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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이 죽은 지가 벌써 4년이 넘었다.
저 한 사람을 잡으려고 미국이 정말 얼마나 천문학적인 돈(=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야 했는지를 생각하면 아마 치가 떨릴 것이다.
정확한 근거는 모르겠다만, 한때 미국 해병대 내부에서는 "빈 라덴을 용서하는 것은 신이 하실 일이겠지만, 둘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우리 일이다."라는 대박 간지 넘치는 모토가 설정돼 있었다고 한다. 짱이다. 같은 메시지도 단어만 바꾸면 저렇게 센스 넘치게 표현할 수가 있구나!

뱀발을 내밀자면, 비슷한 패턴의 대사가 테이큰 3에도 있었다.
"내게 이틀만 주시오. 그러면 내가 무죄인 것과 진짜 범인이 누군지를 모두 입증해 보이겠소!"
"밀스 씨, 당신의 무죄 여부는 법정에서 판단할 일이지 내 관할이 아니오. 내가 할 일은 당신을 붙잡아서 법정에 세우는 일이지. 단지 그 뿐이오.
당신이 그 길로 도주한다면 LAPD(로스앤젤레스 경찰국), FBI, CIA가 모두 당신을 찾아 나설 것이고 당신을 저지시킬 거요."
"굿 럭." 아, 뿅 갈 거 같다.

뭐, 빈 라덴은 실제로 신에게서 용서받았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며(단순 악행 때문만은 아님), 정작 실제로 둘의 만남을 주선한 것도 해병대가 아니라 해군 대테러 특수부대였다.
그 시절을 좀 회상하자면, 그는 하필 킹 제임스 성경 반포 딱 400 주년 당일에 사살당했다. (2011년 5월 2일) 이건 뭐 그냥 우연이라 치자.
듀크 뉴켐 포에버는 원래 북미 기준으로 5월 3일에 나오려 했는데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더 연기돼서 6월 10일로 낙점됐었다.

이렇게 빈 라덴을 사살하기 위해서 미국은 전국, 전세계 각지에서 놈의 근황과 행동을 추적하고 치밀한 첩보 활동을 벌여야 했다. 미국은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나라이고 그만큼 적도 많으니까.
세계 각국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첩 활동을 하는 국가 기관이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는 한때는 중앙정보부, 안기부였다가 지금은 국가정보원, 혹은 국정원이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국내· 국외가 나뉘어 있지는 않고 단일 기관이다.

전철 안에서 111 신고 전화를 홍보하면서 "국가정보원에서는 마약, 국제범죄, 테러, 산업 스파이 등 ..." 어쩌고 하는 방송을 종종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즘 국정원에서 실제로 하는 일은 예전만치 오로지 대공· 대북 업무보다는 제3세계 산업 스파이 단속의 비중이 더 크다. 이런 교묘한 범죄를 잡아 내는 건 경찰만으로는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관계로, 불시에 확 덮쳐서 범죄 순간의 스냅샷을 떠 주는 전문 첩보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국정원 요원은 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진짜로 리암 니슨처럼 어디에 위장해 들어가고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폭력도 쓰고 희대의 난폭운전도 벌이는 등 별 짓을 다 해야 한다. 그러다 들키면 납치· 고문· 살해 등을 당하기도 하고 이때 모기관으로부터는 필요하다면 "우린 저런 요원을 보낸 적 없는데? 모름." 버림받기까지 하는 것도 국익을 위해 감수해야 한다.

국정원이 워낙 뽀대와 간지가 나고 연봉과 복리후생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걸 다 공짜로 제공해 줄 리가 없으니.. 그저 간지만 보고 도전할 만한 곳이 결코 아니다. 임기응변과 근성, 예리한 관찰력이 부족한 사람, 그 어떤 사람과도 친근하게 붙어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정도의 화술과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 일반인 평균 이상의 지력과 체력이 없는 사람, 미행을 티 안 나게 못 하고 어디서든 거짓말을 실감나게 못 하는 사람은 저런 기관에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특히, 자기 분야의 밥벌이 기술만 평생 연마하며 살고 싶은 사람, 처자식과 평범한 가정 꾸리고 가정적인 남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더욱 가지 말아야 한다. 고로 국정원 같은 곳은 본인에게 맞는 직장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요원 신입 공채는 SKY 출신에 외대 출신들이 대거 몰려 경쟁률이 몇십~100몇십 대 1이라고 한다.

본인이야 인간의 죄성의 본질을 아는 크리스천으로서, 절대악을 다스리기 위해 불가피한 필요악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이다. 북한 같은 절대악이 있는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 필요악이 옛날에는 잡으라는 빨갱이는 안 잡고, 반공을 빌미로 도리어 자국민에게 나쁜짓을 한 것도 있음은 사실이다. 그래서 첩보 기관인 국정원 역시 대국민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이런 위압적이고 코렁탕 스러운-_-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서인지 국정원에서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꽤 오래 전부터 한 달에 두 번꼴로, 국정원 요원이 하는 일이나 당할 만한 일을 소재로 추리 퀴즈를 연재하고 있다. 국정원 요원이 반쯤은 탐정 같은 일도 하는구나. 기출문제가 이미 몇백 개나 쌓여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사람들은 어지간히 뻔한 설정이나 스토리, 클리셰를 보면 다음 장면이 바로 예상이 되듯이, 추리 소설 덕후들은 딱 보면 바로 답이 나올 정도의 난이도라고 한다.

추리소설의 설정에만 파묻히면, 마치 Doom 2를 너무 많이 한 것처럼 정말 세상에 어디 믿을 놈 없고 기술을 어디 팔러 홀몸으로 나갔다가는 반드시 살해당할 것만 같고, 마약 조직이나 사이비 종교에 있다가 탈출하게 되면 정말 목숨을 부지 못할 것 같다.
시신을 전기 장판으로 덮어서 따뜻하게 유지해서 체온 감소로 사망 시각을 추정하지 못하게 하는 건 2008년 부산 청테이프 살인 사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이걸로 모티브를 딴 건지?
또한 커피에 독을 타서 누구를 독살한 건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어린 시절에 비슷하게 당한 일이다. 국정원 간부라면 역사· 시사· 상식의 달인일 테니 이런 것에서도 소재를 차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추리 문제를 푸는 건 어찌 보면 거짓 증언에서 설정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니, 역덕후들이 사극을 보면서 고증오류 찾아내며 낄낄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뭔가 교집합이 있다. 나 같아서도 당장 떠오르는 철도 추리 퀴즈는 전철이 절연구간에 진입해서 좀 어두워졌을 때 객실에서 무슨 살인 사건이 터졌고, 어느 철도 덕후 탐정이
"범인이 제시한 사진은 합성· 조작된 것입니다. 2014년에는 아직 수인선 전철이 거기까지 개통하지 않았습니다."
"그 복복선 선로 구간에서 일반열차가 내선을 주행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데서 단서를 찾아내면 무척 아름다운 이야기가 완성될 것 같다.
이와 관련된 본인의 옛날 글을 한번 보시라. 거기서도 이미 '셜록 홈즈' 같다는 댓글이 있었다. ^^

실제로, 국정원 추리 퀴즈 기출문제들 중 다른 건 내가 뭔 소리인지 몰라서 대부분 그냥 해답을 봤지만,
이것만은 그냥 문제를 다 읽기도 전에, 저거 그림만 보고는 출제 의도와 논리상의 헛점을 0.n초 만에 바로 알아챘다. <전철 3호선 살인 사건> 편.

