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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챠 이야기

요 근래부터 이 블로그에도 국내외 광고 스팸 댓글이 급증하고 있어서 대책이 좀 필요한 것 같다.
옛날에는 외국 발 스팸 트랙백이 아주 가끔 걸리는 듯했는데 요즘은 트랙백은 없고 그냥 닥치고 쓰레기 댓글뿐이다.
일단 영어만 들어있는 텍스트는 무조건 차단하고, 요주의 키워드와 IP는 블랙리스트로 등록해 추가로 차단하고 있는데도 가끔은 그런 필터를 통과한 놈들이 게시되곤 한다. 그런 건 내가 보이는 족족 수동으로 제거하는 중이다.

옛날에 제로보드 시절엔 비로그인 사용자가 댓글/답변을 올릴 때 캡챠를 입력하게 하는 플러그인 내지 소스 추가 패키지가 있어서 본인 역시 제로보드 게시판을 운영할 땐 그걸 유용하게 썼었다. PHP 코드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리눅스용 실행 파일이 서버에서 실행되어 캡챠 이미지(PNG)를 실시간으로 생성해 냈다.
TextCube용으로도 그런 플러그인이 없을 리는 없겠지. 조만간 도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캡챠란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용자가 서버로 보내는 게시물 내지 회원가입 신청이 봇/매크로/오토 같은 컴퓨터가 생성한 게 아니라 진짜 사람이 하는 게 맞음을 입증하기 위해, 사람만이 판독할 수 있게 비비 꼬아 놓은 랜덤하고 이상한 글자· 그림이 의미하는 값을 입력받는 인증 장치를 말한다.
gotcha!와 비슷한 어감 때문에 좀 얍삽하다는 심상이 느껴지는데, CAPTCHA는 나름 영단어 이니셜이다.

기계가 인식할 수 없는 이미지를 기계가 생성해 낼 수 있을까?
패턴인식 기술의 발달로 인해 어지간히 허술한 캡챠를 기계가 인식하여 뚫는 기술도 발달하고, 그에 맞서.. 진짜 사람조차 인식 못 할 정도로 난해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기계만 엿먹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어려운 캡챠를 생성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만만찮은 수준이다.

(첨언하자면, 오늘날은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도로 찾아서 복구하는 기술이 매우 경이로운 수준이다.
물리적으로 어지간히 손상을 준 하드디스크로부터도 최대한 데이터를 복구해 낸다거나, 심각하게 BLUR된 이미지로부터도 놀라울 수준으로 원래 이미지를 복원한다거나. 캡챠를 뚫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듯하다.)

도스 시절에 '맥스'라는 유사 채팅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는 분 계시는지?
얼굴이 안 보이는 공간에서 어떤 사람이 상대방과 채팅을 했는데, 대화 상대가 패턴이 뻔한 '봇'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 맞는지를 같은 사람이 분간할 수 없었다면 그 대화를 생성한 AI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간주된다.
그런데 캡챠는 역으로 컴퓨터가 이 입력이 진짜 사람이 맞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므로, 일종의 '역방향 튜링 테스트'에 가까운 셈이다.

스팸 게시물을 막기 위해 도박, 성 등 여러 불건전한 분야의 금지어들을 지정해 놓은 게시판이 많다.
그런데 게시물에 금지어가 우연히 포함되었다고 해서 아무 설명도 없이 없이 글의 등록을 거부하면..
진짜 사람이 그런 거부를 당했을 때 그 사람을 굉장히 화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반대로 'xxx는 금지어입니다'라고 매번 친절하게 알려 주면.. 스패머들은 그 피드백 결과를 바탕으로 금지어만 교묘하게 피해가는 스팸 게시물을 만들어 뿌리게 된다. 이 역시 딜레마다.

따라서 둘을 절충하는 방법으로는...
일단은 캡챠 같은 거 없이 깔끔하게 글을 접수한 뒤,
본문이 금지어가 포함돼 있거나 특정 패턴을 만족하여 광고글로 의심되면... 그때는 금지어 같은 광고글 의심 판정 근거를 노출하는 대신, 가만히 캡챠만 좀 입력해 보라고 friendly하게 추가 요청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싶다. 한 마디로 말해 선패턴 후캡챠 전략인 것이다.

그게 익명 사용자에게 당장 깔끔한 첫인상을 주며,
사용자가 댓글을 올리지 않고 그냥 글을 읽기만 하는데도 복잡한 이미지 프로세싱이 필요한 캡챠를 매번 생성하는 것보다 서버 부담도 줄이는 일거양득 방법일 것이다.

특정 패턴이란 굳이 단어가 아니어도 되고 NLP 기술이 아니어도 된다. 지나치게 URL 링크가 많은 글, 특수문자가 한글과 너무 지저분하게 뒤죽박죽 섞여 있는 글만 찾아도 된다. 이 정도만 돼도 스패머가 제아무리 금지어 필터를 피하려고 잔머리를 굴린들 광고글 따위는 모조리 걸러낼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이런 광고 댓글 스패머는 국제 민폐요 인터넷 트래픽을 좀먹는 공해덩어리 떨거지들이다.
하지만 겨우 얘네들 때문에 게시판을 회원만 글을 올릴 수 있게 바꾼다거나, 심지어 누가 올려 놓은 글은 관리자가 일일이 사전 검열(?)한 뒤에야 공개 게시한다거나 하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불태우는 수준의 극단적인 짓일 것이다. 아무쪼록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하는 기술의 발달이 절실하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겠지만, 캡챠로부터 유래된 재미있는 발상이 있다.
포털 사이트 같은 델 가입할 때, OCR 프로그램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어떤 책 스캔 이미지 조각에 든 문자열을 캡챠하고 같이 입력하게 한다. 그래서 캡챠를 맞게 입력한 여러 사람들이 동일한 이미지 조각에 대해 일치하는 문자열을 입력했다면, 그 이미지에 담긴 텍스트는 그게 맞다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캡챠 타이핑과 동시에 real-world 캡챠도 같이 타이핑하여 전세계 네티즌들이 힘을 합쳐 문헌의 전산화(?)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일명 '리캡챠 프로젝트'라고 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세계 유수의 사이트들이 리캡챠 엔진을 활용 중이라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4/08/16 08:22 2014/08/1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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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개념들 Q&A

어찌 보면 이런 것들을 인제야 깨우친 본인의 무식-_-을 인증하는 아이템들인지도 모르겠는데, 뭐 그냥 재미로 나열해 보았다. 서로 제각기 다른 분야들이다.

1. 스플래시 데미지 + 타격 데미지?

공격이라는 게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게임에는.. 그냥 목표물에만 총알의 운동량을 박아 넣는다는 설정인 일반 데미지가 있고, 그에 덧붙여 발사체가 폭발 후 파편을 터뜨려서 주변에 추가적인 데미지까지 입히는 스플래시 데미지가 있다.

난 폭탄을 직통으로 맞은 놈은 데미지가 100, 그리고 폭심지로부터 멀어질수록 데미지는 1/n 내지 1/n^2 등등으로 감소.. 이런 모델만 생각하곤 했다. 스타로 치면 리버나 시즈 탱크, 혹은 핵의 스플래시 데미지 계산 방식처럼 말이다.
그러나 둠 내지 퀘이크 같은 FPS 게임은 로켓 런처의 경우, 로켓을 맞은 것 자체에 대한 타격 데미지를 스플래시 데미지와는 별개로 계산한다. 로켓을 직통으로 맞으면 맞은 데미지 100에다가 파편 스플래시 데미지 100을 추가로 받아서 200을 먹으며, 주변에 있던 놈들은 폭심지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100 이하의 데미지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보스급 대형 몬스터들은 스플래시 데미지를 받지 않아서 로켓 공격을 사실상 절반씩밖에 먹지 않았다. 반대로 플레이어에게도 스플래시 데미지를 받지 않게 하는 파워업 아이템이 꼭 있곤 했다. (퀘이크 3 Arena의 Battle Suit처럼.)

제자리에 가만히 있던 수류탄의 폭발을 직통으로 당한 것이라면 스플래시만 있는 게 맞다. 그러나 로켓 런처의 경우 총알보다는 느리지만 그래도 총알보다 더 크고 무거운 로켓을 맞은 것이니 이놈 자체의 운동량부터 타격 데미지로 치는 것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더 합리적이긴 해 보인다.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로켓 점프는 스플래시 데미지만으로 점프를 하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구현 가능하지 않지만 로켓을 바닥이 아니라 내 배에다 대고 쐈다면 그건 타격 데미지와 스플래시를 이중으로 받는 것일 테고.

2. 자동차 직진과 후진 평행주차의 차이

평행주차는 주차 중에서도 꽤 어려운 스킬이지만, 정식 주차장이 아닌 길가에다 적당히 차를 세울 때는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하는 스킬이다.
평행주차는 주차 지점을 지나친 뒤 후진으로 진입했다가 마지막에 핸들을 확 꺾어서 집어넣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본인은 왜 하필 후진인지를 뭔가 수학적인 증명 수준으로 이해를 잘 못 했다. 후진으로 가능한 것은 전진으로도 똑같이 가능하지 않은가? 평행주차는 왜 전진이 후진보다 어려우며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한 걸까?

