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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여러 잡설

※ 서울 3대 전철 회사들의 전동차에서 방영되는 동영상의 주된 테마

서울 메트로: 2005년부터 도입된 2호선 신형 차량을 주축으로 하여, 차내 동영상 방송 트렌드를 가장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자기네가 전국에서 역사가 제일 긴 지하철 회사라는 걸 강조하면서 옛날 흑백 사진도 보여주고, 지금까지 수송 거리 n억 킬로미터, 수송 인원 n백억 명.. 같은 걸 자랑한다.
그리고 대국민 캠페인을 제일 열심히 한다. 무리해서 승차하지 말라, 내릴 사람은 전역에서 미리 내릴 준비를 하라, 두 줄로 서라 등.. 테러· 화재 시의 대처 요령 같은 걸 계속해서 방영한다. 이런 분위기는 오로지 서울 메트로 구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코레일: KTX를 운행하는 전국구 회사인 만큼, 철도 자체가 친환경 녹색 교통수단이라는 걸 귀가 따갑도록 강조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이용하면 나무 n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습니다' 드립. 그러면서 가끔 철도 안전 캠페인도 틀어 준다. 컬러 모니터는 1호선 같은 주류 노선에서는 보기 힘든 편이며, 중앙선· 경춘선· 경의선· 광명 셔틀 같은 곳에서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철(SMRT): 역사가 가장 짧고 구세대 LED 전광판을 가장 먼저 도입한(당대엔 이게 롤지나 플랩 표지판에 비해서 최신형이었음) 회사인 만큼, 컬러 모니터의 도입은 가장 늦다. 하지만 요즘 심심찮게 컬러 모니터로 시설이 교체되고 있는 중이다. 도철이 보여주는 건 맨날 자기네 기술력 자랑뿐이다. 자체 전동차 SR-001은 절대 빠지지 않으며, 음 사장님이 인건비 절감 고효율 경영을 위해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걸 홍보하느라 바쁘다.
도철은 과거에 지하철 벽 프로젝션 광고를 가장 먼저 시도했고, 심지어 주행 중 터널 홀로그램 광고라는 엽기적인 시스템도 도입했으며, 서울 3대 전철 회사 중 스크린도어를 가장 먼저 전구간 완성한 회사이기도 하다.

Excercise: 서울 1기 지하철(1~4호선)과 비교했을 때, 2기 지하철(5~8호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시스템을 모두 고르시오.
(1) ATC 신호 시스템
(2) LED 전광판
(3) VVVF 인버터
(4) 1인 승무
(5) 직· 교류 겸용 전동차
(6) 콘크리트 노반
(7) 장대 레일

※ ABB? ABBA?

잘 알다시피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의 VVVF 인버터는 ABB라는 유럽계 회사(스웨덴)의 제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1970년대의 유명 팝송인 Dancing Queen을 부른 가수 그룹의 이름은 ABBA이고 이들의 국적은 스웨덴!
Dancing Queen과 서울 지하철과의 묘한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ㄲㄲㄲㄲㄲㄲ

※ 아래아한글 2007

아래아한글 2007은 2006년 한글날에 출시된 후 2010년 3월에 차기작인 2010이 출시될 때까지 3년 반 가까이 지냈던 메이저 버전이다. 그렇다 보니, 두 버전 사이의 간극은 MS 오피스 2003과 2007의 간극에 맞먹는다(2003년 가을 ~ 2007년 초).
그 동안 2007은 업데이트가 굉장히 많이 뿌려졌으며, 2007 RTM과 지금의 2007은 가히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하게 되었다.

단순히 보안 패치 같은 보이지 않는 안정성 차이뿐만이 아니라..
F4 구역을 잡은 상태에서 Ctrl+Home/End가 동작하냐 안 하냐
키매크로와 스크립트 매크로가 동작하냐 안 하냐 같은 당장 눈에 띄는 기능 차이도 적지 않다
.
그렇기 때문에 아래아한글 2007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님, 버전 번호가 뭔가요? 최신 패치는 설치하셨나요?”부터 물어 봐야 할 지경이다.
About 화면에 아직도 (c) 2006이라고 적혀 있는 아래아한글 2007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 원격 터미널 클라이언트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1. CPU 사용량의 편차가 크지만, 어쨌든 오랫동안 끊임없이 켜져 있고 돌아가야 하는 프로그램: 서버
2. 끊임없이 CPU를 혹사하면서 실시간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 게임, 시뮬레이션
3. 사용자에게 클라이언트 상으로 뭔가를 오랫동안 표시하고 보여주는 게 목적인 프로그램: 프레젠테이션, 동영상
4. 로컬 환경에서 사용자의 응답에만 그때 그때 반응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의 GUI 기반 애플리케이션

일반적으로 개인이 PC에서 다루는 프로그램의 유형은 4가 대부분이다 보니, 컴퓨터는 사용자가 오랫동안 키보드나 마우스를 건드리지 않으면 화면 보호기를 돌리고, 더 시간이 흐르면 컴퓨터의 전원을 부분적으로 차단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쁘지 않은 전략이며, 절전과 환경 보호까지 달성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전세계에서 동작 중인 수많은 컴퓨터들이 잡아먹는 전기는 가히 엄청난 양이며, 이래서 IT 산업이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1~3이 돌아가고 있다면 사용자가 건드리지 않더라도 컴퓨터가 꺼져서는 안 된다. 특히 3은 CPU 부하는 그리 크지 않은 것에 비해 모니터가 절대로 꺼져서는 안 된다는 특이점이 존재한다.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3과 같은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WM_SYSCOMMAND의 SC_MONITORPOWER와 SC_SCREENSAVE 메시지에 별도로 응답하여, 내가 실행되고 있는 동안은 화면 보호기나 절전 모드가 동작하지 않도록 운영체제에다 요청을 해야 한다.

FTP나 웹브라우저 같은 프로그램은 다운로드가 진행 중일 때는 모니터는 끄더라도 컴퓨터는 안 꺼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PuTTY 같은 원격 터미널은 어떨까? 통신 기능은 있지만 딱히 대용량 파일 전송에 최적화돼 있지는 않다. 그냥 프롬프트에서 놀고 있을 때는 장시간 무응답 시 접속을 끄고 컴퓨터도 끄게 할 수 있지만, 서버 접속하여 명령줄로 한창 긴 빌드를 걸어 놓은 상태인데 컴퓨터가 그렇게 정신줄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두 상태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 미묘한 개념 차이

퍼센트는 비율을 나타내는 매우 유용한 단위이다.
그런데 60%라는 수치가 30% 증가하면 78%가 될까, 90%가 될까?
퍼센트에도 퍼센트가 적용된다고 보면 60%의 30%에 해당하는 18% 증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퍼센트 수치가 문자 그대로 덧셈으로 증가했다는 차이를 나타낼 때는 '퍼센트 포인트'라는 단위를 쓴다. 속도로 치면 가속도에 해당하는 개념 되겠다.

따라서 2%이던 실업률이 3%가 되었다면, 실업률은 겨우 1% 포인트 증가한 것이지만,
무려 50%나 증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통계는 수학적이고 객관적이지만, 이를 이용한 말장난 숫자놀음에 놀아나지는 말아야겠다.
'흉악 범죄자 싸이코패스들은 100% DHMO라는 위험한 약물에 중독되어 있으며 이걸 매일 마시지 않으면 못 산다' 같은 루머조차도 과학의 이름으로 퍼뜨릴 수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비슷한 예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경을 많이 찍어낸다고 들었는데, 성경뿐만 아니라 외국의 화폐도 굉장히 많이 찍어서 수출한다.
우리나라가 6· 25 당시에는 일본에서 임시로 돈을 찍어서 쓰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의 조폐 기술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듣자하니 EU 유로화 화폐를 거의 전량 한국에서 만든다고 함.

