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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페르시아의 왕자(고전 게임)에 대해서만 전문적으로 논평을 한번쯤 쓸 법도 했을 것 같은데 그런 적이 없어서 또 잠시 글을 올린다. ㄲㄲ
뭐, 게임 자체에 대해서라든가 제작자인 Jordan Mechner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 놓은 다른 글이 인터넷에 넘쳐나니 알아서 검색으로 찾아보시고..
이 글에서는 페르시아의 왕자에 대해서 인터넷 상에 잘 언급되어 있지 않은 버그나 trivia를 열거하되, 1보다는 2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전편인 페르시아의 왕자의 버그는 주로 게임 역학(mechanics)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 달리다가 방향을 바꿔 턴을 하는데 공중에 잠시 붕 뜰 수 있고 그 상태로 도움닫기도 가능한 것: 이 버그가 속편인 2에서는 수정되었고, 덕분에 두 칸 길이의 평지에서 도움닫기 점프를 하는 방법이 1과 2가 서로 다르다.
- 엎드렸다가 일어나면, 그 동안에 떨어지는 판자에 맞아도 HP를 잃지 않는 것: 상당히 괴악한 버그이다. 2는 그냥 엎드리고 있으면 HP를 잃지 않게 바뀐 반면, 1은 그냥 엎드리고 있으면 HP를 두 칸이나 잃는다.
- 도움닫기 점프의 후반부인 포즈일 때는 아직 덜 열린 철문을 그대로 통과 가능한 것: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버그였으나 2에서는 고쳐졌다.
- 특이한 경우에 벽을 뚫고 전혀 다른 방으로 순간이동이 가능한 것: 그냥 1의 게임 엔진의 버그로, 2에서는 이런 것들이 거의 사라졌다. 1의 경우 본인는 level 2과 12에서 그런 버그를 알고 있으며, 일부는 인터넷에 공개도 되어 있다. 내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정도이면 남도 이미 다 알고는 있더라.

페르시아의 왕자 2는 게임 스케일, 그래픽, 사운드 등 모든 면에서 전편보다 월등히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게임 역학을 넘어서 레벨 내지 게임 로직 차원의 황당한 버그도 여럿 있었다.
심증이 물증으로 굳어진 건, 중학교 시절에 친구 집에서 내가 해 본 것과는 뭔가 다르게 동작하는 페르시아의 왕자 2를 딱 하나 발견하고부터였다. 이건 아무래도 버그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온 것들이 다 고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건 ‘버그 패치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후로 본인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각종 고전 게임 자료실에서는 ‘버그 패치판’ 페르시아의 왕자 2를 결코 구하지 못했다.
오리지널과 버그 패치판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이제부터 스크린샷으로 보여주겠다.

1. level 6
동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하늘 나는 양탄자를 타면, 낡은 궁전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그런데, 궁전으로 들어가면 바로 다음 첫 화면에 다음 레벨로 들어가는 게이트가 “열려 있다!” 그래서 level 6은 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skip 가능하다. ㄲ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버그 패치판’은 이 버그가 고쳐져서 게이트가 닫힌 채로 게임이 시작된다.

2. level 10
낡은 궁전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말을 타면, 붉은 궁전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아래의 스크린샷은 level 10을 클리어하기 직전의 모습인데, 정석대로라면 굉장히 먼 길을 돌아서 이 방의 오른쪽에서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다. 오른쪽에 있는 철문이 보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지름길을 잘 선택하면, 이 방의 위에서 발판을 부숴 떨어뜨려서(그림에서 부서진 바닥이 있는 곳) 게이트를 개방한 뒤, 아래로 내려와서(그림에서 왕자가 있는 곳) 레벨을 굉장히 쉽게 클리어 가능하다.
‘버그 패치판’은 레벨이 바뀌어서 게이트 개방만 가능하고 게이트가 있는 쪽으로 저렇게 바로 내려가지는 못하게 바뀌었다.

3. level 12
정체를 알 수 없는 횃불검이 중간에 나오기도 하는 굉장히 길고 어려운 레벨이다. 그런데, 이 레벨에도 지름길이 있다. 지름길의 끝자락에 있는 어느 방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약이 있는데, 이 물약을 마시면 물병에서 갑자기 웬 난쟁이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얘는 화면 오른쪽 끝으로 걸어가면서 왕자가 통과할 수 없는 철문까지 통과하고(덩치가 워낙 작으니까), 그러면서 철문 너머에 있는 다음 단계 게이트를 “열어 준다.” 이걸로 게임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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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전편 페르시아의 왕자 1에는 level 8에서 공주가 보낸 생쥐가 철문을 열어 주는 것 같은 기믹을 보는 느낌이다. 저런 걸 왜 넣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버그 패치판’에는 이렇게 쉽게 level 12를 클리어하는 방법이 없어졌다. 아마 난쟁이의 진행 경로에 게이트를 여는 버튼 자체가 없어졌던 것 같다.

4. level 14
최종 보스인 Jaffar와 싸우는 레벨이다. Jaffar를 죽이기 위해서는 왕자의 자기 육신이 아니라 불을 먹은 영혼을 꺼내서 싸워야 한다. 마법사를 죽이겠답시고 그에게 맨몸으로 접근해서 칼을 뽑으면 그 순간 아래의 그림처럼 칼을 빼앗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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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칼만 빼앗기는 걸로 끝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명백한 버그임을 알 수 있다.
‘버그 패치판’에서는 저랬다가는 왕자는 칼을 빼앗긴 후 곧바로 Jaffar에게 끔살 당한다. 이게 원래 의도했던 시나리오일 것이다.

여기에 버그가 또 있으니 설명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왕자는 붉은 궁전 스테이지와 그 이후부터는 방향을 앞뒤로 트는 동작을 반복하면서(좌우 화살표 교대로) 자기 영혼을 꺼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HP를 8이나 잃는다. 그리고 Jaffar를 죽이는 에너지 장풍을 한 번 발사할 때마다 HP를 또 2 잃는다. 자기 생명력을 투자해서 적을 공격하는 셈이며, 기회는 사실상 한 번밖에 없다. 그러니 잘 쏴야 한다.

그런데 장풍이 빗나가서 Jaffar가 맞지 않은 채 HP가 2 이하가 되면, 왕자는 장풍을 쏠 수 없고 다시 시커멓게 된다. 영혼 주위로 퍼런 불꽃이 일 때는 Jaffar가 왕자를 피해 도망갔지만, 시커멀 때는 반대로 Jaffar가 왕자를 찾아와 죽인다. 쫓는 위치이다가 다시 쫓기는 신세로..

그래서 ‘버그 패치판’은 체력을 보충할 수 있게 저런 곳에 물약이 서너 군데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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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판은 그런 게 없다.

혹시 ‘버그 패치판’에 속하는 페르시아 왕자 2를 보유하고 계신 분은 본인에게 연락해 주기 바란다. 본인은 대학 진학 후에 한 번도 못 봤다.
그리고,

5. 랭킹
페르시아의 왕자 2의 Hall of Fame은.. 남은 시간이 오름차순으로 배열된다. 즉, 깨는 데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어 적은 시간을 남긴 사람이 상위에 오른다는 뜻이다! 이거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_-;;;

6. 내레이션
페르시아의 왕자 2는 게임 스토리를 설명하는 모든 대사에 음성 내레이션이 추가되었다. 사운드 카드 우왕ㅋ굳ㅋ
그런데 아래 대사의 음성 내레이션을 들어 본 분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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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게임 직후부터 60분 시간제한이 시작되는 것과는 달리, 2는 스토리 설정상 level 4에서 죽었을 때, 아니면 level 5에서부터 무조건 75분 시간제한이 시작된다.
스크린샷은 그 시간제한이 시작되기 직전에 잠깐 등장하는 컷씬의 한 장면인데...
Prince, your bride is dying.
(When the last leaf falls, all will be lost.)
Waste no more time. Come to me!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따 온 설정임이 분명하다. ㄲㄲ
내레이션이 나오지 않는 PC 스피커 모드일 때는 ( ) 안의 대사도 정상적으로 출력된다.
그러나 사운드카드로 내레이션을 들을 때는 ( ) 안의 대사는 내레이션 없이 0.n초간 떴다가 곧바로 다음 대사로 바뀐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게임 개발 당시에 저 대사에 대한 성우의 내레이션이 제품 출시일까지 준비가 안 됐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운드카드를 쓸 때는 내레이션이 없는 대사를 슬쩍 제껴 버린 것이다. -_-;;
‘버그 패치판’도 여전한지는 모르겠다. 페르시아의 왕자 2엔 이런 옥의티도 있었다. ^^

※ 기타 잡설

1. 게임 개발자뿐만이 아니라 방송인 내지 영화감독 기질이 다분한 조던 메크너는 게임에도 스토리, 기믹, 아기자기한 시스템을 아주 중요시하는 것 같다. 닥치고 쏘고 부수기만 하면 장땡인 타입이 아니다. 이 점에서 그는 존 카맥보다는 존 로메로 스타일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로메로 같은 먹튀 막장 인생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1에서 생쥐가 닫힌 철문을 열어 준다거나 영혼이 분리되고 합체되는 것, 그리고 2에서도 영혼이 불을 먹는 것... 거 참 메크너의 세계관은 어디에서 영향을 받은 건지 모르겠다.

