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 일대 나들이

서울 서대문 새문안로 일대는 중구와 종로구의 경계이면서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지나며, 한양 겸 경성의 중심지로서 근현대 역사 유물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도 일본인들은 여기보다 더 남쪽으로 남산· 남대문 일대에 많이 살았고, 조선인은 서대문 부근에 살았다고 한다.

지난번엔 각종 고궁과 서울 역사 박물관을 구경했는데, 알고 보니 거기 주변에 각종 박물관을 포함해 볼거리가 많다는 것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래서 본인은 하루 시간을 내어 순회 답사를 했다.

1. 경찰 박물관

<청년경찰>, <범죄도시> 같은 영화만 볼 게 아니라 이런 곳도 가 보면 좋을 것 같다.
경희궁의 동쪽으로는(광화문 역 방면) 서울 역사 박물관이 있고, 서쪽으로는 경찰 박물관이 있다(서대문 역 방면). 서로 아주 가까이 붙어 있으며, 도심 접근성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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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박물관은 다층 건물 형태이다. 들어간 뒤에는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6층으로 간 뒤, 한 층씩 내려가면서 방을 관람한다. 중간에 3층인가는 예외적으로 직원 사무 공간이기 때문에 관람객이 입장할 수 없고, 건너뛰어야 한다.

입장료가 없으며 무료이다. 경찰이 뭘 하는 사람인지 소개하고 경찰 코스프레· 경찰 체험 코너가 있는 건 아무래도 애들 눈높이에 맞춰진 컨텐츠이지만, 맨 처음 관람하는 꼭대기 층에 마련된 한국 경찰의 역사 코너는 유일하게 애들한테 좀 어려운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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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로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태극 무공 훈장이 추서된 최 규식 경무관에 대해서는 당연히 큰 비중을 두고 소개했으며, 그 외에도 순직한 경찰들 소개와 묵념 공간이 마련돼 있다.
하긴, 6· 25 전쟁 중에 최전방에서 조금이라도 더 북진하고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서 북괴와 직접적으로 싸운 사람들은 군인이지만.. 남한 영토 내부에서 북괴 빨치산과 간첩들을 소탕한 사람은 경찰이었을 것이다.

내 머리에 편견으로 형성돼 있는 경찰에 대한 외형적인 이미지는..

  1. 평소에 교통정리와 범죄 “예방” 업무를 하면서 구역을 순찰하는 제복 차림의 경찰. 이건 일상생활에서 제일 자주 본다. 내근직도 제복 차림이긴 하지만 일반인이 경찰서를 방문할 일은 별로 없으니..
  2. 강력 범죄가 터져서 사복 차림으로 현장에서 잠복하고 피의자를 격투 끝에 검거하는 경찰. ‘형사’라고 종종 불리며, 이건 영화 같은 매체에서 제일 자주 본다.
  3. 투명한 방패와 검은 방망이 들고 있는 전경들. 시위· 집회 현장에서만 본다.

이렇게 생각해 왔는데.. 이게 근거 없는 분류가 아닌 것 같다.
나 초딩 시절 286 AT에서 재미있게 했던 블루스 형제 게임에서도 세 캐릭터가 딱 정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ㅋ (물론 주인공을 죽이는 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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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경찰을 컴퓨터에다 비유하면, 정규 경찰 공무원들이 CPU라면 전경들은 GPU뻘 되겠다고 본인은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GPU는 전문성과 범용성이 정식 CPU만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픽 연산이라는 특정 작업만을 압도적인 코어 수로 보조해 주니까..

어느 나라건 경찰과 군대, 첩보기관은 서로 사이가 좋은 적이 별로 없었다. (실적 다툼 때문..?) 심지어 이들과 검사도 사이가 안 좋다.
원래는 이들은 서로 전문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이다. 일개 조폭을 넘어서는 군벌, 테러리스트와 싸워야 할 정도로 나라 사정이 막장이라면 특수부대나 아예 정규군의 도움이 필요하다.

용공사범, 마약이나 산업 스파이처럼 심각하고 교묘한 범죄를 정확한 증거를 잡아내서 겨우 말단 조직원이 아닌 근원지까지 일망타진하려면, 위장 침투가 전문인 첩보기관으로부터 첩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영화 아저씨..!!)

군대가 아예 전문적인 대형 DBMS이고, 첩보기관이 심벌과 임의 정밀도 연산까지 지원하는 수학 패키지라면, 경찰은 그 중간에 속하는 엑셀 같은 스프레드시트가 아닐까 한다. 일반인이 컴퓨터에서 이 셋 중 가장 즐겨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단연 엑셀이기도 하니 말이다.

얘네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는다거나, 정치와 야합해서 나라에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의 가장 비열 사악한 본성을 자극하면서 세력을 키우는 공산주의는 정말 불가피하게 경찰, 군대, 첩보기관에 대한 필요· 수요를 자꾸 만들어 내고 그쪽이 타락할 빌미를 주기도 했다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하늘에서 정의가 빗발친다, 야 이 짭새야!”
청년경찰 각본 쓴 사람이 오버워치를 좋아하는 취향이었군.. ㅡ,.ㅡ;;

2. 경교장

경찰 얘기가 갑자기 좀 길어졌네..
경찰 박물관에서 더 서쪽으로 걸으면 강북 삼성 병원이 나온다. 그런데 그 안에 그 이름도 유명한 경교장이라는 근대 유적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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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은 원래 1938년에 지어진 부잣집 건물인데, 백범 김 구가 여기서 몇 년간 지냈고 임시정부 요원들이 여기서 회의를 열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장소로 유명해졌다. 잘 알다시피 김 구는 아예 여기서 안 두희의 흉탄에 맞아 암살당하기도 했다.
이 건물은 비교적 최근인 2013년에 1· 2층과 지하를 원형대로 복원해서 전시관으로 공개되었다...고 입구의 안내판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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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가구로 응접실과 집무실이 있는 건 부산에서 본 임시수도 청사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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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는 마치 애니매트릭스의 첫 에피소드(오시리스 최후의 비행)에서 테디우스와 주에가 칼싸움을 한 장소와 비슷하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사진은 생략하지만 김 구가 암살당하던 당시의 2층 집무실 방, 그리고 고인이 입고 있던 피로 물든 겉옷도 어떻게 복원과 보존을 했는지 전시되어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역사가 실제로 이 장소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김 구를 암살한 안 두희는 먼 훗날 1996년, 박 기서 씨에게 몽둥이로 난타 당해 죽었다. 그 당시 박 씨가 버스 기사였던 관계로, 안 두희가 버스를 타다가 잘못 걸려서 죽었다는 식의 낭설이 전해지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박 씨는 인천에 소재한 안 두희의 집 주소를 알아내어 거기로 직접 찾아간 뒤, 문이 열릴 때까지 오랫동안 잠복했다. 내연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녀부터 포박해서 제압한 뒤, 집으로 침입해 들어가서 안 두희를 살해했다. 그 뒤에는 곧장 고해성사를 받고 경찰서에 자수했다.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할 고의적 살인범이기 때문에 그는 일단 구속되고 징역형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이렇게까지 전국적으로 칭송받은 살인범은 없었을 것이다. 그를 변호하겠다는 변호인이 줄을 섰고, 전국 각지에서 박 기서의 집으로 익명 성금과 지원 물자가 도달했댄다. 그의 아들이 다니던 태권도장에서는 관장 선생이 수업료를 면제해 줬다. 김 구가 먼 옛날에 일본인 민간인 상인을 죽인 것보다, 차라리 박 기서가 김 구의 암살범을 죽인 게 더 훌륭한 일처럼 보일 정도이다.

본인은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독립 운동가 겸 건국의 주역으로서는 김 구보다는 미국물 먹은 할배를 훨씬 더 존경한다. 이화장도 복원해서 재개장할 거라고 소식을 들었는데, 완공된다면 거기도 당연히 0순위로 가 볼 것이다.

3. 4· 19 혁명 기념 도서관

북한산 기슭에 4· 19 묘지가 있는 건 본인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만.., 경교장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엔 4· 19 혁명 기념 도서관이라는 것도 있다. 저건 도대체 뭐지?
(사실, 상암동에 있는 박 정희 기념관도 정확한 명칭은 '박 정희 기념 도서관', 더 세부적으로는 '기념관 및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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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여기는 자유당 시절에 잘나가던 이 기붕· 박 마리아 부부의 자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그들은 가족 전체가 동반 자살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래서 주인을 잃은 집과 부지를 국가가 환수하여 꽤 오래 전부터 4· 19 혁명 도서관이 이 자리에 조성됐다고 한다. 경교장과는 달리, 집 건물 자체는 문화재로 보존할 가치가 없으니 철거하고 도서관 형태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이건 마치 프랑스의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를 보는 것 같다. 기독교를 맹렬히 증오해서 "성경 같은 쓰레기는 앞으로 100년 안으로 세상에서 완전히 사멸해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랬는데.. 그가 죽고 나서는 그의 생가 부지에 성경 인쇄소가 들어섰다나 어쨌다나..

잠시 들어가 봤는데, 역시나 4· 19 혁명 관련 자료의 보관과 열람에 특화된 도서관인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4· 19까지는 인정하지만, 5· 18은.. 너무 이상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 같다. 폄하하는 쪽, 맹목적으로 신성시하는 쪽 모두 마음에 안 든다. 저건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재평가한다 해도 쌍방과실일 뿐이고 여파가 4· 19만치 크지도 않았으며, 지금 해 주는 것만치 그렇게 예우할 급도 못 된다.

사실은 4· 19조차도 대통령이 자격지심에 과오를 저질렀을지언정, 한편으로는 너무 착했고 진작부터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쳤기 때문에 저런 항거가 일어나고 성공한 것이다. 진짜 악질적인 독재자 치하였으면 민중 항거· 항쟁으로 정권 교체? 택도 없는 일이다. (북괴 내부의 8월 종파 사건, 황해 제철소 사건 등..)

4. 농업 박물관, 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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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도 지나서 계속 서쪽으로 걸어가면 서대문 역이 나온다. 그 뒤 길 건너편 서대문 역 5· 6번 출구 방향을 보면 농협 은행 본점과 함께 농업 박물관과 쌀 박물관 이렇게 박물관이 두 곳 있다. 여기도 무료 입장 가능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도시와는 정반대 심상의 박물관이 있는 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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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봉길 의사는 폭탄 의거를 벌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생전에는 농촌 계몽 운동에도 크게 앞장선 이력이 있다.
지금처럼 국제 교역이 활발해진 시대에 농업 내지 식량 자급자족이라는 이념을 옛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만치 목숨 걸고 붙들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6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여전히 땅에서 나는 소산물에 의존해서 명줄을 유지하고 있는 건 변함없다. 식량은 공산품이 아니다. 또한, 하늘의 기상 현상에 의존하지 않고는 땅의 소산물을 제대로 생산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항공업계는 20세기에 비행기의 발명으로 인해 등장한 최첨단 산업이지만.. 역시 하늘 날씨에 영향을 많이 봤고 심지어 새들을 쫓아야 하는 게 어찌 보면 그 원시적인(?) 농업과 비슷하다.

시간과 지면 관계상 더 자세한 사진 첨부는 생략하겠다.
인간이 농사를 지어 온 역사, 그리고 각종 논밭 개간 기술의 개발, 이앙법, 직파법 이런 얘기들이 나와 있다. 다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우 장춘 박사가 이룩한 영농 과학화 얘기는 전혀 없는 게 아쉽다.

박물관의 1층과 2층은 저런 농업 얘기이고, 지하에는 농협 자체에 대한 소개가 들어있더라.

5. 서대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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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사대문 중 동대문(흥인지문), 남대문(숭례문), 북대문(북악산 숙정문)과 달리 서대문(돈의문)만이 유일하게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되었으며, 그 뒤 재건· 복원되지 못했다. 그래서 신길온천 역 주변에 온천이 없듯이 서대문 역 주변에 실제로 서대문이 있지는 않다.
여기는 주변에 이미 건물들이 많이 지어져 버린 관계로, 서대문의 부지 확보와 재건 복원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여기 근처에 있는 경희궁도 사정이 비슷한지라, 인제 와서 원형 복원은 난감한 상태이다.

참고로, 한양도성에는 사 '대문'(동 흥인지, 서 돈의, 남 숭례, 북 숙정) 말고, 사 '소문'도 있다. 창의문 또는 자하문은 북소문에 속한다.
동소문에 속하는 혜화문, 그리고 남소문에 속하는 광희문은 복원된 것이 남아 있긴 하지만 원래 있던 곳에 있지는 않다. 이미 도로나 건물이 자리를 차지해 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북소문만이 유일하게 원형이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있다.

그리고 서소문에 해당하는 소의문은 흔적도 없이 완전히 소실되어 있다. 대문과 소문 모두 '서'쪽만이 현재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소· 지명에만 '서대문, 서소문'이 전해질 뿐이다.

6. 경찰 기념 공원과 서대문 역 터

여기 근처에는 서대문이라는 조선 시대 유적 말고, 서대문이라는 이름의 '철도역'도 있었다. 경부선이 만들어졌던 초창기에는 지금 있는 서울 역은 '남대문 역'이었으며, 살짝 더(지하철 한두 정거장 남짓) 북쪽으로 가서 '서대문 역'이 실질적인 경성 역이요 경부선의 북쪽 종점이었다.

그랬는데.. 1920년대 초에 서대문 역은 폐지되고, 남대문 역에서 경의선으로 분기하는 신촌· 가좌 방면 드리프트 선로가 부설됐다. 어차피 일본인들이 주로 사는 곳은 남대문 쪽이었으니, 철길이 그쪽까지만 있어도 충분했던 모양이다.

서대문 역 6번 출구로 나와서 경찰청이 마주 보이는 정도까지 좀 걸어가면.. 인도 옆으로 아주 작은 풀밭 공원이 있으며, 거기에 "옛날에 이 자리에 옛 경성, 서대문 역이 있었음"이라는 표지석이 놓여 있었다. 유 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 학당도 바로 이 근처(현재의 이화여고)이니, 그 학교는 가히 엎어지면 코앞인 역세권이었던 셈이다.

