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속도로 포함 자동차 전용 도로의 1차로는 상시 점유해서는 안 된다. 뒤에서 추월 차량이 오면 비켜 줘야 한다. (모든 차로가 막히는 정체 상황이라면 예외) 원활한 차량 흐름과 교통 안전을 위해서는 추월은 언제나 좌측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시내 도로 맨 구석의 직· 우 겸용 차선이라면, 내가 직진이어서 빨간불 때 멈춰 섰고 뒤에서 우회전 차량이 지나가려고 빵빵거린다 해도 미안해하거나 일부러 비켜 줄 필요가 전혀 없다. 뒷차가 무슨 출동 중인 구급차· 소방차가 아닌 한.

이것은 반드시 비켜 줘야 하는 경우와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의 대표적인 예인데, 이 둘을 반대로 잘못 아는 운전자도 있는가 보다.

2.
한적한 도로에서 건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횡단보도가 파란불이 되고 차도는 빨간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인간적인 심정에서야 경찰이나 단속 카메라만 없다면 이런 신호는 무시하고 눈치껏 그냥 가 버리고 싶다.

주변에 다른 차가 없다면 나 혼자서야 종종 재량껏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앞차가 신호를 지키기 위해서 비록 무의미하게나마 횡단보도 앞에 정지했는데 뒷차가 앞차를 향해 그냥 무시하고 가라고 빵빵거리는 경우가 있다. 그건 좀 심하게 몰상식하고 개념 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호의(횡단보도 신호 무시를 묵인)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와 같은 급이다. 무시하더라도 원래는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서 무시해야 한다. 남한테까지 자기 습관을 강요하지는 말아야지?

바쁜데 에스컬레이터의 왼쪽 레인의 전방에서 혼자 떡 멈춰 서서 길막 하는 사람이 있으면(오른쪽 레인은 사람들로 이미 꽉 찼고) 나라도 답답해서 그 사람 바로 뒤에서 헛기침 하면서 눈치 주고, 심하면 "실례합니다" 이러면서 비집고 걸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빈 횡단보도에서 빨간불 때문에 서 있는 앞차에게 신호위반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상황이 완전히 다르니까 말이다.

3.
견인차는 제아무리 싸제 사이렌을 울리고 불빛을 요란하게 반짝여서 소방차 코스프레를 해 봤자 법적으로 긴급자동차가 전혀 아니다. 저 아저씨들도 먹고 살기 빠듯한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것을 받아 주고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무리해서(특히 신호 위반/정지선 위반 같은 걸 감수까지 하면서) 비켜 준다거나 할 필요 따윈 전혀 없다.

4.
전방의 교차로의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뀌었을 때.. 정작 앞차는 서려고 마음먹었는데 뒷차는 "이 정도 타이밍이면 앞차도 그냥 건너가겠지"라고 생각하고 가속을 하는 바람에 뒷차가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가끔 나곤 한다. 그럼 물론 뒷차의 100% 과실로 찍힌다. 한 차선에 양쪽의 차가 동시에 진입하려다가 서로 상대방을 피하느라 휘청대다 사고 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건 좌우 버전이고, 저건 앞뒤 버전 되겠다.

이런 사고는 비록 과실 판정을 받지 않더라도 앞차의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려면, 노란불 때 급히 정지를 할 것 같으면 비상등을 잠시 깜빡여서 "난 설 거다"라고 뒷차에게 알려 주는 게 좋을 것이다. 단순히 브레이크 경고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고속도로에서 전방에 갑자기 정체 구간이 나타날 때 비상등을 켜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이것도 완전 지뢰임..).

정말, 비행기가 이륙을 중단할 수 없는 속도만큼이나, 자동차에도 이 정도로 가속이 됐고 교차로와 가까워졌다면 이제 노란불이 되더라도 교차로에서 설 게 아니라 빨리 통과해야 한다는.. 무슨 한계 속도 같은 개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자동차에 내비게이션과 연계하여 그런 걸 안내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건 무인 운전 시스템을 구현할 때도 필요한 알고리즘이어 보이는데?

5.
좌회전 신호가 거의 끝나 갈 때, 아니면 비보호 좌회전인 곳에서 앞차만 믿고 따라 좌회전을 하다가 맞은편의 직진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가 종종 난다. 이런 건 좌회전한 쪽이 신호 위반에 준하는 굉장히 불리한 판정이 나므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 밖에, 파란불이 돼서 직진을 하는데, 내 옆에는 탑차 같은 큰 차가 있어서 딱히 시야가 확보돼 있지 않다. 그런데.. 무단횡단자나 꼬리물기 차량이 쌩 가로질러 지나가서 옆의 차는 멈췄는데, 나는 그런 게 있는 줄 모르고 계속 직진하다가 그 무단횡단자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도 난다.
이런 건 정말 운이 나빴다고밖에 볼 수 없겠다. 과실이야 부딪친 놈에게 더 크게 잡히겠지만, 무단횡단자는 그저 답이 없다.

6.
예전에도 한번 글로 쓴 적이 있듯이, <블랙박스로 본 세상> 동영상들을 쭈욱 보고 있으면 교통사고라는 게 어쩌다가 나는지 유형, 공통점, 패턴이 쫙 분류된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이 또 느낀 게 있다.

"내가 왼쪽 차로/1차로로 갔던 것은 우회전 할 반경을 얻기 위함이었다!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이러다 사고 나는 게 참 많다는 거.
자매품으로는, "내가 우측 차로로 갔던 것은 유턴 할 공간을 얻기 위함이었다!"도 있다.

나름 버스나 트럭 같은 큰 차를 몰고 있거나, 혹은 승용차라도 도로가 폭이 4차선(편도 2차선) 이하의 좁은 곳이어서 후진 없이 한 번에 돌려고 저런 행동을 했을지 모르지만 저건 뒷차 운전자를 헷갈리게 하며 사고의 위험이 높은 행동이다. 현실에서는 상대방이 병신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매우 높은 과실이 잡혀서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며, 차후 자동차 보험료가 오르는 등 대가를 치른다.

자동차에는 평범한 좌우 회전용 깜빡이만 있지, 유턴이나 고반경 회전을 예고하는 깜빡이는 없다는 걸 명심하자. 또한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은 헷갈릴 것 없이 우회전은 최고 구석 차로에서만 가능하며 유턴은 1차로에서만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7.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는 일단 법적으로는 차도에서 달리는 것이 맞지만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인도 주행도 하며, 운전자의 습성에 따라서는 자전거에서 내린 상태가 아닌 탄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한다. 일부 지역은 횡단보도와 인도에 대놓고 자전거 진행로를 나타내는 차선이 그어지고 전용 포장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자전거의 진행로는 인도나 차도 하나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자전거 운전자가 유도리 있게 취사선택 가능하게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어 보인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처럼 자전거가 무슨 떼거지처럼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니니.
횡단보도 신호를 따라 천천히 갈 것이고 사고가 났을 때 보행자보다 더 불리하게 처분되는 것에 이의가 없다면 인도로 가고, 횡단보도가 빨간불이더라도 자동차처럼 같이 직진하고 싶으며, 위험하지만 그래도 자동차에 비해서 약자로 대접받는 게 낫다 싶으면 차도로 가게 말이다.

단, 차도로 갈 경우 역주행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법으로 막아야 한다. 역주행을 할 거면 무조건 인도로 가야 한다.
특히 최악인 것은 역주행인 주제에 교차로에서 코너링까지 하는 거.. 자동차 운전자를 정말 놀라게 한다. 이 상태로 충돌 사고라도 나면 자전거 운전자 과실로 몰빵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아예 엔진이 달린 오토바이라면 선택의 여지 없이 차도로만 달려야 할 것이고 근처의 횡단보도나 교차로까지 주차· 출차를 위해 불가피한 초단거리 주행을 제외하고는 인도 주행은 금지다. 그리고 차도라 하더라도 최우측 차선에서 자동차의 틈새로 달리는 것도 금지다. 그건 자전거에게만 허용돼 있다. 그 상태로 차량의 도어가 갑자기 확 열려서 개문사고라도 나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

8.
운전자에게 '전방 주시 의무'가 있는 것처럼, 보행자도 차도에 발을 디딜 때면, 동급의 강한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측면 주시'를 강력한 권장 사항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이어폰도 잠시 빼고 말이다.
길 건너편에 목적지 또는 합류할 일행, 탑승할 차가 있을 때 그것만 보고 쪼르르 달려가다가 사고 난다.

한 차선은 직진 차로인데 신호가 빨간불이어서 차들이 서 있다. 한 보행자가 이 틈을 이용해 무단횡단을 한다. 그런데 그 차선의 옆 차선은 좌회전 차선이어서 차들이 달려올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지금 당장 텅 빈 것만 보고 건너다가 사고가 난다. 아까 운전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큰차에 가려져서 옆 차로에서 달려오는 차를 못 봐서 그 차에 치이기도 한다.

운전자와 마찬가지로 보행자도 당장 지나가는 차가 없는 도로에서 무단횡단의 충동을 얼마든지 느낀다. 그런데 그럴 거면 좌우 측면을 충분히 주시하고 정말 at your own risk로 잽싸게 민폐 안 끼치고 빨리 건너가야 한다. "불륜 저지를 거면 내가 모르게 하고 나한테 걸리지만 마라. 걸리면 뒈진다" 같은 마인드로 말이다. 그럴 자신 없으면 마음 가라앉히고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9.
그리고 시내버스가 기사 아저씨의 귀차니즘 같은 이유 때문에 인도에 바싹 붙어 정지하지 않고 승객을 하차시키는 바람에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 앞만 보고 쪼르르 내린 승객이 시내버스의 옆 여백으로 지나가는(특히 우회전) 자동차 내지 이륜차와 부딪치는 거다.

물론 이건 버스 기사의 과실이 최소 70%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 하지만 멈춰 설 기미가 보이는 버스 뒤에서 다른 차량 운전자도 좀 조심해야 하고, 승객도 발이 차도에 닿을 것 같으면 좌우, 아니 차가 오는 오른쪽 방향을 주시하는 센스가 필요해 보인다. 밖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버스는 문이 열릴 때 밖으로 돌출되지 않기 때문에 택시· 승용차와 같은 급의 개문 사고가 나지는 않는다.

10.
끝으로.. 교통사고라는 건 내지도 당하지도 않아야겠지만, 일단 그런 불행한 이벤트에 말려 버렸다면 상황이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빠지는 일은 없게 사후 대처도 침착하게 잘해야 한다.
고속도로 한복판 같은 곳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2차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아니고 남이 당한 사고의 수습을 돕다가 사고 현장으로 그대로 돌진해 온 다른 차에 치여서 중상· 사망을 당한 의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적지 않다.

"이 정도면 뒷차도 충분히 인지하고서 속도 줄이고 서겠지"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떤 막장 차량이 달려와서 교통사고 현장에 그대로 꼬라박을지 알 수 없다. 그게 운동 에너지에서 질량이 왕창 큰 졸음운전 대형 트럭이 될 수도 있고, v가 왕창 큰 과속 승용차가 될 수도 있다.
차를 최대한 갓길로 빼고, 그럴 수 없으면 사람이라도 차를 벗어나서 도로 밖으로 멀리 대피해야 한다. 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완전 자살행위다.