그래서 머리에다 종이를 펴고 그림을 그려 보고서야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핸들을 완전히 90도로 꺾을 수 있다면 후진 방식은 차 뒷부분부터 주차 지점에 박아 넣은 뒤, 앞부분은 앞바퀴의 회전을 통해 추가 공간 없이도 쏙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전진 방식은 핸들을 많이 꺾는다고 해서 차를 집어넣는 게 가능치 않으며, 회전 후에 차가 완전히 평행한 방향을 복원할 때까지 추가적인 주행 공간이 필요하다. 구조적으로 더 어려울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발상을 반대로 바꿔서 생각해도 된다. 평행 주차되어 있던 곳에서 차가 “빠져나갈 때는” 전진이 아주 유리한 반면 후진은 완전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진과 후진으로 모두 수월하게 방향을 틀 수 있고 평행 주차가 가능하려면 앞바퀴와 뒷바퀴가 모두 조향 가능해야 한다. 비좁은 실내에서 작업하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지게차 정도나 이런 조건을 만족한다.

3. 스포츠 사격과 군대 사격

군대 미필자나 여성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으니 설명하자면..
군대 사격이 거리가 더 멀고 큰 표적을 쏜다. 스포츠 사격 종목은 수십m대이지 무슨 250m씩이나 되는 거리를 쏘지는 않는다.
스포츠 사격은 가까운 대신 정밀도도 상상을 초월한다. 양궁만 해도 과녁이 얼마나 작은데, 격발이 더 쉬운 총으로는 그야말로 정말 코딱지만 한 표적을 명중시켜야 국제 스포츠로서 밸런스가 유지될 정도다.

그리고 스포츠 사격에서 사용되는 총기는 권총이든 라이플이든 정밀도 향상에 왕창 최적화돼 있다. 반동을 최소화하려고 총이 굉장히 무거우며--군대 돌격소총의 2배 이상--, 방아쇠도 아주 아주 살짝만 건드려 줘도 바로 격발된다. 스포츠용 총이 무슨 행군시의 무게를 고려한다거나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총의 살상력 내지 대인저지력은 아무래도 군인용 총만치 강하지는 않다.

영점 잡는 건 두 부류의 총으로 각각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 정황상 군대에서의 저격수 내지 특등사수가 스포츠 사격 메달리스트하고는 완벽하게 호환되지 않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까 말이다. 스포츠 사격에 무슨 조준경을 쓰고 탄환 궤도 오차 보정을 해서 수백~1km 밖의 목표물을 맞히는 게 있지는 않다.

4. 스웨덴과 덴마크

북유럽에 서로 가깝다면 가까이 있는 나라이며 3글자짜리 이름에 '덴'자가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난 두 나라가 정말 지독하게 헷갈리고 분간하기 어려웠다. 사실, 폴란드와 핀란드의 차이도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고. -_-

일단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접해 있는 큼직한 왕국이며, 스톡홀름 증후군의 본산지이다.
그리고 철덕들에게 친숙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인버터를 제작한 ABB 사가 스웨덴 국적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는 스웨덴의 Asea와 스위스의 Brown Boveri가 합병하여 ABB라고..)
자동차 제조사 VOLVO가 스웨덴에서 출발한 기업이며, 또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이 스웨덴 출신임.

다음으로 덴마크는 그 밑에 있는 아주 작은 나라이다. 수도는 코펜하겐 되시겠다. 본토는 아주 작지만 그린란드가 덴마크령이다.
덴마크 하면 유명한 사람은 동화 작가인 안데르센이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에서 전세계를 평정한 괴수 컴퓨터 과학자가 두 명이나 미국이 아닌 덴마크 사람인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한 명은 C++ 언어를 고안한 Bjarne Stroustrup (1950~)으로,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 명은 Anders Hejlsberg (1960~)로, 왕년에 볼랜드에서 터보 파스칼과 델파이를 개발했다가,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한 뒤에는 C# 언어를 설계하고 관리하고 있는 브레인이다.

5. 오르막과 단순 하중의 차이

자전거를 타는데 단순히 뒤에 짐을 많이 싣는 것하고, 짐은 없지만 오르막을 오르는 것 둘 중 “어느 게 더 힘들까? 이걸 정량적으로 수식으로 나타내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자동차로 치면 어느 게 연료가 더 많이 드느냐 하는 것이다.

당장 바퀴와 지면 사이의 마찰계수부터 시작해서 생각해야 할 개념이 많을 것이나, 그래도 중· 고등학교 수준의 고전역학 지식으로도 어느 정도 답이 나올 것이다.
뒤에 백수십 kg 정도 되는 수레를 끌고 가든, 1~2도 정도의 오르막을 오르든 똑같이 힘이 더 많이 필요하고 출발이 더 어려워지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단순히 하중만 많이 실린 것은 일단 가속을 한 후에는 어느 정도 관성의 덕을 볼 수도 있으며 크게 힘든 게 없다.

그에 반해 오르막은..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서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자전거가 뒤로 밀려난다. 단순히 무거운 하중이 걸린 차원이 아니라, 누군가가 약하게나마 뒤쪽으로 페달을 역으로 꾸준히 밟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주행하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짐보다는 오르막이 확실히 더 큰 장애물이 될 듯하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진을 찍을 때 대상 물체를 크게 찍기 위해 줌을 당기는 것하고, 그냥 대상에게 가까이 가는 것하고 차이가 무엇인지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피사체가 단순히 2차원적인 형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둘은 동일하게 피사체를 확대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zoom을 당기는 것은 주변 배경의 원근감을 동일하게 내 주지는 않는다. 그런 차이가 있다. 이것도 오르막과 하중의 차이와 비슷한 맥락인 걸까? ㅎㅎ

6. 럭비와 미식축구의 차이?

스포츠에 완전 문외한이고 관심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둘 다 얼굴에 무슨 펜싱 선수 같은 보호구를 쓰고 손과 발을 모두 동원해서 갈색의 타원형 공을 향해 미친 듯이 쫓아다니는 구기 종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둘은 규칙이나 체계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얘는 더 자세한 설명은 패스..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4/08/04 08:20 2014/08/0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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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PC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잔고장의 양대 산맥은 (1) 액정 화면 접촉불량과 (2) 키캡 빠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인이 개인용 노트북 PC를 사용한 지가 15년이 넘었고 지금 쓰는 맥북은 제 5대 컴퓨터인데,
예전에 쓰던 노트북들은 쓴 지 1년 남짓 되면 저런 잔고장이 어김없이 발생하곤 했다.
물론, 언제나 새 노트북만 쓴 게 아니라 중고나 준중고를 쓴 것도 있기 때문에, 품질이 원래부터 안 좋아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1)은 화면을 편 각도에 따라서 붉은 세로줄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거나, 화면이 아예 꺼진다거나 하는 등 굉장히 성가신 증상이다. 이것 때문에 서비스센터 들러서 수리 받느라 신경 쓰이고 시간· 돈이 낭비되는 것도 과거엔 상당한 수준이었다.

(2)도 노트북 키보드가 데스크톱 PC 키보드보다 약해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인 듯.
자주 누르는 편인 화살표, 엔터, space, shift 같은 게 잘 빠졌으며 가끔은 문자 키가 빠지기도 했다. 키캡이 없어도 해당 키를 누르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빠른 타자와 원활한 컴퓨터 사용에는 애로사항이 꽃핀다.
빠진 키캡 한두 곳만 수리가 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키캡이 대여섯 개쯤 빠질 때까지 컴을 더 쓰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키보드 기판을 교체하곤 했던 것 같다. 돈 몇만 원 정도는 깨진다.

그런데.. 지금 쓰는 맥북은.. 쓴 지 2년이 넘었지만. 위의 잔고장이 지금까지 전혀 발생한 적이 없다. 엔터 키가 약~간 달랑달랑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키캡이 완전히 빠진 건 없다. 잡느님의 손길이 담긴 품질 덕분인 걸까? 놀랍다.
맥북은 한번 병원 치료를 받으면 일반 놋붉에 비해 수리비가 작살나게 깨진다는 게 겁나긴 했었지만, 아직까지 A/S를 받을 일 자체가 전혀 없었다.
(참고로 난.. 흔들리는 교통수단 안에서도 쓰고 몇 번 떨어뜨린 적도 있고, 노트북 PC를 시도 때도 없이 험악하게 혹시시키며 쓰는 편이다.)

따라서 애플케어를 구입 안 한 게 현재로서는 결과적으로 이익이었다.
난 비록 맥북으로도 95% 이상의 시간은 맥OS가 아닌 Windows만 쓰며 지내지만 맥북의 이런 품질은 만족스러우며 인정할 만하다.

다만, 세월 때문인지 배터리 용량은 예전보다 확실히 줄어들었다. 2시간 남짓이면 간당간당하다. 배터리는 아직 구경도 못 해 봤다.
그리고 얼마 전엔 맥북을 쓴 지 2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능 고장을 경험했다. 본체나 LCD 쪽은 아니고, 전원 어댑터가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저기서 전선의 피복이 슬슬 벗겨지면서 속의 금속선들이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다. 벗겨진 부분에다가는 테이프를 감았으며, 노출 부위 때문에 감전이나 화재 사고가 날까 두려워서 잘 때나 부재 중일 때는 전원 플러그를 빼 두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나중엔 컴퓨터 본체와 연결하는 목덜미 부분이 너무 너덜너덜해진 나머지 거의 두 동강 나다시피하면서 결국 단선됐다. 전원을 연결해도 본체에 전원 공급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컴퓨터 본체는 이제 2시간짜리 시한부 인생으로 전락했다.