지난 2016년 여름에는 그 소공원이 '경찰 기념 공원'으로 리모델링됐다. 안 그래도 경찰청이 코앞이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경찰 박물관도 있으니, 내친 김에 순직 경찰을 기리는 공간을 더 만든 듯하다. 경복궁 역 근처에서 학교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보던 건물은 경찰청 본청이고, 여기서 보는 건 서울 '지방 경찰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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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과정에서 이 자리에 있던 서대문 역 표지석 역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나름 경찰청장 출신이 코레일 사장을 역임한 적도 있는데(허 준영)..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서대문 역 일대에서 여러 뜻깊은 장소들을 잘 구경하고 돌아왔다.
표지석은 너무 아쉬웠던지라 집에서 검색을 좀 더 해 봤는데, 사진들의 구도를 보니 소공원에 있던 그 표지석은 이화여고 정문 바로 옆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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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02/14 08:35 2018/02/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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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한글 입력기 9.3

0. 들어가는 말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약 4개월 간의 작업 끝에 9.1에서 또 9.3이 완성되어 나왔다.
내부적으로 4200줄에 달하는 코드가 추가되었다. 먼 옛날에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던 2.0이나 3.0 같은 시절 이후로, 지난 10여 년간 한 버전 단계에서 이렇게 많은 분량의 코드가 추가된 적은 없었다. 물론 요즘은 예전처럼 리팩터링을 하지 않고 외형적인 새 기능이 계속 추가되고 있으니, 새로운 클래스와 리소스 심벌 같은 비실행문도 많이 추가되고 그 덕분에 코드의 증가폭이 예전보다 더 커지기도 했다.

원래는 3월쯤에 새 버전을 내놓을 생각이었으나, 입력 도구의 작업이 완료된 것까지만 일단 공개해 버리기로 했다.
비록 원래 만들려던 기능들을 다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날개셋 개발이 늘 그래 왔듯이 예기치 못했던 다른 기능이나 개선 사항이 대신 추가된 것도 적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프로그램은 버전을 0.2 정도는 충분히 올릴 자격이 된다. 짧게는 수 개월, 길게는 무려 수 년 동안 내 머릿속에만 나뒹굴던 아이디어들이 깔끔한 클래스 형태로 구현되고, 사용자들이 직접 써 볼 수도 있는 기능이 됐다니 참 감개무량하다.;

1.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이번 9.3 버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연 입력 도구이다. '수식 계산 기록', '내부 입력 상태' 같은 것은 지난번 개발 근황글에서 이미 소개된 바 있으며,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도구도 이때 같이 다뤄졌다.
마지막으로 '조합 안에 조합 생성'은 근황글을 쓰던 당시에는 아직 미완성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개념 설명만 늘어놓는 걸로 그쳤다.

하지만 사실은 이거야말로 제일 획기적인 물건이다. 입력 도구가 고유한 문자 조합을 생성해서 응용 프로그램으로 보내는 것은 진작부터 구현돼 있었으나.. 더 나아가 응용 프로그램이 받는 그 조합 결과를 입력 도구가 가로채서 변조하는 것은 지금까지 선뜻 떠올릴 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술적인 통로를 마련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것도 편집기, 외부 모듈, 입력 패드까지 세 군데 모두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걸 하고 나니 한글 입력과 관련하여 구조적으로 난감하던 문제를 굉장히 쉽게 해결할 수 있었으며, 이를 이용한 굉장히 창의적인 활용을 할 수 있었다.
이 입력 도구는 사용자가 입력한 문자열을 어떤 방식으로 변환할지를 자체적인 설정을 통해 지정할 수 있다.

(1) 먼저, 한글 독음을 단어 단위로 한자로 변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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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존 문자 생성기도 단어 단위 한자 변환을 지원한다. 하지만 그 기능은 매번 번거롭게 '한자' 글쇠를 눌러야만 호출할 수 있으며, 지금 변환을 몇 글자 단위로 할지를 단일 목록에서 유동적으로 고를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편집기 내지 TSF를 온전히 지원하는 환경이 아닌 곳에서는 기능이 동작하지 않으니 그냥 반쪽짜리이다.

이때 '조합 안에 조합 생성' 도구와 이 변환기를 동원하면, 마치 중국어 IME로 병음을 입력해서 변환하듯이 번호만 찍으면서 붙여 쓴 긴 한자어 합성어를 차근차근 한자로 아주 빠르고 편하게 변환할 수 있다.
아무 구현체에서나 동일하게 동작한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조합창을 띄우는 걸 운영체제에 맡기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독자적으로 처리해 버리고, 운영체제에다가는 완성된 문자열만 보내는 식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 다음으로, 한자를 한글 새김을 통해 입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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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입력 방식은 타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정작 한자는 한 글자씩밖에 입력하지 못하니 불편하다. 하지만 훈이 같은 한자들, 다시 말해 뜻이 유사한 한자들을 한 목록에서 뽑을 수 있기 때문에 일면 대단히 편리하고 유용한 기능이 될 수도 있다. '마을, 나라, 새, 빛, 어조사' 같은 걸로 한자를 찾아보면 아마 놀랄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이 훈이 체언(+조사)인지 용언(+어미)인지를 구분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돌'이라고 찾으면 stone이 걸릴 수도 있고 '돌다'라는 뜻의 글자가 걸릴 수도 있다. '새'는 '새 이름으로 저장' 개드립에서도 알 수 있듯이 bird와 new가 모두 걸린다. 그래도 이 정도 모호성쯤은 새김으로 한자 입력 기능의 효용성을 본질적으로 폄하하지 못한다.

(3) 그리고 끝으로, 한글이 아닌 영문을 대상으로 T9 변환 입력 방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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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키패드의 부족한 글쇠만으로 라틴 알파벳을 입력하려면 한 글쇠에 필연적으로 2개 이상의 알파벳이 중첩 배당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글쇠 그룹에 속한 알파벳은 그 글쇠를 여러 번 눌러서(다중타) 선택하곤 한다.

그런데 후순위에 속한 알파벳을 일일이 여러 번 눌러서 입력하는 건 참 불편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중타 없이 그냥 그 글쇠를 쭉 입력하더라도, 글자가 아닌 단어 레벨로 가면 별다른 중의성 없이 빠른 입력이 가능하다.
한자를 변환할 때도 '단', '어', 같은 글자 단위로 일일이 하면 느릴 뿐만 아니라 후보 수도 엄청 많지만, '단어'라고 검색하면 '單語'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듯이 말이다.

요런 입력 방식을 T9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당장 위의 예제 그림을 보면 {ADZ}, {TUY}, {OP}, {ILJ}, {EWQ}라는 조합 중에서 실제로 유의미한 단어를 구성하는 건 DUPLE(X) 이런 것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도 일부 버튼식 전화기에는 숫자 밑에 알파벳이 ABC, DEF, GHI... 이런 식으로 배당돼 있는 게 있었다. 단, Q와 Z가 PQRS, WXYZ 이렇게 붙은 8키 버전이 있는가 하면 QZ가 따로 분리된 9키 버전도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 제공되는 T9 변환기는 또 고유한 환경설정 기능이 있어서 이런 알파벳 그룹을 사용자가 지정할 수 있다. 전통적인 T9 구성뿐만 아니라, 알파벳을 얼추 빈도수를 고려하면서(자주 등장하는 글자를 적은 다중타로 곧바로) PC Qwerty 배열과도 얼추 일치시킨 나름 창의적인 layout인 모비언스의 SmallQwerty도 내장값으로 제공한다. 얘는 9.1에서 추가된 '휴대전화 입력기'의 영문 모드로 이미 제공되고 있으니 곧장 연계 사용 가능하다.

T9을 '휴대전화 입력기' 말고 키보드로 써 보기 위해서는 해당 입력 스키마가 빈 입력 스키마 계열이 아니어야 한다. ('빈 입력 스키마와 호환되게 옵션도 포함') 그도 그럴 것이 글쇠를 날개셋으로 보내지 않고 응용 프로그램으로 줘 버리면 이 입력 도구가 글쇠를 받아서 동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자판을 그런 입력 스키마로 바꾸면 조합이 취소되며 이 입력 도구가 동작할 수 없다고 이렇게 에러 메시지가 나올 것이다. 이번 기회에 '입력 도구'들이 내는 에러 메시지 창도 키보드 포커스를 침범하지 않는 형태로 깔끔하게 다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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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9을 구현하기 위해.. 먼 옛날에 본인이 컴퓨터용 Scrabble 게임을 개발할 때 쓰였던 단어 DB 엔진이 동원되었다. 정확히는 현재 버전이 아니라 차기 버전에서 도입할 새 엔진이었으나, 그 게임 프로그램은 3.x대에서 더 버전업이 되지 못하고 현재 개발이 중단됐다. 현재 탑재된 DB도 게임용 사전인지라, 고유명사나 대문자 이니셜 없고 오로지 전체 대문자 또는 전체 소문자인 일반적인 단어들만 있다.

그리고 스크래블이 타일 수가 7개이다 보니.. 단어가 길어야 9~10글자짜리만 있고 막 긴 단어들이 있지는 않다. T9이란 이런 거구나 맛보기 시연을 보이는 정도로만 있다. 영문 입력이나 DB 구축이 내 프로그램의 주된 개발 대상이 아니니 현재 버전에서는 이 정도로만 넣었다.
사실, 버튼 배치의 제약이 없는 스마트폰에서는 어지간히 작은 화면에서도 T9 대신 그냥 Qwerty 배열을 통째로 집어넣는 게 대세이긴 하다. 영미 문화권에서 기어이 Qwerty 키보드를 버튼 형태로 주렁주렁 집어넣은 블랙베리 스마트폰이 괜히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게 아니니 말이다.

아무튼,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와 변환기가 도입된 덕분에 지금까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문자 단위의 기본 글쇠배열만 제공하던 것에다가 뭔가 더 유의미한 변환 기능이 덧붙을 수 있게 됐다. 이것까지 지원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어 글쇠배열에다가 실제로 한자 변환 기능이 들어갈 수 있으며, 한글 발음이나 영문 병음으로 실제 중국어를 입력할 수도 있다. 이것이 이번 9.3 버전의 가장 큰 의의이다.

'조합 안에 조합 생성' 도구와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도구는 서로 좋은 상호보완 관계 겸 대조군을 형성한다. 동작하는 관점이 서로 다르다.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지만 목록 창이 뜨는 위치가 비슷하고, 둘 다 화살표 같은 글쇠를 사용하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시기 바란다.

전자는 언제나 키보드를 사용하지만 후자는 키보드 사용이 옵션이다. 전자는 1~9 숫자로 목록을 바로 고르는 기능이 있지만 후자는 없다. 전자는 실제 후보 변환을 표방하는 기능이지만 후자는 개발툴이나 웹브라우저 입력란에서 제공하는 자동 완성 기능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2. 제어판 시스템 계층의 개편 + 입력 도구의 자동 구동 기능

이번 9.3에서는 '한글 표현 방식' 탭에 이어(작년 12월에 공개) 그 상위의 '시스템 계층' 탭도 외형이 크게 바뀌었다.
가장 먼저, 즐겨 사용하는 입력 도구는 구현체 프로그램(편집기, 외부 모듈, 입력 패드)이 실행될 때 자동으로 같이 뜨게 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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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능이 가장 유용하게 쓰일 구현체는 외부 모듈이다. 외부 모듈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구동하는 프로그램의 스레드 단위로 전부 제각각 따로 돌기 때문에 한 곳에서 입력 도구를 띄운 게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전혀 동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쇠배열 이름 표시' 같은 건 이렇게 자동으로 뜨게 해 놓으면 앞으로 새로 실행되는(이미 실행된 건 말고) 모든 프로그램에서 '글쇠배열 이름 표시' 기능이 동작하게 되므로 매우 편리할 것이다.

물론 이건 입력 도구들을 띄워 주기만 할 뿐, 각 프로그램에서 돌아가던 입력 도구들의 내부 설정과 창 위치, 크기 같은 걸 한데 동기화까지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띄워 주는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할 것이다.

입력 도구 목록을 집어넣을 큰 공간이 필요해진 관계로.. 지금까지 널널하던 시스템 계층 탭은 각종 UI 컨트롤들의 배치가 조밀해졌다.
공간을 잔뜩 차지하던 각종 설명문과 안내문들을 다 뺐다. 가령, 시스템 계층의 설정은 파일에 저장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지금까지 상단에 있었는데, 이건 시스템 계층 내지 그 하위 탭에서 '가져오기/내보내기'를 실제로 시도했을 때 한 번만 별도의 메시지 박스로 안내를 하게 동작 방식을 바꿨다.

다음으로, 글꼴 본뜨기에 대한 긴 설명도 그냥 도움말 링크로 대체했다.
이미 한자 글립이 존재하고 글꼴 본뜨기가 돼 있으면 본뜨기를 "다시" 수행한다고만 말이 나온다. 하지만 한자 글립이 없고 본뜨기를 한 적이 없다면 본뜨기를 "반드시" 해야 된다고 강한 어조로 말이 나오며, '글꼴 본뜨기'라는 버튼의 글자도 더 진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글꼴 본뜨기 스크립트를 바로 불러와서 편집하는 기능은 없었는데 이것도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절차 편집'이라고 추가했다.

UI가 굉장히 그럴싸하게 잘 바뀐 것 같다.
참고로, 타자연습이야 입력 도구를 전혀 운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인 관계로, 거기서 제어판을 열어서 시스템 계층으로 들어가면 입력 도구 목록 부분은 전부 공란으로 대체되고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서 체크 list box라는 GUI 컨트롤이 쓰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게 사실은 Internet Explorer 4도 아니고 3에서부터 도입된 물건이긴 한데(공용 컨트롤 버전 4.70), IE가 없거나 1~2인 초짜 Windows 95에서는 GUI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역시 이 목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3. 데이터: 글꼴

'한컴타자'라는 16픽셀 한글 조합형 글꼴을 추가했다. 다음과 같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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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한컴 타자연습'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프로그램은 내력이 생각보다 굉장히 긴 프로그램이다.
얘는 '한(아래아)글타자'라는 이름으로 1995년경에 도스용으로 최초로 개발되었다. 이때는 프로그램이 아래아한글 3.0 Windows용이 사용하던 기본 글꼴(일명 시스템, 9포인트)과 비슷한 모양의 글꼴을 사용했는데, 이번에 날개셋에 추가된 글꼴은 바로 이것이다.

