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대 주변은 경치가 몹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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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철원 평야에서 논농사를 지으려면 물 공급이 원활해야 하는데, 북한에서는 철원을 빼앗긴 뒤 물귀신 심보로 철원으로 가는 무슨 강의 물줄기를 끊어 버렸다고 한다. 저수지는 그 난관을 극복하게 위해 만들어진 거라 함. 물론 여기는 낚시꾼 내지 철새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 작가들도 많이 찾아온다.

워낙 날씨가 맑고 미세먼지도 없어서 북한 땅까지 어렴풋이 보였다. 다만, 이 지역엔 개성 공단이나 기정동 마을 같은 명물이 없는 관계로, 파주의 도라 전망대만치 북한 쪽에 딱히 볼거리는 별로 없다. 그냥 천혜의 자연만을 감상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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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터넷 사진으로만 보며 그리워하던 월정리 역 복원 건물을 드디어 직접 보게 되었다. 오오!! ㅠ.ㅠ 감사와 찬양이 절로 흘러나왔다.
난 역 건물을 팔로 꼬옥 끌어안은 채 감격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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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구내의 선로에는 두 가지 중요 유물이 있는데, 하나는 코레일 4001호 디젤 기관차이고, 다른 하나는 6·25 전쟁 중에 우리 아군의 폭격을 받고 부서진 어느 증기 기관차이다.
4001호 디젤 기관차는 굉장히 옛날 차량이긴 하지만, 월정리 역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왜 여기에 전시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거기 현장에서도 딱히 설명이 돼 있지 않다.

현재 임진각에 가 보면, 알다시피 경의선 장단 역에 있던 녹슨 증기 기관차가 녹을 최대한 벗겨 내는 가공을 거친 뒤 전시되어 있다. 그건 총격 때문에 표면이 벌집이 된 것만 빼면 형태가 비교적 온전한 편이며, 그때 그 기관차를 몰던 기관사가 누군지까지도 알려져 있다. 그 기관차는 '마터'라고 불리던 산악 화물용의 굉장한 대형 기관차였다.
그러나 월정리 역 인근에 있는 '경원선' 기관차는 총알이 아니라 포탄이라도 맞았는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 으스러져 있다. 이것도 마터 형 기관차인지는 역시 모르겠다.

예전에도 얘기를 한 적이 있나 모르겠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증기 기관차는 원래 검정색이다. 붉게 녹이 슨 모습 아니면 옛날의 흑백 사진만 봐 왔기 때문에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지금은 온통 녹이 슬어서 퍼렇지만, 원래는 그거야말로 갈색이다. 평양에 있는 갈색의 김씨 부자 동상과 비슷한 색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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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리 역의 바로 옆에는 철원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온갖 동물들을 박제해서 전시해 놓은 자그마한 박물관이 있어서 거기도 잠시 둘러봤다. 동물은 원래 화약 냄새를 잘 맡는 편이지만, 지뢰를 밟아서 다리를 잃은 동물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매우 유익한 구경을 한 뒤, 버스는 민통선 안에 있는 옛 철원 역 부지와 몇몇 옛 건물들 흔적을 지나갔다. 딱히 정차하지는 않고 가이드가 설명만 해 줬다. 일제 강점기 내지 북한 정권이 잠시 쓰던 건물 되시겠다.

그 뒤 버스는 처음에 입장할 때 거쳤던 민통선 초소와는 다른 초소에서 민통선 구역을 빠져나갔다. 관광버스가 아니고 민통선 패스를 갖고 있지도 않은 일반인이라면 이건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들어갔던 초소에다 신분증을 맡기기 때문에, 반드시 들어갔던 곳으로 다시 나가야 한다. 이 점을 내가 오해한 관계로 추후의 여행 과정에서 약간 착오가 있었다.

전체 관광은 3시간이 약간 넘게 걸렸다. 우리 일행은 고석정 관광 사업소로 돌아왔다. 시각은 1시 40분쯤. 이제 점심을 먹으러 '전선 휴게소'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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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휴게소! 휴게소라고 간판은 걸려 있지만, 이곳은 잠깐 거쳐 가는 장소가 아니라 엄연한 목적지, 아니 종점 역할을 하는 식당이나 마찬가지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민통선 안에 있으면서 민통선 밖 민간인들을 상대로도 영업을 하는 식당이다. 식사 메뉴는 메기 민물 매운탕이 유일하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인근 군부대에서는 회식을 여기서 할지도 모르겠다.

파주 임진각 쪽에서는 민통선 안에 통일촌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인근에 있는지라, 안보 관광 때 거기서 식사를 하는 스케줄도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전선 휴게소는 그런 식으로 연계가 돼 있지는 않다. 위치도 좀 외딴 곳이며 수십· 수백 명의 관광객을 한 번에 상대할 정도까지의 규모도 안 되고 말이다.

왔던 길로 돌아가서 국도 43호선을 탄 뒤, 철원 동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지방도 464호선을 갈아탔다. 그 길로 끝까지 가면 길이 더 없이 끊어진 것처럼 나오는 지점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민통선 초소이다. 통과 허가를 받으려면 최소한 당일 아침에 식당에 전화해서 인원 수를 말하고 식사 주문을 한 뒤, 초소에서는 “전선 휴게소 방문”이라고 얘기해야 한다.

대표자의 이름· 연락처를 적고 신분증을 맡기고, 동승자들의 이름과 생일 정도를 적어서 제출하면 초소에서는 임시 출입증과 차량 식별용 깃발을 준다. 출입증은 운전석 앞유리에다 두고 깃발은 옆유리에다 끼워서 펄럭이게 해야 한다.
참고로 식당은 민통선 초소에서도 거의 3km가 넘게 떨어져 있다. 그리고 철원 북쪽 외곽에서 들판이 아니라 수풀이 우거진 곳이 있다 치면 십중팔구 거긴 지뢰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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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텅 빈 내비 화면으로 민통선 진입을 인증하련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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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지간해서는 개인 블로그에다 맛집 광고나 음식 인증샷 같은 건 좀체 안 올리는데.. 여기 민물 매운탕은 정말 별미였다. 한탄강에서 주인장이 직접 잡아서 요리한다는 생선은 살이 입 안에서 살살 녹았으며 곁들어진 수제비와 채소는 담백했다. 국물은 딱 적당히 구수하고 얼큰했으며 너무 맵거나 짜지 않았다.
먼 길을 힘들게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같이 간 일행들도 이를 인정하면서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전선 휴게소 근처에는 진귀한 구경거리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금강산선 옛 교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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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경치도 몸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런 곳에 인파가 북적거리지도 않고 우리밖에 없으니 분위기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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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Posted by 사무엘

2014/05/11 19:34 2014/05/1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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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5월 4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본인은 교회 지인 가족의 초청으로 파주 임진각 일대에 안보 관광을 갔다 왔다.
그 경험에 힘입어 그로부터 거의 정확히 1년이 지난 2014년 5월 3일엔, 본인은 교회 친구들을 데리고 철원에 안보 관광을 직접 갔다 왔다.

본인은 철덕의 성지순례 코스로서 철원을 오래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군사분계선의 주변을 지도로 살펴보면, 판문점이 있는 서쪽이야 평지이지만 동쪽으로 갈수록 빽빽한 산악 지형이 이어진다. 그런데 수풀을 머리숱에다 비유했을 때 땜통 같은 지역이 강원도에 동서로 딱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평야'가 있는 철원이고 다른 하나는 분지처럼 생긴 양구이다. 북한 역시 이 두 지역을 염두에 두고 과거에 남침 땅굴을 팠었다(철원 쪽으로 #2를, 양구 쪽으로 #4를).

철원은 예로부터 천혜의 자연이 살아 있는 곡창 지대요 한반도 중부 지방의 교통의 요지이기도 해서 전략적 가치가 높았다. 6·25 휴전 이후에 서울이 북한과 더욱 가까워진 건 좀 ㅎㄷㄷ한 일이지만, 그래도 치열한 전투 끝에 철원을 수복해 낸 것은 굉장한 쾌거였고 김 일성도 이를 애석해했을 정도라고 한다. 여긴 나름 38선 이북이기 때문에 분단 직후 6·25 전쟁 전까지는 북한에 속해 있었다.