그런데, 돈을 얼마짜리만치 만들어서 수출했다고 하면, 이건 우리나라가 챙긴 액수(제조 원가+이윤)를 말하는 걸까, 찍어낸 돈 자체의 액면가를 말하는 걸까?
이것도 마치 퍼센트와 퍼센트 포인트의 차이 같은 미묘한 개념 차이가 발생하는 영역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27 19:48 2011/05/2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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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아Q정전>(阿Q正傳)이라는 이름도 참 괴상한 소설을 본인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접했다.
주인공인 아Q는... 그야말로 정신과 가치관이 병들 대로 병들었으면서 자기가 병들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는 빈곤층 하층민에다 요즘 시쳇말로 잉여인간 빵셔틀-_- 동네 북인데.. 아예 대놓고 백치 아다다 같은 타입이라거나 불쌍하고 착해 빠진 인물이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뭔가 오타쿠 내지 찌질이 같은 이미지가 느껴지는 한편으로, 자기 자신도 기회주의적이고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는 잔인한, 비열함 그 자체인 인간 쓰레기 타입이다.

아Q에게는 자기만의 인생 테크닉이 있었다. 일명 '정신 승리법'.
말만 들어 보면 무슨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요령이라든가, 공부 비결, 정신 무장 같은 게 연상되지만... 그런 것과는 전-_-혀 거리가 멀다.
현실에서 무슨 짓을 당하든, 알량한 자존심 하나만으로 “내가 지금 육신은 쳐 맞고 있어도 정신으로는 너를 이긴 것이다”.. 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고 상대방을 멸시한다. 이게 정신 승리법이다. -_-;; 헐~ 이 똥배짱의 원천은 대체 뭐냐?

이건 어찌 보면, 오늘날 인터넷 공간의 암적 존재인 키배 워리어들의 난독증 내지 병신 논리하고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ㅜㅜ
작가인 루쉰이 설마 21세기 트롤· 찌질이의 존재까지도 예견한 건 아니겠지. -_-;;

루쉰은,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만을 간직한 채 막장 테크를 타고 있던 청나라와, 이 분위기에 편승하여 눈깔이 완전히 썩어 있던(= 맛이 간) 주변 백성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시국이 어느 정도로 막장이었냐 하면, 일본군이 중국인들을 누명을 씌워 학살하고 있는데도 같은 중국인 구경꾼들이 “와 재미있다, ㅋㅋㅋㅋ 어서 죽여라 죽여!” 할 정도였으니까...

자기 조국이 서구 열강에게 캐관광 당하든 어찌 되든 말든, 우리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승리해 있는 것이고 나만 잘 살면 되고 피아 식별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루쉰은 이런 현실을 몸서리치게 혐오했으며, 이를 아Q라는 인물의 막장 인생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풍자했다. 실제로, 당시 소설이 출간되자 독자들은 아Q의 행적을 보고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 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루쉰은 사상가 겸 사회 개혁가였고, 중국스러운 유교· 봉건 사회 시스템을 굉장히 싫어했다. 일종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같은 생각? 또한, 중국의 문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굉장한 한자 안티로도 이름을 날렸다. “이놈의 빌어먹을 한자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중국 인민은 진짜로 망한다” 정도의 극언까지 남겼으며,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한창 한글· 한자 논쟁이 뜨겁던 시절에 한글 진영이 즐겨 인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컴퓨터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한자의 구조적인 단점이 그나마 많이 가려졌으니 망정이지, 그가 살던 시절은 컴퓨터도 없었고, 간체자도 없던 때였다.
한국에서처럼 가~끔씩 유식한 티 낼 때나 한자 한두 자 인용해 주는 것하고, 아예 100% 그 복잡한 한자만으로 모든 생활을 해야 하는 건 서로 가히 차원이 다르다. 루쉰의 눈에는 한자는 정말 높은 문맹률의 주범이요, 그렇잖아도 무지한 국민들을 진짜 우민화하고 암흑 속에 가두는 주범으로 충분히 보일 만도 했을 것이다.

그가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1만여 명에 달하는 조문객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그는 조국과 동포를 향해 신랄한 비판과 독설을 퍼부었으나 조국과 동포를 한 순간도 저버리거나 잊은 적이 없던 애국자였다. 그 시절에 중국에서 루쉰 같은 선각자가 살았던 건 국가적인 축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정신 승리법'은 아무리 다시 봐도 그 의미가 21세기에 위와 같이 재조명되어 정말 웃긴다.. -_-;;;

Posted by 사무엘

2011/05/23 08:40 2011/05/2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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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박사 석 주명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나비 박사인 석 주명 박사 얘기를 인터넷으로 우연히 접했다. 1908년 말 평양 출생이니 공 병우 박사와 나이 및 고향이 같지는 않지만 아주 비슷하다.
이분은 일본의 학자들이 잘못 분류해 놓은 한국의 나비 분류를 다 바로잡았고, 나비 연구에 관한 한은 세계구급으로 인정받은 걸로 유명하다. 나비에 대해서 창세기 2:19와 비슷한 일을 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75만여 마리나 되는 나비를 채집하여 분류하고 연구한 건,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 정호를 뺨치는 근성이 아닌가 싶다. 방학 때 어린 학생들에게 나비 채집 숙제를 내는 관행도 이분이 만든 거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공 병우 박사 같은 근성이 있어서 시간을 굉장히 아끼고 어디 자투리 시간, 이동 시간을 아까워했다. 하루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거기서 모든 일과를 해결했다. 그러나 무슨 희귀종 나비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산간벽지를 막론하고 찾아가서 채집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가정 생활조차 원만하지 못할 지경이어서, 결혼한 지 몇 년 못 가 이혼하고 만다.

이 역시 공 박사와 비슷한 점이다. 공 박사도 천재 외골수 타입인지라 그렇게 가정적이지는 못한 사람이었다. 온통 타자기 생각밖에 안 하고 지내던 시절엔 좀 과장 보태면 가정 파탄 상태였다. 그나마 의사인 덕분에 돈은 굉장히 많이 벌었으니 가정이 유지되었지만.. 유지만 되면 뭘 하나? 세벌식은 내가 알기로 공 박사 유족도 별 관심 없어하고 안 쓰는 글자판이다. -_-;;

공 병우 박사도 6· 25 때 북한군에게 붙잡혀서 고초를 겪기도 했다만, 이 전쟁은 석 주명 박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말았다.
서울 시내가 폭격을 받는 바람에, 20년간 수집해 놨던 나비 표본을 날렸다! 나 같아서도 그럼 정말 죽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1950년 10월, 길거리를 다니던 중에 북한군으로 오인받아 총격을 받고 50이 채 안 된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죽으면서도 “이놈들아,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절규했다고 전해진다.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석 박사와 비슷한 인물로는 우 장춘 박사도 생각나고, 또 한글학자 정 태진 선생이 떠오른다. 영어 잘 한 덕분에 미군정 때 얼마든지 교수, 장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는데 끝끝내 조선어 학회로 돌아와서 큰사전 편찬에만 매진한 분이다. 그는 1952년, 전쟁 중에 식량 구하러 트럭에 얻어 타고 가던 도중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석 박사도 개인적으로는 언어학 기질이 있어서 제주도 방언을 연구하고 에스페란토 교재를 집필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나는 철도밖에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후회 없이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1/03/02 08:11 2011/03/0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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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국대, 변 정용 교수

본인의 고향은 경주이다.
그리고 본인의 고향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은... 바로 동국 대학교 경주 캠퍼스이다.