도스용 mshbios가 사용하는 글꼴이 Windows의 바탕체 원판과 완전히 동일한 형태는 아니고 약간 열화된 버전이듯이, 이 글꼴도 아래아한글 글꼴 원판과 동일하지는 않다. 일부 글자가 미묘하게 엉성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사용하지 못할 퀄리티는 아니다. 고유한 조합 로직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냥 도깨비 8*4*4벌인지라 추출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지금 다시 보니 '가는돋움'이라는 기존 서체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거보다야 더 홀쭉하고 획이 둥글기 때문에 충분히 서로 다른 느낌이 난다.
1996년 무렵부터는 '한글타자'는 '한컴타자'로 이름이 바뀌고 본문의 글꼴도 평범한 명조로 바뀌어서 이 독특한 글꼴은 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200x년대, 아래아한글 워디안과 2002 시절에 드디어 그래픽이 일신한 Windows용 버전이 나왔으며, 한번 만들어졌던 게 별다른 개선 없이 아래아한글 2007까지 갔다. 도스용은 회색 배경에다 단조로운 텍스트 위주 구조였는데 이 버전은 배경이 나무 재질로 바뀐 게 인상적이었다.

그 뒤 아래아한글 201x 타이밍에 와서야 한컴타자는 완전히 다시 개발되었으며, 이번에는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온라인 타자 대련 기능까지 추가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온라인 연계는 날개셋 타자연습에 대해서도 게임의 3D화와 더불어 본인이 갖고 있는 희망사항이지만.. 혼자 감당할 여력이 안 되니 희망사항으로만 머무르고 있다.

아무튼 날개셋 편집기라는 한글 비트맵 글꼴 박물관에 역사적인 작품이 하나 추가됐으니 관심 있는 분은 사용해 보시기 바란다.

4. 기타

(1) 이 밖에 '세벌식 12키'라는 입력 유형을 예제로 추가했다. 그 좁은 12키에다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초중종성을 배치하고, 중앙 하단의 0은 가획 글쇠를 배당했다. 글쇠 수가 부족한 관계로 두벌식보다 평균적인 타수가 늘어나는 건 불가피하지만 그래도 음절 경계 모호성이니 도깨비불이니 하는 문제는 일체 없다. 12키용 세벌식도 이 정도 실험적인 시도는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도 물론 '휴대전화 입력기' 입력 도구에다가 가져와서 써 볼 수 있다.

입력 방식을 설계할 때 아까 영문 T9도 그렇고 다중타를 가능한 한 기피하는 게 추세인 것 같다. 안드로이드용 세벌식 입력기로 유명한 '세나'도 12키보다는 글쇠 수를 더 늘리고, 중첩 배당된 낱자는 다중타가 아니라 한 버튼을 클릭 후 '사방으로 드래그'하는 방식을 채택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좀 불편하긴 하다.

(2) 타자연습은 지난 3.8 이후로 변화 사항이 없지만, 이번 대대적인 입력기 개발로 인해 바이너리 호환성이 깨졌다. 그래서 같은 버전을 다시 올렸다.
이미 타자연습을 잘 쓰고 계신 분은 프로그램을 굳이 다시 설치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입력기의 커널과 타자연습의 커널이 서로 다르면 타자연습에서 '고급 입력 스키마나 고급 입력기' 같은 걸 사용할 수 없어지기 때문에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좋다.
딱~ 하나, 프로그램 main 화면에서 Alt+1~6을 눌러서 탭을 바로 오가는 기능만이 추가됐다.

참고로 타자연습은 '입력 도구'를 구동하는 기능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은 구현체이다. 키보드 연습만 하지 전문적인 텍스트 입력을 표방하지는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9.3에서 새로 추가된 각종 입력 도구 기능들을 만나 볼 수 없으며, 거기서는 날개셋 제어판을 띄우더라도 시스템 계층에 '입력 도구 자동 실행' 같은 옵션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3) 요즘 알다시피 보안을 빌미로 검열이 강화되고 있는 관계로, 웹에서 exe든 msi든 네이티브 바이너리를 덥석 배포하는 게 갈수록 껄끄러워지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 와중에 내 프로그램은 디지털 서명이 없고, 내 웹사이트는 인증서(https..) 같은 것도 없다 보니 이 난관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본인은 바이러스 백신, 보안 프로그램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의 개입으로 인해 날개셋이 설치되지 않거나 차단되는 문의에 대해서는 어찌 대처해야 할지 아는 게 전혀 없다. 요즘 그런 문의가 계속해서 와서 내가 그런 건 도와 줄 수 없다고 다운로드 페이지에다가 미리 양해를 구해 놨다.

글쎄 내 프로그램까지 굳이 찾아서 쓸 정도의 사용자라면 컴퓨터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초짜도 아닐 것이고, 이렇게만 써 놔도 이해는 할 것이다. 하지만 좀 궁색해 보이니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긴 해야 할 것이다.

5. 맺는 말

지난 2016년 말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본인의 날개셋 개발 관심사는 '복합 낱자 입력 로직 생성기'였다.
두벌식(세벌식이 아니라), 옛한글(현대 한글이 아니라), 모바일(PC가 아니라), 일부 글자만 입력(전체가 아니라) 같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도 원하는 글쇠배열과 결합 규칙에 따라 세부 한글 입력 로직을 전부 자동으로 구성해 주고 중간에 낱자와 글자 경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충돌이나 모호성을 다 감지하고 회피해 주는 입력 로직 설계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걸로 논문도 썼다.

이 과업을 마무리 지은 뒤 2017년 봄~여름 사이에는 편집기의 에디팅 엔진에도 손을 봐서 화면 스크롤 관련 10몇 년 묵었던 고질병 버그를 하나 잡기도 했다.
그리고 150% 이상의 고배율 화면에서는 16 대신 24픽셀 글꼴 표시 기능을 오랜 작업 끝에 도입하여, 1.0 이래로 16픽셀에 묶여 있던 한계를 거의 16년 만에 극복했다.

그 뒤 2017년 하반기부터.. 9.x 버전에서 지금까지 본인이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분야는 '입력 도구' UI들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바닥도 알고 보니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노다지이더라. 공통 인터페이스 하나만 잘 뚫어 놓으면 그걸 토대로 클래스 상속 받아서 사용자의 문자 입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들을 잔뜩 추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화면 키보드, 문자표 같은 밍숭맹숭한 기능들만 있었지만, 입력 도구들이 문자 입력 상태나 현재 cursor 위치 같은 걸 세밀하게 모니터링 해서 조합 및 후보 변환 자동 안내 내지, 한글을 다른 문자를 입력하는 메타문자로 사용하는 변환 도구를 다 구현해 냈다.

예정에 없던 작업들이 계속 추가되는 바람에 몇 년째 늦춰지고 또 늦춰졌지만,
이제 9.3 다음으로 올해는 진짜로 세벌식이 타자기에서나 빠르지 PC에서는 두벌식과 별로 차이 안 난다는 말을 완전히 반박할 수 있는 동시치기 관련 기능을 넣고, 이걸로 입력기의 큰 기능 줄기 연구는 접으려 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연구한 걸로 발표논문 정도는 하나 더 써서 2016년 때처럼 학회 갈 생각이다.

등산으로 치면 지금은 몇천 m 짜리 거대한 산의 정상을 저 멀리 앞두고, 정상 다음으로 제일 높은 둘째 봉우리에 도달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정상으로 가려면 능선 타고 가서 마지막 암반 봉우리를 오르는 것만 남았다.
석사 졸업 이후로 지금까지 연구했던 것 쫙~ 종합하고 살 붙이고, 추가 실험 결과 넣고.. 그러면 뭐 논문 나오겠지? 졸업은.. 30대 넘기기 전까지만 하면 될 듯.

전에도 말한 적 있듯이, 그냥 한글이라는 문자가 있고 컴퓨터라는 기계가 있으면 입력과 관련하여 이론적으로 할 수 있는 오덕질이 몽땅 가능한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표이다. 한글 갖고 어떤 형태로든 응용을 해 보려면 내 프로그램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구도를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11 08:36 2018/02/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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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불암산

산 세 군데를 연거푸 오른 뒤 본인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서울 불암산이었다. 2016년 초에도 여기를 정상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세부 등산 경로와 당일 날씨 같은 게 모두 달랐기 때문에 느낌이 새로웠다.
이번에는 하산할 때 주 능선을 타면서 작년에 들르지 못했던 불암산성 부근을 구경했으며, 남양주가 아닌 서울 중계본동 쪽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더 남쪽 끝까지 진행했으면 2017년초에 들렀던 태릉과 한전 연수원, 삼육 대학교 근처까지 도달하게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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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4호선 상계 역에서 내려서 정암사 방면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는 국립공원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지만 나름 등산로 안내가 잘 돼 있었다. 본인이 선택한 경로는 거기 안내도 상으로는 제5 등산로라고 기재돼 있었다.
여기는 지하철 선로가 개천을 복개한 형태이더니만, 등산로를 따라 자그마한 계곡이 있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물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계곡 따라 물 구경은 내 등산 패턴의 특성상 보통은 하산 과정에서 하는 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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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까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포장된 비탈길은 정암사까지만 나 있었고, 그 뒤부터는 좁은 등산로가 이어졌다. 사실, 완전히 정암사 부지까지 가는 게 아니라 도중에 등산로로 진로를 바꿔야 한다.
등산로는 대부분 온통 돌계단 형태로 닦여 있었으며, 이 상태로 산의 종축 능선인 깔딱고개까지 올라갔다. 산길은 깔딱고개가 가까워질수록 가팔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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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을 한참을 낑낑대며 오른 뒤에야 깔딱고개에 도착했다. 여기는 자동차 교차로처럼 길이 사방으로 뚫려 있었다. 본인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올라온 셈인데, 더 동쪽으로 진행하면 남양주로 빠져 버린다.
북쪽으로 더 가면 산의 정상 방향이며, 남쪽으로 가면 불암산성, 공릉동, 중· 하계동이 나온다. 본인은 정상에 갔다가 여기로 되돌아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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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딱고개에서 정상 방면을 향하자 산의 최종 보스인 암반이 곧장 나타났다. 이정표 상으로는 정상까지 몇백 미터밖에 안 남았다고 나오지만, 지금까지 설렁설렁 걷던 오솔길로 몇백 미터가 아니다. 그러니 저 거리는 북한산 정상 근처의 이정표만큼이나 낚시이다.
일부 정말로 길이 없고 위험한 암반에는 계단이 설치돼 있었지만 일부 구간은 발뿐만 아니라 손도 써서 로프를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올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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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정상의 암반을 오를 때가 돼서야 산 아래의 경치가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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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은 확실히 돌산이긴 하다.
예전에 갔을 때는 국기와 지리 표시 마크를 보고 사진을 찍었지만, 정상 표지석은 못 보고 지나쳤다. 산을 올라온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지 싶다.

그나저나 성남에 있는 산(영장, 망덕, 청계, 인릉 등~)들은 위치를 막론하고 딱히 돌산이 없었던 것 같다. 산이 많긴 하지만 높이도 막 높지 않고 그저 그런 흙산일 뿐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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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개 역, 그리고 불암산의 정상보다는 낮지만 또 다른 산봉우리가 내려다보인다.
사실, 수락산과 불암산 사이로 지하철 4호선 선로를 가로막고 있는 저 산봉우리를 타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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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서울이 아닌 남양주 쪽도 내려다본다. 아파트들이 빽빽히 들어선 서울과 달리 저기는 훨씬 한적해 보였다.
단, 아직 아침 시간대였던 관계로, 동쪽인 남양주는 역광이 심해서 좋은 풍경 사진을 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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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구경은 이 정도로 한 뒤, 본인은 다시 깔딱고개 쪽으로 내려가서 남쪽으로 능선을 타고 걷기 시작했다. 길이 전반적으로 이렇게 곱게 난 편이었지만, 이정표 없이 갈림길도 종종 나와서 헷갈렸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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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불암산에서 아마 정상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라 여겨지는 장소가 나왔다.
아까 같은 오솔길이 아니라 꽤 넓고 큰 광장이 펼쳐졌으며, 그 광장의 위에는 아마 불암산 유일의 헬리패드가 놓여 있었다.
인릉산은 정상이 이렇게 공터+헬리패드로 꾸며져 있는 반면, 불암산은 제일 높은 정상은 암반에 따로 있고 헬리패드가 이렇게 딴 곳에 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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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에 아차산성이 있다면 불암산은 불암산성이 있다.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불암산성의 일부 성벽은 알고 보니 이 광장 등산로의 아래를 받치고 있었다. 그러니 가까이 접근해서 살펴보기가 곤란했다.
형태가 좀 더 온전히 남아 있으면 더 급이 높은 문화재로 승격됐을 것이고, 기록이라도 더 상세히 남아 있으면 복원 재건하네 마네 했겠지만 달랑 저 황량한 돌무더기 폐허만으로는 뭔가 거창한 유적지 관광지를 조성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황룡사처럼 아예 흔적도 없이 부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지(址)'자가 붙을 정도는 아니다.
아차산과 불암산 모두 서울에서 너무 흔해 빠진 조선이 아니라 그 이전 시대의 흔적을 아쉬운 대로 간직하고 있는 흥미로운 산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위치도 서울의 동북부로 비슷한 편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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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가는 길은 무작정 평지밖에 없는 게 아니라 작게나마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부분도 있었다.
학도암까지 지나자 역시 이 산에서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은 커다란 팔각정이 나타났는데, 여기는 방문 당시 웬 단체 등산객들이 잔뜩 점령해 있어서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본인은 중계본동과 공릉동의 경계에 있는 백사 마을 쪽으로 하산하려 마음먹었다. 위의 사진은 착륙 예정지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이름은 뱀이나 모래가 아니라, 유래는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숫자 104를 뜻한다고 한다. 마치 시인 '이 육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등산로는 아주 좁고 험해지고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제대로 추적할 수가 없어졌다. 지난번에 인릉산에 다녀왔을 때도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에 거의 다 내려와 놓고는 길을 못 찾아서 한참 헤맸는데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백사 마을로 진입하지는 못하고, 거기서 북쪽으로 몇백 m 정도 비껴서 중계 현대 5차 아파트 부근에 착륙하게 됐다. 남쪽으로는 도저히 더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기서 약간만 더 걸어가면 백사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할 수는 있었다. 참고로 저기는 서울 강남의 '구룡 마을'처럼 서울 강북에 거의 최후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달동네라고 한다. 몇 년 안으로 주민들을 다 이주시키고 철거· 재개발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평소의 내 등산 스타일과는 달리, 서울 시내를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등산을 마쳤다.
그런데, 귀갓길 버스 차창 밖으로 '한글비석로'라는 도로명 주소가 보여서 "저건 뜬금없이 뭐야?" 생각이 들어 폰을 꺼내 검색을 해 봤다.

