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 종교) 이야기

1. 대학 특색

올해 상반기에 대학원을 한번 준비해 보고서야,
대학들도 다 똑같은 대학이 아니며, 간판이라는 게 학부뿐만이 아니라 대학원 세계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또한 단순히 인지도 서열뿐만이 아니라, 캠퍼스 면적부터 시작해서 지원되는 학과 내지 강세인 학과도 학교마다 다 다르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한양대나 인하대 하면 공대, 홍익대 하면 미대 같은 식으로. 옛날처럼 수능 점수에 맞춰 자동으로 학교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이제야 진짜로 내 면학 계획에 부합하는 학교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로 서울대와 연세대엔 일어일문학과가 없으며 연세대엔 미대도 없다는 사실에 깜놀.

내가 가는 학교는 간판 자체는 국내에서 상당한 인지도와 역사, 전통을 자랑하지만 각 과에 대해서는 학교 간판에 '비해' 의외로 인지도가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공대는 잘 알다시피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에 밀려서 상당히 약한 듯. 학부는 여길 나왔더라도 대학원까지 거길 가는 사람은 못 봤다. 하지만 난 공돌이 공부를 계속하는 게 아니니 상관없음. (그럴 거면 애초에 학부 모교 대학원을 지원했어야지!)

이곳은 그 대신 국어학 쪽이 서울대와 더불어 양대 산맥이며 최 현배 박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어?) 곳이다. 다른 학교는 비교 문학, 한국학, 문화 컨텐츠 같은 협동 과정은 있어도, 딱 여기처럼 자체 국어사전 연구소를 위시로 하여 국어학+전산학 협동 과정을 개설한 곳은 없었다. 사실, 이런 학제간 연구를 국내에서 제일 먼저 시도한 곳임. 과가 이보다 더 맞는 곳이 없으니 결국 서울대 같은 다른 학교는 더 미련을 둘 필요도 없이 여기에만 지원했다.

그래서 결론은, 본인은 지금 학교에 잘 지원해서 잘 합격했다는 말이 되겠다. 이제서야 지방 소재 단과 대학이 아닌, 인서울 종합 대학에서 제 2의 학생 인생을 시작하겠다. ㅎㅎ

2. 고학력 실업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대학원으로 체제 전환을 하기로 했다. 히드라 럴커를 운용하다가 뒤늦게 스파이어를 올리는 기분이다. 이제야 교수가 얼마나 위대하신-_- 자리인지를 느끼게 됐으며, 누가 박사라고 하면 출신 학교와 학위 취득 나이 같은 프로필을 더욱 유심하게 보는 버릇이 생겼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박사라고 해서 다 같은 박사가 아니다. 국내 지방대 인문계 박사부터 시작해서 골수 유학파 20대 박사도 있고... 40대가 넘어서까지 거의 10년째 시간 강사 보따리장수 신세인 박사가 있는가 하면, 공대에는 무려 30대 초반에 본격 교수가 되어 자기 랩 동기들을 떡실신시킨 유학파 박사도 있다. 아놔...;

나는 이제 대학원에 가면 저 두 극단의 중간에 가까운 길을 갈 듯하다. (전자에 더 가까울지도ㅜㅜ) 일찌감치 대학원을 간 주변 동기들은 이제 박사까지 따고 나올 때가 됐는데 본인은 이제 들어간다. 학사 취득과 석사 취득 사이에 7~8년 정도 긴 간극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간에 군 복무와 직장 생활을 좀 한 경우이며, 본인도 딱 거기에 속한다.

이 승만도 36세인가 그 무렵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지금 시작해도 저 사람보다는 늦지 않을 거다. 할 일 없어서 가방끈이나 늘리러 진학한 건 절대 아니고, 논문 쓸 건 다 생각해 놨다. 이제 특정 플랫폼에 종속적인 노가다 코딩은 밑의 후임에게 맡기고, 나는 더 고차원적인 걸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3. 종교 특색

연세대: 대표적인 장로교 계통
동국대: 불교
서강대: 천주교
원광대: 원불교
우리나라 국군이 인정하는 4대 종교별 대표 학교이다. ㄲㄲ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류를 꼽자면,
해당 종교에 속하는 사립 대학교에 자기가 제 발로 가 놓고는, 거기서 부과하는 채플이나 종교 의식이 ‘종교의 자유 침해’라면서 딴지 거는 애들.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종교별로 다양한 건학 이념도 존재하며, 그 학교에 간 학생이라면 일단 그걸 존중은 해 줘야 하지 않는가? 자기가 거기에 신념상 동의는 안 하더라도 말이다!

동의할 수도, 존중할 수도 없다면, 그럼 그 학교엔 애초에 가지 말아야 한다. 본인은 동국대나 서강대 같은 학교는 안 갔을 것이다. KJV 믿는 지역 교회가 주변에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런 오지에 있는 학교조차 꺼려지는 마당에, 하물며 건학 이념이 대놓고 타 종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학교엘 가겠는가?

오히려 기독교 학교라고 불리는 학교들조차도 내가 보기에는 지금은 완전히 세속화할 대로 세속화해서 진짜 성경대로 믿는 교리는 거의 찾을 수 없으며 껍데기만 남았다. 그러면서 불신자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만 심어 주고 있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는 대표적인 기독교 사학이란 걸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연세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종교 성향이 더 노골적이다.
그런데 몇 년 전(한 2007년?)엔 여기에 어느 무슬림 학생이 갑툭튀 유학 왔다. 물론, 입학 전에 한동대의 종교적 이념에 동의한다는 각서도 다 쓰고 말이다. 공부 잘하고 아주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 한동대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이슬람을 포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개독들처럼 빨간 조끼와 붉은 십자가의 이슬람 버전으로? 아니, 천만의 말씀이다. 아주 정중하고 다소곳하고 예의 바르게(이슬람의 극단적인 두 얼굴을 명심하라), 교칙 전혀 안 어기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무려 성경을 펴서 논리정연하게 이슬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교내 기도실에서는 혼자 메카를 향해 알라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포교는 “봐라, 성경에 이런 구절도 있는데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일 수 있느냐? 예수는 하나님의 대언자일 뿐이지 삼위일체는 잘못됐다.”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안티질을 한 것도 아니다. 아니 그랬는데, 룸메이트를 포함한 상당수의 주변 학생들이 그 포교에 넘어가서 신앙 정체성을 잃고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교수들조차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 그 기독교 학교에 들어간 그 많은 학생들이 이슬람 학생 겨우 한 명을 신앙 논리로 못 이긴 것이다. (마 17:17 같은 주님의 탄식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 놓고 백 날 음주가무만 금지하고 종교 생활만 율법적으로 강요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금연 금주 금녀는 종교색이 전혀 없는 사관학교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규칙이다.

