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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과 통합

요즘이야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고 융합 내지 통합이 대세라고들 다들 그런다. 특히 인문계와 이공계의 통합 시도가 두드러지고 있으며, 본인도 일종의 그런 계열로 학업을 계속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에서 학과간 협동 과정이라는 개념이 생긴 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생각보다 꽤 최근이다.

그 전엔 그럴 수가 없었다.
대학 내부의 각 학과들은 자기 과가 좀더 연구비를 많이 타 내고,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더 많은 세력을 확보하려고 서로 싸우는 구도였다.
융합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융합 뭥미? 그거 먹는겅미? 우걱우걱..." 이었다.

어디 학계뿐이었을까?
요즘도 그렇기도 하지만 종교 때문에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고,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 강대국들은 식민지를 더 차지하려고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가끔은 체력이 비슷한 국가들끼리 불가침 동맹을 맺기도 했지만, 힘의 균형이 깨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조약 그딴 거 없었다. 바로 침략.

그런 마인드로 과학 기술만 급속도로 발전하니, 그 결과는 인류의 비극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ㄷㄷㄷ;;
아마 그때 종교에 좀 심취해 있던 사람들은, 이걸 분명 요한계시록 재앙에다 갖다붙이면서 인류가 이렇게 멸망하고 말 거라고 호들갑도 떨었을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원자 폭탄의 버섯 구름을 본 사람들이 경험했을 충격과 공포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 * * * * *
독특한 사례로 일본을 들 수 있다.
그때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 중 나름 일찍 근대화에 성공하여, 한때 미국과도 맞장 뜨고 전쟁을 벌일 정도로 성장하긴 했다.
그러나 그 내막을 살펴보면, 일본의 내부 조직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막장이었다.

아마 전에도 블로그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일본군이 존재하던 시절, 일본의 육군과 해군이 서로 얼마나 사이가 나빴는지 말이다. 그냥 나쁜 게 아니라 서로 거의 적군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며, 서로 스파이를 보내서 상대편 근황을 알아볼 정도였다..!!

(르누와르와 세잔을 일본 육군과 해군으로 바꿔서 개그만화일화 만들어도 될 듯.. ㄲㄲㄲㄲㄲ)

육군과 해군이 각각 천황 직속이었던지라 육· 해군 통합 사령부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2차 세계 대전 때 나중에 하도 상황이 안 좋아져서 해군이 보다못해 "육군아, 과달카날로 보병 좀 파견해 주셈" 하자, 육군 왈, "과달카날이 어디야?" -_-;;;
서로 작전을 알려주지도 않았으며, 둘 중 하나가 싸우다 다 죽어가고 있어도 상대편은 그냥 '생깠다'.

전투기나 장비조차도 똑같은 걸 서로 중복 투자하여 따로 개발했으며, 들어가는 부품의 나사 규격조차도 서로 달랐다고 한다. =_=;;

이 정도면, 지 만원 박사의 지론대로라면, 일본은 '시스템'에서 졌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확한 표현이다.
본인이 공 병우 박사를 공부하던 시절엔, 전쟁 당시 일본의 주된 비효율 요인으로 '한자'를 비중 있게 살펴봤었다. 미군은 군함 곳곳에 영문 타자기가 비치되어 있어서 아주 빠르게 교신을 주고받았던 반면 일본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그런데, 한자보다도 저런 막장 군대 조직이  더 큰 비효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이런 막장 시스템은 헌병과 특별 고등 경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당시 일본 헌병은 여타 군대의 헌병과는 달리, 군사 치안뿐만 아니라 민간인 치안까지 담당했다. 자기 마음대로 민간인을 상대로 사상 검문을 하고 구금, 체포, 고문이 가능했다. 우리 같은 피지배인뿐만이 아니라 일본 본토인조차도 자기네 나라 헌병을 싫어할 정도였다.

그런데 불순분자를 잡아내는 일은 어차피 일본이 만들어 낸 특별 고등 경찰과도 거의 겹치는 업무였다. 일례로,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한 건 올린 조직은 헌병이 아니라 고등 경찰이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업무 협조나 첩보 정보 공유? 그딴 건 전혀 없었고 둘 사이도 극도로 나쁘긴 마찬가지였다.
왜냐고? 육군· 해군 사이와 마찬가지로 실적 쌓기 천황 충성 경쟁 때문이었다. ㅋㅋ
* * * * * *

그랬는데,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부터 인간 사회에 과거와는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났다.
컴퓨터가 발명되고,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전쟁으로 인해 발달한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민간 여객기가 지구촌 시대를 개막하고...
그리고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예전의 국제 연맹보다 더욱 강력한 범국가 기구인 UN이 생기고..;;

지금은 분야를 불문하고 협력과 통합이 대세이다.
서로 협력해서 파이의 크기를 키울 수만 있다면, 어제의 적국도 오늘의 친구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시 영원히 생까고 지낼 것 같던 일본하고도 문호 개방하고, 6 25의 원흉이던 북한하고도 이 정도로 개방하고, 심지어 정치 이념적 우방이던 대만 대신에 시장 크기가 더 큰 중국과 수교하고.. 북한의 친구였던 러시아하고도 수교하고...;;
좋게 말하면 실용적인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일 수도 있다. 세상에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 얼마나 지옥 같은(같을 수도 있는) 세상인지는, 겪어 보지 않고서는 잘 모를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각종 국제 규모의 올림피아드나 대회..;; 100년 전에는 상상하기 쉽지 않던 개념이었다.
자, 학문간의 융합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만한 트렌드인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식으로 종교까지 통합 중이다. 성탄절 때 절에서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합니다" 현수막 걸어 주고(안 해 줘도 되는데! ㄲㄲㄲㄲ), 석가탄신일 때 성당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합니다" 해 주는 게 요즘 관행이라며?
물론 근본주의 크리스천들은 이런 에큐메니컬 운동을 굉장히 싫어한다. 성경에 예고된 대로 말세에 있을 큰 배도와 타락이라고 갖다붙이며, 그 의견에는 본인 역시 동의한다.

세상 정세에 더 민감한 미국 크리스천들은 UN도 굉장히 싫어한다. 하나님의 경륜은 국가와 민족을 나누는 것인데, 그걸 인간이 멋대로 힘을 합치고 통합하면 그걸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밖에 안 할 거라고 말이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다.
다만, 6 25 때 UN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 특히 반공 정신이 투철한 한국 교회 성도가 느끼는 UN 이미지와, 미국이 느끼는 UN 이미지는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해서 나쁠 것 없는 융합과, 영적으로 불순한 동기의 융합을 잘 분별하는 것도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4 18:38 2010/10/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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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서 남표 총장의 프로필을 읽던 중..
도대체 그의 부친이 어떤 분이기에 무려 1954년에 하버드대 교수였고,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미국 유학을 갔는지가 당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친 중의 한 명이 미국인이라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몰라 ㄲㄲㄲㄲㄲㄲ 이것도 자료를 찾아봤다.

서 남표의 아버지는 서 두수 박사. 그는 경성 제대와 연희 학교 시절부터 국문과 교수이다가 1949년에 국비 장학생 명목으로 도미하여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한국어학/한국학과를 개척한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말 충격과 공포이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아버지는 골수 인문계이고 아들은 골수 이공계;;
특히 아버지는 국문과 교수도 이렇게 글로벌하게 놀 수 있다는 첫 사례를 남겼음이 틀림없다.

아울러, 미국에서 맨손으로 성공하여 대학 교수에다 동양인 최초의 워싱턴 주 상원 의원까지 역임한 그 유명한 신 호범 의원이... 서 두수 박사에게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그분은 나의 은사라고 회고했다. 이때 서 박사는 하버드가 아니라 워싱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햐.. 인연이 또 그렇게 이어지는구나. 기가 막힌다.
게다가 워싱턴과 하버드는 이 승만 박사가 학사와 석사 코스를 거친 학교이기도 하다. (박사는 프린스턴에서;;)

본인은 2008년에 관광차 미국 갔을 때, 신 호범 의원의 간증 집회에 따라가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때는 호칭도 장로였다.
그런데 그때는 죄송하지만 저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지 잘 몰랐다.. ㄷㄷㄷ;;
짤방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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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지금 서 남표 총장에게는 딸만 넷이라고 한다. 그 중 둘째딸은 역시 교수가 되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1 08:32 2010/10/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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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얘깃거리는 컴퓨터와 음악이다. 이 두 분야와 관계가 있는 옛날 소프트웨어들에 대한 추억도 곁들어질 것이다. 쓰다 보니 글이 꽤 길어졌다. ㄲㄲ

여기서 음악 파일이란, 말 그대로 음표 정보를 기반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데이터를 말한다. 과거의 컴퓨터는 어마어마한 양의 waveform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읽어들여(심지어 압축을 풀면서) 재생하면서 게임까지 원활하게 돌릴 정도의 성능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가벼운 음표 기반 음악 파일이 각광을 받았다. 이런 파일은 크기가 아주 작은 데다, 또 음악은 반복되는 멜로디나 리듬이 많다는 특성상 압축률도 높았다.