오오.. '서울 이 영탁 한글 영비'라고 무려 1500년대에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쓴 묘비가 여기 근처에 있다고 한다.
내용 자체는 "이 비석을 훼손하면 방법 한다. 방법 하면 손발리 오그라진다. 이 사실을 한문을 모르는 후세에게도 분명하게 알리는 바이다"급의 아주 단순무식 원초적..(!) 경고문에 불과하지만, 그야말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순한글 묘비문이기 때문에 국어사와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얘는 '보물'로 지정돼 있으며, 남한산성보다 당연히 격이 더 높다.

아이고, 나도 이런 게 있는 걸 진작에 알았으면 여기까지 온 김에 당장 찾아가서 구경하는 건데... 지금 당장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도 불암산 등산 덕분에 이제라도 덤으로 알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08 08:31 2018/02/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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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남한산

요즘 등산 답사기가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일 뿐만 아니라 등산의 계절이기도 한 것 같다.
날씨가 너무 덥지 않고 숲의 나뭇잎도 몽땅 칙칙한 갈색으로 바뀌거나 떨어지기 전에 적당히 단풍이 들어서 경치가 아주 좋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날씨는 더 서늘하고 추웠으면 좋겠지만, 나뭇잎은 초록색이 더 유지됐으면 좋겠다. 그러니 두 함수의 교점인 시기를 찾으면 10~11월경으로 귀착되며, 본인은 이 시기에는 개인 일과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가면서까지 일부러 등산을 집중적으로 많이 갔다. 내가 평소에는 아무 이유 없이 쓸데없이 몸 움직이고 운동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지만, 오지 탐험과 경치 감상 같은 동기가 생기면 그럭저럭 움직이기 때문이다.

성남의 오지들 다음으로 본인은 오랜만에 남한산성을 선택했다. 예전에 두 번이나 남한산성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둘 다 산성의 북쪽(하남 춘궁동)과 남쪽(검단산)으로 곧장 나가 버렸고 정작 성길 자체를 둘러보는 산행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동명의 영화까지 개봉했으니 시기적으로 더욱 적절했다.
아무튼, 이번에는 남한산성의 동쪽을 구경하고, 청량산 말고 성이 실질적으로 자리잡은 산인 남한산 일대를 답사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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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성까지는 저번처럼 일단 버스로 간 뒤, 산성의 북문인 전승문 근처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문 밖으로 나가지는 말고, 성 안에서 문 주변을 보면 등산로 진입로가 보인다. 그리고 진입로 옆에는 남한산성 전체의 지도가 걸려 있는데, 이건 별도로 갖고 있지 않다면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이 초행 등산객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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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이렇게 쭉 이어졌다. 사실, 성 내부에도 다른 등산로 탐방로 산책로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근 주민이 아닌 본인 같은 외지인은 아무래도 성곽길에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대도시를 처음 방문하면 굵직하게 노선 파악이 쉬운 지하철을 버스보다 즐겨 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남한산성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여기는 문화재 때문에 도립공원인 것이고, 군포의 수리산은 내가 알기로 북한산처럼 그냥 자연 환경 때문에 도립공원이다. 경기도 수도권에 도립공원은 이 둘이 전부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수리산도 가 보고 싶은데.. 저기는 안산 일대에 차 끌고 놀러갈 일 있을 때 한번 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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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하남시 춘궁동 및 상· 하사창동 마을을 오랜만에 다시 산에서 내려다보게 됐다. 본인은 초창기엔 남한산성에서 저 마을 방면으로 곧장 하산한 적도 있다. 그 뒤, 이번에는 산을 타고 성곽을 따라 저 마을의 오른쪽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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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암문이라고 해서 공원 같은 넓은 공간에 쉼터가 있었다. 여기에는 성 안팎을 드나드는 길과 내부 탐방로를 오가는 길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 이후에는 꽤 가파른 오르막이 나와서 내 종아리와 발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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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의 성곽길이란 게 원래 고도가 가변적이지만 여기는 지금까지 걸어온 구간 중에서는 제일 높은 곳 같았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고 해서 ‘동장대 터’라는 게 근처에 있고, 여기도 성 안팎을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 ‘남한산성 여장’이라고 안내문이 있긴 했지만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는 두 종류의 성벽이 만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따라왔던 성곽길은 방향을 바꿔서 봉우리 아래로 고도가 하강했다.
성의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했다. 남한산의 정상이 정확하게 어딘지는 아직 감이 안 잡히지만, 벌봉이니 한봉이니 ‘외동장대 터’ 이런 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리로 가려면 아무래도 이 성벽의 밖으로 나가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서 진로를 변경하여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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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성벽이 한데 만난다는 게 이런 뜻이다. 사진에는 흰 성벽의 문만 나왔지만, 이쪽으로 가기 위해서 기존 회색 성벽의 문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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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새로 난 길을 따라 벌봉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성벽의 보존 상태가 열악한지라, 성벽이 훼손되고 무너진 구간, 잡초가 무성히 뒤덮인 구간이 부지기수였다. 길도 그냥 흙길이지, 돌 같은 거 없다. 그래서 이곳 역시 장기적으로 복원 계획이 잡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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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의 흔적 + 높은 곳"을 쫓아 한 20분을 뺑뺑이 치니 외동장대 터가 나왔고 꽤 극적으로 정상 표지석을 발견했다. 남한산의 정상은 성 안이 아니라 성곽길 상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 안이 성벽 그 자체보다 고도가 높을 리가 없으니까.

남한산은 여느 산들 같은 정상 표지석이 없었다. 1970년대에 나라에서 높이 측정을 했다는 인증 돌판만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는데, 생각보다 최근에 모 산악회에서 "여기가 남한산에서 제일 높은 곳이오~"라고 표지석도 그 옆에다 설치해 놓았다. 다만, 너무 아담한 크기이다 보니 누가 이걸 가져가거나 훼손하거나 심지어 다른 곳에다 옮겨 버리면 어쩌나 우려되기도 한다.

여기 부근을 돌면서 벌봉, 봉암성, 봉암신성 병인비 같은 바위들도 발견했으니 이번 산행의 목표는 어지간히 달성한 것 같았다. 이제 북쪽으로 나가는 길을 찾아서  ‘객산’이라는 산을 거쳐서 하산할 수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본인은 남쪽의 한봉과 한봉성 정도는 더 구경하려고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갔다.
거기만 답사하고 나면 남한산성은 남옹성이 있는 남부와 좌익문 일대만 빼면 다 구경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본인은 남한산성의 사대문도 저 동문(좌익문)만 아직 못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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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따라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졌다.
한봉성(남한산성 성곽에서 특정 구간의 이름)이 먼저 나왔으며, 계속 더 걸어가자 다시 낮은 봉우리를 하나 오르는 게 나오고 성벽의 선형이 오른쪽으로(남쪽이던 것이 서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내 여기가 한봉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복원이 덜 됐는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지 성벽은 여기에서 끝났으며, 주변에 딱히 볼 건 없어서 사진은 생략하였다.

성벽은 끝났지만 등산로는 계속 이어져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남동쪽 광주시로 가는 차도와도 합류하게 되는 듯했다.
본인은 그 정도로 남쪽으로 가지는 않고, 여기보다 더 북쪽에서 성곽길을 적당히 이탈하여 산의 동쪽으로만 하산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봉성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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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본인이 남한산성을 완전히 빠져나온 출입구이다. 전방에는 저런 비탈길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 이정표도 울타리도 계단도 없었지만, 낙엽들로 뒤덮인 바닥을 살펴보면 적당히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되겠다 싶은 정도의 흔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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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끝났다. 내 기억으로 15분 남짓밖에 안 걸렸다. 이내 민가와 함께 잘 정돈된 길이 나타났다. 본인은 광주와 하남의 경계에 있는 ‘광주시 엄미리’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계곡을 따라 형성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나중에 알고 보니 ‘엄미 농원’이라는 사유지의 내부였다. 이제 등산은 끝나고 후속 미션인 오지 탐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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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건물과 차도가 등장했지만, 그래도 여기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거의 2.5km 가까이 걸어야 했다. 이곳은 소형 마을 버스 같은 게 다니는 게 없으며, 마을을 완전히 빠져나가서 큰길까지 가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차가 없는 안타까움을 절감하면서 터덜터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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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변 가을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여긴 나름 계곡을 따라 형성된 유원지인데, 언제부턴가 엄미천이라는 개울도 발원해서 졸졸 흐르고 있었다.
여기보다 살짝 북쪽의 하남시 상산곡동 일대도 비슷한 분위기의 마을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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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43호선상의 서울 방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아차산 동쪽의 구리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도 같은 번호였는데..? 그 국도의 디자인 컨셉이 그런가 보다.

국도와 엄미마을 진입로가 교차하는 곳 주변은 "안녕히 가십시오(광주)"와 "어서 오십시오(하남)" 표지판이 보이고, 한편으로 저렇게 중부 고속도로와 제2중부 고속도로 고가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탈 수 있는 유일한 시내버스는 13번이었는데, 하남 시내를 거쳐서 최종적으로는 천호, 강변 역까지 가지만 그 전에 서울 명일동 일대 주거 지역을 들쑤시고 다녔기 때문에 그 동네 구경도 덤으로 할 수 있었다.

이번 산행의 결론을 내리자면, 남한산은 군사 시설이라고는 그 흔한 헬리패드조차 하나 없이 모처럼 문화 유적 관람에만 충실한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성남에서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구간은 하남과 광주에 속했기 때문에 ‘성남 누비길’이 어떻고 하는 것도 전혀 없는 게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05 08:39 2018/02/0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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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발화산+응달산

청계산의 동쪽으로는 경부 고속도로를 건너서 인릉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청계산의 남쪽으로는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건너서 또 다른 산들이 존재한다. 이 산들 자체가 막 높고 유명한 건 아니지만, 이 영역에 속한 운중동, 석운동, 대장동은 성남시에서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손꼽히는 오지이다. (뭐, 현재까지는 그런 편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또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여기는 자연의 정취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밝히기엔 약간 므흣한 국가 기밀 시설도 있어서(단순 군부대가 아님) 신비로움을 더욱 부추긴다. 그래서 본인은 다음 산행지를 여기 일대로 선택했다. 여기는 등산보다도 땅밟기 탐험의 성격이 더 강했다. 이번 산행, 아니 탐험은 입산 경로부터가 꽤 독특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배경 설명이 먼저 길게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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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청계 톨게이트(요금소)에 도착했다. 이런 곳을 자가용으로 스쳐 지나는 게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게 될 줄이야..
1650번 좌석버스는 송파 IC에서 고속도로로 진행해서는 가천대 정류장에 한 번만 정차한 뒤 곧장 여기에 도착했다. 성남 요금소에서 청계 요금소까지는 막히지만 않자 꽤 금방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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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순환 고속도로가 이렇게 광역 좌석버스 정류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하긴, 경부 고속도로에도 곳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그건 요즘은 망하고 졸음 쉼터로 용도가 바뀌는 추세이다.

청계 요금소 주변에는 ‘청계 휴게소’라는 작은 휴게소도 있던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느 장거리 고속도로 휴게소라기보다는 그냥 경부 고속도로의 어귀에 있는 만남의 광장 내지 하이패스 센터 같아 보이는 아담한 외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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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빠져나가면 곧장 아무나 무료로 이용 가능한 주차 공터가 나타난다. My precious!! 안 그래도 오지 탐험인데 본인 역시 여기엔 차를 가져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산행 경로를 편도로 짰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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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서 반대 방향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서, 혹은 지금 본인의 경우 등산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를 횡단해서 반대편으로 가야 했다. 그렇다고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주로 하이패스 관련 처리 착오 때문에 운전자나 요금소 직원이 차에서 내려서 고속도로 횡단을 시도하다가 차에 치이는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전해지곤 한다. 하이패스를 겨우 시속 30km로 통과하는 고지식한 FM 운전자는 요즘 세상엔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특히 길가에 다 왔다고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4.5톤 초과의 대형 트럭 하이패스 차량들이 길가의 게이트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행자의 고속도로 횡단을 위해서 위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터널이 도로 아래에 마련돼 있다. 단, 이 터널은 길고 가파른 상구배(오르막)이며, 우회 경로가 너무 길고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애로사항이었다.

청계 톨게이트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아무튼 고속도로를 횡단한 거의 직후부터 흙길이 나오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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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맨 처음으로 발을 디딘 산의 이름은 ‘발화산’이다. 순우리말인지 한자어인지(특히 ‘發火’!!) 그 남쪽으로 이어지는 네임드급 산인 ‘바라산’과는 어원이 어떤 관계인지, 그런 건 알지 못한다.

이 산은 남쪽 바라산 방향으로 흙길을 올라가면 무슨 묘지가 나오는 모양이다. 거기서 계속 남쪽으로 가서 완전히 바라산으로 가거나, 아니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산의 능선을 타고 응달산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듯하다.
본인도 원래는 그걸 의도했는데.. 묘지까지 가지 않고도 고속도로가 보이는(그리고 그 대신 산의 고개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도 길이 나 있는 듯해서 호기심에 그 길을 가 봤다.

그리고 그건 고난의 시작이었다.
뭔가 중장비가 지나간 흔적이 있고, 흙길이 없는 건 분명 아니었다. 좀 무리하면 지나가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진짜 공인된 정규 등산로를 만날 때까지 약 1km쯤 되는 이 길은 울타리, 이정표 등 그 어떤 등산 시설도 없었으며, 수십~1백 m 남짓 주기로 또 사람 키만치 자라 있는 수풀이 앞길을 막았다. 한때 개방돼 있었지만 버려지고 폐쇄된 지 몇 년쯤 된 옛 등산· 산책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풀을 발로 밟아 쓰러뜨리고, 커다란 거미가 앉아 있기까지 한 거미줄을 몇십 개쯤 헤치고, 손등과 팔목에 생채기가 몇 군데 나고 옷과 백팩이 흙투성이가 되고 바지엔 이름 모를 시꺼먼 식물 씨앗 같은 게 달라붙어서 일일이 떼내고, 집채만 한 나무로 둘러싸인 좁은 샛길을 통과하기 위해 양팔을 들거나 머리를 숙이기도 하고..