2. 페르시아의 왕자 1은 퍼즐이 간단한 편이고 중간에 HP를 전혀 잃지 않고 엔딩을 보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2는 그렇지 않다. 전투 요소가 굉장히 강화되어 적과 싸우다가 HP를 잃기가 훨씬 더 쉬워졌을 뿐만 아니라, 특히 나중에 영혼을 꺼낼 때 어마어마한 양의 HP를 잃기 때문에, 3으로 시작하는 HP를 최대 한계치인 12까지 올리는 건 필수이다. 마지막 레벨에 도착하기 전에 차근차근 해 놔야 한다.
게임 중에는 두 층 낙하처럼 HP를 무조건 잃지 않으면 안 되는 곳도 있는데(다른 우회 경로도 없이!), 본인 생각에 이건 게임으로서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3. 1과는 달리 2는 레벨 안에 클리어로 가는 길이 여러 곳이 있는 경우가 있다. HP를 늘려 주는 물약을 먹기 위해서는 지름길이 아니라 먼 길을 돌아 가야 하기도 한다. 좋은 예가 첫 동굴 스테이지인 level 3인데, 가까운 길과 먼 길, 그리고 엄청 먼 길이 있다. 지름길은 HP를 늘릴 수 없으며 먼 길을 가면 HP를 1만 늘릴 수 있지만 엄청 먼 길은 힘든 대신 HP를 2개 늘릴 수 있다. level 3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또 결정적으로 아직 시간 제한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때 반드시 제일 먼 길로 가서 HP를 늘려 놓는 게 좋다.

4. 1과 2 모두 시간 제한 타임머신이 있어서 level 4까지는 그대로 skip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 남은 시간이 15분으로 급감하기 때문에 그 상태로 게임을 제대로 진행할 수는 없다.
1의 경우, 변태적인 타임 어택과 버그 exploit까지 이용하면, level 4 + 15분 상태로 게임을 시작하고도 엔딩을 볼 수가 있었다...;; ㄷㄷㄷㄷ;;;
그러나 2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 각종 버그들이 잡히기도 하고 레벨들도 월등하게 길고 복잡해졌으며, 또 1과는 달리 적을 싸우지 않고 회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5. 마지막 붉은 궁전 스테이지는 배경으로 횃불 대신 촛불을 볼 수 있는데 난 저것만 보면 이 음반이 생각난다. Derric Johnson의 크리스마스 아카펠라. Christmas in Velvet.
배경이 무척 비슷하지 않은가?
페르시아 왕자 2를 심상 면에서 아랍 문화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크리마스와 연결해 주는 매개채이다.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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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0/12/06 18:04 2010/12/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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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날 울린 슬픈 동화들

1.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2. 플랜더스의 개 (위다)
3. 성냥팔이 소녀 (안데르센)

19세기에 지어진 작품이고 주인공이 추운 겨울에 불쌍하게 죽는 걸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
세세한 스토리가 기억이 안 난다면 인터넷 검색해서 찾아보시고, 여기에는 각 작품별로 본인의 논평만 싣도록 하겠다.

1. 동상과 제비를 의인화했다는 점에서, 아래의 2와 3에 비해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하다. 2와 3이 지지리도 불우한 주인공의 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1은 주인공 주변에 온통 불쌍하고 못 사는 서민들이 있다. 왕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대인배. 오오~~
참고로, 진짜로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시는 것이(제비의 시체나 왕자 심장보다도!) 뭔지 알고 싶으면 성경을 찾아보시라. 단적인 예로, 구원받은 성도의 죽음--자연사든, 순교든--이 주님의 눈앞에서 귀중하다고 나와 있다. (시 116:15)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고생만 잔뜩 한 제비가 죽는 게 어렸을 때 무진장 슬펐다.;;

2. 1과 3에 비해서 분량이 길고 스토리 전개가 가장 현실적이며 소설 같은 면모를 갖추고 있다.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화가를 꿈꾸던 어느 착한 남자애가 여차여차 한 끝에 결국은 아래의 성냥팔이 소녀처럼 추운 집밖에서(정확히는 성당 벽화 아래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얘기. 충견 파트라슈가 추가되어 애절함을 더한다.

뒤늦게 부잣집 딸과 결혼시켜 주겠다, 그림이 아주 우수한 작품이었다는 식으로 좋은 소식이 주인공에게 도착하지만 이미 사후약방문이다. 마치 시대를 너무 앞섰던 천재 수학자 아벨이 결핵과 영양실조로 죽어 버린 후, 이틀 뒤에 베를린 대학 교수 임용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듯이 말이다.
정작 이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된 벨기에의 그 지방 사람들은 “우리 주민들은 불우이웃에게 그렇게도 매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아냐!”하면서 소설 내용에 대해서 반발한다고... 하더라.

3. 그다지 교훈이나 감동적인 메시지보다는, 그냥 ‘여자애 너무 불쌍해. 지못미 안습’이라는 생각만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스토리였다. 너무 가혹하다. 소녀의 이름도 안 나오고 정확한 가정 배경--알코올 중독자에 아동 학대를 저지르는 아버지 말고는 그닥;;--도 안 나오는 게 어린 시절 본인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_=;;
설정상 사건이 일어난 날짜는 섣달 그믐날, 즉 12월 31일이고 죽은 소녀가 발견된 이튿날이 New Year이라고 되어 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성탄절로 자꾸 혼동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소녀가 눈 내리는 길거리를 걷다가 마차에 치여 넘어지는 바람에 신발이 벗겨진다. 그런데 그 신발을 누가 갖고 튄다. 그래서 소녀는 맨발 신세로 전락...;;; 야, 이 정도면 가혹을 넘어 가학적인 설정이 아닌지? ㅎㄷㄷㄷ;;;;

잘 알다시피 중간에 판타지적인 장면이 있긴 하지만, 뭐 1과 같은 수준은 아니다.
성냥불 그어서 소녀가 새마을호 특실과 Looking for you 환상이라도 봤다면 행복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열차야~ 날 떠나지 말아 다오~~~”

흔히 저주의 의미로 ‘얼어 죽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얼어 죽는 건 굶어 죽는 것만큼이나 정말 비참하게 죽는 것이다. 추위에 이빨을 부딪치며 제대로 와들와들 떨어 본 적이 있다면 그런 말 함부로 못 한다.
성인도 아니고 10대 소년 소녀가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겨울에 밖에서 객사하는 이야기... 정말 충격적이었다. 초딩 시절에 페르시아 왕자를 하다가, 왕자가 쇠꼬챙이에 찔리고 쇠톱날에 두 동강 나 죽는 걸 본 것만큼이나 말이다. =_=;;;

요즘이야 우리나라에 문자적으로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상대적인 빈곤과 박탈감이 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앞으로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지난 8월엔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를 하던 어느 고졸 여성이 처지를 비관하여 한강 다리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기억하시는가? 성장 배경 한번 정말 기구하더라. (대학도 못 갔음. 알바는 학비가 아니라 생활비를 벌려고 한 것이다.) 20살도 안 된 여자애가 극심한 빈곤에 이대로는 백날 이 처지 못 벗어날 거라고 염증을 느꼈을 것이며, 또 맨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즐겁게 노는 가족이나 커플들을 보면서 더욱 박탈감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상실했을 것이니 참 마음이 아프다. 이 세상엔 자기 생일이라든가 크리스마스 같은 날을 증오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난 문학소년 체질이 전혀 아니며 “문학이란 모름지기 단순해야 한다”주의여서, 그냥 무조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권선징악 해피엔딩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딱 그런 스타일인 성경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문학에 비극이라는 장르가 등장한 이유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죄 때문임이 틀림없다.
가령, 세속 문학가가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 같은 사건을 각색했다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아벨을 장렬하고 비극적으로 묘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벨이 죽었어도 믿음으로 지금도 살아서 말하고 있다고 진술한다. (히 11:4) 관점이 다른 것이다.

이 사회 구조가 잘못되어 있는 근본 원인이 사람들의 영적 상태와 관련이 있으며, 진짜 인생 역전의 길은 따로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할 텐데! 연말이 다가오니 추운 겨울 밤에 문득 저런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1/26 18:12 2010/11/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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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이야기

올해도 수능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이제 날짜가 얼마 안 남았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던 시절에 수능날은, 관공서 출근 시각이 늦춰진 데다 지하철 역시 굉장히 증차된 덕분에 본인 같은 사람에게도 출근하기는 좋았다.
2006년도 수능이 2005년 11월에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 회의 때문에 좀 늦춰졌듯이, 올해의 수능 일정은 G20 정상 회의의 영향을 좀 받았다.

외국 사람들이 보기엔 수능날 아침은 "전쟁이라도 났나? 무슨 계엄령이라도 떨어졌나?" 싶은 흥미진진한 광경으로 비쳐진다더라.
하긴, 우리나라의 수능이 과거의 학력고사보다 더 다이나믹한 시험을 만들어 보려고 미국의 SAT 시험을 벤치마킹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능과 SAT는 시스템이라든가 위상이 상당히 다른 면모도 적지 않다. 근본적으로 SAT는 전적으로 사설 기관이 주관하며 1년에 무려 8회에 가깝게 자주 칠 수 있고 문제은행 방식이다. 한국의 수능은 그렇지 않다.

