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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섬은 한국으로 치면 울릉도뻘 되는 일본의 시골 오지이다. 인구도 35000명에 불과하니 1억이 넘는 일본 전체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이다.
제주도에 중국 애들이 많다면, 쓰시마 섬엔 한국 애들이 엄청 많이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상점과 공공장소에는 곳곳에 한국어로도 안내가 다 돼 있었다.

쓰시마 섬은 넓이가 거제도의 두 배 정도이고 제주도의 38% 정도여서 막 작지는 않다. 하지만 땅 대부분이 산이어서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얼마 없으며 길도 전반적으로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뿐이었다.
4차선 이상 도로를 거의 못 본 걸로 기억한다. 평소에 교통량이 적어서 그런지, 삼거리 교차로에서도 건너편 좌우 횡단보도와 차량 신호가 동시에 파란불이 되면서 비보호 좌우 회전을 하는 곳이 많았다. 그리고 길이 좁은 것치고는 시가지나 골목에서 일방통행인 곳도 없었다.

여기는 철도는 없다. 한국이나 일본 본토와 연결이라도 하지 않는 한, 내부에 단독으로 철도 같은 게 생길 일은 없다. 공항은 있지만 일본 국내선 전용이다.
한편,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 여기 휘발유 값은 리터 당 154엔이었으니, 한국보다 가격이 약간 더 저렴했다.

일본 정도는 요즘 개나 소나 아무나 다녀오는 세상인데 혼자 설명충 행세를 너무 오랫동안 많이 한 것 같다. =_=;; 이제부터는 슬슬 주요 풍경 사진들을 투척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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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카츠 항에 도착한 뒤에 곧장 들른 첫 목적지는 미우다 해수욕장이었다. 아담한 크기인데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 이런 곳은 한여름에 직접 찾아가서 시간 제약 없이 물놀이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 몇 년 전부터 바다에 꽂혀 버려서 말이다.
친구들끼리 놀러 오기라도 했는지, 비슷한 옷 코스프레를 한 처자들 일행이 모래밭 여기저기서 셀카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웃통 벗고 과감하게 입수해서 물놀이를 하는 젊은 남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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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한국 전망대(일본 명칭은 한국 전망 '소'所)에 도달했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요즘 일각에서는  평평한 지구 논쟁이 불거져(ㅠㅠ) 있다. 특히 신자들 중에 "성경을 보니 지구 모양은 원반형 평면이래!"라고 NASA 음모론까지 결부지어서 진지하게 믿기 시작하신 분이 몇몇 있다. 올해 지난 3월에는 한국에서 평평한 지구 국제 컨퍼런스까지 열렸었다. (...)

본인은 관련 자료를 찾아 보다가 쓰시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보는 부산 시내와 광안대교의 모습을 주목하게 되었다. 지구의 둥근 곡률로 인해 배는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라지고, 50km 남짓 떨어진 부산 시내는 이렇게 높은 곳에서 봐야 밑동이 짤린 채로 간신히 보이는 것 말이다.

그 한국 전망대를 실제로 가 보게 됐다. 하지만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아쉽지만 하늘이 흐려서 부산 시내를 제대로 보기는 어려웠다.
차라리 밤에 갔으면 광안대교를 자체 조명을 통해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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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가 있는 곳은 아래가 이런 모양으로 보일 정도로 제법 고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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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망대의 바로 옆에는 옛날에 일본을 방문하던 어느 조선 통신사 일행의 위령비가 있었다. 일본을 방문하던 중에 폭풍 때문에 배가 파선하여 몽땅 불귀의 객이 됐다고 한다.
한국어로 적힌 설명문도 있었지만 한문 혼용체여서 제대로 읽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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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시타케 전망대. 쓰시마 섬에 이런 곳이 있다고 어렴풋이 듣긴 했던 것 같은데 역시 실물을 보게 됐다.
높이 수십 m 남짓한 언덕을 운동 삼아 오르고 나면 이런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다.
베트남 하롱 베이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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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일본의 신사도 처음으로 실물을 봤다. 쓰시마 섬 관광 때 꼭 들르는 곳은 '와타즈미 신사'라고 바다의 신을 모셔 놓았다는 곳이다.
일본 영토 전역에 있는 신사의 수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곳만 무려 8만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신사에는 이런 고유한 모양을 한 입구가 놓여 있다.

우리나라도 조상신이니 무당이니 하는 토속 샤머니즘 종교가 있어서 불교· 유교와 교묘히 짬뽕 되긴 했다만, 일본의 토속 종교라 불리는 일명 '신토'는 더 특이한 것 같다.

굳이 조상신에만 국한되지 않고 무슨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별별 것에다가 신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건 범신론 같다. 뭔가 유일신 절대자를 믿고, 현생에서 바르게 살아서 내세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통상적인 종교 패러다임 자체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거기에다 과거 군국주의 시절에는 이런 신토에다가 덴노(천황) 숭배가 이상하게 끼어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 체계를 알 수가 없다..;;

바가지를 들고 양손을 번갈아 가며 손을 씻고 입도 헹군다. 신사에서 씻는 용도로 흘러나오는 물은 마시는 용도가 아니라고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설명이 친절하게 돼 있더라.
'신사 참배'라고 하길래 본인은 오랫동안 무슨 형상 앞에서 큰절이라도 하는 걸 떠올렸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손뼉도 짝짝 두 번 치고.. 절차가 더 특이했다.
본인이 관광 가 있던 동안 일본인 아주머니가 진지하게 FM대로 신사 참배를 하는 걸 보기도 했다.

일제 시대 때는 저런 신사가 당연히 한국 땅에도, 당장 서울 남산에도 잔뜩 만들어졌다.
일본이 옛날에 뻘짓을 저지르지만 않았으면 신사가 지금까지도 그냥 특이한 외국 토속 종교 정도의 인상으로만 남았을 텐데, 그걸 다른 민족에게도 강요하고 안 따르는 사람들을 가두고 괴롭히고 죽인 적도 있으니 신사에 대한 불편한 기억도 사람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그 많던 신사들은 일본인들이 알아서 스스로 싹 해체하고 철거했다.

아, 일본도 신사 말고 불교 사찰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인구나 면적 대비 개수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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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유래는 기억이 안 난다만, 옛날 '에도 막부' 시절에 쓰였던 항구 부두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작은 배들을 세워 두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중요한 곳 관광은 사실 첫째 날에 모두 했다. 다음 날은 오전에 시내 도보 관광과, 오후에 다시 히타카츠 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몇 숲길 산책 위주만 진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관광을 했던 첫째 날은 하늘이 잔뜩 흐렸고, 정작 그 다음 날이 하늘이 푸르고 맑았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관광 일정을 마친 뒤엔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주변에서 면세 쇼핑을 잔뜩 했다.

가게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합계 5천 엔 이상을 구매하면 점원이 면세로 구입할 것인지 알아서 묻는다. 관광객이 동의하면 이것들은 8%가량 가격이 할인되는 대신, 면세품 전용 봉투에 밀봉된다. (저기서 5천 엔은 물론 면세 전 원래 가격 기준) 그리고 일본을 떠나기 전에는 이 봉투를 뜯어서 물건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이 붙는다. 미리 뜯어 버린 것이 세관에서 발견되면 면제되었던 세금이 재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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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섬은 바다와 자연스럽게 연결된 형태로 수로 내지 호수가 꾸며져 있는 게 경치가 좋았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하치만궁 신사에도 들르긴 했는데 사진은 생략하고 넘어가겠다.

본인은 주로 풍경 사진만 찍었지만 가족 사진을 찍는 건 본인의 누나가 전담했다.
원래는 셀카봉을 펼친 상태에서 가까운 셀카봉의 버튼만으로 폰에다가 사진 찍기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셀카봉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누나가 폰을 눌러서 타이머를 발동시킨 뒤, 그 사이에 재빨리 셀카봉을 펼치고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 즉, 사진을 찍는 게 매우 불편해졌다.

이게 총기로 비유하면 후장식 총기이던 것이 일일이 총구에다가 총알을 집어넣어야 하는 전장식 총기로 후퇴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준과 연사가 얼마나 불편한가? 반대로 후장식이 총기의 역사에서 얼마나 획기적인 발명인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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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섬의 중앙에다 뱃길을 낸 만제키 운하이다. 군함을 더 수월하게 통과시켜서 일본의 반도+대륙 진출을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취한 조치이다.
이 사진은 그 위에 놓인 '만관교'라는 다리 위에서 찍은 것이다. 참고로 다리 위로 바닷바람이 굉장히 강하게 불었다.

귀국 거의 직전에 산책했던 휴양림(?) 숲길은 모처럼 바닷물이 아닌 산에서 흘러내린 민물이 졸졸 흐르고 경치가 무척 아름답긴 했는데, 이 역시 사진은 생략하겠다.
이 정도로 1박 2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10 08:36 2018/10/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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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 여행 이력

올해 본인은 지난 추석 때 가족과 함께 쓰시마 섬 패키지 관광을 하고 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을 가 봤으며, 한반도를 통틀어서 가장 가까운 외국을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 대신 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기도 했으니, 본인의 여행 이력과 관련해 여러 분야에서 신기록이 세워졌다.

그런데 본인은 외국 여행을 갈 때마다 뭔가 아귀가 공교롭게 안 맞아서 필요 이상의 손해와 삽질을 감수하곤 했다.
10년 전에 군필 기념으로 미국 여행을 갔을 때는 국내의 휘발유 1리터 가격이 지금과 비슷한 1600원 초중반이었는데, 1$의 환율은 1400원을 훌쩍 넘어 있었다. 그때 이후로 달러 환율은 현재까지 다시는 그만치 오른 적이 없었고 말이다.

게다가 거의 130$ 가까이 주고 비자 신청 인터뷰까지 또 해야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안 가 2009년쯤부터는 단기 관광 비자가 면제되었다. 그러니 2008년 가을에 미국 다녀온 건 최악의 바가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제주도보다도 가까운 곳을 다녀 오지만 그래도 외국이니까 여권이 필요한데.. 병특 만료 기념으로 10년 전에 만들었던 여권은 딱 올해 추석 연휴 기간에 맞춰서 기한 만료 예정이었다. 뭐, 유효 기간이 6개월 이내로 줄어든 여권은 신규 출국용으로는 사실상 못 쓰는 여권이긴 하다만..

이것만 아니면 본인은 앞으로 수 년간 외국 나갈 일이 없을 사람이다. 여권이 무슨 면허 갱신도 아니고 몇 년간 여권 없이 살아도 되는 처지인데 결국은 단절 기간 없이 또 새 여권을 만들게 됐다.
요즘은 출입국 때 일일이 도장을 찍지도 않고 사증란이 소모될 일이 더욱 없으니, 본인은 면수가 절반인 알뜰 여권을 신청했다. 다만, 그래 봤자 할인되는 금액은 3000원 남짓으로, 5만 원에 가까운 전체 발급 수수료에 비해서 그렇게 많이 저렴해지는 건 아니었다.

2. 고속도로

외국 여행을 가는데 인천 공항이 아니라 반대편의 부산항으로 가는 게 무척 이색적이었다. 부산에도 서울로 치면 내부순환로 같은 고가 형태의 시내 고속화도로가 응당 있다. 그러니 부산 중에서도 최남단인 부산항까지 가는 게 생각만치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거기를 달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한, 본인은 서울-부산을 왕복하는 동안 차의 성능 테스트도 같이 진행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50~160km씩은 흔히 밟았으며, 차 없고 탁 트인 곳에서는 잠시나마 180~185까지도 밟는 데 성공함으로써 과속의 신기록을 수립했다. 원쑤의 심장을 겨누는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긴... 건 아니고,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끝까지 꽉~ 밟았다.

내 경험상 속도가 100~110을 넘어가면 계기판의 초록색 경제 운전 ECO 표시등이 꺼졌다. 이 이상 속도부터는 차도 점점 힘이 부치고 연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120~140 정도의 속도는 페달을 약간만 밟아도 어렵지 않게 나오는데.. 150 이상이 자동차의 내부 상태가 확 달라지는 경계인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는 가속 페달을 이전보다 훨씬 더 세게 밟아야 했다. 차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지고 가속이 눈에 띄게 잘 안 되기 시작했다. 이게 100마일의 장벽이기라도 한지 모르겠다.
그래도 1년에 많아야 두세 번 장거리 고속도로를 뛸 때가 아니면 저 페달을 자전거 페달 밟듯이 힘 줘서 밟을 일이 언제 있겠으며, 엔진 회전수 타코미터가 4~5000까지 치솟는 걸 언제 보겠는가? KTX는 200을 넘어서 300도 가는데, 승용차로 이 정도는 밟아 봐야지..

뭐, 본인 역시 추월을 하기만 한 게 아니라 추월을 당하기도 했다. 나 같으면 어지간해서는 저기서 이 좁은 틈으로 끼어들지는 않았을 텐데, 나보다 더 위험한 칼치기를 감행하며 추월하는 간 큰 차들도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치기를 하는 차보다는 엄연히 추월 차로인 1차로에서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저속으로 세월아 네월아, 그것도 2차로의 차와 거의 나란히 가고 있는 차들이 훨씬 더 민폐라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그리고 앞에 장애물이 없다시피하고 지금 속도로도 얼마든지 커브를 틀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뒷차 운전자를 긴장시키고 유령 정체를 유발하는 주범이다. 애써 얻은 속도를 헛되이 허공으로 날리는 짓이니 차의 연비에 안 좋은 건 두 말할 나위도 없다.

3. 부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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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고 외국으로 가는 건 아무래도 인천항에서 황해를 횡단하여 중국으로 가는 게 개인적으로 더 쉽게 떠오른다. <아저씨>, <공모자들> 같은 범죄 영화를 너무 강렬하게 봐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인천뿐만 아니라 부산도 항구 도시로서 아주 중요하며, 일본은 대륙 진출을 위해 무려 110년 전부터 경부선 열차와(부산 역) 부산항이 서로 딱 연계되게 만들어 놨다.

비행기가 아니라 배이니 캐리어를 따로 부치지 않아도 되고 무게 제약이 없는 건 약간 좋았다. 물론 망망대해로 나가는 만큼 기본적인 짐 검사를 하지만, 비행기처럼 액체 반입까지 제한할 정도로 빡세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객기는 출발 후 활주로로 갈 때는 견인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반면, 배는 비행기보다 훨씬 커도 자력 택싱이 가능할 것이다.

