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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대 김 빛내리 교수라고 우리나라에서 미생물학 내지 bio-informatics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가 계신다. 최종 학력은 옥스퍼드 대학 박사. 대외적으로 쓰는 영어식 이름은 Narry Kim이라고 한다. (오옷) 연구실 이름은 “RNA 생물학 연구실”.

이분은 외국의 저명한 일류 학술지에 수시로 논문을 냈으며 한국의 촉망 받는 여성 과학자로 이미 여러 번 선정되고 상도 받고 언론도 탔다. 진짜 이름값 하는 인생을 살았다. 허나 본인은 생물학에 완전 문외한인 관계로, 이분 소개는 예전에 이 광근 교수 같은 분을 소개할 때만치 자세하고 정확하게는 못 한다는 점을 양해 바란다. ^^

본인의 지인 중엔 대학원에 진학하여 생물학 쪽으로 공부를 계속하는 친구가 있다.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먼저 김 빛내리 교수 얘기를 꺼내자 걔도 “어, 너도 그분이 누군지 아는구나.” 하고 반가워했다. ^^

비슷한 예로, 본인의 동창 중에는 정말 학창 시절 내내 수학과 물리만 파면서 살던 덕후로, 과학고와 카이스트의 설립 취지에 가장 부합하며 사는 놈이 하나 있었다. 걔에게는 “잘은 모르겠지만 네 연구 분야가 그럼 이 휘소 박사가 파던 분야하고 비슷한 거냐?”라고 거들먹거려 주니까 걔 역시 반가워하더라.

2.

난 강 용석 씨가 한창 안 철수 씨를 때리는 글을 블로그에다 올릴 때 그의 글을 통해서 김 교수에 대해서 처음으로 듣게 됐다. 세상에 그런 엄청난 연구 업적을 남긴 사람도 그 긴 시간 강사 생활을 거쳐서 힘겹게 교수에 임용되고 그 짬밥에 아직도 조교수· 부교수 급인데, 안 철수 부부에게 주어진 서울대 정교수 특혜는 해도 해도 너무한 사기 수준이라고 말이다.

본인 역시 안 철수 씨가 머리와 노력을 겸비한 의학도 출신의 엄친아 수재이고 왕년의 컴덕후 겸 훌륭한 기업인· 경영자인 것은 응당 인정한다. 하지만 교수 세계에서 그 정도로 급격한 진급이 합당할 정도로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안 씨가 허접해서가 아니라 학계에는 유명세만 안 탔을 뿐이지 안 씨보다 더한 우주괴수들도 많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석학’은 아니잖아?

뭐, 강 용석 씨 자신도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스펙과 프로필을 자랑하는 똘똘이 수재이며 한때는 시사와 관련하여 굉장히 통렬하고 날카롭고 속 시원한 글을 많이 올리긴 했다. 하지만 좀 싸가지 없는 말투와 교만과 오만방자함 때문에 지금은 다시 버로우 탄 듯하다. 조금만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안목이 아쉬웠다. 지금까지 실패를 모르고 빳빳하게만 살아 와서인 걸까.

3.

김 빛내리 교수 말고 본인이나 평범한 한국인들이 아는 유명한 여성 과학기술인으로는 역시 윤 송이 씨가 있다. 학력은 잘 알다시피 서울 과학고에 카이스트를 거쳐 MIT 박사이다. 모교로 돌아와 교수의 길을 갈 법도 한 진정한 엄친딸이지만, 이분은 그냥 곧바로 기업체로 간 경우이다. 사실 윤 씨는 일단 진로 자체가 과학자보다는 공학자에 훨씬 더 가깝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억만장자가 됐을 터이니 굳이 교수 자리가 아쉬울 필요도 없다.

윤 송이 씨의 여동생인 윤 하얀 씨는 언니의 명성에 너무 가려져서 조명을 못 받았을 뿐이지 역시 만만찮은 천재로,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여 과학자의 길을 갔다고 알려져 있다. 분야는 생물학. 뭐, 본인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선배나 동기 중에 남매가 나란히 동일한 과학고에 입학하는 흠좀무스러운 형제· 남매가 있긴 했다.

윤 씨와 달리 김 교수가 과학고 출신이 아닌 이유는, 그 시절에 아직 주변에 과학고가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김 교수는 1969년생. 서울 과학고가 1989년 개교이니, 그 시절엔 한국의 과학고 1호인 경기 과학고밖에 없었다. 윤 송이 박사가 1975년생이고 아마 서울 과학고의 초창기 졸업생이지 싶다.

4.

김 빛내리 교수와 상당히 비슷한 이름이 옛날에는 범죄의 안타까운 희생자의 이름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바로 1997년의 ‘박 초롱초롱빛나리 양 유괴· 살해 사건’인데 기억하는 분 있는가? (자동사와 타동사의 차이밖에 없다.) 언론에서는 편의상 줄여서 ‘박 나리’ 양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특이하게 긴 이름을 갖고 있고, 또 가해자는 겨우 20대 후반의 면식범 임산부였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끼친 충격이 굉장히 컸다. 가해자의 남편은 경찰에게 체포되어 끌려가는 아내에게 거의 멘탈 붕괴 상태로 “○○야, 설마 네가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리가 없지? 제발 아니라고 얘기해 줘!”라고 절규하기도 했다.

못 말리는 된장녀 기질과 과시욕, 외국 유학을 갔지만 적응 못 하고 다시 돌아온 것, 입만 열면 횡설수설 거짓말, 자기 잘못은 인정 안 하고 끊임없는 변명 등을 보아하니, 본인은 가해자인 전 현주 씨의 모습이 21세기를 풍미한 희대의 또라이 사기꾼인 신 정아 씨하고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범죄 내역은 성격이 차이가 있지만, 둘 다 비슷한 종류의 정신병 기질이 아닌가 싶다.

법조인들이 보기에도 전 씨는 죄질이 매우 나빠 보였고, 그래서 엄벌이랍시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8살짜리 딸을 잃은 유가족들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고 분노했다. 그래도 가석방이나 사면 따위 없이 전 씨는 지금까지도 40이 넘은 나이로 교도소 복역 중이라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당연히 이혼을 했으며, 그때 그녀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진작에 외국으로 입양되었다. 쩝~
(애초에 저 여자, 결혼은 어떻게 했는지가 궁금하다. 온갖 감언이설로 자기 처지를 속이고 남자를 속였지 싶다.)


김 빛내리 교수로 얘기를 시작했는데 정작 이분 자체에 대한 얘기는 별로 못 하고 같이 덩달아 떠오르는 주변 지식 얘기만 잔뜩 늘어놓게 됐다. ^^
참고로 한글 학회 직원 중에도 ‘김 한빛나리’ 선생님이 계신데, 이분은 남성임.

Posted by 사무엘

2012/05/29 08:40 2012/05/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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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에 폰 노이만(폰 노이만 구조라는 컴퓨터 근간을 닦은 사람)이라는 사람은 기계어로 직접 컴퓨터에다 코딩을 하는 기계어 매니아였다. 기계어가 너무 불편하다고 어느 제자가 어셈블리 비슷한 상위 계층 언어를 만들려 하자 “귀한 컴퓨터 자원으로 쓸데없는 짓이나 한다”고 그를 나무랐다.;;
이거 마치 희대의 저격수인 시모 하이하가 조준경 그딴 걸 왜 쓰냐고 나무란 것과 비슷한 맥락 같다.;;
 
그 반면, 데이크스트라(다익스트라. 그래프 탐색 알고리즘을 고안한 그 사람)는 어셈블리/기계어 같은 언어를 비생산적이고 삽질스럽다고 아주 강하게 디스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조화 프로그래밍을 주장하면서 GOTO문을 배격한 사람이 기계스러운 BRANCH 따위가 난무하는 저급 언어를 좋아할 리가 없겠다.
 
둘 다 우주괴수급의 천재 수학자 및 전산학자이다만, 이런 식의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보다. 재미있는 일이다.
 
2.

밸브 코퍼레이션의 창립자 게이브 뉴웰 (카운터 스트라이크, 하프 라이프, 포탈 등의 게임 개발사)
페이스북의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 (나보다 더 어림..)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인 빌 게이츠 (설명 불필요)
 
억만장자 IT 기업인인 이들은 모두 하버드 대학 중퇴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 미국인이기도 하고.

3.

개발자가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먹고 살려면

(1) 관공서나 기업에서 구입하지 않을 수 없는 핵심적인 프로그램을 개발 (교육이나 업무 분야)
(2) 하드웨어에 같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하드웨어와 함께 판매
(3) 온라인 게임 개발 (늘 서버 접속을 하기 때문에 이용료 징수 가능)
(4) 아니면 개인을 대상으로도 유료 판매가 가능한 유통 경로(앱스토어, 스마트폰 등)를 거치는 프로그램 개발

중 하나로는 가야 할 것 같다. 저 네 가지 말고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까?

4.

내가 맥 OS에 매력을 느끼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폰트 래스터라이저가 정말 짱이라는 점.
똑같은 글꼴을 화면에 찍어 내는 퀄리티가 서로 게임이 안 되는 수준이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는 Windows, 아래는 맥이다.
Windows는 ClearType을 시키면 맑은 고딕처럼 전용 힌팅이 들어간 글꼴이 아니면 그냥 안티알리어싱이 없는 것보다 약간 나은 정도로만 찍히는 반면.
Mac은 힌팅이 없다시피한 글꼴도 Adobe Reader 이상의 퀄리티로 찍어 준다!

5.

그나저나 맥 OS는 Finder (윈도우로 치면 탐색기)에서 파일이나 디렉터리의 이름을 바꾸는 게 엔터이고, 실행하거나 여는 게 Cmd+아래라니 참 희한하다. 윈도우라면 이름 바꾸는 건 F2이고, 여는 게 응당 엔터인데 말이다.

6.

과거에 MS 오피스가 2003에서 2007로 버전업되었을 때 비주얼이 화려해지고 좋아진 기능이 분명 적지 않았지만, 내게는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 변화도 있었다. 그것 중 하나는 파워포인트에서 '컬러 타자기' 애니메이션 효과가 굉장히 느려져서 랙이 심해지고 프레임 수가 감소한 것이었다. 글자가 말 그대로 타자기로 찍듯이 한 글자씩 천천히 나타나는 것 말이다. 그렇게 현란하거나 CPU의 부하가 심한 효과도 아니다.

그랬는데 2010을 나중에 써 보니, 마치 2003처럼 애니메이션이 다시 매끄러워져 있었다.
혹시 컴퓨터가 빨라지고 화면 해상도가 낮아져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컴퓨터를 바꿔서 확인해 보았다.
그랬더니 같은 1280*1024 화면이라도 역시 2010에서는 Core2 duo급 컴에서도 매끄럽게 나오는 반면, 2007에서는 쿼드코어 i5급 컴에서도 버벅거렸다.