우측통행을 하는 전동차 선로 사진을 들이밀면서 '1호선 보산 역'이라고 주장하며 알리바이를 내세우다니 거 참.. ^^
아 추가로, 그림에 나와 있는 전동차가 폭이 좀 작은 편인지라,
혹시 지방 지하철의 중형 전동차 사진을 찍어 갖고 와서는 서울· 수도권 전철이라고 사기 치는 건 아닌가도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정말로 아는 만큼 보이고 시뮬레이션이 된다.
추리 소설은 걸핏하면 정체불명의 시신이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역사적으로 시신의 신원이 전혀 밝혀지지 않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은 사건도 있다. 1948년 12월, 오스트레일리아 소머튼 해수욕장의 "Taman shud" 사건은 그 많은 똘똘이들이 추리를 하고도 도저히 답을 못 구한 사건 중 하나이다. 그는 아마 어느 나라에서 보낸 흑색 첩보 요원이 아니었나 싶다.

뭐, 그런 현실 설정 말고도
"다음과 같은 도로 지도에서 다리를 최소 몇 군데를 끊으면 A에서 B지점까지 테러리스트의 도주 경로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까?"
이건 그래프에서 단절점 내지 브릿지를 찾는 문제이니 컴공/전산 전공자에게는 익숙할 것이고,
A~E가 전부 범인이라 지목하는 사람이 다 다를 때 진짜 맞는 증언을 찾는 문제는, 이건 가로· 세로로 O X 표 만들어서 IQ 테스트 하듯이 풀면 되겠다. 실제로 이런 문제는 정보 올림피아드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간단한 문자/문자열 암호 풀이 문제도 있고.
국정원 추리 퀴즈 중에서 누군가가 남긴 추상화 형태의 다잉메시지 퍼즐을 푸는 건...
지난 2009년에 어떤 만화가가 원주 시정 홍보지의 삽화에다 대통령 욕설을 교묘하게 적어 놓은 걸 찾아 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세상엔 걍 생업 전선에서 자기 근로만 하면서 갑님으로부터 월급 받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저렇게 맨날 머리 굴리면서 세상을 참 복잡하고 스릴 넘치게 사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한편으로 인간은 죄 때문에 죄를 감시하고 죄의 결과를 수습하느라 정치 권력이 없을 수가 없게 되었으며, 그 비효율적인 일에 무지막지한 양의 세금이 쓰이게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난 저렇게 외국에서 탐내고 국내에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기술을 개발할 능력이라도 좀 있으면 좋겠다. =_=;;

* 끝으로, 국정원과 아무 관계 없는 여담..;;
국정원은 영어로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여서 영어 이니셜이 NIS이다.
그런데 본인이 난생 처음으로 본 NIS라는 글자는 페르시아의 왕자 2의 구성 파일 중 하나인 NIS.DAT였다.
크기가 거의 1MB에 달하고 아마 가장 큰 파일이었는데,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컷씬 그래픽이 들어있었다.
20여 년 전에 페르시아의 왕자 2를 디스켓으로 불법복제를 해 봤기 때문에 인상적인 파일 이름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8/15 08:39 2015/08/1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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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과 사망의 차이

1.
1993년 가을에 서해훼리(페리) 호 침몰 사고 때의 일이다. 탑승자들을 구조하고 수색하는데 웬일인지 이 배의 최고 책임자인 선장이 행방이 묘연해 보였다. 그런 와중에 일각에서는 "선장이 혼자 살아서 배를 탈출하여 몰래 튀는 게 목격됐다"라는 카더라 루머가 나돌았고, 언론은 이것을 확인도 안 하고 냅다 물어서 동네방네에 소문을 냈다.
이에 경찰조차 별 의심 없이 이 말을 믿게 되었으며 선장을 대문짝만 하게 공개 수배하고 가족들을 압박하여 선장더러 자수를 권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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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말은? 선장은 수색 닷새 만에 기관장과 함께 배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서해훼리호의 선장은 세월호의 선장 같은 급의 인간말종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예전의 선장 생존 보도는 국내 언론 역사에 길이 남을 오보 흑역사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기자들은 선장의 유가족을 찾아와서 싹싹 빌었다. 범죄자를 숨겨 주고 있다는 누명을 이제야 벗은 유가족들은 "당신들이 선장이 살아 있다고 말했으니 이제 그 선장을 살려내 보시오"라고 그들을 꾸짖었다.

2.
1996년 가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에는 싸리비를 만들기 위해 싸리나무를 벌목하러 혼자 나갔던 표 종욱 일병이 덜컥 실종됐다. 군에서는 제대로 수색도 안 하고 이걸 전시 무단 탈영으로 단정짓고 탈영병을 찾는다는 방송을 전국에 내보냈다. 그의 집엔 헌병대 사람들이 와서 표 일병 내놓으라고 마치 사채업자가 빚독촉 하듯이 수시로 온갖 민폐를 끼쳤다.

그러나 이 역시 결말은? 그는 무장공비에게 살해당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이건 부끄럽게도 군 당국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수색해서 찾은 게 아니라, 사살한 무장공비에게서 노획한 '일기'에서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여 그걸 토대로 추적한 덕분에 찾은 것이었다. 그 무장공비는 위장을 위해 표 일병에게서 국군 군복을 빼앗은 상태였으며, 그 대신 표 일병은 시신 발견 당시 속옷 바람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헌병대 관계자들은 표 일병의 유가족 앞에서 그야말로 석고대죄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생사도 알 수 없는 치욕스러운 탈영병과, 현충원에 묻히는 영예로운 전사자는 그야말로 한 끗발 차이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전시 탈영은 평시 탈영보다 처벌이 훨씬 더 무겁다!)

무장공비는 그를 결박하고 목을 졸라서 살해했다. 총은 시끄러운 데다 걔네들 입장에선 안 그래도 총알 한 알이 극도로 아까운 지경일 텐데 당연히 총을 썼을 리는 없다.
또한, 생지옥 북한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남파 간첩이나 무장공비까지 됐을 사람이라면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성이라고는 그야말로 완전히 제거된 인간 흉기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잠수함을 좌초시키고 비밀 작전에 실패했다고 동지들끼리도 무자비하게 처형을 했는데, 하물며 자신을 발견해 버린 민간인도 아니고 적군을 살려 둘 이유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생포해서 인질극 협상을 벌일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기록을 찾아 보니 표 일병은 군 복무 당시 계급이 이미 일병이었다.
“이제 일병을 달고 군생활에도 적응이 되었지만 원인모를 한숨과 동경이 계속되고 있다. 언제까지 이 신세타령을 해야 하는지 내자신도 한심하다.” (고인의 일기 중)

그럼 전사자니까 이제 공식 매체에서는 '표 상병'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제설을 하다가 사고로 죽어도 작전 중 순직이기 때문에 1계급 특진 추서인데.
탈영 중으로 잘못 알려졌을 때의 계급이 너무 깊게 인식돼 버려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거짓 선동이라든가 오보의 해악은 더욱 큰 셈이다. 한번 생긴 사람의 편견은 쉽게 고쳐지지 않으니까.