움직일 수 없는 고장· 사고 차량이 불가피하게 도로를 틀어막게 됐으면 비상등을 켜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트렁크도 열고 차량의 존재감을 최대한 알려야 한다. 사람이 200미터 후방까지 가서 삼각대를 설치하고 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하니 삼각대 자체에 무슨 원격조종 동력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밤에는 스스로 터지는 불빛이 가시성이 좋다고 하는데 화약이 들어간 물건이어서 유통과 소지에 제약이 걸려 있다고 한다. 비현실적인 법률에 대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20 08:37 2017/01/20 08:37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318

11. 필요악

  • 살인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살인을 저지른 자를 반드시 죽여라"라는 역설적인 법이 필요하다.
  •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군대라는 대단히 비민주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 어린애를 남을 배려할 줄 아는(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 포함)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애가 잘못했을 때는 정도와 수위의 조절이 필요할지언정 체벌 자체는 행하면서 키워야 한다.

필요악이라는 건 성경이 매우 적극적으로 지지할 뿐만 아니라, 이런 게 없이는 인간 사회가 돌아가고 유지될 수 없다는 걸 굳이 신앙의 힘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성과 양심이 인지하고 있으며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정치· 비정치 분야를 막론하고 그 너무 당연한 필요악들을 말 같지도 않은 인권과 진보의 이름으로 일부 예외적인 부작용 사례만 부각시키면서 부정하는 애들은 세상을 더욱 망가뜨리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으며, 더 나쁘게 말하면 국가 체제 전복까지 조장하고 있음을 난 확실하게 입증· 폭로할 수 있다.

군대를 예로 들면.. 누구 말마따나 군대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조직이지,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조직이 아니다.
군대에서 계급을 없애 보는 삽질은 이미 FM 공산주의 국가이던 소련이 1920~40년대에 두루 실험해 보고는 절대 유지 불가능하다는 걸 친히 입증해 줬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뭐 니골라 당 운운하면서 개인별 영적 접근성을 제멋대로 차별하는 성직 계급에 대한 비판까지는 좋다. 허나, 아예 일체의 호칭과 직분까지 부정하면서 "사람 위에 사람 없다", "목사만 강단에서 설교하는 건 잘못됐다", "불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복음 설교 외에 다른 설교는 필요하지 않다" 이런 데에 혹한 사람들이 좋은 교회 세워서 성도들을 훌륭하게 양육해 냈다는 소리는 내가 들은 적이 없다.
사역자에 의한 체계적인 말씀 선포와 성경 강해 없이 '교제'만 하는 건 교회가 아니며 신자가 제대로 자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고 교회에서 직분이 무슨 필요악이기라도 하다는 건 아니니 이건 성격이 좀 다른 얘기지만.

12. 최대와 최저

사회나 자연에서 어떤 현상을 측정하는 잣대는 최대와 최저가 있는데,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최대 만만찮게 최소를 중요하게 따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 교통수단의 경우, 순간 최대 속도보다 전체 표정 속도가 더 중요하다.
  • 건강에서 최고 혈압이 높은 것보다 최저 혈압이 높은 게 더 위험하다고 여겨진다.
  • 10년 이하의 징역보다 2년 이상의 징역이 대개 더 무거운 형벌이다.
  • 낮 최고 기온 38도보다, 밤 최저 기온 28도가 체감상 더 끔찍한 무더위이다.
  • 정치인 선거만 해도.. 최선을 뽑는 것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게 더 중요하다.
  • 친구의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데는 사정상 불참하더라도, 친구의 친인척 장례식 문상에는 어지간해서는 가는 게 좋다. 결혼식은 일시가 딱 정해져 있지만 장례식은 그래도 기간 range가 있는 편이어서 부담이 더 적기도 하다.

이런 것들..
그러니, 배우자처럼 평생 함께할 사람을 고를 때도,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일치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본인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상대방이 굳이 나처럼 철도를 좋아하거나 세벌식을 쓰지는 않아도 된다. 굳이 컴공과 출신이거나 언어학에 관심이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런 것들은 액세서리 옵션일 뿐이다.

허나, 굳이 그런 게 일치하지 않더라도 북괴 정권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고 종북개빨들을 혐오하는 게 일치한다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본인과 장벽이 크게 허물어지고 금세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런 밑바닥에서 자꾸 부딪치면 다른 전공이나 취미가 일치하더라도 내 경험상 사람이 하나가 되기 굉장히 난감하고 불편해지더라.

13. 전화위복

예전에 인터넷에서 무슨 신문 기사를 봤다. 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집에 딸이 다운 증후군에다 지능도 딸리는지 문맹이었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그 아이의 어머니는 그래도 얘에게 딱 맞는 역할이 사회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여러 회사들에다 편지를 넣은 끝에 소원을 이뤘다. 어느 기업의 보안팀에서 기밀 문서들을 파기하는 업무용으로 딸을 취업시킨 것이다.
다운 증후군의 특성상 기계적인 단순노동에 싫증 내지 않고 집중 잘하고(포레스트 검프??), 결정적으로 문맹인지라 기밀 문서를 봐도 뭔 말인지 모르니 저런 일에는 쟤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고 한다. 세상에~!

하긴, 맹인이 안마사 일을 하는 것도 저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적절한 거다. 안마사는 사람 알몸을 만지는 직업이니까.
또한, 왕조 시대엔 '내시'(환관)가 괜히 있었던 게 아니지.
장애(disability)가 오히려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경우라 하겠다.

과수원에 태풍이 불어서 낙과가 왕창 발생해 버렸는데..

  • 어디서는 어려운 농가를 돕자는 차원에서 그나마 손상 정도가 덜한 낙과들을 반값만 매겨서 "상품성이 좀 떨어지지만 사 주세요" 운동을 벌이는 식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 한편, 일본 어디에서는 떨어지지 않은 소수의 과일들을 "혹독한 태풍도 견뎌 낸 특급 과일" 이렇게 오히려 프리미엄을 붙여서 비싸게 파는 마케팅이 성공하기도 했댄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본인도 한글(과 한국어)을 굳이 알파벳처럼 만들려는 연구를 하지는 않는다. 한글이니까, 발상을 달리하여 타 언어· 문자와 구조적으로 다른 대신에 이런 완전히 새로운 활용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14. 침

국어에서 '침'이라는 단어는 순우리말로는 입 속의 타액을 뜻한다. 그러나 한자어로는 길쭉하고 끝이 뾰족한 바늘을 뜻한다(針). 사실, 한의학에서 꽂는 침도 이것과 비슷한 물건이지만 한자는 또 다르다(鍼).
타액과 바늘· 가시는 언어적으로 서로 전혀 관계가 없는 개념이며 소리만 우연히 일치할 뿐이다. 그러므로 순우리말 침과 한자어 침은 동음이의어 관계이다. 하지만 두 침이 같은 문맥에서 므흣하게 섞여 쓰이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
모기는 시각이 아닌 이산화탄소와 땀냄새로 사람을 찾아낸 뒤, 바늘 역할을 하는 뾰족한 주둥이를 피부 내부로 찔러 넣는다. 그 다음에는 흡혈 중에 혈액의 응고를 막기 위해서 진짜 자기 타액도 주입한다. 이게 인체와 이상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모기가 떠난 뒤부터 우리가 다 잘 아는 가려움과 붓기를 유발한다고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도대체 어떻게 하나도 안 아프게 감쪽같이 해치우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혈당 체크를 위해 눈꼽만치만 피를 뽑으려 해도 최소한의 따끔은 감수해야 하는데.. 무통 채혈 기술은 모기한테서 배워야 할 지경이다. 신묘막측한 기술로 통점을 감쪽같이 피해 간다고도 한다. 하긴, 모기가 피를 빨아먹는데 따끔거렸다간 모기는 절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테니.

모기는 원래 식물의 체액만 빨아먹는 놈이었는데 인간의 타락 이후에 습성이 변태같이 바뀐 대표적인 해충일 것이다. 병원균까지 옮기는 아주 해로운 놈인데, 이런 놈이 파리보다 훨씬 둔하고 비행 능력이 떨어져서 그나마 잡기는 쉬운 게 다행이라 하겠다.

그 다음으로 스타크래프트 저그 유닛인 히드라리스크가 있다.
히드라의 공격은 설정상 등뼈에 붙은 가시를 날리는 것이다. 물론 종족 밸런스 때문에 무리해서 range 공격으로 만들어 준 것이지, 현실에서는 좀 무리가 있는 설정이다.

설정과는 달리, 게임상으로 보기에 히드라가 공격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침을 뱉는 것 같다. -_-;;;
뭔가 초록색 체액이 날아가는 듯한 게 針이 아니라 '침'인 것이다. 뽀잉 뽀잉~ 소리도 퉤퉤 침뱉는 것처럼 보인다.
옛날에 스타를 빛낸 100명의 유닛들이라는 이상한 패러디 노래에서도 "가래침은 히드라 갑빠 울트라" 이런 가사가 있었다.

세상에, 저글링도 발톱으로 할퀴어 대는데 더 거대하고 흉포한 히드라리스크가 참 지저분하고 불결한 방식으로 공격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hydra-가 hydro-를 연상시켜서.. 역시나 뭔가 더욱 액체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비록 어원상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히드라 네놈은 여러 모로 공격 수단이 spitting으로 굳어져 가는구나. 뭐 이런 잡생각을 했다.

15. 총질

스포츠 사격과 군대 사격, 펜싱과 검도, 물감과 포스터칼라, 크레파스와 파스텔 등..
체육과 미술 분야에는 뭔가 서로 비슷해 보이는데 용도가 다른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사격 같은 경우 스포츠 사격은 군대 사격보다 훨씬 더 가까이서 쏘고 표적도 더 작고, 총은 더 무겁고 반동이 적고 격발이 훨씬 더 쉽게 되는 걸 쓴다. 한쪽을 잘하는 감으로 다른 한쪽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스포츠 사격 금메달리스트가 곧장 군대 특등사수 저격수와 호환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총은 총알이 날아가는 궤적이 눈으로 안 보이니 궤적에 대해서 온갖 잘못된 오해가 나돌기도 하고, 실생활에서의 대미지가 너무 사기급이다 보니 각종 게임에서는 대미지가 너무 너프다운돼 있다.
많이 빗나갔다가 한번 명중해 버리면 그냥 '윽!' 즉사인데.. 그게 게임에서는 각각의 총알이 대미지를 찔끔찔끔 조금씩 주는 식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런데 "총은 살살 쏘면 안(덜) 아파요. ^^" 이런 말은.. 참 귀엽게 들린다. 살살 쏘면 격발도 좀 덜 시끄럽게 할 수 있으려나? =_=;;;; 총을 일종의 냉병기 같은 관점에서 본 거 같다.
뽕 맞은 마린은 총을 세게 쏘니까 연사력과 단위 시간당 대미지가 올라가기라도 하는가 보다. ㅋㅋ

16. 청소

청소를 해 보면.. 뭔가 기하급수 스케일이 느껴진다. 치우고 없애고 제거해야 하는 물질의 스케일이 얼마인지에 따라서.. 동원하는 도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엄청 큰 덩어리는 손으로 들어서 치우면 된다.
팔로 안아야 할 정도로 큰 놈이 아니라면 집게로 집어서 치울 수도 있다.