1. 수능 문제가 출제되기까지

수능을 치르는 학생뿐만 아니라 수능 출제 위원들도 이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출제 기간 동안 지방 모처에서 감금· 고립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신문 기사들 검색을 해 보면 강원도 속초의 모 콘도라고까지는 나오는 걸 본 기억이 있다.
그들은 보안 유지를 위해 일체의 통신 장비를 쓸 수 없고 인터넷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구글링을 하면서 문제 출제를 할 수 없다는 것부터가 상당한 고역일 것이다.

그 대신 수백· 수천 권에 달하는 문헌, 문제집, 참고서를 들고 들어가서 거대한 프로젝트 룸에서 출제 작업을 한다. 조판은 여전히 아래아한글로 하는 것 같다. 최근까지도 문제지 문서 파일이 죄다 HWP 포맷.

출제 기간 중에 심지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보안 요원의 동행하에 빈소에 가서 간단히 예만 올리고 곧바로 돌아와야 한다. (상주 노릇 못 한다는 소리)
수능 시험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이 '수능 콘도'에서는 음식 쓰레기 하나도 외부로 반출하지 않는다.

문제를 출제하는 도중에야 바빠 죽겠으니 그나마 나은데 출제를 마치고 문제지를 인쇄하고 테입 제작에 들어간 뒤부터는... 이 사람들은 수능 끝날 때까지 그냥 아무 하는 일 없이, 콘도에 갇힌 채 놀아야 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폐인 모드가 되기 시작한다.
이거 뭐 무슨 말년 병장도 아니고.. 심심해 죽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고 한다. "골프-_- 치고 싶다. 놀러 가게 해 달라, 술 마시게 해 달라.." 물론 그렇게 해 주지 않는다.

(본인이야 노트북에 비주얼 C++만 깔려 있으면 인터넷 없이도 할 게 많은 타입이다만. =_=
내가 만약 출제 위원이라면 얼씨구나 열심히 코딩하거나, 운동만 하다 나올 듯. ^^)

본인이 아는 어느 목사님은 수능이던가 아니면 이렇게 비슷하게 감금 생활을 하는 국가 고시 출제 위원을 한 경력이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출제가 끝나고 시험이 끝날 때까지.. "할 일 없이 허송세월하느니 우리 같이 성경 공부나 합시다. 로마서 강해를 진행하겠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n시에 콘도 xxxx호로 오십시오" 써 붙여 놓고 동료 위원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는 무용담이 전해져 온다. 역시 직업 정신 ^^

수능 출제 위원들의 감금 생활 하루 일당은 얼추 30만원대 꼴이라 한다. (출제 끝나고 노는 기간까지 포함해서) 한 달 남짓 감금 당해서 1000 가까이 버는 거라면 액수 자체만으로는 분명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감, 책임감에 비한다면 좀더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게다가 출제 위원들은 베테랑 현직 교사 아니면 해당 전공 분야의 박사급 전문가들로, 얼마나 고학력 고급 인력인가? 그런 사람들 눈에 수능 출제는 3D 기피 업종처럼 비쳐질 만도 하다. 실제로 출제 위원 위촉은 점차 어려워지는 실정이라고 한다.

2. 기타 & 본인의 잡설

출제 위원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를 경험한 2, 30대라면 수능이라는 게 1994년에 처음 시행되었다는 건 다들 아실 테고, 그때는 수능을 8월과 11월 이렇게 두 번 쳤다. 원큐에 수험생의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는 게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인 조치였으나, 번거롭고 또 두 시험의 난이도 조절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결국은 한 번만 치는 걸로 바뀐다. 하지만 2014년부터인가 다시 두 번 체계로 회귀하려는 듯.

200점 만점에서 400점 만점 체계로 바뀐 1997년도 수능이 역대 극악의 난이도여서 전국 수석이 373점이고 310점만 넘으면 서울대를 그냥 합격할 정도였다고 한다. -_-;; 참고로 역대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도 1997년도 대회가 문제가 다들 휴리스틱 위주에 난이도가 극악이었다.

그러다 본인보다 두 학년 위인 1999년도와 이듬해의 2000년도 수능에서는 만점자가 기묘하게도 각각 한 명씩 등장했으며,한 학년 위인 2000년도 수능에서 최초로 만점자가 등장했으며(아마 모 과학고의 오 모 씨. 여학생), 본인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어느 천재 선배 누님은 2000년도 수능에서 394점인가를 받아서 나름 경북 수석을 차지했다. 언어 영역에서 꽤 독창적인 문제가 많이 나오고 어려웠다고 회자된 그 수능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수능의 난이도 자체가 꽤 하락해 있었기 때문에 390점대의 점수로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같은 상위권 학과는 떨어지기도 했다.

본인의 학년에 해당하는 2001년도 수능에는 최초로 제2 외국어가 추가되었는데.. 만점자가 60명이 넘게 배출된, 유례가 없는 물수능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특히 지난해와는 반대로 언어 영역이 물이었고, 이는 수학· 과학에 비해 언어 영역이 약한 편인 이공계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아까 그 누님은 1년 전에 그 점수로 당연히 서울대에 간 반면, 이 수능에서 그 점수를 받은 본인의 고등학교 모 동기는 서울대 공대에 떨어졌다. -_-;;;

그러던 수능이 이듬해는 다시 불수능으로 돌변. 교육 과정 평가원은 널뛰기 난이도라고 가루가 되도록 욕 얻어먹게 된다. "앞부분에서 벌써 이런 문제가 나올 리가 없는데" "이건 평상시에 보던 문제가 아닌데" 이 해찬 세대가 겪은 충격과 공포이다. ㄲㄲㄲㄲㄲ
1교시 언어 영역만 마치고서는 시험 포기하고 자-_-살하는 수험생이 뉴스에 보도되고, 성적 비관 자살자가 전국적으로 61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여 당시 김 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였다. 흉기 안 휘두르고 사람 죽이는 방법. ㄲㄲㄲㄲ

이후 수능부터는 과거의 시행 착오를 토대로 나름 난이도 조절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은 듯하다. 중간에 원점수 표기를 없애고 등급제를 만든다고 생쇼를 했던 것 같은데.. 무슨 짓을 하더라도 조삼모사 조치에 불과하다. 대학 수 팍 줄이고, 고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 종사자는 대학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지 않는 이상,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리가 있겠는가?

요즘 수능은 본인 시절보다 과목이 더욱 세분화하고 또 하도 많이 달라져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제는 알 필요도 없지만. 참고로 결정적으로 본인은 수능 안 쳤다. -_-;; 나도 수험표까지 다 만들어 놨지만 나중에 칠 필요가 없어졌으니 결시한 것이다.
수능 전날, 고3을 대상으로는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했고 오후엔 시험장 예비 소집에 단체로 참석했다. 그리고 그 날 전교생은 밤 10시 반에 취침 소등했으며(평상시엔 자정에 취침), 다음날 점호도 당연히 없었다.

아울러 우연인지 필연인지, 본인 학년에 해당하는 2001년도 수능이 치러진 2000년 11월 15일은, 비둘기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날이기도 했다. 전날인 2000년 11월 14일에 우리나라의 마지막 비둘기호 노선이던 정선선 열차가 고별 운행을 했고, 이튿날에 퇴역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1/13 08:21 2010/11/1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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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공항 이야기 외

본인이 철거민, 토지 보상, 알박기 같은 사회 이슈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하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벌어졌던 용산 참사였다.
이 사건에 대해서 본인은 철거민만 무조건 동정하지 않으며, 공권력만 일방적으로 비난하지도 않는다.
듣기로는 진짜 집 주인은 보상을 받고서 이미 옛날에 집을 비웠다고 한다. 문제가 된 건 거기에 세들어 살던 사람들.
그들이 자기 보금자리에 대해서 합법적으로 철거를 반대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처지는 딱하지만 "지금까지 살게 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을 사람인지 본인이 여기서 단정적으로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다.

'알박기'라는 단어가 있다. 어디 개발한다, 건물을 짓는다는 말만 있으면 거길 비집고 가서 콘크리트 가건물을 짓고 눌러 산다. 그러다 나중에 자기 집이 철거된다고 하면 으르릉 워리어로 돌변, 배 째라고 드러눕는다. 그러면서 토지 보상 명목으로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요구한다.
심지어 교회 예배당조차도 그런 식으로 무허가 건물로 만들어 놓고는, 우격다짐을 한 끝에 토지 보상비까지 버젓이 타내는 경우가 있었다. 처벌을 받아도 시원찮은데 오히려 보상금을 받았다. 합법적으로 임대료 꼬박꼬박 내면서 건물에 입주해 있는 교회가 보면 까무러칠 일이다.