주님께서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것처럼(눅 16:8), 저 이슬람 학생도 지옥 자식으로서는 임무를 정말 잘 수행했다. 작정하고 타 종교인을 계몽(?)할 목적으로 나와 종교가 다른 학교에 일부러 들어갔다면, 차라리 저 이슬람 학생처럼 행동해라! 합법적으로 노력해서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괜히 종교의 자유 운운하면서 인권위 진정 내지 1인 시위, 소송 따위나 하지 말고 말이다. 또한 반대로, 허접한 한국 기독교회와 교인들도 반성해야 할 게 무진장 많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대학+종교 얘기하다 말이 엄청 길어졌다.
끝으로 한 마디. 전라남도에 있는 대불대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불교 계열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 계열이라고 한다. 정말 충공그깽.

Posted by 사무엘

2010/07/15 08:24 2010/07/1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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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ndelete (노턴 유틸리티의 unerase)

그렇다. 도스 시절에는 지금처럼 휴지통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FAT 파일 시스템에서 파일 삭제는 파일 이름의 첫 글자만 ?로 바꿔서 지워진 것처럼 속이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런 파일을 찾아내어 첫 글자를 지정해 주면 지워진 파일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100% 완전히 복구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본디 파일이 있던 위치에 다른 파일이 덮어써지면 파일이 소실되거나 심지어 다른 파일 내용과 충돌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건 또한 보안상으로도 굉장한 허점을 남기는 위험한 일이며, 옛날 도스 시절에 운영체제나 파일 시스템이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할 때나 통용되던 편법에 불과했다.

2. sort (노턴 유틸리티의 ds)

요즘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탐색기나 여타 파일 관리 유틸리티들은 파일 목록을 보기 좋게 잘 정렬해서 보여주지만 DIR을 쳐서 나타나는 파일 목록은 그렇지 않았다. 말 그대로 디스크에 저장된 순서대로 저장된 파일 목록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래서 디스크에 보관되는 파일 목록 자체를 ABC 순으로 정렬해서 재기록해 주는 별도의 유틸리티가 있었다. 그것도 하위 디렉토리들까지 재귀적으로 알아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윈도우 NT 계열이 사용하는 NTFS 파일 시스템은 자체적으로 파일 목록을 알아서 ABC 순으로 무조건 정렬해 놓으므로 그런 유틸리티가 무의미하고 불필요해졌다. 내부적으로 단순 연결 리스트가 아니라 tree 같은 자료 구조를 쓰는 듯하다. 과거의 윈도우 9x와 윈도우 NT는 아무 디렉터리에서나 DIR만 쳐 봐도 결과가 차이가 났던 것이다.

지금도 FAT32를 쓰는 플래시메모리를 꽂아서 DIR를 해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하드디스크는 파일 목록이 ABC 순으로 출력되는 반면, 플래시메모리는 그렇지 않다.

3. 디스크 검사 (노턴 유틸리티의 NDD)

요즘 애들은 디스크 드라이브가 A부터 시작을 안 하고 왜 C부터 시작하는지 이유를 모를 것이다. 옛날 A와 B를 차지하고 있던 플로피디스크는 용량 적고 느린 건 둘째치고라도 물리적인 에러가 정말 잘 났다. 이 디스크 에러 내지 데이터 에러는 도스가 간단히 에러 메시지만 뱉고 끝내는 게 아니라 꼭 A중단, R재시도, I무시 같은 더 끈질긴(?) 인터페이스로 대응했기 때문에 더욱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절에 디스크 검사 유틸리티는 필수였다. 물리적인 에러가 난 부위는 bad sector로 처리하여, 거기를 건드리다가 운영체제가 에러 메시지를 뱉는 일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 줘야 했다.

과거에 하드디스크 용량이 한 수백 MB대일 때까지는 하드디스크도 NDD를 돌려볼 만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디스크 검사라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에러가 거의 없어지기도 했고, 또 디스크 용량도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4. 디스크 조각 모음 (노턴 유틸리티의 SPEEDISK)

오늘날 존재하는 디스크의 모든 파일 시스템들은 어떤 형태로든 정기적인 조각 모음(defragmentation) 작업이 필요하다. 데이터베이스 파일도 그렇고, 가상 머신 이미지 파일도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조각 모음은 과거 도스 시절만의 잔재는 아니며, 윈도우 XP까지도 별도의 시스템유틸리티가 존재했다.

비스타부터는 idle time 때 조각 모음을 운영체제가 알아서 지능적으로 찔끔찔금 하는 형태로 바뀌어, 덕분에 사용자가 이런 걸 신경쓸 필요가 사실상 없어졌다. 지금은 옛날 같은 방식으로 조각 모음을 하기에는 하드디스크 용량이 커져도 너무 커졌고, 또 SSD 같은 디스크는 아예 내부 특성상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 모음을 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기도 하다. 세상이 그만치 많이 변했다.

윈도우 95를 설치해 놓고 도스용으로 만들어진 디스크 조각 모음을 실행하면 긴 파일 이름이 싹 다 날아가고 대략 패닉이 벌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상태에서 undelete라든가 디렉터리 정렬 같은 저수준 작업을 시도하면 emm386 같은  메모리 드라이버가 에러를 내면서 컴퓨터가 그냥 다운되어 버리기도 했다. 오늘날은 과거 노턴 유틸리티의 DISKEDIT 같은 무식한 저수준 유틸리티가 돌아가는 건 절대 권력 운영체제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도스와 윈도우 9x 시절의 잔재라 할 수 있는 FAT 파일 시스템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FAT12: MS 도스 초창기에 도입. 플로피디스크용이며, 인식 가능한 하드디스크 용량은 최대 32MB.
FAT16: MS 도스 4.0(무려 1988년)에서 도입. 디스크 용량의 이론적 한계치가 2GB로 증가

FAT32: 윈도우 95 OSR2에서 도입(1996년). 최대 용량이 테라바이트급으로 늘긴 했으나, 파일 하나의 최대 크기는 여전히 4GB 제약을 받으며 디스크 용량이 수십, 수백 GB에 육박하면 슬슬 불안정해진다. NTFS로 갈아타는 게 낫다.
exFAT: 윈도우 비스타 SP1에서 도입(2008년). 플래시메모리 구조에 최적화되었고 파일 1개의 4GB 제약도 없어졌다고 함.

Posted by 사무엘

2010/07/14 11:09 2010/07/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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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막장 성경 만화

김 성모 + 개그 만화 일화 + 이 말년 스타일의 성경 만화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1.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니 이는 그가 말하기를, 내가 창으로 다윗을 쳐서 벽에 박으리라, 하였기 때문이더라.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삼상 18:11)

2. 온 도시가 격동하고 백성이 다 같이 달려들어 바울을 붙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내매 문들이 곧 닫히더라. (행 21:30)

전자는 사울 왕이 다윗을 너무 시샘하여 죽이려 하는 장면이며,
후자는 바울이 광분한 동족 유대인들에게 붙들려 가 구타당하는 장면이다.
이때 이런 대사가 하나 들어가면 정말 빵터지지 않을까?