어댑터 전선에 피복이 벗겨지면서 고장이 이런 식으로 발생하는 노트북 컴은 맥북이 처음이다. 그런데 다른 맥북/아이폰 사용자에게 물어 보니, 애플 제품은 그런 식으로 전원 어댑터 내지 충전기가 망가지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고 한다.

어댑터 자체는 이상이 없고 전선만 망가진 건데 어째 물건을 재활용할 수는 없나 궁금하다. 물론, 콘센트 쪽 전선이 아니라 컴퓨터에다 꽂는 쪽의 전선이다 보니 어댑터와 분리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은 어댑터를 새로 구입해서 상황을 마무리 지었지만, 약 3~4일 동안 내 컴을 못 쓰면서 좀 불편하게 시간을 보냈다. 다음부터는 좀 불편하더라도 컴퓨터 본체와 어댑터 선이 언제나 같은 높이와 평행한 각도가 유지되게 해 놓고 써야겠다. 목덜미 부근엔 수축 튜브를 감아 주고, 전선을 둘둘 감아서 가방에 넣는 것도 굉장히 조심해서 해야 할 것 같다.

* 다음은 여담.

1. 맥 OS가 의외로 굉장히 유용한 경우가 있는 걸 본인이 얘기한 적이 있나 모르겠다. 바로 학교 안에서이다.
Windows의 경우 컴퓨터의 속도를 한 반쯤 깎아내리는 엄청난 백신, 보안 솔루션 등을 강제로 설치해야만 교내 무선 인터넷 이용이 가능한 반면, 맥 OS는 그런 것 전혀 없이도 바로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주 편리하고 좋다.

2. Windows 진영에서는 Metro라는 이름을 안 쓰는 게 마음에 안 들던데, 애플 진영에서는 매킨토시로도 모자라서 Mac이라는 이름까지 왜 빼 버렸나 궁금하다.. 자기 정체성을 가장 잘 분명하게 보여 주는 명칭을 빼 버리고 그냥 OS X...;;;

3. 그러고 보니, 플래시가 깔려 있지 않은 맥 OS의 사파리 브라우저에서 유튜브 동영상이 나오고 있어서 깜짝 놀라서 살펴봤더니.. 말로만 듣던 HTML5 기반 동영상이다. 우와~ 물론 비스타+IE9 구닥다리에서 실행해 보니 여전히 플래시다. 브라우저에 따라 기술을 알아서 판별하는 듯하다.

솔직히 플래시든 뭐든 인터넷으로부터 패킷을 받아서 하드웨어 가속으로 동영상을 틀어 준다는 기본 원리는 똑같다. 단지, 동영상을 해독하고 재생하는 기계어 코드가 예전에는 플래시 ActiveX라는 일종의 private한 영역에 있었던 반면, 이제는 그게 통일된 규격으로 웹브라우저에 있다는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웹 표준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담는 그릇의 규격에 대한 논쟁인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7/08 08:29 2014/07/0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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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구. 나 완전 고전 게임 덕후 인증이다. ㅎㅎ

1.
옛날의 액션/아케이드 게임 중에는 주인공을 죽게 하는 각종 트랩들이 적(몬스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동일하게 적용되는 게 더 공정하고 현실 고증에 더 충실한 시스템이겠지만, 그 경우 적의 AI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야 게임성이 성립할 테니 개발자에게는 더 큰 난관이 된다. 안 그러면 적을 정당하게 싸워서 죽이는 게 아니라 AI 헛점을 이용해서 트랩으로 죽이는 꼼수가 너무 횡행하여 게임 밸런스가 무너질 것이다.

이런 한계로 인해 id에서 개발한 둠, 퀘이크 등의 몬스터는 용암이나 화학 용액 같은 데에 들어가도 체력을 잃지 않으며 물에 들어가도 익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잘 알다시피 자기끼리 팀킬을 벌이는 몬스터 내전(monster infighting)이 있을 뿐이다. 둠에서는 몬스터들이 정말 무식한지라 내전이 정말 잘 벌어졌지만, 퀘이크에서는 몬스터와 주인공 사이에 다른 몬스터가 일직선으로 있을 때는 공격을 안 하게 일말의 AI 개선이 이뤄졌다.

위험한 데이브에서는 몬스터는 트랩 같은 건 쌈싸먹으며 잘만 날아다니고..
과거의 툼 레이더 게임들은 주인공이 혼자 트랩 퍼즐을 풀어야 하는 구역과 몬스터와 싸우는 구역을 완전히 철저하게 분리하여 논란의 여지를 차단한 사례에 가깝다.
Rick Dangerous 2는 이 점에서 독특하다. 몬스터도 미사일, 전깃줄 같은 트랩에 걸리면 얄짤없이 죽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죽이는 게 전기총(50점), 폭약(100점) 같은 주인공의 일반적인 공격으로 죽이는 것보다 점수도 더 높게 준다(150점).

자,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 페르시아의 왕자는 잘 알다시피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스프라이트를 만들었을 정도로 극도의 현실성을 추구한 게임이다. 악당도 딱히 초현실적인 괴물이 아니라 그저 검을 든 똑같은 인간이며, 이들을 상대로도 가시와 톱날 같은 트랩은 똑같이 동작한다. 악당 역시 트랩에 걸리면 피투성이가 되어 끔살당한다.

악당을 죽이는 방법으로는 (1) 칼 공격으로 HP를 다 깎아서 죽이는 가장 평범한 방법 외에도,
(2) 2층 이상의 높이에서 추락사시키기. 주인공은 이 경우 HP 하나만 잃지만, 악당은 의외로 즉사한다. 그 대신 악당은 1층 높이에서 떨어졌을 때 주인공처럼 무릎을 굽혀 엎드리지 않으며 바로 자세를 잡는다. 일당일단? 그리고 악당이 지금보다 아래 화면으로 떨어진 경우, 시체가 남지 않는다.
(3) 가시 꼬챙이가 있는 곳으로 떨어뜨리기. 한 층 높이에서만 떨어져도 주인공이든 악당이든 다 죽는다.
(4) 허리 자르는 쇠톱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악당을 죽이고 나면 '빰 빠밤 빰' 하면서 승전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칼로 찌르든, 떨어뜨리든 어떻게 죽이든지 말이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왕자에서 악당을 (3)번, 즉 가시에다 밀어넣어 죽인 뒤에 승전 멜로디를 들은 적이 있으신 분 손..??
난 한 번도 없다.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곤 했는데, 갑자기 문득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

페르시아의 왕자 레벨에서 악당을 (3)번처럼 죽이는 건 레벨 2, 4, 8, 9(두 번), 11에서 총 6군데가 가능하다. 특히 마지막 레벨 11의 경우, 아예 왼쪽과 오른쪽에 모두 가시 트랩과 절벽이 존재하니 악당을 재미있게 요리하는 맛이 더욱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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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을 정상적인 (1)번 방식으로 죽였을 때는 승전 멜로디가 무조건 나온다. (2)나 (4) 같은 트랩으로 죽였을 때는 아주 가끔 음악이 안 나오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반면 (3)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 죽든 악당의 HP가 0이 되어 전투가 끝나고 주인공이 칼을 집어넣을 때 승전 멜로디를 연주하면 될 텐데.. 로직을 상황별로 다 따로 처리했나? 그리고 저기서만 if문이 하나 실수로 빠진 건지? 진실은 그 당시 코딩을 했던 프로그래머만이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자, 이제부터는 가시 말고 톱날 얘기가 줄곧 나올 것이다.
페르시아의 왕자의 일부 던전에는.. 톱날을 통과해 들어간 뒤에 곧바로 칼을 뽑고 악당과 싸워야 하는 곳이 있다. 레벨 4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적과 싸우기 시작했을 때는 게임 진행이 조금 느려지고, 심지어 톱날의 톱질 주기도 약간 길어지는 것 같다.

이것은 시스템 성능 같은 다른 외부적인 문제일 뿐, 게임 메카닉 자체가 느려지는 건 아니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참 좋은 게, ESC를 눌러서 게임을 일시 정지시키고 나서 계속 ESC를 누르면 게임을 한 프레임 단위로 천천히 진행시킬 수가 있다.
이걸로 측정을 해 보면, 톱날의 톱질 주기는 언제나 15프레임으로 동일하다. 전투 중일 때든, 평시든 말이다.

그리고 심지어 톱날이 여러 개 연달아 동작할 때도 동일하다.
각각의 톱날이 한 번씩 연달아 톱질한 뒤에 첫 톱날의 다음 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주기가 좀 길 것처럼 느껴지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원작 게임에서야 톱날이 한 층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레벨 3의 대형 물약이 있는 방이다. 3개짜리가 최다이다.
유튜브 같은 데서 톱날이 5개가 넘게 있는 이상한 방을 가 보면, 모든 톱날들이 15프레임 안에 한 번씩 순회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런 데서는 뒤쪽의 톱날이 미처 톱질을 하기 전에 15프레임을 다 채운 앞쪽 톱날이 또 톱질을 시작한다.
게임 메카닉이 이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3.
또한, 톱날은 주인공이 톱날과 같은 층에 진입한 경우 곧장 동작한다.
그런데 주인공이 그 층에서 다른 이유로 인해 죽어 버리면, 톱날은 일반적인 경우 동작을 멈춘다. 가령, 그 층에 있는 악당과의 전투에서 져서 죽거나, 칼을 뽑지 않은 상태에서 악당의 칼빵을 맞아 죽은 경우 말이다. 톱날이 있는 층에 주인공이 추락사를 했다면 톱날은 역시 더 동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이든 악당이든 누군가가 그 톱날 자체에 찍혀 죽었다면 톱날은 계속 동작한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한번 죽인 적이 있는 톱날은 그 층에서 주인공이 추락사하든 악당의 칼에 맞아 죽든, 주인공이 그 층에 어떤 형태로든 있다면 계속 동작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치트까지 써 가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테스트를 해 보니 대략 그러하다. 알고리즘 차원에서 이런 미묘한 차이도 존재한다는 게 흥미롭지 않은가?