그래서 이것은 소프트웨어적인 알고리즘 개선 덕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2007과 2010 사이엔 이런 차이도 존재하는가 보다.

7.

근래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구성 파일들에 대해서 바이러스 및 악성 코드 진단 문의가 부쩍 늘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개발자의 공식 입장을 내 홈페이지에다가도 게시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바이러스 아님”이다. 모든 프로그램들은 바이러스도, 안티바이러스(일명 백신)도 알지 못하는 100% 청정 컴퓨터에서 개발되며, 개발 환경에서 갓 빌드된 직후의 실행 파일들이 곧바로 설치 패키지로 포장된다. 바이러스 같은 게 들어갈 일이란 없다. 이 일 때문에 본인에게 문의하면 언제나 동일한 대답밖에 돌아올 게 없으며, 그 외에 더 할 말이 없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는 바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실행 파일과 MSI 패키지가 디지털 서명을 받지 못한 관계로, 웹브라우저부터가 빨간 경고와 함께 <날개셋> 프로그램의 다운로드를 저지(discourage)하는 것도 좀 아쉬운 점이다. 이건 훗날 프로그램이 더 나은 수익원과 배포 통로를 확보했을 때에나 해결 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참에 아예 프로그램 다운로드 페이지에다가 설명을 써 놨다. “10년이 넘게 인생을 걸며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개선해 온 저를 믿으신다면, 그런 보안 경고들은 모두 무시하고 안심하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문득 생각해 볼 문제: 비주얼 C++이나 그에 상응하는 개발툴이 설치된 컴퓨터를 자동으로 감지하여 프로그램이 링크될 때 쓰이는 C 라이브러리 같은 lib, obj 파일을 감염시키는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존재할까? 처음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프로그램이 생성되도록? -_-;;

Posted by 사무엘

2012/05/19 08:22 2012/05/1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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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함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회로부터 온 옛날 메일이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발견했고, 거기에 역대 동문들의 근황 목록이 있는 걸 열어 봤다.
내가 다닌 학교의 특성상, 역시 선후배나 동기들이 다들 프로필이 너무 쟁쟁하고 너무 잘 돼 있고 대단했다.

  • 삼성맨이 된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생산직이든 영업부 사무직이든, 박사급 정예 연구원이든 분야 한번 참 많았다. 인터넷 신문 기사 댓글이나 SNS, 파워 블로그만 보면 삼성 욕하는 글로 넘쳐나지만, 역시 넷심은 민심과 일치하지 않는 법. 현실을 지배하는 건 돈의 힘이며, 삼성 전자는 지금도 여전히 공돌이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직장 1위이다.
  • 좀 덜 유명하고 입결이 낮다 싶은 학교에 갔다 싶은 친구들은 그 대신 과가 전부 의대였다. 예외가 없었다. ㅋㅋ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이공계의 희망이다 싶던 친구들이 공무원, 금융권, 의전으로 U턴을 생각보다 많이 해 있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전교 최고의 수학 영재로 이름을 날리던 어느 후배가 서울대 치의전에 가 있었고, 나와 대학을 같이 가고 나중에 서울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석사까지 했던 1기 아래 후배도 다시 의전으로 진로 변경한 듯.

워낙 똑똑한 사람들이니 어딜 가도 다 제 갈 길을 잘 찾아가 있다. 그래서 이런 와중에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면서 각오를 새로 하게 되었다.

어차피 저것들은 다 내 길이 아니다. 난 어차피 그런 학교도 공부 성적이 아닌 오덕질로 간 것이고, 내 진로에는 선례가 없다. 빨랑 석사 졸업하고 나서 박사 가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다음 아이템에 목숨 거는 수밖에.
이거 덕질에 비하면, 철도 덕질은 덕질도 아니고 오히려 진짜 덕질을 은폐하기 위한 떡밥일 뿐이었음이 밝혀질 것이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다. 오늘은 본인의 고등학교 동문 중에, 매스컴에 아마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을 인물을 소개하겠다. 바로 금 나나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2년 5월, 얘가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혔다. 나나는 본인의 바로 한 기수 아래인 후배이고, 믿어지지 않겠지만 본인은 얘를 학교 기숙사에서 마주친 적도 있다.

원래 미스코리아 대회는 1988년부터 2001년까지는 전국구 공중파 방송인 MBC가 생중계를 해 줬다. 하지만 선정성과 성 상품화 논란 때문에 미스코리아 안티까지 생긴 마당에 하필 딱 2002년부터 그 관행이 폐지되고, 미스코리아 중계는 케이블 TV로 관할이 넘어갔다.

대회는 세종 문화 회관에서 열렸다. 카이스트에서도 고등학교 선배와 동기들은 TV를 주시하였고, 몇몇 동기들은 아예 현장에서 나나를 보러 서울로 갔다. 그 시절 물가로 5만원짜리 좌석이 3층에 있고 무대에서 완전 멀리 떨어진 위치였다. 더 가깝고 좋은 자리는 당연히 돈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구체적인 디테일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건, 나나는 그때 인터뷰의 질문에 말을 너무 조리 있게 지적으로 잘 했었다는 점이다. 관중석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런 이미지에다가 특목고+의대 출신이라는 점이 더해진 덕분에, 나나는 쟁쟁한 서울 출신 경쟁자들을 모조리 제치고 결국 진을 차지했다.

TV를 보던 고등학교 동문들은 그때 동기나 선후배 가리지 않고 서로 얼싸안고 난리가 났었다고 본인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더니 끝에 “경북 과학고 파이팅!”이라고 외쳐서 감동이 더욱 고조되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월드컵 16강 진출했을 때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간 직후이니까 모교에 대한 애교심(?)도 팔팔하던 시절이다.

이 일은 당연히 고등학교의 인지도의 변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 당시 교내 1층 복도에는 재학 시절에 전국 규모 이상의 경시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의 사진이 걸린 명예의 전당이라는 게 있었는데, 금 나나는 재학 시절에 다른 입상 경력이 없고 미스코리아 입상은 졸업 이후의 행적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추후에 추가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인터넷에 얘 팬카페도 생겼다. 그 후 그녀는 언론에도 잘 알려졌듯이 책도 여러 권 쓰고 나중엔 하버드 대학에 편입해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미스코리아 경력 버프도 많이 받아서 들어갔겠지만, 결국 졸업할 때도 역시나 성적 우수자로 졸업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 생물, 영양, 보건 쪽으로 박사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듯. 뭐 이미 너무 유명인사가 돼 버렸고 앞날이 창창하니 굳이 더 근황을 궁금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과학고 동문 중에 이런 이력의 소유자가 나오는 건 분명 특이한 경우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나 역시 그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은 괴팍한 분야에서 특이한 연구로 가까운 미래에 이름을 남기련다.

재작년인 2010년엔 뜻하지 않은 경로로 고등학교 후배를 만난 적이 두 번 있었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갔던 예비군 동미참 훈련 때, 예비군 아저씨들 중에 정말 우연히도 2기수 후배와 마주쳤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경우인데.. 정 동수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사랑 침례 교회에서 그 해 8월에 개최했던 청년부 교제 모임 때는 무려 10기수 후배를 만나기도 했다. 나는 6기이고 그 친구는 2008년에 입학한 무려 16기! 세상에, 킹 제임스 진영에서 까마득한 고등학교 후배를 만나다니!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 모르겠다. 세상이 좁다는 걸 느꼈다.

Posted by 사무엘

2012/05/13 19:34 2012/05/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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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교나 관공서의 전산망에서는 인터넷 접속을 위해서 특정 보안 솔루션 ActiveX들과 그것도 모자라서 바이러스 백신까지 무조건 설치하라고 강요하는 걸 볼 수 있다. 그걸 안 하면 사이트 접속이 되질 않게 해 놓았다.  허나 본인은 그런 보안 솔루션들에 대해 정서적으로 굉장한 반감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을 몸서리치게 싫어한다.

여러 보안 솔루션 중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이 하는 역할은 아마도 사용자의 키 입력(비밀번호 같은)을 메시지 훅킹으로 가로챌 수 없게 하고, 반대로 없는 키 입력을 소프트웨어적으로 생성할 수 없게 하는 일일 것이다(온라인 게임에서 오토의 실행 차단). 또한, 은행 돈거래 관련 정보가 담긴 패킷은 정보가 유출되더라도 의미 파악이나 변조가 거의 불가능하게 아주 복잡한 계산을 동원한 암호화/해독이 클라이언트에서 행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기술적인 필요를 본인은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웹 표준만으로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운영체제 커널 기술 수준의 보안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면, 차라리 무리해서 웹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걸 포기하고 깨끗하게 로컬 환경에서 돌아가는 exe 형태의 프로그램과 배포 패키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nProtect 부류의 이상한 프로그램들은 웹브라우저를 끈 뒤에도 계속 메모리 차지하면서 남아 있는 것 정도나 보기 싫은 수준이고 그나마 ‘낫다’. 하지만 이놈의 빌어먹을 백신은 답이 없다. 바이러스나 악성 코드에 걸리지 말라고 설치하는 솔루션들이, 깔고 나면 악성 코드나 그 이상 수준으로 민폐 끼치면서 컴퓨터 성능을 쪽쪽 갉아먹기 때문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컴을 완전히 병신으로 만들어 놓는다.

마치 치안과 국방을 담당해야 할 자국의 정규군이나 경찰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자기네들부터 민폐 끼치고 민간인들을 등쳐 먹는다거나, 반공을 빌미로 공권력이 심심하면 멀쩡한 생사람을 빨갱이로 몰아서 잡아 죽인다거나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되겠다.

맥북 이전 4대 노트북을 쓰던 시절의 일이다. 본인이 다니는 학교는 내부에서 와이파이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NetCare인지 뭔지 하는 보안 ActiveX와 바이로봇 백신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강요를 하고 있다. 둘 중 하나라도 설치를 안 하면, 몇몇 사이트는 아예 접속이 되지 않거나 쿠키가 저장되지 않아서 로그인을 할 수가 없으며, 되는 사이트도 보안 솔루션들을 설치하라고 협박하는 문구가 든 프레임이 웹사이트에 제멋대로 추가되어 나오곤 했다.

그래서 본인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못해 깔라는 것들을 다 설치해 줬다. 그러자 저런 성가신 현상이 모두 없어지고 인터넷은 잘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뒤부터 내 컴에서는 끔찍한 헬게이트가 시작되었다.