교통의 요지라는 건 여기에 철도가 있기도 했다는 뜻이다. 경원선이 지났고 금강산 관광 철도도 있었다. 우와..!
그래서 본인은 철원에 있는 다른 자연 관광지나 유적지들은 제쳐 두고 오로지 안보 그리고 철도와 관련된 곳을 골라서 답사하려고 마음먹었다. 로드뷰, 항공 사진 등을 참고하면서 모든 스케줄을 짠 뒤, 드디어 답사를 떠났다.
동반자가 없으면 나 혼자라도 차 끌고 가려고 생각했으나, 다행히 교회 친구를 세 명이나 꾀어(?) 내는 데 성공했다. “저런 델 도대체 왜 가 ㄲㄲㄲ” 같은 놀림과 비아냥은 물론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자매까지 한 명 불러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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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반, 떠나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토요일 이른 아침엔 도로가 아주 한산하고 소통이 원활했다. 날씨도 아주 쾌청하고 좋았다.
동부 간선 도로를 탄 뒤 의정부에서부터 국도 43호선만 죽어라고 타고 올라가면서 드디어 철원에 도착했다. 북쪽으로 갈수록 군부대가 수시로 눈에 띄기 시작했다.
편도로 약 85km를 달렸다. 고속도로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가는 데 2시간이 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그래도 1시간 반 만에 잘 갔다.

처음 간 곳은 고석정 관광 사업소였다.
고석정 계곡은 예정에는 없이 시간이 남아서 들른 것일 뿐이었는데.. 경치가 끝내주게 아름다웠다. 하루 종일 날씨도 굉장히 좋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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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예매를 해 둔 패키지 안보 관광을 떠났다.
평일에는 허가를 받은 뒤에 민통선 안으로 자가용을 몰고 들어갈 수도 있는 반면, 인파가 몰리는 주말에는 셔틀버스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탄 버스는 어린 학생들까지 포함해 44개 좌석이 꽉 찬 만석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파주· 임진각· 도라산 역 일대는 외국인들도 많고 민통선 내부까지 완전 바글바글했던 반면, 여기는 우리 관광객 말고는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으며 조용하고 한산한 편이었다. 그 이유로는 여기는 파주보다 서울에서 더 멀고 교통이 불편하며, 또 황금연휴여서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놀러 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임진각으로 가는 길은 경의선 철도뿐만 아니라 자동차 도로도 신호 대기가 없는 자유로가 시원스럽게 뚫려 있다. 그러나 철원은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다.

버스는 지방도 464호선의 모 구간에서 좌회전하여 민간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민통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초소를 지날 때마다 군인이 수시로 탑승하여 탑승 인원 숫자가 맞는지 검문을 했다. 그리고 버스는 토교 저수지보다도 더 북쪽으로 남방 한계선으로 추정되는 철조망을 따라 쭉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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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2 땅굴의 입구에 도착했다.
제1 땅굴이 발견된 지 반 년이 채 되기 전에, 거기서(연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더 깊고 더 큼직한 땅굴이 발견되었으니 국가적으로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제3 땅굴은 열차로 드나드는 진출입로가 뚫려 있으며 제4는 터널 안까지 열차로 다닐 수 있는 반면, 제2는 땅굴 출입과 관련된 그 어떤 동력 시설도 없다. 그리고 내부의 길이도 제3 땅굴보다 더 길다. 그러니 오갈 때 발품을 좀 팔아야 한다.
땅굴 내부는 사진 촬영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땅굴이라는 건 땅 속에 뭔가 빈 공간이 있다는 걸 감지하는 것이 별개이며, 그걸 찾아서 저지하려고 실제로 파 내려가는 게 또 별개이다. 우리나라에서 뚫은 출입로 땅굴에 들어가면, 북쪽으로도 길이 있고 남쪽으로도 길이 있다. 북쪽은 북한이 파 내려온 from 방향이고, 남쪽은 걔네들이 의도한 목적지 to 방향이다. 이 땅굴의 경우, 남쪽은 더 진행할 수 없게 길이 막혀 있고, 북쪽으로 약 500m 정도, 남방 한계선에 2~300m 앞까지 접근한 곳까지가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사실 그건 제3 땅굴도 마찬가지다.

이 땅굴의 시점은 도대체 북한 어디에 있는 걸까? 쟤네들은 지하에 무슨 짓을 해 놨는지가 몹시 궁금해진다.
한반도가 통일되어서 땅굴도 남쪽 종점과 북쪽 종점이 모두 한데 뚫린 채로 역사 교육 현장으로 개방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통일이란 연방제니 나발이니 하는 말장난이 아니라, 김씨 부자 동상을 무너뜨리고 주체사상을 완전히 지워 버리는 제대로 된 통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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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땅굴을 탐사하고 저지하는 과정에서 이런 희생자가 있었다. 저기 나오는 계급은 아마 최소한 2계급 특진은 받은 것일 테고, 실제로 작업을 한 사람들은 다 병사 신분이었을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제1 땅굴은 발견 직후 지하에 있던 북한군 인부와의 총격전으로 인한 전사자가 있었고, 제2 땅굴 탐사 중에 발생한 전사자는 내부에 있던 지뢰를 밟고 산화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제3 땅굴을 탐사하던 때는 딱히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으며, 제4 땅굴을 탐사할 때는 사람 대신 군견이 희생되었다. 땅굴이 발견되고 위험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어 안보 관광지로 개방되는 것조차도 다 이런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 덕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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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제2 땅굴을 발견하는 데에도 귀순자의 힌트가 기여했었구나.
땅굴이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들은 제3 땅굴 소개 자료에도 거의 똑같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쉽게 말해 북한은 NATM 공법으로 굴을 팠고, 우리나라가 그 땅굴을 관통하기 위해 따로 굴을 판 건 실드 공법과 비슷하다는 얘기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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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이면 땅굴이 발견되기 한참 전이었고 서울 근처와 강원도 일대에 온통 무장공비들이 출몰하던 무시무시한 시절이다. 그런데 북한이 그때부터 벌써 땅굴을 팔 생각을 하고 그 땅굴의 남한 쪽 출구를 어디쯤에다 낼지를 생각했다니 이건 뭐 흠..?
그나저나 저 사살된 간첩의 임무가 그런 것이었다는 건 어떻게 알아냈는지가 궁금하다.

땅굴 구경을 마친 뒤, 남방 한계선과 DMZ가 코앞인 평화 전망대로 갔다. 동송 저수지 근처이니, 구글 지도에서 위치가 어디인지는 이제 알겠다. (그나저나 철원에는 다른 곳에 승리 전망대도 있다고 그런다.)

(to be continued)

Posted by 사무엘

2014/05/09 08:21 2014/05/0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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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 발을 코에 대고

'봉은사 땅밟기'....는 아니고 '남극점 땅밟기'를 세계 최초로 성공한 사람은 알다시피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 일행이다. 이건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인 1911년의 일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예전에 이 사람에 대해 한번 다룬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인 1994년엔 산악인 허 영호 대장이 이끄는 팀이 한국인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썰매를 안 타고 끌면서, 무려 1000km가 넘는 거리--'리'도 아니고 '킬로미터'!--를 도보만으로 이동하여 남극점을 정복한 것은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 이어 넷째였다고 한다. 아문센 팀은 알다시피 개가 끄는 썰매를 탄 것이기 때문에 제끼고.

물론 정확하게 같은 거리를 이동한 건 아니겠지만, 아문센은 55일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나라 팀은 44일 만에 갔다. 그리고 아문센/스콧 시절에는 탐사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미리 길을 개척하고 보급 물자 기지도 일정 간격으로 준비해 놔야 했지만, 요즘은 GPS가 발달하고 다른 장비와 물자도 좋아진 덕분인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요컨대 100년 전과는 달리, (1) 중간 보급 없이 (2) 순수 도보만으로 남극점까지 간 것이다.

그러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날짜다. 모든 탐험대들이 남극점에 도달하는 날짜는 한 치의 예외 없이 12월~1월로 맞춰져 있다. 그때가 남반구에서는 한여름이기 때문이다. 계절상으로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탐험대는 현장에서 영하 30도를 밑도는 극심한 추위 때문에 고생한다. 하물며 겨울에는 남극 중심부에 절대로 못 들어간다.