“마침 시간도 인간이 가장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잔인해질 수 있는 저녁 8시. 누굴 끝장내도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을 것 같아!”

그리고 보너스.

3. 그가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를 높여 이르되, 이런 놈은 이 땅에서 없애 버리라. 그를 살려 두는 것은 마땅하지 아니하다, 하며 (행 22:22)

이건 "네놈을 살려 두긴 쌀이 아까워!" 로 받아쳐 주자. ㅋㅋㅋ

4. 날이 새매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함께 단결하고 자신을 속박하여 저주 아래 두고 자기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말하더라.  (행 23:12)

이들은 웬지 이런 피켓을 들고서 농성을 할 것 같다.
“바울을 죽입시다 바울은 나의 원수”

5. 다윗이 이 말들을 마음속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자기 행동을 바꾸고 그들의 손 안에서 미친 체하며 바깥문의 문짝들에 휘갈겨 쓰고 침을 수염에 흘리매 (삼상 21:12-13)

이건 영락없이 개그 만화 일화에서 바쇼 씨가 독버섯 먹고 발작을 하는 장면이다. (3기 9화) ㅋㅋㅋㅋ 다음 14~15절은 아기스 왕 대신 후류 군으로 바꿔서 읽어보기 바란다.

6.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큰 존귀에 이르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리니 그러므로 원하건대 와서 나를 위해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매 (민 22:17)

민수기 22~23장을 읽어보면, 장소 세팅하고서 발람이 웬지 축시의 참배를 거행하는 것 같다. “한겨울에도 귀마개 쓰고 축시”
마치 개그만화에서 스토리가 잘 풀리지 않고 자꾸 꼬이고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것처럼, 성경에서 발락이 발람에 저주를 요청하지만 저주가 잘 내려지지 않는 것도 똑같다. "죄송합니다. 기분상으로는 분명 저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만." ㅋㅋ

7.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그것을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이 먹게 하라, 하매 솥에서 해를 일으키는 것이 없어지니라. (왕하 4:41)

독초가 들어간 국을 해독하는 방법으로는, “가루를 사용하며 그것을 솥에 던지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ㄲㄲㄲㄲ

8. 비록 무화과나무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올리브나무에 수고의 열매가 없고 밭이 먹을 것을 내지 아니하며 우리에서 양 떼가 끊어지고 외양간에 소 떼가 없을지라도 (합 3:17)

하박국의 유명한 찬송시는
“비록 코트 안에 마물이 살고 있고, 배구에 걸었던 청춘이 모두 맛이 갔으며 믿을 만한 동료들이 눈이 죽었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주를 기뻐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리로다” 정도로 패러디 가능하지 않을까? 성경 원전하고 대조해 보면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함을 알 수 있다!

9.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날짐승과 들짐승에게 주리라, 하니 (삼상 17:44)

골리앗이 다윗에게 한 이 공갈은 김 성모 식 언어로는 “뼈와 살을 분리해 주겠다” 정도로 번역 가능하겠다.

10.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그러하리라, 하니라. (삼상 22:16)

사울 왕이 자기 멋대로 제사장들을 누명을 씌워 학살하는 장면인데... 앞부분 문맥을 읽어보면 영락없이 아래의 대사가 떠오르게 된다.
“좋다! 솔직하게 말했으니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될까요?”
“죽을 것이다!”

11. 나발이 다윗의 종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 각각 자기 주인에게서 도망치는 종들이 많도다. (삼상 25:10)

뭥미, 듣보잡, 갑툭튀 같은 말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성경을 찾아보면 ‘이새의 아들’은 다윗을 굉장히 경멸조로 얕잡아 부르는 표현이다.

12. 평안히 가라 (Go in peace)

성경에 여러 번 나오는 표현인데, 본인은 김 성모 만화에서 “안녕히 가라”라고 막장 반말 자막이 떠 있는 동서울 톨게이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ㅋㅋㅋㅋ

13. 왕이 내게 이르되, 네가 병들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네 얼굴에 슬픈 기색이 있느냐? 이것은 분명히 마음의 슬픔이로다, 하므로 그때에 내가 매우 심히 두려워하며 (느 2:2)

문맥을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이렇다. 그때는 왕 앞에서 신하가 감히 인상 쓰고 있는 건 굉장한 결례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는데, 이방인 왕의 포도즙 시종장이던 느헤미야가 자기 동족과 관련된 슬픈 소식을 듣고서 슬픔에 잠겼고 그 감정을 왕이 간파를 한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 딱 개그만화일화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가?

"포도즙 마실까보냐! 뭣보다 왜 이렇게 유감스러운 표정의 시종장이냐! 이 포도즙 마시는 사람 얼굴이 기분 나뻐!"

14. 성경은 성경이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증언하지만, 개그 만화에서는 우사미가 영감을 받아 범인을 잡아낸다. "앗! 사도 바울이 펜을 든 순간, 그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이것은 곧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뜻이다!"

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여자의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발꿈치를 내어 주고 목을 딴다고라... 김 성모 만화 대사에서 자주 발견되는 패턴이다.
"가랑비는 맞는다.. 하지만, 폭풍은 내 것이야!"
"한 대 맞고 두 대 친다"
"내 옆구리를 주고 네 목을 가져가는 전략일 뿐이야!" / "내가 십자가에 달린 것은 부활할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하나님도 이런 전략을 구사하셨단 말인가. ㄲㄲㄲㄲ (그렇다고 해서 으윽~ '옆구리를 너무 깊이 찔렸어' 같은 건 없다. ㅜ.ㅜ)

16. 내가 너희에게도 전해 준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신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 (고전 11:23)

고린도전서 자체가 육신적으로 옥신각신 티격태격하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책망 내용이다. "우리 이런 일로 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으시기 전날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아주 경건하고 숙연한 분위기인데 예수님을 졸지에 저팔계로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어떡해, 분위기와 대사 패턴이 너무 잘 들어맞는데. 이거 고인드립인가? ㄲㄲㄲㄲ

이 외에도 ‘근성’, “세상이 대충 망한 뒤에”, “안 돼! / 돼!”, “리듬과 파워! 그리고 집중력!”(성경에도 은근히 배틀 씬 많다) 등, 여러 대사가 응용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가령, 아브넬의 부하와 요압의 부하들이 배틀 아레나를 하는 장면에서(삼하 2:14) "나의 40단 컴보는 자비심이 없지", "네놈의 공격 패턴 강약약", "풋 사과", "내 공격을 막는 데 애로사항이 꽃필 것이다!" 같은 대사가 나올 수 있으며,
요압이 자기 정적들을 교활하게 죽이는 장면에서는 "발차기의 모든 것을 보여 주마" 하면서 훼이크로 주먹질을 하는 장면이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

저런 만화를 잘 아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크리스천인 경우는 거-_-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성경을 이 정도로 아는 크리스천 중에서 저런 만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전혀에 가깝게 없을 것이다. 어? 그럼 난? ㅋㅋㅋㅋㅋ

* 참고로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이지, 아버지와 함께 럭키짱 만화책이나 실컷 볼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다. ㅠ.ㅠ
한번 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거기는 무슨 군대처럼
고참도 없고 말년 같은 개념도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3 12:20 2010/07/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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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의 발음

본인은 ‘효과’(effect)를 ‘효꽈’가 아닌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것을 반대한다. TV에서 방송인들이 애써 ‘효과적으로’--아나운서랍시고 교육을 그렇게 받았을 테니--라고 말하는 걸 듣노라면 너무 어색하다.