가끔 고속도로 아래로 바깥 경치, 그리고 무슨 수십 년간 보존된 DMZ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웅장한 가을 자연 경관이 펼쳐진 것에는 감탄했지만, 이거 "빠져나가는 건 가능한가? 무장공비도 아니고 아침부터 나 혼자 이거 웬 생쑈를 하는 건가? 지금은 간신히 나아가고 있지만 길이 도중에 진짜로 끊겨 버리면 어떡하지? 이러다 고개 건너편은 구경도 못 하고 능선만 따라 산이 끝나 버리면 어떡하지? 지금까지 온 게 얼마인데? (...)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별 잡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여기를 빠져나가는 동안 다른 등산객을 마주친 건 당연히 전무했다. 낫이나 정글도라도 하나 좀 챙겨 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험한 산행을 했지만, 그래도 이 넓은 산지가 전부 내 것 같았고, 여기서 잠을 자든 혼자 무슨 짓을 하든 티가 안 날 것 같긴 했다. 위의 사진은 그나마 덜 험준한 곳의 모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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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심겨져 있는 식물과 나무의 종류가 바뀌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울타리와 나무 계단이 쳐진 정규 등산로가 결국 나타났다. 드디어 고생이 끝났다. 이 부근에 고속도로 위로 청계산과 발화산을 횡단하는 육교(청계육교 + 하오고개)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등산로를 따라 드디어 고개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었다. 꼭대기에서는 무슨 KBS 송신탑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철탑이 등산객을 반겨 주었다. 바라산 방면에서도 이쪽으로 오는 길이 있었는데, 내가 능선을 따라 이런 삽질을 안 했으면 그 길을 따라 여기에 도달하게 됐을 것이다.

이 지점이 아마 발화산에서 가장 높은 정상으로 추정되었다. 작고 낮은 듣보잡 산이어서 그런지 인근의 다른 산과는 달리 정상 표지 같은 것도 없다. 이제야 등산이 원래의 계획 궤도에 진입했으며, 본인은 동쪽의 운중· 석운동 방면으로 하산을 선택했다. 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하산하는 길은 그 이름도 유명한 성남 누비길 구간에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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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산의 정상에서 본인이 입산을 시작한 청계 톨게이트를 내려다봤다.

산 내려가는 장면은 별로 볼 것 없는 흙길과 숲길뿐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사진은 생략한다. 여기는 주변 지역 탐험이 아니면, 산 자체는 멀리서 원정까지 와서 갈 만한 곳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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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어느 정도 내려가자 철조망이 나타났다. 정말 그 어떤 경고문이나 팻말도 없이 그냥 철조망뿐이었다.
사실, 발화산의 고개 너머 남쪽에는 거대한 코렁시설이 있다. 그쪽으로는 나무도 정말 빽빽하게 심겨져 있어서 위에서는 아래에 뭐가 있는지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다.

이유는 안알랴줌이고 어귀 딱 한 군데에만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달랑 안내된 게 마치 청계산 상적동 구간 근처에 있는 군부대 입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뭐 그래 봤자 여기는 그 코렁시설의 정말 북동쪽 변두리 외곽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기 주변만 아무리 어슬렁거리며 들여다본다 해도 뭔가 대단한 걸 염탐할 수는 없다.

옛날에 경찰대가 용인에 있던 시절엔 학생들이 운동 차원에서 법화산 산길을 구보했을 텐데, 여기서 근무하거나 연수를 받는 ‘그분’들은 이 산 산길을 달리면서 체력 단련을 하지 싶다. 아무튼, 여기에 착륙하는 걸로 발화산은 답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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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 코스인 응달산을 찾아갔다.
발화산과 응달산 사이는 나름 높은 산중턱 고지대이지만, 비교적 넓은 평지와 함께 차도와 건물도 있어서 시골 마을 느낌이 났다.
응달산 등산로는 북쪽으로 차도를 따라 한 300m쯤 걸으니 나타났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꺾어서 자동차까지 진입 가능한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거기로 가지 말고 더 직진해야 한다. 거기는 한전 관할의 비밀 기지(송전? 변압?)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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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산도 높이 250m가 될까 말까인 낮고 작은 동네 뒷산 급이어서인지, 산속엔 딱히 볼거리는 없었다. 다만, 등산로는 전반적으로 아주 크고 넓게 잘 닦인 편이었다. 산악 자전거가 다녀도 될 정도였다.
그나저나 ‘다음’ 지도는 2018년 2월 기준으로 응달산을 혼자 ‘옹달산’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 오타를 고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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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응달산 중턱에 있는 한전 비밀 기지이다. 언뜻 보면 무슨 철도 차량 기지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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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정표는 부실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언제부턴가 살짝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본인은 계속 동남쪽으로 가서 대장동 시골 마을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예전에 태봉산에서 내려다보았던 그곳 말이다. 하지만 어떤 방향은 동북쪽으로 가서 산운마을 아파트 단지로 가는 것 같았다.

거기를 피해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언제부턴가 묘지와 차도가 나오고 산이 끝나긴 했다. 하지만 마을로 가려면 한참을 더 걸어 내려가야 했다. 내 발 밑으로 용인-서울 고속도로가 터널로 지나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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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대는 역시 분위기가 판교· 분당 신도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한적한 논밭, 한편으로는 형형색색의 빌라와 단독주택이 인상적이었다. 차가 없어서 두루 둘러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하지만 대장동도 이제 막 재개발 붐이 일고 있어서 곳곳에 굴착기와 덤프 트럭이 돌아다니면서 공사 중이었다. 사진에 나온 저 건물들도 대다수는 이미 주민들이 빠져나가고 철거 예정이었다. 내가 지금 본 광경을 불과 몇 년 뒤, 3~5년 안으로는 못 보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의 오지 탐험이 더욱 뜻깊은 답사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 오지에서 거의 유일한 대중교통은 대략 15~20분 간격으로 다니는 마을버스 32번이다. 주변에 버스 정류장 표식은 전혀 없지만, ‘두밀로’와 ‘모두마니로’라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여기서 버스를 타고 무사히 귀가했다. 중간에 거친 동원동 일대와 낙생 저수지의 풍경도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02 08:30 2018/02/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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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인릉산(인능산)

본인은 지난 2016년 1월 말, 한겨울에 인릉산을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본인이 지금 같은 등산 관행이 정착하기 전의 완전 초창기였기 때문에 사진을 남긴 것이 별로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산에서 바깥 경치를 제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전망대를 들르지 못하고 바로 심곡동 서울 공항 방면으로 하산을 해 버렸다.

본인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후 오랫동안 아쉽게 여겼으며, 결국 이를 보완하기 위해 훗날 경로를 달리하여 재등산을 하게 됐다.
인릉산은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도 잠시 볼 수 있는 낮고 작은 흙산이다. 청계산에 비해 그리 유명하지 않으며, 등산로 입구가 ‘어서 오십쇼’ 수준으로 잘 갖춰진 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사연이 담긴 유물이나 절 같은 것 역시 없다. 그 대신 내부엔 예비군 훈련장 같은 군사 시설들만 잔뜩 들어서 있다.

그리고 얘 등산로의 상당 구간이 서울과 성남의 경계이며 ‘성남 누비길’이다. 서울과 구리의 경계인 아차산, 서울과 하남의 경계인 일자산처럼 말이다.
처음 등산하던 시절에도 각종 이정표와 소개 문구에서 성남 누비길이라는 단어가 있었지만 본인은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하긴, 그때는 서울 둘레길이라는 것도 까맣게 몰랐다. 등산이라는 분야조차도 그야말로 배경 지식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인릉산의 이름은 그냥 왕릉 이름에서 유래된 걸로 보인다. 자신의 북쪽에 있는 구룡· 대모산의 남부에 잘 알다시피 선릉과 ‘인릉’이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인능산’이라는 표기가 훨씬 더 많이 쓰이고 검색 결과도 더 많이 뜨는데,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왜 두음법칙이 표기 차원에서까지 적용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좀 혼란스러운 점이다.

처음 갔을 때는 본인은 옛골 마을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서-동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본인은 방향을 달리하여 성남 신촌동에서 시작해서 동-서로 이동했다. 그리고 남쪽의 옛골 방면으로 하산한 게 아니라 최대한 서북쪽으로 진행하여 서울 내곡동 방면으로 하산했다. 그래서 인릉산의 옛골 근처 구간에 존재하는 산불 감시 초소는 보지 못했다. 기왕 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경로는 이런 식으로 최대한 차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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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위해 지방도 23호선상에 있는 서울 공항 내지 공군 제15비행단 기지 근처를 그것도 대중교통으로 오랜만에 방문했다.
요 알록달록한 도색의 물건은 뭔가 공군 기지의 상징인 것 같은데, 무슨 관제탑도 아니고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야전에서 식물과 흙을 벗하며 싸우는 육군이 아니니, 굳이 칙칙한 국방색이어야 할 필요는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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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동 마을의 풍경이다. 본인은 이런 건 보통 하산한 뒤에 감상하도록 등산 계획을 짜는 편인데, 이번에는 뭔가 순서가 바뀌었다.
군부대 활주로가 훤히 보이는 곳이니 여기는 15비가 이전하지 않는 한 재개발되어 고층 건물이 들어설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보면 되겠다. 마을 내부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인릉산과 가까워지고 오르막 비탈이 가팔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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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울창한 숲길이야 어느 산을 올라도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니 너무 많이 올리지는 않겠다. 다만,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10월 하순), 단풍이 서서히 물들면서 산의 전반적인 색깔이 바뀌어 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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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어느 정도 오르니 15비 활주로도 이 정도는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프로펠러기가 이륙하는 것을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눈으로 보고 엔진 소리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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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도 온통 진지라고 해야 하나 참호라고 해야 하나.. 이런 웅덩이가 가득했다. 군사 냄새가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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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전망대’에 도달했다. 산의 중앙이 아니라 동쪽에 치우친 곳에 있기 때문에.. 산을 동쪽에서 오르자 더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인릉산 2차 등산의 주 목표가 이렇게 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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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의 아래로는 이런 게 보인다. 저 밑에 있는 공터는 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군부대 연병장이다. 보이는 게 저게 전부는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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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모산 동쪽 기슭, 강남구 내곡동에 아주 기괴하게 생긴 아파트(LH 강남 힐스테이트) 단지가 이렇게 들어선 게 보인다. 저 건물을 이런 구도로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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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한참을 더 걷고 올라가자 이 산의 정상이 나왔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 헬리패드가 있고, 헬리패드보다 약간 낮은 공터에 또 벤치와 참호, 풀밭이 놓여 있다. 막 높고 유명한 산이 아니어서인지, 특별히 정상 인증 비석이나 정자, 국기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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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등산로의 한쪽엔 인릉산 특유의 군부대 철조망으로 길게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내곡 터널 위를 지나고, 신구 대학 식물원 방면 안내판도 지나고..
중간에 몇 번 길을 잘못 들 뻔하기도 했지만 요즘 시대가 어느 세상인가, 폰으로 위치를 확인하면서 그럭저럭 위기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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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서남쪽의 옛골 마을 방면으로 하산을 유도하는 이정표가 보였다. 하지만 본인은 그쪽으로 가지 않고 서북쪽 ‘홍씨 마을’ 방면을 선택했다.
거기는 길은 있지만 등산로 안내는 썩 친절하게 돼 있지 않았다. 그리고 군부대 철조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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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가 본 길 대신 새로운 모험을 택한 것에 대한 보상은 이렇게 주어졌다. 공터가 나타나서 서울 남쪽 끝의 경부 고속도로 주변(신원동?)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산행은 이른 아침 대신 한낮부터 시작했다. 이 당시 시각은 오후 4시가 좀 넘어 있었는데, 보다시피 벌써부터 날이 조금씩 저무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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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최종적으로는 입산할 때처럼 한가한 전원마을이 아니라, ‘서초 포레스타 5단지’라는 아파트촌에 착륙하는 걸로 이번 산행을 마쳤다. 신분당선 청계산입구 역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서울 남부 그린벨트 지대가 이렇게 개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옛골이 아닌 이쪽은 인릉산 등산로가 막 적극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다 내려왔다고 생각되었는데 고속도로가 보이는 쪽으로는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한참을 헤맸다. 결국 ‘내곡 마을 둘레길’이라는 산길을 더 가서야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저런 등산로를 통해 산을 벗어나게 됐다.

행정구역이 성남에서 서울로 바뀌니 각종 안내 표지판들의 글꼴과 스타일도 싹 바뀌었다. 하긴, 옛날에는 성남에 소재한 산들의 이정표가 추레한 명조체 계열이었는데 이게 조금씩 새걸로 교체되는 중인 것 같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30 08:36 2018/01/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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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2 경인 고속도로의 동쪽 연장

우리나라의 서울과 인천 사이에 처음에는 경인선 철도가 건설되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엔 철길의 북쪽에 경인 고속도로가 생겼고, 또 한참 뒤에 1990년대에는 철길의 남쪽으로 제2 경인 고속도로가 개통했다. 제2 경인은 동쪽이 삼성산을 앞두고 끝나면서 행정구역상 서울을 경유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선의 상징성 때문에 '경인'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제2경인은 오리지널 경인이나 외곽순환처럼...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가 아니라 그냥 수도권의 단거리 도시 고속화도로와 비슷한 위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도로의 서쪽 끝과 동쪽 끝이 연장되면서 그 위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먼저, 서쪽은 인천대교와 연결되면서 사실상 공항 고속도로의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 오리지널 경인 고속도로의 북쪽으로 공항 고속도로가 따로 지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리고 동쪽은 삼성산과 청계산 아래를 몽땅 터널을 뚫어서 근성으로 돌파한 뒤, 안양과 의왕을 지나 성남의 여수대로까지 연장되었다! 이 민자 구간은 따로 '안양-성남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2017년 9월에 개통했다.

