나라를 바라고 말겠다.

허나, 그래도 한국보다 더 못 사는 나라들로부터 이민자는 꾸준히 유입되고 있고,
생업을 위해서든 한류 열풍 때문이든, 오늘날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비록 진짜 메이저급 언어의 학습자에 비할 바는 못 되더라도 은근히 ‘많다’.
신토불이니,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다” 식의 구태의연한 드립을 동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끼인 우리나라가 우리만의 개성을 내세워서 세계에 얼굴을 내밀려면 미우나 고우나 한글을 들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글이 ‘생활의 무기’란다. 최 현배 박사는 공 병우 한글 세벌식 타자기의 가치를 알았고, 문자를 다루는 기술을 기계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던 사람이다. 그랬기 때문에 ‘무기’라는 단어를 썼다. 자, 이 정도로 풀이하니 한글 노래의 가사가 정말 외솔스럽다는 게 와 닿으시는지?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주 시경 선생은 그 옛날에 불모지이던 국어학의 기초를 닦고 한글 맞춤법의 근간을 마련해 놓았다.
최 현배 박사를 비롯한 조선어 학회의 학자들은 언어학의 결정체인 국어사전을 만들었다.
공 병우 박사는 기계와 사람의 편의성을 기가 막히게 조화시킨(=C언어스러운?ㅋㅋ) 전대미문의 한글 타자기를 발명했다.
그리고 아래아한글을 만들어 낸 프로그래머들은 음..;;
아놔 다들 너무 천재들이다..;;

그 다음으로 본인은 지금까지 해 놓은 일이 그 ‘한글탑’ 위에다가 벽돌 한 장 정도 올려놓은 수준은 되려나..? ㅋㅋ
(연세 대학교 캠퍼스 안엔 연세 한글탑이 있다.)

9월 18일 철도의 날과 10월 9일 한글날은 딱 3주 간격이며, 둘은 같은 요일이다.
고로 올해는 철도의 날과 한글날이 모두 일요일이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본인, 무릎을 쳤다.
철도와 성경이 만나듯, 철도와 한글 쪽도 이렇게 만날 필요가 있다. ㅋㅋㅋㅋ

예전의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김 진우 교수님은 이번 학기에 연세대 국문과 학부에서 <언어학의 이해>를 강의하고 계시는데, 한글날 근처의 주엔 이례적으로 여타 단원을 건너뛰고 ‘문자의 발달사’ 단원을 강의하신다. 당연히 한글을 기리기 위해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09 08:33 2011/10/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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