다음 글을 읽어 보자.
1994년 당시 기록은 아니고, 2004년에 남극점을 정복한 박 영석 대장에 대한 보도 자료이다. 하필 공교롭게도 남극 연구소에서 전 재규 대원이 순직(2003년 12월)한 그 기간에 탐험 중이었구나.

남극점으로 가는 동안 이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대원들끼리 대화 내용이 줄곧 “아.. 난 막걸리 한 사발과 홍어회나 좀 먹고 싶다 / 난 딸기우유 3리터 plz”였댄다.
그리고 수능 출제 위원의 감금 기간보다도 더 긴 6주 남짓한 기간 동안... 저 사람들은 세수, 빨래를 전혀 못 하고 머리도 한 번도 못 감았다고. 으악~~

그 상태로 밤엔 3인용 텐트 하나에 5명의 사람이 뽁짝뽁짝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공간을 아끼려고 “서로 엇갈려 머리를 두고” 잤다고 한다.
“서로 발을 코에 대고 얼마나 괴로웠을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북한 정치범 수용소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잤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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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상헌 북한 인권 정보 센터 이사장이 탈북자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서 잘 알려진 바로 이 그림.)

탐사 대원 5명 전체의 한 끼 식량의 무게가 800g에 불과했다고 한다. 5를 나누고 3을 곱하면 그래도 500g 정도는 되겠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호모 사피엔스의 신체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오늘날 무보급 남극 탐사가 가능해진 건 아무래도 현대 과학 기술이 접목된 고열량 보존 식품이 개발된 덕분일 것이다. 비록, 이건 일상적인 음식에 비해 맛은 보장을 못 하겠지만 말이다.

한편, 북한의 저 생지옥에서는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하는 죄수들에게 1인당 하루 식량 배급이 강냉이 200~300g 남짓이라고 그런다. 그러니 배급받는 것만 먹었다간 영양실조 걸리고 굶어 죽으니, 쥐도 잡아먹고 쇠똥에 파묻힌 곡식 알갱이까지 끄집어 먹는 거다. 그저 묵념.

극지 탐험 관련 글을 읽으면서도 북한 인권 생각이 날 정도로 내가 우익 성향이 강해지긴 했다.
저 사람들은 그래도 미지의 지대를 개척한다는 자부심으로 고생을 견디며, 무사히 귀환하고 나면 심신이 달련되고 명예라도 따른다. 하지만 이북 동네는 도대체 뭐냐.. 가슴아프다.

2. 비둘기 자세

'비둘기 자세'라고 하면 본인은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3기 4화 요가 교실 편의 병맛 대사를 바로 떠올리면서 낄낄대곤 했다.
“비둘기의 포즈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너 임마 그거 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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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러분 이거 아시는가?

‘비둘기 자세’란 게 있다. 남북한의 비둘기 생김새가 정녕 다르지 않을진대, 그 자세의 의미는 남북이 천양지차다.

남쪽 것은 요가의 한 동작이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등 뒤로 팔을 넘겨 뒤쪽 발을 잡아 끌어올린다. 앞가슴을 쭉 내민 비둘기 모습과 닮았대서 붙은 이름이다. 팔과 다리 선을 가꿔주고 옆구리 군살을 빼는 효과가 있단다. 늘씬한 연예인이 이 자세를 취한 사진이 퍼져 너도나도 따라 하는 동작이 됐다.

북녘 것은 고문의 한 방법이다. 양손을 등 뒤로 돌려 벽의 고리에 묶는다. 고리 높이가 바닥에서 60㎝ 정도밖에 안 돼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다. 먹이를 쪼며 걷는 비둘기 모습이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배 속에 든 걸 모두 토해낼 정도로 고통스럽다. 실제로 북한인권을 다룬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이 자세로 촬영했다가 몸에 마비가 왔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남북의 거리가 이만큼 멀다. 맞붙어 한반도고, 한 뿌리 한 겨렌데 이웃나라보다 더 멀고 더 새 뜬다. 한쪽은 못해서 안달이고 다른 쪽은 할까 봐 섬뜩한 비둘기 자세처럼, 말 쓰임새가 다른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 남쪽이 청년실업과 업무스트레스, 노후불안에 떨 때, 북쪽은 굶주림과 질병, 처형의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목숨과 바꾸지 않고는, 최소한 목숨을 걸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원초적 공포다. (중앙일보 이 훈범 국제부장)


난 비둘기의 포즈 북한 버전을, 역시 탈북자들이 그린 정치범 수용소 그림을 통해 본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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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런 자세로 있는다고 해서 어떻게 구토까지 할 정도로 고통을 당하는지 그 역학· 생리학적 원리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굳이 상상하거나 체험하고 싶지도 않고.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토하는 장면 묘사는 절대로 안 빠진다!

<신이 보낸 사람>의 주연 배우 김 인권 씨는 저걸 체험해 봤더니 정말 작-_-살나게 괴롭고 사지 마비 증세가 오더라고 증언한 바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19 08:25 2014/03/1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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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6월 30일, 5공 시절에 KBS 텔레비전에서는 6·25가 발발한 지 33주년과 휴전 30주년을 기념하여 소박한(?) 이벤트를 하나 편성했다.
남북 이산가족까지는 못 하더라도 같은 대한민국 안에서라도(domestic) 원치 않게 헤어지고 연락이 끊어진 이산가족을 매스컴의 힘을 동원해서 찾아 보자는 1시간 반 남짓한 길이의 생방송 이벤트 프로그램이었다.

그랬는데..
이 프로가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영된 이후,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상상도 못 한 이변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막혀 있던 봇물이 터졌다.

KBS 사무국은 전화통이 불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일 밤과 새벽까지, 출연 신청도 없이 수천 명의 이산가족이 여의도로 찾아왔으며, 1회로 기획되었던 생방송은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무려 138일 동안 연달아 방영되는 기염을 토했다.
쉽게 말해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고(그 해 9월)와 아웅산 폭탄 테러(그 해 10월)가 벌어진 동안에도 저 프로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여기에라도 내 모습을 내보내서 어떻게든 가족을 찾으려고 여의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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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은 외신으로도 특종을 타고 보도됐으며 기네스북에 당당히 등재되었다.
TV에서 사람을 공개적으로 찾는 건 십중팔구 범죄자 수배밖에 없을 텐데 TV가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을 찾는 역할을 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내가 태어난 해에 있었던 옛날 일이다. 그러니 난 당연히 직접 체험한 적은 없고,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편린 정도만 머릿속에 지니고 있다.
인터넷, 휴대전화, SNS 없고 전화 보급률도 더딘데 마침 5공 시절에 컬러 텔레비전은 딱 집집마다 보급되던 시절이었으니 기술적으로 시기가 적절했다.

어느 중년의 남매가 서로 다른 지방에서 전화로 연결이 됐다. 혈육 인증을 위해 이름과 가족, 가족사, 신체 특징 같은 걸 물었는데 그게 일치하자..
그냥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두 사람 모두 자지러지게 펑펑 울음을 터뜨린 장면이 내 기억에 남는다. 이건 그 어떤 연기로도 제대로 재연할 수 없을 것이다. 방청객도, 아나운서도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이 스튜디오에서 만나게 됐을 때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성경을 아는 분이라면 이쯤에서 요셉 이야기를 떠올려도 좋을 것 같다. (창 43:30, 45:1-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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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도 울어 버린 인간 드라마, 1983년 KBS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그때 TV 출연 신청이 총 10만 건 정도가 들어와서 그 중 절반인 5만 건 정도가 실제 접수되어 방송을 탔으며, 거기서 또 20% 정도 되는 1만여 가족이 상봉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혈육을 끝끝내 찾지 못한 이산가족도 굉장히 많았다는 뜻이다. 6·25가 가져온 분단의 비극은 이렇게 처참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 프로가 방영된 때로부터 또 무려 30년이 지나 있다.
참고로 국내 이산가족이 아니라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행사는 대한 적십자사가 민간 차원에서 1971년에 실태를 조사하고 1985년에 한번 추진했던 것 이후로는, 김 대중· 노 무현 정권이 돼서야 성사되었다. 규모는 아무래도 저 국내 이산가족 상봉에 비할 바가 못 되며, 상봉 후 재결합은 당연히 안 되고 이 사람들은 잠깐 만났다가 도로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만 했다. =_=;;.