부팅 직후에 시스템이 시작 메뉴 구동 같은 각종 조작에 응답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고, 웹브라우저가 페이지를 여는 속도, 전반적인 파일 액세스 속도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수준이 되었다. 최대 절전 모드에서 복귀하는 시간까지 예전보다 훨씬 더 길어졌다. 멀쩡하던 컴퓨터가 진짜 만신창이 장애인이 된 느낌이었다. 평상시에 운영체제의 메모리 사용량도 예전보다 수십 MB가량 늘었다.

나는 운영체제의 업데이트들은 목록만 자동으로 받게 한 뒤, 다운로드와 설치는 내가 지정한 것만 수동으로 하게 해 놓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 보안 솔루션은 나의 설정을 씹고, 인터넷만 됐다 하면 마구잡이로 온갖 업데이트들을 제멋대로 받아서 설치했다.

언제부턴가 MS 오피스가 SP2이던 게 느닷없이 SP3으로 바뀌어 있었다. 프로그램이 버전업되어서 좋은 게 아니라 도리어 부아가 치밀었다. “이 자식, 지금까지 왜 이리 느리고 쓸데없이 디스크 액세스를 하는가 했더니, 그 수백 MB짜리 업데이트를 내 동의도 없이 제멋대로 설치하느라 그랬군.” 하는 생각에 말이다.

참다못해 하루는 넷케어고 백신이고 전부 다 모조리 지워 버렸다. 요즘은 백신도 용량이 몇백 MB 수준으로 뭘 하느라 그리도 커졌는지 모르겠다. 이것들을 다 지우고 나자 내 컴퓨터는 거짓말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모든 성능이 예전 상태로 돌아갔다. 보안 솔루션들이 그들의 퇴치 대상인 악성 코드가 하는 짓을 동일하게 하고 있음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이제 맥북을 사용하면서 뜻하지 않게 얻은 큰 수확이 있다. 보안 솔루션 제약은 Windows 운영체제에만 적용되며, 맥에서는 그런 게 전혀 없이도 인터넷을 곧바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야호! 빌어먹을 넷케어니 바이로봇 따위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맥OS가 날 구했다. 스잡빠니 애플빠니 난 그딴 건 모르지만, 어쨌든 이거 덕분에 맥OS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한편, 고향에서도 비슷한 일을 최근에 겪었다. 고향집 컴퓨터가 언제부턴가 병신 중의 상병신이 돼 있었다. 부팅 후에 시작 메뉴를 눌러도 한참 동안 반응이 없고, 웹브라우저를 띄운 뒤에 창이 나타나기까지 몇 분이 족히 걸리고 있었다. 레지스트리나 파일 디렉터리를 살펴봐도 딱히 악성 코드에 걸린 것 같지는 않은데 영문을 모를 노릇이었다.

이 현상의 주범은 바로 V3 Lite였다. 이놈을 당장 지우자 컴퓨터는 운영체제를 갓 설치한 직후처럼 아주 쌩쌩해졌다! 그러니 난 도대체 진짜 악성 코드란 어떤 놈인지 가치관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바이러스가 묻은 메일 첨부 파일을 클릭한 것도 아니고, 이상한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ActiveX 설치에 ‘예’를 누른 것도 아니었다. 이 V3은 어머니께서 집에서 인터넷으로 업무를 보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설치한 것이었다. 이거랑 무슨 희한한 듣보잡 ActiveX들을 설치하지 않으면 직장의 업무 자동화 시스템에 접속이 되질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나는 더욱 더 백신 따위는 죽어도 절대로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하게 되었다. 옛날처럼 백신이 그냥 사용자가 요청할 때만 파일이나 메모리를 스캔하면서 바이러스 검사를 해 주던 시절이 그립다. 저런 거지 같은 잉여 쓰레기 프로그램을 얹고도 작업을 원활하게 하려면, 가히 정말 최신식 최고급 컴퓨터를 써야겠다. 아니, 내 컴퓨터가 아무리 빠르고 메모리가 썩어 넘친다 해도 저런 프로그램에게 컴퓨터 자원을 내어 주기는 싫다.

보안을 빌미로 원치 않는 프로그램의 설치를 강요하는 이런 못돼먹은 풍조가 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런 일이 계속될수록 이에 대한 반발 심리로 나의 컴퓨터 보안 위협 불감증은 더욱 커질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4/02 19:23 2012/04/0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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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 전세계적인 히트를 친 게임을 만든 유명 개발사가 왕년에는 이런 고전 게임을 만든 적이 있었고, 그걸 내가 어렸을 때 즐겨 한 적도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본인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Rick Dangerous 시리즈는 온통 순발력과 타이밍 퍼즐로 가득한 2D 아케이드 플랫폼 게임이다. 체력도 없이 주인공을 즉사시키는 트랩이 곳곳에 지뢰밭처럼 깔려 있고, 여러 번 죽으면서 시행 착오를 겪지 않고서는 트랩을 알 수 없는 것도 많아서 본인은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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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의 개발사는 영국의 Core Design이다. 훗날 툼 레이더를 개발한 회사라니 믿어지는가? 1996년에 나온 1부터 시작해 2003년의 Angel of Darkness 시리즈까지를 이 회사가 만든 뒤, 나중에는 개발사가 Crystal Dynamics로 바뀌었다.

2.
Dangerous Dave는 id 소프트웨어의 그 이름도 유명한 존 로메로의 옛날 작품인 거 모르는 분이 별로 없을 것이다. 나중엔 기획 쪽으로 부서를 옮겼지만 이 양반도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회사 내부에서 쓰는 게임 데이터 제작용 툴 정도는 직접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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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액션/아케이드 게임은 주인공이 으레 마초스러운 남자이며, 게임의 목적은 언제나 여자친구나 공주님을 구하는 설정인 게 많다. 그러나 그 통념을 정면으로 깨고 오히려 여자가 왕자님을 구하러 모험을 떠나는 게임이 있으니, 바로 Jill of the Jungle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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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Epic MegaGames에서 개발한 이 게임은 비슷한 시기의 다른 게임에 비해서는 그래픽이 좀 허접하다. 맵의 각 칸을 구성하는 그래픽이 딱 격자인 게 티가 날 정도이니 말 다 했다.;; 하지만 인상적인 건, 내가 알고 있는 고전 게임들 중에 제일 관대하고 UI가 친절하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 F1 도움말이 있는 게임이 얼마나 됐을까? ㅋ 어디서나 저장 가능하고 게임 주변 환경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이 엄청 많이 나온다. 말이 많다.

그리고 시간 제한도 없으면서 목숨 수 제한도 없다. 그 당시의 2D 아케이드 플랫폼 게임들은 시간 제약이 없으면 목숨 수 제한이 있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인 것처럼 둘 중 하나는 있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목숨 수 제한이 없더라도, 죽고 나면 예전에 먹은 아이템은 다 잃은 채 게임을 해당 레벨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이건 그렇지도 않았다.
약간의 고비를 좀 넘기면 한 3, 40분 정도만 애쓰면 무난하게 엔딩을 볼 수 있다.

이 게임을 만든 프로그래머는 Tim Sweeney이다. 그렇다. 훗날 3D 게임용 Unreal 엔진을 만든 그 개발자이다.

4.
길 잃은 바이킹(The Lost Vikings)은 1992~93년을 풍미한 유명한 게임이다. 한 주인공만 조종하는 여느 아케이드 플랫폼 게임과는 달리, 이 게임은 제각기 특기가 다른 세 명의 주인공을 순서대로 조종해서 맵의 퍼즐을 풀고 이동해야 한다. 달리 빨리 달리고 점프를 할 수 있는 놈, 화살을 쏠 수 있는 놈, 방패 겸 낙하산이 있는 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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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의 개발사는 Silicon & Synapse인데, 이게 훗날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WOW로 세계를 뒤흔들어 놓는 게임 개발사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렇다, <길 잃은 바이킹>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옛 작품이다. id 소프트웨어로 치면 Commander Keen 같은 옛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RTS 장르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블리자드도 왕년엔 아케이드를 만들었다.

5.
옛날에 본인이 접한 게임들 중에는 엔딩을 본 것도 있고, 끝내는 정복을 못 한 어려운 것도 있다.
그래서 이것과 관련된 기억을 좀 나열해 보자면.. 대표적으로 보글보글 레벨 32가 있었다.
잘 알다시피 이건,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위에 있는 좁은 구멍을 통해 밑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대단히 위험하다. 여섯 마리나 되는 몬스터에게 십중팔구 부딪혀 죽는다.

아주 오래 기다리고 있으면 몬스터 중 일부가 구멍 위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Hurry up과 고래크리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이 레벨까지 오는 것만 해도 천고만신 만신창이인데 레벨 32가 본인의 병목 지점이었고, 여기서 크레딧 다 깎아먹은 뒤 본인은 끽해야 3x나 4x대 레벨이 한계였다. 이보다 더는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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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대가 지나서 요즘은 유튜브에 온갖 고전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우주괴수들의 동영상이 나돈다. 공략 사이트들도 있다. 그리고 저 레벨은 방법만 알면 그렇게 어려운 레벨도 아니다. (☞ 공략 사이트 클릭)
비결은 시작 지점에서 거품을 불어서 그 거품 위로 점프를 하여 top-to-bottom이 아니라 bottom-to-top으로 몬스터들 굴 속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단, PC용 버전은 게임기용 버전보다는 그렇게 하기가 더 어렵다.

6.
추억의 레밍즈!
여러 에디션들 중에서 Oh no! More Lemmings의 Crazy 카테고리는 레벨 1도 쉬운 편이 아닌데 레벨 2 Dolly Dimple에선 어지간한 레밍즈 뉴비들은 다 떨어져나가고 만다.

미칠 듯이 쏟아져나오는 레밍즈에 출구까지는 높이 차이가 너무 심하고(추락사), 도구도 얼마 없고, 게다가 100% 다 구출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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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은 이 그림에 나와 있듯이 한 놈만 저런 땅파기를 이용해 밑으로 내려가게 한 후, 저렇게 사다리를 파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공략법 보고도 제대로 못 따라할 것 같다.
추락사를 할 높이에서 떨어지더라도 출구로 떨어지는 건 안전하기 때문에, 사다리를 출구 위까지 놓고 쥐들을 거기로 떨어뜨리는 해법도 있긴 하다.
이것도 공략집 사이트를 소개하겠다. (☞ 클릭)

7.
게임 개발 업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완전 상식이겠지만, 왕년의 스타 개발자가 옛날답지 않은 이상한 모습으로 몰락한 사례가 여럿 있다. 앞에서 언급되었던 존 로메로는 id 소프트웨어를 떠난 뒤에 정말 처참하게 망가진 케이스이며, 빌 로퍼도 한때 블리자드의 부사장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거기를 떠난 후 근황이 묘연하다.