기체 내지 선체의 왼쪽에서 탑승하는 건 비행기와 배가 공통인 것 같다. 비행기가 배의 관행을 물려받았겠지..
하지만 각각의 교통수단에 '-호'라는 고유한 명칭이 붙어 있는 건 비행기에는 없는 선박만의 관행이다. 비행기는 그냥 운행편 번호가 있고, 똑같이 찍어 낸 기체 자체의 모델명(보잉 747, 에어버스 380..)만이 있을 뿐이다.

장거리를 좀 오랫동안 가는 여객선이라면 선실이 반쯤 호텔 방처럼 꾸며져 있고 승객이 누울 곳도 있다. 하지만 쓰시마 섬을 오가는 배는 운행에 한두 시간밖에 안 걸리고 주행 속도도 제법 빠른(시속 6~70km!) 고속정이다 보니, 내부가 좀 더 버스나 비행기에 가깝게 꾸며져 있었다. 승객은 고정된 자기 좌석에만 앉아 있어야 하며, 항해 중엔 바깥 갑판으로 나갈 수도 없다. 좌석엔 심지어 안전벨트까지 있었다.

옆에 시모노세키로 가는 성희호 여객선을 보니 크기도 우리 배(니나호)보다 더 크고 뭔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주거성을 갖춘 배처럼 보였다. 더 장거리를 다녀서 그런 듯한데, 저런 큰 배를 굴릴 정도로 수요가 나오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여러 차이점들을 생각하며 일본을 다녀왔다. 갈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돌아올 때는 2m가 넘는 높은 대한 해협의 파도로 인해 평생 겪어 보지 못한 배멀미를 경험하게 됐다.
배가 그야말로 사방으로 들썩이며 요동쳤으며, 파도를 타고 내려갈 때는 쿵쿵 진동까지 느껴졌다. 그냥 놀이기구 탄 듯이 들썩거리는 걸 즐기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어느 샌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은 온통 식은땀으로 흠뻑 젖고, 평소에 그렇게도 뜨끈뜨끈하던 손발은 힘과 열기가 쫙 빠졌으며, 얼굴이 노래지고 속이 어지러워졌다. 이 와중에도 남을 챙기기까지 해야 하는 승무원은 어떻게 배에서 근무를 할 수 있나 대단하게 느껴졌다.

부산항에서 쓰시마 섬 히타카츠(히타카쓰) 항까지 갈 때는 80분 남짓 걸렸지만, 돌아올 때는 파도 때문에 2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다. 자동차로 치면 고속도로에서 비포장 오프로드로 바뀐 거나 마찬가지다.
선박은 고속버스와 마찬가지로 탑승권에 도착 예정 시각이 공식적으로 기재되지 않는 교통수단이라는 걸 알게 됐다. 도로 사정이 아니라 바다 사정의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항해를 절반이나 2/3 정도 한 뒤에야 선장이 예상 도착 시각을 방송으로 얘기했다.

4. 일본 - 작다!

과연 일본은 (거의) 모든 게 작고 아기자기하고 아담하더라. 이 말부터 해야겠다. 좋게 말하면 알뜰 검소하고 실속 있고, 나쁘게 말하면 답답하고 짠돌이스럽다.

(1) 먼저 음식 얘기부터.. 음식값이 환율을 감안해도 한국과 비슷해 보이길래.. 그리 비싸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국 같은 양과 서비스로 그 가격인 건 아니다. ㄲㄲ 양이 뭐 이렇게 적은지? 음식물 쓰레기가 나올 수가 없다. 과일과 생선회를 이렇게 작은 덩어리로 썰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국 음식은 한없이 기름진 중국 음식보다는 일본 음식에 더 가까운지라 전반적인 입맛은 한일 양국이 서로 비슷하다. 하지만 일본 음식에 한국 같은 벌건 김치가 곁들여 나오지는 않는다. 또한 회는 언제나 고추냉이 넣은 간장에 찍어 먹지, 한국 같은 고추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국 같은 소금과 참기름에 구운 김도 일본에는 없다.

(2) 다음으로 숙소를 살펴보면.. 우리가 그리 비싼 호텔에서 투숙하지 않은 건 감안하더라도.. 한국이라면 지방의 그냥 허름한 여관에도 있을 법한 냉장고와 침대가 없더라. 객실 화장실 세면대와 변기는 어찌나 아담한지 건물 화장실이 아니라 유아용 내지 교통수단 안의 화장실 같았다.

(3) 일본의 서민들은 살아서도 이렇게 작게 사는데, 하물며 죽은 뒤에는 더 얄짤없다. 황족 말고는 누구든 매장 자체를 못 하며, 무조건 화장 후 납골당 행이라고 한다. 하긴, 후손들이 일일이 다 관리하지도 못하는 묘지만 자꾸 늘어 가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고 모든 시신을 저렇게 처리하는 건 일면 합리적이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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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끝으로, 일본 하면 역시 경차다. 미국은 깡촌 시골에 온통 SUV급의 커다란 다용도 픽업 트럭이 다닌다지만 일본은 차들이 온통 작다. 베트남 같은 나라이면 얄짤없이 툭툭이 삼륜차였을 텐데, 그래도 일본 정도의 기술 있고 잘 사는 나라이니까 경차인 것이다.

5. 일본 - 차량과 교통

(1) 그래도 택시까지 경차는 아니더라. 그 대신, 딱 1990년대 디자인의 옛날 차들이 많이 다녔다. 일본이 아무리 자동차를 튼튼하게 잘 만든다 해도, 자가용도 아닌 영업용 자동차를 내구연한 없이 설마 20년이 넘게 굴릴 정도로 지독한 구두쇠인가 궁금했는데.. 그건 아니다. '도요타 크라운'의 택시 전용 모델이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외형 변경 없이 그대로 생산된 거라고 한다.

국내 현대차의 경우, YF 쏘나타가 생산되던 동안에도 직전의 NF 쏘나타가 택시용으로는 생산됐다. (LF가 나오면서 단종) NF가 워낙 인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쏘나타의 전신인 1980년대의 완전 옛날 중형차인 스텔라도 택시는 무려 1997년까지 생산됐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저 도요타 크라운 택시는 정말 오래된 것 같다. 과거의 살아 있는 화석이던 미쓰비시 데보네어 초기형(1960~1980년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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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일행이 패키지 관광을 다니면서 탑승한 차량은 요런 25인승 크기의 마이크로버스였다. 한국이라면 그런 버스는 현대 카운티 같은 "전방 엔진+중간문" 형태만 있을 텐데, 크기가 저렇게 작으면서 대형 버스처럼 "후방 엔진+앞문"인 물건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신기했다.

(3) 차들이 좌측통행인 것이야 익히 들었고, 지구상에 좌측통행 우핸들인 나라가 일본만 있는 게 아니니 그리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중앙선이 흰색 실선으로 그어져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 더 신기했다. 그리고 일부 구간은 황색 실선 중앙선도 있긴 하던데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6. 일본 - 그 밖에

  • 일본은 한국과 시간대가 동일한 드문 외국 중 하나이다. 시차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게 은근히 좋았다.
  • 생뚱맞은 오지에 공중전화도 아니고 음료수 자판기가 눈에 자주 띄었다. 지진 같은 재난에 대비해서 일정 간격으로 의무적으로 배치한 것이며, 불가피한 비상 상황일 때는 자판기를 부수고 물품을 털어서(!) 연명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한다. 한편, 한국에도 별별 물건을 파는 자판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스크림 자판기까지는 일본에서밖에 못 봤다.
  • 전압이 110볼트이고 옛날 스타일 플러그가 필요하다는 점은 의외로 미국과 비슷한 면모이다.
  • 일본이 집과 차는 작고 음식은 적지만, 지폐는 한국 지폐보다 세로가 약간 더 크다. 1000엔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노구치 히데요가 그려져 있는 걸 봤다. 우리나라 지폐에는 아직까지도 먼 옛날 조선 시대 사람밖에 없는데 나름 근현대의 인물, 그것도 정치인이 아닌 자국의 과학자가 그려져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비록 노구치 히데요 자체는 행적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 쓰레기 분리 배출/수거를 한국만치 꼼꼼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트에서 물건을 산 뒤에 봉지를 1~2엔 가격에 따로 판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런 쪽으로는 한국보다 미묘하게 더 관대하고 후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07 08:37 2018/10/0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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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철도 근황

2018년 하반기 현재, 우리나라의 고속철 운행 동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먼저, 호남(2015)에 이어 평창과 강릉까지도 전용선(경강선) 노선이 개통했다. 덕분에 청량리, 양평, 원주도 KTX가 서는 역이 되었다. 경강선은 기존의 영동· 태백선과 달리 무궁화-새마을 같은 일반열차가 아예 다니지 않는다. 느린 열차가 달리기에는 아까운 선로이니..

그 반면, 인천 공항까지 직통으로 가던 KTX는 폐지됐다. 올림픽도 끝난 와중에 수요가 전무하니 말이다. 더구나 일관되게 동-서 횡축 이동인 강원도라면 모를까, 남부 지방에서 이용하기에는 서울 역 경유 공항 행은 동선이 너무 안 좋다. 누차 말하지만 광명 역에서 인천대교와 비슷한 선형으로 공항을 갈 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때 공항 철도 검암 역이던가 거기에 KTX 정차 대비를 위해서 저상홈도 만들고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필요 없어졌다. 앞으로 공항 철도는 KTX가 아니라 서울 지하철 9호선과의 직통 운행 대비나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서울 1기 지하철 이래로 직-교류 겸용 전동차가 또 등장하게 되겠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고속철 노선은 강원도 노선을 제외하면 얼추 X자 모양을 하고 있다. 하부의 V자는 각각 영남 방면과 호남 방면이다. 영남은 부산뿐만 아니라 포항 방면으로도 나뉘고, 호남은 목포와 여수로 또 나뉘긴 하지만 그건 일단 논외로 한다.

그리고 상부의 V자는 각각 서울 방면과 수서 방면이다.
수서 고속철(SRT)이 개통하기 전에는 전국의 모든 고속철 열차들이 대전 이북부터는 한데 몰렸다. X가 아니라 뒤집힌 Y자 모양이었던 셈.
그 상태로 금천구청 이북부터는 고속철이 일반열차들과도 합류하기 때문에 저기는 최악의 선로 용량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 (1) SRT가 개통하기 1년 남짓 전에 고속철의 운행에 숨통을 먼저 터 준 것은 (2) 대전· 대구 시내 잔여 구간의 개통이었다.
이 과업까지 완수된 뒤에야 경부 고속철은 운행 계통이 일체의 병목 구간 없이 기존 경부선과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말단뿐만 아니라 중간에서도 일반열차와 스레드 동기화 보조를 맞출 필요 없이 원활히 운행을 할 수 있게 됐다. 더 곧은 길에서 더 빠르게 달려서 운행 시간이 몇 분 단축된 건 덤이다.

그래서 오늘날 KTX는 위의 두 조치 덕분에 일반열차와 부대끼는 걱정은 별로 할 필요가 없다. 이제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KTX가 한데 몰리는 유일한 구간은 오송-평택 사이이다.
요즘 고속철은 전반적으로 승객 많고 장사가 잘 되고 있다. 선로 용량이 부족해서 열차를 더 투입하지 못하고, 자리가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다. 그러니 저 병목 구간도 2복선으로 확장했어야 했다는 의견이 있다.

느린 일반열차와의 분리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유사 구간을 달리는 고속철의 운행 계통까지 완전히 이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이런 변수도 있다. (1) SRT 전용선인 지하 고속선은 훗날 고심도 광역 급행 전철(GTX)도 사용할 예정이라 한다.

(2) 그리고 SRT 고속선과 기존 경부 고속선이 합류하는 지제 인근에는 심지어 경부선 기존선과 경부 고속선을 연결하는 선로까지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래서 수원 역을 경유한 KTX가 대전까지 계속해서 느린 기존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곧장 고속선으로 합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훗날 수인선에도 KTX가 들어갈 예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꼭 필요한 조치라 하겠다.
전국의 광역시들 중 대전은 유일하게 공항이 없고(대전 대신 청주..), 울산은 유일하게 지하철이 없으며, 인천은 유일하게 KTX가 없다. 공항 가는 KTX가 없어지는 대신 미래에는 수인선 구간으로 인천을 경유하는 KTX가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떼제베 KTX로 달랑 서울-부산만, 그것도 대구-부산은 아직 통째로 기존선으로 오가던 1단계 개통이 엊그제 같은데..
2010년대부터는 2단계 구간 개통 이후로 마산, 포항, 여수(엑스포 때문) 등 온갖 노선들이 많이 생겼다. 굵직한 고속선이 새로 생긴 것도 호남, 수서, 경강 이렇게 3개이며, 포항까지 치면 4개이다.

또한 차량과 내부 시스템도 굉장히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KTX라는 명칭은 차급(무궁화/새마을 대비), 차종(떼제베, 산천 등), 운영사(코레일 vs 수서 SR) 등 다양한 맥락에서 무엇을 식별하는 명칭인지를 꼼꼼히 따져야 하게 됐다. 이렇게 한국 철도는 오늘도 변모하고 있다.

지금은 완전히 퇴역한 지 5년이 훌쩍 넘었지만,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동차(일명 DHC)는 처음 도입되었던 당시부터 이미 떼제베의 외형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다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와 관련된 대우 중공업 관계자의 내부 증언이 전해지는 게 있다. 물론 이건 1990년대에 고속철 차량이 떼제베로 결정된 것과는 무관하고 시기적으로 앞선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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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10/05 08:34 2018/10/0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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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96, 70년대에 인간을 달에 보내기 위해서 폰 브라운의 영도력으로 새턴 V라는 왕창 크고 아름다운 로켓을 만들었던 동안, 소련에서는 세르게이 코룔로프의 휘하에서 N1이라는 이름의 로켓을 만들었다.
그랬는데 1969년에 미국에서 아폴로 11호 미션을 먼저 성공시키자, 소련에서는 2등은 별 의미가 없다면서 유인 달 착륙 계획을 취소했다. 패배를 깔끔히 인정했다.

사실, 그 당시 소련은 그렇잖아도 미국과는 달리 로켓 엔진의 고출력 대형화를 달성하지 못해서 기술적으로 매우 고전하던 중이었다. 자동차로 치면 휘발유 엔진은 디젤 엔진만치 실린더 하나의 배기량을 무한히 키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작정 공간을 크게 만들어서 무식하게 연료를 한꺼번에 많이 폭발시킨다고 장땡이 아니다. 그럴수록 연소 효율이나 폭발 압력 관리 같은 난관이 커진다.