어렸을 때는 집에서 시내로 가는 길이 시청과 경주 역 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동국 대학교 정문을 경유하는 경로밖에 없어서 동국대 일대는 본인에게 아주 친숙했다. 아, 그러고 보니 동국대 경주캠도 정문 근처 아래로 중앙선 철길이 지난다. (야 신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 경로를 경유하여 경주를 순환하는 41번과 40번 시내버스가 경주의 서울 지하철 2호선과 같은 황금 노선이었다.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번호조차 바뀌지 않고 살아 있다.
내 기억으로 41이 일명 외선 순환, 40이 내선 순환 격이나 다름없는데, 서로 경로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부분도 있어서 별도의 번호가 부여된 것이지 싶다.

경주에는 경주대도 있다. 하지만 경주 시내에서는 꽤 멀리 떨어져 있고 본인이 거기 갈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없었는데, 이제부터는 이따금씩 좀 구경할 일이 생겼다.
왜냐고? 집에서 KTX 신경주 역까지 가는 길목에서 늘 경주대 입구를 경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경주는 도시 크기에 비해서 고속철 지나지, 고속도로 있지, 중앙선 밤차 이용할 수도 있지.. 교통이 굉장히 편하다.

신경주 역은 경주 대학교보다도, 심지어 고속도로 경주 IC보다도 더욱 외곽에.. 거의 건천읍에 있다.
그래 봤자 본인의 서울 거처에서 연세대까지의 거리와, 경주 집에서 신경주 역까지의 거리는 서로 아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보다 신경주 역이 집에서 훨씬 더 멀리 느껴진다. 그 이유는 당연히 경주와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의 크기 차이와 대중교통 인프라의 차이 때문이다.
연세대는 지하철만으로 아주 손쉽게 갈 수 있는 반면, 신경주 역은 버스로 가려면 1시간은 잡아야 하고 현실적으로 택시 아니면 자가용이 답이다. 게다가 택시 타면 시외 구간이라고 할증 붙는다. -_-;;;

이래서 지방의 외곽에 세워진 고속철 역은 연계 대중교통이 절실하다. 그래도 신경주 정도면 고속철 초창기 계획에 애시당초 포함되었던 역이고, 경주 자체가 굉장히 작은 도시여서 외곽처럼 느껴질 뿐 절대적인 거리가 심하게 먼 건 아니다.
그러나 울산(울산 고속도로 타고 한참을...)이나 김천구미(구미 시내와는 아예 산으로 가로막혀 있고 김천 시내와도 그리 가깝지 않은..) 같은 역은 시내와의 접근성이 정말 안습하기 그지없다.
뭐 근본적으로 지금 고속철은 역을 너무 많이 만든 것부터가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흠 좀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졌으니 다시 동국대 얘기로 돌아오겠다.
잘 알다시피 경주에 있는 것은 동국대의 이원화 캠퍼스이고 본캠은 서울 중심부에 있다. 서울 지하철 3호선에 아예 '동대입구'라는 역이 있다.
본인은 경주캠에 있는 건 의대, 간호대, 관광학과 정도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거기도 나름 컴퓨터/전산학과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거기에 변 정용 교수가 계시는데...;;
이분이 국어 정보학 바닥에서는 아주 잘 알려진 한글 에반젤리스트이다.
아래의 짤방은 1996년 <세계로 한글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한글 예찬론자들의 문자관이 다 서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자음은 왼손, 모음은 오른손으로 글자판 배열이 가능하다는 게 두벌식 사고방식으로는 대단한 발상이지만,
본인 같은 "세벌식 학파"-_-의 관점에서는 더 좋은 방식을 놔두고 겨우 저런 걸 자랑한다는 게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본인은 이분이 의심의 여지 없이 서울캠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근무하시는 곳이 경주캠.
쉽게 말해 본인 고향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좀 과장 보태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계시는 국어 정보학자이다. 홈페이지는 여기... 동국대 소속답게 아주 독실한 불자이신 듯하다.
본인과 아는 사이인 분이어서가 아니고, 그냥 좁고 좁은 세상이 놀라워서 인물 탐방 블로그 포스트를 또 올리게 됐다. ^^;;
아주 옛날, 정부 과천 청사에서 글자판 전문 위원회 할 때 저분과 서로 대면한 적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28 09:10 2010/12/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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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부터 하고... ㅋ
본인 블로그의 정기 구독자-_-라면 이미 귀가 따갑게 들으셨겠지만, 본인은 10년 전, 제 17회 한국 정보 올림피아드(KOI) 공모 부문의 고등부 대상 수상자이다. 그리고 얼마 전엔 모듈 음악에 대해 글을 쓰면서, 바로 전 해인 16회 대회의 고등부 금상 수상자에 대해서 언급했었다. 그때는 대상 수상자가 없었다.
이제 이 글에서는 전 회에 이어, 본인이 참가한 해의 바로 이듬해인 18회 대회의 고등부 대상 수상자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하겠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 성진 씨.
학창 시절부터 일찌감치 경시가 아닌 공모 테크를 타고 뭔가 창의적인 아이템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진했다는 점에서는 본인의 진로와 비슷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우물만 죽어라고 파고 있다는 점에서도 본인과 공통점이 있다. (무슨 분야인지는 곧 소개하겠다.) 그런 외골수는 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여기 또 있다. ^^

이 친구는 KOI뿐만이 아니라 창의성 대회나 다른 소프트웨어 공모전 등에서 자기의 동일 아이템으로 상을 휩쓸었고, 본인보다 매스컴도 훨씬 더 많이 탔으며 IT 분야 사회 활동을 더 활발히 해 왔다. 사교/사회성, 정치성 자체가 본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뛰어난 사람이다.

이 친구의 보유 기술 및 아이템이 뭐냐 하면,
인터넷 보안, 음란 사이트 차단, 자녀 컴퓨터 사용 제어(parental control),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 쪽이다. 관심 분야부터가 지극히 사회적인 쪽이지 않은가?
그걸 수 년째 연구한 솔루션을 만들어서 그는 18회 KOI에서 당당히 대상을 차지하고, 일반고 출신으로서 지정 대회 우수 입상자로 카이스트에 진학했다. 본인은 그와 2001년에 처음으로 메신저에서 만났고, 이내 학교에서 볼 수 있었다. 굉장히 예의바르고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 후 2004년 가을에는 전산학과에서 제 1회 KAIST Computing Festival이라는 행사를 열었는데, 그때 대회 참가자로서 또 서로 만날 일이 있었다.
그는 확실히 이론보다는 실무형 인재였고, 내 예상과는 달리 전산학과가 아닌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해 있었다. 전산/산디 복수 내지 부전공인지는 확실히 잘 모르겠다. 저런 친구야말로 카이스트 전산과의 학부 과목인 ‘컴윤리’는 꼭 들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김 진형 교수님도 불과 몇 년 뒤면 정년이다. 세월 한번 무섭다.)