그 당시 북한에서는 남한 사람과 만나는 이산가족들을 행사 몇 달 전부터 평양으로 불러서 밥 잘 먹이고 잘 재워서 굶주린 티, 험하게 산 티를 최대한 감추고 내보냈다. 또한 남한 사람과 만났을 때는 “우리는 수령님, 장군님의 은혜로 잘 지내고 있다”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하라고 세뇌 교육도 당연히 시켰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런데 님 달러 좀”이라고 뒷돈까지 삥뜯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런 궁색한 이벤트도 이산가족의 입장에서는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은지 모르겠다만, 겨우 저런 식의 상봉은 바람직한 통일을 정말로 염두에 둔 조치라고는 볼 수 없다. 남과 북이 정말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개방과 평화 통일을 할 의향이 있다면 상식적으로 그 전에 서신 왕래와 관광 여행부터라도 성사시켜야 하지 않겠나?

구원받은 지체들은 이 세상에서 헤어지더라도 다시 부활하고 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복된 소망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13 08:26 2014/03/1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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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이 보낸 사람>

난 아시다시피 개인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철도에게 완전히 점령당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연예, 스포츠, 드라마, 영화 같은 건 거의 관심 없으며 안 보고 지낸다.
그 흥행 대박이라는 겨울왕국조차도 안 봤다. 난 솔직히 월트 디즈니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고 여유가 아주 많으면 저것도 보기 싶긴 한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엔 꼭 봐야 하는 영화를 발견했다. 그래서 불금 시간을 쪼개서 야밤에 혼자 차까지 몰고 영화관 갔다.
내가 본 영화는 바로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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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영화를 깔끔한 상태에서 편견 없이 직접 감상하고 싶으신 분은 이 글을 읽지 말 것.

- 탈북자로부터 코치를 받았는지, "-했지비", "-하라우" 글로만 봤던 이런 북한 사투리를 실제로 들을 수 있다.
- 김 일성· 김 정일 사진이 벽에 걸린 집 책상 위에 놓인 성경책... 정말 살떨린다.
- 북한 주민의 실상이라 하면 마약도 빠질 수가 없을 텐데, 역시 그것까지 놓치지 않고 화면에 담았다. 훌륭하다.

1. '카타콤'이 고대 로마 제국 시절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지금 바로 이북 윗동네에 있다. 물론, 나처럼 이미 북한 사정에 대해서 어지간한 거 다 찾아보고 이미 아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말이다.
요즘 영화에서 크리스천은 한결같이 광신자, 위선자, 나약한 찌질이로만 묘사되고 그나마 좋게 나오는 건 죄다 천주교 쪽뿐인데, 미화는 바라지도 않고 최소한 중립적으로 묘사된 영화가 있어서 보기에 심리적으로 편했다.

2. 영화에서 지하 교회 신도들이 "나 예수쟁이요"라고 자기 명을 재촉하면서 티내는 방법은 물고기나 십자가 형상 같은 게 아니라 오로지 찬송가 흥얼거림과 성구 암송이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가 얼마나 큰일을 냈는지가 영화 중에 나온다.

남조선에서 자유롭게 교회 다니고 계신 분들은, 앞으로 주일 예배 때 기쁜 마음으로 자기 최고의 성량과 음감을 동원해서 예배당이 떠나갈 정도로 씩씩하게 회중 찬송에 동참하시기 바란다. 이건 설교 만만찮게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절차이며, 저쪽 사람들은 그것조차도 목숨 걸고 하고 있다.

3. (스포일러) 극중에 기적은 없었다.
주인공은 너무 확신에 차서 내 손으로 우리 주민들을 다 탈출시키겠다고 그랬지만.. 때마침 김 정일이 죽으면서 국경의 경계가 매우 강화되고, 뇌물이 안 통하는 냉혈한 군 간부가 부임한다. 주민들의 신뢰와 팀웍도 와해되고 지하교회는 일망타진되어 주민들은 하나씩 잡혀 가고 죽는다. 그리고 주인공도 총살당하고, 마지막에 살아남는 교회 멤버는 어느 꼬마 소녀 한 명뿐이다.

4. 사실, 주인공은 분명 지하 교회에 소속돼 있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믿긴 하지만, 그래도 아내만치 독실하지는 않고 마음 상태가 종종 동요도 하는 일종의 입체적인 인물이다. 주연 배우인 김 인권 씨가 대본을 보고는 “난 저런 주인공을 연기하기엔 너무 신앙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곤 하지만, 주인공이 그렇게까지 초인적인 인물은 아니다.

마약도 하고, 또 모든 게 끝장 난 결말부에서는 “아.. 혹시나 했지만 역시 신은 우리를 돌봐주지 않았다. / 아예 믿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딱 한 번만 시치미 떼고 예수 부인하면 살 수도 있었는데 왜 내 아내는 저런 고지식한 길을 고집했을까?” 같은 인간적인 심정의 말도 한다.
기독교 신앙보다는 그냥 아내의 죽음에 감명을 받아서 마을 사람들을 전부 어떻게든 탈북시켜야겠다는 인도주의적인 신념이 더 부각되어 그려진다.

5. 설정상 주인공의 출신과 배경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혼자 저렇게 트럭을 몰래 얻어타고 평양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건 현실에서는 그리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평양 교회에 도움을 받으러 원정 가 봤는데, 거기는 알다시피 북한 정권의 하수인인 어용교회일 뿐임. “우리나라에 종교 박해 같은 건 없다” 대외적으로 이 개드립을 치던 아저씨는 잠시 후 주인공에게 분노의 린치를 당해서 피떡이 된다. 저 사람은 주인공과 원래 아는 사이였는데 뭔 일을 겪으면서 현실과 타협하고 변절한 듯.

6. 교회 동지 중 어떤 남자 하나는 도강하다가 들켜서 군인으로부터 무참한 구타와 성희롱을 당하는데.. 그 뒤 완전히 멘붕하여 미치광이로 변한다. 몰래 숨겨 둔 예수 얼굴 그림에다 눈 모양만 뚫어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집 지붕 위에 올라가서 남들 보는 앞에서 헬렐레 하다가 갑자기 분신 자살한다.
이것은 극적 효과를 내기 위해 탈북자의 증언과도 관계 없이 집어넣은 창작이고 허구인 듯하다.

7.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중엔 북한에서 찍혔다는 각종 탈북자 심문· 구타 동영상과 북한 지하 교회 녹취 동영상, 육성 녹음이 흘러나온다. 이것도 지금 내가 목숨이 붙어 있는지 내 목을 손으로 만져보게 될 정도로 소름 끼치고 엄청나게 섬뜩하다.

참고용 동영상이다. 2분 40초대 이후부터..
“아버지여! 교회가 다 무너졌습니다. 살얼음 같은 이 땅에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순교가 발생했는지요! ... 복원하시고 역사하시는 주의 보혜사를 보내 주옵소서” (문장 보정)

북한의 지하 교회는 가장 연약하면서도, 북한의 저 미친 체제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악질 반동분자들의 모임이다! (아래 그림 중 하나는 조선 혁명 박물관과 만수대 언덕 근처에 있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김씨 부자 동상이고, 다른 하나는 금수산 기념 궁전 내부의 은은한 배경으로 새겨져 있는 부자 석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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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쓴소리) 끝으로, 내가 이런 자리에서 또 험악한 말은 가능한 한 하고 싶지 않다만...
여기에까지 신천지 갖다붙이는 애들은 도대체 정체가 뭔지 궁금하다. 지난번 대선 시즌 때 새누리당이 신천지하고 커넥션 있다고 괴담 퍼뜨린 놈들하고 혹시 같은 배후 아닌가?