그리고 울티마 시리즈를 만들어서 천재 게임 개발자로 추앙받던 리처드 개리엇은 그 명성은 안드로메다로 가고 가히 우주먹튀 수준으로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 있다.

8.
국내의 기업들은 영어나 알파벳을 쓸데없이 남발하고 문서, 간판이나 소프트웨어의 UI 같은 데서 표준어/맞춤법도 틀리는 반면, 오히려 외국계 기업이 그런 걸 더 잘 지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장 떠오르는 예는 맥도날드이다. 간판에다 한글로 ‘맥도날드’라고 큼직하게 쓰고 영어로는 작게 보조로 쓴 것 때문에 예전에 민간의 한글 운동 단체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블리자드도 그런 식의 개념 면모 때문에 사용자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물론, 한국이 블리자드 게임들을 워낙 폭발적으로 사랑해서 매상을 많이 올려 줬으니 거기서도 우리나라를 특별히 배려-_-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기야 어쨌든 잘하는 건 잘하는 것이니까. 스타크래프트 2는 동영상에 나오는 사람의 입모양까지 한국어에 맞춰 만들어졌고, 각종 배경에 나오는 문자까지 전부 철저하게 한국어로 바뀌었다.

특히 WOW에서던가 배틀넷에서던가, 채팅 중 입력하는 한글 자모 커맨드를 세벌식 자판 기준까지 지원해 준 건 세벌식 사용자들로부터 오래 전부터 칭송받은 사항이다. 어떻게 외국계 기업이 세벌식 자판까지 알고 로컬라이즈를 할 수 있었을까?

9.
어느 장르에서든 게임이 2D에서 3D로 바뀌면 옛날 같은 개떼 물량전이 퇴색하는 건 어쩔 수 없는 tradeoff임이 분명하다. 아무래도 둘의 CPU 처리 부담의 차이가 장난이 아니니까 말이다.
단적인 예로, 스타크래프트 2나 워크래프트 3에서 스타크래프트 원판의 저글링 개떼 같은 찰진(?) 맛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둠 2에서 퀘이크로 넘어갔을 때만 해도 그렇다. 100% 폴리곤으로 넘어간 첫 버전이던 퀘이크는 이제 맵 어디를 뒤지더라도 과거의 둠 2 같은 광활한 평지에서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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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0 19:21 2012/03/2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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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녀와 야수 (1991)

정말 동화적인 환상으로 가득한, 전형적인 디즈니스러운 작품이다. 역대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에는 에리얼(인어공주), 포카혼타스, 자스민(알라딘), 뮬란 등 여러 여주인공이 있는데, 역시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벨이 내가 보기에 제일 예쁘다. 나의 미의 판단 알고리즘이 이미 서양 기준에 물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제목에서부터 미녀를 표방하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이 당시에는 여전히 2D 애니메이션이 주류이지만, 정교한 컴퓨터그래픽이 부분적으로 도입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알라딘의 경우 용암과 양탄자에서 CG가 들어갔고, 미녀와 야수에서는 둘이서 드디어 무도회장에서 춤을 출 때 배경이 간지나는 3차원 CG로 처리되었다.

엔딩에서 야수에게 걸린 저주 마법이 풀리는 장면이 정말 아름답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 후에 이 땅에 걸린 저주가 풀릴 거라고 하는 성경의 예언을 기억나게 한다. 이것도 명장면이지만, 나중에 나온 라이온 킹은 음악을 너무 잘 만들어서 그 감동이 전작을 압도해 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바로 다음에 라이온 킹에 대해서 얘기할 때 다시 다뤄질 것이다.

미녀와 야수에서 벨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를 담당한 성우는 Paige O'Hara(페이그 오하라 1956~)라고 하는 중년 여성이다. 이런 장편 만화영화는 중간에 뮤지컬처럼 노래가 이따금씩 나오며, 동일 주인공에 대해서도 일반 대사 성우와 노래 성우를 따로 쓰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벨의 목소리는 일반 대사와 노래가 모두 동일 인물이다.

인어공주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주제가 Under the sea를 작곡하고 미녀와 야수의 Tale as old as time을 작곡한 음악가는 Howard Ashman (1950~1991)이다. 이 분야에서는 가히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는데, <미녀와 야수> 영화 제작 중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인해 작업을 다 못 끝내고 40대 초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미녀와 야수> 영화를 다 보고 credit roll까지 다 올라가고 나면, 저 사람을 추모하는 tribute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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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온 킹 (1994)

월트 디즈니 사의 역대 최고 대박으로 손꼽히는 명작이다. 동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우화 같은 만화영화가 과연 흥행 성공할 수 있을지 처음에는 디즈니 내부적으로도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으나, 라이온 킹은 결국 제작비의 20배가 넘는 수익을 낸 걸로도 모자라, 영화의 수명이 다 끝난 뒤에도 각종 캐릭터 상품 로열티로 계속 돈을 벌어다 줬다.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로 이 만화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본인이 받은 임팩트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아프리카 정글, CG로 만들어진 살떨리는 들소 떼 돌진(stampede) 등 여러가지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두 영국인(Tim Rice와 Elton John)이 작곡한 음악들이 아름답고 엔딩이 너무 감동과 전율이었다. 난 라이온 킹을 능가하는 퀄리티의 엔딩이 나오는 영상 매체를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스카를 물리친 후 심바가 Pride Rock에 오를 때 흘러나오는 역동적인 엔딩 음악은 뭐랄까.. 찬송가로 치면 예수님의 부활을 표현하는 <무덤에 머물러> 같은 느낌이다. Pride Land가 잿더미에서 다시 옛날의 모습을 회복한 뒤에 이어지는 코러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광복이나 남북 통일, 영적으로는 계 21:4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환희와 희열 그 자체이다.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든 사람이 이런 음악을 작곡하고 공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직접 들어 보시라. 겨우 허구의 만화영화 엔딩으로만 쓰기엔 아까운 퀄리티이다.

라이온 킹은 ‘하쿠나 마타타’ 같은 문구를 포함해, 주인공의 각종 이름에도 아프리카 현지 언어인 스와힐리어 표현을 많이 퍼뜨렸다. 무파사, 심바, 라피키는 다 스와힐리어라고 한다. 다만, 무파사의 동생이며 반동 인물인 스카(Scar)는 응당 영어 단어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눈가에 흉터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하이에나 3총사의 이름은 잘 알다시피 반자이· 셴지· 에드인데, ‘반자이’도 스와힐리어이며, 통념과는 달리 일본어 ‘반자이’가 아니라고 한다. 로마자 표기까지 Banzai로 완전히 일치하지만,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_-)’ 할 때 그 반자이하고는 관계가 없으니 오해하지 말 것. 하이에나들 중에서는 ‘에드’만 스와힐리어가 아닌 영어 이름이다.

라이온 킹 이전에 본인에게 아프리카 밀림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준 만화영화는 TV로 봤던 <재키와 머피>였다. 거기에다 <밀림의 왕자 레오>도 있으니, 일본이 웬일로 아프리카 동물을 배경으로 한 만화영화를 좀 만들긴 했다. 이 때문에 라이온 킹이 유독 일본에서는 짝퉁 표절 소리를 들으면서 세계 평균만 한 인기는 못 누렸다고 한다.

첨언하자면, 스와힐리어와 관련 지어 CCM 중에도 떠오르는 검색 결과가 있다. 1998년에 발매된 최 덕신의 <갈망>의 1번 트랙 <오 놀라워라>는 스와힐리어 코러스가 시작과 끝부분에서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도입부에서 라이온 킹의 주제가인 Circle of Life가 약간 오버랩된 건 나만의 생각인 것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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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 정도로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만화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과연 천조국 미국의 기상을 느낀다.

다만, 음모론 쪽에 관심이 많은 기독교계에서는 디즈니 사와 그쪽 작품을 굉장히 경계하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디즈니 사 애니메이션 작가들 내부에서는, 일종의 이스터 에그 차원에서 좀 성적인 장면을 작품 안에다 아주 몰래 집어넣는 게 거의 관행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라이온 킹에서 심바가 풀밭에 털썩 주저앉을 때 SEX 모양으로 꽃가루가 생긴다는 루머, 들어 보신 적이 있는가? 디즈니 사에서는 SFX를 의도한 것이었다고 해명하다가 나중에는 제풀에 지쳐서 DVD로는 그 장면을 아예 삭제하고 판매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거 말고도 논란이 된 예가 몇 가지 더 있다. 무슨 디즈니 만화영화 포스터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뚫어지게 들여다보면, 남근을 발견할 수 있다거나 그런 것.

물론 개중에는 도시전설, 과민반응 급인 루머도 있다. 하지만 그런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집단의 내부에서는 과연 어떤 오덕-_-질이 벌어지고 있을까? 계약직인지 정규직인지는 모르겠다만(모르긴 몰라도 예술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프리랜서 형태로 작업을 하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이 디즈니 사의 일류 음악가가 에이즈에 걸려 죽었다는 것도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굳이 저런 선정적인 주제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다니던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은 라이온 킹에 들어있는 소위 뉴에이지 사상(circle of life? 윤회?) 내지 아프리카 샤머니즘을 굉장히 비판하신 적이 있다. 라피키가 무파사의 환상을 심바에게 보여주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저건 영락없이 부리는 영(familiar spirit)을 지닌 자가 하는 짓이며, 구약 율법대로라면 돌로 쳐 죽일 중죄이다.

하긴, 그 정도로 뼛속까지 성령 충만하고 성경의 사고방식에 단련되어 있는 사람은, 그 명작 타이타닉(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볼 때조차도 불륜과 음행, 반역을 미화하는 역겨운 영화라고 불편해한다. (누드도 나오고 아마 검열삭제 암시 장면도 있었을걸? ㄲㄲ) 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런 반성경적인 코드가 그토록 아름다운 영상과 음향에 아주 교묘하게 녹아 있다. 그렇다고 세상의 영화를 전면 거부하고 살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경각심은 잊지 말아야겠다.