미국의 새턴 V는 맨 아래에 가장 큰 출력을 내야 하는 1단 로켓이 저렇게 딱 5개의 큼직한 엔진으로 구성돼 있었다. 분출구 크기와 주변의 사람 크기를 비교해 보라. 각각의 엔진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알 수 있다. 저게 평범한 기술로 구현 가능한 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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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소련의 N1은 자그마한 엔진이 무려 30개나 다발로 달려 있었다. 단수도 새턴은 3단이지만 N1은 4단으로 한 단계 더 많았다. 밑바닥이 무슨 자동차 휠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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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턴 V는 가장자리에 엔진이 4개 있고 중앙에 하나가 더 있는 형태인데, N1은 가장자리에 엔진이 24개 있고 중앙에 엔진이 추가로 정육각형 꼭지점 모양으로 달려 있으니.. 공교롭게도 딱 6배수 관계이다.

그런데 같은 동력을 공급하는 용도로 힘의 원천이 지나치게 많으면 제어가 너무 힘들어진다. 10기통을 훌쩍 넘어가는 스포츠카 엔진이라든가, 1km 이상의 긴 열차에서 3대 이상의 기관차가 동시에 가속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하물며 로켓 엔진은 자동차나 비행기 엔진보다 더 많은 연료를 더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태워 없애야 한다. 그만큼 더 위험하다. 연료와 공기를 그 많은 엔진에다가 균등하게 공급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엔진들 중 한 곳에라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뒷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N1 로켓은 1969년부터 시작해서 수 년에 걸쳐 네 번이나 발사 시도를 했지만, 모두 폭발 사고가 나고 실패로 끝났다. 이건 나로 호 같은 자그마한 로켓도 아니고, 인간을 달에 보내는 수준의 초대형 로켓이다. 그러니 한번 실패할 때마다 등유와 액체 수소 등등 연료만 생각해도.. 허공에 날리는 비용과 손해가 장난이 아니었다. 발사대까지 불바다에 휘말려 다 날려먹었을 정도였다.

그에 반해 새턴 V는 발사 실패가 전무하고 언제나 100% 성공이었으니.. 참 대조적이다. 저 로켓의 1단 밑바닥 모양이 마치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의 운명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물론 세르게이 코룔로프도 천재였으며, 미국 같은 자금빨과 지원이 있어서 기술을 꾸준히 개선했으면 새턴 V에 필적하는 로켓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달 착륙용 로켓 이후로 1980년대의 우주왕복선 계열로 와서는 후속작 에네르기아 로켓이 과거 N1 로켓의 한계를 모두 극복하였으며, 소유스 로켓은 100% 무사고 성공 기록을 자랑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옛날에 달 착륙 경쟁을 하던 시절에는 소련이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우주로 날아가는 로켓은 수평으로 달리거나 굴러가면서 내기도 어려운 엄청난 고속 가속을... 중력을 정면으로 180도 거스른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구현한다는 게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그러니 수백~수천 톤에 달하는 연료를 겨우 몇 분 만에 다 태워 없애 버린다.

수 톤 남짓한 payload를 지구 저궤도에 띄우고 우주로 보내기 위해서 이만한 연료가 필요한데, 그 연료 자체의 무게 때문에 또 엄청난 양의 연료가 추가되고.. 이런 걸 다 감안하며 계산해 보니 결국 저 거대한 로켓이 필요해진 것이다. 나라에서 세금을 걷으려면 원래 필요하던 돈뿐만 아니라 세금을 걷는 데 드는 비용까지 다 감안해서 세금을 걷어야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저런 난관을 해결하고 대형 고출력 엔진만 만든다고 해서 일이 다 끝나는 것도 아니다.
로켓은 총알처럼 강선을 타고 고속으로 뱅글뱅글 돌면서 날아가는 게 아니고, 무슨 비행기 같은 조향 장치(rudder)가 있지도 않은데.. 진행 방향이 어긋나기가 정말 쉬워 보이지 않는가? 그거 방향이 어긋나면.. 비행기가 실속에 빠지듯이 로켓은 최악의 경우 땅으로 꼬라박아 버릴 수도 있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져 보면.. 지금 같은 컴퓨터도 없던 반세기 전에 천체 운동 궤도를 계산하고 로켓의 모든 내부 구조를 설계한 우주 개발 공돌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천재들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또한 우주왕복선은 탐사선을 등에 업은 기형적인 자세로도 수직-수평으로 방향을 잡고 제대로 날아가는 게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에는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 소련에는 세르게이 코롤료프(1906-1966)가 있었고.. 중국에는 첸쉐썬(1911-2009) 같은 사람이 있었다. 천재 한 명이 나라의 항공 우주 기술을 다 이끌다시피했다. 우리나라...는 몰라도 일본에도 또 그런 엘리트가 분명 있을 텐데 싶다.

참고로 브라운의 경우, 정말 진성 우주덕으로서 인간을 달도 모자라서 화성에까지 보내고 싶어했는데.. 아폴로 17호 이후로 우주 개발 관련 예산이 모조리 짤리는 바람에 몹시 상심하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뭐, 천조국도 예산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니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화성까지 가는 건 현재 기술도 편도로만 최하 반 년이 넘게 걸리는데.. 거기에 사람을 보내면 그 동안 뭐 먹고 어떻게 살며 귀환은 어떻게 할지 문제가 너무 어렵긴 하겠다..;;

* 보너스: 영화 옥토버 스카이

마침 10월이 되기도 했으니 저런 로켓과 관련하여 본인이 감명깊게 접한 옛날 영화가 하나 떠오른다. 바로 옥토버 스카이.. October Sky (1999)이다.
이건 Homer Hickam(1943~)이라는 미국의 실존 인물과 그의 친구들의 학창 시절 행적을 다룬 영화로, 아폴로 13과 더불어 본인의 favorite 투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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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냥 탄광촌 깡촌에서 그저 그런 아이로 살고 있었는데..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 소식을 계기로 로켓에 완전히 미치고 꽂혀 버려서 로버트 고다드의 후예처럼 살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의 만류, 미친놈 취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철주야 로켓 연구만 하다가..
1960년,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지금 인텔 ISEF의 전신인 전미 과학 전람회(NSF)에 자기 로켓을 출품했다. 그리고 추진체 분야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본인도 먼 옛날에 ISEF의 허접 참가자였다. 그러니 저 장면에서 더욱 콧등 찡함이 느껴진다. (1960년은 인텔 사는 아직 없던 시절..)
그리고 저 소년이 쏘아올린 작은 로켓은 훗날 우주왕복선으로 바뀐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화 결말부를 한번 보시라.

Homer Hickam은 그 대회 입상실적 덕분에 버지니아 공대를 특채로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장교로 임관하여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전역 후에는 NASA에 들어가서 각종 연구 개발과 우주왕복선 승무원 양성에 관여했다고 한다.
일본 최초의 우주인이며 옛날에 <생명 그 영원한 신비> 다큐 진행자로 잘 알려진 모리 마모루도 그때 저 사람을 만났었다는 얘기다!

저런 괴짜들, 덕후들이 자기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진정한 저력이다. ㅜㅜ
1960년대에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라 하면.. 난 지금까지 실비아 라이컨스 아동 학대치사 범죄 사건(An American Crime 영화) 정도밖에 몰랐는데, 저 때 과학 전람회가 열린 곳도 인디애나폴리스이다. 시간과 공간 배경이 비슷하다.

그런데 왜 영화 제목이 뜬금없이 '10월 하늘'이냐 하면.. Rocket Boys의 단어 anagram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나도 Looking for you가 아니었으면 항공우주덕으로 기울었을 텐데.. 음악 때문에 철덕으로 방향이 고정돼 버렸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02 08:30 2018/10/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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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c 파일의 유니코드화

Visual C++ 2008까지만 해도 안 그랬던 것 같은데.. 2010쯤부터는 새로 만드는 프로젝트들의 리소스 스크립트(*.rc) 파일의 기본 인코딩이 유니코드(UTF-16LE)로 바뀌었다는 걸 본인은 최근에야 알아차렸다. 어쩐지 구버전에서는 파일을 열지를 못하더라.
그러니 이런 rc 파일의 내부에는 #pragma code_page(949) 같은 구차한 지시문도 없다.

리소스는 Windows의 실행 파일 포맷 차원에서 유니코드인데, 그걸 생성하는 스크립트 파일은 왜 유니코드가 아닌지 본인은 오랫동안 의아하게 생각해 왔다. 물론, 다국어 리소스는 언어별로 다 따로 만들지, 한 리소스 내부에 갖가지 외국어가 섞여 들어갈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을 뿐이다.

리소스 파일 관련 속성을 보면.. MFC 모드로 동작할지 말지를 지정하는 옵션이 있다. 이건 rc 파일 내부에 저장되는 추가적인 옵션/플래그 같은 건 아니고, 그냥 Visual C++ IDE의 동작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내부의 설정으로 저장되는 것 같다.

이 옵션의 지정 여부에 따라 대표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초기에 콤보박스 내부에다 집어넣을 데이터 목록을 지정하는 기능이다. 이것은 Windows API가 자동으로 해 주는 게 아니라, MFC가 추가적으로 구현해 놓은 기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소스 파일이 MFC mode로 지정돼 있지 않으면 해당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리소스 파일을 들여다 본 분은 아시겠지만 이 초기화 데이터는 Dialog 리소스 템플릿 안에 내장돼 있는 게 아니라, 240 (RC_DLGINIT)이라는 custom 리소스 타입에 따로 들어있다.
할 거면 리스트박스에다가도 같은 기능을 넣어 줄 것이지 왜 하필 콤보박스에다가만 넣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MFC를 사용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Visual C++ 리소스 에디터가 저장해 놓은 대로 콤보박스를 초기화하는 기능을 내 프로그램에다가 넣고 싶으면 MFC의 소스 코드를 참고해서 직접 구현하면 된다.

그런데 리소스 스크립트 전체의 포맷은 유니코드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초기화 데이터는 기존 코드/프로그램과의 호환성 문제 때문에 여전히 CP_ACP이니 참 애석하다.
MFC 소스를 보면 문자열을 CB_ADDSTRING 메시지로 등록하는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SendDlgItemMessageA라고 A 버전을 호출한 것을 볼 수 있다.

Windows는 여러 모로 UTF-8과는 친화적이지 않은 게 느껴진다. "UTF-8 + 32비트 wchar_t"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환경이다.

2. 소스 코드의 유니코드화, UTF-8 지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Windows는 유니코드 계열이건 그렇지 않은 계열이건 2바이트(...) 단위의 문자 인코딩을 굉장히 좋아해서 전통적으로 UTF-8에 친화적이지 않았다. 친화도는 "UTF-16 > BOM 있는 UTF-8 > BOM 없는 UTF-8"의 순이다.

물론 Visual Studio의 경우, 먼 옛날의 200x대부터 소스 코드를 UTF-8 방식으로 불러들이고 저장하고, 파일 형식을 자동 감지하는 것 자체는 잘 지원한다. 하지만 한글 같은 게 전혀 없고 BOM도 없어서 일반 ANSI 인코딩과 아무 차이가 없는 파일의 경우 기본적으로 UTF-8이 아니라 ANSI 인코딩으로 간주하며, 디폴트 인코딩 자체를 UTF-8로 맞추는 기능은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다시 말해 새로 만드는 소스 코드라든가, 처음엔 한글이 없었다가 나중에 한글· 한자가 추가된 파일의 경우 실수로 여전히 cp949 같은 재래식 인코딩으로 파일이 저장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일일이 저장 옵션을 바꿔 줘야 된다.

Windows 환경에서 UTF-8 인코딩의 C++ 소스 코드는 (1) 주석을 다국어로 작성해서 온전히 보존 가능하고, (2) 동일 파일을 xcode 같은 타 OS에서도 깨지는 문자 없이 공유 가능하다는 것 정도에나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L"" 문자열이 아니라 printf나 WM_SETTEXTA 같은 곳에 쓰이는 "" 문자열은 소스 코드의 인코딩이 무엇이냐에 따라 값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Windows가 진정한 UTF-8 친화적인 환경이 되려면 시스템 코드 페이지 자체를 65001 UTF-8로 지정할 수 있고 명령 프롬프트에서도 그게 지원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UTF-8은 (1) 특정 로케일이나 언어에 속해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2) 기존 multibyte 인코딩들과는 달리 한 글자가 3바이트 이상의 길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Windows는 이를 지원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요즘 마소가 워낙 파격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Windows 10로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으니 이런 금기가 앞으로 깨지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3. 디버그 로그의 유니코드화

Windows가 10이 나온 이래로 많이 바뀌긴 했다. 완전히 새로운 기능들만 추가되는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졌고 앞으로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처럼 여겨지던 기능까지도 말이다.

가령, OutputDebugString 함수는 통상적인 다른 API 함수들과는 반대로, W가 내부적으로 A 버전을 호출하고 유니코드를 수십 년째 전혀 지원하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굉장히 불편했는데.. 언제부턴가 Visual C++의 디버그 로그 출력창에 surrogate(확장 평면)까지 포함해 유니코드 문자열이 안 깨지고 온전히 찍혀 나오는 걸 보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놀랐다. 나중에 개선된 거라고 한다.

그리고 Windows의 에디트 컨트롤은 개행 문자를 오로지 \r\n밖에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메모장에서 유닉스(\n) 방식의 파일을 열면 텍스트가 개행 없이 한 줄에 몽땅 몰아서 출력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Windows 10의 최신 업데이트에서는 개선되어서 \n도 제대로 표시 가능하게 되었다.
수백 KB~수 MB 이상 큰 파일을 여는 게 너무 오래 걸리던 고질적인 문제가 개선된 데 이어, 또 장족의 발전이 이뤄졌다.

Windows가 제공하는 유니코드 관련 API 중에는 주어진 텍스트가 유니코드 인코딩처럼 보이는지 판별하는 IsTextUnicode도 있고, 한자 간체-번체를 전환하는 LCMapString 같은 함수도 있다.
IsTextUnicode의 경우, 1바이트 아스키 알파벳 2개로만 이뤄진 아주 짧은 텍스트를 UTF-16 한자 하나로 오진(?)하는 문제가 있어서 내 기억이 맞다면 한 2000년대 Windows XP 시절에 버그 패치가 행해지기도 했다. 사실, 이런 휴리스틱은 정답이 딱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저런 식으로 알고리즘이 일부 개정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Windows에서 데이터 기반으로 동작하는 유니코드 API들은 대개가 한 1990년대 말, 겨우 Windows NT4와 유니코드 2.0 정도나 있던 시절 이후로 그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업데이트 된 내역이 없다.