마치 ‘김밥’하고 비슷한 예인 것 같다.
저걸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부 한결같이 ‘김빱’이라고 읽는다.
왜냐고 물으면 답이 없다. ‘비빔밥’, ‘볶음밥’, ‘곰국’, ‘짜장밥’ 같은 비슷한 예와 비교해 봐도 본인의 국어 실력으로는 원칙 내지 알고리즘을 못 찾겠다.

원칙을 못 찾겠다는 말은, “이렇게 발음해야 한다”라든가 “저렇게 발음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뜻. 이렇게 그냥 정하기 나름인 규칙에 대해서는 그냥 둘 다 허용하거나, 많이 쓰이는 편을 들어 주는 게 맞다. 마치 ‘짜장면’처럼 말이다.

그럼, ‘효과’라는 단어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말에서 ‘과’가 ‘꽈’로 변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소리나는 경우는 가장 먼저 and를 뜻하는 조사일 때이다. 이때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절대로 경음화하지 않는다. 무성음 받침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일어나는 경음화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한자어의 경우, 먹는 음식을 뜻하는 果 내지 菓(과자)일 때도 변하지 않는다. 수정과, 한과, 유과 등.
그 반면, 부서나 학문 단위를 뜻하는 科나 課는 반드시 변한다. 심지어 단독으로 등장할 때도 경음화한다. 대학교 용어인 ‘과대’(과 대표), ‘과사’(학과 사무실)에서 과는 100% 꽈로 바뀐단 말이다.

또한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라 일의 결과를 뜻하는 비유적 의미의 果도 경음화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결과라는 단어 자체는 ‘결꽈’가 되지 않지만 성과는 ‘성꽈’로 바뀐다. 본인은 효과가 ‘효꽈’로 바뀌는 것도 성과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며, 동음이의어 식별을 위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무리하게 글자 그대로 읽는 걸 반대한다.

본인이 논리 전개 과정에서 넘겨 짚은 게 있으면, 국어 고수들로부터 지적를 환영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2 17:53 2010/07/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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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낚시 영단어

- infinite
수학에서 유한, 무한 같은 건 서로 중요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다.
본인의 대학 시절엔 infinite를 일일이 '인 파이나이트'라고 읽으시던 이산수학 교수님 강의를 재미있게 들은 기억이 있다. 일본식 발음 같은 느낌이 들었다. energy -> 에네르기, berserk ->  베르세르크처럼. ^^;;;
finite(유한한)는 '파이나이트'이다. 하지만 반의어인 infinite(무한한)는 '인피니트'이다. 접두사 in-의 영향을 받아 장모음 i(아이)가 단모음 i(이)로 축약되기 때문이다.
 
- anxiety
마치 Y가 반자음도 되고 일반 모음도 되는 것처럼, 영어 알파벳에서 X는 카멜레온 같은 면모가 있는 글자이다.
대부분, 특히 음절의 끝에서는 box처럼 [ks](크쓰)로 소리나는 반면
아주 제한적으로 [z]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다. xylophone 처럼 이런 예는 굉장히 드물다.
 
그래서 아주 웃긴 단어가 있다. anxious(불안해하는)는 '앵크셔스'[ks]이다. 그러나 명사형인 anxiety는 '앵자이어티'[z]가 된다!
본인의 고등학교 시절에, 영어 시간에 실수를 한번 저질러서 "환상의 본토 발음 앵크셔티"가 별명이 되어 버린 친구가 있었다.
 
- sword
옛날에 영화 제목으로 '스워드'가 당당하게 진열된 적이 있었다.
비슷한 철자인 sworm은 '스웜'이다. 그러나 sword는 '스워드'가 전혀 아니며, '소오드'에 가깝다. W는 전혀 발음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무시하고 sord를 읽듯이 읽어야 한다.
 
그러나 어찌하리, 한글로 표기하면 '소드'보다 '스워드'가 훨씬 더 간지(?)가 나 보이는 것을!
게다가 우리는 영어 발음을 한글로 적을 때 장모음 내지 모음 R(혀 굴리는) 표기도 귀찮아서 다 생략하고 지내기 때문에, '소드'라고만 적으면 꼭 sod 같은 단모음 단어처럼 뉘앙스가 아주 가벼워 보이게 된다.
 
이 외에, 같은 단어가 명사일 때와 동사일 때 발음과 심지어 강세 위치가 싹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 present 프"레"즌트, 프리"젠"
- object "아"브직트, 오브"젝"
 
이건 마치 한국어에서 이런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type
- 타입: 유형, 스타일
- 타이프: 인쇄 활자 관련 (타이프라이터)
 
dot
- 도트: 말 그대로 점 내지 픽셀. (도트 프린터, 도트 노가다)
- 닷: 인터넷 관련-_-;; (닷넷, 닷컴기업)
 
그러고 보니..
do, come, go, have
영어의 근간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필수 기초 동사들이... 3인칭 단수 변형이나 과거/과거분사가 다 제각기 굉장히 불규칙스럽다는 것도 꽤 흥미로운 사실이다.
 
do는 O 주제에 O 소리가 전혀 나지 않고, does, done 같은 변형에서만 O 소리가 실현된다. do에서 유래된 유닉스 명령어인 sudo는 영락없이 '수도'처럼 보인다.
have는 '헤이브'가 아니며, come도 철자로부터 느껴지는 뉘앙스와는 전혀 다른 단모음 소리 때문에, 본인은 어렸을 때 현재진행형을 comming으로 자주 잘못 적기도 했다. 현재형과 과거분사가 일치하는 A-B-A형 불규칙.
 
현대 영어의 3인칭 단수형인 comes는 '컴즈'이고 음절이 추가되지 않는 반면, 킹 제임스 성경의 3인칭 단수형인 cometh는 '커메쓰'라고 음절이 추가되어 발음된다.
do는 더욱 흥미로워서 킹 제임스 성경에는 doth와 doeth가 모두 존재한다. 전자의 발음은 '더쓰'이지만, 후자는 모음이 추가되어 '두이쓰'가 된다. 즉, 현대 영어의 does  '더즈'와 더 비슷하게 발음되는 단어는 doeth가 아닌 doth인 것이다.