그래, 만에 하나 신천지와 커넥션이 있다고 치자. 그래도 신천지가 과연 종북 빨갱이보다 더 사악하고 해로운 인간들일까 싶다. 신천지는 교회에나 해를 끼치지만 쟤들은 아예 나라 전체를 무너뜨리고 좀먹는 놈들인데. ㅡ,.ㅡ;;

Posted by 사무엘

2014/02/21 08:32 2014/02/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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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반공 교육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로 기적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저 이북 동네는 오로지 자기 권력 유지만을 위해 다른 공산주의 종주국조차 가지 않은 최악의 길만을 골라서 가면서 고립과 폐쇄, 공멸의 길을 갔다. 그리고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이 품고 있는 대남적화 야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꿈도 희망도 없고 심지어 종교조차 없는 주민들이 절망 끝에 상당수가 전국적인 수준으로 마약에까지 빠진 것은 흔히 접하는 기아· 영양실조나 정치범 수용소 같은 것과는 레베루가 다른 문제다. 안 그래도 0으로 수렴해 가던 남북간의 화합· 일치 가능성을 완전한 0으로 확인사살 시키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원래는 마약이 위조지폐, 불법 무기와 더불어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였는데, 그게 국제간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수출이 불가능해지자 북한 내부에서 나돌기 시작하면서 나라를 헬게이트로 만든 것이다.

정말 국제적으로도 나쁜짓은 가지가지 골라서 하는 양아치들이다. 중국이 탈북자를 강제 북송시키는 것은 인륜적으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걔들이 마약 유통을 단속하는 건 지극히 정당한 행정 조치이지 않은가.
어지간해서는 정치적인 발언은 자제하려 하나, 소위 친북 정권의 햇볕 정책이라는 건 저런 북한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도 전혀 해결한 게 없으면서 그저 북한에게 나쁜짓 할 자금만 잔뜩 그것도 심각하게 많은 액수로 준 걸로 보인다. 그러니 내가 도무지 고운 시선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뭐 아무튼.

현실이 엄연히 그런 이상, 우리는 알량한 민족 드립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반공 정신이 그때나 지금이나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아무리 밉고 마음에 안 들어도, 김씨 부자가 그들보다 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반공 교육이라 하면 뭐 어떤 게 떠오르는가? 내 경험상 내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반공 교육은

  • 그저 북한 공산당의 잔인한 만행만 부각시키면서 증오심, 적개심을 키우는 것이 아니요,
  • 경제 이론을 들먹이면서 공산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유치한 숫자놀음이 아니요,
  • 우리나라 정치· 법조계에 간첩· 종부기들이 이미 싹 다 깔려서 나라가 거덜나기 직전이라고 호소하는 것도 아니요,
  • 심지어는 종교적으로 접근해서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마귀 적그리스도 666 식으로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아 물론... 김 정은의 목을 따라고 초특급 인간흉기 북파공작원이라도 양성한다면야 그 정도 요원에겐 정신교육 차원에서 '원쑤'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개심 세뇌를 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 게 아니고 일반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역시나 우리나라의 수립과 발전 과정에 대한 “감사와 자부심”, 그리고 위의 권위에 대한 “신뢰”가 아닌가 싶다.
한 마디로 말해 남에 대한 디버프가 아니라, 나에 대한 버프가 필요하다! 이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돌려 놓기란 대단히 어렵다.

마치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으로 어린 학생에게 성경적인 성 관념을 심어 줄 수 없듯, 저런 사상도.. 형식적이고 유치한 “때려잡자 공산당” 식의 반공 교육만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 나라에 아무 애착도 없고, 이상한 음모론이나 믿는 사람들에게 백 날 간첩· 종부기 드립을 쳐 봐야 씨알도 먹히겠나?

방향이 잡히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왜 우리나라가 이상적인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가 이해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치라도 온 게 정말 기적에 가까우며 그 비결이 무엇인지가 이해된다.
큰 방향이 잡히고 나서는 더 세부적인 팩트, 데이터 같은 건 그저 논쟁용으로나 필요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무슨 일베니, 뉴라이트니 친일 나부랭이 같은 특정 계층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상한 딱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선량하고 건전한 애국 사상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버프'의 많은 부분을 우리나라 철도를 통해서 받았다~!!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3/12/22 08:20 2013/12/2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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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판문점과 관련하여 안보 지리 역사 이야기를 늘어놓겠다.
다음은 판문점 주변의 구글어스 사진이다. 이 글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므로 별도의 창에다 열어 놓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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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은 참 대단하긴 하다. 이런 봉인된 장소도 항공 사진을 다 볼 수 있고, 사실 올해(2013) 초부터는 구글어스에 북한, 특히 평양의 세부 지리 정보까지 다 뜨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공동 경비 구역(JSA)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먼 옛날, 북한이 일으킨 6·25 전쟁으로 인해서 우리나라와 북한은 서로 치유가 거의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고, 분단은 완전히 굳어졌으며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은 극도로 커졌다.

그런데 이렇게 영토가 양분된 상태로는 서로 왕래가 전혀 불가능하다 보니 당장 휴전 협정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내부이긴 하나 정치적으로 남한 관할도 북한 관할도 아니고 UN이라는 제3자가 중립적으로 관할하는 지역이 필요해졌으며, 판문점이라는 주막이 있던 지역 일대가 그런 구역으로 설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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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주변이 이렇게 허허벌판이었지만 훗날 건물 주변에 전부 풀과 나무가 조성된 듯하다. 지금의 구글어스 항공 사진과 몹시 비교된다.

자, 그럼 이제부터 구글어스 사진에서 우측 하단을 주목하시기 바란다.
가장 좁은 의미에서 판문점은 아무래도 흰색+파란색 지붕 형태로 도열해 있는 아담한 회의장 건물 7개이다. 얘들은 남한과 북한 영토에 반반씩 걸쳐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판문점의 주변 시설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로부터 남한 쪽에 있는 커다란 건물은 '자유의 집'이라고 불리고, 그로부터 남쪽에 있는 연보라색 지붕의 건물은 '평화의 집'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프레스센터이다.

더 남쪽에 있는 칙칙한 건물은 군용차 형상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 병영이다. 판문점 주변엔 온통 병사가 경비하는 초소가 늘어서 있다.
그리고 이렇게 건물들이 있는 곳의 오른쪽을 보면 도로가 아니면서 수풀도 없는 공터가 있는데, 거기는 헬리콥터 이착륙장이다. (본인이 분홍색 글씨로 1번이라고 표시한 곳) 저 옛날 사진에서 헬리콥터가 있는 곳과 동일한 지점일 것이다.

다음으로, 판문점에서 북한 쪽을 살펴보겠다.
회의장 바로 이북에 자리잡은 회색 지붕의 직사각형 건물은 '판문각'이다. 남한의 '자유의 집'에 대응하는 건물이라 하겠다. 그리고 좀 더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밝은 옥색 건물은 '통일각'이다. 나머지 건물들은 역시 병영이나 기자 대기실이다.

공동 경비 구역은 군사 분계선 이남과 이북에 있는 남한과 북한의 비무장 지대를 두루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안에서는 말 그대로 남한 및 UN군 초소와 북한군 초소도 뒤섞여 있다.
남양주 종합 촬영소에는 판문점 세트가 있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거기 항공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재연해 놓은 시설은 회의장과 판문각 정도이다.

영화 <튜브>가 김포 공항 청사 하나를 빌려서 총격전을 촬영했다고 하지만, 판문점 주변은 영화 촬영용으로 도저히 점거할 수 없는 곳이다. 영화는 아무래도 세트장에서 찍는 게 불가피하다.
하지만 진짜 판문점과 세트 판문점은 판문각 주변의 경치가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 사진을 눈썰미있게 보고 나면 주변 사진을 보고 여기가 진짜인지 세트인지를 분간하는 게 가능하다.

여기는 민통선 수준이 아니라 군사 분계선에 바싹 근접한 몹시 중요하고 위험한 곳인 관계로, 국내에서는 VIP 급의 높으신 분이 아니면 개인 방문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30인 이상 45인 이하의 단체 견학만이 가능하며 방문 예정일보다 꽤 오래 전에 신청을 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갔다 온 사람들의 블로그 후기를 보면, 내부 사진 촬영은 의외로 자유로은 듯.
엄연한 우리나라 영토인데 UN 사령부의 허락을 받으면서 아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서 드나들어야 하는 게 비극임은 틀림없다.