그래서 간체/번체를 변환하는 테이블에 등재된 한자는 내가 세어 본 기억에 맞다면 2300개 남짓밖에 되지 않으며, IsTextUnicode도 21세기 이후에 유니코드에 새로 추가된 수많은 글자들까지 고려하지는 않고 동작한다.
이 와중에 그래도 Windows 10에 와서 OutputDebugStringW가 제 구실을 하기 시작하고 메모장의 동작이 바뀌기도 한 것이 놀랍게 느껴진다.

한편, UTF-8은 그래도 첫 바이트로 등장할 만한 글자와 그 이후 바이트로 등장할 만한 글자가 형태적으로 무조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데이터니 통계니 휴리스틱 없이도 자기가 UTF-8이라는 게 딱 티가 나며, UTF-8을 타 인코딩으로 오인한다거나 타 인코딩을 UTF-8로 오인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 매우 큰 장점이다.

4. 문자형의 부호 문제

컴퓨터에서 문자열의 각 문자를 구성하는 단위 타입으로는 전통적으로 char가 쓰여 왔다. 그러다가 유니코드가 등장하면서 이보다 공간이 더 커진 wchar_t가 도입되었으며, 언어 표준까지 채택됐다. 값을 다룰 때는 같은 크기의 정수와 다를 게 없지만, 포인터로는 서로 곧장 호환되지 않게 type-safety도 강화되었다.

그런데, 처음에 1바이트짜리 문자열의 기본 타입을 왜 괜히 부호 있는 정수형인 char로 잡았을까 하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매번 unsigned를 붙이거나 typedef를 하는 건 귀찮은 일이며, 영미권에서는 문자 집합 크기가 7비트만으로도 충분했다는 그 상황은 이해한다. 하지만 문자 코드를 저장할 때는 애초에 부호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char보다 더 큰 wchar_t도 결코 부호 있는 정수형과 대응하지 않는다.

크기가 겨우 8비트밖에 안 되는 '바이트'는 양수 음수를 따지기에는 너무 작은 타입이기도 하다. 파일이나 메모리 데이터를 바이트 단위로 읽으면서 2의 보수 기반의 부호를 따질 일이 과연 있던가..?

이런 구조로 인해.. UTF-8이건 -16이건 -32이건 모두 대응 가능한 문자열 템플릿을 만들 때, char형에 대해서만 코드값 범위 검사를 할 때 예외를 둬야 하는 불편한 상황도 생긴다. 템플릿 인자로 주어진 어떤 타입에 대해서, 크기는 동일하면서 부호만 없는 타입을 자동으로 되돌리는 방법이 C++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타입에서는 다 간단하게 >= 0x80을 검사하면 되는데, char만 <0을 봐야 한다. 이런 거 로직이 꼬이면 모든 타입에서 0xF0이 저장되어야 하는데 딴 타입에서는 0xFFF0이 저장되는 식의 문제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임의로 제일 큰 부호 없는 정수형으로 typecast를 하는 건 무식한 짓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하루는 이게 너무 짜증 나서 std::basic_string<unsigned char>로부터 상속받은 클래스를 새로 만들어 버렸다. 베이스 클래스의 명칭이 딱 한 토큰 한 단어가 아니라 저렇게 템플릿 인자가 덕지덕지 붙은 형태인 게 특이했다만.. 생성자 함수에서 기반 클래스를 호출할 때는 __super를 쓰지도 못하더라.

내부적으로는 모든 처리를 unsigned char를 기준으로 하는데, 생성자와 덧셈 연산, 형변환 연산에서만 부호 있는 const char*를 추가로 지원하는 놈을 구현하는 게 목적이었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건 절대 아닐 텐데..
개인적으로 + 연산자를 만드는 부분에서 좀 헤맸었다. 얘는 +=와 달리 완전한 내 객체를 새로 만들어서 되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컴파일러 에러를 피해서 제대로 구현하는 게 생각보다 nasty했다. 그렇다고 도저히 못 할 정도는 아니었고.. 뭐 그랬다.

그러고 보니 Java는 기본적으로 부호 있는 정수형만 제공하지만, char만은 문자 저장용으로 부호 없는 16비트 정수를 쓰는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그런데 얘도 그 크기로는 BMP 영역 밖은 표현할 수 없다. Java 언어가 처음으로 설계되고 만들어지던 때는 1990년대 중반으로, 아직 유니코드 2.0과 확장 평면 같은 개념이 도입되기 전이었다.
결국 범용적인 글자 하나를 나타내려면 부호 있는 정수인 int를 써야 한다. 상황이 좀 복잡하다..;;

5. Windows 문자열 변환 함수의 함정

Windows API 중에서 WideCharToMultiByte와 MultiByteToWideChar는 운영체제가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2바이트 단위 UTF-16 방식의 문자열과 타 인코딩 문자열(UTF-8, CP949 등..)을 서로 변환하는 고전적인 함수이다.

이 두 함수는 크게 두 가지 모드로 동작한다. (1) 사용자가 넘겨준 문자열 버퍼 포인터에다가 변환을 수행하거나.. (2) 아니면 그렇게 write 동작을 하지는 않고, 이 원본 문자열을 몽땅 변환하는 데 필요한 버퍼의 크기만을 되돌린다.
일단 (1)처럼 동작하기 시작했는데 사용자가 넘겨준 버퍼 크기가 원본 문자열을 모두 변환해 넣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면 함수의 실행은 실패하고 0이 돌아온다.

이때도 기존 버퍼의 크기만치 변환을 하다가 만 결과는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원본 문자열의 어느 지점까지 변환하다가 끊겼는지를 이 함수가 알려 주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보를 유의미하게 활용하기 어려우며, 이는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다.

그러니 버퍼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없는 일반적인 경우라면, WideCharToMultiByte를 기준으로 함수를 사용하는 방식은 이런 형태가 된다. 함수를 두 번 호출하게 된다.

const wchar *pSrcBuf = L"....";
int len = WideCharToMultiByte(CP_***, pSrcBuf, -1, NULL, 0, ...); //(2) 크기 측정
char *pTgtBuf = new char[len];
WideCharToMultiByte(CP_***, pSrcBuf, -1, pTgtBuf, len, ...); //(1) 실제로 변환
...
delete []pTgtBuf;

그런데, 이들 함수가 (1)과 (2) 중 어느 모드로 동작할지 결정하는 기준은 버퍼 포인터(pTgtBuf)가 아니라, 버퍼의 크기(len)이다.
보통은 크기를 측정할 때 포인터도 NULL로 주고 크기도 0으로 주니, 함수가 내부적으로 둘 중에 뭘 기준으로 동작하든 크게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한 버퍼에다가 여러 문자열을 변환한 결과를 취합한다거나 해서 포인터는 NULL이 아닌데 남은 크기가 우연히도 딱 0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주의해야 한다. 포인터와 버퍼 크기가 pTgtBuf + pos, ARRAYSIZE(pTgtBuf) - pos 이런 식으로 정해진다거나 할 때 말이다.

저 식에서 pos가 우연히도 배열의 끝에 도달했다면, 남은 크기가 0이니까 프로그래머가 의도하는 건 이 함수의 실행이 무조건 실패하고 0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럼 프로그램은 버퍼 공간이 부족해졌다는 걸 인지하여 지금까지 쌓인 버퍼 내용을 딴 데로 flush한 뒤, 변환을 재시도하면 된다.

하지만 이 함수는 프로그래머가 의도한 것처럼 동작하지 않는다. 문자열 변환을 하지 않지만, 마치 실행에 성공한 것처럼 변환에 필요한 버퍼 크기를 되돌린다. 쉽게 말해 "(1)에 대한 실패"가 아니라 "(2)에 대한 성공"으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피하려면, 버퍼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은 WideChar...함수가 실패했을 때뿐만 아니라 포인터가 버퍼의 끝에 도달했는지의 여부도 따로 체크해야 하며, 그 경우 버퍼를 flush해 줘야 한다. 변환 함수가 후자까지 같이 체크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날개셋 편집기가 9.5의 이전 버전에, 바로 이것 때문에 대용량 파일을 저장할 때 낮은 확률로 데이터를 날려먹는 버그가 있었다.

Windows API가 입력값이 0일 때에 대해 일관된 유도리가 없어서 불편한 예가 GDI 함수에도 있다.
주어진 문자열의 픽셀 단위 길이와 높이를 구하는 GetTextExtentPoint32의 경우, 문자열 길이에다 0을 주면 가로는 0이고 세로 크기만 좀 구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질 않고 그냥 실행이 실패해 버린다.
높이만 구하고 싶으면, 공백 하나라도 dummy로 전해 준 뒤 리턴값의 cx 부분은 무시하고 cy를 사용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29 08:35 2018/09/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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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라는 게 2010년대부터야 (1) 표면 대부분이 그냥 터치식 액정 화면인 스마트폰이 주류가 됐다. 그보다 약간 전 2000년대 과도기에는 피처폰이 있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작은 전화기인 (2) 폴더식 휴대전화도 있었다. (뭐, 특수한 소비자 계층을 위해 폴더형 스마트폰도 있긴 함)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전에는 본체는 건물의 전화선에 연결돼 있고, 송수화기가 거기로부터 반경 몇십 m 정도까지는 떨어져 있어도 되는 (3) 무선 전화기가 많이 쓰였다. 무선 이전에는 당연히 유선이었고. 대략 1990년대의 얘기다.
전화기 송수화기와 본체를 연결하는 선은 여느 케이블과 달리, 유난히 굵고 꼬불꼬불한 형태였던 것 같다.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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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의 숫자 버튼들은 눌렀을 때 들리는 삑삑 신호음의 음높이가 각 숫자마다 모두 달랐다. 절대음감 황금귀는 그 음만 듣고도 무슨 숫자가 눌렸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반면 디지털 도어락은 저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될 테니, 모든 버튼의 음높이가 당연히 동일하게 맞춰져 있다.

뭐, 그 시절에도 진정한 의미의 무선 전화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카폰 같은 건 고가의 사치품으로 쓰였다. 우등 고속버스 안에는 1993년부터 무려 이동식 공중 전화기가 비치되기도 했다. 이용/통화료는 도입 당시에 40초당 100원이었다는데, 길거리의 공종 전화보다는 분명 더 비쌌을 것이다.

더 옛날, 한 1980년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제 (4) 전화기의 숫자 버튼은 다이얼로 바뀐다. 다이얼은 한번 돌렸다가 되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버튼만치 번호를 빠르게 입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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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엄청 어린 시절에 다이얼 전화기를 써 본 기억이 있다. 요런 고전 전화기는 전화가 왔을 때 금속판이 부딪치면서 그 특유의 따르르릉~ 소리가 났다. 하긴, 옛날에는 초인종만 해도 요즘 같은 전자음 일색이 아니라 진짜 금속판이 부딪치는 청명한 딩동 소리가 났었는데.. (말 그대로 종)

이것보다 더 옛날 전화기는 거의 1960년대와 그 이전의 골동품이다. 여기부터는 본인이 실물을 직접 구경하거나 사용해 본 적이 없다. (5) 전화기가 새까만 상자 모양인데, 어딜 봐도 숫자를 입력하는 부분이 안 보인다. 그 대신 옆구리에 옛날 자동차의 수동식 윈도우처럼 뭔가 돌리는 손잡이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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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려 발전기와 연결된 손잡이라고 한다. 이걸 뱅글뱅글 돌리면 약한 전류가 생겨서 전화국으로 신호가 가고, 교환원과 연결되는가 보다. 그래서 송수화기를 들고 교환원에게 전화번호를 "구두로 전달"하면, 교환원이 그 전화번호로 연결을 해서 발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준다고 한다. 그렇게 통화가 성사되고, 전화비는 물론 발신자에게 청구되는 식...??? >_<

전화번호 숫자를 사람에게 불러 줘야 했다니 그 불편함과 번거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다.
하긴, 다이얼식 전화기가 도입된 뒤에도 시외 장거리 통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교환원을 불러야 했다. 이렇게 말이다. (1968년도 대한뉴스 제 665호)
국내에서 지역 번호가 도입되고 이 절차까지 전국적으로 완전히 자동화가 된 건 1987년경의 일이라고 한다.
전화 교환원 내지 교환수는 타자수, 안내양만큼이나 20세기 중반 옛날에나 있었던 여성 위주의 직업이었다. 그러다 20세기 후반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이 시점에서 전화기의 전원 공급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휴대전화야 당연히 배터리가 있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충전을 해야겠지만, 유선 전화는 사정이 좀 달라서 전화선이 통신 겸 전원 공급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의 유선 전화기는 전통적으로 타 전자 기기와 같은 100/220볼트 전원 플러그를 갖추고 있지 않았으며, 딱히 전원 on/off 버튼 같은 것도 없다. 그리고 건물이 정전됐을 때에도 전화는 여전히 사용 가능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물론 유선 전화도 전화선 케이블을 뽑아 버리면 먹통이 되겠지만, 그래도 "수신자의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이런 말은 유선 전화보다는 무선 휴대전화로 오면서 훨씬 더 자주 듣게 된 에러 메시지이다.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유선 전화에서는 가입된 모든 전화들이 교환국에서 쏴 주는 동일한 전원을 송· 수신용으로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공동 전지식'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는 게 사실 속 시원하고 편하다.

그런데 전화라는 게 처음 등장했던 시절에는 이런 인프라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화기가 외부 전원을 따로 끌어다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전화를 걸려면 사람이 손으로 소형 발전기를 돌리는 막장짓을 해야 했다. 옛날에 자동차에 스타터 모터가 없던 시절엔 밖에 노출된 엔진 플라이휠을 사람이 직접 힘들게 돌려서 시동을 걸었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 시절에 옛날, 특히 군용 전화기는 전기 고문 도구(!)로 즐겨 쓰이기도 했다. 전화선을 통신용으로 안 쓰고 사람 몸에다 꽂은 뒤, 전화기 손잡이를 열나게 돌려 주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교환국에서 전기를 쏴 주니 전화기에서 전류를 직접 생산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역으로 일반 전원 플러그 대신에 전화선으로부터 전기를 빼돌려 쓰려는 수작이 적발되는 경우가 있다고 그런다.