저런 식의 이기적인 알박기 때문에 대규모 국책 사업이 차질을 빚기도 하며,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 문제의 희생양이 된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는 바로 일본의 나리타 국제 공항이다.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도쿄의 하늘 관문이던 기존 하네다 국제 공항의 공간이 부족해지자, 더 외곽에 더 대규모 공항을 만든 것이다. 그 계획을 수립한 게 이미 1966년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그때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그나마 토지 보상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건설 예정 부지 일대에는, 골수 전투종족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집, 내 농토 뺏기기 싫다고 농민들은 물론이고 당시 악명을 떨치던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합세하여 공항 건설을 극렬 반대하고 방해했다. 환경 때문도 아니고 오로지 저 이유 때문에. 이 정도면 정말 우리나라의 극렬 좌익 데모꾼을 능가하는 수준인 듯. 이 친구들이 얼마나 악랄했냐 하면,

- 1972년 완공 예정이던 공항의 개항일을 무려 6년이나 늦췄다. (1978년으로)
- 건설 과정에서 경찰도 죽고 시위대도 죽을 정도로,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가는 전쟁 수준의 데모를 벌였다.
- 게다가 그나마 개항일을 얼마 앞두고 시위대가 관제탑에 무단 침입하는 데 성공, 공항 시설을 파괴하는 바람에 개항을 더욱 지연시켰다.
-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활주로 부지에다 알박기' 대응으로 일관했으며, 사건을 수습하러 온 토지 보상 위원회장에게도 테러를 가했다.

그들의 안티질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덜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데모꾼의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나리타 공항 이용객은 탑승 구역이 아니라 청사 입구로 들어갈 때부터 소지품 검사와 신원 확인을 받아야 한다. 휴전국인 한국에도 얼마 없는 경비원들이 이 공항에는 무진장 깔려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나리타 공항은 전투종족의 방해 공작 덕분에 처음에 의도되었던 규모로 지어지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긴 활주로를 충분히 못 만들고, 그 큰 공항이 개항 후 무려 24년을 단일 활주로로 버텨야 했다...;;;
어느 4km짜리 활주로는 2km 남짓한 길이로 두 동강이 나고, 어느 직선 유도로는 논밭이나 민가를 피해서 '커브'가 생기는 바람에 뚱뚱한 대형 항공기가 드나들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S자 같은 활주로, 오징어 같은 활주로, 만들다가 후회한 활주로.."

나리타 공항의 위성 사진을 보면 그 안습한 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비행기가 드나드는 길목으로 에워싸인 집, 비행기 활주로를 둘로 쪼개고 커브를 만든 밭;;; 아, 그렇게도 공항 지어지는 게 싫었는지?? -_-;;;;; 테란 기지가 저그 크립 때문에 거지같이 지어진 모습이다.

나리타 공항은 태생적인 ㅂㅅ이 되면서 일본 정부가 처음에 기대했던 정시성과 물류 경쟁력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게 지금은 나라도 포기한 공항이 되어서 오히려 하네다 공항을 다시 허브 공항으로 육성하는 분위기이다. 지역 이기주의가 나라 말아먹은 좋은 사례이며, 덕분에 인천 공항이 반사 이익을 톡톡이 챙기게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잘 알다시피 인천 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를 메워서 거대한 섬으로 연결한 부지에다 건설되었다.

이 공항을 지으면서 대차게 데인 일본 정부는 토지 보상 문제란 말만 나오면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었고, 후대의 공항은 아예 인공섬을 만들어서 짓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오사카의 칸사이 국제 공항. 정말로 피똥 싸는 건설비를 쏟아부어서 바다 위에다 없던 섬을 만들어 건설했다. 하지만 후유증이 너무 큰 관계로 이 공항은 공항 이용료가 굉장히 비싸, 승객과 입주 항공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그 반면 2002년인가 03년 이래로 공항 이용료를 동결해 온 인천 공항 만세~~)

그랬는데,
그렇게도 실적 좋은 인천 공항을 우리나라 정부가 매각한다는 얘기는 왜 나돌고 있는지? -_-;;

Posted by 사무엘

2010/11/10 08:28 2010/11/1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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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전산학과의 한 태숙 교수. (본인은 수업 들은 적 있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숙'이라는 글자 때문에 좀 여자 이름 같다. ㄲㄲㄲㄲㄲㄲ 실제로 동명이인인 연극 연출가 한 태숙 씨는 여자이다.
쉰을 넘어 환갑을 바라보는 분이지만, 그래도 인상이 좀 장난기 있고 앳돼(?) 보이지 않은지?

이분은 대학 교수란 바로 이런 사람을 위한 직업이라는 걸 입증-_-하는 산 증인이신 분이다.
학창 시절에 1등· 수석이라는 타이틀을 한 번도 놓쳐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1972년에 경기고 수석 졸업. 학력고사도 그 해의 전국 수석이었다. 당시 신문에도 났다.
당연히 서울대에 수석 입학했고 전자공학과를 1976년에 수석 졸업.
자기가 스스로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이야 없다 치지만, 이분은 자타가 공인하는 타고난 공부 벌레, 공부 기계 덕후였음은 사실이다.

뭐, 대학원부터는 그런 서열화된 시험 점수라는 게 큰 의미는 없다만, 이분은 카이스트에서 석사를 마치고, ETRI에서 몇 년 연구원으로 지내다 1985년에 도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30대 후반의 나이로 카이스트 교수에 부임한다.
요즘은 보통 반대로 카이스트 나오고도 대학원을 서울대로 가려는 경향이 크지만, 그때 저분이 반대의 진로를 택한 것은 당시 카이스트의 큰 매력 중 하나이던 병역특례 때문이었다고 한다.

본인은 언젠가, 역대 학력고사 전국 수석자들의 이후 행보에 대해서 보도한 가십성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사람들 죄다 변호사, 검사, 판사가 돼 있었다. ㅠ.ㅠ
그때가 그랬는데 하물며 그때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훨씬 더 심해진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의 저자로 한때 히트 친 장 승수 씨도 서울대 졸업 후 나중엔 사법고시 패스하고 지금은 어엿한 변호사가 돼 있다.

이렇듯, 그 당시 학력고사 수석은 곧 서울대 법대 행 티켓을 의미했다.
그런데 1972년도 수석에 어? 본인이 아는 카이스트 교수님의 이름이 있었고 이분은 이례적으로 다른 수석자들과는 달리, 그 머리로 우리나라 이공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을 가신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공부를 어떻게 하고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학교 교과서 내용을 다 머리에 집어넣고 수능 만점· 학력고사 수석을 차지할 수 있을까? ㅠ.ㅠ

나는 제도권 교육이 요구하는 인재상과는 너무 넘사벽으로 다른 길-_-;;을 걸어 왔다. 학교 공부가 싫은 건 아니었는데, 그것보다 컴덕질이 훨씬 더 끌려서 주체할 수 없었다.
학생을 공부라는 산소를 흡수하는 헤모글로빈에다 비유한다면, 컴덕질은 일산화탄소 같은 존재;; ㄲㄲㄲㄲㄲㄲ
그런데 그 컴덕질이라는 것도 남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듯 정올 문제를 쓱쓱 다 풀어 낸다거나 바이러스라도 만든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아 뭐라 말하기가 좀 그렇다.

난 학부 졸업할 때까지 오로지 내 동굴 안에서 인생을 너무 좁게 살았다. 그렇게 해서 완전 나만의 경지를 구축한 것도 있었고, 그 대신 잃은 것도 적지 않았다. 대학원에서는 교수님들과 교류도 많이 하고(어차피 대학원에서는 교류 안 할 수가 없음..-_-) 좀더 폭넓게 학교 생활을 하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0/11/04 16:56 2010/11/0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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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서 남표 총장의 프로필을 읽던 중..
도대체 그의 부친이 어떤 분이기에 무려 1954년에 하버드대 교수였고,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미국 유학을 갔는지가 당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친 중의 한 명이 미국인이라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몰라 ㄲㄲㄲㄲㄲㄲ 이것도 자료를 찾아봤다.

서 남표의 아버지는 서 두수 박사. 그는 경성 제대와 연희 학교 시절부터 국문과 교수이다가 1949년에 국비 장학생 명목으로 도미하여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한국어학/한국학과를 개척한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말 충격과 공포이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아버지는 골수 인문계이고 아들은 골수 이공계;;
특히 아버지는 국문과 교수도 이렇게 글로벌하게 놀 수 있다는 첫 사례를 남겼음이 틀림없다.

아울러, 미국에서 맨손으로 성공하여 대학 교수에다 동양인 최초의 워싱턴 주 상원 의원까지 역임한 그 유명한 신 호범 의원이... 서 두수 박사에게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그분은 나의 은사라고 회고했다. 이때 서 박사는 하버드가 아니라 워싱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햐.. 인연이 또 그렇게 이어지는구나. 기가 막힌다.
게다가 워싱턴과 하버드는 이 승만 박사가 학사와 석사 코스를 거친 학교이기도 하다. (박사는 프린스턴에서;;)

본인은 2008년에 관광차 미국 갔을 때, 신 호범 의원의 간증 집회에 따라가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때는 호칭도 장로였다.
그런데 그때는 죄송하지만 저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지 잘 몰랐다.. ㄷㄷㄷ;;
짤방 덧붙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끝으로, 지금 서 남표 총장에게는 딸만 넷이라고 한다. 그 중 둘째딸은 역시 교수가 되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1 08:32 2010/10/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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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brice Bellard (프랑스) 1972년생
http://bellard.org/
홈페이지를 보면, 주인장은 수학과 전산학, 전자 공학의 완전 덕후임을 알 수 있다.
파이 계산, 컴파일러, 게다가 IOCCC(국제 난잡한 C 코드 경연대회) 입상 경력.
관심 분야가 이쪽과 상당히 비슷한, 본인의 모 지인이 떠오른다. (누굴까? ㅋㅋㅋ)
이 사람은 1990년대 도스용 실행 파일 압축 프로그램인 lzexe의 개발자이기도 하다.
겨우 고등학생 나이 때 8086 어셈블러로 직접 짰다고 한다. 흠좀무...;;;;;;
그 당시, V3로 바이러스 검사를 해 보면, 압축된 실행 파일은 검사가 되지 않고 압축부터 풀어야 한다는 경고문이 떴다. lzexe와 더불어 pklite도 실행 파일 압축 프로그램이었다.