이런 저런 얘깃거리가 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가능한 한 디즈니 만화영화에 대해서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싶다. 요즘은 잘 알다시피 Pixar 합병까지 했겠다, 3D CG 애니메이션이 대세인데 어떤 작품을 만들며 지내는지 모르겠다. 본인은 2008년에 Wall-E를 본 게 마지막이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도 음악에 대한 나의 감수성이 아직까지 죽지 않았음은, 거의 10년 가까이 뒤에 Looking for you를 통해서 입증되었다. (이 글은 철도 얘기가 없을 줄 알았지? 페이크다.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2/03/15 19:20 2012/03/1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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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동차 쏘나타

‘쏘나타’(Sonata)는 음악 용어인 동시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 현역으로 살아 있는 국산 승용차 브랜드이기도 하다. 주행을 마치 음악 연주처럼 조화롭고 우아하게 예술의 경지로 소화해 낸다는 뜻을 담은 작명이리라. 제작사는 현대 자동차이다.

외래어 표기법 FM대로는 ‘소나타’라고 적어야 맞으나, 잘 알다시피 ‘소나 타(고 다녀라)-_-’라는, 자동차에게는 심히 굴욕적일 수 있는 개드립을 의식해서인지 공식 한글 표기를 ‘쏘나타’라고 바꿨다.
아니, 실제로 옛날엔 경쟁사인 대우의 김 우중 회장이 그런 언어유희로 쏘나타를 디스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뒤, 대우의 경쟁 차종인 로얄 살롱/프린스 시리즈는 깨끗이 사라진 반면, 쏘나타는 건재하다.

승용차는 뒷부분에 차명 엠블렘이 관례적으로 부착되어 있는데, “쏘나타의 엠블렘에서 첫 글자 S를 떼서 갖고 있으면 서울대에 붙는다”라는 웃기지도 않은 도시전설이 나돌았나 보다. 그래서 특히 학교에서 교사가 세워 놓은 차의 엠블렘이 졸지에 ‘쏘나타’에서 ‘오나타’(ONATA)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때문에 21세기에 출시된 후속 모델은 한 글자만 떼어 갈 수 없게 엠블렘이 일체형으로 바뀌었다는 후문이 나돈다.

본인이 이걸 보고 떠오른 건, 이 상 시인의 ‘오감도’이다. 쏘나타에서 글자 하나를 떼어내서 오나타가 되었는데, 이처럼 오감도는 잘 알다시피 건축 용어인 ‘조감도’(鳥瞰圖)의 한자에서 한 획을 떼어내서 오감도(烏瞰圖)로 바꾼 것이다. (잘 알다시피 작가는 문과 출신도 아니고 건축 공학 전공의 공돌이로, 시에다가 ‘가역반응’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글자를 변개하여 뭔가 2% 빠진 듯한 cripple을 만듦으로써, 장조에서 단조로, 완전 연소에서 불완전 연소로 바뀌는 것 같은 그리 불안하고 각박하고 즐겁지 못한 분위기를 연출한 셈이다.

얘기가 옆길로 좀 많이 빗나갔으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쏘나타는 잘 알다시피 현대 자동차가 개발하여 판매하는 중형 세단 승용차이다. 기아 자동차의 K5, 그리고 르노삼성의 SM5가 동급 차량으로 쏘나타하고 경쟁하는 구도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쏘나타가 오히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아반떼와 그랜저 사이의 콩라인으로 전락한 면모도 있다. 안 그래도 기름값도 비싼데 아반떼 같은 더 작은 차를 장만하거나, 아니면 돈 약간만 더 보태서 더 크고 간지 나는 그랜저를 사고 말지, 쏘나타는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트렌드인 양극화의 손길이 자동차에까지 뻗친 것 같다.

최초의 쏘나타는 그랜저보다 1년 남짓 앞선 1985년에 출시되었다. 이때는 외형이 스텔라하고 별로 다를 게 없었다. MS 개발툴로 치면, 비주얼 C++ 1.0이지만 여전히 전신인 MS C/C++ 7.0스럽던 시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쏘나타다운 고유 모델이 처음으로 나온 건 1988년. 바로 이것이다. 본인은 아직도 쏘나타 하면 이 모양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엑셀보다 더 크고, 특히 바퀴의 휠 모양이 저렇게 생긴 게 쏘나타의 고유 외형이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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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91년 초에 외형이 더 매끄러워진 뉴 쏘나타가 나오고 1993년에 쏘나타 2(II)가 나왔는데, ‘뉴’와 2는 외형이 서로 비슷한 편이었다. 그리고 1995년에는 쏘나타 3이 나왔다. 3은 뒷부분의 붉은 램프의 디자인이 기존 쏘나타들에 비해 좀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1998년에 나온 EF 쏘나타는 램프 모양을 포함해 외형이 예전 모델보다도 더욱 알록달록 동글동글해졌다. 은근히 그랜저 같은 고급스러운 맛까지 느껴졌다. 이런 디자인은 2001년에 나온 뉴 EF 쏘나타도 물려받았는데, 헤드라이트에 원이 두 개인 듯한 파임이 들어가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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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나온 NF 쏘나타는 예전 모델들에 비해서는 다시 각진 느낌으로 돌아간 듯하다. 사실은 너무 오랫동안 우려먹은 쏘나타라는 브랜드도 다른 걸로 대체할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쏘나타로 회귀한 거라고 한다.

2007년는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인 쏘나타 트랜스폼이 나왔다. NF와 생김새가 거의 같지만 앞의 헤드라이트의 크기가 더 커지고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습도 살짝 달라졌다. 아래 그림에서 오른쪽이 NF 오리지널, 왼쪽이 트랜스폼이다. 구분할 수 있으시겠는가? 전동차로 치면 1차 도입분과 2차 도입분 사이에 생긴 미묘한 차이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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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날 쏘나타의 최신 모델은 잘 알다시피 2009년에 출시된 YF이다. 쿠페 스타일의 날렵한 외형은 역대 쏘나타들 중 가장 과감하고 참신한 디자인이 아닌가 싶으며,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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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반떼 MD(2010년형)와 그랜저 HG(5세대 2011년형)하고 좀 닮은 건 사실이다. 다들 비슷한 컨셉으로 디자인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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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의 역사를 통해 현대 자동차의 엔진 기술의 발달사도 엿볼 수 있다. 격투기의 체급이 체중에 따라 나뉘듯 자동차의 체급은 배기량으로 얼추 분류가 가능한데, 중형차에 속하는 2000cc만 예로 들자면 스텔라의 후속 모델이던 1985년형 쏘나타가 엔진 최대 출력이 110마력이었다.

그러던 것이 SOHC 대신 DOHC 엔진이 장착되면서 뉴 쏘나타에서는 동일 배기량으로 137마력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 후 쏘나타 2(146마력)를 거쳐 쏘나타 트랜스폼에서 150마력대에 도달하고, 신형 YF 쏘나타의 2000cc 기본 모델은 이미 165마력을 찍었다. 그러면서도 연비는 오히려 미미하게 더 좋아졌다.

하긴, 옛날에 1세대 그랜저가 3000cc 최고급 모델의 최대 출력이 161마력이었으니 기술이 발달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건 SOHC 방식만으로 낸 출력이었다. SOHC와 DOHC의 차이는 컴퓨터로 치면 싱글과 듀얼 코어의 차이요, 생물로 치면 심방/심실의 수의 차이로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원래 YF 쏘나타는 예전 모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급형 2400cc 모델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얼마 못 가 명이 끊겼다. 위로는 그랜저 2400cc (쏘나타에게는 높은 사양이지만 그랜저에게는 낮은 사양)와 경쟁하는 구도가 되면서 완전히 밀렸고, 아래로는 너무나 성능이 좋은 2000cc 기반 쎄타 II GDI 터보 엔진이 개발되면서 2400cc 모델의 존재의 의미를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YF 쏘나타 2.4는 난 지금까지 딱~ 한 번 봤다. 2400cc 모델은 그랜저처럼 뒷부분의 배기구 머플러가 좌우에 쌍으로 두 개 달려 있다.

2011년에는 YF 쏘나타의 하이브리드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앞의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양이 더 단순하게 바뀌었다. 하이브리드인 덕분에 공인 연비가 21km라고 하는데, 옛날에 그 작고 열악한 티코의 최저 사양 연비가 24.1km(자동도 아니고 수동)였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경제성이 아닐 수 없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전기로 달릴 때면 너무 조용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이 자동차 소리를 못 들어서 위험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자동차 주행 소음을 만들어 주는 장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디젤 전기 기관차처럼 내연 기관과 전동기가 모두 달려 있다 보니, 더 무겁고 엔진 부품이 더 복잡하고 유지 보수 비용도 더 드는 건 감안해야 할 점이다.

쏘나타, 앞으로 몇 년 뒤엔 또 어떤 모델로 변모할지 궁금해진다.
난 어렸을 때 뒷좌석의 중앙에 팔걸이를 내릴 수 있는 차를 보고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쏘나타에는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다.
고급 승용차와 관련된 잡설을 몇 개 추가하며 글을 맺는다.

1. 한때 그랜저는 한국 최고의 고급차의 대명사로 통용되었다. 그 각그랜저의 위엄은 정말! 허나 지금은 그냥 준대형차 수준으로 옛날에 비해서는 굉장히 보급형 세속(?) 모델로 격이 낮아졌으며, 이젠 그랜저 택시까지 있을 정도이다. 이건 마치 새마을호의 위상의 변화를 보는 것 같다. 서울-대전-대구-부산만 찍던 도도한 열차가 지금은 흠.. 그래도 둘 다 현실적인 격은 좀 낮아졌을지언정 그 상징적인 의미는 변함없다.

2. 그랜저보다 더 고급인 레알 대형 차량으로 현대 자동차가 만들고 있는 차는 잘 알다시피 제네시스와 에쿠스이다. 둘은 외부에 현대 자동차 엠블렘조차도 있지 않아서 언뜻 보기에 외제차 같은 인상을 준다. 연비가 10km도 안 되는 3000~5000cc급 대형차들은 그야말로 기름 먹는 하마이며, 진짜 재벌이나 사장님들이나 타고 장군· 장관들 관용차로나 쓰일 법하다. 5명밖에 못 타는 승용차 주제에 최대 출력은 45인승 버스의 그것을 능가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13 08:20 2012/03/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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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근 교수는 프로그램의 정적 분석 분야에서는 아마 우주괴수급의 전문가가 아닌가 여겨지는 분이다.
카이스트 교수로 첫 부임했다가 2003년부터 서울대로 이직했다. 학부 출신 역시 서울대. 1983년에 입학 당시 자연과학 단과대 수석을 차지했으며, 재학 성적 역시 내내 최상위권이던 수재였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교수는 상당한 동안이고 학생 시절 모습이 어땠을지가 상상이 된다.