그래도 영어 정도의 불규칙과 굴절은 다른 유럽 언어에 비하면 양반이라 함. 프랑스나 독일어는...;; 그나마 영어가 세계 국제어가 된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영어는 국제어로서 손색이 없는 풍부한 어휘, 그리고 매우 작은 문자 집합(A~Z까지 겨우 26자)가 큰 장점이다. 영어의 지위는, 20세기가 다 돼서야 주시경 같은 학자에 의해서 맞춤법이 정립되고 국어사전이란 게 최초로 출간된 지 한 세기도 안 된 한국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는 언문일치에 관한 한은 답이 없는 언어이다. 알파벳이 나름 소리글자라지만 모음이 너무 부족하고, 또 알파벳만 쓸 뿐 표기가 제각각인 언어로부터 어휘가 워낙 많이 유입되다 보니, 철자하고 발음과의 일치는 애시당초 글러먹고 언문일치는 안드로메다로 갔다. 그렇게 언문 불일치로 인한 연상 거부가 너무 심해서 난독증이라는 일종의 지적 장애 환자까지 있다고 들었다. (독해력이 딸리는 인터넷 전투종족인 게시판 트롤의 난독증과는 다른 개념 ^^;;)

Posted by 사무엘

2010/07/12 08:21 2010/07/1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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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에서 서울 메트로 방송이!

2010년 7월 1일. 분당선 전동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본인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코레일이 안내 방송을 완전히 서울 메트로 스타일과 동일하게 고쳤기 때문이다.
성우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환승역 도착 음향도 수 년째 전통적으로 써 오던 클래식 대신, 서울 메트로의 퓨전 국악 ‘얼씨구나’로 바뀌어 있었다!

모란· 복정 역에서 ‘얼씨구나’를 듣다니, 이 어색함은 직접 들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분당선은 1기 지하철처럼 서울 메트로와 코레일이 직결 운행을 하는 곳도 아니고 100% 코레일 관할 구간인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이렇게 바꿨는지는 모르겠다.
코레일은 지금 영어 방송에서 유일하게 남자 성우 목소리를 쓰는 회사이다. 이 추세라면 그 개성도 앞으로 없어질 것 같다.

그나저나 도철(SMRT)은 21세기 이래로 환승역 도착 음향은 단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다. 멜로디가 유일하게 단조여서 좀 냉정한 느낌이 든다. 지난달엔 승강장 도착 멘트가 바뀌고 더 옛날엔 시종착역 알림 음향도 CM송으로 바뀌었는데, 앞으로 환승역 도착 음향이 바뀔 일만 남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 행복미소 마케팅 공세가 시작된 2008년 하반기 이래로 한동안 도철 구간 지하철 역에서는 노조의 회사 비판 포스터를 볼 수가 없었는데 역시 비슷한 시기인 이 달 초에 드디어 하나 출현했다.
한동안 음 사장은 무리한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인해 철도 동호인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나, 최근엔 그런 병크가 상당수 해소되었고 또 스크린도어 기술 국산화 같은 업적이 드러나면서 안티가 다소 줄어든 추세라고 들었다. 그런데 다시 회사 정책을 비판하는 포스터를 보게 됐다.
노와 사의 관계는 마치 군대에서 병과 간부의 관계만큼이나 영원히 가까울 수가 없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0 09:19 2010/07/1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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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66권 모두가 하나님의 영감 받은 무오류한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 성경이라는 막연한 존재의 실질적인 구현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본인은 오늘날 실존하는 특정 역본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싸움 나기 엄청 좋으며 이 글의 주제는 그 분야가 아니므로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특히 그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절대자에 의한 세상의 창조를 믿는다.
오늘날 과학에서 말하는 진화론도 워낙 분야가 다양하며 소위 창조론자라는 사람들이 진화론이 뭔지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서 무작정 무식하게 깐다는 식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는 것, 본인 역시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무에서 우연히 창조되었으며, 내 조상의 100대, 200대.. 혹은 n대로 올라가면 유인원과 원숭이, 아메바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고 진화론이 가르친다면 본인은 그런 학설은 누가 뭐래도 당연히 거부한다.

이 외에도 본인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6일 창조는 문자적인 24시간이었다고 믿는다. 식물이 셋째 날에 먼저 창조되고 나서 그 이튿날에 해와 달이 만들어진 마당에, 그 하루가 수억 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출 20:11 같은 곳에서 인간의 6일과 천지 창조 6일을 명백하게 동일선상에 놓으심으로써, 쓸데없이 원어라든가 영적 해석 나부랭이를 동원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놓았다.

다음으로 본인은 모든 인류의 조상은 아담이며, 인류의 역사는 그로부터 약 6천 년 남짓이라고 믿는다.
고대인은 미개인이 결코 아니었으며 불이라든가 바퀴 같은 건 거의 아담 시절부터 곧바로 만들거나 활용하기 시작했다. 농사도 바로 짓기 시작했다. 인간은 바보가 아니다. 정말 아니다.

여기까지는 창조 교리에 관한 한, 본인의 견해와 우리나라에서 '창조 과학회'라고 불리는 단체의 견해는 서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실제로 본인은 어렸을 때 창조 과학회에서 가르치는 여러 지식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얻은 유익은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많다.

자 그럼, 이제 견해가 어긋나기 시작한 분야를 털어놓도록 하겠다.

본인은 인류의 역사만 6천 년이라고 믿지, 지구와 우주의 나이까지 덩달아 그렇게 짧다고 믿지 않는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성경과 과학이 일치하기 위해서 우주의 나이가 짧아야 할 필요는 없다' 주의.
사실, 성경엔 우주의 나이가 얼마인지 나와 있지 않으며 그건 인간이 알 수 없다. 그 이상은 순전히 과학의 영역이다.

창조 과학회는 '필트다운 인 구라설' 같은 걸 파헤치면서 생물학의 진화론자하고만 싸우면 됐던걸 자기 깜냥으로 지질학, 천문학 우주론 등마저 깡그리 부정하고 그야말로 과학계에서 자기네만의 영역을 개척해야 할 지경이 됐다. 그런데 종교적 신념을 떠나서 창조 과학회에서 내놓는 대안이라는 게 학문적으로 보기에 심하게 허접한가 보다. 그래서 사이비 과학 취급 받으면서 까이고 있다. 마치 과거에 말씀 보존 학회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기성 교회들로부터 간증을 잃었듯이 말이다.

과거에는 빛의 속도가 더 빨랐다거나, 달에 쌓인 먼지 두께라거나, 지구 자기장의 반감기라든가... 지구/우주의 나이가 젊다고 내놓는 근거들은 다 과학적으로 반박되어 있다(고 한다). 창조 과학 진영에도 전문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천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어줍잖은 지식으로 우주론을 논하고 현대 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엔트로피 운운하면서 진화론 까는 모습이 세속 학계에서는 상당히 찌질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 듯.