* 그러게 사람이 없어진 듯이 보이면 덮어놓고 악한 추측부터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긴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도 따지고 보면 그런 심성을 바탕으로 벌어졌다. 이때 모세는 시신이 발견된 게 아니라 멀쩡히 살아 돌아오기도 했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6/24 08:30 2015/06/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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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프란시스' 부자

1.
"프란시스" 쉐퍼(섀퍼) (1912-1984)는 유명한 복음주의 기독교 신학자, 철학자, 장로교 목사이며 국내에서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영성 쪽의 여러 유익한 신앙 서적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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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책의 제목인 How should we then live는 성경에서 겔 33:10의 표현을 딴 것이다.
출판 시기는 1976년이다. 정치적으로는 냉전, 공산당 혁명과 월남전, 그리고 과학 기술 분야로는 초음속기와 우주선, 대중 문화로는 비틀즈와 락 음악 같은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에 말 그대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면서 그 해답을 성경적 세계관에서 찾았다.

물론 현대만 다루는 게 아니다. 부제가 The Rise and Decline of Western Thought and Culture이니만큼, 로마 제국, 중세, 종교 개혁, 산업 혁명 등을 모두 다루면서 서양사를 전반적으로 고찰했다.
그렇게 살펴봤는데 역시 사회의 문제는 절대적인 진리를 거부하고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대주의에서 유래되곤 했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가 나오고, 이로부터 야기된 혼돈을 바로잡으려고 또 다른 극단인 피의 독재자가 등장하여 학정을 하곤 했다.

영국의 명예 혁명과 미국의 독립 혁명에 비해, 프랑스의 혁명과 러시아의 혁명은 좋지 못한 결말로 끝났다. 공산당식 혁명은 언제나 끔찍한 피의 비극과 독재 학정으로 마무리 되곤 했다.
하지만 반공 우파스러운 주장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나마 성경적인 가치관이 심어져 있던 영국도 산업 혁명 이후에 부의 제대로 된 분배에 교회가 제 역할을 못 해서 공산주의가 등장할 빌미를 줬다. 미국은 크리스천들이 흑인 노예의 인권에 소홀하여 오점을 남겼다고도 글쓴이는 지적한다.
또한, 저런 정치 해석뿐만이 아니라 미술사· 음악사 얘기도 나온다.

방대한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쉐퍼의 책은 그 이듬해에 10부작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출시되었다.
바로 그의 아들인 프랭크(혹은 Y가 붙어서 프랭키) 쉐퍼 (1952-)가 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 연설가였으며, 20대 중반의 나이로 자기 아버지가 자기 저서에 대한 나레이션을 하는 영화를 만든 것이다. 나름 굉장히 잘 만들었다. 제5편 혁명의 시대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단두대가 내려오는 장면이 나온다. ㅎㅎ

이 영화는 현재 유튜브에서 바로 검색해서 볼 수 있다. 다만, 한국어 자막이 없기 때문에 유튜브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2.
"프란시스" 메크너(1932-)는 심리학자이다. 위키백과를 보면 1960년대부터 이미 학계에서 날고 기었던 것으로 소개된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바로 조던 메크너 (1964-)로.. 비디오 게임 개발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 감독이다. 프란시스 쉐퍼의 아들과 비교했을 때 영화학도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물론 메크너 쪽은 종교 쪽으로는 안 가고 게임업계로 갔다. 그리고 조던 메크너는 그 이름도 유명한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을 20대 중반의 나이 때 만들어 냈다.

그 게임 특유의 던전 구조와 메카닉, 왕자의 움직임 같은 것이야 그 옛날에 조던의 머리에서 나온 천재적인 발상이다. 그리고 코딩 역시 그 사람이 애플 II 어셈블리 언어를 독학하여 직접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페르시아의 왕자>는 가족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모션을 촬영할 때 연기는 남동생을 시켜서 이리저리 굴리며 했고, 무엇보다도 게임의 음악은 심리학자인 저 아버지가 전부 작곡해 줬기 때문이다. 빰 빠빠빰 빰빰 하는 그 음악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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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그저 죄악시 금기시하는 우리나라 풍토와 비교했을 때, 그것도 1980년대에 조던 메크너의 집안이 시대를 얼마나 앞선 천재 집안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게임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게임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본인과 본인의 아버지, 동생이 힘을 합쳐서 말이다.

쉐퍼든 메크너든, 위키백과에 대대로 이름이 등재돼 있는 '프란시스' 부자들엔 이렇듯 굉장히 의미심장한 패턴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6/18 19:25 2015/06/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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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대교 29중 추돌 참사

우리나라는 서해를 건너는 두 개의 대형 교량 위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에 초대형 연쇄 추돌 교통사고를 한 건씩 경험하게 됐다. (2006. 10. 서해, 2015. 2. 영종)

두 다리는 각각 2000년 11월 10일과 20일에 개통해서 개통 시기도 참 묘하게 비슷하다. 딱 그 중간인 11월 14일이 2001학년도 수능 전날인 동시에 비둘기호 열차가 마지막 운행을 마친 날이긴 했는데, 그건 일단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고.

서해대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서술하자면, 이 다리는 내게 소설 <상록수>와 소설가 심 훈을 떠올리게 한다. 일제 강점기 때는 서해대교와 서해안 고속도로가 없었으니, 당진에서 안산 샘골을 찾아갈 때 저 작가가 훨씬 더 고생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 반면, 오늘날은 교통이 참 편리해졌다.

2006년 개천절은 북한이 핵실험 예고 선언을 했으며, 반 기문 씨가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하네 마네 하던 날이었다.
그랬는데 그 날 아침, 짙은 안개 속에서 대형 트럭이 앞서가던 1톤 트럭을 추돌했으며, 최초 사고 유발 차량들이 차를 갓길로 안 빼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뒤따라 오던 차들이 연쇄적으로 앞 차를 들이받았다.

영종대교 때와는 달리 서해대교 사고에서는 차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사고 현장은 정말 헬게이트로 바뀌고 피해 규모가 더욱 커졌다. 공장에서 갓 출고된 새 승용차 여러 대를 싣고 가던 트레일러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그래서 거기 실려 있던 승용차들은 미처 팔려 나가기도 전에 깡그리 잿더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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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적 손실보다 더 심각한 건 인명 피해이다. 초기에는 사망자가 총 11명이라고 집계되었지만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남성 1명이 치료 3개월 만에 결국 사망하면서 사망자는 최종적으로 12명으로 늘었다. 현장에서 혹은 구조된 후에 사망한 사람이 7명, 스스로 대피하던 도중에 2차 사고를 당해 사망한 사람이 5명이었다고 한다.

다른 차량에서는 보통 1대당 운전자 1명꼴로 사망자가 나왔지만, 유일하게 탑승자 일가족 3인이 전원 사망한 차량이 있었다. 이건 대형 차량들 사이에 끼여서 처참하게 으스러지고 완전히 박살이 난 소형 승용차였다. 그 상태로 불까지 붙어 활활 탔으니 탑승자는 도저히 살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저 차에서 운전자의 아내와 아들은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당사자만이 목숨만 겨우 건졌지만 나중에는 그도 사망했다. 화상이 워낙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와 아들도 역시 생존해서 자신과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차 사고의 희생자 중에서도 기가 막힌 경우가 있다. 바로, 차량과 다리 난간 방호벽 사이에 끼인 채로 탈출을 못 하고 그대로 화마에 휩쓸린 사망자가 2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 현장 사진을 보니, 벽이 딱 그 지점만 사람 모양으로 검게 그을려 있어서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 사람들은 사고 직후에 현장에서 즉사나 기절을 한 게 아니라, 제 발로 대피하던 중에 변을 당했다.
그냥 사고 현장 주변만 배회하고 있었을 뿐인데 뒤에서 오는 차들로 인해 추가 추돌 사고가 나면서 근처의 차들이 앞으로 밀려나고, 이 때문에 정말 운이 나쁘게도 방호벽과 차량 사이에 몸이 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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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대교 사고에 대해서는 2007년에 KBS 스페셜에서 사건을 CG로 잘 재현하고 분석한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그게 유튜브와 각종 동영상 포털 사이트에서 나돌고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한 사망자 관련 정보의 출처도 여기이다. 대형차에 끼여서 사망한 3명(빨강), 그리고 트럭과 방호벽 사이에 끼인 채 사망한 2명(파랑)을 모두 확인 가능하다.