4.
그리고.. 주인공이 톱날이 존재하는 층에 있긴 한데, 추락하느라 잠시 지나는 형태라면 톱날은 어떻게 동작할까?
톱날은 이때도 반응한다. 레벨 9에서는 심지어는 주인공이 아니라 악당이 떨어지는데도 톱날이 한번 동작하니, 참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아래 그림을 보시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반면, 주인공이라 해도 이렇게 지나갈 때는 톱날이 동작하지 않는다. megahit 치트를 써서 천천히 떨어지게 하는 낙하산 효과를 줬는데도 톱날이 동작하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걸 보면, 톱날의 동작 여부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로직이 들어간 건지도 모른다. 심지어 던전의 지형별로 톱날의 동작 여부를 제어하는 메타데이터가 수작업으로 들어간 건 아닌지?

5.
아까도 잠깐 얘기했던 레벨 3으로 돌아간다. 여기는 알다시피 최대 HP를 늘려 주는 대형 물약이 있지만, 그 길목을 저렇게 톱날이 무려 3개가 가로막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페르시아의 왕자에서 레벨 3은 중간 waypoint가 존재하는 유일한 레벨이기도 하다. 죽으면 얄짤없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타임어택 절벽 관문은 통과한 뒤의 시점부터 시작한다는 뜻. 페르시아의 왕자 2야 각 레벨이 워낙 방대해진 관계로 waypoint가 존재하는 레벨이 더 생긴 편이지만, 1에서는 레벨 3이 유일했다.

레벨 12에도 그림자 인간과 합체하고 나서 Jafar를 만나기 직전 위치에 일종의 waypoint가 있긴 하지만, 이건 내부적으로는 완전 별도인 레벨 13으로 간주된다. 그렇기 때문에 레벨 3의 waypoint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관문을 통과하기 전에 대형 물약을 먹었다면, 그렇게 해서 늘어난 HP도 다음에 waypoint에서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 반영된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버그 내지 exploit가 있다.
waypoint에서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 레벨 3의 모든 요소들이 원래대로 되돌아간다. 딱 하나, 그 타임어택 절벽 관문의 한쪽에서 우리가 도움닫기를 위해 밟아 떨어뜨려 없애던 발판만 계속 없는 채로 남아 있다.

그것만 빼고 나머지는 전부 원상복귀. 심지어 타임어택 절벽을 넘기 전에 먹었던 대형 물약도 다시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관문을 열고 해골도 처지한 뒤, 다시 그 방으로 돌아와서 대형 물약을 먹으면.. 이론적으로 레벨 3에서 대형 물약을 두 번 먹어서 HP를 2개나 확장하는 게 가능해진다.

레벨 3 시작 → 대형 물약 → 타임어택 관문 통과 → 그 뒤 Ctrl+A 눌러서 waypoint 지점부터 게임 재시작. 예전에 대형 물약 먹은 게 반영됨 → 되돌아와서 대형 물약 또 먹음 → 클리어

물론 실제로 이렇게 하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노가다이기 때문에 현실성은 별로 없지만..
이건 아마 조던 메크너(오리지널 게임 설계자, Apple II용 개발자)와 랜스 그루디(도스용 게임 포팅 개발자)조차 그 당시 예상을 못 했던 꼼수일 것이다.
차라리 waypoint 이후에 도달하는 위치에다 대형 물약을 놔 뒀다면 이런 exploit가 틈탈 여지가 없었을 텐데.

자, 이런 글을 보니 나도 도스박스 깔아서 페르시아의 왕자를 실행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시지는 않는가?

Posted by 사무엘

2014/06/29 08:21 2014/06/2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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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이큰> 관련 소감

OCN인지 뭔지 영화만 하루 종일 상영해 주는 케이블 TV 채널을 보면.. 한때는 계속 유명 액션 영화만 틀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본인은 원빈이 너무 멋있게 나온 <아저씨>, 또 B급 영화 오마주로 가득하면서 웬 인간 흉기 금발 백인 누님이 일본도 들고 싸우는 <킬 빌>을 TV를 통해 우연히 봤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하나 더 본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테이큰>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 소감은..
역시 흥행하는 영화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다. 리암 니슨 아저씨 너무 멋있다.
특히 딸 유괴범을 전기고문하면서 딸이 있는 곳을 알아내는 장면은 너무 통쾌한 권선징악 장면인지라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해서 봤다. 다같이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저 때 Wake up! I need you to be focused!로 시작하는 대사가 나온다.
다만,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자막 파일은 그 문맥에서 대충 의미만 통하지 영어 원문의 정확한 의도를 다 전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뜻은 대략 이렇다.

“(기절한 마르코를 의자에다 묶어 놓은 뒤) 어이, 일어나! 너를 심문을 좀 해야 하니 정신 바싹 차리고 있어라. 어금니 꽉 깨물어라, 자 간다~ (쇠꼬챙이를 양 허벅지에다 푹~ 박아 넣은 뒤) 자, 기절할 정도로 졸라 아프겠지만 고문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여전히 정신 괜찮지?”

이런 뉘앙스를 제한된 화면에다 문장으로 일일이 다 표현할 수가 없으니 Are you focused yet?을 “이제 정신이 좀 드나?”로 보통 번역하는 편이지만.. 원래 의미는 “아직 괜찮지?”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한다.

마르코는 처음에는 브라이언의 얼굴에다 침까지 뱉으면서 의기양양하게 반항하지만.. 전기로 10초간 지져지는 고문을 두 번 당하고 나니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우리의 멘탈갑 브라이언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태연~하게 이런 이 근안스러운 말을 해 댄다.

“이런 일은 말야, 원래는 외주를 주곤 했어. 그런데 문제는 외주 준 나라들이 대체로 못사는 개도국이어서 전력 공급이 불안했단 말이야..?? 스위치를 켰는데 전기가 안 들어와. 그러니 고문기술자들은 빡쳐서 사람 손톱을 뽑거나 생살에다 산성 용액을 부어 버리곤 했지. 일이 여러 모로 능률이 떨어지곤 했는데.. 여긴 전류가 아주 원활해서 좋아.”
“난 지금 바쁜 처지야. 마르코, 너 순순히 대답 안 하면 전기세 밀려서 단전될 때까지 스위치가 켜져 있을 거다.”

나중에 정보를 얻을 만치 다 얻은 브라이언이 다시 스위치를 켜러 가자 마르코는 완전 겁에 질려서 브라이언에게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애원한다. “I don't know!! PLEASE..!! not that.. please ㅠ.ㅠ” 이 부분 연기를 처절하게 잘했다.
그래 봤자 브라이언은 “I believe you. But it's not gonna save you.”와 함께 스위치를 켜 놓고 나가 버린다. 마르코의 자백은 자기 수명을 불과 몇 분 남짓밖에 더 연장시키지 못했다.
허나, 부모가 수십 년간 피땀 흘리고 갖은 애정을 쏟아 키운 딸애를 창녀촌에다 팔아 버리고 돈은 자기가 챙긴 사악한 악당이라면.. 정말 저 정도 고문은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다.

테이큰은 여타 액션 영화와는 달리 주인공이 친구의 마누라(악역이 아닌 여성!)까지 팔을 쏴 버리는 장면이 나오며,
또 최종 보스와 대면한 뒤에도 일말의 타협 없이 주인공이 그냥 곧바로 악당의 미간을 날려서 사건을 종결짓는다. 사건 전개가 참 자극적이고 짜릿하다.
사실, 브라이언이 친구를 다그칠 때도 “너 자꾸 고집 부리면서 협조 안 해 주면 니 애들은 고아가 될 거다. 아까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팔을 쐈지만 다음엔 급소를 쏠 거야?”라는 요지로 자막이 나왔는데, 이것도 정확하게는 단순히 급소가 아니라 '미간'이다. 영어 대사엔 eyes라는 단어가 들렸던 걸로 기억한다.

위의 장면들을 다 제치고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이 남긴 제일 간지 넘치는 대사는, 역시 딸이 납치당한 직후 전화로 납치범에게 남긴 경고일 것이다. 딸이 외국에서 납치 당했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이 타이밍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납치범들을 상대로 나지막한 말투로 협박한다. 아아..;;

I don't know who you are. I don't know what you want. If you're looking for a ransom, I can tell you I don't have money (....)
If you let my daughter go now, that'll be the end of it. (...)
But if you don't, I will look for you.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

..... good luck.

30초가 넘는 분량의 대사인데.. 난 다 외워 버렸다.