다음으로 일일이 손으로 집기에는 작고 많은 이물질은 빗자루로 쓸어 담는다.
빗자루 스케일보다 약간 더 작고 많은 이물질은 청소기를 돌려서 수월하게 제거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빗자루 클래스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먼지들은 걸레로 닦아서 제거하게 된다.

이렇게 청소 도구를 교체하게 하는 이물질의 크기 경계는 실제값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로그를 씌워서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반도체 공장 같은 데서 먼지 제거 청소를 하는 스케일은 더욱 작아질 테니까!!

17. 일광량과 하늘 색깔로부터 시간대 추정하기

동서남북 방향(= 그림자 방향)을 전혀 모른다고 가정할 때, 깜깜한 밤도, 벌건 대낮도 아닌 적당히 짙푸르거나 노을 낀 누런 하늘의 바깥 사진 한 컷만 보고 이게 해가 뜨는 중인지(새벽이나 아침), 해가 지는 중인지(저녁) 판별이 일반적으로 가능할까?

굉장히 알쏭달쏭한 질문인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두 하늘은 날씨가 동일하다면 색깔 차원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고 한다. 그러니 다른 단서가 전혀 없이 색깔만 봐서는 진~짜 원칙적으로는 시간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의외다. 하긴, f(x)의 값 하나만 달랑 보고는 변화량에 속하는 f'(x)의 값을 추론할 수는 없긴 하겠다.

이 말인즉슨, 영화나 드라마 찍을 때 저녁이나 새벽 씬을 편의상 그 반대 시간대에 촬영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영화업계에서는 가상의 선박을 찍을 때도 비용 절감을 위해 한쪽 현만 세트를 만들어 놓고는 좌우 미러링을 해서 좌현과 우현을 다 구현하는 게 관행이다(타이타닉, 연평해전..). 하물며 새벽과 저녁쯤은 손쉽게 바꿔치기 가능하겠다.

영화업계에서 온갖 꼼수를 써서 저비용 트릭을 구현하는 원리를 보면 마치 고도의 마술 테크닉 같기도 하고, 486급 컴퓨터에서 Doom 같은 게임을 돌리기 위해서 존 카맥이 고안해 낸 온갖 기상천외한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을 보는 것 같다. 그.. 부동소수점의 특성을 이용해서 제곱근 역수(= 벡터 정규화를 위한 연산)를 굉장히 빠르고도 상당히 정확하게 구하는 알고리즘처럼 말이다.

18. 해발 고도의 기준

본인은 올해 등산 엄청 많이 다녀오면서 100~200m짜리 언덕부터 시작해 400m는 넘는 것까지 다양한 산을 올랐다.
산의 높이를 논할 때 통용되는 잣대는 해발 고도이다. 쉽게 말해 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이다. 에베레스트 8848, 백두산 2744, 한라산 1950 이런 것들도 해발 고도이다.

이것 말고, 해당 행성의 중심부로부터의 거리(!!)라든가, 바다가 없다고 치고 그 밑의 대륙 뿌리까지 다 쳤을 때의 높이 같은 꽤 마이너한 잣대도 있다. 그런 기준을 적용하면 지구상엔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산도 있다.
또한, 바다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행성의 산의 높이를 논할 때는 선택의 여지 없이 저런 생소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해발 고도는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마냥 장땡이 아니다. 해수면의 높이는 시시각각 변할 뿐만 아니라 어느 바다의 해수면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1m를 빛이 진공에서 진행한 거리가 아니라 미터 원기 내지 지구 자오선 길이를 기준으로 정의했던 것만큼이나 절대적이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천 앞바다에서 밀물 최대와 썰물 최소를 평균한 해수면 높이를 표준 높이로 규정하고, 이를 산의 높이를 재는 잣대로 사용한다. 백두산의 높이 2744는 일제 강점기 때 저 기준으로 측정되었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금도 저 해수면 높이를 사용한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은 평양에서 가까운 앞바다를 기준으로 삼아서 백두산 높이가 2750 정도로 미묘하게 더 높다고 본다.

사실, 2016년 10월인가 그때는 딱히 태풍· 폭우나 온실효과도 없었는데 태양과 달의 배치만으로 바다의 수위가 올라가서 인천과 목포 해안 저지대가 잠시 침수되기도 했다. 이런 게 과연 천체의 인력이구나 싶다.
마치 철도나 도로의 기점 표지판이 있고 산에도 "여기 위치 좌표가 xxx입니다" 표지판이 있는 것처럼.. "이 지대의 높이가 해발 몇 m입니다"이라는 해발고도 원점 표지판도 만들어진 게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인하공전 캠퍼스 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7호관과 도서관 사이이며, 인터넷 지도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인하공전에는 보잉 727 실습기뿐만 아니라 레어템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11 08:29 2017/01/11 08:29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315

1.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 이전에 현대에서 만들었던 소형 트럭과 승합차

내가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라고 블로그에다 글을 올린 것들이 사실은 그냥 현대 자동차의 역사인 경우가 적지 않다. 내가 딱히 특정 기업으로부터 향응을 받았거나 거기 입장을 대변하는 처지인 건 전혀 아니고, 어렸을 때 많이 접했고 경험과 기억이 더 남아 있는 것들이 거기 자동차여서 그런 것일 뿐이다.

본인은 현기차의 빠도, 까도 아니다. 물론 걔네들이 무엇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는지 정도는 그럭저럭 안다. 하지만 걔들이 역사적으로 볼 때 정말 맨땅에서 죽도록 고생해서 '기술' 개발에 전념해서 우뚝 일어선 건 까든 빠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팩트이며, 본인은 그런 것에 흥미가 가서 추억을 정리한 글을 올리는 것임을 이 자리를 통해 밝힌다. 사실, 코티나가 어떻고 최초의 고유 모델, 최초의 전륜 구동, 최초의 DOHC 이런 198, 90년대 소사는 지금 현대 그룹에 다니는 직원들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오늘날 현대 자동차에서 생산하는 1톤 트럭의 이름은 잘 알다시피 '포터'이다. 모델이 여러 번 변경되면서 원조 포터는 이제 길거리에서 거의 찾을 수 없어졌지만, 이 각진 원조 포터의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은 지금도 많이 있을 것이다.
요즘 차들에 비해 각진 헤드라이트의 모양, 그리고 문짝에 새겨져 있는 사선형 무늬가 특징이다. 저 사진에서는 흰색 배경에 무늬가 하늘색이지만, 반대로 하늘색 배경에 무늬가 흰색인 도색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사실은 이것보다 더 옛날 모델도 있었으며, 걔도 '포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회사명의 이니셜을 딴 일명 HD1000. 얘는 일본 미쓰비시에 생산하던 트럭+승합차이던 델리카를 들여온 모델이었으며, 트럭에는 특별히 '짐꾼'이라는 뜻인 포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워낙 희귀한 차량이어서 인터넷을 뒤져도 저 하얀 도색의 모습밖에는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난 저 트럭에 대한 기억은 정말 아주 희미하게.. 거의 영운기나 SMC 8톤 덤프트럭과 비슷한 급으로 남아 있다.

트럭이지만 뒷바퀴가 작은 바퀴 한 쌍이 아니라 앞바퀴와 완전히 동일한 형태인 게 인상적이다. 그래서 기아 세레스와 좀 닮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세레스는 HD1000보다 나중에 등장했으며, 헤드라이트가 저렇게 두 겹(?)이 달린 적이 없었다. 설마 HD1000도 사륜구동이기까지 했는지는 모르겠다. 자료가 없다.

HD1000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되었다. 즉, 포니, 그라나다, 코티나 등과 동연배인 상용차였던 것이다. 승용차에서는 포니는 나름 고유 모델이고 코티나와 그라나다는 포드 사 자동차의 면허 생산인데, 포드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나니 현대에서는 미쓰비시와 이런 식으로 기술 제휴를 맺기 시작했다.

이 트럭은 가성비가 좋았는지 나름 잘 팔리고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5공 초기,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로 인해 현대는 상용차를 생산할 수 없게 되면서 단종되고 흑역사가 되었다. 오일 파동 속에서 기름을 아끼고 자동차 회사간의 쓸데없는 중복 투자 과열 경쟁 낭비를 막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런 식의 무식한 규제와 칼질로 인해 자동차 회사들 간의 건전한 경쟁 구도까지 망가지고, 자기들끼리 구축하던 기술 노하우와 미래 연구 계획이 무자비하게 짤린 것은 업계의 입장에서 큰 손해를 끼쳤다.

기아의 경우 승용차 브리사가 짤려서 흑역사로 전락했다. 훗날 대우 자동차가 내놓은 로얄 디젤만큼이나 브리사를 디젤 모델로도 개발할 작정이었는데 실현되지 못했다.
그렇게 1980년대 초중반까지 자동차 업계의 중세 암흑기가 계속되는 동안 기아는 그래도 봉고라는 승합차와 트럭을 만들면서 회생에 성공했다. 봉고는 당사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엄청난 대성공을 거뒀으며, 국내에 봉고라는 이름을 소형 승합차를 상징하는 보통명사로 정착시켜 버렸다. "봉고차!"

앞서 거론되었던 세레스도 1983년, 바로 이 기간에 만든 사륜구동 영농 최적화 트럭이다. 세레스의 모습을 위의 HD1000 트럭과 비교해 보시라. 맨 처음에는 헤드라이트가 각진 사각형 프레임 안의 원형이다가 중간에 텔레비전 브라운관 같은 둥근 사각형으로 바뀌었고, 그러다 곡선 프레임 안의 원으로 돌아온 듯하다. 어떤 경우든 HD1000처럼 1970년대 유행이던 쌍라이트는 아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훗날 차종 생산 규제가 풀리면서 기아는 잽싸게 승용차 프라이드를 내놓았으며, 현대는 우리가 아는 그 포터와 그레이스를 내놓게 되었다.
이들과는 달리 대우 자동차에서 내놓았던 바네트와 엘프 같은 상용차는 정말 존재감이 없이 묻혀 버렸다. 오히려 경차인 다마스와 라보만이 불멸의 경지에 올라서 지금까지 생산 중이다.

2. 신칸센 0계와 미쓰비시 데보네어 1세대

끝으로, 과거에 현대 자동차의 기술 파트너였던 일본 미쓰비시 얘기를 하겠다. 한일 합작으로 만들었던 그랜저와 에쿠스가 한국에서는 대박을 친 반면 일본에서는 몽땅 망한 이야기는 차덕이라면 이미 잘 알 것이다.

그랜저의 경우, 한국에서는 1980년대 중반에 국산 고급 승용차를 개발하려는 시대적 필요가 있었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철도계에서는 서울 지하철 3, 4호선을 만들었고 새마을호 유선형 객차를 도입했다. 도로 쪽으로는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올림픽대로를 닦았으며(김포 공항에서 올림픽 경기장까지 한강 따라 한번에!),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랜저도 개발해서 출시하게 됐다.