이런 사고 장면을 보면, 안개, 특히 해무는 살얼음 빙판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이고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너무 짙을 때는 애초에 고속도로 같은 데에 차를 끌고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그렇게 하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저런 데서 사고가 났다면.. 니가 10% 더 잘못했네 마네 같은 거 안 따져도 좋으니, 차량이 아직 운행 가능한 상태라면 걍 닥치고 차부터 가장자리로 빼야겠다 싶다. 100미터, 200미터 뒤로 거슬러 가서 삼각대를 놓고 올 배짱 같은 게 없다면 말이다. 또한, 초기의 단순 접촉/추돌 사고 정도라면 차가 운행 불가능한 상태가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서해대교와 영종대교에서 9년 간격으로 사고가 한 번씩 났는데, 다음에는 이들보다 훨씬 더 긴 다리인 인천대교에서 시즌 3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5/13 08:28 2015/05/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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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교계에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성탄절과 부활절이 이교도(pagan) 절기와 섞여서 교리적으로 많이 변질된 비성경적인 절기라고 간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지키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성육신 탄생 내지 부활 자체를 안 믿는 건 아니다. 단지 예수님의 생일이 12월 25일이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 할아버지, 부활절 달걀과 토끼 같은 걸 만들거나 시행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중요하게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더 중요하게 기념할 뿐이다(일명 성찬식이라고 불리는 주의 만찬).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종교 음악/노래들을 살펴보자.

  • I. 그나마 찬송가 축에 들고 성경 고증대로 예수님의 탄생만을 다루고 있는 <천사들의 노래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같은 건 종교 텍스트로 치면 진짜로 영감 받은 66권 성경 정도의 퀄리티일 것이고..
  • II. 가사가 성경적인 배경이긴 하지만 크게 교리 측면의 영양가가 없고 찬양으로서의 가치도 별로 없는 노래는 외경 정도의 등급일 것 같다. 어떤 예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다.
  • III. 그것보다 더 나아가서 아예 눈썰매, 크리스마스 트리나 산타 할아버지만 나오는 수준의 캐롤은.. 딱히 기독교와 교리적인 관계가 있다고는 볼 수 없고 위경에 가까운 레벨이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외경, 위경급이라고 해서 그게 일고의 가치가 없는 쓰레기이고 배척하자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노래 들으면서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가 아무리 세속화했다고 해도 아예 대놓고 드루이드 교의 마귀적인 의식에 기원을 둔 할로윈보다는 낫지 않은가.
다만, 즐기더라도 오늘날의 크리스마스가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와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있지는 않다는 건 알고서 즐길 필요는 있다. 고증상 예수님의 실제 탄생일은 유대인 절기 중의 장막절에 속하는 가을, 우리로 치면 오히려 추석과 더 가깝다.

뭐, 그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서양에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우리로 치면 꽤 중요한 공휴일이다. 한중일 중에서는 대한민국 우리나라만이 유일하게 정부 수립 극초반부터 이례적으로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고 초대 대통령이 기독교인이었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11월에 공휴일이 전혀 없는 관계로, 10월 9일 한글날 이후의 공휴일은 거의 70여 일 뒤인 성탄절이다. 12월 25일은 학교에서는 대개 겨울방학이기 때문에 성탄절은 근로자의 날과 더불어, 학교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양대 공휴일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은 캐롤 얘기를 계속하겠다.
캐롤은 우리나라에 가사가 번역되어 소개된 <징글 벨>, <울면 안 돼>, <루돌프 사슴코> 같은 게 있는데 그냥 초등학교 음악 책에나 나오는 쉬운 동요 수준으로나 알려져 있다.
뭐, <탄일종>은 크리스마스 컨셉을 꽤 우회적으로 표현한 국산 동요이고, <성탄제> 같은 시도 있으니 국산 컨텐츠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정서와는 사뭇 다른 크리스마스 노래가 많이 있으며,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신곡이 나오고 있다. 짤막한 동요보다야 더 큰 스케일로 말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실버 벨> 같은 것들은 다 1940~1950년대에 발표된 곡이다. 세상에 알려진 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곡으로 내가 아는 것만 열거해 봐도 Do you hear what I hear라든가, 프랑스의 Chants De Noel, The Christmas Song이 있다. 특히 The Christmas Song의 경우 어렸을 때 경험했던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한 추억을 굉장히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첫 단락만 대충 의역 스타일로 옮겨 보면...

매서운 추위 때문에 코까지 빨갛게 시리던 그 날
길거리의 사람들은 에스키모 같은 두툼한 옷차림으로 종종걸음을 했다.
장작불 위로는 밤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고
성가대가 부르는 캐롤이 울려 퍼졌다.


중간엔 “Everybody knows a turkey and some mistletoe”(칠면조 요리와 겨우살이풀. 다들 잘 알지요) 라는 대사가 있어서 본인은 mistletoe라는 단어를 여기서 처음으로 접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용으로 이 식물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가 보다. 우리나라 정서상으로는 everybody knows라고 할 수는 없을 듯. 참고로, 아래 그림에서 딸랑딸랑 소리 나는 종이 말 그대로 jingle bell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나중에 Enya의 White is in the winter night이라는 캐롤 스타일의 노래를 들으니 저 캐롤이 같이 떠올랐다.

Have you seen the mistletoe? It fills the night with kisses.
Have you seen the bright new star? It fills your heart with wishes.
(...)
Green is in the mistletoe and red is in the holly,
Silver in the stars above that shine on everybody.


위의 그림을 같이 보시라. 풀잎은 green이고 holly(열매)는 빨갛다. 저 문화권에서는 겨우살이풀에 저런 심상이 담겨 있는가 보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성탄제)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뭐, 종교적인 면을 빼고 생각하자면, 연말을 앞두고 이렇게 촛불 켜고 칠면조구이를 먹고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명절이 있다는 것 자체는 본인 역시 좋고 훈훈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성경 운운하면서 교리적으로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일체의 관행 자체를 계 11:10의 부정적인 장면과 연관 시키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을 듯.
마치 성경에서 생일이 부정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친구들끼리 일체의 생일 잔치까지 괜히 나쁘다고 매도할 필요는 없듯이 말이다. 그건 그저 사람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인 재량의 영역이 아닐까 한다.