그는 산디과 소속답게 자기 작품을 소개하는 발표용 프레젠테이션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던 걸로 본인의 기억에 남아 있다. HCI(사람-기계 커뮤니케이션) 쪽에도 관심이 많은 듯. 스티브 잡스 근성이라도 있는 걸까? ㄲㄲㄲ

뭐, 사족을 덧붙이자면 그 교내 공모전에서도 본인이 출품한 <날개셋> 한글 입력기 3.02가 1등을 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는 가히 전국에서 날고 기는 수학 덕후· 컴퓨터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곳이고, 난 그 집단 안에서는 별 보잘것없는 중하위권 학부생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까지 내 작품이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1, 2년 연구한 작품이 아니니 짬과 연륜면에서 타 작품들과 비교가 안 되고, 또 한글을 이런 식으로 입력할 수 있다는 게 세벌식 사고방식으로는 당연한 것이지만 두벌식밖에 안 써 본 사람이라면 카이스트 교수에게라도 충분히 창의적이고 참신하게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본인이 국어학하고 양다리를 걸쳤다면, 김 성진 씨는 디자인과 양다리를 걸쳤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산디과 석사까지 마친 후, 아예 (주)휴모션이라고 벤처기업 창업을 했다. 그게 2008년의 일이고, 현재까지 어엿한 사장님이 돼 있다. ^^;; 창업 과정에서 카이스트로부터 지원을 당연히 아주 많이 받았다. 보아하니 회사는 대전의 유성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꽤 가까운 곳에 있는 듯.
사장이 디자인 전공이다 보니, 핵심 기술인 ‘컴퓨팅 안전’ 분야 솔루션뿐만이 아니라 웹사이트 내지 심지어 회사 CI의 디자인 용역까지 담당하는 모양이다. 대단한 후배이다. 본인과 나이 차차도 별로 안 난다.

정올 공모 출품작 아이템을 이렇게 사업 아이템으로까지 스스로 발전시켜 잘 나가고 있는 입상자가 주변에 있으니 부럽기도 하고 훈훈하다. 정올 공모에서 이렇게 입상하고 덤으로 카이스트 같은 좋은 면학 환경까지 거쳐 간 인재들이 특별히 전산학하고 다른 분야와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에 뭔가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본인 역시 그 꿈을 이루려는 의욕이 있어서 뒤늦게나마 협동과정 대학원에 갔다. 나는 그렇게 학구파는 아니지만 저 친구 같은 사교력이나 사업 수완은 더 없기 때문에-_-;; 일단 공부부터 좀 하려고..;;
성진 후배가 이 글을 볼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성공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24 18:27 2010/12/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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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름 이 분야의 길을 가고 있는데, 유명한 대선배가 누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겠지.
두 분을 소개하는데, 서로 나이가 비슷한 남녀이다. 각각 어도비와 MS라는 굴지의 기업에서 거의 20년째 근속 중이며, 각각 동아시아 로컬라이징 쪽으로 세계적인 히트를 친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여러 모로 재미있는 비교 대상이라 하겠다.

※ Ken Lunde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산학이 아닌 언어학 전공자로, 위스콘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에 있는 동안은 Adobe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면서 한자 폰트와 관련 프로그래밍 연구를 했으며, 학위도 그런 주제의 논문으로 받았다고 한다. 20대 나이 때 라틴 알파벳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자인 한자에 완전 필이 꽂혔다나? (한글 덕후가 된 제임스 맥콜리와는 대조적)
졸업 후엔 Adobe 정직원으로 곧바로 들어갔고 그게 평생직장이 됐다.

놀랍게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와 새나루를 아는 외국인이다. 아니, 한국에 개발되어 있는 한글 IME들은 물론, libhangul의 존재까지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 무서운 분이다.
1998년 말에 CJKV Information Processing이라는 책을 썼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재작년 말에 그 책의 개정판을 냈는데, CJK 언어용 IME의 예로 내 프로그램도 소개되어 있다.
CJKV 하니까 KJV가 자꾸 떠오르는군..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아하니 밀덕 기질이 있는 듯. ㄷㄷㄷ;; 이름으로 검색을 하면 유난히도 권총과 도검류 사진이 많이 걸려 나오는데, 그것들도 다 이분 작품이다. (KJV 진영에 있는 미국의 유명한 모 성경학자도, 자기 집에 온갖 옛날 무기와 군복이 진열되어 있는 밀덕-_- ㄲㄲㄲ 새마을호를 안 타 봐서 저런 데에 빠진 거야)

※ Nadine Kano

사용자 삽입 이미지
Ken과는 달리 전산학 전공자이며, 현재는 언어 처리만 파지는 않고 IT 본연에 더 가까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개발보다는 소프트웨어 로컬라이징, 기술 자문, 사업부, 마케팅, 제품QA 등 뭔가 기획스러운 쪽에 짬을 더 많이 쌓은 것 같다. 로컬라이징은 Ken처럼 언어학 자질이라기보다는 시장 분석의 일환으로 공부한 분야일 것이다.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 가지 않고 곧장 MS에 입사했다. 듣기로는 학부 시절부터 MS와 인연이 있어서 알바도 했다고 하던데.. 그리고 회사 근무 중간에도 잠시 스탠퍼드에 가서 MBA 과정을 마쳤다.
이분은 Developing International Software for Windows 95/NT 라는 책을 썼으며, 책의 저술 시기는 제목이 암시하듯 윈도우 NT 3.51~95 타이밍이다. wide string, 유니코드, 언어 로케일, 한중일 IME가 동작하는 기본 개념 등에 대해서 유익한 내용이 많다. 2009년엔 제목에서 for Windows 95/NT를 제거^^한 개정판이 나왔다.

아마 Ken이 자기 책을 쓰면서도, 시기적으로 먼저 나온 Nadine의 책을 분명 참고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14 08:47 2010/12/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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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페르시아의 왕자(고전 게임)에 대해서만 전문적으로 논평을 한번쯤 쓸 법도 했을 것 같은데 그런 적이 없어서 또 잠시 글을 올린다. ㄲㄲ
뭐, 게임 자체에 대해서라든가 제작자인 Jordan Mechner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 놓은 다른 글이 인터넷에 넘쳐나니 알아서 검색으로 찾아보시고..
이 글에서는 페르시아의 왕자에 대해서 인터넷 상에 잘 언급되어 있지 않은 버그나 trivia를 열거하되, 1보다는 2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전편인 페르시아의 왕자의 버그는 주로 게임 역학(mechanics)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 달리다가 방향을 바꿔 턴을 하는데 공중에 잠시 붕 뜰 수 있고 그 상태로 도움닫기도 가능한 것: 이 버그가 속편인 2에서는 수정되었고, 덕분에 두 칸 길이의 평지에서 도움닫기 점프를 하는 방법이 1과 2가 서로 다르다.
- 엎드렸다가 일어나면, 그 동안에 떨어지는 판자에 맞아도 HP를 잃지 않는 것: 상당히 괴악한 버그이다. 2는 그냥 엎드리고 있으면 HP를 잃지 않게 바뀐 반면, 1은 그냥 엎드리고 있으면 HP를 두 칸이나 잃는다.
- 도움닫기 점프의 후반부인 포즈일 때는 아직 덜 열린 철문을 그대로 통과 가능한 것: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버그였으나 2에서는 고쳐졌다.
- 특이한 경우에 벽을 뚫고 전혀 다른 방으로 순간이동이 가능한 것: 그냥 1의 게임 엔진의 버그로, 2에서는 이런 것들이 거의 사라졌다. 1의 경우 본인는 level 2과 12에서 그런 버그를 알고 있으며, 일부는 인터넷에 공개도 되어 있다. 내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정도이면 남도 이미 다 알고는 있더라.