이건 벼룩의 간을 빼 먹는 짓이다. 전화기가 동작하는 데에나 적합한 최소한의 전압(20~40V 남짓)과 전력으로 누군가가 비정상적인 exploit을 시도하면 그쪽으로 과부하가 걸린다. 마치 송유관에서 비정상적으로 유압이 감소하는 지점을 중앙 통제실에서 감지해서 기름 유출과 절취를 적발하듯, 전화선 전류의 오용도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이다.

참고로, 1980년대 초반까지는 전화선 플러그 자체가 100V 플러그와 동일한 모양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전화기를 진짜 100V 전원 플러그에다 꽂으면 기기가 과전압 때문에 타 버렸다.
그러다가 전화 플러그는 220V 같은 둥근 쇠막대를 가로 세로 두 줄 총 네 개씩 꽂는 형태로 바뀌었다.

전화기의 전원 얘기가 꽤 길어졌다.
아무튼, 저것보다 더 옛날 구식 전화기를 찾자면 거의 1940년대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분명 가정용 전화기임에도 (6) 지금의 공중전화처럼 거대하고 표면이 목재(...)이며, 송수화기가 분리되어 있는 그 물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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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사극에서 주재소에서 일본 헌병이 양손으로 송화기를 입에, 수화기를 귀에다 댄 뒤, "무시무시~?" 이러는 장면이 떠오를 것만 같다.
옛날에는 이런 원시적인 전화기조차도 일반 서민이 장만할 만한 물건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텔레비전만 해도 1950년대 말~1960년에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옛날 KBS의 전신 방송사에서 방송을 최초로 시작했을 때는..
주 겨우 4회에 저녁 6시 반부터 9시까지 꼴랑, 겨우 2시간 반씩만 방송을 했다. 그래 봤자 인서울 말고는 전파가 가지도 않았고, 서울 안에서도 TV 수상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 부유층밖에 없었다. 그 시절에 따로 뉴스 영화라는 게 괜히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자막 같은 보조 영상 처리는 카메라 바로 앞에다가 스케치북을 비추기도 하는 등 정~말 미흡하고 허접하기 그지없었으며, 물자가 부족하니 대부분 생방송이고 녹화분 백업 같은 것도 없다시피했다. 오늘날 TV의 영향력과 대조해 보자면 그 시작은 심히 미약하기 그지없었는데.. 그것처럼 전화기 역시 아주 귀하고 한편으로 다루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자, 우리는 지금까지 스마트폰에서 버튼/다이얼 유선 전화기, 수동 발전기가 달린 전화기까지 시간 여행을 해 보았다. 전화기의 모양이 워낙 드라마틱하게 변화했기 때문에 요즘 10대 어린애들은 ☎ <- 이게 어째서 왜 전화기인지도 이해하지 못할 지경이 돼 있다. 마치 저장 아이콘이 왜 디스켓 모양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는 '전화기'보다 더 거시적인 전화 시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다.

1899년 9월에 한반도 땅에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개통한 것보다 몇 년 전.. 1895년 9월에 한성-제물포(= 서울-인천)간에 모스 부호 전신이 개통했으며 1896년에 음성 통화가 되는 자석식 전화기가 왕궁 위주로 설치됐다고 한다.
그 뒤 한성-제물포 사이의 시외 음성 통화가 가능해진 것은 1902년이다. 그래 봤자 전화 가입자는 극소수 부유층뿐이었다.

김 구가 소싯적에 일본인 상인을 죽이고(일명 치하포 사건) 감옥에 갇혔을 때, 고종 황제가 갓 개통됐던 전화로 긴급 명령을 내려 사형 집행을 중단시켰네 뭐네 하는 기록이 백범일지에 적혀 있다. 하지만 아직 1900년도 되기 전이던 그때는 고증상 시외 전화 같은 게 없었다는 반론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고종이 전화 통화가 아니라 전보로 명령을 내린 것이라는 재반론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화의 개통과 관련하여 이런 유명한 논란거리도 있다는 게 흥미롭다. 백범일지 기록이 미주알고주알 세부적인 디테일까지 다 정확하지는 않으며, 최악의 경우 주작이 들어갔을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전화기는 자동차보다야 저렴한 물건이겠지만 이게 집집마다 빠짐없이 보급된 건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다. 최소한 박통을 지나서 1980년대 전대갈 시절은 돼서야 마이카 시대와 비슷한 타이밍에 보급됐다.
자동차 등록 대수 1천만 대 돌파가 1997년의 일이고 2천만 대 돌파는 지난 2014년경인데, 전화 1천만 회선 돌파는 1987년 9월경에 이뤄졌다. 2천만 회선 돌파는 더 이른 1993년 11월이다. 1가구 1 전화를 넘어 2전화까지 달성된 셈이다.

그러니 옛날에는 전화번호부 책 한 권으로 시· 도의 전화 가입자 전체 명단을 쭉~ 나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리스트가 너무 방대하고 별 효용이 없으며,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명단을 만들지 않는다.
또한, 2천만을 찍고 나서 2010년대 이후로는 무슨 4천, 5천만 회선을 돌파했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인구가 그만치 무한한 게 아니니 2900만 회선 정도에서 정점을 찍은 뒤 3천만은 돌파하지 못하고 이제는 감소 추세라고 한다.

전화번호라는 게 기본적으로 4자리 숫자이고 그 앞에 일명 '국번'이라고 불리는 전화 교환국의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부르는 포맷도 이것 영향을 받아서 단순히 'xx 다시(dash) yyyy'가 아니라, 'xx국에 yyyy' 이런 식이었다.
지금이야 국번이라 불리는 앞쪽 번호가 기본이 3자리이고 대부분 4자리까지 차지하여 번호의 자릿수와 대등하다. 하지만 옛날에 전화 회선수가 적던 시절엔 국번이 정말 씨크하게 한 자리밖에 없던 시절도 있었다.

자동차의 번호도 기본이 4자리 숫자리고 앞 번호가 지금은 2자리인데 이제 번호가 부족해서 3자리로 확장하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옛날에는 자동차의 앞번호도 한 자리였던 것이 지금의 전화번호와 사정이 비슷해 보인다.

유독 전땅크 시절에 국내에 전화가 폭발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던 것은 1985년, 우리나라에서 대용량 전화 전전자(全電子) 교환기를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무선 휴대전화까지 보급된 지금의 입장에서야 구닥다리가 됐지만 그 시절엔 국번 내지 지역번호만 보고는 전국에서 폭주하는 그 어떤 전화 트래픽에도 자동으로 대처하여 회선 교환을 자동으로 해 주는 최첨단 장비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1982년부터 ETRI에서 연구진들이 "이 정도 시간과 자금을 투입하고도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각서까지 쓰고 굉장한 모험을 감내하며 개발한 것이었다. 승용차 포니, 경부 고속도로, 한국형 고속철, 포항 제철 등에 필적하는 중요 과업이었다. 거의 이런 근성으로 연구진들을 갈아넣은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

  • 1950년대 월드컵 한일전에 처음 출전할 때: 왜놈들한테 졌다가는 대한 해협을 헤엄 쳐서 귀국하겠습니다.
  • 포항 제철 처음 만들 때: 이건 우리 선조들의 피눈물이 담긴 일제 피해 배상금을 밑천으로 만드는 거다. 실패라도 한다면 우리 다같이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뛰어내려서 죽자.
  • 전화 교환기: 지금 얘기하는 대로..

어쨌든, 이게 개발이 성공하고 1986년에 상용화된 뒤에야 수동 교환원이라는 직업이 완전히 확인사살 퇴출되었으며, 전국 통합 지역번호라는 게 도입되어 장거리 시외 전화도 돈만 더 들 뿐 편리하게 걸 수 있게 되었다. 총기가 격발· 급탄 절차가 완전히 자동화되어서 원시적인 화승총이던 것이 기관총으로 변모한 것과도 같다.

전자식 교환기가 개발되기 전에는 장거리 전화를 거는 게 불편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늘어나는 전화 가입 수요 자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무슨 최신형 아이폰을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전화 개통 예약 대기가 몇 달~1년치까지 밀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회선을 하나 추가할 때마다 전화 시설 측면에서 늘어나는 부담이 만만찮았던 것 같다.

그러니 이미 전화 회선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위화감이 커졌으며, 196, 70년대에는 전화 회선을 무슨 명절 귀향 열차 암표처럼 타인에게 편법으로 양도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전기통신법이 개정되어 전화 회선의 타인 양도가 뒤늦게 금지되긴 했지만, 새로 개설되는 회선에만 이 제약이 적용됐기 때문에 일명 백색 전화(양도 가능. 1970년 8월 이전 가입의 기존 전화) 청색 전화(양도 불가..) 촌극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당연히 전자의 가격은 폭등했다.

전화 자동화 사업 완료를 기념하는 1987년자 홍보 영상은 다음과 같다. (대한뉴스 제 1651호)
이것 역시 한번 만들고 끝이 아니라 처리 가능 용량을 더 증가한 업그레이드 시스템을 계속해서 개발하여 추후의 회선 증가에도 대처해 왔다.

ETRI에서는 무려 1982년에 국내 최초로 인터넷 연결도 해냈고(전 길남 박사 연구팀),
1988년엔 삼성 전자에서 국내 최초로 벽돌만 한 휴대전화를 만들어 내고.. 그게 나름 국내에서 세계 최첨단을 달린다는 전자 통신 연구진들이 그 시절에 하던 일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는 지역번호가 도 단위로 통합되어 더 단순해졌으며, 자동차 번호판은 영업용 말고 자가용 한정으로 지역 표기가 없어졌다.
이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존 유선 전화와 무선 휴대 전화의 통합은 어떻게 이뤄졌으며, 발신자 표시 같은 기능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도 개인적인 의문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도로나 철도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항로, 그리고 광케이블(땅 속+바닷속) 내지 송유관의 배치는 어찌 되고 관리가 어찌 되고 있는지 같은 것도 궁금해진다. 전화와 통신 기술의 발달도 자동차 같은 교통 분야의 기술 발달과 연계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끝으로 하나 더.. 전화기는 지금까지 주로 다뤘던 개인용만 있는 게 아니라 회사 같은 데서 쓰는.. "내선 연결" 인터폰 기능이 있는 약간 특수한 물건도 있다.
스마트폰 모양도 아니고 여전히 구닥다리 유선 버튼식이지만, 대표 전화번호 하에서 각 자리별로 전화를 세부적으로 걸 수 있으며, 남에게 내 전화를 전달하거나 남에게 온 전화를 자기가 대신 받을 수도 있다. 회사에 취직하면 처음에 이런 전화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실, 별표*와 우물정# 버튼도 원래 이런 특수한 용도를 위해 만들어져 있다.

텔레비전도 전파를 받는 게 아니라 그냥 고정된 위치만 보여주는 CCTV라는 게 있고, 인터넷 세계에도 사내 전용망인 인트라넷이 있다. 그런 것처럼 전화에도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local한 용도가 있는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26 08:36 2018/09/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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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18년 9월은 본인에게 의미심장한 전환점에 속하는 시기였다. 거의 50일 동안 날 괴롭히던 지긋지긋한 무더위가 드디어 물러가고 계절이 바뀌었다.
그리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 파이널 9.5 버전을 완성했다. 홀가분하고 기뻤지만 그 뒤에도 사소하게나마 프로그램에 수정 작업이 야금야금 진행되었으며, 더 나아가 동시치기 기능도 이게 다가 아닌데 정확도를 더 개선할 수 없을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글 입력기 말고 글꼴 쪽 연구도 하면서 학위논문 쓸 걸 준비해야 하는데.. 뭔가 오랜 독재 정권이 갑자기 무너진 뒤에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러 밀린 숙제들 중 무엇부터 진행하는 게 좋을까?
아.. 그 와중에 재작년에 했던 것처럼 자그마한 발표 논문을 하나 준비해서 투고했다. 이것도 여러 모로 스트레스 받는 작업이었다.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는데 날씨는 너무 좋았다. 낮엔 하늘이 완전 파랗다가 밤에는 싸늘해지고... 도저히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추석을 열흘 남짓 남기고 논문 투고까지 마친 타이밍 때.. 본인은 이 억눌린 욕망을 발산하기 위해 남양주의 시골 마을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짤막한 힐링 여행을 떠났다.

남양주는 생각보다 넓기 때문에 북쪽의 경춘선+북한강+가평 방면도 남양주이고, 남쪽의 중앙선+남한강+양평 방면도 남양주이다. 둘을 분리해서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본인이 주목한 곳은 남쪽인 와부읍 일대였다. 그래서 미사대교를 건너서 덕소삼패 IC로 진출했다.

남양주는 도농 복합 도시인 관계로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아주 전원적이고 강과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보안 시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군부대뿐만 아니라 상수도 취수· 정화 시설도 있다.
이런 것들 말고 또 남양주의 명물로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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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거의 세계 유일의 보잉 747 초기 퇴역분 기체가 곁들어진 건물이다. 월문교 사거리 근처에 있다.
열차나 선박을 개조한 건물과 달리 비행기를.. 그것도 그냥 전투기 같은 크기의 물건을 전시만 한 게 아니라 거대한 여객기를 건물 형태로 꾸며 놓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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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은 주날개와 엔진이 완전히 제거되었고, 총으로 치면 마치 sawed-off 샷건처럼 뒷부분도 짤려서 뭉툭해졌다는 점이다. 날개가 없으니 기체가 일면 선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긴, 옛날에는 기체가 더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긴 했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칠이 벗겨지고 온통 녹슬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관리에 부담 되는 부분이 짤려 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무려 그 육중한 747기가 깡그리 고철로 스크랩 되지 않고, 이렇게라도 형체가 남았다는 점에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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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가 기체 내부를 개조해서 뭔가 활용을 할 의향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안은 아직까지 굳게 잠겨 있고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었다.
위의 사진은 기체의 창문 안을 찍은 것이다. 내부가 어서 카페나 박물관으로 개방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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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답사를 마친 뒤, 본인은 거기보다 살짝 더 북쪽에 있는 보안 시설을 찾아가 봤다. 알고 보니 한쪽으로는 군부대가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서울 아리수 와부 정수장'의 진입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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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은 이런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그리고 군인 아파트는 전국 어딜 가나 이런 투박한 모양인 듯하다.