※ 애드립 ROL, IMS

일명 FM(주파수 변조 방식) 사운드이다.
sound.com, unsound.com, 그리고 CGA 640*200이라는 흠좀무스러운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되던 애드립 Visual Composer (무려 1987년도 프로그램이다!).
standard.bnk, 이야기, implay 이런 것들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진정 old timer 인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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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바이올린, 색소폰 같은 현실의 악기와 비교했을 때는 분명 모자란 게 있지만 이 FM 음악은 나름 자신만의 개성과 색깔이 있었다. 단적인 예로, 과거 <그 날이 오면 3>의 환상적인 애드립 음악을 아직도 못 잊는 분들이 적지 않다.

FM 음악의 음색은 뱅크 파일에 별도로 담겨 있었다. 수백 개의 악기 음색이 100~200KB대 크기에 담겨 있던 걸로 기억한다. 음악에서의 악기는 문자 문서에서 일종의 폰트와 같은 존재인 셈이다.
PC 통신의 음악 자료실에는 최신 유행가, 팝송, 게임 음악 따위의 ROL/IMS 파일들로 넘쳐났다. 누군가가 악보를 구해다가 노가다로 열심히 입력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IMS 파일은 당시 PC 통신 프로그램의 최강자이던 <이야기>가 지원했으니 인지도 면에서 더 말이 필요없었다.

이에 덧붙여 ISS라고 해서 가사 파일이란 게 국내에서 제정되었는데, 곡이 진행되면서 글자색이 점진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노래방 효과도 낼 수 있었다. 동영상으로 치면 자막 파일과 같은 존재이다.

※ 모듈 S3M, MOD

모듈 음악 파일은 기본적으로 음표 정보 기반 음악 파일 포맷이긴 한데, FM 방식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악기의 음색이 waveform 오디오 형태로 파일에 내장되어 있다는 것. 문서로 치면 폰트를 일일이 내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평균적인 파일 크기는 기본이 수백 KB는 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mid나 애드립 사운드보다는 큰 편이지만, 당시로서는 가격 대 성능비가 아주 우수하고 음질이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만 모듈 음악은 여전히 음악보다는 컴퓨터 지향적인 방식이고, 미디처럼 세계 균일 표준으로까지 승격되지는 못해서 오늘날은 WinAmp나 VLC 같은 일부 매니악한 프로그램이나 재생을 지원하는 마이너 포맷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애드립 음악에 Visual Composer가 있다면, 모듈 음악 분야에는 Scream Tracker라는 금색 UI를 갖춘 유명한 소프트웨어가 본좌이다. 그리고 재생기로는 Inertia player이라고 전설적인 도스용 프로그램이 있었다. 개발자가 밝히기를 100% 어셈블리만 써서 작성했다고 하니 흠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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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세는 미디

그 반면 오늘날 대세는 역시 국제 표준인 미디이다. 본인은 윈도우를 쓰기 전에 도스 시절에는 애드립이나 모듈 음악만 접했지 미디 파일도, 재생기도 전혀 접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디라는 표준 자체는 굉장히 오래 전에 제정된 것이다.

심지어 1989-90년대를 풍미했던 페르시아의 왕자의 midisnd.dat 같은 파일을 들여다 봐도, 내부는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로 재생 가능한 표준 미디 파일들의 모음이다! 그래서 인트로/엔딩 음악, 죽었을 때의 음악 따위를 쉽게 추출할 수 있다.

도스용 둠 1, 2의 배경 음악도 내부적으로는 미디 포맷이다. 사실, 그 전작인 울펜슈타인 3D도 데이터 파일을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음악을 딱 들어 보면 미디인게 티가 난다.

미디에는 구체적인 음색에 대한 규정은 전혀 없기 때문에, 과거 애드립으로 허접하게 재생되던 음악도 미디인가 하면 오늘날 최첨단 노래방 기기에서 코러스까지 곁들여져 나오는 음악도 죄다 미디이다. 과거에는 미디 음악을 컴퓨터에서 제대로 들으려면 미디 카드가 필수였지만,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2000/ME부터는 윈도우 운영체제가 좀 그럴싸한 미디 신시사이저 소프트웨어를 내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게임들은 음악도 닥치고 wav나 mp3 통째로 내장이다. DirectMusic이 괜히 개발이 중단된 게 아니다. 현업 게임에서 쓰이질 않고 있는 컴포넌트이기 때문.

※ 애드립 음악 관련 추억: 옹 컴포저

1998년의 일이다. 옹 언욱 씨라고, 본인보다 나이는 한 학년 위이고 당시 고등학생이던 분이 <옹 컴포저(Ong Composer)>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쉽게 말해 애드립 음악 파일 편집기이다. 그런데 이분은 프로그래밍은 물론이고 음악, 그래픽까지 두루 본인과는 비교가 안 되는 진정한 엄친아였다. 그 열악한 16비트 볼랜드 C++로 슈퍼 VGA 그래픽(선 그리기, 점 찍기, 비트맵 -_-)과 사운드 제어 루틴을 어셈블리로 다 자체 제작하고 GUI 라이브러리에 심지어 스킨까지 혼자 다 만들었다... ㅎㄷㄷㄷㄷ;; 난 그런 쪽은 쥐뿔도 실력이 없으니 전적으로 공개 라이브러리에 의존했는데 말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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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옹 컴포저에 들어있는 예제 음악 파일 중에는 이 사람이 직접 작곡한 곡도 들어있었다. 정말 괴물. 당신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입니까.;;

참고로, 컴퓨터 음악 프로그램은 Noteworthy Composer처럼 작정하고 위지윅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오선지에 콩나물을 그려 넣는 형태가 아니다. 스프레드시트에다가 가로줄 길이로 음표를 표현하는 아주 기계 친화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아까 언급한 Visaul Composer나 Scream Tracker도 마찬가지. 이는 프로그래밍 언어 소스 코드에 우리가 종이에다 쓰는 수학식이 그대로(근호, 분수 등) 들어가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본인도 응시했던 1998년 제 15회 정보 올림피아드 공모 부문에서 옹 컴포저는 입상을 못 했다. 이런 어마어마한 프로그램이 왜 입상을 못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듬해, 16회 대회에서 이분은 옹 컴포저를 윈도우용으로 포팅한 옹 컴포저 2를 출품하여 금상을 받는다. 그 후의 이분 근황은 본인도 알지 못한다. 프로그래밍에다가 탁월한 예체능(그래픽/음악) 쪽 재능을 갖춘 전문가이다 보니, 게임 개발에 뜻이 있는 분이던 걸로 기억한다.

덧붙이자면 15회와 16회 대회 때는 고등부에 대상 수상작이 없었다. 그 후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17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은근슬쩍 자랑. ㄲㄲㄲㄲ)

※ 모듈 음악 관련 추억: BWSB 라이브러리

BWSB (Bells, Whistles, and Sound Boards)라고 어느 영국의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프로그래밍 라이브러리가 있었는데, 이게 정말 물건이었다. 퀵베이직, 파워베이직, 볼랜드 C/C++, 볼랜드 파스칼 등에서 모듈 음악을 재생해 줬다. 셰어웨어이긴 하지만 공개용도 프로그램 종료 시에 copyright 메시지가 뜨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 굉장히 잘 만들었고 문서화도 서양식 유머가 가미된 재미있는 문체로 되어 있었다. "이런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외계인이 쳐들어와 당신의 컴퓨터를 가져가 버릴 것이다" 식.

이 분야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라이브러리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왓콤이나 DJGPP 같은 32비트 컴파일러를 지원하지 못했던 게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다. 어셈블리 튜닝 코딩이 많다 보니, 소스의 이식성이 떨어져서 포팅이 어려웠던 듯하다.
하긴, DJGPP용으로는 알레그로라는 만능 게임 라이브러리가 있긴 했는데 이건 모듈 음악은 지원 안 하고 미디만 지원했다. 알레그로도 영국 사람이 만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27 16:10 2010/09/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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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C) 장조

현대 음악에서 조표가 하나도 없는 가장 기본적인 조이다. 쉽게 말해서 피아노로 칠 때 검은 건반을 전혀 누르지 않는다는 뜻. 그래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고 이 조로 만들어진 곡도 아주 많다.
본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노래인 Oh Glory Korail부터 시작해 일기예보 OST인 Frank Mills의 The Happy Song, 그리고 Peter Piper도 다 장조이다.

개천절, 삼일절(기미년 3월 1일 정오~)과 제헌절 노래(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 역시 다 장조. 이 중 개천절과 삼일절 노래는 '도'로 끝나지 않고 '솔'로 끝난다.
군가 중에서는 <용사의 다짐>, <육군훈련소가>가 다 장조이다. <멸공의 횃불>은 같은으뜸음조인 다 단조이다.

※ 내림라(Db) 장조

다 장조를 반음만 내리거나 올린 조는 조표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런 조는 다 장조만치 친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본인이 아는 음악 중에서는 뉴에이지 성향을 띤다고 하는 몇몇 instrumental 곡이 이 조이다.
예를 들어 Frank Mills의 명작인 Music Box Dancer, 그리고 코레일에서 아직까지 현역으로 쓰고 있는 열차 종착 음악인 Steve Barakatt의 Dreamers. 잘 들어 보면 라 장조가 아니라 내림라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찬송가 중에서는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고마워라 임마누엘... ㅋ)라는 아주 한국적인 찬송가가 드물게 내림라 장조.
Db는 서울 지하철 2, 3, 9호선의 신형 전동차가 발차할 때 나는 구동음의 첫음이기도 하다.