페르시아의 왕자 2는 게임 스케일, 그래픽, 사운드 등 모든 면에서 전편보다 월등히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게임 역학을 넘어서 레벨 내지 게임 로직 차원의 황당한 버그도 여럿 있었다.
심증이 물증으로 굳어진 건, 중학교 시절에 친구 집에서 내가 해 본 것과는 뭔가 다르게 동작하는 페르시아의 왕자 2를 딱 하나 발견하고부터였다. 이건 아무래도 버그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온 것들이 다 고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건 ‘버그 패치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후로 본인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각종 고전 게임 자료실에서는 ‘버그 패치판’ 페르시아의 왕자 2를 결코 구하지 못했다.
오리지널과 버그 패치판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이제부터 스크린샷으로 보여주겠다.

1. level 6
동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하늘 나는 양탄자를 타면, 낡은 궁전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그런데, 궁전으로 들어가면 바로 다음 첫 화면에 다음 레벨로 들어가는 게이트가 “열려 있다!” 그래서 level 6은 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skip 가능하다. ㄲ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버그 패치판’은 이 버그가 고쳐져서 게이트가 닫힌 채로 게임이 시작된다.

2. level 10
낡은 궁전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말을 타면, 붉은 궁전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아래의 스크린샷은 level 10을 클리어하기 직전의 모습인데, 정석대로라면 굉장히 먼 길을 돌아서 이 방의 오른쪽에서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다. 오른쪽에 있는 철문이 보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지름길을 잘 선택하면, 이 방의 위에서 발판을 부숴 떨어뜨려서(그림에서 부서진 바닥이 있는 곳) 게이트를 개방한 뒤, 아래로 내려와서(그림에서 왕자가 있는 곳) 레벨을 굉장히 쉽게 클리어 가능하다.
‘버그 패치판’은 레벨이 바뀌어서 게이트 개방만 가능하고 게이트가 있는 쪽으로 저렇게 바로 내려가지는 못하게 바뀌었다.

3. level 12
정체를 알 수 없는 횃불검이 중간에 나오기도 하는 굉장히 길고 어려운 레벨이다. 그런데, 이 레벨에도 지름길이 있다. 지름길의 끝자락에 있는 어느 방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약이 있는데, 이 물약을 마시면 물병에서 갑자기 웬 난쟁이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얘는 화면 오른쪽 끝으로 걸어가면서 왕자가 통과할 수 없는 철문까지 통과하고(덩치가 워낙 작으니까), 그러면서 철문 너머에 있는 다음 단계 게이트를 “열어 준다.” 이걸로 게임 끗.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치 전편 페르시아의 왕자 1에는 level 8에서 공주가 보낸 생쥐가 철문을 열어 주는 것 같은 기믹을 보는 느낌이다. 저런 걸 왜 넣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버그 패치판’에는 이렇게 쉽게 level 12를 클리어하는 방법이 없어졌다. 아마 난쟁이의 진행 경로에 게이트를 여는 버튼 자체가 없어졌던 것 같다.

4. level 14
최종 보스인 Jaffar와 싸우는 레벨이다. Jaffar를 죽이기 위해서는 왕자의 자기 육신이 아니라 불을 먹은 영혼을 꺼내서 싸워야 한다. 마법사를 죽이겠답시고 그에게 맨몸으로 접근해서 칼을 뽑으면 그 순간 아래의 그림처럼 칼을 빼앗긴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칼만 빼앗기는 걸로 끝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명백한 버그임을 알 수 있다.
‘버그 패치판’에서는 저랬다가는 왕자는 칼을 빼앗긴 후 곧바로 Jaffar에게 끔살 당한다. 이게 원래 의도했던 시나리오일 것이다.

여기에 버그가 또 있으니 설명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왕자는 붉은 궁전 스테이지와 그 이후부터는 방향을 앞뒤로 트는 동작을 반복하면서(좌우 화살표 교대로) 자기 영혼을 꺼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HP를 8이나 잃는다. 그리고 Jaffar를 죽이는 에너지 장풍을 한 번 발사할 때마다 HP를 또 2 잃는다. 자기 생명력을 투자해서 적을 공격하는 셈이며, 기회는 사실상 한 번밖에 없다. 그러니 잘 쏴야 한다.

그런데 장풍이 빗나가서 Jaffar가 맞지 않은 채 HP가 2 이하가 되면, 왕자는 장풍을 쏠 수 없고 다시 시커멓게 된다. 영혼 주위로 퍼런 불꽃이 일 때는 Jaffar가 왕자를 피해 도망갔지만, 시커멀 때는 반대로 Jaffar가 왕자를 찾아와 죽인다. 쫓는 위치이다가 다시 쫓기는 신세로..

그래서 ‘버그 패치판’은 체력을 보충할 수 있게 저런 곳에 물약이 서너 군데 비치되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전 판은 그런 게 없다.

혹시 ‘버그 패치판’에 속하는 페르시아 왕자 2를 보유하고 계신 분은 본인에게 연락해 주기 바란다. 본인은 대학 진학 후에 한 번도 못 봤다.
그리고,

5. 랭킹
페르시아의 왕자 2의 Hall of Fame은.. 남은 시간이 오름차순으로 배열된다. 즉, 깨는 데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어 적은 시간을 남긴 사람이 상위에 오른다는 뜻이다! 이거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_-;;;

6. 내레이션
페르시아의 왕자 2는 게임 스토리를 설명하는 모든 대사에 음성 내레이션이 추가되었다. 사운드 카드 우왕ㅋ굳ㅋ
그런데 아래 대사의 음성 내레이션을 들어 본 분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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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게임 직후부터 60분 시간제한이 시작되는 것과는 달리, 2는 스토리 설정상 level 4에서 죽었을 때, 아니면 level 5에서부터 무조건 75분 시간제한이 시작된다.
스크린샷은 그 시간제한이 시작되기 직전에 잠깐 등장하는 컷씬의 한 장면인데...
Prince, your bride is dying.
(When the last leaf falls, all will be lost.)
Waste no more time. Come to me!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따 온 설정임이 분명하다. ㄲㄲ
내레이션이 나오지 않는 PC 스피커 모드일 때는 ( ) 안의 대사도 정상적으로 출력된다.
그러나 사운드카드로 내레이션을 들을 때는 ( ) 안의 대사는 내레이션 없이 0.n초간 떴다가 곧바로 다음 대사로 바뀐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게임 개발 당시에 저 대사에 대한 성우의 내레이션이 제품 출시일까지 준비가 안 됐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운드카드를 쓸 때는 내레이션이 없는 대사를 슬쩍 제껴 버린 것이다. -_-;;
‘버그 패치판’도 여전한지는 모르겠다. 페르시아의 왕자 2엔 이런 옥의티도 있었다. ^^

※ 기타 잡설

1. 게임 개발자뿐만이 아니라 방송인 내지 영화감독 기질이 다분한 조던 메크너는 게임에도 스토리, 기믹, 아기자기한 시스템을 아주 중요시하는 것 같다. 닥치고 쏘고 부수기만 하면 장땡인 타입이 아니다. 이 점에서 그는 존 카맥보다는 존 로메로 스타일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로메로 같은 먹튀 막장 인생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1에서 생쥐가 닫힌 철문을 열어 준다거나 영혼이 분리되고 합체되는 것, 그리고 2에서도 영혼이 불을 먹는 것... 거 참 메크너의 세계관은 어디에서 영향을 받은 건지 모르겠다.