한편, 일본에서는 미쓰비시의 대형 고급차가 데보네어 1세대였는데 얘가 1963년? 1964년에 처음 나오고 나서 일체의 개량 없이 20년이 넘게 굴러가고 있었다. 자동차계의 살아 있는 화석 실러캔스라고 까일 정도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데보네어의 신버전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으며, 한국과 일본은 이런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져서 각그랜저 내지 데보네어 2세대를 공동 개발하게 됐다. 첫 작품이 나온 게 1986년의 일이다.

그런데 1964년부터 1986년까지 22년을 버틴 데보네어 1세대의 연대기는 일본의 고속철인 신칸센 0계와 연대기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신칸센 0계도 1963년부터 1986년까지 23년간 동일 차체가 죽어라고 폐차와 교체를 수십 번, 정확히는 무려 36차 도입분까지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식빵 모양 초저항 전동차가 1974년 이래로 12년 동안 1986년까지 도입한 게 끝이었고, 서울 메트로 것도 1989년이 마지막임을 감안하면 동일 차량을 얼마나 오래 우려먹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나저나 각그랜저가 '88 서울 올림픽 대비라면, 데보네어 1세대 역시 신칸센 0계와 마찬가지로 '64 도쿄 올림픽을 대비해서 개발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후속 차량인 신칸센 100계는 도입 연도가 1985년부터 1992년까지로, 얘 역시 각그랜저의 생존 주기와 얼추 비슷하다. 뉴 그랜저는 1992년 가을에 출시됐으며, 신칸센 300계도 1992년에 등장했다. 300계는 우리나라의 고속철 차량 입찰 경쟁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철덕은 자동차의 역사를 동일한 시기의 철도의 역사와도 연계해서 생각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2/23 08:32 2016/12/23 08:32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308

어떤 강 위에 교량(다리)을 건설한다고 하면 우리는 강의 양쪽 건너편을 잇는 통상적인 형태의 다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리가 꼭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강을 따라 그냥 물 위를 지나는 다리도 드물지만 있다. 쉽게 말해 강과 수직이 아니라 평행인 다리 말이다.

작은 개천의 경우 물줄기를 따라 그 위에다 길을 놓아서 개천을 완전히 덮어 버린 '복개 고가 도로'가 있긴 하다. 과거에 서울의 청계천도 그 위에 고가 도로가 닦여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철거된 걸로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일개 도로만으로 복개가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폭이 큰 하천에도 남단이나 북단을 나란히 지나는 교량이 있다.

그런 교량은 아무 이유 없이 만드는 건 아니고.. 강을 따라 닦였던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건설되곤 한다. 차선수를 늘려야 되는데 한쪽은 강이고 다른쪽은 바위산이거나 이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확장의 여지가 없을 때 말이다. 그럼 다리를 놓음으로써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강을 건너는 다리라면 남단과 북단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기 위해 당연히 직선 형태로 만들어지는 반면, 강을 따라 지나는 다리는 교량 주제에 커브가 존재하기도 한다.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에서는 북단의 강변북로와 남단의 올림픽대로에 이런 다리가 모두 존재한다.
강변북로는 1970년대에 먼저 4차선이라는 초라한 규모로 건설됐다. 이거 건설과 확장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때는 용산-왕십리 방면의 경원선 철길을 없애 버리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제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 철도 관계자가 이를 필사적으로 만류한 덕분에 그렇게 되지 않았으며, 경원선은 오히려 용산-성북 복선전철로 거듭났다.
그리고 강변북로의 기존 도로는 서쪽 방면 전용이 되고, 동쪽 방면 도로는 일부 구간이 교량 형태로 새로 만들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편, 올림픽대로는 1980년대의 5공 시절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올림픽의 유치에 성공한 그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여 평범한 '강변남로' 대신 저런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하긴 이 도로는 김포 공항과 서울 올림픽 경기장을 직통으로 쭉 잇기도 하니 이름이 88 올림픽 '고속도로'보다는 훨씬 더 타당성과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올림픽대로는 노량진동과 동작동 사이의 2km 남짓한 구간이 '노량대교'라고 불리는 교량이다. 강변북로와는 달리 처음 만들어진 1986년 당시부터 상· 하행이 모두 교량이다. 다만, 30년 전 처음부터 지금 같은 광활한 10차선은 아니었으니, 지금 여기를 달려 보면 다리가 덕지덕지 작은 구획으로 나뉘었다가 확장되고 합쳐진 흔적을 볼 수 있다. 교량의 폭을 확장하는 건 터널의 폭을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량대교는 엄연히 이름이 붙어 있는 교량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대로 내부엔 교량 구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어떤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다리는 한강을 '건너는' 다른 교량들을 아래로 지나서 입체 교차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운전자가 노량대교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샌가 교량에 진입했다가 어느 샌가 빠져나가 버린다.

다음으로, 서울을 빠져나가서 국도 6호선을 타고 양평 쪽으로 가 보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의 아래로 강이 유유히 흐르는 게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다.
원래 거기는 험준한 지형 때문에 좁고 구불구불한 2차선짜리 도로였지만 1990년대에 공사를 통해 4차선으로 확장됐다. 남한강이 북한강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중앙선 철도로 치면 양수-신원 사이 구간)에서는 땅에서 도로를 확장하기가 여의찮은 관계로, 동쪽 방면 도로는 강변북로처럼 강 위에 교량을 나란히 설치하는 방식으로 부설했다. 이 다리는 이름이 '용담대교'이며 지난 1996년에 개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담대교는 나름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이다. 이 사진보다 색감이 더 아름다운 사진도 있는데 그건 다 가로 크기가 500픽셀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남)한강은 서울 시내 구간과는 달리 상수도 보호 구역이라는 것이다. 수질 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일체의 개발· 건축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양평이 괜히 경치가 좋은 게 아니다. 강가는 온통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도 6호선의 교량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굉장히 특수한 공법을 동원해서 건설됐다고 한다.

끝으로, 유사한 사례가 아니라 대조군을 소개하고서 글을 맺겠다.
경부선 철도는 잘 알다시피 밀양의 삼랑진 역 이남부터 낙동강을 나란히 따라 달린다. 그런데 거기도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노반 확보를 어찌 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한쪽은 그냥 강이고, 다른 한쪽은 바위산이었던 것이다.

경부선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교량을 만드느니 차라리 산에다 불가피하게 터널을 뚫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삼랑진-원동-물금 일대엔 상행은 그냥 평지인데 하행만 터널을 지나는 기묘한 구간이 몇 군데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 지도 캡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철도는 좌측통행인 건 다들 아실 테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경부선은 상행 방면이 먼저 생겼고 복선화 공사 때는 오른쪽에다 하행 선로를 '나중에' 추가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터널까지 뚫지는 않아도 되는 쉬운 곳에다가 선로를 먼저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상. 본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교량 중에는 강을 수직으로 건너는 놈만 있는 게 강을 나란히 따라가는 놈도 제한적이나마 있다.
  2. 그런 교량은 대체로 산과 강 사이에 낀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지곤 한다.
  3. 다만, 경부선 철도의 경우 낙동강 구간에서 그 흔적이 편도 교량이 아니라 편도 터널로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0 08:28 2016/10/20 08:28
, ,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85

여러가지 철도/도로 뒷북 이야기

1.
국내 고속도로계에서 독보적으로 낙후한 이단아이던 88 올림픽 고속도로는 지난 2015년 말에 드디어, 드디어 전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름도 '광주대구 고속도로'라고 바뀌었다. 솔직히 이 도로는 착공· 건설 시기가(개통 시기가 아님.)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시기와 비슷할지 몰라도, 지리적으로는 올림픽과 정말 아무 상관도 없었으니까..

중앙분리대조차 없이 2차선이던 이 고속도로는 설계 최대 속도도 100이 아닌 80km/h이었으며, 중앙선을 침범하여 앞차를 추월하다가 마주 오던 차와 정면 충돌하는 사고가 잦아서 교통사고 발생 빈도 내지 사고 사망률이 여타 고속도로들보다 몇 배로 더 높았다. 백괴사전에서는 "44(死死) 내림픽 저속도로"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깠을 정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행 여건이 다른 고속도로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히 리모델링된 국도보다도 열악했던 관계로, 한국 도로 공사는 여기 구간의 통행료는 여타 고속도로의 반값 정도로만 징수했다. 서울 지하철이 '최소 거리 이용 추정의 원칙'에 의거하여 요금을 측정하듯, 고속도로 톨비 역시 비록 진입과 최종 진출 나들목 자체가 88 내부의 나들목이 아니더라도 경로상으로 88을 이용했을 만한 위치라면 그걸 감안하여 산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가 이 도로도 찔끔찔끔 선형 개선과 확장, 이설 공사를 되풀이했으며, 그게 드디어 작년 말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오랫동안 존속해 온 통행료 특별 할인도 폐지됐다.

전국의 고속도로 나들목들 중 유일하게 평면교차+비보호 좌회전(고속도로에서!)이라는 엽기적인 형태로 남아 있던 '남장수 IC'는 해당 구간이 대거 이설되면서 없어졌다. 이를 대체하는 동남원 IC가 생기긴 했지만 저기서 서쪽으로 수 km 떨어진 곳이다. 남장수 IC가 없어진 건 철도로 치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스위치백이라든가 통표 폐색 구간이 없어진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옛날에는 이 88 말고 다른 고속도로도 이름만 고속도로이지 2차선에 평면교차 같은 막장 시설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호남 고속도로, 영동 고속도로 따위도 처음엔 그랬다.
심지어 1990년대에 대구와 원주를 잇는 중앙 고속도로조차도 처음엔 2차선으로 건설되고 있었는데 감사원에서 이를 잡아 냈다. "이렇게 만들었다간 99.9% 나중에 또 확장하느라 더 고생하고 돈과 시간을 더 낭비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설계를 갈아엎고 다시 만들어라. 그리고 이를 선례로 삼아 앞으로 새로 만드는 모든 고속도로들은 처음부터 반드시 4차선 이상 크기로 건설해라."라는 현명한 지시를 내려서 개선이 됐다.

저렇게 1990년대에도 2차선으로 건설될 뻔한 고속도로가 있었는데 1960년대 말 그 옛날에 처음부터 전구간 4차선으로 시작을 했던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 과정이 문득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다만 그 시절에 박통이 이미 "내가 야당이 하도 반대해 대서 일단은 4차선으로만 건설하지만 경부 고속도로는 얼마 못 가 분명히 비좁아질 거다. 확장을 하게 될 테니 도로 주변에 건물 건설 허가를 내지 말고 준비를 해 둬라" 이런 예고까지 했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가 유지 보수 비용이 결국 건설 비용만큼이나 더 들었다고 회자되긴 한다만, 그건 다른 고속도로들도 훗날 꾸준히 개선되어 온 건 대동소이했다. 허나 88은 박통도 아니고 나름 5공 시절인 1980년대에 건설된 주제에 오랫동안 개선되질 못해서 까임거리가 된 것이다. 영호남 화합? 실질적인 수요보다는 정치 논리에 따라 건설됐다 보니 리모델링의 우선순위도 뒷전으로 밀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것도 이제 다 지나간 일이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88 올림픽 고속도로에 이어, 철도 경전선도 올해는 대대적인 선형 개량 공사가 끝나서 여러 구간이 이설되고 여러 간이역들이 없어질 예정이다.
자, 다음부터는 철도 얘기를 주로 늘어놓도록 하겠다.