※ 라(D) 장조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의 구동음 첫음이 D이다.
본인이 최초로 들은 라 장조 곡은 역시 동요 겸 캐롤인 <탄일종>(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이다. 비슷한 시기에 들은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 역시 라 장조이니, 초등학교 음악 시간의 기억이 참 오래도 간다. ^^ (군대 행진곡은 중간에 사 장조와 사 단조 조옮김도 일어난다. 그리고 주찬양 선교단의 명곡인 <그 이름>(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도 라 장조이고 <라데츠키 행진곡>이 라 장조.

같은으뜸음조로는 라 단조가 있다. 라 단조인 곡으로 본인이 난생 처음으로 접한 곡은 <종소리>라는 동요이다.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온다 희망의 앞날을 알려 주러~) 단조이기 때문에, 똑같이 종을 소재로 한 <탄일종>과는 영 분위기가 다르며 가사와는 달리 별로 희망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으뜸음도 같고, 똑같이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는 가사인데도 말이다! 음악 교육용으로 아주 좋은 대조군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 내림마(Eb) 장조

알토 색소폰은 기본조가 이 조이다.
본인이 어렸을 때 처음으로 들은 내림마 장조의 곡은 <광복절 노래>(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였다.

참고로, 1994년에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납량특집 M의 OST인 <나는 널 몰라>는 올림라(d#) 단조로, Eb와 같은으뜸음조이다.

※ 마(E) 장조

장조로 이 으뜸음을 쓰는 곡은 의외로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다음에 설명할 바 장조의 인지도에 밀리는 듯. 주찬양 선교단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가 마 장조이고, 아마 <송 명희와 친구들> 앨범의 첫 곡인 <예수 이름을 내가 사랑함이여>가 앞부분이 마 장조이다. 이 앨범도 나온 지 벌써 10년이 지났구나.

본인이 보기엔 마 장조보다는 마 단조가 훨씬 더 유명하다. <코시코스의 우편마차>도 마 단조이고(중간에 잠시 다 장조로 조옮김), 댄스곡인 코요태의 <순정>도 동일한 조. 6 25 노래는 영락없이 마 단조로 시작했다가 끝은 장조투로 급반전하는 것 같다.

※ 바(F) 장조

다 장조에서 조표가 딱 하나 붙은 비교적 쉬운 조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조이다.
경기도 아리랑, <작별의 노래>(오랫동안 사귀었던...)부터 시작해서 바 장조의 곡은 엄청 많으며,
새마을호 Looking for You도 이 조이다. ㅋㅋㅋ
서울 메트로 CM송인 "행복을 나르는 우리 친구 서울 메트로"도 바 장조이고, 새마을호 특실 음악 채널에서 듣다가 나를 눈물바다로 만든 <어머니의 마음>(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역시 바 장조이다.

※ 올림바(F#) 장조

내림사(Gb) 장조와 동일한 조인데, 샵(#)이든 플랫(b)이든 조표가 무려 6개나 붙는 굉장히 어려운 조이다. 인근의 바/사 장조에 밀려서 잘 쓰이지 않는 조인 듯.
피아노 소곡집에서 <고양이의 춤>(작곡자 미상)이 이 조라는 것밖에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같은으뜸음조인 올림바(f#) 단조는 의외로 인지도가 있다. 2007년 가을에 크게 히트 쳤던 원더걸스의 <텔미>가 이 조이다.
그리고 "대충 그런 느낌 개그 만화 보기 좋은 날"로 끝나는 <개그만화일화> OST 역시 올림바 단조. ㅋㅋㅋㅋ

※ 사(G) 장조

G는 GEC 알스톰(서울 지하철 7, 8호선 1차 도입분, 서울 지하철 4호선 대우 중공업 전동차) 인버터를 탑재한 전동차 구동음의 첫음이라고 기억하면 된다.
<칵테일 사랑>(마로니에)과 서울 도시 철도 공사 이미지송 <행복 미소>가 이 조이다.

본인은 애국가(동해물과 백두산이)와 한글 노래(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도 어렸을 때 사 장조로 처음 배웠으며 그 음높이가 완전히 머릿속에 박혀 있다. 공식 석상에서 애국가 연주하는 걸 들어 보면 역시 사 장조이다. (비록 반음 올린 내림가 장조 바리에이션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국민체조 음악 역시 사 장조.

같은으뜸음조인 사 단조의 대표적인 예는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제 5번>이다. 중간에 사 장조로 조옮김도 했다가 돌아온다.

※ 내림가(Ab) 장조

본인이 태어나서 내림가 장조라는 걸 인지하고 들은 최초의 곡은 찬송가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옛 통일 찬송가 488장)이다. 사실 찬송가에는 내림가와 내림마 장조의 곡이 굉장히 많은데, 다른 곳에서 내림가 장조의 곡이나 노래를 접한 기억은 별로 안 난다.
본인의 기억이 맞다면, 대구 지하철 1호선 전동차 구동음의 첫음이 Ab.

※ 가(A) 장조

주로 팝송이 생각난다.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이 정확하게 가 장조이고, 카펜터의 Top of the World는 가 장조인지, 내림나 장조인지 좀 가물가물하다. (다시 들어 보기 귀찮아-_-)

같은으뜸음조인 가 단조는 우리에게 많이 친숙하다. 스타크래프트 테란 배경 음악 중 하나인 "빠빠 빠빠빰 빰.. 빠밤.." 그 곡이 가 단조의 대표적인 예.
게임 음악은 사용자를 긴장시키고 뭔가 불안하고 부족한 심리를 유지시키고 게임에 몰입시키기 위해, 99% 단조로 작곡된다. 장조 곡은 게임 엔딩(해피엔딩)이나 오프닝에서나 접할 수 있다.

※ 내림나(Bb) 장조

동요 <둥글게 둥글게>(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가 본인이 난생 처음으로 들은 내림나 장조 곡이다.
그리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나오는 주악이 이 조이며, 청소년 체조에 곁들여져 나오는 음악과, 그 유명한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딴 따따딴)도 나림나 장조이다.

※ 나(B) 장조

장조로나 단조로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 존재감 없는(?) 조인 듯. 그냥 더 쉬운 다 장조를 쓰고 마는가 보다. 어차피 어지간한 사람들의 귀는 나/다 장조 같은 반음 차이 정도는 분간도 못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25 18:25 2010/09/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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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되었수다!
Old timer PC 유저라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을 만한 전설의 게임이다.
이 게임의 내력에 대해서 전부 떠벌리자면 좀 복잡하다.
그러나,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본인이, 이 블로그의 구독자인 여러분에게 그 내막에 대해 차례대로 글로 써서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눅 1:3) 몇 자 좀 끄적이도록 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게임은 본디 1994~95년경, 당시 카이스트 학생이던 김 동건, 이 은석 님의 작품이다. 물론 이분들은, 지금으로부터 10년 가까이 전에 이미 넥슨에 입사하여 지금은 데브캣 스튜디오를 지휘하는 베테랑급 게임 개발자가 되어 있다. 모교로부터 초청을 받아 강연도 한 유명인사이다.
매우 황공스럽게도, 본인 역시 대학 시절에 이분과 메신저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고 이분들 초청으로 넥슨에 견학 간 적도 있다! 그게 2002년 가을의 일이다.

이 게임의 컨셉의 제일 원조는 1980년대에 일본 KONAMI에서 개발한 <그라디우스>라는 횡형 스크롤 슈팅 게임이다. 인삼을 여러 개 먹은 후 다양한 파워업을 고르는 시스템의 원조가 저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KONAMI는 훗날 그 게임의 시스템을 익살스럽게 바꿔 놓은 <패러디우스>(패러디-_-)를 내놓았고, 카이스트의 저 두 분은 그걸 또 패러디해서 ‘패러디우스’에서 착안, <85되었수다>라는 패러디 슈팅 게임을 만들었다. ‘패러디’가 ‘파로되’로 바뀌다니, 환상적인 작명 센스. ㅠ.ㅠ

게임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중 하나인 ‘할 박사’가 설정상 85세 노인이다. 그래서 85되었수다. ㄲㄲㄲ 그리고 또 하나는 ‘산소’라는 할 박사의 손녀딸이며, 18세 미소녀이다. 원래 게임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 게임에서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살모사라는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 악당이 반란을 일으키고 자기 직장이던 카이스트부터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게임 주인공이 나서서 학교를 구하고 세계-_-를 구하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임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아마 스테이지 1이 끝나고 2를 만들던 중이었는데...
<85되었수다!>의 개발팀에게 악재가 닥친다. 사고로 컴퓨터를 망가뜨리는 바람에, 개발 중이던 소스를 날렸다고 한다. 흠좀무;; 결국 <85되었수다!>는 미완성인 채로 당시 주요 PC 통신에 공개되었고 개발은 중단되고 말았다. 스테이지 2 중반부터 더 진행이 안 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PC 통신 자료실이나 심지어 게임 불법복제 CD 등으로도 퍼져 나갔다.