(창세기 파라오의 생일, 복음서 헤롯의 생일. 다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이며, 그 생일 잔치에 하필이면 사람이 죽는다. 각각 빵 굽는 시종장과 침례자 요한. 보통 왕의 생일 정도면 국가적으로 아주 경사스러운 잔칫날이며, 사형 집행은커녕 죄수들을 사면하고 풀어 주는 날인데 저건 굉장히 이례적이고 이상한 사건이다)

어쨌든, 방문자 여러분께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드리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25 08:24 2014/12/2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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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고등학생이 스마트폰 앱을 뚝딱 만들고 안드로이드나 애플 사의 앱스토어에다 등록하는 소프트웨어 유통망까지 확립된 시대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는 개인이 만든 소위 '공개 소프트웨어'라는 것들이 PC 통신을 통해 배포되곤 했다. 게임, 업무 등 분야도 엄청 많았으며, 이거 하나로 스타 개발자로 유명세 타는 사람 역시 응당 있었다.

개발자들 중엔 대학생이 많았다. 도움말이나 리드미 파일을 보면, PC 통신 ID뿐만 아니라 개발자 자신의 소속 학교, 학과, 학번(연도만)까지 밝히곤 했다. 그들은 지금은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더 어린 중· 고등학생이 그 정도 퀄리티의 도스용 프로그램을 만들기엔 리소스도 부족하고 컴퓨터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으며 기계값이 아직 너무 비쌌다. 하물며 Windows용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더 좋은 컴퓨터에 더 비싼 개발 환경이 필요했을 테고.

국내 개발자들은 당연히 자기 프로그램의 UI를 한국어로 만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프로그램들은 아무리 간단하고 작은 규모라 해도, 한글 바이오스에 의존하는 텍스트 모드보다는 그래픽 모드에서 '자체 한글' 기반으로 동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때 자연스럽게 필요해지는 것은 그래픽 모드에서 한글을 찍어 주고 때로는 입력까지 처리해 주는 일명 '한글 라이브러리'이다.

옛날에 도스 시절에 자체 한글을 구현한 라이브러리를 만들어서 PC통신으로 뿌리고 잡지에 강좌를 올리고 책도 쓰며 유명세 타던 프로그래머들은 굉장히 날고 기는 수재들이었다.
아예 게임을 만드는 급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VGA 그래픽 하드웨어를 제어하고 여러 래스터 그래픽 알고리즘을 최적화된 어셈블리어 코드로 직접 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한글 입력 오토마타를 깔끔하게 짜는 것도 아무나 선뜻 할 수 있는 난이도는 아니었다(특히 두벌식은 더 어려움).

그래서 공개 소프트웨어 리드미의 '감사의 글'(acknowledgements)을 보면, “본 프로그램은 이런 한글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였으며, 우수한 미들웨어를 무료로 공개해 주신 누구누구에게 감사합니다” 같은 문구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열악한 환경의 특성상, 그 시절에 한글 라이브러리는 사실상 그래픽 라이브러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마우스에 간단한 대화상자까지 제공하는 통합 GUI 라이브러리로 발전하곤 했다.

아래아한글의 개발사로 유명한 한글과컴퓨터 사에서는 아무래도 저런 기술의 본좌이었을 테니, 1991년엔가 <컴퓨터 속의 한글>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싸제 한글 라이브러리를 개발한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이 책을 참고하여 터를 닦은 뒤, 자기만의 살을 붙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API를 설계해서 물건을 만들었다.

회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는 PC 통신 시절에 '터보이빨'이라는 닉으로 유명하던 임 인건 씨가 있다. 이분은 그 이름도 유명한 '한라프로'라는 걸출한 물건을 개발하여 상업용으로 판매도 했으며, 아마 서울대 기계공학과 재학 시절에 터보 C 정복이라고 책도 하나 썼다. 본인 역시 아래아한글 1.x로 편집· 조판되어 있던 이 고전을 읽으면서 C언어 기초를 닦았었다.

어디 그 뿐이랴? 지금까지도 인터넷 검색을 하면 굴러다니는 '프로그래머 십계명'이라는 글도 저분 작품이다.
이 정도면 저분은 거의 프로급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같은데... 프로필을 보면 알 수 있듯 저분은 프로그래밍이 본업이 아니다. 훗날 저분은 같은 학교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업계에서 고급 엔지니어 경력을 쌓다가 지금은 '성진 C&C'라고 금속, 재료 쪽 중소기업의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또 '한라프로'와 더불어 한글 라이브러리의 양대 산맥이던 물건으로는 '허르미'가 있는데, 이걸 개발한 분은 한 우진 씨이다. 국내의 유명 철덕인 한 우진 씨(미래철도 DB)와는 동명이인임.

저분 역시 물건만 만들어 공개하고 끝이 아니라, 한글을 구현하는 기술 디테일을 친절하게 저술까지 해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카이스트 전산학과에서 학, 석, 박을 마치면서 멀티미디어 데이터 압축 알고리즘 쪽 전문가가 되었다. 졸업 후엔 삼성 전자에서 몇 년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가천 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다들 왜 저렇게 똑똑한 거야..;;; ㅜㅜ
후대에 등장한 많은 한글 출력 라이브러리들은 한컴 사의 책이든, 위의 두 제품의 영향을 어떤 형태로든 받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은 시대의 흐름답게 슈퍼 VGA를 지원하고 32비트 환경(Watcom C/C++ 내지 DJGPP)을 지원하는 식의 발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저런 선구자들에 비해, 본인은 도스 시절이 다 끝난 뒤에야 한글 관련 솔루션의 개발에 입문했다. 하드웨어 제어나 그래픽 알고리즘, GUI 따위를 자체 구현할 필요는 전혀 없고 내 입력기는 그렇다고 자동 완성, 상용구, 속기 같은 NLP/lexicon 기반요소가 등장하는 것도 전혀 아닌데 도대체 이 바닥에서 무슨 일을 한 걸까?

그런 것들이 없는 대신에 내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한글을 자모 단위로 조작하는 기본 동작에만 초인적인 집중과 최적화를 했으며, 온갖 똘끼 넘치는 아이디어들을 구현하게 됐다.

아울러, 내 프로그램은 다른 건 몰라도 자체 편집기에서 도스 시절의 비트맵 글꼴을 출력하는 루틴만은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 옛날 추억과 한글 프로그래밍 정신 계승(?),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한글 조합 자모나 옛한글 표현 같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건 한글을 가장 가볍고 단순하게, 마치 컴퓨터 속의 기계식 타자기처럼 원시적으로 출력해 주는 시스템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본인은 지금은 타자기 시절이나 도스 시절과는 다른 차원의 한글 프로그래밍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한국어를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한글 자체에 대한 엔지니어링이 연구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을 다 마치고, 가까운 미래에 박사까지 다 마치고 20년쯤 뒤 먼 미래엔 뭘 하고 있을까? 한글 가지고 더 창의적으로 먹고 살 거리가 없으면 진짜로 철도로 업종 전환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4/09/09 08:30 2014/09/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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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수록된 사례에는 심각한 사건도 있고 그저 '웃프기만' 한 사건도 있다. 이 글은 어떤 경우든 고인드립의 의도는 없음을 밝힌다.

1. 에어장

2003년 12월, 개독안티들로 하여금 한국 교회를 모독할 빌미를 만천하에 제공한 흑역사다. “이 행동으로 인하여 '당신'(thou)이 {주}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삼하 12:14) 처럼 말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아래의 2도 벌어진지라 둘이 함께 엮이곤 한다. 사람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졌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2는 백주대낮에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떨어졌고 당사자가 생존한 반면, 1은 밤에 당사자가 에어컨 실외기를 붙잡고 있다가 떨어져서 사망했다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사건이다.