참고로 여기 말고 또 다른 정수장으로 추정되는 보안 시설도 여기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전자가 서울시 상수도 사업 본부 소속인 반면, 후자는 한국 수자원 공사 소속이다. 사진은 그냥 생략하고 넘어가지만, 담장의 쇠창살 모양이 팔당댐 근처의 정수장에서 본 것과 동일하긴 했다.

뭐, 이렇게 흥미로운 답사를 했다. 여기 주변은 온통 식당들이 널렸기 때문에 본인은 식사도 했다. 오늘의 마지막 끼니가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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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인은 시골 농로를 달려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향해 다가갔다.
지도와 내비상으로는 '어룡지'라고 저수지가 근처에 있는 듯했으나, 본인은 딱히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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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 30분마다 한 대씩 다닌다는 99-2라는 마을 버스가 서는 곳이 등산로의 입구이다. 하지만 이 등산로에는 차도도 있기 때문에 더 깊숙한 곳까지 차로 진입할 수 있었다.
포장 도로가 끝나고 차가 더 들어갈 수 없는 곳에는 차를 세 대 정도 세울 수 있는 주차 공간이 있었다. 이제 여기서부터 본인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등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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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한 주 내내 날씨가 왕창 좋다가 하필 본인이 여행을 떠난 날에만 하늘이 허옇고 잔뜩 흐려진 게 아쉬웠지만, 이런 날씨도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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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울타리와 깔개, 계단 같은 게 만들어져 있을 정도로 잘 정비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ATV나 산악 자전거가 지나갈 수는 있을 정도로 폭이 확보되어 있었다. 일부 구간은 의외로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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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지나서 산 속에서 하늘이 보이는 공터를 발견하면 뭔가 느낌이 굉장히 새롭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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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등산로도 무슨 누리길 누비길처럼 시에서 이름을 붙여 놓은 게 있었다. '큰사랑 산길'.
길은 꼬불꼬불 가팔라지기까지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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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능선에 도달했다. 주변엔 쉬어 가라고 벤치와 평상이 놓여 있었다.
알고 보니 여기는 '새재고개'라고 한다. 성남-광주 사이에는 '이배재, 태재고개'가 있더니만..
성남과 광주 사이에 산들이 잔뜩 늘어서 있듯, 남양주 동부와 양평 사이에도 갑산, 예봉산, 예빈산 같은 산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능선을 타는 길을 '천마지맥 누리길'이라고 부르더라.

본인은 그쪽으로 등산은 예봉산 한 번밖에 못 가 봤지만 여기도 기회가 되는 대로 차차 개척해 나가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산을 하나 골라서 꼭대기까지 오른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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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재고개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산등성이에서 혼자 단잠을 잤다. 바닷가와 강가에서 텐트를 치고 자 봤으니 언젠가 꼭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자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
마침 평상이 하나 있던 덕분에, 그 위에다 텐트를 치니 완전 딱이었다.

노트북 PC가 든 백팩뿐만 아니라 텐트와 돗자리까지 들고 산을 오르느라 몹시 힘들었다. 그러니 좁고 험한 길은 가지 못하고 처음부터 이런 큰길(?) 위주로, 그리고 산 중턱까지 최대한 차로 접근 가능한 등산로를 선택했던 것이다.
사실, 여기 주변의 샛길로 빠져서 적갑산이나 갑산의 정상으로 갈 수도 있지만 본인은 그러지 못했다. 짐 때문에 산에서의 이동성을 일부 희생한 대신, 산 속에서 극한의 주거성을 얻었다.

두어 시간 남짓 만에 해가 졌다. 인적이 완전히 끊기고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혔는데.. 텐트 안에만 있으면 비바람과 추위를 다 피할 수 있고 아늑하고 포근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다 침낭까지 뒤집어쓰면 밖이 영하의 혹한이어도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았다. 난 이런 상태에 있는 게 노무노무 좋았다.

산 속 야영과 관련해서 혹시 법적인 문제는 없냐고 문의하는 분이 계신다.
해가 지면 모두 나가야 하고 야영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은 국립공원, 아니면 청와대 뒷산 정도이다. 그리고 서울 시내의 한강· 청계천 공원 같은 곳도 공식적으로 야영 금지이다.
하지만 그냥 저런 평범한 산들은 (1) 쓰레기 안 버리고 (2) 불을 피우지만 않으면 산 속에 짱박혀서 뭘 하든 문제될 것 없다.

이튿날 아침에 개운하게 눈을 뜬 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집으로 귀환했다. 공공시설인 평상을 너무 오랫동안 혼자 전세 내면 안 되니까..
산에서 야영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밖에 안 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또 오지에 있는 다른 산에서 야영을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23 08:29 2018/09/2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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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은 그 넓은 대륙 전지역이 강제로 단일 시간대를 쓰며, 대만(중화민국)쯤은 자기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승인하지 못하게 압력을 넣을 정도로 강경하게 1중국 단일 국가 정체성을 쪽수빨로 밀어붙이고 있다. 조금 수틀렸다간 지금의 유럽처럼 십수 개 이상의 나라로 쪼개지고 서로 독립하네 마네 내전 헬게이트가 밤낮 벌어졌을 수도 있는 대륙이 어쨌든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유지되고 있다. 뭐, 지금도 구석 곳곳에서 분쟁과 잡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는 워낙 작다 보니 미국처럼 외국 나가서 세계 평화를 지키다가 산화한 자국 군인 같은 개념이 없고, 일본이나 중국처럼 자국 내부의 무슨 소수 민족 갈등 문제 같은 것도 없다. 옛날에는 울릉도나 제주도 사람들이 본토인들에 비해 문화가 이질적이었을지 모르지만, 거기도 본토 행정구역 편입과 동화가 이미 몇백 년 전에 마무리 됐으니 이제 와서 문제될 것은 없다. 굳이 민족간 갈등이라면 재중· 재러시아 동포라든가 탈북자, 북한 관련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런 한국에 비해 중국은 참 크고 아름다운(?) 단일 국가이긴 한데, 이 때문에 말과 글까지 전지역에서 완전히 깔끔한 단일 체계로 유지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사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어라고 하면 99%는 '니 하오 마, 워 쓰 뿌, 한 궈, 쭝 궈 런' 이러는 베이징 표준 중국어, 일명 보통화를 떠올린다. 실제로 이게 화자가 가장 많아서 중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통용되며,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권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륙에는 일명 Cantonese라고 불리는 광둥(광동)어 방언도 있다. 언어 구조는 중국어와 뿌리를 공유하지만 음운과 어휘는 보통화와 이질감이 굉장히 커서 통역이 필요할 정도라고 한다. 즉, 같은 글자를 발음하는 방식이 다르고 성조 체계도 다르다. 이 말인즉슨, 보통화에 맞춰진 병음 기반 입력 방식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표준 중국어는 일부 음운에 ㄴㄹㅇ 같은 유성음 받침이 존재하는 것 말고 다른 종성이 없다. 그래서 초성은 '성모'요, 중성과 종성은 한데 뭉뚱그려서 '운모'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중국어는 음운 체계가 두벌식스럽다는 뜻이다.
그런데 광동어는 무성음 받침이 존재하며 한자들의 독음이 의외로 한국어 한자음에 더 근접해 있다.

전세계에서 모국어 화자가 가장 많은 보통화와는 달리, 광동화는 화자가 1억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물 좋은(?) 홍콩과 그 인접 지역에서 통용되고 유명 무술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나오는 관계로 화자 수에 비해 임팩트가 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이 연걸만 해도 보디가드 영화에서 홍콩 여주인공으로부터 "대륙 아저씨"라고 비아냥 받지만 말하는 것은 광동화이다. 성조도 있고 뭔가 중국어처럼 들리긴 하지만 보통화를 배운 사람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다.
킬 빌에서도 파이 메이 싸부가 광둥어 대신 일본어밖에 할 줄 모른다고 여주인공을 개무시하는 걸 볼 수 있다.

중국어는 (1) 말뿐만 아니라 (2) 글자도 잘 알다시피 간체자와 번체자로 파편화돼 있다.
간체자는 기존 한자가 획이 너무 많고 불편하다는 실용적인 이유로 인해 1950년대 말에 마오 쩌둥이 자기 재량으로 고안하고 제정한 문자 체계이다. 화폐 개혁이 아니고, 철자법이나 맞춤법 개정도 아닌 일종의 문자 개혁을 한 셈이다. 공산당 특유의 불도저 식 독재가 아니면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1953년에 6· 25 전쟁 휴전 당시에만 해도 중국도 '나라 국'을 國이라고 썼는데 불과 몇 년 뒤에 그게 싹 달라진 걸 보면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지금 같은 고성능 컴퓨터가 처음부터 짠 등장해서 잘 보급돼서 사람이 손으로 직접 한자를 쓸 일이 없어지다시피했다면 굳이 번거롭게 간체자 따위 만들어서 시간(옛날 문헌)과 공간(한국 및 대만..) 단절을 초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으며, 마오 휘하의 중국 공산당은 옛것을 청산한답시고 간체자보다 훨씬 더 심한 병크 뻘짓도 많이 저지르긴 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중국은 한자의 종주국이면서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런 종주국은 아닌.. 뭔가 어색한 위상을 지니게 됐다.
(그러고 보니 그럼 중국 말고 일본의 한자 약자는? 1949년에 '신자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간체자보다도 먼저 자체 제정한 거라고 한다.)

문제는 간체자와 번체(글)가, 보통화와 광동화(말)가 서로 딱 정확하게 맞물리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커진다. 2*2=4개 조합이 모두 제각기 존재한다.
중국 대륙이야 보통화+간체이지만, 대만은 보통화+번체여서 문자만 서로 다르다.
홍콩과 마카오에서는 광동화+번체이지만, 중국에서 광동어가 통용되는 접경 지역은 광동화+간체여서 역시 문자만 차이가 난다.

  보통화 광동화
간체 베이징 포함 중국 본토 중국의 홍콩 접경 일부 지역
번체 대만 홍콩, 마카오

컴퓨터의 localize 관점에서 봤을 때 중국어 간체(chs)와 중국어 번체(cht)는 응당 서로 다른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표준 중국어(보통화+간체) 입력기라고 해서 번체 한자 입력 기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zhongguo라고 입력했을 때 玉가 아니라 或이 들어간 中國이 제시되게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 중국과 대만이 한 IME를 옵션만 바꿔서 쓰면 되느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말이야 보통화 기반이니 '니 하오 마, 워 아이 니' 같은 간단한 말이야 그대로 통한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수십 년 이상 단절되었던 관계로, 최신 유행어라든가 외래어, 학술 용어로 가면 미묘하게 차이가 발생한다. 같은 브라우저 기능도 '즐겨찾기'와 '책갈피'로 서로 다르게 불리듯이, 다른 쪽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현지에서 말을 그렇게 쓰지는 않는 것들이 생겨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어 입력기와 대만어 입력기는 그냥 서로 다른 어휘 DB를 사용한다. 간체자냐 번체자냐 하는 건 문자 표현 수단의 차이일 뿐, 말 자체의 차이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다.

여담이지만, 보통화와 광동화도 차이가 나는 건 구어체 발화이지, 같은 문장이나 단어를 글자로 쓴다면 간체/번체만 일치한다면 글이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륙 사람도 백지 상태에서 쓸 줄을 모를 뿐이지, 옛 번체자를 그럭저럭 알아보기는 한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현대 중국어 말고 소위 말하는 공자 맹자 고전까지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런 차이는 있다고 한다. 's, 다시 말해 '~의' 소유격을 나타낼 때 문어체의 고전에서는 之가 즐겨 쓰였지만 구어 위주의 현대 중국어는 잘 알다시피 de 的이 쓰인다.
일상적으로 之를 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쓰인 문장을 아예 독해를 못 하는 건 아니라고..
한국 사람들이 "-느니라, -노라, -느뇨" 이딴 말을 일상생활에서 안 쓴다고 해서 그걸 못 알아듣는 건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중국어는 한국어 같은 복잡다난한 어미나 조사가 없고, 그야말로 어간 어근만 성조 넣어서 내뱉으면 되는 간결한 형태 고립어인데, 딱히 고어체와 현대어체가 달라질 만한 게 있는지..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이다.
중국어가 구어는 '한어'이지만 문어는 '한문'이 아니라 '중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 고전과 현대 중국어를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심상의 차이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고전 중국어 시대의 인명 지명은 국어 발음으로 표기하고, 현대의 중국 인명 지명은 현지음으로 표기하는 게 아닐까 한다.

한편, 중국과 대만은 자기 나라 말을 한자 없이 (3) 발음만 표기하는 수단도 서로 달라져 있다.
원래 중국에서는 20세기 초에 한자의 획을 적당히 떼어내서 카타카나처럼 생긴 주음부호(bopomofo)라는 걸 만들어 쓰고 있었다. 그랬는데 대륙 중공은 1950년대 말에 간체자와 동시에 라틴 알파벳 기반의 한어병음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걸로 주음부호를 대체했다.

괜히 어설픈 독자 문자 대신에 라틴 알파벳을 채용한 것은 오늘날 같은 컴퓨터 시대에 혜안 선견지명이긴 했다.
하지만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게 대만이고, 그걸 버린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두 나라 입력기는 언어 DB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말소리 입력법까지도 서로 달라지게 됐다.

※ 입력법

컴퓨터에서 중국어를 입력하는 방법은.. (1) 한자의 모양으로부터 입력하는 방법과, (2) 말소리에 대응하는 한자를 입력하는 방법으로 크게 나뉜다.
(1)의 가장 궁극적이고 원시적인 형태는.. 그냥 필기 인식(..;;; )일 것이다. 한자나 중국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생판 모르는 한자도 곧장 입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고 그림과 문자의 구분이 없고.. 이럴려고 컴퓨터를 쓰나 싶은 자괴감이 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한자를 적당히 기본 단위로 분해한 오필화수입법이나 창힐수입법이란 게 있다. 나름 중국에서 날고 기는 천재들이 머리를 짜내어 고안한 방식이겠지만, 일반인들은 그런 천재가 아니며 한자부터가 추상화나 기계화가 꽤 난감한 문자인 관계로.. 그런 입력법들은 처음에 그 체계 내지 파자(破字, 문자를 더 작은 모양 단위로 쪼갬) 이념을 익히는 게 까다롭다. 비록 익숙해지고 나면 속도가 제법 나겠지만 높은 진입장벽은 근본적으로 어쩔 수 없는 핸디캡이다.