2.
과거에 20세기 말에 우리나라의 최하등급 열차는 비둘기호였다. 정선선에서 운행하다가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퇴역했다.
객차형 비둘기호는 너무 싸서 수지맞지 않은 운임 체계, 너무 낡고 노후화한 객차 같은 여러 이유로 인해(비산식 화장실, 수동 출입문, 별도의 발전차 없이 객차가 차축 연결해서 소규모 자가발전-_-, 에어컨도 없음..) 21세기에까지 존속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긴 했다.

그 다음으로 통일호도 객차형은 차량이 비둘기호 만만찮게 열악했던지라 2004년 3월 31일, KTX 개통을 앞두고는 모두 퇴역했다. 근성열차라고 불리던 청량리-부전 통일호가 이때 사라졌고 경춘선도 통일호가 모두 무궁화호로 바뀌면서 사실상 운임이 강제로 일괄 인상된 효과도 났다.

나머지 디젤 동차형 통일호는 '통근열차'라고 이름이 바뀌었는데, 얘들은 진해선, 동해남부선, 군산선 등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차근차근 무궁화호로 교체되면서 명줄이 위태로워졌다. 기관차-객차형처럼 차량이 완전히 다른 무궁화호 말고, CDC 객차 자체가 일명 RDC 무궁화호로 개조되기도 했다.

현재 통근열차의 최후의 보루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경의선과 경원선밖에 안 남았다. 허나 경의선에서는 이미 진작에 전철에 밀려 퇴출되었으며, 현재 전국에서 오리지널 CDC가 다니는 곳은 이제 소요산 이북의 경원선이 유일하다! 과거에 정선선 비둘기호와 비슷한 꼴이 된 셈이다. 비둘기호:정선선 = 통근열차:경원선 정도의 비례식임.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9~2020년쯤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약 빨고 더 연장되어 연천까지 가 버리면 이제 CDC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더 북쪽의 잔여 구간은 지금 경의선이 그런 것처럼 안보 관광 열차가 대신 맡을 것이고.

물론 경원선 연장 구간은 전철이 들어간다고 해도 일단은 복선 노반만 확보해 놓은 '단선 전철' 형태로 운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복선 구간 운행이 너무 당연시되는 지하철 통근형 전동차가 갑자기 단선 구간에서 상하행 교행을 한다니 그것도 참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것 같다. 하긴, 천하의 KTX도 과거에 광주 역을 드나들 때는 꼬불꼬불 단선 구간을 다니긴 했다.

3.
21세기 이래로 경기화학선, 세풍제지선, 화순선 등 여러 산업· 화물 철도들이 소리소문 없이 열차 운행과 관리가 중단되고 사실상 폐선 테크를 타 왔다.
하지만 화물 분야에서 철도가 마냥 몰락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 지난 2010년 말에는 부산신항선이라는 걸출한 화물 철도가 개통했다. 그것도 복선으로. 여객이 아니고 항구 화물 전용 철도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쯤 뒤, 작년에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평택에서 평택항으로 향하는 화물 철도가 또 신규 개통했다. 이름하여 평택선. 경부선과 연결하는 삼각선도 상하행으로 모두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무 방향으로나 통한다.

경부선 전철에서 성환-평택은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이기도 하고 역간거리가 무려 9km가 넘는다. 공항 철도를 제외하면 수도권 전철에서 역간거리가 가장 긴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이엔 온통 들판에 소규모 마을밖에 없기 때문에 역이 만들어질 여지가 별로 없다.

평택 다음 성환 역에도 사이에 웬 지선 철도가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뻗어 나간다. 이건 하행 방향으로만 있고 서울 상행 방향은 없는데, 다름아닌 성환읍 학정리의 야산 하나를 몽땅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군부대로 향하는 비밀 철도이다. 서빙고 역에서 미군 기지로 들어가는 그 철도, 그리고 호남선에서 논산 육군 훈련소 방면으로 가는 강경선 같은 걸 떠올리면 되겠다.

관련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그 군부대는 탄약창인가 보다. 탄약은 굳이 사방으로 파편이 날리는 수류탄 같은 부류가 아니더라도, 내부에 다 화약이 들어있는 위험물이다. 한 탄약고가 공격을 받아 폭발하면 인근의 다른 탄약고까지 연달아 재귀적으로-_- 폭발하면서 Doom 2의 레벨 23 Barrels o' fun이 실사판으로 재연되는 참극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스플래시 대미지를 예방하기 위해 탄약창은 최대한 넓게 띄엄띄엄 지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탄약창의 부지가 굉장히 크다. 다만 여기에 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눈꼽만 한 보상밖에 못 받고 오랫동안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서 꽤 고달프게 지냈다고 한다.

4.
그 밖에 작년에 있었던 의미 있는 사건으로 또 떠오르는 건.. 서울 역과 노량진 역에 정식 환승 통로가 개통했다는 것이다.
버스와는 달리 지하철은 내렸다가(=집표 구역 밖으로 나감) 다시 탔을 때 환승 할인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개통한 뒤에도 노량진 역에는 물리적인 환승 통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공항 철도와 경의선도 기존 지하철 1· 4호선 서울 역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는 수도권 전철 전체를 통틀어 예외적으로 철도끼리 내렸다가 30분 이내에 다시 타도 환승 할인이 인정되게 되었다. 일명 소프트 환승이다.

사실, 지금은 찍고 나간 동일 게이트에 5분 이내에 다시 들어가도 1회에 한해 기본 운임 재징수 면제라는 예외까지도 추가돼 있다. 이런 것들도 다 소프트웨어로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다 구현 가능한 건데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으니 막아 놓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5년도 더 전에 환승 통로가 개통했지만, 2010년 이전엔 '국철/중앙선' 청량리 역과 서울 지하철 청량리(1호선) 역도 마치 경의선 신촌과 지하철 신촌(2호선)만큼이나 환승이되지 않았고 별개의 역으로 취급되곤 했다. 또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갓 개통했을 때에도 신당 역은 2호선과의 환승 통로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몇 달간을 환승이 안 되는 역으로 영업을 했었다. 이때엔 소프트 환승 같은 건 없었다.

서울 역의 경우 지하철과 공항 철도가 정말 도를 지나칠 정도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관계로, 수직 이동 삽질을 줄이고 수평 이동도 무빙워크로 도와 줄 환승 토로가 정말 절실했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환승 통로 만들어 주세요" 급이었다. 그래서 작년 3월에 먼저 개통했다.
한편, 노량진은 민자역사의 건설과 맞물려서 환승 통로의 개통이 한없이 늦어졌다. 이건 마치 분당선 야탑 역과 인근 버스 터미널과의 통로 개통과도 비슷한 문제였던 것 같다. 둘 다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일이 늦어졌고 그 동안 승객들만 불편을 겪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작년 10월 말에 환승 통로가 생기긴 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물리적인 환승 통로가 뚫린 덕분에,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두 역에만 존재하던 소프트 환승 예외 로직은 폐지되었다. 마치 88 올림픽 고속도로가 리모델링이 완료되면서 반값 통행료 제도가 없어진 것과 같은 이치다.

단, 서울 역에 있는 4개 전철 노선 중 경의선은 여전히 여타 노선들과 단절되어 있으며, 여기는 수도권 전철에서 유일하게 소프트 환승 예외가 계속 유지된다. 1시간에 1대밖에 안 다니는 마이너 지선에까지 굳이 환승 통로를 뚫을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신촌은 아주 유니크한 구간으로 그렇게 명맥이 유지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4/20 08:38 2016/04/20 08:38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217

1. 신호등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보행자용 신호등, 자동차용 신호등, 심지어 철도 차량용 신호등이 다 있다. 신호등은 처음 등장한 건 19세기 말이고, 지금과 같은 전기식 신호등에 지금과 같은 색깔 관행이 정착한 건 20세기 초쯤이다. 처음에는 정지 신호가 빨강이 아니던 시절도 있었는데, 철도던가 자동차던가 어디서 한번 신호 오인 때문에 대판 사고가 난 뒤에 빨강으로 변경됐다는 걸 읽은 기억이 있다.

다른 신호등은 그냥 별 특징 없는 색깔등에 불과하지만 보행자용 신호등은 색깔뿐만 아니라 사람이 선 모양과 걷는 모양이 추가적으로 그려져 있다. 모든 나라에서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우리나라는 그렇다. 색깔뿐만 아니라 정말 motion으로도 이때는 건너도 되거나 반드시 서야 한다는 걸 표시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단순히 X나 O 모양도 아니고 굳이 사람 모양을 그렸다.

그런데 이것 아시는지? 우리나라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처음에는 색깔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고 사람 형상은 검정 고정이었다. 그랬는데 나중에 신호등이 쫙 교체되면서 검은 배경에 사람 형상이 빨강 내지 초록인 형태로 바뀌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특별한 이유는 없고, 신호등이 단순한 전등에서 전기를 덜 잡아먹는 LED 소자 기반으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구 하나를 켜는 게 아니라 사람 그림 모양의 픽셀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신호등의 점등 모양도 지금처럼 바뀌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보행자 신호등에는 남은 시간도 게이지 내지 숫자로 표시되게 UI가 개선되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신호등을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느 샌가 다 교체되었다.

신호등은 전국의 교차로와 횡단보도에 이거 뭐 한두 개가 있는 게 아니며, 마치 냉장고처럼 사실상 24시간 반영구적으로 가동되는 물건이다 보니 거시적으로 볼 때 전력 소모가 엄청나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전기를 덜 먹는 방식으로 교체하면 투자 비용을 생각보다 짧은 시간 만에 회수할 수 있다.
백열등도 효율이 너무 안 좋다고 국가에서 나서서 퇴출시키는 마당에 하물며 신호등이겠는가. (그나저나 처음 켤 때 깜빡거리는 형광등도 마지막으로 본 지 굉장히 오래 됐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보행자에 이어 자동차용 신호등에도 빨간불이나 파란불에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면 어떨까?
악명 높은 노란불 딜레마를 예측하고 대처하는 데 유리해지는 면이 분명 있겠지만, 운전자들이 저걸 보고는 더 조급해져서 사고가 날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고 있으라고 도입을 안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경상북도 봉화군은 얼마나 차량 통행이 없고 한적했으면, 대부분의 도로 교차로가 그냥 황색 점멸일 뿐이라고 한다. 그 지경이라면 차라리 로터리를 만들면 신호등을 운영할 필요가 없고 좋을 텐데. 단, 로터리는 공간 소모가 더 크다는 단점이 있다.