※ David Fotland (미국) 1957년생
http://www.smart-games.com/
The Many Faces of Go라는 바둑 게임의 개발자이며, 회사까지 차려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둑 AI를 열심히 밀고 있는 게임 인공지능 전문가이다. (도스, 윈도우, 모바일 기기) 그 프로그램을 혼자서 다 만들었다니.. 대단하다.
생각보다 나이가 지긋한 분이다.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에 거주 중.

※ Jean-loup Gailly (프랑스)
http://gailly.net/
gzip의 개발자이며, 데이터 압축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유명하다. 아래아한글도 2.1 시절부터 이 사람이 개발한 알고리즘을 라이선스하여 hwp 파일 내부 압축을 구현하고 있다. 현재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살고 있으며, 구글에 입사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분인데 정확한 생년은 모르겠다.
이 사람도 바둑 매니아이다. 개인 홈페이지를 보면 바로 위의 the Many Faces of Go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응당 논평을 해 놓았다. AI가 세계 최강급은 아니지만 초보자를 위한 인터페이스가 무척 잘 돼 있다나?

※ Ken Silverman (미국) 1975년생
http://advsys.net/ken/
듀크 뉴켐 3D의 기술 기반인 빌드(Build라는 단어 자체가 고유명사) 엔진을 개발한 게임 프로그래머.
뼛속까지 프로그래머 근성이 철철 흐르는 한편으로 과학, 스포츠, 음악 등등 온갖 분야에 해박한 엄친아라는 게 느껴진다. 빌드 엔진 역시 학창 시절의 작품이다.
지금까지도 딱히 정식으로 소속된 직장이 없이,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만 일하는 모양이다.

※ Shawn Hargreaves (영· 미 이중 국적) 1975년생
http://www.talula.demon.co.uk/
Ken과 동갑이고 비슷한 업종에 종사 중인 게임 개발자이다.
도스 시절, 32비트 C/C++ 컴파일러로 왓콤과 맞장을 떴던 GNU 계열의 DJGPP를 기억하시는가? DJGPP용으로 소스까지 공개이던 걸출한 게임 그래픽 라이브러리 알레그로를 만든 사람이 이 사람이다.
음악에 특별히 조예가 아주 깊은 매니아이다. 지금은 쟝 아저씨의 구글 입사와 비슷한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해서 XNA 기반 게임 개발에 푹~ 잠겨 있는 듯.

말이 나왔으니 또 덧붙이자면.
본인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스크래블 게임을 컴퓨터용으로 개발했다.
국내에 그런 프로그램이 개발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응당 외국의 동급 프로그램들을 여럿 구해다가 벤치마킹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 게임의 개발자 중에도 졸라 프로그래밍 고수가 많았다.

※ Jim Homan (1950년대생)
미국 출신. CrossWise라는 걸출한 게임을 혼자 만든 사람으로, 컴퓨터 AI가 굉장히 뛰어나고 프로그램 UI도 매우 프로페셔널하게 잘 만들어졌다. 윈도우 3.1용으로는 보기 드물게 비주얼 C++ 1.x + MFC로 개발되었다.
이 사람은 옛날에는 자기 회사를 차려 사업을 했기 때문에 회사 홈페이지 아래에 얹힌 개인 홈페이지에 개인 프로필도 나와 있었다. MIT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고 성적도 엄청 좋았고, 접해 본 플랫폼과 관심 분야 등등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는데, 지금은 이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곳이 없다.

※ Graham Wheeler (1960년대생으로 추정)
http://www.linkedin.com/in/grahamwheeler
WordsWorth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개발자는 완전 수학 덕후로, 학부에서 수학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컴퓨터 과학으로 박사와 박사 후 연구원까지 마친 브레인이다. 국적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케이프타운 대학을 나왔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 프로필과 블로그를 보면 역시 뼛속까지 엔지니어를 넘어 골수 컴퓨터 과학자이다.

한 줄 요약: 세상은 넓고 덕후들, 고수들은 무진장 많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20 09:03 2010/08/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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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말: 스크롤의 압박이 심한 글임을 밝힌다.

본인은 일명 2D 플랫폼 게임이라고 불리는 아케이드 장르로 PC 게임에 첫 입문한 사람이다. 여기서 플랫폼이란, 어떤 소프트웨어가 돌아가는 운영체제 내지 하드웨어 기반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게임 세계 내부가 주인공이 돌아다니고 점프하는 발판(platform)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요즘은 3D 트렌드 때문에 이런 2D 플랫폼 게임은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본인은 롤플레잉이나 전략 시뮬 같은 다른 장르의 게임들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삼국지나 대항해시대,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것들.
그런 여타 장르 게임 중에서는 스타만... 얘는 워낙 너무 히트 치고 유명했으니까 예외적으로 했을 뿐, 전략 시뮬/RPG 전문인 블리자드의 다른 명작 게임은 접하지 않았다. 뿌리가 거기에 있는 요즘 온라인 MMORPG도 본인은 흥미가 안 가서 안 하고 지낸다.

컴퓨터 학원에서 GWBASIC을 배우던 시절, 수업을 마치고 모노크롬 모니터로 게임을 즐겼다. 게임은 2D 플로피디스크에 담겨 있었고, 그때는 실행 파일이라는 개념도 몰라서 '암호'(?)라고 불렀다. 그 반면, 모노크롬 CGA/허큘리스로 하던 게임이 286 AT VGA 환경에서 실행되니까 완전히 딴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학원에서 불법 복제하던 게임은 용량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EGA/VGA 그래픽 파일은 빠진 녀석이 많아서, 집의 컬러 모니터 컴퓨터에서도 겨우 4색짜리 CGA 그래픽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음은 그때 즐겼던 게임들을 특성별로 조목조목 분석한 것이다.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그냥 게임을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보니까 그래도 영어로 흘러나오는 게임 스토리들이 해석이 되는 건 좋다. ^^;;

※ 릭의 위험한 모험 2 (Rick Dangerous 2)

제작사: 영국의 코어 디자인(Core Design). 훗날 툼 레이더를 만들어 낸 회사이다!
스크롤 단위: 가로로는 화면(페이지) 단위, 세로로는 픽셀(줄) 단위인 독특한 체계
게임 목표: 던전에 존재하는 모든 트랩 퍼즐들을 통과하여, 던전을 살아서 빠져나갈 것. 그리고 마지막 레벨에서는 최종 보스를 죽일 것.

주인공의 무기: range attack이 가능한 총(총알 최대 6발)과 폭약 6발을 쓸 수 있음. 한 총알이 날아가고 있는 동안엔 총을 또 쓸 수 없다.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엎드려 가기, 그리고 주먹으로 버튼을 누르는 동작이 있음. 점프는 자기 키의 3배 정도로 가능함.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음.
주인공의 체력: 체력이라는 게 없고 오로지 즉사만 있음. 트랩 하나에라도 잘못 걸리면...;; -_-;;
죽으면: 마지막으로 가로로 이동한 화면에서 다시 시작하며, 모든 게 원상복귀됨. (죽였던 몬스터나 바꿔 놓은 게임 지형 등이 다 reset) 목숨 한계는 6.
점수: 적을 죽이거나 점수 아이템을 먹거나 특정 지점을 통과했을 때 점수가 올라간다. 하지만 높은 점수가 게임 진행에 뭔가 이익을 주는 것은 없다.

시체: 뻥~ 점프를 하면서 화면 밖으로 튕겨나간다.
비고:: 몬스터 역시 주인공을 죽게 하는 다른 트랩(미사일, 전깃줄 등등..)에 빠지면 죽는다. 사실, 몬스터를 이렇게 죽였을 때 점수가 더 높게 올라간다.

총평: 오로지 순발력으로 트랩 피하는 퍼즐만으로 가득한 게임. 정말 어렵다. 조금이라도 타이밍 늦어서 죽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게임이 무슨 108계단 40컴보도 아니고 자비심이 없다. 5개의 레벨 중 본인은 어렸을 때 첫 1~3개의 레벨까지는 깼는데, 레벨 4 중후반부터는 gg 쳤고, 최종 보스가 있는 레벨 5는 구경도 못 했다. 주기적으로 주인공을 노리는 트랩들의 출현 패턴을 파악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거기에다 미묘한 컨트롤과 순발력도 따라 줘야 하고...;; 고수가 하는 플레이 동영상을 유튜브로 보니, 지금 생각해 봐도 내겐 무리이다.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오른쪽으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는데 그 장애물이 내가 있는 왼쪽으로 날아온다거나... 순 어거지 같은 트랩도 있다. 순전히 주인공 죽이는 게 목적인 데모노포비아-_- 같은 게임도 아니고 말이야..;; 이런 건 유저 인터페이스 면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 위험한 데이브 (Dangerous Dave)

제작자: 훗날 ID 소프트웨어로 간 존 로메로(John Romero)
스크롤 단위: 가로로는 화면(페이지) 단위, 세로 스크롤이 없음. 밑으로 떨어지면 다시 화면 위로 닿는 특이한 설정
게임 목표: 던전에 존재하는 트로피를 반드시 먹은 후, 각종 트랩을 피해서 던전을 빠져나갈 것. 최종 보스 같은 건 없음.