본인도 중학생이던 그 시절, 이 게임을 해 봤다. 오프닝 음악과 게임 줄거리 정도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살모사 박사가 수감됐다가 탈옥한 것, 출동하는 주인공을 향해 “그나저나 할 박사, 올해 연세가 몇이지요?” 질문이 뜨고, 이때 “85되었수다” 로고가 딱 뜨는 것까지도 기억한다. 게임이 끝까지 제대로 완성됐다면 정말, “이거 내가 혼자(많아야 둘이서) 만든 게임이에요!” 한 마디면 어느 게임 회사에서도 스카웃 제의 받고 바로 입사할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뭐 어차피 개발자 분들은 자기 적성에 맞는 좋은 직장에 이미 잘 들어갔지만 말이다.

그렇게 <85되었수다!>는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몇 년 정도 시간이 지난 1997년, PC 통신 하이텔의 게임 제작 동호회(go GMA)에서 제 1회 아마추어 게임 공모전을 개최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출품한 작품의 총용량이 압축했을 때 100KB 이내에 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때는 그것 갖고도 별 걸 다 만들었다.

이때 <85되었수다!>의 제작진이 옛날 레퍼토리를 리메이크했다. 소스를 날렸다고 했으니, 기존 게임의 리소스만 가져다가 코딩을 다시 한 모양이다. 그런데, 용량 100KB를 맞추느라 게임 데이터를 곳곳에서 가위질을 해야 했다. 그래서 게임의 제목이 또 패러디되어 바뀌었다. <삭제되었수다!>라고 말이다. ㅋㅋㅋㅋㅋ

그래서 옛날 게임 시스템과 리소스를 기반으로, ‘패러디에 패러디’를 거듭한 끝에 <삭제되었수다!>라고 나름 스테이지도 5개까지 있는 완성된 게임이 만들어졌다.
그 시절, 본인은 비록 완전 허접 눈팅 유령 회원이긴 했지만, 나름 하이텔 게제동의 회원이었고 그 공모전이 진행되던 과정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은 의심의 여지 없이 다른 출품작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다.
기술적인 면이나 그래픽, 게임성이나 모든 것이 아마추어를 넘는 프로급으로 손색이 없었다.
공모전은 이듬해에 2회까지 한 후 그 후로 더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못 들었다. 그 무렵부터 PC 통신 자체가 인터넷에 밀려 슬슬 빛을 잃기 시작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랬으니 1회의 당당한 대상 수상작인 <삭제되었수다!>가 더욱 부각되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조금 기술적으로 디테일한 부분을 얘기하고자 한다.
이 게임은 볼랜드 C++ 3.x로 빌드된 16비트 도스용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메모리, 그래픽, 사운드 등 모든 하드웨어 제어 루틴을 어셈블리로 다 자체 제작했다. 대체 하드웨어를 어떻게 제어하기에, 윈도우 95의 도스창에서는 실행할 수 없고 무조건 순수 도스로 빠져나가야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게임이 실행되는 모드이다. 본인은 1990년대의 도스용 게임들이 다 채택하던 VGA mode 13h 320*200 256색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더 작은 256*200이었다. 가로· 세로의 aspect ratio가 좀더 균형 잡힌 모드를 의도적으로 선택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문제는 저런 해상도는 쉽게 진입할 수 있는 모드가 아니라는 것. VGA mode X라고 해서 90년대 중반에 ID 소프트웨어의 마이클 압래쉬 같은 프로그래머나 특수한 용도로 사용했던 기법이 동원된 것이다.
그런 게임을 만든 사람이 나온 대학을 약 3년 남짓 뒤에 본인도 가게 되었으니 이 또한 감개무량했다.

참고로, 그 1997년도 대회에서 <삭제되었수다!>에 이어 금상을 받은 작품은 안 영기(SMgal) 님의 <대변 파이터>이다. 이것도 각종 PC 통신 자료실에 많이 퍼졌다. 이분은 파스칼/델파이 프로그래머로 날리던 분이어서 그 게임 역시 C/C++이 아닌 파스칼로 개발되었다. 하드웨어 제어라든가 게임 개발 쪽의 달인인 것도 매한가지인지라 이분도 지금까지 게임 개발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나이나 경력이나 인상이 여러 모로 박 정만(옛날에 하이텔 세벌식 사랑 모임 동호회 대표) 님과 비슷한 분 같다.

<대변 파이터>도 주인공이 비행기가 아니라 사람인 것만 빼면, 일종의 횡형 스크롤 슈팅 게임.
그러고 보니 1990년대 전설의 명작 국산 게임인 <그 날이 오면 3>도 횡형 스크롤 슈팅이고, <삭제되었수다!>나 <대변 파이터> 같은 명작 게임이 다 이 장르라는 게 무척 흥미롭다.

그러나 본인은 총알 피하는 건 영 소질이 없다. 특히 체력(hit point)이라는 게 없이 부딪치기만 해도 즉사하는 게임은 겁이 나서 원...
슈팅이라는 장르는 내 타입이 아닌 것 같다. 지인 중에는 반대로 총알 피하는 게임만 즐기는 친구도 있지만... ㅋㅋ <그날이 오면>, <-되었수다!> 모두 너무 어려워서 혼자서는 스테이지 2도 못 깬다.

본인은 게임은 하지도 않고 개발에도 그렇게 별 관심이 없다. 그냥 타자 게임 정도가 고작..;; 하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배경지식과 스킬은 기회가 되면 익히고 싶다. 지금은 이제 운영체제가 기본으로 제공하는 카드놀이, 지뢰찾기 같은 게임마저도 3D로 만들고, 아예 GDI조차 Direct3D 계층 위에서 돌아가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24 08:44 2010/08/2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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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brice Bellard (프랑스) 1972년생
http://bellard.org/
홈페이지를 보면, 주인장은 수학과 전산학, 전자 공학의 완전 덕후임을 알 수 있다.
파이 계산, 컴파일러, 게다가 IOCCC(국제 난잡한 C 코드 경연대회) 입상 경력.
관심 분야가 이쪽과 상당히 비슷한, 본인의 모 지인이 떠오른다. (누굴까? ㅋㅋㅋ)
이 사람은 1990년대 도스용 실행 파일 압축 프로그램인 lzexe의 개발자이기도 하다.
겨우 고등학생 나이 때 8086 어셈블러로 직접 짰다고 한다. 흠좀무...;;;;;;
그 당시, V3로 바이러스 검사를 해 보면, 압축된 실행 파일은 검사가 되지 않고 압축부터 풀어야 한다는 경고문이 떴다. lzexe와 더불어 pklite도 실행 파일 압축 프로그램이었다.

※ David Fotland (미국) 1957년생
http://www.smart-games.com/
The Many Faces of Go라는 바둑 게임의 개발자이며, 회사까지 차려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둑 AI를 열심히 밀고 있는 게임 인공지능 전문가이다. (도스, 윈도우, 모바일 기기) 그 프로그램을 혼자서 다 만들었다니.. 대단하다.
생각보다 나이가 지긋한 분이다.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에 거주 중.

※ Jean-loup Gailly (프랑스)
http://gailly.net/
gzip의 개발자이며, 데이터 압축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유명하다. 아래아한글도 2.1 시절부터 이 사람이 개발한 알고리즘을 라이선스하여 hwp 파일 내부 압축을 구현하고 있다. 현재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살고 있으며, 구글에 입사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분인데 정확한 생년은 모르겠다.
이 사람도 바둑 매니아이다. 개인 홈페이지를 보면 바로 위의 the Many Faces of Go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응당 논평을 해 놓았다. AI가 세계 최강급은 아니지만 초보자를 위한 인터페이스가 무척 잘 돼 있다나?

※ Ken Silverman (미국) 1975년생
http://advsys.net/ken/
듀크 뉴켐 3D의 기술 기반인 빌드(Build라는 단어 자체가 고유명사) 엔진을 개발한 게임 프로그래머.
뼛속까지 프로그래머 근성이 철철 흐르는 한편으로 과학, 스포츠, 음악 등등 온갖 분야에 해박한 엄친아라는 게 느껴진다. 빌드 엔진 역시 학창 시절의 작품이다.
지금까지도 딱히 정식으로 소속된 직장이 없이,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만 일하는 모양이다.

※ Shawn Hargreaves (영· 미 이중 국적) 1975년생
http://www.talula.demon.co.uk/
Ken과 동갑이고 비슷한 업종에 종사 중인 게임 개발자이다.
도스 시절, 32비트 C/C++ 컴파일러로 왓콤과 맞장을 떴던 GNU 계열의 DJGPP를 기억하시는가? DJGPP용으로 소스까지 공개이던 걸출한 게임 그래픽 라이브러리 알레그로를 만든 사람이 이 사람이다.
음악에 특별히 조예가 아주 깊은 매니아이다. 지금은 쟝 아저씨의 구글 입사와 비슷한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해서 XNA 기반 게임 개발에 푹~ 잠겨 있는 듯.