심지어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이런 추태 때문에 창조 과학회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며, 특히 연세 대학교 천문학과 이 영욱 교수의 경우(물론 크리스천) 강연과 글을 통해 창조 과학회 안티를 공공연히 자처하고 다니는 걸로 유명하다. 빅뱅(대폭발설)은 이제 의심하고 싶어도 의심할 수 없는 100% 절대무오 확실한 정설이 맞으며, 창조 과학회가 주장하는 성년 우주설이라든가 광속 가변설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오류라고 너무 단호하게 딱 잘라 말을 하는데, 본인은 과학 지식이 없으니 그에 대해 뭐라 코멘트 할 수가 없다.

2008년 가을엔 창조 과학회 주요 간부이던 양 승훈 교수가 "나도 다시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지구와 우주 나이는 많은 것 같아" 하고 커밍아웃을 한 후 창조 과학회를 탈퇴해서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렇게 우주의 나이가 많은 쪽으로 돌아선 사람들은 결국 어디로 가는가 하면, 필연적으로 창세기 1장의 문자적 해석을 포기하는 쪽으로 빠진다. 하나님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냐? 이 day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원어로는 year가 될 수도 있고 두리뭉실 궁시렁궁시렁...;;; 나중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공격하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진실은 어디 있을까?

이 모순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로 간극 이론(gap theory)이다.
창세기 1:1 (천지창조) - 2 (심판의 결과로 땅이 혼돈) 사이에 엄청나게 긴 시간이 흘렀고 그 후 3절 이후부터 6일 창조는 문자적인 24시간이요, 인류의 역사는 6천 년이라는 시나리오이다. 우주의 나이까지 6천 년으로 좁힐 필요도 없고, 무리하게 6일 창조를 늘어뜨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간극 이론은 기독교계 내부에서 굉장히 논란이 많은 주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게 무슨 아담 이전의 인간 조상이라든가 귀신론을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해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으며, 간극 이론은 성경과 과학을 바르게 풀이하는 열쇠이다.

간극 이론의 핵심은 창 1:2의 without form and void를 마치 렘 4:23처럼 매우 부정적인 심상(=심판의 결과)으로 본다는 것이다. 본인은 비행기 사고로 끔살 당한 희생자 시체 중에, 새까맣게 타고 특히 이목구비가 싹 없어진 민얼굴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후덜덜;;; 그게 바로 without form and void인 얼굴이다. 정확하다.

반대로 간극을 믿지 않는 사람은 창 1:1-2를 창세기 1장 전체의 주제 문장으로 보고, 2절은 창조 중간 과정이나 준비 상태로 해석한다. 식사를 준비하기 전의 조용하고 깔끔한 부엌을 without form and void 상태라고 비유하는 글을 봤다. 심지어는 첫째 날이 "하늘과 땅도 창조하고" 빛도 창조한 날이라고 뭉뚱그리기도 하는 듯. 하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다. C/C++ 언어에도 등장하는 void는 공허하고 뭔가 비정상적이거나 최소한 관념적으로 텅 빈 심상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간극 이론은 인간 이전의 온 우주가 물로 멸망한 적이 있다고 가르치며, 벧후 3:6을 노아의 홍수로 보지 않는다. 간극 이론은 물과 어둠이 언제 창조되었는지를 알려 주고, 천사라든가 사탄 마귀는 언제 창조되었고 언제 타락했는지에 대해서도 딱 떨어지게 답이 나온다. 6일 창조 중 둘째 날에만 왜 하나님께서 보기 좋았다는 말을 안 하셨는지가 정확하게 설명된다는 것도 아주 큰 매력이다! 본인은 이 논리를 깨달은 뒤부터 간극 이론 매니아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젊은 우주 진영에서는 노아의 홍수만으로 지구의 모든 지질학적 격변을 다 설명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그쪽의 주장대로라면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지구상에 화석 연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니, 인류는 창조 후 약 1600년 동안 석탄과 석유가 없이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사용한 역청(pitch)은 아스팔트 같은 석유 화합물이 아니라 송진이라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극을 믿으면 굳이 그렇게 단정지을 필요가 없다. 우주와 지구의 나이가 길다는 증거는 아무 무리 없이 받아들이면 되고, 젊은 듯이 보이는 증거에 대해서는 6천여 년 전쯤에 한번 우주 물청소를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된다. 달이나 화성 같은 여타 행성에서 과거에 물이 흐른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뉴스 보도는 간극 주장자에게 아주 유리하게 작용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여러 논쟁거리가 있으나, 이 글에서 더 다루지는 않겠다. 젊은 우주를 믿는 분들은 본인과 같은 믿음에 대해서 "과학과 신앙의 절충"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버럭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건 절충이나 타협이 아니다. 제아무리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란 말이 있다고 한들, 선장도 충분히 구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선장이랍시고 굳이 똥고집 부리면서 침몰하는 배에 남아 개죽음 당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는 분야에서까지 바이블 빌리버들이 세속 과학을 상대로 전투종족이 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간극만치 기독교의 여타 근간 교리(특히 마귀론!)와 예표에 잘 부합하고 현대 과학하고도 충돌 안 하는 멋진 교리는 찾을 수 없는데 왜 이렇게 간극이 오해 받고 이단시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간극 이론은 진화론과의 절충이 아니며, 아담 이외의 인류 조상을 주장하지 않고 문자적인 6일 창조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간극을 반대하더라도 제대로 알기나 하고서 반대했으면 좋겠고, 창조 과학회는 젊은 우주를 주장하더라도 좀더 업데이트된 최신 과학적 데이터로 밀어붙였으면 좋겠다.

평소에 성경을 믿지 않았거나 성경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라면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모르겠다. 진화론자 욕하는 내용은 없으니 부담 없이 편하게 읽으셨길 바란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본인 같은 사람(교회 진영)도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 ^^;;

* 2011년 12월 5일 추가
요약하자면, 원창조· 재창조 문제는 without form and void를 아래 그림에서 왼쪽처럼 보느냐, 오른쪽처럼 보느냐 문제와 정확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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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다시피 왼쪽은 짓다가 만 미완성 건물인 반면, 오른쪽은 완공되었다가 파괴된 건물의 잔해이다.
세상에, 이걸 떠올리고는 내 머리에 내가 감탄하고 말았음.. -_-;;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07/09 09:08 2010/07/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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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간이역 서체들

이제는 갈수록 보기 어려워지고 있는 추억의 서체들을 보라.
서체 쪽으로 조금이라도 눈썰미가 있는 철도 매니아라면 저런 글씨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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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1990년대 철도청 시절에는 HY울릉도가 각종 역명판 서체로 쓰였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아시아폰트에서 제작한 코레일체라는 전속 서체로 또 한번 서체가 다 물갈이되었다.
HY울릉도는 둥글둥글하면서도 간판용으로 가독성이 무척 좋았기 때문에 건물 간판이나 도로 톨게이트 등에서도 많이 쓰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09년에 확인한 바로는 카이스트 기계 공학동 건물도 간판이 울릉도체였다.
그 반면 코레일체는 울릉도보다 좀 홀쭉하고 각진 느낌이 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긴,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각종 제목이나 심지어 도로 표지판 서체도 동글동글한 게 대세였다. 그러던 게 산돌 도로표지판이 등장하고부터 완전히 고딕 컨셉으로 바뀐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라져 가는 추억의 간이역 역명판체가.. 디지털 서체로 부활한다면
과거 산돌에서 성경체(옛날 성경책 특유의 붓글씨 서체)를 개발한 것만큼이나 획기적인 업적이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저 '서빙고' 체는 아마추어 티도 안 나고 굉장히 예쁘다.
하지만 과연 부활이 가능할까? =_=;;