주인공의 무기: 총이 존재하는 레벨에서 총을 먹으면 총을 쏠 수 있으나, 한 총알이 날아가고 있는 동안에는 총을 또 쏠 수 없다.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점프만 있으며, 자기 키의 3배 정도로 가능함. 제트팩을 쓰면, 공중에서 떨어지지 않고 원하는 곳으로 자유자재로 이동 가능.
주인공의 체력: 역시 체력이라는 게 없고 즉사만 있음. 불이나 물 등에 빠지면 죽고 적의 총알에 맞아도 죽는다. 하지만 몬스터와 부딪치면, 여느 게임과는 달리 나만 죽는 게 아니라 그놈도 같이 죽는 '자폭'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죽으면: 해당 레벨의 시작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예전의 게임 상태는 그대로 유지됨. 기본 목숨 한계는 3.
점수: 보석을 먹거나 몬스터를 죽이면 올라간다. 점수가 2만 점의 배수가 될 때마다 목숨이 하나씩 생긴다.

시체: 펑~ 폭발한다.

총평: 10개의 레벨이 존재하는데 레벨이 올라갈수록 점진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진다. 게임 엔진 자체는 너무나 단순하기 그지없고 던전 모습도 허접하다. (스프라이트도 검은색 배경에다가 무려 xor 연산으로 그리는지, 두 스프라이트가 겹치면 겹치는 부분의 색깔이 변한다!) 하지만 그 작은 규모 치고는 적당하게 어렵고 퍼즐을 풀어 나가는 재미는 있다. 몬스터 외에 딱히 움직이는 트랩은 없다는 게 특징.
총을 먹어야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데, 날아다니는 몬스터를 피해서 먼저 총을 먹으러 가야 하는 게 어려웠다.

※ 보글보글 (Bubble Bobble) -- 제목이 좀 교묘하게 의역됨

제작사: 일본 Taito
스크롤 단위: 한 레벨은 오로지 한 화면에서만 이뤄지고 게임 도중 스크롤이란 게 없다!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게 세로로 방 단위 스크롤임.
게임 목표: 각 레벨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모두 죽일 것. 최종 보스 있음.

주인공의 무기: 거품을 쏜다. 거품으로 적을 가둬서 터뜨리면 된다. 다만, 일부 레벨에서는 번갯불이나 불십자가 같은 더 강력한 무기 아이템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점프만 있으며, 자기 키의 3배 정도로 가능함.
주인공의 체력: 즉사만 있음. 몬스터와 몸이 닿거나 몬스터의 발사체에 맞으면 무조건 죽는다.
죽으면: 해당 레벨의 시작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며, 게임 상태는 그대로 유지됨. 기본 목숨 한계는 4인데, Credits라는 개념이 있어서 Credit를 사용하면 해당 레벨의 초기 상태에서부터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
점수: 몬스터가 죽으면서 남긴 각종 과일들을 먹었을 때, 그리고 심지어 거품을 터뜨려도 올라간다. 점수가 5만 점의 배수가 될 때마다 목숨이 하나씩 생긴다.

시체: 몬스터가 죽으면 화면을 날아다니다가 각종 과일이나 아이템으로 변하고, 주인공이 죽으면 데굴데굴 구르다가 사라진다.
비고:: 2인용이 가능하다.

총평: 뭔가 랜덤한 요소가 엄청 많은 게임. 캐릭터가 아기자기하고 예쁜 캐주얼 컨셉이긴 한데, 역시 어렵다. ㅠ.ㅠ 레벨마다 시간 제한이 있어서 게이머를 압박하며, 특히 몇몇 레벨은 깨는 방법을 모르면 얄짤없이 다 죽을 수밖에 없다. 레벨이 총 100개 있는 게임에서 한 40 이후부터는 가 본 기억이 없다.

※ 페르시아의 왕자 (Prince of Persia) -- 아주 무난한 제목

제작자: 조던 메크너(Jordan Mechner)
스크롤 단위: 가로와 세로 모두 화면 단위로만
게임 목표: 던전에 존재하는 트랩 퍼즐들을 통과하여, 던전을 살아서 빠져나갈 것. 그러기 위해서는 출구 문을 열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힘들다. 마지막 레벨에서는 최종 보스를 죽일 것.

주인공의 무기: 검이 있다. melee 공격만 가능한 셈.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점프는 진짜 실제 사람이 가능한 높이로만-_- 가능하다. 엎드리기, 매달리기 등 다양한 동작이 있다.
주인공의 체력: 2층 높이에서 떨어지거나 칼싸움 중에 몬스터의 공격을 받았을 때처럼 hit point가 1개 단위로 감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고층에서 추락, 가시에 찔림, 칼에 허리가 잘림 등 대부분의 트랩들에 걸리면 즉사한다. (추락사라는 개념이 있는 게임 자체도 흔치 않음)
죽으면: 해당 레벨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모든 게임 상태가 원상복귀된다. 목숨 제한은 없지만, 아주 독특하게도 시간 제한이 있다.
점수: 점수라는 개념이 전혀 없음.

시체: 죽은 시체는 사라지지 않고 바닥에 그냥 널부러져 있다. 시체가 이렇게 끝까지 남아있는 게임은 당시 드문 편이었다. 죽은 모습도 꽤 끔찍한 편.
비고:: 몬스터 역시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가시에 찔리거나 허리가 잘리면 주인공과 똑같이 죽는다.

총평: 허리 자르는 칼(chopper)가 내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선사했던 게임이다. 얘도 상당히 어려운 퍼즐 난이도 때문에 엔딩 보기를 포기한 사람이 많았으나, 본인은 이건 모든 레벨을 깨고 엔딩 보는 데 성공했다. 단, 내 혼자 연구해서 깬 건 아니고, 남이 하는 걸 보고서 막힌 부분을 뚫는 방법을 발견한 뒤부터이다.
조던 메크너는 드라마/영화 감독 출신답게, 게임도 뭔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웅장한 스케일로 시작하게 만들었다.

※ 고인돌 (Prehistorik)

제작사: 프랑스의 Titus
스크롤 단위: 가로로는 화면 단위. 세로 스크롤은 아주 예외적으로 위층으로 올라가거나(레벨 5) 아래의 물로 빠질(레벨 1) 때 화면 단위로 일어나는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없음
게임 목표: 던전에 존재하는 각종 몬스터들을 잡아먹어서 Food를 채운 후, 출구로 빠져나갈 것. 던전 차원에서 그렇게 어려운 퍼즐은 없다. 그리고 던전이 끝나면 보스를 해치우는 레벨이 나옴.

주인공의 무기: 방망이나 돌도끼만 존재하며, 역시 melee 공격만 가능함.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점프는 실제 사람이 가능한 높이로만 가능하지만 스프링 아이템을 먹으면 키의 2~3배 정도 높이로 점프가 가능해진다. 사다리가 있음. 다른 게임과는 달리, 사다리를 잡고 있는 도중에 뛰어내리거나 떨어지는 게 가능하지 않다.
주인공의 체력: 체력 시스템이 있고 3~5단계 수준은 아닌 다단계의 hit point가 있다. 물에 빠지거나 절벽으로 곤두박질치면 즉사이긴 하지만, 그렇게 ring out되는 것 말고 던전 내부에 주인공을 즉사시키는 트랩은.. 수면 위를 오르내리는 섬 말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안전함을 느낌) 그런데, 게임 중에 hit point는 오로지 데미지를 입어서 감소만 할 뿐, 보충하는 방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죽으면: 딱히 way point 같은 것도 없고 죽기 직전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는 굉장히 대인배스러운 체계. 당연히 게임은 지금 상태에서 그대로 계속됨. 목숨 제한이 있지만 목숨을 늘려 주는 아이템도 있고,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보너스로 목숨도 많이 주는 편이다.
점수: 음식을 먹으면 점수가 올라가고, 클리어를 빨리 해도 보너스가 많이 주어진다.