2.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한 40대 남성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자 멘붕에 빠지면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는 부인을 흉기로 찌르고는 자기 집 베란다에서 자살 소동을 벌였다. 경찰과 119 구조대가 출동해서 그를 말렸지만 그는 막무가내 횡설수설이었다. 윗층에서는 기자가 마이크를 아래로 들이대면서 그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원하시는 게 뭐예요?” “원하는 거 없습니다.” “그럼 왜 그러시는데요?” 그 뒤, “억울해서요..”와 함께.. 희대의 명대사가 등장한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화되는 현실 속에..! (살 수가 없습니다)”

정신이상자의 단순 헛소리치고는, 병신 같지만 왠지 임팩트 있고 엄청 멋있는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운율도 잘 맞고 패러디되기도 딱 좋다.
문을 부수고 집으로 쳐들어온 경찰이 그를 끌어내려 했지만 그는 옷이 찢어지면서 속옷 바람으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밑에 안전 매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그는 경상만 입고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 이후로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여담이지만 2003년 11~12월에는 투신 자살 사건이 유난히 많았다. 속도위반으로 20대 때 덥석 결혼했다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애들을 아파트 난간에서 먼저 떨어뜨려 죽이고 자기도 떨어져 죽은 애엄마, 심지어 한강 다리에서 애들을 떨어뜨려 죽인 다른 막장 엄마도 있었고 수능 성적을 비관한 자살도 많았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는 통탄이 나올 법도 했다.

3. 프란츠 라이헬트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재봉사 겸 발명가이다. 그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사람을 안전하게 착지시켜 주는 물건, 다시 말해 낙하산을 생각하고 있었다. 재봉사가 생각할 수 있는 적절한 분야의 발명 같다.

그는 낙하산을 사람이 입는 '낙하옷'이라는 형태로 만들었다. 마치 이불을 뒤집어쓴 것 같은 두툼한 옷을 걸치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공기 저항을 높여 주는 커다란 천이 탁 펼쳐지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자신이 직접 시연해 보이려고 1912년 2월 4일, 여러 구경꾼들과 카메라 기자들을 초청한 뒤 에펠 탑 2층 60여 m 높이에서 뛰어내렸는데...

낙하옷은 펼쳐지지 않았다. ㅠ.ㅠ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땅바닥에 부딪혔으며 현장에서 즉사했다..;; 한국식 나이로 향년 겨우 34세의 나이로.
마치 에어백 발명한 걸 테스트하겠다고 발명자가 직접 자동차 충돌 실험을 했는데 에어백이 안 터지고 사람은 중상 아니면 사망을 당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의 추락 장면을 담은 무성 흑백 동영상만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뿐이다.

사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낙하산이나 비행기 발명의 선구자 중에서 이런 식의 사고로 비명에 간 사람들이 좀 더 있다. 글라이더의 연구자인 오토 릴리엔탈도 그렇고. 인간이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이런 부류의 희생이 따르곤 했다.

4. 성 재기 남성연대 대표

운영하는 시민 단체에 재정 후원을 호소하고는 사진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비굴하게 돈만 그냥 낼름 받아 먹지 않겠다. 빌린 돈은 반드시 갚겠다. 이건 우리의 절박한 심정을 알리는 충격 퍼포먼스일 뿐이다. 죽겠다는 것 절대 아니다. 난 수영 잘한다. 당당히 살아서 나올 거고 저녁에 같이 삼겹살 파티나 하자” 이런 입장;;;

그는 어마어마한 높이에서 물 표면에 떨어질 때 신체에 전해지는 충격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그건 수영 실력으로 극복 가능한 게 아니란 말이다.
그는 물에 떨어지자마자 추락 충격과 수온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으며, 한참을 하류로 떠내려간 뒤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타박상 입고 의식을 잃은 것만으로는 죽지는 않을 텐데 그 뒤부터는 물 속에서 자기 몸을 조절을 못 하니 어차피 익사하는 것이다.
(옛날 툼 레이더 게임에서는 라라가 아무리 높은 데서 떨어져도 땅바닥이 아닌 물에만 떨어지면 멀쩡하게 괜찮은데, 이건 굉장한 물리 고증 오류라 생각된다. -_-)

남성연대가 하는 일을 보니 최소한 해롭지는 않고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대표가 저렇게 허망하게 가 버리다니 안타깝다. 표 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성 씨의 투신 예고 소식에 “예고를 한 이상 우리가 대비는 해야지요.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에게는 돈이 아니라 정신과 상담과 심리 치료가 필요합니다”라고 아주 신사적으로 교묘하게 엿먹이는 주장을 SNS에다 올렸고, 이에 성 씨 역시 “네놈은 입닥쳐라”라고 강하게 응수했다.

저 사람을 수색하느라 수 년 전에 실종됐던 다른 사람의 시신을 두 구 덤으로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신의 어느 유족이 성 재기 씨에게 개인적으로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인터넷 게시판에다 글을 공개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성 씨는 좀 무모하긴 했어도 죽는 순간까지도 남 좋은 일 했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5. 우리나라의 모 전직 대통령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매우 이례적인 전직 대통령. 누군지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정치 성향에 따라서는 이 사람의 죽음을 거의 에어장의 죽음과 거의 동급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중력절=_= 운운까지 하면서 희화화· 능멸하기도 하는데, 그건 차라리 날카로운 팩트를 들이대면서 어떤 사상이나 행적을 비판하고 까는 것도 아니고 난 그런 비매너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나 역시 내가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능멸을 매우 싫어하며, 내 사이버 공간에서 그런 게 내 눈에 띄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이 존중받고 싶으면 너 역시 남을 존중하라.)

다만, 부정선거 하야만큼이나, 그리고 부하 총에 맞아 죽은 것만큼이나... 저 사람의 투신 자살도 무슨 동정의 여지가 있다거나 명예로운 최후는 절대로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들 말고도 추락사와 관련해서 웃픈 사례들은 다윈 상 역대 수상자들을 찾아보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대전에서 배출된 한국인 최초의 다윈 상 수상자도 그렇고, 번지 점프를 했는데 끈 길이가 패드 높이보다 더 길어서 추락사한 사람도 있다. -_-;;
이런 일련의 사례들을 보면서 인생은 참 덧없으며 저렇게 죽거나 살 수도 있다는 걸, 생업에 정신없이 매달리는 중에도 잠시나마 생각해 봐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08/30 08:33 2014/08/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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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이큰> 관련 소감

OCN인지 뭔지 영화만 하루 종일 상영해 주는 케이블 TV 채널을 보면.. 한때는 계속 유명 액션 영화만 틀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본인은 원빈이 너무 멋있게 나온 <아저씨>, 또 B급 영화 오마주로 가득하면서 웬 인간 흉기 금발 백인 누님이 일본도 들고 싸우는 <킬 빌>을 TV를 통해 우연히 봤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하나 더 본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테이큰>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 소감은..
역시 흥행하는 영화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다. 리암 니슨 아저씨 너무 멋있다.
특히 딸 유괴범을 전기고문하면서 딸이 있는 곳을 알아내는 장면은 너무 통쾌한 권선징악 장면인지라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해서 봤다. 다같이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저 때 Wake up! I need you to be focused!로 시작하는 대사가 나온다.
다만,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자막 파일은 그 문맥에서 대충 의미만 통하지 영어 원문의 정확한 의도를 다 전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뜻은 대략 이렇다.