의왕과 성남 사이에는 이 고속도로가 기존의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매우 가까이 나란히 달리지만 새 길은 대부분 터널이기 때문에 서로 지상에서 마주볼 수는 없다. 지도를 보면 판교 운종동에서 아주 잠깐 지상으로 나올 뿐이다.
나중에 판교 분기점을 지나지만 지하로 통과하며, 기존 경부 내지 외곽순환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는 없다.
용인-서울 고속도로(171)와도 갈아타는 거 없다. 단지, 종점을 앞두고 분당-내곡 고속화도로와는 갈아타는 연결로가 생기는 듯하다.

이 고속도로는 성남 시청 바로 근처에서 국도 3호선으로 바뀌면서 끝난다. 여기서 한참을 동남쪽으로 진행하면 광주시 초월읍에 도달하는데, 여기서는 중부 고속도로(35)와 만남과 동시에 광주-원주 고속도로(52)를 타고 계속 동쪽으로 갈 수 있다.

여기 사이 거리가 20km에 달하니 짧지는 않지만.. 수틀리면 고속도로 110과 52가 한데 만나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어 보인다. 흥미로운 일이다.
철도 분당선이 겨우 분당-서울 전철이 아니라 이제 경기도를 두루 아우르는 거대한 순환형 광역전철이 됐듯, 110번 고속도로는 겨우 서울-인천이 아니라 경기도를 두루 아우르는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6. 하이패스 차단기, 코레일 개집표기

오늘날 전국의 고속도로 IC들의 하이패스 진입로에 딱히 차단봉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악용하여 통행료를 상습적으로 안 내고 튀는 악질 운전자 때문에 도로 공사가 골머리를 썩는 중이라고 한다.
과거에 하이패스라는 게 처음 도입됐던 시절에는 진입로에 여느 건물 주차장 입구처럼 차단봉이 있었다. 평소에는 내려가 있다가 차량의 하이패스 단말기가 본부와 통신이 정상 처리됐을 때에만 올라가곤 했다.

그런데 건물 주차장 출입구야 차들이 워낙 느리게 움직이니 그런 식으로 차량 진입을 통제하면 되지만, 고속도로는 그렇게 하기에는 차량이 너무 빠르게 달리는 중이라는 게 문제였다. 정말 악의 없이 기계 오류 때문에 인식이 안 된 건데도 차단봉이 안 올라가면 차가 차단봉과 부딪치는 사고가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차단봉만 부수고 차량 앞부분만 좀 긁히면 차라리 다행인데, 운전자가 당황해서 차단봉을 피하느라 핸들을 옆으로 꺾으면 주변 시설물까지 다 부수는 더 큰 사고로 도지기 쉬웠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 공사에서 1차로 취한 조치는 부딪치더라도 차량에 상처를 주지 않고, 휠지언정 부서지지 않는 부드러운 훼이크 재질로 차단봉을 교체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마치 도로에 색만 칠해진 훼이크 과속방지턱만큼이나 초행 운전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은 여전히 준다. 오동작+회피 사고의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관계 당국의 오랜 고민 끝에 하이패스 진출입로에서 차단봉은 모두 철거되고 사라지게 됐다. 설치하는 데도 돈 들고, 철거하는 데도 돈 들고.. 결국 예산 낭비라고 언론에서 까였다. 전국에 고속도로 나들목이 한두 개 있는 것도 아닌데..
얌체 운전자를 어떻게 잡아낼지는 따로 생각할 일이고, 일단은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현장 보존, 증거 확보, 과실 비율보다도 당장 차를 갓길로 옮기고 2차 사고를 예방하는 게 절대적으로 더 중요하듯이 말이다.

하이패스 차단봉 같은 지위와 운명을 지녔던 물건이 과거에 철도계에도 있었다. 바로 고속철 개통과 함께 주요역에 도입했던 지하철 스타일의 자동 개집표기이다.
이것도 나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도입한 것이었지만, 알고 보니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다. 집어넣은 승차권이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는 걸림 현상이 잦았고, 또 승차권 자체도 항공권 같은 영수증 모양 내지 SMS· 홈티켓 등으로 형태가 다양화되면서 저런 자동 개집표기가 무의미한 형태로 바뀌었다.

결국 자동 개집표기는 개집표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봉인되거나 아예 철거되기에 이르렀다. 이것도 언론에 보도되어 많아 까였었다.
고속도로의 하이패스 차단봉과 정말 비슷한 처지로 보이지 않는가?

7. 버스 전용 차선 등~

경부 고속도로는 극심한 정체로 인해 1990년대 중반에 국내 최초로 버스 전용 차선이 시행된 것으로 유명하다. 난 신탄진 IC 이북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팩트의 전부는 아니다. 평일에는 오산 IC부터이고, 주말과 공휴일에만 신탄진 IC부터이다. 그래서 신탄진과 오산 사이에는 파란색 버스 전용 차선이 실선이 아닌 점선으로 그어져 있다. 2017년 7월 말부터는 영동 고속도로도 신갈-여주 사이에 버스 전용 차선이 주말 한정으로 시행되었다. 시행 시간대는 여러 차례 변경을 거친 끝에 현재는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로, 남산 터널들의 혼잡 통행료 징수 시간대와 동일하다.

비슷한 시기인 1996년 초에는 서울 시내의 천호대로에도 중앙 버스 전용 차선이 첫 시행되었다. 하지만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 차선과 시내의 버스 전용 차선은 중앙 1차로를 버스 전용으로 떼어 줬다는 점 외에 취지와 이념은 서로 차이가 있다.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 차선은 보다시피 심야에는 시행되지 않으며, 9인승 이상 소형 승합차라도 6명 이상이 타면 통행이 허용될 정도로 유도리가 있고 관대하다. 그러나 시내의 버스 전용 차선은 노선 버스들만 통행 가능하며, 심지어 그런 버스들이 끊긴 심야까지 포함해서 365일 24시간 시행이다. 긴급자동차 정도가 아닌 한, 일반 차량 운전자들은 저 차선을 꿈에도 넘볼 생각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이크로버스라도 정규 노선 버스라면 버스 전용 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작은 마을버스들이 버스 전용 차선이 있을 정도의 큰 도로를 다니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이 차선은 사실상 대형 버스들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도로교통법을 보면 이 전용 차선을 다닐 수 있는 버스는 그냥 버스가 아니라 '노선버스'이다. 그러니 단순 학원· 교회 버스나 관광· 전세 버스, 사기업의 통근 버스는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는 소· 중형이 아닌 대형 버스라면 다 들어가는 것 같다.

경부 고속도로의 경우, 경기도 구간부터는 차들이 워낙 많고 혼잡하니 평소에는 갓길까지도 차량 통행용으로 개방해 주고 그 대신 대피소를 일정 간격으로 추가로 설치하곤 한다. 지금이 갓길 주행이 가능한지 여부는 마치 상하행 가변 차선 도로의 O X 표시 램프처럼 전광판이 별도로 해 준다.

옛날에는 고속도로의 일부 지점에도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고속· 시외버스가 정차하곤 했다. 지금은 휴게소 환승이 있지 그런 관행은 없어진 지 오래다.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비상용 활주로로 사용하던 관행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옛날에 쓰이던 버스 정류장이 개조되어 졸음 쉼터 내지 비상 대피소로 탈바꿈하곤 한다. 고속도로의 내부 구조가 이런 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8. 그 밖에 고속도로 주행하면서 들었던 생각들

(1) 하이패스는 버스· 전철에서 환승 할인 교통 카드만큼이나 정말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필수가 됐다. 고속도로는 폐쇄식과 개방식, 도로공사 구간과 민자 구간이 뒤섞이면서 요금 체계가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고 있으니 하이패스 같은 거 없이는 이제 버틸 수가 없다. 이제는 하이패스 전용 IC도 등장하고 있으며, 현금 통행료 무인 징수기는 통과 시간이 정말 길고 불편하다.

돈 거래에 관한 한 현금은 동전이든 지폐든 절대로 기계 친화적인 매체가 아니다. 이건 동물의 다리는 바퀴와 달리 기계로 구현하기 아주 어려운 파트인 것과 같으며, 페이지를 넘기도록 제본된 책이 사람에게는 읽기 편한 형태이지만 스캔 뜨는 데는 아주 안 좋은 형태인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금 수납이 기계로 대체되고 나면 사람은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고 불편해진다. 패스트푸드점에서든, 고속도로 톨게이트든, 지하철역 1회용 승차권 구입이든.. 예외가 없다.

(2) 난 옛날에는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칼치기 추월을 하는 스피드광 폭주족들만 미친놈 나쁜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1차로를 떡 버티고 정속· 저속 주행하면서 우측 추월을 강요하는 애들이 그보다 더 무개념 나쁜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체 상황이 아닌 이상, 추월 차로는 필요할 때 잠시만 이용하도록 하자~!
추월 차선을 딱 비워 놓고 언제나 좌측으로 예측 가능하게만 추월하면 독일 아우토반처럼 시속 200을 넘게 달려도 사고 잘 안 난다. 요즘 차들은 성능도 좋은데, 괜히 비현실적인 과속 단속 감시나 하지 말고 차로 분리를 더 적극적으로 계도· 계몽했으면 좋겠다.

(3) 휴게소의 주유소가 기름값이 생각보다 저렴한 게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미리 환전을 안 하고 공항에 가서야 환전하면 바가지를 잔뜩 쓰며, 열차 안이나 산 같은 현장에서 구매한 도시락은 비싸고 가성비가 안 맞게 마련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도 준비물을 미리 챙겨야지 거기 가서 잡상인을 이용하면 역시 바가지 쓴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기름도 시내에서 미리 넣어 가야 저렴할 텐데, 고속도로 휴게소의 기름은 그렇지 않았다. 도로공사가 ex-oil이라고 자체적으로 거품 없는 석유 유통망을 갖추고 있는 덕분에 그렇다고 한다.

(4) 고속도로는 그러고 보니 유조차· 특대형 트레일러 같은 크고 아름다운 차, 위험물을 실은 차가 주행 가능하구나!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같은 시내의 여느 자동차 전용 도로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인데 이를 지금까지 별로 의식 안 하고 있었다. 하긴, 고속도로는 그렇게 나라 먹여 살리는 자동차들을 당연히 통행시켜 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4.5톤을 초과하는 대형 트럭들은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하이패스 단말기 장착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걸 본인은 지금까지 몰랐다. 고속버스가 하이패스 달고 잘만 달리고 있는데 의외다. 그러니 이런 트럭 운전자는 하이패스 카드를 제시해서 현금 취급 없는 통행료 결제까지만 가능하지, 톨게이트 무정차 통과는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하이패스를 달더라도 톨게이트는 거의 기다시피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다른 기술적인 제약 때문은 아니고, 과적 단속을 위해서라고 함..

(5) 그나저나 영천-경주 구간 확장은 언제쯤 끝나려나.. 공사 때문에 갓길도 없고 하도 위험하고 사고가 나서 그런지 최고 속도 한계가 100에서 80으로 낮춰졌으며, 아예 예전에 없던 구간 속도 단속이 시행되고 "시속 80으로 달리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이런 오글거리는 표어까지 붙었다. "이렇게 빌 테니 제발 과속하지 말고 천천히 가세요" 거의 이런 급이다..;;
고속도로의 상태가 주변의 국도(20, 4)보다도 못해진 상태이니 공사가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려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27 19:37 2018/01/2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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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속도로 개통 관련 에피소드

중부내륙 고속도로(45)가 주요 구간이 개통해서 서울-경주 갈 때 대전을 경유할 필요가 없어진 게 10몇 년 전 일인데..
2017년 6월 말엔 상주-영천 고속도로(301)가 추가로 개통한 덕분에 이제는 서울-경주 갈 때 대구· 구미를 들를 필요마저도 없어졌다.
사실, 거의 같은 시기에 저 301뿐만 아니라 제2경부 고속도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세종-포천 고속도로(29)도 포천-구리 구간이 개통했다! 이 좁은 땅에 알게 모르게 고속도로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하지만 저때 언론의 관심은 오로지 서울-양양 고속도로(60)의 전구간 개통에만 몰려 있었다. 그래서 29와 301은 존재감 없이 진짜 깔끔하게 묻힌 것 같다. 뭐, 저건 우리나라 최북단 고속도로인 데다 서울· 수도권 주민들의 휴가철 교통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니 임팩트가 더 클 수밖에 없긴 하다.

나 같은 자동차· 지리· 교통덕에게는 새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이 무슨 새로 생긴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어느 지방에 무슨 맛집이나 카페가 생겼다고 하면 여자분들은 초점은 그 목적지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본인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중간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으음.. 뜬금없는 사실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 고속도로(120)가 서울-인천간의 주요 구간이 개통한 건 1968년 12월 21일이다. 하지만 서쪽 끝의 가좌동에서 인천항까지 6km 남짓한 구간이 마저 100% 완공된 건 이듬해(69년) 7월 21일이었는데..
이건 일개 고속도로 개통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구급 경축 이벤트와 날짜가 정확하게 겹쳤다는 걸 지금까지 전혀 생각 못 했다.
바로 아폴로 11호, 인간 최초의 달 착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아예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서 학교와 관공서가 놀았다.

한국은 인제 군사정권 하에서 산업화 찔끔 하고 짤막한 고속도로 '하나' 만들어서 좋아라 하고 있었지만 천조국은 이미 그로부터 거의 3, 40년 전부터 전국에 하이웨이가 거미줄처럼 깔렸으며 진작부터 마이카 시대가 시작돼 있었다. 그리고 1960년대엔 비행기를 넘어 아예 우주선을 만들고 인간을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공산주의 진영과 싸우는 스케일이 가히 넘사벽이었던 셈이다.
이때 국내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했으며, 이튿날 1면은 큼지막한 제목이 전부 '인간 달 착륙, 우주 시대 개막' 이랬었다. 그러니 경인 고속도로 전구간 완공 소식 따위는 그냥 싹 묻혔고 찾을 수 없었다.