시체: 몬스터는 일단 죽지 않는다. 죽이는 게 아니라 기절시키고 나서 잡아먹는 개념이기 때문에, 끔찍한 시체 같은 게 없다. 주인공이 죽으면 해골이 되어 하늘나라로 빠이빠이~~

총평: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쉽게 엔딩을 볼 수 있었다. 목숨도 10여 마리가 넘게 남기고 말이다. 공룡이 살던 시대를 묘사한 배경 그래픽이 무척 아름다웠다. 특히 빙하(레벨 3)와 숲(레벨 5). 프로그램의 버그 때문에 계단 오르다가 물에 쑥 빠져 버리면 좀 짜증.
레벨 클리어 후 보너스 점수 정산을 하는 화면은 왜 그래픽이 아닌 텍스트 모드에서 뜨는지가 늘 궁금했다. ^^

※ 블루스 형제

제작사: 역시 Titus
스크롤 단위: 가로와 세로 모두 픽셀 단위로 자유자재
게임 목표: 각 레벨별로 얻어야 하는 특수한 악기 아이템을 먹은 후, 던전을 통과하여 출구로 빠져나가는 깃발을 먹을 것. 보스 같은 개념은 없음

주인공의 무기: 상자를 들어 집어던지는 게 가능하다. melee가 없고 range 공격만 있는 셈.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엎드릴 수 있고, 점프 역시 키의 3배 정도 높이로 가능하다. 하지만 상자를 들고 있으면 점프 높이가 급감하며, 엎드릴 수도 없게 된다. 일단 들었던 상자는 다시 놓을 수 없고 몬스터를 향해 던져서 없애 버리는 것만 가능한 것도 아쉬운 점. 그리고 물에서 헤엄치는 게 있다. 산소 제한은 없으며, 물에서 무제한 체류 가능.
주인공의 체력: 3~5칸 정도 있다. 이 게임은 모든 트랩은 빠져나가는 게 가능하며, 즉사라는 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죽으면: 레벨별로 way point가 존재하는데, 주인공이 죽기 전에 가장 최근에 거쳤던 way point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예전 게임 상태는 보존되어 있다. 목숨 제한이 존재하며, 목숨은 레코드 아이템을 100개 채우면 하나 늘어난다.
점수: 점수라는 게 없었지 싶다. 있더라도 수집한 레코드 개수가 훨씬 더 중요했던 걸로 기억.

시체: 몬스터는 죽으면 마치 <릭의 위험한 모험>에서처럼 점프를 하면서 튕겨나간다. 주인공은 죽으면 블루스를 춘다... 음??
비고:: 2인용이 가능하다.

총평: 고인돌보다는 확실히 어렵다. 하지만 본인의 연구와 플레이만으로 스스로 5개+1개 최종 레벨을 모두 격파하고 엔딩을 봤다. 아주 넓은 던전이 인상적이었다.

※ 폭스

제작사: 역시 Titus
스크롤 단위: 가로와 세로 모두 픽셀 단위로 자유자재. 사실, 블루스 형제에서 기술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 목표: 던전에 존재하는 트랩 퍼즐들을 통과하여, 던전을 살아서 빠져나갈 것. 단, 보스를 죽여야 하는 레벨도 있다.

주인공의 무기: 블루스 형제와 마찬가지로 자체 무장은 존재하지 않고, 던전 내부에 있는 각종 도구를 던져서 적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도구 자체는 블루스 형제보다 훨씬 더 다양한 게 존재한다.
주인공이 가능한 동작: 역시 엎드릴 수 있고 점프는 키의 3배 정도 높이로 가능하다. 도구를 들고 있어도 점프 높이는 변함없으며, 들었던 도구를 다시 놓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데, 이색적으로 점프할 때 점프 강도를 조절 가능하다.
주인공의 체력: 고인돌처럼 다단계로 존재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shield 모드가 없다! 블루스 형제나 고인돌은 주인공이 상처를 입으면, 어서 그 나쁜 환경으로부터 빠져나가라고 주인공에게 추가 데미지를 유보하는 shield 모드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폭스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여러 몬스터가 있는 곳에서 부닥치다가 순식간에 hit point를 다 잃고 죽을 수도 있다. 이에 덧붙여, 주인공을 즉사시키는 트랩도 많이 존재한다.
죽으면: way point를 갱신해 주는 아이템이 있다. 주인공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그런 아이템을 먹어야 하며, 주인공이 죽으면 마지막으로 그 아이템을 먹은 곳에서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 직전 상태는 보존됨. Titus의 게임들은 다 직전 상태를 보존해 준다.
점수: 존재하지 않음

시체: 주인공이나 몬스터나 다 죽으면 수직 점프를 한 후 화면 아래로 떨어져 사라진다.
비고:: hit point를 회복해 주는 아이템이 있는데, 체력이 full로 꽉 차서 더 회복할 게 없는 상태에서 그걸 먹으면 보너스 점수가 올라간다. 그리고 이 보너스 점수가 일정 한도에 다다르면 목숨을 하나 더 추가해 준다. 폭스 이외의 게임에서는 본 적이 없는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총평: 10개가 넘는 레벨이 있는 걸로 아는데, 퍼즐이 블루스 형제보다도 굉장히 어렵다. 본인은 레벨 5 정도에서 이미 GG. 위에서 언급했듯이 shield 모드가 없어서 더욱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16 09:06 2010/08/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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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 종교) 이야기

1. 대학 특색

올해 상반기에 대학원을 한번 준비해 보고서야,
대학들도 다 똑같은 대학이 아니며, 간판이라는 게 학부뿐만이 아니라 대학원 세계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또한 단순히 인지도 서열뿐만이 아니라, 캠퍼스 면적부터 시작해서 지원되는 학과 내지 강세인 학과도 학교마다 다 다르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한양대나 인하대 하면 공대, 홍익대 하면 미대 같은 식으로. 옛날처럼 수능 점수에 맞춰 자동으로 학교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이제야 진짜로 내 면학 계획에 부합하는 학교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로 서울대와 연세대엔 일어일문학과가 없으며 연세대엔 미대도 없다는 사실에 깜놀.

내가 가는 학교는 간판 자체는 국내에서 상당한 인지도와 역사, 전통을 자랑하지만 각 과에 대해서는 학교 간판에 '비해' 의외로 인지도가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공대는 잘 알다시피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에 밀려서 상당히 약한 듯. 학부는 여길 나왔더라도 대학원까지 거길 가는 사람은 못 봤다. 하지만 난 공돌이 공부를 계속하는 게 아니니 상관없음. (그럴 거면 애초에 학부 모교 대학원을 지원했어야지!)

이곳은 그 대신 국어학 쪽이 서울대와 더불어 양대 산맥이며 최 현배 박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어?) 곳이다. 다른 학교는 비교 문학, 한국학, 문화 컨텐츠 같은 협동 과정은 있어도, 딱 여기처럼 자체 국어사전 연구소를 위시로 하여 국어학+전산학 협동 과정을 개설한 곳은 없었다. 사실, 이런 학제간 연구를 국내에서 제일 먼저 시도한 곳임. 과가 이보다 더 맞는 곳이 없으니 결국 서울대 같은 다른 학교는 더 미련을 둘 필요도 없이 여기에만 지원했다.

그래서 결론은, 본인은 지금 학교에 잘 지원해서 잘 합격했다는 말이 되겠다. 이제서야 지방 소재 단과 대학이 아닌, 인서울 종합 대학에서 제 2의 학생 인생을 시작하겠다. ㅎㅎ

2. 고학력 실업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대학원으로 체제 전환을 하기로 했다. 히드라 럴커를 운용하다가 뒤늦게 스파이어를 올리는 기분이다. 이제야 교수가 얼마나 위대하신-_- 자리인지를 느끼게 됐으며, 누가 박사라고 하면 출신 학교와 학위 취득 나이 같은 프로필을 더욱 유심하게 보는 버릇이 생겼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박사라고 해서 다 같은 박사가 아니다. 국내 지방대 인문계 박사부터 시작해서 골수 유학파 20대 박사도 있고... 40대가 넘어서까지 거의 10년째 시간 강사 보따리장수 신세인 박사가 있는가 하면, 공대에는 무려 30대 초반에 본격 교수가 되어 자기 랩 동기들을 떡실신시킨 유학파 박사도 있다. 아놔...;

나는 이제 대학원에 가면 저 두 극단의 중간에 가까운 길을 갈 듯하다. (전자에 더 가까울지도ㅜㅜ) 일찌감치 대학원을 간 주변 동기들은 이제 박사까지 따고 나올 때가 됐는데 본인은 이제 들어간다. 학사 취득과 석사 취득 사이에 7~8년 정도 긴 간극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간에 군 복무와 직장 생활을 좀 한 경우이며, 본인도 딱 거기에 속한다.

이 승만도 36세인가 그 무렵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지금 시작해도 저 사람보다는 늦지 않을 거다. 할 일 없어서 가방끈이나 늘리러 진학한 건 절대 아니고, 논문 쓸 건 다 생각해 놨다. 이제 특정 플랫폼에 종속적인 노가다 코딩은 밑의 후임에게 맡기고, 나는 더 고차원적인 걸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3. 종교 특색

연세대: 대표적인 장로교 계통
동국대: 불교
서강대: 천주교
원광대: 원불교
우리나라 국군이 인정하는 4대 종교별 대표 학교이다. ㄲㄲ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류를 꼽자면,
해당 종교에 속하는 사립 대학교에 자기가 제 발로 가 놓고는, 거기서 부과하는 채플이나 종교 의식이 ‘종교의 자유 침해’라면서 딴지 거는 애들.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종교별로 다양한 건학 이념도 존재하며, 그 학교에 간 학생이라면 일단 그걸 존중은 해 줘야 하지 않는가? 자기가 거기에 신념상 동의는 안 하더라도 말이다!