빠른 교통수단은 단위 시간 동안 더 긴 거리를 이동하며 더 많은 공간을 점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얘가 차지하는 트래픽 때문에 느린 교통수단은 신호 대기 때문에 표정속도가 더 떨어지는 효과가 난다. 이것도 일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자동차 신호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보행자는 교차로에서의 신호 대기 때문에 동일 구간에서의 통행 소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철도만 해도 KTX 때문에 기존선 구간에서는 일반열차들의 통행 시간이 더 길어진다. 영등포 역에서 KTX를 먼저 보내 주고 출발하느라 하위 열차들은 몇 분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통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현상이다.

2. 자동차의 국제화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국제화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각 나라의 언어마다 달라지는 GUI 요소들을 별도의 파일로 분리하곤 한다. 소스 코드를 고쳐서 재빌드를 하지 않고도 이 데이터만 추가하거나 교체하면 새로운 언어에 대한 지원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말이다. 그나마 문자 코드 하나는 유니코드 덕분에 천하통일이 이뤄진 관계로 일이 예전보다 많이 수월해졌다.

그런데 자동차에도 이렇게 각 국가별로 따로 세팅을 해야 하는 요소가 있다. 물론 자동차 내부에서 동작하는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같은 건 프로그램 차원에서 다국어 UI를 갖춰야겠지만, 그런 것 말고 대시보드나 계기판에 있는 간단한 표현들은 그냥 영어 원어 표현을 냅두지 그런 걸 일일이 다 현지 언어로 바꾸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1) 운전대의 위치와 (2) 속도계 숫자의 단위이다.

세계적으로는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좌측통행을 하는 소수의 나라들이 영국과 영연방, 과거에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 그리고 영국식으로 근대화를 한 일본처럼... 존재감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나라들이다. 그러니 좌측통행용 우핸들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건 마치 글자를 쓰는 방향이 L2R이냐 R2L이냐 하는 문제 같다. 아랍권에서는 프로그램의 세로 스크롤 막대가 창의 오른쪽 구석이 아니라 왼쪽 구석에 있다.

요즘 자동차 중에는 운전석 쪽 대시보드와 조수석 쪽 대시보드의 외형이 대칭이 되게 해서 좌핸들과 우핸들을 동일 생산 라인에서 최대한 저렴하게 동시 처리 가능하게 설계된 경우가 있다. 이건 마치 양손잡이용 가위 내지 마우스 같은 컨셉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가 더 오래 지속되고 일제 치하에서 도로 시설이 확충되고 자동차가 대중화됐다면, 한반도까지 좌측통행 지역으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해방 당시까지 한반도에는 등록된 자동차 수가 1만 대가 채 되지 않았으며, 서울을 제외하면 압도다수의 길이 여전히 차선이고 신호등이고 뭐고 없는 비포장이다 보니 여전히 자동차의 통행 방향은 그냥 정하기 나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군정이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었던 1946년 4월에 한반도에서 자동차의 통행 방향은 우측으로 개정되었다. 그래야 우측통행을 하는 미국에서 들여온 좌핸들 차량들이 별다른 불편 없이 한반도에서 곧장 다닐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 철도는 사정이 어떨까? 철도야 조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대가 어디에 있든지 별 의미가 없다. 국내에는 수도권 전철 4호선처럼 한 전동차가 좌측통행 구간(국철 과천· 안산선)과 우측통행 구간(서울 지하철 4호선)을 아예 직통 운행까지 한다. 자동차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또한 해방 당시엔 통행 방향의 구분이 필요한 복선 철도 자체가 경부· 경의선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그때 마음만 먹고 좀 매몰비용을 감수했다면 철도의 통행 방향도 우측으로 과감하게 확 뜯어고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철도는 여전히 좌측통행으로 그대로 유지되었다. 자동차처럼 차량의 운전대 방향을 꼭 맞춰야 할 필요가 없었고, 또 기존 철도역들의 시설을 고치는 게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또한 이건 정말로 그냥 하나로 정하기 나름일 뿐, 무슨 협궤-표준궤 개궤라든가 100-220V 승압처럼 미래를 내다보고 꼭 바꿔야 할 과업까지는 아니기도 하니까.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근대화· 산업화가 한 박자 늦었던 대신, 그래도 전압이나 철도 궤간 같은 건 깔끔하게 통일이 잘 됐고 승압 같은 것도 너무 늦어지기 전에 잘 해냈으니 이건 다행스러운 점이다.

좌측 우측 얘기가 길어졌고, 다음으로 속도계 단위이다. 이건 잘 알다시피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터법을 안/못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가 세계 최강대국이다 보니.. 빼도 박도 못하고 생긴 고려 사항이다.
미국의 자동차 속도계를 보면 바깥에 큰 숫자로 마일이 적혀 있고, 안쪽에 작은 숫자로 킬로미터가 적혀 있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다니는 자동차에다가는 굳이 그렇게 안 해 줘도 된다. 미국의 프리웨이는 속도 제한도 시속 55~65마일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게 얼추 시속 100km에 대응한다.

3. 차선의 색깔, 가변 차로 등

외국의 자동차 주행 동영상을 보면서 본인이 굉장히 놀란 점이 있는데..
중앙선 차선이 우리나라처럼 황색 실선이 아니라 그냥 흰색 실선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북한도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거기는 아예 차선이 안 그려지고 길만 덩그러니 놓여 있거나, 그냥 중앙분리대가 따로 있는 경우가 더 많지만)

흰색 실선은 같은 방향인데 차선 변경을 할 수는 없는 터널 같은 구간에서 쓰는 게 아닌가?
하나만 그은 것과 두 줄을 그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 같은 사람은 좀 혼동할 것 같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차를 외국으로 수출할 때, 고급차에 들어가는 중앙선 침범 감지 장치의 알고리즘까지 고쳐야 한 사례가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중앙선이 아니라 도로의 가장자리에 그어진 황색 실선은 이 도로가 주· 정차 금지 구간임을 뜻하고, 황색 점선은 잠시 정차만 가능하다는 걸 뜻한다. 흰색 선이거나 가장자리에 선이 없으면 그런 제약이 없다는 뜻이고.
차선 색깔의 구분이 없으면 그런 것도 표현을 못 할 텐데 말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만한 사항은 가변차로이다.
가변차로는 양쪽의 방향이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다. 전자는 고속도로에서 시간대별로 갓길과 차로를 병행하는 구간으로, 점선이든 실선이든 흰색 선이 그어져 있다. 예전에 고속도로에 간간이 있었던 버스 정류장 부지가 지금은 진짜 갓길 내지 졸음 쉼터로 재활용되는 추세이다. 갓길이 차로 모드가 아니라 갓길 모드일 때 무단으로 통행했다가는 나중에 피본다.

한편, 후자는 시간대별로 상· 하행의 교통량의 편차가 큰 시내 구간에서 중앙의 몇 개 차선을 방향별로 가변적으로 운행하는 구간이다. 차선으로는 황색 점선이 그어져 있다. 전체 차선 수가 애매하게 홀수 개가 됐다거나 할 때도 가변차로를 검토할 만하다.

후자 가변차로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볼 수 있지는 않다. 서울에서 대표적인 곳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상왕십리-왕십리 구간의 지상 도로 정도이다.
여기는 운전자가 헷갈리면 차선을 잘못 진입해서 자동차끼리 정면충돌 사고가 날 수 있어 88 올림픽 고속도로 뺨치게 대단히 위험하다. 위에 지금 진입 가능 방향과 금지 방향이 전광판으로 표시되어 있으니 그걸 잘 봐야 한다. 오거리· 육거리에서 어느 신호등이 우리 방향 것인지를 헷갈려서 잘못 진입하는 식의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물론 가변차로라고 해서 대책 없는 막장으로만 운영되는 건 아닌지라, 한 차로의 통행 방향이 바뀔 예정이라면 그로부터 한참 전부터(거의 10분 가까이) 완충 타이밍을 둔다. 모든 방향으로부터 차들의 통행을 금지시키 시작하여, 해당 구간 전체가 텅 비었을 때 비로소 방향을 반대로 바꾼다. 재미있지 않은가?

지하철만 해도 승강장이 섬식이면 한 승강장을 양방향 승객이 모두 공유하는 관계로, 출퇴근 때처럼 방향별 이용객 수의 편차가 클 때 공간 활용 효율이 더 올라간다. 그리고 선로가 단순히 복선이 아니라 3선이라면, 한 선로를 무정차 회송 선로로 활용하여 몰리는 방향의 열차를 반대 방향 열차보다 더 자주 투입시키는 게 가능하다.

가변차로는 자동차의 통행에서 비슷한 효과를 노린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설을 구축하는 데 든 노력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고 심리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껴지는지라 요즘은 더 만들지 않고 기피되는 추세이다. 마치 옛날에 산업화·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서울 시내 고가도로들이 요즘은 반대로 철거되는 추세이듯이 말이다.

아이고, 차선 하나만 갖고도 색깔부터 시작해서 할 얘기가 굉장히 많았다.
자동차가 어느 정도 신호 대기 없이 쭉쭉 달리는 곳이라면 어지간한 4차선짜리 국도에도 요즘은 단순 중앙선 대신 중앙분리대가 설치되곤 한다.

졸음운전 내지 빗길에 미끄러진 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멈춰선 경우가 지금까지 한둘이었던가. 중앙분리대는 중앙선 침범 정면충돌 교통사고를 예방해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중앙분리대는 밤에 반대 방향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가려 주는 역할도 해서 더욱 좋다.
양방향 사이에 화단을 조성하거나 아예 방향별로 도로를 따로 만든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흔치 않다.

실선 차선 구간이라 하더라도 자동차 운전 중에 차선을 변경하려면 C/C++에서 서로 다른 타입의 포인터끼리 대입할 때처럼 깜빡이라는 형변환 연산자를 꼭 넣어 줘야 할 것이다. 안 하면 최소한 쌍라이트+쌍욕+경적이라는 warning과, 최악의 경우 사고라는 에러가 날 가능성이 커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5/02/08 08:25 2015/02/08 08:2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059

오늘은 여러가지 교통 관련 썰을 좀 풀어 나가도록 하겠다.

1.
지난 추석 때, 고향을 왕래하는 고속버스 차창 밖으로.. "고속국도 제1호선 언양-영천간 확장 공사" 라고 표지판이 붙고 터가 닦여 있는 걸 봤다.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 이래로 지난 40여 년간 최후까지 오리지널 4차선 그대로 남아 있었던 마지막 구간까지도 드디어 확장된다니 감회가 새롭다.
이 고속도로에 대해서는 3년 남짓 전에도 글을 한번 쓴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경부 고속도로의 옛날 사진을 보면 중앙 분리대가 화단 형태로 된 모습이 있어서 무척 신기하게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한 옛날에는 일부 직선 구간(성환, 신갈)은 아예 물통 같은 임시 중앙 분리대만 만들어 놓고 유사시에 활주로로 쓸 수 있게 해 놓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해당 구간을 잠시 폐쇄하고서 전투기 이착륙 훈련을 한 적도 있다.
아래 사진은 신갈 활주로에서 실제로 훈련을 하던 모습이다. 신갈 일대 고속도로 좌우 모습이 저랬을 정도이면, 아니 경부 고속도로의 수도권 구간을 폐쇄하는 게 가능했을 정도이면 지금으로부터 엄청, 굉장히 먼 옛날의 일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화단 형태든 임시 형태든.. 경부 고속도로의 중앙 분리대가 모습이 저랬다는 것은 오늘날로서는 참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경부 고속도로는 처음에는 전구간 4차선으로 건설되었다.
지금이야 88 올림픽만이 전국 유일의 겨우 2차선짜리 고속도로라고 까이지만, 옛날에는 반대로 경인과 경부 정도만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다차선이었다. 2차선 고속도로는 여럿 있었다. 당장 호남이나 영동 등.
그런데 옛날에야 그렇다 치더라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높으신 분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고속도로를 마치 88 올림픽처럼 겨우 2차선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중앙 고속도로인데.. 이건 마치 21세기에 개통 예정인 철도를 표준궤가 아닌 협궤 크기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막장 행위였다. 이것은 다행히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끝에 뒤늦게 4차선으로 허겁지겁 개조되었다.