말이 나왔으니 또 덧붙이자면.
본인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스크래블 게임을 컴퓨터용으로 개발했다.
국내에 그런 프로그램이 개발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응당 외국의 동급 프로그램들을 여럿 구해다가 벤치마킹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 게임의 개발자 중에도 졸라 프로그래밍 고수가 많았다.

※ Jim Homan (1950년대생)
미국 출신. CrossWise라는 걸출한 게임을 혼자 만든 사람으로, 컴퓨터 AI가 굉장히 뛰어나고 프로그램 UI도 매우 프로페셔널하게 잘 만들어졌다. 윈도우 3.1용으로는 보기 드물게 비주얼 C++ 1.x + MFC로 개발되었다.
이 사람은 옛날에는 자기 회사를 차려 사업을 했기 때문에 회사 홈페이지 아래에 얹힌 개인 홈페이지에 개인 프로필도 나와 있었다. MIT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고 성적도 엄청 좋았고, 접해 본 플랫폼과 관심 분야 등등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는데, 지금은 이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곳이 없다.

※ Graham Wheeler (1960년대생으로 추정)
http://www.linkedin.com/in/grahamwheeler
WordsWorth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개발자는 완전 수학 덕후로, 학부에서 수학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컴퓨터 과학으로 박사와 박사 후 연구원까지 마친 브레인이다. 국적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케이프타운 대학을 나왔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 프로필과 블로그를 보면 역시 뼛속까지 엔지니어를 넘어 골수 컴퓨터 과학자이다.

한 줄 요약: 세상은 넓고 덕후들, 고수들은 무진장 많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20 09:03 2010/08/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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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말: 스크롤의 압박이 심한 글임을 밝힌다.

본인은 일명 2D 플랫폼 게임이라고 불리는 아케이드 장르로 PC 게임에 첫 입문한 사람이다. 여기서 플랫폼이란, 어떤 소프트웨어가 돌아가는 운영체제 내지 하드웨어 기반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게임 세계 내부가 주인공이 돌아다니고 점프하는 발판(platform)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요즘은 3D 트렌드 때문에 이런 2D 플랫폼 게임은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본인은 롤플레잉이나 전략 시뮬 같은 다른 장르의 게임들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삼국지나 대항해시대,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것들.
그런 여타 장르 게임 중에서는 스타만... 얘는 워낙 너무 히트 치고 유명했으니까 예외적으로 했을 뿐, 전략 시뮬/RPG 전문인 블리자드의 다른 명작 게임은 접하지 않았다. 뿌리가 거기에 있는 요즘 온라인 MMORPG도 본인은 흥미가 안 가서 안 하고 지낸다.

컴퓨터 학원에서 GWBASIC을 배우던 시절, 수업을 마치고 모노크롬 모니터로 게임을 즐겼다. 게임은 2D 플로피디스크에 담겨 있었고, 그때는 실행 파일이라는 개념도 몰라서 '암호'(?)라고 불렀다. 그 반면, 모노크롬 CGA/허큘리스로 하던 게임이 286 AT VGA 환경에서 실행되니까 완전히 딴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학원에서 불법 복제하던 게임은 용량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EGA/VGA 그래픽 파일은 빠진 녀석이 많아서, 집의 컬러 모니터 컴퓨터에서도 겨우 4색짜리 CGA 그래픽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음은 그때 즐겼던 게임들을 특성별로 조목조목 분석한 것이다.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그냥 게임을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보니까 그래도 영어로 흘러나오는 게임 스토리들이 해석이 되는 건 좋다. ^^;;

※ 릭의 위험한 모험 2 (Rick Dangerous 2)

제작사: 영국의 코어 디자인(Core Design). 훗날 툼 레이더를 만들어 낸 회사이다!
스크롤 단위: 가로로는 화면(페이지) 단위, 세로로는 픽셀(줄) 단위인 독특한 체계
게임 목표: 던전에 존재하는 모든 트랩 퍼즐들을 통과하여, 던전을 살아서 빠져나갈 것. 그리고 마지막 레벨에서는 최종 보스를 죽일 것.

주인공의 무기: range attack이 가능한 총(총알 최대 6발)과 폭약 6발을 쓸 수 있음. 한 총알이 날아가고 있는 동안엔 총을 또 쓸 수 없다.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엎드려 가기, 그리고 주먹으로 버튼을 누르는 동작이 있음. 점프는 자기 키의 3배 정도로 가능함.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음.
주인공의 체력: 체력이라는 게 없고 오로지 즉사만 있음. 트랩 하나에라도 잘못 걸리면...;; -_-;;
죽으면: 마지막으로 가로로 이동한 화면에서 다시 시작하며, 모든 게 원상복귀됨. (죽였던 몬스터나 바꿔 놓은 게임 지형 등이 다 reset) 목숨 한계는 6.
점수: 적을 죽이거나 점수 아이템을 먹거나 특정 지점을 통과했을 때 점수가 올라간다. 하지만 높은 점수가 게임 진행에 뭔가 이익을 주는 것은 없다.

시체: 뻥~ 점프를 하면서 화면 밖으로 튕겨나간다.
비고:: 몬스터 역시 주인공을 죽게 하는 다른 트랩(미사일, 전깃줄 등등..)에 빠지면 죽는다. 사실, 몬스터를 이렇게 죽였을 때 점수가 더 높게 올라간다.

총평: 오로지 순발력으로 트랩 피하는 퍼즐만으로 가득한 게임. 정말 어렵다. 조금이라도 타이밍 늦어서 죽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게임이 무슨 108계단 40컴보도 아니고 자비심이 없다. 5개의 레벨 중 본인은 어렸을 때 첫 1~3개의 레벨까지는 깼는데, 레벨 4 중후반부터는 gg 쳤고, 최종 보스가 있는 레벨 5는 구경도 못 했다. 주기적으로 주인공을 노리는 트랩들의 출현 패턴을 파악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거기에다 미묘한 컨트롤과 순발력도 따라 줘야 하고...;; 고수가 하는 플레이 동영상을 유튜브로 보니, 지금 생각해 봐도 내겐 무리이다.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오른쪽으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는데 그 장애물이 내가 있는 왼쪽으로 날아온다거나... 순 어거지 같은 트랩도 있다. 순전히 주인공 죽이는 게 목적인 데모노포비아-_- 같은 게임도 아니고 말이야..;; 이런 건 유저 인터페이스 면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 위험한 데이브 (Dangerous Dave)

제작자: 훗날 ID 소프트웨어로 간 존 로메로(John Romero)
스크롤 단위: 가로로는 화면(페이지) 단위, 세로 스크롤이 없음. 밑으로 떨어지면 다시 화면 위로 닿는 특이한 설정
게임 목표: 던전에 존재하는 트로피를 반드시 먹은 후, 각종 트랩을 피해서 던전을 빠져나갈 것. 최종 보스 같은 건 없음.

주인공의 무기: 총이 존재하는 레벨에서 총을 먹으면 총을 쏠 수 있으나, 한 총알이 날아가고 있는 동안에는 총을 또 쏠 수 없다.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점프만 있으며, 자기 키의 3배 정도로 가능함. 제트팩을 쓰면, 공중에서 떨어지지 않고 원하는 곳으로 자유자재로 이동 가능.
주인공의 체력: 역시 체력이라는 게 없고 즉사만 있음. 불이나 물 등에 빠지면 죽고 적의 총알에 맞아도 죽는다. 하지만 몬스터와 부딪치면, 여느 게임과는 달리 나만 죽는 게 아니라 그놈도 같이 죽는 '자폭'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죽으면: 해당 레벨의 시작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예전의 게임 상태는 그대로 유지됨. 기본 목숨 한계는 3.
점수: 보석을 먹거나 몬스터를 죽이면 올라간다. 점수가 2만 점의 배수가 될 때마다 목숨이 하나씩 생긴다.

시체: 펑~ 폭발한다.

총평: 10개의 레벨이 존재하는데 레벨이 올라갈수록 점진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진다. 게임 엔진 자체는 너무나 단순하기 그지없고 던전 모습도 허접하다. (스프라이트도 검은색 배경에다가 무려 xor 연산으로 그리는지, 두 스프라이트가 겹치면 겹치는 부분의 색깔이 변한다!) 하지만 그 작은 규모 치고는 적당하게 어렵고 퍼즐을 풀어 나가는 재미는 있다. 몬스터 외에 딱히 움직이는 트랩은 없다는 게 특징.
총을 먹어야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데, 날아다니는 몬스터를 피해서 먼저 총을 먹으러 가야 하는 게 어려웠다.

※ 보글보글 (Bubble Bobble) -- 제목이 좀 교묘하게 의역됨

제작사: 일본 Taito
스크롤 단위: 한 레벨은 오로지 한 화면에서만 이뤄지고 게임 도중 스크롤이란 게 없다!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게 세로로 방 단위 스크롤임.
게임 목표: 각 레벨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모두 죽일 것. 최종 보스 있음.