“(기절한 마르코를 의자에다 묶어 놓은 뒤) 어이, 일어나! 너를 심문을 좀 해야 하니 정신 바싹 차리고 있어라. 어금니 꽉 깨물어라, 자 간다~ (쇠꼬챙이를 양 허벅지에다 푹~ 박아 넣은 뒤) 자, 기절할 정도로 졸라 아프겠지만 고문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여전히 정신 괜찮지?”

이런 뉘앙스를 제한된 화면에다 문장으로 일일이 다 표현할 수가 없으니 Are you focused yet?을 “이제 정신이 좀 드나?”로 보통 번역하는 편이지만.. 원래 의미는 “아직 괜찮지?”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한다.

마르코는 처음에는 브라이언의 얼굴에다 침까지 뱉으면서 의기양양하게 반항하지만.. 전기로 10초간 지져지는 고문을 두 번 당하고 나니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우리의 멘탈갑 브라이언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태연~하게 이런 이 근안스러운 말을 해 댄다.

“이런 일은 말야, 원래는 외주를 주곤 했어. 그런데 문제는 외주 준 나라들이 대체로 못사는 개도국이어서 전력 공급이 불안했단 말이야..?? 스위치를 켰는데 전기가 안 들어와. 그러니 고문기술자들은 빡쳐서 사람 손톱을 뽑거나 생살에다 산성 용액을 부어 버리곤 했지. 일이 여러 모로 능률이 떨어지곤 했는데.. 여긴 전류가 아주 원활해서 좋아.”
“난 지금 바쁜 처지야. 마르코, 너 순순히 대답 안 하면 전기세 밀려서 단전될 때까지 스위치가 켜져 있을 거다.”

나중에 정보를 얻을 만치 다 얻은 브라이언이 다시 스위치를 켜러 가자 마르코는 완전 겁에 질려서 브라이언에게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애원한다. “I don't know!! PLEASE..!! not that.. please ㅠ.ㅠ” 이 부분 연기를 처절하게 잘했다.
그래 봤자 브라이언은 “I believe you. But it's not gonna save you.”와 함께 스위치를 켜 놓고 나가 버린다. 마르코의 자백은 자기 수명을 불과 몇 분 남짓밖에 더 연장시키지 못했다.
허나, 부모가 수십 년간 피땀 흘리고 갖은 애정을 쏟아 키운 딸애를 창녀촌에다 팔아 버리고 돈은 자기가 챙긴 사악한 악당이라면.. 정말 저 정도 고문은 인과응보가 아닌가 싶다.

테이큰은 여타 액션 영화와는 달리 주인공이 친구의 마누라(악역이 아닌 여성!)까지 팔을 쏴 버리는 장면이 나오며,
또 최종 보스와 대면한 뒤에도 일말의 타협 없이 주인공이 그냥 곧바로 악당의 미간을 날려서 사건을 종결짓는다. 사건 전개가 참 자극적이고 짜릿하다.
사실, 브라이언이 친구를 다그칠 때도 “너 자꾸 고집 부리면서 협조 안 해 주면 니 애들은 고아가 될 거다. 아까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팔을 쐈지만 다음엔 급소를 쏠 거야?”라는 요지로 자막이 나왔는데, 이것도 정확하게는 단순히 급소가 아니라 '미간'이다. 영어 대사엔 eyes라는 단어가 들렸던 걸로 기억한다.

위의 장면들을 다 제치고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이 남긴 제일 간지 넘치는 대사는, 역시 딸이 납치당한 직후 전화로 납치범에게 남긴 경고일 것이다. 딸이 외국에서 납치 당했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이 타이밍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납치범들을 상대로 나지막한 말투로 협박한다. 아아..;;

I don't know who you are. I don't know what you want. If you're looking for a ransom, I can tell you I don't have money (....)
If you let my daughter go now, that'll be the end of it. (...)
But if you don't, I will look for you.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

..... good luck.

30초가 넘는 분량의 대사인데.. 난 다 외워 버렸다.

역시 사람은 자기 마음이 가는 곳에 역량이 발휘된다.
매주 교회에서 짤막한 성경 구절을 외운 건 길어야 그 날 저녁까지밖에 안 가고 세부적인 단어와 표현은 하루 이틀 정도 뒤면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저건 그냥 머리에 확...

take는 성경에도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동사인데, 저 영화를 보고 나니 take의 뜻조차도 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갑자기 똘끼를 발휘하여, 저 사건과 대사가 만약 흠정역 성경에 기록되었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 봤다. ㅋㅋㅋㅋ

... 그녀의 아버지가 이르되,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네 혼이 무엇을 원하는지(thy soul desireth) 알지 못하노라. 만약 네가 대속물(ransom)을 원한다면, 너는 확실히 알지니(of a surety) 내게는 돈이 없느니라. (...) 만약 네가 내 딸을 가게 하면 잘하는 것이려니와 만약 가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를 쫓고 너를 찾아내어 너를 반드시 죽이리라, 하니라.
잠시 후에 그녀를 취한(took/taken)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잘해 보라, 하니라.


그러고 나서 나중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지라 “너 나 기억 안 나? 우리 이틀 전에 서로 전화 통화 했었지? 내가 너 찾아낼 거라고 예고했잖아.” 이 말을 들었을 때 마르코는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을까?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_=;;;;

테이큰은 잔인한 폭력뿐만 아니라 창녀촌 배경도 있어서 그런지 국내에서는 생각보다 수위가 높은 19금 등급을 받고 개봉했다.
아무리 자기 딸을 구하려 한다지만 브라이언은 남의 나라에 들어가서 거의 30명 이상의 사람을 죽였다. 모 건설 현장을 완전히 작살을 냈으며 남의 자동차를 최소한 3대를 탈취하고, 고위 공직자의 부인을 총으로 쏴서 다치게 했다.

이 정도면.. 선한 의도라고 해도 브라이언은 법적으로 프랑스를 절대로 곱게 빠져나갈 수 없는 신세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딴 시시콜콜한 디테일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하긴, <킬 빌>에서도 키도 누님이 시퍼런 핫토리 한조 일본도를 비행기 기내에 버젓이 반입한 채 일본 본토로 날아가는 걸 보고, 본인은 피식 웃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아저씨>에서는 그래도 최소한 차 태식이 체포되는 걸로 끝난다. 아무리 나쁜 조폭들을 죽인 거라지만, 일반인이 혼자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많이 학살했다면, 현직 변호사의 자문에 따르면 아무리 명분을 참작하고 봐 준다 해도 무기징역감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식의 경우 원래 특수부대 요원이었고, 아직 능력이 출중해 보이니 도로 국가를 위해 현업 복직하는 것을 조건으로 검찰에서 기소조차 하지 않고 학살극을 유야무야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조폭들이 죽은 건 자기들이 팀킬 벌인 거라고 적당히 위장하고 말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폭력 액션 영화에 너무 심취하는 건 사람의 정신 건강에 그다지 좋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가 흉악 범죄자에게 권선징악을 속 시원하게 집행을 안 하고 되도 않은 인권 핑계로 직무유기를 저지르니,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영화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된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괜히 종교색 표방하면서 교묘하게 성경이나 하나님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하는 매체보다는, 차라리 종교색 따윈 싹 잊고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게 '덜' 해로운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성경 용어로 설명하자면 전자는 마귀적(반성경적)이며 후자는 육신적(비성경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06/26 19:29 2014/06/2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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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해 버렸으니 허접한 게 아니라, 오히려 500년이나 버틴 대단한 왕조이다”라는 요지로 조선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서울대 중문과 허 성도 교수가 했다는 강연을 보신 분이 있는가 모르겠다. 본인 역시 오래 전에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조선이 그저 말기에 막장으로 치달아서 망할 만하니까 망했고 먹힐 만하니까 일제에게 먹혔다고만 생각하기에 앞서,
조선 역시 리즈 시절에는 기강과 체계가 굉장히 잘 갖춰진 좋은 나라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환단고기 식의 황당한 얘기가 아니라 그럴싸하게 들린다.