이제 판문점의 서쪽으로 가 보자.
두 길이 합류하는 광장이 있고 광장 중앙에는 자그마한 풀밭이 보일 것이다.
더 서쪽으로는 '사천'이라는 자그마한 개천 위에 놓인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북한이다. (분홍색 글씨 4번)
이 다리는 국토 분단 전부터 있었지만 훗날 남한과 북한 국경을 가르는 다리가 되고 말았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어로도 말 그대로 bridge of no return이다.

예전에는 이 다리가 북한 사람들이 판문점으로 오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 다리를 통해 6·25 전쟁 말에 포로 송환이 이뤄졌고, 마지막으로는 1968년 푸에블로 호 선원들이 석방될 때 이 다리를 건넜다. 당연히 남으로든 북으로든 한번 다리를 건넌 뒤부터는 반대편 국가로 돌아갈 수 없으니 다리의 이름은 정서적으로 적절하게 붙여졌다. 원래 이 다리의 이름은 <널문다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대형 사건이 터졌다.
이름하여 1976년 8월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지도를 보면, 판문점의 서쪽에 UN사령부 소속의 '제5 관측소'가 있다 (분홍색 글씨 2번). 항공 사진으로는 잘 안 드러나 보이지만 저기는 언덕 위이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남한 방면 말단에는 UN사령부 소속의 '제3 초소'가 있다 (분홍색 글씨 3번). 건너편에는 물론 북한 '제4 초소'가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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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UN사 제5 관측소와 UN사 제3 초소 사이의 표시 지점에, 커다란 미루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분홍색 글씨 5번). 그래서 언덕 위의 제5 관측소에서 제3 초소 내지 <돌아오지 않는 다리> 일대를 감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북한은 제3 초소에서 근무하는 UN사 소속 병사들에 대해 납치 시도를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결국 UN사 소속의 미군 장교와 병사, 그리고 여기에 소속된 근로자들이 미루나무를 베어내기로 했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을 더 수월하게 감시하려는 이런 시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 당시 공동 경비 구역에는 UN군이고 북한군이고 사람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은 각종 딴지와 협박을 걸면서 작업을 방해했다.

8월 6일에 이미 근로 부대 소속의 근로자와 경호원들이 한번 퇴짜를 맞고 쫓겨난 적이 있었기에, 8월 18일에는 나무의 줄기 대신 가지만 치기로 하고 작업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이 때 비극이 시작됐다.

북한군은 이번에도 작업을 방해하고 딴지를 걸더니, 나중에는 갑자기 수십 명의 병사들을 데려 와서는 작업 책임자이던 군인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JSA 내부엔 소총을 들고 들어오지는 못하니까). 특히 미군 보니파스 대위와 바레트 중위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말았다. 겁먹은 근로자들이 도망치면서 버린 도끼로 싸이코패스마냥 사람 얼굴을 마구 찍고 난도질했다. 이들은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피투성이가 된 채 끔살당했다.

사실, 이때 북한군은 “무고한 남조선 로동자들은 놔 두고, 미 제국주의 원쑤들에게 집중적으로 본때를 보여 주라”라고 상부로부터 지령도 받은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 부상자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고도 북한은 우리는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며 이게 다 판문점 일대에 긴장을 조장하려 한 너희들 잘못이라고, 안하무인과 적반하장의 극치의 개념 안드로메다 태도를 보였다.

이에 박 정희 대통령은 그 유명한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아울러 “내 군화와 철모를 당장 가져오라!”라는 말까지도 전해진다.
더구나 선전포고 급의 도발로 인해 젊은 장교를 둘이나 어이없게 잃은 미국은 정말 제대로 빡쳤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휴전 이후 최초로 데프콘(경계 준비 태세) 3이 떨어졌다. 참고로 북한의 위협이 전혀 없는 완전 평시가 5,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레벨은 4이다. 3이 되면 한미 연합 사령부에 작전권이 넘어가고 전군의 휴가· 외출이 통제된다. 우리나라 역사상 데프콘 3이 떨어진 때는 저 때와 1983년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때 단 두 번뿐이었다.

그리고 8월 21일.
미국의 전설적인 나무꾼의 이름을 따 '폴 번연 작전'이 시행되었다.
미국 본토에서 수십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날아와서 한반도 상공을 배회했다. 그리고 바다에는 항공모함까지 와서 북한 해역을 기웃거리면서 무력 시위를 벌였다.

문제의 구역엔 특전사 소속의 수십 명의 무장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JSA 내부에서는 권총 이상의 무기를 휴대해서는 안 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M16 소총, 수류탄, 크레모아 등 살상 무기들이 즐비했다. 이들의 엄호를 받으면서 작업이 재개된 끝에, 문제의 미루나무는 가지치기 정도가 아니라 밑동만 남긴 채 완전히 베여 나가고 말았다. 아래의 before - after 사진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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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작전 수행 중에는 경비 레벨이 데프콘 3이던 게 아예 전군에 실탄이 지급되는 데프콘 2로 올라갔다!
아마 인류 역사상 제일 살벌한 나무 베기 작업?작전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지 싶다.

이런 무력 시위는 단순한 나무 베기 이상으로 북한을 낚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만약에 북한이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총을 한 발이라도 쏘면서 도발에 응할 경우, 이 미군 병력으로 JSA에서 얼쩡거리던 북한군들을 모조리 섬멸하고 아예 북한 본토를 폭격해서 군사 분계선을 북쪽으로 올려 버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미국의 초강수에 결국 북한은 깨갱 했다. 아무리 중국과 소련이 북한과 친하다지만 이 사건에서만큼은 그들도 북한을 편들 수 없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니가 병신 인증을 한 거니 빨랑 미국한테 사과나 해라”였다.
김 일성은 내부적으로 '북풍 1호'를 발령하여 전군을 무장시키고 대비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버로우 타고 무력 시위와 도발에 절대로 응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서 미국을 달랬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유감을 표명하고 아주 형식적으로나마 사과함으로써 사태를 겨우 수습시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JSA 내부에도 군사 분계선 경계가 확실하게 생겼다. 도끼 만행 사건 이전에는 판문점 회의장 안까지 칼같이 남북 금이 그어져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며, 남한 쪽에 속한 JSA에 북한군 초소도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로 금이 그어졌고 그쪽의 북한군 초소는 모두 파괴· 철거되었다. 요컨대, 아래와 같은 사진은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의 결과물이라는 뜻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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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정적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폐쇄되어 남북 사람들이 오가는 용도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에 북한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거치지 않고 판문점으로 가는 길을 트기 위해 북쪽에 자기네만 쓰는 다리를 또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사흘 만에 뚝딱 건설되었다고 하여 <72시간 다리>라고 불린다. 구글 지도에서 북쪽으로 노란색 음영이 쳐진 길이 경유하는 다리이다.

판문점의 역사에 대해 얘기하면서 도끼 만행 사건은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되고 말았다.
북한의 잔학· 흉악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건의 이름에다 '도끼'라는 이름이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영어로도 tree cutting incident뿐만 아니라 axe murder incident라고도 불린다.

참고로 밑동만 남았던 그 문제의 미루나무는 나중에 아예 뿌리째 완전히 뽑혀 없어졌다. 언제 그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자리에는 현재 간단한 위령비만이 세워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글어스에도 가로수를 암시하는 흔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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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3/10/23 08:29 2013/10/2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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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국회 기도문

대한민국이 기도로 시작한 나라라는 걸 정치적으로 좀 우파 성향인 크리스천이라면 어렴풋이 들어서 알 것이다.
본인은 수 년 전, 우리나라 초대 겸 건국 대통령인 이 승만 박사의 옛 저서 Japan Inside Out의 번역판인 <일본 그 가면의 실체>가 국내에 출간됐을 때, 그 책을 통해서 저 기도문을 처음으로 접했다.