개교 초창기부터 딱부러지게 전산학과가 있었던 카이스트와는 달리, 서울대는 198, 90년대엔 이과에 속한 계산통계학과와 공과에 속한 전자계산기공학과로 컴퓨터 쪽 학과 계열이 므흣하게 나뉘어 있었다. 통합된 컴퓨터공학부라는 게 생긴 것은 1990년대 말 내지 21세기에 들어와서이다. 덧붙이자면, 연세대 역시 컴퓨터과학과라는 이름이 생긴 건 2005년부터이고 그 전엔 정보산업공학이라고 하여 이쪽으로의 분류가 모호했다.
IT 붐과 함께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학과 이름이 비교적 최근까지도 일류대급에 속하는 대학에도 없었던 게 의외이다. 어쨌든, 이 교수 역시 당시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했다.

이분의 설파 교리(?)와 연구 분야는 이러하다.
먼저, 기계 중심적이지 않고, 수학적으로 더 엄밀하며 인간의 사고와 논리를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지향한다. 사실, C/C++이나 자바는 오늘날의 최신 프로그래밍 언어 이론이나 방법론이 반영된 깨끗한 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전산학 순수주의자(?)는 특별히 람다 대수에 기반한 OCaml이나 최소한 Scheme 같은 함수형 언어를 선호한다. 함수가 마치 일반 상수처럼 코드 중간에서 별다른 작명 없이도 자유롭게 만들어지고 값처럼 다뤄질 수 있다.
이게 좋은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심지어 C++도 C++0x에서는 함수 포인터를 대체할 만한 람다 대수 문법이 추가되었으며, 비주얼 스튜디오 2010에서는 F#이라는 함수형 프로그래밍 언어가 새로 도입되었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변화이다.

그리고 이 교수가 연구하는 정적 분석이란, 프로그램을 실제로 실행해 보지 않고, 그 구조를 뜯어보기만 하고서 이 프로그램이 잠재적으로 배열 첨자 초과 오류나 메모리 누설 따위가 발생할 수 있겠다고 진단을 내리는 기술을 말한다. 사실, 좋은 프로그래밍 언어란, 컴파일러만 통과한 프로그램이라면 뻗지 않고 잘 돌아간다는 보장이 되어야 하고 컴파일 시점 때 해당 코드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모든 문제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분의 지론이다.

이게 가능할까? 입력은 키보드나 파일로 들어오고 메모리 할당과 해제가 일어나는 통로가 주어져 있을 때, 복잡한 루프와 배열, 함수 재귀호출, 다중 포인터 로직을 추적하면서(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게 아니고!) 딱 보고 이 코드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찾아내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ㅋㅋ

당연히 머리가 터져나가게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프로그램을 일일이 실행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꼼꼼하고 확실한 검증이 행해질 수 있다. 자동차를 실제로 만든 뒤에 충돌시켜서 부숴 보지 않고도 디자인만 딱 보고 운전자의 안전에 어떤 문제가 있겠는지 예측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은가.

사실, 프로그램 정적 분석과 뿌리를 공유하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는, 바로 전산학에서 다루는 정지 문제(halting problem)이다. 이는 오늘날의 컴퓨터 모델인 튜링 기계에서는 100% 완벽하게 푸는 게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게 증명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프로그램 정적 분석기 또한 100% 완벽하고 정확하게 동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실제로는 문제가 있는 부분이 아닌데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는 false alarm도 존재한다. 그 이상 더 정밀하게 동작할 수는 없기 때문.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어디냐. C/C++은 성능이 무지막지하게 좋은 대신, dangling pointer, memory leak, buffer overflow 등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 무시무시한 버그와 보안 문제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chaotic한 언어가 아니던가? 전산학 전공자는 소프트웨어 공학 시간에 익히 배워 알듯, 소프트웨어 개발이란 건 그렇잖아도 작업의 절대적인 양과 질을 측정하기가 어려운 분야이다. 그러니 소스 코드를 정적 분석으로 검증하는 시스템이 없이는 IT 산업계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뻑이 날지 모르는 C/C++ 언어로 의료 기기나 우주선 같은 크리티컬 시스템을 만들거나 사용하려면 미리 보험이라도 들어 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짜로. -_-;;

이런 복잡도를 제어하는 시스템을 연구하는 게 이 광근 교수의 목표이다.
그분은 이걸로 이미 저명한 학술지에 적지 않은 논문을 냈고, 소프트웨어 검증 솔루션을 개발하여 기업체에 납품했다.

사실, 비주얼 스튜디오도 일반인이나 학생이 사용하는 라이선스 말고 제일 비싼 엔터프라이즈급 라이선스 제품을 써 보면, 소스 코드 정적 분석 기능이 들어있다.
기회가 되면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도 그런 걸로 한번 좀 분석해 봐야 할 텐데 말이다. 메모리나 GDI 개체, 커널 핸들 등 해제가 필요한 자원들은 전부 클래스 소멸자가 처리하게 바꾸고, 지속적인 개량과 코드 리팩터링을 해 왔기 때문에 그런 초보적인 실수는 이제 없으리라 여겨진다만, 이걸 시스템 차원에서 깔끔하게 입증을 못 하고 있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코드를 실행하지 않고 척 들여다보기만 한 뒤 그 코드로부터 문제될 만한 부분을 알아서 찾아 내는 것은 활용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 마치 공항 검색대가 가방을 열어 보지 않고 사생활 침해 걱정이 없이 비행기에 실을 수 없는 물건을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유용한 기술인가?

이 광근 교수는 자기 연구 분야를 차치하고라도, 독특한 스타일의 강의 자료나 여러 글들을 읽어 보면, 가히 공부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며 정말로 보통사람이 아니다 싶은 면모가 여럿 느껴진다. 특히 이분은 우리말로 학문하기에 대한 관념이 굉장히 투철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 “MIT라는 이름은 본토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황해도 과기원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으며, 떼제베도 프랑스 원어민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단지 매우 빠른 열차일 뿐이다. 우리만 혼자 폼나 보인다고 외래어 알파벳을 남발하고 있다.”
  • “비록 어떤 개념이나 기술이 외국에서 유래되었다 하더라도, 그 원판을 능가하는 학문적 성과는 언제나 모국어를 통해서만 이뤄져 왔다.

외래어는 싹 다 배격하고 정확· 엄밀함을 희생해서까지 무조건 뭉뚱그려서 순우리말만 쓰자는 국수주의 주장이 절대 아니며, 오히려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의 주장이다.
작년에 한창 카이스트가 자살과 영어 강의 때문에 시끄럽던 시절에 이분은 자기의 지론을 다시 한데 정리한 개념글을 하나 교수신문에다 기고했다. 그 후 이 글은 전산 비전공자, 심지어 인문학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인용되고 폭풍처럼 칭송받고 있는 중이다.

IT 쪽 최정상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이례적으로 용어 순화와 모국어 강의를 옹호하니 뜻밖이지 않은가? 저 글에 딱히 정치색이 있는 건 물론 전혀 아니지만, 영어 강의, 세계화 이런 것들을 반대하고 이념적으로 진보 성향이 좀 있는 사람들이 더욱 지지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조 국 교수도 그 글을 완전 극찬한 바 있다.

카이스트 교수 부임 시절에 이 교수는 학과 이름을 전산학과에서 컴퓨터xx학과로 바꾸는 것도 괜히 쓸데없는 일이라고 만류한 적이 있다. ACM, IBM의 M은 완전 구닥다리 용어인 '기계'라는 뜻이지 않냐고 말이다.

그리고 대학 캠퍼스 내부의 건물들을 초행자도 식별하기 쉽게 번호가 좀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신 바 있다.
그 제안 때문인지 이분이 서울대로 전근 가신 뒤에 얼마 안 되어(2004~2005년쯤 아마?) 카이스트도 건물들에 N0, E0, S0 같은 식으로 번호가 붙었다.
서울대는 워낙 건물이 많고 내부가 복잡해서 진작부터 그런 게 있다.
연세대는 그런 거 없다. 본교 도입이 시급합니다.

지금이야 카이스트 전산학동이 수 년 전부터 몇 층 더 증축되었지만, 그 당시에 이 광근 교수는 아마 공간 부족으로 인해 전산학동이 아닌 이웃 산업공학동에 연구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어른들의 사정이 더해져서 그분은 서울대로 전근을 가신 걸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전산학과의 김 태환 교수도 서울대로 가셨다.

이분의 수업은 진짜 그냥 온갖 기호와 공식, 증명이 즐비한 수학 덕후식이며 빡세다..;;;
그래서 카이스트 재학 시절, 내게는 좀 굴욕적인 기억이 있다.
C++의 사고방식에 완전히 중독되다시피하던 내 머리 구조로는 nML이네 뭐네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 PL”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전공 필수 과목일 뿐만 아니라 전근을 앞둔 스타 교수의 마지막 수업을 드랍하고 말았다. 2003년 봄 학기의 일이다. 그것도 수강 변경도 아닌 철회 기간에 출혈을 감수하며 드랍.

난 그 당시 <날개셋> 한글 입력기 2.x와 3.0의 개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 않은 복잡한 추상화 계층이나 뜬구름 잡는 이론에는 머리가 전혀 돌아가지 않던 시절이었다. 동기 부여를 받으면 철도 덕후 수준으로 머리가 미쳐 돌아가지만, 동기 부여가 없는 곳에는 난 담을 확 쌓아 버리고 죽어도 관심 안 보인다. 역시 난 프로그래밍으로 다른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게 삶의 목적이지, 프로그래밍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일은 내 적성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C++보다 더 엄밀하고 깔끔한 프로그래밍 언어로 수학 덕질하는 것보다는, 당장 윈도우 API로 옛한글과 세벌식 모아치기를 구현하는 것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어서..

그래서 나중에 한 태숙 교수의 PL을 다시 들었다. 이분의 PL 수업이 그나마 내가 생각했던 PL 수업에 더 근접한 평범한(?) 것이었고, 들을 만했다.;; 각종 프로그래밍 언어들의 특성과 개념, 값의 평가 시기, LL 파서, LR 파서, garbage collector의 동작 원리 등등.. 참고로 덧붙이자면, 내가 예전 글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듯 한 교수 역시 왕년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고 대입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차지했던 공부 만렙 괴물이다.;;

현재는 카이스트 전산학과의 류 석영 교수가 과거 이 광근 교수의 제자이며, 그분 뒤를 이어 카이스트 프로그래밍 언어 연구실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한 태숙, 최 광무 교수와 같이).
류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이 교수 연구실은 말도 못 하게 무지막지하게 빡세기 때문에, (그 대신 잘 적응하면 얻는 것도 많겠지);; 어지간한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그분 연구실로 대학원 진학을 하는 건 비추라고 한다. =_=;;;
그래도, 좀 까칠한 것만 빼면 교수님은 학자로서 정말 좋은 분이라고.. ㅜㅜ

어쨌든 이 광근 교수. 수업 하나 들은 적도 없이 헤어졌지만, 이런 식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본인이 이분에 대해 수집한 모든 정보들의 출처는 당연히 그분의 공식 홈페이지이므로, 관심 있으신 분은 방문해 보시라.