동의할 수도, 존중할 수도 없다면, 그럼 그 학교엔 애초에 가지 말아야 한다. 본인은 동국대나 서강대 같은 학교는 안 갔을 것이다. KJV 믿는 지역 교회가 주변에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런 오지에 있는 학교조차 꺼려지는 마당에, 하물며 건학 이념이 대놓고 타 종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학교엘 가겠는가?

오히려 기독교 학교라고 불리는 학교들조차도 내가 보기에는 지금은 완전히 세속화할 대로 세속화해서 진짜 성경대로 믿는 교리는 거의 찾을 수 없으며 껍데기만 남았다. 그러면서 불신자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만 심어 주고 있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는 대표적인 기독교 사학이란 걸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연세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종교 성향이 더 노골적이다.
그런데 몇 년 전(한 2007년?)엔 여기에 어느 무슬림 학생이 갑툭튀 유학 왔다. 물론, 입학 전에 한동대의 종교적 이념에 동의한다는 각서도 다 쓰고 말이다. 공부 잘하고 아주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 한동대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이슬람을 포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개독들처럼 빨간 조끼와 붉은 십자가의 이슬람 버전으로? 아니, 천만의 말씀이다. 아주 정중하고 다소곳하고 예의 바르게(이슬람의 극단적인 두 얼굴을 명심하라), 교칙 전혀 안 어기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무려 성경을 펴서 논리정연하게 이슬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교내 기도실에서는 혼자 메카를 향해 알라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포교는 “봐라, 성경에 이런 구절도 있는데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일 수 있느냐? 예수는 하나님의 대언자일 뿐이지 삼위일체는 잘못됐다.”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안티질을 한 것도 아니다. 아니 그랬는데, 룸메이트를 포함한 상당수의 주변 학생들이 그 포교에 넘어가서 신앙 정체성을 잃고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교수들조차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 그 기독교 학교에 들어간 그 많은 학생들이 이슬람 학생 겨우 한 명을 신앙 논리로 못 이긴 것이다. (마 17:17 같은 주님의 탄식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 놓고 백 날 음주가무만 금지하고 종교 생활만 율법적으로 강요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금연 금주 금녀는 종교색이 전혀 없는 사관학교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규칙이다.

주님께서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것처럼(눅 16:8), 저 이슬람 학생도 지옥 자식으로서는 임무를 정말 잘 수행했다. 작정하고 타 종교인을 계몽(?)할 목적으로 나와 종교가 다른 학교에 일부러 들어갔다면, 차라리 저 이슬람 학생처럼 행동해라! 합법적으로 노력해서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괜히 종교의 자유 운운하면서 인권위 진정 내지 1인 시위, 소송 따위나 하지 말고 말이다. 또한 반대로, 허접한 한국 기독교회와 교인들도 반성해야 할 게 무진장 많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대학+종교 얘기하다 말이 엄청 길어졌다.
끝으로 한 마디. 전라남도에 있는 대불대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불교 계열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 계열이라고 한다. 정말 충공그깽.

Posted by 사무엘

2010/07/15 08:24 2010/07/1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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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외가가 의성군 춘산면에 있다. 지금은 외조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본인에게 그렇게 큰 의미는 없지만, 어머니는 고향인 거기를 굉장히 그리워하시며, 본인 역시 최근까지도 어머니와 함께 이제 외갓집은 아니지만 외조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그쪽 근방으로 드라이브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요 몇 년 전부터는 외가로 가는 길목에 무슨 추모비 같은 게 새로 생겨 있었다. 국도 35호선을 타고 청송까지 가다가 의성 춘산면 방면으로 서쪽으로 꺾은, 청송과 의성의 경계 지점이다. 외가에서 걸어서 찾아가기에는 좀 멀지만 자전거 정도만 있어도 갈 만한 곳인지라, 본인에게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건 다름아닌 지난 2003년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 희생된 어느 학생을 기려서 만들어진 거라고 한다.

추모비는 꽤 오래 전인 2004년에 세워졌고 본인 역시 그 사실을 몇 년 전부터 어머니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겨 왔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우연히 호기심이 생겨 인터넷 검색을 해 봤다. 고인의 동상도 세워졌다고 하는데, 위치가 너무 외진 곳이고 고인이 그렇게 유명 인사는 아니어서 그런지 인터넷 상으로 사진 같은 건 찾을 수 없다.

고인이 누구냐 하면 이 현진 양이다(1984-2003). 본인하고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난다. 대구 외고 출신의 서울대 예비 03학번이었다.
고인은 사망도 아니고 실종으로 공식 처리됐다. 시신 수습도 못 할 정도로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뜻이다.
http://daegusubway.or.kr/lost_detail.html?no=734&page=10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2577&yy=2004

보통 불행은 꼭 가난하고 못 사는 집안에 터지는 경우가 많은데(일단 그런 사람이 숫자도 더 많으므로), 일단 이 양의 가정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버지가 당당한 대구 시청에서 직급도 높은 공무원이고, 고인의 남동생도 나란히 대구 외고에 진학한 상태였다. 그런 데다가 고인이 서울대 입학까지 앞두고 있었으니 이 양만이 비슷한 다른 또래의 희생자보다 언론에 더욱 안타까운 죽음으로 부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저 가정은 대구 토박이인 것 같은데, 의성 내지 청송 쪽으로는 무슨 연고가 있어서 저기에 추모비가 세워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 왈, 고인이 어머니의 대학 동창의 질녀였다고 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덤은 허묘인 건가?
근처엔 고인의 모교인 대구 외고 교장의 추모사, 서울대 정 운찬 전총장의 애도사(우리 서울대는 이 현진 양을 서울대 입학생으로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고인의 생전 일기, 그리고 고인의 친구들이 돈을 모아 만들었다는 동상이 기념물로 놓여 있다.

대구 지하철 화재는 한 정신병자의 미친 짓부터 시작해서 지하철 당국의 병맛 나는 사건 수습 등 여러 악재들이 겹친 덕분에, 단일 화재 한 건 당 사망자(실종 포함) 수로는 전세계의 대형 사고들 중에서도 톱클래스에 드는 끔찍한 참사로 기록되었다. 192명 사망에 148명 부상은 심지어 1971년의 대연각 호텔 화재의 사상자마저도 능가하는 규모이다. 최초로 화재가 발생한 전동차보다도, 아무것도 모르고 반대편에서 진입한 전동차가 불이 옮겨 붙고 기관사가 그 상태로 문을 잠근 채 튀는 바람에 승객들만 몰살을 당했다. 이런...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 따로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사상자 명단 중에 본인의 고등학교 동기하고 성명과 생년이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이 있었다! 게다가 걔도 당시 경북 대학교 재학 중이었으니 대구 거주. 그러니 그 친구는 그 날 안부를 묻는 연락 때문에 전화기 트래픽이 폭주크리를 먹었다고 한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전국민에게 휴대전화가 보급된 21세기에 터졌다. 그래서 불타는 전동차 안에 갇힌 채 연기에 질식해 죽어가면서 희생자가 남긴 애절한 통화와 문자 기록들이 네티즌들의 심금을 더욱 울렸다. 비행기나 선박에서 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게 가능했다. 이것도 의미심장하지 않은지? 사실, 일본에서조차도 지하철 내부에서는 휴대전화가 안 터진다.

(과거 1985년 8월에 일본의 JAL123기 추락 사고 때는 승객이 흔들리는 기내에서 여권 여백에다가 유서를 간신히 쓴 게 남아 있음을 기억하라. 그때는 대구 지하철 참사와는 대조적으로, 비행기가 추락만 하고 다행히 화재는 발생하지 않아서 그런 유서가 전해질 수 있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여파는 오늘날의 서울 지하철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로, 딱딱한 불연재로 완전히 개조된 좌석이다. 당시 노 무현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거의 2~3년만에 인테리어가 싹 물갈이가 되었다. 그리고 2007년 즈음부터는 스크린도어까지 급속도로 보급됨으로써 서울 지하철의 외관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딱히 부실 공사 같은 부류는 아니다. 단지 직원들이 군기가 빠질 대로 빠져서 비상사태에 대처를 못 하고 병크를 잔뜩 터뜨려서 긁어 부스럼을 낸 것이다. 지하철 탑승객에게 비행기 수준의 보안 검색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휘발유를 소지하고 타는지-_-), 앞으로 사회에 불만이 있는 저런 싸이코가 또 나오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그러더라도 저 때보다야 시민들이나 승무원이 대처를 잘 해서 다시는 이 정도의 참사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다음에 외조부모 산소를 찾을 일이 있으면 이 현진 양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 곳에 예전보다 더 세심하게 눈길이 갈 것 같다.

끝으로 비슷한 사건이 또 떠올라서 사족 하나.
2003년 그 무렵이면 이 지선 씨가 인터넷 상의 유명인사로 한창 등극하던 시절이었다. 2000년경에 음주 운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여자의 생명인 얼굴에 중화상을 입고 안면 장애 인증을 받은 그분 말이다. 그런 와중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더구나 컨택트 렌즈가 녹아내리지 않은 건 천만 다행이었다고 함. <지선아 사랑해>라는 신앙 간증 도서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본문의 일부는 본인이 개발한 타자연습 프로그램에도 실려 있다. 지금도 이분의 개인 홈페이지는 잘 운영되고 있는 모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01 09:29 2010/07/0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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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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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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