감사원? 철도에서 일산선 건설도 서울 지하철 3호선처럼 우측 직류 규격으로 임의로 바꿔서 과천-안산선처럼 꽈배기굴 시즌 2가 생길 뻔한 것을 막은 그 기관 말이다. 철도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를 만들 때도 그나마 세금값을 했다.

2.
철도 경부선은 영업거리표 상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공식 거리가 441.7km이다.
옛날처럼 지금의 서울 역(그 당시엔 남대문) 이북으로 레알 서울 역이 있고, 지금의 부산 역(그 당시엔 초량) 이남으로 진짜 부산 역이 또 있었다면 거리는 지금보다 2km 남짓 더 길어졌을 것이다.
한편, 경부선 철도에 상응하는 경부 고속도로의 전체 거리는 416.4km이다. 개통 당시엔 428km가량이다가 선형 개량을 통해 더 짧아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경부 고속도로는 경주와 울산을 거쳐서 크게 우회하는데 어떻게 유사 노선의 철도보다 거리가 이렇게 짧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경부선도 서울 구간에서는 서쪽 영등포 방면으로 우회를 좀 해서 동선이 안 좋지만, 그래도 고속도로에 비할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한데, 바로 시내 구간의 포함 여부이다.
철도는 서울 역이라는 서울 도심으로 깊숙이 들어가며, 부산 역도 부산 시내를 다 관통한 후 완전 최남단에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양재 IC라는 서울 남쪽 외곽에서 끝나고, 부산도 시점인 구서 IC는 부산의 북쪽 끝자락이다.
양재IC - 서울 역 내지 구서-부산 역만 쳐도 각각 직선 거리만 거의 15km에 달한다.

이걸 퉁쳐 주면 고속도로나 철도나 거리는 서로 비슷해진다.
경부선 기존선이 아니라 서울-대구 구간을 고속선으로 달리는 KTX는 서울-부산 전체 주행 거리가 408km대로 크게 감소한다. 경부고속선이 기존 선로의 구불구불하던 주름을 얼마나 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대구 이남 구간은 고속선이 경주와 울산을 경유하기 때문에 KTX의 거리는 423.8km로 15km 남짓 증가한다.

3.
교통· 운수 업계에서는 경사로의 기울기나 차량의 등판능력을 말할 때 각도가 아니라 언제나 기울기(탄젠트)를 쓴다. 고정된 X축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높이 Y가 바뀌는 비율인 것이다.
요즘은 자동차 제원표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보통 등판능력이 0.3xx가 나오는데, 그것도 탄젠트이기 때문에 실제 각도는 10몇 도 정도이다. 도로 표지판에서 볼 수 있는 5% 경사, 10% 경사 이런 것도 당연히 탄젠트 값임.

우리나라 K2 전차의 홍보 영상을 보니 무슨 60도 경사를 오른다고 자랑을 하던데.. 이건 오류이다.
45도보다도 높은 60도 경사를 오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사실은 탄젠트 0.6에 해당하는 거의 30도대의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무거운 쇳덩어리가 그 정도 경사를 오르려면.. 엔진 힘뿐만이 아니라 무한궤도를 이용한 접지력이 정말 살인적인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철도 차량은 일반 육상 차량보다 등판능력이 훨씬 뒤떨어지기 때문에 백분율도 아니고 천분율을 써서 '퍼밀' 단위로 표기한다. 각도로는 2도가 채 안 되는 30 퍼밀 정도의 경사도 철도 차량에게는 우리나라의 태백선 같은 산악 철도에서나 볼 수 있는 굉장한 급경사이다. 견인 중량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데다 쇠 바퀴와 쇠 선로는 마찰도 작으니 등판능력이 쥐약일 수밖에 없다.

육상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상승/하강률도 기울기로 표기된다. 1000m를 이동하는 동안 고도가 몇 m 바뀌는지가 기준이다. 우주왕복선은 엔진이 없이 글라이더 활강을 하기 때문에 일반 여객기보다 하강률이 훨씬 더 높다. 정확한 숫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또 찾기는 귀찮..;;

이렇게 업계에서 각도 대신 탄젠트가 즐겨 쓰이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는 고저차를 무시한 이동 거리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며, 또 경사각이 올라갈수록 차량에게 필요해지는 동력 같은 각종 물리량도 각도가 아니라 탄젠트에 비례해서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탄젠트가 현실적인 의미가 더 크고 유용하다는 뜻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11 08:29 2014/12/11 08:29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038

가장 긴 교통수단

1. 마일 트레인 (mile train)

철도와 관련하여 진정한 미국의 기상을 느껴 보고 싶다면 역시나 이런 걸 직접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길이가 1마일을 넘는다고 해서 마일트레인이라고 불린다만, 어디 1마일 뿐이겠는가? 2~3마일에 달하고 건널목에서 다 지나가는 데 수 분 이상이 걸리는 열차도 있다. 화차만으로 그야말로 만리장성을 쌓을 기세다.

2. 로드 트레인 (road train)

마일 트레인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땅 넓고 자원 많은 나라들은 도로 위의 트레일러도 열차처럼 운영한다. 일명 로드 트레인이라고 부르는데, 이 분야의 종주국은 미국이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인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포스가 정말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궤도도 없이 차량을 저렇게 길게 이어 놓으면 조향(회전)을 어째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우려된다. 그리고 감속을 하는 것도 말이다.

도로에서 가장 긴 차량(수십~100여 m)과 레일에서 가장 긴 차량(2~3km)을 한데 비교해 보니 느낌이 새롭다.

Posted by 사무엘

2014/02/24 08:29 2014/02/24 08:29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934

교통사고 분석

* 모닝와이드 -- 블랙박스로 본 세상 시리즈.
운전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주변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시청자의 블랙박스 제보 영상을 소개하는 프로이다.
가끔은 현직 변호사로부터 자문을 구해서 저런 상황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실 비율이 법적으로 얼마 정도 되는지 해설도 해 준다.
비록 TV 본방 형태는 아니지만, 본인은 안전운전 자가교육(?) 차원에서 유튜브로 저걸 종종 즐겨 본다. 사실, 저 프로는 나 말고도 운전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고 시청률도 높다고 한다.

핸들이나 브레이크를 급하게 조작하다 보면, 차가 평소에 내가 조작한 대로 나아가지 않고 정말로 뱅글뱅글 돌고 미끄러지면서 저렇게 패닉 상태에 빠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섭다. 차가 패닉이면 운전자도 “아,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완전 멘붕에 빠진다.
특히 주행 중에 타이어가 터지면 조향과 제동이 모두 맛이 가서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저 프로에서 방영되는 교통사고들은 다음과 같은 여러 패턴들 중 하나로 정리된다.
먼저, 좀 빨리 가려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이다.

1. 안쪽 차선이 빈 것만 보고는 무리하게 교차로 꼬리물기를 시도하다가, 바깥쪽 차선에서 질주하던 차와 박는 것.. 아슬아슬한 꼬리물기 정도가 아니라 빨간불로 바뀐 지 꽤 오래 됐는데도 대놓고 신호를 위반하는 경우도 있다. 딱 내가 교차로를 지나려 할 때 신호가 노랑-빨강으로 바뀌는 거 정말 짜증나며 그 심정 나도 누구보다도 이해한다. 하지만 반대편 방향 차량들도 자기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총알같이 튀어나가려고 매의 눈으로 대기 중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2. 직진 차선(혹은 일반차로)에 차들이 멈춰 선 것만 보고는 무단횡단하거나 U턴 시도하다가 좌회전 차선(혹은 버스전용 차로)으로 달리던 차와 부딪히는 것..

1과 2는 전형적인 병신인증 패턴이다. 단순 과속 차량뿐만 아니라 구급차 같은 긴급자동차, 그리고 사고 현장을 향해 경쟁자들을 제치고 필사적으로 제일 먼저 도착하려는 견인차(wrecker)도 무법 난폭운전 하다가 종종 사고를 내곤 한다.
그 밖에,

3. 답이 없는 졸음운전, 음주운전.;;;
차가 옆 차선을 밟으면서 들썩들썩 불안하게 움직이거나 갑자기 길을 벗어나 도랑으로 푹 빠져 버린다. 사고가 날 때까지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조차 없으니 더욱 끔찍하다.
한편 음주운전은 좀 강하게 처벌할 수 없나 싶다. 만취 운전자들은 보통 멘탈도 맛이 가 있어서 사고를 내고는 뺑소니를 치는 경우까지 있는데, 이 경우 처벌이 더욱 무거워진다.

4. 고속도로나 그에 준하는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급정거 및 급격한 차선 변경.
도로에 갑자기 동물이나 장애물이 튀어나와서 그거 급히 피하느라 차가 중심을 잃고 뒤집히고 도랑으로 빠진다. 아니면, 그 때문에 멈춰 섰다가 뒷차로부터 쾅 추돌을 당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옆에서 갑자기 쓱 들이대는 차를 피하려다 혼자 덤탱이를 쓰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어느 고문관 운전자가 진출로를 놓쳤다고 차를 길 한가운데서 세우거나 아예 후진· 역주행을 한 것 때문에 사고가 나기도 하고.

5. 무단횡단. 다른 것보다도,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보행자(특히 어린애)는... 전혀 예측 불가이고 한 마디로 답이 없다. 말 그대로 '갑툭튀'다.
아무리 운전자가 갑이고 보행자가 을이어서 어지간한 차-보행자 교통사고는 운전자에게 불리하게 법적 책임이 매겨진다지만..
우리나라는 운전자에게 너무 불리하고 가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든다.
차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고 옆의 보행자를 확인할 수 없는 곳에서는 자동차는 닥치고 옛날에 영국에서 적기 조례가 있던 시절처럼 슬금슬금 기어가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이유야 어쨌든 보행자를 친 운전자에게 거의 무조건 더 많은 과실이 매겨진다면, 반대로 운전자가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안 치려고 핸들/브레이크를 과격하게 꺾다가 더 처참한 사고를 당했을 경우, 이번엔 그 보행자에게 더 큰 과실을 규정하는 법규라도 있어야 서로 공평하지 않겠는가?