Posted by 사무엘

2012/02/29 19:12 2012/02/2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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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 이야기

우리나라에는 잘 알다시피 국군이라고 불리는 정규 군대가 존재하고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은 너무 국력이 강해서 과거에 세계를 상대로 깽판을 친 벌로, 국제법상으로는 오히려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여건이 좋지 않고 국력도 충분치 못해서 반대로 징병을 안 하면 안 되는 신세가 된 게 한탄스럽긴 하다.

우리나라 국군의 기본적인 이념은 defensive이다. 아니, 사실 오늘날 적극적인 offensive를 표방하는 군대는 세계 경찰· 지구 방위대를 자처하는 미군-_-밖에 없을 것이다.
군대는 육· 해· 공으로 분야가 크게 나뉜다. 한국군은 국토가 삼면이 바다인 반도 지형인데도 불구하고 육군만 기형적으로 너무 크다는 지적이 있다. 뭐, 비록 오늘날의 전쟁은 최첨단 무기의 각축장이긴 하나, 그래도 정말 최후에 점령지에서 깃발 꽂고 승리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은 언제나 재래식 육군 보병이니, 전쟁의 기본 구도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군대에는 군대를 잘 이끌어나갈 유능한 차세대 지도자가 필요하며, 이를 양성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육· 해· 공별로 총 3개의 사관학교가 있다. 육사는 서울 노원구에 있고, 공사는 충북 청원에, 해사는 창원에 있어서 남한의 북부· 중부· 남부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공사는 서울에 있었으나 1985년에 충청도로 이사 갔다. 그리고 옛 공사 부지가 지금의 보라매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것이 서울 지하철 7호선 보라매 역의 어원이다.
한편, 다른 덴 몰라도 해사는 당연히 바닷가 항구 도시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해군은 병사 훈련소도 사관학교와 동일한 창원시 진해군에 있다.

사관학교는 예나 지금이나 명문 학교로 간주되고 있으며, 또 그래야만 정상이다.
군사 정권 시절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떨어진 게 사실이나, 지금도 경쟁률이 꽤 높으며 서성한이나 중경외시 사이는 충분히 되는 입결인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이 어려운 연간 등록금 1000만 원 시대에, 사관학교는 학비는 물론 주거비· 생활비가 전혀 들지 않으며, 오히려 학교에서 품위유지비 월급까지 나온다. 입학하면 개인별로 노트북 PC가 지급되고 기숙사 방에는 프린터도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관학교는 학생을 상대로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을 걸고 까칠하게 굴 수 있다.
입학 전형은 여름 무렵부터 일찌감치 시작되며, 필기고사부터 시작해 내신은 물론 마지막의 수능 결과까지 입시에 반영된다. 필기고사는 3사관학교가 공동 출제하여 동시에 시험을 보기 때문에, 학생은 서로 다른 군의 사관학교에 동시 지원을 할 수 없다. 체력 검정과 신원 조회까지 다 한다.

최종 합격자는 고3 겨울방학 자유시간이 없다. 가입교 기간이라 하여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다 보내야 한다. 뭐, 해군과 공군처럼 100% 지원자로만 구성되는 군대는 병사도 가입교 기간이 있긴 하다만, 사관학교의 가입교는 성격이 좀 다르다.

정식 입학한 사관학교 학생은 생도라고 불린다. 영어로도 그냥 student가 아닌 cadet이라고 다른 호칭이 붙는다. 이들은 국비로 엘리트 장교로 양성되는 대신, 일반 대학생보다 개인 자유를 훨씬 더 제한당한 채 4년을 보내야 한다.
학교 생활 전반이 군생활이다. 수업을 들으러 기숙사에서 강의동으로 이동하는 것도 단순 등교가 아니라 학사 출장이기 때문에, 단체로 오와열 맞춰서 해야 한다.
방학다운 방학도 없으며, 이때의 스케줄은 군사 훈련이나 국토 대장정 같은 다른 활동으로 꽉 차 있다..

군대는 전쟁터에서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집단이 아니던가. 그래서 조직이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야만성을 최대한 감추고, 그 대신 명예와 규율, 정의를 이념적으로 어지간한 종교 집단 이상으로 대단히 강조한다. 육· 해· 공 사관학교는 공통으로, 중간과 기말 때 감독이 없는 명예 시험을 실시하며, “사관 생도는 진실만을 말한다. 사관 생도의 언행은 언제나 일치한다...” 같은 honor code도 부과되고 있다.

생도는 학사 경고를 한 번만 먹어도 바로 퇴교(퇴학도, 제적도 아닌 퇴교)이며, 심한 질병이 아닌 다른 사유로는 휴학도 못 한다.
육사의 경우 낙하산 타고 뛰어내리는 공수 훈련을 무서워서 못 받으면 퇴교이고, 승마와 태권도도 졸업 때까지 무슨 급 이상까지 못 해내면 퇴교이다. 뭐, 이런 저런 식으로 언뜻 보기에 까다로운 제약 조건이 많긴 하지만, 군인 정신 투철하고 육사까지 갈 정도로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 못 할 수준은 물론 아니다.

이런 학교 시스템에 적응을 못 하고 퇴교하는 사람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것은 국가로서는 예산 낭비이고 손실이다. 성적 미달(능력 부족-_-)이나 질병(불가피) 이외의 사유로 퇴교하는 사람은--특히 자퇴하거나 사고 치고 짤리면-- 이제 국군에서 어떤 형태로든 장교가 영원히 될 수 없다. 그리고 1학년은 병-_-으로, 2~3학년은 하사로, 4학년은 중사로 곧바로 군 복무를 하게 된다. 뭐, 연장자도 자기가 원한다면 부사관 대신 병으로 복무할 수도 있긴 하지만.. 왕년의 짬밥이 있으니 군사 훈련은 물론 면제이고 바로 자대 배치이며, 육사에 다녔던 기간이 감안되어 복무 기간은 다소 짧아진다고 한다.

여자 생도야 퇴교와 동시에 군대와의 인연은 그대로 끝이다. 단, 남자든 여자든 가입교 기간에 뛰쳐나간 것은 애시당초 정식 입학이 아니기 때문에 추후의 장교 복무 지원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된 4년간의 생도 생활을 마치면 이들은 군사학 학사와 더불어 자기 전공에 따라 문학사나 공학사, 이렇게 두 개의 학사 학위를 받고 소위로 임관한다. 이들이 방학도 없이 얼마나 빡세게 지냈는지를 감안하면, 학위를 둘 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듯. 임관식 때는 잘 알다시피 대통령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도 많이 온다. 이들의 의무 군복무 기간은 10년이나, 아마 5년차에 단기 전역 신청도 가능은 하지 싶다.

일단 중위에서 대위로 넘어가면 정말 군대가 단순 통과 경로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며 생계 수단인 사람들인데, 10년보다도 더 오래 남아 있으려는 사람은, 대령에 장군까지도 넘보는 군대 고위 간부요 만렙 지망생인 셈이다. 중령 이상 되면 전역 후에도 연금까지 나올 걸?

사관학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작은 학교여서 전교생이 몇백 명, 천 명이 될까말까이다. 그러니 실제 복무 중인 장교들은 사관학교뿐만이 아니라 학사 장교, ROTC 등 다른 출신이 더 많다.

하지만 이들 중에 사관학교 출신이야말로 성골이며, 진급이 가장 유리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딱히 전쟁이 안 나고 누가 북한군을 몇 명 더 잡았다는 식으로 눈에 띄는 공적 기록이 없는 군인들의 세계에서는, 저런 출신으로 랭크가 생기는 게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다만, 이들이 더 힘들고 위험한 전방 부대의 전투 병과로 더 우선적으로 배치되며, 그런 곳에서의 근무 경력이 진급에 당연히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큰 사고 안 치면 중령까지는 거의 확실하고 대령부터가 갈라진다고 보면 된다.

생도와 일반 병사와의 관계는 어떨까? 사관학교는 학교인 동시에 일종의 군부대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잡일 근무하는 병사도 소수 존재한다. 사관학교 내부에 근로 장학생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나 병사와 생도는 서로 다른 구역에서 생활하며, 마주치더라도 상종을 안 하는 게 불문율이다. 덧붙이자면, 육사 출신이 그런 병사들을 통솔하는 간부로 발령 나지도 않는다.

다만, 육사에는 생도들에게 승마를 가르치는 군마조교병이라는 특기병이 있는 건 특이점이라 하겠다. 병사가 생도를 가르친다니! 이곳에서 근무하는 병사의 인터뷰를 본인은 본 적이 있다.
또한 여기가 비록 군사 시설이라 해도, 민간인의 사관학교 방문은 국정원을 방문하는 것만치 까다롭지는 않다.

사관학교는 잘 알다시피 해병대처럼 학번 대신 기수로 서열을 매긴다. 군대가 무슨 민영화-_-를 해서 다른 경쟁 사관학교가 있기라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사관학교 출신들은 순혈주의-_- 동문 문화가 굉장히 발달해 있고, 교수들도 당연히 육사면 육사, 공사면 공사 등 동일 학교 출신이다. 군 복무 기간 동안 군에서 보내 주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한 케이스라 하겠다.

사관학교 출신은 비록 군대에 오래 몸담지 않고 일찍 예편한다 하더라도, 앞서 말했듯이 나름 명문대 출신으로 사회에서도 응당 인정을 받고 있다. 회사에서도 사람 뽑을 때 같은 값이면 병보다는 장교 복무 경력이 있는 사람을 더 쳐주지 않던가? 게다가 공사 졸업한 전투기 조종사 출신은 민간 항공기 조종사라는 마법의 진로까지 있다. 군대보다 보수가 훨씬 더 좋고, 민항사에서 공사 출신 인재를 적극 원하기도 하니 윈윈 게임인데 정작 공군 측에서는 인재 유출 때문에 고민이라고 한다. (과학고/카이스트에서 국비로 공부한 이공계 인재가 그래 봤자 다 의대로 빠져나가는 것과 비슷한 차원의 고민쯤으로 생각하면 됨 ㄲㄲㄲㄲ)

사관학교는 명목상 국립 특수 대학교이긴 하지만, 대표자의 직함이 총장이 아니라 교장이다. 얘네들은 이상하게 '교'짜를 좋아한다. 역시 국립 특수 대학교인 카이스트는 한때 대표자의 직함이 원장이었는데, 한 2004년 무렵부터 총장으로 바뀐 케이스에 속한다.
요즘은 사관학교 교장은 중장, 다시 말해 쓰리스타의 보직으로 여겨지고 있다. 군 지도자를 양성하는 최정예 교육기관을 대표하는 보직이니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육· 해· 공을 막론하고 역대 사관학교 교장들의 재임 기간을 보면, 임기가 굉장히 짧다. 교장이 거의 2년 주기로 바뀌며, 생긴 지 길어야 70년도 안 된 학교가 교장의 대수가 3, 40대에 육박해 있다. 왜 그럴까?
이는 하루가 멀다하고 수시로 바뀌는 장군들의 보직 이동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사관학교 교장은 일반 대학교의 총장과는 신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군은 인사적체가 아주 심해서 장군 수에 비해 보직 수는 부족하니, 번갈아가면서 교장 자리 앉혀 준 뒤, 빨리 군단장 거쳐서 더 진급할 사람은 포스타 사령관, 합참의장 자리까지 가는가 보다. 잘 알다시피 군대 장교 시스템이라는 것은, 부사관과는 달리 일정 나이 때까지 진급 못 하면 짤리는 피라미드 구조이기 때문.