2. 용인-서울 고속도로

2009년에 개통한 용인-서울 고속도로(171)는 위상이 꽤 독특한 물건이다.
얘는 2017년 현재, 전국의 고속도로들 중 유일하게 전구간이 다른 어떤 고속도로와도 직통하지 않고 고립돼 있다. 양 말단이 연결된 것이 없고, 중간에 타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 있지도 않다. 얘는 무슨 바다를 건넌다거나 경북의 BYC처럼 지금까지 고속도로가 전무하던 오지를 개척한 게 아니며, 나름 수도권에 다른 고속도로들과 교차하거나 근처를 지나는 게 있는데도 말이다. (뭐 수도권에서도 상대적으로 오지에 속하는 그린벨트 지대 위주로 지나기는 하지만..)

얘는 안 그래도 민자이기까지 하니 뭔가 고속도로계의 유아독존 같은 느낌이 들며, 바다처럼 매우 넓긴 하지만 세계 다른 대양들과 통하지 않는 '카스피 해' 같은 호수를 보는 느낌이다. 하긴, '민자 고속도로'라는 개념도 영종도 다리를 경유하는 공항 고속도로 이후로 2000년대 중반에 대구-부산, 그리고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슬금슬금 도입된 개념이다.

용인-서울 고속도로가 혼자만 뻗어 있는 게 좋지 않았는지(창 2:18), 현재는 경부 고속도로와 교차하지만 분기점 없이 그냥 지나치던 곳에 '성남 JC'라고 일종의 '환승 통로'(?)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판교 JC와 대왕판교 IC보다 약간 더 북쪽 지점이다. 이곳을 이용하면 번거롭게 헌릉까지 안 가고 경부 고속도로 라인에서 용인-서울 고속도로에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단, 얘는 사통팔달이 아니라 반쪽짜리로만 만들어진다. 용인(171)에서 서울(1) 방면으로(북쪽), 아니면 서울(1)에서 용인(171) 방면으로(남쪽) 동일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만 가능하지, 용인에서 다시 대전으로 가거나 대전에서 방향을 꺾어서 다시 용인으로 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울러, 얘는 북쪽 서울 방면은 그렇다 쳐도 남쪽은 왜 기존 고속도로와의 연결을 못 시킨 걸까? 동탄이나 오산 정도에서 경부 고속도로와의 분기점을 만들면 연계 효과가 더 커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거기까지는 아마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신경을 못 쓴 것이지 싶다. 저기는 안 그래도 휴게소도 전무한데 거대한 입체 교차로를 만드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그 대신, 하이패스도 있겠다, 앞으로는 이거 뭐 고속도로도 간접· 소프트 환승이란 게 도입될 것 같다.

3. 남해 고속도로, 고속도로의 지선

지난 추석 때 본인은 가족 여행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해 고속도로 일대를 운전할 일이 있었다. 서울· 수도권이 전혀 아닌 곳에 종축도 아닌 횡축으로 8~10차선급의 넓은 고속도로가 있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뭐 부산을 포함해 그 일대의 창원· 마산도 수도권에 준하는 대도시이니 수긍이 갔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함안-마산 구간은 길이 정말 많이 막히고 정체가 심했다. 알고 보니 여기는 원래 아주 악명 높은 구간이라고 한다. 교통 수요에 비해 길이 마땅찮아서 차들이 전부 여기로만 몰리기 때문이다.
그 안습한 철도라는 경전선도 동부 한정으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며, KTX가 지나고 그것도 승객 수요가 아주 많아서 장사가 잘 된다니 말이다. 슬금슬금 복선 전철화 공사도 진행 중이다.

요즘 고속도로도 전국 곳곳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번호들이 많이 등장하고, 특히 지선을 나타내는 세 자리 번호가 많이 눈에 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지선인 151처럼 말이다.
철도가 경전철이 트렌드가 되었듯, 이 좁은 땅에 고속도로도 굵직한 간선은 다 건설되고 이제는 촘촘한 지선을 만드는 게 트렌드가 된 듯하다. 그리고 남해 고속도로는 그 짧은 구간에 그런 지선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철도에 동일 구간을 서로 다른 길로 진행하는 태백선과 함백선이 있듯, 고속도로 중에는 중부 고속도로의 경기도 구간(35)과 제2중부 고속도로(37) 쌍이 있다.
그런데 남해 고속도로에도 마산 시내를 경유하는 제1지선(102)과, 마산 외곽을 더 짧은 거리로 지나는 본선(10)이 이렇게 잠시 분기했다가 다시 만난다. 원래는 지금의 지선이(시내 경유) 먼저 남해 고속도로 구간으로 건설돼 있었지만, 그게 지선으로 바뀌고 나중에 건설된 외곽 지름길이 본선으로 편입된 것이다.

남해 고속도로의 제2지선(104)은 부산 서쪽 외곽의 김해 공항으로 빠진다. 그리고 제3지선(105)은 항구로 빠지기 때문에 일반 민간인이 여행 목적으로 이용할 일은 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2중부 고속도로도 지금 같은 37이 아닌 351이라는 지선 번호가 붙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맥락으로, 서해안 고속도로(15) 주변도 어느 건 둘째 자리수만 변화시킨 17이고 어느 건 아예 지선 번호를 붙인 153인지 좀 헷갈릴 지경이다.

4. 고속도로의 통행료 부과 방식

경부 고속도로의 경우, 가장 북쪽의 서울 시내 구간에 속하는 한남-반포-서초-양재 IC 사이는 엄밀히 말하면 경부 고속도로가 아니다. 입체 교차로와 방음벽이 쳐져 있고 도로 표지판에도 고속도로를 뜻하는 붉은 왕관 모양과 함께 고속국도 1호선이라고 안내는 돼 있지만, 거기는 그냥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같은 서울의 여러 시내 자동차 전용 도로 중 하나일 뿐이다. 정식 명칭은 '경부 간선 도로'이다. 고속도로가 아니므로 여기만 통행하는 것은 아무 제약 없이 무료이다.

진짜로 경부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곳은 양재 IC 이남부터이다. 달래내고개 일대의 그린벨트를 지나고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교차하게 되는데, 여기는 일명 '개방식' 구간이다. 특정 구간이나 IC를 통과할 때만 고정된 액수의 통행료가 부과된다. 주변의 경인 고속도로, 외곽순환 고속도로는 IC가 조밀한 간격으로 굉장히 많이 있기 때문에 일정 간격의 구간별로 톨게이트가 있다(전자).

그러나 경부 고속도로는 폐쇄식 거리 비례제로 요금제가 바뀌는 서울 톨게이트가 따로 있기 때문에 위와 갈은 형태의 톨게이트는 없다. 다만, 서울 톨게이트의 이북이고 그렇다고 무료 서울 시내 구간에도 속하지 않은 대왕판교 IC와 판교 IC는 서울 방면으로부터 진출할 때에 한해서 소액의 고정 통행료를 징수한다.

부산 방면으로부터 와서 판교로 나가는 거라면, 이미 서울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낸 상태이기 때문에 판교 IC에서 또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또한 판교 IC를 통해 부산 방면으로 진입하는 거라면 역시 서울 톨게이트를 곧 통과하게 될 것이므로 통행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판교 IC의 통행료 징수는 전적으로 서울-판교 단거리 왕래를 대상으로만 적용되는 셈이다.

판교 IC 말고 판교 JC는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경부 고속도로가 만나는 분기점이다. 얘를 통해서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도 판교 IC로 나갈 수가 있는데, 이때는 비록 부산이 아닌 서울 방면으로부터의 진출이지만 청계나 성남 톨게이트처럼 인근의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냈다는 영수증을 제시하면 판교 IC에서 돈을 또 내지 않고 나갈 수 있다.
이건 대중교통으로 치면 일종의 환승 할인이나 마찬가지인 개념이다. 복잡한 규칙이지만 이것도 하이패스만 달고 있으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나가든 다 알아서 자동 처리된다.

판교 JC 역시 사통팔달 뚫린 길이 아니다.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는 경부 고속도로의 부산 방면으로만 나갈 수 있지, 서울 방면(양재, 한남)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리고 경부 고속도로도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 서울 방면 차량만 외곽순환으로 나갈 수 있지, 서울에서 부산 방면으로 향하던 차량이 외곽순환으로 갈아탈 수는 없다. 이런 구조 때문에 판교 IC도 외곽순환으로부터 유입되는 것만 가능할 뿐, 판교 IC에서 외곽순환 고속도로로 갈 수는 없다. 서울(여기서 통행료 내고) 또는 부산으로 경부 고속도로만 탈 수 있을 뿐.
저기 일대는 굳이 사통팔달 안 뚫어도 차들로 넘쳐나는 곳이니, 서울 일대에서 외곽순환이나 잠깐 타는 차들은 경부 말고 다른 대체 도로를 이용하라고 저렇게 막아 놓은 것 같다.

요렇게 개방식 요금제 구간에서 반쪽짜리 톨게이트를 굴리는 고속도로 나들목이 경부 고속도로의 판교 IC(서울 톨게이트 이전) 말고도 중부 고속도로의 하남 IC(동서울 톨게이트), 그리고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덕소삼패 IC(남양주 톨게이트)가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는 그런 특이한 IC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나면 하이패스가 없는 차량은 통행권을 받으며, 진출하는 IC에서 통행권을 반납함과 동시에 이용 거리에 비례한 통행료를 낸다. 모든 차량이 하이패스가 장착되고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 진출입로가 실시간으로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거리 비례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면 골치 아픈 개방식· 폐쇄식 같은 구분이 사라지고 통행권 발급과 현금 취급 같은 번거로운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넓은 톨게이트 부지도 필요 없어지니 거기는 공원이나 휴게소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8/01/25 08:29 2018/01/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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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언어유희 관찰

1. '아' 다르고 '어' 다름

  • 이건 번역이 아니라 반역이다.
  • 이건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다.
  • 저놈들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소탕의 대상일 뿐.

음운 하나만 바꾸니 긍정· 중립적인 심상이 확 부정적인 심상으로 바뀜.
이런 맛깔나는 개드립을 만들 수 있는 예가 또 뭐가 있나 궁금하다.

ㅐ와 ㅔ도 '한대', '한데', '한 데' 모두 다름.
'매다'와 '메다', '결제'와 '결재' 의외로 구분하기 아주 어렵다.
"사랑해 보고 싶다", "사랑해. 보고 싶다"가 다른 것만큼이나...!!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2. I sawed the demons

Doom 1 게임의 배경 음악 중에 제목이 "I sawed the demons"인 곡이 있는 걸 보고는 표현의 기발함에 빵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국산 영화 중에 "악마를 보았다"가 있는데.. saw가 아니라 sawed이다. 핑키데몬 패거리를 훌륭한 대화수단인 전기톱으로 쓱싹쓱싹 썰어 죽였는가 보다.

이런 식의 말장난들을 수집하면 자료가 잔뜩 모이지 싶다. 하긴, 레밍즈의 레벨 이름 중에도 "No problemmings!" 같은 게 있었고 말이다.

3. 중의성

난 벡터의 외적이라고 하면 당연히 3차원에서만 정의되고 결과값으로 역시 벡터가 나오는 그 연산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키백과를 보니.. 내적이 행벡터(한 줄짜리..)와 열벡터(한 칸짜리)의 곱으로서 스칼라이듯이, 외적은 반대로 열벡터와 행벡터의 곱으로서 행렬이 나오는 연산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내가 원래 아는 그 외적은 '벡터곱'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하더라.

자동차 기계에서 '로터리 엔진'도 이와 비슷한 중의성과 혼동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다. 모든 행정이 피스톤의 상하 왕복 없이 태생적으로 곧장 회전으로 바뀌는 엔진을 뜻하지만, 한편으로 실린더가 불가사리 팔처럼 달려 있는 '성형'(별 모양 같은.. 星形) 엔진도 로터리라고 불리는가 보다. 내가 아는 로터리 엔진은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반켈' 엔진이라고 부른다.

'반켈'을 자음 역행 동화까지 반영해서 '방켈'이라고 적는 건 내가 알기로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허용돼 있지 않다. 그래도 이런 음운 변화가 한국어에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영어로도 같은 접두사가 correct의 반의어는 in-correct이지만, possible의 반의어는 im-possible이다~!

4. 마술사와 마법사

magician sorcerer wizard. 마술사 요술쟁이 마법사.
다~ 그 말이 그 말 같다.
심지어 성경에서도 셋 다 등장하며, 별다른 구분이 없이 공평하게 다소 부정적인 심상으로 쓰였다. 출 7:11, 단 2:2처럼.

오늘날의 용례를 따라 좀 구분하자면, M은 영국 신사 검은 모자 검은 정장 차림으로 흰 장갑을 끼고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그 사람을 가리킨다. 즉, 전적으로 기술과 트릭만으로 마술 쇼를 선보이는 직업 엔터테이너이다.
유럽에서는 단두대를 작동시키는 사형 집행관이 경찰· 군인 제복 차림이 아니라 저런 마술사 같은 정장 차림이기도 했다. 나름 전문직임을 표방하고 사형수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S는 마법사 중에서도 좀 사악한 마법사.. 과학자로 치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느낌이 난다. 똑같은 뱀도 snake 대신 serpent, 돼지를 pig 대신 swine이라고 부르는 듯한 그 느낌이다.
각종 동화와 게임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마법사는 전부 이 칭호가 붙는다. 알라딘과 페르시아 왕자에 나오는 Jafar처럼 말이다.

W는 소매가 치렁치렁 내려오는 군청색 계열 robe 차림에다 비슷한 색깔의 고깔도 쓴 백발 할아버지 마법사를 가리킨다. 우리에게 딱 이렇게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참고로 위저드의 여성 버전이 바로 witch(마녀..!)이다. 얘는 옷차림은 남자와 비슷한데 코가 툭 튀어나왔으며,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세계를 통틀어 wizard라는 단어의 용례를 크게 바꿔 버린 이력이 있다. 자기 컴퓨터 프로그램 UI 요소 이름을 '마법사'라고 붙였기 때문이다. '다음', '다음' 누르면서 몇 가지 선택만 하면 나머지 작업은 마치 컴퓨터가 마술을 부리듯이 짠 알아서 해 준다고..;;
그거 원조가 1994년 Word 6.0에서 도입된 문서 작성 마법사(정확히는 문서· 양식마당 같은 기능)이다. Visual C++에서도 초기 프로젝트를 세팅해 주는 기능의 이름이 AppWizard이다.