6. 끝으로, 저 동영상 시리즈를 보면서 본인이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유형은 이것이다.
바로, 정비 불량 상태인 대형 트럭/트레일러가 주행 중 갑자기 타이어가 터지거나 심지어 타이어가 빠져나와 굴러가는 것... 이거 정말 무시무시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형차의 타이어는 개당 무게만 이미 수십~100여 kg에 달하는데, 데굴데굴 구르느라 어마어마한 운동 에너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동글동글 엄청 잘 굴러간다는 점에서, 단순 적재 불량 화물이 떨어지는 것보다도 더욱 위험하다.

소개하는 동영상에서 15:35 이후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타이어가 위험하다> 편을 보기 바란다.
3~4차선을 달리던 화물차에서 타이어가 빠져나와서 굴러가더니 통통 튀면서 중앙분리대까지 넘어 반대편 승용차의 앞유리를 내리찍고, 이 때문에 2차 추돌사고까지 냈다. 이게 웬 날벼락이냐.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게다가 대형차와 얽힌 이런 교통사고는 이 휘소 박사(1935-1977)가 당한 교통사고와 거의 똑같은 패턴이다!
그래서 오래 살았으면 노벨 상까지 받았을 위대한 물리학자가 그렇게 허망하게 도로에서 목숨을 잃었다.
어떤 자료에서는 트레일러의 타이어가 날아와 차 운전석을 강타했다고 하고, 어떤 자료에서는 트럭 자체가 이 박사의 승용차와 정면충돌했다고 하니, 의외로 설이 일치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타이어로 인한 사망 사고라 해도 이는 실제로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 별첨 1: 잡설

- 사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비행기도 타이어의 회전과 관련된 고려 사항이 있다. 대형 여객기쯤 되면 어지간한 대형 트레일러보다 덩치가 더 크며, 랜딩기어의 바퀴도 더 많고 더 크고 더 무겁다. 비행기가 이륙하여 땅에서 뜬 뒤에도 10수 개가 넘는 바퀴들은 관성 때문에 시속 300km에 가까운 맹렬한 속도로 한동안 계속 돌게 된다.
랜딩기어를 접어서 기내로 집어넣은 뒤에도 무거운 바퀴들이 그렇게 계속 돌아가고 있으면 비행기의 안정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비행기가 뜬 뒤에는 랜딩기어에다 일부러 브레이크를 걸어서 바퀴의 회전을 중단시킨다고 한다.

- 블랙박스 영상들을 보니, 자동차의 앞부분이 파손되는 사고가 난 뒤에는 사고 차량의 앞유리에 갑자기 와이퍼가 동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다. 와이퍼 스위치나 센서에 자극이 가기라도 하는지, 왜 그렇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 아무리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에 인색하다고 해도, 자동차 손해 보험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재정이 그리 넉넉치 못하고 적자라고 한다. 들어오는 돈보다 사고 수습을 위해 지출하는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결국 교통사고가 잦으면 운전자가 차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출해야 하는 보험료 부담이 더 늘 수밖에 없고, 국가와 사회의 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
정말 우리 모두를 위해서 안전 운전 방어 운전을 해야겠다.

* 별첨 2: 대형차의 전방주시 태만 사고

지난 12월 14일엔 경부 고속도로 하행선 경주 휴게소 인근에서 끔찍한 교통사고가 났다.
보도블록을 가득 실은 25톤 트럭이 앞의 승용차를 들이받으면서 4중 추돌 사고로 번졌다.
접촉사고 때문에 정체 서행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트럭 운전자가 이를 발견을 못 한 것.

문제는 승용차는 그 25톤 트럭과 자기 앞의 25톤 탱크로리의 사이에 끼였다는 점이다.
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박살났다.
승용차에는 두 집안의 어머니와 각각의 자녀 2명, 총 6명이 타고 있었고.. 이들은 대형차 두 대에 끼여 으스러진 차 안에서 전부 즉사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처자식을 다 잃은 남편 두 명은 완전 멘붕에 빠졌을 것이고, 한편으로 가해 운전자도 업무상 중과실치사상죄로 인해 직장 짤리고 구속되고, 처자식들이 멘붕에 빠질 것이다. 최소한 세 개의 가정이 파탄에 이르게 됐다.
사고의 원인은 비록 음주운전은 아니지만 트럭 운전사가 라디오 조작하느라 전방주시를 소홀히 한 거라고 한다.

사실, 이 사고는 작년 5월에 발생했던 상주 여자 사이클 선수 교통사고 참사와 판박이다.
그때 역시 규모도 똑같은 25톤 트럭 운전사가 DMB를 보거나 조작하다가 전방의 선수단 SUV 차량과 사이클 선수들을 덮쳤다.
이 사고로 선수 세 명이 사망하고 다른 세 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종일 차만 굴리느라 무료하고 따분한 건 이해하지만..
다른 일에 신경 쓰기 전에 자기가 모는 차량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무겁고 운동 에너지가 큰 물건인지를 물리 법칙에 입각하여 절대로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3/12/19 08:37 2013/12/19 08:37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910

도로의 확장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한 신혼부부가 세월이 흘러 경제력이 생기고, 또 자녀들 때문에 더 넓은 행동반경이 필요해지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간다.
어떤 교회가 성도 수가 늘고 기존 건물이 너무 비좁아지면, 역시 더 큰 곳으로 예배당을 옮긴다.
건물을 예로 들었지만 길도 예외가 아니다. 처음에 설계했던 길의 크기에 비해 교통량이 지나치게 늘면 길을 넓히게 된다.

과거에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이 끝난 뒤, 박 정희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야당이 하도 반대를 해 대서 일단 4차선으로만 만들었지만, 이 도로는 얼마 못 가 너무 비좁아지는 때가 분명 온다. 그러니 언제든지 확장을 할 수 있게 대비해 두고, 도로의 양 옆 50m에는 건물 건축 허가를 내 주지 말아라.”

오늘날 박통의 예상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경부 고속도로가 40년 전의 4차선 형태 그대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은 영천-경주-울산과 추풍령 일대의 극소수 구간뿐이다.
비록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에 너무 저비용으로 단기간에 날림으로 만들어져서 나중에 땜질을 하는 데 비용이 더 들었다는 비판이 있긴 하다만, 박통 역시 정황상 원하던 규모로 도로를 애시당초 못 만든 고충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1. 길을 넓히는 작업은, 이상적인 경우라면 기존 도로의 양 옆에 차선이 하나씩 추가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중앙 분리대의 위치가 바뀌지 않으며, 기존 도로의 센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매우 좋다.
다만, 터널이나 교량은 유연한 확장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양 옆으로 같은 시설을 더 만드는 식으로 확장이 이뤄진다. 오래 된 터널이 세 개 존재하고 중앙의 2차선짜리 터널 내부에 중앙선이 있다면, 그건 100% 나중에 1차선짜리 터널이 추가로 건설된 거라고 보면 된다. (예: 서울 종로구의 사직 터널)

2. 그러나 기존 도로의 한쪽 옆에 동일한 규모의 새 도로가 건설되어 기존 도로는 상행, 새 도로는 전체가 하행이 되는 식으로 확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존 도로와 새 도로가 완전히 분리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서로 고저 차이가 있기도 하다.

서울의 대표적인 횡축 자동차 전용 도로인 강변북로(그리고 아마 올림픽 대로도)가 이런 식으로 확장된 좋은 예이다. 강변북로는 지금의 서쪽 방향이 원래 있던 도로였다. 편도 2차선의 4차선짜리 도로였는데 좀더 한강 쪽에 가까운 4차선짜리 고가 도로가 추가로 건설됨으로써 총 8차선이 되고, 새 도로는 동쪽 방향을 맡게 되었다.
터널 중에서는 남산 제1터널이 이런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추후에 옆에 터널을 하나 더 만든 뒤, 각각 상· 하행 역할 분담.

3.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그냥 옆에, 혹은 복층으로 독립적인 상· 하행 방면이 존재하는 새 도로가 추가되는 걸로 끝난다. 중부 고속도로(고속국도 35호선)가 좋은 예이다. 험준한 산 위에 놓인 높은 고가는 이거 뭐 건드릴 수가 없기 때문에 옆에 그냥 제2 중부 고속도로(고속국도 37호선)를 추가로 만드는 것 외엔 답이 없었다. 철도로 치면 방향별 복복선이 아닌 선로별 복복선처럼 되었다.

세 가지 경우 중 기존 선로나 차선의 상하행 용도가 바뀌기도 하는 방식은 2번이 유일하다. 그래서 길에 각종 신호 시스템이 정교하게 얽혀 있는 철도가 2번처럼 확장되기란 대단히 어렵다. 뭐, 철도는 복선에서 복복선으로 바뀌는 것 자체가 수도권 대도시가 아니면 대단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경부· 경인선은 1번과 같은 방식으로 복복선으로 확장되었지만, 이들이 합류하는 구로 이북의 서울 시내 구간은 3번 방식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는 아마 부지 문제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어떤 길이 처음엔 작았다가 나중에 확장되었다는 증거는 구조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자동차 전용 도로의 경우는 진출입로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며, 편도 4차선 도로라면 진출입로는 당연히 맨 오른쪽 끝인 4차로에 있다. 중앙선과 가장 가까운 곳이 1차로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강변북로의 동쪽 방면 도로는 맨 왼쪽 끝의 1차로에 진출입로가 수시로 존재한다. 마포 대교나 원효 대교의 진출입 램프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왜 그럴까?

그것은, 예전 도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진출입로의 영향 때문이다.
강변북로가 확장되기 전에는, 한강 다리의 북단에서 강변북로의 동쪽 방면으로 진입하려면, 지금은 서쪽 방면으로만 쓰는 옛 도로의 오른쪽 끝으로 진입로(램프)가 이어져야 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 길을 크게 고치지 않은 채로, 옆에 있는 강변북로 동쪽 방면으로 살짝 연결시키다 보니 새 도로에 처음 닿는 곳은 4차로가 아닌 중앙선 근처의 1차로가 된 것이다. 즉, 강변북로 동쪽으로 갈 때도 서쪽 방면 도로를 살~짝 찍은 뒤에 동쪽 방면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옛 도로의 오른쪽 끝인 2차로 → 새 도로의 왼쪽 끝인 1차로로 바뀜) 이해가 되시겠는가?

동서 방면 도로와 남북으로 가는 도로가 십자형으로 만나고 어느 방향에서든 모든 방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입체 교차로의 가장 교과서적인 형태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클로버형 나들목이다. 그러나 한강과 복잡한 시가지를 끼고 있고, 더구나 기존 시설물까지 존재하는 서울 시내의 자동차 전용 도로가 그런 깔끔한 모양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약간의 복잡한 시설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 도로에서 다른 도로로 갈아타는 입체 교차로 램프가 좀 복잡하고 삽질스럽게 생겼다 싶으면, 이것도 옛 도로가 확장된 흔적이기라도 한가 의심해 봐도 좋을 것이다. 입체 교차로는 신호 대기가 없어서 무척 좋긴 하지만, 자동차에 내비가 보급되기 전에는 이런 복잡한 도로를 어떻게 찾아갔을지 옛날에 운전하던 분들이 초행길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05 08:36 2012/02/05 08:36
,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37

« Previous : 1 : 2 : 3 : 4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676900
Today:
1468
Yesterday:
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