Posted by 사무엘

2010/07/08 08:22 2010/07/0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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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에는 namespace라는 엄청난 키워드가 존재한다.
namespace는 소스 코드에 존재하는 수많은 명칭(심볼)들로 하여금 이들이 통용되는 구획을 강제로 구분해 준다. (명칭의 decoration도 달라지기 때문에, 링크 때도 동명의 심볼들이 서로 구분 가능함)
방대한 프로그램을 짜고 특히 남이 만든 여러 라이브러리들을 한데 뭉뚱그려 관리하다 보면 함수나 전역 변수 이름, 심지어 매크로 같은 게 겹쳐서 링크 시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이때 namespace는 그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어 준다.

C++은 C에 비해 scope이라는 개념이 더욱 발달했다.
여기서 말하는 scope이란, 단순히 전역 변수냐 지역 변수냐 하는 생명 주기 차원이 아니라, 어떤 심볼이 언어의 문맥 차원에서 인식되고 접근이 허용되는 범위를 일컫는다.
가령, C++ 클래스 내부에 있는 static 변수는 생명 주기로 말하자면야 C의 전역 변수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단순 전역 변수와는 확연하게 다른 scope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 같은 연산자도 생겼다.

예전에는, 특히 C 시절에는 global이라는 기본 namespace 하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C++에서는 나만의 namespace를 정의할 수 있고, 심지어 이중 삼중으로 namespace 안에 또 namespace를 만들 수도 있다. 심볼들의 입체적인 관리와 구별이 가능해진 것이다.
사실 namespace는 90년대에 나중에 추가된 키워드로, 도스 시절의 볼랜드 C++ 같은 컴파일러에서는 지원도 되지 않는다. (MFC 역시 namespace는커녕 템플릿조차 없던 시절부터 만들어져 온 클래스 라이브러리인지라, namespace를 사용한 흔적이 없음)

그런데, namespace가 하는 일은 클래스가 하는 일과 좀 중복이 있어 보인다.
클래스도 그 자체가 이미 자신만의 새로운 scope을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클래스 내부에 public으로 선언된 static 변수 내지 함수하고,
namespace 내부에 존재하는 전역 변수 내지 함수는 언뜻 보기에 위상이 완전히 똑같다.

밖에서는 클래스::이름, 또는 namespace::이름 이렇게 ::을 써서 호칭하는 것마저 동일하다.
클래스도 안에 클래스 내지 구조체가 중첩해서 존재할 수 있으며, 심지어 클래스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enum이나 typedef를 선언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럼 도대체 namespace만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 아래의 코드를 생각해 보자.

namespace NS {
   class A {};
   void f( A *&, int ) {}
}

//void f(NS::A *&, int) {} //이게 뭘까?

class CS {
public:
   class A {};
   static void g( A *&, int ) {}
};

이렇게만 보면 NS라는 namespace에 소속된 클래스 A와 전역 함수 f,
그리고 CS라는 클래스에 소속된 클래스 A와 전역 함수 g는 서로 그게 그거 같고 정말 차이를 발견할 수 없어 보인다.
다만, class나 struct와는 달리 namespace는 뭔가 인스턴스화하는 자료형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닫는 중괄호 뒤에 세미콜론을 붙일 필요가 없다. 뭐, 그 정도 차이는 존재한다.

이들 각 심볼을 외부에서 접근하는 방법도 완전히 동일하다. 아래 코드를 보라.

NS::A *pfm = NULL;
NS::f(pfm, 0); //하지만 바로 f(pfm, 0)만 해도 된다. 이유는 나중에 설명

CS::A *qfm = NULL;
CS::g(qfm, 0);

그런데, namespace는 클래스에 없는 부가 기능이 좀 있다.

첫째, 바로 ADL(Argument dependent name lookup)이라는 기법이다.
C++ 컴파일러는 함수의 argument의 타입으로부터 함수의 소속 scope를 자동 추론하는 기능이 있다.
namespace NS에 속해 있는 f를 호출할 때 굳이 NS::를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f가 받는 함수 인자 중에 이미 NS에 소속된 자료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컴파일러는 이 f를 먼저 global scope에서 살펴봐서 없으면 NS namespace 안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함수의 인자를 이용하여 함수를 추정한다는 점에서는 함수 오버로딩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실, 위의 소스에서 주석을 쳐 놓은 global scope의 f 함수까지 정의한다면 컴파일러는 어느 f 함수를 선택해야 할지 모호하다면서 에러를 낸다.
이런 기능은 클래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g 함수를 호출할 때는 매번 CS::g를 해 줘야 한다.

둘째, using 키워드이다.
반복되는 타이핑을 좀 줄이고 싶어하는 건 프로그래머들의 공통된 희망 사항이다.
타입 선언을 좀더 간편하게 하기 위해서 C/C++에는 typedef라는 키워드가 있고, 베이직이나 파스칼에는 구조체 참조를 좀더 간편하게 하려고 With 같은 키워드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C++에는 여타 namespace에 있는 명칭을 매번 :: 연산자 없이도 바로 참조 가능하도록 using namespace 선언을 제공한다. using namespace std; 처럼 말이다.
using namespace NS를 한번 해 주면, 그 뒤부터는 NS::A *pfm 마저도 A *pfm로 축약 가능해진다.
using의 용법으로는 또 다른 것도 있는데, 설명서를 읽어 봐도 잘 모르겠다. 정말 무진장 복잡하고 저런 걸 언제 어디서 써먹으면 될지 영 감이 안 잡힌다. =_=;;
다만, namespace가 아니라 클래스에 의해 만들어진 scope에 대해서는 그런 것 역시 지원되지 않는다.

셋째, namespace p = FS; 처럼, namespace에다 별명(alias)을 붙여 쓰는 것도 가능하다. 길고 복잡한 다단계 namespace를 손쉽게 축약하는 방법이다. 저런 문법도 있다니, 가히 충격과 공포.