5. 토마토와 감자

개인적으로 유튜브에서 즐겨 보는 Doom 2 플레이 동영상 시리즈 채널이 있다. 중계를 하는 아저씨가 말을 참 찰지게 잘했다. replenish the ammo (탄약을 보충) 이런 말도 하길래 지금까지 성경에서 문어체로만 보던 replenish가 현대에도 구어에서 저렇게 쓰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양반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시뻘건 둥근 몬스터 Cacodemon을 토마토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big red tomato랜다.. ㅋㅋ 카코데몬이 토마토라니.. 완전 창의적인 발상이다.
그리고는 비슷한 계열의 갈색 몬스터인 Pain Elemental을 감자라고.. potato라고 불렀다. 한국어 내지 한글 표기로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영어로는 감자와 토마토가 묘하게 롸임이 잘 맞는 단어들이다. =_=;; 유전공학에서도 괜히 pomato라는 말을 만든 게 아니다.

하긴, 스타크래프트에도 비슷한 예가 있으니, 바로 템플러 두 기가 합체한 아콘이다. 빨간 공(다크 아콘), 파란 공(그냥 아콘) 둘을 싸잡아서 전구 러쉬라고도 하는데 꼭 리버처럼 특정 동물이나 벌레를 닮지 않은 아닌 유닛도 이렇게 애칭이 존재하는가 보다.

6. 어휘 병렬

난 초월번역 때문에 퍼진 이런 유행어들을 좋아한다. '찢고 죽인다'(rip and tear), '크고 아름다운', '힘세고 강한'(mighty fine...??)..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는 딱히 초월번역은 아닌 것 같다.
awe는 성경에서도 fear와 비슷하지만 좀 더 놀라움과 존경(대단하게 여김)의 뉘앙스가 가미된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또한, 유의어를 대구· 병렬해서 의미를 강조하는 것 자체도 성경에서 문학서 위주로 즐겨 쓰이는 수사 기법이다.
우리말에서는 기도할 때 많이 쓰이는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 이것도 비슷한 용례일 수 있겠다. 엄밀히 말해 주술 호응이 어법상 좀 안 맞긴 하지만 말이다.

병렬과 대구는 유의어로 할 수도 있고 반의어로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수학을 좋아하는데, 그 다음으로 수학을 도구로 사용하는 과학 계열 과목을 덩달아 좋아하고 잘한다면 그건 뭐 뼛속까지 이공계 적성일 것이다. 이런 건 일종의 유의어 병렬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인이 영국, 캐나다 같은 나라의 복수 국적도 덩달아 갖고 있는 격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수학을 좋아하는데 극도의 추상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니 그 다음으로 철학이나 신학(...)으로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파스칼은 대표적인 예이며, 아이작 뉴턴도 물리뿐만 아니라 저 바닥으로도 사상이 장난 아니게 심오하고 책도 많이 쓴 사람이었다.
이런 건 반의어 병렬인 걸까? 미국인이 호주나 일본 같은 나라의 복수 국적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7. 영화 대사

(1) 범죄도시 영화에 나오는 '진실의 방'과 '전 변호사'
이말년 씨리즈에 나오는 '존대말 학습기'
가혹행위 고문 도구일 뿐인데 쓸데없이 병맛 고퀄의 이름을 붙여 놓은 예가 또 뭐가 있을까?
이런 거 나오면 재미있다. 범죄도시에 나오는 '휘발유와 경유'는 둘리에서 '핵폭탄과 유도탄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배우는 언어 예절은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 When someone says 'hi,' it's usually polite to say 'hi' back. (테이큰.. 끝날 때 다 돼서)
  • You forgot to say 'please'. (터미네이터 2 첫부분..)

정말 기가 막히게 대사를 쓴 것 같다.. ^_^
특히 후자의 경우, 그 마초 아저씨는 자기에게 대뜸 "오토바이, 재킷, 구두 좀 내놔"라고 요구하는 벌거벗은 청년에게 담배빵까지 선사하면서 참교육을 시도하지만, 상대는 터미네이터인지라 교육이 통하지 않고 자기가 쳐발렸다..;; (아 그나저나 벌거벗은 남자에게 담배빵이면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종말편과 비슷한 장면이네..!! ㅋㅋㅋ)

(3) 내가 타이타닉 호 내지 영화 타이타닉 얘기를 하면서도 지금까지 이걸 언급한 적이 없었구나. 칼의 집사이며 흥신소 탐정 출신의 '러브조이'는 악역인데 왜 이름을 하필 성경적인 심상이 굉장히 강한 '러브조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는지 궁금하다.
갈 5:22가 말하는 '성령의 열매' 중 첫째와 둘째가 바로 사랑, 기쁨(love, joy)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peace, longsuffering 등이 이어진다.

영화를 본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본인은 오로지 칼만이 속물 나쁜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 원리 원칙대로라면 타이타닉은 음행을 자유로운 사랑이라고 정당화· 미화하는 색채가 짙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칼은 싫지만 칼의 다이아몬드 선물은 싫지 않았던 로즈의 행동도 역시 비판받을 점이다. -_-;; "과속 칼치기 vs 차로 안 지키기"만큼이나 내가 나이가 들면서 생각과 관점이 약간 바뀌었다.

8. 나머지..

  • '자급자족'과 '자업자득'은 용도와 뉘앙스가 굉장히 다른 사자성어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의외로 구분이 쉽지 않은 게 느껴진다...;;
  • 망치와 마치, 갯벌과 개펄.. 이렇게 원래는 발음이 미묘하게 다르고 뜻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구분이 없어져 버린 말의 예가 더 있을까? 돌과 돐도 비슷한 경우이겠다.
  • 동물 중에도 이리와 늑대(wolf), 부엉이와 올빼미(owl) 같은 건 구분이 꽤 애매하다.
  • 서울랜드는 '서울 대공원'의 안에 있는 놀이공원이고, 반대로 롯데월드는 놀이공원인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포함한 복합 시설의 총칭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둘을 섞어서 아무 명칭이나 놀이공원을 가리키는 용도로 쓰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22 08:31 2018/01/2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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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서울 밖으로 등산 갈 때는 성남, 하남, 구리 등 동쪽을 다니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서쪽의 광명으로 원정을 갔다.
광명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이 자그마한 산맥을 이룬다. 산들의 높이 자체는 200m대에 지나지 않지만 수평 거리가 긴 편이어서 산책하기 좋다. KTX 광명 역은 최남단에 있는 서독산의 동쪽에 있으며, 광명 시내보다는 안양과 더 가까이 있다.

본인은 광명시 보건소 근처에서 구름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구름산과 가학산의 정상을 보고, 거기서 곧장 하산했다. 그리고 광명시에서 대대적으로 밀고 있는 관광 명소인 '광명 동굴'을 구경하고 왔다. 즉, 맨 위와 맨 아래의 두 산은 건너뛰고 중앙의 두 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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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째 공원처럼 등산로가 넓고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벤치와 정자도 많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는 그렇잖아도 '구름산 도시 자연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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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구름산과 가학산을 통틀어서 산 속의 정자들은 이렇게.. 나무 기둥이 수직이 아니라 아래로 쩍 벌어진 스타일이었다. 이런 정자는 처음 봤다.

공원 구간을 벗어난 뒤부터 등산로는 여느 산길처럼 울타리 없는 좁은 흙길로 바뀌었다. 중간에 산을 관통하는 구름산 터널을 타넘었다. 여기는 전반적으로 흙산이지만 바위도 종종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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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관악산 방면을 바라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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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앞두고 여느 정자보다 좀 높은 2층 정자가 나타났다. 산불 감시 초소라고 하는데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등산객용 전망대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산 속에서 이런 정자를 찾아가서 비를 피하고 야영을 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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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동쪽 아래는 빽빽한 시가지인 반면, 서쪽 아래는 비교적 한적한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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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는 커다란 표지석이 있고, 붉은 기둥의 정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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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산 정상에서 가학산으로 가려면 능선만 타는 게 아니라 고개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했다. 능선에는 군부대가 있고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있지만 공군은 아니고 육군 부대였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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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이다. 등산로가 군부대 철책보다 아래에 있다.
그리고 어디서부턴가 이 길은 '광명 누리길'이라는 팻말이 나타났다. 각 도시들이 자기 관할인 산들에 등산로· 산책로를 개척해 놓고 이름을 붙이는 건 유행이라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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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드디어 가학산의 정상에도 도달했다. 표지석은 앞면과 뒷면에 한글과 한자 표기가 모두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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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얘기했듯이, 가학산 정상에서 계속 남쪽으로 진행해서 서독산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은 그러지 않고 서쪽의 광명 동굴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기는 보다시피 그냥 절벽이기 때문에 굉장히 급격한 계단을 따라 잠깐 내려가야 했다.

산 아래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저 건물은 '광명 자원 회수 시설'이라고 한다. 굴뚝이 정말 크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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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동굴이란 자연 동굴이 아니라 가학산의 기슭과 아래에 꽤 방대하게 뚫려 있던 광산이 원조이다. 강원도가 아니라 서울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그리고 그냥 평범한 동네 뒷산 같은 이런 산의 아래에 광산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꼭대기는 군부대이고 땅 속은 광산이라니 으음..
석탄은 아니고 여러 종류의 중금속들이 그럭저럭 채굴돼 나왔다고 한다. 구리, 아연뿐만 아니라 금과 은도 약간이나마 나왔다.

이 광산은 일제 강점기이던 1912년에 처음 개척되었고 해방 후에도 수십 년간 광부들의 일터 역할을 했으나, 그로부터 딱 60년 뒤인 1972년에 환경 오염 문제(그리고 아마 채산성도 감소)로 인해 폐광하게 됐다.
그 뒤 이 부지는 몇십 년 동안 버려져 있었는데, 2010년대에 들어서 광명시에서 약 빤 모험을 시작했다. 폐광을 테마파크 관광지로 마개조한 것이다.

이건 온통 산이고 광산도 제일 많은(그래서 철도도 산업선이 제일 먼저 깔린..) 강원도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 강원도는 광업이 망하면서 지역 경제가 싹 죽자 호텔· 콘도 짓고 올림픽 유치하고 강원랜드 같은 카지노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과정을 거쳐서 구 가학 광산은 2011년에 처음으로 일부 구간만 민간에 개방되었다가 몇 년 뒤엔 별별 물고기· 식물 전시관, 좀비 체험(!)관, 그리고 와인 갤러리 등이 추가되고 이름도 '광명 동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료 입장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높은 천장에 거대한 계단을 타고 밖으로 나가던 홀(?) 비슷한 장소는 공연장으로 바뀌었으며, 그쪽으로 나가지는 않게 동선도 바뀌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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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갱도라는 게 대체로 그렇듯이, 출입구는 평지보다 높은 곳에 있지만 채굴을 계속할수록 엄청나게 낮고 깊어진다. 가학 광산도 원래 지하 9층까지 있었지만 광명 동굴은 두 층만 사용하며, 지금도 민간에 개방된 공간은 극히 일부뿐이다. 물론 그 두 층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건물 두 층 높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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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답게 나름 이렇게 보물 코스프레를 해 놓은 곳도 있다. "알리바바와 40명의 도둑"에서 '열려라 참깨' 동굴 안 모습이 이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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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전시관 구경을 다 하고 올라온 뒤에는 광산 역사관과 와인 갤러리를 둘러본 뒤 퇴장하게 돼 있었다. 저런 모형도 있고, 방 중앙에는 아래의 광부들이 탄 리프트를 끌어올리는 엘리베이터 기계실처럼 생긴 물건도 전시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Doom 2의 레벨 26 The abandoned mines가 딱 이런 구조물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맵이다.

세상엔 여러 극한 직업들이 있지만 광부는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3D 극한 직업이지 싶다. 뭐, 농부· 어부에 비해서 날씨는 별로 타지 않는 직업일 것 같지만, 날씨보다 더 위험한 요소가 널려 있다. 오죽했으면 미성년자는 물론이고 여성은 소수의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하면, 갱내 근로가 아예 대놓고 "금지"돼 있으며(근로기준법 제72조), 우리나라에서 옛날에 어떻게든 외화 벌려고 그 먼 독일까지 괜히 광부(+간호사)를 보낸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절엔 가정과 나라가 얼마나 가난했으면, 거기에라도 가려고 대졸자들이 바글바글 몰렸으며, 너도 나도 손에 일부러 연탄 가루까지 묻히면서 면접관에게 "꼭 가고 싶습니다!"라고 외쳤었다. 돈을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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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전등갓조차도 와인 잔을 엎어 놓은 형태이더라.
하긴, 포도주는 생각보다 종류가 굉장히 많고 와인 잔도 종류가 다양했다.
포도를 재배하지도, 포도주를 생산하지도 않는 웬 수도권의 어느 도시가 전국 최대의 포도주 판매· 유통처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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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등산과 동굴 구경을 마치고 나왔다.
차 없이는 다니기 힘들어 보이는 오지이지만 유일하게 17번 버스가 광명 동굴을 찾은 뚜벅이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나가니 KTX 광명 역이 나왔다. 난 광명 역의 주변 지상에서는 철길을 전혀 볼 수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또한, 역 주변으로는 어마어마한 높이과 크기의 아파트인지 주상복합인지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호반베르디움??)
본인은 여기서 오랜만에 광명 셔틀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광명에는 저렇게 폐광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동굴이 있고 고속철 역이 있고 경륜 경기장도 있고(광명 스피돔. 하남에는 미사리 카누 경기장), 이케아도 있다(하남에는 스타필드?).
나름 광명 시장이 시의 인지도를 올리려고 유치해 낸 거라고 하니, 그 사람이 참 유능한 인물인 것 같다.

저기는 그냥 경부선 철길에서 미묘하게 비껴 간 오지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옛날에는 "지하철 타면서 농사 짓는 이색적인 사람"라고 해서 광명의 어느 서울 근처 그린벨트에서 사는 할아버지 소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거기도 온통 개발되고 있으니 그런 사람을 볼 일이 없어질 것이다.

광명에서는 광명 동굴을 명물로 밀고 있는데, 구리시에서는 왕릉을 밀고 있다. 오죽했으면 근처의 버스 정류장을 아예 긴 명사절로 지었다.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인 동구릉.. -_-)
다음 산행 내지 산책 때는 저기도 언젠가 가 볼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9 08:32 2018/01/1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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