주인공의 무기: 거품을 쏜다. 거품으로 적을 가둬서 터뜨리면 된다. 다만, 일부 레벨에서는 번갯불이나 불십자가 같은 더 강력한 무기 아이템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점프만 있으며, 자기 키의 3배 정도로 가능함.
주인공의 체력: 즉사만 있음. 몬스터와 몸이 닿거나 몬스터의 발사체에 맞으면 무조건 죽는다.
죽으면: 해당 레벨의 시작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며, 게임 상태는 그대로 유지됨. 기본 목숨 한계는 4인데, Credits라는 개념이 있어서 Credit를 사용하면 해당 레벨의 초기 상태에서부터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
점수: 몬스터가 죽으면서 남긴 각종 과일들을 먹었을 때, 그리고 심지어 거품을 터뜨려도 올라간다. 점수가 5만 점의 배수가 될 때마다 목숨이 하나씩 생긴다.

시체: 몬스터가 죽으면 화면을 날아다니다가 각종 과일이나 아이템으로 변하고, 주인공이 죽으면 데굴데굴 구르다가 사라진다.
비고:: 2인용이 가능하다.

총평: 뭔가 랜덤한 요소가 엄청 많은 게임. 캐릭터가 아기자기하고 예쁜 캐주얼 컨셉이긴 한데, 역시 어렵다. ㅠ.ㅠ 레벨마다 시간 제한이 있어서 게이머를 압박하며, 특히 몇몇 레벨은 깨는 방법을 모르면 얄짤없이 다 죽을 수밖에 없다. 레벨이 총 100개 있는 게임에서 한 40 이후부터는 가 본 기억이 없다.

※ 페르시아의 왕자 (Prince of Persia) -- 아주 무난한 제목

제작자: 조던 메크너(Jordan Mechner)
스크롤 단위: 가로와 세로 모두 화면 단위로만
게임 목표: 던전에 존재하는 트랩 퍼즐들을 통과하여, 던전을 살아서 빠져나갈 것. 그러기 위해서는 출구 문을 열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힘들다. 마지막 레벨에서는 최종 보스를 죽일 것.

주인공의 무기: 검이 있다. melee 공격만 가능한 셈.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점프는 진짜 실제 사람이 가능한 높이로만-_- 가능하다. 엎드리기, 매달리기 등 다양한 동작이 있다.
주인공의 체력: 2층 높이에서 떨어지거나 칼싸움 중에 몬스터의 공격을 받았을 때처럼 hit point가 1개 단위로 감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고층에서 추락, 가시에 찔림, 칼에 허리가 잘림 등 대부분의 트랩들에 걸리면 즉사한다. (추락사라는 개념이 있는 게임 자체도 흔치 않음)
죽으면: 해당 레벨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모든 게임 상태가 원상복귀된다. 목숨 제한은 없지만, 아주 독특하게도 시간 제한이 있다.
점수: 점수라는 개념이 전혀 없음.

시체: 죽은 시체는 사라지지 않고 바닥에 그냥 널부러져 있다. 시체가 이렇게 끝까지 남아있는 게임은 당시 드문 편이었다. 죽은 모습도 꽤 끔찍한 편.
비고:: 몬스터 역시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가시에 찔리거나 허리가 잘리면 주인공과 똑같이 죽는다.

총평: 허리 자르는 칼(chopper)가 내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선사했던 게임이다. 얘도 상당히 어려운 퍼즐 난이도 때문에 엔딩 보기를 포기한 사람이 많았으나, 본인은 이건 모든 레벨을 깨고 엔딩 보는 데 성공했다. 단, 내 혼자 연구해서 깬 건 아니고, 남이 하는 걸 보고서 막힌 부분을 뚫는 방법을 발견한 뒤부터이다.
조던 메크너는 드라마/영화 감독 출신답게, 게임도 뭔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웅장한 스케일로 시작하게 만들었다.

※ 고인돌 (Prehistorik)

제작사: 프랑스의 Titus
스크롤 단위: 가로로는 화면 단위. 세로 스크롤은 아주 예외적으로 위층으로 올라가거나(레벨 5) 아래의 물로 빠질(레벨 1) 때 화면 단위로 일어나는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없음
게임 목표: 던전에 존재하는 각종 몬스터들을 잡아먹어서 Food를 채운 후, 출구로 빠져나갈 것. 던전 차원에서 그렇게 어려운 퍼즐은 없다. 그리고 던전이 끝나면 보스를 해치우는 레벨이 나옴.

주인공의 무기: 방망이나 돌도끼만 존재하며, 역시 melee 공격만 가능함.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점프는 실제 사람이 가능한 높이로만 가능하지만 스프링 아이템을 먹으면 키의 2~3배 정도 높이로 점프가 가능해진다. 사다리가 있음. 다른 게임과는 달리, 사다리를 잡고 있는 도중에 뛰어내리거나 떨어지는 게 가능하지 않다.
주인공의 체력: 체력 시스템이 있고 3~5단계 수준은 아닌 다단계의 hit point가 있다. 물에 빠지거나 절벽으로 곤두박질치면 즉사이긴 하지만, 그렇게 ring out되는 것 말고 던전 내부에 주인공을 즉사시키는 트랩은.. 수면 위를 오르내리는 섬 말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안전함을 느낌) 그런데, 게임 중에 hit point는 오로지 데미지를 입어서 감소만 할 뿐, 보충하는 방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죽으면: 딱히 way point 같은 것도 없고 죽기 직전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는 굉장히 대인배스러운 체계. 당연히 게임은 지금 상태에서 그대로 계속됨. 목숨 제한이 있지만 목숨을 늘려 주는 아이템도 있고,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보너스로 목숨도 많이 주는 편이다.
점수: 음식을 먹으면 점수가 올라가고, 클리어를 빨리 해도 보너스가 많이 주어진다.

시체: 몬스터는 일단 죽지 않는다. 죽이는 게 아니라 기절시키고 나서 잡아먹는 개념이기 때문에, 끔찍한 시체 같은 게 없다. 주인공이 죽으면 해골이 되어 하늘나라로 빠이빠이~~

총평: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쉽게 엔딩을 볼 수 있었다. 목숨도 10여 마리가 넘게 남기고 말이다. 공룡이 살던 시대를 묘사한 배경 그래픽이 무척 아름다웠다. 특히 빙하(레벨 3)와 숲(레벨 5). 프로그램의 버그 때문에 계단 오르다가 물에 쑥 빠져 버리면 좀 짜증.
레벨 클리어 후 보너스 점수 정산을 하는 화면은 왜 그래픽이 아닌 텍스트 모드에서 뜨는지가 늘 궁금했다. ^^

※ 블루스 형제

제작사: 역시 Titus
스크롤 단위: 가로와 세로 모두 픽셀 단위로 자유자재
게임 목표: 각 레벨별로 얻어야 하는 특수한 악기 아이템을 먹은 후, 던전을 통과하여 출구로 빠져나가는 깃발을 먹을 것. 보스 같은 개념은 없음

주인공의 무기: 상자를 들어 집어던지는 게 가능하다. melee가 없고 range 공격만 있는 셈.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엎드릴 수 있고, 점프 역시 키의 3배 정도 높이로 가능하다. 하지만 상자를 들고 있으면 점프 높이가 급감하며, 엎드릴 수도 없게 된다. 일단 들었던 상자는 다시 놓을 수 없고 몬스터를 향해 던져서 없애 버리는 것만 가능한 것도 아쉬운 점. 그리고 물에서 헤엄치는 게 있다. 산소 제한은 없으며, 물에서 무제한 체류 가능.
주인공의 체력: 3~5칸 정도 있다. 이 게임은 모든 트랩은 빠져나가는 게 가능하며, 즉사라는 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죽으면: 레벨별로 way point가 존재하는데, 주인공이 죽기 전에 가장 최근에 거쳤던 way point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예전 게임 상태는 보존되어 있다. 목숨 제한이 존재하며, 목숨은 레코드 아이템을 100개 채우면 하나 늘어난다.
점수: 점수라는 게 없었지 싶다. 있더라도 수집한 레코드 개수가 훨씬 더 중요했던 걸로 기억.

시체: 몬스터는 죽으면 마치 <릭의 위험한 모험>에서처럼 점프를 하면서 튕겨나간다. 주인공은 죽으면 블루스를 춘다... 음??
비고:: 2인용이 가능하다.

총평: 고인돌보다는 확실히 어렵다. 하지만 본인의 연구와 플레이만으로 스스로 5개+1개 최종 레벨을 모두 격파하고 엔딩을 봤다. 아주 넓은 던전이 인상적이었다.

※ 폭스

제작사: 역시 Titus
스크롤 단위: 가로와 세로 모두 픽셀 단위로 자유자재. 사실, 블루스 형제에서 기술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 목표: 던전에 존재하는 트랩 퍼즐들을 통과하여, 던전을 살아서 빠져나갈 것. 단, 보스를 죽여야 하는 레벨도 있다.