역시 사람은 자기 마음이 가는 곳에 역량이 발휘된다.
매주 교회에서 짤막한 성경 구절을 외운 건 길어야 그 날 저녁까지밖에 안 가고 세부적인 단어와 표현은 하루 이틀 정도 뒤면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저건 그냥 머리에 확...

take는 성경에도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동사인데, 저 영화를 보고 나니 take의 뜻조차도 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갑자기 똘끼를 발휘하여, 저 사건과 대사가 만약 흠정역 성경에 기록되었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 봤다. ㅋㅋㅋㅋ

... 그녀의 아버지가 이르되,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네 혼이 무엇을 원하는지(thy soul desireth) 알지 못하노라. 만약 네가 대속물(ransom)을 원한다면, 너는 확실히 알지니(of a surety) 내게는 돈이 없느니라. (...) 만약 네가 내 딸을 가게 하면 잘하는 것이려니와 만약 가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를 쫓고 너를 찾아내어 너를 반드시 죽이리라, 하니라.
잠시 후에 그녀를 취한(took/taken)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잘해 보라, 하니라.


그러고 나서 나중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지라 “너 나 기억 안 나? 우리 이틀 전에 서로 전화 통화 했었지? 내가 너 찾아낼 거라고 예고했잖아.” 이 말을 들었을 때 마르코는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을까?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_=;;;;

테이큰은 잔인한 폭력뿐만 아니라 창녀촌 배경도 있어서 그런지 국내에서는 생각보다 수위가 높은 19금 등급을 받고 개봉했다.
아무리 자기 딸을 구하려 한다지만 브라이언은 남의 나라에 들어가서 거의 30명 이상의 사람을 죽였다. 모 건설 현장을 완전히 작살을 냈으며 남의 자동차를 최소한 3대를 탈취하고, 고위 공직자의 부인을 총으로 쏴서 다치게 했다.

이 정도면.. 선한 의도라고 해도 브라이언은 법적으로 프랑스를 절대로 곱게 빠져나갈 수 없는 신세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딴 시시콜콜한 디테일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하긴, <킬 빌>에서도 키도 누님이 시퍼런 핫토리 한조 일본도를 비행기 기내에 버젓이 반입한 채 일본 본토로 날아가는 걸 보고, 본인은 피식 웃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아저씨>에서는 그래도 최소한 차 태식이 체포되는 걸로 끝난다. 아무리 나쁜 조폭들을 죽인 거라지만, 일반인이 혼자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많이 학살했다면, 현직 변호사의 자문에 따르면 아무리 명분을 참작하고 봐 준다 해도 무기징역감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식의 경우 원래 특수부대 요원이었고, 아직 능력이 출중해 보이니 도로 국가를 위해 현업 복직하는 것을 조건으로 검찰에서 기소조차 하지 않고 학살극을 유야무야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조폭들이 죽은 건 자기들이 팀킬 벌인 거라고 적당히 위장하고 말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폭력 액션 영화에 너무 심취하는 건 사람의 정신 건강에 그다지 좋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흉악 범죄자에게 권선징악을 속 시원하게 집행을 안 하고 되도 않은 인권 핑계로 직무유기를 저지르니,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영화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된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괜히 종교색 표방하면서 교묘하게 성경이나 하나님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하는 매체보다는, 차라리 종교색 따윈 싹 잊고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게 '덜' 해로운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성경 용어로 설명하자면 전자는 마귀적(반성경적)이며 후자는 육신적(비성경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06/26 19:29 2014/06/2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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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해 버렸으니 허접한 게 아니라, 오히려 500년이나 버틴 대단한 왕조이다”라는 요지로 조선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서울대 중문과 허 성도 교수가 했다는 강연을 보신 분이 있는가 모르겠다. 본인 역시 오래 전에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조선이 그저 말기에 막장으로 치달아서 망할 만하니까 망했고 먹힐 만하니까 일제에게 먹혔다고만 생각하기에 앞서,
조선 역시 리즈 시절에는 기강과 체계가 굉장히 잘 갖춰진 좋은 나라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환단고기 식의 황당한 얘기가 아니라 그럴싸하게 들린다.

다른 제도는 몰라도 특히 조선왕조 실록은 훈민정음에 버금가는 위대한 문화 자산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뭔가... "성경에 과학적으로 아주 정확한 진술이 있다.." 그런 예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

본인에게는 그분의 성함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저 강연을 한 허 성도 교수는 '한국사 사료 연구소'에 재직하였으며,
유니코드가 정식 제정되기 전에 아래아한글이 제공하던 '제2수준 확장 한자'를 제정하고 글자를 직접 그리기까지 했던 분 중 하나이다. 아래아한글의 도움말 credits에도 이름이 당당히 올라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 모로 우리나라 문화와 관련해서 공적이 뚜렷한 분임이 틀림없다.흔히 한글 전용론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한문 고전을 통해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소수의 전문가를 양성해서 고전을 번역을 해야지, 그걸 빌미로 전국민에게 어려운 한자· 한문을 원어 그대로 가르치기에는 국가적인 손실과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허 교수는 그 주장이 가리키는 '소수의 전문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대단한 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올해에 갓 정년 퇴임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사무엘

2014/03/16 08:16 2014/03/1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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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래아한글의 역대 버전 중, 96과 97은 실행되면서 스플래시 화면이 나올 때 짤막한 효과음(음악 멜로디)이 나오던 전무후무한 버전이었다.
96은 경쾌한 사과나무.wav (도~~ 미파솔..로 시작하는)이었고 97은 그것 말고도 여러 종류의 음향이 더 추가되었다. 물론 워디안 이후 후대부터는 그런 것 없고. 이런 것도 다 일시적인 유행이었다.

오늘날은 아예 Windows조차도 8부터는 로그인 로그아웃 소리가 없어졌다.
먼 옛날 3.x 시절에 사운드 카드가 지원된 이래로, 시작 효과음은 그 유명한 tada.wav부터 시작해 뭐가 들어가도 들어갔는데.. 완전히 없어진 건 8이 처음이다.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게 옛날만치 그렇게 막 유세 떨 일이 아니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설치 프로그램이 원래 전체 화면을 차지하는 형태이다가 조그마한 마법사 대화상자로 바뀐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고 말이다.

2.
지금이야 MS Office 제품들이 리본 UI를 사용하여 인터페이스가 여타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뀌었지만..
먼 옛날, Office 95 시절이 문득 생각난다.
Windows 95의 출시에 맞춰서 완전히 32비트로 포팅된 첫 버전이었으며, 동시에 Office가 운영체제의 표준 메뉴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던 마지막 버전이었다.
다만, 약간의 애드립이 생각지 못한 곳에 있었는데.. 아래 스크린샷에서 프로그램 상단의 타이틀/캡션 바 영역을 보시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Office 95 프로그램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캡션 바를 자체적으로 그렸다.
그래서 Microsoft는 그냥 일반 폰트가 아니라 그 당시 쓰이던 MS 로고타입 형태 그대로 그려졌으며, 검은색에서 짙은 군청으로 바뀌는 그러데이션이 적용되어 있었다.
잘 알다시피, 캡션 바에 그러데이션이 추가된 것은 윈도 98부터이지 95엔 아직 그런 게 없었다. 응용 프로그램이 WM_NCPAINT를 처리하여 직접 그렸던 것이다.

정말 일시적인 유행이었지만 그 시절에 외국 프로그램 중엔 캡션 바를 이 스타일을 따라 그렸던 프로그램도 소수 있었다.

3.
사실 Windows는 GUI 외형이 Mac OS에 비해 매우 단순한 편이었고, 그 대신 색상을 다양한 스타일로 지정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XP 이후부터는 큰 변화가 생겼다. Luna 테마는 파랑-은색-황록이라는 세 색상표만 지원했고, Vista부터는 Aero 창틀의 색깔만 사용자 지정이 될 뿐 나머지 색상은 고정 불변이 됐다. 예전의 재래식 외형은 '고전 테마'라는 legacy로 전락했다.

시스템 색상을 customize할 일이 없어졌다. GetSysColor 함수는 원래 수십 가지의 색상 요소들을 제공하지만 응용 프로그램은 사실상 COLOR_WINDOW(TEXT), COLOR_HILIGHT(TEXT), COLOR_BTNFACE 같은 것밖에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사실은, 선택된 아이템을 표시할 때도 COLOR_HILIGHT나 반전(InvertRect)이 아니라 엷은 파랑 효과를 쓰는 게 유행이 됐다.

옛날에 Microsoft Plus! 같은 확장팩이 제공했던 '테마'들은 색상, 마우스 포인터, 효과음을 한데 모은 세트였지만.. 지금은 Windows도 맥 OS처럼 어찌 보면 사용자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다. 지금의 외형 자체가 곧 Windows의 정체성과 같다는 점을 더욱 내세우려는 것 같다. 색상표는 이제 사실상 시각 장애자 내지 전력 절약용으로나 의미가 있는 '고대비'밖에 안 남았다.

4.
Windows는 파일/디렉터리 목록을 이름 순으로 정렬해서 표시하더라도 디렉터리(폴더)와 파일은 따로 분류해서 보여주는 반면, Mac OS는 이들을 다 한데 섞어서 보여준다. 디렉터리도 특수한 형태의 파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아무래도 파일과는 개념적으로 다른 존재로 보느냐의 차이 같다.
또한 마우스 휠을 인식하는 대상도 Windows는 키보드 포커스를 받고 있는 창이지만, Mac은 마우스 포인터가 놓여 있는 창이다.

참, 맥OS는 메뉴나 대화상자에 액셀러레이터 키가 전혀 없는 게 굉장히 뜻밖이다.

5.
유튜브나 스마트폰의 동영상 재생 앱 등... 요즘은 이게 유행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멀티미디어 재생 컴포넌트들은 Pause(||) 버튼만 있지, 완전 정지 Stop(■) 버튼이 없다.