이상으로 본인이 우리나라의 사관학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쭉 memory dump해 보았다. 참고로 이 글을 쓴 필자는 밀덕이 전혀 아니며, 군대 체질하고는 영 안 맞는 1人이다. -_-;;;

영천에는 3사관학교라고 하여 또 다른 육군 장교 양성 학교가 있다. 생도는 다른 2년제 대학을 마치고 입학해서는 2년 교육 후 여기서 4년제 대학 졸업으로 나오고 임관하는 만큼, 이게 학사 장교나 ROTC보다는 높게 평가되는 듯하다. 하지만 성골인 육사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교장도 쓰리가 아닌 투스타더라.

Posted by 사무엘

2012/02/21 08:45 2012/02/2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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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스템 종료를 시스템 재시작으로 바꾸기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건데...
시스템 종료 명령을 내려서 운영체제가 shutdown 중일 때 특정 글쇠를 누르면...
시스템 종료를 철회하는 것까지는 안 되더라도, 최소한 나중에 컴이 아주 꺼져 버리는 게 아니라 reboot/restart로 바뀌게 하기... 이것만 있어도 아주 아주 편할 것 같다. 난 윈 9x 시절부터 이거 필요성을 몇 년째 느껴 왔다. -_-;;
기술적으로 별로 어려운 것도 없을 텐데.

2. IE의 안습한 속도

내가 IE 쓰면서 굉장히 불만스럽고 싫은 것 중 하나는..
페이지 인코딩이나 팝업 허용 옵션을 변경할 때 매번 해당 페이지를 reload하는 것...
최소한 사용자한테서 묻고 하거나, 지금 로딩돼 있는 놈을 해당 설정만 바꿔서 다시 표시할 수 없나?

그리고 속도도 불만이다. 웹 브라우저가 체감 성능이 좋으려면 페이지 캐싱을 잘 해야 하고 자바스크립트 구동하는 속도가 빨라야 하고 HTML 파싱과 렌더링 알고리즘이 좋아야겠지만, 그 중 기본 중의 기본은 새 탭이나 새 창을 띄우는 반응 속도가 빨라야 한다.

그런데 이 속도를 IE와 사파리와 구글 크롬 이 셋끼리 비교해 보면 IE는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Ctrl+N/T를 누르거나 링크에 대한 Ctrl/Shift+클릭을 했을 때의 반응...;;
IE 이놈은 살 좀 빼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다운로드 확인 대화상자가 떠 있는 동안 미리 다운로드를 하는 건 좋은 아이디어이며, 체감 다운로드 속도를 크게 끌어올린 주역이다. IE9가 머리 좀 썼다..

3. 악성 코드가 붙은 웹페이지

다만, 크롬도 성가시고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다.
일부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 사이트는 어디어디로부터 유래된 악성 코드가 묻어 있으니 위험하다면서 브라우저가 페이지 표시를 거부한다.
요즘 아무리 HTML이 동적인 요소가 많이 발달했다 해도, HTML은 기본적으로 컴퓨터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문서일 뿐인데 정보 열람을 브라우저가 제멋대로 거부하니까 굉장히 불쾌하다. 오피스 문서도 출처가 의심스러운 매크로가 있으면 매크로만 제외하고 보여주면 되지 않는가.

실제로, 그런 사이트들의 소스를 보면 문서가 다 끝난 닫는 html 태그 뒤에, 또 이상한 자바스크립트가 들어가 있긴 하다. 이런 건 정체가 무엇이며 내 컴퓨터에 정확하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이런 사이트는 서버가 해킹이라도 당했기 때문에 소스 뒤에 이상한 자바스크립트가 첨부되어 나오는지? 여러가지 디테일이 궁금하다. 바이너리 형태인 EXE 실행 파일 안에 바이러스 코드가 붙은 것도 아니고, 텍스트 형태인 웹문서 소스에도 악성 코드가 붙을 수 있구나? -_-

4. 사용자 계정 컨트롤 (UAC)

윈도우 비스타에서 이 기능이 첫 도입된 취지는 적극 이해한다만, 이를 제대로 인식이나 활용 못 하는 옛날 애플리케이션들 때문에 상당히 고달프다.
다른 브라우저는 테스트하지 않았다만, 내 컴의 IE9는 일반 권한 모드로 실행하면, TextCube 블로그 엔진으로 글 쓰면서 첨부 파일 업로드 버튼을 눌렀을 때 파일 열기 대화상자가 먹통이 되고 뜨지 않는다. 웹 프로그래밍이 UAC의 영향을 받기라도 하나? 그 이유는 모르겠다. 어쨌든 당장 내 블로그에다 그림이 곁들여진 글을 올릴 때는 IE를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해야 한다.

여차여차 하다 보면 결국 일반 권한 프로그램과 최고(=관리자) 권한 프로그램이 뒤섞여 있게 되는데, 일반 권한 프로그램은 관리자 권한 프로그램에다가 메시지를 보내거나 interprocess communication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분명 파일을 열라는 요청을 내렸는데 이게 아무 말도 없이 씹힌다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Program Files 폴더 아래에다가 파일을 건드리는 (몰상식한) 프로그램의 경우, 이게 진짜 Program Files인지, 아니면 UAC가 redirect한 가짜 Program Files인지도 아리까리해지고.. 불편하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운영체제 차원에서 UAC를 끄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결정적인 주범은 아래아한글 2007.
UAC가 켜져 있으면 아래아한글을 “관리자 권한 주고 실행”하더라도 PDF 인쇄 기능이 전혀 동작하지 않고 그냥 먹통이 된다. 아래아한글 전용 글꼴인 HFT는 자기네 전용 드라이버를 안 쓰면 PDF로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는데, 문제는 본인은 아래아한글 2.5 확장팩 글꼴 매니아여서 HFT를 안 쓰면 안 된다는 것. -_-

차라리 발상을 정반대로 바꿔서 말이다. 평소에는 전체 권한으로 지내다가, 좀 risk가 있는 웹페이지 들어갈 때 사용자가 지정한 특정 응용 프로그램만 “권한 낮춰서 실행” 이렇게 접근하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파워 유저의 입장에서는 그게 더 편할지도..;

5. 컴퓨터의 시계

시계가 없는 컴퓨터란 상상할 수 없다. 컴퓨터의 내부에는 상당히 정확한 시계가 있다. 기계식일 리는 없고 당연히 전자식.
옛날에 IBM PC XT는 시계 배터리가 없었다. 그래서 컴을 켤 때마다 날짜와 시각을 다시 설정해야 했으며, 이 때문에 당시 MS-DOS는 autoexec.bat가 없더라도 date와 time 명령은 수행한 후 명령 프롬프트가 나타났었다.

그 반면 오늘날처럼 제대로 된 컴퓨터와 운영체제 하에서는 시스템의 날짜와 시각을 바꾸기 위해 관리자 권한이 필요하며, 사실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시스템의 날짜· 시각이 멋대로 바뀔 수 있으면 그걸 기준으로 동작하는(특히 뭔가 업데이트 여부를 판단하는) 프로그램들이 모조리 혼란에 빠진다.

윈도우 운영체제를 쓰다가 간단하게 달력을 꺼내 보는 방법은, 작업 표시줄에 있는 시계를 더블클릭하여 날짜/시각 대화상자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게 옛날에는 대화상자였는데 비스타부터는 간단한 팝업창처럼 바뀌어서 키보드 포커스를 잃으면 창이 바로 사라져 버리며, 결정적으로 창을 옮길 수가 없게 되어 좀 불편해졌다.
다만, 비스타부터 다른 시간대의 추가 시계를 출력하는 기능이 추가된 것은 아주, 대단히 편리하다. 마음에 든다. 본인은 LA의 시간대와, GMT 표준시간대를 추가해 놓고 지낸다.

그나저나 시계 하니까 생각나는데... 시계의 원조는 기계식 시계이며, 톱니바퀴와 렌치가 일반인들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기계의 상징인 건 틀림없는 것 같다. 그래서 윈도우에서도 DLL 확장자의 상징 아이콘은 톱니바퀴 그림이고, 각종 공구 모양은 제어판이나 도구, 옵션 기능의 아이콘이 되어 있다.

6. Task dialog

잘 알다시피 윈도우 비스타부터 Task Dialog는 아주 멋진 UI 요소가 추가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좀 이상한 동작 방식을 우연히 발견하여 여기에 그 내역을 공개한다.
Windows 환경에서는 Alt+F4는 창 닫기 내지 종료를 의미하며, 대화상자는 당연히 '취소'로 닫기 때문에 ESC와 역할이 거의 같다.
하지만 Task dialog를 Alt+F4로 닫아 보면... '취소'가 아니라 언제나 맨 첫째 버튼을 누른 결과가 전달되는 듯하다.

메모장을 띄운 뒤, 텍스트를 고치고서 저장 안 하고 Alt+F4를 누른다.
“변경 내용을 저장하시겠습니까?” 대화상자(task dialog임)가 뜬 상태에서 포커스를 '저장'이나 '저장하지 않음', '취소' 중 아무것에다 둔 뒤에 Alt+F4를 누르면...
놀랍게도 '다른 이름으로 저장' 대화상자가 뜬다. 맨 왼쪽의 '저장' 버튼이 눌린 것처럼 반응이 온다.
이거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윈도우 비스타와 7 모두 최신 서비스 팩 있는 상태에서도 동일하게 동작함.

Posted by 사무엘

2012/02/16 19:32 2012/02/1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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