끝으로, 이름 없는 namespace는 마치 C 시절의 static 전역변수/함수처럼, 해당 번역 단위(소스 코드; translation unit) 바깥으로 함수나 변수 심볼이 노출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아 두면 좋다.
이 정도 되면 namespace는 C++ 언어에서는 단순히 클래스 이상으로 자신만의 역할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가장 먼저 언급한 ADL에 대해서는 비판은 있다. namespace에다가 일종의 예외 규정을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C++ 문법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컴파일러 만들기도 난해한 언어로-_- 만드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의 편의를 위해서 ADL은 어쩔 수 없이 꼭 필요하기도 하다. 이게 없으면 다른 namespace에 소속되어 있는 클래스의 오트젝트에 대해서는 연산자 오버로딩조차도 제대로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자바나 C#처럼 C++보다 나중에 등장한 본격 객체 지향 언어들은 C++처럼 global scope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전역 함수나 전역 변수라는 게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심볼들은 무조건 클래스에다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런 언어들은 C++ 같은 텍스트 include라든가 링크라는 개념이 없으며, 클래스가 곧 패키지요 namespace의 형태로 구조가 잘 짜여 있다. 그래서 C++처럼 namespace를 별도로 갖고 있지는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07 08:44 2010/07/0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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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신저

상대방에게서 마지막 대화가 도착한 지 n초가 경과하기 전에는 ESC를 눌러도 대화창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옵션이 있으면 좋겠다. (과거 대화 내용을 보관하는 기능이 없을 때에 한해)
상대방에게서 말이 막 도착했는데 그걸 예상 못 보고 창을 확 닫아 버리면 대략 난감하다.

아울러, MSN 메신저는 이모티콘 변환을 좀더 지능적으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모티콘 때문에 메신저로 프로그램 코드를 주고받을 때 상당한 애로사항을 경험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안 그런데 옛날에는 심지어 (?) 조차도 이모티콘으로 바꾸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이모티콘 변환은 내가 직접 타이핑하는 문자열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복붙한 텍스트에 대해서는 안 하기만 해도 불편이 상당수 해결될 텐데..

※ 텔넷 클라이언트

서버로부터 특정 패턴의 문자열을 받았을 때 사용자에게 alarm 하거나, 이런 명령을 보내거나, 로컬 컴퓨터에서 뭘 실행하는... 그런 스크립트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즉, 패턴으로 현재 쉘의 프롬프트 문자열을 등록해 놓고 긴 빌드 명령을 내리면... (가령 안드로이드 OS 빌드 같은)

나중에 빌드가 다 끝나고 프롬프트가 떴을 때, 서버에서 빌드된 이미지를 곧바로 로컬 컴퓨터로 복사한다거나 하는 사용자 정의 이벤트가 실행되게 할 수 있다. 즉, 서버 컴퓨터와 내 클라이언트 컴퓨터의 연계가 가능해진다. 단순히 login 내지 password 요청이 왔을 때 로그인을 자동으로 해 주는 것 이상으로, 이 정도 수준의 자동화 기능은 PC 통신 프로그램도(이야기의 혼잣말 기능 같은) 제공한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PuTTY 같은 프로그램에는 아직 없는 듯.

※ 비주얼 스튜디오 2005

본인이 비주얼 스튜디오 2005를 처음 접했을 때의 인상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드디어 아이콘이 16색을 넘어섰고, 무엇보다도 메뉴와 도구모음줄의 외형이 시퍼런 MS 오피스 2003 스타일을 물려받지 않고 예전 버전(VS 2003 = 오피스 XP)을 변형한 형태로, 즉 자신만의 스타일로 갔기 때문이다.

2005는 컴파일러가 더욱 C++ 표준을 준수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기능이 향상된 게 많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같이 설치되는 플랫폼 SDK가 좀 이상해서 기본 설치한 환경에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 빌드에 필요한 일부 운영체제 컴포넌트가 설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버전에서 제공된 Spy++은 윈도우 비스타 이상급에서는 이상하게 일부 프로세스가 목록에 나타나지 않고 검색도 되지 않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2008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구버전인 2003도 그런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다.

※ 그리고 기타 전반적으로

비주얼 스튜디오, Source Insight, 이클립스는 모두 유명하고 널리 쓰이는 개발 환경이다.
취소(Ctrl+Z), 열기(Ctrl+O), 복사(Ctrl+C)처럼 모든 응용 프로그램에서 거의 이질감 없이 일치하는 단축키가 있는 반면, 전혀 표준화가 안 돼 있고 응용 프로그램마다 제각각인 단축키도 있어서 굉장히 신경 쓰인다.

가령, Find previous/next match 기능은 본인은 F3/Shift+F3에 아주 익숙한 반면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도 있다. 이는 파일 비교· 병합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심지어 왼쪽/오른쪽 병합 기능도 WinMerge, 아락시스, Beyond Compare 등 프로그램들이 전부 단축키가 다르다.
Undo와는 달리 Redo는 단축키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역시 특이점. Ctrl+Y or Ctrl+Shift+Z처럼 말이다. 이건 비단 개발 도구뿐만 아니라 워드 프로세서인 아래아한글과 MS 워드의 대표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다음은 불만 내지 제안 사항은 아니고, 윈도우 운영체제 관련 trivia.

1.
윈도우 95, 98, 2000은 welcome 프로그램이란 게 있었다. 즉, 부팅이 끝난 후 곧장 실행되어, 이 운영체제의 새로운 기능을 소개한다거나 자습서를 꺼낸다거나 하는 가이드 프로그램이다. ME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95의 경우, 아직 Did you know 같은 팁 인터페이스가 유행하던 시절이었고(무려, 비주얼 C++ 6에도 아직 있다!) 3.1에 비해 워낙 breaking change가 많았던지라 새로운 기능 팁 위주였다. 그 반면 98과 2000 버전은 팁은 없고 인터넷 연결과 제품 등록과 관련된 아이템이 있었다.

하긴, 윈도우 비스타는 그와 비슷한 개념으로 ‘시작 센터’를 표시하는 게 있긴 하다. 7은 있나?
윈도우 3.1과 95는 자습서까지 있었다. 비주얼 베이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던 걸로 기억.
98과 2000은 운영체제 도움말이 하드코어 chm 형태인 반면, ME는 hta (HTML Application!) 기반의 좀 인터랙티브한 도움말이 추가됐고, XP는 전무후무하게 아예 플래시 기반 자습서 겸 도움말까지 내장하고 있었다. 영어여서 한글판에서는 정식으로 이를 들려 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2.
32비트에 이어 개인용 PC에도 64비트 시대가 도래하고 64비트 윈도우는 16비트 바이너리는 지원조차 안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16비트 코드의 잔재가 고스란히 전해 내려오는 분야가 있다. 바로 fon 글꼴 파일인데(ttf 말고), 이제는 시스템 비트맵 글꼴로밖에 안 쓰이는 이 과거 유물은 여전히 16비트 dll 형태이다. 물론 코드는 전혀 없고 리소스 전용 dll이지만...
이 파일은 이제 실행 파일이 아니라 데이터 파일로 해석된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겠다. System, Fixedsys, Terminal 같은 비트맵 글꼴이 fon 파일 형태로 들어있다. 시스템 기본 글꼴조차 힌팅과 안티앨리어싱이 적용된 윤곽선 글꼴로 나오는 판국에 정말 낡은 유물이 된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06 09:07 2010/07/0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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