잠시 역사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대한민국의 제1대 국회인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대한민국 헌법을 첫 제정한 국회이며 1948년 5월 31일 구성되고 1950년 5월 30일까지 활동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을 구성원으로 한 최초의 국회이다. (한국어 위키백과 설명)

그 당시는 우리나라에 국회 의사당 건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 광화문 근처의 옛 중앙청 홀--김 영삼 정권 때 헐린 그 튼튼한 건물--에서 국회의원들이 모였다.
국회의원들은 정확히 세 주 전에 열린 5· 10 총선거 때 선출된 사람들이다. 남한만 단독으로 총선거를 해 버려서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었다는 우려도 받았으나, 북한은 어차피 그 전에 이미 조선로동당 대회를 자체적으로 치렀으니 통일은 애초에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자, 그래서 1948년 5월 31일 아침 10시경이 되었다.

* 임시 의장 이 승만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 제 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 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 윤영 의원 기도 (일동 기립)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성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풀어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대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와 인과 용과 모든 덕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이겨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 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환희와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이 기도문은 이 윤영 목사가 원고를 미리 써 와서 읽은 게 아니라는 걸 유의하자.
이 승만 의장이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즉흥으로 요청을 해서 기도가 시작된 것이다. 즉, 이건 애드립이다. 텍스트는 속기사가 받아 적어서 만들어졌다.
이런 건 좀 공신력 있는 사이트에 문헌으로 좀 기재되어 있어야 할 텐데 국회 홈페이지나 위키문헌엔 없나?
<날개셋> 타자연습에는 저 글이 연습글로 수록되어 있다.

뭔가, 아폴로 8호 승무원의 창세기 낭독 사건 같은 걸 보는 느낌이지 않은가.
이런 거 읽을 때만큼은 제발 후천년주의니 정교일치니 그딴 삐딱한 시선은 잠시 집어치우고, 일단 감격하고 감사할 줄 좀 알자.
누군 뭐 국가나 정치와 관련된 성경적 입장을 모르는 줄 아나..?

한쪽에서는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 오늘 같은 날을 있게 하신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속히 오기를 축원하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이러면서 나라를 세웠다.

이 국회를 통해 1948년 7월 17일에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 공표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공휴일에서 빠진 국경일 제헌절이 이 날로 제정된 것이다.

그 반면, 반대편에서 비슷한 시기에 벌인 북조선 로동당 2차 대회(1948년 3월 27일~30일)는 분위기가 아마 어땠을까? -_-;;
그때는 워낙 초창기이기 때문에 북한도 내부에 여러 파당이 있었으며 노골적인 김씨 우상화는 지금보다 덜했었다.
하지만 이미 인간성 말살이 시작되고 반대파 '반동'들을 비판하고 숙청하고, “동무들, 인민 해방을 위한 과업을 어서 완수하시오” “소련으로부터 지원 받아서 미 제국주의 남조선 원쑤들 다 쓸어버립시다” 이런 권모술수와 추악한 음모가 진행 중이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북한이 태극기 대신 자체적인 인공기를 제정해서 쓴 게 1948년 초쯤부터이고, 애국가도 자기네 애국가를 1947년 하반기부터 채택했으니, 이미 남북 영구 분단 고착은 그 무렵부터 예고된 귀결이었다. 쟤들은 소련의 군사· 경제력을 등에 업고 시민들은 공산주의 지상락원으로 선동하고, 서로 비판하고 감시하고 못 믿게 만들고 팀웍을 해체시키는 방법으로 권력을 꽉 장악해 갔을 것이다.

난 이걸 생각하면 소름이 확 돋는다.
어디 누가 누굴 보고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더럽게 시작되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정체성을 부정하고 앉았는가? 괘씸한 놈들!

난 우리나라가 건국 이래로 예수 믿고 교회 댕기고 예배드리고 심지어 거리설교까지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던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자유는 정말 넘치도록 잘 보장되어 있었고, 극소수 있었던 부조리와 제약은 종북 불순분자 빨갱이들 빼고는 하나도 걸릴 게 없었다는 생각이 변함없다.

이 승만 전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건국 대통령으로 충분히 예우받고 존경받아야 한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잘못한 것들은 잘한 것에 비하면 정말 사소하고 불가피하고 최소한 악의는 없었던 것들이다. 특히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친일파 드립은 내 눈에 띄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다 조직적으로 반박해 줄 것이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 주제만으로 또 블로그에다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무에게나 정말 양심에,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물어 보고 싶다. 종북 빨갱이들조차 적으로 안 보이고 혁명가 투사로 보일 정도로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그렇게도 엿같고 개판이고 다 갈아엎어야 하고, 국민들에게 해 준 게 없는 나라인가?

Posted by 사무엘

2013/09/29 08:36 2013/09/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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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치 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특이한 유튜브 동영상 몇 개를 좀 소개하겠다.

시 - 미친개 리명박패당을 무자비하게 징벌하리라 by 김 영남 (현재 북한 권력의 2인자인 그 사람을 말하는 건지?)

이것은 북한에서 만든 영상물이다.
철덕이라면 수 년 전에 <영상포엠 간이역>이라는 KBS 영상 다큐멘터리를 기억할 텐데,
그런 것과 비슷한 스타일로, 적절한 영상과 BGM을 곁들여 창작시를 낭송했다.
무슨 내용이냐 하면.. 당시의 남조선 현직 대통령을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로 비방하고 저주하는 내용.

“력사앞에 민족앞에 천추에 용납못할 대죄를 저지른 깡패 리명박역적
... 백두산 절세위인들의 최고존엄까지 감히 건드리며 도발의 한계선을 넘어섰으니
... 민족도 안중에 없고 인륜도덕도 줴버린 미친개 리명박패당무리들
... 특대형 죄악의 말로가 어떤것인지 지옥의 문어구에서야 알게 될 네놈들
... 썩은 눈깔로라도 제정신 들어 바로 보라
... 네놈들 흔적도 없이 태워 지구밖에 내던지리라”


이 명박 전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대북 정책 하나는 정말 잘 밀어붙였다는 걸 알 수 있는 동영상이다.
이 승만 이래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에 저 정도로 북한으로부터 미움받고 능멸당한 사람이 있었을까? ㅋㅋㅋ

뭐 이런 퀄리티의 시가.. 북한에서는 무슨 케이블 방송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KBS뻘 되는 국영 공영 방송에서 작년 봄쯤에 버젓이 방영되었다.
진짜 딱 “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 같은 느낌이니, 웃으면서 보면 된다.
한국어와 한글을 쓰는 아담의 후손, 단군의 후손이 사상이 이상하게 박히면 저렇게까지 맛탱이가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시가 한두 개가 아니다. -_-;; 도대체 무슨 약을 빨면서 저런 시를 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낭송을 했을까?

쥐명박의 말로를 그린다 by 김 향일

“붓을 벗으로 삼고 세상의 아름다움만을 골라 화판에 옮기는 나는 미술가
... 이 붓으로 나는 지금 이름조차 역겨운 쥐새끼를 그린다 (!!!)
... 쥐명박, 너는 아무리 뜯어봐야 볼꼴없는 늙다리 생쥐새끼” (대놓고 외모 디스 ㄲㄲㄲㄲㄲㄲ)


병사는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by 송 정우

“못 참아 못 참아 더 이상 못 참아
우리의 최고존엄을 또다시 건드린 리명박역도를 향해
병사는 총구를 겨눈다 병사는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 열두번도 더 뒈졌어야 할 네놈이 더 숨을 자리는 이하늘아래 없다”


무자비하게 죽탕쳐버리리라 by 류 명호

“명박이 쥐새끼무리들이 한줌도 못되는 그 쥐새끼들이
감히 우리의 신성한 하늘에 삿대질했더니
... 최고사령관 김정은장군의 명령이 내리는 순간 리명박쥐새끼무리들을 씨도 없이 죽탕쳐버리리라”


쟤들이 왜 저렇게 이 명박 전대통령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는 간단하다.
김, 노 전대통령과는 달리 이 명박은 “돈 내놔 X끼야!” “드.. 드리겠습니다!”에 휘말리지 않고 북한을 상대로 소신껏 행동했다. 그래서 북에서는 진작부터 온갖 깽판을 부리면서 남조선 대통령 디스질을 하고 천안함도 침몰시키고 연평도 포격을 저질렀다. 딱 그림이 그려지잖아.