주인공의 무기: 블루스 형제와 마찬가지로 자체 무장은 존재하지 않고, 던전 내부에 있는 각종 도구를 던져서 적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도구 자체는 블루스 형제보다 훨씬 더 다양한 게 존재한다.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역시 엎드릴 수 있고 점프는 키의 3배 정도 높이로 가능하다. 도구를 들고 있어도 점프 높이는 변함없으며, 들었던 도구를 다시 놓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데, 이색적으로 점프할 때 점프 강도를 조절 가능하다.
주인공의 체력: 고인돌처럼 다단계로 존재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shield 모드가 없다! 블루스 형제나 고인돌은 주인공이 상처를 입으면, 어서 그 나쁜 환경으로부터 빠져나가라고 주인공에게 추가 데미지를 유보하는 shield 모드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폭스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여러 몬스터가 있는 곳에서 부닥치다가 순식간에 hit point를 다 잃고 죽을 수도 있다. 이에 덧붙여, 주인공을 즉사시키는 트랩도 많이 존재한다.
죽으면: way point를 갱신해 주는 아이템이 있다. 주인공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그런 아이템을 먹어야 하며, 주인공이 죽으면 마지막으로 그 아이템을 먹은 곳에서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 직전 상태는 보존됨. Titus의 게임들은 다 직전 상태를 보존해 준다.
점수: 존재하지 않음

시체: 주인공이나 몬스터나 다 죽으면 수직 점프를 한 후 화면 아래로 떨어져 사라진다.
비고:: hit point를 회복해 주는 아이템이 있는데, 체력이 full로 꽉 차서 더 회복할 게 없는 상태에서 그걸 먹으면 보너스 점수가 올라간다. 그리고 이 보너스 점수가 일정 한도에 다다르면 목숨을 하나 더 추가해 준다. 폭스 이외의 게임에서는 본 적이 없는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총평: 10개가 넘는 레벨이 있는 걸로 아는데, 퍼즐이 블루스 형제보다도 굉장히 어렵다. 본인은 레벨 5 정도에서 이미 GG. 위에서 언급했듯이 shield 모드가 없어서 더욱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16 09:06 2010/08/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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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격세지감

1.
1996년이던 걸로 기억한다. 본인이 중학생이던 시절, 경기 과학 고등학교가 TV 방송으로 소개되는 걸 봤다.
'경곽'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교한 과학고이기도 하다. (서울 과학고가 최초가 아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학교의 자랑이랍시고 흘러나온 멘트 중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 학교는 인터넷 전용 회선이 갖춰져 있고 전교생이 인터넷 다룰 줄 안다" 였다. ㅜ.ㅜ "전교생이 이메일 계정 갖고 있다"란 말도 했던가?

1993-4년이 CD롬, 사운드 카드를 위시한 멀티미디어 시대였다면, 1996-7년이 이제 막 윈도우 95가 보급되면서 인터넷, 멀티넷 이러면서 제대로 떠들던 시절이었다. ^^;;
요즘은 "전교생에게 노트북 지급하고, 학교 전구역에서 무선 인터넷 된다" 정도는 돼야 자랑거리가 될 것이고, 그게 그렇게 큰 자랑거리도 못 될 것이다.

하긴, 본인도 전화(모뎀)가 아닌 전용선 인터넷 자체를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접했으며 이메일 계정이란 걸 처음 만든 것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중학교 때 PC 통신, 고등학교 때 인터넷, 대학교 때 휴대전화 순으로 문명의 이기를 접해 왔다. 정보 사냥(검색) 대회라는 게 사라진 게 언제쯤이더라? ^^

2.
2002-3년 사이인 걸로 기억한다. 그 무렵에 TV 도전 골든벨 프로를 봤는데, 맨 마지막 50번 문제가 무슨 IT 용어를 묻는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여학생은 그 문제를 못 맞혔다.
그런데 그 문제의 답은 바로...

'블로그' 였다. ㅜ.ㅜ
그때까지 블로그라는 단어는 본인조차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용어였다. 지금은 블로그도 모자라서 트위터 같은 마이크로블로그까지 등장해 있는데도 말이다. ^^
저 때는 근성 충만한 IT계 초 얼리 어답터, 파워 유저들이나 블로그를 했지, 나머지 대다수는 나모 웹에디터 HTML 글자판때기 코딩으로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아니면 싸이 내지 아이러브스쿨, 다모임 같은 것밖에 안 하던 시절이었다. 아울러, 소리바다가 아직 있던 시절.

그러다가 그 비슷한 시기에 네이버에서 지식(인) 검색이라는 걸 만들어서 대박을 냈고, 한국의 인터넷 문화를 뒤집어엎었다. 엠파스에서 자연어 처리 / 질문 문장 검색 비슷한 서비스를 하긴 했는데 그걸 네이버가 더욱 발전시킨 걸로 알고 있다. 야후, 알타비스타, 심마니 같은 초창기 검색 엔진들을 다 골로 보냈다.
나중에는 카페, 블로그 서비스까지 만들면서 네이버는 다음 같은 종합 포탈 사이트로 거듭난다. 맞춤형 홈페이지(myhome) 서비스는 꽤 오래 전에 중단했다.

2002-3년이면 아직 구글도 국내에서 파워 유저가 아닌 계층에서는 완전 듣보잡이던 시절이었다. 외국 사이트는 잘 찾았지만, 내 이름을 한글로 쳐 보면, 온갖 인명들을 검색에 걸리라고 일부러 수집해 놓은 쓰레기 성인 사이트들만 잔뜩 뜨던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Posted by 사무엘

2010/07/31 16:20 2010/07/3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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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E-only 사이트들

세상엔 아직도 크롬/파폭 같은 비 IE 브라우저에서는 웹사이트 레이아웃이 깨진다거나, 특히 플래시 메뉴 같은 걸 클릭해도 반응이 없는 안습한 웹사이트가 적지 않다.
사실은 플래시가 아닌 메뉴 중에도 비 IE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게 있다.
이런 건 주로 무슨 표준을 안 지키고 뭘 잘못 만들어서 그런 건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하다.
ActiveX 같은 걸 쓴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자바스크립트 같은 다른 계층의 문제일 것이다. 네이티브 코드를 실행 안 하면 절대 안 되는 상황도 아니며, 코드를 약간만 수정해 주면 의외로 금방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 보이는데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2. 이런 메뉴 디자인은 최악

그리고 이건 브라우저 호환성 문제는 아니고 웹 디자인과 관련된 다른 얘기.
마우스로 어떤 메뉴를 가리키고 있으면 하부 메뉴가 아래에 뜨고, 그 하부 메뉴를 클릭했을 때 다른 웹페이지가 뜨는 구조인 플래시 메뉴를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그런데, 하부 메뉴가 세로가 아니라 주 메뉴와 같은 형태인 가로로 길쭉하게 나타나는 사이트가 많다. 가령,

[ 회사소개 ] | 제품소개 | 커뮤니티 | 사이트맵
회사는  / CEO 소개 / CI 소개 / 조직 구성 / 찾아오시는 길

같은 식.
그런데 굉장히 불편할 때가 언제냐 하면,
마우스 포인터가 { 회사는 ... 찾아오시는 길 } 이라는 하부 메뉴 영역의 위나 아래로 조금만 벗어나도 그 하부 메뉴가 싹 사라져 버릴 때 말이다. -_-++++++;;;

자, [회사소개]를 가리켰다가 저 끝의 [찾아오시는 길]을 선택하는 게 아주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세로로 길쭉해서 하부 메뉴가 가로와 세로로 모두 충분히 공간이 있다면 모를까 저건 좀...;;;
[조직 구성]까지 갔다가 실수로 마우스 포인터를 아래로 옮기면 하부 메뉴가 사라져 버리고, 그럼 다시 [회사소개]를 가리키러 마우스 포인터를 옮기는 삽질을 해야 한다.
그런 메뉴는 좀 하루빨리 시정됐으면 좋겠다.

3. ActiveX

인터넷 세계에서 평생까임권을 획득한 존재이다. 물론 ActiveX의 존재라든가 취지 자체가 악의 축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좀 억울한 면, 오해가 있는 면도 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터넷 상으로 동영상 하나 보려고 해도, 아니면 게시판용 위지윅 HTML 에디터를 좀 붙이려고 해도 온갖 듣보잡 ActiveX 없이는 안 됐었다.
동영상이야 플래시가 2005년쯤부터 완전히 접수해서 여타 플레이어들을 발라 버린 덕분에 게임이 끝났다. 사실은 플래시 자체도 ActiveX이지만 이 녀석은 쓰임이 워낙 범용적이고 전세계 PC에 널리 퍼진지라 예외로 인정되는 인터넷 필수 구성 요소가 되었을 뿐이다.

그 반면 HTML 에디터는 무척 놀랍다. 블로그의 등장과 이것 때문에 평범한 양민이 HTML 코딩으로 홈페이지 만들 일이 완전히 없어졌으며, 덕분에 로컬 환경에서 네이티브로 동작하는 웹에디터는 떡실신하고 만 것이다. 간단한 HTML 위지윅 에디터는 심지어 비주얼 스튜디오 같은 개발툴조차 내장하고 있다. 그러니 기존 웹에디터는 아예 웹사이트 관리자 아니면 HTML 기반 도움말 저작도구로 더 전문적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안 되게 구도가 바뀌었다.
요즘은 게시판 하나 만들려고 해도 HTML 에디터는 필수이다. 그런 점에서 그냥 plain text 입력 폼만 덩그러니 뜨는 제로보드 4는 엄청 캐안습 구닥다리이다.