(2)는 결국 더 단순한 표음문자의 도움을 받아서 한자를 '간접적으로' 입력하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고 효율적인 입력 방식을 구현하기 어렵다. 한글만 해도 로마자 입력법이 기존의 두벌식이나 세벌식 글자판보다 절대로 효율적이지 못한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더구나 한자를 이런 식으로 입력하는 건 소리가 같은 한자들에 대해 후보를 고르는 과정을 반드시 필요로 하며, 글자보다는 단어 및 문장 묶음 단위의 입력을 지향해야 한다. 즉, 일이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1)이 워낙 복잡하고 그에 비해 (2)는 직관적이고 입문하기가 쉽다 보니,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입력법은 후자이다. (2)는 언어 데이터에다가 딥 러닝이니 뭐니 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여, 후보 추천과 자동 완성 같은 쪽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2)에 속하는 입력법이 한어병음뿐만 아니라 주음부호 방식이 존재한다.
주음부호는 알파벳보다 글자수가 많다 보니 4단의 숫자 글쇠까지 사용한다는 점, 단어보다는 성모+운모+성조까지 모두 입력해서 글자 단위 완성을 지향한다는 점, pin-gan / ping-an, xi-an / xian 같은 모호성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글 입력에서 세벌식과 비슷한 심상이 느껴진다.

PC에서는 숫자 글쇠가 후보 선택이 아니라 주음부호 입력용으로 계속 쓰이기 때문에 입력 방식이 병음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런 제약이 없는 모바일 스크린 키보드용 입력기에서는 주음부호도 병음처럼 쫘르륵 한데 늘어놓고 단어를 고르는 식으로 서로 비슷하게 동작하는 편이다.

※ 성조

끝으로, 중국어는 성조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표준 중국어 기준으로 흔히 4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지방 방언 중에는 성조 체계가 더 복잡한 것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표준 중국어도 표기에 반영하는 것만 4종류이지, 표기를 생략하는 덜 중요한 성조(경성?)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5종류이다.
알파벳 기반의 Pinyin에서는 경성이 생략되지만 주음부호에서는 1성인 평성(-)이 생략되고, 경성(·)이 점으로 표기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한국어도 중세 시절에는 원래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중국어의 영향을 받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성조가 비스무리하게 있었다고 한다. 그걸 표기하려 했던 흔적이 바로 방점이다. 하지만 성조는 몇백 년 전에 이미 깔끔하게 소멸하고, 그나마 장음과 단음 구분으로 간소화됐다고 하지만 오늘날은 이나마도 극도로 문란해진 지 오래다.

글쎄, 말, 벌, 눈, 밤 같은 단어는 어느 길이가 어느 뜻인지 한국 토박이도 분간을 못 하고 그냥 다 문맥에 의존한다. 하지만 '적다'처럼 용언에서는 짧은 '적'은 write이고 긴 '적'은 few라고 절대 헷갈리지 않는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말의 길이와 ㅐ/ㅔ 구분 같은 것도 훨씬 더 신경 쓰며 살았을 것 같은데, 중세 국어가 현대 국어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했을 것 같다.

사실, 이건 중국어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토박이들도 그 많은 글자들의 성조를 칼같이 다 구분해서 쓰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완전히 말을 못 알아듣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조를 외국인 학습자들처럼 과격한 연기 하듯이 큼직하게 구사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성조는 노래를 부를 때만 해도 깡그리 무시되는 요소이다. (뭐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뮤직비디오에 자막이 반드시 들어간다고 한다. 일본에서 한자로 적힌 고유명사에다가는 곁에 히라가나 발음이 거의 반드시 병기되는 것처럼 말이다. 읽는 방법이 워낙 다양할 수 있고 복잡해서..)

성조가 여전히 필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치부되고 문란해지는 기미가 조금씩 보인다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20 08:32 2018/09/2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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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저장 매체들

우리가 맨날 주머니에 넣고 들고 다니고 들여다보는 자그마한 스마트폰은 예전의 다른 휴대용 전자 기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첨단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집약된 결과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빛의 속도가 달라진 게 없고 전자기파의 특성이 달라진 건 없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중에서 파는 랜 케이블의 재질이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어째 인터넷 속도는 캐사기급으로 빨라졌는지? 더구나 유선이 아닌 무선까지도 말이다.

마치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만큼이나 난 직관적으로 저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HD 동영상 보기 vs 30년쯤 전 모뎀 PC 통신으로 사진 한 장 다운로드 시켜 놓고 머리 감기/담배 피우고 오기...;;
이건 진짜 1950년대 전쟁 폐허 vs 1980년대 올림픽 개최만큼이나 너무 파격적인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은 불과 2, 3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초고성능 컴퓨터이다. 기존의 PC와는 발전 배경과 주 용도가 다르다 보니 구조적으로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는데.. 매우 중요한 차이는 네트워크 연결에 대한 관점이 아닌가 싶다.
PC는 원래 오프라인 상태로 쓰다가 인터넷 연결은 덤으로 추가로 가능한 구도인 반면, 스마트폰은 애초부터 기지국과의 연결을 전제로 깔고 운용된다. 그리고 PC와 달리 스마트폰은 365일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

그래서 현재 시각을 표시하는 기능만 해도 PC는 배터리 기반의 자체 시계가 있으며, 요즘 운영체제들이 주기적으로 시각 동기화 정도나 해 준다. 그 반면, 스마트폰은 기지국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현재 시각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 연결을 위해서 데스크톱 PC는 대개 유선 이더넷만 지원하고, 노트북 PC는 유선과 무선 와이파이를 모두 지원한다. 그 반면 스마트폰은 무선만 지원하고, 노트북 같은 다른 기기가 자신을 통해서 무선 인터넷 연결을 또 할 수 있게 태더링 기능까지 제공한다. 재미있는 차이점이다.

21세기 최신 과학 기술의 산물인 스마트폰을 가능하게 한 근간 기술을 몇 가지 추려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디스플레이: 옛날엔 PC의 모니터는 크고 무거운 CRT(브라운관) 방식이 대세였다. 그리고 반대로 액정이라 하면 지금 같은 천연색 화면이 아니라, 그 시절 전자 계산기처럼 녹두색 배경에다 기껏 7-segment 숫자 내지 도트가 다 보이는 저해상도 비트맵 글꼴 정도나 찍는 허접한 단색 화면이 전부였다.

(2) 플래시 메모리: 하드디스크는 기계적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많으며 진동과 충격에 취약하다. 즉, 근본적으로 모바일에 친화적인 물건이 아니다.
뭐, 그 대신 스마트폰의 메모리가 PC의 하드디스크와 비슷한 가격으로 수백 GB~테라바이트까지 가지는 못한다. 컴퓨터에서 과연 주 기억장치와 보조 기억장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날이 올까?

(3) 저전력 저발열 CPU: 난 저 정도로 고성능 CPU가 달린 스마트폰이 어떻게 냉각 팬이 없고 웽 소리를 전혀 안 내며 동작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물론, 오로지 메모리 용량 최적화이지 전력 소모 최적화와는 거리가 먼 구닥다리 x86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그런 스마트폰용 CPU를 만들 수는 없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대체로 하드웨어 차원에서의 멀티미디어 처리 지원이 PC만치 범용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동영상이나 여유롭게 재생하지는 못한다.

(4) 그리고 2차 전지: 스마트폰은 냉장고처럼 24시간 켜져 있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걸 옛날 휴대용 전자 기기들처럼 1.5V짜리 건전지를 주기적으로 갈아 끼우면서 사용해야 한다면 정말 끔찍할 것이다. 게다가 그 물건들은 지금 건전지의 용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같은 것도 나오지 않고, 그냥 예고 없이 픽 꺼져 버리고 안 켜지곤 했다.

철도에서는 전기 기관차가 디젤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괴력을 자랑하면서 수십 량의 화차를 견인하는 차력쑈를 펼치고 있다. 1만 마력이 넘는 힘으로 시속 300으로 달리는 KTX도 전기로 달린다.
하지만 이건 레일을 따라 전차선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 배터리만으로 도로의 대형 버스나 트레일러의 동력원이 전기 모터로 대체되는 건 요원한 일이다.

배터리는 콘센트를 꽂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인류가 사용하는 기계 중에 인력과 기름을 쓰지 않는 나머지 모든 것들의 동력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공기 중의 산소를 조달할 수 없는 곳에서 동작하는 기계는, 연료에 산화제가 같이 동봉된 로켓을 사용할 게 아니라면 전기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월면차라든가 심해 잠수함 말이다. 산소는 물론이고 태양 자체로부터 한없이 멀어지는 외행성 탐사선은 아예 원자력 전지를 사용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배터리는 크게 세 계열로 나뉜다.

(1) 납+황산
그 특성상 자동차(+잠수함) 같은 거대한 동력 기계에서 쓰이지, 최소한 사람이 일상적으로 갖고 다니는 전자기기에서는 볼 일이 없는 물건이다.
용량 대비 재료값이 저렴하지만, 무겁고 자연 방전 잘 되고 충전 속도가 더디며, 일정 수준 이상 방전되면 완전히 망가져서 못 쓰게 된다. (전압이 약해지는 것을 통해 방전을 간접적으로 유추함)
황산 용액은 인체에 위험하지만 그래도 고열로 인한 폭발 위험 같은 건 없다. 자동차가 안 그래도 교통사고와 화재의 위험에 노출된 물건인 걸 감안하면 이건 자동차 배터리로서 큰 장점이다.

(2) 니켈-카드뮴
일명 메모리 효과로 인해, 지금까지도 '완충 완방'이라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편견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주범이다.
한때 노트북 등 여러 전자기기에서 쓰였지만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카드뮴보다 재료 단가가 비싸지만 용량과 수명 등에서 더 유리하고 메모리 효과 단점도 없는 니켈-수소로 대체되었다.

(3) 리튬 이온
일단 소형 전자기기 정도 규모에서는 이만 한 가성비가 없는 만능 소재이다. 에너지 밀도가 아주 높고 메모리 효과 없고, 그러면서 아주 가벼우니 좋다. 하지만 수명이 짧은 편이며, 폭발 위험과 재료 고갈로 인한 조달 문제가 남아 있다.

모든 배터리들은 기온이 매우 낮은 곳에서는 제대로 동작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참 안타깝지만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다. 충전과 방전을 수백· 수천 회 반복하며 쓰다 보면 최대 충전 가능 용량이 조금씩 감소한다. 그래서 휴대전화나 노트북 PC의 배터리는 몇 년 주기로 교환해 줘야 된다. 화학 반응이 완전히 가역이 아니기라도 한가 보다.

옛날에는 총에 탄창을 교체하듯이 스마트폰의 뒷구멍(?)을 열어서 배터리를 통째로 교체하는 게 가능했는데, 요즘은 주 배터리는 탈착이 가능하지 않은 형태가 됐다. 그 대신 외장형 보조 배터리를 케이블을 통해 연결해야 한다. 이런 관행의 원조는 애플 진영의 아이폰이다. 쟤들은 컴퓨터고 뭐고 온통 일체형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 왔기 때문이다. 모니터고 본체고 배터리고 몽땅 분리 불가능한 일체형..

이런 2차 전지, 일명 배터리들은 재충전 가능한 화학 전지를 말한다. 배터리와 비슷하면서 다른 물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축전기(일명 콘덴서)
얘는 화학 반응 없이 찰나의 전기 에너지 자체를 찔끔 저장하고 있다가, 고전압의 전하 형태로 순식간에 찌릿 방출하는 물건이다. 극초소용량에 초고속 충전· 방전되는 배터리와 비슷하다. 그러니 전력을 축적하는 용도보다는 다른 전자 기기 내부의 부품으로 쓰이곤 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프로토스의 실드 배터리는.. 실드를 전기 에너지처럼 취급해서 마치 축전기처럼 보충하는 형태에서 모티브를 딴 듯하다.

(2) 건전지
2차 전지(배터리)의 반의어로서 충전 불가능한 1회용 1차 전지를 가리킬 때 '건전지'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단어 자체는 '습전지'의 반의어이기 때문에 충전 가능 여부가 함축되어 있지는 않다. 둘 다 똑같이 화학 전지인데, 자동차 배터리처럼 황산 용액이 출렁거리는 게 아니라 전해액을 종이 같은 데에 흡수시켜서 곧장 줄줄 흐르지 않게 했다는 뜻일 뿐이다.

망간-아연 전지가 대표적인 건전지요 1차 전지이긴 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2차 전지 중에도 건전지 형태인 물건이 있다.
시계 같은 데에 들어가는 일명 '단추형 소형 건전지'라는 것도 있는데 얘들은 대체로 재충전 가능하지 않은 1차 전지이다. 옛날에는 수은 건전지가 많이 쓰였지만 요즘은 수은이 몸에 안 좋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인해 온도계로도, 건전지로도 모두 퇴출된 지 오래다. 유연휘발유, 프레온 가스, 석면처럼 말이다.

건전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난 개인적으로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서 써야 하는 무선 마우스는 너무 불편하다. 왜 저런 걸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평소에 충전 가능하게 마우스 거치함이라도 만들어 놓든가 하지..

(3) 연료 전지
얘는 연료를 사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긴 하는데, 연료를 태워서 운동 에너지로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화학 전지처럼 연료(?)의 화학적인 전위차를 이용해 축적돼 있던 전기를 뱉어 내는 것도 아니니 그 특성을 말하기가 좀 뭣하다.
현재로서는 산소와 수소를 이용해서 전기 분해의 정반대 메커니즘으로 물과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게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한다.

말 그대로 연료의 형태이므로 차에 기름 넣듯이 매우 빠르게 충전을 할 수 있고 자연 방전 걱정이 없다는 점, 시끄러운 엔진 가동 없이 전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화학 전지 기반의 기존 배터리가 넘볼 수 없는 장점이 있지만 얘 역시 수소의 보관, 백금 촉매의 가격 등 여러 문제 때문에 압도적인 대안 역할은 아직까지 못 하고 있다.
더티한 탄소가 달라붙은 통상적인 탄화수소 계열이 아니라 수소 자체를 곧장 반응시킬 수만 있다면 참 깨끗한 무공해 에너지원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국내에서 현대 자동차가 수소 연료 전지 차량의 연구 개발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휘발유 엔진은 배기가스의 정화, 즉 후처리를 위해서 백금 촉매 변환 장치를 사용하는데, 수소 엔진은 산· 수소의 반응이라는 본업의 촉진을 위해서 백금 촉매를 사용하니 촉매의 비중이 더 클 것이다.