다른 제도는 몰라도 특히 조선왕조 실록은 훈민정음에 버금가는 위대한 문화 자산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뭔가... "성경에 과학적으로 아주 정확한 진술이 있다.." 그런 예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

본인에게는 그분의 성함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저 강연을 한 허 성도 교수는 '한국사 사료 연구소'에 재직하였으며,
유니코드가 정식 제정되기 전에 아래아한글이 제공하던 '제2수준 확장 한자'를 제정하고 글자를 직접 그리기까지 했던 분 중 하나이다. 아래아한글의 도움말 credits에도 이름이 당당히 올라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 모로 우리나라 문화와 관련해서 공적이 뚜렷한 분임이 틀림없다.흔히 한글 전용론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한문 고전을 통해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소수의 전문가를 양성해서 고전을 번역을 해야지, 그걸 빌미로 전국민에게 어려운 한자· 한문을 원어 그대로 가르치기에는 국가적인 손실과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허 교수는 그 주장이 가리키는 '소수의 전문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대단한 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올해에 갓 정년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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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4/03/16 08:16 2014/03/1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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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국가(national anthem)들

한 나라의 상징으로는 깃발(국기), 꽃(국화) 등과 더불어 노래(국가)가 있다.
난 우리나라의 여러 상징들이 전반적으로 개성 있고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고유 문자인 한글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소나무, 태권도, 무궁화 다 좋다. 국기인 태극기도 적당한 상징성과 복잡도로 잘 만들었다.

다만, 그런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좋아하는 상징은 국가인 애국가이다. 다소 밋밋한 가사, 그리고 시작 부분의 너무 어색한 박자 때문이다(갖춘마디에다가 못갖춘마디 스타일의 박자를 얹음). 뭐, 덜 좋아한다는 거지, 아주 싫다는 뜻은 아니지만.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2.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난 개인적으로 1절과 4절은 모두 외우고 있고, 2절과 3절은 첫 단의 가사만 기억하고 있었다. 군대 훈련소에 있던 동안은 각 절을 매일 돌아가면서라도 훈련병들에게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다 외우게 했던 것 같다.

그럼, 대한민국 말고 다른 나라들의 국가는 어떨까?
내가 멜로디를 완전히 알고 있는 외국 국가로는 미국, 중국, 영국, 독일, 그리고 북한이 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영국과 독일의 국가 멜로디는 이미 자동으로 숙지하고 계실 것이다. 찬송가에 동일 멜로디의 찬양이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피난처 있으니>와 <시온 성과 같은 교회>.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혹은 작별의 노래) 멜로디에다가 애국가 가사를 끼워서 부른 적이 있었다.

중국의 국가는 영락없는 행진곡 군가 스타일이어서 호전적이고 씩씩한 느낌이다.
중국 국가는 '칠라이'(일어나라), '치안찐'(전진)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들린다. "앞으로 용진 또 용진" 이러는 우리나라 <육군가>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가사의 주제는 "자, 노예로 살기 원치 않는 인민들이여, 함께 일어나 적들을 무찌르고 새 세상을 건설하자. 빠샤!" 정도?

노래를 부를 때는 성조를 전혀 표현할 수가 없어진다. 그럼 중국어를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생기지는 않나 모르겠는데, 하지만 의외로 문맥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식별이 된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사실 한국어도 완전 말도 안 되는 모호성이 적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소년/소녀, 그년/그녀, 내/네 등).

미국의 국가는 가사가 전투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만 멜로디는 군가풍이 아니며 오히려 3박자 계통이다. 그리고 가사 중에 국기인 성조기에 대한 묘사가 있는 게 특징이다. "그 치열한 전장에서도 우리의 성조기는 당당히 펄럭이고 있었노라."
가사 끝부분에 나오는 "자유의 땅, 용사의 고향"이라는 표현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짐작케 한다.

독일의 국가는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버 알레스 위버 알레스 인 데르 벨트"(우리 독일이 세계 킹왕짱)라고 시작하는 첫부분이 인상적이다. 가사의 나머지 부분도 전투적인 요소는 별로 없이 그냥 자기 나라 찬가이다.

영국의 국가 <God Save the Queen>은 군주인 (여)왕에 대한 축복송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찬송가뿐만 아니라 Noteworthy Composer 악보 프로그램에도 예제 데이터로 곡이 통째로 실려 있다.

다음으로, 북한의 국가는 제목이 남한과 동일한 <애국가>이다. 김씨 부자에 대한 우상화가 지금처럼 극심해지기 전에 미리 만들어져서 그런지 노래 자체는 의외로 전투적이거나 위수김동을 전파하는 내용이 없다. 그냥 평범한 조국 찬가 스타일이고, 어찌 보면 남한의 애국가보다 퀄리티가 더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주요 행사 때는 애국가보다 별도의 장군님 찬가를 더 즐겨 부른다고 하니 '역시나'이다. 북한 애국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 있으니 더는 하지 않겠다.

이스라엘의 국가는 역시 이스라엘 아니랄까봐, 국가가 웬 단조라는 것 정도만 기억한다. (찬송가 중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요풍의 단조)

끝으로, 일본의 국가는 <기미가요>인데.. 지극히 일본스럽다. 일본 사람이 자기 내면을 잘 표현하지 않고 말을 모호하게 하는 걸 즐기고, 헌법조차 덴노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주 모호한 문장으로 시작하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임의 대(代)는 1000대까지.. 8000대째에 작은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너무나 짧고 의미도 밍숭생숭하기 그지없는 가사이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가라나? 멜로디의 음계 또한 전통적인 서양 음악 스타일을 떠올렸다가는 놀라게 된다.

모든 일본인들이 이런 기미가요를 국가로서 좋아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한다. 똑같은 군주 찬가여도 대놓고 신을 거론하며 마음껏 복을 비는 영국 국가하고는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가사 내용에 대해 또 딴지를 걸자면, 돌멩이는 무슨 눈덩이나 흙덩이도 아닌데, 긴 세월이 흐르면 커지기보다는 닳고 쪼개지지 않나 싶기도 하다.

기미가요는 가사 자체는 너무 추상적이다 보니 별로 문제될 게 없으나, 역시 일제 군국주의와 함께 강제로 보급되고 퍼진 이력이 있다 보니, 한국처럼 일제의 피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에서는 좋은 평판을 못 받고 있는 노래이다.

다른 나라들은 그렇다 치고 한중일 CJK만 살펴보더라도, 국가가 삼국이 서로 극과 극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세계의 국가들을 군가/전투형, 군주 찬가형, 국가 찬가형 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23 08:25 2013/09/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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