웹에서 돌아가는 위지윅 HTML 에디터가 정착해 가던 과도기에는 이랬다. 그나마 조금 배려를 했다는 사이트는 IE에서는 full feature 위지윅 에디터가 뜨고, 여타 브라우저에서는 그냥 plain text만 입력할 수 있는 에디터가 떴었다. 본인의 주 메일 계정인 드림위즈의 이메일 작성 UI가 한 2, 3년 전까진 딱 그랬었다. plain text only -> IE만 위지윅 에디터 -> 다 위지윅 에디터의 식으로 발전하여 요즘은 어디서나 위지윅 에디터 제공.

요즘은 저렇게 동영상에, 위지윅 에디터에, 어지간한 암호화까지 웹 표준이 커버하는 분야가 크게 늘어난 덕분에 웹 상으로 굳이 네이티브 코드를 소환할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터넷 상으로 내 컴퓨터 시스템 정보를 표시해 준다거나, 진짜로 키보드 드라이버 차원의 보안을 구현한다거나, 설치되어 있는 소프트웨어 정보를 레지스트리 정보를 통해 파악한다거나.. 그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2000년에 처음 개발된 <날개셋> 한글 입력기 1.x는 무려 ActiveX로 만들어졌었다! -_-;;;
아직 정식 인스톨러 패키지도 없던 시절에 도스창에서 regsvr32 해 주고 <날개셋> 편집기를 구동해서 세벌식 모아치기를 쓰던 시절을 기억하거나 겪어 본 분이 독자 중에 얼마나 있을까? ㅋㅋㅋㅋ
그때 본인은 <날개셋> 자체 에디트 컨트롤을 ActiveX로 만들면 비주얼 베이직이나 심지어 웹브라우저에서도 그대로 연동 가능하다고 해서 그냥 시범삼아 그 테크닉을 써 본 것이다. 그때는 아직 인터넷 상으로 ActiveX 컨트롤 자체를 보기 힘들었고 그게 지금처럼 악의 축으로 문제되기도 전이었다. 오픈웹 운동 나부랭이 따위도 없었다. 그랬는데... 세월 참 많이도 흘렀다.
그러다 2.0부터는 그냥 일반 윈도우 컨트롤로 바뀜.

4. 운영체제 재설치

본인은 가상 머신이 아닌 실제로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제를 마지막으로 재설치한 건... 무려 2007년 초쯤이다. 3년이 넘게 윈도우 설치 화면을 볼 일이 없이 지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본인 노트북은 꽤 오래 전부터 CD롬 드라이브가 고장났으나, 이것도 쓸 일이 없으니 고칠 일도 없었다. 요즘 컴퓨터는 아예 USB 메모리로도 부팅 가능하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팅이 가능하려면 파일 시스템 차원에서 프로그램 파일이 아주 특수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윈도우를 재설치하던 3년 반 전에는 XP를 쓰고 있었는데, 그때는 운영체제가 확실하게 맛이 가 있었다. 딱히 악성 코드나 바이러스에 걸린 것도 아니었는데 언제부턴가 제어판의 일부 구성 요소가 제대로 안 나오고, 뭔가 전반적인 성능이 떨어진 느낌이 들고.. 내가 아무리 컴퓨터 유지 보수를 귀찮아하는 게으른 타입이라 해도 이건 인간적으로 OS를 정말 재설치해야 한다는 신호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그래서 하드를 포맷해 버렸다.

하지만 점점 운영체제의 자가 관리 능력이 향상되면서 하드를 포맷하고 운영체제를 재설치해야 할 일은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비스타를 3년이 넘게 써 보지는 못했으나, 굉장히 안정적이라는 건 느낀다.
다만, 각종 업데이트와 패치를 설치하면서 디스크 용량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윈도우를 새로 설치하면 그때까지 누적되어 있던 온갖 업데이트, 서비스 팩들도 다 원점으로 돌아가니 안습이다. 업데이트 내역만 쉽게 export/import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27 08:37 2010/07/2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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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쥐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라는 속담에 등장하는 이 두 동물은 인간의 항공· 우주 쪽 첨단 산업에도 재앙과 같은 존재이다.

항공업계가 새 때문에 이만저만 골치 아픈 상황이 아니라는 건 상식에 속한다. KTX만 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번 고고씽을 하고 나면 앞면에 작은 새나 벌레가 부딪혀서 죽은 혈흔이 심심찮게 발견되고 심지어 유리창에 금이 가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는 오히려 아주 양반.
비행기는 주변의 공기 흐름을 크게 뒤흔들어야만 하늘로 뜨고 움직일 수 있는 기계이다. 조류가 기체에 단순히 부딪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예 팬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면 그 생물체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아주 끔살 당하고, 비행기도 뜰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그래서 공항에서는 공항 주변에 새 떼들이 몰려들지 못하게 전문 용역 업체까지 동원해서 총소리와 이상한 냄새로 새들을 쫓아내고, 서식처를 없애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날씨가 좋길 바라야 한다는 점과 새떼들을 쫓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항공업은 숫제 농업과 공통점이 있다. ^^;;

쥐는 어떨까? 일단 비위생적인 곳에서 병원균을 옮기는 더러운 동물이고 앞니의 성장 속도가 엄청 빨라서 뭔가를 쉴 새 없이 갉아댄다. 이 때문에 인간이 사는 집의 전선까지 갉아먹어서 누전으로 인한 화재 원인까지 제공한다. 백해무익한 동물임이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나로 호 발사장 주변에도 로켓 발사를 앞두고 대대적인 쥐 소탕 작업이 필요했다. 우주 센터는 그 특성상 자연이 살아 숨쉬는-_- 캐오지에 들어서 있는데, 그곳 역시 개체수가 수천에 달하는 다양한 쥐들이 서식하는 곳이었다. 쥐가 시설 발사대에까지 침입해서 정밀한 기계들의 배선을 하나라도 망가뜨렸다간 시스템 전체를 가히 개발살낼지도 몰랐다.

이때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국내 방제 업체인 세스코에게 용역을 줬다. 50여 명에 달하는 방제 전문가들이 1년 동안 현지를 답사하여 우주 센터 주변과 건물 내외로 강력한 방어막을 구축해 줬다. 덕분에 그 후로 나로 호 시설에는 쥐로 인한 피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으며, 훗날 나로 호 역시 최소한 쥐 때문에 실패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빵을 먹다가 바퀴벌레 몇 마리를 발견했을 때 제일 끔찍할까요? 답은 반 마리” 같은 재치 있는 광고로 좋은 대외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게다가 고객 상담 게시판도 독극물을 제조하는 살벌한 업체답지 않게 가히 센스쟁이 인기 만점으로 운영되고 있는 듯하다. ^^;;

http://qilian.egloos.com/1084443
http://www.cesco.co.kr/Qna/View.aspx?startpage=1&page=3&a_day=2009-12-08%2009:54:57&idx=326457&keyField=&keyWord=

Q: 우리는 바퀴벌레를 박멸하는 너희 세스코들을 적으로 간주하며 오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선물로 너희 세스코 본사를 대대적으로 공격할것이다. 우하하하
공격당하기 싫다면 우리 바퀴벌레에 대한 박멸을 당장 중지하고 내 통장으로 인간세계 돈으로 100만원을 입금할것을 요구한다.
거래를 거부한다면 전세계의 모든 바퀴들을 동원하여 세스코 본사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

A: 치사하게 회사가 쉬는 날에 공격을 감행하다니. ㅡㅡ^
그러나 우리가 회사에 있지 않아도, 개미연합 병정개미사령부에서 본사 건물에 대한 방어를 맡기로 했기 때문에
바퀴벌레 네 녀석들의 온다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참, 추가로 알려줄 것이 있는데 세스코 본사의 경우 휴일에는 건물 외벽에 미약전류를 흐르게 만들었기 때문에
바퀴벌레는 커녕 개미 한 마리도 침입할 수 없을 거란 점을 참고하기 바란다. *^^*

개... 개미 사령부 ㅠ.ㅠ
세스코는 조류 충돌 방지 업무는 안 하나 모르겠다. 해충 구제와는 좀 분야가 다른가?
생각해 보니까 원자력 발전소 같은 곳도 우주 센터와 같은 맥락으로 철통 방제가 필요하지 않겠나 싶다.
게다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컴퓨터 버그(오류· 문제점)도, 컴퓨터 내부로 날아들었던 나방.. 즉 진짜 벌레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공항과 새는 이처럼 사이가 몹시 나쁜 반면, 공항과 골프장은 사이가 좋아요 투나잇이다. 흔히 골프장 건설이 환경 파괴라고 까이고 있으나,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골치아픈 새의 서식처를 없애는 동시에 넓은 녹지대를 조성하는 방법으로 골프장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공항은 컨트리클럽이나 있을 법한 완전 외곽에 건설되며, 골프는 비행기 자주 타고 다니는 부유층 중산층에게 적합한 여가 수단이기도 하다. 여러 모로 수지가 맞다.인천 공항이 있는 영종도에도 공항 근처에 골프장이 있다.

또한 활주로 옆에도 그냥 콘크리트보다는 잔디라도 깔아 놓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하다. 일단 친환경적이고 보기가 좋은 데다, 잔디는 사고가 났을 때 충격을 흡수해 주고, 콘크리트와는 달리 더운 날 열 흡수에도 좋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23 07:35 2010/07/23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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