2. 페르시아의 왕자 1은 퍼즐이 간단한 편이고 중간에 HP를 전혀 잃지 않고 엔딩을 보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2는 그렇지 않다. 전투 요소가 굉장히 강화되어 적과 싸우다가 HP를 잃기가 훨씬 더 쉬워졌을 뿐만 아니라, 특히 나중에 영혼을 꺼낼 때 어마어마한 양의 HP를 잃기 때문에, 3으로 시작하는 HP를 최대 한계치인 12까지 올리는 건 필수이다. 마지막 레벨에 도착하기 전에 차근차근 해 놔야 한다.
게임 중에는 두 층 낙하처럼 HP를 무조건 잃지 않으면 안 되는 곳도 있는데(다른 우회 경로도 없이!), 본인 생각에 이건 게임으로서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3. 1과는 달리 2는 레벨 안에 클리어로 가는 길이 여러 곳이 있는 경우가 있다. HP를 늘려 주는 물약을 먹기 위해서는 지름길이 아니라 먼 길을 돌아 가야 하기도 한다. 좋은 예가 첫 동굴 스테이지인 level 3인데, 가까운 길과 먼 길, 그리고 엄청 먼 길이 있다. 지름길은 HP를 늘릴 수 없으며 먼 길을 가면 HP를 1만 늘릴 수 있지만 엄청 먼 길은 힘든 대신 HP를 2개 늘릴 수 있다. level 3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또 결정적으로 아직 시간 제한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때 반드시 제일 먼 길로 가서 HP를 늘려 놓는 게 좋다.

4. 1과 2 모두 시간 제한 타임머신이 있어서 level 4까지는 그대로 skip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남은 시간이 15분으로 급감하기 때문에 그 상태로 게임을 제대로 진행할 수는 없다.
1의 경우, 변태적인 타임 어택과 버그 exploit까지 이용하면, level 4 + 15분 상태로 게임을 시작하고도 엔딩을 볼 수가 있었다...;; ㄷㄷㄷㄷ;;;
그러나 2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 각종 버그들이 잡히기도 하고 레벨들도 월등하게 길고 복잡해졌으며, 또 1과는 달리 적을 싸우지 않고 회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5. 마지막 붉은 궁전 스테이지는 배경으로 횃불 대신 촛불을 볼 수 있는데 난 저것만 보면 이 음반이 생각난다. Derric Johnson의 크리스마스 아카펠라. Christmas in Velvet.
배경이 무척 비슷하지 않은가?
페르시아 왕자 2를 심상 면에서 아랍 문화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크리마스와 연결해 주는 매개채이다.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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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12/06 18:04 2010/12/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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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날 울린 슬픈 동화들

1.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2. 플랜더스의 개 (위다)
3. 성냥팔이 소녀 (안데르센)

19세기에 지어진 작품이고 주인공이 추운 겨울에 불쌍하게 죽는 걸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
세세한 스토리가 기억이 안 난다면 인터넷 검색해서 찾아보시고, 여기에는 각 작품별로 본인의 논평만 싣도록 하겠다.

1. 동상과 제비를 의인화했다는 점에서, 아래의 2와 3에 비해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하다. 2와 3이 지지리도 불우한 주인공의 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1은 주인공 주변에 온통 불쌍하고 못 사는 서민들이 있다. 왕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대인배. 오오~~
참고로, 진짜로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는 것이(제비의 시체나 왕자 심장보다도!) 뭔지 알고 싶으면 성경을 찾아보시라. 단적인 예로, 구원받은 성도의 죽음--자연사든, 순교든--이 주님의 눈앞에서 귀중하다고 나와 있다. (시 116:15)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고생만 잔뜩 한 제비가 죽는 게 어렸을 때 무진장 슬펐다.;;

2. 1과 3에 비해서 분량이 길고 스토리 전개가 가장 현실적이며 소설 같은 면모를 갖추고 있다.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화가를 꿈꾸던 어느 착한 남자애가 여차여차 한 끝에 결국은 아래의 성냥팔이 소녀처럼 추운 집밖에서(정확히는 성당 벽화 아래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얘기. 충견 파트라슈가 추가되어 애절함을 더한다.

뒤늦게 부잣집 딸과 결혼시켜 주겠다, 그림이 아주 우수한 작품이었다는 식으로 좋은 소식이 주인공에게 도착하지만 이미 사후약방문이다. 마치 시대를 너무 앞섰던 천재 수학자 아벨이 결핵과 영양실조로 죽어 버린 후, 이틀 뒤에 베를린 대학 교수 임용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듯이 말이다.
정작 이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된 벨기에의 그 지방 사람들은 “우리 주민들은 불우이웃에게 그렇게도 매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아냐!”하면서 소설 내용에 대해서 반발한다고... 하더라.

3. 그다지 교훈이나 감동적인 메시지보다는, 그냥 ‘여자애 너무 불쌍해. 지못미 안습’이라는 생각만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스토리였다. 너무 가혹하다. 소녀의 이름도 안 나오고 정확한 가정 배경--알코올 중독자에 아동 학대를 저지르는 아버지 말고는 그닥;;--도 안 나오는 게 어린 시절 본인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_=;;
설정상 사건이 일어난 날짜는 섣달 그믐날, 즉 12월 31일이고 죽은 소녀가 발견된 이튿날이 New Year이라고 되어 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성탄절로 자꾸 혼동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소녀가 눈 내리는 길거리를 걷다가 마차에 치여 넘어지는 바람에 신발이 벗겨진다. 그런데 그 신발을 누가 갖고 튄다. 그래서 소녀는 맨발 신세로 전락...;;; 야, 이 정도면 가혹을 넘어 가학적인 설정이 아닌지? ㅎㄷㄷㄷ;;;;

잘 알다시피 중간에 판타지적인 장면이 있긴 하지만, 뭐 1과 같은 수준은 아니다.
성냥불 그어서 소녀가 새마을호 특실과 Looking for you 환상이라도 봤다면 행복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열차야~ 날 떠나지 말아 다오~~~”

흔히 저주의 의미로 ‘얼어 죽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얼어 죽는 건 굶어 죽는 것만큼이나 정말 비참하게 죽는 것이다. 추위에 이빨을 부딪치며 제대로 와들와들 떨어 본 적이 있다면 그런 말 함부로 못 한다.
성인도 아니고 10대 소년 소녀가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겨울에 밖에서 객사하는 이야기... 정말 충격적이었다. 초딩 시절에 페르시아 왕자를 하다가, 왕자가 쇠꼬챙이에 찔리고 쇠톱날에 두 동강 나 죽는 걸 본 것만큼이나 말이다. =_=;;;

요즘이야 우리나라에 문자적으로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상대적인 빈곤과 박탈감이 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앞으로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지난 8월엔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를 하던 어느 고졸 여성이 처지를 비관하여 한강 다리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기억하시는가? 성장 배경 한번 정말 기구하더라. (대학도 못 갔음. 알바는 학비가 아니라 생활비를 벌려고 한 것이다.) 20살도 안 된 여자애가 극심한 빈곤에 이대로는 백날 이 처지 못 벗어날 거라고 염증을 느꼈을 것이며, 또 맨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즐겁게 노는 가족이나 커플들을 보면서 더욱 박탈감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상실했을 것이니 참 마음이 아프다. 이 세상엔 자기 생일이라든가 크리스마스 같은 날을 증오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난 문학소년 체질이 전혀 아니며 “문학이란 모름지기 단순해야 한다”주의여서, 그냥 무조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권선징악 해피엔딩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딱 그런 스타일인 성경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문학에 비극이라는 장르가 등장한 이유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죄 때문임이 틀림없다.
가령, 세속 문학가가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 같은 사건을 각색했다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아벨을 장렬하고 비극적으로 묘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벨이 죽었어도 믿음으로 지금도 살아서 말하고 있다고 진술한다. (히 11:4) 관점이 다른 것이다.