파일을 열었으면 나중에 반드시 닫아야 한다는 프로그래머스러운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본인 같은 사람에겐 그런 디자인이 심리적으로 좀 불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정말 Stop이 없어도 될까? 굳이 프로그래머가 아니더라도 옛날 카세트 및 비디오 테이프 재생기 역시 기계적인 특성 때문에 Pause와 Stop은 성격이 상당히 다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리소스 제약 같은 걸 생각하지 말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오로지 틀고 싶을 때 틀고 끄고 싶을 때 끄는 것만 생각하면, 원론적으로야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긴 해 보인다.

6.
top-to-bottom과 bottom-to-top이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당장 좌표계만 해도 수학에서는 아래에서 위가 y축의 양의 방향이지만.. 컴퓨터 화면에서는 위에서 아래가 y축의 양의 방향이다.

Windows에는 spin, 혹은 up-down이라고 불리는 컨트롤이 있다.
얘는 언제나 위에 있는 ▲ 버튼 혹은 위(↑) 화살표 키를 눌렀을 때 숫자를 증가시키고, 그 반대의 조작을 하면 숫자를 감소시킨다.
안타깝게도 이 동작을 정반대로 바꾸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컨트롤의 동작을 교묘하게 서브클래싱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저 컨트롤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제어판에서 입력 항목의 배열 순서를 바꾸는 용도로도 쓰이는데..
입력 항목들은 위에서 아래로 오름차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 ↑가 아니라 ↓를 눌렀을 때 숫자가 증가하고 아래로 가게 하고 싶으나 그렇게는 못 하고 있다.
이건 솔직히 사용자를 굉장히 헷갈리게 만들 수도 있는 면모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외에도, 노트북의 터치패드를 손가락으로 상하 드래그를 했는데, 위에서 아래로 그었을 때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시킬지,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스크롤시킬지도 보통은 옵션으로 존재한다.
본인이 선호하는 건 위에서 아래로 그었을 때 화면은 아래에서 위로, 즉, 아래 페이지의 내용을 표시하는 것이다. ↓ 키를 눌렀을 때와 같다. 손가락은 전체 내용에 대한 화면(view)의 상대적인 위치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의 위치를 지금 표시되어 있는 텍스트의 상대적인 위치와 같은 것으로 본다면.. 소프트웨어의 동작은 저것과는 반대가 되어야 직관적일 것이다. 결국 이것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답이 없는 문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2/15 08:26 2014/02/15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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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에 대해서 더는 글을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또 하나 글을 쓰게 됐다.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게임 중 이벤트가 하나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페르시아의 왕자에는 주인공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이상한 이벤트가 있다.
레벨 4에서 클리어 관문을 열고 나오면 거울이 하나 생겨서 길을 가로막는다.
이 거울을 도움닫기 점프로 깨뜨리면 진행은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때 자기 영혼 내지 그림자? 도플갱어가 빠져나가고 그 과정에서 왕자는 HP가 1로 다 깎여서 죽기 직전의 상태가 된다.

도플갱어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작자 조던 메크너가 무엇을 의도하고 이런 걸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도플갱어가 왕자에게 하는 짓은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다.
레벨 6에서 뚱보를 죽인 뒤에 벼랑을 앞두고 서로 만났을 때는, 도플갱어가 문을 쾅 닫아서 왕자를 벼랑 아래로 빠뜨려 버린다.

그 뒤로 도플갱어는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게임이 끝날 때가 다 된 레벨 12의 꼭대기 층에서야 등장한다. 원수진 것 때문에 서로 칼을 뽑고 대적하지만 그래도 성질 죽이고 칼을 집어넣고 서로 합체를 해야 살 수 있다. 재결합을 한 뒤에는 보상 차원에서인지 전체 체력이 1 증가된다.

이 글에서는 그 전에 레벨 5에서 발생하는 이벤트에 대해서 좀 분석을 해 봤다.
레벨 5에는 전체 체력을 1 늘려 주는 대형 물약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왕자가 먹을 수 없다. 도플갱어가 먼저 와서 진짜 말 그대로 정확하게 '먹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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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옛날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옛날 생각이 나실 것이다.
1층과 3층에 문이 있는데 물약이 있는 3층 문은 닫혔기 때문에 낮은 1층으로 먼저 들어가야 한다.
1층 문을 진입하는 순간, 발판 때문에 문은 쾅 닫힌다. 왔던 길로 못 돌아간다. 미우나 고우나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상태가 되고, 어떻게든 저 무시무시한 왕복 톱날 2개를 통과하여 물약을 먹으러 가야 한다.

톱날을 통과하면 곧장 1층과 3층 문을 모두 여는 발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3층 문이 열리자마자 3층에서는 왕자의 도플갱어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물약을 쳐묵쳐묵 한 뒤 달아나 버린다.
톱날을 지나면서 힘들게 묘기는 우리가 다 했는데 갑자기 저 녀석이 소중한 물약을 먹튀하다니..

일단, 맵의 디자인이 굉장히 교활하게 돼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문을 여는 발판이 하나만 있어도 될 게 굳이 2개씩이나 있다. 왼쪽 것과 오른쪽 것 중에 오른쪽 것은 3층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무조건 밟지 않을 수가 없다. 둘 중 어느 것을 밟더라도 1층과 3층 문이 모두 열린다. 그리고 3층이 열리는 순간 왕자가 미처 3층으로 다 올라가기도 전에 도플갱어가 먼저 달려온다..

결국, 왕자가 3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저 문이 최대한 늦게 열리게 하려면..
두 발판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왕자가 두 발판을 사이에서 오른쪽이 아닌 왼쪽을 보고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이게 꽤 어렵다. 그래도 오른쪽의 둘째 톱날의 앞에 바싹 붙어 선 뒤, 오른쪽으로 점프를 하면 왼쪽 발판을 밟지 않고 양 발판의 사이에 설 수 있다.

그 상태에서 3층으로 올라감과 동시에 3층 문이 열리게 하면 그나마 시간을 최대한 벌 수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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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가 도플갱어보다 먼저 물약에 닿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최선을 다해도 결국 위와 같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본인이 시도한 것은, 3층 문을 열어서 도플갱어가 들어올 때쯤 도로 1층으로 내려가서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었다. 1층의 닫힘 발판은 1층 문뿐만 아니라 3층 문까지 한꺼번에 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엄청나게 어렵다. 아까 저 그림처럼 3층 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왼쪽을 보고 있는 상태를 먼저 만들어야 하는 데다, 거기에다 추가적인 묘기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준비됐으면 발판을 밟아서 3층 문을 연 뒤,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서 2개의 톱날을 도움닫기 점프로 한번에 통과하고 1층으로 떨어져서 닫힘 발판을 밟아야 한다! 타이밍이 안 맞으면 톱날에 찍혀 끔살당한다.

그래도 이것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랄한 우리의 도플갱어는 닫힌 철문도 통과하고서 물약을 훔쳐 먹고 유유히 사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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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정말로 답이 없고 불가능이긴 하다.

2중 톱날은 왕자의 진행 속도를 크게 낮추는 어려운 트랩이다.
레벨 8의 경우, 클리어 관문을 열기 위해서 2중 톱날을 왕복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러고 나니까 철문이 닫혀 있어서 꼼짝없이 갇혔는데, 이때 공주가 보낸 생쥐가 문을 열어 주는 게 원래의 설정이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2중 톱날도 아무 거리낌없이 통과하여 철문이 완전히 닫히기도 전에 자력으로 빠져나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유튜브에서 괴수들의 플레이 동영상을 보면 그런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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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가 굳이 출동할 필요가 없다!)

레벨 8에는 그런 플레이가 있는 반면, 레벨 5에서 도플갱어를 따돌리고 대형 물약을 먹는 데 성공했다고 하는 테크닉이나 플레이 동영상은 인터넷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MEGAHIT 치트를 써서 게임을 실행한 뒤, 도플갱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K(현재 화면에 있는 몹을 죽임)를 누르면 도플갱어가 사라진다. 이를 활용하면 레벨 5에서 대형 물약을 먹을 수 있게 되며, 레벨 6에서도 도플갱어가 있는 절벽 건너편으로 올라가는 것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치트를 써서 만들어 낸 결과일 뿐이다.

참고로, 2007년에 나온 3D 리메이크작인 <페르시아의 왕자 클래식>은 이 시스템이 좀 개선되었다.
2층에서 3층 문을 열었다가 1층으로 잽싸게 되돌아와서 그 문을 닫아버리면, 도플갱어는 왔다가 물약을 못 훔치고 되돌아간다. 그래서 레벨 5에서도 대형 물약을 먹고 체력을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리메이크작은 톱날이 2개이던 것이 1개로 줄고 왕복 주기도 원작보다 훨씬 더 길기 때문에, 통과하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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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4/01/21 08:32 2014/01/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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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중학생이던 1996년 말, 친구 집의 컴퓨터를 통해 우연히 툼 레이더라는 게임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페르시아의 왕자 같은 파쿠르 액션이 full 3D로 구현되어 나오고 게다가 주인공이 듀크 뉴켐스러운 마초 근육맨이 아닌 아리따운 아가씨라니!
툼 레이더 시리즈는 전세계적인 히트를 쳤으며 게임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이버 모델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롤스로이스에 이어 또 '영국'이 만들어 낸(냈던) 명작에 대한 리뷰를 좀 써 보겠다.