거기에다 2012년 4월 태양절(북한 김 일성의 생일) 즈음엔 이 대통령이 북한을 상대로 이런 말까지 했었다.
그렇게 김 일성을 신격화하고 핵무기 미사일 개발하는 비용이면 주민들을 수 년치 먹여 살릴 수 있으니 폐쇄와 고립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의 길을 가야 하지 않느냐고.
아니, 이 정도면 간접 디스가 아니라 돌직구를 날린 건가? ㅎㅎ 지극히 상식적으로 당연하고 건전한 말을 했을 뿐인데.

그랬더니 북한에서는 자기네 체제의 치부를 정면으로 찌른 이 명박을 부관참시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던 것이다.
저기서 관련 동영상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인민들을 시켜서 온갖 생 X랄을 떨었다. 이 명박 규탄 퍼레이드를 하고, 이 명박 인형을 만들어서 불태우고 돌팔매질을 하고 탱크로 깔아 뭉개고, 사격 훈련 과녁으로 삼고, 축시의 참배를 하고..

그런데 종북 좌좀들은 이것도 다 남북 관계 망쳐 놓은 이명박 새누리당 때문이라고 욕한다. ㅎㅎ
이 명박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와는 무관하게, 난 그런 주장에는 공감 못 해 주겠다.

퍼레이드 참여자의 인터뷰를 보면 쥐명박, 쥐새끼, 지능지수가 2MB밖에 안 되는 놈... 별별 욕지거리가 다 나온다. '죽탕치다', '쏠라닥질하다/쏠라닥거리다'라는 말을 난 처음 들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나랏돈을 저런 짓을 하는 데나 쓴 것이다.
그나저나.. 북한 로동자 계급 주민들은 컴퓨터라는 물건을 구경도 해 본 적이 없을 텐데 '메가바이트'라는 정보량 단위의 의미를 알기나 하고서 2MB 드립을 친 걸까?

이 명박 대통령이 북한에서 그림으로 얼마나 능멸을 당했는지를 예를 좀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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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앞의 <쥐명박의 말로를 그린다>를 다시 보시라. 이건 저런 선전용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참여한 어느 화가가, 체제 충성심 경쟁에서 점수를 따기 위해 기고한 시인 것이다.
사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방부 장관과 합참 의장 같은 우리나라의 고위 군 관계자들도 실명이 거론되면서 북한의 매체에 의해 반통일 반동분자로 디스당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게 사실이다.

우리가 이런 걸 유튜브로 편하게 보면서 마음껏 비웃어 줄 수 있는 건, 우리나라가 6·25에서 패배하지 않고 선조들이 나라를 피로써 지켜 낸 덕분임을 알아야겠다.
우리민족끼리 유튜브 채널은 몇 년 전에는 국내 접속이 차단되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는 듯. 재미있는 자료가 많다.

여담이지만, 쟤들의 영상 자막에 등장하는 북한 서체는 우리나라로 치면 문화바탕제목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도 적기는 두음법칙을 적용 안 하고 적어도, 실제로 발음을 할 때는 일일이 '리 명박, 력사'라고 안 하고 그냥 '이 명박, 역사'라고 읽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3/08/23 08:31 2013/08/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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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에 대한 팩트들

1. 옛날에는 6· 25사변, 동란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요즘은 그런 단어를 접하기 힘들다. 그리고 옛날에는 적군을 북한군 대신 괴뢰군, 공산군이라고도 많이 불렀다.

2. 6· 25는 선악 구도가 매우 분명한 전쟁이었다. UN이 창립 이래로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한 진영의 편을 들어서 반대편 진영을 군사력으로 퇴치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한 작은 나라 편을 들었던 전쟁은 없었다. 그러나 미래에 성경이 말하는 아마겟돈 전쟁 때는 많은 나라들이 똘똘 뭉쳐서 오로지 한 나라를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게 어느 나라인지는 이 자리에서 설명하지 않겠다.

3. 일요일 새벽에 감행된 너무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한민국은 당시 제대로 허를 찔렸다. 모든 것이 열세였고 겨우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허무하게 빼앗겼으며, 정부의 대처도 우왕좌왕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개전 직후에 타이밍이 어긋난 대국민 안내방송과 한강 다리 폭파는 정말 뼈아픈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4. 그러나 다소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나라에서 정말 혹독하게 군 내부의 숙군 작업을 진행하고 빨치산들을 토벌해 둔 것은, 추후에 더 끔찍한 비극을 예방한 매우 다행스러운 선견지명 조치였다. 국군 내부에서조차 빨갱이가 우글거렸다면 얘들은 전쟁 났을 때 맞서 싸우기는커녕 지시를 어기고 적에게 모조리 항복하거나 이적행위를 저질렀을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그런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선, 사상만 올바른 게 확실하다면 친일 경력 군경이라도 적극 채용해서 안 쓸 수가 없었겠다. 내가 늘 강조하지만, 우리나라의 친일 청산을 방해하고 원천 봉쇄한 건 북한이며 북한 역시 내부적으로 군경 한 명이 아쉬운 마당에 친일 청산 안 한 건 마찬가지였다.

5. 중공군은 우리나라에 1· 4 후퇴를 안기고 멸공 북진 통일의 절호의 기회를 영원히 박탈해 버린 원흉이다. 생각해 보면 굉장히 열받고 통탄할 일인데, 우리가 당한 악행에 '비해서' 우리나라 내부에서의 반중 정서는 그만치 크지 않다.
1· 4 후퇴 당시에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한강이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꽁꽁 얼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 앞에 피난민들의 발이 묶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때 이산가족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6. 1951년 3월경에 남한이 서울을 재탈환한 뒤부터 전쟁은 휴전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계속 38선 부근에서 국지전만 진행되었다. 38선이 지금의 휴전선으로 바뀌면서 영토 자체는 대한민국이 과거보다 더 많이 수복했다. 그러나 서울이 북한과 더욱 가까워졌고 서해 NLL의 군사 긴장도가 더 높아졌다.
 
7. 흔히 '종북 좌파'라고 불리는 정권 시절에 <독도는 우리 땅>과 <6· 25 노래>가 금지곡이 됐다는 말이 떠돈다. 허나 검색을 해 보면 도대체 무슨 금지 조치를 당해서 언제 다시 풀렸는지가 분명치 않고 출처가 불분명하며, 이건 그냥 루머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마치 “이 승만이 시민들한테는 피난 가지 말라고 속이고는 자기 고의로 혼자 튀었다” 같은 급의 거짓 중상모략이 될 수도 있으니 난 그 점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

하지만, 가사가 희석되고 변개된 심 재방 작사의 <신 6· 25 노래>는 정서상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그거야말로 개사의 저의를 의심하는 바이다.

오리지널이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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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단조로 시작해서 장조로 끝나는 이 노래이다.
갓 태어난 가난한 신생 독립국이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했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정말 숨 막히고 섬뜩하고 처절한 가사로 표현했다. 6· 25를 직접 겪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가사이다.

그런데, 이 노래 가사를 불순한 의도로 변개한 놈들이 있다.
가해자의 정체와 전쟁의 근본 원인을 쏙 감춰서 “원수들이 내 조국을 짓밟던 날”을 “국토가 두동강 나고 동족끼리 총부리를 들이댄 날”로.. 오로지 결과만 부각되어 보이게 바꾼 新 6·25 노래가 만들어져 한때 보급되었었다.

이건 일본이 자기네 전쟁 범죄는 입 싹 씻고 사과도 제대로 안 하고 그저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로 얼버무리기만 하고, 자기들도 원폭 피해자일 뿐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진짜 똑같다.

잘 들어라. 난 분명하고 단호하게 내 이름과 명예를 걸고 선언한다.
6·25 노래에서 북한의 정체성과 그들의 범죄 행위를 제거하는 것은
성경에서 지옥에 대한 묘사를 없애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없애고 동성애를 정죄하는 표현을 희석시키는 식으로 말씀을 변개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맥락이다!

난 이런 짓을 조장하는 진영을 매우 싫어한다.
성경이 말하는 근본주의 교리를 믿고 절대적인 선과 악 관념과 내세관을 갖춘 신자라면 종북 좌빨의 영하고는 도저히 같이 상종을 할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3/07/25 19:23 2013/07/2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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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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