이 사회 구조가 잘못되어 있는 근본 원인이 사람들의 영적 상태와 관련이 있으며, 진짜 인생 역전의 길은 따로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할 텐데! 연말이 다가오니 추운 겨울 밤에 문득 저런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1/26 18:12 2010/11/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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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이야기

올해도 수능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이제 날짜가 얼마 안 남았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던 시절에 수능날은, 관공서 출근 시각이 늦춰진 데다 지하철 역시 굉장히 증차된 덕분에 본인 같은 사람에게도 출근하기는 좋았다.
2006년도 수능이 2005년 11월에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 회의 때문에 좀 늦춰졌듯이, 올해의 수능 일정은 G20 정상 회의의 영향을 좀 받았다.

외국 사람들이 보기엔 수능날 아침은 "전쟁이라도 났나? 무슨 계엄령이라도 떨어졌나?" 싶은 흥미진진한 광경으로 비쳐진다더라.
하긴, 우리나라의 수능이 과거의 학력고사보다 더 다이나믹한 시험을 만들어 보려고 미국의 SAT 시험을 벤치마킹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능과 SAT는 시스템이라든가 위상이 상당히 다른 면모도 적지 않다. 근본적으로 SAT는 전적으로 사설 기관이 주관하며 1년에 무려 8회에 가깝게 자주 칠 수 있고 문제은행 방식이다. 한국의 수능은 그렇지 않다.

1. 수능 문제가 출제되기까지

수능을 치르는 학생뿐만 아니라 수능 출제 위원들도 이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출제 기간 동안 지방 모처에서 감금· 고립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신문 기사들 검색을 해 보면 강원도 속초의 모 콘도라고까지는 나오는 걸 본 기억이 있다.
그들은 보안 유지를 위해 일체의 통신 장비를 쓸 수 없고 인터넷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구글링을 하면서 문제 출제를 할 수 없다는 것부터가 상당한 고역일 것이다.

그 대신 수백· 수천 권에 달하는 문헌, 문제집, 참고서를 들고 들어가서 거대한 프로젝트 룸에서 출제 작업을 한다. 조판은 여전히 아래아한글로 하는 것 같다. 최근까지도 문제지 문서 파일이 죄다 HWP 포맷.

출제 기간 중에 심지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보안 요원의 동행하에 빈소에 가서 간단히 예만 올리고 곧바로 돌아와야 한다. (상주 노릇 못 한다는 소리)
수능 시험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이 '수능 콘도'에서는 음식 쓰레기 하나도 외부로 반출하지 않는다.

문제를 출제하는 도중에야 바빠 죽겠으니 그나마 나은데 출제를 마치고 문제지를 인쇄하고 테입 제작에 들어간 뒤부터는... 이 사람들은 수능 끝날 때까지 그냥 아무 하는 일 없이, 콘도에 갇힌 채 놀아야 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폐인 모드가 되기 시작한다.
이거 뭐 무슨 말년 병장도 아니고.. 심심해 죽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고 한다. "골프-_- 치고 싶다. 놀러 가게 해 달라, 술 마시게 해 달라.." 물론 그렇게 해 주지 않는다.

(본인이야 노트북에 비주얼 C++만 깔려 있으면 인터넷 없이도 할 게 많은 타입이다만. =_=
내가 만약 출제 위원이라면 얼씨구나 열심히 코딩하거나, 운동만 하다 나올 듯. ^^)

본인이 아는 어느 목사님은 수능이던가 아니면 이렇게 비슷하게 감금 생활을 하는 국가 고시 출제 위원을 한 경력이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출제가 끝나고 시험이 끝날 때까지.. "할 일 없이 허송세월하느니 우리 같이 성경 공부나 합시다. 로마서 강해를 진행하겠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n시에 콘도 xxxx호로 오십시오" 써 붙여 놓고 동료 위원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는 무용담이 전해져 온다. 역시 직업 정신 ^^

수능 출제 위원들의 감금 생활 하루 일당은 얼추 30만원대 꼴이라 한다. (출제 끝나고 노는 기간까지 포함해서) 한 달 남짓 감금 당해서 1000 가까이 버는 거라면 액수 자체만으로는 분명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감, 책임감에 비한다면 좀더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게다가 출제 위원들은 베테랑 현직 교사 아니면 해당 전공 분야의 박사급 전문가들로, 얼마나 고학력 고급 인력인가? 그런 사람들 눈에 수능 출제는 3D 기피 업종처럼 비쳐질 만도 하다. 실제로 출제 위원 위촉은 점차 어려워지는 실정이라고 한다.

2. 기타 & 본인의 잡설

출제 위원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를 경험한 2, 30대라면 수능이라는 게 1994년에 처음 시행되었다는 건 다들 아실 테고, 그때는 수능을 8월과 11월 이렇게 두 번 쳤다. 원큐에 수험생의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는 게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인 조치였으나, 번거롭고 또 두 시험의 난이도 조절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결국은 한 번만 치는 걸로 바뀐다. 하지만 2014년부터인가 다시 두 번 체계로 회귀하려는 듯.

200점 만점에서 400점 만점 체계로 바뀐 1997년도 수능이 역대 극악의 난이도여서 전국 수석이 373점이고 310점만 넘으면 서울대를 그냥 합격할 정도였다고 한다. -_-;; 참고로 역대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도 1997년도 대회가 문제가 다들 휴리스틱 위주에 난이도가 극악이었다.

그러다 본인보다 두 학년 위인 1999년도와 이듬해의 2000년도 수능에서는 만점자가 기묘하게도 각각 한 명씩 등장했으며,한 학년 위인 2000년도 수능에서 최초로 만점자가 등장했으며(아마 모 과학고의 오 모 씨. 여학생), 본인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어느 천재 선배 누님은 2000년도 수능에서 394점인가를 받아서 나름 경북 수석을 차지했다. 언어 영역에서 꽤 독창적인 문제가 많이 나오고 어려웠다고 회자된 그 수능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수능의 난이도 자체가 꽤 하락해 있었기 때문에 390점대의 점수로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같은 상위권 학과는 떨어지기도 했다.