본인은 예전에도 몇 차례 글을 썼듯이, 비디오 게임의 역사 중에서 3차원 그래픽 기술이 막 도입되던 1990년대 중· 후반의 과도기가 가장 흥미진진한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id 소프트웨어의 엔진이 울펜슈타인, 둠, 퀘이크를 거치면서 발전해 가던 시절,
2.5D와 완전한 3D 사이의 과도기이던 켄 실버맨의 빌드 엔진을 쓴 게임(듀크 뉴켐, 섀도우 워리어),
목각인형에서 진짜 사람으로 발전하던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
실사 사진을 쓰다가 최초로 3D 폴리곤으로 바뀐 모탈 컴뱃 4 등등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툼 레이더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안 그래도 엔하위키나 한국어 위키백과는 각 시리즈 별 설명이 부실한 편이기도 하니 한번쯤 이런 내력을 나열해 보는 것도 흥미롭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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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야말로 전설이 아닌 레전드를 창조한 첫 작품이며, PC 플랫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스를 지원했다. 눈이 종종 쌓여 있는 숲, 광활한 고대 유적지, 피라미드 등을 돌아다니면서 말 그대로 묘지를 터는 본분에 충실한 형태였다. 몹 중에 인간은 흔치 않았던 걸로 기억하며, 혼자서 퍼즐을 풀어 나가는 비중이 컸다.
1부터 3까지는 같은 엔진 기반으로, 그래픽이나 게임 진행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 2 (starring Lara Croft)

1이 대성공을 거둔 뒤, 2부터는 도스 대신 Windows용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2는 1에 비해 폴리곤 수가 늘어서 라라가 아주 약간 더 예뻐졌으며, 기술적으로 무리였던 팔랑거리는 말총머리가 드디어 구현되었다.
그리고 동적 광원을 구현하면서 flare(섬광탄) 아이템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물에는 언제나 수영만 있던 것과 달리 얕은 물에서 걷는 wading이 추가되었으며, 암반을 오르는 climbing이 추가되었다.

2는 첫 시작을 만리장성에서 하고, 결말부에서 최종 보스도 용일 정도로 배경에 중국에 대한 비중이 가장 높다. 1보다 대인 전투의 비중이 높아졌으며 무덤 말고 도시, 선박 등 인간이 만든 시설도 많이 등장한다. 무기는 샷건뿐만 아니라 M16 소총, 작살총도 추가되었다.
보트나 스노우모빌 같은 탈것을 이용하는 동작도 처음으로 추가되었다. 생각해 보면, 주인공이 탈것을 이용할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은 매우 드물다. 용 정도나 타는 옛날 황금도끼 말고 딴 게 뭐 있었던가??

※ 3 (라라 크로프트의 모험)

3은 2와 같은 맥락으로 더 큰 변화가 이뤄졌다. 그래서 단순한 유적지 털기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전세계 방방곡곡을 배경으로 한 액션 어드벤처로 바뀌었다. 덕분에 게임 배경이 역대 툼 레이더 시리즈 중 가장 넓어서 인도, 남태평양 섬, 남극, 미국 AREA 51, 런던 자택 근처가 레벨로 모두 등장한다. 그리고 각 레벨별로 라라의 복장도 가장 다양해졌다. 지역별로 레벨 플레이 순서를 사용자가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도 3이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갖추고 있었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라라에게는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기력을 소비하면서 잠시 동안 전력질주를 하는 sprinting이 추가되었으며 엎드리기(crouching), 천장을 잡고 건너기 같은 동작이 추가되었다. 그래픽이 개선된 건 총기 격발 후에 발생하는 탄피와 연기 흔적, 그리고 물에서 나타나는 특수효과가 일부 개선된 정도다. 슬슬 엔진의 약발이 다할 때가 되고 있었고, 라라 팬으로부터 불만도 들어오고 있었다. 3이 이룬 것은 같은 시스템 하에서 단순 양적 팽창 위주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음 편부터는 시대에 맞추어 엔진이 교체되었다.

※ 4 (마지막 계시)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싹 다시 개발되었다. 시작 화면, GUI 글꼴 같은 게 전부 바뀌었다. 여권 수첩 형태의 메뉴나 동그란 고리 형태로 나오던 인벤토리 링도 다 없어졌다.
4는 오로지 이집트 주변만 공략하여 순수하게 유적지 털기 미션으로 되돌아갔으며, 라라의 의상도 시종일관 기본 단일 복장으로 바뀌었다. 그렇잖아도 툼 레이더 4가 나온 1999년은 <미라>(Mummy)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던 해이기도 해서 더욱 이집트스러운 기억이 깊게 남아 있다.

4는 엔진이 교체되면서 그래픽이 예전보다 대대적으로 향상되었다. 드디어 모든 텍스처에는 하이컬러 안티앨리어싱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라라의 외형도 더욱 매끄럽고 예뻐졌다. 복잡한 지형에서 발생하던 1~3 엔진 특유의 그래픽 glitch가 거의 다 사라졌다. 3에서 바뀌었는지 4에서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이템이 여전히 2D 스프라이트로 표현되던 것들도 드디어 순수 폴리곤으로 바뀌었다.

4에서는 예전 시리즈에서 전통적으로 등장하던 라라 저택 연습 미션이 없어졌고, 그 대신 게임 전반부에서 라라가 어렸을 때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그리고 줄을 타고 오르는 동작이 추가되었으며 여러 아이템을 조립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드는 시스템이 도입됐다. 또한, 4는 역대 툼 레이더 시리즈 중 레벨 수가 가장 많고 플레이 시간이 가장 길었다고 한다. 그 중 열차 안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사막 열차 레벨은 상당히 참신한 디자인.
이 게임의 엔딩은 라라가 죽는 걸(최소한 그걸 암시하는)로 끝난다. 왜 그 잘 나가는 캐릭터를 죽이는지, 시리즈를 벌써 종결지으려는 건지 제작사의 의도를 알 수 없는 대목이다.

※ 5 (크로니클 연대기)

1부터 5까지는 각각 1996년부터 2000년까지 1년 간격으로 그 해의 하반기에 제품이 출시되었다. 5편인 크로니클은 4편과 거의 같은 엔진 기반에 컨텐츠만 다르다. 라라 크로프트는 죽고 없는데 그녀가 살아 생전에 남긴 무용담을 회상하며 플레이한다는 설정. 그래서 3편만큼이나 다양한 복장으로 과거 유물과 현대 도시를 아우르면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한다.

5는 이상한 설정으로 인해 예전 시리즈만 한 대박은 못 친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다만, 이때 제작사가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상당히 대인배적인 조치를 취했는데, 바로 레벨 에디터를 게임과 더불어 공식 배포했다.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걸출한 캠페인 에디터인 StarEdit인 셈.

덕분에 툼 레이더 4~5 엔진은 내가 알기로 역대 툼 레이더 시리즈들 중 단순 의상 패치 이상으로 full-featured custom 레벨 MOD가 존재하는 최후의 엔진이다. 그래서 인터넷엔 라라 크로프트 하앍하앍 하는 전세계의 양덕후들이 만들어 올린 custom 레벨 파일 및 플레이 동영상들이 즐비하다.
1~3 엔진은 에디터가 있다 하더라도 요즘 기준으론 그래픽이 너무 심하게 후져서 별로. 4~5 엔진 정도는 돼야 그나마 할 만하다.

※ 6 (어둠의 천사 AOD)

툼 레이더의 제작사인 코어 디자인은 라라 크로프트라는 희대의 대박 아이템이자 황금알 낳는 거위를 창조해 놓고는 영업이랄까 운영을 썩 잘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3에서 4로 넘어갈 때 좀 혁신을 한 걸 제외하면, 계속 같은 엔진과 게임 시스템만 지겹게 우려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배가 산으로 가는 듯한 스토리를 전개하며 4편에서 라라 크로프트를 덥석 죽여 버린 건 팬들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런 와중에 거의 3년간의 침묵을 깨고 툼 레이더의 다음 시리즈인 어둠의 천사가 나왔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기술은 분명 크게 발전했다. 물리 엔진이 도입되었고 라라의 손발 모션은 지형을 반영하여 더욱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픽 디테일 레벨을 올리면, 그림자도 그냥 바닥에 시꺼먼 타원으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실제 광원과 라라의 체형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이 작품에서 라라 크로프트는 과거에 죽었다가 아무 개연성 없이 불쑥 살아서 돌아왔으며, 고대 유적지를 돌아다니는 묘지 도굴꾼 컨셉에서도 더욱 멀어졌다. 전통적인 복장 대신 군복과 청바지 차림으로 의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6은 기술의 진보는 분명 있었으며 국내에서는 툼 레이더 시리즈 중 최초로 완전 한글화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괴상한 정체성과 많은 버그들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지고 뭔가 핀트가 안 맞는 작품으로 전락했으며,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 7 (레전드)

툼 레이더의 본디 제작사이던 코어 디자인은 6 이후로 제작사 타이틀을 반납하고 그저 그런 게임 개발사로 남아 있다가 2007년쯤에 망했다. 그 뒤 툼 레이더의 개발은 영국이 아닌 미국의 크리스탈 다이나믹스로 넘어갔는데 얘가 툼 레이더 시리즈를 다시 물건으로 회복시켜 놓았다.