참고로 수소로 달리는 자동차는 수소 연료 전지 기반뿐만 아니라, 수소 자체를 연소시키는 내연기관 기반도 별개로 있다. 개념적으로 서로 다른 물건이다. 비록 반응의 부산물로 둘 다 물이 나오는 건 동일하지만 말이다. 수소는 로켓 엔진에도 이미 사용되고 있는데 그게 연료 전지 기반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연료를 태워서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도 다 같은 게 아니다. 교통수단들이나 다른 소형· 이동식 발전기들은 말 그대로 내연기관이 장착되어서 엔진의 회전력으로 발전기를 곧장 돌리지만, 거대한 화력 발전소에는 외연기관인 보일러와 증기 터빈이 있다. 화력 발전소는 석유보다도 석탄을 더 많이 활용하니 말이다.
과거의 증기 기관차는 석탄과 물을 주기적으로 보충해야 했던 반면, 화력 발전소에서는 한번 터빈을 통과했던 수증기를 수집· 냉각 후에 계속 재활용한다고 한다.

(4) 원자력 전지
원자력 발전소는 열의 근원이 석탄· 석유가 아니라 방사성 원소의 붕괴 에너지라는 차이가 있을 뿐,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은 화력 발전과 동일하다. 그에 반해 원자력 전지는 열전 효과(Seebeck effect)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한다.

이렇게 자료를 모아 보니, 통상적인 화학 전지나 교류 발전기, 심지어 광전지 말고도 전기를 비축하거나 생산하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원자력 발전은 다 20세기 초· 중반에 발견되고 규명된 '핵 분열' 원리를 이용하며, 그것도 그 에너지 자체를 곧장 전기로 바꾸는 게 아니라 열로 물 끓여서 터빈을 돌리는 용도로 간접적으로만 사용한다.

핵 분열을 넘어 태양 같은 항성들의 동력원이기도 한 '핵 융합'을 인간이 직접 제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더 안전하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mc^2의 형태 그대로 뽕을 뽑을 수 있게 된다. 핵 융합의 원료 자체는 그야말로 주변에 무한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 중수소는 바닷물..) 사실,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이 구조적인 차이도 핵 분열과 핵 융합이다.

하지만 핵 융합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고온 고압 환경이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건 뭐 초전도 상태를 만들기 위한 극저온과 반대편 극단의 영역이 아닌가 생각된다.
핵 융합, 무선 송전, 직류 고압 송전... 가능하다면 요 세 개가 아마 2020년대 인류의 생활을 바꿔 놓을 과학 기술 떡밥으로 남을 듯하다. 과거의 괴수 전기 공학자 테슬라는 무선 송전을 어느 정도 실현도 했던 것 같지만, 직류 고압 송전은 자기 관심 분야가 아니었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17 08:35 2018/09/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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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관련 여러 생각들

1. 빛과 색

본인은 기업 이미지 광고의 최고봉으로 2006년쯤, 동요풍의 한전 CM송 "빛으로 만드는 세상"을 꼽는다.

"빛이 있어 세상은 밝고 따뜻해~ 우리들 마음에도 빛이 가득해. 빛은 사랑 빛은 행복.."
정말 이걸 누가 작사· 작곡했는지 진지하게 궁금해진다. '유 재광'이라는 사람이 검색되지만, 더 자세한 프로필· 근황이나 다른 활동 내역이 알려진 건 없다. 노래가 딱히 상업적인 분위기가 아니니 초등학생용 동요로 실제로 불리기도 한다.

저 CF의 궁극적인 의도는 그 빛이라는 게 전기 에너지가 있으니까 1년 내내 존재 가능한 것이고, 그러니 전기를 공급하는 우리 한전이 최고... 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백열등과 형광등을 거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이 높은 전기 광원인 LED등까지 발명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LED 덕분에 그 자그마한 스마트폰에 달린 꼬마전구가 어지간한 휴대용 손전등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그런 물리적인 빛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성경도 빛에다가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심상을 부여하고, 반대로 어둠은 일관되게 나쁘다고 디스한다.
창 1:2에 나오는 어둠, 고후 4:6와 6:14에 나오는 빛과 어둠, 엡 5:8과 살전 5:5에 나오는 '빛의 자녀', 요한일서에서 시종일관 나오는 '빛'...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니 "빛으로 만드는 세상" 가사가 신앙적으로도 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1950년대에 만들어진 옛날 동요인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은 어떨까?
얘도 가사와 곡이 매우 아름다우며 2005년부터 일본의 소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을 정도로 명곡이긴 하다만.. 이 곡의 가사는 딱히 광명과 암흑을 비교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냥 "여름엔 파랄 거예요, 겨울엔 하얄 거예요"이다.

저기서 '빛'은 그냥 '색'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어는 green과 blue를 별로 구분하지 않고 '푸르다'라는 말을 썼듯이, 심지어 color와 light도 별로 구분하지 않고 '빛'이라는 말을 썼다. 그래서 한자도 光(빛 광)뿐만 아니라 色도 "빛 색"이라고 불렀고, 색깔뿐만 아니라 '빛깔'이라는 말도 있었던 것이다.

즉, 결론적으로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의 가사는 "빛으로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포카혼타스 "Colors of the wind"(바람의 빛깔)와 더 비슷한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보면 정확하겠다.
저 동요가 일본어로 번역될 때도 응당 光이 아니라 色이 쓰였다.

영어에 man 남자/사람, good 좋다/선하다, day 낮/날 같은 중의성이 있는 것처럼.. 한국어에도 저 정도 중의성은 감수해야 하는가 보다. 사전만 보고 무식하게 곧이곧대로 번역하다간 실수하기 쉽다.

내 모국어인 한국어는 한편으로 괴상망측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ㅁ과 ㅂ 대응(어머니 아버지, 물 불, 맑다 밝다, 묽다 붉다)이라든가, 빛과 색의 중의적 관계,
내가 아는 다른 어떤 외국어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딱 한 단어짜리 '모르다' 동사,
하필 흑백과 삼원색만 활용 가능한 용언 형태로 말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꽤 심오하다는 생각도 든다.
(잘 알다시피 영어는 '빛'이 '색'이 아니라 '가벼운'과 동음이의어 관계다.)

2. 긍정적인 심상과 부정적인 심상의 구분

'친히'는 화자 내지 주체가 더 높은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는 걸까, 아니면 꼭 그런 의미 없이 단순히 '내가 직접'이라는 뜻만 있는 걸까? 쉽게 말해 "내가 친히 주님을 만나 보리라" 같은 찬송가 가사는 어법 격식에 어긋난 불경스러운 표현일까, 아닐까?
일단은 전자인 것 같지만 국립 국어원 코퍼스를 뒤져 보면 후자의 용례도 없는 건 아니다.

비슷한 예로 '기념'도 있다. 결혼 기념, 생일 기념, 완공 기념처럼 꼭 긍정적인 사건, 기쁜 소식만 기리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중요하고 의미 있고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은 모두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걸까?
이런 인식에 대한 혼란 때문에 일각에서는 당장 '전쟁 기념관'이라는 박물관 명칭부터가 제대로 된 작명인지 이의를 제기하곤 한다. 하긴, 더 심한 예로 '2010년 국권 피탈 100주년 기념'이라고 하면 다소 어색해 보이긴 한다.

그런데 '기념'을 안 쓰면 딱히 다른 대안이 있어 보이지도 않으니 더 난감하다. 전몰자라면 '추모, 추도'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war memorial은 기념이 아니면 도대체 뭐라고 번역하란 말인가?
사실 이렇게 꼭 긍정적인 뜻으로만 써야 한다, 부정적인 뜻으로만 써야 한다는 식의 제약과 구분은 세월이 흐르면서 문란해지고 없어지는 편이다. '너무'가 아주 대표적인 예이고, 또 '장이'와 '쟁이'의 구분도 비슷하게 슬금슬금 흔들리는 중이다.

3. '우리' (we, our)

한국이라는 나라의 민족 문화는 개인보다 집단, 서열을 좋아한다. 그래서 서구· 영어권에서는 I, my라고 표현할 것도 '우리'라고 표현하는 게 많다. 우리집, 우리나라처럼.. 그래도 영어로도 논문 쓸 때는 내 경험상 we를 의도적으로 썼던 듯하다. 한국어로는 주어가 '나'나 '우리'가 아니라 아예 '본 연구/본 논문' 같은 무생물이 됐을 상황이어서..

그런데, 이렇게 개인주의적인 영어로도 our을 당당히 쓰는 상황이 있으니 바로 '우리 은하'이다. 겨우 집이나 나라가 아니라 우주 차원이다. 인간 중에 이 은하, 아니 태양계조차 벗어나서 사는 개체는 전무하니, 이 정도 되면 단일 집단 의식과 소속감을 갖기에 충분할 듯하다. =_=;;

물론 오글거리는 Our Galaxy 말고 the Galaxy, the Milky Way 같은 말도 쓴다.
영어에서 정관사 the는 아까 언급되었던 그것을 가리키는(a cup -> the cup) 포인터라는 용법은 아주 명백한 반면, 한편으로 보통명사로만 이뤄진 '준' 고유명사를 가리킬 때도 쓰이고(the sun, the Great Wall), 그 명사에 속하는 집단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그런데 한편으로 완전히 생판 새로운 이름인 고유명사의 앞에는 관사가 붙지 않는다. 이거 무슨 국기에 대한 경례 앞에서만 충성 구호를 생략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는 정관사가 쓰이는 방식이 원칙이 없고 귀걸이 코걸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렵다.;;

4. 정확하게 알고 구분해서 써야 할 한자어들

(1) 전기세가 아니라 전기료가 맞다. 먼저 한전은 엄연히 정부 기관이 아닌 공기업인 관계로, 전기 요금은 세금(稅)이 아니다. 또한 전기는 무형의 에너지일 뿐, 무슨 부동산이나 고가의 장비처럼 임대 형태로(貰) 빌려 사용하는 물건도 아니다. 그러니 수도나 가스처럼 비(費)나 료(料)만 붙으면 된다.

(2) 교육부 노동부 법무부.. 이럴 때는 部를 쓰지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이럴 때는 府를 쓴다. 전자는 행정부를 구성하는 하위 조직들을 가리키고, 후자는 국가 권력을 지탱하는 세 축의 구성원이다. 뭔가 辭典과 事典의 차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3) 이제는 완전히 폐지됐으니 역사 속의 유물이긴 하다만, 사법고시가 아니라 '사법 시험'이 정확한 명칭이다.
옛날에 행정· 기술· 외무 고시는 말 그대로 '고시'였다. 이 고시(高試)라는 말 자체가 무슨 재귀적인 영어 이니셜처럼(GNU is Not Unix ???) 저런 시험을 가리키는 '고등고시(考試)'의 준말이다. 사법 시험도 반세기도 전 옛날에는 고등고시의 사법과에 속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바뀐 게 무려 1963년의 일이다.

한편, 교사를 뽑는 시험도 공식 명칭은 '임용 시험'이다. 임고, 임용고시라고 부를 때도 考試이지, 고등고시의 준말인 高試는 아니다.

(4) 대장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집단의 우두머리, chief, leader라는 뜻으로는 한자로 隊長이라고 쓴다. 隊가 특공대, 구급대, 심지어 군대, 소대, 중대 등등의 그 '대'이기 때문이다.
포스타 대장은 大將이니 한자가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는 그냥 장군이 아니라 큰 장군이라는 뜻이다.
의외로 '큰 어른'(大長)이라는 직관적인 한자어는 딱히 안 쓰이는 것 같다. 큰창자를 나타내는 대장(大腸)은 당연히 논외로 하고..

(5) '전쟁/사건 발발' 이럴 때 사용하는 '발발'은 勃發이구나. 설마 發만 두 번 중첩시켜서 發發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다. 勃은 한국어 한자어에서 다른 용례가 있긴 한가 모르겠다.

(6) 궤도(軌道)는 동일한 한자로 영어의 orbit과 railway를 모두 의미하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천체의 공전 궤도와, 궤조-궤도-선로의 순으로 연결되는 철도 용어는 문맥이 완전히 달라 보이는데 말이다.

(7) 핵 분열(核分裂)도 한자는 동일하지만 '핵'이라는 게 생물학적인 의미도 있고 물리학적인 의미도 있기 때문에 nuclear division (세포)과 nuclear fission (원자 공학)을 모두 포함한다. 예전에 봤던 '고립어'(언어 유형 vs 계통)의 중의성을 보는 것 같다. 동일한 단위가 무게와 부피, 화폐 단위(톤, 달란트..)를 오락가락 하고 열량과 에너지(칼로리..)를 오락가락 하는 것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8) 배터리에다 전기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도 충전이고 교통 카드에 돈을 보충하는 것도 충전인 게 개인적으로 좀 의아하게 느껴진다. 이 경우 한자는 물론 다르다. 후자는 혹시 돈 전(錢)을 쓰기라도 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塡이라는 다른 생소한 한자가 쓰인다. 영어로는 전반적으로 charge, load, replenish 이런 뜻이다.

5. 나머지 생각들

(1) 귤과 오렌지, 회전 교차로와 로터리처럼.. 동일 개념에 대한 외래어와 순화어 관계인 게 아니라, 실제로는 가리키는 개념이 서로 미묘하게 다른 것들이 세상에 많다. 이런 예가 얼마나 더 있으려나 궁금하다.

(2) 교통사고 뉴스 보도를 시청하다 보면 "이 사고로 승용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찌그러졌으며..." 이런 표현을 자주 듣는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라는 길고 긴 부사구를 좀 간결하게 표현할 수 없을까? 저 표현을 영작을 했다면 이렇게 장황하고 길지 않을 것 같다. ****ly 같은 미지의 한 단어로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까?
언론에서 '평당' 대신에 '3.3제곱미터당'이라고 말하는 게 참 바보 같고 부자연스럽고 불편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3) 알맹이는 '-맹이'인데 돌멩이는 '-멩이'인 게 문득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지며, 서로 어떤 어원의 접미사가 붙은 것인지 진지하게 궁금해진다.
또한 어미 '-려고', '-러'도 정확한 용도 구분이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려고'가 그냥 '-려'로 줄어드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14 08:33 2018/09/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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