본인의 학년에 해당하는 2001년도 수능에는 최초로 제2 외국어가 추가되었는데.. 만점자가 60명이 넘게 배출된, 유례가 없는 물수능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특히 지난해와는 반대로 언어 영역이 물이었고, 이는 수학· 과학에 비해 언어 영역이 약한 편인 이공계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아까 그 누님은 1년 전에 그 점수로 당연히 서울대에 간 반면, 이 수능에서 그 점수를 받은 본인의 고등학교 모 동기는 서울대 공대에 떨어졌다. -_-;;;

그러던 수능이 이듬해는 다시 불수능으로 돌변. 교육 과정 평가원은 널뛰기 난이도라고 가루가 되도록 욕 얻어먹게 된다. "앞부분에서 벌써 이런 문제가 나올 리가 없는데" "이건 평상시에 보던 문제가 아닌데" 이 해찬 세대가 겪은 충격과 공포이다. ㄲㄲㄲㄲㄲ
1교시 언어 영역만 마치고서는 시험 포기하고 자-_-살하는 수험생이 뉴스에 보도되고, 성적 비관 자살자가 전국적으로 61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여 당시 김 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였다. 흉기 안 휘두르고 사람 죽이는 방법. ㄲㄲㄲㄲ

이후 수능부터는 과거의 시행 착오를 토대로 나름 난이도 조절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은 듯하다. 중간에 원점수 표기를 없애고 등급제를 만든다고 생쇼를 했던 것 같은데.. 무슨 짓을 하더라도 조삼모사 조치에 불과하다. 대학 수 팍 줄이고, 고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 종사자는 대학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지 않는 이상,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리가 있겠는가?

요즘 수능은 본인 시절보다 과목이 더욱 세분화하고 또 하도 많이 달라져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제는 알 필요도 없지만. 참고로 결정적으로 본인은 수능 안 쳤다. -_-;; 나도 수험표까지 다 만들어 놨지만 나중에 칠 필요가 없어졌으니 결시한 것이다.
수능 전날, 고3을 대상으로는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했고 오후엔 시험장 예비 소집에 단체로 참석했다. 그리고 그 날 전교생은 밤 10시 반에 취침 소등했으며(평상시엔 자정에 취침), 다음날 점호도 당연히 없었다.

아울러 우연인지 필연인지, 본인 학년에 해당하는 2001년도 수능이 치러진 2000년 11월 15일은, 비둘기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날이기도 했다. 전날인 2000년 11월 14일에 우리나라의 마지막 비둘기호 노선이던 정선선 열차가 고별 운행을 했고, 이튿날에 퇴역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1/13 08:21 2010/11/1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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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공항 이야기 외

본인이 철거민, 토지 보상, 알박기 같은 사회 이슈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하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벌어졌던 용산 참사였다.
이 사건에 대해서 본인은 철거민만 무조건 동정하지 않으며, 공권력만 일방적으로 비난하지도 않는다.
듣기로는 진짜 집 주인은 보상을 받고서 이미 옛날에 집을 비웠다고 한다. 문제가 된 건 거기에 세들어 살던 사람들.
그들이 자기 보금자리에 대해서 합법적으로 철거를 반대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처지는 딱하지만 "지금까지 살게 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을 사람인지 본인이 여기서 단정적으로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다.

'알박기'라는 단어가 있다. 어디 개발한다, 건물을 짓는다는 말만 있으면 거길 비집고 가서 콘크리트 가건물을 짓고 눌러 산다. 그러다 나중에 자기 집이 철거된다고 하면 으르릉 워리어로 돌변, 배 째라고 드러눕는다. 그러면서 토지 보상 명목으로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요구한다.
심지어 교회 예배당조차도 그런 식으로 무허가 건물로 만들어 놓고는, 우격다짐을 한 끝에 토지 보상비까지 버젓이 타내는 경우가 있었다. 처벌을 받아도 시원찮은데 오히려 보상금을 받았다. 합법적으로 임대료 꼬박꼬박 내면서 건물에 입주해 있는 교회가 보면 까무러칠 일이다.

저런 식의 이기적인 알박기 때문에 대규모 국책 사업이 차질을 빚기도 하며,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 문제의 희생양이 된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는 바로 일본의 나리타 국제 공항이다.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도쿄의 하늘 관문이던 기존 하네다 국제 공항의 공간이 부족해지자, 더 외곽에 더 대규모 공항을 만든 것이다. 그 계획을 수립한 게 이미 1966년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그때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그나마 토지 보상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건설 예정 부지 일대에는, 골수 전투종족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집, 내 농토 뺏기기 싫다고 농민들은 물론이고 당시 악명을 떨치던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합세하여 공항 건설을 극렬 반대하고 방해했다. 환경 때문도 아니고 오로지 저 이유 때문에. 이 정도면 정말 우리나라의 극렬 좌익 데모꾼을 능가하는 수준인 듯. 이 친구들이 얼마나 악랄했냐 하면,

- 1972년 완공 예정이던 공항의 개항일을 무려 6년이나 늦췄다. (1978년으로)
- 건설 과정에서 경찰도 죽고 시위대도 죽을 정도로,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가는 전쟁 수준의 데모를 벌였다.
- 게다가 그나마 개항일을 얼마 앞두고 시위대가 관제탑에 무단 침입하는 데 성공, 공항 시설을 파괴하는 바람에 개항을 더욱 지연시켰다.
-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활주로 부지에다 알박기' 대응으로 일관했으며, 사건을 수습하러 온 토지 보상 위원회장에게도 테러를 가했다.

그들의 안티질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덜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데모꾼의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나리타 공항 이용객은 탑승 구역이 아니라 청사 입구로 들어갈 때부터 소지품 검사와 신원 확인을 받아야 한다. 휴전국인 한국에도 얼마 없는 경비원들이 이 공항에는 무진장 깔려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나리타 공항은 전투종족의 방해 공작 덕분에 처음에 의도되었던 규모로 지어지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긴 활주로를 충분히 못 만들고, 그 큰 공항이 개항 후 무려 24년을 단일 활주로로 버텨야 했다...;;;
어느 4km짜리 활주로는 2km 남짓한 길이로 두 동강이 나고, 어느 직선 유도로는 논밭이나 민가를 피해서 '커브'가 생기는 바람에 뚱뚱한 대형 항공기가 드나들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S자 같은 활주로, 오징어 같은 활주로, 만들다가 후회한 활주로.."

나리타 공항의 위성 사진을 보면 그 안습한 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비행기가 드나드는 길목으로 에워싸인 집, 비행기 활주로를 둘로 쪼개고 커브를 만든 밭;;; 아, 그렇게도 공항 지어지는 게 싫었는지?? -_-;;;;; 테란 기지가 저그 크립 때문에 거지같이 지어진 모습이다.

나리타 공항은 태생적인 ㅂㅅ이 되면서 일본 정부가 처음에 기대했던 정시성과 물류 경쟁력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게 지금은 나라도 포기한 공항이 되어서 오히려 하네다 공항을 다시 허브 공항으로 육성하는 분위기이다. 지역 이기주의가 나라 말아먹은 좋은 사례이며, 덕분에 인천 공항이 반사 이익을 톡톡이 챙기게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잘 알다시피 인천 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를 메워서 거대한 섬으로 연결한 부지에다 건설되었다.

이 공항을 지으면서 대차게 데인 일본 정부는 토지 보상 문제란 말만 나오면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었고, 후대의 공항은 아예 인공섬을 만들어서 짓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오사카의 칸사이 국제 공항. 정말로 피똥 싸는 건설비를 쏟아부어서 바다 위에다 없던 섬을 만들어 건설했다. 하지만 후유증이 너무 큰 관계로 이 공항은 공항 이용료가 굉장히 비싸, 승객과 입주 항공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그 반면 2002년인가 03년 이래로 공항 이용료를 동결해 온 인천 공항 만세~~)

그랬는데,
그렇게도 실적 좋은 인천 공항을 우리나라 정부가 매각한다는 얘기는 왜 나돌고 있는지? -_-;;

Posted by 사무엘

2010/11/10 08:28 2010/11/1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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