2006년 봄에 출시된 레전드는 툼 레이더의 '제2기' 시대를 열었다. 툼 레이더의 기본 복장이 되돌아왔으며 유적지 탐험 패턴도 복귀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조작도 다 뭔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바뀌었다. 언제나 자동 세이브가 되고 굳이 별도의 키를 누르지 않아도 절벽에서는 자동으로 매달리는 등, 퍼즐 난이도는 예전보다 더 쉬워졌는데 이건 요즘 게임기용 게임들의 추세가 다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레전드에 대한 반응은 전반적으로 좋았다. 하지만 예전하고는 너무 이질적으로 바뀐 게임 시스템에 대해서는 게이머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맨날 동료하고 얘기를 주고받는 것도 예전에는 없던 관행이었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레전드로 희망찬 데뷔 선언을 한 크리스탈 다이나믹스는 그 이듬해에 Anniversary라고 불리는 시리즈도 내놓았다. 이것은 툼 레이더 1을 오늘날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 8 (언더월드)

레전드의 명성을 계승한 후속 시리즈이다. 라라 크로프트가 배를 타고 세계 각지를 이동하면서 미션을 수행한다. 덕분에 레전드에 비해 잠수와 수영의 비중이 더 높다. 고전 복장은 사라졌으며, 그나마 이것과 가장 비슷한 복장은 태국 숲 미션에서 입는 까만 셔츠와 핫팬츠 복장이다.

라라 크로프트의 집이 난장판이 되는 건 옛날에 2의 맨 마지막 레벨 Home Sweet Home에서 침략자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게 전부였는데... 이번 언더월드에서는 첫 미션에서 집이 불바다가 되는 걸로 시작한다. 그래서 집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번엔 레전드 시절의 동료가 라라에게 무슨 원한이 생겼는지 권총을 쏴 댄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다행히 원한을 살 만한 짓은 라라가 아니라 라라의 도플갱어의 소행으로 밝혀져 오해는 나중에 풀리지만... 스토리 전개가 재미있다.

도플갱어라.. 옛날에 1편에서 베이컨 라라가 있긴 했고.. 더 옛날 고전 게임 중엔 페르시아의 왕자 1에서도 왕자를 골탕먹이다가 나중에 합체하는 영혼 도플갱어가 있었다. 정말 별의 별 걸 게임에다 다 집어넣었다.

※ 9

자... 1996년 이래로 근 15년간 라라 크로프트를 쌍권총 찬 고고학자로 우려먹어 온 건 약발이 다한 모양이다.
크리스탈 다이나믹스는 5년간의 잠수 끝에, 이제 예전의 스토리를 다 뒤집어엎은 리부트작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1편과 마찬가지로 부제가 없이 이름이 그냥 툼 레이더이다.

라라는 더욱 어려졌으며, 도도한 특수요원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제 막 생존술을 터득해야 하는 연약한 여고생/여대생 컨셉으로 바뀌었다. 어린 라라 떡밥은 지난 4편에서 잠시 등장한 적이 있지만 그걸 떠올려서도 물론 곤란하겠다. 예전의 라라가 인디아나 존스 컨셉이었다면, 지금의 라라의 위상은 거의 생존왕 로빈슨 크루소나 심지어 베어 그릴스-_-를 생각해도 될 것 같다.

9의 설정상 배경은 일본 열도 인근에 있는 어느 섬이다.
사실, 툼 레이더 시리즈에서 일본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코어 디자인 시절에는 없었고 크리스탈 다이나믹 때 레전드와 9에서 딱 두 번이었다. 코어 시절에 툼 레이더의 배경은 오히려 중국, 네팔, 티베트 같은 대륙이 더 자주 등장했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서 한국은 영토가 너무 작기도 하고 게임이나 영화 같은 매체에 선뜻 등장하기에는 정치적 민감성도 크고 역시나 콩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픽이야 뭐, 피부에 핏자국이 묻고 각각의 머리카락들이 찰랑거리는 걸 볼 수 있을 정도로 사실에 가깝게 발전했다.
AOD에서 레전드로 넘어갈 때를 능가하는 엄청난 쇄신이 있었는데, 반응은 역시 좋은 편이다. 9 이후로 툼 레이더 시리즈가 과연 또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3/12/07 08:32 2013/12/0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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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국가(national anthem)들

한 나라의 상징으로는 깃발(국기), 꽃(국화) 등과 더불어 노래(국가)가 있다.
난 우리나라의 여러 상징들이 전반적으로 개성 있고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고유 문자인 한글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소나무, 태권도, 무궁화 다 좋다. 국기인 태극기도 적당한 상징성과 복잡도로 잘 만들었다.

다만, 그런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좋아하는 상징은 국가인 애국가이다. 다소 밋밋한 가사, 그리고 시작 부분의 너무 어색한 박자 때문이다(갖춘마디에다가 못갖춘마디 스타일의 박자를 얹음). 뭐, 덜 좋아한다는 거지, 아주 싫다는 뜻은 아니지만.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2.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난 개인적으로 1절과 4절은 모두 외우고 있고, 2절과 3절은 첫 단의 가사만 기억하고 있었다. 군대 훈련소에 있던 동안은 각 절을 매일 돌아가면서라도 훈련병들에게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다 외우게 했던 것 같다.

그럼, 대한민국 말고 다른 나라들의 국가는 어떨까?
내가 멜로디를 완전히 알고 있는 외국 국가로는 미국, 중국, 영국, 독일, 그리고 북한이 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영국과 독일의 국가 멜로디는 이미 자동으로 숙지하고 계실 것이다. 찬송가에 동일 멜로디의 찬양이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피난처 있으니>와 <시온 성과 같은 교회>.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혹은 작별의 노래) 멜로디에다가 애국가 가사를 끼워서 부른 적이 있었다.

중국의 국가는 영락없는 행진곡 군가 스타일이어서 호전적이고 씩씩한 느낌이다.
중국 국가는 '칠라이'(일어나라), '치안찐'(전진)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들린다. "앞으로 용진 또 용진" 이러는 우리나라 <육군가>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가사의 주제는 "자, 노예로 살기 원치 않는 인민들이여, 함께 일어나 적들을 무찌르고 새 세상을 건설하자. 빠샤!" 정도?

노래를 부를 때는 성조를 전혀 표현할 수가 없어진다. 그럼 중국어를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생기지는 않나 모르겠는데, 하지만 의외로 문맥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식별이 된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사실 한국어도 완전 말도 안 되는 모호성이 적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소년/소녀, 그년/그녀, 내/네 등).

미국의 국가는 가사가 전투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만 멜로디는 군가풍이 아니며 오히려 3박자 계통이다. 그리고 가사 중에 국기인 성조기에 대한 묘사가 있는 게 특징이다. "그 치열한 전장에서도 우리의 성조기는 당당히 펄럭이고 있었노라."
가사 끝부분에 나오는 "자유의 땅, 용사의 고향"이라는 표현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짐작케 한다.

독일의 국가는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버 알레스 위버 알레스 인 데르 벨트"(우리 독일이 세계 킹왕짱)라고 시작하는 첫부분이 인상적이다. 가사의 나머지 부분도 전투적인 요소는 별로 없이 그냥 자기 나라 찬가이다.

영국의 국가 <God Save the Queen>은 군주인 (여)왕에 대한 축복송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찬송가뿐만 아니라 Noteworthy Composer 악보 프로그램에도 예제 데이터로 곡이 통째로 실려 있다.

다음으로, 북한의 국가는 제목이 남한과 동일한 <애국가>이다. 김씨 부자에 대한 우상화가 지금처럼 극심해지기 전에 미리 만들어져서 그런지 노래 자체는 의외로 전투적이거나 위수김동을 전파하는 내용이 없다. 그냥 평범한 조국 찬가 스타일이고, 어찌 보면 남한의 애국가보다 퀄리티가 더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주요 행사 때는 애국가보다 별도의 장군님 찬가를 더 즐겨 부른다고 하니 '역시나'이다. 북한 애국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 있으니 더는 하지 않겠다.

이스라엘의 국가는 역시 이스라엘 아니랄까봐, 국가가 웬 단조라는 것 정도만 기억한다. (찬송가 중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요풍의 단조)

끝으로, 일본의 국가는 <기미가요>인데.. 지극히 일본스럽다. 일본 사람이 자기 내면을 잘 표현하지 않고 말을 모호하게 하는 걸 즐기고, 헌법조차 덴노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주 모호한 문장으로 시작하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임의 대(代)는 1000대까지.. 8000대째에 작은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너무나 짧고 의미도 밍숭생숭하기 그지없는 가사이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가라나? 멜로디의 음계 또한 전통적인 서양 음악 스타일을 떠올렸다가는 놀라게 된다.

모든 일본인들이 이런 기미가요를 국가로서 좋아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한다. 똑같은 군주 찬가여도 대놓고 신을 거론하며 마음껏 복을 비는 영국 국가하고는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가사 내용에 대해 또 딴지를 걸자면, 돌멩이는 무슨 눈덩이나 흙덩이도 아닌데, 긴 세월이 흐르면 커지기보다는 닳고 쪼개지지 않나 싶기도 하다.

기미가요는 가사 자체는 너무 추상적이다 보니 별로 문제될 게 없으나, 역시 일제 군국주의와 함께 강제로 보급되고 퍼진 이력이 있다 보니, 한국처럼 일제의 피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에서는 좋은 평판을 못 받고 있는 노래이다.

다른 나라들은 그렇다 치고 한중일 CJK만 살펴보더라도, 국가가 삼국이 서로 극과 극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세계의 국가들을 군가/전투형, 군주 찬가형, 국가 찬가형 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23 08:25 2013/09/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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